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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E KINGDO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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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1T17:06:4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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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일서 제3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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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1T17:06:43Z</updated>
	    <published>2009-12-01T17:06:4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한일서 (3 : 1~24)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못함이니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보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데테'는 감탄사의 역할을 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령형으로 복수 형태로 사용되었다. 이 복수 형태는 가시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는 어법이다. 이는 수신자들이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체험하였음을 암시한다(Smalley, Westcot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 '어떠한'의 헬라어 '포타펜'은 신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경에서 대개 놀라움이나 경탄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데(마8:27; 막13:1; 벧후3:11),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본문에서는 '어떠한 정도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에게 베풀어 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 사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가를 의미한다(Brooke). 한편 '자녀'에 해당하는 헬라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테크나'는 실제적인 부자 관계에서의 자녀됨을 강하게 함축하는 단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주로 '휘오스'('아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데 이것은 법적인 부자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Plummer, Wilder). 본문에서 사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한은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로써 값없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얼마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놀라우신 사랑인가를 선포하고 있다(Calvin). 요한은 '우리가 그러하도다'를 부가하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임을 강조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 '그러므로'에 해당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헬라어 '디아 투토'는 문법적인 연결이 명백하지 않아 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는 '디아 투토'가 뒷부분의 내용과 연결되어 '호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왜냐하면')이하의 절을 설명하는 것으로 본다(Smalley, Stott). (2)혹자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디아 투토'가 앞부분의 내용과 연결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로 보고, '호티' 다음에 따라오는 절은 부가적 기능만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고 주장한다(Haas, Marshall). 어느 견해를 취해도 의미상 큰 변화는 없으나 문맥&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를 모르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단순히 수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강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본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가 누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지칭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주장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Haas). (2)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Bultmann, Stott). (3)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는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Westcott, Briike). 본문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지만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기 때문이다(1:3; 2:1,24). 요한은 세상이 예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고 진술하고 있다. 사실 '세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에 속한 자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두움에 거하는 자로서 하나님을 영접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한 자이다. 따라서 그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 수가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 - 본문은 '지금...아직'이라는 종말론적 긴장 관계(eschatological tension)에 놓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을 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보든 못 알아보든 간에, 혹은 그리스도인의 현재 모습이 육체의 소욕(所慾)을 완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히 벗어나지 못했을지라도 분명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다(Calvin, Stot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자의 미래에 대해서는 구원의 영광이 약속되었다. 그러나 비록 현재 그리스도인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특권과 하나님의 성품을 누리며 미래에 주어질 구원이 확실하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할지라도 장차 되어질 그리스도인의 미래 상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계시 되지 않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에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야 신자는 장래에 자기 자신에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어날 구체적인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Stot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함이니. -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안 파네로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는 주어가 없어서 이를 해석하는데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는 '그'를 바로 앞 문장의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가리키는 비인격적 주어로 보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바로 뒷 문장에 나타난 '그'는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Schnackenburg,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Plummer, Bengel). (2)혹자는 '그'를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Stot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Barker, Bru- ce, Smalley). (1)의 견해는 두 가지 점에서 부당하다. 첫째로, 앞서 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급한 바와 같이(1절) 본서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를 명백히 구분짓지 않고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음을 간과하였으며 둘째로, 이어지는 본문의 논의가 하나님보다는 예수 그리스도 쪽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발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Smalley). 그러므로 본문에 사용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된 '그'는 후자의 견해와 같이 전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한편 우리가 주와 같을 줄 아는 것이 주의 계신 그대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말은 그날에 '우리가 새사람을 입고'(엡4:24) '주와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어서'(빌3:21) 주와 같이 됨을 의미한다(Stott).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 '소망'의 헬라어 '엘피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바울 서신이나 베드로 서신에는 빈번하게 나타나지만(롬5:4; 8:24; 고후1:7; 벧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 요한 복음이나 요한 서신 중에서는 본문에서 단 한 번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루리라는 확신에 찬 기대'라는 소망의 개념은 2절에서 명백히 설명되고 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malley). 따라서 '이 소망'은 2절에 나타난 장래의 일들에 대한 종말론적인 소망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리킨다(Barker).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요한은 처음으로 예수의 특징&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깨끗하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깨끗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그노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디카이오스'('의로운')와 거의 같은 의미로 그리스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정결하심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따라야 할 본보기임을 시사한다(2:1,29;3:7,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malley). 한편 '깨끗하게 하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하그니제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하그노스'('깨끗하심')와 같은 어원을 갖는 동사로 제의적 정결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언급할 때 사용되었다(출19:10,11; 민8:21; 요11:55; 행21:24). 그러나 본문에서는 시&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성품으로서 도덕적인 깨끗함을 의미한다(Law, Stot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malley, Barker).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자는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하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마5:48).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 본문은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여 자신들은 죄가 없으며 불법을 행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요한은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가 예외없이 불법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을 배격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죄는 불법이라. - 여기서 '불법'(아노미안)은 문자적으로 '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법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한이 '율법'(노모스)이란 용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문의 '불법'은 율법을 범한다는 의미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인간의 본성적인 불법을 의미한다(Barker). 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은 자기 자신들이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사실상 하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님을 배반하는 무서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없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 '죄'에 해당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스'는 복수형이다. 이는 죄악된 모든 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Smalley, Stott). 한편 '나타내신'의 헬라어 '에파네로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부정과거 시상이다. 이것은 과거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타내는 것으로 예수의 성육신이 역사적 사건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인 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재 사건을 기반으로 해서 예수의 '죄를 없애는 사역'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예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으며(요1:29), 모든 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친히 자기 몸에 짊어지심으로써 우리 죄를 없이 하셨다(사53:11,12; 히9:28; 벧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24, Stot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죄가 없다'는 말씀은 3절의 '깨끗하심'과 2:29; 3:7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로우심'과 동일한 의미이다. 예수의 무죄성은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에는 포함되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않았으나 신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후5:21; 히4:15; 벧전1:19). 한편 본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에스틴'('~이다')으로 현재형이다. 이것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기간 동안만 죄로부터 자유로우셨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무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심을 암시한다(Smalley).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본문은 1:8,10의 진술과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이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해 네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주 안에 거하는 자의 인격에 주목하여 그리스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은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한다(Wesley). (2)혹자는 요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신자의 삶의 원리를 선포한 것으로 보고 '범죄치 아니함'을 신자의 이상적 특징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해석한다(Alford, Calvin). (3)혹자는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것으로 해석된다(Lange, Smith, Barker, Westcott, Stott). (4)혹자는 주 안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거하는 자는 원리상 이미 범죄하지 않는 자이지만 실제상 아직 범죄하는 자라고 본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즉 그리스도인이 현재 긴장과 역설의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Smalley, Sch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 ckenburg).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 번째 견해의 경우 '범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타네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현재형으로서 동작의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상태를 묘사해 주기 때문이며, 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번째 견해의 경우 루터(Luther)가 '그리스도인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고 말한 것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마찬가지로 주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치 아니하는 동시에 범죄한다고 이해할 수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 때문이다(Smalley). 앞 절에서 진술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죄와 상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없는 깨끗한 분이시기에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와 상관없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만약 죄를 범한다면 그는 회개함을 용서함을 받고 불법의 생활을 버려야 한다.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러나 그가 지속적이며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기보다 죄를 좋아하며 죄 안에 거하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즐겨한다면 그는 완전히 깨끗하신 그리스도를 알거나 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라 영원히 알지도, 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요5:37,38; 8:19; 14:7,9; 요삼1:1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tott, Barker).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같이 의롭고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 본문은 수신자 내에 있던 영지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를 전파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요한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하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니의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靈智)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고 주장하였으며 영지를 깨달은 자는 육신에서 자유로워져 도덕적인 방종이 아무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신학과 윤리의 가르침은 요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당시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시켰다. 그래서 요한은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외의 것을 가지고 미혹하는 자들을 멀리하며, 거절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 본문은 2:29의 반복이다. 여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의로움의 동기와 근거를 나타낸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 거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때 가능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의를 행함이 조건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 된 자로서 그의 의로움을 행위로 보여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Bruce).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 본문은 7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반절과 정반대되는 내용으로서 대조를 이룬다. 의를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반면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다. 요한은 이러한 대조법을 사용하여서 수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누구에게 속하느냐'란 질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동시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영지주의자들이 방종을 통해 범죄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누구에게 속하였는가를 분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요한은 본문에서 마귀의 기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암시도 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않으며, 단지 죄의 기원이 마귀에게 있다는 사실만을 말한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암시하는 듯하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하는 자로서 진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그 안에 전혀 없기에(요8:44) 속이는 자이며 사람들로 범죄하게 한다. 이러한 죄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원에 대해 바울이 아담에게까지 소급시킨 것과 달리(롬5:12-19), 요한은 그보다 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욱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Westcot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마귀의 일'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을 거역하고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창3:1-6). 이러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귀의 일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그르스도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세상에 오셨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죄인을 어둠에서 구하셔서 하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5절; 히9:28; 벧전2:24). 요컨대 그리스도의 오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우리의 죄를 없애고 동시에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인 것이다(Plummer).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 본절은 6절의 반복이다. 요한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10에서 믿는 자들이 죄를 지을 가능성을 언급하였으나 본절에서는 믿는 자들이 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죄치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절은 6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습관적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귀와 같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는 본문이 수신자들 사이에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던 영지주의자들을 향한 경고인을 전제로 할 때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요한 당시의 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주의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영지를 깨달은 자는 육신에서 벗어나 완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자가 되었으므로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죄가 영지를 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달은 자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으므로 범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부류이다. 요한은 전자의 영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범죄함을 역설하였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10), 후자의 영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신자들은 범죄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역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고 있다(6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 - '하나님의 씨'에 대한 견해는 다섯 가지이다. (1)혹자는 신적인 생명의 원리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 주장한다(Smith, Marshall). (2)혹자는 집합적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들 전체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리킨다고 주장한다(Wohlenberg, Stott). (3)혹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Oecumenius, Theophylactus). (4)혹자는 말씀 또는 복음이라고 주장한다(Augustin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Dodd). (5)혹자는 성령이라고 주장한다(Calvin). 다섯 가지 견해 중 마지막 두 견해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장 타당하다(Smalley).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말씀이 심기워 있음(시119:11; 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1:33)과 성령께서 내주하심(롬8:11; 고전3:16)은 동시적이고 불가분리적이다. '하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님의 씨' 즉 말씀과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거할 때 그 그리스도인은 범죄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않게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창조주시며 모든 인간들을 낳으신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인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의 아버지가 아니다. 마귀의 자녀들도 있다(요8:44).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마귀의 자녀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마13:24-30). 자녀들이 부모를 닮아 가듯이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닮고, 마귀의 자녀들은 마귀를 닮는다(Stott, Bruc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지 아니하니라. - 저자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마귀의 자녀인가를 판별하는 시금석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의와 사랑'을 제시한다. 의와 사랑이 없는 자는 자기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한 자임을 드러낸다.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든 아니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든간에 '온전함'을 의미하며 '사랑'은 타인에 대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로움을 뜻한다(Westcott, Plummer). 이러한 '의와 사랑'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깊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닮아야 할 하나님의 본성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 '사랑할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포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현재형으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사랑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Smalley).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 '처음부터'는 문맥상 요한의 수신자들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요한은 틀림없이 복음의 본질이 사랑이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3:16; 15:12; 눅10:27; 고후13:13) 사랑이 태초의 창조 원리에까지 미친다는 사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17:24; 요일4:16)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한편 '소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앙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아'는 1:5와 동일한 단어이다. 1:5에서의 '소식'은 교리적 내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담고 있어 하나님이 빛이심을 드러내는 반면 본절에서의 '소식'은 윤리적 내용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담고 있다(Stott). 그 윤리적인 내용은 '복음의 본질인 동시에 근원적인 요구인 사랑&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실천을 권면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 저자는 8절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절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마귀의 자녀의 모델로 가인을 제시한다. 요한이 가인을 악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자에게 속한 사람의 본보기로 제시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가인은 동생 아벧의 의로움을 시기하여 죽임으로 자기 자신이 마귀에게 속하였음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스로 입증하였다(Burce). 둘재로, 요한 당시의 한 이단 종파인 에비온주의자들은 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식주의자들이었다. 요한은 그들에게 고기를 드린 아벧은 열납되고 농산물을 드린 가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거부되는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율법적인 채식주의보다는 사랑의 계명에의 순종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선임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Smalley).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 창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장에 기록된 사건에서는 가인의 살인 동기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 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록된 가인에 대한 언급(히11:4; 유1:11)을 통하여 추론해보면, 가인은 믿음과 순종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형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요한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른 어느 성경보다도 분명한 살인의 동기를 제시한다. 그 동기는 동생 아벧의 의로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대한 시기이다.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물질적 축복이나 안녕보다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로움 자체를 더욱 시기하고 증오한다(Stott). 이런 의미에서 가인은 자신의 살인 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속한 자임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 전후 문맥상 세상과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의 자녀와의 관계는 가인과 아벧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Law). 하나님의 자녀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상의 대립은 아벧-가인, 이삭-이스마엘, 야곱-에서를 통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요한은 '미워하거든'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세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현재 시상으로 사용함으로 암시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의롭다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실만으로 미워하므로(12절) 양자간의 대립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세상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증오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김에 기초하여 넉넉히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요16:33; 요일4:4; 5:4, Bruce).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 본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요한은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서 형제 사랑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 생명으로 들어간 자의 증거로서 형제 사랑을 논하고 있다. 사랑은 율법의 대강령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요(마22:34-40),율법의 완성이요(롬13:10),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최고 표현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요13:35; 고전13:13). 그러므로 비록 세상이 영생의 근거는 아닐지라도 형제 사랑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Calvin, Bruce).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 '사랑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는 목적어가 없다. 이 사실로 인해서 본문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다. 하나는 '형제'를 목적어로 보아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로 해석하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Stott). 다른 하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Plummer, Smalley).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해야 할 대상은 제한된 것이 아니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때문이다(16절; 2:2). 한편 '거하느니라'의 헬라어 '메네이'는 현재형&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사랑치 아니하는 자의 영적 죽음의 상태가 지속됨을 암시한다. 사랑치 아니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는 사랑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과거 상태처럼 지속적으로 죽음과 진노하에 있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태이기에(엡2:2) 사망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사망에 거하고 있는 상태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자니. - 요한은 '사랑하지 않음'의 개념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워함'의 개념으로 발전시켜 진술하고 있다. 본문은 분명히 12절을 반영한 것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 가지 즉 '사랑하지 않음'과 '미워함' 그리고 '살인'이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 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랑하지 않는 자는 미워하는 자요,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이다(Plummer). 그러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요한이 살인자의 회개와 사죄 가능성을 부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예수께서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의 사죄를 위해 기도하셨기 때문이다(눅23:34, Smalley, Stot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지 요한은 본문에서 미움이 잠재적 살인이라는 사실, 즉 살인이 미움과 시기에서 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롯된다는 사실과 살인하는 자의 현재는 영생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영생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우크 에케이 조엔 아이오니온 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우토 메누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운 문자적으로 '그 속에 거하는 영생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가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케이'는 현재형으로서 '영생을 가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 있는 지속적인 능력'을 뜻한다(Haas). 이것은 살인하는 자의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차 있어서 영생을 소유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움에서 비롯된 살인과 사랑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드러나는 영생이 서로 상극임을 시사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 '알고'에 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당하는 헬라어 '에그노카멘'은 완료형이다. 이 단어는 이 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현재형으로 쓰였으나(2:5,18,20; 5:15) 본문에서는 특히 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알게 된 것이 특별한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고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 때문이다. 요한은 15절에서 미워하는 자의 표본으로서 가인을 내세운 뒤 본절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랑하는 자의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언급함으로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사랑이 어떠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따하니라. -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한은 상반절에서 자기 희생적 사랑의 본보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제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본받아 자기 희생적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랑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강조한다(2:6). 이는 예수께서 친히 친구를 위하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상토하는 것으로(요15:12,13)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해야 할 사랑이 자기 부정임을 시사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 '재물'의 헬라어 '비온'은 단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재물이 아니라 '삶의 수단으로서의 재물'을 의미한다(막12:44). 또한 '보고도'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해당하는 헬라어 '데로레'는 그냥 한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랫동안 지켜보는 상태'를 가리킨다(Smalley). 본절에서 요한은 생활에서 충분히 실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랑의 예로 최소한의 생활조차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하고 있다. 요한은 생활이 어려운 형제를 보고도 그의 굽핍함을 고와주지 않면 하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한편 '하나님의 사랑'에 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4:10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랑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해석한다(Plummer) (2)혹자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해석한다(Bro-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oke, Bengel, Alford). (3)혹자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같은 사랑으로 해석한다(Law,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Marshall). 본절의 중심 사상이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사랑하는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혀'는 같은 의미로서 실천이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와는 달리 '행함과 진실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실천하는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Smalley). 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행함'은 사랑의 역동적 측면을 나타내고, '진실함'은 사랑의 질적 측면을 나타낸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한은 본절에서 사랑의 실천을 선언(약2:15-17)함으로써 이제까지 논해온 것, 즉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의와 사랑이 있어야 함을 요약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이로써'가 가리키는 것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다음절을 가리킨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 주장한다(Nauck, Brooke). (2)혹자는 앞에 언급된 내용과 뒤에 언급될 내용 둘 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3)혹자는 앞에서 언급된 10-18절까지의 내용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ker, Smalley, Stott).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문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 가장 타당하다. 한편 '굳세게 하리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소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대하여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 (1)'확신케하다', 이 의미로 해석하려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데 목적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바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앞 문장인 '우리가 진리에 속함'을 목적어로 보는 견해와(Plummer) 2 20절 초두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호티'('왜냐하면')가 이끄는 절을 목적어로 보는 견해이다(Bruce). 그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 양자 모두 무리한 문법적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2)'설득시키다'. 이것은 의미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본문에 부적절하다. (3)'안심시키다'. 이 의미로 해석할 경우 '우리 마음의 두려움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염려'라는 목적어가 생략된 것으로 본다(Westcott). 비록 만족스러운 해석은 되지 못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 그래도 세 가지 의미중 마지막 의미가 타당성을 지닌다(Stott, Smalley). 본절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진리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함과 동시에 20절과 연결하여 주 앞에서 두려움없이 담대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 본절에서 두 번 사용된 '호티'(왜냐하면)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첫번째 '호티'를 명사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이끄는 접속사(that)로 보고, 두번째 '호티'는 불필요한 반복으로 간주하여 생략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이 해석은 20절 전체를 19절의 '페이소멘'('확신케 하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란 동사의 목적어로 본다(Bruce). (2)혹자는 첫번째 '호티'를 '왜냐하면'으로 해석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 이 경우 19절의 동사 '페이소멘'('안심시키다')의 목적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생략된 것으로 본다(AV). (3)혹자는 첫번째 '호티'를 '호'(* )와 '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분리시켜서 관계대명사 중성 명사로 보고, '에안'('...이면')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합쳐서 '...할 때마다'라는 의미로 본다. 이때 두번째 '호티'는 종속절을 이끄는 접속&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로서 '왜냐하면'의 뜻이 된다(Stott, Smalley).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장 타당한 듯하다. 요한은 본서에서 서로 대조되는 구문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10; 2:10,11; 3:8,9) 본절 역시 21절과 대립되는 구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때문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 본문에 대해서는 두 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묘사라고 주장한다(Alford,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Wohlenberg).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우리 자신도 우리 마음을 보시면 책망할 것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너무 많을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혹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묘사라고 주장한다(Brooke, Luther).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두 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시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우리 마음을 책망할 때마다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의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문맥상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담대함을 얻고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 문장의 형식상 전절과 본절은 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건문으로서 대조를 이루지만 내용상은 본절이 전절의 결과에 해당한다. 본문은 설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양심에 거리낌이 있어서 책망할 것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책망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Bruc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 위에서 담대함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마음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거리낌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앞에서 항상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히10:19).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 '구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토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받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람바노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모두 현재 시상이다. 이는 계속되는 기도와 계속되는 응답의 경험을 암시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tott).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는 사상은 신약 여러 곳에 나타난다(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7,8; 18:19; 요11:41,42; 15:7). 그러나 이 응답에 대한 약속에는 선행 조건이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요15:7, Smalley).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그리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인들이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말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공적이 아니라 신자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계명을 지키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 기도 응답의 조건이 되는 것처럼 말한 것은 하나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됨을 드러내는 외면적인 표현이기 때문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Law, Stott). 예수께서도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행하는 가운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아셨다(요8:28,29; 11:42).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전절에서는 '계명들'(엔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스)이라고 하여 복수 형태를 취하는데 본절에서는 '계명'(엔톨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라고 하여 단수 형태를 취한다. 이는 본절의 두 가지 내용인 '믿음'과 '사랑'이 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실은 불가분리적인 하나의 계명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여기서 '믿고'의 헬라어 '피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튜소멘'과 '사랑할 것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멘'은 시상이 서로 다르다. 즉 '피스튜소멘'은 부정과거형으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단번에 이루신 예수의 역사적 속죄 사역'(히9:28)을 믿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포멘'은 현재형으로서 '형제 사랑이 변함없이 지속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믿음과 사랑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믿음은 사랑의 근거요 사랑은 믿&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음의 증거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 헬라어 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문에는 두 번의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아우토스'('그')라는 인칭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명사로 나타난다. 이 '아우토스'는 19-23절까지 계속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지칭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점을 고려하여,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Plummer, Stot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malley). 그러나 사도 요한의 기독론(Christology) 자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분을 뚜렷하게 짓지 않고 오히려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하며, 요15:1-7의 말씀이 강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가리킬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없다. 또한, 하나님이 예수 안에 예수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요17:21) 내용상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는 '주'가 하나님이든지 예수이든지 같은 의미이다. 앞 절에서 언급된 두 가지 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 즉 믿음과 사랑의 계명을 잘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안에 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며, 하나님도 역시 그 안에 거하신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본문에서 믿음과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증거로 성령이 제시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이 주 안에, 주가 그리스도인 안에 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신다는 약속의 확실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保證)이다. 23,24절의 연결이 18,19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연결처럼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안다'고 하지 않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 성령을 등장시킨 점은 의미가 있다. 아마도 저자는 주 안에 거하기 위해 그리스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이 행해야 할 '사랑'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을 통해서 주어지는 '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러한 성령은 그리스도인에게 각종 은사를 주셔서(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22,23)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의롭게 행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tott).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내주하심을 알게 된다. &lt;/SPAN&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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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마서 제12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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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INGDOM</name>
	    </author>
	    <updated>2009-12-01T16:58:35Z</updated>
	    <published>2009-12-01T16:58:3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마서 (12 : 1~21)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러므로 - 이는 본장에서부터 전장들의 내용에 대한 결론이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한 권면으로 이끌기 위해 자연스럽게 꺼내어진 이 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는 이스라엘의 유기(遺棄)와 장래의 구원에 관한 기록인 9-11장을 받는 것이 확실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만, 넓게는 자비하신 하나님에 관계된 진술 전체 즉 1-11장에 이르는 교리적 내용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어받는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Godet, Cranfield, Murray, Harrison). 한편 '그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므로'를 사용해서 설명과 권면을 이끌어내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 자주 나타난다(고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16;엡 4:1;딤전 2: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형제들아 - 이는 수신자(受信者)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 어린 표현이다. 이 단어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신자에게 적용시킬 때마다 사도는 깊이 감동되어 있음을 주목하라(1:13;7:1;8:12;10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 이는 바울의 권고의 근거가 되는 문구이다. 인간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하나님의 자비를 얼마나 덧입고 사는 가를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행할 수 없다. '모든 자비하심'에 해당되는 헬라어 '오이크티르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자비'(고후 1:3;빌 2:1;골 3:12) 혹은 '불쌍히 여김'(히 10:28)으로 번역&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는 단어로서 복수형태이다. 이는 '큰 자비'나 '동정'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라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밈'(삼하 24:14;대상 21:13;시 25:6)이라는 복수 형태를 따른 것이다.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복수를 취하여 강조하는 '강의(强意)의 복수'이다. 따라서 '모든 자비하심'으로 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역되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권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로'는 쓰임이 다양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 여기에서는 명령과 간청의 양면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단어를 '간절히 원하다', '청하다'(beseech,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RV) 또는 '애원하다'(implore, NEB)로 번역한 것은 사도 바울이 사도적 권위로 권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것을 배제한 일방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단어는 본절의 성격을 지시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면서 나머지 다섯 장(12-16장)의 성격도 권면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너희 몸을 - 이 문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6:11-13의 문맥에 비추어서 단어 자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가진 단순한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고전 6:20;고후 5:10). 혹자는 '몸'에 대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말하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존재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했고(Kasemann), 또한 혹자는 삶의 구체적인 실재(realities) 속에 있는 개인적 제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체현(體現, physical embodiment)이라 하였다(Seiden Sticker). 또한 2절의 '마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오스)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Olshausen, Maier,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Moule). 그러나 여기서의 몸은 몸과 마음, 즉 온 인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람직하다(Calvin, Beza, Shedd). 그러므로 '너희 몸'은 '너희 자신'(yourselves)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뜻하며, 우리의 인격 전체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속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표현되는 삶의 양태까지 포함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란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께 전 인격적으로 우리의 몸을, 생애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 즉 우리의 생애를 통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해 계속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이란 말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흠이 없이 순전(純全)하다는 의미이다(엡 1:4;빌 2:15;골 1:22). 그러므로 거룩한 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란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6:16, 17;엡 2:1, 5)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주신 새 생명으로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6:4-7, 13, 14, 22;갈 2:20). '산 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의 '산'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산'은 현재 분사로 '지금 살아있는'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란 뜻을 포함한다. 이 말은 구약적인 제사, 즉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림으로써 드리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사와 대조된다. 또한 당시에 이교 사회(異敎社會)에서 성행했던, 몸을 부정(不淨)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에 악용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즉 '산 제사'는 구약 시대의 동물 제사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럼 다른 존재로써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드리라는 것이며 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지역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제사로서 살아 움직이며 생활하는 자체로 하나님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치라는 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다(약 2:22).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이 부분은 앞에 나온 권면을 설명하고 확증(確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證)하는 의미에서 쓰여졌다. '영적 예배'의 '영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형용사 '로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켄'인데 '로기코스'에서 유래되어 '합당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reasonable, KJV), '합리적인'(rational)의 뜻을 가졌다. '영적'(spirtual, NIV)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켄'을 사용하지 않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기켄'을 사용한 것은 이방인들의 미신적인 행동들을 염두에 두었거나(Calvin),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이 요청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 즉 하나님께 가장 합당한 예배를 강하게 표현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려는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이를 '합당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장하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를 이스라엘 성전 예배의 외형적 의식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조하여 '영적' 예배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은 번역이다(Hendriksen, Bruce, ARV,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RSV, NIV). '예배'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구약의 제사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칭하기도 했는데, 본절에서는 단순히 제사 행위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삶으로서의 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배를 의미한다. 즉, 삶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주께 두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이를 '섬김'(service)으로 번역한 번역본도 있다(KJV).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 세대 - '세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온'은 '세계', '세상'을 의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코스모스'와 비슷한 의미를 가졌는데, 일반적으로 '코스모스'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공간적이고 현상적인 세상을 의미하는데 반해 '아이온'은 시간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를 의미한다. '이 세대'(아이온 후토스)란 용어는 바울이 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러 차례에 걸쳐 사용했다(고전 1:20;2:6, 8;3:18, 19;5:10;7:31;고후 4:4;갈 1:4). 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교 종말론에서는 시간을 '현 세대'(present age)와 '올 세대'(age to come)로 구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데 바울도 이와 같이 종말을 기점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 사용하였고 바울이 사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이 세대'라는 말 속에는 대부분 이러한 유대교적 종말론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세대'가 시대 구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 혹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적대 세력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 기준 등 시대 정신도 포괄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본받지 말고 - '본받다'의 헬라어 '쉬스케마티조'는 '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케마'('품행', '행동', '외형', '모양')에서 파생된 것으로 고전 7:31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오는 '이 세상의 형적'의 형적(形跡)에 해당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표면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고 흘러가는 이 세상 풍습을 받아들이거나 순응하지 말라(Sanday, Headlam)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이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가 새롭게 계속 변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 아나카이노세이 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오스'는 '마음의 새로움으로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고 번역할 수 있다(표준 신약 전서) 여기서 '마음'이란 도덕적 활동과 관련된 이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력이나 사고력 등을 말한다(Barmby). '변화를 받아'의 헬라어 '메타모르푸스데'는 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곧 이 말은 자신이 아닌 타자(他者)에 의해서 변화하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시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꼭 그렇게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즉 우리의 인격 내부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변화를 일으키는 세력인 성령에 의해 마음이 새롭게 계속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인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게 꼭 필요하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선하시고 - 헬라어 '아가도스'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특별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규정되는 '선'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정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선'을 의미한다(2:10;7:12, 13, 18, 19). 그러므로, 이 '선'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개념을 교회 안에서(9절), 사회 속에서(21절) 그리고 국가에 대한 관계 속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3ff.) 사용하였다. 다만 본절에서 바울은 '선'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기뻐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이 이뤄지거나, 그의 뜻과 일치될 때 기뻐하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뜻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뜻에 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당하게 생을 영위하거나, 피조 세계가 원래 목적대로 진행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온전하신 - 인간의 뜻은 타락한 욕심이 작용하기에 그 어떤 뜻도 온전할 수 없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지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뛰어난 특성은 그 자체가 온전한 것이다. 신앙과 행위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충분한 규범으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다(딤후 3:16, 17). 이는 그 뜻을 가지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 자신이 온전한 분이기 때문이다(마 5:48).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분별하도록 하라 - '분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도키마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입증하다', '시험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는 말은 판단하거나 시험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Murray). 신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아야 하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계속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한다(엡 5:8-10;빌 2:12).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생각하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나오는 접속사 '가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왜냐하면')는 본절이 앞절 (1, 2절)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 '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데이세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수동태 과거 분사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이미 받았음을 의미한다. '은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바울의 사도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지는데(Stuart, Meyer, Barmby, Gode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enski, Bruce), 더 나아가서 사도 직분 외에 그가 받은 모든 은혜와 은사를 포함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도 한다(Hodge). 사도직을 은혜와 관련시키는 이유는 자신의 만용이 아닌 소명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받아들였기 때문이다(1:5;고전 15:9, 10;갈 1:1). '내게 주신 은혜'라는 말은 바울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주 사용하곤 했는데(15:15, 고전 3:10, 갈 2:9 등) 위임받은 은혜의 역동성을 표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Dun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너희 중 각 사람에게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표현은 '판티 토 온티 엔 휘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데 이는 '너희 모든'을 나타내는 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적인 헬라어 표현 '파신 휘민'에 비해 훨씬 강조된 표현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이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한 이는 로마교인들뿐 아니라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나 직분자들에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말하는 것이다(Liddon, Meyer).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말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고'는 1절에 나오는 '내가 권하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니'라는 표현보다 더욱 권위적이다. 이는 명령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로써 권위를 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시켜 경고하는 말투이다(마 3:9;눅 3:8;13:3, 5;갈 1:9;5:2).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 본절 중 이부분 이하에서 사용된 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어 기본 동사는 '프로네오'('생각하다')인데 문장 중에서 '휘페르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네인'-'프로네인'-'프로네인'-'소프로네인'의 구조로 사용되었다. 이는 헬라 문학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종종 나타나는 문학적 기교이다. '생각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네인'은 '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견을 가지고 생각하다'의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한 평가나 견해를 말할 때 쓰인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ST. BGD). 신약성경에서는 거의 바울 서신에만 나타나며(16절;8:5;11:20;14:6). 특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히 '높은 마음을 품다'의 헬라어 '휴셀라 프로네인'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쓰인 문장에서 나온다(16절;11:20). '마땅히 생각할 바를 생각한다'함은 '자기 자신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처지나 조건에 맞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그 이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는 필요한 것 '이상'을 나타내며 '휘페르프로네인'과 같이 쓰여 '휘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르'('위에')를 강조한다(BGD).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휘페르프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네오'는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다', '부풀은 생각을 하다', '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다'(BGD)라는 뜻을 가졌다. 칼빈(Calvin)은 '휘페르프로네오'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혜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그 이상의 생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품지 말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 휘페르프로네인 파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그 뜻을 밝혀 번역하자면 '그 이상의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품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말고 생각의 한계를 가지라'는 것이 된다. 여기서 분에 넘치는 생각이란 다음에 나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구절이 설명하는 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생각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자신의 능력과 소명(召命)으로 감당(堪當)할 수 있는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의 것을 스스로 짊어지는 것을 금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 '오직'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을 하지 말고, 오직...을 하라'는 표현에 나오는 강조어로서 '그 이상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생각을 품는 것'과 '지혜롭게 생각함'을 대조한 것이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헤카스토 호스 호 데오스 에메리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각 사람에게'를 나타내는 '헤카스토'가 앞에 나와서 도치된 강조 형태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것은 모든 산자들에게 빠짐없이 주신 것을 말하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각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는 뜻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믿음의 분량 - 이 표현은 믿음이 물질처럼 측정되는 양적인 것이라기보다 교회안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다양한 기능들이 있어 각자 주어진 직분과 은사의 한계와 특성에 따라 다르다는 뜻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고전 12:4-31). 그리고 '믿음'이란 그 안에서 훈련되어진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Murray).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것으로 객관적이라기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주관적이다. 혹자는 본문에 나온 '믿음'을 일반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믿음' 즉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말하기도 한다(Stuart, Meyer, Godet, Shedd).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머레이(Murray)나 해리슨(Harrison)등이 주장한 바 본문의 '믿음'은 구원의 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인 진리를 믿는다는 말이 아닌,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의 성격을 알고 은사를 사용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것'을 가리킨다. 브루스(Bruce)는 이를 '영적 능력'이라고 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지혜롭게 생각하라 - '지혜롭게'의 헬라어 '소프로네인'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건전하며 겸손하게'의 다. 혹자는 '지혜'를 '자신을 바르게 보는 것'으로 이해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데(Dodd) 헬라 철학에서 지혜를 나타내는 단어인 '소프로쉬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겸손'(謙遜)과 '자제'(自制)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분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넘치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건전하고 겸손한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특히 '하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와 관계되어 사용된 말로서 지혜롭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생각할 그 기준으로서 '믿음의 분량'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대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사를 주었다는 것은 각자의 직분과 역할이 다르다는 뜻이며 동시에 자신이 받지 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니한 직분의 영역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을 의식하고 그가 교회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관한 그의 열망을 규제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Godet).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저자는 이제 믿음의 분량에 따른 각 신자의 직분의 한계에 관해 신자들의 소명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관련시켜 말하려고 한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나 고대에서 인체의 비유는 자주 쓰이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표현으로서 바울 서신에 종종 나온다(고전 12:12;엡 1:22;4:16).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 모든 지체는 곧 많은 지체이다. '같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직분'의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랖시스'는 '행함', '활동',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능' 등의 뜻을 나타낸다(BGD). 이 단어는 마 16:27에서는 '행함'으로 나온다. '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분을 갖다'라는 말은 6절에 나오는 '은사를 받다'라는 표현과 같다. 모든 지체는 특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기능들과 다양한 능력들을 지녔다. 곧 3절에 나오는 바, 각 사람들의 받은 바 '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량'들이 모두 다른것이다(엡 4:7). 이는 자신에게 할당된 기능의 한계를 인식하게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며 한 몸에 있는 많은 지체들의 독특성을 인정하게 하는 문구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와 같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는 '이리하여', '이런 식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를 의미하는데 4절에 나오는 '카다페르'와 함께 '이와 같이'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뜻을 나타낸다. 앞절에서 예를 든 것처럼 인간의 유기적 조직(有機的 組織)을 통해 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 각 사람에게 할당된 기능의 필요성과 한계를 인식시키려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 '한 몸'이라는 표현은 통일성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우리'는 신자들의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교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이룬다(고전 12:27ff.). '많은 사람'을 나타내는 헬라어 '호이 폴로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셈어투(Semitism)의 형태로 3절에 나오는 '너희 중 각 사람'과 같은 의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한 몸'이란 인간의 혈통으로나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도께서 이 연합의 기반을 이루시고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루어지는 것이다(엡 2:21).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된 그의 몸된 유기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오직 교회이다(Gode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데 칼 헤이스 알렐론 멜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칼헤이스'(주격)는 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로 사용되어 '개인적으로', '하나씩', '각각'으로 해석된다(BDF, BGD). 이런 표현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막 14:19;요 8:9;고전 14:31;엡 5:33에 나오는 것으로서 각각의 성도가 교회 전체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로 관계를 가지므로 각 지체는 다른 모든 지체들에게 속한다는 뜻으로서 그리스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특히 교회론(ecclesiology)적인 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를 강조하는 본문으로 보기도 한다(Dunn). 즉,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없는 연합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생각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본다(Shedd). 다라서 4, 5절의 내용을 종합하여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통일성, (2) 각 지체들의 다양성과 이에 상응하는 기능의 다양성, (3) 여러 지체들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호성이다. 이처럼 사람의 몸에 나타난 유기적인 원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성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의 사회,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가르친다. 이는 성도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제 앞서 말했던 것을(3-5절)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봉사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적용시킨다(6-8절). 즉 각 지체의 기능에 관해 말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 본 구절은 은사의 근거가 되는데, 어느 누구도 자기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받은 바 은사에 대해 자만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은혜대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카타 텐카린)를 문자대로 번역하면 '은혜에 따라'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시는 원리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안에서 성령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역사(役事)하심에 따라 은사들이 주어지는 것은 각각 다른 기능과 직분을 유기적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수행하기 위해서이다(고전 12:7). 은사에 따른 직임과 기능에 관해서는 고전 12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제 강해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비교'를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 '받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콘테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가지고 있는', '소유하고 있는'이라는 뜻으로 은혜로 받은 것을 계속해서 가지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는 것을 의미한다. '은사'는 그 은혜가 구체적으로 몸의 지체들에게 반영되어 실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행함으로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난다. '각각 다르니' 즉 '은사가 다르다'는 것은 5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절에 나오는 '서로 지체'라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이끈다. 