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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움의 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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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4T15:54:2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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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녹색인재 10만명 양성..1조 투입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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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1-04T15:54:2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녹색성장위원회 내일 발표..2013년까지 녹색일자리 20만개 증가 &lt;BR&gt;녹색고용영향평가 도입, 녹색 사회적 기업 300개 육성&lt;BR&gt;&lt;BR&gt;&lt;/STRONG&gt;정부는 2013년까지 1조1천억원을 투입해 녹색성장을 견인할 '핵심녹색인재' 10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4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녹색성장위원회와 교과부, 노동부는 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제6차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부서 합동으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녹색일자리 창출 및 인력양성 방안'을 발표한다. &lt;BR&gt;정부는 향후 5년간 녹색일자리가 전산업의 평균적인 일자리 증가율(1.3%)보다 빠른 속도(6.0%)로 증가해 2013년에는 녹색일자리 규모가 작년과 비교해 약 20만개가 증가한 약 81만개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lt;BR&gt;&lt;BR&gt;또한, 태양광설비시스템 개발자, LED 생산관리자, 그린카 설계 개발자, 생태도시 개발기획가, 농업환경컨설턴트, 정밀농업전문가, 탄소거래중개인 등이 유망 녹색직업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lt;BR&gt;&lt;BR&gt;이에 따라 정부는 녹색성장과 녹색일자리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녹색일자리 창출 기반 조성, 녹색 직업능력개발 확대 , 핵심녹색인재양성 등 3개 분야에서 12개 정책과제를 선정해 추진할 계획이다. &lt;BR&gt;&lt;BR&gt;녹색일자리 창출 기반과 관련해 정부는 녹색인력수급전망과 고용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한다. 녹색산업 분야에서 인력의 과부족 현황 등에 대해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부처간, 중앙ㆍ지방, 민ㆍ관, 노ㆍ사 등의 녹색일자리 파트너십을 구축해 산업현장의 수요변화에 대응한 인력공급을 추진할 계획이다. &lt;BR&gt;&lt;BR&gt;또 취약계층의 고용촉진을 위해 '녹색사회적기업' 300개를 육성하고 산림분야 사회서비스 일자리에서 취약계층을 우선 선발하기로 했다. &lt;BR&gt;&lt;BR&gt;녹색 직업능력개발 확대를 위해 LED 응용 조명시공기능사, 전기자동차 기사, 탄소배출권거래사 등 녹색국가기술자격 종목을 신설하고 기존 국가기술자격의 녹색화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lt;BR&gt;&lt;BR&gt;특히 10만명의 핵심녹색인재양성을 위해 대학별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2012년까지 13개의 녹색 '전문대학원'을 지원하고 녹색기술과 관련한 '특성화대학원'의 선정 및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lt;BR&gt;&lt;BR&gt;전문대학원의 사례는 녹색에너지, 융합소프트웨어, 그린스쿨 등을 들 수 있고 특성화대학원은 기후변화, 해양에너지, 공간정보, 풍력ㆍ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lt;BR&gt;&lt;BR&gt;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세계적 수준의 녹색 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세계수준대학(WCU) 사업 및 세계수준연구소(WCI) 사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lt;BR&gt;&lt;BR&gt;또한, 지역 녹색인재 공급을 위해 '광역경제권 신성장 선도산업 육성'과 연계해 비수도권 6개 광역권 내 19개 우수 지방대학을 녹색교육기관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lt;BR&gt;&lt;BR&gt;아울러 녹색경제 기반조성을 위해 녹색금융, 녹색경영, 탄소배출권 거래 등 녹색 서비스분야 전문인력도 양성하기로 했다. &lt;BR&gt;&lt;BR&gt;kimys@yna.co.kr &lt;BR&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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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버핏, `벌링턴 노던` 440억달러 인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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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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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4T15:53:37Z</updated>
	    <published>2009-11-04T15:53: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center&gt;&lt;B class=title&gt;&lt;B&gt;버크셔 해서웨이 최대 규모 … &quot;미국 경제 미래에 베팅&quot;&lt;/FONT&gt; 
&lt;P&gt;&lt;/P&gt;&lt;/B&gt;&lt;/B&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SPACER type=&quot;block&quot; height=&quot;5&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50%; FONT-SIZE: 12pt; WORD-BREAK: break-all&quot; vAlign=top align=left&gt;
&lt;DIV style=&quot;LINE-HEIGHT: 150%; FONT-SIZE: 12pt&quot; id=artTex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50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 style=&quot;MARGIN-RIGHT: 7px&quo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1 cellPadding=5 bgColor=#dddddd&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IMG style=&quot;BORDER-BOTTOM-COLOR: black; BORDER-TOP-COLOR: black; BORDER-RIGHT-COLOR: black; BORDER-LEFT-COLOR: black&quot; border=0 hspace=0 src=&quot;http://file.mk.co.kr/meet/neds/2009/11/image_readtop_2009_570166_1257289126208380.jpg&quot; width=15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TD&gt;
&lt;TD width=7&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 colSpan=2&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B&gt;&lt;FONT color=#000063&gt;&lt;/FONT&gt;&lt;/B&gt;&lt;/TD&gt;
&lt;TD&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2&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가치투자의 대부` 워런 버핏이 미국 대형 철도회사를 인수한다. &lt;BR&gt;&lt;BR&gt;버핏이 지금까지 인수한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lt;BR&gt;&lt;BR&gt;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3일(현지시간) 미국 대형 철도업체 벌링턴 노던 산타페 지분 77.4%를 주당 100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해서웨이는 이미 벌링턴 지분 22% 정도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에 나머지 지분을 주식과 현금으로 인수하는 것이다. &lt;BR&gt;&lt;BR&gt;인수 금액은 벌링턴 노던이 지고 있는 부채 100억달러를 포함해 총 44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lt;BR&gt;&lt;BR&gt;그는 성명을 통해 이번 투자를 &quot;미국 경제 미래에 대한 베팅&quot;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quot;미래 미국 번영은 효율적이고 잘 관리된 철도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quot;고 덧붙였다. &lt;BR&gt;&lt;BR&gt;이번 인수건은 양측 이사회에서 승인을 받았으며 주주와 법무부 승인을 거쳐 내년 1분기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주당 100달러는 지난 2일 벌링턴 종가인 주당 76.07달러에 31% 프리미엄을 얹은 것이다. &lt;BR&gt;&lt;BR&gt;버핏이 인수한다는 소식에 벌링턴 주가는 장이 열리기 전 거래에서 한때 29% 급등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워런 버핏이 운용하는 투자회사로, 금융위기 이후 굵직굵직한 인수ㆍ합병(M&amp;A)이나 거액의 투자를 단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버핏은 현명한 투자가이자 세계 최대 갑부 명단에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다. &lt;BR&gt;&lt;BR&gt;[이향휘 기자]&lt;BR&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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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루비니 &quot;미국, 또다시 글로벌 자산거품 키우고 있다&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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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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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3T15:20:10Z</updated>
	    <published>2009-11-03T15:20: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quot;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지속 불가능&quo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존 최고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금융&lt;/FONT&gt;&lt;/U&gt;&lt;/A&gt;위기 예측가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교수&lt;/FONT&gt;&lt;/U&gt;&lt;/A&gt;가 현재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미국&lt;/FONT&gt;&lt;/U&gt;&lt;/A&gt; 등 주요 경제국들에 자산거품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 거품이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고 나섰다.&lt;BR&gt;&lt;BR&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글로벌&lt;/FONT&gt;&lt;/U&gt;&lt;/A&gt; 경제위기 이후 G20(주요 20개국)이 통화팽창 정책에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공조&lt;/FONT&gt;&lt;/U&gt;&lt;/A&gt;하고 있어 경제회복이 본격화되면 높은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것이라는 일각의 경고에 대해 &quot;지금은 디플레이션 위협이 더 크고, 인플레이션은 빨라야 3~4년 뒤의 일&quot;이라고 일축했던 루비니 교수는 사실 인플레이션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보다는 '자산거품 붕괴'를 더욱 우려해 왔다.(☞관련 기사:&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027161427&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루비니 &quot;더 큰 위기 형성 중, 인플레 우려할 때 아니다&quot;)&lt;/FONT&gt;&lt;/U&gt;&lt;/A&gt;&lt;BR&gt;
&lt;TABLE style=&quot;BORDER-BOTTOM: #ccc 1px solid; BORDER-LEFT: #ccc 1px solid; MARGIN: 5px auto 10px; BACKGROUND: #ffffff; BORDER-TOP: #ccc 1px solid; BORDER-RIGHT: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450&gt;&lt;U&gt;&lt;FONT color=#0000ff&gt;&lt;IMG class=resize3 border=1 name=img_resize hspace=0 alt=&quot;&quot;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1/02/40091102214843.JPG&quot; width=450 height=363&gt;&lt;/FONT&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 COLOR: #777; FONT-SIZE: 11px&quot; width=450&gt;▲ 누리엘 루비니 교수. ⓒ로이터=뉴시스&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gt;&quot;글로벌 자산시장 랠리, 달러 캐리 트레이드 탓&quot;&lt;/B&gt;&lt;BR&gt;&lt;BR&gt;최근 루비니 교수는 영국의 &lt;파이낸셜타임스(&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FT&lt;/FONT&gt;&lt;/U&gt;&lt;/A&gt;)&gt;에 기고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는 불가피한 거품 붕괴 맞을 것(Mother of all carry trades faces an inevitable bust)'라는 글을 통해 그 이유를 더욱 구체적으로 풀어놓았다.&lt;BR&gt;&lt;BR&gt;루비니 교수는 우선 &quot;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급락했던 자산가격이 올해 들어 3월 이후 급등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인가&quot;라며 화두를 던졌다.&lt;BR&gt;&lt;BR&gt;&quot;위험한 자산가격이 거시경제의 펀더멘털과 비교할 때 너무나 많이, 너무나 일찍, 너무나 빨리 올랐다&quot;는 루비니 교수의 지적처럼, 지난해 9월 글로벌 경제위기로 급락했던 자산가격은 지난 3월 이후 돌연 상승세로 돌아섰다.&lt;BR&gt;&lt;BR&gt;지난 3월9일 6547.05로 12년래 최저치 수준까지 떨어졌던 다우존스 지수가 지난 14일 1만선을 돌파한 것은 이런 흐름을 상징한다.&lt;BR&gt;&lt;BR&gt;루비니 교수는 &quot;이처럼 대대적인 상승세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quot;라면서 화폐 가치가 하락 추세인 달러를 꼽았다.&lt;BR&gt;&lt;BR&gt;루비니 교수의 글에 따르면, 달러 약세의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제로&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금리&lt;/FONT&gt;&lt;/U&gt;&lt;/A&gt;에 가까운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저금리&lt;/FONT&gt;&lt;/U&gt;&lt;/A&gt;와 통화팽창 정책으로 막대한 달러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유동성&lt;/FONT&gt;&lt;/U&gt;&lt;/A&gt;을 공급한 측면도 있지만, 달러 약세를 더욱 부추기는 것은 '달러 캐리 트레이드'다.&lt;BR&gt;&lt;BR&gt;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와 가치 하락 추세인 통화를 빌려 금리 차익과 환 차익을 확보하면서 다른 통화권 자산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매입&lt;/FONT&gt;&lt;/U&gt;&lt;/A&gt;하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투자&lt;/FONT&gt;&lt;/U&gt;&lt;/A&gt; 행태를 가리킨다.&lt;BR&gt;&lt;BR&gt;&lt;B&gt;Fed의 3박자 정책… 제로금리, 통화팽창, 부실채권 매입&lt;/B&gt;&lt;BR&gt;&lt;BR&gt;제로금리에 가까운 저금리에 통화남발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달러는 캐리 트레이드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화폐가 되면서 전통적인 캐리 트레이드 대상이었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엔화&lt;/FONT&gt;&lt;/U&gt;&lt;/A&gt;를 제치고 투자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lt;BR&gt;&lt;BR&gt;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달러 캐리 트레이드 투자자들은 달러를 매도하고 고수익 위험 자산을 매입하고 있지만, 저금리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연 10~20%에 달하는 마이너스 금리로 자금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조달&lt;/FONT&gt;&lt;/U&gt;&lt;/A&gt;하고 있다.&lt;BR&gt;&lt;BR&gt;달러 약세는 달러를 매도 포지션으로 운용하기만 해도 막대한 환차익을 가져다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에 의한 달러 매도는 달러 약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lt;BR&gt;&lt;BR&gt;투자자들이 마이너스 20% 금리의 자금을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동원&lt;/FONT&gt;&lt;/U&gt;&lt;/A&gt;해 매우 높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레버&lt;/FONT&gt;&lt;/U&gt;&lt;/A&gt;리지로 위험한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고 있지만, 이 위험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게임&lt;/FONT&gt;&lt;/U&gt;&lt;/A&gt;에 뛰어든 투자자들은 천재처럼 보인다. 거대한 거품에 올라탄 덕분에 지난 3월 이후 이들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수익률&lt;/FONT&gt;&lt;/U&gt;&lt;/A&gt;은 50~70%에 달하기 때문이다.&lt;BR&gt;&lt;BR&gt;이런 방식의 투자를 지속한다면 투자자 스스로도 원금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느껴야 정상이다. 하지만 Fed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무려 1.8조 달러나 투입해 미국 국채, 주택저당채권(MBS) 등 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정책을 쓰는 덕분에 투자자들은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투자처&lt;/FONT&gt;&lt;/U&gt;&lt;/A&gt;를 다양화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원금 손실 위험도 낮은 것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lt;BR&gt;&lt;BR&gt;이런 정책들이 결합해 글로벌 자산 거품이 초래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새로운 자산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 외국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중앙&lt;/FONT&gt;&lt;/U&gt;&lt;/A&gt;은행들이 보유한 달러도 미국으로 대량 유입돼 미국의 자산 거품을 키우고 있다.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주식&lt;/FONT&gt;&lt;/U&gt;&lt;/A&gt; 시장에 거품이 끼고 있는 배경이 이런 것이다.&lt;BR&gt;&lt;BR&gt;&lt;B&gt;미국 통화팽창 정책의 볼모가 된 다른 나라들&lt;/B&gt;&lt;BR&gt;&lt;BR&gt;달러 약세를 초래하는 미국의 정책은 다른 나라들도 통화팽창 정책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중앙은행들은 달러 약세를 우려해 통화 안정을 위한 공격적인 시장 개입을 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정책금리를 바람직한 수준 이하로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유지&lt;/FONT&gt;&lt;/U&gt;&lt;/A&gt;하는 것도 이때문이다.&lt;BR&gt;&lt;BR&gt;그 결과 이들 나라에서도 자산 거품이 초래되고 있다. 전세계에 걸쳐 온갖 자산 가격이 동시에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quot;하지만 언젠가 이 거품은 붕괴될 것&quot;이라면서 &quot;그것도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글로벌 자산 거품이 동시에 꺼지게 될 것&quot;이라고 경고한다.&lt;BR&gt;&lt;BR&gt;&lt;B&gt;달러 가치의 추세 전환은 시간 문제&lt;/B&gt;&lt;BR&gt;&lt;BR&gt;이런 때가 오는 조건은 무엇인가. 달러가 다시 강세로 돌아서며 달러 회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이 과정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다.&lt;BR&gt;&lt;BR&gt;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달러 가치가 완전히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순간 안정화될 것이고, 이때가 되면 달러 조달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비용&lt;/FONT&gt;&lt;/U&gt;&lt;/A&gt;이 마이너스에 돌연 제로로 바뀐다. 또한 달러 가치의 추세 전환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달러 회수에 들어가게 된다.&lt;BR&gt;&lt;BR&gt;Fed가 부실 채권을 매입해주는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프로그램&lt;/FONT&gt;&lt;/U&gt;&lt;/A&gt;도 내년 봄이면 끝나면서 금융시장의 안전성도 흔들린다. 미국의 경제&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성장&lt;/FONT&gt;&lt;/U&gt;&lt;/A&gt;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시장 예측보다 높은 플러스를 이어가면 시장에서는 Fed가 조만간 통화긴축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될 것이다.&lt;BR&gt;&lt;BR&gt;또한 더블딥 양상의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경기&lt;/FONT&gt;&lt;/U&gt;&lt;/A&gt;침체 또는 미국, &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1102214843&amp;section=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10081&gt;이스라엘&lt;/FONT&gt;&lt;/U&gt;&lt;/A&gt;과 이란의 군사적 대결 같은 지정학적리스크 등에 대한 우려로 위험자산에서의 탈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lt;BR&gt;&lt;BR&gt;또한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미 국채를 선호하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한 것처럼, 막대한 규모의 달러 매도 포지션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달러 가치의 추세전환 가능성은 달러 가치 급등을 촉발할 수 있다.&lt;BR&gt;&lt;BR&gt;달러 캐리 트레이드 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자산거품이 커지고 그 붕괴 규모가 커질 뿐이다.&lt;BR&gt;&lt;BR&gt;루비니 교수는 &quot;Fed를 비롯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자신들이 괴물같은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quot;면서 &quot;그들의 눈이 멀어있을 수록 시장의 붕괴는 더욱 심해질 것&quot;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lt;!--/DCM_BODY--&gt; &lt;/P&gt;
&lt;P class=author&gt;/이승선 기자&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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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저스 &quot;1~2년내 외환위기 온다&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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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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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2T11:50:48Z</updated>
	    <published>2009-11-02T11:50:4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id=Content&gt;&lt;FONT size=3&gt;&lt;FONT color=#494949&gt;&lt;B&gt;[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상품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로저스 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이 조만간 외환위기가 닥칠 것으로 경고해 주목된다.&lt;/B&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align=left src=&quot;http://photo.asiaeconomy.co.kr/listimg_link.php?idx=2&amp;no=2009110209412024194_1.jpg&quot;&gt;로저스 회장은 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전세계 불균형이 너무 심해 향후 1~2년 이내에 외환위기 혹은 준 외환위기가 닥쳐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t;BR&gt;&lt;BR&gt;&lt;BR&gt;&lt;BR&gt;그는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 같이 들리지만 항상 문제는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며 “외환시장에 문제가 많다”고 강조했다. &lt;BR&gt;&lt;BR&gt;&lt;BR&gt;&lt;BR&gt;로저스 회장은 그러나 어느 나라 통화가 위기의 중심에 서게 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인해 급격한 가치하락을 기록하고 있는 통화로는 아이슬란드와 라트비아 통화가 있다.&lt;BR&gt;&lt;BR&gt;&lt;BR&gt;&lt;BR&gt;로저스 회장은 아울러 “금융위기로 인한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잠재돼 있다”며 “일부 국가들의 경우 너무 많은 부채를 지고 있어 결국 이를 되갚기 위해 돈을 찍어낼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와 원자재 가격 급등과 함께 외환시장에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lt;BR&gt;&lt;BR&gt;&lt;BR&gt;&lt;BR&gt;한편 로저스 회장은 올해 있었던 중국 증시의 강한 랠리로 현재 중국 주식을 매입하고 있지 않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투자하기 시작한 중국 주식들 중 단 한 주도 아직까지 팔지 않았다고 전했다. &lt;BR&gt;&lt;BR&gt;&lt;BR&gt;&lt;BR&gt;로저스 회장은 지난 주 한 세미나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른바 A-주식 이라고 불리는 중국 본토 주식이 H-주식(홍콩주식)과 같은 다른 중국 주식들보다 더 비싸다며 외국인 투자자들도 사고 팔 수 있도록 돼있는 상하이, 선전 증시 거래 주식이나 위안화 표시 주식들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lt;BR&gt;&lt;BR&gt;&lt;BR&gt;&lt;BR&gt;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lt;/FONT&gt;&lt;/FONT&gt;&lt;BR&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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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로스 &quot;내년이나 내후년 더블딥 리세션&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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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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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31T14:43:18Z</updated>
	    <published>2009-10-31T14:43: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 억만장자 &lt;/STRONG&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C1%B6%C1%F6+%BC%D2%B7%CE%BD%BA&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4041130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TRONG&gt;조지 소로스&lt;/STRONG&gt;&lt;/FONT&gt;&lt;/U&gt;&lt;/A&gt;&lt;STRONG&gt; 헝가리 중부유럽대학 강연 &lt;BR&gt;&lt;BR&gt;&lt;/STRONG&gt;[뉴욕=이데일리 지영한특파원]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30일(현지시간) 세계경제가 2010년이나 2011에 다시 리세션(경기위축)에 빠져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width=199&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2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2px; PADDING-TOP: 2px&quot;&gt;
