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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억사모’를 만드는 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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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억사모’를 만드는 꿈&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시민광장]&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고상만&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필자가 가진 오래전부터의 관심사는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lt;BR&gt;&lt;BR&gt;인권운동 현장에 몸을 담았던 90년대 초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 억울함에는 경찰로부터 모욕과 무시, 핀잔을 들어 인권이 침해되었다는 문제에서부터 가족 중 누군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연을 눈물로 하소연하는 것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이처럼 호소하는 분들의 신분 역시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아주 낮은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유학을 다녀온 박사부터 별을 3개나 단 육군 중장 출신의 아버지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처럼 편차도 크고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억울한 사연에 대해 혼자 힘으로 어쩌지 못하고 고통과 슬픔을 호소하는 것이다.&lt;BR&gt;&lt;BR&gt;세인들에게 소위 ‘적과의 내통’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공동경비구역 JSA내 241GP에서 사망한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의혹사건’ 역시 그렇다. 1998년 5월, 천주교 인권위원회로 찾아온 유족을 통해 알게 된 ‘김훈 중위 사망 의혹사건’은 사건 자체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많은 이들이 물어온 것이 ‘아버지가 육군 중장 출신인데 왜 사건이 쉽게 해결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 &lt;BR&gt;&lt;BR&gt;어쩌면 사람들은 누군가가 권위가 있고 힘이 세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에는 다르다. 막상 그 억울한 일이 자신의 사례가 되면 누구라도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지난번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언론과 검찰로부터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공격을 받고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결국 스스로 목숨을 던져 항변한 것이 아닌가.&lt;BR&gt;&lt;BR&gt;그래서 오래전부터 필자는 ‘억사모’를 만들고 싶었다. ‘억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필자는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싶다.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보태주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lt;BR&gt;&lt;BR&gt;예를 들어 지난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으로 15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어 다시 15년의 세월을 남원의 깊은 산속에서 살아왔던 정원섭 목사의 사례가 그것이다. 정 목사는 사건 발생 30년이 지난 2002년경,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lt;BR&gt;&lt;BR&gt;유신 선포를 불과 석 달 여 앞 둔 초긴장 정국에서 발생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에 대해 당시 내무부장관은 72시간 안에 살인범을 체포하라는 영화 속 대사같은 황당한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결국 누구라도 범인이 되어야 했던 다급한 경찰은 조작된 증인을 내세워 당시 만화가게를 하던 별 볼일 없는(?) 38세의 정원섭씨를 범인으로 몰았고, 그는 이후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lt;BR&gt;&lt;BR&gt;“그동안 가만있다가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왜 무죄를 주장하는가”라고 묻자 정 목사는 “살인범으로 몰린 후 아들이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내가 죽은 후에도 내 자식에게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는 남기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lt;BR&gt;&lt;BR&gt;참으로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 목사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처음 정 목사 사연을 접한 후 그저 위로해 줄 말만 찾아야 했던 필자의 예상을 깨고 정 목사는 재심으로 열린 1, 2심에서&amp;nbsp;&amp;nbsp;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과정에서의 사연은 그야말로 상상을 넘어서는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었으나 정 목사는 15년 2개월 8일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참으며 배운 놀라운 인내와 집념으로 마침내 무죄를 받아낸 것이다. &lt;BR&gt;&lt;BR&gt;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아름다운 사연은 많지 않다.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은 감옥에 갇혀있고, 지난 2003년 학내 부정을 고발했다가 청부살해된 서울 모 여고의 재산관리인 이만식 씨의 진짜 주범은 거액의 돈으로 산 전관예우 변호인단 덕에 자유의 몸으로 살고 있다. 법이 응징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응징하겠다며 울부짖던 그의 부인을 필자는 잊지 못하겠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며 ‘억사모’를 떠올렸다. &lt;BR&gt;&lt;BR&gt;그래서 억울함을 경험한 분 중에 이긴 경험이 있는 분이 조언하고 또 억울함을 당하면서 세상이 정의롭지만 않다는 것을 느낀 이들이 더불어 위안을 얻고 서로의 힘이 된다면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시민의 힘으로 다져진 정의로움’이 세상에 싹트는 꿈을 꾸고 싶다. 그 꿈을 꼭 만들고 싶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9/07/ljh_090907_114043_39660.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고상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7006&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7006&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7006&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시민광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시민광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고상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상만&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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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천지만물을 담은 글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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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0T00:17:56Z</updated>
	    <published>2009-09-10T00:17:5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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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천지만물을 담은 글자&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강상헌의 한자 이야기[5]-될 화(化)&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강상헌&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우리 국민들은 최근 두 분 전(前) 대통령을 슬픔 속에서 보냈다. 미소 예쁜 한 여배우의 죽음도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목숨 가진 모든 것은 죽는다.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다. 주검이 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 죽지 않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15px 1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100 bgColor=white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9/07/ljh_090907_113725_86374.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ic_content&gt;화(化)의 옛 글자로 사람[人]이 누워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되다, 변화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화(化)라는 글자에는 죽다, 망하다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일어나고 스러지는 생멸(生滅)의 이치를 이 문자는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lt;BR&gt;&lt;BR&gt;글자의 모양은 매우 간단하지만 수만 마디 말로도 다 설명하기 어려운 천지만물의 변전(變轉)의 법칙, 자연의 엄연(儼然)한 조화(造化)를 너끈히 포괄하고 있는 점이 이 글자의 매력(魅力)이다. &lt;BR&gt;&lt;BR&gt;이 글자의 초기 모습은 더 간단하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사람 인(人)의 옛 글자를 뒤집어놓은 모양만으로 ‘변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화’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화(化)자는 세월이 지나면서 옛 ‘화’자 앞에 바로 선 사람을 뜻하는 부수자 인(&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亻&lt;/SPAN&gt;)자가 더해진 것이다. &lt;BR&gt;&lt;BR&gt;글자 모양으로는 오른쪽이 부수자(部首字)로 쓰이는 비수 비(匕)자이지만 뜻은 비수와 상관없이 아파 누워있는, 또는 죽은 사람을 그린 것이 변한 것이다. 서있는 사람과 누워 있는 사람을 한 글자로 합쳐 되다, 또는 변화하다라는 글자로 그려낸 것이다. 한자가 가지는 추상화(抽象化)의 묘미다.&lt;BR&gt;&lt;BR&gt;다른 것, 같지 않은 종류를 낳는다는 의미로 설명되기도 한다. 화(化)는 같은 류(類)가 아닌 것을, 산(産)은 같은 종(種)을 낳는 것을 말한다고 한 문헌(文獻)은 설명한다. &lt;BR&gt;&lt;BR&gt;사람(人)이 모양을 바꿔 다른 사람(匕)이 된다는 뜻을 합한 글자로 '되다'를 뜻한다는 것이 자전(字典)의 설명이다. 요즘 글자 모양(해서체)으로만 본다면 사람이 모양을 바꿔 날카로운 칼이 된다는 것이다. 비(匕)는 날카로운 칼, 비수를 뜻하는 부수자다. 사람과 칼이 모여 ‘되다’는 뜻을 구성한다는 다소 무책임한 설명이다. 자전의 이 설명으로 이 글자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이 될까?&lt;BR&gt;&lt;BR&gt;한자의 부수자 지정(指定), 부수의 분류 중에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모양만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대의 한자에서는 ‘사람이 누워있는’ 이 화자(사람 &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亻&lt;/SPAN&gt;자가 붙지 않은 글자)도 매우 많이 쓰여, ‘설문해자’에서는 따로 부수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화(化)로 변한 다음에 점차 쓰임새가 줄어 소멸됐다. 대신 모양이 비슷한 비(匕)자가 누워있는 사람을 뜻하는 모양으로 화(化)자에서 쓰이게 된 것이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BR&gt;문명한 상태로 나아간다는 뜻의 문화(文化)처럼, 대개는 천지(天地) 자연의 운용과 변화(變化)의 법칙을 따르는 바뀜의 뜻으로 쓰이는 이 ‘화’자의 ‘실질적 파워’는 정작 다른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lt;BR&gt;&lt;BR&gt;‘적(的)’ ‘주의(主義)’라는 단어와 함께 이 ‘화(化)’자가 무수한 파생어를 만들어내 우리말을 비대(肥大)하게 하는 재료(?)가 되고 있음을 이르는 것이다. 우리보다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한자문화권 일본의 강력한 영향력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lt;BR&gt;&lt;BR&gt;민주적(民主的), 민주주의(民主主義), 민주화(民主化) 등으로 활용되는 것을 말함이다. 개념어(槪念語) 뒤에 붙여 이런 단어들은 마치 만능열쇠처럼, 마술과도 같은 조어(造語)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정통성을 강조하는 한글연구가들은 이런 현상을 오용(誤用) 또는 남용(濫用)으로 분석하기도 한다.&lt;BR&gt;&lt;BR&gt;정작 변화의 현상을 천착(穿鑿)하는 학문인 화학(chemistry)과 그 언저리에서 보다 다른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이 글자를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연유(緣由)다.&lt;BR&gt;&lt;BR&gt;*&lt;시민사회신문&gt; 한자교육원 홈페이지(&lt;A href=&quot;http://www.yejiseowon.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00266c&gt;www.yejiseowon.com&lt;/FONT&gt;&lt;/A&gt;)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 #d87718 1px solid; BORDER-LEFT: #d87718 1px solid; BACKGROUND-COLOR: #fdf5ec; MARGIN-BOTTOM: 20px; BORDER-TOP: #d87718 1px solid; BORDER-RIGHT: #d87718 1px solid&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TEXT-JUSTIFY: distribute; TEXT-ALIGN: justify; 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50%; PADDING-LEFT: 15px; PADDING-RIGHT: 15px; FONT-FAMILY: 굴림, 굴림체; LETTER-SPACING: 0px; COLOR: #262626; FONT-SIZE: 10pt; PADDING-TOP: 5px&quot;&gt;&lt;STRONG&gt;토막해설-화(化)&lt;BR&gt;&lt;/STRONG&gt;&lt;BR&gt;6서(六書)로는 회의자(會意字)로 분류된다. 부수자 비수 비(匕)자의 부수에 속하나 생성 당시 모양과 뜻은 날카로운 칼과 상관이 없다. 대표 훈(訓)과 음(音)은 ‘될 화’이지만, ‘잘못 와’의 훈과 음도 있고, 잘 못 전해지다는 뜻의 ‘와전(訛傳)’에 쓰이는 ‘와’자의 옛 글자다. ‘천지 자연(自然)이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는 작용’ ‘천지의 운용(運用), 변화의 법칙’을 뜻한다. 자연히 ‘죽음’의 뜻으로도 쓰였다. 생사(生死)를 함께 보듬은 글자인 것이다.&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0px solid; BORDER-LEFT: #000000 0px solid; BORDER-TOP: #000000 0px solid; BORDER-RIGHT: #000000 0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2/09/ljh_090209_132847_82217.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강상헌 논설주간 한자교육원 원장 &lt;A href=&quot;mailto:yeji@ingopress.com&quot;&gt;yeji@ingopress.com&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7004&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7004&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7004&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강상헌의한자이야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강상헌의한자이야기&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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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2010년 지방선거와 민주대연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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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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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2010년 지방선거와 민주대연합&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시론]&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손혁재&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이명박 정부 1년 반은 한국사회의 전방위적 후퇴로 특징지어진다.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우려했던 반동의 세월이 현실화된 것이다. 