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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수일 선생님 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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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0T10:33:20Z</updated>
	    <published>2009-11-20T10:33:2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body&gt;&lt;STRONG&gt;(40) 이채로운 딸찌 민속촌&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ody style=&quot;WIDTH: 100%; WORD-BREAK: break-all&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ㆍ자작나무 귀틀집과 페치카 ‘도도한 고풍’&lt;/STRONG&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XML:NAMESPACE PREFIX = O /&gt;&lt;O:P&gt;&lt;/O:P&gt;&lt;/FONT&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무려 11개의 시간대를 거쳐야 하는 길고 먼 시베리아 초원로만큼 계절에 따라 삶의 리듬, 문화의 리듬, 여행의 리듬이 다르고 바뀌는 길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이 길의 매력이다. 그래서 필자는 올해 여름철(7월)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지난해 겨울철(2월)엔 이르쿠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두 구간으로 나눠 이 길을 답파했다. 지금까지는 여름철 이야기를 썼고, 이제부터는 겨울철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amp;nbsp;&lt;IMG style=&quot;WIDTH: 540px; HEIGHT: 360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1_39.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딸찌 민속촌의 통나무 귀틀집 망루.&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2008년 2월12일 오후 1시50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모스크바행 몽골횡단철도 열차를 타고 일망무제한 설원을 지나 이튿날 오후 3시20분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장장 25시간30분을 달렸다. 휘몰아치는 삭풍(朔風)에 대낮인데도 기온이 영하 20도를 넘어서 얼굴이 아릿했던 매서운 몽골 추위와는 달리 뜻밖에도 그 북쪽에 자리한 이곳 온도는 영하 8도, 눈이 녹고 있다. 왕년에 보기 드문 이상기후라고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숙소는 바이칼 호반에 있는 리스크비얀카의 바이칼 호텔에 잡았다. 리스크비얀카는 이르쿠츠크 동남쪽으로 앙가라 강을 따라 65㎞ 지점에 있는 자그마한 항구 도시이다. 호숫가 언덕배기에 자리한 호텔 전망대에 서니 눈 덮인 바이칼이 한눈에 안겨온다. 아침 햇살이 저만치 피어날 무렵 바이칼 관광에 나섰다. 얼음 축제가 방금 끝났지만 기기묘묘한 얼음 조각물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하나가 정교한 예술작품이다. 설경도 설경이거니와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을 지치면서 환히 트인 물밑을 들여다보는 것은 문자 그대로 황홀경이다. 8m 이상의 두께로 얼어붙은 물밑에서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노닐며 수초가 나풀거린다. 한겨울 얼음 두께가 10m 이상이면 5t 트럭이 다닌다고 한다. 그때면 환바이칼철도 노선이 얼음 위에 가설되기도 한다. 리스크비얀카는 비릿한 내음이 풍기는 어항이다. 선창가에 붙어있는 어물시장에는 이곳 명물인 오물을 비롯해 각종 어류들이 매장에 즐비하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IMG style=&quot;WIDTH: 540px; HEIGHT: 340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2_38.jpg&quot; border=1&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어 이곳에서 약 4㎞ 지점, 리스크비얀카 어귀에 자리한 바이칼 생태박물관을 찾았다. 1928년에 설립한 이 박물관은 1961년에 소련 과학아카데미 소속 호수학 연구소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층으로 된 작지만 알찬 박물관에는 유구한 바이칼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호수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서식하는 각종 어류와 동식물에 관한 기록과 유물, 도표와 모형 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고 있다. 1층은 수족관이고 2층은 전시장이다. 바이칼에는 7개 과(科) 50여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투명한 물고기 갈라만카나 민물 새우 에피슈라, 철갑상어(길이 1.8m에 무게 120㎏), 바이칼 바다표범인 네르파 같은 특이한 물고기가 살고 있어 어류학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네르파는 지구상 민물에 사는 유일한 바다표범이다. 바다에 사는 표범이 어떻게 민물에 살게 되었는지는 생태학자들 사이에도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더러는 북해와 바이칼을 잇는 비밀동굴을 통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그런 동굴을 본 사람은 없다. 바이칼 주변에 서식하는 2600여종 동식물 가운데서 4분의 3 정도가 이곳만의 희귀종이라고 하니, 바이칼은 명실공히 생태학의 보고이다. 그래서 매해 3만여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각종 동식물의 박제품은 그토록 생생할 수가 없다. 박제기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명록에 ‘바이칼이여, 영원하라!’라는 짧은 글 한 마디를 남기고 박물관을 나섰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다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여기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유명한 딸찌 민속촌이다. 이름부터가 딸찌 ‘민속촌’이니 ‘마을’이니 ‘건축박물관’이니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건축-인류학박물관 딸찌’이다. 명칭에서 읽을 수 있다시피, 이곳은 건축물을 통해 전통적 삶의 양식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야외 전시장이다. 폐쇄된 실내에서가 아니라 우리네 용인 민속촌처럼 탁 트인 바깥 공간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교육장이다. 1969년 바이칼 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수몰지역의 건물들을 그대로 옮겨다가 관광명소로 꾸린 지혜의 산물이다. 무려 67만㎡나 되는 호숫가 넓은 대지에 40여종의 건축기념물과 8000여점의 전통문화재를 한데 모아놓고 있다. 전시물들을 통해 17세기부터 이곳에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과 부리야트인이나 카자크인 같은 원주민들이 누렸던 생활모습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는 역사의 생동한 현장이기도 하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3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3_37.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딸찌 민속촌의 전통적 통나무 귀 틀집 아즈바.&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그래서 하나하나 깐깐히 살펴봤다. 입구의 우거진 자작나무부터가 눈길을 끈다. 물론 시베리아 땅 어디에서나 지천에 깔려있는 것이 자작나무이지만 여기 것은 관광지라서 그런지 한결 달라 보인다. 하얀 껍질을 두르고 미끈하게 자란 가지마다엔 흰 눈꽃이 송송이 피었으니 숲은 온통 백화원(白花園)이다. 보통 20m 이상으로 쭉쭉 뻗어있는 자작나무의 껍질은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데, 겉면은 흰빛이고 안쪽은 밝은 갈색이니 천혜의 미술소재가 아닐 수 없다. 불에 잘 타면서도 습기에 강해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과 시베리아에 주로 분포되어 있지만, 한국과 일본 홋카이도에도 자생한다. 특히 그 신비성으로 인해 우리의 전통문화와 끈끈한 연을 맺고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제주도 민가의 나무 대문처럼 몇 대의 통나무를 가로댄 빗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즈바’라고 부르는 전통적 목조 가옥이다. 뾰족한 지붕과 다양한 모양새와 아기자기한 문양을 갖춘 문과 창문, 그 외경부터가 이채롭다. 몇 채는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져가고 있지만 그 고풍만은 여전히 도도하다. 러시아 목조문화의 상징물이다. 소나무와 전나무, 물푸레나무, 자작나무와 같은 침엽수로 지은 통나무 귀틀집이다. 나무집은 나무의 보온력과 통기성으로 말미암아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이런 집은 나무에 못을 박지 않고 홈을 파 잇는 방법으로 짓는다. 빗물에 젖어 못을 박은 언저리가 쉽게 썩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내리는 눈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한다. 창문은 한기 때문에 되도록 작게 내고, 유리가 아직 없던 시절이라서 송진을 먹인 아마포로 막는다. 하나하나에 옛사람들의 슬기가 깃들어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즈바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원룸 형태가 연상된다. 크게는 ‘페치카’라고 하는 벽난로가 있는 주방, 식탁과 그 위에 이콘(종교 같은 관념적 대상을 형상화한 미술품)을 걸어두는 ‘아름다운 구석’, 그리고 침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페치카이다. 페치카는 음식을 만들고 방안을 덥히는 실용적인 쓰임새만이 아니다. 집안이 화평하면 “페치카가 잘 놓여 있다”고 말하며, ‘페치카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라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로 집안의 상징물이자 필수불가결의 시설물이다. 페치카 뒤에는 집 귀신이 살고 있어 잠자리에 들 때는 귀신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새집에 이사할 때면 으레 이 귀신에게 선참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 이즈바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문턱은 특별히 높게 한다. 이유는 악마나 역병 같은 부정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벽사진경(피邪進慶)은 인간의 공통심리인가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3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4_31.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딸찌 민속촌에서 만든 각종 수공예품.&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몇 집 방안에 걸려 있는 빛바랜 사진을 쳐다보니 이곳은 원래가 가부장적 대가족제였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어로 ‘가족’을 뜻하는 ‘세미야’는 ‘씨앗’이란 ‘세먀’와 어원을 같이 하고 있다. 이를테면 농경과 유착된 가족이란 말은 씨앗과 같이 많이 퍼지고 자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3대가 함께 사는 것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러시아 농민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러시아의 가부장적 대가족제도하에 지탱되고 있는 가정생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64개 장의 &lt;도모스트로이&gt;가 16세기 이반 4세에 의해 반포된 바 있는데, 그 내용이 유교적 가정생활 지침과 많이 닮아서 흥미롭다. “가장의 교훈이 없으면 집안사람들이 여러 죄를 범하게 된다. …자식을 사랑하면 할수록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일례가 그것이다. 이네들에게도 고부갈등은 골칫거리어서 자주 작품의 주제로 등장하는가 하면, 축제 때는 화목을 위해 며느리가 시어머니나 시누이를 초청하는 풍습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집집마다 특색 있는 가재도구나 장식품, 수공예품, 그리고 등자를 비롯한 마구와 마구간, 각종 농기구와 사냥기구가 유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인골을 올려놓는 풍장(風葬) 풍습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어느 요새에 쓰인 대문짝도 옮겨놓았으며, 1679년에 지은 카잔스키야라고 하는 작은 예배당은 지금도 예배당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시의 목공예나 수예, 도자기공예를 재현하거나 실제 제작해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눈에 띈다. 이러한 수공예품들이 골목골목에 차려놓는 매대에 가득 쌓여있다. 그 가운데 남다른 인기를 끄는 것은 러시아의 상징적 기념물인 마트로시카이다. 어머니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마테르’(mater)에서 기원한 이 여성 인형은 원래 시베리아에서 여신을 금상으로 만들어 그 속에 똑같은 여신들을 차곡차곡 집어넣던 민간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은 인형은 보통 대여섯개, 큰 것은 15개까지도 들어간다. 가장 큰 바깥 인형은 어머니를 상징하며 그 속의 인형들은 계승될 다음 세대들로서 모계적 다산성을 의미한다. 러시아에서 어머니는 대지이고, 대지는 곧 어머니이다. 매대에서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네트파’라고 하는 피리를 기념품으로 샀다. 흙으로 빚은 것인데, 등과 배에 하나씩 난 구멍이 공명을 일으켜 소리를 내는 깜찍한 전통 악기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amp;nbsp;&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6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5_20.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러시아의 전통적 목욕인 바냐에서 사용하는 물통과 바가지.&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두 시간 남짓 이채로운 딸찌 민속촌을 둘러보고 이르쿠츠크로 돌아았다. 한두 군데 더 돌아보고 나서 해질 무렵에 여기서 36㎞ 떨어진 자임간으로 향했다. 울창한 수림 속에 통나무집이 띄엄띄엄 널려있다. 러시아의 전통목욕인 바냐로 이름난 삼림휴양지이다. 시간당 160루불(한화로 약 4800원)을 물고 3~4명을 수용하는 바냐 욕장에 들어갔다. 먼저 가볍게 샤워를 한 뒤 증기실로 들어간다. 증기실에는 바싹 마른 자작나무 장작으로 두세 시간 시뻘겋게 달군 돌들이 채워져 있는 난로통이 있다. 난로통에 나무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면 순식간에 뜨거운 증기가 살갗을 파고들어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그러면 몸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적당한 온도와 습기를 유지하기 위해선 물을 조금씩 계속 난로통에 끼얹는다. 온몸에 땀이 흥건할 때 자작나무 가지로 몸을 때리곤 바깥에 뛰어나가 눈이나 얼음 속에서 한참 뒹굴다가 다시 돌아와서 증기 쐬기를 반복한다. 러시아인들이 겨울에 즐기는 일종의 놀이이자 체력단련 방법이라고도 한다. 바냐는 단순한 증기목욕이나 습식사우나를 넘어서 사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왕왕 주술(呪術)이나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성스러운 교회 공간과 대립되는 ‘부정한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무튼 한탕 바냐를 하고 나니 쌓여오던 노독이 일시에 말끔히 가셔진 기분이 든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남을 아는 데는 오늘보다 어제가,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남의 유적을 찾아다니고 남의 습속에 젖어본다. 이것이 오늘 일과의 맺음말이다. 바냐가 달린 식당에서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정을 넘긴 새벽 2시12분, 역시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노보시비르스크를 향한 30여시간의 장도에 올랐다.&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lt;정수일 |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경향기고문, 09. 11. 18]&lt;/FONT&gt;&lt;/SPAN&gt; &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위대한 내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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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1-20T10:28:52Z</updated>
