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xml-stylesheet href="http://pimg.daum-img.net/whsnake/css/atom.css?ver=1.0" type="text/css"?>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version="1.0" >
  <title>주경복의 다음 이야기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blog.daum.net/xml/atom/jkbjou"/>
  <rights>주경복</rights>
  <author>
    <name>주경복</name>
    <uri>http://blog.daum.net/jkbjou</uri>
  </author>
  <generator uri="http://blog.daum.net" version="1.0">Daum blog (blogmaster@daum.net)</generator>
  <id>tag:blog.daum.net,2009:jkbjou</id>
  <updated>2009-07-02T16:24:49Z</updated>

  		<entry>
	    <title>루소의 사상을 싹틔운 고향 제네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7"/>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7</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7-02T16:24:49Z</updated>
	    <published>2009-07-02T16:24: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장 자크 루소는 제네바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어린 시절을 보낸 제네바는 그의 일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었다. 그래서 제네바의 자연적․사회적 환경은 루소의 인간성과 사상을 이해는 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amp;nbsp;&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5.uf.daum.net/image/194AE5264A4C60736CC02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04&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4&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제네바는 유럽의 다른 도시나 나라들과 격리되어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알프스 산맥의 험준한 산들이 둘러싸고, 레망(Léman) 호수가 감싸 돌며 아늑한 풍광을 연출했다. 자연 자체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지리적인 조건이 다른 세상의 사회들과 멀리 떨어져 마치 외딴 섬처럼 조용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루소는 그런 도시에서 한껏 건강한 자연을 호흡하며 자라났다. 자연의 순수한 미소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루소의 어린 시절에 생동감 있는 감성을 발달시키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키워주었다. 루소의 글들과 사상에는 언제나 자연적인 요소가 개입하고, 낭만적인 감성이 흐른다. 그것은 루소의 선천적 기질 탓도 있겠지만, 태어나서 사춘기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제네바에서의 추억에 많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루소가 정신적으로 고향인 제네바의 영향을 받으며 늘 소중하게 여겼다는 점은 그의 글 곳곳에서 감지된다.『고백록』등의 자전적 글에서 보듯이 루소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저술들을 집필하여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던 파리보다 천진난만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제네바에 더 많은 애착을 보이곤 하였다. 파리에서 이방인처럼 지내던 50대 중년의 나이에 그가 고향 제네바를 두고 고백한 표현에서 그의 마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나는 벅찬 감격에 사로잡히지 않고는 이 행복한 도시의 성곽을 볼 수도 밟을 수도 없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제네바에 대한 루소의 애정은 단지 고향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네바에는 그가 이상으로 삼는 아름다운 것들의 편린이 존재하고 있어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제네바에서는) 자유의 고결한 모습이 내 영혼을 고양시키는 한편으로 평등, 일체감, 풍속의 부드러움이 나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호젓하고 아름다운 ‘레망’ 호수 가에 자리 잡은 제네바는 그 당시에 하나의 도시국가였다. 칼뱅주의 종교원리에 바탕을 둔 공화국이었다.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의 부조리에 염증을 느껴 신교로 개종한 프랑스 사람들이 종교 개혁가 칼뱅을 중심으로 모여서 자율적 공동체를 구성하며 세운 나라다. 종교적으로 기존의 사회에서 체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 공동체를 실험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개신교의 로마로 불릴 만큼 개혁 종교의 중심지로서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실현되지 않은 공화국의 정치제도를 실험하고 있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제네바는 경제적으로도 자립에 필요한 여건을 마련하고 있었다. 새로 각광을 받던 시계 산업을 비롯하여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칼뱅과 그를 따르는 신교도들이 제네바 공동체를 이룰 때 시계 산업에 대하여는 특별히 공을 많이 들었다. 시계제조가를 양성하는 과정은 그냥 단순 노동자의 길과 달랐다. 최소한 보통교육 이상의 지성을 갖추도록 하였다. 고등교육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지 못하여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겸하던 콜레쥬(Collège)에서 시계에 관한 전문 지식 외에도 일반교양과 라틴어까지 공부했다. 그렇게 칼뱅 식 민중교육에 따라 지성과 전문성을 지닌 시계제조가들이 이끄는 제네바의 시계 산업은 단연 유럽과 전 세계에서도 으뜸을 지킬 수 있었다. 제네바 시민들은 그에 대해 긍지를 갖고 살았다. 그 점은 루소가 트롱생에게 쓴 편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내 고장의 노동자와 다른 곳의 노동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제네바의 시계제조가는 모든 면에서 모자람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파리의 시계제조공은 시계 밖에는 아는 게 없습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이렇게 제네바는 시계 산업을 주력으로 안정된 경제 기반을 쌓았고,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지녀서 유럽 각국의 부호들이 권력의 간섭을 피해 비교적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곳으로 매력을 얻었다. 그 덕분에 은행업이 발전하는 행운도 얻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처음 칼뱅주의자들이 종교적 공동체를 이루었을 때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시민들이 평등에 가까운 조건을 누리며 큰 격차 없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나름대로 민주적인 사회 질서를 구축하였다. 시민(citoyen)에게는 정치적 자유과 권리가 부여되고, 경제적 생산과 분배도 일정 수준 이상 평준화 되도록 합리적 제도를 관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랑 부르주아들이 생겨나 지배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그들의 발언권이 커지고 경제적으로도 부를 독과점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장 자크 루소가 태어난 18세기 초에 제네바는 그런 불평등 계급 구조가 상당히 고착되어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럽의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비하면 비교적 민주주의 조건이 살아 있고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곳이었다. 사회의 제도적 근대화에서 다른 어떤 국가보다 선진성을 보이고 있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그렇다할지라도 제네바의 그런 특별한 조건들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너무 사실 이상의 상상을 보태며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세상에 큰 힘을 미치며 역사의 발전을 주도하기에는 역부족인 소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 제네바의 인구는 약 1만 8천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참고로 비교해 보자면 당시 프랑스 파리의 인구는 50만 정도였다). ‘유럽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으로서 제네바는 적대적 관계의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 전체가 구교와 신교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을 겪으며 비참한 유혈사태와 전쟁까지 겪고 난 뒤라서 신교 국가였던 제네바는 가톨릭을 지지하는 강대국들과 편한 관계가 아니었다. 정치체제로 볼 때도 제네바는 유일한 공화국이었고, 유럽 모든 국가들은 공국(公國) 또는 군주국이었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로부터 경계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네바가 정치, 종교,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며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이점 덕분이었다. 험준한 산악지대가 도시를 감싸고 있어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상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 매우 외딴 곳 제네바는 유럽 속의 별천지와 같았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이렇게 자연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다른 어떤 세상보다 새롭고 독창적인 삶을 체험하고 있던 제네바에서 어린 루소가 체험하고 목격한 여러 가지 기억들은 그것이 나중에 비록 완벽한 세상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도 하나의 이상향을 향한 예비적 모형으로서 작용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부조리가 넘치며 붕괴 직전에 놓여있던 기존 사회제도의 모순을 더욱 날카롭게 바라보며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루소의 자연주의 사상은 제네바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때 묻지 않은 이상적 세상을 그려 보일 때 루소는 제네바의 자연적 조건들이 어린 시절 그에게 불어 넣어준 영감에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제네바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삶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슬픔과 고통조차도 자연의 감화 속에서 부드럽게 순화되었다. 불우하게 자라난 어린 시절의 추억은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토록 하였지만 그런 거부감이 단순한 현실부정으로 끝나지 않고 바람직한 사회를 향해 꿈을 설계토록 하였다. 어린 시절에 제네바의 자연적인 조건 속에서 얻은 영감을 발휘하여 비록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섞이기는 하였지만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갈 수 있었다. 루소가 제네바의 영향을 얼마나 깊이 받았는지는 그가 유럽 사회 전체를 놀라게 하는 파격적인 글을 써서 시끄러워지자 고향마저 그를 거부하여 제네바 시민권을 포기하면서 고백한 글에서 잘 느낄 수 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나는 무엇인가 착각 속에서 살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착각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내 영혼에 깃든 모든 것을 조국의 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amp;nbsp;&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amp;nbsp;&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180BC7254A4C60A010FCD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1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1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amp;nbsp;&lt;/FONT&gt;&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루소가 태어난 때의 세상 분위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6"/>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6</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30T15:49:12Z</updated>
