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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랑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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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5T09:36:5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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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일묵상] 12/5 토: 미완성 리스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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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청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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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5T09:36:57Z</updated>
	    <published>2009-12-05T09:36: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2월 5일 토요일&lt;/STRONG&gt;&lt;/P&gt;
&lt;P&gt;마가복음 10장 17-25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quot;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quot;&amp;nbsp; 막 10:2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미완성 리스트&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그 젊은이는 영생을 원했습니다. 영생을 원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언제나 원하고 있는 종류의 삶을 얻을 수 있게 해줄 단계와 실천방법을 알기를 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세의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분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한층 더 높아지게 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젊은이는 한 가지 간단한 요청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달려왔습니다. &quot;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quot;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셨던 계명들에 대해서 일깨워주셨습니다 (출 20:1-17 참조). 그러자 그 젊은이는 자기가 그 정도는 다 지켰다고 자신했습니다. 예수께서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하나님 율법의 핵심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젊은이는 자신의 '해야 할 일' 리스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quot;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quot; 우리가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지나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완수하는 데 신경을 쓰다 보면, 주님의 사랑의 얼굴을 놓칩니다. 우리와 다른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님은 그 젊은이가 자기 재산을 팔지 못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 재산을 팔면 그 젊은이 자신의 소왕국이 함께 붕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젊은이는 자기가 하나님을 순종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다만 자신만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서는 제자도의 겸비한 삶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부자로 살아가는 것과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그가 실제로 원하는 유일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 즉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님, 제가 저의 목록에 사로잡혀서 주께서 저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지 못했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을 위해서살아가는 삶이란 다른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일묵상] 12/4 금: 너희는 어찌 생각하느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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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5T09:28:07Z</updated>
	    <published>2009-12-05T09:28: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2월 4일 금요일&lt;/STRONG&gt;&lt;/P&gt;
&lt;P&gt;마가복음 8장 27-30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 물으시되, &quot;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quot;&amp;nbsp;&amp;nbsp; 막 8:29&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너희는 어찌 생각하느냐?&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이 대목에 나오는 예수님의 질문을 처음 대하면 혹시 예수님에게 자존감의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진정 누구인지 알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메시야가 아닌 다른 어떤 자로 삼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에 가서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종종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개인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일반적인 대화로부터 끌어내어 당신이 원하시는 만큼의 친밀한 거리까지 끌어당기십니다. &quot;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다 내려놓을 것과 예수님의 사명에 대해 전적으로 순복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당신은 메시야이십니다&quot; 라는 말은 캠페인 슬로건도 아니며, 상업용 광고 문구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확실한 인정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발견하는 길은 자신감을 보여주는 용기 있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한 겸손한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인정할 정도로 정직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대화&gt;라는 책에서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quot;(예수님이 한) 그 질문과 (베드로가 한) 그대답은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질문과 그 대답이 핵심이다. 예수에게서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베드로에게서 우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quot;라고 말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님이 누구입니까? 당신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당신은 당신에게 필요한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존경하는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까? 당신이 어떤 종류의 예수를 찾고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님, 제가 당신에 대한 저 자신의 생각과 개념을 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당신의 이름에 대한 확신과 생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조정칠: 옹신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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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4T16:17:09Z</updated>
	    <published>2009-12-04T16:17:0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아멘넷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 bold 16pt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1px&quot;&gt;[조정칠 목사] 왜 하나님을 옹기안에 가두나?&lt;/SPAN&gt; &lt;BR&gt;&lt;IMG vspace=3 src=&quot;http://www.usaamen.net/news/pic/line.gif&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 10pt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0px&quot;&gt;2009/12/01 (화) 16:59&amp;nbsp; &lt;/SPAN&gt;&lt;BR&gt;&lt;BR&gt;&lt;!-- 설문투표 --&gt;&lt;!--본문내용--&gt;&lt;SPAN style=&quot;FONT: 11pt/170% Malgun Gothic,돋움체; LETTER-SPACING: 0px&quot;&gt;원로 조정칠 목사는 최근 할아버지 시리즈로 &lt;옹신론(甕神論)&gt;, &lt;요한의 예수환상곡 G 장조&gt;, &lt;사람안에 사람있어&gt;등 3권을 냈다. &lt;BR&gt;&lt;BR&gt;이중 &lt;옹신론&gt;은 &quot;한국교회를 향한 견고하고도 날카로운 한마디&quot;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조정칠 목사는 이책을 통해 50여년의 목회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한국교회에 대한 문제점을 특유의 필체로 지적하고 있다. 아멘넷은 3번에 걸쳐 소개한 &lt;옹신론&gt;의 마지막 내용이다.&lt;BR&gt;&lt;BR&gt;아래 소개한 내용에는 55년 경력 목회자의 한국과 한인교회에 대한 충언이 담겨있다. 어떤때는 후배목회자에 대한 신랄한 야단이 계속된다. 하지만 &quot;할아버지의 딱한 이야기&quot;라는 시리즈 이름에서 보듯이 그속에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담겨있다. -편집자&lt;BR&gt;&lt;BR&gt;&lt;IMG style=&quot;BORDER-BOTTOM-COLOR: rgb(202,202,202); BORDER-TOP-COLOR: rgb(202,202,202); BORDER-RIGHT-COLOR: rgb(202,202,202); BORDER-LEFT-COLOR: rgb(202,202,202)&quot; onclick=imgSize_OPEN(this.src) border=1 src=&quot;http://usaamen.net/news/data/board/news/file_in_body/1/hal.jpg&quot;&gt;&lt;BR&gt;▲원로 조정칠 목사가 최근 낸 할아버지 시리즈 3권의 저서&lt;BR&gt;&lt;BR&gt;&lt;B&gt;하나님을 옹기안에 가두지 말라&lt;/B&gt;&lt;BR&gt;&lt;BR&gt;책의 제목인 &lt;옹신론(甕神論)&gt;에는 조정칠 목사가 하고 싶은 메세지가 담겨있다. 독특한 신조어인 '옹신(甕神)'이란 항아리에 든 신을 말한다.&lt;BR&gt;&lt;BR&gt;조정칠 목사는 &quot;옹신론을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이 퇴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기독교가 병이 드는 것은 신관의 혼란 때문&quot;이라고 책의 의도를 말하고 있다.&lt;BR&gt;&lt;BR&gt;신관 혼란의 주요원인중 하나는 옹신(甕神) 때문이다. 옹신이란 유신(有神)도 무신(無神)도 아니다. 신은 있지만 사람들에 의해 옹기안에 담겨있다. 하지만 옹기안에 든 신은 바른 신이 아니다. 현대교회는 많은 경우 옹기안에 든 옹신을 믿고 있다. 필요하다면 옹기에서 신을 꺼내 섬기고, 필요가 없다면 옹기의 뚜껑을 닫아 신을 가두거나 옹기채로 버리기도 한다.&lt;BR&gt;&lt;BR&gt;하나님을 옹기안에 가두면 어떤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면서 자신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옹신을 믿으면 어떤일이 일어날까?&lt;BR&gt;&lt;BR&gt;하나님은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사람들이 주인 노릇을 하며, 교회는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운영되어 마치 종교놀이 같게 된다. 또한 자신이 어떤사람인지 모르고 교회만 다니는 교회중독자,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예수를 전혀 닮지 않은 성도와 목사들이 나타난다.&lt;BR&gt;&lt;BR&gt;구약성경에도 옹신과 흡사한 금송아지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하나님을 배반하는 역사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자행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lt;BR&gt;&lt;BR&gt;교회들의 수준이 전에 비해 많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신앙은 그럴수록 더 위험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오히려 지식인중에 무신론이 많다. 또 신앙의 자유가 있고 박해가 없을 수록 신앙은 쇠퇴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lt;BR&gt;&lt;BR&gt;신앙이 바뀌었다면 모든 것은 새로워 져야 한다. 대문의 문패를 바꾸어 달았다고 내집이라고 할수는 없다. 옛주인의 살림을 다 들어내고 새주인의 살림살이로 바꾸어 놓아야 명싱공히 새로운집이 되는 것이다. &lt;BR&gt;&lt;BR&gt;&lt;B&gt;목사를 별로 보니 딱하다&lt;/B&gt;&lt;BR&gt;&lt;BR&gt;목사의 역할은 막중한 만큼 영향력이 대단히 위험하다. 목사가 생각을 잠시 잘못하면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무서운 일이 일어날수도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목사의 교양과 신앙과 인격을 전적으로 신뢰할수 밖에 없다. 목사는 자기관리의 책임을 져야 한다. &lt;BR&gt;&lt;BR&gt;중요한것은 목사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목사는 자신을 별(星)과 별(別) 두가지로 볼수 있다. 두가지 차이는 왕과 하인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목사는 자신을 별과 같이 고귀한 존재(星)로 볼수도 있지만, 낮고 천한 별(別)로도 볼수도 있다. &lt;BR&gt;&lt;BR&gt;교인들이 자기 목사를 스타로 보는 것과 목사 스스로 스타로 보는 것은 다르다. 항간에는 스타같은 목사들이 많이 있다.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목사의 역할이 스타같은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스타 흉내를 내는 것 같이 보일때도 있다.&lt;BR&gt;&lt;BR&gt;우리들은 세상의 많은 스타(星)들의 추락을 보고 있다. 예수님도 높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목사는 스타가 아니며 스타가 되어서도 안된다. 목사는 종으로 스타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요즘은 스타촌을 만들어 스타끼리 놀고 지내는 부패현상도 있다. &lt;BR&gt;&lt;BR&gt;목사는 종 즉 하인이다. 교인들이 하인이 잘하니 고마워서 별(星)로 불러주는 것이 진정한 스타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데 스스로 스타인 척하면 딱하다. 목사들이 자신을 높이려고 무리수를 두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것이 사회를 실망시키고 교회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lt;BR&gt;&lt;BR&gt;목사가 스타가 되면 기분이 좋을지는 모르지만 목사로 수행하기는 아주 불편하다. 목사는 화를 참아야 할때가 많이 있지만 스타는 그럴수 없다. 하지만 하인은 참고 기다린다. 때가 온다고 믿고 기다릴수 있다. 이런것들이 스타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낮게 살면 높여 주시는 것을 믿지 못하면 목사직을 그만 두는 것이 속 편할것이다.&lt;BR&gt;&lt;BR&gt;&lt;B&gt;목자가 없으니 딱하다&lt;/B&gt;&lt;BR&gt;&lt;BR&gt;요즘 목사중에 목자라는 개념이 없어 보일때가 많다. 예수께서도 스스로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목자는 양을 위하여 존재한다. 양을 교인으로 목자를 목사로 볼때, 목사는 교인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교인이 없으면 목사가 있을 이유가 없다. 교인에게 목사 또한 중요한 존재이다. 서로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목적이 된다.&lt;BR&gt;&lt;BR&gt;많은 목사들이 목사는 인정하지만 목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교인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목사일뿐, 목축을 의미하는 노동자는 싫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의 일꾼들을 농부와 어부등 노동자로 보내셨다. 목회를 노동정신으로 해야 진정한 목사이다. 예수님은 너희는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셨다. 목사가 선생의 자리를 고수하겠다는 것은 예수의 일꾼으로 적임자는 아니다. &lt;BR&gt;&lt;BR&gt;목자는 양을 자식같이 돌보기를 즐거워 한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양으로 부터가 아니라 양의 주인으로 부터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보상을 기대하면 큰 실망을 낳게 될것이다.&lt;BR&gt;&lt;BR&gt;목자는 양을 방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교회에서는 목사가 교인들을 대량 방출한다. 공개적으로 교회를 나가라고 한다. 그것은 목자의 도리가 아니다. 양을 보호해야 할 목자가 도리어 양을 위협하고 압박을 하는 것은 목자가 취할 도리가 아니다. &lt;BR&gt;&lt;BR&gt;&lt;B&gt;목사가 너무 많아 딱하다&lt;/B&gt;&lt;BR&gt;&lt;BR&gt;목사가 많아져 갈곳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수용과 공급의 공식을 놓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도시에 교회를 개척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선교사로 많이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교사는 목사보다 더 준비해야 하고 실력을 요구하기에 위험한 일이다.&lt;BR&gt;&lt;BR&gt;목사가 노동을 할수도 있다. 노동판에서 노동자를 상대로 전도할 뜻이라면 노동을 못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목사가 지금보다 더 많아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전도 교육 봉사 구제의 도우미로 전도할 목사는 얼마든지 요구가 된다. 목사가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라고 말해줄수 없다. 찾아서 하는 것은 그대들의 몫이다.&lt;BR&gt;&lt;BR&gt;이른바 목사의 수난시대이다. 옛날에는 목사라고 하면 신임을 받았다. 누구를 만나도 목사는 정직하다고 믿어 주었으며, 무엇을 맡기기 힘들면 목사에게 맡기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목사들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전에는 목사는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것이 생각했는데, 이제는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목사가 너무 잘났기 때문이다. 