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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구본을 왼쪽으로 돌려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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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7-04T09:44:2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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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북관계 왜 이 모양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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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국제주의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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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7-04T09:44:25Z</updated>
	    <published>2008-07-04T09:44: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newsText id=fontZone&gt;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보이질 않는다. 비약하자면 이명박 정부에 대북정책이란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나마 이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정책이라던 '비핵개방 3000'도 북한의 '비핵'이 가시화된 현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지 계획 자체가 없다. 아무리 '비핵개방 3000'이 국내 보수표를 겨냥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선언적 조치였다지만 북핵 진전에 맞춰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으면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lt;BR&gt;&lt;BR&gt;그러나 정부는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 정책 비전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 기자간담회에서 비핵개방 3000의 구체적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quot;북핵 해결과정을 좀 더 지켜보면서 할 것&quot;이라며 &quot;(비핵화가)더 진전되면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겠냐. 그 정도만 얘기하겠다&quot;고 얼버무렸다. &lt;BR&gt;&lt;BR&gt;반면 국제정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lt;BR&gt;지난 달 26일 북한의 핵신고를 시작으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 발표, 27일 영변 냉각탑 폭파, 29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1차분 남포항 도착까지 북미관계 개선을 보여주는 각종 조치들이 잇따라 진행되고 있다. 6자회담 재개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북일, 북중간 대화도 활발하다. 그러나 유독 남북관계만 조용함을 넘어서 냉랭함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최근 우리 측의 옥수수 5만톤 지원 의사를 단칼에 거부했고, 통신시설의 낙후함을 이유로 개성공단 생산품의 남한 반출을 제한하는 등 남북관계의 문을 더욱 걸어 잠그고 있다. &lt;BR&gt;&lt;BR&gt;&lt;B&gt;강경한 대통령, 남북관계 무심한 참모들...남북관계 악화될 수밖에&lt;/B&gt;&lt;BR&gt;&lt;BR&gt;
&lt;TABLE class=imgLeft id=newsImg cellPadding=0 width=100 align=center border=0 cellpacing=&quot;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photoImg&gt;&lt;IMG src=&quot;http://archivece.vop.co.kr/images/e34ec64ee1c605a0eac977f7e2c2caa5/2008-02/29024606_208022515042.jpg&quot; align=lef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hotoMore&gt;
&lt;DIV&gt;&lt;A href=&quot;http://photo.vop.co.kr/&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gt;사진더보기&lt;/FONT&gt;&lt;/A&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hotoSummary&gt;
&lt;DIV&gt;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장면&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hotoCredit&gt;
&lt;DIV&gt;ⓒ 민중의소리 자료사진&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문제는 아무리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어도 정부가 상황을 관리하고 통제할 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lt;BR&gt;&lt;BR&gt;익명을 요구한 대북전문가는 &quot;이명박 대통령이 대북 문제에 관해서 생각보다 상당히 강경하고, 그 외에는 남북관계에 관심도 없다&quot;고 말했다. 그는 &quot;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인수위 때부터 새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인물이 일을 해야 하는데 김병국 전 외교안보수석은 권력 다툼 속에서 밀려들어왔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조차 없었을 것&quot;이라고 꼬집었다. 새로 임명된 김성한 외교안보수석에 대해서도 &quot;공무원 출신이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quot;라고 평가했다. &lt;BR&gt;&lt;BR&gt;이명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생각보다 강경하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lt;BR&gt;&lt;BR&gt;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부터 짐작해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식에서 &quot;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한다&quot;며 &quot;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나가겠다&quot;고 밝혔다.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의미였고, 이는 실제 상황에 철저하게 적용됐다. &lt;BR&gt;&lt;BR&gt;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병국 전 외교안보수석까지 옥수수 5만톤 지원을 대통령에게 건의했지만 그때마다 이 대통령은 '옥수수 5만톤을 주면 국군포로 문제가 해결되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결국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를 한 끝에 5만톤 지원 승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한 대북전문가는 &quot;그런 면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주의자에 가깝다&quot;면서 &quot;대북정책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게 아니라 북한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렵사리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옥수수 5만톤 지원을 이번엔 북한이 거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lt;BR&gt;다급한 통일부는 &quot;북측이 원하는 인수 장소, 시기, 방법 등 실무적인 사항을 알려주면 옥수수 5만톤을 제공하겠다&quot;며 사실상 '무조건적' 지원입장을 밝혔지만 북한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지난 정부에서 이미 합의된 옥수수 5만톤 지원을 가지고 남북관계 지렛대로 사용하려고 저울질을 하다가 체면은 체면대로 구기고 '상호주의'원칙은 원칙대로 훼손하게 된 것이다. &lt;BR&gt;&lt;BR&gt;위에서 인용한 정부소식통은 &quot;옥수수 5만톤을 주자고 했던 게 벌써 수달 전&quot;이라면서 &quot;주자고 할 때 줬으면 돈도 아끼고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을 것&quot;이라고 푸념했다. &lt;BR&gt;&lt;BR&gt;&lt;B&gt;미국이 남북대화 자리 열어준다?&lt;/B&gt;&lt;BR&gt;&lt;BR&gt;더 큰 문제는 현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 않아 보이는 정부 태도에 있다. &lt;BR&gt;&lt;BR&gt;남북간 대화가 필요하긴 한데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 정부당국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대남비난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면서 &quot;북한이 우리 대통령에 대해 수십가지 욕을 쏟아내고 있어도 참고 있다&quot;며 &quot;그 욕이 그칠 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quot;고 말했다. 그러면서 &quot;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하는 시기에도 총 5번의, 32개월가량의 남북대화 중단기가 있었다&quot;면서 &quot;이명박 정부 들어서 초기 3~4개월 동안 이런 상황인 건 어떤 면에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년을 기다린 다음에야 대화를 시작했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그러나 자타공인 통일문제의 최고전문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햇볕정책의 계승자임을 자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약간의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 대체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서 남북관계 발전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그나마 북한과 대화를 통해 그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문제에서 일관되게 상호주의나 시혜적 관점을 적용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역도' 꼬리표를 붙여버린 북한이 언제쯤 대화의 손을 내밀지는 모를 일이다. &lt;BR&gt;&lt;BR&gt;
&lt;TABLE class=imgCenter id=newsImg cellPadding=0 width=100 align=center border=0 cellpacing=&quot;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photoImg&gt;&lt;IMG src=&quot;http://archivece.vop.co.kr/images/e34ec64ee1c605a0eac977f7e2c2caa5/2008-06/27052710_IL7Y9266.jpg&quot; align=center&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hotoMore&gt;
&lt;DIV&gt;&lt;A href=&quot;http://photo.vop.co.kr/&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gt;사진더보기&lt;/FONT&gt;&lt;/A&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hotoSummary&gt;
&lt;DIV&gt;남북관계의 냉랭한 상황을 상징하는 대형 얼음을 부수는 퍼포먼스&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photoCredit&gt;
&lt;DIV&gt;ⓒ 민중의소리 자료사진&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심지어 이 당국자는 미국이 북에게 남북대화를 주문할 것이라는 옹색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해 기자들의 한숨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quot;북핵문제가 진전되고 북미관계가 발전되면 당연히 남북관계에도 좋은 영향 끼치게 될 것&quot;이라며 &quot;북미관계가 발전할수록 미국으로선 동맹국인 한국을 도와주고 남북관계 개선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뭘 한다는 게 저로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quot;고 말해 미국에게 기대 상황 관리를 해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lt;BR&gt;&lt;BR&gt;이런 정부의 모습에 전문가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lt;BR&gt;&lt;BR&gt;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quot;정부 내에선 아직도 낙관론이 깔려 있다&quot;며 &quot;북한이 기다리면 나올 것이고, 남북대화 단절은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 북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단기적으로 풀 가능성은 거의 없다&quot;고 단언했다. &lt;BR&gt;그는 &quot;되려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quot;며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 생산품의 남한 반출을 제한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최악의 경우 개성공단을 닫아버릴 가능성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lt;BR&gt;&lt;BR&gt;조 실장은 &quot;예를 들어 북한이 최근 3통문제 해결을 강하게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안이하게 물적지원만 하면 된다고 판단해 개성공단 문제와 분리하고 있는데 현 상황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단계&quot;라면서 이제라도 극단적인 상황악화를 염두에 두고 관리에 나서야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며 혀를 찼다. &lt;/DIV&gt;
&lt;DIV style=&quot;HEIGHT: 40px&quot;&gt;&lt;/DIV&gt;
&lt;DIV id=articleData&gt;&lt;A onclick=&quot;openPrintDialog('A00000213446'); return false;&quot;&gt;&lt;/A&gt;&amp;nbsp;&lt;/DIV&gt;&lt;/FORM&gt;
&lt;DIV class=newsRepInput&gt;
&lt;DIV class=newsRepInputBody&gt;
&lt;FORM id=form_article_add_reply onsubmit=&quot;return reply_updater();&quot; method=post&gt;&amp;nbsp;&amp;nbsp;&amp;nbsp; 
&lt;FORM name=dataInfo&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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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newsRepList id=contents_replies&gt;
&lt;FORM name=dataInfo&gt;
&lt;DIV style=&quot;CLEAR: both&quot;&gt;&lt;/DIV&gt;&lt;/DIV&gt;
&lt;DIV class=bbb&gt;&lt;SPAN style=&quot;CURSOR: pointer&quot;&gt;&lt;A onclick=agree_reply(12894);&gt;&lt;/A&gt;&lt;/SPAN&gt;&amp;nbsp;&lt;SPAN style=&quot;CURSOR: pointer&quot;&gt;&lt;A onclick=reject_reply(12894);&gt;&lt;/A&gt;&lt;/SPAN&gt; &lt;/DIV&gt;&lt;/DIV&gt;&lt;/DIV&gt;&lt;BR&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이명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명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남북관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북관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비핵개방 3000&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핵개방 3000&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대북정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북정책&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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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정대세 선수에게 한국어란 무엇일까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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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5-20T09:41:14Z</updated>
	    <published>2008-05-20T09:41: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지난주 쓴 1편에 이어진 2편입니다.&lt;/STRONG&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U&gt;&lt;STRONG&gt;한국 사회에 박혀 있는 무의식 속&amp;nbsp;국어 내셔널리즘&lt;/STRONG&gt;&lt;/U&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앞서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우리나라 내&amp;nbsp;국어 내셔너리즘은 팽배하다. 우선, 모어와 모국어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겠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모어&lt;/STRONG&gt;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에 익힘으로써 무자각인 채로 자신 속에 생겨버리는 언어, 일단 몸에 익히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인 언어를 뜻함.&lt;/P&gt;
&lt;P class=바탕글&gt;-국어란 국가가 정해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인민에게 주입하는 언어이며 인민을 국민으로 만들어가는 수단 ;&lt;STRONG&gt; 모든 사람들에게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즉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에게 조선어 발음이나 억양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A style=&quot;COLOR: #666666&quot;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0/blog/2008/05/13/17/26/48295094e14c0&amp;filename=제목없음.bmp')&quot;&gt;&lt;IMG style=&quot;WIDTH: 638px; HEIGHT: 423px&quot; height=423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0/blog/2008/05/13/17/26/48295094e14c0&amp;filename=제목없음.bmp&quot; width=375 border=0&gt;&lt;/A&gt;&lt;/P&gt;
&lt;P&gt;&lt;U&gt;&lt;/U&gt;&amp;nbsp;&lt;/P&gt;
&lt;P&gt;&lt;U&gt;*조선어와 일본어&lt;/U&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조선어와 일본어는 모두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설이 유력하고 문법구조도 닮아있다. 또 오랫동안 역사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고 중국의 한자어를 기원으로 하는 어휘도 많다. 이런 점에서 보면 조선인과 일본인이 상대방의 문법을 공부하고 독해한다는 것은 타 민족 언어에 비해 꽤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두 언어의 음운 구조는 꽤 다르고 쌍방간에 발음은 어렵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ex. 일본인이나 재일조선인이 아무리 조선어에 숙달되어도 조선어의 거센소리(격음)이나 된소리(경음, 농음)를 발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또 일본어는 기본적으로 항상 홀소리(모음)로 끝나기 때문에 받침이라 불리는 조선어의 자음 종성을 발음하는 것도 어렵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조선인들은 일본어의 れいぞうこ&#12540;＞れいじょうこ、(냉장고)きんざ&#12540;＞きんじゃ、(긴자) てつがく&#12540;＞てちゅうがく、(철)つきだし&#12540;＞すきだし(초밥)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 자경단은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구별하기 위해 ‘15엔 50전’ 을 일본어로 발음하게 했는데 조선어에는 머리글자에 탁음이 없기 때문에 조선인이 ‘じゅうごえんごじゅっせん’이라고 일본어로 발음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대로 일본인이나 재일조선인이 아무리 조선어에 숙달된다 해도 경어와 호칭의 어려움, 언어 자체의 어려움이라기보다 그 언어를 사용해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화나 생활 습관에 익숙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ex. “호칭민주화 요구를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사회적 위계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복잡한 조선어 경어사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조선어 경어사용법에 숙달해야만 비로서 이 나라 언어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자신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서경식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quot;한국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문화나 습관에 익숙해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재일조선인에게 이 문제가 단순한 ‘외국어 습득’이나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곤란이라는 일반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quo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그렇다면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재일조선인의 모어와 모국어의 상극을 극복하는 길은? 두 가지이나, 둘 다 해결방법이 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8227;&lt;/U&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 재일조선의 일본인으로의 ‘동화’.. “그러나 재일조선인의 소멸은 없다”&lt;/SPAN&gt;&lt;/U&gt;&lt;/P&gt;
&lt;P class=바탕글&gt;-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재일조선인 모두가 일본인이 되면 재일조선인은 없어질 것이라는 논의, 일본정부가 전후에 일관되게 추진해온 해결책이지만 역대의 한국 정부도 일본만을 비난할 자격 없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국어 내셔널리스트 입장에서 보면, ‘모어’, ‘모국어’, ‘국민’의 세 개 항목이 등식으로 이어져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재일조선인의 모어는 일본어이니, 모어와 모국어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일본국민이 되어라”는 논리. 즉 재일조선인은 ‘국어 내셔널리즘에 굴복해라’는 것.&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일본에서 보면 ‘동화’, 한국에서 보면 ‘기민’이라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재일조선인의 자연 소멸이라는 ‘최종 해결’ 구상은 시대별로 빈번하게 나타났지만 지금도 재일조선인은 소멸되지 않았으며 일본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당분간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일본 국적으로 귀화해 법적인 의미에서 ‘재일조선인’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해도 그것이 최종해결은 될 수 없다. 재일조선인은 실제로 일어났던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의 산물이며 그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또한 식민지주의의 연장으로서의 차별과 편견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실체’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올곧게 직시하지도 않고 자기 성찰하지도 않으며 극복할 수 없는 일본인 메이저리티가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공포와 혐오와 연민의 대상으로서 땔는 일방적이면서 낭만적인 신화의 등장인물로 재일조선인을 만들어낼 것이며, 식민지 지배가 진정한 의미에서 끝나지 않는한 피지배자, 저항자로서의 재일조선인이 소멸하는 일은 없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8227; &lt;/U&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재일조선인이 아닌 완전한 조선인이 되는 것&lt;/SPAN&gt;&lt;/U&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lt;/SPAN&gt;&lt;/U&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구체적으로 한국 또는 북조선에 영주 귀국해서 일본적인 문화나 생활 습관을 완전히 없애고 살아가는 것으로 모어(일본어)를 조선어로 바꾸는 작업이며 모어를 교환함으로써 모어, 모국어, 국민이라는 3자를 일치시키려는 시도인 셈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서경식 교수의둘째형인) 서준식의 삶을 예로 들어보자.&amp;nbsp;그는 감옥 안에서 전향을 강요하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그의 투쟁은 군사독재 정권과의 정치적 투쟁이면서도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을 자기 부정하고 조국의 민중과 자신을 일체화시키려는 치열한 투쟁이기도 했다. 또 탈 식민지화를 위한 투쟁에 연대함으로서 자기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재일조선인의 정치적. 윤리적 과제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실천이기도 했다. 그는 조선어를 몸에 익히기 위해, 모어를 교환하기 위해 감옥 안에서 수년 동안 자신에게 일본어 서적의 구독을 금하였다. 그의 투쟁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치열한 것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하기 곤란한 사례이긴 하지만 오히려 재일조선인이 식민지지배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는 과제에 대해 어떤 전형을 보여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서준식이 보여준 해답은 재일조선인을 그만둔다는 것이므로 어느 개인에게는 하나의 해답일 수 있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집단 자체가 직면하고 있는 아포리아(풀기 힘든 난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는 없다. 재일조선인 전원이 모어를 교환하는 투쟁에 승리하지 않는 한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는 계속 남게 될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때문에 서경식 교수는 '유토피아'를 제안한다.&amp;nbsp;말 그대로 유토피아다. 조선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베트남어등 공용어로서 인정하여 유통되는 사회, 그곳이&amp;nbsp;유토피아라는 것이다.&amp;nbsp;&quot;이 같은 열린사회에서 각각의 성원을 이어주는 것은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는 역사의 기억이다. 그리고 그 같은 역사를 피해자로서 뿐만 아니라 가해자로서도 재현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모럴이다. 그곳에서는 일본어 억양의 그리고 중국어 억양의 조선어를 조금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재일조선인이나 그밖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도 또한 같은 고통의 역사를 살아온 동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quo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서경식 교수의 주장처럼, 재일조선인들의 이해하는 데 언어를 통한 접목이 과연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워낙 무지한 한국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재일조선인을 이해할 수 있는 거리 위에 한 부분으로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2편 끝&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일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추성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추성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정대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대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재일조선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일조선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재일동포 3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일동포 3세&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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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대세 선수에게 한국어란 무엇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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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5-13T17:27:49Z</updated>