	    <published>2009-06-30T15:49: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루소가 태어난 1712년 무렵은 세상이 무척 어수선하던 때였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복잡하기 마련이지만 18세기 초엽도 어느 때 못지않게 혼란스러웠다. 절대군주의 시대가 저물면서 역동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국가, 그것은 곧 짐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FONT-STYLE: italic;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etat, c'est moi&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quot;라고 스스로 언명할 만큼 절대적 권력을 누리며 세상에 군림했던 루이 14세가 개인적으로도 노쇠하여 생을 마감할 때가 가까웠고, 시대의 상황이 급변하여 ‘구제도(Ancien regime)’를 바탕으로 유지되던 사회구조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과학과 산업의 ‘혁명’에 따라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고 문화-정치-경제-군사적 변수가 다양해지면서 인간사회의 삶에 유례없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그런 와중에서 일부 사람들은 행운을 차지하였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불행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18세기는 사람들에게 운명의 명암을 교차시키며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상상 속에 그려내는 ‘근대화’의 파고는 실상 거친 분위기로 세상에 찾아 왔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그 당시에 강대국들은 영토와 세력을 넓히기 위해 온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식민지 개척에 몰두하였다. 경제, 정치, 군사의 지배권과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다가 충돌하면서 전쟁을 일삼았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스페인의 왕손이 끊겨 왕위 승계를 놓고 내홍을 겪을 때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자신의 손자를 왕으로 삼았다. 1701년에 그를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시키고 펠리페 5세라 칭하였다. 이베리아 반도와 대서양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화된 셈이다. 그러지 않아도 프랑스의 위세에 압도되어 있던 유럽 각국은 이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1701년 영국, 네덜란드, 독일이 동맹을 맺어 대항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른바 ‘앤 여왕 전쟁’이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유럽의 맹주였던 프랑스가 우세를 보였으나 점차 상황이 동맹국 쪽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유트레히트 조약(1713년) 등을 맺어 프랑스가 대폭 양보하면서 유럽 질서가 재편되었다. 프랑스의 절대 우위가 흔들리고 점차 영국의 우세로 흐르는 계기가 되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1715년에 ‘태양의 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나고 유약한 루이 15세가 뒤를 이은 것은 당시의 흐름을 나름대로 상징하며 여러 가지 일들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재정난을 겪게 된 프랑스의 왕권에 취약점이 드러났다.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의 강권을 동원하거나 사회의 제 세력과 타협해야 했다. 당시에는 왕권을 중심으로 승려(제1신분), 귀족(제2신분)의 특권 신분과 농민이나 도시노동자 등의 서민들(제3신분)로 사회의 신분이 나뉘어져 있었다. 왕과 특권 신분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반면에 서민들은 가혹한 세금 수탈에 시달리고 전쟁에 불려나가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원래 제3신분은 주로 농민으로 구성되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상인과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그 구성이 비교적 다양해졌다. 그리고 특기할만한 현상은 제3신분의 사람들 가운데 여러 가지 기회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Bourgeoisie)'가 상당한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중세부터 부르주아(bourgeois)들이 생겨나 그 숫자가 조금씩 증가해 왔으나 특히 그 세력이 대폭 확대된 것은 무엇보다도 산업혁명을 거치며 펼쳐진 중상주의 덕분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부르주아지를 앞 세워 많은 재화를 모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재력도 커지면서 세력이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부르주아지의 역할은 주로 경제활동에 국한되었다. 왕권 및 제1, 제2 신분과 튼튼한 동맹 관계를 이루지는 못했다. 영국의 사정과는 다른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관계가 훨씬 더 긴밀했고 점차 혼연일체가 되어 갔다. 그래서 프랑스의 부르주아지는 영국의 사회 질서를 본받아야 할 ‘모형’으로 여기며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였다. 재력이 막강하고 교육을 잘 받은 대부호(=그랑 부르조아 grand bourgeois)들은 돈으로 귀족의 작위를 사거나 귀족들의 살롱(salon)을 드나들며 사교를 통해 관계를 넓혔고, 다각도로 입김을 불어넣어 경제 및 사회 활동의 자유를 추구해 나갔다. 그러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중․소상인(= 프티 부르주아 petit bourgeois)들은 사정이 달랐다. 세련된 사교로 귀족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을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경제활동에서 대상인들의 이권 독․과점 때문에 부를 축적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파리와 각 지방에 거주하는 중소 장인과 상인 계층에게는 세상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곳곳에서 재래의 길드와 동업자 조합이 붕괴되었다. 그렇게 ‘구체제’에서는 신흥 경제 세력인 그랑 부르주아지가 특권 세력과 결탁하여 경제권을 독․과점 해가고 있었지만 프티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을 옥죄는 제반정책들에 관여할 힘도 지식도 없었다. 도시상인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던 농민들은 더욱 가혹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부도 사회적 자유도 없이 벌레처럼 일하며 세금에 시달려야 했고,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제국주의 전쟁에 끌려 나가서 신무기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이렇게 사회는 각 계급과 계층 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서로 갈등하게 되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홉스(1588~1679)가 자연상태의 인간관계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묘사하며 극복할 조건으로 성찰한 바 있으나&amp;nbsp;그가 궁극적 사회체제로 여겼던 전제군주제의 아류인 절대 왕국에서 오히려 그런 갈등과 대립의 사회 관계가 극명하게 노출되고 있었다.&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18세기는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산업 구조가 빠르게 진화하고, 그에 따라 사회제도 전반에 변화의 흐름이 크게 일어나던 때였다. 과학적 이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과 자기 존재에 대하여 새롭게 각성토록 하였고, 그 중심에는 먼저 각성한 귀족과 부르주아지가 자리 잡았다. 특히 부르주아지의 역할이 컸다. 그들의 우선 목표는 부르주아지의 경제적-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누리게 된 영국에서는 낙관적 자유주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싹터서 자라났다. 존 로크(1632~1704)와 같은 철학자가 나타날 수 있었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그런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당대에 뉴턴(1642~1727)의 물리학과 로크의 철학은 사회의 진보를 담보하는 이상적 사고방식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부르주아지가 생각하는 진보란 인간의 주체적 사고능력을 계발하고 교회나 귀족사회의 전통적 권위에서 비롯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극복하며 새로운 부르주아 중심의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18세기는 종교개혁의 후유증이 다소 남아 있는 시기였다. 16세기처럼 피비린내가 나도록 격한 충돌은 없어졌으나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알력은 적지 않게 존재했다. 독일이나 영국 등에서는 개신교가 많은 편이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3333a0;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이처럼 국가는 국가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사회 계급․계층은 그들대로 서로 대립하면서 갈등을 벌이고, 종교적으로 적지 않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복잡한 시대 상황 속에서 장 자크 루소는 조용한 호반의 도시국가 제네바에서 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4.uf.daum.net/image/1728D2244A49B92728CDD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05&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205&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루소, 제네바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나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5"/>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5</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28T00:02:07Z</updated>