&lt;TABLE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IMG border=0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10/31/edaily/20091031054603303.jpeg&quot; width=194 height=264 w=&quot;194&quot; h=&quot;264&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FONT-FAMILY: 돋움, 돋움체; COLOR: #595959; FONT-SIZE: 9pt; PADDING-TOP: 2px&quot;&gt;▲ 조지 소로스 &lt;BR&gt;&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소로스는 모국인 헝가리의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A%CE%B4%D9%C6%E4%BD%BA%C6%A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4041130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부다페스트&lt;/FONT&gt;&lt;/U&gt;&lt;/A&gt;에 자신이 세운 중부유럽대학 강연에서 세계경제 회복세가 약화될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lt;BR&gt;&lt;BR&gt;그는 &quot;유감스럽게도 경제회복이 활력을 잃을 것&quot;이라면서 &quot;내년이 될지 올해가 될지 모르지만,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4%F5%BA%ED%B5%F6&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4041130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더블딥&lt;/FONT&gt;&lt;/U&gt;&lt;/A&gt; 리세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quot;고 밝혔다. &lt;BR&gt;&lt;BR&gt;더블딥 리세션은 더블(W)자 모양으로 경기가 회복하는 듯 했다가 다시 위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경제가 향후 다시 위축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lt;BR&gt;&lt;BR&gt;그는 특히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해 우려감을 피력했다. 즉, 앞으로 &quot;상업용 부동산과 부동산 차입매수(leveraged buyouts)에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quot;는 설명이다. &lt;BR&gt;&lt;BR&gt;앞서 하루전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9%CC%B1%B9+%BB%F3%B9%AB%BA%C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4041130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미국 상무부&lt;/FONT&gt;&lt;/U&gt;&lt;/A&gt;가 발표한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년만에 연율 3.5%의 플러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lt;BR&gt;&lt;BR&gt;그러나 이같은 경기회복세가 정부의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0%E6%B1%E2%BA%CE%BE%E7%C3%A5&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4041130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경기부양책&lt;/FONT&gt;&lt;/U&gt;&lt;/A&gt;에 크게 의존한 만큼 부양책이 줄어들 경우 경기가 다시 위축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소로스 역시 이같은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lt;BR&gt;&lt;BR&gt;소로스는 또 세계 금융자본 이동에 대한 `절대 자유`이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초래했고, 달러화에 중국 위안화 환율의 연동(페그)은 (위안화 저평가에 따른) 세계경제 불균형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lt;BR&gt;&lt;BR&gt;그는 따라서 세계 금융시스템의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IMF의 운용방식을 바꾸고 자본흐름을 통제할 규정을 검토하기 위해 새로운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A%EA%B7%B9%C6%B0+%BF%EC%C1%E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4041130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브레튼 우즈&lt;/FONT&gt;&lt;/U&gt;&lt;/A&gt;` 논의를 제안했다. &lt;BR&gt;&lt;BR&gt;소로스는 특히 미국 달러화는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마땅히 달러화를 대체할 다른 통화도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lt;BR&gt;&lt;BR&gt;그는 따라서 미국은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quot;&quot;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1%B9%C1%A6%C5%EB%C8%AD%B1%E2%B1%DD&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40411308&quot; target=new alt stitle=&quot;&gt;검색하기&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국제통화기금&lt;/FONT&gt;&lt;/U&gt;&lt;/A&gt;(IMF)의 특별인출권(SDR)의 사용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quot;고 말했다. 특별인출권은 오히려 중국에게 위안화의 달러화 연동(페그)을 포기하게 할 것인 만큼 세계경제 불균형을 줄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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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크 파버 &quot;美 3분기 GDP 끔찍하다&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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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제러미</name>
	    </author>
	    <updated>2009-10-31T14:42:41Z</updated>
	    <published>2009-10-31T14:42: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 소비·고용에 대한 긍정적 신호 없어 &lt;BR&gt;&lt;BR&gt;&lt;/STRONG&gt;[뉴욕=이데일리 피용익특파원]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 글룸둠앤드붐리포트 발행인은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보고서가 사실 끔찍한 내용이라고 30일(현지시간) 주장했다. &lt;BR&gt;&lt;BR&gt;전일 발표된 3분기 GDP는 예상을 뛰어넘는 연율 3.5% 증가를 기록하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줬다는 점에서 파버의 이같은 주장이 주목되고 있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width=205&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2px; PADDING-LEFT: 2px; PADDING-RIGHT: 2px; PADDING-TOP: 2px&quot;&gt;
&lt;TABLE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IMG border=0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10/31/edaily/20091031002303476.jpeg&quot; width=200 height=133 w=&quot;200&quot; h=&quot;133&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FONT-FAMILY: 돋움, 돋움체; FONT-SIZE: 9pt; PADDING-TOP: 2px&quot;&gt;▲ 마크 파버 &lt;BR&gt;&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파버는 이날 CNBC에 출연해 &quot;GDP는 사실 끔찍 한 내용&quot;이라면서 &quot;투자자들도 당초 생각만큼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quot;이라고 말했다 &lt;BR&gt;&lt;BR&gt;그는 &quot;GDP가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개인소득이나 실업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여주지 못했다&quot;고 강조했다. &lt;BR&gt;&lt;BR&gt;그는 더 나아가 &quot;GDP 숫자를 믿지 않는다&quot;면서 &quot;이 숫자는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quot;고 덧붙였다. &lt;BR&gt;&lt;BR&gt;실제로 이날 발표된 9월 개인소득은 전월 대비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발표됐다. 이에 따라 개인소비는 0.5% 감소하며 5개월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lt;BR&gt;&lt;BR&gt;파버는 또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F%AC%B9%E6%C1%D8%BA%F1%C1%A6%B5%B5%C0%CC%BB%E7%C8%B8&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02308043&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연방준비제도이사회&lt;/FONT&gt;&lt;/U&gt;&lt;/A&gt;(Fed)의 제로(0~0.25%) 금리 정책을 문제삼기도 했다. &lt;BR&gt;&lt;BR&gt;그는 &quot;연준의 저금리 정책은 경제의 변동성을 높임으로 인해 자본의 전체적인 가격 오류로 이어졌다&quot;며 &quot;연준의 정책은 상품 시장의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quot;고 지적했다. &lt;BR&gt;&lt;BR&gt;또 &quo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A%A5+%B9%F6%B3%C3%C5%B0&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02308043&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벤 버냉키&lt;/FONT&gt;&lt;/U&gt;&lt;/A&gt; 연준 의장은 항상 근원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C0%CE%C7%C3%B7%B9%C0%CC%BC%C7&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1031002308043&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인플레이션&lt;/FONT&gt;&lt;/U&gt;&lt;/A&gt;(에너지와 식품 가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을 거론하지만 이는 초점을 잘못 맞춘 것&quot;이라며 &quot;에너지와 식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quot;고 물었다. &lt;BR&gt;&lt;BR&gt;이어 &quot;(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향후 5~10년 동안 금리 인상은 놀라운 수준이 될 것&quot;이라고 전망했다. &lt;BR&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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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사장</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yleelife/1633"/>
		<id>tag:blog.daum.net,2009:kyleelife.1633</id>
	    <author>
		    <name>제러미</name>
	    </author>
	    <updated>2009-10-23T10:31:11Z</updated>
	    <published>2009-10-23T10:31: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2 class=title_author&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사장&lt;/SPAN&gt;&lt;/H2&gt;
&lt;DIV class=title_author&gt;
&lt;UL id=author&gt;
&lt;LI&gt;교토=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 &lt;A href=&quot;mailto:jhl@chosun.com&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jhl@chosun.com&lt;/FONT&gt;&lt;/U&gt;&lt;/A&gt;&amp;nbsp; 조선일보닷컴 위클리비즈 2009. 10. 20&lt;/LI&gt;&lt;/UL&gt;&lt;/DIV&gt;
&lt;P&gt;&amp;nbsp;&lt;/P&gt;&lt;!-- article --&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3px; FONT-SIZE: 14px&quot; id=article class=article&gt;
&lt;H3&gt;이 사람은 '魂'을 가졌다&lt;/H3&gt;
&lt;DL style=&quot;WIDTH: 240px&quot; class=left_img&gt;
&lt;DD&gt;&lt;IMG id=artImg0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0/16/2009101600941_0.jpg&quot; width=240 height=343&gt; 
&lt;DT&gt;&lt;SPAN&gt;▲&lt;/SPAN&gt; 블룸버그 &lt;/DT&gt;&lt;/DL&gt;
&lt;P&gt;&lt;일본전산 이야기&gt;주인공 나가모리 일본전산 사장 인터뷰&lt;/P&gt;
&lt;P&gt;난관에 부딪혀 앞이 캄캄할 때, 남들에 비해 내가 가진 조건이 다 불리해 보일 때…. 이럴 때 이 사람의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lt;BR&gt;&lt;BR&gt;이 사람과 1시간 30분의 인터뷰를 마쳤을 때 기자는 지치기는커녕 마치 힘이 나는 약을 먹은 느낌이었다. 그는 지상 최고의 모티베이터였다.&lt;BR&gt;&lt;BR&gt;일본전산(日本電産)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65·&lt;B&gt;사진&lt;/B&gt;）사장. 이 사람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엮은 책 〈일본전산 이야기〉는 올 초에 나와 지금까지 30만부가 팔렸고, 삼성경제연구소는 'CEO들이 여름휴가 때 읽을 책 20권' 중 하나로 꼽았다.&lt;BR&gt;&lt;BR&gt;그는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name=focus_link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size=2&gt;일본&lt;/FONT&gt;&lt;/U&gt;&lt;/A&gt;에서 가장 열정적인 경영자로 꼽힌다. 1973년 가정집 한 귀퉁이 창고에서 전기 모터 회사를 창업해 지금은 140여개 계열사에 13만명의 종업원, 매출 약 8조원의 그룹을 일궈냈다. 일본판 벤처 신화이다. 게다가 국내외 27개 회사를 인수합병(M&amp;A)한 뒤 모두 경영을 정상화시켜 '기업 재생의 신(神)'으로 불린다.&lt;BR&gt;&lt;BR&gt;그렇다고는 해도 일본 재계 랭킹 100위권 밖의 중견 기업.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에 통쾌한 역전이 있고, 가슴 뛰게 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lt;BR&gt;&lt;BR&gt;나가모리 사장은 스스로를 '헨진(變人·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괴짜 경영인이다. 그는 정형(定型)과 겸양이 미덕인 일본 사회에서 기행(奇行)과 파격(破格)을 서슴지 않는다.&lt;BR&gt;&lt;BR&gt;하지만 그의 파격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벤처기업이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region/regionView.jsp?id=142&quot; name=focus_link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size=2&gt;도쿄&lt;/FONT&gt;&lt;/U&gt;&lt;/A&gt; 식(式)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도쿄의 대기업에 승산이 전혀 없었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도쿄식을 거슬렀다. &quot;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quot;라고 하면서. 그래서 창안한 것 중 하나가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큰 순서대로 뽑는, 기발한 신입사원 공채 시험이었다.&lt;BR&gt;&lt;BR&gt;그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일본전산 교토 본사 20층에 있는 그를 만나러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4면이 모두 녹색이었다. 다무라 홍보부장은 나가모리 사장이 녹색에 대한 고다와리(특정한 것에 대한 마니아적 집착을 나타내는 일본어)가 있다고 귀띔했다.&lt;BR&gt;&lt;BR&gt;과연 그는 녹색 넥타이에 녹색 행커치프 차림으로 나타났다. &quot;왜 녹색인가&quot; 물으니 그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여준다. 역시 녹색. 소매를 걷으니 드레스셔츠의 커프스버튼까지 녹색이다.&lt;BR&gt;&lt;BR&gt;&quot;구성술(九星術-점성술의 일종)에 따르면 저는 흙(土)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흙은 식물, 즉 녹색이 없으면 썩어 버리죠. 그래서 녹색입니다. 녹색 넥타이가 1000개가 넘어요. 그리고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책상을 남쪽이나 동쪽에 둡니다. 회사도 반드시 남향 아니면 동향입니다. 곳곳에 사옥이 있고, 공장이 있는데 다 그래요. 그런데 도산한 기업을 인수한 뒤 가보면 공교롭게도 대개 북향 아니면 서향이에요.&quot;&lt;BR&gt;&lt;BR&gt;늘 밝고, 기운찬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의 고다와리다. 사옥 1층엔 6개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모두 해바라기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엔 일곱 마리의 말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lt;BR&gt;&lt;BR&gt;많은 사람이 나가모리 사장에게 고속성장의 비결을 묻는다. 그런데 그 대답이 우스울 만큼 간단하다. &quot;남들보다 두 배 일하면 된다&quot;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전산의 행동 지침은 이렇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lt;BR&gt;&lt;BR&gt;창조경영을 논하고, 서번트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무모하다고 할 만큼 '전근대적'인 경영 철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이 없었다고 했다. &quot;36년 전 창업했을 때 우리 경쟁 상대는 세계와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었습니다. 그들에 이기기 위해서는 흙탕물 마시며 두 배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quot;&lt;BR&gt;&lt;BR&gt;&lt;/P&gt;
&lt;DIV class=center_img&gt;
&lt;DL style=&quot;WIDTH: 480px&quot;&gt;
&lt;DD&gt;&lt;IMG id=artImg1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0/16/2009101600941_1.jpg&quot; width=480 height=340&gt; 
&lt;DT&gt;&lt;SPAN&gt;▲&lt;/SPAN&gt; 일본전산의 핵심 가치인 '정열(情熱), 열의(熱意), 집념(執念)'을 나가모리 사장이 자필로 썼다. &lt;/DT&gt;&lt;/DL&gt;&lt;/DIV&gt;일본전산의 핵심 가치는 '정열, 열의, 집념'이다. 나가모리 사장의 정열은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억양이 센 오사카변(사투리)을 쓰는 그는 목소리 크기도, 말하는 속도도, 대화에 몰입하는 정도도 다른 사람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lt;BR&gt;&lt;BR&gt;―한국에서 사장님 책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왜 한국 CEO들이 사장님 이야기에 열광할까요?&lt;BR&gt;&lt;BR&gt;&quot;몇 달 전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21&quot; name=focus_link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size=2&gt;한국&lt;/FONT&gt;&lt;/U&gt;&lt;/A&gt;에 갔더니 호텔 종업원들이 저마다 제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사장님이 읽고 감상문을 써내라고 했다면서요. 일본도 30년 전만 해도 저 같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마쓰시다 고노스케나 모리타 아키오 같은 분들이죠. 그런데 요즘 일본 사람들은 '남들 두 배 일하라' 이런 말 하면 '힘들다', '괴롭다', '이젠 인생을 좀 즐길 때 아니냐'고 해요. 하지만 한국에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아요. '일본을 따라잡고, 일본을 앞지르려면 일본에서 성공한 것을 다 따라 배우자'고 말하는 사람이. 그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quot;&lt;BR&gt;&lt;BR&gt;
&lt;DL style=&quot;WIDTH: 240px&quot; class=left_img&gt;
&lt;DD&gt;&lt;IMG id=artImg2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0/16/2009101600941_2.jpg&quot; width=240 height=366&gt; 
&lt;DT&gt;&lt;SPAN&gt;▲&lt;/SPAN&gt; 나가모리 사장은 녹색을 좋아한다. 넥타이도, 지갑도, 행커치프도, 드레스셔츠의 커프스버튼도 모두 녹색이다. / 마이니치 제공 &lt;/DT&gt;&lt;/DL&gt;&lt;STRONG&gt;■능력의 차이는 5배, 의식의 차이는 100배&lt;/STRONG&gt;&lt;BR&gt;&lt;BR&gt;일본전산을 이야기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나가모리 사장이 창업 초기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했는데, 인재가 오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장인이 지나가는 말처럼 &quot;군대 생활해보니 밥 빨리 먹고, 목욕 빨리하고, 용변 빨리 보는 사람이 일도 잘하더라&quot;고 말했다.&lt;BR&gt;&lt;BR&gt;나가모리 사장은 1978년 '밥 빨리 먹기 시험'을 실행에 옮긴다. 160명의 응시자 중 서류와 면접으로 절반 정도를 거른 뒤 남은 전원에게 도시락을 나눠줬다. 그리고 가장 빨리 먹은 사람 순서대로 서른세 명을 무조건 합격시켰다. 커트라인은 15분이었다. 떨어진 사람들은 &quot;무슨 이런 시험이 있느냐&quot;고 아우성쳤고, 지역 언론은 &quot;한심한 회사&quot;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뒤에도 '큰소리로 말하기' 시험, '화장실 청소' 시험, '오래 달리기' 시험과 같은, 일본전산만의 시험을 고집했다.&lt;BR&gt;&lt;BR&gt;&quot;저도 원래는 도쿄대나 교토대 출신의 머리 좋은 사람을 뽑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엔 그런 인재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밥 빨리 먹기 시험은, 명문대 출신은 아니지만 잠재 능력이 큰 사람을 뽑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quot; 그러나 그는 &quot;밥 빨리 먹기 시험이야말로 어느 입사시험보다도 효과 만점이었다&quot;고 덧붙였다. &quot;일본전산에서 세계적 발명이 나오고, 세계 챔피언이 됐는데 그것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게 바로 그때 밥 빨리 먹고 목소리 커서 뽑힌 사람들이었어요.&quot;&lt;BR&gt;&lt;BR&gt;범재(凡才)를 천재(天才)로 만드는 데 나가모리 사장만의 리더십과 동기 부여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능력의 개인 차는 아무리 커도 5배를 넘지 않지만, 의식의 차이는 100배의 격차를 낳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출중한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 그들의 하려는 의욕을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하는 고속성장의 비결이다.&lt;BR&gt;&lt;BR&gt;그가 무조건 두 배 일하라고 다그치기만 했다면 직원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전혀 다른 면모도 있었다. 결코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실패한 직원에게 점수를 더 주며, 부하에게 호통을 친 뒤에 뒤끝은커녕 두 배의 배려를 기울인다. 다른 기업을 인수하면 단 한 명의 구조조정도 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두 배 일하게 만드는 그의 노하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lt;BR&gt;&lt;BR&gt;―요즘도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큰 사람 뽑습니까?&lt;BR&gt;&lt;BR&gt;&quot;지금은 밥을 먹게 한다든지 그런 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을 금방 알 수 있어요. 수십 년 데이터가 쌓여 있기 때문에 어떤 질문을 해서 어떤 대답을 하면 합격, 어떤 대답을 하면 불합격, 이런 게 시스템으로 돼 있습니다. 노하우지요. 기본적으로는 요즘 사람들이 예전처럼 '경쟁에서 이기자'는 정신이나 정열, 열의, 집념 이런 게 부족하니 그런 사람을 어떻게 뽑는가 하는 노하우입니다. 수천 가지의 노하우가 있습니다.&quot;&lt;BR&gt;&lt;BR&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View.jsp?id=579&quot; name=focus_link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size=2&gt;이건희&lt;/FONT&gt;&lt;/U&gt;&lt;/A&gt; 전 삼성 회장이 예전에 &quot;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quot;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lt;BR&gt;&lt;BR&gt;&quot;저는 늘 '한 사람의 100보(步)보다 100사람의 1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천재보다 100사람의 1보가 낫다는 것이죠. 100보라고 해도 100사람이 한다면 한 사람에 1보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100보는 힘든 일이니까요.&quot;&lt;BR&gt;&lt;BR&gt;―이건희 회장과는 반대군요?&lt;BR&gt;&lt;BR&gt;&quot;완전히 반대입니다. 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건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도 수백 년 전엔 그렇게들 말했어요. 나라 전체의 수준이 크게 뒤떨어져 있을 때는 그것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려면 천재가 필요합니다. 한국도 그런 생각에서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나왔을 것이고요. 일본도 전전(戰前)에 그랬습니다. 재벌이 이끌고 갔죠.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출중한 나라가 됐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 나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성장이 더딘 이유가 그런 데도 있습니다.&quot;&lt;BR&gt;&lt;B&gt;&lt;BR&gt;&lt;/B&gt;
&lt;DL style=&quot;WIDTH: 240px&quot; class=left_img&gt;