헌정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10년 동안의 민주평화개혁시대가 끝나고 신보수권위주의시대로 회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철저하게 수구기득권 관점에서 국정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파시즘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과거 군부독재시절보다도 더 심하게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있다. &lt;BR&gt;&lt;BR&gt;‘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며 ‘경제살리기’를 선택했을 때 아마도 국민들은 ‘설마’ 했을 것이다. 20년 동안 발전시켜온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제는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었던 국민이 순진했던 것일까. 대통령의 돌격대식 국정추진과 소통부재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냈다. 사이버모독죄, 언론장악 기도,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탄압 등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입법전쟁’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 한나라당은 국회를 압도적 다수의석을 무기로 군사작전 하듯 운영하고 있다. &lt;BR&gt;&lt;BR&gt;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합법적인 절차라든가 국민여론은 무시한 채 무조건 밀어붙이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7월에 있었던 미디어법 억지통과이다. 이런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국민의 뜻을 국정운영에 반영하는 거버넌스 체계는 붕괴되었다. 중도사퇴한 안경환 인권위원장의 지적처럼 국민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lt;BR&gt;&lt;BR&gt;구시대적 가치도 부활했다. ‘고소영 청와대’, ‘강부자 내각’, ‘1% 정책’이라는 명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수특권사회에서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삽질’로 비유되는 토목공사식 경제개발은 생태적 가치와 지속가능발전을 무시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의 상상력은 실종되었고, 창조적 가치와 다양성도 상실되어 버렸다. &lt;BR&gt;&lt;BR&gt;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을 통해 겨우 터를 닦은 남북화해 분위기는 극한적 남북대결로 바뀌었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휴지화되었고, 남북대결의 낡은 구도가 되살아났다. 사회 내부적으로도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좌우대결이 강화되었다. 이런 현상을 200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3대 위기(‘민생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lt;BR&gt;&lt;BR&gt;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내세웠지만 친재벌, 친조중동, 친소수 1%에게 이익이 되는 것의 추진에만 집착할 뿐 국정운영의 기본철학과 원칙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은 탈이념, 속도, 효율성, 결과, 대통령의 판단 등을 중시한다. 상대적으로 투명성, 민주성, 정당성, 형평성, 국민정서 등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소통은 없었고 오로지 일방독주만이 있을 뿐이었다. &lt;BR&gt;&lt;BR&gt;국민의 지지를 포기하는 대신 권력기관들을 통치에 동원하면서 공안세력이 국정운영의 전면에 나서는 공안통치가 부활했다. 검찰권의 중립성은 상실되어 충실한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 경찰은 권력을 지키는 사병집단으로 전락했다. 국가정보원은 국민의 정부 이전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어두운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했다. 세계사적인 흐름을 거스르면서 야만과 광기의 공포정치가 부활하는 중이다.&lt;BR&gt;&lt;BR&gt;최근 다양한 형태로 연대와 통합이 논의되고 있다. 1차 목표는 내년 6월 2일 치러질 지방선거의 승리일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제동 걸지 못한다면 아마도 2012년 제19대 총선까지 이명박 정부의 보수 드라이브는 거의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6.2 지방선거의 환경은 외형상 한나라당에게 불리하다. 이명박 정부 집권 후 치러지는 최초의 전국적 선거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중간평가는 대체로 여당에게 불리하다. &lt;BR&gt;&lt;BR&gt;몇 차례 재보선에서 드러났듯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실패에 대한 심판을 벼르는 민심도 존재한다.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다소 낮아지고, 민주당 등 야당의 지지도는 소폭이나마 상승하고 있다. 정당이 직접 개입한 선거는 아니지만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는 친한나라당 성향의 광역후보가 수도권에서는 10년 만에 패배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서 연대와 통합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lt;BR&gt;&lt;BR&gt;그러나 광범한 ‘반MB 민심’이 존재한다고 해도 ‘범민주연대’라는 것만으로는 지방선거의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반이명박’, ‘반한나라당’을 뛰어넘는 가치와 정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선거, 2008년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선택했던 민심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실용주의와 맞설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를 정치적 비전과 정책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3/19/ljh_090319_163410_14888.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손혁재 한국 NGO학회 회장&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7000&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7000&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7000&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시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시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손혁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손혁재&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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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누굴 위한 ‘촛불’ 검찰백서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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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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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0T00:16:16Z</updated>
	    <published>2009-09-10T00:16:1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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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누굴 위한 ‘촛불’ 검찰백서인가&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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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진단 기고]&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안진걸&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검찰이 또다시 예산과 공적 인력을 낭비하여 촛불운동에 대한 폄훼를 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시녀임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검찰은 이 정부 들어 국민들이 검찰을 급속도로 불신하게 된 이유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lt;BR&gt;&lt;BR&gt;검찰은 피디수첩이 촛불시위의 촉매가 됐다는 식의 무식하고 단순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광우병 위험 미 쇠고기에 대한 다양한 정보, 미국 소비자단체의 조언, 이웃나라의 수입조건,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가 돌변한 부분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상황을 종합하고,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치열한 토론 끝에, 뭔가 행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촛불을 든 그 사정과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검찰이 국민들의 입장과 고민이 아니라 오로지 촛불탄압에 골몰했던 권력의 입장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또다시 촛불운동을 깎아내리고, 피디수첩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국민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lt;BR&gt;&lt;BR&gt;미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가능성에 대한 세계적 우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웃나라 일본은 2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하는 조치를 시행하는 와중에도 뼛조각이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작업장에 대해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또 중국은 아예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금지조치하고 있습니다. 대만과 홍콩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도 이웃나라들의 협상결과를 보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공언해 왔는데, 일본과 중국 등의 조치에 상응하는 재협상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lt;BR&gt;&lt;BR&gt;최근에도 캐나다에서 광우병 소가 발병하기도 하고 유럽에선 2명의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묻지마’ 수입을 해서 국민들의 밥상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일본이나 중국 정부처럼 최대한 꼼꼼히 따지는 게 정당한 것인지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lt;BR&gt;&lt;BR&gt;작년에 한국에 온 저명한 미국의 소비자단체 리더들도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광우병 검역체계가 매우 허술하며 한국의 촛불운동을 우리는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세계적 논란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국민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했던 것이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lt;BR&gt;&lt;BR&gt;최근 법원에서 촛불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무죄선고가 연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초부터 검경이 무리하게 기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검찰의 주요 기소 근거였던 야간집회금지조항과 일반교통방해 조항은 위헌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전부터 지적됐고, 실제로 법원에 의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제기됐습니다. &lt;BR&gt;&lt;BR&gt;사법부가 헌법과 국민이 부여한 고유권한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제기하거나 기소자들을 보석으로 석방한 것 등에 대해 ‘재판상의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반헌법적이고 권력중심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또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박재영 판사에 대한 소개도 부정확했습니다. &lt;BR&gt;&lt;BR&gt;박 판사는 피고인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신도 아이들의 아빠로서 법복을 입지 않았다면…” 까지 언급했고, 그 뒷부분 생략된 내용은 “피고인의 입장과 동일했을 수 있겠지만 법복을 입고 있는 판사로서 피고인의 행위 배경을 이해한다 해도 실정법 위반부분에 있어 재판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 하려 했던 것입니다. 재판 당사자로서 정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박 판사는 기소자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기소자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 증인에게도 경찰의 입장에 선 대화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lt;BR&gt;&lt;BR&gt;또 연인원 수 백만 명이 참여하고 수 백만 명이 생방송을 시청했던 경이로운 촛불운동 과정에서 일부 시민들의 격한 행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촛불운동의 전체 양상인 양 과장, 비약하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검찰과 경찰이 수시로 써먹는 수법입니다.&lt;BR&gt;&lt;BR&gt;참가자 숫자도 경찰과 입을 맞춰 100만명이 안됐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촛불시위의 위력을 축소하는데 급급한 것으로, 숫자를 가늠할 수 없는 시민들은 연인원으로 수 백만 명 이상이 참여한 것은 분명합니다. 정치검찰의 최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져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바 있습니다. 그 외의 무리수도 많습니다. 제발 시국공안이 아니라 민생공안에 전념하라는 국민들의 충고를 검찰은 수용하고 성찰이 있기를 호소합니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8/01/21/ljh_080121_100723_92220.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98&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98&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998&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안진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안진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촛불백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촛불백서&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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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quot;세계상생주의 역사관이 바람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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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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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0T00:15:2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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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서길수 고구려지킴이 퇴임강연/새 민족주의 탄생과 한국 역사학계 과제&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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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right&gt;박근형&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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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lt;STRONG&gt;중국은 열등의식 버리고 아시아프로젝트에 참여해야&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gt;&amp;nbsp;&lt;/STRONG&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 #999999 1px solid; TEXT-JUSTIFY: distribute; TEXT-ALIGN: justify; BORDER-LEFT: #999999 1px solid; 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50%; BACKGROUND-COLOR: #ebebeb; PADDING-LEFT: 15px; PADDING-RIGHT: 15px; FONT-FAMILY: 굴림, 굴림체; MARGIN-BOTTOM: 20px; LETTER-SPACING: 0px; COLOR: #262626; FONT-SIZE: 10pt; BORDER-TOP: #999999 1px solid; BORDER-RIGHT: #999999 1px solid; PADDING-TOP: 20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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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TEXT-JUSTIFY: distribute; TEXT-ALIGN: justify; 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50%; PADDING-LEFT: 15px; PADDING-RIGHT: 15px; FONT-FAMILY: 굴림, 굴림체; LETTER-SPACING: 0px; COLOR: #262626; FONT-SIZE: 10pt; PADDING-TOP: 5px&quot;&gt;세계에스페란토협회 이사로 우리나라 에스페란토 보급에 이바지했고, 한국경제사학회 부회장으로 이자 변천사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고구려연구회를 이끌고 15년 동안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서 싸운 서길수 서경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신촌 거구장(巨龜莊)에서 정년퇴임 기념강연회를 가졌다. 