신자들이 각각의 은사들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받은 것은 이 은사들이 개별적으로 주어진 목적대로 사용되기 위해서 이다. 교회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특별한 직분(職分)이나 기능들은 서열(序列)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게 주어진 은사의 다양함과 그에 따른 능력들을 나타낸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혹 예언이면 - 예언을 나타내는 헬라어 '프로페테이안'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사 '프로페튜오'는 '예언하다', '미리 말하다'의 뜻을 가졌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예언'은 주로 선지자들에 의해 행해졌는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었고 계시의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 바로 그것이었다(출 4:12;7:1, 2;렘 23:16, 18,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2, 28). 한편 성경의 기록이 끝난 시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한 증거는 사도들에게서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완성된 이후에는 새로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시를 위한 예언자도 필요없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언은 경고와 권면, 교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판단, 그 마음의 비밀을 나타내며(고전 14:3, 24, 25), 영감을 받아 하는 것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온다(벧후 1:21). 이 기능을 가진자 중에는 여자도 있다(행 21:9). 예언을 시험하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 고려해 봐야 할 때에는(고전 14:29)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와 그 척도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두어야하며 이에서 벗어나면 무가치한 것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 계시 이상의 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언은 없다. 즉 여기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하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백성을 가르치는 설교나 말씀 선포등과 연관되는 직분으로 본다. 이 예언하는 직분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른 곳에서도 사도직에 이어 곧바로 나오는 이유는(고전 12:29ff. 엡 4:11) 이런 중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나 선지자들이 교회에서 우선권을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 외의 은사들은 그 중요도에 있어서 특별하게 우선권을 갖지는 않았다(Ladd).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믿음의 분수대로 - '분수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 텐 아날로기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데 '아날로기아'는 수학 용어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른 관계' 혹은 '조화, 비례'(proportion)라는 뜻을 가졌다. 따라서 '칼 아날로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안'은 '적당하게', '...에 비례하여'라는 의미가 있다(Dunn). 어쨌든 본 구절은 예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시행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증거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데 혹자는 '아날로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를 '유비'(analogy)라고 직역하여 본절의 '믿음', '교회가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시 체계로서의 믿음이나 규범'을 의미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에 의하면 '믿음의 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대로'는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대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해놓은 규범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따라 예언을 해야한다는 의미가 된다(Kasemann, Schlier, Ortkeuper, Weiss 등). 그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 본문의 '믿음'은 객관적 규범이나 교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일반적 의미의 믿음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다. '믿음의 분수대로'는 3절의 '믿음의 분량대로'를 나타내는 헬라어 '메트론 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테오스'와 6절의 '은혜대로'를 표현한 헬라어 '카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텐 카린'과 병형구로 그 뜻하는 바가 같다(Bruc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Barmby, Gaffin).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혹 섬기는 일이면 - '섬기는 일'은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 의미를 한 가지로 정하기는 어렵다. 이의 헬라어 '디아코니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종종 비신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직분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행 6:4). 그러나 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절의 '섬기는 일'은 그 행사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어서 필요한 '집사의 직분'(엡 4:12 이외에는 '디아코니아'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않은 것은 의미 심장함)에 제한된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은사(섬기는 일)가 예언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르침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섬기는 일'이란 신자의 물질적 요구를 관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보다 좁은 의미의 봉사를 뜻하는 것 같다. 영역 성경 NEB와 JB는 그 낱말을 '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administration)라는 말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궁핍한 자를 돕는 일이 감독, 특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집사의 직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해 준다(Gidet, Meyer, Hendriksen, Cranfield).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론 다른 사람들도 성도의 곤경을 도와 줄 수 있는 여러 직분에 종사할 수 있었다(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 16:15).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섬기는 일로 - 이는 '믿음의 분수대로'의 원리에 적용하여 실제적으로 섬김의 은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받은 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그 직분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벧전 4:1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혹은 바른 섬김을 하며 전적으로 그것에 종사하거나(Gifford) 실제로 섬김을 실행하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Cranfield)을 가리킨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가르치는 자 - 이에 예언하는 것과 구별되며 섬기는 것과도 다르다. 예언은 계시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관계되어 있는 반면에 가르침은 지식과 관련하여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써(고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8;14:6) 하나님의 계획을 조화롭게 나타내는 것이다(Godet). 즉 진리의 말씀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교회를 형성케 하고 훈계를 통해(15:4;딤전 4:13;딤후 3:16) 신자들의 삶에 도움을 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가르침이다. 본서의 구조 자체도 그러한 사실을 입증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즉 진리의 해석인 교리 교육을 기초로 하여(1-11장)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16장)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서 바울은 구약성경을 상당히 인용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고 있는데, 그것은 초대 교회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을 함에 있어서 구약성경에 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 의존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Harriso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가르치는 일로 -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섬길 것을 의미하여 아울러 6절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시한대로 자기 '믿음의 분수(분량)대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원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다시 언급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사사로이 풀거나 억지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해석하지 말며 성령의 도움을 받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벧후 1:20, 21;3:16).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권위(權慰)하는 자 - '권위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레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권면하다'(고전 4:16;16:12;고후 10:1;12:18), '요청하다', '위로하다'(고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7:6, 7;살전 3:7)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과 명백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 다른 말로서 문맥을 살펴볼 때 형제를 위로하고 권면한다는 뜻이 지배적이다(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5:31;딤전 4:13). '가르치는 자'는 복음 진리를 선포하는 반면 '권위하는 자'는 진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들은 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 속에서 복음에 순종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마음과 의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Gode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권위하는 일로 - 권위하는 자는 권위 받을 일을 당한 자의 상황을 지혜롭게 파악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 권위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해야 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엡 6:6)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구제하는 자 - 구제에 대해서는 (1) 자신의 소유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재물을 공적으로 재분배하는 것이라고도 하며(Lenski, Calvin), 공적인 재산이 아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개인의 재산을 나눠주는 것이라고도 한다(Murray, Shedd, Godet). 그러나 여기서는 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떤 형식을 취해 구제를 하느냐를 따지지 않고 다만 구제의 원리를 따라, 즉 성실함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하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개인적 구제(눅 3:11;엡 4:28)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와 공적인 구제를(행 6:2) 다같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성실함으로 - '성실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플로테티'는 '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순함', '순전함', '섞이지 않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Dunn). 따라서 '성실함'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감추어진 목적이나 뜻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며(행 5:2) 동시에 관대한 마음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후히 주는 것을 일컫는다(고후 8:2;9:11, 13). 새번역, 공동번역, 표준신약전서는 '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한 마음'으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후하게'로 번역했다. 또한 영역 성경 흠정역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순수함으로', RSV, NASB는 '관대하게', NEB는 '마음을 다해'로 번역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다스리는 자 - '다스리는'의 헬라어 '프로이스테미'는 '선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서다', '통치하다', '지도하다'의 뜻이 있다. 이는 성경에서 주로 교회에서 다스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것과(살전 5:12;딤전 5:17) 가정에서 다스리는 것을 나타낼 때(딤전 3:4, 5, 12)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용된 어휘이다. 그래서 혹자는 '다스리는 자'를 '감독과 장로'로 보기도 하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alvin, Gifford, Murray, Lenski) 혹자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로 보기도 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Godet, Barmby). 여기서는 문맥을 볼 때 교회에서 교인들을 지도하고 통솔하는 은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받은 사람에 대한 표현이다(Harriso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부지런함으로 - '부지런함'을 나타내는 헬라어 '스푸데'는 '부지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함'(12:11), '간절함'(고후 7:11, 12;8:7, 8, 16) '급히', '빨리'(마 6:25;눅 1:39)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등으로 번역되었고, 대체로 '종교적인 열심'을 뜻한다(BGD). '다스리는 자'는 맡겨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에 열의를 가지고 세월을 아끼며 충성해야 한다(고전 4:2;엡 5:15-17). 바울은 부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런함을 잘 실행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주신 직분을 확신하여 열심을 품고 복음을 전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했으며 충성을 다했다. 사도가 여기서 '다스리는 자'의 은사를 받은 자에게 '부지런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라는 단서를 첨가한 것은 다스리는 직무를 봉사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려 자기를 내세우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경계하면서 근면에게 직무 수행에 임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행 29:17-24;딤전 1:12).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긍휼을 베푸는 자 - '긍휼을 베푸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레에오'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간이 베푼 자비를 나타낸 경우는 바울 서신 중 본문에만 유일하다. 다른 곳에서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가리킨다(9:15, 16, 18;11:30-32;고전 7:25;고후 4:1;빌 2:27;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딤전 1:13, 16). 본절의 '긍휼'은 일반적 의미의 '긍휼'이다. 즉 병든 자와 환난 중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는 자, 무력한 자, 노인들을 돌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 단락이 성도가 하나님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받은 은사와 그 은사의 바른 사용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거룩하게 세우는 일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즐거움으로 - 고통받는 곳에 도움을 주며 즐거워 하라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 즐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움으로 나아가는 그들은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궂은 일이란 마지 못하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로 직무를 수행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움으로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자들의 공동체가 한 몸인 것을 강하게 부각시킨 말이다. '성실함으로', '부지런함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즐거움으로'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들을 가지고 남을 섬길 때 취해야 할 마음 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와 그 태도를 말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 이를 표현하는 헬라어 '헤 아가페 아뉘포크리토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명사 문장으로 동사 '에이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be')가 있는 것처럼 번역해야 한다. '사랑'의 헬라어 표현인 '아가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본서를 제외한 바울 서신 전체에서는 주로 신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타내는데(Ridderbos) 사용된 반면 본서에서는 주로 신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5, 8;8:35, 39;15:30;단 8:28은 예외;Cranfield, Dunn). 그러므로 '아가페'는 10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나오는 '형제 사랑'을 나타내는 헬라어 '필라델피아'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더 넓은 의미의 사랑인 것이 확실하다. '거짓이 없나니'를 표현하는 헬라어 '아뉘포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토스'는 '위선없이'를 나타내며 '진실한', '성실한'의 뜻&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가졌다(고후 6:6;벧전 1:22). 사랑은 꾸밈 없이 진실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영역 성경 흠정역과 NASB에 각각 '숨김없이'(without dissimulatin), '위선없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without hypocricy)로 번역한 것은 헬라어 원어에 가까운 표현이며 RSV나 NIV에서 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각 '진심에서 우러난'(genuine) '성실한'(sincere)으로 번역한 것은 문맥의 뜻을 밝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역한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미워하다'의 헬라어 '아포스튀게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몹시 미워하다', '혐오하다'의 뜻이 있다. '악'(포네로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나쁜'을 의미하는 헬라어 '카코스'보다 더 강한 의미로 '악한', '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악한'의 뜻이 있다. '속하다'의 헬라어 '콜라오'는 '함께 하다', '연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다'의 뜻을 가졌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적극적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한 것에 연합하&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는 가벼운 명령 혹은 권고이다. 이는 결정이 요구되는 삶의 길목길목에서 확실하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선을 택하는 생활 원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 속하기 위해 악은 그 모양이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 미워하고 버리는 태도가 필요하다(살전 5:22).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테 필라델피아...필로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토르고이'의 '필-'로 시작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두 단어는 가족간의 사랑을 나타낼 때 쓰인다. 즉 '형제를 사랑하여'를 가리키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필라델피아'는 형제 자매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우애하고'를 가리키는 '필로스톨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는 혈육(血肉)간에 주고 받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Dunn). '필라델피아'라는 단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구성하는 '아델포스'('형제')는 교회 생활에서 신자들에게 광범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게 적용되는 단어이다. '필로스톨고이'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지만 본서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록 될 당시의 헬라 문헌에 자주 나오며 특히 가족간의 '지극한 애정'을 나타낼 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용됐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로 이뤄진 가족으로 그 공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체 안에서 가족간에 느끼는 지극한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마 12:46-50;갈 4:5;엡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17). 사도 바울은 사랑이 단순한 이념으로 간주되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이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랑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지침)을 언급한 것이다. 즉, 사랑은 이론으로만 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풀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도는 그 사랑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족에 속한 성도들간의 관계에서 표현되기를 요구한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이는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해 준다는 뜻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그런데 성도들이 서로 먼저 존경할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개인적 인격이나 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력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크신 구속의 은혜를 입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데 있다. 그리하여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생각할 때 그 형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의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떠나서 진실하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러러 나는 것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고후 5:17)되게 한 하나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크신 은혜 베풂에 근거를 둔 권면인 것이다(빌 2:13).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부지런하여 - 바울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근면성을 강조하고 있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은 신앙 생활의 나태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보통 성도들은 처음 믿을 때에는 매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열심이다가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게 되면 주를 향한 처음 사랑을 잃고 영적인 타성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빠져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계 2:4;3:15). 자세한 주석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8절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게으르지 말고 - '게으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크네로이'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데 이는 근심이나 걱정 또는 부끄러움으로 늑장부리는 것을 의미한다(잠 6:6,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21:25;마 25:26). 진정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삶은 게으르거나 나태할 여유가 없&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열심을 품고 - 이 구문의 헬라어 표현은 '토프뉴마티 제온테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개역 성경에는 '영'(토 프뉴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티)을 해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뉴마'를 '하나님의 영'으로 이해할 것인지(Calvin,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Deodoret, Dunn, Hendriksen) 아니면 '인간의 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견해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Meyer, Murray, Philipi, Kasemann) 나뉘어진다. 이 말은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본다면 본문의 의미는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을 품고' 혹은 '열심을 품고 성령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하여'가 될 것이며 '인간의 영'으로 한다면 '열심을 품은 마음으로'가 될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는 전자가 더욱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토 프뉴마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열심을 품고'와 연결되어 있는 바 주를 섬기기 위한 열심은 성령의 감화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주를 섬기라 - 주를 표현하는 헬라어는 '퀴리오'인데 이는 A, B,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P46 사본 등을 따른 것이다. 보다 덜 중요한 사본으로 간주되는 D, G 사본 등에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간에'를 나타내는 헬라어 '카이로'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록 당시의 상황의 급박성을 나타내어서 '시간을 아끼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본의 우위성과 문맥상, 전자가 많은 지지를 얻는다. 한편 '주를 섬기라'는 헬라어 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은 '토 퀴리오'로 3격으로 표현되어 '주께' 섬김을 다하라의 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가 된다. '섬기다'의 헬라어 표현은 '둘류온테스'로 '종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릇하다', '섬기며 충성하다', '종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신자들은 주인의 종으로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충성을 다해 주인을 섬겨야 함을 의미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 '소망'의 헬라어 표현 '엘피스'는 일시적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더 좋은 것을 바라는 헬라적인 개념보다는 '확실한 소망'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개념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이는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소망 중에'는 '종말론적 보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eschatological reserve)를, '즐거워하며'는 '종말론적 설레임'(eschatological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excitement)을 나타낸다(Dunn). 죄의 형벌 아래에서 인간은 참된 소망도 즐거움도 없&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망만이 참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영생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소망의 근거이며 근본이 되시므로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는 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환난 중에 - 환난은 모든 인간이 당하지만 특히 신자에게는 복음으로 인한 환난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참으며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휘포메노'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참다', '끝까지 견디다', '굽히지 않다'의 뜻으로 나타난다(고전 13:7;딤후 2:10;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히 10:32;약 1:12). 이는 단순한 인내를 의미하기 보다는 소망을 바라보고 참는다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미로서 종말에 취할 것에 대한 선취(先取)를 근거로 참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에 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소망과 그 선취로 인한 확신으로 성도는 끝까지 견디는 힘을 공급받는다(히 7:19).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기도에 항상 힘쓰며 - '항상 힘쓰며'의 헬라어 '프로스카르테룬테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전심 전력하다', '헌신하다', '견디다'의 뜻이 있다(Dunn).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단어는 기도를 언급할 때 주로 쓰인다(행 1:14;2:42;골 4:2). 종말이 가까워 올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록 하나님과 기도로 그 긴장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본 구절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재 분사형을 사용한 것은 기도에 힘쓰는 것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강조하기 위해서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성도들의 쓸 것을 - 성도들은 로마에 있거나 예루살렘에 있거나(15:25)를 막론하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들을 일컫는다. '쓸 것'에 해당되는 헬라어 '크레이아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사본, 비잔틴(Byzantine) 사본 등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따른 본문이며 어떤 사본들은(D, F, G) '크레이아이스' 대신 '기억', '기념'의 뜻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진 '므네이아이스'로 나오는데, 고대 라틴 사본들이 이를 지지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또한 여러 학자들(Barth, Zahn, Kuhl)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해 연보한 것을 언급하면서 '므네이아이스'를 지지한다. 그러나 '기억', '기념'이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뜻의 '므네이아이스'보다는 '쓸 것'이나 '궁핍'을 뜻하는 '크레이아이스'가 내용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더 부합하며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나 비잔틴 사본은 다른 사본에 비해 오래되고 우수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본이다. 즉 사본상의 우위성과 문맥상 전자가 우월하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공급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네오'의 현재 분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형인 '코이노눈테스'이다. '코이노네오'는 물질적이며 재정적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움의 의미를 띤 '주다', '몫을 기부하다'(15:27;빌 4:15), 또는 '참예하다'(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14;벧전 4:13), '함께 하다'(갈 6:6)의 뜻을 가진다. 성도들에게 서로 어려운 성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필요와 궁핍을 도와줄 뿐 아니라,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라는 권면이다. 당시의 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를 몰수하는 등 많은 재정적인 압박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했다. 그래서 일부 귀족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따라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거기다 성도들은 신앙에 대한 박해도 감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성도간의 곤경(困境)을 도우며 동참하는 것은 서로에게 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를 주며 위안과 격려가 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손 대접하기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롸세니안'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필'과 '크세노스'의 합성어이다. '필'은 '사랑하는', '좋아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의 뜻이며 '크세노스'는 '손님', '이방인', '객'을 뜻한다. 따라서 '필롸세니아'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손님이나 이방인, 즉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으로 손님을 환대함을 일컫는다. 애굽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객'으로 있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서 '손 대접'하기를 강&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하곤 했다. 또한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으므로 이곳 저곳 나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하는 자들(바울과 그의 동료들)과 핍박으로 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망하는 자들, 돈 때문에 심부름 다니는 자들은 곳곳에서 신자들에게 대접을 잘받았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자들은 한 가족이면서(10절) 모두 나그네이므로(히 11:13), 서로를 손님으로 여기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합심하여 서로를 돌본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힘쓰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형은 '디오코'인데 '추구하다', '좋&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노력하다'를 뜻한다. 여기서는 현재분사형 '디오콘테스'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용되어 계속적으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권면이다. 이는 14절에 나오는 '핍박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자'를 나타내는 헬라어 '디오콘타스'와 같은 동사에서 파생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으로 바울이 의도적으로 문맥상 상반되는 곳에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 '힘쓰라'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미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어떤 사본에는(P46) 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번째에 나오는 '축복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이테'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빠져 있다. 또한 '너희를'의 헬라어 '휘마스'가 빠진 사본도 있다(P46, B).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율로게이테'의 원형 '율로게오'는 '좋게 말하다', '칭찬하다'의 뜻&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이 말을 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쓸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며(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64;2:28;약 3:9),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사용하면 복주신다는 뜻이며(마 25:34;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26;갈 3:9;엡 1:3),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사용하면 축복하는 것이 된다(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34;고전 10:16;히 11:20)(Murray). 본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영향 받은 것이다(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44;눅 6:28). 핍박하는 자, 즉 원수를 축복한다는 것에는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라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자체로는 이것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하기 위해서는 나의 본성의 법이 아닌 성령의 법에 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 행해야 한다(갈 5:16).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 14절과 본절은 자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잊어버려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본절은 우리가 슬픔 중에 있을 때에도 즐거워하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들과 즐거워하며 우리가 즐거울 때에도 슬픔 가운데 있는 자들과 슬퍼하라는 권면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는 것, 즉 감정과 처지와 조건을 같이 하는 것은 사랑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써 가능하며(눅 10:27), 성령으로 인도받아야(갈 5:16)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2). 이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신자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고전 12:26;빌 2:17,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 14절과 관련하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도 필요하다(Dun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ranfield). 그리스도께서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셨다(요 11:33-35).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선한 것을 즐거워하는 자들과 선한 것을 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께 즐거워하며(빌 2:18) 곤경과 불행으로 우는 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체로서 같은 슬픔을 갖는다(마 5:4;눅 6:21).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혜 있는체 말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 '마음을 같이한다'는 표현은 15:5;고후 13:11;빌 2:2;4:2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나오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아우토 프로네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나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을 뜻한다. '서로'를 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타내는 헬라어 '에이스 알렐루스'('toward one anothe')&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알렐루스'(one another)는 대개 전치사 '엔'('안에')과 함께 사용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차이는 '엔 알렐루스'가 '너희 중에', '너희 가운데'라는 범위의 의미가 강하다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이스 알렐루스'는 '서로를 향하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외부로 나타나는 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에 강조점이 있다. 또한 14절이나 17-20절로 비추어 보아 저자가 특히 신자들의 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이 외부에 나타남으로써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빛된 선행으로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게 될 것이다(마 5:16).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 '높은 데'의 헬라어 '타 휴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는 중성 명사이면서 목적격으로 '높은 것들'을 의미한다. 따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높은 데 마음을 두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수준을 망각하고 분에 넘치는 기이한 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뜻을 품는 것이다(시 131:1). '낮은 데'의 헬라어 '타페이노이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비천한'(눅 1:52;약 1:9), '겸손한'(마 11:29;고후 10:1)의 뜻이다. 따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낮은 데' 처하라는 것은 자신을 생각함에 있어서 겸비(謙卑)하라는 것이며, 3절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며 처신하라'는 권유를 반복하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자들 즉 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혜없는 자들의 생각이다(잠 3:7). 이를 히브리어식으로 표현하면 '높은 것에 대해 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 숙고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남들보다 뛰어나길 원하고 우월 의식을 갖기보다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른 사람을 진중(珍重)하게 대하고 온순함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준다(Calvin). 그렇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않고 스스로 지혜있다 하는 오만함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이는 인간이 가진 본성을 제한시키는 가르침이다. 일반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악행하는 자에게 보다 큰 악으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이는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러한 인간의 자연 욕구를 제재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눈은 눈으로...때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 25)는 공식적인 형벌을 말한 것이며 이런 규정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세운 것도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들을 금하기 위한 것이다(잠 20:22;24:29). 바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인간의 어두워진 마음(1:21)을 잘 알았으므로 인간에게 이런 교훈이 필요함을 느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이다. 또한 본문과 살전 5:15;벧전 3:9은 서로 유사한데 이는 예수의 가르침(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38ff.)을 따라 일정한 교리가 형성되어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본절 전반부의 소극적인 권면에서 발전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 이제 적극적인 권면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람'은 '아무에게도'에 대칭되는 말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자나 불신자 모두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 앞에서'는 또한 '주님 앞에서'(고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21)와 버금가는 권위를 갖는다. 왜냐하면 주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사람들과의 현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적인 관계와 별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절에서는 '선한'이라는 말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12에 나오는 헬라어 '아가도스' 대신에 '칼로스'를 사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했다. 이는 일반적인 아름다움, 즉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선한 일'을 나타낸다(Dunn).&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모하다'의 헬라어 '프로노에오'가 본문에서는 분사형 '프로노우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이'로 쓰여 명령을 나타낸다. '프로노에오'는 '미리 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각하다', '간구하다', '몰두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어떤 일에 반응하여 선을 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라는 소극적인 명령이 아니고, 미리 솔선 수범하여 선을 행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그러므로 이는 '선한 일'에 너희 자신을 몰두하라는 뜻이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 이는 모든 사람과 평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은 신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이 가능한한 모든 사람과 평화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교훈한다. '할 수 있거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란 표현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화합(和合)을 향한 욕구가 아무리 강력해도 소용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없는 경우가 있음을 시사한다(Harrison). 진정한 평화는 인간의 애씀만으로는 이뤄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않는다. 평화를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눅 2:14),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화목케 하시려고(골 1:20, 22)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평화를 이루셨다. 이는 다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 평화를 이루어야하는 궁극적인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 죄악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된 인간과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신자들도 평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화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골 3:15). 그러므로 신자들은 화평케하는 자들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마 5:9).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내 사랑하는 자들아 - 이에 대해 1절을 보라(1:7;16:5, 9, 12;고전 4:14, 17;고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1;엡 5:1). 이는 1절의 '형제들아'와 비슷한 애정이 담긴 호칭이며, 이런 호칭들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러 곳에 나온다(고전 10:14;고후 7:1;빌 2:12).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진노하심에 맡기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테 토폰 테 오르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직역하면 '진노의 자리를 주라'이다. 신약성경에서 '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가 수식어 없이 나올 때는 대개 '하나님의 진노'로 본다. 본문에서도 수식어가 없&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므로 하나님의 진노임이 분명하다(3:5;5:9;9:22;13:5;엡 2:3;살전 5:9). 하나님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진노는 절대 공정하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치나치게 냉혹하지 않&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또한 심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주권은 하나님께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속한다. 따라서 사람이 원수를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공정성(公正性)면에서도 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가 되지만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 바울이 자주 그러했듯이 본 구절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4:7;8:36;9:33;10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11:26). 구약성경의 본문 신 32:35에는 &quot;보수는 내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갚으리로다&quot;로 되어 있다. 신명기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적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욕하며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개입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 하나님의 복수는 자신의 적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거짓 신에게까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 미친다(Harrison). 이처럼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마 12:18, 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30;9:39;살후 1:5;히 9:27). 예수께서는 이 권한과 권위를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많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수욕(受辱)과 고난(苦難)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보복하지 않고 기꺼이 십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를 지셨다(벧전 2:23). 우리에게 대한 진노를 그리스도로 인해 거뒤가심(8:1)을 생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각하며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보복은 포기되어야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 앞에서 언급한 내용의 절대적 권위와 확실성을 언급한 것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본절은 70인역(LXX) 잠 25:21, 22을 거의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다. 이는 17절의 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술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서술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 원수가 궁핍하며 곤경에 처했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때 선행과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다. 실제로 원수를 먹이고 마시우는 것은 생명과 관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는 행위이며 궁극적인 마시움과 먹임은 생수의 근원,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받아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게 하는 것이다(요 6:35).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숯불 - 해석이 다양한데, '숯불'은 '회개의 표'(Klassen), '마음의 불'(Liddo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회개와 부끄러움의 가책으로 타는 듯한 고통'(Cranfiedl, Hendriksen, Harriso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혜', 즉 궁극적으로 은혜를 가져오는 '후회와 부끄러움에서 오는 고통'(Godet)등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해석한다. 대체로 숯불을 쌓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만이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께서 신자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복수 방법이다. 은혜를 베풀므로써 원수가 자신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행동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죄악에서 돌이키게 되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로에게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는 17절에서부터 계속 진행되어 온 내용의 요약이며 결론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악에게 지지 말고 - '악에게 진다'는 것은 원수의 악한 행위로 번민하거나 원수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해 악으로 갚으려고 악한 행위를 계획하는 것이다. 즉 원수의 악한 행위로 인해 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상태를 떠난 것을 의미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선으로 악을 이기라 - 이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곧 선행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절에서 말한 겸손(3, 16절), 봉사(6-8절), 평화를 유지하는 것(18절)을 가리킨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한 20절의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삶에서 승리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생활을 말한다. 이 승리는 자신의 노력, 열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도의 대속(代贖)을 믿는 믿음과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의 힘으로 이뤄진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P&gt;&lt;EMBED src=http://pds36.cafe.daum.net/original/27/cafe/2007/05/10/23/27/46432bb7a1eff&amp;.mp3 width=300 height=45 type=application/octet-stream volume=&quot;0&quot; loop=&quot;-1&quo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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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제14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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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1T16:44:2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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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efcdf&quot; color=#940000 size=5&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요한복음 (14 : 1~31) &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efcdf&quot; color=#940000 size=5&gt;&lt;/FON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efcdf&quot; face=Verdana color=#940000 size=5&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 예수님의 별세에 대한 말씀(13:33)을 들은 제자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은 근심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그들더러 &quot;근심하지 말라&quot;고 하신다. 그의 이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같은 권면은, 이 아래 여러가지 이유를 가진다.&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efcdf&quot; face=Verdana color=#940000 size=5&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이 말씀의 뜻은, &quot;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으라&quot;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어야 되고 또 예수님 자신을 그 만큼 믿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기고 믿으라는 뜻이다. 요한 복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보며 일체로 본다(5:24, 10:30, 14:9, 12:44). 여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서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고 하심은, 그가 일찌기 그들에 주신 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훈(來世訓)(12:26, 13:36)을 믿으라는 뜻이다. 다음 절 하반에, 일찌기 주셨던 그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내세훈이 다시 관설된다. 거기 있는 해석을 참조하여라.&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여기 &quot;거할 곳&quot;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모나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데, 이것은 영구한 저택(邸宅)을 의미하는 바, 하반절의 &quot;처소&quo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라는 말과 다르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모나이 곧, &quot;거할 곳&quot;은 구약 시대에도 늘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오는 것이니,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시설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가 예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실 &quot;처소&quot;는, 본래부터 있던 아버지 집의 &quot;거할 곳&quot;에 신자들을&amp;nbsp; 수용할 자리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 곳에 갈 수 있도록 하시는 방법은, 그의 죽었다가 다시 살으심 곧, 구속 사업의 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성인 것이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그렇지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번역은, 원문의 문구를 괄호구로 취급하고 번역한 것이다. 그 뜻은, 만일 아버지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집에 거할 곳이 없었더라면, 그가 그 사실을 그들에게 벌써 말하였을 것이라는 것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문구를 그 아래 호티로 시작되는 문구와 연속시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서 의문(疑問)의 말씀으로 읽음이 더욱 문법적이다. 그렇게하면 그 문구는 다음과 같&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번역된다. 곧, &quot;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하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겠느냐?&quot;라고 일찌기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있을 곳을 예비하시겠다고 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말씀은, 12:26, 32에 포함되었다. 어쨔든 이 말씀은, 신자들에게 천당 신앙을 강조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다.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무디(Moody)는 말하기를, &quot;준비된 천국을 믿고 바라보는 신자는, 벌써 천국에 들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 있는 듯한 생활을 한다&quot;라고 하였다(Those who look for a heaven made ready will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ive as though they were already in heaven-Notes from my Bible, p. 141). 우리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내세에 들어가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할 때에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에 조급하거나 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황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영원토록 살 사람들이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볼트만(Bultmann)은, 여기 관설된 내세 소망이 유대적 기독교의 색체를 가지지 않&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고, 개인 본위로 말하는 노시스주의(靈智派)의 신화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Johannes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Evangelium p. 465). 곧, 요한 복음의 내세관(來世觀)이 노시스 사상에서 말한 것(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혼이 하늘 세계에 올라간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요한 복음의 말씀이 물론 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의 별세 후 그 영혼이 하늘 세계에 감을 말하지만, 노시스 사상에 있는 그것과는 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른 것이다. 노시스의 내세관은 범신론적이며, 유출설에 속한다. 한스 조나스(Hans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Jonas)는, 노시스 사상이 말하는 영혼에 대하여 말하기를, &quot;사람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떨어져 내려온 부분이라&quot;고 하였다(Gnostic Religion p. 44) 헬미티즘(Hermetism) 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헌에서도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분산된 것이니 이는 마치, 광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태양에서 분산된 것과 같다고 한다(Libelius, p. 12). 따라서 노시스 사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서 말하는 영혼의 승천은, 그것이 질적으로 하나님과 다시 연합을 의미하는데, 점차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성화되어 올라간다는 것이다(Hans Jonas, The Gnostic Religion. pp. 45, 166). 이같&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은 사상이 헬메티즘(Hermetism)문헌에 있다(Libelius 1:25-26). 거기 있는 말을 보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별세한 영혼이 7 층 세계를 통과하여 결국 하늘에 이르러 성화 되어 신화(神化)된다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한다. 그 말을 소개하면 이렇다. 곧, &quot;승천에 대하여 내게 말하시요&quot;하니 포이만드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스(Poimandres)가 대답하기를 &quot;내 몸이 용해되면 나는 하늘들을 통과한다. 첫째 하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은 일이 증가되기도 하고 감손되기도 하는 곳이요, 둘째 하늘은 모든 악한 계획들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있는 곳이요. 세째 하늘은 사람을 속이는 정욕이 있는 곳이요, 네째 하늘은 교만이 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스리는 곳이요, 다섯째 하늘은 거룩지 못한 용기와 담력이 다스리는 곳이요, 여섯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은 부하기를 원하는 악한 욕심이 있는 곳이요, 일곱째 하늘은 사람을 해하려고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 거짓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이다. 영혼이 이 모든 하늘들을 지나서 여덟째 하늘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있는 본체에 올라가 그 본래의 능력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완성이다&quot;라고 하였다.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위와 같은 노시스 사상은 인간의 자력 구원을 말하는 그릇된 사상이다. 그러나 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한의 구원론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단독 역사(役事)로 말미암는 구원론이다. 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4:2 이하는, 실상 구약 사상(시 49:15, 73:24)에 근거한 것이다. 볼트만(Bultmann)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신환 제거(Demythologizierung)주의는, 실존주의적인 해석 방법으로서 하나님께 대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여 사람의 쓰는 말은 대부분 신화(神話)라고 잘못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에 의하여 사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의 언사로 표현될 수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 예수님께서 일찌기 자기를 하나님께로 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 &quot;길&quot;이라는 의미로 많이 말씀하셨다(8:19; 10:1, 7,9,37,38, 12:26, 44,45,49,50;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마 11:27, 28). 다음 귀절(6 절)은 그 곳을 명백히 가리켜 말하면서, 예수님 자신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그 길&quot;이라고 하였다. 예수님 자신이 &quot;그 길&quot;인고로 그들은 편하게 그 길을 갈 수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 그러나 길 되시는 주님 자신은, 그 길이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큰 고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을 당하셨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알겠삽나이까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니이까. 요한 복음에는, 특별히 도마가 충성스러우면서도 둔한 제자로 나타났다. 도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이 천당을 가리키신 줄 몰랐던 것이다. 그 만큼, 그는 지각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둔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질문 때문에 진리를 밝혀지곤 하였다(Barret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여기 &quot;길&quot;, &quot;진리&quot;, &quot;생명&quot;이란 말이, 헬라 원문에는 모두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그&quot;라는 관사를 가지고 있어서, &quot;그길&quot;, &quot;그 진리&quot;, &quot;그 생명&quot;을 의미한다. &quot;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길&quot;은 유일한 길이요(행 4:12), &quot;그 진리&quot;도 유일한 진리요, &quot;그 생명&quot;도 유일한 생명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근원을 가리킨다.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어디까지나 그 시대의 다른 종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상과 타협하시지 않은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영혼이 자기 힘으로 하늘에 간다는 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파(노시스)의 사상과 기타 사상이 유행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 타협하는 혼합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의(Syncretism)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 그는, 그 자신이 독일 무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獨逸無二)하신 &quot;그 길&quot;이요, &quot;그 진리&quot;요, &quot;그 생명&quot;이라고 그는 메시야적인 자아 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장을 세우신다. 선지자들은 진리와 생명에 대하여 길을 가리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 예수그리스도는 &quot;그 길&quot; 자체요, 더욱이 그 길의 목적인 &quot;그 진리&quot;, &quot;그 생명&quot;자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시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이르도록 하시는 중보자이시지만, 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신이 하나님 자신이시기도 하다. 이 사실은 그가 절대적인 구주이심을 성립시킨다.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quot; 천당 가는 길을 알려는 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마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천당 가는 길보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가리켜 주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당이 하나님 중심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님 외에 별도로 천당을 생각하려는 이원론적(二元論的) 사상으로 흐른다. 그것은 잘못&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된 사상이다. 하나님을 떠난 독립적인 선(善)이나 진리나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보았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또 보았느니라 -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그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스도는 아버지와 일체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 때까지 그런 영적 지식에 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족하였었다. 그러나 &quot;이제부터&quot;는 그들이 그런 지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quot;이제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터&quot;란 말은, 이제 멀지 않아 곧 실현될 일, 곧, 그의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심과 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령의 강림하심부터 시작될 완전한 계시(啓示)의 시기를 가리킨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이와 같은 완전한 지시기, 곧, 영적 지식을 가지게 됨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대하여, 사도 요한은 그것을 가장 확신 있는 지식으로 여겼다. 그것이 그렇게 확실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는 의미에서 우리 본문에, &quot;보았느니라&quot;는 현재 완료 동사가 사용되었다. 사도 요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의 글에는 이 방면 기록이 적지 않다. 19:35에도 말하기를, &quot;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니 그 증거가 참이라&quot;고 하였고, 요일 1:1-3에도 말하기를, &quot;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에 만진 바라 이 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quot;라고 하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 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립은 여기서도 현실적이고 타산적이다. 그는, 영(靈)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감각적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보기 원하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벴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Bengel)은 이 귀절에 대하여 말하기를, &quot;우리가 영혼 자체를 볼 수 없으나, 그것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몸을 도구로 하여 행하는 바를 보아서 알 수 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를 보는 자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동시에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관한 일체의 생각에 있어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스도를 거울로 삼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15)&quot;라고 하였다(Gnomon 2, Edinburgh, p. 433).&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시는 것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시는 것이라 - 여기 이른 바, &quot;안에 있고&quot;란 말은 성부와 성자의 본질상 연합을 가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킨다. 그러나 여기서 그 두 분의 도덕적 연합(행위로써 연합)도 의미하였으니, 고데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Godet)의 말한 바와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quot;여기 '나는 아버지 안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란 말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향하여 자기를 겸허(謙虛) 시킴이고, '아버지는 내 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란 말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겸허에 모든 능력과 지혜를 전달하심이다&quot;라고 하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Zondervan, p. 274).&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 여기 &quot;믿으라&quot;는 부탁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저 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의 말씀에 의하여 그런 줄 믿으라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을 그의 말씀대로 믿&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으라는 명령이다. 이렇게 함이 최고의 신앙이다(Hendriksen). &quot;그렇지 못하겠거든 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quot; 이렇게 믿는 것이 둘째로 가는 신앙이다. 그저 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수님의 말씀대로 믿음이 첫째인데, 그것은 상반절에 보여 주었다. &quot;그 일&quot;이란 것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의 이적과 기사들을 가리킨다. 10:25, 37-38 참조.&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 이 말씀은 사도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을 상대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이 일반 신자들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닐 것이라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생각되는 이유는, (1) 이 부분(14-17장) 말씀이 사도들의 사명에 대한 주님의 임종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언(臨終遺言)과 같은 까닭이며(26,17:18), (2) 이 부분 교훈의 마감이라고 할 수 있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7장의 기도에, 주님께서 사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후대의 신자들을 사도들에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서 구분하신 까닭이다(17,20).&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quot; 곧,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신 권능에 의하여 이적을 행하며, 기타 위대한 일들을 하되, 예수님 자신이 행하신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과 같은 정도의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quot;이보다 큰 것.&quot;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승천하시므로 성령이 오서서 이루실 만국 전도와 구령(救靈) 사업을 가리킨다. 예수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땅 위에서 행하신 일들은 미래의 이 큰 일들을 위한 준비였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신바가들은 이 귀절에 근거하여, 신자들이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땅 위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일과 승천하신 뒤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의 하시는 일과으이 구분을 모르는 가운데서 일어난 오해이다. &quot;이보다 큰 일&quot;은 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부적인 육신 상대의 이적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시므로 완성된 구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을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실시함이다. 외부적 이적은 &quot;비유로 말씀하신&quo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계시(啓示)라고 할 수 있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구원 실시는 &quot;밝히 말씀하시는&quot; 계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라고 할 수 있다(16:25-28). 성령이 오셔서 사도들을 통하여 만국에 복음을 전하시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은, 저렇게 큰 일이다(시 27:8; 사 42:6; 슥 9:10).&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신자들)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기도를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위의 12절에서 독립된 것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 혹은 그것의 년속인가? 이것은 하나의 난제이다. (1) 핸드릭슨(Hendriksen)은, 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부분 말씀이 12절 내용을 더 설명해 주는 부속 문구라고 한다. 고데이(Godet)와 즈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Zaln)도 역시 같은 해석을&amp;nbsp; 취한다. (2) 그러나 크로솨이데(Grosheide)와 버나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Bernard)와 렌스키(Lenski)등은, 이 부분 말씀을 또 하나의 독립적인 약속으로 간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한다. 특히 버나드(Bernard)는, 13절 초두에 있는 &quot;또한&quot;이란 헬라원어에 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거하여 이와 같은 주장을 세웠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quot;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가? 이것은, (1) 예수님의 권위(權威), 혹은&amp;nbsp; 공로(功勞)에 의지하여 기도함이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의 뜻대로 기도함이다.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내가 시행하리니&quot;란 말씀은, 아버지께서 기도 응답하심이 아들로 말미암아서 실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됨을 가리킨다(Barrett). &quot;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quot; 기도응답은 언제나 인간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욕을 채우려 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그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려 함이다. 이런 기도 응답은 그리스도의 중보적 역사로 인하여 실시되는고로, 여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서 &quot;아들을 인하여&quot;란 말이 쓰여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이것은, 윗절에&amp;nbsp; 말씀하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약속을 거듭 말씀하여 고조하는 것 뿐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여기서 예수님은, 사도들더러 그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계명을 지키라고 하신다. 신자가 그의 계명을 지킴이 곧, 그를 사랑함이다. 그런데 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제되는 것은, 이 말씀이 앞절과 관계를 가지는가 혹은 독립적인 말씀인가? 또 혹은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이, 16절 이하에 나오는 보혜사 약속과 관련된 말씀인가?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몇&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몇 학자들의 의견을 생각해 보고저 한다. (1)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귀절의 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씀이 독립적인 언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다. (2) 렌스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enski)와 핸드릭슨(Hendriksen)은, 이 귀절 말씀이 위에 있는 많은 말씀과 관련되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고 생각한다. 곧, 그들은, 여기 &quot;사랑&quot;이란 것을 믿음(11절끝)과 같은 것으로 생각&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고, &quot;계명&quot;이란 것을 기도하라는 부탁과 같이 생각하여 윗말과&amp;nbsp; 연락시타다다. (3)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버나드(Bernnard)는, 이 말씀을 16절 이하의 보혜사 약속과 관련시킨다. 곧, 그는 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각하기를, 신자가 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그것은, 16절 이하에 약속된 성령의 은혜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4) 다른 학자들은 역시 이 귀절을 16절 이하와 연락시키면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도 위의 버나드(Bernnard)와 달리 취급한다. 이들은, 이 귀절(15 절)과 아랫 말씀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연락시켜서 다음과 같은 뜻을 찾는다. 곧, 신자들의 계명을 지켜야 보혜사가 오신다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이다. 물론 여기서 계명이란 것은 신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과(34 절), 또한 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심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신약 교회를 창립하는 오순절 성령 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동은 물론 구원사(救援史)에 속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약속 성취이다. 이 약속 성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 인간의 주관적 조건에 매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약속 성취를 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보시면서 사도들과 그 때 신자들의 주관적 준비를 명하시기는 하셨다. 예컨대, 그들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러 예루살렘에 유하며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이다(행 1:4). 그들의 기다리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일은 바로 기도에 전력함이었다(행 1:14). (5)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생각한다. &quot;계명을 지키라&quot;는 주님의 말씀은, 14절에 나온 기도하라는 부탁과 관계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진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이다(15:7).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귀절의 말씀이 그 아래 나오는 말씀, 곧, 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령이 오시리라는 약속과 관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그들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며 기도하는 결과로 성령님이 오시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행 1:12-14, 2:1-4).&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계명을 지키리라.&quot; &quot;지킨다&quot;는 말은, 보배를 지키며 보관함에 대해 쓰는 말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것은 계명을 중심에서부터 사랑하여 지킴이다. 계명 지킴과 기도 응답은 서로 분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될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마술적 의미에서 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 윤리적 내용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그 기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가 주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실이 있어야 그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이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불건전한 신비주의는 계명과 율법을 무시하는 경향에 있다. 