&lt;DD&gt;&lt;IMG id=artImg3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0/16/2009101600941_3.jpg&quot; width=240 height=398&gt; &lt;/DD&gt;&lt;/DL&gt;&lt;STRONG&gt;■일이 즐거우니 두 배 일한다&lt;BR&gt;&lt;BR&gt;&lt;/STRONG&gt;남보다 두 배 일한다는 그의 사고방식은 그의 모친에서 비롯됐다. 그가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모친은 그를 거듭 말렸다. 그래도 그가 뜻을 굽히지 않자 모친은 그에게 한 가지를 조건으로 허락했다. 바로 &quot;늘 다른 사람의 두 배를 일하겠다는 약속을 하라&quot;는 것이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농사꾼 집안의 6남매 중 막내였다. 남편을 일찍 사별한 모친은 아침엔 남보다 일찍 밭에 나가고, 밤엔 가장 늦게 귀가하는 '두 배 일하기'로 많은 전답을 사 모았다.&lt;BR&gt;&lt;BR&gt;―한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 사원들에게 두 배 일하라고 하지 않아도, 즐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저절로 두 배 일하지 않을까요?&lt;BR&gt;&lt;BR&gt;&quot;그런 생각을 실천한 것이 바로 일본전산입니다. 30~40년 전만 해도 일할 데가 없으니 힘들어도 열심히 일했죠. 하지만 요즘은 능력 있는 사람은 어디 가서도 일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왜 여기서 일 하나?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그래요. 저는 돈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서 밤까지 일하나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일본전산엔 회사를 키우는 즐거움,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다른 기업을 인수해서 키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quot;&lt;BR&gt;&lt;BR&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56&quot; name=focus_link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size=2&gt;미국&lt;/FONT&gt;&lt;/U&gt;&lt;/A&gt;의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com/comView.jsp?id=564&quot; name=focus_link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size=2&gt;구글&lt;/FONT&gt;&lt;/U&gt;&lt;/A&gt; 같은 회사는 일을 즐기라고 해서 회사를 마치 놀이동산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lt;BR&gt;&lt;BR&gt;&quot;미국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도 일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퇴근하면 술집으로 갑니다. 노동의 질이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두 배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논다는 게 그래요. 매일 일하다 조금 쉬면 재미있지만, 매일 놀면 재미가 없어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 마시고, 파친코에 가고, 영화를 보고 합니다만, 그렇게 풀리는 스트레스라면 진짜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작은 스트레스이죠. 진짜 스트레스는 일 스트레스이고, 그것은 일로 성공해야 비로소 풀립니다.&quot;&lt;BR&gt;&lt;BR&gt;(나중에 다무라 홍보부장은 두 배 일하라는 것이 무조건 '오래' 일하라는 것과는 구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일본전산의 하드워킹이란 '지적 하드워킹'을 말한다는 것이다. 생각으로 일하는 것, 일을 쉬고 있을 때나 무의식중에도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lt;BR&gt;&lt;BR&gt;&lt;B&gt;■경제위기 이후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이익을 내는 발본적 개혁 시동&lt;/B&gt;&lt;BR&gt;&lt;BR&gt;―100년 만에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합니다. 사장님에게도 그랬나요?&lt;BR&gt;&lt;BR&gt;&quot;창업 후 36년 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작년 말 리먼 브러더스 쇼크 이후 순간적으로 매출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우리 같은 제조업체는 보통 매출이 30% 줄면 적자를 보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매월 100억엔씩 적자를 보는 것으로 나와요. 그래서 어떻게 적자를 면할까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도 성공한 기업들이 있었는데 그런 기업의 성공 비결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이익을 내는 구조로 바꿔야 하겠다. 그러면 매출이 70%로 회복되면 이익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고, 매출이 100% 회복되면 이익이 두 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게 'WPR'입니다.&quot;&lt;BR&gt;&lt;BR&gt;―WPR요?&lt;BR&gt;&lt;BR&gt;&quot;예. 'double profit ratio'의 약자입니다. (다무라 홍보부장은 'DPR'로 줄일 수도 있지만, 말하기 편하게 'WPR'로 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매출이 줄어도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이것을 전사적으로 검토했는데, 그랬더니 수만 건의 개선 항목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묶어서 사내 매뉴얼도 만들었어요. 생산성을 배가하고, 운영을 재편하고, 신사업을 개척하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잔업 4시간을 해서 하던 일을 잔업 없이 정시에 끝내자, 쓸데없는 회의는 없을까 같은 것도 철저히 검증하자, 그리고 하청기업 선정도 그룹 차원에서 통일 기준을 만들어 계열사에 지시했습니다. 다행히 매출이 아직 100%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내년 3월 결산기의 이익률은 사상 최고치를 달성할 것 같습니다.&quot;&lt;BR&gt;&lt;BR&gt;―잔업 4시간으로 하던 일을 정시에 끝내다니, 마치 마른걸레를 다시 짜자는 것처럼 들립니다. 일본전산 같은 회사에서 직원에게 더 짜낼 게 남아 있습니까?&lt;BR&gt;&lt;BR&gt;&quot;마른걸레 짜는 것, 그런 일 저희는 안 해요. (웃음) 그런 도요타식 구식 합리화가 아닙니다. 그렇게 사원을 쥐어짜는 식으로는 위기 극복이 불가능합니다. 비유하자면 걸레로 청소하던 것을 전동청소기로 바꾸는, 그런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걸레로 10시간 걸리던 것을 전동청소기로 1~2시간에 끝내는 거죠. '정시에 퇴근해라.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일해라. 잔업 수당이 없어지니 곤란하겠지만, WPR로 수익을 내서 돌려주겠다.' 이런 것이 WPR의 요체입니다. 마른걸레 짜는 회사들은 직원들 목을 잘랐지만, 우리는 한 명도 감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식으론 결코 위기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quot;&lt;BR&gt;&lt;BR&gt;―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lt;BR&gt;&lt;BR&gt;&quot;누구나 궁금해하고 있지만, 노하우니까 공개할 수는 없어요.&quot;&lt;BR&gt;&lt;BR&gt;
&lt;DIV class=center_img&gt;
&lt;DL style=&quot;WIDTH: 480px&quot;&gt;
&lt;DD&gt;&lt;IMG id=artImg4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0/16/2009101600941_4.jpg&quot; width=480 height=252&gt; 
&lt;DT&gt;&lt;SPAN&gt;▲&lt;/SPAN&gt; 나가모리 사장은 말할 때 제스처를 많이 썼다. 그는 대학 시절 대학신문 편집장과 변론부 활동을 한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오른쪽은 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 / 일본전산 제공 &lt;/DT&gt;&lt;/DL&gt;&lt;/DIV&gt;&lt;STRONG&gt;■부실기업 살리는 비결은 사원들의 병든 의식 고치는 것&lt;BR&gt;&lt;BR&gt;&lt;/STRONG&gt;나가모리 사장은 끊임없는 M&amp;A를 통해 회사를 확장해 왔다. 그는 27개의 기업을 인수한 뒤 모두 흑자로 돌려놓았다. 그것도 한 명의 구조조정도 없이.&lt;BR&gt;&lt;BR&gt;―부실기업을 살리는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lt;BR&gt;&lt;BR&gt;&quot;사원의 의식 개혁입니다. 부실기업의 특징은 사원들의 의식이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닐까', '월급 못 받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안감 때문에 일하려는 의욕이 꺾이게 됩니다. 일본전산보다 큰 기업, 역사가 긴 기업, 기술이 뛰어난 기업도 경영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사원들의 의욕이 꺾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되돌리는 것이 바로 경영자의 일입니다. 사원들의 병든 의식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이죠.&quot;&lt;BR&gt;&lt;BR&gt;나가모리 사장의 부실기업 경영 정상화 방식은 철저히 현장 중심적이다. 지난 2003년 나가노현의 산쿄정기(三協精機)를 인수한 뒤 그는 매주 2박3일씩 출장을 갔다. 400㎞ 거리다. 그리고 작업복에 작업모를 쓰고 공장을 돌아다녔다. 2004년 9월까지 12개월 동안 일반사원-주임급 사원과 52회, 과장 이상 관리직과는 25회의 간담회를 가졌다. 가장 먼저 당부한 일이 자발적으로 10분 일찍 출근해 회사를 깨끗이 청소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사원의 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출근 시간과 직장의 정리정돈, 그리고 전화 응대라고 말한다. 그는 의식 개혁을 위해 항상 '6S'를 강조한다. 정리, 정돈, 청결, 청소, 단정, 예의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lt;BR&gt;&lt;BR&gt;―그 여섯 가지만 잘하면 경영이 정상화되나요?&lt;BR&gt;&lt;BR&gt;&quot;전화는 엉망으로 받고, 사원은 지각하고, 공장은 더럽고, 이런 회사 중에 실적 좋은 회사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사실 6S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경영 정상화를 하러 가보면 그것을 못하고 있어요.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면 점점 수익이 나기 시작하죠.&quot;&lt;BR&gt;&lt;BR&gt;―오늘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십시오.&lt;BR&gt;&lt;BR&gt;&quot;오전 5시50분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6시50분에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30분 동안 경비에 관한 전표를 봅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고 회의를 하고. 점심은 10분 만에 먹습니다.&quot;&lt;BR&gt;&lt;BR&gt;―10분요? 저녁도 10분입니까?&lt;BR&gt;&lt;BR&gt;&quot;저녁은 20분입니다. (웃음) 아침은 5분이고요. 그러니 5분-10분-20분입니다. 양은 많이 먹지만, 먹는 속도가 빠릅니다. 저는 365일, 휴가도 없이 일합니다. 쉬는 것은 설날 오전뿐입니다. 술도 끊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quot;&lt;BR&gt;&lt;BR&gt;―인생에 유일한 낙이 일입니까?&lt;BR&gt;&lt;BR&gt;&quot;일하는 것은 힘듭니다. 일 자체가 즐겁다기보다 일한 결과가 나오니 즐거운 것입니다. 처음에 이 방과 비슷한 크기의 공장에서 시작했는데, 36년간 계속 성장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세계에 진출하고 이런 것이 다 즐거운 것 아닌가요?&quot;&lt;BR&gt;&lt;BR&gt;&lt;B&gt;■직원들에게 1주일에 1000통의 이메일을 보낸다&lt;/B&gt;&lt;BR&gt;&lt;BR&gt;―사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습니까?&lt;BR&gt;&lt;BR&gt;&quot;제가 하고 싶었던 게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야쿠자의 두목, 둘째 노동조합 위원장, 그리고 셋째가 사장입니다. 공통점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쿠자 두목은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회는 물론 가족들도 기피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까요.&quot;&lt;BR&gt;&lt;BR&gt;―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교세라그룹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과 생각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두 분 다 이른바 '교토식 경영'을 상징하는 인물이신데,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사장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그리고 그와는 어떤 사이입니까?&lt;BR&gt;&lt;BR&gt;&quot;이나모리 회장이 저보다 12살 위인데, 공통점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 열심히 일하고, 둘째, 미래의 꿈을 보는 소년이었고, 셋째, 삼류대학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많이 주는 직업훈련대학교 전기과를 졸업했다.) 20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그 양반과 식사를 같이하면, 저와 닮은 점이 있어요. 식사가 끝나면 둘 다 집에 안 가고 회사로 돌아갑니다. 노력가라는 것이죠. 교토의 기업들을 보면 CEO들이 모두 유니크한 사람들이에요. 헨진(變人)이죠. 그런데 경영은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교토)는 창업자가 많은 곳입니다. 도쿄나 오사카는 샐러리맨투성이지만.&quot;&lt;BR&gt;&lt;BR&gt;―대학 시절 대학신문 편집장을 지냈는데, 신문 만들어본 경험이 경영에 도움이 됐나요?&lt;BR&gt;&lt;BR&gt;&quot;경영자가 사람을 움직이려면 마음을 전하는 말과 문장을 써야 합니다.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쓸 수 없는 그런 글을 써야 하는데, 편집장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대학 시절에 또 변론부 활동도 했는데, 사람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quot;&lt;BR&gt;&lt;BR&gt;나가모리 사장은 사원들에게 이메일을 많이 보낸다. 1주일에 보통 1000통을 보낸다. 출장 가기 위해 신칸센(新幹線)을 탈 때도 계속 이메일을 쓴다. '자네, 그건 틀린 것 같아', '잘했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런 내용이다.&lt;BR&gt;&lt;BR&gt;&quot;인간에게 모티베이션이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은 3일, 경영자라고 해도 2~3개월 정도죠. 따라서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해 주지 않으면 90%의 사람은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원들의 일하려는 의욕을 높이기 위해 이메일을 보냅니다.&quot;&lt;BR&gt;&lt;BR&gt;인터뷰를 시작한 뒤 어느덧 약속했던 1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오늘의 인터뷰를 즐기는 것 같았다.&lt;BR&gt;&lt;BR&gt;&lt;B&gt;■한국, 삼성·LG·현대 셋만으로는 꿈이 없다&lt;/B&gt;&lt;BR&gt;&lt;BR&gt;―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 기업과는 어떻게 다릅니까?&lt;BR&gt;&lt;BR&gt;&quot;한국 기업의 발전은 눈부십니다. 하지만, 한국엔 삼성과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com/comView.jsp?id=30&quot; name=focus_link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 size=2&gt;LG&lt;/FONT&gt;&lt;/U&gt;&lt;/A&gt;, 현대 이렇게 셋밖에 없어요. 미국, 일본엔 수백 개인데, 한국엔 셋뿐이에요. 이래서는 젊은이들에게 꿈이 없어요. 이게 일본과의 차이입니다. 한국이 진짜 강해지려면 중소기업, 벤처기업도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나라, 그래서 대기업에 못 들어가는 젊은이에게도 찬스를 주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일본 추월도 가능합니다.&lt;BR&gt;&lt;BR&gt;일본도 전후(戰後)에 소니나 혼다, 교세라 같은 기업들이 생겨났죠. 이런 게 안 생기면 진정한 의미에서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일할 의욕이 생길까요? 한국이 잘되려면 온실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아니라 흙탕물 먹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창업자가 많아야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야 하는데, 한국엔 선택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요. 공부 열심히 해서 가는 데가 삼성, LG, 현대뿐이라면 세상이 재미없지 않아요? 대기업에 입사하는 사람은 만족해도 대기업에 못 들어가는 젊은이는 희망이 없어요. 바로 이런 점도 한국에서 제 책이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저 같은 삼류 대학 출신,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는 사람에게도 꿈을 주니까요.&quot;&lt;BR&gt;&lt;BR&gt;나가모리 사장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그가 쓴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라〉는 책에 '정열, 열의, 집념'을 자필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신문에 실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quot;그렇다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지&quot; 하면서 미리 써서 인쇄해 둔 종이를 가져오게 한 뒤 기자에게 건넸다.&lt;BR&gt;&lt;BR&gt;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quot;다시 만납시다&quot;하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묵직하고 따뜻했다&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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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체장애 3급 경매전문가 고정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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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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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3T10:30:1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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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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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8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기를 극복한 부자들]⑨&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지체장애 3급 경매전문가 고정훈&lt;/SPAN&gt;&lt;/SPAN&gt;&lt;/STRONG&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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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lt;!-- SUB_TITLE_START--&gt;&lt;STRONG style=&quot;COLOR: #6b6b6b&quot;&gt;“장애로 인해 소외됐던 삶을 살다가 &lt;BR&gt;스스로 당당한 삶을 살게 돼 정말 행복해요”&lt;/STRONG&gt;&lt;!-- SUB_TITLE_END--&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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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ffff&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BR&gt;&lt;BR&gt;&lt;FONT size=+0&gt;「레이디경향」에서는 소액&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투자',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투자');&quot;&gt;투자&lt;/FONT&gt;로 성공한 사람, 부도 직전의 위기에서 성공한 사람, 잘못된 투자로 돈을 잃었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관리 노하우를 알아보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이달의 주인공은 지체장애 3급의 한계를 극복하고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경매',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경매');&quot;&gt;경매&lt;/FONT&gt; 전문가로 성공한 고정훈씨다. (편집자 주)&lt;/FONT&gt;&lt;BR&gt;&lt;BR&gt;&lt;STRONG&gt;초등학교 때 우연한 사고로 지체장애 3급 판정 받아&lt;BR&gt;&lt;/STRONG&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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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1--&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9/20090914164416_1_kjhun1.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1--&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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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1--&gt;&lt;!--cap_end_1--&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1--&gt;&lt;/TABLE&gt;고정훈씨는 올해 37세로 잘나가는 경매 전문가다. 그가 경매에 발을 들인 지 벌써 13년째. 그동안 종자돈 3천만으로 시작해 모은 재산은 집 13채로, 돈으로 환산하면 30억원 규모다. 13년 동안 무려 100배의 수익을 올린 것.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고정훈씨가 팔과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고씨는 당당히 인정받는 경매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lt;BR&gt;&lt;BR&gt;&lt;FONT size=+0&gt;고씨가 장애를 갖게 된 건 우연한 사고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책으로 머리를 맞은 이후 서서히 팔과 다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뇌출혈',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뇌출혈');&quot;&gt;뇌출혈&lt;/FONT&gt;이 시작된 것.&lt;/FONT&gt;&lt;BR&gt;&lt;BR&gt;“농사지으면서 소박하게 살던 부모님과 식구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죠. 결국 뇌출혈을 고치기 위해 가족 모두 서울로 올라왔어요.”&lt;BR&gt;&lt;BR&gt;하지만 서울에 와서 치료를 받아도 그의 증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마비되는 팔다리의 불편함을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운동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뇌출혈은 본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기에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다. 다행히 10년 전 뇌혈관 수술을 한 이후,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고 있지만, 여전히 왼쪽 팔과 다리는 불편한 상태다.&lt;BR&gt;&lt;BR&gt;그는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가 정규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만큼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은 생각보다 컸다.&lt;BR&gt;&lt;BR&gt;&lt;STRONG&gt;법원에서 고씨의 별명은 ‘절룩이 아저씨’&lt;/STRONG&gt;&lt;BR&gt;&lt;FONT size=+0&gt;그가 경매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7년 스물다섯 살 때였다. 집 앞에 있는 태인경매&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컨설팅',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컨설팅');&quot;&gt;컨설팅&lt;/FONT&gt;이라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것. 당시 그가 하는 일은 등기부등본을 발급하고, 발송하는 일이었다.&lt;/FONT&gt;&lt;BR&gt;“제 채용문제로 인해 내부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장애인이 얼마나 일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거였죠. 하지만,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나자 열심히 일하는 제 모습을 보고는 다들 인정해줬어요.”&lt;BR&gt;&lt;BR&gt;모르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하나하나 배워가기 시작했다. 하루에 등기부등본을 수백, 수천 건을 접하다 보니, 등기부등본은 이제 그 누구보다 잘 본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태인경매컨설팅의 이기강 이사가 “장애 때문에 직장생활 하기 힘들 테니 나를 따라다니면서 경매를 배워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lt;BR&gt;&lt;BR&gt;&lt;FONT size=+0&gt;“이기강 이사님은 지금까지도 스승으로 모시는, 제 인생을 바꿔준 분이죠. 그분을 통해 경매를 배웠거든요. 아침 9시에 경매 법원으로 출근해서 정보지를 돌리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경매 브로커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어요. 당시 자판기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커피',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커피');&quot;&gt;커피&lt;/FONT&gt;가 한 잔에 2백원이었는데, 커피 값으로 하루에 만원 넘게 썼죠. 처음에는 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무시하던 사람들이 매일 법원에서 인사하는 모습을 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웃음).”&lt;/FONT&gt;&lt;BR&gt;&lt;BR&gt;경매를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장애를 가졌지만, 그의 옆에는 친절하게 경매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이기강 이사가 있었다. 더군다나 종자돈이 없었기 때문에 성급하게 경매에 뛰어들지 않았다. 초창기에 그가 하는 일이라곤 전문 브로커가 어떤 물건을 낙찰받는지 살펴보고, 경매 결과를 체크하는 게 전부였다.&lt;BR&gt;&lt;BR&gt;“법원은 제 놀이터였죠. 왔다 갔다 하면서 서류도 보고, 양식도 카피해오고, 법원 계장님들과 얼굴을 익히고 대화하며 노하우도 배웠죠. 제가 이론은 잘 몰라도, 법원에서 진행되는 실무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어요.”&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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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2--&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9/20090914164416_2_kjhun2.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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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2--&gt;&lt;!--cap_end_2--&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2--&gt;&lt;/TABLE&gt;법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절룩이 아저씨’라고 불렀고, 경매를 오래 해온 사람들 중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절룩이’라고 부르는 남들의 시선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그에게 떳떳한 직업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기 때문이다. 일로서 사람들을 만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그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lt;BR&gt;&lt;BR&gt;“소외됐던 삶을 지나 사람들 앞에 당당해지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어깨를 펴고 다녔어요.”&lt;BR&gt;&lt;BR&gt;&lt;STRONG&gt;경매는 장애를 가진 나에게 최선이자 최고의 일&lt;/STRONG&gt;&lt;BR&gt;1998년, 그가 처음으로 경매에서 낙찰받은 물건은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8평짜리 빌라였다. 종자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3천만원을 빌려서 경매를 시작했다. 경매로 2천3백만원에 낙찰을 받고, 3천5백만원에 전세를 놨으니 남는 장사를 했다. 그가 부모님에게 빌린 돈 3천만원에 5백만원을 더 얹어서 갚을 때 너무나 기뻐하던 부모님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lt;BR&gt;&lt;BR&gt;&lt;FONT size=+0&gt;그 뒤로 그는 1년에 2, 3건 꾸준히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구입했고, 지금까지 13채의 집을 보유하고 있다. 낙찰받은 집들을 거의 팔지 않고 그대로 두는 그에게 주위에서는 바보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보통 경매 전문가들은 낙찰받은 물건을 다시 되팔면서 시세 차익을 챙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씨가 낙찰받은 집들은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재개발',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재개발');&quot;&gt;재개발&lt;/FONT&gt;을 앞두고 있어 현재 가치로 따지면 3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밀어붙인 고씨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lt;/FONT&gt;&lt;BR&gt;&lt;BR&gt;지금도 어머니는 가끔 그를 보고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던 네가 이렇게 성공했다”며 기뻐하신다. 그가 다녔던 학교 담임선생님까지 지금의 그를 보고 대견해한다고 한다.&lt;BR&gt;&lt;BR&gt;“제가 2남 1녀의 장남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장애 때문에 돈을 못 버니까 천덕꾸러기 신세였어요. 그런데 어엿한 직업을 갖게 되니 가족 모두 저를 믿고 의지하더라고요. 집안의 부동산과 재산 관리도 모두 제가 맡고 있어요. 가족의 재산을 제가 직접 지킬 수 있게 되어서 정말 행복하죠.”&lt;BR&gt;&lt;BR&gt;고씨는 지금도 자신이 경매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는 좋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뒤에서는 그의 장애에 대해서 수군거렸다. 하지만 이 같은 사람들의 시선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고씨 자신도 다른 장애인들을 쳐다보게 되니까 말이다.&lt;BR&gt;&lt;BR&gt;경매에 나온 집을 보러 갈 때 곤란한 상황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면서 문조차 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집을 보러 갈 때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경매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일이다.&lt;BR&gt;&lt;BR&gt;“저는 경매가 정말 재미있어요.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죠. 앞으로도 경매를 꾸준히 할 생각이에요.”&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경매는 부업으로 하기 좋은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재테크',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재테크');&quot;&gt;재테크&lt;/FONT&gt; 수단&lt;/FONT&gt;&lt;BR&gt;&lt;/STRONG&gt;경매가 대중화된 요즘도 재테크 수단으로서 괜찮은 방법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Yes”였다. 다만, 전업으로 하는 것보다는 부업으로 1년에 1, 2건의 물건만 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또 실수요 겸 투자로 접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right&gt;&lt;!