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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복한 책읽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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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캘리그라프, 표지, 감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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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lt;IMG src=&quot;http://cfile293.uf.daum.net/image/1308BA024AF7D2F7086889&quot;&gt;


서울대학교 신경외과 교수님들의 에세이 모음집 표지이다.
캘리그라프도 잘나왔고, 디자인도 생각보다 아주 잘 나왔다.
며칠동안 고심하면서 수백번 저 캘리그라프를 쓴 Kay,
저 디자인을 빼내기까지 가장 많이 고민하고 애쓴 디자이너,
이어지는 격한 야근에도 내색하지 않고 
파김치가 되도록 열심히 일해준 우리 직원들...

모두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모습들에 감사한다. 
이렇게 성실하고 진지하고 예리한 감성과 
내공이 멋지고 좋은 책을 만들게 한다.
시판하는 책은 아니지만 
어떤 책이라도 편집자의 땀과 노고가 들어있으니 
우리에게는 소중한 책이다.

2009년 11월 9일...... 기록한다.&lt;/FONT&gt;&lt;/PRE&gt;
	    </content>
	    	</entry>
    	<entry>
	    <title>출판사 3만개 중 8.7%만 명맥유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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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クモモ숲</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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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10:39:20Z</updated>
	    <published>2009-11-08T10:39:2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lt;IMG src=&quot;http://cfile251.uf.daum.net/image/15785F0B4AF4B8F1550EAF&quot;&gt;


국내 출판사 수가 처음으로 3만개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중 지난해 책을 1종이라도 출간한 곳은 8.7%에 그쳤다.
1일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백석기)가 발간한 ’2009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출판사는 3만1천739개로, 2007년 2만9천977개보다 5.9% 늘어났다.
그러나 지난해 1종 이상 책을 내놓은 출판사는 2천777개(8.7%)였으며, 
무실적 출판사는 2만8천962개(91.3%)에 달했다.
1종이라도 책을 낸 출판사의 비율은 1999년 13.1%, 2000년 10.7%였으나
2002년 이후에는 10%대를 넘지 못해 왔다.
지난해 발행된 신간 종수는 4만3천99종으로 2007년보다 4.9%(2005종) 늘어났지만, 
발행된 부수는 1억651만5천675부로 1년 사이에 19.6%(2천598만7천444부)나 감소했다.

신간 1종당 평균 정가는 1만2천116원으로, 1만1천872원이었던 2007년보다 2% 높아졌다.
전체 도서 시장에서 인터넷 서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도서 시장 2조5천804억원 중 인터넷 서점 시장은 8천225억원(31.9%)을 차지했다. 
2007년의 29.2%보다 2.7%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중소 서점의 어려움은 커져 전국의 서점 수는 2003년 2천247곳, 
2004년 2천205곳, 2005년 2천103곳, 2006년 2천65곳에 이어 
2007년에는 2천42곳으로 해마다 줄었다. 
특히, 10평 미만의 작은 서점은 2003년 914곳에서 2004년 302곳,
2005년 316곳, 2006년 192곳, 2007년 138곳으로 급감했다. 
한편, 전자책과 전자사전, 모바일북, 오디오북 등 
전자출판 시장은 서서히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난해 시장 규모는 5천551억원으로, 2007년(3천393억원)보다 63.6%나 늘었다.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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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쇠락하는 가을 속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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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クモモ숲</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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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5T23:54:00Z</updated>
	    <published>2009-10-25T23:54: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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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IMG src=&quot;http://cfile253.uf.daum.net/image/1616D90D4AE41BC3684339&quot;&gt;


한없이 아름답다는 그 무엇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다정한 인사나 찬사도 
그저 그런 스침으로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가을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이 다가오면
알래스카와 북극에 미쳐살았던 
일본의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떠오릅니다.

 - 누구나 삶을 마감하는 절박한 순간이면
어느 한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난 그 때 북극의 오로라를 떠올릴 것 같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내 인생을 바꾼 오로라.
그리고 내 삶의 흔적들을 내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이런 글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소망같은 삶의 마지막 절박한 순간을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생을 마감해 버렸습니다.
러시아 캄차카반도 쿠릴호에서 불곰 촬영을 했는데
밤에 자다가 불곰의 공격을 받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찍고싶었던 사진을 다 찍지 못하고,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불곰에게 물려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원하던 일을 하다가 45세에 바람이 되어버린 사람......

어디를 좀 다녀왔습니다.
난 무엇이 하고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던 시간들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쇠락하는 가을 속에서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까닭은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아득함,
앞으로 어떻게 펼져질지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아직 준비하지 못한 인생의 겨울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마음을 압도했기 때문입니다.

많이 바쁩니다.
댓글은 닫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5/October/2009
by 쿠모모숲

위의 사진들은 용평 리조트입니다.

==========================================================================

사모 /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해야 할말이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 웃음이 잊혀지기 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있어 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 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잔은 떠나 버린 너를 위해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또 한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느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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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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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10-20T09:42:53Z</updated>
	    <published>2009-10-20T09:42: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5&gt;
屙屎送尿 着依喫飯
&lt;/FONT&gt;&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lt;IMG src=&quot;http://cfile272.uf.daum.net/image/1543B70C4ADCFE4E983905&quot;&gt;

조주祖主의 이 말은,
구하는 것은 가까이 있다는 평범한 말입니다.
오늘은 에디 히긴스의 공연이 있는 날인데,
오늘 공연은 취소되었답니다.;;ㅠㅠ
그가 지난 8월 31일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에디 히긴스와 인연이 없나봅니다.;;
에디 히긴스가 한국 공연을 처음 한다고 했을 때, 
공연예매를 했는데 
그 때는 그가 새끼손가락을 다쳤다고 해서
공연이 취소되었고,
그 다음번은 제가 일 때문에 바빠서 안갔고,
또 그 다음번에는 예매를 해두었는데
누가 갑자기 뮤지컬표를 주는 것이었어요.
두 개가 겹치길래 공짜표 쓰느라고 또 제가 취소를 했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기필코 보리라 작심했건만,
세상에나 영원히 못오게 되었군요.;;ㅠㅠ
그래서 에디 히긴스와는 인연이 없나부다 싶고,
인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진부하게 피천득의 인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 내 옆에 가까이 있는,
나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날이 매우 쌀쌀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일로 바쁜 나날이겠지만
건강하시고 모두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20/October/2009
by 쿠모모숲

===============================================================

서위徐渭는 재주가 뛰어났던 위대한 예술가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고난을 맛본 그는 초인적인 깨달음을 얻었고, 
오만하고 고독한 미치광이 역할을 하였으며, 때로 진짜 미치기도 했다. 
그는 가정적으로 매우 복잡한 일을 겪었고, 
왜구에 대한 항쟁에 참여하기도 했고, 
때로 정치적으로 연루되어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묘비명을 만들고, 
아홉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는 또한 아내를 실수로 죽이는 바람에 6년이나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혐오감에 인간 세상, 가정, 자신까지 내동댕이쳤다. 
그러나 자신의 문화적 무게를 잘 알고 있었던 그는 
특별히 잔혹하고 또한 특별히 요란한 방식으로 삶을 향해 돌격했다. 
그의 미치광이 같은 기질 뒤에는 비극적인 정신의 충격이 잠재되어 있다. 
중국 고대 화가 가운데 서위처럼 처연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설사 있다 해도 이를 강력한 색채와 선으로 전환시킬 능력은 없었다. 

- 위치우위의 글에서 편집 중에 옮겨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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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Historia De Un Amo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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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クモモ숲</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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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17T20:52:23Z</updated>
	    <published>2009-10-17T20:52:2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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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IMG src=&quot;http://cfile293.uf.daum.net/image/125924224AD9938D275793&quot;&gt;

S선생님께

선생님, 지난 주에 찍어서 제게 주신 가을입니다.
가을이 오는 저 풍경을 보면서
오늘 선생님의 바르고  뜨거운 삶을 생각했습니다.

계절이 가도 언제나 
변화무쌍한 산에 가볼 수 없는 저를 위해
변하는 시간을 사진으로 찍어다 주시고
일본에 가실 때마다 
제가 좋아할 책을 일부러 골라 사다주시는 따뜻함......
저는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어서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선생님께 너그럽게 사는 법을 배우고
선생님께 최선을 다해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바르고 성실하게 살도록
늘 이끌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선생님께
오늘은 특별한 감사와 존경을 올립니다.
더불어 선생님의 백두대간 완주도 기원합니다. 

