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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402년 조선시대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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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3 id=GS_con_tit&gt;1402년 조선시대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歷代國都之圖)' 원본 발견&lt;/H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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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CDATA[
						document.title = &quot;1402년 조선시대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歷代國都之圖)' 원본 발견&quot;+&quot; | Daum 미디어다음&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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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date&gt;세계일보 &lt;EM&gt;| &lt;/EM&gt;&lt;SPAN&gt;입력 &lt;EM&gt;2009.11.23 12:40&lt;/EM&gt;&lt;/SPAN&gt; &lt;EM&gt;|&lt;/EM&gt; &lt;SPAN&gt;수정 &lt;EM&gt;2009.11.23 16:02&lt;/EM&gt;&lt;/SPAN&gt; &lt;!-- 이기사 누가봤을까 --&gt;&lt;EM&gt;|&amp;nbsp;&lt;/EM&gt;&lt;!-- 이기사 누가봤을까 --&gt;&amp;nbsp;&amp;nbsp;
&lt;DIV class=GS_font_0 id=news_content style=&quot;FONT-SIZE: 15px&quot;&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WIDTH: 256px; MARGIN-RIGHT: 10px&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IMG height=237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11/23/segye/20091123160209437.jpeg&quot; width=256 border=0 w=&quot;256&quot; h=&quot;237&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동양최고의 지도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C8%A5%C0%CF%B0%AD%B8%AE%BF%AA%B4%EB%B1%B9%B5%B5%C1%F6%B5%B5&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123124009780&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lt;/FONT&gt;&lt;/U&gt;&lt;/A&gt;'(混一疆理歷代國都之圖). 왼쪽부터 아프리카 인도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quot;&quot;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8%B8%B8%AE%C0%E5%BC%BA&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123124009780&quot; target=new stitle=&quot;&gt;검색하기&quot; alt&gt;&lt;U&gt;&lt;FONT color=#0000ff&gt;만리장성&lt;/FONT&gt;&lt;/U&gt;&lt;/A&gt; 황하 조선반도 일본 등이 표시돼 있다. &lt;BR&gt;&lt; 아사이신문 홈페이지 캡처 &gt; &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현존하는 동양 최고(最古)의 지도가 일본 류우고쿠(龍谷)대학의 9년여 작업 끝에 복원됐다. 이 지도는 조선 초기 한반도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번에 처음 원본이 발견돼 일본 첨단의 광학 기술로 본래의 모습을 찾게됐다. &lt;BR&gt;&lt;BR&gt;아사히 신문은 23일 가로 1.6m 세로 1.5m의 크기로, 1402년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歷代國都之圖)라는 이름의 지도를 발견 복원했다고 보도했다. 현존하는 세계지도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는 이 지도는 교토에 있는 류우고쿠대학의 오카다 요시히로(岡田至弘)교수팀은 이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것을 발견한뒤 3억 5000만 화소 이상의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5%F0%C1%F6%C5%D0+%C4%AB%B8%DE%B6%F3&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123124009780&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디지털 카메라&lt;/FONT&gt;&lt;/U&gt;&lt;/A&gt;와 엑스( x)선 처리 기법 등을 이용해 제작, 당시의 색채를 복원해냈다. &lt;BR&gt;&lt;BR&gt;지도에는 중국이 중앙에 크게 위치해있고 한반도의 강역이 지금보다 훨씬 크게 표시돼있으며 일본이 그 아래 조그맣게 표시돼있다. 황하와 아무르강 만리장성 및 당시 도시 이름 등도 선명히 복원됐다. 대학측은 건학 창립 370주년 기념사업 &lt;BR&gt;&lt;BR&gt;
&lt;DIV class=GS_conL style=&quot;WIDTH: 256px&quot;&gt;
&lt;P class=ph&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11/23/segye/20091123160209444.jpeg&quot; width=256 w=&quot;256&quot; h=&quot;208&quot;&gt;&lt;SPAN&gt;&lt;/SPAN&gt;&lt;/P&gt;&lt;/DIV&gt;으로 지난 2000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학계에 따르면 이 지도의 사본은 전해지고 있으나 원본이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고쿠 대학측은 이 지도의 원본을 복원해냈으며 아사히 신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lt;BR&gt;&lt;BR&gt;지도에 따르면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quot;&quot;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E%D0%B7%CF%B0%AD&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123124009780&quot; target=new stitle=&quot;&gt;검색하기&quot; alt&gt;&lt;U&gt;&lt;FONT color=#0000ff&gt;압록강&lt;/FONT&gt;&lt;/U&gt;&lt;/A&gt;과 두만강의 유로가 지금보다 훨씬 윗쪽에 표시돼있으며, 서해안과 동해안의 해안선이 지금과 별다른 차이가 없고, 하천과 산맥 표시 등도 현재와 비슷하게 표시돼있다. 학계에서는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이고 당시로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로 평가되고 있다. 이 지도는 임진왜란 또는 일제 강점기 전후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학계에서는 대학측으로부터 이 지도에 관련된 자료를 넘겨받아 정밀 분석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lt;BR&gt;&lt;BR&gt;정승욱 선임기자&amp;nbsp; [Segye.com 인기뉴스] &lt;BR&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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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징키스칸의 발자취를 따라서/ 한국은 이웃사촌이자 사돈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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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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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8:24:51Z</updated>
	    <published>2009-11-10T18:24:51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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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gisa_title vAlign=bottom&gt;
&lt;H2&gt;징키스칸의 발자취를 따라서/ 한국은 이웃사촌이자 사돈나라 &lt;/H2&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title_s&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title_s&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amp;nbsp;&amp;nbsp; &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사람들은 한국을 ‘사돈의 나라’(査頓之國)라고 부른다. 고려의 마지막 100여 년 간 왕들의 이름에는 충(忠 )자가 들어갔는데 그들의 부인들이 모두 몽골의 공주님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왕들은 바로 몽골왕들의 사위들인 것이다. 제25대 충렬왕, 26대 충선왕, 27대 충숙왕, 28대 충혜왕, 29대 충목왕, 30대 충정왕등이고 그 유명한 노국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31대 공민왕의 비도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대장공주였다.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은 빠이앤티무르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래서 그랬는지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한 후 유독 고려국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풀어서 그가 임명한 고려출신의 왕으로 하여금 고려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는 양국의 관계가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나라들은 몽골의 관리가 직접 통치를 하였는데 매우 잔혹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에게만은 이런 특혜를 베푼것이다. 짐작컨대 징기스칸 출현 이전부터 한국과 몽골간에는 우호적인 관계가 이미 성립 되었던것같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에 가면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上古史)를 알 수 있다. 고구려 이전 혹은 당대에는 몽골과 우리는 국경을 맞댄 이웃사촌 나라였다. 몽골의 동쪽 끝 초원지대에 가보면 그런 전설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고려촌이라는 동네이름이 아직도 여기 저기 있는데 이는 고구려 여인들이 시집을 많이 와서 사는 동네이기에 그런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우리 배달민족이나 몽골족의 시원을 바이칼호수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그 호수에서 발원하여 일부는 그곳에 남아 몽골족이 되고 일부는 한반도에 정착하여 한민족이 되고 일부는 베링해볍&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건너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이 되고 또 일부는 해협을 건너다가 북극동네에 남아 에스키모족이 되고 또 계속 남하하여 남미의 원주민이 되고... 그들의 뿌리가 같음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로 몽골의 바다격인 흡수골 호수 북쪽에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집인 나무 기둥을 모아 원추형으로 세워놓고 천으로 휘두른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천막과 똑같은 모양의 천막을 치고 사는 부족이 지금도 있는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맨하탄의 인디언 박물관에 가보면 온양에 있는 우리 민속박물관에 온 느낌이 들정도로 비슷한 물건들이 많은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참빗이라든가 인두나 골무같은 것들은 세계적으로 두 나라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육당 최남선도 그렇게 보았다. 사실 두 민족은 너무나 흡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가족제도라든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나 형제간의 우애를 중시한다던가 음주 가무를 즐겨하는 것이나 손님접대를 성대하게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것등은 너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같은 것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식사를 하면서 ‘고시레’ 하면서 밥 한 숫가락을 공중으로 던져 버리곤 했는데 지금도 몽골인들은 고시레의 습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그렇게 하고 술을 마실 때 손가락에 술을 묻혀서 공중으로 튕기면서 ‘고시레’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먼저 한 수저 드리고 하나님께 먼저 한잔 올린다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정이 되면 윷놀이를 하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말판의 도개걸윷모가 우리의 그것과 똑같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언어적으로는 알타이어족이니까 대충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였지만 실제도 약 300여개의 어휘가 같은 것이라는 데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얼룩말 달룩말, 연지, 곤지, 골무, 인두등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오른쪽으로 갑시다” 는 몽골어로 “바른쭉으로 야우야” 이다. 문법상으로도 동일한 것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몽골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 해외의 민족들중에서 아리랑을 가장 우리와 같은 감정과 톤으로 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몽골사람들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건데 몽골과 우리는 먼 옛날 헤어진 동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총명한 공민왕이 노국공주를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였다는 것을 안다. 예부터 남남북녀(南男北女)라고 했다. 남자는 남쪽의 남자가, 여자는 북의 여자가 여자답다 라는 말이다. 몽골의 여인들은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쾌활하고 매력적이다. 지금도 대학교육을 시키는데 딸에게 우선권을 준다. 고려말 당시, 몽골에서는 고려여인을 부인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고려에서는 몽골여인을 그렇게 맞아들이는 것은 유행이었다고 문헌에 남아 있는데 이것은 소수의 특권층들만이 할 수 있는 호사였었다. 2007년 3월 20일에 서울의 외교센터에서는 한국과 몽골의 국가 연합 세미나가 열렸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날 세미나는 (사단법인)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소장 이재형·국제정치학 박사)가 주최했는데 이 세미나의 핵심은 한국과 몽골은 인종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일한 점이 많으며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므로 국가 연합(Confederate)을 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세미나가 열리고 타당성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과 몽골은 1990년 3월26일에 국교를 수립한 이래 여러 방면에서 관계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같은 몽골로이드 혈통이어서인지 양국 국민은 이례적이라 할 만큼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 국민 간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양국 국민간 우호관계가 무르익어 어느새 ‘우리가 남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동질감을 갖게 됐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의 국토는 우리의 일 곱 배나 크지만 인구는 불과 300만 명에 불과하다. 몽골의 국토에는 금은동 구리같은 지하자원이 무진장 매장되어 있어서 세계자원 10대 부국에 들어갈 정도이다. 우리가 곧 남북통일을 하고 몽골과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의 패권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의 패권국으로 등장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광활한 몽골국토를 이용해서 농사와 목축을 하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지하자원을 활용한다면 최고의 산업국가라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러시아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몽골을 설득해서 한글을 몽골의 문자로 사용하게 되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전국민에게 컴퓨터를 보급하는 것이다. 전국민이라고 해야 가구 수로 따진다면 수십만에 불과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 몽골이 벌어들이는 달러의 상당부분이 한국에 가서 일하는 몽골인들이 송금하는 것이다. 한때는 몽골외화의 30%가 한국에서 송금되어 오는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미국을 올 때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왔듯이 그들은 코리안 드림을 갖고 지금 한국을 찾는다. 몽골인구의 20%가 한국에서 일을 했거나 여행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우리는 사돈지국이고 형제의 나라이다. 일본을 제압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면 몽골과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빼앗긴 대마도를 찾아오고 간도를 포함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을 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Pax Koreana(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의 시대)를 꿈꾸어 본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계평화를 이룩했으면 좋겠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속)&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717/1mongol02.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풀을 뜯고 귀가하는 양 새끼들을 어미에게 돌려주는 목자. 그 많은 새끼와 어미를 다 알고 있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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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군주(君主)의 도(道)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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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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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8:18:04Z</updated>