	    <published>2008-05-13T17:27: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FONT color=#0084a0&gt;&lt;FONT size=2&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0/blog/2008/05/13/17/26/48295094e14c0&amp;filename=제목없음.bmp')&quot;&gt;&lt;IMG height=423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0/blog/2008/05/13/17/26/48295094e14c0&amp;filename=제목없음.bmp&quot; width=375 border=0&gt;&lt;/A&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7/blog/2008/05/13/17/26/482950956d505&amp;filename=제목없음1.bmp')&quot;&gt;&lt;IMG style=&quot;WIDTH: 317px; HEIGHT: 425px&quot; height=363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7/blog/2008/05/13/17/26/482950956d505&amp;filename=제목없음1.bmp&quot; width=200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7/blog/2008/05/13/17/26/482950956d505&amp;filename=제목없음1.bmp')&quot;&gt;&lt;/A&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amp;nbsp;북한축구대표팀의 스타로 떠오른 정대세 선수. 일본으로 귀화한 추성훈 선수와 함께 북조선으로 국적을 택한 정 선수는 국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amp;nbsp;재일동포 4세의 추성훈, 재일동포 3세의 정대세.&amp;nbsp;두 사람 다 재일조선인으로서 혼란의 삶을 살았을 것이란 건 명확하다. 또&amp;nbsp;반일, 반북의 정서가 뚜렷한 국내 사람들의 눈초리와 손가락질을 받은 사실도 불과 몇 해전의 일이다. 요즘 사람들은&amp;nbsp;과거엔 '반쪽바리', '반빨갱이'로 불렸던 이들을 &quot;귀엽다&quot; 혹은 &quot;멋있다&quot;라고 말한다. 일본어와 섞인 어눌한 한국말,&amp;nbsp;지금에야 그들이 스타덤에 오르면서 귀엽다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amp;nbsp;많은 사람들에게&amp;nbsp;그들은, 재일조선인들은&amp;nbsp;마치 '외국인'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lt;/FONT&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때문에 재일조선인들의 고통은 많이 있지만 이번 글에선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주에 걸쳐 1,2편으로 나누어 글을 쓰려 한다.) 그간 재일조선인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서, ‘조선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에 굉장히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와는 반대로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조선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는 재일조선인도 많았다. 두 경우 모두 재일조선인 사회를 이해할 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부모가 사용하는 조선어 억양의 일본어를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언어로 인한 아이덴티티의 혼란에 따른 고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우선 재일조선인의 기원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lt;BR&gt;&lt;/FONT&gt;&lt;FONT color=#156200&gt;45년 일본의 패전 그리고 조선의 식민지 해방, 당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은 약 230만명 정도였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156200&gt;대부분 해방 조국으로 귀환했지만 48년의 남북 분단 50년 한국전쟁 등의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약 60만 명의 조선인은 해방 후에도 일본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lt;/FONT&gt;&lt;BR&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2007년 겨울호 &lt;황해문화&gt;에 실린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amp;nbsp;교수의 &lt;모어와 모국어의 상극&gt;이라는 글을 살펴보면 국내에는 '재일조선인=외국인'이라고 하는 뿌리 깊은 국어 내셔널리즘이 팽배하다.&lt;/FONT&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국내 뿌리깊은 국민들의 무의식의 국어 내셔널리즘&lt;/STRONG&gt;&lt;/P&gt;
&lt;P&gt;&lt;BR&gt;&lt;FONT color=#5c585a&gt;&lt;FONT color=#0084a0&gt;외견상 같은 차이가 없고 국적도 같은 재일조선인이 미숙한 조선어를 하면 ‘한국인인데도 못한다’라는 반응과 ‘재일교포인데도 잘한다’는 반응으로 나뉘는데, 후자의 경우는 상대가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lt;/FONT&gt;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일반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 ‘모어’와 ‘모국어’의 개념상의 구별이 아주 불분명한데 그 이유는 두 나라 모두 단일민족국가관에 입각한 국어 내셔널리즘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color=#5c585a&gt;‘일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젊은이들이 조국에까지 조선어를 배우러 왔지만 ‘일본인’으로 분류하는 한국 사회의 편견은 하나의 폭력이며 한국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무의식의 국어 내셔널리즘의 표상이다. &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color=#5c585a&gt;&lt;FONT color=#0084a0&gt;국내에 뿌리깊게 인식된 국어내셔널리즘 입장에서 자국민/외국인을 구별하는 경계선은 ‘자국어를 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lt;/FONT&gt;. 국어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국민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시금석인 셈이다.&amp;nbsp;때문에 재일조선인에게 이 문제는 언어습득을 둘러싼 기술적 문제를 넘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기도 하다.&amp;nbsp;반면 재일조선인 2세, 3세 모두 모어는 일본어이지만 일본어가 옛 지배자의 언어였다는 것, 원래 모어였어야 할 조선어를 태생적으로 박탈당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lt;/FONT&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재일조선인 의 모국어(조선어) 체험&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 조선인은 대일본제국에 의해 ‘일본 국민화’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일본 지배에서 해방된 다음에는 분단국가의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한 ‘대한민국 국민화’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color=#5c585a&gt;65년 재일조선인을 상대로 한국 국적을 명확하게 취득한 자에게만 여권을 발급하게 했으며 특히 한국국적을 취득한 자에게만 한국과 일본 양국 간 조약에 의해 ‘협정 영주권’이라는 비교적 안정된 거주권이 주어지게 됐다. 결국 어떤 사정으로 ‘조선적’에 머무르게 되어 ‘한국적’ 등록을 거부한자, 즉 한국으로의 ‘국민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에게는 고향을 왕래할 수 있는 권리도, 일본에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 color=#0084a0&gt;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을 동일시해 일본인에 대한 분노를 재일조선인에게 내던지는 한국 사람이 있었던가 하면, 일부 재일조선인은 거리낌 없이 일본어를 사용했으며 조국의 문화나 관습을 내려 보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lt;/FONT&gt;. 재일조선인들도 일본의 식민지지배 지해자이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향해야 할 분노를 재일조선인이 대신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도 그 같은 심정을 가지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해 없이 한국 사람들 앞에서 일본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이다.&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color=#5c585a&gt;&lt;FONT color=#0084a0&gt;일본어를 모어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은 자신들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나갈 때조차도 일본어를 통할 수밖에 없다.&lt;/FONT&gt;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희생당한 윤동주의 시를 읽을 때도 많은 조선인들은 일본어 번역으로 읽을 수밖에 없으며 그 일본어 번역에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일본인 메이저리티의 심리를 반영하는 편향이 가해져 있는 것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이것 또한 식민지주의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나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모어(조선어)에 가해진 식민지주의의 폭력이 그들의 자손인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는 모어(일본어)라는 폭력이 되어 몇 세대에 걸쳐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그런 의미에서 보면, 재일조선인의 자유로운 조선어 사용은 재일조선인을 식민지에서 해방시키는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식민지 시대에 강제된 ‘국어’인 일본어를 대신해 조선인 대다수의 모어인 조선어를 독립국가의 국어로 삼는 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정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조선어를 국어로 삼으려 하는 조국 사람들의 노력에 재일조선인도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할 것이다. 재일조선인에게 조선어를 습득하는 것은 단순히 실용적인 문제가 아니라 탈 식민지화를 완성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과제-그 으뜸은 민족 통일이겠지만- 이며 동시에 그 같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어려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동포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윤리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그러나 이 과제를 실현하기 어려운 높은 장벽이 있다. 바로&amp;nbsp;&lt;FONT color=#6d201b&gt;&lt;STRONG&gt;조국의 분단 상태&lt;/STRONG&gt;&lt;/FONT&gt;, 조일국교의 비정상화 등과 같은 정치적 조건이 재일조선인과 조국 사람들과의 광범하고도 자유로운 교류를 막고 있고&amp;nbsp;동시에 일본어를 모어로 자라난 &lt;FONT color=#6d201b&gt;&lt;STRONG&gt;재일조선인에게 조선어(조선문화) 습득의 벽이 아주 높다는 것&lt;/STRONG&gt;&lt;/FONT&gt;,&amp;nbsp;또한 &lt;FONT color=#6d201b&gt;&lt;STRONG&gt;재일조선인 사회에서도 진행되는 세대교체,&lt;/STRONG&gt;&lt;/FONT&gt; 2세를 대신해 3,4세가 중심을 이루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amp;nbsp;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right&gt;&lt;1편 끝, 다음주 화요일에 2편 이어짐.&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추성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추성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재일동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일동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정대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대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재일동포4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일동포4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재일조선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일조선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재일3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일3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재일동포3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일동포3세&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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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과거의 일본 무사들도 &quot;미국에 맞서 싸웠었다&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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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nternational2008.3883014</id>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5-06T11:26:35Z</updated>
	    <published>2008-05-06T11:26:3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FONT color=#8d3901 size=2&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6/blog/2008/05/06/11/25/481fc18f79ba6&amp;filename=제목없음1.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156200&gt;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공포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광우병'에 대한 공포일까요? 이는 모든 국민들이 나서서 정부의 굴욕적이고 졸속적인 대미외교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너무나 터무니 없게도 작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우려했던 정부 인사들이 정부가 바뀐 후 손바닥 뒤집듯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정부 말대로 미국산 쇠고기 안전하다고 칩시다. 하지만 불과 8개월만에 갑작스럽게 바뀐 정부의 입장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56200&gt;&lt;FONT size=2&gt;현재 이러한 국내의 정세를 보면서.. 이번 글에선 과거 메이지시대, 일본에서도 일었던 미일불평등조약에 농민,하급무사, 빈민들의 거센 반발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lt;/FONT&gt;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2/blog/2008/05/06/11/25/481fc1936e622&amp;filename=제목없음.jpg')&quot;&gt;&lt;STRONG&gt;&lt;IMG style=&quot;WIDTH: 628px; HEIGHT: 374px&quot; height=374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2/blog/2008/05/06/11/25/481fc1936e622&amp;filename=제목없음.jpg&quot; width=668 border=0&gt;&lt;/STRONG&gt;&lt;/A&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왜였을까?&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현재의 한국과 일본의 근대가 무엇이 다를까. 과거 서양에서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팽창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수요지를 찾게 되었고 동양은 매력적인 소비지로써 그들(서양) 눈에 비쳐지게 됐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이지유신 초기, 당시 일본은 여러 정치개혁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막부의 재정은 곤란해져가고 농민들의 봉기는 날로 늘어가는 막부쇠퇴기였다. 이 시기 서구열강에 의한 통상요구는 자연스레 일본열도에도 불어왔다. 페리 내항으로 일본이 강제 개국을 하게 됐지만, 동시에 일본의 일부 지역 무사들은 세계의 흐름을 읽고 존왕양이 정책에서 급격히 ‘막부 타도’ 운동으로 급선회하는 계기를 만들어, 결국 메이지유신 탄생으로 이어졌다.&lt;/FONT&g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0000&gt;즉 메이지유신의 성공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 통일국가체제로, 급속한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으로 나타난, 열강을 따라잡자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라고&lt;/FONT&gt;&lt;FONT color=#767173&gt; 한 마디로 요약된다. 자세히 보면, 메이지 10년대(1878년)부터 ‘일본주의’의 싹이 틔워졌다고 볼 수 있다.&amp;nbsp; ‘평민적구화주의’(平民的歐化主義)- 정부가 추진하는 귀족적 서구화주의에 반대하여 국민생활 향상을 위한 서구화주의- 와 ‘근대적 민족주의’가 당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근대적 민족주의는 더욱 발전해 ‘국수보존주의’와 ‘국민주의’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현재의 일본을 있게한 ‘일본주의’, '군국주의'로 나아갔지 않은가.&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미일불평등조약이 촉발시킨 도시빈민, 농민, 하급무사들의 반발&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1858년 미일불평등조약 체결 이후 일본의 경제 사정은 악화일로였다. 예를 들면, 무역장정에 의한 관세율의 경우 1류로 분류된 일본 거류 외국인의 소지품은 관세율 0%, 2류인 배의 수리도구나 포경어구, 거류민 생활물자(빵, 밀가루 등)는 5%, 3류인 주류는 35%, 그 밖의 4류 품목에 대해서는 20%의 관세를 물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뛰어난 서구제품의 일본 수입으로 말미암아 물가는 급등한다. 개항전인 1858년을 100이라 했을 때, 개항 후인 1865년의 쌀값은 988로 급등했고, 생사(生絲)는 500, 조면(繰綿)은 1866년에 450으로 급상승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결국 서민들의 생활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이처럼 생활이 곤궁해진 도시빈민과 하층농민은 ‘세상을 바꾸자!’는 기치아래 날로 봉기를 일으켰으며 하급무사에 의한 불만도 늘어나 막부타도 의식의 고양과 함께 존왕양이 운동이 격화되어 갔다. 특히 ‘안정의 대옥’(막부가 (미일)조약에 반대하는 대명, 가신, 귀속들을 감옥에 넣은 사건)으로 미토(水戶)번주에 대하여 막부의 허락 없이 에도성을 출입했다는 ‘불시등성’(不時登城)의 죄목으로 근신과 에도성 출입을 금했던 사건은 급기야 후 폭풍을 몰고 왔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6/blog/2008/05/06/11/25/481fc18f79ba6&amp;filename=제목없음1.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6/blog/2008/05/06/11/25/481fc18f79ba6&amp;filename=제목없음1.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막부와 반막부(쵸슈항)의 대립, 복수전이 시작됐다. 요시다 쇼인이 쇼오카손쥬쿠라는 사숙을 열어 존왕양이 사상을 전파하다가 안정의 대옥 때 체포되어 처형되는 사건이 바로 그렇다. 쵸슈향의 존왕양이 요구에 대해 조정은 1863년 각 번에 외적을 물리치라는 양이를 명했다. 쵸슈항에서는 이를 즉시 받아들여 시모노세키해협을 지나가는 미국 상선에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이듬해 영국.미국.네덜란드 연합군의 보복 폭격을 받고 쵸슈항의 서구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무참히 패배해야 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쵸슈항은 이에 굴하지 않고 존왕양이는 하되 양이만은 다른 방법으로 하자 마음먹고 서양식 군대와 무기 개발에 힘쏟았다. 또 다른 반막부, 사쓰마항의 무사들도 1862년 에도로부터 귀로하는 중 사쓰마항 행렬에 영국인이 몰던 마차가 접촉해 옴으로써 행렬을 이끌던 사쓰마 무사들이 무례하다면서 영국인 한 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마무기(生&#40614;）사건) 이듬해 영국이 배상을 요구하며 사쓰마항에 포격을 가하니 사쓰마항도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무참하게 당항 두 항에서는 무사답게, 양이의 방법은 서구 열강국가와 같은 반열에 이르는 수밖에 없음을 절실히 느끼며 서구 따라잡기에 열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1866년 사카모토 료마가 사쓰마항과 쵸슈항을 화해시키는, 메이지유신의 밑거름이 된 ‘삿쵸동맹’이 성사되면서 존왕양이 운동은 ‘존왕도막’(천황을 받들며 막부를 타도함)으로 전환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결국 300여년동안 내려오던 막부의 1866년 패배-&gt;, 1867년에는 대정봉환, 왕정복고-&gt; 1869년의 보신전쟁 -&gt; 메이지유신이 도래 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식산흥업(殖産興業)과 사족의 반란&lt;/FONT&gt;&lt;/STRONG&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1867년 12월의 왕정복고로 막부가 폐지되면서 새로 수립된 신정부는 1868년 무진 전쟁을 통해 구 막부 세력을 타도하고, 1869년의 판적봉환(版籍奉還)과 1871년의 폐번치현(廢藩置縣)을 통해 중앙 집권적 통일 국가를 실현했다. 국제 사회에서 구미 열강과 대등한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정부는 구미 제국에서 제도ㆍ지식ㆍ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부국강병ㆍ식산흥업ㆍ문명개화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징병제의 제정, 철도 부설, 지조(地租) 개정의 실시, 관영 공장의 설립, 학제(學制)의 공포, 이와쿠라 사절단의 파견 등 이른바 메이지 유신기에 실시된 일련의 개혁들이 그것이다. 이렇게 국내 정치의 기반을 닦은 일본은 구미 열강의 동점(東漸)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불평등 조약을 개정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구미 선진국과 대등한 지위를 확립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폐번치현(廢藩置縣)으로 지대는 정부에 집중됐으나, 에도 막부 말기 이후 지대 수입이 대폭 떨어진 데다 지역에 따라 지대율이 다르고 또 쌀 수확량과 시세에 좌우됐기 때문에 재원의 안정적인 확보가 대단히 힘들었다. 그리고 식산흥업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재원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에, 정부는 1872년 전답 매매 금지령을 폐지해 호주에게만 토지 사유와 매매를 인정하고 소유자에게 면적과 토지 가격을 표시한 지권(地券)을 교부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또한 이듬해 7월 지조 개정 조례를 공포해 전국적으로 일률적인 새로운 세법을 정했다. 