예를 들면, 재세례파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속하는 란텔파(rANTERS)는, 자기들이 모든 계명을 초월한다(계명의 제재를 받지 않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는 뜻)고 하였다(R.A. knox. Enthusiasm, p. 173). 그들의 이와 같은 주장은, 자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신을 신격화(神格化) 하는 참람한 행동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함께 있게 하시리니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함께 있게 하시리니 - 여기 이른바 &quot;구하겠다&quot;는 말의 헬라 원어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상대방을 향하여 동등 처지를 취하고 구하는 태도와 과히 틀림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다. &quot;보혜사&quot;란 말은 &quot;대언자&quot;를 의미한다. 요일 2:1에 예&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수님을 &quot;대언자&quot;라고 하였으니, 성령을 가리켜 &quot;다른 대언자&quot;라고 함이 적당하다. 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령은 우리를 위하여 도고하여 주시는 대언자이시다(롬 8:26). 그 뿐 아니라, &quot;보혜사&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란 말을 위로자란의미도 가진다. 그가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그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스도를 모시고 있음과 마찬가지의 힘과 평안과 기쁨과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할 수 있도록 하실 그의 역사를 가리킨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여기 약속된 보혜사의 오심은, 오순절 임하실 성력을 가리킨다. 그가 &quot;영원토록 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희와 함께 하시리라&quot;고 하셨으니,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단 한 번 있을 것이지만, 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역사의 영구할 것이 알려진다(마 28:20).&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속에 계시겠음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계시겠음이라 - &quot;저는 진리의 영이라.&quot; 이 말씀은, 진리(그리스도의 인격과 속죄 사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 대한 설명 계시)가 성령님의 것이라는 뜻이다. 세상이 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상은 육안에 보이는데로만 무엇을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그를 받는 이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 그가 그들 속에 거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까닭이다. 그것이, &quot;저는 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quot;하신 말씀이 의미한 바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음이라 - 여기서 갑자기 &quot;내가&quot;란 말씀으로 시작된 것은, 위(16-17)의 논제(성령)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달라진 느낌이 있다. 즈안(Zahn)은 이것을 논거로 하여, 이 귀절 말씀은 재림을 취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서 &quot;내가&quot;란 말을 사용하신 이유는, 위(16-17)&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 관설된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 자신의 속죄 사업의 연장이요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뿐만아니라, 예수님은 삼위 일체 안에서 성령과 일체이기 때문에 그가 여기서 &quot;내가&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란 말을 기탄 없이 사용하셨다. 위의 16-17절은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신 것 뿐이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귀절(18 절)부터는 성령의 역사와 예수님 자신과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quot;내가&quot;란 말로 가르치신 것은, 자연스럽다. 여기 &quot;내가...너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게로 오리라&quot;하신 말씀은 재림을 가리키는가? 그의 부활을 가리키는가? 혹은 성령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강림을 가리키는가? (1) 재림을 가리킨다는 학설이 옳지 않은 이유는, &quot;조금 있으면&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란 말(19절 초두)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온다는 것은 미구에 오심을 의미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 그 뿐 아니라, 그의 오심을 세상이 보지 못한다는 말도 재림설에 맞지 않는다. 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림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보리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계 1:7). (2) 예수님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부활을 가리켰다는 학설도 여기 맞지 않는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땅에 계신 기간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길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그것이 18절의, &quot;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고 하신 말씀을 성취시킬 수 있겠는가 함이 문제 된다(Smide). (3) 많은 주석가들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것을 성령 강림에 관한 말씀으로 여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성령 강림 사건에 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님의 부활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페인(Fein)은 말하기를, &quot;부활절과 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순절은 일체(一體)로 합류한다&quot;라고 하였다(Ostern und Pfingsten fliessen zu einer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Einheit zusammen. - Theol., S. 383).&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이 말씀은, &quot;내가 사는고로 너희도 살게 되리라&quot;고 번역하신 것이 헬라 원문과 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합한다. 그리고 우리 한역의 &quot;이는&quot;이란 말은 잘못된 번역이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의 말씀에 직속하는 이유 문구가 아니고 하나의 독립 문구이다. &quot;내가 사는고로&quot;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말씀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으나(Lange, Barrett). 다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학자들은 이것이 예수님의 고유하신 생명 근원을 의미한다고 한다(Grosheide). 어쨌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영적으로 살려 주시는 근원이 되심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점에 있어서 상반절의 &quot;나를 보리니&quot;란 말씀이, 살게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여 주는 원인을 나타낸다고 한다. 곧, 산다는 것(영생의 생명)은 실상 우리 심령이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님을 봄으로(앎으로) 생기는 것이다. 요 17:3 참조.&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18절부터 27절 까지는 보혜사의 하실 일에 대하여 말한다. 곧, (1) 신자들을 거듭&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게 하여 살리심(19 절), (2)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합하게 하심(20 절), (3) 계명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키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심. (4) 사도들로 하여금 진리(예수님의 업적과 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씀)를 깨닫도록 하심(26 절), (5) 신자들에게 평안을 주심이다(27 절).&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알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라 - 이 말씀은,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한 관계를 가리킨다. 신자와 그리스도와 연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는 여러가지 방면이 있으니, (1) 신자가 선택 관계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엡 1:3-4).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신자가 구원사상(救援史上)의 그리스도 행적에서 그와 연합함. 곧, 그의 죽으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의 부활, 그의 승천의 복된 사실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롬 6:3-11; 엡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4-6; 골3:3-4). (3) 신자가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합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엡 2:10). (4) 신자가 그의 행위와 생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와 연합함(롬 6:4; 고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4-5). (5) 신자가 죽음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와 연합함(살전 4:14,16). (6) 신자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부활할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한다(고전 15:22; 롬 8:17). 이렇게 이 연합은 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원하며, 죽음도 그것을 파괴 시키지 못한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quot;나의 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명.&quot;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13:34) &quot;새 계명&quot;을 가리키는데, 신자들이 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로 사랑할 계명이다. 13:34 해석, 요일 2:7-11 참조. 형제를 사랑한다 함은 무엇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성립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포한 신약 윤리(예수의 계명)에 순종하는 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활이다. 이 모든 윤리는 사랑을 목적한 것이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신약 윤리가 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의 십계명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완성이라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도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런 사고 방식으로 관설하였다(롬 13:8-10).&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그런데, 기독자가 계명을 실행함에 있어서 구약 시대 성도보다 더욱 사랑의 동기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지고 관철하게 된다. 그 이유는, 신약 시대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그 성취 형&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태에서 누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어 주신 그 큰 사랑을 받은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언제나 그의 윤리 생활의 동기를 이룬다. 요일 4:19에 말하기를, &quot;우리가 사랑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quot;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신자들로 하여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무슨 일을 행할 때든지 사랑의 동기로 행하여 모든 의(義)를 이루라는 것이다. 그들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랑의 동기를 가짐에 있어서 구약 성도들보다 명확하고 철저하고 일관성을 가지게 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야 한다(마 22:37-40).&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quot;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을 가리킨다. 그 나타나심은, 우리의 육신에 나타나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보다 더욱 근거 깊이 우리의 심령에 나타나심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니하려 하시니까 - 여기 &quot;유다&quot;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이다(눅 6:16). 그의 물어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말은 세상 영광을 생각한 것이다. 곧, 예수님이 자기를&amp;nbsp; 제자들에게 나타내시리라(21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절)고 하신 말씀을, 유다는 이름낸다(명성을 떨친다)는 뜻으로 오해하였다. 그러므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는 묻기를, &quot;왜 널리 세상에는 이름을 나타내시지 않으려 하십니까?&quot;라고 하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 주님을 사랑&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는 사랑이 그의 말씀을 지킴보다 앞선다. 사랑없이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지킨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해도 생명 있는 것은 아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여기 성부(聖父)와 예수님이 함께 신자에게 오셔서 거하신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성령으로 말미암은 내주(內住)를 가리킨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신 동시에 아들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영이시다(고전 6:19; 고후 6:16; 엡 3:17; 살전 4:8). 이와 같은 연합은 내세에 이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러서 더욱 완전히 이룬다(계 3:20, 21:3). 현세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거하시며, 내세에는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거한다(Gode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이 귀절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종하지 아니함이 얼마나 중대한 잘못임을 지적한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거역하는 죄악이다. 그 이유는, 그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 이것은, 그가 이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까지 가르치신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가 이 말씀을 하신 목적이, 다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절(26절)에 나와 있다. 곧, 그의 별세 후에 보내실 성령님을 통하여 하실 말씀은 더욱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세하고 많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리라 - 여기&quot;너희&quot;란 말은 사도들만 가리킨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직접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들은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여 주시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들은 사도들이다. 성령의 일은, 예수님의 교훈을 되살려 해설하시는 것이다. 그러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로 그것은, 예수님의 전날 교훈을 사도들의 기억에 되살려 깨닫게 하시는 운동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이 말씀이 윗절까지 계속되던 성령론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 우리는 이 점에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서, 이 귀절이 위의 모든 말씀의 결론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같다. 곧, 26절에 말한대로 성령님의 하시는 일은 사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사건(&quot;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희에게 말한 모든 것&quot;)을 깨닫게 하신다고 하였고, 그 뒤에 이 귀절은 평안의 선물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말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사건을 깨닫고 믿을 때에 비로소 참다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평안을 누린다. 어떤 학설에, 평안에 대한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단순한 작별 인사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고 하나, 이 말씀을 그렇게 보는 것은 잘 못이다. 그 이유는, 이 귀절에 말한대로 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평안은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신다고 하였고, 또한 그것이 세상의 주는 것과 같지 않&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평안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므로 신자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며(28 절), 또한 그 평안이 그들의 영원한 기업이 된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예수님의 평안은, 그가 하나님과 평화롭게 지내시는 관계를 말함이다. 그는 구속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업의 완성으로 신자들에게도 그런 평안을 주신다. 그의 주시는 평안이 세상의 그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과 다른 특성은, 그 가장 위험한 때에도 심령이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Barret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엿더면 나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 예수님께서 가신다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과 오신다고 하신 것은 그가 이미 말씀하신 바이다. 13:33-36, 14:2, 3, 12, 18-19,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1, 23 참조. 그런데 그를 사랑하신 자라면 그의 가심을 기뻐할 이유가 무엇인가? (1)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가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은, 그가 영화를 얻으시는 사건이기 때문이며(히 12:2),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그가 가심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까닭이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quot;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quot;이것은, (1) 예수님께서 땅에 계신 동안 영광을 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시지 않은 고로 아버지보다 낮음을 가리키고, (2) 그가 중보자(中保者)의 지위에 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신 것 만큼, 그 역사에 있어서는 아버지에게 종속(從屬)하심을 말함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9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함이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0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이 부분 말씀은 14장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 결론에서 두 가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를 말씀하셨다. 곧, (1) 그가 이 부분에 미리 말씀하신것은, 그 일이 성취될 때에 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29절)과 (2) 사단의 무리가 와서 예수님을 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난의 자리로 잡아 간다는 것이다(30-31).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 곧,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단은 예수님을 정죄할 아무런 근거도 가지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도께서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시고 하늘에 속하셨으며, 또한 그에게는 전연 죄가 없&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으시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ㅇ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게 하려 함이로라 - 예수님께서 사단으로 말미암아 해를 받으시게 되는 목적이 이러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니, 곧,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시며 순종하시는 마음으로 고난 받으신다는 것을 드러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시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수난은, 사단의 뜻을 이루어 주려는 것이 아닐,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님의 계명(죽으라는 것과 부활하는 것-10:17-18)을 감심으로 이루시는 것 뿐이라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것이다.&lt;/SPAN&gt;&lt;BR&gt;&lt;/P&gt;&lt;/STRONG&gt;&lt;/FONT&gt;
&lt;P&gt;&lt;FONT face=Verdana color=#000000 size=2&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lt;!-- --&gt;&lt;!-- end clix_content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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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호수아 제12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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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updated>2009-12-01T16:34:14Z</updated>
	    <published>2009-12-01T16:34: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호수아 (12 : 1~24)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산까지의 동방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요단 저편 해 돋는 편 - '요단 저편 해 돋는 편'이란 곧 요단 동편 땅을 가리키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말로, 이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 일찍이 모세가 점령하여 르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한 땅이다(1:12-15). 민 32:19 주석 및 본장 1-6 강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해, '요단 동편 지역에 대해서'를 참조하라. 한편 본절에서부터 6절까지는 요단 동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땅에서 과거 모세가 진멸 시켰던 아모리 족속의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 - '아르논'(Arnon, '급류', '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살이 빠른 시내'란 뜻)은 오늘날에는 바닥이 말라붙은 골짜기이지만, 구약 시대에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북부 아라비아의 산지에서 가파른 골짜기를 타고 서쪽으로 약 32km의 물줄기를 형성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 엔게디(Engedi)맞은편에 위치한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긴 강이었다. 아르논이 성경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모압과 아모리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서였다(민 21:13).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고 가나안 땅 분배 후 이 아르논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의 남쪽 경계선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루었다(신 3:12). 한편 '헤르몬 산'(Mt. Hermon)은 아모리 사람들에 의해 '스닐'(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9; 대상 5:23; 겔 25:5)이라고 불렸으며, 아모리 왕국의 북쪽 경계선(신 3:8; 4:48)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이루었다. 따라서 이 산은 북부 아모리 왕국의 바산 왕옥의 영토 내에 있었던 것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알려지고 있다(12:5; 13:1). 그리고 이 산은 여호수아에게 의해 정복된 가나안 땅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북방 한계선(수 11:17; 12:1; 13:5)으로 묘사되었으며, 가나안 땅 분배 후에는 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낫세 영토의 북방 한계선이기도 했다&lt;신 3:8 주석 참조&gt;. '동방 온 아라바'는 요단 동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편의 남쪽 한계선인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 한계선인 헤르몬까지 이르는 요단 계곡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편 지역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여기서 '아라바'(Arabah)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의 대계곡을 가리킨다(3:16; 8:14; 11:2, 16; 12:3, 8; 12:8; 18:18;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 1:1; 2:8; 3:17; 4:49; 11:30).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얍복강까지며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 - '헤스본'(Heshbon)은 요단 강 동쪽 약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9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있다. 민수기 21:25-30에 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르면, 헤스본은 본래 모압 땅이었다.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은 이 성읍을 모압인들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터 빼앗아 그의 수도로 삼았다. 그 이후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던 도중에 시혼에게서 이 성읍을 탈취하였다. 탈취 후 땅을 분배할 때 헤스본은 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 내에 속해 있었지만, 사실상 르우벤과 갓 지파의 경계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에 위치해 있었다(민 32:37). 그런데 갓 자손은 가나안 정복 후에 이 성읍을 재건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였다(민 32:37). 그후 갓 지파가 이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후 헤스본은 갓의 성읍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있다가, 후일 므라리 자손의 레위인들에게 할당되었다(21:39; 대상 6:81; 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1:26 주석참조). '아모리 사람'(the Amorites)은 족장 시대 훨씬 이전부터 요단 강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 . 서편에 정착해 살던 가나안 원주민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정된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였다(3:10; 창 15:16, 19-21; 신 7:1). 그리고 '시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ihon)은 모세 당시 아모리 사람들의 왕(민 21:21-30)으로, 모세는 그에게 사자를 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가를 얻고자 했다. 그런데 그는 허가를 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기는 커녕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다가 참패를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이다. 시혼을 격파한 후 이스라엘은 그의 땅을 최초의 정복지로 선포했다. 이러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혼의 수도는 헤스본이었으며, 남쪽 경계는 아르논이었고, 북쪽 경계는 얍복이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 21:24). 그리고 시혼의 영토 내에는 많은 촌락과 성읍이 있었다(민 21:25). 결국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혼의 영토는 이스라엘의 땅이 되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 자손 일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정착한 요단 건너편(Trans Jordan)의 일부가 되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르논 골짜기 - 민 21:13; 신 2:24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로엘 - 사해 동쪽 약 22km 지점인 아르논 강의 북쪽 강 언덕에 위치한요단 강 동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편의 고대 도시이다. 오늘날 아라이르(Arair)로 추정되는 '아로엘'(Aroer)은 당시 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모리 오아국의 남쪽 한계 지점을 가리켰으며,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2; 신 2:36; 3:12; 4:18). 그후 아로엘은 르우벤 지파에게 배당되었는데(13:7,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6; 삿 11:26). 그전에 정복된 다른 성읍들과 더불어 갓의 아들들에 의해 수축되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 32:34).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길르앗 - 신 2:36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암몬 자손 - 창 19:38에 따르면, 롯의 두딸 가운데 작은 딸이 그 아비와 동침하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벤 암미'(Ben-Ammi)라고 지었으며, 후일 이 아들이 암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당시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트랜스 요단(요단 동편) 땅에 있었으나, 이스라엘은 친척 족속이므로 이들과는 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신 2:19)을 좇아 멀리 돌아서 진행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얍복 강 - 요단 동편에 위치한 약 96km길이의 이 강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곳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유명하다(창 32:24). 강 북쪽의 만곡선 부분은 당시 암몬 자손의 서쪽 경계를 형성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였으며(민 21:24), 그 유역 서쪽으로 멀리는 갓 지파가 정착했다. 그리고 강의 서쪽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분은 길르앗 지역을 둘로 구분시키는 천연적인 정치적 경계가 되었고(신 3:12, 16),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편으로는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인 시혼 왕국과 옥 왕국을 구분지어 주는 강이기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긴네롯 바다 - '갈릴리' 바다의 별칭으로 '긴네렛' 바다(신 3:17)로도 불리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략 남북이 22km, 동서가 14km 정도 되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이다. 상세한 내용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24-28 강해, '갈릴리 바다'를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염해 - '사해(死海)'의 별칭으로 본래는 싯딤 골짜기였다(창 14:3). '아라바해', '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해'라고도 불리운다. 신 3:17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벧여시못 - 모압 평지에 있는 헤스본 지역 성읍들 중의 하나로서, 나중에 르우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된 곳이다.(13:20). 민 33:49에 따르면,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최후로 진을 쳤던 곳으로 나타나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비스가 산록 - '비스가'(Pisgah)란 명칭은 '비스가 산꼭대기'(민 21:20; 23:14; 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27; 34:1), '비스가 산록'(신 3:17; 4:49) 등의 결합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록'(山麓)이란 산의 구릉(丘陵)이 시작되는 산기슭을 뜻한다. 그리고 비스가 산정(山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頂)에서는 모압 평지가 내려다 보이며, 서쪽으로는 사해도 보인다(신 3:17; 4:49). 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비스가 산록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중 일부가 되었다(13:15-20). 한편 하나님께 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말년의 모세에게 이 비스가 산에 올라 멀리 언약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 3:27).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르바 - '크다', '강하다'란 뜻의 아랍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곧 거인 족속인 '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바임 족속'을 가리킨다(창 14:5; 15:20; 신 3:11; 삼하 21:16, 18). 신 2:11 주석 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스다롯 - 바산 왕 옥(Og)의 고향으로서(신 1:4; 3:10), 후에 므낫세 반 지파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업으로 할당되었다. 이 지방은 이스라엘 북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는 '가르나임'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신 1:4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에드레이 - 바산 왕 옥이 거주한 큰 성읍으로(신 1:4; 3:10), 동쪽 사막 근처 바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야르묵 강의 한 남쪽 분기(分岐)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요단 동쪽 정벌시, 모세는 에드레이 외곽에서 싸운 전투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옥을 쳐 부수고 그 성읍을 멸하였다(민 21:33-35; 신 3:1-6). 민 21:33; 신 3:1 주석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바산 왕 옥 - 13:12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 그 치리하던 땅은 헤르몬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경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지경에 접한 것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헤르몬 산 - 신 3:8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살르가 - 바산의 동쪽 경계에 위치한 땅으로(신 3:19), 처음 므낫세 지파에게 배당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었지만, 후에 갓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대상 5:1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바산 - 신 3:1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술 사람 - 그술 지방은 북쪽 요단 강의 동부 지방으로서 마아가 족속의 땅과함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므낫세의 아들 야일에게 배당된 땅의 일부이다(신 3:14). 이 그술의 경계 지역은 본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다시 언급되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이곳까지 취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술 족속(the Geshurites)이란 말은 13:11, 13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그때까지 이스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엘 자손이 쫓아내지 못한 족속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다윗의 아들 압살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다윗과 그술왕 달매의 딸인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삼하 3:3; 대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2). 신 3:14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아가 사람 - '마아가'는 헤르몬 산의 동 남쪽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로, 남쪽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그술'과 접경을 이루었고, 서쪽으로는 요단 강을 건너 '아벨 벳 마아가'에 이르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이 땅을 정복했으며(신 3:14), 그 공로로 이 땅은 므낫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 지파에게 할당되었다. 신 3:14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길르앗 - 요단 동편의 산지로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또 넓게는 요단 강 동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전 지역을 가리키나(22:9 이하), 좁게는 요단 강 동편의 중앙부 지역만을 가리키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 한다(왕하 10:33). 신 2:36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여호와의 종 모세가...기업으로 주었더라 - 모세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Siho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바산 왕 옥(Og)을 죽이고, 그들이 다스리던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그 분배하게 된 관정과 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배 지역은 민 32장에 잘 나타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요단 이편 - 여기서 요단 이편 지역은 요단 강 서편, 곧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2:19). 한편 본장 7절부터 24절까지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정복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1왕들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 이는 여호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정복한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키는데, 이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1:17에 언급된 표현이다. 단지 차이점은 이곳에 서는 북부 바알갓이 먼저 언급되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남부 할락 산이 나중에 언급되었는데, 11:17에서는 북부 바알갓이 나중에 언급되고 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 할락 산이 먼저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11:17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산지와 평지와 아라비아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이 표현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을 대략 지형적 특성에 따라 분류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 10:40및 11:16에도 언급되어 있다(10:40 주석 참조). 단지 차이점은 이곳에는 '광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야'란 말이 더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광야'는 남부의 '네게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Negeb)라기 보다는 아라바 지역과 네게브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대 사막' 지역을 가리킨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헷 사람과...여부스 사람 - 당시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의 명칭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이 열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리고...벧엘...아이 - 7:2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예루살렘 - 10:1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헤브론...야르뭇 - 10:3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라기스...에글론 - 10:3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게셀 - 10:33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드빌 - 10:38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게델 - '게델'(Geder)은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는 지명 이나, 구약 성경에서는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돌'(15:58), '그데라'(15:36), '그데롯'(15:41)등 유사한 지명들로 등장한다. 한편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곳 주민이었던 그데라 사람 요사밧은 대상 12:4에 시글락(Ziglak)에서 다윗에게 모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었기 때문에 세펠라(Shephelah)에 있는 유대 산지의 서쪽 비탈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학자들은 오늘날 이곳을 헤브론 산지의 '예둘'(Jedur)로 추정한다(Conder, Van d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Velde, Keil, Robinson).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호르마 - 에돔변경, 유대 남쪽 험준한 지방의 마을로 '스밧'(삿 1:17)으로도 불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운다. 본절에는 게델과 아랏 사이에 있는 것으로, 15:30에는 그실과 시글락 사이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고 19:4에는 브둘과 시글락 사이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호르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Hormah)는 민 14:45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 구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가나안의 가데스를 성급하게 침략했을 때, 아말렉군과 가나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군대가 그들을 물리치고 호르마까지 추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일 여호수아는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읍을 점령하여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하였다(19:4; 대상 4:30; 삼상 30:30). 오늘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인 가데스' 북쪽 약 39km 지점에 위치한 '세바이타'(Sebeita)로 추정된다(Palmer,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Keil).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랏 - 헤브론 남방 약 30km 지점에 있는 네게브 지방 동북부의 도시이다. 구약 성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에서 이 성읍은 4번 언급되어있는데(12:14; 민 21:1; 33:40; 삿 1:16), 완만하고 넓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경사지가 큰 평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위치로 중요한 성읍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립나 - 10:29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둘람 - 북쪽 세펠라(Shephelah)에서 유대 산지로 들어 오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나안 성읍 중 하나로, 창 38:1, 2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는데, 곧 유다의 친구 히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고향으로 나타난다. 한편 아둘람(Adulam)은 성경에서 항상 동굴과 관계가 있는 것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나타나는데, 다윗이 사울에게 추격당할 때 이곳에 피한 적이 있다(삼상 22: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곳은 후일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고(대하 11:7), 또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귀환한 자들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느 11:30). 카일(Keil)은 반 데 벨드(Van d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Velde)와 로빈슨(Robinson)의 견해를 따라 이곳을 오늘 날의 '데일 듀반'(Deir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Dubban)으로 추정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악게다 - 10:10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벧엘 - 7:2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답부아 - 이곳이 유다 지파의 성읍인지(15:34, 53), 므낫세 지파의 성읍인지(16:8;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7:7, 8)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마도 유다 평지에 속한 유다 지파의 답부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Tappuach)일 가능성이 많다(Keil).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헤벨 - 아벡과 함께 북부의 샤론 평야에 위치한 도시로, 솔로몬의 12행정지구 중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번째였다(왕상 4:10).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아벡 - 샤론 평원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욥바의 정북동쪽인 야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텔 라셀 아인'(Tell Rasel-Ain)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아벡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hbek)은 비아 마리스(Via Maris)로 가는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자주 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급되었다. 또한 이곳은 언약궤를 압류하고 실로를 파멸시킨 블레셋을 원정하기 위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출발점이었다(삼상 4: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랏사론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언급 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확실히 알 수가 없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혹자는 이곳을 디베랴(갈릴리) 호수 근처의 '사루네'(Saruneh)와 동일시 하기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Knobel).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돈...하솔...시므론 므론...악삽 - 11:1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시므론 므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himron-meron)은 '시므론'과 동일한 곳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다아낙 -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리스(Via Maris)가 이곳에 있다. 삼림이 우거진 북쪽 에브라임 산지 계곡은 매복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에는 최적지이다. 가나안 점령 후 다아낙(Taanach)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갔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21:25), 므낫세 자손은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는 데 실패 하였고 나중에 가서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들을 종으로 삼았다(사사 1:27, 28). 그리고 왕국 시대에는 다아낙이 레위인들의 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러 성읍 중 하나로 묘사되었고(대상 6장), 솔로몬 치세 때에는 행정 구역상 주요한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곳은 므깃도 동남쪽 약 6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델 타아낙'(Tell Taanak)으로 추정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므깃도 - 샤론 평야와 이스르엘 골짜기 사이에 있는 비아 마리스(Via Maris)의 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는 요충지이다. 따라서 이 곳은 애굽과 다메섹을 이어주는 주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상로(隊商路)였다. 가나안 정복 후 므깃도(Megiddo)는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만, 므낫세 자손들은 므깃도나 이스르엘 평야 주변의 다른 요새 성읍들을 정복하지 못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했다(17:11; 삿 1:27). 그러나 후일 솔로몬 치세 시에 므깃도와 하솔 및 게셀은 모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정복되어 솔로몬 왕의 군사 요새로 사용되었으며(왕상 9:15), 나중에 므깃도는 솔로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다섯번째 행정지구에 편입되었다(왕상 4:12). 후일 이곳은 유대 왕 아하 시야가 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후에게 죽임을 당한 곳으로(왕하 9:27), 그리고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 느고에게 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정적인 패배를 당한 곳으로(왕하 23:29, 30; 대하 35:20, 25) 유명하다. 특히 최후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마겟돈'('므깃도의 언덕'이란 뜻) 전쟁이 일어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기도 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 16:14, 16). 한편 로빈슨(Robinson)은 이곳을 오늘날의 '레윤'(Lejjun)으로 추정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게데스 - '납달리 산지의 게데스'(19:35-38;20:7)라고도 불리우는데, 요단강 서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위치한 세 도피성 중에 하나이다(19:37;20:7;21:32). 또한 사사 바락의 출생지이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 하다(삿 4:6). 후일 이곳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정복당했다(왕하 15:29).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재는 훌레(Huleh)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가데스'(Tell Kades)로 알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져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욕느암 - 갈멜 산 근처, 스불론 지파의 서남쪽 국경에 있던 한 성읍(19:11)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다시 분배되었다(21:34). 욕느암(Jokneam)은 오늘날의 '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텔 쿠이문'(Tell Quimun)과 동일시 되는데, 이곳은 므깃도 북서쪽 약 11km에 위치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은 언덕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돌 - 11:2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길갈의 고임 왕 - '길갈'(Gilgal)은 성경에서 5개와 각기 다른 곳으로 나타나고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데, 여기서의 길갈은 팔레스틴 북방에 있는 갈릴리 지방의 길갈을 가리킨다. 이 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갈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명단에 나타나는 왕들이 주로 북쪽 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역의 왕들인 점으로 미루어, 이 길갈 역시 사마리아 북쪽 지중해와 갈릴리 사이에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었으리라고 생각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곳은 오늘날 북부 요단 평야에 있는 '일율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예'(Jiljulieh)로 보기도 한다(Van de Velde, Conder, Robinson). 그리고 '고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히브리어로 '민족들', '족속들'을 뜻하는 말로, '길갈의 고임 왕'이란 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갈 족속들의 왕을 가리킨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 일 왕이었더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디르사 - 동쪽 아담의 시내쪽에서 요단 계곡으로 들어가는 와디 파라(Wadi Farah)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내리막 길에 위치해 있다. 이 주위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아 6:4), 므낫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7:2, 3). '디르사'(Tirzah)는 오므리가 사마리아 성을 건축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할 때까지 여로보암 1세로부터 바아사와 엘라와 시므리 때 까지 약 40년간 북쪽 이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엘 왕국의 수도였다(왕상 14:17; 16:8, 9). 이곳의 오늘날의 위치는 세겜에서 북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약 2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탈루자'(Talluza)로 추정된다(Robinson, Knobel, Va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de Velde).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gt;&lt;EMBED style=&quot;WIDTH: 417px; HEIGHT: 30px&quot; src=http://pds10.cafe.daum.net/original/24/cafe/2007/04/05/10/40/4614538a68072&amp;.MP3 type=audio/mpeg volume=&quot;0&quot; loop=&quot;-1&quo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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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출애굽기 제35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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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1T16:30:23Z</updated>
	    <published>2009-12-01T16:30:2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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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출애굽기 (35 : 1~35)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온 회중 -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고 부르심을 받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애굽, 즉 이방인들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무리들이므로 일명 '광야 교회' 에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레시아 엔 테 에레모)로도 불리운다(행 7:38).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여호와께서....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 모세가 지금 전달하고 있는 명령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권위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구절이다. &lt;/SPAN&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은 너희에게 성일이니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라&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를 죽일지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안식일 규례에 대해서는 20:8-11에 언급된 주석을 참조하라. 이 날에 일하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를 죽일지니. 31:15에서 이미 주어졌던 명령이다. 이와 같은 일은 이스라엘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체제가 정치와 종교가 일체화된 신정 국가(神政國家) 형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즉 당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정치와 종교의 수장(首長)이었으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의 딸은 종교적인 법이 되는 동시에 곧 정치적인 제재력(制裁力)을 가지고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었던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불처럼 요긴한 것은 없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하나님께서 안식일만큼은 이러한 필수적인 것조차 금지하셨다. 그 까닭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안식일에는 불을 지펴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은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동으로서는'하지 않도록하기 위함이었다. 즉 오늘날과 같은 성냥이나 전기 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가 없던 고대 사회에서는 불을 피우는 것이 쉽지않은 일종의 노동이었으니 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노동을 금하셨던 것이다(Wycliffe).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일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여기 언급된 성막 건축을 위한 예물들은 25:3-7에서 이미 지시되었던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이에 대하여 재삼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 지시받은 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용은 '금송아지 사건'(32:1-24) 때문에 백성들에게 전달하지 못했다가 두번째 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약(34장)을 맺은 후 이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자세한 내용은 25:3-7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소유 중에서....드릴 것 - 만물과 온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다(시 24:1). 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도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것이다(행 17:25). 하나님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시어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셨다(창 1:28;2:15). 그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므로 우리들은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에는 언제든지 우리들의 것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께 드려야 할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는 일에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눅 3:1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음에 원하는 자는....드릴지니 - 헌금의 참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증거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는 구절이다. 비록 하나님의 일을 위하는 데 쓰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강제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거두어 들인 헌금이거나 억지로 내는 것이라면 이는 내지 않은 것만 못하다. 왜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면 하나님께 있어서 정작 요구되는 것은 바치는 자의 자발적인 마음과 헌신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정신이지 헌물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우주 만물의 창조자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 기껏 물질이 탐나서 그것을 가져오라 했겠는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금과 은과 놋 - 성막 본체와 성소의 여러 기구들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질 기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재료이다. 이것들의 세세한 용도에 대하여서는 25:3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 - 이 중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꼰 베실로는 성소의 제 1앙장(26:1)과 지성소 휘장(26:31) 및 성소 휘장(26:36),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고 대제사장의 의복 중 에봇(28:6)과 흉패(28:15)를 만들었다. 반면 베실만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는 반포속옷(28:39)과 관(28:39), 고의(28:42)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염소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는 성소의 제2앙장(26:7)을 만들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 - 성막 본체의 덮개와 웃덮개 곧 제3앙장과 제4앙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만드는 재료이다 (26:14). 그런데 여기서 '해달'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하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정확히 어떤 짐승 가리키는지에 대하여선 의견이 분분하다. 자세한 사항은 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당 구절인 25:5 주석 부분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조각목 -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이다. 나뭇결이 아름다우며 재질이 단단하여 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제작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성소 기구 중에서는 법괘(25:10)와 진설병 상(25:23),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막의 널판(26:15)과 번제단(27:1) 등이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25:5).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등유 - 성소 내의 촛대에 저녁마다 등불을 켜기 위한 기름으로 감람 열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olive)에서 추출하였다(27:20,2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관유에 드는 향품 - 몰약과 육계. 창포 그리고 계피 및 감람유이다(30:23,24).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것들로써 향 제조법대로 만든 관유는 제사장을 성별하거나 성소 기구들을 거룩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히 구별하는 데 사용되었다(30:26-30).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 - 그것은 4가지 향품인데, 즉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향과 유향이다. 자세한 내용은 30:34-38의 해당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호마노 - 빨강, 검정, 흰색 등 여러 빛깔이 겹겹으로 줄이 진 보석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 - 에봇을 장식하는 데에는 2개의 호마노가 사용되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며 흉패를 장식하는 데에는 호마노를 포함한 12개의 보석이 사용되었다(28:9,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7-20).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 - 여기서 '마음이 지혜로운'에 해당하는 원어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캄레브'인데. 이들은 각각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따라 성막의 여러 부품들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직접 만든 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 은사가 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각기 다르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고전 12:4-11). 그러면 이처럼 하나님께서 저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다른 재능을 주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각기 다른 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소와 삶의 터전에서 고유한 재능을 발휘하도록 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대한 역사를 온전히 이루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없는 재능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인해 실망하거나 불평하기에 앞서, 남에게는 없으나 내게는 있는 재능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것을 잘 선용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1 곧 성막과 그 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받침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성막 본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주요 구성품들이다. 이 중 '막'이란 제 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앙장을 가리키며&lt;26:1-13&gt;, '덮개'란 제 3,4앙장을 가리킨다&lt;26:14&gt;. 그리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갈고리'는 여러폭의 천을 연결하여 하나의 큰 앙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고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며&lt;26:6&gt;, '널판'은 성막 본체의 남, 북, 서쪽 벽을 형성하는 조각목 판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26:15-29&gt;. 마지막으로 띠와 기둥과 받침은 이러한 널판을 고정시키는 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필요한 부품들이다&lt;26:19-29&gt;.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 증거궤와 그 채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장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지성소에 배치할 성구(聖具) 및 지성소를 가릴 휘장이다. 이 중 '증거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일명 '언약궤'(신 31:9) 또는 '법궤'(레 16:2)라고도 하는데 그속에 십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 두 돌판(25:21)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넣어 보관하였다(민 17:10).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는 그 채, 즉 증거궤를 운반하는데 사용할 장대와 더불어 조각목으로 만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후 겉에 금으로 도금하였다&lt;25:10-16&gt;. 그리고 '속죄소'는 일종의 '증거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뚜껑에 해당하는데 정금으로 만들었다&lt;25:17-22&gt;. 마지막으로 '가리는 장'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후 그 위에 그룹을 수 놓아 만들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록 되어 있다&lt;26:31-33&gt;.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 상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상과...그 모든 기구 - 조각목으로 만든 진설병 상 및 정금으로 만든 대접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숟가락, 병과 붓는 잔 등을 가리킨다&lt;25:23-29&g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진설병 -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12지파의 헌신과 감사를 나타내는 떡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제사장이 매 안식일마다 6개씩 두줄로 떡상위에 진열하도록 되어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레 24:5-9&gt;.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 불 켜는 등대와 그 기구와 그 등잔과 등유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5 분향단과 그 채와 관유와 분향할 향품과 성막문의 장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진설병상과 마찬가지로 성소에 배치할 기구들이다. 이 중 등대와 관계된 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 기구들에 대하여서는 25:31-39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면에 분향단에 관계된 일체의 것들에 대하여서는 30:1-10, 23-25, 34-38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두루 참조하라. 한편 '성막문의 장'은 그 재료에 있어서는 지성소 휘장의 것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일하나 그룹을 수 놓지 않는 점이 다르다&lt;26:36&gt;.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6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7 뜰의 포장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뜰문의 장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성막 뜰에 배치할 기구 및 뜰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포장과 부속품들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중 제물을 태우는 제단인 번제단과 그 부속기구에 대하여서는 27:1-8 주석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거나 성소에 들어가기 전 손발을 씻는 물을 담아 두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두멍과 그 부속품에 대하여서는 30:18-21 주석을 각각 참조하라. 그리고 뜰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포장과 그 부속들에 대하여서는 27:9-19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 장막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과 그 줄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장막 말뚝 - 분명치는 않으나 성막의 덮개에 줄을 맨 후 땅에 고정시키기 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말뚝이었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포장 말뚝 - 성막 뜰을 구성하는 포장에 줄을 매어 땅에 고정시키기 위한 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뚝이다&lt;27:19&g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줄 - 본절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장막과 포장을 각각 말뚝에 연결시키기 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줄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공교히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 아들들의 옷이니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공교히 만든 옷 - 그 의미가 불분명한데 KJV는 '제사때 입는 옷'(th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lothes of service)으로, RSV는 '매우 공들여 짠 옷'(the finely worked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garments)으로, NIV는 '짜서 만든 옷'(the woven garments)으로 각기 번역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고 있다&lt;31:10&gt;. 한편 제사장의 의복에 관해서는 28장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1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교우들의 자원하는 심정 없이 무리하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을 추진해 나가는 오늘의 교회는 이 점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자원하는 자 - '자원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나다브'는 '자발적으로 바치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낌없이 드리다', '기꺼이...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는 마음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터의 동의와 이에 따른 자발적인 헌납 및 봉사를 행한 자들을 가리킴을 알 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다. 한편 이처럼 마음이 감동되며, 따라서 헌물을 자원하여 드리고 픈 심정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고후 8:14).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2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가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남녀가....여러 가지 금품을 - 고대 근동인들은 남녀가 모두 금으로 단장하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향이 있었으니(3:22;32:2) 남자들도 그 같은 금품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뭏든 그들이 자신을 단장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성소를 단장하는 일에 더 적극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었던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일로서 하나님이 즐겨 받으시는 헌신이 아닐 수 없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요 12:1-8).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3 무릇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 왔으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6, 7절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4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무릇 섬기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자는 가져 왔으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은 - 백성들이 자원하여 바친 이 은(銀)은 생명의 속전으로 거두어진 은(30: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16)과 더불어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36:24;38:19:왕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13).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실을 가져 왔으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음이 슬기로운 - 이 말은 '마음이 지혜로운'(10절)과 원어상으로 동일하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는 '손재주가 있는'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데, 곧 바느질에 관계된 재주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리킨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당시 여인들이 족보와 계수(計數)에서는 비록 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외되었으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은사와 은총만은 남자와 동등하게 받았음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 수 있는데 이 점은 신약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눅 8:2, 3;롬 12:6-8;16: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실을 낳고(타와우) - '실을 뽑고'로 번역해야 의미가 잘 전달된다. 기본형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타와'는 '방적하다', '실을 뽑다'란 뜻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슬기로운....여인은 염소털로 실을 낳았으며 - 염소털로 실을 뽑는 작업에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솜씨가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으로부터 자원하는 여인들이 참여했는데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미루어 보아 이 작업은 일반 실을 뽑는 작업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Pulpit Commentary).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7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 왔으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족장(나시) - '높다', '존경하다', '명예롭다'는 뜻의 '나사'에서 유래한 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공동 변역에는 '각 지파의 대표'로 번역되어 있고, 각 영어 성경에는 '지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leader)로 번역되어 있다(Living Bible, RSV). 그런데 이들은 일반 백성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보다 더 귀한 것들을 바쳤는데 이는 그들의 지위에 비추어 보아 당연한 일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왜냐하면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자는 일반 백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책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임과 역할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은 기정 사실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8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 왔으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등불에 쓰일 감람 기름은 27:20을 참조하고, 관유에 쓰일 향품은 30:23,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4절을, 그리고 분향단에 쓰일 향은 30:34을 각각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9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러하였더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모세의 손을 빙자하여(베야드 모쉐) - 여기서 '손'을 뜻하는 '야드'에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령'이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이를 의역하면 '모세의 명령으로', '모세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령을 통해', 혹은 '모세를 통한 명령으로'가 된다. 영어성경 중 Modern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anguage가 이 입장을 취했고 (through Moses had ordered), 일반적으로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모세에 의해', '모세를 통해'로 번역하고 있다. 어쨌든 모세는 하나님과 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라엘 백성 사이의 증재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했고, 백성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그를 통해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음을 알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브사렐 - 유다의 6대 손이자, 르비딤 전투시 아론과 더불어 모세의 손을 붙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었던자인 훌(17:10-12)의 손자이다. 그는 특별한 '손재주가 있어서 성막과 기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작의 실무 책임자로 임명받았다(31:2).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지명하여 부르시고(카라...베쉠) - 직역하면 '이름에 의해(by)부르시고'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인격적, 주종적인 관계를 맺는 특별한 매개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곧 명명자(命名者)가 피명명자에 대해 소유 내지는 지배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권리를 갖고 있음을 나타낸다&lt;20:7&gt;. 따라서 여기서는 하나님이 브사렐에 대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특별한 관계를 맺으셨음을 알 수 있다. NEB는 이를 '하나님꺼서 브사렐을 선택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셨다(chosen)'로 번역 하기도 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한편 모세는 백성 앞에서 공개적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브사렐을 임명 함으로써, 그의 지위롤 보장해 주고 필요한 권위를 인정받을 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도록 해주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1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시되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의 신을....총명과 지식으로 - 원문에는 '하나님의 신을...지혜와 총명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식에 충만케 하여'로 되어 있다. 즉 브사렐의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 하나님의 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충만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아무리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이 있더라도 하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님의 일을 위해서는 그 지혜와 지식에 하나님의 감동, 감화력이 덧입혀져야 함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사해 준다(요 16:13,14). 보다 자세한 내용은 31:3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2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공교한 일을 연구하여(라흐쇼브 마하솨보트) - 직역하면 '작업에 여러 계획들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안해 내어'이다. 영어성경 중에는 '예술적인 도안을 고안하여'(to devise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rtistic designs, RSV)로 번역한 것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평행 구절인 31:4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3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깍아 물리며...새기는 - 두 말 다 '하로쉐트'로서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업을 가리킨다. 아마도 이는 에봇이나 흉패에 물릴 보석을 다루거나(39:6-14)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각목으로 만드는 기구 따위를 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31:5).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4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오홀리압 - 조각과 직조, 수놓는 일에 특별한 재주를 지닌 자로서 성막 건축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및 기구 제작 작업에 있어 브사렐을 보조하는 부 책임자로 임명받았다&lt;31:6&g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가르치게 하시며 -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문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볼 때 브사렐과 오흘리압을 도울 지혜로운 자원 봉사자들이 그 대상일 것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은 제작 실무와 함께 작업 교육도 담당했음을 알 수 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5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과 공교로운 일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 외에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하셨나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지혜로운 마음 - 이 말 역시 본장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대로 '숙런된 기술'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뜻한다(10,25,26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 32절 주석 참조. &lt;/SPAN&gt;&lt;BR&gt;&lt;BR&gt;&lt;EMBED style=&quot;LEFT: 15px; WIDTH: 300px; TOP: 15px; HEIGHT: 45px&quot; src=http://www.yonsei.or.kr/media/music/gloria508.mp3 width=300 height=45 type=audio/mpeg embed&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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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요한일서 제2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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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9T22:00:26Z</updated>
