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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을 나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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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7T06:34:1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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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갖고 싶은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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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Justin</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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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7T06:34:19Z</updated>
	    <published>2009-11-17T06:34: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35FBF0D4B01C22B1F505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지난 방학에 집사람이 더니든을 방문했었다. 남섬에 남쪽 긑에 위치한 더니든은 오타고 대학이 자리잡은 교육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스콧틀랜드의 풍으로 꾸며져있어 작은 스콧틀랜드라 불리기도 하는 도시이다.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둘째를 만나러 갔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40.uf.daum.net/image/125FBF0D4B01C22B201C5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더니든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았는데, 그중에서 방문한 성이 인상이 깊어 사진을 찍어가지고 왔다.&lt;/P&gt;
&lt;P&gt;평소에 내가 한 말이 생각이 나 더욱 흥미로웠다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8.uf.daum.net/image/135FBF0D4B01C22B21171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내 쓸데없는 바램중의 하나 &amp;nbsp;여유가 되면 성을 하나 구입해서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으니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1.uf.daum.net/image/145FBF0D4B01C22B224CC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55FBF0D4B01C22B23D1A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사진처럼 좋은 풍경을 볼수 있는 언덕에 있었으면 좋겠고&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65FBF0D4B01C22B24723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내 손길로 다듬어진 푸른 정원이 있어야겠지&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75FBF0D4B01C22B25AD9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사진이 작아 잘보이진 않지만 이놈이 내집?에 서있는 둘째이고&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85FBF0D4B01C22B26A66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이 분이 나와 평생을 같이 한 내 짝이다.&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더니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더니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나의성 나의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나의성 나의집&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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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여성 신자는 사제들의 감정의 쓰레기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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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Justin</name>
	    </author>
	    <updated>2009-11-16T06:24:02Z</updated>
	    <published>2009-11-16T06:24:0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여성 신자는 사제들의 감정의 쓰레기통? &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본당에서 마주친 교회]&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2009년 11월 11일 (수) 09:52:25&lt;/FONT&gt;&lt;/SPAN&gt;&lt;/TD&gt;
&lt;TD align=right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배은주 기자&lt;/FONT&gt; &lt;A href=&quot;http://www.nahnews.net/news/mailto.html?mail=ejb63@hanmail.net&quot;&gt;&lt;IMG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 border=0&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FONT face=arial color=#666666&gt;ejb63@hanmail.net&lt;/FONT&gt;&lt;/U&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U&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U&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r id=articleBody&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ahnews.net/news/photo/200911/2702_8143_4631.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id=font_imgdown_8143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colSpan=3&gt;&lt;FONT color=#306f7f&gt;▲사진/한상봉&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나는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한 남자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어머니이며, 또한 동시에 한 명의 당당한 여성이기도 하다. 나의 가족은 서로에게 크게 짐을 지우거나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아이들도 대부분 자주적이고 독립적이다. 