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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온라인위의 중국조선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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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ghts>김 혁</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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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김 혁</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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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4-27T09:30:0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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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흔들리는 조선족자치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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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7T09:30:00Z</updated>
	    <published>2009-04-27T09:30: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e31600&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e31600&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t&quot;&gt;&lt;STRONG&gt;흔들리는 조선족자치주&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朝鮮族自治州)&lt;/SPAN&gt;&lt;/STRONG&gt;&lt;/SPAN&gt;&lt;BR&gt;&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vMjA2LmpwZw==&amp;filename=206.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FONT color=#e31600&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e31600&gt;&amp;nbsp;&lt;/FONT&gt;&lt;BR&gt;연변은 중국 길림성(吉林省)의 동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옛날에는 간도(間島)지방으로 불리던 곳으로 중국 내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이다. 행정적으로는 연길(延吉), 도문(圖們), 용정(龍井) 등 5개시와 3개현으로 구성되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변은 조선시대 말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1945년 8월 20일 소련군과 동북항일군은 간도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나, 11월 중국공산당은 간도 임시정부를 해산시키고 '연변행정독찰공사'를 설치하고, 1948년 3월 연변전구를 창립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후 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소재지는 연길에 있다. 면적은 남한의 거의 절반인 4만 2,700㎢나 되며, 인구 약 250만명 정도에 이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요즈음 중국동포들의 이농 현상이 심화하면서 연변이 조선족들의 터전에서 속속 한족들이 들어오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선족자치주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연변의 조선족 인구는 80만명으로 연변 전체 인구의 32%에 불과하며, 자치주 건립 초기 50%가 넘었던 것이 대폭적으로 줄어들었다. 그 원인을 보면 돈벌이나 결혼을 위해 한국에 오거나, 다른 지역의 한국인 투자회사에 취직하거나,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여행업, 식당업, 쇼핑센터에 많은 인원이 흐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빠져나간 자리를 한족(漢族)이 차지하면서 연변 조선족자치주에서도 조선족은 더 이상 다수민족이 아닌 소수민족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농기계 보조금만 보더라도 조선족들의 실추된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올해 책정된 연길시 농기계 보조금 90% 대부분을 한족들이 차지했다. &lt;/P&gt;
&lt;P&gt;현재 중국에서 소수민족은 2명까지 자녀를 가질 수 있지만, 연변조선족자치주는 3명까지 낳을 수 있으며, 자녀를 낳을 경우 지원금까지 나오지만 한 자녀만 낳거나, 아예 출산을 기피하고 있어 조선족학교들의 폐교가 잇따르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국에서 어렵지 않게 돈을 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려는 중국동포들이 갈수록 줄면서 농업경제권이 대부분 한족들에게 넘어갔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외지로 떠나면서 조선족은 연변에서 소수민족이 돼버렸고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근 흑룡강(黑龍江)성내 12개 지역 21개 조선족 농촌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중국동포들의 심각한 이농현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중국동포 가운데 20대 미만의 청소년이 4.2%, 20대가 2.9%에 불과했으며 30대가 10.7%, 40대 16.7%, 50대 24.6%순이었으며 60세 이상이 40.9%를 차지,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조사에서 20대 미만 중국동포가 아예 없는 농촌도 6개나 됐다. 이 때문에 농촌 노동력이 부족해 농업 생산성이 약화되고 그에 따라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하얼빈 오상(五常)현은 중국에서 최고급 쌀 생산지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조선족농촌이었지만, 동포 젊은이들이 힘든 농사일을 기피하면서 갈수록 한족들에게 땅이 넘어가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quot;이대로 가다가는 연변이 조선족자치주의 지위를 잃게 될지도 몰라 걱정이지만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quot;며 한숨을 쉬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 중국동포들에게 남의 나라 자식처럼 버려 둔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조국을 자유스럽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주고, 돈을 벌고 연변에 돌아가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글자 표기도 문제가 많다. 연변을 ‘옌볜', 연길을 ‘옌지’ 용정을 ‘룽징’, 도문을 ‘투먼’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동포들은 “우리를 중국인으로 만들고 있다”며 대단히 불쾌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연변, 연길, 용정, 도문으로 표기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는 한국인들이 연변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들이 그곳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또한 그들이 한국 국적을 원하는 사람에게 하루 빨리 내주는 것이 옳은 일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e31600&gt;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e31600&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e31600&gt;중앙통신뉴스/ 2009-04-25&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e31600&gt;&lt;/FON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조선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정체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체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자치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자치주&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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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대한민국은 젊은 동포들에겐 ‘외국땅’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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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7T09:26:38Z</updated>
	    <published>2009-04-27T09:26: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193da9&gt;대한민국은 젊은 동포들에겐 ‘외국땅’&amp;nbsp;&amp;nbsp;&lt;/FONT&gt;&lt;/STRONG&gt;&lt;/SPAN&gt;&lt;BR&gt;&amp;nbsp;&lt;BR&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BR&gt;이국에서 나서 자란 재외동포 2,3세들한테 한국 땅은 낯선곳이다.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세계인 것이다. 어떻게 다른가? 한 재미동포의 눈으로 보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재미동포 피터 리(Peter Lee)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제목은 ‘재미동포가 한국에서 느낀 차이점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0가지’. &lt;/P&gt;
&lt;P&gt;한국에서 주유소에 갔다. 그는 자연스럽게 차 밖으로 나가 주유기를 들었다. 미국식 ‘셀프주유’다. 그러자 주위사람들이 희한하게 쳐다봤다고 한다. 야구장에서도 차이가 있다. 미국은 내야석도 위치마다 가격이 다르다. 한국은 7천원만 내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앉아도 된다. 미국은 전 좌석이 지정석이지만 한국 야구장은 ‘먼저 자리 잡는 게 임자’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수 리필을 직원에게 부탁하는 것도 미국에는 없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손가락 2개를 V모양으로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평화를 상징하지만 한국에서는 승리를 뜻한다는 것도 다르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미국에서 스튜디오타입(studio type)이라고 부르는 방이 한국에서 ‘원룸’으로 불린다는 사실도 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스라엘 정부의 경우 2000년부터 ‘이스라엘 생득권’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는 국적과 출신국가와 관계없이 신청을 하면 순번에 따라 10일간 이스라엘 여행을 무료로 시켜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단순한 이 사업은 큰 성과를 거뒀다. 무려 19만의 젊은이들이 지난해까지 이스라엘을 찾았다. 이들은 모국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서로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실제로 얼마전 이스라엘에 전쟁이 발발하자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이 앞다퉈 자원입대를 했던 사실이 미국의 유력 일간지 1면에 실리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앞으로도 더 많은 2세 동포들이 우리나라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우리의 배려는 아직까지 많지 않다. 속빈 프로그램만 많이 만들어 놓고 불러와선 안된다. 이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사업이 필요하다.&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93da9&gt;재외동포신문/오재범&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동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포&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표준어의 필요성, 방언의 가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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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7T09:20:22Z</updated>