발부된 지권에는 소유자.지가.면적.조세 등이 기입되었으며 지가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을 화폐로 납부하도록 제도를 고쳤다. 이로써 전국의 토지세는 일률 과세가 가능해졌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이처럼 정부는 지조를 화폐로 일률적으로 징수하면서도 조세 제도를 정비하고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에도 시대의 지대만큼 높게 토지 가격을 산정했기 때문에 지방에 따라 실정과 동떨어진 높은 토지 가격이 설정되는 등 농민의 부담이 늘어난 곳도 있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그리고 지조 개정 사업에 드는 비용을 농민에게 부담시키거나 주민들이 관습적으로 이용하던 산림 등의 공동 이용 토지 중에서 소유권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국유지로 했기 때문에, 농민들이 크게 반발해 각지에서 격렬한 지조 개정 반대 봉기가 일어났다. 계속된 봉기로 후에 정부는 세율을 2.5%로 내렸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14/blog/2008/05/06/11/27/481fc22408c69&amp;filename=3674480708.jpg')&quot;&gt;&lt;/A&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신정부의 국가 운영의 기본 방침이 부국강병이었으므로, 정부가 직접 근대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식산흥업(殖産興業)이다. 1873년, 오쿠보 토시미치가 내무성을 설치해 식산흥업에 나선다. 이는 부국강병의 기초가 될 기간산업 육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던 정책으로 이미 메이지 초부터 철도.광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오던 터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농업분야에 있어서도 농지 및 농업 개량 작업을 실시했으며, 실직한 사족들에게 자금을 융자해 사업을 일으키도록 도왔다. 사회혼란을 틈타 1868년에 일어난 무진전쟁 이후에도 봉기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초기에는 주로 조세제도의 변경에 따른 불만으로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으나 차츰 징병령과 지번사 유임운동으로 변질됐다. 아울러 1876년을 고비로는 폐도령과 질록처분에 반대하는 사족들의 난이 중심이 됐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1871년, 시코쿠와 츄고쿠 지역에서 지번사(知藩事) 유임 운동이 벌어지고 1873년, 미마사카(美作) 지역에서 수만 명이 징병령에 반대해 봉기했다. 이러한 봉기는 사족들의 봉기로까지 발전하고 만다. 1876년에 신정부가 내린 폐도령(廢刀令)과 질록처분(秩祿處分; 치쯔로쿠 쇼분- 막부가 지불하던 가록을 정부가 대신 일시금으로 지불하도록 한 처분)의 단행으로 사족들마저 난을 일으켰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즉, 구마모토에서 신푸렌(神風連)이 폐도령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여 후쿠오카에서는 현청을 습격하는 아키즈치노란(秋月の亂)이 발생한다. (이 난은 또 다시 연쇄반응을 일으켜 인접지역에서 하기노란（萩の亂)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생활이 곤궁해진 사족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반란으로 이어지니 전국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 절정은 1877년 카고시마현에서 일으킨 반란인데 카고시마의 사족들은 침한론을 주장하다가 참의직을 내던지고 귀향해 있던 사이고 타카모리를 지도자로 추대해 평민으로 구성된 정부군과 싸웠으나 결국 사이고는 이 전투에서 패하고 죽는다.- 세이난전쟁(西南戰爭)-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즉 정부 주도의 조선 침략 이후 위기의식을 느낀 막부 하의 사족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이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정부의 힘을 강화시킨 사건이 발생한 것이 이 세이난전쟁인데, &lt;U&gt;이 전쟁은 사족 세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일어났지만, 거꾸로 정부의 힘을 강화시켜 소위 ‘메이지유신의 완성’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lt;/U&g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9b014f&gt;* 이러한 움직임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1880년대의 지주민권운동과 농민민권운동, 1890년대의 노동운동,농민운동 등으로 표출됐다. 메이지 정부는 처음에는 세이난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진압에만 급급하였지만, &lt;STRONG&gt;점차 이들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들을 포섭하는 데 주력하게 된다.&lt;/STRONG&gt; 그리하여 청일전쟁 이전에 지주 세력은 &lt;STRONG&gt;이미 정부의 지지세력 내지 참여세력으로 돌아섰고, 농민이나 노동자들도 점차 제국주의적 침략에 의한 이익 배분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반정부운동에 소극적으로 돌아서게&lt;/STRONG&gt; 되었다.&lt;/FONT&gt; &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14/blog/2008/05/06/11/27/481fc22408c69&amp;filename=3674480708.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일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미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광우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우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불평등조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불평등조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군국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군국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도시빈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도시빈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메이지유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메이지유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메이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메이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미일불평등조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일불평등조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식산흥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식산흥업&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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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최대의 위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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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nternational2008.3872232</id>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5-05T21:23:27Z</updated>
	    <published>2008-05-05T21:23: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차베스와 같이 중남미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에게 큰 시련이 오고 있습니다.&lt;/P&gt;
&lt;P&gt;볼리비아 현지시간으로 5월 4일, 동부 산타크루즈 주에서 실시된 주정부의 자치권 확대안의 주민투표가 80%가 넘는 찬성율로 통과된 것으로 관측된답니다.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제가 월간 &lt;말&gt; 3월호에 기고한 글을 우선 옮깁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ee573&quot;&gt;** 여기부터는 월간 &lt;말&gt; 3월호 기고 글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난 해 11월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사상 유래 없는 폭우 피해로 6만 가구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한 볼리비아. 그러나 이러한 최악의 자연재해에 대한 걱정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볼리비아의 정국은 혼란에 빠져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볼리비아 전체 9개 주(州) 가운데 판도, 산타 크루스, 타리하, 베니, 코차밤바, 추키사카 등 현(現) 모랄레스 정권에 반대하는 야권이 장악하고 있는 6개 주가 연방정부에서 독립을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 6개 주는 천연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볼리비아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는 지역이어서 정국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남미 최빈국인 볼리비아의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모랄레스 정권에 대한 찬성과 반대진영의 세 과시 시위가 점점 더 폭력적인 양상을 띠면서 유혈충돌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러한 야권의 행위에 대해 모랄레스 대통령은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면 볼리비아 연방공화국 대통령인 나를 먼저 제거해 대통령궁에서 끌어내야 할 것”이라면서 “나는 야권 보수세력들의 음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특히 “우파와 야권, 미국 제국주의 및 스페인 우파정당을 추종하는 세력이 군부를 자극하며 정부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해 자신을 권력에서 몰아내기 위한 국제적인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피력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상 유래없는 폭우 만큼이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볼리비아 정국의 발단은 제헌의회 소집을 통한 새로운 헌법 제정 여부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05년 12월 대통령 선거 승리 후, 2006년에 취임한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 사항인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6년 8월에 전국 선거를 통해 개원을 한 제헌의회는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반발 속에 최근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던 가운데, 모랄레스가 속한 집권 사회주의운동당(MAS) 소속 의원들은 2007년 12월 24일 밤 남부 수크레 시(市)에서 휴회 중이던 제헌의회를 재소집해서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와 천연자원에 대한 국가소유를 강화하는 등의 혁명적 내용을 담은 신헌법을 전격 통과시켰다. MAS는 의사당도 아닌 수크레 지역 시내 한 군사학교에서 제적의원 255명 중 야당의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145명의 의원만으로 개헌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모랄레스식 혁명’에 시동을 걸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통령 선거 승리 후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혁명을 추진하는 방식은 1999년에 취임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추진하면서 사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사례를 볼리비아에서도 적용하려 하는 모랄레스 진영과 그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한판 대결 상황이 지금의 볼리비아 정국의 본질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볼리비아 모랄레스의 정권의 탄생 과정&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가 당선되면 미국에게는 악몽이 될 것이다.” 인구가 채 1000만도 안되는 남미의 소국 볼리비아가 2005년 12월 18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2의 우고 차베스라 불리는 사회주의 운동당(MAS) 총재 에보 모랄레스가 50%가 넘는 득표를 하며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에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 농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미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투쟁해온 사람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로 주석과 텅스텐, 동 등의 광물자원 수출을 국가의 주요한 산업으로 하던 볼리비아는 대부분의 제3세계가 그랬듯이 제국주의 기업들의 돈벌이 판이었다. 그러던 중 1952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파스 에스텐소로가 대통령이 된 이후 광산을 국유화하고 농지개혁등을 단행하는 개혁조치들이 취해졌다. 그러나 1964년에 보수 반동 쿠데타로 에스텐소로가 물러나게 되고 이후 볼리비아 정치는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하게 된다. 80년대 IMF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광산들이 폐쇄되고 95년에는 국가 기간산업인 전력사업도 미국회사에 팔아넘겼다.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의 압력으로 1987년에 코카재배억제법을 만들어 코카재배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정책을 펴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코카재배농민들과 수많은 충돌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죽기도 하였다. 2000년에 볼리비아 정부는 나라의 수자원(물)까지 미제국주의 자본(벡텔)에게 팔아먹는 파렴치한 행위를 벌이게 된다. 이로 인해 우물물이나 샘물에까지 세금을 걷고 야채값이 네배가 오르는 등의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분노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강력한 대정부투쟁을 벌이게 되고 정부가 수자원을 팔아먹는 행위를 막아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02년에 볼리비아 대통령이 된 산체스는 어릴적을 제외하고 주로 미국에서 생활을 한 이유로 스페인 어보다 영어를 잘하는 자본가였다.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그링고(미국놈)이라고 조롱받는 산체스 대통령은 역시 그링고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원하는대로 코카재배농지를 초토화시키는 정책을 지속하고, IMF의 긴축정책을 받아들였다. 특히 칠레의 항구를 통해 미국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한다는 계획은 민중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천연가스를 외국자본들에게 팔아먹는 것도 모자라 역사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는 칠레의 항구(볼리비아는 1879년 칠레와의 전쟁에서 해안지역을 모두 빼앗기고 내륙국가가 되었다.)를 통한다는 사실에 볼리비아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 천연가스산업의 대부분을 외국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법에 따르면 이익금의 18%만이 볼리비아에 돌아오는데 이것 마저도 소수의 자본가들을 살찌우는 데에만 쓰이기 때문에 민중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체스 정권은 계엄령을 내리고 군을 동원해서 시위대를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났다. 분노한 민중들은 인디오농민과 광산노조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노농연대를 구축해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며 수도로 진격하며 정권퇴진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결국 산체스 대통령은 노농연대의 강력한 대중투쟁 앞에 무릎을 꿇고 사임하게 된다. 이때가 2003년 10월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시 부통령이던 카를로스 메사는 볼리비아 법에 따라 잔여임기 동안에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빈민층 20만 가구에 무료로 가스를 제공하고 외국계 가스회사에 세금 부과를 늘리며 민영화된 가스산업을 재국유화하겠다고 한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은 자신의 이러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통령 승계 후 있었던 국민투표에는 재국유화에 대한 투표조항은 아예 넣지 않았고, 75%의 가스를 수출하며 외국 기업에 로열티와 세금을 많이 물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천연가스 산업의 재국유화와 천연가스의 국내소비를 원하는 민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민중운동 진영의 보이코트 속에 국민투표는 통과되었다. 볼리비아 GDP의 60%를 차지하는 천연가스 산업은 이렇듯 볼리비아 국민의 이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국가와 국내매판자본가들의 배만 불리는데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볼리비아를 인구의 80%가 극빈층인 생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국민투표 결과를 실제 추진하는 상황에서 메사 정권은 기존의 18% 로얄티를 단 1%로도 올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기만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것은 민중운동진영에서 요구한 50%와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민중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다. 2003년의 모습이 2005년에도 재현된 것이다. 결국 군부내의 소장파 장교들까지 대통령의 사임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2005년 6월 메사 대통령은 사임을 하게 된다. 노농연대의 강력한 대중투쟁이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꼭두각시 대통령 두 명을 연이어 끌어내린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신헌법 제정 여부에 혁명의 성패 달려&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볼리비아 민중의 대중투쟁 성과로 당선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볼리비아의 천연가스를 국유화시키는 조치들을 진행시키고 있으며, 토지개혁을 통해 가난한 농민과 인디오들에게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나눠주고 있다. 천연가스 국유화를 통해서 나오는 재원을 통해 다양한 사회사업과 복지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코카재배농민들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ALBA(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에 적극 참여하면서 반미반제국주의 동맹을 강화해 나가고 있으며,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어나가고 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볼리비아에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프로그램을 도와줄 수 있는 봉사단을 파견해서 볼리비아의 혁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미제국주의와 볼리비아의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미제국주의와 기득권 세력은 에보 모랄레스 정권의 사회주의 혁명을 좌절시키기 위해서 제헌의회 소집을 통한 신헌법 제정을 막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근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볼리비아 부통령이 제헌의회의 신헌법 제정 논란으로 야기된 현재의 볼리비아 정국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투표가 실시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천연가스 협상단을 이끌고 브라질을 방문한 리네라 부통령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헌법 논란으로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볼리비아 정국 혼란을 풀기 위해서는 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돼야 한다”면서 “볼리비아 정부는 야권의 공세를 국민의 주권적 판단으로 극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네라 부통령은 특히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9개 주 주지사 간에 진행돼온 대화 노력이 사실상 결렬됐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곧 의회에서 국민투표 일정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헌법을 승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파악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결국 볼리비아의 향후 정국은 신헌법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극적으로 희비가 갈릴 것으로 예측된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중진영이 신헌법을 통과시켜서 새로운 국가건설의 기초를 다질 것인지, 미제국주의와 볼리비아 기득권 세력이 신헌법 승인을 저지시킬지, 아니면 신헌법의 내용에 대한 새로운 논의와 타협이 이루어질지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eed9b&quot;&gt;*** 여기가 끝입니다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위의 글을 읽어보셨다면 볼리비아의 상황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lt;/P&gt;
&lt;P&gt;결국 산타크루즈 주에서 자치권을 확대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이것은 명백하게 모랄레스 정권에 대한 반기를 드는 행위입니다.&lt;/P&gt;
&lt;P&gt;차베스가 대통령 취임후 제헌의회를 소집해서 6개월만에 헌법을 제정한 것과는 달리 2006년에 취임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은 제헌의회를 소집했지만 아직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신헌법을 승인하는 국민투표가 진행될 예정인데, 이 국민투표 또한 볼리비아의 기득권 세력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이끄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볼리비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볼리비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제헌의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헌의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에보 모랄레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에보 모랄레스&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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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럽의 지긋지긋한 계륵...미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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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nternational2008.3800451</id>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5-01T16:55:03Z</updated>
	    <published>2008-05-01T16:55: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lt;STRONG&gt;1.&amp;nbsp;유럽, 뿌리깊은 미국에 대한 증오&lt;/STRONG&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00ff&gt;...브리티시 인베이전&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침공' 쯤 되는 이 단어는 영국 음악이 미국 본토에 착륙해&lt;/P&gt;
&lt;P&gt;미국 전역을 싹쓸이했던 현상을 일컫는다.&lt;/P&gt;
&lt;P&gt;첫번째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바로 70년대의 '비틀즈'다. &lt;/P&gt;
&lt;P&gt;두번째는 90년대 중후반 '라디오헤드'를 필두로 오아시스, 블러 등 '브릿팝 군단'이 미국에 상륙하면서 나왔다.&lt;/P&gt;
&lt;P&gt;그런데 이 단어가 요즘은 유럽, 영국을 조롱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lt;/P&gt;
&lt;P&gt;영국이 미국을 '브리티시 인베이전'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음악과 프리미어리그, 즉 축구 뿐이라는 조롱 말이다.&lt;/P&gt;
&lt;P&gt;그나마도 미국 사람들은 야구를 보지 축구는 별로 안 본다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00ff&gt;...미국 영어 vs 영국 영어&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런던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전한 영국의 문화는 두 가지였다.&lt;/P&gt;
&lt;P&gt;하나는 &quot;잘생긴 남자는 다 게이야&quot;라는 것.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 '러브 수프림'에도 같은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니&lt;/P&gt;
&lt;P&gt;이것은 진실에 가까운 듯하다.&lt;/P&gt;
&lt;P&gt;두번째는 친구가 커피숍에서 '애플주스'가 아니라 '압플 주스'를 주문하면서 했던 말&lt;/P&gt;
&lt;P&gt;&quot;영국에서 미국 영어발음 쓰면 진짜 싫어한다&quot;는 것이다.&lt;/P&gt;
