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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적 분별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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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대 교회의 두 가지 오류, 결단주의와 쉬운 복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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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1T01:48:35Z</updated>
	    <published>2009-11-11T01:48:3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5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현대 교회의 두 가지 오류, 결단주의와 쉬운 복음&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 TEXT-ALIGN: center&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우리 시대 교회에 가장 탁월한 성경 해석자요, 존경받는 목회자로 평가받는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를 오염시키는 가장 잘못된 두 가지 오류로서 결단주의와 쉬운 믿음을 지적하고 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결단주의와 쉬운 믿음이란?&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결단주의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향한 모종의 결단적 행위나 확신이 있다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믿는 신앙이다. 흔히 복음 전도 집회 같은 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인데, 복음을 소개받은 사람들이 마음으로나 행동으로든 구원으로의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결신을 촉구하는 이의 말이나 기도를 따라하거나, 그의 제안에 따라 설교단으로 나아오거나 공개 석상에서 구원받았음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행위에 참여한 사람은 구원을 받았거나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단주의를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 중에는 신자의 구원 여부를 이러한 형태의 결단을 경험한 구체적인 날짜나 상황에 대한 기억의 유무(有無)로서 판단하려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두 번째로 쉬운 믿음이란 말로써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기만 하면 구원이 보장되는 것처럼 이해하는 신앙이다. 이 믿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복음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이 약속되어 있으므로, 복음은 곧 그 사람에게 더 할 나위 없는 좋은 소식(good news)이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 간단하고 쉬운 구원을 소개할 목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최소화 내지 축소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공의와 예정과 같은 주제 보다는, 쉽고 간편하게 구원을 받아들일 사람을 위해 마련된 하나님의 멋진 선물과 축복을 소개하는데 관심을 둔다. 특히 쉬운 믿음으로 전도에 효과를 본 사람은 복음을 소개함에 있어서, 불신자로 하여금 구원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될 만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감추거나 제거할 것을 주문한다. 예를 들어, 죄와 회개와 심판과 지옥 같은 내용은 전도 시에 언급하거나 강조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들이다. 대신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을 선택하는 경우에 세상과 천상에서 누리게 될 행복과 만족과 유익을 우선적으로 제시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결단주의와 쉬운 믿음이 결코 진정한 복음일 수 없는 열 가지 이유&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교회 성장과 수적 부흥에 골몰하던 사이, 결단주의와 쉬운 믿음은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보편적인 복음으로 인식되어 왔다. 오히려 이것에 의문을 품거나 비판하는 이는 순수한 복음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불순분자나 교회와 세상에 대해 포부와 자신감이 결여된 나약한 신자로 간주되었다. 이렇듯 이 시대의 교회들이 목청껏 복음을 강조할수록 도리어 진정한 복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역설적 모순과 그로 인한 참담한 영적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결단주의와 쉬운 믿음 역시 일부 성경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그 근거를 마치 성경에 두고 있는 양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복음을 가장한 다른 복음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왜 그러한가? ① 구원은 인간의 주도적인 선택적 행위의 결과로서 주어진다고 믿는다. ② 인간의 근원적인 죄악과 부패성의 깊이와 정도를 강조하지 않거나 간과한다. ③ 신앙을 갖는 동기가 그릇되어 있으며, 자기만족적 신앙에 집착한다. ④ 성경의 참된 의미를 전체 맥락 속에서 찾지 않고, 부분 혹은 일부 성경 구절만을 인용하여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는다. ⑤ 역사적인 교회 신앙의 산물인 신앙고백과 교리를 부정하며, 세상적인 유행이나 방법론에 더욱 민감하다. ⑥ 피상적이고 무익한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거짓 확신과 거짓 소망에 물든 종교적 위선자를 양산한다. ⑦ 내적이고 심오한 영적 성숙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현세적이며 외형적인 현상을 구원의 증거로서 제시한다. ⑧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미명하에 거룩과 경건과 인내의 삶을 성도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로서 여기지 않는다. ⑨ 그리스도를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전 삶의 영역을 통치하시는 주인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⑩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와 믿음을 값싸게 취급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참된 복음과 거짓 복음, 어느 길에 설 것인가?&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생각보다 훨씬 쉽고 간편한 방법과 절차를 통해 누구나 교인이 될 수 있고,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이나 여타의 교회와 관련된 경험을 가진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았으며, 삶 속에서 신앙고백이 없는 불신자의 삶과 다를 바가 없음에도 스스로를 구원받은 성도라고 확신하며, 또한 그러한 구원에 대해서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성경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엄히 요구하고 있다. 결단주의와 쉬운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구원과 바른 믿음의 본질에 위배되며,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사도들 그 누구도 이러한 형태의 신앙을 기독교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하거나 용인한 적이 없다. 또한 진리의 증인을 살았던 루터, 칼빈, 그리고 수많은 종교 개혁자들과 청교도들 역시 한결같이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무모한 신앙으로 규정하였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참된 복음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거짓 복음을 좇을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원을 증거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좋게 할 구원에 만족할 것인가? 교회와 성도라고 자처하는 모든 이들은 이 엄중한 성경적 물음 앞에서 각자 진실하며 확고하게 답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곧 참된 구원을 위한 최종적인 시금석이 되어 진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Gulim&quot;&gt;교회와 성경&lt;/SPAN&gt;&lt;/P&gt;&lt;!-- --&gt;&lt;!-- end clix_content --&gt;
	    </content>
	    	</entry>
    	<entry>
	    <title>CCM의 악기 사용 문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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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23:42:07Z</updated>
	    <published>2009-11-10T23:42: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amp;nbsp; CCM의 악기 사용 문제&lt;BR&gt;&amp;nbsp;&lt;BR&gt;빈야드 음악은 단순하다. 반복적이다. 불협화음도 있고 리듬의 강세도 어긋나 있다. 표현하는 기법도 강렬한 데시벨의 사운드로 회중을 장악한다. 음악에 압도당하게 하 는 것은 마치 로마 카톨릭이 거대한 성당을 지어놓고 그 안에 들어오는 회중을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lt;BR&gt;&amp;nbsp; 이런 빈야드 음악인도자들의 문제는 방언은 물론이고 신비주의, 치료사역, 성령 안 에서의 웃음, 성령 안에서의 죽임(입신) 등 비성경적인 것을 조장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에 빠져들게 하는데 있다. &lt;/FONT&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드럼이라는 악기가 두루이 교도들이 사탄을 숭배할 때나 토속적인 민간신앙 안에서 제사를 위해 사용된 악기라면 교회 안에 유입되는 것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짐승의 가죽으로 그 악기를 만들었지만 끔찍한 두루이교도들은 사람 의 가죽으로 그것을 만들어 쓰는 등, 잔인한 형태의 종교의식을 가졌었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lt;P&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CCM 듣기&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롬10:17) 난다. “무엇을 듣느냐?”가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록 음악의 정서는 반항(Anti)이다. 그것은 도전 적이다. 때문에 록음악에 익숙한 사람은 이 세상의 건전한 제도나 질서 등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동성애, 마약, 유니섹스, 자유분방함 , 체제 전복 등을 조장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록음악에 심취해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더 이상 그 안으로 침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류의 음악에 심취하는 것은 영적으로 그 자신을 깊은 수렁에 던지는 것과 같다.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듣는 것을 조심해야만 한다.(눅 8:18)&lt;BR&gt;그리스도인들은 가요나 팝송 등을 멀리하며 찬송에 익숙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lt;/SPAN&gt;&lt;/P&gt;&lt;!-- --&gt;&lt;!-- end clix_content --&gt;
	    </content>
	    	</entry>
    	<entry>
	    <title>웃음치료, 교회 내로 유입된 이교도들의 웃음/이덕환 기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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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23:37:58Z</updated>
	    <published>2009-11-10T23:37:5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한국뿐 아니라, 한국 교계에 웃음치료 바람이 불어 교회들에서는 &lt;/P&gt;
&lt;P&gt;웃음치료사, 레크리에이션 전문 치료사 양성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lt;/P&gt;
&lt;P&gt;고된 삶 속에서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준다는 이 웃음치료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lt;/P&gt;
&lt;P&gt;이것과 레크리에이션이 접목된 새로운 전도 방법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여겨진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국내에서 웃음치료를 주도하는 단체에는 한국웃음센터, 한국웃음치료학교, 한국웃음연구소 등이 있으며, &lt;/P&gt;
&lt;P&gt;교회들에서는 이와 같은 단체들과 손잡고서 웃음치료 세미나 등을 개최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재 기독교 내로 급작스럽게 유입되고 있는 웃음치료의 기원은 무엇인가? &lt;/P&gt;
&lt;P&gt;우리나라 삼국유사에는 한 여승이 병든 중을 웃음으로 치료하는 내용이 나온다. &lt;/P&gt;
&lt;P&gt;교회가 아닌 카톨릭이 지배하던 중세에는 사제들이 신자들을 웃기려고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lt;/P&gt;
&lt;P&gt;이러한 전통은 고대 헬라권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인도의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도 웃음치료를 실행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웃음치료가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한 TV프로그램을 통해서였고, &lt;/P&gt;
&lt;P&gt;이후 ‘생로병사’를 다루는 방송에서도 대체요법으로 제시된 바 있다. &lt;/P&gt;
&lt;P&gt;현대판 웃음치료의 원조는 인도의 의사 마단 카타리나 박사이다. &lt;/P&gt;
&lt;P&gt;마단 박사는 전 세계 웃음요법의 창시자로서 세계적으로 1,200여 개의 웃음클럽과 약 2백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lt;/P&gt;
&lt;P&gt;그는 단순한 웃음요법뿐만 아니라, 웃음을 활용한 ‘요가’ 및 명상훈련도 실시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처럼 기독교에는 원래 웃음치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lt;/P&gt;
&lt;P&gt;“항상 기뻐하라”는 살전 5:16, 빌 4:4 말씀을 근거로 웃음치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lt;/P&gt;
&lt;P&gt;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웃음’과 ‘치유’의 구절로 제시하시지 않았다. &lt;/P&gt;
&lt;P&gt;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lt;STRONG&gt;이교도들의 치료요법을 어떻게 해서든 기독교에 접목시켜 유익을 취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P&gt;
&lt;P&gt;하나님께서는 기독교 내로 들어온 이교도들의 기이한 행태를 거부하실 뿐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날이 갈수록 기독교가 이상하고 기이해진다. &lt;/P&gt;
&lt;P&gt;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사랑하기보다는 온갖 세상 것들을 다 가져와서 기독교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다. &lt;/P&gt;
&lt;P&gt;이러한 기독교는 진리의 알맹이는 없고 세상 닮은 껍데기만 있는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lt;/P&gt;
&lt;P&gt;이것은 진리를 실행하기 싫어하는 육신적인 교인들에게나 안성맞춤인 것이다. &lt;/P&gt;
&lt;P&gt;교회 내에서, 일상생활에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웃고 즐겁게 사는 것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lt;/P&gt;
&lt;P&gt;그러나&lt;STRONG&gt; 웃음치료는 그 기원이 성경이 아님이 분명하므로 그런 이교도적 실행을 교회 내로 가져와서는 안 될 것이다.&lt;/STRONG&gt; &lt;/P&gt;
&lt;P&gt;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일이나 하라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지 않았기 때문이다.&lt;BR&gt;출처 : &lt;A href=&quot;http://www.biblepower.co.kr/view.html?mode=news&amp;cateid=1&amp;subid=1&amp;articleid=1144414108&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66cc&gt;http://www.biblepower.co.kr/view.html?mode=news&amp;cateid=1&amp;subid=1&amp;articleid=1144414108&lt;/FONT&gt;&lt;/A&gt;&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lt;STRONG&gt;보탬&lt;/STRONG&gt;&gt; 거룩한 웃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창 17:17, 21:6)과 같은 것을 예로 들지만(능력치유 p.362),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은 어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광적으로 웃는 웃음이 아니다.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 소리 등의 현상은 &lt;STRONG&gt;비성경적인 현상&lt;/STRONG&gt;들이다&lt;BR&gt;출처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81회 총회&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돌아보는 한국교회 자화상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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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22:27Z</updated>
	    <published>2009-11-10T09:22: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color=#303430 size=5&gt;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돌아보는 한국교회 자화상&lt;/FONT&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 color=#303430&gt;&amp;nbsp;&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size=2&gt;&lt;FONT color=#30343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최재호(개혁신보 객원기자) &lt;/SPAN&gt;&lt;BR&gt;&lt;BR&gt;&lt;BR&gt;&lt;/FONT&gt;&lt;FONT color=#303430&gt;&lt;EM&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종교개혁은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형식적 기념은 교회의 허상 벗어나지 못해 &lt;/SPAN&gt;&lt;BR&gt;&lt;BR&gt;&lt;/EM&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매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켜진다. 과연 한국교회에 있어서 종교개혁 기념주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 게시판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날을 기념하는 이 날에 한국 교회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아니 교회개혁 기념일까지 제정하여 지켜오고 있는 한국교회의 오늘의 모습은 어떠한가? &lt;/SPAN&gt;&lt;BR&gt;&lt;/FONT&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종교개혁(이하 교회개혁)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킴을 의미한다. 말씀에서 떠난 교회, 말씀에서 떠난 교리, 말씀에서 떠난 예배, 말씀에서 떠난 삶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돌이켜 회복한 것이 교회 개혁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개혁은 일회성의 개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날마다 개혁하는’ 교회개혁의 시작을 의미한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엄밀히 말해 이 날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모습이 성경이 말하는 모습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지를 항상 돌아보고 재어보기 위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교회개혁 기념일을 말하거나 기념하는 기본적인 자세에서 잘못되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교회개혁 기념일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 물론 몇몇 교회들이 매년 이날에 루터나 칼빈, 부서나 멜랑히톤, 쯔빙글리 등 개혁자들의 생애나 그들의 신학 사상에 대해, 또 그들의 교권에 대한 영웅적인 투쟁에 대해 학술회나 강좌를 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들 교회들이 개혁자들의 신학과 생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과연 그들 중 얼마가 그 시간을 오늘날 자신들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얼마나 비켜나 있는지를 진정으로 성찰하는 시간으로 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성경의 기준에 따라 믿고, 예배하고, 살기를 원했던 개혁자들의 삶과 신학을 공부하면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성경의 거울에 비추어 보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매년 성탄절을 지키면서도 그 날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넘어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리 시대 한국교회에 제2의 교회개혁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어쩌면 교회 개혁자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오늘날 교회들이 껍질과 형식을 차용하면서 알맹이와 본질을 버린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교회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칼빈은 말씀의 바른 선포와 경청, 성례의 바른 시행을 성경이 나타내는 교회 의 참 표지(sign)라고 보았다. 그 이후 개혁교회들의 신앙고백문인 벨직신앙 고백서는 권징의 바른 시행을 참 교회의 표지로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표지에 한국교회를 대입해보며 몇 가지 생각을 이어가 보고자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바른 말씀선포와 경청의 측면에서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누군가가 한국교회에는 말씀이 넘쳐난다고 했다. 설교, 책자,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처럼 넘쳐난다고 한다. 하지만 물이라고 다 식수가 아니듯이 강대상에서 외쳐진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 자신의 욕심을 채운 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부추기는 목사, 강단에서 욕지거리와 음담패설을 일삼는 목사, 말씀을 빙자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목사들도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한국교회에서 지탄받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교회의 미래로 주목받는 이들이라고 한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은 성령 안에서 다른 말씀을 통해 명확히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오늘날 몇몇 한국의 부흥사들은 자신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1백 가지의 설교를 할 수 있다고 떠벌린다. &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하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한가지 의미를 가지고 전해진 것이다. 동일한 말씀이 회중에게 전해질 때 성령의 역사로 인해 적용되는 부분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설교는 너무도 변질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를 표절하거나 설교자의 의도에 맞춰 각색하며 적당하게 전달한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말인 양 오만한 모습을 보이거나 농담처럼 ‘개그’를 하는 이도 많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설교자나 회중이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전하고 들으며 말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원리이건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러한 원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말씀을 듣는 이들의 모습도 원리를 떠나기는 마찬가지다. 선포되는 말씀에 대해 임의로 취하거나 버린다. 목사를 비정상적으로 높이지만 정작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경외하며 순종하는 모습이 사라졌다. 이는 우선은 설교자인 목사의 문제이며 또 감독자인 장로의 탓이다. 한국교회에서 장로는 ‘교인의 대표’로 대접받고 권위를 내세우는 특별한 존재다. 선포된 말씀을 따라 교인들의 삶을 돌아보며 권면하고 감독하는 그런 원리적 모습에서 떠나있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성례의 바른 시행의 측면에서&lt;/SPAN&gt;&lt;/STRONG&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7성례전을 가진 로마교회와 달리 개혁교회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주님이 제정하신 성례로 인정한다. 세례는 참된 신앙고백을 확인하고 옛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amp;nbsp; 새로이 거듭난 존재로 교회에 접붙임을 상징하며 인치는 예전이다. 하지만 이 세례의 의미는 한국교회에서 훼손되고 퇴색된 지 오래다. 먼저는 신앙고백을 확인하는 과정이 형식적이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어느 교회 당회의 세례를 위한 문답시간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교회생활 잘하라는 권면으로 이뤄졌다.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진중세례식은 또 어떤가? 그 다음 주면 절에 가서 ‘초코파이’하나에 수계를 받을 병사들에게 세례를 베풀고는 “이번에는 몇 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기독언론들에 앞다투어 떠들어대는 형편이 아닌가. 여기에 당회에 의한 신앙고백 확인절차나, 세례를 통해 교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는 자인지에 대한 확인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주의 만찬은 또 어떤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한 떡에 참예하는 형제로서 서로의 삶과 신앙고백을 나누는 원리가 지켜지고 있는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하나됨을 이뤄내기는커녕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형편이 아닌가? 어제까지 성찬을 나누다가 오늘 갈라져 싸우는 교회들을 보며 그들이 성찬에 제대로 참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목사를 지지한다며 갈라져 싸우고, 땅 문제로 싸우고, 교회의 주도권 문제로 싸우는 우리 교회의 현실 앞에서 그들이 공예배시에 성찬의 참 의미를 되새겼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3. 권징의 바른 시행의 측면에서&lt;/STRONG&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교회에 제대로 된 권징이 사라진지 오래다. 작은 교회는 교인들이 상처 받고 교회출석을 하지 않을까 봐 바른 원리에 따라 시벌하지 못한다. 큰 교회는 교인들이 너무 많아 그들의 삶과 신앙생활을 점검할 수가 없다. 어찌하다 시벌을 했다한들 교회 수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이 교회에서 시벌을 받고 다른 교회에서 버젓이 임직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교단을 옮겨버린다. “이 교회 아니면 교회 없냐”면서 되레 큰소리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개인도 그러하지만 교회도 그렇다. 이 문제로 교계가 시끄러워지는 경우도 종종 목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교회나 교인들의 순결과 거룩성이 심하게 훼손된다. 말씀에 따른 권징이 없고 또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말씀 앞에서 겸비하는 삶의 자세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서의 교회적 거룩성이 유지될 수가 없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또 권징을 받으며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자세도 없어졌다. 얼마 전 문제가 된 대구 모 교회의 목사가 교단적 권징을 받겠다면서도 자신을 추종하는 교인들에게는 계속해서 자신이 음해를 당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음은 참 권징의 의미에서 벗어난 한국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권징을 통해 죄인을 죄에서 떠나게 하여 말씀 위에 바로 서도록 한다는 의미는 사라지고 정적(政敵)이나 미운 털이 박힌 자를 회(會)에서 제거하는 괘씸죄에 의한 시벌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권징의 참 뜻을 버리고 욕심과 목적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치는 말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자화상은 분명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아마도 우리가 이런 식의 교회개혁 기념일을 계속 지켜간다면 내년에도 아니 10년, 20년이 지나도 한국교회는 아무런 개혁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더욱 타락하고 원형에서 더 많이 빗겨난 비틀린 교회의 모습을 간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color=#30343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매년 맞는 교회개혁 기념주일을 이젠 좀 다르게 맞을 수는 없을까? 개혁의 형식만 취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바라보고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성경의 잣대에 우리들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점검해 보기를 바란다.&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765&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돌아보는 한국교회 자화상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lt;/SPAN&gt;&lt;/FONT&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복음의 정통성과 그리스도의 교회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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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kho1105.3477</id>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21:33Z</updated>
	    <published>2009-11-10T09:21: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복음의 정통성과 그리스도의 교회&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천우 목사(부천개혁교회)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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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교회의 기초가 되시는 그리스도&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P&gt;
&lt;P&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복음은 역사(歷史)와 전통(傳統)이 있습니다. 흔히 정통성(正統性)이 있어야 한다고들데, 복음의 역사와 전통에 있어서는 정말 그렇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 복음의 정통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찾아집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의 출현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신앙하는 자들에게 두면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복음을 가지고서 시작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으로 신앙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일이 될 것이며 다른 복음에 의해서는 교회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사도 바울은 복음의 근원을 창세 전으로부터 올라가서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3-6절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데 신학적 용어로는 ‘신적작정’(神的作定 ; decree)이라 합니다. 영원 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작정하심에서부터 복음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렇게 시작되어 온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정통적인 것으로서 곧 하나님의 구원사(또는 언약적 구속사)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하나님의 구원사에서 볼 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나타났고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실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언약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으로 하고 있는 예표적인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언약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먼저 성전을 허물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자신의 몸으로 새롭게 지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요 2:19-22). 이러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에서 유대인의 예배를 개혁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의 예배는 유일하게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예배를 드려온 그리심산(요단강 서편 므낫세 반 지파의 땅 세겜 서편에 있어 복을 비는 산으로 지정됨. 반면에 세겜 동쪽에 있는 에발산은 저주하는 산으로 지정되어 있음. 신 11:29)을 예배의 장소로 여겼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사마리아 여자에게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예루살렘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심산에서도 드려질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이해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든, 또는 사마리아인이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예배는 모세의 율법에 기초한 예배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에 사마리아 여자에게 예수님은 예배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기초한 예배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온다”는 것을 언급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자격으로 사마리아 여자 앞에 서 있는 까닭에 이를 염두에 두고서 하신 말씀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에게서 오는 그 구원을 유대인만이 아닌 이방인들도 함께 받을 수 있게 하여서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예배여야 참된 예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령으로’란 ‘하나님의 영을 좇아서’란 말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함께 하는 데 따라서 되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란 ‘진리를 좇아서’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속의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모세의 율법에 기초하여서 예배를 드렸고, 이 예배의 초점은 누가 율법에 충실하여서 예배를 드렸는가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게를 “누가 율법에 충실하였는가?” 하는, 곧 “누가 여호와의 말씀에 복종하여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에 무게의 중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렸는가?”에 무게의 중심을 두는 것으로 가져갔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 까닭에 유대인들에게서든 사마리아인에게서든 예배는 형식화되고 의식화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중요하게 여겼고 예배가 행해지는 성전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초한 예배란 마음에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성전을 파괴함과 함께 제사 예배를 종결시키고 새로운 성전을 세우시고 그 안에서 새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이 자기 백성들에게 심어지는 일을 하였으며 또한 진리에로 나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 외의 한 의로 등장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세우시고는 이를 온 세상에 나타내시어 ‘교회’로 불려지게 하였습니다. 이는 일찍이 “내 교회를 세우리니”에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교회를 이 세상에 등장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드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한 주님께서는 이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모아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총회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는 주님에게 가지는 신앙고백을 가진 자들로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작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 실천이 어떻게 구체화적으로 진행될 것인가 하는 것을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속 사역을 세상에 복음으로 전하여 나가십니다. 