	    <published>2009-04-27T09:20: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표준어의 필요성, 방언의 가치 &lt;/STRONG&gt;&lt;/SPAN&gt;&lt;/FONT&gt;&lt;/P&gt;
&lt;P&gt;&lt;BR&gt;&lt;BR&gt;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공통된 언어구조에 이끌려 공통된 정신과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고유한 문화를 창조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이를 사용해온 사람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무형문화재이다. 역사 이래로 우리의 정신을 이어 주고 문화를 이끌어 준 것이 바로 우리말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올바른 의사소통 위한 표준어&lt;/FONT&gt;&lt;/P&gt;
&lt;P&gt;각 지역마다 써내려온 방언도 마찬가지다. 방언의 가치는 바로 그 지역의 고유한 역사가 숨쉬고 얼이 스며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방언의 가치를 높이 받들고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한 언어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언어가 의사소통의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언어의 말소리와 뜻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말소리와 뜻이 맺어진 관계도 바뀔 수 있어 언어는 역사적으로 변화를 계속한다. 또한 지역의 다름에 따라, 사회적 요인에 따라 언어는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언어가 시간적으로, 지역적으로,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의사소통의 도구로서의 기능은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이 세 조건을 각각 어느 한 가지로 공통되게 기준을 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표준어이다. 표준어의 필요성은 국민들이 하나의 같은 도구로 의사소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우리는 이 둘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광복 후 표준어의 폭넓은 보급은 우리의 공통된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표준어의 필요성을 지나치게 앞세워 지역방언의 가치를 폄하한 결과 방언은 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 사라질 위기에 이르렀다. 이는 방언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방언의 정서적 가치만 강조한 나머지 표준어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마치 표준어는 고유문화와 언어의 평등성을 해치는 없애야 할 존재로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생각은 모두 옳지 않다. 표준어는 국민의 올바른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도구이며, 방언은 우리 삶의 생생한 모습과 정신이 담긴 문화유산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근에 방언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 무척 다행한 일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지역어 조사를 본격적으로 실시하여 해마다 그 성과를 발표하고 있으며, 남북공동의 겨레말큰사전 편찬에서는 남북 방방곡곡은 물론 국외 동포들이 쓰는 방언도 캐내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삶의 모습과 정신 담긴 방언&lt;/FONT&gt;&lt;/P&gt;
&lt;P&gt;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규범인 표준어도 시대에 따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고 있는데도 표준어를 처음 정할 때 지정되지 못했다고 계속 비표준어로 묶어 둘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말의 어휘의 폭을 줄이는 결과도 되며, 그 단어를 사용하는 모든 국민을 규범을 어긴 사람이 되게 한다. 따라서 표준어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와 연구를 통해, 어느 한 단어만 표준어로 고정해 둘 것이 아니라, 둘 이상을 표준어로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역방언에서도 필요한 말을 살려 써야 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lt;권재일 국립국어원장&gt;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한반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반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언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언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칼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칼럼&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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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족 트랜스젠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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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4T17:23:24Z</updated>
	    <published>2009-04-24T17:23: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칼럼 .&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조선족 트랜스젠더&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김 혁&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vMjAzLmpwZw==&amp;filename=203.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8c044b&gt;&lt;STRONG&gt;1&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트랜스젠더, (Transsexualism) 성전환(性转換) 치료를 거쳐 태어날 때와 다른 성별로 바뀐 사람들을 가리켜 말한다.&lt;/P&gt;
&lt;P&gt;&lt;BR&gt;현대 정신의학은 트랜스젠더를 “성 정체성 장애”로 본다. 흔히들 동성애와 혼동하는 경향이 많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동성애나 이성애는 성적 지향성인 반면, 트랜스젠더는 후천적으로 습득된 성의식이다. &lt;/P&gt;
&lt;P&gt;&lt;BR&gt;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엇바뀐 성적경향에 대한 기재가 있다.&lt;BR&gt;명대 리여진(李汝珍)의 저서 “경화원(《镜花缘》)”에서는 꽃치마를 입고 전족을 하고는 “녀아국(女儿国)”에서 왔다고 자처하는 남자가 나온다. 청나라의 광양잡기(《广阳杂记》)에서도 출가한 동방화촉의 밤에 그만 신부가 남자임이 밝혀졌다는 기재가 있다. &lt;BR&gt;서구에서는 서기 200년경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가 의사에게 녀성성기를 만드는 수술을 받은뒤 총애하던 남자 노예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lt;/P&gt;
&lt;P&gt;&lt;BR&gt;실제로 1952년 미국의 한 남자가 수술을 받고 녀자로 다시 태여났다. 유전자가 결정한 성을 인간이 바꾼 최초의 근대적 성전환 수술이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8c044b&gt;2&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BR&gt;최근 52세의 한 조선족 남자가 성전환수술을 받고 녀자로 다시 태여나 화제다. &lt;/P&gt;
&lt;P&gt;&lt;BR&gt;길림성 도문시의 일반 가정에서 태여난 춘화(가명)는 어릴때부터 자신이 녀자이길 바랬다. 부모들은 그의 변화를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그의 행동을 통제했지만 이럴수록 역심리가 더욱 강했다. 그는 늘 누나의 옷을 가만히 몸에 입어보고 머리를 기르려 했으며 반급에 있는 남자애를 좋아하기까지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vMjA0LmpwZw==&amp;filename=204.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조선족 첫 트렌스젠더- 춘화 &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gt;27살때 부모들의 의사에 따라 결혼하게 되였지만 줄곧 아이가 없이 15년간 생활하다가 리혼하고 말았다.&lt;/P&gt;
&lt;P&gt;&lt;BR&gt;리혼후 그는 성전환수술에 대해 생각했다. 수술비용을 벌기위해 그는 한국으로 출국 했다. 올해 년초 귀국한후 할빈의학대학 부속제4병원을 찾아 드디여&amp;nbsp; 성전환수술을 받게 되였다. 10여시간의 복잡한 수술을 통해 춘화는 드디여 바라던 새로운 몸으로 거듭날수 있었다.&lt;/P&gt;
&lt;P&gt;&lt;BR&gt;수술을 마친 춘화는 &quot;다년간의 꿈을 이루게 되여 너무 기쁘다. 자신이 이제 완전히 녀자로 되였다는 사실이 수술의 아픔을 초과한다.”고 격동된 심정을 표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3&lt;/STRONG&gt;&lt;/SPAN&gt;&lt;/FONT&gt;&lt;/P&gt;
&lt;P&gt;&lt;BR&gt;중국에서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트렌스젠더와 같은 성적소수자는 적지않은 수로 예산되며 주변국인 한국내에만 3~ 4천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사실상 사회적, 법적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vMjAxLmpwZw==&amp;filename=201.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한국의 유명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FONT color=#8c044b&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vMjA1LmpwZw==&amp;filename=205.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044b&gt;중국의 유명 트랜스젠더- 진리리&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때 남성이였던 이들이 녀성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사회는 아직 그들을 받아들일 아량이 부족하다. 사회, 력사, 문화적인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소수자는 다수와 다르다는 리유로 이들을 우리 사회의 동일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lt;/P&gt;