서 교수는 이제 맑은나라불교연구소장으로 불교와 죽음에 관한 연구에 남은 삶을 바치기로 했다. 이날 강연은 서 교수가 고구려연구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외침이다. 그는 이 강연에서 한국 사학계가 힘을 합쳐 서로 도와야 하며, 사학연구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강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없다. 지금 세계는 이념대립을 하고 있지 않다. 모두 깃발 없는 행진을 하고 있다. 이것이 화폐신앙주의다. 자본주의도 유물사관이다. 두 이념이 사라지자 지금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돈이며, 내가 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돈 없으면 국경이 있고 돈 있으면 국경이 없다. 그래서 다국적기업에게 국경은 없다. 내가 고구려연구회를 열심히 이끌던 시절 우리나라 한 다국적기업이 나를 찾아왔다.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100억 원도 문제없이 마련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내게 “지금 중국과 계약건이 있어서 안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달리 보면 지금 세계는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하다. 국가민족주의가 힘을 내고 있다. 대표주자가 중국이다. 국가민족주의가 초국가주의를 길들이고 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lt;STRONG&gt;국가민족주의가 초국가주의 길들여&lt;/STRONG&gt;&lt;BR&gt;&lt;BR&gt;중국은 1980년부터 다민족통일국가를 내세우고 있다. 뿌리는 중화사상이다. 한족만 문명인이고 나머지는 야만족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한족에 다른 소수민족을 모두 붙여 중화민족이라 말한다. 문제는 이 중화민족이 청나라 영토에 들어가는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 논리를 따르면 러시아, 몽골, 베트남, 인도, 한국, 동남아시아 등 20개 접경국가가 모두 중국의 일부여야 한다. 실제로 1983년 창립한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는 이 20개 나라를 모두 다민족통일국가론이라는 결론 아래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6년 티베트 전문 연구기관인 중국티베트학연구센터(中國藏學硏究中心)를 설립해서 티베트역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먹었으며, 1990년부터 몽골을 공격해서 2005년 8월 “칭기즈칸이 중국인”이라 공식 선포했다.&lt;BR&gt;&lt;BR&gt;뿐만 아니라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하상주(夏商周)단대공정과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으로 소위 ‘5000년 중화문명사’를 확실하게 규정했다. 다음에 진행한 것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한 동북(東北)공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학자들은 고구려전문가가 아니라 국경문제 전문가다. 이들이 ‘다민족통일국가’에 부합하는 논리를 만들고 있으며, 지금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신강(新疆)공정을 진행하고 있다.&lt;BR&gt;&lt;BR&gt;나는 1996년부터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2004년이 되어야 언론이 크게 떠들며 정부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나는 외부와 싸우는 것 보다 내부에서 싸우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나는 석사와 박사 모두 한국 경제사에 관한 논문을 썼다. 역사가 아닌 논문을 쓴 적이 없다. 그러나 “경제학자가 무슨 역사를 하는가?”라는 뒷말이 계속 따라다녔고, 우리나라 국사학자들이 역사학과를 나오지 않은 진짜 전문 역사학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인식이 지금도 여전하다.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비 신청을 여섯 번 했지만 한 번도 안받아줬다.&lt;BR&gt;&lt;BR&gt;&lt;STRONG&gt;폐쇄적인 대한민국 학계&lt;/STRONG&gt;&lt;BR&gt;&lt;BR&gt;중국은 30년 동안 모든 프로젝트가 ‘다민족통일국가론’으로 집중하고 있다. 철저하게 중국 위주 논리로 진행해서 보편타당성이 부족하다. 그것도 연구결과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논리와 실용화를 동시에 진행한다. 동북공정 시작할 때부터 주요 고구려 유적지에 ‘고구려는 중국변방민족정권’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했을 정도다. 조직과 자금이 탄탄하고 국가적 행정지원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학문이 중립적이지 못하다.&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500 bgColor=white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9/07/ljh_090907_112441_69365.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ic_content&gt;'고구려지킴이' 서길수 서경대 교수(앞줄 가운데)가 지난달 29일 정년퇴임식 강연을 가졌다. 서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중국의 국가민족주의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한국 사학계가 힘을 모아 세계상생주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하다. 중국은 청나라 영토를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사 영토기준은 무엇인가. 저들은 한강 이북을 중국역사로 간주하며 한 역사를 두 나라가 공유할 수 있다(一史兩用)고 주장한다. 북한정권이 무너지면 저들이 군대를 한강 이북까지 진주시키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우리 입장은 무엇인가. 저들은 다민족통일국가를 내세운다. 우리가 말하는 단일민족은 한민족인가, 조선민족인가, 고려인가. 일본제국주의는 만선(滿鮮)사상, 만몽(滿蒙)사상,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웠다. 우리 주장이 대체 무엇인가. 정말 있는가. 부족한 것은 고칠 수 있으나 없는 것은 고칠 수 없다. 우리는 한국사와 영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아 중국이 만든 변강학이나 민족이론을 번역해서 학습이나 하는 한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lt;BR&gt;&lt;BR&gt;&lt;STRONG&gt;중국 역사왜곡 목적은 주변국가 침략&lt;/STRONG&gt;&lt;BR&gt;&lt;BR&gt;저들의 국가민족주의는 힘의 논리이고 강자의 논리다. 왜 저들이 저렇게 비이성적인 강자의 논리를 내세울까?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동안 이민족이 중국을 1000년 동안 지배했다. 사실 주변 국가는 자신들이 강해질 때마다 바로 이 국가민족주의로 한족을 지배했다. 한족이 세운 정권 중에 오래 가는 정권이 없다. 송나라만 300년 이상 유지했을 뿐이다. 사실 한족은 누가 이길지 몰라 숨죽이고 눈치만 살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lt;BR&gt;&lt;BR&gt;중국인에게 말한다. 이제 열등의식을 버리라고. 국가민족주의는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아시아의 평화와 지구의 평화를 위해 국제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주변국과 함께 상생의 새 역사관과 세계관을 수립해야 한다. 주변국은 공동연구로 그 위험성을 중국에 경고해야 한다. 이것을 누가 주도해야 할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 15번째 인구대국이며 12번째 경제대국이다. 이제 한국을 방어하는 소극적 연구를 벗어나 인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큰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적극적인 연구를 해서 세계상생주의(世界相生主義)를 내놓아야 한다. 이 아시아프로젝트에 중국도 참여해서 민주적이고 서로 존중하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역사관을 창조해야 한다.&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박근형 편집위원 티베트학 박사 &lt;A href=&quot;mailto:sooksook28@naver.com&quot;&gt;sooksook28@naver.com&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96&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96&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996&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고구려지킴이서길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구려지킴이서길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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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두 번 팔린 신생아는 예견됐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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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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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0T00:14:29Z</updated>
	    <published>2009-09-10T00:14: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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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두 번 팔린 신생아는 예견됐다&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공감의 변[48]&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소라미&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하루에 두 번 팔린 신생아” 사건으로 뉴스 지면이 뜨겁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대 동거 남녀가 자신들의 아기를 생후 3일 만에 200만원을 주고 입양하겠다는 자에게 인계하였고, 이 아이는 다시 30대 주부에게 465만원에 넘겨졌다. 친생부모는 병원비와 양육비를 감당하지 못할 처지였고, 입양부모는 입양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낳은 아이로 키우고자 했던 것이라고 한다. &lt;BR&gt;&lt;BR&gt;현재의 허술한 입양 제도 아래에서 ‘신생아 매매’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예견가능한 일이었다. 현행 민법 상 친생부모와 입양하고자 하는 부모 사이에 동의만 있으면 일반 입양은 성립된다. 친생부모가 직접 아동을 보호 양육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상담도 필요 없고, 입양할 부모에 대한 가정조사도 필요 없다. 양 당사자 간의 협의와 입양신고만으로 아이에 대한 일반 입양절차는 완료된다. 일반 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복리는 개입될 여지가 없으며 그 과정에 신뢰할만한 국가기관의 개입 또한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이러한 일반입양 제도는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편법으로 주한 미군에게 입양시키는 통로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한다.&lt;BR&gt;&lt;BR&gt;입양은 우리 사회에서 ‘지향’되어야할 것인가, ‘지양’되어야할 것인가? 국내외 유명 스타들의 입양이 선행으로 아름답게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입양을 ‘선’한 것, 성숙한 시민의식의 행로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한 안일한 인식으로 입양인 당사자 모임과 비혼모 활동가들을 만났던 나는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웠다. 입양은 ‘위선’이며, ‘반’아동 인권적이라는 것이다. 입양 이전에 애초에 아이가 입양되지 않도록, 출생한 원가정과 사회문화권에서 보호되고 양육될 수 있도록 지원,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되어야 하며 이러한 조처가 선행하지 않은 채 제시되고 선택되는 입양은 ‘위선’이며 ‘반’ 아동 인권적이라는 것이다. &lt;BR&gt;&lt;BR&gt;보건복지가족부의 통계에 의하면 2007년의 경우 전체 입양아동수 2천652명 중 비혼모 자녀가 2천296명으로 입양아동의 약 90%가 비혼모의 자녀라고 한다. 비혼모가 자녀를 포기하는 것은 사회 문화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나 가장 크게는 자녀를 출산하였을 경우 출산비와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없는 현행 법제도의 미비가 주요하게 작동한 결과이다. 비혼 상태에서 홀로 자녀를 출산한다는 두려움과 생계에 대한 막막함으로 입양기관의 문을 두드리면 입양기관은 입양을 선택하면 출산과 양육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상담을 제공하고, 그런 상황에서 비혼모 십중팔구는 입양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입양과 관련하여 민법과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입양특례법)이 입법되어 존재한다. 변화된 현실을 좇기 위한 민법 개정은 요원해 보이며 입양특례법은 전쟁고아들에 대한 해외 입양 절차의 간소화 취지에서 만들어졌던 ‘구 고아 특례법’을 모법으로 하고 있다. 법명에서 드러나듯 특례법은 입양 ‘촉진’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전쟁직후인 60년대와 사회, 문화, 경제적 환경이 판이하게 달라진 지금, ‘고아’를 대상으로 입양을 ‘촉진’하는 입양특례법의 존재 의의는 생명력을 다하였다. &lt;BR&gt;&lt;BR&gt;아동의 원가정 보호가 최우선의 정책적 고려 대상이 되도록, 입양절차와 과정에서 아동 인권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아동매매국이라는 오명을 받지 않도록 민법과 입양특례법의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은 채 구 시대 관행대로 존치되는 입양제도는 ‘위선’의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며 아동매매를 근절시킬 수 없을 것이다. &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8/05/26/ljh_080526_121753_22009.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소라미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94&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94&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994&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소라미변호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소라미변호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공감의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감의변&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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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40만원, 157억원, 887억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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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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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3T01:18:2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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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right&gt;차혜령&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40만 원. 