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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과 생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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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23:40:2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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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클림트의 황금빛 유혹, 오스트리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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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23:40:23Z</updated>
	    <published>2009-11-08T23:40: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headline_article&gt;
&lt;P class=sub_tit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잘자흐 강가에서 모차르트를 들으며 감성경영을 생각하다&lt;/STRONG&gt;&lt;/SPAN&gt;&lt;/P&gt;
&lt;H3 class=top_tit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클림트의 황금빛 유혹, 오스트리아&lt;/SPAN&gt;&lt;/H3&gt;&lt;!--p class=&quot;top_title2&quot;&gt;자원의 보고&lt;/p&gt;
		&lt;p class=&quot;top_title3&quot;&gt;자원의 보고&lt;/p--&gt;
&lt;DIV class=info_article&gt;&lt;SPAN class=tim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코노믹리뷰 | 2009년 11월 04일 15시 29분&lt;/SPAN&gt;&lt;/SPAN&gt;&lt;SPAN class=hit&gt;&lt;/SPAN&gt;&lt;/DIV&gt;&lt;/DIV&gt;&lt;!-- //타이틀--&gt;&lt;!-- 기사뷰--&gt;&lt;!--h4&gt;타이틀&lt;/h4--&gt;
&lt;DIV class=article_view&gt;
&lt;TABLE class=imgcenter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rc=&quot;http://cphoto.asiae.co.kr/listimglink/6/2009102813574323397_3.jpg&quot; width=540 border=0&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DIV class=article_view&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올 초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화려한 황금빛을 발산하며 사람들을 유혹했던 그림이 있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황금빛 배경 속에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lt;키스&gt;와 매혹적인 팜므파탈을 보여줬던 &lt;유디트&gt; 등,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작품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들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21세기 마지막 단독 전시회를 열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클림트의 작품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미술관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있는 작품 중 110여점이 지난봄 한국에서 전시됐는데, 그 중 유일하게 &lt;키스&gt;라는 작품만은 벨베데레 궁전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스트리아인들뿐 아니라 각국의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벨베데레 궁전을 지키고 있는 클림트의 &lt;키스&gt;는 아직까지 오스트리아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직 오스트리아에서만 원작을 볼 수 있다고 하니, 황홀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면 올겨울 오스트리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lt;/SPAN&gt;&lt;BR&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음악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곳&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article_view&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스트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음악과 예술의 나라’라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에는 모차르트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고딕과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들은 화려했던 그들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비롯한 많은 미술품들은 끊임없이 여행객들로 하여금 오스트리아를 찾도록 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럽의 보석함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는 동유럽의 관문으로서, 알프스로 향하는 길목으로서 여행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숲과 왈츠, 그리고 음악의 도시로 유명한 비엔나는 중앙 유럽의 알프스 산줄기가 끊어지면서 비엔나 숲을 이루고 있으며, 노래와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다뉴브강은 비엔나의 구 시가지를 끼고 흐르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비엔나의 대표 관광지로는 쉔부른 궁전을 들 수 있다. ‘아름다운 분수’를 뜻하는 쉔부른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되었는데, 바로크 양식의 외관과 로코코 양식의 내부로 이뤄져 있어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풍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곳은 1569년 착공하여 1696년 재건, 1700년에 이르러서야 완공되었는데, 궁전 내부에는 무려 1441개의 방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45개의 방만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은 미술관과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되고 있으며, 여름에는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가 개최되고 있기도 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곳을 꼽으라 한다면 비엔나의 상징인 슈테판 성당을 꼽을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비엔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이곳은 12세기에 세워진 오스트리아 최고의 고딕 성당이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137m에 이르는 뾰족한 첨탑은 시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어 비엔나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3만개의 벽돌과 지붕이 모자이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은 모차르트가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르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키스&gt;와 &lt;사운드 오브 뮤직&gt;, 그리고 모차르트&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article_view&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벨베데레 궁전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lt;키스&gt;를 볼 수 있다. 이 궁전은 오스트리아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하나로 오스트리아를 침략한 투르크 군대를 무찌른 영웅 오이겐 공의 여름 별궁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은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중앙의 프랑스풍 정원을 중심으로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어져 있고, 클림트의 &lt;키스&gt; 작품은 상궁에 보관 중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쟁과 침략이 잦았음에도 클림트의 작품만이 유독 지금까지 분실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클림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히틀러 덕분이라고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영화 &lt;사운드 오브 뮤직&gt;의 배경지이며,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잘츠부르크는 음악이나 영화와 관련한 명소들이 유독 많이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잘츠부르크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잘자흐 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주로 구시가지에 주요 관광지들이 몰려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잘츠부르크의 얼굴로 불리며 구시가지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는 호엔 잘츠부르크성과 모차르트가 태어나 17세까지 살았던 그의 생가, 고풍스런 골목길에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을 파는 게트라이데 거리까지 눈길 돌리는 곳마다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사운드 오브 뮤직&gt;에 등장하는 주요 관광지로는 마리아가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던 미라벨 정원과 모차르트 다리, 헬브룬 궁전, 마리아와 트랩 대령이 결혼식을 올린 잘츠캄머구트 등을 꼽을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한 시내뿐 아니라 근교의 마을들은 마치 동화 속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워 여행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lt;/SPAN&gt;&lt;BR&gt;&lt;/DIV&gt;
&lt;DIV class=article_view&gt;
&lt;TABLE class=imgcenter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rc=&quot;http://cphoto.asiae.co.kr/listimglink/6/2009102813574323397_7.jpg&quot; width=540 border=0&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DIV class=article_view&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배문자 자유투어 여행 마스터(blog.naver.com/cnltk1)&lt;/SPAN&gt;&lt;/DIV&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오스트리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스트리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유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럽&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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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토요갤러리] 칸바일러씨의 초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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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인의 사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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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20:31:09Z</updated>
	    <published>2009-11-08T20:31:0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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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class=font1 id=articleTit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토요갤러리] 칸바일러씨의 초상&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매일신문 alt=매일신문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88.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7 11:48&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DIV&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 id=articleBody&gt;
&lt;DIV id=keyword_layer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gt;&lt;/DIV&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0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2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height=423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88/2009/11/07/20091104_143856000.jpg&quot; width=300 border=0&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목: 칸바일러씨의 초상&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가: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작연도: 1910년&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재료: 캔버스 위에 유채&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크기: 100 × 61.5㎝&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소재지: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난 세기의 작가들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면 몰라도 가장 유명한 작가를 들라면 대부분 피카소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피카소라는 인물은 현대미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미술사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가 주도한 미술운동의 명칭인 입체파(Cubism)는 1908년 마티스(Matisse), 브라크(Braque)가 그린 &lt;에스타크 풍경&gt;이란 연작을 ‘조그만 입체의 덩어리’라고 다소 경멸적인 투로 비평한 데서 유래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입체파의 탄생에는 흑인 조각의 영향 외에 무엇보다도 ‘자연을 원추, 원통, 구(球)로 파악한다’는 세잔의 주장이 직접적인 발단이 되는데 물론 그 이론적 기원은 멀리 피타고라스의 기하학적 세계관에까지 이른다. 존재의 본질적 형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입체파 화가들은 빛의 속성에 불과한 색채는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시키는 대신, 복수(複數)의 시점(視點)으로 대상을 분석, 분해한 다음 그 각 단면을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하여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Tableau)로 재구성하는 극단적인 주지주의(主知主義)적 작업을 밀고 나갔다. 따라서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사용한 순간적인 현실묘사는 거부되었으며, 이에 대한 당시 프랑스화단의 비난도 극단적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작품은 입체파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석적 큐비즘 시대의 대표작으로서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 볼 수 없을 때까지 형상이 붕괴되고 색채의 다양성이 포기되는 과정이 그 정점에 달하였던 시대의 그림인데 역설적이게도 피카소는 초상화를 제작할 때 모델이 항상 화폭 앞에 있기를 고집하였다. 피카소가 약간의 선과 기하학적 평면의 조각(facet)으로 모델의 형상을 분석하는 그 긴 시간 동안 칸바일러씨는 화폭 앞에서 얌전히 포즈를 취하고 있어야만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화면은 수직과 수평의 선들, 그리고 약간의 사선으로 골격을 이루고 있으며 마치 움직이는 듯한 작은 조각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평가인 로랑 팡로즈(Roland Penrose)는 이를 ‘각각의 조각들은 그 이웃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고 묘사한다. 화면 공간을 평면적으로 분석하면 중심부의 조각들이 밀도가 높고 선명한 반면 가장자리로 갈수록 흐리고 밀도도 낮아지는데 여기서 화면 구조에 관한 고전주의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깊이의 차원에서는 약간의 요철(凹凸)이 있는 평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평면화(平面化)는 현대 회화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그림을 읽는 우리의 시선은 그 복잡한 조각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눈, 코, 단정하게 빗질한 머리카락, 시곗줄, 겹쳐진 손 등과 같은 비교적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표지점에서 다시 길을 찾고는 한다. 이러한 충격적인 리얼리티-비록 사실적인 방법에 의한 재현이 아닐지라도-를 읽는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권기준 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lt;/SPAN&gt;&lt;BR&gt;&lt;/DIV&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피카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피카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권기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권기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아트 인스티튜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트 인스티튜트&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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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의 유럽’ 8년 노력 결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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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13:06:3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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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3 class=font1 id=articleTit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하나의 유럽’ 8년 노력 결실&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서울신문 alt=서울신문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81.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02:48&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최종수정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03:21&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A class=btn onclick='click_tagging(&quot;http://rd.naver.com/i:1000015797_081/c:43742/t:1?http://news.naver.com/link_button&quot;)' href=&quot;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1104017008&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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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2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height=375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81/2009/11/04/1257272461.870723_SSI_20091104012200_V.jpg&quot; width=520 border=0&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울신문]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이 리스본 조약에 3일 서명함에 따라 이제 남은 장애물은 없다. 60년 유럽 통합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길 일만 남았다. 지난 2001년 12월 정상회의에서 유럽연합(EU) 정치통합을 강화 논의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기나긴 마라톤의 결승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EU 27개국 가운데 올해까지리스 본 조약 비준을 마치지 못한 국가는 체코와 아일랜드, 폴란드 뿐이었지만 지난 10월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로 비준동의안이 통과됐고 같은 달에는 폴란드도 비준절차가 마무리됐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클라우스 대통령이 리스본 조약 비준안 서명을 계속 미룬 이유는 두가지다. 리스본 조약의 ‘기본권조항’이 체코에 치명적인 사회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과 체코 헌재가 아직 리스본 조약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본권조항은 유럽헌법이 EU 회원국의 국내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에 대한 보복조치로 수덴탄란트 지역의 독일 거주민 250만명을 추방했는데 만일 이 조항이 발효되면 EU 회원국 시민들의 재산권이 더 존중되는 법리 문제가 발생, 대규모 재산 반환 소송이 예상됐다. 체코 정부가 기본권조항의 예외를 주장해 온 이유다. 리스본 조약이 체코 헌법과 상충하지 않는다며 상원의원 17명이 제기한 위헌심판 청구도 유럽 통화 회의론자였던 클라우스 대통령에게 비준 지연을 위한 좋은 명분을 제공해줬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지만 EU 회원국들이 지난달 예외를 인정하는 문구를 삽입한다는 제안을 만장일치로 수용, 체코의 고집은 수그러졌다. 특히 헌재가 위험심판 청구에 대해 기각을 결정하자 체코의 ‘마지막 명분’도 사라지게 됐다. 결국 클라우스 대통령은 합헌결정 몇시간만에 비준안을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스본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조약을 근거로 신설되는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선출 및 새 집행위원단 구성에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EU 정상들은 조약 발효에 앞서 이 문제를 마무리하고자 이달 중순쯤 정상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호세 마누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은 “신속하게 지명이 이뤄질수 있기를 희망하며 회원국으로부터 후보 명단이 넘겨지면 집행위원단 구성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이경원기자 &lt;/SPAN&gt;&lt;A href=&quot;mailto:leekw@seoul.co.kr&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eekw@seoul.co.kr&lt;/SPAN&gt;&lt;/FONT&gt;&lt;/U&gt;&lt;/A&gt;&lt;BR&gt;&lt;/DIV&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EU&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EU&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유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럽&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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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27] 도미에의 풍자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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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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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02:36:47Z</updated>
