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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心 休 亭 (심휴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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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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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2T09:27:5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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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 몇 점짜리 인생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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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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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2T09:27:58Z</updated>
	    <published>2009-12-02T09:27:5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나는 몇 점짜리 인생인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누가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에 점수를 받는다면 몇 점을 받을 것 같소?” 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 물음에 당황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평소 자신을 돌아봄이 없고, 조금 더 가치 있게 살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한 뜻 밖의 질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한마디로 일축해서 세상을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따라서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주어진 조건이나 여건 따라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만으로 살아있다고만 생각하고, 남보다 조금 편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그로인해 얻어지는 이익, 훗날 후회 없을 현실의 태도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영향, 미래지향적인 발전의 노력, 그런 자신을 고찰하는 깊이다. 그것이 점수로 매겨질 수 있는 부분이며, 사회전반에 걸쳐 마찰이 없이 원만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최대한으로 가꾸어 살고자 한다면 만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사는 인생이라 할 수밖에 없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지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 지성으로 말미암아 더 나은 삶, 즉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성을 버리고 오직 몸 편하고 배부르기를 바라기만 한다면 한낱 동물과 다른 인생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명백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지만, 그런 지성이 밥 먹여주는 데에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묻히고 망각되어져 가고 있음을 여실히 꿰뚫어 봐야할 것이다. 지성을 버리고 정말 이대로 좋은가 하는 성찰도 아울러 필요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몇 점짜리인가 하는 물음에 당황하는 사람보다는 아직 10점 밖에는 못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낫다. 그만한 사람은 그래도 아직 지성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좋은 점수를 받기위해 노력할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을 바로 알고 세상을 바르게 살고자하는 사람일수록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보장받을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본 사람만이 희열을 알지만, 겨우 중간 밖에는 안 가보고 마치 다 오른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행여 내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정말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정상을 올라보고자 하는 무구한 노력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내 인생의 점수는 이미 나와 있다. 다만 자신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느 때 내 인생의 스승을 찾아 자신의 점수를 물어보라. 스승을 만나는 일, 그리고 자신의 점수를 아는 일부터 시작 될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세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하는 진보가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높은 등급의 인생을 살아야 후회 없을 것이다. &lt;/SPAN&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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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무량심과 개인의 경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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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author>
	    <updated>2009-11-30T13:50:57Z</updated>
	    <published>2009-11-30T13:50: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사무량심과 개인의 경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무량심은 불자의 기본적인 도리이고 마음이어야 한다. ‘자’로써 남을 이익 되게 하고, ‘비’로써 남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희’로써 기쁨을 선사하고, 남이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며, ‘사’로써 모든 중생을 내 몸과 같이 하나로 보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부처님은 왜곡되어가는 중생의 생각과 삶을 안타까워하며, 본래의 자리를 찾아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참으로 사랑 깊으신 분이다. 하지만 많은 중생들은 본래의 자리를 모르고, 행복해지기는 바라지만 그것을 구하는 데만 급급하며 많은 세월을 고통하면서 헛되이 보낸다. 손에 쥐어주어도 모를 중생들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부처를 말하고 불법을 말하면 마치 책속에 있는 명언 한 구절이나 보듯, 가벼이 고개나 끄덕이며 지나치기만 한다. 적어도 불자는 이래서는 안 된다. 불자는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로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곧 부처라는 것을 말이다.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순간의 행동이 진정 부처다워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사무량심의 실천에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인 만큼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불자의 도리인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첫째 화가 나서도 안 되지만 화를 표출해서는 더욱 안 된다. 내가 화를 내면 상대를 불안하게 하는 일이며, 앞으로의 일의 방향을 냉철하게 잡아주지 못한다. 흔히 남의 잘못하는 것을 보면 화를 내지만, 내가 잘못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설사 남이 잘못한 것일지라도 왜 자신이 잘못하는 것인가를 명백히 알게 하는 데는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어야 하며,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된 다음에 추후 조절되어야할 것이다. 