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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르네상스인문주의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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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6-08-31T17:25:0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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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켈란젤로-신종사기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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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6-08-31T17:25:05Z</updated>
	    <published>2006-08-31T17:25: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000000&gt;조선일보]&lt;BR&gt;&lt;BR&gt;16세기 로마의 조르조 추기경이 큰돈을 들여 ‘잠자는 큐피드’를 샀다. 고대 
조각상이라 했다. 알고 보니 젊은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9%CC%C4%CC%B6%F5%C1%A9%B7%C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4603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미켈란젤로&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가 만든 
것이었다. “자네 작품을 땅에 묻었다가 고대 로마 작품이라고 팔면 훨씬 많은 돈을 받을 걸세.” 한 친구가 미켈란젤로를 꼬드겼다. 미켈란젤로는 
큐피드상을 파묻었다가 친구에게 건넸다. 친구는 그걸 로마로 가져가 다시 땅 속에서 묵힌 뒤 추기경에게 팔았다.&lt;BR&gt;&lt;BR&gt;▶&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8%A3%B3%D7%BB%F3%BD%BA%BD%C3%B4%EB&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4603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르네상스시대&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 영국과 
독일 귀족들이 자식들을 3~4년씩 파리와 이탈리아로 보내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자식들은 세련된 문화인 행세를 하느라 비싼 예술품을 잔뜩 
갖고 돌아왔다. 태반이 가짜였다. 예술품 위조의 맥은 1980년대 영국의 모작(模作) 거장 에릭 헵번에게 이어 왔다. 그는 “내가 500점 넘게 
그린 가짜 그림 목록을 폭로하면 미술시장이 마비된다”고 했다. “내 그림이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4%EB%BF%B5%B9%DA%B9%B0%B0%FC&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4603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대영박물관&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과 워싱턴 
국립미술관에도 걸려 있다”고 비웃기도 했다.&lt;BR&gt;&lt;BR&gt;▶예술품은 물론 약품부터 자동차까지 베끼지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다. 세계 위조품시장은 
10년 사이 17배나 팽창했다고 한다. 2003년 한 해에 4500억달러어치의 위조품이 세계를 휘저었다. 세계 무역의 6%에 이르는 덩치다. 
하도 교묘하게 만들어서 진품 가게가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위조품들도 자꾸 늘어난다.&lt;BR&gt;&lt;BR&gt;▶‘&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7%E7%C0%CC%BA%DF%C5%EB&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4603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루이뷔통&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은 변호사 
40명과 조사관 250명을 전 세계에 풀어 놓았다. 이들이 2003년에 덮친 위조 현장만 4200곳에 이른다. 그래 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된다. 명품 회사들은 때 되면 모여 머리를 맞대곤 하지만 밀려드는 위조의 해일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세계적 ‘짝퉁 
전쟁’에서도 보지 못한 신종 명품 사기극이 서울에서 벌어졌다. 연예인과 부유층이 원가 8만~20만원짜리 국산 시계를 스위스 명품으로 속아 
수천만원까지 주고 샀다.&lt;BR&gt;&lt;BR&gt;▶이 사기꾼은 명품을 위조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있지도 않은 브랜드를 하나 창조한 뒤 최고 명품이라고 거짓 
선전했다. 중국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한 시계를 스위스로 가져가 통관 서류까지 받아 되들여 왔다. 백화점에서 특별전까지 열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F%A4%B8%AE%C0%DA%BA%A3%BD%BA%BF%A9%BF%D5&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4603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엘리자베스여왕&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의 
시계’라는 말에 넘어갔다. ‘짝퉁’은 명품의 후광을 맛보려는 서민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이번 사기극은 몇몇 특별한 사람들의 허영을 농락했다는 
점에서 고소한 구석이 없지 않다.&lt;BR&gt;&lt;BR&gt;(주용중 논설위원 [블로그 바로가기 midway.chosun.com])&lt;BR&gt;&lt;BR&gt;- 
Copyrights ⓒ 조선일보 &amp; chosun.com,&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내생각&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이번에 뉴스에서 시계사기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미켈란젤로와 관련된 사기극은 