	    <published>2009-06-28T00:02: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루소의 삶 1]&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18세기 초인 1712년 6월 28일 제네바의 한 시계 수리공 집안에 남자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 그 집안의 성(姓)은 루소(Rousseau)였고, 아버지의 이름은 이삭(Isac),&amp;nbsp;어머니의 이름은 수잔(Susane)이었다. 새로 태어난 그 아이는 둘째&amp;nbsp;아들이었는데 장 자크(Jean Jacques)라고 이름 붙여졌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루소의 집안은 제네바의 대부분 사람들처럼 원래 프랑스인이었다. 디디에 루소라는 조상이 프랑스 파리에서 제네바로 이주하였다. 파리에서 가까운 곳인 몬테소에서 태어난 디디에 루소는 젊은 시절에 아버지 앙투안 루소와 함께 파리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의 진통을 겪고 있었는데 가톨릭을 버리고 신교로 개종한 루소의 가문도 그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종교탄압이 심해지자 디디에는 조국 프랑스를 떠나 제네바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1529년 제네바에 정착한 그는 곧 시민권을 얻었고, 1550년대에는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장 자크 루소의 아버지 이작 루소(1680~1745)는 시계를 다루는 장인이었는데 솜씨가 꽤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에는 잘 집중하지 않고 풍류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던 모양이다. 바이올린 연주를 즐겼고, 한 때는 댄스 선생도하였다. 성격이 쾌활하고 자유분방하였으며 고집이 세고 다혈질이기도 했던 것 같다. 정이 많은 편이었는데 아들 장 자크에게도 꽤 다정하고 자상했다고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color=#193da9&gt;장 자크 루소의 어머니 수잔 베르나르(1673~1712)는 장 자크를 낳은 뒤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때 나이는 39세였다. 그녀는 제네바 근처인 사부아의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딸로 자라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자세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장 자크에게는 어머니 수잔 베르나르의 기억이 없다. 남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성으로 회고한 바 있을 뿐이다.&amp;nbsp;후일『참회록』에서 루소는 &quot;세상에 내가 태어나마자 바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나의 많은 불행들 중에서 제일 먼저 닥친 것이었다.&quot;고 밝혔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193da9&gt;&amp;nbsp; &lt;/FONT&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루소는 누구인가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4"/>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4</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22T00:36:06Z</updated>
	    <published>2009-06-22T00:36:0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amp;nbsp; 루소를 생각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그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 삼백 년 전 제네바에서 태어나 유럽 사회를 떠돌며 풍운아처럼 굴곡 많은 인생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그가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현대인들에게 루소는 아득한 옛날의 어떤 사상가라는 인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요즘과 많이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서 뭔가 특별한 사상을 펼쳐내서 유명해진 인물일 것이라고 상상할 뿐이다. 우리에게 꽤 훌륭한 어떤 지식을 남겨줬지만 구체적으로는&amp;nbsp;무슨 가치가 있는지&amp;nbsp;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도 같다.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거나 유식해지기 위해 그에 관해 좀 알아두면 더 좋기도 하겠지만 자세히 모르더라도 크게 불편할 것이 없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는 별로 도움 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될지 모른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그러나 루소는 그렇게 막연한 생각처럼 먼 시대 먼 세상의 인물만은 아니다. 그의 사상은 늘 우리 곁에서 맴돌아 왔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삶 속에서 말을 걸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목소리로 살아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다가온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담론한다. 자연, 인간, 낭만, 인생, 행복,&amp;nbsp;예술, 언어, 교육, 사회, 정치를 논한다. 그리고 빈부의 문제, 권력의 문제, 자유의 문제, 소통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등을 본질적으로 설파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루소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보는 많은 사람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거창한 인생의 소유자도 아니다. 아마도 겉으로만 보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삶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도 굴곡이 많았다.&amp;nbsp;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랐고, 고향을 많이 그리워하였고, 여인을 사랑하였으며, 자식의 교육을 위해 고민하였으며,&amp;nbsp;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였고,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였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루소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행운아였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이었다. 귀부인의 사랑과 도움을 받으며 저술활동을 할 수 있었고, 발표하는 글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당대의 유명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지성의 흐름에 깊이 참여할 수 있었고, 역사가 그의 사상을 적극 수용하며 조명시킨 점 등은 행운의 요소들이다. 반면에 늘 가난에 쫓기며 살았고, 안정된 가정생활을 제대로 해 보지 못했고, 주류 사회에서 늘 배척당하며 국외자의 신세를 면치 못했던 점 등은 불행한 일들이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그의 사상은 그런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현학적으로 펼쳐낸 지식이 아니라 삶의 문제들을 고뇌하며 진솔하게 글로 펼쳐낸 것들이다. 스스로 뼈저리게 부딪치는 모순들의 뿌리를 찾아 밝혀 보려고 애썼고 부조리 없는 세상을 그리며 합리적인 사회를 이야기한 것이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철저히 파헤치면서도 꿈과 낭만을 잃지 않고 이상적 삶과 합리적 사회를 묘사하고 추구하였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루소의 사상을 음미하고 교훈으로 삼는 것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변혁의 꿈을 향해&amp;nbsp;희망을 가꾸어 나가는 데에 큰 힘이 될&amp;nbsp;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81EAB104A3E532C25254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0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20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0000ff;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쟝 자크 루소를 다시 생각한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3"/>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3</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19T11:46:03Z</updated>
	    <published>2009-06-19T11:46: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모든 고전은 유익한 교훈을 준다. 루소의 역작들도 그렇다. 그의 사상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시대를 뛰어 넘는 사유의 개방성 때문이다. 전통과 제도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펼쳐 보이는 지성에서 그 힘과 매력이 나온다. &lt;BR&gt;&lt;BR&gt;프랑스 대혁명이 루소의 사상에서 많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사회관계의 왜곡을 적시하면서 &quot;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런데 이후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quot;고 설파하였다. 권력은 사회 구성원들의 계약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고 모든 주권은 민중에 귀속한다고 밝혔다. 왕과 귀족의 지배 아래에서 온갖 착취와 고난으로 시달리던 민중에게 루소의 사상이 저항과 투쟁의 단서를 제공했는데 구제도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시사성을 갖는다. &lt;BR&gt;&lt;BR&gt;루소의 사상은 사회현상 전반에 대해 포괄적이며 거시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현실에 내재하는 근본적 모순들을 해체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언명한다. 세상이 자연 상태에 있을 때에는 좋았는데 인간의 탐욕스러운 손아귀에서 타락해 왔다고 주장하며 역사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새롭게 사유하기를 권한다.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되짚어 보도록 이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한껏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하여 인공물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이 때에 루소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묘한 패러독스에 빠진다. 수 많은 시간에 걸쳐 인류의 유산이 누적되어 왔는데 그것을 뛰어넘어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역사가 진화할수록 그의 사상이 던지는 시대적 파격성은 더욱 커진다. 탑을 낮고 작게 조금 쌓았을 때 허물거나 고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높고 크게 쌓은 뒤에 그것을 손대려면 그 만큼 부담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날 루소의 사상을 되새기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사회가 늘 행복한 길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과 부조리를 심화시키는 불행의 길로 치닫는 일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사상은 오히려 현실적 교훈을 던져주며 현재성을 획득한다.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융성하며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루소가 던지는 교훈은 그 의미를 더해 가는 것이다. 환경, 자유, 인권, 사회 양극화의 문제 등 깊어가는 부조리를 합리화하거나 눈감지 말고 더 깊이 그 뿌리를 찾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를 권하기 때문이다.&amp;nbsp;그의 사상이 언제나 새로운 화두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lt;BR&gt;&lt;BR&gt;요즘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도 루소의 사상을 통해 사회관계에 대한 원초적 성찰을 새롭게 거쳐 보는 것이 유익해 보인다. 기본적인 문제에서부터 인식의 대립이 발생하며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내재하는 모순을 근원적으로 재점검하면서 옥석을 가리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인간의 자연적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온갖 이유로 합리화되고 있는 인간 불평등의 문제는 없는지, 주권이 본래의 조건에서 민주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지, 자연적 권리로 부여되는 기본권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등을 원점에서 다시 짚어 보면서 재정립해 나가면 좋을 듯하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FONT&gt;&lt;BR&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펙’의 덫,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2"/>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2</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12T08:32:29Z</updated>
