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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준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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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01:24:36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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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화문 광장과 세종대왕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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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정준극</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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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01:24:36Z</updated>
	    <published>2009-11-08T01:24: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광화문 광장과 세종대왕 이야기&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The Story of King Sejong) &lt;/STRONG&gt;- 세종대왕이면 King Sejong the Great 라고 해야 하지 않나?&lt;/P&gt;
&lt;P&gt;&lt;STRONG&gt;&amp;nbsp;&lt;/STRONG&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6.uf.daum.net/image/133743254AF59EFB024F6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대단한 광화문광장의 조감도&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광화문에 광화문광장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이미 보도를 통해 다 알려졌고 더구나 광화문광장을 다녀온 사람들이 개방 두어달만에 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와중에&amp;nbsp;그곳에 다녀왔다는 일말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약간이나마 설명을 붙이고자 한다. 혹시 아직도 안가보았다면 일단은 가보기를 권장하면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광화문네거리에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장엄하게 서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의 동상과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복원하는 장소의 중간 쯤에 얼마전 황금빛도 찬란한 세종대왕의 기념상을 설치해 놓은 것도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굳이 부연하자면 광화문 광장은 2009년 8월 1일부터 개방되었고 세종대왕 기념상은 한글날인 2009년 10월 9일에 제막되었다는 사실이다. 세종대왕 기념상 앞을 해치마당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설명이 필요없는 사항이다. 요새 서울의 심볼로서 해치가 아주 뜨고 있다. 얼마전에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디자인올림픽에서도&amp;nbsp;비싸게 보이는&amp;nbsp;해치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는 해치가 우상이라고 하면서&amp;nbsp;불편한 심기를 토로한바 있다. 그뿐이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12149B234AF5CEBF0836E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황금빛 찬란한 세종대왕 기념상. '서울 시장을 비롯해서 모두들 수고 했어. 준비들 하느라고'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순신장군 기념상 앞에 대단한 분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amp;nbsp;주변의 의자마다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서 음악과 함께 분수가 무용을 한다. 기왕이면 듣기 싫은 유행음악 대신에 구군악대의 연주로 분수가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분수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이순신장군 동상이 있는 곳의&amp;nbsp;땅속에 지하3층 규모의 엄청난 공간이 새로 완성되어서 경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하기야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므로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 팠는지 대단한 지하공간을 만들어 놓았다.&amp;nbsp;지하의 공간은 현재는 '세종이야기'라는 전시장이다. 세종대왕 업적기념관, 또는 세종박물관이라고 부르지 않고 '세종이야기'라고 이름을 붙인 것 부터가 평범하지 않다. 세종대왕 기념상 앞에서 지하로 들어갈수도 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들어갈수도 있으며 KT빌딩을 통해서도 들어갈수 있다. 그리고 물론 광화문 지하철역과 교보문고와도 연결되어 있다. 사통팔달이다. 어느틈에 이런 거창한 지하시설을 만들었을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552CC154AF5CFC430947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세종이야기' 전시장 입구 대문. 광화문 지하 3층 위치에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하공간을 만들었다니 놀랍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종대왕 기념상&amp;nbsp;후면의 지하계단을 통하거나 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후 복도를 따라 '세종이야기'라는 현판이 걸린 대문을 지나면 한쪽 벽면에 위대한 성군 세종을 소개하는 멀티 영상물이 줄기차게 상영되고 있다. 마치 천문과학관에서 천체영상을 보는 것 같으므로 '와, 대단하다'라는 인상을 갖지 않을수 없게 한다. 이어서 무얼 물어보면&amp;nbsp;매우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안내원들의 눈치를 보며 이곳저곳의 전시장을 살펴보다보면 어느덧 한시간이 지난다. 한마디로 말해서 돈을 많이 들여서 잘 해 놓았다. 간단한 기념품점까지 있다.&amp;nbsp;다리가 아픈 사람이나 친구와 만나 소곤소곤 수다를 떨 사람들을 위해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소곤소곤'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내가 가본 날에도 전라도나 충청도의&amp;nbsp;어느 마을에서 오신 분들인지 하여튼 구경하러 오신것 까지야 매우 좋지만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서로 떠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직도 민도가 이것뿐인가?'라는 자조섞인 생각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에 일부러 소곤소곤이라고&amp;nbsp;표현했던 것이다.&amp;nbsp;제발 바라건대 전시장을 자기집 안방으로 착각하여&amp;nbsp;'야, 아무개야, 뭐 볼만한 것도 없는디&amp;nbsp;정신만 사납다. 아이구 그만 가버리면 쓰갔는디'라고 떠드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1216A7224AF5CEC00E869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세종이야기' 대문을 거치면 복도 한쪽에 멀티영상물이 압도한다. 우주여행에 동참한 것 같은 분위기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엇이 전시되어 있는가? 세종대왕의 업적이 소개되어 있다. 한글창제, 과학과 예술, 군사정책 등 세종대왕의 치적이 영상물, 모형물, 파넬 등으로 전시되어 있다. 세종대왕은 몇세에 세상을 떠났는가? 65세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5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공무원으로서의 정년도 채우지 못하였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세종대왕의 이름은 무엇인가?&amp;nbsp;성은 당연히 이씨이고 이름은 도이다. 세종이라는 것은 칭호일 뿐이다. 생일은? 음력으로 4월 10일인데 태어난 해(1397년)의 4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15일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날은 2월 17일이다.&amp;nbsp;취미는? 안내 팸플릿을 보니 독서라고 되어 있다. 요즘엔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독서입니다'라고 대답하는&amp;nbsp;청년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독서 좋아하네'라는 핀잔을 듣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8.uf.daum.net/image/140FFA214AF5CEBF127AC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전시장 내부. 세종대왕이 이룩하신 과학기술분야의 업적 소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돌이켜보건대 옛날에는 이력서에&amp;nbsp;취미난이 있어서 반드시 써넣어야 하기 때문에 간혹 곤혹케 하는 경우가 많았다.&amp;nbsp;그리하여&amp;nbsp;하는수 없이 '독서'라고 적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면접관이 '아, 취미가 독서군요. 그래 요즘 읽은 책은?'라고 물으면 '아이구, 공연히 취미를 독서라고 적어 넣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면 면접관이 '그럼 로미오와 줄리엣은 읽어 보았나요?'라고 물으면 대개는 대답하지 않을수가 없어서 한다는 소리가&amp;nbsp;모기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예,&amp;nbsp;근데 로미오는 읽었는데요 줄리엣은 아직 못읽었어요. 열심히 읽겠습니다'라면서 말끝을 흐리기가 일수였다. 때아니게 '세종이야기'에서 쓸데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를 함을 심히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다시 전시장 이야기로 돌아가면, 전시장은 매주 월요일에는 문을 닿으며 나머지 날에는 오전 10시반에 문을 열어 늦은밤 10시반에 닿는다. 그러니 밤에 광화문광장에 들려서 야간분수도 구경하고 도대체 '세종이야기'가 무엇인지&amp;nbsp;이럭저럭 살펴 보는&amp;nbsp;것도 미상불 관찮은 일이다.&amp;nbsp;입장료는 당연히 없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716A2224AF5CEC10DE06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광화문광장에 설치해 놓은 혼천의 모형&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세종이야기' 전시의 백미는 국내 동양화단의 거장들이 그린 세종의 업적화들일 것이다. 대마도정벌도는 산정 서세옥(山丁 徐世鈺)&amp;nbsp;화백이 그렸다. 육진개척도는 남정 박노수(藍丁 朴魯壽)&amp;nbsp;화백의 작품이다. 집현전학사도는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amp;nbsp;화백의 그림이다. 주자소도는 운정 정완섭(云丁 鄭完燮)&amp;nbsp;화백의 노작이다. 지음도는 현초 이유태(玄艸 李惟台)&amp;nbsp;화백의 작품이다. 모두 원로 화가들이시다. 이들중에서 현초선생은 1999년에 작고하셨으며 월전선생은 2005년에 세상을 떠나녔으니 '세종이야기'의 작품들은 그분들의 유작이다. 우리나라 동양화단의 거목되시는 분들의 작품을 대할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lt;FONT color=#7293fa&gt;[노화백들의 작품들을 감히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FONT color=#7293fa&gt;사진으로 찍어 게재함은 심히 반성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얼핏 소개하오니 하해와 같은 양해를 바랍니다.&amp;nbsp;무엇보다 사진이 썩 훌륭하지 못하여&amp;nbsp;죄송만만한 심정입니다. 전시장에서 원작을 보시면 전혀 감흥이 다를 것입니다. 바라건대 주최측에서는 이분들의 그림을 그림엽서 등으로 만들어 판매했으면 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생들 공부자료도 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홍보용 자료도 되고!]&amp;nbsp;&amp;nbsp;&lt;/FONT&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21.uf.daum.net/image/121434234AF5CEC018C6C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산정 서세옥 화백의 '대마도정벌도'&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1416B0224AF5CEC10BAF2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남정 박노수 화백의 육진개척도&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201006214AF5CEC1122FC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운정 정완섭 화백의 주자소도&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7.uf.daum.net/image/133A821F4AF5CEC112338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현초 이유태 화백의 지음도&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7.uf.daum.net/image/171024214AF5CEC10DDD2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월전 장우성 화백의 집현전학사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216B8224AF5CEC20AA3F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집현전에서 한글 창제를 위해 불철주야 연구하시는 세종대왕 모형&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122B04204AF5CEC00DDFD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한글반포. 