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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랑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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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이근후: 신종플루 - 외계인의 음모라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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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9T12:28:53Z</updated>
	    <published>2009-11-09T12:28: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프레시안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U&gt;이근후의 별별이야기: 신종플루 - 외계인의 음모라고?&lt;/U&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309c&gt;2009년은 유엔(UN)이 결의하고 국제천문연맹(IAU),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천문의 해'이다.&lt;BR&gt;&lt;BR&gt;실제로 2009년은 아주 뜻깊은 해이다. 갈릴레이가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망원경&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한 지 400주년,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 80주년, 인류의 달 착륙 40주년, 외계 지성체 탐사&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프로젝트&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 제안 50주년 및 메시지 송신 35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lt;BR&gt;&lt;BR&gt;우리나라에서도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한국&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조직&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위원회를 만들어서 국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4월 2일부터 5일까지 전 세계 천문대에서는 100시간 동안 연속으로 별을 관측하고 길거리에서 천문학자·아마추어천문가가 일반인과 함께 별을 관측하는 전 지구적인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행사&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가 열렸다.&lt;BR&gt;&lt;BR&gt;또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이동 천문대 '스타-카'가 소외 지역 아이들을 찾아가고, '과학과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예술&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의 만남'과 같은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이런 내용은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웹진 &lt;이야진(IYAZINE)&gt;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lt;/FONT&gt;&lt;A href=&quot;http://www.astronomy2009.kr/default.aspx&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309c&gt;&lt;U&gt;바로 가기&lt;/U&gt;&lt;/FONT&gt;&lt;/A&gt;&lt;FONT color=#00309c&gt;)&lt;BR&gt;&lt;BR&gt;&lt;프레시안&gt;은 이런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문화, 우주를 만나다' 연재를 &lt;이야진&gt;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던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별, 우주, 문화, 예술 등을 화두로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선보인다. &lt;편집자&gt;&lt;/FONT&gt;&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BACKGROUND: #ffffff; MARGIN: 5px auto 10px;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00&gt;&lt;IMG class=resize3 height=373 alt=&quot;&quot; hspace=0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1/09/60091109093404.JPG&quot; width=500 border=1 name=img_resize&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11px; COLOR: #777; 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quot; width=500&gt;▲ 크리스마스트리성단(Christmas Tree cluster)으로 유명한 NGC 2264. NGC 2264는 산개성단과 발광성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발광성운의 모습이 크리스마스트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윌리암 허셀(William Herschel)이 1784년에 산개성단을, 그리고 1785년에 성운을 발견하였다. ⓒ한국천문연구원(사진=심재훈)&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gt;별똥 줍는 소년&lt;/B&gt;&lt;BR&gt;&lt;BR&gt;여름 맑은 밤하늘을 보면 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꼬리&lt;/FONT&gt;&lt;/U&gt;&lt;/A&gt;에 빛을 달고 떨어지는 별똥별이 많다. 왜 별똥별이라고 했을까? 어릴 때 그게 의문이었었다. 뒤에 빛 꼬리를 달고 떨어지는 형상 때문일까, 아니면 별도 정말 똥이 마려워 지구로 내려오는 것일까, 그런 어쭙잖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공상&lt;/FONT&gt;&lt;/U&gt;&lt;/A&gt;을 갖고 자랐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초등학교&lt;/FONT&gt;&lt;/U&gt;&lt;/A&gt; 다닐 때 내 친구 하나는 별똥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우리들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모아&lt;/FONT&gt;&lt;/U&gt;&lt;/A&gt; 놓고 신나게 별똥별에 대해서 말을 하면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말을 해 주는 친구가 우러러 보이기도 했었다. 어른이 되어서 안 일이지만 그 친구가 해 준 별똥별에 관한 이야기는 천문학의 어디에서도 들어 볼 수 없는 몽상적 스토리텔링이었었는데 그게 천문학 교과서보다 더 재미있었다.&lt;BR&gt;&lt;BR&gt;하루는 수업시간에 나를 집적이더니 자그마한 돌 하나를 보여 주었다. 무엇인가 의아해 하는 나를 보고 그는 자기가 주워온 별똥이라고 했다.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돌인데 여느 돌과 다를 바 하나도 없는 돌을 보여주면서 별똥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의 신뢰하지 않은 듯 한 표정을 보고 그 친구는 어젯밤에 자기가 별똥을 쫓아가서 직접 주워 온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자신이 주워온 별똥이란 말에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만져 보았다. 그가 별똥이라고 했으니 정말 별똥 같았다. 딱히 무슨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친한 친구의 말로 자신이 직접 주워 온 것이라니까 그렇게 느껴졌었다.&lt;BR&gt;&lt;BR&gt;그 일이 있은 이후 나는 매일 밤 그 친구와 밤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골목에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모여 별똥별이 똥을 누러 지구를 찾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밤하늘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반짝이&lt;/FONT&gt;&lt;/U&gt;&lt;/A&gt;는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면서 그것도 누가 더 많이 헤아릴 수 있는지 별똥별을 기다리면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헤어&lt;/FONT&gt;&lt;/U&gt;&lt;/A&gt;보곤 했었다.&lt;BR&gt;&lt;BR&gt;어느 날 별을 한 천개쯤 헤었을까. 그런 시각에 별 하나가 긴 똥 빛을 내면서 떨어지고 있지 않는가. &quot;별똥이다&quot; 내가 제일 먼저 소리를 쳤다. 별똥 박사인 내 친구는 이 소리에 별을 세던 것을 멈추고 그 짧은 흔적을 쫓아 방향을 잡고 있었다. &quot;주우러 가자&quot; 그 친구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지금&lt;/FONT&gt;&lt;/U&gt;&lt;/A&gt; 지구에 떨어진 그 별똥별을 주우러 가잔다. 방향을 보니깐 어디쯤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lt;BR&gt;&lt;BR&gt;친구들은 골목을 벗어나 그 친구가 앞장서서 달리는 방향으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마라톤&lt;/FONT&gt;&lt;/U&gt;&lt;/A&gt; 하듯 달려갔다. 꽤 먼 거리를 달려 우리들은 인가가 드문 야외에서 헐 득이든 숨을 고르면서 잠시 쉬었다. 그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 하곤 이 근처가 별똥이 떨어진 곳이 확실한데, 하곤 혼자 중얼거렸다. 이곳이 맞는다면 오늘 나도 친구처럼 별똥 하나를 주울지도 모른다는 흥분으로 캄캄한 들판을 헤맸었다. &quot;여기 있다&quot; 역시 그 친구의 고함소리다. 우리들은 일제히 그가 주운 작은 돌 하나를 돌아가면서 만져 보곤 &quot;아직도 따끈따끈하다&quot;고 제가끔 한마디씩 거들었다.&lt;BR&gt;&lt;BR&gt;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땐 너무도 흥분되는 사건이었다. 그 친구를 따라 별똥을 내가 줍진 못했지만 그가 주운 별똥을 한번 만져 본다는 것도 여간 흥분스런 일이 아니었다.&lt;BR&gt;&lt;BR&gt;&quot;할아버지 별똥별은 유성이 지구로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타버리기 때문에 생긴 꼬리 빛이에요. 그 별똥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운석&lt;/FONT&gt;&lt;/U&gt;&lt;/A&gt;이라 해요&quot;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가 알려 준 지식이다. 내가 고만한 나이 때는 별똥을 주우러 마라톤도 했었는데 라고 생각하면 그 친구가 보고 싶다. 그 때 자기가 주웠다는 별똥을 아직도 갖고 있을까?&lt;BR&gt;&lt;BR&gt;그런데 어느 핸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제주도&lt;/FONT&gt;&lt;/U&gt;&lt;/A&gt;를 가족과 함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여행&lt;/FONT&gt;&lt;/U&gt;&lt;/A&gt;한 적이 있는데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우도&lt;/FONT&gt;&lt;/U&gt;&lt;/A&gt;엘 갔더니 세계 여러 곳에서 수집했다는 운석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박물관&lt;/FONT&gt;&lt;/U&gt;&lt;/A&gt;이 있었는데 그 형태가 다양한 것을 보고 신기했었다.&lt;BR&gt;&lt;BR&gt;&lt;B&gt;별 쳐다 보다 도랑에 빠진 탈레스&lt;/B&gt;&lt;BR&gt;&lt;BR&gt;사람의 마음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연구&lt;/FONT&gt;&lt;/U&gt;&lt;/A&gt;하는 미시학문에 종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천문학이란 허황하게 들린다. 허황하다는 뜻은 천문학 자체가 과학성이 없어서 허황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그런 말을 써 보았다.&lt;BR&gt;&lt;BR&gt;나의 이해 범위에서 제일 먼저 걸리는 부분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단위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숫자의 범위가 조 단위인데 무슨 광년 운운하면서 조 단위를 좁쌀 알 정도로 생각되게 만드는 숫자이니 나로서는 허황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별도 생애가 있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간단한 지식조차 어른이 되어서 주워들은 이야기다.&lt;BR&gt;&lt;BR&gt;더욱 신기한 것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이라도 이미 생명을 다하고 사라진 별도 있고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그 빛이 지구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들으면 더욱 신기하다. 이런 신기함은 내가 어릴 때 친구 따라 별똥을 주우러 다니던 때의 신비감과는 좀 다르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렇단다. 라는 우격다짐이 아니라 이미 천문학에서 검증된 학설들에서 기인 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자연하고 받아드린 그런 신비감이다.&lt;BR&gt;&lt;BR&gt;탈레스는 고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그리스&lt;/FONT&gt;&lt;/U&gt;&lt;/A&gt;의 천문학자로 알려져 있다.자료에 나와 있는 일화 하나는 이런 것이 있다. 탈레스는 천문학 중에서도 일식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많았던 천문학자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하늘만 쳐다보고 걸었단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걷는 그가 하루는 도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늘을 쳐다 보다 땅을 못 본 것이다. 탈레스가 살던 그리스의 밀레투스 사람들은 아무리 대 과학자라고해도 별을 보기 위해 발밑을 보지 못한다고 놀렸다고 한다.&lt;BR&gt;&lt;BR&gt;한 가지 일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그런 실수도 있겠구나 싶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땅에 발을 잘 딛고 나서 하늘을 쳐다봐야지 하는 경구로도 들린다.&lt;BR&gt;&lt;BR&gt;땅에 발을 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내가 자주 만나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정신과&lt;/FONT&gt;&lt;/U&gt;&lt;/A&gt; 환자들이 있다. 우리들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정신병&lt;/FONT&gt;&lt;/U&gt;&lt;/A&gt;을 가늠할 때 가장 쉬운 기준으로 삼는 것이 현실 검증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기능&lt;/FONT&gt;&lt;/U&gt;&lt;/A&gt;인데 이 현실 검증 기능이 없거나 떨어지면 정신병이라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라벨&lt;/FONT&gt;&lt;/U&gt;&lt;/A&gt;이 붙게 된다.&lt;BR&gt;&lt;BR&gt;정신장애 특히 몽상과 같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망상&lt;/FONT&gt;&lt;/U&gt;&lt;/A&gt;을 지닌 환자에게 즐겨 설명하는 부분이 이 탈레스 이야기다. 탈레스라고 직접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이름&lt;/FONT&gt;&lt;/U&gt;&lt;/A&gt;을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발을 땅에 붙이고 살아야지 하늘을 딛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라고 설득할 때가 있다. 그런 설득을 하다가도 오랜 경험이 쌓이니깐 또 다른 두려움이 내게 생겼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갈릴레오&lt;/FONT&gt;&lt;/U&gt;&lt;/A&gt;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떠 올리면 나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불안&lt;/FONT&gt;&lt;/U&gt;&lt;/A&gt;은 증폭된다. 그들이 살았던 당시 지구가 둥글다거나 지구가 자전하여 움직인다는 등의 학설은 정말 발을 하늘에 딛고 하는 헛소리쯤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바다의 수평선을 보면 둥근 것이 아니라 일직선으로 지평선을 이루는데. 또 지구가 움직인다면 그 위에서 살고 있는 모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생물&lt;/FONT&gt;&lt;/U&gt;&lt;/A&gt;들이 어지러울 텐데…….&lt;BR&gt;&lt;BR&gt;그 땐 모든 사람들의 의혹이 만장 일치였을 것 같다. 내가 탈레스의 이야기를 나의 정신장애 환자에게 즐겨 원용하면서 지금 불안을 느낀다는 뜻은 갈릴레오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뜻이다.&lt;BR&gt;&lt;BR&gt;우리 환자들은 별을 가지고 몽상하는 일이 많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상담실&lt;/FONT&gt;&lt;/U&gt;&lt;/A&gt;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초등학교 시절 내 친구로부터 들었음직한 이야기들로 가득 찬다. 갈릴레오 시대 사람들이 모두 갈릴레오를 정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장애인&lt;/FONT&gt;&lt;/U&gt;&lt;/A&gt;이 하는 망상쯤으로 치부하여 파문한 것을 보면 나도 내 환자의 별에 대한 몽상을 망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아니지 하고 불안하다는 뜻이다.&lt;BR&gt;&lt;BR&gt;우리들이 지금 망상이라고 생각하는 정신 장애인들의 망상이 언젠가는 사실이 될는지 누가 알랴. 그 때쯤이면 갈릴레오를 파문시킨 오욕을 내가 뒤집어 쓸 수도 있겠구나 하는 몽상을 해 본다. &quot;그래도 지구는 돈다.&quot; 파문을 받고도 외쳤다는 이야기를 나의 환자가 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상담&lt;/FONT&gt;&lt;/U&gt;&lt;/A&gt;실 문을 나서면서 자신을 몰라주는 나에게 그렇게 부르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lt;BR&gt;&lt;BR&gt;&lt;B&gt;간첩에서 별에 이르기까지&lt;/B&gt;&lt;BR&gt;&lt;BR&gt;망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실감나는 경험이 있다. 별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듯 망상도 생성과 소멸의 궤를 같이 한다.&lt;BR&gt;&lt;BR&gt;무슨 말이냐 하면 우선 망상을 설명해야겠다. 망상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이치에 어긋나는 망령된 생각을 말한다. 심리학적으로는 병적으로 생긴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나 확신을 말한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대전&lt;/FONT&gt;&lt;/U&gt;&lt;/A&gt;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갈릴레오 이야기나 코페르니쿠스의 이야기도 당시로서는 이런 정의에 따라 파문하였을 것이다.&lt;BR&gt;&lt;BR&gt;내가 처음으로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을 때의 망상은 주로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많았다. 남북 분단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일까. 환자들은 주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모함한다는 것과 반대로 자신이 다른 사람을 지목하여 빨갱이라고 사법기관에 신고하는 망상이 많았다. 일종의 피해망상이다.&lt;BR&gt;&lt;BR&gt;망상에는 그 형태의 특징에 따라서 이름을 붙인다. 자신을 실제의 자신보다 더욱 중요한 존재로 인식한다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과대망상&lt;/FONT&gt;&lt;/U&gt;&lt;/A&gt;이란 이름을 붙인다. 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해침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이 제일 많다. 오관을 통한 지각의 이상은 모두 지각이상인 환각인데 이 환각의 중심에는 언제나 망상이 도사라고 있다. 망상증(편집증)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정신분열증&lt;/FONT&gt;&lt;/U&gt;&lt;/A&gt;의 망상은 조금은 차이가 있는데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전자&lt;/FONT&gt;&lt;/U&gt;&lt;/A&gt;가 아주 체계적인 망상을 형성하는 대신 후자는 체계성이 없는 좀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지리멸&lt;/FONT&gt;&lt;/U&gt;&lt;/A&gt;렬한 사고내용인 것이 다르다.&lt;BR&gt;&lt;BR&gt;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으면서 남북이 분단되고 이 분단된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이 와중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 되었다. 즉 공산주의자들을 일컬음이다. 생각에는 자유로움이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이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사회적으로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북에서는 반대로 부르조아 반동분자로 낙인찍히면 남한에서의 빨갱이와 버금가는 용어였고 그런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대접&lt;/FONT&gt;&lt;/U&gt;&lt;/A&gt;을 받았다. 살벌했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죽이고 죽임을 당했던 시절이니 망상 가운데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망상이 주를 이루었다.&lt;BR&gt;&lt;BR&gt;이 망상 내용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승을 부렸던 우리 민족의 병적 사고 내용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초년병 시절 환자를 볼 때 빨갱이 운운하면 그냥 피해망상이라고 적어도 크게 틀리지 않았으니 그 비극적 망상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안정기&lt;/FONT&gt;&lt;/U&gt;&lt;/A&gt;에 접어들면서 경제개발 계획의 힘을 입어 갑자기 경제&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성장&lt;/FONT&gt;&lt;/U&gt;&lt;/A&gt; 대열에 휩싸이는 시절이 있었다. 이 때 생긴 망상 가운데 제일 흔히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마도 정조에 관한 망상일 것이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배우자&lt;/FONT&gt;&lt;/U&gt;&lt;/A&gt;의 성적 정조를 의심하는 내용이다.&lt;BR&gt;&lt;BR&gt;배우자가 자기 이외의 남자와 통정했다거나 자기 이외의 여자와 통정을 했다는 망상이 제일 많았다. 빨갱이 망상을 딛고 선두에 나선 망상이다. 경제성장의 여파로 발생한 성적 문란상이 대변되어졌다고나 할까. 이 때 쯤 나는 부부 문제로 내원하는 환자의 호소를 서로 의심하는 것으로 들으면 백발백중 망상환자였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런 빨갱이 망상이나 정조를 의심하는 망상 등은 은근 슬쩍 뒤로 숨어 버리고 새롭게 나타난 망상이 별에 관한 망상이다.&lt;BR&gt;&lt;BR&gt;주로 별에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레이저&lt;/FONT&gt;&lt;/U&gt;&lt;/A&gt; 광선이나 아니면 아이티 칩 같은 것을 자기 몸에 심어 두고 별에서 명령을 내린단다. 그러니 자기는 자기지만 자가가 어떻게 자의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자기가 되었다는 망상이다. 우주에서 조종자가 있다는 말이다. 우주에서 조종하는 대로 살아가야 생명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유지&lt;/FONT&gt;&lt;/U&gt;&lt;/A&gt;할 수 있다고 한다. &quot;박사님 제발 저를 가만히 두세요.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자꾸 그러면 그들이(아마도 별사람) 박사님도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quot; 듣고 보면 고마운 말이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치료&lt;/FONT&gt;&lt;/U&gt;&lt;/A&gt;해 주는 나를 극진히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lt;BR&gt;&lt;BR&gt;&quot;별사람들이 어떻게 와서 그렇게 하나요? &quot; 궁금하다. 그의 대답은 별사람이 와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별에서 레이저를 쏘면 자신의 뇌 속에 칩이 박히게 되어 종속되어 버린다는 설명이다.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별사람이 지시를 한다는 망상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 망상의 내용이다. 다분히 아이티 정보사회에 살고 있구나 하는 실감을 주는 망상이다.&lt;BR&gt;&lt;BR&gt;&lt;B&gt;우주인과 우주전쟁&lt;/B&gt;&lt;BR&gt;&lt;BR&gt;8888개 유성에는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단다. 내가 맡은 만성 망상환자의 주장이다. &quot;&quot;인공위성이 8888개나 되나요?&quot; 유성이란 말을 내가 잘못 들었다. 그는 금방 낯빛이 달라진다. &quot;아니 박사님 . 박사님 맞지요. 박사님이 유성을 모르세요? &quot; &quot;아 유성….&quot; 아는 체를 해 주면 그는 신나게 그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lt;BR&gt;&lt;BR&gt;&quot;우주에는 8888개의 유성이 있는데 이 모두에는 지구와 같은 유사한 생명체가 있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명체들이 지구로 침략해서 지구인들을 지배하려고 한다는데 있다. 이유는 그들도 우주 공간이 좁아서 영토를 넓혀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이 유성인간들이 지구에 많이 상륙해 있다고 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척 보면 안다고 했다. 대단한 직관력이다(?)&quot;&lt;BR&gt;&lt;BR&gt;그는 매일 매일 이 유성 인간의 침략을 막을 궁리를 하노라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이제 하던 일을 접고 좀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이 유성인간들의 침략으로 평화롭게 쉴 수가 없단다. 정말 유성 인간이 지구를 침범해서 우릴 괴롭힌다면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같은 범인도 두려움이 클 텐데 하물며 지구 안의 전쟁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지휘&lt;/FONT&gt;&lt;/U&gt;&lt;/A&gt;하여 겨우 평화를 되찾아 놓은 환자로서는 밤잠을 설치고도 남을 일이다.&lt;BR&gt;&lt;BR&gt;그는 지난 전쟁(그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미국&lt;/FONT&gt;&lt;/U&gt;&lt;/A&gt;, 중국, 일본, 소련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이라고 했다)을 마무리 짓고 나니 또 유성인간의 침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를 다시 총사령관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 &quot;박사님 수박 있지요. 절대로 수박을 잡숫지 마세요.!&quot; 지구 사령관으로서 단호한 명령이다. &quot;절대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먹지&lt;/FONT&gt;&lt;/U&gt;&lt;/A&gt; 않겠다&quot;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수소폭탄에서 연상한 수자 돌림의 수박일까. 그는 왜 수박을 먹지 말라고 나에게 은밀하게 말해 주었을까.&lt;BR&gt;&lt;BR&gt;이런 의문은 그의 배려로 풀렸다. 유성인이 수박 안에 칩을 장치해서 시한부 폭탄으로 만들어 두었다는 이야기다. 이 시한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수박은 무조건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믿는 것은 사령관만 믿는데 그 시각이 언제인지 모른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좋은가 하고 근심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키면서 들려 준 이야기는 그 자신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물리학&lt;/FONT&gt;&lt;/U&gt;&lt;/A&gt;자로서 구리에서 어떤 물질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추출&lt;/FONT&gt;&lt;/U&gt;&lt;/A&gt;해 내면 그 것으로 예방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백신&lt;/FONT&gt;&lt;/U&gt;&lt;/A&gt;처럼 만들어 지구인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면역&lt;/FONT&gt;&lt;/U&gt;&lt;/A&gt;을 키우면 된다는 논리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이런 그의 망상을 듣다 보면 나도 반은 환자가 된다. 우선 그의 몽상이 재미있다. 스토리텔링 치고는 아주 재미있다. 누가 그럴듯하게 재구성을 한다면 대박이라도 터질 그런 소재다.&lt;BR&gt;&lt;BR&gt;&quot;그런데 유성인이 어떻게 지구에 침입했단 말인가요?&quot;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낙하&lt;/FONT&gt;&lt;/U&gt;&lt;/A&gt;산을 타고 왔나 아니면 우주로켓을 타고 들어왔나?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나를 그는 여간 답답해하지 않는다. 그의 설명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별똥별을 상기시켜 준다. 별똥별이 지구 대기권으로 들어 올 때 연소되어 아주 작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먼지&lt;/FONT&gt;&lt;/U&gt;&lt;/A&gt; 형태로 대기권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원래 유성인의 모습을 그렇게 생긴 것은 아니지만 지구 대기권을 돌입하는 과정에서 모습이 바뀌었단다.&lt;BR&gt;&lt;BR&gt;&quot;어떤 모습?&quot; 궁금증이 더하다. 그냥 지구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들어오면 당장 발각이 되기 때문에 변형되어 우리 눈에 뜨이지 않는 모습으로 지구에 상륙을 했단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정도의 존재라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미세먼지&lt;/FONT&gt;&lt;/U&gt;&lt;/A&gt;? 아니다. 그의 주장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바이러스&lt;/FONT&gt;&lt;/U&gt;&lt;/A&gt;가 바로 유성인이라고 했다. 섬뜩하다. 언젠가 한 의학자가 인간이 멸종한다면 큰 재앙이 아니라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고 설파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의 주장이 망상이길 기원해 본다.&lt;BR&gt;&lt;BR&gt;&quot;바이러스 있지요. 요즈음 유행하는 신종플루…&quot; 긴 꼬리 빛을 흘리면서 여름하늘을 가로지르는 어릴 때 내가 만져 보았던 그 아름다운 별똥이 유성인이 타고 온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909340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운반&lt;/FONT&gt;&lt;/U&gt;&lt;/A&gt;체라니 갑자기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유성인의 변종이라니 기가 막히는 몽상이다.&lt;BR&gt;&lt;BR&gt;왜 이젠 별조차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없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근후/이대 명예교수&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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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일묵상] 11/9 월: 다시금 새로운시작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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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9T12:15:44Z</updated>