	    <published>2009-11-20T10:28:5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퍼온 글 : 산 들꽃 이야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801fbf&gt;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이 있다 &lt;/B&gt;&lt;/FONT&gt;&lt;BR&gt;&lt;BR&gt;&lt;BR&gt;&lt;BR&gt;&lt;FONT face=GulimChe color=#801fbf&gt;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lt;BR&gt;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lt;BR&gt;미켈란젤로는 이미 조 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lt;BR&gt;필요 없는 부분을 깍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주었을 &lt;BR&gt;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lt;BR&gt;&lt;BR&gt;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완벽한 &lt;BR&gt;조각상이 누군가가 자신을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lt;BR&gt;마찬가지로 당신 안에 있는 위 대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기만을 &lt;BR&gt;기다리고 있습니다. &lt;BR&gt;&lt;BR&gt;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lt;BR&gt;위대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lt;BR&gt;사람이 아 닙니다. &lt;BR&gt;그는 단지 가장 뛰어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 &lt;BR&gt;을 제거해 버렸을 뿐입니다. &lt;BR&gt;&lt;BR&gt;-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lt;BR&gt;&lt;BR&gt;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저마다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lt;BR&gt;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lt;BR&gt;저마다의 역할을 제대로 찾아가는 사람은 행복과 성공적인 &lt;BR&gt;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lt;BR&gt;&lt;BR&gt;저마다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찾을수 있을까요? &lt;BR&gt;그것은 자신의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마다 자신을 &lt;BR&gt;해석하는 태도 등 사고 패턴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lt;BR&gt;&lt;BR&gt;사고 패턴은 너무나 오랬동안 나와 함께 하여 자신도 의식하지&lt;BR&gt;못하고 습관적으로 세상과 나를 해석하게 됩니다. &lt;BR&gt;&lt;BR&gt;나는 어떤 사고 패턴으로 나와 세상을 해석하고 있을까요? &lt;BR&gt;&lt;BR&gt;&quot;비관론자가 천체의 비밀이나 해도에 없는 지역 을 &lt;BR&gt;항해하거나 인간 정신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례는 단 &lt;BR&gt;한번도 없다&quot; 는 시각, 청각장애자이면서 39개국을 여행하고 &lt;BR&gt;11권의 책을 저술하며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면서 &lt;BR&gt;89세에 사망한 헨렌 켈러의 말처럼 비관적인 부정적인 사고 &lt;BR&gt;패턴 보다는 낙관적인 긍정적 사고 패턴을 가질 수 있도록 &lt;BR&gt;의식적으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새로운 &lt;BR&gt;지평을 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amp;nbsp; &lt;BR&gt;&lt;BR&gt;당신 안에 있는 위대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lt;BR&gt;있습니다. &lt;BR&gt;그것은 외부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에 &lt;BR&gt;의해 창조되는 것입니다. &lt;BR&gt;나는 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lt;BR&gt;&lt;BR&gt;운명론적 결정주의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lt;BR&gt;나비가 아름다운 창공을 날고, 매미가 힘차게 울기 위하여 &lt;BR&gt;고통스러운 허물을 벗어던지는 인내의 시간을 가지듯이 &lt;BR&gt;자신의 사고 패턴을 점검하고 긍정적인 자신의 정체성과 &lt;BR&gt;이미지를 바탕으로 장점에 집중하여 자신을 계발한다면 내안의 &lt;BR&gt;위대한 조각상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봅니다.&lt;/FONT&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살아가기의 고단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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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98</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1-17T11:27:45Z</updated>
	    <published>2009-11-17T11:27: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말은 역시 짧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은 첫 추위처럼 다가와, 매번 그 방향을 멋대로 바꿔가고, 나는 그 바람길에 쓸린다.&lt;/P&gt;
&lt;P&gt;무엇을 할 수 있을까?&lt;/P&gt;
&lt;P&gt;아니 ,, 이젠 그냥 이렇게 날 몰아가는 바람에 고맙다는 말만 나온다.&lt;/P&gt;
&lt;P&gt;그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가 뭘 제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음이 쪼그라든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햇살에 눈부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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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1-15T11:38:02Z</updated>
	    <published>2009-11-15T11:38:0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몇 달만인가.!&lt;/P&gt;
&lt;P&gt;아침 햇살에 속눈썹을 개켜가며 책상에 앉아보는 것이..&lt;/P&gt;
&lt;P&gt;사근동에 얻은 내방은 남향이지만,, 그 혜택?을 누려본 기억이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펴 본다..&lt;/P&gt;
&lt;P&gt;이번달부터,, 잡지하나 보기로 했다.&lt;/P&gt;
&lt;P&gt;조그만 신문크기로 면수도 고작 40장 정도이지만..가격은 8천원이다.&lt;/P&gt;
&lt;P&gt;남들처럼, 좋은 차에, 좋은 옷에, 좋은 먹거리에 프리미엄을 내 놓지는 못해도,&lt;/P&gt;
&lt;P&gt;좋은 잡지에 사치를 즐겨볼 작정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나에겐 신선한? 변화이다.&lt;/P&gt;
&lt;P&gt;그래서 난 즐기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한 세상을 나누면서 달리 느끼는 부분들에 토론하고, 음미하고, 고민해본다.&lt;/P&gt;
&lt;P&gt;나와는 다른 세대와 직급 그리고 성별에 경의를 표하면서 배우고 익히고 또한 조금씩 즐기고 있다..(-결코 학이시습지 따라쟁이 아님...ㅋㅋ)&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소박해진 내 지식보따리가 가벼워서 좋고, 그만큼 기체도 액체도 아닌 진짜 삶들의 간격들이 만들어 내는&amp;nbsp;삐걱거림이 흥분과 마비를 줘서 좋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시금&amp;nbsp;' 살아있는 이탈리아'에 소임을 맡아볼까한다.&lt;/P&gt;
&lt;P&gt;물론 지난 시간보다 줄어든 시간 양과 기대치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lt;/P&gt;
&lt;P&gt;그리고 주중에 내가 준비하지 않은 깜짝업무가 생기면 또 띄엄띄엄이 될 것이다..&lt;/P&gt;
&lt;P&gt;그래도.. 아얘 손을 떼겠다는 생각은 덜하겠지 뭐..ㅋㅋ&lt;/P&gt;
&lt;P&gt;실력도 없으면서, 어려운 매체들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것 보다,, 가깝고 익숙한 매체들을 통해서&lt;/P&gt;
&lt;P&gt;내 할일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갑자기 차다. 그래서 더 차다.. &lt;/P&gt;
&lt;P&gt;보일러가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yZk&amp;amp;tagName=햇살에 눈부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햇살에 눈부셔..&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물적 토대 : 빈털털이 유물론자의 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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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96</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1-11T15:35:56Z</updated>
	    <published>2009-11-11T15:35:5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아무리 입으로 내가 유물론자임을 밝힌들 무엇하리!!&lt;/P&gt;
&lt;P&gt;ㅠㅠ ,, 사실 내 존재에 대한 물적 토대마져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면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신에도 물질적 근거가 되는 틀이 마련된 기억이 있어야만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body&gt;&lt;STRONG&gt;(39) 한민족의 본향 바이칼&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ody style=&quot;WIDTH: 100%; WORD-BREAK: break-all&quot;&gt;&lt;!--StartFragment--&gt;&amp;nbsp;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ㆍ‘시베리아 진주’ 속에 ‘고스란히 잉태된‘한국인의 DNA&lt;/STRONG&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XML:NAMESPACE PREFIX = O /&gt;&lt;O:P&gt;&lt;/O:P&gt;&lt;/FONT&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르쿠츠크 도착 서너 시간을 앞두고 벌써 끝없이 펼쳐진 창창한 바이칼 호수가 시야에 들어온다. 햇빛에 반사된 수면은 거울처럼 번뜩거린다. 열차는 내내 호숫가를 오른쪽에 끼고 자작나무 숲속을 숨바꼭질하듯 꼬리를 휘저으며 달린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개천이 호수로 졸졸 흘러들어간다. 저 수많은 실개천이 모여 지구 전체를 2㎝ 두께로 덮고도 남음이 있을 세계 최대의 담수호 바이칼을 이루고 있다. ‘티끌 모아 태산’, 그 격언의 현장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amp;nbsp; &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31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1_38.jpg&quot; border=1&gt;&lt;O:P&gt;&lt;/O:P&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바이칼 전경&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바이칼, 민족의 뿌리 찾기 일념에서 몇 번 찾아온 낯익은 고장이다. 최근에는 지난해 2월13일에 이어 1년 반 만에 다시 찾아왔다. 이번의 중점 답사지는 호수의 심장부에 자리한 알혼 섬이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다음날(2009년 7월8일), 시내 몇 군데를 대충 둘러보고 나서 정오 무렵 300㎞ 떨어진 알혼 섬으로 향했다. 200여㎞를 달리니 짙푸르던 초원은 반사막 고원지대로 바뀐다. 아롱다롱한 색 천을 동여맨 세르게(몽골의 오보, 우리네 서낭당)와 돌무덤인 구르칸이 자주 눈에 띈다. 행인들도 우윳빛 러시아인과는 다른 모습의 구릿빛 부리야트인들이다.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322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2_37.jpg&quot; border=1&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오후 6시35분, 알혼 섬으로 도항하기 위해 말로에 모어라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배의 주유구가 고장이 나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한다. 보기엔 간단한 고장인 것 같은데, 예닐곱 수리공이 부산을 피우며 수리하는 데 무려 세 시간이나 걸린다. 일행을 포함해 외국 관광객들은 초조해 물가에서 서성대지만, 현지인들은 관성(慣性) 탓인지 표정 한 점 없이 느긋하기만 하다. 백야에 저녁노을은 느릿느릿 호수 면을 물들인다. 흰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까옥거리며 호숫가를 맴돈다. 다행히 세 시간이란 사색의 여유를 안겨주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시베리아의 진주’ ‘시베리아의 파란 눈’이라고 일컬어지는 ‘바이칼’은 부리야트어로 ‘큰(바이) 물(칼)’이란 뜻이다. 따로 ‘큰(풍요로운) 불’이란 뜻으로 화산과 관련시키며, 부리야트나 부여란 말이 이 ‘바이’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정말로 ‘큰 물’답게 길이는 636㎞, 폭은 20~80㎞, 둘레는 무려 2000㎞나 되며 면적은 한반도의 3분의 1과 맞먹는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로서 제일 깊은 곳은 1630m나 되며, 세계 담수의 20%를 담고 있는 제일의 담수호로서 물의 양은 미국 5대호의 물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신기한 것은 336개의 하천이 흘러들어와 호수를 이루지만 빠져나가는 강은 오로지 앙가라 강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수량이 조절되는지는 아직껏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바이칼에는 25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데, 그 가운데 4분의 1가량은 이곳만의 특이종이다. 북극해에서 비밀수로를 통해 왔다는 민물 물개, 체질의 절반 이상이 지방이기 때문에 햇볕에 나오기만 하면 금방 버터처럼 녹아버린다는 골로미양카, 듣기만해도 이상야릇한 물고기들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어류를 꼽으라면 단연 훈제가 별미인 청어류의 오물이다. 매해 25만~30만t씩이나 잡는다고 한다. 바이칼은 40m 깊이에 있는 지름 40㎝의 쟁반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으리만큼 세계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호수이다. 알고 보니 보코플라프라라는 새우 모양의 작은 갑각류(甲殼類)의 싹쓸이 청소 때문이다. 이놈은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데, 2주일이면 사람의 뼈까지도 말끔히 없애버린다고 한다. 이러한 청정에다가 신비까지 곁들인 바이칼의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면 5년이, 발을 담그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해서 사람들은 다시 찾아오게 된다고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태고부터 숱한 신비를 간직해 온 바이칼은 단순한 자연의 큰 물구덩이 아니라, 천혜의 인종을 잉태한 태반이고, 다양한 문화를 융합시킨 허브이며, 숱한 민족의 수구지심(首丘之心)을 불러일으키는 본향이기도 하다. 태반과 허브, 본향, 이 3통(通)이 있기에 바이칼과 한민족은 여러 면에서 끈끈한 유대로 상관되어 왔다. 우선 지질학적 변천에서다. 빙하기 때 바이칼은 고립된 오아시스와 같은 열수(熱水) 광산이었다. 당시 구석기인들은 혹독한 추위 때문에 열수가 치솟는 온화한 바이칼 주변에 머물고 있다가 해빙기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남하해 한반도 일원에까지 정착하게 된 것이다. 바이칼은 지금도 지진활동을 하고 있는 내륙단층지대로 남아 있다. 빈번한 기후 변동과 그에 따른 해수면의 변화나 지형적 변천을 면밀히 추적해 보면 두 지역을 이어준 민족이동 통로를 밝혀낼 수가 있을 것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336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3_36.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샤머니즘의 메카 알혼 섬의 부르칸 산&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다음으로 생태학적 관련성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조선’이나 ‘고려’는 순록을 뜻하는 ‘코리’나 ‘고올리’에서 유래된 말로서, 바이칼 동쪽에서 순록을 기르면서 살아온 코리족(야쿠트)을 비롯한 순록유목민 일파가 순록의 먹이인 이끼의 길을 따라 대·소흥안령을 넘어 만주지역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목축이 농업과 결합해 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 제국의 경제와 생태적 토대를 이루고, 더 남하해 한반도에 이르러서는 농업구조로 전환하면서 한반도 내 고대국가들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작금의 체질인류학적 연구도 상관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역이나 민족 간의 상관성을 밝혀내는 데 가장 중요한 유전학적 지표는 Y염색체 DNA와 미토콘드리아 DNA 두 가지다. 