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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지키는 공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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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3T12:38:1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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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8 : 현대한국을 위한 임시처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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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3T12:38:12Z</updated>
	    <published>2009-11-23T12:38: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사회적 차원에서 말했을때 문제의 해결은 올바른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문화는 그 자체로서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흉내내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보러 가기전에 박카스를 한병마시고 가면 도움이 된다더라 하는 것은 일종의 비결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대한 이해나 문맥없이 그것을 절대시하면 우스꽝스럽고 범죄스러운 일을 하게 될것이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화를 절대시할때 말을 할때는 외국어를 섞어야 지식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켰더니 절에 가서 불을 지르는 사람이 나온다.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대중 문화를 넘어 스스로의 윤리를 찾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 사회는 튼튼한 윤리적 기초가 다져질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니 윤리니 하는 것을 제쳐두고 여기서는 물질적으로 시장논리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자.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예측하는가. 어떻게 준비해야 현대사회를 살아갈수 있을것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인간의 희소가치&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 어떤면에서 인간의 사회적 희소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있는 것같아 보인다. 세계무역을 통해 어딘가에 있는 후진국의 국민들이 훨씬 더 싼값에 우리가 하는 일을 해서 우리를 대체할때 우리의 사회적 가치는 떨어지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에는 기계화와 자동화도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전에는 수십명이 하던일을 한사람이 해낸다. 아예 사람이 없어지고 기계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은 사회라는 기계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더 좋은 부품을 구한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더 싼 비용으로 할일을 해내는 부품이고 인간이 부품역할을 하던것을 기계로 바꾸면 그기계는 지치지도 않고 밤낮으로 일을 한다. 퇴직금을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인간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이런 경제적 직업적인 것 뿐만이 아니다. 개인적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더욱 심각한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수없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은 단순히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각자 개인으로서 가지는 의미를 축소시킨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전에는 집에서 밥을 다해먹어야 하고 심지어 옷도 집에서 만들던 시절이 있었으며 새걸 사더라도 기우고 수선해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이웃이나 가족만이 유일하게 도와줄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족과 가문이 중요시 된 이유는 그들에게 버림받으면 사회적으로 기댈곳이 없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먼저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나는 과거를 찬양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자는게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있던 어떤 것들이 없어졌다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엄마와 자식간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자. 직장을 가지는 엄마, 편리한 시대를 사는 엄마는 종종 이렇다. 밥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해주거나 외식을 하거나 매우 간단하다. 따라서 소위 엄마의 요리라는게 없다. 옷은 당연히 좋은 것으로 사다주고 돈은 벌지만 바쁜 엄마가 수선을 하거나 할리없다. 그때그때 새것으로 사준다. 집안의 청소도 아이와의 대화도 엄마는 할시간이 없다.&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저것을 모두 제외하고 나면 엄마는 &amp;nbsp;(아빠도 마찬가지다) 결국 아이에게 있어서 돈을 지불해 주는 사람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런데 그 돈조차 직접주는 일이 없이 대개 통장에서 자동적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이 받는 교육같은 것에 엄마가 돈을 댄다는 자각도 약하다. 결국 엄마의 의미가 거의 없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엄마가 이런 현실을 싫어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해도 문제다. 엄마는 컴퓨터나 오락기, 책, 영화, 연애인들 그리고 아이들의 친구와 경쟁해야 한다. 한마디로 엄마는 지루하고 아는것도 없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에게 별관심을 두지 않으며 자신에게 최대한의 자유만을 주기를 바란다. 주말에 모처럼 가족끼리 한집에 있어도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거나 어서빨리 이시간이 끝나고 나가기를 바란다. 엄마는 드라마를 보고 아빠는 골프를 치거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아이는 오락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거나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웃도 친구도 연인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amp;nbsp;더 좋은 조언과 도움을 사회적 서비스로 받을수가 있다. 연인들은 종종 잠재적으로 연예인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천사같은 -종종 컴퓨터 조작과 수술의 도움을 받는- 여자들의 모습에 빠지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들은 좌절감에 빠진다. 재벌의 아들들도 실재로는 하지 않거나 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꿈속의 남자친구들을 보면서 남자들은 움추러든다. 이웃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으로 자동차로 우리는 언제나 먼곳에서 도움을 받을수가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서비스를 쓰는게 다른 내주변의 사람들을 대하는 것보다 편하고 만족스럽다는 사실은 주변사람들이 내게 의미가 없어진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우리 자신조차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의미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일본의 오타쿠같은 사람이 되어 사회적 서비스에 둘러쌓인다. 우리는 오타쿠를 보면서 불쌍해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거의 그단계에 이르러있다는 사실은 잘알지 못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스크린 속의 연예인이 아니라 현실속의 연인을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온갖 사회적 이미지속의 존재로 인식하면서 만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만나고 있는게 아니다. 그것은 마치 롤프레잉 게임속의 두 게이머가 연극을 하듯이 만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두사람은 진정으로 만나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서비스를 파는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연인들의 복제품일 뿐이며 따라서 파트너는 쉽게 교체될수 있다. 상대방이 나를 보면서 웃어도 그녀가 보고 웃는 것이 내가 아니라 내가 행하고 있는 내가 아닌 행동들에서 연상되는 어떤 남자 연예인이라면 진짜나는 그녀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단지 그녀에게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서비스를 팔고 있을 뿐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현대 사회의 역설&lt;/p&gt;&lt;p&gt;&lt;br&gt;&lt;/p&gt;&lt;p&gt;현대 사회에서 역설적인 것은 바로 우리가 이제까지 말해왔던 문제들때문에 그런 피해를 적게 받은 인간들이 희소가치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에 중독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 다리가 약해지면 다리가 튼튼한 사람이 희소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실제로 학교나 회사에서는 부속품으로 충실한 사람이 되라는 압력을 사방에서 받는데 티브이속의 연예인들의 특징은 전부 입시공부나 회사원으로서의 일상에 찌들어보지 못한 것같은 사람으로 가득차 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일하라는 압력은 사방에 존재하지만 사회는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야단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회의 구조가 복잡해져 가면 갈수록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자유시간을 잘보낼수 있고 안정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들의 희소가치는 올라간다. 미국같은 나라에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는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언제나 바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 진짜 영재교육이 가져야할 것중 목록에 첫번째로 있어야 하는 것은 화목한 가족을 만들고 그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며 희소성이 큰 시대이기 때문이다. 로보트처럼 일찌감치 부품으로 전문화된 인간은 결국 누군가의 수단이 될뿐이며 진정 최정상층에서 가치판단을 내릴수가 없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좋은 가족을 만드는 첫번째 해법은 가족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서로를 발견한다는 것은 서로가 생각보다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남편과 아내가 의무적으로 만나고 부모와 자식이 의무적으로 만날때 그것은 가족생활이 아니다. 그들은 먼저 서로 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는 것, 서로 서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위에서 말한 걷기를 생각해 보라. 걷는 것은 차타는 것보다 힘들다. 그러나 걷기를 하다보면 산책도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케쳡과 마요네즈로 범벅이 된 강한 맛의 정크 푸드에만 길들여진 아이가 채소의 맛이나 비싼 요리의 섬세한 맛을 구분하려면 먼저 강한 맛을 주는 음식을 끊어야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따라서 가족들이 뭉치는 첫번째 방법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서로가 아니면 즐길거리가 없는 환경을 가끔 인위적으로라도 만드는 것이다. 핸드폰도 티브이도 컴퓨터도 만화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서 가족끼리만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처음에는 따분하기 짝이 없다. 그런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은 불평을 늘어놓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게 즐기는 것에 너무 중독이 되어져 있다. 음식을 직접만들고 간단한 도구로 하는 게임을 즐기고 대화하고 산책하고 수영하고 하면서 노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참다보면 어떤 극적인 변화가 종종 일어난다. 육식에 길들은 사람이 채식의 맛을 알게 되는 순간처럼 헤비메탈만 듣던 사람이 클래식의 맛을 알게되는 순간처럼 가족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허니문은 멋진 낭만적 장소에 가서 낭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허니문은 둘다 가보지 못한 곳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도와줄 사람없이 떠나서 계획없이 돌아다니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위험한 곳으로 가서는 안되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의존할 사람이라곤 서로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지는 것이 가족을 만들어 가는 첫번째 단계다. 그런데 너무 편한 호화 리조트 같은 곳에 가서 있다 오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허니문의 본래 목적과는 조금 다른 여행이 되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부부가 싸움이 나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가라고 나는 조언한다. 자동차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따로 즐길수 있는 것은 라디오나 음악정도이기 때문에 이런 환경이라면 결국 대화를 하게 된다. 대화는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지만 계속 그런 환경에 있다보면 그래도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대화하지 않을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극단적으로 두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다고 생각해 보라. 두사람은 반드시 뭉칠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가족이 뭉치는 진짜 극단적인 방법은 우리가족이 그렇게 했듯이 이스라엘같은 나라에 가서 몇년 사는 것이다. 부부가, 가족이 뭉치지 않을 방법이 없다. 모든 방면에서 서로 돕지 않으면 되는게 없기 때문이다. 가족멤버가 서로에게 유일한 조력자이며 오락이다. 부부사이가 좋아지지 않을수가 없다. 단 여기서 도움은 상호간에 이뤄져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환경은 둘을 반드시 가깝게 하지 않는다. 부부는 어려움속에서 하나가 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영재로 큰다면 또하나 가져야 하는 것은 자기 판단력을 가지는 일이다. 남들이 모든 것을 간섭하면서 결정을 대신해 주는 교육은 그저 좋은 노예를 만드는 것뿐이다. 물론 자녀의 재능에 한계를 느끼는 부모들은 간섭하고자 하겠지만 그 정도가 문제이며 현대사회의 희소가치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자기 판단이 없는 인간은 결국 남에게 좋은 일을 해줄뿐이다. 이것도 걷기와 마찬가지다. 미리미리 연습하지 않는다면 능력은 퇴화 될것이다. 그리고 물론 아이에게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연습해야 하는 것은 논리적 계산을 하는 일이 아니다. 논리적 계산은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며 항상 세상에는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느낌을 가지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논리는 가져야 하지만 그것에만 파뭍히면 결국 남의 메뉴얼대로 사는 사람이 되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선진국이란 무엇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선진국이란 대개는 소득이 높은 곳을 말한다. 그럼 왜 소득이 높을까. 그들이 수입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수입이 좋을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것은 그들이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그들을 대체할수 없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선진국에 전문가만 있다면 비전문가들이 하는 일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는 기계화와 기업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인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전문가가 되는것으로 현대적 방식으로 닭을 키운다던가하는 것이 예이다. 또하나는 비전문적인 일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력을 수입하거나 외국에서 물자를 들여오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두 공학박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서비스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커피 한잔을 마셔도 세계최고의 재료로 세계최고의 방식으로 만들어 서비스하는 것 그것이 선진국의 커피숍이다. 그렇게 전문화를 하지 않으면 쉽사리 다른 사람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런데 우리는 전문화의 위험성에 대해 여러번 말했다. 선진국이란 결국 사회적 보험장치에 의해 전문가가 되는 위험성을 많이 제거한 나라 일수 밖에 없다. 어떤 전문가가 되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다른 직종에서 일하려고 한다던가 아니면 영영실패하여 평생 좋은 걸 하나도 만들수 없어도 사회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선진국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일안해도 먹고사는 곳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1등이 되는데 실패하면 바로 죽고 사는 상황으로 떨어지는, 사회적으로 매우 모욕을 받는 상황이 된다면 전문가는 양성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수준의 사람이 되는게 아니다. 단순 산수로 말하면 그럴 확율은 지극히 낮다. 그런데 실패하면 평생을 헤어날수 없는 고통에 빠진다고 하면 누가 그길을 가겠는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은 왜 선진국이 아닐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권위주의가 팽배하고 사회적 편견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아래를 매겨서 경쟁의 승자와 패자를 지독하게 구분한다. 외도를 하고 회사를 떠나 어떤 꿈을 쫒은 사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수가 없다. 사회적 변동으로 어려워진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복권뽑기를 해서 당첨안된사람은 다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우리차례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은 누구차례일까? 그러니 전문성을 추구하기 어렵다. 그러니 뭐든지 대충이 되기 쉬운데 그런 전문성으로 다른 나라와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고 선진국에게 수출을 하기도 어렵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여행은 인기가 좋다. 여행은 새로운 환경에 우리자신을 놓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사회가 만들어 내는 독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점심을 짜장면을 먹을지 햄버거를 먹을지를 판단하는 것도 판단의 연습이다. 어디로 갈것인가, 어디에 설것인가도 판단의 연습이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록을 꼼꼼히 연구하여 계획한 그대로 하는 여행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 고장을 소비하는 것이지 여행하는게 아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현대인의 문제와 선진국이 되는 문제가 심각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꼭 기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를 자선사업으로 안다. 불쌍한 사람들 돕기가 복지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아니다. 돈벌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부자가 된다음에 파이를 나누자는둥 하는 이야기는 적어도 지금의 한국 단계에서는 유효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교육비를 못내고 교육을 못받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amp;nbsp;아이를 낳지 못하는데 미래가 어디에 있는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런 말들은 임시처방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하던 지우기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사회적 보조나 다른 사람의 보조가 아니라 스스로 윤리적 기반을 단단히 갖춰서 홀로 설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럴때 그사람은 스스로 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부축해줄수도 있는 인간이 될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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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7 : 현대인의 문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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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3T11:15:10Z</updated>