	    <published>2009-11-29T22:00: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05738&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525d76&quot; face=Tahoma&gt;&lt;FONT color=#ffe40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요한일서 (2 : 1~29)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lt;/SPAN&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시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의 자녀들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크니아 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이것을 수신자들을 향한 요한의 자비롭&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따뜻한 사랑을 암시한다((Stott, Smalley). 한편 '이것을'이 가리키는 것에 대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석은 세 가지이다. (1) 1:6-10을 가리킨다. (2) 1장 전체를 가리킨다. (3) 본서 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체를 가리킨다. 가능한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앞서 1장&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언급된 바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앞서 1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보고 듣고 만지며 계속적으로 사귐이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치 말아야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왜냐하면 죄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과의 사귐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당&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 영지주의자 들처럼 사귐이나 사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게 하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문이다((Barker). 요한은 본문에서 본서 전체의 기록 목적이 사귐으 지속하는 그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도인들로 하여금 그 사귐을 지속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 사귐을 유지하며 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을 제시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 '죄를 범하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헬라어 '하마르테'는 상반절의 '하마르테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를 범치')와 마찬가지로 부정과거 시상이다. 이는 범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된 행위들'을 나타낸다. 한편 '대언자'로 번역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문자적으로 '돕기 위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곁에 부름을 받은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위로자 또는 옹호자'를 가리킨다. 이것은 요&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복음에서 성령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나(요 14:16, 26;15:26;16:7) 본절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에서 인간의 죄를 위해 중보하심을 시사한다. 이와 요한복음에 나타난 '파라클레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로서의 '성령'과 본절에 나타난 '파라클레토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사이에는 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란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행 16:7;롬 8:9;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9), 요 14:16에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되어 있어 예수께서 '파라클레토스'이심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Smalley). '파라클레토스'이신 성령께서는 지상에서 그리스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중보하시는 분이시며 '파라클레토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하나님 존전에서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스도인의 죄를 중보하신다(Stott).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예순 크리스톤 디카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온'은 문자적&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의로운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디카이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 존전에서 주보 사역을 행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셔서 흠이 없고 깨끗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상에서의 행&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를 통해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셨다. 예수의 이러한 의로움은 그 안에 거하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게 되며 그것을 근거로 하나가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롭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한 모습을 깨끗하게 하신다(롬 3:26, Smalley).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이 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적으로 사용한 표현이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부정하던 예수의 인간되심을 강하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강조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된 인간이심을 나타내어 죄인들을 중보하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드러낸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하심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하마르티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복수형이다. 이는 범죄의 행위들을 가리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한편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의로우신'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 사역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행하실 수 있는 자격으로서 '화목 제물'임을 제시한다. '화목 제물'로 번역된 헬라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힐라스모스'는 제의적인 용어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1) 혹자는 '속죄'(expiation)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Westcott, Dodd). 이 견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한 제사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속죄의 근원이 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2) 혹자는 '달램'(propitiation)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ill). 이 해석의 경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한 희생 제사의 대상이 되셔서 희생 제사를 받으신다. 이 두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 해석은 서로 배타적이라기 보다는 상호 보완적이다(Barker, Smalley, Stott, Law).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희생 제사를 제정하심으로 속죄의 길을 여셨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뿐만 아니라 그 희생 제사를 제정하심으로 속죄의 길을 여셨을 뿐만 아니라 그 희생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사를 받으셨다(레 16:34). 또한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의 희생을 통해서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고 믿음으로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을 의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고 선언하신다(롬 3:21-26). 즉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셔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죄의 수단을 삼으셨을 뿐만아니라 그 희생을 통하여 원수되었던 인간과 자신 사이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화목하게 하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의 속죄 사역은 그리스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를 위한 것이다. 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서 '온'으로 번역된 헬라어 '홀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인류 전체에서 미친 것임을 시사한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구주가 되신다(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16;4:42).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계명을 연결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켜서 설명하고 있다. '계명'(타스엔톨라스)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약성경에서 십계명 안에 내포되어 있으며(출 20:2-17)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과 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에 대한 사랑으로 압축 되었다(마 22:37-40;롬 13:8-10;갈 5:14). 이러한 계명에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순종은 비록 하나님을 아는 조건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특징이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앎을 분별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Bultmann, Smalley).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덕적인 행위를 동반하게 된다(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 '우리가...알 것이요'에 해당하는 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어 '기노스코멘'('지식')는 본서나 요한복은에서 전혀 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용되지 않는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적인 가르침, 즉 신비한 지식&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구원을 얻은 자들은 죄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도덕폐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론을 염두에 둔 듯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절대로 지식에 의한것이 아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성취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한은 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동사를 사용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 지식적이고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이며 역동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즉,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을 아는 것은 일련의 사고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한 영적인 관계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Smalley). 그래서 요한은 '아는 줄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를 완료 시상인 '에그노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멘'으로 표현하여 과거에 알았던 경험이 지속적으로 발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야 함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계멸과 연결시켜 하나님의 도덕&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법을 지키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저'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Stott) 보다 세밀하게 '그리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에 있지 아니하되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에 있지 아니하되. - 본절은 앞절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다. '저를 아노라'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영생을 소유하였음을 나타내는 주장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요 17:3).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를 형성한 자라면 그는 하나님의 도덕적인 요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 계명에 순종하는 모습이 드러나야만 한다. '지키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3절의 '테로멘'('지키면')과 같이 현재 시상&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이는 항상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저를 아노라'고 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장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이 없는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도덕폐기론을 주장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죄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는 거짓말장이일 뿐만 아니라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음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1:6). 여기서 '진리'는 요한이 '구원의 복음'이나 '참된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나타낼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본문의 '진리'는 사변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라 실천적고 구체적인 행위이다. 즉 '하나님을 아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삶 속&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나타난 도덕을 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요한은 이 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술을 통해서 영지주의자들의 도덕폐기론을 강력하게 반박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개역성경에는 '드'('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과 연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된 상반된 측면의 진술임을 시사한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 '그의 말씀'&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우투 톤 로곤)에서 '그의'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가리킨다. 더욱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한은 본절에서 앞절의 '계명' 대신에 '말씀'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말씀하신 도덕적인 계명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계시하신 모든 복음의 내용에 대한 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종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Barker). 한편 '지키는'의 헬라어 '테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현재 시상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지속적인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줄을 아노라. -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아가페 투 데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나타난 속격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혹자는 주격으로 해석하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Westcott, Houlden, Bultmann). (2) 혹자는 목적격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ooke, Marshall). (3) 혹자는 특성을 나타내는 속격&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일종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chnackenburg). 본절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은 세 가지견해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편 '온전케 되었나니'의 헬라어 '테텔레이오타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완전과 성숙의 개념을 내포한다(Barker). 더욱이 '테텔레이오타이'는 완료 시상&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이는 완전과 성숙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지속되어 성숙의 과정 속에 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 으로 순종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숙되어가며 완전하여져 간다. 하나님의 말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지속적으로 순종함으로 그 사랑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숙되고 온전해질 때 그리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안에 내주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 안에 거하는 자는. - '저'에 대해 혹자는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tott) 문맥상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malley, Barker). 그러기에 '저 안에 거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안에 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함을 시사한다. 이 내주는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비한 지식을 획득함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즉 믿음과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취된다(5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의 행하신는 대로 자기도 행할 지니라. - 본문은 하나님 안에 내주하는 자들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삶속에 윤리적인 행위가 동반되어야 함을 나탸낸다. 여기서 지시 대명사 '그'에 해당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헬라어 '에케이노스'는 상반절의 '저'와는 달리 분명히 예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를 지칭한다(Stott, Smalley, Barker). 왜냐하면 본서에서 '에케이노스'는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스도를 지칭하기 때문이다(3:3, 5, 7, 16;4:17). 한편 '행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 '페리파텐센'은 부정과거 시상으로 예수께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상에서 사신 삶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 안에 내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삶에 대한 모델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함으로 하나님 안에 내주함을 주장하는 그리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생활하신 것과 같이 생활해야 함을 강조한다. 즉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 안에 내주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윤리적인 계명은 물론 복음에 대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순종함이 그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드러나야 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바 말씀이거니와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사랑하는 자들아. - 이것은 요한이 수신자들을 부를 때 즐겨 사용하는 호칭으로 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은 단락이 시작될 때 자주 나타나다. 요한은 이 호칭을 사용하여 두 가지를 암시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있다. (1) 하나님 안에 내주하여 빛 가운데 거하는 자의 삶에는 사랑이 드러나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함을 암시한다. (2)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고 빛 가운데 거하는 자의 증거로 사랑을 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함으로써 도덕폐기론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적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공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격하고자 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 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은 상호 보완적인 본문의 두 개의 절을 이용해서 이제부터 언급할 '사랑의 계명'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신자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라 잘 알려진 계명임을 밝히고 있다. 즉 '새 계명...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라'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은 동일한 내용을 가리킨다. 여기서 '처음부터 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14;13:8-10) 동시에 사랑의 계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사하는 자들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임을 암시한다(엡 5:2;약 2:8;벧전 2:17).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 본문에서 '계명'으로 번역된 헬라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헤 안토레'는 단수이다. '엔통레'가 단수임에도 불구하고 본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옛 계명이 의미하는 '사랑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명'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완성한 계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십계명&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하나의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하고 계신다(마 22:37-39). 한편 '들은 바'에 해당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헬라어 '에쿠사테'는 부정 과거 시상이다. 이는 사랑의 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이 이미 선포되었으며 수신자들이 사랑의 계명에 대해 과거에 들었음을 시사한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것은 사랑의 계명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요 13:34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임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암시한다. 요한의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부터 예수의 가르침을 들었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며 따라서 사랑의 계명은 수신자들에게 결코 생소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거부터 알고 있었던 익숙한 계명이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것이라 이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다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린'을 본문과 같이 '다시'라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번역할 수도 있으나(again, KJV)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럽다(yet, NIV, RSV).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로 참된 것이라. - 본문의 '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명'은 앞절에서 사랑의 계명을 옛 계명으로 지칭한 것과 모순되는 듯 보인다. 여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의 '계명'은 예전부터 수신자들이 전해들었다는 의미에서의 옛 계명을 가리킨다.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새 계명'이다. 그 이유는 네 가지이다(Stott, 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arker). (1)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결정적으로 보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셨다(4:9;요 3:16). (2) 예수께서는 순종으로 모든 계명의 완성인 사랑을 행하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 12:27;롬 10:4). (3) 예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삶, 즉 영생을 부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셔서 자신이 행했던 바와 같이 사랑의 계명을 행할 수 있도록 하신다(4:8-11;5:11,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 (4)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시고 모든 믿는 자들로 행하도록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역사하시는 사랑의 계명을 자각하고 성취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의 계명은 한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옛계명이지만 새 계명이 된다. 이러한 새 계명은 그리스도와 모든 믿는 자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취되어 분명한 실체로 나타났다(Barker, Stott).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 본문은 새 계명이 그리스도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믿는 자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이유이다. 본문에서 '어두움'과 '참빛'의 대조는 요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참빛, 즉 실재하는 빛으로 하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과 단절되어 어두워진 이 세상에 오셨다(1-5-7;요 8:12). 한편 '비췸이니라'에 해당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헬라어 '파이네이'는 현재 시사이다. 이것은 빛 되신 하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으로부터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세상에 빛을 비추셨으며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의 빛을 비추심을 의미한다. 이 빛은 완전한 빛이 비추는 다가올 세대, 즉 미래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연결되어 있다(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우네 있는 자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하는 자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호 레곤'은 문자적으로 '말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자'를 의미한다. '호 레곤'은 '하나님을 아는 자'(6절;요 15:4), 그리고 본절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빛 가운데 있는 자'(요 12:46)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어 세 가지 주장이 하나의 주장,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즉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즉 '빛 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빛 되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낸다. 이러한 관계는 윤리적인 계명에 대해서만 아니라 복음 전체에 대한 순종을 요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다. 그러기에 빛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사랑치 않는다는 것은 모순된 주장&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며 진절한 의미에서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빛 되신 하나님과 올바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한편 본절의 '형제'는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지칭하기 보다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수신자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요한은 본서를 쓰면서 기본적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수신자공동체의 문제와 관계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Smalley). 그렇다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서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은 '형제'를 일차적으로 수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 공동체를 지칭하는데 사용하고 있으나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도 사용하여 모든 사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배제시키지 않고 있다(8절, Barker, 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속에 거리낌이없으나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나 형제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두운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과는 반대로 진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형제를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자들이 모두 빛 가운데 거한다는 뜻은 아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본절은 앞절과 대조를 이루어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에게 '사랑하라'는 윤리적 계명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순정하는 삶의 모습이 드러나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 '자기 속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아우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대명사 '아우토'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빛 가운데 거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형제를 사랑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그 사람속에'를 의미한다(Barker,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Haas). (2) 빛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빛 안에'를 의미한다(Schnackenburg,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malley).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전자의 경우로 해석하면 빛 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거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자들은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걸림돌이 될만한 것이 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혀 없음을 의미하며, 후자의 경우로 해석하면 빛 안에는 사람들로 걸림돌이 되거나 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지게 하는 것이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한편 '거리낌'의 헬라어 '스칸달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신약성경에서 배교나 범죄토록 하는 유혹을 가리킨다(고전 1:23). 이러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칸달론'의 대상에 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빛 가운데 거하며 형&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를 사랑하는 자 자신이며(Brooke, Westcott, Barker)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이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tott). 본문은 두 종류의 대상을 모두 내포하는 듯하다. 빛 가운데 거하며 셩젤마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랑하는 자는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뿐더러 타인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 본절은 9절에 언급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술의 부연 설명이다. 빛 가운데 거한다고 주장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눈이 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서 스스로의 실체를 본명히 인식하지 못하는 자다. 즉 그들은 스스로가 빛과 어두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이에서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구분하는 분별력을 상실하여 어두움에 속해 있으면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스스로는 빛 가운데 거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는 빛 되신 하나님과 관계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맺고 있다고 착각함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상실하였으며, 실상 하나님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멀리 떠나 어두움 가운데 헤메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얻음이요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자녀들아...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 본문은 1, 2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1:9을 반영한다. '죄사함'은 구약성경에서 새 언약에 속한 자들에게 주어진 축복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렘 31:34;겔 36:22-25). 신약성경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행하신 예수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름과 연관되어 나타난다(마 1;21;행 4;12;10:43;딛 2:14). 여기서 '이름'은 그 이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소유자의 인격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나타낸다(Smalley).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문은 죄사함이 그리스도께서 하목 제물이 되심으로(1, 2절) 그의 이름을 통해서 성취&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었음을 시사한다(Stott). 한편 '사함을 얻음이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온타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완료 시상이다. 이것은 수신자들이 처음 개종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죄사함을 경험하였음을 시사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비들아...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 '태초부터 계신 이'에 대한 견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tott, Bruce, Dodd).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에 의하면 본문은 시대에 상관 없이 전혀 변함이 없으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다. (2) 혹자는 하나님과 성육신 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둘 다를 의미한다고 주장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다(Smalley). (3) 혹자는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Barker, Westcott,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rooke). 이들에 의하면 본문은 선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세 가지 견해중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다음절의 '아이들을' 향한 말씀에서 아버지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Barker).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이', 즉 선재하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를 언급함으로 당시에 팽배해 있던 이단 교리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 당시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단자들은 하나님의 선재하신 말씀, 즉 로고스가 나사렛 예수 안에 성육신하셨다는 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을 부인하였다. 요한은 이러한 거짓 교리가 흔하던 수신자 공동체에서 '태초부터 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 이'로서의 그리스도를 언급함으로 이단 교리의 거짓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편 '앎이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노카테'는 현재 완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상이다. 이는 수신자들이 개종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이단자들의 가르침과 정반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선재하신 말씀이셨음을 알았고 그 앎이 현재까지 지속되어 신앙이 성숙되어 있음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암시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청년들아...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 '악한 자'의 헬라어 '톤 포네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남성 명사이다. 이는 사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악을 인격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 사단은 빛과는 상관이 없으며 어둠의 세계를 조종&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고 통제한다(14절;3:12;5:18, 19;요 17;15;엡 6:16;살후 3:3). 앞서 언급된 바와 같&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빛 가운데 거한다고 주장하면서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들은 스스로 빛 가운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며 사실상은 어두운 가운데 행하여 사단의 조종 아래 있음을 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미한다. 한편 '이기었음이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네니케카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현재 완료 시상으로 과거에 성취한 승리가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은 개종하였을 때 그리스도의 승리를 통해서 승리하였으며(눅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18;골 2:15;계20:2), 그 승리를 근거로 현재도 지속적으로 사단과의 영적 투쟁에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승리를 쟁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속적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교제를 나눌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악을 향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삶을 산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tott, 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기었음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이들아...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 12절에서는 '테크니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녀들아')로 부르고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파이디아'('아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아')로 부르고 있다. '테크니아'와 '파이디아'는 의미상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밀하게 구별하면 '테크니아'는 부모와 유아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아이가 약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을 더 강조하는 반면에 '파이디아'는 아이의 미숙에 초점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맞추어 교육과 지도가 필요함을 나타낸다(Westcott, Stott). 한편 '아버지를 알았음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에는 13절의 아비들을 향한 말씀인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에서와 마찬가지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현재 완료 시상이 사용되어 아이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인하여 죄사함을 받았을 뿐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라(12절) 개종할 때부터 지도자 아래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해 배워 알고 있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나타낸다(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청년들아...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이기었음이라. - 본문은 13절과 병행된다. '강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스퀴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는 육체의 강함보다는 영적인 강건함을 의미한다(엡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10;계 18:8). 청년들아 영적으로 강건해서 악한 자, 곧 마귀의 대적을 물리칠 수 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실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서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영적으로 강건케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악한 자에 대한 승리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 본절에서 17절까지는 '세상'이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단어가 6번 등장한다. 여기서 나타난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를 가리키는 것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에 의해 통제를 받는 체제를 가리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3-5;5:19;요 16:11, Barker, Stott). 이러한 세상은 본질상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한다(요 15:18, 19;17:25). 한편 본문의 '사랑'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해 혹자는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기호'나 '매력'을 의미한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주장한다(Marshall, Bultmann). 그러나 사실상 사랑과 매력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기호나 매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이기에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그것의 방향과 동기가 문제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욕구나 매력, 사랑은 빛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운데 거하는 자로서 타인에 대해 올바르고 창조적인 방향과 동기를 지닌다. 그러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세상에 대한 사랑은 옳지 못하고 이기적인 방향과 동기를 지니게 된다(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 본문은 요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수신자 공동체에서 세사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세상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당하는 헬라어 '헤 아가페 투 파트로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속격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목적격으로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arshall). 이 견해에 따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면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공존할 수 없도록 만든다. (2) 혹자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격으로 보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주장한다(Houlden). 이 견해에 따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면 세상을 사랑할 경우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람 안에 거할 수 없다. 두 가지 견해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 본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앞절에서 언급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의 예이다. 이 세 가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중에서 첫번째는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를 나타내는 듯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malley). (1) 육신의 정욕. '육신'의 헬라어 '사르코스'는 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반적으로 신체적인 의미에서 인간을 의미하나 본문에서는 '영적인'것과 대조를 이루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악한 욕망의 근원을 의미한다. '육신의 정욕'은 타락한 사람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적하고 자기 만족만을 추구하는 자세를 의미한다(Barker, Stott). (2) 안목의 정욕.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것은 외적인 것을 봄으로 유혹을 일으키는 성적인 욕망은 물론 모든 사물을 탐닉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욕망을 의미한다(Marshall, Bultmann). (3) 이생의 자랑(&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헤 알라조네이아 투 비우). 여기에 나타난 속격에 대한 견해에 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주격으로 이해할 경우 본문은 세상적인 물질이나 명&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에 대해 과대 평가하여 자랑하는 허세를 의미한다. 2 목적격으로 이해할 경우 본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세상적인 것에 대한 자랑을 의미한다. '이생의 자랑'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고 있다. 즉 그것은 소유하고 있는 물질 뿐만 아니라 태도나 행위를 자랑하거나 혹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과대 평가하여 허세를 부리는 것을 의미한다(Marshall, Law).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이 세사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로 좇아온'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크'는 기원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다. 요한은 '에크'를 사용하여 상반절에서 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급된 세 가지 예,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 곧 사단이 지배하는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밝히고 있다. 그러기에 세상과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들은 절대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 -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또다른 이유이다. 세상은 한시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세상과 세상을 사랑한 모든 사람은 공동의 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으로 파멸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랑하기를 거부하고 죄를 미워하며 오직 사랑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거하게 될것이다. 왜냐하면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때문이다(3;14;5:11, 12;고후 4:18).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소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고 예루살렘을 회복하며, 열국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온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입증될 날을 기대하였다(사 2:2, 3;겔 38:14-23).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인들은 자신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박해로부터 구원해 줄 메시야를 대망하였다. 이러한 메시야 대망은 초대 그리스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들에게 파루시아 때의 예수에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마지막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에스카테 호라)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는 엄은 의미의 말세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나 혹은 관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말세에 나타나는 포괄적인 징후나 성격등을 가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Brooke, Dodd). (2) 혹자는 좁은 의미로 이해하여 마지막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날들 중의 마지막 때, 곧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tott). 요한복음에서 '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간'이 구속을 성취시키는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요 2:4;4:21;7:30;8:20;12:23)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 가지 견해를 모두 내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났으니. - '적그리스도'로 번역된 헬라어 '안티크리스토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관사가 없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본문의 '적그리스도'는 어떤 특정한 인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가리키기 보다는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대적하거나 반대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본문에 나타난 '안티크리스토 폴로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많은 적그리스도')가 복수인 사실로도 입증된다. 그래서 혹자는 본문의 '안티크리&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토스'에서 접두어 '안티'를 '적'이 아니라 '거짓'의 의미로 이해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에 대해 거짓말 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aw, Stott, Dodd). 요한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러한 '적그리스도'가 당시에 많이 나와 있음을 언급한 것은 당시 그리스도에 대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던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때문인 듯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육체로 오신 완전한 인간이심을 부정함으로 그리스도를 부정하였다(요이 1:7,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가 우리에게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 본문은 앞절에 언급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적그리스도'가 다른 종교를 가진 자가 아니라 수신자 공동체 일원으로 있다가 거짓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교리에 빠진 자임을 나타낸다. 여기서 '나갔으나'는 수신자 공동체에서 강제로 출교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킨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신자 공동체에서 이탈한 것을 의미한다. 그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스스로 나간 것을 보고 요한이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진술하는 것은 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주의자들이 형식적으로는 수신자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이었지만 사실상은 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혀 공동체에 일원이라 할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 그들이 공동체에서 이탈한 것은 스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그 공동체의 일원이 아님을 증명하는 행위였다(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리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 개역성경 본문에는 '가르'('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 '가르'는 본문이 공동체에서 이탈한 자들이 공동체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하지 않았다는 앞의 진술에 대한 근거임을 시사한다.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참하나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시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수신자 공동체의 교리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스로 공동체를 떠났다. 그들의 이탈은 자신들이 거짓 교리를 전파하는 적그리스도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호티 우크 에이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판테스 여스 헤몬'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서이 가능하다. (1) '에이신'의 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를 '적그리스도'로 볼 때 본문은 '적그리스도 모두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한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that they all are not of us, RSV)의 뜻이다. 이 경우에 '모두'를 의미하는 '판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는 강조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2) '에이신'의 주어를 '수신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공동체'로 볼 때 본문은 '공동체 회원들 모두가 우리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that not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ll in our company truly belong to it, NEB)라는 의미가 된다. 이 경우에 본문은 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자 공동체 내에 사이비 일원들이 있음을 나타내다. 두 가지 해석 중 전자가 더 자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럽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이제까지의 문맥과는 달리 주어가 바뀌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 성경에서 '거룩하신 자'라는 칭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된다. (1) '하나님'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시 78;41;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4;합 3:3). (2)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데도 사용되었다(요 14:18;15:26;16:7;행&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7;3:14). '하나님'과 '그리스도'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름 부음을 받고'는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신비한 지식을 깨닫고 기름 부음을 받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유식(聖油式)을 행한 것을 반영한다(Dodd, Schnackenburg). 요한은 당시 영지주의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의 주장과 의식을 염두에 두고 요한복음에서 성령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기름 부음&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눅 4:18;요 14:17;15:26;16:13;행 4:27;10:38;고후 1:21,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 Barker, Stott, Smalley). 수신자 공동체 일원들은 영지주의자들처럼 단순히 성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식을 행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게 성&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셔서 자신 안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하게 하셨다. 그러기에 영지중의자들이 신비한 지식을 깨달아 구원을 얻고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안에 내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임이 분명하며 진정한 수신자 공동체 일원들은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든 것을 아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다테 판테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너희 모두가 안다'(you all know, RSV)나 '너희 모두가 진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안다'(all of you know the truth, NIV)를 의미한다. 두 가지 중 후자에서 '진리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삽입된 것은 다음절과의 연관성을 나타낸 해석이다. 요한은 본문은 통해서 신비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식을 깨달은 극소수만이 하나님과 모든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거짓&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된 주장을 수신자 공동체가 분명히 알고 있다고 진술함으로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를 공격하고 있다(Smalley). 또한 극소수만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영지주의자들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장과는 달리 요한은 '너희 모두'라고 진술하여 수신자 공동체 중 일부만 아는 것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라 전체가 알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영지주의자들의 거짓을 드러내고 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 본절은 세 개의 '인함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티'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 사용된 '호티' 중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처음 두 번에 대해 혹자는 선언이나 진술을 나타내는 서술격(that,'...것')이라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장한다(Blutmann, Haas, Schnackenburg). 그러나 세 번 중 처음 두 번의 '호티'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원인격(because, '때문에')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Smalley). 왜냐하면 요한은 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절에서 앞절에 언급한 내용을 더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수신자 공동체 일원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모두 거룩한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아 진리를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본서를 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세번째 '호티'에 대한 해석의 견해는 세 가지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혹자는 원인격으로 보아 본문이 '거짓이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게 썼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ooke). (2) 혹자는 서술격으로 이해하되 '쓴 것'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연결시킨다(Schnackenburg).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나는 거짓이 진리에서 나지 않&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다는 사실을 너희에게 썼다'를 의미한다. (3) 혹자는 서술격으로 이해하되 '너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앎을'과 연결시킨다(Dodd, Smalley).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거짓이 진리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날 수 없다는 것을 너희가 안다'를 의미한다.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타당한 듯하다. 요한은 앞에 나타난 두 번의 '호티'를 원인격으로 기술함으로 수신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공동체가 기름 부음을 받아 온전히 진리를 식별할 수 있음을 밝히고, 마지막'호티'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술격으로 사용함으로 '거짓이 진리에게서 나올 수 없다'는 진리를 선언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아니뇨 아버지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 앞절에서 진리가 '거짓'에서 나올 수 없음을 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언한 요한은 본절에서 '거짓'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짓말하는 자'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수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메시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을 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땅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인하는 자들이다(4:2, 3;요이 1:7). 이들은 예수께서 참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도이시며,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아들임을 부인하는 것이며, 아들을 부인하는 것은 곧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요 12:44, 45).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버지도 있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있느니라. - 본절은 앞절의 결과에 대해 부연 설명한 것이다. '없으되'에 해당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헬라어 '우데...에케이'와 '있느니라'의 헬라어 '에케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에케이'는 문자적으로 '가지다'란 뜻이다. 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나타내는 영적인 경험을 시사한다. 또한 본장에서 '에케이'는 '거하다'의 헬라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메노'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여(24, 27, 28절) 확신의 동기를 제공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하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 아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를 소유하지도 못하고, 그와 교제를 나누지 못할 뿐 아니라 상호간의 내주도 경험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셨으며(요 1:18;14:9)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들 예수께서 죄로 인한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 관계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1,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절;요 14:6).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리라. -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휘메이스 호에쿠사테 아프 아르케스 엔 휘민 메네토). '처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터'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수신자들이 처음 복음을 듣고 개종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Marshall). (2) 혹자는 사도들이 초대 교회에 처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복음을 선포한 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malle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지닌다. 한편 '들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쿠사테'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정과거 시상이다. 이는 수신자들이 과거에 선포된 복음을 들은 것을 가리킨다. 요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수신자들에게 과거에 사도들이 선표했던 복음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리라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령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안 엔 휘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메이네 호 아프 아르케스 에쿠사테'이다. 본문의 헬라어 어순과 본절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반절의 헬라어 어순을 살펴보면 두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1) '너희 안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해당하는 '엔 휘민'이 상반절에서는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나 본문에서는 앞에 기술되어 있다. 이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20절) 수신자 개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삶에 거하고 있는 복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상반절에서는 '에쿠사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은')가 '아프 아르케스'('처음부터')보다 앞에 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술되어 있으나 본문에서는 '아프 아르케스'가 '에쿠사테' 보다 앞에 진술되어 있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는 본문과 상반절에 교차 대구법을 사용하여 복음이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것임을 강&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조하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105738&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 22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술되어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본문에서는 '아들'이 '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버지'보다 먼저 기술되어 있다. 이는 요한의 강조점이 아들에 있음을 시사한다. 즉 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임을 시인할 때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고 상호간의 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가 성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거하리라'의 헬라어 '메네이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상반절에서 현재 시상을 사용한 것과는 달리 미래 시상이다. 이것은 지속적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호간의 내주를 통한 현재의 영적 경험이 미래의 온전한 구원을 향하고 있음을 강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다(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 가에 대한 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malley). (2)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혹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oulden). 두 가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한편 '약속'은 본서에서 처음 나타나나 성경 전체에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자주 나타난다. 성경은 구약의 족장들과 예언자들에게 주신 약속이 메시야이신 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안에서 완성되며(행 13:23;롬 15:8;고후 1:20-22) 새 언약이 옛 언약을 대치할 것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라고 말한다(갈 3;16;엡 2:12;히 10:23;11:13, 39, 40). 또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속 사역을 구속받은 자들이 약속된 성령에 의한 새 시대, 즉 메시야 시대의 종말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적 축복을 공유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눅 24:49;행 1:4, 5;2:33). 목회 서신은 믿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본질이 영생임을 진술하고 있다(딤전 4:8;딤후 1:1;딛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 이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는 것이다(요 17:3).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령의 역사 안에서 복음을 굳게 견지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대한 순종을 수반해야 한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아들을 알지 못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인 영생을 소유할 수 없게 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 '미혹케 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플라논톤'은 현재 분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이는 앞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는 적그리스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의 특성이 거짓말로 미혹하는 마귀의 특성을 닮고 있음을 나타낸다. 더욱이 요한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현재 분사를 사용하여 적그리스도의 미혹행위가 지속적인 것으로서 현재에 볼 수 있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제적인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썼노라'의 헬라어 '에그랖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서간체 부정 과거이다. 이 '에그랖사'는 본서의 수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의 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점, 즉 수신자 공동체가 본서를 받아보면서 요한의 기록 시점을 생각하는 당시 표현방&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식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 24절에서 '처음부터 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고 수신자 공동체에게 권면한 것과 같이 본절에서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한은 이단적인 교리를 전파하여 미혹하는 적그리스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안에 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하게 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미 수신자들이 거룩한 자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강조하고 있다. '기름 부은'은 성령을 가리킨다(20절 주석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 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거하시는 성령은 진리이시다(5:7). 여기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약성경에서 나타나는 교사직에 대한 언급(행 4:18;5:28, 42;고전 12:29;엡 4:11;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후 2:24)과 상치되는듯 보인다. 그러나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직분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받은 교사들은 진리이신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가르쳐야 하며 그들의 가르침의 은사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통해서 가르쳐야 하며 그들의 가르침의 내용은 진리에 의해서 시험되어야 하기 때문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4:1, 5;요이 1:9, 10, Schnackenburg). 즉 그 가르침의 내용은 이미 선포된 하나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말씀이며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각 개인에게 가르쳐져야만 한다. 그런 반면에 당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이단적 교리를 전파하는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요한은 이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을 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가 없음을 강력하게 권고하여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적 가르침을 공격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rooke, Houlden). 한편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는 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복음에 언급된 보혜사 성령의 성격과 병행된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셔서(요14:17;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5:26)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요16:13)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14:26). 이런 사실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유식과 대조를 이룬다. 영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유식은 지적인 것이며 거짓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름 부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영적 지식을 소유하게 하며 하나님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교제를 나누며 그 안에 거하게 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참되고 거짓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없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레데스 에스틴 카이 우크 에스틴 프슈도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문자적으로 '그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참되고 거짓이 아니다'란 뜻이다. 여기서 '에스틴'('이다')의 주어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것은 기름 부음에서 비롯된 가르침보다는 기름 부음 자체를 가리킨다(Smalley). 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름 부음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가리킨다. 그러기에 그는 물론 그의 가르침 전체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참되며 거짓이 없다. 한편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의 주어는 '기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음'으로 보기 보다는 '예수'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더욱이 '가르치신'의 헬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 '에디닿센'은 부정 과거 시상이어서 예수께서 지상 사역 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행하신 가르침과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Smalley). 성령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든 것을 생각나게 해야 할 일을 가르치신다(요14:26).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 본문은 요한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자신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권면을 요약한 것이다. '그 안에 거하라'는 본장에서 자주 언급된 권면이다. 이것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영원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내주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알게 되며 '사랑하라'는 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계명과 말씀에 대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순종을 동반한 그리스도인의 내주는 그리스도인들로 약속된 영생을 소유하게 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부끄럽지 않게하려 함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종말론적이다. 즉 요한은 그리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인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를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을 심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연결시키고 있다. '나타내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네로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육신을 입으신 예수께서 역사 위에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파네로데'와 '강림'의 헬라어 '파루시아'를 연결시켜서 그리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게서 눈에 보이게 광채를 입고 재림하실 것을 시사하고 있다(Barker). 한편 '담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레시안'은 신약성경에서 31번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 나타나며 그 중에서 13번이 요한이 쓴 책들에서 나타난다. '파르레시안'은 헬라 세&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에서 '자기의 의견을 공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민의 권리'를 의미하며 성경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나(행4:29; 고후7:4)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딤전3:13; 히10: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9) 담대함을 의미한다. 본절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 앞에 담대히 서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라'는 계명과 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씀에 대한 순종이 없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거듭나고 영생을 소유한 자들의 삶 속에 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타나야 할 표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의'이다. 여기서 '그'에 대해 혹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하나(Smalley)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타당하다(Law, Barker, Stott). 왜냐하면 다음 절인 3:1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급되어 있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하나님에게서 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시된 아버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야만 한다. 그래서 요한은 본장에서 하나님을 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것이며 어두움에 있는 것이라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술하고 있다(3-6절). 만약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가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데서 보여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순종의 생활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아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에게서 난 자라고 말할 수 없다. &lt;/SPAN&gt;&lt;/SPAN&gt;&lt;BR&gt;&lt;/P&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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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마서 제11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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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INGDOM</name>
	    </author>
	    <updated>2009-11-29T21:44:53Z</updated>