이러한 유전학적 지표에 근거해 동아시아인들의 초기 이주경로를 추적해보면 약 6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동남아시아나 시베리아 쪽으로 이동해 오늘날의 동아시아인 집단을 형성한다. 한편 혈액 속의 감마항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조사하는 방법으로 혈통을 연구해 온 일본의 한 학자는 몽골로이드는 다른 인종과는 달리 ab3st라는 감마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유전자는 바이칼을 중심으로 사방에 확산되었는데, 그 비율이 몽골·만주·한국·부리야트를 비롯한 동시베리아인에게는 높을 뿐만 아니라 서로가 아주 가깝다. 또한 미국 에모리대 연구소의 세계 종족별 DNA 분석 자료에 의하면 바이칼 주변의 야쿠트인과 부리야트인, 아메리카의 인디언, 그리고 한국인의 DNA가 거의 같다고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amp;nbsp;&lt;IMG style=&quot;WIDTH: 270px; HEIGHT: 350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4_30.jpg&quot; border=1&gt;&amp;nbsp;&lt;/FON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바이칼의 명물인 ‘오물’을 파는 여인&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끝으로, 지금까지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관성은 문화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보게 된다. 바이칼 주변 사람들의 정신적 근간은 인간과 주변의 자연환경에 대한 관계를 중시하는 친환경주의 사상의 결정체인 샤머니즘이다. 샤먼의 주문이나 무구(巫具)에서 보다시피 한국 무속의 원류는 이 시베리아 소산의 샤머니즘이다. 두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전통복식을 살펴보면 모두 앞섶이 열린 이른바 전개형(前開型, 카프탄)이란 공통성이 있다. 그리고 구비전승에서도 상당한 상관성을 엿볼 수 있다. 바이칼 주변의 코리인이나 부리야트인은 순록을, 몽골인은 늑대를, 한국인은 곰 같은 짐승을 시조로 삼는 이른바 수조(獸祖)전설이 신통히도 일맥상통한다. 시베리아는 구비문학의 보고이다. 자고로 세시풍속이나 각종 의례 등 삶의 주요 계기마다 특유의 음감(音感)을 가진 전문적인 이야기꾼을 초청해 경청하며 감상하곤 한다. 주제는 전설이나 신화, 동화, 수수께끼 등 다양한데, 그런 이야기 속에서 한국문화에 녹아있는 여러 구비전승 요소를 고스란히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부리야트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들 수 있는데, 그 내용이 우리네 것과 진배없다. 그 밖에 솟대와 서낭당 같은 공유성 유물들도 처처에서 만나게 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 모든 사실들은 알혼 섬에 공간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그러니 그곳으로의 도항을 앞두고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9시35분, 대기 세 시간 만에 차량 20여대와 승객 100여명을 태운 여객선은 나루터를 떠난다. 노을 비낀 수면을 15분간 미끄러지더니 얇게 드리운 야음 속에 조심스레 닻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이칼 호 중앙 서쪽에 좀 치우쳐 있는 알혼 섬에 다다랐다.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메카 알혼의 원래 발음은 ‘아이홍’인데, 17세기 러시아인들이 이곳을 정복하면서 ‘올콘’으로 잘못 발음한 데서 유래된 와전어이다. 이말의 뜻에 관해서는 ‘(하늘로부터) 가까운’ ‘작은 숲’이라고도 하지만, 현지 안내원은 ‘나무 없는’(메마른) 뜻이라고 소개한다. 이것이 원주민어인지 몽골어인지가 분명치 않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여기서부터는 전용관광차를 갈아타고 다녀야 한다. 약 50분 걸려 중심 마을인 후즈르에 자리한 니콜스 관광숙박소에 도착했다. 1~2층으로 된 나무 귀틀집 20여채가 옹기종기 붙어있다. 12동 b호(1층)에 여장을 풀고 호밀 밥에 돼지비계로 저녁을 때우고는 전통목욕인 반야를 하고 자리에 들었다. 향긋한 나무 진 냄새 속에 노독이 말끔히 가셔진다. 이튿날 아침식사도 호밀 죽이다. 알혼 섬은 제주도의 절반쯤 되는 크기의 섬으로서 바이칼 호 한가운데 남북으로 길게 놓인 절해고도다. 숙소로부터의 관광코스는 북행이다. 30분쯤 가니 섬 언저리에 자리한 그 유명한 부르칸 산이 나타난다. 치안 때문에 ‘특수장비’를 갖추고 가야 한다는 뜬소문과는 달리 평온하다. 일렬로 도열한 세르게(오보)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침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부르칸은 문자 그대로 선경이다. 동북아시아 곳곳에 숱한 기원적 전설을 갈무리하고 있는 부르칸니즘(不咸文化)의 모태인 이 부르칸의 자태는 자못 신비롭기도 하고 숭엄하기도 하다. 섬 인구 1500명 가운데 에벵키족이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제주(祭主)만은 아직까지도 전설의 주인공인 코리족 남자어른이 담당한다고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여기서 다시 30분 정도 가면 불타버린 선착장과 생선공장 자리가 남아있는 유배지 이샨카 마을이 나타난다. 지금은 휴게소로 커피숍 한 채만이 덩그러니 남아 그 옛날의 쓸쓸한 풍광을 과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다시 한 시간 가니 트리브라테라는 삼형제바위가 또 하나의 샤먼 전설을 토해내고 있다. 옛날 아들 삼형제가 아버지처럼 샤먼이 되고 싶어 했는데 아버지는 극구 말린다. 그러자 세 아들은 몰래 이곳에 와 샤먼이 되려고 정진 기도하던 끝에 이렇게 세 바위로 굳어졌다고 한다. 샤먼에 대한 숭앙을 그려낸 전설이다. 석화인(石化人) 전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신기한 것은 이끼가 화석화되어 돌이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다시 15분쯤 가니 ‘송곳’이란 뜻의 ‘하보이’, 즉 섬의 끝(북단)에 이른다. ‘밝음’이 아닌 ‘붉음’이란 부르칸(不咸) 뜻이 실감나게 붉은 방울송이가 알알이 맺힌 잣나무와 적송이 빼곡하다. 그리고 샤머니즘의 메카답게 섬의 끝머리를 대형 세르게로 장식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후즈르박물관에 들러 맷돌 같은 우리와의 유사품들을 여러 점 확인하고, 다시 선착장에 돌아와 알혼 섬에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멀어져 가는 섬을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상념에 젖기 시작한다. 물이나 돌밖에 없는 알혼 섬이나 바이칼 호를 굳이 찾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자문부터이다. 한마디로 그 답은 시쳇말로 ‘뿌리 찾기’이다. 이 길은 참 나를 찾는, 내 속으로 순례하는 길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자라서 가지를 치고 꽃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자칫 너 나를 넘나드는 국제화 시대에 무슨 고루한 소리인가고 핀잔을 던지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라는 존재는 본래부터가 남과 남의 만남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나와 남은 어울림 속에서 공생함으로써 나를 찾는 길은 곧 남을 찾는 길과도 잇닿아 있다. 차제에 한 가지 덧붙이면, 유전적으로 한민족의 20~30%는 남방계에 속하며, 우리 속엔 남방 문화유전자도 분명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방만이 아니라 남방에서의 ‘뿌리 찾기’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균형 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lt;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경향기고문, 09. 11 11]&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카페를 오리지날로 한잔 하면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imjinhwan69/15919295"/>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95</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1-08T11:00:43Z</updated>
	    <published>2009-11-08T11:00:4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제 밤부터 익숙한 리듬과 세기를&amp;nbsp;가진 가을비가 온다..&lt;/P&gt;
&lt;P&gt;익숙한 이 소리의 색깔과 크기가 나를 진정시킨다.&lt;/P&gt;
&lt;P&gt;기어코 집에 들어온 데스크 탑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를 심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것이 일상인 것이다.&lt;/P&gt;
&lt;P&gt;아무도 전화도 할 수 없고, 전화도 받을 수 없는....&lt;/P&gt;
&lt;P&gt;마흔의 질곡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핑계도 많고,, 변주도 많은 게으름이 오늘은 이탈리아 수도회에 있는&lt;/P&gt;
&lt;P&gt;음식점을 가고싶은 마음을 준다..&lt;/P&gt;
&lt;P&gt;별다른 재변득이 없으면,, 점심은 그곳에서 먹고싶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랜만에 빈첸쪼 선생님도 한번 뵙고 싶고,,&lt;/P&gt;
&lt;P&gt;기억도 가물해가는 파스타의 진한 올리브 향도 즐겨보고 싶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동안 차가 없어 차라리 다행이다는 생각이다..&lt;/P&gt;
&lt;P&gt;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연관보다는 사물이나 문화적 형태를 띈 매개체를 &lt;/P&gt;
&lt;P&gt;더 좋아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기사 내가 나를 봐도,, 이젠 볼품없는 사십대인데..&lt;/P&gt;
&lt;P&gt;사람에게 뭘 기대하겠다는 것일까??? 차라리 돌멩이하나라도&lt;/P&gt;
&lt;P&gt;작은 우상처럼 기리는 것이 덜 흔들리리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늘은 회색인데,, 소리때문에 결코 칙칙하지 않아서 좋다..&lt;/P&gt;
&lt;P&gt;아니.. 이래야 한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르쿠츠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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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94</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1-04T16:10:11Z</updated>
	    <published>2009-11-04T16:10: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body&gt;&lt;STRONG&gt; (38)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ody style=&quot;WIDTH: 100%; WORD-BREAK: break-all&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ㆍ이광수 ‘유정’ 무대… 아름답구나, 여인들 순애보&lt;/STRONG&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221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1_37.jpg&quot; border=1&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이르쿠츠크역사&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르쿠츠크를 상징하는 휘장은 검은 호랑이가 붉은 담비를 물어 구제하는 도상이다. 검은 호랑이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서식한 길상 동물이며, 담비는 부근 숲 속에 사는 야생동물이다. 초피(貂皮), 즉 담비 가죽은 예나 지금이나 고급 모피로 애용됨으로써 담비 역시 진중되는 동물이다. ‘산신령’이나 ‘산군’(山君)으로 여겨지는 호랑이의 영험과 위력을 빌려 설한풍 거칠지만 보물로 가득한 이 땅을 번성케 하려는 뜻이 담긴 상징물이라고 해석해 본다. 그래서 그런지 올 때마다 신기(神氣)를 느낄 정도로 훈훈하고 정감이 들며,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하는 그 이색적인 풍광에 매료되기도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XML:NAMESPACE PREFIX = O /&gt;&lt;O:P&gt;&lt;/O:P&gt;&lt;/FONT&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지난 50여년 동안 다섯 번이나 들렀으니,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에 한 번 꼴로 찾아 온 셈이다. 얼마나 변했으며, 또 변해가고 있는가가 늘 궁금하다. 그러면서도 한 구석엔 변하지 말고 그대로였으면 하는 ‘수구’(守舊)의 취향도 가끔 내뱉어 본다. 이번엔 지난해(2008년) 2월에 있은 초원로 답사에 이어 꼭 1년 반 만에 다시 찾아왔다. 사흘 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열차는 예정 시간보다 40분 늦은 오후 6시5분에 도착했다. 시간은 여기가 서울과는 같고, 블라디보스토크와는 3시간, 모스크바와는 5시간 시차가 있으니 드넓은 러시아 땅의 동쪽 편에 약간 치우쳐 자리한 곳이다.&lt;/FONT&gt;&lt;/SPAN&gt;&lt;FONT size=3&gt; &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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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32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2_36.jpg&quot; border=1&gt;&lt;O:P&gt;&lt;/O: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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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기차 역사 정문에서 현지 여행사 직원과 함께 통역 안내를 맡을 이르쿠츠크대학 유학생 서군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lt;/FONT&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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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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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지난해에는 철도대학 유학생 임군이 같은 역을 맡았다. 학구열에 불타 낯선 이역 땅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세계를 익혀가면서 여행객들에게 안내의 도움까지 주는 젊은이들이 정말로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숙소는 시내가 아니라 30분 거리에 있는 라스트비앙트의 삼림 속 통나무집(올라체카)으로 잡았다. 이색적인 체험이다. ‘북경코야점’(오리구이 식당)에서 저녁을 때우고 8시가 다 되어서 거리에 나섰는데도 백야 탓으로 대낮처럼 환하다.&lt;/FONT&gt;&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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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59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3_35.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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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이르쿠츠크를 상징하는 휘장(검은 호랑이가 담비를 구제하는 도상).&lt;/FONT&gt;&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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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도시들 중에서 유일하게 35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유구한 도시이다. 곳곳에 그러한 나이테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1615년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에 앞장섰던 카자크 기병들이 앙가라 강변에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기지촌으로부터 발걸음을 뗀다. 점차 동부 시베리아 정복의 거점으로 확장되다가 1686년에 도시로 승격하고, 18세기 초엽에 이르러서는 시베리아의 정치·경제 중심지로 부상한다. 1761년에 이르쿠츠크 원정대가 베링 해협을 정복한 데 이어 알래스카에 앙가라 출신의 상인과 주민들이 정착하면서 극동과 알래스카 전체가 이르쿠츠크 주의 관할 하에 들어온다. 이때부터 이르쿠츠크는 명실상부한 시베리아의 맹주로 군림한다. 그러나 아직은 시베리아 고풍이 켜켜이 쌓인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로 남아 있다. 