선생님, 저는 오늘
선생님의 강인함을 생각하면서
&lt;벽암록&gt;의 글로
저의 삶을 위로했답니다.
오래 전에 제 마음과 
하늘과 했던 약속들도 생각했답니다.
아파하지 않고 열심히 살 것을 꼭 약속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삶에서 가장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17/October/2009
by 쿠모모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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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ntry>
	    <title>이상, 김환기 초상화로 본 조선 근대회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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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クモモ숲</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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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11T07:04:2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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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class=read_title&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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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SPAN class=read_subtitle&gt;일제강점기, 근대 지식인은 어떻게 화폭에 담겼을까&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gt;
&lt;DIV class=writer align=right&gt;글 이충렬&amp;nbsp;&lt;A class=writer onmousedown=&quot;MM_openBrWindow('./newnews/formmail.php?email=eWlndXJhQGhhbm1haWwubmV0&amp;name=이충렬','','status=yes,width=500,height=410')&quot; href=&quot;javascript:;&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 &lt;/FONT&gt;&lt;/U&gt;&lt;/DIV&gt;&lt;/A&gt;&lt;/TD&gt;&lt;/TR&gt;&lt;/TR&gt;
&lt;TR&gt;
&lt;TD height=9&gt;&lt;U&gt;&lt;FONT color=#800080&gt;&lt;/FONT&gt;&lt;/U&gt;&lt;/TD&gt;&lt;/TR&gt;
&lt;TR align=middle&gt;
&lt;TD&gt;&lt;U&gt;&lt;FONT color=#800080&gt;&lt;/FONT&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read_body&gt;우리나라 근대에 구본웅(1906 ~ 1953)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어릴 때 사고로 꼽추가 되었지만, 경신고보 시절부터&amp;nbsp;미술반&amp;nbsp;활동을&amp;nbsp;했다. 매주 토요일에는 YMCA에 있는 고려화회(高麗畵會)에 나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에게서 서양화를, 조각가 김복진에게서는 조각을 배웠다. &lt;BR&gt;&lt;BR&gt;구본웅은 1927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각〈얼굴습작〉으로 특선을 한 뒤, 1928년 일본으로 그림 유학을 떠났다.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 니혼대학(日本大學) 미술과에서 기초 수업을 마친 후,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 본과에 입학해 1934년에 졸업했다. 그 사이에 두 번의 개인전을 열고, 여러 단체전에 참가했다. &lt;BR&gt;&lt;BR&gt;시인 고은(高銀)은 ‘이상 평전’에서 “꼽추 구본웅은 그의 문학적 취향과 함께 파리 물랭루주의 난쟁이 화가를 방불케 하고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에 비유되기도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quot;라고 구본웅을 묘사했다. &lt;BR&gt;&lt;BR&gt;'이상 평전'에 구본웅이 등장하는 이유는 친구였기 때문이고, 구본웅이 그린 &lt;친구의 초상&gt;이 바로 이상의 초상화다.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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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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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ffff&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9/2009092427026983.jpg&quot; width=441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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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 구본웅 &lt;친구의 초상&gt; 캔버스에 유채 65 x 53cm 1935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이상(1910 ~ 1937)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시인이자 소설가로, 이 작품이 그려진 1935년은 그가 소설 &lt;날개&gt;를 발표하기 1년 전이다. &lt;BR&gt;&lt;BR&gt;그는 1933년 각혈증세를 보여 직장인 조선총독부 건축과를 그만둘 정도로 폐 기능이 좋지 않았고, 이 그림을 그릴 때는 결핵 3기로 접어들어 심하게 각혈을 할 때다. 그런데도 계속 담배를 피웠다. &lt;BR&gt;&lt;BR&gt;이 그림을 그린 1935년은 이상에게 결핵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해였다. 동거하던 기생 금홍은 그의 곁은 떠났고, 그녀를 곁에 두려고 차렸던 제비 다방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상태에 이르렀다. &lt;BR&gt;&lt;BR&gt;구본웅은 그런 이상을 보며, 그의 모습이 식민지 시대 청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이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상의 얼굴에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다.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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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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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ffff&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9/2009092427117173.jpg&quot; width=479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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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 행인(杏仁) 이승만 &lt;이상과 구본웅&gt; 종이에 펜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구본웅의 친척 후손인 중앙대학교 구광모 교수가 쓴 &lt;우인상(友人像)과 여인상(女人像) - 구본웅 이상 나혜석의 우정과 예술&gt;에 따르면, 이상과 구본웅은 어릴 때부터 경복궁 서쪽 동네에 이웃해 살았고 신명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구본웅은 이상보다 네 살 많았지만, 구본웅은 불구인데다 몸까지 약해 진급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상과 같은 반이 되었다. &lt;BR&gt;&lt;BR&gt;대부분의 학생들은 꼽추인 구본웅을 따돌렸지만, 이상(당시에는 김해경이라는 본명 사용)은 존댓말을 쓰며 그를 따랐다. 그리고 이런 우정은 구본웅이 일본 미술 유학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되었다. &lt;BR&gt;&lt;BR&gt;위의 그림은 구본웅과 친구인 행인 이승만이 그린 삽화로, 키가 큰 이상과 키가 작은 그가 함께 걸어갈 때면, 어린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놀렸고, 나이 든 사람들은&amp;nbsp;“곡마단패가 들어왔나 보네” “활동사진 변사 일행이야” 하고 수군거렸다는&amp;nbsp;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한다. 뒤의 건물은 세종로에 있던 동아일보 건물로 추정된다. &lt;BR&gt;&lt;BR&gt;이상은 구본웅이 초상화를 그려준 2년 후 일본의 병실에서 스물일곱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때 이상의 침대 옆에서는 그와 결혼한 지 4개월 된 아내 변동림(1916~2004) 이 임종을 지켰는데, 구본웅의 손아래 이모다. 따라서 이상은 4개월 동안 구본웅의 손아래 이모부였다. &lt;BR&gt;&lt;BR&gt;구본웅을 키운 건 친모(親母)가 산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후 새어머니(계모)로 들어온 변동숙이었다. 그런데 변동숙의 아버지가 훗날 26살 연하의 이복 여동생을 낳았고, 그가 바로 이상과 결혼한 변동림이었다. 변동림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중퇴한 '문학소녀'였다.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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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ffff&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9/2009092427193241.jpg&quot; width=534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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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 왼쪽이 이상, 오른쪽이 구본웅이다.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이상에게 요양하라며 일본행을 권유한 건 집안이 부유했던 구본웅이었다. 제비다방을 하면서 큰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을 탕진한 이상이 폐병이 심해진 몸으로 신당동 빈민촌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삶을 마감하게 할 수 없다며 일본으로 가서 요양하라며 돈을 건넸다. 그리고 일본에 가있는 이상과 편지를 주고받던 손아래 이모 변동림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상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새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일본으로 갈 비용을 건넸다. &lt;BR&gt;&lt;BR&gt;이런 우여곡절 끝에 당시 21세였던 구본웅의 이모 변동림은 이상의 임종을 지키며 &quot;멜론이 먹고 싶소.&quot;라는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있었고, 훗날 이상의 죽음에 대해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라고 회상했다. &lt;BR&gt;&amp;nbsp;&lt;BR&gt;그리고 7년 후, 변동림은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때 이복언니인 변동숙은, 본부인이 있고 자녀가 셋이나 있는 김환기의 첩살이를 하는 건 결국 본부인을 내쫓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라며 극력 반대했다. 그러자 변동림은 변 씨 가문과 인연을 끊겠다며 성과 이름을 김향안(金鄕岸) 으로 바꿨고, 얼마 후 김환기는 본부인과 이혼했다. &lt;BR&gt;&lt;BR&gt;근대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현대미술사에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수화 김환기는 이렇게 구본웅의 손아래 이모부가 되었다.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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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근원 김용준 &lt;수화 소노인 가부좌상&gt; 종이에 수묵담채 155.5 x 45cm 1947년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이 그림은 근원 김용준(1904 ~ 1967)이 수화 김환기(1913 ~ 1974)와 김향안의 살림집을 방문했다가, 김환기의 앉은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활달한 붓놀림의 먹선과 화폭 오른쪽의 글씨가 돋보인다. 가부좌를 튼 다리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키가 186cm인 수화 김환기의 신체 특징을 잘 표현했고, 등 뒤에 책 몇 권과 붓 몇 자루를 슬쩍 그려 넣은 간결미 또한 일품이다. &lt;BR&gt;&lt;BR&gt;당시 김환기의 나이가 34살이라서 화제에다 ‘수화 소노인’이라고 했다. 근대 문인화의 한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근원 김용준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다. &lt;BR&gt;&lt;BR&gt;김용준은 ‘노시산방(老枾山房: 오래된 감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자신의 성북동 집을 김환기에게 “화초들을 잘 가꾸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싼 값에 넘겨줬다. 그런데 훗날 김환기가 그 집의 시세를 알고 김용준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좋은 골동품도 갖다 주고 가끔 돈도 쓰라고 집어 주는 우정을 보였다. 이렇게 두 화가가 갖고 있던 우정과 낭만이 각별했기에, 김용준은 그림 왼쪽 아래에 ‘세수 사(洗手 寫)’라고 썼다. 손을 깨끗이 씻고 그렸다는 뜻이다.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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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 근원 김용준 &lt;자화상&gt;&amp;nbsp;종이에&amp;nbsp;먹 1948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근원 김용준은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수필가였다. 1920년대에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해 서양화를 공부했고, 귀국 후에는 창작활동뿐 아니라 평론과 미술사에 대한 글을 썼다. 문장이 유려하고 학식이 깊어 좋은 수필을 많이 썼고, &lt;근원수필&gt;이라는 수필집을 남겼다. &lt;BR&gt;&lt;BR&gt;그러나 그는 6.25 전쟁 때 인민군 치하에서 서울 미대 학장을 지냈고,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한으로 갔다.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인민군에 협조했으니 더 이상 남한에서 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amp;nbsp;김용준은 북한에서 평양미술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조선화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위의 김환기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먹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lt;BR&gt;&amp;nbsp;&lt;BR&gt;그러나 채색화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채택되면서 그는 설자리를 잃었고, 1967년 세상을 떠났다. 김정일의 전 처형 성혜랑이 &lt;등나무집&gt;에서 자살이라고 했지만, 직접 확인한 사실이 아니고 소문이라고 밝혔으니, 그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는 훗날 통일이 된 후에야 알 수 있을 뿐이다.&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출처:JPNews&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상상을 실현한 위대한 현대 건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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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damedia.18336958</id>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10-06T12:41:13Z</updated>
	    <published>2009-10-06T12:41: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657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90410&quot; width=519 LocalFile=&quot;yes&quot; on-load=&quot;ResizeImage(this)&quot;&gt;&lt;BR&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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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ssue/page_01_eng.html&quot; target=_blank&gt;&lt;/A&gt;&amp;nbsp;&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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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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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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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STRONG&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18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2.jpg&quot; width=250&gt;&lt;/FONT&gt;&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BR&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런던 중심부의 금융지역에 위치한 스위스 르 타워는 그 특이한 형태 덕분에 런던의 명소로 손꼽힌다.사실 런던 스카이라인의 특징적인 건물로 즉각 부상한 이유는 바로 독특한 구조 때문이었다. 일부에서는 이 타워가 도시 전경에 대담성을 더했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일부에선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떨어진 건물로 여기는 등 건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했다.&lt;BR&gt;이 건물은 40층으로 높이 약 180m, 총 면적 약 76만 2천 ㎡에 달하며 런던 최초의 환경친화적인 건물로 여겨지고 있다. 건물의 공기역학적인 형태로 인해 주변 공기가 원활하게 흐르기 때문에 풍하중을 최소화하는 한편, 표면을 유리로 처리하여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전통적인 공법으로 건설한 다른 타워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을 50% 정도 줄일 수 있었다. &lt;BR&gt;미래지향적 외향과 환경친화적 특성을 갖춤으로써 런던의 명소가 된 스위스 르 타워. 이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고 자원을 낭비하며 직사각형 용기처럼 보이는 기존 건물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고층건물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