--imgtbl_start_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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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9/20090914164416_3_kjhun3.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3--&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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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3--&gt;&lt;!--cap_end_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3--&gt;&lt;/TABLE&gt;“요즘은 실수요자들이 경매에 많이 참여해요. 때문에 경매 낙찰가가 자꾸 올라요. 저희는 일반인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특수 물건을 노리거든요. 전업으로 하기보다 재테크 개념으로 구입해서 오랜 시간 보유할 물건을 찾으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lt;BR&gt;&lt;BR&gt;또 그는 초보 경매 투자자들이 성급하게 수익을 내려는 성향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매를 배우자마자, 마치 한두 달 후에는 낙찰을 받아야 될 것처럼 조급증에 시달린다는 것. 자칫 특수 물건을 잘못 알고 낙찰받을 경우 어렵게 마련한 보증금까지 잃고, 경매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lt;BR&gt;&lt;BR&gt;“경매에 나온 물건을 잘 구분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처음 3년까지는 정말 겁 없이 덤빌 수 있어요. 그러다가 3~5년 차쯤 되면, 경매 물건에 대해 신중해집니다. 제가 지금 경매 13년 차잖아요. 저 역시 경매에 자신 있게 들어가기 힘들어요. 그만큼 신중하고 잘 살펴야 합니다.”&lt;BR&gt;&lt;BR&gt;고씨는 경매를 배워놓으면, 나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의 재산까지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과 친지들 중에서 혹시 ‘경매’로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해도, 겁날 게 없다. 본인이 낙찰을 받기 전에 경매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든가 최악의 경우, 직접 낙찰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매는 장애인 고씨에게 세상의 편견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정말 고마운 존재다.&lt;BR&gt;&lt;BR&gt;&lt;STRONG&gt;장애인들 집에서 나와야 한다!&lt;BR&gt;&lt;/STRONG&gt;“우리나라에는 집 없는 서러움이라는 게 있어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집 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아파트만 집이라고 생각하죠. 원룸, 빌라, 작은 주택도 집이라는 개념에 포함시키면 집을 사는 건 정말 쉬울 겁니다.”&lt;BR&gt;&lt;BR&gt;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다.&lt;BR&gt;&lt;BR&gt;“장애인들은 가족에게 어떤 식으로든 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장애를 가진 사람 스스로 더욱 움츠러들어서 집에만 있으려고 한다는 거죠. 부모님뿐만 아니라, 형제들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용기를 갖고 천천히 집 밖으로 나오는 연습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lt;BR&gt;&lt;BR&gt;가족이 없었다면 지금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그를 품어준 부모님.&lt;BR&gt;&lt;BR&gt;고씨 역시 한때는 가족에게 ‘짐’이 됐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가족의 ‘버팀목’이다. 주변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사회의 편견에 당당히 맞선 결과다.&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이성원&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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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외식업계 미다스의 손 오진권 대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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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제러미</name>
	    </author>
	    <updated>2009-10-23T10:29:27Z</updated>
	    <published>2009-10-23T10:29: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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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8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기를 극복한 부자들]&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외식업계 미다스의 손 오진권 대표&lt;/SPAN&gt;&lt;/SPAN&gt;&lt;/STRONG&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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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lt;!-- SUB_TITLE_START--&gt;&lt;STRONG style=&quot;COLOR: #6b6b6b&quot;&gt;“수많은 사업 실패, 이혼, 놀부와의 결별, 자살 결심 등…&lt;/STRONG&gt;&lt;BR&gt;&lt;STRONG style=&quot;COLOR: #6b6b6b&quot;&gt;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식당’에 대한 열정 때문이죠”&lt;/STRONG&gt;&lt;!-- SUB_TITLE_END--&gt;&lt;/TD&gt;&lt;/TR&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BR&gt;&lt;BR&gt;&lt;FONT size=+0&gt;「레이디경향」에서는 부도 직전의 위기를 이겨낸 잘못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투자',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투자');&quot;&gt;투자&lt;/FONT&gt;로 돈을 잃었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공한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통해 위기 관리 노하우를 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달의 주인공은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주)이야기 있는 외식 공간의 오진권 대표다. (편집자 주)&lt;/FONT&gt;&lt;BR&gt;&lt;BR&gt;&lt;STRONG&gt;손님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lt;BR&gt;&lt;/STRONG&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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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1--&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10/20091016161639_1_ojink1.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1--&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1--&gt;&lt;!--cap_end_1--&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1--&gt;&lt;/TABLE&gt;흔히 부모들은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부모가 아니어도 이런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바로 (주)이야기 있는 외식 공간의 오진권 대표(58)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온 손님들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절로 배가 부르다고 한다. 저 멀리서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손님의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밑반찬이 있으면 듬뿍 챙겨주는 건 기본, 아무리 바빠도 혼자 온 손님까지 세세하게 챙기며 VIP 대접을 한다. 요즘 한식의 세계화를 꿈꾸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오 대표. 외식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열정을 지닌 그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lt;BR&gt;&lt;BR&gt;오 대표를 만난 건 그가 경영하고 있는 씨푸드 뷔페 마리스꼬 한 매장에서다. 점심시간에 맞춰 손님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채우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넓은 실내가 북적거렸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하루에도 망해 쓰러지는 식당이 한두 개가 아니라던데, 도대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다. 그 이유는 호텔 뷔페를 연상시키는 음식들 때문이다. 게다가 가격 할인까지 더해져 1만3천원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표가 붙어 있으니, 밥값에 인색한 주부들까지 몰려 점심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lt;BR&gt;&lt;BR&gt;오 대표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 장사를 해야 한다”면서 “이익은 최소한으로, 음식 재료는 최고급을 고집한다면 손님들도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lt;BR&gt;&lt;BR&gt;현재 오 대표는 ‘사월에 보리밥’, ‘오리와 참게’, ‘노랑 저고리’, ‘마리스꼬’, ‘이찌멘’, ‘웃기는 짬뽕’ 6개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총 14곳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과거 ‘놀부 부대찌개’를 만들고 경영했던 인물로 주위에서는 그에게 외식업계의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하지만 오 대표의 성공은 수십 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lt;BR&gt;&lt;BR&gt;&lt;STRONG&gt;5평짜리 ‘골목집’이 ‘놀부보쌈’이 되기까지&lt;BR&gt;&lt;/STRONG&gt;1951년 서울에서 출생한 오 대표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산동네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중학교 때까지 아침 식사는 꿈도 못 꾸었고 점심시간에는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 그러다 결국 가난한 생활을 견디지 못해 가출을 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여관 직원, 식당 종업원, 구두닦이, 좀약 장사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혈혈단신으로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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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2--&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10/20091016161639_2_ojink2.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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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2--&gt;&lt;!--cap_end_2--&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2--&gt;&lt;/TABLE&gt;&lt;FONT size=+0&gt;“학벌도 없고, 가진 기술도 없고, 돈도 없었죠. 삶을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군 입대였어요. 그것도 장기 복무를 하는 하사관을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지원',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지원');&quot;&gt;지원&lt;/FONT&gt;했죠.”&lt;/FONT&gt;&lt;BR&gt;&lt;BR&gt;오 대표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살아 돌아온 후 안양에서 사병 식당을 책임지게 됐다. 당시 군대에서는 음식 재료들을 뒤로 빼돌리는 행위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오 대표는 군에서 제공하는 모든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자 사병들의 식사는 하루아침에 풍요롭게(?) 변했다. 급기야 사병들이 ‘짬밥이 이렇게 변하다니! 앞으로도 계속 오진권 상사가 사병들의 식사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탄원서까지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소문 덕분에 그는 간부 식당의 책임을 맡게 됐고, 까다로운 간부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정성을 쏟았다.&lt;BR&gt;&lt;BR&gt;“제가 워낙 못 먹고 자라서 그런지, 음식을 만들 때 정성과 맛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군에서 쌓은 경험으로 제가 음식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lt;BR&gt;&lt;BR&gt;&lt;FONT size=+0&gt;직접 자신만의 가게를 차려보고 싶었던 그는 안양 근처에 4평짜리 라면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전문',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전문');&quot;&gt;전문&lt;/FONT&gt;점을 차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면 전문점은 칼국수 전문점으로 바뀌었고 다시 양식 레스토랑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1982년 군 생활을 한 지 11년 만에 전역을 했다. 그 후 안양에서 술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동업으로 시작한 가게는 그에게 쓰라린 상처만 남긴 채 실패하고 말았다.&lt;/FONT&gt;&lt;BR&gt;&lt;BR&gt;“당시 모아두었던 돈과 군대 전역할 때 받은 퇴직금까지 쏟아 부었는데 가게가 망하자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됐죠. 정말 사람 일은 한순간이더군요. 자본, 기술, 경험의 절대적인 부족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어요.”&lt;BR&gt;&lt;BR&gt;&lt;FONT size=+0&gt;1987년 그&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동안',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동안');&quot;&gt;동안&lt;/FONT&gt; 조금씩 모아왔던 돈으로 신림동 근처 신림극장 뒤 후미진 골목에 ‘골목집’이라는 5평짜리 보쌈집을 개업했다. 갓 담근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를 함께 내놓는 보쌈은 가격도 부담 없고, 양도 푸짐해서 서민층에게 딱 맞는 메뉴였다. 오 대표는 장사가 잘되는 보쌈집을 돌아다니면서 보쌈 고기에 대해 연구를 거듭했다.&lt;/FONT&gt;&lt;BR&gt;&lt;BR&gt;첫 손님이 들어오던 날 그는 잔뜩 긴장하면서 보쌈 접시를 내놓았고, 손님의 입에서 “정말 맛있어요. 또 올게요”라는 말이 나오고서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고.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식당은 입소문이 났다. 바쁜 날에는 가게 밖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보쌈을 먹을 정도로 손님들이 넘쳐났다.&lt;BR&gt;&lt;BR&gt;결국 보쌈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옆 가게를 인수해 확장했고, 상호를 ‘놀부’로 바꾸었다. 현재 전국 방방곡곡에 자리 잡고 있는 체인점 ‘놀부보쌈과 부대찌개’는 이렇게 탄생됐다. 절인 배추와 속, 고기를 올린 것을 ‘놀부보쌈’이라 하고, 버무린 김치와 고기를 올린 것은 ‘흥부보쌈’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 장사가 잘되면 성의 없어진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재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았다.&lt;BR&gt;&lt;BR&gt;&lt;FONT size=+0&gt;놀부보쌈이 ‘대박’이 나자 체인점 문의가 쇄도했다. 1호점, 2호점 등 ‘놀부’라는 이름을 단 가게는 오픈하자마자 성공을 거두었고, 2003년 2월에는 20여 개의 직영점과 360여 개의 체인점을 거느리는 거대한 기업이 됐다. 그동안 놀부보쌈은 1996년 외식산업 부문 경영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대상',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대상');&quot;&gt;대상&lt;/FONT&gt;, 한국프랜차이즈 종합대상을 받으면서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회사로 거듭나고 있었다.&lt;/FONT&gt;&lt;BR&gt;&lt;BR&gt;&lt;STRONG&gt;이혼, 그리고 놀부와의 이별&lt;BR&gt;&lt;/STRONG&gt;2003년 2월, 그는 부인과 이혼을 하면서 놀부보쌈의 대표직과 경영권을 전 부인인 김순진 대표에게 넘겼다. 오 대표는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아팠던 때로 기억하고 있다.&lt;BR&gt;&lt;BR&gt;유명 컨설팅 업체가 제안한 이혼 재산분리안은 놀부 주식 75%와 직영점 5개, 그리고 놀부 주식 25%와 직영점 14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오 대표는 전 부인에게 선택 우선권을 주었고, 그는 25%의 주식과 직영점 14개를 갖게 됐다. 16년 전 신림동 5평짜리 보쌈집을 시작으로 함께 일궈온 ‘놀부 보쌈’이 이혼으로 인해 ‘결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놀부 주식 25%를 역시 전 부인인 김순진 대표에게 매각했고, 놀부 직영점 14개도 3년에 걸쳐 모두 정리했다.&lt;BR&gt;&lt;BR&gt;2003년 8월 오 대표는 ‘순애보(순대와 보쌈의 사랑)’라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는데, ‘영업정지 가처분 신고장’을 받으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혼 당시 맺었던 ‘같은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소송에서 패한 그는 ‘순애보’ 체인점들에 50억원의 손해배상을 해주면서 새로운 프랜차이즈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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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10/20091016161639_3_ojink3.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3--&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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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3--&gt;&lt;!--cap_end_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3--&gt;&lt;/TABLE&gt;외식업계에서 그 누구보다 잘나가던 오진권 대표지만 소송에서 패한 후 업계에서는 ‘오진권의 시대는 끝났다’, ‘오진권에게 전화가 오면 받지 마라’는 말들이 들리곤 했다.&lt;BR&gt;&lt;BR&gt;“당시에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정말 힘들었죠. 제가 구두닦이를 할 때도 자살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lt;BR&gt;&lt;BR&gt;자살을 결심하고 있던 그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의 설교였다. “여기 지금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일시적으로 힘들다고 목숨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하용조 목사의 설교 때문에 어렵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lt;BR&gt;&lt;BR&gt;한동안 이혼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그가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바로 ‘식당’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오 대표는 다시 한번 식당에 미쳐보고 싶었다. ‘놀부’ 창업자라는 과거의 영예를 벗어던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lt;BR&gt;&lt;BR&gt;그렇게 해서 2003년 8월 ‘이야기 있는 외식 공간’을 창립하고, 압구정동에 ‘사월에 보리밥’에 이어 다양한 브랜드를 론칭해 승승장구하고 있다.&lt;BR&gt;&lt;BR&gt;&lt;STRONG&gt;불우이웃을 위해 ‘밥 퍼’주는 사람이 되다&lt;BR&gt;&lt;/STRONG&gt;오 대표는 매출의 1%를 노숙자와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또 골프장과 술집 출입 등을 모두 끊고, 불우이웃을 위해 3년 동안 매일 아침 사당역 14번 출구에서 ‘밥 퍼’ 봉사를 하고 있다.&lt;BR&gt;&lt;BR&gt;“제가 배고픈 게 뭔지 아니까 ‘배가 고프다’면서 ‘밥 좀 많이 달라’고 하는 분께는 신나서 퍼주게 돼요. 하루에 150명 정도가 식사를 하는데 보통 노숙자, 장애인 그리고 노인들이 많죠. 저희 직원들과 함께하는데 처음에는 사장이 시키니까 별 생각 없이 따르던 직원들도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지 이제는 자원해서 아침 일찍부터 준비합니다.”&lt;BR&gt;&lt;BR&gt;현재 그를 믿고 따르는 직원은 4백여 명. 그의 꿈은 전 직원이 모두 ‘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의 이런 마음을 아는 직원들은 오 대표를 어렵고 멀기만 한 사장으로 보지 않는다. 가깝게 생각하고 경영에 대해 배우면서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줄 ‘고마운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lt;BR&gt;&lt;BR&gt;&lt;FONT size=+0&gt;직원들과는 벤치&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마킹',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마킹');&quot;&gt;마킹&lt;/FONT&gt;을 위해 고급 호텔 뷔페는 물론, 해외 레스토랑까지 다닌다. 벤치마킹을 위해 그가 먹어본 요리 중 가장 비싼 식사는 1백47만원짜리.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지금의 아내와 함께 스테이크 등 메인 요리와 고급 와인 한 병을 먹었는데 1백47만원이 나왔던 것. 국내의 최고급 호텔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이었는데, 그날은 크리스마스라 평소보다 약간 더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비싼 음식이라도 ‘외식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주의다.&lt;/FONT&gt;&lt;BR&gt;&lt;BR&gt;두 달 전 그는 오진권의 「맛있는 성공」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그의 인생사와 식당 창업의 노하우가 낱낱이 적혀 있다. 오 대표는 불황 속에서 희망을 안고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공개했다.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1천 개의 식당이 창업을 하며 그 중 6개의 식당만이 성공을 한다고 한다. 그는 초보 창업자들에게 “상근 직원 1명당 30만원 이상 매출이 나야 하고, 월세가 매출액의 8%를 넘지 않도록 하라”고 조언한다.&lt;BR&gt;&lt;BR&gt;오진권 대표는 지난 1994년, 외식업계도 체계적인 공부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외식산업 최고위자 과정을 신설해달라고 연세대학교에 요청했다. 그리고 이듬해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에 외식산업 최고위자 과정이 정식으로 개설됐다. 이 덕분에 외식업계 종사자들이 서로 도와주고 끌어주는 가족 같은 관계로 바뀔 수 있었다고 한다.&lt;BR&gt;&lt;BR&gt;가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외식업계의 정상에 오른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한식의 세계화’다.&lt;BR&gt;&lt;BR&gt;“이번에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해외 벤치마킹 등을 통해 제대로 된 한식의 세계화 모델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미 불고기와 비빔밥 등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거든요. 다른 아이템들도 상품으로 만들어서 외국의 귀빈들에게 스테이크가 아닌 우리 한식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곧 그렇게 되겠죠.”&lt;BR&gt;&lt;BR&gt;멈추지 않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오직 한 길을 달려온 오진권 대표. 그는 오늘도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lt;BR&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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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적인 헤어드레서 그레이스 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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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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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3T10:28:50Z</updated>