	    <published>2009-11-29T21:44:5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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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마서 (11 : 1~36)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 9장과 10장에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그리스도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부한 모습이 기술되어 있으므로 수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스라엘을 버리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하여 그가 본서신에서 즐겨 사용하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는(3:4, 6, 31;6:2, 15;7:7, 13;9:14) 단호한 부정적 표현인 '그럴 수 없느니라'(By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no means, NIV)는 말로 답변하고 있다. '하나님이...버리셨느뇨'로 번역된 헬라어 '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포사토 호 데오스'에서 '메'는 부정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 형태이다. 또한 '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 백성'(톤 라온 아우투)에서 인칭 대명사 '자기'(아우투)라는 용어 속에는 하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이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Godet). 1절에서 제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提起)되는 이와 같은 질문은 11장 전체의 주제가 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 사도 바울은 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의 경우를 들어 이스라엘이 결코 버림받은 것이 아님을 답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손인 사도 바울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버림받지 않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하나의 산 증거이다. 예전에 그가 복음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갈 1:13, 14;딤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3-15)은 이스라엘이 가진 불신앙(10:21)의 전형적인 본보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은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 자기 개인의 경우를 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들었던 바울은 이제 왕상 19:1-18에 기록된 엘리야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하나님께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은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 바울은 특별히 왕상 19:10, 14, 18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대로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의 종교가 극도로 부패한 나머지 여호와를 바로 섬기는 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엘리야 한 사람뿐인 것 같았으나 사실은 당시에도 하나님이 남겨두신 참 성도 7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미리 아신 자기 백성 - 몇 명의 주석가들(Origen, Augustine, Chrysostom, Luth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Calvin 등)은 이 말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나 이 말은 1절에서와 같이 유대 민족, 곧 메시야의 구원과 관련된 이스라엘 민족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운명을 암시한다고 봄이 타당할 듯하다(Meyer, Godet).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이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엘 민족은 예수를 배척(排斥)했다. 이러한 민족적 불신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신다. 그들의 눈이 열려 그들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메시야를 자유롭게 받아들일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침내 메시야를 믿고 구원받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계신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엘리야를 가리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엘리아'는 문자적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엘리야 안에' 또는 '엘리야로'(수단의 여격)라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신약에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주 사용되는 인용구이다(막 12:26;눅 20:37). 래빈스(Rabbins)에 의하면, '엔 엘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야'는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History of Elias)를 뜻한다고 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가...송사하되 - '엔튕카네이'는 '청구하다'(행 25:24),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간구하다'(롬 8:27, 34)는 의미로 본절에서 전치사 '카타'(against)를 동&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반하여 '...거스려 송사하다'의 뜻을 갖는다. 여기서 '송사한다'는 표현은 이상하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완전히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습(왕상 19:10, 14)을 목도한 엘리야는 자신의 민족을 하나님 앞에 송사하며 멸망시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을 기도하였다. 이러한 엘리야의 기도는 민족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자신의 민족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중하게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Calvin).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가...헐어 버렸고 - 본절에서 바울은 왕상 19:10, 14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울은 선지자들을 죽인 것을 먼저 말한 후 제단 훼파를 서술함으로써 그 순서를 바꿔놓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았다. 거기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제단들을 - '뒤시아스테리아'는 '뒤시아스테리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단')의 복수형이다. 율법에 따르면 합법적인 제단은예루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렘 한곳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율법은 그외 다른 곳에도 합법적인 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단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예컨대, 하나님이 현현(顯現)하신 '벧엘' 같은 곳&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쌓은 제단은 제단으로서의 권위가 인정되었다. 더욱이 그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는 예루살렘에서 제사드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믿음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설한 자들은 과감히 예루살렘 외에 다른 곳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Godet).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나만 남았는데 - 혹자는 '나만'(I...alone)이라는 말은 '모든 선지자들 중에 홀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lone of all the prophets)라는 뜻으로 해석했다(Meyer). 이러한 해석은 바알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무릎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대답과 모순된 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처럼 보인다. 그러나 칠천 명의 남은 자들은 선지자들이 아니라 단순한 경배자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Worshipers)이었다. 엘리야 외에는 선지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담대히 믿음을 지키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이 없었다. 선지자라 이름하는 자들은 모두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 뿐이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대답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레마티스모스'는 하나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신탁을 의미하는 말로서 대답의 계시적인 특성과 권위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바알에게 - 헬라어 '테 바알'의 '테'는 여성정관사이다. 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당시 페니키아인들에게 '바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남신(男神)으로, 아스다롯(Astarte)&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달(月)을 상징하는 여신(女神)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본절에서 바알에게 여성 정&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사를 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70인역에는 바알이란 이름에 남성과 여성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병용해서 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70인역에는 바알이란 이름에 남성과 여성&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병용해서 쓰고 있다. 그러므로 바알이 양성체(兩性體)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나 여기서 '바알신'이 아니라 단지 '바알상'을 여성으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다. 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유는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물질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은 바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 정관사를 바알 앞에 붙이고 있는 것 같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칠천 - 이 숫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도 그러하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21;막 6:44). '7'은 완전수를 의미하는 것이므로(출 25:37) 7천이란 숫자는 영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부터 구원을 얻기로 선택된 엘리야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완전한 하나님의 경륜 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운데 보호 받고 있었음을 상징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남은 자 - 바울은 엘리야 시대의 상황을 자신의 시대에 적용시키면서 그때에 남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 칠천명이 있었던 것같이 자신의 시대에도 '남은 자'가 있다고 하는 결론을 도출(導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出)하고 있다. 바울 주장의 요지는 아무리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불신과 배교가 만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했다하더라도 '남은 자'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사랑하셔서 택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했다고 하는 것이다. '남은 자'사상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먼저 창세기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살펴보면, 노아의 때에 소수의 택함 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았다(창 6:1-8;눅 17:26,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7;벧전 3:20). 롯의 때에도 그러했다(창 19:29;눅 17:28, 29). 이사야 시대에는 그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터기와 같은 남은 자들이 있었다(사 6:13;10:32). 이 외에도 구원은 선택된 남은 자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것이라는 사상이 구약 여러 구절에서 발견된다(사 1:9;11:11, 16;렘 23:3;31:7;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32;암 5:15;미 2:12;4:5-7;7:18;습 3:13). 특별히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은 그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름 자체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으로서 구약의 남은 자 사상을 대변해 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 '은혜로 택하심'(the election of grace, KJV)이라는 용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히브리어의 관용구로서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뜻한다. 이것은 인간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떠한 행위나 결정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선행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하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 '남은 자'(remnant)로서의 특전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누리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지 자신들의 행위로써 된 것이 아니다. 본절에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이 이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 이유는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남은 자 사상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오해하여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갈 1:6-9;3:1-5).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 만일 인간편에서 한 행위가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택하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될 수 없다. 사실상 율법적 행위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근거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반(反) 복음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다. '되지 못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케티 기네타이'는 '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상...이 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율법적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은혜가 '되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적&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unconditional)이다. 이 무조건적인 은혜를 사람들이 믿음으로써 그 은혜에 응답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 택하심을 받을 수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자들이 본장 5절에서 나오는 남은 자들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때에는 민족적으로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완전히 떨어져 나갔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1절). 그후 이스라엘 가운데 소수가 하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의 은총을 입어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그 질문을 부정(否定)으로 답했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4절). 그리고 교회의 핵(核)으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소수의 '남은 자'가 있음을 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급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런즉 어떠하뇨 - 지금까지의 논리 전개의 핵심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린게 아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가 있다는 데에 있다. 이제는 그 남은 자들이 갖는 의미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무엇인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선택된 소수, 즉 '남은 자'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하여 말한 후(1-6절), 이제 대상을 바꾸어 이스라엘의 완악한 다수에 대해 말하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행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수단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로는 구원이 불가능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구(求)하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제테이'는 현재 시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기본적으로 계속 반복되는 상태나 동작을 의미하므로 이스라엘의 구하고자 하는 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가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본문에서 독특한 용법이 사용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었다. 같은 문장 속에 나오는 또 다른 동사들('얻었다'와 '완악하여졌다')이 시점상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중임에도 불구하고 과거형으로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구하는'의 헬라어 '에피제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는 역사적 현재(Historical Present) 용법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생생하게 구사하기 위한 표현법이다. 결국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백성이 일반적으로 '행위를 통한 칭의'를 매우 열정적이고 반복적으로 추구했음을 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 남은 자들은 완악(玩惡)하여졌느니라 - 본문의 '완악하여졌느니라'에 해당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헬라어 '에포로데산'은 '포로오'('두꺼운 가죽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가리다')의 단순과거 수동태로 어감이 강하다. 이에는 인간 본래의 감성(感性)이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덕성의 근원을 상실했다는 뜻이 포함된다. 결국 그들은 오성(悟性)이나, 참가과 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짓, 선과 악을 분간하는 양심의 기능 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노력해왔어도 결국은 수포로 돌아갈 수 밖&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없었다. 또한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이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진다는 사실을 본절을 통해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택하심을 받지 못한 '남은 자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들인데 그 결과로 그들은 완악하게 되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8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기록된 바...함과 같으니라 - 바울은 모세와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강퍅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했던 것과같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시대에도 그 백성이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기록된 바'에 해당하는 구약성경은 신 29:4과 사 29:10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당하며 좀더 정확하게는 누가가 사도행전에 인용한 것(행 28:26, 27.)을 언급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으로 보인다(Calvin). 또한 이 구절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실을 지적하면서 사용되었다(마 13:14, 15;막 4:12;눅 8:10;요 12:40). 하나님의 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적인 주권을 나타내는 본 구절의 특성으로 봐서 유대인의 상태는 도무지 구원 섭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와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대하게 하고(13절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오늘날까지(헤오스 테스 세메론 헤메라스) - 이 말은 신 29:3(MT)에 '아드 하욤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라고 되어있는데, 70인역은 이를 '헤오스 테스 헤메라 타우테스'라고 번역하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는 모두 '이날까지'라는 의미인데, 바울은 '이날'(헤메라 타우테스)을 '오늘날'(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메론 헤메라스)로 변형시켜 인용하였다. 이처럼 바울이 표현을 변형시킨 이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말하고자 하는 것의 주안점이 과거 구약 시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 당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있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혼미한 심령 - '혼미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뉴세오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찌르다'(행 2:37)라는 의미를 가진 '카타뉴소'에서 나오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너무 많은 자극으로 말미암아 감각이 무디어진 마비 상태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하고(Robertson), 무의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어리둥절해진 것을 의미한다(Lenski).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즉 이 말의 참 의미는 그 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씀으로 많이 자극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보지 못할 눈 - '눈'이란 육체적인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분별력을 의미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 6:9, 10;마 13:14, 15). 눈은 우리 몸의 감각 기관 중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람들은 눈으로 외부 세계의 거의 모든 부분을 인지(認知)한다. 그러므로 눈이 멀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는 말은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인 능력이 결정적으로 상실됐다는 말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듣지 못할 귀 - 바울은 믿음이란 들음에서 생겨난다고 하였다(10:17). 그러므로 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이란 믿음에 이르는 통로이며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한 수단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이...주셨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도켄 호 데오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유대인들의 심령이 혼미해지고 눈과 귀가 멀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는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1:21-31).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또 다윗이 가로되 - 본절은 시 69:22의 인용이다. 사도 바울은 어순이나 표현에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약간의 변형을 취했으나 그 의미는 변질시키지 않았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은 '그들의 목전에'(에토피온 아우톤)라는 구절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빼고 '덫으로'(카이 에이스 데란)라는 말을 삽입시키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그리고 이 말을 '올무'(에이스 파기다)라는 말 뒤에 놓&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으로써 '올무'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강조시키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밥상 - 밥(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밥상' 위에 있는 음식을 먹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연명(延命)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밥상'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기에서의 '밥상'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밥상'은 단순한 '밥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이 아니라 '그들의 밥상'(헤 트라페자 아우톤)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즉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진 '밥상'이다. 따라서 이 '밥상'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게 베풀어 주신 '생명의 밥상' 곧 구원을 상징한다(창 17:7;출 6:3, 4, 7). 한걸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더 나아가 이 '밥상'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떡'(요 6:35, 58;고전 10:16)으로서 유대인의 땅 나사렛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이 '밥상'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인 '밥상' 곧 예수 그리스도가 오히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거치는 것'이 되었다(9:33).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올무와 덫과 - '올무'의 헬라어 '에이스 파기다'는 새나 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승을 잡는 올가미를 나타내는 고대 단어이다. '덫'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데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야생 짐승의 사냥을 나타내는 고대 단어였으나 후에는 덫을 뜻&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70인역(시 68:23)과 비교하면 '에이스 데란'(덫과)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첨가되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비슷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열거함으로써 그 누구도 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 '거치는 것'의 헬라어 '에이스 스칸달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덫 혹은 올무의 의미를 갖는다. 본 구절 역시 70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역과 비교해 보면 아래의 도표와 같이 도치되었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동의어에 해당&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말을 재차 언급해줌으로써 더욱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단어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앞 구절의 두 단어와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를 설명하는 말로서 이 말들이 뜻하는 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든 유혹과 멸망의 방법을 의미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의 파멸은 피할 수 없는 것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한편 '보응'은 70인역에는 없는 말이지만 중요한 맥락은 놓&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치지 않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벌하셨다는 뜻과 유대인들의 어리석고 강퍅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 그대로 하나님께서 버려 두셨으므로 버려둔 그 자체가 보응이 되었다는 뜻으로 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석될 수 있다. '되게 하옵소서'(게네데토)는 헬라어 문법에 있어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령형이지만, 하나님께 간구하는 투이다. 이 간구는 '보응' 뿐만 아니라 앞에 서술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에도 연결된다. 바울이 이 글을 인용한 것은 8절의 내용 즉&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한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는 말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 '저희 눈은'이란 말은 8절의 '보지 못할 눈'을 연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케 하는데, 8절에서와는 달리 귀와 심령이 빠지고 '눈'만이 언급되고 있다. 본문에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은 시 69:23(LXX 68:24)을 그대로 인용했다. 8절에서 '눈'과 '귀'를 열거하고 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것과는 달리 '눈'만을 이야기한 것은 눈이 몸에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기관이기 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문이다. 예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며 눈이 나쁘면 온 뭄이 어두울 것이라고 눈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중요성을 역설하였다(마 6:22, 23). '흐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코티스데 토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스코티조'('어둡게 하다')의 단순과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동태 명령법으로 심각하게 저주하는 표현이다(Robertson). 여기에서의 눈은 육체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바울은 이러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편 기자의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이 받고 있는 현재적 심판에 적용했다. 이처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영적으로 어두운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오히려 자연양심(natural good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ense)을 가진 이방인 보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더 이해하지 못했다(Godet). 다시 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깨달을 수 없게 되었으니(마 13:14, 15), 그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곧 최대의 불행이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 등이 굽는 것은 노예들이 상전 앞에서 두려움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갖게 될 때 취하게 되는 행동이다. 이스라엘이 완악해져서 복음을 거부하고 배척(排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斥)하는 한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율법의 종들이었으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율법 선생 곧 랍비들에게 얽매어 있는 노예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하나님 앞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자유함이 없이 두려움에 거하는 존재들이었다. 이와 같은 징벌은 그들이 메시야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부했기 때문에 받는 피할 수 없는 형벌이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말하노니 - 혹자는 이를 '내가 질문하노니'(I ask, RSV)라고 번역하고자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데(Meyer), 이는 다음 문장이 질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라어 '레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가 말한다')는 '에로타오'('내가 묻는다')와 명백하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차이가 있다. 본문은 본절 뿐만 아니라 24절까지 이어지는 전체 논리를 염두에 둔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 이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문형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완악해지기는 했으나 절망적으로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는 것이다. '실족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타이산'은 '미끄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다'의 뜻으로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완전히 엎드러진 것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는 완악(頑惡)하게 된 상태를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의 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가 크다는 것에 집중하여 언급한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것은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의 넘어짐 즉, 복음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도록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계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울 당시에 실제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목격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있었다(행 13:44-48).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럴 수 없느니라 - 여기서 보여 주는 단호한 거부의 대답은 비록 이스라엘이 실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했더라도(7-10절) 그것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완전한 패망의 넘어짐은 아니라는 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Murray). 즉 이들이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고 강퍅해졌으나 구원의 소망이 전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것은 바울이 계속해서 확언하는 이스라엘의 장래 구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암시해 준다(Harriso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의 넘어짐으로 - 헬라어 본문에서는 접속사 '알라'('그러나')가 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용되어 앞구절과 반대되는 견해를 암시한다. '저희의 넘어짐'은 '저희의 범죄'를 가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키는 것으로(Meyer, Murray) 구주이신 예수를 거절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거절로 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 이방인에게 구원이 돌아갔다(마 8:12;행 13:46).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방인 - 유대인을 제외한 세계 모든 민족들을 말한다. 이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로 약속에 대해 외인이요 구원에 대한 소망이 전혀 없었다(엡 2:12). 바로 이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그의 백성이 되었다(Bruce).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과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방인의 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구원이 더 이상 민족의 개념으로 제한되지 않음이 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나게 되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 '시기나게 한다'(파라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사이)는 것은 회개와 믿음을 일으키는 데에 가치있는 자극을 말한다(Murray). 이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유대인의 질투심을 유발시켜 회심할 기회를 주는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원 계획이다(Kasemann). 이러한 시기(猜忌)로 인해 비록 괴로움이 있기는 해도 궁극&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세상의 부요함 -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여 구원 경륜에서 벗어났지만, 이스라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복음 거부는 오히려 세상 전체가 복음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이 흔히 사용한 '부요함'이란 말은 현재의 부한 상태나 종말론적 풍요를 의미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9:23;빌 4:19). 여기서의 '부요함'은 이방인의 구원을 통하여 천국 백성의 수가 증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이방인의 은혜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태를 표현한 것이다(Godet).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의 실패 - '혀테마'는 군사적 표현으로 '전투시에 넘어짐'과 같&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의미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김으로 당한 커다란 실패(defeat)를 말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Murray). 바울은 '넘어짐'과 '실패'를 '충만함'과 대조시켜 이스라엘의 회심이 더&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욱 큰 은혜를 베풀 것임을 보여준다(Harriso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 충만함은 회심과 관련된 말로 남은 자와 대비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커다란 전체를 의미한다(Harrison). 또한 충만함이란 앞 부분의 실패와 연결해 볼 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숫자적으로 빈자리를 채운다는 개념(Godet)과 구원을 완성하는 개념(Murray)을 가지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적으로 회복되어, 그 구원받은 수가&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충만해진다는 것은 범죄와 대조를 이루어 불신앙과 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로 점철되었던 과거의 이스라엘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고 의를 얻어 하나님 나라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복귀하는 민족이 될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이방인들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요케 된 것처럼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회복되면 전 인류의 부요함은 더욱 풍성해 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을 의미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기노니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 '만큼'으로 번역된 '에프 호손'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시적 제한의 의미가 아니라 자격(資格)을 말한다. 즉 자신의 신분이 이방인을 위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에고'('나는')라는 대명사 앞에 '에이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를 두어 자신의 자격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자기 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식을 명확히 가지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임무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임무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을 충만케 할 뿐만 아니라(25절) 이스라엘을 시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게 하며(14절) 충만케 하려는(12-15절)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자기의 직분을 영광스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게 여기는 이유는 그의 이방인에 대한 사역이 성공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의 구원도 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겨 이방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 구원에 최선을 다한 것을 말한다(Godet).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힘써 감당함으로써 이방인들의 구원이 유대인들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기나게 하여 몇몇 유대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14절). 이렇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기의 직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짐을 생각할 때에 더욱 영광스럽게 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Barmb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 골육 - 바울의 이 표현에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Harrison). 이러한 표현은 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개 혈통적인 형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창 29:14;삿 9:2;삼하 5:1), 본절에서는 완악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진 이스라엘 가운데 구원이 보장되어 있는 '남은 자'를 의미한다(Dunn). 바울은 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록 현재 상태로는 완악해 있으나, 장차 몇몇 이스라엘인이 구원에 동참할것이라는 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을 갖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기케 하여 - '시기'가 흠정역(KJV)에는 '경쟁'(emulation)으로 번역되어 있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 대상은 '온 백성'(10:19)으로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충만함을 보고 질투심과 어울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경쟁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 '얼마'라는 말속에서는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실족했으나, 바울은 그들 중에 얼마라도 구원받기를 원했음을 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를 버리는 것 - '버림'에 대해 혹자는 12절의 실패와 연결해서 해석하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Godet), 혹자는 하나님께서 추방한 것으로 이해하는데(Meyer, Murray, Shedd), 후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버리는'은 '받아들이는'(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슬렘프시스)과 대조가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호의와 축복으로부터 거절당함과 그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라에서 박탈된 것을 말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세상의 화목 - 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을 의미한다(Kasemann). 혹자는 세상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화목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과 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의 관계를 복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Lenski). 어쨌든 화목은 원수된 처지에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수의 공로로 친선의 교통을 얻게 된 것을 의미한다(엡 2:13). 과거에는 하나님의 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절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의 총애를 받게 된 것이다(Murra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 - 본 구절은 어떤 뜻인지 확언하기가 다소 어려우나 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인이 장차 회심하게 될 것을 부활에 비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이스라엘로 인해 이방인들의 구원에 활기를 띠게 될 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지도 그러하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데 헤 아파르케 하기아, 카이 토 퓌라마'가 70인역(민 15:20-21)에서는 '아파르켄 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마토스'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라고 되어 있다. 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서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떡덩이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처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익은 곡식'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이해한다(Harrison).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 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족의 대표성을 가진 족장이나 조상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Murray). 반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떡덩이'는 회심한 이스라엘 민족을 뜻한다. 이러한 상징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 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대표성을 의미한다. '처음 익은 곡식가루'에 해당하는 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어 '아파르케'는 '최초의 것'이라는 의미로 제사에 있어서 전체 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덩이에서 일부를 떼어 내어서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이것은 민 15:17-21에 나오는 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의 규례에서 온 것으로 떼어낸 부분이 원덩이를 대표한다는 개념을 보여준다. 그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므로 처음 익은 곡식인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다. (2) 거룩성을 나타낸다. 첫열매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체 떡덩이를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다(Barmby). 결국 이스라엘과 믿는 자들을 대표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조상들이 거룩했으니 남은 그의 자손들도 거룩하다는 의미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 돌감람나무는 야생 감람나무로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원래부터 돌감람나무 종류가 있고, (2) 원래는 좋은 감람나무였으나 주인의 손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있다. 통상적으로 감람나무를 접붙이는 방법은 돌감람나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는 것인데, 본문에서는 이를 거꾸로 비유한다. 이처럼 참감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무의 가지 일부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였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써 이방인이 원가지가 아님을 명백히 한다. 아마도 바울은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뿌리에 연결되어 좋은 진액을 받아 품질이 낫게 변화되는 것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다(Murray). 이러한 접붙임으로 원가지와는 전혀 무관하던 돌감람나무 이방인들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유대인과 동일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 이방 그리스도인도 이스라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족장이 누렸던 구속의 은혜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주요한 것은 진액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기 보다는 그 뿌리이다. 즉 이스라엘과 무관했던 이방인이 참 이스라엘에 접붙임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받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12족장과 맺은 구원의 언약과 연관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Hendriksen, Lenski). '참감람나무'는 16절의 '처음 익은 곡식'과 통하는 것으로 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모든 혜택의 근원(根源)을 상징한다. 이처럼 이방인과 유대인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두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 유대인들의 일부가 구원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서 그들을 향해 우월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없다고 충고한다. 여기서의 '가지'는 꺾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진 가지로 원가지에서 벗어난 유대인을 말한다(Murray, 19, 20, 22, 24절). 이방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스도인은 이들에 대해 자긍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긍(카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카우코)이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높이며 자랑한다는 뜻이다. 당시 로마 교회의 구성&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원 중 일부가 영적 자만심을 가지고 동료 유대인 신자들을 업신여기는 일이 었었던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원가지인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긍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자만심에 빠져 유대인이 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지에서 꺾여졌다고 주장해도 자신들이 뿌리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지들을 지탱시켜 주고 가지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뿌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Calvin). 여기서 강조된 '너'(쉬)가 단수형으로 쓰여 마치 개인을 대상으로 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원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울은 교회에서의 이방적 요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하나의 단위로 다루고 있는 것뿐이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 민족의 복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부로 인해 이방인 교회가 탁월한 위치에 있게 됨을 가리킨다(Harrison). 그러나 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울은 이것으로 인해 교만과 자만심을 갖게 하지 않도록 이방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원의 기원을 생각하도록 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여기서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꺾이운 가지'와 '접붙임을 받은 나'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Murray, Dunn). 그러나 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울의 이러한 예증은 이방인들을 교만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려는 것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Calvin).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옳도다 - 이에 해당하는 '칼로스'는 '바로 그렇다', '맞다'의 뜻으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앞절의 내용을 시인하는 것이다. 구속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보장되었던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이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유동적으로 적용됨으로 인한 구원의 연속성과 불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성의 긴장을 보충 설명하려는 것이다(Dun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 유대인이 버림을 받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은 불신 때문이고, 이방인이 접붙임 받은 것은 믿음 때문이다. '믿지 아니하므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테 아피스티아)와 '믿으므로'(테 피스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가 모두 여격으로 쓰여져 이유, 수단, 원인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궁극적으로 믿&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으로 인해 두 가지 상반되는 현상이 나타났을 뿐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은 불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9:30-32;10:3, 16)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자리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방인은 서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믿음 때문이다. '믿으므로'가 강조된 것은 견고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믿음인 것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 헬라어 본문에는 접속사 '가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왜냐하면')가 있는데,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자긍하지 말아야 할 두번째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유를 제시한다. '원 가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퓌신 클라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본래 자연적으로 생성된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던 이스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엘을 가리킨다.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의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의 '이스라엘'이어야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고, 원뿌리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 흠정역(KJV)에는 '너도 남기지 아니하실까 의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되어 있다. '유의하라'(take heed)는 표현은 공인 본문(TR)에 의거해서 역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공인본문에 의하면 이 구절 앞에 '메 포스'('...하지 않을까')가 있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흠정역(KJV)은 이를 따라 20절의 '두려워 하라'와 연결시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므로 이것은 원 가지도 믿음을 떠났을 때 꺾어 버렸는데 접붙여진 가지가 믿음을 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렸을 때 남겨둘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찍히는바 되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의 인자와 엄위 - 이는 하나님의 품성 안에 오묘하게 조화(調和)를 이루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다. 실패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엄위를 경험하고 있지만, 복음에 반응하여 구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얻은 이방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누리고 있다(Harrison). '인자'의 헬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 '크레스토테스'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심을 말한다(2:4). 한편 이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엄위가 제시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로우심에 근거한 것이다(Murra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 '넘어지는'의 헬라어 '페손타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부정과거로 쓰여 완전히 넘어져 믿음에서 타락했음을 의미한다(14:4;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 10:12;히 4:11).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심판을 행할 때, 조금도 주저하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않고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약속의 백성마저도 제하여 버리는 엄위의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이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 헬라어 본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는 접속사 '데'('그러나')가 있어서 앞 문장과 연관되어 있다. 앞구절에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하나님의 엄위를 말하나 이제는 인자에 거할 것을 권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엄위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심은 불신앙으로 인해 계속되며,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의 반응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3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 본절에서 24절까지 이스라엘이 회복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능성에 대하여 말한다. 전에 그들이 원 나무에서 잘리운 이유는 불신 때문이었으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이제 그들의 회복은 오직 믿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것이 접붙임 입는 조건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이방 그리스도인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비는 그 대상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변덕 때문이 아니고 인간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응답으로 말미암은 것이다(Harriso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 본 구절에서는 일반적인 원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식을 벗어난 특수한 경우를 언급하는데, 바로 꺾여진 가지를 다시 접붙인다는 것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일단 꺾여진 가지는 재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불가능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화를 사용하여 유대인의 회복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강조는 문자 구조상으로도 잘 나타나는데, '능력'에 해당하는 '뒤나토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문장 첫머리에 나온다. 구약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깁보르'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세운 언약에 신실하다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느 9:32;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21;렘 32:18).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이방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궁극적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었은즉 - 이방인이 구원얻게 된 사실을 감람나무 비유를 통해 요약 정리하면서, 이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엘의 구원이 가능한 일임을 논증하고 있다. '원 돌감람나무'의 '원'과 '본성'의 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어 '퓌신'('자연적인')은 전치사 '카타'('...따라', '...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터')와 '파라'('...거스려')와 함께 쓰여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접붙이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게 아니라, 다른 나무에서 잘라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지를 성공적으로 접붙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Dunn). 따라서 이러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재접목은 이스라엘 대신 이방인만을 은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즉 유대인도 이방인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한다는 사실을 시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 유대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는 일종의 예정된 조화(pre-established harmony)라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본질적인 유사성(類似性)이 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유대인들의 회복이 성취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터인데 이는 이방인의 동참보다 쉬워질 것이다(Godet). '얼마나 더'의 헬라어 '포소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론'은 문맥상 '얼마나 더 쉽겠는가'(How much more easily)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는 의미임이 확실하다. 하나님은 유대 민족이나 이방 민족이나 상관없이 당신의 뜻&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로 행하시는 자를 자녀로 삼아주신다(요 6:40).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형제들아 - 이에 대하여는 1:13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에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파르 헤아우토이스 프로니모이'('너희 스스로를 너희가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도록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려고') 가운데 전치사 '파라'('...곁에', '...함께', '...로 말미암아')가 어떤 사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는 '엔'('...안에', '...로')으로 되어 있다(A, B). 그런데 비교적 오래된 사본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는 전치사 '파라'로 되어 있으며(N,C,D). 바울은 12:16에서도 이 말을 사용하는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기서도 '파라'로 되어 있어서 '파라'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한편 본 구절의 '히나 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테'가 현재 가정법으로서 목적절이 되므로 바울이 이 말을 꺼내고 있는 것은 믿음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갖고 있다고 하는 이방인들이 자만해 있는 것을 막고 유대인들에 대해 스스로 높이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하게 하려는 것이다(Calvin, Robertson). 이는 그들이 그들 안에서부터 스스로 어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 바울 당시에는 밀교(密敎,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Mystery religion)가 있었는데, 그들은 입교자 외에는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가지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어서 어느 정도 단계가 지나지 않으면 이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Davidso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Martin). 그러나 신약에서 사용되는 '비밀'(뮈스테리온)이란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처럼 종교적 호기심을 발동하게 하거나 특별한 사람이나 풀 수 있는 불가사의한 수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통해 그의 백성에게 알려지는 하나님의 구원사적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활동을 의미한다(Harrison). 이 말은 계시에 대해(고전 2:7;엡 3:3, 4, 9;딤전 3:16),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스도 자신에 대해(골 1:26-28),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고전 2:6, 7, 엡 3:3-6) 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용되어 왔다. 그런데 이는 이전에는 감추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비밀이지만, 이제는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비밀이 알려졌다(16:25, 26;고전 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비밀이라고 일컬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는 이유는 사람이 완악하여졌거나 마음이 어두워져서 개별적으로 그것을 깨닫지 못&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고 있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이스라엘의 충만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절)이나 이스라엘을 받아들이는 것(15절)과 연관되어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하나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확대되었음을 시사한다. '충만한 수'에 대해 모든 이방인들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한다거나(공동번역), 구원얻을 자기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논리를 여기에 도입시켜버리는 것은 바울의 정신을 오해하고 본 구절이 다루고자 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핵심을 흐려지게 할 뿐이다(泉田昭). 이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 증거되기 위하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온 세상에 전파되리라'는 종말 현상에 대한 예수의 말씀(마 24:14, 막 13:10)에 근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것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시점을 의미하는 것이며(Godet) 선택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말하는 것이다(Meyer).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적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때까지 이스라엘의 완악함은 계속될 것이며 그리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의 재림으로 역사의 끝이 되면 이러한 완악함도 끝날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 '완악해졌다'는 표현은 7절에서 이미 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급되었고, 17절의 비유에서는 '가지 얼마가 꺾여졌다'고 암시되었다. 본절에서는 '더&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는'이라는 표현이 추가되었다. 이 '더러'(메루스)라는 낱말에 대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석이 다양하다. (1) 칼빈(Calvin)은 이것이 단순히 시간이나 숫자를 가리킨다기보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정도'(measure)의 으미로서 듣기좋게 수식하려 했을 뿐이라고 한다. (2) 혹자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것을 시간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시간적으로 충만한 숫자가 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오는 기간동안만 제한적으로 지속된다는 의미라 한다(Godet, Harrison). 그러나 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절이 이스라엘의 구원에 집중되어 있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언제 완결될 것인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 계획이므로 알 수 없다. 결국 칼빈의 견해대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은 본 구절에서 숫자나 시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완악하게 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은 이방인이 구원얻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고, 결국 이스라엘도 구원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1) '온 이스라엘'이 역사의 끝에서 지구상에 살고 있을 모든 유대인 집단을 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킨다는 견해이다(Barmby). 그러나 이 견해는 구원의 대상이 사람의 혈통에 의해 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우된다는 결과가 되므로 성경적으로 지지받지 못한다. (2) 혹자는 갈 6:16에 근거하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온 이스라엘'이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ugustine, Theodoret, Luther, Calvin). 그러나 본문의 문맥상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는 견해는 타당하지만,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즉 상반절에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묘사된 '온 이스라엘'과 '남은 자'의 대조를 파악할 수가 없다(Harrison). (3) 어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학자들은 선택된 유대인 전체로 본다(Robertson, Lenski, Murray). 이 견해대로 하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5절의 '이방인의 충만한 수'라는 구절이나 26-29절에 이어지는 문맥과 잘 연결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즉 본절의 '온 이스라엘'은 장차 구원받게 될 이스라엘 민족 개개인을 말한다. 본 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절이 주는 어감은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을 암시해 주지만, 모든 개개인이 구원얻는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보다는 상당히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돌이킨다는 의미로 봄이 타당할 듯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이 쓴 본문에서는 전치사가 '에크'('...로부터'&lt;/SPAN&gt;&lt;/SPAN&gt;&lt;FROM&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되어 있고, 70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역에서는 '헤네켄'('...을 위하여'&lt;/SPAN&gt;&lt;/SPAN&gt;&lt;FOR the sake of&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맛소라 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문에서는 '레'('...으로'&lt;/SPAN&gt;&lt;/SPAN&gt;&lt;TO&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되어 있다. 이런 차이들은 각기 성경 기자의 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학적 관점에 따라 기록한 때문일 뿐 내용상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바울의 관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살펴본다면 본문에서 전치사를 '에크'로 바꾼 이유는 이스라엘의 회심으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해 메시야가 강림할 때에 천상의 예루살렘으로부터 오실 것(갈 4:26;히 12:22)으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간주했기 때문인것 같다(Harrison). 한편 '구원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뤼오메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는 히브리어 '고엘'의 번역이며 이는 종이된 다른 사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종된 상태로부터 구해주거나 채무를 대신 짊어지는 사람을 가리킨다(룻 3:12;욥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9:25). 특히 이 말은 민족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는 '구속자', 즉 '메시야'를 의미한다(泉田昭). 본절에서는 '야곱' 곧 이스라엘 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운데 불경건한 것들이 척결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초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맞추어졌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 본 구절은 70인역의 사 59:20을 그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인용한 것이다. 구약에서 '야곱'(야코브)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키는 집합적이고 대표성을 가진 용어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전반적&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범죄하여 경건치 않게 되었는데 이렇듯 불경건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그리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께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맛소라 본문에 의하면 그 죄에서 떠나는 자에게 구속주가 왔다고 한 반면, 70인역에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구속주가 와서 백성으로 하여금 불경건함에서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울이 70인역의 번역을 그대로 따른 것은 70인역이 구속주가 반드시 와야 죄가 해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될 것을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론 구속주로 인해 은혜를 입은 자는 죄에서 돌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키는 것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의 차이는 있어도 두 번역은 동일한 내용이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볼 수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같으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본 구절은 사 27:9의 인용이다. 바울은 이 구절을 자유롭게 고쳐서 인용했으며 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에는 렘 31:31-34과 미 5:2 등에서 볼 수 있는 사상도 깃들어 있다(Harriso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이켰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 얻게 되는 복스러운 은혜를 말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본 구절 역시 70인역의 번역을 따랐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죄에서 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키지 못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회심이 어려운 이유는 그 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의 완악함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70인역은 새로운 언약을 통해 저희 죄를 값없이 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래해 주겠다고 선언한 데 강조점을 두었다. 바울이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사 27:9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언을 보면, 여러 우상이 진멸될 때 비로소 야곱의 불의와 죄가 속함을 받을 것을 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다. 이러한 약속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70인역의 번역을 따라 그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도로 말미암은 완성된 구원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마르티아스'('죄들')는 70인역에는 단수(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르티안)로 되어있으나 복수로 고쳐 인용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개개인이 범한 모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악을 총칭하고 공동체 전체가 범한 죄 모두를 강하게 시사하는 표현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 바울은 이러한 이사야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글을 인용하여 새언약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 새언약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렘 31:31에서 제시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맺은 옛언약이 새로운 차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진행되어 하나님의 법이 백성들 속에서 작용하고 마음에 기록되어 하나님과의 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가 회복될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이스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엘 백성이 비록 완악하여 지긴 했어도 대부분의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될 것임을 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한다. 결국 바울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한 언약의 개념이 보다 구체화되어 계속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Dunn).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본절에서 바울은 수수께끼같은 이스라엘의 현재적 상태를 하나님의 구원 섭리라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포괄적인 관점에서 경구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복음'과 '택하심'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되는 이스라엘의 이중적 상태를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래서 본절에는 대조와 병행을 이루는 용어들이 부각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원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와 '사랑을 입은 자', 그리고 '복음'과 '택하심'이다. 한편 4:25에서도 이와 같은 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법을 사용하였는데(Kasemann), 본절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유대인의 불순종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패역은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천대받아도 된다는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준다(Calvi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제로는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지만, 이로인해 이방 세계에 복음이 전해져서 이방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Bruce) 그 효과는 충분했다. 하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의 택한 백성이었던 유대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였어도, 하나님의 택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심과 전혀 무관했던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상대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적대 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였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 된 것처럼 보여도 유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들은 이방인이 가진 것과 다른 특권을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 비록 복음의 경륜 안에서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위해 원수된 자로 간주되었지만 그들의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랑 가운데 있어왔다는 것이다(Harrison). 그러나 '조상들을 인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디아 투스 파테라스)라는 구절은 조상들의 공적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쿠트 아보트)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Bruce). 즉 조상들이 보여준 의로운 행&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가 축적되어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사랑&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입은 것은 그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는 것이고(Kasemann, Dunn), 하나님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신실하게 언약을 성취해 가시므로 그 후손들에게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신실하시기 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문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 '은사와 부르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타 카리스마타 카이 헤 클레시스)에 대한 해석은 약간의 차이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1) 혹자는 두 개의 다른 범주라 하고(Cranfield) (2) 혹자는 바울이 부르심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장 중요한 은사로 여겨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Michel). 이 견해대로 하면 '은사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르심'은 '은사, 그중에서도 부르심'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3) 가장 유력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견해는 이것을 증언법(hendiadys)으로 보는 견해로서(Calvin, Kasenmann), 이 견해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하면 '은사와 부르심'을 '부르심의 은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세번째 견해가 가장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무난할 듯하다. 한편 이러한 은사는 9:4, 5에서 언급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특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特權)을 말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부르심의 은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목적을 가지고 유일한 위치로 부르셨다는 점을 증거해 준다(Harriso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메타멜레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헬라어 본문에서는 문장의 첫머리에 와서 강조되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후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고 하는 것을 결코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후회하심에 대한 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현이 몇 군데 나타나는데(창 6:6;민 23:19;삼상 15:11, 29), 하나님의 '후회하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함)이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여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히 유감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 정하신 뜻을 돌이키거나 변심하지 않&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며, 실수하시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달리 신적 불변성(immutability)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갖고 계신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긍휼을 입었는지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 '너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메이스'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희들이 어떠했다라고 독자들의 과거 상태를 지적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키는 실수를 범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복음이 이방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에게 전파되게 되었다. 한편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들의')은 소유격으로서 '순종치 아니함'(테 아페이데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이라는 여격 분사의 의미상 주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는 '이들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불순종한 것을 이용해서', '이들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불순종을 통하여'(표준신약전서), '그들의 불순종의 결과로서'(as a resul of their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disobedience, NIV),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because of their disobedience;공동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역, RSV) 등으로 번역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 본절과 다음 절에 나오는 '이제'(뉜)는 역사적&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 현재를 나타낸다(泉田昭). '긍휼'(엘레오스)은 사람의 이성으로 좀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럼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지혜요 경륜이다. 이 긍휼을 베푸심의 근거는 '순종치 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니함'이며 이는 32절까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긍휼함을 얻는 대상 역시 28절의 도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원의 대상의 순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대인-&gt;이방인-&gt;모든 사람'이라는 논리적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순서를 따른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앞 문장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바울은 다시 한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방인들에게 은혜 안에 있는 그들의 현 위치에 관해 우쭐대지 않도록 하려고 이방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이든지 유대인들이든지 어떤 특권이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비록 복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이 악화되어도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고 긍휼을 계속 베푸신다(Harrison).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이 긍휼의 대상이 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 본절은 헬라어 본문에서 접속사 '가르'('왜냐하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시작되어 30, 31절의 결론이 되고 있으며, 5:12-21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는 내용을 매우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향하시는 궁극적 목적은 모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심이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본서의 전체적인 주제를 상기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버려두신 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들의 화인 맞은 양심(딤전 4:2)이 각성되어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태로부터의 구원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갈망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서는 이러한 궁극적 목적을 위해 이방인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도구로, 이스라엘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해서는 이방인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는 결국 구원의 전체성, 즉 전인류를 향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만인 구원을 인정하는 구절은 아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25, 26절). 본절의 '모든 사람'은 그 범위가 제한된다. 즉 '순종치 아니하는 모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람', '긍휼을 얻을 모든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에 해당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헬라어 '플루투 카이 소피아스 카이 그노세오스'를 직역하면 '부요와 지혜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식'(the riches and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wisdom and knowledge)이라 할 수 있다(공동번역, RSV). 그러나 그 의미에 있어서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오히려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the riches of the wisdom and knowledge)이라 하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 자연스럽다(KJV. NIV. NASB). 왜냐하면 '부요함'과는 달리 지식과 지혜는 명확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Lenski). 즉 '지혜'(소피아스)는 영원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리에 대한 종합적 통찰이며, '지식'(그노세오스)은 단편적, 감각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물에 대한 인식이다. 본절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原理)이고 지식은 그 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를 뒷받침해주는 구체적인 지적 능력을 가리킨다.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계획과 구속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경륜이 연관되어 언급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앞 구절에서 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급한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다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판단'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크리마타)이란 '정죄'나 '심판'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결정'을 의미한다(Lenski,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Hendriksen). 또한 '길'(호도이)은 '하나님의 작정하심이나 행하심, 다스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심'과 연관되는데,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이 인생들에게는 측정이 불가능해서 주께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신 것 외에는 알 수도 없지만, 알려고 하면 미궁(迷宮)에 빠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헤어나지 못한다(Calvin). 혹자의 말대로 하나님의 판단과 길은 깊은 우물과 같아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무리 그물을 퍼올려도 다 이해할 수는 없다(泉田昭).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 본절부터는 세 가지 질문 형태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본절은 70인역의 사 40:13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인데, 여기서는 앞 구절과 연결시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접속사 '가르'('왜냐하면')를 첨가하였다. 또한 앞구절(33절)에서는 부정적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견해로 되어 있었지만 여기서는 의문형을 취하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은 스스로 뛰어난 모사이시기 때문에 어떤 모사가 필요없고, 오히려 그의 백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에게 모사가 되어주시는 전지 전능의 존재이시다(욥 36:22, 23). 어떠한 유한자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무한자를 파악하지 못한다(Finitum non cap ax infiniti est, '유한은 무한을 파악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 못한다'). 따라서 주께서 보여 주시는 부분만을 우리는 알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서 자신을 낮추어서(Condescensio Dei, '하나님의 낮아지심') 계시하신 사실에 대해&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만 알 수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 본 구절은 세번째 질문으로 욥 41:11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인용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들에게 모든 가치와 역할과 원리들을 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누어 주셨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 대가로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다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생각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만유의 근원이 되시며 만상의 조성자(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成者)이실 뿐 아니라 우주의 운행자이시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으시므로 받으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필요가 없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바울은 만물의 시작과 과정과 끝,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물의 근원이시며 집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행자이시며 목적이신 하나님에게로 귀속시키고 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자는 결국 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든 지혜의 근본을 깨달은 자와 다름없다(잠 1:7).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세 가지 질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형태의 찬양에 이어서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시며, 그 생성 발전의 주관자이시며,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종국적 목적(目的)이심을 선언적으로 고백한다(고후 5:18;엡 1:23;골 1:16;히 2:10).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문장은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문이었는데, 여기에는 삼위 일체론적인 송영이 감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져 있다(Davidson, Marti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세세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 아이오나스'는 '그 영원함까지'라는 의미이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6:27에서도 이 같은 송영으로 로마서를 끝마치고 있다. 따라서 이 문구는 본절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1장의 교리 부분의 대단원이 됨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EMBED style=&quot;WIDTH: 450px; HEIGHT: 35px&quot; src=http://pds1.cafe.daum.net/download.php?grpid=naN6&amp;fldid=17kN&amp;dataid=122&amp;fileid=1&amp;regdt=20061216070807&amp;disk=13&amp;grpcode=ccM&amp;dncnt=N&amp;.mp3 width=450 height=35 type=audio/mpeg loop=&quot;-1&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gt;&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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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제13장 주석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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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INGDOM</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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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9T21:25:41Z</updated>