	    <published>2009-11-10T18:18:0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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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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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군주(君主)의 도(道)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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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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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amp;nbsp;&amp;nbsp; &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재영 (포트리 한사랑교회 목사)&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B. 존슨 대통령은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가를 아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 현상에 대해서 어찌하여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며 무엇이 옳은 지를 파악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얼마전 전국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대학가를 흔들었다. 시국선언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의 전면적인 국정 기조 쇄신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취해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왜냐하면 시국선언에 참여한 숫자만을 운운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정권 핵심부의 안이한 시국관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이것은 정부가 민심을 정확하게 읽지 않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는 것이다. 단 한명이 했다고 해서 무시해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들은 시국선언을 해야만 했는지 그 깊은 속내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요즘 이명박 대통령에 소통에 대해 관심을 좀 갖는다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린다. 일단의 제스처가 아니기를 기원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은 누구의 나라인가? 이명박 정부와 청와대 참모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위정자들은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지금 멍들고 있다. ‘화합과 통합’이란 민심은 실종된 채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갈등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대학교수들이 잇따라 낸 시국선언의 핵심 내용은 민주주의 후퇴다.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이(李珥)는 그의 율곡집(栗谷集)에서 이렇게 말했다. ‘임금은 위엄이 없음을 걱정말고 공정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한다 공정하면 밝고 밝으면 위엄이 그 가운데 있기 마련이다.’ 왜 국민들이 대통령을 폄하하여 부르는가? 그 이유는 대통령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대통령이 일부 특정 세력만을 품고 있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등을 돌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그 임금을 알려거든 먼저 그 신하를 보고, 그 사람을 알려거든 먼저 그 아들을 보라. 임금이 현성(賢聖)하면 그 신하가 충량(忠良)하고 아버지가 인자하면 그 아들이 효성스러운 법이다(욕지기군 선시기군 욕지기인 선시기우 욕지기부 선시기자 군성신충 부자자효)’ 라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통령은 우선 간신이 아닌 충신을 골라 참모들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민심의 향방을 정확하게 읽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천하는 군주 한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에 삶을 이어받은 만민의 천하이다. 그러한 천하의 이득을 천하 만민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진 군주라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육도삼략)’고 한 강태공의 명언을 참고하기 바란다.&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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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한자(漢字)의 원조인 갑골문은 동이족(東夷族)의 문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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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8:15:16Z</updated>
	    <published>2009-11-10T18:15:1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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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17)한자(漢字)의 원조인 갑골문은 동이족(東夷族)의 문자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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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class=gisa_title_s&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문 원조는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 갑골문 &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H7&gt;&lt;/H7&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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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가 어느 정도 문리(文理)를 터득(?) 했다고 약간 발칙한 생각을 했을 때 문자를 만든 분들에게 감사했다. 특히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창제한 지나인들에게 어떤 경외(敬畏)를 갖기도 했었다. 나는 천학비재(淺學非才)한 장로교회 목사이지만 이 한자는 기독교의 심오한 진리를 설명하는데 매우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자는 신이 내려주신 글자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창세기의 처음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특별한 한자들을 보면 한자를 고안한 사람들은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예를 들면, 노아가 탔던 배의 한자 배 (선船)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배의 주(舟),여덟 팔 (八) 그리고 사람을 의미하는 입 (구口)인데 이는 노아와 그의 부인 그리고 세 아들과 세 자부를 합쳐 8명이 홍수를 피하여 탄 것이 배라는 의미가 확실해 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 십, 수 백 가지의 한 자를 풀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또 예를 들면, 나의 성(姓)은 매운 라면 신라면의 신(辛)이다. 이 신자를 분해하면 일어서다의 입(立) 자와 열 십(十)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 뜻은 맵다, 쓰다, 시다, 고통스럽다, 고생스럽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신자가 들어가서 만들어진 단어 쳐놓고 좋은 의미를 가진 말은 거의 없다. 신승(辛勝) 신산(辛酸) 신고(辛苦)등등...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이 신(辛)은 십자가 위에 일어 서있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인생들이 어깨에 매거나 등으로 지고 갈 것이지 그 십자가 위에서 십자가를 밟고 일어서면 안되는 것이다. 그 안되는 일을 하려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또 예를 들면, 내 고향은 경기도 여주의 대신면(大神面)인데 이 대신은 큰 귀신이라는 말이다. 영어로 하면 소문자 god의 잡귀신이 아니고 대문자 God으로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섭리하시는 조물주 하나님이다. 그 대신면 후포리에 미션 스쿨인 대신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이(里) 단위 마을에 중고등학교가 있는 것도 대한민국 실정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볼 때 대단히 희귀한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 촌 동네 중고등학교에서 수 십 년 동안에 목사가 거의 백여명 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보통 일인가? 여기서는 보통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동네 &lt;대신면&gt;에서 하나님의 사역자들인 목사들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마을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이 풍족하신 하나님의 마을인지라 옛날부터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한국 최고 품질의 여주 쌀을 위시하여 밤보다 더 달고 맛있는 밤고구마, 기름지고 고소한 땅콩 등 물산이 풍족하여 언제나 먹거리가 넉넉하며 홍수나 가뭄도 거의 없는 아주 태평스런 동네인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도 점잖고 후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한문은 지나(중국)인이 만든 지나의 문자라고 알려져 있고 그 원조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라고 했다. 갑골문(甲骨文)은 속칭 한자(漢字)라 불리우는 동방문자의 가장 이른 시기의 형태로 알려진 문자이다. 갑골문이란 명칭은 그 문자가 주로 거북껍질(龜甲)이나 소의 어깨뼈 등에 칼로 새긴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1899년 중국 하남성 은허(殷墟)에서 처음 발견됐다. 갑골문은 은왕조(B.C. 3400∼3100)때 도성의 유적지인 은허에서 출토되어 은허문자라고도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면 그 은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냐 하는 것이다. 사마천의 &lt;사기(史記)&gt;를 비롯하여 중국의 역사서들은 주나라 때부터 비로소 중국 고대사의 연대를 기록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주나라 이전 시대는 자기네 나라 역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주나라 이전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바로 은나라 인 것이다. 그러니까 은나라는 비록 지나 땅에서 존재했지만 지나의 나라가 아니고 동이족의 나라라는 말이다. 그 사기(史記)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주나라는 한족(漢族) 국가라고 분명히 기록했다. 바로 이 은왕조(銀王朝)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이 은나라 시대에 한자의 원조로 알려진 갑골문자가 발굴된 것이다. 이들의 발굴로 중원 땅의 역사가 뒤집혀 진 것이다. 그 땅에 실존했던 국가였음이 뒤늦게 밝혀지게 될 때까지, 주왕조 이전의 나라인 은나라는 그에 대한 기록과 물증이 없어서 전설 속의 왕조로만 알려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은나라의 건국시조와 나라 자체도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만 동이족이 아닌 한족(漢族)의 문자라는 지나인들의 주장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문을 창제한 분이 바로 우리 동이족의 선대 조 할아버지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으로 한문(漢文)이 아니라 한문(韓文)이 맞는 것이다. 이 한문의 근원인 녹도문 또는 갑골문자도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따라서 거기서 나온 한자(漢字) 또한 동이족의 문자인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후대에 한문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지나인들이 문자의 시조라 여기는 창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백과사전은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 창힐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이었다.환단고기에 따르면 자부선인(紫府仙人)은 배달국 치우환웅 시대의 대학자다. 중국 전설상 한자의 창조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은 창(蒼)힐이라고도 쓰며, 황(皇)힐 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또는 고대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그는 머리에 눈이 4개 있고 신명(神明)과 통하며, 위로는 괴성(魁星：북두칠성의 方形을 이룬 네 별)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의 등껍데기 모양과 새 발자국의 형상을 살펴, 아름다운 것들을 널리 모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후한의 환제(桓帝) 때인 162년(延熹 5)에 세운 창힐묘비가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에 있다. 묘비문은 예서(隸書) 24행으로 되어 있으나 이미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순자(筍子)는 〈해폐편 解蔽篇〉에서 &quot;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창힐만이 홀로 그 글을 전한 사람이다&quot;라고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은 신시 배달 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음(陰)의 문자이며 뜻글자이고, 후대인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가림토 문자에서 만들어진 한글은 양(陽)의 문자이며 소리글자인 것이다. 즉, 뜻글자이자 음(陰)문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이면서 양(陽)문자인 한글을 함께 써야 완벽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두 문자를 함께 써야만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인 셈이다. 그러면 조물주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동이족에게 특혜를 베풀어 주셨을까? 그것은 우리 민족이 받은 사명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혹자는 독일어가 가장 철학적인 말이고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고 말하지만 우리 조상이 만든 한문에 비교할 수 있을까?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완벽한 문자를 만드셨다. 다시 말해서 한자는 과거 없었던 글자를 지나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국 시대의 녹도문 이래 동이족들이 세운 은나라에서 쓰던 글자들이 계속 발전해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역사에는 한문을 언제 어디에서 수입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일본 오사까에 가면 백제의 왕인박사가 천자문을 일본에게 언제 전래했다는 왕인박사 묘소와 그 공덕비가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애석하게도 단군시대 이후 동이족이 힘이 없어지고, 진나라, 한나라 등 한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한문(桓文)은 한문(漢文)으로 바뀌어졌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와 그 문자인 갑골문도 중국의 나라와 문자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가장이 힘이 없으면 자식이 고생하고 나라가 힘이 없으면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법이다. 국력이 쇠하여짐으로 선조들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으니... &quot;한글&quot;과 &quot;한자&quot;는 &quot;하늘이 내리신 글자&quot;라는 뜻인데 나중에 중국 한나라가 감히 나라 이름을 우리 고대 &quot;한국(韓國)&quot;을 베껴서 &quot;한(漢&quot;)이라 짓고 &quot;하늘이 내리신 자&quot; 라는 뜻의 &quot;한자&quot;를 마&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치 &quot;중국 한나라&quot;에서 만든 것인양 &quot;한(한나라漢)자&quot;로 왜곡한 것이니 동북공정이니 서북공정이니 하면서 이웃 나라와 그 문화까지도 자기들의 것으로 삼켜버리는 지나인들의 뻔뻔스럽고 능청스러움은 이미 그들의 할아비 때부터 계속된 일이다. 김지형 박사는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란 책에서 서로 다른 어족에 속했다고 알려진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두 말이 한 뿌리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편 재야 사학자 박문기씨는 음성학적, 문화학적 근거를 들어 한자가 중국 글이 아니라 우리글이라고 주장한 '한자는 우리글이다' (양문)를 펴냈다. 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창균 계명대 석좌교수가 1999년 '문자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이란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박씨는 한자가 우리글이란 근거로 한자에 깃든 문화와 관습이 중국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점을 든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상고사를 재확인하고 민족사의 과제인 우리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한국사 연구에 남아있는 과제다. 그 뿌리를 알려면 우선 한문(韓文=漢文)을 알아서 민족의 전통을 확인해야 한다. 한국사는 목표가 뚜렷한 근원을 향해서 돌아가는 '민족사의 Renaissance 르네상스 (문예부흥)'가 일어나야 한다. 본래 이 르네상스의 어원은 '옛 정통(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그리스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되돌아갈 고향의 영광과 위대한 추억이 없는 민족 그리고 그 향수가 없는 민족에겐 르네상스란 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곳에서 퍼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용하였음) &lt;/SPAN&gt;&lt;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106/1mongo1.gif&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산동성 환대에서 발견한 가림토 문자‘&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106/1namhae.bmp&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남 남해군 양해리의 금산 중턱바위에 녹도문인 남해각자가 있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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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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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16) 단군(檀君)은 노아의 장남 셈의 고손자인 욕단이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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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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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8:12:27Z</updated>
	    <published>2009-11-10T18:12:2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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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16) 단군(檀君)은 노아의 장남 셈의 고손자인 욕단이다(?)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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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amp;nbsp;&amp;nbsp; &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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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상.철학 일치하는 동.서 끝자락&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군팔조 교령, 십계명과 내용 비슷&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군은 노아의 고손자 추측&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시아의 서쪽 끝 지방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주장하는 사상과 철학이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출발한 고조선의 개국정신과 토씨 하나까지 동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서쪽에서 살던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민을 가서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세계적으로 김치는 한반도의 한인들만 먹고 사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에도 김치를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니 이것이 어찌된 사실이냐 물으면 한국에서부터 김치를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김치를 먹고 사는 것이라고 해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같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이미 지난 칼럼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했었다. 17세기에 저술된 규원사화(揆園史話)라는 책에 소개가 되어 있는데 이 책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숙종 1년인 1675년에 북애노인(北?老人)이 저술한 것이다. 저자가 당시의 고기(古記)를 자료로 삼아 쓴 것인데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그리고 삼국시대의 왕들의 관한 이야기와 종교행사에 대한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조선조의 세조가 동국통감을 편찬하면서 근 20여종의 고서를 어명으로 수집해서 궁중에 보관한 일이 있었는데 이 규원사화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는 이 책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이 규원사회에 8조 금법(禁法)의 여덟 가지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고조선의 종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와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고대 한국인들이 유일신(唯一神) 하느님을 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하느님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이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규원사화에 기록된 여덟 개의 법은 다음과 같다. 1.