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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鐘莪의 쉼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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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11:03:1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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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균수명 100세까지는 간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하라&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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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11:03:11Z</updated>
	    <published>2009-11-08T11:03: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2 class=title_author id=title_text&gt;[장수 시대의 신(新)노인] &quot;평균수명 100세까지는 간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하라&quot;&lt;/H2&gt;&lt;!-- article --&gt;
&lt;DIV class=article id=article style=&quot;FONT-SIZE: 14px; LINE-HEIGHT: 23px&quot;&gt;고령사회로 치닫는 한국에서 '노인(老人)'이라는 말에는 어느덧 사회·경제적 '부담'이라는 은유(隱喩)가 덧씌워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역설(逆說)이다. 한국전쟁을 겪고 살아나 헐벗고 가난한 최빈국(最貧國)을 이렇게 키운 그들이 이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존재로 여겨지니 말이다.&lt;BR&gt;&lt;BR&gt;고령 계층은 이대로 우리 사회의 주역에서 점점 물러나야만 하는 걸까. 활기차고, 당당하고, 생산적인 노년의 삶은 불가능한 것일까.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일본&lt;/FONT&gt;&lt;/U&gt;&lt;/A&gt;에서 이 같은 개념의 '신(新)노인'을 주창해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킨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98) 박사는 &quot;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건강하고 창조적인 삶을 펼칠 수 있고, 그렇게 돼야 한다&quot;고 단호히 말한다.&lt;BR&gt;&lt;BR&gt;100세를 앞둔 나이지만 여전히 일본 최고 스타 의사로 활동하는 그는 6일 장수의학연구소를 개설하는 가천의대 초청으로 기념 특강차 내한했다. 히노하라 박사와 국내 장수의학 연구 최고 권위자인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school/schView.jsp?id=409&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서울대&lt;/FONT&gt;&lt;/U&gt;&lt;/A&gt; 박상철(생화학)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가천의대 길병원 이길여(산부인과 전문의) 이사장이 '건강 장수시대의 삶'을 주제로 5일 좌담회를 가졌다. 올해 60세인 박상철 교수는 이날 '평생을 인생의 현역'으로 살아가겠다는 90대와 70대 두 의사 앞에서 톡톡히 막내 취급을 당했다.&lt;BR&gt;&lt;BR&gt;
&lt;DIV class=center_img&gt;
&lt;DL style=&quot;WIDTH: 480px&quot;&gt;
&lt;DD&gt;&lt;IMG id=artImg1 height=274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1/06/2009110600002_0.jpg&quot; width=480&gt; 
&lt;DT&gt;&lt;SPAN&gt;▲&lt;/SPAN&gt;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98세의 히노하라 박사(가운데)와 77세의 이길여 이사장(왼쪽)은 젊은이처럼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올해 60세인 박상철 교수는 두 사람 앞에서 막내 취급을 당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lt;/DT&gt;&lt;/DL&gt;&lt;/DIV&gt;&lt;STRONG&gt;◆과거의 노인 개념을 버려라&lt;BR&gt;&lt;BR&gt;히노하라 박사=&lt;/STRONG&gt;일본은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1%이다. 도쿄와 그 주변 지역에는 75세 이상 인구가 약 1200만명 살고 있다. 이들이 생산력 있는 계층이 되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그러려면 노인 스스로 건강해져야 하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lt;BR&gt;&lt;BR&gt;&lt;B&gt;박상철 소장=&lt;/B&gt;일본의 평균 수명은 83세이고, 건강 수명 즉 장애 없이 독립생활이 가능한 나이는 75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79세이지만 건강 수명은 67세이다. 건강하지 않은 고령 계층이 너무 많다는 것이 큰 문제다.&lt;BR&gt;&lt;BR&gt;&lt;B&gt;이길여 이사장=&lt;/B&gt;그래서 장수의학 연구가 필요하다. 아무리 첨단의학이 발전해도 이미 질병 후유증으로 고생하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고령 계층이 질병에 걸리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의학적 연구가 절실한 시점이다.&lt;BR&gt;&lt;BR&gt;&lt;B&gt;히노하라=&lt;/B&gt;독립생활의 의미도 현대의학의 발달로 바뀌고 있다. 퇴행성관절염이 있어도 인공 관절을 넣고 잘 걸어 다닌다. 심장병이 있어도 심장박동 보조기를 차고 돌아다닌다. 도쿄 노인의학연구소에 따르면 1977년 70세인 사람의 건강과 체력 수준이 2007년에는 87세에 해당되는 것으로 조사된다. 30년 사이 17년이 젊어진 것이다. 이제 정년 퇴임 나이를 없애거나 75세로 10년 늘려야 한다.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59&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캐나다&lt;/FONT&gt;&lt;/U&gt;&lt;/A&gt;는 아예 정년을 없앴다. 열정과 건강만 유지하면 과거의 '노인'이 아니다.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으며 극심한 어려움을 치열하게 이겨냈다. 힘든 걸 모르는 주니어 세대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lt;BR&gt;&lt;BR&gt;&lt;B&gt;이=&lt;/B&gt;노인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 의미가 너무 커서 스스로를 위축시킨다.&lt;BR&gt;&lt;BR&gt;&lt;B&gt;히노하라=&lt;/B&gt;영어권에서는 '늙은'이라는 의미의 '올드'(old)보다는 존중의 의미를 지니는 나이 지긋한 '엘더리'(elderly)라고 한다. 우리의 몸은 늙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지는 것이다.&lt;BR&gt;&lt;BR&gt;&lt;B&gt;박=&lt;/B&gt;세계에서 세번째로 평균 수명이 긴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region/regionView.jsp?id=198&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홍콩&lt;/FONT&gt;&lt;/U&gt;&lt;/A&gt;에서는 노인을 오랫동안 푸르게 산다는 뜻으로 '장청인(長靑人)이라고 부른다.&lt;BR&gt;&lt;BR&gt;
&lt;DIV class=center_img&gt;
&lt;DL style=&quot;WIDTH: 480px&quot;&gt;
&lt;DD&gt;&lt;IMG id=artImg2 height=630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1/06/2009110600002_1.jpg&quot; width=480&gt; &lt;/DD&gt;&lt;/DL&gt;&lt;/DIV&gt;&lt;STRONG&gt;◆끊임없이 움직이고 열정을 품어라&lt;BR&gt;&lt;BR&gt;히노하라=&lt;/STRONG&gt;100세를 앞둔 나는 아직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오른다. 운동 부족을 보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항상 걸어서 근육과 뼈의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노년기를 망치는 최대 주범은 낙상 골절이다. 한번 뼈가 부러지면 회복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노년층에 만약을 대비해 잘 구르는 연습을 하라고 말한다. 손에 든 가방이나 물건에 연연하지 말고 잘 넘어져야 한다(웃음). 나이가 들면 척추에 골다공증이 생기면서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그래서 나는 걸을 때 체중이 뒤로 실리도록 발뒤꿈치부터 땅에 닿게 한다.&lt;BR&gt;&lt;BR&gt;&lt;B&gt;이=&lt;/B&gt;내 걸음이 하도 빨라서 젊은 사람이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하려는 정열이 나를 건강하게 하고 젊게 사는 최고 비결인 것 같다.&lt;BR&gt;&lt;BR&gt;&lt;B&gt;히노하라=&lt;/B&gt;그렇다. 정년 퇴임했다고 위축되지 마라. 그때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열정이 솟아오른다. 그전까지는 가족을 위해 봉사를 했다. 이제 은행원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다. 내 의지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참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숨겨진 내 안의 능력과 재능 유전자를 찾아내 새로운 삶을 즐겨라. 의학적으로 인간 수명은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증명됐다. 평균 수명이 100세는 간다. 그 시간을 어떻게 열정 없이 사나. 많은 사람들은 장수는 타고난 유전자 덕으로 안다. 물론 지금까지 내 머리카락이 안 빠진 것은 유전자 덕이다. 하지만 30세 때의 체중을 지금까지 유지한 것은 나의 노력이다.&lt;BR&gt;&lt;BR&gt;&lt;B&gt;박=&lt;/B&gt;평균 수명에는 젊은 사람의 사고 사망이나 질병사가 포함되기 때문에 현재 살고 있는 고령 세대의 평균 사망 나이는 그보다 훨씬 늦다. 일본 노인 계층의 평균 사망 나이는 벌써 92세이다. 우리나라도 곧 그렇게 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지금 중장년층은 인생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인생을 건강 장수로 보석(寶石)처럼 살 것인지, 병든 노인으로 화석(化石)처럼 지낼지는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 100세인의 공통적인 특징이 쓸데없는 짓 하지 않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lt;BR&gt;&lt;BR&gt;&lt;B&gt;히노하라=&lt;/B&gt;내 목소리는 여전히 명료하고 말하는 속도도 빠르다. 그 이유는 내가 복식호흡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항상 복식호흡을 하면서 발성 연습을 했다. 스포츠의학에서 운동선수들에게 복식호흡 발성을 연습시켰더니 모든 기록이 좋아졌다는 연구도 있다. 아이들은 불면증이 없는데 엎드려 자면서 복식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나도 엎드려 잔다. 2~3분이면 잠들고, 푹 잔 후 금방 깬다. 동물들은 엎드려 자는데, 불면증이 없다(그는 편하게 엎드려 자기 위한 베개를 직접 고안했고, 이를 여행 다닐 때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lt;BR&gt;&lt;BR&gt;&lt;B&gt;◆자원봉사는 먼저 산 세대의 의무&lt;BR&gt;&lt;BR&gt;히노하라=&lt;/B&gt;우리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다.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일년에 강의를 170번 정도 다닐 정도로 바쁘게 살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꼭 학교에 가서 어린 학생들에게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강의한다. 이는 우리 세대의 의무이다. 노년 계층은 타인을 위해 사는 정신이 있어야 품위 있고 아름답다. 그런 이타심이 노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열정을 만든다. 자원봉사야말로 우리 세대가 꼭 해야 할 소중한 생활이다.&lt;BR&gt;&lt;BR&gt;&lt;B&gt;이=&lt;/B&gt;후배를 키워주고, 주변에 사랑을 나눠주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신노인'의 진정한 생활 자세라고 본다. 그런 건강한 노인이 많을수록 사회가 발전한다. 미국 노인들은 쌓이는 자원봉사 인증 기록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긴다.&lt;BR&gt;&lt;BR&gt;&lt;B&gt;박=&lt;/B&gt;우리 연구소에서 고령 계층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면 순식간에 인원이 마감된다. 강의시간에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만큼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구는 높으나 그 동안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없었다는 의미다. 국가가 학생을 의무 교육시키듯이 이제는 노년 계층의 품위 있는 삶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해야 한다.&lt;BR&gt;&lt;BR&gt;&lt;B&gt;이=&lt;/B&gt;일본이 장수 국가가 된 것은 훌륭한 복지시스템이 있는 이유도 있지만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든 덕도 있다고 본다. 고령 계층의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는 데 걷기만한 효율적인 운동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맘 놓고 걷기 어려운 환경이다. 고령사회 대비는 이런 생활 밀착형 사업부터 해야 한다. &lt;BR&gt;&lt;BR&gt;&lt;A href=&quot;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06/2008110601354.html&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ff&gt;&lt;U&gt;거북이도 놀란 '건강 장수법'이란? &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lt;STRONG&gt;&lt;A href=&quot;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01/2009080100177.html&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장수하고 싶다면 생활 방식부터 바꿔라&lt;/FONT&gt;&lt;/U&gt;&lt;/A&gt;&lt;/STRONG&gt; &lt;/DIV&gt;&lt;!-- google_ad_section_end --&gt;&lt;!-- article --&gt;&lt;!-- art_wrap --&gt;
&lt;DIV class=art_wra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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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T&gt;&lt;SPAN&gt;▲&lt;/SPAN&gt; 생산적인 노년의 삶, 장수에 대해 노인건강 학자이자 현역 의사인 히노하라 시게아키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박상철, 가천의대 길병원 이길여 이사장이 좌담을 가졌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lt;/DT&gt;&lt;/DL&gt;&lt;/DIV&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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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난 늘 스무살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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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21:31:34Z</updated>