	    <published>2009-11-23T11:15: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현대인들은 반복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 우리들은 대부분 우울하다. 우리들은 대부분 너무 바쁘다. 우리들은 종종 삶이 의미없는 것처럼 느낀다. 왜 그런 것일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현대병에 대한 진단은 이미 백년전부터 내려져 있다. 1936년에 나온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현대병을 보여준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계의 일부가 되어 작업하는 사람. 그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서양에서는 생성철학이니 실존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여러 사람들이 현대인의 문제를 논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그 진단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같지는 않다. 더구나 한국의 일반대중에게 이문제가 제대로 이해되고 알려져 있는가 하면 그렇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대화없는 가정, 감정표현이 없어진 기계적인 가장, 권위주의가 더더욱 사람들을 기계로 만드는 것을 강화하는 사회가 아닌가? 기계여야 한다는 당위성과 기계일수 없다는 반항심이 충돌하고 있을 뿐 전쟁에 평화는 오지 않는 것같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기계에 익숙해진 사람들&lt;/p&gt;&lt;p&gt;&lt;br&gt;&lt;/p&gt;&lt;p&gt;앞의 에세이에서 분명해졌어야 하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가 그 자체로 거대한 기계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정밀한 기계다. 기계는 부속품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그 부속품들이 고장이 나면 기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전체 기계가 멈춰선다. 따라서 사회는 그 부속품들이 고장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들은 그런 기대에 익숙하다. 직업정신을 발휘하라, 프로가 되라 같은 말 말이다. 자기가 맡은 몫의 일을 무슨일이 있어도 해내야 하는 정신을 우리는 교육받고 실행한다. 내가 망가지면 온 사회가 멈춰서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사회라는 기계는 이제 엄청나게 복잡해서 각 부품이 엄청나게 정교할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학공식처럼 내구성이 무한하지 않고 쇠로 만들어진 기계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기계는 현실사회에서 종종 아주 빨리 소모되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보통 좋은 직장으로 생각하는 직업일수록 그렇다. 대우가 좋은 이유는 그만큼의 댓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복잡한 기계는 아주 전문화된 부품을 요구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수십년간의 훈련과정을 통과해야 적합한 인재가 된다. 즉 적합한 부속품으로 만들어진다. 그러고 나면 엄청난 부하가 그들에게 퍼부어지고 결국 그 사람은 고작 몇년후면 교체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물론 그 댓가로 그들은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사회는 괜히 거대화되고 복잡해 진것이 아니다. 사회는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생산해 내는 능력을 키웠기 때문에 그렇게 된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이런 작업에 들어갈 재원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는 각 부속품들이 제몫을 하고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지 그것이 무슨 부속인지 부속품이 행복한지는 사실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속품들의 재고가 있는한 각 개인은 교체가능하고 표준화된 똑같은 존재일 뿐이다. 과학적인 논리로 만들어진 기계는 사물을 물질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측정가능한 것의 보급에는 신경을 써주지만 그 이상의 것은 사회의 책임으로 생각되어 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체가능한 복제품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같은 것이 그렇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 어떤 직업인이 된다는 것은 대개 극한의 훈련과정과 작업의 부담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강력한 직업의식 즉 부품의식을 가진다. 스스로를 그 직업과 동일시 하는것이다. 따라서 그 직업에서 시대에 뒤지거나 능력이 다한 경우 커다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사회로 부터 버려졌다는 사실을 견딜수 없어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점증하는 비극&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 현대인의 비극은 오히려 더욱 더 커지는 것같다. 그것은 두가지 이유때문인데 하나는 사회적 변화의 속도가 더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그와 더불어 사회적 구조의 복잡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할수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 세상이 전보다 빨리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대간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현재 그러니까 2009년보다 한세대전인 25년전을 생각해 보자. 1984년에는 핸드폰이 없었고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았으며 해외여행도 허가를 받아야 갈수 있었다. 생수를 사먹는 일 같은 것은 꿈꾸기 어려웠고 여배우들이 누드 사진을 찍으며 젊은날의 추억운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본과의 사이는 지금보다 훨씬 나빠서 일제제품을 쓰는 사람을 매국노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직 냉전시대가 계속되고 있었고 우리나라가 중국과 사이좋아 지리라고 생각할수 없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사회적 변화는 전문화된 부품으로서의 개인에게 심각한 문제다. 전문화된 인간은 단시간내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자신의 역할을 바꾸기 쉽지 않다. 직업의식을 가진 인간은 변화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직업이 바로 그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사회가 국경선을 넘어 세계로 퍼졌을때 사회는 새로운 부품을 외국에서 발견한다. 예를 들어 농산물은 외국에서 생산해서 가져오는 쪽이 더욱 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렇게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기술산업쪽에서도 소위 아웃소싱이라고 해서 외국의 인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발견할수 있다. 아니면 아예 외국으로 공장을 옮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어떤 전공이, 어떤 직업이 전망이 좋다고 해서 그걸 위해 전력을 다해왔는데 그 사람이 졸업을 할무렵이 되니 세상이 전부 바뀌어서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사람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런일이 요즘에는 늘상 일어난다. 누구도 10년 20년후의 일을 예측할수가 없는데 하나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교육은 장기간의 투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두번째 문제는 복잡성의 증가다. 복잡성은 시장경쟁의 결과로 대부분 증가하는 것같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 커다란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면 일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예중에 극적인 예는 니콜라스 타렙의 블랙스완에서 소개된다. 축음기가 나오기전에는 이탈리아의 도시마다, 식당마다 가수가 있었다. 아무리 인기좋고 목소리 좋은 가수라도 모든 곳에 있을수는 없기 때문에 보통의 가수도 작은 도시의 작은 식당에서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수가 있었다. 그러나 축음기가 나오자 대개의 가수들은 퇴출되고 만다. 최고의 가수의 노래를 축음기로 듣는것이 더 만족스럽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자동차가 흔해지고 인터넷이 나오기 전에는 동네마다 장사를 각자 할수가 있었다. 가격비교가 어렵고 먼곳까지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인터넷이 가격을 모두 비교해주고 자동차를 타고 가면 되기 때문에 정확히 같은 서비스라면 단 한곳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시장에서 퇴출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퇴출된 사람들은 뭘할까? 그들은 세상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살아남는다. 이제 보험도 몇가지가 아니라 수십 수백가지로 보험설계를 한다. 자동차 타이어만 파는게 아니라 세차 서비스와 합치고 휴게소를 운영한다. 수박도 그냥 수박이 아니라 유기농 수박이고 유기농 수박중에서도 여러가지로 다르게 키워진 수박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결국 이런 과정은 전문화과정을 급격하게 증가시킨다. 문제는 무선통신과 인터넷의 발달, 세계화등으로 이런 과장이 최근에 아주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말은 전문화로 가는 더욱 심한 압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따라서 사람들은 더욱 전문화되고 더욱 사회적 변화에 취약해진다. 아이들은 그저 살아남으려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자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교육비는 날로 비싸진다. 그러나 작은 사회적 변화에도 그런 교육의 효과는 크게 변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복권뽑기같아진다. 잠안자고 공부해서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명문대학에 들어가서 그 졸업장으로 인생을 보장받을까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기당한 것같은 느낌을 받고 실험재료로 쓰인것같은 느낌을 받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말&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전문화, 세계화, 복잡성의 증가따위는 피할수 없는 추세로 보인다. 그리고 엄청나게 복잡해진 시스템은 이제 한 인간의 이해력의 한도를 넘어선다. 비인간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전체 사회라는 기계를 꺼버리지 않는한 어떻게 그런 비극을 막을 방도가 보이지 않는 것같다. 그렇다고 사회전체를 정지시킨다면 그거야 말로 대비극을 불러올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들이 만들어 내는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로 부터 탈출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즉 농촌으로 돌아가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그안에서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이것은 좋은 답이 아니다. 그 공동체는 진정으로 사회로부터 분리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분리된 사회라면 그 사회는 첫째로 온통 미숙련공으로 가득찬 원시사회일 것이다. 둘째로 그 사회는 커지는 강대한 외부 사회라는 기계들의 침략에 아무런 방어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수 있는 사람들은 역으로 현실사회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즉 돈은 현실사회에서 유산을 통해 벌든, 어떤 예술작품을 팔아서 벌든 그렇게 벌고 살기만 마치 사회로부터 독립된 것처럼 사는 것뿐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해결이 필요하지만 본질적인 해결이 안된다면 임시처방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같다. 그렇지 못할때 이런 추세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할수 없을 것이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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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6 : 기계를 발견하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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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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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3T10:10:16Z</updated>
	    <published>2009-11-23T10:10:1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p&gt;&lt;p&gt;&lt;/p&gt;&lt;p&gt;&lt;/p&gt;&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어떤 것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다면 그래서 그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일단은 우리가 무엇에 의해 조종당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나는 그 작업을 기계를 발견하기라고 부른다. 우리 주변에는 물질로 되어 있는 기계가 많이 있다. 그러나 물질적 기계는 논리적 구조를, 그 설계도에 표현되어 있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낸것 뿐이다. 내가 말하는 기계란 논리적 구조를 말한다. 사물을 정의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의 인간사회는 이것으로 가득차 있다. 너무 가득차면 그게 보이질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억지로 그걸 보려고 해야 보인다. 기계는 편리한 도구다. 기계를 발견하고 기계가 만들어 내는 불행한 결과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것을 미워하거나 피해서는 안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나는 때로는 우리가 더더욱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사람들은 합리주의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말로 바꿔 표현한다. 우리는 더 약속을 잘 지키고 더 엄격하고 정밀하게 맡은 일을 해내고 대충대충 일하고 행동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다만 이것을 그자체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 그것은 윤리적 목표가 아니다. 다만 살아가는 수단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명이란 무엇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 우리는 수천년간 축적된 문명적 결과물에 둘러쌓여있다. 너무나 완벽하게 그것에 둘러쌓여서 이제 우리는 그것밖에는 보지 못한다. 그건 그야말로 '전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마시는 물만해도 그렇다. 우리는 물없이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도시에 살고 있다면 엄청난 양의 물이 정화되어 사람들에게 배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것이다. 요즘은 사실 시골이라고 해도 대부분 수도물을 먹는다. 마시는 물은 가게에서 파는 생수만 먹는 사람도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 물이 배급되는 체계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정교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을 &amp;nbsp;구하는 노력따위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채 손만 뻣으면 물을 구할수가 있다. 이런 시스템이 바로 문명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렇다면 이런 문명의 뿌리는 무엇일까. 문명이란게 뭘까. 문명이란 지식과 물질의 축적물이다. 우리가 살면서 얻게된 작은 지식들을 수없는 세월동안 축적한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런데 그 축적은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약해빠진 진흙으로 고층빌딩을 지을수는 없다. 자체 무게를 못이기고 붕괴할것이고 비가오면 유실되어 무너질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정교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거대한 도시는 유지될수 없다. 사방에서 사고가 날것이고 도시는 사람이 살수 없는 지옥으로 변할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축적을 돕는 것에는 몇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념화하는 것이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분류를 하고 정의를 한다. 이것이 더 나아가면 언어가 된다. 정교한 언어가 있으면 지식은 퍼질수가 있고 집약될수가 있고 후손에게 물려줄수가 있다. 따라서 문명의 성장속도 즉 문명적 결과물의 축적은 훨씬 빨라진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그저 언어로는 불충분하다. 높은 빌딩을 짓기위해서는 우리는 한없이 튼튼한 골조를 짜야 한다. 지금처럼 거대한 문명의 축적이 이뤄지기 위해 중요했던 것이 바로 수학이다. 수학을 통해 우리는 그야말로 한치의 틈도 없는 튼튼한 논리의 벽돌로 지식을 축적한다. 그래서 지식은 더 빨리 더 높게 축적될수가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 튼튼함은 놀라워서 수천년전에 증명된 피타고라스의 정리같은 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달에서도 지구반대편에서도 유효하다. 단지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온 이후 그것의 한계가 알려졌을 뿐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뉴튼시대에 미적분학이 만들어졌고 과학은 분류하는 것에서 실험하고 측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질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정식들이 만들어졌고 세계를 기술하는 수학적 이해는 훨씬 더 강력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더욱 일관성있는 지식의 축적이 가능해 졌다는 것을 말한다. 뉴톤은 마술사다. 뉴톤의 물리학이후 그의 손가락이 사물을 가르킬때마다 우리는 거기에서 매우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들을 보게 되었다. 유령과 정령들은 그야말로 마술처럼 사라졌다. 어둠이 빛에 물러나듯 세상은 한순간에 다르게 보이게 되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명과 축적의 관계는 분명하지만 약간 추상적으로 들릴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주 중요하고도 원초적인 것으로 잠시 가볼 필요가 있다. 그게 수학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수학과 기계&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누군가가 칠판에 양자역학의 방정식이라던가 복잡한 적분식 같은 것을 써놓으면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식들은 무슨 마법사의 주문처럼 보인다. 그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그 몇줄의 수식은 거대한 고층 빌딩처럼 보인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이런 간단한 수학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 더하기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셋이 나온다. 그리고 계속하면 커다란 수가 나온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더하기에서 빼기가 나오고 곱하기 와 나눗셈이 나온다. 구구단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아주 작은 벽돌이다. 우리는 구구단을 증명하고 그결과를 외운다. 그러면 구구단이 어떻게 증명되는지 따위는 잊고도 그걸 잘 쓸수가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구구단을 외우고 나면 이제 여러자리의 숫자를 곱하는 방법을 배운다. 일단 그 방법을 습득하고 나면 그 방법이 왜 통하는가 따위는 이제 잊어버릴수 있다. 우리는 정해진 방법을 따르면 올바른 답이 나온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리고 나면 우리는 0이라던가 -2같은 음수들을 정의하고 도입하고 계산방법을 배울수가 있다. 하나를 배우고 하나를 습득할때마다 우리의 능력은 급격히 증가한다. 교육적 목적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것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를 이해하고 아는게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냥 공식을 외우는 것으로 충분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 공식이 바로 논리적 건축이 만들어낸 축적의 결과물 중 하나다. &amp;nbsp;고급수학에서 이것들은 계속된다. 수열이 뭔가를 배운다던가 방정식이 뭔가를 배우고 행렬에 미적분에, 텐서에 복소함수로 계속 쌓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는 최종적 결과를 외워서 그걸 써먹을수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은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자동차의 부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각 부품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알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각 부품들은 표준화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모든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는 것도 아니다. 타이어는 타이어회사에서 만들고 엔진은 다른곳에서 만들고 조립은 또 다른 곳에서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수학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복잡한 공식은 수많은 논리적 단계를 쌓아올린 거대한 건축물이지만 그 단계 단계를 모두 한사람이 한것이 아니다. 여러사람들이 여러개의 논리적 벽돌을 만들면 그것들이 조합되어 복잡한 공식 즉 더 커다란 논리적 벽돌이 만들어 진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단 논리적 벽돌이 만들어지면 기계가 그러하듯이 그것들은 열심히 본래의 일을 한다. 즉 뭔가가 주어지면 공식에 따라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수학공식은 기계로 말하자면 엄청나게 단단한 부속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망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동차는 그렇지가 못하다. 물질로 이뤄진 부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기 때문이다. 수많은 부품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는 중요한 부분의 아주 작은 부품하나만 망가져도 움직이지 못한다. 계속 부품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자동차라는 기계의 전체적 사용가능 기간은 모든 부품중에서 가장 약한 부품의 사용기간과 마찬가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 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이 논리적 구조를 만들어 내는 일은 매우 유용해서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하늘을 나는 일이 일상화되고 산을 깍고 바다를 메울 능력이 생길정도다. 이것은 모두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축적된 문명을 이용하면서 협력하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협력이 가능한것은 사회를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하나의 회사만 해도 거기에는 내부적 구조가 있어서 누가 무슨일을 하고 어떻게 역할 분담이 되는가가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그런 구조 이러저러하게 하면 이러저러하게 된다는 생각들이 바로 모두 기계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때문에 오늘날은 그야말로 기계가 아닌것이 없다. 우리 주변에서 논리를 따지지 않고 어떤 구조를 가지지 않은 것이 뭐가 있을까? 적어도 그런 것들과 관련되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 예술품도 사회적 배급망과 보호조치에 따라 유지되고 만들어지고 배급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기계가 아닌것을 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사회에는 기계적 논리가 가득차 있다. 한 인간은 인간적일수 있지만 인간들이 모인 법인이라는 시스템은 비정하지 않기가 힘들다. 거대한 시스템을 누가 혼자힘으로 조절할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이런 사회에서 태어나서 교육받고 살아간다. 따라서 기계와 융합되고 기계는 도구 이상의 것이 되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p&gt;&lt;p&gt;&lt;/p&gt;&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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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5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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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author>
	    <updated>2009-11-23T08:44:34Z</updated>