자애로운 마음의 첫 번째 실천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둘째 욕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아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말을 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말을 하게되는 생각의 작용이 일어난다. 욕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본래 어떤 사람이나, 어떤 생명이나 자체로 미운 존재는 없다. 어떤 생명이나 어떤 사람이나 반드시 누군가로부터는 사랑받고 산다. 개체로는 더없이 귀한 존재이다. 다만 내가 그를 상대적으로 싫어할 뿐이다.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자신만 혼탁해질 뿐이다. 부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 내 입장에 따라 상대를 보는 일 없어야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셋째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퍽이나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한다. 길을 걷다보면 발 뿌리에 걷어채는 돌멩이도 많지만, 어떤 돌은 앉아 쉬기에 좋은 널따란 돌도 있다. 기왕이면 발길에 걷어채는 사람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 되고 사랑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처의 참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넷째는 남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인격과 처세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잘못된 생각일 수도 물론 없잖아 있다. 정당한 일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이해시킬 논리가 있어야할 것이다. 부처는 어떤 중생에게나 존경받는 위대한 분이다. 가볍게 무시되는 내가 부처의 길을 간다고 말하기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불자로써 경솔한 행동은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길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남을 부처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내가 곧 부처되는 길이다. 사무량심의 정신과 실천이 필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부처의 몸같이 실천해서 부처와 불법이 신뢰받는 사회를 조성해야한다. 어느 종교는 갖은 설법과 유인물을 들고 길을 인도하는 데에 있어 타성적인 주입식 방법을 쓴다. 그 방법이 직접적이라고 말하면 불교는 간접적인 포교가 되어야한다. 내가 먼저 부처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해야 한다. 사무량심을 내어 자비희사를 그대로 실천하면 바로 부처님이다. 그로써 내가 행복하고 내 주변이 행복해진다. 극락이 따로 없는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 극락이다. 모두가 부처이기를 발원하고, 불자 모두가 보살이 되는 불국토를 이루어야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상에 태어난 것이 복이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큰 복이며, 불법에 인연한 것이 더없이 큰 복이라 하였다. 나는 이런 말을 참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늘 가슴속에 위안삼아 간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어쩌다 불법에 인연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다. 어떤 사람에게 내게는 아주 희귀하고 좋은 물건이 있다고 말한들 그런가보다만 할 뿐 감동할 사람은 없다. 직접 보여주고 만져보게 하고 아예 그 사람에게 주어 버리면 모를까, 직접 느끼는 감동이야 달리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이때 부처님을 곁에 모시고 불법에 사는 것을 그 같은 감동으로 헤아려보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내가 과거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과 지금 어떻게 사는 것과는 이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선 과거는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다. 대표적으로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인해 나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이웃이 힘들어했다. 물론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야 그 정도 삶이 보편적인 것이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웬만한 것은 아무것 아닌 양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작아 보이지만 그 많은 업들이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고 쌓인다면, 끝없이 이어질지 모르는 윤회하는 이 삶에 대해 어떻게 해명할 것이며, 그 때는 언제 씻어낼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에 인연한 것을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끔은 종교에 빠지고 미치는 사람이 있다고들 한다. 자칫 어떤 무지한 사람들이 보면 나 같은 사람을 그렇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빠지고 미친다는 것은 어떤 일에 집착해서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를 말한다. 집착과 노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두고 정중히 뇌까려 보건데 번뇌 없고, 집착 없고, 망상이 사라지는 삶이야말로 빠진 것도, 미친 것도 아닌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좋게 빠졌다고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크게 또는 형식적으로 선에 몰두해본 적은 없다. 처음 불교방송을 접하면서 발심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고, 이어 서적이나 신문이나 사찰을 찾아 간단한 예배나 하면서 짧은 명상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위빠사나 수행을 실천하고 있으며, 이는 일상에서 늘 그렇게 하고 있다. 나와 사물을 바로 보는 마음을 맑힘으로 해서 반야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바른 삶이라고 느껴지고, 이것이 곧 행복이라고 여겨지는 한 영원히 그럴 것이다. &lt;/SPAN&gt;&lt;/P&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천인관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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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author>
	    <updated>2009-11-30T11:19:05Z</updated>
	    <published>2009-11-30T11:19: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천인관계론과 나의 견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철학이란 우선 일반인들에게는 대단히 생소하고 거리가 먼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매우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게 근본이 있는 한 그 근본 알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분명이 하고 살아야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우주에는 자연이라고 하는 광대한 범위의 바탕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하늘과 땅, 인간이라는 즉 [天. 地. 人]의 삼대 요소가 우주를 이루고 존재한다. 공간적 개념으로 보는 하늘이 ‘天’이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지구는 ‘地’며 사람은 ‘人’이라고 볼 때 윤곽은 쉽게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영속되어야할 것인가는 심오한 연구와 노력을 조금은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이라는 만물의 영장이 자신의 미래지향적인 존립을 목적으로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구촌의 여는 생명에게 있어서는 하늘과 땅이 자신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 크게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어진 조건대로 살아갈 뿐이다. 