	    <published>2009-11-06T21:31:3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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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610334&gt;[ESSAY] 난 늘 스무 살이다&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사랑을 많이 하는 것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금도 우리 부부는 TV를 볼 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손을 꼭 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1.uf.daum.net/image/2047D5234AF416B170F1A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3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23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quot;젊은이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데, 회장님은 경영자로서의 삶 이외에 미래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quot;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80, 90살이 되었을 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또 건강이 허락한다면 몸으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 주는 해비타트 활동을 하는 것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lt;BR&gt;&amp;nbsp;&amp;nbsp;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간혹 나이 때문에 못한다고 핑계 대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는 육체보다는 생각에 의해 좌우된다. 나는 내 나이가 몇 살이든 스무 살이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을 유지하려면 젊은 생각으로 긍정적인 언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공부 장관을 지낸 오재경 선생님을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웅진씽크빅 사옥에 모시고 간 적이 있다. 휠체어로 이동해야 하는 오재경 선생님과 함께 사옥을 보고, 그림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은 좋은 것을 볼 때마다 &quot;아름답다. 훌륭하다!&quot;를 연발하셨다. 식사를 하시면서 &quot;맛있어, 윤 회장이랑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어!&quot;라고 소년처럼 웃으며 말씀하셨다. 90세의 노인이 쓰는 말이 아름답다, 맛있다, 훌륭하다는 젊은 청년의 단어들이었다. 물리적 나이는 90세가 넘으셨지만, 그분의 생각이 젊어서 함께하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lt;BR&gt;&amp;nbsp;&amp;nbsp; 만났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당장에라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바람에 상대방까지 힘이 빠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긍정적이고 밝고 희망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기운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언제나 젊게 살 수 있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젊음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적절한 휴식과 취미를 갖는 것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quot;밤낮이 없이,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만 했다&quot;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일만 하고 즐거움이 없었다니 인생이 얼마나 단조로울까 싶어서다. 국가적 빈곤을 겪은 우리 세대는 사실 잘 놀 줄을 모른다. 놀아본 경험이 없으니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겸양이었지만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는 나이 들수록 제대로 놀 줄 알아야 인생이 즐겁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는 닷새는 열심히 일하고, 이틀은 즐겁게 쉰다. 주말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 회사에서도 내 생활 패턴을 알아서 어지간해서는 주말에 회사 일로 연락하지 않는다. 몰두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시간이 날 때 주로 바둑을 두는데 얼마 전부터 미술사 공부를 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치를 찾는 즐거움 때문에 매주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사랑을 많이 하는 것이다. 특히 가족 간의 사랑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주변에서 아내 덕에 잘됐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내도 어느 스님이 그랬다면서 &quot;내 덕에 당신이 잘된 것&quot;이라고 한다. 사실 아내와 결혼한 이후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그 말은 사실이다. 그래서 '보물 같은 아내랑 살고 있으니, 이 보물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싶어 아내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내가 아내를 보물같이 여기니, 아내도 내게 어떻게 하면 잘해줄까를 연구하는 모양이다.&lt;BR&gt;&amp;nbsp;&amp;nbsp; 지금도 우리 부부는 TV를 볼 때 손을 꼭 잡고 있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별 내용이 없어도 목소리라도 듣기 위해 전화를 한다. 젊은 부부와 같은 사랑과 배려를 유지하고 있으니 생활이 즐겁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매년 나이를 먹으면서도 매년 스무 살 청년이 되려면 꿈과 희망이 있어야 한다.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나이가 젊어도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젊음을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lt;BR&gt;&amp;nbsp;&amp;nbsp; 지금 이 시점에서 10년 전을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젊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는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10년 후에는 &quot;10년 전, 오늘 더 많은 꿈을 꾸고 더 많이 노력할 것을 그랬다&quot;고 또다시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 가장 크고 원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날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lt;BR&gt;&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꿈이 현실로 변하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부터이다. 긍정적인 생각이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큰 시련이 닥쳤을 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한탄하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 내게는 조금 먼저 생겼을 뿐, 이 일을 이겨 내면 나는 분명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생긴다. 운이 좋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젊다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도전, 용기, 희망, 열정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스무 살 청년이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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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정희 대통령 기념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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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종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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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20:57:32Z</updated>
	    <published>2009-11-06T20:57:3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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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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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src=&quot;http://image.munhwa.com/gen_news/200910/20091027010330371750020_b.jpg&quot; width=24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view_setting id=view_body style=&quot;FONT-SIZE: 14px; LINE-HEIGHT: 22px&quot; align=justify name=&quot;view_body&quot;&gt;&lt;!-- google_ad_section_end --&gt;&lt;!-- google_ad_section_start --&gt;&lt;!-- 키워드 링크 광고 적용 div 20090515 by 김명준 --&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건 야만(野蠻)!’이라고 소리칠 수밖에.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전직',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전직');&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전직&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대통령 기념관 하나 못세우는 나라에서 국민과 해외를 향해 국격(國格)을 말할 자격이? 어구구!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그가 서거한 지 30년, 오늘을 살아가는 국민이 내리고 있다. ‘리서치 앤 리서치’가 영남대 박정희&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리더십',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리더십');&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리더십&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연구원의 의뢰로 ‘국가 발전에 가장 기여한 전직 대통령’이 누구냐고 여론조사를 했더니, 박정희가 압도적으로 75.6%가 나왔다. 호감도는 90.6%. 또 74.9%가 박정희 기념사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박정희의 공적에 대해서는 이제 ‘논란 끝’이라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국민이 그렇게 합의하고 있다. &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러나? 10·26 기념 행사는 달랑 3건.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연세대',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연세대');&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연세대&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동아시아협력센터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소장',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소장');&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소장&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박명림과 호주 국립대 호주·한국 리더십 포럼 소장 김형아가 연세대에서 주최한 박정희 재평가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세미나',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세미나');&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세미나&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서울 국립고궁&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박물관',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박물관');&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박물관&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에서 열린 유품 전시회, 10·26 당일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추도식',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추도식');&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추도식&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연세대에서 열린 세미나도 박정희 사람들의 ‘후예’들이 공교롭게 정치·사회학자가 됐기 때문에 마련될 수 있었다. 10·26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유혁인의 아들인 연대 교수 유석춘, 외교담당특별보좌관 함병춘의 아들인 미 랜드&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연구소',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연구소');&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연구소&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연구원',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연구원');&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연구원&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함재봉, 국회의장 권한대행 민관식의 영원한 비서실장 모영기의 아들인 연세대 교수 모종린. 대(代)가 끊겼다면 이런 세미나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박정희기념관’을 추진 못하고 있다. 꼴&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보수',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보수');&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보수&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로 몰릴까봐. 김대중이 1997년 대선 때 박정희기념관 건립 공약으로 영남표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장사',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장사');&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장사&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를 했다가, 노무현 정권은 이름까지 물타기해 ‘박정희 기념·도서관’으로 바꿔 사실상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백지',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백지');&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백지&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화. 서울 상암동 하늘&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공원',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공원');&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공원&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열병합발전소 앞 택지개발지구에 공사장 팻말도 없이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울타리',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울타리');&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울타리&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만 쳐놓고 부지라고? 기발한 발상이여! 국가의 이성인가, 야만인가? &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명박 정권은 ‘박정희기념관’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명품 기념관’으로 세워야 한다. 기념관 위치부터 수도 서울의 &lt;/SPAN&gt;&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심장',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심장');&quot; onmouseout=mouseOu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심장&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으로 바꿔야. 기념관은 국민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접근성이 생명. 대통령 이명박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광화문 일대를 국가상징거리로 만들겠다고 약속. 바로 광화문 주변에서 부지를 새로 찾아야. 박정희 사람들은 이제 연로해 추진력이 없다. 대통령 이명박, 당당히 박정희기념관을 세워라! 당당히. 아, 국격이여! &lt;/SPAN&gt;&lt;/FONT&gt;&lt;BR&gt;&lt;BR&gt;[[윤창중 / 논설위원]]&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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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대판 비암장사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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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종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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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18:53:29Z</updated>
	    <published>2009-11-06T18:53:2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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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
&lt;TABLE cellSpacing=5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eight=304 hspace=0 src=&quot;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9/07/15/200907150500009/image/200907150500009_1.jpg&quot; width=250&gt;&lt;/TD&gt;&lt;/TR&gt;
&lt;CAPTION class=c_c vAlign=bottom align=left&gt;&lt;FONT color=#002879&gt;&lt;/FONT&gt;&lt;/CAPTION&gt;&lt;/TABLE&gt;&lt;/P&gt;
&lt;P&gt;
&lt;P&gt;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냐!/ 하체에 힘이 없고 오줌을 발등에 지리는 저기 저 아저씨/ 이 비암 댓 마리만 고아 먹어봐/ 오줌발이 담장을 넘겨/ 담벼락에 쏘지 마, 담 넘어가!/ 한 번만 잡숴봐, 다음 날 아침에 반찬이 바뀌어/ 어이, 애들은 가라! 
