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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호사노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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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0T07:48:1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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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초식남? 그게 트렌드야? 나 원 참!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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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0T07:48:14Z</updated>
	    <published>2009-10-20T07:48: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 align=justify&gt;초식남이라는 개념은 3년 전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쓰기 시작하면서 사회현상으로 안착(?)했단다. 후카사와 마키는 물질적 풍요 속에 태어나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었던 세대가 미래에 대한 큰 기대 대신 성실함만을 지향한 점, 거기에 달라진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권위, 성인 비디오나 성인 사이트 등 성산업이 발달한 특수성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단다. 한마디로 웃긴다. &lt;BR&gt;&lt;BR&gt;“일본 뿐인가? 한국에도 초식남이 있다!”고 마치 자랑스러운듯 떠들어대는 덜 떨어진 언론들도 가소롭다. 중앙대 여성학과 이X영 교수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공격적이면서 책임감 있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로 통했다”면서 “여성 공감지수가 높은 남성의 등장은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허물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가관이다.&lt;BR&gt;&lt;BR&gt;초식남? 한마디로 여자 같은 남자, 그게 트렌드이고 사회현상이라니, 그게 긍정적이라니, 도대체 제정신 가진 사람들인가 싶다. 바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덜 떨어진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목을 세우고 나서고, 그래서 줄어 들어야 할 그런 부류가 오히려 늘어나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lt;BR&gt;&lt;BR&gt;이런 여성같은 남성, 혹은 남성같은 여성이 근래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그 수가 근래 들어 증가했을지는 몰라도 삼국시대에도 있었고 아프리카에도 있었다. 단지 사회적인 교육으로 초기에 고쳐졌을 뿐이고 또 고쳐지지않았다 하더라도 소수이기 때문에 또 사회적 분위기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lt;BR&gt;&lt;BR&gt;이런 현상이 증가했다면 위에 말한 그런 이유보다는 공교육의 문제점인 교사들의 여성화가 더 큰 이유가 아닌가 따져 보아야 한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여성 편중화는 한국뿐 아니라 이곳 호주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지 오래이다. 남자 아이들이 여자 교사에게서 배우면서 여성화 되어간다는 우려가 이제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lt;BR&gt;&lt;BR&gt;꼭 그 것 하나만 아니라 다른 요소도 여럿 있을 수 있다. 이유나 요소가 어떻든, 그렇게 잘못 길러지고 잘못 길들여지면 그것을 바로 잡을 생각은 않고 사회현상이니 인정하자느니, 혹은 한술 더 떠 바람직하다느니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는 진리이고 바른 것은 바른 것이다. 세월이 악해서 사회상도 변했으니, 죄악시하거나 단죄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추기지는 말아야 한다. &lt;BR&gt;&lt;BR&gt;말세지말에 인성이 말살되어가는 것이, 마치 사회가 다양화 되어가고 개인적인 것이 존중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기 위치에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덕목과 져야할 최소한의 짐이 있다. 가족이, 사회가, 국가가, 인류가 그런 개개인이 자리를 지킴으로서 유지되고 있다. &lt;BR&gt;&lt;BR&gt;또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감당할 것을 감당하기 위해 인내할 필요도 있고 단련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면, 어찌되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그런데 누구나 다 편하고만 싶다면 인류 사회가 지탱되어 갈 수 있겠는가? &lt;BR&gt;&lt;BR&gt;다양화도 좋고 개인적 성향이나 특성이 존중받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의 한계나 경계선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초식남이라니, 건어물녀라니, 동성간 결혼이라니, 이런 것들이 사회현상으로 안착되고 하나의 트렌드로 인정 받아야 하겠는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박수를 쳐야 하겠는가?&lt;BR&gt;&lt;BR&gt;“나는 그게 싫어.” “나는 이게 좋아.” 그래서, 싫어서 결혼도 않고, 싫어서 애도 안낳고, 또 좋아서 초식남이 되고, 좋아서 동성 결혼을 하고,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말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인간의 덕목이 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 인간은 하고 싶은 일 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는 동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Contents --&gt;&lt;/P&gt;(이 글은 시드니에서 발행되고 있는 2009년 10월 23일자 호주일보(&lt;A href=&quot;http://www.hojuilbo.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www.hojuilbo.com&lt;/A&gt;)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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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래서 나는 호주가 참말로 좋다” - 시드니 캔터베리시 전 시의원 남기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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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10-07T13:21:17Z</updated>