다만 인간에게 있어서만 자연에 의존하고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꿈이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간은 아주 먼 과거로부터 하늘을 숭배하고 의존하며 살아왔다. 하늘은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하는 터전을 마련해주고, 인간이 충족하고자 하는 모든 여건을 두루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은 가장 위대한 존재며 필연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늘을 높이 받들고 감사하며, 하늘의 뜻이라면 곧 숙명이라고 말할 정도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과거의 인류가 그처럼 하늘의 뜻에 따라 받들고 순응하며 살았다면, 지금의 인류는 오히려 하늘(통틀어 이하 자연이라고 하자)의 뜻을 거역하는 성향이 짙다. 과거 자연에 지배되어온 삶이라면 지금은 갈수록 자연을 지배하려는 성향으로 변모해가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사태라고까지 생각되며, 천인관계의 심오한 성찰이 아쉬운 때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아이에게 불을 지펴 따뜻하게 놀고 있으라 했더니 그 불로 집을 태어버리는 것과 같다.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이 명석함의 대결에서 명석함이 위대함을 능가하려는 추세다. 오늘날 자연경시 풍조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현 위치를 망각한 채, 오직 이기주의적인 사고에 파묻히어 스스로 어리석은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은 자연을 잉태하고, 따라서 자연은 곧 하늘의 뜻이다. 거기에 인간도 또한 자연의 일부며 동시에 천지인 모두는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나 된 범주 안에서 정해진 순리를 거역하고, 그 안에서 왜곡되게 비틀어진 자가 있다면 기존의 형태가 멸할 수밖에 없다. 마치 불로써 집을 온통 태워버리는 것과 같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이 이 세상에 제공하고 부여한 만큼 인간도 그 범위에서 누리고 공존해야 마땅하다. 자연과 사람이 따로 일 수 없다. 아무리 영특한 인간이라 하나 자연 속에 없는 것을 창조해낸 것은 없다. 획기적인 현대의 문명이 위대한 어떤 것을 새롭게 창조해냈다고 하지만 원초적으로 자연에서 얻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의 원리를 다만 편리하게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해냈을 뿐이다. 그것으로써 장난하는 왜곡된 사고는 속히 철회되어야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에 어떠한 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기후에 변화가 있고, 산이 무너지고, 폭풍우가 휩쓸어가는 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봇물 터지듯 하는 자연의 엽기적인 변화일 뿐이다. 지극히 자연적인 변화로 인한 축적된 힘의 발산일 수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그 힘을 인위적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다. 따라서 재앙의 많은 부분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만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굳이 하늘에 뜻이 있다면 잠잠하고 싶을 뿐일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상의 모든 물질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구성되어있다. 그것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순조롭게 상호작용 할 때 본래의 모습으로 지켜질 것이다. 순서를 뒤바꾸거나 세력의 크기를 바꾸는 것은 위험해질 뿐이다. 그 바꾸는 일을 인간이 하고 있다. 물길을 막아 인간이 편리한 곳으로 돌리고, 산을 깎아내어 인간의 터전을 만들며, 작은 불씨로 큰 불을 낼 수 있는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모두 인간만이 좋아라고 하는 이기적인 발상이며, 잠잠하고 싶어 하는 자연의 본능을 꺾어버리는 행위다. 인간이 그렇게 머리 씀으로 해서 순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로인한 재앙을 훗날 받는다. 그때 가서도 아직 자신들이 만든 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뜻으로만 여겨 도리어 하늘을 원망한다. 원초적인 것을 모르고, 멀리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는 본래 자연임을 깨닫고, 자연답게 살고자 해야 한다. 주어진 혜택만을 가지고 그 안에서 감사하고 살 때에 하늘도 노하지 않는다. 편리해지는 법에 재미를 들리고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자칫 자연과는 동떨어지며, 자연과는 별개인 것처럼 생각한다. 욕심도 내 보지만 그때마다 늘 본래의 한 생각을 떨쳐버려서는 안 된다. 쓰는 기계나 사람을 다룸에 있어서 보다 능률적이고 오래 쓰기 위해서는 그 대상의 능력이나, 한계나, 부작용까지 고려해야한다. 만들어내는 데도 지혜가 있어야지만 유지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욕구에만 휘말려 정신없이 앞으로 갈 줄만 알았지 본래의 자리를 돌아볼 줄 모른다. 유지하고자 하는 것에는 소홀하고 덮어놓고 새것을 창조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즐기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이다. 자연을 떼놓고 즐김이 있을 수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 하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만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라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흔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운명을 바꿔놓고 싶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운명을 바꿔줄 자는 아무도 없다. 하늘의 뜻에 거역하지 않는 한 하늘도 그를 버리지는 않는다. 스스로 하늘의 뜻에 얼마만한 거리를 두고 살았는가를 돌아봐야할 것이다. 자신이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둘이 아닌 하나 된 천인관계를 알면 내 가족, 내 이웃, 내가 가진 물질 모든 것이 하나 아닌 것이 없고, 하늘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변한 나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하늘을 위대하게 섬길 때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평온해질 것이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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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욕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욕하는 입이 더러워진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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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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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1T01:12:14Z</updated>
	    <published>2009-11-21T01:12: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욕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욕하는 입이 더러워진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입으로는 먹고, 말하고, 소리 지르고, 숨을 쉬기도 한다. 그 중에 제일 많이 쓰일 때가 말하는 것이며, 제일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먹어야 하고, 사는 것 하나만을 생각하면 입은 먹는 기능만으로 족하다. 거기다가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입으로 말을 할 수 있으므로 말하는 입은 보너스로 얻은 셈이다. 말을 함으로써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하는 입이 있어야할까 하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성 싶은 사람이 있다. 입으로 더러운 욕설을 서슴없이 쏟아내는 사람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물질을 담은 통에 구멍을 내면 그 안에 있는 것이 쏟아져 나온다. 통 안에 깨끗한 것이 있으면 깨끗한 것이, 더러운 것이 담겨져 있으면 더러운 물질이 나온다. 우리 몸이 통이면 입은 통의 구멍이다.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이다. 