&lt;TD vAlign=top&gt;
&lt;DIV align=righ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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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2004년 영국왕립건축협회로부터 스털링 상을 수상한 스위스 르 타워. 스털링 상은 영국 건축가가 유럽과 영국에 실행한 신축 프로젝트 가운데 최우수 작품에만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으로 학회는 최종 후보였던 다섯 작품 중에서 포스터가 제작한 이 건물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lt;BR&gt;&lt;BR&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270&gt;
&lt;DIV align=right&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436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3.jpg&quot; width=250&gt;&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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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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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gt;&lt;BR&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2-t.jpg&quot; width=519&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270&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161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4.jpg&quot; width=250&gt; &lt;/FONT&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한 도시와 국가의 위대함을 웅장하게 표현하는데 성공한 건축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파리 라데팡스의 그랑 다르슈일 것이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훌륭한 모델이 된 그랑 다르슈는 루브르와 샹젤리제로부터 개선문을 지나 라데팡스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전경을 완성하는 건물이자 핵심이다. &lt;BR&gt;건축가 요한 오토 폰 슈프레켈센이 설계한 이 건축물은 단순하고 삭막한 형태를 이용해서, 단정하고 매력적인 오묘한 선과 면을 표현하고수세기를 견뎌낼 조직력과 유동성이라는 메시 &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270&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50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5.jpg&quot; width=250&gt; &lt;/FONT&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지를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랑 다르슈는 높이 약 110m, 가로 약 112m, 세로 약 108m이지만 길이 차이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완벽에 가까운 입방체로 보인다. &lt;BR&gt;외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않고 순수하고 파격적인 형태를 보이는 그랑 다르슈의 외관은 약 2만 ㎡의 흰색 카라라 대리석과 약 2만 5천 ㎡의 유리로 덮여 있다. 33만 톤이 넘는 전체 구조물을 수압잭을 이용해 12개 기둥 위에 얹었으며, 총 35층 건물에 약 9만 2천 ㎡가 넘는 사무공간을 확보했다.&lt;BR&gt;루브르와 에투왈 광장을 연결하는 축을 중심으로 보면 건물은 6도 가량 회전해 있다. 이것은 고속도로와 철도를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lt;BR&gt;는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또한 이 건물과 &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face=verdana&gt;파리와의 역사적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루브르 궁전 역시 중심축과 6도 정도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lt;/FON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3-t.jpg&quot; width=519&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동서 대립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미래에 전념하는 도시의 상징으로 떠오른 베를린. DG 은행 본사는 베를린의 새로운 대사관 구역 중심지인 베렌 가의 한 다용도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에 있는 39가구의 아파트에서는 최근 리모델링한 광장과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직사각형 부지가 허용하는 최대 공간을 확보하고 주변 건물 속에 세로로 길게 들어선 이 건물은 파리저 플라츠(파리 궁전)와 비슷한 형태로 건설되어 독특하고 역동적인 파사드를 보여준다.&lt;BR&gt;큰 건물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서로 보완하는 세 부분, 즉 완전히 다른 특성을 보이는 2개의 거대한 석조 파사드와 중앙 아트리움을 연결한다. 이 아트리움은 가볍고 빛나는 재료를 역동적인 형태로 배열하여 프랑크 게리의 상징인 동물형상의 구성을 창출해냈다. &lt;BR&gt;파리저 플라츠를 통해 DG 은행으로 들어갈 수 있다. 노란색 비첸차(Vicenza) 돌로 만든 단순한 모양의 큰 사각 평석과 큰 창문으로 파사드를 꾸미고 주변 건물의 비례와 리듬에 맞춰 선형으로 배열했다. 이 건물은 오목한 창문의 형태 때문에 광장의 엄숙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 &lt;/FONT&gt;
&lt;TD vAlign=top width=270&gt;
&lt;DIV align=right&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369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6.jpg&quot; width=250&gt; &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260&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141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7.jpg&quot; width=250&gt; &lt;/FONT&gt;
&lt;TD vAlign=top width=270&gt;
&lt;DIV align=left&gt;&lt;FONT face=verdana&gt;며 깊은 베이로 외관을 연결하여 조각처럼 보인다. &lt;BR&gt;번쩍이는 강철 판금 형태의 거대한 조각적 요소, 일명 ‘말의 머리’가 아트리움의 웅장한 공간을 떠다닌다. ‘말의 머리’의 기부 아래에는 금속세공과 세련된 디지털 설계를 결합하여 건설한 100석 규모의 회의실이 있다. 1, 2층의 발코니는 바닥이 투명하기 때문에 아트리움의 인상적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반면, 위층에 있는 사무실, 회의&lt;BR&gt;&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face=verdana&gt;실, 식당에서는 천장이 높고 북쪽 벽이 경사져 있어서 브란덴부르크 문과 제국의사당의 멋진 광경을 즐길 수 있다.&lt;BR&gt;&lt;/FON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4-t.jpg&quot; width=519&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270&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182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8.jpg&quot; width=250&gt;&lt;/FONT&gt;&lt;/TD&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프랭크 게리 건축 회사가 처음에 ‘더 웨이브’라고 명명한 이 네덜란드 보험회사 빌딩은 초기의 인상과는 달리, 강을 따라 늘어선 19세기 건물들 옆에 섬세하고 우아한 자태로 서 있다.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후원하고 그 지역에 본사를 둔 블라디미르 밀루닉 스튜디오가 협력한 이 프로젝트는 상층부의 사무실과 비즈니스 기능을 혼합해 매우 복잡하다.&lt;BR&gt;건물은 완전히 다른 두 구조물로 구성된다. 강변의 파사드는 인근 건물의 파사드와 조화를 이루며 그들의 리듬을 따르는 한편, 물결치는 &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돌림띠 (Stringcourse)로 변화시켰다. 건물 높이는 주변과 동일하지만 다른 건물이 5층에 불과한데 반해 새로운 구조물은 현대적인 필요성에 따라 7층으로 건설되었다. 게리는 파사드의 창문을 엇갈리게 설계하여 이런 차이를 완화하고 건물 앞면을 오목하게 만들어 두 층이 추가된 게 잘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lt;BR&gt;탄탄한 석조 구조물을 따라 중간부분이 좁아진 투명 타워가 서 있는데, 역동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흔들리는 듯한 모양 때문에 ‘춤추는 집’ 혹은 ‘프레드와 진저’라는 별칭을 얻었다. 실제로 타워는 빙빙 돌고 있는 두 명의 댄서를 연상시키며 전체 건물이 똑같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lt;BR&gt;프라하 같은 곳에 이 같은 혁신적인 건물을 세운다는 결정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축물의 새로운 특징과 역사적인 주변 환경 사이에 조화를 이루기 위해 문화적인 의견들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춤추는 집’은 새로운 건축적 표현이 전통적인 배경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이다.&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270&gt;
&lt;DIV align=right&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366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9.jpg&quot; width=250&gt;&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5-t.jpg&quot; width=519&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세비야 지방을 내려다보는 카사 드 레티로 에스피리투알은 상징물로서 건축물이 지니는 무한한 유형적, 표현적 가능성을 탐구한 작은 추상 걸작물이다. 현대 건축은 기능 축소라는 개념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이 건물의 경우 극단적으로 기능을 축소하여 상징적인 면을 최대한 강조했다.&lt;BR&gt;&lt;/FON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face=verdana&gt;서로 직각으로 놓은 2개의 높고 흰 벽은 안마당(이 지역에서는 매우 흔한 특성이다)을 암시한다. 이 안마당의 모퉁이는 4차원을 향해 돌출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인 구역-안마당, 현관, 입구-에 동화하고 그와 비슷하게 변화하려는 이 같은 시도가 지닌 섬세한 우아함을 강조한다. 이 구조물의 절정은 전체 구성을 효과적으로 완성하는 복잡한 문양을 새긴 목조 발코니이다.&lt;BR&gt;&lt;/FONT&gt;&lt;/TD&gt;
&lt;TD width=270&gt;
&lt;DIV align=right&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138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10.jpg&quot; width=250&gt;&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lt;FONT face=verdana&gt;가파른 두 계단은 내부 구조와 균형을 맞춘다. 이처럼 의미론적인 축소 속에 역사와 의미가 서로 얽혀 있다. 이 구조물의 형식적인 요소는 구조물 맨 꼭대기에 있는 일련의 구멍들뿐이다. 그것은 구멍 난 골격처럼 생겼는데 올리브 숲을 배경으로 윤곽이 두드러져 두텁게 느껴지는 흰색 벽의 답답함을 덜어 준다.&lt;BR&gt;상징물로 자리 잡은 이 집은 두 벽의 눈부신 순백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벽이 마치 등대처럼 특정 공간을 둘러쌈으로써 그 장소와 존재를 표시한다. 설계자인 암바즈에게 주거 공간은 물이나 날씨 등의 모든 면에서 보호되어야 하는 피난처이다. 내부는 번쩍이는 바닥과 창문 틈새 등 사용된 재료에서 드러나듯이 구조물 주변의 자연환경과 공생적 관계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외부와 내부 공간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물은 복잡하게 조각한 인상적인 갤러리이다. &lt;BR&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face=verdana&gt;&amp;nbsp;&lt;/P&gt;
&lt;P&gt;&lt;BR&gt;&lt;/P&gt;&lt;/FON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6-t.jpg&quot; width=519&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270&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3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11.jpg&quot; width=250&gt;&lt;/FONT&gt;&lt;/TD&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발전하고 변화하는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안에 굳건한 존재감으로 자리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1995년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여 문을 연 이곳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현대미술관이다. M. 보타를 비롯한 여러 건축가들은 목표에 따라 자연 조명, 분명한 이미지, 획일적인 실내공간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이 건물을 설계했다. &lt;BR&gt;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콘크리트-강철 구조를 벽돌 클래딩과 함께 이용해 건물 표면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거대한 단일 볼륨들을 쌓아 올린 건물 중심부에는 원통형의 중앙 타워를 배치했다. 이 타워는 약 45도로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건물 내부 안으로 최대한 많&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은 양의 자연광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미술관 뒤편에 있는 타워에는 행정 사무실과 갤러리가 있고, 낮은 콜로네이드를 따라가면 거대한 중앙 아트리움이 등장한다. 이 내부 플라자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꼭대기까지 내부공간을 가로와 세로로 구분한다. 캔딜레버 방식의 플로어로 구성한 내부는 건물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며 천상의 빛으로 충만하다. 미술관의 각 부분을 연결하고 통로를 눈에 띄게 만들기위해 몇 가지 종류의&lt;BR&gt;&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200&gt;
&lt;DIV align=right&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14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12.jpg&quot; width=250&gt; &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lt;FONT face=verdana&gt;재료만 이용했는데, 그 결과 백악질의 하얀 벽과 번쩍이는 검은색 화강암 바닥이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미술관에는 박물관과 약 8만 5천 권의 장서를 소장한 도서관, 그리고 전시와 관련한 행사를 위한 멀티미디어 공간 이외에도 모임과 회의를 위한 공적 공간이 많다.&lt;BR&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face=verdana&gt;&amp;nbsp;&lt;/P&gt;
&lt;P&gt;&lt;BR&gt;&lt;/P&gt;&lt;/FON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4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7-t.jpg&quot; width=519&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lt;FONT face=verdana&gt;&lt;SPAN class=style1&gt;&lt;FONT color=#ffffff&gt;..&lt;/FONT&gt;&lt;/SPAN&gt;페르시아 만의 푸른 바다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거대한 돛을 형상화한 버즈 알 아랍. 인공 섬에 위치한 이곳은 주메이라 인터내셔널 체인이 소유한 호화호텔로 두바이의 상징물이 되었다. 톰 윌스 라이트가 1993년 설계하여 완공하기까지 5년이 걸렸고, 그 화려함 때문에 호텔 등급의 최고인 5성을 넘어 7성을 받았다. &lt;BR&gt;버즈 알 아랍은 길이 280m의 둑길이 해변에서 섬을 연결하는데, 밤에는 둑길에 불이 켜지면서 눈부신 만화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호텔 손님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 방문객에게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호텔 28층엔 캔틸레버(Cantilever) 형태로 설치한 헬리콥터 발착장이 있기 때문에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호텔에 출입할 수도 있다. &lt;BR&gt;입구를 지나면 곧바로 수족관 벽 사이에 로비가 있는데, 내부 공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 공간의 특징은 푸른색과 황금색의 거대한 뭄바이 기둥이다. 약 180m 높이의 아트리움은 자유&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270&gt;
&lt;DIV align=right&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306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13.jpg&quot; width=250&gt;&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19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270&gt;&lt;FONT face=verdana&gt;&lt;IMG height=205 src=&quot;http://www.keb.co.kr/IBS/lavie/200712/images/4-14.jpg&quot; width=250&gt;&lt;BR&gt;&lt;/FONT&gt;&lt;/TD&gt;
&lt;TD vAlign=top&gt;
&lt;DIV align=left&gt;&lt;FONT face=verdana&gt;의 여신상을 거뜬히 넣을 수 있을 정도이며 30분마다 분수가 높이 30m의 물줄기를 뿜어낸다.&lt;BR&gt;호텔 내부는 호화로움과 순수한 우아함을 결합하여 실로 놀라운 결과를 이루어 냈다. 값비싼 실크, 이탈리아와 브라질산 대리석, 22캐럿의 금으로 만든 비품 등이 아랍 전통, 아방가르드 디자인, 첨단 기술의 독특한 혼합물을 창조해냈다. 170~780㎡의 202개의 스위트룸에는 큼직한 창문이 있어서 놀라운 바다 전경을 즐길 수 있으며 실내는 우아하고 세련되게 장식되었다. 특히 27층의 바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페르시아 만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DIV class=textCR style=&quot;COLOR: #333333&quot; align=center&gt;&amp;nbsp;&lt;/DIV&gt;
&lt;DIV class=textCR style=&quot;COLOR: #333333&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post id=tdPostContent43320925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23px; PADDING-TOP: 25px&quot;&gt;