너희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겨라 2.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너희 아버지는 하늘에서 온 것이니 너희의 어버이를 공경하면 이는 능히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니라 3.너희 남녀들은 화합할 뿐 미워하지 말고 투기하지 말며 음탕하지 말라 4. 너희는 서로 사랑하고 도와라 서로 헐뜯거나 죽이지 말라 5.너희는 서로 양보하며 같이 경작하라 너희끼리 서로 빼앗거나 훔치지 말라 6.너희는 사납고 교만해져서 사물을 상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말라 서로 항상 존중하며 너희 하늘 본보기를 따라 사물을 사랑하라 7. 너희는 위태로움을 돕고 어려움을 구제하라 약함을 업신여기거나 천하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8. 간사함을 품지말고 악함을 숨기지 말며 재앙을 감추지 말라 마음으로 능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가까이 하면 너희는 이에 복록이 한없을 것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상의 8가지 법조문을 단군팔조(檀君八條)의 교령(敎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법조문들이 구약성경 출애급기 20장 17절에 있는 십계명의 내용과 거의 같은 것이다. 다만 단군 8조에 없는 것은 십계명 세 번째와 네 번째 것인데 그 내용은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지 말라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인데 어찌된 셈인지 이 조문들만 누락된 것이다. 이는 생각건대 모세가 시내산에서 야훼하나님으로부터 돌판으로 된 십계를 받기 전에 고조선을 개국한 분들은 아시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미 이주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8조 금법이나 십계명에서 가장 핵심조항은 제 1조문과 제 2조문인데 그 내용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과 너희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기라는 것이다. 이는 두 법조문의 핵심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감히 동방으로 이주를 했는가? 또 그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구약 성경 창세기는 모든 인류와 우주의 시작과 기원을 기록한 책이다. 모든 인종의 시작, 모든 나라의 시작, 모든 역사의 시작 그리고 모든 문화의 시작이 다 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사실은 더욱 더 명명백백 해질 것이다. 우리는 각 민족의 역사와 기원의 사실을 창세기 9장과 10장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 짐작컨대, 우리 대한민족(大韓民族)은 노아의 아들이며 황인종의 시조가 되는 셈의 고손자이자 4대손인 에벨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천손계보(天孫系譜)의 적통(嫡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아직 공식적으로 학계의 공인을 받지 못한 가설이지만 나는 그것이 참일 것으로 믿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벨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한분의 이름은 벨렉이다. 이 분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세계가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펼쳐진 것이고 또 다른 아드님은 욕단인데 바로 이 어르신이 동방으로 이주를 하여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임금으로 보는 것이다. 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에벨을 통해 이어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통해서 인류역사의 전반기를 섭리하셨다면 이제 하나님은 욕단으로 이어지는 동이족 즉 대한국인을 통해서 인류의 후반기 역사를 마무리 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하여 하느님은 우리 대한국인을 동방의 고요한 나라요 은둔의 나라로 한적한 곳에서 비교적 순수한 혈통과 정신을 가진 종족으로 쓰시려고 은둔시키며 보호하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왜냐하면 지나인들은 두셋이 모이면 식당을 열고 왜인들은 회사를 연다는데 우리는 두 세가구가 모이면 우선 교회부터 시작하고 학교를 여는 것은 보통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천손의 혈통이 아니면 도대체 할 수 없는 신앙적인 거사를 매우 쉽게 저지르는 것이 바로 다 이런 연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 유일 신앙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그동안 숱한 민족적인 고난을 당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하나님의 마지막 섭리와 경륜을 이루시는데 동반자로 택정함을 받은 선민(選民, Chosen People)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민족을 연단시킨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 전세계를 요동치게 만드는 이른 바 한류(韓流, Han waves)란 무엇인가? 바로 전세계가 한국인을 사랑하고 흠모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대역사(大役事)인 것이다. 주연은 한국의 선남선녀들이지만 그 연출은 바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와 인자를 사랑하는 족속, 개국 이래 단 한 번도 타 민족을 침략하지 않은 민족, 여러 가지 흠결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쓰시려고 남겨 둔 민족이 바로 우리 동이족이요 단군의 후손들인 대한민국인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욕단 할아버지는 바벨탑사건이 생기기 전에 그러니까 인류가 언어의 혼잡을 겪기 전부터 인류가 쓰던 인류초기의 우수한 언어를 가지고 동방의 산악지대를 넘어 &lt;스발&gt;로 먼 여정을 떠난 것이다. 창세가 10장 30절에 “그리고 그들의 거주지는 메사로부터 새팔(새파르)로 가면서 동쪽에 있는 산이었다....as thou goest unto Sephar a mount of the east.”(KJV) 다음 기회에 우리의 한글과 문자(韓文)에 관하여 다루려고 하지만 여기서는 스발 혹은 새팔(Sephar)이라는 어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스발 혹은 새팔은 어디를 말하는가? 새팔은 시베리아의 음역(音譯)을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이다. 바로 지금의 시베리아를 말하는 것이다.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 고원-천산산맥-알타이 산맥)를 넘고 넘어 동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광활한 시베리아가 바로 고조선의 개국 무대가 되는 것이다.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했다. 새발은 새 땅, 새 벌판 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서울의 어원이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새발은 새 밝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 동쪽이 바로 새 빛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말이다. 욕단 할아버지의 목적지인 새팔은 바로 우리 조상들이 고대 한민족의 문화를 꽃피운 곳이었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빛이 시작되는 새 땅을 말한다. 광명의 본원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인류역사의 후반기에 광명의 본원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욕단이 동방으로 와서 밝은 땅에 세운 한밝은 배달의 나라는 지상에 세우신 하늘나라의 모형이었다. 곧 하느님 중심사상과 신본주의(神本主義) 정신의 기초위에 세워진 신시(神市), 즉 하느님의 도성(City of God)였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셈의 자손인 천손민족 욕단의 가계(家系)를 광명의 본원지인 동방의 끝 새발로 옮겨서 하나님의 이상향을 세우게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의 원형인 것이다. 하여 우리조상들은 흰옷을 즐겨 입고 평화를 사랑하며 정의와 대의를 숭상하고 가무를 즐기는 태평스런 민족으로 세계역사에서 자리매김하게 하신 것이다. 욕단 즉 단군이 세운 나라의 이름들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중에 숙신(肅愼)을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한 밝은 배달나라(倍達那羅=박달나라朴達那羅=단국(檀國)를 뒷날 여러 가지 한자로 적었다. 단국(檀國), 배달국(倍達國), 환국(桓國),천국(天國), 신시(神市,검불),한국(韓國),자민국(自民國(自民之國: 山海經),발국(發國), 부여국(夫餘國), 숙신(肅愼),발숙신(發肅愼), 조선(朝鮮), 발조선(發朝鮮)등이다. 그리고 한밝은 배달의 사람을 이렇게 불렀다. 천손족(天孫族), 배달족(倍達族), 단민(壇民),한족(韓族). 한민(韓民),백민(白民),백이(白夷), 예맥족(濊貊族), 부여족(夫餘族),조선족(朝鮮族) (이상은 알이랑 민족, 유석근저에서 인용) 대한민국 만세! 배달나라 만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30/2dangun.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의 시조 단군&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30/woongyue.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 지린성 왕칭현 ‘만천성 선녀봉 경구’에 세워진 높이 18m, 무게 500t의 석조 웅녀상. 왼손에 쑥, 오른손에 마늘을 들고 있다. 안내판에는“중국 조선민족 부녀의 근로·용감(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써 놓았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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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15) 수메르 문명의 주인공은 동이족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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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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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8:09:20Z</updated>
	    <published>2009-11-10T18:09:2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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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15) 수메르 문명의 주인공은 동이족이다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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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amp;nbsp;&amp;nbsp; &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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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뛰어난 인재들이 하는 학문이 신학(神學, Theology)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신학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당혹하게 만든 폭탄이 터졌으니 이른바 ‘길가메시 서사시’(敍事詩; Epic of Gilgamesh)라는 것이다. 이 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로 수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르 남부의 도시 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Gilgam)를 노래한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500년 가량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난주에 언급한 홍산문명(紅山文明)이 발굴되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중 가장 그 기원이 오래된 곳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었다. 이곳에서 인류 최초로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웠고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설형문자들을 발견하고 판독해 가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이 수메르 문명을 창건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동이족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지금 여러 학자들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동일한 유물이 몽골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의 기록과 연대는 아브라함 시대 보다 수세기 앞서는 것이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인간 세상에는 이미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이들의 문명은 기원전 3,000년 전까지 올라가며 이로써 성서고고학이 독점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만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경학자들은 인류최초의 문명 발상지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여겼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오던 터에 수메르 유적(지금의 이라크에 위치함)의 발견은 그야말로 전세계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뒤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수메르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들을 판독해나가는 과정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이야기, 에덴동산 이야기, 노아홍수 이야기, 욥기, 아가서 그리고 바벨탑 사건 등등 수많은 내용들이 수메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이 밝혀지자 성서학자들은 충격과 참담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노아라는 이름은 지아슈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있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이며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보다도 무려 1,000년 전의 문명이라는 데에 성경고고학자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이 설형문자를 사용하고 직조기술의 발달로 옷을 물들여 입으며 멋을 내고 다닐 때 히브리인은 문자는커녕 동물가죽을 벗겨서 입고 다니는 야만적인 삶을 산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으니 바로 도자기를 구워 그 시설을 한 것이다. 전 세계인들이 읽고 있는 성경이 수메르 문자의 판독으로 이제 한낮 휴지조각에 처해지게 된 것에 성서학자들은 참담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BCE 3,300년경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수메르 문명이 태동되었다. 수메르 문명은 현 서양문명의 뿌리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계승되었다. 130년에 걸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문자, 법률, 학교,의회제도 등 수메르 문명을 창조한 고대 수메르 민족은 메소포타미아의 원주민이 아닌 동방에서 온 이주민이었으며 우리 한민족과 혈통이나 언어, 문화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메르인들의 창세신화를 보면 자신들이 머리 뒷부분이 평평한 검은머리의 인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수메르어는 우리말 ‘은,는,이,가' 처럼 토씨를 사용하는 교착어이며 모음조화현상과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어순 등 동일한 문법체계를 가졌다. 수메르인들이 남긴 점토판의 설형문자(쐐기문자)는 서양의 최초 문자로 알려져 있다. 고든박사는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하기 전에 이미 그들의 고유한 문자인 설형문자를 가지고 왔다‘고 했으며 일본학자 우에노 등은 수메르가 사용했던 설형문자는 복희씨가 창제했다는 팔괘부호와 흡사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수메르인들은 60진법(중국과 우리나라의 60갑자 역시 60진법이다)과 태음력을 사용했으며 결혼 전에 함을 지는 풍습까지도 우리와 비슷하다. ‘수메르인들이 동방에서 왔다’는 크래머의 주장과 중앙아시아에서 왔다고 한 번즈의 주장은 수메르의 원고향이 환국의 천산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환국은 우리 동이족이 세운 고대의 환국(桓國)으로서 광명사상(光明思想)속에서 탄생한 동서양 인류의 원고향이다. 중앙아시아 동쪽에서 태동한 환국문명은 사방으로 뻗어 동서 4대 문명권을 형성하였다. 수메르인들은 동방의 종주국을 ‘하늘나라’로 말하고 자기들의 하늘 산(天山, 천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들이 동방의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을 아버지라 불렀고 선생은 제자를 아들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의 삼신문화에 뿌리를 둔 군사부일체,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똑같이 받드는 문화의식의 표출로서 서양의 도덕주의나 윤리의식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사상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이 방면에 문외한이고 아는 것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글을 발표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러운 것이다. 다만 인류의 시원과 상고사의 관심을 가지고 약간의 책을 읽은 정도이다.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의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상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몽골체험기 6회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유난히 신(神)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단어들이 많은 민족이다. 나라를 열었다(창업이 아니다)는 개천(開川) 사상으로 시작해서 하늘에 제사를 드린다의 제천(祭天),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의 천훈(天訓) 혹은 신훈(神訓) 등등의 어휘는 우리 조상들의 신관(神觀)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조상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약성경에 보면 노아의 홍수 이후 그의 자손들은 전 세계로 흩어지는데 그중의 한 무리가 시베리아의 동편 산악지대에서 거주했다는 말이 있다. (창세기 10장 30-32) 노아의 홍수 이후 비로소 세계는 나누어진 것이다. 그러면 시베리아의 동편 산악지대가 어느 곳을 말하겠는가. 바로 오늘날의 시베리아인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부터 만주 벌판과 백두산 일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노아의 후손 중 어느 분이 동편으로 이주를 하셨는가? 창세기 10장을 보면 욕단이라는 어른이신데 이 분은 노아의 장남인 셈의 고손자가 되신다. 이 분은 노아의 홍수를 비롯한 모든 사건들을 겪은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관한 믿음과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중에 동편으로 이주를 한 것이다. 이 욕단 할아버지가 바로 단군 할아버지라고 가정을 한다면 우리의 상고사의 비밀이 쉽게 풀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것이다. 이 어르신이 그의 신학과 신앙을 근거로 나라를 열었으니 바로 개천이요 개국이요 천훈이요 신훈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조선의 8조 금법이 출애급기의 십계명과 똑같은 이유를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는 욕단이 단군이라고 가정할 때만 가능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단군은 동이족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멀리 팔레스틴에서 아라랏산을 넘고 파미르 고원을 넘고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통과하여 동방의 시베리아로 먼 여정을 이동하려면 상당한 베짱과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며 지혜가 있고 명철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대장정인 것이다. 하여 이들이 홍산문명이라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문명을 이룩했으며 그 후 그 일부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수메르 문명을 이룩한 것으로 해석을 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그래서 수메르 문명에서 발견된 길가메시의 서사시에 나오는 성경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남겨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은 더 이상 놀랠 필요가 없을 것이다.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23/1meso.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23/satan-woman-1-s.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메르 신 이난나&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23/ur-4-s.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르지역 신 이난나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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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 체험기 (14) 동이족 홍산문화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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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8:07:07Z</updated>