처음이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미켈란젤로한테 사기를 한 사람도 나쁜 것 같고 미켈란젤로 역시 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게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나쁘다&lt;/FONT&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미켈란젤로-'미켈란젤로'핸드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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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31T17:12:04Z</updated>
	    <published>2006-08-31T17:12: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한국모바일산업협회 &lt;/STRONG&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0%CC%BC%BA%B9%C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824527&quot; 
target=new&gt;&lt;U&gt;&lt;STRONG&gt;이성민&lt;/STRONG&gt;&lt;/U&gt;&lt;/A&gt;&lt;STRONG&gt; 회장&lt;BR&gt;&lt;BR&gt;&quot;모바일 부품 중요 전환기 다양한 
협력모델 만들어야&quot; &lt;BR&gt;&lt;BR&gt;&lt;BR&gt;&lt;/STRONG&gt;휴대전화 등 모바일기기와 관련한 부품ㆍ소재ㆍ세트에 이르는 전ㆍ후방 모바일산업의 고른 
발전을 위해 2004년 설립된 한국모바일산업협회 이성민 회장(&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F%A5%C5%D8%BA%F1%C1%AF&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824527&quot; 
target=new&gt;&lt;U&gt;엠텍비젼&lt;/U&gt;&lt;/A&gt; 대표)을 만났다.&lt;BR&gt;&lt;BR&gt;최근 들어 국내 모바일 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회장은 국내 모바일 부품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경쟁력을 확보, 글로벌 톱 3안에 진입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lt;BR&gt;&lt;BR&gt;국내의 대표적인 팹리스(설계전문) 반도체 기업인 엠텍비젼 대표이기도 한 이 회장을 만나, 한국 모바일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과 엠텍비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lt;BR&gt;&lt;BR&gt;대담 서낙영 디지털산업부 부장&lt;BR&gt;&lt;BR&gt;- 국내 모바일산업, 특히 휴대전화 
부품산업이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모바일 부품산업 발전을 위한 해법이 있다면.&lt;BR&gt;&lt;BR&gt;&quot;`하고 싶다면 다 할 수가 
있는' 시대는 가고 `누가 더 잘하느냐'를 냉정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들어 휴대전화ㆍMP3플레이어 제조사들이 기업 규모와 전문성을 
갖춘 일부 부품업체들과 대규모 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세트기업들이 부품업체들에 요구하는 중요한 
사항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느냐'이다. 이에 따라 국내 부품기업들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규모의 경제'를 갖춰 나가야 하고, 
당연히 글로벌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lt;BR&gt;&lt;BR&gt;모바일산업의 발전은 PC산업과 비교해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PC산업은 중앙처리장치(CPU)의 발전과 비례하며, 모바일산업은 베이스밴드칩 등 핵심 반도체 부품들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메모리 부문은 강한 반면, 베이스밴드ㆍ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 비메모리 부문은 취약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lt;BR&gt;&lt;BR&gt;결국 
휴대전화 등에 탑재되는 반도체 부품들을 국내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메모리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고, 메모리를 중심으로 재편한다면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F%EC%B8%AE+%BB%EA%BE%F7&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824527&quot; 
target=new&gt;&lt;U&gt;우리 산업&lt;/U&gt;&lt;/A&gt;에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는 소비전력 및 처리속도 등에서 강점이 있다. 
이를 향상시키는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고 본다.&quot;&lt;BR&gt;&lt;BR&gt;-최근 몇 년간 멀티미디어 내장 통신원칩에 대한 시도가 많았고, 이에 대한 논란도 
있었는데.&lt;BR&gt;&lt;BR&gt;&quot;휴대전화 부품 칩에 있어 핵심은 킬러 애플리케이션과 낮은 소비전력이라고 볼 수 있다. 원칩의 시도는 휴대전화 개발에 
있어 불필요한 일을 중복하게 해, 개발 인력의 낭비와 개발비의 상승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원칩은 휴대전화 생산에 있어 환상을 불러 일으켰지만, 
결국 원칩을 시도한 업체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곳이 많다. 우리나라가 모바일 강국이라고 불려질려면,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휴대전화 구조를 
가져야 한다.&quot;&lt;BR&gt;&lt;BR&gt;- 카메라프로세서(CCP)와 멀티미디어프로세서(MMP)에 이은 머신비젼플랫폼(MVP) 첫 제품을 최근 출시했다. 