백성들이 좋아하는 모습&lt;/SPAN&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81ADB184AF5CFC60D577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세종대왕을 주제로 한 조각전시회의 한 작품&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27.uf.daum.net/image/207921174AF5CFC529F14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광화문광장의 해치마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152DC154AF5CFC4175A7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세종대왕 기념상의 뒷면을 이렇게 생겼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용이 수없이 많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87932174AF5CFC615EA6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이순신 장군상 앞의 분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14369A164AF5CFC61B9CA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광화문광장의 이순신장군 동상과&amp;nbsp;분수. 무더운 여름날에는 아이들이 아예 분수 속에 들아가서 산다. 이순신장군께서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얘들아 이제 그만 집에 가서 공부해야지'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다.&amp;nbsp;&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군을 꿈꾸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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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7T18:55:36Z</updated>
	    <published>2009-11-07T18:55: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성군을 꿈꾸다&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창덕궁의 영화당은 과거(科擧) 보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치루는 영화당 앞의 넓은 마당을 춘당대라고 부른다. 예전에 이몽룡씨가 과거를 보던 장소도 춘당대였다.&amp;nbsp;이번에는 영화당에서 왕세자(동궁)를 훌륭한 성군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 재현되고 있다.&amp;nbsp;10월 6일부터 11월 8일까지 한달동안 매일 두차례,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그럴듯하게 재현되고 있다(창덕궁이 쉬는 월요일은 제외).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왕이 될 '준비된 인물'을 어떻게 교육시키는지 제대로 알아 볼수 있는 이벤트이다. 조선시대의 임금은 오늘날의 대통령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될 사람이면 무던히도 공부하여 애국애민의 소양을 죽도록 함양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통령들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일순간의 인기로 대통령이 되어 흰소리나 뻥뻥하고&amp;nbsp;막말이나 멋대로 하는가 하면&amp;nbsp;자기야 말로 청렴결백한것 처럼&amp;nbsp;내세우는데 알고보니까 가족들이 똘똘 뭉쳐서 뇌물을 받아 먹어&amp;nbsp;세계적인 망신을 당한&amp;nbsp;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에 장차 임금이 될 왕세자에 대한 교육내용이나 시간표에 대하여는 복잡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사진 한두장으로 그 장면을 연상해 보도록 하자.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8.uf.daum.net/image/1266B0254AF543545A84A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왕세자에게 강의를 마친 노학자들이 임금에게 인사하고 있다. 무르익은 가을. 바야흐로 등화가친의 계절이다. &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18036B254AF5435438C86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왕세자의 교육장면을 꾸준히 지켜보던 임금이 교육이 끝나자 만족해 하며 처소로 돌아가고 있다. &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65DB5284AF543543FB82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노학자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170320284AF5435508CB1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성군을 꿈꾸다' 이벤트 안내소. &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운현궁의 담장 무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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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72</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7T18:37:22Z</updated>
	    <published>2009-11-07T18:37: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운현궁의 담장 무늬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운현궁 내의 이로당과 노락당을 감싸고 있는 담장은 참으로 디자인이 멋있다. 우리나라 전통 담장의 아름다움을 집합해 놓은 것 같다. 경복궁의 자경전 담장도 무늬가 아름답고 더구나 십장생 굴뚝도 있어서 눈길을 끌지만 운현궁의 담장은 일부러 전시회라도 하듯 현란하다. 운현궁에 가서 담장만 살펴보고 와도 갔다온 보람이 있다. 더 설명이 필요없이 사진으로 담장 디자인을 보도록 하자. 장인들의 솜씨가 놀랍다. 모두 기하학적 디자인이다. 디자인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2.uf.daum.net/image/1734581E4AF53F5198A48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특이하게 아라비아 디자인 같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20427D1C4AF53F5226CDB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이건 낙선재에서 본 빙열 무늬와 같다. 불이 나면 어름으로 막는다는 생각에&amp;nbsp;아궁이에 이런&amp;nbsp;디자인을 해 놓았다.&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1402991E4AF53F5131012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64DAC1D4AF53F523325C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40.uf.daum.net/image/1550E91A4AF53F513106C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174B951C4AF53F521E6FC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85BAC1D4AF53F520CEC7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가운데에 꽃 무늬를 붙이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746E11A4AF53F5226193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현대 속의 성배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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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71</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6T08:34:34Z</updated>
	    <published>2009-11-06T08:34: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현대판 성배 전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17510F254AF36084363B8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다 빈치 코드' 영화 포스터&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유럽에서는 19세기에 성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대표적인 경우는 알프레드 테니슨 경(Lord Alfred Tennyson)이 쓴 Idylls of the King(아서왕 시집)이다. 아서왕 이후의 성배의 행방과 모험에 대한 스토리를 엮은 것이다. 또 하나 대표적인 작품은 바그너의 오페라 Parsifal(파르지팔)이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은 전통적인 성배 전설과는 다른 새로운 주제로 엮어졌다. 성배를 여인의 수태와 연관지은 것이다. 성배에서는 주기적으로 피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은 여성의 생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리를 한다는 것은 곧 임신을 할수 있고 후손을 생산할수 있다는 방향으로 연관지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의 작품은 성배에 대한 새로운 주제를 시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의 여인은 한손에 성배를 들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축복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수태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URSOR: pointer&quot; hspace=1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20407A284AF35A17164A76&quot;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성배를 들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머리 위에는 성령의 비둘기가 날고 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작품.&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gt;성배는 영화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처음에 나온 것은 무성영화인 Parsifal(파르지팔)이었다. 1922년에는 The Light of Faith(신앙의 빛)이 나왔다. 론 샤니(Lon Chaney)가 성배를 훔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토마스 코스테인(Thomas Costain)이 쓴 소설 The Silver Chalice(은성배)는 195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폴 뉴만(Paul Newman)의 데뷔작이었다. 1974년에 나온 Lancelot du Lac(호수의 랜슬롯)은 명우 로버트 브레슨(Robert Bresson)의 불굴의 작품이었다. 1975년의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몬티 파이톤과 성배)는 아서왕의 전설에 대한 그동안의 전설들을 집대성한 것과 같았다. 로버트 테일러와 멜 화라가 주연한 Knights of the Round Table(원탁의 기사: 1953)에서는 파르지팔이 성배로부터 랜슬롯의 아들 갈라하드가 가장 위대한 기사가 될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Excalibur(엑스칼리버)에서는 아서왕이 환상중에 성배를 보며 성배의 신비한 능력으로 병고침을 받고 또한 황폐화된 그의 영토가 비옥하게 된다는 내용이 전개된다.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인디아나 존스와 마지막 십자군)은 성배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현대적 세팅에서 다룬 작품이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08.uf.daum.net/image/2060F9054AF35C602EAA8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영화 '원탁의 기사' 포스터. 로버트 테일러(랜스롯경), 멜 화라(아서왕), 에바 가드너(귀네비어 왕비)&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성배는 환상적인 작품이나 역사픽션 또는 과학픽션의 주제로 사용되어 왔다. 백년전쟁을 배경으로 한 버나드 콘웰(Bernard Cornwell)의 작품 The Grail Quest(성배를 찾아서)는 대표적이다. 마이클 무처코크(Michale Moorcock)의 환상소설 The War Hound and the World's Pain(전쟁광과 고통당하는 세계)는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신비의 성배를 찾아나서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1968년의 사뮈엘 들레이니(Samuel Delany)의 공상과학 소설인 Nova(노바)는 우주공간에서 성배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 것이다. TV쇼인 Babylon 5(바벨론 5)와 Stargate SG-1(스타게이트 성배 1)은 성배를 주제로 한 공상과학적인 작품이다. 마리온 침머 브래들리(Marion Zimmer Bradley)의 The Mists of Avalon(아발론의 안개)은 성배를 4원소의 하나로 상징한 작품이다. 즉, 성배는 물을 상징하며 엑스칼리버는 불을,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한 접시는 흙을,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이나 예수를 기둥에 묶고 때린 몽둥이는 바람을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피터 데이빗(Peter David)의 3부작 Knight(기사)에서는 아서왕이 현대의 뉴욕에 나타나 활동하는 내용이다. 아서왕에 대한 전설은 현대에도 여러 작가들의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예를 들면 챨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의 소설 War in Heaven(천국전쟁), 그리고 그의 시집인 Region of the Summer Stars(여름 별들의 지역)은 아서왕이 현대에 등장하는 작품이다. 여류작가인 로잘린드 마일스(Rosalind Miles)의 Child of the Holy Grail(성배의 아이) 역시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2000년 소설인 Baudolino(바우돌리노)에서 성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45263034AF35C6028AA0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의 환영이 나타남을 보고 감격해 하는 그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넌 픽션]&lt;/P&gt;