	    <published>2009-11-10T18:07: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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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 체험기 (14) 동이족 홍산문화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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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title_s&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 황하문명보다 천년이상 앞서 &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amp;nbsp; &lt;/SPAN&gt;&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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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는 세계 최초의 사대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존재해 왔음을 알고 있다. 중국의 황하문명, 인도의 갠지스 문명, 중동의 티그리스 문명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문명이다. 그런데 그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을 자랑해온 중국은 그것보다 최소한 천년 이상 빠른 요하 유역 고대문명의 등장에 놀라워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홍산(紅山)문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이라는 사실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렇다면 대체 홍산문화란 무엇인가?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철이 많아서 붉게 보이는 홍산(紅山)이 있다. 그저 풍경이 좋은 산으로만 여겨지던 이 붉은 바위산에 전 세계 고고학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06년의 일이었다. 이 산을 몽골사람들이 '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데 이 붉은 바위산 인근에서 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壇)과 신전(廟) 그리고 적석총(塚) 등 거대한 후기 신석기 문화 유적들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붉은 산 인근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예견된 상식을 일거에 깨어버렸으니 그것은 발굴한 현장이 하나의 국가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계의 사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그가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아세아의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였다. 그리하여 1955년 학계는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다. 그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각국 언론들은 '오천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지금부터 약 100년 지금은 중국 땅이 된 요녕성과 내몽골 그리고 하북성 경계의 연산(燕山)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 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 학계에서는 홍산문화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양심 있는 중국학자들은 그것이 바로 동방의 나라 즉 우리의 배달국 유물임을 확인하였고, 서양학자들도 인류시원의 문화임을 알고 고개를 숙였는데 정작 우리정부와 우리의 역사학계는 무덤덤하였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기원전 3,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출토된 가면과 옥(玉) 장식 등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되어 국내 학자들 중 일부는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고조선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과의 연계성을 주장하기도 한 것이다. 경천동지할 이 엄청난 사실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음을 보면서도 정작 우리는 자랑스러운 그 홍산문화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치사하고 야비하기 이를 데 없는 중국 정부는 중국고대사는 동이족의 역사라고 말하던 양심 있는 중국의 사학자는 다 내치고 동북공정을 조작하는 사이비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상고사의 특이한 점들은 모두 자기들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북공정(신장·위구르)과 서남공정(티베트)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그 모델을 동북공정에 복사한 것이고 그 완성이 바로 탐원공정(探源工程)이다. 탐원공정이란 웅녀상으로 상징되는 고조선문화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를 자기네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그 상 앞에 동전을 던지며 발복을 기원하는 곳으로 전락시켰고 중화 삼조당을 세워 우리의 치우천황(배달국 제14대 천황)을 자기 조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뿐만 아니라 발해·고구려·고조선을 차례로 자기네 역사로 만들어서 그 문화의 뿌리이자 인류시원문화인 홍산문화까지 모두가 자기네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 바로 탐원공정이다. 30년 전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앙소문화에서 하모도문화로 바꿔 재설정한 중국은 뉴허량 유적 발견 이후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중화 3대 문명의 시발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산 문화는 중국 한족(漢族)의 문명과는 분명하게 다르며, 그 기원 역시 전혀 연관성을 갖지 않는 독창적인 것이다. 그것은 중국 문명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적석총 고분군이 수 십 개 산재해 있는데다 묘에서는 곰의 턱뼈가 발견되었다. 적석총은 요동반도와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우리 민족의 장묘 형식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 것이며 곰의 턱뼈는 곰을 신성시하는 우리 민족의 사상이 담긴 증거로 웅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홍산문화는 동이족의 문화다. 그리고 그 홍산문화는 중국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문화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문명의 이동로가 중국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한반도에서 왜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동이족의 홍산문화가 한족(漢族)문화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중국이 지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소개하기 시작한 홍산문화의 원류를 둘러싸고 한·중 학자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학학술원(원장 김호일)은 수년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제3회 홍산문화 한·중 국제학술회의’를 열고 홍산문화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인식차를 확인하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홍산문화를 통해 본 동북아 지역의 민족기원’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선 중국 측에서 타라아(塔拉) 내몽골(內蒙古)자치구 고고학연구소장이 우하량(牛河梁) 유적의 발견과 고고학적 가치에 대해, 텐광린(田廣林) 랴오닝(遼寧)사범대 역사학원장이 홍산문화와 중국의 용신에 대한 숭배를, 쉐즈차앙(薛志强) 다롄(大連)대 교수가 흥륭와(興隆窪)문화와 홍산문명의 관계를 설명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한국측에선 김 원장이 홍산문화의 옥기(玉器)와 적석총, 비파형동검 등을 예로 들어 동이문화권임을 밝혔다. 또 권태원 교수가 중국 동북지방과 고대 한민족의 동이족의 문화권 문제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중국 동북지방인 만주대평원에서 발원하고 태양을 숭배하여 큰 규모의 석총문화권을 형성한 고대 한민족은 고조선 및 부여국을 비롯,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및 고대일본에 이르기까지 동일계 민족에 의해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채혁교수는 ‘순록유목과 홍산문화’란 발표문에서 순록유목사적 시각에서 홍산문화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무엇보다도 홍산문화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가 몽골 스텝을 기지로 목축과 농업을 아우르는 성격을 띠는 유목제국의 소산이라면 필연적으로 중·신석기 시대 이후에 바이칼호 북극해권을 토대로 이루어진 순록유목일 수밖에 없다”면서 “홍산 기층문화는 조(朝)족과 선(鮮)족이 주도하는 순록유목문화”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유목개념이 없이 유목사 문헌사료를 읽는 데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농&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 사회사와 똑같이 툰드라 스텝지대에서 조차 토기나 도자기, 또는 청동기 철기가 역사발전을 재는 절대 잣대로 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는데 유목 생업권에선 토기나 도자기보다 목기나 가죽그릇 또는 뼈나 뿔 그릇이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학학술원 측은 “중국은 홍산문화 유적 발굴 이후 고구려와 그 이전의 우리 상고사를 송두리째 중국 역사로 끌어안고 있다”면서 “폭넓게 요하문명이라 명명하고 있는 홍산문화의 실상을 밝히는 일은 한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자 한·중 양국의 역사 갈등을 해소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약하면 홍산문화는 중국 신석기시대 후기(약 칠천에서 팔천년 전)의 문화로 주로 랴오닝(遼寧)성 서부 일대에 분포하는데 홍산문화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농업과 목축업의 중간지대에 속한다. 갈아 만든 돌보습과 돌칼뿐만 아니라 화살촉이나 깎는 도구, 가는 도구, 자르는 도구 등의 잔석기도 있어 목축과 수렵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서지역 홍산문화는 고조선 문화권이며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가 되는 문화였음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최고(最古)의 문명인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lt;/SPAN&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16/2mongo1.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홍산문화의 적석총 유적서 돌널 무덤이 발견되었다. 우하량 제2지점 적석총 유적 전경. 한반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청동기시대의 석상식 석관묘가 있으며, 지(之) 자형 빗살무늬토기도 있다. &lt;/SPAN&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16/2map.gif&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조선과 고구려, 부여 등이 있는 한국 상고사 지도. 환국에서 나온 환인씨(桓因氏)의 후손인 왕검(王儉)이 환국의 홍산문명을 계승하여 하가점에서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하고 우하량(牛河梁)지역을 중심으로 대륙의 요녕과 하북, 산동, 만주, 한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삼한으로 분리하여 통치한다. 마한(馬韓)은 산동지역이며 진한(辰韓)은 만주지역이고 번한(番韓)은 하북지역이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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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13) 동이민족의 정체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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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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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8:04:44Z</updated>
	    <published>2009-11-10T18:04:4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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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13) 동이민족의 정체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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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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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계 최고령 문명의 발상지 &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amp;nbsp; &lt;/SPAN&gt;&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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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몽골 적봉 지역은 9천년 전 홍산 문명의 발상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홍산 문명은 동이민족이 이룩한 세계 최고의 문명&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정부도 인지&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랑캐라는 말은 중국아이들이 주변에 살던 미개한 종족을 멸시하여 불렀던 말이다. 그들 지나(中國)인들은 자기 민족을 제외한 주변의 민족들을 모두 오랑캐라고 불렀다. 동쪽에 사는 우리 선조들을 동방의 오랑캐라고 하여 동이(東夷)라고 불렀고 서쪽에 사는 민족은 서쪽에 사는 오랑캐로 서융(西戎)이라 했고 남방에 사는 민족은 남쪽의 야만족 오랑캐라고 하여 남만(南蠻) 그리고 북방에 사는 민족은 북의 오랑캐 북적(北狄)으로 불렀다.2,700년 전 춘추시대부터는 오랑캐족을 다시 아홉으로 분류하여 구이(九夷)라 했고, 남방에 사는 민족은 여덟으로 나누어서 팔만(八蠻), 서방에 사는 민족을 일곱으로 나누어서 칠융(七戎) 그리고 북의 오랑캐는 다시 여섯으로 갈라서 육적(六狄)의 민족이라 했으니 얼마나 오만한 민족인가? 그러니까 동서남북의 동이(夷), 서융(戎), 남만(蠻), 북적(狄)은 원래가 한 민족인데 이 오랑캐같은 지나인들이 저희들 입맛대로 갈라서 수십 종의 민족 명칭을 만들어 낸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같은 국수를 가지고 자장면을 만들고 우동을 만들고 울면을 만들어 냈던 실력으로 우리 조상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작명한 탓에 우리의 상고사를 헷갈리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지나인들이다.그러니까 구이(九夷),팔만(八蠻),칠융(七戎) 그리고 육적(六狄)은 모두 구려족(九黎族=고구려)을 분해하여 지나의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종족 명칭이었다.그런데 그들이 동쪽 오랑캐라고 깔본 동이족이 그들이 만들었다고 우기는 한자(漢字)를 만들어냈고 북쪽 오랑캐족이라고 깔보았던 지금의 내몽골(Inner Mongolia)에 동이족이 만든 홍산문명(紅山文明)을 발굴해 내고는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인류의 4대 성인(聖人)으로 분류하여 숭앙하는 공자가 동이족이며 그의 제자 맹자도 동이족이라니....&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최근 내몽골의 적봉시(赤峰市) 오한기 흥륭와(興隆窪)에서 9천년전 북경의 연산남북(燕山南北)을 중심으로 발전한 홍산문명(紅山文明)이 있고 산동성에는 후이(后李), 북신(北辛)문화 등 8천년전의 동이역사를 증명하는 유물, 유적과 문헌이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다시 말해서 지금부터 6천년 전에 내몽골 적봉시(市) 홍산(紅山)에서 홍산고국(紅山古國-환국)을 세운 것이 환국시대로서 이 환국문화가 홍산문명이며 홍산문화계열은 지금부터 8천년 전 흥륭와문화 - 홍산문화 - 하가점문화까지 발전하였고 이것이 바로 고조선의 문화라는 것이다.그리하여 콧대 높은 중국이 이 지역을 고도(古都)로 중시하여 &quot;중국북방 고대문화 국제학술연토회&quot;를 적봉시에서 개최했으며 이 문화가 동이족 토착인의 문화로서 동방고대 문화의 발원지이며 세계문명의 창시문화라고 지나의 학자들이 공인하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이족의 홍산문명은 이집트나 바벨론문화보다 근 2천 년을 앞선 세계 태초의 문화였으나 그 발견이 늦어 세계사에 아직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홍산문명은 절대로 신화나 전설이 아니며 9천 5백 년 전 사람의 손으로 가공한 옥월(玉鉞)이 오한기(敖漢旗) 천근영자(千斤營子)에서 발견된 이래 8천 년 전의 흥륭와(興隆臥)문화로부터 시작한 유물과 유적은 이미 중국 박물관에 고이 보존되어 있고 상고의 문헌은 신화나 전설이 아니었다고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환국시대의 14대왕 치우의 묘를 상고 문헌에 의하여 현재의 산동성 문상현(汶上縣) 남왕진(南旺鎭)에서 발견하였고 산동성 미산현(微山縣)에는 환국시대 5대 왕인 태호의 아들 복희(伏羲)의 묘가 있고 인론지시(人論之始)라는 글이 있으며 지금은 신령을 모시는 절당이 되었다는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호남성 형산시(衡山市)에는 동이족인 소전지자(小典之子) 신농(神農)의 묘가 있고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문장에 그 역시 절당이 되어 있고 강소성 운운항(運雲港)에는 신라촌(新羅村)과 신라정(新羅井)이 있고 천하제일서(天下第一書)라는 글이 있는 장군애암(將軍崖岩)에 2백평방미터의 암화(岩畵)에는 5천년전의 천문기상의 연구와 고대의 각종 석각이 보존되어 있으며 광동성 광주(廣州)에는 3대 단군의 현손인 번우씨(番雩氏)가 세운 번우국(番雩國)이 지금의 번우시(番雩市)로 되어있고 광주에서 2백km를 지나서 신흥현(新興縣) 육조당(六朝堂)에는 동이조상의 영상(靈像)을 모시고 있는 신라촌(新羅村)과 양씨촌(楊氏村)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비록 화하족(華夏族)화되었으나 자신들을 고려(高麗)라고 한다는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산동성 환대시(桓臺市)에서 발굴된 가림토(加臨土)문자는 조선의 한글이 세종대왕의 발명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으며 지하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ㅅ ㅈ × ㅜ 등의 가림토문자는 탄소연대가 약 3천8백5십년전의 것으로 확인하였으니 &lt;환단고기&gt;의 [가림토 문자가 4천년전에 있었다]고 하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지금도 이 지방의 사람들에게 '조상이 누구냐' 물으면 고려(高麗)라고 한단다. 중국에서는 동이족의 수천 년 전의 유물과 유적이 중국학자들의 노력으로 계속 발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외곽지역은 물론이고 중국의 본토도 우리 동이족의 안마당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에 동이족의 역사적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음을 중국학자도 공인하며 동이의 역사는 구려(九黎)의 문명으로 감숙성 돈황(燉煌)과 금악(金岳), 태백산(太白山), 흑수(黑水), 요녕성, 서납목하(西拉沐河)또는 서요하(西遼河), 서압록강(西鴨綠江)에서 발생하고 발전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이족의 역사는 중국역사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므로 중국 문화부의 비준으로 '동이고국 전문위원회'가 산동성 제령시(濟寧市)에 설치되었으며 이 제령시에서 동이고국사 연토회를 개최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상고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 조상들의 영특함과 용맹함과 우수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고대사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이 방면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조선과 단군의 실체와 역사를 중국의 사료로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 온 심백강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가 이번에는 동이가 고조선의 뿌리이며 동양문화와 사상의 중심이었다는 자료를 발굴해 낸 것이다.