	    <published>2009-11-23T08:44: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p&gt;&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대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끝임없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듣고 또 들어서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도 가능한 수많은 하나의 시점에 불과할뿐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스스로 판단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절대적 진리.&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 앞에 물한잔이 있다고 하자. 물은 물분자로 되어 있다. 물분자는 수소원자 두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이뤄져있다. 그것으로 물잔에 들어 있는 것은 끝이다. 물론 수소원자와 산소원자가 뭔지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적인 원자론이 나올것이고 그런 식으로 더 작은 곳으로 가면 더 깊은 이론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물안에 물분자 말고 다른 작은 불순물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물잔안에 들어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소원자와 산소원자로 이뤄진 물분자들이다. 그리고 모든 수소원자와 모든 산소원자는 똑같다. 그래서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한잔의 물에 대해 그 양이 얼마라는것, 무게가 얼마고 온도가 얼마라는 것을 말 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이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물을 이해하고 물은 그 신비성을 잃어버린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러한 과학적 사실도 부정될수가 있을까? 이것만은 절대적 진리가 아닐까? 이런 과학적 물질적 태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전에는 사람들은 비과학적으로 생각했더랬다. 즉 신령한 우물에서 퍼온 물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식이다. 그 신령은 현명하여 많은 것 내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물한잔을 두고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미신이라고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나무나 우물에 정령이 산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보다 과학적인 태도로 그런 존재를 부인하는 자신들이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그런 미신적인 사람들을 비웃는 현대인들도 애인이 준 목걸이라던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시던 손거울 같은 것을 볼때 그것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물한잔이라고 하지만 그 물한잔이 몸이 아프신 어머니가 애써서 입시공부하는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퍼온 한잔의 물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 물이 단순히 물분자로 이뤄진 물이고 따라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져다준 물이나 내가 떠온 물과 같은 것이며 교체될수 있는 것일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과학적으로 볼때 어머니의 물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져온 물과 다르지 않다. 과학적 사고는 사물에 관념적 의미를 붙이고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물은 그저 물분자로 이뤄진 물이다. 다만 우리의 머릿속에서 멋대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머니의 물은 다른 사람이 떠다준 물과 다를게 없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럼 과학적 사고는 틀린 것인가? 물한잔에는 신령이 깃들고 있는가? 어머니의 마음이 녹아 있는가? 우리가 좋은 기계로 잘 측정하면 그런 걸 측정할수 있을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모든 질문은 그 질문의 전제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과학적으로 말해 물은 물분자로 이뤄져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왜 모든 가능한 측면보다 그것이 더 본질적인가. 그것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인가라고 했을때 그것은 진실은 아닐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현실이 곧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우리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유령&lt;/p&gt;&lt;p&gt;&lt;br&gt;&lt;/p&gt;&lt;p&gt;샘물이나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유령을 본다는 사람을 비웃는 현대인들이 많다. 그것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정령을 사진으로 찍을수 있을까? 유령이 무게가 나가는가? 그건 미신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똑같은 사람들이 무게도 나가지 않고 사진으로 찍을수 없는 민주주의 같은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돈을 들이고 희생을 한다. 인간의 평등이나 자유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다. 민주주의는 사진으로 찍을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무게가 나가는가? 민주주의는 실재로 존재 하는 것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는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 가거나 민주화 역사의 기념이 되는 곳에 가서 옛일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애쓴다. 그런 곳에는 흔히 민주화 역사의 영령들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미국에도 워싱톤에 가보면 그들의 역사, 즉 링컨이니 마틴 루터킹이니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에 관한 기념물들이며 장소가 늘어서 있다. 외계인들이 어느날 지구에 온다면 그런 기념물들과 이집트의 피라미드며 귀신을 모시는 사당들이 서로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릴까?&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렇다면 매우 과학적인 현대인들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며 역사를 쓰고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그 본질을 보았을때 물한잔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나 성황당 나무에 귀신이 있다는 것과 다른 것일까?&lt;/p&gt;&lt;p&gt;&lt;br&gt;&lt;/p&gt;&lt;p&gt;여기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산이 있다고 하자. 이 산의 나무며 돌이며 풀이며를 모두 가져다가 샅샅히 과학장비로 무게를 달고 분자구조를 분석한다고 한들 그안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발견할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이산은 너무 아름답다. 이산의 나무와 돌과 풀에는 모두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다고 말하고는 그산에서 조그만 돌조각 하나를 가져다가 추억으로 삼는다고 하자. 이것은 미친짓이거나 문명적으로 퇴보한 인간이 가지는 생각일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만약 그렇지 않다면 물한잔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미신적이지도 문명적으로 퇴보한 것도 아니지 않을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는 흔히 우리와 다른 문화, 다른 상식체계를 볼때 거기에 간단한 이유를 붙인다. 그들은 어리석어서 그들은 본래 폭력적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본다. 과거의 사람들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와 다르다. 반드시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과학에 기반하여 알고 있는 것으로 그것을 볼때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쉽게 폄하한다. 그저 그들은 어리석고 미신적이라 즉 아직 문명화되지 못하고 머리도 나쁜 인간이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수백년 아니 수천년전의 사람들의 글들을 보면 그안에서 본질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기는 커녕 우리는 플라톤이나 예수나 부처의 말을 공부한다. 우리는 그들을 원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주의같이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매우 실질적인 것이며 과학과 충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쉽사리 과거의 그들이 믿는 것은 그저 과학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미신이며 과학적 사고로 간단히 극복될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실은 진실은 정반대일수 있다. 과거의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을 덜 가지고 있었던 대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유령과 정령을 사방에서 볼수 있었다. 과학적 지식에 중독된 우리는 그들이 보던 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그들이 산과 들과 집을 볼때 그것들은 의미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는 그저 분자조각들만 본다. 그러면서 그들을 비웃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과학적 사고가 하는 일들&lt;/p&gt;&lt;p&gt;&lt;br&gt;&lt;/p&gt;&lt;p&gt;내가 그것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과학적 사고란 의미를 억누른다. 의미를 빼앗아 버린다. 사물을 가치판단의 대상이 될수 없게 한다. 사물을 객관화하고 그 객체에 대해 주체인 나나 우리를 영원히 격리해 버린다. 내가 목이마르건 그것이 어머니가 떠다준 물이건 물은 물이다. '우리 멋대로' 생각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제 저물은 나와의 관계를 잃어버린다. 어디에나 있는 물분자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의 본질을 알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세상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아무 가치가 남아 있지 않다. 과학적으로 말해서 나와 우리 아이는 아무런 연결점이 없다. 내 유전자를 주었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지 그걸로 무슨 의미가 탄생하지 않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나는 왜 아이를 사랑하는가. 냉엄한 과학적 논리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아이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거나 유전자의 속박때문에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포유류의 하나인 나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보내는 아이의 표정에 유혹되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돌봐주고픈 욕망을 느끼게 설계되어 있다. 아이를 볼때 우리의 머리속에서는 화학물질이 분비되고 온몸에 세로토신이 가득찬다. 개들도 같은 방식으로 인간을 이용하여 인간에게 기생하여 살고 있다.&lt;/p&gt;&lt;p&gt;&lt;br&gt;&lt;/p&gt;&lt;p&gt;남녀간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유전자가 가진 종족번식을 위한 기능중의 하나이다. 이성들은 서로에게 성적으로 이끌리고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러므로 남녀간의 사랑이란 기본적으로 섹스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내 아이나 내 연인뿐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떨어져서 영원한 타인이 된다. 거기에는 아무 연결점이 없다. 우리는 그들의 본질을 알고 있다. 그들의 본질은 단백질과 지방과 칼슘덩어리이며 유전자가 만들어낸 물질이며 포유류이다. 그들은 황인종이거나 흑인종이거나 백인종이며 미국인이거나 한국인이거나 일본인이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본질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과정은 여기서만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심지어 스스로로부터도 타인이 된다. 우리의 팔다리를 객체로 보는 순간, 우리의 팔다리는 기계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는 것이 된다. 우리의 얼굴을 객체로 보는 순간 우리의 얼굴도 객체가 된다. 우리가 그것들을 더 빠르고 강한 팔다리로 교체하거나 더 멋진 얼굴로 바꾸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 그것들은 그저 물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자아의 한조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이미 우리의 자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객체로 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감정조차도 남들의 것과 교환하거나 기계의 반응과 교환할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낸다. 무언가를 객체로 만들고 그것의 본질, 그것의 작동원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순간 그것은 본질적 가치를 잃는다. 우리는 약물이나 각종 방법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조작한다. 멋진 감정으로 우리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이제 감정도 슈퍼마켓에서 사는 생선한마리 두부 한모처럼 소비하고 사들일수 있는 것이 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 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확실한 것, 흔들리지 않는 상식의 기반은 정말로 확실한 것일까. 우리가 주변을 둘러볼때 그안에서 수많은 유령을 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중 어느 쪽이 정말로 현명한 것일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유령을 부리는 능력은 마술이라고 말해진다. 히틀러가 사람들을 이끌어 전쟁을 일으켰을때 사람들은 그가 마술을 부리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고 들었다. 그것은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나라 여기저기에는 그리고 전세계 여기저기에는 원숭이 바위니 큰얼굴 바위니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지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풍경은 처음에는 그렇게 확실한게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저기 해골바위가 있다고 말한 순간 우리는 거기서 해골을 본다. 일단 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것을 한번 보게 되면 보지 못하게 되기가 힘들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히틀러 같은 사람은 마르크스같은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다던 것을 보게 만든다. 그들이 손을 들어 해골바위다 라고 외치는 순간 많은 사람들 앞에 해골이 나타난다. 해골이라는 유령을 불러내어보게 하는 능력은 과연 마술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내가 말한 것이 과학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과학은 대단한 것으로 우리가 가진 문명의 중요한 일부다. 마술사중에 가장 강력한 마술사중의 하나가 바로 과학자다. 뉴톤이나 아인쉬타인은 모두 마술사다. 그들도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만들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과학이라는 마술은 너무도 강력해서 사람들이 거기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강력한 과학이라는 마술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동차는 수많은 사람들을 교통사고로 죽이지만 자동차가 사악한것은 아니다. 그것은 편리한 도구다. 과학기술문명을 버려봐야 우리는 아주 불편하게 살뿐이다. 아주 좋은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자동차를 인도에서 몰아서는 안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는 우리가 허공에 그은 선이 편리를 위해 임시로 그어놓은 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절대적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을 그 선을 지워가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는 것은 아는 것을 지워가는 작업이다. 그렇게 해서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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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4 : 문화란 무엇인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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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0T15:13:51Z</updated>
	    <published>2009-11-20T15:13: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이라는 말을 조금 확대하면 문화라는 말과 우리는 만나게 된다. 상식은 모두에게 같은 것이어야 하지만 문화는 같은 문화라도 다른 사람에게 다른 것을 말해줄수 있다. 적어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이 문화가 없으면 살수가 없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서 먹고 살고 숨을 쉰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란 무엇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뭘 입고 뭘 먹고 어떤 집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문화는 말해준다. 문화는 편리한 비서나 지침서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문화는 가능한 답을 제안해 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을 보자. 인간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가 없다. 표면적으로 인형이나 로보트만 나오더라도 모든 이야기는 결국은 인간이 관련되어 있고 인간이 사는 모습에 어떤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우리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야기는 모두 잠재적인 갈등을 포함한다. 즉 개인의 삶을 택해야 하는가, 가족의 질서를 존중해야 하는가, 돈을 택할것인가 사랑을 택할것인가, 화려한 삶을 꿈꿔야 하는가,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하는 여러가지 선택적 상황에 답하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표면적으로는 갈등구조가 없어보이는 문화물들도 사실은 모두 생각해보면 어떤 가치가 그 가치에 상반되는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거나 그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산속에서 아무 일없이 수행하는 스님의 일상을 보여주면 거기에는 갈등이 없는 것같지만 거기에는 관객과 이야기속의 스님과의 갈등이 있다. 즉 스님은 저렇게 사는데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훌룡한 문화의 특징&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가 가치판단에 대한것이라고 할때 훌룡한 문화란 모든 가능한 상황에 있어서 즉 이미 경험했고 기록되어진 상황뿐만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상황에서도 행동의 지침을 줄수 있는 종합적이고 다면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럴수 없을 때 그 문화는 무력한 것이 되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때문에 문화를 끝없이 길고 길기만한 가치판단의 목록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문화는 일반화의 능력이 있어서 새로운 상황에서도 대처가 가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가지 일들은 어떤 내부적 구조와 논리를 가지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때문에 어떤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을때 우리는 그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 한가지를 기존의 문화에 추가함으로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수는 없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의 궁극적 산물은 하나의 가상적 인간형, 종합적 인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종합적 인격은 심지어 작가가 글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말하지 않는 어떤 질문에도 답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미국 사회가 만들어낸 인격중의 하나는 서부의 정의의 카우보이다. 그것은 지금 여러모로 계승되어 배트맨 씨리즈 물같은 것으로 모습만 바뀌어서 존재한다. 서부극에 익숙한 사람은 존웨인을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트맨을생각해 보라. 어떤 상황에 도달했을때 존웨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배트맨이라면어떻게 할까를 우리는 물을수 있다. 그러면 거기에는 답이 있다. 그 인격은 과거의 인물이라도 현재의 가치판단문제에도 문제없이 답을 내려준다. 그것이 문화적 인격의 유용성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예를 들어 크게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 대장금을 생각해 보자. 그 이야기는 하나의 인간 장금이의 성격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드라마에 빠져든 사람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 처해 있을때 장금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라고 질문하면 어떤 답을 받을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문화의 유용성이라는 것이다. 더하여 우리는 임의적으로 장금이라는 캐릭터에 새로운 사실들을 마구 첨가할수는 없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여러가지 사실들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본이 만들어낸 인격에는 사무라이가 있다. 사무라이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만화에 등장하면서 다면적 인격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 가상의 공간에 있는 사무라이는 일본 대중에게 답한다. 당신은 갈등의 순간에 있는가? 그렇다면 물어라, 사무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생각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행동을 따라하며 유교적 전통을 믿는 사람은 공자나 맹자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하고 노장을 믿는 사람은 노자나 장자라면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한다. 이것이 문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 문화의 문제&lt;/p&gt;&lt;p&gt;&lt;br&gt;&lt;/p&gt;&lt;p&gt;문제는 한국이다. 우리는 한국문화를 대표할 강력한 문화적 인격체를 상상할수 있는가? 우리도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선비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선비라는 가상적 인격체에게 물으면 답을 준다. 그것이 한국문화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전통의 그것은 선비이지만 선비는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인격의 모형으로 남은게 아니라 처절히 상처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거의 모든 전통에서 유교적인 것을 뽑아내고자 한다며 사실상 전통에서 무조건 벗어나는 것이 진보적인 것, 현명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같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은 해방이후의 경험도 영향을 준것이지만 일제시대의 교육이 만들어 내기도 한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것은 어떤 의미로 사무라이가 선비를 쳐죽인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들에게 선비는 비루하여 사무라이에게 죽었으니 너희들도 이제부터 사무라이로 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식민지 교육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해방은 되었지만 선비는 부활하지 못했다. 