MVP역시 이러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신규 사업에 따른 전략은.&lt;BR&gt;&lt;BR&gt;&quot;엠텍비젼은 최근 `10-10전략'을 수립했다. 이는 우선 각 
제품군의 규모를 현재보다 10배 이상 키우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한 후에 이를 다시 10배 이상 키운다는 전략이다. 이렇듯 규모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수다. 또 혁신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능을 있을 만하다고 다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그런 것 말이다. 이와 관련 MVP 첫 제품인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9%CC%C4%CC%B6%F5%C1%A9%B7%C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824527&quot; 
target=new&gt;&lt;U&gt;미켈란젤로&lt;/U&gt;&lt;/A&gt;'는 휴대전화 등에서 손가락으로 키패드 등을 직접 누르는 방식이 아닌, 일정하게 떨어진 거리에서 
비접촉 방식으로 기기를 작동할 수 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응용분야도 무한하다. 휴대전화 이외에도 
자동차ㆍ항공기 등의 UI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광범위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엠텍비젼은 부품회사고, 모듈을 만드는 업체와 최종 
세트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큰 시장을 열어 나갈 것이다.&quot;&lt;BR&gt;&lt;BR&gt;-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4%F7%C4%C4&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824527&quot; 
target=new&gt;&lt;U&gt;퀄컴&lt;/U&gt;&lt;/A&gt;ㆍ&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F%A3%BA%F1%B5%F0%BE%C6&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824527&quot; 
target=new&gt;&lt;U&gt;엔비디아&lt;/U&gt;&lt;/A&gt;와 같이 국내에서도 연간 매출 1조원 이상의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 탄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를 실현키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lt;BR&gt;&lt;BR&gt;&quot;우리나라는 휴대전화 등 모바일기기 부문에 있어 전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5%D7%BD%BA%C6%AE%BA%A3%B5%E5&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824527&quot; 
target=new&gt;&lt;U&gt;테스트베드&lt;/U&gt;&lt;/A&gt; 다.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미국ㆍ유럽과 같이 모바일 산업에서 자극이 크지 않은 곳에 속한 
국가의 기업들에 비해 발빠르게 관련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lt;BR&gt;&lt;BR&gt;하지만 국내 대부분 팹리스 기업들이 휴대전화 
부품에 따른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못해 기업규모를 확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등 세트의 내부구조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며, 이에 따른 원천기술도 국내 기업들이 아울러 확보해야만 한다고 본다.&lt;BR&gt;&lt;BR&gt;또한 
인수합병(M&amp;A)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데 좋은 방편이 될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역시 각 기업만의 고유한 사업철학을 무시하고 단순히 
`돈놀이'로만 진행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돈ㆍ기회 등에 따라 기업들이 움직인다면 향후 1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영속성을 가진 
기업이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들간 M&amp;A는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quot;&lt;BR&gt;&lt;BR&gt;-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제조부문 
아웃소싱을 전공정 파운드리(위탁제조)와 후공정 패키징(조립)ㆍ테스트(검사) 전문업체들에 맡기고 있다. 국내 파운드리ㆍ조립ㆍ검사기업들과의 협력강화 
방안이 있다면.&lt;BR&gt;&lt;BR&gt;&quot;국내 팹리스ㆍ파운드리 및 후공정 기업들은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자금력은 부족한 형편이다. 