&lt;DIV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gColor=#f9f7f3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times&gt;&lt;IMG height=393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38&quot; width=620 LocalFile=&quot;yes&quot;&gt;&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lt;FONT face=times&gt;&lt;IMG height=50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39&quot; width=620 LocalFile=&quot;yes&quot;&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times&gt;&lt;IMG height=350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0&quot; width=620 LocalFile=&quot;yes&quot;&gt;&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 height=7&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62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cms_body bgColor=#f0efeb&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1 &lt;/STRONG&gt;터미널 중앙 광장 위의 거대한 날개 모양 지붕은 리옹을 다른 도시와 차별화하는 특별한 요소이자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TGV’라는 고급 교통수단에 대한 찬사다 .&lt;STRONG&gt; &lt;/STRONG&gt;&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2, 3&lt;/STRONG&gt; 칼라트라바의 독특한 작품은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언제나 움직임과 이동성이라는 개념을 전달한다. &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 height=7&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gt;&lt;FONT face=times&gt;1994년, 거대하고 하얀 새가 프랑스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에 내려앉았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이 새는 스페인 태생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리옹의 대표적 상징물인 테제베 역.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건축가가 되기 전 조각가로 활약한 칼라트라바의 풍부한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긴 건축물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화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V자 모양의 구조물.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비상하는 새를 상징하는 이 웅장하고 멋진 구조물과 그 아래서 움직이는 구(球)는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비행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독특한 아이콘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1&quot; LocalFile=&quot;yes&quot; PostId=&quot;43320925&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2&quot; LocalFile=&quot;yes&quot; PostId=&quot;43320925&quot;&gt;&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3&quot; LocalFile=&quot;yes&quot; PostId=&quot;43320925&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4&quot; LocalFile=&quot;yes&quot; PostId=&quot;43320925&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5&quot; LocalFile=&quot;yes&quot; PostId=&quot;43320925&quot;&gt;&lt;BR&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lt;SPAN class=cover&gt;Santiago Calatrava&lt;BR&gt;&lt;STRONG&gt;Lyon-Satolas TGV Station&lt;/STRONG&gt;&lt;/SPAN&gt;&lt;BR&gt;Lyon, France&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테제베는 2개의 건물을 직각으로 배치한 구조로 설계와 배치는 의외로 간단하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두 건물은 흰색 콘크리트로 이루어졌으며 폭 56m, 길이 457m에 달하는 아치형 지붕이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6개의 트랙과 대합실을 덮고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트랙과 플랫폼은 지하에 있는데, 중앙부는 폐쇄된 공간으로 테제베 기차가 멈추지 않고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시속 약 306km의 속도로 통과한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이 움직이는 기차는 중앙홀의 휴식 공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테제베 역의 구조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곳곳에서 건축가의 기발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lt;/FONT&gt; &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gColor=#f9f7f3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lt;IMG height=50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6&quot; width=620 LocalFile=&quot;yes&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400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7&quot; width=620 LocalFile=&quot;yes&quo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 height=7&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62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cms_body bgColor=#f0efeb&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1 &lt;/STRONG&gt;아랍 세계 연구소의 감광 유리 패널 3만 개가 만들어내는 빛의 효과는 그야말로 장관이다.&lt;/FONT&gt;&lt;FONT face=times&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2&lt;/STRONG&gt; 장 누벨의 건축물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19개 아랍 국가의 대표가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3, 4 &lt;/STRONG&gt;전체적으로 무어 양식을 따랐지만 계단과 엘리베이터에는 현대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전통 혁파와 기술 혁신을 대표하는 금속 구조물이 투명한 유리를 받치고 있다. &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 height=7&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gt;&lt;FONT face=times&gt;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아랍 세계 연구소는 파리 콰이 생베르나르의 한 모퉁이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파리 제7대학 캠퍼스 근처에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그랑 프로제&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문화적 도시 개발과 &lt;/FONT&gt;&lt;FONT face=times&gt;국가 기념비적 건축물 건립 프로젝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프랑스와 아랍 문명·문화 관계를 표현한다는 목적 아래 건립되었다. 마치 직사각형의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거대한 유리 블록처럼 &lt;/FONT&gt;&lt;FONT face=times&gt;보이는 아랍 세계 연구소는 아랍 전통의 무어 양식 요소와 닮은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무늬 구성으로 &lt;/FONT&gt;&lt;FONT face=times&gt;외관만 보아도 &lt;/FONT&gt;&lt;FONT face=times&gt;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건물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안뜰 역시 무어인의 전통 건축 양식에서 따온 것.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감광 유리 3만 개와 카메라 조리개와 비슷한 모양의 강철 구멍 조리개 2백40개가 끊임없는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빛의 반사 작용을 &lt;/FONT&gt;&lt;FONT face=times&gt;일으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파리의 전통적인 지역과 신개발 지역 경계선에 있는 이곳은 수천 권의 도서를 소장한 도서관,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8세기부터 현대까지의 아랍 전통 예술과 문명을 알려주는 박물관, 미디어 테크, 극장, 음악당,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서점 등 &lt;/FONT&gt;&lt;FONT face=times&gt;다양한 시설을 갖춘 다목적 공간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9층 발코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센 강과 파리의 역사 유물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시간적 여유가 있는 관람객에게는 아랍식 다과를 먹으며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멀티 문화 플레이스이기도 하다.&lt;/FONT&gt; &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gColor=#f9f7f3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lt;FONT face=times&gt;&lt;IMG height=50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8&quot; width=620 LocalFile=&quot;yes&quot;&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times&gt;&lt;IMG height=449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49&quot; width=620 LocalFile=&quot;yes&quot;&gt;&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 height=7&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62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cms_body bgColor=#f0efeb&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1&lt;/STRONG&gt; 내부의 파티션 때문에 각 층이 마치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애틀 공립도서관.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2, 4&lt;/STRONG&gt; 쿨하스는 건물의 구성 요소와 기능 요소를 한눈에 구별할 수 있도록 대조적인 색채를 사용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에스컬레이터는 노란색으로, 가구는 주로 빨간색을 이용하는 식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3&lt;/STRONG&gt; 소리를 흡수하는 특수 재료로 천장을 처리한 중앙 열람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 height=7&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ms_body&gt;
&lt;P&gt;&lt;FONT face=times&gt;도서관 하면 무채색 벽과 외관, 딱딱하기 그지없는 의자와 책상이 떠오르는가.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그렇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시애틀 사람이 아닐 것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2004년에 완공한 시애틀 공립도서관은 그러한 편견을 무색하게 만든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영화 속 요새처럼 보이는 유리벽 외관과 형형색색으로 포인트를 준 내부는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방문하는 이의 발걸음마저 가볍게 한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이 건물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는 도서관을 책 읽는 곳,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나아가 지식을 탐구하는 공간으로 지능적이지만 자유로운 개념에 따라 해석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도서관 개관 당시 이미 6천2백33개의 서가에 78만 권의 장서를 보유했지만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그 후로도 모듈을 추가하지 않고 서가를 확장해 1백45만 권까지 수용할 수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쿨하스는 완벽하고 대담한 색채 계획을 통해 실내로 들어갈수록 자연광이 줄어드는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현상을 상쇄했다. &lt;/FONT&gt;&lt;FONT face=times&gt;열람실의 벽은 자주색,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은 노란색, 공회 장소는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빨간색으로 채색한 것.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밤이 되면 유리 외벽을 통해 도서관의 매력적이고 독특한 실내를 살짝 엿볼 수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플랫폼이 마치 시애틀의 어둠 속에 떠 있는 듯 보인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총 1억1천만 달러가 들어간 38,300㎡의 이곳은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times&gt;쿨하스에게 미국건축가협회가 수여하는 명예상의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lt;/FONT&gt;&lt;/P&gt;&lt;/TD&gt;&lt;/T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43989864&quot; LocalFile=&quot;yes&quot; PostId=&quot;43320925&quot;&gt;&lt;BR&gt;&lt;BR&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times&gt;Time_ Masterpieces of Mordern Architecture 10&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times&gt;&lt;STRONG&gt;&lt;FONT size=3&gt;Masterpieces of Modern Architecture (Hardcover)&lt;BR&gt;&lt;/FONT&gt;&lt;/STRONG&gt;by &lt;/FONT&gt;&lt;A href=&quot;http://www.amazon.com/exec/obidos/search-handle-url/102-9179611-0884119?%5Fencoding=UTF8&amp;search-type=ss&amp;index=books&amp;field-author=M.%20Tagliatori&quot; target=_blank&gt;&lt;FONT face=times color=#003399&gt;M. Tagliatori&lt;/FONT&gt;&lt;/A&gt;&lt;FONT face=times&gt; (Author), &lt;/FONT&gt;&lt;A href=&quot;http://www.amazon.com/exec/obidos/search-handle-url/102-9179611-0884119?%5Fencoding=UTF8&amp;search-type=ss&amp;index=books&amp;field-author=G.%20Rosso&quot; target=_blank&gt;&lt;FONT face=times color=#003399&gt;G. Rosso&lt;/FONT&gt;&lt;/A&gt;&lt;FONT face=times&gt; (Author), &lt;/FONT&gt;&lt;A href=&quot;http://www.amazon.com/exec/obidos/search-handle-url/102-9179611-0884119?%5Fencoding=UTF8&amp;search-type=ss&amp;index=books&amp;field-author=A.%20Di%20Marco&quot; target=_blank&gt;&lt;FONT face=times color=#003399&gt;A. Di Marco&lt;/FONT&gt;&lt;/A&gt;&lt;FONT face=times&gt; (Author), &lt;/FONT&gt;&lt;A href=&quot;http://www.amazon.com/exec/obidos/search-handle-url/102-9179611-0884119?%5Fencoding=UTF8&amp;search-type=ss&amp;index=books&amp;field-author=S.%20Cassara&quot; target=_blank&gt;&lt;FONT face=times color=#003399&gt;S. Cassara&lt;/FONT&gt;&lt;/A&gt;&lt;FONT face=times&gt; (Author),&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times&gt;&amp;nbsp;&lt;/FONT&gt;&lt;A href=&quot;http://www.amazon.com/exec/obidos/search-handle-url/102-9179611-0884119?%5Fencoding=UTF8&amp;search-type=ss&amp;index=books&amp;field-author=F.%20Boccia&quot; target=_blank&gt;&lt;FONT face=times color=#003399&gt;F. Boccia&lt;/FONT&gt;&lt;/A&gt;&lt;FONT face=times&gt; (Author), &lt;/FONT&gt;&lt;A href=&quot;http://www.amazon.com/exec/obidos/search-handle-url/102-9179611-0884119?%5Fencoding=UTF8&amp;search-type=ss&amp;index=books&amp;field-author=M.%20Agnoletto&quot; target=_blank&gt;&lt;FONT face=times color=#003399&gt;M. Agnoletto&lt;/FONT&gt;&lt;/A&gt;&lt;FONT face=times&gt; (Author)&lt;/FONT&gt; &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Ich Liebe Dich</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idamedia/18336957"/>
		<id>tag:blog.daum.net,2009:idamedia.18336957</id>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10-01T22:08:10Z</updated>
	    <published>2009-10-01T22:08: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あなたにめぐり会えて、本当に良かった 
一人でもいい
心からそう言ってくれる人があれば