서울 창신동 쪽방 밀집지역에 사는 김 씨 아저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후락한 건물 1층에는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가파르고 좁은 계단으로 통하는 입구가 여덟 곳 있다. 그 중 입구 하나를 골라 계단을 오르면 층별로 수도꼭지 하나와 변기가 박혀 있는 공간 사이로 작은 방이 둘씩 마주보거나 엇갈려 있다. &lt;BR&gt;&lt;BR&gt;방 하나가 하나의 집인 셈인데, 아저씨는 그곳에 있는 채 한 평이 되지 않는 방에서 산다. 옷걸이로 채워진 한쪽 벽. 그리고 쓸 수 없는 세탁기와 낮은 서랍장과 서랍장 위에 놓인 엘피지 가스레인지와 자잘한 살림살이가 오묘하게 조합된 다른 벽. 그 사이 어른 한 명이 누우면 다 차 버리는 공간에서 아저씨는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들어오는 통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종로구에서 아저씨 통장으로 매월 입금해주는 돈은 40만 원 가량. 생계급여 32만1천227원과 주거급여 8만4천654원을 합친 40만5천881원이다. &lt;BR&gt;&lt;BR&gt;#157억원. 2009년 기초생활보장 급여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하여 약 3조3천171억원. 그런데 최근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기획재정부에 2010년 예산요구안을 제출하면서 기초생활보장 예산 요구액을 3조3천14억원으로 줄였다고 한다. 올해보다 약 157억원 깎아내는 셈이다. 그래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는 사람 수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7천명 정도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lt;BR&gt;&lt;BR&gt;이렇게 되면 내년에는 새롭게 수급신청하는 사람들을 탈락시키든지, 기초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급여를 중지하든지, 급여액을 줄이든지 셋 중 하나다. 이미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를 본인부담액이 더 큰 2종 수급권자로 강제전환하거나, 기초생활보장수급 신청을 할 때 아무런 근거 없이 ‘음주나 소란행위를 할 경우 급여결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쓰게 하는 식으로 ‘수급권자 걸러내기’가 횡행하는 상황이다. &lt;BR&gt;&lt;BR&gt;#887억 원.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중 낙동강 자전거도로 사업에 약 887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현재까지 계획된 4대강 사업 총 예산은 22조2천억원(국토해양부가 기획재정부에 신청한 내년도 4대강 사업비는 약 6조2천억원). 그나마 낙동강 자전거도로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총 공사비 500억원 이상, 국가재정 지원 300억원 이상의 국책사업에 대해서 예산이 부실하게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미리 사업타당성을 조사하는 국가재정법상 제도)라도 계획되어 있다. &lt;BR&gt;&lt;BR&gt;하지만 나머지 한강, 금강, 영산강 유역에 건설되는 자전거도로 사업을 포함하여 하천 준설, 보 건설, 제방 보강 등 4대강 사업 예산 전체의 약 90%, 19조7227억원이 쓰이는 사업들은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없이 시행된다. &lt;BR&gt;&lt;BR&gt;다시, 40만 원. 아저씨는 쪽방 월세로 20만 원을 내고 남는 돈 20여 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우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4조에는 아저씨가 받는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씌어 있다.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현재의 기초생활보장급여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lt;BR&gt;&lt;BR&gt;얼마 정도가 좋겠냐는 우문에 아저씨는 60만원 정도란다.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늘어나면 쪽방보다 조금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할 것이냐고 묻자 아저씨는 30년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날 수 없다며 차라리 반찬거리를 좀 더 사 먹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아저씨가 덧붙이시기를, “늘이지는 못할망정, 줄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lt;BR&gt;&lt;BR&gt;아저씨의 말투는 소박하고 온화하지만 그 말 속에 숨겨진 절박함과 두려움을 왜 모르겠는가. 우리가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수급자 수이든, 급여액수이든, 늘이지는 못할망정 줄이지는 말라.&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8/12/22/ljh_081222_132133_25229.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차혜령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24&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24&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924&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공감의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감의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공익변호사그룹공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익변호사그룹공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차혜령변호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차혜령변호사&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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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홍일 씨, 나는 그가 더 슬펐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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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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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3T01:17:28Z</updated>
	    <published>2009-09-03T01:17: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홍일 씨, 나는 그가 더 슬펐다&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지상의 사람이 사는 마을]&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이지상&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lt;STRONG&gt;아버지 영정 앞서 울지 못한 홍일 씨&lt;BR&gt;고문의 상처는 시대의 아픔과 겹쳤다&lt;/STRONG&gt;&lt;BR&gt;&lt;BR&gt;그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하얀 국화 꽃송이에 묻혀 옅은 웃음 짓고 있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두리번거리기만 한 사내. 손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국화꽃 한 송이를 고인의 제단에 힘겹게 올리며 누군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허공만 바라보던 그 사내. 전 국회의원 김홍일이었습니다. &lt;BR&gt;&lt;BR&gt;검은 치마저고리에 흰 리본을 머리에 꽂고도 차마 남편을 보낼 수 없어 고개 들지 못하는 어머니의 슬픈 어깨를 쓸어주지 못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가족들의 가슴을 안아주지도 못한 채 비둘기 속살 같이 흰 머리카락의 무게조차 버거운 듯 겨우 고개만 들고 있던 그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었습니다. &lt;BR&gt;&lt;BR&gt;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90년대부터 서서히 진행되던 병이 그가 의원직을 잃고, 언론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2006년 즈음에는 급속히 진행 되어 그를 휠체어에 주저앉힌 것입니다. 언론은 그가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두 번의 옥고를 치루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과 그 때문에 몹쓸 병을 얻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500 bgColor=white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8/31/ljh_090831_133435_59794.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ic_content&gt;지난 23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고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 장면.&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그의 어머니 이희호 여사도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고문의 와중에도 혐의를 허위로 자백하지 않기 위해 홍일 씨가 자살기도까지 했었다고 자서전에서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사람을 잃은 슬픔도 컸지만 자신의 생명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아버지의 죽음에도 통곡으로 답하지 못하는 백치가 된 아들의 눈빛은 국장(國葬)기간 내내 더 큰 슬픔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야만의 시대, 고문의 잔혹사를 증명하는 표식이 되어 이 쓸쓸한 역사를 향해 거칠게 항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lt;BR&gt;&lt;BR&gt;&lt;STRONG&gt;마취 없는 외과 수술&lt;/STRONG&gt;&lt;BR&gt;&lt;BR&gt;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학살로 들어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인사 20여명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광주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학살의 책임을 민주인사에게 돌리고 그 중 김대중을 수괴로 낙인찍어 결국 대법원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lt;BR&gt;&lt;BR&gt;그 사건에 관련된 이들은 예외 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거꾸로 매달려 물 몇 양동이를 마시는 건 기본이고, 갖가지 고문에 정신이상을 일으켜 수사관을 엄마라 부르기도 했으며 고문 수사관이 지치거나 진술서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조사기간 내내 심한 매질을 당했습니다. &lt;BR&gt;&lt;BR&gt;그 즈음 광주시민 학살을 규탄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붙잡힌 시인 황지우는 자신이 당한 고문을 ‘마취 없는 외과수술’이라고 했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내 몸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찌할 수 없는 짐승소리가 났다. 죽을 수 있는 희망조차 없던 그곳에서 고문의 효과는 견딜 수 없는 자기 혐오감이었다. 나는 그 혐오감을 기본 정서로 80년대를 살았다. 죽을 수도 살수도 없었던 시절에 나는 견딜 수 없어서 시를 썼다.”(나의작품 나의 얘기-흉측한 삶, 80년대 고문체험 중)&lt;BR&gt;&lt;BR&gt;그의 고백에서 묻어나는 절절한 아픔을 짐작할 길은 없지만, 나는 2006년 남영동 평화 인권센터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번 들어가면 모두가 간첩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던 남영동 대공 분실의 구조를 보고 놀랐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빛과 벽돌로 짓는 시”라고 읊었던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서 지어진 이 건물은 거짓을 진실로 자백받기 위한 오직 고문의 용도로만 만들어 졌습니다. &lt;BR&gt;&lt;BR&gt;50센티미터가 족히 넘는 두께의 대문을 넘으면 피의자들이 출입했던 건물 뒤편의 조그만 문이 나옵니다. 두 눈을 가린 피의자들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철컹’ 대는 철문이 닫히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수십 바퀴쯤 돌아 5층 조사실에 도착할 때는 모든 피의자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곧이어 닥칠 끔찍한 상상을 하며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거기서 민주당 고문 김근태는 수사관의 발밑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박종철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lt;BR&gt;&lt;BR&gt;그렇게 수많은 반국가 단체의 조직사건이 만들어 졌고, 납북어부와 조국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재일교포 학생들도 간첩이 되었습니다.&lt;BR&gt;&lt;BR&gt;&lt;STRONG&gt;그대는 아직도 잠자는 돌&lt;/STRONG&gt;&lt;BR&gt;&lt;BR&gt;살인적 고문이 민주화 인사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자신들의 집권에 반대하는 조그만 틈새조차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애국자만이 살 수 있었던 그 시대에는 신문 연재소설의 삐딱한 한구절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lt;BR&gt;&lt;BR&gt;&lt;FONT color=#000066&gt;“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얼굴, 정부의 고위관리가 이상스레 촌스런 모자를 쓰고 탄광촌 같은 델 찾아가서 그 지방의 아낙네들과 악수하는 경우, 그 관리는 돌아가는 차 속에서면 다 잊을 게 뻔한데도 자기네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보고 들어 주는 게 황공스럽기만 해서…. 세상에 남자 놈 치고 시원치 않은 게 몇 종류가 있지. 그 첫째가 제 복 좋아하는 자 들이라니까. 그런 자들 중에는 군대 갔다 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 &lt;BR&gt;&lt;/FONT&gt;&lt;BR&gt;작가 한수산은 1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중앙일보에 연재 해왔던 소설 &lt;욕망의 거리&gt;에 삽입된 단 두 구절 때문에 1981년 5월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책 한권으로는 다 쓰지 못할 고문을 당했습니다.&lt;BR&gt;&lt;BR&gt;조선시대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장단지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주리를 트는 고문,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 씌우고 고춧가루 물을 퍼붓는 고문, 열 손가락에 전선을 묶어놓고 스위치를 올리는 전기고문까지. 이미 널리 알려진 한수산 필화 사건의 개요입니다.&lt;BR&gt;&lt;BR&gt;산문시에 가깝게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작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절필을 선언했고, 그를 고문했던 노태우(당시 보안사령관)가 대통령이 된 1988년 고국을 등지게 됩니다. &lt;BR&gt;&lt;BR&gt;이 사건에 함께 연루되었던 7명중에는 고독한 술꾼, 서정을 사랑한 시인 박정만이 있습니다. 소설가 김성동의 표현대로 그는 기갈지옥에서나 온 것처럼 액체로 된 것이라면 하다못해 농약까지도 마시고 싶어 했던 술꾼 이었습니다. &lt;BR&gt;&lt;BR&gt;&lt;FONT color=#000066&gt;‘이마를 짚어다오,/산허리에 걸린 꽃같은 무지개의/술에 젖으며/잠자는 돌처럼 나도 눕고 싶구나.&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BR&gt;-중략-&lt;BR&gt;&lt;BR&gt;말이 죽고 한 침묵이 살아/그것이 더 큰 침묵이 되더라도/이제 내 눈을 감겨다오./이 세상 마지막 산, 마지막 선 모양으로.(잠자는 돌, 박정만 시)&lt;BR&gt;&lt;/FONT&gt;&lt;BR&gt;술을 사랑했던 만큼 인간의 묻어둔 감성을 사랑했던 한국 서정시의 별은 한수산과 함께 끌려갔던 3박 4일이 지난 후,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 남은 흐느적거리는 연기처럼 자신을 버렸습니다. 직장을 잡지도 못했고, 가정을 원만히 꾸리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혹독한 고초를 겪은 이유를 그 자신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말이 죽고 침묵만 살아 더 큰 침묵이 되었던 살기어린 시절의 저녁이면 그는 어김없이 술에 취했고, 술에 취하면 누구든 붙잡고 물었습니다. “내가 왜 그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를 제발 알려 달라”고.&lt;BR&gt;&lt;BR&gt;한수산과 같은 대학을 나왔고, 책 출판 관계로 몇 번 만났던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간 한국의 마지막 서정시인 박정만은 고문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88올림픽 폐막식이 열리던 10월 2일 오후 봉천동 그의 집 화장실에서 고작 마흔 셋의 나이에 ‘잠자는 돌’이 되었습니다. 그의 임종을 지킨 것은 그가 죽기 전 시마(詩魔)에 들어 초인적인 힘으로 옮겨 적은 300여 편의 시 뭉치뿐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은 민주화 운동가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임을 강조했었다고 합니다. 