그러다가 제정 러시아의 압제가 극에 달한 19세기에 들어서는 유형지로 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배되어 온 데카브리스트들에 의해 ‘하느님은 높고 차르(황제)는 멀리 있으니’ 죄와 벌이 무섭지 않다고 으쓱거리는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던 살벌한 도시가 ‘시베리아의 파리’로 파격적인 변신을 한다. 20세기 초에는 반혁명 백군(白軍)의 본거지로서 불꽃 튀는 격전장이 되기도 했다. 너무나 처절한 역사의 현장이다.&lt;/FONT&gt;&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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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지금은 비록 그 현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원래 건물은 모두가 목조 건물이었으나 1879년 큰 화재로 대부분 건물이 전소되거나 화상을 입었다. 참사 이후 목조건물을 대신해 석조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파리’였던 그 명성만은 이어가려는 이곳 사람들의 끈기 있는 노력에 의해 그 ‘파리풍’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주택을 비롯한 전통 건물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크기나 외양이 같은 것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색깔과 문양은 기괴할 정도로 다종다양하다. 무언가 서로 달라야 신이 쉬이 식별하고 제대로 찾아온다는 속설은 이곳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한다. 도식을 피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곳만의 개성이다. 현대적 건물도 전통을 따라 탈러시아적인 서구식으로 짓고 꾸미고 있다. 샤머니즘과 러시아 정교회가 추구하는 전통 양식과 유럽의 바로크 형식이 혼합된 이른바 ‘시베리아 바로크’ 형식의 독특한 건물이 눈에 많이 띈다. 최근에는 200년 이상 되는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해 정부가 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오랜 건물은 함부로 허물거나 증축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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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인구 80만명을 품고 있는 이 도시는 세계적 관광명소 바이칼 호로 가는 필수 경유지라는 점에서 관광 전망은 밝다. 아울러 경제·문화적 잠재력도 상당하다. 교통의 요로에서 중국이나 몽골과의 교역이 활발하며, 1956년에 완공된 앙가라 수력발전소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동부 시베리아의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교육·문화면에서도 동시베리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기세가 1㎾당 한화로 4원밖에 안 되니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전기료가 아니겠는가. 국립 이르쿠츠크대학을 비롯해 30여개의 대학과 직업학교가 있다. 대학 등록금은 1년에 한화로 250만원(6만 루블)이라고 하니 우리네보다 퍽 싼 셈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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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188px; HEIGHT: 350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4_29.jpg&quot; border=1&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FON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콜차크 해국제독 동상&lt;/FONT&gt;&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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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첫날밤을 보낸 올라체카는 숲 속 깊숙이 파묻혀있다. 2층으로 된 20여동의 통나무집들이 이곳저곳에 꼭꼭 숨어 있다. 층 마다 방이 대여섯 개씩 딸려 있다. 방바닥이며 벽은 몽땅 널빤지로 짰는데, 널빤지 사이사이의 틈은 자작나무 껍질로 메우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지은 지 몇 해 된 집인데도 구수한 나무 진 냄새가 은근히 코를 찌른다. 한여름이지만 창문을 열어젖히니 시원한 숲 바람이 솔솔 스며든다. 괴괴한 숲속의 밤은 나그네의 온갖 잡념을 털어버리고 곯아떨어지게 한다. 삼림욕을 만끽한 하룻밤이다. 이르쿠츠크 주 전체 면적 76만7900㎢ 가운데서 타이가 삼림 지대가 75%나 차지하며, 7월 이맘 때의 평균기온이 17~19도이니 정말로 쾌적한 자연환경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올라체카에서 시내로 돌아와 관광에 나섰다. 처음 찾은 곳은 앙가라 강의 지류인 우샤코브카 강 건너편에 자리한 즈나멘스키 수도원이다. 수도원 정문 밖 광장에는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해군제독 알렉산드르 콜차크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1689년에 문을 연 이 수도원은 이곳과 울란우데, 치타 지역까지를 관장하는 동시베리아 정교회의 본부이다. 지금까지 줄곧 예배가 진행되고 있는 현행 수도원으로서 내부는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눈 익은 성화도 여러 점 눈에 띈다. 30여명의 신도들이 선 채로 엄숙히 예배를 근행한다. 수도원에는 300여년 전(1698년)에 만들어진 귀중한 성경이 보관되어 있으며, 유명 인사들이 묻힌 공동묘지도 함께 있다. 이 묘역에는 알래스카와 쿠릴 반도를 발견한 ‘러시아의 콜럼버스’ 쉘리호프와 데카브리스트의 뜨레베츠키야 부인과 가족들이 묻혀있다. 쉘리호프의 묘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지도와 컴퍼스, 닻, 원고 등이 청동으로 부조되어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어 찾아간 곳은 한인 독립운동가들의 체취가 스며있는 레닌 거리 23번지 옛 극장이다. 이곳은 1920년대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한 외국 혁명가들이 자주 모임을 갖던 자리이다. 벽면에는 그러한 역사의 현장임을 전하는 동판이 여러 장 붙어있다. 이에 앞서 1910년대에 이범석, 이범윤 등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으나, 그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이르쿠츠크는 자유세계를 찾아 방황하던 이광수의 소설 &lt;유정&gt;의 무대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이곳에서 고려인으로선 유일한 러시아 연방의원 유리 텐(한국명 정홍식)이 배출되었으며, 100여명의 한국인 교민과 유학생들이 살고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어 발길을 옮긴 곳은 데카브리스트의 박물관이다. 데카브리스트란 1825년 12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들을 지칭하는데, 러시아어에서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하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그래서 일명 ‘12월 당원’이나 ‘데카브리스트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사건이 여태껏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사건 자체의 의미와 더불어 그 부인들의 기막힌 순애보와 그들에 의해 시베리아 동토에 자유와 근대적 문명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1812년 모스크바까지 쳐들어온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파리까지 진격한 러시아 젊은 장교들은 유럽의 자유주의와 계몽주의 사상, 근대 문명에 감응되어 귀국해서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수립하기 위해 1816년 구제동맹을 결성한다. 이를 시발로 복지동맹과 북방결사, 남방결사, 통일슬라브결사 같은 혁명조직을 잇따라 뭇고 세를 키워간다. 그 바탕에서 1825년 12월14일 원로원 광장에서 거행되는 새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선서식을 계기로 거사를 도모하기로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189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5_19.jpg&quot; border=1&gt;&amp;nbsp;&amp;nbsp; &lt;/FON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데카브리스트 박물관(발콘스키 고택).&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그러나 사전에 발각되어 주모자 5명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나머지 120여명의 장교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섣달,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꿈은 이렇게 꺾이고 만다. 그러나 다음 세기에 타오를 불씨를 이 암흑의 땅에 뿌려놓았다. 그것이 데카브리스트의 자부와 긍지였다. 그들 모두는 장교인 동시에 열렬한 혁명가, 정치가들이었으며, 그 가운데는 이름난 시인도 있다. 시인 라에프스키는 &lt;명상&gt;(1830년 작)에서 자유를 찾은 감격을 이렇게 자문자답식으로 읊조린다. “방랑자여, 그대는 왜 당신의 매력적인 골짜기를 야생의 숲, 바위 덩어리, 어두운 협곡으로 대체하였는가”, 이에 대한 답은 “이 산들 속에서, 이 화강암의 절벽 속에서, 나는 힘과 자유를 숨쉰다”이다.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푸슈킨도 남부로 유배를 가는 바람에 데카브리스트의 대열에 직접 끼지는 못했지만, 그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혁명을 동경하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 “무거운 족쇄가 떨어져 나가고, 감옥은 허물어지리니 자유는, 기쁘게 문 앞에서 당신들을 맞이하고, 형제들은 그대들에게 검을 건네리라.” 그가 쓴 시 &lt;시베리아의 깊은 광맥 속에서&gt;(1827년 작)의 마지막 구절이다.&lt;/FONT&gt;&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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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데카브리스트의 한 사람인 발콘스키 백작 주택을 개조한 박물관 1, 2층에는 그들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유물과 사진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 너나없이 감동을 받는 것은 그들 부인의 극진한 순애보이다. 데카리스트들에게 유배형이 내려진 뒤 황실은 부인들에게 반역자인 남편들을 버리고 귀족 신분으로 재가를 하든지, 아니면 귀족으로서의 모든 특전을 버리고 남편들을 따라 유배지로 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명을 내린다. 부인들은 주저없이 유형 길을 택한다. 고대광실에서 영화만을 누려오던 귀족 출신의 부인들은 설한풍 휘몰아치는 시베리아 대지를 1년 이상 걸어서 순정의 드라마를 펼친다. 유배형을 마친 데카리스트들과 부인들은 유배지 이르쿠츠크를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 자유와 이상의 온상으로 변모시킨다. 그들에 의해 이 도시가 지녀오던 역사의 무게와 문화의 결은 확 달라진다. 그것이 오늘로 이어진 ‘시베리아 파리’의 모태이다. 벽에 걸려있는 발콘스키 부인 마리아의 초상화, 38세의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겉늙음에서 그 고난 찬 일생이 읽혀진다. 소박한 살림살이와 숱하게 오간 편지, 읽은 책, 하나하나가 혁명가들의 불꽃 튀는 삶과 참사랑을 증언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비롯해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전시실을 발 디딜 틈 없이 꽉 채운 관람객들의 얼굴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참 순애보의 현장을 찾아서’란 감격 어린 말 한 마디를 방명록에 남기고 박물관을 나섰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amp;nbsp; &lt;/P&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부랴트 마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imjinhwan69/15919293"/>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93</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0-29T08:32:27Z</updated>
	    <published>2009-10-29T08:32: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body&gt;&lt;STRONG&gt;낯설지 않은 부랴트를 찾아서&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ody style=&quot;WIDTH: 100%; WORD-BREAK: break-all&quot;&gt;&lt;!--StartFragment--&gt;&amp;nbsp;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color=#696969 size=3&gt;&lt;STRONG&gt;ㆍ씨름·강강술래 즐기고, 체구·생김새까지…한국인과 너무 닮았네&lt;/STRONG&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지금의 시베리아 초원로는 ‘신 실크로드’ 개념에서 보면 ‘철의 실크로드’이다. 이를테면 기계동력에 의해 움직이는 기차를 타고 편히 다니는 초원길이다. 길은 그 길이되, 그 옛날 말 잔등에 업혀 다니던 험난한 길은 아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기차에서 몇 밤 몇 날을 지내는 것쯤은 거뜬히 넘겨야 할 것이다. 7월5일 오전 10시45분에 하바로프스크 역에서 모스크바행 시베리아 횡단열차(5호차 10번 좌석)를 타고 7일 오후 6시5분 목적지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으니 꼬박 2박3일, 55시간이 걸린 셈이다. 주파한 거리는 무려 3336㎞나 된다. 4인 1실의 열차 칸은 여행에 불편함이 없이 잘 꾸려져 있다. 소형 TV가 침대마다 한 대씩 있고, 조명과 선반 같은 시설도 이용에 편리하게 설계돼 있으며 침구도 깔끔하다. 현대화로 걸음을 옮기는 러시아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사실 기차 여행은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긴 시간을 빨리 달리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사상(事象)에 관한 사색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 그러하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33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1_36.jpg&quot; border=1&gt;&lt;?XML:NAMESPACE PREFIX = O /&gt;&lt;O:P&gt;&lt;/O:P&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시베리아 횡단철도 연변의 농촌 풍경&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열차는 타이가(침엽수림대)의 우거진 숲과 스텝의 푸르싱싱한 풀밭 속을 이리저리 숨바꼭질 하듯 꼬리를 휘저으며 미끄러져간다. 한여름의 시베리아는 온통 푸른 바다이다. 자작나무와 잣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가 하면, 짙푸른 평원과 늪지대가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다. 곁가지 하나 없이 하늘을 향해 올곧게 자란 자작나무와 잣나무의 행렬은 참말로 장관이다. 동틀 무렵 호숫가나 강가의 나무 숲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뽀얀 물안개, 백야의 어둠을 사뿐히 몰고 오는 낙조, 여기 시베리아만이 간직한 환상이고 운치다. 졸지에 창가를 적시는 빗방울은 나그네의 추념(追念)을 다독거린다. 어쩌면 세계의 마지막 청정 호수가 될 저 바이칼을 옆에 끼고 몇 시간 달린다는 것은 드문 행운이 아닐 수 없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몇 시간씩 달리고는 역에서 길게는 30분까지 정차한다. 정차하면 영락없이 아낙네들이 바구니에 삶은 감자와 계란, 찐빵, 건어물 같은 갖가지 먹을거리와 들꽃 다발을 들고 다가와 앞다퉈 호객한다. 옛날과 달라진 풍경이다. 그전엔 이동수레 같은 데 차려놓고 앉아서 팔았었는데, 지금은 발품을 팔아 뛰어다니며 벌이를 한다. 이러저러한 이상야릇한 풍경 속에 별로 지루함을 모른 채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이 길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 두 군데가 있는데, 일정상 들르지는 못하고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어 못내 아쉽기만 하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그 첫번째가 이르쿠츠크에서 동쪽으로 약 600㎞ 떨어진 치타다. 치타는 우리와 인연이 있는 고장이다. 