교회는 우리에게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 표현이 가족구성원이 무조건적 희생으로 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 작은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lt;BR&gt;&lt;BR&gt;그런데 나는 가끔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가르치는 ‘큰 교회’에서 활동하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물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나(여성)는 누구인가', '여성(나)은 교회 안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교회는 여성(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와 같은 고민들이다. 교회 안에서&amp;nbsp;여러 전례에 참여하고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불러일으켜지는 질문들인 것이다. &lt;BR&gt;&lt;BR&gt;작년 11월 말, 본당 헌화회원들이 대림환과 성탄장식을 만들면서 있었던 일이다. 헌화회원들은 대림절 동안 집에서 밝힐 대림초와 본당 제대에 놓을 대림환을 만들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대림절과 성탄절 전례에 맞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수시로 만나 의논하였고, 비용과 품질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여러 차례 시장조사를 하였고, 마지막 날에는 집안일도 뒷전으로 미루고 팔을 걷어붙이고 늦게까지 작업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고에는 아랑곳없이 본당사제는 그들의 작업을 보고 그들에게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마구 쏟아 부었다. ‘유치하다’, ‘세련되게 할 수 없느냐’, ‘1차원이다’, ‘안목을 높여라’, ‘그만 두어라’ 등 원색적인 말들이 거침없이 그의 입 밖으로 터져 나왔고, 헌화회원들은 망연자실하였다. &lt;BR&gt;&lt;BR&gt;교회 안에서 그들은 열심히 봉사하였다. 시간을 쪼개서&amp;nbsp;서로 만나 의논하고, 자기 돈으로 기름 값을 내가며 여기저기 시장을 보았고, 집안 식구들을 몰라라 하며 성당 일을 하였는데, 돌아온 것은 회사 사장이 직원에게나 하는 질책과 호통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준이 본당 사제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고, 그리고 다음 날, 그들은 이 성당을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불편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얼마 후, 본당사제는 헌화회를 해체시켰다. 그러나 꽃을 꽂아야 할 사람이 분명 필요했을까, 필요한 몇 사람은 구역장 등 다른 직책으로 자기 곁에 두었다. &lt;BR&gt;&lt;BR&gt;어쩌면 이 사건은 어느 한 본당, 혹은 어느 본당 사제의 미성숙한 성품으로 인한 일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제도교회가 여성신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임은 틀림없다. 여성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온갖 일을 한다. 구역․반 활동에서부터 시작해서 전례봉사, 제의방, 성물방, 그리고 레지오와 빈첸시오 등 어느 활동에서나 여성신자들은 주요하고 막중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여성을 늘 말없이 일하는 존재로만 남게 하려 한다. 온갖 수난에도 그저 묵묵히 참아내는 여성을, 어머니를&amp;nbsp;가부장적인 사회는 아름다운 형용사로 미화시켜가며 끝없이 여성을 수탈해왔는데, 교회는 거기에다 순명과 기도, 희생을 더해&amp;nbsp;더욱 더 여성을 누르고 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지적해 온, 양성평등에 기초한 여성신자의 의사결정권이나 참여 등은 여전히 먼 이야기고, 위 사례와 같은 인신공격적인 행태는 조금씩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lt;BR&gt;&lt;BR&gt;그렇다면 교회는 대다수의 여성신자들을 본당을 꾸려 나가는데 필요한 노동자이며 생산자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신자들의 교회활동은 봉사라는 미명하에 노동과 생산에 따른 급여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amp;nbsp;것은 아닐까. 신자들의 영성과 충성도를 잘 이용하면 된다. 스스로 ‘오너’라고 말하는 사제는 가끔 회식 자리를 마련해주고, 버스 빌려서 설악산 여행시켜주고, 혹은 마치 그들에게 만나기 힘든 기회를 제공하는 듯, 비싼 해외여행프로그램도 기획해 주면 된다(물론 자비 부담이지만). 생색은 본당사제가 하고 비용은 물론 신자들이 낸다.&amp;nbsp;그리고 신자들은 ‘우리본당신부님 멋져’로 화답한다. 이렇게 그 시너지효과는 투자를 상회한다. 그래서 이런 사제들을 보고 최고경영자(CEO)라고 하는 것이고 그들도 이런 표현을 스스로 만족스러워 하는지 모른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현상은 복음화와 활성화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 본당에 만연해 있다. &lt;BR&gt;&lt;BR&gt;오래 전, 어느 주교님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성모님을 본받아 ‘가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야 한다.”(가톨릭신문, 1997년 5월 25일자)고 말했단다. 주교님이 어머니를 쓰레기통에 비유하고 있으니, 혹시 사제는 교회 안의 여성신자를 자신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너무 자조적이고 자기비하로 흘렀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도 이렇게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이다. 여성신자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인격적 교회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lt;/P&gt;
&lt;P align=justify&gt;&lt;가톨릭뉴스 지금여기 &lt;A href=&quot;http://www.nahnews.net/&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www.nahnews.net&lt;/FONT&gt;&lt;/U&gt;&lt;/A&g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가톨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가톨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여성신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여성신자&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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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엇을 말하고 싶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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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Justin</name>
	    </author>
	    <updated>2009-11-06T05:41:06Z</updated>
	    <published>2009-11-06T05:41:0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8.uf.daum.net/image/151754224AF3372917B88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94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94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오클랜드의 한 공원에 서 있는 광대들이다.&lt;/P&gt;