온 세상에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증인을 삼으신 것은 그 일을 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방식이요 방편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렇게 해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섬기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웠으며, 그들이 모인 자들은 그곳이 어디이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교회’로 불리웠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말씀합니다(엡 1:22; 골 1:18). 이러한 표현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알기 쉽게 상징적 기법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머리’란 주권자, 왕을 뜻하는 것으로 바로 권위의 대명사로 이해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주권자요 왕이십니다. 이분이 “자기 피로 사신”(행 20:28) 백성들로 교회를 삼으셨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며 그래서 그만이 교회에서 당신의 백성들의 생명을 다스려 가시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왕적 권위를 가집니다. 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엡 1:23).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백성들을 자신과 일체를 이루고서 생명의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게 한 것을 상징적 기법으로 표현한 것인데, 온 몸의 건전한 발육은 머리의 지시에 순종하는데 있는 것처럼 교회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도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보장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이 관계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세례인 성령 세례에 의한 ‘연합’에 의해서 되어졌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한 자가 됨으로 죄에 대하여 함께 죽은 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 함께 산 자가 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된 몸이 되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데 아직 덜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인 하와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실 때 아담이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중 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3-24)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자는 남자의 몸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요, 남자와 여자는 각각 별개의 존재가 아닌 둘이 연 합하여 있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신비한 관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남자와 여자인 사람은 하나된 몸입니다. 그리고 그 몸은 완전합니다. 남자에게서 나온 여자라 해서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곧 남자와 동일한 몸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와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의 관계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여기에 무슨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 완전한 상태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그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된 이 교회는 완전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단지 ‘그리스도의 한 몸’의 ‘한 부분’으로 있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계속 개혁되어야 하는 ‘교회’&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회의 본질적 면에서는 개혁해야 한다는 절대적 필연성이 전연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될 수 없는 어떤 요인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와 연합하여 그와 한 몸인 교회가 되어 있는 상태이며, 이때 이것은 불완전한 교회의 상태가 아니라 완전한 교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무슨 개혁할 것이 있는 교회이겠습니까?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데 우리가 교회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혁의 역사입니다. 개혁교회의 등장이 있었고 개혁된 교회는 또한 개혁되어가야 하는 교회의 모습을 띱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 그 자체가 불완전하거나 또는 칼을 대어서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문제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사실을 교회사에서 교훈 받으며 여기에서 후대가 갖는 교회 개혁의 원리를 대하게 되며 그에 따른 실천을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U&gt;첫째, 신조와 교리문답의 채택에 의한 신학 사상을 세워나가는 일이었습니다&lt;/U&gt;.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는 회의를 통해서 지금까지 여러 신경(신조)과 교리문답을 만들어왔습니다. 신경에는 보편신조로 불리는 세 신경이 있었는데 400년경에 작성된 로마 신경에 근거한 사도신경, 주후 325년에 열린 니케아(Nicaea) 공회를 거쳐 381년에 채택된 니케아 신경(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 6세기 초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사도신경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교리적으로 간략히 요약한 것입니다. 그리고 니케아 신경은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정통 교회와 견해를 달리하는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며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심을, 그리고 성령의 폭넓은 고백을 채택한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고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삼위일체 교리를 공격하는 아리우스의 주장과 싸운 아타나시우스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것이나 이것이 아타나시우스 본인에 의해서 작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신경은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진술하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인 신인양성의 통일성을 다룬 교리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고 이후 여러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 만들어졌습니다. 1536년 제1스위스 신앙고백, 1537년 제네바 신조, 1541년 제네바 교리문답, 1560년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1561년 벨직 신앙고백, 1563년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그리고 영국교회 39개 신조, 1566년 제2스위스신앙고백, 1619년 돌트신경, 1649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그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여러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은 종교개혁으로 새롭게 모습을 갖게 된 개혁 교회 신앙의 산물입니다. 개혁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앙고백과 교리로 견해를 밝히고 설명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교회가 가진 신앙을 바탕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위하여 작성한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 위에 열거한 것들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고 이것은 개혁교회의 개혁사(改革史)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신앙에 신학을 세워나가는 것으로서의 교회 개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뒤집고 바꿔 나가고 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교회에 바른 사상을 갖게 하여 깨어있게 하는 것의 성격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가령 돌트신경이 채택된 배경을 보게 되면 라이덴 대학의 교수였던 알미니우스(Arminius)가 예지에 근거한 조건적 선택, 무제한적 속죄, 부분적 타락, 저항할 수 있는 은혜 그리고 은혜로부터의 타락 가능성 등을 주장함으로써 개혁신앙으로부터 이탈하고 그 추종자들인 알미니안주의가 생겨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도르트레히트에서 개혁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알미니안주의에 반대하는 다섯 조항, 곧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전적 타락,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 등을 개혁교리로서 확증한 것이 돌트신경(Dort Creed)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U&gt;둘째, 교회가 가진 신앙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신조(신경) 및 교리문답에 담은 신학 사상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이보다 더 중요히 다루어져야 하고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인가 하는 것이요 구원의 원리를 충실히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lt;/U&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루터가 1517년 10월 31일에 항의문을 비텐베르그 대학 정문에 붙인 95개조의 항의문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항의문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교회가 복음에서 이탈하여 있는데 대한 항의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교황 레오 10세가 전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중수하기 시작한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를 계속하기 위해서 면죄부(속죄부) 판매를 계획했는데 이 면죄부는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 교황 우르반 2세가 십자군에게 교회 법에 따라 규정된 모든 죄를 사면한다고 약속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면죄부는 민중의 헌금을 긁어모으는 수단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의롭다함을 인정받는 것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며 구원은 은혜로 얻는 것임을 깨달은 루터에게 있어서 당시 교회적 상황은 개혁의 대상이었습니다. 인간의 믿음 자체도 죄의 용서를 받을 만한 아무런 공적(공로)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과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선물)로 주시는 것임을 성경의 관점에서 깨달은 루터에게서 연옥을 내세워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회의 실상은 부패 그것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루터에 이은 칼빈의 교회 개혁으로 이 땅에 개혁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제네바에서의 개혁교회를 따라 뜻 있는 개혁자들은 그와의 교제를 통해서 신학 사상을 성경적 관점에서 가져 나가고자 하였으며 이에 의한 개혁교회를 각지에 세워나갔습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칼빈주의자로 불려지는 이들은 칼빈의 신학의 영향 속에서 카톨릭 교회와는 분명한 신학 차이를 갖는 교회로서 개혁교회를 세워나간 것입니다. 그런 개혁교회는 필연적으로 예배에서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먼저 예배가 교회 제도에 의해서 의식화(儀式化) 되어가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예배 의식을 공인하는 교회제도는 폭군적이고 무익하며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하고 예배에 있어서의 관습과 인간적인 창안물은 성경과 그리스도 자신에 의하여 비난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교황의 미사를 다루면서 이를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것은 미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용서받기 위한 희생이며 제물이라고 믿게끔 하기때문이었습니다. 미사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바치고 신자들은 그 봉헌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 대하여 불경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예배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례는 칼빈에게 있어서는 세례와 성찬 두 성례뿐이었으며 이를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徵 表)로 이해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의 구호는 개혁교회가 어떤 신앙의 정신으로 있고자 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Sola Fide(오직 믿음으로),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 Sola Gratia(오직 은혜로), Sola Christo(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Sola Deo Gloria(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Coram Deo(하나님 앞에서).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러한 신앙의 정신 속에 있는 개혁교회는 성경을 교회의 권위로 두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개혁교회는 참된 교회의 표식으로서 그 첫 번째를 순전한 복음의 설교에 두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늘날 우리네 교회가 하나님의 본의에서 이탈한 해석과 설명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교회사에서의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복음을 진실히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래서 복음을 변질시키면 그러한 자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개혁교회는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때로는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그리고 때로는 복음의 진리에 대항하는 자들에 대하여 저항하는 자로 오늘날에까지 왔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이들의 무기가 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으며 이 성경에 의한 관점에서 복음을 해석하고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U&gt;셋째, 교회 개혁의 실천의 핵심은 자신을 성령님의 소욕을 좇는데 두는데서 찾아져야 합니다.&lt;/U&gt;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택&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 백성들에게 임하여 구원을 얻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주도적으로 인도하여 가십니다. 성령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모세의 율법이 유대인들의 삶을 이끌고 갔으나 그 결과는 그 어떤 것에서도 인간의 육의 죄성에서 나오는 악한 죄만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오신 이후에는 그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신 때부터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주셔서 이 안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비록 신자의 육은 완전한 구속을 입지 못한 가운데 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게 해 주심으로 다시는 정죄와 심판을 받지 않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약속으로 주시고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 연합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자신 안에 계신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나라적이 되게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로 그리스도로 충만한 교회의 모습을 띠어 가야 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리가 이것이 되지 않는 삶이란 그 무엇을 해도 결국은 육에서 나온 일이며 육이 하는 일이고 육은 다만 육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교회 개혁도 육의 열매 외에는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결과만 되고 맙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맺는 말 &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생명체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들로 하나된 몸의 생명체입니다. 사람이 출생하여서는 어린 아기인 영아 때부터 ‘사람’으로서 완전체입니다. 이는 사실 복중에 있는 태아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아가 어머니의 복중에서 열 달을 있는 동안 이목구비가 점차 제대로 서 가는 모양으로의 변화를 갖지만 사람으로서의 생명체에 있어서 완전합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원리를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교회는 더 개혁되어가져야 할 것으로 처음부터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들어와 있는 것이요 이 총회는 교회로 불려집니다. 이러한 교회의 한 부분이 각 지역에서 교회를 이루고 있을지라도 이 교회는 교회로서 완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임에 있어서 몸이 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한 교회는 교회사에서 보듯이 교회가 교회다워지며 그 정체성을 세상에 나타냄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교회가 지닌 신앙에 있어서 개혁성을 띠게 됩니다. 교회가 신경과 교리문답을 만들고 성경적 관점에서의 구원의 원리를 말하는 복음을 전하고 잘못된 유전으로부터 교회를 개혁해 나가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이 모두의 실천은 성령님에 속한 자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하여 친히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심어지는 일을 하여서 우리 심령을 개혁시켜 주신 그 개혁된 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에서 비로소 다른 교회 개혁의 모두가 의미가 있어지는 것입니다.&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44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복음의 정통성과 그리스도의 교회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lt;/SPAN&gt;
&lt;P&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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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교회 신학(교육)의 현실과 과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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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kkho1105.3476</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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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진실</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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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9:20:06Z</updated>
	    <published>2009-11-10T09:20:0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size=5&gt;한국교회 신학(교육)의 현실과 과제 &lt;BR&gt;&lt;BR&gt;&lt;BR&gt;&lt;/FON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이광호 목사(실로암교회)&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신학교의 제 역할 포기와 기능 상실이 한국교회 퇴락의 원인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현대의 지각 있는 성도들 중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는 불신자들마저도 한국교회를 매섭게 질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시사저널&gt; 2004년 12월 16일자(790호)에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문제를 취급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심각한 비리에 대해 지적했다. 또 어지러운 한국교회의 문제를 자세히 소개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영락교회·광성교회의 분열과 중앙성결교회 이 모 목사의 불륜, 인천 장 모 목사의 불륜에서 비롯된 사망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1심 유죄 판결, 충현교회·광림교회·소망교회·CCC·강남제일교회의 세습 문제 역시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위기의 징후로 제시되기도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지난 2004년 10월 2일 한국방송공사(KBS)는 특별기획 '한국사회를 말한다'에서 한국 개신교 120년을 조명하면서, 초심을 버린 한국교회의 물량화되고 세속화된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사례별로 지적한 바 있다. 이외에도 한국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타락양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교회는 좌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으며, 성도들은 지도자들의 횡포에 신음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일부 목사들의 성윤리 파괴, 피라미드 영업에 개입한 사기, 공금횡령, 목회세습, 교단이나 신학대학 내부에서의 부정과 비리 등과 같은 엄청난 이야기에도 놀라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가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내적 원인이든 외적 원인이든 명백한 그 원인으로 인해 현재 겪고 있는 어떤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교회됨을 상실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오늘의 타락한 현실적 한국교회가 있게 된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 내적인 원인은 실천적 의미에서의 신학의 질식에 있으며, 외적인 원인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세속적 공격에 견디지 못한데 기인한다. 그것이 결국 한국교회의 불건전한 물질주의화를 가져왔으며 세속화를 부채질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세속 정치의 집단 문화를 그대로 도입하게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물론 그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일반 목사를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세속화를 방치한 한국의 신학자들 및 신학교가 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실천적 의미가 되어야 한다. 결국 세속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향해 마땅히 외쳐야만 할 신학적 음성을 발하지 않았거나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의 침투에 대한 견제부실로 인해 신학 자체가 허물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즉 한국교회의 퇴락의 원인은 참된 신학의 부재와 신학교의 제 역할 포기 및 기능상실에 있으며, 그것이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불러왔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학은 배의 키와 같다. 키는 전체 선박의 방향을 정한다. 만일 키가 말을 듣지 않거나 잘못된 방향제시를 하게 되면 그 선박은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는 이 글에서 '신학과 신학교육의 목적' '신학연구의 현대적 관행과 방법에 대한 비판적 이해' '신학과 철학' '교회와 신학교' '직업적 신학연구의 위험성' '세속주의의 위험과 현실 신학교에 대한 비판적 담론' '신학의 사대주의'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를 통해 늦은 감이 있으나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소망할 때 한국교회가 거듭나게 되는 가능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신학과 신학교육의 목적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는, 신학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신학은 지식 확충을 위한 학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경으로 한 신앙의 골격을 의미한다. 즉 신학이 뼈대라면 신앙은 살인 셈이다. 뼈없는 살이란 상상할 수 없으며 뼈대가 약한 채 살만 찌게 된다면 건강상 위험천만한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살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보이지 않는 뼈대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둘은 상호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편 살은 찌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비만이던 사람이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통해 정상체중을 회복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뼈와 뼈대는 다르다. 뼈가 상하고 무너지면 그것으로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신학이 신앙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신학이 신앙의 근간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신앙이 어린 사람들, 여기서 '신앙이 어리다'는 말은 나이가 어린 성도들이나 신앙생활의 연륜이 짧은 성도들 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목사나 장로들 가운데도 아직 신앙이 어린 교인들이 많이 있을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는 신학교수들 가운데도 신앙이 어린 자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신학이 없는 신앙을 보고 훌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비만으로 살찐 것을 보고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리는 신학의 목적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신학의 목적은 말씀의 가르침에 대한 골격을 형성함으로써 이룩되는 교회의 상속, 교회의 세움, 교회의 보존, 그리고 그를 통한 하나님께 대한 송영에 있다. 신학의 목적은 인간의 지적 욕구의 충족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신학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학문화(學問化)되는 것은 견제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학문이란 그 속성상 지적(知的) 경쟁을 요구하게 되며 그를 통한 발전을 추구하게 된다. 만일 신학이 그렇게 되면 신학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 인본주의적 학문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게 된다. 그러나 신학은 미래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처한 교회 가운데서 계시된 말씀에 기록된 바를 확인하는 교회의 작업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렇다면 신학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신학의 일반적인 목적이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적 뼈대를 강하게 세워주기 위함이라면, 신학교(신학대학원)의 교육목적은 교회를 위한 교사의 양성이다. 올바른 신학교육은 상속되고 있는 교회의 교사들에게 참된 신학을 언약 가운데 전수하게 된다. 즉 신학교육이 단순한 학문의 활성화가 되어서는 곤란하며, 신학교육의 목적 역시 교회를 보존, 보호하기 위함임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신학연구의 현대적 관행과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이해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리는 신학을 이야기할 때 현대 보편화된 신학분류법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현대신학의 분류는 근대에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 신학의 분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건전한 교회들 가운데는 신학분야의 다양한 분류가 있지 않았어도 교회를 위한 충분한 역할을 잘 감당한 경우가 많다. 현대신학의 지나친 분류나 세부전공의 경향은 도리어 교수나 학자들의 편향성을 가져오게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근대 이후 전통적인 신학의 분류라 할 수 있는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일반적으로 실천신학이라 일컬어지는 분야를 고려신학대학원에서는 봉사신학이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영역이 적용신학이라 일컬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에성경신학연구원에서는 그렇게 칭하고 있다. 신학적 분류에 따른 특정 분야가 어떤 명칭으로 불려지는가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실천신학이라 하면 현상에 치중하는 인본주의적 경향에 치우칠 우려가 있으며, 봉사신학 역시 인간이 그 주체가 되는 용어로 보인다. 그러나 적용신학이라 칭하게 되면 성경말씀을 교회 가운데 어떻게 적용하며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원리적인 측면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의 틀에서 지금은 '성경언어학, 해석학, 신론, 기독론, 인간론, 변증학, 윤리학, 신조학, 성경지리학, 목회학, 설교학, 교회행정학, 교육학, 선교학, 사모학, 통일신학, 영성신학 등등' 엄청난 세부적인 분류들이 시도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물론 앞으로는 현재보다 더욱 세분화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것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큼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일 특정 분야의 전공자가 잘못된 신학적 견해를 가진다 해도 전공자인 자신이 가장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버린다면 엄청난 혼란이 오기 마련이다. 더구나 극도로 윤리화된 한국교회에서는 '잘못된 사상' 마저 전공을 핑계삼아 덮고 수용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양 호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근대 이전의 과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그런 식의 신학적 분류가 있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 속에 나타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 그리고 사도 및 초대교회에 살았던 많은 교회의 교사를 성경신학자라든지 조직신학자라는 식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와 복음의 원리 가운데 살았던 많은 선배들, 이를테면 어거스틴이나 루터, 칼빈 등을 특정 학문분야를 전공한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자기 전공영역을 지나치게 분명하게 구분짓는 것은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구약신학자는 조직신학이나 역사신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고 실천신학자는 신약신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마치 미덕인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우리의 시대적 관행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모든 신학자들은 다양한 신학적 영역들에 대해서 일관성 있는 신학적 가르침을 언급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에 대한 한 해결책으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 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기존의 거의 모든 신학자들은 자기의 특정 전공분야가 있다. 구약신학, 신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선교신학 등의 전공분야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세부적인 자기 전공분야가 있다. 나는 각 학자들이 소위 자기 전공이외의 다른 전공분야를 일정부분 강의하고 연구하도록 제도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를 들면 구약신학을 전공한 한 학자에게 요한계시록이나 설교학을 연구하고 강의하게 한다든지, 선교학을 전공한 학자에게 신조학이나 창세기를 강의하고 연구하게 하는 것이다. 또 실천신학을 전공한 학자에게 중세교회사를, 그리고 역사신학을 전공한 학자들에게 선교학을 연구하여 강의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자기 전공분야를 충실히 연구하는 가운데 다른 전공분야를 깊이있게 연구하는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학 내부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때 통합성 있는 진정한 신학교육이 가능할 것이라 보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즉 자기만의 독립되고 고유한 연구영역이 제한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시대의 학문적 편의를 위해 그런 세부적 전공영역이 있는 것 자체에 대해서 문제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분류되어 제각기 자신의 모자이크 영역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듯한 그림이 제시되는 것은 결코 온당하지 못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히려 모든 신학자들은 각기 자신의 관심있는 분야(전공)에서, 혹은 다양한 각도에서 동일한 내용(성경)을 조망하며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신학자들은 각기 독립된 자기 학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신학적 내용을 다양한 위치에서 조망하며 진리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 안에서 독립적 학문 영역을 독립적인 모자이크 형식으로 분리하여 떼어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lt;/SPAN&gt;&lt;BR&gt;&lt;BR&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참된 신학은 역사에 대한 해석 성경에서 찾아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지상의 모든 교회는 항상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 사도교회와 초대교회, 중세교회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항상 세상에서 노출된 상태로 존재했다. 그러므로 세상의 세속적 논리와 교회의 신학적 논리는 항상 대치관계 속에 놓여 있게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1) 신학, 세속에 대한 반응이자 해석 기반&lt;/STRONG&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는 세상에서 발생하고 정리되는 학문을 철학의 범주에 넣는다. 세상은 시류에 따른 역사적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끊임없이 제공함과 동시에 항상 새로운 철학적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인류에게 정신적 지표를 제시하려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인간 역사 가운데 존재하며 교회에서 발생하고 정리되는 학문적 내용을 신학적 범주에 넣는다. 신학은 세속에 대한 반응이자 해석을 위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참된 신학은 변천하는 역사활동에 대한 해석과 답변을 오직 성경말씀에서 찾는다. 그런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세상의 철학과 교회의 신학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관계가 존재하며 상호 충돌을 준비하게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발전하는 역사 가운데 세상은 지속되는 부대낌에서 전향적으로 변천해 가기 마련이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 세상이 변화를 중단했던 시기는 단 한번도 없다. 세상의 변화는 역사의 수직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거니와 현실의 수평적 가치교환은 변화의 내용적인 면 뿐 아니라 속도를 더욱 활발하게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 차원에서 볼때 교회의 신학도 끊임없이 발전하게 된다. 이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답변이 끊임없이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그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신학은 끊임없이 생생한 답변을 제시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신학의 발전은 단순히 전향적이지 않으며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연속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 성경말씀 바탕되지 않은 신학은 '죽은 신학'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것은 곧 세상에 대한,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한 신학적 해석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 만일 신학이 그 작업을 게을리하거나 포기하게 되면 그것은 죽은 신학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해석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즉 신학은 철학을 해석하는 주관자가 되어야만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의 신학적 해석을 동반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세상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값어치를 부여할 수 없다. 