야만의 시대에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야만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독백으로 읽힙니다.&lt;BR&gt;&lt;BR&gt;&lt;STRONG&gt;그의 통곡하는 모습을…&lt;/STRONG&gt; &lt;BR&gt;&lt;BR&gt;인권연대 운영위원회가 끝나고 뒷풀이를 하는 지난해 가을 밤 늦은 시간, 함께 있던 오창익 사무국장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가을 저녁에 취해 거나하게 술을 마신 그의 지인이 경찰과 시비가 붙어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부랴부랴 경찰서에 찾아간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을 끌고 온 경찰에게 항의 했다는 이유로 그의 지인은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무리 사소한 이유라도 경찰의 권위에 도전 하는 시민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입니다. &lt;BR&gt;&lt;BR&gt;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MB시대 인권의 시계가 얼마나 거꾸로 돌아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30년 전 군사정권이 했던 일중 ‘고문 빼고는 이 정부가 다 하는 것 같다’는 한 인권변호사의 넋두리는 이제는 고문도 할 것 같다는 우려가 되고, 곧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lt;BR&gt;&lt;BR&gt;생전에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노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신이 더 괴로울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전두환 씨는 전직들이 가장 편했을 때가 국민의 정부 시절이었다는 덕담(?)도 했습니다. &lt;BR&gt;&lt;BR&gt;전두환 씨가 서거하신 아버지의 영전에 꽃을 바쳤을 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김홍일 전&amp;nbsp;&amp;nbsp;의원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생각합니다. “죽음의 고통은 주되 죽음이라는 영원한 휴식은 주지 않았던(황지우 윗글)” 고문자의 환영을 그의 시선은 쫓아가지도 못하고, 사지는 굳을 대로 굳어 고문자의 멱살잡이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데도 과연 김홍일은 전두환을 용서할 수 있을까.&lt;BR&gt;&lt;BR&gt;국장 기간 내내 비친 그의 모습에서 원귀처럼 되살아나는 고문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부모 잃은 슬픔을, 꺼이꺼이 우는 그의 목소리라도 들었으면, 부리부리 했던 큰 눈으로 쏟아내는 눈물이라도 보았으면 마음이 이리 착잡하지는 않았을 겁니다.&lt;BR&gt;&lt;BR&gt;김홍일 전 의원, 그가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다시 일어나 고문으로 얼룩진 이 잔혹한 역사 위에 회한의 곡소리 한번 크게 우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 사회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한 고문자들의 레토릭은 해원(解怨)의 통곡이 끝난 뒤에 논해도 좋을 듯 합니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4/14/ljh_090414_112919_3260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22&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22&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922&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이지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지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김홍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홍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사람이사는마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람이사는마을&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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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사무라이 코스모폴리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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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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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3T01:16:36Z</updated>
	    <published>2009-09-03T01:16: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사무라이 코스모폴리탄&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주원의 티핑포인트]&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이주원&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폭염이 열정을 이겼다. 사그라진 열정의 자리를 휴식으로 대체하려한다. 그래, 오늘 얘기꺼리는 일본 만화 &lt;마스터 키튼&gt;의 주인공 ‘다이치 키튼’(&lt;STRONG&gt;사진&lt;/STRONG&gt;)이다. 이렇게 쉬엄쉬엄 가자.&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15px 1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150 bgColor=white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8/31/ljh_090831_133020_78732.jpg&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마스터 키튼&gt;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양한 에피소드 속에서 어머니의 고향 영국의 ‘죄’를 고발하지만 아버지의 고향 일본의 ‘죄’를 묻지 못하는 반쪽짜리 휴머니즘 만화이다. 그렇지만 작가와 시장이 일본이라 한계가 있고, 또 이 만화는 작가주의 만화가 아니라 대중취향의 만화이기에 ‘맨발의 겐’ 류의 작가주의 만화로 같다면 재미는 좀 없었을 것이다. &lt;BR&gt;&lt;BR&gt;지면이 짧아 &lt;마스터 키튼&gt;의 모든 에피소드를 언급하여 전반적인 작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다룬 부분과 일본의 역사적 ‘죄’를 눈감아 주는 ‘사무라이 코스모폴리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lt;BR&gt;&lt;BR&gt;먼저 작가 우리사와 나오키를 소개한다. &lt;마스터 키튼&gt;은 우라사와 나오키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일본의 만화잡지 &lt;빅 코믹 오리지널&gt;에 연재한 옴니버스 구조의 작품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디테일한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답게 모든 작품에 있어 일일이 취재해서 반영한다. &lt;마스터 키튼&gt;에 나오는 아일랜드 거리, 파리의 거리는 물론 초콜릿의 라벨과 포장지까지 실제와 똑같다고 한다. &lt;BR&gt;&lt;BR&gt;주인공 ‘다이치 키튼’은 동물학자인 일본인 아버지와 영국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혈통적, 정신적 코스모폴리탄이다. 즉 세계시민인 것이다. 그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수재형 고고학자이며 영국 특수부대 SAS에서 군 복무하는 동안 포틀랜드 전쟁 등에서 영웅적 과업을 수행한 엘리트 군인 출신의 보험조사원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이러한 출신성분 때문에 그는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개인들의 아픔에 동참하기도하며 치유해주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lt;BR&gt;&lt;BR&gt;그럼 다이치 키튼이라고 하는 혈통적, 정신적 코스모폴리탄이 개입한 네 가지의 옴니버스를 살펴보도록 하자. 단행본 3권에 실린 &lt;검은 숲&gt;은 서독에 살며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인 터키 이주노동자를 암살하려는 네오 나치주의자들과 키튼의 스릴 넘치는 서바이벌 전투가 압권이다. 200만이 넘는 서독 거주 터키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익 네오 나치의 편견과 인종차별이 상상적 작업 속에서 잘 상징되어 있다. 단행본 5권에 실린 &lt;키튼의 비밀이야기&gt;도 영국에 거주하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백인 택시기사와 만남 속에서 그려지는 아라파트헤이트의 악몽을 흑인에 대한 따스함으로 승화시킨 단편이라 할 수 있다. &lt;BR&gt;&lt;BR&gt;만화는 이주노동자. 즉 외국인노동자의 열악한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인종차별과 배타성을 지닌 외국인노동자의 문제가 영국과 독일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인종차별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마루타 부대’로 잘 알려진 인체실험의 침략사, 위안부라는 명분으로 아시아의 여인을 유린한 순결침략의 역사 등 일본이 인류 그리고 한민족과 아시아인들에게 저지른 ‘죄’를 우라사와는 18권이 완결될 때까지 침묵한다. &lt;BR&gt;&lt;BR&gt;단행본 13권 &lt;라이온의 기사&gt;편을 보면 한줌의 지배자들의 폭압과 음모에 대항하는 TV의 돈키호테 ‘프레드 래스터’를 통한 영국 지배계급의 비열한 음모의 폭로는 우라사와 나오키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작가임을 충분하게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일본이 전개한 참혹한 대동아 전쟁에 대해서는 지독히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lt;BR&gt;&lt;BR&gt;우라사와는 유럽에서 보인 광기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반복적으로 하지만 다양한 개인들의 아픔을 보여주면서 여러 편의 옴니버스를 창작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죄’에 대해 침묵하고 또 침묵한다. 다이치 키튼은 일본의 ‘죄’를 눈감고 사는 ‘사무라이 코스모폴리탄’이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5/25/ljh_090525_112143_99082.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주원 사단법인 나눔과미래 지역사업국장&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20&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20&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920&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이주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주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티핑포인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티핑포인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마스터키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스터키튼&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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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독재자와 역사의 심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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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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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3T01:15:25Z</updated>
	    <published>2009-09-03T01:15:25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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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독재자와 역사의 심판&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편집인 레터]&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김주언&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lt;FONT color=#000066&gt;#1. ‘좌파정권은 지난 10년간 입법 사법 행정부의 요직을 반미친북세력으로 모조리 갈아치웠음. 이 여세를 몰아 대한민국의 인민공화국화 작업을 가속화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강요해 왔음. 이를 통해 6.15 선언의 마무리인 고려연방제 통일이 목전에 당도했음.’ 경찰이 초중학교에 배포키로 한 안보 홍보만화의 제작을 위해 업체에 보낸 ‘안보 홍보만화 제안 요청서’의 일부이다. &lt;BR&gt;&lt;BR&gt;#2. 행정안전부 중앙공무원교육원은 연수중인 행정고시 수습사무관들을 포항의 해병대 훈련 캠프에 입소시켰다. 신임 공무원의 해병대 입소는 지난 1967년 행정관 훈련과정 개설 이후 처음이다. 사무관들은 화생방 각개전투 유격훈련 등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한 안보교육을 받는다. &lt;BR&gt;&lt;BR&gt;#3. 기무사의 사찰대상이었던 엄 모 씨는 “소름과 경악과 공포를 느낀다”며 “아무 상관없는 집사람까지 사찰해 집 사람이 너무 무서워한다. 이명박 정권은 가정파괴범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이 공개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동영상을 보면, 엄 씨가 작업실 앞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담배 피우는 모습과 그의 부인이 약국에서 일을 보고, 출근하면서 약국 문을 여는 장면도 찍혀 있다. &lt;BR&gt;&lt;/FONT&gt;&lt;BR&gt;&lt;STRONG&gt;군사독재시절로 회귀?&lt;/STRONG&gt;&lt;BR&gt;&lt;BR&gt;이명박 정부가 과거 군사독재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사례들이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사라졌던 국정원과 기무사 등 2대 정보기관을 이용해 민간인 사찰을 재개했다. 또한 교육현장과 공직사회에 ‘반공 이데올로기’와 ‘획일적 군사문화’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 벌어졌던 독재정권의 음험한 인권침해 행태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lt;BR&gt;&lt;BR&gt;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권력기관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은 간헐적으로 알려져 왔다. 독재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던 무소불위의 국정원은 한반도 대운하반대 교수모임 사찰, BBK 사건 담당 재판부 압력, 시민사회단체 후원기업 자료요구 등 광범위하게 민간인 사찰을 해왔다. 여기에 군 기무사가 민간인에 대한 불법적인 감시와 사찰을 해왔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lt;BR&gt;&lt;BR&gt;집회 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데 이어 구시대의 망령인 정보기관에 의한 정치사찰이 부활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와 다를 바 없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공무원들의 군부대 입소훈련은 공무원들을 ‘사병’(私兵)으로 전락시켜 공직사회에 ‘시키는 대로 하라’는 군사문화를 심으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안보 홍보 만화’를 배포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이승복 동상’을 교정에 세워 ‘반공정신’을 주입시켰던 획일적 교육방식을 그대로 빼닮았다. &lt;BR&gt;&lt;BR&gt;이명박 정부는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10년 동안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 ‘미네르바’ 구속과 ‘PD수첩’ 기소로 대표되는 표현의 자유 침해, 정부가 자본의 편에 서서 ‘공권력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농성 노동자들의 과잉진압, 법으로 보장된 1인 시위마저 탄압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침해, ‘독립적 국가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의 강제적 축소 개편이 상징하는 인권 후퇴 등 열거하기도 힘들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gt;&lt;BR&gt;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이룩해 놓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고한 제도로 정착됐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참여정부 시절 학자들은 ‘87년 체제’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논란을 벌였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파시즘 체제’ 논란으로 회귀했다. 리영희 선생이 인권연대 강연에서 “지금은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 초기”라고 단정한 뒤 이명박 정부를 둘러싼 파시즘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lt;BR&gt;&lt;BR&gt;학문적 논란을 떠나 이명박 정부가 독재시절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정작 이명박 정부는 많은 독재자들이 그러했듯이 ‘독재’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행정안전부가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매우 걱정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이명박 정부를 성토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을 담은 동영상을 국회 분향소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STRONG&gt;많은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lt;/STRONG&gt;&lt;BR&gt;&lt;BR&gt;&lt;FONT color=#000066&gt;‘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2009년 1월 16일) &lt;BR&gt;&lt;BR&gt;‘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2009년 1월 17일)&lt;BR&gt;&lt;/FONT&gt;&lt;BR&gt;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후 공개된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원한다. &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4/14/ljh_090414_104642_45960.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김주언 편집인&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04&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904&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904&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김주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주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편집인레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편집인레터&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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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다시 꿈꾸고 싶은 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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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시민사회신문</name>