&lt;P&gt;영국인들에게 미국 영어는 천박함의 상징이며 조롱의 대상이다. 반면 미국에서 영국발음은 존중 받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00ff&gt;...프랑스 영화 vs 할리우드 영화&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면서 자주 언급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lt;/P&gt;
&lt;P&gt;프랑스는 할리우드 영화의 물량공세에서 자국 영화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lt;/P&gt;
&lt;P&gt;유럽 나라들이 영어 상용화를 경계하고 자국 언어를 지켜가고 있는 것 또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lt;/P&gt;
&lt;P&gt;물론 우리 나라는 '몰입교육'을 주장하며 '오렌지 말고 어린쥐' 하자고 난리지만&amp;nbsp;말이다.&lt;/P&gt;
&lt;P&gt;유럽이 '문화침략'을 당하지 않으려는 피나는 노력은 우리에게 귀감이 되지만,&lt;/P&gt;
&lt;P&gt;이는 한편으로 유럽이 '미국 상업문화'를 무시, 천대하는 한편 '두려워'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00ff&gt;...유럽의 계륵, 미국이란 나라&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이야기들은 바로 한 권의 책을 소개하기 위한 두서 없는 단상이다.&lt;/P&gt;
&lt;P&gt;짜잔...지금 소개하려는 흥미 있는 책의 제목은 '미국이 미운 이유'다.&lt;/P&gt;
&lt;P&gt;(안드레이 S. 마코비츠 지음/ 김진웅 경북대 교수 번역/ 일리 출판)&lt;/P&gt;
&lt;P&gt;원래 제목은 'Uncouth Nation: Why Europe Dislikes America' 다.&lt;/P&gt;
&lt;P&gt;한국말로 번역하면 '불쾌한 나라: 왜 유럽은 미국을 싫어하나' 쯤 될 것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22/blog/2008/04/30/17/50/481832df511c2&amp;filename=8995684941_1.jpg')&quot;&gt;&lt;IMG style=&quot;WIDTH: 139px; HEIGHT: 190px&quot; height=292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22/blog/2008/04/30/17/50/481832df511c2&amp;filename=8995684941_1.jpg&quot; width=273 border=0&gt;&lt;/A&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이자 유럽에 대한 이야기이다. &lt;/P&gt;
&lt;P&gt;유럽은 한 때 무수한 식민지를 거느리며 세계를 쥐락펴락 하던 막강한 대륙이었지만,&lt;/P&gt;
&lt;P&gt;어느 순간부터 '분열'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lt;/P&gt;
&lt;P&gt;'대영제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부시의 푸들'이라 조롱받는 것은&lt;/P&gt;
&lt;P&gt;유럽과 미국의 '역전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lt;/P&gt;
&lt;P&gt;유럽인들의, 정확히 말하면 유럽 지식인들의 자존심은 구겨질 만큼 구겨졌다.&lt;/P&gt;
&lt;P&gt;구겨진 자존심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바로 '반미주의'&lt;/P&gt;
&lt;P&gt;유럽이 무능력하고 미국은 너무 강하다는 인식, 즉 강자에 대한 저항감과 열등의식에 더불어&lt;/P&gt;
&lt;P&gt;유럽의 문화, 철학, 역사는 깊고 '우아'하지만 미국의 그것은 얇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식의 '조롱 섞인 감정'이 &lt;/P&gt;
&lt;P&gt;뒤죽박죽되어...반미주의는 유럽 지식인 전체의 자기 이념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07f00&gt;“유럽인들의 반미주의는 그들이 견뎌내야 하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 미국의 희생자라는 느낌,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307f00&gt;미국의 보호를 받는 영원한 소인이란 의식, 항상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업신여긴 나라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307f00&gt;자책감에서 비롯되고 있다.”(책 중에서)&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은 유럽이 미국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quot;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그때&quot;부터라고 말한다.&lt;/P&gt;
&lt;P&gt;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지긋지긋한 반미'는 중동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어느 나라도 아니고&lt;/P&gt;
&lt;P&gt;바로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lt;/P&gt;
&lt;P&gt;즉 신대륙 발견 당시 유럽은 &quot;단순하고 직감적인 두려움과 반감&quot;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을 번역한 김진웅 경북대 교수는 &quot;유럽이 고대 그리스라면 미국은 로마제국이다. &lt;/P&gt;
&lt;P&gt;그리스는 철학, 문학, 연극, 정치 등 찬란한 문명을 이루고도 분열로 인해 로마에 정복됐다&quot;고 말한다. &lt;/P&gt;
&lt;P&gt;그렇다, 분열. 유럽은 분열되어 있다. '유럽통합'은 유럽 패권자들의 공통된 꿈, 꿈, 꿈이지만&lt;/P&gt;
&lt;P&gt;정작 언어도 문화도 역사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유럽에서 통합의 길은 멀기만 하다.&lt;/P&gt;
&lt;P&gt;이 책은 유럽 패권주의자들이 '미국을 이길 만큼 강해지기 위해' 유럽 통합을 강하게 열망하고&lt;/P&gt;
&lt;P&gt;또 유럽 통합의 '촉진제'로 '반미주의'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에서 흥미 있는 대목은 두 가지다.&lt;/P&gt;
&lt;P&gt;하나는 유럽의 '지식인'과 '일반인'의 미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 주의에 대한 것.&lt;/P&gt;
&lt;P&gt;'반미주의'가 유럽 엘리트의 전유물이라면 유럽 일반인의 정서는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친밀감, 동경이라고 말한다.&lt;/P&gt;
&lt;P&gt;하지만 지식인과 일반인 사이의 괴리감을 하나의 끈끈한 끈으로 묶어준 사람은 바로&lt;/P&gt;
&lt;P&gt;'카우보이'... 무식하기 그지없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lt;/P&gt;
&lt;P&gt;(빌 클린턴 대통령은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시 대통령만큼 무시받진 않았다.)&lt;/P&gt;
&lt;P&gt;이라크 침공으로 대변되는 부시 대통령의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태도는 '반미'를 보편화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lt;/P&gt;
&lt;P&gt;(물론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라크 침공의 한 축이었던 영국을 비롯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에서 &lt;/P&gt;
&lt;P&gt;부시 행정부에 대단히 협조적이었다. 정말 습스르..뗍떼레..하게 분통 터지는 일이었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에서 또 하나 흥미 있는 대목은 어떠한 사안에서도 합일되기 어려운 '우파'와 '좌파'가&lt;/P&gt;
&lt;P&gt;반미에 있어서만은 똘똘 뭉치고 있다는 지적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유럽의 지식인들은 미국에 대한 반감을 미국 문화, 미국식 자본주의,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lt;/P&gt;
&lt;P&gt;조롱, 무시, 경멸, 혐오을 통해 풀어낸다.&lt;/P&gt;
&lt;P&gt;천박하기 그지 없는 미국의 상업문화, 유럽에 비해 열악한 사회보장 제도, 극심한 빈부격차&lt;/P&gt;
&lt;P&gt;감히 세계경찰 노릇을 하며 세계 곳곳을 군대를 동원해 들쑤시고 있는 호전성.&lt;/P&gt;
&lt;P&gt;유럽 지식인들이 고작 좋아하는 미국인이란&amp;nbsp;&amp;nbsp;우디 앨런이나 ‘화씨 9/11’ 감독 마이클 무어와 같이 &lt;/P&gt;
&lt;P&gt;‘미국스럽지 않은’ 미국인들이 거의 유일하다.&amp;nbsp;&lt;/P&gt;
&lt;P&gt;이 책에서 '리얼리티쇼'의 원조인 유럽이 미국에서 '리얼리티쇼'가 유행하자 이를 천박한 문화로&lt;/P&gt;
&lt;P&gt;비난하고 있다는 대목은 '실소'를 머금게 한다. 즉 '무조건, 무조건이야~짜짜라~' 식의 반미, 반미, 반미다.&lt;/P&gt;
&lt;P&gt;열등감과 우월감, 두려움과 경멸이 뒤범벅된 감정이 바로 유럽식 반미주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끝으로....&lt;/P&gt;
&lt;P&gt;이 책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논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lt;/P&gt;
&lt;P&gt;유럽 반미주의의 '쌍둥이'는 바로 '반유대주의'라는 저자의 주장이다.&lt;BR&gt;특히 보편적인 인권을 중시하는 좌파 지식인들이 우파의 전유물인 반유대주의를 갖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lt;/P&gt;
&lt;P&gt;이는 유대인이 그들이 미워하는 미국의 배후라고 '믿어버리는 것'으로써 표현된다.&lt;/P&gt;
&lt;P&gt;유대인은 막강한 재력과 조직력으로 미 군수산업을 장악해 미국의 호전성을 조종하고&lt;/P&gt;
&lt;P&gt;각종 로비로 미국 정책을 조물락거리며 전세계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lt;/P&gt;
&lt;P&gt;미국이&amp;nbsp;중동에서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 국가'의 꿈의&amp;nbsp;배후에 누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lt;/P&gt;
&lt;P&gt;즉 시온주의에 대한 반대,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의 뿌리에 '반유대주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은 “유럽 대륙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역사의 수치심과 &lt;/P&gt;
&lt;P&gt;이로 인해 50년 간 침묵해야 했던 반유대주의가 19세기 말 ‘새로운 반유대주의’ ‘정치적 반유대주의’의 등장하면서 &lt;/P&gt;
&lt;P&gt;“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모습으로 유럽의 반미주의를 동반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lt;/P&gt;
&lt;P&gt;이는 “미국과 유대인들이 가진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비판” 때문이었으며, &lt;/P&gt;
&lt;P&gt;“기성의 전통과 가치들에 적대적인 현대성이 불러일으킨 불안감”이었다. &lt;BR&gt;이어서 “오늘날 담론에서 반유대주의와 반시온주의는 상당히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lt;/P&gt;
&lt;P&gt;아예 반유대주의 그 자체이거나 반유대주의의 표현 수단 내지 &lt;/P&gt;
&lt;P&gt;그러한 반유대주의적 표현들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반시온주의가 있다”고 &lt;/P&gt;
&lt;P&gt;반미주의-반유대주의-반시온주의의 관계를 분석하기도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07f00&gt;“독일인들은 거꾸로 유대인의 지배를 받는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을 대량 학살했다고 역습함으로써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307f00&gt;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 우선 그들은 미국인들을 나치와 같은 반열에 놓음으로써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307f00&gt;미국인들이 독일인들을 비판할 도덕적 권리는 빼앗는다.”&lt;BR&gt;&lt;/FONT&gt;&lt;FONT color=#307f00&gt;&quot;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인들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비판하는 것은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307f00&gt;특히 홀로코스트로 인한 죄의식에서 해방을 의미하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책 중에서)&lt;BR&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을 통해&amp;nbsp;'과거 패권에 대한 향수'와 '자신보다 강해진 후계자 미국에 대한 증오'가 뒤섞인&lt;/P&gt;
&lt;P&gt;유럽의 '반미주의'를 읽어보는 것은 꽤나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amp;nbsp;강력! 추천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FONT color=#ff3300 size=2&gt;...덧붙임:&amp;nbsp;에필로그...혹은 변명&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상을 대충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은 꽤나 간편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꽤나 위험한 짓이다.&lt;/P&gt;
&lt;P&gt;마찬가지로 세상은 친미 혹은 반미로 간편하게 구분되기도 한다. &lt;/P&gt;
&lt;P&gt;미국이 무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까닭은 뭐냐. &lt;/P&gt;
&lt;P&gt;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지역, 국가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을 정도로&lt;/P&gt;
&lt;P&gt;미국의 '오지랖'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최근 나온 국제뉴스 중 눈을 감고 하나를 콱 찍어 찬찬히 뜯어보자. 잘 보면 미국의 그림자가 보일 것이다. &lt;/P&gt;
&lt;P&gt;우리와 직결된 북한 핵문제는 물론이고, 올림픽 성화봉송으로 떠들썩한 티베트 문제.&lt;/P&gt;
&lt;P&gt;고질적인 중동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문제, 이란핵 문제, 팔레스타인-이스라엘-시리아 문제.&lt;/P&gt;
&lt;P&gt;'차베스'라는 '반미 영웅'과 콜롬비아 '친미' 우리베 대통령을 떠올리게 되는 미국의 뒷마당, 남미.&lt;/P&gt;
&lt;P&gt;여기에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어디 하나 미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곳은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얼마 전 어떤 책의 소개에서 &quot;미국을 미워하는 일은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어버렸다&quot;는 구절을 읽고&lt;/P&gt;
&lt;P&gt;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미국의 영향을 깊이 받으면서도 미국을 미워하는 일로 세계는 '위 아 더 월드' 하고 있다.&lt;/P&gt;
&lt;P&gt;더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인들 스스로의 인식이다.&lt;/P&gt;
&lt;P&gt;얼마 전 &lt;뉴욕타임스&gt;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80% 이상이 &quot;미국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quot;고 인식했다.&lt;/P&gt;
&lt;P&gt;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 같은 영화를 봐도 미국의 열악한 의료보험 환경은 물론 빈부격차를 잘 읽을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각설하고.&lt;/P&gt;
&lt;P&gt;'에필로그...혹은 변명'으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까닭을 잠시 적고 싶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선, 나는 미국 전문가가 아니다. &lt;/P&gt;
&lt;P&gt;유튜브를&amp;nbsp;클릭하며 오바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실시간 공유하는 블로거들에 비해 나는&amp;nbsp;발가락 때만도 못한 정보를 갖고 있다. &lt;BR&gt;물론 하루 종일 온갖 나라의, 온갖 외신을 눈이 튀어나오도록 읽어야 하는 직업 탓에 축적된 정보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둘째,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경직됐을 수 있다. &lt;/P&gt;
&lt;P&gt;나는 오랫동안 미국을 '증오'해왔다. 학창시절 미대사관 앞에서 짱돌?도 던졌고 각종 다양한 장소에서 '반미' 데모에 참여했다.&lt;/P&gt;
&lt;P&gt;이런 특수한 경험 때문에 나는 쉽게 친미와 반미를 가르는 버릇에서 자유롭지 못하다.&lt;/P&gt;
&lt;P&gt;따라서 역사적 특수성을 가진 어떤 '주체'에 대해서도 쉽게 '미국과 관계되어 있으니 나쁜 놈일 것'이라고 예단해 버릴 수 있다.&lt;/P&gt;
&lt;P&gt;티베트 사태를 보며 느끼는 바는 이러한 '편협함'이 인간, 혹은 주체를 '선악'으로 구분하고 심지어'미국의 종속물' 게다가 '대상'이자 '객체'로 쉽사리 전락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940000&gt;주절주절 변명을 베이스에 깔아둬야 앞으로 마음 편히 미국을 씹고 비틀고 린치하고 뻘타도 날리지 않겠나.&lt;/FONT&gt;&amp;nbsp;&lt;/P&gt;
&lt;P&gt;&lt;BR&gt;어쨌든&amp;nbsp;'미국발 외신'으로 점철된 국제뉴스 속의 숨은 1센치를 찾아내는 노력이 &lt;/P&gt;
&lt;P&gt;'일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진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미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유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반유대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반유대주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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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 돈으로 보는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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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nternational2008.3753484</id>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4-29T14:37:05Z</updated>
	    <published>2008-04-29T14:37: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과거 일본의 제국주의&amp;nbsp; 팽창주의 역사, 화폐에서도&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일본의 화폐단위가 현행 체제로 된 것은 1958년에 만엔권이 등장한 이래로, 1984년에 전면 갱신되었고 2004년 11월로 3번째 신지폐가 제조되었다. 그렇게 보면 일본화폐 갱신주기가 20년 전후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일본의 신지폐 예산은 3000억엔으로 추산된다. 화폐인물은 대체로 많은 나라에서 화폐의 초상화로 정치인을 등장시킨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 쇼토쿠타이시(聖德太子)이다. 1930년 100엔권에 사용되면서 1958년에 1만엔권에 이르기까지 계속 등장하여 1984년까지 54년간 사용되었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amp;nbsp;&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lt;/FONT&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일본 고대헌법의 창시자 쇼토쿠타이시는 고구려 고승 혜자(惠慈)의 가르침을 받은 자로 우리 역사에서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1984년엔 만엔권이 쇼토쿠타이시에서 근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로 바뀌면서 1963년부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초상화가 실렸던 1000엔권이 근대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礎石)로 바뀌었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amp;nbsp;&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lt;/FONT&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이때에 화폐인물이 정치인에서 문화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행 만엔권의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 교육자로 불린다. 그는 탈아론(脫亞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일본이 문명개화를 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겐 중요한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국권론자로 기울면서 정한론(征韓論)에 불을 붙이고 청일전쟁을 강력하게 주창한 주전론(主戰論)자이다. 물론 그 시대 일본의 지도자들로서 정한론을 반대한 인물은 거의 없다. 다만 시기적인 대립이 있었을 뿐이었다.&lt;/FONT&g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30/blog/2008/04/29/14/27/4816b1bb4d781&amp;filename=59065-1Untitled-2.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30/blog/2008/04/29/14/27/4816b1bb4d781&amp;filename=59065-1Untitled-2.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9/blog/2008/04/29/14/27/4816b1bfb2526&amp;filename=59065Untitled-1.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0021b0&gt;여기서 문제는 왜 일본이 정치인에서 문화인으로 화폐 속 인물을 바꾸었느냐는 점인데, 이 역시 제국주의, 팽창주의 속에서 나온 의도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호남대 일본학과 박순애 교수는 “일본에서 추앙 또는 대접받고 있는 인물은 아시아 침략 역사 기록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면서 “그러나 정치인을 빼고 문화인으로 바꿨던 것은 일본이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lt;/FONT&g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화폐 속 인물 살펴보기&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585a&gt;본론으로 들어가서 즉 1868년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화폐의 인물로, 일본 내에서 영웅으로 섬겨지고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 단초가 된, '국가'와 '국민'이 구체화, 체계화 된 시대가 메이지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황에 충성을 다하는 일군만민 사상인 '국체론'(군국주의의 기반)의 주도도 이들 화폐 속 인물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화폐에서 나타난 메이지유신의 주역 인물은, 정치인에는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 , 1825-1883）,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 , 1837-1919）,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1841-1909）가 있으며 교육자, 문화인 등으로 후쿠자와 유키치 (福&#27810;諭吉 , 1835-1901）, 니토베 이나조우(新渡&#25144;&#31282;造 , 1862-1933）, 나쯔메 소세키(夏目漱石 , 1867-1916）, 히구치 이치요(&#27147;口一葉 , 1872-1896）,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1876-1928）가 있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585a&gt;&lt;/FONT&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585a&gt;메이지 지도자들이 행했던 실험은 천황제. 천황제는 이론상 봉건 가신이나 세습 귀족이 아니라 임용 관리인 관료가 천황의 명의로 천황의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는 면이 있었다. 또 메이지 지도자들은 서양식 정부 기구가 늘어나면서 정부 기구를 통해 행동하는 양상을 보였다.&lt;/FONT&g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인물 살펴보기&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lt;U&gt;△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lt;/U&gt;&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lt;U&gt;&lt;/U&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1868년에 메이지정부 성립 초기에 이와쿠라 도모미를 중심으로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利通),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등이 이끄는 사쓰마(薩摩)·조슈(長州) 출신 정치가들에 의해 독선적인 정치가 이루어짐.&lt;/P&gt;
&lt;P class=바탕글&gt;-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 에도만에 출현해 개항을 압박하고 있던 1853년 7월, 당시의 일본은 쇼군(將軍)이 천황을 제치고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에도막부(江戶幕府), 갑작스런 사태를 당한 에도막부는 오랜 전통을 깨고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천황가(家)의 조정에 의견을 구했다. 막부정권으로서는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린 자충수였고, 천황가 조정으로서는 권위를 되살릴 절호의 기회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듬해 3월 막부는 미국과 굴욕적인 ‘미·일 화친조약’을 맺었다. 조약에 따라 2개 항구를 열었고,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약속했다. 이로써 250여년간 이어온 에도막부의 쇄국정책도 끝내 수포로 돌아갔고 막부의 위신도 곤두박질 쳤다. 1856년 미국이 한발 더 나아가 ‘미·일 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하자 막부정권은 또 다시 고메이(孝明) 천황의 허락을 구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양이(攘夷)’를 내세운 천황가 조정이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자 막부정권으로부터 정무 일체를 위임받은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는 1858년 6월 19일 독자적으로 ‘미·일 수호통상조약’에 조인했다. ‘조약 체결이 부당하다’는 반발이 들불처럼 일어났으나 이이는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 결과적으로 막부의 몰락을 재촉했다. 막부의 무능과 약화를 틈타 고메이 천황이 조약체결에 불만을 표시하는 칙령을 내리고, 막부 영향 아래 있던 지방의 각 번(藩)마저 천황의 복권을 주장하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바야흐로 막부정권은 사면초가에 빠져들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1853년 고메이왕[孝明王]의 시종이 되어 1958년 홋타 마사요시[掘田正睦]가 미일(美日)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추진할 때 그에 반대, 양이(攘夷)를 위한 병력증강을 주장.(이른바 '정신(신하)88경렬참사건'). &lt;/P&gt;