	    <published>2009-06-12T08:32: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 대학생들에게 권면하는 글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amp;nbsp;&amp;nbsp; 캠퍼스에는 세 가지 부류의 대학생들이 있다. 첫째는 스펙의 포로가 되는 학생들이고, 둘째는 스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고, 셋째는 스펙을 뛰어넘는 학생들이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amp;nbsp;&amp;nbsp; ‘스펙’이란 말이 학생들 사이에 중요한 은어로 자리 잡으면서 삶을 옥죄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개념이 담고 있는 취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자신의 정체성을 객관화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모든 학생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용도와 방식이 요즘 들어서 특별하게 조건 지워지고 있을 뿐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취업 현장에 일자리는 적고 지원자는 많아서 수요와 공급의 비대칭 현상이 지속되자 사람을 추려내는 갖가지 방법들이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일단 학점, 영어점수, 인턴경력, 교환학생, 자격증, 공모전, 봉사, 기타 활동 등 외적 조건으로 계량화하여 사람들을 한 차례 비교해 보는 관행이 생겨났다. 그것이 통과의례의 한 요소처럼 여겨지면서 학생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스펙은 궁극적 요건이 아니라 예비적 조건 범주들 가운데 하나씩일 뿐이다. 마치 대학 입시에서 수능 등급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을 기본으로 하고 나서 다른 것으로 더 평가 받거나 그것이 불리할 때는 다른 요소로 대체하여 통과할 수도 있다. 실제로 취직의 최종 관문에서는 보다 더 정성적인 평가로 선발이 판가름 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펙’과 전혀 또는 상당히 무관하게 별도의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진로가 적지 않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종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관행을 극복하며 뛰어 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이고, 포로처럼 얽매여 끌려 다니는 것도 씁쓸한 일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면 어떻게 현실을 극복하고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우선 꿈과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꿈은 곧 희망이다. 꿈이 없는 삶에는 생기도 없다. 젊은이에게 꿈이 없다면 슬픈 일이다. 꿈은 삶의 목적을 형성한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는 의미 있는 목표들이 생긴다. 뜻 있는 모든 목표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전해야 한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힘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땀 흘려 노력할 때 목표가 성취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아름다운 꿈은 허영과 다르다. 모방도 아니다. 남들이 좋다니까 따라서 세워보는 목표는 진정한 자신의 꿈이 될 수 없다. 자아의 정체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자기 성찰을 통해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 남들의 이야기보다 자아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서 그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과 곳은 여러 가지로 여러 군데 존재할 수 있다. 꼭 남들이 선망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그것은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런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면 스펙은 저절로 극복된다. 자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꿈을 향해 용기 있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스펙이 쉽게 만들어진다. 또한 그것을 뛰어 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쌓아갈 수 있다. 더 이상 포기할 필요도 없고 끌려 다닐 필요도 없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날 대학생 사회에는 꿈이 없어 보인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스펙의 포로가 되거나 아예 포기한 학생들이 많아 보인다. 자신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 지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거의 맹목적으로 ‘스펙’이라는 환상을 쫓아 시간과 마음을 빼앗긴다. 그것마저도 힘들면 자포자기 하고 만다. 어떤 학생들은 게으르고 어떤 학생들은 용기가 없다. 안타깝다. 소중한 대학 생활을 그렇게 소모적으로 ‘정신없이’ 보내거나 무기력하게 ‘포기하며’ 보내기 때문에 결국 자아실현에 실패하고 만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대학생 시절을 오히려 우울한 계절로 만들어 가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사회 진출의 문을 좁게 만드는 산업 구조와 국내외에서 각박한 시장 경쟁으로 치닫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흐름 등에 있다. 사회 공동체에서 서로 협동하며 공존하는 삶을 저버리고 모든 것을 시장 논리에 따라 상품화하면서 만인을 만인에 대한 경쟁자로 만들어 가는 경쟁지상주의 질서가 문제다. 그렇다고 학생들 각자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부조리에 도전하여 현실을 변혁하며 꿈을 이루어 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학생들의 실존적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자신의 문제를 주변 상황에만 의존하며 그 탓으로 돌리는 것은 참다운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구조적 존재인 동시에 실존적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의 주인공들에게 실존적 책무는 더욱 커진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제 우리 대학생 사회에 새로운 흐름이 필요해 보인다. 캠퍼스에 가득한 우울증을 씻어 내고 희망이 넘치도록 바꿔나가야 한다. 맹목과 포기를 목적과 소망으로 바꾸어 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스펙을 극복하여 뛰어 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펙은 대학생의 꿈을 이루는데 다소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그것을 소홀히 하지도 않되 그것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각자의 꿈을 설계하고 그것을 향해 용기 있게 도전하며 노력해 나가야 한다. 현실이 부조리하면 자포자기하며 주저앉거나 그냥 맹종하기보다 도전하며 헤쳐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진정한 자아의 사랑과 자존감에서 출발한다. 테레사 수녀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삶에서 발견한 최대의 모순은, 상처 입을 각오로 사랑을 하면 상처는 없고 사랑만 깊어진다는 것이다.&quot;&lt;BR&gt;&lt;BR&gt;&amp;nbsp;&amp;nbsp; 대학생활은 매우 창조적일 수 있다. 대학생 시절은 인생의 꽃이다. 그것은 젊음이 있어서 그렇고, 지성이 있어서 그렇고, 미래를 향한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 그렇다. 그런 대학생 시절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소중한 시기에 놓쳐서는 안 될 세 가지를 권면하고 싶다. 후회 없이 실컷 ‘탐구하고’, ‘사랑하고’, ‘참여하라’는 것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폭 넓고 깊이 있게 지성을 쌓으며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때로는 밤을 새우고 때로는 먹는 것도 잊으며 열심히 독서하고 글 쓰고 토론하는 젊음은 그 자체로서 스펙을 풍부하게 만들고 그것을 뛰어 넘게 한다. 학점 따려고 마지못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보람을 담아 열정을 불태우며 탐구해 보라. 모든 지식이 알알이 감동을 주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할 것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서로의 꿈을 나누며 이성과 아름다운 사랑을 한껏 꽃피워 내는 것은 어떤 스펙보다 값진 의미와 보람을 부여한다. 사랑은 아름답고 강하다. 역경을 이기고 뛰어 넘는 힘을 준다. 세상을 크게 품고 마음껏 사랑해 보라. 모든 것이 아름답게 승화될 것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세상은 꽃밭보다 아름답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지성의 부름에 따라 그리고 자기 삶의 목적이 이끄는 바에 따라 의미 있는 동아리에 참여하고 사회에 참여하며 열정을 바쳐 보라. 한편으로는 자아의 심연을 깊고 넓게 보듬으며 정체성을 쌓아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멋진 스펙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고 그것을 뛰어 넘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가 발전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지성의 빛을 발하며 세상 한 가운데 우뚝 서 보라 !&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2009년 5월 17일 &lt;/FONT&gt;&lt;BR&gt;&lt;BR&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14A6F0B4A31AE924746D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8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84&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BR&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모진 사람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1"/>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1</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09T09:36:01Z</updated>
