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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좋은 디자인, 좋은 도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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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업과 경제] 문화의 창조성이 도시를 바꾼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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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list_td_s style=&quot;PADDING-LEFT: 10px&quot; noWrap&gt;글쓴이&lt;/TD&gt;
&lt;TD class=list_td_e style=&quot;PADDING-LEFT: 10px&quot; noWrap&gt;김동영 (문화포럼 異共 대표)&lt;/B&gt;&amp;nbsp; &lt;!--&lt;b&gt; &lt;a href=&quot;javascript:void(window.open('open_window.php?mode=m&amp;str=b3BlbmpiMTI5MUBoYW5tYWlsLm5ldA%3D%3D','ZBremote','width=1,height=1,left=1,top=1'))&quot;&gt;&lt;font class=view_text&gt;관리자&lt;/a&gt;&lt;font class=view_text&gt;--&gt;&lt;/B&gt;&amp;nbsp; &lt;!--&lt;a href=&quot;http://openjb.co.kr&quot; target=_blank&gt;&lt;font class=list_text&gt;(홈페이지 구경가기)&lt;/font&gt;&lt;/a&gt;--&gt;&lt;/TD&gt;
&lt;TD class=list_td_e style=&quot;PADDING-RIGHT: 10px&quot; align=right&gt;&lt;FONT class=number&gt;&lt;!--2009-07-13 14:44:54,--&gt;&lt;FONT color=red&gt;&lt;B&gt;[2009년7월호]&lt;/B&gt;&lt;/FONT&gt;&amp;nbsp;&amp;nbsp;&amp;nbsp; 조회 : &lt;B&gt;266&lt;/B&gt;&lt;!--, 추천 : &lt;b&gt;0&lt;/b&g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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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view_text vAlign=top&gt;세계화는 역설적으로 도시의 동질화가 아닌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으로 강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화와 더불어 지역의 차별성을 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지역화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단위가 국가에서 도시로 바뀌면서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도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의 문화를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lt;BR&gt;특히, 리차드 플로리다가 도시의 창조성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숫자와 관련 있다는 보헤미안지수를 발표하면서 문화예술가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도시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가들은 도시의 공간과 생활양식을 바꾸고 심지어 도시의 경제적 속성까지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이 어떻게 도시를 변화시켜 나가는지는 가까운 한옥마을의 변화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lt;BR&gt;&lt;BR&gt;&lt;B&gt;1. 한옥마을 공동화와 문화예술가의 집중&lt;/B&gt;&lt;BR&gt;한옥마을이 급격하게 공동화된 이유는 도심 중심부에 위치했던 제조업이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고, 도시의 팽창과 더불어 도심중심부가 점차 북서부로 이동해갔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에는 문화연필, 오일주장, 한흥메리야스(BYC전신), BBS운전면허시험장 등의 그 당시 전주시의 제조업을 이끄는 업체들이 모여 있을 만큼 경제적 중심지였다. 하지만, 1970년대 도시계획에 따라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으로 도시의 공간이 역할 배분되면서 한옥마을은 경제적 중심지의 역할을 상실하고 주거지역으로 변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아파트의 유입은 빠르게 한옥의 주거양식을 대체하고, 한옥마을에서 살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한옥대신 아파트로 이주하면서 주거지역으로서의 매력도 상실하게 된다. 전주시는 빠르게 해체되어 가는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한옥을 허물거나 임으로 공간을 변형 할 수 없도록 하는 한옥마을 보존지구를 1977년 지정하면서 한옥마을의 공동화를 더욱 부추겼다.&lt;BR&gt;아이러니하게도 아파트와 대비되는 한옥마을의 전통적 생활양식은 이 지역에 문화활동가와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요소가 된다. 특히 1997년 미관지구 해제이후 한옥을 허물고 2층 건물을 짓는 등의 한옥마을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람들이 바로 문화예술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세련되고 편리한 근대적 생활양식으로 여겼다. 이는 한옥과 대조적으로 아파트를 세련된 것으로 여기는 문화적 취향이 소비에 투영된 것이다. 반대로 불편하지만 전통적 생활양식을 간직하고 있고, 지역적으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한옥마을은 문화활동가와 예술가들에게 문화활동의 중심지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는 1980년대 시작된 민족문화부흥운동을 주도한 문화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거의 역사에서 찾고 전통문화를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문화적 취향과 관련이 있다. &lt;BR&gt;실제로 1990년대 말에 한옥마을로 들어온 대부분의 문화관련 인사들은 예술가들이 아닌 문화활동가들이었다. 그 당시 한옥마을에서 활동하거나 한옥마을로 입주한 단체는 ‘겐지갱’이라는 풍물단체와 우리역사 되찾기 운동을 주도한 ‘전통문화사랑모임’ 등 이었다. 이들은 ‘다문’이라는 찻집을 거점으로 한옥마을을 문화적 공간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한다.&lt;BR&gt;&lt;BR&gt;&lt;B&gt;2. 한옥마을의 문화적 삶의 변화&lt;/B&gt;&lt;BR&gt;1998년 ‘다문’이 한옥마을로 입주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통문화사랑모임을 중심으로 한 달에 한번씩 ‘다문잔치’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다문잔치는 전통문화를 매개로 한 달에 한번 씩 다양한 문화활동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함께 노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lt;BR&gt;&lt;BR&gt;다문이 교동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해가 떨어지면 거리가 조용하고 어둡고 가라앉았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한옥마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 곳에서 다문을 중심으로 새벽 4시까지 전통공연을 하면서 노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어디서 도깨비 같은 놈들이 나타나서 조용한 동네를 시끄럽게 하나 하고 의아해 했다(박시도, 다문 사장).&lt;BR&gt;&lt;BR&gt;다문잔치는 쇠락하고 있는 한옥마을을 문화활동의 중심공간으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새벽 늦게까지 떠들고 노는 ‘도깨비’같은 사람들은 점차 다문을 예술가와 문화활동가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취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거점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lt;BR&gt;‘산조축제’와 ‘마임축제’는 이러한 문화예술가들의 창조적 융합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문화행사들이다. 산조축제는 서울의 굿연구소의 제안을 다문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고, 또랑광대, 락과 산조의 결합, 일본과 중국 과의 음악적 교류 등의 다양한 문화적 시도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활동공간은 다문을 넘어 한옥마을 곳곳으로 확장되었고, 그 결과 한옥마을은 주거공간을 넘어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lt;BR&gt;문화예술가들의 창조적 융합이 새로운 문화적 창조성을 만든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마임축제’이다. 2003년 어느 날 마임을 하는 몇 명의 무리가 다문에서 술자리를 갖다가 다문사장과 더불어 그 자리에서 하룻밤을 놀게 된다. 그 때 즉석에서 다문사장이 장소를 제공 할 테니 당신들이 이곳에서 마임을 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그들이 받아들여 마임축제가 시작되게 되었다. 한옥마을이 전통이라는 장르를 넘어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창조적 문화공간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lt;BR&gt;다문잔치, 산조축제, 마임축제 등은 한옥마을에 산다는 것이 단순히 한옥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생활양식과 더불어 문화적 향유를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산다는 새로운 한옥마을의 문화적 생활양식을 만들어낸 것이다.&lt;BR&gt;&lt;BR&gt;&lt;B&gt;3. 한옥마을의 공간적 변화&lt;/B&gt;&lt;BR&gt;문화예술가들이 도시의 공간을 변화시킨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뉴욕시의 소호(SOHO)이다. 주킨(Zukin)에 따르면 1950-60년대 제조업이 쇠퇴함에 따라 방직과 프린트 등의 소규모 공장이 문을 닫은 빈 로프트(loft)에 싸면서도 넓은 작업공간을 필요로 하던 예술가들이 이주하면서 예술가들이 소호를 예술적 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lt;BR&gt;하지만 한옥마을에서 도시의 외형적 공간을 변화시킨 주체는 문화예술가가 아닌 전주시였다. 한옥마을과 소호에서 도시공간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소호는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 그 곳을 예술작품을 위한 작업공간으로 변화시켰지만, 한옥마을은 문화활동가들이 주로 입주하면서 문화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소호에서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생활양식에 대해 중산층이 주도적 소비층으로 등장하여 공간의 변화에 더욱더 강한 추진력을 제공하였지만, 한옥마을의 경우 문화활동가들이 공간을 변형시킬 만한 재정적 후원을 갖지 못했다.&lt;BR&gt;한옥마을에 들어온 문화활동가들이 한옥마을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생활양식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과는 다르게, 전주시는 한옥마을을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어 이곳을 새로운 도심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하였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을 압두고 전주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고 싶은 전주시는 한옥마을에 전통문화센터, 한옥생활체험관, 술박물관, 공예품전시관 등과 같은 전통문화의 공연과 전시 그리고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확충에 집중한다. 이러한 전주시의 한옥마을 재생전략은 한옥마을의 전통적 생활양식의 보존을 추구하던 문화활동가들과 필연적으로 부딪치게된다.&lt;BR&gt;한옥마을의 공간변화에서 문화활동가와 전주시의 입장차이가 가장 크게 부딪친 것은 태조로와 은행로의 확장이었다. 전주시는 소방차량과 관광차량의 자유로운 이동과 한옥마을의 중심로의 확보 및 다양한 이벤트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태조로와 은행로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주민들은 태조로와 은행로의 확장이 한옥마을의 지가의 상승과 생활의 편리성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하지만 문화활동가들은 한옥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골목의 중요성과 차가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공간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어 도로의 확장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점차 도시계획 전문가와 행정가들의 한옥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결국 은행로를 15m에서 12m로 축소하고 양방향의 차량중심에서 일방향의 보행자 중심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은행로 확장논쟁은 한옥마을의 도시계획에서 골목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통적 골목의 보존과 도시공간의 문화적 고려 등을 중요한 고려요소로 만들었다.&lt;BR&gt;&lt;BR&gt;&lt;B&gt;4. 문화의 산업화와 창조산업의 등장&lt;/B&gt;&lt;BR&gt;창조산업이란 용어는 1997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가 영국의 이미지를 보다 역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것으로 전환할 목적으로 종래의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대신 창조산업이라는 용어를 정책 슬로건으로 제시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영국 정부는 창조산업을 “개인의 창조성과 기술, 재능 등을 활용해서 지적재산권을 설정하고, 이것을 활용함으로써 부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갖고 있는 산업”으로 정의하였다.&lt;BR&gt;&lt;BR&gt;창조산업은 기존의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문화산업을 디지털 소프트웨어 및 디자인, 건축 등의 다양한 산업으로 예술적 창조성을 확장하고 있다. 전주시는 중앙정부의 문화산업전략에 맞춰 영화산업을 전주시의 문화전략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한브랜드 사업 중 한옥, 한식, 한지를 산업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t;BR&gt;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한옥마을에서는 수공업 중심의 장인산업을 현대적인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한지의 생산을 넘어 한지를 아파트 및 다양한 건축물의 인테리어 장식이나 한지를 실로 만들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의류상품을 만드는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과거 목판인쇄의 중심지였던 전주답게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글자체를 만들고 이를 다양한 상품으로 만드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산업은 서구에서 주장하는 창조산업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구의 창조산업이 광고, 건축, 디자인, 소프트웨어, 영화 등의 새로운 산업에 집중하는 반면에, 전주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민감하고 정밀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장인들의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이를 현대적인 기술에 접목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적 축적을 하이테크나 하이터치를 활용하여 장인적 산업을 첨단산업으로 변화시키는 전략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가까운 일본의 가나자와시가 직인적 기질을 다양한 산업으로 연결시킨 성공사례는 전주시가 추구해야할 문화산업의 방향을 일정정도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lt;BR&gt;&lt;BR&gt;&lt;B&gt;5. 