&lt;P&gt;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장터에 가면 음탕한 잡설로 손님을 모은 후 뱀을 팔거나 환으로 만든 정력제를 팔던 ‘뱀장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부터 장터 한구석을 지켰던 뱀장수는 99년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 시판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lt;P&gt;그런데 이젠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국내에선 외국산 3개 품목에 토종 2개 품목까지 가세해 ‘발기전쟁’이 치열한데, 그 선전문구를 보면 뱀장수의 입담이 생각난다. 비아그라는 “원조가 누구여? 바로 나여!”, 시알리스는 “일단 오래 하는 게 장땡이여!”, 레비트라는 “쓸데없이 길어서 뭐 해. 부작용 없고 강해야지”, 자이데나는 “신토불이, 한국인 체질에 맞게 딱 12시간”, 엠빅스는 “다 필요 없어. 남자는 힘! 국제발기력지수 최고 점수”라는 식이다. 
&lt;P&gt;하지만 발기부전 치료제는 말 그대로 치료제일 뿐 정력제가 아니다. 멀쩡한 사람은 의존성이 생길 수 있어 삼가야 한다. 정말 필요하다면 반드시 의사의 진찰 뒤 처방에 따라야 ‘아랫도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대통령의 `맛집` ⑥ 백담사서 나물먹던 전두환, 다금바리 맛에 반하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hp1460/1720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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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종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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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22:25:01Z</updated>
	    <published>2009-11-05T22:25: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2&gt;대통령의 `맛집` ⑥ 백담사서 나물먹던 전두환, 다금바리 맛에 반하다! &lt;SPAN class=source&gt;[조인스]&lt;/SPAN&gt; &lt;/H2&gt;&lt;!-- e : 기사 제목 --&gt;&lt;!-- s : 기사 / 댓글탭 --&gt;
&lt;DIV class=btmBox&gt;
&lt;UL class=menulist&gt;
&lt;LI id=btnON&gt;&lt;A href=&quot;javascript:;&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기사&lt;/FONT&gt;&lt;/U&gt;&lt;/A&gt; &lt;/LI&gt;
&lt;LI class=last&gt;&lt;A href=&quot;http://comment.joins.com/news/list.asp?ctg=12&amp;aid=3860105&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나도 한마디 &lt;SPAN class=num id=comment_count&gt;(13)&lt;/SPAN&gt;&lt;/FONT&gt;&lt;/U&gt;&lt;/A&gt; &lt;/LI&gt;&lt;/UL&gt;
&lt;P class=inputTime&gt;2009.11.05 10:11 입력 / 2009.11.05 15:14 수정 &lt;/P&gt;&lt;/DIV&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
&lt;DIV id=joinskmbox&gt;&lt;!--cmpm--&gt;
&lt;DIV class=article04 id=articleBody&gt;&lt;!--img_tag_s--&gt;&lt;!--img_tag_s--&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94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5&gt;&lt;/TD&gt;
&lt;TD&gt;&lt;IMG class=blb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06/htm_20090605143131c000c020-003.GIF&quot; width=94 border=0&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lt;!--replace1--&gt;&lt;!--replace2--&gt;&lt;B&gt;남북 정상과 소련 대통령까지 반한 '맛' &lt;/B&gt;&lt;BR&gt;&lt;BR&gt;지난 1991년 제주도 중문 신라호텔에서 열린 노태우-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한-소 정상회담을 결코 잊을 수 없는 현지인이 있다. 남제주군 산방산 아래에 터를 잡은 지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식당 '진미명가'의 3대 사장 강창건씨다. &quot;정상회담이 열리기 3개월 전, 사전 답사를 온 소련 측 고위인사가 안전기획부 요원과 함께 우리 집에 와서 다금바리 회맛을 보고 난 뒤 'OK'를 하고 갔어요.&quot; 그리고 3개월 뒤, 강 사장은 한-소 정상회담장인 신라호텔로 출장을 가 두 정상 만찬 테이블에 다금바리회를 올렸다. &quot;외국 사람이라 생선회가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별 4개짜리 최고급 보드카를 따더니 회와 함께 맛있게 드시더라고요.&quot; 이 내용이 나중에 알려지면서 진미명가는 전국의 미식가들의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게 됐다. &lt;BR&gt;&lt;BR&gt;
&lt;CENTER&gt;&lt;!--img_tag_s--&gt;&lt;IMG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0510093830003010-001.JPG&quot; name=photo&gt;&lt;!--img_tag_e--&gt;&lt;/CENTER&gt;&lt;BR&gt;&lt;BR&gt;&lt;B&gt;60송이 장미 오른 부인 회갑상에, 전 전 대통령 &quot;이제 우리는 가족&quot; &lt;/B&gt;&lt;BR&gt;&lt;BR&gt;“한-소 정상회담을 잘 치르고 난 얼마 후 안기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정상회담 때 쓰던 접시까지 똑같이 해서 다금바리를 요리해 달라는 거였죠.” 자신을 부른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른 채 나갔던 마라도 출장. 그 출장이 큰 인연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몇 년 후에야 자신을 부른 사람이 누군 줄 알았다.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은 제주도에 들를 때면 호텔로, 아니면 진미명가로 강창건 사장을 찾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quot;백담사에서 산초만 먹다가 유배에서 풀려나 처음으로 바닷바람을 쐬러 마라도에 갔는데 그때 주위의 권고로 맛본 당신의 다금바리 맛을 잊을 수 없었다&quot;고 했단다. &lt;BR&gt;전 전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 여사의 회갑연을 진미명가식당에서 열었다. “다금바리 요리와 제주의 해산물로 최선을 다해 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미리 주문한 장미꽃 예순 송이도 상에 올렸습니다.&quot; 생각지도 않았던 장미꽃 선물을 받은 부인의 환한 얼굴을 본 전 전 대통령은 &quot;전 세계를 돌아다녀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quot;이라며 &quot;재국 엄마, 강 사장께 술 한 잔 따라드려&quot;라고 '명령'했고, 강 사장은 그날의 주인공으로부터 &quot;고맙다&quot;는 말과 함께 잔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전 전 대통령은 &quot;이제 우리는 가족&quot;이라며 당시 중학생이던 강 사장의 외아들 경석이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어린 경석이는 &quot;나중에 군대 갔다와서 증조부님 때부터 이어온 진미의 대를 잇겠다&quot;고 답하자, 군인 출신인 전 전 대통령은 &quot;기특한 아이&quot;라며 두둑한 용돈을 주기도 했다. &lt;BR&gt;&lt;BR&gt;이날 이후에도 강 사장의 손맛과 정성을 잊지 못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연희동 자택으로 출장을 와달라고 강 사장에게 요청했고, 이에 흔쾌히 응하자 어느날 &quot;그동안 고마웠다&quot;며 자신의 이름이 진미명가의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마다 연말이면 전 전 대통령은 강 사장에게 연하장을 보내고 있다.&lt;BR&gt;&lt;BR&gt;&lt;B&gt;평양까지 보내진 다금바리…남북 국방장관회의 참석 김 부장 추천 &lt;/B&gt;&lt;BR&gt;&lt;BR&gt;강창건 사장은 요리 솜씨만큼이나 입답도 뛰어나다. “2000년 9월 24일에 남북 국방장관회담으로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제주도를 방문했습니다. 방문 며칠 전에 국가정보원에서 소식을 미리 알리며 한 이불 덮고 자는 아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취재진을 따돌리고 진미명가에 자리를 함께한 남북 군 최고책임자들의 식사 분위기는 처음엔 자연스럽지 않았다. “38선을 긋듯 서로 맞은편에 앉아 썰렁한 분위기였죠. 그래서 음식은 국경도 초월하는 것이므로 '즐겁게 먹어야 한다'며 양측이 함께 사진을 찍기를 권했습니다.” '당돌한' 제안이었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부드러워졌다. 곧 두 장관은 웃으며 사진을 찍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다금바리를 처음 맛본 김일철 부장은 “이런 맛은 처음 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lt;BR&gt;&lt;BR&gt;진미명가의 다금바리 맛은 입소문을 통해 평양에도 전해졌다. 그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아산은 &quot;평양 최고위층에 보낼 '특별한 선물'이 필요하다&quot;며 진미명가에 다금바리를 주문했다. 강 사장이 직접 구입한 다금바리는 항공기 편으로 '제주-부산-속초'로 보내졌고, 설봉호를 통해 금강산에서 평양으로 두차례 전달됐다. 진미명가식당에 걸려있는 '금강산 사계' 사진은 북한 사진작가 이정수의 작품으로, 다금바리를 보내준 데 대한 북측의 답례 선물이다. &lt;BR&gt;&lt;BR&gt;&lt;B&gt;4대 이을 외아들 조리학과 마치고 현장서 맹훈련 중 &lt;/B&gt;&lt;BR&gt;&lt;BR&gt;최근 진미명가에는 한 명의 조리사가 더 늘었다. 바로 조리학과를 졸업한 외아들 경석씨.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다금바리 조리사로 이미 출사표를 던졌다. “어릴 때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약속을 했어요. 꼭 아버지를 이어 훌륭한 다금바리 조리사가 되겠다고. 이제 그 약속을 지켰어요.” 스물일곱 청년으로 자란 경석씨가 강 사장만큼의 실력을 갖춰 4대 진미명가의 주인이 되는 날을 강 사장은 기다리고 있다. &lt;BR&gt;&lt;BR&gt;뉴스방송팀 최영기·강대석 기자 &lt;BR&gt;&lt;BR&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14&amp;Total_ID=3791852&quot; target=new&gt;&lt;SPAN style=&quot;COLOR: #8b0000&quot;&gt;&lt;U&gt;&lt;B&gt;▶대통령의 맛집 ① 노 전대통령 '블라인드 테스트' 로 직접 고른 막걸리&lt;/B&gt; &lt;/U&gt;&lt;/A&gt;&lt;/A&gt;&lt;/SPAN&gt;&lt;BR&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00&amp;Total_ID=3812810&quot; target=new&gt;&lt;SPAN style=&quot;COLOR: #8b0000&quot;&gt;&lt;B&gt;&lt;U&gt;▶대통령의 맛집 ② 경호원들 주방 점검에 &quot;대통령 안 받겠다&quot; &lt;/U&gt;&lt;/B&gt;&lt;/A&gt;&lt;/A&gt;&lt;/SPAN&gt;&lt;BR&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003&amp;Total_ID=3825182&quot; target=new&gt;&lt;U&gt;&lt;SPAN style=&quot;COLOR: #8b0000&quot;&gt;&lt;B&gt;▶대통령의 맛집 ③ 박정희 전대통령이 뒤봐준 막걸리 &lt;/B&gt;&lt;/A&lt; a&gt;&lt;/SPAN&gt;&lt;BR&gt;&lt;/U&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848643&quot; target=new&gt;&lt;SPAN style=&quot;COLOR: #8b0000&quot;&gt;&lt;B&gt;&lt;U&gt;▶ 대통령의 맛집 ④ '박 전 대통령이 맛있다며 싸달라고 하셨는데…' &lt;/U&gt;&lt;/B&gt;&lt;/A&gt;&lt;/SPAN&gt;&lt;BR&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848643&quot; target=new&gt;&lt;SPAN style=&quot;COLOR: #8b0000&quot;&gt;&lt;B&gt;&lt;U&gt;▶ 대통령의 맛집 ⑤ KAL 폭파범 김현희, 고기 먹다 눈물을 '펑펑' &lt;/U&gt;&lt;/B&gt;&lt;/A&gt;&lt;/SPAN&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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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통령의 맛집 ⑤ KAL 폭파범 김현희, 고기 먹다 눈물을 `펑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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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22:22:3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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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2&gt;대통령의 맛집 ⑤ KAL 폭파범 김현희, 고기 먹다 눈물을 `펑펑` &lt;SPAN class=source&gt;[조인스]&lt;/SPAN&gt; &lt;/H2&gt;
&lt;P class=inputTime&gt;2009.10.29 09:46 입력 / 2009.11.05 15:04 수정 &lt;/P&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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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3&gt;윤보선 전 대통령의 `새재 할매집`&lt;/H3&gt;&lt;!--img_tag_s--&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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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4&gt;관련핫이슈&lt;/H4&gt;
&lt;UL class=list01&gt;