&lt;P&gt;한결같이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왜치고 있지만&lt;/P&gt;
&lt;P&gt;그 소리 들 을 수가 없구나&lt;/P&gt;
&lt;P&gt;육신은 어디에 두고 그토록 처절히 소리 지르는가&lt;/P&gt;
&lt;P&gt;이제는 지친 그 모습 평화롭다.&lt;/P&gt;
&lt;P&gt;하늘이시여&lt;/P&gt;
&lt;P&gt;그들의 소리 들어 주소서&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1.uf.daum.net/image/161754224AF33729186BF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94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94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왜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왜침&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교회,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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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Justin</name>
	    </author>
	    <updated>2009-11-05T03:26:24Z</updated>
	    <published>2009-11-05T03:26: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교회,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정중규 칼럼]- 세상이라는 바다에 소금인형처럼 녹아들어야&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2009년 10월 29일 (목) 14:32:32&lt;/FONT&gt;&lt;/SPAN&gt;&lt;/TD&gt;
&lt;TD align=right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정중규&lt;/FONT&gt; &lt;A href=&quot;http://www.nahnews.net/news/mailto.html?mail=mugeoul@hanmail.net&quot;&gt;&lt;IMG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 border=0&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FONT face=arial color=#666666&gt;mugeoul@hanmail.net&lt;/FONT&gt;&lt;/U&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U&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U&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r id=articleBody&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993300&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ahnews.net/news/photo/200910/2664_8024_4236.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id=font_imgdown_8024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colSpan=3&gt;&lt;FONT color=#306f7f&gt;▲부활하신 예수(사진/한상봉)&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993300&gt;“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1요한 2,26).&lt;/FONT&gt; &lt;/P&gt;
&lt;P align=justify&gt;‘누가 그들을 속인다는 것일까.’ 사도들의 편지에 자주 나타나는 다분히 피해망상적인 이런 표현은 그 시대가 얼마나 풍전등화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던가를 반증해준다.&lt;/P&gt;
&lt;P align=justify&gt;하기야 유대 땅을 벗어나 로마제국 전 지역으로 교회가 들불처럼 번져가면서 마주친 박해의 손길에 늘 쫓겼던 그들의 처지에서는 모든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아이가 세상을 까닭 없이 두려워하듯 세상이란 도대체 믿을 게 없었던 것이다. 신앙과 세상 사이의 이분법적 분별의식과 영육 이원론적 세계관의 뿌리가 여기서 비롯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lt;/P&gt;
&lt;P align=justify&gt;그런데 이미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집단으로 바뀐 우리 그리스도교회가 아직도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을 기본정서로 삼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이 들어 어른 몸집인 사람이 어린아이 생각과 행동을 못 버리는 유치한 모습과 같다고 할까. &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두려워하지 마십시오&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취임사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간과 전 인류를 돕는 그리스도의 권능에 봉사하는 사람들과 교황을 도와주십시오. 그리스도를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 정치·경제적 체제 간의 경계 그리고 문화·문명·발전의 모든 영역을 주님의 구원의 손길 앞에 활짝 열어 놓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아십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 때가 1978년, 내 나이 스무 살 때였는데, 지금 읽어도 감동스러운 연설이다.&lt;/P&gt;
&lt;P align=justify&gt;그런데 &lt;FONT color=#993300&gt;세상이 그리스도에 대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라고 주문하기에 앞서 교회는 자신의 문부터 먼저 세상을 향해 활짝 열어야 하고, 무엇보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게&amp;nbsp;아닌가. 아니 교회가 세상과 인류를 향해 활짝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짓까지 막는 됫박 역할은 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교회는 게토가 아니다. 더욱이 선교는 울타리를 치고서 양들을 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며 누룩이다.’라는 말씀대로 자신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세상을 위해 바치는 희생행위여야 한다. 세상 속에다 옥상옥이나 소도(蘇塗)를 만들려는 교회의 도피적 행태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과연 이 세상 안에서 그렇게 세상과 따로 살겠다고 하면 그 자신도 그 안에 포함된 인류의 구원은 어찌되는 것인가! &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과연 하느님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에&amp;nbsp;와 있다&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7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ahnews.net/news/photo/200910/2664_8025_4246.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id=font_imgdown_8025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colSpan=3&gt;&lt;FONT color=#306f7f&gt;▲십자가를 지시고 부인을 위로하시는 예수(사진/한상봉)&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공생활을 하셨던 그 시대 역시 그런 시기였다. ‘분리’라는 ‘바리사이’ 의미 그대로 종교가 분별의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단죄하고 죄악의 소굴로 몰아붙이며 그저 세상과 유리된 채 사막 위의 신기루처럼 공중부양해 있던 시대, 지도층은 현세적 허무주의로 민중들은 내세적 허무주의로 도탄에 빠져있는 절망의 그 시대. 과연 그 허무의 바다에서 누가 그들을 구출시킬 것인가.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어떻게 회복시켜줄 것인가. &lt;/P&gt;