	    <published>2009-10-23T10:28:5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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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내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세 아이들이죠”&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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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15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15px&quot; bgColor=#fff7f7&gt;&lt;FONT size=+0&gt;「레이디경향」에서는 소액 투자로 성공한 사람, 부도 직전의 위기에서 성공한 사람, 잘못된 투자로 돈을 잃었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관리 노하우를 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달의 주인공은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이혼',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이혼');&quot;&gt;이혼&lt;/FONT&gt;의 아픔을 딛고 세계적인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헤어',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헤어');&quot;&gt;헤어&lt;/FONT&gt;드레서로 성공한 그레이스 리다. (편집자주) &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불행했던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결혼',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결혼');&quot;&gt;결혼&lt;/FONT&gt;생활 15년 만에 자살 시도&lt;/FONT&gt;&lt;/STRONG&gt;&lt;BR&gt;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 폴 미첼이 극찬한 제자, 한국 미용계의 해외 유학파 1호, 좥보그좦지가 선정한 세계 20대 헤어드레서 중 최초의 한국인, 1970년대 한국에 최초로 비달사순과 폴 미첼의 섹션 분할 커팅 방식을 소개하면서 세련된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켰던 주인공, 그리고 타고난 미식가이자 음식 예찬론자. 한국 미용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며, 한국 미용사에 큰 획을 남긴 그레이스 리(78).&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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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1--&gt;&lt;!--cap_end_1--&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1--&gt;&lt;/TABLE&gt;&lt;FONT size=+0&gt;기자가 그레이스 리의 서울 논현동 자택을 찾은 건, 하늘이 뚫린 듯 비가 퍼붓던 7월 어느 날이었다. “어서 오슈~ 기자양반, 비가 많이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수?” 최근 몇 개월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동안',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동안');&quot;&gt;동안&lt;/FONT&gt; 항암 치료로 인해 심신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음에도, 그녀는 밝고 씩씩했으며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78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이다. &lt;/FONT&gt;&lt;BR&gt;&lt;BR&gt;“요즘 컨디션? 아주 좋지! 지금은 암을 이긴 것에 대한 의기양양함도 있지만, 앞으로 건강에 대해서는 좀 겸손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70이 넘으니까 삶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이 없잖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편하고 홀가분해요. 이렇게 자유롭고 행복한데, 뭐가 더 필요해요?(웃음) 앞으로는 그동안 먹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러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 중이에요.”&lt;BR&gt;&lt;BR&gt;한평생 부족한 것 없는 풍요로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으며 살아온 그녀의 인생은 언뜻 보면, 마냥 화려하고 행복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레이스 리의 이 같은 성공 뒤에는 쉽게 가늠하기 힘든 깊은 슬픔이 깔려 있었다.&lt;BR&gt;&lt;BR&gt;그레이스 리는 35세까지 평범한 가정주부 이경자로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물과 불처럼 성격이 맞지 않았던 남편의 외도, 폭언, 그리고 폭행을 참지 못해 결혼 15년 만에 세 아이를 남겨두고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lt;BR&gt;&lt;BR&gt;“당시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치사량의 수면제를 입 안에 털어넣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병원에서는 수면제를 그렇게 많이 먹고도 살아난 사람은 없었다며 놀랍다고 했죠.”&lt;BR&gt;&lt;BR&gt;기적처럼 살아난 이후 이경자는 마침내 남편과의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레이스 리는 이경자로서의 삶은 고통스럽고 불행했지만, 그러한 마음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삶도 없다고 말한다. &lt;BR&gt;&lt;BR&gt;“불행이라는 게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생이 순탄하게 흐르면 성장을 못하니까. 경험이 쌓이고, 생각을 하면서 사람이 성장하잖아요. 불행이 있어야 새로운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고 봐요. 내가 그런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야 ‘진짜 어른’처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죠.”&lt;BR&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뉴욕에서 찾은 새로운 이름, ‘그레이스 리’&lt;BR&gt;&lt;/STRONG&gt;이혼 후 그레이스 리는 홀홀단신 무일푼으로 무작정 미국행을 선택했다. 왜 미국을 택했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저 막연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빨리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은 마음과, 한국에 두고 온 세 아이를 하루빨리 되찾고 싶은 생각뿐이었다.&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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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2--&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8/20090811163520_2_rich_grace2.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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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2--&gt;&lt;!--cap_end_2--&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2--&gt;&lt;/TABLE&gt;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만난 가까운 지인이 그녀에게 미용기술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고, 그게 그녀의 인생을 뒤바꿔놓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미용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의욕은 충만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낯설기만 했던 미국. &lt;BR&gt;&lt;BR&gt;‘하루빨리 헤어드레서가 돼서 한국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그녀에게는 행운의 여신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처치를 딱하게 여긴 친구의 도움으로 미용사 필기시험을 무사히 통과했고, 몇 개월 동안 잠도 거의 자지 못한 채 실기 연습을 한 결과 그토록 원하던 헤어드레서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그리고 뉴욕 미용계의 전설로 불리던 미용실에 취직이 되던 날, 드디어 그녀는 ‘이경자’라는 이름을 버리고, ‘그레이스 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lt;BR&gt;&lt;BR&gt;그녀는 뉴욕 최고의 미용실에서 영원한 스승인 폴 미첼을 만났고, 그에게 미용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레이스는 내 제자 중 가장 기술이 좋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칭찬과 함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lt;BR&gt;&lt;BR&gt;&lt;FONT size=+0&gt;“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돼 힘들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곳 생활이 합리적이라는 걸 알았어요. 나는 비록 돈이 없었지만, 마음은 늘 행복하고 좋았어요. 남의 집에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가정부',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가정부');&quot;&gt;가정부&lt;/FONT&gt; 일을 해도,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그냥 그 순간을 즐기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lt;/FONT&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한국 미용계 위상을 높이다&lt;BR&gt;&lt;/STRONG&gt;뉴욕에서 화려하게 성공을 거둔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세 아이와 재회하면서 또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된다. 바로 ‘자유로움’이다. 남편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아이들의 양육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던 그녀. 첫째 아들이 대학생, 둘째 딸이 고3, 막내딸이 중3이 되던 해 아이들은 모두 아빠와 같이 살기를 거부했고, 집에서 나와 5년 만에 엄마와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lt;BR&gt;&lt;BR&gt;“힘들었던 미국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세 아이 때문이었어요. 헤어드레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빨리 아이들을 만나러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이었고요. 헤어졌던 아이들과 서로 얼싸안으면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울음을 터뜨렸죠.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폭언을 일삼던 남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매일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다니. 정말 원이 없었어요.”&lt;BR&gt;&lt;BR&gt;세 아이는 그녀가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일방적인 사랑과 희생이 아닌, 수십 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친구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존재인 것. 다 큰 아들이 연애는 안 하고, 매일 엄마와 붙어 다니는 것을 두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lt;BR&gt;&lt;BR&gt;“아이들은 내가 없는 시간에도 정말 잘 자라주었어요. 감사하죠. 난 아이들의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냥 ‘동지’ 같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죠.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우리 네 명은 서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아요. 정말 특별한 관계죠. 그동안 아이들과 바꿀 수 있을 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재혼도 안 했어요(웃음).”&lt;BR&gt;&lt;BR&gt;한국으로 돌아온 그레이스 리는 해외 유학파 1호 헤어드레서로 연일 매스컴의 취재 대상이 됐고, 그녀가 운영하는 헤어 숍들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헤어쇼를 성황리에 열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lt;BR&gt;&lt;BR&gt;1970년대에 미용사가 단순 기능직으로 멸시를 받던 시절, 그레이스 리는 커트 비용이 아닌 ‘헤어 디자인’ 비용까지 따로 받았을 정도로 자부심이 높았다. 얼굴형에 어울리는 헤어 디자인이 생각나지 않을 경우에는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기도 했다. &lt;BR&gt;&lt;BR&gt;이런 소문에 부잣집 사모님들까지 매일 그녀의 숍을 찾았다. 하지만 고위층 사모님이라고 절대 특별한 대우를 하지도 않았고, 아부를 하거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위 앞에서는 그 누구도 평등했다. ‘실력’으로 손님을 다시 찾게 만드는 것, 이게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그레이스 리의 이 같은 파격적인 사고방식이 당시 한국 미용인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center&gt;&lt;!--imgtbl_start_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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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8/20090811163520_3_rich_grace3.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3--&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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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3--&gt;&lt;!--cap_end_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3--&gt;&lt;/TABLE&gt;&lt;BR&gt;&lt;STRONG&gt;72세에 통영에서 제3의 인생을 찾다!&lt;BR&gt;&lt;/STRONG&gt;그레이스 리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그렇게 성공한 헤어드레서로 한평생을 마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짜 그레이스 리를 몰랐다. 비록, 나이는 70이 넘었어도 마음만은 한없이 ‘자유로운 청춘’이라는 사실을. &lt;BR&gt;&lt;BR&gt;경남 통영을 여행하던 그레이스 리는 그곳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그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아들과 딸들이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이미 그녀는 통영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우연한 여행길에 새로운 인생의 실마리를 잡고, 삶이 통째로 뒤집히는 사건. 어느 소설가는 이를 두고 ‘우연의 폭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단다. &lt;BR&gt;&lt;BR&gt;“제가 사실 음식과 요리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데 통영은 아름다운 경치는 둘째치고, 서울에서는 구경해보기도 힘든 맛깔스러운 해산물이 천지에 깔렸잖아요. 그걸 두고 어떻게 다시 서울에 올라갑니까?(웃음)”&lt;BR&gt;&lt;BR&gt;내친김에 통영에 ‘중국요리 이선생’이라는 중국요리 음식점도 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주위 사람들도 직접 명함을 돌리며 음식점을 홍보하는 그녀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음식점은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찾는 통영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lt;BR&gt;&lt;BR&gt;“난 음식 장사를 하면 남는 게 없어요. 무슨 요리든 재료는 최고급을 쓰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어요. 나는 맛있는 거 먹으러 비행기 타고 해외를 나가는 사람이에요. 그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죠. 음식에는 그 나라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사람들과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활수준도 금방 파악이 될 정도예요. 음식만큼 훌륭한 외교 수단도 없다고 생각해요(웃음).”&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유방암, 위암,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대장암',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대장암');&quot;&gt;대장암&lt;/FONT&gt;을 이긴 78세 청춘&lt;/FONT&gt;&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그레이스 리는 현재 대장암 항암치료 마지막 단계를 받고 있는 중이다. 2001년에는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유방암 수술',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유방암 수술');&quot;&gt;유방암 수술&lt;/FONT&gt;을, 2007년 2월에는 위암 수술을, 2008년 10월에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세 번의 암투병에도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 &lt;/FONT&gt;&lt;BR&gt;&lt;BR&gt;“난 암과의 싸움에서 늘 이겼어요. 일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거든요. 때론 암 덩어리에 겁을 주면서, 혹은 달래면서 그렇게 암세포들을 내 몸에서 쫓아냈어요. 그리고 78년 평생 좋아하는 술도 맘껏 먹고, 담배도 맘껏 피우면서 살았는데 지금까지 살았으면 잘살았다고 생각해요.”&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right&gt;&lt;!--imgtbl_start_4--&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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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4--&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8/20090811163520_4_rich_grace4.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4--&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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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4--&gt;&lt;!--cap_end_4--&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4--&gt;&lt;/TABLE&gt;78년 동안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던 그녀에게 가장 ‘잘한 일’과 ‘후회되는 일’을 꼽아달라고 전했다. 그랬더니 가장 잘한 일은 ‘이혼’이라고 말한다. &lt;BR&gt;&lt;BR&gt;“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저는 내 인생을 스스로 바꿨죠.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절대 ‘이혼’은 하지 말라고 말해요. 아이러니하죠? 저처럼 인생을 과감히 개척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찬성하겠어요. 하지만 웬만하면 마음을 바꿔서 잘 사는 게 훨씬 현명한 일이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lt;BR&gt;&lt;BR&gt;최근 그녀는 평범한 주부 이경자에서 지금의 그레이스 리가 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스토리를 「오늘이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다」라는 책을 통해 공개했다. &lt;BR&gt;&lt;BR&gt;“제가 젊었을 때 불행하게 살았잖아요. 저처럼 결혼생활과 인생이 고달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용기와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 책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보람된 일이 뭐가 있겠어요.”&lt;BR&gt;&lt;BR&gt;지금까지 살면서 잘한 일은 있지만, 후회한 일은 없단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녀의 인생 순간순간이 위기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작 본인은 그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않았다. &lt;BR&gt;&lt;BR&gt;“전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하면서 살았어요. 내 인생에 더 이상 미련도 후회도 없죠. 어떤 역경이 있어도 모두 딛고 일어났어요. 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인생을 즐겼어요.” &lt;BR&gt;&lt;BR&gt;그녀는 ‘즐거운 소풍을 떠날 준비는 다 되었다. 내 장례식은 축제가 되게 하리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 땅에서 원없이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기 때문에 생에 대한 미련은 없다. &lt;BR&gt;&lt;BR&gt;다만, 암을 세 번씩이나 이기고 얻은 ‘보너스’ 같은 삶을 앞으로는 하루하루 귀하게 쓰고 싶은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말한다. ‘어떤 삶이 내게 남아 있든, 오늘이 내 삶의 클라이맥스’라고. &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이주석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제공 / 김영사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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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숙자에서 CEO로 성공한 강신기 대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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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제러미</name>
	    </author>
	    <updated>2009-10-23T10:28:21Z</updated>
	    <published>2009-10-23T10:28:21Z</published>
	    <content ty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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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기를 극복한 부자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노숙자에서 CEO로 성공한 강신기 대표&lt;/SPAN&gt;&lt;/SPAN&gt;&lt;/STRONG&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노숙자들이 포기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lt;BR&gt;좋겠어요.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lt;/TD&gt;&lt;/TR&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BR&gt;&lt;FONT size=+0&gt;「레이디경향」에서는 소액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투자',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투자');&quot;&gt;투자&lt;/FONT&gt;로 성공한 사람, 부도 직전의 위기에서 성공한 사람, 잘못된 투자로 돈을 잃었다가 이를 극복하고 재기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위기 관리 노하우를 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위기를 극복한 부자들’ 이달의 주인공은 에스보드를 개발해 노숙자에서 성공 CEO로 자리잡은 ‘슬로비’ 강신기 대표입니다. (편집자 주)&lt;/FONT&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IMF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돌침대',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돌침대');&quot;&gt;돌침대&lt;/FONT&gt; 사업 하루아침에 부도&lt;/FONT&gt;&lt;BR&gt;&lt;/STRONG&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left&gt;&lt;!--imgtbl_start_1--&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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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1--&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7/20090708161126_1_rich1.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1--&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1--&gt;&lt;!--cap_end_1--&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1--&gt;&lt;/TABLE&gt;&lt;FONT size=+0&gt;에스보드는 스케이트보드의 한 종류로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과 젊은 층에서 새로운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레저',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레저');&quot;&gt;레저&lt;/FONT&gt; 용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이다. 스케이트보드와 형태는 유사하나, 앞뒤 발을 따로 구르면서 앞으로 나가기 때문에, 일명 ‘흔들어서 나아가는 구름판’이라고 불린다. 보드 운행 방식은 다르나 스케이트보드의 스릴과 재미를 얻을 수 있고 유산소운동과 하반신 근육운동 효과까지 있다. 에스보드는 국내에서 이미 30만 개 이상 팔렸을 정도로 반응이 좋고, 미국에서는 2백만 개 이상 팔렸다. &lt;/FONT&gt;&lt;BR&gt;&lt;BR&gt;신개념 스포츠용품인 에스보드를 개발한 사람은 ‘슬로비’의 강신기 대표(50). 에스보드로 인해서 지금은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스타가 됐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가 불과 9년 전만 해도 서울역 역사 안에서 노숙을 했다는 것이다. 한때는 그도 돌침대 가구 대리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탄탄대로를 걸으며 살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관리를 하지 않았던 탓에 1997년 IMF 당시 부도를 맞았다. &lt;BR&gt;&lt;BR&gt;“1997년, 아들이 막 태어나자마자 회사가 부도가 났죠. 회사를 모두 정리하고, 집도 팔고 충주의 처갓집 근처에 11평짜리 주공아파트를 얻었는데, 그것도 경매에 넘어갔어요. 집주인에게 사정해서 월세를 얻어 가족은 충주에 두고, 저는 서울에서 살 궁리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사우나, 고시원 등을 전전하는 것도 돈이 들잖아요. 그 돈이 아까워서 노숙을 했어요.”&lt;BR&gt;&lt;BR&gt;&lt;BR&gt;&lt;STRONG&gt;서울역 노숙, 요령이 생기다&lt;/STRONG&gt;&lt;BR&gt;노숙 생활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었다. 처음 노숙한 날은 2000년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는데, 첫날은 결국 추위를 참지 못해 사우나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 노숙을 결심하고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정신 상태로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자괴감이 든 것이다. &lt;BR&gt;&lt;BR&gt;&lt;FONT size=+0&gt;그 다음날에는 이를 악물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종이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박스',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박스');&quot;&gt;박스&lt;/FONT&gt;를 깔고 누웠다. 돈이 없어서 노숙을 하는 게 아니라, 해병대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체험',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체험');&quot;&gt;체험&lt;/FONT&gt;하듯 노숙 체험을 하는 중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하지만 12월 매서운 바람 때문에 2시간 간격으로 깨기 일쑤였다. 간혹 난로 근처에서 불을 쬐려고 하면 지하철 관리 요원들이 쫓아내, 그들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노숙 생활에도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lt;/FONT&gt;&lt;BR&gt;&lt;BR&gt;“노숙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박스를 깔고, 신문지나 이불을 구해서 덮고 자는 거예요. 이불과 비닐을 같이 덮으면 온기가 쉽게 빠져 나가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냉장고 박스를 잘 접어서 가지고 다니기도 해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다들 살아가는 요령이 생기는 거죠(웃음).”&lt;BR&gt;&lt;BR&gt;노숙자들 사이에는 이미 노숙 생활을 오래 해온 터줏대감도 있다.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오는 사람들, 빚이 많은 사람 등 희망의 끈을 놓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밤낮으로 술만 마시면서 자포자기한 인생을 산다. 혹한기, 술에 취해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다가 객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신기하게도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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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2--&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7/20090708161126_2_rich2.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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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2--&gt;&lt;!--cap_end_2--&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2--&gt;&lt;/TABLE&gt;“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게 싫어서 벽에 기대서 신문만 봤죠. 휴대폰도 없으니까 사람들과 연락도 안 됐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망한 사람으로 인식돼 있었죠.”&lt;BR&gt;&lt;BR&gt;&lt;FONT size=+0&gt;간혹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면서 삶의 의지를 갖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새벽에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인력',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인력');&quot;&gt;인력&lt;/FONT&gt; 시장에 나가서 일용직 노동자로 돈을 벌기도 했다. 강 대표 역시 인력 시장에 따라가 일용직으로 돈을 벌었고, 한 달에 20만~30만원을 모아 가족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lt;/FONT&gt;&lt;BR&gt;&lt;BR&gt;“제가 노숙을 할 때는 40, 50대 남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20대 젊은 남자들도 많더라고요. 여자들도 보이고요. 지나가면서 서울역 노숙자들을 자세히 보면, 사지가 멀쩡한데도 일을 하지 않고 우유 곽을 차면서 놀더라고요. 삶에 대한 의욕이나 희망 없이 남에게 의지하면서 사는 거죠. 그런 희망 없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보기 싫어요. 저는 노숙자들이 자신을 포기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lt;BR&gt;&lt;BR&gt;&lt;BR&gt;&lt;STRONG&gt;에스보드, 애들 장난감이라고 홀대받아&lt;/STRONG&gt;&lt;BR&gt;&lt;FONT size=+0&gt;강 대표가 서울역 노숙 생활을 끝낸 건 이듬해 4월 초 봄이 되면서다. 그&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동안',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동안');&quot;&gt;동안&lt;/FONT&gt; 인력 시장을 통해 다시 일을 할 마음의 준비를 다졌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lt;/FONT&gt;&lt;BR&gt;&lt;BR&gt;사실 강 대표는 IMF 이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가구 대리점 사업을 했고, 그 이전에도 업계에서 영업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때 다시 영업을 시작하면서 먹고살 일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친구 사무실에 들렀다가 좌우로 흔들면서 타는 스케이트보드(지금의 에스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는 학생을 발견하게 된 것. 그 스케이트보드는 그 학생이 발명한 것이었다. &lt;BR&gt;&lt;BR&gt;“처음 그 스케이트보드를 보는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개발한 물리학도 출신의 학생에게 동업을 제의했더니,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5천만원을 주고 특허를 샀어요. 돈은 나중에 투자받으면 준다고 하고 말이죠. 그 스케이트보드를 수정해서 개발한 것이 바로 에스보드였죠. 