	    <published>2009-11-09T12:15: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1월 9일 월요일&lt;/STRONG&gt;&lt;/P&gt;
&lt;P&gt;창세기 8장 15-22절, 9장 18-28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되, &quot;너는 ... 나오라.&quot;&amp;nbsp;&amp;nbsp;&amp;nbsp; 창 8:15-16&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다시금 새로운 시작이&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노아는 홍수 이후의 세계에서 자기 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관해 아무런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창조세계와 방주를 만드셨듯이, 노아와 그의 가족 및 모든 짐승은 하나님이 말씀하심으로써 방주 바깥으로 나와서 새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quot;방주에서 나오라&quot;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에게 &quot;생육하고 번성하도록&quot; 축복하셨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은 세계를 청소하신 뒤에 다시는 홍수를 가지고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위협은 남아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아직 정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노아는 술에 취했으며, 함은 자기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정화된 창조세계의 복에도 불구하고, 저주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새로운 세상에 다시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 그와 더불어 이전의 문제들이 덩달아 나타났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노아의 위대한 후손인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하셨을 때,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가 등장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노아의 모든 후손들을 깨끗하게 씻기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저주의 권세를 깨뜨리십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water)은 아직도 행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주께서 부르는 사람은 모두 세례의 씻기는 물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세례를 받았다면, 당신은 위협적인 물로 가득 찬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이신 방주 안에서 당신이 안전하다는 표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새로운 삶과 아픙로 올 새 땅(롬 8:19-21)의 충성된 청지기가 되도록 축복을 받게 됩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님,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축복해 주소서. 제가 이전 세상의 문제를 멀리할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주님의 성령의 권능과 지혜로 말미암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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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책소개: 최홍준의 &lt;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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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8</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8T13:04:21Z</updated>
	    <published>2009-11-08T13:04:2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미주 아멘넷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 bold 16pt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1px&quot;&gt;[최홍준 목사]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lt;/SPAN&gt; &lt;BR&gt;&lt;IMG src=&quot;http://www.usaamen.net/news/pic/line.gif&quot; vspace=3&gt;&lt;BR&gt;&lt;SPAN style=&quot;FONT: 10pt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0px&quot;&gt;2009/11/06 (금) 05:15 &lt;/SPAN&gt;&lt;BR&gt;&lt;BR&gt;&lt;!-- 설문투표 --&gt;&lt;!--본문내용--&gt;&lt;SPAN style=&quot;FONT: 11pt/170%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0px&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click=imgSize_OPEN(this.src) src=&quot;http://usaamen.net/news/data/board/news/file_in_body/1/c3cac8abc1d8.jpg&quot; align=left border=0&gt; &lt;SPAN style=&quot;COLOR: rgb(0,121,156)&quot;&gt;다음은 최홍준 목사(부산 호산나교회)의 저서인 &lt;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gt;에 대한 아멘넷 협조사 파워뉴스(powernewsusa.com)의 관련기사이다. -편집자&lt;/SPAN&gt;&lt;BR&gt;&lt;BR&gt;24년 전, 나는 한국 최초 원로 부목사를 꿈꿀 만큼 기쁨과 보람을 만끽하며 사랑의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산새중앙교회(현, 호산나교회)라는 전통 교회의 담임목사로 이끄셨다. 그리고 전통 교회에서도 제자훈련을 접목할 수 있는 지를 가늠해보는 시험장소가 되도록 하셨다. 호산나교회는 지난 23년 동안 제자훈련을 통해 부흥과 성숙을 경험했다. 본질을 붙잡을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것이다.&lt;BR&gt;&lt;BR&gt;&lt;B&gt;장로, 목양 사역하며 교인들과 담 허물다&lt;/B&gt;&lt;BR&gt;&lt;BR&gt;이러한 축복을 경험한 이후 요즈음 나는 제자훈련의 정점은 ‘목양장로 사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일이면 호산나교회에는 다른 교회들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 성도가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여기저기서 허리를 굽혀 성도들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이분들은 교역자가 아니다. 장로의 본질이 목양에 있음을 알고 섬기고 있는 목양장로들이다.&lt;BR&gt;&lt;BR&gt;목양장로들은 단순히 성도와 인사를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평일에 미리 약속한 성도와 만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기쁨을 나누거나 권면하거나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바로 주일에 장로들이 목양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lt;BR&gt;&lt;BR&gt;“목양장로 사역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교회의 행정 업무에 충실한 것이 모범된 장로의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도들을 돌보는 목양사역이야 말로 장로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_ 이○○ 장로&lt;BR&gt;&lt;BR&gt;“목양장로 사역으로 인해 교회 분위기가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전에 행정을 주로 했을 때는 성도와 장로 사이에 높은 벽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벽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성도들도 부담 없이 대하고 우리 장로들도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_ 김○○ 장로 &lt;BR&gt;&lt;BR&gt;“목양장로 사역은 교회 본질을 회복시키는 사역입니다. 장로의 특권의식에서 벗어나 성도를 섬기게 된 것이 큰 변화인데, 목양장로는 수평적 관계로의 변화를 가져와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는 데 큰 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_ 김○○ 장로&lt;BR&gt;&lt;BR&gt;&lt;B&gt;특권과 권위의식을 버린 목양장로&lt;/B&gt;&lt;BR&gt;&lt;BR&gt;성경에서 우리는 장로의 본질이 목양에 있음을 발견한다. 목양이란 ‘양무리를 치며’(포아마이노) 먹이고 돌보는 행위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요 21:6)고 명령하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그대로 다른 장로들에게 명령을 한다. “너희 중에 있는 양무리를 치라”(벧전 5:2). 뿐만 아니라 바울도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lt;BR&gt;&lt;BR&gt;장로와 함께 본질을 추구하며 동행하는 행복은 참으로 귀하다. 목양장로와의 행복한 동행은 교회의 행복이요, 성도의 행복이요, 하나님의 행복인줄 믿는다.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 영혼을 목양할 때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목양장로, 교구 교역자, 순장이 사겹줄이 되어 돌볼 때, 교회는 분명히 건강해지고 더욱 든든하게 서가는 것이다.&lt;BR&gt;&lt;BR&gt;한 불신 남편이 호산나교회의 목양장로를 만난 후 아내에게 한 말이다.&lt;BR&gt;&lt;BR&gt;“사실 내가 교회에 안 나가는 이유가 장로들 때문이었거든. 나도 어렸을 때는 교회에 다녔는데, 어찌나 장로들이 교회의 왕이던지…. 그때 내가 장로 아들하고 친하게 지냈었는데 교회 사람들이 그 애가 장로 아들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못하는 거야. 그리고 그 아버지도 교회에 헌금을 얼마 했네 하면서 권위적인 모습이셨고, 보통 장로들이 다 그런 모습이더라고. 나는 뭐 우리 아버지가 교회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달랑 나 혼자 교회에 나갔었는데 그런 모습 보기 싫어서 안 나가게 됐지. 그런데 오늘 그 장로님은 안 그러시더라고. 정말 좋으시던데. 그래서 한번 교회에 나가보기로 했어.”&lt;BR&gt;&lt;BR&gt;이 형제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특권의식과 권위적인 현대의 장로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장로가 자신의 위치를 찾을 때,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 한 영혼의 회복과 구원의 역사이다. 이러한 회복의 역사가 이 땅에 절실하다.&lt;BR&gt;&lt;BR&gt;교회에서 자라는 우리의 미래인 다음 세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올바른 장로상을 보며 자라는 축복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중요한 책임이다. 교회의 어른이요, 지도자인 장로가 교회 안에서 행정에만 집중하여 높은 담을 느끼게 하거나 권위주의적이거나 야당 역할만을 한다면, 이런 모습을 보며 자라는 다음세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lt;BR&gt;&lt;BR&gt;&lt;B&gt;‘목양장로 사역’, 교회 체질을 개선시킨다&lt;/B&gt;&lt;BR&gt;&lt;BR&gt;이런 의미에서 현대 교회는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가? 이 시대의 장로상은 어떤가? 장로들이 본질을 추구하여 목양장로의 기쁨을 누리는가? 아니면 행정장로로서의 섬김만을 하고 있는가?&lt;BR&gt;&lt;BR&gt;교회의 담임목사와 장로는 한 방향을 향해 행복한 동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외의 많은 담임목사와 장로들은 서로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교회의 중요한 일들을 놓고 발목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목사들이 장로교 안에 있으면서도 장로 제도를 교회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깊이 우려하기도 한다.&lt;BR&gt;&lt;BR&gt;이런 우려는 급기야 장로 세우기를 꺼려하는 현상으로까지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수천 명의 교인으로 성장해도 장로를 아예 세우지 않는다. 그나마 장로를 세워도 그들에게 극히 제한된 일과 권한만을 허용하며 교회를 이끌어가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장로들이 교회에서 문제와 어려움을 일으킨다고 해도 장로를 세워 그 직무를 다하게 하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다(행 14:23, 딛 1:5).&lt;BR&gt;&lt;BR&gt;얼마 전 호산나교회는 교회 옆에 약 4600평의 부지를 구입했다. 사실 부담이 되어 반대했지만 모든 장로들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으고 나를 설득했다. 장로들이 담임목사와 같은 비전을 나누고 부모의 마음으로 동역하니, 자연스럽게 자녀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예산이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교육 공간 부지를 행복한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lt;BR&gt;&lt;BR&gt;보통 장로들은 담임목사가 예산이 들어가는 일을 하자고 하면 반대부터 한다. 이것은 교회에서 장로가 아니면 담임목사를 막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로는 담임목사를 막는 사람이 아니다. 담임목사와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이다. 교회 가운데 잘못 고착된 장로에 대한 의식이 있다면 바뀌어야 한다. 속히 성경이 말하는 장로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각 교회마다 목양장로 사역이 정착되어야 한다.&lt;BR&gt;&lt;BR&gt;목양장로 사역은 단순히 시스템이 아니라 교회 본질의 회복이며, 성도의 본질을 회복하는 사역이다. 목양장로 사역을 하면 교회의 체질이 개선되고 건강해진다. 이것은 호산나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으로 돌아갈 때 제자훈련이 교회를 건강하게 하듯, 장로가 성경이 말하는 본질로 돌아갈 때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세워져간다고 믿는다.&lt;BR&gt;&lt;BR&gt;&lt;B&gt;목양장로를 세우기 전에 해야 할 일&lt;/B&gt;&lt;BR&gt;&lt;BR&gt;그러면 목양장로를 세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목양장로 사역을 적용하기 전에 제자훈련이 교회 안에 전반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제자훈련과 사역훈련까지 받아서 제자를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장로와 함께 목양사역을 해야 올바른 교회로 성장할 수 있다.&lt;BR&gt;&lt;BR&gt;둘째 소그룹 리더활동을 통해서 목양에 대한 노하우를 익혀야 한다. 목양장로 사역은 목양사역이다. 따라서 목양장로로 세워질 사람은 소그룹 리더를 하면서 목양의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익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lt;BR&gt;&lt;BR&gt;셋째 담임목사와의 비전을 나누어야 한다. 목양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담임목사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따라서 담임목사는 늘 장로들과 함께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그룹 리더들과 비전을 나눌 때보다 더 구체적이고 깊은 교제 속에서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lt;BR&gt;&lt;BR&gt;호산나교회는 목양을 할 때 메일이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다. 교구 교역자가 목양 내용을 알게 되면 메일로 담임목사, 목양장로, 목양장로 사역 담당교역자에게 보낸다. 목양 내용을 메일을 통해 공유한다. 담임목사는 목양 내용을 보고 필요시에는 신속히 성도를 돌본다. 적시에 담임목사의 돌봄은 성도에게 감동과 힘이 된다.&lt;BR&gt;&lt;BR&gt;목양장로 사역을 하게 되면 담임목사, 목양장로, 담당교역자, 순장 이렇게 사겹줄로 돌보게 된다. 목양장로 사역 담당교역자는 매주 목양사역을 정리하여 담임목사에게 보고하고 교역자들에게 게시한다. 보다 자세한 사역의 흐름은 앞으로 컨퍼런스를 통해 공유하게 될 것이다.&lt;BR&gt;&lt;BR&gt;이 시대의 많은 교회는 장로제도의 변화를 목말라하고 있다. 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장로의 본질 즉 목양장로 사역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호산나교회만 아니라 많은 교회가 장로와 행복한 동행을 하는 축복이 있길 소망한다.&lt;BR&gt;&lt;BR&gt;송일영 기자 ⓒ 파워뉴스&lt;BR&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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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정용섭 목사의 2007년 인터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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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8T00:38:12Z</updated>
	    <published>2009-11-08T00:38: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꿈속의 언어님의 블로그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U&gt;정용섭 목사의 2007년 12월말에 있었던 인터뷰&lt;/U&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8 width=&quot;95%&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5%; TEXT-INDENT: 7pt; FONT-SIZE: 11pt&quot;&gt;&lt;A href=&quot;http://mission.133.co.kr/news_view.html?s=index&amp;no=5975&amp;s_id=3&quot; target=_blank&gt;&lt;FONT size=2&gt;http://mission.133.co.kr/news_view.html?s=index&amp;no=5975&amp;s_id=3&lt;/FONT&gt;&lt;/A&gt;&lt;BR&gt;&lt;FONT size=3&gt;&lt;FONT color=#1e90ff&gt;&lt;FONT face=바탕&gt;&lt;B&gt;&lt;FONT class=head&gt;“한국교회 설교엔 하나님 나라가 없다”&lt;/FONT&gt;&lt;/B&gt;&lt;BR&gt;&lt;/FONT&gt;&lt;/FONT&gt;&lt;/FONT&gt;&lt;FONT size=2&gt;&lt;FONT color=#808080&gt;&lt;FONT face=Tahoma&gt;&lt;FONT class=match&gt;2007-12-31 &lt;/FONT&gt;&lt;BR&gt;&lt;BR&gt;&lt;IMG border=0 hspace=5 align=left src=&quot;http://mission.133.co.kr/usr_img/news/index/head_5975.jpg&quot; width=200&gt;&lt;/FONT&gt;&lt;/FONT&gt;&lt;/FONT&gt; &lt;FONT color=black&gt;올해로 설교 비평 마치는 대구성서아카데미 정용섭 원장 &lt;BR&gt;&lt;BR&gt;▲대구성서아카데미 정용섭 원장은 설교 회복을 위해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 신학에 대한 올바른 방향 정립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김근영 기자 &lt;BR&gt;간증의 도구화된 설교...‘부흥과 회심’ 일변도 개선 필요 &lt;BR&gt;역사의식 거세된 교회 강단...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메시지 회복해야 &lt;BR&gt;&lt;BR&gt;올 한해 대구성서아카데미 정용섭 원장(샘터교회 담임)은 두 권의 설교 비평집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와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로 설교 비평계에 일대 새 바람을 불러 왔다. &lt;BR&gt;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강단에 서 있는 목사들의 설교를 냉철하게 비평한다는 건, 전에 없던 도전이였다. &lt;BR&gt;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lt;BR&gt;&lt;BR&gt;지난 7여년간, 자신의 설교에서 벗어나 ‘남의 설교 듣기’를 꾸준히 해 오던 그는 2004년부터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해, 올 12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설교 비평을 끝으로 연재를 마감했다. &lt;BR&gt;27일 대구성서아카데미 회원들과 연말 모임을 갖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만나봤다. &lt;BR&gt;&lt;BR&gt;-월간 ‘기독교 사상’에 3년간 연재해 오던 설교 비평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들었다. &lt;BR&gt;설교 비평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lt;BR&gt;한번쯤 남의 설교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lt;BR&gt;그러다가 오늘날의 설교가 하나님 말씀의 선포보다는 목사의 개인적인 신앙관에 치중돼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lt;BR&gt;이런 방식으로는 생각이 없는 성도라면 교회에 남아질 지 몰라도, 지성인 기독교인이라면 말씀의 목마름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lt;BR&gt;&lt;BR&gt;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보단, 개인의 신앙을 간증하거나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lt;BR&gt;이런 점을 밝혀보기 위해 대구 성서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대구 지역의 목회자들과 지성인들과 설교 비평과 인문학적 성서 읽기를 진행했다. &lt;BR&gt;연재하기 전에도 설교 비평은 계속해 오면서 기독교 사상에 연재를 시작한 게 만 3년이 넘었다. &lt;BR&gt;&lt;BR&gt;-대구 성서아카데미에 올라온 글을 보면, 설교 비평과 함께 비평의 대상이 된 목사님들의 반론도 올라와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대체로 반응은 어떠했는가. &lt;BR&gt;응답한 목사님들의 반응도 서로마다 입장이 다르다. &lt;BR&gt;개중에는 (설교비평은)선교에 도움이 안된다는 식으로 자기 변명을 하는 분도 있었고, 박영선 목사님 같은 경우처럼 소탈하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말씀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lt;BR&gt;&lt;BR&gt;전체적으로 보자면, 설교 비평의 근본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분이 드물다. &lt;BR&gt;일종의 커뮤니케이션(소통)의 문제다. 설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선 상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충분한 대화가 된다. &lt;BR&gt;그러나 이러한 담론을 형성해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lt;BR&gt;&lt;BR&gt;-설교학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lt;BR&gt;올해 11월에 한일장신대에서 설교 비평 세미나가 열려서 설교학 교수들이 내가 쓴 설교 비평을 다뤘다. 그 점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lt;BR&gt;이전까지는 설교학 교수들이 전반적으로 덕담이나 주례사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정도였다. &lt;BR&gt;내가 한 설교 비평이 미국에서 있었던 ‘설교 갱신 운동’의 물꼬를 튼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lt;BR&gt;특히 설교학 교수가 아닌 조직 신학을 전공한 사람의 글이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lt;BR&gt;&lt;BR&gt;그러나 그 분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점으로 성서관을 들었다. &lt;BR&gt;하나님의 말씀을 성서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이 아닌, 역사 비평에서 다루는 건 수용하기 힘들다는 평가였다. &lt;BR&gt;그래서 시도는 좋았지만 자칫 한국교회를 허물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lt;BR&gt;특히 성서 안에 있는 신화의 문제를 내가 짚었던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 &lt;BR&gt;&lt;BR&gt;설화나 신화라는 건,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문화의 장이다. 