&lt;P class=바탕글&gt;성배이야기를 비소설적이면서도 소설처럼 다룬 작품들도 많이 나와 있다. 이런 작품에서는 성배를 역사적 배경에서 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심리학자들이 정신분석학에 사용하기 위해 성배이야기를 해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명한 심리학자인 엠마 융(Emma Jung)과 마리-루이스 폰 프란츠(Marie-Louise von Franz)이다. 이들은 공저인 The Gail Legend(성배의 전설)에서 성배를 설명함에 있어서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어떤 작품들은 성배가 어떤 음모이론에 연루되거나 비교적(秘敎的)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레이엄 핸코크(Graham Hancock)는 성배이야기가 성궤에 간직되어 있는 석판으로 된 언약판에 암호로 기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Holy Blood, Holy Garil(보혈, 성배)의 저자들은 여러 역사적인 사실을 들면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하지 않고 살아서 나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며 이들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이 오늘날 메로빙(Meroving) 왕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배가 예수의 혈통을 받아들이는 그릇으로서 막달라 마리아 자신을 뜻하는 것이라고 내세웠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67500114AF35E4B36E60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성배가 간직되어 있었다고 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채플&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이런 아이디어는 현대작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댄 브라운(Dan Brwon)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The Da Vinci Code(다빈치 코드)이다. 이에 의하면 성배는 단순히 포도주를 담아 마신 술잔이 아니라 예수와 결혼한 막달라 마리아의 자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면보다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삶의 기쁨과 고뇌를 한꺼번에 경험하며 살았음을 강조하였다. 이어 댄 브라운은 성배가 원래는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채플(Rosslyn Chapel)에 있었으나 성배수호자들이 최근에 이를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마당에 설치한 작은 피라밋 아래의 비밀의 방에 감추어 두었다고 주장했다. 루브르박물관 측은 댄 브라운의 소설로 인하여 유리 피라밋의 지하가 성배의 장소로 인식되는 바람에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게 되었으나 일부 광신적인 사람, 또는 무모한 절도범들이 루브르의 피라밋을 마치 카이로의 피라밋으로 간주하여 지하를 파서 있지도 않은 성배를 훔치려고 하기 때문에 안되겠다 싶어서 실제로 피라밋의 바닥을 깊이 파 보았으나 당연히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고 그 자리에 그런 내용을 써서 붙여 놓아 절대로 오해가 없도록 해 놓았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06.uf.daum.net/image/1929D81B4AF35FD93A23E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루브르 박물관의 거대한 유리 피라밋 지하에 비밀의 방이 있으며 그곳&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에&amp;nbsp;있는 역피라미드 속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성배가 감추어져 있다는&amp;nbsp;댄 브라운의 주장에 따라 그 아래를 세밀하게 조사하였으나 비밀스런 방은 없었다.&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배의 모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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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70</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6T08:11:49Z</updated>
	    <published>2009-11-06T08:11: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성배의 모습]&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슈레티앙은 성배를 대접이나 접시로 묘사했다.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로베르 드 보롱은 성배를 인간(Vessel)으로 생각했다. 인간을 어떤 정신적 특질을 담는 그릇으로 보았던 것이다. 로마시대의 영국인들인 프르뒤르(Peredur)를 다룬&amp;nbsp;작품에서 아예 성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피가 뚝뚝 흘러 떨어지는 자기 친척의 잘린 목을 쟁반에 담아 들고 있는 용사를 표현했다. 볼프람 폰 에센바흐는 그의 ‘파르지발’에서 성배를 하늘에서 떨어진 돌이라고 설명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은 루시퍼가 하나님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어느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던 천사들의 피난처였다고 설명했다. 이해하기가 힘들다. 벌게이트 사이클(Vulgate Cycle)의 저자들은 성배가 신성한 은혜의 상징이라고 보았다.&amp;nbsp;그리고 갈라하드를 아버지인 랜스롯보다도 더 위대한 용사라고 표현하였다. 갈라하드는 랜스롯과 엘레인(Elaine)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갈라하드는 성배를 찾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설명도 곁들여 있다. 갈라하드의 성배 탐사에 대한 이야기는 15세기 토마스 말로리(Thomas Malory)경의 Le Morte d'Arthur(아서의 죽음)에 자세히 나와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18127B274AF36156441A9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엘레인이 성배를 받들고 있는 모습. 허브 로 작품&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성배에 대한 이야기는 서유럽,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널리 퍼져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시장에서 과일이나 떡을 파는 할머니들도 성배이야기는 다 알고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동유럽과 미국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 동방정교회의 국가들에서는 아서왕의 전설이 뭐 말라비틀어진 것이냐는 생각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 같은 독일이면서도 통일되기 전의 동독에서는 파르지팔이건 성배건 아는&amp;nbsp;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할리우드 영화 또는 TV 드라마 때문에 성배에 대한 이야기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인디아나 존스’이다. 그리고 중세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현대판 성배 전설이 불현듯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다 빈치 코드'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07.uf.daum.net/image/202B1E204AF362FA3101C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요르단의 페트라에 있는 알 카즈메는&amp;nbsp;성배가 감추어진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생각되고 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중세 이후의 행방]&lt;/P&gt;
&lt;P class=바탕글&gt;성배에 대한 신앙과 성배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은 세월과는 상관없이 그치질 않았다. 도대체 성배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다. 한때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가 가지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었다. 12-13세기에는 성전기사단이 막강한 세력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성배도 당연히 그들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던 모양이다. 오늘날, 여러 교회들이 성배를 간직하고 있다고 내세우고 있다. 성배는 분명히 하나일텐데 여러 교회에서 각각 자기 교회에 있는 것이 원조 성배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농담이지만 세상에는 믿을 만한&amp;nbsp;교회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 과연 믿을 만하다. 우선 스페인 남부 발렌시아의 성모대성당이 성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온 성배를 3세기에 성로센스(산타 로렌조)가 결국은 발렌시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발렌시아의 성배는 오래동안 인근의 ‘바위 속의 성요한수도원’(Monastery of San Juan de la Pena)으로 옮겨져 간직되었다.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무어인들의 손으로부터 성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고고학자들이 발렌시아의 성배를 조사했더니 1세기에 중동지역, 그중에서도 시리아의 안디옥(현재는 터키)에서 나는 돌로 만든 것이라고 발표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1247A0E4AF35AED20A14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발렌시아의 성배 Santo Caliz&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발렌시아의 성배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역대 교황들이 이곳까지 와서 일부러 바로 그 성배를 가지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아무리 교황이지만 위대한 오리지널 성배를 직접 손에 들고서 ‘이는 내 피니 받아 마셔라’고 외치는 것은 꿈을 이루는 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2006년 7월 9일에는 교황 베네딕트16세가 찾아왔었다. 이탈리아의 제노아에도 성배가 있다. 에메랄드로 만든 값비싼 것이다. 일찍이 십자군들이 유대의 가이사라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에서 많은 돈을 치루고 사온 것이다. 가이사라 마리티마는 헤롯 대왕이 건설한 항구도시로서 현재의 텔아비브와 하이파 사이에 있던 도시였으나 역사의 흐름과 함께 쇠퇴해진 곳이다. 성경에는 가이사라 빌립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십자군들이 가이사라 마리티마로부터 에메랄드 성배를 가지고 오다가 길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마차의 바퀴가 부서지는등 마치 고향을 떠나서 타지로 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십자군들은 신성한 힘이 있는 성배가 그런 하찮은 사고를 당한데 대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말도 못하고 파리로 가져왔다. 파리에 있던 성배는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제노아로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에메랄드로 만든 성배인줄 알았더니 초록색 유리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도 제노아는 이것을 계속 존중하고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239681E4AF363802002B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헤롯 대왕이 건설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가이사라 항구. 현재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에 있다. 