	    <published>2009-11-06T02:36: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27] 도미에의 풍자화&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조선일보 alt=조선일보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23.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03:24&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간의 어리석음이나 악덕을 신랄하고 재치 있게 그려 보여주는 풍자화의 전통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그 주된 대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 또는 정치인들이었다. 화산재 속에 파묻혔다가 발굴된 고대 폼페이 유적에서도 그 시대 정치인과 연관된 정치 풍자화가 발견되었고, 중세에도 인간의 탐욕과 욕망, 그리고 나태를 시각 매체를 통해 풍자하는 전통은 이어졌다. 그러나 정치적 풍자 미술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신문과 잡지 등 인쇄 매체가 널리 보급되는 근대기에 들어서였다. 18세기 말의 대혁명 이후 크고 작은 혁명이 잇따르면서 정치적 진통을 겪고 있던 &lt;/SPAN&gt;&lt;U&gt;&lt;FONT color=#0066cc&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프랑스&lt;/SPAN&gt;&lt;/FONT&gt;&lt;/U&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최고의 풍자화가는 오노레 도미에(1808~1879)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30년 개혁을 원하던 진보주의자들의 기대와 달리 루이 필립이 왕위에 오르자 도미에는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의 12월 3일자에 '가르강튀아 같은 필립'이라는 제목의 정치 삽화를 실었다. 루이 필립은 16세기 소설의 주인공인, 식욕이 왕성했던 거인 왕 가르강튀아처럼 뚱뚱한 거인으로 그려졌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DIV class=center_img&gt;
&lt;DL style=&quot;WIDTH: 480px&quot;&gt;
&lt;D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id=artImg1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1/03/2009110301610_0.jpg&quot; width=480 height=353&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
&lt;D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가르강튀아 같은 필립’ &lt;/SPAN&gt;&lt;/DT&gt;&lt;/DL&gt;&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는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돈과 경사로로 올라오는 뇌물을 마구 집어삼키고 있다. 그의 머리는 서양 배와 같이 생겼는데, 프랑스에서 돌대가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경사대 아래에는 떨어지는 돈을 주우려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배경에는 루이 필립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그를 찬양하고 있다. 프랑스 당국은 왕을 모독하고 정부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 죄로 도미에에게 6개월 감옥 형을 선고하였다. '라 카리카튀르'지도 1835년에 폐간되고 말았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미에는 그 후 일간지 '르 샤리바리'에 삽화를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검열이 심해지면서 정치 풍자보다는 파리의 소시민들 생활의 단편에 대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풍자화를 그렸고, 파리 시민들은 그의 풍자화를 보고 재미있어 했다. 생전에 미술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몇 개의 구불구불한 선만으로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그의 석판화들은 오늘날 미술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도미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도미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김영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영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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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 관련 기사 모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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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author>
	    <updated>2009-11-06T02:09:55Z</updated>
	    <published>2009-11-06T02:09: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월드이슈]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lt;/SPAN&gt;&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서울신문 alt=서울신문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81.gif&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02:48&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최종수정 &lt;/SPAN&gt;&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03:06&lt;/SPAN&gt;&lt;/SPAN&gt;&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81/2009/11/04/1257271562.216342_SSI_20091104012617_V.jpg&quot; width=520 height=109&gt;&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서독을 갈라 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됐다. 1989년 11월9일 견고했던 장벽의 침몰은 미국과 소련의 화해, 나아가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고 반세기를 풍미했던 ‘냉전’은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지구촌은 환호했고 세계는 장밋빛 미래에 도취됐다. 하지만 통일의 ‘빛’은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정작 독일인들은 지난 20년간 고된 통일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선거로 보는 독일 통일의 그림자&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통일 독일이 6차례 동안 치러왔던 선거의 굴곡은 통독의 단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990년 12월 독일은 첫번째 총선을 치른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서독 총리 출신의 헬무트 콜이 이끄는 중도우파의 기민당(CDU)-기사당(CDU) 연합은 43.8%의 의석수를 확보, 압승을 거뒀다. 동독의 주민들은 독재 정권으로부터 그들을 탈출시켜 준 기민당 정권에 열광했다. 기민당의 압승은 1994년 다음 총선까지 계속됐다. 반면 중도좌파 성향의 사민당(SDP)은 1957년 선거 이래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하지만 동독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서독 지역과 동독 지역의 빈부 격차 문제가 주요인이었다. 결국 1998년 총선에서는 동독 주민들의 표심에 힘입어 사민당이 40.9%의 의석을 얻어 1당이 됐다. 이전 서독에서 사민당이 기민당을 이긴 것은 1972년 한번뿐이었다. 2002년 선거에서는 두 당이 동률을 이뤘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2005년과 2009년 선거에서는 ‘유럽 보수화’의 바람을 타고 기민당이 1당 자리를 탈환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승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기민당과 사민당이 집권하는 동안 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2009년 선거에서는 기민당이 33.8%, 사민당이 23.0%의 의석을 확보, 두당 모두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좌파당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의석수의 11.9%를 확보, 역대 최고의 성과를 올렸다. 기존 두 거대 정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동독 주민들의 표심이 ‘부의 재분배’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좌파당으로 몰린 것이다. 2009년 지역별 지역구 의석 분포를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좌파당은 독일 전체에서 제4당으로, 동독 지역에서는 제2당으로 발돋움했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제적 수준은 나아졌지만…&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이런 총선의 추이는 독일의 ‘통일 후유증’을 대변하고 있다. 서독 지역에 비해 낙후된 동독 경제 인프라는 동독 주민들의 ‘통일 환상’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여기에 서독 지역보다 2배 이상 높은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더 큰 문제를 야기시켰다. 물론 상황은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 독일은 20년동안 통일 비용으로 매년 1000억(약 175조원)~1400억유로를 지출, 모두 1조 2000억유로를 쏟아부었다. ‘독일 통일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08년 동독지역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4.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독(9.1%)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동독 지역의 실업률도 감소하고 있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동독과 서독의 전체적 경제수준을 단순 비교해 ‘양적’으로만 비교, 판단할 수만은 없다. 동독 지역이 ‘질적’으로 얼마나 건강해졌는지를 측정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실제 동독의 경제 발전은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과 같은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동독 주민들이 대거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인구 감소는 동독 지역에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통일 뒤 20년 동안 작센 지역이 80여만명이 감소한 것을 비롯해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지역은 30만명, 브란덴부르크 지역은 14만명이 줄어드는 등 20년새 동독 지역의 인구는 200만명 이상이 감소했다. 동독의 경제 성장의 이면에 또 다른 사회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셈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특히 젊은 여성들이 돈벌이를 위해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베를린 인구개발연구소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5년까지 30세 이하 동독지역 여성 40만명이 서독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남성의 경우는 27만 3000명에 불과했다. 결국 출산율 문제는 계속 심각해져 인구가 급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등국민·富이동…인식 간극 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인식의 간극도 여전히 크다. 지난 9월 독일의 포르자연구소가 1002명의 독일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명 가운데 1명이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서독 주민의 16%, 동독 주민의 10%가 ‘차라리 과거가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로이터통신은 이에 대해 “동독인들은 열악한 경제상황에, 서독인들은 많은 부가 동독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월 독일 건설교통부가 독일인 12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비슷하다. ‘통일 당시 희망했던 일 가운데 현재 실현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고 답한 동독 주민은 37%로 서독주민(54%)에 비해 훨씬 낮았다. 동독 주민들이 아직도 ‘2등 국민’이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최근 “독일이 비교적 통일 후유증을 잘 극복하고 있다. 과감한 투자로 동독 지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동·서 빈부 격차는 조금씩 해소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도 “경제적 격차는 좁아지고 있지만 인식의 장벽은 그만큼 해소되지 않고 있어 보다 정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BR&gt;&lt;BR clear=al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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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81/2009/11/04/1257271562.276100_SSI_20091104012630_V.jpg&quot; width=448 height=679&gt;&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경원기자 &lt;/SPAN&gt;&lt;/SPAN&gt;&lt;A href=&quot;mailto:leekw@seoul.co.kr&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eekw@seoul.co.kr&lt;/SPAN&gt;&lt;/SPAN&gt;&lt;/FONT&gt;&lt;/U&gt;&lt;/A&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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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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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냉전의 벽 허물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다&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경향신문 alt=경향신문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32.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5 18:28&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4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32/2009/11/05/20091106.01100107000002.01L.jpg&quot; width=540 height=343&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FONT-FAMILY: '돋움'; COLOR: #666; FONT-SIZE: 11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89년 11월9일 동독은 28년 만에 서베를린과 서독으로 통하는 국경을 개방했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많은 주민이 베를린 장벽위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 SUB_TITLE_START--&gt;&lt;STRONG style=&quot;COLOR: #6b6b6b&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ㆍ‘통일독일’ 유럽통합 가속화 세계질서 재편&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 style=&quot;COLOR: #6b6b6b&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ㆍ연방공화국 탄생 60돌 ‘겹경사’ 베를린 활기&lt;/SPAN&gt;&lt;/STRONG&gt;&lt;!-- SUB_TITLE_END--&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우어팔(Mauerfall)” 독일인들은 20년 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사건을 이렇게 부른다. ‘마우어(Mauer)’는 ‘벽’ ‘담’을 의미하고 ‘팔(Fall)’은 ‘쓰러짐’ ‘붕괴’를 의미한다. 이 ‘장벽 붕괴’가 급작스럽게 발생한 지 이제 20년을 맞고 있다. 독일인들에게, 그리고 한국인과 지구촌의 모든 사람에게 11월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로 기억돼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89년 11월9일 동독인들과 서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을 눈앞에 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다수의 사람은 그때 과거 28년 동안 인간의 접근을 막았던 베를린 장벽에 올라갔다. 독일인들은 베를린 장벽 위에서 춤을 추었고, 장벽의 벽돌을 떼어내 기념물로 삼기도 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세계인의 눈길을 이곳 베를린으로 집중시켰다. 당시 신문들은 “동 베를린인들이 한밤중에 쿠르퓌르스텐담 위에서 춤추고 있다” “베를린은 다시 (통합된) 베를린이 됐다” “독일은 환희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우리는 손을 뻗어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 등의 제목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의 감격을 전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장벽 붕괴 20년, 그 의미는&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년은 독일인들에게 2중의 의미를 갖는다. 독일연방공화국 탄생 6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60년 전인 49년 5월23일 독일인들은 그들의 헌법인 기본법(그룬트게제츠·Grundgesetz)을 공표함으로써 독일연방공화국을 탄생시켰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독일의 최근 역사에서 2차 대전 후 경제 기적에서부터 89년 냉전종식까지는 역사적 대전환의 시기였다. 이 기간 중 신생 독일연방공화국은 서방의 민주주의를 도입해 뿌리를 내리게 했고, 독일인들은 정치와 사회를 지속적으로 바꾸어 갔다. 이 시기 빌리 브란트는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슬로건 아래 동유럽 개방을 유도했다. 결국 동독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소련 및 동유럽의 개혁운동에 힘입어 철의 장막은 종식됐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장벽이 붕괴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 베를린은 활력 넘치는 통일 독일의 새로운 수도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 베를린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장벽은 이제 흔적만 남아 있다. 역사가 남긴 흔적을 굳이 보고 싶다면 베를린의 ‘미테’ 구역에서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방문객들은 또한 과거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자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베를린 장벽의 길’을 걸어볼 수도 있다. 독일의 기본법은 서문에서 “통합된 유럽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20년 전 그날로 돌아가면&lt;/SPAN&gt;&lt;BR&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4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32/2009/11/05/20091106.01100107000002.02L.jpg&quot; width=540 height=213&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년 전 11월9일 저녁 장벽 붕괴의 상황을 다시 재현해 보자. 동독의 귄터 샤보브스키 정치국원은 이날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국은 (서독으로 가는) 여행 제한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이것은 그가 정치국의 결정을 잘못 이해한 결과였다. 하지만 발표 직후 수천명의 동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고, 국경 경비대원들은 분명한 지시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으로 통하는 여러 검문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런 식으로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열렸고, 동·서독 분단은 드디어 종식됐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렇다면 단순한 인간적 실수로 인해 굳건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까. 베를린 장벽 붕괴가 있기 몇 주 전부터 사실 다수의 동독인은 헝가리와 체코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했다. 장벽 붕괴 두 달 전인 89년 9월 동독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키르헤 앞에서는 시민들이 운집해 동독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을 표출했다. 이때쯤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해 12월 동독 시민들은 정치의 민주화를 요구했고, 점점 더 많은 동독인은 “서독과 통합하라”면서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독인들은 90년 3월18일 국민투표를 통해 서독과의 신속한 통일을 지지했다. 이어 90년 9월 동·서독과 4강국은 합의(2+4 협정) 과정을 거쳐 독일인들의 통일 희망은 관계국들의 지지도 얻었다. 마침내 통일 독일은 99년 연방의회와 연방정부를 독일 서부의 본에서 동부에 위치한 베를린으로 옮겨 명실상부한 통일을 실현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통일 독일 무엇을 남겼나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사건 ‘독일 통일’은 세계화의 흐름을 타면서 동시에 세계적 발전과 변화를 이끌었다. 독일은 2000년 하노버에서 세계박람회를 열었고, 2006년 월드컵 대회를 개최해 세계인의 이목을 독일로 끌어들였다. 유럽연합은 2004년과 2007년의 결정을 통해 회원국을 12개국에서 27개국으로 크게 늘렸다. 연방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어젠다 2010’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복지제도의 개선과 실업문제 해결을 추진했다. 2005년 11월 독일에서는 동독 출신의 정치인 앙겔라 메르켈이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총리가 됐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가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됐다. 메르켈은 최근 선거 승리를 통해 연임에 성공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시카 피셔 전 독일 부총리 겸 외무장관(재임 98~2005·녹색당원)은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칼럼을 통해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냉전체제의 붕괴뿐만 아니라 세계화라는 새로운 흐름의 시작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피셔 전 장관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수혜자로 단연 중국과 인도를 꼽았다. 