따라서 그 점을 지적한 말 때문에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lt;BR&gt;이런 크고 작은 입장 차이가 ‘어떤 신학을 했느냐’에서 보이는 것 같다. &lt;BR&gt;본격적으로 한국 교회의 신학적 담론을 형성하는 차원에까지는 바람이 불지 못한 것 같다. &lt;BR&gt;&lt;BR&gt;-두 권의 설교 비평책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안다. &lt;BR&gt;설교 비평집 1, 2권이 많이 팔린 편이고, 특히 설교 비평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겐 큰 자극제가 된 것 같다. &lt;BR&gt;그러나 열린 예배를 지향하는 교회 분위기나 대형교회의 설교 강단의 전반적인 분위기까지는 영향을 못 끼친듯 하다. &lt;BR&gt;&lt;BR&gt;그러나 많은 신학생들이 필독서처럼 읽게 된 점이나, 신학적인 스펙트럼을 달리하는 목회자들도 읽으신 분들이 많다는 점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lt;BR&gt;일정 부분에서는 설교 갱신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 차원에서는 변화를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결실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lt;BR&gt;&lt;BR&gt;-이 시대의 설교에서 반드시 구현돼야 할 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lt;BR&gt;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믿어서 죽은 다음에 가는, 천당의 차원이고 공간적인 의미로만 이해된다. &lt;BR&gt;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공간이 아닌 통치의 차원이다. &lt;BR&gt;그 나라의 정의와 평화가 통치하는 그 사건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다. &lt;BR&gt;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 그 나라의 운동은 선(先)취된 것이지만 또한 여전히 종말론적으로는 열려있는 세계다. &lt;BR&gt;&lt;BR&gt;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해방 - 예를 들어 죄와 죽음,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인데, 한국 교회는 ‘신앙’이라고 하면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 성수를 법칙적으로 지키는 식으로만 머물러 있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lt;BR&gt;그것은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지킬 필요가 있는 도리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lt;BR&gt;&lt;BR&gt;하나님 나라는 선취된 차원에서 볼 때, 이 땅에서의 정의, 평화,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lt;BR&gt;예수님들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 창기등과 함께 하셨다. &lt;BR&gt;그 당시 바리새인은 요사이 우리가 말하는 ‘교회에서 세련되며 신앙이 탁월한 사람들’이다. &lt;BR&gt;그 바리새인이 예수님과 가까이 하지 못하고, 그 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다. &lt;BR&gt;단순히 도덕적이거나 복지 활동을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열려있는 하나님 나라의 차원을 꾸준히 지향해야 한다. &lt;BR&gt;&lt;BR&gt;-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lt;BR&gt;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시에, 역사 안에 이미 오신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따라가느냐, 이 두 가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lt;BR&gt;기다림이라는 것도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다. 파숫군의 기다림이라는 것은 이미 그것이 와 있다는 확신에 찬 기다림이다. &lt;BR&gt;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미래, 처음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다림이다. &lt;BR&gt;&lt;BR&gt;대림절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 본다면, 우리가 하는 행위들 - 교회 개척이나 부흥은 사실은 잠정적인 일들이다. &lt;BR&gt;그러나 한국교회는 지금 자기들은 잘하고 있으니 하나님 나라는 필요가 없고, 1년 내내 짜여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재미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lt;BR&gt;2000년 전에 바리새인이 저질렀던 시행 착오를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는 격이다. &lt;BR&gt;&lt;BR&gt;아프간 사태도 2,300년전의 미국과 똑같은 선교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lt;BR&gt;유럽이나 미국에서 이미 시행착오를 거친 모형을 그대로 한국교회는 따라가는 모습이 있다. &lt;BR&gt;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로 영적인 주파수를 거기에다 맞춰야 한다. &lt;BR&gt;그 가치에 우리를 상대화시켜서 교회를 비워내는 영성이 필요하다. &lt;BR&gt;그러나 현실을 보면 부족감을 많이 느낀다. &lt;BR&gt;&lt;BR&gt;-이 주제가 한국 교회 안에서 구현되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lt;BR&gt;두 가지다. &lt;BR&gt;첫째는 한국교회 지도자들, 평신도 지도자를 포함해서 기독교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lt;BR&gt;예수를 믿고 영적인 감동에 젖어있는 상태나, 율법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영성에 취해 형식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다. &lt;BR&gt;기본적으로 기초 신학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 &lt;BR&gt;인격적으론 참 좋은 목사님들도 이 기초 신학의 형태적인 차이를 모르고 교단과 교파 구조로 들어가 보니,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 같다. &lt;BR&gt;&lt;BR&gt;신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방향 정위)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lt;BR&gt;몇 가지를 고쳐서 될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기초를 세워나가야 한다. &lt;BR&gt;성서 해석을 하려면 먼저는 역사 비평을 알아야 한다. &lt;BR&gt;수 백, 수 천년부터 전승된 역사를 실증적으로만 해결하고 해석하려고 하니까 텍스트가 빛을 잃는다. &lt;BR&gt;개인적이 신앙의 만족을 위해 도구화 하지 말라는 지적이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lt;BR&gt;&lt;BR&gt;설교자가 성서의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역사 비평과 함께, 신학의 역사, 교회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텍스트(Text)가 단절되지 않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lt;BR&gt;두 번째로는 오늘과 우리를 이어주기 위한 조직신학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lt;BR&gt;하나님 나라, 종말론, 칭의, 삼위 일체 등을 알아야 도그마(Dogma)가 텍스트를 통해 전파되는 것이다. &lt;BR&gt;세 번째가 인문학이다. &lt;BR&gt;정작 설교를 들어야 할 청중을 이해해야 성서가 살아날 수 있다. &lt;BR&gt;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lt;BR&gt;&lt;BR&gt;한국 교회설교, 세계 신학계선 여전히 ‘변방’ ‘한쪽에 치우친 설교’ &lt;BR&gt;성서 텍스트에 충실한 명(名)설교가로 민영진 박사등 5명 추천 &lt;BR&gt;&lt;BR&gt;-이런 한계를 지닌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lt;BR&gt;오늘의 ‘시대 정신’의 문제라고 본다. &lt;BR&gt;상식적인 차원에서만 짚고 넘어간다면, 오늘의 시대는 신 자유주의적이고 감각적이며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요구하며, 삶의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lt;BR&gt;그래서 대중적인 설득력에 있어 은사가 있는 목사님들이 그들의 요구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고 본다. &lt;BR&gt;내용보다는 청중들의 대중 심리를 끌어낼 수 있는 카리스마 같은 것들 말이다. &lt;BR&gt;&lt;BR&gt;이런 능력만으로도 한국에서 설교와 목회로 성공할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비극적이다. &lt;BR&gt;종말론적으로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과 꿈을 담지해야 할 교회가 종교적 욕망에 영적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포퓰리즘적이고 오로지 현 시대정신에만 맞춘 작업이라고 본다. &lt;BR&gt;&lt;BR&gt;&lt;BR&gt;-설교 비평을 하면서 추천할 만한 설교가들도 있었는가. &lt;BR&gt;물론이다. &lt;BR&gt;박영선 목사님 설교는 본인이 초기에 비평을 했는데, 칭의와 성화에 있어 한때 약간의 신학적 혼란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lt;BR&gt;전반적으로 성도들의 포퓰리즘적 요구를 근본적으로 벗어나려고 한 측면에서 대중 설교자로서 좋게 평가한다.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님도 탄탄한 교회론에 근거한 설교를 하고 있다. &lt;BR&gt;&lt;BR&gt;청파교회 김기석 목사이나 모세골 임영수 목사님도 대중적인 비위나 그들이 원하는 설교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 텍스트를 말하고자 한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는, 성서공회 전 총무이신 민영진 박사님은 성서 텍스트에 가장 일치한 설교를 하신다고 평가한다. &lt;BR&gt;흡사 돌고래가 물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이 성서 텍스트와 긴밀한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lt;BR&gt;&lt;BR&gt;-얼마 전, 기독교사상 기념 세미나에서 목사가 설교 강단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말하는 것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이 입장이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는가. &lt;BR&gt;나는 개인적인 정치적 입장은 진보주의적이다. &lt;BR&gt;그러나 그것을 설교화하지는 않는다. &lt;BR&gt;&lt;BR&gt;목회자에게도 최소한의 정치적 선택은 있어야 하지만, 어느 당을 붙잡아야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lt;BR&gt;개인의 정치 성향으로 설교 강단에서 청중을 끌어서는 안된다. &lt;BR&gt;구약의 예언자들도 정치에 대해 발언했지만 그것을 우리도 따라 해도 된다는 보장은 될 수 없다. &lt;BR&gt;&lt;BR&gt;오히려 예언자적인 정치 설교자들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진리로써,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정치에 대해 노골적으로, 자세하게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lt;BR&gt;&lt;BR&gt;수구 보수적인 목사님이나, 주한 미군 철수를 말하는 목사님이나 그 점에선 마찬가지다. 주일 공동 예배는 반드시 케리그마(kerygma)가 선포되는 자리다. &lt;BR&gt;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통치를 말해야 하는 자리다. &lt;BR&gt;좌익이든 우익이든지간에 정치 문제를 강단에서 거론한다는 건, 근본적인 자리를 떠난 ‘설교자의 외도’라고 본다. &lt;BR&gt;&lt;BR&gt;-세계 신학계의 흐름에 비춰볼 때, 한국 교회 설교의 현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lt;BR&gt;한국 개신교의 뿌리 자체가 지엽적인데서 시작됐다. &lt;BR&gt;미국 선교사를 통해 근본주의적이고, 부흥 운동만을 중심삼고 있다. &lt;BR&gt;그 뿌리가 유럽의 2000년 전, 교회적 전통을 배척하면서 시작했다는 한계가 있다. &lt;BR&gt;그래서 일종의 부흥회와 같은 분위기만이 자리잡아, 개인의 회심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다. &lt;BR&gt;&lt;BR&gt;지금 내가 영접하는 것에 대한 관심과 뜨거운 불을 받는 등의 아주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하는데, 이런 체험 중심적인 부류는 전체 기독교 신학의 주류에 있어 변방에 불과하다. 한국교회는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인 줄로 크게 착각하고 있다. &lt;BR&gt;&lt;BR&gt;한국교회가 주로 미국교회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며 자라났기 때문에 복음주의적이지만 보수 우익적 성향이 강해서, 세계 교회에서도 한 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강하다. &lt;BR&gt;&lt;BR&gt;교회 전체의 흐름에서도 미국의 개인주의 영성에 근거한 설교와 성경공부, 목회 일변도다. 기껏해야 미국 중산층의 건강한 시민을 양육하는 설교 - 예를 들어, 릭 위렌 목사와 같은 설교가 크게 떴다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 수준이다. &lt;BR&gt;&lt;BR&gt;-앞으로 한국교회가 설교에서 다뤄야 할 담론은 ‘하나님 나라’인가. &lt;BR&gt;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더 줄이면 ‘하나님’이다. &lt;BR&gt;한국교회 강단의 설교가 교회론에만 치우치다보니, 교회에 대한 관심은 너무 높다. &lt;BR&gt;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는 동일한 말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즉, ‘하나님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lt;BR&gt;교회 중심적인 설교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중심의 설교로 나아가야 한다. &lt;BR&gt;&lt;BR&gt;특히 하나님의 통치를 말씀하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한국교회는 막연한 미래, 혹은 휴거등으로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lt;BR&gt;그런것이 아니다. &lt;BR&gt;종말론적 구원이라는 것은 곧 ‘역사관’을 의미한다. &lt;BR&gt;‘하나님의 완성될 역사를 내다 보는 것’이다. &lt;BR&gt;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지금 150개 교파가 있다는 것은 코미디다. &lt;BR&gt;종말론적인 구원을 내다 본다면, 해결될수 있는 문제다. &lt;BR&gt;&lt;BR&gt;중요한 건 창조론적인 마인드(Mind)로의 변화다. &lt;BR&gt;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타락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힘이 드러난 세계다. &lt;BR&gt;회심 중심의 신앙과 설교에서 창조 중심의 신앙과 설교로 변모해야 한다. &lt;BR&gt;&lt;BR&gt;정용섭 목사는 1953년1월 서울에서 출생,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대학원에서 &quot;한스 큉의 교회론&quot;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lt;BR&gt;독일 쾰른 대학교와 뮌스터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lt;BR&gt;협성신학대학교와 대구대학교등에 출강했다. &lt;BR&gt;&lt;BR&gt;그가 2001년에 설립한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이자 대구 샘터교회를 개척해 담임 목사를 맡고 있다. &lt;BR&gt;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설교 비평집으로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가 있으며 내년 초에 3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책소개: 장윤재의 &lt;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gt;</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36"/>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6</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8T00:25:34Z</updated>
	    <published>2009-11-08T00:25: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책소개: 장윤재의 &lt;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gt; 이화대학출판부, 소개자: 이지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f15g ln18&quot; vAlign=top&gt;&lt;SPAN class=f20&gt;&lt;STRONG&gt;현실에 두 발 붙인 신학서 한국 신학의 '미래'를 본다 &lt;/STRONG&gt;&lt;/SPAN&gt;&lt;BR&gt;&lt;STRONG class=gy02&gt;[신간] 세계화 시대의 기독교신학&lt;/STRONG&gt;&lt;BR&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 FONT-SIZE: 12px&quot; class=gy02&gt;[2009-11-06 07:05]&lt;/DIV&gt;
&lt;DIV id=CLtag&gt;
&lt;DIV id=articleContents&gt;
&lt;DIV align=center&gt;&lt;/DIV&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1 width=100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space=5 alt=&quot;&quot; vspace=5 src=&quot;http://www.theveritas.co.kr/files/fckeditor/image/%EB%AF%BC%EC%84%A0/jjj2.jpg&quot; width=150 height=192&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장윤재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부)&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진정한 신학자는 그가 속한 당대의 가장 고통스런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암흑기를 살았던 칼 바르트가 그랬고, 히틀러의 파시즘에 맞서 온 몸을 던진 디트리히 본회퍼 역시 그랬다. 나는 동시대 어떤 문제를 응시하며 그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왔던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신간 ‘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은 한 신학자의 자아성찰적인 독백으로 시작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저자는 태평양 건너편 한국의 지인들이 하루아침에 경제적 몰락을 겪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더욱 참담했던 것은 돈보다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경우들이었다. 그는 벼랑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생명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기독교 신학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발언도 할 수 없다는, 혹은 ‘하지 않고 있다는’ 무기력함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이화여대 장윤재 교수(기독교학부)는 이후 2008년까지 10년 동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신학적 연구 주제로 택한다. 샐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의 말처럼, 기독교가 ‘사랑, 사랑’ 이야기하지만 ‘경제학 없는 사랑은 공허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인지를 바탕으로, 시대의 신학적 조류와 경제적 조류를 청실홍실 삼아 엮으며 현실 기여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대안 경제체제를 모색한 것이 이번 책이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총 9장으로 구성된 이번 책의 클라이맥스는 9장이다. 그는 9장에서 신자유주의의 붕괴 후 이를 대신할 대안적 경제체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8장은 9장의 결론을 향한 치열한 사색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1 width=100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space=5 alt=&quot;&quot; vspace=5 src=&quot;http://www.theveritas.co.kr/files/fckeditor/image/%EB%AF%BC%EC%84%A0/jjj4.jpg&quot; width=168 height=251&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신간 '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9장을 시작하며 장윤재 교수는 40년 동안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붕괴가 왔음을 말하고,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비합리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사적 &lt;SPAN style=&quot;Z-INDEX: 999&quot; id=OV_CLK_POP2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gt;&lt;A style=&quot;FONT-FAMILY: ; COLOR: #0000ff; FONT-WEIGHT: normal;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class=kl_ov_link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veritas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1%DD%C0%B6&quot; target=_blank&gt;금융&lt;/A&gt;&lt;/SPAN&gt;자본은 ‘공공의 책임성’이 없다. 그것은 이윤을 낼 수 있는 곳이라면 땅 끝까지라도 찾아가지만 그 기대가 거품으로 판명 나면, (한국이 IMF 구제금융 시 익히 보았듯) 가차 없이 그 손실을 ‘사회화’한다. 자본 소유주와 투자자가 맡아야 할 부담을 ‘납세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둘째, 사적 금융자본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를 본업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부의 창출에 기여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누군가는 분명 돈을 벌어도 새 &lt;SPAN style=&quot;Z-INDEX: 999&quot; id=OV_CLK_POP1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gt;&lt;A style=&quot;FONT-FAMILY: ; COLOR: #0000ff; FONT-WEIGHT: normal;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class=kl_ov_link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veritas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CF%C0%DA%B8%AE&quot; target=_blank&gt;일자리&lt;/A&gt;&lt;/SPAN&gt;가 생기거나 공장이 새로 지어지지 않는다. 셋째, 초국적 금융자본은 실물 경제에 비해 너무나 비대해 ‘투기의 상부 구조화’ 됐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투기의 상부 구조’가 있게 된 셈이다. 넷째, 매일 1.5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거래가 ‘소수의’ 전문인에 의해 이루어짐에 따라 정치적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다섯 째, 국제 금융시스템은 부채 창출을 통해 (가치가 아니라) 돈을 창출하는 시스템으로서 사회 발전 기여에 한계가 많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여기서 장윤재 교수는 질문을 하나 던진다. 세계 금융시장의 충실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곡을 찌르는 이 질문은 ‘무(無)로부터 돈을 창출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이다. 과연 무(無)로부터 돈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경제적 희생과 자원의 남용과 오용, 즉 생태계의 파괴를 통해 만들어진 ‘검은 돈’은 아닐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그는 질문을 이어간다. 과연 이 ‘거대한 사기극’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얼마나 될까? 시장이 미쳐 돌아가면서 이른바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온통 불로소득을 쫓아다닐 때, 오히려 교회는 청빈(淸貧)이 아니라 청부(凊富)가 ‘성경적 원리’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던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긴 사색과 연구 끝에 장 교수가 제안하는 대안은 현실에 기초해 있어서 설득력을 가진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대안은 첫째, 경제의 ‘지역화(localization)’다. 자연 자원은 유한한데 대규모 시장경제는 자원의 무제한 이용을 남발하고 있다. 이에 친환경적인 작은 규모의 지역 경제들이 거대한 국제 시장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둘째, ‘화석연료에 기초한 현재의 에너지 문명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화석연료 연소가 지구온난화의 주원인임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로 만든 시설이나 제품의 비용에는 환경 복구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 부조리를 지적하고, 화석연료 기반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이 세상 누구에게나 골고루 내리시는 ‘태양빛’과 지구의 70%를 이루고 있는 ‘물’에 의존하는 에너지 문명으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마지막으로 ‘생태경제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이는 경제성장 제어를 뜻한다. 장 교수는 ‘지속가능한 성장’ 또는 ‘녹색 성장’도 사실은 ‘무한 성장’을 지지하는 표현이라고 말하며,&amp;nbsp;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의 목표는 ‘무한한 빵’이 아니라 ‘충분한 빵’이 되어야 하며, 이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예수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이 책은 근래에 출간된 타 신학서적들에 비해 여러가지 돋보이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20세기 세계 신학 조류에 대한 충실한 분석과 비판으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가운데, 세계 신학의 흐름과 내용을 풍부하게 접할 수 있다. 장 교수는 미국의 경제신학자 마이클 노박,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와 같이 그간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해외 학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주석과 색인은 더할 나위 없이 꼼꼼하다. 무엇보다 현실에 두 발 붙인 내용과 전개가, 한국 신학이 ‘편견을 넘어서 소통으로’ 나아갈 희망을 보게 한다. 이는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lt;BR&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amp;nbsp; ㅣ&amp;nbsp; 총 365쪽&amp;nbsp; ㅣ 2만원&amp;nbsp;&amp;nbsp;&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저자&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id=1257410976903E&gt;&amp;nbsp;&lt;/SPAN&gt;장윤재 -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의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목차&amp;nbsp;&lt;/STRONG&gt; &lt;BR&gt;&lt;BR&gt;&lt;BR&gt;서문 &lt;BR&gt;&lt;BR&gt;&lt;BR&gt;제1장 : 부와 가난에 대한 신학적 성찰 &lt;BR&gt;-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불행한 유산 &lt;BR&gt;교부들 &lt;BR&gt;아우구스티누스&amp;nbsp;&lt;BR&gt;&lt;BR&gt;&lt;BR&gt;제2장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quot; &lt;BR&gt;- 세계화 시대, 남미 해방신학의 유산 &lt;BR&gt;해방신학의 ‘해방’ &lt;BR&gt;해방신학의 ‘신학’ &lt;BR&gt;1989년과 그 이후 &lt;BR&gt;남미 해방신학의 유산과 한계&amp;nbsp;&lt;BR&gt;&lt;BR&gt;&lt;BR&gt;제3장 : 이름뿐인 초월, 허울 좋은 성육신 &lt;BR&gt;- 맥스 스택하우스의 ‘공공의 신학’ 비판 &lt;BR&gt;북미 신보수주의 신학 &lt;BR&gt;스텍하우스의 ‘공공의 신학’ &lt;BR&gt;기업의 신학으로서의 공공의 신학&amp;nbsp;&lt;BR&gt;&lt;BR&gt;&lt;BR&gt;제4장 : 제국을 움직이는 경제의 신학 &lt;BR&gt;- 마이클 노박의 ‘창조성 신학’ 비판 &lt;BR&gt;인간의 창조성과 민주적 자본주의 &lt;BR&gt;“허무의 경험,” 그리고 전향 &lt;BR&gt;“불신앙의 위기” &lt;BR&gt;인간의 창조성 - 해석학적 &lt;SPAN style=&quot;Z-INDEX: 999&quot; id=OV_CLK_POP0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gt;&lt;A style=&quot;FONT-FAMILY: ; COLOR: #0000ff; FONT-WEIGHT: normal;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class=kl_ov_link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veritas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F%AD%BC%E8&quot; target=_blank&gt;열쇠&lt;/A&gt;&lt;/SPAN&gt; &lt;BR&gt;“창조는 미완성” &lt;BR&gt;“이미 구원된 세계” &lt;BR&gt;“개연성의 세계” &lt;BR&gt;다시 허무주의로…… &lt;BR&gt;다시 읽는 니버&amp;nbsp;&lt;BR&gt;&lt;BR&gt;&lt;BR&gt;제5장 : 생태경제신학의 한 가능성 &lt;BR&gt;- 허먼 데일리와 존 캅을 중심으로 &lt;BR&gt;허먼 데일리의 ‘정상상태 경제’ &lt;BR&gt;과정신학과 존 캅의 ‘지구주의’ &lt;BR&gt;생물권 비전&amp;nbsp;&lt;BR&gt;&lt;BR&gt;&lt;BR&gt;제6장 : 생태여성주의 신학과 정치경제학 &lt;BR&gt;- 보다 통전적인 이론과 실천을 향하여 &lt;BR&gt;급진적 여성주의 &lt;BR&gt;개혁적 여성주의 &lt;BR&gt;에코 우머니즘 &lt;BR&gt;생태여성주의의 정치경제학&amp;nbsp;&lt;BR&gt;&lt;BR&gt;&lt;BR&gt;제7장 :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신학적 비판 &lt;BR&gt;- 닫힌 세속주의와 열린 하나님 나라 &lt;BR&gt;경제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lt;BR&gt;하이에크는 누구인가? &lt;BR&gt;하이에크 사상의 구조 &lt;BR&gt;하이에크 사상의 메시지 : 사회정의와 이웃 사랑에 대한 거부 &lt;BR&gt;하이에크의 사상에 대한 비판 &lt;BR&gt;현대 신학에 대한 하이에크의 도전&amp;nbsp;&lt;BR&gt;&lt;BR&gt;&lt;BR&gt;제8장 : 예수 믿기, 예수 살기 &lt;BR&gt;- 역사적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lt;BR&gt;‘역사적 예수’ 탐구의 역사 &lt;BR&gt;‘제3의 탐구’의 성과 &lt;BR&gt;역사적 예수의 하나님 나라&amp;nbsp;&lt;BR&gt;&lt;BR&gt;&lt;BR&gt;제9장 :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종언 &lt;BR&gt;- 생명을 꿈꾸는 행복한 지역 교회 &lt;BR&gt;신자유주의 40년 &lt;BR&gt;대안은 있는가? &lt;BR&gt;작은 실천들&amp;nbsp;&lt;BR&gt;&lt;BR&gt;&lt;BR&gt;후기 : “아담(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lt;BR&gt;&lt;BR&gt;&amp;nbsp;&lt;/P&gt;&lt;!--#동영상 링크 하단--&gt;