&lt;LI&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issue/issue.asp?sid=5714&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통령의 맛집&lt;/FONT&gt;&lt;/U&gt;&lt;/A&gt;&lt;/LI&gt;&lt;/UL&gt;&lt;/DIV&gt;&lt;!--replace1--&gt;&lt;!--replace2--&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U&gt;&lt;FONT color=#0000ff&gt;&lt;/FONT&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예쁜 새댁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울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셨죠.” 경북 문경의 ‘새재 할머니집’ 남욱진(51) 대표는 그날을 회상했다.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하여 공중 폭파됐다. 이 사고로 115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고, 폭파범 김현희는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됐다. 이후 국가안전기획부의 관리를 받던 김현희가 ‘새재 할머니집’을 방문한 것이다. “어머니께서 왜 안 먹고 울기만 하느냐고 물으시니까, 맛있는 음식을 보니 북에 있는 가족이 생각난다”고 하더래요. &lt;BR&gt;&lt;BR&gt;&lt;B&gt;“놀면 손에 꽃 피냐?”&lt;/B&gt;&lt;BR&gt;&lt;BR&gt;지난해 12월 별세한 황학순 할머니는 문경의 명물 ‘새재 할머니집’을 창업했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 여섯 어린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행상에 나선 황 할머니는 19칸짜리 산장을 지을 정도로 장사 수완이 좋았다. “어머님께서는 정말 부지런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게에서 일하셨고, 장부 정리까지 하셨죠.”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장부를 매만지며 남욱진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놀면 손에 꽃피냐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어요. 41년간을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까지 장사를 하면서 보내셨죠.”&lt;BR&gt;&lt;BR&gt;&lt;B&gt;하루에 150근, 약돌돼지 양념구이 400~500판 팔려&lt;/B&gt;&lt;BR&gt;&lt;BR&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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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오늘의 ‘새재 할머니집’이 있기까지 일등 공신은 단연 ‘돼지고기 양념구이’. 문경 새재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새재 산장’을 운영할 때 탄생한 메인 메뉴다.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양념한 돼지고기를 연탄불에 구우면 그 맛이 끝내줍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님도 그 맛을 잊지 못하시고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셨죠.” 윤보선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부인 공덕귀 여사와 산행을 즐겼다. 마침 문경 새재를 들렀다 처음 먹어본 ‘돼지고기 양념구이’의 맛은 이후에도 윤 전 대통령의 발길을 문경으로 이끌었다. 대통령의 발길을 붙잡은 이 양념구이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고기와 소스, 그리고 구이법에 있었다. '새재 할머니집'의 돼지고기는 문경에서만 나는 ‘약돌돼지’을 쓴다. ‘약돌돼지’는 Ho(피부질환, 간암 치료제 사용), Se(중금속 흡착제거)성분이 다량 함유된 거정석을 갈아 먹여 키운 것으로 육질이 쫄깃하고 맛이 고소하다. 또한 직접 담근 고추장과 순수 국내산 재료가 곁들여져 완성된 소스는 돼지고기의 비린내와 느끼함을 잡는다. 여기에 석쇠로 숯불에 구우면 기름까지 빠져 최상의 맛이 탄생한다. 이 환상의 궁합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새재 할머니집’은 연일 문전성시. 하루에 150근, 석쇠판으로 400~500판 정도가 팔린다. 특히 주말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아예 맛볼 생각을 말아야 한다. &lt;BR&gt;&lt;BR&gt;&lt;B&gt;장관 부인도 ‘새댁’이라고 불러&lt;/B&gt;&lt;BR&gt;&lt;BR&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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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41년간의 장사에 단골은 당연지사. 황학순 할머니에겐 윤보선 전 대통령,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연예인 등 정계·재계 할 것 없이 다양한 단골이 있었다. “손님들 덕에 먹고사는 것이니 손님들께 늘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사람이 재산이라는 것을 알려 주신거죠.” 단골이 많다 보니 해마다 명절이 되면 선물 역시 많이 보내야 했다. “명절 2~3개월 전부터 선물 준비를 하세요. 산에서 직접 채취한 나물·밤·땅콩 등을 잘 말려두시고 그것을 포장해 선물로 보내셨어요. 돈보다는 정성이었죠.” 매년 그렇게 보내진 할머니의 정성은 받는 사람에겐 큰 감동이었다. “장관 부인께서 '감사하다'고 전화를 하시니까 ‘새댁’ 그 나물 잘 볶아서 제삿상에 올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lt;BR&gt;&lt;BR&gt;&lt;B&gt;&quot;정성 다하라&quot; 유언…&quot;인간 사랑 이어가겠다&quot; &lt;/B&gt;&lt;BR&gt;&lt;BR&gt;'창업주' 황학순 할머니의 ‘새재 할머니집’은 외아들 남욱진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주방에서 일하는 할머님들께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며느리한테 음식 비결 좀 잘 가르쳐주라고. 그래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어머님께서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팀이 오면 스타들에게는 제값을 다 받으셨어요. 하지만 엑스트라 분들께는 할인도 해드리고 음식도 더 가져다주곤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물으니 스타들은 돈을 많이 벌고 엑스트라 분들은 그게 아니라서 그런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님의 이런 따뜻한 '인간 사랑'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lt;BR&gt;&lt;BR&gt;뉴스방송팀 최영기, 강대석 기자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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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통령의 맛집 ③ 박정희 전대통령이 뒤봐준 막걸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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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22:19:35Z</updated>
	    <published>2009-11-05T22:19:35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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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2&gt;대통령의 맛집 ③ 박정희 전대통령이 뒤봐준 막걸리 &lt;SPAN class=source&gt;[조인스]&lt;/SPAN&gt; &lt;/H2&gt;
&lt;P class=inputTime&gt;2009.10.15 09:37 입력 / 2009.10.15 10:18 수정 &lt;/P&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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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마을의 은인이지”&lt;BR&gt;&lt;BR&gt;78세의 전남선 할머니는 고 박정희 대통령을 평생 은인으로 생각한다. 1964년 만성적인 식량부족사태 해결의 일환으로 정부는 쌀 막걸리 제조를 금지하고 막걸리의 중요 원료인 누룩 제조 역시 금지했다. 열아홉살에 두메산골로 시집와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누룩이 금지가 된 것이다. &lt;BR&gt;&lt;BR&gt;&lt;B&gt;박정희 대통령이 몰래 뒤봐줘&lt;/B&gt;&lt;BR&gt;&lt;BR&gt;“먹고살아야 하니까 몰래 만들어 타지로 나가 팔았지. 그땐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누룩을 만들어 팔았어. 그러다 붙잡혀서 유치장에 갇혀 있기도 했어.” 산입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다고 했던가.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금정산성 동문 앞에 주막집을 하는 할머니가 있었어. 어느 날 박 대통령이 지나가다 그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게 됐지. 박 대통령이 너무 맛있어서 “뭐로 만든 막걸리냐”고 물으니 그 집 할머니가 우리 누룩으로 담근 술이라고 말했지.” 5·16 군사 쿠데타 전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정산성에 마신 막걸리에 흠뻑 빠져버린다. “그때 박 대통령이 “이렇게 좋은 전통주를 없애면 되겠느냐”고 말하신 후 몰래 우리 동네 뒤를 봐줬지.” 이후 79년에도 박 대통령은 부산에 순시차 내려와 산성막걸리를 찾았다. &lt;BR&gt;&lt;BR&gt;&lt;B&gt;얼굴로 누룩방 온도 측정해&lt;/B&gt;&lt;BR&gt;&lt;BR&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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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e--&gt;10평 남짓 한 누룩방에는 5명의 아주머니들이 바쁘게 누룩을 빚고 있다. 전남선 할머니의 지휘 아래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린 아직도 멀었어요. 어머니가 누룩 만드시는 것에 비하면…” 딸 유미옥(43)씨는 어머니를 도와 누룩을 빚고 있다. 더 이상 누룩이 생계수단은 아니지만 지금도 억척스럽게 누룩을 만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도와드리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하나. 그래도 자식들이니까 도와주는 것이지. 그래도 요즘은 막걸리가 유행이라 그런지 누룩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이 많이 와. 그런데 다들 기계나 형태에 의존하려 하지 진실한 것을 보지 못하더라고. 나한테 “누룩방 온도가 몇 도냐” 이런 거 물어보면 난 몰라, 그냥 내가 누룩방에 얼굴을 넣어보고 아는 것이지.” &lt;BR&gt;&lt;BR&gt;&lt;B&gt;중정 요원들이 비밀리에 막걸리 '수송'&lt;/B&gt;&lt;BR&gt;&lt;BR&gt;전남선 할머니의 최대 고객은 아들 유청길(51)씨다. 금정산성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유청길 씨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누룩을 사용해 ‘민속주 1호 산성막걸리’를 만든다. 그에게도 고 박정희 대통령은 은인으로 남아있다. “1978년에 민속주 지정 신청을 하고, 79년에 허가가 났어요. 최초의 민속주라는 영광을 얻은 것이죠. 박정희 대통령께선 막걸리 매니어시잖아요. 즐겨 드시던 동문 할머니 막걸리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비밀리에 말통으로 사가곤 했어요. 군수기지사령관 시절에 드시던 맛을 잊지 못하신 거죠.” &lt;BR&gt;&lt;BR&gt;&lt;B&gt;일본보다 못한 국내 대기업들&lt;/B&gt;&lt;BR&gt;&lt;BR&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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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e--&gt;유청길 씨는 지금도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현재 누룩을 사용하던 우리의 전통 양조방법은 흑국, 황국 등의 일본식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퍼지며 거의 사라졌다. 전통의 맥이 끊어질 위기인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발효전문가들이 찾아와요.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일본에 가서 1년만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조금 편하다는 이유로 전통을 버리고 있어요. 너무 아쉽죠. 대기업들도 문제예요.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기술이전에 대한 대가는 전혀 지불하려 하지 않아요. 누룩을 제조하기 위한 종균이 생성되려면 적어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해요. 저희 누룩방의 종균실은 지금도 50년 이상 된 갈대를 사용하고 있어요.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죠.” &lt;BR&gt;&lt;BR&gt;조상들의 뒤를 이어 유청길 씨 형제들이 누룩을 만든 지 40여년이 흘렀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만든 누룩. 그 누룩으로 전통주를 담그는 아들. 외국만큼도 전통을 인정해 주지 않는 나라에서 이 가족들이 지켜온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도 금정산성의 누룩방에선 전남선 할머니의 누룩 밟는 소리가 울린다. &lt;BR&gt;&lt;BR&gt;뉴스방송팀 최영기·강대석 기자 &lt;BR&gt;&lt;BR&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14&amp;Total_ID=3791852&quot; target=new&gt;&lt;FONT color=#810081&gt;&lt;U&gt;&lt;B&gt;▶대통령의 맛집 ① 노 전대통령 '블라인드 테스트' 로 직접 고른 막걸리&lt;/B&gt; &lt;/U&gt;&lt;/FONT&gt;&lt;/A&gt;&lt;BR&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00&amp;Total_ID=3812810&quot; target=new&gt;&lt;B&gt;&lt;U&gt;&lt;FONT color=#810081&gt;▶대통령의 맛집 ② 경호원들 주방 점검에 &quot;대통령 안 받겠다&quot; &lt;/FONT&gt;&lt;/U&gt;&lt;/B&gt;&lt;/A&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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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통령의 맛집 ② 경호원들 주방 점검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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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종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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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22:16:0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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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2&gt;대통령의 맛집 ② 경호원들 주방 점검에 `대통령 안 받겠다` &lt;SPAN class=source&gt;[조인스]&lt;/SPAN&gt; &lt;/H2&gt;