피셔는 “이 두 나라가 점차 세계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속도를 결정하고 있다. G8은 이제 G20로 대체됐고, G20의 근간은 G2(미국과 중국)에 의해 좌우되는 새로운 세계질서”라고 말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 장벽의 무너짐은 동·서독 통합, 유럽 통합, 나아가 세계화 추세를 가속화하고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근원적 동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20년 전 장벽의 벽돌을 집어들던 독일인들도 독일 통일이 이런 범위의 영향력을 끼칠 줄은 상상도 못했을지 모른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설원태 선임기자&gt;&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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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 장벽 무너진 지 20년 됐지만… 아직도 사는 게 팍팍한 동유럽&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국민일보 alt=국민일보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05.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5 18:25&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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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31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05/2009/11/05/091105_10_1.jpg&quot; width=531 height=306&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제 좋아졌지만 빈부격차·부패 만연… 대부분 국민들 “지금이 더 살기 힘들어”&lt;/SPAN&gt;&lt;/B&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폴란드 그단스크 시장(市長) 파웰 아다모위츠에게 20년 전 동유럽을 휩쓸었던 혁명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그단스크는 1980년대 폴란드 변혁운동의 구심이자 89년 동유럽 공산권에서 최초로 체제 전환을 성공시킨 ‘솔리다르노시치’(연대노조)의 고향이다. 80년대 말 노조원으로 숨어서 반체제 신문을 만들던 그는 20년 전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환호성을 질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공산주의의 어두운 잔재는 여전히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아다모위츠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생활은 무척 좋아졌다.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집과 자동차. 하지만 공동체 개념은 여전히 약하다”고 말했다. 동유럽은 체제 전환을 이뤘지만 빈부격차와 기득권층의 부패가 또 다른 사회문제로 떠올랐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 보도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 장벽 붕괴로 촉발된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은 외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주요 국가에선 더 이상 가난하던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빵 한 조각을 배급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모습이나 진열장이 텅 빈 상점은 옛 이야기가 됐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러한 변화는 동유럽 국가들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앞다퉈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경제지표만 봐도 동유럽의 경제성장은 엄청나다. 89년 국내총생산(GDP)을 100으로 했을 때 2008년 폴란드의 GDP는 178, 슬로바키아는 164, 체코는 142 등으로 성장했다. 최근까지 매년 5%씩 성장한 것으로 서유럽 국가(3%)와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평균 수명도 75세로 20년 사이 5세 정도 늘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지난 20년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임금 불균형, 정치권과 정책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주요 원인이다. 공산주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공산주의자인 알렉산드로 크바스니에프스키가 1995∼2005년 폴란드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각국 정부는 개혁을 다짐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여전히 부패와 싸우고 있다. 부패감시 국제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동유럽 국가의 청렴도는 10년 새 오히려 떨어졌다. 체코는 99년 39위에서 지난해 45위로 떨어졌고, 폴란드는 44위에서 58위로, 불가리아는 63위에서 72위로 추락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P통신이 ‘사회주의 체제와 현재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살기 더 좋은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체코와 폴란드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 국민들이 “지금이 살기 더 힘들다”고 말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문가들은 먹고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어 동유럽인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승주 기자 &lt;/SPAN&gt;&lt;A href=&quot;mailto:sjhan@kmib.co.k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jhan@kmib.co.kr&lt;/SPAN&gt;&lt;/A&gt;&lt;BR&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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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경제통합 실패… 동·서독 주민간 ‘마음의 장벽’ 높아만 가&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세계일보 alt=세계일보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22.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19:31&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최종수정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23:40&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조6000억유로 쓰고도 소득격차 해소 못해&lt;/SPAN&gt;&lt;BR&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독 66% “우린 2등 시민” 감정의 골 깊어져&lt;/SPAN&gt;&lt;BR&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문가 “한국, 독일 전철 밟지 말아야” 충고&lt;/SPAN&gt;&lt;/B&gt;&lt;BR&gt;&lt;BR&gt;
&lt;DIV style=&quot;PADDING-BOTTOM: 10px; BACKGROUND-COLOR: #f4f3f3;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1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독일 통일의 물꼬를 튼 데 그치지 않았다. 당시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동유럽 정부를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며 대변혁을 이끌었다. 20년 전 거대한 역사의 해일을 겪은 독일과 동유럽의 통합·변화의 성장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lt;/SPAN&gt;&lt;/DIV&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quot; border=0 alt=&quot;&quot; align=righ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22/2009/11/04/20091104001730_0.jpg&quot; width=270 height=486 categoryid=&quot;2010000000000&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더 이상 동·서 독일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은 없다. 시내에 조금 남은 장벽은 관광객 기념촬영 소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콘크리트 장벽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벽이다. 동서독 주민 모두의 노력에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빈부 격차는 또 다른 장벽을 쌓아올리고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서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채 1년도 안 돼 정치 통합을 이뤘다. 45년이나 분단됐던 독일의 통일이 그렇게 빨리 진행될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 통일의 완성은 동독 출신 여성 총리의 탄생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내로라하는 서독 출신 정치인을 물리치고 2005년 총리가 돼 명실상부한 통일 독일의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제 통합도 활발히 진행됐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동독 기업 지원금과 사회기반시설 재건, 복리후생 비용 등 통일 비용으로 그동안 1조2000억∼1조6000억유로를 쏟아부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 결과, 1991년 서독의 43% 수준이던 동독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71%로 확대됐다. 서독 기업에 비해 20%가량 낮은 인건비를 앞세운 동독 기업들은 2002년부터는 서독 기업보다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세계 경기침체 피해도 서독보다 적었다. 외견상 성공적인 경제 통합이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지만 순조로워 보이던 통합작업은 지난 수년간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동서독 간 소득격차 해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멈춰섰다. 통일 후 수년 만에 서독 1인당 GDP의 70%까지 따라잡은 동독은 더 이상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 동독 경제는 생각처럼 뜨겁게 달아오르지 못했고 200만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서독으로 넘어갔다. 통일 직후 10%대였던 동독 실업률은 2008년 14.7%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서독은 6.2%에서 7.2%로 1%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독 지역의 독일 전체 GDP 기여도는 10%대에 불과하다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밝혔다. 메르켈 총리도 “동독 실업률이 서독의 2배인 것은 돌에 새긴 것처럼 굳어간다”며 경제 통합이 요원함을 시인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독일 경제 통합 실패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우선 1990년 화폐통합의 실패다. 당시 정부는 암시장 환율이 10대 1인 동서독 마르크를 2대 1로 교환해 줬다. 이는 동독지역 소비를 부양했지만 동독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동독 기업 민영화도 실패작이었다. 동독 내 투자를 부추기려던 동독 기업 민영화에 서독 자본가들이 몰려들면서 동독 경제는 서독에 휘둘렸다. 설상가상으로 서독 노조가 동독 노동자 임금을 올리면서 동독 기업의 고용 축소는 가속화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서 빈부 격차는 정치적·감정적 분절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선거에서 동서 지역감정이 확연히 드러난다. 통일 직후 동독 주민은 자신들을 독재에서 해방해 준 중도우파 기민당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부의 재분배’를 내건 좌파당 지지자가 늘어 좌파당은 이미 동독 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총선에서 서베를린 주민은 보수적인 기민·기사당 연합을, 동베를린 주민은 좌파·녹색당을 지지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서 주민 간 마음의 장벽은 더 큰 문제다. 여론조사 결과 동독 주민 3분의 2는 스스로 ‘2등 시민’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서독 주민은 자신들의 부가 동독에 빠져나가는 게 불만이다. 지난 9월 포자르 연구소 설문 결과 독일 주민 7명 가운데 1명은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답할 정도로 동서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독일의 통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독일 IWH 경제연구소의 우도 루드비크 연구원은 “분단국인 한국은 독일의 경제 통일 사례를 잘 연구해서 절대로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안석호 기자 &lt;/SPAN&gt;&lt;A href=&quot;mailto:soko@segye.co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oko@segye.com&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빵 배급 줄 사라졌지만… “지금이 살기 더 팍팍해”&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세계일보 alt=세계일보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22.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19:30&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최종수정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23:40&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DIV&gt;
&lt;DIV class=sponsor&gt;&lt;A class=btn onclick='click_tagging(&quot;http://rd.naver.com/i:1000015797_022/c:43742/t:1?http://news.naver.com/link_button&quot;)' href=&quot;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091104004112&amp;subctg1=&amp;subctg2=&quot; target=_blank&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도 성장 불구 빈부격차 커져 열등감 확산&lt;/SPAN&gt;&lt;/B&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quot; border=0 alt=&quot;&quot; align=righ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22/2009/11/04/20091104001620_0.jpg&quot; width=270 height=297 categoryid=&quot;2010000000000&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그러나 살기는 더 팍팍해졌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사회주의 몰락 전과 현재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동유럽 국민들의 대답은 모순적이었다. 지금 동유럽 국민들이 겪고 있는 혼란을 가장 잘 드러낸 답변이기도 하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 장벽 붕괴로 촉발된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은 외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체코와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주요 국가에선 더 이상 옛 공산체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빵 한 조각을 배급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모습이나 한산한 도로를 달리는 낡은 러시아제 자동차, 진열장이 텅텅 빈 상점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대신 프라하나 부다페스트 등 동유럽의 주요 도시에선 루이뷔통이나 구찌 등 명품 매장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동유럽 국가들이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앞다퉈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경제지표만 봐도 동유럽의 경제성장은 엄청나다. 체코의 경우 1997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EU 27개국 평균 73%에서 지난해 80%까지 상승했다.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서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의 경제 성장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문제는 동유럽 국민들에게 경제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나눠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성장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동산 가격 급등, 커지는 빈부 격차, 사회안전망 축소 등은 동유럽 국민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서 빌딩, 주택 등을 보유한 부자들이 엄청난 부를 쌓는 동안 서민들은 오르는 물가와 정체된 퇴직연금액을 비교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는 빈부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헝가리의 지니계수는 0.273(1990년)에서 0.291(2005년)로 높아졌다. 체코는 0.232(1990년)에서 0.268(2005년), 폴란드는 0.316(2000년)에서 0.372(2005년)로 올라갔다. 지니계수는 보통 0.350 이상이 되면 소득분배가 매우 불평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기준으로 볼 때 일부 동유럽 국가는 과거 공산주의 체제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한 셈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P통신의 설문조사에서 “현재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폴란드 국민은 1991년 12%에서 올해 44%로 급등했다. 1991년 당시 삶의 만족도가 각각 4, 8%에 불과했던 불가리아와 헝가리는 올해 15%까지 상승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동유럽 국민들의 만족도가 올랐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와 현재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살기 더 좋으냐”는 질문에 체코와 폴란드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 국민들이 “지금이 살기 더 힘들다”고 답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경우 “살기 힘들어졌다”는 응답자가 각각 62%, 45%에 달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먹고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어 동유럽인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풍연 기자 &lt;/SPAN&gt;&lt;A href=&quot;mailto:jay24@segye.co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jay24@segye.com&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장벽 붕괴 20년…장벽보다 높은 통일독일의 `경제 격차`&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매일경제 alt=매일경제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09.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17:29&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최종수정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5 07:25&lt;/SPAN&gt;&lt;/SPAN&gt;&lt;/DIV&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class=t11&gt;&lt;/SPAN&gt;&amp;nbsp;&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
&lt;P&gt;
&lt;P&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mk/2009/11/04/0090002178274_0.jpg&quot;&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독일 동쪽 끝 작센주 중소도시 호이어스베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만 해도 7만명이 넘는 주민이 살았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지금은 곳곳에서 빈집 철거 공사가 빈번하다. 인구가 20년 전에 비해 40% 넘게 줄어 4만명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2만채가 넘던 아파트는 20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 7500채가 헐렸고 지금도 추가 철거 계획이 잡혀 있다. 주로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주민 평균 연령이 35세에서 48세로 높아졌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인은 일자리 부족이다. 옛 동독 시절 이곳 산업단지 하나만 해도 일자리 1만개 이상을 제공했지만 지금은 3000개 정도로 줄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일로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다. 또 올해는 통일 19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20세기 후반 세계사 최대의 격변으로 냉전 해체와 공산주의 몰락의 시작점이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mk/2009/11/04/0090002178274_1.jpg&quot;&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경제 격차라는 또 다른 장벽 여전 &lt;/SPAN&gt;&lt;/P&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통일 직후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완전한 통합을 통해 동독 지역이 서독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갖추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동독 지역의 전반적인 현실은 호이어스베르다와 다르지 않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지금까지 1조2000억유로(2085조원)가 동독에 투입됐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런 거액이 투입됐지만 격차는 여전하다. 독일 연방통계청 등 자료에 따르면 실업률은 1991년 서독이 6.2%, 동독이 10.2%였지만 지난해에는 각각 7.2%와 14.7%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동독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1년 서독의 43%에서 지금은 71%로 높아져 간격이 줄었다. 문제는 통일 초기 격차가 빠르게 좁혀졌지만 1995년 이후 15년간 60~70% 수준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제력 격차는 주민 이주로 나타났다. 장벽 붕괴 이후 1670만명에 이르던 옛 동독 지역 주민 가운데 170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mk/2009/11/04/0090002178274_2.jpg&quot;&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정책 실패가 경제통합 가로막아 &lt;/SPAN&gt;&lt;/P&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경제통합 미완성의 배경에는 정책 실패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분석에 따르면 가장 큰 실패 원인은 통화정책이다. 통일 당시 서독 마르크화와 동독 마르크화는 1대2 비율로 교환됐다. 그러나 이는 동독 경제력에 비해 지나친 고평가여서 현실을 반영하는 암시장에서는 1대10 비율로 거래됐다. 비현실적인 환율로 동독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약화됐고 이는 산업 붕괴로 이어졌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영화 과정도 문제였다. 동독의 국영 기업들이 민영화될 때 토착 자본이 아닌 서독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단기 이익을 추구하던 투자자들은 동독 기업들의 자산을 분할해 매각했고 기업 경쟁력은 떨어졌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거액의 지원금이 비효율적으로 투입됐다는 점도 있다. 기업 경쟁력 강화나 일자리 창출에 쓰이기보다는 비효율적인 거대 건설 프로젝트에 집중되는 바람에 부동산 거품 등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클라우스 침머만 독일경제연구소(DIW) 소장은 &quot;경제 측면에서 동ㆍ서독 균형 발전을 예상했던 전망이 완전히 빗나갔다&quot;고 설명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수영 독일 함부르크 KOTRA 과장은 &quot;실업 문제는 우경화로 이어지고 있다&quot;며 &quot;일부 지역에서는 10~20대 젊은이 상당수가 신나치주의 단체에 가입했다는 보고도 있다&quot;고 설명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유럽연합(EU) 출범의 시발점 &lt;/SPAN&gt;