	    </author>
	    <updated>2009-08-20T22:37:08Z</updated>
	    <published>2009-08-20T22:37:0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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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다시 꿈꾸고 싶은 꿈&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기고 시]&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고춘식&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lt;STRONG&gt;&lt;FONT size=3&gt;&lt;EM&gt;아, 어느 새 이 나라는 &lt;BR&gt;꿈이 없는 나라,&lt;BR&gt;꿈이란 말이 어색한 나라가 되었다.&lt;BR&gt;&lt;BR&gt;아, 어느 새 이 나라는&lt;BR&gt;꿈을 갖는다는 말이,&lt;BR&gt;꿈을 꾼다는 말이 &lt;BR&gt;누구의 심기를 건드리는 나라가 되었다.&lt;BR&gt;꿈을 소지(所持)하면 &lt;BR&gt;불심검문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lt;BR&gt;&lt;BR&gt;누군가가 우리의 꿈을 &lt;BR&gt;가져갔다.&lt;BR&gt;그는 몸에 밴 친절로 &lt;BR&gt;우리의 꿈을 대신 꾸어주겠다고 했다. &lt;BR&gt;오만(傲慢)의 은총이 온 나라에 넘쳐났다.&lt;BR&gt;&lt;BR&gt;어느 날 꿈을 한번 꾸고 싶어 &lt;BR&gt;조심스레 그의 양해를 구하였으나 &lt;BR&gt;그는 이렇게 답하였다.&lt;BR&gt;“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lt;BR&gt;&lt;BR&gt;그의 주체할 수 없는 친절은 &lt;BR&gt;우리의 잠마저 가져가려고 한다.&lt;BR&gt;아무래도 꿈만 가져가는 것으로는 &lt;BR&gt;우리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lt;BR&gt;완벽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lt;BR&gt;그가 ‘갖게’ 된 것이다.&lt;BR&gt;&lt;BR&gt;그는 단지 우리의 꿈만 가져갔는데,&lt;BR&gt;이상하게 우리는 &lt;BR&gt;제 가슴 쥐어뜯으며&lt;BR&gt;빼앗긴 밤을 뒤척인다.&lt;BR&gt;&lt;BR&gt;날마다&lt;BR&gt;그가 가져간 것들의 목록을 지새우며 &lt;BR&gt;읽-는-다.&lt;BR&gt;&lt;BR&gt;진실 촛불 감사 통일 주권 인권 예술 정 열정 우리 목숨 민주&lt;BR&gt;강 교육 화합 사람 행복 인격 감동 양심 신뢰 화해 소통 대화 &lt;BR&gt;예의 문화 미래 희망 공동체 순수 흥 멋 철학 자유 평화 비전 &lt;BR&gt;미소 진보 사랑 어른 품격 여유 정의 민족 교권 지혜 평등 혼&lt;BR&gt;기본권 주인의식 자신감 자존심 저항권 대통령 대한민국···&lt;BR&gt;&lt;/EM&gt;&lt;/FONT&gt;&lt;BR&gt;&lt;/STRONG&gt;2009. 7. 19. 한빛교회 &lt;시국 기도회&gt;를 여는 날 새벽에&lt;BR&gt;&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0px solid; BORDER-LEFT: #000000 0px solid; BORDER-TOP: #000000 0px solid; BORDER-RIGHT: #000000 0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8/04/14/ljh_080414_120254_27847.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고춘식 전 한성여중 교사&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30&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30&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830&quot; width=0 height=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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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기억은 다르게 각인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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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민사회신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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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8-20T22:36:08Z</updated>
	    <published>2009-08-20T22:36:0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기억은 다르게 각인된다&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지상의 사람이사는 마을]&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이지상&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서울 종로 4가에 있는 광장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입니다. 180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905년에 한성부에 공식 등록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100년은 훌쩍 넘었습니다. 두세평 정도 되는 작은 음식점들이 길게 늘어선 먹자골목에는 칸칸이 안주거리로 가득해서 술잔이 한 순배씩 돌 때마다 지글대는 안주 굽는 냄새와 왁자지껄한 얘기들, 거기에다 막걸리 한잔 뒤에 나오는 “크으~ 좋다”같은 추임새까지 합하면 시장은 너 나 없이 평온한 흥을 발산하는 광장이 되곤 합니다. &lt;BR&gt;&lt;BR&gt;그곳에는 연주경력만 50년이 넘은 베테랑 아코디언 연주자 박 노인이 계십니다. 취기 적당한 손님들 옆에서 흘러간 옛 가요를 연주하면 흥에 배기지 못한 취객들은 일어나서 춤을 추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운 좋게 시장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까지 어우러지는 날이면 바흐도 작곡하지 못한 ‘대한민국 민중 칸타타’를 여기서 듣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lt;BR&gt;&lt;BR&gt;만들어진지 50~60년도 훨씬 지난 옛 가요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며 회한에 젖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속에 대못처럼 박힌 노래 하나가 사람의 기억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로 시작하는 비 내리는 고모령에서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 마는”같은 애수의 소야곡. “가~랑잎이 흩날리는 전선의 달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등등 끊이지 않고 애간장 녹이는 박 노인의 아코디언에 좌중은 부딪히는 술잔 소리로 화답하고, 서로가 그렇게 어우러져 광장시장의 백열등 불빛은 시들 줄 모릅니다. &lt;BR&gt;&lt;BR&gt;&lt;STRONG&gt;혈서지원과 혈청지원가&lt;/STRONG&gt;&lt;BR&gt;&lt;BR&gt;박 노인이 연주하는 레퍼토리의 반쯤은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이자 기둥으로 불리웠던 박시춘 선생(1913~1996)의 작품입니다. 위에 소개한 노래 외에도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라의 달밤’, ‘가거라 삼팔선’ 등 무려 3천여 곡을 발표했으니 40~50년대 한국 대중음악 비중의 반쯤은 그의 것입니다. &lt;BR&gt;&lt;BR&gt;1961년 한국 연예협회 창립 때는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엔 대중가요 작곡가로는 최초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서훈받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나름 한 가닥씩 하셨다는 분들 대부분이 그렇듯 박시춘 선생도 친일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태평양전쟁시기에는 가장 많은 일제 부역 군국가요를 작곡하기도 했는데 ‘아들의 혈서’, ‘목단강 편지’, ‘결사대의 안해(아내)’ 등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혈서지원’이라는 노래입니다 &lt;BR&gt;&lt;BR&gt;&lt;FONT color=#000066&gt;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나랏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lt;BR&gt;&lt;/FONT&gt;&lt;BR&gt;목적가요로써 갖추어야할 선동적 파토스(pathos)와 형상성이 두드러지는 이 곡은 일제가 조선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해군 지원병을 모집하기 위해 제작한 노래로 1943년에 작곡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곡은 2006년 5월 국가보훈처가 제작한 군가 모음곡집 ‘Remember-U’에 ‘혈청지원가’라는 제목으로 수록 되었는데, 이때는 가사가 일장기는 태극기로, 일본 천황을 상징했던 나랏님의 병정은 대한민국 국군으로 바뀌게 됩니다. &lt;BR&gt;&lt;BR&gt;일제 강점기 만주에서는 일제경찰이 그림자 밟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던 의열단 단장이자 광복군 군무부장 약산 김원봉이 해방 후 서울의 그의 집 화장실에서 의복도 추스르지 못한 채 친일고문 경관 출신인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노덕술에게 끌려갔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애교로 봐야할 수준이지만, 지금은 인기그룹이 된 ‘V.O.S’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이 노래를 불렀던 모습을 떠올리면 정리되지 못한 과거사의 질곡은 다른 형태의 잘못된 미래를 필연적으로 잉태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합니다.&lt;BR&gt;&lt;BR&gt;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당시 가장 많이 불린 군가 순으로 선정했다니, 국가 보훈처도 딱히 잘못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천황과 황국신민’이란 단어를 신줏단지처럼 모시며 온갖 영화를 누렸던 이들이 해방 후 ‘반공과 친미’로 용어를 바꾸어 역사의 주인 노릇했던 우리의 기형적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증거임에는 틀림없습니다.&lt;BR&gt;&lt;BR&gt;&lt;STRONG&gt;일장기 앞에서, 태극기 앞에서&lt;/STRONG&gt;&lt;BR&gt;&lt;BR&gt;미당 서정주 시인의 10주기 기일에 맞추어 생전에 기거했던 봉산산방을 약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현대식 복합 문화공간으로 조성 한다고 합니다. 미당은 생전에 이미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를 리가 없는 시를 썼고, 그의 작품이 빠지면 교과서가 아니요 그가 심사하지 않으면 문학상이 아니고, 자유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금관 문화훈장 등은 젊어서부터 두루 섭렵했으니 해방이후 문단영향력의 반쯤은 그의 것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습니다.&lt;BR&gt;&lt;BR&gt;미당의 친일 논란에 관한 얘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가 어떤 친일 작품을 썼는지에 대해선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의 작품 ‘오장 마쓰이 송가’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박용우, 이보영 주연)의 동방의 빛 환송회 장면에서 들을 수 있지만 ‘일장기 앞에서’같은 시는 친일작품 11편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미당시문학관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lt;BR&gt;&lt;BR&gt;&lt;FONT color=#000066&gt;이날은 대성전기념일도 축제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받은 깃대에 국기를 한번 꽂아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나는 오히려 땀까지 흘려가며 벽장 속에서 국기를 꺼내어 그 깃대에 매었다/탄탄한 깃대에 비해서는 벌써 장만한지 해가 겹친 국기의 깃폭은 낡아 보였다/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왜 뒷집에서 깃대를 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나는 거기에 맞추어야 할 새로운 깃폭을 준비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던 것인가/나는 깃대에 꽂힌 국기를 방 아랫목에 세워두고 한참동안 합장을 하고 있었다. (일장기 앞에서 전문)&lt;BR&gt;&lt;/FONT&gt;&lt;BR&gt;가끔 이시의 제목을 ‘태극기 앞에서’ 로 바꾸어 낭송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이날은 광복절도 개천절도 아니었다. 나는 깃대에 꽂힌 태극기를 방 아랫목에…’ 같은 식입니다. 놀랍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비장한 한편의 애국시가 탄생합니다. 해방 후 이승만의 전기를 지었고, 5공 때는 대통령 탄신 축시까지 지어 바친 그의 정치적 행보를 감안한다면 혈서지원의 일장기가 혈청지원가의 태극기로 바뀐 것처럼 일장기 앞에서가 태극기 앞에서로 바뀌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런지도 모를 일입니다.&lt;BR&gt;&lt;BR&gt;&lt;STRONG&gt;거세 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lt;/STRONG&gt;&lt;BR&gt;&lt;BR&gt;우리는 일본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 출신인사를 두 분씩이나 대통령으로 모셨고, 그 중 한분은 그의 따님을 통해 여전히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임명되는 관료들의 옵션이 최소한 위장전입에 부동산 투기혐의인 것처럼 해방 후 적어도 유신 때까지 관료의 조건에 친일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lt;BR&gt;&lt;BR&gt;친일 행위자 재산 환수위가 총 106명의 일제 부역자 재산 1천600억원 상당을 국고에 환수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환수위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환수의 규모가 아직 적은데다 여전히 진행 중인 반역사적 작태에 경종을 울리는 소식을 1년에 딱 한번 광복절에 즈음에서야 들을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lt;BR&gt;&lt;BR&gt;광장시장에 앉아 박 노인의 아코디언 연주를 신기해하며 지나간 옛 노래의 정취에 빠져들 즈음 옆 좌석에 있는 백발성성하신 노인이 술잔을 건넵니다. 그분은 나라걱정이 태산입니다. “요즘 나라가 개판이라 말이야, 우리 젊은이들이 나서서 나라를 바로 잡아줘야 해” 간곡한 듯 말씀하시지만 눈빛에 서린 핏발은 그분의 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떻게 김일성으로부터 지켜낸 자유인데…”라는 말로 당부를 갈음하시는 그 노인의 손에는 조선일보가 들려져 있습니다.&lt;BR&gt;&lt;BR&gt;잘못된 역사에 기생하며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무리들이 없었다면 저 연세 지긋하신 노인은 굳이 지금껏 결기 어린 눈빛을 간직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lt;BR&gt;&lt;BR&gt;“거세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는 언젠가 당신의 목덜미에서 복수의 칼날을 겨눌 것이다”&lt;BR&gt;&lt;BR&gt;지금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말의 실제를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amp;nbsp;&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4/14/ljh_090414_112919_3260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24&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24&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824&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이지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지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친일인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친일인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사람이사는마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람이사는마을&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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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들길은 사유하는 자의 발걸음에 항상 가까이 있다-하이데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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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민사회신문</name>