십자군들이 이곳에서 성배를 사서 제노아로 가져왔다고 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독일의 볼프람 폰 에센바흐는 성배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의 ‘우리 구세주’(Mons Salvationis: Muntanya de Montserrat) 성안에 간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최초의 전설적인 성배의 왕인 티투렐(Titurel)이 이곳으로 가져와서 엄중하게 수호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산타 마리아 데 몽세라(Santa Maria de Montserrat)수도원에 있다. 사람들은 ‘우리 구세주성’이 전설적인 ‘성배의 성’이라고 믿고 있다. 성배의 전설을 말함에 있어서 스코틀랜드를 빠트릴수는 없다. 성배가 스코틀랜드의 로슬린(Rosslyn) 마을에 있는 로슬린교회에 간직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구체적으로 이 교회의 제단 지하에 파묻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파내면 어떠한 불행이 올지 모르므로 그대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국의 글라스턴베리 토르(Glastonbury Tor)에 있는 어떤 샘물 속에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4.uf.daum.net/image/1139DD1D4AF35B823A36D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독일 아벤버그(Abenberg)성에 있는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석상. 성배의 이야기의 노래로서 유명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성배가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배수호기사단에 의해 은밀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캐나다 노바스코샤(Nova Scotia)의 오크 아일랜드(Oak Island)에 있는 성전기사단(Templar Knights)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성배를 어딘가에 감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노바스코샤는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서양 연안의 지역으로 오크 아일랜드에는 아직도 성전기사단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성배를 죽어라고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오크 아일랜드에는 유명한 ‘모니 피트’(Money Pit)라는 구덩이가 있다. 지하의 수직으로 된 동굴인데 혹자는 이곳이야말로 성배가 감추어져 있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수백미터의 지하에 동굴이 있어서 내려가 보았더니 이미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으며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암호문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몇년에 걸쳐 조사했지만 성배는 찾지 못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159DF014AF365342CC7A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캐나다 노바 스코샤의 남쪽에 있는 오크 아일랜드에는&amp;nbsp;지하 깊숙한 동굴에 수많은 보물이 숨겨 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성배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1900년대 초반 오크 아일랜드 탐사 회사의 건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런가 하면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아코키크(Accokeek)라는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운항한 존 스미스(John Smith)선장의 배에 탔던 어떤 신부가 성배를 아코키크 마을로 가져와서 간직하였다는 것이다. 성배가 아일랜드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을 아일랜드의 애국자인 두이르(Dhuir: Dwyer) 가문이 19세기에 미국으로 가져왔으며 그 가문의 후손들이 아직도 비밀리에 성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두이르 가문의 후손들이 현재 주로 남부 미네소타주에 살고 있으므로 그곳에 성배가 간직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구체적으로 남부 미네소타의 아일랜드수도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6.uf.daum.net/image/19508D134AF3E7F96FA33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메릴랜드주 아코키크의 피스카터웨이 호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슈레티앙과 드 보롱</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ohnkchung/6824269"/>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69</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6T08:06:17Z</updated>
	    <published>2009-11-06T08:06: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초기 문학작품에 나타난 성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Beginning in Literature&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트로예의 슈레티앙(Chretien de Troyes)&lt;/P&gt;
&lt;P class=바탕글&gt;‘퍼시발, 성배 이야기’를 쓴 트로예의 슈레티앙은 그가 이 스토리를 쓰게 된 것은 그의 파트론인 플란더스의 필립백작이 준 한권의 책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산문시가 들어있는 그 책은 1180-1191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내용은, 기사 퍼시발이 피셔왕의 마법의 저택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 밖에서 젊은이들이 어떤 신비스런 물건들을 이방에서 저방으로 계속 옮기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마치 식사 중에 음식접시를 차례로 가져오는 것처럼 무슨 물건들을 차례로 옮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퍼시발은 처음에는 피가 흘러내리는 창을 보았고 그 다음에는 두명의 소년이 가지촛대를 옮기는 것을 보았으며 마지막으로는 어떤 아름다운 소녀가 화려하게 장식한 접시(Un graal, 또는 술잔)를 옮기는 것을 보았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class=txc-image id=tx_entry_4030 hspace=1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63713264AF35EC21EAD8B&quot; vspace=1 border=0&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스코틀랜드 킬모어(Kilmore)&amp;nbsp;교회에 있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스테인드 글라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다정하게 함께 있는 모습니다.&amp;nbsp;&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gt;저자인 슈레티앙은 아름다운 소녀가 옮기는 물건을 un graal이라고 표현했다. graal이라는 단어는 중세 초기의 성배에 관한 저서에서도 자주 사용한 것이다. 슈레티앙에게 있어서 grail은 널찍하고 조금 깊숙한 접시를 의미했다. 상당히 큰 국그릇 같은 것을 말했다. 이런 그릇에는 보통 연어나 정어리 또는 장어요리를 넣어 서브한다. 그런데 그런 그릇에 실제로는 얇은 과자(웨이퍼) 한 개를 담았다는 것이다. 웨이퍼 과자는 마치 오늘날 성만찬식에서 사용하는 성체(聖體: 또는 祭餠)과 같은 것이었다. 피셔왕의 불구가된 아버지에게 따로 드리기 위해서 준비한 식사라는 것이다. 식사중에 이상한 광경을 목도한 퍼시발은 옆 사람들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고자 했으나 옆사람들은 ‘잠자코 식사나 하라’면서 오히려 주의를 주었다. 퍼시발은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식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퍼시발은 만일 어제 저녁에 자기가 올바른 질문만 했더라면 어떤 사정이었는지를 알게 되어 혹시라도 피셔왕의 불구가 된 아버지를 고칠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상당한 왕이 신비스럽게도 금식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성만찬에서 사용하는 제병만을 먹고 연명하였으며 결국은 병고침을 당한 이야기는 많이 있다. 현실에 있어서도 제노아의 성캐서린은 음식을 먹지 않고 제병만을 섭취하며 살았다. 슈레티앙이 강조코자 한 것은 아마도 성체(제병)가 성만찬 의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성배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4.uf.daum.net/image/205A1E284AF3EE892D95D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랜스롯 경과 귀느비에 왕비&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로베르 드 보롱(Robert de Boron) &lt;/P&gt;
&lt;P class=바탕글&gt;성배에 대한 스토리를 처음 책으로 펴내어 이후의 성배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슈레티앙이었다. 그러나 진실로 성배다운 스토리를 쓴 사람은 로베르 드 보롱이었다. 드 보롱은 1191-1202에 완성한 그의 저서 Joseph d'Arimathie에서 아리마대의 요셉이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잔(Chalice)을 구하여 그것으로 십자가에서 예수가 흘린 피를 받아 담았다는 것이다. 아리마대의 요셉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를 장사지냈다. 이것도 유태인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었다. 요셉은 예수를 지나치게 옹호하고 지원했다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한 때에 예수가 감옥으로 요셉을 찾아와 성배가 축복을 받았음을 말하고 성배의 신비함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얼마후 요셉은 석방되었으며 그의 친척들과 추종자들을 모아 서쪽으로 떠났다. 요셉은 서쪽 지방에서 성배를 수호할 왕조를 창설하였는데 프르스발(파르지팔)은 바로 요셉이 설립한 왕조의 후예라는 것이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6.uf.daum.net/image/1367DB224AF43B579D18A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벽에 그려져 있는&amp;nbsp;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1498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성배문학의 두 그룹]&lt;/P&gt;
&lt;P class=바탕글&gt;세월이 지남에 따라 성배문학은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첫째는 아서왕의 기사들이 성배의 성을 찾아가 마침내 성배를 찾는다는 내용이며 둘째는 아리마대의 요셉 이후에 벌어진 성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작품으로서는 다음 아홉 개 작품이 대표적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슈레티앙의 Perceval, le Conte du Graal(성배이야기)&lt;/P&gt;
&lt;P class=바탕글&gt;- 슈레티앙의 서사시를 기본으로 한 네 개의 속편 소설(저자 미상)&lt;/P&gt;
&lt;P class=바탕글&gt;- 독일의 볼프람 폰 에센바흐가 쓴 Parzival. 드 보롱의 성스러운 내용을 슈레티앙의 스토리에 적용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디도(Didot)의 Perceval. 디도는 이 작품의 소유자일뿐이며 작자는 미상이지만 드 보롱이 쓴 Joseph d'Arimathie(아리마대의 요셉)의 후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웰스의 소설인 Peredur(로마시대의 영국인들). 슈레티앙의 내용을 참고하였으나 기독교 이전의 켈트 민화를 더욱 많이 참고하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독일어로 된 Diu Crone(The Crown). 퍼시발이 아니라 가웨인(Gawain)이 성배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Perlesvaus라는 소설은 성배를 다루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성배 이야기와는 전혀 내용이 다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ancelot(랜스롯)은 속어로 쓴 소설로서 갈라하드를 성배의 영웅으로 그렸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Queste del Saint Graal(성배를 찾아서) 역시 갈라하드가 성배를 찾기까지의 모험을 그렸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1652CE1C4AF3EF0308857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amp;nbsp;이야기도 성배의 전설을 기본으로 한 것이라고 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두 번째 그룹에 속한 대표적인 작품은 다음과 같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로베르 드 보롱의 Joseph d'Arimathie(아리마데의 요셉)&lt;/P&gt;
&lt;P class=바탕글&gt;- Estoire del Saint Graal은 성배를 찾은 갈라하드의 모험을 그린 것으로 ‘랜스롯’이나 ‘성배를 찾아서’보다 나중에 나왔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DIV class=floatnone&gt;&lt;A class=image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File:Pietro_Perugino_012.jpg&quot;&gt;&lt;IMG height=269 alt=&quot;&quot; src=&quot;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e/Pietro_Perugino_012.jpg/220px-Pietro_Perugino_012.jpg&quot; width=220&gt;&lt;/A&gt;&lt;/DIV&gt;