&lt;P&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mk/2009/11/04/0090002178274_3_3_20091105072503.jpg&quot;&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베를린 장벽 붕괴가 인류 평화를 위협했던 냉전을 종식시키고 유럽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이 평가절하돼선 안 된다는 게 독일 내 시각이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침머만 소장은 &quot;동ㆍ서로 갈라졌던 독일은 물론 유럽 대륙에 통합 바람을 일으켜 결국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키는 획기적 결과물을 낳았다&quot;고 전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울러 베를린 장벽 붕괴는 2차대전 후 고착화된 권위주의와 억압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주의와 다원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현재 문제점에 긍정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밝은 전망도 제기된다. 통상 한 세대인 30년이 지나면 통일이 물리적 결합에서 화학적 결합으로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한때 동독 사람을 비하하는 '오시(Ossiㆍ동쪽이란 뜻의 Ost에서 유래)'라는 표현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점에서 이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lt;/SPAN&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상훈 기자 / 오재현 기자]&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A onclick=&quot;news_nds('news_imglogo');&quot; href=&quot;http://www.newsis.com/&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뉴시스 alt=뉴시스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03.gif&quot;&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10:21&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0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03/2009/11/04/NISI20091022_0001867289_web.jpg&quot; width=500 height=335&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AP/뉴시스】1989년 11월11일 동독의 국경수비대원들이 베를린 시민들에 의해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해 인터넷에는 당시의 사진이 게시판에 오르고 있다. 특히 트위터나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중심으로 장벽의 붕괴를 기념하는 메시지가 공유되고 있다.&lt;/SPAN&gt;&lt;BR&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장벽 붕괴 20년..獨경제 현주소는?&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A onclick=&quot;news_nds('news_imglogo');&quot; href=&quot;http://www.asiaeconomy.co.kr/&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아시아경제 alt=아시아경제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277.gif&quot;&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3 16:29&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A class=btn onclick='click_tagging(&quot;http://rd.naver.com/i:1000015797_277/c:43742/t:1?http://news.naver.com/link_button&quot;)' href=&quot;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110316104115620&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기사원문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btn_original_text.gif&quot; width=47 height=16&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4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277/2009/11/03/2009110316104115620_1.jpg&quot; width=540 height=358&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FONT-FAMILY: '돋움'; COLOR: #666; FONT-SIZE: 11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진:블룸버그뉴스&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시아경제 김기훈 기자] 다음주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며 독일이 통합된 지 꼭 20주년이 된다. 독일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은 남한과 북한의 역할 모델로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통일 이후 독일 경제의 현주소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독일의 통일 형태는 실패작에 가깝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독일 정부는 동독과 서독의 통합 비용으로 1조2000억∼1조6000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쏟아 부었다. 기업들에 대한 지원금과 사회기반시설 재건, 정치기구 신규 설립, 복리후생 비용 등이 이에 포함됐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겉으로 봤을 때 독일의 경제 통합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1991년 서독의 43% 수준에 불과했던 동독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71%대로 확대됐고 가처분 소득도 서독의 60% 수준에서 80%대로 올라섰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공공 인프라시설 건설과 광대역 인터넷망 구축 등에 힘입어 삶의 질도 대폭 향상됐다. 이에 따라 평균 수명도 늘어났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독 기업들은 서독에 비해 20% 가량 낮은 노동비용을 강점으로 2002년부터 서독 기업들보다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작년 경기 침체로 인한 피해도 서독 기업에 비해 적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동독의 경제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 통합이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독일이 세계 대공황과 지난해의 금융 위기 이후 3번째 경기 침체에 들어섰다는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는 실정.&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FT는 서독과 동독의 경제 격차 해소 과정은 1990년대 중반에 이미 멈췄으며 2005년부터는 1인당 GDP 수준까지 더 큰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독일 경제 통합의 실패 원인으로 3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1990년 7월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를 1대 2 비율로 교환하게 한 화폐 통합의 실패다. 이는 암시장에서 서독 마르크의 10분의 1수준에 거래됐던 동독 마르크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환율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만들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통화 합병책은 기본적으로 동독 지역의 소비 부양을 불러오는 효과를 거뒀지만 결국에는 동독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두 번째는 근로자 임금 격차 해소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통일 이후 서독 노조들은 동독 근로자의 임금을 서독 수준으로 올리는 것을 도왔다. 동독 기업들은 막대한 인건비 지출을 견디다 못해 고용을 축소했고 동독은 수백만 명의 실업자만 발생하는 부작용을 겪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지막 원인은 동독 기업들의 민영화 과정에서 나타난 폐해다. 독일 당국은 동독 기업 민영화를 통해 동독 내 투자자들의 참여를 예상했으나 오히려 서독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동독 경제에서 서독 기업들의 영향력만 더욱 커지게 됐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다가 독일 정부가 동독 기업들을 위해 내놓은 지원금이 서독 기업들의 손에 쥐어지면서 동독 경제의 자립 기반은 더욱 약화되는 사태로 치닫게 됐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독일 민간 경제 연구소 Ifo의 요아킴 라그니츠는 &quot;대부분의 동독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독 내 수요 역시 인위적으로 꾸며진 경향이 강하다&quot;며 &quot;동독 경제가 독자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큰 의문이 든다&quot;고 밝혔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김기훈 기자 &lt;/SPAN&gt;&lt;A href=&quot;mailto:core81@asiae.co.k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ore81@asiae.co.kr&lt;/SPAN&gt;&lt;/A&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amp;nbsp;&lt;/DIV&gt;&lt;/DIV&gt;&lt;/DIV&gt;&lt;/DIV&gt;&lt;/DIV&gt;&lt;/DIV&gt;&lt;/DIV&gt;&lt;/DIV&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베를린장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베를린장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독일 통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독일 통일&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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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9) 알마타데마와 생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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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mabentrot.18348261</id>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author>
	    <updated>2009-11-06T02:02:52Z</updated>
	    <published>2009-11-06T02:02:5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보이지 않는 이면의 환상을 주다&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주간한국 alt=주간한국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42.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5 10:42&lt;/SPAN&gt;&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4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42/2009/11/05/alba01200911051039380.jpg&quot; width=540 height=333&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FONT-FAMILY: '돋움'; COLOR: #666; FONT-SIZE: 11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마타데마 자화상(왼쪽), 생상&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TRONG&gt;[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9) 알마타데마와 생상&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화려한 색채·세밀한 묘사·현란한 기교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때로는 섹시하고, 때로는 우아하며 때로는 신비로운 음악.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정교함과 현란함 속에 담겨있는 정밀함으로 빛나는 생상의 음악은 그만의 매력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런 생상의 음악을 알마타데마의 고혹적이고 환상적인 그림과 함께 감상한다면 그들의 음악과 그림은 진한 향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마타데마는 화려한 색채를 이용한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인 라파엘 전파 화가다. 주로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집트의 역사와 신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대표작 중 &lt;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gt;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영웅 안토니우스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바뀌었을 것&quot;이라고 파스칼이 말했을 만큼 클레오파트라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반해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놀란 듯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면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시선을 알아차린 듯 비스듬히 누워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그의 마음을 빼앗고 권력을 차지한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를 결국 파멸로 이끌었던 치명적인 매력의 그녀를 환상적인 터치로 묘사한 이 작품은 생상의 오페라 &lt;삼손과 데릴라&gt;를 떠오르게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삼손을 유혹해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또 하나의 팜므파탈인 데릴라와 그녀의 매력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르는 삼손의 일화에 생상은 음악을 더해 오페라로 만든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듯한 데릴라의 매혹적인 노래는 삼손이 사랑 앞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생상의 대표작이 된 이 작품은 화려한 음색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관중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삼손을 유혹하는 데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의 가사이다.&lt;/SPAN&gt;&lt;BR&gt;&lt;BR&gt;&lt;I&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립니다.&lt;/SPAN&gt;&lt;BR&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4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42/2009/11/05/alba01200911051039382.jpg&quot; width=540 height=370&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FONT-FAMILY: '돋움'; COLOR: #666; FONT-SIZE: 11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콜로세움,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 1888,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왼쪽부터 시계 방향)&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새벽의 키스에 꽃이 열리듯 말이에요.&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나의 사랑,&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의 눈물이 마르도록 다시 한번 내게 말해줘요.&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당신이 돌아온다고 저 데릴라에게 말해주세요.&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때의 맹세를 다시 한번 말해줘요&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가 사랑한 그 맹세를&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 나의 애정에 답해주세요.&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날 환희에 넘치게 해주세요. &lt;/SPAN&gt;&lt;/I&gt;&lt;BR&gt;&lt;BR&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삼손과 데릴라&gt;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lt;/SPAN&gt;&lt;/B&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데릴라의 아름다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고 마는 삼손. 아름다움의 유혹은 앞으로 다가올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향기에 취해 순간의 쾌락을 즐겼던 삼손을 파멸로 이끈다. 알마타데마가 그린 또 다른 작품 &lt;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gt;는 데릴라의 유혹만큼이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다. &lt;/SPAN&gt;&lt;BR&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42/2009/11/05/alba01200911051039383.jpg&quot; width=400 height=266&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장미 꽃잎들을 휘날리며 향에 흠뻑 취해 향락을 즐기고 있는 이 모습은 로마제국의 방탕하고 괴팍했던 황제 헬리오가발루스의 파티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장미에 파묻혀 음란한 파티를 즐겼는데 넘치는 꽃잎 때문에 질식해서 죽는 사람들까지 나왔을 정도로 광적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의 사치스러움과 문란함으로 인해 결국 그는 어머니와 함께 근위대에 의해 살해된다. 한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 그림은 자신의 파멸을 알지 못한 채 꽃 향기에 취해 향락을 즐기는 삼손과 그를 장미 같은 아름다움으로 유혹하는 데릴라의 사랑을 연상시킨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화려한 색채의 사용, 세밀한 묘사와 정교함, 현란한 기교는 생상과 알마타데마의 공통된 작풍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풍 외에도 생상과 알마타데마는 여러 공통점을 지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보다 15년 이상 차이 나는 어린 소녀와의 결혼이다. 알마타데마는 35세에 자신의 제자인 19세 소녀와 재혼했고 생상은 40세에 19세의 아내와 결혼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지만 생상은 동성애자였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결혼한 지 6년 만에 아내와 여행 중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점, 그리고 자신의 제자인 포레와 각별한 관계를 오랜 기간 동안 유지했다는 점 등은 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둘 다 유아기에 부친을 잃은 점, 자녀를 일찍 잃은 점 등은 또 다른 공통점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한 생상은 영화에 곡을 붙인 최초의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영화 &lt;기즈공의 암살&gt;의 음악을 맡았다. 한편, 알마타데마의 그리스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은 이후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큰 영감을 주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마타데마는 여행을 즐겼는데 특히 로마의 폼페이를 여러 번 방문하며 로마인들의 생활을 탐구했다. 그의 작품 &lt;테피다리움에서&gt;와 같은 목욕탕 장면들은 로마인들의 퇴폐적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생상도 마찬가지로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방랑을 즐겼던 인물로 말년에는 알제리를 여행하다 그곳에서 객사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마타데마의 섬세하고도 화려한 작품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여인들, 생상의 현란한 기교와 어우러지는 세련된 뉘앙스의 유혹은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과하지 않은 감정 표현으로 보고 듣는 이의 상상력을 더욱 더 자극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때론 드러낸 슬픔보다 감춰진 눈물이 더욱 슬프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섹시함보다는 보일 듯 말 듯한 속살에 더욱 더 매료되는 것처럼 이들의 그림과 음악은 보이지 않는 이면의 환상을 심어주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lt;/SPAN&gt;&lt;BR&gt;&lt;BR&gt;&lt;I&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lt;/SPAN&gt;&lt;A href=&quot;mailto:violinoella@hotmail.com&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violinoella@hotmail.com&lt;/SPAN&gt;&lt;/FONT&gt;&lt;/U&gt;&lt;/A&gt;&lt;/I&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생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생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알마 타데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알마 타데마&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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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명작, Why?]베르트 모리조-요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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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인의 사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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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01:59:42Z</updated>