잘났다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목사가 많다.&lt;BR&gt;&lt;BR&gt;규모가 큰 교회의 기관마다 목사를 채용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좋다. 직장으로 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목사가 목회에 바치는 수고를 생각한다면 왠만한 직장의 노역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lt;BR&gt;&lt;BR&gt;목사라는 자격증이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목사의 마음과 목사의 정신과 목사의 영성과 목사의 노력과 목사의 희생이 종합되어야 목사이다. 달랑 신학교 졸업장 하나 믿고 목사안수를 받아서 대책없이 멍청하게 두리번 거리지는 말아야 할것이다. &lt;BR&gt;&lt;BR&gt;뛰어가다 보면 보이게 되어 있다. 빗자루 하나들고 동네 골목을 열심히 쓸줄 안다면 그사람은 평생 굶는 일이 없다는 교훈이 있다.&lt;BR&gt;&lt;BR&gt;사람마다 개인에게 부여하신 창조주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유명인을 모방하여 흉내를 내는 정도면 앞날이 암담하다. 자기것을 찾고 개발하여 하나님이 그속에 심어주신 자신의 가치를 활용할 생각을 하면 얼마든지 할일이 있고 갈곳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lt;BR&gt;&lt;BR&gt;&lt;B&gt;뭉치기만 잘하니 딱하다&lt;/B&gt;&lt;BR&gt;&lt;BR&gt;기독교는 소금의 종교이다. 소금이 일단 들어가면 무엇이 달라져도 달라진다. 또 소금이 쓰일때 반드시 분말로 사용된다. 소금은 뭉쳐 덩어리로 사용할수 없다. &lt;BR&gt;&lt;BR&gt;소금이 들어가면 변화가 있는데 교인이 들어간 곳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예를 보기가 힘들다. 들어가도 안들어가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복음으로 정복하는 조용한 세력이 소금이다. 소금은 절대로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들어가면 확실한 반응이 있다.&lt;BR&gt;&lt;BR&gt;뭉치면 힘이 있는 것 처럼 보여도 오히려 많은 폐단이 생길 우려가 있다. &amp;nbsp;생명이라는 것은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독교적 신앙은 생명을 의미한다. 뭉치는 것은 덩어리이며 생명의 덩어리가 아니다.&lt;BR&gt;&lt;BR&gt;교인은 혼자라도 힘이 있다. 교인은 하나하나가 개체로 역사하는 동력이다. 생명은 개성이 있는 법이다. 덩어리가 되면 개체는 죽는다. 각자의 개성은 존중을 받아야 활용된다. 그런데 요즘은 교인들의 개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용가치로 교인을 구별한다. 유명인사 꽁무니에 줄서기와 아무개 처럼 하라고 자존심까지 짓 밟는다. 목사와 장로들도 뭉치기를 좋아하여 별의별 이름으로 뭉친다.&lt;BR&gt;&lt;BR&gt;교인이라도 직장에 가면 한 직장인으로 회사가 잘되도록 힘을 써야 한다. 직장과 교회와 상관이 없다. 직장에서 교인이 할일은 모범적으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또 뭉치기를 한다. 교인이 뭉치면 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는 꼴이 된다. 그것은 신앙을 역행하는 짓이다. 복음은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lt;BR&gt;&lt;BR&gt;직장에서 예배를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일을 해야 할 직장에서 왜 예배를 하는가. 그것은 신앙과 전혀 관련없는 행위이다. 그것은 종교를 놀이로 아는 사람들이 종교놀이를 하면서 위안을 받자고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교인들이 뭉쳐서 생긴 힘은 신앙의 힘이 아니다. 회사의 방해요인이 되는 것은 신앙인의 길이 아니다. &lt;BR&gt;&lt;BR&gt;직장 예배를 이끈 경험이 있다. 그들의 신앙이 잘못된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조직이 되어서 무슨 의무처럼 하고 있었다. 교회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직장에서 마저 채워보자는 것이다. 좋은 신앙은 참고 억제하는 것이다. 소금은 작정량을 초과하여 사용하면 독이 된다. 교인들이 필요이상으로 뭉치면 복음에 방해가 될수도 있다.&lt;BR&gt;&lt;BR&gt;&lt;B&gt;교회가 놀이정서가 지나쳐 딱하다&lt;/B&gt;&lt;BR&gt;&lt;BR&gt;이 시대가 쾌락을 우상처럼 받드는 것이 확연하다. 교회는 재미, 즐거움, 놀이 보다는 영적으로 성숙하게 이끌어야 한다. 놀이는 교회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세상을 따라 잡을수 없다.&lt;BR&gt;&lt;BR&gt;그런데 교회는 편하고 즐겁게 교인들을 관리하는 풍토가 있다. 우선 설교가 그런 방향으로 간다. 즐겁고 재미있는 설교를 선호하여 위트와 유머를 넘어 코메디가 되기도 한다. 그런것을 못하는 목사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놀이식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시대적인 요청이 아닌가 한다.&lt;BR&gt;&lt;BR&gt;세상 재미에 끌려서 교회를 멀리하게 될까봐 경건에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사회적인 유행을 교회도 수용하게 된다. 예배중에도 열린예배가 있다. 성경에도 기독교 전통에도 없는 예배가 TV 프로그램 열린음악회가 인기를 끌면서 재빠르게 모방을 했다. 예배는 원래부터 열려 있다.&lt;BR&gt;&lt;BR&gt;우려하는 것은 교인의 정서가 재미에 젖어 버리면 뒷감당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크다. 하나님과 놀자는 것은 망령된 생각이다. 은혜와 진리, 사랑과 평화, 겸손과 헌신, 그런 건전한 방향으로 교인을 이끌어 나간다면 유치한 놀이가 아니라도 교회는 건강하게 부흥이 될것이다.&lt;BR&gt;&lt;BR&gt;&lt;B&gt;말씀이 궁하니 딱하다&lt;/B&gt;&lt;BR&gt;&lt;BR&gt;말씀은 예수님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 진지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목사들이 설교를 할때 '말씀'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 마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독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말씀은 가치없이 남발할수 없는 거룩한 귄위가 있다.&lt;BR&gt;&lt;BR&gt;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하여 말하는 것이다. 설교가 다 말씀이 아니다. 목사의 말이라고 해야 정직하다. 말과 말씀은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목사의 말을 같은 선상에 놓을수는 없다.&lt;BR&gt;&lt;BR&gt;목사들은 자신이 설교하는 모든 말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는지는 모르지만 터무니 없는 욕심이다. 설교자의 말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때 듣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lt;BR&gt;&lt;BR&gt;목사가 말하는 설교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설교자는 허공을 친것이 불과하다. 그런데 대다수의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말과 믹싱을 한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생각한다.&lt;BR&gt;&lt;BR&gt;자기 목사의 설교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집회에서 은혜를 받겠다면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목회중 기도원에 자주가는 교인을 주의깊게 관리를 했다. 자기 교회에서 말씀을 체험하지 못한 교인이 다른 곳에서 말씀을 받았다면 그것은 말씀이 아니라 자기 취향이 충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lt;BR&gt;&lt;BR&gt;말씀은 이성과 감성, 그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많은 교인들이 이성을 베재한 감성만을 영성으로 아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이 아니다. 그런 현대교회의 말씀이 궁한 현실이 딱하다.&lt;BR&gt;&lt;BR&gt;ⓒ 아멘넷 뉴스(USAamen.ne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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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김기협: 공자가 본 한국 - 춘추가 칭송한 반역행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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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98</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4T15:59:31Z</updated>
	    <published>2009-12-04T15:59:3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프레시안에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U&gt;&lt;STRONG&gt;김기협: 공자가 본 한국 - 춘추가 칭송한&amp;nbsp; 반역행위&lt;/STRONG&gt;&lt;/U&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COLOR: #cbd4e9; TEXT-ALIGN: justify; BACKGROUND-COLOR: #eaeef7; BORDER-TOP-COLOR: #cbd4e9; MARGIN: 0px auto; BORDER-RIGHT-COLOR: #cbd4e9; BORDER-LEFT-COLOR: #cbd4e9&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95%&quot;&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LINE-HEIGHT: 23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FONT-SIZE: 14px; PADDING-TOP: 10px&quot;&gt;&lt;B&gt;&lt;춘추&gt;가 칭송한 반역 행위&lt;/B&gt;&lt;BR&gt;&lt;BR&gt;공자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제자들&lt;/FONT&gt;&lt;/U&gt;&lt;/A&gt;에게 말했다. 자기 입장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내게 맞서면서까지 자기 입장을 지켜야 한다고. 후세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한 마디였다.&lt;BR&gt;&lt;BR&gt;&lt;FONT color=#aa1a19&gt;&quot;인간성의 기본 원리에 관련된 문제를 놓고는 너희 스승에게라도 굽혀서는 안 된다.&quot; (논어 권15 子曰 當仁 不讓於師)&lt;/FONT&gt;&lt;BR&gt;&lt;BR&gt;임금의 명령을 명백히 어기고 이적 행위를 저지른 한 장군을 &lt;춘추&gt;의 필자가 왜 칭송했는지 동중서가 질문 받은 일이 있다. &lt;춘추&gt;는 유가 전통에서 확고한 도덕적 권위를 가진 경전이었다. 이런 책에서 어떻게 임금의 권위를 참월한 행위를 칭송할 수 있는가?&lt;BR&gt;&lt;BR&gt;문제의 사건은 춘추시대 역사 속에 잘 알려진 것이다. 초나라 왕이 포위하고 있는 지역의 정보를 수집해 오라고 장군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자반&lt;/FONT&gt;&lt;/U&gt;&lt;/A&gt;을 송나라 도성에 보냈다. 자기 쪽에도 군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송나라 쪽에 얼마나 버틸 힘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lt;BR&gt;&lt;BR&gt;그런데 자반이 송나라에 가 보니 참혹한 상황이었다. 극도의 기아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식을 서로 바꿔서 잡아먹는 지경이었다. 충격을 받은 자반은 그들을 구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왕에게 돌아온 자반은 자기가 적군에게 초나라 군량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줬다고 보고했다. 왕은 포위를 풀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군대&lt;/FONT&gt;&lt;/U&gt;&lt;/A&gt;를 철수시킬 수밖에 없었다.&lt;BR&gt;&lt;BR&gt;초나라 왕이 자반을 처벌하지 않은 것은 자반이 쓸모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적을 도와준 인물을 역사가가 칭송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질문에 동중서는 대답했다.&lt;BR&gt;&lt;BR&gt;&lt;FONT color=#aa1a19&gt;&quot;극도의 참상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온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을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quot;&lt;/FONT&gt;&lt;BR&gt;&lt;BR&gt;인간성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예법이 정한 바를 얼마간 제쳐놔도 된다고 동중서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lt;BR&gt;&lt;BR&gt;&lt;FONT color=#aa1a19&gt;&quot;인(仁)을 숭상하는 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어질게 대하려 한다. 어진 사람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자연스러운&lt;/FONT&gt;&lt;/U&gt;&lt;/A&gt; 감정에 따른다. 자반이 송나라 사람들을 어질게 대한 것은 자기 마음의 끌림에 따른 것일 뿐이며, 따라서 남들이 자기 행동을 일종의 반역으로 여길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quot;&lt;/FONT&gt;&lt;BR&gt;&lt;BR&gt;자반에 대한 옹호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중서는 공자를 인용했다.&lt;BR&gt;&lt;BR&gt;&lt;FONT color=#aa1a19&gt;&quot;인간성의 기본 원리에 관련된 문제를 놓고는 누구에게도 굽혀서는 안 된다.&quot;&lt;/FONT&gt;&lt;BR&gt;&lt;BR&gt;공자의 이 한 마디가 어떤 위험을 품고 있는 것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특히 맥락에서 벗어나 단편적으로 인용될 때, 사람의 마음이 최고의 도덕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공자의 뜻도 아니고 동중서의 뜻도 아니다.&lt;BR&gt;&lt;BR&gt;동중서의 마음에는 체제를 부정하는 뜻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자반처럼 송나라 사람들의 참상을 분명히 알면서 임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불쌍한 사람들을 더 괴로운 지경으로 몰아넣도록 군대를 움직여서야 되겠는가? 그런 사람은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lt;BR&gt;&lt;BR&gt;공자는 마음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도덕적 문제에 감정이 개재되는 것을 그가 조심스러워 한 것은 감정이 판단력과 성찰력에 맞서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제자 자장에게 이렇게 말한 것도 그 까닭이었다.&lt;BR&gt;&lt;BR&gt;&lt;FONT color=#aa1a19&gt;&quot;살을 파고드는 비방과 마음을 찌르는 저주에 곧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 가히 밝은 분별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quot; (논어 권12 子曰 浸潤之讒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lt;/FONT&gt;&lt;BR&gt;&lt;BR&gt;제자들이 감정의 충격 앞에서 지킬 수 있기를 공자가 바란 것이 분별력이었다. 훌륭한 제자라면 스승이 자신과 다른 관점을 내놓을 때 스스로의 명징한 판단에 의거해서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스승이라면 제자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인정하고 제자가 자기 길 가기를 바라야 할 것이었다. 이 모순을 공자는 수긍했다.&lt;BR&gt;&lt;BR&gt;&lt;FONT color=#00309c&gt;- 안핑 친(Annping Chin)의 &lt;공자 평전(The Authentic Confucius)&gt;(돌베개 근간) 중에서.&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인간은 사회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어느 사회에나 나름대로의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의 사회는 다른 동물들의 사회보다 훨씬 복잡하다. 문명 때문이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개미&lt;/FONT&gt;&lt;/U&gt;&lt;/A&gt;와 벌처럼 사회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을 보면 그 질서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개체들의 본능 차원에서 대충 운용되는 이 질서를 '자연적 질서'라 할 수 있다. 질서를 구성하는 가치들 사이에 심한 갈등이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가치 선택의 압박 속에 살아간다. 포유류 동물의 경우 곤충류보다는 깊은 갈등을 많이 보이지만, 인간의 갈등과는 차원이 다르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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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id=newsBODY class=viewstep03&gt;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조밀해지면서 생긴 문제다. 문명 발전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간은 본능대로만 살 수 없게 되었다. 다들 본능대로 살다가는 사회가 견뎌낼 수 없게 되었으니까. 본능을 억제하는 '인위적 질서'가 계속 개발되었고, 그것이 윤리와 도덕, 종교와 제도 등등의 형태로 나타났다.&lt;BR&gt;&lt;BR&gt;인간 사회의 질서 구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파악이 되는 구조였다. 중국 문명권의 경우 내부의 화하(華夏)와 외부의 오랑캐를 갈라 질서의 옹호자와 도전자를 구분하고, 사회 상층부의 군자와 하층부의 소인을 갈라 질서의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세계관이 공자 이전에 세워져 있었다.&lt;BR&gt;&lt;BR&gt;그런데 기원전 6세기 후반, 공자의 시대에는 이런 단순한 세계관으로는 사회의 유지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그 500년 전에 만들어진 봉건체제가 힘을 잃고 있었다. 난신적자(亂臣賊子)라 불린 부도덕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은 어찌 보면 하나의 표면적 현상일 뿐이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있었던 것이다.&lt;BR&gt;&lt;BR&gt;공자는 기존 질서의 옹호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2500년간 그를 추앙해 온 사람들 중에는 (비판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단순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질서 옹호는 맹목적인 집착이 아니라 질서의 발전과 진화를 위한 노력이었고, 위대한 사상가로서 그 면모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위에 인용된 내용이 이 면모의 일단을 보여준다.&lt;BR&gt;&lt;BR&gt;스승한테도 대들라고 했다!&lt;BR&gt;&lt;BR&gt;&quot;군사부 일체&quot; 사상의 상징인 공자의 말씀이다. 물론 아무 때나 멋대로 대들라는 것은 아니다. &quot;인간성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기본&lt;/FONT&gt;&lt;/U&gt;&lt;/A&gt; 원리&quot;(仁)가 걸려 있을 때의 얘기다.