&lt;DIV class=floatnone&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아리마대의 요셉&lt;/SPAN&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배는 성스러운 혈통을 의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ohnkchung/6824268"/>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68</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6T08:02:53Z</updated>
	    <published>2009-11-06T08:02: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두 가지 오리진]&lt;/P&gt;
&lt;P class=바탕글&gt;Two Veins of Though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성배스토리의 오리진에 대하여는 두 가지 줄기가 있다. 하나는 고대 켈트족의 전설이나 신화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중세 웰스문학과 아일랜드 자료에서 성배에 대한 로맨스를 발견하고 그것이 현대의 성배스토리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마비노지온(Mabinogion)의 Bran the Blessed(복자 브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서왕의 후예인 피셔(Fisher)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자(福者) 브랜’에서는 잔이 아니라 커다란 솥(Cauldron)이 등장한다. 이 솥에 담겨있는 물건이 생명을 소생시켜 준다는 내용이다. 켈트의 또 다른 전설에는 마법의 접시 또는 쟁반이 등장하여 초현실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진정한 영웅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그릇에서 식량이 끊임없이 나온다든지 또는 죽은 자를 살린다든지 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릇이 다음 왕은 누가 될 것인지를 정해준다. 진정으로 선택된 군주만이 그릇을 들수 있다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205A2E014AF359782B8B6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성배를 들고 있는 스페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몽세라의 마돈나&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두 번째 줄기는 순전히 기독교적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토론토대학교의 조셉 괴링(Joseph Goering)이라는 교수는 피레네 산맥의 카탈로니아 지방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가 들고 있는 성배로 생각되는 큰 대접(Bowl)에서 사방으로 불길이 뻗어 나오고 있는 벽화를 발견했다. 괴링 교수는 성배에서 성령의 불길이 나오는 것이야말로 성배에 대한 전설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그후 성배에 대한 최초의 문학작품인 트로예의 슈레티앙의 작품에서도 성배에서 불길이 뻗어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근세의 학자들은 성배에서 불길이 뻗어 나오는 것은 로마가톨릭에 의한 성만찬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서의 성만찬 의식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고 1세기의 초대교회에서도 행하여 졌다는 근거가 있으나 실제로 여러 의식을 통하여 성만찬을 행하는 것은 중세에 성배문학이 등장한 이후라고 보고 있다. 이렇듯 성배와 관련한 스토리는 두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으나 대부분 현대의 학자들은 오늘날의 성배사상이 기독교의 전통과 켈트의 민화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여 성배 이야기의 주제는 항상 기독교이며 그밖에 배경이나 환상적인 모험, 아름다운 로맨스는 켈트적 요소라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27FE10B4AF3EFC25C9A6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코르빈(Corbin)성에서 성배를 수호하고 있는 처녀. 아서 래컴(Arthur Rackham) 작품. 1917년.&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그레일(Grail)의 어원]&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성배라는 뜻의 Grail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대 프랑스어의 Graal이다. 이는 라틴어의 Gradalis 즉, 식사 때에 음식을 내오는 접시를 말한다. 그리스에서는 식사 때에 오늘날 중국요리를 먹을 때처럼 음식이 하나하나 접시에 담아 내어왔다. 가톨릭백과사전에 따르면 중세에 성배에 대한 전설이 확고하게 정립된 이후에 일부 작가들은 Sangre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또 다른 성배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Sangreal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san과 greal이 합해진 것으로 ‘성스러운 잔’을 의미했으나 그것이 변형되어 sang과 real이 합한 단어로 간주되어 ‘성스러운 혈통’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는 물론 글자놀이에 따른 단순한 변형이라고 볼수 있지만 상당수 학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인들 까지도 성배가 ‘성스러운 혈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에 이상한 매력을 느꼈다. 성배와 관련된 현대의 문학이나 영화작품에서 특히 그러하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1104BE234AF3F009890D6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성배간 간직되어 있다는 성배의 성을 찾아가고 있는 파르지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배(聖杯)를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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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6T08:00:33Z</updated>
	    <published>2009-11-06T08:00: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성배(聖杯)를 찾아서&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Holy Grail&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성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가졌던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그릇, 특히 포도주를 담았다고 하는 잔을 말한다. 아리마대의 요셉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받아 담은 그릇도 성배라고 부른다.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잔(그릇)과 십자가에서 예수가 흘린 피를 담은 잔이 같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배는 기독교에서 십자가 다음으로 가장 신성시되는 성물이다. 그래서인지 역사상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이 성배를 주제로 한 작품을 내놓았다. 거의 모든 예술작품들이 성배가 신비한 전설과 함께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 놓았다. 가장 잘 알려진 성배의 전설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대한 것이다. 원탁의 기사들인 퍼시발(Percival: 파르지팔), 갈라하드(Galahad), 보르스(Bors)가 성배를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성배의 성’에서 성배를 찾아 거룩하게 된다는 스토리이다. 갈라하드는 원탁의 기사중의 하나인 랜스롯(Lancelot)의 아들이라고 한다. 퍼시발의 아들 중 하나는 백조의 기사로 유명한 로엔그린이라고 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5511E254AF358A21F2C3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nthony Frederick Sandys 작품&amp;nbsp;'막달라 마리아'. 델아웨어 미술관 소장. 혹자는 막달라 마리아가 들고 있는 것이 향유를 담았더 병이라고하며 또 혹자는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포도주 잔이라고 말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성배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것인데 어찌하여 영국에서 가장 그럴듯한 전설들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아리마대의 요셉이 성배를 영국으로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날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영혼으로부터 성배를 받았으며 이를 제자들을 통해 영국에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본인이 직접 영국으로 건너가&amp;nbsp;성배를 지킬 수호단(성배기사단)을 결성했다고 한다. 성배수호단의 혈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은 최초의 영국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성배에 얽힌 전설은 과연 어떤 것인지, 성배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 과연 신비한 능력이 있는지 등에 대하여 살펴보자. 성배는 영어로 Holy Chalice라고도 하고 Holy Grail이라고도 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하여도 알아보자.&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7.uf.daum.net/image/1232001F4AF3F07B3C971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갈라하드경이 파르지팔, 보르스와 함께&amp;nbsp;마침내 성배를 찾아 경배하고 있는 장면&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영국의 전설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아서왕에 대한 전설이다. 아서왕이 바위에서 엑스칼리버를 꺼내어 왕이 되어 영국의 통일을 이룩하였으며 아름다운 귀느비에와 결혼한다는 얘기는 삼척동자까지도 잘 아는 얘기이다. 이어 원탁의 기사인 랜스롯(Lancelot)경과 왕비 귀느비에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고결한 갈라하드(Galahad)경의 모험, 그리고 저 유명한 퍼시발이 성배를 찾기 위한 여행담은 언제나 들어도 흥미만점의 스토리이다. 아서왕의 전설은 중세 음유시인들이 가장 애호하는 주제였다. 그래서 아서왕의 전설은 음유시인(트로바도르)에 의해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구전이었을 뿐이었다. 아서왕의 전설이 소설로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2세기에 로베르 드 보롱(Robert de Boron)이 성배의 전설에 대하여 쓴 Joseph d'Arimathie(아리마대의 요셉)이다. 이 소설에서&amp;nbsp;저자는&amp;nbsp;요셉이 예수의 영혼으로부터 성배를 받아 이를 제자들과 함께 영국으로 가져갔다는 얘기를 적었다. 그리고 성배기사단이 조직되어 성배를 비밀스럽게 간직하여 왔으며 오늘날에도(12세기) 그 기사단의 후손들이 성배를 지키고 있다는 얘기였다. 성배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얘기는 아서왕의 전설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 이야기는 프랑스 트로예(Troyes) 출신이라고 생각되는&amp;nbsp;슈레티앙(Chretien)이 쓴 Perceval, le Conte du Graal(프르스발, 성배 이야기)에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등장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21.uf.daum.net/image/1420F5014AF3F0BD54BA2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아서왕과 원탁의 기사가 원탁의 가운데에 환상으로 나타난 성배의 모습을 보고 감격해 하고 있다. 원탁의 기사는 25명.&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성배의 전설의 원천은 어디인가? 수많은 역사학자들 또는 예술가들이 이 문제를 풀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처음에 알려지게 된 것은 중세 음유시인들에 의해서였다. 성배의 이야기는 대부분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와 결부되었다. 그래야 궁정의 귀부인들이 넋을 놓고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배의 이야기는 기독교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나와 있던 것이라고 한다. 고대 유럽의 몇몇 지역에서 나타났던 전설 따라 삼천리와 같은 민화로서 사랑과 모험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것이 아서왕의 전설과 연결되어 새로운 옷감으로 짜여 졌고 이것이 다시 성스러운 잔에 대한 전설과 얽혀서 오늘날의 성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965BE1B4AF3F11D01552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갈라하드, 퍼시발, 보르스가 성배를 찾아 경배하고 있는 장면. 성배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백합이 피어있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의미로 비둘가가 그려져 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성배에 대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성배를 소유할 수 있는 기사(영웅)는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용맹해도 순수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성배를 지키고 소유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퍼시발이 처음에 성배를 보았을 때에는 모든 면에서 성숙하지 못하여 자기의 운명을 성취할수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중세 후기의 성배 이야기에서는 성배가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지만 마음에 준비가 된 순수하고 경건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성배를 볼수 있다는 것이다. 갈라하드(Galahad)가 대표적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40B930B4AF3F15F652D8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스페인의 '바위 속의 성당'이 성배를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양지마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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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5T08:05:44Z</updated>