잘 정화된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 지저분한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음과 생각대로 말이 만들어지고 행동을 이끌어낸다. 마음과 생각은 곧 인격을 형성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말만 들어도 그 사람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곱지 못한 말로 스스로가 저질 인격을 드러내 보일 것인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기야 부끄러운 줄 알면 한 단계 위로 봐야할 사람이다. 많은 노력으로 인격 수양에 힘써야할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욕하고 험한 말을 많이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를 담고 있다. 성격이 거칠어서 온건한 생각을 하지 못하며, 이유 없이 사람을 많이 미워하기 때문이다. 포악하고 거친 사람은 오만한 성격이며, 남을 자신의 아래로 보기 때문이다. 남을 쉽게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스로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사람처럼 못난 사람은 없다. 더욱이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을 모르는 까닭에 어리석기까지 하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거친 말이나 욕설로써 겉으로는 상대를 제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기야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명은 없다. 만일 그렇게 해서 천하를 제압한다면 통쾌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영원히 제왕이 되는 사람은 없다. 설사 일시에 제왕은 되었다하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무너지고, 곧 민중 앞에 무릎을 꿇는 수모를 겪어야할 것이다. 누구든 포악함 앞에서는 기죽은듯하지만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행동 자체가 어리석은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착각하여 마치 당장에 제왕이 된 양 거들먹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가 죽는 날까지 언젠가는 허망함을 알게 될 것이다. 모두 그런 사람 곁을 떠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싱겁게 먹는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싱겁게 먹어야하고, 짜게 먹는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짜게 먹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거친 보리밥에 길들여진 사람은 흰 쌀밥은 단조롭고 싱거워서 못 먹겠다고 할지 모른다. 습관은 이처럼 길들여진 것에 익숙해져있다. 늘 고운 말씨로 남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늘 험하고 지저분한 말투로 뭇사람들의 한숨을 자아내게 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에 말한 사람이 전자에 말한 사람의 흉내를 내라하면 싱거운 음식을 못 먹듯 당장에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좋은 줄 알면 오랫동안 익힌 습관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인격의 가치를 알고, 욕하는 입이 더러운 줄 알면 당장에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진정 대접받고자하는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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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혼은 인생의 실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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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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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7T21:04:57Z</updated>
	    <published>2009-11-17T21:04:5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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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이혼은 인생의 실패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두 이성이 만나 결혼해서 사는 것은 인생의 한 과정이다. 결혼을 안 했으면 몰라도 한번 했으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방법으로써 살아가야한다. 자기 주관이나 방식대로만 세상을 살아가기로 한다면,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어디에서도 합일체가 되어 살아가기 힘들다. 어떠한 인생의 과정이든 거기에는 새로운 방식이 있고, 내가 그 안에서 적응하려는 노력이 있어야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결혼을 인생의 중대한 부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간단한 행사 따위로 생각한다면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배우자를 한 때의 기분으로만 선택하는 것부터 물건을 모양만 보고 욕심으로 구입하는 것과 같다. 겉으로 보이는 가문의 명성이나, 인기 있는 직업을 선택의 일순위로 꼽는 것이 그렇고, 순간의 열정을 진실한 사랑으로 믿어버리는 것이 그렇다. 보이지 않는 성격이나 인격은 물건의 쓰임새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역시 겉모습에 가려 내용은 무시되고, 기분에 따라 하고보자는 식이 되어서는 장래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경솔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물건을 사고 고를 때 용도와 가치를 잘 보고 사야하는 것이지, 모양만 보고 욕심으로 구입한다면 쓰임새를 떠나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가령 물건이야 애당초 잘못 구한 것이면 쓰기 전에 바꿀 수도 있고,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쓸 수도 있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물건 사고 바꾸는 것만큼이나 쉽게 생각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겉모습만 보고 쉽게 구하는 것도 그렇고, 만일 처음과 차이가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살아봐야겠다는 생각까지를 하지 않는다. 쓰임새에 적합하지 않은 물건이 있다면 고쳐 써볼 생각도 해야지만, 내던지고 다시 구입하면 된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만능의 시대에 따른 경솔한 생각이며, 그런 습관이 몸에 베이다보니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어려운 장애물에 부딪치면 해쳐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움에 도전하는 끈기가 사라진 듯하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떡은 본래 정성을 들여 잘 만들어진 음식이다. 그 중에 내 입에 맞고 안 맞고 하는 것은 그 떡의 본래의 맛이라기보다는 내 입맛이다. 내 입맛만 변덕스럽지 않고 까다롭지 않다면 맛없는 떡이 없을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떡 골라먹듯,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택으로만 산다면 오히려 피곤한 삶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싫은 배우자를 그런 맛없는 떡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물질만능 시대에서 오는 잘못된 생각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새것의 다자인이나 기능에 금방 매료되듯이 사람의 겉모습을 그런 식으로 보며, 물건을 수고롭게 고치는 것보다는 구입이 훨씬 손쉽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삶의 방식을 고쳐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바꾸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품질 상태나 서비스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내 기준에 우선 맞추려는 것을 권리로 생각한다. 