&lt;BR&gt;&lt;BR&gt;두 가지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첫째, 이 원리가 워낙 중요한 것이니, 이 원리를 받들기 위해서는 군사부고 뭐고 어떤 다른 질서의 원리도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 원리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리 성심껏 설명해 줘도 완벽한 설명이 될 수 없으니 이 원리에 대한 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좋은&lt;/FONT&gt;&lt;/U&gt;&lt;/A&gt;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 설명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lt;BR&gt;&lt;BR&gt;초나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자반&lt;/FONT&gt;&lt;/U&gt;&lt;/A&gt;의 군기 누설은 전투 중의 명령 불복종을 넘어서는 이적 행위였다. 아마 오늘의 어느 문명국이라 해도 이런 행위는 즉결 처분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 왕이 용서했을 뿐 아니라 &quot;엄정한 기록&quot;의 대명사인 &lt;춘추&gt;의 필자들까지 그 행위를 칭송했다.&lt;BR&gt;&lt;BR&gt;전쟁 규모가 커지고 양상이 참혹해진 것은 춘추시대 질서 붕괴의 한 중요한 양상이었다. 질서의 뼈대가 튼튼할 때는 전쟁의 목적이 상대방으로부터 특정한 양보를 받아내는 것뿐이었다. 계절존망(繼絶存亡)의 원칙을 어기고 어느 나라라도 통째로 망하게 하는 것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천하&lt;/FONT&gt;&lt;/U&gt;&lt;/A&gt;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죄악이었다. 공자의 시대에는 이 원칙이 무너져 전쟁이 싹쓸이 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lt;BR&gt;&lt;BR&gt;공자보다 약 100년 전의 사람 자반은 인민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방식의 전쟁 수행을 거부했다. 인간이 인간을 아껴야 한다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자연&lt;/FONT&gt;&lt;/U&gt;&lt;/A&gt;적 질서를 위해 장군이 임금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인위적 질서를 버린 것이다. 그의 갈등과 결단은 &lt;춘추&gt;의 필자와 동중서의 이해를 얻었다.&lt;BR&gt;&lt;BR&gt;공자는 천하에 질서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질서라면 사람들은 대개 단순하고 명쾌한 상태를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를 깊이 공부한 공자는 인간 세상이 단순명쾌하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조직&lt;/FONT&gt;&lt;/U&gt;&lt;/A&gt;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그는 현상을 명쾌하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재단&lt;/FONT&gt;&lt;/U&gt;&lt;/A&gt;하기보다 원리를 뚜렷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세움&lt;/FONT&gt;&lt;/U&gt;&lt;/A&gt;으로써 최대한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조건을 만들려고 했다. 하드웨어보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소프트웨어&lt;/FONT&gt;&lt;/U&gt;&lt;/A&gt;를 중시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lt;BR&gt;&lt;BR&gt;공자의 가르침은 3강5륜(三綱五倫)으로 대표된다. 사회 질서의 핵심 요소를 명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리를 3강5륜의 위에 놓았다. 아니, 그 밑에 깔아놓았다. '인'(仁)이다. 이것을 논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제자들&lt;/FONT&gt;&lt;/U&gt;&lt;/A&gt;에게 가르쳤고, 이것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위하여&lt;/FONT&gt;&lt;/U&gt;&lt;/A&gt; 임금의 명령을 등진 초나라 장군을 칭송했다. (공자 자신이 자반을 언급한 기록은 없지만 동중서의 발언을 공자의 입장이 연장된 것으로 본다.)&lt;BR&gt;&lt;BR&gt;이 글에서는 '인'을 &quot;인간성의 기본 원리&quot;라고 옮겨 놓았지만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공자 자신도 이것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인'을 논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구애받지 말라고 했다. 공자는 손가락을 내밀었지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의 모습은 명확하지 못하다.&lt;BR&gt;&lt;BR&gt;그러나 가리키는 그쪽에 뭔가가 있음을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인위적 질서 이전부터 존재하던 인간의 존재 원리. 인간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질서 밑바닥에서 이 원리가 작동할 때, 사람들이 그 원리의 존재를 의식할 때, 모든 사회 질서가 더 잘 운용될 수 있었다.&lt;BR&gt;&lt;BR&gt;그러나 이 자연적 원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일체의 인위적 질서를 묵살하기에는 인간 사회가 너무 복잡해져 있다. 공자가 제창한 윤리 체계는 인위적 질서의 상부 구조와 자연적 질서의 하부 구조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유기&lt;/FONT&gt;&lt;/U&gt;&lt;/A&gt;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상부와 하부, 어느 쪽에 휩쓸리지 않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조화&lt;/FONT&gt;&lt;/U&gt;&lt;/A&gt;와 균형을 지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질서 운용의 길이다. 하부 구조를 지켜주는 것이 '어진 마음'(仁)이고 상부 구조를 지켜주는 것이 '분별력'(明)이다.&lt;BR&gt;&lt;BR&gt;공자의 가르침이 통용된 사회들이 근세에 이르기까지 다른 지역보다 조밀한 인구를 가지고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질서를 지켜 온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드웨어 차원보다 소프트웨어 차원의 도덕관이 더 응용 범위가 넓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 #ccc 1px solid; BORDER-LEFT: #ccc 1px solid; MARGIN: 5px auto 10px; BACKGROUND: #ffffff; BORDER-TOP: #ccc 1px solid; BORDER-RIGHT: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00&gt;&lt;IMG class=resize3 border=1 name=img_resize hspace=0 alt=&quot;&quot;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2/04/60091204143346.JPG&quot; width=500 height=332&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 COLOR: #777; FONT-SIZE: 11px&quot; width=500&gt;▲ &quot;용산 사태를 비롯한 근년 공권력의 남용을 보며 이 사회에 어진 마음이 모자라고 인간성의 기본 원리가 무시되는 사실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검찰이라 하더라도, 인간성에 대한 조그만 개념이라도 있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는지.&quot; ⓒ프레시안&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서양 문명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에야 '인간성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개념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체계의 일부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편입&lt;/FONT&gt;&lt;/U&gt;&lt;/A&gt;된 이 개념은 문명의 비인간화 문제의 존재를 겨우 표시만 한 것일 뿐, 현실적 효용성이 미미한 수준이다. 인간성의 원리가 어렴풋하게라도 하나의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던 유교 사회에 비해 서양의 인도주의는 아직도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준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43346&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용산&lt;/FONT&gt;&lt;/U&gt;&lt;/A&gt; 사태를 비롯한 근년 공권력의 남용을 보며 이 사회에 어진 마음이 모자라고 인간성의 기본 원리가 무시되는 사실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검찰이라 하더라도, 인간성에 대한 조그만 개념이라도 있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는지. '인'의 전통도 흐려지고 서양의 인도주의도 들어오지 못한 인간성의 사각지대가 되어가는 것일까.&lt;BR&gt;&lt;BR&gt;입만 떼면 거짓말을 일삼으며 사람들을 사사로운 이익으로만 몰고 가는 '난신적자'들이 있기는 있다.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난신적자들을 척결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겠지만, 더 큰 과제는 사회 전반의 도덕성 회복이다. 사회의 도덕성이 허약하기 때문에 난신적자들이 판칠 수 있는 것이니까.&lt;BR&gt;&lt;BR&gt;그리고 사회의 도덕성 회복이 &quot;정의 사회 구현&quot;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것을 쫓아다니며 바로잡기보다 좋은 것이 잘 자라나고 잘못된 것이 저절로 시드는 풍토를 이루기 위해 소프트웨어 차원의 도덕관이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하던 &quot;사람 사는 세상&quot;, 우활한 것 같으면서도 이 사회의 절실한 필요를 짚은 말이다. 끝&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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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황지우: 창의성, 교육, 예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jykim328/13383397"/>
		<id>tag:blog.daum.net,2009:jykim328.13383397</id>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4T15:50:11Z</updated>
	    <published>2009-12-04T15:50: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프레시안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U&gt;황지우: 창의성, 교육, 예술&lt;/U&gt;&lt;/STRONG&gt; (전홍기혜, 송은희 정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309c&gt;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한국에서 태어나 초.중.고등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교육&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quot;&lt;/FONT&gt;&lt;A class=dklink title=&quot;&quot;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정신병원&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에 가거나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파트&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 1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을 것&quot;이라고 황지우 전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한국예술종합학교&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 총장(시인)은 말한다. &lt;BR&gt;&lt;BR&gt;하나의 정답만을 골라내는 '수렴적(Conversion) 사고'만 강제하고, 오직 이 하나의 잣대 만으로 수십만 명의 아이들을 한줄로 세우는 한국의 학교 교육에서 모차르트는 나올 수 없다. 모두들 '천재'로 알고 있지만 모차르트의 지능지수는 120 정도로 지극히 평균적인 수준이었다. 그의 천재성은 당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작곡&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309c&gt;의 기본틀이었던 '캐논'을 따르지 않고 여기에 기반해 새로운 변주를 만들어내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타고난 경박함과 산만함에 내재해 있었다. &lt;/FONT&gt;&lt;BR&gt;&lt;BR&gt;&lt;FONT color=#00309c&gt;정답으로 수렴하는 게 아니라 많은 변주를 만들어내는 분산적(Divergen) 사고가 바로 예술의 기본인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창의력&lt;/FONT&gt;&lt;/U&gt;&lt;/A&gt;을 이끌어내는 힘이다. 예술 뿐 아니라 &lt;A class=dklink title=&quot;&quot;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과학&lt;/FONT&gt;&lt;/U&gt;&lt;/A&gt;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과학의 영역도 기존의 이론을 의심하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가설&lt;/FONT&gt;&lt;/U&gt;&lt;/A&gt;을 만들고 이를 검증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은 '과감한 상상력'이다. &lt;/FONT&gt;&lt;BR&gt;&lt;BR&gt;&lt;FONT color=#00309c&gt;일제하, 해방 이후 한번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패러다임&lt;/FONT&gt;&lt;/U&gt;&lt;/A&gt; 시프트'를 경험하지 않고 있는 우리 교육은 어떤까? '경쟁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교육은 앞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데 적합한가? &lt;/FONT&gt;&lt;BR&gt;&lt;BR&gt;&lt;FONT color=#00309c&gt;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치의 잣대로 교육과 예술과 문화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재단&lt;/FONT&gt;&lt;/U&gt;&lt;/A&gt;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데가 한국예술종합학교다. 황 전 총장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퇴해야만 했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강의&lt;/FONT&gt;&lt;/U&gt;&lt;/A&gt;마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참여사회포럼 세번째 강의로 그의 예술, 문화, 교육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그는 '소통'을 강조하는 정권에 의해 '불통'을 강요받고 있다. 다음은 지난 2일 있었던 황 전 총장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강연&lt;/FONT&gt;&lt;/U&gt;&lt;/A&gt;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lt;/FONT&gt;&lt;BR&gt;&lt;BR&gt;벌써 총장 쫓겨난 지 6개월 됐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한예종&lt;/FONT&gt;&lt;/U&gt;&lt;/A&gt;에서 10여 년간 주로 예술하겠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오늘 주제가 창의성이다. 이 화두를 들고 여기 온 까닭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초등교육&lt;/FONT&gt;&lt;/U&gt;&lt;/A&gt;, 중등,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학&lt;/FONT&gt;&lt;/U&gt;&lt;/A&gt;교육까지 제도화된 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을 얼마나 멸균시켜버리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 안에서 자라나는 창의적인 싹을 학교교육이 얼마나 무자비하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지가위&lt;/FONT&gt;&lt;/U&gt;&lt;/A&gt;로 잘라버리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고민을 나눠봤으면 한다.&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 #ccc 1px solid; BORDER-LEFT: #ccc 1px solid; MARGIN: 5px auto 10px; BACKGROUND: #ffffff; BORDER-TOP: #ccc 1px solid; BORDER-RIGHT: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453&gt;&lt;IMG class=resize3 border=1 name=img_resize hspace=0 alt=&quot;&quot;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2/04/60091204104715(1).JPG&quot; width=453 height=302&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 COLOR: #777; FONT-SIZE: 11px&quot; width=453&gt;▲ 황지우 시인. ⓒ참여사회연구소&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제 아이들이 초등학교 2,4학년 무렵 어느 겨울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목포&lt;/FONT&gt;&lt;/U&gt;&lt;/A&gt;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여행&lt;/FONT&gt;&lt;/U&gt;&lt;/A&gt;을 떠났다. 마침 비가 좀 가랑가랑 내렸다. 오랜만에 본 유달산 바위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했는데 큰아이가 이런 글귀를 남겼다. 흐린 날 유달산 바위들이 마치 숨 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딸아이는 목포 앞의 기다란 섬이 물을 뿜는 고래 같다는 구절을 남겼다. 우리 아이들은 문재가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애들이 중학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고등학교&lt;/FONT&gt;&lt;/U&gt;&lt;/A&gt;를 들어가면서 바위를 보고 숨을 느꼈던, 섬에서 고래를 떠올렸던 애들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전부 증발돼 버렸다. 결국 우리 제도교육의 교수법에서부터 커리큘럼까지 근본적으로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오직 정답 하나만을 찾는 기술, 정답을 찍어내는 능력 하나 만으로 한 해 수십만 명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고교&lt;/FONT&gt;&lt;/U&gt;&lt;/A&gt; 졸업생들이 서열이 매겨져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들도 서울과 교통거리에 반비례해서 계서화되고 서열화돼 있다. 지금 우리 제도교육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시스템&lt;/FONT&gt;&lt;/U&gt;&lt;/A&gt;이 전적으로 창의성을 말살하고 있다는 심각함을 우리가 다 느끼고 있지만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끌려가고 있다. 