	    <published>2009-11-05T08:05: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양지마을의 가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가 사는 곳 분당의 양지마을은 글자그대로 볕이 잘드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도 단풍이 아름답다. 아파트 내의 길도 그렇지만 버스가 다니는 큰 거리의 가로수들도&amp;nbsp;가을이면 수채화를 그린 듯 화려하다.&amp;nbsp;눈에 보이는 몇군데를 촬영해보았다. 마침 날씨가 흐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17.uf.daum.net/image/146304174AF207CC22D1B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양지마을 아파트 길&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4630F174AF207CC33349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양지마을 큰 길의 가로수&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201538184AF207CB3382C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초림초등학교 옆의 가로수&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7.uf.daum.net/image/1521E2164AF207CB40E47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양지마을 아파트 단지내의&amp;nbsp;길. 봄에는 벛꽃이 만발.&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4.uf.daum.net/image/2021DB164AF207CB5C4BA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언덕받이의 꽃밭&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예수의 수의를 간직한 토리노 대성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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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4T19:55:50Z</updated>
	    <published>2009-11-04T19:55: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토리노 대성당(Duomo di Torino)&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Turin Cathedral&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토리노 대성당은 예수의 수의를 간직하고 있어서 유명해진 곳이다. 북부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인 토리노 대성당은 세례요한(San Giovanni Battista)에게 봉헌된 교회로서 1491-1498년의 7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성수의가 보관되어 있는 ‘성수의 채플’은 1668-1694년에 완성되어 본채 건물에 추가되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131A7A034AF15C6C15812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토리노 대성당&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토리노 대성당은 고대 로마제국의 노천극장이 있던 장소에 건설되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자 이곳에 세 개의 교회가 들어섰다. 성구세주(Holy Saviour)에게 봉헌된 교회, 성모에게 봉헌된 교회, 세례 요한에게 봉헌된 교회였다. 그중에서 세례요한 교회는 롬바르디 국왕인 아길룰프(Agilulf)가 직접 봉헌했다고 한다. 세례요한 교회는 역사적으로 662년에 토리노 공작인 가리발드(Garibald)가 암살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세 개의 교회는 1490-1942년간의 오랜 기간에 걸쳐 허물고 다시 짓고를 반복하였다. 현재의 세례요한 교회도 당연히 새로 지은 건물이다. 1491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7년만에 완성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종루는 1469년에 세운 것을 그대로 놓아두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15년 교황 레오9세는 토리도 대성당을 공식적으로 토리노시 교구교회로 선포하였다. 성수의를 보관하기 위한 별도의 장소는 1649년에 착공되었다.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채플이 완성되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23C111E4AF15CF133866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토리노의 수의에 대칭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찍힌 예수의 전신상&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화서문과 공심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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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64</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4T19:02:22Z</updated>
	    <published>2009-11-04T19:02: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화서문과 공심돈&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심돈이라고 하니까&amp;nbsp;'사람 이름이 아니냐?'고&amp;nbsp;물었던 사람이 있었다. 딴은 사람의 이름처럼 들린다. 그것도 신심(信心)이 돈독한 사람의 이름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게&amp;nbsp;그런 이름의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공심돈이라고하면&amp;nbsp;성곽의 한 쪽에 설치해 놓은 망루 겸 총이나 대포를 몰래 쏠수 있는 포대를 말한다. 공심돈(空心墩)은&lt;FONT color=#000000&gt; 돈대는 돈대인데 내부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어서 공심이란 말을 붙였던 것 같다. 돈대는 평지보다 높게 만든 축대를 말한다. 내부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심돈은 벽에 여러 개의 총구를 만들어서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와도 방어할수 있게 만들었다. 화성에는 이러한 돈대, 즉 공심돈이 세개가 있는데 화서문(華西門) 옆에 있는 공심돈이 가장 멋있게 생겼다. 최근 수원시는 화서문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정리를 말끔히 해 놓아서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니 수원을 사랑하지 않을수 없다. 화서문은 더 이상&amp;nbsp;설명이 필요없다. 화성의 서쪽에 있는 성문이다. 역시 옹성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적군이 처들어와도 무심코 막을수 있게 해 놓았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725900E4AF1508644C28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공심돈과 옹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7.uf.daum.net/image/1926FE0E4AF1508632A9F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화서문의 옹성에서 바라본 공심돈&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805C00B4AF1508622768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화서문과 공심돈. 기막힌 조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5.uf.daum.net/image/152E720E4AF150862B23C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화서문의 위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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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트 샤플르의 성스러운 유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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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63</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4T07:08:53Z</updated>
	    <published>2009-11-04T07:08: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상트 샤플르의 성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Relics of Sainte-Chapelle&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01.uf.daum.net/image/1351020B4AF0A8F62D497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상트 샤를르 성당이 있는 파리의 시테(중심지역).&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파리 중심지인 시테(Ill de la Cite)에 있는 상트 샤플르(Saint Chapelle: Holy Chapel)&amp;nbsp;성당은 중세 이후 역대 프랑스 국왕들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온 성당이다. 한때 이곳에 프랑스가 자랑스럽게 확보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물 여러 점이 간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가톨릭국가인 프랑스에서 이만한 성물을 간직하고 있던 성당은 상트 샤플르가 제일이었다. 상트 샤플르에 보관되었던 가장 뜻 깊은 성물은 예수의 머리에 씌웠던 가시면류관이었다. 성십자가의 조각과 예수의 무덤을 막아 놓았던 바위의 조각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돈을 주고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가지 않을 이런 물건들이 가톨릭교회에서는 고귀한 성물로서 숭배를 받고 있다. 상트 샤플르에 있던 성물들은 프랑스에서 혁명의 불길이 일어나자 안전상의 이유로 모두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물실로 옮겼다. 아무리 폭도들이라고 해도 노트르담은 성역이기 때문에 침범할수 없었다. 상트 샤플르 성당은 노트르 담 대성당의 인근에 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40.uf.daum.net/image/166DD80D4AF0A92B4D07E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상트 샤플르 교회 현관. 중앙 타워의 장미창이&amp;nbsp;웅장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상트 샤플르가 프랑스왕국의 보물 창고로 사용된 것은 순전히 중세의 루이(성루이)왕 때문이었다. 루이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비잔틴 제국의 볼드윈2세로부터 가시면류관(Holy Crown: Crown of Thorns)과 성십자가의 조각 등을 사왔다. 성물을 사고팔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중세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럴듯한 물건들을 확보하여 일반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비잔틴으로부터 귀중한 성물을 가져온 루이국왕은 이들을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 보관키로 했다. 이후 루이왕은 계속 성물들을 추가로 확보하여 상트 샤플르 대성당으로 가져왔다. 그런 공로로 인하여 나중에 바티칸은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성인이 되기도 어렵다.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는 가시면류관과 성십자가의 조각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가 입었었다는 옷 등 유품 몇점,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성창의 복제품, 십자가상의 예수에게 주기 위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스폰지), 예수의 얼굴 모습이 찍혀 있는 천(Mandylion) 등이 있었다. 