선비의 부활이니 계승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과거로의 회귀라며 펄쩍 뛸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선비는 이름이 선비인 것이지 역사 그대로의 선비여서도 안되고 일수도 없다. 카우보이도 사무라이도 역사 그대로의 인격체가 아니다. 심지어 예수나 부처나 공자도 끝임없이 재해석되는 것이다. 문화적 인격체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 항상 진화하고 발전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여기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한마디 하고 지나갈 것이 있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 한다. 이것을 허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말을 들으면 화를 내는 사람도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표현이 허구라고 생각지 않지만 허망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한국인의 정체성은 유전자에서 나온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즉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 사람이 그 단일민족의 피 즉 한국인의 유전자를 가졌다면 그사람을 한국인으로 생각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미국인도 일본인도 이렇게 미국인과 일본인을 정의하지 않는다. 심지어 로마인도 그렇게 정의하지 않았다. 발전한 나라는 미국인답다는것, 일본인답다는것, 로마인 답다는 것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추상적 가치다. 자유의 가치건 은원을 아는 가치건 준법정신이건 추상적 가치다. 그것으로 예를 들어 일본인다운 일본인을 말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노랑머리를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는 한국인인가 아닌가? 우리는 화를 내야하는가 별일 아닌가. &amp;nbsp;뭘기준으로 우리는 그녀가 한국인답다고 말하는가.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통일성의 문제&lt;/p&gt;&lt;p&gt;&lt;br&gt;&lt;/p&gt;&lt;p&gt;여기서 다시 강조되어야 할 한가지가 바로 통일성의 문제다. 문화는 수많은 사안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통일적 구조를 가지고 내려주는 것이다. 자체모순이 있는 문화, 편협한 문화는 그 적용에 있어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용하지 못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통일성이 강조되어야 하는 한가지 이유는 문화의 생산과 배포에 대한 문제때문이다. 문화는 수많은 경험이 종합되어 이룩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쉽사리 창조되고 계량될수 없다. 문화는 단순한 경험의 나열과 규칙의 나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응축해서 통일성이있고 일반성이 있게 만들어 내야 쓸모있는 문화가 만들어진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러한 통일성의 문제는 특히 생활의 복잡성이 전과 비교할수 없게 달라진 오늘날 그러하다. 수백년전의 농부에게 모든 일은 정해져 있고 가치판단의 순간은 몇번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전세계의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살아가는 시대에 조잡하고 임의적으로 조합한 문화는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따라서 문화는 그러고 싶다고 해도 지배계층이나 피지배계층이 쉽사리 즉석에서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체 모순이 심한 문화는 결국 그 문화를 유지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힘에 의한 무력통치보다 민주정부가 더 효율적인 이유와 같은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두번째로 문화는 쉽사리 섞여질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두가지 문화는 가치판단에 있어서 충돌을 일으키고 그 충돌은 대부분의 경우 한개인의 차원에서 해결되지 못한다. 결국 문화의 충돌은 발전적 계승이 없는 경우 내부적 모순으로 가득찬 가치관을 만들어 내거나 한쪽문화를 완전히 파괴하게 되거나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게 만든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는 낭만적 생각으로 문화적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며 대한민국 사회의 정체성을 세우는 문제가 매우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혈통적으로 한국인이라도 그 머리에 들어있는 가치관이 개척자정신이고 사무라이정신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그는 한국사람이 아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 가치관에 따르면 일본의 천황을 접견하는 일에는 황송해 하고 우리나라 고궁자리를 밀어버리는 일에는 별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으며 일본식 문화상품을 들여와 일본문화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에는 보람을 느끼지만 우리 고향산천을 홰손하고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영구히 파괴하는 것은 선을 위한 악의 제거라고 생각한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마지막으로 사회적 개혁을 원할때 우리는 종합적 생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기존의 생활패턴은 그대로 두고 자연을 보호하자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우리의 생활패턴은 복잡한 문화적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예를 들어 선비가 달밤에 달구경을 하면서 술을 한잔하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집앞에 심은 나무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국화를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동네의 동산에 올라 동내풍경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술한잔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때까지 마시지 않고 안주가 적다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왠지 그럴것 같지 않은가? 이 선비는 마구 폭식하고 다이어트 하느라 고생할까? 동네의 터를 몽땅 헐어서 커다란 고층아파트로 동네를 다 채우자고 할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자연보호를 하자고 백마디 천마디를 하며 사실을 나열하고 명분을 나열해 봐도 사실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 가치판단이 안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다른 가치판단들과 종합적 결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사람들에게 납득될때만 자연은 아름답게 보존될수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 말&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의 원형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우리가 대개 성인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예수,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는 훗날의 사람들이 재해석하고 발전시킨 문화의 원형들이다. 한국의 문화가 독자적이라는 말은 천여년의 세월동안 여러가지 문화의 원형을 재해석하고 발전시켜 통일성을 만들어낸 하나의 독립적 문화적 원형으로 한국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뜻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하나의 독립적 문화는 하나의 독립적 가치판단의 체계이며 이것이야 말로 대안적 삶에 대한 답이다. 한류에 대한 인기가 어느정도 아시아권에 있을수 있는 이유는 부족한 대로 일본과 한국이 서구적 가치관에 대한 대안적 삶의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대안적 삶이란 따라서 삶에 있어서 어느 한가지 측면만을 바꾸는 일로 이룩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에서 바퀴만 타이어에서 소달구지 바퀴로 바꾸자고 하는 것과 같아서 결국 무리한 곳이 생기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오늘날 정치나 경제는 문화라는 토양에 달린 열매다. 한국의 경제는 한국의 문화가 만들어 낸 토양에 달린 열매다. 상당부분 전통윤리의 장점에 따라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비약없이 즉 남의 것을 그냥들여오는 일 없이 계승발전시키는 일에 신경써야 할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이나 중국의 식민지가 되거나 흡수되어 버릴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종합적 삶의 관점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렇다면 문화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소수의 계시를 받는 사람들만 신으로 부터 받은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는 어떻게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는 것일까. 문화의 뿌리는 형이상학이다. 문화의 내부적 구조로 통일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물질을 넘어 있는 곳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것이다.&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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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3 : 상식의 원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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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author>
	    <updated>2009-11-20T09:07:42Z</updated>
	    <published>2009-11-20T09:07:4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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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p&gt;&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이란게 뭘까.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 :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이 없는 것을 몰상식하다고하는데 몰상식한 행동이란 우리가 피해야 하는 행동으로 보통 간주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런데 상식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의 차이&lt;/p&gt;&lt;p&gt;&lt;br&gt;&lt;/p&gt;&lt;p&gt;나도 그렇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상식이라는 녀석이 층층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사실은 여기저기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내게 있어서는 고등학교 때의 경험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는 중학교때는 서울의 봉천동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때는 신월동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두학교가 서로 아주 달랐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중학교의 아이들은 짓궃은 정도를 넘어 거의 범죄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루도 반에서 주먹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일이 없었고 싸우면 아주 심각하게 싸워서 피가 튀기는 흉흉한 분위기 였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몽둥이 같은 매로 두들겼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포커를 하고 음난물을 돌려봤다. 아이들의 분위기는 매우 불평등해서 주먹이건 공부건 지식이건 운동이건 뭔가 잘난 놈들은 잘난척하면서 살지만 머리가 좀 떨어지거나 담이 약한 녀석들, 친구가 없는 녀석들은 비참하게 놀림감이 되는 분위기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세상은 본래 이런 줄 알았던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났다. 나는 고등학교 3년동안 주먹싸움을 단한번도 내눈으로 목격한 적이 없었다. 전혀 거칠은 사람이 아닌 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녀석에게 거칠게 굴었다가 아이들을 깜짝놀라게 한적은 있다. 중학교의 상식대로 남자라면 참지 말고 주먹을 날려야 할 순간에 그렇게 했는데 그게 고등학교의 상식을 깬것이다. 아이들은 화가 났다기보다는 전혀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보는 듯하게 반응했다. 노출을 즐기는 바바리맨 같은 사람을 볼때 우리는 그런 반응을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만 다른게 아니다. 대학교에 가자 나는 우리 고등학교가 아주 이상한 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고등학교의 교장이자 재단이사장은 장성출신으로 학생들 교련을 많이 시키고 복장 검사를 아주 많이 했다. 조회때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늘어서 있으면 군대사열하듯이 모두 크게 구호를 외치며 교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교육은 전적으로 입시의 성적위주로 공부못하는 아이들은 한구석에 치워두고 공부잘하는 사람만 대우받는 시스템이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고3때는 우열반을 일본어반이라는 이름으로 편법으로 만들었는데 고려대학교 다니던 선배들이 우리반에 오려다가 교감에게 밀려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반에 있는 아이들은 전부 서울대갈거라면서 아이들 꼬시지 말라고 말이다. 실제로 우리반아이들은 서울대에 원서를 내라고 굉장히 강요를 당했다. 과에 상관없이 적성이나 취미에 상관없이 무조건 서울대였다. 내친구중하나는 서울대에 합격하고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다. 합격하고 보니 왜 이런 학과에 내가 가는지 알수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대학교에 가서 전국의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니 우리 학교가 유달리 이상한 학교였다. 내가 당연하게 상식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다른 학교들에서는 상식이 아니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층층의 구조에 대한 경험은 훗날에도 계속되었다. 대학은 대학마다 조금 다르다. 하물며 나같이 외국 대학을 경험해 보거나 외국 사회를 경험해 보면 국내대학과 외국대학의 상식차이를 느끼고 한국 사회와 외국 사회의 상식차이를 느낀다. 그럴때마다 나는 상식은 상식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이 상식이 아니라면 도대체 상식이란 녀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amp;nbsp;&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의 원천&lt;/p&gt;&lt;p&gt;&lt;br&gt;&lt;/p&gt;&lt;p&gt;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를 잘 생각해 볼수 있는 것은 더 더 어린 시절로 더더 단순한 삶을 살았던 때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친구도 학교도 아직은 낯설어 우리 집안이 온세상 같던 그런 시절이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지금와 돌아보면 집안과 집안사이에도 당연히 상식이 틀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어떤 집에서는 집안 정리를 안하면 매우 혼나지만 어떤 집에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집에서는 대학교갈때까지 라면도 끓여먹어본적이 없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7-8살 정도된 아이들이 직접 라면끓여먹고 밥챙겨 먹는다. 어떤 집은 피아노 배우고 수영연습하고 책읽고 영어공부하는 것이 상식인데 어떤 집은 밖에서 친구들과 알아서 놀면서 시간보내는 것이 상식이다. 세수하는 방식, 식사하는 방식, 옷차림새, 말투, 화가 났을때 반응하는 방식이며 대화하는 방식등이 모두 다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 모든 상식들의 원천은 누구인가. 부모님이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부모님이 하는 말과 행동을 무조건 기준으로 삼게 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아이들은 물병을 깨거나 넘어져서 상처를 만들어 피를 흘리거나 깜짝 놀랐을때 부모의 안색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부모의 표정에서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를 대개 판단하는 것이다. 피가 철철나고 아프다고 무조건 야단법석을 부리는게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 처럼 반응이 습관화되어있지 않다. 아이들이 피가나면 부모들이 큰일난 표정을 짓고 그런 행동을 한다. &amp;nbsp;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모든 일에는 나름의 가격표같은 표지가 붙는다. 이건 큰일난 일이고 이건 소동피워봐야 핀잔받을 일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부모님은 모두 중요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더 중요한 사람이 있는데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그건 대개 아버지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집안에서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하자. 장난감을 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주말에 공원에 놀러갈수 있는가 없는가. 티브이 보는 일을 금지시키고 해제시키는 것을 결정하는 데 누가 더 강력한 판단력을 보여주는가. 이건 한편으로는 집안의 권력구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집안에서 사물의 가치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중심이 되는 존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형식적으로는 아버지가 존중받지만 실은 우리집안일의 판단은 모두 어머니가 내린다는 집안도 많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결국 실질적으로 누군가가 결단하면 그일은 하는것으로 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상식의 원천이다. 아이는 질문하지 않고 그사람의 행동, 판단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상식은 마치 등에서 등으로 불길이 번지듯이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전달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사물의 기초가 되는 기본적 가치판단을 전해 준 사람이며 아이들은 그 기반위에 자신의 경험을 쌓아 올린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살면서 우리의 상식은 많이 변하지만 사실 사물을 볼때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것을 통해서 보고 대개는 우리의 신념을 강화한다. 즉 내가 맞다고 말해주는 증거를 더 쉽게 보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런 증거들을 경험에서 찾는다.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둔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극적으로 싫어해서 그런 행동을 매우 싫어하지만 자라서는 또 쉽게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저러한 경우는 통하는건 주먹밖에 없다. 이러 저러한 인간은 좀 맞아도 된다는 식의 상식을 강화하면서 크기 때문이다. &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몰상식&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는 이 상식체계에 갇혀 있다. 알고 있는 상식을 부인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은 있는 집을 부시고 새로운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건 일종의 비약이고 도약이기 때문에 새로운 집이라는게 지어질수 있는 건지. 자신이 없다. 알고 있는 상식을 한번 포기했는데 더 좋은 상식체계에 안착하지 못한다면 우린 그저 사는 데 확신만 없어지는 불안한 상태가 될뿐이다. &amp;nbsp;&lt;/p&gt;&lt;p&gt;&amp;nbsp;&amp;nbsp;&amp;nbsp;&lt;/p&gt;&lt;p&gt;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보수적인 사람들은 깊은 생각과 경험없이 마구 상식을 깨는 젊은이들을 철이 없다고 본다. 그래봐야 망가지는 것은 자기 인생일 뿐이라는 것이며 원한다고 깨끗이 과거를 지우고 다시 돌아올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우리는 때로 상식을 넘어서고 싶어진다. 갇혀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뭔가가 잘 안된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표면적이고 지엽적인것이 아니라 원천적이고 뿌리에 있는 것이 잘못된것같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을 쉽게 넘어서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의 병을 우리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른다. 정신분열증의 증세중 대표적인 것이 환각증세를 보이는 것 그리고 상식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읽을수 있다고 믿게 되던가 세상은 내일 망한다던가 아내가 알고 보면 외계인이라던가 하는 황당한 만화적 상상을 진심으로 쉽게 믿게 되는 것이 정신분열증 환자들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정신분열증 환자는 쉽게 상식을 포기한다. 그리고 보수적인 분들이 정신없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될거라고 믿는 그런 상태가 되어 일상적인 가치판단을 내리는데 실패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헌신적인 아내가 자신을 이용하고 박해한다는 오해를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정신분열증의 정확한 원인도 치료법도 지금은 없다. 다만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크게 영향을 준다는것을 알고 있어서 현재의 정신분열증 치료제는 이 도파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며 도파민의 양을 고의적으로 바꿔주면 멀쩡한 사람도 일시적으로 정신분열증적 증세를 보이게 만들수 있다고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환각이나 환청증세를 만드는 것에는 마약이 있다. 강렬한 음악이 흘러 넘치는 컨서트에 참석하는 것은 마약같은 효과를 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집단으로 영화를 볼때 즉 집단이 동시에 비슷한 반응을 하는 장소에서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본다. 영화의 줄거리를 더 쉽게 믿게 되고 몰두하게 되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주변의 자극을 없애고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것도 환각이나 환청증세를 만들어 낼수 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조용한 곳에서 참선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을 연상하게 만든다. 현대과학자들은 종교적 체험을 하는 사람들을 자기공명장치같은 것을 사용해서 연구한다.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작동하면 그런 체험을 하는가를 보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것들은 아마도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지식들이다. 즉 우리가 굳게 믿는 믿음을 넘어서려고 할때, 우리의 선입견을 깨부시려고 할때 우리는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정신분열증 환자는 쉽사리 상식을 넘어서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가 된다. 