&lt;DIV align=center&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lt;SPAN class=f12&gt;&lt;STRONG&gt;이지수 기자&lt;/STRONG&gt;&lt;/SPAN&gt;&lt;SPAN class=style6&gt;&lt;FONT face=Verdana&gt; &lt;/FONT&gt;&lt;A href=&quot;mailto:freedom@theveritas.co.kr&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face=Verdana&gt;freedom@theveritas.co.kr&lt;/FONT&gt;&lt;/U&gt;&lt;/A&gt;&lt;FONT face=Verdana&gt; &lt;/FONT&gt;&lt;/SPAN&gt;&lt;/DIV&gt;&lt;/DIV&gt;&lt;/DIV&gt;&lt;!-- 08.12.17 데이터 웨이브 키워드 광고 시작 by sangjip --&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일묵상] 11/8 주일: 도착까지의기다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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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5</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8T00:16:46Z</updated>
	    <published>2009-11-08T00:16:4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1월 8일 주일&lt;/STRONG&gt;&lt;/P&gt;
&lt;P&gt;창세기 8장 6-14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amp;nbsp;&amp;nbsp; 창 8:6&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도착하기까지의 기다림&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좋은 일들은 금새 일어나지 않습니다. 해변에 나가 햇살과 재미를 즐기러 가는 차의 뒷좌석에 앉았을 때 비좁고 갑갑함을 느끼듯이, 이 세상의 제약과 문제점들은 우리를 참을 수 없게 만듭니다. 언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나요? 언제 새로운 세상이 등장할까요? 언제 의와 정의가 그치지 않는 강물처럼 흘러가게 될까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노아의 방주는 정박하게 되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넘치는 물은 아직 빠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창문을 열 수 있는 안전한 때가 되었을 때, 노아는 창문을 열고 위협적인 큰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메신저를 보냅니다.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를 물고 돌아오자 노아는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알게 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새로운 세상의 첫 달 첫 날 노아는 방주의 덮개를 제거하고 마른 땅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아직 끝이 아니었습니다. 땅은 아직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방주를 떠나서 지면에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주 오랜 세월 후에 유월절이 하나님 백성들의 새해 첫 달을 기념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여러 해 동안 광야를 지루하게 터벅터벅 걸어 통과해야 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자신이 곧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신 지가 2천년이 지났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 주님, 주께서 오시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립니까?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님, 저희가 오늘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다시금 회복시켜줄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새창조 세계를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저희들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헌재, 국회의 헌법파괴 - 국민에게는 저항권이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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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4</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7T23:21:02Z</updated>
	    <published>2009-11-07T23:21:0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프레시안에서]&lt;FONT color=#aa1a19&gt;&quo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U&gt;채은하 기자: 헌재, 국회의 헌법파괴 - 국민에게는 저항권이 있다&lt;/U&gt;&lt;/STRONG&gt;&lt;/P&gt;
&lt;P&gt;&lt;FONT color=#aa1a19&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aa1a19&gt;&quot;아무리 '꼴통' 경제학자라도 '공공재'는 시장에 맡기면 안된다고 인정한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aa1a19&gt;공공재는 민주주의다. 한나라당이 강조하는 경제 논리에서 봐도 언론, 특히 방송은 그 자체로 공공재의 일부이자 최후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보루&lt;/FONT&gt;&lt;/U&gt;&lt;/A&gt;다. 이를 시장에 맡기자는 것은 민주주의를 없애자는 이야기와 같다&quot; (정태인 칼라TV 대표)&lt;/FONT&gt;&lt;BR&gt;&lt;BR&gt;6일 서울 중국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프레스&lt;/FONT&gt;&lt;/U&gt;&lt;/A&gt;센터 앞마당에서는 '언론 악법 위법 결정, 국회 재논의를 위한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언론학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변호사&lt;/FONT&gt;&lt;/U&gt;&lt;/A&gt;, 경제전문가, 언론인, 일반 시민 등이 참여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헌법재판소 판결과 미디어법에 대한 향후 대응 방안부터 시작해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에 대한 성찰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뤄졌다.&lt;BR&gt;&lt;BR&gt;&lt;B&gt;&quot;오독하지 말자…헌법재판소는 '위헌·위법'이라고 말했다&quot;&lt;/B&gt;&lt;BR&gt;&lt;BR&gt;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강조된 주장 중 하나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quot;신문법·방송법 처리 절차에서 나타난 '위헌·위법성'은 인정하나 무효 확인 청구는 기각한다&quot;는 헌법재판소의 애매모호한 판결 이후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quot;헌법재판소가 신문법·방송법을 유효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판정&lt;/FONT&gt;&lt;/U&gt;&lt;/A&gt;했다&quot;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해석&lt;/FONT&gt;&lt;/U&gt;&lt;/A&gt;이 주를 이뤘다.&lt;BR&gt;&lt;BR&gt;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quot;'컨닝은 했지만 점수는 인정된다'는 식의 '헌재 놀이'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quot;면서 &quot;헌법재판소는 '유효'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부정'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다만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다&quot;고 강조했다. 그는 &quot;헌법재판소는 '음주를 했다', '도둑질을 했다'고 이야기한 것이지 '유효하다'고 말하지 않았다&quot;고 강조했다.&lt;BR&gt;&lt;BR&gt;양문석 사무처장은 &quot;그러나 지상파 방송 3사를 중심으로 언론들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유효'라고 해석하면서 한국 사회가 패닉으로 빠졌다&quot;면서 &quot;이번 사태는 언론이 프레임을 잘못 짜서 보도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여론 조작의 사례&quot;고 강조하다. 양문석 처장은 &quot;만약 언론 악법이 관철되고 조·중·동 방송이 등장하면 일상적 여론 조작의 시대가 도래할 것&quot;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lt;BR&gt;&lt;BR&gt;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에서 민주당 등 야당 측 변호인을 맡은 김정진 변호사도 &quot;헌법재판소가 이야기한 것은 국회가 자율적으로 헌법 위반 상태를 시정해야 한다는 것&quot;이라며 &quot;국회가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국회 자체가, 국회&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의장&lt;/FONT&gt;&lt;/U&gt;&lt;/A&gt;이 정면으로 헌법을 어기는 상황, 즉 위헌적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quot;이라고 주장했다.&lt;BR&gt;&lt;BR&gt;김정진 변호사는 &quot;일반적인 헌법 교과서에도 나와있듯 국가기관이 헌법을 파괴하고 지키지 않을 때 국민들은 저항권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행사&lt;/FONT&gt;&lt;/U&gt;&lt;/A&gt;할 수 있다&quot;며 &quot;헌법재판소가 확인한 권한 침해 행위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국회 자체가 거대한 위헌 상태를 방치하는 것이고 입법기관은 아무런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quot;이라고 지적했다.&lt;BR&gt;&lt;BR&gt;&lt;/P&gt;
&lt;P&gt;
&lt;TABLE style=&quot;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BACKGROUND: #ffffff; MARGIN: 5px auto 10px;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20&gt;&lt;IMG class=resize3 height=284 alt=&quot;&quot; hspace=0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1/07/40091107005615.JPG&quot; width=520 border=1 name=img_resize&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11px; COLOR: #777; 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quot; width=520&gt;▲ '언론 악법 위법 결정 재논의를 위한 시민 대 토론회' ⓒ언론노보&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lt;BR&gt;&lt;B&gt;&quot;국가기관이 헌법을 훼손할 때, 국민에겐 저항권이 있다&quot;&lt;/B&gt;&lt;BR&gt;&lt;BR&gt;'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류재성 사무처장은 헌법재판소 판결을 자세히 분석했다. 류재성 사무처장은 &quot;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 '무권투표·대리투표로 헌법적 정당성이 결여됐다'고 한 것은 신문법이 단순히 '위법'이 아닌 '위헌'임을 의미한다&quot;면서 &quot;국회의장이 위헌·위법 상태의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법적 부작위로 인한 새로운 권한 침해가 있는 것&quot;이라고 지적했다.&lt;BR&gt;&lt;BR&gt;류 사무처장은 &quot;결국 국회의장의 부작위로 인해 또다시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또다시 권한쟁의심판 신청이 가능한 상황&quot;이라며 &quot;헌법재판소가 '의미 없는 결정을 했다'는 국민적 비판을 또다시 받지 않으려면 '각하'할 수는 없을 것&quot;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quot;헌법재판소는 국회의장에게 부여한 '자율적 시정 조치'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답해야할 의무가 있다&quot;며 &quot;민주당이 신문법·방송법 폐지와 재개정안을 내고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동시에 헌법재판소를 압박해야 한다&quot;고 강조했다.&lt;BR&gt;&lt;BR&gt;김서중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교수&lt;/FONT&gt;&lt;/U&gt;&lt;/A&gt;는 &quot;이제까지 금기시되던 개인 검증과 공격이 필요하다는 생각&quot;이라며 &quot;김형오 의장 같은 경우 직권상정이나 절차적 문제가 생길 때 사퇴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헌법재판소에서 절차적 위법은 분명히 지적했다. 말을 뒤집는 사람에 대한 공격과 검증이 필요하다&quot;고 말했다. 그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을 두고도 &quot;그가 판사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판사는 법을 가지고 하는 곳이 아닌 모양이다&quot;고 꼬집었다.&lt;BR&gt;&lt;BR&gt;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quot;야당 의원들이나 언론인들이 '열심히 싸웠으나 힘이 모자라서 졌다'는 이유로 용서받지 못한다&quot;면서 &quot;실질적으로 잘못된 결정 과정을 바로잡는 것이 우리 사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며 '행동'이 필요하다&quot;고 강조했다.&lt;BR&gt;&lt;BR&gt;그는 &quot;가장 귀에 들어오는 말은 저항권&quot;이라며 &quot;언론 관련 법을 재논의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비겁한 결정과 이마저도 묵살하는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공격할 기회다&quot;라고 강조했다. 그는 &quot;이미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용산&lt;/FONT&gt;&lt;/U&gt;&lt;/A&gt; 참사,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4대강&lt;/FONT&gt;&lt;/U&gt;&lt;/A&gt;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quot;며 &quot;언론 관련 법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다시 한번 모일 기회가 되어야 한다&quot;고 말했다.&lt;BR&gt;&lt;BR&gt;&lt;B&gt;&quot;헌법재판소 개혁 시급…'87년 체제' 자체가 한계?&quot;&lt;/B&gt;&lt;BR&gt;&lt;BR&gt;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quot;미디어법의 더 큰 문제는 절차적 민주성의 문제를 넘어 '보수 신문에게 뉴스 채널을 주고 방송 뉴스를 할 자유를 허용할 것이냐'는 것&quot;이라며 &quot;이렇게 되면 우리는 최소한의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는 위험사회로 전락한다고 생각한다&quot;고 말했다.&lt;BR&gt;&lt;BR&gt;이창현 교수는 &quot;언론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토목&lt;/FONT&gt;&lt;/U&gt;&lt;/A&gt;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건설&lt;/FONT&gt;&lt;/U&gt;&lt;/A&gt;을 중심으로 한 개발 논리, 대기업의 논리에 치우쳐있기 때문에 '4대강 문제'도 온 국민이 투쟁해도 막기 어려운 상횡이 됐다&quot;며 &quot;국가경제와 서민경제가 어떻게 되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보도하는 이들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황폐화를 스톱시킬 수 없는 것이고 '언론 악법' 이후에는 이 위험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quot;이라고 경고했다.&lt;BR&gt;&lt;BR&gt;김서중 교수는 &quot;지금과 같은 미디어 구조 개편이 꾸준히 진행될 경우 궁극적으로 한나라당과 조·중·동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quot;이라며 &quot;권력화된 자본 권력이 모든 권력의 우위로 등극할 것이며 이들은 자본의 요구를 대리하는 존재로 전락할 것&quot;이라고 말했다. 그는 &quot;이들은 이것이 과연 자신들이 장기집권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인가 반성해야 한다&quot;고 말했다.&lt;BR&gt;&lt;BR&gt;한편 헌법재판소 개혁 논의도 적잖이 나왔다. 류재성 사무처장은 &quot;국민 위에 군림하며 정권과 자본과 조·중·동의 논리를 보며 물타기하는 헌법재판소를 바꿔야 한다&quot;며 &quot;코스를 밟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엘리트&lt;/FONT&gt;&lt;/U&gt;&lt;/A&gt;가 아닌 각계각층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목소리&lt;/FONT&gt;&lt;/U&gt;&lt;/A&gt;가 반영되도록 대법관·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화, 그리고 대법원장, 헌법재판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7005615&amp;section=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소장&lt;/FONT&gt;&lt;/U&gt;&lt;/A&gt;만큼은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quot;고 밝혔다.&lt;BR&gt;&lt;BR&gt;김정진 변호사는 &quot;1987년 민주화 직후 헌법재판소가 탄생했을 때 모두가 '성과'로 보고 반겼다&quot;며 &quot;그러나 지금은 헌법재판소를 비롯해 '87년 체제'로 생겨난 모든 것들이 거의 사회적 의미가 없어져가고 상실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quot;고 말했다. 그는 &quot;민주주의 기반의 허약해졌다기 보다 87년 시스템 자체가 허약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quot;이라고 말했다.&lt;BR&gt;&lt;BR&gt;김 변호사는 &quot;이 때문에 단지 현재 청와대 거주자에 대한 분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quot;라며 &quot;사실 87년 체제의 헛점을 극도로 이용해 집권한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고 그 모든 문제를 200% 악용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보다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quot;고 말했다.&lt;!--/DCM_BODY--&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author&gt;/채은하 기자&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책소개: 류대영의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33"/>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3</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7T23:08:10Z</updated>
	    <published>2009-11-07T23:08: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프레시안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U&gt;책소개: 류대영의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 소개자: 강지연&lt;/U&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독교인이냐는 질문에 망설여진다는 사람이 있다. 먼저 기독교인이라는 테두리에 있는 집단이 한국에서 벌이는 사회적, 정치적 행위에 자신도 같이 묶이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인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lt;BR&gt;&lt;BR&gt;내가 볼 때 이 두 가지는 기독교인에 대한 다른 함축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주류인 기독교인의 실제 모습과 기독교인에 대한 기대치이다. 사실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의 주류는 이런 우려와 상관없이 잘 돌아가는 듯하다. 기독교 서클 안의 안정성은 &quot;그들만의 리그&quot;로, &quot;기독교 집단 이기주의&quot;라고 불릴 수 있는 모습을 띈다.&lt;BR&gt;&lt;BR&gt;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자기 헌신을 보이기보다는 자기와 자기 가족의 복을 기원하는 열렬한 신앙 상태로 변질된 모습. 사실 이 경우 그 신앙이 기독교냐 샤머니즘이냐, 이런 문제는 크게 중요하진 않다. 이게 좀 확장되어 나와 같은 공동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교회&lt;/FONT&gt;&lt;/U&gt;&lt;/A&gt;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그 이익에 목을 매는 모습이 현재 한국 기독교의 주류로 볼 수 있다.&lt;BR&gt;&lt;BR&gt;이런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내가 하는 변명이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예수의 길을 쫒아 가려는 사람들을 보라고. 저기 있다고. 사실 그 사람들은 수적으로 약세이고 처한 상황도 열악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lt;BR&gt;&lt;BR&gt;&lt;B&g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lt;/B&gt;&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BACKGROUND: #ffffff; MARGIN: 5px 15px 10px 0px;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270&gt;&lt;IMG class=resize3 height=401 alt=&quot;&quot; hspace=0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1/07/60091107091254.JPG&quot; width=270 border=1 name=img_resize&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11px; COLOR: #777; 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quot; width=270&gt;▲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류대영 지음, 푸른역사 펴냄). ⓒ프레시안&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류대영이 쓴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 이 책은 그동안 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답변을 줄 만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역사&lt;/FONT&gt;&lt;/U&gt;&lt;/A&gt;적 사실들과 그에 대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분석&lt;/FONT&gt;&lt;/U&gt;&lt;/A&gt;을 주는 책이다. 자신의 생각을, 소신을 열변하는 것보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분석하는 방식이 어떤 면에선 더욱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이 지식인으로서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작업이야말로 연구자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작업일 것이다.&lt;BR&gt;&lt;BR&gt;이 책은 &quot;한국 기독교는 1880년대에서 최근까지 어떠했는가?&quot; 라는 질문을 가진 자들에게 그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과 분석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저서는 기독교계의 보수, 진보적 진영 모두 같이 볼 수 있고 읽어볼 만하다. 애써서 역사적 사실과 사실 분석 위주로 저술한 듯한 이 저서는 그래도 한국 기독교의 과거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진단하면서, 이것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미래의 방향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말하고 있다.