	    <published>2009-06-09T09:36: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모진 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아마도 세상의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둥글게 살지 않고 외골수처럼 독하게 살았다는 뜻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고인이 정치적으로 모진 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좋게 해석하자면 '의롭게 모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상에는 그런 식으로 모진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lt;BR&gt;&lt;BR&gt;그런데 우리는 그와&amp;nbsp;다른 각도에서 더 모진 사람들을 또 발견하게 된다. '의롭다'는 수식어를 빼고 말 그대로 그냥 '모진'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BR&gt;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른 5월 마지막 주말에 나는 강남에 사는 몇몇 사람들과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고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안 됐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였다가 누군가 추모의 물결에 못마땅해 하는 이야기를 꺼내더니 이렇게 말 했다. &quot;자기가 잘못한 게 있으니 죽었을 텐데 뭘 슬프다고 그렇게들 야단인지 원..&quot; 그러자 동감이라고 끄덕이며 말을 보태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quot;그래도 대통령까지 지낸 인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며 국민장을 지낸 게 엊그제인데 곧바로 그렇게 차가운 이야기를 하는 건 좀 마음에 걸린다.&quot;고 말하며 분위기를 바꾸지 않았더라면 '노무현 험담하기'가 한참 더 이어질 것 같았다. &lt;BR&gt;&lt;BR&gt;일요일에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예배 중에서도 그렇고 뒷 시간의 담소 중에서도 고인을 &quot;미화하며 애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quot;거나 &quot;영웅시하면 곤란하다&quot; 또는 &quot;대통령을 하면 안 될 사람이 대통령을 해서 비극이 벌어졌다&quot;는 등의 표현까지 나오며 국민적 애도의 흐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꽤 있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인터넷에는 &quot;검찰의 수사 행위가 정당했다&quot;, &quot;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비겁했다&quot;, '피의자가 자책감으로 죽은 것뿐인데 갑자기 순교자로 만드는 것은 문제다&quot; 등등으로 불평하거나 비난하는 글들도 보였다. &lt;BR&gt;&lt;BR&gt;같은 일에 대하여 사람마다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느끼는 감정도 다를 수 있다. 고인의 죽음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 중에는 그 내용만으로 따지면 상당 부분 타당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주말에 식당이나 교회 또는 인터넷에서 접한 이야기들의 내용을 그 자체로서만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면 일부 수긍이 가거나 토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없지 않다.&lt;BR&gt;&lt;BR&gt;그런데 내가 놀라는 것은 말 내용의 형식적 타당성 여부가 아니라 말하는 맥락과 그에 함축되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평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을 용서하지도 참지도 못하는 강퍅함이다. 그리고 남이 죽든 말든 자기 논리의 당위성만 따지는 비정함이다. 우리 사회에 관용과 배려와 사랑이 고갈되고 있는 것 같다. 슬픔이 누그러지고 비극적 기억이 좀 무뎌진 뒤에 따져도 충분할 것들을 죽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인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피폐함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lt;BR&gt;&lt;BR&gt;사실 인간 노무현의 장단점이나 노무현 정부의 정책적 평가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고 토론해 볼 논제가 참으로 많다. 또한, 검찰 수사를 받던 '포괄적 노물 죄' 여부에 관해서도 따져 볼 사항은 많이 있을 것이다. 고인을 추모하는 국민도 그것을 모르지 않으리라. &lt;BR&gt;&lt;BR&gt;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인간 노무현이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절대적 결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그가 좀 더 완벽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그의 가족과 측근이 좀 더 신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도 많을 것이다. &lt;BR&gt;&lt;BR&gt;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것은 그런 모든 단점들을 뛰어넘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고, 전직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의 죽음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며, 자초지종이 어떻게 되었든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이끄는 검찰수사와 언론 보도의&amp;nbsp;&amp;nbsp;관행 그리고 정권의 '모진' 행태 때문이다.&lt;BR&gt;&lt;BR&gt;고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완벽하게 무결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amp;nbsp;남의 눈에 티만 보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만 너무 엄격한 것이 아닐까? 화합을 이야기 하면서 실제는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관용과 사랑은 없고 경쟁과 보복에만 열중한다면 너무 모진 것이 아닐까?&lt;BR&gt;&amp;nbsp;&amp;nbsp; &amp;nbsp;&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2009년 6월 3일&lt;/FONT&gt;&lt;BR&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권력의 '성격 장애' 현상과 기본권의 위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40"/>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40</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05T12:51:56Z</updated>
	    <published>2009-06-05T12:51:5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오늘날 한국의 제 권력은 '성격 장애'에 걸린 것 같다. 치명적인 '싸이코패스(psychopath)'의 징후를 보인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도리를 상실한다. 국민으로서 각 개인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에 대하여 책임감이나 죄의식이 없는 것 같다.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보장하기보다 오히려 탄압하고 통신비밀과 사생활을 보호하기는 커녕 침해하면서도 그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lt;BR&gt;&lt;BR&gt;2008년 여름에 치른 서울시 교육감선거와 관련하여 본인 주경복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전자우편을 검찰이 무차별 압수수색하면서 통신비밀과 사생활을 침해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재판 과정에서 그에 관한 심문이 있었으나 관리 업체는 물론이고 검찰조차 스스로 범한 과오를 인정하며 사죄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업체의 인권 불감증도 심각했으나 영업을 고려하는 사기업의 공권력 눈치보기를 감안한다면 결국 공적인 책임의 최종 소재는 사법권력이 되는데 검찰의 수사관행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선거와 관련한 조사 자료가 필요하면 선거에 관련된 것만 수집해도 될 텐데 내용이나 시기상으로 선거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까지 송두리째 압수하여 사생활을 심대하게 침해하고도 아무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마치 정당한 것처럼 주장하였다. 압수할 자료에 관하여 시기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집행해야 할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압수대상의 성격상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사생활을 침해한 결과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lt;BR&gt;&lt;BR&gt;이런 반사회적 성격장애 현상이 한국의 제 권력에 다반사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통치권력에서부터 관료행정권력을 비롯하여 언론권력 등 일반사회권력까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심각성이 있는 지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과거 일제식민지 시대에서 시작하여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며 자리잡은 반인권적-비민주적 권력행사의 관행이 뿌리 깊게 잠복하고 있다가 최근의 균열되는 민주주의 빈틈을 비집고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이는 매우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기본권의 위기이며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사회적 존립의 위기이다.&lt;BR&gt;&lt;BR&gt;보통교육을 받고 자연적 직관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는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어서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장애의 현실에서 느끼는 위기의식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환기하자면 기본권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부여받는 것이다. 이는 법률이나 현실의 어떤 조건 또는 이유보다 앞서는 보편적 권리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며 최소한의 권리에 해당하는 것들은 어떤 권력 행사의 편의에 의해서도 제약될 수 없는 '성역'이나 다름없다. &lt;BR&gt;&lt;BR&gt;선진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에서 권력의 병리 현상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또는 어떤 사회적 구분을 뛰어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권리의 문제다. 자신의 권리를 짓밟혀 보고 사생활을 침해당해 본 사람은 누구나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 전부가 그 고통을 다 겪어 보고 나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 미리 서둘러 고치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온 국민이 기본권의 위기를 함께 바로 인식하며 민주적으로 해결하여 극복해야 한다.&lt;BR&gt;&lt;BR&gt;그 일환으로서 우선 필요한 것 하나가 바로 '문제 많은' 검찰의 개혁인 것 같다. 용산 참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경찰과 검찰 권력을 비롯하여 언론권력과 통치권력 등의 '성격 장애'와 그로부터 초래되는 기본권 위기가 빚은 참사의 대표적 사례들 중에 일부일 뿐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많은 유명 또는 무명의 참사가 발생할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비극을 낳기 전에, 반사회적으로 병든 권력의 개혁에 나서야 한다.&lt;BR&gt;&lt;BR&gt;&lt;BR&gt;* 검찰 개혁에 관한 글 참조 : &lt;BR&gt;&lt;/FONT&gt;&lt;A href=&quot;http://joupia.net/bbs/zboard.php?id=space_ju&amp;page=1&amp;page_num=20&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mp;sn=off&amp;ss=on&amp;sc=on&amp;keyword=&amp;no=323&amp;category=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http://joupia.net/bbs/zboard.php?id=space_ju&amp;page=1&amp;page_num=20&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mp;sn=off&amp;ss=on&amp;sc=on&amp;keyword=&amp;no=323&amp;category=1&lt;/FONT&gt;&lt;/U&gt;&lt;/A&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현실 민주주의에서 대중 집회와 공권력의 대응 방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39"/>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39</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03T14:00:11Z</updated>