그걸로 사업을 하겠다고 했더니, 친구들은 아이들 장난감으로 무슨 사업을 하냐며 가족 먹여 살릴 생각이나 하라고 충고하더군요. 그래도 포기할 순 없었죠.”&lt;BR&gt;&lt;BR&gt;에스보드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투자자를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투자를 받기 위해 안동공단과 시화공단 등을 돌아다니면서 4개월 동안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포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가서 에스보드를 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기로 했다. &lt;BR&gt;&lt;BR&gt;특히 고급 세단이 지나갈 때 옆에서 시선을 끌 수 있는 묘기를 보이곤 했다. 간혹 세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제가 개발한 스케이트보드인데, 어른들도 탈 수 있는 건강 레저용품입니다. 혹시 여기에 투자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완전히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lt;BR&gt;&lt;BR&gt;4개월간 그렇게 길거리 묘기를 부리던 중에 한두 명의 투자자가 관심을 보였고, 드디어 에스보드가 생산돼 세상으로 나왔다.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그 가치를 평가받아 15억원이라는 정부지원금을 받게 된 덕분이다. 에스보드 사업에 날개를 단 것이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중국 카피 제품 소송비만 15억원&lt;/STRONG&gt;&lt;BR&gt;처음 에스보드 시판을 시작한 건 2006년 5월 어린이날이었다. 시장의 반응은 생각보다 폭발적이었고, 그해 10월까지 거두어들인 판매수익이 90억원 정도였다. 앞서 2003년에는 한국기술특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미국 피츠버그 국제발명대회에서 5관왕을 수상하면서 상금도 2천달러나 받았다. 이런 성과는 레저용품의 불모지에서 거둔 뜻 깊은 쾌거였다. &lt;BR&gt;&lt;BR&gt;이 일이 국내 유명 일간지 1면에 소개되면서 각종 공익광고, 다큐멘터리 등 언론과 방송 인터뷰가 쇄도했다. 특히 개발자인 강신기 대표가 노숙자 출신이라는 점이 드라마틱하게 부각되면서 에스보드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갔다. &lt;BR&gt;하지만 그의 승승장구에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중국의 카피 제품들이었다. 에스보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중국에서 불법복제 제품을 똑같이 만들어 국내에서 팔기 시작한 것.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center&gt;&lt;!--imgtbl_start_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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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7/20090708161126_3_rich3.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3--&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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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3--&gt;&lt;!--cap_end_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3--&gt;&lt;/TABLE&gt;“에스보드는 지금까지 국내에 30만 개 정도 판매했는데, 중국 카피 제품은 1백만 개 이상 팔렸어요. 중국 카피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더 높은 거죠. 지난 2007~2008년은 카피 제품을 파는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만 하다가 시간이 다 지났죠. 소송비만 15억원 정도 들었어요.”&lt;BR&gt;&lt;BR&gt;카피 제품을 파는 업체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별도로 단속을 하지 않아서, 강 대표가 일일이 업체들을 경찰에 신고해서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50여 명이 똑같은 카피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도, 한 명씩 따로 신고해야 했다. 굉장히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다. &lt;BR&gt;&lt;BR&gt;에스보드의 제품 개발과 생산, 홍보, 관리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에서 카피제품을 상대로 체력 소모전을 벌였다. 물론 소송은 대부분 승소했다. 하지만 판매업체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로 돈이 없는 사람들이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 법원에 가서 변론하고, 카피 업체들과 말다툼을 하다 보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서 패닉 상태가 될 때도 있었다. &lt;BR&gt;&lt;BR&gt;“우리나라는 자원도 없는데,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철저하지 않아서 참 안타까워요. 제가 너무 답답해서 검찰, 대법원, 청와대, 특허청, 산업자원부 등에 호소문도 보내봤는데, 특별한 해법이 없더라고요. 제가 한때는 공익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희망처럼 비춰졌지만, 중국의 카피 제품 때문에 허무하게 당하고 있다는 게 슬픈 현실이에요.”&lt;BR&gt;&lt;BR&gt;그동안 소송을 50여 건 진행해왔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에스보드 카피 제품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정품의 판매율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판매하면서 받은 로열티를 제외하면, 최근 들어 국내의 판매 매출은 현격히 떨어진 상태다. 2006년에는 매출 90억원, 2007년에는 60억원인데 이 중 로열티가 80%, 2008년은 60억원인데 이중 로열티가 90%에 해당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요즘이 IMF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아&lt;/STRONG&gt;&lt;BR&gt;설상가상으로 미국 회사에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 소송을 하다가, 변호사 비용만 30억원에 이르면서 결국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특허권을 미국에 넘기기로 했다. 앞으로는 미국으로 판매되는 제품의 로열티 수입마저 끊기는 상황이 된 것이다. &lt;BR&gt;&lt;BR&gt;“제가 IMF도 겪어봤지만 요즘이 그때보다 더 경기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다고 해도, 성공 궤도에 안착하기는 정말 힘들어요. 정치·사회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타격을 받는 게 중소기업이거든요. 해외에 나가면 작은 나라에서 작은 기업을 하는 게 서글프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lt;BR&gt;&lt;BR&gt;물론, 에스보드 이외에 새롭게 시판될 레저용품도 6, 7개 정도 대기 중이다. 하지만 지적재산권에 대한 제도가 좀 더 철저하게 보완되지 않는다면, 에스보드처럼 카피 제품으로 정품이 사장될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때문에 강 대표는 앞으로 가장 빨리 풀어야 할 숙제가 바로 지적재산권 보호 문제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 문제만 해결 된다면 제 2의 에스보드 대박신화는 시간문제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lt;BR&gt;&lt;BR&gt;강 대표의 꿈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것,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가족과 단독주택을 짓고 여유롭게 웃으며 살고 싶은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안 해본 일 없이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그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어 성장시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복지단체에 참여하고, 선교활동도 하고 싶다. &lt;BR&gt;&lt;BR&gt;한때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청했던 강신기 대표. 그때 가졌던 꿈과 용기를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 겪고 있는 사업 침체도 곧 풀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이성훈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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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 남편 CEO 만드는 비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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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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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3T10:27:44Z</updated>
	    <published>2009-10-23T10:27: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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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8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전업주부의 성공전략]&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우리 남편 CEO 만드는 비법&lt;/SPAN&gt;&lt;/SPAN&gt;&lt;/STRONG&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장의 비밀」 저자 최진택이 말한다&lt;/SPAN&gt;&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BR&gt;‘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직원들이 사장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면, 회사생활 하기가 얼마나 편할까. 또 사장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사장의 속내를 알아준다면 얼마나 회사 운영하기가 수월할까. 이런 사장의 마인드를 알고 있다면, 남편들의 승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내들은 얼마나 쾌재를 부를 것인가. 직원, 사장, 주부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비밀을 공개한다. &lt;BR&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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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1--&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7/20090707162857_1_choijt1.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1--&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1--&gt;&lt;!--cap_end_1--&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1--&gt;&lt;/TABLE&gt;&lt;STRONG&gt;직원과 사장은 사고방식부터 다르다&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사장의 비밀」이라는 책을 쓴 저자 최진택씨(39)는 MPR&amp;&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커뮤니케이션',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커뮤니케이션');&quot;&gt;커뮤니케이션&lt;/FONT&gt;의 대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직장',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직장');&quot;&gt;직장&lt;/FONT&gt;인으로 회사를 다니다가 1인 기업 CEO라는 타이틀을 단 지 이제 4년 차. 최 대표는 자신이 평직원일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사장의 비밀’을 깨닫고 큰 충격에 빠졌다. &lt;/FONT&gt;&lt;BR&gt;&lt;BR&gt;“우리 사장은 왜 매일 빈둥거릴까?”, “회의하자고 해놓고, 결국 자기 마음대로 다 하네”라며 평소 사장에게 불만을 가졌던 부분이 순식간에 이해가 된 것이다. &lt;BR&gt;&lt;BR&gt;“남자와 여자는 서로 사고방식이 다르잖아요. 사장과 직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생각이 달라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저도 이와 같은 사실을 사장이 되고 나서야 알았어요(웃음).”&lt;BR&gt;&lt;BR&gt;많은 사람이 ‘평생 사장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래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장 자리에 오를 수도 있고, 퇴직한 이후에 작은 점포를 개업하면서 사장이 될 수도 있다. 또 본인이 간절히 원하기보다 주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lt;BR&gt;&lt;BR&gt;직장인들이 간과하는 부분도 바로 ‘나도 언젠가는 CEO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큰 회사에만 사장이 있는 게 아니다. 개인 사업장, 혹은 호프집이나 구멍가게 등을 차려도 모두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다. &lt;BR&gt;&lt;BR&gt;때문에 사장이 되면서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직원들 간의 소통문제도 ‘내 일이 아니야’라는 생각보다 미리 알아두고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사장이라는 호칭을 달기 전, 직원 입장에서도 역시 사장 마인드만 잘 꿰고 있다면 앞으로의 회사생활은 핑크빛으로 바뀔 수 있다. &lt;BR&gt;&lt;BR&gt;최 대표는 PR 컨설턴트다. 홍보회사를 다니면서 사장과 마음이 잘 통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훌륭히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lt;BR&gt;&lt;BR&gt;“사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장이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35세가 되면서 사장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제 색깔을 내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회사를 차리게 됐어요.”&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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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2--&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7/20090707162857_2_choijt2.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2--&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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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2--&gt;&lt;!--cap_end_2--&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2--&gt;&lt;/TABLE&gt;&lt;STRONG&gt;사장은 퇴근이 없다!&lt;/STRONG&gt;&lt;BR&gt;직장인이었다가 막상 사장이 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돌발상황이 생겼다. 사장이 되면서 최 대표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고민은 다름아닌 ‘프린트기를 무엇으로 살 것인가’였다.&lt;BR&gt;&lt;BR&gt;&lt;FONT size=+0&gt;“&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사무실',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사무실');&quot;&gt;사무실&lt;/FONT&gt;을 오픈하면서 가구는 무엇으로 살까, 인터넷은 어떤 걸로 깔아야 할까, 왜 전기선 연결이 안 되는 걸까 등을 고민하느라 한동안 비즈니스에 관련된 부분에는 거의 신경을 못 썼어요. 직원으로 있을 때는 그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모두 회사에서 알아서 해줬는데, 제가 일하려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하는 거죠.”&lt;/FONT&gt;&lt;BR&gt;&lt;BR&gt;최 대표가 사장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은 ‘사장은 퇴근이 없다’는 것. 직원들은 일단 사무실에서 나가면, 회사를 잊고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사장은 다르다. ‘문은 잠그고 나왔나?’, ‘전기는 모두 껐을까’, ‘에어컨을 켜놓고 나오지는 않았을까’ 등 마음은 항상 회사로 향해 있다. &lt;BR&gt;&lt;BR&gt;“책상에 앉아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어도 그냥 노는 게 아니더라고요. 머릿속으로는 계속 고민을 하는 거죠. 언제 결재해야 할까, 돈을 어떻게 끌어와야 할까,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할까 등 등 말이죠. 이제 와서 보니 ‘사장은 왜 항상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할까’라며 불만을 가졌던 것에 대해 참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lt;BR&gt;&lt;BR&gt;사장이 되고 난 후, 간혹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사적으로 대화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왜 근무시간인데 다른 일을 할까 하는 생각에서다. 최 대표 본인도 직원이던 시절, 업무시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잡담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다. 그랬음에도 사장이 되고 보니 직원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그게 바로 사장과 직원의 입장 차이일 것이다. &lt;BR&gt;&lt;BR&gt;“직원과 사장은 서로의 입장이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상대방의 분야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거죠.”&lt;BR&gt;&lt;BR&gt;&lt;BR&gt;&lt;STRONG&gt;사장의 마음을 알면, 사장으로 만들 수 있다?!&lt;/STRONG&gt;&lt;BR&gt;사장 마인드를 잘 알고 있다면, 부인들은 남편을 사장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사장의 안주인은 TV 드라마처럼 명품 쇼핑이나 하면서 고상한 척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lt;BR&gt;&lt;FONT size=+0&gt;“제가 아는 한 사모님은 주말마다 직원들을 위해 직접 고기를 구우세요. 물론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가사 도우미',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가사 도우미');&quot;&gt;가사 도우미&lt;/FONT&gt; 아주머니를 시킬 수도 있죠. 하지만 사장의 부인이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것은 정성이 다르잖아요.”&lt;/FONT&gt;&lt;BR&gt;&lt;BR&gt;&lt;FONT size=+0&gt;최 대표는 위의 사례와 같은 부인을 두고 ‘매니저형 내조 스타일’라고 칭했다. 매니저형 스타일의 부인들은 나름의 특성이 있다. 첫 번째는 남편의 성격을 꿰뚫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부는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두 번째는 남편의 일정관리를 맡아서 하고 있으며, 세 번째는 남편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남편이 늦게 와도 알면서 모른 척할 정도로 이해심이 넓고, 다섯 번째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남편을 적극적으로 섭외해주기도 한다. 여섯 번째는 남편의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운전',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운전');&quot;&gt;운전&lt;/FONT&gt;해주고, 일곱 번째는 입금과 출금에 모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회사 일 이외에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심부름',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심부름');&quot;&gt;심부름&lt;/FONT&gt; 등을 해주기도 하며, 아홉 번째는 매사에 계획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며, 열 번째는 남편의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는 특징이 있다. &lt;/FONT&gt;&lt;BR&gt;&lt;BR&gt;이렇게 매니저형 스타일의 내조는 남편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고, 회사 일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당신은 회사 일에만 신경 쓰세요. 집안일은 제가 신경 쓸게요”라고 말하는 부인은 ‘톱스타’를 키워낼 만큼 능력 있는 매니저형 내조를 하고 있는 것. 유능한 매니저가 톱스타를 키우듯이, 능력 있는 매니저형 스타일의 부인들은 남편의 승진과 사업에 그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매니저형 내조 vs 상사형 내조&lt;/STRONG&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right&gt;&lt;!--imgtbl_start_3--&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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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7/20090707162857_3_choijt3.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3--&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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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3--&gt;&lt;!--cap_end_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3--&gt;&lt;/TABLE&gt;남편을 승진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내조 스타일도 있다. 매니저형과는 반대인 ‘상사형’ 내조 스타일이 바로 그것이다. &lt;BR&gt;&lt;BR&gt;상사형 내조 스타일은 모든 면에서 매니저형 내조 스타일과는 대조를 이룬다. 남편에게 오히려 돈을 많이 벌어오라고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 또 남편의 일정관리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남편의 능력을 폄하하고 다닌다. 게다가 남편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매사가 자기중심적이다. &lt;BR&gt;&lt;BR&gt;이렇게 부인이 상사형 내조 스타일인 경우, 남편은 부인의 채찍질에 의해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남편은 부인에게 꽉 잡혀 사는 공처가다. 때문에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들을 위해 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게 되며, 승진이 빨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lt;BR&gt;&lt;BR&gt;“보통 부인들의 내조 유형은 매니저형과 상사형으로 나뉘어요. 대부분의 부인이 ‘상사형’의 내조 스타일을 원하겠지만, 큰 기업의 사모님들의 삶은 사실 ‘매니저형’에 가까운 게 현실이죠. 둘 중 어느 유형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제 생각에는 두 스타일이 절충된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 같아요.”&lt;BR&gt;&lt;BR&gt;&lt;FONT size=+0&gt;부인의 뛰어난 내조 덕분이거나 혹은 서열에 따라 등 떠밀리거나, 명예퇴직으로 실직한 후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창업',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창업');&quot;&gt;창업&lt;/FONT&gt;하거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사장이 되기 위한 준비는 미리 해둘 필요가 있다. 최 대표가 생각하는 사장이 갖추어야 할 가장 큰 요건은 무엇일까. &lt;/FONT&gt;&lt;BR&gt;&lt;BR&gt;“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컴퓨터, 전화, 팩스, 이메일, 메신저 등 현대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능력이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 중에서도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칭찬하는 게 가장 효과가 좋죠. 사장이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가장 큰 무기를 가진 거라고 생각해요.”&lt;BR&gt;&lt;BR&gt;최 대표의 궁극적인 바람은 직장생활을 통해 힘들어하는 직원과 사장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lt;BR&gt;“제 꿈은 저처럼 직장생활을 하면서 좌충우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거예요. 서로의 입장이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거든요.”&lt;BR&gt;&lt;BR&gt;&lt;BR&gt;
&lt;TABLE border=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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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ded3&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800080 size=3&gt;내 남편을 사장으로 만들고 싶다면&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매니저 스타일의 내조&lt;/STRONG&gt;&lt;BR&gt;1 남편의 스타일을 안다. 2 일정 관리를 한다. 3 내 남편을 홍보하고 다닌다. 4 남편이 늦게 와도 모른 척한다. 5 사람들에게 남편을 섭외한다. 6 내 남편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운전해준다. 7 입금과 출금에 관심 있다. 8 잡념이 생기지 않게 심부름을 해준다. 9 매사에 계획적이다. 10 주변 사람들을 챙긴다. &lt;BR&gt;&lt;BR&gt;&lt;STRONG&gt;상사 스타일의 내조&lt;BR&gt;&lt;/STRONG&gt;1 내 스타일에 남편을 맞춘다. 2 남편의 일정 관리를 하지 않는다. 3 험담을 하고 다닌다. 4 왜 늦게 왔는지 기필코 알아낸다. 5 오히려 섭외를 받는다. 6 운전을 해주지 않는다. 7 입금에만 관심이 있다. 8 남편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9 매사에 즉흥적이다. 10 나 혼자만 챙긴다. &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이성원&lt;BR&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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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셋집 경매로 잃고 경매전문가로 성공한 배중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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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제러미</name>
	    </author>
	    <updated>2009-10-23T10:27:04Z</updated>