그의 연구에 의하면 동이족은 9천년 전 부터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토착인으로서 옛날에는 구려(九黎)라 하였고 4천 7백 년 전환국시대의 14대왕 치우의 전성시대부터는 동이족을 치우족, 삼묘(三苗)족이라 불렀다고 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상과 같이 BC. 8천년 어간에 중국을 휘몰아치던 동이족은 제1차 치우(蚩尤)와 헌원(軒轅)의 영토 분쟁, 제2차 주(周)의 은(殷)왕조 침략, 3차로 동이와 은(殷)왕조의 전쟁 등 민족의 내부분열과 동족상전으로 화하족에게 멸망을 면치 못하였고 차츰 화하족화 되었던 것이다.청운의 꿈을 꾸며 태평양을 건넌 대한의 건아들이 우리의 선조들이 이미 발을 밟았던 이 땅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잠시 방황할 때 하는 것이 낚시질인데 낚시에 관한한 우리는 강태공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빼놓고는 낚시를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유명한 낚시에 있어서의 전설적인 대가 강태공의 성은 여(呂)씨, 이름은 상인데 그가 바로 동이족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중국이 천하통일을 하지 못하고 전국이 수십수백으로 나누어져 싸움질을 하던 강태공 시대 배경은 은나라 말기였는데, 은나라 말기에는 주나라가 가장 막강했었다. 은과 상의 강력한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강태공은 영구성을 쌓고 국명을 제라 하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끊임없는 은과 상의 침입을 9성 동맹으로 막아낼 수 없어 인류최초의 병법서인 &quot;육도 삼략&quot;을 저술한 후 낚시에 들어간다. 낚시로 소일을 하던 중, 주무왕의 초청으로 주나라에 들어가지만, 내심은 주무왕을 이용하여 은을 정벌하기 위한 것이었고, 644년 결국 강태공은 은 정벌에 성공했다. 그때 나이 70이었고, 중국측 &quot;사기&quot;에는 주무왕의 스승으로 은-주 혁명의 일등 공신인 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공망 여상은 &quot;동이 사람이다&quot;라고 기록하고 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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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목사의 몽골 체험기 (12) 상고사의 비밀을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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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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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8:01:1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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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목사의 몽골 체험기 (12) 상고사의 비밀을 찾아서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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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고시대 한(韓)민족 영역은 파미르 고원에서 천산산맥, 알타이 산맥, 만주 그리고 태평양까지였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상고사(上古史)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몽골의 역사(중앙아시아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 중에 제일은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몽골 전국에 지금도 우리 조상들의 족적이 분명하게 많이 남아 있건만 우리는 그런 흔적이 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은 재야 사학자들의 집념과 노력의 결과로 늦게나마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우리의 상고사가 종합적으로 정립되어 있지는 못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체계적으로 정리될 날이 올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의 상고사를 푸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지나(漢族)족이다. 지나인들은 매우 자존심이 강하고 오만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화(夏華)라고 부른다. 지나인들은 문화가 높은 지역을 ‘하(夏)’, 문화가 높은 사람 (종족)을 ‘화(華)’라 칭하고 스스로 그렇게 부르니 얼마나 교만한 발상인가. 또 중국(中國)이란 말도 저들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이니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나에서 동이(東夷)는 ‘이(夷)’, ‘동북이(東北夷)’, ‘구이(九夷)’, ‘구려(九黎)’, ‘사이(四夷)’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동이보다 이(夷)가 먼저 일반화된 것은 이(夷)가 어떤 특정한 민족을 가리킨 고유명사가 아니라 고대 지나인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이질집단을 통틀어 부른 명칭이기 때문이다. 자기네 종족이 아니면 모두 오랑캐(夷)라니…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이족이란 말은 중국 사서에 여러 민족의 이름으로 다르게 등장하는데, 모두 요하(遼河,지금의 동북삼성)에서 티베트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북중국 전 지역에 살던 한(韓)민족의 선조들인 것이다. 다만 지나인들이 시대에 따라 이름만 달리 붙인 것이다. 지나의 학자들 중에는 우리의 상고사를 연구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는 모두가 지나의 상고사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 연구에 의하면 4천 년 전 한(漢)족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 =동이족=한민족韓民族))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殷)과 주(周)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시기에도 동이족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과 한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순(舜)임금은 동이의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순임금은 은나라 사람의 조상임을 추측하여 알 수 있다. 은나라 사람이 바로 동이인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방에서 흥기하였다. 은나라가 망한 뒤 기자(其子)가 동쪽 조선으로 달아난 것은 조선 역시 은 민족(동이)의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이족을 말할 때 세계적으로 북극의 에스키모, 미주의 인디안족이 다 동이족의 후손이며 중국의 조, 만, 묘, 려, 악륜춘(鄂倫春), 악온극족(鄂溫克族) 역시 동이족의 후손이다.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는 아메리컨 인디언 말인데 이는 우리의 고어(古語)와 똑같다. 즉 나이는 우리말 넷의 고어이고 가라는 가람(강)의 옛말이다. 즉 네 개의 강이 만나서 폭포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어메리컨 인디언들이 바로 우리 동이족이라는 단적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미국 땅의 원주인은 우리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서 앞으로 동이족에서 미국 대통령을 배출하고 우리가 미국의 원주민 주류임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삼황(三皇)인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 동이족의 상고 시조이며 환웅, 복희, 신농, 치우, 헌원, 고신, 단군과 요, 순, 우가 모두 동이족의 선조였음을 고대문헌이 증명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공자와 맹자, 백이촵숙제, 강태공 등이 우리의 조상인 동이(東夷)족이라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실이다. 중국에서도 사료적 가치를 인정하는 기록에 나온다. 고조선과 단군의 실체와 역사를 중국의 사료로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 온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이 동이가 고조선의 뿌리이며 동양문화와 사상의 중심이었다는 자료를 발췌해 묶은 사료집 ‘사고전서(四庫全書)의 동이사료’와 해제를 펴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미 출간한 ‘조선왕조실록중의 단군사료’, ‘단군고기록 사종(四種)’, ‘사고전서의 단군사료’ 등에 이은 민족문화연구원 학술총서 제8~12집이다. 사고전서는 중국 청나라 때 편찬된 책으로 진(秦)에서 청에 이르는 중국의 역대 주요 서적과 문헌을 집대성해 7만9천여권으로 만든 총서다. 중국에서도 역사연구의 기초자료로 통하는 이 총서를 토대로 동이족 관련 자료를 모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작업은 강단사학계나 재야사학계를 통틀어 처음이다. 서경(書經)의 ‘우공추지(禹貢錐指)’ 4권에 보면 동이 구족(九族)이 고조선이라는 내용이 나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동이의 뿌리가 바로 고조선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동이가 바로 동양역사를 주도한 민족이라는 게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는 말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심백강은 한족(漢族)으로 알려진 중국의 주요 인물들이 동이족임을 보여주는 기록도 하나하나 제시한다. “맹자는 춘추시대 동이 국가의 하나였던 주나라의 후예라는 사실이 ‘통감지리통역(通鑑地理通譯)’에 나온다. 주나라는 바로 동이족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 ‘태공망(太公望) 여상(呂尙)이 동이지사(東夷之士)’라는 내용은 강태공이 동이족이라는 근거다.” &lt;중국사서에서 동이&gt;란 책에는 중국의 25사에는 중국의 하북성, 산서성 북쪽지역은 산융, 험윤, 훈육, 북적이라 하고, 섬서성, 감숙성 북쪽지역은 흉노라고 하였으며, 산서성 서쪽, 감숙성 서쪽, 그리고 돈황 지역까지는 서이, 서융, 견융, 융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하북성, 산서성, 섬서성 북쪽의 민족을 전부 흉노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아서 흉노가 한(韓)민족이 아닌 것처럼 만들었는데, 이러한 전체지역이 모두 한(韓)민족인 환국(桓國)과 고조선(古朝鮮)의 백성인 것을 숨기고 한(韓)민족의 이름을 빼버리고 각개의 부족이름만 기록하여 중국 외에는 나라가 없었고 부족들만 살아온 것으로 왜곡하여 왔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흉노족은 먼저 살던 한(韓)민족과 몽골에서 내려온 몽골족과 합류해서 이루어진 족속이며, 후대의 동호, 선비, 말갈(서요하 상류), 거란족이 모두 이들의 후손들이다. 나라가 각각 다르게 되어서 다른 민족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모두 한(韓)민족의 후손들로서 한(韓)민족에 포함된다. 따라서 상고시대의 한(韓)민족의 영역은 만주 동부부터 티베트 지역까지이고, 종주국으로서의 영향권은 천산- 파미르유역까지 확대되고, 메소포타미아지역과 유럽으로 진출한 훈족도 포함된다. 중국 동쪽과 양자강을 따라 호남성, 호북성지역에 이미 상고시대 이전부터 묘족(동이, 회이, 남이, 남만) 또는 여족의 터전이었고, 계속해서 하남성 진류 동쪽을 한(韓)민족이 점유하여 왔으므로 중국인의 중심은 하남성과 산서성 중남부의 작은 지역에 국한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길림성에서 한(韓)민족의 역사를 연구한 송호상의 &lt;동이민족론&gt;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동이족 문화, 즉 한(韓)민족의 옛 문화와 역사를 말하면 한(韓)민족은 동이족이었고 동이족은 만년의 유구한 문화와 역사가 있으며 환국(桓國)시대의 환인으로부터 천부삼인(天賦三印),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의 삼신일체(三神一體), 천부경 81자(天符經 81字)와 삼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고(三一神誥)의 철학적 경전으로 이어져온 민족이다. 그래서 근거있는 한(韓)민족의 역사를 쓰고자 동이민족 역사의 발원지인 중국에서 유적을 찾아 고고학적 관찰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토픽은 다음에 자세히 밝힐 예정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소련의 인류역사학자인 오과라기야부의 &lt;인류의 발생과 이동&gt;이란 논문에 의하면 지금부터 만여년 전에 파미르고원에는 능가선무(能歌善舞)의 황색인종이 녹지에 살고 있었는데 그 민족이 동으로 이동하여 천산(天山)과 아이태(阿爾泰)산맥에 살았기에 아이태어계족(阿爾泰語系族)이라 하였다. 즉, 동이족이 동으로 이동하여 패가이(貝加爾-바이칼)호에서 몽골사막으로 분산한 일파가 9천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에 내몽골의 적봉시(赤峰市), 오한기, 흥륭와(興隆窪)와 그리고 보국토향(保國吐鄕)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몽골 지역에서 북경의 연산남북(燕山南北)을 중심으로 발전한 홍산문명(紅山文明)이 있고 산동성에는 후이(后李), 북신(北辛)문화등 8천 년 전의 동이역사를 증명하는 유물과 유적과 문헌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아, 가슴 벅차는 상고사의 이 비밀이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재영목사는 뉴저지 포트리 한사랑 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1002/1MON.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 친구와 말타기 시합을 하고 있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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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11)몽골 탁구의 어머니-강영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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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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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58:54Z</updated>
	    <published>2009-11-10T17:58:5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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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11)몽골 탁구의 어머니-강영순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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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amp;nbsp;&amp;nbsp; &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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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91년 한국최초 몽공유학생...선교사로 교회개척 사명&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비털어 몽골최초 탁구교실 만들어...10년간 국가감독 연임&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 도시의 청년들에게는 스포츠는 물론이고 놀거리가 별로 없다. 시골로 가면 말이라도 타며 젊음을 발산하겠지만 도시의 청년들은 그러지도 못한다. 고작해야 먼지 나는 길거리에 방치 되다 시피 세워져있는 다 낡고 삭아버린 당구대가 전부인데 그나마 돈을 내고 해야 하니 그것도 쉽지는 않다. 아니면 돼지 밥통인지 소 위 인지 모르는 동물의 내장에다 헝겊을 씌운 것을 발로 차며 노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소한 알콜 중독자가 많다. 강의 시간에도 술에 취해서 사고를 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일 년의 절반이 추운 겨울이고 보니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을 이미 10년 전에 했으며 그것을 직접 실천한 한국인 맹렬여성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강영순이다. 그녀에게 따라 붙는 여러 개의 공식적인(?) 수식어는 그녀가 몽골 국가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몽골의 탁구 어머니’로 불리며 몽골 정부로부터 3번의 금정훈장을 수여 받은 민간 외교관으로서 몽골 탁구협회 국가 감독을 10년이나 연임했고 현재는 몽골탁구협회 국제이사로 활동 중인데 그녀가 배출한 몽골국가대표 선수만 20명이다. 특히 히로시마(1994)와 부산(2002) 아시안 게임에서 몽골 국가 대표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수년 전 KBS 2 텔레비전 ‘한민족 리포트’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방영된 대로 그녀는 몽골 탁구의 대모다. 그녀를 빼놓고 몽골의 탁구를 논할 수는 없다. 한국의 지인들의 지원을 받아 몽골 최초의 민간인 탁구 클럽 ‘솔몽 탁구 클럽’을 설립했다. 그녀의 몽골 이름은 강토야(‘토야’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빛’이라는 뜻이다). 강영순이 몽골 탁구 대표팀 감독 자리에 있은 후 굵직한 변화가 있었다. 체계적인 훈련을 위해 모국에 도움을 청했던 그녀의 요청으로 한국 남자 국가대표 출신 박지현 코치(현 예멘 탁구팀 감독)가 대표 선수단을 맡게 된 것이다. 그 뒤 여자국가대표 출신 양영자 코치가 바통을 이어받아 몽골 탁구의 체계를 만들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녀가 키운 청년 바이야르는 한국에서의 1년 탁구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몽골의 거의 모든 대회를 석권하다시피 하면서 몽골 청소년 탁구의 대명사가 된다. 각종 국제대회 대표도 늘 그의 몫이었다. 96년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에서는 타이완의 창펭룽 선수를 이길 정도로 성장했다. 1991년, 35세의 처녀 강영순은 한국 최초의 몽골 유학생이 되어 징기스칸의 땅을 밟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 골수 사회주의 국가였던 몽골이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과 개방) 직후 2년이 채 안된 때였다.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람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아시아의 중앙고원에 둘러 쌓인 채 70 년간을 신비의 나라로 지내 온 몽골로 그녀는 시집을(?) 간 것이다. 탁구를 통해 한국과 몽골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는 강영순씨. 몽골 사람들은 그녀를 그냥 '토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고 부른다. 지난 2002년 아시안 게임엔 최연소 팀을 최초로 구성하곤 자비를 털어서 출전했다. 몽골정부가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자금으로 쓰라고 어머니가 준 서울의 집을 팔아서 경비를 댄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 년의 절반이 겨울인 몽골에서 탁구는 안성맞춤인 실내스포츠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비를 털고 지인들의 지원을 받아 몽골 최초의 민간인 탁구 교실을 만들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가르쳐 국가대표를 만들었고 이들이 지금은 몽골의 탁구계를 이끌고 있다. 서른다섯 살 미모의 여성이 늦깎이 몽골 유학생이 된 후 그녀가 몽골에 도착하면서부터 가시밭&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길과 같은 고난이 시작되었다. 감시원이 쫓아다녔고 전화기에는 도청장치를 했다. 수상한 인물로 본 모양이었다.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가게도 없고 물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나라였다. 그녀보다 십년이나 늦게 몽골에 들어 간 나는 당시의 형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수돗물이라는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끊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새 물이 나올 때 마다 연탄을 풀어 놓았는지 시커먼 물이 나오는 것이다. 샤워를 하는 데 갑자기 시커먼 물이 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험난한 유학생활을 한지 불과 10일 만에, 그녀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선교사라는 사실이 발각 된 것이다. 상황은 위급했다. 당장 추방당할 위기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하나님은 적당한 시기에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게 하셨으니 한국에 있을 때 그녀는 서울시 탁구대표 선수였었다. 연속 3년 우승이라는 영광의 매달을 받기도 한 매우 우수한 탁구선수로서의 화려한 이력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마침 몽골 국립대학 체육학과 교수가 은퇴를 하게 되어 그녀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된 것이다. 6년간 물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 초라한 빈민가에서 그녀는 선수들과 함께 살면서 탁구를 가르치면서 은밀하게 전도했다. 건물을 짓고 싶은데 건축 자재가 없어서 러시아 군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장을 뒤지며 직접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재를 만들어내어 마침내 교회당 겸 체육관을 짓기도 했다. 그야말로 눈물과 땀과 기도로 지은 것이다. 눈물이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녀의 무용담은 남자인 나로 하여금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감동의 스토리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 그녀가 작년에 징기스칸의 고향인 헨티에 교회를 세웠다. 