	    <published>2009-06-03T14:00: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한국 사회에서 정권과 공권력이 대중과 대립해 가고 있다. 대중을 위한 광장이 봉쇄되고 대중집회에 공권력이 과민 강경 대응을 하면서 긴장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대중 집회는 왜 존재하는가?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lt;BR&gt;&lt;BR&gt;그동안 '민주주의 원칙',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정치적 소통', '법치 질서' 등 원론적인 이야기는 많이 해 왔다. 이번에는 대중과 권력의 현실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한다. 사회적 소통의 장에서 펼쳐지는 여론의 역학적 흐름과 통치술에 관한 것이다.&lt;BR&gt;&lt;BR&gt;국가사회의 구성원들은 일상에서 다양한 욕구를 지니며 '대중'을 형성한다. 해소되지 않는 욕구가 불만으로 쌓이다가 관련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구체화될 때 대중은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출한다. &lt;BR&gt;&lt;BR&gt;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불만을 표시하며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상대에 대하여 달갑지 않게 느낀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정치권력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정권의 뜻을 대리하는 공권력이 반대 또는 비판 세력의 활동에 민감한 것을 일면 이해할 수 있다.&lt;BR&gt;&lt;BR&gt;그런 맥락에서 '반대'와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억압하여 잠 재울 수도 있고, 마음껏 표현하도록 놓아 둘 수도 있고, 일정한 선에서 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lt;BR&gt;&lt;BR&gt;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권력이든 홀로 모든 목적을 성취하고 완결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라면 달갑지 않은 상대를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절대적 조건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개인은 사회 관계 속에서 입지를 갖고, 국가권력은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존립한다.&amp;nbsp;현실에서&amp;nbsp;국민적 동의는 국민 구성원 다수의 지지로 환치된다.&amp;nbsp;국가사회에서 구성원들의 권력에 대한 성향은 대개 '절대적 지지 &gt; 비판적 지지 &gt; 유보적 중립 &gt; 절대적 중립 &gt; 비판적 반대 &gt; 절대적 반대'로 분화된다.&amp;nbsp; &lt;BR&gt;&lt;BR&gt;아마도 권력은 모든 사람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정권은 최소한 비판적 지지 세력까지 동의를 얻어야 집권할 수 있다. 유능한 정치 세력은 일시적이나마 선거라는 특수 공학적 구도에서 중립적 성향의 대중까지 득표 범위에 견인하여 압도적 헤게모니로 집권하기도 한다. &lt;BR&gt;&lt;BR&gt;집권과 통치의 과정은 또 다르다. 일상에서 각 성향의 대중 세력들은 현안에 따라 유동적으로 반응한다. 절대적 지지 세력과 절대적 반대 세력은 모든 사안에 대하여 거의 고정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나머지 성향의 대중은 현안의 성격과 그것을 둘러싼 정국의 흐름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 그런 지형 속에서 정권과 공권력이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순조롭게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lt;BR&gt;&lt;BR&gt;모든 현안에는 비판적 요소가 다소 존재하고 그것은 대부분 지지세력이나 반대 세력에 모두 교차되고 중첩되기 때문에 절대적 지지 세력을 제외한 모든 대중은 잠재적 비판 세력을 이룬다.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과 권력의 설득력 없는 과잉 대응은 반대 세력의 저항을 부를 뿐만 아니라 중립적 대중과 비판적 지지 세력의 이탈까지 부른다. 그런 흐름이 지속될 때는 권력행위에 대한 일상적 동의 조건이 성립하지 못하여 권력과 대중의 사회적 이반 현상이 일어나고 결국 통치권력은 고립에 이른다. &lt;BR&gt;&lt;BR&gt;대중과 여론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통치세력은 억압적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피하고 막고 체포하며 탄압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 지지자가 국민 대중의 대다수를 차지할 때가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다. 히틀러가 나치 정권 초기에 그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지만 대중의 여론은 다양한 변수에 따라 수시로 재편되기 때문에 종국에는 실패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강압적 대응은 여론의 흐름에 일시적으로 '침묵의 나선' 효과를 일으켜 표면상 비판 기류를 소강시킬 수 있지만,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억누를 때는 인간적 존재의 심연에서 솟아나는 저항을 불러 결국 역풍을 맞으며 비극에 이른다. 용수철처럼 눌린 만큼 반작용이 커진다. 외형적 표현 수단을 잃은 대중 의식은 풍문이나 담론으로 여론에 투영되고 투표 행태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경직 상태가 지속될 경우에는 물리적으로 폭발하고 만다. &amp;nbsp;&lt;BR&gt;&lt;BR&gt;오랜 역사를 통해 그런 대중 민주주의 생리를 체험한 정치선진국에서 대중집회는 기본적 권리와 상식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으며 합리적으로 보장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공권력의 강압적 질서잡기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국민 대중을 위해서나 집권세력을 위해서나 불행한 결과를 예고한다. 국가 권력은 국민 대중의 일상적인 비판 활동에 합리적으로 부응하며 소통하고 수용해야 민주적 지지와 권위를 지킬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사회에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공권력이 행사되기를 바란다.&lt;/FONT&gt;&lt;BR&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권력, 이제는 민주의 땅에 발을 딛어라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38"/>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38</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6-02T14:21:25Z</updated>
	    <published>2009-06-02T14:21: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FONT color=#336699&gt;한국사회에 파쇼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낡은 허울 뒤집어 쓴 폭압적 이데올로기들이 둥둥 떠 다닌다. &lt;BR&gt;&lt;BR&gt;살기 힘들어서 소통하기 어려워서 마음이 슬퍼서 국민은 집단적 우울증에 빠져드는 때, 보듬어 주는 손 하나 없고, 대중이 숨 쉬고 마음 풀어 활보할 광장에는 살기 띈 진압경찰차량들이 전열을 이루고, 사죄의 변화를 기대했던 검찰에서는 오히려 근엄한 모습의 검은 그림자들이 심리적 칼날을 번뜩이고, 혹시나 깊은 성찰로 국정기조의 전환을 바랐던 통치권 핵심부에서는 역시나 사과문 한 조각 없이 늘 강조하던 '법대로', '원칙대로'의 차가운 기류만 감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권력이 국민의 곁을 떠나 허공에 부유한다. 권위주의 옷을 둘러 입고 공안의 구름가마 타고 법치의 천공을 헤맨다. 국민은 까마득히 발 아래 있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기억할 뿐이다. 서민의 애환은 아래 세상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적 도리니 민심이니 하는 것은 모두 거추장스럽다.&lt;BR&gt;&lt;BR&gt;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민주주의 기본 정신을 저버린다. 마치 우매한 민중을 계몽하던 전근대 엘리트 권력처럼 21세기 국민을 우매한 대중 다루듯이 독선적으로 대한다. 형해화된 형식논리를 내세워 자기 합리화에 도취한다.&lt;BR&gt;&amp;nbsp;&amp;nbsp; &lt;BR&gt;이 나라가 원래 귀족국가도 아니고 소수 정복세력이 다수 토착민중을 지배하는 식민지 국가도 아닐진대 파쇼의 망령에 사로잡힌 권력이 얼마나 영생무궁하련가?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데... '권력과 보복도 부메랑의 한 조각'이 아니런가?&lt;BR&gt;&lt;BR&gt;지금 '잘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허망한 권력의 유혹에 빠져 국민의 뜻을 외면하다가 나라 망치고 자신도 패가망신하기 전에 정신 차리고 사람 사는 세상에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lt;BR&gt;&lt;BR&gt;이제 더 늦기 전에 권력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국민 곁으로 돌아 올 때다. 민주의 땅에 발을 딛어라 !&amp;nbsp;&lt;/FONT&gt;&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 후덥덥한 6월 오후의 사이버 낙서&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제는 검찰 개혁에 나설 때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37"/>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37</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5-31T15:43:17Z</updated>
	    <published>2009-05-31T15:43: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책임을 어느 한 주체에게만 전적으로 돌리기는 힘들 것이다. 수사를 하는 측이든 받는 측이든 아니면 그 뒤의 다른 어떤 관련자 또는 권력 주체든 홀로 그 책임을 다 지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책임질 사람이 아주 많아 보인다. 거기에는 검찰, 언론, 통치세력이 우선 포함된다. 이제 책임 있는 주체는 문책하고 잘못된 현실은 개혁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외면할 수 없는 천심이자 지상명령이다. 그런 흐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 검찰의 문책과 개혁이다. 사안의 성격에 비추어&amp;nbsp;&amp;nbsp;검찰의 책임이 가장 직접적이고 크기 때문이다. &lt;BR&gt;&lt;BR&gt;수사를 한 행위 자체에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피의자의 자살 자체로서 무죄가 입증되고 그 결과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검찰이 무조건 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표적수사, 편파수사, 과잉수사, 왜곡수사 등의 관행과 그것을 발생시키는 권력구조에 있다. 그것은 비단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많은 사건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다. 수사 기법의 문제든, 수사 분위기의 문제든, 수사 정보 관리의 문제든, 수사권 구조의 문제든 아니면 그런 것들 모두의 문제든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 없다. &lt;BR&gt;&lt;BR&gt;법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고 사법 정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어떤 이유로든 인권과 생명을 경시할 근거는 없다. 다수 국민이 과잉 표적 수사라고 느끼는 사건에서 상징적 인물 중에서도 대표적 인물에 속하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야기한 것에 대하여 그 책임의 눈을 감거나 형식논리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amp;nbsp;이번 일조차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간다면 이름 없는 일반국민의 인권보장을 누군들 확신할 수 있겠는가?