여러 대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힘을 못 받고 있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영혼&lt;/FONT&gt;&lt;/U&gt;&lt;/A&gt;이 숨쉬는, 살아 생동하는, 스스로 자기 인생에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보람&lt;/FONT&gt;&lt;/U&gt;&lt;/A&gt;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창조&lt;/FONT&gt;&lt;/U&gt;&lt;/A&gt;해 내는 삶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설계&lt;/FONT&gt;&lt;/U&gt;&lt;/A&gt;하도록 교육시스템이 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 대안을 창의성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lt;BR&gt;&lt;BR&gt;&lt;B&gt;모차르트와 살리에리&lt;/B&gt;&lt;BR&gt;&lt;BR&gt;영화 아마데우스를 봤나. 그 영화는 피터 쉐이퍼라는 영국 현대 극작가의 픽션이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에쿠스&lt;/FONT&gt;&lt;/U&gt;&lt;/A&gt;라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연극&lt;/FONT&gt;&lt;/U&gt;&lt;/A&gt;도 그의 작품이었다. 저는 아마데우스를 희곡으로 먼저 읽었고, 그 다음에 영화를 봤다. 이 영화를 보실 때, 두 인물을 축으로 해서 스토리라인이 전개된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모차르트 같다고 느낀 사람 있나? 모차르트에 자기동일시를 하는 관객이 있다면 그 관객은 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과대망상&lt;/FONT&gt;&lt;/U&gt;&lt;/A&gt;증에 걸린 사람일지 모르겠다. 작가 자신이 시점인물로 전체 스토리를 끌고 가도록 한 인물은 살리에리다. 많은 이들이 나는 살리에리 같다고 느낄 것이고, 그렇게 느낀 사람이 작품을 제대로 본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자기가 모차르트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속된 말로 돌아이는 돌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lt;BR&gt;&lt;BR&gt;살리에리는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오스트리아&lt;/FONT&gt;&lt;/U&gt;&lt;/A&gt;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비엔나&lt;/FONT&gt;&lt;/U&gt;&lt;/A&gt;의 요셉 군주는 스스로 계몽된 군주로 음악.&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발레&lt;/FONT&gt;&lt;/U&gt;&lt;/A&gt;.예술을 사랑한 이였다. 비엔나가 그때 서양 음악의 중심 도시였다. 살리에리는 음악에 지원을 많이 하는 비엔나에 와서 궁정음악가가 된다. 요즘으로 치면 국민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다. 그리고 그 위치에 오른 자신의 지위를 스스로 즐겼다. 영화에서도 'I like myself, until he came'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모차르트를 회한의 젖은 모습으로 들으며 회상을 한다.&lt;BR&gt;&lt;BR&gt;이 작품에서 모차르트는 18세기 낭만주의가 한껏 부풀려 놓은 이른바 천재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신화&lt;/FONT&gt;&lt;/U&gt;&lt;/A&gt;적인 모델이다. 살리에리가 결정적으로 절망을 느꼈던 것은 자신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결혼&lt;/FONT&gt;&lt;/U&gt;&lt;/A&gt;도 않고, 정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기독교&lt;/FONT&gt;&lt;/U&gt;&lt;/A&gt;가 깔아놓은 모든 신조를 지키고, 무엇보다 음악으로 신에게 전부 봉사했는데, 저 풋내기 같은 싸가지 없는 젊은 녀석, 불경스럽고 경망스러운 꼬마아이에게 신이 음악을 바로, 말하자면 모바일로 내려주는 것이었다. 살리에리는 신과 계약을 했다. 내게 음악을 주면 최대의 영광을 주기로. 신에게 음악으로 장엄화 시켜주겠다는 신앙을 통한 계약을 했는데, 신에 대해 불경하고, 현실 생활에서도 경거망동한 저 보잘것없는 꼬마에게 음악을 통째로 내려주고, 나에게는 더 비참하게 그것을 알아보는 재능만 줬다. 차라리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 녀석이 내는 멜로디가 천상의 멜로디임을 알 수 있었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일자리&lt;/FONT&gt;&lt;/U&gt;&lt;/A&gt;가 없어 허겁지겁 하던 모차르트의 부인이 어느 날 모차르트가 작곡한 악보를 들고 살리에리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엉성하게 두 개의 오보에로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가면서 천상의 희열이 담긴 음악으로 변했다. 악보를 보니까 정정한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음악을 모차르트에게 신이 넣어 준 것이다. 천상의 멜로디를 그냥 받아썼다. 그 곡을 보고 살리에리는 절망해 악보를 떨어뜨린다.&lt;BR&gt;&lt;BR&gt;이 영화에서 보면 모차르트는 만년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망상&lt;/FONT&gt;&lt;/U&gt;&lt;/A&gt;에 시달렸다. 모차르트 연구가에 의하면 독살은 아니고 가벼운 병이 발전한 것으로 돼 있다. 어쨌든 피터 쉐이퍼의 작품에서는 살리에리가 레퀴엠을 의뢰하는 사람으로 변장해 모차르트를 죽인 것으로 돼 있다. 이건 픽션이다. 모차르트를 죽여 놓고 살리에리는 정신병원으로 돌아간다. 30년이 지났는데 살리에리는 음악은 커녕 이름조차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사후 모든 음악가들이 경원하는 신의 음악을 받아 쓴 자, 즉 천재(genious)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형&lt;/FONT&gt;&lt;/U&gt;&lt;/A&gt;으로 숭상되고 찬양됐다. 30년 뒤의 살리에리의 모습이 영화 마지막이다. 살리에리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신부&lt;/FONT&gt;&lt;/U&gt;&lt;/A&gt;에게 회고를 마치고 나오면서 '아임 더 챔피온 오브 미디아커'라고 말했다. 미디아커는 이류, 아류라는 뜻이다.&lt;BR&gt;&lt;BR&gt;이 영화는 모차르트를 지나치게 신화화했다. 그런데 창의성과 관련해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세 개의 장면이 있다. 7살에 작곡을 시작해 11살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피아노&lt;/FONT&gt;&lt;/U&gt;&lt;/A&gt; 협주곡을 작곡, 14살에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신동이 비엔나에 요셉황제 궁정에 온다고 하니까 전날 살리에리가 서재에서 모차르트를 환영하는 곡을 작곡한다. 그는 콩나물 대가리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점찍듯 화음에 맞춰서 찍어 나간다. 그리고 스스로 너무 흐뭇해 벽에 있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십자가&lt;/FONT&gt;&lt;/U&gt;&lt;/A&gt;를 보고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걸 갖고 가서 요셉 황제에게 보여준다. 아마추어인 황제가 더듬더듬 악보를 재현한다. 그동안 모차르트는 궁정 문 밖에서 여기저기 특유의 경거망동한 제스처로 기웃거린다. 황제가 다 마치고 나니까 모차르트가 들어갔다. 황제가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리가 너를 위해 만든 것이라며 전달한다. 모차르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도 보지 않는다. 필요 없다고 한다. 이미 문 밖에서 기웃거릴 때 머리에 음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메모리&lt;/FONT&gt;&lt;/U&gt;&lt;/A&gt;가 됐다. 모차르트가 가볍게 친다. 살리에리 곡은 18세기 궁정양식이 요구하는 전범, 어떤 예술작품이 창작되기 위해 마땅히 따라야 할 그것(캐논)에 입각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이미 주어진 캐논에 실증이 나 있었다. 그는 이 캐논을 내려다보고 넘어서 있었다.&lt;BR&gt;&lt;BR&gt;음악사에서 모차르트 음악이 낭만주의를 여는 실마리를 갖고 있는데, 그의 통제가 안 되는 가벼움으로 상쾌하고 가벼운 음악을 만들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살리에리 곡을 가볍게 치고, 살리에리의 캐논으로부터 다른 멜로디를 끌어낸다. 그리고는 또 그걸 바꾸고 혼자 좋아한다. '너무 심심하지 않아요' 라고 말할 때 살리에리의 그 표정, 금이 싹 가 있다. 완전히 살리에리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가슴&lt;/FONT&gt;&lt;/U&gt;&lt;/A&gt;을 찢어버린 게 모차르트 특유의 싸가지 없는 웃음이었다. 악의가 있는 게 아니었지만 상처 주는 줄 모르는 웃음, 그 상처 때문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여 가는 게 영화의 내용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창조란 유에서 무를 만들어 내는 것&lt;BR&gt;&lt;BR&gt;&lt;/STRONG&gt;이 작품에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두 유형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예술&lt;/FONT&gt;&lt;/U&gt;&lt;/A&gt;가를 볼 수가 있다. 이미 있는 규칙에 잘 맞춰서 만들어가는 작가, 예술가. 살리에리가 그런 예술가라면 모차르트는 주어진 것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을 끌어내는 예술가다. 이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창조&lt;/FONT&gt;&lt;/U&gt;&lt;/A&gt;다. 창조에 대한 일반의 가장 큰 오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하는데, 인간이 하는 것이라면 무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유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어진 것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lt;BR&gt;&lt;BR&gt;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창조한 것을 보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그 이전에 다른 작가들, 작품에 대한 종이 한장 만한 차이를 쌓아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가장 창의적.근대적 인간, 천재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형&lt;/FONT&gt;&lt;/U&gt;&lt;/A&gt;으로 얘기하지만 다빈치 작품을 보면 절대로 무에서 나온 게 없다. 그 이전에 있던 것에서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어 냈을 뿐이다. 다만 그 차이가 결정적인 차이가 되게 했을 뿐이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미술&lt;/FONT&gt;&lt;/U&gt;&lt;/A&gt;사의 긴 흐름에서 다빈치가 진짜 뭘 창조했느냐 보면 그 이전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르네상스&lt;/FONT&gt;&lt;/U&gt;&lt;/A&gt;의 여러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비교하면 사실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밸 플린 같은 예술사학자는 오히려 한 예술가의 개성, 개인성, 또는 한 개인의 천재적인 능력보다 한 시대의 어떤 예술의 관습 내지는 전통을 더 중시한다. 아예 예술의 역사를 인명을 배제해버리고 순전히 양식의 자기발전, 양식 스스로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 내적 논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중심으로 예술의 역사를 씀으로써 예술사를 예술가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기&lt;/FONT&gt;&lt;/U&gt;&lt;/A&gt;적 열전이 아니라 하나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과학&lt;/FONT&gt;&lt;/U&gt;&lt;/A&gt;적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시스템&lt;/FONT&gt;&lt;/U&gt;&lt;/A&gt;으로 기술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 개인의 천재성보다 창의성은 한 시대 예술가에게 공통으로 작용하는 지각&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패턴&lt;/FONT&gt;&lt;/U&gt;&lt;/A&gt;, 형식이 오히려 새로운 작품이 나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다.&lt;BR&gt;&lt;BR&gt;베르지노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천국&lt;/FONT&gt;&lt;/U&gt;&lt;/A&gt;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열쇠&lt;/FONT&gt;&lt;/U&gt;&lt;/A&gt;'라는 작품이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대상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그릴&lt;/FONT&gt;&lt;/U&gt;&lt;/A&gt; 때 이른바 중앙투시선 원근법(central linear perspective)으로 표현했다. 당시 관습은 인물은 전경의 수평으로, 배경은(&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건축&lt;/FONT&gt;&lt;/U&gt;&lt;/A&gt; 외부, 내부) 선 원근법으로 표현했다. 건축가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설계&lt;/FONT&gt;&lt;/U&gt;&lt;/A&gt;하듯이 표시를 해 놓는다. 그래서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시선이 모아져 사라진다. 소실점이 이 작품의 중심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작품은 전부 중앙이 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중앙투시선 원근법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다빈치는 단지 이를 실내로 바꿨을 뿐이다. 르네상스 작품들은 원근법 때문에 중심으로 쑥 빨려드는 듯 한 깊이의 착각을 일으킨다. 이것을 보면 평면이 아니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3차원&lt;/FONT&gt;&lt;/U&gt;&lt;/A&gt;의 깊이라는 게 정교하게 계산된 중앙투시법 때문에 흡입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양식에는 강력하게 중심이 존재한다. 그 중심이 소실점이다. 그 소실점은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대응하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세계를 바라봤다는 것은 바라보는 나(ego), 내가 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이념이던 휴머니즘, 중세와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상을 시지각 패턴으로 표현한 것이다. 르네상스는 인간중심주의, 휴머니즘에 정확히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시대에 요구되고 통용되는 지각패턴 속에서 각 개개의 예술가는 자기 개인의 천재적인 창의성보다는 한 시대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패러다임&lt;/FONT&gt;&lt;/U&gt;&lt;/A&gt;에 충실했다.&lt;BR&gt;&lt;BR&gt;1425~1510년까지 약 1세기 정도 기간 동안 이런 르네상스의 시지각 패러다임의 제일 끝에 있는 마지막 작품이 라파엘로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테네&lt;/FONT&gt;&lt;/U&gt;&lt;/A&gt;학당'이다. 그리고 급격하게 쇠퇴기가 온다. 1510년대 이후부터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다. 예술사에서는 매너리즘의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오게 되면 르네상스 양식이 가진 도저한 고전주의(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지 않고 이상화시킨다)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다빈치의 기법 중에 스푸마토가 있다. 붓을 여러 번 칠해 붓 자국이 하나도 없도록 돼 빛과 어둠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자연&lt;/FONT&gt;&lt;/U&gt;&lt;/A&gt;스럽게 하는 기법이다. 이렇게 다듬어 놓으니까 고전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권태&lt;/FONT&gt;&lt;/U&gt;&lt;/A&gt;를 느끼기 시작한다. 100여 년 동안 르네상스 양식이 하나의 시지각의 패러다임으로 통용되고 나자 여기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노이즈&lt;/FONT&gt;&lt;/U&gt;&lt;/A&gt;가 자꾸 나타났다. 매너리즘이 오게 되면 인체도 캐논에 입각해 비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인물을 쭉쭉 길게 늘어뜨린다. 엘 그레코는 인물을 병적으로 새장형으로 그린다. 붓질한 것도 그대로 남겨 거칠하다. 르네상스에 익숙했던 사람이 보면 엘 그레코 작품은 형편없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졸작&lt;/FONT&gt;&lt;/U&gt;&lt;/A&gt;이다. 매너리즘은 고전주의에 대한 미학적인 노이즈다.&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 #ccc 1px solid; BORDER-LEFT: #ccc 1px solid; MARGIN: 5px 0px 10px 15px; BACKGROUND: #ffffff; BORDER-TOP: #ccc 1px solid; BORDER-RIGHT: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250&gt;&lt;IMG class=resize3 border=1 name=img_resize hspace=0 alt=&quot;&quot;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2/04/60091204104715(2).JPG&quot; width=250 height=375&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 COLOR: #777; FONT-SIZE: 11px&quot; width=250&gt;▲ ⓒ참여사회연구소&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그러다가 확 변한 게 바로크 스타일이다. 르네상스를 매너리즘을 과도기로 불연속적인 비약을 한 게 바로크 양식이다. 바로크의 대가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루벤스&lt;/FONT&gt;&lt;/U&gt;&lt;/A&gt;, 벨라스케스, 램브란트인데 루벤스의 작품을 보면 인물들이 대각선으로 쓰러져 있다. 안정되게 도열한 르네상스 작품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인물들도 움직인다. 르네상스는 구도가 상당히 안정돼 있는데 바로크로 오면 불안정하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움직임&lt;/FONT&gt;&lt;/U&gt;&lt;/A&gt;이 많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배경을 보면 원근법을 보면 소실점이 옆으로 빠져 있다. 중심이 이동해 있다. 어떤 미학자는 이것을 중심의 상실로 보기도 한다. 왜 이렇게 됐느냐는 예술 내부의 요인도 있고, 그 예술작품을 낳은 사회.역사적 요인들도 있다.&lt;BR&gt;&lt;BR&gt;정확하게 바로크 양식이 통용된 시기가 서구에서는 상업자본이 나타났던 시기다. 바로크 양식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원시&lt;/FONT&gt;&lt;/U&gt;&lt;/A&gt;자본에서 상업자본으로 이행하면서 신대륙으로 향하고, 화폐가 부의 축적기준이 돼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상거래&lt;/FONT&gt;&lt;/U&gt;&lt;/A&gt;가 많아지고 이동이 많아지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시기였다. 반동이 일어나고 종교적으로 종말론이 퍼져 있고 곧 망한다는 강박관명이 있던 시대였다. 그래서 바로크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화면의 느낌이 현저하게 어둡다. 