&lt;BR&gt;&lt;BR&gt;&lt;B&gt;문명개화론과 기독교&lt;/B&gt;&lt;BR&gt;&lt;BR&gt;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현상, 서구 종교인 기독교는 어떻게 조선반도에서 그렇게도 빨리 전파되어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을까? 같은 유교 이념의 공동체국가였던 일본, 중국과도 대비해도 이것은 놀라운 상황이다.&lt;BR&gt;&lt;BR&gt;그것은 &quot;기독교가 서양 문명 수입의 중요한 통로요, 조선 개혁에 도움이 될 요소&quot;로 여겼기 때문이다(33쪽). 이것은 김옥균만이 아니라 이후 지식인들이 가졌던 생각이고 실제로 기독교는 서구 근대 문명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인들의 각성만으로 조선반도에서 기독교의 부흥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지배층의 기독교에 대한 정서가 일본 민중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과는 달리, 이미 조선 지배층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한 기층 민중은 스스로 기독교를 필요에 의해 받아들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항기 조선에서는 기독교가 주로 서북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지방&lt;/FONT&gt;&lt;/U&gt;&lt;/A&gt;, 즉 조선의 정치 질서에서 소외되어 유교적 신분 질서와 사회체제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졌던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지배층과는 달리 서북 지역인들은 상업적, 현실적 가치관과 , 진취적이고 개방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55쪽), 이런 사람들을 통해 전혀 이질적이었던 서구종교인 기독교는 빠르게 흡수되었다.&lt;BR&gt;&lt;BR&gt;&lt;B&gt;대부흥 운동&lt;/B&gt;&lt;BR&gt;&lt;BR&gt;기독교는 이성적 각성이나 선진 문물의 대표자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quot;유교가 배격 했던 민간 신앙이나 불교에서 개인적 차원의 종교적 욕구를 부분적으로 충족시켰는데&quot;, &quot;기독교가 높은 문명적 가치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사적 개인의 종교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는 사실&quot;(123쪽)이 중요하다.&lt;BR&gt;&lt;BR&gt;기독교의 한국적 정착화에서 지나칠 수 없는 종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체험&lt;/FONT&gt;&lt;/U&gt;&lt;/A&gt;이 있다. 그것은 &quot;대부흥 운동&quot;인데 현재 한국 기독교 생활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한국의 대부흥 운동은 한국인의 원초적 종교성, 기독의 전통, 몰락해가는 왕조 속에서 극히 피폐해진 민중의 삶 등 복잡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135쪽). 전체적으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불안&lt;/FONT&gt;&lt;/U&gt;&lt;/A&gt;정한 사회 분위기와 붙들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결여되어 있던 때에 이런 집단적 분위기는 유교적 공동체 윤리 대신 개인적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신과의 개인적, 초이성적 관계의 체험을 낳게 된다. 사회적 불안정이 인간에게 더욱 절대적인 존재를 갈구하게 된다는 점은 동서&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고금&lt;/FONT&gt;&lt;/U&gt;&lt;/A&gt;을 관통하는 진리일 것이다.&lt;BR&gt;&lt;BR&gt;다만 류대영의 분석처럼 한국 교인들이 일본인들을 증오한 일까지 회개하고, 고종 퇴위로 극도로 반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감정&lt;/FONT&gt;&lt;/U&gt;&lt;/A&gt;이 상당히 고조되었을 때 길선주가 기독교적 원칙에 따라 그것을 진정시킨 현상 등은 종교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분노까지 회개의 대상으로 삼거나 제어한 것이고 공동체적 감정마저 사적 차원의 회개거리로 인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이런 사회관, 종교관은 1900년대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2000년대 한국 교회가 현실 정치에 무비판적인 모습으로까지 연장되는 듯하다.&lt;BR&gt;&lt;BR&gt;&lt;B&gt;다른 동양 전통과 기독교&lt;/B&gt;&lt;BR&gt;&lt;BR&gt;예전에 나는 미국인 여선교사에게 불교나 도교를 연구하는 박사 과정을 그만둬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실제로 1900년대 초 기독교인 며느리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제사&lt;/FONT&gt;&lt;/U&gt;&lt;/A&gt; 관습을 거부하다 자살한 사건은 &lt;동아일보&gt;에 게재되면서 당시 열띤 논쟁을 일으킨 사회적 이슈였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지금&lt;/FONT&gt;&lt;/U&gt;&lt;/A&gt;은 이전보다 훨씬 덜하지만 아직도 기독교와 제사 문제는 충돌되기도 한다. 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동양&lt;/FONT&gt;&lt;/U&gt;&lt;/A&gt;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아서 현재도 내 주변의 동양학 연구자들 중 기독교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quot;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quot; 라는 십계명이 한국에선 이런 식의 배타적 분위기를 낳은 듯하다. 그러나 1890년대에서 1930년대 조선의 외국인 선교사들은 다른 동양 전통 사유나 종교에 대해 가치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이었다.&lt;BR&gt;&lt;BR&gt;그들은 &quot;국가 이데올로기로서 조선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법률&lt;/FONT&gt;&lt;/U&gt;&lt;/A&gt;,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교육&lt;/FONT&gt;&lt;/U&gt;&lt;/A&gt;, 예절, 사회경제, 도덕을 형성시킨 막강한 힘(178쪽)&quot;으로서 유교를 인정했고, 대승불교의 성격을 분석하고 동학의 종교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런 그들의 노력은 오늘날 극단적 배타성을 지닌 기독교관을 설파하는 종교 지도층이나 기독교 기층에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lt;BR&gt;&lt;BR&gt;&lt;B&gt;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공존?&lt;/B&gt;&lt;BR&gt;&lt;BR&gt;내가 서구에서 만난 기독교인들은 기도&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드릴&lt;/FONT&gt;&lt;/U&gt;&lt;/A&gt; 때 하나같이 좀 조용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통성기도는 서구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기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들은 한국 기독교인이 참으로 부지런하다고 칭찬한다. 매일 새벽에 나와 함께 기도하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예배&lt;/FONT&gt;&lt;/U&gt;&lt;/A&gt;드린다고 신기해한다. 한국 기독교가 서구 기독교와 다른 차별점으로, 새벽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기도회&lt;/FONT&gt;&lt;/U&gt;&lt;/A&gt;와 통성기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의 원초적 종교성을 이루고 있었던 샤머니즘적 성격, 민간신앙적 관습과 한국인에게 익숙한 집단적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통곡&lt;/FONT&gt;&lt;/U&gt;&lt;/A&gt; 행위가 기독교에 유입된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흥 운동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26쪽).&lt;BR&gt;&lt;BR&gt;이것처럼 일견 안 어울리는 또 다른 조합은 기독교와 사회주의일 것이다. 종교적 욕구가 해소되어, 인민의 아편인 종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사회주의국가에서조차 기독교가 현존한다. 더 나아가 공산주의의 집권층은 기독교를 공산주의 정권에 이롭게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기까지 한다.&lt;BR&gt;&lt;BR&gt;북한의 박승덕의 표현대로 &quot;압제와 예속을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을 념원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식 삶의 길을 제시하는 인생관(254쪽)&quot;으로서 북한에서 기독교는 인정되고 있다. &quot;인간 해방과 민족 해방을 위한 현실적 공동 목표들이 존재하는 한, 주체 사상과 대화 상대가 되는 기독교인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을 포용한다는 것(260쪽)&quot;이 북한 지도층의 기조를 이루는 한 이 둘의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도 인간의 본성엔 절대자에 대한 열망이 있고, 자기 수련과 사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통합&lt;/FONT&gt;&lt;/U&gt;&lt;/A&gt; 차원에서도 종교는 핵심적 부분으로 인류 사회에 요구될 것 같다.&lt;BR&gt;&lt;BR&gt;&lt;B&gt;2050년에 2000년대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기억될까?&lt;/B&gt;&lt;BR&gt;&lt;BR&gt;이제 2000년대 대한민국 사회로 다시 돌아가 보자. 최근 개신교 복음주의 우파가 정치적 극우파와 손잡고 반공, 친미를 외치는 현상은 어떻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해석&lt;/FONT&gt;&lt;/U&gt;&lt;/A&gt;해야 할 것인가? 류대영의 말대로 그들의 &quot;수세적 반응(376쪽)&quot;으로 이해해야 할까?&lt;BR&gt;&lt;BR&gt;현 한국 사회에서 보수 진영은 진보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구축해온 가치와 구조가 공격받고 있다고 느낀다. 현재 진보 진영, 보수 진영 어느 쪽도 한국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quot;힘의 공백&quot;의 상황에서, 복음주의자 우파의 분노와 위기 의식도 근본적으로 이런 피해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quot;앞으로의 정치 세력 판도에 따라 압도적인 정치적 힘 앞에 순종하는 관습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유지&lt;/FONT&gt;&lt;/U&gt;&lt;/A&gt;했던 우리나라의 보수적 기독교인의 모습(379쪽)&quot;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lt;BR&gt;&lt;BR&gt;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lt;BR&gt;&lt;BR&gt;&lt;FONT color=#aa1a19&gt;&quot;한국의 보수 개신교계는 신학적, 정치사회적으로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 그들의 신학적, 정치사회적 다양성을 생각할 때, 그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보일 가능성은 없다. (…) 한국의 기독교 뉴라이트가 정치적 집단으로서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의 본질은 국내의 정치사회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반공, 시장경제, 친미라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이 허락하는 차원으로 수렴될 수 없다는 데 있다.&quot; (382쪽)&lt;/FONT&gt;&lt;BR&gt;&lt;BR&gt;기독교 뉴라이트 운동에 대한 그의 통찰은 그들이 핵심으로 삼고 있는 반공, 시장경제, 친미라는 이데올로기로 모두 설명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통찰과 맞닿아 있다. 이 사회에 대한 그들의 분석의 틀이 낡고 협소한데 그 세력의 영향력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미국의 기독교 우파와는 달리 사회, 윤리적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못하고 오직 정치경제적 문제에 편중되어 드러나는 그들의 수세적 반응에 대해 기독교계가 함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도매&lt;/FONT&gt;&lt;/U&gt;&lt;/A&gt;금으로 욕을 먹는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lt;BR&gt;&lt;BR&gt;기독교계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양하다. 그에 못지않게 기독교계도 다양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스펙트럼&lt;/FONT&gt;&lt;/U&gt;&lt;/A&gt;을 가진 집단이다. 기독교의 윤리로 도저히 설명되지 못하는 기독교계 종사자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만한 비윤리와 부패를 지닌 집단에서부터, 이런 범죄 집단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 적어도 같이 비난을 받기에 억울한 기독교인들도 많다. 적어도 윤리와 부패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자부할 만한 개인 윤리의식을 가진 집단도 있다. 또 자신과 자기 집단의 안녕을 구복하면서 주변에 적당히 인심을 베풀며 사는 중산층의 모습이 기독교의 주류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실적 삶의 노곤함을 절대적 존재에 의지해서 잊거나 극복하려는 계층도 존재한다. 또 기독교의 사회복음(social gospel)을 외치고 꾸준히 분투하는 그룹도 현재는 미미해졌지만 아직 존재한다. 신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quo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하나님&lt;/FONT&gt;&lt;/U&gt;&lt;/A&gt;의 사람들&quot;, 기독교인으로 &quot;같이&quot; 불리운다. 이들을 한 가지 이데올로기로 묶는 것이 가능한 것일지, 요즘은 그런 의문까지 든다. 그들이 하나가 되는 게 가능할까. 최소한 기독교계 어떤 명망있는 지도자가 &quot;이것이 길이다&quot;라고 제시할 때 무조건 하나로 따를 수 있을까.&lt;BR&gt;&lt;BR&gt;최소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한국사&lt;/FONT&gt;&lt;/U&gt;&lt;/A&gt;회 기독교계 사람들은 &quot;기독교&quot;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이름&lt;/FONT&gt;&lt;/U&gt;&lt;/A&gt;으로 단일하게 묶이기엔 너무 복잡하다. 최소한 2009년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 이 문제가 기독교인이냐, 불교도냐, 무신론자인가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결단과 실천을 요구한다고 본다.&lt;BR&gt;&lt;BR&gt;사실 종교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독교의 후진성에 대해 말해왔다. 미래의 종교는 불교처럼 열려있는 종교, 자기의 내부에서 구원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종교, 타인에 대한 화해가 근본적으로 가능한 종교라고 말해 왔다. 나는 기독교 교리에 그런 모습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lt;BR&gt;&lt;BR&gt;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하나님의 유일성이 배타적으로 강조되는 신앙을 참진리로 여긴다는 것이 문제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불교 등과는 달리 아주 대중적이고 간명한 교리로 대중 속을 파고 들었다. 기독교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탄탄&lt;/FONT&gt;&lt;/U&gt;&lt;/A&gt;한 조직력과 대중적이고 간단한 신앙 원리로 인해 20세기 최대 세력의 종교로 부상했다. 기독교에 관한 역사적, 사회적 통찰은 이렇게 끝날 수도 있었다.&lt;BR&gt;&lt;BR&gt;그런데 이 책을 읽은 뒤 균형감각을 찾은 부분이 있다. 기독교는 유럽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근대성을 심는 데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이바지&lt;/FONT&gt;&lt;/U&gt;&lt;/A&gt;했다. 1900년 전후 조선반도에서 기독교는 정치적 개화, 민권, 근면성, 조국애, 여권신장, 교육을 통한 개화를 전파하려고 했다. 당시 일부 지식인들에게 모든 학문과 문명 진보의 근원으로 여겨졌던 기독교는, 그렇게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삶을 개선하는데 이바지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lt;BR&gt;&lt;BR&gt;사람들이 기독교에 몰려든 것은 기독교가 닦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포장&lt;/FONT&gt;&lt;/U&gt;&lt;/A&gt;술과 조직력에만 있지 아니하다. 그 속에 사람들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사로잡고, 사회를 변혁시킨 요소가 존재한다. 2009년 이후 한국 기독교는 100년 전인 1900년처럼 인간 사회를 더 살만하게 만드는 종교로 기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한국사회에서는?&lt;BR&gt;&lt;BR&gt;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다고 보는가? 기독교의 탈만 쓰고 있는 이들로 인해서. 그렇다면 당신을 통해 기독교를 이해시켜라, 이 세계에.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지 여줘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예수님&lt;/FONT&gt;&lt;/U&gt;&lt;/A&gt;께서 말씀하신 길을 보여주는 건 쉽지 않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아니 내 몸만큼은 못하더라도 자신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상식&lt;/FONT&gt;&lt;/U&gt;&lt;/A&gt;과 기준에 벗어난 부당한 경우를 당해도 참아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의 욕망을 항상 다스리고 수련하면서 사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십자가&lt;/FONT&gt;&lt;/U&gt;&lt;/A&gt;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놀라운 변화이다. 구세주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피로&lt;/FONT&gt;&lt;/U&gt;&lt;/A&gt; 새로 태어 난 인간으로서 자신의 새 삶을 믿고 그만큼 타인의 변화를 기대하고 믿는 삶은 얼마나 대단한 삶인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건 본디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기독교인으로서 사는 것을 결단한 이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대단한 사람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좀 더 인간적이고 인심 좋은 곳으로 변하리라고 기대해본다. 기독교인이 진정으로 기독교인다울 때 각박하고 흉흉한 이 사회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LEFT-COLOR: #cbd4e9; BORDER-BOTTOM-COLOR: #cbd4e9; MARGIN: 0px auto; BORDER-TOP-COLOR: #cbd4e9; BACKGROUND-COLOR: #eaeef7; TEXT-ALIGN: justify; BORDER-RIGHT-COLOR: #cbd4e9&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95%&quo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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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FONT-SIZE: 14px; PADDING-BOTTOM: 10px; LINE-HEIGHT: 23px; PADDING-TOP: 10px&quot;&gt;&lt;FONT color=#00309c&gt;'철학자의 서재'는 &lt;프레시안&gt;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lt;편집자&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CM_BODY--&gt;&lt;/P&gt;
&lt;P class=author&gt;/강지연 KAIST 교수&lt;/P&gt;
&lt;P class=author&gt;&amp;nbsp;&lt;/P&gt;
&lt;P class=autho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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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height=22&gt;&amp;nbsp;&lt;SPAN class=genmed&gt;&lt;B&gt;&lt;FONT color=#000000&gt;류대영&lt;/FONT&gt;&lt;/B&gt;&lt;/SPAN&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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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vAlign=center align=middle&gt;&lt;A onclick=&quot;window.open('download.php?id=128&amp;sid=9369643aac7fd3fbdb79c65fc0a873b7','_blank','toolbar=no, location=no,status=no,menubar=no,scrollbars=yes,resizable=yes,width=111,height=166')&quot; href=&quot;http://glc.handong.edu/english/viewtopic.php?t=501&amp;sid=8c811f39e71b05398c0b7c6369163de1#&quot;&gt;&lt;IMG height=136 src=&quot;http://glc.handong.edu/english/files/thumbs/t________189.jpg&quot; width=91 border=0&gt;&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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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quot;97%&quot;&gt;Phone : 260-1389 &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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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Office : CE1 222 &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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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E-mail : &lt;A href=&quot;mailto:ryudy@handong.edu&quot;&gt;&lt;FONT color=#737373&gt;ryudy@handong.edu&lt;/FONT&gt;&lt;/A&gt; &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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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vAlign=top align=middle height=20&gt;&lt;IMG src=&quot;http://glc.handong.edu/english/templates/webmanager/images/detail_view_bullet1.gif&quot; border=0&gt; &lt;/TD&gt;
&lt;TD&gt;Homepage : &lt;A href=&quot;http://pro.handong.edu/ryudy&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737373&gt;pro.handong.edu/ryudy&lt;/FONT&gt;&lt;/A&gt; &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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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vAlign=top align=middle height=20&gt;&lt;IMG src=&quot;http://glc.handong.edu/english/templates/webmanager/images/detail_view_bullet1.gif&quot; border=0&gt; &lt;/TD&gt;
&lt;TD&gt;Degree : Ph.D, 기독교사학, Vanderbilt Univ.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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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양승훈: 공룡이 버거운 한국교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32"/>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2</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7T14:32:14Z</updated>
	    <published>2009-11-07T14:32: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미주뉴스엔조이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lt;STRONG&gt;&lt;U&gt;'공룡이 버거운 한국 교회' &lt;/U&gt;&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우주 창조는 6000년 전, 운석 충돌은 6000만 년 전?&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ewsnjoy.us/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2009년 11월 06일 (금) 01:57:11 [조회수 : 271]&lt;/FONT&gt;&lt;/SPAN&gt;&lt;/TD&gt;
&lt;TD align=right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양승훈&lt;/FONT&gt;&lt;/SPAN&gt; &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ewsnjoy.us/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r id=articleBody&gt;
&lt;P align=justify&gt;근래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에서는 지구 역사를 수많은 격변의 역사로 해석하려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그 격변들 중 많은 부분은 대규모 운석 충돌이나 그로 인해 일어난 이차적인 격변이라고 할 수 있다. 운석 충돌이 과거에 일어난 대표적인 격변이었다는 점은 지구에 남아 있는 수많은 운석공들과 태양계 내 많은 행성과 위성에 남아 있는 운석공들로부터 쉽게 유추할 수 있다.&lt;/P&gt;
&lt;P align=justify&gt;가장 대표적이면서 근래에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운석공은 바로 중생대를 마감하고 신생대를 열었던 칙술룹 운석공이다. 이 운석으로 인해 K-T(중생대-신생대) 경계 멸종이라 부르는 대규모 멸종이 일어났고, 지구는 파충류가 지배하던 중생대를 마감하고 포유류가 지배하는 새로운 생명의 시대, 즉 신생대를 맞게 되었다.&lt;/P&gt;
&lt;P align=justify&gt;중생대 말기에 일어난 대멸종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공룡의 멸종이다. 다양하고 수많은 공룡들이 중생대에 갑자기 등장했다가 말기에 갑작스럽게 멸종했다. 공룡은 지금부터 2억 2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 중생대에 번성했다는 파충류이다. 작은 것은 닭 정도의 크기부터 큰 것은 길이가 30m, 무게가 90여 톤에 이른다. 930여 속(屬), 1,500여 종(種)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공룡 화석은 흔히 중생대의 표준화석(標準化石)으로 사용될 만큼 중생대 지층에서만 독특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발견된다.&lt;/P&gt;