&lt;P align=justify&gt;여기에 그분께서 희망의 시동을 거신다. 현세와 내세를 하나로 아우르는 통전적 영성으로 하느님나라의 꿈을 지피신다. “두려워 말라. 용기를 내어라. 하느님이 너를 부르신다. 기운을 차려라. 일어나라.”고 재촉하시면서, 복된 소식(복음)을 곳곳에 선포하신다. 하느님이 바로 구원자이시다. 하느님의 권능, 그 사랑의 힘이, 그 하느님나라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준다. 죄의 굴레를 벗어던져라. 모두 그 나라 안으로 들어오라. 아니 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하느님나라의&amp;nbsp;그 힘이 이 세상과 우리 삶 안에 온전히 받아들여져 가동된다면 우리 안에&amp;nbsp;하느님나라가 실현되는 것이다.&amp;nbsp;과연 하느님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에&amp;nbsp;와 있다(루카 17,21). &lt;/P&gt;
&lt;P align=justify&gt;그렇게 교회는 마치 자기 집 안마당에서 뛰어노는 것처럼 세상 안에서 하느님 구원사업의 협조자로 그분의 뜻을 용감히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세상에 대한 편견과 단견의 폐쇄적 오만과 무지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열린 자세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서 그분 안에서 두려움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을 향해 먼저 다가서야 할 것이다. &lt;/P&gt;
&lt;P align=justify&gt;참으로 교회여, 무얼 그리 두려워하는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 그분을 모시고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 게 있는가! 그리스도 그분은 이 세상과 인류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그리스도 그분은&amp;nbsp;이 세상과 인류를 이끄시는 조화주이시다. 그리스도 그분은 이&amp;nbsp;세상과 인류를 완성시키시는 구원주이시다. 세상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세상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세상은 결국 그리스도를 통하여 종말적 완성인 구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그분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데, 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인가! &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열린 문을&amp;nbsp;다시 닫아 거는 것인가&lt;/STRONG&gt; &lt;/P&gt;
&lt;P align=justify&gt;그런 측면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 시대의 예언자이자 착한 목자 교황 요한 23세를 중심으로 교회가 겸손하게 스스로 가슴을 찢어서 돌로 된 마음을 살로 된 마음으로 바꾸어주시라고(에제 11,19) 하느님께 내어드렸던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노력 그 시발점이었다. 철옹성 같이 닫혀있던 교회의 문이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성령에 의해 열렸던 순간, 제2의 성령강림 시기였었다.&lt;/P&gt;
&lt;P align=justify&gt;그렇게 &lt;FONT color=#993300&gt;가까스로 열리기 시작한 성령의 문을 다시 닫으려 해선 안 된다. 그런데 갈수록 교회 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유산을 과거의 유물로 여기며 창고에 가두려는 앙시앵레짐의 반동적 움직임이 거세져만 가고, 그 움직임은&amp;nbsp;현 교황 베네딕트 16세와 더불어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로마가 보수화되니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한국 천주교회도 더욱 보수화되어 간다. 문제는 이런 보수화가 교회의 정체현상을 심화시키는 주 요인이라는데&amp;nbsp;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라고&amp;nbsp;표방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성을&amp;nbsp;외면하고 성직자 중심의 견고한 성곽구축에만 박차를 가하는 역사적 후퇴 그 역행은 교회에 비극적 결과만 안겨다 줄 것이다. &lt;/P&gt;
&lt;P align=justify&gt;평신도의 힘으로 세워졌던 한국 천주교회. 실학과 서학이 깊이 관련되어 있듯이,&amp;nbsp;한국천주교회는&amp;nbsp;사회개혁의 차원에서&amp;nbsp;학문으로 연구되다가&amp;nbsp;복음적 진리를 깨쳐 믿음으로 나아간 공동체다.&amp;nbsp; 그 시대에 천주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혁명가도 같이 시대적 이단아로 가는 길이였으며, 또 그러했기에 순교를 각오해야 했고 결국 그 시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박해받고 제거당해야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장엄하게 선포했던&amp;nbsp;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앞당겨 살아온 게 한국교회였다.&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그런데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선교사들의 영신주의적 신앙관에 입각한 내세주의에 의해 신자들은 순한 어린양떼로 급속하게 순치되어갔다. 어쩌면 민중들에겐 암담하기만 했던 조선 말기의 그 시대, 살 길이 막막했던 그들에겐 차라리 죽어 천당 가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던 서글픈 순교시대였다. 수만 명의 순교자를 만들어 낸 그 시대가 우리 민족에게 준 열매란, 선교지역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초기창립 선조들을 모두 외면하고 오직 선교사 중심으로 선정된 ‘103명 성인군단’밖에는&amp;nbsp;딱히 생각나는 게 없을 지경이다. &lt;/P&gt;