결론&lt;/B&gt;&lt;BR&gt;문화적 창조성이 도시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활동가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보장되고 그들의 창조적 활동이 도시의 계획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어야 한다. 문화활동가들이 한옥마을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몇 가지 사회문화적 특성이 나타난다. 첫째는 관습적인 질서에 적응하기 보다는 도전하려는 특성을 가진 집단이 있어야 한다. 한옥마을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가진 곳이었다. 관에서는 선택유보(option free)를 통해 오랫동안 한옥마을을 방치해왔다. 이 공간에 문화활동가들이 들어온 이유는 바로 아파트가 세련된 주거공간이라는 관습적 취향에 적응하기 보다는, 전통적 생활양식을 보존하고 한옥마을에만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스타일을 만들고자 하는 도전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lt;BR&gt;둘째는 창조적인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platform)이 필요하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창조성의 전이와 융합이 일어난다. 문화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의 결합이나 예술가와 장인 및 비즈니스와의 결합 등이 바로 한옥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다.&lt;BR&gt;셋째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실천력이다. 한옥마을을 단순한 주거공간에서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시킨 데에는 전주시의 다양한 문화시설의 건립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문화활동가와 예술가들이 한옥마을을 무대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한것을 간과할 수 없다. 사람들은 한옥마을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행사의 소리와 광경을 장소와 일치시키면서 한옥마을을 문화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lt;BR&gt;하지만 전주시는 현재 한옥마을의 테마파크화를 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해 다양한 상업자본과 손을 잡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된다면 뉴욕시의 소호가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한옥마을의 문화적 라이프스타일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한옥마을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한옥마을은 한옥마을의 문화적 취향을 소비하려는 중상류층과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산업자본의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다.&lt;BR&gt;도시의 발전이 문화적 창조성을 가진 집단들의 다양한 창조성을 도시의 공간과 생활 그리고 산업으로 연결시키는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또한 도시 창조성의 사회문화적 요소인 창조인 사람들의 집중-창조적 아이디어의 플랫폼형성-아이디어의 현실화라는 선순환의 형성이 도시를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lt;!--&quot;&l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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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포천 폐채석장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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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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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3-24T10:06:5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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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align=left&gt;&lt;FONT size=3&gt;신북 폐채석장(포천 아트밸리) 460m 경사로 구간 내에 최첨단 운송수단인 모노레일이 설치된다. 포천시(시장 서장원)는 오는 12일 (주)한국모노레일(대표 황무영)과 포천 아트밸리 모노레일 설치 협약서를 공식 체결하였다.&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시 관계자에 따르면, 모노레일 설치 투자 예정액 40여억원 전액은 (주)한국모노레일이 부담하고, 일정기간 (주)한국모노레일이 운영한 후 포천시에 기부채납하게 된다고 한다.&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그 동안 포천 아트밸리는 채석시 생긴 급경사 보행로 때문에 노약자 이용 시 불편이 문제되어 왔으나, 모노레일을 설치로 이러한 불편이 완전히 해소될 전망이다. 아울러 모노레일 운행 시 기존 시설과의 연계된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특히, 최근 유례없는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시점에서 40여억원의 적지 않은 민자 유치는 자치단체와 기업이 상생하는 모범적인 대안으로 부각되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또한 이러한 지역 내 건설투자는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향후 모노레일 설치사업은 12월 중 설계를 마쳐, 내년 상반기안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 10월 포천 아트밸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 벨트조성 시범사업 대상지로도 선정된 바 있다. &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3&gt;최근 이 같은 쾌거는 아트밸리 조성사업이 단순히 일선 자치단체의 선심성 사업이 아니라, 중앙부처와 민간 기업, 그리고 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한 공동사업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한층 밝게 한다.&amp;nbsp; 출처 / 포천뉴스 편집부&lt;/P&gt;
&lt;P&gt;&lt;/FONT&gt;&lt;BR style=&quot;CLEAR: both&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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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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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버려진 산업시설이 문화공간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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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1-21T17:41:04Z</updated>
	    <published>2008-11-21T17:41: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height=2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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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height=12&gt;&lt;/TD&gt;&lt;/TR&gt;&lt;!--tr&gt;&lt;td&gt;&lt;a href=&quot;&quot; class=&quot;left_level2&quot;&gt;&lt;font style=&quot;font-weight:normal&quot;&gt;리뷰&amp;칼럼 &gt; 다른 공간, 다른 음악&lt;/font&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A class=left_level1 href=&quot;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5&amp;title_down_code=001&amp;article_num=9657#&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버려진 산업시설이 문화공간으로&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left_level2_cnt&gt;&lt;FONT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근대산업유산 활용 문화예술창작벨트 조성 시범사업&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 vAlign=top&gt;
&lt;TD class=view style=&quot;PADDING-RIGHT: 12px; PADDING-LEFT: 12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20px; PADDING-LEFT: 20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5px&quot;&gt;&lt;A href=&quot;javascript:openWin( '/_common/popupImage.asp?f=http://www.kpaf.org/attach/tbartd010/citizenk00_20081027180441.jpg' );&quot;&gt;&lt;IMG class=imgborder height=0 alt=&quot;영국의 테이트모던은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quot; src=&quot;http://www.kpaf.org/attach/tbartd010/citizenk00_20081027180441.jpg&quot; width=0&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20px; PADDING-LEFT: 20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0px&quot;&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justify&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grayfont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 height=8&gt;▲ 영국의 테이트모던은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class=spantext id=body_contents&gt;
&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face=굴림&gt;테이트 모던과 오르세 미술관은 모두 미술관이기도 하지만 유휴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제, 유휴시설의 리모델링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낡은 공장이나 창고, 폐쇄된 항구나 기차역 등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시설물을 개조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문화정책은 물론 도시계획에서 필수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굴림&gt;한국에서도 이미 많은 시설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거나 활용이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경향에 더욱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가 지역의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해 문화예술창작벨트를 조성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굴림&gt;문화부는 23일, &quot;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벨트 조성&quot; 2009년 시범사업 대상으로 ‘군산 내항 근대유산 활용 문화 공간 조성’ 등 5개소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이번 사업의 목적을 ▲산업시대의 역사성과 지역의 정체성 보존 ▲지역주민의 예술창작 및 문화향유 기반 확대 ▲문화․예술․관광의 랜드마크 조성을 통한 지역재생 등으로 꼽았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굴림&gt;각 선정지는 특성에 따라 각각 특화된 영역으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전북 군산 내항 근대유산'은 내항부두 및 일제시대 건물의 문화공간화가 추진되고, '전남 신안 염전과 소금창고'는 미술관, 공연장 및 소금문화체험공간으로 변신하게 된다. '경기 포천의 폐채석장'은 창작스튜디오를 조성해 조각 분야에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대구 구 KT&amp;G 연초창'은 대구문화창작발전소 조성을 통해 예술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충남 아산 구 장항선'은 도고온천역 등 구 역사의 문화공간화가 진행될 계획이다.&amp;nbsp;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굴림&gt;시범사업은 3년 기간으로 추진된다. 문화부는 올해 말까지 사업별 총괄책임자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추진체계룰 마련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또, 예산 범위 내에서 매년 1～2개소를 추가 선정하여 사업의 지속적인 확산을 도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lt;BR&gt;&lt;/FONT&gt;&lt;/P&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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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①공공디자인, 주민이 핵심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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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1-20T15:02:39Z</updated>
	    <published>2008-11-20T15:02: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block&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4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11/20/2-2-1.jpg&quot; width=540&gt;&lt;SPAN&gt;녹지공간이 곳곳에 있어 지역주민과 회사원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일본 도쿄 미드타운.&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자치단체의 도시가꾸기 사업이 한창이다.&lt;/P&gt;
&lt;P&gt;도내에서도 전북도가 도내 13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 공공디자인 사업 '디자인 전북만들기'를 추진하고 있고 전주시의 아트폴리스 사업을 비롯해 일선 시군에서도 크고 작은 공공디자인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조례제정 등의 절차를 거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될 전망이지만 사업추진과정에서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lt;/P&gt;
&lt;P&gt;공공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가꾸기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도내 자치단체들의 경우, 주민들의 실질적 참여를 위한 소통구조를 만드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추진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물론 사업자체의 실패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lt;/P&gt;