&lt;P align=justify&gt;K-T 경계 면을 중심으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공룡이 멸종하고 지구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불과 지난 30여 년 전 일 때문이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칙술룹에서 중생대에 운석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운석공이 발견된 것. 이 운석공에 대해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으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 내셔널지오그래픽,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의 지원으로 본격적인 탐사가 이루어지면서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그리고 해저 시추를 통해 운석 속에 포함된 이리듐이 발견되는 지층의 생성 연도가 6498만 년 전이라고 밝혀지면서 이 운석공이 바로 중생대 말기의 대멸종을 초래한 흔적임이 최종 확인되었다. &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us/news/photo/200911/1588_3197_5830.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성경의 용도와 목적을 무시하고 치우친 신학의 틀 속에서 성경이 6000년 우주 연대를 선언한다고 고집한다면 공룡은 앞으로도 우리 교회의 버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공룡 멸종의 흔적, K-T 경계 면과 칙술룹 운석공&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 면은 화석 연구를 통해 오래 전부터 알려졌지만 이 경계 면에 대한 격변적 해석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 후반에 이루어졌다. 백악기와 제3기 지층을 나누고 있는 K-T 지층은 전 세계적으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두께 1cm 정도의 얇은 진흙층이며, 지질학자인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의 월터 알바레스(W. Alvarez), 그의 아버지이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알바레스(L.W. Alvarez), 핵화학자인 아사로(F. Asaro)와 미쉘(H.V. Michel) 등 네 명의 과학자가 1978년에 처음 발견하였다.&lt;/P&gt;
&lt;P align=justify&gt;소행성 충돌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바로 이 K-T 경계 면에 존재하는 얇은 진흙층에 이리듐의 밀도가 유난히 높다는 것이었다. 이리듐과 더불어 석영 알갱이나 미세 다이아몬드, 아미노산 등도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운석과 관련된 것들이다. K-T 경계 면에는 이리듐이 무게비로 6ppb(10억 분의 6)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지표면 전체 평균치인 0.4ppb(100억 분의 3)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구비오에서 발견된 진흙층에서는 지표면 평균치의 수십 배 이상 높은 이리듐 밀도가 확인된 것이다. 참고로 운석 속에는 이리듐이 470ppb나 존재한다. 이러한 결과들을 근거로 버클리 팀은 소행성이 충돌할 때 대기와의 마찰로 이리듐이 기화되면서 대기 중에 널리 퍼졌고 전 지구적으로 다른 물질들과 더불어 낙하해서 이리듐이 많이 함유된 진흙층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했다.&lt;/P&gt;
&lt;P align=justify&gt;알바레스는 이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코펜하겐에 있는 비슷한 K-T 경계 면의 진흙층을 조사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 K-T 경계 면은 주변 지층에 비해 무려 160배나 많은 이리듐을 함유하고 있었다. 1980년, 이런 연구 결과들로부터 버클리 팀은 6500만 년 전, 중생대가 끝날 때 엄청난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운석이 충돌할 때의 충격은 전 지구의 모든 핵무기를 일시에 폭발시키는 충격의 1만 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산하였다. 그들은 운석이나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여 이리듐이 풍부한 지층이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대규모 생물 멸종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lt;/P&gt;
&lt;P align=justify&gt;알바레스가 처음 이 주장을 한 이래, 세계 곳곳에서 K-T 경계 면의 이리듐 지층이 보고되었다. 지구 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 글렌(William Glen)이 1994년에 출간한 &lt;대멸종 논쟁&gt;(The Mass Extinction Debates)에 따르면 100여 곳의 육상 퇴적층과 해양 퇴적층에서 K-T 경계 면이 확인되었다. 캐나다 알버타 주 레드디어리버 계곡(Red Deer River Valley-Huxley Area)과 캘거리 인근에서도 발견되고, 미국 뉴멕시코의 레이튼(Raton)에서도 발견되었다. 이처럼 곳곳에서 K-T 경계 면이 발견된다는 것은 운석 충돌로 인한 대격변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글렌에 따르면 1993년까지 K-T 경계 면의 발견과 관련된 논문과 책이 무려 2,500개 이상 출간되었다. 그는 소행성 충돌 가설은 지구과학계에 1960년대 판구조론 혁명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했다.&lt;/P&gt;
&lt;P align=justify&gt;그러면 이런 지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아쉽게도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 교회에서는 지구 역사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소위 젊은 지구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구와 우주의 역사는 6000년 내외이고 지구상에 일어난 대규모 멸종은 4~5000년 전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뿐이다. &lt;/P&gt;
&lt;P align=justify&gt;이 주장에 따르면 공룡도 사람과 더불어 살았고, 노아가 이들을 방주에 태웠을 것으로 가정해 노아 방주의 크기를 계산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 그리스도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에 이런 아마추어리즘이 온 교회를 뒤덮게 되었고, 한국 교회는 과학자 공동체에서 잘 밝혀진 사실들조차 ‘비성경적’ 혹은 ‘반성경적’이라고 정죄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1000만에 가까운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공룡조차 상대하기에 버거운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왜 우리 교회가 이런 지적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이원론적 세계관과 이로 인한 아마추어리즘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us/news/photo/200911/1588_3198_1030.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해저 시추를 통해 운석 속에 포함된 이리듐이 발견되는 지층의 생성 연도가 6498만 년 전이라고 밝혀지면서 이 운석공이 바로 중생대 말기의 대멸종을 초래한 흔적임이 최종 확인되었다.&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3 height=10&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이원론과 지적 아마추어리즘에 갇힌 한국 교회&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첫째, 이원론적인 사고로 인해 학문적 재능이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영적인’ 직업으로 도피해 버렸고,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기독 지성인들조차 피조 세계 연구에 있어 학문적으로 치열하게 천착하지 못하고 초자연이라는 방공호로 숨어 버렸다. 우주를 설명함에 있어서 초자연을 인정하지 않으면(도킨스처럼) 지적인 지평이 극도로 제한되지만 반대로 초자연에 갇히면 지적인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lt;BR&gt;&lt;BR&gt;피조 세계의 신비를 초자연이란 말로 덮어버리고 지적인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초자연은 더 이상 신앙의 길이 아니라 지적 게토의 첩경이 될 수밖에 없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창조 연대 문제이다. 지구와 우주 연대와 관련하여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데이터들을 모두 부정하고 하나님이 6000년 전에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우주를 창조했다고 고집한다면 공룡은 앞으로도 한국 교회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존재로 남을 것이다.&lt;/P&gt;
&lt;P align=justify&gt;둘째, 이런 이원론적 사고는 결국 과학적 활동에서 아마추어리즘의 번성으로 이어졌다. 전문가 그리스도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동안 해당 분야와는 별 관련이 없는 ‘열정 있는’ 딜레탕트들이 기독교에 대한 과학적 변증의 전면에 나서 주류 학계에서 거의 증명이 된 사실들조차 부정하는 아마추어의 ‘용맹’을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K-T 경계 멸종에 대한 입장이다.&lt;/P&gt;
&lt;P align=justify&gt;버클리 팀이 제안한 소행성 충돌설은 몇몇 다른 이론들에 의해 수정·보완되고 있기는 하지만 칙술룹 운석을 비롯하여 지구상에 크고 작은 수많은 운석이 떨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젊은 지구론자들은 수많은 충격 구조들이 운석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화산과 같은 국부적 변성작용에 의해서는 생성되지 않는 충격 석영의 다중 평면 단구 등 여러 증거도 무시하고 화산 폭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은 근래의 화산 연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화산은 아무 데서나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북미주 서부 지역과 같은 섭입대(subduction zone),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같은 열점(hotspot), 아이슬란드와 같은 해저산맥 확장 등이 있는 곳에서 생긴다. 운석공이 발견되는 많은 지역은 화산과는 무관하다. &lt;/P&gt;
&lt;P align=justify&gt;예를 들어 캐나다 허드슨 베이(Hudson Bay)를 둘러싸고 있는 800만 제곱킬러미터의 방대한 캐나다 순상지(Canadian Shield)는 선캄브리아기 변성암 지대로서 수십억 년 동안 매우 안정된 지형을 갖고 있다. 화산과는 무관한 지역이지만 이곳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운석공이 발견되고 있다. 직경 100Km에 이르는 마니쿠아간 운석공이나 직경이 각각 26, 36Km인 동, 서 클리어워터 운석공이 대표적인 예다. &lt;BR&gt;&lt;BR&gt;칙술룹 운석공을 비롯한 수많은 운석공들이 소행성 충돌로 인한 것이라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거의 이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해당 분야와는 거리가 먼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화산 폭발 운운하면서 대중 강연을 다니는 아마추어 기독 과학자들의 캠페인이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공룡은 한국 교인들에게 버거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lt;/P&gt;
&lt;P align=justify&gt;셋째, 이원론적 사고는 성경 연구에서의 아마추어리즘으로도 이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해 성경을 주셨지만 젊은 지구론자들이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주신 것처럼 확대해석함으로써 온갖 문제가 생기고 있다. 성경은 창조 연대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젊은 지구론자들은 마치 성경이 하나님께서 6000년 전에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자요 진화론자인 것처럼 매도한다. &lt;BR&gt;&lt;BR&gt;국제적으로 수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이런 성경 해석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지만 젊은 지구론자들은 이들의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도 역시 아마추어리즘의 '용맹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성경의 용도와 목적을 무시하고 치우친 신학의 틀 속에서 성경이 6000년 우주 연대를 선언한다고 고집한다면 공룡은 앞으로도 우리 교회의 버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000080&gt;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000080&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lass=y_title_t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60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y_title_b&gt;&lt;SPAN class=e_yellow_f&gt;
&lt;P align=justify&gt;양승훈 교수는&amp;nbsp;경북대 사범대 학사, KAIST 물리학과(MS, PhD), 휘튼대학 신학과(MA), 위스콘신대학 과학사학과 석사를 마치고 경북대 사범대 물리교육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lt;기독교적 세계관&gt;, &lt;창조와 격변&gt; 외 22권의 저서와 71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lt;A href=&quot;http://www.view.edu/&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http://www.view.edu&lt;/FONT&gt;&lt;/U&gt;&lt;/A&gt;)&lt;/P&gt;
&lt;P align=justify&gt;* 이 글은 &lt;복음과상황&gt;에 실린 글입니다.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lt;/P&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이명구 기자: 언덕교회 선교 심포지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31"/>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1</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7T02:00:25Z</updated>
	    <published>2009-11-07T02:00: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뉴스엔조이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U&gt;언덕교회 선교 심포지엄&lt;/U&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입력 : 2009년 10월 31일 (토) 22:30:48 [조회수 : 2009]&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이명구 ( &lt;A title=agape22nd href=&quot;javascript:welcometex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newsnjoy.co.kr/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기자에게 메일보내기&lt;/FONT&gt;&lt;/SPAN&gt;&lt;/U&gt;&lt;/A&gt; )&amp;nbsp; &lt;/FONT&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newsnjoy.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TD&gt;&lt;/TR&gt;
&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보통의 한국교회는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총동원 주일'이나 '전도 대잔치'라고 이름 붙여진 행사가 봄과 가을마다 있다. 전도 활동을 지원하는 세미나를 하는 교회도 많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큰 차이는 없다. 교단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몇 백만 명을 넘기자는 배가 운동을 교단마다 하고 있다. &lt;BR&gt;&lt;BR&gt;언덕교회(박득훈 전임목사)는 어린이까지 합쳐도 200명이 채 안 되는 교회다. 교회 크기에 비해서 언덕교회는 유명한 편이다. 작년 MBC '100분 토론'에 박득훈 목사가 패널로 출연한 이후 기독교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언덕교회 홈페이지는 방문자가 폭주해 다운되기도 했다. 방송을 보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이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lt;BR&gt;&lt;BR&gt;언덕교회가 10월 25일 선교 심포지엄을 열었다.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전도 폭발'이나 '전도 전략 세미나' 같이 전략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전도 자체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인식을 전환하려는 취지였다. &lt;BR&gt;&lt;BR&gt;언덕교회 선교부장 이용관 집사는 &quot;막상 '선교'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는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생각하기 쉽다. 특히 언덕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은 이런 생각 때문에 언덕교회는 선교에 관심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quot;며, 이런 분들에게 선교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lt;BR&gt;&lt;BR&gt;&lt;/FON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
&lt;TD align=middle&gt;&lt;FONT face=굴림&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co.kr/news/photo/200910/28725_25530_3816.jpg&quot;&gt;&lt;/FONT&gt;&lt;/TD&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 face=굴림&gt;▲ 언덕교회 선교부가 '선교하면 생각나는 것'을 조사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lt;/FONT&gt;&lt;/TD&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face=굴림&gt;이를 위해서 언덕교회 선교부는 1년에 2회 선교에 관한 책을 선정해 독서 토론회를 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엔도 슈샤쿠의 &lt;침묵&gt;을 함께 읽었고, 후반기에는 짐 월리스의 &lt;회심&gt;을 읽고 공부할 예정이다. 또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청년아카데미,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현대기독교아카데미 등 언덕교회에서 후원하는 사회 선교 단체들이 직접 교회를 찾아와 자기 단체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번 선교 심포지엄도 선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다. &lt;BR&gt;&lt;BR&gt;언덕교회에서 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선교부와 사회복지부이다. 선교부는 특히 사회 선교와 한국교회 현안에 대해 공부하며 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인식 전환에 주력한다. 사회복지부는 교회 내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지역 봉사 및 후원에 집중하고 있다. &lt;BR&gt;&lt;BR&gt;교회 재정의 상당 부분을 외부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교회 예산의 20~25% 정도를 선교와 사회 복지에 사용했지만, 올해에는 30%까지 늘리기로 결의하고 이를 지켜오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일 예배를 한 후에 화곡동 교남어린이집, 마포 재가노인복지센터 등을 찾아가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lt;BR&gt;&lt;BR&gt;&lt;/FON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
&lt;TD align=middle&gt;&lt;FONT face=굴림&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co.kr/news/photo/200910/28725_25535_4819.jpg&quot;&gt;&lt;/FONT&gt;&lt;/TD&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 face=굴림&gt;▲ 선교 심포지엄에 참석한 언덕교회 교인들이 집중해서 경청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lt;/FONT&gt;&lt;/TD&gt;
&lt;TD width=10&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lt;FONT face=굴림&gt;&amp;nbsp;&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P&gt;
&lt;P&gt;
&lt;TABLE class=y_title_t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60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y_title_b&gt;
&lt;P align=justify&gt;&lt;SPAN class=&quot;y_title_fb &quot;&gt;&lt;SPAN class=&quot;y_title_f &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 5mm; FONT-SIZE: 10pt&quot;&gt;&lt;FONT color=#333399 face=굴림&gt;&lt;STRONG&gt;&quot;우리 교회의 선교를 다시 생각한다&quot; &lt;BR&gt;언덕교회, 선교 심포지엄 열고 교회의 선교 활동 고민 &lt;/STRONG&gt;&lt;/FON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y_title_t height=1&gt;&lt;SPAN&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y_title_b2&gt;
&lt;P align=justify&gt;&lt;SPAN class=&quot;y_title_f &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 5mm; FONT-SIZE: 10pt&quot;&gt;&lt;FONT color=#000000 face=굴림&gt;&quot;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선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 틀린 건 아닐까&quot;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언덕교회 선교 심포지움은 시작됐다. &lt;BR&gt;&lt;BR&gt;언덕교회 교인들은 한국교회의 전도 활동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을 반성하고, 언덕교회의 선교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lt;BR&gt;&lt;BR&gt;언덕교회 선교부는 심포지움을 준비하면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128명의 교인들이 설문에 응답했다. 교인들은 언덕교회에 출석하기 전에는 '노방전도'와 '개인 전도', '중보 기도' 등을 위주로 선교 활동을 했지만, 언덕교회에 출석한 이후에는 '기독교 시민 단체 지원'과 '사회봉사 단체 지원 활동', '성경 공부', '공의로운 정치를 위한 참여와 관심' 등의 선교 활동을 주로 했다고 답했다. 또 교인들은 언덕교회가 '해외 선교'나 '복음 전도'보다는 '사회참여'와 '구제·봉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선교부는 &quot;교인들의 선교에 대한 인식이 언덕교회에 와서 변했다&quot;고 분석했다.&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co.kr/news/photo/200911/28725_25537_1456.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박득훈 목사는 복음 전도와 사회 갱신의 선교 개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박득훈 담임목사가 '성경이 말하는 선교'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박 목사는 복음 전도를 강조한 좁은 의미의 선교와 사회적 갱신을 강조한 넓은 의미의 선교의 개념을 구분하고, 이 두 가지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선교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70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co.kr/news/photo/200911/28725_25538_161.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양진일 목사는 &quot;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교&quot;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이어서 양진일 목사(가향공동체), 송강호 교육원장(개척자들), 정정훈 공동대표(연구 집단 카이로스)가 발제를 했다. 발제자들은 한국교회의 선교 활동에 문제가 있다며 선교에 대한 인식 전환을 주장했다. &lt;BR&gt;&lt;BR&gt;양진일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가 &quot;복음을 살아내는 신앙인과 교회의 부재 때문이다&quot;고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quot;세속의 가치에 지배받거나 굴복하지 않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1차적 선교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교다&quot;고 했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70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co.kr/news/photo/200911/28725_25539_1622.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송강호 교육원장은 &quot;하나님과 우리 자신, 이웃들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 곧 선교&quot;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송강호 교육원장은 &quot;묻지도 않고 가입을 요구하는 보험처럼 복음을 전하는 전도 방식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거품화 현상을 보여준다. 협박하고 겁주는 전도가 아니라, 자유롭게 판단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전해야 한다&quot;고 했다. 또 &quot;예수는 약하고 가난한 자, 억눌린 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역했다. 하나님과 우리 자신, 이웃들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 곧 선교다&quot;고 했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70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co.kr/news/photo/200911/28725_25540_1643.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정정훈 공동대표는 &quot;복음은 폭력의 자리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자리에 있을 때 제 모습을 찾을 것&quot;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명구&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정정훈 공동대표는 &quot;비기독교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변화시켜야 할 존재로만 그들을 대하고 있다. 이미 주류 세력이 되어버린 기독교가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논리로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quot;라고 했다. 이어 &quot;1세기 초대교인들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이었다. '만물의 찌꺼기'라고 자신을 고백한 바울처럼 복음은 폭력을 휘두르는 힘의 자리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자리에 있을 때 제 모습을 찾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포기할 수 없다면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quot;고 비판했다. &lt;BR&gt;&lt;BR&gt;발제가 끝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언덕교회 교인 김동규 씨는 발제자들이 선교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 내부의 자정과 기독교 외부와의 관계로 나누고 있다고 지적하며, 선교에 대한 문제 해결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lt;BR&gt;&lt;BR&gt;발제자들은 한국교회의 선교 활동이 내부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외부적인 모든 사역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득훈 목사는 &quot;복음 때문에 자기 자신이 변한다면 당연히 외부의 변화를 위해 힘쓸 것이다. 진정 예수를 알고 만났다면, 우리가 밖으로 어떻게 안 나갈 수 있겠는가&quot;라며 선교는 교회의 자기 갱신부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lt;/FONT&gt;&lt;/SPAN&gt;&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일묵상] 11/7 토: 살리기 위해 닫으시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30"/>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30</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7T01:39:12Z</updated>