&lt;P align=justify&gt;선교사들에 의해 뿌리내린 신앙과 세상의 이분법적 분별의식과 내세지향적 영육 이원론적 세계관은 박해가 끝난 뒤에도&amp;nbsp;100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성격을 결정지었다.&amp;nbsp;그런 추세는 1970~80년대에&amp;nbsp;독재정권에 저항하던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곤 요지부동의 대세가 되었고 지금도 확고부동하다. 교회가 그렇게&amp;nbsp;요지부동하고&amp;nbsp;확고부동한&amp;nbsp;만큼 교회는 침체 침하 침몰되고 있다. &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ahnews.net/news/photo/200910/2664_8026_4614.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id=font_imgdown_8026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colSpan=3&gt;&lt;FONT color=#306f7f&gt;▲돌아가신 예수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시는 어머니 마리아(사진/한상봉)&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평신도 영성 다시 회복해야&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이제 200년 전에 꿈꾸었던&amp;nbsp;평신도들의&amp;nbsp;영적 활력을 되찾아 처음에 하던 일을 다시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국 천주교회가 처해 있는 외화내빈의 총체적 위기는 그만큼 심각한 것이다. 지난 해 새천년복음화사도회 복음화학교 심포지엄에서 ‘미래 한국사회 예측과 한국교회의 역할’이란 제하의 발표문에서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은&amp;nbsp;한국 천주교회에 이런 실천과제를 제시했다.&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993300&gt;▲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치는 ‘삼위일체 친교 교회’ 실현, ▲ 다양한 인종, 문화, 언어 사이의 가교 역할, ▲ 인터넷 공론의 광장 ‘아레오파고스’ 및 정보매체의 활용, ▲ ‘사랑의 문화’ 실현을 위한 노력, ▲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의 세계화’ 실현 노력, ▲ 생태계 위기 극복을 위한 선도적 노력, ▲ 한국·아시아적 교회 창출 노력, ▲ 교회 구성원의 자기정체성 보전 및 사회와 인류 공동선의 실현을 위한 투신&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2천 년 전 유대 땅의 종교들만큼이나 이 시대 일반 서민들에겐 우리 교회가 공중부양의 신기루만 같게 여겨진다. 교회가 제시하는 꿈이 그러하고, 외치는 말이 그러하고, 움직이는 몸짓이 그러하다. 피라미드는 무너지지 않았고, 삼중관이 다시 번쩍이고, 권위의 붉은 옷을 걸친 옥상옥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현실도피의 아편 같은 몽환적 기도문들이 넘쳐나고, 게토의 무덤 속 평화가 찬양되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들의 비명은 갇히고, 광야의 외침은 공허하게 떠돈다.&amp;nbsp;그리스도는 교회를 떠나고 다시 예언자의 피맺힌 십자가들이 언덕 위에 하나 둘 세워지는데, 제대 위엔 도금된 십자가만 유난히 반짝인다. 그럴 때 신자 수 ‘오백만’이란 그저 통계적 허수일 따름이다! &lt;/P&gt;
&lt;P align=justify&gt;평신도들이 깨어나야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제직·예언직·왕직이 내실 있게 교회와 세상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셨던 그들이 그분 안에서처럼 교회 안에서도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평신도 중심의 하느님 백성의 교회는 신천지가 아니라 초대 교회로 복귀하는 것이다.&amp;nbsp;사실 그들이야말로 세상 구원을 위해 봉헌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아닌가! 여기서 그리스도와 교회와 평신도는 동일한 의미가 된다. &lt;/P&gt;
&lt;P align=justify&gt;19세기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글 ‘소금인형’에 나오는 소금인형처럼 교회와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향해 자신의 몸을 온전히 던져 녹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부활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와 교회, 세상 안에서 일어난다. &lt;/P&gt;
&lt;P align=justify&gt;&lt;가톨릭뉴스 지금여기 &lt;A href=&quot;http://www.nahnews.net/&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www.nahnews.net&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교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교회&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를 먹고 싶다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ang-c/11771850"/>
		<id>tag:blog.daum.net,2009:kang-c.11771850</id>
	    <author>
		    <name>Justin</name>
	    </author>
	    <updated>2009-11-03T03:17:59Z</updated>
	    <published>2009-11-03T03:17:5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를 먹고 싶다 &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오늘의 책] 마음이 배부른 식당 / 김형민 지음 / 키와채, 2005&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2009년 10월 30일 (금) 14:53:17&lt;/FONT&gt;&lt;/SPAN&gt;&lt;/TD&gt;
&lt;TD align=right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돋움 color=#666666&gt;김보일&lt;/FONT&gt; &lt;A href=&quot;http://www.nahnews.net/news/mailto.html?mail=.&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 border=0&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FONT face=arial color=#666666&gt;.&lt;/FONT&gt;&lt;/U&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U&gt;&lt;IMG height=25 src=&quot;http://www.nahnews.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U&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r id=articleBody&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20 align=center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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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ahnews.net/news/photo/200911/2673_8053_2125.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id=font_imgdown_8053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colSpan=3&gt;&lt;FONT color=#306f7f&gt;▲사진/한상봉&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align=justify&gt;십여 년 전 겨울, 남해금산의 정상 근처에 있는 부산여인숙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칠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네가 깔밋하게 끓여낸 된장국도 된장국이겠지만 특별한 조미료도 없이 나물을 버무린 솜씨도 보통이 아니시구나 하는 생각으로 음식 칭찬을 드렸더니, 노인은 대뜸 &quot;맛이라니요? 에구 그런 말씀 마세요. 손님이 시장하시니 그렇지요.&quot; 태연하게 말을 받는다. &lt;/P&gt;