신학이 수행해야 할 기본적 역할은 교회로 하여금 죄악 가운데서 전진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내리도록 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아가 교회의 내부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신학은 신학적 해석을 지속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내에 새롭게 침투해 들어오는 세속적 사상 및 활동에 대해서도 신학은 끊임없는 해석을 해야만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천국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세상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는 세상의 경향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 가운데 살고 있는 교인은 끊임없이 세상의 익숙한 논리나 가치를 교회 가운데 이식(移植)하려는 잠재적 노력을 지속하게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변화 가운데 있는 세상을 경험하며 신학적 해석 없이 세상 친화적(親和的)이 된 잘못된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새로운 세상적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교회를 미혹하려 할 때 신학은 엄격한 해석을 함으로써 그에 대한 견제를 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 교회(공교회)와 신학교, 신학적 해석이 필요할 때 침묵하는 것은 무책임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를 위한 신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기구적 신학내부가 우선 선명해야 한다. 그러나 신학의 선명성을 드러내야 할 학자들이 그 선명성이 떨어진다면 신학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 신학을 선명하게 검증하라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를 들어 보수주의와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한국의 일부 학자들의 신학사상에 대해서는 분명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4년 7월, 미국 풀러신학교의 김세윤 교수는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의 기록에 대한 사본학적 불안정과 두 구절이 고린도전서 14장의 전체적인 문맥을 끊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후대에 삽입된 것이 확실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과연 그의 신학사상이 건전한가? 나는 그의 신학사상이 매우 불건전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다수 보수주의 신학생들은 그의 사상을 따르며 지지하고 있다. 한국의 건전한 신학교에서는 그의 신학사상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이유가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의 신학적 주장에 대해 신학적 동의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경계해야 할 신학자인지 분명히 밝혀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신학생들이나 교단의 성도들이 신학적 균형을 잃지 않게 된다. 복음주의자임을 주장하면서 성경을 고등비평하는 그런 학자들을 보면서도 침묵을 계속한다면 누가 그들을 참된 신학자로 신뢰할 것인가.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대다수 교단들과 신학자들은 그런 신학적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문제를 피해가기에 급급했다. 그러한 자세는 신학과 고백을 신념을 지닌 교회의 학자들이 취할 수 있는 정직한 자세가 아니며 결국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따름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한 무책임성은 미래의 신학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특정 학자의 신학사상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단지 교회의 신학자들이 마땅히 제시해야 할 신학적 문제 해결에 대한 기초적인 방법에 대한 중요성과 그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특정 학자의 신학 사상에 문제가 있다면 기존 신학은 그에 대해 명확한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2) 신학의 정체성 위협하는 '침묵'&lt;/STRONG&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교는 공교회의 신학과 관련된 제반사항에 대해 교회의 교사로서 신실한 감독의 책무를 가진다. 그것은 일반 행정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결정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아가 신학의 범주가 아닌 일반적 윤리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를 들어, 목사들이 공교회의 정책을 논하거나 재정의 씀씀이에 대해 결의를 할 때 신학교수들이 그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어느 목사가 간음을 하거나 횡령을 했다고 가정할 때 달리 그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있지 않아도 누구나 그런 행위가 악한 범죄라는 것을 안다. 그런 사건에 대해서 학자들의 해석이 따르지 않아도 치리회가 적절하게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신학이 마땅히 문제를 지적해야만 할 내용이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예를 들자면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한꺼번에 5천명 가량의 군장병들에게 일시에 집단세례를 베푸는 문제라든지, 주일성수나 십일조에 대한 신학적 해석으로 인해 부당한 교권을 휘두르는 문제, 신학사상을 초월한 강단교류 문제, 그리고 교단 인사 중 적법한 청빙절차 없이 불법적 목사안수가 자행되는 문제 등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의 신학적 해석과 함께 마땅한 신학적 음성을 발해야만 한다. 그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회피하거나 침묵한다면 신학자로서 무책임한 일이 된다. &lt;/SPAN&gt;&lt;BR&gt;&lt;BR&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5. 직업적 신학연구의 위험성 &lt;/STRONG&gt;&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이 세상에 노출된 교회를 향하여 성경적 원리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면, 교회는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실천적으로 적용하게 된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실천을 위한 최일선에 지(支)교회들이 있다면, 동일한 신학과 신앙고백을 소유한 여러 지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공교회(교단)를 이루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현실적 공교회는 회합의 특성상 실천적이지만 신학과 신앙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지속적인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신학과 신앙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상호 균형있는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신학은 원리지향적이며, 교회는 실천지향적이라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원래적인 속성은 원리 지향적이지 않으며 실천 지향적이다. 인간은 경험적 존재이기 때문이며 현실적 삶을 중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실천이 목표를 향해 전진적 작용을 한다면 원리는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길을 천천히 가게 한다. 거기에서 실천과 원리사이의 마찰이 일어나게 된다. 신학과 공교회 사이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항상 그렇듯이 개인 뿐 아니라 집단에 있어서도 실천이 원리보다 강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연약한 사람들이나 약화된 사회일수록 원리보다 실천이 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원리가 약화된 상태에서 실천이 강화되면 그 사회는 예측불허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신학과 교권에 있어서도 이와 동일한 설명이 가능하다. 교권이 강하게 되고 신학이 약화되면 교권은 신학 위에 군림하게 되며 신학은 교권의 시녀가 될 수 밖에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이 교권의 시녀가 되면 신학자들이 직업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 연구가 아니라 신학자 자신의 학문성에 스스로 빠져 교권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며 어용신학을 구가하게 된다. 그런 류의 신학은 더 이상 교회를 위한 신학이 될 수 없으며 학문 자체를 위한 신학이 되거나 교권적 집단을 위한 어용신학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은 결코 신학자들의 학문 중심의 신학이 되어서는 안되며 성경중심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탐구의 대상이 학자들의 선행된 연구나 학설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신학 연구방법론의 방향성이 학문적 연구동향에 맞추어지는 것을 피해야 함을 의미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연구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다른 훌륭한 학자들의 가르침을 듣기도 하고 그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학이 직업적인 것으로 전환되게 되면 다른 학자들의 언어가 학문의 중심적 위치에 서게 됨으로써 그것이 도리어 말씀을 멀리하여 진리를 가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주객전도(主客顚倒)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리는 신학자(학문자체) 중심 연구와 성경중심 연구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신학은 결코 교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명제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혁신을 위해서는 교권의 힘에 눌린 직업적 신학연구의 틀에서 벗어나 교회를 위한 참된 신학연구로 속히 돌아서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1)세속주의의 위험과 신학교에 대한 현실비판&lt;/STRONG&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1세기 한국교회는 각 신학교들의 담이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에 놓여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좋은 현상이라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신학에 있어서 사상을 초월하여 교파간 담이 허물어지는 것은 신학교가 신학이 결여된 신학교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보수주의,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신학대학원들에 마저 이제는 세속주의, 자유주의, 신비주의 신학사상이 들어와 혼합적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그동안 불건전한 신학의 진입에 대해 신학적 대처나 감시기능을 포기했거나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교(신학대학원)의 커리큘럼은 어떤가. 신학교의 커리큘럼은 성경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에 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명확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정해진 기간 동안의 신학교육을 성실하게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성경말씀과 신학에 대한 체계적이며 명료한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다면 신학교육의 부실에 그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또한 우리 시대 한국의 신학교들이 세속적 학위에 얽매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일선교회에서 목회를 담당하는 목사에게 세속정부가 부여하는 학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미없는 학위중심의 교육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도리어 교회를 해롭게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위해 존재해야할 신학교가 세속의 학위를 조건으로 내걸어야만 더 나은 인정을 받는 것처럼 되어 있다면 그것은 참된 신학의 의연함을 상실한 지극히 나약한 모습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신학에 대한 학문성과 무관한 박사학위 과정을 두고 있거나 설치하려는 노력을 하는 몇 몇 신학대학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의 몇몇 보수주의 신학대학원에서는 목회학 박사(D.Min)과정을 두고 있다. 만일 교육부의 인가를 취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운영하고 있다면, 관련자들은 한편으로 적법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을 동원하는 모순적 이중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즉 교육부의 인가를 앞세워 소위 무인가 신학교에 대한 교회의 인가를 경시하며 비판하는 자들이 스스로 무인가 박사과정을 개설하여 교회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싼 학비를 받으면서 여름과 겨울 불과 몇 주간씩 대중강의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정말 신학교육이 목회자 재교육에 관심을 가진다면, 목회자간 차등화 방지를 힘쓰는 가운데 공부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이 재정적 압박을 느끼지 않는 가운데 모든 목회자들에게 열려있는 순수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교의 인가, 무인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 시대에는 인가, 무인가 신학교라는 것이 세속정부의 인가 여부에 기준을 두고 있다. 1981년 이후 한국의 세속정부는 신학교에 목회학 석사(M.Div) 학위 과정을 허가함으로써 교회의 신학을 간섭하게 되었으며, 결국 교회의 신학교가 세속국가의 신학교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것은 기독교적 국가가 아닌 세속주의 국가와 결탁한 것으로 그것 자체가 교회의 세속에 대한 타협이요 굴복일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신학교의 건전성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건전한 교회(교단)의 온당한 인가여부를 따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좋은 신학교는 교회의 요청에 충실한 학교일 것이며 세속정부가 부여하는 세속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학교이며, 세속의 지위와 권위에 대해 자유로운 학교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일반교인들은 국가의 인가를 받은 신학교는 좋은 신학교이며 교회의 인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가장 미리 감지하고 있어야할 신학대학원 교수들이 도리어 앞장서 인가, 무인가의 기준을 교회가 아니라 세속정부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교회 스스로 세속정부에 굴복하여 자신을 부끄러운 자리에 까지 비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대학원 입학을 위한 특혜에 관한 면에서도 그와 동일한 안타까움이 있다. 신학교에 입학하는데 입학생의 세속적 경력이나 지위 따위는 전혀 관계없다. 그런 것들은 도리어 입학과 동시에 완전히 걷어내야만 할 내용들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지위나 요건에 따라 노회의 사전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특례입학을 허용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신교단의 고려신학대학원의 경우 박사학위 소지자, 판사나 검사, 의사 등 사회적 지위가 인정되는 자들에 대해 특례입학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학교의 세속화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2) 세속적 경력이나 인정 정도를 교회가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현대 신학교의 심각한 폐단일 수 밖에 없다.&lt;/STRONG&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교회의 보증을 통해 특별한 경우 특례입학을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일학교 교사를 10년 이상 감당한 성도라든지, 신실한 장로로서 오랫동안 직분을 수행해온 성도들이라면 교회와 노회의 요청에 의해 그들을 특례입학 시킬 수 있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원리적으로 보아 그런 자들은 교회의 인정을 충분히 받고 있는 자들이므로, 마땅히 특례입학이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신학교들은 세속의 경력을 교회의 경력보다 더욱 중요시하는 잘못된 풍조에 빠져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 신학의 사대주의에 대한 반성…신학을 따지지 말고 연합부터 이루자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의 신학은 전반적으로 서구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 다수의 학자들이 성경말씀에 대해 올바른 이해보다는 서구의 신학 자체를 동경하는 구차한 저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구나 제3세계의 교회와 신학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기초로 한 신학이라면 마땅히 배우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는가 여부가 아니라, 서구 신학 자체가 곧 학문의 기준이 되고 있음은 한국교회가 겸허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분야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을 위한 외국유학은 올바른 신학을 탐구함과 동시에 보편 교회 가운데서 참된 교회를 배우려는 있다. 참된 교회를 배경으로 하지 않은 올바른 신학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신학을 보존하고 지켜온 외국의 참된 교회들로부터 원리적, 실천적인 면을 배워 익혀 우리의 교회 형편을 해석함으로써 참된 교회로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동안 한국교회는 스스로 많은 자랑을 해왔다. 역사상 유례없는 교회 성장을 진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해 왔다면, 그동안 우리의 신학은 정상궤도에 올랐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학자로서 교회를 위한 신학을 탐구할 만한 자질이 있는 후학을 더는 외국의 현지 신학을 맛보게 하지 않고도 건실한 학자의 양성이 가능했어야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아가 구미(歐美)에 있는 건전한 교회에 속한 신학생들이 세속화를 피해 한국의 참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몰려들었어야 했다. 한국의 일반 대학의 경우 외국 학생들이 많이 와서 학문을 연구한다. 한국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한국의 역사와 경제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동서양의 많은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학문을 연마한다. 그에 비해 한국교회의 신학을 배우고 전수받기 위해 학문을 연구하는 학생은 거의 전무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동안 한국의 교회 성장 비결을 배우기 위해 외국의 일부 목회자들이 관심을 보였고, 한국의 기도원을 살펴보기 위해 몰려오는 사람들은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한반도에 세워진 참된 교회와 신학적 원리에 따른 측면이 아니라, 외형에 치장된 형식에 대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에 얼마나 큰 대형교회가 있는지 관심을 가질 뿐 정작 그 사람들이 한국의 신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외국의 교회들 역시 건전한 신앙적 상식을 기반으로 한 성도들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성공을 꿈꾸는 세속주의적 교인들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서구의 신학이 허물어져 가고 있을 때 한국 신학의 굳건함이 알려졌더라면 외국의 신실한 형제들이 한국교회와 한국의 건전한 신학을 배우려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한국어를 능통하게 하지 못한다 해도 다른 언어를 통해 한국의 신학자들로부터 신학수업을 하고자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예는 거의 전무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 신학교에 종종 외국 출신 신학생들이 있기는 하나 그들은 선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방편으로써 여기서 말하는 것과는 그 목적과 이유가 다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리는 이에 대해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한다. 우리가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올바른 신학의 보존으로 인해 한국교회를 부러워하는 외국의 신실한 형제들이 많이 있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구신학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무비판적 사대사상은 매우 위험하다. 사대사상 자체가, 강해 보이는 한편에 대해서는 비굴한 자세를 취하게 되고 연약해 보이는 다른 한 편에 대해서는 교만한 자세를 취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제 한국교회는 서구신학에 의존하는 사대주의 사상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이는 한국 신학의 토착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서구의 문헌을 버리자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의 경험신학이 아니어도 성경말씀을 통한 올바른 신학이 충분히 가능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는 서구에서 공부한 것 자체가 아무런 자랑거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올바르게 깨닫고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할 따름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의 위기는 항상 신학의 부재에 기인한다. 참된 신학은,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끊임없이 교회를 엿보는 세상적 요소와 투쟁하게 된다. 그러나 신학이 그 고귀한 투쟁을 포기하거나 등한시하게 되면 교회는 급속히 타락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한국교회의 현재의 위기 역시 그 근저에는 신학(교)의 역할 및 기능 부재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교회의 현상적인 모든 잘못된 것과 목회자들의 복음을 떠난 행위는 신학적 해석이 없었거나 신학자들의 진지한 신학함의 삶과 행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지금이라도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적인 측면부터 해결해 들어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락한 한국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음성을 높이고 있다. 외형적 병폐를 즉시 도려내야 한다는 이들도 있고, 점진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좀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자들도 있다. 급진적 개혁에는 쪽박을 깨트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교회의 윤리성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으며, 또 다른 경우에는 교회다운 실천을 통해 부패한 한국교회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그런 류의 이야기들은 원리적 치료책이 되지 못한다.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말씀의 신학이 살아나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현실적 접근은 한국교회의 병폐를 더욱 고질화시키게 될 것이며, 일시적인 외침 뒤에는 더 무서운 타락이 뒤따를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부정적인 세속화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위 긍정적 세속화가 훨씬 무섭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잘못에 대해서는 상식적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적 명확한 해석이 있지 않은 한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교회의 신학은 이미 '혼합신학'이 되어 있다. 이제는 더는 상이한 신학을 따지거나 묻지 말고 우선 마음을 모아 연합부터 이루고 보자는 음성이 매우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대다. 참된 신학을 도외시한 인위적 연합은 교회의 교회됨을 상실하게 하는데 크게 일조할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자유주의, 세속주의, 신비주의 신학 등의 위험성을 견제하지 않는 신학은 이미 참된 신학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견실한 신학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오는 온갖 악한 신학사상을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말로는 칼빈주의, 보수주의, 개혁주의를 일컫지만 실상은 칼빈주의자들이 이단으로 간주했던 알미니안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칼빈주의에서 멀어진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종교개혁자 칼빈의 눈으로 본다면 현재의 한국교회는 '이단'이다. 두렵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칼빈주의를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신학적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학교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거듭 태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며, 이를 위한 성령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을 바랄 따름이다.(*) &lt;/SPAN&gt;&lt;/P&gt;
&lt;P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36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한국교회 신학(교육)의 현실과 과제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
&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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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교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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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19:29Z</updated>
	    <published>2009-11-10T09:19: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한국교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성경적 교회 개혁을 위한 102가지 제안 중 44가지) &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광호 목사(실로암 교회)&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BR&gt;&lt;/P&gt;&lt;/P&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0021b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0021b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 교회는 목사개인이나 특정 자연인이 개척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특별한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lt;/SPAN&gt;&lt;BR&gt;&lt;BR&gt;&lt;/P&gt;&lt;/FONT&gt;&lt;/STRONG&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서 어떤 개인이 다른 성도들보다 더 많은 권리나 지분을 가진 것처럼 여긴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교회를 통해 상속될 따름이며, 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은 홀로 모든 권리를 가지신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3a32c3&gt;&lt;/FONT&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0075c8&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신앙고백 공동체 (confessional community)이며, 성도들간의 친목을 중심으로 한 교제공동체(fellowship community)가 아니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FONT&gt;&lt;/STRONG&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교회가 신앙고백 공동체일때 그 순수성을 유지하게 되지만 사랑을 내세운 교제공동체로 치우치게 되면 교회는 급속하게 세속화될 수밖에 없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3. 교회는 세속 국가에 대해 상호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대등한 파트너로 생각해서는 안된다.&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STRONG&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교회가 세속국가에 유익을 끼치려고 지나치게 애쓴다든지 국가로부터 특별한 도움을 받겠다는 의도를 가지는 것은 잘못이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4. 교회만이 하나님의 주권이 전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거룩한 영역이다.&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STRONG&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하나님의 주권이 세속국가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 영국이나 화란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교회가 국가에 대해 관여하고 참여한 것은 그 국가들이 소위 '기독교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나라가 세속국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8d3901&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5. 교회안에서는 교회밖의 모든 세속적인 지위 고하나 형편들이 판단중지되어야 한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gt;&lt;/STRONG&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소위 세속적 성공에 교회안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되지 말아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6. 교회의 영적 울타리는 세속국가나 단체와의 사이에서 명확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STRONG&gt;&lt;/P&gt;&lt;/DIV&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FONT&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교회와 세속국가나 단체사이에 있는 담을 교회 스스로 허물려 한다면 이는 세속주의의 결과이자 세속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따름이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8f0197&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7. 교회는 세속국가 제도의 변혁에 제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참여하려는 노력을 하지말아야 한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FONT&gt;&lt;/STRONG&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교회가 세속국가의 불의에 대해(혹, 정의로운 행위에 대한 지지일지라도)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당시의 부패하고 부당했던 로마제국에 대해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라..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d40a00&gt;&lt;STRONG&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8. 교회의 모임이나 행사에 불신자인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를 초대하는 것은 세속화의 절정이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교회는 세속으로부터 격려나 축하받을 일이 전혀 없다. 세속국가에서의 지위고하는 교회와 하등의 관계가 없으며, 세속의 지위를 교회가 직분이상으로 인정하려는 것은 교회의 심각한 폐해이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9. 교회는 항상 출교해야 할 자를 찾아 출교시킬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이렇게 하는 것이 성도들을 보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비판의 의미가 아니라 권징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0.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등이 반드시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align=justify&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이러한 기도모임은 성경에서 요구하고 있는 기도회가 아니며, 한국교회의 전통일 따름이다. 새벽기도나 철야기도를 하는 자들이 하지 않는 자들보다 신앙이 훨씬 못할 수도 있으며, 그런 특별한 기도를 하지 않는 이들 가운데도 훌륭한 신앙인들은 얼마든지 많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1. 송구영신예배는 폐지되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align=justify&gt;&lt;/FONT&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하나님의 백성은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이다. 송구영신 예배에서 새해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은 이방 종교인들의 행위를 본뜬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2. 큰 교회들에서 1부, 2부, 3부 식으로 나누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일이라 하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동일한 지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시간을 나누어 따로 예배를 드리거나 세례교인들끼리(직분자들끼리조차도) 서로 모르는 관계라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성례의 의미가 온전히 실현될 수 없으며, 교회가 직분자를 뽑을 때 뽑을 자의 신앙을 잘 점검해 무기명 비밀투표하여 선택할 수도 없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3. 화면을 통한 화상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설교자가 화면을 통해 설교를 하고 성도들은 다른 공간에서 그 화면을 바라보며 설교를 듣는것은 올바르게 회중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물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나 어린 유아를 돌보는 보호자들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4. 10주년 기념예배, 은퇴기념예배 등 각종 기념예배는 폐지되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개혁교회에서는 하나님 한분 이외에 예배를 통해 기념할 만한 어떤 형식이나 내용도 가지고 있지 않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5. 결혼예식장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 교인들의 결혼식은 기독교 예배와 무관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align=justify&gt;&lt;/P&gt;
&lt;P align=justify&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결혼식장에서 행하는 대개의 결혼식에는 불신자들도 다수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예배형식의 결혼식은 지양되어야 하며, 주례자인 목사가 축도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성도의 외적인 결혼식은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불신자인 친척이나 이웃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부부가 됨을 알리는 것이기에 불신자라 할지라도 그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다. 단지, 기독교적 방식의 결혼식이라도 그것은 결혼식일뿐 결혼예배는 아니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6. 성도들의 결혼식이 혼인 예배로 드려지는 것은 권장할 만하며 성숙한 성도로서는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혼인예배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세례교인들로 구성된 성도들을 중심으로 엄숙하게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예배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만 해야 하며, 결혼하는 당사자나 그 가족들을 칭송하거나 축하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7. 장례식은 장례예배가 아니라 기독교적 의례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장례를 중심으로 하여 되풀이되는 예배형식은 전반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등을 '예배'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적 장례에서 가지는 절차상의 모임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8. 추도예배란 개혁주의 교회에서 사용될 용어가 아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죽은 성도들의 죽음을 기념해서 드리는 예배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베드로나 바울의 삶과 죽음을 기념하지는 않는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P align=justify&gt;&lt;/P&gt;