팹리스ㆍ파운드리ㆍ패키지ㆍ테스트하우스 등 영세한 기업들끼리 전략적으로 뭉쳐야 하는데, 이들간 협력이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lt;BR&gt;&lt;BR&gt;이들 
기업 간 다양한 형태의 `협력모델'을 만들어야할 시기라고 본다. 대기업과 대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기업간, 여기에 대학과 연구소 등 
산ㆍ학ㆍ연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협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는 이와 관련한 협력모델이 실질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연구과제를 
제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quot;&lt;BR&gt;&lt;BR&gt;- 끝으로 만 2년째 접어들고 있는 한국모바일산업협회의 그동안 성과 및 향후 
운영계획은.&lt;BR&gt;&lt;BR&gt;&quot;국내 모바일 산업의 부품ㆍ소재 기업들은 아직까지 영세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이 모여 
협업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내자는 취지에서 협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협회 차원에서 중소규모 업체들을 응집해 큰 힘을 내기에는 아직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등 해외 모바일 관련협회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등 국내 기업들과 해외 협회ㆍ업체들을 연결하는 창구 기능을 충실히 해온 
것이 일정 정도의 수확이라고 생각한다.&lt;BR&gt;&lt;BR&gt;올해부터 향후 3년 동안은 한국이 모바일산업에서 더 발전할 수 있을지를 평가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모바일산업협회가 국내 모바일 관련업체들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해외 협회 및 선진기업들과의 최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 나갈수 있도록 하겠다. 한국이 모바일산업 부문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다.&quot;&lt;BR&gt;&lt;BR&gt;정리 강경래 기자&lt;BR&gt;&lt;BR&gt;사진 김민수 기자&lt;BR&gt;&lt;BR&gt;&lt; 모바일로 보는 디지털타임스 
3553+NATE/magicⓝ/ez-i &gt;&lt;BR&gt;&lt;BR&gt;[Copyrights ⓒ 디지털타임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생각&lt;/P&gt;
&lt;P&gt;핸드폰에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넣는 것이 되게 기발한 발상인 것 같고 &lt;/P&gt;
&lt;P&gt;다음에 또 핸드폰을 만들게 되면 우리나라의 인물의 이름이 들어갔으면 좋겠다&lt;/P&gt;
&lt;P&gt;개인적으로는 여자인물이 들어갓으면 좋겠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보티첼리-핸드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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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30T18:00:17Z</updated>
	    <published>2006-08-30T18:00: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id=newstitle&gt;&lt;FONT color=#000000&gt;삼성 '애니콜', 명품 디자인 '패션폰' 공개!&lt;/FONT&gt;&lt;/P&gt;
&lt;DIV id=newsbody&gt;&lt;!--기사본문--&gt;
&lt;DIV id=news_content&gt;&lt;!-- 사진 Start --&gt;
&lt;TABLE style=&quot;CLEAR: both&quot;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quot;&gt;
&lt;TABLE width=40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d_11_000000&gt;&lt;FONT color=#000000&gt;&lt;IMG 
src=&quot;http://photo-media.hanmail.net/200607/26/reviewstar/20060726182108.449.0.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사진 End --&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B%EF%BC%BA+%C8%DE%B4%EB%C6%F9&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49967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삼성 휴대폰&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과 패션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VERSACE)'가 만났다.&lt;BR&gt;&lt;BR&gt;세계 프리미엄 휴대폰 시장을 주도해온 삼성전자가 세계 최정상급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와 공동으로 디자인한 프리미엄 패션 휴대폰을 공개했다.&lt;BR&gt;&lt;BR&gt;삼성전자와 베르사체는 이 제품에 '베르사체'의 자매 
브랜드인'베르수스(VERSUS)'를 사용키로 하고, 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베르수스폰(E500 VERSUS)'을 전격 
공개했다.&lt;BR&gt;&lt;BR&gt;'베르수스'는 명품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의 자매 브랜드로 지난 95년 이탈리아의 패션 거장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1%F6%BE%C6%B4%CF+%BA%A3%B8%A3%BB%E7%C3%BC&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49967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지아니 베르사체&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의 