&lt;P&gt;▲ 공공디자인, 주민을 위한 사업&lt;/P&gt;
&lt;P&gt;공공디자인을 비롯한 도시가꾸기 사업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고민은 '무엇을 위한 공공디자인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공공디자인인가'에 대한 것.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공공디자인 사업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전문가들은 '공공디자인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공공디자인의 기본개념에서 해답을 찾는다.&lt;/P&gt;
&lt;P&gt;공공디자인은 지역주민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사업. 주민들의 편의성 제고를 위한 도시기능 회복에 1차적인 목적이 있다. 여기에 심미적 요소가 더해져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공공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가 완성된다.&lt;/P&gt;
&lt;P&gt;그러나 이같은 본래의 목적은 공공디자인 사업이 관주도로 진행되면서 퇴색되기 일쑤다. 단체장의 임기전 실적을 의식한 지자체의 성급함 등으로 공공디자인 사업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성을 도외시한 채 겉만 화려한 외형적 디자인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더구나 각 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공공디자인 사업이 추진되면서 특정한 디자인을 모방하는 사례가 속출, 공공디자인이 오히려 도시미관과 공공환경에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lt;/P&gt;
&lt;P&gt;▲ 공공디자인, 주민이 핵심이다&lt;/P&gt;
&lt;P&gt;&quot;공공디자인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quot;&lt;/P&gt;
&lt;P&gt;전문가들은 &quot;눈에 띄는 멋진 건물로 아름다운 도시를 꿈꾸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quot;고 말한다. 기존의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짓는 공공디자인은 한정된 사람들만 찾는 메마른 공간이 되어 도시의 생명력을 잃게 되고 '근사한 건물'의 공공디자인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lt;/P&gt;
&lt;P&gt;더불어 공공디자인은 '무엇을 만들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도시에 무엇이 부족한가'를 고민할 것이 요구된다. 공공디자인의 핵심은 주민이고, 좋은 도시만들기는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주민 스스로가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전주시 유재갑 아트폴리스 과장은 &quot;좋아 보인다고 무조건 남의 것을 베끼고 무계획적으로 이식하면 안된다&quot;면서 &quot;세계의 도시디자인 전문가들은 이같은 디자인 정책은 또다른 디자인 재앙을 몰고 온다고 경고하고 있다&quot;고 말했다.&lt;/P&gt;
&lt;P&gt;그는 &quot;세계의 선진디자인 도시들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도시를 개발했고, 이를 통해 문화의 거점으로 만드는 방식을 취했다&quot;면서 &quot;이는 수백년간 양적 팽창을 거듭했던 이들이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quot;이라고 덧붙였다.&lt;/P&gt;
&lt;P&gt;▲'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lt;/P&gt;
&lt;P&gt;앞서 공공디자인을 사업을 추진했다가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은 지자체의 사례가 남겨준 교훈은 '공공디자인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lt;/P&gt;
&lt;P&gt;행정기관의 일방통행식, 주입식, 하향식으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정작 중요한 주민들의 참여와 자발성이 결여돼 성과는 물론, 사업의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와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lt;/P&gt;
&lt;P&gt;전국 공공디자인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문체부 한민호 디자인공간 과장은 &quot;공공디자인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quot;이라면서 &quot;소수의 기획팀이나 몇몇 전문가들의에 의한 전략적 기획이 수립될 경우에는 성공을 거두기가 어렵다&quot;고 조언했다.&lt;/P&gt;
&lt;P&gt;'공공디자인은 지역민의 의식과 문화를 가꾸는 것'이라고 전제한 그는 &quot;전략적 기획은 공무원과 전문가, 그리고 주민이 참여하는 지루하고 고통스런 과정이어야 한다&quot;면서 &quot;스스로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해야 하며, 공공디자인은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어야 한다&quot;고 덧붙였다.&lt;/P&gt;
&lt;P&gt;주민과의 협의과정은 지리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행정기관 입장에서는 지지부진해 보이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게 진정한 공공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lt;/P&gt;
&lt;P&gt;실제 공공디자인 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부산 광복로는 3년여에 걸친 공무원과 주민들간에 지루하고 지리한 협의과정을 통해 일궈낸 산물이다.&lt;/P&gt;
&lt;P&gt;당시 부산 광복로 사업에 참여했던 주민들은 &quot;우리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단순 쾌적한 가로환경 뿐아니라 지역을 지키고 가꾸고자 하는 주민들의 마음이었다&quot;면서 &quot;우리는 이 사업을 통해 도시를 디자인한게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을 디자인했다는 결론을 얻었다&quot;고 소개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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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일본 공공디자인 거장 기타가와 후라무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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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1-11T18:10:18Z</updated>
	    <published>2008-11-11T18:10: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article_title&gt;
&lt;DL&gt;
&lt;DT id=blog_title&gt;[도시디자인을 입다] 일본 공공디자인 거장 기타가와 후라무 &lt;/DT&gt;
&lt;DD id=blog_subtitle&gt;“공공디자인은 그 땅의 삶을 옮겨심는 것” &lt;/DD&gt;&lt;/DL&gt;&lt;/DIV&gt;&lt;!-- //ARTICLE-title--&gt;&lt;!-- ARTICLE--&gt;
&lt;DIV id=article&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교토시청 앞 거리, 삿포로 월드컵경기장, 시즈오카 축구장…. 이 건물(혹은 거리)들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일본에서도 ‘감각 있다’ ‘눈에 띈다’ 하는 반응을 얻는 곳이라는 점, 그리고 ‘일본 공공디자인의 대가(大家)’로 불리는 기타가와 후라무(北川フラム·62)의 손길이 곳곳에 스며 있는 곳이라는 점이 그렇다.&lt;BR&gt;&lt;BR&gt;기타가와씨를 만난 건 지난 10월 23일 오후였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로 치면 신사동 가로수길을 연상케 하는 다이칸야마 한복판의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힐사이드 테라스’란 이름이 붙여진 복합공간 2층에 들어서니 채광 좋은 통유리창과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미술서적, 간단한 회의가 가능한 테이블과 대형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뷰는 그가 주로 해온 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진행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에 이어 약 150분에 걸쳐 이뤄졌다.&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center&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500px&quot;&gt;
&lt;DD&gt;&lt;IMG height=373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5/2008110500718_0.jpg&quot; width=50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파레 다치카와에 있는 메사네 카디시만(이스라엘)의 작품.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를 꼬집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lt;STRONG&gt;평범한 전시기획자였던 당신이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처음 이름을 날린 건 ‘파레 다치카와(ファ-レ立川)’ 때부터였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lt;/STRONG&gt; “파레(faret)는 이탈리아어로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 도쿄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 다치카와는 1922년 육군 비행장이 건설됐고 제2차 세계대전 땐 미국 공군기지가 들어온 이후 ‘하늘의 도시’로 불렸다. 1971년 미군기지가 일본에 반환되고 나서 본격적인 도시개발계획이 진행됐다. 당시 과밀화된 도쿄 중심부의 기능을 주변 도시에 분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는데 다치카와의 경우 문화 기능이 강조됐다. 1980년대부터 시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지지부진하다가 1991년 공모전이 열렸고 그때 응모해 기회를 얻었다.”&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right&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240px&quot;&gt;
&lt;DD&gt;&lt;IMG height=353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5/2008110500718_1.jpg&quot; width=24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시즈오카 축구장 인근 시즈오카역 앞에 설치됐던 한국작가 원경환의 작품.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lt;STRONG&gt;‘파레 다치카와’는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두고 작업했는가.&lt;/STRONG&gt; “미군기지가 있던 6헥타르(6만㎡)의 부지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해야 했다. 일단 11동의 건물을 세우기로 했다. 전쟁이나 지진에 대비해야 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모든 건물을 고도 45m 이하로 짓고 당시 유행하던 중앙광장도 과감히 없앴다. 대신 뚜렷한 몇 가지 컨셉트를 정했다. 국가 간 장벽이 없어지는 경향을 반영해 미술관에 모셔져 있던 작품을 마을 속으로 끌고 나왔다. 누구나 걸터앉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미술을 구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뜻을 함께하는 37개국 90여명의 작가로부터 107개 작품을 받아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보는 재미’ 외에 ‘찾는 재미’까지 더한 셈이다.”&lt;BR&gt;&lt;BR&gt;&lt;STRONG&gt;그 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었다면.&lt;/STRONG&gt; “니가타현 사토야마에 조성된 아트 프로젝트 ‘에치고 쓰마리(越後妻有)’의 경우 10년째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토야마는 인구 3만의 전형적 농촌마을로 젊은 인구가 다 빠져나가 노령화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이었다. 줄어드는 인구를 정상화하고 마을 주민들이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에치고 쓰마리’의 목적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주민의 반대가 극심해 설득하는 데만 4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설득에 성공하고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등 세계 각국 작가들이 기꺼이 동참해줘 2000년 150점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지금도 170여점이 설치돼 있다.”&lt;BR&gt;&lt;BR&gt;&lt;STRONG&gt;프로젝트 완성을 위한 재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lt;/STRONG&gt; “대개 해당 시나 현이 일부를, 기업 등 민간이 나머지 일부를 부담한다. 최근엔 점차 민간 부담 비용이 느는 추세다. 협찬사 중엔 한국 기업도 있다. 해외 원조 비중도 적지 않다. 연간 7억5000만엔 정도가 소요되는 에치고 쓰마리 프로젝트의 경우 약 8000만엔이 해외 원조 금액이다. 특히 프랑스나 호주 같은 나라에서 자국 작가를 초청해 달라며 많은 금액을 지원한다.”&lt;BR&gt;&lt;BR&gt;&lt;STRONG&gt;공공디자인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lt;/STRONG&gt; “지역 주민과의 원활한 소통이다. 아트(art), 특히 공공부문에 이식되는 아트는 재미있고 친근해야 한다. 아트는 어린이와 같아서 관심 갖고 잘 돌봐주는 게 중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어느 순간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주민 반대에 부딪혀도 좌절하지 말고 설득해야 한다. 처음에 반대하던 이들도 막상 마을을 지켜주던 작품이 사라지면 허전해 한다. 일단 시작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center&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500px&quot;&gt;
&lt;DD&gt;&lt;IMG height=306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5/2008110500718_2.jpg&quot; width=50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에치고 쓰마리에 설치된 일리야&amp;에밀리야 카바코프(러시아)의 작품. 천수답에 투명스크린을 세워 논농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lt;STRONG&gt;공공부문과 작업하는 것인 만큼 공무원의 공감과 협조가 중요할 것 같은데.&lt;/STRONG&gt; “공무원의 인식? 형편없다. 능력도 없고 비전도 없고…. 망하기 직전이다. (웃음) 그런데 늘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순 없다. 예술을 매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시민의식이 배양된다.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오사카에서만 내년에 3개, 내후년에 1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새로 부임한 오사카 지사는 ‘아트가 무슨 필요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밀고 당기는 중이다. 아트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트를 매개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시간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것에 공감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게 내 일이다.”&lt;BR&gt;&lt;BR&gt;&lt;/DD&gt;&lt;/DL&gt;&lt;/DIV&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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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의 공공디자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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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1-11T18:08:54Z</updated>