	    <published>2009-10-07T13:21: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형사 재판의 배심원 후보로 선정되었으니 참석하라는 편지를 받은 것은 지난 7월이었다. 10년 전쯤에도 그런 참석 요구를 받고 세번인가 참석했다가 결국 최종 선정에서 탈락(?)된 적이 있다. 그 때는 문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라 세번이나 참석하느라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으니, 탈락된 것이 장원급제나 한 것처럼 홀가분하고 행복했었다. &lt;BR&gt;&lt;BR&gt;이번에도 그 편지를 보자마자 짜증부터 났다. “왜 자꾸 이런게 나와!” 하는 볼멘 소리가 곧 바로 튀어 나왔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면서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10년전에는 시의원 노릇하랴, 신문 발행이나 비즈니스도 직접 뛰느라 바빴지만, 이제 시의원은 손을 놓았고, 다른 것도 직접 뛰는 것은 아니니, 경험 삼아 또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한번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lt;BR&gt;&lt;BR&gt;참석하라는 날은 8월 12일이었다. 하루 전날 오후 5시 이후에 전화를 해서 예정대로 배심원 소집이 있는지 연기되었는지 녹음된 안내 내용을 확인하라는 지시대로, 8월 11일 오후 5시를 기다렸다가 전화를 했더니 연기되었다며, 내일 다시 전화하라고 녹음되어 있었다. 그렇게 4차례나 연기되었다. &lt;BR&gt;&lt;BR&gt;3번까지는 전화를 해서 확인했는데, 4번째인 금요일(8월 14일)에는 음악학원 개원 준비로 하루 종일 바빠서 그만 잊어버렸다. 아무때나도 아니고 오후 5시 이후에 전화를 해야 하니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리고 아차! 하고 생각이 났을 때는 이미 다음 주 수요일이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 어쩌겠는가 하고 잊어버렸다. &lt;BR&gt;&lt;BR&gt;그런데 9월 16일이던가 편지를 받았다. 8월 17일(월) 소집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벌금 1100불을 내라는 벌금 고지서였다. 피치 못한 이유가 있으면 증빙서류를 반드시(Must) 첨부하여 설명하거나 아니면 벌금을 14일 이내로 내고, 만약 법정에 제소를 하려면 그 이유를 제시하여 신청하라면서 그러나 패소하면 벌금은 2200불이며 법정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lt;BR&gt;&lt;BR&gt;황당하고 억울했다. 감정대로 한다면 골백번이라도 법정에 제소하고 싶은데, 법정 비용에 벌금도 두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더 컸고, 시간이나 에너지 등 거기에 소모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그대로 내자니 1100불이 어디 누구네 강아지 이름이던가 말이다. &lt;BR&gt;&lt;BR&gt;그래서 우선 사실대로 이유를 썼다.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어서 첨부할 증빙서류는 없지만 있는 그대로 썼다. 4번이나 연기해서 3번까지는 전화로 연기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4번째는 깜빡했다. 그래서 다시 전화나 편지가 올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쓰면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깜빡했다고 하는데 그래 잘했다 하고 면제해 줄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lt;BR&gt;&lt;BR&gt;그리고 9월 30일 수요일 편지를 받았다. 필자가 쓴 이유가 받아 들여졌다며 더 이상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받으면서 “이래서 나는 호주가 참말로 좋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1100불이라는 거금(?)을 낼 각오로 있다가 내지않게 되니 참말로 감격스러워서, 그래서 그런 생각까지 들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사실 이런 류의 경험은 9년간 시의원 노릇을 하면서도 많이 느꼈던 것이다. 고국의 행정 편의 위주, 혹은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국가 기관의 행태와 이곳 호주의 개인 사정이나 입장이 참작되고 존중되는 풍토와는 확실이 구별된다. 다만 우리는 고국의 그러한 풍토에 길들여져서, 이런 정도의 일에 감격할 뿐이다. &lt;BR&gt;&lt;BR&gt;필자 자신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곳에 몸담고 있었고, 개인적이고 반발적인 거역(?)이나, 옳든 그르든 정해진 룰에 일탈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 그런 것에 익숙하다보니, 깜빡했다는 이유가 통하는 호주가 살 맛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참말로 호주가 좋다는 감격(?)까지는 쪼매 심한지 모르지만. 두고 온 고국을 헐뜯자는 의도는 전혀 없는데 혹시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까 걱정된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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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포에게 바가지 우려는 기우(2000.9.1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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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4T13:45:19Z</updated>
	    <published>2009-09-24T13:45: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올림픽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396명의 대규모 고국 선수단이 입국한데 이어 북한의 선수단도 지난 일요일 입국했다. 올림픽 후원회는 안내 지도를 12000부나 제작해서 방문해 오는 동포는 물론 현지 교민의 올림픽 관람에도 도움이 되도록하고 있으며 올림픽 티켓 구입을 대행하면서 10%를 보조하여 교민의 티켓 구입을 돕는 것은 물론 동포 선수들의 응원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lt;BR&gt;&lt;BR&gt;특히 북한선수의 응원을 권장하기 위해 북한 팀이 뛰는 경기의 티켓 구입에는 20%를 보조하는등 지난 6.15 정상회담 이후 부쩍 가까워진 남북관계를 다지는데 한몫하고 있다. 올림픽 후원회나 올림픽 선교 위원회등 단체는 물론 개인이나 각 교회가 또는 작은 모임들이 나름대로 크든 작든 방문해 오는 남북 동포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있는 것이 눈에 많이 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lt;BR&gt;&lt;BR&gt;이렇게 교민들이 단체별로 혹은 개인별로 봉사에 나서고 있는데 일부 민박 시설을 가진 교민들이 동포에게 터무니 없는 가격의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시드니의 주택 사정이 그렇지만 올림픽 기간중 내방객을 수용하기엔 태부족이다. &lt;BR&gt;&lt;BR&gt;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민박시설의 접수를 받아 수요에 충당하고자 켐페인을 벌이며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형성된 특수 가격으로 민박 참여의 동기를 유발시키기도 했다. 가격이 높게 형성 되다 보니 자기는 휴가를 가면서 자기 집을 민박으로 활용하여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발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자연스러운 경제 원리이며 오히려 권장되기도 했다. &lt;BR&gt;&lt;BR&gt;만약 민박시설을 가진 동포가 다른 민족에게 내어 주고 받을 수 있는 가격을 동포에게 받는다면 비록 그 가격이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 하더라도 바가지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올릴픽 기간 동안 터무니 없지만 받을 수 있는 가격을 놓고 동포이기 때문에 보통 가격에 내 놓으라는것은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봉사는 봉사고 생업은 생업이다.&lt;BR&gt;&lt;BR&gt;봉사란 할만한 여유가 있거나 하고 싶다는 의욕이 있는 분들이 나서서 하는 것이지 누구나 나서서 봉사하고 내 놓아야 한다고 강요 할 일은 아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민와서 혹은 유학와서 어렵게 생업에 매달리고 있는 동포들에게도 눈을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lt;BR&gt;&lt;BR&gt;손님을 위해서 집안 식구는 굶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에 하나 다른 민족에게는 받을 수 없는 높은 가격을 동포에게만 받는다면 그것은 바가지이다. 