&lt;P&gt;&lt;BR&gt;해외에서는 트랜스젠더, 호르몬치료, 성형수술 등 우리의 실존을 구성하고 있는 몸의 인식론적 지도를 어떻게 그려야할지에 대한 론쟁의 장이 그냥 펼쳐지고있다. 미국의 인류학과 교수인 힐러리 크레인은 &quot;트랜스젠더들은 ‘제3의 성’이라면서 남성과 녀성외에 다른 성이 있을수 있다는것은 문화의 차원에서 허용할수 있는 것&quot;이라고 지적했다. &lt;BR&gt;이제 우리 조선족에도 트랜스젠더가 나타났다. 이들 성적소수자의 행복과 인권을 위한 사회적 수용이 불가피할 때가 다가왔다. &lt;/P&gt;
&lt;P&gt;&lt;BR&gt;　&lt;BR&gt;&lt;FONT color=#8c044b&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종합신문” 2009년 4월 27일 &lt;/STRONG&gt;&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B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vMjAyLmpwZw==&amp;filename=202.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칼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칼럼&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조선족감독 장률의 신작 “중경” 미국 진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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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4T17:01:09Z</updated>
	    <published>2009-04-24T17:01:0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조선족감독 장률의 신작&lt;SPAN style=&quot;FONT-SIZE: 24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SDWebKSDdorae&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4pt; FONT-FAMILY: HYfox&quot;&gt;“중 경”&lt;/SPAN&gt;&lt;/SPAN&gt;&lt;/SPAN&gt;미국 진출 &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3LmpwZw==&amp;filename=197.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장률감독의 신작 &quot;중경&quot; 포스터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조선족 감독 장률의 신작영화 “중경(重庆)”이&amp;nbsp; 뉴욕에서 스크린을 탄다. &lt;/P&gt;
&lt;P&gt;&lt;BR&gt;영화는 미국 뉴욕 링컨중심영화협회 주최로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있게 되는 &quot;변두리- 2009년 중국신독립영화&quot; 영화제에 출품, 개막작의 첫 작품으로 상영된다. 장률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이리”도 영화제기간 상영될 예정이다.&lt;/P&gt;
&lt;P&gt;&lt;BR&gt;당지 신문은 장률감독의 “중경”을 &quot;초척도력작(超尺度之作)이라고 절찬, 중국 신영화의 대표작으로 소개했다.&amp;nbsp;&amp;nbsp; &lt;/P&gt;
&lt;P&gt;&lt;BR&gt;“중경(重庆)”은 현대도시의 삭막함, 인간소외, 소통부재를 장감독 특유의 강렬한 영상메시지로 전달하고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4LmpwZw==&amp;filename=198.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조선족 감독 장률&lt;/FONT&gt;&lt;/P&gt;
&lt;P&gt;&lt;BR&gt;연변출신의 장감독은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의 교수를 력임했으며 2000년 데뷔작인 단편 “11세”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lt;/P&gt;
&lt;P&gt;&lt;BR&gt;장 감독은 2003년 영화 “당시(唐詩)”로 로카르노, 오타와, 런던, 향항 등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2005년에는 영화 “망종(芒種)”으로 페사로 영화제 뉴시네마 대상을 비롯해 부산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혁 기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종합신문” 2009년 4월 27일&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기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사&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록가수 최건 새 영화 제작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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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h6599.13423260</id>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4T16:55:19Z</updated>
	    <published>2009-04-24T16:55: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4000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록가수 최건 새 영화 제작 &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2LmpwZw==&amp;filename=196.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gt;야후 영화넷에서 알아본데 의하면 대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그린 영화 &quot;성도, 난 너를 사랑해 (成都我爱你)&quot;가 촬영개시, 중국록음악의 선두주자로 널리 알려진 조선족 출신의 가수 최건이 메가폰을 잡는다. &lt;/P&gt;
&lt;P&gt;&lt;BR&gt;최건외에도&amp;nbsp; 한국의 허진호 감독, 향항의 진과감독이 함께 참여, 옴니버스 영화로서&amp;nbsp; 국적에 관계없이 도시의 어제와 오늘 미래 그리고 그 도시속 인간들의 가족애와 우정, 로맨스 등을 담는다. 한국 톱스타 정우성과 향항스타 채탁연, 중국스타 고원원등이 호흡을 맞추게 되고 대부분 대사가 영어로 이뤄진다. &lt;/P&gt;
&lt;P&gt;&lt;BR&gt;영화 &quot;성도, 난 너를 사랑해”는 이미 지난 4월10일부터 중국현지에서 촬영을 시작, 오는 6월 초에 마무리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혁 기자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40000&gt;“종합신문” 2009년 4월 20일&lt;/FONT&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기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사&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가리봉동 조선족 4238명 거주 ‘서울 속 작은 외국’</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h6599/1342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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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3T17:11:07Z</updated>
	    <published>2009-04-23T17:11: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
&lt;P align=center&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amp;nbsp;‘가리봉동의 추억’ 역사 속으로… &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내년부터 재개발로 변신, “53층 빌딩에 기념관 조성 애환 깃든 풍경사진 보전”&lt;/STRONG&gt;&lt;/SPAN&gt;&lt;/FONT&gt;&lt;/P&gt;
&lt;P&gt;&lt;BR&gt;&lt;/P&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1LmpwZw==&amp;filename=195.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FONT color=#193da9&gt;&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중국어 간체자와 한글로 된 간판이 섞여 있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시장의 모습. &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20여 년 가까이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뒤엉켜 존재해 온 이곳도 재개발의 바람에 사라지게 됐다.&amp;nbsp;&lt;/FONT&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2일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로 나오자 중국어 간체자(簡體字) 간판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외국인 핸드폰 개통’ ‘환전’ ‘양꼬치’ ‘국제전화카드’ 등의 간판이 즐비한 가리봉시장이다. 가리봉시장을 중심으로 이 인근 일대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들이 가리봉동 일대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뒤다. 구로공단이 번성하던 1970년대 쪽방촌이었던 이곳은 싼 방을 찾는 조선족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조선족 밀집지역으로 변했다.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용필 편집국장은 “1988년 구로공단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슬럼화된 이곳을 다시 번성하게 만든 것은 바로 중국동포였다”며 “가리봉동 일대는 한국 다문화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구로구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4238명이나 된다. 동 전체 인구가 1만5620명이니 4분의 1 이상이 조선족인 셈. 여기에 주말이면 다른 지역의 조선족까지 모여들면서 조선족 유동인구가 1만여 명에 육박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서울 속의 ‘작은 외국’이었던 가리봉동은 2010년부터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신한다. 가리봉시장 일대를 재개발하는 ‘가리봉균형발전촉진지구 개발사업’에 따라 가리봉동 125 일대 28만여 m²의 땅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호텔 등이 들어선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철거를 앞둔 가리봉동 주민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가리봉시장에서 10년째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남주 씨(52)는 “처음 노래방을 열었을 때만 해도 손님이 밤새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경기 침체와 재개발 소식 때문에 손님이 뜸해졌다”며 “재개발하는 것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이곳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서울중국인교회 최환규 목사는 “가리봉동 일대는 강제추방당한 중국동포들의 한이 서린 곳이고, 처음으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가 접목되기 시작한 곳”이라며 “가리봉동의 이런 역사가 제대로 보존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구로구도 재개발을 할 때 가리봉동 일대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방침이다. 구는 재개발 지역에 들어설 53층짜리 랜드마크 빌딩 4층에 별도의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구로구 유영환 홍보과장은 “1970년대 구로공단과 1990년대 이후 조선족 밀집지역은 모두 구로구의 흔적”이라며 “새롭게 들어서는 신도심에 과거의 흔적을 모두 담아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구는 우선 기념관에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가리봉동 일대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또 가리봉시장 일대의 조선족 밀집지역 풍경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아 신도심 지하 연결 통로 전체를 이 사진들로 꾸밀 계획이다. 유 과장은 “연결 통로 전체를 사진으로 꾸미면 시민들이 마치 조선족 밀집지역을 지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라며 “가리봉동 일대는 미래형 도시로 거듭나겠지만, 기념관뿐 아니라 재개발 사업 전체 과정을 담은 백서 안에도 과거의 모습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lt;/P&gt;