	    <published>2008-11-11T18:08:5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도시디자인을 입다] 서울의 공공디자인 &lt;/P&gt;
&lt;DD id=blog_subtitle&gt;거리 르네상스 프로젝트&lt;BR&gt;서울의 거리 발 끝에서부터 바뀌어 간다! &lt;/DD&gt;&lt;!-- //ARTICLE-title--&gt;&lt;!-- ARTICLE--&gt;
&lt;DIV id=article&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흉하게 깨진 보도턱, 먼지가 덕지덕지 낀 맨홀, 밋밋하기 짝이 없는 보도블록, 벌어진 틈 사이로 하이힐이 끼어버렸던 불쾌한 경험….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익숙한 풍경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지나갔던 모습들이다. 단조로운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서울의 거리 곳곳을 재단장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서울시가 올해 초부터 시작한 ‘서울거리 르네상스’ 프로젝트다.&lt;BR&gt;&lt;BR&gt;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평탄하고 평안하며 문화가 흐르는 길’이다. 보도 곳곳에 ‘안전’과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혀 발이 편하고 눈이 즐겁게 가꾸는 작업이다. 그동안 서울 거리의 디자인 작업이 버스정류장이나 가판대 등 눈에 금방 들어오는 시설을 산뜻한 디자인으로 바꾸는 데 치중해 왔다면 이를 발 딛는 곳으로까지 확장시키는 것이다.&lt;BR&gt;&lt;BR&gt;지금 서울 거리 곳곳의 단조롭기만 했던 보도블록은 모자이크나 체크무늬 같은 독특한 무늬로 바뀌고, 그저 뚜껑만 열리지 않으면 됐던 맨홀도 멋진 공공미술품으로 변신 중이다. 4대문 안 도심을 비롯해서 관악구 호암길, 노원구 월계로, 동대문구 망우로, 노원구 문화의 거리 등이 이런 작업을 통해 산뜻하게 단장되고 있다.&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center&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500px&quot;&gt;
&lt;DD&gt;&lt;IMG height=334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4/2008110401107_0.jpg&quot; width=50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정비가 끝난 관악구 호암길.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무 색깔 울타리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amp;nbsp;&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center&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500px&quot;&gt;
&lt;DD&gt;&lt;IMG height=696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4/2008110401107_1.jpg&quot; width=50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새롭게 조성된 노원 문화의 거리. 최근 등단 50주년을 맞아 화가 선언을 한 고은 시인의 그림을 현수막으로 제작해 걸었다. /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amp;nbsp;&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center&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500px&quot;&gt;
&lt;DD&gt;&lt;IMG height=288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4/2008110401107_2.jpg&quot; width=50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새롭게 조성된 노원 문화의 거리. 가을 농촌 풍경이 담긴 벽화 옆을 걸어가는 시민들. /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amp;nbsp;&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center&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500px&quot;&gt;
&lt;DD&gt;&lt;IMG height=335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4/2008110401107_3.jpg&quot; width=50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새롭게 조성된 노원 문화의 거리. 거리 사이사이에 눈길을 끄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amp;nbsp;&lt;BR&gt;&lt;BR&gt;&lt;/DD&gt;&lt;/DL&gt;
&lt;DIV class=photo_center&gt;
&lt;DL class=photo_img style=&quot;WIDTH: 500px&quot;&gt;
&lt;DD&gt;&lt;IMG height=375 src=&quot;http://weekly.chosun.com/site/data/img_dir/2008/11/04/2008110401107_4.jpg&quot; width=500 border=0&gt; &lt;/A&gt;
&lt;DD class=desc_photo&gt;▲ 동작구 동작대로의 가로 구조물. 아랫부분에 나무 디자인을 적용해 우아해 보인다. / photo 서울시청 &lt;/DD&gt;&lt;/DL&gt;&lt;/DIV&gt;
&lt;DL class=article id=fontSzArea&gt;
&lt;DD&gt;서울시는 5026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전체 보도의 30%인 453㎞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 2017년까지는 거의 모든 서울의 보행자길을 완전히 새롭게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이승진 서울시 도로르네상스팀장은 “도쿄 등 경쟁 상대로 삼고 있는 도시들에 비해 서울은 걷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에 있어서 경쟁력이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 사실”이라며 “단순한 도로정비에 머물지 않고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 포인트로 키워갈 계획”이라고 말했다.&lt;BR&gt;&lt;BR&gt;그동안 보행자길 정비 작업이라고 하면 대충 땜질 공사를 하거나 예산을 타내려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깨부수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적잖았다. ‘거리 르네상스’는 서울시가 총기획을 맡되 세부적인 정비 작업은 일선 구청이 담당하게 된다. 중랑·강북·도봉·노원·은평·관악 등 비강남 지역 6개 구는 총 사업비의 70%까지 시가 예산을 지원하고 ‘부자구’로 꼽히는 강남·서초·송파 등에는 필요 시 30% 이내에서 지원하는 등 각 구의 재정 여건을 감안해 차등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비가 잘 돼서 시민들의 반응이 좋은 곳에는 총 10억원의 ‘상금’을 걸고 ‘경쟁’을 시키기로 했고 ‘땜질과 주먹구구 공사’가 되지 않도록 순찰반도 운영하는 등 ‘깐깐하게’ 간섭하고 있다.&lt;BR&gt;&lt;BR&gt;&lt;BR&gt;/ 정지섭 조선일보 전국뉴스부 기자 &lt;A href=&quot;mailto:xanadu@chosun.com&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xanadu@chosun.com&lt;/FONT&gt;&lt;/U&gt;&lt;/A&gt;&lt;BR&gt;&lt;BR&gt;&lt;/DD&gt;&lt;/DL&gt;&lt;/DIV&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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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주 한옥마을지구, 건축물 층고 제한 강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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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0-15T10:38:47Z</updated>
	    <published>2008-10-15T10:38: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b_view_line vAlign=bottom height=36&gt;전주 한옥마을지구, 건축물 층고 제한 강화&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_view_line2&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COLOR: #898989&quot; width=&quot;67%&quot;&gt;작성시간 : 2008-10-13&lt;/TD&gt;
&lt;TD style=&quot;COLOR: #898989&quot; align=right width=&quot;20%&quot;&gt;김영무 기자&lt;/TD&gt;
&lt;TD width=&quot;13%&quot;&gt;&lt;A class=title href=&quot;mailto:m6199@hanmail.net&quot;&gt;&lt;IMG height=18 src=&quot;http://www.jeollailbo.com/img/sub_com/btn_sendmail.gif&quot; width=73 align=right&gt;&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_view_con&gt;
&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0%&quot; align=justify&gt;&lt;BR&gt;전주 한옥마을지구(전통문화구역)의 건축물 층고 제한이 한층 강화되고 지정 면적도 대폭 확대된다. &lt;BR&gt;13일 전주시에 따르면 날로 증가하는 관광 수요 충족과 무분별한 건축행위 방지,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한옥마을 지구에 대한 지구단위계획 변경·결정안을 마련했다. &lt;BR&gt;이번 변경안의 주요 내용은 현재 25만2307㎡인 제1종지구단위계획구역을 오목대 2지구와 중심 주차장 부지 및 전통문화센터 부지 등을 편입시켜 29만6827㎡로 확대하는 것이다. &lt;BR&gt;또한 한옥마을의 경관성 제고를 위해 건축물의 높이에 대한 제한도 강화된다. &lt;BR&gt;위치상으로는 한옥 지구 내에 있지만 오목대 2지구(쌍샘마을)는 한옥지구가 아닌 주거환경개선 지구로 지정돼 있어 한옥이 아닌 일반 건축물 신축이 가능, 한옥 경관을 훼손시킬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이번 지구단위계획 변경으로 한옥지구로 지정된다. &lt;BR&gt;특히 한옥마을 경관 제고를 위해 중앙초등학교~학인당 주변의 전통문화지구내 건축물 층고제한이 현 3층·15m이하에서 2층· 10m이하로 대폭 강화되며 비 한옥 건축도 가능했던 건축물 형태도 목조한옥만으로 제한된다. &lt;BR&gt;반면 현재 건축물 층고가 1층으로 제한된 리베라호텔 뒤쪽인 전통한옥지구 및 향교지구의 1층 높이는 현 7m에서 8m로 완화된다. &lt;BR&gt;문화시설 편입과 신설도 이뤄진다. &lt;BR&gt;문화시설의 활성화 및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전통문화센터(9382㎡)부지가 편입되며 향교 부근 전통한옥건립부지(4959㎡)는 신설, 강암서예관 및 서화마을(7409㎡)은 문화시설로 결정된다. &lt;BR&gt;아울러 최근 정비사업이 진행된 은행로 주변은 무분별한 건축행위가 우려됨에 따라 은행로 지구로 지정, 2층 이하의 한옥만 신축이 가능해진다. &lt;BR&gt;이와 함께 효율적인 교통 처리 및 한옥보존을 위해 지난 2002년 도시계획도로에서 폐지됐던 원불교당 부근 폭 4m도로도 보행자 전용도로로 부활된다. &lt;BR&gt;한옥마을의 특징인 골목길을 살리기 위해 소로 2-2와 3-32, 3-38, 3-39, 3-54, 3-80 등 6개 노선은 폐지된다. &lt;BR&gt;시 관계자는 “이번 지구단위 계획 변경은 지난 2003년 한옥지구 지정 이후 6년간의 운영기간동안 파생된 문제점을 보완하고 향후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추진하는 것이다”며 “이번 변경은 한옥마을의 전통미를 살릴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수립됐다”고 말했다. &lt;BR&gt;한편 시는 이 같은 지구단위계획 변경ㆍ결정안을 주민 설명회와 의원 간담회, 도시계획심의위원회 등을 거쳐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lt;BR&gt;/김영무기자ㆍkimym@ &lt;BR&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전통문화도시의 상징, 전주 톨게이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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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0-10T15:42:36Z</updated>
	    <published>2008-10-10T15:42: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1&gt;⑫ 전통문화도시의 상징, 전주 톨게이트&lt;/H1&gt;
&lt;H2&gt;우여곡절 끝 건립했던 톨게이트…지금은 전주의 '랜드마크'&lt;/H2&gt;
&lt;H4&gt;작성 : 2008-04-01 오후 7:40:09 / 수정 : 2008-04-01 오후 7:58:28&lt;/H4&gt;
&lt;H4&gt;도휘정(hjcastle@jjan.kr)&lt;/H4&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block&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4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04/02/16-2-1.jpg&quot; width=540&gt;&lt;SPAN&gt;입구 현판.자음보다 모음을 강조했다(왼).출구 현판.모음보다 자음을 강조했다&lt;/SPAN&gt;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파란색 아크릴 판에 인공적인 흰색 글씨로 써놓은 도시 이름은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한옥 기와를 얹은 일주문 아래 호방한 붓글씨로 새겨넣은 '전주'는 얼마나 멋스러운가. 전주를 처음 방문한 외지인들은 한결같이 톨게이트(tollgate)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lt;/P&gt;
&lt;P&gt;전주가 이처럼 고풍스러운 톨게이트를 갖게 되기 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lt;/P&gt;
&lt;P&gt;2002년 월드컵 개최도시였던 전주는 톨게이트를 CBS전북방송 자리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게 된다. 당시 전주시장이었던 김완주 전라북도 도지사는 &quot;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 톨게이트 하나도 다른 도시와 다르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quot;며 한국도로공사에 일주문 형태의 톨게이트를 제안했다. 일주문 형태의 톨게이트를 가지고 있는 곳은 경주시 뿐. 일주문은 경주가 먼저 했지만 아크릴 현판이었으며, 규모면에서도 전주가 훨씬 컸다.&lt;/P&gt;
&lt;P&gt;전주시 제안에 도로공사 측은 이미 게이트 설계와 아크릴 현판에 맞춰 예산이 확정된 상태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김 전 시장은 도로공사 사장을 직접 만나 일주문 공사는 도로공사가, 현판은 전주시가 책임지기로 담판을 지었다. 일주문의 경우 일반 톨게이트 보다 2∼3배의 예산이 더 들어가지만 도로공사 측에서도 시범적으로 해보자며 설계를 변경했고, 전주시도 현판에만 2000여만원의 예산을 세웠다.&lt;/P&gt;
&lt;P&gt;본격적으로 현판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주'를 한문으로 쓸 것인지 한글로 쓸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했다.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처럼 한문으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21세기에는 한문보다는 한글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작가는 민체(民體)를 개발해 한글서예의 대중화를 꾀하고 있는 서예가 여태명 원광대 교수에게 맡겨졌다. 서각(書刻)은 조각가 김종연씨가 적임자로 추천됐다.&lt;/P&gt;