좋으나 낮으나 숙명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옛날과는 달리 맘에 안 들면 아무 때라도 버리고 바꾸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망가진 가구들을 고쳐 쓸 생각은 안하고, 바꿀 생각부터 먼저 하는 것처럼 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혼의 사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흔히 성격의 차이를 많이 든다. 사람의 성격이란 천차만별이다. 크게는 급한 성격, 온유한 성격, 이타적인 성격, 이기적인 성격, 내성적인 성격, 외향적인 성격 등이 있겠지만, 그 안에서도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 것까지 포함 한다면 참으로 똑같은 성격이란 있을 수 없다. 본래 비틀어진 성격만 아니라면 약간의 성격차이는 그 사람의 개성으로써 인정하면 그만이다. 개성이 다르다고 해서 함께 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남의 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성격 같기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오히려 문제다. 다른 성격은 크게 문제될게 없지만, 이기심만은 배제되어야할 것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있다면 먼저 남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자신부터 바꿔야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이혼도 있다. 배우자의 비행과 이기심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가정의 화목을 깨는 폭력, 가족을 힘들게 하는 중독, 살림에는 뒷전인 외도, 혼자만을 아는 이기심과 고집스런 행동 등은 고쳐지지 않는 한 차라리 없는 가정만 못하게 만든다. 한 사람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긴 세월을 뻔한 고통으로 지낸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되지 않을 일에 성사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지만, 그도 신중한 노력과 냉철한 판단이 있은 다음의 지혜로운 결정이어야 할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작은 가정에서부터 눈높이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외의 사회생활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곧 가정의 실패자는 사회에서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덮어놓고 자기 기준에만 맞추려고 해서는 어디서나 가당치 않다.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람은 그만큼 잘 갖추어진 사람이지만, 남을 탓하고 자신만 옳다고 하는 사람은 아상에 의한 자존심이나 이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행여 그런 사람이 되어 배우자를 일방으로 탓하고, 배우자만 나쁜 사람으로 내몰아 이혼하자고 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라는 바이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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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기주장과 고집은 사회생활을 힘들게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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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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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7T19:46:41Z</updated>
	    <published>2009-11-17T19:46: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자기주장과 고집은 사회생활을 힘들게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누구나가 자신만이 생각하는 의견이 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내 의견은 공동체의 영위를 위한 참고가 되어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다만 참고로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굳이 관철되기를 바라는 것은 주장이고, 물러서지 않는 것은 고집이다. 주장과 고집은 욕심에서 비롯되며, 자신과 남을 동시에 힘들게 하고, 따라서 원만한 사회생활에 장애를 초래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각자의 의견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하나하나의 의견이 종합되어 단체를 이끌어가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견은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 중요한 참고가 되기는 하지만, 이후 자신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는 가를 중요시할 것은 없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다’는 말처럼 자신이 돋보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아집이 있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고, 이어서 고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문제의 현안이 아니라 자신의 아집이나 욕심이 주된 것이라면, 그 사람은 뜻밖에 소란을 야기한다. 목소리가 커지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런 사람을 장애로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에 공감을 얻어냈을 때건 아니건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되어질 것이 아니다. 반드시 ‘나’라고 생각하는 아집에 독특하고 유별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아집을 버리는 것만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고, 사회와 원만히 공조하며 편하게 사는 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둘 이상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자기주장을 내세워 고집하는 것은 무리며, 관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내가 반드시 남보다 나을 수 없고,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 나보다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의견이 보다 원칙에 접근한 좋은 의견일 수도 있다. ‘나’라고 하는 아집을 떠나 공평하고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한다. 내가 만들어 파는 물건이 아무리 좋다고 떠들어대도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모두 붙잡고 내 물건만을 사라고 강요한다면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자연스럽게 내 물건에 관심을 갖게 해 주어야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인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내 생각만을 옳다고 떠들어대는 것만으로 타의 관심을 살 수는 없으며, 그렇게 관심이나 사자고하는 꼴은 비난거리밖에 안 된다. 고집으로까지 끌고 가는 것은 더욱 천한 사람으로 몰락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 내 것을 내세우려는 아집, 아집에 의해 생겨난 가치 없는 자존심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으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자신 또한 욕구를 채우지 못해 답답해질 뿐이다. 주변 이웃이 자신을 멀리하고 스스로는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남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생각은 정중히 제시해서 진정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협력할 때, 바람직한 사회인으로서 호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집을 버림으로써 비난은 사라지고, 밖으로부터 훈훈한 정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것이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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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짜증은 받아들이는 자신의 수신불량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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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author>