	    <published>2009-11-06T01:59:4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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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명작, Why?]베르트 모리조-요람&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매일신문 alt=매일신문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88.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5 11:48&lt;/SPAN&gt;&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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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88/2009/11/05/20091105_112114000.jpg&quot; width=300 height=370&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 가 명 :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 목 : 요람(The Cradle)&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연 도 : 1872년&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크 기 : 56x46cm&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재 료 : Oil on Canvas&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소 장 처 : 오르세 미술관 (Orsay Museum, Paris)&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상주의 대표적인 여류화가 중 미국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던 화가로는 매리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 1845~1926)를 꼽을 수 있다. 말년에 실명에 이를 정도로 힘들게 활동하였지만 그녀의 예술적 가치는 사후에 이르러서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반면 파리출신의 베르트 모리조(1841~1895)는 인상파 화가들 중 가장 매력적인 여류화가 중 한 사람으로 카사트와는 달리 일찌감치 화단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이 활동했던 당시에는 남성을 중심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이 이루어 졌고, 공립미술학교에 여성들이 입학 할 수도 없었을 만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했던 시기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모리조는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후손으로, 아버지 에드메 티뷔르스 모리조는 그 지역 최고 행정관이었고 어머니 마리 코르네이유 역시 학식 있고 사교적인 인물이었다. 그녀는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매력 있는 여성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J.B.C.코로의 지도를 받았으며, 마네를 알게 되면서 인상파 화가들과 교제를 하기 시작했다. 이십대 초반부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공식 살롱에 6번이나 입선하고 1874년에는 최초의 인상파 전시에도 참여할 정도로 독립심과 용기를 가진 여인이었다. 인상주의 아버지로 불리던 마네와의 밀접한 관계는 마네의 동생인 외젠 마네와 결혼을 하면서 더욱 두터워지기 시작했으며, ‘발콩’, ‘휴식’ 등에서 자주 마네의 작품모델이 되기도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가 즐겨 그렸던 테마는 모성과 가족에 관한 것들이다. 이 작품 ‘요람’은 요람에서 잠든 아기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대각선의 휘장과 휘장 사이에 인물을 배치하는 대담한 구도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부드러운 필법과 은은한 색채로 자고 있는 아기에 대한 다정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색채의 선택이나 화면 전체의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는 그의 스승이었던 코로의 가르침과 증조부인 로코코의 대가 프라고나르를 계승하고 있는 듯하다. 남녀의 역할과 구분이 비교적 엄격했던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화가로 널리 이름을 알린 베르트 모리조의 명작들은 현재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 주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gt;&lt;/SPAN&gt;&lt;BR&gt;&lt;/DIV&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오르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르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모리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모리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김태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태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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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체코 체스키크룸로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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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author>
	    <updated>2009-11-06T01:54:39Z</updated>
	    <published>2009-11-06T01:54: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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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체코 체스키크룸로프&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세계일보 alt=세계일보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22.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5 21:59&lt;/SPAN&gt;&lt;/SPAN&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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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붉은 지붕 중세 건물들 옹기종기 ‘동화 속 마을’&lt;/SPAN&gt;&lt;/B&gt;&lt;BR&gt;&lt;BR&gt;
&lt;DIV style=&quot;PADDING-BOTTOM: 10px; BACKGROUND-COLOR: #f4f3f3;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1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체코에서도 오스트리아 국경에 위치한 체스키크룸로프. 블타바 강이 부드럽게 감싸안은 이 작고 오래된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전생의 전생쯤에 살았던 곳이 아닐까 싶어 문득 고개 돌려 건너온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거기, ‘이발사의 다리’에 흐르는 슬픈 사랑의 전설 속 이발사의 딸과 루돌프 2세의 서자가 서 있는 것만 같다.&lt;/SPAN&gt;&lt;/DIV&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프라하는 아름답다. 그러나 프라하 거리를 걷다 보면 관광객에 휩쓸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카를교를 건너 거대한 프라하성을 보고 걷고 걷다가 이내 지치지만, 주저앉아 다시 지도를 펴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늠한다. 그렇게 프라하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버스를 타고 세 시간 반을 달려가 닿은 마을, 체스키크룸로프. 부데요비츠카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는 이 마을에 들어서면 고즈넉하고 어여쁜 중세 풍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북적이던 길에서 벗어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10px; WIDTH: 500px; MARGIN-BOTTOM: 10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22/2009/11/05/20091105001815_0.jpg&quot; width=500 height=376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FAMILY: arial; FONT-SIZE: 12px&quot;&gt;&lt;FONT color=#5c7fb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왼쪽)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든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집과 상점들을 만날 수 있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오른쪽)붉은 지붕의 중세시대 집들과 성이 아름다운 체스키크룸로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lt;/SPAN&gt;&lt;/SPAN&gt;&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지도가 필요 없는 하루&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나절이면 마을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그럼에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 마을은 아름답고 신비롭고 고풍스럽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화책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광장과 골목과 성당과 책방과 꽃집과 식당과 가게들. 그것이 너무도 친숙해서, 지도를 펴지 않아도 곧잘 찾아지는 작은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전에 살았던 것만 같은 집을 만나게 되고 낯익은 가게 주인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빗방울이 떨어지자 골목 모퉁이에 있는 ‘셰익스피어 책방’의 긴 머리를 묶고 안경을 낀 청년이 서둘러 밖에 내놓은 책들을 안으로 들여놓는 풍경이나, ‘펜션 마리’의 여주인이 거리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주섬주섬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든가, ‘카페 모차르트’의 얼굴이 유난히 붉은 주인 남자가 창문을 열고 비가 내리는 거리를 내다보는 모습. 그러다가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그들의 미소가 여유 있는 곳. 마치 늘 그 거리에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 그래서 전생에 내가 체코 사람이었던 걸까, 혼자서 씩 웃어보게 되는 곳이다.&lt;/SPAN&gt;&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10px; WIDTH: 500px; MARGIN-BOTTOM: 10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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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22/2009/11/05/20091105001814_0.jpg&quot; width=500 height=376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FAMILY: arial; FONT-SIZE: 12px&quot;&gt;&lt;FONT color=#5c7fb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왼쪽)옛 집들에 둘러싸여 있는 스보르노스티 광장 가운데엔 삼위일체 석주가 서 있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오른쪽)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부제요비츠카 문을 통해 동화 같은 체스키크룸로프로 들어간다.&lt;/SPAN&gt;&lt;/SPAN&gt;&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난히 예쁜 가게들이 많은 이 마을에선 간판 구경이나 가게 구경만 해도 행복해진다. 그 어디에도 번쩍이는 네온사인 같은 것은 없다. 현란한 형광색을 입힌 아크릴판 간판도 없다. 나무판 위에 예쁘게 그린 그림이나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들이나 창문에 예쁘게 진열된 물건들이 가게의 존재와 특징을 알릴 뿐이다. 예쁜 접시 가게, 고양이 캐릭터 장난감 가게, 피노키오가 상징인 식당 등. 그러다가 꽃집 주인과 체코의 전통 빵인 ‘트르들로’를 나눠 먹는 맛이란…. 이 아름다운 마을에선 모두가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살고 있는 듯하다. 전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렸을 때 동화책을 읽다가 잠들어 꿈속에서 날아다니며 보았던 그 마을일 것이다, 이곳 체스키크룸로프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10px; WIDTH: 270px; 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22/2009/11/05/20091105001816_0.jpg&quot; width=270 height=358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FAMILY: arial; FONT-SIZE: 12px&quot; color=#5c7fb0&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마치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들처럼 체스키크룸로프 사람들은 인사를 건넨다.&lt;/SPAN&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미로처럼 만들어진 나무숲&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멀리에서도 첫눈에 보이는 체스키크룸로프 성과 파스텔 톤의 흐라데크 탑은 블타바 강과 마을 전체가 다 내려다보이는 돌산 위에 있다. 체코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성이라 할 만큼 거대하다. 1253년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지만 대대를 이어오며 르네상스양식과 바로크양식이 더해져 시대의 아름다움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 성으로 오르는 동안 비가 부슬부슬 내려 아무도 없는 회랑에 앉아 벽화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위의 창문에서 누군가 내다볼 것만 같다. 그때 불쑥 벽등이 하나 켜진다. 체스키크룸로프 성에선 마치 오래 전의 영혼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amp;nbsp;&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의 정원으로 가는 길에, 성의 벽면에 그려진 해시계를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침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숫자가 쓰여 있다. 지나가는 정원 관리사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그 벽엔 오후 3시 이후로는 해가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늘 그 길을 지나며 시계를 보려고 했을 생각을 하니, 아마도 늘 같은 시간에 정원을 산책하는 사람이었을 것만 같다. 산책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었을 것만 같다. 화가 에곤 실레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어머니의 고향인 이 마을을 자주 찾았던 그는 특히나 체스키크룸로프 성을 자주 찾아 사색을 즐겼단다.&lt;/SPAN&gt;&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10px; WIDTH: 270px; 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0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left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22/2009/11/05/20091105001817_0.jpg&quot; width=270 height=407 categoryid=&quot;0000000000000&quo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lt;FONT style=&quot;FONT-FAMILY: arial; FONT-SIZE: 12px&quot; color=#5c7fb0&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체스키크룸로프 성의 정원으로 가는 비탈길에선 블타바 강과 도시 전체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lt;/SPAN&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무와 잔디와 꽃이 너무도 잘 가꿔져 있는, 동화책에서 본 성의 큰 정원을 걷는다. 하늘을 보며 걸어도 누구 하나 부딪히지 않는다. 미로처럼 만들어진 나무숲을 평생 빠져나오지 못해도 좋겠다 싶다. 그러다가 정원의 가장 큰 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염없이 정원과 하늘을 본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에서 내려와 마을의 중앙 광장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으로 가니 정말이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데, 영화 아마데우스를 찍었던 곳이란다. 거리의 무엇 하나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 영화를 찍기에도 참 좋은 곳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광장은 체스키크룸로프의 어느 곳보다도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광장에서 보이는 주변의 옛 건물들은 부유한 가문의 집이었단다. 슬쩍 보면 서너 채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래는 한 채의 집이다. 현재는 그곳을 경찰서와 시청, 그리고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옛 건물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체스키크룸로프만큼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광장에서부터 방사선으로 나 있는 골목들은 어디로 들어서도 좋다. 그러다가 만난 성 비트 성당은 강변에 거대하고 아름답게 서 있었는데,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기 위해 40년 동안 지은 것이란다. 건물만이 아니라 바로크식 제단과 네오고딕식 오르간은 성스럽고 아름답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체스키크룸로프 마을을 빠져나오자 나는 불쑥 늙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나무도 자라지 않고 새들도 떠나지 않고 아무도 늙지 않을 것 같은, 동화책 속에서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그곳은 네버랜드가 아닐까 싶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그런 곳이다. 프라하로 돌아가는 밤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문득 눈을 뜨면, 대체 내가 다녀오기는 한 것인지 꿈속에서 본 것인지 마구 헷갈리는 곳.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인·여행작가&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
&lt;DIV style=&quot;PADDING-BOTTOM: 10px; BACKGROUND-COLOR: #eff5ff;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10px&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는 길&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기차와 버스가 매일 몇 차례씩 출발한다. 그러나 기차는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버스로 가는 편이 낫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프라하의 메트로 플로렌츠 역에 위치한 플로렌츠 버스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하루 전에 미리 예매하는 것이 좋다.&lt;/SPAN&gt;&lt;/DIV&gt;&lt;/DIV&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체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체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유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체스키크롬로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체스키크롬로프&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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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림과 사람] 여왕의 이미지 가꾸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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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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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00:06:54Z</updated>
	    <published>2009-11-05T00:06:5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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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id=articleTitle class=font1&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그림과 사람] 여왕의 이미지 가꾸기&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국민일보 alt=국민일보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005.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11-04 18:28&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A class=btn onclick='click_tagging(&quot;http://rd.naver.com/i:1000015797_005/c:43742/t:1?http://news.naver.com/link_button&quot;)' href=&quot;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amp;gCode=kmi&amp;arcid=0001337505&amp;cp=nv&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articleBody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gt;
&lt;DIV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 id=keyword_layer&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0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quot;&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005/2009/11/04/091104_22_3.jpg&quot; width=400 height=635&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헤라르츠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1592)&lt;/SPAN&gt;&lt;/B&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엘리자베스 1세 (1533∼1603) 등극 시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 등 가톨릭동맹의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여왕은 ‘39개조’를 만들어 국교를 신·구교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게 하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1588)하여 근대국가의 토대를 세웠다. 미혼인 그녀의 주변에는 염문이 끝이지 않았으나 혼담조차 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하였다. 노년에도 여전히 인기 있는 예비신부로 남아 있어야 했던 여왕의 이 초상화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느낌이다. 플랑드르 출신 작가 마르쿠스 헤라르츠(1562∼1636)는 59세의 여왕의 얼굴에 가는 주름살조차 그리지 않았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석우(겸재정선기념관장)&lt;/SPAN&gt;&lt;BR&gt;&lt;/DIV&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이석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석우&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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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천포미술관] 창녀와 난쟁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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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author>
	    <updated>2009-11-04T00:21:38Z</updated>
	    <published>2009-11-04T00:21: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2&gt;&lt;A title=&quot;[삼천포미술관] 창녀와 난쟁이&quot; name=2744485&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삼천포미술관] 창녀와 난쟁이&lt;/SPAN&gt;&lt;/A&gt;&lt;/H2&gt;