모두 진위는 알수 없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40.uf.daum.net/image/163040154AF0A97B3A475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상트 샤플르 성당의&amp;nbsp;회랑과 천정. 대단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세월의 흐름과 함께 중세의 군주들은 막대한 군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있는 것 없는 것을 챙겨서 파는 것이 유행이었다. 왕실과 교회에서 가지고 있는 금은보석들이 우선적으로 세일 대상이었다. 교회의 보물들이 수난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앙리4세(Henri IV) 때에는 교회의 보물들이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 있는 것과 같은 일종의 쓰레기(실은 값으로 칠수 없는 귀중품)들은 별로 사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교회들이 기를 쓰고 그런 성물들을 팔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혁명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혁명은 왕족들이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사들인 모든 물건들을 싫어하였다. 국민들은 왕들이 사서 모았던 성물들까지도 혁명의 적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다만, 예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극히 귀중한 물건들만 보존토록 했다. 상트 샤플르 대성당에 있던 성물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물실로 옮겨진 것은 그러한 조치 때문이었다. 이후 매년 성금요일에는 일부 성물들을 공개전시하여 왔다. 2001년에는 루브르에서 상트 샤플르 보물전시회(Le tresor de la Saint-Chapelle)가 개최되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9077F134AF0A9D31AB23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프랑스에 성물을 많이 가져온 루이9세 기념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예수의 성의를 간직한 트리어 대성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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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62</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3T23:41:52Z</updated>
	    <published>2009-11-03T23:41:5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독일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 Cathedral of Saint Peter and Church of Our Lady in Trier -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36638184AF040A8828C7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트리어 대성당(돔)&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트리어 대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웅대한 요새와 같다.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트리어 대성당에는 예수가 고난당할 때 입었던 솔기 없는 겉옷을 보관하고 있다. 이 성의(聖衣)는 3세기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모후가 성지의 골고다에서 발견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트리어는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기 전에 한 때 살았던 도시로서 그가 살았던 궁전이 있었다. 콘스탄틴은 황제가 된후 자기의 궁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어머니인 헬레나를 위한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잘 아는 대로 헬레나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아 혼자서 살아왔다. 아들 콘스탄틴은 그런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하기로 결심했다. 헬레나는 연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지 예루살렘 순례를 강행하여 마침내 예수를 매 단 십자가, 십자가에 매달 때 사용한 못, 가시면류관, 예수가 입었던 옷 등을 발견하고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왔다. 콘스탄틴 황제는 어머니를 위해 트리어에 새로 교회를 지었다. 헬레나는 성지에서 가져온 성물들의 일부를 새로 지은 트리어 대성당에 보내 간직토록 했던 것이다. 트리어 대성당은 독일 라인란트에 있다. 트리어 대성당의 원래 명칭은 ‘성베드로 대성당 및 트리어 성모교회’(Cathedral of St Peter and Church of Our Lady in Trier)이다. 로마가톨릭 시대에는 트리어에 대주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3.uf.daum.net/image/122126234AF0AA6428B2E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트리어 대성당에서 보관하고 있는 성의&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나서 트리어에 교회를 지으려 할 때 초대 트리어 주교로 임명된 막시만(329-346)의 역할이 컸다. 콘스탄틴 황제와 막시만 주교는 트리어에 로마 이외의 유럽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4세기에 완성된 트리어 대성당은 프랑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어 현재는 종적을 알수 없다. 현재의 성당은 882년에 재건한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원통처럼 생긴 현관부분은 1196년에 완성되었다. 내부의 회랑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천정은 고틱 양식이고 성물을 안치한 채플은 바로크 양식이다. 천정 돔 부분에 설치된 바로크 양식의 스투코 작품들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아름답고 정교한 것이다. 예수가 입었던 성의는 1512년 중앙제단을 보수할 때에 그 안에서 발견되었다. 약 1천년 동안 제단 탁자 안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01.uf.daum.net/image/180822054AF0AAC51DA93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1350년 트리어 대성당의 발코니에 성의를 공개할 때의 모습. 헤아릴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의를 보기 위해 몰려왔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트리어 대성당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웅대한 요새와 같다.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트리어 대성당에는 예수가 고난당할 때 입었던 솔기 없는 겉옷을 보관하고 있다. 이 성의(聖衣)는 3세기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모후가 성지의 골고다에서 발견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트리어는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기 전에 한 때 살았던 도시로서 그가 살았던 궁전이 있었다. 콘스탄틴은 황제가 된후 자기의 궁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어머니인 헬레나를 위한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잘 아는 대로 헬레나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아 혼자서 살아왔다. 아들 콘스탄틴은 그런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하기로 결심했다. 헬레나는 연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지 예루살렘 순례를 강행하여 마침내 예수를 매 단 십자가, 십자가에 매달 때 사용한 못, 가시면류관, 예수가 입었던 옷 등을 발견하고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왔다. 콘스탄틴 황제는 어머니를 위해 트리어에 새로 교회를 지었다. 헬레나는 성지에서 가져온 성물들의 일부를 새로 지은 트리어 대성당에 보내 간직토록 했던 것이다. 트리어 대성당은 독일 라인란트에 있다. 트리어 대성당의 원래 명칭은 ‘성베드로 대성당 및 트리어 성모교회’(Cathedral of St Peter and Church of Our Lady in Trier)이다. 로마가톨릭 시대에는 트리어에 대주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1.uf.daum.net/image/114657154AF2EAF18DF44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트리어 대성당에 있는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amp;nbsp;성헬레나. 십자가와 함께.&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나서 트리어에 교회를 지으려 할 때 초대 트리어 주교로 임명된 막시만(329-346)의 역할이 컸다. 콘스탄틴 황제와 막시만 주교는 트리어에 로마 이외의 유럽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4세기에 완성된 트리어 대성당은 프랑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어 현재는 종적을 알수 없다. 현재의 성당은 882년에 재건한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원통처럼 생긴 현관부분은 1196년에 완성되었다. 내부의 회랑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천정은 고틱 양식이고 성물을 안치한 채플은 바로크 양식이다. 천정 돔 부분에 설치된 바로크 양식의 스투코 작품들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아름답고 정교한 것이다. 예수가 입었던 성의는 1512년 중앙제단을 보수할 때에 그 안에서 발견되었다. 약 1천년 동안 제단 탁자 안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217FD1B4AF040F1772D4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1959년 트리어 대성당에서의 성의 전시 기념우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모리스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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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ohnkchung.6824261</id>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3T23:19:14Z</updated>
	    <published>2009-11-03T23:19: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성모리스 이야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Saint Maurice(Moritz, Morris, Mauritius)&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163042014AF0378628115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비엔나 제국보물실에 있는 성창. 가운데 금으로 두른 곳에 성모리스의 창이라고 적혀 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성모리스는 성창(Holy Lance: Holy Spear)을 가지고 있던 로마군의 지휘관으로서 예수를 믿고 우상숭배를 거부함으로서 순교를 한 사람이다. 모리스가 성창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은 원래 그 부대에 1세기에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론기누스가 전보되어 왔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후 성창을 여러 병사들이 소유하고 있다가 3세기에는 모리스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리스는 일찍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다. 모리스는 룩소르 유적으로 유명한 이집트의 테베에서 태어났으며 287년 스위스의 아가우눔(Agaunum: 현재의 생모리스)에서 순교했다. 교회사 자료에 의하면 모리스가 지휘관으로 있는 로마군단의 병사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모리스의 군단은 스위스 지방에서 로마제국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골(Gaul)족을 진압하기 위해 테베에서 스위스로 이동명령을 받아 스위스의 아가우눔에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스위스는 막시미안(Maximian)이 통치하고 있었다. 막시미안은 우상숭배자로서 기독교를 배척하는 사람이었다. 막시미안은 모리스가 지휘하는&amp;nbsp;테베군단의 병사들로 하여금 스위스에서 비밀스럽게 예수를 믿는 주민들을 색출하여 처형토록 지시했다. 기독교인들인 테베군단의 병사들은 막시미안의 지시를 거부하였다. 막시미안은 다시 기독교인 색출을 명령했다. 병사들은 역시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 이에 막시미안은 전부대원인 6,666명을 차례로 처형했다. 이러한 참사가 발생했던 장소는 아가우눔이라는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생모리스-앙-발레(Saint Maurice-en-Valais)라고 부르며 이곳에 성모리스 수도원이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1244B6284AF036C613564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성모리스가 함께 순교한 병사들과 함께 있다. 이집트 콥틱교회 이콘.