	    <updated>2009-11-09T16:56:35Z</updated>
	    <published>2009-11-09T16:56:3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짜증은 받아들이는 자신의 수신불량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유독 짜증이 많은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 자체가 많은가, 바라는 뜻이 많은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바라는 바가 곧 뜻이기 때문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어떤 목적지를 가는 데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멀지만 평탄한 길, 조금 가깝지만 울퉁불퉁한 길, 아주 가깝지만 언덕을 넘어야하는 길 등이다. 어떤 길이 원칙이라 할 것은 없다. 때와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그만이고, 어쩔 수 없으면 조금 불편한 길을 가도 큰 탈이 날건 없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사는 데에 있어서도 장단점을 고루 수용하고 살면 그만이다. 장점만 가려 살기로 하면 그만큼 수용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아지고, 바라는 바는 커진다. 당연히 되는 일보다 되지 않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같이 짜증이 많은 사람에게는 짜증날 만한 일이 많은 것이 아니라, 짜증내고 있는 일이 많은 것이다. 남이 볼 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짜증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바라는 바가 너무 크기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즉, 욕구불만이다. 그냥 그대로여도 될 것을 조금 더 이랬으면 좋을 것 같고, 이 자리보다는 저 자리였으면 싶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상황이 자신의 기준에는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욕심이 많아 기준을 높게 세우고,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의 사람이다. 기준을 낮게 두고 남들과 같은 레벨에서 살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설정이 잘못된 것을 돌아봐야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세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허구적인 욕망일 뿐인 줄은 알지만, 마치 자신은 그같이 되기를 바라듯 일반적인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은 줄 알아야한다.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에 당장 마음은 괴롭고, 가슴속에 울화가 맺혀 몸도 편치 않다. 그 뿐인가? 주변의 사람들까지 피곤하게하고 힘들게 한다. 모두 자신 탓이라고 생각해야한다. 세상 탓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음을 주목해야한다.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고루 똑같은 은혜를 베풀고 있다. 유독 자신만이 은혜를 바로보지 못하고, 불편한 것만을 거슬리게 생각하고 안 좋은 것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기전에 받아들이는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 자신이 달라진 다음에라야 비로소 세상이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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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복하기를 바라는 수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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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慧月</name>
	    </author>
	    <updated>2009-10-21T12:24:28Z</updated>
	    <published>2009-10-21T12:24:2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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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행복하기를 바라는 수칙&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다음과 같이 살아야한다. 다음과 같이 산다면 분명 이익이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그에 따르는 불이익이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첫째 욕심을 버려야한다.&lt;/SPAN&gt;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욕심이 있다. 그중에 죽지 않고 살고자 하는 욕심이 기본이다. 다음은 편하고자하는 욕심, 그 다음은 즐기고자하는 욕심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 있고, 사랑받고 싶은 욕심, 대접받고 싶은 욕심,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자하는 욕심 등이 있다. 다시 말해 원하는 것이면 다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원한다는 것은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어떤 것을 자기 기준으로 맞추고자하는 작업이다. 뜻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살면 되지만, 어떤 생명이든지 포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구하고자고 하고, 그 욕망의 끝이 없다. 욕구충족의 가능성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그 욕망은 갈수록 더하다. 그러나 최소한에서 그칠 줄 알아야한다. 그것이 마음고생을 없애는 최선의 길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한번 욕구가 일어나면 그 욕구를 이루었을 때의 결과에 대해 터무니없는 공상을 하게 된다. 공상에 사무쳐서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중독처럼 혼미한 정신 상태에 몰입하게 된다. 마치 사다리 끝을 오르기 위해 사다리 상태를 미리 점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르면서도 발판 하나하나를 확인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욕심의 끝은 어딘지, 알고 있는 욕심의 끝은 영원할 것인지, 욕심을 향해 가는 길은 옳은지를 점검해야할 것이다.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준비와 과정도 중요하며, 그것이 곧 인생길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편하고 즐기는 것만으로는 행복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다만 일시적인 쾌락인줄 알아야한다. 그것을 위해 평소에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불행인 것이다. 무엇을 위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나 영원한 행복을 참구해야하고, 그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욕심은 어쩔 수 없는 필수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선택임을 알아야한다.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또한 알아야한다. 최소한에서 만족할 줄 아는 습성이 길러져야할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둘째 미운마음이 없어야한다.&lt;/SPAN&gt; 남을 미워하면 우선 자신이 괴롭다. 미운 사람을 죽이고도 싶지만 만일 그 사람이 죽고 없어진들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들며 마음이 아파질 것이다. 역시 앞이나 뒤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평소에 미운마음이 없이 누구나 평등한 존재로 보는 것이나. 아니면 잘못된 그를 오히려 측은지심으로 보는 배려가 있어야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미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누구보다 못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으며, 스스로 월등하다고 생각하여 남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열등하다는 자학을 해서도 안 되지만, 우월하다는 자만을 해서도 안 된다.