민박이 되었든 관광 안내가 되었든 선물판매가 되었든 기타 여하한 장사에서든 동포에게만 올려 받는다면 그것은 심하게 표현하여 동포를 등치는 행위로 지탄 받아 마땅하다. &lt;BR&gt;&lt;BR&gt;일반적인 얘기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이러한 바가지 행위를 우려하는 것 자체가 시드니 교민사회에서는 기우라고 판단된다. 그렇게 판단하는 첫째 이유는 시드니 교민 사회가 아직 4만 정도의 작은 규모이다 보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믓한다는 판단이다. &lt;BR&gt;&lt;BR&gt;한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가 될 만큼 작은 사회이니 이웃의 눈이 무서워서도 그런 일을 하기가 쉽지않다. 둘째, 시드니 교민들의 생활 수준이 방문해 오는 동포들에게 억지 이익을 챙겨서 먹고 살아야 할만큼 각박한 상황이 아니다. &lt;BR&gt;&lt;BR&gt;적어도 현재 우리 교민의 분위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드니에 올림픽 참석차 온 동포들에게 있는 것을 내 놓으며 봉사하고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즐기며 기삐하는 분위기이지 이 기회에 한몫 보자는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비록 생업에 여유가 없어서 시간적 혹은 물질적으로 봉사하지 못하는 교민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거야 어찌겠는가, 형편이 안되는 것을.&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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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성 거세현상과 여교사 편중현상(2000.9.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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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4T13:44:16Z</updated>
	    <published>2009-09-24T13:44:1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뉴 케슬 대학의 데보라 하트만 교수가 그간의 연구 결과를 최근 책으로 펴냈는데 남학생을 여학생과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말하며 여교사가 남학생의 시끄럽고 자유 분방하고 활동적인 점을 감안하지 못하여 여학생과 같이 다루므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밝히면서 남자는 남자답게 키워야만이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lt;BR&gt;&lt;BR&gt;현재 NSW 내 초.중학교의 80%가 여교사인데 주정부는 연방정부에 제출한 질의서에서 남학생에겐 남자로서 모방하고픈 남성상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국에서도 이미 20여년 전에 여선생의 비율이 급증하여 남학생의 여성화에 대한 심각성을 논했으나 뚜렷한 대안없이 방치되어 왔다. &lt;BR&gt;&lt;BR&gt;교대 입학시 남.여의 비율을 조절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남학생에게 장학금의 특혜를 주자는 아이디어도 논의 되었었다. 고국에서는 남.여교사의 비율 조정에 초점을 맞춘 반면 하트만 교수는 남.여학생을 다르게 다루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 것이 다를 뿐 여교사에게 맡겨진 남학생의 여성화라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동일하다. &lt;BR&gt;&lt;BR&gt;우리는 이 문제가 일과성으로 지나칠 문제가 아니라는데 하트만 교수와 의견을 같이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남녀의 역할이나 특성이 애매해지고 직업도 유니섹스화 되면서 시대의 흐름이라고 수용하는 추세이지만 남녀의 성 차이가 없어진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기 보다는 교육 현실이 그렇게 만들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lt;BR&gt;&lt;BR&gt;남학생이 여교사를 보며 모델로 존경하게 될때 여성다움이 선이라는 모방 심리 혹은 동일시 심리 작용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화 돼어갈 가능성은 충분하며 그러한 교육이 거듭된 결과 오늘날 남녀의 성차이가 없어지고 모두 여성화 되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남녀가 태어나면서 다르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교육으로 다르게 길러진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도 있다. 어릴 때 여자 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며 모성애를 기르고 남자 아이는 칼이나 총을 쏘면서 놀다 보니 공격적이 된다는 주장을 한다. &lt;BR&gt;&lt;BR&gt;그러나 남녀간 신체 구조가 다르고 감성과 이성의 비율등 감정적 정신적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하트만 교수의 연구 결과에서도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녀의 차이가 없는데 기르는 방식에 따라 달자지는 것이 아니고 남녀의 차이가 있는데 기르는 방식에 따라 그 차이를 없애거나 혹은 그 차이를 역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lt;BR&gt;&lt;BR&gt;신세대들의 특성이랄 수 있는 유니섹스는 남성미 보다는 여성미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것도 이러한 추측의 가능성을 뒤받침 한다.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힘으로 짓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힘으로 일하는 남성의 존재 가치가 없어져서 여성화 되어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요즘의 10-20대 남자 아이들이 남자다운 야망을 갖고 의지로 추구하는 대신 나는 이것이 좋아 혹은 나는 그런 것은 싫어 하면서 안이하게 하고 싶은 일에 만족하는 심리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수십년 전부더 문제가 되어온 여교사 편중 현상과 무관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lt;BR&gt;&lt;BR&gt;남자를 남자 답게하는 교육을 하트만교수는 주장하며 그를 위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는데 고육 당국이 이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여른이 일고있다. &lt;BR&gt;&lt;BR&gt;현대 젊은 남성들의 거세 현상이 여교사로 부터 고육받아 온 영향이 이제서야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한 여교사로 부터 교윽을 받고 있는 남자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해 두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귀를 귀울여서 남.여교사의 비율을 조정하든 남.여학생을 다루는 방법을 조절하든 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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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복절 기념음악회에 부쳐(2003.8.2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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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호주노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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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24T13:41:37Z</updated>