&lt;P align=justify&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text vAlign=to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9. 출생 기념예배, 백일기념예배, 돌예배, 생일기념예배, 회갑기념예배 등의 용어는 이방 종교인들의 통과 의례적 종교성과 결합된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개인의 특정한 날을 기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모든 예배형식의 모임은 폐지되거나 지양되어야 한다.&lt;/SPAN&gt;&lt;BR&gt;&lt;BR&gt;&lt;/P&gt;
&lt;P&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gt;&lt;FONT color=#ff3300&gt;&lt;FONT color=#ff3300&gt;&lt;STRONG&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0. 예배시 목사의 가운을 벗어야 한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STRONG&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공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넥타이를 꼭 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도 단정한 복장을 갖출 수 있다. 목사의 권위가 그러한 의상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목사의 참된 권위는 바르게 세워지지 못할 것이다. 목사가 특정한 의상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식의 인식들은 꼭 개선되어야만 한다.&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FONT color=#0021b0&gt;&lt;/P&gt;
&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1. 기공예배, 입당예배, 헌당예배 등은 없애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P&gt;
&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건축물 자체는 아무런 영적인 의미가 없다. 영적인 의미가 없는 것을 위한 의례가 교회 안에서 마치 꼭 행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처럼 인식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우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 성도들이 하나님 자신과 그의 몸된 교회 이외에 어떤 물질이나 건축물에도 필요이상의 관심을 가지거나 중요시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P&gt;
&lt;P&gt;&lt;/P&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2. 헌신예배란 없애야 할 제도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
&lt;P&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하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헌신된 자들이며, 다시 헌신한다는 것은 억지일 따름이다. 더구나 잘못된 많은 교회들에서 볼 수 있듯이 헌신예배를 드릴때 꼭 헌금을 하면서 헌신예배가 마치 주관부서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필요로 하는 연보를 거두는 방편처럼 이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는 마땅히 없어져야 할 잘못된 습관이다.&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FONT&gt;&lt;/P&gt;
&lt;P&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3. 찬양대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서는 안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P&gt;
&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찬양은 아름다운 목청이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삶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FONT&gt;&lt;/P&gt;
&lt;P&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4. 찬양대의 지위자나 반주자에게 사례금을 지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P&gt;
&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전문적인 지휘자나 반주자를 교회 외부에서 불러와 찬양대를 맡기는 것은 근절되어야 한다. 더구나 그들에게 적절한 급여를 제공하는 행위는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P&gt;
&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5. 교회 내에서 그룹 사운드 형식의 음악은 추방되어야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lt;/FONT&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잘못된 교회 음악은 교인들을 비이성적으로 몰아가거나 혼미하게 만든다. 지나친 교회 음악은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음악적 즐거움으로 마음을 돌리게 하는 위험이 있다.&lt;/SPAN&gt;&lt;BR&gt;&lt;BR&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2&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6. 연보한 자의 명단을 주보에 싣거나 목사가 그들의 명단을 불러가며 예배 시간에 특별기도를 해 주는 것은 잘못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21b0&gt;&lt;FONT color=#ff3300&gt;&lt;STRONG&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7. 목사가 축도할때 자기의 의도를 섞어 마치 목사 자신이 축복하는 권한을 가진 듯이 축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STRONG&gt;&lt;/FONT&gt;&lt;/P&gt;
&lt;P&gt;&lt;/P&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축도란 목사가 교인들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약속된 그 언약을 주의 몸된 교회 앞에 말씀의 선포자로서 선포하는 것이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
&lt;P&gt;&lt;/P&gt;
&lt;P&gt;&lt;FONT size=2&gt;&lt;/FONT&gt;&lt;/P&gt;&lt;/FONT&gt;&lt;/FONT&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EMBED onresize=&quot;parentResizeIframe('cafe_main')&quot; type=video/x-ms-asf autostart=&quot;false&quot; invokeURLS=&quot;false&quot; allowScriptAccess=&quot;never&quot; allowNetworking=&quot;internal&quot; src&#61;[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http: www.gayo114.com freelink freelink_aplay.asp?c=&quot;252718_301043&amp;ext=.asx&quot; loop=&quot;-1&quot; volume=&quot;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28. 목사는 성경에 명시된 자기 직분 이외의 기능은 장로와 집사 등에게 돌려주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장로교 헌법에는 목사의 직무에 대한 규정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교회정치, 제 5장, 제 33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9999;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9999;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 2)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설교하는 일. 3) 찬송을 지도하는 일. 4) 성례를 거행하는 일. 5) 하나님의 사자로서 축복하는 일. 6) 교인을 교육하는 일. 7) 교인을 심방하는 일. 8)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하는 일.&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fe2419;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여기의 5)항에서 말하고자 하는 개혁주의적인 의미는 목사가 자기 권위로서 성도를 축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함께 소유하는&lt;/SPAN&gt;&lt;/FONT&gt; &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것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fe2419;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FON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29. 장로는 성경에 명시된 자기 직분 이외의 기능을 집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장로교 헌법에는 장로의 직무에 대한 규정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위 항의 헌법, 제 47조)&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FON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9999;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9999;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1)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 2) 교회의 영적관계를 살피는 일. 3) 교인을 심방, 위로, 교훈하는 일, 4)교인을 권면하는 일. 5)교인들이 설교대로 신앙생활을 하는지 여부를 살피는 일. 6)연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 7)교인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 8)목회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목사에게 알리는 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9999;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30. 집사는 성경에서 요구하는 자기직분을 회복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장로교 헌법에는 집사의 직무에 대한 규정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위 항의 헌법 제 56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집사는 당회의 지도아래 빈곤한 자를 돌보며 교회의 서무, 회계와 구제에 관한 사무를 담당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9999;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여기서 '당회의 지도 아래'라는 말은 영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목사와 장로의 영적 지도를 받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9999;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31. 교회의 회(會) 가운데 일반 의사를 결정하는 가장 권위있는 모임은 공동의회이며, 그 다음은 제직회이고 가장 낮은 권위를 가진 회가 당회이다. (목사, 장로는 공동의회, 제직회, 당회의 회원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당회나 제직회는 결의되고 집행된 모든 일들을 공동의회에 보고하고 인준을 받아야 한다. 물론 영적인 권위는 &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지교회의 목사, 장로의 모임인 당회가 가지며, 당회는 &lt;/SPAN&gt;&lt;/FON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마땅히 영적인 면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lt;/SPAN&gt;&lt;/FONT&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우리는 장로교에서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일은 노회의 관장아래 공동의회에서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lt;/SPAN&gt;&lt;/FONT&gt;&lt;/SPAN&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32. 장로교에서는 노회가 가장 권위가 있으며, 총회의 권위는 그 아래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노회는 회의를 하기 위한 일시적 모임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존하는 교회적 단위로서 항상 산하 교회의 영적인 면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살핀다. 한편, 장로교에서 교단 산하의 전체 교회의 모임인 총회(General Assembly)는 마땅히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지만, 일 년에 한 차례씩 모여서 정책을 토의하는 대의기관으로서의 총회의 권위는 노회의 권위를 앞서지 않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33.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각 교단 노회나 총회가 권력구조화 및 명예구조화되어 있는 것은 큰 폐단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교회 기관의 각 회(會)의 임원들은 그야말로 봉사자일 따름이다. 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이 불법을 자행해 가며 '그자리'를 탐하는 것은 오염된 '권력'과 '명예'가 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34. 교회에는 원칙적으로 권력적 권위와 명예를 가지는 장(長)이나 대표자 그리고 지도자가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
&lt;P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quot;&gt;
&lt;P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개혁주의 교회에서는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권위와 명예를 가지는 실질적인 주권자이시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lt;/DIV&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35. 직분자의 은퇴 연령을 법제화하여 획일적으로 70세로 제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경직된 처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총회의 규정이 우선일 수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각인의 은사에 따라 80세까지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도 있을 수 있으며, 어떤 이는 나이가 50세일지라도 직분 수행의 정도에 따라 스스로 은퇴하거나 은퇴를 권면하여 직분을 중단하게 할 수도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36. 목사는 다른 성도들과 달리 특별히 '거룩한 자'가 아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 목사는 주의 몸된 교회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며 목양하는 교사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목사를 '주의 거룩한 종'으로 칭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FONT color=#f10b00&gt;&lt;/FONT&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37. 개체 교회에서 사용하는 원목사나 부목사 등의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목사는 교회가 세운 동일한 직분을 가진 목사일 따름이며, 거기에서 다시 계층화된 개념에 생겨날 수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38. 공로목사, 원로목사 제도 등은 폐지되어야 한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교회는 이러한 특별한 호칭을 가진 목사(직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아가 교회나 노회에서 투표를 통해 호칭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더욱 이치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단지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목사가 있을 따름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39. 교회내에서는 '파', '계보', '계열' 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국의 여러 교단들에는 OO파, XX파 라는 말이 공공연하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개혁주의 교회의 지도자들은 각 사안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각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판단해야 하며, 정치성향을 강하게 지닌 계파를 만들거나 거기에 동조하여 참여함으로써 특정한 목적을 이루려 하는 것은 악한 행위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40. 목사를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각종 회의를 위한 모임 후에 회의비, 교통비 등을 받는 모든 관행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목사들은 이미 그 일을 위해서 교회로부터 생활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회의 참석자들이 있다면 그들에 대한 배려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41. '설교'를 하고 나서 사례를 주고 받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악이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것은 성도들과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노동으로 해석될 성질이 아니다. 심지어는 본 교회의 목사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특정부서의 헌신예배에서 설교를 했을 때마저 사례금을 따로 지급받는 예가 허다한데, 이는 분명한 폐해이다. 예배에 참여한 대가를 금전으로 받는다는 것은 분명코 없어져야 할 우리 시대의 실로 악한 전통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42.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요건은 세속적 교육정도, 부의 정도, 직업 등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교회에서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요건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 명확히 밝혀져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요건을 더욱 중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43. 여자 목사 제도는 비성경적이므로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많은 교단들이 여자 목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분별없는 인본주의적인 사고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2;12-15을 보라. 이는 문화적 의미가 아니라 구속사적인 의미임이 명백하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없을 경우 어머니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여자 목사 제도를 두게 되는 경향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페미니즘(feminism)의 영향에서 출발하고 있다. 목사를 성경적 직분으로 보지않고 더 '높은 자리'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들처럼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보는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21b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FONT color=#f10b00&gt;&lt;FONT color=#3a32c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44. 장로 장립이나 집사 장립, 권사 임직 등을 할 때 교회는 어떤 형태의 연보라도 요구하지 말아야 하며, 장립받는 당사자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 안에서 그러한 폐습이 공공연하게 관례화된다면 성직 매매라 할 수밖에 없다&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21b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8;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 연보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아무도 모르게 그 신앙의 양심에 따라 하면 될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직분을 받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는 명분하에 상당한 금액의 연보를 자의나 타의에 의해 하는 것이 상례화되어 있다. 그런 관례가 보편화되면 교회는 약화되고 연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자들은 직분자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게 되어 직분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심화되면 성직매매에까지 이르게 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30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한국교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lt;/SPAN&gt;
&lt;P&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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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경으로 돌아가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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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18:34Z</updated>
	    <published>2009-11-10T09:18: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quot; align=center&gt;&lt;FONT color=#300d0d size=5&gt;&lt;B&gt;성경으로 돌아가자&lt;/B&gt;&lt;/FONT&gt;&lt;/P&gt;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quot; align=center&gt;&lt;FONT size=2&gt;&lt;/FONT&gt;&amp;nbsp;&lt;FONT color=#666666 size=2&gt;제8차 아시아칼빈학회 개회 메시지 &lt;/FONT&gt;&lt;/P&gt;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0%&quot; align=right&gt;&lt;FONT color=#000000 size=2&gt;&lt;/FONT&gt;&amp;nbsp;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0%&quot; align=right&gt;&lt;FONT color=#000000 size=2&gt;&lt;/FONT&gt;&amp;nbsp;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quot; align=right&gt;&lt;FONT color=#000000 size=2&gt;정성구 교수&lt;총신신대원·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gt;&lt;/FONT&gt;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quot; align=right&gt;&lt;FONT color=#666666 size=2&gt;&lt;/FONT&gt;&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0%&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666666 size=2&gt;&lt;/FONT&gt;&amp;nbsp;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 size=2&gt;오늘의 세계는 정보화 사회로 말미암아 급변하고 있고 인본주의, 종교다원주의 등 세속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교회도 세속화하여 힘을 잃어 가고 신학도 종교 개혁자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신학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기에 아시아 각국의 칼빈 학자들이 모여 대회를 열게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lt;BR&gt;&lt;BR&gt;어거스틴 이후에 교회는 점차 성경에서 떠나 의식적 종교가 되었고 로마 가톨릭이라는 유사 기독교로 변질되어 약 1200년 동안 암흑시대로 있었다. 밤이 깊으면 별빛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듯이 성경에서 떠난 의식주의, 형식주의 종교에 환멸을 느꼈던 요한 위클리프, 윌리암 틴델, 얀 후스 등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들이 가톨릭의 비성경적인 것에 도전했으나 그 철옹성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스가 화형으로 순교의 잔을 마신 지 꼭 100년 만인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그로부터 20년 후에 요한 칼빈이 1536년 &lt;기독교강요&gt;를 출판함으로서 12세기 동안 단절됐던 성경적 기독교로 되돌려 놓았다. 병약한 몸을 가진 청년 칼빈이 이룩한 위대한 작품 &lt;기독교 강요&gt; 한 권이 세상과 교회를 새롭게 했다. 그리고 1559년에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는 말 그대로 유럽의 종교개혁의 센터였고, 선교의 센터였다. &lt;BR&gt;&lt;BR&gt;칼빈은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자이기도 하지만 그는 셍 피에레 교회의 목회자요 설교자로서 평생을 보냈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교리적 체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 설교하는 방법을 통해서 교회를 교회되게, 말씀을 말씀되게, 은혜들 은혜되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의 공헌은 성경에 대한 경외심을 우리에게 심어 준 것이다. 칼빈은 성경에 의지해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고, 성경의 충족과 권위를 확고히 믿고 고백했다. 그는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라는 데서 멈추었다. 또한 칼빈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 사상 또는 하나님 중심 사상이다. 칼빈의 &lt;기독교강요&gt; 초판본 속표지에는 이 책을 경건의 대전(Summa Pietatis)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칼빈은 신학과 신앙과 삶 모두를 하나님의 면전(Coram Deo)에서 살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의 공헌은 신학적 체계를 바로 잡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0%&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 size=2&gt;&lt;/FONT&gt;&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000000 size=2&gt;칼빈의 신학은 어거스틴 신학의 부활이지만 하나님 주권,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의 교리, 성화, 예정론 등은 칼빈주의 신학의 든든한 기초를 놓았다. 또한 칼빈은 장로교회의 정치 틀을 세웠지만 그마저도 성경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했다. 그리고 그는 시민사회에 관련된 정치제도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성경정치(Bibliocracy)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떤 정치 형태가 되었든지 국가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고 국가의 최우선적 의미는 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16세기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틀은 신학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등 어디든지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 이것을 다시 재발견한 사람들이 네덜란드의 흐룬 반 프린스터나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lt;BR&gt;&lt;BR&gt;칼빈 목사가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운 후 첫해 160여명의 학생들이 왔고 10년 후에는 1600여명의 학생들로 불어났다. 제네바 아카데미야말로 역사이래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아름다운 성경적 교육기관이었다. 이 제네바 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들이 각기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로마 가톨릭과 싸워서 이른바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세웠다. 낙스에 의해서 스코틀랜드에는 장로교회가 세워지고 영국에는 청교도이 만들어지고, 프랑스에는 위그노파(Hugnote)가 생기고, 네덜란드, 독일, 헝가리, 스위스 등은 이른바 개혁교회로 이름지어졌다. 제네바에 시작된 개혁운동은 1세기가 못 가서 유럽 각 나라에 개혁 교회가 세워지면서 독일에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 네덜란드의 벨직 신앙고백서(1563), 스위스의 제2헬베틱 고백서(1566), 네덜란드의 도르트 신경(16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8) 등이 발표되었다. &lt;BR&gt;&lt;BR&gt;네덜란드에서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교리에 반해서 1619년에 제네바 아카데미 출신의 요하네스 보겔만이 중심이 되어 이른바 칼빈주의 5대교리가 제정됐고 그 즈음에 로마 가톨릭이 개혁교회에 대한 반격과 박해가 점점 심해 갔다. 바로 그때 로마 가톨릭은 이그나시우스 로욜라를 앞장세워 이른바 예수회를 만들어 성경적인 기독교를 교묘하게 박해하면서 이른바 반동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때 프랑스 위그노파 성도들과 헝가리 개혁교회 성도들에게 모멸감과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때 쓴 욕설이 “너희 놈들은 칼빈주의자”였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개혁 교회들은 칼빈주의자들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lt;BR&gt;&lt;BR&gt;그후 로마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서 1620년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고, 1628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 성도들이 그 뒤를 따랐고, 1700년을 전후해서 독일 개혁교회, 프랑스 개혁교회 성도들도 미국으로 건너갔고, 맨 나중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성도들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장로교회를 세웠다. 18세기에 유럽에 불어닥친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18세기 19세기의 미국 교회도 유럽 교회처럼 자유주의 사상으로 쇠약해 버렸지만, 19세기에는 웨일즈의 부흥운동,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부흥운동 등의 영향은 미국을 크게 자극했고, 19세기 중엽을 전후해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성도들과 네덜란드 개혁교회 성도들, 헝가리 개혁교회 성도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미국의 장로교회는 새 힘을 얻고 부흥했다. 그 여파로 아시아 각 나라에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대거 파송되고 우상숭배와 거짓 종교에 빠져 있던 아시아에 복음이 들어왔다. 한국에도 1884년 이후에 미국 북장로교로부터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받았다. &lt;BR&gt;&lt;BR&gt;한국 교회의 성장을 종교 현상학적으로 다루거나 이른바 사회학적, 정치적,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다. 예컨대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샤머니즘이 있었다든지, 또는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었다거나 또 일본 제국주의자들로 말미암아 나라를 빼앗겼던 것 때문이라는 등의 설명이다. 그러나 샤머니즘은 한국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모든 나라들이 똑같고, 전쟁 경험이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것도 한국만이 아니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은 단순히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 현상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lt;BR&gt;&lt;BR&gt;한국 교회 성장은 바로 종교개혁의 정신 즉, 칼빈주의적 신학과 신앙의 토양 위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는 길선주, 김익두, 주기철, 손양원, 박형룡, 박윤선, 한상동 목사 같은 신학적, 신앙적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신학과 신앙, 설교와 글들은 한결같이 초기 선교사들이 전해 준 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이었고 특히 칼빈이 그토록 외쳤던 신학과 신앙의 내용을 강단을 통해서 구체화했다. 물론 우리에게도 이원론적 세계관 등 비판적인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교회 120여 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확실히 한국 장로 교회는 영혼 구원 뿐 아니라 사회를 개혁하고 제도를 개혁하고 민족 개화에 앞장섰던 것이 사실이다. &lt;BR&gt;&lt;BR&gt;오늘 우리 시대는 참으로 다원화된 시대이고 물량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이른바 기독교 이후 시대(Post-Christian era)에 살지만, 우리가 세계 앞에 내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울과 어거스틴과 칼빈을 이어온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성경만이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이다.&amp;nbsp;&lt;BR&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24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성경으로 돌아가자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
&lt;P&gt;&lt;/P&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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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ntry>
	    <title>서철원 교수 “미국교회 모방 그쳐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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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17:52Z</updated>
	    <published>2009-11-10T09:17:5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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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quot;tbody m-tcol-c&quot; id=tbody&gt;
&lt;DIV id=articleContents&gt;
&lt;H1 align=center&gt;&lt;FONT size=4&gt;서철원 교수 “미국교회 모방 그쳐야”&lt;/FONT&gt;&lt;/H1&gt;
&lt;H2 align=center&gt;&lt;FONT size=3&gt;한국교회 설교, 30년 뒤 살아남을지 회의적&lt;/FONT&gt;&lt;/H2&gt;
&lt;DIV&gt;
&lt;DIV class=floatRight id=clPhoto style=&quot;WIDTH: 200px&quot; name=&quot;clPhoto&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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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UL&gt;
&lt;LI&gt;&lt;IMG id=userImg533495 style=&quot;WIDTH: 200px&quot; 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christiantoday.co.kr/files/pd/pd_20080220010157_1_1.jpg&quot; 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533495)&quot;,200)' name=cafeuserimg&gt; 
&lt;LI id=dimg&gt;▲서철원 교수(한영신대)는 한국교회에 복음에 대한 선포가 끊기고 의식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김근영 기자 &lt;/LI&gt;&lt;/UL&gt;&lt;/DIV&gt;&lt;/DIV&gt;&lt;/DIV&gt;&lt;!--clPhoto end--&gt;
&lt;P style=&quot;TEXT-JUSTIFY: inter-word; LINE-HEIGHT: 1.5; TEXT-ALIGN: justify&quot;&gt;서철원 교수(한영신대, 前총신대 신대원)가 한국교회의 설교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가 끊겼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18일 오후 삼양교회당에서 열린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정기 세미나의 개회 설교에서 이같이 전했다. &lt;BR&gt;&lt;BR&gt;서 교수는 “지금의 한국교회는 설교 홍수시대, 그러나 어떻게 설교할지 몰라 당혹스러워 하는 시대”라며 “이런 식으로 설교할 때 30년 후에 한국교회가 살아남을지 회의가 많이 든다”고 밝혔다. &lt;BR&gt;&lt;BR&gt;서 교수는 특히 “한국 교회의 설교가 미국교회에 깊이 종속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그대로 따라가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교회의 설교 전반이 ‘적극적인 사고 방식’에 기초했음을 지적하며 “(한국교회가) 미국교회 방식대로 열심히 따라가며 안해 본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뭘 얻었는가”라고 반문했다. &lt;BR&gt;&lt;BR&gt;이어 그는 “조엘 오스틴의 ‘번영의 복음’은 부와 건강과 행복이 메시지의 전부”라며 “미국의 힘있고 매력있는 설교에도 역시 구원과 피 흘리신 부활로 인한 자녀됨의 감사가 사라졌다”며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선 복음이 선포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lt;BR&gt;&lt;BR&gt;서 교수는 초기 한국 교회의 시작이 기복 종교적인 특성이 강했음을 지적하며 한국교회가 여전히 이 전통과 같아져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보다는 오래 사는 법을 복음으로 삼게 됐다”며 “장로교회도 이 성공사업을 받아 잘 살아보려고 했다. 합동측도 타 교단에 뒤지지 않았다”며 “신학자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lt;BR&gt;&lt;BR&gt;서 교수는 교회의 의식화에 대해 강한 경계를 요청하며 기독교였지만 현재 이슬람국가로 전락해버린 터키를 예로 들었다. 서 교수는 “열렬한 기독교인들의 국가가 어떻게 회교도 국가로 전락했나. 의식화 때문이다”며 “교회에 가면 주교나 재단은 있어도 사도의 복음이 없고 사죄의 선포가 없었다”고 지적했다.&lt;BR&gt;&lt;BR&gt;이어 그는 “칼을 들고 코란을 받으라 하니 감격 없고 형식뿐인 교회에 어떻게 목숨을 내놓겠는가”라며 “그 이후로 터키와 서아시아는 전부 무슬림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lt;BR&gt;&lt;BR&gt;서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는 가정 소그룹 운동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서 교수는 “지금은 20명만 넘으면 갈려져 집으로 가는 소그룹운동, 가정교회로 열심히 변해가고 있다”며 “미국 교회가 해체될 벼랑에 서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lt;/P&gt;