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겸손만이 자신을 높게 성장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오히려 높게 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남을 미워할 일이 없다. 설령 누군가 미운 짓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런 사람으로 알면 그만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남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나를 개입시키고 대립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무시당하면 섭섭해 할 일이 아니라 무시하는 사람을 감사해야한다. 분명 내가 무시당할만한 짓을 했고, 무시당할만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잘못하는 것을 다 알기는 어렵다. 자신이 잘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흔치 않다. 비록 감정 섞인 방법으로 받은 가르침이라지만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큰 계기가 됨은 분명하다. 자체로 감사하는 마음을 내고 달라지기 위한 노력은 못할망정, 화를 내고 그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족한 자신을 아니다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만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자신도 잘 추스르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남을 먼저 사람 만들겠다고 하는 주제넘은 처사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본래 미운사람이란 없다. 어떤 사람도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행실이 잘못되고 잘되고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도 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공연한 미움으로 자신을 속 태우면서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셋째 잡념이 없어야한다.&lt;/SPAN&gt; 잡념은 말 그대로 필요 없는 생각이다. 삶에 있어서 생각을 안 하고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당장에 필요한 생각이 있고,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이 있다. 당장 하고 있는 일 또는 미래의 일에 있어서 준비되어야하는 생각이라면 필요한 생각이겠지만, 그 외에 지난 과거를 돌이켜 괴로워하거나 애수에 젖어있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거나 공상에 젖어 들떠있는 것은 필요 없는 생각이다. 행복하게 살려는 삶에 방해가 되고 오히려 그 자체가 불행이 되고 만다. 전혀 삶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잡념임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잡념을 없애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일환이며, 마음을 비울 때만이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다. 즐거울 때만 행복한 게 아니라,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또한 행복의 길임을 자각해야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는 ‘나’라고 하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다고 생각된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면 자체로 행복이다. 즐거울 때만이 행복이고, 불편하면 무조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짧은 생각이다. 욕심 없는 마음, 미움 없는 마음, 잡념 없는 마음, 즉 마음조차 없는 빈 마음이 삶을 편안하게 해주며, 변함없이 은은하고 향기로운 행복을 가져다준다. 과정에 즐거움과 괴로움이 얼마든지 왔다 갈수는 있지만, 모두 손님으로 알면 행복하게 사는 데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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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만과 교만은 어리석어 스스로 천한 곳에 빠진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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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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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16T20:20:34Z</updated>
	    <published>2009-10-16T20:20:3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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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자만과 교만은 어리석어 스스로 천한 곳에 빠진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남 앞에서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남 앞에서 우쭐대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앞의 경우는 자만이며, 뒤의 경우는 교만이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넘치면 남 앞에서 거들먹대는 교만으로 흐른다. 자만에 차서 스스로가 아무리 잘났다고 외쳐도 세상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가 천한 사람으로 몰락할 따름이다. 자신을 거꾸로 알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남들보다 조금 나은 조건에 있거나, 조금 더 아는 지식이 있는 것만으로 남보다 우세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착각하여 거짓을 진실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겉으로 드러내 보여 자랑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자만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항상 진실이라고 믿고, 남도 그렇게 알아주기를 청하는 부끄러운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세상에는 완성된 사람이 흔치 않다. 완성된 사람이라는 것은 남들이 우러러보아 존중받을만한 사람이다.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부족함이 없이 뭇사람들의 스승 될 만한 사람이며, 그는 스스로 그렇다고 선전하지 않고, 다만 뭇사람들이 존경하여 따를 뿐이다. 슬기로운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슬기로움은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며,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묻어나는 은은한 향기 같은 것이다. 당장 좋은 것이라고 달라붙을 것도 아니지만, 싫다고 달아나는 사람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재산 중에서 으뜸이다. 어떤 사람이 그 외의 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슬기로운 자를 따라잡을 바가 못 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자만에 빠지고 교만한 사람은 남보다 조금 나은 조건이나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랑삼을만한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한정된 것이며, 어떤 사람은 다른 방면에서 그보다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사람도 많다. 내가 모든 사람의 속내를 다 알 것이 아니면 함부로 거들먹댈 일이 아니다. 설령 남보다 나은 것이 확실해도 감추어두고 겸손해 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리석어 자신의 그런 경솔한 행동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슴없이 한다면 스스로 천한 꼴을 자행하는 것이다. 그에게서 인격적인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잘나지 못했지만 잘났다고 한다든지, 잘났음을 더 알아달라고 떠들어댄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나고 못난 것을 떠나 자체로 부끄러운 행위임에 틀림없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자만과 교만의 반대되는 말은 겸손이며 겸손은 순금의 가치가 있지만, 교만은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가치를 구분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부끄러운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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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신종플루에 좋은 것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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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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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13T22:31:30Z</updated>