&lt;H5&gt;&lt;/H5&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5869.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5869.jpg&quot; width=500 height=233&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본문은 꽤 오랜 시간 공들여서 만진 것. 추석연휴동안 슬럼프의 늪에 반신욕하면서 붙잡고 앉아있었다. 어떤 글이든 계속 만지면 어떻게든 좋아진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 예전에 들은 누군가의 어머님 말씀. &quot;슬럼프는 무계획일 뿐이다!&quo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실 로트랙의 일생이나 작품에 관해서는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만큼 이미지나 자료 찾기는 무진장 쉬웠고, 학부때 관련해서 단행본도 몇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수월하게 썼다. - [몽마르뜨의 빨간풍차,로트렉] 이 책 재미있다. 추천!- 그리고 모더니티 관련해서는 학부 마지막에 열심히 공부했던 거였구 뭐. 여튼.&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문제는 성매매에 관한 것이다. 남로당에 최근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기사가 올라왔는데, 그걸 읽고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결과적으론 이제까지 내가 알고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반정하는 기회가 되었으나 이 과정은 꽤나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원칙에서 타협한 것 같은 느낌이라 아직도 개운하지 못한 데가 있고, 그리고 또 나의 한계는 역시 휴머니즘에의 호소인가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고...&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심지어는 제목을 &quot;창녀와 난쟁이&quot;라고 적어놓고 나서 고민을 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politiacl correctness)위해서 &quot;성매매업 종사여성과 척추장애로 인한 왜소증환자&quot; 따위의 제목을 가져가 붙여볼까 생각도... =_=; 정치적인 올바름이란 어찌나 허울좋은 그늘이 되는지, 나는 그녀들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이런 일로 고민하고 있었다. 창녀, 갈보, 똥치, 뭐라고 부르든 나는 심지어 그 말을 입에 담아본 적도 없는데.... &lt;/SPAN&gt;&lt;BR&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2006. 10. 12.&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gt;&lt;BR&gt;&lt;A href=&quot;http://blog.daum.net/namrodang&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디어 다음&lt;/SPAN&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쪽에 이 기사가 올라갔는데 이런 글이 달렸다. .. 예상했던 반발이고 당연한 말씀이다. 진심으로&amp;nbsp;죄송합니다.&amp;nbsp;어떻게든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메일주소도 블로그도 남아있지 않아서 여기에 덧붙여 기록한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정치적인 올바름을 내가 어떤식으로 이용하는가를 반성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정치적인 올바름을&amp;nbsp;실천하는 일이다.&amp;nbsp;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언어의 계층성이나 권력적인 편향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amp;nbsp;어떤 특별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에 담긴 비하적인 의미로 인해&amp;nbsp;그 사람들이 불쾌하고 불편해한다면 그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무례한 짓이기 때문이다. ...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lt;/SPAN&gt;&lt;BR&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작은키모임 2006.10.11 09:16&amp;nbsp;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난쟁이 화가 로트랙과 매춘부에 관한 사항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안녕하세요 한국작은키모임입니다.&lt;/SPAN&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먼저 키가작은(왜소증) 화가에 관하여 기억을 해주고, 사람들에게 알리게 해주심을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협회에서도 몰랐던것을 이렇게 알게 해주신것에 대해서는 저희 협회에서도 깊에 새기고 이 내용에 대하여 회원들에게 알려 더욱더 커다란 희망의 불씨를 당기기위해 회원님들에게 전하겠습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여기서 난쟁이[키작은 사람들을 이르러 농으로 부르는 말]이라는 단어는 설명과 같이 키작은 사람을 우롱하는 단어로서 절대 쓰지 말아야 할 단어입니다.&lt;/SPAN&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 현 시대에 왜소증 및 저신장증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남로당에 계시는 관계자 분께서는 수정 및 앞으로 이러한 좋은내용이 게제가 될때 다시한번 생각과 단어에 적절한 표현을 바라는 바입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무튼 키작은사람(왜소증)에 대해서 좋은 내용을 보도해 주심에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감사합니다.&lt;/SPAN&gt;&lt;BR&gt;&lt;/SPAN&gt;&lt;BR&gt;&lt;BR&gt;&lt;/DIV&gt;&lt;A name=2744485_1&gt;&lt;/A&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COLOR: #999999;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6. 10. 9. 월요일&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남로당 예술진흥위&lt;/SPAN&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3143.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3143.jpg&quot; width=400 height=659&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namrodang.com/article/img/dot3.gif&quot; width=20 height=1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19세기 말 파리의 환락가를 누비던 난쟁이가 있었다. 난쟁이의 두툼한 입술에는 술이 마르지 않았고, 잘 차려입은 수트의 주머니에는 낙서같은 그림이 넘쳐났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난쟁이의 이름은 앙리 마리 레이몽 툴루즈 로트랙&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autrec 1864~1901)&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길고 긴 이름만 들어도 가문의 위용이 느껴진다. 그의 부모 아델 드 틀루즈 로트랙과 알퐁소 드 툴르즈 로트랙은 보크스 성을 지배하는 명문가의 사촌이었다. 근친혼의 결과로 태어난 아들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두 차례의 사고로 부러진 다리는 회복되지 않았다. 로트랙은 15세 때 이후로 성장하지 않았고 152cm의 단신으로 살았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4014.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4014.jpg&quot; width=400 height=400&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트랙이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 (합성사진)&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난쟁이가 되어버린 귀족집안의 자제는 성을 떠나 파리의 몽마르트에 자리잡았다. 그는 카바레 물랑루즈&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Moulin-rouge)&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술을 마시거나 그림을 그렸고, 대개는 술을 마시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난쟁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호사가들의 관심은 곧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당대 유명화가의 화실에서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환락가의 단면을 포착한 그의 작품은 널리 인기를 얻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에 부합하여 석판화 기법을 발전시켜서 대량으로 컬러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제작한 포스터를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그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알콜중독으로 사망하기까지 몽마르트의 인기작가로서 명성을 누렸다.&lt;/SPAN&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477.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477.jpg&quot; width=400 height=595&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쾌락의 여왕] 1892년 석판화로 제작.&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트랙은 다수의 포스터를 남겼다. 술집 홍보용 포스터는 그의 주 수입원이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namrodang.com/article/img/dot3.gif&quot; width=20 height=1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본적으로 그는 유쾌한 사람이었고 주위에는 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와 교우했던 화가들 중에는 반 고흐와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반 고흐가 얼마나 미친 사람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창녀에게 자기 귀를 잘라주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통해 익히 알고있을 것이다. 이 괴팍한 화가도 로트랙과는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 반 고흐는 아를르로 떠나기 전 몽마르트에서 지냈는데 나름대로 부유했던 로트랙은 가난한 고흐의 생활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잣집 아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든 부자가 가난한 친구에게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5537.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5537.jpg&quot; width=400 height=567&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빈센트 반 고흐] 1887&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트랙은 전락을 경험했던 사람이었다. 유년기, 귀족집안에 태어나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서 사냥이나 하며 소일하다 비슷한 가문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또 다른 여자들도 만나서 물려받은 돈을 쓰고 놀다 가는 유유자적한 인생이 펼쳐질 듯 했으나, 그는 난쟁이가 되어버렸고 절망 속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서 소외된 화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창녀촌에서 많은 밤을 보냈다. 불구의 몸이었기 때문일까, 창녀들은 로트랙을 손님이라기 보다는 친구로서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사실 로트랙을 받아준 여자들은 그녀들 뿐이었다. 정상적인 연애를 하기에는 너무나 왜소한 몸을 가진 난쟁이는 술에 취해 그녀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으며 그녀들을 위로했고 또 위로 받았다. 로트랙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드디어 내 키에 맞는 여자들을 발견했다.&quo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011.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011.jpg&quot; width=400 height=348&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랑루즈에서] 1892&lt;/SPAN&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0773.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0773.jpg&quot; width=400 height=493&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 모르(Rat Mort)] 1899&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트랙은 물랑루즈의 여자들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여자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들은 적나라하게 자신의 성적 매력과 과잉된 감정을 노출한 채 이미지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quot;대체 왜 여자들을 이렇게 추하게 그리느냐?&quot;는 질문에 로트랙은 이렇게 답했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그녀들이 추하기 때문이다&quo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트랙은 섹스를 매개로 남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긁어가는 그녀들을 조롱하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로트랙은 창녀와 사랑을 나누었고 그런 사랑을 미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창녀들의 일상이 무심하게 드러난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1272.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2.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1272.jpg&quot; width=400 height=521&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타킹을 올리는 여자] 1894&lt;/SPAN&gt;&lt;/SPAN&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1858.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1858.jpg&quot; width=400 height=569&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병검사] 1894&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타킹을 신는 모습, 성병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 그녀들의 일상이 무심하게 담겨있는 로트랙의 그림을 보면, 보들레르의 모더니티 개념이 떠오른다.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적 미의 요소는 '개별적이고 상황적이며, 당대의 풍습을 묘사하는 것'이며 모더니티는 '일시적이며 순간적이고 우연한 것'으로부터 '영원한 어떤 것'을 추출해내는 것이다. 특히 미술에서는 일시성에서 영원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동시대의 풍속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로트랙은 진실로 파리의 뒷골목을 누비던 소요자&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flaneur, 산책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였으며, 동시대의 단면을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 시대를 초월한 영속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namrodang.com/article/img/dot3.gif&quot; width=20 height=1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로트랙의 작품에 등장하는 창녀들은 오늘날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매매 업소 홍보용 이미지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quot;오빠 지금 쌀거같아&quot; 따위의 문구 아래 붉은 입술을 벌리고 기묘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아가씨의 이미지를 보면서 그녀의 일상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를테면 라면을 먹는데 흰옷에 국물이 튀어서 짜증이 나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루해져 고스톱을 쳤는데 돈을 잃어서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자기들보다 많은 돈을 벌어가는 '에이스 급' 아가씨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정기검진을 받으러 보건소에 가면서 혹시 무슨 병이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내심 불안해 하는, 그런 그녀들의 일상 말이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백컨대 그 동안 나는 성산업에 대해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선정적인 문구만을 알고 있었다. &quot;미아리 집창촌 화재 5명 사망&quot;, &quot;군산 윤락가 화재 참사&quot;, &quot;북창동 변태영업 실태&quot;와 같은 제목을 달고있는 기사에 등장하는 창녀들은,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력갱생의 여지가 없는 방종한 여자들이면서 동시에 혹독하게 착취당하다 불운하게 죽어버리는 여자들이었다. 어쨌든 그런 모든 상황에서 그녀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하고싶지 않은 상대와 섹스하지 않고도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세상에 누가 제 존엄을 팔아 살겠는가?&quot; 라는 말&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김규항, ['상업적 매매춘'에 관한 유일한 진실] 中)&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나는 순진하게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대체로 진실이란 것들이 그러하듯 이 말에도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첫째로 누군가는 '하고싶지 않은 상대와 섹스하는 것'이 '존엄을 파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인간적 존엄성은 태생적인 것이지 외부의 평가기준에 의해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점은 현실적으로 창녀들이 매춘 외의 방법으로는 결코 비슷한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나는 '성매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 하의 노동착취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위의 좌파-몽상가들의 주장에 박수를 보내왔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2760.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2760.jpg&quot; width=400 height=524&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a Clownesse assise] 1896&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러니 저러니 지껄였지만 고백컨대 나는 현실적으로 창녀들의 생활을 개선하거나 인권을 보장하는 방안 보다는 성매매 문제에 대한 그럴듯한 관점을 세우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그렇지만 나의 관점을 확립하기 위해 수집했던 근거는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는지 스스로 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것이 좌파-몽상가의 거대담론이든 여성주의-운동가의 구체적 실천과제든, 성매매에 관해서 내가 알았던 모든 이야기들은 어쩌면 허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창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툴르즈 로트랙이 그랬던 것 처럼, 그녀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는 개인적인 접근성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권력 차이의 문제이다. 그녀들이 용기내어 큰 목소리를 내고 있어도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namrodang.com/article/img/dot3.gif&quot; width=20 height=10&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왕 삼천포로 빠진 김에 창녀와 난쟁이의 사랑이야기나 해볼까 한다. 아래 그림은 자신의 여동생과 프로마주의 팔짱을 끼고 물랑루즈로 들어오는 댄서 라 굴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녀는 본 칼럼의 첫번째 석판화에 표현된 댄서와 동일인물이다. 첫번째 이미지 아래에는 정보를 넣지 않았는데 제목은 [물랑루즈-라 굴뤼], 1892년 작품이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class=post_bod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class=image_mid onmouseover=&quot;this.style.cursor='pointer'&quot; onclick=&quot;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3296.jpg');&quot; border=0 alt=&quot;&quot; src=&quot;http://pds3.egloos.com/pds/200610/09/15/b0041715_01103296.jpg&quot; width=400 height=552&gt;&lt;/SPAN&gt;&lt;/DIV&gt;
&lt;DIV class=post_body&gt;&lt;BR&gt;&lt;/DIV&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a Goulue Arriving at the Moulin Rouge with Two Women] 1892&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COLOR: #99000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사스 출신의 시골뜨기 라 굴뤼는 파리로 들어와 캉캉춤을 변형시킨 독특한 춤으로 인기를 끌기까지 고생스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로트랙은 그녀의 전성기부터 은퇴 이후까지 그녀를 지켜보았고 그녀를 모델로 수십점의 작품과 습작을 제작했다. 말년의 라 굴뤼는 화려한 물랑루즈에서 밀려나 지역의 서커스에나 출연하게 되었다. 로트랙은 오랜 시간 알았던 늙은 여인을 위해 두 점의 장식화를 그려주었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언제나 친구나 창녀들과 함께 있었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했던 로트랙에게 음주는 외로움을 달래는 약이자 생활의 일부였다. 진과 압생트, 브랜디와 위스키, 이 모든 것을 혼합한 폭탄주를 마셔대던 로트랙은 서른다섯살의 나이에 알콜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며 퇴원 이후에도 주위 사람들 몰래 술을 마셨다. 결국 그는 서른일곱에 죽었다. 라 굴뤼는 로트랙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쨌든 창녀촌에서 낭만을 찾는 시대는 끝났다. 공적인 보도를 보면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정부의 강력한 단속의지로 성매매가 근절되어가고 있으며 성매매업소가 밀집되어있던 지역은 쇠퇴일로를 향하는 등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이에 반대하는 투쟁을 보고 있자니 착찹한 마음이 든다. 사회적 약자를 사회의 저 구석,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몰아가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었던 것일까?&lt;/SPAN&gt;&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post_body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 FONT-SIZE: 1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본 기사는 남로당(&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lt;A href=&quot;http://www.namrodang.com/&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www.namrodang.com&lt;/SPAN&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80808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SPAN&gt;&lt;/P&gt;&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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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 ⑤] 권력에의 욕망, 섹스로 권력을 쟁취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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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인의 사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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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1T21:40:48Z</updated>