&lt;P&gt;&lt;A href=&quot;mailto:alwaysj@donga.com&quot;&gt;&lt;/A&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아일보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재한조선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재한조선족&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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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족 이농현상 심화…한족이 터전 장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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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2T14:33:11Z</updated>
	    <published>2009-04-22T14:33: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조선족 이농현상 심화…한족이 터전 장악&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8c3c04&gt;옌볜, 조선족 급감하면서 자치주 지위 '흔들' &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0LmpwZw==&amp;filename=194.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중국 조선족들의 이농 현상이 심화하면서 조선족 자치주인 옌볜(延邊)을 비롯한 중국내 조선족들의 터전이 속속 한족들에게 장악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머지않아 조선족 자치주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lt;/P&gt;
&lt;P&gt;현재 옌볜의 조선족 인구는 80만명으로 옌볜 전체 인구의 32%에 불과하다. &lt;BR&gt;자치주 건립 초기 50%가 넘었던 것이 돈벌이를 하러 한국과 중국 남부 연해지역으로 대거 빠져나간 자리를 한족(漢族)이 차지하면서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서도 조선족은 더 이상 '다수민족'이 아니다. &lt;/P&gt;
&lt;P&gt;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농기계 보조금만 보더라도 조선족들의 실추된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올해 책정된 옌지(延吉)시 농기계 보조금 400만위안 대부분을 한족들이 차지했다. &lt;BR&gt;옌지시 농기국 이창욱 국장은 &quot;올해 농기계 보조금 신청자 가운데 90%가 한족이고 조선족은 10%에 불과했다&quot;고 말했다. &lt;/P&gt;
&lt;P&gt;한국으로 가거나 중국 연해지역으로 진출하면서 판 농토를 한족들이 차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명 이상의 자녀를 낳을 경우 지원금까지 나오지만 조선족들이 한 자녀만 낳거나 아예 출산을 기피하면서 조선족 학교들의 폐교도 잇따르고 있다. &lt;/P&gt;
&lt;P&gt;박왕근 옌볜 한인회장은 &quot;한국에서 어렵지 않게 돈을 번 경험 때문인지 농사를 지으려는 조선족들이 갈수록 줄면서 농업경제권이 대부분 한족들에게 넘어갔다&quot;며 &quot;젊은이들이 대부분 외지로 떠나면서 조선족은 옌볜에서도 '소수민족'이 돼버렸고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quot;이라고 우려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흑룡강신문이 최근 헤이룽장(黑龍江)성내 12개 지역 21개 조선족 농촌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조선족들의 심각한 이농현상을 엿볼 수 있다. &lt;/P&gt;
&lt;P&gt;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선족 가운데 20대 미만의 청소년이 4.2%, 20대가 2.9%에 불과했으며 30대가 10.7%, 40대 16.7%, 50대 24.6%순이었으며 60세 이상이 40.9%를 차지,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조사에서 20대 미만 조선족이 아예 없는 농촌도 6개나 됐다. &lt;BR&gt;이 때문에 농촌 노동력이 부족해 농업 생산성이 약화되고 그에 따라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얼빈 우창(五常)현의 한 조선족은 &quot;우창은 중국에서도 최고급 쌀 생산지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조선족 농촌이었지만 조선족 젊은이들이 힘든 농사일을 기피하면서 갈수록 한족들에게 땅이 넘어가고 있다&quot;고 말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옌지의 60대 조선족은 &quot;이대로 가다가는 옌볜이 조선족자치주의 지위를 잃게 될지도 몰라 걱정이지만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quot;며 한숨을 쉬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연합뉴스 |&amp;nbsp; 2009.04.22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조선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출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출국&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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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 책의 날” 독서특집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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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h6599.13423257</id>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21T11:52:22Z</updated>
	    <published>2009-04-21T11:52: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FONT&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세계 책의 날” 독서특집&lt;/STRONG&gt;&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amp;nbsp;&lt;/STRONG&gt;&lt;/SPAN&gt;&lt;/FONT&gt;&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xLmpwZw==&amp;filename=191.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B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연변 시골마다 “농가도서실” 구축 &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193da9&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연변주정부는 날로 높아지는 농민들의 독서수요를 충족시키기위한 취지로 지난 2007년부터 “농가도서실”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lt;BR&gt;3년째 벌려온 이 공정에서 연변의 향촌에 300개의 도서실이 설립되였다. “농가도서실”의 구축은 시골사람들이 책사기 어렵고 책읽기 어려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으며 과학기술지식 보급에도 유조해 농민들로하여금 과학치부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 &lt;BR&gt;올해 연변주에서는 농가도서실 400개를 더 구축할 타산이다. “농가도서실”공정은 2010년”까지 지속된다. &lt;BR&gt;한편 지난 4월 9일 “농가도서실”출판물발행식이 연변주출판국에서 개최, 발행식에서 가치가 300만원에 달하는 도서 30만권과 음향제품 4만장, 신문과 잡지 만 2000부가 전주 200개촌에 무료로 전달됐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혁 기자&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BR&gt;&amp;nbsp;&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5LmpwZw==&amp;filename=189.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고전의 재해석&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천자문&gt; 해석》 출간 &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고전 “천자문”을 현대인의 시각에 맞추어 재해석을 시도한《&lt;천자문&gt;해석》 이 북경민족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lt;/P&gt;
&lt;P&gt;&lt;BR&gt;《&lt;천자문&gt;해석》은 오래동안 류행된 천자문 교재와 해석에서의 매 글자의 발음, 새김(훈), 뜻풀이에만 편중한데 반하여 천자문 매 글자의 음과 훈을 새로이 교정하여 밝힌 동시에 넉자씩으로 되는 매 구절과 전문(全文)의 심오한 뜻을 정확하게 풀이하고 중국문화사의 개간과 유교철학의 진수를 밝혔으며 조선(한국)어에서 널리 활용되는 실례를 들어&amp;nbsp; 조선(한국)어계 독자들의 흥취를 자아냈다.&lt;/P&gt;
&lt;P&gt;&lt;BR&gt;책은 물리학을 전공한 이가 펴냈다는데서 출판계의 놀라움과 호기심을 자아냈다. 저자 최돈걸씨(71세)는 길림성 왕청현 태생. 1957년 연변4고중을 졸업, 1962년 길림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고 중국과학원광학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1998년에 정년퇴직했다. &lt;BR&gt;소시적때 《천자문》에 남다른 흥취를 갖고있었다는 저자는1940년대 초반 중국 동북지역 조선족사회에서 류행되던 《천자문》 한권을 얻어서 공부하던중 책속의 발음표기와 새김이 우리 말과 틀리는데가 너무 많아 《천자문》의 발음과 새김을 교정하고 총체적설명과 매 구절마다의 뜻풀이를 함께 모아 소개해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씨는 서예가들이 여러 가지 필체로 쓴 90여종의 천자문을 비교해보면서 《&lt;천자문&gt;해석》을 펴내게 되였다.&lt;/P&gt;
&lt;P&gt;&lt;BR&gt;《&lt;천자문&gt;해석》은 또한 조선어로 번역하고 한자에 병음까지 첨가해 초학자들의 학습에 매우 큰 도움이 되며 청소년들의 학습에도 필요한 훌륭한 《계몽교재》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혁 기자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zLmpwZw==&amp;filename=193.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리종렬씨 &quot;인생” 출간&amp;nbsp;&amp;nbsp;&lt;/SPAN&gt;&lt;/STRONG&gt;&lt;/FONT&gt;&lt;BR&gt;&amp;nbsp;&lt;BR&gt;리종렬씨의 《인생》(한문판)이 연변대학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amp;nbsp; &lt;/P&gt;