&lt;P class=inputTime&gt;2009.10.08 09:57 입력 / 2009.10.08 11:37 수정 &lt;/P&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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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3&gt;을지로 양미옥&lt;/H3&gt;&lt;!--img_tag_s--&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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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했죠.”&lt;BR&gt;&lt;BR&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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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2005년 5월 10일, 탁승호(59) 대표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대통령님을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꿈이 이뤄진 것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결혼 43주년 기념연을 저희 가게에서 하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저희 전문인 양곱창이 기름기 없고 고단백이어 김 전 대통령님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치의의 권유가 있었다고 합니다.&quot; &lt;BR&gt;&lt;BR&gt;&lt;B&gt;선도 만점 양곱창의 비결은 ‘얼음물’&lt;/B&gt;&lt;BR&gt;&lt;BR&gt;고 김대중 대통령은 대식가이자 미식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저희 집은 재료의 쫄깃함과 신선도를 위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얼음물을 이용해 손질을 하는 것이죠. 양곱창이나 대창 등 내장은 사람의 체온만으로도 쉽게 변질됩니다. 그래서 얼음물로 손을 차갑게 한 후 최대한 빨리 손질을 하는 것이죠. 이러면 양곱창은 조개관자처럼 쫄깃함이 살아있습니다. 이 맛을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양미옥의 양곱창은 쫄깃한 육질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느끼함이 없다. 또한 대창구이와 함께 섞어먹는 양곱창은 자칫 퍽퍽할 수 있는 맛에 기름기를 돋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한 달에 서너 번, 그것도 손님이 붐비지 않는 일요일 점심 때에 ‘양미옥’을 방문했다고 한다. “늘 이희호 여사님과 같이 오셨어요. 오시면 양곱창 2인분을 드셨죠. 이 여사님은 물냉면을 좋아하셨습니다.”&lt;BR&gt;&lt;BR&gt;&lt;B&gt;고 김대중 대통령 전용의자까지 맞춰&lt;/B&gt;&lt;BR&gt;&lt;BR&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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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lb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0/htm_2009100810012320002010-002.JPG&quot; width=250 border=0 name=photo&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첫 방문 전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어요. 다리가 불편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2층을 올라가시기 불편하니 1층 자리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요청하셨죠.” 탁 대표는 곧바로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구매했다. “식사하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니 의자가 좀 불편해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따로 의자를 맞췄죠.” 고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맞춰진 의자는 현재 탁승호 대표의 사무실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귀중한 물건이라 잘 모셔놓고 있지만 저 의자를 보면 때론 서글퍼집니다.” 탁 대표의 사무실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추억이 많았다. 같이 찍은 사진과 의자 등 하나하나 소중한 기억들로 가득했다. “굉장히 소탈하신 분이셨어요. 식사를 하실 때도 일본인 관광객 손님들이 사진을 부탁하면 같이 찍어주시곤 하셨죠. 음식에 대해서도 특별히 따로 주문하시는 일은 절대 없었어요.”&lt;BR&gt;&lt;BR&gt;&lt;B&gt;DJ 축하난에…이 여사는 '안사장' 선물 챙겨줘&lt;/B&gt;&lt;BR&gt;&lt;BR&gt;“지난 6월 21일 일요일이 마지막 방문이 되고 말았네요.” 품안에서 꺼낸 수첩을 뒤적이던 탁승호 대표가 말했다. “이 수첩에 모든 기록이 있죠. 처음 오신 날부터 마지막까지…. 제가 본래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어요. 같이 방문하신 분, 시간, 메뉴 등 이것저것을 적어 놓습니다.” 20년 전부터 적어온 탁 대표의 수첩들은 그동안 ‘양미옥’을 방문했던 손님들의 기록이 빼곡히 남아 있었다. “저희 부모님께서 1924년 출생이세요. 김대중 전 대통령님도 같은 해에 태어나셨죠. 저는 서울 토박이지만, 몇 번 모시다보니 꼭 부모님 같았습니다. 이희호 여사님도 저희 부부를 많이 생각해 주셨어요. 해외순방을 다녀오실 때면 화장품이나 양념 냄새 제거용 비누 같은, 제 아내 선물까지 꼭 챙겨주셨죠. 생신날에 저희 집을 방문하시면 꼭 저희 내외를 헤드 테이블인 맞은편 자리에 앉혀 놓고 &quot;장사는 잘 되는지&quot; 등을 묻곤 하셨습니다. 분점인 코엑스점 개장식 때는 맨 먼저 동양난을 보내주시고, 두 분이 함께 참석해 주셨죠.” 탁 대표는 신정이나 추석 때면 일주일 전쯤, 김 전 대통령에게서 축하난을 받았다고 회고했다.&lt;BR&gt;&lt;BR&gt;&lt;B&gt;경호원들 주방 점검에 &quot;대통령 안 받겠다&quot;&lt;/B&gt;&lt;BR&gt;&lt;BR&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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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lb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0/htm_2009100810012320002010-003.JPG&quot; width=250 border=0 name=photo&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e--&gt;1992년에 시작해 17년을 이어온 ‘양미옥’. 길다면 긴 세월 내내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부심’이었다. 탁 대표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부터 분식가게를 하는 등 일찍이 '맛'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양 재료는 청정지역에서 방목한 뉴질랜드산을 수입해 쓰고 있는데, 이 부위만큼은 한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경호 인력 교체가 있었어요. 갑자기 경호원들이 와서 주방을 점검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난 자부심으로 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이렇게 검사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대통령님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탁승호 대표의 이런 자부심은 주방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운 얼음물에 재료를 손질하고 껍데기 역시 기계 아닌 손으로 일일이 제거한다.&lt;BR&gt;&lt;BR&gt;&lt;B&gt;일본 진출 위해 6년 전 '양미옥' 현지 상표등록&lt;/B&gt;&lt;BR&gt;&lt;BR&gt;“식당은 기업이에요. 기업을 운영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죠. 저희 직원들 대다수가 이 ‘양미옥’을 개업할 때부터 있던 사람들이에요. 가족같이 대하고 기업처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죠. 저희 ‘양미옥’ 역시 많이 성장했습니다. 전국 107개 세무서 중 남대문세무서가 전체 세수 중 8%를 담당하죠. 작년에 남대문세무서가 거둔 세수가 11조예요. 현재 남대문세무서 관할 음식점 중 저희 ‘양미옥’이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 있어요. 일본에도 입소문이 나 일본 관광객 손님이 더 많은 날도 있을 정돕니다. 그래서 일본 진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6년 전 일찌감치 일본에 '양미옥'을 상표등록해 놓았습니다.&quot;&lt;BR&gt;&lt;BR&gt;뉴스방송팀 최영기·강대석 기자 &lt;BR&gt;&lt;BR&gt;&lt;A href=&quot;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14&amp;Total_ID=379185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810081&gt;&lt;B&gt;대통령의 맛집 ① 노 전대통령 '블라인드 테스트' 로 직접 고른 막걸리&lt;/B&gt; &lt;/FONT&gt;&lt;/U&gt;&lt;/A&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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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통령의 맛집 ① 노 전대통령 `블라인드 테스트` 로 직접 고른 막걸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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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종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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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5T22:13:59Z</updated>
	    <published>2009-11-05T22:13:5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articleTitNews id=articleTitNews&gt;
&lt;P&gt;&lt;IMG alt=정치 src=&quot;http://images.joins.com/ui_joins/news09/news/tit_cat_life.gif&quot;&gt;&lt;/P&gt;
&lt;H2&gt;대통령의 맛집 ① 노 전대통령 `블라인드 테스트` 로 직접 고른 막걸리 &lt;SPAN class=source&gt;[조인스]&lt;/SPAN&gt; &lt;/H2&gt;&lt;/DIV&gt;&lt;!-- e : 기사 제목 --&gt;&lt;!-- s : 기사 / 댓글탭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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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LI class=last&gt;&lt;A href=&quot;http://comment.joins.com/news/list.asp?ctg=12&amp;aid=3791852&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나도 한마디 &lt;SPAN class=num id=comment_count&gt;(54)&lt;/SPAN&gt;&lt;/FONT&gt;&lt;/U&gt;&lt;/A&gt; &lt;/LI&gt;&lt;/UL&gt;