	    <published>2009-09-24T13:41: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1995년 8월 어느 토요일 호주동아(당시 오직일 발행인)가 8.15 광복절 교민 위안의 밤을 주최한 적이 있다. 고국에서 연예인들이 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캠시 소재 오리온 센타가 꽉 들어찬 교민들의 열기로 매우 뜨거웠었다. &lt;BR&gt;&lt;BR&gt;필자가 햇수를 쉽게 기억하는 것은 그 때 막 시의원에 출마했을 때여서 바로 그 공연 장소에서 출마의 인사말을 했기 때문이다. 주최 측에서 출마 인사를 하라고 해서 그 자리에 나갔는데 그 새 누가 시비를 걸고 나왔는지 시간이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lt;BR&gt;&lt;BR&gt;주최 측에서 시간이 없다는데 무어 할말이 있겠는가. 알았다고 포기하고 있는데 일부에서 무슨 소리냐! 이런 축제 자리에 시의원 출마의 인사말을 안 한다니 말도 안 된다고 들고 일어나서 결국 단상에 올라섰던 기억이 난다. &lt;BR&gt;&lt;BR&gt;필자는 그 때 호주동아의 광복절 기념 교민 위안의 밤 공연을 참으로 감명 깊게 느꼈다. 그 후 오직일씨와 명예훼손 고소 직전까지 가는 등 관계가 악화되었고 지금도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않지만 그 행사에 대한 것 만큼은 오직일씨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lt;BR&gt;&lt;BR&gt;신문사가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행사를 주최한다는 것은 보통 마음가지고 하는 일이 아니다. 바로 애족정신의 발로라고 보았으며, 나중에 무리가 있었지만 오직일씨의 호주동아 발행 의도만큼은 순수하고 정의로웠다고 믿고 있다. &lt;BR&gt;&lt;BR&gt;그 후 전혀 뜻하지 않았던 신문을 발행하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8.15광복절 만큼은 뜻있는 행사로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문사의 운영상태가 항상 허덕이다 보니 만 4년이 지나서야 기회가 되어 뜻을 이루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 &lt;BR&gt;&lt;BR&gt;이 곳에서 활동하는 합창단과 성악가들이 그 기량을 교민들에게 선보이는 장소를 제공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메마르기 쉬운 교민들에게 다소나마 문화 생활을 즐기는 기회를 드린다는 의미 그리고 이 기회에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의미가 있었다. &lt;BR&gt;&lt;BR&gt;특히 이번 행사로 인해 수십만 영어 독자들이 익스프레스와 토치 등의 비록 지역신문이지만 지면을 통해 광복절과 일제 만행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라고 믿는다. 이 행사에 외국계 정치인들을 대거 참여시킨 것도 내심 친한파를 좀 양산해 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lt;BR&gt;&lt;BR&gt;약 600여명의 관객 중 2/3는 외국계였으며 공연이 끝난 후 공연 의뢰가 들어오는가 하면 그 수준에 놀랐다는 감사의 이메일이 접수되는 것을 보며 의도하는 바가 모두 달성되었다는 자족감이 들어 매 우 행복하다. &lt;BR&gt;&lt;BR&gt;이 기회에 출연해 주신 합창단과 성악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또한 총영사관과 한인회 등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내년에는 좀 더 큰 곳에서 좀 더 많은 교민들에게 위문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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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15 광복절을 맞아(2003.8.1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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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4T13:40:29Z</updated>
	    <published>2009-09-24T13:40: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현대는 영웅 부재시대라고 한다. 과연 이 시대는 영웅 부재시대인가? 영웅은 난세에만 태어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스케일이 크든 작든 영웅들은 있어 왔다. 단지 동 시대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lt;BR&gt;&lt;BR&gt;8.15 광복절이면 특집으로 나오는 일제 시대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일제의 고문과 살육의 고통을 이겨내고 목숨을 바쳐 신념을 지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순국 선열들에 대해 존경을 넘어 외경스럽기까지 하다. &lt;BR&gt;&lt;BR&gt;해방후 60년대 4.19를 치른 선배들과 70년대의 유신에 대항하던 후배들을 생각하면 항상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고문과 능욕의 고통을 감내하며 정의를 위해 몸을 사르던 선후배들의 숭고한 정신과 타오르는 정의감을 생각하면 왜 마음까지 움츠러드는것일까?&lt;BR&gt;&lt;BR&gt;4.19때는 미쳐 나이가 되지 못해서 그리고 10월 유신 때는 바로 그 유신 작전(?)에 앞장서 계엄군 임무를 수행하느라고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만약 육사를 가지 않았다면 그 세월들을 어떻게 보냈을 것인가?&lt;BR&gt;&lt;BR&gt;일반 대학을 갔다면 학우들이 정의를 위해 고문당하고 분신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며 무엇을 했을까? 생각만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며 썩 그렇게 자신이 만만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십중팔구 필자도 일반 대학을 갔다면 그런 봉변(?)을 당했을 것이다. &lt;BR&gt;&lt;BR&gt;대학을 다니다가 데모나 운동권에 연루되어 근욕을 치룬 것을 필자는 봉변이라고 본다. 정치적 부정 혹은 독재를 보며 정의감에 불타지 않는다면 젊은이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태어난 죄로 그리고 정상적인 젊은이라는 죄로 당해야 하는 횡액이라고 본다. &lt;BR&gt;&lt;BR&gt;군을 예편하고 나서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60년대와 70년대의 용기있는 선.후배들에게 때로는 미안함과 함께 때로는 그 용기와 의지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 드는 위축감을 느끼고는 한다. &lt;BR&gt;&lt;BR&gt;그러다가 맞은 80년대의 광주 민중항쟁은 필자에게 참으로 많은 정신적 고통을 안겨 주었다. 필자의 고향이라서가 아니다. 선택권이 있는 상태에서 행동하지 못한 양심 때문이었다. 군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lt;BR&gt;&lt;BR&gt;당시 서울에 있던 일부 동창 녀석들은 광주로 내려가다가 교통이 통제되자 장성에서 산을 넘어 광주에 들어갔다. 같이 서울에 있던 필자는 불통된 전화통을 붙잡고 발을 구른 것이 당시 했던 전부였다. 그렇게 사흘을 보내고 나니 상황은 끝나 있었다. &lt;BR&gt;&lt;BR&gt;그래서 지금도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부끄럽다. 그리고 그 당시 그 무자비한 원흉들에 대한 증오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버젓히 숨쉬며 살고 있는 고국의 현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8.15에 웬 5.18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8.15를 맞아 근대사의 수 많은 영웅들을 기리다 나온 얘기이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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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모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 카지만.(2000.7.2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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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4T13:37:51Z</updated>