&lt;P&gt;&lt;BR&gt;이 책은 저자의 인생철리, 성공비결, 완만한 대인관계를 골자로&amp;nbsp; 쒸여진 한권의 인생교과서다. 장체로 쓴 이 책에는 《인생에 대한 재해석》,《인간의 넘어야 할 10대 과제》를 비룻하여 도합 6장에 달하는 큰 주제와 《생과사》, 《가정의 기원 》을 비룻한29여개에 달하는 정절로 묶어졌다.&lt;/P&gt;
&lt;P&gt;&lt;BR&gt;저자 리종렬은 다년간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국장 , 총편, 당위서기를 력임, 《가정도덕론》,《라지오텔레비죤 기획학》등 8권의 책을 펴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보&lt;/P&gt;
&lt;P align=center&gt;&lt;BR&gt;&amp;nbsp;&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wLmpwZw==&amp;filename=190.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B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amp;nbsp;&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본론” 다시 각광&lt;/SPAN&gt;&lt;BR&gt;서적 이어 연극•다큐 영화까지&amp;nbsp; &lt;/STRONG&gt;&lt;/FONT&gt;&lt;BR&gt;&amp;nbsp;&lt;BR&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자본론”과 맑스의 사상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를 주무르던 미국식 자본주의가 가져온 경제 불황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모순을 규명한 자본론을 통해 현재의 경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지혜의 단초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lt;/P&gt;
&lt;P&gt;&lt;BR&gt;맑스의 고향인 독일에서는 지난해 “자본론”의 판매량이 전년에 비해 3배나 늘었다. 진보적인 연극 집단 리미니 프로토콜이 선보인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 “칼 맑스 : 자본론 제1권”은 평단과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해외 공연에 나섰다. &lt;BR&gt;일본에서는 지난해 말 출간된 만화 “자본론”이 초판 2만5천부가 10일 만에 매진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로동자를 착취하다가 세계적 경제 위기에서 도산하는 한 우유 공장 사장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론”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이 작품은 중국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lt;/P&gt;
&lt;P&gt;&lt;BR&gt;20여 년전 당시 금서로 묶여 있던 “자본론”을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amp;nbsp; “자본론”의 첫 번역 작업에 참여했던 동아대 경제학과 강신준 교수는 지금 시대에 자본론을 찾는 리유에 대해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그 토대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자본론”을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편&amp;nbsp;&lt;B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kyLmpwZw==&amp;filename=192.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amp;nbsp;&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 “세계 책의 날” 포스터 &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FONT color=#193da9&gt;“종합신문” 2009년 4월 20일 &lt;/FONT&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문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기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사&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사라지는 전통농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h6599/13423256"/>
		<id>tag:blog.daum.net,2009:kh6599.13423256</id>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17T12:09:39Z</updated>
	    <published>2009-04-17T12:09: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 칼럼 .&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 FONT-FAMILY: Gungsuh&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사라지는 전통농가&lt;/SPAN&gt;&lt;/SPAN&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김 혁&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4LmpwZw==&amp;filename=188.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3LmpwZw==&amp;filename=187.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zLmpwZw==&amp;filename=183.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0LmpwZw==&amp;filename=184.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기저기 저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짓고/ 량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lt;BR&gt;누구나 어릴적에 불러봤을 구전민요 “달노래”의 한구절이다. “옥도끼 금도끼로 찍고 다듬어 짓고 천면만년 살고지고”저하던 집, 그 집이 사라지고 있다. &lt;BR&gt;조선족전통가옥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lt;BR&gt;조선족 밀집구역이였던 룡정이나 화룡 지역에서 루루세월 기록해온 조선족농가들이 하나둘 사라졌고 자치주수부인 연길시 교외의 소영진 하룡촌에 서도 100년세월 버텨온 전통가옥 한 채도 불과 몇해전에 소실됐다. &lt;/P&gt;
&lt;P&gt;&lt;BR&gt;현재 룡정시 지신진 장재촌과 개산툰진 북흥촌, 훈춘시 경신진 회룡봉촌에 부분적으로 몇채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나마 언제 스러질지 몰라 그 모습이 곤궁스럽다.&lt;/P&gt;
&lt;P&gt;&lt;BR&gt;조선족 전통가옥은 이땅에 정착한 조선족 이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100여년의 력사를 갖고있다. 이미 세계에 그 우수성을 알린 한옥의 계승과 발전으로서의 연변의 전통농가는 온돌방과 마루가 균형있게 결합되고 외양간이 딸린 륙간집, 팔간집이 그 형태인데 북방의 추위와 더위를 해결해주고 가족제도에 맞게 남녀와 장유(長幼)관계에 따라 공간 배치 또한 적절한 구조를 이루고있다.&lt;/P&gt;
&lt;P&gt;&lt;BR&gt;연변주 건축설계심사쎈터의 김광택교수는 전통가옥의 소실에 대해 “옛집을 지어온 장인들이 타계해서 그 기량을 지닌 이들을 찾아볼수 없고 또한 조선족전통가옥 항목을 신청하는 보호단위가 없기때문.”이라고 분석한다. &lt;B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8c3c04&gt;2&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해외에서 꾸준히 펼쳐오는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라는 캠페인이 있다. &lt;BR&gt;산업혁명의 개발 바람이 자연과 문화유산을 거침없이 날려버리던 1895년 영국에서 발기된 자연신탁국민운동.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금과 기부를 통해 보전할 가치가 있는 자연과 문화유산을 사들여 영구적으로 관리하는공익적인 운동이다. &lt;/P&gt;
&lt;P&gt;&lt;BR&gt;3인의 민간독지가에 의하여 설립된 파급된 이 캠페인으로 민간단체들은 총 연장 4백마일에 이르는 자연해안을 보유하거나 보전하고 있으며 2백개 이상의 력사적인 건물과 40만 에이커(영국에서 주로 쓰이는 면적단위) 정도의 토지를 사들여 보존을 목적으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 후 이 단체는 46만명 이상의 자연애호가들을 규합하게 되었으며 자연미를 지키자고 하는 국민운동의 핵심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1907년에는 법률의 뒷받침을 받기에 이르렀다.&lt;/P&gt;
&lt;P&gt;&lt;BR&gt;1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이 활동은 미국을 비롯하여 오스트랄리아, 일본 등 약 30여개 국가에서 추진되고 있다.&amp;nbsp; &lt;/P&gt;
&lt;P&gt;&lt;BR&gt;산업화과정에서 겪게되는 자연환경 및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자원의 파괴는 인간 본연의 상태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강조하면서 자연으로의 복귀 내지는 환경보전을 주장하는 사상은 우리에게도 곧바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의 전통과 맥줄기중에는 다양한 형태나 요소가 많은데 그중 전통농가는 의식주를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우리들에게 사뭇 중요한 생활경관의 하나이다. 하지만 물질문명의 도래와 함께 “개발”이란 이름아래 아빠트가 도시에서 농촌까지 들어서고 도로가 뚫리고 각종 산업시설, 공장, 유흥업소들이 들어서다 보니 오래된 집도 헐리게 되고 편리를 추구하다 보니 옛날 전통가옥은 세월의 뒤안길로 밀리게 되였다.&lt;/P&gt;
&lt;P&gt;&lt;BR&gt;앞으로의 세기는 문화세기라고 일컫는다. 문화에는 우렬이 없다. 그 민족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그 문화자체는 독자적이고 전통적인것이어서 비교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 존중의 개념이기때문이다. 때문에 전통의 파괴와 무분별한 타의추종은 무엇보다도 자기것을 업신여기는 렬등감에서 나온 부끄러운 행위이다. &lt;/P&gt;
&lt;P&gt;&lt;BR&gt;많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 우리의 경물, 우리의 가락, 우리의 말들이 이미 “명소”, “명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지만 우리의 보존과 활용은 여전히 미약하다. 너나 할것없이 부동산, 아파트를 투기, 투자의 대상으로 삼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전통농가들로 조성된 마을이나 특별한 단지의 구축에 한번 눈길을 돌림은 어떨까? 우리 스스로가 보호와 활용방법을 개발하고 또한 이를 타민족과 외국인들에게 개방, 제공한다면 외부인은 우리만의 문화를 체험, 공유하고 우리는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는데 유조하리라고 본다. 해외에서 좋은 본을 보여준 내셔널트러스트의 경험을 적용해 전통농가를 지원자들에게 분양하는것도 하나의 좋은 방식이 아닐가?&lt;/P&gt;
&lt;P&gt;&lt;BR&gt;견고한 콩크리트가 아닌 부드러운 결이 선 목재의 퇴마루,&amp;nbsp; 얼레빗으로 곱게 다듬은듯한 노란지붕, 이마를 마주하듯 처마와 처마가 맞대여 있던 낮은 농가들, 보는 눈이 정겨워 보이게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전통가옥이 이제 당금 사라져 영상이나 박물관에서나 찾아볼수 있을것 같아 마음이 석연치 못하다. &lt;/P&gt;