&lt;P&gt;전주 톨게이트 개통은 2002년 4월 초 '전주' 현판을 거는 것으로 완성됐다. 현판 크기는 가로 8.7m, 세로 2.75m. 두 명의 예술가가 완성한 이 거대한 현판은 전주의 문화와 역사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lt;/P&gt;
&lt;P&gt;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전주' 현판 글씨는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 입구의 현판은 자음을 작게 하고 모음을 크게 해 모음을 강조했으며, 출구 현판은 반대로 했다. 여교수는 &quot;자음은 아들을, 모음은 어머니를 뜻하는데 고향으로 들어올 때는 어머니의 큰 사랑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고 나갈 때에는 자식들이 크게 되라는 뜻을 담았다&quot;고 설명했다. 입구 현판의 '전'자에서 'ㅓ'와 'ㄴ' 사이에 비백(飛白)으로 전주 지도를 형상화해 놓은 것도 흥미롭다.&lt;/P&gt;
&lt;P&gt;글씨를 고르는 데는 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여교수 제자들과 전주시청 간부들, 출입기자들이 투표를 했는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작품이 입구에, 두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작품은 전주에서 나가는 출구에 걸렸다.&lt;/P&gt;
&lt;P&gt;현판의 나무의 종류는 수입목 '스프로스'. 다른 나무들에 비해 함수율(含水率)이 낮아서 선택됐다. 김씨는 &quot;작업 기간이 짧아 나무 말릴 시간이 부족해 5∼6일간 증기로 쪄서 나무 고유의 진을 빼내고 수분을 없애 뒤틀림 현상을 방지했다&quot;며 &quot;새기는 과정에서도 글씨에 비백이 많아 어떤 것이 선이고 비백인지 헷갈렸다&quot;고 떠올렸다.&lt;/P&gt;
&lt;P&gt;톨게이트에 현판을 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동원된 크레인만 4대. 2대의 크레인이 현판의 양쪽을 잡고 나머지 2대에는 각각 사람이 올라탔다. 현판 자체 무게가 많이 나가는 데다 처마까지 있어 설치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설치 작업은 다음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lt;/P&gt;
&lt;P&gt;이렇게 만들어진 전주 톨게이트는 강암 송성용 선생이 현판을 쓴 '호남제일문'과 함께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가 됐다. 당시 전주시 문화예술과에서 현판 제작을 담당했던 김선희씨는 &quot;도시를 알리는 랜드 마크로 톨게이트를 활용한 것은 어느 지자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quot;고 말했다. 여교수와 김씨는 &quot;작업을 한 지 4∼5년이 지났기 때문에 한번쯤 보수를 해야할 시점&quot;이라고 덧붙였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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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술가들의 다방문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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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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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10-10T15:38:17Z</updated>
	    <published>2008-10-10T15:38: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1&gt;(24)예술가들의 다방문화&lt;/H1&gt;
&lt;H2&gt;푹 꺼진 소파에 앉아 예술 논하고…선배 문인들과 만나 인생 배우고…&lt;/H2&gt;
&lt;H4&gt;작성 : 2008-07-15 오후 7:09:43 / 수정 : 2008-07-15 오후 7:51:20&lt;/H4&gt;
&lt;H4&gt;도휘정(hjcastle@jjan.kr)&lt;/H4&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block&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4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07/16/16-1-1.jpg&quot; width=540&gt;&lt;SPAN&gt;'다문방송'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화가 정보가 집중됐던 '다문'.&lt;/SPAN&gt;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60·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전북 문인들과 화가들의 사랑방이었던 거리. 옛 아리랑제과 사거리부터 동문거리 사거리까지는 예술혼을 키워내는 곳이었다.&lt;/P&gt;
&lt;P&gt;3년 전 이 곳에 위치한 '남영다방'에서는 문인들이 준비한 '싸롱시화전'이 열렸다. '석다방'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 이 자리에서 한 원로시인은 &quot;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석다방'을 찾아오기도 쉽지않았다&quot;며 아쉬워 했으며, 중견시인은 &quot;이 거리에서 문인들과 어울리다 배가 고프면 우동을 시켜먹었는데 그 때 우동값이 150원이었다&quot;며 옛 추억을 그리워 했다.&lt;/P&gt;
&lt;P&gt;젊은 여성들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듯, 시대를 막론하고 다방은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다.&lt;/P&gt;
&lt;P&gt;'예술인=술'의 공식이 통하던 70∼80년대는 특히 예술인들이 다방 문화를 주도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툭 털어넣었던 소주 한 잔이 좋던 시절 '∼집'으로 끝나는 대포집이나 눅눅한 공기와 푹 꺼진 소파가 있던 다방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셈이다.&lt;/P&gt;
&lt;P&gt;&quot;우리는 '정읍대학원' 다녔어요. 지금 '가족회관' 옆. 모르긴 몰라도 학교에서 보다 거기서 더 많이 배웠을 거예요.&quot;&lt;/P&gt;
&lt;P&gt;'정읍대학원'은 80년대 예술가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정읍집'을 가리킨다. '석다방'에 문인들이 많았다면, '정읍집'은 이중섭 그림까지 걸려있을 정도로 화가들이 많이 찾았다. 조각가 배형식 원광대 교수와 원로화가 하반영씨 등이 대표적인 단골이었다. 이 곳에서는 화가들이 현장에서 바로 그림을 그려 벽에 거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은 &quot;'정읍집'과 같은 곳에서 어른들(선배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림과 글, 음악, 인생을 배웠다&quot;고 말했다.&lt;/P&gt;
&lt;P&gt;'이화집'은 문인들과 화가들이 드나들기로는 '정읍집'과 쌍벽을 이루던 곳. 상호에 대해서는 주인 여자가 이화여자대학교를 다니다 말았다는 말이 떠돌았다. 80년대 후반에는 동문사거리에 있는 '시인과 농부'가 유명했다. 이 곳은 신석정 시인이 자주 가던 곳으로, 젊은 문인들이 시인을 하늘 같이 모시고 다녔다고 한다.&lt;/P&gt;
&lt;P&gt;&quot;지금은 전주시 경원동 기업은행 근처에 '안키로(않기로)집'이 있었어요. 술 먹고 싸움 하지 않기로, 외상 하지 않기로…. 지금은 주차장이 된 옛날 전신전화국 자리 골목길에 있던 '갈매기집', 옛날 법원 앞에 있던 '버드나무집'도 예술인들이 많았어요. '88올림픽'이 열리던 무렵, 길도 정리하고 건물도 새로 지으면서 다 흩어지거나 없어졌어요.&quot;&lt;/P&gt;
&lt;P&gt;이기반 원로시인은 &quot;'안키로집'은 문인들도 드나들었지만 특히 미술과 음악하는 사람이 많았다&quot;며 &quot;거저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quot;고 전했다.&lt;/P&gt;
&lt;P&gt;소재호 전 전북문인협회 회장은 &quot;그 때는 술집이나 다방에 예술인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와의 어울림이 많았다&quot;며 &quot;지금은 예술가들의 성격이나 개성이 많이 다르다 보니 한군데로 몰리기 보다는 장르별로, 세대별로 나뉘는 것 같다&quot;고 말했다.&lt;/P&gt;
&lt;P&gt;90년대는 '다문방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화가의 정보가 찻집 '다문'으로 집중됐다. 문학 관련 책들로 식당 한 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정이가네'는 문인들이 잘 가는 밥집. 지금은 동문거리에 있는 '새벽강'과 '꽃'으로 예술가들이 몰리고 있다. '은자누나' '은자언니'로 불리는 따뜻한 주인장이 있는 '새벽강'은 나이를 초월해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 미술가 곽승호씨가 운영하는 '꽃'은 미술인 손님들이 많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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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축물 미술장식 제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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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0-10T15:37:29Z</updated>
	    <published>2008-10-10T15:37: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1&gt;(28)건축물 미술장식 제도&lt;/H1&gt;
&lt;H2&gt;건물, 건축비의 1% 미술품 구입 의무화…도내에서도 거장들 작품 구경할 수 있어&lt;/H2&gt;
&lt;H4&gt;작성 : 2008-08-12 오후 6:57:31 / 수정 : 2008-08-12 오후 8:10:34&lt;/H4&gt;
&lt;H4&gt;도휘정(hjcastle@jjan.kr)&lt;/H4&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block&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4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08/13/16-1-1.jpg&quot; width=540&gt;&lt;SPAN&gt;소리전당에 설치된 전수천 作 '소리,빛,자연'.&lt;/SPAN&gt;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2006년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타계 소식이 들려오자 사람들의 관심은 전주시 서노송동 대우빌딩에 쏠렸다.&lt;/P&gt;
&lt;P&gt;생전 백남준이 남긴 9000여점의 작품 중 도내에 유일하게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현실과 고전과의 조화'란 작품이 바로 대우빌딩 로비에 있었기 때문이다. 60여개가 넘는 모니터와 형광램프, 태국에서 가져온 불상집 등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97년까지는 20여분 분량의 비디오가 하루 세차례 상영됐었지만, 화면이 어지럽고 작품이 난해하다는 일부 시민들 반응에 상영을 중단했었다. 작가의 죽음으로 잠시 관심이 집중되는 듯 싶었지만, 이후 다시 작품 전원은 꺼졌다.&lt;/P&gt;
&lt;P&gt;거장의 작품이 전북에 있는 이유는 건축비용의 1%를 건축물 미술장식품 구입에 사용해야 한다는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 덕분이었다. 1994년 대우빌딩 완공 당시 전주시 건축심의위원회가 건물규모에 비해 미술작품 구입비가 부족하다며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자 백남준의 작품이 추가로 설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lt;/P&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block&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4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08/13/16-1-2.jpg&quot; width=540&gt;&lt;SPAN&gt;전라북도 신청사내 박충흠 作 '생·도전 그리고 도약'&lt;/SPAN&gt;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이처럼 도심 거리를 걷다보면 빌딩 앞 혹은 건물 로비에서 생각지도 못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할 때가 있다. 대부분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에 의해 설치된 것들. 의무적으로 설치된 작품들이지만, 삭막한 도시에서 미술품들은 공공미술로서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lt;/P&gt;
&lt;P&gt;2001년 도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개관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도 미술품들이 있다. 모악당 앞 중앙광장에 설치된 작품은 정읍 출신으로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하며 유명해진 전수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소리, 빛, 자연'. 직선과 곡선을 중심으로 생명과 자연, 커뮤니케이션과 미래의 비전을 상징화시킨 이 작품에 대해 전교수는 &quot;놀이, 다양한 소리, 음악을 체험하고 리듬을 공유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싶었다&quot;며 &quot;당시 상당히 많이 생각하고 노력한 작품&quot;이라고 소개했다.&lt;/P&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inline; TEXT-ALIGN: left&quot;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25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08/13/16-1-3.jpg&quot; width=250&gt;&lt;SPAN&gt;전주 대우빌딩내 故 백남준 作 '현실과 고전과의 조화'.&lt;/SPAN&gt;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그밖에도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에 의해 연지홀 앞에 김성식의 '율-심연의 울림'이, 분수대 앞에 류경원의 '영원율'이 설치됐다.&lt;/P&gt;
&lt;P&gt;전주시 금암동 우석빌딩 로비에는 한국화가 송계일 전 전북대 교수와 김병종 서울대 교수의 작품이 걸려있다. 송 전 교수의 '공간이미지'는 먹으로 배경 처리를 한 후에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하는 오방색의 사각형을 띄워 새로운 조형감과 공간감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 내부의 정신적 공간 회복 의미를 담아 1998년 제작됐다. 김교수의 '생명의 노래-鄕'은 고향의 아름다운 풍광과 약동하는 생명력을 담은 작품. 산과 물, 바람과 구름, 나무와 새 등 자연물을 필묵으로 형상화했다.&lt;/P&gt;
&lt;P&gt;정현도 전북대 교수의 작품은 전주시 금암동 삼성화재와 서신동 이마트 등에 설치돼 있다. 롯데백화점 전주점 앞에 서있는 군상은 황순례 전주대 교수의 작품.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황교수의 작업실에 가면 이 작품들과 함께 제작됐지만, 롯데백화점에서 구입하지 않은 나머지 작품들도 볼 수 있다.&lt;/P&gt;
&lt;P&gt;2005년 청사를 이전한 전라북도 신청사에는 수준 있는 미술장식품들이 한 곳에서 모여있다. 어미가 어린 아이를 품에 안은 듯한 모악산에서 이미지를 가져온 박충흠의 '생-도전 그리고 도약', 동심 속에 내재돼 있는 상상력과 꿈을 압착시멘트와 모자이크 타일로 만든 강용면의 '휴식-아이들의 이야기' 등이 분수광장이나 벽천 등 야외공간에 설치돼 있다. 도청 내부는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 이외에도 특별예산으로 지역 미술가들의 작품을 구입, 시선 닿는 곳마다 작품이다.&lt;/P&gt;
&lt;P&gt;미술관이 아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미술품들은 색다른 재미를 주는 거리의 발견. 오다가다 챙겨보는 맛도 있다.&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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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리의 예술 그래피티 아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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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0-10T15:36:25Z</updated>