&lt;P style=&quot;TEXT-JUSTIFY: inter-word; LINE-HEIGHT: 1.5;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柱-&lt;U&gt;잘되는 것을 배워와야 합니다.자유신학을 배워와서 교회를 분열시키고 성경의 무호성을 부인하며 무너져가는 &lt;/U&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JUSTIFY: inter-word; LINE-HEIGHT: 1.5; TEXT-ALIGN: justify&quot;&gt;&lt;U&gt;&lt;STRONG&gt;&amp;nbsp;&amp;nbsp;&amp;nbsp; 미국교회의&amp;nbsp;&amp;nbsp; 영적인 것을 잘못 배워와서 후배들을 양성함에 있어 잘못 되어진 자를 만들까 매우 염려 됩니다&lt;/STRONG&gt;.扈&lt;/U&gt;&lt;/P&gt;&lt;!-- &lt;P style=&quot;margin-top:10px;padding-top:10px; font-size:13px; color:#0066cc&quot;&gt;※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lt;/P&gt;--&gt;
&lt;P id=reporter&gt;&lt;SPAN id=my_name&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gt;김근영 기자&lt;/SPAN&gt; &lt;A href=&quot;mailto:gykim@chtoday.co.kr&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gykim@chtoday.co.kr&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lt;!-- end clix_content --&gt;&lt;!-- 스크랩 출처 --&gt;&lt;!-- 추가 --&gt;&lt;!-- 이전 첨부파일 영역 --&gt;&lt;!-- 이전 첨부파일 영역 end --&gt;&lt;!-- 새로운 첨부파일 영역 --&gt;&lt;/DIV&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244&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미국교회 모방 그쳐야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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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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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16:07Z</updated>
	    <published>2009-11-10T09:16: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lt;/STRONG&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이 상 규 교수(고신대학교)&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오늘 이 강연의 목적은 종교개혁이 무엇인가, 혹은 종교개혁의 신학적인 성취가 무엇인가 하는 그런 종교개혁의 본질을 새겨보자는 의도보다는 종교개혁이라는 눈으로 한국교회를 보자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종교개혁을 재해석해 보자는 의미도 있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한국교회를 종교개혁 정신으로조망해 보고자 한다. 물론 16세기 상황을 오늘의 한국교회 상황에서 평면적으로 비교하고, 대비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 개혁’(the Reformation)의 동기와 정신이 교회 개혁과 교회 건설이라는 점에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의도를 되새겨 볼 수 있다고 본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2.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흔히 교회의 변질 혹은 교회의 부패는 4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 이후의 기독교를 그 이전과구별하여 ‘콘스탄티적 기독교’(Constantinian Christianity)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재세례파는 313년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을 교회의 변질과 국가권력과의 야합의 분기점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의 개혁의 이념은 ‘복귀’(restitutio)였고, 그 복귀란 313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칼빈주의 역사신학자였던 윌리엄 커닝햄은 그의「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 제1권 7장에서 이미 2세기에 성경적 교회관의 변질을 보여주는 조짐이 나타났다고 말하여 그 조짐으로 고위성직계급의 출현 등 3가지를 말한 바 있다. 교회역사는 흑인 영가의 가사처럼, 부흥과 쇠퇴, 개혁과속화의 순환을 경험하였고, 교회사는 그 영욕의 자취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일반적으로 루터교 학자들은 루터가 아니었다면 종교개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여 개혁운동에서루터의 주도적인 영향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루터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개혁은 불가피했다. 그 만큼 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회는 그 본래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부패와 타락이 심각했던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가 16세기 개혁이 불가피했다고 말할 때 교회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다양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교회의 부패였다. 교회가 부패했다는 말은 교회지도자들이 썩었다는 뜻이고,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직자들이 부패했다는 뜻이다. 물론 중세시대의 교리적 오류니 탈선, 제도적인 문제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성직자들을비윤리를 정당화 하는‘겸직제도’(pluralism)나 ‘부재직임제’(absenteeism), 성직자들의 취첩을 묵인하게해 주었던 세금제도(Concubinage fee)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제도’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제도의 개선이 모든 문제의 해결일 수 없다. 우리가 1970년대 이후 독제정권 하에서 제도나 체제와의 싸움에서 경험했지만 어떤 점에서 제도와의 싸움에는 한계가 있다. 보다 근원적인것이 인간본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성직자들이 타락했다면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제도 또한불의 할 수밖에 없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점을 잘 해명한 분이 「현대, 우상, 이데올로기」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화란의 하우츠바르트(B. Goudzwaard)이다. 그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이아니라, 그런 구조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서 흘러나온다.“고 적절하게 지적했다. 이렇게 볼 때 ‘교회의부패’는 근본적으로는 교회 지도자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직자들의 부패였다.성직자들의 부패에 대해서는 여러 실 예가 있지만 몇 가지 경우만 소개하고자 한다. 교황 보니페이스8세(Boniface VIII, 1294-1303)는 1300년 2월 22일 새로운 세기를 기념한다는 이름으로 소위 희년을선포하고, 교황 칙령을 통해 “이 희년동안에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죄를 아무런 보류도 없이 사해준다”고 선언하였던 사람인데,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의 교황 관저에는48개의 루비, 72개의 사파이어, 45개의 에머랄드, 66개의 커다란 진주들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 돈 만드는 천재로 알려진 요한 22세(1316-1334)는 각종의 징세제도를 창안하여 교회 질서를 극도로 문란시켰고,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했다. 종교개혁 직전의 교황이었던 알렉산더 6세(1492-1503)의타락은 그 이전의 교황보다 더 심각했다. 그는 교회의 관행과 규율을 무시하고 극도의 타락과 방종한생을 살았는데, 교황이 되기 전에도 몇 사람의 정부와 3남 1녀를 두고 있었으나, 교황이 된 후에 7명의자녀를 더 얻었다.1447-1517년 어간의 교황 중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고, 15세기 말 콘스탄츠교구의 경우 매년 1,500명의 사생아가 출산했다. 스코틀랜드의 성(性) MaTaggart는 ‘사제의 아들’(son of the priest)이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뜻이고, MacNabb이라는 성은 ‘수도원장의 아들’(son of the abbot)이란 뜻에서 기원했다. 독일의 여러도시에는 소위 여성의 집(Frauenhausen)이라는 환락가가 있었고, 여성의 주 고객은 성직자들과 고위관리였다. 교회의 윤리적 부패는 심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16세기에는 반(反)성직주의 사상이 심화되고있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중세말기에 나온 유명한 경구“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Vita clerici est evangeliumlaice)는 말은 당시 성직자들의 도덕적 상태를 암시해 준다.종교개혁기 초기 교황이었던 아드리아누스 6세(Adrianus VI, 1522-1523)는 신성로마제국의 뉘른베르크국회(1522-23)에 파견한 교황사절 프란체스코 치에레가띠 추기경에게 보낸 훈령에서 “루터 이단으로 교회가 받는 어려움의 책임은 성직자들, 특히 교황청과 그 성직자들에게 있다.”고 시인했다. 이 훈령에서는 “교회 안에는 가증할만한 폐습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병폐들은 교황을 포함하여 성직자들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각자는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중세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직교육의 부제와 성직자의 양산이었다. 이것이 중세교회가 부패할 수밖에 없었던 인적 요인이었다. 티르나겔( N. S. Tiernagel)에 의하면 16세기 초 유럽 인구 중 85%가 농민, 노동자였고, 10%가 통치 그룹 혹은 귀족이었고, 성직자가 5%에 달했다고 한다. 1500년 당시 세계인구를 약 5억으로 추산하는데, 유럽의 인구를 1억으로 본다면 성직자 수는 무려 5백만 명에 달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독일 지방 쾰른(Cologne)만 해도 무려 5,000명의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있었다. 전 독일에 수도사들과수녀들의 숫자는 무려 1백 50만 명에 달했다. 어떤 지역은 인구 30명당 1명의 성직자가 있었다고 한다.성직자의 과대한 배출은 성직자의 지적, 영적, 도덕적 수준을 저하시켰고, 이들을 상호 경쟁적으로 만들었을 뿐 만 아니라, 성직자의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성직자의 양산은 성직자들 간의 경제적불균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성직자 수의 급증은 성직자들의 혜택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호경쟁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어떤 성직자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향유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으나, 다른 한편의 성직자들의 빈곤과 가난은 극에 달했다. 개신교의 경우도 비슷했다. 1529년 비텐베르크시의 목사들은 200굴덴(금화,Gulden)를 받다가 나중에는 300굴덴과 50부셀의 곡물을 받았으나 시골의 목사는 20굴덴에 지나지 않아 도시 목사의 10분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축을 키웠다고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독일 일부지방에서는 성직자들이 극빈상태에 떨어져 중세시대처럼 성직자 거지들이 프로테스탄트교회 안에도 생겨났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2) 가난한 성직자들은 세속 직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죽 제조업, 직조, 제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업, 버터와 치즈 행상을 하기도 했다.오늘 한국교회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와 문제의 소지도 따지고 보면 성직교육의 불균형과 과다한 성직자의 배출이라고 할 수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3) 현재한국의 성직자 수는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남함의 인구를 4천5백만 명으로 볼 때 인구 450명 당 1명꼴의 성직자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전체 성직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의 10%가 임지 없는 ‘비활동 인력’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은 스펄존도 예상 못했던 제3의 소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합동교단의 경우, 임지 없는 목회자는 약 1,5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 3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고신의 경우 전체목회자의 10%에 해당하는 160여명의 목회자들이 새로운 소명을 기다리고 있다. 성직자의 과도한 배출은 분별없는 개척교회의 난립과 교회분열, 그리고 성직자간의 과도한 경쟁과 대립의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직자의 양산은 한국교회의 또 다른 문제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이제는 신학도들이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심각한 경쟁자가 되었다. 성직자간의 빈부의 격차 또한 심각하다.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거룩한 소명보다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종교 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교회개척이 섭생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3. 교회개혁으로서의 종교개혁&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6세기에 일어난 교회개혁운동을 우리는 흔히 ‘종교개혁’이라고 하지만 ‘교회개혁’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개혁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교회였고, 하나님의 참된 교회건설은 그들의 일관된 개혁 정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더 리포메이션(TheReformation)을 ‘종교개혁’(宗敎改革)이라고 번역한 일본의 용례를 따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교회사를 가르쳤던 호주출신 선교사 왕길지(G. Engel)는 The Reformation을 ‘교회갱정사’(敎會更正新史)로 번역했었다.종교개혁은 단순히 교리적인 개혁운동(Reform)만이 아니라 영적부흥(쇄신)운동(Revival)의 성격이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4) 교리적인 개혁이 영적 쇄신운동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이념화 혹은 이데올로기화되기 쉽고, 반대로 영적쇄신운동이 건전한 교리적 기초를 지니지 못하면 신비주의적 혹은 주관주의로전략할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교회개혁은 교리적 개혁과 영적 부흥의 성격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떻든 개혁자들의 중요한 관심은 하나님의 교회였고, 그들의 개혁운동은 한마디로 참된 ‘교회건설’이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 교회건설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설교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개혁자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설교의 회복이었고, 이것은 새로운 교회관의 핵심이었다. 말하자면 개혁자들의 교회갱신의 핵심을 말씀의 권위회복에 두었고5) 설교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했다. 즉 설교는 교회개혁과 교회건설의 중요한 도구였다. 청교도였던 존 코튼(John Cotton, 1584-1652)도 동일했다. 코튼은 그의「그리스도의 왕국에 관하여」(De Regno Christi)에서 “영국교회는 교회의 표지를 회복함으로서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설교를 교회개혁의 수단으로 간주했다.6) 개혁자들에게는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였기에 이를 ‘성경중심’(sola scriptura)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성경의 바른 설교를통해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으므로 개혁자들은 ‘말씀의 신실된 전파’를 참된 교회의 표지로 인식했다.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런 점에서 켐브릿지대학의 피터 뉴만 브룩스(Peter Newman Brooks)는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목회적 성경을 띤 운동이었다.”고 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칼빈은 신학자이기에 앞서 설교자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경의 권위는 중요한 문제였고, 성경외의 권위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즉 성경의 유일한 권위를 강조하여 성경은 하나님 인식과 신학의 유일한 원천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칼빈이 루터보다 더 철저했다. 이점은 전통(tradition)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견해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루터는 “성경이 금하지 않는 한 전통은 구속력을 지닌다”고 보았으나, 칼빈은 “성경이 명하지 않는 한 전통은 구속력을 지니지 못 한다”고 보아 전통을 폐기했다. 그 결과루터교회에는 여전히 로마교적 잔재가 남아 있으나 개혁교회에는 로마교적 잔재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있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루터교회보다 더 철저한 개혁을 이루었고, 바로 이런 점에서 베인톤은 “개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주의는 루터주의를 다시 개혁했다”고 말하고 “개혁(Reformed)이란 종교개혁의 개혁을 의미한다.”고 말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7) 어떻든 개혁자들은 성경을 강조하였고, 진실된 말씀의 증거를 참된 교회의 중요한 표식으로 삼았다.오늘날 남아 있는 칼빈의 설교목록은 약 2,050편으로 남아 있는데, 그 중에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있는 것이 구약이 571편, 신약이 397편이다.8).칼빈은 참된 교회의 표식(signum)으로 말씀과 성례를 말했는데, 이 두 가지를 참된 교회의 표식으로말했다는 점에는 루터란과 다르지 않다. 루터는 하나님의 올바른 선포만 강조했지만, 칼빈은 말씀의 바른 선포만이 아니라 청중도 올바로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칼빈은 루터란과는 달리바른 말씀의 선포를 위해 청중은 그것이 바른 선포가 되도록 성경강해와 설교를 경청하고 그것이 진정한 말씀의 선포가 되도록 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낙스도 이런 칼빈의 입장을 따랐다. 청중은 설교의 바른 선포를 위해 파수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2) 하나님 중심사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종교개혁은 오도되고 변질된 신학과 교회로부터 성경 본래의 기독교로의 회복운동이었다. 그 근거와그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었다. 그 동안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대신했으나 개혁자들은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임을 천명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중심’사상이다. 개혁주의자들은 교황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하나님 중심’이란 말을 했다. 이 말은 인간이 중심일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16세기 상황에서 보다 분명히 말하면 교황이 중심일 수 없다는 뜻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교황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사죄와 은혜의 수여자라는 당시 교회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바로 하나님 중심사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고, 인간이 영광 받아야 할 대상 일 수없다. 말하자면 성경의 유일한 그리고 최종권위의 확인과 함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 교회개혁 운동이 가져온 신학적 성취이다.구원관에 있어서 자의적 혹은 이교적, 율법적, 그리고 보상적 이해나 주장은 교회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윌리엄 커닝헴(William Cunningham)에 의하면 이미 2세기를 거쳐 가면서 고위성직 계급이 출현하면서, 그리고 성만찬에 대한 잘못한 견해가 대두됨으로서 구원관의 변질을 보여주는 조짐이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행위로 얻어지는 공로의 결과라는 오도되고 변질된 구원관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왜곡시켰고,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고위 성직 계급의 출현은 교회를 급속도로 인간 중심의 계급공동체로 변질시키고 전락시켰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인간의 권위, 그리고 교회구조의 계급화가 급속히 나타나고 있다. 종교적 권위주의가 한국교회의 커다란 문제점이 되고 있다. 교회 변질의 시작은 직분의 계급화였고, 인간중심의 고위성직 개념의 출현이었다. 즉 2세기를 거쳐 가면서 2직분론은 급속히 힘을 잃고, 3직분론이 대두되면서 교회직분의 계급화 현상이 대두했다. 커닝햄이 말했듯이 본래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인간중심의 다스림의직분으로 오인되면서 교회는 급속히 계급 구조로 변질되었다. 교회 구조는 권력구조로 개편되었고, 성직자들은 이권에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교회와 교회 구조를 세속화시켰고, 나그네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안주 공동체로 변질되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교회의 부패와 타락 혹은 세속화를 가져온 두 가지 근본적 원인은 첫째는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의 권력과의 야합, 곧 권력에 대한 지나친 야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이었다. 오늘 한국에도 노회, 총회가 지나치게 권력구조로 화해졌고, 세속 정치계와 방불할 정도의 권력 구조가 엽관제도화(spoil system)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노회장, 총회장이라 하여 ‘장’이라는 교회 직분의 ‘수위성’을말하지만 영어에서는 그냥 중재하는 사람(moderator)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교회 조직의 불의, 교회문제를 처리하는 치리회의 불의하고 부당한 처리가 우리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3) 가난해 질 수 있는 교회, 부와 물량주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중세교회의 두 가지 큰 문제는 권력에 대한 야망과 부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것이 교회를 부패하게만들었던 가장 주된 요인이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중세교회는물욕 때문에 영적 눈이 어두워졌다. 교회의 속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도원운동 일어났으나 수도원이부를 축척하게 되자 다시 부패하였고,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해 수도원은 그 본래적인 기강을 상실하였다. 부는 영성을 파괴하였고, 나그네 공동체를 안주공동체로 전락시켰다. 루이스 스피츠에 의하면 16세기 유럽 토지의 3분지 1은 교회의 소유이거나 교회의 통제 하에 있었다고 한다. 즉 교회는 많은 토지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의 헌금제도로 수입을 올렸고, 돈과 권력 때문에 8살, 11살짜리 아이가 추기경이 되기도 했다. 한사람이 4개 도시의 대주교직을 독점하기도 했다. 소위 ‘겸직제도’와 ‘부재직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제’(absenteeism)가 정당시되고 합법화되어 성직자들의 사치와 탐욕이 가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양심’이라고 불린 성 버나드(St. Bernard)는 교회나 성직자가 부를 통제할 신앙적 자제력이 없으면차라리 가난해 지는 것이 낮다고 말하고 당시 교회는 그런 영적 통제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교회는 가난해야한다”고 말했다. 루터는 부(소유)는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핍절된 이웃을 위해 분배되지 않는 제물은 ‘소유의 본질’(nature of possession)을 상실한 것들로 규정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오늘의 한국교회는 이제 중산층이상의 교회가 되었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종교 귀족들이 생겨났다고말하기도 한다. 일부의 성직자들은 정도 이상의 부를 향유하고 국민의 10% 인구만이 즐길 수 있는 골프를 치고 외제자동차도 타고 다니는 이도 있다. 교회 재산은 교회분규의 핵이 되고 있다. 성직자는 가난할 수 있어야 하고 가난한 삶으로 얻을 수 있는 영적 유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르조아란 말은원래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특권층이란 말이다. 오늘 우리가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 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자기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치게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공산주의를 비판해 왔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기독교적인 것처럼 오해하지만, 이제 한국교회가 싸워야 할대상은 우리시대의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교회에까지 들어와 있고 그 가치관에 깊숙히 빠져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오늘의 한국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부를 통제할 영적 능력을 지니든지 아니면 소유의 본질을 상실할위험을 억제해 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잠언 30장 서두의 아굴의 기도가 바로 이런 정신을 보여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4) 성속 이원론의 극복&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종교개혁은 기독교적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로운 빛을 던져 주었다. 성속(聖俗)의 이원론적 구분이나 성직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길이라는 잘못된 가치를 바로잡아 주었다. 루터는 자신이 수도원의 맹세를 통해 눈물겹도록 감동하였다고 했지만 후일 그는 �수도원 맹세에 관하여�(De votismonaticis)라는 글을 통해 수도원적인 삶만이 고상하고 보다 거룩하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이라는 주장을반박하고, 사람이 무슨 일에 종사하던 다 소중한 것임을 석명함으로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조망하였다.이 점이 그의 직업에서의 ‘소명론’(召命論)인데,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그에 의하면 모든 직업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고, 아래로 이웃을 섬기는 행위로 봄으로서 모든 직업은 다 동등하게 의미를 지닌다. 칼빈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주장은 우리 삶의 의미를 새롭게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거룩한 성화의 삶은 세속으로부터 격리된 수도원에서의 삶이 아니다. 어쩌면 세속화될 수 있는 위험마저 있지만 이 세상 속에서 악과 불의와 맞서 믿음의 선한 싸움(아곤)을 하는 것이 진정한 거룩임을 일깨워 주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 빛이요, 소금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은 우리가 이 세상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전재로 한 말이었다. 종교개혁은 교리적 개혁(Reform)만이 아니라신자의 삶 전체에 의미를 주는 영적 부흥(Revival)의 성격이 있다. 실로 16세기 개혁은 교회와 신자의삶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예배의식이나 제도는 신학을 반영했으므로 종교개혁 이후 예배당 양식이달라졌고, 예배 의식이 달라졌다. 의식 중심의 성찬대가 성당 중심부에 있었으나 개혁교회 예배당에서는강단이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고, 성찬대는 그 밑에 두게 되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말하자면 의식 중심의 중세예배는 말씀중심의 예배로 개편된 것이다. ‘그 개혁’이란 바로 교회의 개혁이었고, 이 개혁은 교회적 삶과 신자의 생활 전반에 있어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5) 사회개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종교개혁은 교회의 신학의 갱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포함한 인간의 삶의 전 영역에 대한 개혁운동으로확장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루터보다 칼빈의 기여가 컸다. 사실 루터는 근본적으로 보수주의자였고기존질서(정치권력)에 대해 평행적 관계를 지녔지만 칼빈은 이 단계에서 진일보하였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루터가 그리스도중심적이라고 한다면 칼빈은 하나님 중심주의(Theocentric)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신관은 인간관 사회관 등 신학전반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트릴취(Emest Troeltsch, 1865-1923)는 “..... (칼빈주의자들은) 어느 곳에서나 사회전체의 삶을 계획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과 일종의 ‘기독교 사회주의’에대한 시도가 있었다.... 칼빈주의는 교회가 삶의 모든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고,루터교처럼 종교적인 요소와 비종교적인 요소를 분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로마 천주교처럼 몇몇 기관을 세워 두고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트릴취의 말은 좀 지나친 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 없지 않지만 칼빈주의자들은 사회를 성속 이원론에 따라 분리하여 이분화(Dychotomy)하지도 않았고사회와 그 제도를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모든 제도, 조직, 직업, 직위 등 질서를 설정하였으며, 이 모든 조직과 제도는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그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예속된 수종자(servants)로 표현된다. 정리해서 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하면 사회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의 근거와 가능성을 두 가지 점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첫째로&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성(聖), 속(俗)의 이원론적 구분은 개혁주의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성과 속의 이원론적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께 속한 영역과세속적인 영역(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는 영역)으로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사회에 대해서도 기독교적 측면에서 조망해 보아야 한다. 성, 속 이원론은 영역분리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두 영역에서 각기 다른 방식의 삶과 행동양식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종교행위를 단순히 주일예배와이와 관련된 행위로만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게 하며 반대로 소위 세속적 영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없게 한다. 이 같은 형태는 한국적 컨텍스트로 말하면 무교(Shamanism)적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둘째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사회, 사회구조는 절대불변의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세적 세계관은 우주와 사회를 위계체계적인 존재의 사슬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사회조직은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불변의 구조로 보지 않았다. 사회를 절대불변의 구조로 보지 않는다는 말은 사회는 타락했고, 타락할 수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회란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도 단순한 개인의 집단이 아니라 일정한 틀의 세계관 혹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또 사회란 다수의 개인들의집합만이 아니라 ‘조직’ 혹은 ‘구조’라는 성격이 더해져 있다. 그래서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뿐만아니라 조직과 구조에서 오는 불의나 모순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치조직이나 세금제도, 임금제도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악하다’고 말할 때 인간의 집단인 ‘사회는 악하다’라고 단순히 말할 정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그 이상으로 사회는 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도덕적으로 어떤 때는 개개인의 악들이 다 합해진 것보다 더 사회는 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한국교회는 개혁주의를 말하면서도 사실은 근본주의적 성향이 짙었다. 사회현실에 대해 무관심했고,문화적 소명에 대해 바로 인식하지 못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4. 한국교회의 문제: 성장지상주의의 문제&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그 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으나 우리에게는 개혁되어야 할 점들이 적지 않다. 신앙적 혹은 교회적 삶의 제 영역 가운데 어느 한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것에 절대적 가치를 두게 되면 다른 측면들은 경시되거나 무시될 수밖에없다. 절대적 가치를 두었던 그 한 측면이 바로 수적인 ‘성장’이었다. 그래서 성장 아닌 다른 신앙적 혹은 교회적 가치들은 경시되거나 무시되어 왔다. 그 무시되었던 한 가지가 바로 건실한 신학과 윤리적측면들이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개혁자들의 주장처럼 신학은 교회를 이끌어 가는 터이자 축이었다. 건실한 신학이 없거나, 신학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된다. 한국교회는 신학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경시했다. 또 ‘신학 없는 교회’ 혹은 ‘교회 없는 신학’을 추구하는 양극단이 있어 왔다. 신학 없는 교회란 건실한 신학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인데, 이럴 경우 교회는 목회자 개인의 주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럴 경우 교회가 주관주의에 빠지거나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더 극단으로 가면 기독교란 이름의 비기독교가 될 위험까지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런 교회들은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사를 무시한다. 교회성장 만 이루면 되지 신학이 필요 없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또 ‘교회 없는 신학’이란 교회를 고려하지 않는 신학운동을 의미하는데, 심지어는 칼 바르트(K.Barth)나 폴 틸리히(P. Tillich) 조차도 신학은 &quot;교회를 위한 학문&quot;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를 고려하지 않는다. 교회 건설의 의지 없는 신학은 철학화 되거나 사변화되기 쉽고교회와 무관한 소위 ‘학문추구’일 위험이 있다. 이런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파괴한다. 오늘 한국교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도 이런 유형의 신학이다. 신학적인 숙 또한 한국교회의 문제로 남아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아직까지도 성전, 제단, 제물 등과 같은 용어들이 분별없이 쓰여 지고 있고,심지어 일천번제(一天燔祭)라는 기상천외한 헌금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니 우리의 일천한 신학의식을 반영하고 있다.지도자들의 윤리의식이 문제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의식이다. 교회가 부패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교회지도자들이 부패했다는 말이고 이를 더 분명하게 말하면 성직자들이 부패했다는 뜻이다. 중세시대의 부패는 다름 아닌 성직자들의 부패였다. 그 부패는 돈과 권력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성직자가 물질과권력으로부터 자유하기만 하면 굉장한 영적 유익을 누릴 수 있다. 성직자가 돈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기만 하면, 실로 엄청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이 땅에서도 존경받게 될 것이다. 신앙적 삶은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지만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거나 경시하지는 않는다. 교회 지도자나 성직자나 장로들은얼마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가를 자문해야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증오하는 등 심리적인 것은그만두고라도 거짓말을 하고, 음해하고, 불의를 행하고, 불법을 자행하고, 부당한 이권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보다는 자기의 사욕을 쫓았던가?요즘 한국교회에는 시무하던 교회를 사임하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있는데, 것이 그것이다.부산의 어떤 교회에서는 시무하던 목사가 자신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사임 압력을 받자 ‘조용한 사임’ 조건으로 상당한 액수의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수억에 가까운 고액이었으나 오직했으면 그것을 지불하더라도 사임을 요구했을까? ‘상식이 통하는 교계’를 위해 우선 목사가 자기를 비울 수 있어야한다. 위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일부의 경우이고, 나름대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변명이 가능하겠지만 그냥 일상적 현실로 간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교회 지도자에게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대승적 처신이 요구된다. 성직자에게는, 불교식 용어를 빌리면, 진정한출가(出家)정신이 요긴한 때가 되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한국교회를 개혁하는 최선의 길은 목사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 세상 앞에서 무시되거나 조롱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가 도덕적, 윤리적 모범을 보여야하고, 법을 지키고, 정도를 가고, 그리고 의로운 일은 솔선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예컨대, 교회 지도자들이 낭비를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고 설교하면 교회내의 그 분별없는 많은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빈곤에 가까운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고, 가난과 부의 극단적 소유의 불균형을 제도적으로 제어하려고 한 바 있다. 우리 시대의 사치와 낭비 풍조에 대한 최선의 대안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또 교회나 교회 기관에 관여하는 지도자들이 공익을 추구하고 사리를 제할 수 있다면 그 파급효과는상당할 것이다. 교회지도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실천하고자 하는소박한 의지일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그것이 성직자들의 권위의 기초다. 그 외의 어떤 것도 말씀의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다. 호화로운 가운이나 박사후드가 설교자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다.결론을 대신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부패는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혹은 초기교회의 생활방식이었던 ‘나그네성(性)’ 혹은 ‘나그네 의식’의 상실이었다. 중세교회의 문제란 바로 나그네적 공동체여야 할교회가 안주 집단으로 변질된 결과였다. 교회가 이 역사현실 속에 안주하려고 할 때 세속 권력과 야합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신앙적 가치를 무시하게 된다. 한 때 막스주의자였던 폴란드 출신의 망명철학자레젝 콜라콥스키는 오늘의 서구사회의 세속화는 기독교가 너무 쉽게 그 고유한 가치를 포기해 버린 결과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나그네의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속에 새겨준 삶의 방식이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것이 히브리인들의 역사였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적인 이민과 이동을 통해 이 땅에서는나그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줌으로써 보다 나은 본향을 사모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 세상이 우리의영원한 삶의 터전이라고 믿고 살아갈 때, 즉 ‘안주의식’은 개혁을 불가능하게 한다. 히브리서 기자(11:13-16)는 열조들, 구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소개한 후 ‘저들은 더 낳은 본향을 사모하였다’라고하였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는 나그네라는 믿음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영적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고,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자성(自省)운동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종교개혁은 16세기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데오도 베자가 말했듯이 “교회는 개혁되었으므로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런 정신이 오늘 한국교회로 하여금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한국교회의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돋움&quot;&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168&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종교개혁과 한국교회 개혁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lt;/SPAN&gt;