&lt;P class=바탕글&gt;-1860년 3월 이이 나오스케가 에도성의 사쿠라다문(門) 근처에서 미도번의 무사들에게 피살되자 기세가 오른 천황 세력은 ‘에도막부 타도’를 외치며 막부를 압박. 그 세력 중 중심 인물. 즉 새로운 계보의 쇼군이 존재해서는 안되고 부당하게 도쿠가와의 영향력 아래 있던 조정 관직을 없애고 봉건 시대 이전에 시작된 고대의 조정 관직 몇 가지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 존왕정치에 탁월함.&lt;/P&gt;
&lt;P class=바탕글&gt;- &lt;FONT color=#156200&gt;메이지유신 정부 성립과 동시에 중용되어 다이나곤[大納言]·미기다이진[右大臣] 벼슬까지. 특명전권대사로서 구미(歐美) 시찰 뒤에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涌] 등과 협력, 사이고 다카모리[西鄕隆盛] 등 정한론파(征韓論派)를 배제시키고 내치(內治) 우선 정책을 수행, 천황제(天皇制)를 확립시킴.&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 고메이 천황을 독살한 주모자로 낙인됨. (고메이 천황을 암살해 어려서 조종하기 쉬운 메이지 천황을 빨리 즉위시키려 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lt;U&gt;△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lt;/U&gt;&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56200&gt;1873년 하급무사들이 행한 정치활동 역시 조선에 대한 위기 조성하는 것. 고토 쇼지로와 당시 태정관 멤버. 조선은 의기소침해져 있는 많은 무사들이 기운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믿고 군사원정계획(정한론)을 꾀함 조선시대 때 김옥균에게 명성황후 정권을 뒤엎을 쿠테타에 필요한 자금을 주겠다고 약속. 국내엔 '정한론'을 주장한 일본 정치인으로 사이고 다카모리가 유명하나, 실제로 한국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서구에 맞서 싸우자는 강경책을 내세운 것이 이타가키 다이스케임. 征韓論은 불평 사무라이 및 농민 봉기의 빈발에 따른 내란의 위기를 회피하려는 대외 강경책이며, 동시에 韓半島를 집어먹음으로써 일본의 국권을 신장시키겠다는 야심의 정책.&lt;/FONT&gt; &lt;/P&gt;
&lt;P class=바탕글&gt;-1873년의 정한론은 메이지 정권 수립에 공로가 많았던 무사들의 불만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며, 막부 말기에 양산된 무사층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생겨난 것. 이는 훗날 사이고를 중심으로 한 가고시마[鹿兒島]의 사족(士族)들이 일으킨 반란, 세이난 전쟁[西南戰爭]을 통하여 해소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정한론 패배하자 정치적 압력 통해 목적 추구. 사쓰마와 조슈 출신들이 신설되는 고위직들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사적 도전이기도. 일본 내부의 정쟁(政爭).&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9/blog/2008/04/29/14/27/4816b1bfb2526&amp;filename=59065Untitled-1.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9/blog/2008/04/29/14/27/4816b1bfb2526&amp;filename=59065Untitled-1.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class=바탕글&gt;사진설명 이토히로부미(좌), 이타가키 다이스케(우)&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lt;U&gt;&lt;/U&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lt;U&gt;△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lt;/U&gt;&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lt;U&gt;&lt;/U&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서양에 대해 보통 이상의 지식을 가진 근대화 추진자. 이와쿠라의 도움을 받아 1880년 이후 오쿠보를 이어 정부의 지도적 인물로 활동. 야마구치현[山口縣] 출생.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하급무사의 집안인 이토가[伊藤家]에 양자로 들어갔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존왕양이(尊王攘夷)운동에 참가. 요시다 쇼인 이 세운 슈카 숀주쿠 (松下村塾)에 입학한 것이 계기.&lt;/P&gt;
&lt;P class=바탕글&gt;-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메이지 시대의 주역들과 교우관계를 맺던 그는 22세 되던 해 영국 공관을 습격해 불을 지르기도 하는 등 양이파(서양 반대파)에 서기도 했지만 그 직후 서양문물을 흡수하기 위해 막부 몰래 영국으로 떠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56200&gt;영국에서 신문물을 보고 놀란 이토는 이때부터 개화파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1868년 메이지유신에 소장 개혁세력으로 참여한 뒤 이토는 외국 사무를 담당하는 관직을 처음으로 맡게 되었다. 이때 이후 죽기 전까지 이토 히로부미는 40여년간 장관·총리·전권대사·정당 총재·추밀원 의장 등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일본 역사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미국·영국·러시아·청나라와의 협상에 전권대사로 참여해 외교의 틀을 짜고, 일본헌법의 기초를 마련하는 등 일본 현대사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그는 메이지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lt;/FONT&gt; &lt;/P&gt;
&lt;P class=바탕글&gt;-러일전쟁 후인 1906년 조선에 통감부(統監部)가 설치되자 초대 통감으로 부임, 한국 병탄(倂呑)의 기초공작을 수행하였다. 1909년 통감을 사임하고 추밀원 의장이 되어 만주시찰을 겸하여 러시아 재무대신과 회담차 중국 하얼빈에 도착하였는데, 안중근에게 총탄을 맞고 죽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모두 그들은 천황숭배론자&lt;/STRONG&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lt;FONT color=#000000&gt;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 내에선 과거 침략 전쟁에 주역이던 군인들, 정치인들을 '영웅'으로 숭배한다&lt;/FONT&gt;.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일본 내에서 평가받는 도고 헤이하치로 (東&#37111;平八&#37070;), 노기마레스케(乃木希介)가 그렇고, 정치인 가운데서는 사이고 다카모리(西&#37111;隆盛), 막부 인물인 카츠카이슈(勝海舟), 메이지 초기의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사마모토 료마(坂本&#31452;馬) 등이 '영웅'으로 숭배를 받고 있다. 모두 천황숭배론자들이다. &lt;/FONT&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lt;/FONT&gt;&amp;nbsp;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중요한 건 일본에서는&amp;nbsp;특정 인물을 화폐의 인물로 선정할 때, 대중적 인기가 높거나 잘 알려진 인물, 또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로 선정하는 것이 조건이 되고 있는데,&amp;nbsp;예전 일본 화폐에 정치인들이 모델로 등장했었으나 2004년 유럽 쪽에서 문화인들의 초상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흐름을 타 일본도 문화인으로 바뀌게 됐다는 점이다. 즉 일본측이 화폐를 정치인에서 문화인으로 바꾼, 공식적인 이유로, 일본이 아닌 외국 등지에서 문화인의 초상이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으로 밝히고 있다. &lt;/FONT&gt;&lt;/P&gt;&lt;FONT color=#767173&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6/blog/2008/04/29/14/40/4816b4cd26a7d&amp;filename=59154Untitled-1.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6/blog/2008/04/29/14/40/4816b4cd26a7d&amp;filename=59154Untitled-1.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그러나&amp;nbsp;이는 정치인의 초상화로 인해 이웃 국가들과의 문제를 줄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amp;nbsp;특히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있는 이토 히로부미나 이타가키 다이스케도 마찬가지이나, 그 외 여러 정치인들도 중국, 러시아, 미국 등과의 관계에서 불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립'인 문화인을 채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lt;/FONT&gt;&lt;/STRONG&gt; &lt;BR&gt;&lt;/P&gt;&lt;/FONT&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767173&gt;사실 일본 국민 대다수는&amp;nbsp;화폐 속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젊은층에는 화폐에 그려져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 일본에 있는&amp;nbsp;지인은&amp;nbsp;&quot;(인물들의) 이름 정도야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또 관심도 없다&quot;면서 &quot;나 역시도 화폐에 그려진 인물, 또는 의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지만 &lt;FONT color=#000000&gt;단지 그때그때 국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로, 화폐에 그려지는 인물들이 결정하는 테마를 생각하면 정부나 정치인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정책을 진행시켰는지 알 수 있다&lt;/FONT&gt;&quot;고 설명한다.&lt;/FONT&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일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화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화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제국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국주의&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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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국, 중남미 담당 제4함대 부활시키다. 차베스 때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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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4-28T17:53:24Z</updated>
	    <published>2008-04-28T17:53: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22/blog/2008/04/28/17/32/48158b9d76bbe&amp;filename=fleet-map-1.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22/blog/2008/04/28/17/32/48158b9d76bbe&amp;filename=fleet-map-1.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영어로 '우고(차베스)가 여기에 산다'(Hugo Lives Here)라고 되어 있네요... &lt;/P&gt;
&lt;P align=left&gt;그림의 출처는 &lt;A href=&quot;http://aquilinefocus.blogspot.com/2007_10_01_archive.html&quot; target=_blank&gt;http://aquilinefocus.blogspot.com/2007_10_01_archive.html&lt;/A&gt;&amp;nbsp; 입니다. 구글에서 찾았지요.&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제목에서 보시다시피 미국이 1950년대에 해체했던 제4함대를 다시 부활시킨답니다. 4월 24일에 미국 해군이 발표했고요. 제4함대의 사령관으로는 조지프 커난 중장이 임명될 예정이라는데요. 오는 7월 1일에 정식으로 창설한답니다.&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그동안, 이라크에 발목 잡혀서 중남미에 제대로 신경 못쓰는 동안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시작으로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좌파 정권이 도미노처럼 들어서니까 드디어 미국이 정신이 확 드는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미국의 뒷마당(Backyard)였던 남미가 이제는 미국의 묘지(Graveyard)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베네수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우리베 정권은 남미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이고 대규모의 미군이 콜롬비아에 마약퇴치라는 허울좋은 구실로 들어와 있습니다.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입장에서는 콜롬비아의 미군이 매우 껄끄러운 존재이지요. 게다가 미국은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베네수엘라에는 더이상 무기를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전에는 베네수엘라가 자국의 F-16 전투기를 수선하기 위한 부품구입을 미국이 거부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수호이기를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산 소총공장을 짓고 핵개발까지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궁극적인 국가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미제국주의의 무력침공에 맞서기 위해서 차베스는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지요.&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브라질이 '남미안보협의회'라는 군사적 협력체를 만들기 위해 발바닥 땀나게 뛰고 있습니다. 이 구상이 차베스의 '반제국주의 군대'라는 구상과 맞물리면서 탄력을 받고 있죠. 차베스는 미제국주의의 무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중남미 국가들이 단결해서 '반제국주의 군대'를 창설해야 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라질이 고민하고 있는 '남미안보협의회'는 브라질이 남미 국가의 대장으로서 군사적인 부분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용틀임인데, 차베스는 이러한 브라질을 뒤에서 부추겨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구상을 이루려 하고 있지요. &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바로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이번에 미국이 '제4함대'를 부활시킨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차베스와 맞불을 놓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지요. 얼마전에 있었던 FARC 문제(&lt;A href=&quot;http://blog.daum.net/international2008/3607007&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blog.daum.net/international2008/3607007&lt;/A&gt;&amp;nbsp;참고)도 사실은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세계 최강의 미국이 해체했던 함대를 부활시켜야 할 만큼 남미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혁명가 차베스가 있고요.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베네수엘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베네수엘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우고 차베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고 차베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제4함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4함대&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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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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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4-25T18:40:39Z</updated>
	    <published>2008-04-25T18:40: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left&gt;24일&amp;nbsp;인터넷 검색을 하다가&amp;nbsp;상당히 당황스러운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김대중, &quot;MB대북정책과 햇볕정책은 일맥상통&quo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잘못 봤나 싶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역시 그 제목 그대로였습니다. 이 무슨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말입니까. 자칭타칭 햇볕정책 전도사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바로 전날 흥사단 통일포럼에 나와&amp;nbsp;&quot;보수세력이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았다&quot;, &quot;이명박 정부가 결국엔 햇볕정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quot;라며 피를 토하듯 열변을 터트렸었는데..순간 정세현 전 장관이 이 기사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집니다. 보수성향이 짙은 인터넷 매체 '데일리nk'도 저와 같은 심정이었나 봅니다. &lt;STRONG&gt;&quot;DJ눈엔 다 '햇볕'?&quot;&lt;/STRONG&gt;이라고 제목을 달아놨네요.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째든 기사를&amp;nbsp;보기 직전까지 '요즘 건강이 많이 안좋으시다는데 미국 여행이 피곤하셔서 말이 헛나오셨나' 생각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국 워싱턴주에 도착해 10박 11일간의 일정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사는 미국 보스턴을 방문하고 있는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지시간으로 23일 터프츠대 찰스센터에서 가진 강연과 토론회 자리에서 &quot;이명박 대통령이 햇볕정책이란 말만 쓰지 않았지, 사실 햇볕정책과 거의 상통하는 말을 개진하고 있다&quot;고 말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lt;/P&gt;
&lt;P&gt;김 전 대통령은 &quot;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햇볕정책에 공감하는 의견을 많이 밝혔으며,또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비료와 식량지원을 언급하고 있다&quot;면서&amp;nbsp;&quot;햇볕정책은 모든 것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가고 서로 공동 승리하는,윈-윈의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quot;이라고 말하셨답니다. 따라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자신의 의견이 모두 마찬가지이며 표현만 다르지 실제로는 같은 길을 가기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기사를 읽고 김 전 대통령의 방미 행보에 대한 기사를 쭉 찾아봤습니다. 많진&amp;nbsp;않았지만 몇&amp;nbsp;개의 기사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amp;nbsp;'햇볕정책' 전도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amp;nbsp;15일 시애틀에 도착한 후 각종 강연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햇볕정책'의 정신을 고수할 것을 촉구하는 김 전 대통령의 말 하나하나에서 '대북 포용정책'이란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무진&amp;nbsp;애를 쓰고 계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lt;/P&gt;
&lt;P&gt;다른 기자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니 혀를 끌끌 차면서 &quot;오죽했으면 그랬겠냐&quot;라고 말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과 함께 대북관계가 새롭게 조율(통미봉남의 상황으로)되고 있는 상황에서&amp;nbsp;그 자신이 나설 수 밖에 없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2/blog/2008/04/25/18/39/4811a6cfb8a4c&amp;filename=206052376199.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2/blog/2008/04/25/18/39/4811a6cfb8a4c&amp;filename=206052376199.jpg&quot; border=0&gt;&lt;/A&gt;@민중의소리 자료사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국민의 정부 시절, 최고의 대북전문가는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자신의 오랜 사색을 거쳐 통일정책을 구상했고, 이를 국내의 전문가그룹과 해외의 인사들에게 전파해왔습니다. 그런 인물이 특히 통일분야에선 그야말로 '듣보잡'인 이명박 정부내각의 가벼운 처신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속이 답답했겠습니까. 지난 해 4.4분기까지만 해도 남북관계는 '훈풍'이다 못해 '과열증세'까지 보였습니다. 2007남북정상회담 이후 총리회담 등을 거치며 백여 개가 넘는 남북간 합의들이 쏟아져나왔으니 말 다했죠. 그러나&amp;nbsp;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amp;nbsp;출범하기도 전에&amp;nbsp;남북 통일의 상징인 통일부가 먹다 버린 바나나 껍질 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더니 곧이어 '한국의 네오콘'이라고 불리던 남주홍 교수 같은 인물이 통일부 수장으로 거론되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통일부는 건사(죽다 살아났죠)했고, 남주홍 장관 내정자가 볼썽사납게 낙마한 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안보실장과 주중대사 등 고위직을 맡았던 김하중 장관이 통일부 수장직을 맡게 됐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공무원들은 역시 영혼이 없는 걸까요? 그나마 믿었던 김하중 장관이 과거 대북화해협력 정책을 '뼈져리게 반성'하는 발언으로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더니 곧 북핵문제 해결없이 개성공단 확대없다는 발언으로 완전히 찍혀버렸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곧 김태영 합창의장은 '선제공격'운운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진심으로 열받아 한 건&amp;nbsp;노무현 정권 때 합의했던 내용을 전면 재검토해 '우선 할 것' '나중에 할 것' '못할 것'으로 구분하겠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한마디로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겠다(너무 센가요?)는 입장을 밝힌 거죠.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야 외교에 있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일이 많지만 북한의 경우 물론, 최종 결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지만, 보통 노동당 비서 등이 나서서 외교업무를 맡아합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서 남측의 지도자와 합의발표한 10.4선언을 감히, 남측의 새 지도자가 '우선 할 것', '나중에 할 것', '못할 것'으로 나눠다니, 북한으로선 납득할 수 없는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도 북한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해괴한'정책임은 마찬가지 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명박 정부 출범까지 수개월간 잠잠히&amp;nbsp;탐색전을 벌이던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비핵개방 3000, 그리고 정부고위관료들의 '실언'을 종합, 면밀히 살핀 결과, 결국 '상종못할 집단'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명박 역도', '이명박 역도 패당'입니다. 살벌하기 그지없지만 북한의 정서가 그렇습니다. 그 이후 북한의 후속조치는 다들 알고 계실거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러하니...남북관계가 수개월 사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구를 이끌고서라도 움직일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고 &quot;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햇볕정책과 일맥상통하다&quot;라는 참 보기도 듣기도 낯뜨거운 '립서비스'를 통한 정치를 하고 계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정말 건강이 안좋으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김 전 대통령이 가만히 동교동 자택에서 말년을 보낼 수 있게 할 순 없는 건지.....아...아무리 생각해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나 봅니다.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이명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명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햇볕정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햇볕정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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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야스쿠니 신사 문제, 영원히 지고 가야 할 숙제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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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4-22T16:26:22Z</updated>