	    <published>2008-10-10T15:36: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1&gt;(34)거리의 예술 그래피티 아트&lt;/H1&gt;
&lt;H2&gt;칙칙한 도시에 예술을 입히다&lt;/H2&gt;
&lt;H4&gt;작성 : 2008-10-07 오후 7:23:17 / 수정 : 2008-10-07 오후 9:04:52&lt;/H4&gt;
&lt;H4&gt;도휘정(hjcastle@jjan.kr)&lt;/H4&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block&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4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10/08/16-5-1.jpg&quot; width=540&gt;&lt;SPAN&gt;전북대 구정문 주차장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quot;모르니까 아무 말도 안하죠. 도대체 언제 와서 그려놓고 가는지…. 그림도 자주 바뀌어요.&quot;&lt;/P&gt;
&lt;P&gt;전북대 구정문 건너편에 위치한 주차장. 주차장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며, 주차장 안내원은 &quot;밤이나 새벽에 작업을 하는 건지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quot;며 &quot;출근하고 보면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곤 한다&quot;고 말했다.&lt;/P&gt;
&lt;P&gt;벽화하면 떠오르는 서정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먼 그림들은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다. '낙서'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의미있는 그림이다.&lt;/P&gt;
&lt;P&gt;그래피티 아트란 벽이나 그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을 가리킨다.&lt;/P&gt;
&lt;P&gt;그래피티가 예술로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였다. 미국 할렘가를 중심으로 파생된 힙합문화 중 하나였던 그래피티는 주로 반항적 청소년들과 소수민족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극채색과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속도감있고 도안화된 문자들을 거리의 벽에 그렸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지만, 상상력이 넘치는 것들. 장 미셸 바스키아와 케이트 해링은 흑인영웅, 죽음,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을 담아 도시의 골칫거리였던 그래피티를 현대미술로 자리잡게 했다.&lt;/P&gt;
&lt;P&gt;이미 유럽에서는 거리 예술로 자리잡은 그래피티는 국내에서도 각종 문화행사나 영화, 광고의 배경작업에 쓰이고 있다.&lt;/P&gt;
&lt;P&gt;
&lt;TABLE style=&quot;DISPLAY: inline; TEXT-ALIGN: right&quot;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250&gt;&lt;IMG src=&quot;http://www.jjan.kr/visualplaza/visualnews/images/2008/10/08/16-5-2.jpg&quot; width=250&gt;&lt;SPAN&gt;'2008 전주국제영화제'에 초대된 그래피티 퍼포먼스팀 'ANFG'의 한 멤버가 영화의 거리에서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이고 있다.&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그러나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래피티에 대한 이해가 적은 편. 전북에서 그래피티가 예술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래피티 작가 김서화씨가 처음으로 전북에서 그래피티 전시회를 연 2007년으로 볼 수 있다.&lt;/P&gt;
&lt;P&gt;전주에 거주하고 있지만 1999년 서태지 컴백무대 그래피티를 비롯해 영화와 CF, 드라마에 사용되는 그래피티 작업을 해 온 김씨는 이미 그래피티 분야에서는 유명한 작가. 그는 주로 건물 벽을 캔버스 삼다 보니 특성상 실내공간으로 들어오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그래피티를 전시장으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같은 해 서울작가들과 전주에서 전시를 열고 라이브 페인팅을 통해 그래피티의 생생한 현장감을 보여주기도 했다.&lt;/P&gt;
&lt;P&gt;그래피티를 처음 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락카 스프레이 조절법. 락카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면 벽면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릴 뿐만 아니라 선의 두께 조절이 힘들다. 그래피티 전용 락카나 노즐이 없기 때문에 그래피티 작가들은 노즐을 손가락 힘으로 조절해 선의 굵기 등을 조절해 그린다.&lt;/P&gt;
&lt;P&gt;그래피티는 다른 도구를 이용해 그리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순간순간의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락카 스프레이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표현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lt;/P&gt;
&lt;P&gt;많은 젊은이들이 그래피티의 매력에 빠져있지만, 사실 한국에서 그래피티는 건물주가 동의한 것 이외에는 아직 불법이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전주시, 아트폴리스 추진위원 29명 위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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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0-10T10:43:55Z</updated>
	    <published>2008-10-10T10:43: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4 class=tit_article&gt;전주시, 아트폴리스 추진위원 29명 위촉 &lt;/H4&gt;&lt;!-- //기사 제목 --&gt;&lt;!-- 기사 정보 --&gt;
&lt;DIV class=info_article&gt;&lt;SPAN class=info&gt;기사입력&lt;/SPAN&gt; &lt;SPAN class=time&gt;2007-07-21 13:22 &lt;/SPAN&gt;&lt;/DIV&gt;&lt;!-- //기사 정보 --&gt;
&lt;DIV class=cb_head&gt;&lt;/DIV&gt;&lt;!-- //기사 top 정보 --&gt;&lt;!-- 기사 내용 --&gt;
&lt;DIV class=article&gt;&lt;!-- FLASH_BANNER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2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olSpan=4 height=10&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 height=1&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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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quot;p11 gray03&quot;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4px&quot; align=middle bgColor=#f2f2f2 colSpan=3&gt;광고&lt;/TD&gt;&lt;/TR&gt;
&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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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BORDER-RIGHT: #cfcfcf 1px solid; BORDER-TOP: #cfcfcf 1px solid; BORDER-LEFT: #cfcfcf 1px solid; BORDER-BOTTOM: #cfcfcf 1px solid&quot; width=242 bgColor=#ffffff colSpan=3&gt;
&lt;DIV id=addiv name=&quot;addiv&quot;&gt;&lt;IFRAME id=f240240 border=0 name=f240240 align=center marginWidth=0 marginHeight=0 src=&quot;http://ad.news.naver.com/adshow?unit=120A&quot; frameBorder=0 width=240 scrolling=no height=240&gt;&lt;/IFRAME&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4 height=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FLASH_BANNER --&gt;
&lt;DIV id=keyword_layer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gt;&lt;/DIV&gt;【전주=뉴시스】&lt;BR&gt;&lt;BR&gt;전북 전주시가 체계적인 도심미관을 목표로 '아트폴리스(Art-Polis.예술도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키로 한 가운데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추진위원 29명이 위촉됐다. &lt;BR&gt;&lt;BR&gt;20일 시청 회의실에서 열린 위촉식 및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전주시정연구소 노병덕 연구원은 '전주 아트폴리스' 추진을 위한 조직과 기능으로 ▲아트폴리스 추진위원회 구성 ▲아트폴리스 센터 ▲총괄계획가 제도 ▲설계공영 발주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lt;BR&gt;&lt;BR&gt;문화관광부 한민호 공간문화팀장은 &quot;정부의 공공디자인 정책방향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공공디자인이 시대적 경향과 일치하는 것과 학계.업계.시민단체의 지속적 감시와 협력이 긴요하다&quot;고 강조했다. &lt;BR&gt;&lt;BR&gt;도시설계 전공인 류중석 중앙대 교수는 &quot;전주의 자산인 문화유산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차별화전략이 필요하다&quot;면서 &quot;공무원에 대한 디자인 교육을 통해 디자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정만영 서울산업대 교수는 &quot;전주한옥의 취약한 경쟁력을 감안해 미래지향적 아이템을 찾아야 하고 시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quot;며 &quot;적극적인 기획으로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quot;고 조언했다. &lt;BR&gt;&lt;BR&gt;전주시는 아트폴리스의 본격 추진을 위해 내달께 시민 대토론회를 거쳐 관련 조례 제정과, 도시디자인 가이드라인 구축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다.&lt;BR&gt;&lt;BR&gt;전주 아트폴리스 29명의 추진위원은 다음과 같다. &lt;BR&gt;&lt;BR&gt;◇도시분야 ▲류중석 중앙대 교수 ▲김세용 고려대 교수 ▲장윤배 경기개발연구원 박사 ▲김현숙 전북대 교수 ▲안득수 전북대 교수 ▲구자훈 한양대 교수 ▲정석 경원대 교수 ▲진정 전북대 교수 ▲고기영 비츠로소장 &lt;BR&gt;&lt;BR&gt;◇건축분야 ▲박소현 서울대 교수 ▲정만영 서울산업대 교수 ▲홍승재 원광대 교수 ▲송석기 군산대 교수 ▲승효상 이로재사무소 대표 ▲김준성 Himma 스튜디오 소장 ▲임용민 전주대 교수▲박상현 원광대 교수&lt;BR&gt;&lt;BR&gt;◇공공디자인분야 ▲한도룡 홍익대 명예교수 ▲최재관 경희대 교수▲조정형 한양대 교수▲김병옥 군산대 교수▲황선영 전주비전대 교수▲김태호 전북대 교수&lt;BR&gt;&lt;BR&gt;◇공공예술분야 ▲김경인 브이아이랜드 소장▲김준기 CNS 스튜디오 소장 ▲박필제 가천의과대 교수&lt;BR&gt;&lt;BR&gt;◇정책분야 ▲한민호 문화관광부 공간문화팀장▲홍성용 모이건축디자인 대표▲이영욱 전주대 교수&lt;BR&gt;&lt;BR&gt;박대성기자 pds@newsis.com&lt;/DIV&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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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문거리 가로디자인 사업', '일상장소 문화공간' 우수사례 선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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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0-09T15:04:17Z</updated>
	    <published>2008-10-09T15:04: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1&gt;'동문거리 가로디자인 사업', '일상장소 문화공간' 우수사례 선정&lt;/H1&gt;
&lt;H4&gt;작성 : 2008-10-08 오후 7:29:46 / 수정 : 2008-10-08 오후 8:22:17&lt;/H4&gt;
&lt;H4&gt;도휘정(hjcastle@jjan.kr)&lt;/H4&gt;
&lt;P&gt;공공작업소 심심(대표 김병수)이 진행해 온 '2007 일상장소 문화생활공간화 지원사업-동문거리 가로디자인 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 '일상장소 문화생활공간화 대상' 우수사례로 선정됐다.&lt;/P&gt;
&lt;P&gt;'일상장소 문화생활공간화 지원사업'은 일상의 공간을 지역 주민을 위한 실질적인 문화생활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으로, 지역주민과 전문가, 지자체 공무원이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lt;/P&gt;
&lt;P&gt;문화체육관광부는 2006년부터 공모를 통해 '일상장소 문화생활공간화 지원사업'을 진행, 2006년에는 8개 지자체 9개 사업, 2007년에는 14개 지자체 17개 사업을 지원해 왔다. 2008년 상반기에는 현장방문 등을 통해 실태조사 및 평가를 실시했다.&lt;/P&gt;
&lt;P&gt;우수사례로 선정된 공공작업소 심심은 8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된 '일상장소 문화생활공간화 워크숍'에서 전주시 동문거리 가로디자인 사업에 대해 발표했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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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태명 문자조형연구소통해 한글디자인의 세계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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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10-09T15:02:55Z</updated>
	    <published>2008-10-09T15:02: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gt;&lt;FONT style=&quot;FONT-SIZE: 18pt; LETTER-SPACING: -1px&quot; face=굴림 color=#000033&gt;‘여태명 문자조형연구소’통해 한글디자인의 세계화 앞장&lt;/B&gt;&lt;/FONT&gt;&lt;/B&gt; &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color=#666666&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LETTER-SPACING: -1pt&quot;&gt;세계적 서예작가 ‘한국캘리그래피디자인협회’ 초대회장 취임&lt;/SPAN&gt;&lt;/B&gt;&lt;/FONT&gt; &lt;/TD&gt;&lt;/TR&gt;
&lt;TR&gt;
&lt;TD&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black&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조원 백보국 기자 &lt;/SPAN&gt;&lt;/FONT&gt;&lt;A class=con_link href=&quot;http://www.inewspeople.co.kr/news/formmail.php?mail=4572@inewspeople.co.kr&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FONT color=black&gt;4572@inewspeople.co.kr&lt;/SPAN&gt;&lt;/FONT&gt;&lt;/A&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600&gt;