	    </author>
	    <updated>2009-08-20T22:35:01Z</updated>
	    <published>2009-08-20T22:35: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들길은 사유하는 자의 발걸음에 항상 가까이 있다-하이데거(3)&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철학여행까페[77]&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1930년경에 하이데거는 사상적 전회를 한다. 그의 전회는 &lt;진리의 본질에 대해서&gt;를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lt;BR&gt;&lt;BR&gt;그는 &lt;존재와 시간&gt;에서 존재의 이해를 현존재의 자기이해로부터 출발해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접근 방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전회를 한다. 그는 전회 이후에 존재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존재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고 감추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존재를 통해 인간과 유한한 전체 현실을 고찰하고자 한다. &lt;BR&gt;&lt;BR&gt;“존재가 나타나는지 어떤지, 존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어떻게 신과 신들, 역사와 자연이 존재의 빛으로 들어가며 어떻게 현존하고 부재하는 지는 인간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자의 도래는 존재가 역사적으로 보내진 것에 기인한다.”&lt;BR&gt;&lt;BR&gt;&lt;STRONG&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15px 1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250 bgColor=white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8/17/ljh_090817_114313_86456.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t_04 align=right&gt;&lt;SPAN class=padding02&gt;이동희&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ic_content&gt;하이데거&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존재와 존재자의 구분&lt;/STRONG&gt;&lt;BR&gt;&lt;BR&gt;그렇다면 존재란 무엇인가? 그는 존재와 존재자(존재하는 것)을 구분한다. 존재를 존재자처럼 대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존재자는 개별적 존재자가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지탱하는 근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의 의미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빛에 비유한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존재 자체는 빛인 반면, 그 빛으로 현존재를 나타나게 하는 것은 ‘존재자’이다.” &lt;BR&gt;&lt;BR&gt;존재의 빛이 없으면 당연히 존재자는 드러날 수가 없다. 하이데거는 존재는 각 시대마다 다르게 드러난다고 한다. 존재자가 나타나는 방식은 존재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변모된다. 존재가 어떻게 빛을 비추느냐에 따라 존재자의 진리가 드러나며 또한 가려지기도 한다.&lt;BR&gt;&lt;BR&gt;“이러한 빛만이 우리 인간에게 존재자로 가는 통로를 선사하며 보증한다… 이러한 빛의 덕분으로 존재자는 어느 정도 변화하더라도 은폐되어 있지는 않다.” &lt;BR&gt;&lt;BR&gt;존재는 각각의 역사적 시기마다 존재자와 인간을 상이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그리스인들이나 중세인들은 존재를 현대인과 다른 어떤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회 이후 하이데거의 작업은 시대마다 드러난 존재의 역사를 파악하는 존재사 탐구가 주된 작업이 된다. &lt;BR&gt;&lt;BR&gt;하이데거는 존재자의 진리인 존재를 ‘비은폐성’으로 파악한다. 하이데거는 존재로 가는 길은 언어를 매개로 열린다고 한다. &lt;BR&gt;&lt;BR&gt;그는 &lt;인도주의에 관한 서한&gt;에서 언어란 “존재로 하여금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 말을 하도록 하는 매개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그는 언어를 이렇게 정의한다.&lt;BR&gt;&lt;BR&gt;“언어는 존재의 집이다.&quot; &lt;BR&gt;&lt;BR&gt;하이데거는 현대를 ‘존재 망각’의 시대라고 한다. 그는 횔덜린의 시구를 인용해 ‘현대’를 ‘신이 멀리 떠나 버린’, ‘세계의 밤’이라고 비유한다. 여기서 신은 세계의 의미를 밝혀 주던 근거이자 빛이었으나 이제 그러한 신이 떠나자 세계는 캄캄해져 버린 것이다. &lt;BR&gt;&lt;BR&gt;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고, 환한 대낮일지라도 세상이 캄캄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것은 그러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밝혀 주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lt;BR&gt;&lt;BR&gt;하이데거는 ‘세계의 밤’의 시대에 시인에 주목한다. 시인은 촉수가 예민한 곤충처럼 어둠 속에서 신의 흔적을 더듬으며 찾아간다. 그렇게 시인은 의미를 발견해 우리에게 시로 전달해 준다. &lt;BR&gt;&lt;BR&gt;“언어에서 존재의 현존은 무엇보다도 ‘시’의 근원적인 말함에서 드러난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500 bgColor=white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8/17/ljh_090817_114335_52794.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t_04 align=right&gt;&lt;SPAN class=padding02&gt;이동희&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ic_content&gt;하이데거의 70회 생일.&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시인이 존재의 부름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나타낸다면, 철학자는 그러한 시를 해석하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이다. 실제로 하이데거는 횔덜린의 시의 해석을 통해 그러한 작업을 했다. &lt;BR&gt;&lt;BR&gt;하이데거는 현대는 존재를 망각하고, 존재 이해방식을 ‘기술’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과 모든 존재자들은 기술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 인간과 모든 존재자들은 기술에 의해 닦달 당하며 생산과 사용을 위한 에너지 자원으로 전락된다. 그는 &lt;기술과 전향&gt;에서 이렇게 말한다. &lt;BR&gt;&lt;BR&gt;&lt;STRONG&gt;인간은 기술에 지배당한다&lt;/STRONG&gt;&lt;BR&gt;&lt;BR&gt;“우리는 어느 한 지역을 석탄과 광석을 캐내기 위해 도발적으로 굴착한다. 지구는 이제 한낱 채석장으로, 대지는 한낱 저장고로서 탈은폐될 뿐이다. 농부들이 예전에 경작하던 밭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의 경작은 키우고 돌보는 것이었다. 농부의 일이란 농토에 무엇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려 싹이 돋아나는 것을 그 생장력에 내맡기고 그것이 잘 자라도록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농토 경작은 자연을 닦아 세우며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경작 방법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하이데거는 기술 지배의 시대에서 기술의 본질을 인식하고, 인간의 위험을 직시했다. 그는 존재와의 해후를 ‘섬광처럼 번뜩이는 사건’이라 말한다. 그는 인간이 일상적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참다운 존재의 소리 들을 태세가 되어 있다면 이러한 존재 망각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말한다. &lt;BR&gt;&lt;BR&gt;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은 신비적이기도 하고 또한 모호한 측면도 많다. 포퍼는 하이데거처럼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여 명료한 이해와 분명한 반박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부정직한 짓이라고 말했다. &lt;BR&gt;&lt;BR&gt;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존재의 이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본질과 우리가 잃어 버렸던 원래의 존재 의미를 일깨워 주고자 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하이데거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6년 강의를 금지 당했다. 그러나 연구는 계속할 수 있게 했다. 1947년 프랑스 군정당국은 하이데거와 나치의 관계를 ‘복종없는 동행자’라고 결론지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500 bgColor=white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8/17/ljh_090817_114355_76923.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t_04 align=right&gt;&lt;SPAN class=padding02&gt;이동희&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ic_content&gt;하이데거의 장례행렬&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하이데거는 토트나우베르크의 산장에서 보내며 계속 철학적 작업을 진행했다. 1951년 하이데거는 바덴 주 당국에 의해 복권되었다. 그는 수많은 강의와 강연을 했고, 다량의 책을 썼다. 그가 죽기 직전에 시작된 전집 간행은 100권 이상이 될 것으로 예고되었다. &lt;BR&gt;&lt;BR&gt;하이데거는 죽기 직전 슈피겔과의 대화에서 나치와의 관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리고 스승 후설을 돕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고 밝혔다. 사상으로서는 거인이었지만 하이데거 역시 인간으로서 흠결 많고 약한 존재였다. &lt;BR&gt;&lt;BR&gt;1976년 5월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속삭이듯 내뱉은 ‘감사한다’라는 말이었다. &lt;BR&gt;&lt;BR&gt;하이데거는 ‘들길’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어떻게 해왔는지 시적인 문제로 밝힌 적으로 있다. 그것은 겸허하게 들길의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STRONG&gt;마지막 말은 ‘감사한다’&lt;/STRONG&gt;&lt;BR&gt;&lt;BR&gt;“들길은 호프가르텐 성문에서 시작하여 엔리트쪽으로 뻗어 있다. 성의 정원에는 고령의 보리수가 서 있다. 들길은 부활절 즈음에는 피어나는 싹들과 깨어나는 목장 사이에서 밝게 빛나고, 성탄일 즈음에는 눈보라 속에서 가장 가까운 언덕 뒤로 사라진다.&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500 bgColor=white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8/17/ljh_090817_114420_99094.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t_04 align=right&gt;&lt;SPAN class=padding02&gt;이동희&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ic_content&gt;호프가르텐 성 정원에 있는 가로수.&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그러나 보리수는 언제나 성벽 너머로 들길을 바라본다. 들길에는 십자가가 서 있고 들길은 이 십자가에서 숲 쪽으로 구부러진다. 들길은 숲자락을 지나면서 거기 서 있는 키 큰 떡갈나무에게 인사를 한다. 떡갈나무 밑에는 거칠게 만든 긴 의자가 있다. &lt;BR&gt;&lt;BR&gt;그 의자 위에는 가끔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런 혹은 저런 글이 놓여 있었고, 젊은 시절 나는 곤혹스러워하면서 그들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썼다. 수수께끼들이 몰려들어 어떠한 출구도 보이지 않을 때 들길이 도와주었다. 들길이 넓게 펼쳐진 거친 들판을 통과하는 구불구불한 좁은 길 위에서 조용히 발길을 인도했기 때문이다.&lt;BR&gt;&lt;BR&gt;글을 읽든 홀로 사색을 하든 사유하는 자는 항상 들판을 통과하면서 이어지는 좁은 길 위를 걸었다. 아침 일찍 풀을 베러가는 농부의 발걸음에 가까이 있었던 것처럼, 들길은 사유하는 자의 발걸음에 항상 가까이 있었다.” (하이데거 전집 13,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박찬국 번역)&amp;nbsp;&amp;nbsp;&lt;BR&gt;&lt;BR&gt;&lt;하이데거 편 끝&gt;&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4/14/ljh_090414_113804_33027.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18&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18&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818&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이동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동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하이데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하이데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철학여행카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철학여행카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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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삼성특검 즉각 재상고해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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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ngopress.8527002</id>
	    <author>
		    <name>시민사회신문</name>
	    </author>
	    <updated>2009-08-20T22:33:49Z</updated>