&amp;nbsp;&amp;nbsp; &amp;nbsp;&lt;BR&gt;&lt;BR&gt;이제는 수사 관행과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더 이상 권력 기관의 조직 논리에 사로잡혀 부조리를 방치한 채 비극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민주화하고 개방되고 변화하는데 유독 사법계만 구태의연하게 비민주적으로 폐쇄된 권력구조에 머물 수는 없다. 권력구조는 민주화하고 업무수행은 과학화 해야 한다.&lt;BR&gt;&lt;BR&gt;이를 위해서는 법조계 전문가와 외부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 그리고 국민의 권리를 대변할 사회 대표 및 활동가들이 균형 있게 혼합 구성되는 추진 기구에서 심도 있게 연구하고 논의하여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연구 및 논의에 참고할 내용으로서 몇 가지 의제를 제안해 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첫째, 검찰총장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민선제를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검찰의 총수를 국민이 직접 선출함으로써 국민 주권을 절차적으로 확립하고 검찰이 보다 더 국민의 권리를 의식하며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는 사안이지만 일단 검찰 조직의 폐쇄적 권력 구조를 민주화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lt;BR&gt;&lt;BR&gt;둘째, 검찰 수사권 과점과 기소권 독점을 개혁하여 분산시키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검찰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어 수사 관행의 경직성과 많은 부조리를 낳고 있다. 세금, 거래, 선거, 인권, 보건, 환경&amp;nbsp;&amp;nbsp;등 사안별 성격에 따라 관할 기구에 합당한 사법권을 부여하고,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수처(공직부패수사처)'를 다시 추진하여 권한을 분담시키고, 경찰과의 수사권 분담 구조를 재조정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사권과 기소권의 구조를 전면 재편하는 것이 요구된다. 경찰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존 정부기구들도 아직 국민의 신뢰를 받기에는 불충분하고 신설하는 공수처에 대해서도 우려되는 점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사법권이 적절히 분점 되면 상호 비교 견제되면서 상당한 합리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lt;BR&gt;&lt;BR&gt;셋째, 수사 윤리를 엄격히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수사기관에서 편의를 앞세워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분별한 권한 행사로 온갖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피의자, 참고인, 증인, 불특정 연관자 등에 대한 인권과 사생활을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 이제는 엄격한 수사 규칙을 법제화하고 국민 감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수사권 행사를 감시하고 교정하며 위법이 있을 때는 엄중히 처벌하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넷째, 수사 기법과 업무의 과학화를 제도적으로 담보하자는 것이다. 현재 수사 관행은 다분히 타성에 젖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한의 남용을 통한 편의주의에 흐르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 수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과학적 기법에 의해 수준 높고 객관적인 수사 결과를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피의자나 참고인 등의 인권을 철저히 보장하면서도 과학적 조사 방법에 의해 사실을 효과적으로 밝혀 내는 선진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체계, 시설, 장비 등의 제고가 요구된다. &lt;BR&gt;&lt;BR&gt;다섯째, 검찰 조직을 비롯한 사법 권력 기구의 양적인 축소를 진지하게 검토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사법 기구들이 지나치게 비대하여 그 자체로서 권력조직화 하고 있다. 최근에 과잉의 많은 잡음을 빚으며 부조리의 상징이 되고 있는 공안 기구들의 팽창에서 그 대표적 예를 볼 수 있다. 이제는 사법 기능도 합리적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양적으로 축소하면서 질적으로는 보강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lt;/FONT&gt;&lt;BR&gt;&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봉하 마을을 '민주주의 광장'으로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36"/>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36</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5-30T15:45:29Z</updated>
	    <published>2009-05-30T15:45: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 슬프다. 울고 외치며 울분을 토해도 가시지 않을만큼 슬프다. 오래 갈 것이다. 그 분의 서거는 오래도록 슬퍼하며 기리어 마땅하다. &lt;BR&gt;&lt;BR&gt;그런데 우리는 그 분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기에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사회적으로 뜻 있게 그 분의 죽음을 승화시키는 데에도 마음을 써야 한다. 그 분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 주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더 사회 변혁의 사명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제대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농촌이 사람 살만한 곳이 되도록 가꾸고 약자가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이루며 질적으로 충실한 사회 민주화를 구현해야 한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그 가운데서 작은 것일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에게 꽤 의미 있어 보이는 것 한 가지를 먼저 제안하고 싶다. 봉하 마을을 실질적인 '민주주의 광장'으로 가꾸어 보자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소통의 광장을 민주적으로 열어보는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지금 한국사회에는 민주적 소통의 길이 막히고 있다. 정권과 국민이 유리되고 통치권과 주권자가 이반한다. 표현, 통신, 집회의 자유가 구속받고 민주주의가 경직된 법치의 감옥에 갇혀 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상호간과 내부 각 분파들 사이에 엇박자를 내며 소통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이런 난맥을 풀어나갈 장이 필요하다.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 잡은 서울 광장이 그런 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겠지만 지금의 조건에서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국가사회에 팽배하는 불신 때문에 서로를 믿지 못하여 소통의 장으로서보다는 갈등과 충돌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amp;nbsp;&amp;nbsp; &lt;BR&gt;&lt;BR&gt;봉하 마을에서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 공론장을 열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심의 긴장에서 벗어나 농촌의 공기를 현실로 호흡하면서 평화롭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사회 운동가나 진보 세력만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범사회적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매기는 것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기리는 의미가 클 것이다. &lt;BR&gt;&lt;BR&gt;굳이 '성지'니 '성역'이니 하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 말 자체에 이미 어느 정도는 권위적 어감이 있으므로 고인의 탈권위주의 정신에 맞지 않을 듯 하다. 소탈하지만 진정으로 민주주의 정신이 소통되는 곳으로 가꾸는 것이 좋을 듯 하다. &lt;BR&gt;&lt;BR&gt;해마다 5월에는 민주주의 대축제를 벌이고, 달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날 하루씩을 정해서 민주주의 행사를 열고, 주말마다 대중 소통과 만남의 집회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년중 나머지 매일에도 크고 작은 공청회, 토론회, 집담회, 촛불, 횃불, 모닥불, 꽃송이, 풍선, 깃발 행사 등을 이어감으로써 일상적으로 민주주의가 살아서 실험되고 응용되고 실천되는 장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영남, 호남, 충청, 강원, 제주, 수도권 등 지역적 거리를 뛰어 넘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수시로 만나서 소통하고 연대하며 민주주의 문화를 꽃피우는 것이다.&lt;BR&gt;&lt;BR&gt;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공간과 운영 기능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돈도 필요할 것이다. 서울 광장만하거나 조금 더 큰 터를 마련하고 그에 접하여 회당을 짓고 일들을 기획하여 운영할 인력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은 돈을 필요로 할 텐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금을 모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돈을 내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이런 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뜻을 기리고 싶어하는 인사들이 맡아주면 좋겠는데, 가능하다면 과거에 고인과 아주 가깝기보다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일하며 활동하던 분들 가운데서 맡아주면 더 좋을 듯하다.&amp;nbsp;그리고 봉하 마을 주민의 뜻이 잘 존중되고, 누리꾼의 참여와 역할도 컸으면 좋겠다.&lt;/FONT&gt;&lt;BR&gt;&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바보 영웅</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35"/>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35</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5-29T17:12:00Z</updated>
	    <published>2009-05-29T17:12: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color=#9400d3&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9400d3&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4em&quot;&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9400d3&gt;이 세상에 한 사람이 살았네&lt;BR&gt;이 시대에 그가 살았네&lt;BR&gt;이 땅 위에 그 님이 살았네&lt;BR&gt;&lt;BR&gt;촌스럽고 &lt;BR&gt;가방 끈 짧고&lt;BR&gt;가진 것 별로 없던 님&lt;BR&gt;&lt;BR&gt;할 말 못 참고&lt;BR&gt;타협할 줄 모르고 &lt;BR&gt;모진 길만 가던 님은 바...보&lt;BR&gt;&lt;BR&gt;이 낮은 곳 앞 모습 &lt;BR&gt;세상 눈 높이로 바라볼 때 &lt;BR&gt;영락 없는 바보였네&lt;BR&gt;&lt;BR&gt;한 사람 저 세상으로 가네&lt;BR&gt;우리를 두고 그가 가네&lt;BR&gt;큰 뜻 남기고 그님이 가네&lt;BR&gt;&lt;BR&gt;민주와 민족이 무엇인지 &lt;BR&gt;더불어 삶이 어떤 것인지&amp;nbsp;&lt;BR&gt;행동으로 보여준 님&lt;BR&gt;&lt;BR&gt;존중과 사랑이 무엇인지&lt;BR&gt;권위주의가 왜 필요 없는지 &lt;BR&gt;삶으로 보여준 님&lt;BR&gt;&lt;BR&gt;지역주의에 온 몸으로 도전하고&lt;BR&gt;약자에게 따뜻한 마음 열어 주고&lt;BR&gt;동시대인들에게 꿈을 심어준 님&lt;BR&gt;&lt;BR&gt;삶과 죽음 경계 담백하게 넘어 &lt;BR&gt;자연의 한 조각으로 의연히 부활&lt;BR&gt;수많은 사람 뒤따르게 만든 님은 영...웅 &lt;BR&gt;&lt;BR&gt;저 멀리 뒷 모습 &lt;BR&gt;마음 문 열고 의롭게 품어보니 &lt;BR&gt;틀림 없는 영웅이네&lt;BR&gt;바보스러워서 더 큰 영웅이네&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1.uf.daum.net/image/16461D264A1F9C97C15BF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3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23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죽은 지도자의 사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34"/>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34</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5-28T01:41:57Z</updated>