&lt;P align=justify&gt;말투엔 일체의 호들갑이 없었다. 다른 손님들도 맛있다는 말씀 많이 하시더라구요, 하는 정도의 은근한 자기 선전도 없었다. 맛이 있긴 뭐가 맛이 있냐, 맛이 있다면 모두 당신의 시장기 탓이라는 거였다. 허름한 상위에 놓인 음식들이 노인의 심성만큼이나 담백하게 느껴졌다. 십중팔구는 소슬하기 마련인 겨울 여행길에서의 하룻밤이 모처럼만에 푸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lt;BR&gt;&lt;BR&gt;영어 단어 'companion'도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말에서도 '한솥밥을 먹는다'는 관용구는 가족을 의미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섭식 행위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먹음'의 행위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성을 회복한다. 물론 모든 먹음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에 쫓겨 허겁지겁 먹는 패스트푸드는 허기를 때운다는 수단적 의미 그 이상을 가지지 못한다. &lt;BR&gt;&lt;BR&gt;자본주의의 일상적 현실이 아무리 우리에게 '빠름'을 강요한다 할지라도 음식을 먹는 행위만큼은 반자본주의적으로 한번 에둘러 갈 필요가 있다. '밥'의 종국적 귀착지는 사람이다. 사람의 몸이 밥을 받고, 사람의 마음이 밥에 반응한다. 밥을 주는 사람의 마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밥상머리에서만큼은 수다나 너스레도 좀 떨어 보자는 이야기다. 배도 불러보고 마음도 좀 불러보자는 것이다. 꼭 이 정도의 '음식론'을 지지하는 독자라면 김형민이 소개하는 &lt;마음이 배부른 식당&gt;에 들러볼 일이다. &lt;BR&gt;&lt;BR&gt;김형민의 식당에는 식도락가의 품위 있는 미각을 채워줄 만한 '럭셔리한' 메뉴는 없다. 그 식당에는 자장면, 감자탕, 콩국수, 콩비지, 돈가스, 만두, 수제비, 삼겹살, 매운탕……. 시장통의 한 구석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을 법한 음식 일색이다. 김형민은 흔하디 흔한 음식 속에서 흔하지 않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그 마음에 다시 몸이 움직인다. 그런 사연을 가진 음식이라면 어디 한 번 먹어보자 하는 호기가 발동하는 것이다. &lt;BR&gt;&lt;BR&gt;'셈베과자'를 만들어 파는 삼각지 근처에 있다는 '김용안씨의 과자점' 이야기는 이 책의 성격을 잘 요약해준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과자를 사러온 서른 중반의 여인이 들려주었다는 이야기를 본문의 의미를 살려 각색해보면 이렇다. &lt;BR&gt;&lt;BR&gt;&lt;FONT color=#993300&gt;제가 이 집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들러서 엄마에게 드릴 과자를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사실 엄마는 제 친 엄마가 아니고 돌아가신 제 친 엄마의 언니, 즉 이모였어요. 제 친엄마와 아빠가 어려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모집에서 저희 두 형제는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죠. 이모는 저희들 때문에 시댁에서 평생 죄인으로 지내셔야 했지요. 저희들에게 옷 한 벌 사줄 수도 없었고, 맛난 것도 먹일 수가 없었죠. 어려운 살림에 두 군입을 데려왔으니 남편이나 시댁식구들에게 항상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모는 크리스마스만 디면 우리를 교회에 보냈어요. 그때마다 이모는 이 과자 한 봉지씩을 우리 손에 쥐어 주시면서 다 먹고 와라, 누가 볼지 모르니 밖에서 다 먹고 들어와라 그랬죠. 인형이나 옷은 주위의 눈이 무서워 줄 수도 없었고, 다른 선물도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이모는 먹어치울 수밖에 없는 과자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선택하셨던 거예요. 이모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1년에 단 한 번 이 과자점의 손님이 되었던 거죠. 그때의 이모처럼 저도 크리스마스에는 꼭 이 과자를 사서 이모에게 보내드려요.&lt;/FONT&gt; &lt;BR&gt;&lt;BR&gt;과자 하나에도 이렇듯 애틋한 사연이 있는데 하물며 훈김이 피어오르는 한 그릇의 국밥에서랴. 책은 계속해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이 마음이 배부른 식당이다. 그 식당은 허름하지만 그 속의 이야기들은 맛깔스럽다. &lt;BR&gt;&lt;BR&gt;식당을 개업하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컨설팅을 해준다는 '뚱보갈비'집의 아저씨는 말한다. &lt;FONT color=#993300&gt;&quot;장사 처음 할 때 마포의 한 갈비집에 가서 부탁을 했죠. 도와 달라고. 대뜸 로얄티를 250만원 달라 합디다. 그때 우리 집 전셋값이 200만원이었어요. 에라 혼자 해보자. 나중에 성공해도 난 저렇게는 안 산다. 도와준다고 생색내지도 않고, 돕는답시고 남의 피 같은 돈 긁지도 않겠다.&quot; &lt;BR&gt;&lt;/FONT&gt;&lt;BR&gt;'뚱보갈비' 아저씨의 발언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 마음 속의 분노다. 밥이 하늘이라 했는데, 돈은 좀 적게 벌릴지라도, 좋은 재료 써서,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한 번 좋이 먹여보겠다는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여는 주인장들이 이 땅에 얼마나 될까. 손님들의 건강이야 어쨌든 맛 하나만을 위해서라면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듬뿍 치고, 얕은 눈속임으로 손님들의 혀끝만을 만족시키는 데에 여념이 없는 이 땅의 식당문화에 대한 분노가 김형민의 글에 먼저 반응한다. &lt;BR&gt;&lt;B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65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www.nahnews.net/news/photo/200911/2673_8054_2315.jpg&quot; border=1&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id=font_imgdown_8054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colSpan=3&gt;&lt;FONT color=#306f7f&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이 책이 소개하는 '신성각'이란 자장면집 주인장은 돈만이 최고는 아니라는 배짱으로 두둑하다.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자니 몸이 가잔다. 해서 퇴근 무렵에 그 집에 들러 주인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수타면을 먹어보았다. 기름지고 느끼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었다. 그 맛은 요란한 수사학, 장황한 자의식으로 범벅이 된 프로작가들의 글과는 그 맛이 판이한 작가 김형민의 문체와 많이 닮아있었다. '대교(大巧)는 약졸(若拙)'이라 했던가. 지극한 기교는 단순한 것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노자가 살아온다면 이 집에서 자장면 두 그릇을 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 집에 써 있다는 글귀들을 읽어보았다. 책이 소개하는 글귀에 얽힌 이야기들은 이렇다. &lt;BR&gt;&lt;BR&gt;&lt;FONT color=#993300&gt;&lt;STRONG&gt;글귀1: 영업시작 11시 37분, 문닫는 시간 8시 31분&lt;/STRONG&gt;&lt;/FONT&gt; &lt;BR&gt;&lt;BR&gt;글귀1에 대한 주인의 변: &lt;FONT color=#993300&gt;그렇게 분(分)단위로 체크해야 모든 게 두루뭉실해지지 않아요. 그 시간에 나를 맞추는 거죠. 