	    <published>2008-04-22T16:26: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face=바탕 color=#8e8a8b&gt;2008년 3월,&amp;nbsp;일본의 주요 영화관에서 상영 중단의 조치를 받았던 영화가 있다.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야스쿠니'(靖國)다. 이유는 단 하나, '반일적'이라는 것 때문. 자민당 등 일부 극우세력들을 중심으로 '반일 영화'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의혹도 있었다. 일부 자민당 의원들이 시사회를 명목으로 사전검열을 했던가 하면, 시사회가 끝난 후 당초 이 영화를 상영키로 했던 일부 극장들이 지난달 말 돌연 상영 계획을 취소했다.&amp;nbsp; 논란끝에 결국은 도쿄와 오사카 등 전국 20여개 극장이 영화를 상영키로 결정했다. 영화 야스쿠니는 한국에서도 내달 말 늦어도 6월 초경에 개봉될 예정이다.&lt;/P&gt;&lt;/FONT&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2&gt;야스쿠니 영화 솎아보기&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FONT size=2&gt;'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는 또 하나의 일본 역사가 있다. 일본인에게는 복잡한 생각을&amp;nbsp;던져주고,&amp;nbsp;아시아에는 전쟁의 기억을 선물하는,&amp;nbsp;그러한 이중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2&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size=2&gt;영화 주요 내용의 골자는 매년 종전기념일, 8월 15일이 되면 기묘한 모습이 벌어지는 야스쿠니 신사를 보여주고 있다. 옛 일본군의 군복을 입고 &quot;천황폐하만세&quot;라고 용감하게 외치는 사람들과, 성조기(Star-Spangled Banner)를 거는 미국인, 그리고 신사 내에서&amp;nbsp;열리는 전몰자 추도 집회에 항의하는 젊은이와 동시에&amp;nbsp;일본정부에 '제 멋대로 합사시킨 영혼을 되돌려달라'라고 외치는 대만, 한국의&amp;nbsp;유족 모습이다.&amp;nbsp; 마치 광란의 양상을 보여주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amp;nbsp;10년에 걸쳐 기록한 영상 안에는&amp;nbsp;아시아에서 있었던&amp;nbsp;전쟁의 기억을 선명히 떠오르게 하고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2&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size=2&gt;영화엔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도 나타나있다.&amp;nbsp;바로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는&amp;nbsp;'고신타이'(ご神體)라는 일본도(刀)의 비화다.&amp;nbsp; 쇼와 8년 당시부터 패전까지약 12년간, 신사 내에서 8100 자루의 칼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군대용 칼인 '야스쿠니 칼'을&amp;nbsp;묵묵히 만드는 모습을&amp;nbsp;재현해 보이는 현역 최후의&amp;nbsp;도장(刀匠.칼 공예 장인)도 소개하고 있다.&lt;/FONT&gt;&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영화 야스쿠니 예고편&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2.flvs.daum.net/files/2/85/12/59/10707527/thumb.jpg.edit&quot; type=&quot;vi&quot;&gt;&lt;/P&gt;
&lt;P&gt;&lt;BR&gt;&lt;STRONG&gt;영화 '야스쿠니'&amp;nbsp;리잉 감독 인터뷰&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 왜&amp;nbsp;중국,그리고 일본에게도 민감한 주제를 영화 테마로 잡았나?&lt;/FON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IMG style=&quot;WIDTH: 133px; HEIGHT: 155px&quot; height=137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31/blog/2008/04/22/16/28/480d9394dc8af&amp;filename=directors_img01.jpg&quot; width=112 border=0&gt;리잉 ; 나는 이 거대한 역사적인 무대에 사람들의 '기억'을 집중시키고 싶었습니다. 국가가 만들어 낸&amp;nbsp;'기억', 바로 그것이 (생각하고 있음과)&amp;nbsp;'다르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amp;nbsp; 어떤 영화인가?&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리잉 ;&amp;nbsp;'야스쿠니'는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영화입니다.&amp;nbsp;많은 전쟁은 자신이 옳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는 나라가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형편이 좋았을 때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전몰자 모두를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웅들이 아시아 각국에 초래한 고통에 대한 기억을 잊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 이 영화는 「관용」을 촉진시키는 영화일까?&lt;/FONT&gt;&lt;BR&gt;&lt;/P&gt;
&lt;P&gt;리잉 ; 기독교에서는 고백과 회생을 믿습니다만, 아시아는 '체면'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일본에겐 천황의 '체면'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그것이 일본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56200&gt;&lt;리잉 감독의 메시지&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9b014f&gt;나는&amp;nbsp;영화를 통해&amp;nbsp;지금까지 인간이 어떻게 삶과 죽음을 직면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거대한 무대이자 거기서 나는 전쟁에 대한 여러가지 '기억'과 '망각', 전쟁이 갖고 있는 거대한 '가면'을 직접 보았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에선 전쟁이라고 하는 망령이 인류에게 접근 중이다. 이 영화는 내가 이 망령에게, 야스쿠니 신사라고 하는 문을 통해서 10년이라는 세월에 공을 들인 기록이다.&lt;/FONT&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5c585a&gt;&lt;STRONG&gt;야스쿠니 신사 문제, 영원히 지고 가야 할 숙제인가?&lt;/STRONG&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화 '야스쿠니'는 일본 예술문화진흥기금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 기금의 조성 작품으로 뽑혀 한중일 3개국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합작 영화다. 야스쿠니 영화를 만들기 위해 10년에 걸쳐 취재를 했던 중국인 리잉 감독. 그는 19년동안 일본에 살면서 국민당의 장군으로서 손문의 참모를 맡은 후 일본으로 망명한 노인의 마지막을 그린 '2H'(1999), 도쿄.요쯔야에서 중국 전통의 맛을 이어가며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인 부부를 그린 '맛'(2003)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등 중일 관계를 영화에 담아왔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9/blog/2008/04/22/16/20/480d91a1d4bb5&amp;filename=P1020862.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9/blog/2008/04/22/16/20/480d91a1d4bb5&amp;filename=P1020862.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29/blog/2008/04/22/16/20/480d91ac3971b&amp;filename=P1020869.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gt;이번 야스쿠니 영화는 그에게도, 여러 사람들에게도 보기 드문 걸작으로 남았다.&amp;nbsp;지극히 민감한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작에서도 느껴졌던&amp;nbsp;그만의 시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amp;nbsp;영화는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시점에서의 '야스쿠니' 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는 야스쿠니 신사에게 '냉정하게 마주 보면 안되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아시아의 평화와 참된 우호를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영화를 통해 아시아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8월 15일이 되면 한국도 긴장한다. 일본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느냐를 놓고 말이다. 야스쿠니 신사, 대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다시 곱씹어보자. 야스쿠니 신사는&amp;nbsp;신사를 찾는 이들에게 “국난을 맞았던 전몰자들의 마음을 기리고, 일본인이 싸웠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설립했다”면서 “야스쿠니의 신들의 위대한 마음을 느끼고, 일본의 근대 역사를 바르게 배우자”라고 말하고 있다. 또 “꼭 유취관을 배관한다면 아름다운 조국,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야만 했던, 또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전몰자의 순정까지 느껴 전몰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배하길 바란다”고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29/blog/2008/04/22/16/20/480d91ac3971b&amp;filename=P1020869.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29/blog/2008/04/22/16/20/480d91ac3971b&amp;filename=P1020869.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3/blog/2008/04/22/16/21/480d91f575dc9&amp;filename=P1020957.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gt;&lt;BR&gt;태평양전쟁을 ‘자위를 위한’ 대동아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침략 전쟁인 중일전쟁을 ‘남지작전’, ‘무한공략작전’, ‘북지작전’ 등으로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다. &amp;nbsp;결국 이를 보는 사람들, 특히 일본의 어린이들과 학생들, 외국인들은 이러한 왜곡 사실을 역사라고 배우게 된다. 동시에 ‘전쟁 미화’라며 비판하는 중국과 한국이 이상하게 보여질 수밖에 없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lt;FONT color=#000000&gt;과거 일본의 침략 전쟁이 '공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철저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일본인들의 인식이다.&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3/blog/2008/04/22/16/21/480d91f575dc9&amp;filename=P1020957.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3/blog/2008/04/22/16/21/480d91f575dc9&amp;filename=P1020957.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영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영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다큐멘터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다큐멘터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야스쿠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야스쿠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반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반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야스쿠니신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야스쿠니신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상영금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상영금지&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콜롬비아-에콰도르-베네수엘라 영토침범 논란의 본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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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nternational2008.3607007</id>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4-21T23:05:45Z</updated>
	    <published>2008-04-21T23:05: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2008년 3월 10일 인터넷뉴스 &lt;민중의소리&gt;에 기고한 글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콜롬비아 정부군이 에콰도르 영토 내에 피신해 있던 반군단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대원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면서 야기된 콜롬비아-에콰도르-베네수엘라 간의 영토침범 논란이 1주일 만에 사실상 해소됐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중미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린 리우 그룹 회의에서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던 이번 사태를 종식하기로 합의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앞으로도 언제든지 비슷한 형태로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알다시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미제국주의에 맞서서 남미의 국가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ALBA(미주 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라는 국가공동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면에 콜롬비아 정부는 중남미에서도 대표적인 친미 정부이다. 미국은 콜롬비아에 대규모의 군대를 주둔시켜 놓고 있으며, 지난 7년간 콜롬비아 정부에 41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무기 및 재정을 지원해 왔다. 콜롬비아는 미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콜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입장에서는 콜롬비아에 자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ALBA 추진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콜롬비아 좌익 무장혁명단체 FARC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질석방 협상에 뛰어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면 미제국주의와 콜롬비아 우익 정부는 인질석방을 통해 FARC의 입지가 강화되고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을수록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미 중남미 곳곳에 일고 있는 좌파바람이 콜롬비아까지 미치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번에 콜롬비아 정부군이 에콰도르의 국경까지 넘어서 다소 무모한 군사작전을 벌인 것도 FARC의 인질석방을 방해해서 이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의 이러한 행동을 적극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FARC의 움직임에 대한 첩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실상 배후조정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반면에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니카라과 등은 외교적 관계 단절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행동도 불사하면서 콜롬비아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들어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듯 콜롬비아-에콰도르-베네수엘라 간의 영토침범 논란의 본질은 미제국주의의 중남미 지배전략에 대해 중남미의 좌파정권들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양 세력 간의 이러한 전략이 콜롬비아라는 공간에서 우익정부와 FARC를 중심으로 격렬한 충돌을 빚은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양 측의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이러한 종류의 사건은 언제든지 벌어질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FARC는 미국발 외신에 의해 테러단체로 낙인찍혀 있지만 콜롬비아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실상의 준 정부조직이다. 중동의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게다가 FARC는 차베스처럼 중남미 해방 영웅 ‘시몬 볼리바르’를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맑스-레닌주의 조직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중남미 좌파정권들과 연계를 가진 FARC가 콜롬비아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집권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미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알바로 우리베 정권이 정권을 지켜 나갈 것인가. 이 두가지 가능성은 차베스가 추진하고 있는 ‘볼리바리안 혁명’의 장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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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SCRIPT&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베네수엘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베네수엘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콜롬비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콜롬비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에콰도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에콰도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FARC&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FARC&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베네수엘라 개헌 부결의 의미와 전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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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international2008.3606966</id>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4-21T23:03:31Z</updated>
	    <published>2008-04-21T23:03:3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2007년 12월 6일 인터넷뉴스 &lt;민중의소리&gt; 기고글 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핵심적 조치들을 담은 베네수엘라 개헌안이 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차베스 대통령이 &quot;육상경기의 결승점에서 육안으로 승부를 확신하기 어려워 사진 판독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quot;고 할 만큼 박빙의 결과였다. 350개 조항의 헌법중에 69개를 손질하는 이번 개헌 국민투표는 차베스 대통령이 내놓은 33개 조항과 의회가 제출한 11개 조항에 대한 찬반을 물은 A블록에서 반대가 50.7%로 찬성 49.3% 보다 불과 1.4% 포인트 많았으며, 의회가 개헌안을 심의하면서 추가한 25개 조항으로 이뤄진 B블록에서는 반대가 51.0%로 찬성의 48.9% 보다 2.1% 포인트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혹자들은 이번 개헌안 국민투표 부결이 차베스의 소위 ‘연임제한철폐’에 대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불만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이 근거없음을 드러내는 결과는 바로 A블록과 B블록의 찬반결과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차베스의 ‘연임제한철폐’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면, 그 내용이 들어있는 A블록은 반대하고 B블록은 찬성했을 것이다. 왜냐면 ‘연임제한철폐’외의 다른 내용들은 대부분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삶을 질을 높이고 21세기 사회주의를 진전시키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에도 나와있다시피 A블록과 B블록의 찬반 차이는 사실상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B블록의 반대비율이 더 높다. 이것은 개헌안 국민투표 부결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된 가장 큰 이유는 저조한 투표율이다. 지난 2006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율은 75%에 달했다. 하지만 거의 1년 뒤 개헌투표에서는 투표율이 56%로 하락했다. 기권자들의 상당수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차베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투표율이 하락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투표율이 하락한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혁명 세력 내부의 개량세력들의 이탈 및 사보타지이다. 외신에도 나왔듯이 차베스 진영 내에서 개량적 사민주의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가 차베스 반대세력에 붙었다. 이들은 개헌안에서도 특히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를 대신해 민중 스스로의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부분에 크게 반발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실제로 개헌 국민투표 전에 포데모스의 수크레 주(州) 책임자 라몬 마르티네즈는 “지역의 자치권을 지켜내겠다” 면서 주지사와 시장들을 반대파로 적극 조직했다.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에 있는 이들 개량세력들은 개헌안에 소극적이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거나 실제로 반대진영에 붙어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차베스의 혁명 동지이기도 했던 바두엘의 배신은 뼈아팠다. 결정적인 순간에 미제국주의와 국내 반대파 세력에 붙어서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필자는 2006년 12월경에 베네수엘라의 사정을 잘 아는 국내 외교관으로부터 바두엘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를 들었다. 그 때만해도 설마 했었는데 실제로 1년 뒤에 혁명을 배신하고 반대파에 붙는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 미제국주의가 베네수엘라 혁명세력 내의 기회주의자들에게 철저하게 추파를 던지고 관리를 하는 노력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lt;프레시안&gt;이나 &lt;참세상&gt;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미제국주의는 개헌을 부결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투표율이 저조한 것을 단순히 기회주의 세력의 이탈과 사보타지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들이 투표참가율 20%를 움직일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도 항상 차베스에게 비난을 퍼부어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요소가 아니다. 차베스도 최근 투표율이 저조한 부분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언급하면서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언급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필자가 한정된 상황에서 추측하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이전에 비해 개헌 국민투표 참여를 촉구하는 대중사업이 기세있게 진행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여러 번의 국민투표와 계속된 대중사업 속에서 활동가들이 피로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번 개헌의 의미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2006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만큼 대중들에게 절실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계속된 우파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상황을 안이하게 보았을 수도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사회주의를 전진시키기 위해 다소 무리한 개헌안을 제출하게 되면서 대중들이 정서적으로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보수언론들의 악의적 선동이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보수언론들은 사회주의로 바뀌면 집도 빼앗기고 자식들도 빼앗긴다는 막가파식 선동을 서슴치 않았다. 차베스도 &quot;내가 내놓은 제안들이 너무 과도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인정한다&quot;고 밝히고 &quot;국민투표를 통해 베네수엘라 민주주의가 성숙해 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quot;고 말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개인적으로 필자는 두 가지 가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혁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느낄 수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혁명과정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이 닥치니 말이다. 