그러나 묵상에 잠기는 것의 중요성은 모든 문명에서 강조되는 것이다. 상식을 넘어서고 싶으면 평온한 마음, 조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럴때 새로운 것을 발견해낼수 있고 그 방향으로 건너갈수 있다. 마구 혼란을 만들어 상식을 흔들었을때 우리는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변할지 모른다. 아주 커다란 상식을 깨려고 할때는 조심해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종종 보는 것같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의 원천은 가치판단을 내리는 권위다. 모든 단계에서 우리는 어떤 권위에서 솟아나는 상식을 목격하고 습득하고 있다. 불행한 것은 이 원천이 매우 불안정할때이다. 어떤 부모들은 가치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위선적이고 자기 일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하루는 이유없이 아이들에게 상냥했다가 하루는 이유없이 아이들의 작은 잘못에 미친듯이 화를 낸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상황이라면 아이들은 불안한 상식적 기반을 가지게 된다. 뭐가 뭔지 알수가 없으며 필사적으로 그 이유를 찾지만 그 결과는 대개 만족스럽지가 않다. 나는 본래 못난 아이라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것뿐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떤 기괴한 상식체계에 안착하여 거기에 머물지 모른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가정만 그럴것인가. 학교도 마찬가지고 사회도 마찬가지다. 상식의 원천, 가치판단에 대한 권위가 흔들리고 위선적이고 일관성이 없을때 사람들은 괴로워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조선놈은 맞아야 정신이 든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지금도 그런말을 하는 노인들이 꽤있다. 이것은 분명 식민지의 경험이나 독재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무서운 폭력앞에서 굴복하는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하는 방법은 대개 하나다. 그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못나서 그렇다. 어쩔수 없다. 일제의 폭력과 독재의 폭력에서 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고개 숙이고 구차하게 살았던 자신들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도 일본사람들은 이런게 좋았다. 그래도 박정희는 전두환은 이런게 좋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상식은 쉽게 무너뜨려도 안되고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상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뿌리를 파헤치는 자세를 가져야 무너뜨릴 수가 있고 기본적 안내를 받아가며 무너뜨려야 한다. 대책없이 마구 상식을 깨는 진보주의자들도 있다. 이런 진보주의자들은 사회의 가장 어렵고 저학력층인 사람들에게는 종종 오히려 독이 된다. 그들은 옛집을 부실 뿐 들어가 살 새집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매우 폅협하게 한가지 만을 말할때가 많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인범이나 아동성폭행범들이 나는 아마도 아버지의 학대때문에 정신적 장애가 있어서 이런일을 하나보다. 나의 잠재의식에 있는 그놈이 나에게 이런 일들을 시키고 있다 하는 식의 변명을 하는 일이 더많이 생긴다.&amp;nbsp;&lt;/p&gt;&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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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2 : 우리가 갇혀 있는 벽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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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author>
	    <updated>2009-11-19T12:08:20Z</updated>
	    <published>2009-11-19T12:08:2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나는 지난 에세이의 마지막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건 다시 써보자면 이런 질문이다. 여기 한마리 당나귀가 있다. 이 당나귀는 앞만을 보도록 눈이 가려져 있다. 그런데 이 당나귀의 앞과 뒤인 동서방향은 벽으로 막혀 있다. 당나귀는 앞으로 가서 벽을 발견한다. 뒤로 물러서니 엉덩이에 벽이 느껴진다. 이 당나귀는 남북방향은 뻥뚫려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amp;nbsp;우리는 이같은 당나귀를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와 다른가? &amp;nbsp;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는 무수한 벽에 갇혀있다. 그리고 다른 방향을 볼줄을 모른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 서점에서 발견하는 생활의 분열&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갇혀 있는 분열중의 하나는 서점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다. 서점에 가면 출세와 성공을 위한 책들이 잔뜩 쌓여 있다. 10억버는법, 주식투자의 비결, 인맥관리술, 서울대들어가는 방법, 인생의 전략 이렇게 세워라. 등등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똑같이 인기좋은 책들은 정반대의 책이 있다. &amp;nbsp;아이들을 놀리자. 느리게 살자. 자연에서 살자. 가진 것없이 살자. 마음의 평화를 얻는 참선의 방법. 욕심버리는 방법. 세계를 여행하며 자유롭게 사는 삶. 뭐 이런 책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많은 사람들은 출세하고 싶어한다. 여기서 그러면 출세하고 싶어하는게 나쁜 건가요?라고 의문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잠시 참아주기 바란다. 나는 출세하는게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뭏튼 그래서 이 사람들은 책을 보건 안보건 첫번째 책들이 표현하는 그런 길을 간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다 힘들면 그들은 반대쪽 소리를 듣는다. 가진것없이 살기. 욕심을 버리기 이런 말을 하고 여행도 떠난다. 다 버리고 떠난것 같지만 살다보면 그것도 싫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래서 그들은 다시 돌아온다. 다시 돌아와 앞을 보니 아귀다툼을 벌이는 출세의 길이 보인다. 뒤를 보니 원시인처럼 힘겹게 가진것없이 불안하게 사는 삶이 보인다. 그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 사람은 이런 말로 자신을 위로 한다. 나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고 있는거야.&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 사람은 앞에서 말한 당나귀와 다른가 같은가. 다른 방향은 있는가 없는가. 우리는 이런 벽사이에 갇혀있는가 그렇지 않은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아이들에게서 발견하는 우리의 분열&lt;/p&gt;&lt;p&gt;&lt;br&gt;&lt;/p&gt;&lt;p&gt;많은 학부모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요즘은 초등학교부터 학원으로 다니기 바쁘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야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괴롭다. 잠도 못자고 친구랑 놀시간도 없는 그들은 나름대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 돈이 있는 부모들은 그래서 핸드폰이며 MP3를 사주고 좋은 옷을 주고 맛있는 외식을 시켜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아예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로 아이들을 내보내서 교육을 시킨다. 돈도 많이 들지만 가족이 헤어져서 기러기 아빠가 되는 집도 많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와 떨어져 말도 잘 안통하는곳에 가서 고생을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불쌍한 아이들을 보고 그 반대로 가자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그들은 소위 대안 교육이라는 것을 시킨다. 대안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경쟁에 반대하는것이다. 일제고사를 보고 자기 전국등수따위를 알려주는 것은 이러한 시점에서 나쁜 것이다. 아이들이 끝없는 경쟁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교육에서는 자율을 강조하고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을 강조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소위 창의력교육이라는것도 그렇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자유시간을 많이 가져야 아이들은 창의력이 생긴다. 뭐 이런 주장속에서 아이들은 자유시간을 만끽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대부분의 부모들은 이 양극단위에 서있다. 돈도 부족하고 아이들도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을 마구 재촉할만한 잔혹함도 부족한 부모들은 그저 적당히 학원에 보내고 적당히 남따라 한다. 마구 대안교육을 믿자니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마구 밀어부치자니 무시무시한 실패담이 사방에 널려있다. 탈선한 아이. 폭력적인 아이. 부모에게 유산을 받겠다며 부모를 죽이는 아이는 그렇게 큰것이 아닐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들도 역시 중용의 도를 내세우며 우두커니 서있다. 다른 방향은 있는가. 없는가. 우리는 벽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더 많은 벽들 그리고 공통점&lt;/p&gt;&lt;p&gt;&lt;br&gt;&lt;/p&gt;&lt;p&gt;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는 수없는 벽들의 예를 볼수가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외모지상주의는 어떤가. 예쁜게 나쁜가 좋은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환경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우리는 환경에 무한한 값어치를 매겨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것은 그저 무시해도 좋은 일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학벌주의는 어떤가. 학벌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가. 아니면 학벌따위는 모두 지워버려야 하는가?&lt;/p&gt;&lt;p&gt;&lt;br&gt;&lt;/p&gt;&lt;p&gt;조금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예를 무한대로 나열할수가 있다. 특히 이런 예들이 뭔가를 알아차리고 나면 더더욱 쉽게 그런 예들을 발견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예들은 바로 가치판단 즉 좋은가 나쁜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 아이의 키는 얼마인가는 사실에 대한 것으로 측정을 하면 정확한 값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는 뭘로 측정해야 할까.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좋은' 사람이란 어떤 것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가치판단을 한다. 사실 모든 중요한 판단들은 가치판단들이다. 중요하다라는 말 자체가 가치를 말한다.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실 판단중에도 중요한 판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그 경우 가치판단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리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그냥 따르고 있는 것뿐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가 빠져있는 함정들의 공통점은 바로 가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치판단을 내릴수 없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가치판단을 공유하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우리는 남의 말을 듣고 어떤 잣대에 따라 가치 판단을 사실 판단처럼 내린다. 즉 스스로 좋다 나쁘다라는 것의 기준이 없이 어떤 잣대를 기준으로 행동하는데 그게 잘 안되면 문제가 생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는 고장난 자판기앞에 있는 사람처럼 스위치를 계속 눌러본다. 이리저리 눌러보지만 시원찮다. 나오는 것은 점점더 시원찮은데 우리는 중용의 덕을 발휘해서 이쪽 스위치 한번 누르고 저쪽 스위치 한번 누르기를 반복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자동차와 학교는 다르다. 만약 문제가 '사실'에 있는 것이라면 여러가지 일들, 여러가지 선택들을 서로 연결해서 생각할수는 없을 것이다. 자동차 사는 방법과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모든 것의 배후에는 가치판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게 어떤 것인지, 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가치판단을 제대로 못하게 된것인지, 그 답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벽말고 그방향과 다른 방향을 보게 될것이다. 아니 애초에 벽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사람마다 다를수 있으므로 아마도 무한대의 방법이 있다고 할수도 있다. 나는 물리학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수학과 기계를 통해서 그렇게 하는 방법밖에는 모른다. 일단 수학이나 과학이 왜 가치판단에 중요한 가는 쉽게 알수가 있다. 수학과 과학에는 가치판단이 없기 때문이다.&amp;nbsp;어느 지역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비가 언제 오는지도 알수 있지 않겠는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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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작 에세이 1 : 역사와 습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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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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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9T11:10:25Z</updated>
	    <published>2009-11-19T11:10: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경험에서 배운다. 그리고 어떤 때는 경험에 집착한다. 그래서 잘못배운다. 우리는 뭔가로 성공하면 계속 그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축구를 잘해서 칭찬받았던 사람은 뭐든지 축구로 해결하려고 하고 주먹질로 인생문제를 해결하던 사람은 항상 주먹질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공부를 잘해서 인생문제를 해결해 온 사람은 그걸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 사회의 기억&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차원에서 21세기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경험의 기억을 생각해볼수가 있다. 일단 첫째로 우리는 가지는 것, 돈을 버는 것으로 행복해진 기억이 있다. 우리는 나라가 망할정도로 경제가 안좋았다가 남의 식민지였고 전쟁터의 폐허에 서있는 전세계 최빈국이었다. 죽도록 목이말랐다가 물을 마신 경험이 있다면 물의 중요성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먹는 것, 돈의 소중함을 강하게 경험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두번째로 우리는 남의 흉내를 내고, 기술을 배워서 성공한 경험이 있다. 해방이후 이제 세계 어디가도 꽤 사는 나라 대접을 받는 지금이 있기까지 한국 사회가 해온것은 죽자사자 외국의 것을 배우고 모방하는 일이었다. 따라잡는 일, 외국에서만 가능한 것을 한국에서도 가능하게 만드는 일 그게 우리가 해온 일이었고 잘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 와중에 전세계 누구보다도 빨리 경제성장을 이룩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세번째로 우리는 권위주의적 체제로 성공했다. 한국은 오랬동안 군인들의 지배를 받았고 군인처럼 행동하라는 생각을 주입받았으며 그시절 동안 한국이 빈민국에서 벗어나고 발전의 토대를 쌓았던 것을 부인할수 없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들은 성공의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경험들에 다시 의문을 던질수가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과연 우리의 성공이 진짜로 성공인가. 물질적 잣대로만 성공이 아닌가하는 지적이 있을수 있다. 즉 모든 방면에서 발전이 있었다고 말해야 하는가, 종합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 지기만 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수가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또한 물질적 잣대로만 보더라도 위에서 말한 인과관계가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에 의문을 표할수가 있다.&amp;nbsp;과연 돈돈하고 돈을 추구했기에 우리는 부자가 되었는가. 혹시 돈따위에는 초연한 어떤 문화가 우리를 부자만들어 준것은 아닐까? 남의 것을 열심히 배우고 배꼈기에 우리는 성장했는가. 혹시 우리의 발전은 우리 내부에 있는 본래의 우리것때문이 아닐까? 권위주의적 체제때문에 성공했을까? 혹시 우리의 성공은 권위주의하고는 상관없거나 혹시 권위주의때문에 우리의 발전이 더 느려졌던 것은 아닐까? 권위주의는 생각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것이 우리발전의 근본 원인일까? 미래에도 우리를 지켜줄까?&lt;/p&gt;&lt;p&gt;&lt;br&gt;&lt;/p&gt;&lt;p&gt;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은 대부분 읽을 만한 것이 못된다. 자신의 성공이유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좋은 재능을 타고나서 자신을 후원해줄 부자 집안에서 자라서 훌룡한 학자로 자라난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많이 가졌던 것에 대해 생각보다 그다지 인식을 못한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누군가 은사를 잘만났다거나 인간관계에 조심했다거나 죽도록 꿈을 향해 뛰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다른 것일수 있다. 누구나 빌게이츠와 똑같이 행동하면 빌게이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성공담이 필요없거나 항상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의 원인에 대한 생각은 종종 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봤을때 보통 대중들이 생각하는 우리 역사의 성공원인은 과연 옳은 것일까? 이것에 의문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왜 다른 나라, 예를 들어 아프리카 빈민국은 우리만큼 성공하지 못하나? 그들도 베끼고 독재도입하면 될꺼 아닌가. &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더구나 과거에 그것이 성공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앞으로도 성공의 원인일까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비오는 날 우산 들고 나가서 돈을 벌었다고 해서 우리는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산을 들고나서 파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의 현실,&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의 현실을 단순히 끔찍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곳중의 하나다. 후진국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유럽이나 미국같은 부자나라들도 나름의 문제를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의 일부는 분명히 대단히 끔찍하다.&lt;/p&gt;&lt;p&gt;&lt;br&gt;&lt;/p&gt;&lt;p&gt;그걸 다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세계 최저의 출산율, 최고의 자살율을 거론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는 빠르게 노령화되어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다문화 문제가 압박을 해오고 있다. 후진국의 추격속에서 선진국 진입에 실패하는 미래에 대한 공포도 우리 코앞에 존재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가장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개혁프로그램 혹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어 든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에는 무당파가 크게 늘었다. 즉 여고 야고 진보고 보수고 기성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무슨 뚜렷한 제3의 흐름이 나타난것도 아니니 이는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있다는 뜻이다.&amp;nbsp;즉 지금도 싫지만 뭔가 다른 것으로 바꿔보려고 해도 그것도 답이 아닌것 같더라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어떤 미래가 되도 우리가 현재에 완전히 만족하고 변화를 바라지 않는 때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희망이고 비전이다. 그것이 모두 막혀버리고 만것같을때 우리는 우울해진다. 한국 사회는 큰 우울증에 빠져 있다. 지식인들은 횡설수설하고 외국의 것만 좋아보이며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은 언제보다도 약화된것같다. 이민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고학력이고 부자인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 이런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와 불안이 싫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말&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럼 대안은 무엇일까.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선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두번째는 답에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답은 필연적으로 비주류의 작은 소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목소리에 있을수 밖에 없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뭔가를 보거나 듣기위해서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amp;nbsp;우리가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은 성공에 대한 경험에서 오는 선입견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그게 아닐지 모른다. 아니 이미 그런 시각이 실패하게 된지 오래되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알고보면 간단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돈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은 돈이 없는 어떤 사람이 부자인 어떤 사람보다 더 훌룡하고 더 행복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납득하기가 힘들다. 그들은 서둘러 말한다. 하지만 저사람은 왜 그럼 돈이 없나요. 돈이 많으면 나쁜 건가요. 돈이 있고 없고의 방향과 수직한 방향, 그들이 보지 않은 방향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보지 못한다.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고, 돈으로 환산될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lt;/p&gt;&lt;p&gt;&lt;br&gt;&lt;/p&gt;&lt;p&gt;우리는 대개 나는 아니야. 나는 모든 방향을 보고 있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출구는 남북방향으로 뚫려있는데 동서로 막힌 벽사이에서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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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기사는 안보고 댓글만 본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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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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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8T09:53:06Z</updated>