	    <published>2009-10-23T10:27: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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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8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기를 극복한 부자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전셋집 경매로 잃고 경매전문가로 성공한 배중렬&lt;/SPAN&gt;&lt;/SPAN&gt;&lt;/STRONG&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매를 통해 가난에서 탈출했고, 부모님께 효도했으며,&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 꿈을 이루고 있습니다” &lt;/SPAN&gt;&lt;/STRONG&gt;&lt;/TD&gt;&lt;/TR&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BR&gt;&lt;FONT size=+0&gt;「레이디경향」은 부도 직전의 위기를 이겨낸 사람, 잘못된 투자로 돈을 잃었다가 이를 극복하고 다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성공',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성공');&quot;&gt;성공&lt;/FONT&gt;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관리 노하우를 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위기를 극복한 부자들’시리즈 이달의 주인공은 지하 전셋집을 경매로 잃고 경매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전문',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전문');&quot;&gt;전문&lt;/FONT&gt;가로 성공한 명지투자정보연구소 배중렬 대표입니다. (편집자 주)&lt;/FONT&gt;&lt;BR&gt;&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right&gt;&lt;!--imgtbl_start_1--&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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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1--&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6/20090605152424_1_baejr1.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1--&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1--&gt;&lt;!--cap_end_1--&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1--&gt;&lt;/TABLE&gt;&lt;STRONG&gt;강제집행 못하는 경매브로커?!&lt;BR&gt;&lt;/STRONG&gt;최근에는 워낙 경매가 대중화됐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강제집행’이라는 단어를 알 것이다. 강제집행이란, 경매로 낙찰 받은 집의 세입자가 일정시간 안에 퇴거하지 않을 때, 집행 기관을 통해 강제로 세입자를 이사시키는 것을 말한다.&lt;BR&gt;&lt;BR&gt;경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강제집행을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강제집행을 하지 않고도 경매의 달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11년 동안, 경매 전문가로 활동해온 명지투자정보연구소의 배중렬(46) 대표다. &lt;BR&gt;&lt;BR&gt;사실 그가 경매 절차에 꼭 필요한 ‘강제집행’을 하지 않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바로 11년 전, 자신이 살고 있던 지하 전셋집을 경매로 잃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제가 살던 집이 갑자기 경매로 넘어가니까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더라고요. 등기부등본만 볼 줄 알았어도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전세값이 싸서 앞뒤 가리지 않고 급하게 들어간 거죠. 당시 제 나이가 서른다섯 살이었는데 얼마나 자신이 한심하던지…. 그래서 경매에 관심을 갖게 됐죠.”&lt;BR&gt;&lt;BR&gt;한 사람의 인생을 순식간에 바꾸어놓은 경매. 그는 실전경매를 배우기 위해 월 40만원의 급여를 받고, ‘명지경매’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사무실 청소, 잔심부름 등 온갖 허드렛일만 했다. 아무도 그에게 경매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차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그에게 경매 낙찰 노하우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lt;BR&gt;&lt;BR&gt;그 뒤 11년 동안 배 대표는 수많은 입찰을 했다. 물론 실패한 사례도 있었으나 대부분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에게 경매를 가르쳐줬던 선배들의 추대로 명지투자정보연구소의 대표가 됐다. 배 대표는 경매경력 11년 동안 업계에서 ‘강제집행 못하는 브로커’로 불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lt;BR&gt;&lt;BR&gt;“저는 성격상 상대방이 가슴 아파 하는 걸 못봐요. 퇴거 관련해서 그 집을 방문할 때면 일단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합니다. 처음에는 경매 때문에 온 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차갑게 이야기를 하세요. 그런데 천천히 상황 설명을 하면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인지라 해결점이 보이더라고요.”&lt;BR&gt;&lt;BR&gt;강제집행을 하면 쉽게 일이 끝날 수 있지만, 서로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렇게 마음이 상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길게 보면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아가씨가 자살한 집을 낙찰받다&lt;BR&gt;&lt;/STRONG&gt;경매 11년 동안 배 대표가 직접 낙찰 받은 경매건은 140여 건 정도다. 그중에는 눈물이 날 만큼 힘든 건도 있었고,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쉽게 풀린 건도 있었다. 그를 몇 번이나 마음약하게 만드는 딱한 사연을 가진 세입자들도 많았고, 신문에서나 볼 법한 충격적인 사연이 있는 물건도 있었다. &lt;BR&gt;&lt;BR&gt;특히 기억에 남는 경매 물건은 ‘아가씨가 자살한 집’이다. 그가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지켜봐도 집 안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결국 배 대표는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열쇠 수리공을 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발자국을 뗀 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lt;BR&gt;&lt;BR&gt;“집 안에 모든 짐이 다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아니란 걸 알았죠. 그런데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끼치면서 살이 떨렸어요. ‘아, 뭔가 있구나’라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죠. 큰방문을 열어봤더니, 아가씨가 누워 있는데 미동이 없더라고요. 바로 경찰에 신고했죠.”&lt;BR&gt;&lt;BR&gt;가족을 찾아서 연락을 해본 결과,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자살했다는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유족들은 시체가 집을 나가려면 굿을 해줘야 한다며, 굿 비용 5백만원을 요구했다. 흔히 세입자가 이사를 가게 되면, 이사비용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사비용의 몇 배에 이르는 굿 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lt;BR&gt;&lt;BR&gt;“결국 무속인을 불러서 동네 시끄럽게 굿을 한판 벌였어요. 신기한 건 무당이 굿을 하다가 나한테 와서 ‘아저씨 고마워요. 내가 이 신세 꼭 갚을께요’라고 말을 하더라고요.”&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left&gt;&lt;!--imgtbl_start_2--&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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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2--&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6/20090605152424_2_baejr2.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2--&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2--&gt;&lt;!--cap_end_2--&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2--&gt;&lt;/TABLE&gt;굿까지 치르고나자, 집을 처분해야 했다. 하지만 그 집은 소문이 나서 팔리지 않았다. 결국 배 대표가 직접 들어가서 살게 됐다. 하지만 배씨 역시 무언가 찜찜한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꿈에 이미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서 ‘이 신세를 꼭 갚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배 대표는 1년 만에 집을 나와서 찜질방에서 3개월 동안 기거했다. 그러던 어느날, 전혀 재개발 계획이 없던 그 집이 재개발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덕에 4천8백만원에 낙찰받은 집을 1억5천만원에 팔았다. 배 대표는 지금도 가끔 죽은 여자가 자신을 위해 굿 해준 것에 대해 보답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경매는 부동산의 꽃 중의 꽃&lt;BR&gt;&lt;/STRONG&gt;배 대표는 경매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할 수 없었던 부모님에 대한 효도 역시 경매를 통해서 할 수 있었다.&lt;BR&gt;&lt;BR&gt;“어머니가 치매, 피부암, 요도암, 뇌졸중 등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제가 병원비를 전혀 드리지 못해서 가슴이 아팠어요. 거의 형님에게만 의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경매를 통해서 병원비는 물론, 치료비까지 전부 마련해 드릴 수 있었어요. 경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lt;BR&gt;&lt;BR&gt;배 대표는 경매를 ‘부동산의 꽃 중의 꽃’이라고 한다. 경매를 배우게 되면, 부동산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경매는 상가, 토지, 임야, 아파트, 빌라 등 모든 것을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의 부동산 시세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경매는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에요. 소액 투자로 인한 재테크 수단 중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해요.”&lt;BR&gt;&lt;BR&gt;경매를 할 때 주의할 점도 물론 있다. 첫 번째 발품을 팔아서 시세 파악을 잘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미래 가치만 보지 말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업자들로부터 개발호재가 될 만한 솔깃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발품을 판 현장 정보가 없는 막연한 핑크빛 꿈은 상처만 남기게 된다. &lt;BR&gt;&lt;BR&gt;“경매로 실패한 사람들은 욕심을 부려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현장 확인 작업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막상 낙찰을 받고 난 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당황하는 경우도 생기죠. 경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낙찰 받기 전에 어떤 물건인지 발품을 팔면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에요.”&lt;BR&gt;&lt;BR&gt;배 대표는 초보자들이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100배의 축복」이라는 책을 썼다. 그가 운영해오던 ‘야생화의 실전경매’ 카페(&lt;A href=&quot;http://cafe.daum.net/ActualAuction&quot; target=_blank&gt;http://cafe.daum.net/ActualAuction&lt;/A&gt;&lt;FONT size=+0&gt;)에 연재해오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것. 처음 지하 전셋집을 경매 당했던 때부터, 11년 동안 경매를 통해 어떤 우여곡절을 겪고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성장',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성장');&quot;&gt;성장&lt;/FONT&gt;해 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lt;/FONT&gt;&lt;BR&gt;&lt;BR&gt;“경매 책 1, 2권만 보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미 경매는 대중화가 됐고, 경매 인구 중 상당수는 50대 아주머니들이에요. 유치권이나 법정지상권 등 어려운 이해관계가 얽힌 물건은 5% 미만이에요. 90% 이상의 물건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물건이죠.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느껴지던 과정이 지나고 한발 더 다가섰을 때는 또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lt;BR&gt;&lt;BR&gt;&lt;BR&gt;&lt;STRONG&gt;상대방을 배려하고 섬기자&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배 대표는 현재 중국의 한 교회를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지원',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지원');&quot;&gt;지원&lt;/FONT&gt;하고 있다. 지인을 통해 우연히 중국에 일을 보러 갔다가, 어렵고 힘든 교회를 발견하고 돕기 시작한 것. 돈을 직접 전달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옷, 양말, 학용품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정성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다. 작년에는 1천여 명의 아이들에게 물품을 지원했는데, 올해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2천여 명에게 생필품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lt;/FONT&gt;&lt;BR&gt;&lt;BR&gt;&lt;FONT size=+0&gt;배 대표의 꿈은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사회',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사회');&quot;&gt;사회&lt;/FONT&gt;복지재단 설립을 설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시설을 짓기에는 아직 모아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꿈 역시 경매를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경매라는 것을 몰랐다면, 50억~100억원이 들어갈 수도 있는 사회 복지 재단을 제가 어떻게 꿈꾸었겠어요. 하지만 경매를 통하면 가능할 것 같아요. 제가 움직일 수 있는 한 경매를 해서 앞으로 10년 뒤에는 제 목표를 이루고 싶어요.”&lt;/FONT&gt;&lt;BR&gt;&lt;BR&gt;8년 동안 지하 전세방에서 살 때, 배 대표의 소망은 오직 지긋지긋한 전세방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배 대표에게 경매는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준 동아줄이었다. 또한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를 해결해 효도하게 해줬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볼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lt;BR&gt;&lt;BR&gt;“경매는 결코 어렵거나 힘들지 않아요.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에 대한 ‘섬김’의 자세를 잊지 않는다면 누구나 100배의 축복을 받으며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희망을 가지세요.”&lt;BR&gt;&lt;BR&gt;
&lt;TABLE border=1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e2f0fe&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004b5c size=3&gt;‘경매고수’ 배중렬 대표가 일러준 경매 초보자가 꼭 알아야 할 경매 10계명&lt;/FONT&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BR&gt;1. 경매 절차를 잘 이해하고 변수에 대비하라&lt;/STRONG&gt;&lt;BR&gt;경매는 변수가 매우 많다. 낙찰을 받고도 중간에 취소, 변경, 연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세입자의 항고, 인도명령 지연, 명도 소송, 강제집행 등으로 3개월~1년까지 지연될 수 있다.&lt;BR&gt;&lt;BR&gt;&lt;BR&gt;&lt;STRONG&gt;2. 임장에 목숨을 걸어라&lt;/STRONG&gt;&lt;BR&gt;관심 있는 물건은 반드시 현장 답사를 해서 물건에 하자가 없는지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입찰을 하기로 했다면, 집행관이 작성한 현황조사서와 감정평가사가 작성한 감정평가서를 검토하고, 필요한 서류도 발급받아 확인한다. 입찰 물건 반경 2km 주위 지역까지 자세히 살핀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3. 감정평가사의 감정가를 재감정하라&lt;BR&gt;&lt;/STRONG&gt;초보자들은 감정평가사가 감정한 금액을 그대로 믿지만, 고수들은 감정평가사의 감정을 믿지 않는다. 직접 물건 소재지에 가서 현재가치와 미래가치를 조사한 다음, 현재 시세보다 무조건 싼 가격에 입찰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4. 입찰장에서 사소한 실수에 주의하라&lt;/STRONG&gt;&lt;BR&gt;입찰서류를 준비하지 않거나, 기재를 잘못한 경우, 보증금이 부족한 경우, 대리인이 응찰할 때 입찰자의 인감증명서가 빠져 있는 경우에는 입찰 자격이 취소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5. 보이지 않는 함정을 조심하라&lt;/STRONG&gt;&lt;BR&gt;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세입자의 전입 여부를 동사무소에서 확인하고, 미납된 관리비 등은 없는지 확인한다. 또한 서류를 통해 파악이 안 되는 법정지상권, 분묘지상권, 유치권 등이 없는지도 확인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6. 무조건 장기투자다&lt;/STRONG&gt;&lt;BR&gt;부동산에서 상승시점을 잡기란 무척 힘들다. 때문에 개미투자자라면, 미리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방법밖에 없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7. 부동산중개업소는 가장 늦게 찾아가라&lt;BR&gt;&lt;/STRONG&gt;초보자들이 경매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알려준 달콤한 이야기에 빠져, 현실은 직시하지 않은 채 턱없이 높은 금액으로 입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lt;BR&gt;&lt;BR&gt;&lt;BR&gt;&lt;STRONG&gt;8. 지렛대 효과를 활용하라&lt;/STRONG&gt;&lt;BR&gt;경매는 60~8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목돈이 없어도 내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선순위 임차인, 유치권 신고, 지분경매 등의 이유로 잔금대출이 안나오는 물건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9. 나 자신을 믿어라&lt;/STRONG&gt;&lt;BR&gt;수익성이 좋은 물건을 낙찰 받으려면, 귀가 얇아서는 안 된다. 정보를 습득해서 투자까지 철저히 객관적으로 분석한 뒤, 자신이 정한 가격에서 과감하고 소신 있게 입찰해야 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10. 강제집행을 하지 마라&lt;BR&gt;&lt;/STRONG&gt;법의 힘을 행사하기에 앞서 따뜻한 마음으로 명도에 임하라, ‘명도’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원상희&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신용불량자서 10년만에 CEO 된 고환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kyleelife/1626"/>
		<id>tag:blog.daum.net,2009:kyleelife.1626</id>
	    <author>
		    <name>제러미</name>
	    </author>
	    <updated>2009-10-23T10:26:28Z</updated>
	    <published>2009-10-23T10:26: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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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8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기를 극복한 부자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신용불량자서 10년만에 CEO 된 고환택&lt;/SPAN&gt;&lt;/SPAN&gt;&lt;/STRONG&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lt;/TD&gt;&lt;/TR&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BR&gt;&lt;FONT size=+0&gt;「레이디경향」에서는 부도 직전의 위기에서 성공한 사람들, 잘못된 투자로 돈을 잃었다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관리 노하우를 알아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위기를 극복한 부자들’이달의 주인공은 IMF 한파 속에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경매',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경매');&quot;&gt;경매&lt;/FONT&gt;로 집과 회사를 잃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가 연 40억원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의 CEO로 재기에 성공한 고환택씨입니다. (편집자 주)&lt;/FONT&gt;&lt;BR&gt;&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left&gt;&lt;!--imgtbl_start_4--&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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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src_start_4--&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4/20090402154923_1_rich_kht1.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4--&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4--&gt;&lt;!--cap_end_4--&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4--&gt;&lt;/TABLE&gt;&lt;FONT size=+0&gt;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정우&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철강',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철강');&quot;&gt;철강&lt;/FONT&gt;(주). 직원은 8명뿐이지만, 정우철강은 설립 10년 만에 40억원의 연매출을 올릴 정도로 내실 있고 튼튼한 회사다. 이 회사를 설립, 운영해온 사람은 바로 IMF 당시 집과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공장',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공장');&quot;&gt;공장&lt;/FONT&gt;까지 경매로 빼앗기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면서 궁지에 몰렸던 고환택(50) 대표다. 지난 10년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동안',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동안');&quot;&gt;동안&lt;/FONT&gt;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맨손으로 시작한 신용불량자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lt;/FONT&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IMF 한파에 집과 회사 하루아침에 경매로 날려&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대학을 졸업하고 철강 제조업 관련 회사에 다녔던 고 대표. 그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1993년 처음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금액은 약 3백만원. 친구와 함께 맞보증을 서면서 은행에서 2천만원을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대출',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대출');&quot;&gt;대출&lt;/FONT&gt;받고, 퇴직금 7백만원까지 포함해 총 3천만원의 종자돈으로 기계 제작업체를 차렸다. 생애 첫 창업이었지만, 사업은 나날이 승승장구하면서 4년 만에 자가 공장을 갖는 유능한 사업가로 성장했다. &lt;/FONT&gt;&lt;BR&gt;하지만 이 같은 사업 확장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IMF 한파와 함께 한보철강이 부도가 나면서 거래처였던 고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까지 연쇄 부도를 맞았다. 이로 인해 그는 경매로 집과 공장을 한꺼번에 빼앗겼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CEO라는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로 전략하자, 주위 사람들의 태도 역시 곧바로 변했다. 평소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던 일부 직원은 손을 흔들면서 “어이~, 요즘 어렵지?”라고 거들먹거리며 말을 건넸다. &lt;BR&gt;&lt;BR&gt;“그 당시 심정은 참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벌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내 안에 나도 모르고 있던 자신감이 살아나더군요.”&lt;BR&gt;&lt;BR&gt;고 대표는 회사와 집을 경매로 빼앗기고 나서도 오히려 부도를 맞은 거래처 직원을 찾아가 술과 점심을 사주며 위로를 했다. 또 경매로 공장을 넘기면서 “돈 많이 벌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고 대표 본인도 의아할 정도다. &lt;BR&gt;&lt;BR&gt;그가 위기상황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건 어릴 때부터 혼자 살아온 덕분이라고 한다. &lt;BR&gt;&lt;BR&gt;“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을 하든지, 주위 도움 없이 혼자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배웠죠. 결혼할 때도, 사업할 때도 혼자 해왔어요. 스스로 내 인생을 끌고 가다 보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걸 이겨내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웃음).”&lt;BR&gt;&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right&gt;&lt;!--imgtbl_start_5--&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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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5--&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4/20090402154923_2_rich_kht2.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5--&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5--&gt;&lt;!--cap_end_5--&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5--&gt;&lt;/TABLE&gt;&lt;STRONG&gt;계약서만 들고 발로 뛰면서 거래처 뚫어&lt;BR&gt;&lt;/STRONG&gt;신용불량자에 자금까지 없는 사람이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 게 가능했을까. 그는 “쉽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당시 그가 갖고 있던 돈은 우연찮게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처럼 3백만원이었다. &lt;BR&gt;&lt;BR&gt;“우선 주위에 내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아이들과 부모님도 모르고 있었죠. 기존의 거래처에 계약서를 들고 쫓아다니면서 ‘선급금’을 달라고 했어요.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할 계획인데, 나한테 원자재를 대주면 언제쯤 돈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설득했어요. 일일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간절히 호소했더니, 일부 업체에서 제 눈빛을 보고 계약을 하더라고요.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 기회는 있구나 싶었죠.”&lt;BR&gt;&lt;BR&gt;계약서를 들고 다니면서 원자재와 부자재를 구입하고 하나씩 공사를 해나갔다. 당시 계약을 맺었던 거래처들은 지금까지 최고의 협력업체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협력업체들은 고 대표가 계약서만 달랑 들고 찾아왔던 그때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건네곤 한다고. &lt;BR&gt;&lt;BR&gt;1997년 신용불량자가 된 고 대표에게는 3억원의 빚도 있었다. 당시 그의 꿈은 빚을 청산하는 것이었다. 또 신용불량자 신분에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 해외 출장을 제외하고는 출근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했다. 게다가 지난 3년 전부터는 그동안 하고 싶던 대학원 공부도 하고, 올 2월에는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을 텐데 학교 공부까지 병행하다니….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다 해낼 수 있었을까. &lt;BR&gt;&lt;BR&gt;“원래 한가한 사람한테는 시간이 없고, 바쁜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는 법이거든요. 회사와 학교 수업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죠.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봐요.”&lt;BR&gt;&lt;BR&gt;&lt;FONT size=+0&gt;게다가 그 사이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태권도',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태권도');&quot;&gt;태권도&lt;/FONT&gt; 2단 단증을 따기도 했다. 태권도 관장은 나이가 쉰 살이 다 된 사람이 태권도를 배우러 오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고 대표의 열정에 감동해 열심히 지도를 했다고 한다. &lt;/FONT&gt;&lt;BR&gt;&lt;BR&gt;“대학교 다닐 때 태권도 초단을 땄는데, 그걸 30년 동안 우려먹었잖아요. 요즘은 수명이 연장돼서 오래 사니까 앞으로 20~30년을 더 일하려면,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몸의 컨디션도 재정비하고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2단 단증을 땄더니 몸이 하나도 안 아플 것 같고 무슨 일을 해도 자신 있게 달려들 것 같아요.”&lt;BR&gt;&lt;BR&gt;&lt;BR&gt;&lt;STRONG&gt;‘40대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lt;/STRONG&gt;&lt;BR&gt;고 대표가 신용불량자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다양하고 바쁘게 살아온 것은 50세가 되기 전, ‘40대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40대에 공부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몸도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책까지 써내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는 목표대로 학교를 다니면서 박사학위도 땄고, 태권도 2단 자격증도 추가했다. 