징기스칸의 고향에 교회를 세운다는이야기는 몽골의 성지를 교회화 하겠다는 이야기이다. 몽골국민의 의식을 바꾸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의 결과이다. 몇 시간을 털털거리며 비포장도로를 여행하기가 그 몇 십번이던가? 그녀는 마침내 무릎과 눈물로 교회당을 지어 헌당식까지 치렀는데 그만 지난여름 강풍으로 폭삭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낙심하지 않고 다시 새 교회당을 짓기 위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지난 93년말 몽골 울란바토르에 세워진 문힝 암드릴(영원한 생명) 교회는 ‘핑퐁 선교’의 첫 열매였다. 자신의 제자이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변신한 학생들의 공이 컸다고 한다. 그녀는 이후 교회 몇 곳을 더 개척했고, 교회사역 일체를 현지인 교역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양한 것이다. 몽골의 ‘빛’이라 불리고 또 스스로 몽골 아이들의 ‘빛’이 되고 싶은 몽골의 탁구 엄마 강영순 선교사.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국민의 90%가 라마교를 믿는 땅 몽골에서 그곳에서 선교를 펼치기란 쉽지 않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모에다 총명한 그녀는 왜 몽골로 갔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녀는 독신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5년 동안 애틋하게 사랑을 키워온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는 결실을 이룰 수가 없었고 마침내는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남겨진 커다란 실연의 상처는 결국 산에 올라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산에 올라가 정말 죽을 각오를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더라구요. 그 날 주님은 제게 선교사의 길을 보여주셨어요. ‘보내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어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단 한 번의 용기와 단 한 번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산다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주님이 깨닫게 해주셨구요.”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이 선교사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선교사로 택해 주셨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이미 몽골 땅에 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들에게 교회를 이양시킨 그녀는 “중국 내의 내몽골과 러시아 내의 브리아뜨 몽골 그리고 야쿠트 부족 등 흩어진 몽골 족속을 위해서 미션 트레이닝 센터를 만들고 현지인들을 트레이닝 시켜 동족을 품고 동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조심스레 소원을 이야기하며 오늘도 고집스럽게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가겠다고 확고한 다짐을 들려준다. 살아 숨 쉬는 것조차도 은혜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이다. 탁구 선교 사역과 흩어진 족속을 위해 준비 중인 교회개척 사역에 귀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기를 기도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포트리 한사랑교회 목사&gt; &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925/mongo2.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925/mongo3.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강영순(토야 강)씨기 징기스칸의 고향 헤비에 지은 교회가 올 여름 열린 몽골의 국경일이요 최대 명절인 나담 축제기간에 몰아닥친 강풍으로 반파되었다. 그 교회는 한국에서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교회이자, 강 선교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팔아서 세운 교회이다. 무너진 예배당을 겨울이 오기 전에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이 기도와 더불어 건축현장에서 직접 봉사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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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10)흉노족(匈奴族)은 누구인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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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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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55:42Z</updated>
	    <published>2009-11-10T17:55:4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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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10)흉노족(匈奴族)은 누구인가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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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럽대륙 뒤흔든 흉노(훈)족이 우리의 조상 &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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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흉노는 훈족, 훈족은 몽골족 그리고 훈족은 잊혀진 Korean 고구려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럽인들은 그들을 &quot;훈족(Huns)&quot;이라고 불렀다. 고려(Korea; 고구려의 준말) 땅에서 일어난 그들은 4세기 기간 중에 로마 제국을 쳐들어왔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는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이라고 기록했으며 그 뒤의 유럽인들은 그들을 몽골인이라고 불렀다. 4세기 초 무렵, 극동아시아에서는 수 년 동안 기온이 평시보다 떨어지는 이상기온현상이 발생하였는데, 그로 인해 곡식은 영글지 못하고 동물들에게 풀을 뜯어 먹일 수 있는 땅은 부족하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기 370년경 이 방랑민들은 로마제국 국경선에 도착하여 다뉴브 강(독일 남서부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감; 독일명 '도나우강')을 따라 현재는 헝가리 지역인 대초원위에 그들의 왕국을 세웠다. 서기 443년 경, 루가왕의 아들 아틸라는 그의 형제 블레다를 암살하고 전(全) 훈족을 통일하였다. 그는 전사들을 이끌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정복을 감행하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약탈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그는 독일, 유럽 동부 및 유럽 남서부 일대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였다. 훈족은 기마술(騎馬術)에 능한 이들로 궁술(弓術) 또한 겸비하였는데 그것이 로마인들을 파멸시킨 큰 요인이었다.(번역자 주: 서양인들에게 있어 불멸의 영화인 '벤허'에 나오는 멋진 로마 군인들이 우리 조상인 고구려 무사들에게 무참히 멸망당했다는 이 기록이 우리가 아닌 양인들의 손에 의하여 씌여진 사실은 우리를 흥분케 하고도 남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들은 서로 강하게 접착된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제작된 짧은 역궁(逆弓= 맥궁(貊弓)을 사용하였으며, 쇠로 된 화살촉은 유럽 군인들의 어떤 철갑옷도 관통시킬 수 있었다. 그들의 말은 키가 작았지만 빠른 속도와 강한 지구력이 있었으며, 그들 또한 동작이 민첩하고 영민하기 짝이 없었다. 훈족 전사들은 말이 전방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말위에서 상체를 뒤로 틀면서 그들 뒤편에 있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었다 (현 중국 집안현 무용총 주실 서벽의 수렵도에 나오는 고구려 기마궁병의 모습과 완전 일치함.)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훈족은 유럽, 특히 프랑스 Chateau 지역에 많은 유산을 남겼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들은 엉덩이 부위에 오늘날 몽골인들과 동일한 파란 몽골반점(mongolian spot)을 가지고 있다. 헝가리라는 국명은 훈 왕국을 기념하기 위해 훈족(Huns)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헝가리어가 우리말과 어순이 같고 비슷한 점이 많다. 유럽대륙을 뒤흔들어 놓은 훈족은 바로 용감무쌍한 우리의 선조, 고구려인이었다. (이상은 1997년 여름 그리고 가을에 미국 Cable TV The Learning Chane ll에서 Atilla the Hun 이라는 1시간짜리 다큐멘타리로 방영된 우리 민족과 관련된 중요한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의 요약. 서양인들이 만든 프로. 퍼옴)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70년대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공부한 흉노족은 어감부터 고약하게 다가왔고 그 하는 짓이 또한 야만족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흉노(匈奴)는 말 그대로 흉포하고 사납게 농경민을 등치고 괴롭혔던 시베리아 초원의 무법자였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다녔고 활을 잘 쏘는 강도의 무리였던 것이다. 중국의 사서(史書)들은 한결같이 흉노는 말타기와 활에 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히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사용한다고 해서 강한 전투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바로 탁월한 정보수집능력과 전략적인 치밀함과 전술의 유연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면 흉노족은 누구인가? 흉노는 중국어 슝누(Xiongnu)인대 몽골어의 훈(Xyh, Hun)에서 나온 말이다. 몽골어의 훈은 사람이다. 이것이 우리의 상고사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단서중의 하나이다. 이것의 음을 빌려서 한족(漢族)들은 몽골족을 흉노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이 흉(匈)자가 입심이 좋다는(시끄러운)뜻이다. 그리고 노(奴)자는 노예를 말한다. 한족들은 그들을 시끄러운 노예놈들 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오만한 중화사상(中華思想)의 한 발로이리라. 그 흉노가 고구려라는 사실은 대단히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이해가 될 만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양사를 보면 반달족(Vandals) 혹은 훈족(Huns)이라고 하는 일단의 기마부대가 서기 167년과 370년에 로마를 침입했고 그래서 로마제국이 망했다고 기록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훈족(Huns)은 앞서 언급한 흉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몽골족이 로마를 침입한 것이다. 어떻게 중앙아시아에서 로마를 침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앞서 서양인들이 언급한 대로 한반도에서 일단의 무리인 고구려족이 먹거리를 찾아서 로마까지 갔다는 학설은 좀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지만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던 흉노가 로마를 점령했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여진다. 유목민 생활의 특성은 어디를 가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거친 말발굽을 막을 용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 까지만 해도 서양사회는 기마부대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진으로 쳐들어가서 점령한 후 그 곳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며 병참을 준비하고 또 다음 침략할 지점을 연구하며 정보를 수집하면서 대비하였던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국대 정수일 교수는 흉노는 특정한 종족집단이 아니라 알타이 산맥의 동남쪽에 거주했던 유목민의 총칭이라는 것이다. 흉노가 서유럽을 뿌리째 흔든 훈족이라는 것은 1750년대 프랑스의 그 기네(1721-1800가 제시한 것을 필두로 여러 가지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흉노는 유럽이나 일본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몽골계통이나 투르크 계통, 몽골-투르크 혼합계통, 슬라브계통 그리고 이란 계통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몽골족 혹은 고구려가 이미 오래전에 서양 땅에 그들의 유전자(씨앗)를 뿌려놓은 것이다. 흉노는 모두루 대단군 &lt;모돈선우(冒頓0宇, 209-174B.C.&gt;시대가 전성기였다. 그는 징기스칸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사한 인물로 알타이 주변의 초원지대의 대부분의 종족을 하나로 묶어 버린 영웅이었다. 그 때 흉노가 점령한 땅은? 동으로 한 반도 북부, 북으로 바이칼 호, 서로는 아랄 해, 남으로는 중국의 위수(謂水)와 티베트 고원지대들이었다고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문제는 이들 초원의 유목민들은 문자가 없어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고대사의 연구는 문자가 있는 주변국들의 기록을 참조할 수밖에 없고 고고학적인 물증자료를 가지고 인류의 흐름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의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는 기억력의 천재들이 있어서 그들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기억하고 있는 &lt;걸어 다니는 역사기록자들&gt; 을 궁중에서 키웠다고 한다. 그리하여? 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된 역사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경우도 그랬다고 한다. 특히 몽골에서는 그렇게 그들의 역사를 구전으로 전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고대세계에서 천년의 제국을 이룩하며 그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던 로마를 쳐서 망하게 한 세력이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서양학자들이 증명해 준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음에 밝히겠지만 시베리아의 드넓은 벌판은 우리 조상들의 사냥터였다. 천산산맥과 우랄알타이 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의 주인이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담수호요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上古史)의 비밀을 고인 간직한 바이칼 호수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목욕하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을 언제부터인지 러시아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1700년대 중반까지도 시베리아는 우리의 땅이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신흥 세력인 러시아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독립운동의 성지 간도는 말할 것도 없고 독도는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대마도(對馬島)는 우리의 영토였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오호 통재라, 부끄럽고 수치스럽도다. 우리의 조상님들을 어떻게 볼 수 있으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신재영목사는 현재 뉴저지 포트리 한사랑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gt; &lt;/SPAN&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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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lt;/TBODY&gt;&lt;/TABLE&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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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9)스포츠로 본 몽골과 한국의 닮은 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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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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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53:23Z</updated>
	    <published>2009-11-10T17:53:2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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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9)스포츠로 본 몽골과 한국의 닮은 꼴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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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amp;nbsp;&amp;nbsp; &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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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 민족은 손으로 접촉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뭐든지 한번 만져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만져서는 결코(?) 안되는 것들도 굳이 만지려고 시도하는 족속이 바로 한겨레요 그런 한겨레를 총칭한 고대의 이름이 바로 예맥(濊貊)이다. 그러니까 예맥 족은 모두 손 접촉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손재주가 가장 뛰어난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인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손은 곧 뇌와 연결되어 있다. 스페인의 어느 연구소가 한민족이 히브리민족을 제치고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라는 결론을 내린바 있는데 서양?사람치고는 제법 바른 소리를 한 셈이다.우리의 조상들은 그래서 활에 능하다. 동이(東夷) 라는 말도 동쪽에 사는 오랑캐가 아니라 동쪽에 사는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말이다. 그리하여 맨손으로 하는? 무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씨름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신체적 접촉을 싫어하는 지나 족은 소림사의 무술 같은 권법(拳法)이 발달한 것이다. 신체접촉을 가능한 하지 않으면서 주먹질과 발길질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싸움법이 발달한 것이다. 그래봤자 우리의 전통 고유 무술인 수박이나 택견을 이길 수는 없지만... 그래서 지나인들이 씨름을 한다는 소식을 여태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무덥고 습기 찬 기후라서 그런지 더더욱 신체접촉을 싫어하는 왜는 검법(劍法)이 발달해서 사무라이 문화가 유명한데 그들은 주먹질도 싫고 발길질도 싫고 해서 단 칼로 상대를 베어버리기를 좋아하는 칼질이 발달한 것이다. 그런데도 왜의 씨름인 스모에 전 국민이 열광하는 것은 아마도 국민의 대다수가 신라와 백제의 유민이었기 때문에 그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을 해본다. 아무튼 스킨쉽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민족은 서로 엉켜서 하는 유도나 레슬링 씨름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런 종류의 스포츠가 발달했다. 왜(倭)가 유도의 종주국이라고 저희들은 떠들지만 실은 우리가 종주국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에서 가장 보편적인 남성들의 놀이는 씨름이다. 흉노나 고구려의 벽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북방민족들의 고유한 무술인데 실은 기마병들이 육탄전을 벌일 때 쓰는 무술인 것이다. 몽골어의 싀룬 이란 말이 있는데 그 뜻은 격한, 포악한의 의미인데 이 싀룬이 고려로 오면서 씨름으로, 다시 왜로 가면서 스모로 변형되었다고 본다. 징기스칸 당시에는 씨름을 하면서 상대의 허리를 꺾어서 죽여도 무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씨름이야말로 포악하고 격한 스포츠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늘 날 몽골씨름의 원형은 일반적으로 요(遼:거란)의 씨름으로 보고 있는데 1931년 요나라의 동경에서 팔각형 도관(陶罐)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에 8면에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있었다. 요를 이은 금나라에서도 씨름은 유행했다. 금(金)나라 때의 주류는 만주족이었는데 그들은 물론이고 피지배족인 한족도 씨름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운동이 전투무술이었기 때문에 한족(漢族)들이 씨름에 몰두하는 것을? 