일찍이 이곳에서 고구려 말등자와 함께 극동과 서역 간의 교류를 실증하는 악기 등 몇 가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치타가 교류 통로인 초원 실크로드상에서 길목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고구려 기병이 이곳까지 왔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등자를 비롯한 고구려의 마구가 전래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진대, 이것은 두 지역 간에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이번 시베리아 초원로 답사에서 연해주에 자리했던 발해가 이른바 ‘초피(貂皮)의 길’을 통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와 교류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그 길이 바로 이곳을 지나갔을 것으로 추단되니 어찌 치타역에서 발걸음이 떨어지겠는가.&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amp;nbsp;&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3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2_35.jpg&quot; border=1&gt;&amp;nbsp;&lt;/FONT&gt;&lt;FONT size=2&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울란우데 기차역 외관.&lt;/SPAN&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새벽 2시39분까지 잠을 쫓아가면서 치타역을 기다린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곳은 1910년대 재러시아 한인들이 벌인 독립운동의 한 중심지였다. 당시 치타는 자바이칼 주의 수부로서 주로 감자 농사를 짓는 한인 120~130명이 살고 있었다. 물을 따라 물고기가 생기는 것처럼 한인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당시의 시대상황이고 보면 이해가 간다. 미국 국민회로부터 파견된 이강(李剛)이 주도한 이곳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 지방총화(1911~15년)가 블라디보스토크의 권업회와 쌍벽을 이루며 재러 한인들의 반일독립운동을 이끌어갔다. 어딘가에 그러한 흔적이 남아 있으련만 찾지 못하고 지나가는 마음이 무쇠덩어리처럼 무겁다. 23분의 정차 시간은 마음의 상처만 남겨놓았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다음으로 꼭 들려봐야 할 곳은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다. 부랴트,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미국 에모리대학 연구소의 세계 종족별 DNA 분석 자료에 의하면 바이칼 주변의 부랴트인과 야쿠트인,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한국인의 DNA가 진배없다고 한다. 평평한 얼굴, 튀어나온 광대뼈, 얇은 입술, 낮은 코, 두꺼운 눈꺼풀, 가는 실눈, 작달막한 체구, 두꺼운 피하지방층 등 생김새도 한국인과 이들, 특히 부랴트인은 엇비슷해서 가려내기가 힘들 지경이다. 이러한 체질인류학적 유사성 말고도 생태적 및 문화적 유사성도 쉬이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가 낯설지 않고 만나면 친근감마저 든다. 이제 그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하자.&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사실 울란우데는 2년 전 울란바토르를 거쳐 서시베리아 답사를 할 때 들렀다. 그 전에도 두세 번 지나간 적이 있다. 원래 부랴트인들은 바이칼 호수 분지와 앙가라 강 유역, 동사얀산맥에서 유목생활을 해 온 고아시아인의 몽골계에 속한 한 인종이다. 신화에 따르면 ‘부르데 치노’, 즉 ‘푸른 늑대’라는 이름의 남자가 그들의 조상인데, 그는 ‘고아마랄’, 즉 ‘고운 붉은 사슴’과 결혼해 후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고 한다. ‘부랴트’란 말은 ‘늑대’란 ‘부르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들의 거주 지역에서는 30만년 전 인류의 생활 흔적과 신석기 및 청동기 유물도 다수 출토되어 그들 역사의 유구함을 증명해주고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3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3_34.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우스찌 오르딘스크 시의 표식물인 기마동상.&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부랴트는 칭기즈칸 시대에 몽골 제국에 편입된 이래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 때까지 줄곧 몽골과 운명을 같이해 왔다. 그러다가 1727년 러시아와 만청 사이에 맺은 카흐타 조약에 의해 러시아령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 직후 이곳은 혁명적 적군(赤軍)과 반혁명적 백군(白軍) 간의 격전장이었다. 적군의 승리로 끝나자 소비에트 정부는 이곳을 완충지로 만들기 위해 울란우데를 수도로 하는 극동공화국을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반적 시베리아 정세가 안정되자 소비에트 정부는 이 공화국을 소비에트 러시아로 흡수(1922년)해 부랴트몽골자치사회주의공화국으로 개명했다. 그 이후 부랴트와 다른 지역 몽골인들과의 통합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1958년에 모든 공식 명칭에서 ‘몽골’자를 삭제해버렸다. 그러다가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인 80년대 후반부터 이곳에도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불어왔다. 라마교가 부활되고 학교에서 부랴트 몽골어 교육이 정식 채택되었다. 90년에 자체 법령이 소련 법령에 우선하며 부존자원에 대한 독자적 통제권을 주장하는 ‘주권 선언’을 발표했으나, 이듬해에 그냥 러시아 연방 내의 자치공화국으로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선상에서 94년엔 새로운 ‘부랴트 헌법’이 채택되고 자유선거로 대통령을 뽑았으며, 부랴트인이 수도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를 이른바 부랴트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대다수 주민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공화국 인구는 100여만명이며, 그중 부랴트인은 40만명쯤 되는데 30만명이 울란우데에 몰려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서쪽으로 바이칼 호수를 끼고 있는 수도 울란우데는 ‘붉다’라는 뜻의 ‘울란’과 ‘우다’라는 강 이름이 합친 합성어이다. 이곳은 북쪽으로 타이가 산림지대가 에워싸고 남쪽으로도 낮은 산들이 둘러싼 분지이다. 울란우데는 여느 러시아 중소 도시와 별반 차이 없는 수수한 도시로서 큰 건물은 얼마 없으나 공장 굴뚝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몽골을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만나는 접지로서 역사는 꽤 크고 붐빈다. 인상적인 것은 라마교의 부활이다. 티베트 라마교가 몽골을 거쳐 이곳에 들어온 것은 18세기 초다. 유입 후 세력을 키워 한때 제정 러시아의 공인을 얻었으나, 말살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정권이 세워질 무렵까지만 해도 부랴트와 치타, 이르쿠츠크 일원에 46개의 수도원과 150여개의 사원이 있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 탄압을 받아 승려 수천명이 수용소로 보내지고 수도원 2개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부랴트에만도 사원 20여개가 다시 문을 열었다. 조금은 과장된 수치지만 신도가 20만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오늘날 부흥을 선도하는 총본산은 울란우데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자리한 이로브긴스크 마을에 있는 다찬 사원이다. 승려 30여명과 학승 100여명이 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부랴트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들에는 예외 없이 불상이 모셔져 있다. 격변기를 맞아 흔들리는 마음을 종교적 신앙으로 다잡으려는 부랴트인들의 속내를 읽을 만도 하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amp;nbsp;&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3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4_28.jpg&quot; border=1&gt;&lt;/FONT&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우리의 ‘강강술래’를 닮은 부랴트인들의 집단놀이(부랴트 민속박물관 소장).&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현대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부랴트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한 방편에는 이런 종교뿐만 아니라, 고유의 샤머니즘도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 무속의 원류가 바로 이 북방 민족들 고유의 샤머니즘에 닿아 있으니, 그 현장을 찾아가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다음날, 시내에 있는 작지만 알찬 향토박물관을 둘러본 다음 300㎞나 떨어진 알혼 섬으로 향했다. 한 시간쯤(80㎞) 달리니 갖가지 들꽃이 만발한 드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안내 표식으로 길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기마동상에서 우회전해 자그마한 도시 우스찌 오르딘스크에 이르렀다. 시 한가운데 부랴트 민속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관장은 일행을 친절하게 맞아준다. 이 두 박물관과 이어지는 답사 길, 그리고 알혼 섬에 있는 후즈르 박물관에서 우리는 부랴트의 어제와 오늘을 생생하게 알아낼 수가 있었다. 특히 관심거리인 샤머니즘에 관해서 말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박물관에는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한 각종 토기와 마구, 불상, 다양한 생활과 놀이 도구, 순록 뿔 왕관 등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 두 박물관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다채로운 샤먼 의식과 도구, 장옷과 마고자, 세형동검과 비파형 동검, 씨름과 강강술래 같은 우리의 것과 너무나 흡사한 문화유물들이다.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아 보지는 못했지만, 민속박물관에는 민속공연장이 따로 마련되어 주로 샤먼의 연출과 더불어 민속 노래와 춤도 선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공연장 입구에서는 불을 피워 관람객을 정화시키고 샤먼이 주술을 읊어 액운을 막아준 다음 입장시킨다. 불과 샤먼에 대한 믿음과 기대의 표현이다. 민속박물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젤리자(‘눈보라’라는 뜻) 식당에서 이곳 토속음식인 닭고기 볶음밥과 훈제한 돼지고기를 흑맥주에 곁들어 정말 맛있게 먹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곳을 떠나 알혼 섬에 이르는 길가 곳곳과 알혼 섬 안에서도 알록달록한 색 천으로 단장한 세르게(몽골의 오보)와 구르칸(적석묘)을 발견했다. 다른 점은 세르게의 경우 대개 1~2m 길이로 잘라 채색 천을 휘감은 통나무를 수직으로 몇 대씩 나란히 세워놓는 형식이다. 아마 그 기능은 몽골에서처럼 샤머니즘적 기능과 함께 도로나 경계의 표식인 듯하다. 샤머니즘은 부랴트인들을 포함해 시베리아인들의 정신적 근간으로서 인간과 주변의 자연환경이나 현상에 대한 관계를 중시하는 친환경주의 사상이다. 그들은 처해진 주변의 환경이나 현상에 대해 예를 표하고 대화를 시도하면서 인간이 자연을 버리고 인간만을 생각하는 이기(利己)에 대해 경고한다. 이러한 친환경주의 사상의 결정체가 바로 샤머니즘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O:P&gt;&lt;/O:P&gt;&lt;/FONT&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lt;정수일|문명사학자·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yZk&amp;amp;tagName=부리아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부리아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yZk&amp;amp;tagName=부랴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부랴트&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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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 생활을 하면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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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92</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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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0-25T12:23:28Z</updated>
	    <published>2009-10-25T12:23:2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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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벌써 두번째 월급날이 지나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탈리아에서 친구부탁을 받고, 엘지패션을 위해서 통역을 하였다.&lt;/P&gt;
&lt;P&gt;이젠 정말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amp;nbsp; 없는데, 친구의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일이라&lt;/P&gt;
&lt;P&gt;솔선수범?의 자세로 한 계약건이 성사될 수 있도록 밤낮으로 뛰었다.&lt;/P&gt;
&lt;P&gt;결과가 마침 원하던 바 대로 나와서 다행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 달은 무지 정신없이 지나갔다.&lt;/P&gt;
&lt;P&gt;음주운전에 세번의 걸친 교육, 통역, 등이 끼어 있어, 회사일에 전념할 수 없었기에&lt;/P&gt;
&lt;P&gt;약간은 엇박자를 만들어 낸 것도 사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밤 문화가 없는 곳에서, 자꾸만 이곳 저곳을 나다녀야 하는 것도 어지럽고,&lt;/P&gt;
&lt;P&gt;생활리듬을 내 나이에 맞는 ? 서울 회사원 기준으로 맞춰나가기가 쉬운 노릇이 아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앞으로도 좌충우돌하면서, 내년 1사분기를 지나면, 이 생활의 정리가 어느정도 될 것 같다.&lt;/P&gt;
&lt;P&gt;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고향에서와는 다른 경로를 선택해야 하는데,&lt;/P&gt;
&lt;P&gt;사실 그것이 가장 큰 변화가 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좋은 것은 고등학교 동창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lt;/P&gt;
&lt;P&gt;공간이동의 자유?를 즐기게 되었고, &lt;/P&gt;
&lt;P&gt;구체적인 미래계획에 전체적인 윤곽작업이 실행에 들어간 것이고,&lt;/P&gt;
&lt;P&gt;안정적인 개인 경제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lt;/P&gt;
&lt;P&gt;그리 쉽지 않은 것은 퇴근 후 더 깊은 심심함과.&lt;/P&gt;
&lt;P&gt;맑은 공기를 쐬고 싶으면 한시간은 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것..&lt;/P&gt;
&lt;P&gt;그리고, 아직은 내 하루생활에 더 자신감있는 관리능력이고,&lt;/P&gt;
&lt;P&gt;여전한 대인공포증에 대한 적응기간이 좀 어렵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가을인가보다. 며칠전부턴.. 깊이가 있는 책이라도 하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lt;/P&gt;
&lt;P&gt;그래.. 조금은 더 차분해지고, 변별력이 떨이지더라도 당면하는 상황에 대해서 &lt;/P&gt;
&lt;P&gt;간격을 유지하는 신중함이 길러져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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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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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0-22T08:02:20Z</updated>