&lt;DIV id=bodytext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55%&quot; color=#333333 align=&quot;justify&quot;&gt;&lt;STRONG&gt;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이란 뜻이 Calligraphy(캘리그래피)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서예 및 글자체의 상업용 디자인을 말한다. 캘리그래피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부로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생활에 밀접하게 관계된 생활디자인이다. 컴퓨터 글의 딱딱함이 아닌 손맛에서 느껴지는 인간미의 매력은 브랜드CI, TV자막, 신문, 책제목, 영화 타이틀 등 거의 모든 상품디자인에 사용되며 부각되고 있다. 한국인의 미의식, 정서, 해학적요소 등을 담는 작품으로 한국적 캘리그래피디자인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원광대학교 서예과 여태명(여태명문자조형연구소)교수를 만나 붓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보았다.&lt;/STRONG&gt; &lt;BR&gt;&lt;BR&gt;&lt;STRONG&gt;&lt;BR&gt;캘리그래피디자인 본격적 상용화 &lt;BR&gt;&lt;/STRONG&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7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id=userImg1703587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inewspeople.co.kr/news/photo/2860-2-4725.jpg&quot; 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703587)&quot;,200)'&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306f7f&gt;▲ 민체(民體)로 널리 알려진 서예가 효봉 여태명의 글씨는 친근감과 서민적 정서를 내포하고 있어 자유로우며 생동감이 넘친다.&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원광대학교 서예과 여태명 교수를 만나기 위해 호남고속도로에 올랐다. 전주톨게이트를 거치면 여태명 교수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일부러 익산IC(원광대)를 지나쳐 가기로 했다. 전주IC, 마치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성문)을 보는듯한 전주만의 지역적 특색이 잘 들어나 있는 상징으로 전주에 올 때면 항상 눈 여겨 보았던 환경디자인이다. 외부인들을 맞이하는 전주라고 쓰여 있는 현판의 글이 여태명 교수의 작품이란 걸 알아차린 순간, 이미 나 자신이 그의 작품을 생활에서 접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독일교통역사박물관, LA UCLA대학, 러시아 모스크바 동양미술관, 국립국악당 등 국내외 주요 대표기관에 소장된 그의 서예작품들은 물론, 캘리그래피디자인을 통해 생활 속의 다양한 상품디자인으로 동 분야의 최고의 대표 중진작가로 손꼽히는 여태명 교수를 만나보았다. &lt;BR&gt;국내를 대표하는 중진 서예가 효봉 여태명 교수는 지난달 14일 서울 President호텔에서 한국캘리그래피디자인협회의 초대회장에 취임 했다. 본 단체는 한국적 서예디자인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이미 몇 해 전부터 뜻이 있는 전국의 중진 교수 및 서예가, 디자이너, 디자인연구원 등(제자·선후배)이 모여 활동해 왔으며 이번 창단 식을 통해 한국의 캘리그래피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상용화하는데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lt;BR&gt;여 교수는 100여 명으로 구성된 본 회의 수장(임기 2년)으로 그간 시들어가는 우리 전통문화예술을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만든 국내를 대표하는 서예가이다. 이미 15여 년 전부터 한국적 캘리그라피의 문화·상업적인 무한한 가치를 인지하고 여태명 문자조형연구소(http://www.ytmart.net)를 통한 전통문자연구와 한글상품세계화에 앞장서 시대와 소통하는 작가로서 대외적으로 신망 받고 있다.&lt;BR&gt;여 교수는 “한국캘리그래피디자인협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생활에서 익숙하게 사용되었던 서예가 최근 제품디자인 및 광고, CI 등을 통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한국적 캘라그래피에 대한 올바른 정의와 이론 등이 정립되지 않아 외형적 발전에만 그치는 것에 대한 우려에 상응하고자 창립되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역점사업으로 첫째 가격조정을 통한 단가표 제정으로 대기업의 전국프랜차이즈 요식업과 작은 개인 소매점의 CI의 가격을 동일하게 책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어느 사업체든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격 기준을 정할 예정이다. 둘째 캘리그래피의 선진국인 일본 및 중국과의 교류의 장인 세미나와 워크숍을 추진하여 동 분야의 세계적 흐름과 초창기인 한국캘리그래피의 현주소에 맞는 모색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며 회원(디자인·서예가)전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셋째 서예 및 디자인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이론을 정립하고 협력방안 등을 모색해 캘리그래피가 한국적 요소를 갖춘 디자인상품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lt;BR&gt;&lt;BR&gt;&lt;STRONG&gt;여태명 문자조형연구소&lt;/STRONG&gt; &lt;BR&gt;여 교수는 전북 진안의 시골마을출신으로 유년시절부터 삶속에서 느껴온 서정적 경험들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특히 민화와 같은 해학적이면서도 우리내정서가 잘 들어나 있는 서민예술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의 자유분방한 사고를 통해 하나의 글씨체로 우리저편에 잠재되어있는 미담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이 같은 그의 작품세계는 민체에 관한 한글서예판본과 1998년 제작된 ‘효봉(호) 축제체’, ‘효봉 개똥이체’등에 잘 나타나 있으며 컴퓨터용 한글폰트 6종을 CD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고교시절 산업·기계화로 변화되는 사회에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정서가 가미된 예술분야가 서예라고 인식해온 여 교수는 대입당시 서예학과가 없어 동양화를 전공하며 서예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지켜온다.&lt;BR&gt;여 교수는 그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독일베르린, 프랑스 파리 등에서 10여 차례 문인화전을 가진 국내 대표 중진 서예가로 한글글꼴 개발, 서각 작품, 한글판본연구 등 다양한 실험정신과 새로운 조형적 시도로 서예의 영역을 확장시켜 한국캘리그래피디자인을 사회 곳곳에 전파되도록 앞장 서 왔다. 특히 민체(民體)로 널리 알려진 서예가 효봉 여태명의 글씨는 친근감과 서민적 정서를 내포하고 있어 자유로우며 생동감이 넘친다. &lt;B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7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id=userImg7316402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inewspeople.co.kr/news/photo/2860-2-4731.jpg&quot; 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316402)&quot;,200)'&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306f7f&gt;▲ 여 교수는1998년 제작된 ‘효봉 축제체’, ‘효봉 개똥이체’등과 같이 10년 만에 새로운 글씨체를 추가해 제작할 계획이며 몇 해 전부터 한옥, 한복, 한지, 한국음악, 한글 등 6가지의 제품군이 포함된 한국 브랜드를 세계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저서로는 한글 서예교본으로 궁체와 민체로 송강 정철의 &lt;관동별곡&gt;,&lt;사미인곡&gt;,&lt;속미인곡&gt;,&lt;성산별곡&gt;,&lt;장진주사&gt;의 내용을 수록하고, 송강가사 성주본 원전과 원문, 해설을 덧붙인 (한글서예 1999)와 작가 여태명의 작품집. 붓글씨, 동양화 그림, 유화 그림, 도자 기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원색의 사진으로 묶은 (여태명 예술실천 2000), 판본이 전해주는 미감과 더불어 ‘조웅전’만의 조형적인 특성이 조선후기 우리 민족적 정서와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조선후기 널리 유행했던 고소설 중 하나인 (조웅전 2003), 특히 KBS 전주방송총국 방송68주년기념 초대로 2006년 9월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린 전시를 책으로 엮은(사랑노래 그림전 2006)은 그림과 글씨, 화제가 서로 조화로운 어울림으로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작가 여태명의 작품세계와 정서를 쉽게 공감 할 수 있다.&lt;BR&gt;이외에도 여태명 문자조형연구소는 문자 연구를 통한 세계화된 상품디자인 개발과 한글(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제조명한 한글字典집필(한글고전)을 준비 중이며 디자인 소스 쇼핑몰(http://ytmartshop.goinsadong.com)을 운영해 개인, 프리랜서, 기업, 공공기관에 다양한 제휴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 경영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현 기업경영트렌드에 맞추어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군으로 캘리그래피 디자인을 구매할 수 있고 수용자에 맞춘 디자인 시안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는 향후 기업브랜드 가치 신장에 지대한 역할을 수행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분야이다. 또 1998년 제작된 ‘효봉 축제체’, ‘효봉 개똥이체’등과 같이 10년 만에 새로운 글씨체를 추가해 제작할 계획이며 몇 해 전부터 한옥, 한복, 한지, 한국음악, 한글 등 6가지의 제품군이 포함된 한국 브랜드를 세계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또 졸업 후 진로가 한정되어 있는 많은 제자·작가들에게 새로운 직업군의 비전을 제공하여 현실과 물질적 고충으로 재능을 포기해야만 했던 서예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서예를 전공하는 이들에겐 다양한 활동을 통해 후진들의 비전까지 고민·제공하는 여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건 행운이기도 하다.&lt;BR&gt;여 교수는 이미 서예가로서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자리에서 캘리그래피라는 상업예술을 시작 보수적인 서예 계에서 질타를 받기도 했었다. 허나 그는 물질적 욕구를 체우기 위한 상업적 목표가 아닌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 한국적 전통예술 발전과 생활고에 사라져가는 작가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공해주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국내전통예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고 결국 편견을 이겨내 수많은 작가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으로 한국캘리그래피디자인협회 초대회장으로 선임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lt;BR&gt;여 교수의 서예 계를 위한 희생과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 제작사(태흥영화사)측에서 여 교수의 작품에서 제목을 무단 사용하여 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요구, 승소하여 국내 서예의 지적 재산권을 처음으로 인정받은 판례로 사법연수원 판례집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여 교수는 개인의 작품 무단사용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넘어 우리 서예가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대표사안이었기에 힘든 법정 싸움을 진행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주시에서 올 3월부터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을 포함해 5월까지 두 달여 동안 전주시민을 대상으로 엽서쓰기 &lt;전주발, 엽서 한장&gt;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는데 이 엽서는 신석정 시인, 최명희 소설가, 안도현 시인, 임권택 영화감독 등 문화예술인들이 쓴 친필 메모가 함께한다. 마침 여태명 교수도 서예가로서 동참하게 된 이 행사에 여 교수와 임 감독은 다시 문자를 통해 만나는 인연이 되었다. &lt;BR&gt;또 지난 2월 전북도와 전주시가 지원한 '2007년 한스타일 기지화구축사업'의 일환으로 한글서체를 이용해 개발한 디자인 등을 활용한 시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전시회에 여태명 교수의 다양한 한글서체를 활용한 한지 침장류와 한지 패션의상, 한지 조명등, 한글 문양을 프린팅한 한지벽지 등 다양한 작품 50여 점이 전시되어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원이 현대에 어떻게 재발견되고 디자인되는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와 한글과 한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상품을 통해 한국 전통 문화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 여 교수의 작품들은 이외에도 제자(題字)와 각종책의 제호 및 TV 자막 등에 쓰이고 있다.NP&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WIDTH: 581px; HEIGHT: 27px&quot; cellSpacing=1 cellPadding=5 width=581 bgColor=orange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LINE-HEIGHT: 160%; 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quot; bgColor=whitesmoke&gt;&lt;STRONG&gt;&lt;FONT size=2&gt;-한국캘리그래피디자인협회 여태명 회장 인터뷰-&lt;BR&gt;(여태명문자조형연구소/원광대학교 서예과 교수)&lt;/FONT&gt;&lt;/STRONG&gt; &lt;BR&gt;&lt;B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70 align=righ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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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middle&gt;&lt;IMG id=userImg7292704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inewspeople.co.kr/news/photo/2860-2-4726.jpg&quot; 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292704)&quot;,200)'&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306f7f&gt;▲ 여 교수는 “우리나라 미술계는 이미 많이 발전 하였고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나아가 세계의 현대미술을 이끌어갈 작가들이 만들고 새로운 접목된 현대미술다운 전통요소를 갖춘 작가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소통이 되는 예술이 살아남는다.' &lt;BR&gt;서예는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분야이다. 처음 캘리그래피를 시작했을 시 선배들과 주위의 작가들에게 많은 질타도 받았다. 이단아, 사이비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미 인정받고 있던 동 분야 작가로서 상업화로의 도전은 큰 고충이 있었지만 서예를 계속하며 나 자신이 떳떳했기에 신념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lt;BR&gt;우리나라의 서예의 단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다. 