&lt;P class=inputTime&gt;2009.09.24 10:05 입력 / 2009.11.05 15:19 수정 &lt;/P&gt;&lt;/DIV&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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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0 colSpan=2&gt;&lt;!--replace1--&gt;&lt;!--replace2--&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e--&gt;　 “귀한 손님 오시니까 특별히 맛있는 막걸리 좀 부탁드려요”&lt;BR&gt;&lt;BR&gt;흔히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조재구(45) 씨에게 이날의 인연은 큰 기회로 탈바꿈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꾸려가는 소박한 시골 양조장에 큰 바람이 분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성껏 빚은 막걸리를 배달한 조재구 씨. 누군가 귀한 손님이 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걸리만큼은 자신이 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많이 놀랐죠. 귀한 손님이 대통령님이셨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lt;BR&gt;&lt;BR&gt;&lt;B&gt;체면도 버리고 6잔 연거푸 마셔&lt;/B&gt;&lt;BR&gt;&lt;BR&gt;2005년 5월 2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 마을을 방문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과 농촌에 많은 애정을 가진 노 대통령에게 중앙정부의 도농교류와 관련된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업을 시작한 한드미 마을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시골에 뭐 대접할 게 있나요. 그래도 고장의 명물이라고 저희 막걸리를 대접해 드린 거죠.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한잔을 드시고는 “참 맛있다”며 연거푸 5잔을 더 드셨데요. 권양숙 여사님도 4잔을 드시고요. 보통은 체면 때문에 한 잔씩만 드시잖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강막걸리 중 다섯 가지 곡물로 만든 ‘오곡막걸리’를 특히 좋아했다. 지하암반 180m에서 뽑아 올린 탄산수와 오곡의 조화는 걸쭉하고 진한 막걸리 특유의 풍미를 더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맛있게 먹어주는 만큼 큰 칭찬이 있을까? 그러나 이날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lt;BR&gt;&lt;BR&gt;&lt;B&gt;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해&lt;/B&gt;&lt;BR&gt;&lt;BR&gt;얼마 후 조재구 씨가 운영하는 대강양조장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대통령께서 ‘대강 막걸리’를 찾으신다는 것이었다. 그 후 청와대의 주문은 계속됐고, 청와대 비서관의 방문이 이어졌다. “저희 막걸리가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됐다고 말하더라고요. 총 4군데의 막걸리가 후보로 올랐데요.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직접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천대받던 막걸리에겐 끝없는 영광이었죠.”&lt;BR&gt;&lt;BR&gt;이후 노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은 연일 이어졌다. 2006년 4월 1일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최근 쌀 개방 문제 등으로 고민하던 중 생각난 것이 한드미 마을에서 마신 막걸리였다”며 “아주 맛이 좋아 계속 이것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06년 3월 31일 ‘3부 요인 및 헌법기관장 청와대 만찬’, 4월 14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정기 간담회’에도 어김없이 대강 막걸리가 등장했다. “2007년에 청와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귀한 손님이 오는데 꼭 저희 막걸리를 대접하고 싶다고요. 부랴부랴 막걸리를 챙겨서 다음 날 오전까지 청와대로 갔죠. 그날 뉴스를 보니 하인즈 워드 선수 모자가 청와대를 방문했더라고요.” &lt;BR&gt;&lt;BR&gt;이후 각 언론들은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을 기사화했고 ‘대강 막걸리’의 인기 역시 연일 높아만 갔다. 하지만 조재구 씨에겐 고민이 늘어가고 있었다. “청와대에 납품을 시작한 일을 1년 넘게 비밀로 했어요. 자칫 잘못했다간 대통령님께 누가 될 수도 있잖아요. 막걸리 좀 더 팔아보겠다고 그런 짓은 못하겠더라고요.” &lt;BR&gt;&lt;BR&gt;&lt;B&gt;“대통령이 보내주신 인삼으로도 술 담갔죠.”&lt;/B&gt;&lt;BR&gt;&lt;BR&gt;2008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식이 거행됐다. 조재구 씨의 애틋함은 남달랐다.“안타까웠죠. 저희 막걸리를 참 사랑해주신 분인데. 아쉬운 마음에 고향 봉하마을에 막걸리 2000병을 보내드렸어요. 그 술로 5만 명을 접대했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후 노 전 대통령님께서 직접 막걸리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인삼을 보내주셨어요. 영원히 보관할 방법을 찾다가 인삼주를 담갔죠.” &lt;BR&gt;&lt;BR&gt;현재 대강 양조장은 연평균 200만~300만병을 판매해 3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918년에 시작해 4대째 내려오는 대강 양조장은 지금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신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막걸리가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검은 콩 막걸리’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있죠. 종종 일본의 효모회사나 주류회사에서 기술이전을 부탁하면서 찾아와요. 살아있는 효모를 마실 수 있는 술은 한국의 막걸리가 유일하다고 칭찬을 하죠.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제 시작이에요.” 대강 양조장의 발효실에는 술을 담아놓은 큰 옹기 십여 개가 있다. 그 옹기에는 소화 원년(1926.12.25)이라는 제작일시가 적혀있다. 그 옹기 안에는 80년 된 밑술이 고유의 진한 향을 내뿜고 있다. 80년을 차곡차곡 담가온 막걸리의 향이 이제야 기지개를 펴고 있다. &lt;BR&gt;&lt;BR&gt;오늘은 음력 8월 6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생일. 이날을 기념해 그의 생가 복원식이 열렸다. &lt;BR&gt;&lt;BR&gt;뉴스방송팀 최영기, 강대석 기자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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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는 왜 그를 잊지못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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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7T23:02:5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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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840000&gt;[아침논단] 우리는 왜 그를 잊지 못하는가&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의 통치가 끝난 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가 왜 1위의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는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왜 불멸의 통치자로 마음에 남아있는지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 박정희! 그가 떠난 지 어언 30년이 되었는데, 우리는 왜 그를 잊지 못하는가. 그 세월이면 그리스인들이 망각의 강이라고 불렀던 '레테의 강'으로 떠나보낼 법도 한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동안 많은 지식인과 언론인, 정치인들이 그를 망각의 인물로 만들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현장에서 사라진 사람을 놓고 투표를 하는 것은 실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나 인기투표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몰표를 던짐으로써 그를 현실로 불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존재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우리 사회는 민주공화국이 된 지 60년이나 되었는데도, 때 아닌 인물난을 겪고 있다. 걸출한 인물들이 차고 넘치는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기묘한 대조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뭐래도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 자유와 번영을 가져온 사람을 '당신'이라고 지목하고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결과 거리의 동상이나 지폐 도안을 만들 때면 항상 조선시대의 인물들 차지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박정희는 영웅인가. 이점에 대해서는 왈가왈부의 격론이 벌어질 것인 만큼 답변을 유보하자.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영웅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열정과 헌신으로 가득한 작은 영웅들이었다. 삽질을 할 때도 열정이 넘쳤고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는 데도 사명감이 충만했다. 고속도로를 만들고 배를 만들면서 느꼈던 자부심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덧 &quot;우리도 할 수 있다&quot;는 화두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또 &quot;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quot;는 구호는 속물적 냄새가 나는 물질적 욕구의 표현을 넘어 독수리처럼 하늘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고 싶어하는 웅지의 표현이었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그런가 하면 박정희를 반대하고 그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진정성이 있었고 열정이 넘쳤다. 일본과의 수교를 극구 반대한 6·3세대도 민족주의적 자존감을 세우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유신에 대하여 반대했던 지식인, 학생, 언론인도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충만했다. 그와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산업화에 모든 것을 건 것처럼, 그를 반대한 사람들도 민주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게 해서 산업화의 주역과 민주화의 주역이 일란성 쌍생아처럼 함께 태어났다. 입장과 철학은 달랐지만 진정성과 헌신, 열정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한국인이 출현한 것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박정희는 이렇게 영웅시대를 연 것이다. 건설을 한 사람이든, 비판을 한 사람이든 자신의 혼과 젊음 및 열정을 불살랐다. 그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끼가 있고 소명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를 통해 우리 안에 '잠자는 사자'가 깨어났고 '한국인다움'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한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어느 정치인인들 공과가 없으랴. 그 점에서 박정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결의에 찼던 그의 모습에서 결의에 찬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세종대왕을 기리는 것은 그가 한글을 만든 위대한 군주라는 것이 아니다. 한민족이 한글을 만들 수 있는 위대한 기량을 가지고 있음이 그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도 마찬가지다. 그가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왜선 130척을 물리친 것을 통쾌하게 여기는 것은 그를 통해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하기 때문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그의 통치가 끝난 지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그가 왜 부동의 1위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는지, 왜 불멸의 통치자로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는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곱씹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향수나 추억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그의 실상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설문지에 답하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한국인다움'의 구현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와 비교한다. 그의 장점과 비교하기도 하고, 그의 단점에 비하여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지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을 막론하고 그는 한국의 정치인에게 있어 요지부동의 잣대와 준거점이 되었다. 정치인이 성공을 꿈꾼다면 누구나 그와 키를 재보고 싶어한다. 정치인들이여! 지금이야말로 그를 기리는 변변한 동상도 없고 기념관도 없는 그가 민심을 사로잡고 또 정치인들의 잣대가 되고 있는 이 불가사의한 이유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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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사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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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종아</name>
	    </author>
	    <updated>2009-10-27T22:59:44Z</updated>