당신을 만나서 정말로 좋았습니다.
단 한 사람뿐이라도 좋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

추석이라고 별 다를 것은 없지만,
전화로, 메일로, 문자로, 그리고 여러 가지 선물로
못난 저에게 사랑을 전해준 벗들에게 
저도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by 쿠모모숲

&lt;EMBED src=http://www.youtube.com/v/L0gXrgYID2U&amp;hl=ko&amp;fs=1&amp;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mode=&quot;transparent&quot;&gt;&lt;/EMBED&gt;&lt;/FONT&gt;&lt;/PRE&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예술가의 맨얼굴 - 동아일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idamedia/18336956"/>
		<id>tag:blog.daum.net,2009:idamedia.18336956</id>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09-28T10:39:12Z</updated>
	    <published>2009-09-28T10:39: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예술, 정치를 만나다/박홍규 지음/이다미디어&lt;/SPAN&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6.uf.daum.net/image/196005254AC015E005B51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286&quot; height=&quot;416&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286px; HEIGHT: 416px&quot; actualwidth=&quot;431&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치와 예술의 과제는 각각 현실 변혁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세운다고 해도 그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 &lt;/P&gt;
&lt;P&gt;정치의 과제는 가능한 한 다수 민중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반면 예술의 과제는 가능한 한 민중이 각자의 독자적인 이의 제기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lt;/P&gt;
&lt;P&gt;&amp;nbsp;실현하는 것이다.”》&lt;BR&gt;&lt;BR&gt;&lt;B&gt;‘정치의 창’으로 본 예술가 8인&lt;/B&gt;&lt;BR&gt;&lt;BR&gt;예술과 정치. 오랜 인류 문화사 속에서 이 두 분야는 때로는 행복한 동반자로, &lt;/P&gt;
&lt;P&gt;때로는 불편한 만남으로 흥미로운 족적을 남겨 왔다. &lt;/P&gt;
&lt;P&gt;예술과 정치의 만남은 곧 예술가와 정치의 만남이나 다름없었다.&lt;BR&gt;&lt;BR&gt;이 책은 정치와 관련이 깊었던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lt;/P&gt;
&lt;P&gt;시대상황으로 불가피하게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 정치에 철저하게 대항한 예술가, &lt;/P&gt;
&lt;P&gt;정치를 예술로 조롱한 예술가 등. 예술가가 품고 있는 정치적 내면을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lt;/P&gt;
&lt;P&gt;부제는 ‘위대한 예술가 8인의 정치코드 읽기’.&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저자가 소개하는 예술가는 8명이다. 예술과 정치를 조화시킨 바로크의 거장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루벤스',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루벤스');&quot; onmouseout=mouseOut();&gt;루벤스&lt;/FONT&gt;,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신에게 도전한 르네상스 인간 괴테, 세계 제국을 꿈꾼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오페라',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오페라');&quot; onmouseout=mouseOut();&gt;오페라&lt;/FONT&gt;의 황제 바그너,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조국 통일을 노래한 민족주의자 베르디, 예술의 죽음에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맞선',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맞선');&quot; onmouseout=mouseOut();&gt;맞선&lt;/FONT&gt; 혁명가 피카소,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히틀러의 광기에 저항한 채플린, 권력과 권위를 거부한 사르트르, 자유를 노래한 평화주의자 레넌.&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17세기 플랑드르의 궁정화가였던 루벤스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서 행복한 예술가였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그는 왕궁이나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귀족',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귀족');&quot; onmouseout=mouseOut();&gt;귀족&lt;/FONT&gt;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의 와중에서도 어떤 권력이나 부에 복종하지 않고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창조',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창조');&quot; onmouseout=mouseOut();&gt;창조&lt;/FONT&gt;해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부와 권력의 유혹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을 찬미하는 그림에 몰두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예술로 정치를 극복한 것이다.&lt;/FONT&gt;&lt;BR&gt;&lt;BR&gt;정치와 예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가 19세기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다. &lt;/P&gt;
&lt;P&gt;게르만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음악으로 히틀러에게 영감을 주었던 바그너. &lt;/P&gt;
&lt;P&gt;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와 그의 예술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lt;/P&gt;
&lt;P&gt;하지만 수많은 어용 예술이 물거품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과 달리 &lt;/P&gt;
&lt;P&gt;바그너의 오페라는 살아남았다. &lt;/P&gt;
&lt;P&gt;물론 그의 작품이 가진 높은 예술성 때문이다.&lt;BR&gt;&lt;BR&gt;프랑스의 20세기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사르트르에 이르면 한층 더 &lt;/P&gt;
&lt;P&gt;적극적인 예술과 정치의 만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lt;/P&gt;
&lt;P&gt;저자는 “작가라면 그 방식이 가장 명예로운 방식이라고 해도 &lt;/P&gt;
&lt;P&gt;스스로 기관(&lt;SPAN class=hanja&gt;機&lt;/SPAN&gt;&lt;SPAN class=hanja&gt;關&lt;/SPAN&gt;)화되는 것을 거부해야 하며 &lt;/P&gt;
&lt;P&gt;인간과 문화는 기관의 간섭 없이 존재해야 한다는 게 사르트르의 신념이었다”고 평가한다. &lt;/P&gt;
&lt;P&gt;사르트르가 가장 철저하게 권력을 거부한 예술가라는 뜻이기도 하다.&lt;BR&gt;&lt;BR&gt;현실 속에서 보여주었던 사르트르의 자유주의와 반권력 예술주의는 &lt;/P&gt;
&lt;P&gt;달리 말하면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었다.&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사르트르는 희생이나 헌신의 이념에 의한 운동은 회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이념에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기초',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기초');&quot; onmouseout=mouseOut();&gt;기초&lt;/FONT&gt;하는 것은 언제나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특히 그 이념이 개인의 개체성을 희생하거나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헌신을 요구하는 논리를 내재하는 경우는 더 위험하다고 보았다.”&lt;/FONT&gt;&lt;BR&gt;&lt;BR&gt;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lt;/P&gt;
&lt;P&gt;“예술이 권력의 호위를 얻어 권력의 꽃으로 전락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예술가도 사회적 인간인 만큼 정치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모든 예술은 그 안에 정치적인 메시지와 정치적 정황을 담지 않을 수 없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하지만 그 정치적 메시지도 예술이 살아남을 때 비로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법.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어쩌면 이것이 예술과 정치의 진정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예술이 정치를 만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lt;/FONT&gt;&lt;/P&gt;
&lt;P&gt;&lt;FONT class=&quot;&quot;&gt;역시 예술은 언제나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영혼',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영혼');&quot; onmouseout=mouseOut();&gt;영혼&lt;/FONT&gt;의 자유로운 표출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아일보 / 이광표 기자&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사람이 그리운 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idamedia/18336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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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09-20T22:39:40Z</updated>
	    <published>2009-09-20T22:39: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lt;IMG src=&quot;http://cfile298.uf.daum.net/image/2059D4144A98879C8C2C8C&quot;&gt;

Hope, George Frederic Watts, 1885년.

동굴 밖을 나가 한 번이라도 빛을 본 사람은 
그 빛을 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동굴 속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우리는 직립보행을 시작해 손의 자유를 얻게된 후로 
누구도 사족보행으로 회귀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구나 양질을 알고 느끼는 순간 
질이 낮았거나 이미 퇴보된 것들을 망각하고 
처음부터 양질에서만 놀았던 것처럼 
양질만을 기억하고 고집하게되는 본능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이런 속성으로 나날이 발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배은망덕한 존재라서
세상 만물의 이치나 가치를 높이고나면
다시 낮추거나 회귀하기 힘든 법이다.

강하고 건강한 자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 
과거를 망각하기 시작한다고 니체는 말했다. 
그래서 강한 자는 잊는 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한 알랭 바디우는 
인간이 사멸적 존재인 동물로부터 불사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건에 대한 충실함과 배반하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진리가 되지않은 수많은 가치들은 
모두 이 세상에 도래하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다. 
그것은 동굴밖의 빛이요, 직립보행에 수반된 손의 자유와도 같다. 
얻기 전에는 몰랐지만 얻고나면 저절로 익숙해지는......

강하고 건강하여 쉽게 망각하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
동굴밖을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자들은
동굴밖으로 나간 자들이 왜 빛에 열광하며 
동굴 속을 그리워하지 않는지 잘 모르리라.
왜 그리 쉽게 망각하고도 행복할 수 있는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마음이 쌓이기도 한다.

&lt;IMG src=&quot;http://cfile255.uf.daum.net/image/19486F244AB568513A2237&quot;&gt;

Klimt, Beethoven Frieze, 1902년, 비엔나 벨베데르궁.

지금 만들고 있는 책은
박홍규 교수님이 쓰신 원고이다.
원고를 넘겨 받고 2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편집이 끝나간다.;;(교수님 죄송해요ㅠㅠ)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예술에 대해 법은 어떤 영향을 미쳤고,
세상사의 기준이 될 수도 있는 법이
예술에 관여하면 퇴보이자 수치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예술을
법이 재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예술가를 잡아 가두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또 우리가 즐겨읽는 그 유명한 세계명작들이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모두 금서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도 고등학생들한테는 금서라고 해서 놀랐다.
셰익스피어의 책 내용이 거의 다 
어린 학생들의 가치관을 망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학생들한테 신주단지처럼 읽히지 않는가?
나두 중학교 2학년 때 셰익스피어를 읽었는데,;;
사실 난 중학교 때 사람들이 어렵다는 책을 제법 많이 읽었다.
공부는 안하구... ㅋㅋ
공부 시간에 몰래 읽다가 뺏긴 책도 무지 많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왜 남의 책을 빼앗아가고 돌려주지 않는 것일까?
음,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흘렀다.^^

이 책에는 세상의 잣대에 굴복하기보다는 
새로운 미술을 향해 고립의 길을 선택해서 분리파를 만든
클림트가 나오는데 클림트가 엄청난 독서광이었으며
꼼꼼한 고증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나, 다시 놀랐다.
클림트의 대학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해설도 눈길을 끈다.
문학, 미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해서 참 재미있다.
박교수님의 글은 언제나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어있어서 반하고 만다.

이 책 말구도 두 권을 더 진행하고 있는데
어서 끝내야지.. 라는 마음 뿐이다.
사람이 그리운 날들이 늘어간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조금도 다르지 않게
가을도 가고 있다.