특히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배경은 아예 시커멓게 칠한다. 이른바 렘브란트 라이트라고 해서 빰, 여자 젖가슴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명함&lt;/FONT&gt;&lt;/U&gt;&lt;/A&gt;을 줘서 흑백 대조가 아주 심하다. 르네상스와 꽤 다른 시지각 패턴이 나타났다. 이게 한 100여 년 동안 지속된 예술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lt;BR&gt;&lt;BR&gt;이런 패러다임 안에서 한 개인의 능력, 또는 창의성이라는 것은 작은 차이, 그러나 작은 차이들이 축적돼 어느 순간 결정적인 차이가 돼 불연속적인 비약이 일어난다. 예술의 역사 안에 기라성 같은 천재적인 작가들의 창의성의 업적들이 있는데 사실 보면 개인의 창의성 못지않게 그것을 둘러싼 패러다임, 한 시대의 독특한 양식, 관습, 전통이 어떤 의미에서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lt;BR&gt;&lt;BR&gt;&lt;B&gt;과학과 예술&lt;/B&gt;&lt;BR&gt;&lt;BR&gt;이런 예술사 안에서 창의성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상하리만치 과학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이론, 지식, 세계관의 변화와 거의 정확하게 일정한 대응(correspondence)이 있다. 과학의 역사에서 지동설, 조수이론, 중력이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자기장&lt;/FONT&gt;&lt;/U&gt;&lt;/A&gt; 이론, 상대성 이론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예술의 르네상스-바로크-신고전주의-낭만주의-리얼리즘의 진화와 상관성이 있다. 과학에서 왜 이렇게 이론이 변화하느냐는 매커니즘, 기제가 예술에 있어 양식, 개념이 변화하는 것과 알고리즘이 상당히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me shift)라는 용어를 제안했는데 과학적 지식도 시간을 초월해서 절대 불변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진리&lt;/FONT&gt;&lt;/U&gt;&lt;/A&gt;가 있는 게 아니다. 근대 과학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한 시기의 과학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패러다임이 있는데 그 패러다임 안에서 어떤 의미가 소통되다가 일정시기가 지나면 안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이 새로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퍼즐&lt;/FONT&gt;&lt;/U&gt;&lt;/A&gt;에 대해 여러 학자들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가설&lt;/FONT&gt;&lt;/U&gt;&lt;/A&gt;을 내고 증명을 하면서 앞의 이론이 깨지고 새 이론이 과학커뮤니티 안에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진실&lt;/FONT&gt;&lt;/U&gt;&lt;/A&gt;로 인정되다가 또 퍼즐이 나오고 새 이론으로 대체된다는 게 쿤의 생각이다.&lt;BR&gt;&lt;BR&gt;이런 쿤의 생각이나 제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학원&lt;/FONT&gt;&lt;/U&gt;&lt;/A&gt; 때 빠졌던 포퍼의 프라블름 시프트(problem shift)와 비슷하다. 과학 지식의 체계도 바뀔 수 있고 새로운 이론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진화론적인 생각을 포퍼는 갖고 있다. 과학에서 창의적인 이론이 나오는 내적 기제는 예술 안에서 어떤 양식이나 개념이 시프트 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특히 포퍼가 얘기한 것 중에 눈여겨 볼 것은 가설을 제시할 때 과감한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14~15세기에 눈 뜨면 해가 동에서 떠서 서에서 지니까 천동설이 맞다는 생각에 대해 지구가 돈다는, 화형에 처해지거나 감옥에 가야 할 정도로 과감할수록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과학은 광기로 하면 안 되겠지만 예술은 광기로 해도 좀 된다. 학교에서 턱없이 엉뚱한 생각을 하라고 한다. 이 사회에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매장&lt;/FONT&gt;&lt;/U&gt;&lt;/A&gt;될 정도로 과감한 생각을 하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정신병원&lt;/FONT&gt;&lt;/U&gt;&lt;/A&gt;에 넣을 정도로 과격한 생각을 하라, 실현여부를 떠나서 그 정도라도 해야 조금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제도교육은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만 이상하게 생각하고 배제, 제거, 격리시킨다. 그게 문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예술&lt;/FONT&gt;&lt;/U&gt;&lt;/A&gt;은 감정의 산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과학&lt;/FONT&gt;&lt;/U&gt;&lt;/A&gt;은 이성의 산물로 남극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북극&lt;/FONT&gt;&lt;/U&gt;&lt;/A&gt;의 차이처럼 위치시키는데 실제로 과학에서의 새로운 이론, 기술의 발명이 그 내부에서 진행되는 매커니즘을 보면 예술에서 벌어지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위대한 과학자일수록 발견의 과정이나, 발견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스러움, 암중모색의 과정이 예술가의 그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여러분께 '생각의 탄생'이라는 대중적인 책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인터뷰, 심리학자들의 스터디를 보면 새로운 과학이론을 세울 때, 뜨거운 느낌이 먼저 왔다. 이거 될 것 같다는 필이 오고 이를 정식화(formulation)하는 것은 한참 뒤였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맥스웰&lt;/FONT&gt;&lt;/U&gt;&lt;/A&gt;이 이제까지 전기장과 자장이 따로 연구되다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자기장&lt;/FONT&gt;&lt;/U&gt;&lt;/A&gt;이라는 현상을 이론화하는데 새로운 이론체계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만들기&lt;/FONT&gt;&lt;/U&gt;&lt;/A&gt; 전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비주얼&lt;/FONT&gt;&lt;/U&gt;&lt;/A&gt;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어떤 이미지가 먼저 왔다는 것이다. 전자기장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바퀴&lt;/FONT&gt;&lt;/U&gt;&lt;/A&gt;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도르래&lt;/FONT&gt;&lt;/U&gt;&lt;/A&gt;의 집합체처럼 움직인다고 했다. 원자는 작은 태양계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새로운 과학지식의 단초가 은유(metaphor)였다. 과학에 있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창조&lt;/FONT&gt;&lt;/U&gt;&lt;/A&gt;는 메타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인슈타인&lt;/FONT&gt;&lt;/U&gt;&lt;/A&gt;도 특수&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상대성이론&lt;/FONT&gt;&lt;/U&gt;&lt;/A&gt;을 끝내고 일반상대성이론을 정식화하는 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에 어마어마한 주사위가 나타났다. 비주얼 이미지를 보고 일반상대성이론의 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파인&lt;/FONT&gt;&lt;/U&gt;&lt;/A&gt;만은 천재적인 과학자는 예술가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학과 예술이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창의성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lt;BR&gt;&lt;BR&gt;60년대에 길포드(Guilford)가 '인간 지능의 본성'이라는 책을 냈다. 인간이 두 개의 모델로 작동하는데 컨버전과 디버전 사고다. 컨버전은 단 하나의 답을 찾는 데 작동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디버전 사고는 일련의 문제에 대해 여러 개의 답을 뱉어내는 사고방식이다. 두 개가 변증법적으로 피드백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일제하, 해방 이후 학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교육&lt;/FONT&gt;&lt;/U&gt;&lt;/A&gt;은 컨버전 사고만 강제하고 있다. 단 하나의 정답, 밑줄 하나 긋고 여기에 가장 가까운 것을 1~4번 중에 찍는 것이다. 비슷해도 틀렸다고 한다. 생각의 매커니즘을 수렴적(컨버전) 사고에다가 찍어 내고 있다. 예술가의 창조는 대부분 디버전 사고에서 나온다. 어떤 한 문제에 골몰하다가 전혀 엉뚱한 데서 답을 찾게 된다.&lt;BR&gt;&lt;BR&gt;모차르트의 지각구조에서 굉장히 특이한 게 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 누구도 없는 이상한 능력이 있었다. 음악은 시간의 시퀀스 안에서만 지각된다. 4소절까지 들어야 음악의 언어를 알아듣는다. 몇 소절 지나면 앞에 소절을 잊는다. 그래서 반복시켜서 음악 전체가 흐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재 들려지는 음악만 지각할 수 있다. 앞은 망각되고 뒤의 것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차르트는 첫음과 끝음을 동시에 듣는다. 이게 가능한가. 구라 아닌가. 인간이 지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아마 구라일 것이다. 단 모차르트는 음악을 비주얼 이미지로 지각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음악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건축&lt;/FONT&gt;&lt;/U&gt;&lt;/A&gt;으로 환치해서 지각했는지도 모른다. 음악과 제일 가까운 게 건축이다. 두개 다 일정한 단위를 쌓아 올린 것이다. 부분들이 서로 연결돼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하나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음악과 건축은 같다. 문학은 언어로 현실을 재현하고, 건축,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미술&lt;/FONT&gt;&lt;/U&gt;&lt;/A&gt;도 바깥에 오브제가 있지만 음악은 그게 없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건축적이다. 그게 특이체질이 아니었나 싶다.&lt;BR&gt;&lt;BR&gt;모차르트의 편지를 보면 아버지, 사촌에게 보낸 게 천양지차다. 아버지에게 보낸 것은 항상 감시하고 있는 초자아(super ego)다.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상당히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조리&lt;/FONT&gt;&lt;/U&gt;&lt;/A&gt;가 있다. 때문에, 때문에로 이어지는 논리적 기술을 하고 있다. 반면 사촌누이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제일 많이 나온 단어가 방귀, 똥, 엉덩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쓰레기&lt;/FONT&gt;&lt;/U&gt;&lt;/A&gt;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한다면 모차르트에게는 항문기 도착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데우스 영화에서 콜로레도 주교에게 퇴짜 맞고 나올 때 대주교를 향해 엉덩이를 보이고 나온다.&lt;BR&gt;&lt;BR&gt;&lt;B&gt;창의성과 몰입&lt;/B&gt;&lt;BR&gt;&lt;BR&gt;모차르트가 우리 초등.중등학교에 왔으면 아마 자살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모차르트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신화&lt;/FONT&gt;&lt;/U&gt;&lt;/A&gt;의 껍데기를 벗기고 나면 심리학자들이 추정하는 그의 아이큐는 120정도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신이 점지한, 인간세계에 속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 아이큐가 높을 것 같지만, 여러 조사에 따르면 창의성과 아이큐는 거의 무관하다고 한다. 아이큐가 100이하인 사람에게는 창의적인 업적이 안 나왔다고 한다. 100이하면 침팬지 정도인데 그것이 아닌 보통 120정도면 창의적인 업적을 낸다는 것이다. 아이큐는 성격, 환경에 비해 영향을 덜 미친다.&lt;BR&gt;&lt;BR&gt;2차 세계대전 끝나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스탠포드&lt;/FONT&gt;&lt;/U&gt;&lt;/A&gt;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은 20년 장기관찰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프로젝트&lt;/FONT&gt;&lt;/U&gt;&lt;/A&gt;를 실시해 1470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결론은 실제 천재는 천재로 남아 있지 않았다. 1400명 중에 대부분이 공무원이 됐다고 한다. 대법관 2명,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지방&lt;/FONT&gt;&lt;/U&gt;&lt;/A&gt;판사 2명이 나왔고 오히려 여기서 떨어진 사람 중에 노벨상이 나왔다. 인지심리학자의 얘기는 140이냐 150이냐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리암 허드슨의 DT(divergent thinking)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테스트&lt;/FONT&gt;&lt;/U&gt;&lt;/A&gt;에 따르면 아이큐 높은 군과 낮은 군을 보면 낮은 군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낸다.&lt;BR&gt;&lt;BR&gt;우리 사회에서 모차르트는 병원에 가거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파트&lt;/FONT&gt;&lt;/U&gt;&lt;/A&gt; 13층에서 떨어져야 한다. 다행히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홈스쿨&lt;/FONT&gt;&lt;/U&gt;&lt;/A&gt;링을 받았다. 이게 문제다. 우리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학생&lt;/FONT&gt;&lt;/U&gt;&lt;/A&gt;들을 만나면 솔직히 서울대, 연고대 까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대학 다니는 애들은 컨버전 사고로 나온 것으로 모든 자기의 능력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재단&lt;/FONT&gt;&lt;/U&gt;&lt;/A&gt;하고 콤플렉스가 있다. 인생 전체가 그것으로 멍든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수능시험&lt;/FONT&gt;&lt;/U&gt;&lt;/A&gt; 5지선다 찍기로 20~30년까지 결정된 순위가 그 사람을 지배한다. 이것을 디버전 사고로 해 보면 다르다. 인류에게 정말 창의적인 일을 할 기회가 우리 교육풍토에서 원천봉쇄 되거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멸균&lt;/FONT&gt;&lt;/U&gt;&lt;/A&gt;이 되고 있다. 그러면 산만하기만 하면 창의적인가? 산만하기만 한 아이들도 많다. 저희 학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영상원&lt;/FONT&gt;&lt;/U&gt;&lt;/A&gt;은 좀 산만한 아이들을 뽑는다. 그런데 계속 산만한 애들도 있다.&lt;BR&gt;&lt;BR&gt;창의성과 관련해서는 산만해 보이는 디버전 사고와 또 하나가 필요하다. 몰입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퐁당 빠지는 것이다. 제가 총장 하면서 예술과 과학이 만나야 한다고 하니까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포항&lt;/FONT&gt;&lt;/U&gt;&lt;/A&gt;공대와 친해졌다. 포스텍 총장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추천했다. 그것을 보니까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있었다. 여러 심리학자들의 조사를 종합해 놨는데 세계수준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전문가&lt;/FONT&gt;&lt;/U&gt;&lt;/A&gt;, 마에스트로가 되는 자들을 보니까 1만 시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에누리&lt;/FONT&gt;&lt;/U&gt;&lt;/A&gt; 없이 1만 시간을 몰입을 했더라는 것이다. 하루 8시간 몰입을 하면 10년 걸린다. 몰입이란 그냥 그 시간 자체가 망각돼 버린다. 밥도 잊고 잠도 잊고, 내가 뭐하고 있는지 시간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소설가, 체스 챔피언, 심지어는 완전범죄에 가까운 숙달된 범죄자들을 보니까 1만 시간을 그 분야에 몰입을 했다. 베를린음대의 학생을 세 부류로 나눠지더라. 1만 시간 몰입한 이들은 솔로로 나가고 8000시간은 오케스트라단원, 4000시간 몰입한 이들이 음악교사를 하더라. 빌 조이, 빌 게이츠, 심지어 비틀즈도 1만 시간이 넘었다. 그 시기가 한 14살~16살, 중학교 2,3학년이나 고1,2에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학교&lt;/FONT&gt;&lt;/U&gt;&lt;/A&gt; 3학년까지가 제일 집중이 돼 있는 것 같다. 우리 자녀들을 봐야 한다. 10대에서 20대 초반에 1만 시간 몰입했느냐가 한 분야에서 창의적 업적을 이룰 수 있는 큰 조건인 것 같다.&lt;BR&gt;&lt;BR&gt;제 경우 시에 처음 눈뜬 게 중3때였다. 형님의 일기장 앞에 나오는 릴케의 시 '고독'을 보고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가슴&lt;/FONT&gt;&lt;/U&gt;&lt;/A&gt;이 무너져버렸다. 그러면서 시에 전염돼버렸는데 대학교 1학년 때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머리 위로는 시였다. 시를 이고 다녔다. 꿈에서도 썼고, 한참 고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선생&lt;/FONT&gt;&lt;/U&gt;&lt;/A&gt;의 시가 나왔을 때 거기 빠졌다. 어떤 시는 내가 쓴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풍덩 빠졌다. 그 나이, 그것만 하면 밥도 안 먹어도 되는 것, 예술이 됐든 과학이 됐든, 체스가 됐든. 우리 아이들이 가진 능력을 심해에 집어넣어서 몰입시키면 폐활량이 커져 어느 분야에서든 창의적 일을 할 수 있다. 컨버전 사고로 재단돼 있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수능&lt;/FONT&gt;&lt;/U&gt;&lt;/A&gt;, 아이큐에서 빨리 해방시켜 좋아하는 분야에 풍덩 빠지게 해야 한다.&lt;BR&gt;&lt;BR&gt;제도교육의 커리큘럼 구성도 다시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게 교육 방법이다. 수렴적 사고로 단련이 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4104715&amp;Section=03&amp;page=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양산&lt;/FONT&gt;&lt;/U&gt;&lt;/A&gt;하고 있는데 디버전 사고를 할 수 있는 교과내용, 교재개발, 교육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EBS 방송을 보면 범죄다. 3번이죠, 찍어요다. 죽여 버리고 싶다. 큰일이다. 정 안되면 대안학교를 만들던가. 지금 우리 교육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 속에 잠재력이 있는데 이게 사장되지 않게 시민단체들이 각별히 연구도 하고 시민운동, 국민운동을 해야 한다.&amp;nbsp;끝.&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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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크랩] 경관 살해범, &quot;나는 예수다&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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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4T02:12:57Z</updated>