	    <published>2009-10-27T22:59: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만물상] 부사관&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amp;nbsp;'사관과 신사'(1982년)는 불우한 청년이 사관학교에 들어가 사나이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감상적으로 그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역은 흑인 배우 루이스 고셋 주니어에게 아카데미 조연상을 안겨준 훈련 교관 폴리 중사다. 그는 잔인하도록 가혹하게 생도들을 조련하며 주인공(리처드 기어)에게 수시로 &quot;자퇴하라&quot;고 윽박지른다. 중사는 방황하는 주인공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고, 임관식 날 그에게 &quot;서(Sir)&quot;라는 존칭을 붙이며 거수경례를 한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군의 힘은 무기보다 하사관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어설픈 신참 장교를 대신해 사병을 통제하고 훈련시켜 강인한 군대로 키운다. 중대장을 보좌하는 일등상사(1SG)는 군 생활의 어머니 역할도 하지만 인사 업무를 쥐고 있어 사병들이 중대장보다 무섭게 여긴다. 대대 주임상사(SGM)의 명령은 대대장만 무효화할 수 있을 정도다. 사단 주임상사(CSM)는 행사 자리 배치 등에서 사단장에 버금가는 서열로 대접받는다.&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군 하사관은 병장부터 시작해 하사·중사·상사로 올라간다. 사병이 하사관 교육 과정을 밟아 승진한다. 권한이 큰 만큼 중사 이상은 육군성이 직접 심사한다. 우리 하사관제도도 미 군정 시절 미군 체제를 본떠 만들었다. 하사·이등중사·일등중사·이등상사·일등상사·특무상사 6단계이던 것이 1962년 하사·중사·상사 3단계로 줄었다. 1989년 상사가 일등·이등상사로 나뉘었고 1993년 호칭이 원사와 상사로 바뀌었다. 상사 7년 이상이면 원사 승진 대상이 된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 잔재라는 호칭 '하사관'도 2001년 '부사관'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사관은 6만6000명쯤이다. 단순히 장교와 병사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에 그치고 책임만 있고 권한은 크지 않다. 상사가 되려면 20년 넘게 근무해야 하지만 원사는 공무원 7급, 상사·중사는 8급 대우를 받는다. 부사관들은 제대 후 행정사를 지망할 때 6급은 돼야 필기·면접을 면제받는데 너무 직급이 낮다고 말한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55세 정년인 부사관은 전역 후 10명 중 7명이 월 200만원도 벌지 못해 노후 불안이 크다고 한다. 육군이 부사관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원사는 6급, 상사는 7급으로 승격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6·25 때 유엔군사령관이었던 클라크 대장은 &quot;많은 지휘관이 부대를 거쳐 떠나가지만 부대는 건재해 계속 발전한다. 하사관이 계속 활동하고 있기 때문&quot;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묵묵히 군에 봉사해온 부사관들을 나라가 배려할 때가 됐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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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30년 전 박정희가 남긴 유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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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종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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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7T22:55:05Z</updated>
	    <published>2009-10-27T22:55:05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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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174600&gt;[시론] 30년 전 박정희가 남긴 유산&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다. 과거에 난 그가 한국을 부유하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패기 있는 젊은 세대를 관찰하고 난 후, 나는 박 전 대통령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한국인의 가슴에 '자신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스며들게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오늘날 이명박 정부의 목표는 결과적으로 G8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현재 이런 목표는 매우 현실적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의 많은 기업의 목표 역시 세계무대에서 정상에 서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이런 목적을 달성했다. 삼성과 LG와 현대차를 보라. 많은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한국 유학생은 두 인구 대국인 중국 인도와 함께 상위 5위 안에 든다. 그들은 매우 광범위한 야망을 갖고 있다. 산업 분야, 국제기구, 나노과학, 생명과학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전문분야를 세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선진국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목표를 공유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대부분의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적 성취가 갖는 중요성에 동의한다. 그는 30년 전에 사망했다. 그가 숨지면서 그의 권력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우리 사회와 민간 산업, 그리고 나아가 미래 세대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게다가 이러한 성장 과정은 한국민이 스스로에게 한국은 더이상 가난하거나 약자일 필요가 없으며 한국도 더 낫게 변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이런 자신감을 자연스럽게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lt;BR&gt;&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박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63년, 내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紙)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다. 당시 한국에는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위험스러운 징후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많은 국민은 한국이란 나라를 스스로 피폐한 제3세계 국가로 인식했다.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 한국의 미래에 비관적이었다. 내가 박 전 대통령에게 그 점을 언급하자 그는 &quot;오늘날 한국인들이 내보이는, 비생산적이고 부정적인 특성은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과거의 외세 침략과 재난의 결과&quot;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목표는 경제를 튼튼히 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인들의 정신세계 속에 '자신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불어 넣어주려 했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나는 2년 전, 패기만만한 일단의 한국 젊은이들을 뉴욕 한복판에서 만났다. 바로 한국형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을 타고 입항한 대한민국 해군의 젊은 장교들이었다. 세계의 수도를 장식한 고층빌딩 밑에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한국군 장교들은 한국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보호할 수 있는 대양해군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현재 대양해군을 추구하고는 있으나,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그런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유일한 나라다. 그러나 그날 한국 해군장교들의 눈은 한국 해군이 그런 숭고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자신감으로 불타고 있었다. 나는 내 인생의 전반부를 일본의 강제점령, 6·25전쟁과 같은 불운으로 점철된 한국을 보면서 보냈다. 인생의 나머지 후반부에서 나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건해 세계 최대 부국(富國) 중의 하나로 발전하는 한국을 봤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한국 역시 다른 선진국들처럼 부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이 더욱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모든 한국인은 나처럼 확신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30년 전 오늘 숨진, 비전(vision)을 갖춘 한 애국자 덕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피터 현. 언론인. 작가&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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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감사합니다, '을'에게 인사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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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종아</name>
	    </author>
	    <updated>2009-10-27T22:45:46Z</updated>
	    <published>2009-10-27T22:45:4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5b0000&gt;[ESSAY] 감사합니다, '을'에게 인사를&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실 우리 사회는 '인사의 총량'이 부족하지는 않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한쪽에서는 과잉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결핍일 뿐이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을'이 '갑'에게 하는 인사는 과잉이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7.uf.daum.net/image/16534B1A4AE6F9137C2BB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470&quot; height=&quot;210&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470px; HEIGHT: 210px&quot; actualwidth=&quot;435&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 &amp;nbsp;택시를 탄다. 문을 열고 좌석에 앉고 문을 닫는다. 그 순간이면 언제나 살짝 긴장을 한다. 거의 반반인 듯하다. 기사분이 &quot;안녕하세요?&quot; 혹은 &quot;어디로 모실까요?&quot;라고 말을 붙이는 경우가 절반쯤 되고, 나머지 절반의 경우엔 잠시 침묵이 흐른다. 기사 분이 먼저 말을 꺼낼 용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나는 &quot;○○○부탁합니다&quot;라고 말한다. 적지 않은 경우 기사 분은 아무 대답이 없다.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엉뚱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다시 확인하기도 뭣해서, 그저 가야 할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창밖을 주시할 뿐이다. 혹시나 하고 재차 행선지를 말했다가 &quot;알아들었는데 왜 또 말하느냐?&quot;는 퉁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럴 때의 민망함 혹은 불쾌감이란.&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주차장에서 차를 뺀다. 요금 내는 곳에 가서 창문을 내린다. 십중팔구는 침묵이 흐른다. 단지 주차권과 현금이 오가고 나서 차단기가 열린다. 간혹 수금원이 &quot;안녕하세요&quot;라고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도 &quot;안녕하세요&quot;라고 인사를 한다. 간혹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흔히 돌아오는 반응은 심드렁하다. '당신, 나 알아?'라는 표정이 돌아올 때도 있다.&lt;BR&gt;&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백화점 주차장에 들어간다. 유니폼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여직원이 주차권을 뽑아주면서 높은 톤의 목소리로 제법 긴 인사를 한다(사실은 인사말이 끝나야 주차권을 준다. 아마도 그렇게 하도록 교육을 받았으리라). 나도 인사를 건넨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공항의 출입국 심사대에 선다. 여권을 건넨다. 잠시 후 심사관은 도장을 쾅 찍은 다음 여권을 돌려준다. 끝이다. 가끔은 여권을 건네면서 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 &quot;안녕하세요&quot;라고. 그런 경우엔 대개 &quot;안녕하세요&quot;라는 인사가 돌아온다. 물론 가끔은 아니다. '이 자가 왜 먼저 인사를 하지? 뭐 찔리는 게 있나?' 하는 눈초리를 견뎌야 할 때도 있다. 그저 인사를 했을 뿐인데.&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다. 과하게 친절하다 싶은 종업원도 있지만, 어떤 종업원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돌아선다. 주방을 향해 나의 주문 내용을 외치는 경우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한데, 아무런 말이 없으면 또 살짝 긴장이 된다. 음식이 잘못 나올까봐. 밥을 먹고 나올 때, &quot;안녕히 가시라&quot;는 인사가 들리면 &quot;잘 먹었노라&quot;고 대답을 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또 고민을 한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할까 말까. 음식 맛이 괜찮았으면 흔히 내가 먼저 인사를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어서 머쓱해질 때도 있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우리 사회가 '인사'에 인색하다고들 한다. 미국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칠 때마다 &quot;하우 아 유?&quot;라는 말을 반복하고, 프랑스인들이 &quot;파르동(pardon·미안합니다)&quot;이라는 말을 아예 입에 달고 사는 것과 달리, 우리는 기본적인 인사를 나누는 데 인색하다는 뜻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우리가 원래 인사에 익숙하지 않은 민족일까? 우리 어휘 중에 인사말이 부족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전통문화에는 너무 격식을 차린다 싶을 만큼 온갖 종류의 인사 예절이 존재하고, &quot;밥 먹었니?&quot;나 &quot;어디 가니?