	    <published>2009-11-18T09:53:0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요즘 포털 신문기사들을 읽다가 문득 깨달은 것인데 나는 본문의 기사는 제목정도만 보고 주로 댓글을 본다. 본문은 댓글을 보고 나서 볼수도 있고 보지 않을수도 있는데 안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이럴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나쁜 기사는 안읽는것보다 손해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파트 관련 기사같은 것을 보자. 어제는 물량이 딸려서 폭등조짐이랬다가 일주일도 안되서 전년보다 4배나 많은 분양물량이 쏟아진다고 한다. 얼마전에 전세 대란이 일어날것처럼 전세폭등에 대해 호들갑을 떨다가 얼마안됬는데 이젠 전세가 폭락해서 문제라는 식의 기사가 뜬다.&amp;nbsp;현대 소나타 기사들은 이젠 본문을 거의 읽지 않는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은 많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전부 광고인지 기사인지 알수 없는 느낌이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제목도 문제다. 제목과 본문이 전혀 상관없거나 이상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3류잡지나 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명박 사망! 이라고 제목달고 본문에 이렇게 말한 한 네티즌이 구속수사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한 익명의 관계자가 그랬다는 설이 있다고 말하는 거 말이다. 그런데 언론사 기사들도 이모양인 기사가 많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반인들은 회사눈치안보고 그냥 자기 의견을 말할뿐이며 댓글이 하나만 달린게 아니다. 댓글은 여러개가 달려서 나름대로 찬성반대가 생기고 분포를 볼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댓글에 보다 진실이 있다고 느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자가 쓴 기사가 보다 신용도가 높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단 여기에는 두가지 전제가 있다. 하나는 언론사 기자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기사를 쓰는 것이고 두번째는 돈이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기자적 양심을 가지고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런데 요즘 이 두가지 전제는 내느낌에 크게 망가져있다. 월급받고 기사쓰는 기자, 그 어렵다는 기자되기의 문을 통과했다는 기자의 글이 네티즌 보다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핵심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두번째인데 어떤 압력이나 이익문제에 도달하면 기자의 양심은 어디론가가고 없다는 느낌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삼성과 현대에 쩔쩔매는 기자들만 있다면 회사에 목숨줄 걸지 않은 네티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줄것이다. 그런데 기자들의 기사는 대놓고 편파적인 경우가 많다. 얼마전에 소나타를 캠리와 비교하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캠리와 소나타는 배기량이 다른데 두 자동차를 마치 동급인것처럼 비교하면서 가격비교를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소나타에 대해서는 시끄럽다는 이야기를 미화해서 표현한다. 이것은 현대자동차가 실속없이 비싸다는 것을 감싸주는 기사다. 물론 이 기사에는 수백개 이상의 기자를 조롱하는 댓글이 달렸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유언비어가 크게 번질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때가서 언론이나 정부가 해명을 해봐야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늑대와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믿을만한 정보를 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자들이 기자의 양심이니 언론의 자유니를 이야기해도 삐닥하게 보지 않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는 다시 본문을 읽게 될것이다.&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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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파도 진보는 막시즘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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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author>
	    <updated>2009-11-17T18:13:18Z</updated>
	    <published>2009-11-17T18:13: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gt;머릿말&lt;/div&gt;&lt;div&gt;&lt;br&gt;&lt;/div&gt;한국에서 보수를 말하는 정치인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다면 진보를 말하는 사회운동가나 지식인들은 대부분 막시즘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그들은 선과 악의 선을 긋는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아픔은 저 악의 세력때문이며 선의 세력이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면 좋은 세상이 올거라고 말한다.&amp;nbsp;&lt;div&gt;&lt;br&gt;&lt;/div&gt;&lt;div&gt;이러한 선긋기는 대개 경제수준이나 고용형태에 따라서 나뉘어지는데 즉 노동자와 자본가, 서민층과 경제기득권층 이런 식의 구분을 하고 이 구분에 근거하여 현정부를 비판하고 여러가지 사회적 아픔을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용산 참사같은 것을 언급하면서 이런 것에 무관심한 저 기득권층을 무찌르자. 저소득층이나 노동자들, 여자들이 합치면 해낼수 있다. 뭐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엉터리 진보적 주장들에 대한 비판&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위에서 말한 선긋기와 그로 인한 선악구분으로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amp;nbsp;이런것으로는 좋은 세상이 올수 없으며 오히려 힘든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뿐이다. 이길수도 없으며 싸우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만든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내는 사람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저런 사람들을 무찌르고 사회에서 매장하면 교통사고 없는 좋은 세상이 올거라는 말은 사실일까? 일정부분은 사실이다. 분명 부주의하게 운전하는 사람, 술먹고 운전하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하고 비판받아야 한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몰아내고 나면 교통사고 없는 세상이 올까? 그런 식으로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지는 않을까? 선과 악의 구도에 몰두하다보면 보다 중요한 것을 잊게 되기 쉽다. 왜 우리는 자동차 사용을 모든 곳에서 허용하는가, 왜 교통신호체계가 이모양인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을 돕는 보험체계는 어때야 하는가를 논하는 것이 억눌러진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한국에서 돈가진 사람들을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돈없는 사람들이 돈가진 사람을 정치적으로 이겨내자는 발상따위를 한다면 승리는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도 그렇지만 빈부격차가 커지는 미래에는 경제적 상위 10%나 5%만 똘똘 뭉쳐도 도저히 그 연합을 나머지가 이길수가 없다. 그런데 돈가진 사람을 적으로 보는 그 선긋기는 오히려 돈가진 사람끼리 뭉치게 만든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저 사악한 기득권층때문에 우리가 살기 힘들다고 말하고 나면 통쾌하지만 바로 그런 표현, 그런 선긋기때문에 부자동네에서는 가진 것없는 사람들은 우리가 좀 느슨하게 해주면 우리걸 다 훔쳐가려는 빨갱이라는 허무맹랑한 말들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래서 부자들은 전부 함께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새로운 사회는 결코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가 아니다. 현재의 부자들은 너무 행복하니까 그들을 좀 불행하게 만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것이 비전이 될수가 없다.&amp;nbsp;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될뿐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자동차사고의 예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고개를 돌려야 할것은 시스템이다. 물론 모두가 시스템을 말한다. 교육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교육시스템을 말하고 소득분배나 조세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그런 분배시스템을 말한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그러나 그런 표면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우리가 발전할수 있는 한계는 이미 도달했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었고 해방후 최대빈민국에서 이정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다. 죽겠다고 야단이라지만 해방이후으 혼란상에서 발전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발전했다. 그런 표면적 시스템을 뜯어고쳐서 말이다. 그러나 그게 한계에 도달했다. 그게 문제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대안은 있는가.&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대안은 있다. 다만 대안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선입견때문에 사람들은 그 대안을 알아듣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같다. 한나라당을 쳐부시면, 이명박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몰아내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주장은 아주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진짜 대안은 그보다 더 미묘한 것이다. 더 침착하고 참을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한국 사회의 문제는 단순하게 말하면 배금주의 이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고 그보다 더 깊고 크게 말하면 기본적 가치 판단을 내릴수 있는 능력이 혼란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너머에는 세상을 보는 형이상학의 문제가 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나는 대안을 한줄로 짮게 쓸수가 없다. 책한권으로도 정확히 쓸수는 없을 것이다. &amp;nbsp;왜냐면 세상을 정의하고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 대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일단 사물에, 모든 사람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대해 이러저러하다는 생각, 즉 자신이 그것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그것의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조금만 생각하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철학책을 보면 어디나 나오는 말이며 굳이 철학책을 보지 않아도 우리는 무한한 사실들에서 일부를 취하고 다시 개념화를 하고 이름을 붙여서 사실의 일부만을 알고 보고 느낄 뿐이다. 한그루의 나무, 한 아이 어떤 것도 우리는 아주 일부만을 안다. 그 뒤에는 무한한 미지의 신비가 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두번째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수학공식은 정해진 가정위에서 언제나 진리이고 산이나 강은 아주 천천히 변하지만 세상모든 것은 그보다 빨리 확실히 변하고 있으며 그것은 사람도 우리 자신도 예외가 이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여기에 신경이 미치면 우리는 사물에 대해 겸허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르니까 그렇다. 과거의 그것도, 현재의 그것도 미래의 그것도 우리는 모른다. 모르니까 겸허해 질수 밖에 없다. 나를 모르고 상대방을 모르는데 청수부아주머니는 나보다 아래고 사장님은 위라는 생각이 말이 되는가. 나무와 산과 강에 대해 겸허해 져야 하지 않을까?&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이 대안은 쓰자면 무한대로 쓸수 있지만 그래봐야 소용은 없다. 중요한것은 체험하는 것이다. 철학은 이해하는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 길가의 코스모스와 소통하는 느낌, 그래서 그것을 함부로 꺽어버릴수 없다는 느낌을 느끼는 것은 논리로 하는게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정확히 같다. 세상과 사랑에 빠지고 사람들이 만들어 내온 개념과 문명은 중요한 것이지만 도구라는 사실을 느껴야 한다. 자신이 아는 세상, 물질적인 세상을 등지는게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도 소중히 여길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너머를 봐야 한다.&amp;nbsp;이때문에 나는 환경문제와 참선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쓴적이 있다. 자연은 보호할 약자거나 아껴서 쓸 자원이 아니다. 자연과 소통하는 느낌이 없으면 환경문제의 진전은 없을 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일단 이 느낌을 체험하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것은 느껴서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세상일에 모두 관여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책을 읽어야 하는가. 어떤 말을 나눠야 하는가는 바로 앞에서 말한 이 느낌이 인도해 주는 것이다. 그 바탕위에서 진보적 운동이 이뤄져야 한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서양철학에 대한 언급&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철학에는 비약이 필요하고 말을 넘어서는 곳에 진실이 있다는 말은 미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한말이며 우리나라 전래의 고전에 불경에 두루 나오는 말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내가 쓴것을 굳이 한줄로 쓰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많은 선입견이 얽혀있다.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해설서를 본적이 있는데 비슷한 것을 무엇무엇되기의 철학이라고 거기서는 표현하고 있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내글을 이해하는 데는 화이트헤드나 들뢰즈를 알필요가 없는데도 내가 굳이 화이트헤드나 들뢰즈를 언급하는 것은 나의 학식을 자랑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그들의 철학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다. 단지 이런 종류의 말에 붙는 선입견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엉터리 무당의 이야기나 득도했다는 도사의 이야기같은 것으로 오해한다. 그들은 어서빨리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말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어떠한가, 자신들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는 관념적이라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본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나는 위에서 화이트헤드를 언급했는데 그가 뉴톤에 대해 언급한 것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확인하는재미있는 예가 된다. 과학은 고대에서 부터 있었는데 근대과학의 아버지라고 할 뉴톤시대에 그 발전속력에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그 변화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이글은 과학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관련된 일부만 이야기하면 그변화의 중대한 한부분은 분류에서 측정으로 사고방식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색으로 말하면 흑과 백을 이야기하다가 그레이 스케일 즉 회색의 정도를 수치로 말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과학에는 정량화가 없었다. 그런데 뉴톤이후 과학은 세상 사물의 시간에 대한 변화를 수치적으로 예측하고 설명하는 일이 되었다. 즉 그리스 시대에는 물건을 던지면 왜 올라갔다가 떨어지는가 하는 식으로 생각을 했다면 뉴톤은 물건이 날아가는 괘적을 시간의 함수로 표현했다는 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뉴톤이전의 사람들은 말하자면 흑백논리에 익숙했을 것이다. 세상 여자들을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 두개로 나눈다. 체형을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 둘로 나눈다. 정량화한 논리란 이런 것이다. 몸무게와 키를 아예 말하거나 제일 예쁜 사람을 백점, 제일 못생긴 사람을 빵점으로 했을때 저여자는 65점 이런 식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흑백논리건 계량화건 다 인간이 만들어 낸것이지만 이 차이는 사실 엄청나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얼마나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가. 나는 흑백논리에 의거해서 사고를 진전시켜 나가지 않는가.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사실은 이렇다. 한국은 과학혁명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작아서 그 사고가 뉴톤 이전의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많은 분규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이런 예를 든것은 세상이전에 자기 머리에 든것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강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두사람이 앉아서 수치와 논리로 밤을 세우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더구나 그들의 머리에 들어있는 논리나 사고방식이 흑백론의 단순한 것이라면 대화는 금방 어딘지 알수 없는 곳으로 가고 만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맺는말&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우리는 모두, 적어도 대부분은 살면서 아픔을 겪는다. 아픔을 겪을때 인간은 습관적으로 그원인을 찾는다. 그 원인에 대해 너무 속단을 해서 남에게 이것은 저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누굴 돕는 일도 아니고 자신을 돕는 일도 아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유교경전에도 뭔가를 이루고 싶으면 일단 정지하라고 했다. 중용의 중은 희노애락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라고 했다. 서양 윤리의 기본이 되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기도라는 것일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기도는 옆사람에게 무슨 부탁하듯 하는게 아니다.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 그마음에서 저절로 솟아오르는 답이 있다. 그걸 찾는 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세상을 쪼개서 선과 악을 만들고 미움을 만들어 저것만 없어지면 다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아파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lt;br&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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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덕일의 강의를 보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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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author>
	    <updated>2009-11-17T09:56:00Z</updated>