	    <published>2009-12-04T02:12: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팝뉴스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id=title class=t&gt;&lt;B&gt;경관 살해범 “나는 예수다, 세상은 멸망한다” 주장&lt;/B&gt;&lt;/DIV&gt;
&lt;DIV class=d&gt;&lt;SPAN class=d1&gt;[팝뉴스] 2009년 12월 03일(목) 오전 10:45&lt;/SPAN&gt; &lt;/DIV&gt;
&lt;DIV class=d&gt;&lt;/A&gt;&lt;/A&gt;&lt;/DIV&gt;
&lt;DIV id=content class=c&gt;&lt;IMG style=&quot;MARGIN: 5px; CURSOR: hand&quot; title=&quot;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quot; src=&quot;http://l.yimg.com/go/news/picture/2009/i6/20091203/20091203104500378i6_105209_0.jpg&quot;&gt;&lt;BR&gt;총기를 난사해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한 살인범이 자신이 예수라는 주장을 펼친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2일 뉴욕데일리뉴스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lt;BR&gt;&lt;BR&gt;언론에 따르면, 37살의 남성 모리스 클레몬스는 지난 달 29일 미국 &lt;A class=lw href=&quot;http://kr.rd.yahoo.com/search/searchify/news/livewords/*http://kr.search.yahoo.com/search?fr=kr-popup_lev_news&amp;cs=bz&amp;p=%BD%C3%BE%D6%C6%B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시애틀&lt;/FONT&gt;&lt;/A&gt;의 한 커피숍에서 총기를 난사한 후 도주했다. 그의 총탄에 남성 경찰 3명과 여경 1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추적 끝에 용의자를 발견했으며, 추격전 중 시애틀 외곽에서 클레몬스는 경찰의 총을 맞고 숨졌다.&lt;BR&gt;&lt;BR&gt;경찰관 4명을 숨지게 만든 클레몬스의 사망 후 그의 이전 행적이 새롭게 전해지고 있는데, 지난 6월 미국의 유명 성직자를 방문한 클레몬스가 자신이 예수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 언론의 설명이다. 그가 뉴욕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버나드 조단 목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quot;내가 예수였으며,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quot;라는 말을 했다는 것. 또 3일 동안 운전해서 뉴욕에 온 이유에 대해서는 “신이 나를 불렀다”고 답했다고 한다. 클레몬스가 경찰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lt;BR&gt;&lt;BR&gt;김정 기자&lt;BR&gt;==================================================================================&lt;/DIV&gt;
&lt;DIV class=c&gt;&amp;nbsp;&lt;/DIV&gt;
&lt;DIV class=c&gt;어저께 들은 얘기입니다.&lt;/DIV&gt;
&lt;DIV class=c&gt;한 사람이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lt;/DIV&gt;
&lt;DIV class=c&gt;&quot;너는 내 종이다.&lt;/DIV&gt;
&lt;DIV class=c&gt;내가 너를 크게 쓸 것이다.&lt;/DIV&gt;
&lt;DIV class=c&gt;너의 손자를 죽여 나에게 바쳐라.&quot; &lt;/DIV&gt;
&lt;DIV class=c&gt;아픈 사람이 갑자기 눈빛이 형형해지면서 음산한 기운을 품으며 이런 소리를 외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lt;/DIV&gt;
&lt;DIV class=c&gt;마침 이 사람의 집에 결혼해서 아들을 낳은 자기 딸이 와 있었답니다. &lt;/DIV&gt;
&lt;DIV class=c&gt;정말 혼비백산할 일이었지요. &lt;/DIV&gt;
&lt;DIV class=c&gt;&amp;nbsp;&lt;/DIV&gt;
&lt;DIV class=c&gt;요즘 세월이 하수상 하니, 뭘 보고, 뭔 소리를 들었다는 이들이 적잖게 등장합니다. &lt;/DIV&gt;
&lt;DIV class=c&gt;그렇지만, 듣는 소리, 보는 장면에 주의할진저~&lt;/DIV&gt;
&lt;DIV class=c&gt;&amp;nbsp;&lt;/DIV&gt;
&lt;DIV class=c&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 청랑 &lt;/DIV&gt;
&lt;DIV class=c&gt;&amp;nbsp;&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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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일묵상] 12/3 목: 놀라운 은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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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4T01:39:51Z</updated>
	    <published>2009-12-04T01:39: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2월 3일 목요일&lt;/STRONG&gt;&lt;/P&gt;
&lt;P&gt;마가복음 5장 1-20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quot;&amp;nbsp; 막 5:19&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놀라운 은혜&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최근 한 주일 예배에서 한 젊은 엄마가 저와 제 아내를 그녀가 앉아 있는 곳으로 불렀습니다. 그 젊은 엄마는 12살 난 자기 딸을 곁에 앉히고 갓난 아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quot;제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quot; 라고 그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 아이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신은 귀신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얘기는 당신에게 그리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믿는다면, 이 스토리에 나오는 예수님의 권세가 당신을 긴장하게 만들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유를 갖다 주실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에게 놓임을 제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필요한 곳에 놀라운 은혜를 제공해 주십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와 제 아내는 그 소녀에게 손을 얹고서 그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귀신에게 그녀를 놓아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귀신은 흔들고 으르렁대며 우리 기도에 맞섰습니다. 그 귀신이 떠나자, 그 조용하고 지쳐 있던 어린 숙녀는 예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 엄마는 자기 딸의 몸짓과 어조에서 변화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친구들이 귀신에서 놓여난 그 사람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은 &quot;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quot;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간단한 요구를 하셨습니다. &quot;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셨는지를 네 가족에게 알리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를 묶고 있던 귀신의 차꼬가 제거되고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을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요청하십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보배로우신 예수님, 주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에 대한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주께서 저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제가 결코 피곤해 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덕구이야기(2): 짜증과 짜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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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3T16:14:41Z</updated>
	    <published>2009-12-03T16:14: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뉴스엔조이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U&gt;&lt;STRONG&gt;덕구 이야기 (2): 짜증과 짜장&lt;/STRONG&gt;&lt;/U&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입력 : 2009년 12월 03일 (목) 00:26:19 [조회수 : 153]&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김홍덕 ( &lt;A title=joycenter href=&quot;javascript:welcometex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newsnjoy.co.kr/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기자에게 메일보내기&lt;/FONT&gt;&lt;/SPAN&gt;&lt;/U&gt;&lt;/A&gt; )&amp;nbsp; &lt;/FONT&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newsnjoy.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TD&gt;&lt;/TR&gt;
&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class=g_title_t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60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g_title_b&gt;&lt;SPAN class=e_gray_f&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덕구 이야기'는 벼락을 맞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게 된 개(덕구)를 통하여 보는 세상, 개를 통해 듣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주인집 강 장로님 집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의 정서, 교회와 세상 사람들의 생각들을 꼬집는 콩트 스타일의 연재소설입니다. - 편집자 주&lt;/SPAN&gt;&lt;/P&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align=justify&gt;오늘은 먼저 우리 족보를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족보라고 말하기엔 좀 부끄럽네요. 숨기고 싶은 내 과거를 초장부터 드러내려고 하니 내 마음도 다시 아려 오네요. 용기를 내서 말하는 김에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우리 부모님은 그야말로 기품 있는 귀족에 속하죠. &lt;BR&gt;&lt;BR&gt;굳이 족보를 밝히라면 잉글리쉬 코가 스파니엘종이구요, 그냥 스파니엘이라고 부르죠. 우리 조상 스파니엘종-이렇게 부르면서도 가슴이 아프네요-은 영국 웰즈의 왕궁에서 살았죠. 왕자들을 따라 사냥을 하곤 했다는데, 주로 산새(도요새) 사냥을 했다네요. 콕(도요새)을 잡는다고 해서 코가라고도 불렀답니다. 그 후에 종파들이 나뉘어 여러 종의 스파니엘이 생기게 되었지만, 우리 가문만은 100년 동안 순수한 혈통을 유지한 진짜 순 잉글리쉬 코가 스파니엘이었답니다. 그러니 우리 엄마 아빠가 주인으로부터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랍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우리 엄마의 행복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었나 봐요. 그 여신은 질투의 여신이니까요. &lt;BR&gt;&lt;BR&gt;일이 생기려면 순간의 방심을 틈타 생기는 징크스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날은 주인님의 집 큰아들 결혼식이 있었던 날이었대요. 결혼식 준비에 온 집안이 어수선한 틈을 타 엄마는 세상 구경이 하고 싶어 살짝 집을 빠져나왔대요. 잘사는 단독주택 지역이어서 그런지 집집마다 내로라하는 종류의 개들이 쫑긋 귀를 세우고 혼자 마실을 나온 엄마를 부러워하면서도 경계의 뜻으로 마구 짖어댔지만, 엄마는 기분이 너무 좋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놀이터로 냅다 달려갔대요. 그런데 놀이터로 돌아가는 길목에 큰 고무나무가 하나 서 있었는데, 나무 뒤에서 망을 보고 있던 엄마보다 덩치가 큰 수캐가 갑자기 엄마를 덮쳤다지 뭐에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는 거에요. 뒤늦게 엄마를 찾아 허겁지겁 달려온 주인집 아들이 물을 뿌려 둘을 떼어 놓은 다음 엄마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데, 그날부터 엄마는 주인집 식구들로부터 냉대를 당해야만 했대요. 어떻게 영국 왕족 스파니엘이 러시아에서 서커스단 곡예나 하던 종자인 골든 리트리버에게 치욕을 당할 수 있느냐고, 행실을 바로 하지 못한 엄마를 다그치기만 했다죠. &lt;BR&gt;&lt;BR&gt;그러나 정작 슬픈 날은 엄마가 나를 낳은 날이었어요. 엄마는 나를 포함해서 다른 형제 둘을 더 낳았는데, 그날 부로 우리 셋은 엄마 젖도 제대로 빨지 못하고 동물 보호소로 옮겨졌지요. 도저히 혼혈 사생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인집 어른의 단호함 때문이었죠. 그나마 난 행운아였어요. 동물 보호소로 간 지 엿새째 되던 날 내가 유리네 집에 오게 되었으니까요. 유리가 강아지를 너무 원했기 때문에 강 장로님이 유리를 위해서 나를 입양한 거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떠나고 나의 두 형제들은 질식사해서 죽었대요. 보호소 규정상 7일이 지나도 아무도 입양하지 않으면 강제로 사망을 시킨다는군요. 사람들은 잔인해요.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일 수가 있어요? &lt;BR&gt;&lt;BR&gt;좋지 않은 일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발해서 일어나는 징크스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유리네 집에 간 지 딱 일주일 만에 제가 벼락을 맞은 거죠. 사람들은 이럴 때 전화위복이란 말을 쓰더군요. 벼락을 맞았는데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개로 거듭나게 되었으니까 말예요. &lt;BR&gt;&lt;BR&gt;지금부터는 박 박사님(옆집 철민 아저씨인데, 음성 공학 전문가래요)이 정리해 놓은 나의 일기를 소개해 드리죠. 미리 한마디만 먼저 부탁할게요. 내 일기에 적힌 사람들을 비판하지는 마세요. 우리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니까요. &lt;BR&gt;&lt;BR&gt;&lt;FONT color=#000080&gt;200O. O. OO.&lt;/FONT&gt; &lt;BR&gt;&lt;BR&gt;귀가 멍멍하다. 내가 안 하던 짓을 한다고 영웅 도련님한테 발로 한 방 채였는데, 하필이면 귀를 맞았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갑자기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후부터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거실로 올라가 앉았다가 졸지에 한 방 맞은 것이다. 다른 집 개들은 거실이 아니라 안방까지도 드나드는데, 나는 보호소 출신이라고 이런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하긴 나를 집에 데리고 오는 것조차 극구 반대하던 권사님을 겨우 달래 앞마당에 내 집 한 구석 마련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죽은 형제들을 생각하면 이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데려올 때 절대로 집안에 들여놓지 않기로 식구들 간에 협약을 했기 때문에, 난 한 발짝도 집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었다. 엄마 아빠가 불현듯 생각나서 우울하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 아빠. &lt;BR&gt;&lt;BR&gt;오늘은 짜증과 짜장이 넘쳐난 날이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은 이후로 내 귀는 이전보다 더 밝아진 느낌이다. 오늘 저녁 갑자기 우리 집에 사람들이 한 명씩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난 또 잘한답시고 열심히 짖어댔다. 그랬더니 장로님도 짜증을 내시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짜증을 내며 한마디씩 했다. &quot;입 좀 닥쳐라.&quot; 알고 보니 오늘이 한 달에 한 번 모인다는 구역예배 날이라는데. 구역예배가 무엇하는 날인지 알게 되었다. 아마 구역 식구들이 모여 함께 짜장면 먹는 날인가 보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구역예배를 막 시작 했을 때, 짜장면이 배달되었다. &quot;짜장면 불기 전에 빨리 예배 끝냅시다&quot;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lt;BR&gt;&lt;BR&gt;노래 하나 부르고 다음엔 장로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그리고는 다같이 중얼중얼거리더니 예배가 끝났다. 길어야 10분 정도 되었을까. 갑자기 후루룩, 후루룩 하는 소리가 합창처럼 들린다. 아, 짜장면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리듬을 맞추며 먹는 게 예의인가 보다. 후루룩 소리 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동안 짜장면 엄청 먹었나 보다. 나도 후루룩 소리를 내 보려고 했지만 침만 흐를 뿐 소리는 나지 않는다. 짜장면이 무엇인지 먹고 싶다. 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후루룩 소리도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제 나한테도 좀 주겠지. 아니면 남은 거라도 있겠지. 방안에서는 박장대소하며 떠드는 소리가 끝날 줄 모른다. 짜장면이 먹고 싶다. 드디어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갔다. &lt;BR&gt;&lt;BR&gt;주인마님은 이층에 있는 유리에게 남겨 둔 짜장면 한 그릇을 올려 보냈다. 시각 장애가 있는 유리는 사람들이 장로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이층 자기 방안에 꼼짝 말고 있어야 했다. 이젠 이골이 난 유리도 서럽지 않다. 불어 터진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무슨 감사가 그리도 절절한지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는 유리의 얼굴에 잔잔한 기쁨이 퍼진다. &lt;BR&gt;&lt;BR&gt;유리 아가씨가 굿나잇 인사를 하러 왔다. 유리 아가씨는 매일 나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러 나온다. 짜장면 면발 몇 줄기를 나에게 가져왔다. 고맙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입으로 면발을 물었다. 잉. 후루룩은커녕 물기도 어렵고 핥기도 어렵다. 씹으려고 해도 뭉그러지고 만다. 게다가 영 맛이 아니다. 느끼하기 그지없다. &lt;BR&gt;&lt;BR&gt;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다른 사람들이구나. 함께 모여 짜장면 먹으면서 고도의 극기 훈련을 하는 줄 몰랐다. 금방 침샘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예배를 드리는 것도 식욕 본능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리라. 맛이 하나도 없는 불어 터진 짜장면. 씹기도 어려운 면발을 후루룩 박자까지 맞추면서 삼키는 식욕 절제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먹을 것만 밝히는 내가 몹시 부끄럽다. 더구나 짜장면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버린 구역 식구들이 존경스럽다. 다음번 구역예배 때는 나도 짜장면을 탐하지 않게 될 것이니 마음이 편하다. 다만 침샘을 자극하는 입맛 당기는 냄새만은 잘 참아야 할 텐데. 오늘 짜장면 때문에 침을 너무 많이 흘렸다. 나도 짜장면 극기 훈련을 통해 침 흘리는 버릇을 고쳐 &lt;FONT color=#000000&gt;보리라. (계속)&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스크랩] 김대호: 최고 권력자의 지적 유고 상태와 아날로그 마인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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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3T10:28:04Z</updated>