	    <published>2009-11-29T21:25:41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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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d4c89f&quot; color=#6d201b size=5&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한복음 (13 : 1~38)&lt;/SPAN&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d4c89f&quot; color=#6d201b size=5&gt;&lt;/FON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d4c89f&quot; color=#6d201b size=5&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 이 귀절들에는 예수님의 사랑의 동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세가지 동기로써 제자들에게 사랑의 일, 곧, 발 씻는 일을 행하셨다. (1) &quot;아버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quot;(1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것은 제자들을 떠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다는 그의 인성(人性)편의 무거운 느낌에서 행하신 것. (2) &quot;마귀가...유다의 마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quot;은 줄 아시고(2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것은 가장 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으로서 제자에게 팔리운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견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없는 장면이고, 낙심될 일이다. 그런데, 그가 계속하여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는, 가장 검은 미움의 활동이 일어난 곳에 가장 부드러운 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랑으로 대하셨다. (3) &quot;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quot;(3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은, 그가 자기의 영광 받으실 사실을 아셨다는 뜻이다(마 28:18). 그는 저렇게 영광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받으실 것을 내다보시면서, 사람이 천국에서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비결을 제자들에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보여 주셨다. 그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으로 나타난 그의 겸손이다.&lt;/SPAN&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d4c89f&quot; color=#6d201b size=5&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quot;저녁 먹는 중.&quot; 이것이 유월절 만찬을 가리킨 것일까? 혹은 다른 때의 저녁 식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의미한 것일까?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유월절 하루 전(니산월 13 일 저녁)의 식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Meyer). 그러나 21-30절의 내용을 보니, 유다가 예수님을 잡&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 줄 자로 지적된 저녁인 것이 드러난다. 그 저녁은 유월절 만찬 저녁이다. 공관 복&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은 그렇게 말한다(마 26:17-25; 막 14:17-21).&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작하여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유대인의 풍속에는 보통 식사 전에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법인데, 이 때에는 식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중에 그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그 때에 이 일을 할 종이 없어서 그렇게 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듯하다.&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quot;겉옷&quot;은 저고리를 말함이 아니고 그 위에 입는 옷을 가리킨다. &quot;수건을 허리에 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르시고&quot; 이러한 차림은 종이 취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종의 자리로 내려가셔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할 준비를 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의 겸손의 극치(極致)이다. 그가 최종의 행동 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훈으로 식사 도중에 이런 일을 하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그의 별세 후에 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이 언제나 지켜야 할 겸덕을 고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은, 저렇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급을 초월하시고 영광의 주님을 사랑의 발 씻는 종으로 삼으셨다.&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고데이(F. Godet)는 추측하기를, 이 발 씻는 일이 아마도 제자들의 서로 다툰 사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눅 22:24-27)을 동기로 하고 있은 듯하다고 하였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수님의 이와 같은 봉사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1)이것으로 제자들에게 본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보이시고 서로 낮아지기를 힘써야 한다고 설교하신 셈이다(12-16). 실행으로 본을 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는 설교자는 그 설교로써 사람들의 심령을 아주 점령해 버린다. (2)이것은, 그가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속죄하시는 중보(中保)의 역사를 비유로 가르치시는 지극히 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 사랑의 행동이시다. 그가 피를 흘려서 그의 백성의 죄를 씻으신 일도 지극한 사랑&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면서 역시 지극한 겸손을 나타낸다. 유명한 변증 학자 스킬더(Schilder)는, 주님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quot;제자들의 발을 씻&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시기 위하여 물을 휘저으신 주님의 손은 죄에 속한 자에게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치, 그의 못 박히신 손에서 흐르는 피가 죄에 속한 자에게 이해되지 못함과 같다&quot;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하였으며, 그는 또 말하기를, &quot;주님께서 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뜻은, 그의 몇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자들에게만 그의 친절과 겸손의 모본을 보이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행위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써 온 세계를 찾으시는 그의 속죄의 역사를 비유하신 것이다&quot;라고 하였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 이것은 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드로가 너무 황송한 중에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은, 그가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 고기를 많이 잡은 때에도 하였으니, 그 때에는 &quot;주여 나를 떠나소서&quot;라고 하였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눅 5:8). 베드로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이렇게 인간적으로만 취급하면서 그것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황송하게 여겨 사양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의 수난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 일에 대하여 들었을 때에도 역시 &quot;그리 마옵소서&quot;라고 하였다(마 16:22). 저렇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베드로는, 예수님의 구속 사업 관계의 행위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해석&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잘못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겸손과 희생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황송(惶&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悚)하게 생각함은 좋으나 그 행하심이 구원의 행위인 것인 만큼, 그것을 감격하여 받&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야 된다.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사랑하는 것은, 병자가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겠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것과 같은 일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알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알리라 - 이것은, 그 현재에 베드로가 죄로 인하여 어두워서 깨닫지 못하나, 후에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을 날이 있을 것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발을 씻기심은, 그의&amp;nbsp; 속&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의 고난으로 신자들의 죄 씻을 것을 비유한 것이다(11절). 베드로는, 예수님의 속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죽음을 본 뒤에야 그의 발 씻기신 뜻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 베드로가 발 씻기시는 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님의 봉사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적 의미로 생각해 볼 때에 예수님의 구원 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총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받으실 영광에 참여하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amp;nbsp; 베드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여기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또 실수함을 면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심이, 구속의 사랑에 대하여는 상징하는 정도 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 사실을 베드로는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의 실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 줄 오해하고 욕심을 부렸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미 목욕하는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 예수님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자들은, 속죄를 받은 자들이라고 간주된 때 벌써 온 몸이 깨끗해진 셈이다(15:3).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러나 그들도 매일 세상과 접촉하여 허물과 죄로 더러워진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므로 그들은, 매일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에 의하여 사죄를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은 발 씻는 일로 비유된 것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단순히 겸손의 덕을 나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신 것만이 아니고, 그의 백성을 속죄하여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수님을 파는 자는 천하에 가장 더러운 죄를 범하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만민을 구속&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여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시지만, 그를 파는 유다는 깨끗지 못한 자들 중 하나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옳으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5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귀절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겸손한 봉사의 표본인 사실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보여 준다. 이 일로써 예수님이 나타내신 것은, 위 사람으로서 아랫 사람을 겸손히 봉&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하신 고상한 정신이다. 아랫 사람으로서 윗 사람에게 대하여 겸손하기는 쉬우나, 윗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람으로 아랫 사람에게 대하여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quot;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quot; 이 말씀에 기준하여, 톨레도(Toledo)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에서 발 씻는 것을 하나의 교회 의식으로 세웠다(694 A.D.).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그것을 폐지하였다. 예수님께서 &quot;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quot;고 부탁하신 것은, 다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자들더러 서로 겸손하게 봉사하라는 것 뿐이었다. &quot;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으리라.&quot; 이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진하여 형제를 겸손히 봉사하는 자가 하나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앞에 크게 간주될 것을 가리킨다(마 18:4).&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귀절부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의 상징적 의미, 곧, 구속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하여 말한다. 예수님께서 구속 사업을 이루시지만, 그 은혜에 참여할 자들은 오직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quot;내가 너희를 다 가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켜 말한 것이 아니라&quot;고 하셨다. 곧, 그의 제자들이 모두 다 &quot;복이 있을&quot;것(17절)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라, 오직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18절).&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은, 매우 친근하던 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큰 손해를 본 다윗의 경험을 들어 말씀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심이다(시 41:9).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다윗의 당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예표였던 것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를 때에 내가 그 인줄 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 예언이란 것은, 언제나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진다. 그것이 성취될 때에, (1) 그 예언을 주신 이의 진실성과 권위를 믿게 되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그 성취된 사건 자체를 믿게 되며, (3) 그 예언 성취가 지향한 장래 행복의 활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도 믿어진다.&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quot;내가 그 인줄&quot;이란 말은, &quot;나 곧 나만 좆재자요 보내심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받은 자요 메시야라&quot;는 뜻이다(Grosheide).&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이 말씀의 목적&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바는 이렇다. 곧, 비록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있다 할지라도 다른 사도들의 권위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quot;나의 보낸자&quot;. 곧,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도들을 영접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자는 결국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다. 그 만큼 사도들의 권위는 높은 것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예수님께서 그의 심령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민망하시게 된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특별히 생각되는 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그의 제자가 그를 팔아 먹는 일이 너무도 그에게는 고통이 된다는 것과, (2) 그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에 대하여 이제 공적으로 지적하여 말하기가 역시 괴로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 그는, 이제 이 일을 지적하여 말씀하시지 않으면 안될 단계였다. 그것은 너무도 확&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한 일이기 때문에, 그는 엄격한 법정 선언과 같이 &quot;증거하여&quot; 말씀하셨다. 여기 &quot;증&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quot;란 말이 법정 용어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 것이, 일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 이것은, 제자들이(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를 제외하고는)강퍅하지 않은 증표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quot;그의 사랑하시는 자&quot;는 사도 요한일 것이다.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amp;nbsp; -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것은, 유대인들의 식사할 때 취하는 자세를 말함이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있었기 때문에 저런 위치에 놓였을 것이다. 그 때 풍속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않고 왼 팔에 의지하여 옆으로 누워서 먹었다고 한다(Westcott).&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 윗절에 말한바, &quot;그의 사랑&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시는 자&quot;는 사도 요한을 가리킨 것인데, 이제 베드로가 그더러 주님을 팔 자가 누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지 알려 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생각을 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있게 되는 측근자였던 것이 확실하다.&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quot;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quot; 이것은, 유대인들이 음식 먹을 때에 원형으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팔꿈치를 의지해서 서로끼리 가슴에 기대다시피 연접하여 누워서 먹는 풍속이 있었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말한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한 조각을 찍으셔다가...유다를 주시니 - 그 당시에 연회 주인이 떡 조각을 찍어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손님에게 주는 것은 친절한 대접이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이 행동은 가룟 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의 회개를 독촉하신 사랑이다.&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 사단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간 이유는, 그가 끝까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회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눅 22:3-6; 요 13:2 참조&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9 어떤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부분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유다의 행할 악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유다는 주님을 팔 자로 지적된 때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회기하지 않고 그냥 그 악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그 좌석에서 떠나 나갔다. &quot;때가 밤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라&quot;고 한 것은, 영적 의미도 가진다. 곧, 회개하지 않는 그의 마음도 밤과 같이 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캄하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의 앞길도 영원히 캄캄할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지금 인자가 영광을얻었고 여기서 &quot;인자&quot;란 말은, 메시야를 가리킨다. &quot;영광을 얻&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었다&quot;는 말씀은, 그의 부활 승천을 의미한다는 학&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이 있다. 그러나 저가(유다가)나간 후에, 곧 이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있는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보아서,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리킨다. 유다가 나간 것은, 예수님에게 고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닥칠 것을 알게 한 사건이다. 그 뿐 아니라, 다음 절에, &quot;영광을 주시리니&quo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고 미래사(未來詞)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신 후의 일(부활, 승천)을 의미한 것을 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서도, 이 귀절의 &quot;영광을 얻었고&quot;란 과거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실 고난을 가리킨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수님은 그의 받으실 고난을 영광으로 보셨다.&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 &quot;인자를 인하여&quot;란 말은 &quot;인자 안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quot;란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과 일체이심으로, 아들이 영광을 얻으심에 따라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 자신도 영광을 얻으신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 여기 &quot;자기로&amp;nbsp; 인하여&quot;란 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하나님 계신 곳을 가리킨다. 17:5에서는, 이 뜻이 &quot;아버지와 함께&quo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란 말로 표현되었다. 그러면, 이 귀절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 층천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셔서 자기의 계신 곳에 함께 계시도록 하심을 가리킨다(6:62, 17:5, 20:17; 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9-11).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곳에 가시게 되므로 그 제자들과는 당분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누이게 된다. 다음의 33절 말씀이 그 뜻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3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터이나 그러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희에게도 이르노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이르노라 - 이 말씀이 윗절(32 절)과 무슨 연락을 가지는가? 그 연락은 이렇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주신 결과(32절 하반)로 그는 아버지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신 곳으로 가시게 된다. 그의 제자들은 당분간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6절 참조.&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랑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사랑하라 - 여기 &quot;새 계명&quot;이란 말에 대하여 우리가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amp;nbsp; (1) &quot;새 계명&quot;이란 명칭의 이유, 창조 질서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을 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혈맥으로 지으셨다고 하였는데(행 17:26),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을 자기 자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같이 사랑해야 될 근거를 성립시켰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quot;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같이 하라&quot;는 계명이 있다(레&amp;nbsp; 19:18). 구약의 계명도 사랑 중심의 것이다(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8-10).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독특한 동기들을 제공한다. 종말관적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동기. 그것은, &quot;사랑하라&quot;는 계명이면서도 구약의 예언적인 것이 성취된 종류이다.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야말로 종말관적인 것이다(요일 2:8). 예숯님의 보혈로 이루신 속죄를 믿는 자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34절 하반), 다른 신자들을 위하여 희생하며, 필요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면 그들을 위하여 죽을 처지에 있다. 영원한 기업의 동기. 같은 혈맥에 속한 자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중에서(행 17:26)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마침내 영원히 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누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구원 받은 형제들은 영원히 나누이지 않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침내 하나님 앞에 한 자리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서로끼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하여 희생할 처지에 있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amp;nbsp; (2) 새 계명을 지키는 방법. 그것은 물론 위에 관설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34절 하반에 말하기를, &quot;내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quot;고 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것으로써 사랑을 보여 주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그것이 바로 13장의 제목이 되어 있으니, 곧바로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지극한 사랑이라고, 1절은 말하고 있다. 그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겸손이지만(겸손도 사랑임-고전 13:4), 그가 그들의 죄를 씻&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10-11). 그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희생의 정신으로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대속의 희&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생은 될 수 없으나, 남들의 짐을 자신이 걸머지게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큰 사랑이다(갈 6:2). 우리가 이 진리를 이론으로 배유면서도 실제로 남들을 위해 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생할 줄은 모른다. 우리가 남들에게 대하여 이렇게 무관심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lt;/SPAN&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가 계명을 지켜야만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나 자신이 머물게 됨을 모르기 때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임. 요 15:10에 말하기를, &quot;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quot;고 하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내가 남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일을 해 보지 않기 때문임. 자식을 기르노라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온갖 희생을 한 어머니는, 그 기른 자식을 잊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그 자식을 위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희생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하여 희생해 본 일이 없는 그 자식은, 어머니를 쉽게 잊&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 버린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사랑하려면 먼저 그를 위한 희생으로 시작해야 된다.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천국 운동의 필요성을 뜨겁게 느끼지 못한 까닭임. 신자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치, 양 몇 마리가 많은 이리들 가운데 있음과 같고, 몇 백만 군대에게 포위된 것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같다. 이 세상엔 불신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 우리는 그 세력을 복음으로 이겨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 시기하거나 험담하지 말고 서로 아끼고 도와 주어야 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신자가 영원한 나라를 기억하지 못한 까닥. 그리스도께서도 그 백성을 그렇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랑하시게 된 동기가 그의 가실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심에 있었다(1,3). 32-34절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문맥도 이 내용을 보여준다. 곧, 그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영광(내세에 들어가심)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받으시게 될 것을 염두에 두시고(32 절) 이 새 계명을 주셨다.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는 자는, 이 세상의 것은 그 무엇이든지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희생한다. 한 번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구세군 사관들 109명이 아일란드의 황후(Empress of Ireland)란 배를 타고 가다가 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선되어 다 물에 빠졌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함께 빠진 자들의 구명대(救命袋) 없&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을 보고 자기들의 것을 벗어 주면서, &quot;나는 당신보다 잘 죽을 수 있다&quot;라고 하면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희생하였다. 그들은 내세를 확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기까지 사랑을 베풀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가 남을 위하여 희생할 의용이 끝까지 생기지 않으면, 한 가지는 해야 됨. 그것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가 남들을 위하여 죽기까지라도 희생할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임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가진 자는 그대로 행치 못한 처지에도 극도의 겸손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은 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amp;nbsp; (3)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신 목적. 예수님의 새 계명은 모세의 10계을 폐지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와 그의 사도들은, 모세의 10계명을 그대로 세워 나가셨다(마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37-40; 롬 13:8-10). 그는 진리이시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계시된 구약의 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들을 폐지하실 리가 없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善) 자체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설명된다. 곧, 선은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질적 의지이다. 종교와 도덕(선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련된 것)은, 서로 달라도 서로 독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함께, 우리가 하나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관계된 방면이다. 하나님의 의지 자체인 선의 표현 곧, 계명은 어느 시대의 것이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 페지되지 않는다. 모세의 율법 중 유대인들만을 위한 제도들은 신약 시대에 폐지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위한 도덕적인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십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 중 제 4 계명에, 쉬라고 한 것은 보편적 도덕 요소이다. 쉬라는 것은, 사람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을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과 집승의 피곤과 쇠약을 막는 자비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 계명은 창조 질서에 속한 선한 제도이다. 곧, 이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모세 이전에 온 인류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었다. 다만 안식일을 지키는데 관계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벌칠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므로 변동되었다.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범한 자를 죽인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신정 국가(神政國家)의 시대, 곧, 정교 일체(政敎一體) 새대에 속한 것이었다. 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식일과 날자 순서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신약 시대에 그 날자가 변한 것&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제 7일(토요일)이었던 것이, 신약 시대에는 7&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 중 첫날(주일)로 변경되었다. 그것이 그렇게 된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창조(創造)를 기념했으나, 기독자는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을 기념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여기 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른바, &quot;서로 사랑&quot;한다는 것은, 인도주의(人道主義)에 속하는 사랑이 아니고 주님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믿으며 사랑하는 일의 열매이다. 모든 사람들(세상)이 이 사랑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실별한다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 말씀이다. 이것은, (1) 예수님의 제자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표가 사랑이라는 말과 같고, (2) 또한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17:21-23 참조&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7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목숨을 버리겠나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부분의 말씀은, 베드로의 결심과 예수님의 예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quot;가신다&quot;는 것(33 절), 그가 죽어서 하나님 계신 하늘 나라에 가실 것을 가리킨 것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오해하고 질문하기를, &quot;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t;라고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였다(36 절).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가시는 곳에 목숨을 버리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였다. 그것은, 진리대로 움직인 신앙의 용기가 아니고 하나의 유적인 용기였다. 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님은, 베드로의 육적인 용기를 꺾어 겸손하게 하시려고 예언의 말씀으로 고하셨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니, 곧, &quot;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quot;고 하셨다(38 절). 그가 이렇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경고하신 이유는, 육적 용기는 도리어 주님께 대한 신앙과 충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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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호수아 제11장 주석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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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KINGDOM</name>
	    </author>
	    <updated>2009-11-29T21:17:23Z</updated>
	    <published>2009-11-29T21:17: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호수아 (11 : 1~23)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솔 - '성'(城) 또는 '요새'(要塞)란 뜻으로, 당시 가나안 북부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장 크고 강력한 왕도(王都)였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그 위치는 갈릴리(긴네렛)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다 북쪽 약 15km 지점, 훌레(메롬) 호수 서쪽 약 7km 지점의 '텔엘 - 케다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Tell el - Qeday)로 추정된다(Y. Yadin). 그리고 그 크기는 약 200에이커(1에이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약 4km )에 이르는데, 이는 라기스의 18에이커, 므깃도의 14에이커, 여리고의 8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커에 비하면 그 크기와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가히 짐작된다(L. Wood). 그러나 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솔은 메롬 전투 패배 후 여호수아에 의해 불태워졌다(11절). 이후 가나안 땅 분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에는 납달리 지파에게 주어졌고(19:36), 사사 시대에는 다시 복구되어 수도가 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었으나, 곧이어 사사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정복당하였다(삿 4:2, 17; 삼상 12:9).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후 솔로몬이 중수하여 요새화 하였으나(왕상 9:15), 결국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세에 의해 함락당하고 그 성 거민들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왕하 15:29).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야빈 - '지략가'(智略家)라는 뜻인데, 이는 당시 '하솔'(Hazor) 성을 통치하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최고 군주에게 붙였던 일반적 명칭이었다(삿 4:2). 당시 하솔이 북부 가나안에서 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장 큰 도시 국가로 그 세력이 컸던 만큼, 하솔 왕 야빈(Jabin) 역시 당시 가나안 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 지역의 최고 실권자로 그 권세가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야빈은 여호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 군대를 대적하기 위해 북부 가나안의 모든 왕들을 불러 모아 북부 동맹군을 만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데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소식을 듣고 - 여기서 '이 소식'이란 이스라엘이 기브온 전투에서 승리한 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남부 가나안 전역까지 정복했다는 소식을 가리킨다(10:40-42). 사실 그는 보다 일찍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 군대에 대항할 수 있도록 준비 했어야 했는데, 위험이 눈 앞에 닥치자 서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 부랴부랴 동맹군을 경성한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마돈 - 디베랴 서북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카른 하틴(Qarn Hattin)으로 추측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데, 이곳은 본절과 12:19 두 구절에만 언급되어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므론 - 디베랴 남쪽 19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가나안 북부의 주요 성읍인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후에 스불론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9:10, 15).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악삽 - 악고 동남쪽 11.2km 지점에 있는 현재의 텔 키산(Tell Kisan)으로 추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는데, 후에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9:25).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북방 산지 - 납달리 지파의 경계를 형성하는 갈릴리 지역의 산악 지대를 가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킨다(19:32-39). 곧 산악 지대로 형성된 북부 지역을 가리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긴네롯 남편 아라바 - 아라바(Arabah)는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의 대계곡을 가리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16). 따라서 '아라바'는 성경에 나오는 땅 이름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는 지리 구역 이다. 한편, 영역본 KJV는 그 지역을 대부분 사막, 벌판, 혹은 광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번역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평지 - 지중해안을 따라 멀리 욥바까지 이어지는 세펠라(Shephelah) 평원 지대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리킨다(9:1; 10:40).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돌 - 가이샤랴에서 북쪽으로 약 12.8km지점, 갈멜 산 남쪽 약 17km 지점에 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치해 있는 팔레스틴 해안의 요새화된 성읍이다. 이곳은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았기 때문에, 아주 고대로부터 베니게 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살았다. 가나안 정복 후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다시 므낫세 지파에게 주어졌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7:11). 오늘날의 '탄투라'(Tantura)로 추정된다(Wilson, The Holy Land).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 동서편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산지의 여부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람과 미스바 땅 헤르몬산 아래 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동서편 가나안 사람과...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매 - 하솔 왕 야빈과 동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맹한 가나안 여러 족속들은 북부 팔레스틴의 거의 모든 족속들을 총괄하고 있다. 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편, 이들 각 족속에 대해서는 9:1-2 강해,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들'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미스바 - 요단 서편에는 '미스바'(Mizpah, '망대'란 뜻)라는 이름을 가진 지명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세 곳 나오는데, 본절과 8절에 기록되어 있는 미스바는 유다 지파의 미스바(15:38)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 베냐민 지파의 미스바(18:26)가 아닌것이 분명하다. 한편 8절에는 여호수아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북부 가나안 동맹군을 메롬 물가에서 쳐부수고 그들을 추격할 때 '동편으로는 미스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골짜기'까지 뒤쫓아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헤르몬 산 동남쪽 지역으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추정될 뿐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헤르몬 산 - 아모리인들은 이 산을 스닐 산이라고 불렀다(신 3:8; 겔 27:5).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헤르몬(Hermon) 산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지역의 북방 한계선이었다(11:17;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17). 그리고 당시 히위 족속은 헤르몬 산 기슭에 거주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신 3:8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 이러한 표현은 '수효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매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많은 것'을 비유한 것으로, 창 22:17; 32:12; 삿 7:12; 삼상 13:5 등에도 나타나 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한편, 수많은 보병 뿐 아니라 북부 연합군들은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고 기록&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고 있는데, 1세기의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는 당시 그들에게 30만 명&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정예 보병, 1만 명의 기병대, 그리고 2만 명의 병거 부대가 있었을 것으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추정하였다(Campbell, Matthew Henr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 이 왕들이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에 함께 진 쳤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메롬 물가 - 일반적으로 이곳은 갈릴리 바다 서북방 15km 지점, 예벨 야르막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Jebel Jarmag) 기슭에 있는 메이룬(Meirun) 마을과 동일시 되고 있다. 구약 사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올브라이트(Albright)는 메이룬 근방 유적지 경사면에서 후기 청동기와 초기 철기 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의 유물들을 발견한 후 메이룬과 메롬(Merom)을 동일시 하였다. 이곳은 악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ccho)로부터 갓(Gad)을 경유하여 갈릴리의 가데스(Kadesh)로 가는 주요 도로상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치해 있다. 아래 지도를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함께 진쳤더라 - 여기서 보듯 가나안 북부 연합군들이 함께 진을 쳐서 이스라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게 대항한 곳은 메롬(Merom) 물가였다. 이 메롬 물가의 전투는 대단히 중요한 전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서, 지금까지 중부, 남부를 모두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한 가나안 족속들로서는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쟁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으므로 북부의 모든 잔존 세력들이 총규합한 전투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만일 가나안 북부 연합군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가나안 땅 전체는 이제 이스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엘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이 메롬 전투에서 패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게 되면, 그동안 다져놓은 모든 기반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치명타가 될 밖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없었다. 따라서 이 일전(一戰)은 가나안 땅의 주인을 결정짓는 피할 수 없는 한판 승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였던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 병거를 사르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두려워 말라 - 이미, 요단 강을 건널 때(1:6, 9), 아간의 죄로 말미암아 아이 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정복이 실패한 후 다시 정복하기 위해 출전할 때(8:1), 그리고 가나안 남부의 다섯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동맹국을 정복하러 가기 적전에(10:8), 같은 말씀으로 용기를 북돋워 주셨던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서는 이제 가나안 북부 대군과의 일전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번 같은 말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격려하고 계신다. 아마 이전의 여러 어려운 전투에서 하나님의 이 격려의 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씀과 그의 능력으로 연전 연승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이전보다 더욱더 이 말씀에 용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와 확신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 말씀에 근거하여 승리의 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을 갖지 못했다면, 바다의 모래같이 많고 더욱이 발과 병거로 무장한 북부의 연합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군을 보고 겁을 집어 먹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의 여러 전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경험을 통하여 이 말씀에 대해 충분히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Calvin).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일 이맘 때에 내가...몰살시키리니 - 본절은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자들은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라엘 백성이지만, 궁극적으로 승리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을 명확히 보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준다. 이미 가나안 남부의 다섯 동맹군을 패배케 하셨던 하나님께서는(10:8-10),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 가나안 북부의 전체 동맹군들을 패배케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한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던 '길갈'에서 '메롬'까지는 거리상으로 볼 때, 하루만에 간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는 이미 길갈에서 북진하여 하루만에 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롬에 당도할 수 있을 만큼의 장소에 진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Campbell).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로 하여금 메롬 전투 승리 후, 노획한 말의 뒷발 힘줄을 끊음으로써 말을 전투용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고(창 49:6), 또한 병거를 불사름으로써 이방 족속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의 전투 방식을 따르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기병대와 병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로 무장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이 기병대와 병거를 더의지할 우려가 있었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며, 따라서 승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보다는 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병기 등 세상적인 것에 돌릴 염려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 17:16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는 이스라엘 왕 될 자는 말과 병거를 많이 갖추지 말라는 계명이 주어지기까지 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며, 시 20:7에는 &quot;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름을 자랑하리로다&quot;라는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 실로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군인으로서 적군과의 생사를 건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나 그 방법상 그들은 세상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전쟁을 홀로 주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의지해야 했으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만 진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무적의 군대가 될 수 있었다(Calvin).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7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에 여호수아가...졸지에 습격할 때에 - 당시 가나안 지역은 여러 작은 도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국가 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설사 이스라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하여 여러 국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들이 동맹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일사 분란한 지휘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 헛점을 노려 가나안 북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동맹군이 체제를 정비하여 공격해 오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기습적으로 공격해 올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갔다. 가나안 북부 동맹군들은 아직은 이스라엘이 그들로부턴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스라엘 군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만 것이다. 따라서 이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엘은 동맹군들에 비해 분명 전력은 약세였지만, '내일 이맘 때에' 그들을 이스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엘 손에 붙이시켓다는 하나님의 약속(6절)을 의지하고 오직 믿음으로 기습 공격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행하여 가나안 북부 동맹군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다(Pulpit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Commentary). 기습 공격은 흔히 약자(弱者)가 강자(强者)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법으로 여호수아는 기브온 전투에 이어(10:9) 메롬 전투에서도 이 전술을 적절히 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용하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졸지에'에 해당하는 '피테옴'은 '눈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깜빡이다'(wink)란 뜻의 '페타'에서 유래한 말로, 곧 상대방이 전혀 예측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메롬 전투'(The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attle of Merom)의 대승리는 (1)하나님의 도우심, (2)여호수아의 전술 전략, (3)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라엘 군대의 용기 등이 일체가 되어 빚어낸 혁혁한 전과였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8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하고 쳐죽이고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와께서 그들을...손에 붙이신고로 - '손에 붙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탄'은 '주다'를 뜻하는 말로, 곧 하나님께서 친히 대적들의 운명을 이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엘에게 내주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개인은 물론이요, 모든 민족과 국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운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이 말은 여호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서에서 가나안 정복 전쟁, 곧 하나님의 성전(聖戰)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8, 12, 19, 30, 32; 11:6, 8; 21:44; 24:11).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돈 - 두로 북쪽 약 30km, 예루살렘 북쪽 약 165km 지점에 위치에 있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돈(Sidon)은 베니게의 가장 유명한 대도시 중의 하나로, 두로(Tyre)와 더불어 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 상업 도시로 유명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성은 B.C. 2000년경 이전에 함의 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 '시돈'에 의해 건설된 성이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 후에는 아셀 지파에게 분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었으나(19:28), 이곳 원주민을 완전 정복치 못하고 섞여 살게 되었다(삿 1:31).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예루살렘 성전 건축시 솔로몬은 벌목을 위해 이곳 시돈 사람들을 고용하기도 했다(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 5:6).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시돈 출신의 이세벨과 결혼함으로 바알신 숭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배가 이스라엘에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왕상 16:31-33). 한편, 그런데 여기서 '큰 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돈'(Great Sidon)이라 표기한 것은 당시 베니게의 수도인 그곳의 중요성을 나타내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함이었다(Keil, Lias). 아울러 이는 본서의 기록 연대가 고대임을 알려 준다. 왜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면 다윗시대 이후로부터 시돈의 영광은 점차 감소되어 결국 두로에 뒤떨어지게 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미스르봇 마임 - '더운 물'이란 뜻으로, 시돈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두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Tyre)와 악고(Accho)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름의 뜻으로부터 혹자들은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곳을 '온천 지대' 또는 '염전 시대'로 보기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오늘날의 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치는 '엘 나쿠라'(el Nakhura)로 추정되는데, 이 지역 일대에는 많은 온천들이 널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Fay, Keil).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미스바 - 본절에는 미스바 골짜기로, 3절에는 미스바 땅으로 언급되어 있다. 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릴리 북부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 10:28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9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 가축의 힘줄은 한번 잘리면 다시 회복될 수 없다. 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서 이 명령은 노획한 말을 전마(戰馬)로 다시 사용할 수 없게끔 완전 무용하게 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라는 의미이다(창 49:6). 이것은 후일 다윗 때에도 시행된 적이 있었다(삼하 8:4;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상 18:4).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 6절에서 지시된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순종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했음을 알 수 있다. 평생을 군인으로서 살아온 여호수아가 전쟁의 가장 큰 노획물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과 병거를 아낌없이 못쓰게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신앙이었다. 한편, 여기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병거는 그 전체 틀이 나무로 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시 46:9).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 죽이고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 였더니 - 하솔(Hazor)은 당시 가나안의 군사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당시 가나안 북부 동맹군의 주동이 될 수 있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절). 마리(Mari)왕국의 문서 보관소에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 하솔은 비옥한 반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옥토 지대의 전초 지점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하솔이 중요시 되는 것은 그 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략적 위치 때문이었다. 즉 팔레스틴 남서쪽 해안가를 달리는 비아 마리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Via Maris) 대로는 므깃도에까지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하나의 도로가 북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안선을 따라 악고와 두로에까지 이어지며, 또 다른 도로는 내륙으로 돌아 하솔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어지고, 계속 북쪽으로 나아가 '아벨 벳 마아가'(Abel-Beth-Maachach)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욘(Ijon)및 레바니스베가(Lebanese Bega) 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하솔에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남북 도로가 하나로 합해지며, 또한 하솔 근처 훌레 호수 바로 아래로는 요단 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건너 다메섹으로 가는 도로가 하나 있었다. 약 B.C. 855년경 벤하닷 I세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C.733년경 디글랏 빌레섬 III세는 모두 이 도로를 통해 팔레스틴을 침입했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왕상 15:20;왕하 15:29).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솔을 취하고 - 하솔(Hazor)은 가나안 북부 동맹군의 주동 성읍이요,이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메롬 물가 전투의 선봉 성읍 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다른 어떤 성읍 보다도 가장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먼저 이 하솔을 철저히 정복 하였다. 따라서 하솔은 이와같이 정복당한후 특별히 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름을 당한다(13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진멸하여 - 기본 동사 '하람'은 '분리하다', '바치다', '구별하다'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뜻인데, 곧 이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기 위해 분리된 것, 또는 하나님의 저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받아 죽기로 바쳐진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그 대상은 철저한 죽임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면치 못했다. 신 2:34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 가나안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멸 명령(신 7:2)을 여호수아는 집행관의 자격으로서 그대로 수행했다. 신 20:16 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 성서 고고학자 야딘(Y. Yadin) 팀에 의한 발굴 결고, 옛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솔 유적지의 여러 지층에서 파괴되고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하였다. 그중 지층 III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시가 13세기 이전의 것으로, 아마 여호수아에 의해 파괴되고 불살라진 도시일 것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추정된다(L. Wood,Survey of Israel's Histor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 모세는 신 7:1, 2; 20:16, 17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가나안 족속 중 호흡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모든 가나안 족속을 철저히 진멸한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종의 명령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유아까지 진멸한 것은, 물론 구속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적으로 죄악의 철저한 근절이라는 성전(聖戰)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지만(10:28),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제적으로는 후일 가나안 땅에 대한 부모의 권리 주장을 사전에 봉쇄시키기 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니하였으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 여기서 '건축된'에 해당&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기본 동사 '아마드'는 '계속 서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당&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 가나안 북부 대부분의 성읍들이 산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암시한다(Keil).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나 이것은 혹자의 견해처럼 '계속 버티고 있는'(Calvin ; KJV - stood still in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their strength) 동작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이 산 위 성읍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저항 때문에 정복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실용적 가치 때문에 점령 후 일부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불사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성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주지로 사용&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했을 것이다(신 6:10; Matthew Henry, L. Wood).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4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가나안 족속의 호흡 있는 자는 하나의 예외없이 모두 진멸해야 했다(신 20:16).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러나 여리고 성만을 제외하고는 그 성읍의 재물과 가축은 전리품으로 취득할 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었다(8:2). 여리고 성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정복한 첫 성읍으로서, 오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6:21).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5 여호와께서 그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없었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모세는 여호수아에게 -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게 출 34:11-16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 인들과 언약하지 말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며, 그들과 혼인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고, 민 33:51-56에서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러한 내용을 재차 반복하며 명령하셨다. 이에 모세는 신 7:1, 2에서와 20:16, 17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여호수아에게 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의 명령을 받아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해 주는 모세와 또 이명령을 받아 차질없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철저히 실천에 옮기는 여호수아의 모습에서 선임 지도자와 후임 지도자 사이의 아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운 신앙적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이로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 또는 모세로 부터 간접적으로든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멸열을 철저히 순종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 실행하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 여호수아는 비록 이스라엘 군대의 최고 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자이지만, 결코 그의 자의로 가나안 족속에 대해 어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가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안 정복 전쟁은 여호수아의 전쟁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의 전쟁이기 때문이었다. 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서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인도 . 통솔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그러므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분은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셨으며(10:14), 그 결과 연전 연승할 수 있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명(命)을 좇아 그대로 실행해야만 했고, 또 그대로 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행했던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 온 땅...취하였으니 - 본절에서부터 23절까지는 가나안 정복이 완수된 사실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하여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의 전체 지역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소개하고 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를 차례로 모두 점령함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써 가나안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땅은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해 오신 땅으로(창 15:12-21),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결국 가나안 정복은 그 하나님 언약의 성취였던 것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성취시키기 위해 친히 이스라엘의 가낭나 정복 전쟁에 참여하사, 가나안 족속들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게서 그 땅을 빼앗아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 - 이 표현은 '가나안 남부 지역'을 포괄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묘사하는 말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10:40, 41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라바와 이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 - 이 표현은 '가나안 북부 지역'을 포괄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로 묘사하는 말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2절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7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에서부터 헤르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으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세일 - '세일'(Seir, '거칠고 험한 산지'란 뜻)은 에돔의 산악지대로서 사해 남&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쪽, 아라바 저지대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름의 뜻 그대로 험준한 지형의 세일 산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에돔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데, 본래는 호리 족속이 차지했던 곳이나, 후에 에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후손인에돔 족속에게 정복당했다(신 2:22).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할락 산 - '할락 산'(Mt. Halak, '민둥 산', '매끄러운 산'이란 뜻)은 여호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의 남방 경계지역으로, 브엘세바 남방 42km 지점에 위치해 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오늘날의 &quot;예벨 할락'(Jebel Halaq)과 동일한 산으로 추정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레바논 골짜기의 바알 갓까지라 - '레바논 골짜기'는 베니게 해안에서 가까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륙에 있는 산악 지대이며, '바알 갓'(Baal-Gad)은 레바논 산과 헤르몬 산 사이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치해 있는 성읍으로, 여호수아가 정복한 가나안 땅의 북방 한계선이다. 이곳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약 시대의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과 동일시 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지는 여러 날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지는 여러 날이라 - 가나안 정복 전쟁의 기간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결코 짧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갈렙(Caleb)의 나이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추정 가능하다. 즉 갈렙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탐지했을 때의 나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40세였고(14:7), 또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38년이 걸렸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문에, 그가 요단 강을 건넌 때는 78세였다. 