	    <published>2009-08-20T22:33: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삼성특검 즉각 재상고해야”&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이건희 구하기’ 고심 흔적 역력&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gt;설동본&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lt;STRONG&gt;유죄 인정하고도 1심 형량 선고&lt;/STRONG&gt;&lt;BR&gt;&lt;BR&gt;지난 14일 서울고법의 삼성특검 관련 사건 파기환송심 결과에 대해 시민사회가 회계처리도 하지 않은 손해액 배상을 명분으로 ‘이건희 전 회장 구하기’를 한 셈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법의 여신에게 저울을 내려놓고 돈을 쥐게 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lt;BR&gt;&lt;BR&gt;서울고법은 이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배임액수가 227억원으로 50억원을 초과하므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아 유죄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유죄를 인정하고도 1심과 똑같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lt;BR&gt;&lt;BR&gt;경제개혁연대·민주주의법학연구연구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참여연대는 “재벌에 약한 사법부의 면모를 재연함으로써 국민에게 또다시 깊은 좌절과 박탈감을 안겨줬다”고 비난했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단체들은 “재판부는 이번에는 양형기준을 삼성에 편향되게 적용하는 방법으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며 “1심에서는 SDS 사건에 대해 면소 판결하는 대신 조세포탈죄만으로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는데 이번 파기환송심에서는 SDS사건에 대해 227억원의 특경가법상 배임 유죄를 선고하고도 1심과 똑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것”이라고 지목했다. &lt;BR&gt;&lt;BR&gt;‘이건희 전 회장 징역 안 보내기’ 차원에서 1심 재판부나 파기 환송심 재판부나 방법만 달랐지 결과는 같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SDS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도 아니고 아예 무죄를 선고했던 2심 재판부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밝혔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이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양형기준에 따르면, 배임 횡령죄에서 집행유예 선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부정적인 사유로 실질적 손해의 규모가 큰 경우, 대량피해자(근로자, 주주 등)를 발생시킨 경우, 지배권 강화나 기업내 지위 보전의 목적이 있는 경우, 진지한 반성이 없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며 “이건희 전 회장이 이 부정적 요인들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을 보면 재판부가 부족한 명분을 채우느라 얼마나 고민했을지 짐작이 간다”고 언급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BR&gt;단체들은 “삼성특검은 즉각 재상고하여 대법원의 온정적 판결을 바로잡고, 중대 범죄에 걸맞는 형량을 다시 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들은 다시한번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대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설동본 기자 &lt;A href=&quot;mailto:seol@ingopress.com&quot;&gt;seol@ingopress.com&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792&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792&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792&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삼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삼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이건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건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시민단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시민단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재상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상고&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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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민사회신문] 촛불의 바다 위 무대에 오르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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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시민사회신문</name>
	    </author>
	    <updated>2009-08-18T22:47:45Z</updated>
	    <published>2009-08-18T22:47: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style=&quot;WIDTH: 100%&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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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00266c; FONT-SIZE: 2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촛불의 바다 위 무대에 오르며&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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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LINE-HEIGHT: 140%;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LETTER-SPACING: -1px; COLOR: #333333; FONT-SIZE: 18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내인생의 첫수업]&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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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right&gt;노정렬&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em; FONT-FAMILY: 굴림,Gulim; COLOR: #333333; FONT-SIZE: 14px; PADDING-TOP: 15px&quot;&gt;2003년 3월 28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한국군의 이라크파병에 반대하는 700여명의 시민들 속에 나도 함께 있었다. 한낮이라 촛불대신 왼손에는 빈 병에 파를 꽂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내가 아메리카를 발견하지만 않았어도-콜럼버스’라 씌여진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라크에 파병을 하려거든 음료수나 파같은 식량을 제공하라는 의미였고, 독재자 사담 후세인 축출과 대량살상무기 파괴를 명분으로 이른바 ‘선제적’ 공격을 감행한 미국의 침략적 호전성에 신대륙 발견자 콜럼버스의 이름을 빌어 반대를 표한 것이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MARGIN: 6px 15px 1px 0px&quot; class=pic_box_c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200 bgColor=white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9/08/17/ljh_090817_112455_26656.jpg&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2002년 대선에서 노란풍선의 선거혁명으로 당선된 참여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파병이라는 형태로 참여하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던 나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참여정부가 ‘전쟁참여 정부’의 굴레를 뒤집어 쓰는 순간이었다.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 핀 대선승리의 꽃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나는, 명분은 없지만 한미동맹이라는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노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배신당했다. 속았다’의 눈물이 아니었다. ‘반미면 어떻습니까’라고 했던 ‘노통’이 한 국가의 원수로서 명분과 국익사이에서 고뇌했을 그 실존적 아픔이 떠올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대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시사개그를 하는 방송인으로서 파병반대의 깃발을 들고 서 있어야만 하는 그 상황이 너무도 서글퍼서 흘린 눈물이었다. &lt;BR&gt;&lt;BR&gt;결국 그렇게 국군이 이라크에 파병이 됐고, 그 여파로 고 김선일 님의 희생이 있었고, 미국은 9.11테러와의 연관성도 밝히지 못하고, 대량살상무기도 찾지 못한 채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이제는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있다. 과연 이라크파병으로 우리가 얻은 국익은 무엇이었을까?&lt;BR&gt;&lt;BR&gt;이때부터 나는 참여정부와 애증의 관계를 이어갔다. 노동자와 농민의 아픔을 더 잘 헤아리길 바랐던 나! 주류기득권세력이 온존하는 상황에서 개혁과 진보의 속도와 강도를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했던 참여정부! 이해는 했으나 박수를 칠 수는 없었다. 나는 나대로 나의 길을 가야만 했다. 임기 말 한미FTA타결에 이르기까지 소위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는 참여정부에 나는 풍자와 개그로, 때로 직설화법으로 제동을 걸 수 밖에 없었다.(물론 지금 MB정부의 ‘저탄소녹생성장 한다면서 4대강을 죽이는 삽질’과 참여정부의 개혁 진정성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lt;BR&gt;&lt;BR&gt;2003년 3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회인으로서의 내 인생 첫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lt;BR&gt;&lt;BR&gt;&lt;STRONG&gt;“섭외? 돈? 양심에 맡기자”&lt;/STRONG&gt;&lt;BR&gt;&lt;BR&gt;대학에서 풍물패와 연극반 동아리활동으로 문예운동을 한 것은 아마추어였다. 학생 신분으로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일생을 살아갈 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그맨으로 방송인으로 공적인 사안에 대해 내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나의 이름과 인격과 삶의 일부를 건 프로로서의 선택이었다. &lt;BR&gt;&lt;BR&gt;나름 시사풍자개그를 하겠다는 내가 촛불을 들 자리에서 들지 않고 먼 발치에서 관망한다는 건 비겁함으로 다가 왔다. 비굴함으로 다가 왔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문하곤 했다. ‘뭐가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는 거야. 섭외? 돈? 편파성시비?’ 때로 그러한 실존적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 때마다 나를 지탱하고 일으켜 세우고 뚜벅뚜벅 걷게 하는 건 양심의 소리였다. ‘그래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 옳을 수는 없다. 그래도 사익의 유불리를 가지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을 저버리지는 말자!’ &lt;BR&gt;&lt;BR&gt;이 원칙 하나를 부여잡고 지금까지 사회적 발언과 시사개그를 해 왔다. 공중파 3사에서 하기 어려운 시사개그가 시민광장에서 상연되었다. &lt;BR&gt;&lt;BR&gt;2004년 4월에는 탄핵무효의 촛불을 들었다. 탄핵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국해(國害)의원들의 의회쿠데타였다. 정족수만을 믿고 벌인 폭거였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시비를 판단할 일을, 흠결 많은 하자투성이들이 벌인 저질 난장판이었다. &lt;BR&gt;&lt;BR&gt;몇 가지 티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차떼기당, 지역감정당들이 나무랄 계제가 아니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었다. 그래서 광장에 모인 촛불들은 소리 높여 웅변했다. ‘너흰 아니야!’라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lt;BR&gt;&lt;BR&gt;&lt;STRONG&gt;시민들의 그 형형한 눈빛&lt;/STRONG&gt;&lt;BR&gt;&lt;BR&gt;그 해 4월 촛불의 바다에서 네 번 무대에 올랐다. 두 번의 사회를 보고 두 번의 자유발언을 했다. 6만명이 넘는 촛불의 함성은 그 어떤 책과 자료와 이론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 큰 울림으로 내게 민주주의를 가르쳐 주었다. 민주주의를 그렇게 현장학습으로 터득했다. 촛불 든 시민들의 눈빛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타른 목마름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었다. 진실했고 절실했다. 촛불은 진실을 밝히는 나와 우리의 양심의 등대였다. 진실은 어둠을 물리치고, 달지 말아야 할 금배지를 잘 못 단 협잡꾼, 모리배들은 4월 총선에서 뒤안길로 사라졌다. &lt;BR&gt;&lt;BR&gt;2004년 12월에는 국가보안법철폐의 촛불을 들었다. 탄핵정국의 여파로 열린 우리당이 원내 제1 당이 됐지만 당내 화합과 리더십의 부족,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수구신문과 한나라당의 발목잡기로 개혁의 발걸음은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 시민들은 또 양심의 횃불을 들었다. 반백년동안 이 땅의 양심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려 왔던 국가보안법을 이제 보내드리자는 것이었다. 국보법을 철폐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자는 촛불들의 외침은 그 차디찬 아스팔트를 녹이는 열정을 안고 있었다. 국보법의 조종(弔鐘)을 선언하면서 촛불들은 진정한 해방과 자유로움을 만끽했다.(그러나! 수구기득권은 국보법을 온존시켰고 2009년 여름 현재 여전히 건재하다!) &lt;BR&gt;&lt;BR&gt;2008년 봄에는 대학등록금 반값공약을 이행하라는 호소의 마이크를 잡았다. 1년에 1천만원이 넘는 등록금으로 국민들의 고통이 심각한데도 정부야당이 외면하고 있는 데 대한 항의였다. 선거 때 그토록 가능하고 꼭 이행하겠다더니 당선되고 나서는 나 몰라라하는 무책임한 정치행태의 전형이었다. 여전히 묵묵부답이어서 올 해 5월에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게 되었다. ‘청년실신’(청년들 실업자 되기 전에 신불자되게 생겼다)라는 피켓을 들고 경고했다. 4대강 살리는데 23조씩이나 쓰지 말고 반값등록금, 비정규직문제, 무상급식, 청년실업문제 해결에 쓰라고! 단군이래 최대 삽질 하지 말고 말 그대로 ‘실용적’으로 살라고!&lt;BR&gt;&lt;BR&gt;지난해 5월에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 철회의 촛불사회를 맡았다. 수만명의 촛불들은 ‘미친소 너나 먹어’라며 MB아웃을 외쳤다. 검역주권을 뒤로하고 ‘가는 정권’ 조지 부시에게 뭐가 그리 급하다고 광우병 위험있는 소고기를 통째로 사들여 오려는 지 국민들이 ‘노’라고 외친 것이다. 촛불에 크게 데였는지 MB는 두 번이나 사과를 하면서도 1년이 지난 현재 유모차 부대를 소환하고 PD수첩을 갈갈이 찢으려 하고 있다.(MB도 이른바 ‘4대악법’ 개정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었는데 촛농이 뜨거운 줄 그 때 알았나!) &lt;BR&gt;&lt;BR&gt;&lt;STRONG&gt;“평생 수업 갈지 모르겠다”&lt;/STRONG&gt;&lt;BR&gt;&lt;BR&gt;정부여당에서 촛불이 선동됐다느니, 배후세력이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데, 맞는 말이다. 촛불은 선동(善動)이다. 청와대와 금배지들이 못하는 일들을 대신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굿 액션’이다. 옛날 정치꾼들이 전세버스로 일당주고 동원했던 허수아비들이 아닌 살아있는 양심들이다. 진짜 선량한 선량들이다. 현장에 와 본 사람들은 안다. 촛불 한번 안들어 봤으면 얘기를 하지 말라! 굳이 배후가 있다면 싫다는 것 억지로 들여와서 나도 모르게 먹이게 하려던 미국과 ‘어메리카 프렌들리’한 정부가 배후세력이다. 가만히 공부하고 연애하고 살림하고 직장다니는 사람들을 촛불 들게 하고 거리로 내몰았으니 말이다. 자신들이 배후인줄 모르고 배후를 얘기하다니! 촛불은 충고한다. ‘너 자신을 알라.’&amp;nbsp;&amp;nbsp;&lt;BR&gt;&lt;BR&gt;그리고, 노통의 서거로 내 인생의 쓰라린 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평생 갈 지도 모르겠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 #000000 1px solid; BORDER-LEFT: #000000 1px solid; BORDER-TOP: #000000 1px solid; BORDER-RIGHT: #000000 1px solid&quot; align=absBottom src=&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Img/2007/06/11/ljh_070611_103102_51339.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FONT-FAMILY: 돋움,Arial; COLOR: #33333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 PADDING-TOP: 15px&quot;&gt;노정렬 방송인&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lt;P&gt;&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14&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images/main/logo_sub.gif&quot;&gt;&lt;/A&gt; &lt;A href=&quot;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814&quot; target=_blank&gt;시민사회신문 원문기사로&amp;nbsp;바로가기&lt;/A&gt;&lt;/P&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ingopress.com/BlogImg.aspx?idx=6814&quot; width=0 height=0&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촛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촛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노정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정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Wvd&amp;amp;tagName=내인생의첫수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내인생의첫수업&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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