작품이라 해서 액자 속에 담겨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리 속에서 혹은 창고에서 사장되지 않는 작품이 되려면 사회와의 교류가 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생활예술 즉 삶속에서의 작품이 완성되어야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랑을 글로 쓸 경우 활자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우나 다양한 의미와 표정을 지닌 캘리그래피를 통해 표출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캘리그래피는 상업화를 목적으로 두었지만 단지 글자를 쓰는 차원이 아닌 서예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영감과 철학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현대미술이다. &lt;BR&gt;제자들에게 항상 ‘마음을 열어라!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예술을 하려면 항상 생각이나 모든 관점이 닫혀 있어서는 안 된다. 방학이면 학생들에게 배낭여행을 권하여 ‘주위를 보고 느껴라! 사회를 느끼고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작가가 되어라!’는 가르침을 심어준다. 이는 예술도 사회와 융합하고 막힌 삶을 살아선 안 되며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가 누구고 나의 위치가 무언지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서예가 조선시대의 시대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서예를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는 있지만 이 시대의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시대의 관심에서 멀어져 과거 속으로 사장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영향도 받아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소통이 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 특히 서예 분야는 닫혀 있는 마음이 많이 있다. 과거의 예술은 그 시대의 예술이다. 이는 과거의 정신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 맞는 예술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뜻이다. 현실적 물질의 고난은 재능 있는 제자들이 작가의 길을 돌아서게 만들고 있다. 현실에 필요한 생활에 접목된 우리예술, 사회의 구성원들과 소통이 되는 전통예술이 되어야 아끼고 사랑받는 작품, 모두의 서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작가들만의 행사, 우리들만의 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턱이 높은 우리전통예술에 국민들이 쉽게 다가가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닌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예술인들이 나서서 현대인과 시대상에 맞는 작품 활동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lt;BR&gt;문화예술은 국가를 대표한다. 얼마 전 영어교육정책을 통해 안타까움이 많았다. 영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한글에 대해 너무 등한시 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국의 아이들이라면 한글을 제대로 아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과거 우리가 뜻도 모르는 영어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것처럼 문자란 단순한 글씨가 아니며 디자인이며 기호, 문향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특히 한글이야 말로 이러한 브랜드 상품화에 다방면으로 어울릴 훌륭한 소스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한글 연구를 앞으로도 여태명 문자조형연구소를 통해 계속적인 연구 및 한글 브랜드화에 매진할 것이다. 바람, 심지어 내리는 함박눈 소리도 다양하듯이 느낌이 있는 캘리그래피를 한글에 담아, 한국만의 아름다운 전통문화 알림은 물론, 우수한 브랜드상품으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무한한 상업적 부가가치의 국가인프라구축기반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R&gt;&lt;FONT size=2&gt;&lt;약력&gt;&lt;BR&gt;효봉 여태명 曉峰 余泰明 &lt;BR&gt;개인전 11회(전주 서울 북경 심양 파리 베를린)&lt;BR&gt;여태명+미셀시카(파리1대학 교수) 2인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lt;BR&gt;2001 한중일 수묵의 향기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lt;BR&gt;인간의 숲 초대전(광주비엔날레)&lt;BR&gt;2003 제1회 베이징비엔날레(중국미술관)&lt;BR&gt;논문: 한글민체에 나타난 미학과 예술화 방안(1994)외 10여편&lt;BR&gt;저서: 여태명 예술실천 및 한글서예판본집 10종&lt;BR&gt;폰트개발: 한글서체 6종 CD-R제작&lt;BR&gt;&lt;BR&gt;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순수미술학부 교수&lt;BR&gt;중국노신미술대학 객원교수&lt;BR&gt;한국민족서예인협회 회장&lt;BR&gt;문자조형아트센타 대표&lt;BR&gt;여태명문자조형연구소 소장&lt;BR&gt;한국캘리그래피 디자인협회 회장 &lt;BR&gt;&lt;BR&gt;작품소장처&lt;BR&gt;독일교통역사박물관 LA UCLA대학 모스크바동양미술관 일본관서한국문화원 칠례대사관외무성 하와이대학교 중국미술관 모스크바대학 국정원전북지부 전북도립미술관 국립국악당 전주지방법원 예술의전당서예박물관 국토관리청 KBS전주방송총국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전주박물관 원불교총부 특허법원 청와대 등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WEIGHT: normal;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11px 0px 7px; PADDING-TOP: 0px; FONT-STYLE: normal;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blog.naver.com/newspeople5/110034890151&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gt;‘여태명 문자조형연구소’통해 한글디자인의 세계화 앞장&lt;/FONT&gt;&lt;/A&gt;&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blog.naver.com/newspeople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gt;newspeople5&lt;/FONT&gt;&lt;/A&gt;&lt;/P&gt;&lt;/DIV&gt;&lt;/FONT&gt;&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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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슬링겐시 - 재활용 도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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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Madang STUIO</name>
	    </author>
	    <updated>2008-09-24T09:12:17Z</updated>
	    <published>2008-09-24T09:12: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아담한 전원도시&lt;BR&gt;&lt;BR&gt;우리는 슈투트가르트의 인접 도시인 Esslingen am Neckar 시청을 방문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인 상업지 환경개선 사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국장인 Frank Eberhard Scholz씨가 우리를 위해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1 시간의 브리핑과 2시간의 현장 안내를 해 주었다. 공식적인 방문이 아니었지만 낮선 나라에서 온 손님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최선을 다해 주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lt;BR&gt;&lt;BR&gt;에스링겐시는 12C경에 설립된 도시로 9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와 달리 옛 건축물이 거의 그대로 보전이 된 도시다. 그러나 건축물이 낡아 1970년대부터 역사 건축물의 보전을 목적으로 한 도시 정비계획을 세우고 시정부와 주정부, 국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1990년대에까지 복원 정비를 하였다. 비용의 40%는 공공에서 부담하고 60%는 민간이 부담하는 형식의 복원 재개발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관광수입과 경제활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lt;BR&gt;&lt;BR&gt;□시민문화공간으로 되살아난 공장건물- Das Dick&lt;BR&gt;&lt;BR&gt;휘슬러 밥솥의 생산지다. 이곳은 원래 작은 공업도시였으나 이제 모든 것이 변하여 작은 상업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네카강변에 위치한 기존의 공장지대를 전혀 다른 용도로 개조하여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lt;BR&gt;&lt;BR&gt;&quot;딕(Das Dick)&quot;이라 불리던 공장건물을 구입한 건축주는 시로부터 조건부로 불하를 받았던 것이다. 기존의 공장을 재생하여 사용하되 이곳이 공업도시로서 에슬렌겐의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였다는 사실을 어떤 형태로던 표현한다는 조건이었다.&lt;BR&gt;&lt;BR&gt;현상공모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하고 그의 디자인에 따라 3년여의 보수작업이 진행 된 결과, 낡은 공장은 영화관, 식당가, 쇼핑센터, 스포츠센터가 어우러진 전혀 새로운 시민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lt;BR&gt;&lt;BR&gt;옛 공장 건물과 건물사이를 계단이나 복도로 연결하고, 필요한 경우 천창을 설치하여 1층 바닥까지 빛이 들어오게 하며, 기존의 벽돌 벽체를 최대한 보존하고 있었다.&lt;BR&gt;&lt;BR&gt;주물공장은 천장에 기중기를 그대로 달아 놓은 채 1층과 2층을 맥주홀로 꾸며 놓았다. 지하 보일러실은 물탱크라더가 보이러실 기기 자체를 바닥 외부로 몰아놓고 가운데는 철판으로 깐 디스코텍도 퍽이나 인상적이었다.&lt;BR&gt;&lt;BR&gt;뿐만 아니라 건물과 건물사이의 마당을 이용하여 여러개 건물을 잇는 코아로 만들고 3층 높이의 수조를 만들어 다이빙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 옆으론 등산가를 위한 암벽도 교모하게 설치하여 스포츠용품 판매점과 적당히 어울리게 하였다.&lt;BR&gt;&lt;BR&gt;가장 큰 공장은 영화관으로 개조하였으며, 여기서 쇼핑, 문화활동, 다양한 음식점 등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안내하고 있었다.&lt;BR&gt;&lt;BR&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archilaw.org/contents/explo/expo7-1.gif&quot;&gt;&lt;/DIV&gt;&lt;/TD&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archilaw.org/contents/explo/expo7-2.gif&quot;&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그림 1] 새롭게 정비된 다스 딕&lt;/DIV&gt;&lt;/TD&gt;
&lt;TD&gt;
&lt;DIV align=center&gt;[그림 2] 수조와 암벽타기 벽&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gt;
&lt;DIV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archilaw.org/contents/explo/expo7-3.gif&quot;&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gt;
&lt;DIV align=center&gt;[그림 3] 지붕을 덮어 코아공간으로 바뀐 중정&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R&gt;□ 주민과 함께 만드는 거리 - 반호프 쉬트라세(Bahnhof Strase)&lt;BR&gt;&lt;BR&gt;우리의 여행목표를 이 작은 도시에서 발견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기성상업지 환경개선사업을 여하히 할 것인가를 위해 맨하탄, 파리를 거쳐 슈투트가르트까지 오게된 것이었다. 재생도시의 사례를 발견하기 하였지만 우리가 목표한 그것과 부합되는 사례가 바로 에슬렌겐시의 반호프 쉬트라세에서 발견한 것이었다.&lt;BR&gt;&lt;BR&gt;원래는 이곳의 방문계획은 없었다. 우리의 여행목적을 들은 슈투트가르트대학의 트립교수로부터 제의를 받아 다른 계획을 포기하고 방문하였다.&lt;BR&gt;&lt;BR&gt;에슬링겐역(Bahnhof) 앞에 폭 25미터, 길이 600미터의 길로 이루어진 반호프 쉬트라세는 구도심부로 진입하는 길 몫을 차지하는 곳임에도 상업활동이 지지부진하여 관광객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지역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뭉쳐서 시 정부로 하여금 환경정비계획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였다. 물론 필요하다면 그 비용은 주민들 스스로 부담하겠다는 조건을 달고서 말이다.&lt;BR&gt;&lt;BR&gt;시 정부는 슈트트가르트 대학의 마이클 트립교수팀에게 이일을 맞겼다. 1여년을 넘게 지역주민과 에슬링겐시 도시계획국, 용역팀이 수차례의 협의를 거친 뒤 계획안을 확정한 것은 1988년 10월의 일이었다.&lt;BR&gt;&lt;BR&gt;개개 건축물에 대한 입면개보수 방안을 비롯하여 거리환경 조성안을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서 주민들에게 납득시켰다. 어려운 기호나 문자로 만든 계획안이 아니라 일반 보편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으로 개선후의 모습을 이해하고 따르게 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로 인한 시간 노력이 적지 않게 들었을 것이다.&lt;BR&gt;&lt;BR&gt;마스터플랜이 수립된 뒤에도 주민과의 협의는 계속되었다. 당초 차 없는 거리로 설계되었던 계획내용이 주민과의 의견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일방통행과 부분적인 주차허용으로 변경되었고, 보도포장재의 선정작업도 몇 단계의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수입한 재료로 결정되었다. 실제 포장재 모델을 만들어 놓고 6개월간 시민들로 하여금 결정을 하도록 하여 결정하였다는 점은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lt;BR&gt;&lt;BR&gt;확정된 계획에 따라 1999년 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축제에 맞추어 1단계 공사의 완공을 목표로 현재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 서울에도 이처럼 멋진 절차와 과정을 거친 도시살리기를 한번 멋들어지게 해보는 거야! 다짐을 하면서 에슬렌겐시를 떠났다.(1999.9).&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archilaw.org/contents/explo/expo7-4.gif&quot;&gt;&lt;/DIV&gt;&lt;/TD&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archilaw.org/contents/explo/expo7-5.gif&quot;&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그림 4] 거리 전경&lt;/DIV&gt;&lt;/TD&gt;
&lt;TD&gt;
&lt;DIV align=center&gt;[그림 5] 상인이 기증한 가로수&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archilaw.org/contents/explo/expo7-6.gif&quot; width=300&gt;&lt;/DIV&gt;&lt;/TD&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archilaw.org/contents/explo/expo7-7.gif&quot; width=300&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그림 6] 기증된 기로수임을 알리는 표지판&lt;/DIV&gt;&lt;/TD&gt;
&lt;TD&gt;
&lt;DIV align=center&gt;[그림 7] 시민의견 수렴을 위해 전시해둔 포장재&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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