	    <published>2009-11-01T21:40:4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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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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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class=fd12px-89431C vAlign=top height=2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 ⑤] &lt;/SPAN&gt;&lt;SPAN class=fd-b-20px-1853B5-34&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권력에의 욕망, 섹스로 권력을 쟁취한 여인들&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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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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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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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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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g13px-484848&gt;&lt;B&gt;&lt;FONT size=2&gt;&lt;!--no title --&gt;&lt;/FONT&gt;&lt;/B&gt;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289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05/06/200905060500008/image/200905060500008_2.jpg&quot; width=250&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1452년경, 나무에 유채, 94×85cm,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소장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남자의 정자 한 마리는 권력의 승계를 의미한다. 여기에 여자는 정자 한 마리를 받아들임으로써 남자로부터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특히 성공한 남자와의 섹스는 여자에게 특별한 삶을 제공한다. 이 경우 섹스는 남자에게는 육체적 쾌락이지만, 여자에게는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여자는 권력을 움켜쥐고 싶을 때 사랑을 배제한 채 섹스를 제공한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역사적으로 권력을 쥔 남자 곁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던 것은 육체적 쾌락보다 더 좋은 권력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베개 밑 송사로 권력을 움켜쥔 대표적인 여자 중에 프랑스 샤를 7세의 정부였던 아그네스 소렐이 있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그네스 소렐은 무기력한 샤를 7세를 사로잡은 지 1년 만에 작위와 재물을 선사받으면서 궁정의 숨은 권력자로 등장한다. 소렐은 나약한 샤를 7세를 치켜세워 프랑스 국토를 침입한 영국군을 몰아내게 했다. 당시 프랑스 최고의 미인이라는 찬사를 듣던 소렐은 젖가슴이 다 보일 정도로 파인 옷을 즐겨 입었는데 그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장 푸케(1415 혹은 1422~1480년)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다. 이 작품은 프랑스 왕실 재무상이던 슈발리에가 아내 카트린 부드의 무덤에 걸기 위해 의뢰한 것으로 그가 짝사랑하던 아그네스 소렐을 모델로 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작품에서 높은 이마, 깨끗한 우윳빛 피부, 잘록한 허리의 성모 마리아는 담비를 덧댄 망토를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당시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이마를 드러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225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05/06/200905060500008/image/200905060500008_3.jpg&quot; width=300&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가브리엘레 데스트리스와 자매’ 1590년경, 목판에 유채, 95×12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푸케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뒤에 천사들을 교묘하게 배치했다. 아기 예수의 머리 위에 있는 케루빔 천사만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나머지 인물들은 시선이 엇갈려 있는데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성모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천사들은 이 작품의 주제를 강조한다. 아기 예수의 시선과 손가락이 이 작품의 열쇠를 쥐고 있는데 왼쪽에 있는 이 작품의 의뢰인 슈발리에를 가리키고 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왕비보다 더 내조를 잘해 왕을 만족시킨 여인이 프랑스 앙리 4세의 정부 가브리엘레 데스트레다. 앙리 4세는 평생 56명의 정부(情婦)를 두었지만 가브리엘레를 가장 사랑했다. 그녀는 앙리 4세의 침실만 뜨겁게 해준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브리엘레는 앙리 4세가 전장에 나가 있을 때에도 함께 생활하면서 정치 외교문서에 서명을 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 CALVINTEXT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g13px-484848&gt;&lt;B&gt;&lt;FONT size=2&gt;&lt;!--no title --&gt;&lt;/FONT&gt;&lt;/B&gt;
&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278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05/06/200905060500008/image/200905060500008_4.jpg&quot; width=250&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목욕하는 여인’ 1550년경, 패널에 유채, 91×81cm,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브리엘레는 옅은 금발에 푸른 눈, 긴 팔다리,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 당시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손꼽혔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린 작품이 프랑스 퐁텐블로파의 무명 화가가 그린 ‘가브리엘레 데스트리스와 자매’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가브리엘레는 임신 중이었다. 가브리엘레는 반지를 들고 있고 그 옆의 자매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는데 그녀의 행동은 동성애를 암시한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공동목욕탕 안에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양쪽으로 걷어 올린 커튼 뒤로 거실 벽난로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하녀가 보인다. 커튼은 침실의 캐노피를 연상시킨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앙리 4세의 기호에 맞추어 여성의 누드를 세심하게 표현한 이 작품을 제작한 화가의 이름이나 제작 연도를 알 수 없으나 1599년 가브리엘레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기 전으로 추정된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353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05/06/200905060500008/image/200905060500008_1.jpg&quot; width=250&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마릴린 캘린더’ 1952년 제작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정부의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정적(政敵)이던 왕비의 임신을 도울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 프랑스 앙리 2세의 정부 디안 드 푸아티에다. 디안은 앙리 2세보다 열여덟 살이나 많았지만 왕의 사랑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몸매 관리를 했다. 매일 3시간 승마에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나귀의 젖으로 목욕했고, 주름을 방지하기 위해 베개에 기댄 채 잠을 잤다. 앙리 4세가 학구적인 왕비의 침실에서 만족하지 못하자 디안은 왕을 먼저 성적으로 흥분시킨 뒤 왕비의 침실에 들도록 하는 등 왕비의 임신을 도왔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름다운 가슴으로 유명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클루에의 ‘목욕하는 여인’이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는 원추형의 작은 가슴을 최고로 쳤다.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성은 유모로서 사랑받았을 뿐이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붉은 커튼을 걷어 올린 욕실 욕조에 몸을 반쯤 담그고 앉아 있는 여인 앞에는 과일 접시가 놓여 있다. 화면 왼쪽에 한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고 열린 창문 밖으로 하녀가 물항아리를 들고 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프랑수아 클루에(1515~1572)의 이 작품에서 앵두는 성적 욕망을 상징하는 과일로 여인이 앙리 2세의 정부라는 점을 암시한다. 소녀의 손이 과일을 향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귀한 과일을 먹고 싶다는 욕망과 여자와 같이 왕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그것이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제 권력을 쥔 사람은 대중이다. 과거에는 권력자 한 사람에게 보여주면 성공했지만 지금은 대중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성공의 열쇠가 달렸다. 아름다운 여자가 대중에게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면 줄수록 성공한다. 섹시한 그녀들은 삶에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보다는 섹시한 모습을 연출해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 성공한 여성이 마릴린 먼로다. ‘마릴린 캘린더’는 당시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던 먼로의 누드로 제작한 달력이다. 붉은색 배경으로 인해 먼로의 볼륨이 있는 몸매가 강조되고 있다. 먼로는 1950년대 초반 미국의 사진작가 프랭크 포월니가 찍은 상업광고 덕에 핀업 걸에서 벗어나 섹시 스타로 성장한다. &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퐁텐블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퐁텐블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박희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희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장 푸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장 푸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클루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클루에&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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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박희숙의 아트 에로티시즘] ① 남자의 성적 환상, 묶여 있는 여인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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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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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1T21:31:47Z</updated>
	    <published>2009-11-01T21:31: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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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class=fd12px-89431C vAlign=top height=2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작가 박희숙의 아트 에로티시즘] ① &lt;/SPAN&gt;&lt;/SPAN&gt;&lt;SPAN class=fd-b-20px-1853B5-34&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남자의 성적 환상, 묶여 있는 여인 &lt;/SPAN&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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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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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height=2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background=/docs/magazine/shin/img/line_dotline01.gif&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발문 끝 -------&gt;&lt;!----- CALVINTEXT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g13px-484848&gt;&lt;B&gt;&lt;FONT size=2&gt;&lt;!--no title --&gt;&lt;/FONT&gt;&lt;/B&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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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300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01/06/200901060500006/image/200901060500006_2.jpg&quot; width=600&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1611년, 캔버스에 유채, 180x150cm, 파리 루브르박물관(좌) ‘안드로메다’ 1869년, 캔버스에 유채, 51x35cm, 런던 마스갤러리(우)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밥이 보약임을 알지만 밥만 매일 먹으면 입맛을 잃어버린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입맛을 잃어버리면 색다른 음식을 찾으면 되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조강지처가 옆에 있는데 색다른 상대를 찾다간 가정 파괴의 원인 제공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처럼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때엔 환상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남자의 성적 환상 중에서 최고는 아마도 묶여 있는 여자와 나누는 사랑일 것이다. 가죽이나 쇠사슬에 묶여 있거나 나무, 침대, 기둥 등에 포박된 여인은 시대에 상관없이 남자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소재다. 묶여 있는 여인을 구출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로서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 묶여 있는 여자는 남자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전형적인 작품이 밀레이의 ‘기사 에란트’다. 큰 나무에 묶여 있는 벌거벗은 여인. 여인을 묶은 밧줄을 갑옷 입은 기사가 칼로 끊고 있는 이 작품에서 큰 나무는 남근(男根)을 암시한다. 여인의 발 밑에는 옷가지가 흐트러져 있고, 화면 오른쪽에 칼에 맞아 쓰러진 남자, 화면 맨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도망가는 남자 두 명은 여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피 묻은 칼은 싸움도 상징하지만 여성과의 섹스도 암시한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기사 에란트’를 테마로 3개의 작품을 그렸는데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에서 여성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은 너무 적나라해서 도덕성을 강조하는 빅토리아 시대에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여자의 얼굴을 전혀 보이지 않게 그렸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이 즐겨 소재로 삼는 것은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 이야기다. 신화는 에로티시즘으로 비난받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들이 선호했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하임 우테웰(1566~1638)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는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안드로메다를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화면 왼쪽, 사슬로 바위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는 오른손을 들고 자신을 구출하러 온 페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자세는 고대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듯 우아하고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암시하듯 뺨은 붉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400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01/06/200901060500006/image/200901060500006_1.jpg&quot; width=600&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1819년, 캔버스에 유채, 147x190cm, 파리 루브르박물관(좌) ‘기사 에란트’&lt;/SPAN&gt;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드워드 포인터(1836~1919)의 ‘안드로메다’에서는 안드로메다가 바위에 묶여 있는 모습만 묘사했다. 거센 바람이 안드로메다의 옷을 벗기고 있고, 파도는 바위를 집어삼킬 것처럼 일렁거린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윳빛 살결의 안드로메다와 검은색 바위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안드로메다의 나체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안드로메다의 벗겨진 옷자락은 페르세우스를 암시하며 성난 파도는 괴물을 상징한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대 신화 안드로메다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앵그르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다. 이 작품은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안젤리카는 파도에 휩싸인 바위에 두 팔이 결박당해 있고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채 서 있다.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는 서사시의 에피소드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 &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앵그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앵그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밀레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밀레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박희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희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포인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포인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우테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테웰&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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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⑩] 성욕을 풀고자 매춘부가 된 여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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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author>
	    <updated>2009-11-01T21:28:10Z</updated>