여동생인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5%B5%B3%AA%C5%DA%B6%F3&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49967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도나텔라&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 베르사체'가 
런칭했다. 신선한 디자인과 새로운 소재, 절제된 색상 등을 앞세워 도시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젊은 층에게 이탈리아 최고의 패션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lt;BR&gt;&lt;BR&gt;&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8%A3%B3%D7%BB%F3%BD%BA+%BD%C3%B4%EB&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49967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르네상스 시대&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 대표 
화가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A%B8%C6%BC%C3%BF%B8%A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49967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보티첼리&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의 작품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A%F1%B3%CA%BD%BA%C0%C7+%C5%BA%BB%FD&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499672&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00&gt;비너스의 탄생&lt;/FONT&gt;&lt;/U&gt;&lt;/A&gt;&lt;FONT color=#000000&gt;'을 
모티브로 해 탄생한 기존의 '프리미엄 패션폰(E500)'을 기본 외형으로 한 '베르수스폰'의 가장 큰 특징은 전면부 가죽 부분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다.&lt;BR&gt;&lt;BR&gt;자연스러운 곡선을 강조한 전면부 아랫부분에 '베르수스'의 로고를 새겨 넣었으며 중간 가죽 부분에는 고급스러운 라인을 
넣어 프리미엄 패션 폰으로서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lt;BR&gt;&lt;BR&gt;베르사체'의 최정상급 패션 디자인과 함께 130만 화소 카메라, 블루투스, 
MP3 등 삼성 휴대폰의 다양한 기능을 두루 내장해 프리미엄 디자인과 최첨단 기능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lt;BR&gt;&lt;BR&gt;프리미엄 패션 휴대폰 '베르수스폰'은 오는 8월 말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출시될 예정이다. &lt;BR&gt;최인갑 
기자/www.reviewstar.net &lt;/FONT&gt;&lt;/DIV&gt;
&lt;SCRIPT type=text/javascript&gt;&lt;!--try{if(document.getElementById(&quot;news_content&quot;) &amp;&amp; txtSize) document.getElementById(&quot;news_content&quot;).style.fontSize=txtSize; }catch(e){}//--&gt;&lt;/SCRIPT&gt;
&lt;NOPRINT&gt;
&lt;DIV id=fntSize&gt;&lt;A href=&quot;javascript:diffFont(1)&quot;&gt;&lt;/A&gt;&lt;FONT 
color=#000000&gt;&amp;nbsp;&lt;/FONT&gt;&lt;A href=&quot;javascript:diffFont(-1)&quot;&gt;&lt;/A&gt;&lt;FONT 
color=#000000&gt; &lt;/FONT&gt;&lt;/DIV&gt;
&lt;DIV id=news_cp&gt;&lt;FONT color=#000000&gt;[ 기사제공 ]&amp;nbsp;&amp;nbsp;&lt;/FONT&gt;&lt;A 
class=bd_11_555555 href=&quot;http://www.reviewstar.net/&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00&gt;리뷰스타&lt;/FONT&gt;&lt;/U&gt;&lt;/A&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내생각&lt;/DIV&gt;
&lt;DIV&gt;보티첼리의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을 모티브로 해서 탄생한 기존의 프리미엄 패션폰을 기본 외형으로 했다고 하지만 내가 위에 있는 핸드폰 
사진을 봤을때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좋아보이긴 했는데&lt;/DIV&gt;
&lt;DIV&gt;비너스의 탄생이랑 관련된 이미지의 느낌이 없는 것 같아서 되게 아쉽다&lt;/DIV&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레오나르도 다빈치-레오나르도작품소장박물관에서소장품이 도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126230"/>
		<id>tag:blog.daum.net,2009:leejw.5126230</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30T17:52:26Z</updated>
	    <published>2006-08-30T17:52: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id=newstitle&gt;&lt;FONT color=#000000&gt;유서깊은 러시아의 에르미타지 박물관에서 보석과 귀중품 등 소장품 
500만달러어치를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lt;BR&gt;&lt;BR&gt;박물관측은 지난달 31일 “정기적인 소장품 검사를 하다가 미화 500만달러 상당에 
이르는 작품 220여점이 도난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내부 관계자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박물관측은 소장품 대부분을 관리하고 있는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5%A5%B7%B9%C0%CC%C5%CD&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563222&quot; 