	    <published>2009-10-22T08:02:2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body&gt;&lt;STRONG&gt;(36) 아무르 강이 굽이쳐 흐르는 하바로프스크&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ody style=&quot;WIDTH: 100%; WORD-BREAK: break-all&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ㆍ‘시베리아의 심장부’ 감싸안은 애환과 분쟁의 강&lt;/STRONG&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RONG&gt;&lt;FONT size=3&gt;&lt;/FONT&gt;&lt;/STRONG&gt;&lt;/SPAN&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289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1_35.jpg&quot; border=1&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아무르 강 전경.&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흔히들 ‘아무르 강을 보기 위해 하바(하바로프스크의 약칭)로 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만큼 아무르 강은 유명하니까. 필자는 일찍이 중국 땅에서 구소련을 넘나들면서 두 번이나 이 강을 건너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나름의 감성(感性)에서 ‘검은 용’처럼 흘러가는 강물 위에 무덤덤하게 몸을 띄웠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 찾아가는 아무르는 오성(悟性)에서 발산되는 다른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 온다. 숱한 겨레의 애환을 싣고 하바에서 굽이쳐 흘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르를 보기 위해 하바에 왔다고 해도 좋고, 하바를 보기 위해 아무르를 찾는다고 해도 무방하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우수리스크에서 7분 연착된 밤 11시20분 열차를 타고 하바로 향했다. 듣던 바와는 달리 열차는 현대적으로 아주 편리하게 꾸며졌으며, 승무원들도 굉장히 친절하다. 야행이라서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간혹 희미한 불빛 속에 자작나무며 잣나무 숲이 어른거릴 뿐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까지 구간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 중 가장 먼저 운영에 들어간 구간이다. 옛소련 시절에는 국방상 이유로 하바 이동의 선로는 모두 폐쇄되어 하바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역 구실을 한 적이 있다. 다음날(2009년 7월4일) 아침 8시 정각에 하바에 도착했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예로페이 하바로프의 우람한 동상이다. 그는 1650년쯤 이곳을 포함한 시베리아를 개척한 사람으로서 하바로프스크란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두 개의 빨간 색 바늘을 달고 있는 대형 시계탑도 광장의 명물이다. 바늘 하나는 러시아 전역에서 표준시간으로 삼고 있는 모스크바 시간을, 다른 하나는 현지 시간을 가리킨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 하바로프스크가 오늘은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우며 어딘가 모르게 정적이 감도는 듯하지만, 사실은 살벌한 군사거점으로 출범했다. 1858년 당시 동시베리아 총독이던 니콜라이 무라비요프 백작이 불과 25㎞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청나라로부터 아무르 강에 대한 영유권을 빼앗기 위한 전초기지로 세운 도시가 바로 이 하바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과의 국경분쟁이 쉼 없이 일어남으로써 줄곧 군사도시로 발전해 왔다. 지금도 극동 군관구 사령부가 이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의 하바로프스크 주는 러시아의 89개 행정단위 가운데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면적은 78만9000㎢로서 남한의 9배다. 이 넓은 땅에 사는 사람은 고작 160만명에 불과하며 그중 주도인 하바에만 60만명이 몰려 있다. 하바 주는 수많은 호수와 무성한 숲, 귀한 에너지 자원과 광물, 진기한 동식물을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보고이며 극동 시베리아의 심장부다. 연해주나 사할린 지방도 원래는 하바로프스크 주의 관할 아래 있었으나 1938년과 1947년에 각각 분리되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기차역에서 곧바로 인투리스트 호텔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는 답사에 나섰다. 먼저 찾은 곳은 호텔 근처에 있는 민족박물관이다. 3층으로 된 붉은 벽돌 건물이다. 박물관 1~2층에는 각종 동식물 박제품과 우리나라 한복을 비롯한 여러 가지 민족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득의양양한 무라비요프와 의기소침한 만청 대표가 아이훈(愛琿)조약(1858)에 서명하는 모습을 그린 유화는 퍽 인상적이다. 또한 눈길을 끈 것은 3층에 전시된 한 전투 장면이다. 1920년대 초 대치 상태에 있던 적군(赤軍)과 백군(白軍)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 장면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련의 전투에서 패한 백군은 만주 지방으로 도피한다. 후일 그네들 중 일부가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 유입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299px; HEIGHT: 500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2_34.jpg&quot; border=1&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하바로프스크 기차역 광장에 세워진 개척자 하바로프의 동상.&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일찌감치 점심을 마치고 시 중심에 자리한 레닌광장에 들렀다. 햇볕이 쨍쨍 쬐는 정오 무렵인데도 사람들로 붐빈다. 광장은 주 청사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 은행과 공무원대학, 의과대학, 병원 등 공공건물들로 빙 둘러싸여 있다. 한 바퀴 돌아본 후 여기서 200m쯤 떨어진 푸슈킨 거리의 한 붉은 벽돌집을 찾았다. 우거진 가로수 속에 파묻혀 있는 이 호젓한 단층집은 1920년대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쓰던 신문발간소이다. 지금은 결혼상담소로 변해 옛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어 김유천(김유경의 오기) 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거리에 이름이 붙여질 만큼 이곳 하바가 기리고 있는 고려인 2세 김유경은 1900년 연해주 수이푼 구역 차피고우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적군에 가담한 그녀는 적군 76연대에서 소대급 지휘관으로 성장한다. 그러다가 1929년 백군과의 전투에서 장열하게 전몰한다. 이듬해에 그녀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이 거리가 그녀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녹음이 짙게 드리운 거리는 아득히 곧게 뻗어 있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여기서 안내 받은 곳은 ‘영웅광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산화한 3만7000명의 이름이 돌판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그 숱한 이름 속에서 ‘김’ ‘리’ ‘박’ 같은 고려인들의 성을 찾아냈다. 해외 동포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그 땅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지켜야 할 의리일진대, 우리는 그네들이 그렇게 해서 그 땅에 뿌리 내리는 것을 대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동포들의 삶을 놓고 이 한 가지 소박한 도리를 터득한다는 것은 말만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오늘도 하바에는 2000여명의 고려인들이 뿌리 내려 살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국의 번영에서 힘을 얻고 있다. 고국은 그들의 믿음직한 지킴이다. 그래서 고국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우리 일행을 안내한 고려인 3세 정 선생의 간절한 말이다. 광장 뒤편 언덕 위에는 시 방송국과 높다란 영웅탑이 세워져 있다. 거기서 100m쯤 떨어진 곳에는 3년 전에 문을 연 정교회 교회와 지난해 지은 신학교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바야흐로 정교회가 부흥하고 있는 조짐인 듯하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아무르 강은 하바의 명물이며, 강 위에 가로놓인 다리는 명물 중의 명물이다. 두 명물을 한꺼번에 감상하기 위해 다리로 향했다. 2006년에 완공한 다리의 동서 길이는 자그마치 5㎞나 된다. 밑으로는 기차가, 위로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2중 구조의 다리다. 서쪽 교두보 언저리에 차를 세워놓고 강과 다리를 유심히 살펴봤다. 물속에 부식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물빛은 검푸르죽죽하다. 이런 색 물줄기가 마치 용처럼 구불구불 흘러간다고 하여 중국 사람들은 이 강을 ‘흑룡강’(黑龍江)이라고 부른다. ‘흑룡강’이란 이름은 13세기에 씌어진 &lt;요사(遼史)&gt;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이전의 문헌에는 ‘흑수’(黑水)니 ‘약수’(弱水)니 ‘오환하’(烏桓河)니 하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 강은 몽골 북부의 성산 헨티산에서 발원해 러시아와 중국 간의 국경선을 이루면서 하바의 바로 남쪽에서 우수리강과 합류한다. 그 후 이 도시를 오른쪽으로 끼고 북동 방향으로 흐름을 틀어서는 사할린 섬 앞을 거쳐 오호츠크 해에 유입한다. 장장 5498㎞를 흐르는 이 강은 세계 10대 강의 하나로서 유역 면적이 넓고 풍부한 수자원을 갈무리하고 있다. 어종만 해도 상·하류 합쳐 160여종에 달한다. 하바에 이르러서는 그 너비가 2㎞를 넘으며 깊이는 평균 7m이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어 썰매를 타고 내왕하는 데 두세 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333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3_33.jpg&quot; border=1&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2&gt;아무르 강 다리 전경.&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그러나 이 강은 결코 평화롭게 유유히 흐르는 강만은 아니다. 숱한 애환과 분쟁을 싣고 소용돌이치는 강이기도 하다. 강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중국 간에는 시비가 그칠 날이 없다. 최근까지도 강 가운데 있는 두 개 섬을 놓고 일어난 분쟁이 무장충돌 직전까지 치달았다. 원래 러시아 영인 이 두 섬이 퇴적 현상으로 인해 중국 땅에 붙어버렸기 때문에 영유권 시비가 인 것이다. 2004년 양국 간의 국경협정에 의해 일시 분쟁이 봉합되기는 했으나, 언제 또 다시 터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르 강 다리 답사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 다리로부터 서쪽으로 기차를 타고 세 시간이나 걸리는 유대인 도시 비로비잔까지의 광활한 땅이 아직껏 유대인들의 소유지라고 한다. 그들은 이 소유지에서 여전히 공동체를 이루고 상부상조의 협동기업을 운영하면서 부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 모진 수난 속에서도 꺾임 없는 유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 그 증언의 현장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하바에서의 이틀째 날엔 아무르 강이 굽이쳐 흐르는 이 길목에서 겨레의 얼과 혼을 불사른 다른 두 한인 선열의 발자취를 더듬어 봤다. 선참으로 찾아간 곳은 마르크스 거리 22번지에 있는 김 알렉산드라 스탄게비치(1885~1918)의 유적이다. 유적 표시로 건물 외벽에는 그녀의 생애를 함축한 내용이 새겨진 동판이 걸려 있다. 그녀는 연해주 우수리스크 근처에서 함경북도 출신의 이주민 딸로 태어났다. 20대에는 교사를 하다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우랄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1918년에 이동휘 등과 함께 하바에서 한인 사회당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듬해 9월 러시아를 침입한 일본군의 후원을 받는 백군과의 일전에서 체포되어 아무르 강변에서 총살당한다. 한반도의 13개 도를 상징하는 13개 발자국을 뗀 뒤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향년 33세의 꽃다운 나이다. 상하이에서 간행된 ‘독립신문’ 1920년 4월17일자는 “혁명사상으로는 대한 여자의 향도관(嚮導官) … 자유정신으로는 대한 여자의 고문관(顧問官), 해방투쟁으로는 대한 여자의 사표자(師表者)”라고 그녀의 한 생을 높이 평가한다. 그녀의 시신은 강물에 내던져졌다. 그 후 비통에 잠긴 시민들은 오랫동안 강에서 낚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많은 아무르 강을 굽어보며 영롱한 이슬로 사라진 그 현장에서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머리 숙여 열사의 영원한 안식을 빌어 삼가 묵념을 올렸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그 길로 콤소몰 거리 89번지에 있는 열렬한 민족문학 작가 조명희(1894~1938)의 고택을 찾았다. 일제의 농민 수탈에 저항하는 한 지식인 운동가의 처절한 삶을 그린 그의 수작 &lt;낙동강&gt;(1927)은 학창 시절 필자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 고택은 낡은 2층 목조건물이다.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한국문학 최초의 창작 희곡집 &lt;김영일의 사(死)&gt;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결국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28년 연해주로 망명해 바로 이 하바로프스크에서 중학교 교편을 잡고 동포신문 ‘선봉’, 잡지 ‘노력자의 조국’ 편집을 담당하는 등 망명 작가로서의 눈부신 활동을 펼친다. 그러다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이듬해 4월 일본 첩자를 도왔다는 무고한 죄명을 쓰고 체포된 지 한 달 만에 처형된다. 딸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당당하게 선언하며 한 사날 있으면 돌아온다던 그 말이 선생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필귀정이라, 그의 명예는 회복된다. 여기 하바의 시립 공동묘지의 ‘기억 사원’ 안에는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WIDTH: 500px; HEIGHT: 318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4_27.jpg&quot; border=1&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필자는 3년 전 타슈켄트의 나보이 문학박물관 4층에 마련된 ‘조명희 기념실’을 찾은 바 있다. 기념실 중앙에 모셔진 선생의 흉상 위에는 소설 &lt;낙동강&gt;에 나오는 ‘그러나 필경에는 그도 멀지 않아서 잊지 못할 이 땅으로 돌아올 날이 있겠지’라는 문구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핍박 속에서 정든 고향산천을 등지고 이역만리에서 서러운 타향살이를 하는 겨레붙이들이 지니고 있는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낙엽귀근(落葉歸根)의 끈끈한 근성이요 고고한 정체성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과연 본능적인 이 근성과 이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포애를 베풀고 있는지 한번 되새겨봤으면 한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XML:NAMESPACE PREFIX = O /&gt;&lt;O:P&gt;&lt;/O:P&gt;&lt;/FONT&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경향기고문, 09. 10. 21]&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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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퍼온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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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0-22T07:59:41Z</updated>
	    <published>2009-10-22T07:59: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인생의 그리운 벗&lt;/STRONG&gt; &lt;/P&gt;
&lt;DIV class=mail_con&gt;
&lt;DIV class=mail_con&gt;
&lt;CENTER&gt;
&lt;TABLE borderColor=#ce6300 cellSpacing=10 cellPadding=10 width=487 border=5&gt;
&lt;TBODY&gt;
&lt;TR&gt;
&lt;TD&gt;
&lt;CENTER&gt;&lt;IMG height=500 src=&quot;http://cfile261.uf.daum.net/image/156B69154ADC35A8536AD1&quot; width=450&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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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PRE&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Verdana color=#ce6300&gt;&lt;P align=left&gt;&lt;P style=&quot;MARGIN-LEFT: 40px&quot;&gt;
&lt;SPAN id=style style=&quot;LINE-HEIGHT: 20px&quot;&gt;&lt;UL&gt;
&lt;B&gt; 인생의 그리운 벗  &lt;/B&gt; 
 