&lt;P&gt;&lt;BR&gt;우리는 언제쯤 우리들의 힘으로 지역의 문화유산과 환경자산을 보전하고 가꾸며 미래에 보답할 관리자로서의 사명을 다할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c3c04&gt;&quot;종합신문&quot; 2009년 4월 20일&lt;/FONT&gt;&lt;B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1LmpwZw==&amp;filename=185.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칼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칼럼&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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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족 출국붐,얻은 것과 잃은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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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h6599.13423255</id>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15T16:27:46Z</updated>
	    <published>2009-04-15T16:27:4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조선족 출국붐,얻은 것과 잃은 것&lt;/SPAN&gt;&lt;/STRONG&gt;&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당신은 귀국후 과연 행복한가?&lt;/STRONG&gt;&lt;/SPAN&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xLmpwZw==&amp;filename=181.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난 세기 90년대 이후 한국출국길이 열리면서 많은 중국조선족들이 한국에 다녀왔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더라도 지금까지 대략 10만명을 웃돈다고 한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남들이 기피하는 3D업종의 어지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해왔다. 돈을 벌면 귀국해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수 있다는 희망이 컸기때문이다.&lt;BR&gt;그러나 많은 사실을 분석해보면 그렇게 애써 번 돈이 그들에게 준것은 행복뿐만아니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93da9&gt;사라진 돈, 재출국하는 사람들&lt;/FONT&gt;&lt;/P&gt;
&lt;P&gt;한국에서 들고온 목돈이 얼마 안되여 거짓말처럼 두손이 텅텅 비더라는것이 많은 사람들의 체험이다.&lt;BR&gt;귀국자들이 주택을 마련하는 등 소비가 생산적인 소비보다는 비생산적인 과소비형태로 많이 지출되였기때문이다.&lt;BR&gt;한국에서 4년간 일하면서 20여만원을 벌어온 김광철씨(52세)는 귀국후 원래 살던 농촌을 떠나 연길에 18만원을 주고 80여평방메터 되는 아빠트를 사고나니 남은 돈은 집장식에도 모자랐다. 이제 곧 대학에 입학할 딸애의 공부뒤바라지 돈도 마련해두지 못한 처지여서 음력설을 쇠고나서 김광철씨는 한국돈벌이가 힘들고 외로와도 다시 몇년간 더 돈 벌 예정이다.&lt;BR&gt;우리 조선족사회에서 김광철씨와 같은 처지, 같은 타산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결코 행복할수 없고 또 그들을 행복하다고 할 사람이 결코 없을것이다.&lt;BR&gt;통계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연변에서 리혼한 부부는 1000쌍이상 된다. 물론 리혼의 원인은 여러가지겠지만 외국나들이로 인한 리혼이 조선족들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는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93da9&gt;깊은 불신의 곬, 깨여지는 가정&lt;/FONT&gt;&lt;/P&gt;
&lt;P&gt;한국에서 5년 동안 일하다가 지난해 9월에 귀국한 엄영희씨(가명 42세)는 귀국한지 얼마 안돼 남편과 리혼했다. 그녀가 한국에 나가 있은 5년동안 남편이 적막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녀자와 눈이 맞아 돌아가고 아들애가 초중도 졸업하지 않은채 어데론가 가출해서 가정이 존재의 리유를 상실했기때문이다. 남편이 리혼은 죽어도 못한다고 했지만 이미 부부정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5년간의 한국생활이 엄씨로 하여금 리혼이라는 중대한 결단도 별다른 주저없이 내리게 했다.&lt;BR&gt;출국가정의 리혼사유를 살펴보면 부부 한쪽이 외국에서 아글타글 벌어 보낸 돈을 다른 한쪽에서 탕진해버리는 가정에서 많은 비률을 차지한다.&lt;/P&gt;
&lt;P&gt;한국에 돈벌이 나갈 때는 돈벌어서 가족 모두 남못지 않게 행복하게 잘살아보자고 했지만 현실은 항상 우리들이 애초 생각했던것과는 다른 길로 가고있다. 높은 리혼률에 이어 깨여지는건 단지 부부간의 상처와 아픔만은 아니다.&lt;BR&gt;많은 출국가정 로인들이 자식들과 떨어져 천륜지락을 잊은채 외롭게 홀로 살고있으며 부부사이의 떨어져있음과 리혼 등으로 결손가족이 늘어나면서 부모사랑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는 리혼가정 자녀들의 바르지 못한 성장이 우려스럽다. 또한 이들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과 청소년범죄도 기하급수적인 상승세를 보여 심히 우려되지 않을수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93da9&gt;서울깍쟁이? 멀어지는 인간관계&lt;/FONT&gt;&lt;/P&gt;
&lt;P&gt;한국에 갔다가 8년만에 돌아온 김철씨(가명 39세)는 귀국후 항상 인간관계에서 장벽을 느낀다고 말했다. 귀국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가 부자라도 돼서 돌아온것처럼 우는 소리부터 하면서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김씨도 귀국해서 갖추어야 할 물건들도 있고 또 구상해놓은 일들이 있기때문에 단 한푼이라도 남한테 돈을 꾸어줄 형편은 못되였다.&lt;BR&gt;결국 &quot;한국에 갔다오더니‘서울 깍쟁이'가 다 됐네&quot;하면서 등을 돌리는 사람들, 특히는 마음을 몰라주는 가까운 친척들이 안타까울뿐이다.&lt;BR&gt;친구들과의 장벽도 생겼다. 오랜만에 반갑다고 만나는것은 좋은데 한 친구를 만나면 이 친구, 저 친구 모두 다 불러오고 그렇게 모여서는 &quot;한국에서 돈 번 친구가 한턱 내야지&quot; 하는 식으로 김씨가 술돈을 전액부담하는데 대해 친구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것이다. 그것도 한두번이면 몰라도 맨날 그런식이니 친구들 만나는것조차 싫어진단다.&lt;BR&gt;많은 로무귀국자들은 과거 1000원도 채 안되는 로임에 의지해서 빠듯하게 살면서도 지금처럼 이렇게 큰 부족감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93da9&gt;출국하면 &quot;흥부&quot;, 귀국하면 &quot;놀부&quot;&lt;/FONT&gt;&lt;/P&gt;
&lt;P&gt;한국에 가서 돈만 벌어왔다 하면 &quot;노세, 노세&quot;로 세월가는줄 모르는것 또한 일부 귀국자들의 병페이다. 귀국후 왜 일하지 않고 노느냐는 물음에는 모두들 중국에서는 할 일이 없어 논다고 답한다.&lt;BR&gt;중국에서 일해봐야 비정규직은 한달에 겨우 1000원 좌우의 로임을 받는다. 한국에서 한달에 인민페 만원이상도 넘게 벌어본 사람들이라면 이만한 돈은 눈에 차지도 않을것이다. 이렇게 보면 많은 조선족들이 귀국후 일하지 않고 놀고만 있는것은 결국 &quot;할 일이 없어서&quot;가 아니다.&lt;BR&gt;출국해서는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 않다가 귀국해서는 일하기 힘들어하는것은 분명히 조선족사회의 병페적인 현상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는 한국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흥부처럼 일하던 사람이 중국에 돌아와 놀부처럼 놀고 먹는다면 석수부자라도 담당하기는 어려운것이다.&lt;BR&gt;&quot;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quot;는 말이 있다. 한국에 가서 그렇게 힘들고 어지럽고 위험했던 3D업종 일을 하면서 &quot;중국에 가서도 한국에서처럼 일하면 반드시 부자가 될수 있을것&quot;이라고 다졌던 그 마음을 부디 잊지 말기를 바란다.&lt;BR&gt;바라던바를 이룩하면 성공이요, 현실에 립각하여 현존한 조건에 적응하면서 만족하면 행복이다. 많은 사람들은 &quot;잘 먹고 잘살아보자&quot;는 단순한 행복의 조건을 위해 힘든 한국행을 했고 이제 또 그를 목적으로 한국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기수부지이다. 부디 떠나는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리해를 현실화하고 귀국한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이 더없이 소중함을 명기하기 바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종합&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조선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출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출국&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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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동성 한국인과 중국조선족 인구 30만 명</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h6599/1342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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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15T16:25:04Z</updated>
	    <published>2009-04-15T16:25: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193da9&gt;산동성 한국인과 중국조선족 인구 30만 명&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gwLmpwZw==&amp;filename=180.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청도 한국총령사관에 따르면 2008년 말 기준으로 재 산동성 조선족 인구는 총 18만 명, 한국인은 총 11만 명으로 량자가 거의 30만명에 달하고있다. &lt;/P&gt;
&lt;P&gt;&lt;BR&gt;지역적으로 보면 조선족은 청도시에 12만 명, 연대시에 3만명, 위해시에 2만명, 기타 지역에 1만 여명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인은 청도에 6만 여명, 연대시에 2만 5천명, 위해시에 1만 7천명, 기타 지역에 8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lt;/P&gt;
&lt;P&gt;&lt;BR&gt;제5차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2000년 말 기준으로 산동성 조선족 호적인구는 2만 7700명, 흑룡강신문사 산동지사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말 기준으로 산동성의 조선족 인구는 18만 명, 한국인은 12만 명으로 집계됐다. 최근들어 중국의 새로운 세수정책의 출범, 로동계약법의 시행과 글로벌 위기로 재 산동 한국인이 감소됐는바 지역별로 감소 폭이 큰 지역은 20%-30%에 달해 2004년보다 1만 명 가량 감소된 것으로 집계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종합&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조선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중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중한&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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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령혼의 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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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14T10:32:28Z</updated>