	    <published>2009-05-28T01:41: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지도자 한 사람이 큰 충격을 던지며 우리 사회를 하직했다. 그의 죽음은 그 자체로서 커다란 사건이면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죽은 지도자의 사회, 그 현실을 상징한다.&lt;BR&gt;&lt;BR&gt;한 인간으로서 노무현, 사회의 진보를 위해 변혁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로서 노무현은 참으로 인간적이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정치인으로서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기까지 매우 참신하였다. 그 역할의 크기가 어떻든 그는 본 받을만한 사람이었다. 우리 사회가 잘 품어야 할 훌륭한 인재였다.&lt;BR&gt;&lt;BR&gt;대통령으로서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보기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며 복잡해진다. 잘한 것도 있지만 과오도 많았다. 정치적 반대 세력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지세력이나 우호 세력에게도 적지 않은 실망을 주었다. 거기에는 대통령의 역할 문제도 있었고, 집권 세력 전체의 문제도 있었고,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과 측근의 문제도 있었다. 확대해서 생각하면 민주주의 국가사회에서 주권자로서 국민이 국가공동체의 진보에 보다 창조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탓도 없지는 않다. 그렇게 노무현 정부의 공과에는 대통령이 혼자 책임져야 할 몫도 있고,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책임져야 할 공동의 몫도 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개인으로서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때에도 나름대로 훌륭한 편이었다. 권위주의에 빠지지 않고 평소의 모습을 가식 없이 소탈하게 지켰고, 권좌의 유혹 속에서도 도덕적으로 크게 일탈하지 않았다. 물론 옥의 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임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다소 경솔했던 언행들, 그리고 가족과 친지 관계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 돈 거래 등이 그런 예이다. &lt;BR&gt;&lt;BR&gt;불상사 없이 삶을 이어갔다면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노무현은 여러 가지 평가를 동시에 받으며 앞으로 남은 삶에서 그가 실천하는 일들과 모습에 따라 재평가 되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한 뒤에 그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훌륭하다'고 인정을 받았을지 아니면 그냥 운 좋게 대통령 한번 지낸 정치인 정도로 여겨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lt;BR&gt;&lt;BR&gt;그런데 그의 죽음을 통해 그는 스스로 훌륭함을 입증하였다.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의롭게 살고자 했는지, 옥의 티도 그렇게 괴로워할만큼 순수했는지 그리고 국가와 사회와 추종자들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헌신하고 희생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도자임이 드러났다. 개인적 미련이나 입지보다 사회적 대의를 더 중시하고, 지도자의 도리를 통감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지도자의 몫이라면 목숨까지 담백하게 내놓았다. 그의 진정성을 확인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유보해두었던 몫을 긍정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amp;nbsp;깊은 인상까지 남겼다.&amp;nbsp;&lt;BR&gt;&lt;BR&gt;그런데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 한 사람을 확실하게 발견하는 순간 그는 이 세상에 없지 않은가? 이것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목숨을 내놓는 막판까지 가지 않고서는 참된 지도자를 확인하고 얻을 수 없단 말인가? 일상 속에서 참되게 살아가는 지도자들을 자연스럽게 만나 볼 수는 없는 것인가? &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gt;&lt;BR&gt;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진정으로 인류와 국가와 사회의 진보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기는 더욱 힘들다. 지도자가 되어도 훌륭한 모습을 지키며 훌륭한 일만 하도록 세상이 허하지 않는다. 바보로 만들거나 타락시키거나 매도한다. 온갖 사람들이 멀리서 가까이서 시기하고 헐뜯고 먼지를 뿌린다. 개인적 욕망과 정파적 이해관계로 얽어매고 덫을 놓는다. 진정으로 사회를 위해 일하는 지도자의 설 자리를 남겨두지 않는다. 진정한 지도자가 제대로 뜻을 펼칠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 &lt;BR&gt;&lt;BR&gt;패거리의 인물들은 많으나 사회의 참된 지도자는 없는 현실. 있어도 온전히 살아서 일할 수 없는 현실. 참된 지도자는 죽고, 거짓 지도자들만 살아남는 현실. 오늘날 우리는 '죽은 지도자의 사회'에 살고 있다. &lt;BR&gt;&lt;BR&gt;'살아 있는 지도자의 사회'는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 많은 지도자들이 참되게 살며 함께 일하는 사회는 언제 올 것인가? 서로의 훌륭함을 발견하며 인정해주는 사회, 개인의 욕망보다 사회의 진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어린이와 젊은이의 가슴마다 참된 지도자의 꿈이 아름답게 자라는 사회,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의롭게 살며 참된 지도자가 되는 사회는 과연 올 수 있을까? &lt;/FONT&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한국 사회를 옥죄는 '죽음의 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kbjou/15853733"/>
		<id>tag:blog.daum.net,2009:jkbjou.15853733</id>
	    <author>
		    <name>주경복</name>
	    </author>
	    <updated>2009-05-25T11:28:19Z</updated>
	    <published>2009-05-25T11:28: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336699&gt;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은 실존적 사실이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피하기 어려운 힘에 떠밀려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 그 분이 받아 온 혐의가 죽음으로 갚아야 할 당위는 아니지 않았는가? 억울하지만 벗어날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하도록 이끈 구조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죽음의 손이 있다. 음습하고 불안한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손이다. 그것은 누구든 언제나 자칫하면 걸려들 수 있는 덫과도 같다. 그 손에 한번 움켜잡히면 넋을 잃고 공든 탑을 허물어 버린다. 발가벗겨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죽음에까지 이른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우리 현실에는 여러 가지 권력들의 부조리 구조가 있다. 그 안에는 검은 손들이 있다. 권력들 사이의 유착으로 인한 복합구조는 더욱 심긱하다. 그 안에는 더욱 복잡한 올가미 손이 있다. 배우 장자연도 전직 대통령도 그런 손들에 걸려들었다. &lt;BR&gt;&lt;BR&gt;대통령과 그 가족을 유혹으로 이끄는 정경유착의 부조리, 그런 존재와 흐름을 변혁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얽혀 드는 측근들과 탈법적 관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답습하는 자본가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 &lt;BR&gt;&lt;BR&gt;그 뿐이랴 !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거나 방조한 사람들은 너무 많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 대부분이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 할 수 있다. 검찰이 과잉 표적 수사를 진행하며 '언론 놀이'를 벌이는 동안에 적극 나서서 견제하지 못하고 구경만 해 온 책임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lt;BR&gt;&lt;BR&gt;진보니 보수니 편을 갈라서 서로 경쟁하듯이 대안 없는 비판을 일삼아 온 제 세력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비판적 진보 세력은 진정으로 실현 가능한 진보적 대안들을 꾸준히 제공하지 못한 채 부정적 비판만 되풀이 한&amp;nbsp;&amp;nbsp;책임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난을 퍼 부으며 험담만 해온 보수 세력은 두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lt;BR&gt;&lt;BR&gt;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사태에 대한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책임은 검찰과 언론과 통치 세력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정의롭게 법을 다루지 않고 조직 이기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출세주의 도구로 오용하는 사법 권력은 가공할 죽음의 손이다. 사회적 소통의 매개자로서 정론의 책무를 저버리고 상업주의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성찰 없는 직업주의에 빠진 언론 권력은 흔히 의식적으로 내밀고 때로는 스스로 왜 누구를 죽이는 지도 모르고 뻗치는 죽음의 손이다. 국가사회의 진보와 국민의 행복보다는 반대 세력의 견제에 더 급급한 통치세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국민에게 엄청난 비극을 불러올지 모르는 무서운 죽음의 손이다. &lt;BR&gt;&lt;BR&gt;역사의 진화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균형감 없이 무조건 경쟁 세력에 대해 적대감을 지키며 공세를 퍼 붇는 제 권력의 행태가 수많은 비극을 부른다. 불의로 결탁한 권력의 손들이 참극을 빚는다. 이번 일이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한 없이 반복되며 지속된다.&lt;BR&gt;&lt;BR&gt;한국 사회에 뻗치고 있는 죽음의 손들, 이제는 잘라내야 할 때다. 더 이상 비극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까지 하지 않았는가? 더 이상 어떤 시급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좌우, 여야, 진보-보수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죽음 앞에 자유로운 사람 없다. 전 국민과 국가 기능이 진정으로 사법 개혁, 언론 개혁, 정치 개혁 등에 나서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통치자로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책임 질 사람이 있으면 문책한 뒤 사법 개혁부터 착수하는 일이 요구된다. 특히, 수사권 구조와 관행의 개혁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lt;/FONT&gt;&lt;BR&gt;&lt;BR&gt;&lt;/P&gt;
	    </content>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