	    <published>2009-11-17T09:56: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KBS에서 이덕일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란 제목의 강의방송을 했다. 이덕일은 20권이상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대단한 인기 작가이며 역사학자이다. 이덕일은 기존의 사학계주류를 조선시대 노론으로 부터 이어지는 사람들의 후예로 정의한다. 그들은 식민사학을 잇는 사람들이라고 말을 한뒤 강의에서 기존의 역사가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강의는 유익했지만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글은 말하자면 이덕일과 이덕일의 강의에 대한 감상문이 될것이다. 일단 쉽게 예상할수 있는 것처럼 이덕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덕일을 혹세무민하는 사람으로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인터넷에서 역사블로거로 유명한 초록별이 있는데 그도 이덕일을 비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사회악같은 존재로 묘사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원론적인 문제&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단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몇가지를 지적해 보자. 역사, 민족의식, 국가관 같은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일체의 유형무형의 인간문명은 사실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집어 엎을 정도는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이며 한민족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도 그러한 이름붙이기도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라는 것이다. 그것은 생활의 편의를 위한 망치나 자동차와 본질적 의미에서 다를 것이 없다.&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동시에 이런 발상으로 나가서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은 모두 중요치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리다. 그건 마치 일체의 문명은 도구니까 그런거 버리고 산으로 가서 짐승처럼 살자고 하는 것과 같다. 수천년 수만년을 쌓아온 인류문명이란 한 개인으로서 뭐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쉽게 폄하해 버릴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단한 엄청난 것이다. 다만 대단한 엄청난 도구라는 것이다.&amp;nbsp;국가로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문화, 가치판단의 틀을 발전시키고 사용하는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대단히 중요하고 유효한 도구이며 우리는 이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두번째로 널리 지적되어온 것이지만 사실의 기술로서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란 항상 사실의 선택이다. 그것도 더 정확히 말하면 사료에 씌여진, 유물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측할수 있는 사실의 선택이다. 역사적 사실은 무한히 많기 때문에 그 선택을 하는 가치관을 전제해야 말이 되는 것이다. 역사를 사실의 기록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강력하게 한가지 가치관에 쏠려있는 사람이다. 즉 그는 다른 시각의 존재를 느낄수 조차 없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역사의 임무&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덕일의 주장들이 혹세무민하는 것인가 아닌가는 보기나름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는 학계에서는 소수파내지 이단이며 반면에 대중의 지지를 받는 면에 있어서는 주류라는 것이다. 그가 한말중에는 소수파가 그렇듯이자세한 사실의 확인에 있어서 틀린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기존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세우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고 말하는 것, 그리고 지금 한국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회의 정체성이 올바르게 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공감하는 바였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말과 정확히 같은 말이기도 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기존의 역사학계사람들을 비판하자면 그들은 일종의 선민의식에 빠져서 자기일을 하지 않는 사람, 자기일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말할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학자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소득이 올라간것이 사실아니냐. 나는 사실을 말한다는 식의 뉴라이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는 안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기성역사학계가 자신들이 대중성이 없는 것을 가지고 우리는 대중에게 영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가 뭔가, 역사의 임무가 뭔가를 크게 착각하는 것이며 한국의 대중들을 멸시하는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거나 저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학자는 역사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역사를 만든다고 해서 어떤 사실의 날조나 허황된 역사로 사람들을 그야말로 바보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amp;nbsp;자동차를 만들라고 어떤 사람들을 공장에 보냈더니 그사람들이 부품만 들고서는 이것도 자동차에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하는 식으로만 말할뿐 자동차는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황당한 차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황당한 차를 만드는 사람이나 차를 아예 만들지도 않는 사람이나 혹은 일제가 만든 차를 그냥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모두 자기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역사가 해야 할일은 우리와 역사적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이어온 사람들을 통해서, 현재의 우리가, 앞으로의 우리가 소중히 해야할 가치를 발굴해 내는 것이다. 역사는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끝도 없이 떠들어 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말하는 것이고, 그 중요성은 과거의 그시대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었다는 것 이전에 현재에 중요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올바른 역사, 올바른 가치관은 하나의 편리한 자동차와 같다. 그것을 듣고 알았을때 사람들과 화합할수 있으며 세상을 살면서 만족스러운 가치판단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썩어빠진 자동차와 좋은 자동차를 주면 소비자들이 좋은 자동차를 알아보듯이 기성역사학계가 대중성이 없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대중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역사학자들은 자신의 엄밀성과 객관성을 자랑하는 듯보이지만 사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사실의 확인 이야기만 외치는 사람만큼 답답한 사람도 없는 것같다. 거대한 건물을 지으면서 부실한 벽돌로 마구 날림공사를 하는 사람은 죄인이다. 즉 황당한 역사를 거짓증거에 기초해서 마구 만들어서 대중에게 마약처럼 파는 사람은 훗날 그 역사를 믿는 사람들이 겪을 부실공사의 사고를 외면하는 나쁜 사람들이다. 그러나 벽돌만 만지고 있을뿐 방한칸도 만들지 못해서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사람들이 그들을 욕할수 있을까? 그것도 엄청난 지원을 사회로 부터 받아서 수천명이 그일에 종사하면서 급료를 받는 상황이라면 돌팔매를 맞아도 할말이 없는거 아닐까?&lt;/p&gt;&lt;p&gt;&lt;br&gt;&lt;/p&gt;&lt;p&gt;대중성과 개방의 문제&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만약 티브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무리 시청자들이 외면하고 욕을해대도 막장방송을 해대면서 이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며 우리는 대중에게 영합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어떨까.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일반인에게 쓸모도 없는 기능을 마구 달고 비싼 부품을 마구 달고 그러면서도 필요한 기능은 하나도 없는 자동차를 만들면서 소비자에게 자동차 만들기는 전문가의 영역이며 우리는 대중과 영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떨까.&lt;/p&gt;&lt;p&gt;&lt;br&gt;&lt;/p&gt;&lt;p&gt;내가 역사학을 연예계나 자동차만들기와 비교했다고 흥분하는 사람이나 이 비교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학계는 대중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대중을 멸시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학계는 대중이 지불한 돈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취미생활로 각자 자기 집에서 혼자하면 된다. 왜 프라모델 만들기는 개인취미고 역사학자는 사회의 지원과 존경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가. 그들이 훌룡하신 분들이라 본래 그런가?&lt;/p&gt;&lt;p&gt;&lt;br&gt;&lt;/p&gt;&lt;p&gt;학문도 종류가 있고 역사학에도 물론 매우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 빵만들기도 그런게 있다. 전문가가 빵만드는 방법에 대해 일반인이 이스트를 더 넣으라던가 온도를 높이라던가 하고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온당치 않다. 수학문제를 푸는데 다수결 투표에 의해 풀수는 없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대중성없는 역사학이란 둘중의 하나다. 역사학계가 자기할일을 못하고 있거나 안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소수파 역사학자들을 제대로 비판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 인기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제일 먼저 비판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동차 만들라고 돈줬더니 자동차를 아예 만들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안전장치없는 부실자동차 타고 다닌다고 욕하는 것이 말이되는가. 대중과 영합하라는 것이 아니라 대중성이 없는 것을 자신의 무능으로 알아야 한다. 해방후 반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것은 도대체 뭘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선과 모터사이클 메이터 넨스에서 주인공은 오토바이 구조에 대한 설명서를 약간 언급한 후 그런 기술의 특징들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 지루하다. 둘째, 관찰자의 입장이 존재하지 않고 오토바이는 그저 홀로 독립해서 존재한다. 세째,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없다. 네째, 날카로운 칼날로 본래는 존재하지 않는 분류를 행한다. 그러나 그 분류를 행하는 방법은 언제나 무한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게 한국의 역사책에 대한 기술이 아닌가? 지루하고 존재할수 없는 객관성을 강조하며 좋다나쁘다는 가치판단이 없고 무한대로 분류가 가능한 것을 맘대로 갈라놓고 그것이 절대적인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감옥이 되고 있지 않는가?&amp;nbsp;역사의 객관적 기술이란 허상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런 진실이 교과서에까지 퍼지고 학교에 까지 퍼져있을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모든 사람을 가두는 감옥, 이 감옥은 언제쯤 파괴될수 있을까.&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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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산보보, 도시의 신비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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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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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6T08:14:23Z</updated>
	    <published>2009-11-16T08:14: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요 근래에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을 산보하는 것을 주말의 일정으로 삼고 있다. 이 집에 산지도 몇년은 되었지만 사실 살다보면 유명한 유원지나 관광지는 여러번 가봐도 정작 집 코앞에 있는 공원은 가보지 않게 되는 일이 있다. 유명하지 않은 곳이니까 그렇다. 모처럼 시간이 나면 남들이 다아는 하코네, 에노시마, 오다이바 같은 곳은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게 귀찮으면 그냥 집에 있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가까운 곳 차를 타고 가서 외식을 한다. 그러니 정작 동네구경은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러나 걷는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은 상식이며 굳이 좋은 곳을 찾아 차를 타고 갈것이 아니라 집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집주변을 탐험하기로 한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몇주전에는 우리집앞의 공원을 가로질러 그 건너편의 오이즈미 공원을 관통하고 다시 거기서 전에는 가보지 못한 거리를 따라 걸었다. 그 거리와 공원들은 어디다가 관광지이니 와서 보세요 할만한 것은 없었지만 편안하고 즐거운 산보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단 차를 타지 않으니 뭔가 행사를 하는 것같은데도 시간이 많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좋다는 산이나 들로 가려면 최소 왕복으로 두세시간은 차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절약되고 그런 에너지가 절약되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집을 나와 공원으로 들어서니 뜻밖에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나에 몇십엔하는 것부터 몇백엔 몇천엔 하는 것까지 다양하게 있다. 돌아오는 길에 벼룩시장에 다시 들러서 아이들은 천원어치씩 장난감을 사고 따로 보드게임을 두개 더 샀다. 아내는 천엔주고 긴 중고 부츠를 사고 메밀국수를 먹는 그릇셋트를 5백엔인가 주고 샀다. 아주 흡족한 쇼핑이었고 즐거운 쇼핑이었다. 돌아와서는 그 그릇에 메밀국수를 담아서 점심을 먹었더랬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모르는 길을 따라 걷는것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이렇게 기대하지 않던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날 산책을 했던 날만해도 우리는 벼룩시장 말고도 멋진 카페며 전자상가며 아주 아름다운 일본과자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더랬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얼마오지 않으면 이런 가게가 있었는지 전에는 알지 못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배가하고자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복잡한 주택가 골목길로 걸어들어가서 순전히 방향감각에 의거해서 걸었다. 그리고 그길에서도 감이 열린 나무라던가 멋진 채소밭이라던가 집문앞에 놓인 예쁜 개인형따위를 발견하였다. 물론 다시 우리가 아는 길을 찾았을때도 우리는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며 즐거워 하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번 주말에는 차로 10분쯤 걸리는 옆동네로 가서 차를 편의점앞에 세워놓고 걸었다. 아이들은 탁구를 치러 보냈고 이번에는 부부둘만 이었다. 우리는 관월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오이즈미 학원역앞까지 걸었다가 다시 반대로 돌아와 걸어서 중고품 물건 파는 가게를 구경했다. 오늘은 비가 왔었다. 그래서 많이 걸을수는 없었지만 그건 그대로 좋았다. 오이즈미 학원역앞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아침세트를 시키고 비오는 창밖을 보며 커피나 코코아를 마시는 것도 상쾌한 기분이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멈춰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번에 했던 것처럼 큰길 뒷쪽을 따라 걸었다. 뭔가를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게 되는데 아주 중요한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신비감이다. 뭔가 끝없는 신비를 가진 것은 당연히 두고 두고 봐도 질리지 않고 마치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보인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본의 도시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신비감이 없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다. 역전에 가면 전국에 체인을 가진 가게들이 어디나 들어서 있기 때문에 역전앞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그러나 역전을 벗어나 걸으면 일본 도시의 신비감을 금방 발견하게 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본은 고층아파트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대표적 주거형태가 아파트이지만 일본은 저층건물이거나 독립주택이다. 큰길을 벗어나 뒷길을 따라 걸으면 아주 다양하게 생긴 여러가지 집들을 만난다. 집들이 다양하고 주택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차를 타고 달려도 끝없이 펼쳐진 단독주택과 저층건물들의 바다를 보게 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길을 걸어도 왠지 저기 모퉁이를 돌면 뭔가 아주 괴상한 집이 나타날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은 귀신 이야기를 하면 믿기가 쉽겠다고 했다. 이렇게 다양한 집들이 있으니 어딘가에 귀신이 나오는 괴상한 집, 괴상한 가게가 있을 법도 한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가게, 몇몇사람들만 알고 방문하는 조그맣지만 따스한 분위기의 가게가 어디 구석에 있을법도 하다. 주택가를 걷다가 보면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중고차 가게가 있다던가 까페가 있다던가 아주 멋진 과자가게가 있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도시도 마찬가지로 신비감이 있어야 한다. 그럴때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고층 아파트 숲이 점점더 싫어진다. 모든 집이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생긴 집들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뭔가 신비가 숨어있을 만한 것이 없다. 아주 멋지게 조경을 해서 산책로를 만들어 두었다고 한들 신비감이 없다면 그 산책로는 조깅머쉰위를 걷는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저 운동을 위해 기계적으로 걷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얼마전에는 종로의 피맛골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커다란 도시의 한복판에 남들이 잘알지 못하는 보석처럼 숨어있는 허름한 맛집골목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서울이란 도시가 가지는 신비감을 크게 증진 시켜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청계천처럼 콘크리트로 물길을 내서 단지 1분만 보면 신비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장소를 만들었을때 서울의 사랑스러움은 사실 그만큼 감소하고 만다. 그냥 뻔한 콘크리트 아파트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전국의 강들을 깍고 다듬어 어항으로 만들어 버리면 강도 또한 그 신비감을 잃어버리고 말것이다. 수백년 수천년의 역사와 사연을 다듬은 장소가 아니라 그저 몇년전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공원이 되고 만다. 죽어 없어지는 것은 단순히 자연과 그곳에 적응하여 사는 사람들의 삶뿐만이 아니다. 국토의 신비감이 사라지고 만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신비감따위 돈안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돈안되는 헛소리같은 신비감때문에 관광산업이 되고 미친 사랑에 목을 매서 인생을 던지고 엄청나게 비싼돈을 주고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이다. 3백년 역사의 위스키를 판다고 할때 팔리는것은 단순히 맛과 품질이 아니다. 그 가격의 상당부분은 신비감이다. 신비감이 돈이 안된다고? 그 반대다. 싸구려 거주지인 아파트, 품질따위는 상관치 않는 개도국의 사람들은 신비감에 낼돈이 없다. 그래서 신비감을 무시하는 것이다. 선진국사람들은 신비감에 지갑을 연다. 싸구려 모조품으로 똑같은 것이 무한대로 존재하는 그런 상품에는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다음주에는 어느쪽으로 걸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요즘은 큰 즐거움이다. 마르지 않는 신비감을 가진 도시, 그런 사람, 그런 길, 그런 나무, 그런 숲, 그런 산, 그런 바닷가, 나는 그런 것들이 좋다. 사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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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비라는 소프트웨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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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격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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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5T11:33:24Z</updated>
	    <published>2009-11-15T11:33: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머릿말&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 산업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말은 나온지 오래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화의 근간이 무언가에 대한 이해는 그다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화상품의 성공을 위해 표면적인 기술적 문제에 집중하는 일이 많거나 그것은 홍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amp;nbsp;이것은 산업으로서의 한국 문화의 경쟁력을 약화할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의 근간&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의 근간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먹고 입고 어떤 가치판단을 하면서 어떤 규칙을 가지고 사는게 좋은가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문화고 문화상품은 그 답을 함축하고 있어야 가치가 있고 심지어 상업성도 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드라마나 영화나 소설을 보자. 인간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가 없다. 표면적으로 인형이나 로보트만 나오더라도 모든 이야기는 결국은 인간이 관련되어 있고 인간이 사는 모습에 어떤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우리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야기는 모두 잠재적인 갈등을 포함한다. 즉 개인의 삶을 택해야 하는가, 가족의 질서를 존중해야 하는가, 돈을 택할것인가 사랑을 택할것인가, 화려한 삶을 꿈꿔야 하는가,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하는 여러가지 선택적 상황에 답하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표면적으로는 갈등구조가 없어보이는 문화물들도 사실은 모두 생각해보면 어떤 가치가 그 가치에 상반되는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거나 그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산속에서 아무 일없이 수행하는 스님의 일상을 보여주면 거기에는 갈등이 없는 것같지만 거기에는 관객과 이야기속의 스님과의 갈등이 있다. 즉 스님은 저렇게 사는데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가 어떻게 사는가를 답하는 문제라고 한다면 그 답중에 쓸때없고 부실한 답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편협하다. 삶의 한가지 측면에만 몰두한다. 요리로 말하자면 만원가지고 저녁상을 차려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묻는다고 하자. 우리는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으므로 비싼 갈비를 먹어보자고 하는 것은 의견일수 있지만 큰 값어치는 없다. 갈비를 사고나면 쌀살돈도 없을수 있다. 갈비를 사려면 아예 만원가지고는 부족할수 있다.&amp;nbsp;&lt;/p&gt;&lt;p&gt;&amp;nbsp;&lt;/p&gt;&lt;p&gt;그러니까 한국의 다른 문제는 생각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자연만 보호하자, 외국인노동자인권을 지키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 노동자이익을 보호하자라고 말하거나 대기업이 잘되야 행복해진다, 경쟁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 삼천리 강산을 덮는 커다란 토목공사를 일으키면 나라가 잘된다고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의 궁극적 상품&lt;/p&gt;&lt;p&gt;&lt;br&gt;&lt;/p&gt;&lt;p&gt;문화는 살아가는 방식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궁극의 상품은 하나의 가상적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가지 선택의 순간에 처하고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데 답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 그럴때 이 가상의 인간형에게 질문을 던지면 답이 나온다. 그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훌룡한 작품은 하나의 종합적 인격을 창조해 낸다. 이 종합적 인격은 심지어 작가가 글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말하지 않는 어떤 질문에도 답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미국 사회가 만들어낸 인격중의 하나는 서부의 정의의 카우보이다. 그것은 지금 여러모로 계승되어 배트맨 씨리즈 물같은 것으로 모습만 바뀌어서 존재한다. 서부극에 익숙한 사람은 존웨인을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트맨을생각해 보라. 어떤 상황에 도달했을때 존웨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배트맨이라면어떻게 할까를 우리는 물을수 있다. 그러면 거기에는 답이 있다. 그 인격은 과거의 인물이라도 현재의 가치판단문제에도 문제없이 답을 내려준다. 