	    <published>2009-04-14T10:32: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 칼럼 .&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령혼의 방&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TRONG&gt;김혁&lt;/STRONG&gt;&lt;/FONT&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고대 애급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에는 “무세이온”이라는 도서관이 있었다. “무세이온 (mouseion)”은 신성한 사원이라는 뜻이다. &lt;/P&gt;
&lt;P&gt;&lt;BR&gt;이 도서관은7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알레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와 같은 쟁쟁한 석학들이 지중해 연안에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전란을 겪으면서 무세이온이 그만 불타버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c2LmdpZg==&amp;filename=176.gi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c3LmpwZw==&amp;filename=177.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고대 이집트의 녀왕 클레오파트라는 미모만 빼여난것이 아니라 학문과 책을 사랑했던 지성적 녀인이기도 했다. 그는 분소(焚燒)된 장서를 몹시 애통해했다.&lt;/P&gt;
&lt;P&gt;&lt;BR&gt;하여 즉위하자 도서관 재건부터 팔을 걷어부쳤다. 그의 로고에 인차 20만권의 두루마리 장서로 새 도서관을 채울수있었고 그 덕에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학문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5세기까지 문화와 과학이 륭성한 도시로 번창할수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c4LmpwZw==&amp;filename=178.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요즘만큼 책읽기가 운위（云谓)되는때도 없는듯하다. 해마다 봄이면 의례적으로 기관, 언론사•시민단체 등이 잇따라 독서캠페인을 벌린다. 좋은 일이다. “개권유익(开卷有益. 책은 펼치기만 해도 리익이 된다)”이라 하지 않았던가. 독서 캠페인으로 책읽는 풍토가 확산되고 나아가 위기에 처한 민족문화까지 일으켜 세운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lt;BR&gt;하지만 조용히 살펴보면 작금의 우리의 독서풍토는 사실 심히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식정보가 가속적으로 팽창하고 출판 도서도 늘어나고있는데 숨가쁘게 돌아가는 오늘의 절주는 외려 책과 담 쌓는 세태를 만들고있다. &lt;/P&gt;
&lt;P&gt;&lt;BR&gt;출국, 도시진출로 인한 독서인구의 급락, 인터넷이 발달로 인한 활자매체의 소외가 이러한 풍토를 만들고있고 독서 문화의 부재를 실감케 한다. &lt;/P&gt;
&lt;P&gt;&lt;BR&gt;각종 캠페인과 홍보활동을 벌리고 있지만 여전히 형식적이고 의례적이기 일쑤여서 전반 민족을 통한 독서의 저변 확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의 인력과 장서수도 부족해 정보화, 개방화시대에 필수적인 다양하고 신속한 정보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도 안고있다. 정보의 보고로서의 독서공간이 기능을 다하도록 하고 대중들이 손쉽게 독서할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이루워져야 전 민족을 아우르는 독서풍토의 형성을 기대할수 있을것이다.&lt;/P&gt;
&lt;P&gt;&lt;BR&gt;학습형사회, 독서형사회구축에 관한 정부의 바램이 사회성원들의 행동으로 되게 하자면 바로 이 운동을 이끌어갈 전문시스템이 구전해야 하는것이다. &lt;BR&gt;이면에서 조권옥 사장이 휘동하고있는 연변조선문독서사의 노력의 행보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있고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있다. &lt;/P&gt;
&lt;P&gt;&lt;BR&gt;옛날 서구사람들은 독서실을 “령혼의 방” 혹은 “령혼의 료양실”이라고 불렀다. 또 “책이 없는 방은 령혼이 없는 방과도 같다”는 속담, 경구도 만들어냈다. 클레오파트라처럼 전민독서의 중요를 깨쳐알고 피폐해진 토양우에 도서관 하나, 독서실 하나를 조성하는 절박함을 우리는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처처에서 볼수있는 유흥장소가 아닌 “령혼의 방”에서 좋은 책과 만나다 보면 우리는 아름답고 윤택한 인생의 길을 찾을수 있을것이다. 또한 개인의 발전속에&amp;nbsp; 요즘 흔들리고있는 우리의 공동체 역시 선진민족으로 발돋음하고 세계속에 확실하게 뿌리 내릴수 있을것이다.&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宋体&quot;&gt;&lt;/SPAN&gt;&lt;FONT color=#8c3c04&gt;&amp;nbsp;&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宋体&quot;&gt;&quot;종합신문&quot; 2009&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 mso-ascii-font-family: Gulim; mso-hansi-font-family: Gulim&quot;&gt;년&lt;/SPAN&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 4&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 mso-ascii-font-family: Gulim; mso-hansi-font-family: Gulim&quot;&gt;월&lt;/SPAN&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 13&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 mso-ascii-font-family: Gulim; mso-hansi-font-family: Gulim&quot;&gt;일&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 &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 align=center&gt;&lt;B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c5LmpwZw==&amp;filename=179.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칼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칼럼&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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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책향기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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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author>
	    <updated>2009-04-14T10:22:57Z</updated>
	    <published>2009-04-14T10:22: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BR&gt;&lt;STRONG&gt;&amp;nbsp;&amp;nbsp;&amp;nbsp; &lt;BR&gt;&lt;/STRONG&gt;&lt;STRONG&gt;&lt;FONT color=#8c3c04&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책향기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독서부흥의 사명으로 뛰는 연변조선문독서사&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Y4LmpwZw==&amp;filename=168.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원소학교 동쪽편의 꽤 오래된 주택가, 식당, 마트, 유흥업소가 떠인 우중충한 간판들중에서 작으나 유다른 간판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선문독서사”!라는 휘호가 새겨진 간판이다. 외양이 초라한 그 집에 들어서면 하나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사면벽을 온통 책으로 메운 독서실, 그야말로 “류암화명 유일촌(柳暗花明又一村)”의 경상이다. &lt;/P&gt;
&lt;P&gt;&lt;BR&gt;“한 사람의 인생을 한그루 나무에&amp;nbsp; 비한다면 폭넓은 독서는 그 나무를 살찌우는 기름진 자양분이 아닐가요.”&lt;BR&gt;다년간 건전한 독서문화창도에 앞장서온 연변조선문독서사 조권옥사장은 그 독서사의 책임자답게 열렬한 독서례찬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czLmpwZw==&amp;filename=173.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93da9&gt;&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8c3c04&gt;&amp;nbsp;연변조선문 독서사 조권옥 사장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쩌구려 책에 매혹되여 남들이 선망하는 좋은 일자리도 팽개치고 독서사 사장의 바톤을 중후하게 넘겨받은지도 어언 10년철에 가까워 온다. 안존한 모습에 조신한 말투를 구사하고있는 조권옥사장은 두꺼운 책을 펼치듯 그동안 조선문독서사가 걸어온갈피를 펼쳐보였다. &lt;/P&gt;
&lt;P&gt;&lt;BR&gt;변혁기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민족인구가 줄고 결손가정이 급증하고 교육, 출판 등 문화영력이 무서운 진통을 겪고 있는때 위기와 사명를 지닌 이들인 고 연변대학 정판룡교수님을 비롯한 민간문학가 김재권, 한국의&amp;nbsp; 정옥동동사장, 안병렬교수, 함갑주선생등 국내외 지성인들이 독서운동을 펼치고 민족인재양성의 터전을 다져갈 취지로 독서사의 설립을 제안했다. 2000년 6월 2일, 드디여 주 문화국을 주관국으로하고 주 민정국의 허가를 받은 민간비기업 문화단체인 연변조선문독서가가 발족되였다. &lt;/P&gt;
&lt;P&gt;&lt;BR&gt;사회 여러분야의 지성인들이 자기가 소장했던 책들을 선뜻 내놓고 조선족 작가들이 자신의 저서가 출판될 때마다 증정하고 여러 출판사에서 기증받고 국외에서 인입하여 독서사는 어중간한 규모로 자리틀기 시작했다. &lt;/P&gt;
&lt;P&gt;&lt;BR&gt;현재 관사로 쓰고 있는 세호의 주택은 모두 세를 맡은 집인지라 집세와 난방비 등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하여 해마다 집세 마련으로 동분서주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그들은 오로지 독서부흥에 몰두하고있다.현재&amp;nbsp;&amp;nbsp; 연변조선문독서사는 310평방메터의 관사에 전 연변대학 박문일총장을 비롯한7명의 운영위원과 전직임원 3명, 겸직 독서지도교원 10여명으로 독서사를 운영하고 있다.&amp;nbsp; 그동안2만여권의 도서에 매년 3천여명의 고정독자를 가진 도서관으로 성장하였고 대출된 책은 35만여권에 달한다. 그 주요독자층은 유치원생, 소학생, 중학생을 위주로 9개 소학교, 6개중학교, 고중학교, 대학생, 시민들, 가장 어린독자는 4살이고 년로한 독자는 70여세에 이른다. &lt;/P&gt;
&lt;P&gt;&lt;BR&gt;독서사라면 그냥 서가를 매고 책을 채워놓은뒤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해 임대료를 챙기는 정도로 리해할수 있겠지만 독서사 임직원들은 앉아만 있는것이 아니라 마냥 쉼모르고 뛰여만 왔다. &lt;/P&gt;