	    <published>2009-12-03T10:28: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창비주간 논평, 프레시안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대호: 최고 권력자의 지적 유고 상태와 아날로그 마인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직장&lt;/FONT&gt;&lt;/U&gt;&lt;/A&gt;인들 사이에서는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상사가 최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상사가 독선적인데다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자신감&lt;/FONT&gt;&lt;/U&gt;&lt;/A&gt;까지 겸비한다면? 최악의 제곱이라고 해야 할까? 최악 킹왕짱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11월 27일 밤 35개 채널을 통해 방영된 &lt;대통령과의 대화&gt;를 본 나의 종합적인 소감이다. 청와대 직원들에게 대통령이 내복 입은 것을 슬쩍슬쩍 보여준다는 얘기 등에서는 중간중간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허탈로, 또 위기의식으로 바뀌는 데는 몇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gt;&lt;BR&gt;이번 방송을 보니 이 대통령이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말을 재미있게, 특히 보통 사람들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피부&lt;/FONT&gt;&lt;/U&gt;&lt;/A&gt;에 와닿게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도 느껴졌다. 시쳇말로 드디어 자기 페이스(pace)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 위기의식이 더 커졌다. 물론 위기의식의 뿌리는,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흡수해야 할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지적 능력과 파당적(서울·공무원·청와대 중심적) 사고이다.&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 #ccc 1px solid; BORDER-LEFT: #ccc 1px solid; MARGIN: 5px auto 10px; BACKGROUND: #ffffff; BORDER-TOP: #ccc 1px solid; BORDER-RIGHT: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00&gt;&lt;IMG class=resize3 border=1 name=img_resize hspace=0 alt=&quot;&quot;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2/02/10091202103625.JPG&quot; width=500 height=254&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 COLOR: #777; FONT-SIZE: 11px&quot; width=500&gt;▲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이완구 충남도지사가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gt;부실한 '팩트'로 진솔한 대화 가능할까&lt;/B&gt;&lt;BR&gt;&lt;BR&gt;이번 방송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한 것은, 이대통령의 지적 능력이 실제 나이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얼굴&lt;/FONT&gt;&lt;/U&gt;&lt;/A&gt;보다 훨씬 퇴락한 노인의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고정관념과 아집이 강하여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잘 흡수되지 않는 것 같고, 주변의 '현명한' 참모들의 보좌도 거의 먹히지 않는 것 같아서다.&lt;BR&gt;&lt;BR&gt;이는 2008년 9월 멜라민 파동이 일어났을 때 식약청을 전격 방문하여 '(한참 대화를 나누고도) 분유에 왜 멜라민 함량 표시가 안되어 있느냐'고 묻던 YTN &lt;돌발&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영상&lt;/FONT&gt;&lt;/U&gt;&lt;/A&gt;&gt;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느낌이다. 이번 방송은 이대통령의 발언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런 느낌을 주는 장면이 수두룩했다.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기본&lt;/FONT&gt;&lt;/U&gt;&lt;/A&gt;적인 사실(fact) 파악에서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다.&lt;BR&gt;&lt;BR&gt;단적으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4대강&lt;/FONT&gt;&lt;/U&gt;&lt;/A&gt;사업 설명이 그랬다. 홍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예방&lt;/FONT&gt;&lt;/U&gt;&lt;/A&gt;을 위해서라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홍수는 22조원을 투입하겠다는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천에서 일어났다. 한강의 수질이 개선된 것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잠실&lt;/FONT&gt;&lt;/U&gt;&lt;/A&gt;, 신곡 수중보 때문이 아니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하수처리&lt;/FONT&gt;&lt;/U&gt;&lt;/A&gt;율이 100%에 이르고 경안천, 왕숙천 등 지천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다.&lt;BR&gt;&lt;BR&gt;게다가 높이가 10m가 넘어 댐이나 마찬가지인 4대강사업의 보(洑)와 잠실, 신곡 수중보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이대통령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TV&lt;/FONT&gt;&lt;/U&gt;&lt;/A&gt; 화면을 통해 보여준 문건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2007년 당시 건교부, 농림부, 소방방재청 등 9개 부처가 국가방재의 틀을 예방 위주로 짜기 위해 마련한 로드맵으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하천&lt;/FONT&gt;&lt;/U&gt;&lt;/A&gt; 재해예방 사업비는 14조여원이다. 이 역시 본류보다는 상류나 지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정비&lt;/FONT&gt;&lt;/U&gt;&lt;/A&gt;에 주안점을 둔 예산이다.&lt;BR&gt;&lt;BR&gt;&lt;B&gt;세종시 건설로 인한 행정 비효율이란?&lt;/B&gt;&lt;BR&gt;&lt;BR&gt;내려야 한다고 말한 법인세율도 2009년 현재 24.2%로서, OECD 30개국 중 22위로 낮은 편이다. 미국, 일본,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독일&lt;/FONT&gt;&lt;/U&gt;&lt;/A&gt;,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하나같이 우리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일찍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전&lt;/FONT&gt;&lt;/U&gt;&lt;/A&gt;으로 이전한 11개 행정기관 공무원도 서울에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출퇴근&lt;/FONT&gt;&lt;/U&gt;&lt;/A&gt;하는 것이 아니라 89% 이상 가족과 함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주&lt;/FONT&gt;&lt;/U&gt;&lt;/A&gt;했다.&lt;BR&gt;&lt;BR&gt;그밖에도 사실 시비를 할 이대통령의 발언은 많다. 내가 특별히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는 대통령의 취약한 통치자 마인드와 디지털 마인드다. 이대통령은 행정부처의 상당수가 청와대에서 멀리 떨어진 세종시로 이전해 생기는 비효율과 불편에 특별히 예민한 것 같다. 이는 디지털 기술·문화와 권한 위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리&lt;/FONT&gt;&lt;/U&gt;&lt;/A&gt;, 과장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시로 각료(부하)들을 불러 세세한 것을 캐묻고, 깨고, 지시하고, 결재판에 붙어온 종이문서에 결재를 하는 이대통령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그가 느낄 불편이 얼마나 크겠는가! 게다가 대한민국 국회 역시 행정부 고위 공무원들을 하릴없이 국회에 장시간 대기시키는 것이 다반사 아닌가! 그렇기에 애국적 일념으로 행정부처를 청와대와 서울 인근에 집중시키려 하는지도 모른다. 행정부처의 지리적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분산&lt;/FONT&gt;&lt;/U&gt;&lt;/A&gt;으로 인한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불편은 보통 사람들에게 확실히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lt;BR&gt;&lt;BR&gt;&lt;B&gt;블랙홀 같은 중앙집중 해소하려면&lt;/B&gt;&lt;BR&gt;&lt;BR&gt;그런데 세종시는 극심한 서울·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는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다. 대통령과 세종시로 내려갈 공무원의 불편을 몰라서 만든 정책이 아니다. 한마디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온 특단의 조치인 것이다. 굽은 것을 펴기 위해 역으로 구부린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lt;BR&gt;&lt;BR&gt;주요 선진국에서 그 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 나라의 수도권과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중앙&lt;/FONT&gt;&lt;/U&gt;&lt;/A&gt;권력이 한국만큼 강력한 블랙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종시로 내려간 공무원 대다수가 저녁에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서울로&lt;/FONT&gt;&lt;/U&gt;&lt;/A&gt; 올라와버릴 것이라는 이대통령의 우려는 9개 행정부처를 내려보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무리해서라도 내려보내야 하는 이유다. 그만큼 서울의 흡인력이 강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 행정서비스의 핵심 문제는 지리적 근접성이 보장하는 풍부한 면대면(面對面) 소통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lt;BR&gt;&lt;BR&gt;단적으로 미국산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쇠고기&lt;/FONT&gt;&lt;/U&gt;&lt;/A&gt; 관련 논란도, 대운하-4대강-세종시로 이어지는 오락가락 행보에서도 행정부처간 소통의 문제는 한참 후순위다. 분명한 것은 9개 행정부처 공무원은 서울에 살아야 할 인간이고, 내려보내려는 기업,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교육&lt;/FONT&gt;&lt;/U&gt;&lt;/A&gt;,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과학&lt;/FONT&gt;&lt;/U&gt;&lt;/A&gt; 부문의 종사자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지방&lt;/FONT&gt;&lt;/U&gt;&lt;/A&gt;에 살아도 좋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서울에 본사 본원 본교가 있고, 나름대로의 불편과 비효율이 있고, 강력한 서울·수도권 선호도가 있다. 만약 힘있는 행정부처 대신 떠밀리다시피 세종시로 내려간다면 그들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가슴&lt;/FONT&gt;&lt;/U&gt;&lt;/A&gt;에는 2등국민이라는 자괴감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대통령의 뒤집기 한판으로 인해 망국병인 '묻지 마'식 서울·수도권·공무원 선호도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lt;BR&gt;&lt;BR&gt;그럼에도 서울·수도권 주민의 이기주의와 공무원의 편의주의는 잦아들지 않는다.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아파트&lt;/FONT&gt;&lt;/U&gt;&lt;/A&gt;값 하락을 우려하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강남&lt;/FONT&gt;&lt;/U&gt;&lt;/A&gt;과 과천 민심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렇기에 전 국민을 보고, 전 국토를 보고, 미래를 보는 대통령의 안목과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자신이 서울, 수도권, 강남 주민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같지 않다.&lt;BR&gt;&lt;BR&gt;&lt;B&gt;&quot;믿음을 잃으면 정치는 설 수 없다&quot;&lt;/B&gt;&lt;BR&gt;&lt;BR&gt;한국은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과 냉전, 그리고 국가주도의 경제·사회 발전전략으로 인해 중앙권력, 특히 행정권력(규제·촉진권, 재정조달·할당권, 처벌권 등)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의 상당부분이 세종시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업,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연구소&lt;/FONT&gt;&lt;/U&gt;&lt;/A&gt;,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학&lt;/FONT&gt;&lt;/U&gt;&lt;/A&gt;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없이, 즉 공무원의 솔선수범 없이 국가균형발전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여야가 오래전에 합의했고, 이대통령 스스로 누차에 걸쳐 확약한 국가대사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다면, 도대체 누가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겠는가?&lt;BR&gt;&lt;BR&gt;2천년 동안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동양&lt;/FONT&gt;&lt;/U&gt;&lt;/A&gt; 정치사상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091202103625&amp;section=0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정수&lt;/FONT&gt;&lt;/U&gt;&lt;/A&gt;로 여겨져온 &lt;논어&gt;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quot;정치란 무엇입니까?&quot; 하고 물었다. 공자는 &quot;무기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해야 한다&quot;고 대답했다. 자공이 또 물었다. &quot;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quot; 공자가 대답했다. &quot;무기를 버려라.&quot; 자공이 다시 물었다. &quot;남은 둘 중 하나를 또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quot; 공자는 말했다. &quot;식량을 버려라. 믿음을 잃으면 정치는 설 수가 없다.&quot;&lt;BR&gt;&lt;BR&gt;이대통령은 정말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혼동하고 있다. 지리적 분산으로 인한 불편과 비효율은 대통령과 국회가 마인드를 약간만 바꾸면 상당부분 해결할 수가 있다.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대한민국 최고권력자의 지적 유고상태와 통치자 마인드의 유고상태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며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비상사태다. &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 10px; FONT-WEIGHT: normal&quot;&gt;
&lt;DIV style=&quot;WIDTH: 120px; FLOAT: left&quot;&gt;&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 MARGIN: 30px 0px; WIDTH: 306px; FLOAT: left&quot;&gt;&lt;/DIV&gt;
&lt;DIV style=&quot;TEXT-ALIGN: right; WIDTH: 120px; FLOAT: left&quot;&gt;&lt;/DIV&gt;&lt;/DIV&gt;
&lt;P&gt;&lt;BR&gt;&lt;!--/DCM_BODY--&gt;&lt;/P&gt;
&lt;P class=author&gt;/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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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일묵상] 12/2 수: 게임을 바꾸는 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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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3T03:06:16Z</updated>
	    <published>2009-12-03T03:06:1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2월 2일 수요일&lt;/STRONG&gt;&lt;/P&gt;