	    <published>2009-09-24T13:37: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우리 한국사람들 말이여 팔은 안으로 굽는다 케사는데 우째서 한국사람 팔만 안으로 굽는 당가이? 우리 개골이 덜이야 한국에서 태어난 청개골이든 미국에서 태어난 황소 개골이든 팔 모양이 다 똑같은디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 따라 팔 모양세가 다른가베? &lt;BR&gt;&lt;BR&gt;그기 아니라고? 그라면 우째서 한국 사람들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들을 하까이? 한국 사람덜이 내편이문 무조건 편들어 주는 성향이 좀 있어서 그렇다꼬? 그거 그럴 듯 허네 그랴. 우리 한국 사람덜이 그런 경향이 좀 있디. 경우가 좀 안맞더라도 아는 사람이면 편도 좀 들어주고 틀린 것도 좀 눈감아 주고 넘어가고. 그런기 사실 좀 있지. &lt;BR&gt;&lt;BR&gt;그런데 그기 꼭 나쁜 것만은 아닌기라. 사실 그렁기 좀 있어야 사람 사는 맛도 좀 있지. 아무 때나 지가 무슨 대쪽이라고 칼로 무자르듯이 옳고 그르고를 따져싸먼 그기 살벌해서 살맛 나가서? 정도 문제긴 허갓지만 이민와서 살문서 그렇게라도 좀 비비고 살문 좋것다 하는 생각이 든디. 글씨 내가 틀린 것일까?&lt;BR&gt;&lt;BR&gt;은젠가 캠시에서 있었든 일인디 백인 하나가 한국인하고 싸암이 붙었어. 누가 잘몬했는지는 모르지만 주먹질하고 난리가 났는디 한국 사람이 좀 맛고 있었디야. 그란디 지나가든 한국 사람이 달려 들어서 백인을 패주더라고. 근디 그 백인 맞으문서 어데서 배았는지 혀도 잘 안 돌아가는 소리로 &quot;개xx야! 개xx야!&quot; 그카더래여.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욕은 어서 배아 갖고.&lt;BR&gt;&lt;BR&gt;그란디 이것은 좀 심한 것 아니어? 아모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디만 폭력을 쓰먼 안되제, 거럼. 근디 이것은 어띠여? 전번 주에 제보가 들어 왔는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숍에 좀도득이 들어 온기라. 한국인 여자 혼자 있다가 당하게 되앗는디 우리 말로 '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첬겄다. 지나가던 한국사람이 듣고 뛰어들어 와서리 붙잡고는 경찰이 올 때까지 지키고 있었대여. &lt;BR&gt;&lt;BR&gt;용감허기도허고 바쁜 이민 생활에 쉬운 일이 아닌디, 나중에 주인헌티 그러더래야. 한국 사람이 아니먼 자기가 그랬것냐고. 같은 한국 사람끼리 서로 도와야만이 힘이 된다 그말인디. 그 사람 팔은 안으로 잘 굽는것 거티여. 참으로 고마운 일이구먼.&lt;BR&gt;&lt;BR&gt;근디 말이여, 이기 너무 지나쳐 갖고. 무조건 편들고 나서는거 이기 문제가 좀 있다이. 아모리 가벼운 거라도 불법을 알문서 편들고 나서는 거나, 도대체가 경우가 맞지 않은디 편들어 주갓다고 나서는 것, 그거는 안되는 일 아니갓서?&lt;BR&gt;&lt;BR&gt;자기가 틀린지 알문서도 자기편 들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거 이것도 문제라. 그럴 줄 몰랐다느니 어뜨케 그럴 수가 있느냐느니 그러다 심하문 원수까지 되고 말아 버리는거 참으로 문제랑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기 너무 심하게 굽어갖고 잘 나가던 사람끼리 원수가 되기도 허고 본의 아니게 편싸움이 되는데 연루되기도 허고, 또 그렇게 편가르기 할랴고 이간질 불이기도 하고. &lt;BR&gt;&lt;BR&gt;그래서 교민사회 항상 시끄러분게 이 팔이 너무 심하게 굽어가 그렇다 이기야. &quot;뭐 그 사람이 당신께 그랬단 말이야? 그 사람 안 되갓구만&quot; 이렇게 되아서 자기하고는 아무 관계 읍는 편에 기어 들어가 편이 갈라지고. 그라다 보이 나쁜 짓을 하고서 문제가 되면 의도적으로 그러한 편가르기를 해가 빠져 나가기도 하고.&lt;BR&gt;&lt;BR&gt;그래서 말인디, 팔은 안으로 굽되 정도껏 굽는 풍토를 만들어 가자 이거라. 쉬운 일은 아닌디 적어도 불법이나 경우가 맞지 않은 일에 같이 팔 걷어 붙여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편들고 나서는 일은 삼가자 이기지. 그래야만 흑은 흑이고 백은 백이고 가려질 것 아이것나? 죄를 지고도 패거리만 만들먼 버터내는 세상 큰일 아니가? 개골개골개골&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할말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이제만(2000.7.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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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4T13:36:10Z</updated>
	    <published>2009-09-24T13:36: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사람이 살면서 할말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이제만 그래도 할말은 또 해야 하는 거이제, 몸을 사리느라꼬 입을 꼭 다물어 뻐리먼 그기 비겁한기라. 자기 자신에 관한 일에 입을 다무는 것이사 미덕이 될 수도 있것지만 공익을 해치는 불의나 비리를 보고도 입을 다물어 삐리는거 이거 비겁한기다이. &lt;BR&gt;&lt;BR&gt;근데 안잇나 그런 비겁한 사람덜이 오히려 젊잔은사람이다는 평을 듣는 우리 풍토 이기 큰 병인기 라. 뉘기가 손에 흙을 묻히고 싶것나? 뉘기가 손에 피를 묻히고 싶것노 말이다. 이 개골이 불의를 보고 몬 참는 바람에 손해도 많이 보고 욕도 많이 묵는다만은 그래도 남의 입에 오르 내리기 싫어 몬 된것 보고도 입 다물고 있는 짓은 몬하것드라. &lt;BR&gt;&lt;BR&gt;내 제일 미운 놈은 안잇나 점잖은 척 목에 힘주고 나쁜 것을 보면서도 입 다물고 외면하는 비겁한 사람인기라. 나 이 개골이 옛날 어릴 때 말이시 시골장에 가문서리 이런 일이 있었당제라. 버스 안에서 몬된 놈 하나가 이쁜 처녀 하나를 회릉 하는디 아모도 나서서 한마디 하는 사람이 읍더라고. &lt;BR&gt;&lt;BR&gt;그 차 안에는 젊은 사람덜도 많았고 젊잖은 사람덜도 많았는디 모다 꿀 묵은 벙어리 마냥 모른 척 하더랑게.이 몬된 놈 처음에는 한번 만나자느니 이쁘다느니 회롱을 하는디, 그리 왁자하던 차안이 조용해겼거등, 그란디 아모도 끽소리 하나 안 하는기라. &lt;BR&gt;&lt;BR&gt;이리 되니께네 이 몬된 눔 안잇나 기고 만장해가 상스러븐 소리로 모욕스러운 회릉을 항게는. 처녀는 기가 멕혀 울기 시작허고 보다 몬해 어뜬 아주마이가 쪼매 심하다고 한마디 했드이 그 작자 주머니에서 칼을 쓱 꺼내드니 &quot;아주마이는 철판 깔앗노?&quot; 함시로 겁을 주니께 아주마이도 입을 다물어 불더라고.&lt;BR&gt;&lt;BR&gt;하 그 몬된놈 이리 되니께 결국엔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쓰다듬고 그라는기라. 처녀가 울고 불고 허는디도 글씨 아무도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드라는 기지. 모두 눈감고 침묵만 지키는디 결국 어린 나가 나섯다 아이가? &lt;BR&gt;&lt;BR&gt;나가 나설라무니 쌍시웃 발음을 함시롱 직이 삔다고 소리치니께니 이 청년 낼로 보더니 너무 쬐끄만 놈이 소리치능기 어이가 읍는 모냥이라. 한참을 읏더이 나헌티 오데. 핫따 겁나등만. 근디 꾹 참고 내 소리를 질렀제. &quot;나 직이라. 나 직이고 저 여자 건드리지 말란 말이여.&quot; 하고 대드니께 낼로 한참 보더니 &quot; 너 오늘 용궁에 갔다 왔다. &quot; 그카고 그냥 차를 세우라 카더니 내리 삐리데.&lt;BR&gt;&lt;BR&gt;그 청년이 내리고 나니께니 여그 저그신 응성웅성 야단이나는디 &quot;모다 할말은 있더라고&quot; 참 내 그렇게 똑똑헌 사람덜이 왜 모두들 가만히 있엇시까? 비겁했기 때문이다이. 