늦게 일어났다고 늦게 시작하고, 무슨 일 있다고 시간 어기고 그러면 내가 거기에 맞춰진다고. &lt;BR&gt;&lt;/FONT&gt;&lt;BR&gt;&lt;FONT color=#993300&gt;&lt;STRONG&gt;글귀2: 배달 속도 드림, 저속 배달&lt;/STRONG&gt;&lt;/FONT&gt; &lt;BR&gt;&lt;BR&gt;글귀2에 대한 주인의 변: &lt;FONT color=#993300&gt;(손으로 만드는) 수타 짜장면을 하다보면 한 그릇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타산이 안 맞아서 종업원도 못써요. 아내가 배달을 하는데 면허 딴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오토바이 타고 뽈뽈뽈 간다구요. 그러니 저속배달이지. &lt;BR&gt;&lt;/FONT&gt;&lt;BR&gt;이 책의 띠지에는 민주노동당 소속의원 노회찬씨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정치하는 사람이 별 곳에 다 얼굴을 내미는군,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에 서려는 작가의 균형감각이다. 그런 균형감각이 없었다면 이 책은 따뜻한 미담을 전하는 낯간지런 이야기에 그쳤을 것이다. &lt;BR&gt;&lt;BR&gt;참고로 이 책은 SBS 프로그램 '리얼 코리아'의 후일담이다. 작자는 그 프로그렘 제작에 참여했던 PD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밥집들의 이야기는 일간무가지 'AM7'의 지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그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 &lt;마음이 배부른 식당&gt;이다. 글은 설렁설렁 쉽게 읽힌다. 마음도 뭉클뭉클 대책 없이 따뜻해진다. 그렇다고 글맛에 빠져서 우리네 현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도처에 마음이 배부르지 않은 식당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상국의 시 하나로 글을 맺자. &lt;BR&gt;&lt;BR&gt;&lt;FONT color=#993300&gt;사는 일은 &lt;BR&gt;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lt;BR&gt;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lt;BR&gt;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lt;BR&gt;국수가 먹고 싶다. &lt;BR&gt;&lt;BR&gt;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lt;BR&gt;길거리에 나서면 &lt;BR&gt;고향 장거리 길로 &lt;BR&gt;소 팔고 돌아오듯 &lt;BR&gt;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lt;BR&gt;국수가 먹고 싶다. &lt;BR&gt;&lt;BR&gt;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lt;BR&gt;어느 곳에선가 &lt;BR&gt;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lt;BR&gt;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lt;BR&gt;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lt;BR&gt;눈물자국 때문에 &lt;BR&gt;속이 훤이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lt;BR&gt;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lt;BR&gt;&lt;/FONT&gt;&lt;BR&gt;사족 하나. 이 책이 소개하는 식당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 주인장들의 배가 너무 불러지지 말아야 하니까 말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식당들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하기 전에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먼저 헤아려 보는 것도 좋다. 좋은 친구가 오면 맛도 함께 오니까 말이다. &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김보일&lt;/STRONG&gt;&amp;nbsp;(배문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lt;BR&gt;&lt;FONT color=#008080&gt;&lt;FONT size=2&gt;현재 배문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출판인회의 '이 달의 책' 선정위원, 청소년출판협의회 고문 등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도서정보 포털사이트인 '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에서 연재한 북리뷰를 모아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소나무)를 냈으며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과학편』(휴머니스트)를 저술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이 달의 책' 선정위원, 청소년출판협의외 고문 등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lt;/FONT&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가톨릭뉴스 지금여기 &lt;A href=&quot;http://www.nahnews.net/&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www.nahnews.net&lt;/FONT&gt;&lt;/U&gt;&lt;/A&g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마음이 배부른 식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음이 배부른 식당&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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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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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심히 산다는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ang-c/1177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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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Justin</name>
	    </author>
	    <updated>2009-10-24T04:40:51Z</updated>
	    <published>2009-10-24T04:40: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문규현 신부의 입원을 보면서 문득 한국에 살때 다니던 회사의 사장이 생각났다.&lt;/P&gt;
&lt;P&gt;그 당시 신생 회사였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던 곳이었다.&lt;/P&gt;
&lt;P&gt;사장이하 모든 직원은 한마음으로 열과 성의를 일들을 했었다.&lt;/P&gt;
&lt;P&gt;매일 아침 간부회의를 하는데&lt;/P&gt;
&lt;P&gt;그날중 하루&amp;nbsp;사장의 질문이 오늘 다시 머리에 떠오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여러분 열심히 한다는건 어떻게 하는거라 생각 하십니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때 여러가지 생각이 나왔다고 기억하나&lt;/P&gt;
&lt;P&gt;마지막으로 사장의 말을 아직도 기억하며 &lt;/P&gt;