target=new&gt;&lt;FONT color=#000000&gt;큐레이터&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가 소장품 검사 도중 
갑자기 사망했으며, 물품 도난 사실은 그의 사망 후 동료들에 의해 밝혀졌다고 전했다. 박물관측은 숨진 큐레이터의 신분과 사망원인은 밝히지 
않았다.&lt;BR&gt;&lt;BR&gt;&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F%B9%C4%AB%C5%D7%B8%AE%B3%AA+2%BC%BC&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563222&quot; 
target=new&gt;&lt;FONT color=#000000&gt;예카테리나 2세&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 때 설립된 
박물관은 1050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6%F3%C6%C4%BF%A4%B7%C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563222&quot; 
target=new&gt;&lt;FONT color=#000000&gt;라파엘로&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와 &lt;/FONT&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7%B9%BF%C0%B3%AA%B8%A3%B5%B5+%B4%D9%BA%F3%C4%A1&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563222&quot; 
target=new&gt;&lt;FONT color=#000000&gt;레오나르도 다빈치&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의 걸작 등 
15~20세기에 이르는 회화와 조각품 250만점이 전시돼 있다.&lt;BR&gt;&lt;BR&gt;(모스크바=정병선특파원 [블로그 바로가기 
bschung.chosun.com])&lt;BR&gt;&lt;BR&gt;- Copyrights ⓒ 조선일보 &amp; chosun.com,&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내생각&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작품200여점이 손실되었는데 그것을 정기적인 소장품 검사를 하다가 그때라도 발견된게 
다행이고&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그동안 발견하지 못한게 안타깝고 감시카메라 같은 시설을 더 많이 설치해야 할 것 
같다&lt;/FONT&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레오나르도 다빈치-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126083"/>
		<id>tag:blog.daum.net,2009:leejw.5126083</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30T17:47:01Z</updated>
	    <published>2006-08-30T17:47: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id=newstitle&gt;&quot;[자연과학]‘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quot;&lt;/P&gt;
&lt;DIV id=newsbody&gt;&lt;!--기사본문--&gt;
&lt;DIV id=news_content&gt;&lt;!-- 사진 Start --&gt;
&lt;TABLE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quot;&gt;
&lt;TABLE width=20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d_11_000000 style=&quot;PADDING-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photo-media.hanmail.net/200608/12/donga/20060812044007.931.0.jpg&quot; 
width=200 border=0&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사진 End --&gt;[동아일보]&lt;BR&gt;&lt;BR&gt;◇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존 브록만 지음·&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E%C8%C0%CE%C8%F1&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70239&quot; 
target=new&gt;&lt;U&gt;안인희&lt;/U&gt;&lt;/A&gt; 옮김/484쪽·2만 원·소소&lt;BR&gt;&lt;BR&gt;&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7%B9%BF%C0%B3%AA%B8%A3%B5%B5+%B4%D9%BA%F3%C4%A1&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70239&quot; 
target=new&gt;&lt;U&gt;레오나르도 다빈치&lt;/U&gt;&lt;/A&gt;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과학자, 공학자였고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9%CC%C4%CC%B6%F5%C1%A9%B7%C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70239&quot; 
target=new&gt;&lt;U&gt;미켈란젤로&lt;/U&gt;&lt;/A&gt;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이 공학, 과학적 성과에 무지하다는 것을 그들은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인문학이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0%FA%C7%D0%B0%FA+%B1%E2%BC%FA&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70239&quot; 
target=new&gt;&lt;U&gt;과학과 기술&lt;/U&gt;&lt;/A&gt;을 걷어차 버리는 것은 오류라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lt;BR&gt;&lt;BR&gt;인터넷 지식인 토론 클럽을 
운영하는 저자는 과학을 배제한 전통적인 인문학자보다는 자연과학과 소통하면서 이를 모두와 나누는 ‘제3의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lt;BR&gt;&lt;BR&gt;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을 토대로 컴퓨터과학,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F%EC%C1%D6%B7%D0&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70239&quot; 