그라고 그런 비겁함이 바로 사회악을 키우는 것이다이. &lt;BR&gt;&lt;BR&gt;하이고 그때 나 우리 함메 한티 디지게 맞었구만, 그 나쁜 청년은 그냥 내렸는디 우리 함메 말이 그런 무지막지한 놈한티 그리 대들다 맞아 죽으먼 우짜것냐는 기지. 하이고 내는 사실 함메한티 맞아 죽을 뻔 했당게. 그때 어뜬 할베가 우리 함메 말림시릉 이라데 &quot;그만 때리시소. 아 잘못이 아입메. 여기 있는 우리 어른들 모다의 잘못임메.&quot; &lt;BR&gt;&lt;BR&gt;그 할베 한탄하는 소리가 내귀에 지금도 쟁쟁하데이 &quot;내 젊었을 때그래도 만주 벌판을 누볐는디 늙어서 이리 쪼그라져가 할말 없데이, 그카지만 여기 젊은 아아들 모조리 그거 떼 개주고 혀 깨물고 주그라마!&quot; &lt;BR&gt;&lt;BR&gt;나 이번에 우리 교민 사회를 보면서 그 버스 안의 사람덜 생각이 나등만. 그라고 때리든 우리 함메도 생각나고. 참으로 부끄러운 세상 아이가. 그란디 말리는 할베도 있었다카등만. 그래서 아직은 살맛 나는 세상 아이가. 그러게 말이시, 개골개골개골&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현 시장과 대립각은 이때부터(2000.8.3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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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4T09:53:33Z</updated>
	    <published>2009-09-24T09:53: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1999년당선될 때 현 시장이자 국회의원인 로버트 프롤로의원과 같이 당선되었다. 다수 여당인 노동당의 대표의원이었고 나는 소수 야당 의원들을 규합해 대표 아닌 대표노릇을 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인지 프롤로의원과 사사건건&amp;nbsp;부딛쳤으며 2004년도 시장선거에서도 크게 격돌했었다. 결국 시장선거에는 패했지만 그후에도 시의원으로 있으면서 시장과&amp;nbsp;많이 부딛쳤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8.uf.daum.net/image/181A2D124ABAC2E88FDE2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시의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2000년 8월 3일자 기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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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3T15:29:57Z</updated>
	    <published>2009-09-23T15:29: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당선된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시의회가 난장판이 되었다. 각 언론들이&amp;nbsp;&quot;시의회의 성촉절의 날&quot;이니 뭐니 하며 1면 톱기사로 대서특필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거대 여당에 맞서 소수야당인 내가 반란을 일으켜&amp;nbsp;시장의 의장 불신임 안을 내고,&amp;nbsp;시장이 뛰쳐 나가고, 회의가 중단되고 &amp;nbsp;난리가 났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국인의 기상(?)을&amp;nbsp;보여주고 군 출신의 감투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사건이었다. 사실 우리 눈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호주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건국 이래 큰사건이었을 것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7.uf.daum.net/image/111DD9144AB9BF8F7F0A1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1999년도 당선 기사가 이렇게 났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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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3T15:10:12Z</updated>
	    <published>2009-09-23T15:10: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최초의 동양계 시의원 당선자였다. 1999년 9월 22일자 기사에서 나의 인터뷰가 이렇게 실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중선거구의 3번째 의석은 새로운 사람인 조슈아 남에게 돌아갔는데 그는 당선에 기뻐하면서 '다음 4년간 나의 주 관심사는 시가지 전경이다.&amp;nbsp;나는 캔터베리시가 시드니 내 어느 도시보다 더 보기좋은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좀 더 효율적인 도로 체계가 또한 필요하다고 보는데, 예를 들어&amp;nbsp;비미쉬스트리트에 불필요한 속도턱을 없애고 캠시의 울워스 근처에는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 등이다. 또한 경찰의 순찰이 더욱 강화되는 등 시내의 안전장치도 중요한 관심사이다&quot;고 남의원은 말했다.'&quot;&lt;/P&gt;
&lt;P&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14BB2114AB9B9C13D999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꿈같지도 않겠지만 아직도 꿈을 꾼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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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23T14:50:15Z</updated>
	    <published>2009-09-23T14:50: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아직도 꿈을 꾼다 한들 나이 60에 꾸어보았자 얼마나 대단한 꿈을 꾸겠는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소박한, 쪼끔 고약하게 표현하면 좀 유치하고 가소로운 꿈(?)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남이 혹은 젊은이들이 보아서 그렇다한들 본인에게는 나름대로 인내와 의지를 요하는 목표가 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남이 웃은들 대수겠는가. &lt;BR&gt;&lt;BR&gt;10년 전만 하더라도 베스트셀러 소설 하나는 남겨놓고 죽어야지 하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일에 쫓기다 보니 뜻대로 안되어서, 몇 년전까지는 적어도 신춘문예는 한번 당선해 보아야지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마저 거의 접었지만, 아직 인생 끝나지 않았는데 완전히 접었다고 말하기는 이른지도 모른다. &lt;BR&gt;&lt;BR&gt;그 외에도 여러가지 작고 소박한 꿈이 많은데 두가지만 얘기를 하자면… 말을 탄지 4년째 들어선다. 이제 45도 각도의 경사진 산야를 오르락 내리락 갤로핑(속도를 내서 달리는 것) 할 정도로 말타는데는 이력이 났다. 그런데 6개월전 티브이에서 기마병들의 훈련 모습을 우연히 보다가 하낫! 둘!에 펄쩍 뛰어 말 안장에 올라 타는 것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렇게 멋 있을 수가 없었다. &lt;BR&gt;&lt;BR&gt;아무리 말을 잘 타는 사람이라도 서부 영화의 총잡이처럼 펄쩍뛰어 올라타거나 몽고의 말잽이처럼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타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의자 높이의 물체 옆으로 말을 끌고 가서 그것을 딛고 올라가거나 아주 키가 큰 남자의 경우 땅에서 다리를 뻗어 격자를 딛고 힘겹게 올라 탄다. 말을 탈 때만큼은 누구도 폼이 나지 않는다. &lt;BR&gt;&lt;BR&gt;키가 크지않는 필자의 경우 처음에는 말에 올라 탈 때 애를 많이 먹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의자 높이의 물체 옆으로 말을 끌고 가지는 않는다. 