	    <published>2009-11-01T21:28:1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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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d12px-89431C vAlign=top height=2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⑩] &lt;/SPAN&gt;&lt;SPAN class=fd-b-20px-1853B5-34&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성욕을 풀고자 매춘부가 된 여자&lt;/SPAN&gt;&lt;/SPAN&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height=2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동아 | 2009년 10월호 &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background=/docs/magazine/shin/img/line_dotline01.gif&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발문 끝 -------&gt;&lt;!----- CALVINTEXT -------&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g13px-484848&gt;&lt;B&gt;&lt;FONT size=2&gt;&lt;!--no title --&gt;&lt;/FONT&gt;&lt;/B&gt;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174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10/07/200910070500044/image/200910070500044_3.jpg&quot; width=243&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FONT color=#5c7fb0&gt;‘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여자’ 1579년, 캔버스에 유채, 111×117㎝, 렌 보자르 미술관 소장 &lt;/FONT&gt;&lt;/SPAN&gt;&lt;/CAPTION&gt;&lt;/TABLE&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결혼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섹스하기에 편하다는 것이다. 섹스를 하는 데 특별한 시간과 돈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섹스가 자유로운 만큼 어느 순간부터는 흥미를 잃는다는 단점이 있다. 매일 똑같은 상대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자세의 섹스는 즐거운 행위이기보다는 요식행위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섹스가 주는 흥분과 설렘을 더는 맛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남자는 가끔씩 섹스의 본질을 찾고자 눈만 돌리면 도처에 널려 있는 매춘부를 찾는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매춘부와 하룻밤 정사를 나누려면 돈이 필요한데 남자의 경제력과 매춘부의 미모는 비례한다. 미모의 매춘부는 절대적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부자는 미모의 매춘부를, 가난한 남자는 뚱뚱하고 못생긴 매춘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돈만 밝히는 매춘부를 그린 작품이 퐁텐블로 화파의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여자’다. 이 작품은 남자에게 섹스의 즐거움을 주는 대가를 요구하는 매춘부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434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10/07/200910070500044/image/200910070500044_4.jpg&quot; width=242&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메살리나’ 1874년, 캔버스에 유채, 242×137㎝, 파리 귀스타프 모로 미술관 소장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젊은 남자가 여인의 가슴을 만지고 있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는 여인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매춘부의 몸은 부유한 남자에게 가 있지만 동그랗게 말아 쥔 손은 늙은 남자를 향해 있다. 매춘부의 손은 돈을 암시하며 빈손을 내보인 늙은 남자는 경제력이 없음을 암시한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퐁텐블로 화파(16세기 중반부터 퐁텐블로 궁과 관련 있는 작품을 제작한 화가들의 집단을 말한다)의 무명 화가가 제작한 이 작품은 매춘부를 통해 돈이 없지만 노인의 사라지지 않는 욕망을 표현했다. 노인의 성욕을 나타내는 것은 옷이다. 검은색 옷 사이로 보이는 붉은 옷은 여자의 성기를 암시한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남자는 넘쳐나는 성욕을 매춘부와 섹스하는 것으로 해결하지만 여자는 성욕을 풀 방법이 많지 않다. 성욕을 해결하려고 매춘부가 된 여자를 그린 작품이 모로의 ‘메살리나’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메살리나 발레리아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세 번째 아내로 황제보다 35살이나 젊었다. 왕이 젊은 아내 메살리나의 성욕을 채워주지 못하자 메살리나는 왕궁 옆에 은밀한 방을 만들어 젊은 남자들을 도구 삼아 욕구를 채웠다. 그러나 메살리나의 강한 성욕은 순한 남자를 통해서는 충족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신분을 속이고 로마 뒷골목 싸구려 매춘굴에서 매춘부로 생활한다. 그곳에서 메살리나는 거친 서민들과 변태적 쾌락을 즐겼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239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10/07/200910070500044/image/200910070500044_5.jpg&quot; width=187&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두 창녀’ 1906년, 종이 위에 파스텔, 69× 54㎝, 오타와 캐나다 내셔널 갤러리 소장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젊은 남자가 메살리나를 바라보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고 메살리나는 침대 한쪽에 발을 올려놓은 채 남자의 어깨를 애무한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메살리나의 시선은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욕을 암시하며, 하얀 메살리나의 몸과 강한 대비를 이룬 남자의 몸은 성적 쾌락에 빠져 있음을 나타낸다. 두 사람 뒤에 횃불을 들고 있는 여자는 황후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지만 황후의 행실엔 시선을 두지 않고 있다. 화면 왼쪽 열린 창문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로마의 궁정을 나타내며 메살리나가 있는 곳이 사창가임을 암시한다. 침대 시트와 반쯤 열려 있는 커튼은 섹스의 쾌락을 나타낸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귀스타프 모로(1826~1898)의 이 작품에서 왕관은 그녀가 황후임을 상징하며 그녀의 신분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남자보다 높게 서 있는 구도로 그림을 그렸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282 hspace=0 src=&quot;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9/10/07/200910070500044/image/200910070500044_1.jpg&quot; width=221&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검진’ 1894년, 나무에 유채, 83×61㎝,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섹스의 쾌락을 탐닉하려고 매춘부를 찾지만 모든 남자가 원하는 매춘부를 손에 넣는 것은 아니다. 미모의 매춘부와 하룻밤을 보내려면 미모만큼이나 고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가진 돈이 적은 이들을 기다리는 곳이 사창가다. 사창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매춘부를 그린 작품이 루오의 ‘두 창녀’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창가에서 두 명의 매춘부가 스타킹 하나만 걸치고 서 있고 그들 뒤에는 여러 명의 매춘부가 의자에 흐트러진 자세로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검은 머리의 뚱뚱한 매춘부는 검은색 스타킹을 신었고, 붉은색 꽃으로 머리를 장식했다. 금발의 머리를 틀어 올린 매춘부는 노란색 스타킹 차림. 두 매춘부의 몸매는 대조적이지만 축 늘어진 가슴과 넉넉한 뱃살은 이들이 싸구려 사창가에서 일한다는 걸 암시한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르주 루오(1871~1958)는 매춘부의 굳은 표정을 통해 손님에게 선택받는 순간의 긴장감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창부 시리즈 중 하나로 루오는 1902년부터 나체의 창부를 정열적으로 그렸다. 그는 여자에 대한 공포를 화난 표정을 짓는 매춘부의 얼굴로 표현했다. &lt;/SPAN&gt;
&lt;P&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매춘부와 섹스를 즐길수록 성병과 친해질 확률이 높다. 자유를 누린 만큼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성병 검진을 받는 매춘부를 그린 작품이 로트레크의 ‘검진’이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매춘부들은 성병검사를 받으려고 하반신을 노출시킨 채 서 있다. 19세기 파리는 매춘으로 인해 성병이 만연했다. 그래서 물랭루즈에서도 정기적으로 매춘부를 상대로 성병검사를 실시했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매춘부들은 검진 순서를 기다리면서 수치심을 느끼기는커녕 시간을 절약하고자 옷을 미리 벗고 있다. 두 여인은 화장을 요란하게 했지만 가슴은 축 처지고 뱃살은 늘어졌다. 이미 육체가 세월에 무너진 것이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파리 물랭루즈 매춘부들의 일상을 그린 앙리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의 그림에는 젊은 날의 관능미를 찾아볼 수 없는, 삶에 찌든 매춘부들의 서글픈 모습이 담겨 있다. &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퐁텐블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퐁텐블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로트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로트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박희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희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모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모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루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루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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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술속의 에로티시즘] 육감속에서 찾아낸 독특한 영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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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author>
	    <updated>2009-11-01T21:18:38Z</updated>
	    <published>2009-11-01T21:18: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class=font1 id=articleTit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미술속의 에로티시즘] 육감속에서 찾아낸 독특한 영감&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스포츠칸 alt=스포츠칸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144.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6-04-02 21:27&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최종수정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6-04-02 21:27&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 id=articleBody&gt;
&lt;DIV id=keyword_layer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gt;&lt;/DIV&gt;&lt;BR clear=all&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5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2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0px&quot; align=midd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height=338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144/2006/04/02/6a0392a-center.jpg&quot; width=450 border=0&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50년대 초 영국의 화가 그룹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미술의 방향을 찾는 토론이 자주 일어났다. 이들은 대중사회의 문화·매스 미디어 같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군이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54년 영국의 미술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는 ‘대중적인 미술(Popular art)’을 지칭하는 의미로 이들의 그림을 ‘팝아트’라 불렀다. 영국의 팝아트는 대중적 이미지의 차용과 사회질서를 공격하는 비판적 의도가 있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50년대 후반 극도의 추상성과 추상표현주의의 엄숙성에 싫증을 낸 미국으로 옮겨갔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팝아트의 등장은 고급 미술로 분류되던 미국 추상표현주의 평론가들로부터 강력한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팝아트의 속성상 대중에게 쉽게 침투돼 컬렉터들의 표적이 되면서 팝아트는 미국 전역에서 상상 이외의 성공을 거두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오브제를 결합한 콤바인 페인팅,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인쇄한 앤디 워홀, 만화풍의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젠키스트 등 미국의 세계적 스타 작가가 이들이었다. 톰 웨셀만도 미국의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팝아티스트다.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싫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만화를 시작한 그는 예술 아카데미에서 만화를 배우고 풍자 만화가로도 일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는 30대에 드쿠닝의 영향을 받으면서 추상표현주의 작업과 콜라주 기법으로 오브제를 여성의 신체와 결합시키는 형식으로 화단에서 화제를 모았다. 여기 외설스럽게 벌리고 누워 있는 여체에 수영복 흔적의 육감적인 젖가슴, 노골적인 여성 상징의 노출로 웨셀만은 누드 전문 작가가 됐고 이로써 비난과 명성을 한몸에 얻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의 회화의 특징은 누드와 오브제의 입체적 콜라주인데, 여기서는 여체와 정물이 간결한 표현의 실내 공간에 어우러져 있다. 특히 여성의 심벌인 가슴과 하체에 초점이 모아진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처럼 벗은 여체는 그의 모든 회화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보통 그의 여체는 전화나 시계, 타월과 같은 오브제로 욕실과 침실의 독특한 섹스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여기서는 실내의 정물과 함께한다. 복잡한 배경을 완전히 생략하고 담배나 재떨이, 꽃, 과일로 에로틱한 퇴폐적 무드의 나체야말로 그의 회화의 진수다. 변형된 캔버스와 여체의 섹슈얼한 이미지, 서구 남성들의 소망들을 시사하는 평면적 실루엣의 에로티시즘이 화면을 감싸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숙명여대 겸임교수, 미술평론가 critickim@hanmail.net〉&lt;/SPAN&gt;&lt;/DIV&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팝아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팝아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탐 웨설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탐 웨설만&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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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 ⑧] 위험한 집착, 롤리타 신드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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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인의 사랑</name>
	    </author>
	    <updated>2009-11-01T21:15:30Z</updated>
	    <published>2009-11-01T21:15:3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article_header&gt;
&lt;H3 class=font1 id=articleTit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작가 박희숙의 Art 에로티시즘 ⑧] 위험한 집착, 롤리타 신드롬&lt;/SPAN&gt;&lt;/H3&gt;
&lt;DIV class=spons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title=신동아 alt=신동아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9/press/top_262.gif&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class=ba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기사입력 &lt;/SPAN&gt;&lt;SPAN class=t11&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08-01 00:00&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DIV&gt;&lt;/DIV&gt;
&lt;DIV class=&quot;article_body font1 size4&quot; id=articleBody&gt;
&lt;DIV id=keyword_layer style=&quot;Z-INDEX: 20; POSITION: absolute&quot;&gt;&lt;/DIV&gt;&lt;BR&gt;
&lt;P&gt;
&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shindonga/2009/08/01/200907290500073_3.jpg&quot;&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허니’ 1973년, 흑백 사진, 개인 소장&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청춘에겐 젊다는 것이 거추장스럽지만, 나이 들수록 세상에서 가장 탐나는 것이 젊음이다. 젊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늙은 남자가 회춘하는 방법 중 하나로 어린 소녀와의 동침이 전해지고 있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 헤맨 불로초는 애초에 없는 것이다 보니 부적절한 방법이지만 회춘할 목적으로 소녀와 동침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회춘을 위해서건 사랑을 위해서건 소녀에게 성욕을 느끼는 것을 ‘롤리타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의붓딸에게 사랑을 느낀 아버지를 그린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서 비롯됐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shindonga/2009/08/01/200907290500073_4.jpg&quot;&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기타 레슨’ 1934년, 캔버스에 유채, 161×138cm, 개인 소장&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보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품이 로버트 매플소프(1946~1988)의 ‘허니’다. 이 작품은 매플소프가 1973년 영국을 여행하던 중 공원에서 놀고 있던 네 살의 로지를 찍은 사진으로, 1988년 섹스를 주제로 한 ‘완벽한 순간’이라는 전시회에 전시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어린이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작품이 문제가 된 것은 걷어 올려진 치마 사이로 보이는 성기 때문이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작품에서 문제가 된 모습은 어린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지만, 작가가 어린이를 섹스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1988년 동성애자인 매플소프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술 전시기획자들은 그의 생전에 회고전을 준비한다. 사후(死後)에 미국 전역을 도는 순회전이다. 문제가 된 이 작품을 관대하게 보는 도시에서는 전시가 가능했지만,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인 도시에서는 전시되지 못했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shindonga/2009/08/01/200907290500073_5.jpg&quot;&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검은 장갑을 낀 비너스’ 1932년, 캔버스에 유채, 25×25cm, 개인 소장&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라져버린 젊음에 대한 동경은 소녀와의 사랑을 갈구하는 변태적인 욕구로 변질된다. 성인 여성과 정상적인 섹스를 못하기 때문이다. 소녀와의 가학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 발튀스(1908~2001)의 ‘기타 레슨’이다. 이 작품은 소녀에 대한 성적 욕망을 표현했는데, 발튀스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인은 의자에 앉아 무릎에 소녀를 눕히고 소녀의 성기를 어루만지고 있다. 한 손으로 여인의 유두를 잡고 있는 소녀의 검은 스커트는 가슴까지 올라가 있어 성기가 훤히 드러나 있다. 화면 왼쪽의 피아노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기타는 음악 수업중이며, 여인과 소녀가 스승과 제자 사이임을 암시한다. 하얀색 스타킹과 분홍색 머리 리본은 사춘기 소녀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소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여인은 성적 자극을 받아 유두가 곧추서 있다. 여인의 변태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붉어진 뺨과 벌어진 입술 그리고 살포시 감은 눈은 수치심을 나타내기보다 성적 황홀감에 빠진 모습에 가깝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작품에서 기타와 소녀의 몸이 동일시되고 있는데 기타는 연주자 성향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성기를 쓰다듬으면서 쾌락에 못 이겨 소녀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여인은 작가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src=&quot;http://imgnews.naver.com/image/shindonga/2009/08/01/200907290500073_1.jpg&quot;&gt;&lt;/SPAN&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피자 먹는 사람’ 1982년, 캔버스에 유채, 150×150cm, 뉴욕 메리분갤러리 소장&lt;/SPAN&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발튀스의 이 작품은 1934년 첫 번째 개인전에 전시되어 대중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악동학대와 동성애, 사도마조히즘을 거칠 것 없이 표현한 이 작품은 전시 당시 대중에게는 물론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금지된 욕망을 경험한 소녀는 성인 여성보다 유혹에 더 능숙하다. 중년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청순함과 순수함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혹의 싸움에서 성숙한 여인은 소녀를 당할 수 없다. 소녀의 치명적인 유혹을 그린 작품이 오토 딕스(1891~1969)의 ‘검은 장갑을 낀 비너스’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검은색 커튼이 드리워진 방에서 소녀는 검은색 외투를 반쯤 벗은 채 검은 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음부를 누르고 있다. 정돈된 머리와 다문 입술 그리고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소녀에게서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음부를 누르는 손은 소녀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는 남자를 나타낸다. 장갑은 남성을 상징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검은색 배경은 소녀의 흰 피부와 대조를 이루는 동시에 성숙하지 않은 소녀의 가녀린 육체를 부각시키며 에로티즘을 강하게 나타낸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토 딕스의 이 작품에서 소녀는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파탈로 묘사됐다. 검은색 커튼과 검은색 외투는 소녀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의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춘기 소녀들은 성적 행위에 따르는 책임은 생각하지 않고 금단의 열매인 쾌락에만 관심이 있다. 성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에릭 피슬(1948~)의 ‘피자 먹는 사람’이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모래사장에서 벌거벗은 소녀가 고개를 숙인 채 손에 피자와 콜라를 들고 걷고 있고, 젊은 두 남자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소녀는 두 남자의 시선을 외면하면서도 미소를 머금고 있다. 소녀의 미소는 남자들의 시선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남자의 붉은색 하의는 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소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두 남자의 성적 욕망을 부추긴다는 걸 알지만, 그들의 시선을 피함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무관심한 척하는 것이다. &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작품은 여성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미국문화를 고발한다. 피슬은 이 작품에서 성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벌거벗은 소녀를 그려 넣었다. &lt;/SPAN&gt;&lt;/P&gt;&lt;/DIV&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발튀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발튀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박희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희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에릭 피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에릭 피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kfZ&amp;amp;tagName=오토 딕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토 딕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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