target=new&gt;&lt;U&gt;우주론&lt;/U&gt;&lt;/A&gt;, 인지과학, 진화생물학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핵심적인 사상가들의 작업과 아이디어의 자취를 밟아 
간다. 그래서 첨단 과학이야기가 인문, 철학이야기처럼 읽힌다. 인간 본성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시도하는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8%A3%B8%F0+%BB%E7%C7%C7%BF%A3%BD%BA&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3670239&quot; 
target=new&gt;&lt;U&gt;호모 사피엔스&lt;/U&gt;&lt;/A&gt;’ 등 3부로 구성됐다.&lt;BR&gt;&lt;BR&gt;김윤종 기자 
zozo@donga.com&lt;BR&gt;&lt;BR&gt;&quot;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quot;&lt;BR&gt;&lt;BR&gt;ⓒ 동아일보 &amp; donga.com,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내생각&lt;/DIV&gt;
&lt;DIV&gt;이 책이 20세기 인문학이 과학과 기술을 걷어차버리는 것은 오류라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것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햇는데 나중에는 
이해가 &#46124;고 되게 특이하게 시작해서 끌리는 책이다&lt;/DIV&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보티첼리-홈페이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091899"/>
		<id>tag:blog.daum.net,2009:leejw.5091899</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9T15:02:57Z</updated>
	    <published>2006-08-29T15:02: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href=&quot;http://www.iartedu.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iartedu.com/&lt;/A&gt;&lt;/P&gt;
&lt;P&gt;미술과 관련된 여러가지 자료를 볼수 잇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생각&lt;/P&gt;
&lt;P&gt;이홈페이지를 Daum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미술강좌부터 교육자료.명상의향기등 여러가지가 있고&lt;/P&gt;
&lt;P&gt;특히 보티첼리가 있는 동서미술사는 깨끗하게 잘 분류가 되어 있어서 눈으로 보기 쉽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보카치오-100권의 금서</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091424"/>
		<id>tag:blog.daum.net,2009:leejw.5091424</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9T14:43:29Z</updated>
	    <published>2006-08-29T14:43: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quot;&gt;
&lt;TABLE width=25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d_11_000000 style=&quot;PADDING-RIGHT: 10px; LINE-HEIGHT: 15px&quot;&gt;&lt;IMG 
src=&quot;http://photo-media.hanmail.net/200604/26/nocut/20060426173615.357.0.jpg&quot; 
width=250 border=0&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lt;!-- 사진 End --&gt;청소년 필독서 괴테의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0%FE%C0%BA+%BA%A3%B8%A3%C5%D7%B8%A3%C0%C7+%BD%BD%C7%C4&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젊은 베르테르의 슬픔&lt;/U&gt;&lt;/A&gt;'은 230년 전만해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읽어선 안되는 
'금서'였다.&lt;BR&gt;&lt;BR&gt;'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4년 발간 이후 수십년동안 속편, 모방작, 오페라, 연극, 노래, 향수, 보석, 
부채, 조끼 등에 영향을 끼치며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lt;BR&gt;&lt;BR&gt;그러나 &quot;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고 새로운 생명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기 위해 죽는 것은 몇몇 고귀한 사람들만의 것입니다&quot;라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를 따라 독일과 프랑스에서 젊은이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라이프치히의 신학 교수들은 책의 판매 금지를 요청했고 시의회는 이틀만에 이를 수용 '금서'로 지정했다.&lt;BR&gt;&lt;BR&gt;그래서 
괴테의 1787년 최종판에는 독자들이 자살을 범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내용이 첨가되기도 했다.&lt;BR&gt;&lt;BR&gt;'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는 또다른 
이런 저런 이유로 이른바 '금서'가 된, 그러나 이제는 '정전(canon)'의 반열에 오른 책 100권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소개한 책 
&lt;금지된 책의 문화사-100권의 금서&gt;(니컬러스 J.캐롤리드스, 마거릿볼드, 돈 B. 소바 지음/손희승 옮김/예담)'가 