그것이 문화적 인격의 유용성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나는 이렇게 행동하라고 하는게 아니다. 문화물이란게 이런것이라는 것이다. 문화물은 우리에게 삶의 지침을 준다. 그런데 삶은 항상 알수 없는 선택의 순간의 연속이다. 문화물은 그때 우리에게 답을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물에 열광하고 빠져드는 것이다. 장금이라면 이럴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고 대장금에 몰두한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일본이 만들어낸 인격에는 사무라이가 있다. 사무라이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만화에 등장하면서 다면적 인격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 가상의 공간에 있는 사무라이는 일본 대중에게 답한다. 당신은 갈등의 순간에 있는가? 그렇다면 물어라, 사무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생각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행동을 따라하며 유교적 전통을 믿는 사람은 공자나 맹자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하고 노장을 믿는 사람은 노자나 장자라면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한다. 이것이 문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 문화의 문제&lt;/p&gt;&lt;p&gt;&lt;br&gt;&lt;/p&gt;&lt;p&gt;문제는 한국이다. 우리는 한국문화를 대표할 강력한 문화적 인격체를 상상할수 있는가? 우리도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선비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선비라는 가상적 인격체에게 물으면 답을 준다. 그것이 한국문화였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전통의 그것은 선비이지만 선비는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인격의 모형으로 남은게 아니라 처절히 상처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거의 모든 전통에서 유교적인 것을 뽑아내고자 한다며 사실상 전통에서 무조건 벗어나는 것이 진보적인 것, 현명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같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것은 해방이후의 경험도 영향을 준것이지만 일제시대의 교육이 만들어 내기도 한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것은 어떤 의미로 사무라이가 선비를 쳐죽인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들에게 선비는 비루하여 사무라이에게 죽었으니 너희들도 이제부터 사무라이로 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식민지 교육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해방은 되었지만 선비는 부활하지 못했다. 선비의 부활이니 계승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과거로의 회귀라며 펄쩍 뛸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선비는 이름이 선비인 것이지 역사 그대로의 선비여서도 안되고 일수도 없다. 카우보이도 사무라이도 역사 그대로의 인격체가 아니다. 심지어 예수나 부처나 공자도 끝임없이 재해석되는 것이다. 문화적 인격체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 항상 진화하고 발전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여기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가지 명제가 있다. 그것은 문화는 항상 전통의 발전적 계승만이 있을 뿐이지 과거를 고수하는 것도 되지 않지만 문화의 비약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역사 다른 사회에서 발전해온 몇가지 다른 가상 인격체를 동시에 수용하는 것은 여러가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가치판단들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 충돌을 개인의 차원에서 수습할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성인들로 계승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능력과 운을 가졌을까? 결국 우리의 문화적 인격체의 원형을 그냥 버리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껍데기만 한국 사람일뿐 미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그런 사람이 한국문화의 계승에 가치를 둘까? 당연히 두지 않는다. 사무라이를 머리에 집어넣은 인간은 천황을 모시는 일에는 황송해 하고 우리나라 고궁자리를 밀어버리는 일에는 별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으며 일본식 문화상품을 들여와 일본문화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에는 보람을 느끼지만 우리 고향산천을 홰손하고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영구히 파괴하는 것은 선을 위한 악의 제거라고 생각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맺는말&lt;/p&gt;&lt;p&gt;&lt;br&gt;&lt;/p&gt;&lt;p&gt;이 종합적 인격체의 부재는 한국의 문화물들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 문화물속의 인간들은 삶의 한가지 면에만 집중한 편협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동도서에 보면 가난한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이 나올때가 있다. 한국의 아동도서도 그렇다. 그러나 그안의 인물들의 태도는 극명하게 다른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독립적이고 밝으며 돈이 없어도 당당하다. 한국책에 나오는 가난한 아이들은 당당하지 못하거나 삐뚤어져 있거나 유약한 천사같은 아이거나 고통에 젖어서 산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선비가 달밤에 달구경을 하면서 술을 한잔하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집앞에 심은 나무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국화를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동네의 동산에 올라 동내풍경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술한잔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때까지 마시지 않고 안주가 적다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왠지 그럴것 같지 않은가?&amp;nbsp;이 선비는 마구 폭식하고 다이어트 하느라 고생할까? 동네의 터를 몽땅 헐어서 커다란 고층아파트로 동네를 다 채우자고 할까?&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자연보호를 하자고 한다. 백마디 천마디 사실의 나열은 사실 그다지 도움이 안된다. 가치판단이 안되기 때문이다.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사람들에게 납득될때만 자연은 아름답게 보존될수 있다. 내가 쓴 글을 보면 사람이 마치 컴퓨터에 윈도우 깔듯히 선비라는 소프트웨어를 깔아야 움직이는 기계인것처럼 쓴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사실 어느정도까지 이비유는 옳다.&amp;nbsp;대부분의 인간들은 진정 주체적으로 살수가 없다. 예수님을 탑재하건 공자님을 탑재하건 부처님이건 사무라이건 카우보이건 선비건 머리속에 소프트웨어를 깔아야 움직인다. 그렇지 않은 인간이 사실은 가장 기계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이며 종잡을수 없는 인간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한국인들은 이미 선비라는 프로그램이 대부분 깔려있다. 한국인 부모를 두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선비를 발전적으로 계승할수 밖에 없다. 이것을 잊을때 우리는 매우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파탄이 생긴다. 우리의 문화가 공허해 진다면 이런 것을 잊고 종합적인 인격을 추구하는 대신 한 측면만을 파고 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상품이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말한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lt;p&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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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매춘은 왜 불법일까.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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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격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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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3T11:29:40Z</updated>
	    <published>2009-11-13T11:29:4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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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춘은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쁠까. 게다가 도덕적으로 나쁜게 모두 불법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왜 그렇게 나쁜 것일까. 나는 매춘을 합리화하자는게 아니다. 그러나 매춘이 세상에 많은 것이 현실인데 매춘이 왜 나쁘냐고 하면 그저 그냥 나쁘니까 나쁘지 정도에서 머물고 마는 사람이 많은 것같다. 매춘은 왜 나쁠까.&lt;div&gt;&lt;br&gt;&lt;/div&gt;&lt;div&gt;일단 사회적으로 확대해서 여성을 남자가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요즘 설득력이 약한 것같다. 사실 방송에도 여러번 나온 것처럼 매춘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그 직업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그 만큼의 돈을 다른 노동을 통해서 버는 것보다는 그걸 선호해서 일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몸파는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몸사는 남자는 돈이 있어서 서로 그런 거래가 좋다는데 사회가 그런 거래를 막는것이다. 왜 그럴까.&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예 매춘이 전혀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를 상상해 볼수 있겠다. 매춘이 전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회에는 무슨 문제가 생길까? 일단 아마도 결혼제도가 붕괴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하고나 섹스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가치판단이 없어진다면 결혼이라는 틀은 사라질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성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것이므로 그 사회는 실질적으로 가진자들이 다수의 배우자를 거느리는 것과 같은 중혼제사회 비슷해 지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이 섹스산업에 종사할 것이다. 일단 산업화되면 오히려 섹스는 차별화된 상품으로 거듭날 것이다. 섹스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판단이 없으니 그저 섹스를 하는 것뿐이라면 상대는 쉽게 구할수 있다. 그러니까 차별화된 상품개발이 필요하다. 환상이 필요하고 상품에 포장하고 선전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며 최고의 섹스 상품들은 너무 자주 팔수 없다. 희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오히려 이 매춘이 자유인 사회에 대한 상상이 자꾸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즉 내가 매춘이 불법인 사회, 매춘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건지 혼동이 된다. 현실에서는 포르노물이 범람하고 있다. 포르노는 인간이 찍는 것이지만 성인물로서 합법이며 그다지 범죄시되는 행위는 아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방송과 영화관을 채우는 여배우들과 가수가 전부 매춘업계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하면 세상이 떠들썩할 일이지며 그게 사실도 아니지만 매력을 파는 사람들과 몸을 파는 사람들과의 경계선은 과연 그렇게 높은 것일까? 거의 벗은 몸을 도발적으로 흔들며 야한 가사를 외치는 가수나 여배우들이 파는 것은 몸파는 것과 정말 그렇게나 엄청나게 다른 것일까? 하나는 예술이고 하나는 범죄인가?&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이제 한국에는 애인대행 사이트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일반인 여자들이 자신을 경매로 내놓고 돈을 제일 많이 낸 남자들과 데이트를 한다는 것같은데 여기에 몸을 파는 일은 포함되어져 있는 것같지 않다. 그러나 정말 이것은 매춘이 아닌가?&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과학의 발전으로 가상현실 즉 아주 현실적인 환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날로 발달하고 있다. 인간과 똑같은 로보트가 나오는 미래는 멀지 몰라도 그런 로보트가 줄수있는 만족감과 환상은 이미 현재의 포르노나 영상매체들이 넘어선것같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매춘에 가치판단이 들어가지 않는 사회에서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홰손되는 것일것이다. 섹스는 본래 인간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되는 그 과정에서 모든 가치판단을 제외해 버린다는 것은 인간을 공장에서 나오는 자동차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현실적으로 임신중절수술을 금할수도 금해서도 안되는 것이지만 너무도 안전하고 편리한 임신중절방식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 누구나 쉽게 그렇게 할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도 무시무시한 일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일에 대한 통제는 그것이 완벽해 질수록 태어나는 아이들을 공장에서 나오는 인형처럼 느껴지게 만들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사실 오늘날 &amp;nbsp;인간존엄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세계의 빈부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빈민국에서 1억쯤 되는 돈이면 거부로 살수 있고 몇천원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부자나라에는 병치료를 위해 장기가 필요한 부자들이 얼마든지 있다. 한쪽에는 푼돈이 없어서 사람들이 대량으로 죽어가고 한쪽에는 큰돈을 들고도 장기가 없어서 불편하게 살면서 죽어가는 부자들이 있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그러나 장기매매는 악마의 유혹이다. 그것이 보편화된다는 말은 인종말살같은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세상을 말한다. 누가 말살될것인가. 그야말로 지옥이 될것이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나는 매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매춘이 도덕적이지 않은 근본이유는 인간존엄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우리는 인간존엄따위는 가져다 버린 사회에 매우 매우 근접해 있는 느낌이다. 마치 아주 작은 막하나만 뚫으면 무너져버릴것같은 상태다. 사람들은 온갖 기괴한 이름을 붙여서 합리화하는 방식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화에 소질이 뛰어난 존재다.&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섹시한 매력으로 돈을 버는 여배우나 여가수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심지어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하지도 않겠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저 우리 사회의 현재 상태다. 언젠가 팔다리를 기계로 교체하는 것이 '섹시'해 보이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아이들을 키우는 대신 혼다에서 만든 인간형 로보트를 키울지 모른다. 그리고 뭔가 이유가 있다면 예를 들어 오사마 빈라덴 같은 사람이 어딘가 사람많은데 숨었다는 이유같은 것으로 전쟁을 시작해서 수없이 사람을 죽이고 정의는 실현되었다며 자랑스러워 할때가 올지도 모른다. 이게 다 미래의 이야기인가 지금의 이야기일까.&amp;nbsp;&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그런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초등학교때 사우디에서는 맹물을 돈받고 판다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농담이었다. 우리는 설마 사우디에서도 맴물은 돈받고 팔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15년이 지나자 요즘도 수돗물 그냥먹냐면서 생수 안먹는 사람을 이해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흔해졌다. 자신 사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지는 대로 생각이 바뀐다.&amp;nbsp;&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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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흑백 논리와 백분율 논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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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격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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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2T16:39:45Z</updated>
	    <published>2009-11-12T16:39:45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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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우리 아이들이 가볍게 싸웠다. 막내가 큰 딸아이를 놀렸다는 것이다. 나에게 딸아이가 그런 말하면 안되지 않냐고 묻는다. 물론 놀리는 말은 하면 안된다. 하지만 그날은 다른일로 생각하던 것이 있어서 내가 말했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quot;너는 막내가 0에서 100까지 점수를 매겼을때 얼마나 잘못했다고 생각하니?&quot;&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0은 잘한것이고 100은 너무 잘못한 것이다. 답은 60이었다. 즉 그 아이도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게 그리 엄청난 잘못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싸움이 나는 이유는 아이들이 흑백논리로 싸우기 때문이다. 잘못이냐 아니냐로 싸운다. 0이냐 100이냐로 싸우는 것이다. 막내는 그런정도의 말을 굳이 아빠한테까지 가서 이르는 누나가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싸움은 이유없이 커진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나는 이 이야기를 할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른들의 싸움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뭐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다. 한번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내가 고의로 수정할 기회가 있기 전에는 바뀌지 않는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누군가를 그 사람은 뚱뚱한 사람이라고 불렀다면 그 사람에게 나는 자신을 뚱뚱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나는 그걸 잊어버렸거나 시간이 상당히 흘렀지만 그렇게 불린 사람에게 그것은 그대로 남는다. 더구나 뚱뚱한 정도를 100으로 나눠서 이야기한것도 아니다. 뚱뚱한 사람과 뚱뚱하지 않은 사람 둘로 세상을 쪼개서 그 사람은 그리로 던져넣은 것이다.&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것들을 따지는 것은 쩨쩨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남의 이야기를 들을때나 자기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할때만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다. 살면서 상황적으로 보았을때 나를 잘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이며, 그저 여러개의 의견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데도 오래 오래 상처가되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던가? 세상을 0에서 100쯤으로 보는게 아니라 두조각 양분법으로 나눠 나를 어딘가로 던져 넣어버리는 사람을 만나고 기분상했던 적이 없었던가? 세월이 엄청 흘렀는데도 우리 아들은 여자만 만나면 쑥맥이라는 선입견을 버리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동네사람에게 말하는 어머니를 둔사람은 이런 단순한 분류에 당황스럽지 않던가?&lt;/p&gt;&lt;p&gt;&lt;br&gt;&lt;/p&gt;&lt;p&gt;집단에 대한 이야기, 즉 정치나 종교나 지역이야기하다보면 왜 싸움이 나는가. 그것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존재하는데도 그걸 단순하게 무자르듯 말하기 때문이다. 충청도 사람은 멍청해, 한국남자는 폭력적이야 이런 말 같은 거 말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노무현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햇던 사람들은 역대 정권은 모두 부패 비리가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혈압이 끓어오른다. 그들은 즉각 소매치기가 살인범하고 같냐고 정도를 비교하지 않는 것을 용납할수 없다고 말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종종 그렇지가 않다. 어찌나 세상 평가가 흑백논리인가를 생각하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대선당시 불법선거자금 이야기가지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 전여옥이었던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불법자금 규모가 열배가 되니 안되니가지고 공중파방송에서 따지던 것이 기억나지 않는가? 그러니까 똑같다는 것이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어떤 사람들은 단순하게 아 정치가들은 전부 권력욕에 차서 비리를 저질러 라고 정리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은 이러저러한 것은 그래도 화끈했지 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포크레인으로 젓가락 놀려서 라면먹기같은 묘기가 필요하다. 즉 상황인식의 틀은 엄청나게 흑백논리고 거대한데 다뤄야 하는 사안은 그보다 단순하다. &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흑백논리는 자주 자주 비판받는다. 그러나 자신이 흑백논리에 빠져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다. 사실상 세상은 어떤 경우에도 두조각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모든 범죄자는 다 자신의 사연이 있다. 아니 모든 인간이 다 사연이 있어서 범죄자와 비범죄자로 세상을 나누는 것도 공평치 않다.&amp;nbsp;&lt;/p&gt;&lt;p&gt;&lt;br&gt;&lt;/p&gt;&lt;p&gt;이런 단순논리로 세상을 보니까 형평성이 크게 어긋나는 일이 마구 벌어진다.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려면 먼저 온국민이 세상을 백분율 논리로 보는 버릇을 들여야 하는거 아닐까? 좋다 나쁘다로 말하지 말고 점수를 매겨라. 나쁜 놈, 좋은 사람 말하지 말고 점수를 매겨라. 숫자를 보고 정도에 신경을 쓰자. 매번 그렇게 말하는게 버겁다면 스스로 마음속으로 물어보자. 우리 큰딸에게 내가 물었듯이 말이다. 남이 한짓은 몇점짜리 짓일까. 내가 한짓은 몇점짜리 짓일까. 별거 아닌것 같지만 이점을 제외하면 대화는 겉돌고 결론은 산으로 간다.&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HrIM&amp;amp;tagName=일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상&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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