잠시 그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으세요
나도 누군가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음에 행복해 하겠습니다

인생의 여로에 가끔 걷는 길이
험난하고 걸어 온 길이 너무 멀어만 보일 때 
그대여 그대의 등위에 짊어진

짐을 다 덜어 줄 수는 없지만
같이 그 길을 동행하며 말 벗이라도
 되어 줄 수 있게 그대 뒤를 총총거리며 
걷는 그림자가 되겠습니다

무엇 하나 온전히 그대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하나 나눈다면
그대여 그것 만으로도 참 좋은 벗이지 않습니까?

그냥 지나치며 서로 비켜가는
인연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왠지 서로가
낯이 익기도 하고, 낯이 설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람같이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더 남았겠습니까?
인생의 해는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더 많이 기울고 있는데 
무엇을 욕심내며,무엇을 탓하겠습니까?

그냥 주어진 인연, 

만들어진 삶의 테두리에서 
가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그렇게 바람처럼 허허로운 것이
우리네 삶이고 그렇게 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며 
서로 등지고 살일이 무에 있습니까
바람처럼 살다 가야지요
구름처럼 떠돌다 가야지요

-좋은글 중에서-


&lt;/FONT&gt;&lt;/UL&gt;&lt;/PRE&gt;&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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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퍼온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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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88</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0-12T09:45:28Z</updated>
	    <published>2009-10-12T09:45: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id=cafemail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gt;
&lt;THEAD&gt;
&lt;TR&gt;
&lt;TH style=&quot;BACKGROUND: url(http://cafeimg.daum-img.net/cf_img3/admin/img_mailf2_003.gif) repeat-x; WIDTH: 100%; TEXT-ALIGN: left&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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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H noWrap width=12 height=160&gt;&lt;IMG id=sendMailImg2 height=206 alt=&quot;&quot; src=&quot;http://cafeimg.daum-img.net/cf_img3/admin/img_mailf3_noti.gif&quot; width=12 border=0&gt;&lt;BR&gt;&lt;/TH&gt;&lt;/TR&gt;&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 noWrap width=12 background=http://cafeimg.daum-img.net/cf_img3/admin/img_mailf_007.gif&gt;&amp;nbsp;&lt;/TD&gt;
&lt;TD bgColor=#ffffff&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40px; PADDING-LEFT: 61px; PADDING-BOTTOM: 16px; PADDING-TOP: 0px&quot;&gt;&lt;STRONG&gt;삶의 가장 큰 힘&lt;/STRONG&gt; 
&lt;DIV class=mail_con&gt;
&lt;DIV class=mail_con&gt;
&lt;CENTER&gt;
&lt;TABLE borderColor=#006300 cellSpacing=10 cellPadding=10 width=487 border=5&gt;
&lt;TBODY&gt;
&lt;TR&gt;
&lt;TD&gt;
&lt;CENTER&gt;&lt;IMG height=350 src=&quot;http://cfile273.uf.daum.net/image/156E7D274ACF29A16692BB&quot; width=500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gt; &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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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PRE&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Verdana color=#006300&gt;&lt;P align=left&gt;&lt;P style=&quot;MARGIN-LEFT: 40px&quot;&gt;
&lt;SPAN id=style style=&quot;LINE-HEIGHT: 20px&quot;&gt;&lt;UL&gt;&lt;UL&gt;
&lt;B&gt; 삶의 가장 큰 힘 &lt;/B&gt; 
 
 

우리 몸에 힘이 있듯이 마음에도 힘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음식으로 힘을 얻지만
마음은 생각으로 힘을 얻습니다.

좋은 생각은 마음의 힘이 됩니다
사랑, 희망, 기쁨,감사, 열정, 용기, 지혜, 정직, 
용서는 마음을 풍성하고 건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미움, 거짓, 불평,의심, 염려, 갈등, 후회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황폐하게 합니다.
나의 자유가 중요하듯이 
남의 자유도 똑같이 존중해 주는 사람 

존 러스킨은 
&quot;마음의 힘에서 아름다움이 태어나고,
사랑에서 연민이 태어난다&quot;고 했고,
스피노자는
&quot;평화란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힘으로부터 생긴다&quot;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의 좋은 생각이
우리를 아름답게 하고 삶을 평화롭게 합니다.