	    <published>2009-11-07T01:39: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1월 7일 토요일&lt;/STRONG&gt;&lt;/P&gt;
&lt;P&gt;창세기 7장 6-16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amp;nbsp; 창 7:16&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살리기 위해 닫으시니라&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물이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물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씁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도 홍수나 허리케인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홍수나 허리케인은 건물이나 다리, 들판을 휩쓸어가버립니다. 노아의 시대에도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물을 피하지 못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은 깊은 바다와 가장 심한 폭풍우도 견딜 수 있도록 방주를 설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 때문에, 노아와 그의 가족과 짐승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파멸의 물이 방주에 침입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문을 닫으시면서 직접 방주를 단단히 잠그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외의 모든 곳에는 죽음과 멸망뿐이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의 힘과 피난처이신 하나님은 또 하나의 흔들림없는 요새를 제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상세한 설계명세서에 따라 건설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죄의 파괴적인 물결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교회가 누추하고 물이 새는 배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여러분과 제가 교회를 설계하고 건설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들은 노아도 조롱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죄의 사나운 급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역시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조류나 치명적인 쓰나미를 견딜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설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수백년 동안 죄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서툰 선원들에 의해 경영되어 왔기 때문에, 이 배는 세상적으로 볼 때 매력적인 아름다움이나 엄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배를 세우신 분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확실하게 그 문을 봉하시고 그&amp;nbsp; 안에 있는 모든 자를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님, 저희에게 죄의 풍랑으로부터 피할 곳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구원해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하나님 나라와 공적 신학/ 하나님 정치,인간의 정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29"/>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29</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6T15:13:35Z</updated>
	    <published>2009-11-06T15:13:3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이 형기, &lt;STRONG&gt;&lt;U&gt;하나님 나라와 공적 신학&lt;/U&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U&gt;&lt;/U&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2 width=154 bgColor=#d8ddd4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quot;window.open ( '/common/image.php?path=http%3A%2F%2Fwww.isbnshop.com%2Fimg_server%2F5%2F5%2Forg%2F327655_org.jpg' , '' , 'left=20 , top=20 , width=200 , height=300' )&quot; onerror=&quot;JavaScript:ISBNJS_default_image( this , 150 )&quot; src=&quot;http://www.isbnshop.com/img_server/5/5/150/327655_150.jpg&quot; width=15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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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middle&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TOP: 4px&quot; align=middle&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quot;window.open ( '/common/image.php?path=http%3A%2F%2Fwww.isbnshop.com%2Fimg_server%2F5%2F5%2Forg%2F327655_org.jpg' , '' , 'left=20 , top=20 , width=200 , height=300' )&quot; height=17 alt=&quot;이미지 보기&quot; hspace=5 src=&quot;http://dc.isbnshop.com/images/popimg_icon.gif&quot; width=17 align=absMiddle&gt;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 
&lt;TABLE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713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eight=23 src=&quot;http://dc.isbnshop.com/images/dan_dot.gif&quot; width=23 align=absMiddle&gt;&lt;FONT color=#0f468a size=3&gt;&lt;B&gt;이 책은&lt;/B&gt;&lt;/FONT&gt; &lt;/TD&gt;&lt;/TR&gt;
&lt;TR&gt;
&lt;TD background=/images/detail_frame_dot.gif&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LEFT: 10px; PADDING-TOP: 10px&quot;&gt;'공적 신학’(a public theology)은 교회 밖의 영역인 세상과 국가를 공적신학의 대상영역으로 여기고, 이 대상영역에서 일어나는 '공적이슈들’(public issues)을 신학적으로 논하는 것이다. 예컨대 현 한국적인 상황에서 '교회와 국가관계’, '남북의 대치상황’, '남남갈등’, '시장경제의 지구화로 인한 양극화’, '다문화 다민족사회’, '개발과 환경파괴’, '교육문제’ 등이 공적신학이 다루어야 할 신학적인 이슈들이다. 그리고 창조세계 역시 인류 공동체의 책임 영역이기도 하고, 교회가 책임져야 할 신학의 공적인 영역 대상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신학 전반에 있어서 '종말론’이 크게 부각되었다고 하는 신학사적인 과정을 중요시하면서, 윌겐 몰트만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에 비추어서 교회와 세상의 공적책임을 논하고 있다. 제1부에서 “공적신학이란 무엇인가?”를, 제2부에서 교회의 공적책임을 위한 신학적인 당위성을, 제3부에서 본회퍼 󰡔윤리학󰡕에 있어서 “종말적인 것”과 “종말 이전 것”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제4부에서 몰트만에 있어서 메시아왕국과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본 '교회와 세상’을, 그리고 제5부에선 벤, 아더톤, 씨먼, 그리고 스택하우스의 공적신학을 몰트만의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평가하고 있다. &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3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이 책은/끝--&gt;&lt;!--저자소개/시작--&gt;
&lt;TABLE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713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eight=23 src=&quot;http://dc.isbnshop.com/images/dan_dot.gif&quot; width=23 align=absMiddle&gt;&lt;FONT color=#0f468a size=3&gt;&lt;B&gt;저자소개&lt;/B&gt;&lt;/FONT&gt; &lt;/TD&gt;&lt;/TR&gt;
&lt;TR&gt;
&lt;TD background=/images/detail_frame_dot.gif&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LEFT: 10px; PADDING-TOP: 10px&quot;&gt;•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B.A) •장로회신학대학 신대원(Th.B) •장로회신학대학 대학원(Th.M) •독일 뮌스터대학 신학부 •미국 하버드대학 신학부 (Th.M) •미국 드류대학 대학원(Ph.D) •미국 뉴욕 엠헐스트 한인장로교회 목사 •현재, 장로회신학대학 역사신학 명예교수·NCCK 신앙과 직제 위원, 공적신학과 교회 연구소 소장, 바른 교회 아카데미 연구위원회 위원장. ❚저서 󰡔간추린 세계 교회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1. 󰡔알기 쉽게 간추린 몰트만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이형기 외 3인. 󰡔기독교 사상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기독교신학󰡕.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3. 󰡔역사 속의 종말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하나님 나라와 교회󰡕. 서울: 한들 출판사, 2005. 󰡔나의 신학수업에 있어서 패러다임 이동󰡕. 서울: 한들 출판사, 2005. 󰡔역사 속의 내러티브 신학󰡕. 서울: 한들 출판사, 2005.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경읽기󰡕. 서울: 한들 출판사, 2006.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본 몰트만 신학󰡕. 한들 출판사, 2006. 󰡔하나님의 선교󰡕. 한국학술정보(주), 2008.&lt;BR&gt;외 다수. &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3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저자소개/끝--&gt;&lt;!--목차/시작--&gt;
&lt;TABLE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713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eight=23 src=&quot;http://dc.isbnshop.com/images/dan_dot.gif&quot; width=23 align=absMiddle&gt;&lt;FONT color=#0f468a size=3&gt;&lt;B&gt;목차&lt;/B&gt;&lt;/FONT&gt; &lt;/TD&gt;&lt;/TR&gt;
&lt;TR&gt;
&lt;TD background=/images/detail_frame_dot.gif&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LEFT: 10px; PADDING-TOP: 10px&quot;&gt;서 론 &lt;BR&gt;&lt;BR&gt;제1부 공적신학이란 무엇인가?&lt;BR&gt;&lt;BR&gt;Ⅰ. 공적신학의 이해와 접근방법의 역사 &lt;BR&gt;Ⅱ. 공적영역들의 공적인 이슈들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이해 &lt;BR&gt;&lt;BR&gt;제2부 공적신학의 당위성&lt;BR&gt;&lt;BR&gt;Ⅰ. 교회와 세상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lt;BR&gt;Ⅱ. 하나님의 선교 &lt;BR&gt;Ⅲ. 생명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 &lt;BR&gt;&lt;BR&gt;제3부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윤리학󰡕에 나타난 “종말적인 것”과 “종말 이전 것”의 변증법적인 관계&lt;BR&gt;&lt;BR&gt;Ⅰ.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종말적인 말씀’이다 &lt;BR&gt;Ⅱ. '종말적인 것’을 위한 길 준비 &lt;BR&gt;&lt;BR&gt;제4부 몰트만 신학에 있어서 미래지향적인 보편적 종말론에서 본 '교회와 세상’&lt;BR&gt;&lt;BR&gt;A. 󰡔희망의 신학, 1964󰡕&lt;BR&gt;&lt;BR&gt;B.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lt;BR&gt;&lt;BR&gt;C. 󰡔오시는 하나님: 기독교적 종말론󰡕(1995) &lt;BR&gt;Ⅰ. “종말론적인 천년왕국”과 “영원한 새 창조의 세계” &lt;BR&gt;Ⅱ. 최후심판과 그것의 두 가지 결과 &lt;BR&gt;Ⅲ. 새 하늘 새 땅&lt;BR&gt;Ⅳ. 영광&lt;BR&gt;&lt;BR&gt;D.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본 '교회와 세상’ &lt;BR&gt;Ⅰ.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본 교회 &lt;BR&gt;Ⅱ. 하나님 나라에 비추어 본 세상&lt;BR&gt;&lt;BR&gt;E. 몰트만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 &lt;BR&gt;Ⅰ. 󰡔평화, 정의의 열매󰡕(1988) &lt;BR&gt;Ⅱ. 󰡔혁명, 종교, 그리고 미래󰡕(1989) &lt;BR&gt;Ⅲ. 󰡔하나의 정의로운 미래를 창조하며󰡕(1989) &lt;BR&gt;&lt;BR&gt;제5부 하나님 나라에 비추어 본 공적신학들&lt;BR&gt;&lt;BR&gt;A. 벤(Robert Benne)의 공적인 신학 &lt;BR&gt;Ⅰ. 미국기독교 역사 속에서의 공적신학 &lt;BR&gt;Ⅱ. 벤의 역설적인 비전 &lt;BR&gt;&lt;BR&gt;B. 아더톤(John Atherton)의 공적신학 &lt;BR&gt;Ⅰ. 글로벌 맥락을 위한 하나의 공적신학: 방법론 &lt;BR&gt;Ⅱ. 방법론 혹은 글로벌 맥락을 위한 공적신학의 적용의 문제 &lt;BR&gt;&lt;BR&gt;C. 씨먼의 공적신학과 󰡔WARC와 로마가톨릭교회의 양자 간 대화󰡕 &lt;BR&gt;Ⅰ. 씨먼의 공적신학 &lt;BR&gt;Ⅱ. 󰡔WARC와 로마가톨릭교회의 양자 간 대화󰡕 &lt;BR&gt;&lt;BR&gt;D. 스택하우스의 공적인 신학 &lt;BR&gt;Ⅰ. 전체적인 개괄 &lt;BR&gt;Ⅱ. 공적신학의 규범들과 원칙들 &lt;BR&gt;&lt;BR&gt;나오는 말&lt;BR&gt;&lt;BR&gt;A. 공적신학의 지평으로서 미래지향적인 하나님 나라&lt;BR&gt;&lt;BR&gt;B. 공적신학들의 퍼레이드가 아니라 다양성 속의 통일성 &lt;BR&gt;Ⅰ. '화해의 복음’ &lt;BR&gt;Ⅱ. 교회 &lt;BR&gt;Ⅲ.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본 '교회와 세상’의 존재목적과 존재이유&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기문, &lt;STRONG&gt;&lt;U&gt;&lt;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gt;&lt;/U&gt;&lt;/STRONG&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face=바탕 color=#b53d3d size=3&gt;하나님 나라와 인간의 정치&lt;BR&gt;&lt;/FONT&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 color=#808080&gt;&lt;FONT face=Tahoma&gt;&lt;FONT class=match&gt;2009-05-08 19:16:38&amp;nbsp;&amp;nbsp;&amp;nbsp;read : 156 &lt;/FONT&gt;&lt;BR&gt;&lt;BR&gt;&lt;IMG style=&quot;WIDTH: 575px&quot; hspace=5 src=&quot;http://179.0691.org/usr_img/news/1020/head_1541.jpg&quot; width=919 border=0&gt;&lt;/FONT&gt;&lt;/FONT&gt;&lt;/FONT&gt; &lt;FONT color=black&gt;&lt;/P&gt;
&lt;P&gt;이 땅의 혼란스러운 정치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며 &lt;BR&gt;&lt;BR&gt;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lt;BR&gt;(본 서평은 크리스챤북뉴스에 게재된 것입니다. &lt;A href=&quot;http://www.book-news.co.kr/&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http://www.book-news.co.kr&lt;/FONT&gt;&lt;/U&gt;&lt;/A&gt; ) &lt;BR&gt;&lt;BR&gt;&lt;BR&gt;복음과 상황에서 연재되었던 성기문 교수의 글이 정리되어 책으로 나왔다. &lt;BR&gt;이 책의 제목은 &quot;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quot;이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영문 제목은 조금 다른데 번역해 보면 &quot;하나님의 정치와 사람의 정치에서의 갈등과 부조화&quot;이다. 필자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첫번째는 이 책의 제목이 엘룰의 &quot;하나님의 정치, 사람의 정치&quot; 라는 책 제목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도 서문에서 엘룰에 대해 언급한다. 엘룰의 책은 열왕기하를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에 대해서 논하는 책이다. &lt;BR&gt;그러나 좀더 본질적인 의미로는 칼바르트가 말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적 결정 아래에서의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개념을 열왕기하를 통해 확인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엘룰은 이 책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무용성을 거듭 강조한다. 엘룰의 책은 열왕기하의 개론서도 아니며 주석서도 아니며, 단지 저자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열왕들을 예로 들어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이다. 이에 반해 성기문 교수의 본 책은 다루는 본문과 내용면에서 차이가 있다. 엘룰의 책이 열왕기하의 엘리야와 엘리사의 활동 시대 그 주변의 왕들과 신하들을 다루었던 것에 반해 성기문 교수의 책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라는 좀더 폭넓은 본문을 다루고 있다. 엘룰의 책이 역사를 배경으로 역사 외의 얘기에 집중한다면 이 책은 사사기 이후의 왕권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들을 내러티브 방식에 의해 살피고 분석한 책이다. 또한 이 책은 내러티브 방식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보이기 위한 책이다. 두 책 모두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엘룰의 책은 개인적인 분석의 성향이 강한 반면에 성기문 교수의 책은 왕권 정치를 둘러싼 해석과 메세지를 찾고자 하는 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두 책 모두 궁극적으로는 모든 정치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이끌어가심을 결론으로 내고 있다는 유사점이 있다.&lt;BR&gt;&lt;BR&gt;책의 내용과 특징&lt;BR&gt;&lt;BR&gt;근래에 내러티브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과 관련된 책들이 여러권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저자의 본 책은 매우 흥미를 준다. 이 책 자체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대한 개론서의 역할이나 학술적인 깊이를 주기 위한 책은 아니라고 저자는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대한 개론서로서의 도움을 준다고 평해도 될 것 같다. 저자는 크게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중심으로 내용을 구분한다. 사무엘서에서는 한나와 엘리 가문 그리고 중요한 인물 사무엘을 다룬다. 그러나 본서의 주제가 정치에 대한 것이기에 사무엘이 깊이있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이후로 사울왕과 다윗에 대해서 저자는 다룬다. 열왕기에서는 솔로몬과 분열된 왕국의 타락한 왕들에 대해서 다룬다.&lt;BR&gt;&lt;BR&gt;이 책의 첫번째 들었던 특징은 책의 내용에 앞서 구성부분이다. 목차는 독자들이 읽기 쉽게 분류가 잘 되어있고, 각 장의 내용이 너무 길지 않게 배려해서, 독자들이 읽는 데에 있어서의 지루함을 없애주었다. 사실 지루하지도 않은 책이다. 재밌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볍다는 얘기는 아니다. &lt;BR&gt;&lt;BR&gt;두번째 특징은 책 중간 중간에 지도가 나와 있어서 당시의 지리적인 이동 상황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본문 내용이나 중요 주제들을 표를 통해 깔끔하게 분석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들은 저자가 내용을 정리하는 데 매우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며 독자로서 읽을 때 매우 도움이 되었다. &lt;BR&gt;&lt;BR&gt;세번째 특징은 나름대로 주석이 많이 있는데 미주로 처리하지 않고 각주로 처리한 점이다. 주석 부분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 필자와 같이 주가 달린 것을 좋아하는 사람, 저자의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고 이후 관심가는 내용을 살펴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긴 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점도 있었다. 그것은 필자의 생각에 이 책의 독자 대상이 전문적인 신학자들이 아니고 일반 평신도 또는 초보 신학생들일 듯 싶은데, 주석에서 간단하게 특정 저자의 이름 또는 책만을 언급한 경우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어떤 주석에는 자세한 설명이 큰 도움을 주었는데 이 경우는 본문의 내용 이해를 도와주는 보조 설명이었을 경우였고 단순하게 특정 유명 학자의 책만을 언급한 경우에는 내용 파악에 별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국내 서적이 아니라 외국 원서를 언급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쉽게 책을 구입하기가 어렵다는 느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자들의 책을 언급할 때는 간단하게나마 각 학자들의 견해를 설명해 주면 더 좋을 것 같다.&lt;BR&gt;&lt;BR&gt;네번째 특징은 다소 아쉬운 부분인데 본문에서 일부 오타가 자주 나오는 점이다. 주로 조사부분에 오타가 많이 있는데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용 파악에는 큰 어려움도 없고 책의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또한 전체적인 책 편집 상태도 매우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lt;BR&gt;&lt;BR&gt;다섯번째 특징은 저자가 해당 역사서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전형적인 선과 악,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 등의 대립적인 극단적 해석을 버리고 선하면서도 악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사무엘과 다윗, 솔로몬 그리고 각 왕들을 이해하며 해석했다는 데 있다. 다윗에 대한 전형적인 극찬 일변도의 해석보다는 전체 문맥과 본문 그리고 성경 저자들의 의도를 인식하면서 적절하게 비판한 내용이 독자들에게 유익함을 주리라 기대된다. 이와 같은 좀더 역동적인 해석과 메세지 추출은 성경을 건성으로 보는 이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가지 남는 인상은 전체적으로 본문의 인물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부정적인 면들에 관심을 많이 가진 점들이 보이며 때로는 선한 의도로 보기 보다는 정치적 의도 등으로 부정적으로 본 면들이 없지 않아 있는 듯 싶다. 아마도 저자의 결론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한 인간의 신앙적 위대함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역사를 끌고 가시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인상인 듯 싶다. 하나님이 강조되면 사람이 무시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한쪽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껴지며 저자도 그점을 중간 중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lt;BR&gt;&lt;BR&gt;결론&lt;BR&gt;&lt;BR&gt;이 책은 전체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역사서 자체가 재미있는 내용이기도 하겠지만 각 인물들을 통해 전개되는 역사적 상황과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이 읽는 이로 하여금 책에 집중하게 해준다. 또한 저자의 꼼꼼한 글쓰기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일부 저자의 주장은 책 전체적으로 강하게 주장되지 못한 점이 있는 듯 싶은데 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내러티브로 책을 읽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필자가 이 분야에 문외한이라서 잘 평가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끝으로 저자의 결론 부분에 나온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lt;BR&gt;&lt;BR&gt;&quot;(274페이지) 그렇다면 과연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을까? 필자가 볼 때, 그 희망에는 비록 불균형적이긴 하지만, 이중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즉, 인간들의 죄악과 불의 가운데서도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성도들이 힘써 실행해야 할 윤리적 기준들도 발견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민족 복음화와 교회의 수적 급성장이라는 화려한 외양의 배후에 교회 건물의 성역화, 담임 목회자의 신격화, 교회 직분의 매관 매직을 통한 개교회 이기주의 그리고 기독교의 권력화와 게토화라는 총체적인 부패 현상이 무한 확대된 상태다. 그로 인해서 교회 스스로와 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복음외 왜곡과 세속적 타협을 양산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회와 복음에 대한 좌절과 탄식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quot;&lt;BR&gt;&lt;BR&gt;이 책을 쓴 저자의 수고를 생각하면서, 책을 통해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과 인물들에 대해 이해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안타깝게 살아간 인생의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 그리고 이 땅의 혼란스러운 정치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며 관심을 가지고 싶다.&lt;/P&gt;&lt;/FONT&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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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신사도 운동 등 예언운동은 비성경적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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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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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01:01:13Z</updated>