&quot;와 같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들릴 독특한 인사말도 참 많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적절한 말하기의 중요성을 몰랐던 민족도 아니다. 말이나 표정으로 하는 인사만 있는 게 아니라 물건이나 현금이 오가는 인사도 있다. '인사를 하다'라는 표현은 '부조금을 내다', '선물을 하다', '뇌물을 주다'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사실 우리 사회는 '인사의 총량'이 부족하지는 않다. 한쪽에서는 과잉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결핍일 뿐이다. '을'이 '갑'에게 하는 인사는 과잉이다. 물건을 파는 쪽, 잘 보여야 하는 쪽, 뭔가 기대하는 게 있는 쪽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인사를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인사치레'도 많다. 하지만 소위 '갑을(甲乙) 관계'가 아닌 경우, 그리고 한두 번 마주치고는 다시 만나지 않을 관계에서는 인사를 너무 안 한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인사 자체도 부족하지만, 그에 대한 답례는 더 적다. 부하 직원이든 톨게이트 근무자든 편의점 판매원이든, 우리는 날마다 꽤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받는다. 그런데 그 인사에 대해 간단한 답 인사라도 하는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의 작은 행동에 불쾌해지고 흐뭇해진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덜 불쾌하게 하고 조금씩 더 흐뭇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모두 분명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인사를 잘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무슨 이유로든 타인과 몇 마디 말을 섞게 되는 수많은 경우에, 상대방이 던지는 간단한 인사말에 무슨 말로든 '반응'을 보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뭔가 좀더 '내용'이 있는 짧은 대화를 나눌 때에, 상대방의 의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이해와 공감을 표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인사를 잘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자연스레 늘어나리라 믿는다. 외국인들도 다들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우리말 세 가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말들을 조금만 더 자주 말하자. 특히 낯선 사람에게, 그리고 '을'에게.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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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대인과 한국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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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종아</name>
	    </author>
	    <updated>2009-10-27T22:35:19Z</updated>
	    <published>2009-10-27T22:35:1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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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610334&gt;[조선데스크] 유대인과 한국인&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 매년 10월 노벨상 발표가 모두 끝나면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중 하나가 노벨상을 받는 유대인에 관한 것이다. 올해는 건너뛰나 했는데 '웬걸'이다. 며칠 전 발표된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이스라엘 본토 거주 유대인이었다. '세포 내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리보솜의 구조'를 규명한 아다 요나트(Yonath) 박사(와이즈만과학연구소)가 주인공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유대인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인지 궁금해 '유대인정보'(&lt;A href=&quot;http://www.jinfo.org&quot; target=&quot;_blank&quot;&gt;www.jinfo.org&lt;/A&gt; )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lt;FONT color=#840000&gt;1901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179명으로 나와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 같은 조직이나 단체를 뺀 개인 수상자 가운데 22%이다. 특히 노벨 경제학상은 총수상자의 41%, 의학상은 27%, 물리학상은 25%를 유대인이 휩쓸었다. '유대인정보'측은 &quot;가계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인 경우로 한정했다&quot;고 밝혔다. 나중에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밝혀진 올해 노벨 의학상 수상자(잭 쇼스택 박사·미국인으로 분류)처럼 '숨은 유대인'까지 포함하면 줄잡아 3분의 1은 넘는다는 지적이다.&lt;BR&gt;&lt;/FONT&gt;&amp;nbsp;&amp;nbsp; &lt;/P&gt;
&lt;P&gt;본토 인구만 13억명인 중국계와 15억명인 이슬람계의 노벨상 수상자가 여태 6명, 9명인 것과 견줘보면, 세계 인구의 0.25%(1330만명) 남짓한 유대인들의 노벨상 석권은 '기적'에 가깝다. 인구 730여만명의 이스라엘도 건국 61년 만에 9명의 수상자를 냈는데, 이를 인구비율로 환산하면 우리나라는 60명쯤 받아야 한다.&lt;BR&gt;&amp;nbsp;&amp;nbsp; 이런 유대인의 '노벨상 퍼즐(수수께끼)'을 푸는 데 지능지수(IQ)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lt;FONT color=#105738&gt;2002년 핀란드 헬싱키대가 세계 185개국 국민의 평균 IQ를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의 IQ는 95(26위)로 한국(106·2위), 미국(98·19위) 등보다 낮은 것으로 판명됐다.&lt;BR&gt;&lt;/FONT&gt;&amp;nbsp;&amp;nbsp; &lt;/P&gt;
&lt;P&gt;전문가들이 무엇보다 꼽는 비결은 유대 민족 특유의 뿌리 깊은 가정학습 전통이다. 가령 아이들이 처음 글자를 알게 되면, 꿀 한 숟가락을 아이 입에 넣어준다. 5세부터는 '토라'(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를 가르치는데, 잘 배우는 어린이를 위해 특별 파티를 열어준다. &quot;자녀와 함께 쉬거나 잠자리에 들 때도 책을 읽어주며 '배움은 달콤하고 즐겁다'는 걸 심어주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quot;(이스라엘 근무 전직 외교관)&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극성스러운 교육열로 유명한 '유대인 엄마(Jewish Mother)'와 별도로 자녀가 성인식(13세)을 치를 때까지 학교 교육과 별개로 아버지가 역사와 율법, 도덕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부부 합동 교육'도 특이하다.&lt;BR&gt;&amp;nbsp;&amp;nbsp; 학습의 초점도 다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보다 훨씬 더 낫다'는 유대 속담처럼 항상 의문을 품고 온갖 질문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이런 분위기는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된다. 매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지키는 안식일이 대표적이다. 이때는 TV 시청, 자동차 운전까지 노동으로 금하고 가능한 한 집에서 머물며 독서와 사색, 가족끼리 토론으로 하루를 보낸다(아오키 이사쿠·'유대인의 공부법').&lt;BR&gt;&amp;nbsp;&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74600&gt;&amp;nbsp;요컨대 유대인들의 노벨상 '기적'은 국가 차원의 어떤 프로젝트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아기부터 지적(知的)훈련과 토론을 중시하는, 사회 저변에 깔린 '평생 학습 문화'의 산물인 셈이다. 단적으로 1991년 초 42일 동안의 걸프전 당시 이스라엘은 18번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24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대학들은 하루도 휴강하지 않았다고 한다.&lt;BR&gt;&lt;/FONT&gt;&amp;nbsp;&amp;nbsp; &lt;/P&gt;
&lt;P&gt;뜨거운 자녀 교육열과 악착스러운 생활자세란 측면에서 '동양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우리는 어떤가? 학원 등 사교육 기관에 자녀 교육을 떠맡긴 채 학교에서조차 창의성이나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주입식 위주 공부에 머물고 있다. 그럴수록 '노벨상 강국'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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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前 대통령 예우 너무 인색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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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종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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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7T22:26:29Z</updated>
	    <published>2009-10-27T22:26:2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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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BR&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5b0000&gt;[편집자에게] 前 대통령 예우 너무 인색해&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 지난 10월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인 동시에 개혁·개방 30주년이기도 하다. 축하 행사를 보면서 필자는 중국 지도자의 당당한 자신감과 13억 국민들의 행복한 웃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 힘의 바탕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당연히 경제다. 국민을 잘살게 만든 정치지도자 그리고 국민들 스스로 잘살고 있다고 믿는 현실정치이다. 13억 중국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개혁·개방의 주역인 덩샤오핑(鄧小平)의 공이라고 칭송을 한다. 사실 그렇다. 30년 전, 덩샤오핑의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이 없었다면 오늘날 중국 사람들은 아직까지 빈곤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보릿고개를 넘게 한 사람은 곧 바로 덩샤오핑이라고 중국 사람들은 인정하고 존경한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덩샤오핑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에 대한 공과 시비가 한국 내에서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바깥세상이 박정희를 보는 시야는 매우 판이하다 하겠다. 새마을 운동은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이다. 필자가 대만 외교관 신분으로 태국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국회의원과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시골 의사 한 분은 새마을 운동에 관한 책을 태국어로 만들고 직접 새마을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 역시 태국이 잘살기를 원했다. 최근 중국에서도 새마을 운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남성 장사시 인민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투자자들에게 새마을 정신으로 중국에 와서 투자하라는 말을 들었다. 알고 보니 새마을 연수원에 연수를 갔다 온 분들이었다.&lt;BR&gt;&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이젠 세계 방방곡곡에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유독 한국 내에서만 화음의 소리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30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도 기념관 설립이 순조롭지 않다니 정말 유감스럽다. 중국에는 정치 인물에 대한 기념관이 도처에 있다. 중앙이면 중앙, 지방이면 지방 중복된 곳도 많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毛澤東) 기념관은 베이징뿐만 아니라 고향인 호남성 샹탄에도 있다. 대만에도 쑨원(孫文) 기념관, 장제스(蔣介石)기념관이 각각 시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산 교육의 현장이고 대만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 이 문제를 간파하고 앞으로 역대 대통령을 존경하는 정치 환경을 만들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바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당한 목표이고 환영할 일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역대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너무 인색하다. 하루속히 역대 대통령이 예우를 받는 전통을 국가 차원에서 조성해야 한다. 자기 나라 대통령을 비하하는 것은 마치 자기 아버지를, 나아가 자기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겠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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