&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모리스의 병사들이 황제의 명령으로 어떤 마을에 진군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살육한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순수하고 무고한 기독교인들이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인 병사들은 자기들의 형제자매를 죽인데 대하여 심히 가책을 느껴 이후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황제가 모리스 군단의 병사들에게 로마의 신에게 산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했지만 병사들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칠수 없다고 하며 명령수행을 거절했기 때문에 모두 처형되었다고 한다. 처형 방법은 열 번째 병사를 선정하여 계속 처형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명령을 듣지 않으면 계속 처형을 진행하여 결국은 전원을 처형하게 된다.&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433F6214AF039552EAC3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엘 그레코의 '성모리스의 순교'&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모리츠의 테베군단에 대한 처형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10번째 병사를 처형해 나가는 방법은 로마 군단에서 수세기동안 수행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이다. 병사들이 모두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도 근거가 희박하다. 로마시대에는 기독교를 믿게 되면 군대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명령에 따라 수시로 전쟁을 치루며 적들을 죽여야 하는 로마 군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함께 갖는 것은 극히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이단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황제의 명을 받드는 군인으로서 로마가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믿을수는 없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테베군단의 전원이 순교했다고 하는 전설은 당시 기독교 전파의 책임을 지고 있던 스위스 서부 발레(Valais)주에 속한 옥토두룸(Octodurum)의 주교 테오도레가 우상을 숭배하는 로마군대 내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낸 얘기라는 주장을 했다. 로마시대에 병사들은 노예와 마찬가지였다. 하찮은 목숨들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본인 평등과 부활과 영생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현실돌파구였다. 순교는 곧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관문이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다른 주교들도 테오도레의 얘기를 전하면서 군선교에 앞장섰다는 것이며 그로부터 테베군단이 순교를 당한 스위스의 아가우눔(Agaunum)은 순례자들이 줄을 지어 찾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8.uf.daum.net/image/153FE11F4AF03B288444B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스페인 엘 에스쿠리알의 산&amp;nbsp;로렌조 수도원(Monasterio de San Lorenzo)에 있는 로물로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신시나토의 '성모리스의 순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성모리스 숭배]&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성모리스는 독일의 오토1세에 의해 출범한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1세(919-936)는 스위스의 아르가우(Aargau) 지방을 아가우눔 수도원에 주어 통치토록 하고 대신 아가우눔 수도원이 보관하고 있던 창(론기누스의 창), 모리스의 칼, 모리스의 박차를 받았다고 한다. 성모리스의 칼과 박차는 1916년까지 오스트로-헝가리 제국 황제들의 대관식 때에 왕권의 상징물로서 사용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일부 황제들은 바티칸 성베드로성당의 성모리스 제단 앞에서 교황에 의해 대관식을 가졌다. 929년 하인리히1세는 독일 북동부 엘베강변의 마그데부르크(Magdeburg)에서 제국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때에 모리스를 기념하여 모리티우스(Mauritius: Maurice)수도원을 청설하였다. 961년에는 아가우눔에 있던 성모리스의 유해와 성물들, 그리고 성모리스와 함께 순교한 일부 성인들의 유해를 마그데부르크수도원 교회로 옮겼다. 그날은 마침 성탄절의 전날로서 신분의 고하와 귀천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리스의 유해가 이전되어 오는 것을 기쁨과 영광으로 맞이하였다.&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86E65274AF03ADA4B5FE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독일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성모리스의 유해와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마그데부르크 수도원은 성모리스를 기억하여 완성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비엔나의 제국보물실에 있는 성창에는 모리스가 소유했던 것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스위스 동부의 산크트 모리츠는 모리스의 이름을&amp;nbsp;독일어식으로 표현한&amp;nbsp;것이며 프랑스에서는 52개 마을이 생모리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또한 세계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에는 여러 지명이 생모리스(Saint Maurice)로 되어 있다. 다만, 인도양에 있는 모리셔스(Mauritius)는 성모리스와 관련이 없다. 모리셔스는 오렌지왕가 출신인&amp;nbsp;나소의 모리스(Maurice of Nassau)의 이름에서 가져온 명칭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에는 성모리스에게 봉헌된 종교재단은 650여 개나 된다. 스위스에서는 아르가우(Aargau) 지방에만 7개의 생모리스 교회가 있으며 루체른(Lucerne)주에는 여섯 곳, 솔로투른(Solothurn)주에는 네곳에 생모리스의 이름을 따온 교회가 있다. 스위스의 아펜첼 인너로덴(Appenzell Innerrhoden)주에서는 성모리스의 축일을 공휴일로 정하였다. 훈장에도 성모리스의 명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황금양털(Golden Fleece)단의 생모리스훈장이다. 1941년 교황 비오12세(Pius XII)는 이탈리아군의 알프스보병사단의 명칭을 성모리스로 명명하였다. 그로부터 성모리스사단은 매년 성모리스의 축일을 지키고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4.uf.daum.net/image/173E301B4AF03A684ECE0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체코공화국(당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오스트로-헝가리제국)의 올로무츠(Olomouc)대성당에 있는 산크트 모리츠(성모리스) 기념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무어인 모리스]&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성모리스는 간혹 검은 피부의 무어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상 그의 이름인 모리스(Maurice: Moritz: Morris: Mauritius)는 무어(Moor)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모리스를 흑인 무어인으로 표현한 조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찍이 1240년대에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서였다. 이곳에서 성모리스의 기념상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1세의 기념상 바로 옆에 세워졌다.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은 현재까지 성모리스를 높이 받드는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모리스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이집트이다. 성모리스가 이집트의 테베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콥틱교회에서는 모리스를 그리스식으로 마우리키오스(Maurikios)라고 불렀다. 모리스라는 이름은 이집트에서 흔한 이름이다. 이집트의 톨레미왕조에 만든 비석에도 모리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집트의 콥틱 신자들 중에는 모리스(마우리키오스)라는 이름이 많이 있다.&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4.uf.daum.net/image/1438A6214AF039FF187A0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독일 북부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 있는 성모리츠(모리스) 조각. 무어인의 모습이다.&lt;/SPAN&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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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십자가에 사용되었던 못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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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정준극</name>
	    </author>
	    <updated>2009-11-03T11:09:40Z</updated>
	    <published>2009-11-03T11:09: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TRONG&gt;[성못](Holy Nails)&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503A4264AEF924B07C75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로마의 '예루살렘 성십자가교회'. 성십자가와 함께 성못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십자가에 사용되었던 못도 주후 3백년경 헬레나 모후가 발견하였다. 발굴현장에서는 대여섯개의 굵은 못이 발견되었지만 십자가상의 예수님에게 사용한 못은 기본적으로 세 개였다. 전설에 의하면 헬레나 모후가 십자가 나무토막들과 못들을 모시고 이스라엘을 떠나 로마로 가는중 아드리아해에서 폭풍을 만나 바다가 풍랑으로 요동칠 때에 못 한 개를 바다에 던졌더니 곧이어 놀랍게도 풍랑이 잠잠해져서 모두들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성못의 능력을 믿은 헬레나 모후는 나머지 두 개를 아들 콘스탄틴 황제를 보호하는데 사용했다. 즉, 한 개는 왕관에 장식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말의 재갈에 달아 놓았다. 성못이 혹시 분실될 것을 우려하여 성못의 일부를 떼어내어 다른 복제품을 만드는데 붙여서 사용했다. 비록 복제품이었지만 모두 오리지널로 간주하였다. 이렇듯 성못이 여러 개로 늘어나자 그나마도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로마에 있는 ‘예루살렘의 성십자교회’에 있는 것이 진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독일 모젤강변의 트리어(Trier) 대성당은 헬레나 모후가 성못을 예루살렘에서 직접 가져와 전달해 준것으로 믿고 있다. 트리어는 콘스탄틴이 황제가 되기 전에 몇년 동안 살던 곳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924CD274AF03EBC1E11D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독일&amp;nbsp;트리어대성당&amp;nbsp;보물실에 전시되어 있는 성못&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30189194AEF91D05AB85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파리의 노트르담 사원도 성못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성못을 담은 상자로서 겉에 못의 모양을 조각해 놓았다.&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가톨릭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논란을 벌여왔던 사항이 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못을 몇 개나 사용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혹자는 세 개라고 했지만 혹자는 네 개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십자가의 못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무려 40여개나 있다는데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과 로마의 산타 크로체(성십자가)교회에도 있고 베니스, 아헨(Aachen), 에스쿠리알(Escurial), 뉘른베르크, 프라하 등에도 있다. 어떤 것이 진짜인가? 가시면류관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교회에서 각각 자기들이 가시면류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181012144AEF93283E090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스페인 마드리드 북방에 있는 엘 에스쿠리알 수도원. 성못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quot;&gt;&amp;nbsp;&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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