	    <published>2009-10-13T22:31:3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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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버섯에 풍부한 베타글루칸은 면역력 강화 성분”이며 “외부에서 바이러스 등 병원체가 들어왔을 때 이를 잡아먹는 대식세포를 활성화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녹황색 채소에 풍부한 비타민 A·C·E는 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이며 체내에 축적된 유해산소를 없애 면역력을 높여준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비타민E는 특히 노인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호두·아몬드 등 견과류, 해바라기씨 기름·콩기름 등 식물성 식용유에 풍부하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쇠고기·돼지고기·생선 등 동물성 단백질 식품과 콩 등 식물성 단백질 섭취에 더 신경 쓰는 것이 옳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포도·산딸기(복분자)·마(산약)·산수유·오미자 등도 면역 증강에 유익한 식품으로 꼽는다. 알로에도 면역력 강화에 기여한다. 다당류 덕분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식품을 통한 면역 증강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효과 만점인 것은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며, 각종 영양소를 부족함 없이 섭취하는 데는 비빔밥만 한 것이 없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채소·과일·곡물·콩·씨앗류·견과류 등을 골고루 먹되 지방·정제 설탕·알코올·트랜스 지방 등의 섭취는 줄이는 것이 좋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요가·명상·스트레칭 등 행동요법을 시도해볼 만하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홍삼이 면역성을 주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녹차 100% 인 순수 녹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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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해지면 병나기 쉽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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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慧月</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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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11T08:52:33Z</updated>
	    <published>2009-10-11T08:52:3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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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불안해지면 병나기 쉽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불안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걱정하는 두려움이다. 생각은 많고 자신이 없는 나약한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병이다. 비슷한 상황에 어떤 사람은 자신에 차 있고, 어떤 사람은 무덤덤하며,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불안감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어떤 일에 생각이 많다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 문제에 대한 확고한 해결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래가 복잡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너무 정확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니고, 일이 잘못돼서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라면, 앞서 너무 걱정은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엉킬 대로 엉켜서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살다보면 완벽하게만은 살 수 없다. 약간의 오류도 범하면서 산다. 덜 풀리는 문제는 닥쳐서 또 하면 된다. 되도록 단순하게 살 필요가 있다. 걱정을 줄이고 그로인해 오는 불안을 해소하는 길일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싫은 것을 거부하려는 마음 때문에 불안해진다. 누구나 싫은 것은 싫은 것이지 싫은 것을 좋다고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싫은 것을 극복해내는 방법의 차이가 사람마다 다르다. 잘 극복해내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있고 두려움이 없으며, 극복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부딪치기를 꺼려하고 두려워한다. 의지력의 강하고 약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찍이 누군가를 의지하고 보호만 받고 자라 독립심도 없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는 난관을 극복하는 어려움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남들이 다 겪어내는 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상대적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경책해야할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늘 어려움을 겪고 사는 사람은 그나마 익숙해져 웬만한 어려움에는 끄떡도 안하며, 그로인해 앞서서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비교적 잔잔하게 살던 사람이 갑작스런 일에 불안해하고 공포에 떨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가 순탄치만은 않은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순풍만이 불지는 않는다. 이따금씩 태풍이 지나가듯이 누구든 인생에 있어서 어려운 고비는 있다. 그때마다 안와야 할 것이 왔다고 원망하기 보다는, 올 것이 왔다고 공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일이 늘 있을 것도 아니지만 영원하지도 않다. 오히려 남들보다 잦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이겨내는 법을 터득해야할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어느 때 자신의 마음이 불안해진 것을 알면, 반대로 태연할 수도 있음을 생각해봐야한다. 부정한 마음으로 시작하면 그 골은 더욱 깊어지고 불안해지며, 긍정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더욱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넘친다. 스스로 상황만을 믿고 어쩔 수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불안한 마음은 달리 핑계할 것 없이 곧 자신의 마음인 것이다. 소심한 성격이 걱정을 많이 하게 되고, 걱정은 불안을 초래하며, 불안이 깊어지면 우울해지고, 필경에 우울증까지 얻게 되면 몸과 마음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깊은 곳에 빠지기 전에 미리 알아서 헤어 나오는 길을 찾아야할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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