필자만의 방법으로 이제는 아무데서나 비교적 쉽게 올라타는데 모두들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로 멋도 있다(^^). 그러나 훌쩍 올라타는 그 멋을 어떻게 당하겠는가. 필자는 언젠가 그렇게 훌쩍!! 할 꿈을 꾸고 있다. 웃거나 말거나.&lt;BR&gt;&lt;BR&gt;둘째는 좀 오래된 꿈이다. 호주일보에서 연극이나 합창단, 혹은 협주단을 만들어 각 지방정부 혹은 각 소수 민족들의 여러 행사에서 공연을 하거나, 교민들의 문화 생활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연극단을 모집하여 실제 연습을 하기도 하고, 8.15 광복절 기념 공연을 주최하기도 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끝장을 보지 못했다. &lt;BR&gt;&lt;BR&gt;그러던차 이번에 음악학원을 개원했다. 신문사가 들어있는 사무실의 공간이 좀 남아 있어서, 거기에 조그마한 교실들을 만들었다. 동시에 4명 정도가 독립 공간을 가질 수 있는&amp;nbsp;작고 아담한 학원이다. 그러나 학원이나 학교등 교육 시설이 어디 건물의 크기나 공간의 넓이로 판단되던가? 가르치는 사람들과 배우는 사람들의 자질과 수준으로 판단되는 곳이 아니던가? &lt;BR&gt;&lt;BR&gt;광고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원장을 비롯하여 강사진이 명실공히 시드니 최고의 수준임을 자부한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들도 최고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올줄로 믿는다. 그러나 나이나 경력, 혹은 전공이나 기타 조건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번쯤 도전이나 시도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lt;BR&gt;&lt;BR&gt;필자도 1년전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필자는 소문난 음치이다. 문자 그대로 음에 대한 감각이 매우 매우 대단히 그리고 극히 둔하다. 그러나 어지간한 찬송가 몇곡은 혼자 기분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중단했지만,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고, 또 이대로 영원히 중단한다 해도 일단 시도해 보았다는 것이 더 없이 행복하다. &lt;BR&gt;&lt;BR&gt;호일 음악학원의 호일은 호주일보의 준말이다.(모르는 분도 계실 걸?) 우리 호일음악학원이 모든 이들에게 한번 쯤 시도해 보는 계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고, 또 문외한들이 모여 무대를 꾸밀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욱 좋겠고, 또 호주일보가 인쇄비 걱정 안하는 계기가 되면 더 더욱 좋겠고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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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친한파라니 누가?(2003.8.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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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14T14:36:37Z</updated>
	    <published>2009-09-14T14:36: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요 근래 친한파라는 어정쩡한 단어가 몇몇 입에서 오르 내린다. 누가 친한파이며 그것을 누가 정한 것인지 그리고 어떵게 정한 것인지 참 아리송하다. 특히나 그 분야가 정치인의 경우에는 그 백그라운드가 석연치 않은 경우가 많다. &lt;BR&gt;&lt;BR&gt;미국의 경우 친한 인사라는 말을 듣는 인사가 학술분야와 종교분야 그리고 스포츠나 군사분야에서 몇 명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로비스트의 경우 한국계와 관계되는 로비스트들 몇명이 큰 사건에 연루되어 지면에 오르내린 바가 있다. &lt;BR&gt;&lt;BR&gt;호주의 경우 한국전쟁을 통하여 한국과 관계를 맺은 군 계통 몇몇 인사와 한국 선교를 통해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종교계 몇명, 그리고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에서 선거를 통해 한국인과 인연을 맺은 몇몇 정치인이 친한파라는 말을 듣고 있다. &lt;BR&gt;&lt;BR&gt;한국전에 참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고 그후 한국관계라면 한국인 못지 않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보는 참전 노병이 있는가 하면 한국 관계 책을 쓸 만큼 한국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가진 한국전 참전 용사의 미망인도 있다. &lt;BR&gt;&lt;BR&gt;한국에 가서 선교하면서 한국말을 우리 못지 않게 잘하고 그래서 우리 문화와 역사를 우리 못지 않게 잘 알고 한국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 못지 않는 호주인도 있다. 그러한 분들을 친한파라고 명명한다면 이의가 없다. 그 분들이 원하는지 모르지만‥‥&lt;BR&gt;&lt;BR&gt;그런데 한국인을 유권자로 만나 한국인의 지지표로 당선되었다고 믿는 정치인을, 혹은 한국인의 지 지표가 필요하다고 믿는 정치인을, 혹은 지지표를 의식하고 한국인을 좋아한다고 공언하는 정치인을 친한파로 명명한다는것은 좀 그렇다. &lt;BR&gt;&lt;BR&gt;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인 관계행사에 몇 번 참석혔다고 해서 혹은 한국인 관계 일에 몇 번 개입했다고 해서 친한파라고 분류한다면 무리이다. 우리는 친한파라는 명찰을 너무 남발하며 여기저기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lt;BR&gt;&lt;BR&gt;그러나 친한파라고 분류를 하든 명명을 하든 그것이 무슨 그리 큰 대수이겠는가. 문제는 몇몇 정치인들을 친한파라고 분류하고 무슨 일에나 청탁을 하려는 자세가 문제이다. 그러한 자세를 보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하고 느낄 때가 많다. &lt;BR&gt;&lt;BR&gt;여기서 청탁이라 함은 정식 민원과 구별된다. 민원이라 함은 해당 부처나 담당자 혹은 관계자에게 적정 절차에 따라 청원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사람이 연대서명을 하거나 따로 따로 항의 서한이나 항의 전화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lt;BR&gt;&lt;BR&gt;정치인에게 청탁하는 것도 부당성을 지적하거나 불이익을 항의하는 여러 경로의 하나로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한파(?)이니 힘을 크게 써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정치인이란 여러 갈래 역학 작용에 민감한 사람들이 아니던가.&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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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핸슨씨의 눈물을 보며…(2003.8.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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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호주노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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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4T14:30:16Z</updated>