20/September/2009
by 소나무.
  
====================================================================================

잎 지는 초저녁, 
무덤들이 많은 산 속을 지나 왔습니다.
어느 사이 나는 고개 숙여 걷고 있습니다.
흘러 들어 온 하늘 일부는 맑아져 
사람이 없는 산 속으로 빨려 듭니다.

사람이 없는 산 속으로 물은 흐르고 흘러
고요의 바닥에서 나와 합류합니다.
몸이 훈훈해집니다.
아는 사람 하나 우연히 만나고 싶습니다.

무명씨,
내 땅의 말로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그대......

-- 신 대철의 사람이 그리운 날 중에서 --

&lt;IMG src=&quot;http://cfile298.uf.daum.net/image/1267501C4AB4B7AB84FD22&quot;&gt;

뉴질랜드에서 이 다리를 찍은 사람은,
이 사진을 제게 줄 때 극심한 우울증을 앓는 중이었죠.
그것을 극복하려고 뉴질랜드 여행을 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냅니다.
이 글 보고있지요?
늘 건강하고 많이 행복하길요.^^

&lt;EMBED style=&quot;FILTER: gray (); LEFT: 362px; WIDTH: 300px; TOP: 48px; HEIGHT: 45px&quot; src=http://wm.russiandvd.com/48458/48458-01.asf width=300 height=45 type=audio/mpeg autostart=&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enablecontextmenu=&quot;0&quot; showstatusbar=&quot;1&quot; LOOP=&quot;TRUE&quot; volume=&quot;0&quot; hidden=true&gt;  &lt;/FONT&gt;&lt;/PRE&gt;
	    </content>
	    	</entry>
    	<entry>
	    <title>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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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08-25T09:52:22Z</updated>
	    <published>2009-08-25T09:52: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lt;IMG src=&quot;http://cfile288.uf.daum.net/image/1222A5194A73C91502D660&quot;&gt;

The dream / 1897년 / Ferdinand Hodler

방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마종기/ 이름 부르기 中에서


&lt;EMBED src=http://www.youtube.com/v/pAcXO77lRx4&amp;hl=ko&amp;fs=1&amp; width=550 height=4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mode=&quot;transparent&quot;&gt;&lt;/EMBED&gt;

음악 / 바흐 &lt;샤콘느&gt;
감독 / 윌리엄 포사이드 
안무 / 파리 오페라 발레단 

블로그를 하지 않는 저의 벗들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글을 전체 공개로 올립니다만, 댓글은 당분간 닫겠습니다.
바쁜 일이 지나고나면 찾아뵙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건강하십시오.

25 /August / 2009
by 소나무&lt;/FONT&gt;&lt;/PRE&gt;
	    </content>
	    	</entry>
    	<entry>
	    <title>나의 연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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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08-16T12:49:32Z</updated>
	    <published>2009-08-16T12:49:3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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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lt;IMG src=&quot;http://cfile255.uf.daum.net/image/19369C154A80362E6075DA&quot;&gt;

Marvel Road / Mihaela Sorbu Photography 

사람이 죽는 순간 21그램의 몸무게가 줄어든단다. 
무거운 어른도, 마른 여자도 똑같이, 
동전 다섯 개의 무게가 죽는 그 순간에 줄어들고 
영화에서는 그것을 사랑의 무게라고 했다. 
살아있을 때는 사랑할 수 있지만 
죽으면 사랑은 딴 사람에게 가버린다. 
그러면 그 21그램은 생명의 무게도 될까? 
죽는 순간에 몸을 떠나는 생명, 몸을 떠나는 무게, 
옆에서 누가 중얼거렸다. 
그것은 영혼의 무게다. 
몸이 죽으면 살아있던 영혼이 죽은 몸을 떠난다.
(아니면 그냥 탈수 현상인가.) 

사랑이든 생명이든 영혼이든 
죽은 사람의 몸에서 풀려나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무게여, 
멀리 또는 가깝게 공중을 오가다 
숨소리로 만나면 뭉개어 구름도 되고 
겨울의 너에게는 눈발되어 날린다. 
그렇구나. 뼈저리게 그리운 무게여 
내리는 비를 보면 뺨부터 젖고 
눈밭을 지나야 네 몸에 이른다. 

사랑이든 생명이든 영혼이든 
한번쯤 혼자가 된 너를 만나고 싶다. 
혼자있는 시간도 만나고 싶다. 
눈썹 긴 야생의 노란 들꽃들, 
나이들어 마디마디 아픈 두 손을 가리고 
이제 알겠다. 왜 저 꽃이 흐느끼고 있는지 
바람같은 형상으로 스쳐가는 것 보며 
아쉬운 한기로 왜 고개 숙이는지. 

- 마종기 선생님의 글에서 옮겨 적다.

혼자가 되어
혼자있는 시간을 많이 만나다보면
정말 삶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다.
문득 사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어제 자유로를 달리면서 
나는 내가 그 길을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를 생각했다.
가을날 저녁에도, 겨울날 아침에도
나는 그 길을 달리면서 강물과 철새를 만나고
하늘을 보면서 떠나버린 사람들을 생각했다.
동트기 전의 여름날에도 황량하기 그지없는 그 길이 나는 좋다.
그 한적한 길은 나를 침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어지럽다.
책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현실을 모르는 환상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지금도 도전하듯이 일하면서도 불안에 떨어야 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도 느껴진다.
기획의 무거움, 
편집의 수고로움과 숨겨진 격렬함,
돈과 얽힌 마케팅과의 싸움,
진흙탕을 뒹구는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또한 이 상황들을 진흙탕이라고 느끼는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자괴감도 드는 게 사실이다.

가난 때문에 연못 속에서 하루 종일 팔기 위한 연꽃을 골라 따던 
&lt;쓰리 시즌&gt;의 베트남 소녀 키엔이 떠오른다.
키엔은 연못에 가득 핀 연꽃 중에서 
가장 좋은 연꽃을 골라 따내는 일을 하는 소녀였다.
하루 종일 지루하도록 연꽃을 따면서 키엔은 늘 노래를 부르는데
연꽃 만발한 연못 건너에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음울한 사원이 하나 있다.

고된 노동의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연꽃을 따며 노래를 하던 키엔은 
어느 날 어머니에게 들었던 노래를 불러 다오 선생에게 불려간다. 
키엔은 다오 선생의 시를 보게 되고 나병으로 손가락을 잃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는 선생의 손가락을 대신해서 시를 쓰겠다고 자청한다.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키엔에게 다오 선생은 희망이었고 
역시 젊은 날의 꿈을 나병으로 다 잃은 다오 선생에게도 키엔은 희망의 나무였다.
하지만 키엔의 손가락을 통해 시를 쓰던 늙은 시인은 독약을 마시게 되고 
죽음 직전에 찾아온 키엔에게 
다시 한 번 그가 젊었던 시절에 들었던 그 노래를 청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깊은 밤
달님이 떠올라 내 곁에 머물까?
내 마음 훔친 그대를 위하여
영원토록 기쁨의 노래 부르리.

시를 쓰며 희망과 꿈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오 선생은 나날이 흉칙하게 일그러져 가는 자신에게 절망하고 
세상과 더 이상 시로도 소통할 수 없게 되자 이승을 떠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아마 진흙이 현실이요 어둠이요 번뇌라면 
연꽃은 고통스러운 삶을 이기게 해주는 등불이요 희망일지도 모른다. 
연꽃은 진흙속에서 피어나도 언제나 향기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런 연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생물학적으로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있을
이 시간들이 너무도 짧게 느껴져서 
지금은 여자로서의 삶마저 안타깝다.^^ 

앞당겨진 일정을 맞추기위해 동분서주하는 날들이다.
심신이 너무도 피곤하고
많은 것들에 지쳐가고......
나의 여름은 바람처럼 가고있다.

16/August/2009
by 소나무

모든 님들께 알려 드립니다.
비밀 댓글은 개인적인 연락처나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이 아니라면 달지 말아주세요.
제 방에 비밀 댓글이 너무 많다고
저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연애질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도 계십니다. ㅠ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비밀댓글로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고 저를 오해하는 것은 싫습니다.
죽어도 나는 너와 비밀로만 말할테야 하는 분은
제게 이메일을 보내시거나 방명록을 이용해주십시오.
글구 저는 개인적인 메일은 거의 주고받지도 않습니다.
참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꼬랑지글)
지난 주에 크라잉 넛과 술 마시면서 전화했던 이선생님,
이 글 읽고 계시지요?
그날은 불가피했슴다. 죄송해요.
미리 전화를 주셔야 저두 새끼줄을 꼰다구요.-_-;;
좋아하시는 양주를 회사에 가져다 두었으니
담에는 전화만 주시면 들고 
버선발로 뛰쳐나갈게요.ㅋㅋ

&lt;IMG src=&quot;http://cfile277.uf.daum.net/image/177857264A8776920310DE&quot;&gt;