&lt;P&gt;새삼 오늘 되새겨 보고 싶은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제 생각에는 열심히 한다는건 목숨을 걸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quo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열심히 살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열심히 살자&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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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용산, 주교님들이 나서십시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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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Justin</name>
	    </author>
	    <updated>2009-10-23T15:28:10Z</updated>
	    <published>2009-10-23T15:28: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존경하는 주교님들께 드립니다. &lt;BR&gt;삼국지 류의 사극 영화를 보면 황량한 들판에 양쪽 진영이 팽팽히 맞서서 한 판 승부를 가리려 할 때 맨 앞에 말을 탄 왕들의 기싸움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처음엔 용감하게 자원하는 장수를 내보내서 적장과 싸우게 하지요. 그 일대 일 대결이 불리하다 싶으면 또 다른 지원자를 내보내고 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이번에는 자기가 평소에 제일 신임하는 장수를 불러 특명을 내립니다. “그대를 믿노니 나가서 승리하여 짐의 원을 풀라!” 여기서 뽑힌 장수가 적장을 쓰러뜨리면 군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왕이 앞서 돌진하는 전투는 해보나마나 승리로 끝납니다. 왕이 마무리 제 임무를 다한 것입니다. &lt;BR&gt;&lt;BR&gt;올 2009년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용산의 참변은 낙엽이 뒹구는 지금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5구의 시신은 냉동고에 언 채로 갇혀있고, 가족들은 감옥에서, 길거리에서 억울함과 외로움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우리까지 이들을 버려둘 수는 없다고, 우리라도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고, 사제들은 끝도 안 보이는 천막투쟁을 오늘도 계속합니다. 이명박정부는 급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으니 스스로 지쳐서 주저앉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했던 새 국무총리도 역시나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결국 해결사는 청와대라는 말인데요, 그곳 주인은 지금 4대강 죽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lt;BR&gt;&lt;BR&gt;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했습니다. 엊그제 명동 들머리에서 우리의 결집된 큰 힘을 보여 주자고 읍소하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목멘 애원은 차라리 애처로웠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 교회의 최고지도자들이 나서십시오! 수하 몇몇 장수들의 정의감과 패기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지난해에 수 십, 수 백 만의 촛불들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교회에서 주교들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제나 신자는 거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많은 사제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소신과 행동에 공감하면서도 선뜻 그 깃발 아래 모여들기를 주저하는 까닭은 주교님들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입니다. 장상이 싫어하는 걸 굳이 고집해서 미운 털 박힐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지요. 나무라기 어렵습니다. 보좌신부도 주임의 눈치를 살피는데 하물며 자신의 인사권을 쥔 윗분의 눈치를 안 보겠습니까? &lt;BR&gt;&lt;BR&gt;평신도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저는 신자들에게서 주교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제가 어찌 신자들에게 순명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답변이 궁색한 무서운 질문입니다. 주교님들은 이미 사제의 권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손상되었음을 피부로 느끼실 겁니다.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주교의 한 말씀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하느님의 명령, 하느님의 뜻으로 아는 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게 바람직한 일이냐 아니냐를 차치하고 견진성사를 집전하러 본당에 오신 주교님의 높다란 모자와 지팡이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는 신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그러니 주교님들이 나서시면 그동안 내색도 않고 엎드려 있던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 뒤를 따라나설 것은 너무도 뻔한 일입니다. 전국의 주교님들이, 아니 가까운 서울, 수원, 인천교구의 주교님만이라도 주교관을 쓰고 목장을 짚고 용산에 나서시면 아마 용산역 앞의 넓은 대로는 세 교구의 사제와 신자들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용산문제가 해결되는 날이겠지요.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까? &lt;BR&gt;&lt;BR&gt;제가 어찌 거대한 교회조직을 이끄시는 그 복잡하고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겠습니까마는 한 말씀만 덧붙이겠습니다. 주교님들이 보시기에 이건 정말 아니다 싶으시면 “'일부' 사제와 신자들은 깨끗이 손을 떼라”고 주교단의 이름으로 교서를 내리십시오. 마냥 침묵하고 지켜만 보는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그만 거두십시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호인수&lt;/STRONG&gt;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성당)&lt;/P&gt;
&lt;P align=justify&gt;&lt;가톨릭뉴스 지금여기 &lt;A href=&quot;http://www.nahnews.net/&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www.nahnews.net&lt;/FONT&gt;&lt;/U&gt;&lt;/A&gt;&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용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용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EDPG&amp;amp;tagName=산 너머 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산 너머 산&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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