그리고 당시 전쟁이 다 끝나갈 무렵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이가 85세였으므로(14:10), 가나안 정복 전쟁 기간은 거의 7년이 걸린 셈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9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바 되었으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 이스라엘과 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브온 거민들이 화친 조약을 맺게 된 사실에 관해서는 9:3-15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기브온 거민들은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진멸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길이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는 것임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이는 방법까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동원하여 결국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그들만이 유일하게 목숨을 건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있었고, 나머지 가나안 모든 족속들은 모두 진멸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들의 마음이 강팍하여...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 이 구절은 화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조약을 맺은 기브온 거민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가나안 거민들이 이스라엘과 대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여 싸운 것은 그들의 마음이 강팍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팍해지는 마음을 내버려 두셨다고 말하고 애쓴 구절이다. 이는 마치 애굽 왕 바로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음이 강팍하여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음이 강팍해지도록 내버려 두신 것과 같은 경우이다(출 4:21; 7:13, 22; 8:15,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2; 9:12, 35; 10:1; 14:8). 그런데 이 구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 즉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호와께서 가나안 거민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신 것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해 그들을 강팍케 하신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나안 거민들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다는 것은 원래 강팍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않은 마음을 일부러 강팍케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강팍케 되는 것을 내버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셨다는 뜻이다. 따라서 강팍의 책임은 오직 가나안 거민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찌기 창세기 15:16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드할 때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의 애굽 노예 생활을 마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가나안 땅에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가나안 족속의 마음이 강팍해질대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강팍해진 지금에야 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한편 '강팍케 하다'에 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당하는 히브리어로 본절에는 '하자크'가 사용되었는데, 성경에는 이와 동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뜻을 가진 히브리어 카솨와 아메츠가 더 있다. 이 단어들은 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 주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완고한 저항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출 9:12 주석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 본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하신 말씀이란 가나안 족속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도록 명령하신 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0:16, 17의 말씀을 가리킨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 때에 - 이는 가나아 나정복 전쟁의 전 기간을 포괄적으로 함축하고 있느 말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수아가...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 가나안 정복 전쟁의 종결 부분에서 특별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나안 남부의 헤브론(Hebron)에 거주하고 있던 아낙 사람(14:12; 15:13; 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22, 28, 33)을 멸절한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었기 때문이다. 즉 출애굽 제 2년, 모세의 명령을 받아 여호수아를 포함한 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 보고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외한 열명의 정탐꾼들은 아낙 사람(the Anakims)을 힘세고 무서운 거인으로 묘사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만들었고, 결국 가나안 정복을 지연시키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였다(민 13:33).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여호수아서 저자는 과거에 이스라엘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게 그와같이 큰 공포심을 갖게 했던 아난 거민의 진멸을 서술함으로써, 가나안 정복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보다 생동감 있게 전달해 주고 있다. 아울러 당시 이스라엘이 아낙 사람에 대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토록 지레 겁을 집어 먹은 것은 오지기 믿음이 부족해서였음을 은연중 꾸짖고 있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헤브론 - 10:3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드빌 - 10:38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납 - 헤브론 남서쪽 약 17km 지점, 유다 산지에 있는 성읍으로 드빌과 가까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시 이곳에 거주하던 아낙 거민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몰아내었다. 오늘날 이곳은 '길벳 아납'(Khirbet Anab), 또는 헤브론 남서쪽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는 '아납'(Anab)으로 추정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낙 사람 - 가나안 족속보다 훨씬 이전에 그 땅에 거주했던 원주민들로, 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브론(Hebron)을 중심으로 주로 팔레스틴 여러 산지(山地)에 흩어져 살던 족속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족속은 아주 키가 크고 강하였기 때문에,그 소문이 이스라엘에게서 속담처럼 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신 9:2)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민 13:22;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 1:28;9:2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가사 - 가나안 남서쪽 지중해안에 위치한 블레섹의 5개 주요 성읍(가사, 아스돗,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스글론, 에글론, 가드) 중 하나로, 당시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하에 있었다(13:3).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41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가드 - 블레셋의 5개 주요 성읍 가운데 최북부에 위치한 성읍이다. '가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Gath)는 다윗과 싸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고향이며(삼상 17:4), 동시에 다윗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충복 잇대의 고향이다(삼하 15:18-22). 그리고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다윗은 이곳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 번이나 피신하였고(삼상 21:10; 27:2-7), 또한 한때 언약궤가 머문 곳이기도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삼상 5:8, 9; 삼하 6:11). 후일 이곳은 다윗에 의해 정복당했고(삼하 21:20), 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다(대하 11:8). 이곳은 오늘날의 '텔 엘 사피'(Tell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el-Sahfi)로 추정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스돗 - '진'(陣)이란 뜻의 '아스돗'(Ashdod)은 가사 북쪽에 위치한 주요 교통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문이다. 이곳은 '다곤' 우상 숭배의 본산지로서, 가나안 땅 분배시 유다 지파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할당되었으나 정복지 못했다(수 15:47). 후일 웃이야 왕이 정복하여 견고히 요새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햇으나(대하 26:1). 신약 시대에는 '아소도'란 명칭으로 불리웠다(행 8:40).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약간 남았었더라 - 위에 언급된 3성읍 곧 가사, 가드, 아스돗에 아낙 자손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약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전지역을 골고루 완전히 정복한 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아님을 보여 준다. 사실 정복 전쟁은 내륙의 평지와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수행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었기 때문에, 지중해 연안 해변 지역은 여호수아의 손길이 닿을 수 없었다. 그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 가나안의 주요 거점들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이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가나안을 이스라엘이 점령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지역들은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역을 분배 받은 각 지파의 점령 대상지로 남겨졌던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온 땅을 취하여...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사를 종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짓는 구절로, 마침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 띵모두 정복함으로써, 이제 정복을 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전쟁이 더이상 필요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의문을 갖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게 되는 것은 13:1-6; 17:14이하 등에서는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땅이 가나안에 많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남아 있다고 하면서도,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온 땅을 정복했다고 기록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점이다. 그러나 이와깊이 '온 땅을 취했다'고 하는 표현은 결코 문자 그대로 가나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지역을 빠짐없이 골고루 전부 정복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나안 거민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더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할만큼 그 세력이 약화된 것을 뜻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다시 말해 이 말은 가나안에 대한 지배권이 더이상 가나안 족속에게 있지 않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에게 있음을 뜻한다. 사실 완전한 가나안 정복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야 성취되는데,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정복지 못한 지역의 가나안 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들과 많은 지엽적인 싸움을 치러야 했다. 아무튼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모두 정복하였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제 여호수아는 정복한 땅을 12지파에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13-19 장에 기록되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한편, 본절과 13장 사이에 있는 12장에서는 일찍이 요단 동편 땅에서 정복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 왕과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정복한 31왕을 열거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으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완료되었음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 이 말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땅 분배사를 한마디로 압축한 서언이다. 가나안 땅 분배는 하나님의 명을 좇아 제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뽑기를 통해 실시되었는데(민 26:52-56), 이는 그 땅을 허여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심을 보여 준다. 구체적인 분배 내용은 13-19장 부분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P&gt;
&lt;UL&gt;
&lt;CENTER&gt;&lt;EMBED style=&quot;LEFT: 0px; WIDTH: 286px; TOP: 0px; HEIGHT: 46px&quot; src=http://pds20.cafe.daum.net/download.php?grpid=fO39&amp;fldid=2hBW&amp;dataid=53&amp;fileid=1&amp;regdt=20050903040151&amp;disk=1&amp;grpcode=akbonara1&amp;dncnt=N&amp;.wma width=280 height=45 type=audio/x-ms.wma&gt;&lt;/CENTER&gt;&lt;/U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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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출애굽기 제34장 주석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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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9T21:11:16Z</updated>
	    <published>2009-11-29T21:11:1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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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출애굽기 (34 : 1~36)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돌판 둘을...깍아 만들라 - 처음의 돌판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셔서 모세에게 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셨으나(32:16), 두번째 돌판은 모세가 만들어야 했다. 따라서 이것은 첫번 돌판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신적인 권위나 신성함이 다소 떨어졌을 것인데 이것은 범죄한 인간이 회개하면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사함을 받아 회복은 되지만, 그 휴유증은 남는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깍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만들라'의 '페살 레카'는 '파살'(깍다, 새기다)의 재귀 명령형으로 '네 자신이 깍&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 만들라', (다른 사람이 아닌) '네가 깍아 만들라'는 뜻이다. 즉 이는 돌판을 만&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어야 하는 주체가 모세임을 강조하는데 돌판을 깨뜨린 당사자가 모세이기 때문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더 그러할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처음 판에 있던 말 - 이 말은 20:2-18 에 나오는 '십계명'(Ten Commandments)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가리킨다(28절). 한편 이 십계명이 두 돌판에 어떠한 형태로 기록되었는 지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해서는 신4:13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내산에 올라와 -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내 산에 오르내린 행정에 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서는 19:16-25 강해, '시내산과 모세'를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내게 보이되(니차브타 리) - '보이다'로 번역된 '나차브'는 '자리잡다', '배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다' 혹은 '세우다'(설립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내 앞에 자리를 정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서 있으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하게 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 문자적으로는 '산 전체에 아무도 보이지 않게 하고'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뜻이다. 이 같은 명령은 처음 계약을 체결할때도 주어졌었는데(19:12,13), 그 이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계약이 체결되는 산은 하나님께서 강림해 계시는 곳으로서, 곧 성소로 간주되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 때문에 모든 죄악된 요소들과 구별되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룩성은 세상의 죄악된 요소와는 결코 함께 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교훈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그 두 돌판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시내 산 - 모세는 이 산, 즉 호렙 산에서 민족 해방의 사명을 받고(3:1-14) 느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산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신32:49,50). 또한 모세 외에도 성경상의 많은 인물들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산이나 들 혹은 강변에서 계시를 받곤 하였다(왕상 17:1-9;19:1-18). 이처럼 산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경상의 중요 사건과 종종 관련을 지니는데 이는 그곳이 세파에 시달리는 성도들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과 보다 깊은 영적관계를 나누며 영혼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 것이다(마14:23). 한편 시내산과 호렙 산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3:1 주석을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반포하실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구름 가운데 -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33:9). 그런데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서는 비단 구름 뿐 아니라 불과 연기(창15:17), 폭풍우(욥 38:1), 세미한 음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왕상19:12)등을 통하여서도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와 함께...반포하실새 -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그와 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 에서의 '그'가 하나님일 수도 있고 모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반포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로 번역된 '카라'는 '선언(선포)하다'는 뜻도 있지만 기본 의미는 '이름을 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르다'이다. 따라서 '그'를 하나님으로 볼 경우 본절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구름 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운데 강림하시고, (모세는) 그와 함께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가 된다. 반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를 모세로 볼 경우에는 한글 개역과 같이 되는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이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같은 입장이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신 것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영광의 상징을 보여 주겠다고 하신 약속(33:22)의 성취이다(Calvin).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으로, 인간에게 찾아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셔서 스스로를 계시해 주신다. 그러한 하나님께선 모세를 부르실 때(3:14), 십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을 주실 때(20:2) 자신을 '여호와'로 소개하셨는데 이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행동을 함께 나타내는 것으로(3:14) 하나님이 세상의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심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리킨다(3:15).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이름이 반복해서 선포된 것은 그 의미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강조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모세로 하여금 뒤따르는 계시를 삼가 경청하도록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 위함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더디하고(에레크) - '길다', '연기하다'는 뜻의 '아라크'에서 유래했으며 '인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다'는 뜻도 포함한다. 따라서 '화내는 것을 연기한다'거나 혹은 '화를 참는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의미인데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끝까지 참고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여실히 증거해 주는 말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여 그 은혜가 훨씬 더 크다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실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20:6). 한편 20:6에서는 '베푼다'에 해당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원어가 '만들다', '행하다',는 뜻의 '아사'인데 비해 여기서는 '지키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보존하다'(보호하다), '준수하다'는 의미의 '나차르'가 사용되었다. 이는 좀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발전된 형태로, 곧 하나님께서 자손들에게까지 인자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반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 지키겠다는 뜻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악과 과실과 죄 - 여기에 해당하는 원어는 '아온'(악)과 '페솨'(과실) 두 가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데 한글 개역 성경과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세 가지로 번역했다. 이것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마도 '형벌받을 자'로 번역된 '하타아'가 '범법'이라는 뜻을 지니기 때문에 중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복해서 번역한 것 같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형벌 받을 자(하타아) -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난 경우를 가리키는 '하타'(빗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가다)에서 온 말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을 의미 하는데 이러한 자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결단코 면죄하지 않고(나케 로 예나케) - 동일어의 반복에 의한 강조 구문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본형 '나카'는 '깨끗하다', '무죄하다'는 뜻으로 본문을 직역하면 '결단코 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한 채 두지 아니하고'가 된다. 한편 20:7의 '죄 없다고 아니하리라'도 '로예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케'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 직역하면 '아버지의 악을 아들들에게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고(그 아들들의) 아들들에게 세 번 네 번까지'이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의 은혜에 비하여, 그 진노는 아주 작은 것임을 묘사한 수사학적 표현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러나 이 말은 조상이 지은 죄의 영향이 후손들에게까지 은연 중에 미치게 됨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깨워 준다(Rosenmuller).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병행 귀절인 20:5,6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엎드리어 - '몸을 숙이다' , '구부리다'는 뜻으로 주로 '솨하'(경배하다)와 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합해서 예배 행위를 나타낸다(4:31).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엎드린 것은 예배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해서라기 보다 외경심으로 인해 몸을 숙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렸다는 것에 의해 뒷받침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9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서 행하옵소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삼으소서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은총을 입었거든 - 여기서 '은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헨'은 33:19에 언급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혜'란 말과 같은 단어이다.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겠다고 하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 약속에 근거해서 지금 중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인이 약속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근거해 드리는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5:16). 한편 '은총'에 대한 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세한 설명은 33:19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 중에서(베키르베누) - 기본형 '케레브'의 본래 의미는 '가장 가까운 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분', 즉 '중심', '한 가운데'란 의미로서 '접근하다', '가까이 있다', '합세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는 뜻의 동사 '카라브'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엘의 중심부에 오셔서 '합세' 해달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목이 곧은 백성 - 32:9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주의 기업 - 직역하면 '주의 소유'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해당하는 '나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몫', '차지', '유산'등의 뜻이 있기 때문에(23:30;32:13;민18:20;수16:4;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32:9), '주의 기업'보다는 '주의 소유'라는 말이 더 좋다. 벧전 2:9에서 사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베드로는 성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너의 머무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임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언약을 세우나니 - 이 말에 해당하는 '카라트'는 원래 '자르다', '베어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뜻이다. 고대에는 계약을 체결할 때 고기를 '베어' 조각낸 뒤 계약의 당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들이 그 사이로 지나갔는데(창 15:10-17), 여기에서 '카라트'가 '계약을 맺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는 뜻으로 전용(轉用)되었다. 한편 이 말의 명사형인 '케리트'는 '절단'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란 뜻인데 같은 이유에서 '계약'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5:10, 17 주석 부분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행치 아니한 이적 - 이는 이스라엘이 향후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는 데 있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놀라운 역사를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요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동편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정복 사건(신2:26-3:17), 요단 강물이 멈춘 사건(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16,17),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수 10:12-14) 등이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소위(마아세) - '만들다', '행하다', '성취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닌 '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에서 유래한 말로 '행동', '일', '활동'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특히 '작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 또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품'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전에 행하신 출애굽 사건과 이후 행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 가나안 정복 사건이야 말로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쫓아내리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삼가 지키라 - '준수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란 뜻의 '솨마르'와 '네 스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너를 위하여'라는 뜻의 '레카'가 결합된 강조문이다. 특히 '솨마르'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세밀하게 보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지킬 때 이와 같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실행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모리 사람과...여부스 사람 - 소위 가나안의 후기 원주민들로 불리우는 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 들이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2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언약을 세우지 말라 - 23:32 주석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올무가 될까 하노라 - 문자적으로는 '올무가 되지 않도록'이다. 즉 '올무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지 않도록...언약을 맺지 말라'는 뜻이다. 23:33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3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을 찍을찌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헐고...깨뜨리고...찍을지어다 - 23:24의 '훼파하며...타파하고'란 명령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층 강도 높은 표현이다. 즉 23:24의 '훼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헐다' 정도의 뜻인데 반해 본절의 '헐고'에 해당하는 '나타츠'는 '부숴버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는 보다 강도 높은 뜻이며, 또한 '찍을지어다'의 '카라트' 역시 '산산조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다'는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3:24에서 보다 훨씬 더 강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높게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상 타파를 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금송아지 사건'(32:1-6)에서 보듯 우상 숭배 금지 명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았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주상(맛체바) - 종교적인 목적으로 세운 비석으로, 곧 우상에게 봉헌 된 기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비를 가리킨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세라 상(아쉐라우) - '축적하다', '부해지다'는 뜻의 '아솨르'에서 유래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로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가나안의 여신이다. 이 신은 고대 근동의 여러 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속중 특히 아모리족과 가나안족이 숭배한 여신(女神)으로서 '아낫'(Anath)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아스다롯'(Ashtaroth)과 더불어 가나안의 3대 여신 중 하나이다. 그리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신은 '생육', '생산'의 신인 '바알'과 부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따라서 이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 신의 숭배에는 필연적으로 성적인 타락이 수반되었다(Wycliffe). 한편 처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언약(23:24)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아세라(Asherah)가 여기서 언급된것은, 이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라엘이 가나안 종교를 본받아 성적 타락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새로운 경각심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불러일으켜 주기 위함인 듯하다(32:6).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임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질투의 하나님 - 이 표현은 하나님을 의인화시킨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0:5).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분으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묘사되는데, 그것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에게 애정과 헌신을 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치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20:5;신32:16;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4:19,20).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올 고유한 영광이나 찬양이 자신의 피조물인 다른 대상에게 엉뚱하게 돌아갈 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리하여 그 백성의 영혼이 헛된 우상에게 빼앗길 때, 당신의 속성상 우러나오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러한 공의로써 그러한 행위를 질투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본절에서 다시금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다시는 금송아지 숭배와 같은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일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찌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 12절 내용의 재차 반복이다. 이처럼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의 언약 체결을 강하게 금지하시고 있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이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여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는 백성이므로 또다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민족에 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서 어떠한 책임이나 의무를 지게 되는 언약을 이중으로 맺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 또한 언약을 맺게 되면 서로 상대방의 신을 인정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당대의 관례였으니 하나님께서 그처럼 우상 숭배와 직결되는 가나안인과의 언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체결을 금지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음란히 섬기며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자나'는 '간음하다', '창기가 되다'(창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행위를 하다), '매춘하(러가)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신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란히 섬기며'를 직역하면 '그들의 신에게 매춘하러 가며' 혹은 '그들의 신을 좇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 매춘(행음)하며'가 된다. 이처럼 가나안인들이 신을 음란하게 섬기는 것은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종교의 속성이었으며 특히 이들 종교의 여사제(女司祭)는 공인된 창기였으니, 신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게 제사 드리러 나오는 남자는 곧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그러한 신을 대리한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 여사제와 성관계를 갖는 것이 곧 신과 접촉하는 예배 행위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 이 말은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 제물을 취하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라는 경고이다. 물론 제물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금하는 까닭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1)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진 이상 히브리인들의 의식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법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며 2)그것이 우상 숭배를 위한 사악한 목적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쓰여진 것임을 알고서도 거리낌 없이 취한다는 것은 곧 우상 숭배 자체를 용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 8:1-13).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광야 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행 중 싯딤에 머물 때 모압 여인들의 초청에 응해서 우상 제물을 먹고, 신들에 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며, 행음까지 함으로써(민 25:1-3) 이 명령을 어기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광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생활은 하나님과의 약속에 대한 계속적인 거역과 위반으로 점철되어졌는데, 그 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과 그들은 계속해서 광야에서 맴돌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삶 역시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교훈해 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6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들의 딸들로...아내를 삼음으로 - 세상에 '노아홍수'가 임한 근본 원인은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데 있었다(창 6:1-7). 또한 솔로몬의 타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 이방 여인과의 결혼에서 비롯되었으며(왕상 11:1-8), 결국 이는 이스라엘 왕국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왕상 11:9-11). 이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과의 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혼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엄격히 금하셨는데, 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늘날에도 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전 7: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9;고후6:14-18).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7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찌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20:23을 반복한 말씀으로서 곧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거듭된 경고이다. 특히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었기 때문에(32:8), 여기서도 '부어' 만들지 말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죄를 상기시키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무교절 - 유월절로 시작되는 7일 간의 축제(12:15-20)로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떡을 먹기 때문에 무교절이라 했으며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아빕월 - 일명 '니산 월'이라고도 하는데(느 2:1;에3:7) 유대 종교력으로는 1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민간력으로는 7월, 현대 태양력으로는 3-4월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용은 23:15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9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무릇 네 가축의 수컷 처음 난 우양도 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러하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 - 출애굽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의 소유로 돌릴 것을 명하셨는데(13:2) 이는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인 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태생을 죽인 것(12:29,30)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상기시키기 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같은 명령이 반복되고 있는 까닭은 그러한 하나님의 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원 사역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한편 예표론적으로 이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는 예수 그리스도(고전 15:23;골1:18)와 더 나아가 영적 장자(長子)되는 믿는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히12:23)들의 헌신을 상징한다(Delitzsch). 자세한 내용은 13:12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찌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찌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나귀의 첫새끼는...대속할 것이요 - 레 11:2-7에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동물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목록이 있는데, 나귀는 그 가운데 들어 있지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나귀는 하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께 제물로 드릴 수 없는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던 것 같은데 이는 가축으로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물로 드려지지 않았던 짐승은 나귀 뿐이었음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따라서 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귀는 부정을 면키 위해 어린양으로 대속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여야 했던 것 같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대속(파다) - '몸값을 받고 석방하는 것'을 뜻한다. 나귀와 같이 제사에 적합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한 짐승은 어린 양으로 그 값을 대신했고, 사람일 경우에는 돈으로 대속하도록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했다(30:12-16).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말지니라 - 여기서 '얼굴'로 번역된 '파나'는 '앞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efore)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본절은 '내 앞에 빈 손으로 나타나지 말라'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번역하는 것이 좋다(23:15). 한편 이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대로 정성껏 예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드리라는 명령이다(신 16:16,17). 그렇다고 해서 이를 헌금강요로 이해해서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창조자로서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만 이는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함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데, 왜냐하면 이러한 감사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13:13 주석 및 23:15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찌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찌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 문자적 뜻은 '밭 가는 때와 거두는 때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안식일'로서 즉 파종기와 수확기에도 안식일을 지켜야함을 강조해 주는 표현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안식일 규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8,9,10,11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칠칠절 - 맥추절 혹은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농작물의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23:16;신16:9-12).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수장절 -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23:16 주석 및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찌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매년 세 번씩 -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무교절, \오순절,장막절(18,22절;23: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4-17)의 때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마다 '하나님 앞에 보이라'는 말은 '하나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앞에 나타나라'는 말과 동일한데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서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신 16:15,16). 자세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용은 23:17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지경(게불) - 본래 의미는 '끈'으로서 곧 '경계선'을 의미하며, '경계','한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역', '공간'등을 뜻한다. 한편 23:31에서는 이스라엘의 지경을 사방으로 최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넓혀주겠다는 강도 놓은 약속이 나와 있는 반면 여기서는 그 약속의 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tone)이 다소 약화되어 있다. 그 까닭은 아마 '금송아지 사건'(32:1-6)에 따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일종의 유감 표명 때문인 것 같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하나님께...올 때에...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신 12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4에서 가나안 정복 이후 제사 조직이 지방에 난립할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들이 모두 함께 모여 공식적인 제사를 드릴 곳, 즉 유일한 중앙 성소(예루살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전)에 대하여 명하셨다. 따라서 매년 세 차례 이스라엘에는 전 지경에서 남자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예루살렘으로 빠져 나가는 공동(空洞)현상이 생겨나게 됨으로써(눅 2:41,42)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역 방위의 문제가 생기는데,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 바로 이를 해결해 주시겠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약속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5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두지 말찌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희생의 피...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 희생의 피는 죄를 속하는 것인데 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해 유교병은 죄악의 상징인 누룩이 들어 있기 때문에 함께 드려질 수 없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3:18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6 너의 토지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처음 익은것 - 동일한 말이 23:19 에서는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으로 되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는데, 이의 문자적인 뜻은 '처음 익은 열매의 제일 좋은 것'이 된다. 본절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는 '첫것'(제일 좋은것)이란 말이 빠져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 가나안 풍습을 따르는 것에 대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경고이다. 23:19 주석을 참조하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말들의 뜻대로 - 직역하면 '이 말들을 따라'이다. 여기서 '이 말들'은 먼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맺었던 첫번째 언약(20-31장)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첫번째 언약을 따라 동일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용으로 두번째 언약을 맺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기서 세우는 언약이 첫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번째 세운 언약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의 회복임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 모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체결의 중재자이지만 그 역시 이 언약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라엘과 집단적으로 언약을 맺으시면서 동시에 모세 개인과도 언약을 맺으시는 것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다. 한편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교역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들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신은 제외하고 일반 신자들에게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본절에 비추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볼때 잘못된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록하셨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사십 일 사십 야 - 결과적으로 모세는 지난번의 40일(24:18)과 이번의 40일을 합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여 도합 80일을 금식한 셈이다. 이것은 첫번째 언약을 맺은 때와 같은 조건(성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40'이란 숫자는 연단과 시험을 나타내는 수이다)에서 두번째 언약을 맺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뜻이다. 상황적으로 미루어 볼 때 오히려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두번째 언약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맺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는 한번 파기된 관계를 다시 맺는 것은 그만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더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와께서는... 기록하셨더라(이케타브) - 원어상으로는 단순히 '그가 기록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새겼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가 누구인지 불분명한데 영어 성경은 대부분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대문자(He)가 아닌 소문자(he)로 표기하여, 모세가 기록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으며 카일(Keil)과 같은 학자가 이를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번째 십계명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한 것으로 봄이 더 타당하다. 그 이유는 성경상에서 찾아볼 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즉 1)본장 1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모세가 준비한 두 돌판 위에다 당신께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쓰겠다고 말씀하셨다. 2)모세의 회고 기록인 신10:1-5의 증거에 따르면, 모세도 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명히 '여호와께서...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었다'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언급하고 있다(Pulpit Commentar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못하였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증거의 두 판 - 32:15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광채가 나나 - 이것은 성물과 접촉하는 것이 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룩해진다(29:37;30:29)는 원리와 일맥 상통한다. 즉 모세는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단절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했는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 혹은 거룩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함이 자연스레 모세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모세가 성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聖化)되어진 것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얼굴에 나는 광채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몇 군데 있다(마 13:43;17:2;행 6:15;7:20).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 원문에 가깝도록 직역하면, '보라! 빛나는 얼굴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피부가 되었도다'란 뜻으로 모세의 빛나는 얼굴의 광채를 보고 놀라워하는 백성들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두려워하더니 - 앞절의 '광채가 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란'은 '뿔이나다'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뜻도 있다. 아마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는 뿔과 같은 모양으로 빛났던 것같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 두려워 했던 것 같다. 따라서 라틴어 벌겟역(Vulgate)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를 '뿔이 났다'로 번역했고, 이에 따로 모세를 묘사한 얼굴에 뿔이 난 것으로 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적용이다. 한편 후일 사도 바울은 이 모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얼굴의 광채를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새언약의 영광스러운 광채로 승화시켰다(고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7-18).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하니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회중의... 어른 -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가리킨다(12:21).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하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3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더라 - 이것은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서부터 나는 광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 백성들이 현혹되어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가능성을 배제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후에 바울이 율법에만 집착하여 그 율법이 가리키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 그리스도의 빛나는 영광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어두운 심령 상태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나타내는 비유로 인용하였다(고후 3:7-18).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여호와 앞에... 수건을 벗고 - 하나님의 영광(33:18)을 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데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기만 하면 이 율법의 수건이 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절로 벗겨져, 율법이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에 대하여 깨닫게 되어 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마다 변화받아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고후 3:16,18).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다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더라 - 33절 주석 참조.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EMBED src=http://pds10.cafe.daum.net/original/5/cafe/2007/04/15/21/04/462214cb8ee47&amp;.mp3 width=300 height=45 type=audio/mpeg volume=&quot;0&quot; loop=&quot;-1&quot; enablecontextmenu=&quot;0&quot; invokeURLS=&quot;false&quot;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autostart=&quot;true&quot; invokeURLs=&quot;false&quo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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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의 현실과 하나님의 주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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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INGDOM</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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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7T21:26:56Z</updated>
	    <published>2009-11-27T21:26:5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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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center&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STRONG&gt;한국의 현실과 하나님의 주권&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오늘날 우리는 전통적 가치와 절대적 규범이 파괴되어가는 포스트 모던적 현실을 살아나가고 있다. 거대담론을 부정하고 역사의 의미를 조소하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사고와 행동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메가트렌드로 군림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역사가 일관성과 방향성을 상실한 채 좌충우돌하며 파선한 배와 같이 혼돈과 방황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을 수 있는가?&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섭리 신앙의 위기&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그래서 화란 신학자 베르카우어는 전통적인 섭리 신앙이 오늘날전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어느 시&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IMG height=100 src=&quot;http://www.jsrhee.com/QA/Godrules.jpg&quot; width=200 align=left border=0&gt;대보다도 큰 거침돌이 되고 있다고 통탄하였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lt;/FONT&gt;&lt;/SUP&gt;&lt;/A&gt; 그는 현대에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세계관과 인생관은 허무주의(nihilism) 뿐이며, 오늘날 이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이고, 무신론(atheism)이 우리 시대의 현실에서 추론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적 결론이 아니냐는 지식인들의 저항을 논의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과 깨끗한 양심을 소유한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아무 의심 없이 믿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였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2&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2)&lt;/FONT&gt;&lt;/SUP&gt;&lt;/A&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 color=#800080&gt;&lt;/FONT&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인류는 오랜 동안 역사를 신적 존재가 지배하며, 따라서 인간은 신이 정한 운명이나 천명에 순복하고 적응해야 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신 중심적 사고에서 인간 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이나 신이 존재하더라도 세계에 관계하지 않는다는 자연신론(deism)에서는 신이 역사의 동인으로부터 배제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그렇다면, 역사는 누구에 의해 혹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물론 어떤 사건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지만, 역사학은 보다 궁극적인 원인에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대립되는 두 견해는 결정론과 우인론이다. 우인론&lt;/FONT&gt;&lt;/SPAN&gt;&lt;FONT face=돋움 size=3&gt;(偶因論)&lt;SPAN 이란 역사 배후에 아무런 존재나 원리도 없고 단지 우연들의 집합에 의해 역사가 발생한다는 주장으로서, 많은 현대인들이 실제적으로 추종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며 그러한 노력을 통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gt;&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3&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3)&lt;/FONT&gt;&lt;/SUP&gt;&lt;/FON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란 역사 배후에 아무런 존재나 원리도 없고 단지 우연들의 집합에 의해 역사가 발생한다는 주장으로서, 많은 현대인들이 실제적으로 추종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며 그러한 노력을 통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3&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3)&lt;/FONT&gt;&lt;/SUP&gt;&lt;/A&gt; &lt;/SPAN&gt;역사에 아무런 필연적 요소나 영원한 의미가 없다면 역사를 연구할 이유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우인론을 거부하고 결정론을 수용한다. 결정론(determinism)은 “역사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행동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비록 외형적으로는 모두 우발적으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일관된 패턴이 존재한다고 분석하고, 비록 우연이 존재하지만 필연적 과정에 보조적으로 작용할 뿐,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4&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4)&lt;/FONT&gt;&lt;/SUP&gt;&lt;/A&gt; 또한, “역사적 사고는 항상 목적론적”이기 때문에,&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5&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5)&lt;/FONT&gt;&lt;/SUP&gt;&lt;/A&gt; 인간은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과 완성에 대해 질문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근대 역사적 결정론의 대가인 헤겔은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동인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인간의 원리인 보편적 이성의 표상인 세계정신(&lt;/FONT&gt;&lt;/SPAN&gt;&lt;FONT face=돋움 size=3&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STYLE: italic; TEXT-ALIGN: justify&quot;&gt;Weltgeis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자체의 원리에 따라 정반합의 변증법적 방식으로 역사를 발전시켜 결국 역사가 완성되는 유토피아를 결과한다는 낙관적 역사주의(historicism)를 주창하였다. 이 세계는 더 이상 하나님이 통치하지 않으며,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되, 인간의 우연성이 아니라 인간의 필연성에 의해 주도된다는 근대적 사고는 하나님이 세계를 통치한다는 기독교의 섭리 신앙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하였고, 현대에 이르러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 결과, 심지어 기독교 신학도 세속화되어 점점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를 축소하고 부정하는 방향으로 인간주의에 복속하게 되었고, 교리적으로 이를 수용한다 할지라도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교회나 신자들이나 하나님의 주권을 극소화하고 인간의 지배와 결정을 절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이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문제에 미신적으로 적용할 뿐이다.&lt;/SPAN&gt;&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하나님의 통치&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기독교는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만 하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하고 보존하며 통치한다는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를 믿는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6&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6)&lt;/FONT&gt;&lt;/SUP&gt;&lt;/A&gt; 따라서, 섭리를 창조의 연속 또는 계속적 창조(continuous creation)라고도 부른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였을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서있고”(골 1.17), 하나님이 친히 피조 세계를 “보존”하며(느 9.6) “간수”한다(벧후 3.7). 세계는 스스로 유지되고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신과 기운을 거두면” 그 순간 모든 생명과 존재는 멸절에 이르게 된다(욥 34.14-15).&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또한, 하나님은 피조물을 보존(preservation)할뿐 아니라 세계를 통치(government)한다. 하나님은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며(시 103.19),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한다(엡 1.11). 이러한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는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 복음으로 계시되고 설명되었다. 하나님의 통치는 거시적 구도에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참새의 죽음이나 우리 머리털과 같이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작용한다(마 10.29-30).&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whatsoever comes to pass)을 미리 정하셨다”고 고백한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7&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7)&lt;/FONT&gt;&lt;/SUP&gt;&lt;/A&gt;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는 허구에 불과하며 인간의 선택과 결정은 역사에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말인가? 실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토론은 신학사에서 주요한 난제가 되어왔으며, 최근에는 개방적 신론(open theism)이 대두되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이 논쟁의 발단은 1994년 클락 피녹, 리차드 라이스, 존 샌더스, 윌리암 해스커, 그리고 데이비드 배싱거가 공저한 &lt;/FONT&gt;&lt;/SPAN&gt;&lt;FONT face=돋움 size=3&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STYLE: italic; TEXT-ALIGN: justify&quot;&gt;The Openness of God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일어났는데, 그들은 신이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는 과정신학과 신이 모든 것을 정했다는 전통적 신정론이 둘 다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제3의 대안으로서, “역사는 단지 신의 행위 만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신과 그의 피조물의 결정과 행위가 결합된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함으로서 우리의 자체적 결정이나 행위의 가능성을 모두 닫아 버리지 않고 부분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의미에서 개방적 신론이라고 불리는 이 부분적 신정론은 전통주의자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받았고, 급기야 근본주의 성향의 ETS가 2002년 투표를 감행하여, “우리는 성경이 분명히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들의 모든 미래의 결정과 행동을 포함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에 대해 전적이고 정확하며 무오한 지식을 하나님이 가지고 있음을 가르친다고 믿는다”는 선언을 채택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고는 아퀴나스의 철학적 속성론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자유나 고난 가능성을 거부하는 스콜라주의적 논리와 맥을 같이하며, 예정보다는 예지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느냐 부분적으로 결정하느냐는 논쟁은 섭리론의 본질을 탈선한 무모한 대립이 아닐 수 없다.&lt;/SPAN&gt;&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인간과의 협동&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고 경영하지만, 대부분 인간과 협동하여 역사를 창조해 나간다. 실로, 전통적 섭리론의 3요소&lt;IMG height=130 src=&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1.jpg&quot; width=130 align=left border=0&gt;에는 보존과 통치 외에 협동(concurrence)이 있다. 협동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협동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존중하여 동반자로서 협동하기 때문에, 바르트를 이것을 하나님의 동반(divine accompanying)이라고 표현하였다. 비록 어떤 경우에는 인간과 협력하지 않고 또는 인간의 선택과 반대하여 독자적으로 실행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과 조화롭게 협동하여 섭리한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8&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8)&lt;/FONT&gt;&lt;/SUP&gt;&lt;/A&gt; 바로 이러한 협동 때문에, 기독교의 섭리론은 운명론(fatalism)과 구별되며, 인간에게 순종과 책임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운명론자와 같이 자기의 잘못으로 발생한 결과를 신이나 운수에 떠맡기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말고 자기가 행한 모든 일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9&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9)&lt;/FONT&gt;&lt;/SUP&gt;&lt;/A&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 color=#800080&gt;&lt;/FONT&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방치하지 않고 지혜롭게 간섭하기 때문에,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의 선택과 행위이다. 웨인 그루뎀의 말처럼,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면 신과 인간의 양면적 행위를 둘 다 수용해야 한다. 어떤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행위이며 동시에 전적으로 인간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0&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0)&lt;/FONT&gt;&lt;/SUP&gt;&lt;/A&gt; 그것이 모순인 것 같지만, 사실은 두 차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비록 자신의 노력과 행동으로 이룩한 업적이라 할지라도, 그 공로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돌리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고는 심지어 불신자의 경우에도 가능하다. 자신의 극한적 노력으로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자녀가 진심으로 모든 공로를 전적으로 부모에게 돌리는 경우가 그러하다. 동일한 상황에서 모든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고 부모나 스승을 무시하거나, 실패한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는 자세는 결코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우리 잘못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악이나 오류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한국의 정치적 현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운명론적 종교의 지배를 받아왔다. 샤마니즘은 모든 것을 귀신 탓으로 돌리며, 문제의 해결도 무당이라는 타자에게 맡긴다. 무교적 구조에서,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 책임도 능력도 없다. 불교는 대표적인 운명론으로서, 모든 것이 업보에 의해 발생한다는 연기설에 근거하여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도교는 특별히 풍수지리설을 통하여 결정론적 사고를 고착화시켰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명당을 찾는 것뿐이다. 유교는 천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는 책임 있는 종교였으나, 한국의 경우 반상제도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우리 역사에 깊이 박힌 운명론적 사고를 치유하지 못하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이와 같은 운명론적 사고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적 사고와 결합하여 이상한 형태의 사고방식을 결과하였다. 잘된 것은 자기 자신에게 공로를 돌리고 잘못된 것은 타자를 탓하는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강점과 압제는 모든 책임과 원망을 타자에게 돌리는 부정적 사고의 온상이 되었으며, 쿠데타로 시작된 오랜 군사독재는 이를 발전시키는 저항적 사고를 강화하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자본주의에 입각한 능동적 사고가 형성되어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정치 분야에서는 시위와 비방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정적 사고가 무비판적으로 범람하여 끝없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반일에서 반공, 반정부, 그리고 반미로 이어지는 부정적 저항심은 우리 민족의 노력으로 국가를 발전시키려는 긍정적 노력을 약화시켰다. 오늘날 사사건건 미국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반미는 반일과 같이 언젠가 다른 나라로 대상이 이동하겠지만, 부정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할 것이다. 비록 미국이 많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할지라도, 세계의 수많은 나라 중에서 오로지 한 나라에만 집중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원망하며 비방하는 것은 비사실적이며, 이러한 배타적 선택은 그 이유가 실제적 요인보다 심리적 원인에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냉전 중에는 원망과 저항의 대상이 공산주의였으나,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의 도움이 별로 필요 없이 된 상황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여 그 대상을 미국으로 교체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느 나라이든 비방과 원망이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주지 않는다. 우리 정치에서도 여당과 야당의 비방과 책임 전가가 한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지 못한다. 한국은 모든 나라와 평화롭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화해의 정치를 추구해야 하며, 우리보다 약소한 나라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어야 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한국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은 청년의 지배(paedocracy)이다. 저항문화는 자연히 반항(resistance)이라는 사춘기적 특성 때문에 미성숙한 청년의 정치 참여를 증가시키고, 이는 개혁의 대가로 혼란과 불안정을 야기한다. 더욱이, 인터넷의 확산은 무책임한 비방문화를 범람하게 만들고 있다. 건설적이고 안정된 사회는 중년이 주도하며 청년의 개혁과 노년의 지혜를 균형 있게 수렴할 때 가능하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하나님의 나라와 구속사&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한국의 역사는 하나님과 우리 민족이 협동하여 창조해 나가는 것으로서, 신이나 운명을 탓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결코 일방적으로 타국이나 타파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과 잘 협력하기 위해서는 그의 통치적 실체인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오심과 사역은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형성하기 위한 대업을 성취하기 위함으로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엡 1.10) 하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이었다. 이 그리스도 중심적 통일 대업은 죄악으로 인해 비참하게 분리된 인류를 다시 하나로 회복하는 작업으로 집단적 이기주의라는 죄악적 동기에서 분리되어 상호 대립하는 모든 집단을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 되게 만드는 화해의 사역(ministry of reconciliation)을 통하여 가능하다. 바울은 그 대표적인 예를 제시한다: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이러한 목표(telos)가 실현되기 까지는 격렬한 저항들이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투쟁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텔로스를 역사발전의 규범으로 수용해야 하며, 바로 그 절대적 기준으로 어떤 현상이 발전인지 퇴보인지를 판단해야 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하나님의 나라는 우주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는 자연히 모든 나라와 정권을 경영하는 정치적 측면을 포함한다.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난 신상의 예언과 해석은 세계 역사의 청사진을 분명히 보여주며, 성경에 나타난 많은 예언들은 미래사에 대해 하나님의 사전적 계획이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확실히 한다. 하나님은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욥 12.23), 모든 민족에게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제한하시는”(행 17.26) 우주적 통치자로서, “모든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이시다.”(시 22.28) 역사에서 보는 대로, 어떤 나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나라와 정권은 하나님의 인준과 분봉을 필요로 하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원리에 의해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물론, 하나님의 판단과 인간의 판단은 다르며, 하나님의 경영과 인간의 경영도 다르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에게 적합한 것과 인간에게 적합한 것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하나님은 모든 나라의 통치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나라를 존중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물론, 어떤 때는 하나님이 한 나라를 사용하여 다른 나라를 심판하거나 징벌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오묘하고 신묘막측하여 세월이 지나고 거시적인 구도가 드러나면 우리의 찬양을 유발시키지만, 인간의 제한된 지성과 어리석음 때문에 당장에는 불만이 표출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고 불만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확고부동한 신앙과 신뢰를 가져야 한다. 도날드 블뢰쉬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창조자와 통치자로 인정하는 것은 곧 그가 창조한 세계의 본질적 선함과 역사의 의미를 인정하는 것이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1&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1)&lt;/FONT&gt;&lt;/SUP&gt;&lt;/A&gt;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협조하는 길은 성경에 계시된 거시적 구도를 추구하고 구속사(redemptive history)적 목표를 지향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2&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2)&lt;/FONT&gt;&lt;/SUP&gt;&lt;/A&gt;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인간의 제한된 지혜에 따라 미래를 결정하고 그것만을 고집하며 다른 길을 모두 정죄하는 단순함의 우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의 통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 민족의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우리나라의 융성은 배타적 민족주의나 이기적 노력 여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통치에 협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로, 구속사가 지향하는 목표에 우리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자기부인의 헌신이 결정적이다. 민족주의나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학벌주의와 문벌주의와 같은 파벌의식을 타파하며 약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타 집단에 대한 대립을 해소하는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하며, 반구속사적인 시도들을 차단해야 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한국교회의 과제&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하나님의 섭리와 통치에 있어서 교회는 중심적 역할을 감당한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즉 그가 통일 대업을 이루어 나가는 행동주체이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의 분석대로, “섭리론은 이 특별한 역사가 모든 다른 역사보다 상위에 위치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3&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3)&lt;/FONT&gt;&lt;/SUP&gt;&lt;/A&gt; 따라서, 세계의 모든 사건은 바로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구속사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역사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4&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4)&lt;/FONT&gt;&lt;/SUP&gt;&lt;/A&gt; 역사가 크리스토퍼 도슨이 지적한 것처럼, 인류가 최초로 역사에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통전적 감각을 가지게 된 것은 기독교를 통해서이며,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어떤 사건도 무의미하거나 상대적이라고 생각하여 무시하지 않는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5&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5)&lt;/FONT&gt;&lt;/SUP&gt;&lt;/A&gt;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교회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를 통치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언약 관계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그의 뜻을 이루어나간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6&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6)&lt;/FONT&gt;&lt;/SUP&gt;&lt;/A&gt; 따라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협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구속사의 진행방향과 그 목표에 역행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의 화해와 통일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그러나, 한국교회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혼란과 갈등을 거듭하며 하나님의 통치에 제대로 협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주로 교파주의, 교단주의, 개교회주의, 지역주의, 신학적 대립, 그리고 세속화에 기인한다. 이런 구조악들은 화해와 통일에 역행하여 교회를 분리 대립시켜 내분으로 인한 상호파괴와 전력 낭비를 결과한다.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힘의 논리는 강자와 약자 그룹으로 인류를 분리시켰으며, 이를 극복하고 해소하는 것이 구속과 화해인데도, 교회가 집단 이기주의를 조장하고 축복하며 지향한다면, 그 교회에서 촛대를 옮길 수도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면서도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자기영화에 빠져있는 유럽교회의 멸망을 예언했던 사실을 우리는 한국교회에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주적인 교회는 결코 멸망하지 않고 발전하지만, 개교회나 지역교회는 약화되거나 멸절할 수도 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우리는 많은 한국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기보다 자기 교회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흔히 대할 수 있으며, 복음을 자파의 신학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는 설교를 쉽사리 들을 수 있다. 복음보다는 종교를 믿고, 삼위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보다는 예배의식의 참석으로 만족하며, 자기 포기보다는 자기 영화를 추구하고, 영혼의 성화보다 세속적 성공을 소원하며, 사랑의 진실한 실천보다 교회의 시위적 행사에 익숙하고,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거부하지 못하고 추종하는 세속화 현상이 범람하고 있다. 더욱이, 학벌이나 재산이나 사회적 신분이 교인을 평가하고 존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여성이기 때문에 사역을 위임하면서도 안수하지 않는 인간 차별이 교회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타락에서부터 야기된 인간 차별의 고질적 악습을 깊이 반성하고 구속사의 텔로스인 만인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성을 거부하는 종교 다원주의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유 통일이라는 텔로스에 역행한다. 동성애와 같은 죄악을 관용하려는 타협적 경향도 일면 화해적 행위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창조질서의 회복보다 이탈을 지향하기 때문에 분명히 거부되어야 한다. 구속사적 화해는 조화 불가능한 죄악의 무조건적 수용을 허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악의 인정과 회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를 통해서 가능하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자유와 섭리&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면 섭리가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섭리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에 반응하고 간섭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고차원의 경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나 본능에 의해 행위 하는 동물과 같이 창조하였다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역사를 독주하겠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여 자유를 부여하였기 때문에 세계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어나가는 섭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자식을 기르고 인도하는 부모와 같이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다”(욥 42.2). 그러므로, 섭리를 믿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기의 결정도 중시하고 책임감 있고 신중하게 일거수일투족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150pt 0px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 LINE-HEIGHT: 22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돋움 size=3&gt;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자유로운 두 존재의 관계방식에 대하여 전통적으로는 제1원인과 제2원인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였으나, 칼 바르트는 만유를 통치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맹목적인 힘이나 통치를 위한 통치가 아니라 우리를 다스리는 아버지의 사랑임을 지적하였다.&lt;A href=&quot;http://www.jsrhee.com/QA/Providence.htm#FOOTNOTE17&quot;&gt;&lt;SUP&gt;&lt;FONT color=#800080&gt;17)&lt;/FONT&gt;&lt;/SUP&gt;&lt;/A&gt;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가 또한 완전히 선하고 지혜로우며 전지하다면, 그리고 그가 우리 삶과 세계 역사를 방관하지 않고 지극한 관심으로 섭리하고 통치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당연히 그의 다스림에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로운 하나님은 비록 그가 역사의 기본적 구도를 정하지만, 그 실현과정에 있어서는 먼저 우리에게 결정하고 행동하게 한 후에 그것을 지혜와 능력으로 조정하며, 혹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창 50.20),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롬 8.28).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협력한 행위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의 공로로 인정하고 칭찬하지만, 하나님의 통치에 역행하는 행위는 결국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하나님의 징책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영원한 역사와 영원한 인생의 관점에서, 우리가 자유를 사용하여 취할 행동이 어떠해야 할지는 자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신앙의 회복은 어떤 상황에서도 비관이나 무의미로 좌절하지도 않으며 자기중심적 자만이나 세속적 환상에 치우치지도 않고,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에 대한 확신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 것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300px 0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300px 0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Human Myeongjo; TEXT-ALIGN: 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300px 0px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Human Myeongjo;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lt;/BLOCKQUOT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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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일서 제1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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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7T21:13:53Z</updated>