&lt;P&gt;마가복음 2장 23-28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quot;&amp;nbsp; 막 2:28&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게임을 바꾸는 자&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에이브러험 링컨은 위대한 리더라고 간주됩니다. 변화하는 시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링컨이 &quot;그가 시작하지 않은 사건들에 의해 부름을 받았고, 그가 만들어내지 않은 환경조건에 노출되었으나, 그에 대한 그의 대처는 그 사건들이 비롯되었던 환경조건들을 재형성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해석이었다&quot;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북 전쟁이라는 변화하는 사건에 대한 링컨의 대처가 연약한 나라의 연합을 유지시켜 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대처는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대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게임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율법을 지키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율법을 가능한 한 많이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 자기들에게 달린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렇게 율법을 준수하고 지키는 일이 사람들을 의롭게 하는 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서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율법에 너무나 깊이 빠져서 안식일을 주님을 예배하고 기뻐하며 주 안에서 안식하는 날이 아니라 의로움을 재는 잣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님은 안식일의 목적을 원래의 의도에 다시 연결시켰습니다. 그 의도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그를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찮은 흠을 잡는 데 혈안이 되는 율법주의에서 주님(the Master)과 그의 길을 따라 가는 일로 게임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게임은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주재자이십니다. 그를 즐거워하십시오. 그 안에서 쉬십시오. 그와 더불어 먹으십시오. 예수님을 당신의 삶을 다스리는 주재자로 삼으십시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님, 저에게는 당신과 더불어 완전한 자유함 가운데서 동행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단점을 지적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제가 다른 이들로 하여금 당신 안에서 쉼을 찾을 수 있게 도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일묵상] 21/1 화: 이야기 속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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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2-03T02:41:18Z</updated>
	    <published>2009-12-03T02:41: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2월 묵상&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예수 찾기 &lt;/STRONG&gt;&lt;/P&gt;
&lt;P&gt;레지널드 스미스 박사 (Dr. Reginald Smith)&lt;/P&gt;
&lt;P&gt;미시건 주, 그랜드 래피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 12월호의 묵상에서는 예수를 발견하는 여행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쉽게 말합니다. 우리는 분명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스토리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대 문화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그리는 지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고,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만일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전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참으로 우스운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충분히 알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유에서 태어나신 일을 넘어서서 예수님의 평생의 사역의 파노라마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 달에 우리가 복음서들이 전해주고 있는 대로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일어난 사건들을 탐구하면서 나갈 일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복음서들은 우리의 유일한 구주를 발견하는 핵심적인 풍경을 제공해 줍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우리로 하여금 -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전체 스토리에서 - 예수님을 발견하게 해주는 값진 안내자이며 동반자들입니다. 이번 달 우리가 해나갈 공부가 구주 예수님을 진정으로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레지널드 스미스 박사는 미시건 주 그랜드 래피즈 시에 있는 루스벨트 파크 커뮤니티 개혁교회에서 15년 동안 담임 목회자로 섬겼습니다. 그는 또한 뉴저지 주 패터슨에서 교회 사역을 하기도 했습닏. 그와 사모 샤론에게는 세 딸, 자넬, 카트리나, 마리아가 있습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12월 1일 화요일&lt;/STRONG&gt;&lt;/P&gt;
&lt;P&gt;마가복음 1장 1-8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amp;nbsp; 막 1: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이야기 속으로&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또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일터에서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보스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친구들은 웃음이나 눈물로 답해 주거나 다른 이야기로 보답해 주기도 합니다. 밥상머리나 식탁머리에 둘러앉아 가족과 친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님은 스토리의 방식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스토리를 우리 삶에 받아들임으로써 참된 사람이 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글 쓰는 작가인 캐런 리도프(Karen Lee-Thorp)는 아주 적절한 말을 했습니다. &quot;성경 대부분은 스토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부문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추상적인 명제들의 목록보다는 스토리를 더 좋아하고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스토리들이 인생이 바로 하나의 스토리이며, 하나님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인격자이심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는 점이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가는 자기의 복음서를 도덕 원칙이나 개념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스토리를 가지고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스토리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에 돌입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스토리 가운데서 예수님을 발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례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스토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바야흐로 앞으로 전개될 이 위대한 스토리의 서론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그 스토리가 곧 바로 약속된 메시야인 예수님과 그의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좋은 소식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수님에 대한 각각의 스토리는 우리로 하여금 죄와 은혜와 복에 대한 우리 자신의 스토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복음이 주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우리 모두의 스토리들을 형성시켜 줍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랑의 하나님, 저희들이 예수님의 스토리를 참신하고 기쁘고 즐겁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우리 자신의 은혜와 자비의 스토리에 주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일묵상] 11/30 월: 마침내 다시 고향 집으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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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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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30T22:28:13Z</updated>
	    <published>2009-11-30T22:28: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1월 30일 월요일&lt;/STRONG&gt;&lt;/P&gt;
&lt;P&gt;창세기 50장 4-14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를 ...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 사서 매장지로 삼은 곳이더라.&amp;nbsp; 창 50:13&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마침내 다시 고향 집으로&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죽음은 많은 것에게 마지막 종결을 가져다 줍니다. 더 이상 웃음도 눈물도 없으며, 더 이상 햇살을 즐기거나 잡초를 뽑을 일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이곳에서의 인생의 끝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죽음이 다른 생애의 시작임을 믿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야곱이 애굽에서 죽었을 때, 그의 몸은 애굽의 풍습에 따라 차후의 생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기술은 그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데려다 줄 수 없었ㅅ브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자기를 가족의 묘지인 막벨라 굴에 묻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야곱은 다시는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고향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 사라, 이삭, 리브가와 함께 그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의 영원한 삶을 이루기 시작할 것입니다. 막벨라 동굴에 매장하는 일은 그 약속된 장래로 가는 긴 여행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세상이 아무리 우리의 매장지를 예비한다 할지라도, 혹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더라도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해 놓으신 가족의 장지에 묻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좋았던 생활의 끝이 아닙니다. 좋은 생활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의 죄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시작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영구적으로 지속될 집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몸과 정신까지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다면, 죽음 가운데서도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사실을 믿으십시오&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며, 다시 부활하셨으며, 다시 오실 것임을 제가 믿습니다. 제가 언제나 그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주께서 저와 함께 지금과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임을 알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일묵상] 11/29 주일: 어디나 하나님과 함께 한 곳이 본향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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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29T22:24:53Z</updated>
	    <published>2009-11-29T22:24: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1월 29일 주일&lt;/STRONG&gt;&lt;/P&gt;
&lt;P&gt;창세기 46장 1-7절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quot;&amp;nbsp; 창 46:3&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어디나 하나님과 함께 한 곳이 본향집&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기근이 그 땅을 메마르게 만들었기 때문에 야곱은 약속의 땅을 떠났습니다.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도대체 어찌 된 것일까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평생 헛되게 가나안에서 살았단 말입니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땅을 떠나는 것이 겉보기처럼 그런 실패는 아닙니다. 이런 일까지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이 옛날에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으며,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도리 것이라는 자신의 맹세가 애굽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야곱에게 다짐해주십니다. 익숙해진 약속의 땅이 아니라 낯선 이국 땅이 그 후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질 배경이 될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째서 애굽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quot;우리가 어떻게 우리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는지 보라&quot; 라고 결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불임의 사라가 자식을 갖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아니시고는 아무 것도 그 땅도 그 민족 자체의 힘도, 심지어 애굽도 이스라엘을 강하게 만들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quot;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quot;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는 어떠한 곳도 고향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도 약속을 지키기에 풍성한 토양이 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의 약속들의 때가 차기를 기다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향이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들을 좌절시키고자 하는 어그러진 세상 가운데서 기다리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롬 8:31 참조)&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저희 눈을 아버지에게 있는 참된 본향에 고정시킬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인내심을 갖고 주님의 모든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일묵상] 11/28 토: 애굽으로 내려가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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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청랑</name>
	    </author>
	    <updated>2009-11-28T16:10:30Z</updated>
	    <published>2009-11-28T16:10:3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11월 28일 토요일&lt;/STRONG&gt;&lt;/P&gt;
&lt;P&gt;창세기 45장 3-11절, 24절-46장 4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요셉이 그의 손으로 내 눈을 감기리라.&amp;nbsp;&amp;nbsp; 창 46: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애굽으로 내려가라&lt;/STRONG&gt;&lt;/P&gt;
&lt;P&gt;----------------------------------------------------&lt;/P&gt;
&lt;P&gt;외국 땅에서 죽고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국 땅은 당신 조상들의 땅도 아니고, 당신이 젊었을 때 꿈 꾸었던 곳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 땅으로부터 먼 곳에서 죽고 묻힙니다. 그들은 고향에 아무런 장래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비록 야곱은 약속의 땅에서 태어났고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당분간 그곳은 살아가기에 별로 장래성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기근이 그곳의 모든 천연자연을 고갈시켜 버렸습니다. 오직 멀리 있는 애굽만이 풍성하고 곡물이 넘쳐났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믿을 수 없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야곱이 살아 있고, 그들이 안전하게 애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예비해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노인이 된 야곱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수레에 실려서 도착하는 선물을 보고 그는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감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그의 가족이 되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보장을 믿고 가나안을 떠났습니다. 야곱은 즐겁게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이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그 가족을 큰 민족으로 만들고 요셉이 그의 눈을 감겨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세상은 우리가 너무나도 분주하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죽음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이한 방법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옛 생활방식에 대해서 죽으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의 길을 발견하고 마음에 평화를 갖고 살다가 죽으라, 나의 축복을 받아들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기도&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행하는 주님의 기이한 길에 저를 포함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주님에게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 저에게 주님의 평안을 주옵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사,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랑이 흘러 넘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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