Poppies / Mihaela Sorbu Photography 
&lt;EMBED src=http://pds13.egloos.com/pds/200811/08/88/siciliano-bach.mp3 hidden=true type=audio/mpeg loop=&quot;true&quot; autostart=&quot;true&quot;&gt;&lt;/FONT&gt;&lt;/PR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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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휴버트 보스 / 서울 풍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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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クモモ숲</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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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8-16T11:01:19Z</updated>
	    <published>2009-08-16T11:01: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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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read_body&gt;&lt;FONT face=Arial size=3&gt;1898년 어느날, 카이킬라니(Kaikilani)라는 이름을 가진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공주'와, 유럽과 미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명 화가 휴버트 보스(Hubert Vos)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왔다. &lt;BR&gt;&lt;BR&gt;굴뚝이 두개나 있는 18,000톤급 증기선에서 내린 두사람은 몇 달전인 1897년 11월 초순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였고, 신혼여행차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들르던 도중에 우리나라에 온 것이다. &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마지막 공주'의 어머니는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여왕으로, 유명한 하와이 민요 '알로하 오에(Aloha'Oe)'를 만들었다. &lt;BR&gt;&lt;BR&gt;하와이 왕조는 1893년, 'Dole 파인애플'로 유명한 Dole 가문이 주축이 된 쿠데타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미국과의 합병을 원하는 '하와이 공화국'이 들어섰다. &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그 과정에 깊숙히 개입했던 미국으로서는 하와이 왕조에 '빚'이 있었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미국이 '하와이 왕국 전복'에 개입했던 사실을 인정하고 원주민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사과 결의문'에 서명했다.) &lt;BR&gt;&lt;BR&gt;미국공사관에서는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는 W. F. 샌즈를 시켜 신혼부부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샌즈는 두 사람을 공사관 안에 있는 자신의 한옥에 머물게 했고, 신혼부부는 그의 안내로 우리나라의 산천을 유람했다. 그리고 화가는 &quot;언덕과 골짜기, 고요한 강가나 꿈같은 호숫가에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quot;라는 기록을 남겼다. &lt;BR&gt;&lt;BR&gt;하와이 '마지막 공주' 의 남편인 화가가 우리나라에 장기 체류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자, 1등 서기관 샌즈은 미국 영사관 안의 방 하나를 화실로 꾸며주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사실이고, 관계 자료들은 글의 맨 마지막에 첨부했음을 밝힌다.) &lt;BR&gt;&lt;BR&gt;화가는 아침마다 공사관 안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 이젤에다 캔버스를 올려놓고 시내 풍경을 스케치 하기 시작했다. &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화가는 팔레트에 물감을 개면서 캔버스에 붓질을 했는데, &amp;nbsp;그림을 볼 줄 모르는 샌즈가 봐도 훌륭했다. 며칠동안 붓질을 하던 화가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캔버스 오른쪽 귀퉁이에 서명을 했고, 1898년이라는 연도도 써넣었다.&amp;nbsp;&lt;BR&gt;&lt;/FONT&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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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amp;nbsp;&lt;FONT face=Arial&gt;휴버트 보스 &lt;서울풍경&gt; 캔버스에 유채 31 x 69cm 1898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amp;nbsp; c 휴버트 보스&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지금으로 부터 111년 전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lt;미국공사관에서 바라본 서울풍경&gt;이다. &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당시 미국공관은 정동,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의 덕수궁 뒷길에서 이전하기 전의 경기 여중고등학교 옆 언덕에 있었다. 지금 대사 관저로 사용하는 곳이다. &lt;BR&gt;&lt;BR&gt;보스는 미국공사관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그렸기에, 당시 서울의 중심지였던 경복궁과 당주동, 신문로, 태평로 일대를 모두 담을 수 있었다. 그가 세로 31cm 가로 69cm의 작은 화폭에다 이렇게 넓은 풍경을 세밀하게 담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림 실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단한 화폭 구성 능력을 갖고 있고, 세필(細筆)에 능숙한 화가였기에 이렇게 그릴 수 있었다.&amp;nbsp; &lt;BR&gt;&lt;BR&gt;그는 어린시절 벨기에의 '브뤼셀 왕실 학원'에 들어가 정통 회화를 공부했고, 그 후에는 파리와 로마에서 회화 수업을 받았다. 1886년 '파리 살롱전'에서 실내 풍경화로 금상을 받았고, 1887년에 암스텔담의 '세도시 연레전'에서도 금상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해부학과 조각도 공부한 덕분에 초상화에도 탁월한 능력을 나타냈다. ('1911년에 쓴 보스의 자전적 편지' 참조) &lt;BR&gt;&lt;BR&gt;보스는 이런 성공을 배경으로 영국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영국 왕립 초상화가 협회(The Royal Society of Portrait Painters 1891년 창립)의 창립회원이자 정회원이 되었다. (당시 영국 평론가 Walter Sickert의 책 &lt;The Complelete Writing on Art&gt;&amp;nbsp; 9쪽 참조.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2002년 재출판) &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그리고 그의 명성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까지 알려졌다.&amp;nbsp;&lt;/FONT&gt;&lt;BR&gt;&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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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 &lt;FONT face=Arial&gt;1895년 10월 1일자 &lt;뉴욕타임스&gt;에 실린 보스 관련 기사 부분&amp;nbsp; c&amp;nbsp; &lt;뉴욕타임즈&gt;&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이 기사는 당시 보스의 화가적 위치를 잘 보여준다. 기사와 인용에서 생략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lt;BR&gt;&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gt;&lt;FONT size=3&gt;&lt;FONT color=#0000ff&gt;&quot;시카고 만국박람회 네덜란드관의 왕실 커미셔너이자 화가인 휴버트 보스씨가 어제 유럽에서 증기선을 타고 도착했는데, 영부인 클리블랜드 여사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계약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lt;BR&gt;&lt;BR&gt;보스씨는 자신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영부인이 자신이 그린 법무부 장관의 초상화를 보고 경의를 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lt;BR&gt;&lt;BR&gt;그는 이미 서너 명의 미국 부인들 초상화를 그리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8개월 동안은 다른 초상화를 그릴 시간이 없고, 그 작업이 끝나면 다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quot; &lt;BR&gt;&lt;/FONT&gt;&lt;BR&gt;당시 그로버 클리블랜드 영부인은 31세로, 2번째로 백악관에서 생활할 때였다. 보스는 그런 영부인에게 정식으로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상화를 그릴 수 없다는 기자회견을 했으니, 그림 실력도 대단했지만 화가로서의 자존심 또한 매우 강했다고 할 수 있다.&amp;nbsp;&lt;/FONT&gt;&lt;/FONT&gt;&lt;BR&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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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 &lt;FONT face=Arial&gt;왼쪽 : 부분도.&amp;nbsp; 오른쪽 : 사직동에서 바라본 경복궁(이사벨라 비숍 &lt;조선과 그 이웃나라들&gt; 수록 사진) &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size=3&gt;&lt;FONT face=Arial&gt;이 그림의 가운데에 보이는 3채의 건물은 맨 앞이 광화문이고, 그 뒤가 근정전, 맨 뒤가 경회루이다. 광화문을 정문으로 사용하는 경복궁은 조선시대 정궁(&lt;SPAN&gt;正宮)으로 태조 4년인 1395년에 창건되었다. &lt;SPAN&gt;임진왜란(1592년) 때 불탄 후 300여년 만인 고종 2년(1865년)에 중건되었지만,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경복궁은 비어 있었다. &lt;BR&gt;&lt;/FONT&gt;&lt;BR&gt;&lt;/FONT&gt;&lt;FONT size=3&gt;&lt;FONT face=Arial&gt;고종은 1895년에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후 경복궁에서 연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위협에 시달렸다. 그래서 다음해인 1896년 2월 11일 경복궁에서 탈출하여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관에 몸을 의탁했다. 이른바 ‘아관파천’이다. &amp;nbsp; &lt;BR&gt;&lt;/FONT&gt;&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그렇게 경복궁을 떠나 1년동안 러시아 공관에 피신해있던 고종은, 1897년 2월 환궁할 때 경복궁으로 가지 않고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갔다. 경운궁 주변에는 외국공관들이 모여 있어, 일본이 함부로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리던 1898년에는 경복궁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lt;BR&gt;&lt;BR&gt;이 그림에서 보이는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청사를 완공된 다음 해인 1927년, 삼청동 입구인 건춘문 북편(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으로 옮겨졌고, 한국전쟁 때 많이 파손되었다. 그래서 1968년에 다시 지었는데,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원래의 자리에서 북쪽으로 11.2ｍ, 동쪽으로 13.5ｍ 옮겨졌을뿐 아니라 중심축도 틀어졌고, 시멘트를 너무 많이 사용해 웅장한 옛 멋을 찾아볼 수 없었다. &lt;BR&gt;&lt;BR&gt;그래서 현재 광화문을 원래의 자리로 되옮기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 2010년 복원공사가 끝나면 이 그림에서 보이는 위치로 되돌아 온다.&lt;/FONT&gt;&lt;BR&gt;&lt;FONT face=Arial&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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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3&gt;▲&amp;nbsp;&amp;nbsp;&lt;FONT face=Arial&gt;&lt;서울풍경&gt; 왼쪽 부분도 &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근대미술사학자들이 &lt;서울풍경&gt;에 대해 쓴 글은 3편 정도 밖에 없다. 우리나라 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많지 않고, 보스에 대한 자료접근이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lt;BR&gt;&lt;BR&gt;연구 결과가 많지 않다 보니, 그림에서 보이는 공터가 실제 존재하던 실경인지 아니면 보스가 화면 구성을 하면서 일부러 공터로 만들었는지, 오른쪽 아래 군인은 누구이고, 군인이 지키고 있는 한옥은 누구의 집인지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당시 제작된 지도를 보면 왼쪽의 공터는 실제 존재했고, 오른쪽 아래에 군인이 보초를 서는 한옥은 영국공사관임을 알 수 있다. &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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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ffff&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7/2009072935477296.jpg&quot; width=573 border=0&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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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3&gt;▲ &lt;FONT face=Arial&gt;1901년 9월에 제직된 '서중 중심 지도' 중, 정동 부분&amp;nbsp; (일본 도쿄 '동양문고' 소장)&amp;nbsp; 당시 주 베이징 영국공사관의 육군 무관 콜로넬 브라운스 제작&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정동 부근의 지도는 꽤 많이 전해진다. 당시 정동이 외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스의 &lt;서울풍경&gt;과 비교하기 위한 1898년의 정동 부근 지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고, 위에 소개한 1901년에 제작된 지도가 1898년과 기장 가까운 연대의 지도다.&amp;nbsp; &lt;BR&gt;&lt;BR&gt;이 지도는 우리나라 근대건축사를 전공하고 보존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정동 교수가 지은 &lt;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gt;에 소개되었는데, 필자의 허락을 받아 재인용한다. &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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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3&gt;▲&amp;nbsp;&amp;nbsp;&lt;FONT face=Arial&gt;휴버트 보스 &lt;서울 풍경&gt; 캔버스에 유채 31 x 69cm 1898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amp;nbsp;&amp;nbsp; &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이 지도와 &lt;서울풍경&gt;을 비교해 보면, 왼쪽 공터는 덕수궁의 후원이던 영성문 대궐 구역의 건너편 공터(훗날 덕수초등학교 자리)이다. 공터에 보이는 담장은 '영성문 대궐'과의 경계로 추정된다. 지도와 당시 기록을 보면 '영성문 대궐'터에는 야트막한 담이 둘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그림 오른쪽에 보이는 초가집과 공터는 현 서울시의회당(일제강점기의 부민관, 광복 후 국회 별관) 자리이고, 그 오른쪽이 광화문에서 직선으로 뚫려있는 태평로다. &lt;BR&gt;&lt;BR&gt;그림 가운데 군인이 있는 한옥은 영국공사관이다. 지도의 위치로 볼 때도 그렇고, 당시 영국공사관을 그린 삽화와 비교해도 거의 일치한다.&amp;nbsp;&amp;nbsp;&lt;/FONT&gt;&lt;BR&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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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 &lt;FONT face=Arial&gt;왼쪽 : &lt;서울풍경&gt; 부분도. &amp;nbsp;오른쪽 : 당시 영국공사관에서 보초 서는 군인 삽화 &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그림과 삽화를 그린 위치가 달라 한옥의 모습이 일치하지는 않지만,&amp;nbsp; 한옥과 군인의 모자, 총이 거의 같은 형태다. 그리고 한옥 건물이 외국 공관이 아니면 군인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설 이유가 없다. 당시기록에 우리나라 고관대작 집 앞에 대한제국 군인이 보초를 섰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lt;BR&gt;&lt;BR&gt;J.E 호어가 지은 &lt;영국대사관 소사&gt;에 의하면, 영국 정부는 1883년 신석휘 혹은 신협희라는 사람으로부터 안채･사랑채･별채가 있는 한옥을 구입해서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lt;/FONT&gt;&lt;BR&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gt;그러나 영국 정부는 훗날 이 한옥을 사용하기가 너무 불편하다는 이유로 허물고 영국식 건물을 지었다. 훗날 영국 성공회 성당이 정동에 들어온 이유는, 자국의 공사관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위해서였다. &lt;/FONT&gt;&lt;/FONT&gt;&lt;FONT face=Arial&gt;&lt;BR&gt;&lt;BR&gt;
&lt;TABLE cellSpacing=3 width=5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7/200907293610197.jpg&quot; width=572 border=0&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3&gt;▲&amp;nbsp;&lt;FONT face=Arial&gt;&lt;&lt;/FONT&gt;&lt;FONT face=Arial&gt;서울풍경&gt; 오른쪽 부분&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lt;서울풍경&gt;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흰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만약 보스가 웅장한 경복궁만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평범한 풍경화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lt;BR&gt;&lt;BR&gt;그러나 그는 흰색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행인을 몇 그려 넣어,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특징'을 화폭에 포함시키면서 그림에 생동감이 흐르게 했다. 이것이 화가의 화폭 구성 능력이고, 그림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lt;BR&gt;&lt;BR&gt;보스가 이 부분에 흰옷 입은 사람들을 그린 건 우연히 그들이&amp;nbsp;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1911년에 쓴 자전적 편지'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흰옷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음을 밝혔다. &lt;BR&gt;&lt;BR&gt;&lt;FONT color=#0000ff&gt;“...그곳(조선)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의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항시 '유령처럼' 흰옷을 입고 마치 꿈속에서처럼 아무 말 없이 걸어 다녔다...”&lt;/FONT&gt;&amp;nbsp; &lt;BR&gt;&lt;BR&gt;당시 보스가 우리나라에 와서 남긴 작품은 &lt;서울풍경&gt;외에도 두 점이 더 있고, 이 그림들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건 1979년 겨울이다. 크리스틴 팜이라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진작가에 의해서 였다. 그녀는 1979년. 자신이 살고있는 코네티컷 주 스탬포드 박물관에서 열린 보스의 ‘유작전’을 둘러보다가 우리나라 소재 작품 3점을 발견했다. &lt;BR&gt;&lt;BR&gt;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크리스틴 팜은 보스의 '유작전'을 취재해, 같은 해 겨울 서울에서 창간된 영문잡지 &lt;코리아 쿼터리&gt;에 '휴버트 보스는 누구인가... 1898년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라는 글을 발표했다. 아울러 &lt;서울풍경&gt;, &lt;고종황제 초상화&gt;, &lt;민상호 초상화&gt; 세 점의 그림 도판도 소개했다. &lt;BR&gt;&lt;BR&gt;그녀의 글과 작품 사진을 본 국내 미술사학계는 깜짝 놀랐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보스의 한국 소재 작품 전시회를 추진해 3년 후인 1982년에 성사되었다. 보스의 세 작품은 이후에도 몇 번 더 전시되었고, 그 중 &lt;서울풍경&gt;은 유족과의 오랜 교섭 끝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lt;BR&gt;&lt;BR&gt;보스가 백여 년 전에 증기선을 타고 우리나라에 와서 그린 그림들의 회화적, 사료적 가치는 높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lt;서울 풍경&gt;을 소장하고 있던 보스의 손자를 설득해 소장품 목록에 오르게 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lt;BR&gt;&lt;BR&gt;(아래는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던, 휴버츠 보스와 하와이 왕조 '마지막 공주'의 결혼과 신혼여행 그리고 미국공사관에서의 생활에 대한 자료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읽지 않아도, 그림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amp;nbsp;&amp;nbsp;&amp;nbsp;&lt;/FONT&gt;&lt;BR&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lt;BR&gt;
&lt;TABLE cellSpacing=3 width=571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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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bgColor=#ffffff&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7/2009072936188895.jpg&quot; width=571 border=0&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amp;nbsp;&amp;nbsp;&lt;FONT face=Arial&gt;보스의 결혼식을 소개한 1897년 11월 17일 자 &lt;뉴욕타임즈&gt;&amp;nbsp; c &lt;뉴욕타임즈&gt;&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위의 기사를 요약하고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lt;/FONT&gt;&lt;BR&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 color=brown&gt;&lt;FONT face=Arial&gt;'초상화가 보스가,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유일한 여왕이었던 릴리오우칼라니가 (하와이와 미국과의 합병을 반대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할 때, 수행원으로 따라왔던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공주'를 보고 반해서 3일 만에 청혼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금요일 결혼식을 올렸다. &lt;/FONT&gt;&lt;FONT face=Arial&gt;보스는 부인과 함께 하와이로 갔다가 세계 여러 나라로 (신혼)여행을 한 후,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엑스포)에 참석한다는 계획을 밝혔다.&quot;&lt;/FONT&gt;&amp;nbsp;&lt;/FONT&gt;&lt;BR&gt;&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
&lt;TABLE cellSpacing=3 width=5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7/2009072936237680.jpg&quot; width=572 border=0&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 &lt;FONT face=Arial&gt;미국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나라들을 운행하던 미국 증기선 1868년 사진&amp;nbsp;&amp;nbsp;&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gt;
&lt;TABLE cellSpacing=3 width=571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FONT size=2&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7/2009072936287655.jpg&quot; width=571 border=0&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amp;nbsp;&amp;nbsp;&lt;FONT face=Arial&gt;배 곳곳에 'KOREA' 표시가 선명하다&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당시 미국에서 우리나라를 오는 증기선은 신혼여행 부부가 타도 좋을 '호화 유람선'이었다. &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나는 당시 미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는 배의 규모가 궁금해 오랫동안 사진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 화물선에 사람이 묻어가는 정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진을 구한 다음에는, 당시 미국의 조선기술과 여행업이 생각보다 훨씬 발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lt;BR&gt;&lt;BR&gt;이 배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하와이, 일본의 요코하마, 고베, 나고야를 거쳐 우리나라에 온 다음,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 그리고 마닐라로 가는 정기항로를 갖고 있었다.&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그러나 좋은 증기선이 우리나라로 오는 정기항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가 하와이 '마지막 공주'와 함께 우리나라에 왔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그래서 다시 이런저런 근대의 자료를 찾았더니, 보스가 부인과 함께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 책이 있었다. &lt;BR&gt;&lt;BR&gt;1898년에 서울주재 미국공사관의 1등 서기관으로 부임한 W. F. 샌즈가 훗날 저술한 &lt;조선비망록&gt;(신복룡 번역, 집문당) 115쪽에 보면 &quot;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머물고 있는 네덜란드 예술가와 그의 아내&quot;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 화가가 휴버트 보스라고 134쪽에서 밝혔다. &lt;BR&gt;&lt;BR&gt;따라서 보스는 위의 배를 타고 '하와이 마지막 공주'인 부인과 함께 우리나라에 왔고, &lt;조선비망록&gt;에는 그의 '임시 스튜디오'가 있었다는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lt;BR&gt;&lt;BR&gt;그렇다면 보스는 단순히 신혼여행을 즐기기 위해 우리나라와 아시아 여러나라를 방문했던 것일까? 그리고 1900년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엑스포)에 참가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amp;nbsp;&lt;/FONT&gt;&lt;BR&gt;&amp;nbsp;&lt;BR&gt;&lt;FONT face=Arial size=3&gt;
&lt;TABLE cellSpacing=3 width=32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bgColor=#666666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IMG src=&quot;http://www.jpnews.kr/imgdata/jpnews_co_kr/200907/2009072936344832.jpg&quot; width=322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FONT size=2&gt;▲ &lt;FONT face=Arial&gt;휴버트 보스 &lt;자화상&gt; 캔버스에 유채 1901년 &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face=Arial size=3&gt;보스는 위에서 언급했던 ‘자전적 편지’에서,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그림 중 세계 여러 민족을 볼 수 있는 초상화가 너무 없음을 느끼고, 자신이 그 작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lt;BR&gt;&lt;BR&gt;이런 이유로 그는 그동안 세계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할 생각을 했고, 결혼 다음 해인 1898년 부인과 함께 하와이를 떠나 우리나라에 들른 것이다. 그가 2년 동안 방문한 나라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티벳, 자바(인도네시아), 인도 등이다. &lt;BR&gt;&lt;BR&gt;그는 우리나라에 와서 &lt;서울풍경&gt;뿐 아니라, 고종황제의 전신초상화(어진), 순종의 초상화(예진), 민상호의 초상화를 그렸고, 고종황제 어진은 미국에서 전시된 후 파리만국박람회의 미국관에서 다른 아시아 사람들의 초상화와 함께 전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순종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lt;BR&gt;&lt;BR&gt;글 / 이충렬&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 size=3&gt;출처 / JPNews&lt;/FONT&gt;&lt;/SPAN&gt;&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idamedia/18336945"/>
		<id>tag:blog.daum.net,2009:idamedia.18336945</id>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07-29T21:05:12Z</updated>
	    <published>2009-07-29T21:05: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RE&gt;&lt;FONT face=돋움체 color=gray size=2&gt;
&lt;IMG src=&quot;http://cfile295.uf.daum.net/image/16557B114A70373B56E012&quot;&gt;