그래서 혁명을 예술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올해 안에 베네수엘라연합사회당(PSUV) 건설을 통해 주체역량을 준비하고 개헌을 통해 제도적 정비를 한 후, 2008년부터 새로운 동력으로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려고 했던 차베스의 계획이 틀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일정부분 우파들이 성공을 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시라도 멈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포함해 지난 9년 동안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절대적 신임을 보내는 지지층의 변함이 성원에 힙입어 압승했던 차베스 대통령은 다소 의기 소침한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quot;지금 이순간(por ahora)은 하는 수 없다&quot;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영어의 'for now'에 해당하는 이 말은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 1992년 쿠데타에 실패했을 때도 사용했던 말로 베네수엘라에서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즉, 2008년에 새로운 개헌시도를 할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의 임기가 2013년 1월까지 5년이나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정권말기의 권력누수 현상이 올 상황도 아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면 우파들은 이번에 반대파의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한 바두엘을 중심으로 반차베스 전선을 더욱 강화해서 내년에 다시 한번 전투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들의 권리인 ‘제헌의회’ 소집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바두엘은 개헌 저지가 진정한 승리가 아니면 향후에 ‘제헌의회’ 소집을 요구하는 투쟁을 언급하기도 했다. 우파들은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차베스 정권을 해체하고 모든 것을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기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 베네수엘라의 개헌 부결은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차베스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에게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크다. 특히 최근에 제헌의회를 통해 신헌법을 통과시킨 모랄레스는 거의 내전수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의 실패를 교훈삼아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더욱 전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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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SCRIPT&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베네수엘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베네수엘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우고 차베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고 차베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개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개헌&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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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미은행, IMF와 맞짱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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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국제주의자</name>
	    </author>
	    <updated>2008-04-21T23:00:41Z</updated>
	    <published>2008-04-21T23:00: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월간 말&gt; 2007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동안 외신을 통해 추진과정이 간간히 전해졌던 ‘남미은행(Banco del Sur)'이 올해 안에 설립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대신해 남미 지역을 위한 금융기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남미은행 출범식(12월 9일)에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7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앞으로 칠레, 콜롬비아, 가이아나, 페루, 수리남 등이 추가로 가세해 남미국가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12개국이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콜롬비아는 이미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남미은행은 70억달러로 예상되는 초기 자본금이 마련되는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될 예정이다. 본부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들어서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는 사무소가 설치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남미은행의 창설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중남미에서 자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 등의 영향력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면서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IMF 때문에 태동한 남미은행&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남한에서도 1997년의 외환위기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이 되었다. IMF는 주로 외환위기가 온 나라에 구제금융의 명분으로 달러를 빌려주면서 소위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를 신자유주의식으로 전면적으로 개조한다. 채무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서는 IMF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식으로 경제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렇게 IMF의 처방(?)을 받은 나라들이 전 세계적으로 100개국이 넘는다. 미제국주의는 IMF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식 경제로 재편해서, 자국의 독점자본들이 해외에서 더 많은 부를 수탈할 수 있도록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에 IMF의 처방대로 신자유주의식 경제구조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예외 없이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자국의 알짜기업들이 미국을 비롯한 초국적 투기자본들에게 헐값에 매각되며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IMF는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요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국영기업의 민영화&lt;BR&gt;- 정부 규제 철폐&lt;BR&gt;- 복지 등 공공지출 대폭축소&lt;BR&gt;- 임금 동결 및 삭감&lt;BR&gt;- 외국 기업을 위한 완전한 시장개방&lt;BR&gt;- 기업에게 세금 감면&lt;BR&gt;- 노동조합 무력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특히 중남미의 국가들은 미제국주의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IMF의 경제침략에 의해 80년대부터 줄줄이 신자유주의의 직접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 1989년에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시민 수천 명이 사망한 대량학살의 참사는 그 직접적인 원인이 IMF의 경제처방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IMF의 쓴맛을 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미제국주의의 앞마당 중남미에서 IMF에 맞서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남미은행을 창설하자는 움직임이 바로 이것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드리고 카베사스 베네수엘라 재무장관은 “남미은행은 남미국가들의 금융구조 개선을 위한 지역금융기구가 돼야 한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을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는 지난 2월 이후 남미은행 설립을 주도해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입장이기도 하다. 카베사스 장관은 “남미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경우 남미은행 자본금을 1천600억달러 수준까지 늘릴 수 있다”면서 IMF 및 세계은행과의 관계 단절을 전제로 한 ‘남미를 위한 금융기구’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은 “남미은행은 워싱턴에 본부를 둔 IMF와 세계은행과는 달리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면서 남미은행에 정치적 의미를 잔뜩 부여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IMF와는 다른 남미은행&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추진되고 있는 남미은행이 IMF와는 어떻게 다른지는 운영방식을 보면 대번에 드러난다. IMF의 의사결정구조는 IMF에 가입한 185개 국가들의 1국가 1표 방식이 아니다. 각 국가별로 출자한 자금의 액수만큼 의결권을 가지는, 이른바 1달러 1표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IMF의 출자금 대부분이 미국, 그리고 친미국가들의 자금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IMF가 누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남미은행의 의결구조는 1국가 1표제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한, IMF는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채무국의 경제구조를 신자유주의식으로 개편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미은행은 금융지원을 얻는데 별다른 전제조건이 없는 것이 다르다. IMF의 진정한 목적이 구제금융을 빌미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침략이라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남미은행의 목적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국가에 별다른 조건없이 도움을 주는 상부상조적 국제금융기구라 하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남미은행은 뿐만 아니라 남미대륙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과 교육, 보건 등 남미통합 노력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정이어서, 차베스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중남미 국가공동체인 ALBA(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남미은행의 추진 과정과 논쟁&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미국과 대등한 중남미국가들의 연합체를 구상하고 있는 차베스 대통령은 IMF에 대응하는 ‘남미은행’이라는 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차베스의 구상이 구체적으로 외신에 언급된 것은 2005년 9월 15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정상회의에서였다.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아르헨티나 채권 10억달러만큼의 추가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남미 지역 전문 금융 지원에 나설 ‘남미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6년 9월에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20억달러에 이르는 공동채권을 10억달러씩 분담해서 발행하면서 ‘남미은행’의 설립 추진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편, 2007년 5월에 IMF 수석부총재인 존 립스키는 “남미은행을 창설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아직 분명치 않다”면서 남미 관련국들 간에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남미은행 창설안이 경제위기를 맞는 남미국가들에게 재정지원을 한다는 목표 아래 기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등 현실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의 반대표시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러한 상황에서 남미 최대국인 브라질의 태도는 아쉬움이 많다. 한때 남미은행 설립에 반대했던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남미은행은 남미지역의 개발과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차베스 대통령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미은행이 IMF,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 등 기존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대항기구가 되는데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IMF는 남미지역에서 향후 발생할지 모를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IMF의 존재 이유와 관계 유지 필요성을 설명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남미은행의 자본금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브라질은 베네수엘라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은 남미은행 회원국들이 동일한 규모의 자본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베네수엘라는 경제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자본금을 조달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도 쉽게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브라질은 또 “회원국이 내놓는 자본금 규모를 다르게 할 경우 의결권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베네수엘라는 “자본금 규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비중이 달라질 경우 IMF와 다를 바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이 같은 견해차는 남미은행 창설이 계속 늦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친미국가들조차 남미은행 참여&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등과의 악연 때문에 중남미 대다수의 국가들이 남미은행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며 적극 참여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친미국가인 파라과이의 니카노르 두아르테 파라과이 대통령조차 공식 출범 선언을 앞두고 있는 남미은행이 향후 자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두아르테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출범 선언식 참석을 확인하면서 “남미은행은 파라과이를 포함한 남미지역의 개발 및 성장을 위한 재정 지원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아르테 대통령은 이어 “파라과이는 남미통합 진전을 위한 어떤 노력에도 적극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남미은행 출범 선언식을 계기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참여국 정상들과 더 많은 대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중 하나인 콜롬비아의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은 지난 10월 12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창설을 추진하고 있는 남미은행에 콜롬비아도 가입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우리베 대통령은 이날 차베스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콜롬비아의 푸에르토 바예나스와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를 연결하는 가스관 준공 기념식에서 조만간 공식 출범하는 남미은행에 콜롬비아도 합류하고 싶다고 공식으로 밝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남미은행 설립이 국제통화기금(IMF)에게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바 있는 스티글리츠 교수는 IMF가 미국.유럽연합(EU) 등 선진국만을 위한 모임이 됐으며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등의 2가지 큰 결함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quot;IMF는 자신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거듭나야 하며, 이 점에서 남미은행 설립은 IMF가 경쟁력과 다양성을 갖추는데 자극제가 될 것&quot;이라고 주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어 &quot;199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IMF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quot;는 사실을 들어 중남미 지역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남미은행이 IMF보다 더 효과적인 억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와 함께 미국이 세계은행, 유럽이 IMF 총재를 독식하는 현재의 총재 선출방식을 브라질 등 신흥개도국들에 개방하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듯 안팎의 지지와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중남미 은행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IMF&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IMF&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베네수엘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베네수엘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우고 차베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고 차베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남미은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미은행&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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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차베스는 민중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을까 - 인터뷰로 엿본 당선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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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국제주의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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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4-21T22:57:11Z</updated>
	    <published>2008-04-21T22:57: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 2006년 12월 5일 인터넷뉴스 &lt;민중의소리&gt;에 기고한 글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12월 3일에 있었던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운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었다. 이미 언론들에서는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조금 시각을 달리해서 차베스가 2004년에 알레이다 게바라(체 게바라의 딸)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다뤄본다. 인터뷰 내용속에는 차베스가 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몇 개의 장면으로 나눠서 소개해 본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장면 1&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고등학교 때 야구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가 되거나 마가야네스 팀에서 뛰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나는 군인이 되려고 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군인이 되는 것이 수도인 카라카스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고, 아버지는 카라카스에 학비를 댈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1년만 있다가 야구를 하러 떠날 생각이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독서를 하면서 선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프레이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라스 및 다른 역사책들을 읽은 후, 나는 진정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학살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 자신의 삶과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사관생도 시절에 병원 앞에 있는 콜롬부스의 동상을 지나면서 행진을 했습니다. 나는 동료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왜 저 침략자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거지?” 그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 민중들이 권력을 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는 30년이 걸렸습니다. 콜롬부스 동상은? 우리는 콜롬부스 동상을 끌어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주민 저항군 지도자인 과이카이푸로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과이카이푸로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후 그를 죽이기 직전에 과이카이푸로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스페인 놈들아! 와서 이 땅의 자유인, 인디언 과이카이푸로가 어떻게 죽어가는지&amp;nbsp; 봐라.” 우리는 선주민 추장인 마나우, 아이마르, 타마카레스, 카리브 해의 인디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아나 카리나 로테 아우노 토토 파파로토 만토로”(카리브 해 원주민의 외침 : “우리만이 유일한 사람이다. 다른 이들은 노예다”) 내가 이 말을 할 때면, 내 안에서 카리브&amp;nbsp; 인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프리카 인의 피가 섞인 인디언이기 때문입니다. 백인의 피도 약간 섞였죠. 우리는 반反백인주의자가 아닙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장면 2&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작년(2003년)에 한창 우리가 ‘석유 테러’라 불렀던 석유파업이 있을 때, 베네수엘라의 기득권층과 그들의 국제 동맹세력(미 제국주의)이 석유 정제소들을 파괴하고, 수백만 리터의 우유를 버리고, 가축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사회 붕괴, 혼란 등을 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방면으로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석유도 없고 천연가스도 없고 음식물도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피델(카스트로)이 우리에게 콩을 가득 실은 배를 보내주면서 전화로 “나중에 여건이 되면 갚아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다른 물품들은 브라질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콜롬비아로부터 우유, 고기, 석유들을 구입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몇 리터의 연료를 사기위해 사흘 나흘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그 힘든 어느 날 오후에 나는 몇몇 동지들에게 저 산골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산골마을로 갔습니다. 거리는 분주했습니다. 사람들은 쌀, 바나나 등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근처를 다닐 때 사람들이 우리에게 인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상황이 어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강한 인상의 흑인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끌어당기면서 “차베스, 이리 와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할머니와 다툰 것은 아닙니다. “차베스, 이리 와봐요. 나를 따라와요. 당신이 우리 집에 와보면 좋겠어요.” 우리가 집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장작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쌀, 감자, 파초 등을 요리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나의 눈을 지그시 보더니 양복저고리를 잡고 말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차베스, 내 집에는 의자가 남아있지 않아요. 당신이 보고 있는 저 장작이 침대 다리에요. 우리는 가구, 지붕을 뜯어서 불을 피울 겁니다. 우리는 문도 떼어낼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해서 요리를 할 거에요. 