&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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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 개혁과 한국교회의 문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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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15:18Z</updated>
	    <published>2009-11-10T09:15: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4.4pt; MARGIN: 0px; COLOR: #282828;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COLOR: #282828; LINE-HEIGHT: 34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교회사를 통해 본&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COLOR: #000000; LINE-HEIGHT: 34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COLOR: #282828; LINE-HEIGHT: 34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교회 개혁과&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COLOR: #000000; LINE-HEIGHT: 34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 &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한국&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4pt; COLOR: #282828; LINE-HEIGHT: 34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교회의 &lt;/SPAN&gt;문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4pt;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 align=right&gt;&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righ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Th.D)&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1. 시작하면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교회개혁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고 범람하는 물결을 이루고 있다.‘교회개혁’을 이루려는 단체도 조직되었고,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교회를 항의 방문하거나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한국교회에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은 한국교회에는 뭔가 개혁되어야 할 것이 많고,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이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개혁을 말할 때 현실적인 문제에 앞서 보다 근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이런 점에서 교회사적 측면에서 교회 개혁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교회 개혁의 문제를 역사적 안목으로 살펴보고, 이를 기초로 한국교회의 문제와 쇄신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2. 교회사에서 본 교회 개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서양 전통에서 교회가 본래적 교회로부터 이탈했고 따라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 구체적인 최초의 경우는 사도이후 첫 기독교 문서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서신에서부터 나타난다. 96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이 서신에서 비록 클렌멘트는 오늘 우리가 말하는 식의‘개혁’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본래적인 사랑과 순종, 겸손이 없는 교회 분규에 대해 비판하면서 저들을 질책하고 그런 삶으로부터 돌아설 것, 곧 쇄신을 요구했다. 클렌멘트는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고, 교만, 자만, 탐욕, 투쟁, 그리고 분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손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레멘트는 평화와 화목을 위해 목회자들이나 장로들을 존중하고 복종할 것을 권하고, 목회자의 권위와 권한을 강조했다. 이렇게 본다면 교회쇄신의 요구는 교회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임을 알 수 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특히, 2세기 중반(156-172) 몬타누스(Montanus)는 당시 교회의 속화와 타락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그의 교회쇄신에의 의지는 이단운동으로 발전하지만 영지주의자들이나 마르키온파 등과 같은 초기 이단들과 달랐다. 몬타누스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다. 2세기 당시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가 식어지고 교회 안에 안일과 나태가 구체화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보혜사 성령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성격상 교회개혁적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현실 교회의 나태와 안일, 그리고 속화 현상에 대한 그의 쇄신의 의지가 오도된 방향으로 전개되어 드디어는 거짓 계시운동(僞經運動)으로 발전하였지만 그는 2세기 당시 교회의 속화현상을 인식했던 인물이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수도(원) 운동(제도) 또한 당시 교회의 타락과 속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물론 수도원 운동은 자연과 은총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이원론이 이념적 기초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교회의 속화와 타락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안토니우스(Anthonius, c.250-c.356)로 시작되는데, 그는 270년 경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명상에 전념하기 위해 은둔의 길을 갔는데 이것이 수도운동의 기원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집트의 금욕주의 운동은 시리아와 소아시아 그리고 서부 유럽에까지 퍼져나갔고, 소아시아에서는 바질(Basil), 나시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anzus), 닛사의 그레고리 등에 의해 수용되었다. 이 운동은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295-373)에 의해 서방에 소개되었는데, 마틴(Martin of Tours, c. 316-397), 히에로니우스(Hieronius), 제롬(Jerom), 암브로스(Ambrose), 어거스틴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후에는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542?)에 의해 서방교회 수도원운동의 기본 토대가 형성된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이런 수도원 운동의 전개의 현실적 동기였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교회가 세속화되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금욕생활이 강조되었고, 교회가 조직화되고 규율화 됨에 따라 새로운 제도의 신앙생활에 대한 욕구가 수도원운동으로 확산되어 간 것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일반적으로 313년 기독교 공인을 교회가 본래적 교회 혹은 사도적 교회로부터 이탈한 뚜렷한 시기로 보고 있다. 312년 밀비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콘스탄틴은 313년 1월 {밀란칙령}(Edict of Milan)을 발표함으로서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했다. 이 당시 제국의 기독교 인구는 약 10% 정도로 파악되는데,&lt;/SPAN&gt;&lt;/FONT&gt;&lt;/SPAN&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Norman H. Baynes, Constantine the Great and the Christian Church (Oxford: Oxford Univ. Press, 1931), 4.&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기독교 공인 이후 기독교회의 신앙과 삶은 현격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제 박해는 종식되었고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보호를 받았고 차츰 차츰 권력의 비호까지 받게 되었다. 예배를 위해서 교회당이 건축되었고, 감독과 설교자들은 국가로부터 급료를 받았고, 교직자의 납세는 면제되었고(319), 주일(主日)은 안식하는 날로 지정되어 그 준수가 의무화 되었다(321). 380년대를 경과해 가면서 기독교는 제국의 국교(國敎)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고난의 길이었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앙적 용단을 필요로 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영광과 지위와 명예를 얻는 길이었다. 탄압받던 기독교가 보호받는 기독교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교회는 차츰차츰 신약 교회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하였고, 기독교회 안에는 이교적 풍습과 미신, 신비주의적 의식과 거짓된 경건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고난과 희행, 겸손과 봉사, 혹은 성결과 거룩과 같은 신령한 가치는 그 의미를 상실하였고, 현세적 부와 권력을 지향하는 인간적 탐욕이 교회를 지배하였다. 이런 점들은 이전의 교회와 구별되는 뚜렷한 변화였고, 차츰 교회의 제도화와 교권체제가 확립되어 갔다. 그래서 4세기 이후의 교회를 이전 시기와 구별하여 ‘콘스탄틴적 기독교’(Constantinian Christianity)라고 부른다. 그래서 4세가 초를 거쳐 가면서 교회는 본래적 교회와 다른 변질된 교회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점을 달리 말하면 4세기 이전의 교회를 참된 교회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혁을 말하는 이들은 4세기 이전의 기독교회, 혹은 사도적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로 인식하게 된다. 특히 재세례파는 4세기 이후의 교회 곧, 중세교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보아 그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는 역사의 비연속성(discontinuity)을 주장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개혁의 목표는 313년 이전으로 돌아가는‘복귀’(restitution)였다. 재세례파가 삼위일체론이나 예정론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그런 교리들이 313년 기독교의 공인 이후 제정된 교리라는 점 때문이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흔히 기독교의 공인이나 국교화 이후의 기독교회를 본래적 교회로부터 이탈한 변질되고 타락한 교회로 말하지만, 윌리엄 커닝헴은 교회의 변질은 이미 2세기 초부터 있어왔다고 지적한다. 윌리엄 커닝헴(William Cunningham)은 그의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제1권 7장에서 교회의 부패는 이미 2세기부터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그 징후로 3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첫째는 고위성직(Prelacy)의 발생과 발전, 둘째는 은혜의 교리에 대한 모호하고도 잘못된 견해의 대두, 셋째는 덕(Virtue)과 성만찬의 효과에 대한 오도되고 과장된 개념의 대두가 그것이다&lt;/SPAN&gt;&lt;/FON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William Cunningham, Historical Thology, Vol. 1, 202)&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말하자면 2세기 초부터 보여주는 인간중심주의가 교회의 변질과 타락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은 2세기부터 서서히 나타나는 감독정치 제도와 괘를 같이 한다. 독일의 교회회사가 슈미트(K. D. schmidt)는 95년경부터 카톨릭교회가 시작되고 200년경에는 상당한 정도의 확고한 조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lt;/SPAN&gt;&lt;/FON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K. D. Schmidt, Kirchengeschichte, s. 73.)&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그도 1세기 말에서부터 교회의 제도화가 시작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상의 점을 고려해 볼 때 교회의 속화나 타락은 중세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태동한 이후부터 줄 곧 제기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이지만,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Divine institution, human constitution)이기 때문에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않고 완전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에는 “영적인 비상(飛上)과 부흥이 있었는가 하면, 쇠퇴와 퇴락(頹落)의 날들도 없지 않았다. 마치 산등선을 넘으면 계곡이 있고, 계곡을 지나면 다시 산등선이 나오듯이 교회의 역사도 개혁과 타락, 부흥과 쇠퇴 등 갱정(更正)과 쇠락(衰落)의 긴 여정은 지내왔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이상규, {교회개혁과 부흥운동} (SFC, 2004), 8.&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의 역사를 보면 영적 부흥과 쇠퇴는 “때로 우리 믿음이 올라가기도 하지만(up) 때로 우리의 믿음이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것(down)과 같다는 흑인영가의 가사처럼 부침(浮沈)의 역사를 겪어왔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회 역사에는 영광과 오욕이 반복되었고 굴곡과 요철이 있어왔다. 이런 영욕의 자취는 외국교회의 역사만이 아니라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우선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이다. 첫째, 지상의 교회는 완전할 수 없으며, 완전한 교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교회의 쇄락과 부패 혹은 오욕의 자취는 근본적으로 교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타락에 근거한다. 셋째,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며, 지상의 교회가 완전할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완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3. 중세교회는 왜 부패했는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반적으로 1세기 사도시대의 교회를 가장 성경적인 기독교회로 간주하고 이를 가장 이상적인 교회로 인식하고 있다&lt;/SPAN&gt;&lt;/FON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점에는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교회의 제도와 관련해서 볼 때 더욱 그렇다. 사도시대의 교회가 어떤 제도를 가졌는지 교회 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침이나 모범이 없다. 사도 시대의 교회는 이제 성립된 교회로서 제도면에서 조직화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래서 초기 사도적 ‘교회상’으로부터의 이탈을 흔히 교회의 속화 혹은 타락이라고 간주해 왔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4세기 이후 교회관, 교회구조에는 많은 변화가 수반된다. 특히 평신도와 교직자간의 구별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였고, 교회는 이 두 계층으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점차 교직자들은 교권을 행사하게 된다. 수도생활이나 금욕이 박해 하의 순교에 해당하는 영광스러운 일로 인식되고 수도승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 시대는 평신도와 교직자 간의 구별이 뚜렷해졌을 뿐만 아니라 교직자들 간에도 계층화가 나타났다. 이 계층화는 신분상의 계층화만이 아니라 수입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어 고위 성직자들이 거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고 구두수선공보다 못한 급료로 살아갔다. 가난한 성직자들은 가죽 제조업, 직조, 제조업, 버터와 치즈 행상을 하기도 했다. 로마교회의 수위권이 인정되면서 로마감독이 교황권을 주장하게 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세로 접어들면서(590), 교황권의 세속권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게 되고 교회는 절대권력으로 군림하여 소위 황제교황주의(Caesar-papim)가 대두한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중세교회의 문제는 3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SPAN&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첫째, 교리와 신학의 변질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오도된 교리와 인간중심의 신학, 공로사상, 거짓된 경건과 신비주의는 이 시대의 변질된 신학의 교회관의 일면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중세교회의 가장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문제는 신학적 혹은 교리적 변질이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논의 되었으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하였다.) &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둘째, 교회 제도나 구조에 있어서의 비신학적 혹은 비윤리적 성격을 들 수 있다&lt;/SPAN&gt;&lt;/FONT&gt;. &lt;/SPAN&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계층적 교권체제, 제도상의 문제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성직자들을 윤리적이지 못한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겸직제도’(pluralism)나 ‘부재직임제’(absenteeism), 성직자들의 취첩을 묵인하게 해 주었던 세금제도(Concubinage fee)등이 그것이다. &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셋째, 부에 대한 지나친 탐욕이었다&lt;/SPAN&gt;&lt;/FON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물질적 부요(富饒)에는 영적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는데, 교회 지도자들이 부에 탐닉하엿다는 말은 교회가 세속적 가치관을 다스릴 통제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교회 지도자들의 부에 대한 탐욕은 정도를 넘어섰다. 예컨대, 교횡 보니페이스 8세(Boniface VIII, 1294-1303)의 교황 관저에는, 공식기록에 따르면, 48개의 루비, 72개의 사파이어, 45개의 에머랄드, 66개의 커다란 진주들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부루스 셜리,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277)&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돈 만드는 천재로 알려진 요한 22세 (1316-1334)는 각종의 징세제도를 창안하여 교회 질서를 극도로 문란 시켰고,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넷째, 교회가 세속 권력을 탐닉했다는 점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영적 공동체인 교회가 권력 지향적 계급체계로 변모되었고, 교회 지도자는 세속권력을 추구했다. 교황은 교회의 수장으로만이 아니라 세속까지도 다스리는 교황이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렇게 교회 지도자들이 세속적 가치인 부와 권력을 움켜지게 되자, 도덕적 윤리적 표준을 상실하였고 극도의 문란한 일면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종교개혁 직전의 교황이었던 알렉산터 6세(1492-1503)는 교회의 관행과 규율을 무시하고 극도의 타락과 방종한 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교황이 되기 전에도 몇 사람의 정부와 3남 1녀를 두고 있었으나, 교황이 된 후에 7명의 자녀를 더 얻었다. 1447-1517년 어간의 교황 중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고, 15세기 말 콘스탄츠교구의 경우 매년 약 1,500명의 사생아가 출산했다. 스코틀랜드의 성(性) MaTaggart는 ‘사제의 아들’(son of the priest)이란 뜻이고, MacNabb이라는 성은 ‘수도원장의 아들’(son of the abbot)이란 뜻에서 기원했다. 독일의 여러 도시에는 소위 여성의 집(Frauenhausen)이라는 환락가가 있었고, 여성의 주 고객은 성직자들과 고위 관리였다. 교회의 윤리적 부패는 심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16세기에는 반(反)성직주의 사상이 심화되고 있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상규, 19ff)&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런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카톨릭 측에서도 인정했다. 즉 교황 아드리아누스 6세(Adrianus VI, 1522-1523)는 신성로마제국의 뉘른베르크국회(1522-23)에 파견한 교황사절 프란체스코 치에레가띠 추기경에게 보낸 훈령에서 “루터 이단으로 교회가 받는 어려움의 책임은 성직자들, 특히 교황청과 그 성직자들에게 있다.”고 시인했다. 이 훈령에서는 “교회 안에는 가증할만한 폐습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병폐들은 교황을 포함하여 성직자들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각자는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독일의 에밀 부른너(Emil Brunner)는 ‘에클레시아’가 ‘키르헤’(Kirche)로 바뀌면서 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신앙공동체가 제도화 되면서 본래적 교회관을 상실했다는 주장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제국의 영토에 살았으나 정신적으로는 그 사회로부터 이민을 떠난 이들이었다. 기독교 공동체는 심리적으로 그 시대를 초월해 사는(living in an imagined exile)이들이었으나 로마제국의 질서에 정주해 가면서 본래적 교회로부터 이탈했다는 것이다.&amp;nbsp;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파로이코이’(헬), 곧 ‘나그네(들)’라고 불렀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나그네와 행인 같은....”에서 처음 사용된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살므이 방식과 현실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용어였다&lt;/SPAN&gt;&lt;/FON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유사한 용어로 파로이키아(벧전 1:17), 파레피데모이(행인,2:11)등이 사용되었다. 고대 헬라세계에서 사용된 파로이코스는 법적인 용어었다. 즉 시민권이 없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가리키는 용어였는데,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pregrinus였다. 영어의 필그림(pilgrim)은 여기서 기원하였다. 이 말속에는 비영속성, 일시성, 잠정성등의 의미가 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ff;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리스도인들은 이교적인 세계에서 이질성(heterogeneity)을 인식하고 이 세상의 가치와는 구별된 삶을 지향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구원사적인(salvation-historical)중요성을 지니는 구별된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4세기를 거쳐 가면서 나그네 공동체가 4세기 이후 안주 공동체로 변모되면서 교회관의 변질이 나타나고 교회가 속화되고 타락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듯이 이 땅에서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 땅의 가치와 이 세상의 조류를 따르다 보니 교회의 본질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중세교회의 문제는 결국 교회지도자,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직자들의 문제였다. 우리가 교회가 부패했다고 말할 때, 이 말을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교회지도자가 부패했다는 말이고,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성직자들이 부패했다는 말이다. 결국 중세교회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볼 때 성직교육의 부제와 성직자의 양산이었다. 이것이 중세교회가 부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인적 요인이었다. 티르나겔(N. S. Tiernagel)에 의하면 16세기 초 유럽 인구 중 85%가 농민, 노동자였고, 10%가 통치 그룹 혹은 귀족이었고, 성직자가 5%에 달했다고 한다. 1500년 당시 세계 인구를 약 5억으로 추산하는데, 유럽의 인구를 1억으로 본다면 성직자 수는 무려 5백만 명에 달한다. 16세기 초 독일 지방 쾰른(Cologne)만 해도 무려 5,000명의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있었다. 전 독일에 수도사들과 수녀들의 숫자는 무려 1백 50만 명에 달했다. 어떤 지역은 인구 30명당 1명의 성직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럴 경우 이들을 성직자로 구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직자의 과대 배출은 성직자의 지적, 영적, 도덕적 수준을 저하시켰고, 이들을 상호 경쟁적으로 만들었을 뿐 만 아니라, 성직자의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또 성직자의 양산은 성직자들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성직자 수의 급증은 성직자들의 혜택을 감소시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호경쟁적인 관계가 형성되었고, 어떤 성직자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향유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으나, 다른 한편의 성직자들의 빈곤과 가난은 극에 달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상규, 2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중세교회의 근원적인 문제는 결국 지도자, 곧 성직자들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도나 조직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제도나 조직도 그 제도와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기에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중세말기에 나온 유명한 경구가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Vita clerici est evangelium laice)라는 말이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4.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성장’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으나, 동시에 ‘성장’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다른 많은 가치를 포기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수적인 성장이라는 한 가지 가치를 절대적 가치로 받아드리다 보니 성장 아닌 다른 것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 결과가 건실한 신학에 대한 무관심, 교회의 명분 없는 분열, 교회공동체의 도덕적 윤리적 계도성의 상실, 치리에 대한 무관심, 기복주의적인 설교, 무분별한 신학교의 난립과 신학교육의 부재 등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고, 한국교회의 혼란을 초래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개혁자들의 주장처럼 신학은 교회를 이끌어 가는 터이자 축이었다. 건실한 신학이 없거나, 신학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되지만, 한국교회는 신학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경시했다. 또 ‘신학 없는 교회’ 나 ‘교회 없는 신학’을 추구하는 양극단은 한국교회 안에 극단적인 현상을 가져왔다. 즉 교회가 안중에 없는 신학운동은 극단적 자유주의 혹은 종교다원주의 신학으로 발전하여 기독교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있고, 신학 없는 교회운동은 극단적인 주관주의 혹은 신비주의 운동으로 발전하여 한국교회를 게토화 하고 있다. 심지어 ‘일천번제’(一天燔祭)라는 기상천외한 헌금관행이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지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종교적 권위주의 또한 한국교회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당회, 노회, 혹은 총회가 지나치게 권력구조화 되었고, 세속 정치계와 방불할 정도로 엽관제도화(spoil system)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구조나 조직이 복음 전파를 위한 형식이 아니라, 복음운동을 방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점들과 함께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이지 못하거나 비윤리적인 일들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심심찮게 보도되는 교회나 교회지도자의 비리는 교회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사회적 지탄을 받게 한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교회 쇄신의 길을 없을까?&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5. 한국교회 개혁의 길은 무엇인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ff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ff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성직자의 자기 혁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늘 우리가 한국교회가 부패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지도자들이 부패했다는 뜻이다. 역으로 말하면 한국교회를 쇄신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들의 자성과 자각, 그리고 자기 쇄신이다. 앞에서 지적한 한국교회의 문제들은 교회지도자들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한국(장로)교회의 분별없는 분열은 지도자들에 의해 자행되어 왔고, 공인이자 지도자로서의 바르지 못한 삶이 한국교회가 지탄받았던 이유였다. 따라서 한국교회를 쇄신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지도자들, 특히 성지자들의 자기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교회지도자나 목회자가 권력과 물질과 명예로부터 자유할 때 한국교회에서 문제시되는 상당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곧 성실한 목회활동, 규모 있는 삶, 투명한 재정 관리와 집행, 깨끗한 은퇴 등은 교회의 불필요한 잡음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직자에게는, 불교식 용어를 빌리면, 진정한 출가(出家)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시대든 교회 쇄신의 가장 중요한 길은 성직자들의 삶이었다.&amp;nbsp; 중세교회의 경우처럼 한국교회에서도 성직자의 과대베출은 성직자의 질적 저하와 교회 난립, 그리고 분열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ff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ff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신학교육의 제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교회 쇄신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신학교육의 쇄신이다. 앞에서 중세교회 타락의 근원적인 원인은 성직자의 과대 배출과 성직교육의 부제를 말한바 있는데, 이와 동일한 환경이 오늘 한국의 상황이다. 신학교육의 내용은 차치하고 우선 신학교육기관의 정비가 시급한 현실이다. 신학교의 난립은 교회 분열과 상관있다. 현재 한국에는 약 3백 개에 달하는 무인가 신학교 혹은 신학교육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상당수는 교단적 배경이 없거나 불분명한 사설 신학교이며, 많은 신학교들은 신학교육적 소명이나 사명의식을 의심케 하는 운영상의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무자격신학교는 한국교회 문제의 진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신학교들이 목회자 양성이라는 고유한 목적만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도리어 ‘신학교’라는 특수성을 이용하여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연 2천500명에서 3천명의 목회자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규학교가 아닌 경우 신학교육에 대한 감독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다시 말하면 건실한 신학교육의 부재는 한국교회의 수준을 격하시키고 천박한 기독교로 전락하게 만든다. 