	    <published>2009-09-14T14:30:1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요즘 폴린 핸슨씨의 법정투쟁이 한창이다. 약 30여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법정에 도착한 헨슨씨는 눈물을 훔치며 법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죄명은 당 등록시 멤버를 이중 삼중으로 등록한 것과 50만불 가까운 선거자금 부정 환급 사용이다. &lt;BR&gt;&lt;BR&gt;그렇게 해서 당선된 헨슨씨는 정치인들에게는 금기사항인 원주민과 소수민족의 이민에 대해 인종차별적 발언과 정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일개 피쉬앤 칩스 가게 주인이 상원이 되고 전국적인 대 스타가 된 데에는 이러한 부정직과 불의의 내막이 있다. &lt;BR&gt;&lt;BR&gt;이번에 울면서 법정에 서있는 폴린 헨슨씨를 보면서 지난 3월 NSW주 총선 후의 개표상황이 연상된다. 그 때 개표 기간 약 4주간 헨슨씨의 당선 가능성이 오락가락했었다. 그 때 만약 당선되었다면 이번 재.판에 영향을 미쳤을까?그 때 만약 당선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번 재판에서 유죄가 되면 의원직 을 박탈 당했을 것이다. &lt;BR&gt;&lt;BR&gt;그러나 당선되었다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정치란 항상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 것이니까. 지난 3월 선거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상원 20석이 확정되고 1석이 남는 상태에서 자유당 연립, 폴린 헨슨, 슈터스당 등 3자 대결로 압측되어 갔다. 세번째 주부터는 헨슨씨와 슈터스당의 2자 대결로 들어서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개표 상황을 확인했다.&lt;BR&gt;&lt;BR&gt;완네이션당이 폴린 헨슨과 한뿌리이므로 완네이션의 55000표중 10%의 프리퍼런스만 가도 헨슨씨가 당선 될 판이었다. 그 때부터 약 2주간 헨슨씨가 당선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는데 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초조하게 개표 결과를 지켜 보았던가. &lt;BR&gt;&lt;BR&gt;헨슨씨가 당선이 된다면 다시 한번 백호주의의 망령이 NSW를 강타할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반이민 혹은 반아시안적인 의안을 발의하거나 질의를 벌여 매스컴을 탈 것이다. 언론은 호재를 만난 듯 찬성이든 비난이든 떠들어댈 것이다. &lt;BR&gt;&lt;BR&gt;그렇다면 또 다시 센트럴 역 기차 철로 아래 육교에 아시안 고우 홈이라는 낙서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유럽 계 이민자들은 아시안을 만나면 은근히 폴린 헨슨을 비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아시안들 앞에서 으시댈 것이다. &lt;BR&gt;&lt;BR&gt;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헨슨씨의 득표율은 오락가락하기 만 했다. 헨슨씨 의 당선을 점치는 보도나 의견을 접할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4주 후 헨슨씨의 낙선이 확정되었을 때 그 안도감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아슬아슬했었다. &lt;BR&gt;&lt;BR&gt;그러던 헨슨씨의 정치 생명이 이제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정의롭지 믓한 권력의 말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가지 못한다. 부정직과 부정 선거자금 환급으로 인해 사기혐의로 재판 중인 헨슨씨를 보며 여러가지로 감회가 새롭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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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케이이 시장 때문에 고민이다 고민.(2003.7.2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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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호주노인</name>
	    </author>
	    <updated>2009-09-14T14:29:12Z</updated>
	    <published>2009-09-14T14:29: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케이이 그리핀 캔터베리 시장은 지난 선거에서 상원에 당선되었는데도 시장직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필자가 아는 바에는 시장이나 시의원 재직 중 지난 주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은 모두가 사임을 했다. 그런데 그리핀 시장은 사임하지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임할 생각이 전핑 없는 것 같다. &lt;BR&gt;&lt;BR&gt;그러나 그것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그리핀 시장과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다. 필자와는 회의에서 감정적인 대립을 하며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임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서는 더욱 아니다. 필자는 사임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lt;BR&gt;&lt;BR&gt;단지 이제 떠나기로 결정된 사람인데 거취 문제 가지고 왈가왈부 밀어내고 싶지가 않을 뿐이다. 아마도 한국적인 정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한국인의 정서 중 가장 인간다운 것 중 하나는 아무리 밉더라도 막상 헤어질 때는 막 대하지 못하는 것이 야닌가 싶다.&lt;BR&gt;&lt;BR&gt;특히 그런 점에서 남보다 훨씬 더 약한 면이 필자에게 있다는 것을 필자 자신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같은 팀의 시의원들이 문제를 삼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평소에 시장에게 곰살맞게 굴어서 아부하지 말라고 농담 반 진담 반 필자에게 핀잔을 듣곤 하던 시의원들 까지도 본떼를 보여 주자고 부추긴다. &lt;BR&gt;&lt;BR&gt;팀워크를 생각하자니 응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응하자니 필자의 성격에 뒷전에 쳐져있지 못하고 결국 앞장 서서 펄펄 뛸 것을 아는지라 이래 저래 여간 고민이 아니다. 이번에는 앞장 서지말고 따라만 가야지 궁리를 해보지만 그리 안 될게 뻔하다. &lt;BR&gt;&lt;BR&gt;사람 성격은 가지 가지다. 어떤 사람은 상황에 따라 현명하게 몸을 사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가 나도 꾹 참고 부드럽게 문제를 풀기도 한다. 눈치 보아서 말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남의 뒤에서 이해득실을 따져 현명하게 처신하는 사람도 있다. &lt;BR&gt;&lt;BR&gt;그런데 필자는 그렇게 현명하지를 못하다. 나서서 손해 볼 줄 알면서도 수 틀린 것 보면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럴 생각이 없다가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따지지 않고는 못 베긴다. 그렇게 해서 손해 본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lt;BR&gt;&lt;BR&gt;필자 자신 스스로를 알기 때문에 이번에도 개입하고 싶지가 않다. 개인 일 같았으면 못하겠다고 발을 뻗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패거리 노름이다. 누군가 한국정치는 패거리 정치라고 격하시키는데 한국 정치 뿐이 아니라 원래 정치란 그런 것이다. &lt;BR&gt;&lt;BR&gt;그래서 요즈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뾰쪽한 수가 없다. 금년이 다 가기 전에 케이이 시장과는 아주 미워하는 사이가 될 것 같다. 케이이시장이 지금이라도 사임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기미는 안 보이고 고민이 다 고민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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