	    <published>2009-11-06T01:01:1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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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미주 아멘넷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 bold 16pt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1px&quot;&gt;“신사도운동 등 다양한 예언운동은 ‘비성경적’”&lt;/SPAN&gt; &lt;BR&gt;&lt;IMG vspace=3 src=&quot;http://www.usaamen.net/news/pic/line.gif&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 10pt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0px&quot;&gt;2009/11/05 ㆍ추천: &lt;B&gt;0&lt;/B&gt; &amp;nbsp;ㆍ조회: 62 &amp;nbsp; &amp;nbsp; &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mouseover=&quot;balloon_on('본문추출',this,-20,0)&quot; onmouseout=balloon_off() onclick=&quot;OpenWin_variety('/news/board.php?board=datas&amp;command=body&amp;no=2013&amp;command=body&amp;no=2013&amp;body_only=y&amp;button_view=n','',800,600,10,10)&quot;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usaamen.net/news/skin_board/news/b_img/icons/small_print.gif&quot;&gt;&amp;nbsp; &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onmouseover=&quot;balloon_on('스크랩',this,-22,1)&quot; onmouseout=balloon_off() onclick=&quot;iwindow_OPEN('iwindow_scrap','scp','no=2013','width=120,height=170')&quot; align=absMiddle src=&quot;http://usaamen.net/news/skin_board/news/b_img/icons/scrap.gif&quot;&gt; &lt;/SPAN&gt;&lt;BR&gt;&lt;BR&gt;&lt;!-- 설문투표 --&gt;&lt;!--본문내용--&gt;&lt;SPAN style=&quot;FONT: 11pt/170%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0px&quot;&gt;“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일단의 사람들이 ‘사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에 대해서 1세기의 사도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나아가서 그 사도들을 불러서 위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lt;BR&gt;&lt;BR&gt;한국성경신학회 소속 장로교 신학자들이 피터 와그너로 대변되는 신사도운동 등 다양한 예언운동은 비성경적인 ‘불건전한 신앙운동’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COLOR: rgb(202,202,202); BORDER-TOP-COLOR: rgb(202,202,202); BORDER-RIGHT-COLOR: rgb(202,202,202); BORDER-LEFT-COLOR: rgb(202,202,202)&quot; onclick=imgSize_OPEN(this.src) border=1 src=&quot;http://usaamen.net/news/data/board/datas/file_in_body/1/28110o1.jpg&quot;&gt; &lt;BR&gt;▲지난 10월 한국HIM선교회와 WLI코리아 공동주최 컨퍼런스에서 피터 와그너가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미션&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오늘날도 사도가 있다’ 주장하는 것, 가장 심각&lt;/SPAN&gt;&lt;BR&gt;&lt;BR&gt;지난 2일 서울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열린 ‘한국성경신학회 신앙세미나’에서 발제에 나선 이승구 교수(합신대)와 최병규 박사(고신 유사기독교연구소 소장)는 ‘오늘날에도 직통계시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비진리성을 한 목소리로 고발했다.&lt;BR&gt;&lt;BR&gt;특히 이승구 교수는 예언운동의 문제점을 장로교 곧 개혁파 신학의 입장에서 ‘일반적 문제점’, ‘근원적 문제점’, ‘좀 더 심각한 문제’로 나눠 조목조목 지적했다.&lt;BR&gt;&lt;BR&gt;이 교수는 일반적인 문제점으로 △에베소서 4장 11절에 있지도 않은 ‘중보자’를 목사ㆍ교사ㆍ예언자ㆍ사도와 함께 교회의 5대 직분으로 언급하거나 △에베소서 1장17절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에게 제한시키는 등의 ‘결코 성경적이지 않은 성경해석의 자의성’을 꼽았다.&lt;BR&gt;&lt;BR&gt;근원적인 문제점으로는 ‘오늘날에도 예언자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가 직접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을, 좀 더 심각한 문제로는 ‘초대교회 사도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오늘날도 사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꼽았다.&lt;BR&gt;&lt;BR&gt;실제로 피터 와그너는 1999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2500명의 소위 예언자들과 예비 예언자들을 모아 ‘전국 예언자 학교’(The National School of Prophets)를 개최했다.&lt;BR&gt;&lt;BR&gt;또한 피터 와그너는 1999년부터 최소한 1년에 2회씩 ‘예언하는 장로들의 사도협의회’(The Apostolic Council of Prophetic Elders)를 개최하고, 자신이 사도로서 의장직을 맡고 있다.&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장로교 신학의 입장에서 이들의 주장은 ‘비성경적’&lt;/SPAN&gt;&lt;BR&gt;&lt;BR&gt;이에 이승구 교수는 이들의 문제점에 대해 장로교 신학 곧 개혁파 신학의 관점에서 차례로 반박했다.&lt;BR&gt;&lt;BR&gt;성경의 자의적 해석과 관련 이 교수는 “이들은 ‘성경적’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성경적이지 못하다”면서 “교회의 직분을 말할 때 성경 본문에 없는 ’중보자‘를 삽입하거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들에게 제한시키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lt;BR&gt;&lt;BR&gt;‘오늘날도 하나님의 직통계시가 예언자에게 임한다’는 주장과 관련 이 교수는 “개혁파 신학에서는 오늘날에는 선지자(예언자)가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며 “그러므로 장로교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비성경적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lt;BR&gt;&lt;BR&gt;특히 이 교수는 자신들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이들이 늘어놓는 ‘이 시대에는 예언의 양상이 많이 변했다’, ‘이 시대의 예언은 조건적이다’라는 변명에 주목했다.&lt;BR&gt;&lt;BR&gt;이와 관련 이 교수는 “‘구약시대 참 선지자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졌지만 이 시대에는 참 선지자의 예언도 꼭 성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들의 논의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당신이 선포하신 말씀을 바꾸신다’는 표현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사도시대의 교회와 우리 시대의 교회 구별해야&lt;/SPAN&gt;&lt;BR&gt;&lt;BR&gt;‘오늘날도 사도가 있다’는 주장과 관련 이 교수는 이들이 사도시대와 우리 시대의 구별을 하지 않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lt;BR&gt;&lt;BR&gt;이 교수는 “△사도시대의 교회는 사도들이 생존해 있던 교회인데 반해 우리 시대는 아니라는 점, △사도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가 여전히 주어지던 시대였던 데 반해 우리 시대는 주의 재림 때까지 더 이상 새로운 게시가 없는 시대라는 점, △사도시대의 이적과 기사들은 사도들을 통해 주시는 계시를 확증해 주는 사도적 이적인 데 반해 우리 시대의 이적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lt;BR&gt;&lt;BR&gt;그러나 이 교수는 “피터 와그너 등은 이런 차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자신이 일으키고 있는 성령운동을 훼방하는 ‘집단 종교의 영’으로 규정한 뒤 배후에 마귀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덧붙였다.&lt;BR&gt;&lt;BR&gt;이에 이 교수는 “우리들 시대에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충실하지 아니한 가르침들이 난무하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영적인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며 안타까움을 피력했다.&lt;BR&gt;&lt;BR&gt;이병왕 기자 ⓒ뉴스미션&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박지호 기자: 제이크 상병은 왜 이라크 친구를 쏘지 못했는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27"/>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27</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6T00:51:58Z</updated>
	    <published>2009-11-06T00:51:5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미주 뉴스엔조이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lt;STRONG&gt;&lt;U&gt;'제이크 상병'은 왜 '이라크 친구'를 쏘지 못했나 &lt;/U&gt;&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제이크, '참전 용사'서 '반전 운동가'로 거듭나다&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newsnjoy.us/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2009년 11월 04일 (수) 04:11:09 [조회수 : 195]&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박지호&lt;/FONT&gt;&lt;/SPAN&gt; (&lt;A title=&quot;박지호 기자에게 메일보내기&quot; href=&quot;javascript:welcometex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newsnjoy.us/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lt;U&gt; simpro&lt;/U&gt;&lt;/FONT&gt;&lt;/SPAN&gt;&lt;/A&gt; )&amp;nbsp; &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newsnjoy.us/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TD&gt;&lt;/TR&gt;
&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
&lt;P align=justify&gt;귀를 찢는 폭음이 천지를 흔들었다. 제이크(Jake Diliberto)가 동료들과 함께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을 순찰하던 중 로켓포 공격을 당했다. 제이크는 차에서 튕겨져 나와 땅바닥에 쓰러졌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머리통을 울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자, 쓰러져 있는 동료들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총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제이크는 본능적으로 총부터 더듬어 찾았다. 한두 걸음 거리에 떨어져 있는 총까지 기어가는 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총을 붙잡고, 서둘러 총구를 돌렸다.&lt;/P&gt;
&lt;P align=justify&gt;9·11 테러 직후,&amp;nbsp;제이크(Rethinking Afghanistan 공동 설립자)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담당하는 미 '26해병원정단'에 배속되어 이라크로 파병됐다. 할아버지는 1차 대전, 아버지는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 집안이다. 갑작스런 9·11 테러는 제이크의 애국심을 요동치게 했고, 테러를 응징하겠다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주저 없이 참여하게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제이크는 그가 다니던 교회의 격려와 축복 속에 전장으로 떠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기 시작해 2003년 이라크로 근무지를 옮기고 그해 말 전역했다. &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us/news/photo/200911/1582_3193_2530.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제이크(Jake Diliberto)가 동료들과 함께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을 순찰하던 중 로켓포 공격을 당했다.&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정보 수집 및 정찰이 제이크의 임무 중 하나였다. 이라크의 적 후방에 침투해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 정보를 얻으려면 친구를 만들어야 했고, 이라크 주민들과 어울리게 됐다. 러샤라는 8살짜리 여자아이와도 그렇게 가까워지게 됐다. 제이크는 러샤의 집에 들러 가족들과도 자주 시간을 보냈다. 러샤의 가족들이 문화적으로 무슬림이었지만,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인(동방정교회)이었기에 한층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많은 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었다. &lt;/P&gt;
&lt;P align=justify&gt;제이크가 순찰 도중 공격을 받았던 그 순간, 그를 공격했던 사람들 틈에 러샤의 아버지가 있었다. 제이크의 총구는 러샤의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다. 불과 몇 초였지만,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전쟁터가 제 아무리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이 충동질하는 곳이라지만, 친구를 쏠 순 없는 일이었다. 제이크는 총을 내려놓을&amp;nbsp;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미군 장갑차가&amp;nbsp;러샤의 아버지를 향해 불을 뿜었다. 러샤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lt;/P&gt;
&lt;P align=justify&gt;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러샤의 오빠인 아크무드가 뛰쳐나와 아버지가 들고 있던 총을 들었다. 아크무드가 제이크를 알아보는 데&amp;nbsp;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크무드 역시 제이크를 총구를 겨눴지만, 서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이윽고 다른 미군 저격수가 쏜 총알이 아크무드의 몸을 관통했다. 그는 아버지의 주검 곁에 맥없이 쓰러졌다. &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80&gt;&quot;군대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만든다. 나는 총을 쏘도록 끊임없이 훈련 받았지만, 그 순간 나는 총을 쏠 수 없었다. 그들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적이 아니라, 친구였다. 하지만 러샤의 어린 오빠는 내 눈 앞에서 죽어갔다. 이것이야말로 '미친 짓'(insane)이 아니고 무엇인가.&quot;&amp;nbsp;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us/news/photo/200911/1582_3189_1255.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제이크는 그들이 전쟁터로 갔다고 생각하지, 우리가 그들을 전쟁터로 보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풀러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제이크를 학교 앞 커피숍에서 만났다. 불거진 눈시울과 가늘게 떨리던 제이크의 손에서 당시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사건은 신앙과도 같았던 '정당한 전쟁'에 대한 제이크의 확고한 신념에 균열을 가져왔다. 그 균열은&amp;nbsp;여러 물음을 만들어냈다. 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눠야 했는가, 무엇이 그들을 우리를 향해 공격하도록 만들었는가. 예수를 따르도록 훈련받아야 할 그리스도인이, 사람을 죽이도록 강요받는 전쟁터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가.&amp;nbsp; &lt;/P&gt;
&lt;P align=justify&gt;제이크는 그 질문을 마음 한 구석에 묻어 둔 채, 제대 후 일리노이주립대학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가장 극단적인 정치 행위가 다름 아닌 전쟁'이기에 전공 수업에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이라는 데 동의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중동의 평화’,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갖가지 수식어를 내걸었지만, 이라크 전쟁은 이미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고 있었다.&amp;nbsp; &lt;/P&gt;
&lt;P align=justify&gt;그때까지만 해도 전쟁 지지자였던 제이크는 분노했다. 국가를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억압받는 이라크 민중의 자유를 위해서 죽음의 공포와 씨름했던 자신의 수고마저 조롱당하는 것 같았다. 제이크는 수업 시간에 전쟁에 대해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다른 학생들과의 또 한 번의 외로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05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us/news/photo/200911/1582_3191_1521.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제이크의 세계관을 변화시킨 자말 나사르 교수. (출처 : 일리노이주립대학 홈페이지)&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이런 제이크를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다. 자말 나사르 교수(정치학과)다. 그는 제이크를 만나 자신의 강의를 더 들어보라고 제안했다. 수업에 참석하기만 해도 학점을 후하게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달았다. 그는 자말 교수의 '비폭력 정치', '국제 분쟁과 안정', '중동 정치'를 수강했다. 수업을 듣는 1년 반 동안 이라크에서 생겼던 '신념의 균열'은 더 크게 벌어졌다.&lt;/P&gt;
&lt;P align=justify&gt;제이크는 겉으로는 '국제 평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패권과 이익을 위해 전쟁을 저질러온 미국 정부의 추악한 이면과&amp;nbsp;직면하게 됐다.&amp;nbsp;군산복합체와 석유 재벌들과 정부의&amp;nbsp;밀월 관계가 전쟁과 군비 증강을 부추겼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도 그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됐다. &lt;/P&gt;
&lt;P align=justify&gt;졸업을 앞둔 제이크는 자말 교수와 함께 몇 달간 팔레스타인 지역에 머무를 기회가 생겼다. 보수적인 무슬림 가정에서 지내면서 그들과 깊이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이전까지 그에게 팔레스타인은 9·11테러 직후 환호성을 지르며&amp;nbsp;즐거워하던 사람들이었고,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들은 달랐다. &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80&gt;&quot;그들은 나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우리 교회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르쳐주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지원하고, 무슬림을 홀대하지만 이 사람들은 나를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주었다. 진정 예수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인종, 민족, 관점, 종교가 다르지만,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내 삶이 새롭게 거듭나는 순간이었다.&quo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그때의 경험이 자신을 회개하도록 만들었다고 제이크는 고백했다. 자신의 우상이 다름 아닌, '국가주의'였음을 깨달았다. 국가주의는 근본주의 신앙과 결합해, 극단적인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했고, 자신을 전쟁이라는 추악한 체제에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lt;/P&gt;
&lt;P align=justify&gt;팔레스타인에서 돌아온 제이크는 자신의 '회심기'를 그가 다니던 교회 리더들과 나눴다. 그가 군 입대를 결심하자 참전을 지지하며 기도해주었고, 사지에서 돌아오자 파트타임 사역자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던 교회는 제이크의 뜻밖의 고백에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다'는 해고 통지로 답을 대신했다. &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us/news/photo/200911/1582_3192_1623.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제이크는 몇몇 전역 군인들과 함께 'Rethinking Afghanistan'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제이크는 &quot;신학적인 위기&quot;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외눈박이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고, 그에게 익숙했던 교회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제이크는 대학 졸업 후 풀러신학교 목회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 안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고민들을 얼기설기 엮어가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 제이크는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의 변화를 새로운 운동으로 만들어갔다. 몇몇 전역 군인들과 함께 'Rethinking Afghanistan'이라는 단체를 만든 제이크는 활발한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 &lt;/P&gt;
&lt;P align=justify&gt;이들은 워싱턴을 방문해 의원들을 만나면서 미국의 대외 정책을 재고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군사적 접근으로 인한 실패를 인정하고, 총체적인 대안을 마련해, 비군사적 방법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lt;/P&gt;
&lt;P align=justify&gt;제이크는 지난 8년 동안 미국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를 벌여왔지만, 폭력과 불안정함만 가중될 뿐이라며, 무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quot;어두움으로 어두움을 없앨 수 없듯, 폭력으로 폭력을 멈출 수 없다. 비폭력이라는 빛으로 폭력이라는 어두움을 몰아내야 한다.&quot;&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newsnjoy.us/news/photo/200911/1582_3194_4113.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 제이크는 지난 10월 22일, 풀러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전쟁으로 인한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고발하고, 전쟁이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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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스크랩] 구조주의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타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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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06T00:33:36Z</updated>
	    <published>2009-11-06T00:33: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프레시안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U&gt;구조주의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타계&lt;/U&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타계했다고 프랑스 학술원인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4092828&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카데미&lt;/FONT&gt;&lt;/U&gt;&lt;/A&gt; 프랑세즈가 3일 밝혔다. 향년 100세.&lt;BR&gt;&lt;BR&gt;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최고 연장자 회원이었던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의 선구자로, 프랑스에서 장 폴 사르트르 이후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이날 그의 사망 사실을 발표하면서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lt;BR&gt;&lt;BR&gt;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5년 브라질 상파울루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4092828&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학&lt;/FONT&gt;&lt;/U&gt;&lt;/A&gt;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4092828&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교수&lt;/FONT&gt;&lt;/U&gt;&lt;/A&gt;를 역임할 당시 남아메리카 오지를 탐험한 경험을 토대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4092828&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문화&lt;/FONT&gt;&lt;/U&gt;&lt;/A&gt;와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문명 비평서인 &lt;슬픈 열대&gt;(1955년)를 썼다.&lt;BR&gt;&lt;BR&gt;&lt;슬픈 열대&gt;와 함께 &lt;구조인류학&gt;(1958년), &lt;야생의 사고&gt;(1962년) 등의 주요 저서를 남긴 고인은 1939년 프랑스로 돌아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lt;BR&gt;&lt;BR&gt;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하다 1982년 퇴임했던 고인은 1993년 &lt;보기 듣기 읽기&gt;라는 비평집을 내고 대외활동을 중단한 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4092828&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파리&lt;/FONT&gt;&lt;/U&gt;&lt;/A&gt; 자택에서 조용히 지내왔다.&lt;BR&gt;&lt;BR&gt;그는 지난해 11월 28일 100세 생일을 맞았으며 당시 프랑스에서는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각종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4092828&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시회&lt;/FONT&gt;&lt;/U&gt;&lt;/A&gt;와 학술대회가 열렸으며, 케브랑리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4092828&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박물관&lt;/FONT&gt;&lt;/U&gt;&lt;/A&gt;에는 그가 기증한 1000여 점의 물품을 전시하는 '레비-스트로스관'이 문을 열었었다. &lt;/P&gt;
&lt;P&gt;&lt;!--/DCM_BODY--&gt;&lt;/P&gt;
&lt;P class=author&gt;/연합&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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