무인가 신학교, 아니 무자격 신학교가 문제시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무자격 교역자를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자기 파괴적 요인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합리적 사고, 건전한 평가와 판단 능력, 부분과 전체에 대한 반성적 성찰 능력은 목회자적 자질과 인격과 더불어 정신적 지도자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볼 때 오늘의 무자격 신학교를 통해 배출되는 ‘교육받지 못한’교역자들이 가져올 부정적 기능은 대천덕 신부의 ‘미숙한 신학의 위험성’이란 논문에서 잘 지적된 바 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학교육에 대한 제고와 함께 목회자 양성 방식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스펄전이 말한‘이중 소명’ 정신에 부합되게 목회자 양성은 신학수업을 지향하는 본인의 자원과 함께 교회적 추천을 받도록 하는 새로운 목회자 양성 방식을 고려해 봄직하다. 현재는 자신의 자원에 의해 신학교육을 받게 되고 그 후에 교회의 청빙을 소명으로 간주하지만, 필지는 교회적 추천을 받은 자가 신학교육을 받도록 하고, 교회적 후원 속에 목회자가 양성되어야 보다 합리적인 목회자 양성 방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떻든 신학교육의 재고는 한국교회를 쇄신하는 중요한 길이 될 것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ff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ff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설교의 갱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교회를 쇄신하는 또 하나의 길은 설교의 갱신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STYLE: italic;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교회 설교 관행과 쇄신에 대해서는 이상규, “한국교회에서의 설교, 그 역사와 평가,” [헤르메네이아 투데이] 30호(22005년 봄호), 52-69.)&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설교란 바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설교이다. 따라서 설교의 갱신은 한국교회의 쇄신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 현재 한국에는 약 5만여 개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교회의 정기적인 설교자는 약 8만명에 달한다. 이중 장로교회는 전체교회의 68%를 차지하고 있고, 감리교회는 13%에 달한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성장’이었는데, 전도행위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라는 넓은 의미의 전도명령의 수행이라기보다는 개 교회 성장에 보다 큰 강조점을 둔 교회의 수적 확장을 의도한 것이었다. 그래서 설교도 현세적 안녕이나 물질적 축복, 소원성취를 위한 방편으로 강조되어 기복적 설교가 특징이었다. 구약은 한국특유의 기복신앙의 관점에서 축복과 저주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었고, 이를 위한 모범으로 예화가 인용되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설교는 흉(凶)과 화(禍)를 피하고 길(吉)과 복(福)의 추구를 신앙의 이상으로 삼기 때문에 차원 높은 생활윤리나 공의(公儀), 가치의식, 혹은 삶의 문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기독교 신앙을 양재(讓災)나 치병(治病)등과 같은 측면으로만 본다면 본래적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이타적(利他的)성격은 크게 훼손되고 말기 때문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1980년대부터는 구속사적(heilsgeschichtlich)설교가 소개되고, 강해설교가 강조되기도 했으나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소위 대 교회의 설교는 여전히 성경의 세계와 현대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간격(then and now)을 무시하는 ‘모범론적’ 설교가 특징을 이루고 있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풍유화(諷遊化, Allegorizing)와 신령화(神靈化, Spiritualizing)가 적지 않다. 구약본문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과 함께 비 교리적 설교가 유행한다. 무엇보다도 성경원전의 의미를 천착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부족하다. 특히 한국교회 강단에서 얼마나 좋은 설교를 할 것인가? 혹은 얼마나 감동적인 설교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분의 가르침을 바르게 드러내는 ‘정직한’ 설교일 것이다. 정직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을 신학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건실한 신학교육과 성경 언어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이런 진지한 노력이 동반될 때 한국교회 강단이 새로워지고, 이런 일련의 노력이 근원적으로 한국교회를 갱신하게 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한국교회 강단의 쇄신이 이루어 져야 한국교회가 변화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이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선포될 수 있을 것이다. 설교야말로 한국교회를 갱신하는 최선의 길이다. 이런 점을 특히 강조했던 집단이 청교도들이었다.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설교는 교회 개혁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한국교회에서 설교의 갱신은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lt;/SPAN&gt;&lt;/FONT&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ff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center&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ff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교회구조와 제도의 문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한국교회 갱신의 또 한 가지 측면은 교회 제도나 구조의 문제이다. 우리는 교회의 구조나 제도에 대해 무관심하기 싶다. 그러나 이 점도 결코 경시될 수 없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반발 때문에 교회를 ‘성도의 모임’(communio sanctorum)이라는 개념으로 말함으로서 교회를 제도임을 강조하지 않았다. 루터파는 이 제도면에 대한 소홀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세 카톨릭의 감독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예배 의식도 소극적으로 개혁한 것을 볼 수 잇다. 반면에 칼빈은 교회란 성도들의 모임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기관(institution)임을 인식했기 때문에 로마 카톨릭과는 다른 교회제도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로서의 교회의 개념이 성도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의 개념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있고, 그리고 이에 응답하는 신자들의 모임이 있어서 교회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본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교회제도는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전수받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우리 한국교회가 정한 제도, 교회구조, 그리고 각종 규정에 있어서도 갱신의 여지가 없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목사의 직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장로교 전통 때문에 우리에게는 성직주의(clericalism)나 중세적인 계층구조로 빠져들 위험이 항상 있다. 또 한국적인 문화적 상황에서 교회구조를 계급적이거나 지나치게 권위적인 구조로 이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런 점들에 대해서도 신학적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교회가 정한 규정이나 관행에서도 쇄신의 여지가 없는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일예를 든다면 공로목사, 공로장로, 혹은 명예권사 등과 같은 제도가 정당한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교회 역사적으로 보는 정치적인 제도나 교회 구조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고유한 제도들에 있어서도 개혁과 쇄신이 필요할 것이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5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6. 맺는 말: 한국교회 개혁은 목회자의 의식에 달려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상에서 말해왔듯이 한국교회 개혁의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지도자 곧 목회자의 의식이다. 신학적인 분별력, 균형 잡힌 윤리의식, 보편적인 사고, 상식과 교양, 동양적 예(禮)와 덕(德)이 어우러질 때 한국 기독교의 쇄신은 가능할 것이다. 신학교육, 설교, 바른 가치의식 등은 다 목회자와 관련되어 있다. 오늘 한국에서 교회개혁을 말하는 이들은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 혹은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다. 목회자의 세습을 반대한다든가, 조용기목사 은퇴반대를 반대한다든가 하는 문제는 사실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체 지극히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교회의 제도나 구조, 또 한국교회가 정한 제도들은 따지고 보면 그 제도를 만든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하우츠바르트(B. Goudzwaard)가 지적했지만 구조나 제도란 것은 그런 구조나 제도를 고안한 인간의 마음에서 연유하기 때문에 그런 구조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런 구조를 만든 인간이 어떠하냐가 더 중요하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FON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BR&gt;&lt;/P&gt;&lt;FONT face=굴림&gt;&lt;/FONT&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9.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 FONT-FAMILY: '휴먼명조'; TEXT-ALIGN: justify&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굴림&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교회사가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나그네 의식으로 사는 것이다. 중세교회가 ‘나그네성(性)’ 혹은 ‘나그네 의식’을 상실하고 이 역사현실 속에 안주하려고 했을 때 지상의 제도나 지상의 세력과 타협했던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나그네적 삶의 방식을 권장해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 깊이 새겨준 삶의 방식을 이 땅에서는 나그네란 의식이었다.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함으로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이 땅의 가치들, 곧 권력, 명예, 물질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타락은 그 정체성 상실에 있었다.”는 좌파적 철학자인 폴라니(Karl Polanyi)의 말은 진실이다. 마지막 한 가지 고려할 점은 한국교회 일각에서 개혁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자신은 개혁의 주체이며, 상대는 개혁의 대상인 듯이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한국교회’를 대상화 혹은 객관화하고 비판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한국교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5&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A target=_blank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167&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교회사를 통해 본 교회개혁과 한국교회의 문제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vivavox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주나그네&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lt;/SPAN&gt;
&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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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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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개혁의 필요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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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10T09:13:41Z</updated>
	    <published>2009-11-10T09:13: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종교개혁의 필요성&lt;/STRONG&gt;&lt;/SPAN&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요컨대 세속 직업의 경우보다 더욱 부끄러운 일들이 여기에서 연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교회의 통치가 이처럼 부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이 자신들만 범죄에 빠진다면 그것을 참을수도 있겠으나 저들의 죄악이 다른 모든 악행보다 오히려 지독한 것은 그들이&amp;nbsp;영혼에 대해 가혹한&amp;nbsp;폭정을&amp;nbsp;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오늘날 보여지는 교회의 권력이야말로 영혼을 가장 가혹한 노예상태로 속박시키는 중구남방과 무법천지의 영혼에 대한 지배외에 과연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중략) …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나님의 진리가 이같이 수많은 깊은 어두움에 질식되고, 종교가 이토록 수없이 불경건한 미신으로 더럽혀 지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놀라운 신성모독에 의해 타락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구속의 은혜가 수많은 잘못된 생각에 덮혀졌으며 공로에 대한 파멸적 확산에 취한 자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구원을 추구하며, 성례전 집행이 부분적으로 상처가운데 소멸되며, 수많은 조작의 부가로 부패되었으며, 일부는 돈벌이때문에 신성이 모독되고 있고, 교회 정치는 전적으로 황폐와 혼란속에 떨어지고 성직에 앉은 자들은 첫째 부패한 생활방식으로 교회를 심하게 상처 입히며, 둘째로 영혼에 대해서는 가혹하고도 매우 유해로운 폭정을 행하고, 온갖 종류의 오류로 말미암아 인간을 짐승다루듯 하며 파멸로 인도되었을 때, 바로 이 같은&amp;nbsp; 때에 루터가 나타났으며 그 뒤를 이어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계속 나타났습니다.&quot; &lt;/SPAN&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칼빈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종교개혁의 필요성에 관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에서&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예 배 모 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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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진실</name>
	    </author>
	    <updated>2009-11-09T15:42:00Z</updated>
	    <published>2009-11-09T15:42: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1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t; COLOR: #000000; LINE-HEIGHT: 30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1px; TEXT-ALIGN: center&quot;&gt;예 배 모 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웨스트민스터에 회집한 성역자 총회에서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파견한 대표들의 협조로 스코틀랜드, 영국, 아일랜드 세 왕국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간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약속한 신앙 일치의 일환으로 가결됨.&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1645년 총회와 의회의 법령으로 상술한 예배 모범을 채택 인준 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서문&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복된 종교 개혁 초기에 우리의 지혜롭고 경건한 조상들은 많은 것을 시정하기 위하여 예배 모범을 진술하였는데 이는 저희가 말씀에 의거하여 당시에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 대예배에 헛되고 잘못되고 미신적이요 우상 숭배적인 것들을 많이 발견&amp;nbsp; 하였기 때문이다.&amp;nbsp;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경건하고 유식한 사람들이 당시에 진술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공동 기도책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기뻐하였으니 이는 미사와 라틴어 예배를 제거한 모든 공적 예배를 우리말로 드리게 된 까닭이다.&amp;nbsp; 전에는 봉한 책이었던 성경을 저희 말로 읽는 것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크게 유익을 얻게 되었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경험을 통하여 드러난 것은 그것을 작성한 사람들의 고생과 경건한 의도에 불구하고 영국 교회의 의식이 본국에 있는 교인들에게뿐만 아니라 외국에 있는 개혁교회들에게까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장애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된 것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기도마다 다 읽으라고 권면하여 대단히 부담감을 증식하며 거기에 있는 쓸데없고 짐스러운 예식들이 대단히 많은 수의 목사들과 교인들의 양심을 편치 못하게 하며 많은 불행을 낳는 동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 예법을 받아 순종할 수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규례들을 박탈당하므로 이 예법에 순종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그것을 누릴 수가 없게 되었다.&amp;nbsp; 그러므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여러 교인들이 주의 성찬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여러 유능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성실한 목사들이 교역 정지 처분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충성된 목사들이 귀한 때에 수천 심령이 위험을 당하게 되고) 받아 저희와 저희 가족의 생계가 막연해 졌다.&amp;nbsp; 고위 성직자들과 저희 부류는 그 예법을 끌어 올려서 우리에게는 예배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 이 예배책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처럼 가치를 올리려고 애를 쓰며 말씀이 전파되는 것을 크게 방해하고 있는데, 말씀이 필요 없다 혹은 제일 좋게 표현해서, 말씀은 공동 기도책을 읽는 것보다 열등한 것이라고 밀어내는 경우가 생겼으니 많은 무식하고 미신적인 사람들이 그것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amp;nbsp; 저희는 예배에 참석하여 입술로만 한몫 하다가 저희 무지와 부주의로 구원의 지식과 참된 믿음에 관해서는 자신을 강팍하게 하고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러는 중에 로마 카톨릭 교인들은 그 책이 저희의 예배의 대부분을 순응한다고 하면서, 저희의 미신과 우상 숭배에 적지 않게 자신을 가지고 저희가 개혁할 노력은 하지 않고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최근에 와서는 대단히 힘을 얻어서 전의 예식을 천거한다는 구실 아래 새로운 것들을 매일 교회에 억지로 부과시키고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여기에 부가하여 예배 의식이 한편으로는 게으르고 덕을 세우지 못하는 교역을 증가시키는 큰 수단이 되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써 준 형식을 손에 들고 만족하여 그 직분에 불러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해 주신 바 기도의 은사도 행사하지 않고 있으며 반면 그것은 이 때까지 교회의 끊임없는 싸움과 논란의 문제가 되어 왔고, 경건하고 신실한 목사들의 올무가 되어 왔으니 저희는 핍박을 받아 침묵을 지키게 되었고 아니면 소망 있는 목사들이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교역에 대한 모든 생각에서 다른 공부로 정신을 팔게 되었다.&amp;nbsp; 특별히 지금은 말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잘못과 미신을 발견하고 믿음의 비밀에 관해서 지혜를 얻고 설교와 기도의 은사를 얻기에 더 좋은 방법을 허락하신 때이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이런 것들과 또 그와 같은 많은 중대한 문제를 고려하되 전권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와 또한 그 책에 있는 여러 가지 세부점 때문이요 결코 무슨 새로운 것을 좋아하거나 우리의 초대 개혁자들을 비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amp;nbsp; 이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확신하거니와 초대 개혁자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저희도 이 일에 우리를 도울 것이요 그 개혁자들에 관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의 집을 정결케 하시고 세우시려고 하나님이 일으키신 우수한 도구들임을 승인하고 우리와 우리 후손이 저희를 늘 감사와 존귀로 영원히 기념하기를 소망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어느 정도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경륜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이 현대에 우리를 부르사 종교 개혁을 더욱 발전시켜 우리의 양심을 만족케 하고 다른 개혁 교회의 기대에 응하며 우리 가운데 있는 많은 경건한 자의 소원을 만족케 하며, 그렇게 하므로 써 우리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엄숙한 연합과 계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에서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예배에 통일성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우리의 증거를 보이게 되기를 원한다.&amp;nbsp; 이를 위하여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후에 많이 의논하고 혈육으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으로 가결하였으니 이전 예배 의식을 그 여러 가지 의례와 이전에 하나님의 예배에 사용하던 예식들과 함께 버리고 다음 모범을 보통 때나 특별한 때에 공중 예배에 사용하기로 하였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할 때, 우리가 특별히 주의한 것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모든 규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들은 고수하고 다른 일은 신자의 지혜의 법칙을 따라 진술하려고 노력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의 일반적인 법칙에 준한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이것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의도는 총괄적 제목, 기도의 의미와 범위 그리고 공중 예배의 다른 부분들이 만인에게 발표될 때, 하나님의 예배와 봉사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이 일들에 모든 교회가 승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amp;nbsp; 이로써 목사들은 인도를 받고 행정과 교리와 기도에 있어서 동일하게 건전함을 지키고 필요하면 보조를 얻게 하려 함이다.&amp;nbsp; 그러나 저희가 이로써 게을러지거나 저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사를 불일 듯 하게 하기를 게을리 하라는 것이 아니요 각각 묵상과 스스로 조심함으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맡기신 양무리를 돌아보아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필요한 대로 그 마음과 혀를 기도와 권유의 재료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회중의 집합과 공중 예배의 태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회중이 공중 예배를 위하여 집합할 때에는 백성들은 미리 저희의 마음을 예비하고 다 나와서 함께 참예할 것이다.&amp;nbsp; 게으름이나 다른 사사로운 모임을 구실로 공중 규례에 결석해서는 안 된다.&amp;nbsp; 모든 사람이 다 예배당에 들어가되 불경건하게 말고 신중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들어가서 이곳 저곳을 예배하거나 향하여 절하지 말고 자리에 앉는다.&amp;nbsp; 회중이 다 집합하며, 목사는 엄숙하게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을 예배하자고 초대한 후에 기도를 시작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모든 경건과 겸손으로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위대성과 위엄을 승인하고(그 보좌에 그 때 저희는 특별한 태도로 나타난다) 저희의 악함과 주께로 가까이 갈 수 없는 무자격,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없는 저희의 전적인 부패를 인정한 후 겸손히 용서를 간구하고, 이제 드리는 예배, 순서 순서마다 용서하시고 도와주시고 받아 주시며, 그 때 읽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 주실 것을 겸손히 간구하여 이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중보로 기도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공중 예배가 시작되면 회중은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서 목사가 그 때 읽거나 암송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읽지 말고 사사로이 소근대는 것, 이야기하는 것, 인사하는 것, 거기 참석한 사람이나 늦게 들어오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말고 멍하니 바라보거나 잠자거나 그런 보기 흉한 행동을 하여 목사나 예배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자기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남도 못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누가 부득이하여 예배에 처음부터 참석하지 못했으면 교회 안에 들어올 때는 혼자 앉아서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되고 그 때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규례에 회중과 함께 참가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공중 성경 낭독에 대하여&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교회 안에서 말씀을 읽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여 있는 것을 승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공중 예배의 일부분이며,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세우기 위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방편이요 목사와 교사들이 행해야 할 것이다.&amp;nbsp; 그러나 목사 후보생도(강도사, 전도사) 노회가 허락하는 한 경우에 따라서는 회중에서 말씀을 읽는 것과 설교하는 은사를 같이 행사해도 된다.&amp;nbsp; 신구약 성경 전부를 자국어로 회중 앞에서 읽되 본문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읽어 모든 사람이 듣고 이해하게 해야 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한 번에 얼마나 읽을 것인가는 목사의 지혜에 맡겨져 있다.&amp;nbsp; 그러나 편리한 대로 보통 신구약에서 각각 한 장씩 모일 때마다 읽을 것이요 장수가 짧거나 그 문제의 연관성이 요구되면 더 읽을 수도 있다.&amp;nbsp; 정경에 있는 모든 책을 순서대로 읽어서 사람들이 성경 전체를 더 잘 알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니 보통 신구약 어디든지 한 주일에 끝난 데서 다음 주일에 시작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읽는 자가 듣는 이들의 건덕을 위하여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대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시편과 그런 성경을 자주 더 읽어 주기를 부탁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성경을 읽는 목사가 읽은 부분 어디라도 해석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그것을 한 장 다 읽고 난 후 또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시편 낭송&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끝날 때까지는 하지말고 또 항상 주의할 것은 시간을 잘 생각하여 설교나 또다른 규례에 지장이 있거나 지루하게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amp;nbsp; 이 규칙은 모든 다른 공중 행사에서도 지켜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성경을 공중 앞에서 읽어 주는 것 외에 읽을 줄 아는 사람마다 성경을 사사로이 읽으라고 권면해야 한다.&amp;nbsp; 즉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나이나 무슨 특별한 일로 무능해지지 않은 한 읽는 법을 배우라고 권할 것이다.&amp;nbsp; 또한 성경을 각각 소유하라고 권해야 한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설교 전 공중 기도에 대하여&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말씀을 읽은 후 시편을 찬송하고 그리고 설교를 할 목사는 자기의 마음과 듣는 이의 마음이 지은 죄를 바로 깨닫고 저희가 다 함께 주님 앞에서 죄를 애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주리고 목마르게 되도록 노력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수치심을 가지고 당황하여 하며 죄를 완전히 자백하게 함으로써 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주님을 불러 아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큰 죄악성을 인정하는데 첫째로, 원죄를 인정해야 한다.&amp;nbsp; 이 원죄는 모든 다른 죄악의 씨요 영혼과 육신의 기능과 권능을 타락시키고 독을 넣고 우리의 제일 선한 행위도 더럽히고 헤아릴 수 없는 범죄로 터져 나와서 주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자식 중에 가장 악한 자라도 아직까지 저지르지 않은 대반역을 저지르게 한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다음에, 실제로 짓는 자범죄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우리가 지은 죄, 관리들이 지은 죄, 목사의 죄, 전성도가의 죄 등 이것은 여러 면에서 우리가 보조 역할을 한 죄들이며 우리가 지은 죄는 무섭게도 더욱 악화되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율법을 깨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고, 하라 명하신 것은 하지 않는 자들이며, 무지나 연약에서 온 소치가 아니요 주제넘게 우리 마음의 빛을 거스리고 양심의 가책을 누르며 성령의 감동을 역행하여 지었으니 우리의 죄를 가리울 수 없고 진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내와 오래 참으심의 부요하심을 멸시했을 뿐 아니라 주님의 초대와 복음 안에서 제공하시는 은혜를 대적하고, 서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속에 영접하거나 우리 생활 가운데서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우리의 마음의 눈먼 것과 마음이 굳은 것과 불신과 뉘우치지 않음과 육신의 안일과 미지근한 것과 메마른 것을 애통하는데, 우리의 육신은 죽고 생명으로 새롭게 되도록 노력하지 않는 것과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으로 경건을 연습하지 않는 것과 아무리 우리 가운데 좋은 자라도 하나님과 꾸준하게 동행하지 않는 것과 우리 자신을 흠없이 지키기 못한 것과,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할 바 대로 열심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애통하고 하나님의 많은 축복과 크신 긍휼과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빛과 종교 개혁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과 약속과 서원과 엄숙한 계약과 다른 의무를 역행하여 그 회중이 특별히 잘못한 다른 죄들을 애통한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또한 우리가 우리 죄를 확실히 아는 만큼 깊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우는 조그만 은혜도 받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극심한 진노를 받아야 마땅하며 모든 율법의 저주와 가장 반역하는 죄인에게 처하는 중한 판단을 지고 나와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의 왕국과 복음을 우리에게서 취하여 가신다고 해도 아주 공의롭게 하신 것이며 마땅히 우리를 이생에서 영육간에 온갖 심판을 하시고 우리를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던져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하셔도 마땅하다는 것이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은혜의 보좌로 가까이 나오게 하시고, 그 부요하시고 모든 것에 충분하신 유일의 제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주님이 간구하심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리라는 복스러운 소망을 가지게 하시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새 언약으로 참으로 크고 귀한 긍휼과 은혜의 언약을 주사 같은 중보자를 통하여 우리의 힘으로써는 피할 수도 없고 질 수도 없는 하나님의 그 중하신 진노와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심을 믿고, 겸손하게 열심히 긍휼을 간구하며 우리의 모든 죄를 값없이 온전히 씻어 주시되, 우리의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쓰라린 고통과 보배로운 공로만 보시고 받아 주옵시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amp;nbsp;&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또한 간구할 것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주께서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주님의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시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같은 양자의 영으로 우리를 인치사 용서와 화해의 확신을 주시고 시온에서 슬퍼하는 모든 자를 위로하시고 상하고 괴로운 심령에 평강을 말하며 낙심한 자를 싸매시기를 간구하며, 안일하고 주제넘은 죄인들을 위하여 간구할 것은, 저희 눈을 열어 주시고, 저희 양심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와서, 저희로 죄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소서 할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기도할 것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우리 속에 거하여 자주 우리를 주장하는 죄를 죽여주시고, 우리의 죽은 심령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리 사, 은혜를 주셔서 믿는 자의 모든 의무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소명을 감당하게 하옵시며, 시험을 이길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축복과 십자가를 거룩하게 쓰게 하옵시며, 시험을 이길 힘을 주시고, 끝까지 믿음과 순종으로 견인하게 하옵소서 할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또 기도할 것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모든 족속에서 전파할 것이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것과 이방인의 수가 차는 것과 적그리스도가 무너지는 것과 우리 주님의 재림이 속히 이룰 것과 적그리스도적인 파당의 독재와 토이기(?)