	    <published>2009-11-27T21:13: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c8056a&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한일서 (1 : 1~10)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lt;/SPAN&gt;&lt;/SPAN&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본 바요 주목하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태초부터 있는. - 이것은 1:1과 병행된 표현으로 생명의 말씀이 영원 전에 선재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였음을 암시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로 영원전부터 선재하셨으며(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30; 13:3) 복음이 하나님께 속하여 태초부터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 헬라어 본문상 본절은 주절이 문장의 맨 끝에 오는 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종의 도치문으로 네 개의 관계절, 즉 '태초부터 있던 것', '우리가 들었던 것', '우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 눈으로 보았던 것', '우리가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것'이 '생명의 말씀'을 수식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있다. 요한은 이러한 매우 복잡한 표현을 통하여 자신의 격렬한 감정을 적절히 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화시키고 있다(Barker). 본문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생명의 말씀'은 두 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지로 해석된다(Stott, Smalley, Westcott, Dodd). 첫째로, 영원하시고 인격적이신 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현을 의미한다. 즉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요 1:1).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둘째로, 복음을 의미한다. '생명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에스'는 '말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내용'(행 5:20 ; 빌 2:16)을 의미하기도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요 8:12 ;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35, 48 : 4:10, 11 ; 계 21:6 ; 22:1)을 가리킨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에 대&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본질적인 선포이기 때문이다(Smalley, Houlden, Westcott, Marshall).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 '들은 바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케코아멘)와 '본 바요'(헤오라카멘)는 완료시제이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것은 생명의 말씀이 예수 안에서 마침내 실현되었으며 그것을 사도들이 예수께서 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교하셨을 때 듣고, 예수께서 사역하셨을 때 눈으로 보고 확인하였음을 의미한다(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1, 2). 이 '듣고'와 '본'은 요한복음에서 '믿음'과 연결된다(요 10:27 ; 20:29). 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편 '만진 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라페산'은 부정과거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제로 과거 한때 직접 만져서 느낀 것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러한 관계절, 즉 '들은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요'. '본 바요', '만진 바라'는 표현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하셔서 역사 속에 현현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셨으며 그의 사역과 설교를 통해 자신&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안에 실현될 복음을 전파하셨음을 강조한다(Stott, 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본절은 일종의 삽입어구로 앞절의 내용을 확대시킨 것이다. 헬라어 본절 처음에 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타나는 접소사 '카이'는 이어지는 3, 4절을 소개하는 데에 사용&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되고 있으며, 본서 내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 방법이다(2:27 ; 3:19-24, 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 '생명'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헤 조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1절에서처럼 예수 자신의 존재와 그의 복음을 가리킨다(Westcott). 한편 '나타내&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 바'는 예수위 지상 사역을 의미한다. 즉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산의 죽음과 부활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리킨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역사적으로 예수 안에서 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시지 않는한 인간이 알 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는 방법은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Stott, 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고 너희에게 전하노니. - 본문은 세동사,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즉 '보았고', '증거하고', '전하노니'를 통하여 경험의 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CSmalley). '보았고'의 헬라어 '헤오라카멘'은 그 진의와 중요성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살펴본다'는 의미로서 요한의 개인적 경험을 시사하며, '증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여'는 요한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개인적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사도로서 공적으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선포하였음을 나타낸다(Law, Brooke).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 헬라어 본문에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바로 앞에 '영원한 생명'(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자리잡고 있어서 본절 처음에 나타난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와 같은 의미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반복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보다 발전된 표현으로 '생명'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영원한 생명'으로 부각시키고 동시에 생명의 결정적인 근원으로 '아버지와 함께'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시한다(Smalley). 이러한 사실로 보아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길이가 영원함을 뜻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생명이 갖고 있는 신적인 성격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Barker, Wilder).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있게 하려 함이니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니. - 본절에서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있다. 그것은 '사귐'이다(Stott, Barker, Smalley, Wilder). 요한이 본절에서 '사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행위로써 표현되어야 한다는 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신의 사상과 연결된다(2:3).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코이노니아'&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문자적으로 '공동 소유', '협동'을 뜻하나 본절에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그리&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공동자금을 모금한 '서로 나눔'의 의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롬 15:27 ; 고전 9:23 ; 고후 13:13) 둘 다를 함축한다(Smalley, 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 본문은 1절 전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부부터 암시되어 온 예수의 이름을 명백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한은 본문에서 그리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인의 '사귐'의 본질이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분명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히 제시함으로 그 사귐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즉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영원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생명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하는 것임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사한다(2:1 ; 3:23 ; 4:2 ; 5:6, 20, Smalley, Wilder).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대한 강조는 수신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을 경시하는 이단적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가르침에 대한 경고를 내포한다(고전 1:9, Smalley, Stott).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 본문은 요 15:11을 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영한다.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께 하는 사귐의 결과이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 Smalley, Stott). 이러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재에는 하나님과 그리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도와의 불완전하므로 기쁨 또한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귐 가운데 누리는 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전치 못한 기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인 사귐과 기쁨의 표징이며 보증이다.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러기에 이 기쁨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헌신적인 사귐 가운데 기쁨을 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려야만 하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요한이 염두에 둔 영지주의자들의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릇된 주장이 6, 8절에 이어 세번째로 소개된다. 본절에서 요한은 보다 보편적인 진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통해 도전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경을 통해 인간 전체가 범죄하였으며 죄에 신음하고 있음을 선언하셨다( 시 14:3 ; 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3:6 ; 요 2:24, 25 ; 룸 3:22-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것은 하나님의 선언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행위이다. 이러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행위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며(렘 31:34 ; 엡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32)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요 16:8 ; 롬 8:1, Smalley). 한편 '그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은 선포된 말씀과 구약성경의 모든 증거가 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들 이단적 경향을 가진 자들에게 수용될 여지가 없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죄를 부인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것은 구원과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말씀과 빛 가운데 살 수 없게 하며 하나님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서 베푸시는 사죄의 은혜를 바랄 수 없게 함을 시사한다(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 '소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앙겔리아'&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신약 성경에서 본절에만 사용된것으로 2, 3절에서 언급된 사도들이 선포한 생명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씀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 소식에 대해 '저에게서 듣고'라고 표현함으로 생명의 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씀이 역사적인 예수의 생과 가르침 가운데 들려진 복음임을 강조한다(Smalley). 이 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식의 내용이요 주제는 바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빛'은 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와 의로움울 상징하는 것으로(시 27:1 ; 36:9 ; 119:130 ; 사 5:20 ; 미 7:8b ; 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2). 하나님은 영이시고(요 4:24), 사랑이시라(요일 4:8)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을 나타낸다. 요한은 자주 '빛과 어둠'을 대조시켜서(요 1:4 ; 8:12 ; 9:5 ; 12:35,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6) 하나님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본성에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합당한 생활, 즉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도록 도덕적인 요청을 하고 있다(6, 8, 10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절 ; 2:4, 6, 9 ; 눅 16:8; 요 8:12 ; 엡 5:8-14, Houlden, Wilder, 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5절)는 말씀을 전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로 하여 영지주의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공격하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 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에 빠져 물질 세계를 악한것으로 배척함으로써 죄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인해 그들의 행위는 방종을 면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하나님과 영적인 사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있다는, 하나님의 본성과 선하심에 모순되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장은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 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진리인 '하나님은 빛이시라'를 그릇되게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Smalley). 그리스고 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생명을 부여하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하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죄된 삶을 상징하는 어둠과 분리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둠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근거하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절대적인 장애가 되기 때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문이다(Smalley, Stott). 한편 '행하면'의 헬라어 '페리파토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은 문자적으로 '동행한다'라는 의미로 구약 성경에서 유래된 표현이다(2:6, 11 ; 창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7:1 ; 왕상 2:4 ; 왕하 20:3 ; 요 8:12 ; 요이 1:4). 이것은 '말하는 것'과 깊은 연&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관성을 가지는바, '진리를 말하는 것'은 '진리를 행하는 것'의 일부이며, 계속해서 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상의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함을 내포한다(Barker).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말할때는 진리 안에서 행함이 뒤따라야 하며 빛 가운데의 삶을 동반해야 한다. 만약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귐과 전혀 관계없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 요한은 계속해서 빛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두움위 이미지를 대조하고 있다. 어두움이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해 버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기 때문에 '빛 안에 거함'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된다. 그런데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빛'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사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malley, Wilder).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이 당신과의 사귐을 가능케 하심으로 이루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어지는 결과에 대해 두 가지로 진술하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 하나님이 빛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 거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귐은 단순히 그 차원에 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진보하여 그리스도인 사이의 사귐을 성취한다. 이것은 그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스도인 상호간의 사귐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함을 암시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피'는 십자가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서 죽으신 예수위 대속의 사역을 가리킨다. 또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는 단순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를 용서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락된 성품까지 깨끗하게 하심을 의미한다(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tott, Smalley). 이러한 두 가지 결과는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비롯된 것이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 - 요한이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사귐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이 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이다. '죄없다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하마르티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우크 에코멘'은 죄가 자신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에게 지속적인 힘을 가지고 실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부인하는 것을 암시한다(Low,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Brooke, Barker, Smalley). 죄가 부재함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스스로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만하며 속이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는 진리가 거하지 않는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왜냐하면 진리이신 예수께서 거할 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죄인임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백하고 자신의 죄에 대해 혐오감을 느껴 거부할때 빛 가운데 거하게 되며 하나님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귐이 있게 된다.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우리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실것이요. -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스'는 복&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수로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죄들'을 가리키며, '자백'은 구체적으로 죄를 깊이 생각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뉘우치며 진실하게 고백함으로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시 32:1-5 ; 잠 28:13,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Stott). 한편 '시하시며'의 헬라어 '아페'는 빛의 탕감이나 '허물의 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거', '책임의 해제' 등과 같은 의미이며 '깨끗하게 하실'로 번역된 헬라어 '카다리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죄로 오염된 상태를 정화 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한 묘사는 사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며, 사죄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은혜로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들로 하여금 구별되고 빛 가운데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신다(Stott, Smalley).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ㅇ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 본문은 하나님께서 죄를 자백한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시는 근거를 나타낸다. '미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는 약속을 잘 지키시는 '신설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죄사함을 약속하셨으며(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2:34 ; 미 7:19, 20)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신설한 분이다(시 89편 ; 롬 3:25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 고전 10:13; 딤후 2:13 ; 히 10:23 ; 11 : 11). 그러므로 미쁘신 당신의 성품대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죄를 사하시겠다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카셔서 죄를 자백한 자들을 용서하신다. 한편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로우사'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스'에 대한 견해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네 가지이다. (1) 혹자는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tott, Ross). (2) 혹자는 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약 혹은 약속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3) 혹자는 하나님의 본성을 의미한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고 주장한다(Dodd). (4) 혹자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와 지배를 가리킨다고 주장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다(Bultmann). 이러한 네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하나님은 자신의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로움에 근거하여 고백한 죄인들을 사죄하신다(Barker).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lt;/SPAN&gt;&lt;/SPAN&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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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일서 서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esus1225/5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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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INGDOM</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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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7T21:09:13Z</updated>
	    <published>2009-11-27T21:09:1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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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요한일서 서론♧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제목: '요한의 첫번째 (편지)(요안누 알파)' 라는 헬라어 원제목에서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유래되었으며, 저자의 이름과 보낸 순서를 반영한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저자: 사도 요한. 요한복음과의 내용, 문체, 주요 단어 등의 공통점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그의 제자인 폴리캅 및 초대교부였던 오리게네스, 클레멘트, 이레네우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등의 증언이 그의 저작설을 뒷받침해 준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록연대: A.D. 95년경. 요한복음 기록(A.D. 85-90년) 이후부터 요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계시록 기록(A.D. 95-96년경) 이전이다. 영지주의를 경계한다는 점에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후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기록목적: 1) 당시 진리를 위협하며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영지주&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의 등 이단을 경계하기 위하여(2:26).&amp;nbsp; 2) 구원의 유일한 방편이신 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리스도에 관한 바른 지식을 가르치기 위하여(1:1-3).&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주제: 사랑에 근거한 영적 교제.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사귐을 갖는 존재이며, 그 방법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참지식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소유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여 형제에게 나타내는 것이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배경: 1)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단인 '영지주의'는 물질과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육체를 악한 것으로 여기는 이원론을 주장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성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육체의 범죄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기독&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교의 윤리를 근본적으로 파기했고 성도들은 이에 유혹되었다.&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특징: 1) 사랑의 편지-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답게 하나&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님의 사랑과 성도가 실천해야 할 사랑을 강조했다.&amp;nbsp; 2) 형식의 초월-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용상 서간문이나 서간의 형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amp;nbsp; 3) 요한&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복음보다 내용이 더 심화된 상태를 보인다(2:7;3:16)&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내용분해 &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1. 서신의 목적-하나님과의 사귐/ 1:1-4&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2. 사귐을 위한 조건/ 1:5-10&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3. 사귐의 내용/ 2:1-3:24&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4. 사랑으로 이루는 사귐/ 4:1-21&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5. 사귐의 근거/ 5:1-21&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 1) 삼위의 증거/ 5:1-9&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 2)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5:10-15&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Verdana&quot;&gt;&amp;nbsp; 3) 맺음말/ 5:16-21&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EMBED style=&quot;LEFT: 15px; WIDTH: 300px; TOP: 15px; HEIGHT: 45px&quot; src=http://www.yonsei.or.kr/media/music/gloria508.mp3 width=300 height=45 type=audio/mpeg embed&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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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마서 제10장 주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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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KINGDOM</name>
	    </author>
	    <updated>2009-11-27T21:07:13Z</updated>
	    <published>2009-11-27T21:07: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마서 (10 : 1~21)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형제들아 - 1:13 주석을 보라.&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내 마음에 원하는 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구절은 '헤 멘 유도키아 테스 에메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카르디아스'이다. 여기 쓰인 '멘'('한편')은 주로 '데'('그러나', '또 한편')와 같이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쓰여서 달리 내용을 구별할 때나 반대되는 내용이 전개될 때 사용된다. 그러나 본문에&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는 '데'와 상관없이 쓰여서 내용이 계속됨을 나타낸다. 즉, 본문은 9:33에 이어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한 '에메스 카르디아스'의 '에메스'('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는 '무'('나의')보다 더 강한 표현이다. 이는 바울의&amp;nbsp; 안타까운 심경(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境)을 드러낸다. '원하는 바'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도키아'는 단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히 '바라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라는 표현이라기보다 '기뻐하는 것'의 표현이다. 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어에서 바울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사랑하는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 '구하는 바'의 헬라어 표현은 '데에시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즉 '간구하는 것'이며 이는 '기도하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와 구별되는 강한 표현이다(엡 6:18). 따라서 본문에 쓰인 '내'(에메스) '원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바'(유도키아), '구하는 바'(데에시스)등은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간절한 호소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간구를 담은 강한 어조의 표현들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구원을 얻게 함이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이스 소테리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구원을 향한 마음이 목적이나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에 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겨 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해 확실히 언급했지만 동시에 동족에 대한 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타까움과 슬픈 마음 또한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바울의 열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행 13:46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간절한 마음은 신자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불신자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내가 증거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로'는 공적(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的)인 책임감과 엄숙함을 내포한 단어이다(Cranfield).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엘의 열심을 개인적인 감정에 앞서 엄숙히 공적으로 증거하고 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 '하나님께'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목적격, 소유격으로 '하나님을 위한'이나 '하나님에 대한'으로 해석해야 한다. '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심'을 표현하는 헬라어 '젤론'은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나 '성전', '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법'에 대해 충성하는 그런 열심을 나타낸다(왕상 19:10, 14;왕하 10:16;시 69:9). 즉,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성전, 율법들에 대해 대단한 열성을 가졌다. 바울 역시 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교에 심취했던 사람으로(갈 1:14) 누구보다 유대교에 열성이었으므로(행 26:5) 이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엘의 열심에 대해 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으며 동정하는 마음에서 책망할 수 있었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 이는 하나님께 열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심이 비난받은 이유이다. '지식'을 나타내는 헬라어 '에피그노시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지식'을 표현할 때 일반적으로 쓰이는 헬라어 '그노시스'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훨씬 강조된 표현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있어 하나님이 실제(實在)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 이상은 몰랐다. 즉 그들은 구원을 주는 지식(1:17)을 결여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식이 결여된 그들은 보아도 참으로 알지 못했으며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막 4:12). 그들의 완고한 마음과 고집은 오히려 우매하게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막았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데 도리어 방해가 되었던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 즉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원을 주는 지식에 의해서 수반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말이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하였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바른 지식이 없는 유대인들이 추구한 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였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인을 이끄는 문장 서두의 '가르'('왜냐하면')는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2절 후반부의 설명을 이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 '하나님의 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투 데우 디카이오쉬넨)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속성으로서의 '의'라기보다 그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이뤄지는 의, 즉 칭의(稱義)를 말한다. 신약에서 나오는 '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Righteousness)는 주로 계약 관계를 전제로 한다. 계약을 수립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약에 인간을 참여케 하시고 그 중간에 그리스도를 두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그것을 믿는 인간들을 '의롭다'하시기로 계약을 수립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 것이다. 따라서 이 계약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예수를 믿음이다. 하나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자비하심은 인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다. 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의의 길을 불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믿기를 거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했던 것이다. 여기서 '모르고'(아그노운테스)는 '하나님의 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 대해 지식이 없었으므로 기인된 '오해'를 의미한다(Meyer).&amp;nbsp;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열심은 있었으나 바른 지식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의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오해였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 '세우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사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세우다', '정하다', '확증하다'의 뜻이 있다. 즉 '하나님의 의'에 맞서 '자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의'를 세워 불순종한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힘써'로 번역된 헬라어 '제툰테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현재 분사형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계속 애써 온 것을 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타낸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딪히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돌과 거치는 반석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칭의'의 근원이며 이유이다. 즉, 의를 이루&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유일한 길이다. '모든 믿는 자에게'란 말은 뒤에 나오는 '율법의 마침'을 한정시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말로 '율법의 마침'은 그 목적이 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유대인을 넘어서서 '모든 믿는자'들, 모든 민족에게 영향을 미친다. 즉 그리스도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는 공평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유대인일지라도 멸망을 받&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며 반면에 이방인일지라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실로 '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디카이오쉬넨)은 율법으로나 인간의 행위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공&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로 값없이 얻게 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러한 칭의의 의를 끝까지 불신한 것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율법의 마침 - 혹자는 여기서 '율법'(노모스)은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반적인 법이나 원리를 의미한다고 한다(Meyer, Sanday and Headlam). 또 혹자는 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문의 율법은 구약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특히 9:31)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볼 때 여기서 율법은 구약의 율법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침'을 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키는 헬라어 '텔로스'는 (1) 문제의 종결(end), 종료(termination) 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2) 목적(aim), 의도(intention), 목표(goal)등 양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1)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율법이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모든 요구가 충족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종결시켰다는 의미이다(13:10;Calvin, Erasmus, Lenski, Murray, Harrison). (2)는 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스도께서 율법의 실제 의미이며 목적과 의도하는 모든 것이라는 것이다(Hendriksen,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ranfield). 그 중 (1)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데 이유인즉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향하는 그림자로서 그 역할을 하였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實體)로 인해 그 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능이 종결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율법은 하나님의 경륜(經綸)이 진행되는 어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정에서 역사상에 주어졌던 것이고 이제 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되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의미이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모세가 기록하되 - 레 18:5에서 인용된 것으로 모세의 말이 인용된 것은 모세가 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인의 율법을 세운 자였기 때문이다. 이기에서 모세는 율법을 지킴으로 생명을 얻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하나님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율례'라는 표현을 통하여 구약 여러 부분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느 9:29;겔 20:11,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 21) 또한 신약에 넘어와서도 그 사상을 계승되고 있다(7:10;마 19:17;눅 10:28;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12). 하지만 문제는 누가 과연 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데에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연약한 인생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3:9-18). 오직 사람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율법&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시고(8:3, 4) 자기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보장해 주신 유일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분이시다(히 5:8, 9). '기록하되'를 가리키는 헬라어 '그라페이'는 6,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절에 나오는 '말하되'의 헬라어 '레게이'와 의도적으로 대조되어 사용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으로 보인다. 즉 '레게이'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조한 반면 '그라페이'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6절 주석 참조).&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 '말미암은'의 헬라어 '에크'는 '...에서 나온'이라&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뜻으로 그 출신을 나타낸다. '율법에서 난 의'는 율법을 행함으로써 얻는 의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는 9:31, 32에 나오는 '행위에서 나온 의의 법'을 말한다. 율법은 행함을 요구하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죄를 알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판결을 받는 길이었다(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8:5;겔 20:11, 13, 21;눅 10:28). 따라서, 율법을 완전히 지키며 행할 것을 언급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罪性)은 율법을 완전히 수행할 수 없다. 결국 이스라엘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의 법을 좇아 갔지만 법이 요구하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9:31). 유대교의 구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교리에 따르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면 율법이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야 한&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고 보았다. 이렇게 율법을 성취하여 그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이 보장되고, 하나님으&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게 된다고 보았다(Strack-Billerbeck). 그러나 율법은 한계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법에 대한 약속을 하셨고(렘 31:33) 오순절의 성&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령 보내심으로 성취되었다(욜 2:28ff.).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방편&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믿음이고, 믿음으로 구원이 보장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과 부활&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믿는 자들의 의가 되셨기 때문이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본 구절은 앞절(5절)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대조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루어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타났음은 바울의 종말론적(eschatological)이며 기독론적(christological)인 가르침&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기본 구조이다(Ridderbos). 그리스도의 죽음은 종말론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심판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며 의롭다하는 판결의 표시이다. 옛 시대(old aeon)와 옛 사람이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심판을 받았고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새 창조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 그리스도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믿는 모든 자를 의롭게 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이같이 말하되 - '믿음에서 난 의'를 의인화시켰다. 이런 수사법은 바울 당시 철학&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적 연설을 할 때 종종 쓰였다. 의인화 용법으로써 5절의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와 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하여 '믿음에서 난 의'를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 본 구절은 70인역(LXX)의 신 30:12에서 그대로 인용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이다. 본 구절은 구약적 문맥에 비추어 보면 율법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롭다하&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심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는 것은 (1) 사람으로서 불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능할 뿐 아니라, (2) 이런 교만한 생각은 그리스도의 승천하심을 믿지 않는 데서 나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본 구절을 통해 율법으로 의를 구하려는 자들의 교만함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들의 망상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근본 핵심은 버리고 자신들의 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과 행위를 통해 하늘, 즉 의에 이르려는 것은 불가능하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네 마음에...하지 말라 - '하지 말라'의 헬라어 '메 에이페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말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믿음을 통한 의'는 율법을 통해 의를 이룰 수 없음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알고 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 이미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셨고 이것&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하였다. 이는 하&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인정치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 그들 중에 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셔서 생명을 주셨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 '음부'(아뷩손)는 6절의 '하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라논)과 그 높고 깊음에서 대조를 이룬다. 음부의 헬라어 '아뵤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는 히브리어 '테홈' 대신 사용된 말이다. '테홈'은 '물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깊음'(창 1:2)이나 '바다의 깊음'(시 107:26)을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본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의미는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인 '땅의 깊은 곳'(시 71:20), 즉 히브리어 표현으로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올'(Sheol)을 의미한다(시 139:8;암 9:2;Murray, Hodge, Cranfield). 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에 내려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이며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당하신 죽음을 믿지 않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무효(無效)로 하는 것이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인하는 것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다 - '모셔 올리는'의 헬라어 '아&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가게인'은 부활을 언급할 때 쓰인다(히 13:20). 이스라엘 중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스라엘인들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은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받&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들이지도 않았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 앞에서 부정적인 진술을 계속하였지만, 이제는 나아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방향을 제시하고, 바울이 언급하고자 하는 주제로 돌아 온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 신 30:14의 인용인&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데, 70인역에는 '심히'에 해당하는 '스포드라'가 있으나 본문에서는 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략하였다. 구약의 문맥에서는 율법을 통해 드러난(reveal)은 혜로운 면이 기록되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 백성은 신명기의 말씀대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들의 입과 마음에 두어 율법을 암송하며 묵상하였던 것이다(시 1:2). 여기서 '말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가깝다'는 것은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마음에 선물로서 그리스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영이 와 계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율법은 상대적 위치인 것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울은 신명기를 인용하여 말씀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마음에 있다는 표현으로 하늘에 올라가거나 음부에 내려가는 불가능성과 대조하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구원받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이 되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밝히 드러낸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 이 부분은 인용구에 바울이 첨가시킨 삽입구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전파하는'의 헬라어 본문 '케륏소멘'는 '가르치다', '설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다', '선포하다'의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사도들이 가르치고 설교하는 복음의 말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뜻한다. '우리가 전파하는'이라는 한정구는 '말씀이 멀리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견해에 있어서 바울이 모세와 같다는 것을 나타낸다. 전파된 말씀은 유대인에게나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방인에게나 은혜의 말씀으로 구약에 계시된 약속의 말씀, 즉 믿음의 말씀이다. 여기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믿음의 말씀'은 복음의 내용 그 자체이다(Calvin, Cranfield). 그리고 이 말씀은 믿&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음을 요구하는 말씀임을 뜻한다(Cranfield). 바울이 신 30:14에 나오는 '말씀'을 칭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justification)와 같게 본 것은 그리스도가 그 말씀의 실체이며 실제적 의미이기 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문이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 '네 입으로', '네 마음으로'는 8절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네 입에', '네 마음에'와 병행을 이룬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예수를 주로 - 이는 '예수는 주이시다'(Jesus in Lord)란 말이다. '주'에 해당하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헬라어 '퀴리오스'는 헬라 세계에 있어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나 노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호칭이었다. 또한 신비 종교(Mystery Religion)&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의 신들이었던 이시스(Isis)나 오시리스(Osiris)에게도 사용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통&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치자에게 이 명칭을 붙였다. 특히, 하나님의 칭호 '야웨'는 칠십인역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항상 '퀴리오스'로 번역했다. 즉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초대 교회에서 하나님에 해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는 절대적 의미의 칭호로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절대적 의미의 칭호로서 사용되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따라서 '예수가 주'라는 고백은 교회&amp;nbsp; 최초의 신앙 고백의 형태로서(행 2:36;고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3) 예수의 주권(lordship)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고백에는 경배의 대상이며 승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신 구주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 '살리신'의 헬라어&amp;nbsp; '에게이렌'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으키다'라는 말로서 이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잠자는&amp;nbsp; 자들의 첫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열매(아파르케)가 되셨다는 뜻이다(고전 15:2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부활하심은 신자들로 하여금 부활을 소망케하는 종말론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로 높이심으로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의 주되심을 시인케 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것을 의미한다. 이런 뜻에서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의 다시 사심을 고백했고 믿었던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다(빌 2:9-11).&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네 마음에 믿으면 -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마음에 믿는 것은 불가 분리의 관계이&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마음에서 믿는 만큼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진정한 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앙 고백을 전제한 것으로서 외식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입-&gt;마음의 순서는 인용문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명기의 순서를 따른 것으로 10절에서는 그 바른 순서, 즉 마음속에 믿는 것과 입으&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고백하는 자연적인 순서로 말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구원을 얻으리니 - 헬라어 본문 '소데세'는 미래형으로 종말론적 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eschatological salvation)을 언급한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의에 이르게 할 뿐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니라 결국 입으로 시인하게 하며 구원에 이르게 한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amp;nbsp; 이르느니라 - '마음'-'입',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믿는 것'-'시인하는 것'은 문장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한다. 또한 '의에 이르는 것'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원에 이르는 것'은 본문에서 역으로 사용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본절은 본서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제가 되는 1:16, 17의 구절을 기억시키는 내용으로서 믿고 시인함이 구원의 열매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맺는 것을 뜻한다. '믿어'와 '시인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튜에타이'&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와 '호몰로게이타이'는 수동태로서 믿는 것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게 하는 근본적인 능력이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음을 나타낸다. 즉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시인에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르게 됨을 나타낸 것이다(고후 5:14-15). '의에 이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지는 '의', 즉, '칭의'(稱義)를 말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하는 것'은 신앙의 기초이며 전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 앞에서 주 예수를 입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시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신앙을 아무 두려움 없이 공언하는 것이다(마 10:32;막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38;눅 12:8). 특히, 시인(是認)은 지적인 확인을 넘어 생활의 차원에서 삶으로 고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어져야 한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강요당하고 핍박받을 때 주 예수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구주로 시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시인은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역사 속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때 직면하게 되는 구체적 탄압과 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구원을 정직하게 표명(表明)하는 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까지도 의미한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 9:33과 같이 사 28:16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터 인용된 구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더 강조된 형태로 인용되었다. 즉 '저를 믿&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자'란 말 앞에 '누구든지'란 말이 첨가되어 있다(Hendriksen). 이렇게 강조된 것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앞에 언급된 4-10절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바&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구원이 유대 민족에게만 독점되어지고 또한 이방인에&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 있어서는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할례를 받은 자에게만 국한시켰던 것을 확장시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제는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자에게 허락되어졌음을 선포하고 있다(Godet).&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부끄러움을 당&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지 않는다는 이 문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그 어떤 종족이든지 차별을 받지 않고 똑&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같이 적용되어진다. 설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어떤면에 있어서는 '차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디아스톨레)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구원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22). 그런데 바울은 실제로 그의 서신서에서 유대인의 우선권에 강조점을 두고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었고(1:16;2:9, 10),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Covenant) 아래서는 이스라엘이 특권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3:1, 2:9:4, 5). 그러나 이는 구원 경륜의 순서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어서 이스라엘이 특권을 받은 것을 나타낼 뿐이다. 구원에 있어서는 유대인과 헬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 기타 이방인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없다(Dunn).&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바울&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 구원이 유대인과 헬라인 그외 모든 이방 민족에게 차별이 없는 분명한 이유를 '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께서'(the same Lord)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Lenski).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의 주'(퀴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스판톤, Lord of all)로 묘사하고 있는데 만일 유대인이&amp;nbsp; 하나님을&amp;nbsp; 주님(Lord)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믿고 있다면 그 하나님은 유대인뿐만&amp;nbsp; 아니라&amp;nbsp; 이방인에게도&amp;nbsp; 주님이&amp;nbsp; 되어야만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29, 30).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구세주(救世主)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동일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 그는 유대인과 헬라인 기타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신다(Dunn).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더구나 주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부르는 모든 자를 부요하게 하신다.' 이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님의 부요함을 말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의 보편적이고 동일한 은혜가 그를 부르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의미이다(Godet). 여기서 '부요하시도다'는&amp;nbsp; 헬라어로 '플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톤'인데 능동적인 개념으로 '자비하다'와 '은혜롭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alvin). 이것은 주님의 구원의 은혜와 그 능력은 무한하여 그가 부르는 모든 자에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은혜를 베푸시려는 선한 뜻은 결코 약화되거나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그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도를 믿는 자는 부요하신 주 하나님께(시 50:10-12;학 2:8;엡 3:8;계 5:12)속하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항상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됨으로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2:4;9:23;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10;고후 8:9;엡 2:7).&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바울은 구약성경에서 요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앞절에서 말한 내용을 더욱 강력하게 확증하고 있다. &quot;주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quot;는 이 사실은 이미 구약성경 욜 2:32에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예언되어 있었다(Godet).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예언하면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구&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을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다고 하였다(Calvin). 요엘에 의해 약속된 하나님의 이 말&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씀을, 베드로는 예수님 승천 후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설명하면서 인용하였다(행 2:16-21). 바울도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요엘서의 '여호&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와'(Jehova)를 '주'(Lord)와 동일시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주'는 '예수 그리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를 가리킨다(Alford, Harrison). 실제로 70인역(LXX)에는 언제나 '야웨'를 관사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없는 '퀴리오스'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퀴리오스)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구약에서의 '야웨'가 곧 그리스도 예수와 동일한 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주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강력한 증거가 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게 하며 또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 사이에 완전한 연속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Dunn). 여기서 '주의 이름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르는 자'란 주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자 곧 주를 믿는 자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하나님의 칭의(justification)를 받아 구원 받은 자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 바울은 이제 복음을 확장하여 범세계&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적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Bruce). 그래서 그는 믿음과의 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계에서 제일 먼저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양자간에는 밀접한 연&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관성이 있기 때문이다(Calvin). 주는 신뢰하고 믿을 만한 분이며 죄인들을 구원하여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주님을 부른다는 것은 무의미할&amp;nbsp; 것이다. 결국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님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을 믿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주를 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르는 일이 믿음의 첫걸음임을 가리킨다. 여기서 '어찌 부르리요'(How then shall they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all on, KJV, NIV)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포스 에피칼레손타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에피칼레손타이'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다'의 뜻을 가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피칼레오'의 3인칭 복수 부정과거 중간태로서 가정법으로 쓰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졌다. 이는 '그들을 부를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 바울은 두번째로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그리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에 대하여 듣는 것으로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서도 '포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떻게')를 사용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표현법을 쓰고 있다. 그는 이러한 논리적인 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증을 통해 믿음은 지식에 근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인간은 복음을 받아들이든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거부하든지 하려면 먼저 그 복음을 들어야함 한다. 한편 초대 교회 당시 대부분 사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들의 복음 전수(傳受) 방법은 메시지를 '듣는 것'이었다. 비록 소수의 교회가 바울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신을 받기는 하였지만 신약성경이 문자와 글로 읽을 수 있는 기록으로 갖추어지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않는 상황에서 복음의 내용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구두(口頭)로 전달되어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했다. 이같은 일은 성경의 전 시대에 걸쳐 일반적으로 계속 행해져 내려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Harrison). 왜냐하면 전파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과 신앙을 얻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 전파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만들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놓으신 전형적인 방법이 되었다(Calvin).&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ㅇ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세번째로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복음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메시지를 선포할 사람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바울은 사도나 전도자의 직책&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중요시하고 있다(Bruce).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능력을 증언함으로 그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하기 때문이다. '전파자'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케륏손토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 '케륏소'('전파하다', '가르치다')의 현재 능동태 분사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전파자'라는 말 앞에 관사가 없는데 이는 어떤 특별한 직책에 있는 사도들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 전도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파하는 모든 자'(someone preaching, NIV)를 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한다(Lenski). 헬라어 '케륏소'는 '전파하다', '알리다'의 뜻인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것은 왕이나 사령관의 메시지를 공개하여 알리는 전령의 행위로서 전령은 왕이 명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이외의 말을 가감할 수 없었으며 단지 왕의 명령을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