금의 조정에서는 크게 우려를 했던 것이다. 전투무술의 비결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금의 장종(章:1189-1208)은 여진족만 씨름을 하라는 칙령을 반포하여 중국에서는 씨름이 급격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결국 거란과 금(金)과 몽골 그리고 고구려에서의 씨름은 오늘 날의 스포츠로서의 씨름이 아니라 상대를 죽이는 격투기인 것이다.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요나라의 씨름도 결국 그 근원에는 고구려의 수박(手搏)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구려의 벽화에서는 서로 엉켜서 하는 씨름도 있고 두 사람이 태권도 대련을 하는 것 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손바닥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도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벽화에는 게임의 내용이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이다. 지금의 씨름과는 약간 다르지만? 이런 무술이 시베리아의 맹주였던 고구려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광범위하게 펴져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몽골의 수도를 처음 밟을 때 인물이 수려하고 신체가 강건한 젊은이들의 상체를 드러낸 대형사진이 걸개그림으로 그 도시 곳곳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바로 몽골의 씨름선수들인 것이다. 순진 혹은 순박하게 보이면서 강인하게 보이고 동시에 총명해 보이는 그 젊은 미남 호걸들의 모습이 많이 낯이 익은 것이었다. 바로 우리의 사촌형제들이 아닌가?&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넓디넓은 들판에서 몽골의 젊은 영웅들이 웃통을 벗어 제기고 씨름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나는 몽골의 저런 남성들을 수입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몽골의 여성들은 또한 어떤가.여걸중의 여걸이 몽골의 여인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 여인들도 수입을 좀 해 왔으면 좋겠다. 허긴 지금 소수나마 한국의 남정네들이 몽골의 어린 여인들과 살고 있는데 잘 해주기를 바라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이 몽골을 방문하면 대개는 말을 한번 타보려고 한다. 원래가 북방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의 후손들인지라 한 5분정도만 교습을 받으면 누구든지 능숙하게 달릴 수 있다. 말을 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때는 반드시 말의 왼쪽에서 올라타야 한다. 그리고 말의 뒤로 가면 안된다. 말 발길질에 한번 채이면 최소한 중상이요 심하면 불구 내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 말의 안장은 V 자형의 모양이다. 안장에 앉으면 엉덩이가 꽉 끼게 되어 있다. 고정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그렇게? 현란한 마상기술(馬上技術)을 보여준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화살을 날리는데 백발백중이다.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갑자기 상체를 뒤로 돌려 화살을 날리는데도 과녁을 맞춘다. 그런가 하면 말의 배아래 부분과 배 옆 부분에 붙어서 달릴 수도 있다. 멀리서 보면 말만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는 말 등에서 땅 바닥에 놓여 있는 물건을 잡기도 한다. 땅위에서 헤엄치듯이 그들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온갖 묘기를 다 부릴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 그들도 가끔씩 말등에서 낙마를 한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꼴이다. 달리는 말에서 잘못 떨어지면 최소한 중상이요 잘못하면 불구가 되기도 한다. 심하면 사망이다. 초기 한인 유학생 중에 박 아무개는 말을 타다가 낙상하여 영원히 목이 비뚤어진 경우도 있다. 방학이 되자 아들과 딸이 아버지의 선교현장을 방문했다. 우리는 들판으로 나가서 말을 타기로 했다. 잠시 말 타는 요령을 들은 후 각자 말을 타는데 딸을 태운 말이 무슨 까닭으로 신이 났는지 갑자기 속력을 내는 것이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몽골 마부에게 빨리 달려가서 저 말을 좀 어떻게 해보라고 소리쳤다. 그런 나의 심정을 알리 없는 말은 점점 더 속력을 내는 것이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그런데 누가 기마민족의 후손이 아니라고 했던가? 딸 슬기는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시작하자 말의 목덜미를 꽉 끌어안고는 같이 달리는 것이다. 처음 승마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다니... 말의 달리는 속도를 그냥 터벅터벅 걷는 수준 그 다음이 약간 뛰는 구보 그 다음이 속보요 최종 단계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인데 딸을 태운 이 말은 무슨 연유인지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언덕위로 아래로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것이다. 나는 놀라서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어...어... 어...하다가 그래도 몇 번 승마경험이 있어서 제법 자신이 있는 내가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소시 적에 배운 낙법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마침 풀이 무성한 부드러운 땅에 떨어졌기에 3일 정도 누워있는 것으로 완전회복이 되었다. 그만 하기가 감사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딸을 태운 말이 한참을 달리더니 제풀에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말이 속도를 줄이자 딸아이가 잽싸게 뛰어 내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 신나게 잘 달렸네... 재밌는데...!” 였다. 말이 막 달리니까 그냥 말의 목을 끌어안아야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왔다는 것이다. 기마민족의 후손답게. 몽골은 여름이 천국이다. 기온은 높지만 습기가 없는지라 시원하다. 특히 그늘 아래로 가면 그렇게 서늘할 수가 없다. 이름도 모르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특히 허브라고 하는 약초들의 천국이 바로 몽골의 벌판이다. 마치 한약국에서 약탕기를 달이는 것 같이 한약 냄새가 온 천지를 진동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판에 세운 게르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물탕(四物湯)과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을 몇 그릇 마신 기분이다. 천연적으로 보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지(大地)의 기운(氣運)을 흡수하는 것이리라. 그냥 거기에 있기만 해도...바로 지금, 9월이 그 때이다. &lt;이 글을 쓰는 한재영 목사는 뉴저지 포트리 한사랑 교회에서 시무 중입니다.&gt; &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905/1naadam_02.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매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몽골 민족 대축제인 나담이 열린다. 이 축제의 씨름 대회에 1,00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한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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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8) 몽골은 또 하나의 고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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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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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51:26Z</updated>
	    <published>2009-11-10T17:51:2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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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8) 몽골은 또 하나의 고려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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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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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은 몽골의 ‘어머니 나라’&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90년 대만에 거주하던 세계적인 몽골학자 한촐라 교수가 한국에 도착하면서 “어머니의 나라에 왔습니다.” 라고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분의 고향은 고구려를 창업한 동명성왕(東明聖王, 고주몽)의 원주지로 추정되는 홀룬보이트 초원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의 발언의 진의는 무엇일까? 한국이 몽골의 ‘어머니의 나라’ 라니. 이 말은 몽골의 시조신인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주몽이기 때문이다.(김운회 글에서 퍼옴)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전문가 박원길 교수는 고구려는 기원적으로 몽골과 유사성을 가진 민족이라고 단언한다. 부여와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의 어머니가 유화부인(柳花婦人)이다. 이 버들 꽃 부인이 바로 몽골의 국모(國母)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몽골식 이름은 우다 체체크(Uda-Checheg)인데 지금도 몽골에서는 흔한 아주 예쁜 이름이다. 유목민들이 가진 천손사상(天孫思想)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태양(太陽)을 몽골어로 ‘나ㄹ’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말 ‘날’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유목민들이 동쪽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은 흉노, 돌궐 그리고 거란 이래의 전통인 것이다. 몽골은 음력 정월 초하루를 차강사르(흰색&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달)라고 하여 최고의 명절로 친다. 백색이 길상과 풍부와 순결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하 수십도를 내려가는 몽골의 음력 1월 1일 새벽에 그들은 설빔을 입고 밖으로 나가 동이 트기를 기다린다. 동이 터 오르면 먼저 해가 뜨는 방향으로 오른 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린다. 마유주나 우유를 동쪽 하늘을 향하여 세 번 뿌리는데 이것을 차찰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배천(拜天: 하늘에 절함)의식이다. 이 의식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샤만 신앙의 전통이자 우리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해맞이 하는 풍습과 같은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유풍은 지금까지도 계승되어 한국에서는 정초에 강원도 정동진 등으로 해맞이를 나가고 미국에서도 한인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파티를 한 후 새벽에 바닷가로 해맞이를 하러 간다. 나의 아들과 딸이 뉴저지에서 고교를 졸업했는데 둘 다 해맞이 행사를 하러 새벽같이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국학생들끼리... 나도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뉴저지 샌디훅으로 가서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는 의식(?)을 몇 년째 행하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이 모두 다 우리조상들이 하던 연중행사인 것이다. 우리민족을 고대로부터 백의민족이라고 한다. 혹자는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의심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1988년 일본 오사까 지방&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저 하천의 이름이 신라천(新羅川)인데 신라인들이 건너와서 염색기술을 가르쳐 준 곳 이라는 것이다. 염색기술이 없어서 흰색 옷을 즐겨 입은 것이 아니요 원래가 종교적인 천손민족(天孫民族)이라 하늘의 색인 흰색을 좋아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인들 역시 우리와 같이 백색 숭배의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이다. 그들은 종종 게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입구에 천마(天馬)를 그린 깃발을 내걸고 있는데 말은 행운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사후에 말이 없으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국도 말을 타고 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흰 말이 천국으로 태워다 주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백마(白馬)를 가장 귀한 말로 여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 몽골의 다리 강가 지방에는 우리의 색동옷이 전통의상인데 이 일대는 코리(貊)족의 이동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이 코리는 바로 고구려, 혹은 고려라는 말이다. 또 그들이 한국을 솔롱거스(무지개)라고 부르는 것과도 어떤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겨울이 되면 그들은 샤가라는 놀이를 하는데 우리 식으로 하면 윷놀이다. 도개걸윷모의 다섯 개 말판을 쓰는데 노는 방식이 우리와 똑같은데 나는 놀라고 말았다. 다만 그들은 말판의 쓰이는 것을 양의 발가락 뼈마디를 말려서 사용하는데 거기에는 또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윷놀이의 유래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오는 한국 고유의 민속놀이로 대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즐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여족 시대에 5가지 가축을 5부락에 나누어주어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놀이라고 하며, 그에 연유하여 ‘도’는 돼,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에 비유한다. 생각해 보면 이 윷놀이에는 깊은 사상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영하 2, 3, 40도를 오르내리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겨울 들판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지낼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윷놀이를 개발했다. 그런데 이 윷놀이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상대를 잡아먹는 집단 전쟁 놀음인 것이다. 아군은 단 한명의 인명손실 없이 적을 완전히 무찌르고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살벌한 유희인 것이다. 온 식구가 함께 작전을 짠다. 두뇌싸움이다. 그리고 윷을 기술적으로 던진다. 실제 전투상황에서의 각개전투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한 번 던져진 윷이 의도한대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는 하늘의 섭리에 맡기겠다는 순종과 겸손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윷놀이의 말판은 시베리아의 중원벌이다. 넓은 들판에 길이라고 딱히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나 먼저 가서 길을 내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갈 수도 있고 저렇게 갈 수도 있는 길(말판)을 통해서 그들은 목표지점까지의 최단거리를 가늠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징기스칸의 군대가 세계를 정복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몽골의 산야에 넘쳐나는 야생동물인 맹수를 잡는 사냥을 통해서 그의 군대의 전투력을 키운 것이다. 사냥을 하려면 먼저 그 넓은 산속에 있는 맹수의 위치를 알아 내어야한다. 그리고 포위하며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들을 죽이려고 공격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숨 막히는 일전을 각오하며 반격하는 야생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단 한 개의 화살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맹수의 심장을 뚫어야 한다. 단 한 번의 칼 동작으로 머리를 쳐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과 작전을 통해서 그들은 실제 전투와 다름없는 전쟁연습을 거듭하며 세계 최강의 군대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맹수와의 싸움은 어찌 보면 인간들끼리의 전투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최근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한 전략이 바로 징기스칸의 그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군은 이라크를 상대로 한 전투에서 승리를 하지 못했다. 그 막강한 병력과 화력을 가지고도 실패한 것이다. 아마도 징기스칸은 미군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전투력을 보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소설가 황석영씨가 한국과 몽골의 국가연합의 당위성을 말했다. 몽골을 가 본 사람이라면 그 이론을 수긍할 것이다. 나는 100퍼센트 찬성한다. 우리는 몽골을 안아야 한다. 그들을 진정한 형제의 나라로 대접해야 한다. 그래서 몽골과 연합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지나의 동북공정(東北工程)같은 꼼수를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도 충분히 견제할 수 있으리라. 왜(倭)는 깜도 안 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만 된다면 Pax Koreana(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의 시대)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는 말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를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lt;이사야 46:11&gt;? 몽골의 국조가 독수리인데 이 말의 원뜻은 까마귀를 말한다. 우리의 국조는 삼족오(三足烏), 다리 셋 달린 까마귀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몽골과 우리 한 민족은 모두 하느님의 자손인 천손(天孫)들이요 천민사상(天民思想)으로 뭉쳐있기 때문이다. 나는 믿는다. 하느님은 동방의 별, 천손인 우리를 통해서 그 분의 마지막 섭리(攝理)를 이루어 가실 것이라고...&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828/2mongol%202-1.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르 안에서 학생들과 몽골여인들이 만두를 빚고 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만두가 빚어진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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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6) 징기스칸의 고향 -바이칼 호(湖)</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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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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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47:39Z</updated>
	    <published>2009-11-10T17:47:3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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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6) 징기스칸의 고향 -바이칼 호(湖)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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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민족 역사 간직한 ‘시베리아의 진주’ &lt;/SPAN&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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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韓)민족의 시원지(始原地) &lt;/SPAN&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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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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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20px&quot;&gt;