의 잔인한 압박과 신성모독에서 고통 당하는 교회를 구하여 주실 것과 개혁교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을 기도하되 특별히 영국과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교회 즉 지금 “엄숙한 국민 연합과 계약”으로 더욱 엄하게 신앙적으로 연결된 이 3국가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세계 먼 지방에 있는 우리의 식민지들과 더욱 특별히 우리의 일원이 되어 있는 나라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평화와 진리와 하나님의 모든 규례의 순수성과 경건의 능력을 확립시키고 이단과 파당과 세속적인 것과 미신과 안일함과 은혜의 방편 아래서 열매 없음을 방지하고 제거해 주시며, 우리의 찢어진 것과 분열된 것을 싸매 주시며, 우리의 엄숙한 계약을 깨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할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또 모든 위에 있는 권세를 위하여 할 것이니 특별히 왕을 위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하되 하나님께서 그 개인 생활과 정부에 축복이 넘치게 하시고 그의 보좌를 신앙과 의로 세우시고 모든 악한 도모에서 그를 지키시며 그로 하여금 복음을 보수하고 전파하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도구를 삼아 주시고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격려와 보호가 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공포가 되며, 온 교회의 큰 유익이요 온 국가의 유익이 되게 하시며 또한 왕비가 예수님을 믿고 왕자와 그외 모든 왕족이 종교교육을 받게 하옵소서 하고, 고난 중에 있는 보헤미아 왕비, 우리 대왕의 여동생의 위로를 위하여 하고, 또한 라인의 선거 후 챨스 왕자가 자기 영토와 위엄을 복귀하고 확립하도록 도우소서 할 것이며, 의회 상원의 축복을 위하여 하고, 귀족과 종속된 판사와 관리들과 양반들과 모든 평민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모든 목사와 교사들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저희로 거룩하고 절제 있고 공의로우며 평화롭고 은혜로운 생활의 모범이 되게 하옵시며 저희 직분에 있어서 건전하고 성실하며, 권능이 있게 하시고, 저희 수고에 성공과 축복이 풍성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목사를 주시고, 교회와 정부의 대학과 모든 학교와 신학교를 위하여 기도하되, 저희로 배우는 일과 경건에 점점 왕성하게 하옵시며, 특정한 도시나 교회를 위하여 또한 기도하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례와 치리에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시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사회 행정부와 거기서 일하는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축복하옵소서 하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고난 당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른 일기와 열매 맺는 기한을 필요한 대로 허락하옵소서 하고, 우리가 느끼거나 두려워하거나 이제 받아야 할 심판 즉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 같은 것을 제거해 주옵소서라고 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또한 주의 온 교회에 주실 그의 긍휼과 우리의 대제사장 주 예수의 공로와 중보를 통하여 우리를 받아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정당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규례를 사용함으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원하며, 그 목적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할 것은 하나님의 효력 있는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거룩하신 안식일인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하사 공사간 모든 의무를 다 하게 하시되 우리 자신과 주님의 백성 중 모든 다른 교회들을 복음의 부요함과 우수성을 따라서 도우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날을 축복하며 즐길 수 있게 하옵소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할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우리 자신으로는 마땅히 받을 바대로 하나님의 깊은 것들, 즉 영적으로라야 분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받을 수 없으므로, 기도하는 것은 유익을 얻도록 가르치시는 주께서 은혜롭게 외부적인 은혜의 방편과 함께 은혜의 성령을 부어 주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탁월한 정도에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우리의 평강에 속한 일들을 알게 하사 그리스도와 비교해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기게 하시고, 우리는 이제 장차 나타날 영광의 첫 열매를 맛보면서 주님과 더욱 충만하고 온전한 사귐을 사모하게 하시며, 주님 계신 곳에 우리도 있고, 영원히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의 충만을 누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더욱이 하나님께 간구할 것은 주께서 주의 (자기 식구에게 생명의 떡을 나누어주라고 지금 부르신) 종에게 지혜와 믿음과 열심과 말씀을 넣어 주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해서 각자에게 성령과 증거로 그의 몫을 주게 하옵시고, 듣는 자의 마음과 귀에 주님께서 할례를 행하사, 저희 영혼을 능히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게 하옵시며 말씀이 옥토에 떨어져서 사탄의 유혹과 이생의 염려와 저희 마음의 완악함 및 저희가 듣고 유익하게 되고 구원받게 됨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기고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 말씀 안에서 살고, 저희 온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를 순종하게 하시고 저희 마음으로 모든 선한 말과 행실에 영원토록 서게 하옵소서 할 것이다.&amp;nbsp; 우리가 판단하건 데, 이것이 보통 공중 기도의 편리한 순서이다.&amp;nbsp; 그러나 목사가 현명하다고 판단 될 때는 이 기도의 어느 부분은 설교 후로 돌리거나, 다음에 정해 놓은 감사 기도를 설교 전에 하나님께 올려도 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말씀의 설교에 대하여&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말씀의 설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복음의 직분에 속하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탁월한 역사에 속하므로, 일하는 자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자기도 구원하고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을 구원하도록 수행되어야 한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리스도의 사역자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합법적인 안수의 규칙에 따라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그런 중대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원어들과 신학에 부종된 인문과학에 관한 습득과 전체 대한 지식과 무엇보다도 성경에 보통 신자들 이상으로 마음과 뜻을 쏟아 연습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과 그 외 다른 건덕의 은사들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상당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시면 어느 때고 아직까지 이르지 못한 진리를 승인하고 받을 결심을 하고 기도와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조명과 건덕의 은사를 간구해야 한다.&amp;nbsp; 이 모든 것을 그는 그가 준비한 것을 대중 앞에 전달하기 전, 개인적인 준비 가운데 사용하고 개선할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보통으로 그의 설교 주제는 신앙의 원칙이나 어떤 항목을 설명하는 성경 본문이어야 하고, 아니면 그 때 처한 특별한 경우에 맞는 것이거나, 혹은 그가 보아서 적당한 대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시편이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성경을 몇 장씩 계속해서 설교할 수도 있다.&amp;nbsp; 또한 본문의 서론은 간단 명료하게 하고, 본문 그 자체나, 문맥 혹은 유사한 곳이거나 성경의 일반적인 문장에서 인출해야 한다.&amp;nbsp; 만일 본문이 긴 경우에(역사서나 비유를 다룰 때에)그는 간단한 개요를 말해 주고 짧은 경우에는 필요하면 말을 바꾸어서 설명해 줄 수도 있다.&amp;nbsp; 어떤 경우에서든지 본문의 범위를 부지런히 살피고 거기에서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교리의 주요 항목과 근거를 지적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본문을 분석하고 분해함에 있어서 그는 말보다는 그 일의 순서를 더욱 중시하고, 설교 초에 너무 많은 분류 점을 주어서 듣는 자들의 기억력에 부담을 주지말고, 애매한 기술 용어로 저희의 생각을 괴롭히지 말 것이다.&amp;nbsp; 본문에서 교리를 끌어내는 경우 조심할 것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첫째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일 것과 둘째 그 진리가 본문에 포함되어 있거나 본문에 근거한 것이 되어 듣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 교리를 가르치심을 분별하도록 해야 하며, 셋째 주로 하고자 한 교리들을 강조하며 듣는 이들의 덕을 가장 많이 세울 것으로 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교리는 평범한 용어로 설명하고, 만일 그것과 관련된 어떤 것이라도 해설이 필요하면 그것을 공개하고, 본문으로 그 결론을 명백하게 해야 할 것이다.&amp;nbsp; 그 교리를 인정해 주는 유사한 성경 말씀을 쓸 때는 많은 것보다는 명백하고 적절한 것을 쓸 것이요 필요하면 해당한 목적에 적응하여 주의를 끄는 것이어야 한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논조나 이론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견고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납득이 가는 것이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예화들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정보가 충만한 것이어야 하고, 듣는 이의 마음에 영적 기쁨을 주며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만일 듣는 사람들 가운데 성경에 대한 어떤 명백한 의심이나, 이유나 편견이 일어나는 것 같으면 그것은 반드시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상이점으로 보이는 것을 일치시켜 주거나 그 이유에 대답을 해주거나, 편견과 오해의 이유를 발견하여 치워 줌으로써 해야 한다.&amp;nbsp; 그렇게 하지 않고 듣는 자들로 헛되고 악한 변론을 설명 해답하게 하는 것은 합당치 않고 그 변론도 끝이 없어서, 그것을 설명하고 해답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것보다는 듣는 이들에게 해를 끼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는 비록 더할 수 없이 해명되고 확증된 것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교훈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 적용하여 그 특별한 소명을 명심시킬 것이다.&amp;nbsp; 이것은 설교자에게 대단히 힘든 일이고 많은 지혜와 열심과 묵상이 필요한 것이고 본성적으고 타락한 사람에게는 대단히 불쾌한 일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태도로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amp;nbsp; 즉 그의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권능이 충만하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는 것을 느끼고 만일 그 중에 불신자나 무식한 자들이 출석하였으면 자기 마음의 비밀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 교훈의 결말로 어떤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거나 알려줄 때, 그는 편리 한대로 그것을 당면한 본문과 또 다른 성경 구절이나 그 진리가 지엽을 이루고 있는 신학적 상식으로 확고한 이론을 가지고 그것을 확증할 것이다.&amp;nbsp; 그리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거짓된 교리를 반박할 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그는 옛날 이단을 무덤에서 꺼내거나 필요 없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의견들을 언급하지 말며 사람들이 잘못할 위험이 있으면, 그는 그것을 건전하게 모든 반대를 대적해서 저희의 판단과 양심을 만족시키도록 힘쓸 것이다.&amp;nbsp; 의무 감당을 권면할 때, 그럴 이유가 보이는 대로, 그는 아울러 그것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까지 가르칠 것이다.&amp;nbsp; 간언, 질책, 그리고 공적 권면을 할 때 이것은 특별한 지혜가 필요한데, 이유가 있는 대로 그로 하여금 그 죄의 성격과 중량과 거기에 따르는 비참함을 드러내게 할 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 이제 그것 때문에 갑자기 닥칠 위험을 보여주고, 동시에 구제책과 그것을 피할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위로를 할 때 그것이 모든 시험에 대비하는 일반적인 것이거나 어떤 특정한 고통이나 공포에 대비한 특수한 것이거나를 막론하고, 그는 조심스럽게 시련을 당하는 마음과 곤고한 심령이 그와 반대로 암시하고 나설 그런 이의들에 대답해 줄 것이다.&amp;nbsp; 또한 때로는 다가올 시련을 예고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특별히 유능하고 경험 많은 목사들이 신중하고 지혜롭게, 성경에 명백하게 근거한 징조들을 대면서 하면 대단히 유익하다.&amp;nbsp; 즉 이로써 듣는 이들이 각각 자신이 그런 은혜에 도달하였는가, 또한 그가 권면하는 의무를 감당하는가, 혹은 견책하는 죄에 빠져 당면한 심판의 위험에 처해 있는가 아니면 위로 받기로 명시된 사람들 가운데 속하였는가 자신을 살펴볼 수 있으며 자기의 처지에 따라서 생기를 얻어 의무에 열심하기도 하고, 저희 부족과 죄를 생각하고 자신을 겸비케도 하며, 저희의 위험을 느끼거나 위로에 힘을 얻게 될 것이다.&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고 본문에 있다고 모든 교리를 다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는 자기의 양떼와 살며 사귀어 보는 대로 가장 필요하고 적절하다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또한 그 중에서도 저희의 심령을 빛과 성결과 위로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에게로 가장 잘 이끄는 그런 것을 선택 사용할 것이다.&amp;nbsp; 이 방법은 모든 사람에게 혹은 모든 본문에 필수적인 것으로 처방된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받고 사람들의 이해와 기억을 돕는 데 아주 유익한 것으로 천거된 것뿐이다.&amp;nbsp;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은 그 방법은 여하간에 그의 전직분을 다음과 같이 수행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1. 주의 일을 게으르지 말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공을 드려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2. 가장 비천한 사람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해할 수 있도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평범하게 전해야 하며, 또한 진리를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효력이 없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며, 또한 알지 못할 말, 이상한 문구나 소리와 단어의 운율로 무익하게 쓰는 짓을 삼갈 것이다.&amp;nbsp;&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3. 충성되게 그리스도의 존귀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덕을 세우며 구원에 이르게 하되, 자기의 유익이나 영광을 구치 않아야 하며, 거룩한 목적을 이룰 것이면&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아무 것도 꺼림이 없이 각 사람에게 전할 바를 전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가장 미천한 자라도 멸시하지 않고 위대한 자라도 그 죄를 아끼지 않고 모든 사람을 균등하게 대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4. 그의 모든 가르침과 권면, 특별히 책망을 현명하게 구성하여 가장 잘 설득할 태도로 하되 각 사람의 지위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합당한 경의를 표하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자기의 감정이나 원한을 섞지 말고 해야 할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5. 하나님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말씀에 합당하게 신중한 태도로 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인간의 타락성이 그와 그의 성역을 멸시할 그런 몸짓이나 목소리나 표현을 일절 피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6.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이 그의 신앙의 열심과 저희에게 유익하게 하려는 간절한 소원에서 나오는 것임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7. 하나님에 관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배운 대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그리고 자기가 마음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믿는 대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amp;nbsp; 그리고 그의 양떼를 앞서 걸으면서 저희의 본이 되어야 하며, 간절하게 개인적으로나 공중 앞에서나 자기의 수고를 하나님의 축복에 부탁하며, 자신을 조심하여 살피며 주께서 자기를 세워 목자로 삼으신 바 그 양떼들을 돌아보아야 하며, 이와 같이 하면 진리의 교리가 타락하지 않고 보전되어 많은 심령이 예수를 믿게 되고 몸을 세우게 되며, 자신도 그 수고로 이 세상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고 후에 장차 올 세계에서 자기를 위하여 예배된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한 교회에 여러 목사가 있는 경우, 그리고 저희의 은사가 각각 다른 경우, 매인이 각각 전적으로 가르치는 일이나, 권면하는 일이나, 자기의 우수한 은사에 따라서 또한 저희 가운데서 합의하는 대로 한 가지에 전념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설교후 기도에 대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설교가 끝나면 목사는 “그의 아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예수 그리스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를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하나님의 사랑&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을 감사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성령의 교통&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하심과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과 자유를 위하여, 그리고 그 안에 드러나 풍성하고 신령한 축복을 위하여 즉&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선택하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과 부르심과 양자 삼으심과 의롭다 하심과 성화 시키심과 영광의 소망을 위하여 감사하고, 온 나라를 적그리스도의 흑암과 독재에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위하여, 그리고 종교 개혁을 위하여, 언약과 이 세상의 많은 축복을 위하여 감사하고 기도할 것은, 복음과 거기에 있는 모든 율례가 순결과 권능과 자유 안에서 계속될 것과 설교의 주되고 가장 유용한 항목들을 간구 제목으로 만들어 청원하고 또 기도할 것은 그것이 마음에 심기어져 열매를 맺게 하소서”할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또 기도할 것은 “사망과 심판을 예비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게 하시고 우리의 신령한 일들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영적 제사를 우리의 대제사장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를 통하여 받아 주옵소서”할 것이다.&amp;nbsp;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는 기도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모형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가장 포괄적인 기도이므로 우리는 주기도문을 교회에서 기도할 때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리고 성찬 집례시나 공중 금식 혹은 감사 기간이나 특별한 행사 때 등 특별한 간구와 감사를 드려야 할 때는 우리의 대중 기도에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amp;nbsp; 예를 들면, 지금 이 때는 교직자 총회에 축복 내려 주시기를 기도하고 해군과 육군을 위해 기도하고 왕과 의회와 왕국을 보호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과 같다.&amp;nbsp; 그리고 목사마다 그런 행사 때를 당하면 설교 전이나 후에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amp;nbsp; 그러나 어떤 태도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그 의무를 감당할 믿음과 지혜를 주시는 대로할 것이다.&amp;nbsp; 기도가 끝나고 나서 그 때 온 교회가 해야 하는 다른 행사가 없으면 목사는 엄숙한 축도로 회중을 해산할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성례의 집행에 관하여&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세례&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세례는 필요 없이 늦출 것이 아니요 어떤 경우라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개인이 행할 것이 아니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목사에 의하여 행해 질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다.&amp;nbsp; 세례는 또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개인 집에서 사사로이 행할 것이 아니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공중 예배 시에 회중 앞에서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게 보고들을 수 있는 곳에서 행할 것이며, 교황 시대처럼 세례대가 합당치 않게 미신적으로 설치된 곳에서 하지 말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세례 받을 어린아이는 하루 전에 목사에게 통지를 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아버지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데리고 나올 것이요 없는 경우에는 그 대신 다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신자 친구가 데리고 나와서 어린아이가 세례 받기를 원하는 소원을 진지하게 진술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세례 전에 목사는 제정의 말씀을 쓰고 이 성례의 제정과 성격과 용도와 목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세례는 우리 주 예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요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은 것과 그와 연합된 것과 죄를 사함 받은 것과 중생과 양자됨과 영원한 생명을 받는 은혜의 계약을 인치심이요 세례의 물은 그리스도의 피를 대표하고 의미함이요 원죄와 실제로 짓는 모든 죄를 제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성령의 효력으로 죄와 우리 죄악된 성품의 타락성을 대적하는 것이요&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침례나 물을 뿌리는 것이나 혹은 물로 씻음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공로로 죄를 씻음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효력으로 죄가 죽는 것과 동시에 새 생명으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함이요 믿는 자와 그 후손에게 주신 약속으로서 교회 안에서 태어난 믿는 자의 씨와 후손들은 출생과 동시에 그 언약에 참예하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 인치심에 참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할 권한이 있고 복음 시대에 외형적인 교회의 특권에 참예하는 권한을 가진 것은 구약 시대의 아브라함의 자손들보다 못하지 않은 것이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은혜의 언약은 본질상 같으므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하나님의 은혜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위로는 전 보다 더욱 풍성한 것과 하나님의 아들은 어린아이들이 그 앞에 나오는 것을 용납하시고 안고 축복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말씀하신 것과 어린아들은 세례를 받으므로, 유형교회의 품안에 엄숙하게 용납되어, 세상과 외인들에게서 구별되어, 모든 믿는 자와 연합된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누구나 다 마귀와 세상과 육신을 거부하고 그것을 대적하여 싸우게 된 것과 저희는 그리스도인들이요&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세례 전에는 언약적으로 거룩하고 그러므로 저희가 세례를 받는 것과 내적은혜와 세례의 효력은 세례가 집행되는 그 순간에 매인 것이 아니고, 세례의 열매와 권능은 우리 일생 전체를 통하여 있는 것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표면적 세례는 필요 불가결의 것이 아니고 어린아이가 그것을 못 받으면 멸망의 위험에 빠지는 것도 아니요 받을 수 있는 때와 장소가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규례를 멸시하거나 무시하지만 않았으면 부모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또는 이와 같이 가르침으로 목사는 세례의 교리에 대하여 무지와 잘못이 있는가 보고 사람들의 건덕을 위하여 필요한 대로 자기의 자유와 신앙적인 지혜를 사용할 것이다.&amp;nbsp; 그는 또한 출석한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할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저희의 세례를 돌아볼 것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저희의 죄를 회개할 것과 저희의 믿음을 힘있게 할 것과 저희의 세례와 하나님과 저희 사이에 인친 바 언약을 개선하고 바르게 할 것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는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할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자기와 자기 아이에게 주신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고 아이를 그리스도인 신앙 근거에 대한 지식과 주님의 양육과 훈계로써 기르게 하고 만일 게으르면 그와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떠함을 깨우치고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엄숙한 약속을 받아 낼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이것을 한 후에 제정의 말씀을 하고 이 영적 용도를 위하여 물을 거룩하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목사는 다음과 같이 혹은 그와 같은 내용으로 기도할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를 약속 없는 외인들같이 남겨 두시지 않고 주님의 율례의 특권을 누리도록 불러 주신 주여! 이 시간에 주께서 베푸신 세례의 율례를 은혜로 거룩하게 하옵소서.&amp;nbsp; 비옵는 것은 이 외형적인 물세례에 내적으로 주님의 성령 세례를 아울러 베풀어 주시사 이 유아 세례가 양자 됨과 죄사함 받는 것과 중생과 영생과 모든 다른 은혜의 언약의 약속들을 받는 인치심이 되게 하옵소서.&amp;nbsp; 비옵는 것은 이 아이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연합되어 죄의 몸은 그 안에서 죽고 새 생명으로 그의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시옵소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 다음 목사는 아이의 이름을 묻고, 대답을 듣고 나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amp;nbsp;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amp;nbsp; 이렇게 말하면서 목사는 아이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amp;nbsp; 더 다른 의식을 가하지 않고 이렇게 어린아이의 머리에 물을 뿌림으로 세례를 주는 방법은 합법적일 뿐 아니라 충분한 것이요 가장 적절한 것이다.&amp;nbsp; 이렇게 한 후, 그는 감사를 드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주님은 그 언약과 긍휼을 지키시는 데 참되시고 미쁘신 것을 감사히 인정하오며, 하나님은 선하시고 은혜로우사 우리를 그 성도 중 하나로 여겨 주실 뿐만 아니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의 징표와 표식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하오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또한 하나님의 진리와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서 주께서는 나날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을 주님의 교회 품으로 더해 주시사, 주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택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의 교회가 지속 성장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고 기도하옵는 것은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 말할 수 없는 은총을 더욱 계속 더해 주시옵고, 지금 세례 받고 엄숙하게 믿음의 가족에 들어온 이 아이를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치심과 보호하심으로 영접해 주시고, 주께서 자기 백성에게 보여 주시는 은총으로 그를 기억해 주시옵시며, 또한 간구 하옵는 것은 만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이 아이가 어려서 이 세상에서 취하여 감을 당하면 긍휼에 풍성하신 주여, 이 아이를 영광 중에 영접하여 주옵시고, 그가 살아서 분별하는 연령에 이르거든 주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그를 가르치사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가 받은 세례가 그에게 효력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로 그를 붙드시사, 그가 믿음으로 마귀와 세상과 육신을 이기고 마침내 최후의 온전한 승리를 거둘 때 가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켜 주시옵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주님의 만찬, 성찬식 집행에 대하여&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성찬 혹은 주의 만찬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자주 거행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엄마나 자주 해야 하는지는 목사와 개혁교회 당회원들이 저희 손에 맡겨진 사람들의 위로와 건덕에 가장 편리한 대로 결정할 것이다.&amp;nbsp; 그리고 성찬식을 거행할 때는 아침 설교 후에 하는 것이 편한 줄로 우리는 판단한다.&amp;nbsp; 무식한 자와 후욕하는 자는 주님의 성찬을 받는 것이 합당치 못하다.&amp;nbsp; 성찬을 자주 행하기에 불편한 곳에서는 반드시 성찬식 거행 일 주일 전에 공적으로 경고를 내보내야 하고, 또한 그 때 혹은 그 주간 어느 날이라도 그 규례에 관하여, 성찬 참예에 대비하여 가르쳐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목적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거룩하게 하신 모든 방편을 공적 사적으로 부지런히 씀으로 모든 사람은 천국 잔치에 들어갈 준비를 더욱 잘 한다는 사실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고 성찬식 거행 날이 되면, 목사는 기도를 끝내고 아래와 같이 간단한 권고를 할 것이다.&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가 이 성례를 통하여 받는 측량할 수 없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은택과 성찬의 용도와 목적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같이 설명하고 우리의 인생 행로, 생활 전선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성찬을 통하여 위로와 새 힘을 받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설명&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하고 아울러 우리는 지식과 믿음과 회개와 사랑과 그리스도와 그의 은택을 주리고 목마름같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임해야 하는 것과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설명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 다음, 그는&amp;nbsp;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먼저 모든 무식한 자, 거역하는 자, 불경스러운 자 혹은 어떤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자, 이런 자들은 거룩한 식탁에 나아 올 수 있으리라 생각지 말라 하고 다음으로 그는 죄악으로 짐과 진노의 두려움에 눌리어 더 큰 은혜를 받고자 사모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을 극진한 태도로 주의 만찬에 나오라고 격려할 것이다.&amp;nbsp; 그는 같은 주의 이름으로 저희의 연약하고 피곤한 심령에 평강과 시원함과 힘을 보강해 주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권고와 초대를 한 후에, 편리한 곳에 배설하여 규범 있게 덮어두었던 성찬상에 성도들은 질서 있게 둘러앉거나 둘러서서 목사는 자기 앞에 차려진 떡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고 축복하는 예식을 시작할 것이다.&amp;nbsp; 여기서 떡은 보기 좋고 편리한 그릇에 담아서 목사가 떼어 주면 성도들 사이에 분배가 되게 할 것이요 포도주도 역시 큰잔에 담을 것이 좋을 것이다.&amp;nbsp; 그는 첫째, 간단한 말로 이 떡과 포도주는 보통 것과 같은 것인데 이제 제정의 말씀과 기도로 이 거룩한 목적에 쓰이도록 구별되어 거룩하게 된 것임을 알려주어야 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복음서 가운데서나 고린도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첫 번 서한 11장 23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에서 27절 까지 읽을 것이요 목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설명하고 적용해 주어도 된다.&amp;nbsp; 그리고 떡과 잔을 놓고 기도하고 감사, 혹은 축복하는 예는 다음과 같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 인간의 비참함이 큰 것과 거기에서 우리를 구원할 사람도 없고 천사도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가치가 우리에게 조금도 없는 것을 겸손히 또한 진심으로 인정하며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감사하되 특별히 우리를 구원해 주신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받으신 고통과 그 공로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구원과 모든 은혜의 방편, 즉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말씀과 성례를 감사하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성례를 위하여 감사할 것이니,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총이 우리에게 적용되고 인친 바 된 것이요 오랫동안 너무 남용되어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한 것을 우리는 계속 받게 된 것을 감사할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천하 인간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는 것을 믿고 고백하고, 그 예수의 이름만 의지하여 우리가 자유와 생명을 얻고 은혜의 보좌에 나아감을 얻고 주의 식탁에서 먹고 마실 허락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복과 영생 얻은 것을 인치신 바 된 것을 고백할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것은 모든 긍휼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우리 안에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성령으로 효능 있는 역사를 이루사&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이 떡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의 율례를 축복하사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게 하시고 주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시고,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는 주 안에 살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이 모든 것을 그는 알맞은 감정, 즉 거룩한 행동에 합당한 감정을 품고 수행하여 사람들도 같은 마음을 품게 되게 할 것이다.&amp;nbsp; 떡과 포도주는 이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되었으니 목사는 상에 서서 손으로 떡을 잡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amp;nbsp; 아니면 그와 비슷한 것으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이런 예식 때 사용한 말씀을 써도 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다음으로는 ‘거룩한 제정과 명령과 우리 복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나는 이 떡을 가지고 사례하고 떼어 너희에게 주노라’.&amp;nbsp; 여기서 성찬을 주는 목사는 떡을 떼어 성도들에게 주면서 “받아 먹으로.&amp;nbsp; 이것은 너를 위하여 드려진 그리스도의 몸이니라.&amp;nbsp; 이것을 행하여 그를 기념하라”.&amp;nbsp; 같은 식으로, 목사는 잔을 취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amp;nbsp;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제정과 명령과 본을 따라, 나는 이 잔을 들어 너희에게 주노라”.&amp;nbsp; 그리고 성도들에게 준다.&amp;nbsp; 그러면서 “이 잔은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amp;nbsp;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라고 말한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모든 사람이 성찬을 마친 후에, 목사는 간단한 말로 저들의 마음에 이 성례를 통하여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나게 하고, 그에 합당하게 행하기를 권고할 것이다.&amp;nbsp; 그리고 목사는 엄숙한 감사를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드린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33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성례를 허락하신 그 풍요한 긍휼과 말할 수 없는 선하심을 감사하고, 전체 예배에 미흡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성령께서 은혜로 도와 주셔서, 모든 사람이 오늘 그렇게 위대한 구원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로 합당하게, 능히 은혜를 힘입어 행할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는 공중 예배의 어느 부분도 그것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게 순서를 짤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주의 날을 거룩하게 하는 데 대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주일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미리 기억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우리의 평상시 일이나 세상일을 때맞게 옆으로 밀어 놓고, 주일이 오면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하루종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주의 날로 거룩히 지키되, 공적과 사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킬 것이다.&amp;nbsp; 그 목적을 위하여는 모든 불필요한 노동을 그치고 거룩하게 종일 쉬어야 하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모든 오락과 유흥을 금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할 뿐 아니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세상 말과 세상 생각까지 금하여 하지 말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45%;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 날의 식사는 종들이 필요 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중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