하지만 절대 물러서지 마세요. 차베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가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300만 명의 사람들이 노인과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물었습니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정수는 무엇인가요?” 그들은 전사들입니다. 군대입니다. 예전에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는 전투 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에 모든 민중들이 전투를 벌였습니다. 민중들은 군대이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페인에 맞서 그들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한 민중들은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볼리바르와 같은 꿈,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꿈 말입니다. 돈키호테 같은 볼리바르는 외쳤습니다. “모든 라틴 아메리카를 통합하자...예전에 스페인 땅이었던 아메리카를!!” 그때 그는 군대를 이끌고 포토 시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야쿠초에서 수크레는 제국주의자들을 쳐부수고 아르헨티나, 리오 델 플라타, 칠레, 아르티가스, 파나마를 통합했습니다. 그는 완전한 연합 해방군을 창설했고,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해방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의 의지력은 시험받고 있습니다. 우리 민중들은 강하며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이 쿠바 민중을 안다면 당신은 이미 베네수엘라 민중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볼리바르가 말했듯이 예전에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모든 아메리카는 우리의 조국이며, 아메리카의 모든 민중들은 모두 동등하기 때문입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장면 3&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이전에 베네수엘라에서 능숙히 글을 읽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는 사람들은 많아야 연간 15000명 정도 생겼습니다. 2003년에 6개월간 우리는 100만 명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 한 해만에 15000명에서 10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는 각 과정들을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주시하고 평가하고 촉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나는 학교 문턱을 넘어본 적도 없는 102세의 노인이 7주 동안에 글을 배우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85세의 할머니도 보았고요. 아버지가 없는 8살, 10살 그리고 12살 먹은 형제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대통령 아저씨,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에 다닐 수 없었는데 지금은 글을 배우고 있어요.” 그 아이들은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고 정규교육 체계의 보호 아래에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이런 것은 초기의 교육 구상이었고 충만한 자신감으로 미션 수크레를 출범시켰습니다. 우리는 문맹퇴치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는 150만 문맹자들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거기에 착안해서 미션 수크레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어느 일요일에 대상자들을 소집해보았습니다. 열풍이 일어난 것처럼 60만 명이 넘는 어쩌면 1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그 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6년 과정을 마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모아보니 역시 100만 명에 가깝더군요. 우리는 잃어버린 고리를 고안해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피델과 대화중에 우리가 잃어버린 고리를 놓치고 있다고 했지요. 그러자 피델이 이러더군요. “잃어버린 고리라니, 차베스?” “네, 잃어버린 고리란 제2의 교육을 받게 됐는데도 마저 끝마치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우리가 그들을 파악해보니 거의 70만 명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각 부류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미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전 인구의 60퍼센트가 배우고 있는 중이죠.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카터 전 미 대통령이 최근 방문해서 카라카스 시의 지역 지도인사를 만났을 때 그는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카터는 나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TV 기자회견에서 재차 발언해서 과두지배 세력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지역 지도자들과의 만남은 내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만남 중의 하나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 지역 모임에서 만난 한 사람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20만 명의 주민들이 지금까지 의사를 구경도 못했다는 말을 카터에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쿠바 의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에 대해 말했지요.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거의 40년 동안 그 지역의 20만 명이 넘는 주민들에게 의사는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응급치료를 기다리다 죽기도 했고, 임산부는 마룻바닥에서 출산을 하고 아이들은 천식과 설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의사가 있습니다. 이제 한 시간 내에 의사에게 신속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 지역에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게다가 의사들이 약품도 비치하고 있어서 더 이상 약을 사지 않아도 됩니다. 카터는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카터에게 요즘 우리 동네에서는 춤추고 술 한 잔 할 시간이 일요일밖에 없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죠. 왜냐고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일 5시 이후에는 학습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주민들이 공부하고 글을 배우고 학교 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피델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혹자는 나에게 “당신 제정신입니까? 한 해 동안 이 모든 미션들을 시작한다니요?” 지금 물론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로 모든 미션들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되풀이 말하지만 쿠바의 놀라운 지원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내가 쿠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화가 나서 길길이 뛰겠지만 상관없습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세계포럼에서 연설을 하든지 간에 쿠바에 대한 감사를 공식적으로 상기시키고 부각시킬 것이며 이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장면 4&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지금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레이다,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쿠데타가 있었던 2002년 4월 12일 자정에 그들은 사형집행을 하기 위해 나를 해변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일출에 기해서 사형을 집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나는 손에 십자가를 쥐고 예수 그리스도와 체 게바라를 떠올렸습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과 용병들이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등 뒤로 다가오자 뒤에서 날 쏠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뒤를 돌아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그 순간 마음속에서 체 게바라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체는 그가 죽은 라 이게라마을의 작은학교에 있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체 동지처럼 죽게 될 것이다. 당당히 맞서자.”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운이 좋게도 당시의 군사적인 상황덕분에 그때 죽지 않을 수 있었죠. 그 순간에 상공에는 헬리콥터가 날고 있었고 파도는 거칠게 몰아치고 밤하늘의 별들은 반짝이는 가운데 군인들은 총으로 나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나는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러나 갑자기 나를 감시하던 젊은 군인 하나가 손에 총을 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죽이는 순간 우리도 모두 죽게 될 거야. 저 사람은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야.” 갑작스럽게 혼란이 닥쳤고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해라. 모두 침착해라. 너희는 모두 내 편이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시작했고, 가까스로 협력을 얻어서 결국은 진정시켰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들어라. 나는 포로이니 포로로 대우해라. 그렇지만 내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란 사실은 잊지 말아라.”&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그 후 그들은 나를 격리시켰고 거의 쉴 시간이 없던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일은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되 침묵을 유지해라.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올해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말해왔던 혁명 속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대약진의 해가 될 것입니다. 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칼 맑스는 역사는 지도자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역사가 그들에게 부과한 조건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지요. 지도자는 쿠바에서 피델이 그러하듯이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쿠바에 피델이 없다면 쿠바라는 나라는 존속하겠지만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피델은 체 게바라나 카밀로 시엔푸에고스가 그러했듯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지도자 이론이 아니라 지도자가 역사가 부여한 명령안에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맑스의 이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도자는 부분적으로는 역사 그 자체와 역사적 조건에 매여 있는 포로라고 할 수 있지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4월 11일 쿠데타 이전에 내 의지가 유연했기 때문에 일련의 사건발생을 야기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우선적으로 군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쿠데타 지도부는 군부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비록 쿠데타를 지지했던 TV채널들을 폐쇄하려고 해도 시초부터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금 이러한 반혁명세력, 파시스트들이 준동한다면 다시는 나와 우리의 조국을 4.11쿠데타에서처럼 지옥의 나락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내 자신에게 맹세합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장면 5&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이러한 관계는 꽤 오래 전인 수감생활을 하던 시절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역사가 나를 사하리라History Will Absolve Me 』『Face to Face with Fidel Castro』 프레이 베토의 『Fidel and Religion』, 지아니 미냐의 『An Encounter with Fidel』을 읽었습니다. 피델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고 항상 이곳을 나오기만 하면 그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긴 시간을 떠올리면서 그가 죽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를 만나보길 고대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쿠바에서 초청장이 날아왔습니다. 1994년 12월이죠.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그곳에 갔습니다. 비행기 착륙 후에 보니 피델이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로 그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정기항공 편을 이용했음에도 비행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당시 우리는 포옹을 나눴는데 이미 말했듯이 베네수엘라의 과두세력은 신문 1면에 그 사진을 실었습니다. 신문 1면에 등장해 본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내가 신문 전면에 실리다니요? 악의적인 헤드라인과 함께 컬러 사진이 실렸습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기사들도 실렸더군요. ‘피델이 차베스를 먹어 치우다’ ‘차베스 피델에게 복종하다’ ‘악의 축’ 따위의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주문과도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지만 우리 민중들에게 공산주의, 피델 카스트로와 독재에 대한 공포를 주입하기 위해 악마적이고 사악한 방법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합니다. 모두 꾸며진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과두세력은 내가 쿠바에 체류하는 이틀간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선전을 쏟아냈습니다. 내가 아바나에서 한 연설 일부를 방송에 내보내고 몇 명의 전문가들을 불러와 논평을 해댔습니다. 이틀 후에 베네수엘라로 돌아왔습니다. 12월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어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마이퀘티아에 도착해서 동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카라카스 시내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변호사 친구가 돈을 빌려주어 얻은 얼마 안 되는 가구와 작은 회의실이 있는 작은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자는 일도 있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그 무렵 어둑해진 카라카스 시내를 가게 되었습니다. 피델과 내가 나눈 포옹에 대해 사람들에게 쏟아진 악선전을 생각해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시내 중심부에서 한 취객이 손에 술병을 들고 지그재그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완전히 취해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 우리는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피하려고 길 반대쪽으로 가려했지만 그 사람이 술병을 든 채 갈지자로 걷는지라 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하더군요. “당신 차베스처럼 생겼는데.”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차베스네. 괜찮은가?”하고 손을 뻗쳤는데 몇 마디 중얼거리면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요. 결코 그 사람의 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차베스, 피델 만세!”&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그건 과두세력의 어리석음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피델 만세! 피델과 나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내 개인적, 정치적 명성에 흠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이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자들은 1959년(쿠바혁명이 승리한 직후)에 피델이 베네수엘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가장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최근 몇 십년간 내내 우리 민중들은 피델을 존경해왔습니다. 민중들은 그를 지지하고 그를 사랑합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1989년에 난 카를로스 페레즈 안드레스 대통령의 취임식에 피델이 참석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라플로레스 궁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행사를 지켜봤습니다. 군사 퍼레이드가 있어 세계적 인사들이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의회의 중간계급, 정객, 공무원, 심지어 보수정당인 AD당 지지자까지도 말이죠. 그들은 모두 피델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내릴 때까지 피델이 나타나지 않자 의회에는 실망하는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앉아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는 피델을 가까이서 보고자 했습니다. 피델은 그 퍼레이드에 결국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내 생각엔 경호상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선거기간 동안 그들은 다시 1994년도의 비디오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베네수엘라 군에 피델과 내가 아바나에서 한 연설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제공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디오를 유포하기 위해 병영마다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일부 군사심리학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제기랄, 당장 이 짓을 그만두시오. 역효과만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비디오가 피델과 차베스에 대한 젊은 군인들의 찬양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당장 그만두시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내가 대통령이 된 새로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치졸한 짓을 계속했습니다. 1999년 1월 말 취임하기 며칠 전에 여행을 가서 아바나에 잠시 체류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리아, 멕시코시티를 거친 다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마드리드에 있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우리는 파리로 이동 후 다시 로마로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떠나 베네수엘라로 잠시 간 뒤 아바나로 가고 마지막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가장 가깝기 때문이죠. 취임 전에 방문해 보고 싶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마드리드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보좌관이 오더니 워싱턴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더군요. 마드리드에서 경제인들과 오찬을 함께하고 있던 중이라 나는 물었습니다. “워싱턴에서 전화가?”&amp;nbsp; “네, 피터 로메로입니다.” 로메로는 이베로-아메리카 사무국의 차관이었습니다. 그는 12월만 해도 클린턴 대통령이 보낸 워싱턴 방문 초청장을 가지고 베네수엘라에 왔었기 때문에 나는 즉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내가 비자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내게 비자를 내준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거절당하곤 했죠.&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내가 수화기를 들자 얘기하더군요. “대통령 각하, 우리가 듣기로 아바나를 방문하신다고요.”&amp;nbsp; “그렇소, 며칠 후에 아바나에 갈 거요.” 그러자 그 즉시 말하더군요. “음... 우리는 아바나에 방문하지 말라는 권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뭐라고?” “그렇습니다. 만일 아바나에 방문한다면 클린턴 대통령과 접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나는 화가 치밀어서 얘기했습니다. “잘 들으시오, 로메오. 당신은 전혀 잘못 짚은 거요. 당신은 독립국가의 대통령을 상대로 얘기하고 있소. 이 문제를 다시는 꺼내지 마시오.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면 보좌관에게 연락하시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다음날, 파리에서 언론인 몇에게 전날 있었던 일을 공개했습니다. 그날 밤 호텔에서 로메로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통화를 나눴습니다. “대통령 각하. 제 말을 오해하신 겁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접견을 원하고 있습니다.” “뭐, 좋소. 클린턴 대통령이 날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소. 어쨌든 난 아바나에 갈 것이고,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소. 누구도 다시는 그 문제를 꺼내선 안 돼오. 당신 아니라 누가 말하든 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아바나를 방문했고 이틀 뒤에 백악관에서 클린턴을 만났습니다. 우리 일행에는 결국 반대파에 가담하는 루이스 미낄레나 같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연설이나 TV,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주 피델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미주정상회담이 있던 몬테레이에서 부시가 그의 개막연설 중 피델이 불참한 상황에서 쿠바와 피델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내 연설 차례가 오자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정상회담의 주제가 균등한 성장임에도 2003년 베네수엘라에서 경제 성장은 없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경제성장은 쿠데타와 석유업계의 사보타지로 인해 적어도 10퍼센트는 하락했습니다. 경제 후퇴였습니다. 그럼에도 쿠바의 헤아릴 수도 없는 지원으로 베네수엘라는, 예를 들면 미션 로빈슨 같은 것들을 통해 사회복지, 평등, 사회정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그들은 내게 부시가 분노로 타오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직접 그를 보진 못했지만 나중에 부시가 얼굴을 붉힌 채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있더란 말을 들었습니다. 난 쿠바에 대해 3번이나 언급했습니다. 쿠바 인민과 피델이 보내준 지원에 대해서 감사를 표명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선 전혀 후회가 없지만 다른 몇 가지 점에서는 용서를 표명합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몬테레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카다피와 전화 통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왜 쿠바가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전 국가가 참석하는 회담에 참가하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아! 그건, 미국이 쿠바를 배제시켰기 때문입니다.” “우고, 잘 듣게. 우리 아프리카의 예를 들어보게. 영국이 유럽연합 회담에 짐바브웨 무가베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을 막은 적이 있네. 그때 우리는 무가베가 갈 수 없다면 우리 누구도 참석할 수 없다고 했네.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네.” 미국이 얼마나 철저하고 교묘하게 조종하는지 한 번 보세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는 나름대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피델의 우정에 경의를 표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합니다. 그에게 나 자신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대신해서 사의를 표합니다. 우리와 협력하기로 한 피델의 결정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지도자와 자국의 민중들이 아닌 다른 나라의 민중들과의 사이에 이러한 전례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의 협력은 영원하고 굳건하며 갈수록 증대되고 있습니다.&amp;nbsp;&amp;nbsp;&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베네수엘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베네수엘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KUmj&amp;amp;tagName=우고 차베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고 차베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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