&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바이칼은 우리의 뿌리와 관련해서 예부터 끊임없는 관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춘원 이광수는 일찍이 바이칼 기행문을 발표했다. 최근의 과학은 보다 객관적으로 우리민족의 시원이 바이칼에 있었음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유전과학의 발달은 화석상태의 돌멩이에서 DNA를 추출하여 현재 전 지구상에 있는 인류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면서 인류의 기원과 인류의 이동경로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 과학이 더 발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면 할수록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깨끗하며 가장 차가운 호수이다. 한 여름에도 1분 이상 발을 담글 수가 없으며 죽은 물고기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을 정도다. 경상남북도 크기로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데 40m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다. 그 수정같이 맑은 물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물 물개와 철갑상어 그리고 내장이 들여 다 보이는 투명한 물고기 골로미양카가 사는 곳이다. 바이칼은 그 자체로서 이곳에만 있는 1,500여종의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진화박물관이자 원시생명체 연구소이기도 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이칼의 토착 생물들 중에는 지형이 급변하는 바람에 격리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2,500만년 동안 이 호수 안에서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들이야 말로 바이칼이 과학자들에게 인간과 지구의 역사의 비밀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며 우리가 바이칼을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고대로부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서 최근의 석학들인 단재 신채호, 육당 최남선, 봉우 권태훈 선생등에 의하면 우리 겨레의 얼의 진원지요 우리 민족 문화의 발상지요 조상들의 활동무대로 가장 유력시 되는 곳이 바로 바이칼 호수 지역인 것이다. 그 근거로 조선(朝鮮)이라는 말의 어원을 들 수 있으리라. 우리는 그동안 배워오기를 아침 조(朝),빛날 선(鮮)을 해석하기를 ‘아침 해가 빛난다’에서 ‘아침 해가 빛나는 나라’라는 의미가 조선이라는 말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주채혁 교수의 최근의 연구 논문(2001년)에 의하면 바이칼 근방의 시베리아 벌판에 우뚝 서 있는 대흥안령 산맥 북부 오룬춘을 답사하면서 선(鮮)이 순록의 겨울 주식인 이끼, 즉 선(蘚)이 나는 산 인 것을 시경(詩經)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또 조선(朝鮮)의 ‘조’자는 아침 ‘조’자가 아니고 ‘찾음’을 뜻하는 글자인 것이 흥안령 선비족 기원지와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를 현지 조사해서 찾아낸 것이다. 또 중국어 사전을 보면 ‘조선’이 이끼(蘚)가 나는 새 땅을 찾아다니는 ‘순록 유목민’을 의미하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토속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이끼가 많은 지역을 찾아서 서시베리아에서 동 시베리아로 이끼의 길을 찾아서 태평양이 있는 동쪽으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지역이 바로 시베리아인데 조선, 부여, 고구려, 거란, 발해, 그리고 여진과 몽골등은 이 시베리아에 역사적 태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의 수미야 바타르 교수는 몽골 남쪽의 동리인 고올리칸 훈촐로이의 상(像)이 고구려 동명성왕(東明聖王,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해모수의 아들, 58-19B.C. 재위 37-19B.C.) 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몽골어로 고올리족과 고리(槁離, 고려) 그리고 바이칼호 올콘섬을 시조지로 하는 코리족은 모두 몽골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들이 같은 혈통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최근의 DNA&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사는 이들의 견해를 입증하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시원지를 바이칼로 삼는데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칼로 오기 그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어디에 있었으며 어디에서 이곳으로 왔느냐 하는 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는 우리의 상고사(上古史)에 관해서 제대로 아는 바가 없는데 이것은 그 기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제의 강점 기간에 이루어진 왜(倭)의 만행(蠻行)-단군 말살 정책-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우리 조상들의 뿌리에 관해서 지극히 관심이 없는 족속이다. 이것은 정말 반성할 과제이다. 왜(倭)는 그들의 뿌리를 연구하는데 매년 100억 이상을 투자한다고 한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제가 조선을 자기들의 영구한 식민지로 삼으려고 할 때 가장 큰 고민은 조선이 그들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이라는 사실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한말 조선을 강점할 당시 그들의 역사는 겨우 기원 후 1,700년인데 비해 우리 조선은 기원전 4,200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보다 2,000년 이상 앞서 있는 조선의 상고사를 말살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조선 총독부 산하 &lt;조선사편수위원회&gt;였고 그 수괴 되는 자가 이마니시류(今西龍, 그의 이름을 풀면 지금 서쪽에 있는 마귀&lt;龍&gt;이다. 계시록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2) 동쪽에 있는 자기 나라 일본을 떠나 지금 서쪽 한국으로 와서 마귀 짓을 하고 있으니 이름 그대로 금서룡(今西龍)이다. 그는 그렇게 마귀 짓을 하다가 급사했다. 당시 육당 최남선은 단군조선이 ‘조선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금서룡과 한인 어용사학자들에 의해 묵살되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 뿐 아니라 교활한 일제는 단군을 말살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판단했다. 민족의 시조가 없어지는 것이니 한민족은 단군을 하나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적 자긍심을 잃고 그 기가 꺾이며 민족이 분열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이를 위해 1920년대부터 우리의 역사를 날조, 축소, 왜곡 그리고 부정하는 작업을 조선총독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시작했고 가장 먼저 우리나라 전국각지에서 단군관련 역사책을 모두 수거하여 소각한 것이다. 총독 데라우찌는 헌병들을 동원하여 전국의 향교, 책방, 서원, 개인집을 뒤져서 우리 민족의 귀중한 사료들을 불태운 것이다. 1930년 8월 22일 총독부 중추원 회의에서 조선사편수회는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기록들은 사료적 가치가 없다는 망언을 하며 단군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금서룡은 그의 논문 단군고(檀君考)를 발표한 후 2년 뒤 57세로 급사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1910년 이전인 구한말의 학부가 검인정한 고유상의 역사교과서 &lt;오천년 조선역사&gt;의 제 1편 상고사 제 1부의 조선의 창국(創國)을 보면 “아동(我東) 유국시대(有國時代)가 단군으로부터 시(始)하니라‘ 로 시작하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제 1장 단군조선(檀君朝鮮) 조선의 시조는 단군이시니 단군은 신이 아니요 인간이시라....(이상 알이랑 민족,유석근 저 인용) 다시 말하면 우리의 역사의 시작은 단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의할 것은 단군의 신격화이지 단군의 실존을 무조건 부정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이 과연 역사의 인물이라면 그의 조상은 누구인가?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렇다면 단군은 어디에서 왔으며 단군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찌하여 단군의 개국정신과 몽골인의 천손(天孫)사상은 그렇게 같은 것인가? 어찌하여 단군의 8조 금법은 구약성경의 10계명과 그렇게 같을 수가 있는 것인가? 제천신앙(祭天信仰), 천제(天祭), 천산(天山,)개천절(開天節),천시(天市),개천시교(開天施敎), 천훈(天訓),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理化)등 단군의 개국과 더불어 하늘(天) 과 신(神)과 관련된 말이 이렇게 많을 수 있는가? 우리의 주변국가인 지나나 왜에서는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이렇게 신기한 말들이 많은 까닭이 무엇일까?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이칼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징기스칸은 경치와 풍광이 빼어나고 기가 센 곳이라고 여겨지는 바이칼의 핵인 올콘섬을 생전에 틈틈이 찾아 기도와 명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세계를 경영할 전략을 수립했을 것이리라. 세계경영이라! 진정한 사나이라면 한번 품음직한 꿈과 대망이 아닌가? 청년이여 야망을 품어라! 대망을 품으면 그 대망이 당신을 그 곳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lt;/SPAN&gt;&lt;BR&gt;
&lt;TABLE&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814/1mongol.jpg&quo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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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5) 휴대품 게르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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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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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45:25Z</updated>
	    <published>2009-11-10T17:45:25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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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2&gt;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5) 휴대품 게르 &lt;/H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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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title_s&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 10~15회 이동 … 2시간이면 집한채 뚝딱 &lt;/SPAN&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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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isa_publish_date align=right height=10&gt;&lt;H7&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H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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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last id=conte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는 틈만 나면 지금도 몽골의 넓은 초원으로 달려간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들판에서 새카만 흑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들판에서 산으로 달리고 산에서 다시 강을 향하여 달린다. 그리고 목이 마르면 아무 게르나 찾아가서 아이락 한잔을 달라고 한다. 아이락 한 잔에 목을 축이고 약초냄새가 진동하는 벌판에 눕는다. 사방은 고요하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온다. 파란 하늘에는 새털구름 뭉게구름 솜털구름이 여유 있게 우주유영을 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개 하고 누었으니 여기 인생의 낙이 있도다...’ 하는 옛 시 한편을 읊조린다. 세계적으로 유목문명은 오랫동안 존속하며 만들어 졌고 모든 대륙에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의 목축은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몽골에서는 B.C. 4,000 년경에 시작하여 B.C. 1,000 년경에는 유목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몽골의 자연환경은 유목생활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하였다. 몽골의 기후와 토질과 주변 환경은 정착하여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농사를 하기에는 매우 부적당한 것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들이 야만적이거나 게을러서 유목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유목생활이야말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1년에 평균 10회 정도의 이사를 해야 하니 얼마나 고달픈 삶인가. 더군다나 끊임없이 움직이며 제 멋대로 달아나는 가축들의 뒤를 쫓아 다녀야 하는 것이니... 이들은 자연적으로 초지의 형편과 물의 변화에 따라 가축을 이동시키는 법을 배웠고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말을 조련시키는 지혜를 터득했다. 가축에게서 인간의 삶에 필요한 축산품과 유제품을 개발했고 가축의 질병을 치료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의식주 모두를 유목생활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며 사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이들의 삶은 대단히 단순하며 간단하다. 그리고 솔직하며 정직하다. 이에 비하면 미국에서의 삶은 얼마나 번잡스럽고 고단하며 가면적이고 위선적인가?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도 도시를 제외한 몽골인들은 게르에서 산다. 그런데 이 게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휴대할 수 있는 집이다. 몽골인들은 이미 있는 집을 향해서 이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이주하는 곳에 집을 설치하는 것이다. 가느다란 나무를 엮어서 둥글게 만든 벽, 햇빛이 들어오고 환기를 하게 만든 마차 바퀴와 같은 모양과 크기의 천정, 게르의 중심을 잡아주는 네 개의 어른 팔 굵기의 기둥, 판자로 만든 나무 문 그리고 양의 털을 두들겨 뭉쳐서 만든 게르의 지붕과 벽이 집의 전부다. 이들은 집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데 숙달된 사람의 경우 두 명이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집안의 살림살이로는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가로 한자 세로 두 자의 난로 한 개, 나무로 만든 조립용 침대 두어 개, 유치원에서 사용하면 알맞을 아주 작은 등받이가 없는 소형 의자 몇 개, 그리고 소중한 물건을 담아둘 수 있는 조그마한 사물함과 역시 조그마한 선반을 겸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장식장 한 개 정도이다. 초장을 따라서 끊임없이 이동해야 먹고 사는 이들은 지역에 따라서 많게는 1년에 10에서 15회를 이동하며 이동거리도 50km에서 100km를 이동하는가 하면 연평균 2-4회 그리고 10km 미만을 이동하는 유목민도 있다. 여름에는 그럭저럭 시원하게 살 수 있지만 시베리아의 한파가 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치는 긴 겨울이 문제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양털로 만든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한 겨울에도 웃통을 벗을 정도로 덥다. 말린 소똥과 말똥으로 불을 지펴서 취사를 하고 난방을 하는데 화력 또한 엄청 센 것이 이 연료로 하지 못하는 요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냄새도 없다.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인 삶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가축의 말린 분은 화력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특기는 만두를 만들어 먹는 것인데 만두를 빚는 솜씨가 완전히 숙달된 조교의 모습이다. 저녁만찬이래야 만두 몇 개가 전부이고 아이락 한 잔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소똥 불 위에 솥을 걸고 만두를 빚는 이들은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가 몽골의 전통가옥을 방문할 때 마다 느낀 것은 구약성경 지혜전승의 이 한 마디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1). 자연의 환경에 순응하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유목민이기에 고기는 충분히 먹을 것 같았는데 실상 가서 보니 그렇지도 못한 것이 잡아먹을 양이 별로 없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만두 속으로 양고기를 넣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그냥 칼국수를 만들어 끼니를 때우고 만다. 양고기와 양의 기름을 만두 속으로 빚은 만두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먹노라면 기름이 줄줄 흐른다. 잠깐 두면 허옇게 굳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함께 했던 러시아 박사인 몽골 교수는 그 먹다 남은 양기름을 손바닥에 넣고 쓱쓱 부벼 대더니 얼굴과 머리에 바르는 것이다. 몽골산 로션이다. 이들은 다만 겨울을 나기 위해서 거세한 양을 잡아 보관하는데 연중 최고의 명절인 구정(차강사르)때는 보통 양을 한두 마리 잡아서 먹는다. 강가나 물 곁에 게르를 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식수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들은 물을 매우 아껴서 쓴다. 한 컵의 물로 다섯 식구가 양치질과 세수를 해결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추운 겨울 물 한 모금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몇 번하면 양치질은 끝난다. 그렇게 입속에서 오물거리는 동안에 덥혀진 물을 얼굴 위로 뿜어대며 한두 번 문대면 세수도 끝이다. 워낙에 물이 귀한지라 징기스칸 당시에는 물을 낭비하면 사형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은 물도 아껴서 쓰는 검소함이 몸에 밴 것이다. 이들에게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을 리 없다. 샤워할 물이 있어도 하지 않는 참으로 독특한 문화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르 안에는 벽이 없다. 그러니 비록 가족간이라 할지라도 사적인 공간이 따로 없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게르의 크기는 대개 5평 정도이다. 이 공간에 많으면 3대가 산다. 어른들은 침대에서, 아이들은 맨바닥에 카펫을 깔고 잔다. 아이들은 지난밤에 이 게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안다. 그러나 총명한 몽골의 아이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간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인들은 대체로 힘이 센 편이다. 동의보감에도 양고기는 사람의 몸을 덥혀주고 기운을 더해 준다고 했다. 몽골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어느 한글학교 교사의 말에 의하면 양고기를 된장에 삶아서 한 6개월 먹으면 몸이 더워지고 체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봄부터 게르 밖에서는 오축(五畜, 소, 말, 양, 염소, 낙타)들의 짝짓기가 시작된다. 그 소리가 또한 요란스럽다. 몽골의 어린이들은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자란다. 탈의실이 별도로 없는 대학체육관에서 여학생들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다 보니 몽골인들의 삶은 매우 개방적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에 온 선교사들은 대개 늦둥이를 둔다. 몽골에서의 삶이 회춘하게 만드는 것이다. 외식(外飾)하는 현대의 문화와 솔직한 유목문화, 그래서 갈수록 적지 않은 현대인들이 몽골로의 일탈(逸脫)을 꿈꾸는지 모르겠다.&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807/2mongol1.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르 안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몽골인.&lt;/SPAN&gt;&lt;BR&gt;
&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hspace=5 src=&quot;http://www.koreatimes.com/photos/NewYork/20090807/2mongol2.jpg&quot; border=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르 안의 주방. 난로겸 취사기구가 놓여있다.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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