물소 수레를 타고 건너는, 
이리오모테(西表)섬에서 유부(由布)섬으로의 바닷길.
수레 안에서는 오키나와의 민요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부시마에서는 아열대 식물원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

문득 저 곳에 가고싶습니다. ^^
맹렬하게 이어지는 야근으로 파김치가 되어가는데
장차 섬머타임을 실시할 예정이라는
말도 아닌 소리가 들려오고ㅠㅠ
(하는 짓마다 마음에 안든다는;;) 
경찰이 몰래 숨어서 찍은 이동카메라에
속도 위반으로 걸리고,;;
쩝~! 신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두 뭐어~~ 삽질하면서 열심히 살아야죠. 

존 던의 시를 읽어봅니다.
그대와 나를 위하여 종은 울린다니 패스~!!! ^^

29/July/2009
by 소나무


어떤 사람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든다.
한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존 던의 &lt;천국으로 가는 詩&gt; 中에서
=========================================================

당분간 댓글은 닫겠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날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건강하시고 시원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lt;/FONT&gt;&lt;/PRE&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올리뷰 당첨을 축하드립니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idamedia/18336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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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クモモ숲</name>
	    </author>
	    <updated>2009-07-22T18:53:53Z</updated>
	    <published>2009-07-22T18:53: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 ** //top **--&gt;

                     												 &lt;tr&gt;
												 	&lt;td colspan=&quot;2&quot; height=&quot;22&quot; align=&quot;right&quot;&gt;
												 		&lt;a href=&quot;http://blog.chosun.com/allreview/4092925&quot; class=&quot;copyk&quot;&gt;http://blog.chosun.com/allreview/4092925&lt;/a&gt;
												 		&lt;a href=&quot;javascript:copyLogUrl('http://blog.chosun.com/allreview/4092925')&quot;&gt;&lt;img src=http://image.chosun.com/blog/main_0502/copy_but2.gif border=&quot;0&quot; align=absmiddle&gt;&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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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r&gt;
                                                                                                   
												 &lt;tr&gt;&lt;td colspan=&quot;2&quot; height=&quot;20&quot;&gt;&lt;/td&gt;
                                                 &lt;/tr&gt;






							
							&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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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IMG alt=all43_1.jpg src=&quot;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37/72637/1/all43_1.jpg&quot; border=0&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color=#0066ff&gt;당첨자 발표일 연기로 인해,&amp;nbsp;&lt;U&gt;&lt;FONT color=#cc0000&gt;리뷰 마감일을 8월 12일(수)&lt;/FONT&gt;&lt;/U&gt;로 연장하였습니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color=#0066ff&gt;여유롭게 읽으시고, 알찬 리뷰 부탁드리겠습니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color=#0066ff&gt;감사합니다.&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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