&lt;P&gt;&lt;BR&gt;요즘처럼 독서군체가 적어지고 독서를 하지않는 부박한 풍토에서 우선 학부모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려고 애썼다.&amp;nbsp; 독서사에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특성에 맞는 책을 알선해주고 독서방법과 독서필기, 독후감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한편 학교와 련계하여 한갈래의 독서루트를 구성, 학교와 사회의 동조를 얻어냈다.&amp;nbsp;&amp;nbsp; &lt;BR&gt;청소년들의 독서교육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하여 우선 독서지도교사 양성부터 모를 박았다. 독서에 뜻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 국내외의 저명한 교수, 작가, 독서운동가들을 청하여 한기에 50여시간씩 독서지도론, 독서방법론, 교육심리학, 중국조선족력사 등을 강의하고 수료뒤 독서지도자격증을 발급했다. &lt;BR&gt;그렇게 독서지도교사양성반을14기 꾸렸왔는데 양성반을 졸업한 학원은 383명이나 된다.&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c0LmpwZw==&amp;filename=174.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c1LmpwZw==&amp;filename=175.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gt;&lt;BR&gt;자격증을 지닌&amp;nbsp;&amp;nbsp; 독서지도교원대오는 학원가에서 활약상을 보여 독서지도반을 꾸리는 등 체계적으로 독서교육을 진행, 소그룹형식으로 교원한명이 책임지고 학생들에게 사고제고와 함께 독서토론을 벌리고 독서필기, 독후감을 쓰면서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리해능력, 분석능력등 종합능력 등을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35기를 거쳐 3,350여명의 학생을 졸업시켰는데 사유능력, 언어 표달능력, 습작능력이 현저히 제고되였다고 학교와 학부모들은 만족의 미소를 띄고있다. 그들중 몇 년래 각종 백일장에서 수상했거나 신문, 잡지에 글을 발표한 학생이 수백명이 된다. &lt;/P&gt;
&lt;P&gt;&lt;BR&gt;연변조선족자치주를 학습형모범자치주로 건설할데 대한 연변주위의 호소에 부응하여 “연변독서절”의 동풍을 타고 독서와 관련된 각종 활동을 적극 조직하고있다. &lt;/P&gt;
&lt;P&gt;&lt;BR&gt;2002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독서왕”표창활동을 펼쳐 모범을 수립하고 독서를 격려하고 있다. “독서왕”이 되려면 일년에 100권이상의 책을 읽고 60편이상의 독서필기나 독후감을 써야 한다. 결과 “독서왕”1호에 오른 학생은 200여권의 책을 읽었고 170여권의 독서필기를 썼다. 지금까지 37명 학생이 “독서왕”에 오르고 551명의 학생과 학부형이 “독서우수상”을 받아 안았다. &lt;/P&gt;
&lt;P&gt;&lt;BR&gt;독서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매 학생들의 일상으로 자리잡게 하자면 학교와 학부모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을 감안, 이에 정부관계부문과 손잡고 매년 “독서모범집체”, “독서선진집체”수립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6차에 거쳐 지금까지 12개 학교가 “독서모범집체”로, 18개 학교와 한 개의 향촌도서실이 “독서선진집체”로 표창 받았다. 학교는 물론2002년에 우선 열람증을 지니고 있는 300여호의 가정에 “독서가정 만들기”활동을 제안하고 실천지침을 제기하여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독서하고 아이와 함께 독후감쓰기 대회에 참가하여 아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해마다 “독서모범가정”을 표창하여 23호의 “독서모범가정”과 72호의 “독서우수가정”을 표창하였는데 지금 전주의 여러 개 현, 시까지 보급되고 있다. &lt;/P&gt;
&lt;P&gt;&lt;BR&gt;독서사는 또 자체로 “려명”잡지, “꿈나무”신문도 발간하고있다. 이미 “려명”잡지와 “느티나무”, “독서지도 보충교재” 등 22권의 총서와 잡지 신문을 꾸려 독서필기, 독후감, 일기, 생활문, 수필, 동화, 동시, 어린이 시조 등 작품과 독서경험소개 글을 실었다.&amp;nbsp; &lt;/P&gt;
&lt;P&gt;&lt;BR&gt;지난 9년래 연변조선문독서사는 “독서운동을 후대양성의 밑거름으로, 민족문화창달의 창구로 삼고” 장서의 규모, 도서의 리용률, 독서활동의 조직면에서 명실공히 중국조선족청소년들중에서 독서운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독서운동의 흥기, 발전에 대한 기여로 연변조선문독서사는 주문화국, 주민정국의 선진집체상을 수상하였고 주위와 주정부에서 “독서절” 조직상, 우수조직상을 수상했다. &lt;/P&gt;
&lt;P&gt;&lt;BR&gt;읽는 사람이 있고 또 권장하는 사람이 있어 독서의 향기는 사철가도 그냥 이어진다.&amp;nbsp; 그렇게 책 읽는 즐거움이 쌓이고 다른 사람과 그 즐거움을 나누면 따뜻함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우리사는 세상은 더욱 행복해 질것이다. 연변조선문독서사는 그러한 신조를 품고 오늘도 꿀향기를 나르는 벌처럼 책의 향기를 만방에 전파하고있다.&amp;nbsp; &lt;/P&gt;
&lt;P&gt;&lt;BR&gt;&lt;FONT color=#8c3c04&gt;&amp;nbsp;&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宋体&quot;&gt;&lt;FONT color=#8c3c04&gt;김혁 기자&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宋体&quot;&gt;&lt;/SPAN&gt;&lt;FONT color=#8c3c04&gt;&amp;nbsp;&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color=#8c3c04&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宋体&quot;&gt;&quot;종합신문&quot; 2009&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 mso-ascii-font-family: Gulim; mso-hansi-font-family: Gulim&quot;&gt;년&lt;/SPAN&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 4&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 mso-ascii-font-family: Gulim; mso-hansi-font-family: Gulim&quot;&gt;월&lt;/SPAN&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 13&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 mso-ascii-font-family: Gulim; mso-hansi-font-family: Gulim&quot;&gt;일&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 &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lt;/SPAN&gt;&lt;/FON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 mso-fareast-font-family: Dotum; mso-fareast-language: KO&quot;&gt;&lt;?xml:namespace prefix = o ns = &quot;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quot; /&gt;&lt;o:p&gt;&lt;/o: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교육&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교육&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기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사&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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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족구연예술 “적신호”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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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김 혁</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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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4-14T10:13:00Z</updated>
	    <published>2009-04-14T10:13:0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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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align=center&gt;&amp;nbsp;&amp;nbsp; &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FONT color=#610334&gt;조선족구연예술 “적신호” &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color=#610334&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내실 다지며 도전에 맞서야 &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color=#610334&gt;&lt;/FONT&gt;&lt;/STRONG&gt;&lt;BR&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c4dHJ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Y3LmpwZw==&amp;filename=167.jpg&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관중들의 큰 애대를 받는 인기쟝르였던 조선족구연예술이 관중이 줄어드는 등 원인으로 “적신호”를 보이고있다. &lt;/P&gt;
&lt;P&gt;&lt;BR&gt;1979년, 연길시구연단 전신인 연변구연예술단이 고고성, 조선족구연예술은 만담, 재담, 삼로인, 연변창담, 북타령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전성기를 맞았다. 30년의 세월속에 연길시조선족구연단은 연변은 물론 전국의 조선족거주지로 찾아다니면서 2300여회의 순회공연을 했고 전국과 성급 상도 무더기로 수상했다. 따라서 구연종목은 연변방송이나 TV의 야회에서 빼놓을수 없는 프로로 되였다. 한국은 물론 일본, 독일 등 나라의 조선인들과의 예술교류도 활발히 펼쳐왔다. 그와중에 만담 “개”, 장막구연극 “변장련애”등을 많은 우수한 절목을 무대에 올렸고 강동춘, 리동훈, 오선옥 등 구연스타를 배출해냈다. &lt;/P&gt;
&lt;P&gt;&lt;BR&gt;지난세기 90년대초까지만 해도 연길시 조선족구연단에서는 절찬리속에 빈번히 공연, 련속 16일 공연했던 전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세기말부터 조선족구연은 위기를 맞았다. 현재 조선족구연단에서 활약하는 배우는 겨우 8명밖에 안되여 말그대로 구연예술은 대가 끊길 위기에 직면했다. &lt;/P&gt;
&lt;P&gt;&lt;BR&gt;이름난 소품배우이며 연길시조선족예술단 부단장인 김문혁은 “우선 구연단이 조선족예술단과 합병후 독립성을 잃었다. 그리고 좋은 보수를 주지못하기에 작가들의 좋은 작품이 나오지못하고 또 구연쟝르에 애착을 보이는 신진들도 점점 줄어들고있다. 환경이 이러하기에 시름놓고 창작과 연구할 기회가 마련되지 못하고있다.”고 말한다. “조선족구연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고 우리의 살과 피라고 말할수 있다. 이것을 잃는다면 우리 언어예술의 한가지 쟝르를 잃는거나 마찬가지이다”고 개탄했다. &lt;/P&gt;
&lt;P&gt;&lt;BR&gt;“구연예술을 살리려면 정부에서 공연보조금을 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또 도시중심거리에 소극장을 지어 관객들을 흡인해들이는것도 하나의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lt;BR&gt;구연작가이며 연변문련인 리광수부주석의 일가견이다.&lt;/P&gt;
&lt;P&gt;&lt;BR&gt;변혁기의 오늘날 어느 종목이나 생존과 발전을 모색해 나가고있다. 전통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지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고&amp;nbsp; 더우기는 내실을 다져 좋은 종목들을 많이 창조해내면서 조선족구연예술이 목전의 진통에서 벗어날수있기를 관객들은 바라고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혁 기자 &lt;/P&gt;
&lt;P&gt;&lt;BR&gt;&lt;FONT color=#610334&gt;“종합신문” 2009년 4월 13일&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김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기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78tr&amp;amp;tagName=예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예술&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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