그리고 ‘40대 아름다운 마무리’의 마지막 목표가 바로 책을 내는 것이었는데, 그 책도 지난 1월에 출간했다. &lt;BR&gt;&lt;BR&gt;“책을 통해 그 동안 내가 겪었던 어려움이 무엇인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어떤 꿈을 갖고 살아왔는지, 왜 실패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잖아요.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면 얼마나 보람 있겠어요. 어려움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lt;BR&gt;&lt;BR&gt;그동안 ‘철’에 관련된 사업을 통해 실패도 하고, 성공도 했다. ‘철’은 그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이에 책 제목도 「철든 놈이 성공한다」로 지었다. 하지만 정작 고 대표 스스로는 “앞으로 철들려면 멀었다”고 말한다. &lt;BR&gt;“제 경영 철학은 ‘펀(FUN) 경영’이거든요.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을 해야 무슨 일이든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일을 해야 신나고, 행복하니까요. 그래서 직원들 앞에서도 항상 푼수 같은 행동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 아직 저는 철이 덜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웃음)”&lt;BR&gt;&lt;BR&gt;웃음이 가득한 회사 분위기 덕분일까. 회사 직원 8명은 모두 자신이 CEO인 것처럼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직원이 설립 초기 멤버이기 때문에 함께한 기간이 10년이 넘는다. 얼굴 보는 시간이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셈. 얼마 전 휴일에 회사를 나가봤더니, 직원들이 다섯 명이나 나와서 일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집에 좀 들어가라고 오히려 성화를 했단다. &lt;BR&gt;&lt;BR&gt;“사장 몰래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는 소리, 들어보셨어요? 저희 회사가 그래요. 제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아시겠죠? 직원들이 바로 저의 라이프 코치예요. 모두 회사를 내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무리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온다고 해도 우리 회사는 끄떡없을 거예요(웃음).”&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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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6--&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4/20090402154923_3_rich_kht3.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6--&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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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6--&gt;&lt;!--cap_end_6--&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6--&gt;&lt;/TABLE&gt;&lt;STRONG&gt;위기일수록 꿈을 크게 갖는 것이 중요&lt;/STRONG&gt;&lt;BR&gt;고 대표는 지금의 성공보다 그동안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더 행복한 시기였다고 말한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서 있을 때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항상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벅차고 행복했다. &lt;BR&gt;&lt;BR&gt;“사람들이 나에게 ‘언제 가장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지난 10년을 꼽겠어요. 빚 3억원을 갚기 위해 힘들지만 앞만 보고 달려올 수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이 가장 아름답고 벅찬 시기였던 것 같아요.”&lt;BR&gt;&lt;BR&gt;2007년 12월 24일, 고 대표는 만 10년 만에 신용불량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같이 고생해준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부도와 경매의 위기 속에서 꿋꿋하게 옆자리를 지켜주고, 마음속으로 응원해준 아내, 그리고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lt;BR&gt;&lt;BR&gt;&lt;FONT size=+0&gt;하지만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난 뒤, 그는 극심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우울증',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우울증');&quot;&gt;우울증&lt;/FONT&gt;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꿈이 있었기에 행복했는데, 더 이상 이룰 꿈이 없다는 생각에 허탈함과 허무함에 빠진 것. &lt;/FONT&gt;&lt;BR&gt;&lt;BR&gt;“IMF 때도 생기지 않았던 우울증이 와서 저 자신도 깜짝 놀랐어요. 신용이 회복되고, 더 이상 올라갈 목표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우울증에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다시 경기가 나빠졌잖아요. 새로운 꿈과 목표가 생기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났어요.”&lt;BR&gt;&lt;BR&gt;그가 생각한 새로운 꿈은 바로 세계 일등 기업이 되는 것. 요즘 같은 경기 불황 속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제품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여보겠다는 포부다. 지금 같은 금융 위기가 아니었다면 미처 생각 못했을 꿈이었다. &lt;BR&gt;“지금까지 저 자신을 너무 저평가한 것 같아요.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큰 꿈을 가졌다면, 더 빨리 유익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먹고살기 바빠서 미처 그런 생각조차 못한 것 같아요. 꿈을 갖는 건 자유잖아요. 돈 드는 일도 아니고. 70세가 됐을 때 지금 내가 세운 계획이 얼마나 실현돼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고 궁금해지네요(웃음).”&lt;BR&gt;&lt;BR&gt;20년 뒤 이루어야 할 꿈이 생긴 고 대표는 “경제 위기에 지친 사람들도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아마도 20년 뒤 고 대표의 사무실 명패에 ‘Dream Bank’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을까. &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이성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장소협찬 / 버즈 앤 벅스(02-777-8988&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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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년 경력의 ‘경매 달인’ 황치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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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제러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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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3T10:25:51Z</updated>
	    <published>2009-10-23T10:25: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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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8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기를 극복한 부자들]&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17년 경력의 ‘경매 달인’ 황치현&lt;/SPAN&gt;&lt;/SPAN&gt;&lt;/STRONG&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10px; PADDING-TOP: 5px&quot; class=b16g align=middle&gt;“위기는 기회! 10년 만에 내집 마련의 기회가 왔습니다”&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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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ffff&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BR&gt;&lt;FONT size=+0&gt;「레이디경향」에서는 부도,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투자',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투자');&quot;&gt;투자&lt;/FONT&gt; 실패, 실직 등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관리 노하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위기를 극복한 부자들’ 이달의 주인공은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경매',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경매');&quot;&gt;경매&lt;/FONT&gt;를 통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17년 경력 경매의 달인 황치현씨입니다. (편집자주)&lt;/FONT&gt;&lt;BR&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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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1--&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3/20090312160432_1_rich_hwang1.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1--&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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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0%; 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1--&gt;&lt;!--cap_end_1--&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1--&gt;&lt;/TABLE&gt;&lt;STRONG&gt;&lt;FONT size=+0&gt;올 8월부터 본격적인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부동산',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부동산');&quot;&gt;부동산&lt;/FONT&gt;시장 하락 시작&lt;/FONT&gt;&lt;BR&gt;&lt;/STRONG&gt;부동산에 대한 전망이 요즘처럼 엇갈리는 때가 또 있을까. 부동산 불패 신화를 자랑하던 대한민국에서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감에 초조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불안감이 확산되는 이유는 바로 계속된 경기 침체로 인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이 꺼질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예측 때문이다. &lt;BR&gt;&lt;BR&gt;&lt;FONT size=+0&gt;그렇다면 집을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17년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동안',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동안');&quot;&gt;동안&lt;/FONT&gt; 부동산 경매를 해온 경매의 달인 황치현씨는 “올해는 10년 만에 찾아온 내집 마련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한다. 다만 일반 매매가 아닌, 경매로 집을 사는 게 바람직하고 말한다. &lt;/FONT&gt;&lt;BR&gt;&lt;BR&gt;&lt;FONT size=+0&gt;“대한민국에서 은행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대출',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대출');&quot;&gt;대출&lt;/FONT&gt;을 받지 않고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대출이자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서, 그런 물건들이 곧 경매시장에 쏟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은 8월 이후 경매시장에 나온 물건들에 관심을 갖는 게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일반 매매에서도 급매물이 많이 나올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IMF 이후 내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최대의 기회입니다.”&lt;/FONT&gt;&lt;BR&gt;&lt;BR&gt;이어 황씨는 지금은 부동산의 진정한 바닥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부동산이 하락하고 바닥을 치는 시점은 올 여름부터 2010년까지 약 2년간 계속될 거라는 전망이다. 그 이유는 부동산은 경기가 풀리지 않는 한 가격이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하락세이기 때문에 경기가 살아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려면 최소한 2년은 걸리지 않겠느냐는 것이 황씨의 생각이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경매 17년의 파란만장한 삶&lt;BR&gt;&lt;/STRONG&gt;&lt;FONT size=+0&gt;황씨가 처음 경매에 발을 들인 것은 17년 전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법원 입찰제가 아니었고, 손을 들어 가격을 부르는 ‘호가 경매’가 성행하던 때였다. 그가 처음 들어간 부동산 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인회사였던 영선 중개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주식',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주식');&quot;&gt;주식&lt;/FONT&gt;회사였다. &lt;/FONT&gt;&lt;BR&gt;&lt;BR&gt;“회사에 들어갔는데, 경매를 한다고 하기에 법원에 따라가봤더니 호가 경매라는 걸 하더라고요. 직감적으로 ‘이거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정말 열심히 일했고 제가 다니던 회사는 계속 확장하고 번창했어요. 시간이 지나자, 호가제에서 입찰제로 경매 방식이 바뀌더라고요.”&lt;BR&gt;&lt;BR&gt;경매가 돈이 된다는 걸 알기 시작한 이후, 그는 ‘닥터 옥션’이라는 인터넷 회사를 차리고 인터넷으로 경매 서비스를 시작했고, 오프라인으로는 일간지도 발행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사업이 잘되자, 미국으로 지사를 낼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진승현 게이트 등의 대형 불법 대출 사건이 터지면서 투자가 끊기고 회사는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공중분해 됐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lt;BR&gt;&lt;BR&gt;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01년 영선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다시 경매를 시작했다. 아파트, 연립, 근린주택 등 경매를 통해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리고 하나의 물건에서 1천만~3억원의수익을 남기고 되팔기를 반복했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right&gt;&lt;!--imgtbl_start_2--&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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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0%; 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2--&gt;&lt;!--cap_end_2--&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2--&gt;&lt;/TABLE&gt;또그러다가 주위 사람들과 공동투자를 하다가 지인에게 배신을 당하는 억울한 일도 겪었다. &lt;BR&gt;“그 당시 후배와 함께 2억원씩 투자해서 집을 한 채 샀어요. 투자를 같이하면서 그 후배 명의로 집을 샀는데, 시간이 지나자 후배가 ‘내 집’이라며 넘겨줄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억울하고 답답해서 소송도 했는데,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는 ‘그래, 너 잘 먹고 잘 살아라’고 말하고 그냥 뒤돌아섰죠.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네요. 그 당시 2억원이면 진짜 큰돈이었거든요.”&lt;BR&gt;&lt;BR&gt;그 뒤로도 계속 경매를 통해 돈을 벌었다. 그래서 “돈을 꽤 많이 벌었겠어요”라고 묻자, 그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매를 통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은 오산이라고 한다. 보통 하나의 경매 물건을 통해 1천만원 정도의 수익이 나면 정상이라는 것. 물론, 주위 사람들의 명의까지 빌려 수십 개의 물건을 낙찰받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잘못된 물건을 낙찰받고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잘못된 물건이라는 게 무엇일까. &lt;BR&gt;&lt;BR&gt;“만약 1억원짜리 물건이 5천만원까지 떨어졌다면 굉장히 가격이 싼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물건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어서 자꾸 입찰 가격이 낮아지는 거예요. 특히 초보자들이 그런 물건을 모르고 덥석 사는 경우가 있는데 조심해야 합니다.”&lt;BR&gt;&lt;BR&gt;또 경매하는 사람 중에 과도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서 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보통 경매를 통해 낙찰을 받으면, 80~90%까지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자산이 1백억원이라도 부채가 80억원이 넘게 되면, 집값이 10%만 떨어져도 은행에서 바로 경매 신청을 한다는 것. 때문에 경매를 받더라도 최소한 60% 이상은 본인 자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lt;BR&gt;&lt;BR&gt;&lt;BR&gt;&lt;STRONG&gt;경매의 달인, 정작 월세집에서 살고 있다?!&lt;/STRONG&gt;&lt;BR&gt;지금까지 경매만 17년을 하면서 집을 사고파는 것을 직업으로 해왔던 황치현씨.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는 집이 없다. &lt;BR&gt;&lt;BR&gt;“2007년에 전국이 부동산 열풍에 빠져 있을 때 왠지 우리나라 부동산시장도 한계가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34평짜리 아파트가 14억~15억원이 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거죠. ‘조만간 이 거품이 빠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당시에 가지고 있던 집들을 모두 팔았어요.”&lt;BR&gt;&lt;BR&gt;현재 그는 식구들과 보증금 1천만원에 월 30만원 하는 실 평수 1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넓은 집에서 살다가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는 정말 답답해서 뛰어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가족간의 친밀감이 높아졌다. &lt;BR&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width=1 align=left&gt;&lt;!--imgtbl_start_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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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5px; PADDING-LEFT: 5px; PADDING-RIGHT: 5px; PADDING-TOP: 5px&quot; bgColor=#f7f7f7&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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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3/20090312160432_3_rich_hwang3.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3--&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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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0%; 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3--&gt;&lt;!--cap_end_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3--&gt;&lt;/TABLE&gt;조만간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월세로 이사를 했지만 2008년이 될 때까지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 치솟았다. 이에 황씨는 집을 잘못 팔았나 싶어 한동안 우울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중반이 되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고, 전국적으로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황씨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lt;BR&gt;&lt;BR&gt;언제쯤 다시 집을 살 생각이냐고 묻자, 그는 집 사는 게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올해 말에는 부동산이 바닥을 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올해 안에 다시 집을 살 가능성은 있다고 말한다. &lt;BR&gt;&lt;BR&gt;“올해는 정말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예요. 1997년 IMF 때 집을 못 산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집이 없어서 허덕이며 살았잖아요. 10년 만에 다시 집값이 떨어졌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 집 살 기회는 오기 힘들 거라고 봐요.”&lt;BR&gt;&lt;BR&gt;특히 가격적으로 좋은 경매 물건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실 이제 경매는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재테크 수단이다. 하지만 황씨는 많은 사람들이 경매를 이상하게 공부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lt;BR&gt;&lt;BR&gt;“사실 경매라는 게 100건 중에 90건이 쉬운 물건이고, 그 중에 2, 3건만 특수한 상황이 엮여 있는 어려운 물건이에요. 하지만 요즘 경매 학원에서는 그 어려운 물건을 가지고 공부를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싶더군요.”&lt;BR&gt;&lt;BR&gt;이에 그는 사람들이 좀 더 경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경매로 반값에 집 산다」라는 책을 펴냈다. “제가 이쪽에서 일하다 보니,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경매를 통해 내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책을 냈어요. 수중에 3천만~4천만원밖에 없는 사람도 내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죠.”&lt;BR&gt;&lt;BR&gt;&lt;BR&gt;&lt;STRONG&gt;가난한 사람들에게 힘 실어주고 싶어&lt;BR&gt;&lt;/STRONG&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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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4--&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lady/200903/20090312160432_4_rich_hwang4.jpg&quot; board=&quot;0&quot;&gt;&lt;!--imgsrc_end_4--&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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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0%; FONT-SIZE: 9pt&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4--&gt;&lt;!--cap_end_4--&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imgtbl_end_4--&gt;&lt;/TABLE&gt;그는 초보 경매 투자자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경매할 때 주의할 사항을 지적해 줬다. 첫 번째는 대법원 경매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 경매 사이트는 대대적인 개편으로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등기부등본상에 갑과 을의 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을군 안에 최초 근저당 기일보다 앞선 임차인의 전입 날짜, 가등기, 가처분 등 법률적 권리 관계만 없으면 그 물건은 안심해도 된다는 것. 이것만 알고 경매를 시작하면, 경매를 통해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lt;BR&gt;&lt;BR&gt;세 번째는 낙찰가가 80% 이상 높게 나오면, 경매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높은 낙찰가가 형성된 물건은 1등으로 낙찰을 받아봤자, 수익이 날 리가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급매물을 사는 게 훨씬 속이 편할 것이다. &lt;BR&gt;&lt;BR&gt;&lt;FONT size=+0&gt;네 번째는 경매로 구입한 물건이라도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기보다 1년 이상은 가지고 있는 게 좋다는 것이다. 모든 부동산은 3년 이하 보유하다가 팔면 양도 소득세를 50% 이상 내게 된다. 부동산은 주식 투자를 하듯이 단기적인 매매가 아니기 때문에, 경매로 재테크를 하는 경우라도 1~2년 이상은 지켜볼 수 있도록 기간을 길게 두는 게 좋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지역의 땅이나 &lt;FONT style=&quot;COLOR: #0000ff; CURSOR: hand;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상가',event);&quot; onmouseout=mouseOut(); onclick=&quot;mouseClick(this,'상가');&quot;&gt;상가&lt;/FONT&gt; 등은 낙찰받지 않는 것이 좋다. 잘 아는 동네가 아닌 경우에는 남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칫 잘못된 정보로 낭패를 볼 수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침체기에는 그런 물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직접 가서 시세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lt;/FONT&gt;&lt;BR&gt;&lt;BR&gt;황씨는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집 없이 산 적이 있다. 집이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러웠는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작은 보금자리라도 자신의 집을 꼭 장만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lt;BR&gt;&lt;BR&gt;“저의 바람은 가난한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집을 갖고 사는 거예요. 솔직히 저 혼자만 잘 살면 뭐 해요. 다 같이 잘 살면 좋잖아요. 집 없어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겠어요.” &lt;BR&gt;&lt;BR&gt;&lt;BR&gt;“제 바람은 가난한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집을 갖고 사는 거예요. 솔직히 저 혼자만 잘 살면 뭐 해요. 다 같이 잘 살면 좋잖아요. 집 없어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겠어요”&lt;BR&gt;&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WIDTH: 416px; HEIGHT: 122px&quot; border=1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416&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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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d9e653&gt;&lt;BR&gt;&lt;STRONG&gt;&lt;FONT size=3&gt;경매 할때 주의할 점&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lt;BR&gt;1 대법원 경매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lt;BR&gt;2 등기부등본상에 갑과 을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lt;BR&gt;3 낙찰가가 80% 이상 높게 나오면, 경매에 참여하지 않는게 좋다.&lt;BR&gt;4 경매로 구입한 물건이라도 1년 이상 장기로 가지고 있는 게 좋다.&lt;BR&gt;5 모르는 지역의 땅이나 상가 등은 낙찰받지 않는 것이 좋다.&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FONT color=#ec0078&gt;■&lt;/FONT&gt;글 / 김민주 기자 &lt;FONT color=#ec0078&gt;■&lt;/FONT&gt;사진 / 이성원, 경향신문포토뱅크&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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