-사진 한 장 생각 하나에서-
    
&lt;BR&gt;&lt;CENTER&gt;&lt;X-EMBED style=&quot;FILTER: gray(); LEFT: 362px; WIDTH: 300px; TOP: 48px; HEIGHT: 69px&quot; type=&quot;audio/mpeg&quot; volume=&quot;0&quot; loop=&quot;TRUE&quot; autostart=&quot;true&quot; src=&quot;http://jnjmuse.cnei.or.kr/music_2/chopin_impromptu_op29.mp3&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69&quot;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enablecontextmenu=&quot;0&quot; showstatusbar=&quot;1&quot;&gt;&amp;nbsp;&lt;/CENTER&gt;&lt;/UL&gt;&lt;/UL&gt;&lt;/SPAN&gt;&lt;/FONT&gt;&lt;/SPAN&gt;&lt;/PR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우리민족?? 타민족?? 이민족??  고려인의 아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imjinhwan69/15919287"/>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87</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0-07T16:09:00Z</updated>
	    <published>2009-10-07T16:09: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body&gt;&lt;STRONG&gt;34) 50만 고려인의 애환&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ody style=&quot;WIDTH: 100%; WORD-BREAK: break-all&quot;&gt;&lt;!--StartFragment--&gt;&amp;nbsp;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ㆍ낯선 땅, 차별과 박해 견딘동포들의 아픈 흔적들…&lt;/STRONG&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우리에게 블라디보스토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곳에 동포의 애환이 서려있고, 그 애환을 풀기 위한 그들의 피땀이 흥건히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장을 풀기도 전에 아르촘 공항에서 곧바로 찾아간 곳이 바로 신한촌(新韓村)의 옛터이다. 2009년 7월1일 오후 4시30분, 하바로프스크 거리에 자리한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애잔한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일행은 ‘연해주신한촌기념탑’ 앞에서 촉촉한 옷깃을 여미고 삼가 묵념을 올렸다. 이 기념탑은 1999년 8월15일 해외한민족연구소가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는데, 높이가 서로 다른 세 대의 흰 돌기둥으로 구성되었다. 5m쯤 되어 보이는 가운데의 제일 높은 기둥은 인구가 가장 많은 남한을, 그보다 30㎝쯤 낮은 오른쪽 기둥은 북한을, 제일 낮은 왼쪽 기둥은 해외동포를 각각 상징한다고 안내원은 설명한다. 보는 순간 구태여 높이에서 차별을 둘 필요야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상이야 기안자나 조각가의 소관이니 어찌 하겠는가. 밖에는 2.5m 높이의 보호 철책이 둘러쳐져 있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IMG style=&quot;WIDTH: 540px; HEIGHT: 360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1_22.jpg&quot; border=1&gt; &lt;/SPAN&gt;&lt;/P&gt;
&lt;DIV&gt;&lt;/DIV&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미하로브카 군에 있는 고려인 ‘우정마을’ 전경.&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원래 마을은 이곳을 시작으로 산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찍이 이곳을 찾은 춘원 이광수는 마을의 정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마을은 아무르 만에 면해 있는 절경지로서 집들은 바윗등에 굴 붙듯이 산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러시아풍의 나무로 지은 집은 보통 2~3개의 한국식 온돌방이 있는데, 20여명씩이나 함께 사는 대가족도 있다. 이역에서도 전통을 이어가며 오순도순 정답게 모여 사는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현대적 건물로 꽉 차고 무성한 나무숲으로 뒤덮여 있어 옛 흔적이라곤 남아 있지 않다. 차를 타고 5분 걸려 산등성이에 이르렀다. 밋밋한 언덕배기에 ‘알레나’라고 쓴 큼직한 간판이 달린 상점 앞에 멈췄다. 이 상점이 바로 성재(誠齋) 이동휘(李東輝) 선생의 고택 자리이다. 선생은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1907년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될 때 참령으로 강화진위대를 이끌고 대일항쟁을 전개하면서 같은 해에 신민회를 조직한다 4년 후에는 윤치호 등과 함께 이른바 105인 사건에 연유되어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자 1915년 러시아로 망명한다. 1918년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성하고 이듬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부총리에 취임한다. 성재는 한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걸출한 애국투사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선생의 고택 옆에는 1912년에 지은 한민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학교 정문과 교실문마다 태극 문양을 새겨 넣은 이 학교에서는 2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을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교육하고 있었다. ‘보국가’나 ‘대한혼’, ‘애국가’ 같은 학생들이 부른 노래 가사에서 그러한 기상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보국가’ 1절에는 “조국강산 사랑하라 동포형제 사랑하라 우리들의 일편단심 보국을 맹약한다/ 화려할 사 우리 강산 사랑할 사 우리 동포 자나깨나 잊을소냐 길이 보존 우리 국토”라고 절절한 애국애족의 얼과 넋이 넘쳐나고 있다. 학교 건너편의 스탈린구락부 안에는 고려도서관이 따로 있어 성재를 비롯한 지도자들과 고려인들이 이곳에 모여 3·1운동 같은 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여기서 70여m쯤 내려오니 길 양 옆에 기둥을 세우고 가름대는 솔가지로 장식한 ‘독립문’이 세워졌던 자리가 나타난다. 이 독립문은 신한촌의 대문 역할을 했다. 대문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독립의 의지를 새록새록 가다듬곤 했을 것이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525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2_23.jpg&quot; border=1&gt; &lt;/SPAN&gt;&lt;/P&gt;
&lt;DIV&gt;&lt;/DIV&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블라디보스토크 주립 의과대학 교정에 2002년 9월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비’.&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이어 블라디보스토크 주립 의과대학 정원에 자리한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를 찾았다. 비는 이 대학과 서울 보건신학연구원 사이에 국제적 협력에 관한 협정서 체결을 기념해 2002년 9월5일 세운 것이다. 비에는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란 글발이 새겨져 있다. 비 앞에 서니 저절로 숙연해지며 머리가 숙여진다. 순간 대학 시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쏴 넘어뜨린 하얼빈 역을 찾았던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의사가 그 장거를 준비해 온 현장이 있다. 그곳이 바로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한 크라스키노 연추 하리 마을이다. 의사는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이곳에서 1909년 2월7일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동맹을 결성한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왼손 약손가락을 잘라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국만세”를 삼창한다. 애국에 불타고 애족에 결연한 열혈청년들만이 펼칠 수 있는 장엄한 장면이다. 의사는 직접 작성한 맹약에서 “손가락 하나씩 끊음은 비록 조그마한 일이나 첫째는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빙거(憑據)요, 둘째는 일심단체한 표라. 오늘날 우리가 더운 피로써 청천백일지하에 맹세하오니 … 마음을 변치 말고 목적을 도달한 후에 태평동락을 만세로 누리옵시다”라고 호소한다. 의사는 비록 태평동락의 그날을 보지 못하고 한 방울 이슬로 사라졌지만,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한 그 영롱한 빙거와 표는 정녕 청사에 길이길이 아로새겨져 있다. 핏방울 형상을 한 ‘단지동맹기념비’(2001년 10월19일 세움)의 아롱진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다음날 오후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기울어질 무렵 고려인(러시아어로는 카레이스키, 즉 한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처음으로 발을 붙인 개척리를 찾았다. 한인들의 긴 이주사와 더불어 뼈저린 애환이 서린 고장이다. 원래 19세기 중엽부터 벌이를 찾아 계절적으로 극동 시베리아 방면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가족 단위로 본격 이주를 시작한 것은 1863년부터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최초로 인접한 함경북도의 13호 농가가 노브고로드 만 연안의 포시에트로 이주한 이래 이곳을 중심으로 서우펀강(綏芬河) 유역과 우수리스크, 그리고 하바로프스크 등 지역으로 이민이 속속 이어졌다. 급기야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극동지역에만도 이민자가 20여만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이 모태가 되어 고려인들의 거주와 활동 영역은 전 러시아로 확대되었으며, 그 수는 약 50만명으로 추산된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IMG style=&quot;WIDTH: 540px; HEIGHT: 362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3_22.jpg&quot; border=1&gt; &lt;/SPAN&gt;&lt;/P&gt;
&lt;DIV&gt;&lt;/DIV&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신한촌 옛터에 1999년 8월15일 세운 ‘연해주신한촌기념탑’.&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개척리 마을은 한인들의 고달픈 이주사를 고발하는 현장이다. 1873년 군항의 개항과 더불어 개척된 마을이다. 해안가에서 300m 떨어진 마을은 당시로서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심부였다. 지금은 프그라니치나야 거리라고 하며 상점과 운동장, 스포츠센터 등 현대적 시설물이 빼곡히 들어서 그 옛날의 모습은 완전히 지워졌다. 당시 이곳에는 민족 언론을 주도하던 ‘해조신문사’와 ‘대동공보사’가 자리하고, ‘성명회’란 반일운동 조직과 한인학교도 함께 있었다. 이상설, 유인석 등 훌륭한 지도자들의 눈부신 활동무대였다. 고려인들의 활동 기세를 우려한 러시아 당국은 1911년 봄 난데없는 장티푸스의 박멸을 구실로 이곳에서 고려인들을 강제로 철거시키고 이곳을 기병단의 병영지로 만들었다. 보금자리를 빼앗긴 고려인들은 당국이 지정한 시 서북 변두리의 생소한 마을, 신한촌으로 옮기게 되었다. &lt;/FONT&gt;&lt;/SPAN&gt;&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예나 지금이나 낯선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는 데는 고통과 슬픔이 앞서게 마련이다. 그러한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고려인들이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제정 러시아 당국이 이른바 ‘황화(黃禍)’란 사시(斜視) 속에 가하는 차별과 박해이다. ‘황색인종으로부터의 화’라는 ‘황화’는 황인종, 즉 아시아인에 대한 유럽인의 해묵은 인종차별이다. 1906년 극동지방 총독으로 부임한 운테르베르게르는 고려인의 인구 증가를 ‘엄청난 위험’으로 간주하고 이민 금지, 관유지 임대 금지, 어장의 고려인 노동자 채용 금지 등 각종 제재조치를 취한다.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이 도저히 개간할 수 없는 돌밭을 개간하고 나서는 인근 지역을 야금야금 잠식하면서 친지들을 데려다가 새로운 부락을 만들곤 한다. 그래서 10년 안에 러시아인은 그곳에서 쫓겨나게 마련이라는 것이 총독의 판단이다. 또한 ‘황화의 주범’인 고려인의 존재는 극동 안보에도 위협이 되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37년 18만 극동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는 바로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비극이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그러나 고려인들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삶을 꿋꿋이 개척해 나갔다. 그들의 근면성과 성실성, 강인성은 지어 총독을 자문하는 지방 경찰서장들까지도 공히 인정하는 바였다고 한다. 술을 마셔도 난폭하지 않고, 중국인들처럼 강도나 살인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러시아인보다 청결하다. 아무리 험악한 땅이라도 그들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농경지가 되며 생산성은 중국인의 2배나 된다. 이것이 고려인들에 대한 러시아 현지인들의 일치한 평판이다. 일찍이 조선을 네 차례나 방문하고 &lt;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gt;(1897년)이란 책을 쓴 영국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비숍은 당초 게으름을 조선인의 기질로 여겨 왔었는데, 러시아와 만주에 이주한 조선인들이 근면하고 잘 사는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는 자신의 오판을 후회하면서 조선 사람은 ‘밖에 나가면 더 잘사는 민족’이란 체험적 결론을 내린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IMG style=&quot;WIDTH: 350px; HEIGHT: 235px&quot; alt=&quot;&quot; src=&quot;http://www.kice.ac/upload/board/4_16.jpg&quot; border=1&gt; &lt;/SPAN&gt;&lt;/P&gt;
&lt;DIV&gt;&lt;/DIV&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지금은 ‘엘레나’란 상점이 들어선 이동휘 선생의 고택 자리.&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려인들의 애환이 서린 몇 군데를 돌아보고 나서 북방 280㎞의 지점에 있는 노브고르드예프카 발해 고성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하로브카 군에 있는 ‘우정(友情)마을’에 들렀다. 본래 이 마을은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했다가, 그래도 나서 자란 땅 극동에 되돌아오고 싶어 하는 동포들을 위해 한국주택건설협회가 지어주기로 한 것이다. 계획은 1000가구 분을 지어주기로 했는데 1990년대 말 금융위기가 닥쳐오면서 지원을 포기해 지금은 동북아평화재단과 일부 자원봉사단체에서 돌보고 있다고 한다. 공사가 지지부진해서 이제 겨우 34가구만 입주한 형편이다. 다른 5개 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건축기자재는 창고에서 불그죽죽하게 녹이 쓸어가고 야외시설들은 폐물로 나뒹굴고 있다. 바람막이도 제대로 안 된 집에 입주한 ‘난민들’은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1년에 고작 3000달러밖에 안 되는 지원금으로 연명한다고 한다. 입주민들의 얼굴에는 수심기만이 가득하다. 인사를 건네도 무덤덤하다. 측은함을 넘어 미안하기만 하다. 고사성어에 귀곡천계(貴鵠賤鷄)라는 말이 있다. ‘고니를 귀하게 여기고 닭을 천하게 여긴다’라는 뜻이나. 삶 속에 녹아난 성어로는 ‘먼 데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 것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말로서 ‘집 떠난 사람을 더 생각하라’는 훈계이다. 우리는 과연 ‘고니’처럼 멀리 집 떠난 그들에게 이 성어가 가르치는 인지상정을 베풀고 있는지. 4000만은 고사하고 40만이 십시일반하면 저 혈육들은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도 남음이 있으련만.&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가슴을 짓누르는 반문과 번민 속에 마을을 뒤로 하고 그런 ‘귀곡’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또 하나의 현장 우수리스크로 향했다. 어둠이 살포시 내리깔리는 무렵 발로다르스키야 거리 38번지에 자리한 최재형(崔在亨, 1860~1920년) 선생의 고택을 찾았다. 지금은 러시아인이 살고 있는데, 한국인의 접근을 못마땅해 한다고 하기에 먼 발치에서 카메라에나 담을 수밖에 없다. 구한말 의병조직인 ‘동의회’의 총재, ‘대동공보’와 ‘대양보’의 사장, ‘권업회’ 총재, ‘대한국민의회’ 명예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부임은 못함) 등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격인 선생은 일본군과의 격전에서 체포되어 총살 당한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다 바친 이 시대 희유의 민족지도자 중 한 분이시다. 대로 가에 휑뎅그렁하게 나앉은 선생의 고택은 어쩐지 소연해 보인다.&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size=3&gt;&lt;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gt;&lt;/FONT&gt;&lt;/SPAN&gt;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경향기고문, 09.10.07]&lt;/SPAN&gt; &lt;/P&gt;
&lt;DIV&gt;&lt;/DIV&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260%&quot;&gt;&amp;nbsp; &lt;/P&gt;
&lt;DIV&gt;&lt;/DIV&gt;&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추석을 지내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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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85</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10-05T08:19:12Z</updated>
	    <published>2009-10-05T08:19: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즐거운 추석 보내셨나요? 님들...&lt;/P&gt;
&lt;P&gt;많은 일들이 생기고 지나가는 명절이지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에게도 많은 일들이 왔다가 스러진 며칠이었습니다.&lt;/P&gt;
&lt;P&gt;그러나, 무엇보다 풍성한 곡식이 알알이 채워졌고,&lt;/P&gt;
&lt;P&gt;당일날 하늘이 더없이 맑고 깊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음자세를 가다듬어, 막 출근하면서, 새로운 일들에 대한 구상을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건강합시다. 그리고 모두들 사랑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걸림돌과 디딤돌&lt;/STRONG&gt; &lt;/P&gt;
&lt;DIV class=mail_con&gt;
&lt;DIV class=mail_con&gt;
&lt;CENTER&gt;
&lt;TABLE borderColor=#000031 cellSpacing=10 cellPadding=10 width=487 border=5&gt;
&lt;TBODY&gt;
&lt;TR&gt;
&lt;TD&gt;
&lt;CENTER&gt;&lt;EMBED src=http://cfile277.uf.daum.net/original/174B4E244ABB5F9B31B5E8 width=500 height=35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gt; &lt;/CENTER&gt;
&lt;TR&gt;&lt;EMBED src=http://blue.inlive.co.kr:3040 width=400 height=300 hidden=true type=video/x-ms-asf autostart=&quot;true&quot; loop=&quot;-1&quot; volume=&quot;-10000&quot; wmode=&quot;transparent&quot;&gt;&lt;/EMBED&gt; 
&lt;TD&gt;&lt;PRE&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LETTER-SPACING: 0px&quot;&gt;&lt;FONT face=Verdana color=#000031&gt;&lt;P align=left&gt;&lt;P style=&quot;MARGIN-LEFT: 40px&quot;&gt;
&lt;SPAN id=style style=&quot;LINE-HEIGHT: 20px&quot;&gt;&lt;UL&gt;&lt;UL&gt;
&lt;B&gt; 걸림돌과 디딤돌    &lt;/B&gt;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입니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신부님들의 강론주제로도 
자주 등장을 하는 말인데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 많은 삶의 돌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그 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데요,

그 돌을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라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디딤돌이라고 말합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장애를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보는 것과
또 그것을 발판으로 재기와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오늘도 장애의 요소와 같은 돌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돌들은 생활에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깔려있는 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뒤쳐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걸림돌을
오늘부터는 역으로 발판을 삼아서 디딤돌로 
생각할 수 있다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겠지요.


- 좋은 글 중에서 -&lt;/UL&gt;&lt;UL&gt;
&lt;/UL&gt;&lt;UL&gt;산들꽃 이야기님!!
추석연휴 잘들 보내셨지요?&lt;/UL&gt;&lt;UL&gt;이제는 연휴의 느긋함도 &lt;/UL&gt;&lt;UL&gt;모두 다 잊고 ~~&lt;/UL&gt;&lt;UL&gt;힘차게 출발 합시다^^*&lt;/UL&gt;&lt;UL&gt;
&lt;/UL&gt;&lt;/UL&gt;&lt;/PRE&gt;&lt;/SPAN&gt;&lt;/FONT&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주총을 마치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imjinhwan69/15919284"/>
		<id>tag:blog.daum.net,2009:kimjinhwan69.15919284</id>
	    <author>
		    <name>지나니</name>
	    </author>
	    <updated>2009-09-29T20:10:30Z</updated>
	    <published>2009-09-29T20:10:3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오늘 오전 간략한 주주총회를 거쳐 등재이사 선출과 대표이사 관련업무를 무사히 마쳤다.&lt;/P&gt;
&lt;P&gt;내가 맡은 일의 시작부분에서 중요한 한가지가 일단락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젠 본격적으로 medicalstandard. 호를 정상괘도에서 순항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원 참석한 워크샵과 일련의 회의와 분위기 조성으로 느슨해진 회사 기강이 약간은 정상화된 기분이 들어 흐믓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가 할 일은 그냥 내 직위에 맞는 자리를 꾸준히 지켜내는 일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뭐. 특별한 재주도 없고, 별다른 기능도 없이 , 열심히 살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 모델 역할을 맡아가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덕택에 내 기존 사생활의 패턴은 완전히 달라졌다.&lt;/P&gt;
&lt;P&gt;이젠 , 근퇴관리자로서 출퇴근해야하고, 사업과 회사를 위해 , 개인적인 시간배분에 대한 고충과 독려를 내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실무에는 커다란 지장이 없을 것이다.&lt;/P&gt;
&lt;P&gt;담당하는 대리급 직원이 둘씩이나 나랑 함께 움직인다. 한명은 고분고분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일을 해결해 나가는 반면에 한 친구는 중구난방으로 나다녀, 주변부터 조으기에 들어갔다..ㅋㅋㅋ&lt;/P&gt;
&lt;P&gt;나도 참. 재밌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엇을 잘 못 먹었는지. 몸에서 두드레기가 나고, 전반적인 컨디셔이 많이 다운되어 있는 듯 하다.&lt;/P&gt;
&lt;P&gt;내일 저녁이나 모래 아침 일찍 고향으로 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에겐 문경은 휴식이자, 약인가보다.ㅎㅎ&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해야할 일들이 눈에 선한데 어는 것부터 해야할지는 아직 순서를 모두 정하지는 못했다.&lt;/P&gt;
&lt;P&gt;순리대로 , 협의해 가면서 차근차근 하면,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 2년 정도 뒤부터는 우리가 맡은 이 회사가 정상화 되어 , 기분좋은 배당에 주주들이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보고싶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눈 주위가 가렵다. 가서 오미자 술이나 한잔 꺾어야 되겠다. 그녀석은 무슨 약효인지.. 먹을 때 기분을 아주 상쾌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두 건강한 밤이길......&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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