출간됐다.&lt;BR&gt;&lt;BR&gt;&lt;B&gt;'예술이냐 외설이냐'&lt;/B&gt;&lt;BR&gt;&lt;BR&gt;195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음란물에 관한 정의를 '성적 내용이 들어 
있으면서 사회적 중요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정립했다.&lt;BR&gt;&lt;BR&gt;그러나 그 이전 수백년동안 음란한 표현은 곧 '저속한 작품'이라고 규정돼 
많은 책들의 판매와 유통이 금지됐다. 매춘, 간통, 미혼모 같은 사회 현상을 다뤘다는 이유로 금서가 된 '주홍글씨' '미천한 사람 주드'와 같은 
책도 있다.&lt;BR&gt;&lt;BR&gt;'사랑의 시'라는 뜻으로 부부에게 주는 일종의 결혼 지침서인 '카마수트라'는 아예 성적 기교를 가르치는 책이었으니 
&quot;도를 넘어선 음락하고 가학적인 성행위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quot;는 평가와 함께 금서가 된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lt;BR&gt;&lt;BR&gt;&lt;100권의 금서&gt;에서는 이런 성적 이유로 탄압받은 작품 '사랑의 기술'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5%A5%C4%AB%B8%DE%B7%D0&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데카메론&lt;/U&gt;&lt;/A&gt;'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E%C6%B6%F3%BA%F1%BE%C8+%B3%AA%C0%CC%C6%A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아라비안 나이트&lt;/U&gt;&lt;/A&gt;' '율리시스' 롤리타' '채털리부인의 사랑' 등의 뒤엣 얘기를 소개하고 
있다.&lt;BR&gt;&lt;BR&gt;그리고 또 다른 많은 책이 종교적 정설, 신앙, 도덕, 사회·정치적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금서로 
낙인찍혔다.&lt;BR&gt;&lt;BR&gt;이 가운데는 성서와 탈무드, 코란 등이 포함돼 있다. 기독교의 교리를 흔들어 유럽 사회의 근간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다윈의 '종의 기원'과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4%AB%C0%DC%C2%F7%C5%B0%BD%BA&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카잔차키스&lt;/U&gt;&lt;/A&gt;의 '그리스도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3%D6%C8%C4%C0%C7+%C0%AF%C8%A4&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최후의 유혹&lt;/U&gt;&lt;/A&gt;'도 대중들과 차단됐다.&lt;BR&gt;&lt;BR&gt;갈릴레이의 '두개의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와 
'이브의 숨겨진 얼굴'(나왈 엘 사다위), '악마의 시'(살만 루슈디), '이성의 한계내에서의 종교'(이마누엘 칸트)도 위에 언급한 책들과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까지도 억압할 수 있는 '권력자'들에 대항한 책들의 신세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lt;BR&gt;&lt;BR&gt;토마스 
페인의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C0%CE%B0%A3%C0%C7+%B1%C7%B8%AE&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인간의 권리&lt;/U&gt;&lt;/A&gt;'과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그렇고,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0%F8%BB%EA%B4%E7+%BC%B1%BE%F0&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공산당 선언&lt;/U&gt;&lt;/A&gt;(마르크스-엥겔스)'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3%AA%C0%C7+%C5%F5%C0%EF&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나의 투쟁&lt;/U&gt;&lt;/A&gt;'(히틀러) '군주론'(마키아벨리) '닥터지바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정치적 이유로 
탄압받았다.&lt;BR&gt;&lt;BR&gt;특히 조지오웰은 '동물농장', '1984'로 두 작품이나 100권의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1%DD%BC%AD+%B8%F1%B7%CF&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금서 목록&lt;/U&gt;&lt;/A&gt;에 포함되는 '영광(?)'을 차지했다.&lt;BR&gt;&lt;BR&gt;영화로도 친숙한 '&lt;A 
class=gu_15_0b0bcd 
href=&quot;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amp;q=%BD%C3%B0%E8%C5%C2%BF%B1+%BF%C0%B7%BB%C1%F6&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12512004&quot; 
target=new&gt;&lt;U&gt;시계태엽 오렌지&lt;/U&gt;&lt;/A&gt;'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주홍글씨' 등은 강도, 강간, 싸움, 마약 등이 
난무하는 '미래의 모습'을 제시했다는 이유와 출간 당시 사회적으로 금지된 간통을 다뤘다는 이유 등으로 '독서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lt;BR&gt;&lt;BR&gt;노컷뉴스 홍석재 기자 forchis@cbs.co.kr&lt;BR&gt;&lt;BR&gt;&lt;BR&gt;(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lt;BR&gt;&lt;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lt;A href=&quot;http://www.nocutnews.co.kr&quot; target=&quot;_blank&quot;&gt;www.nocutnews.co.kr&lt;/A&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생각&lt;/P&gt;
&lt;P&gt;금서목록에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읽고 톰아저씨의 오두막은 어렸을때 읽었던 거였는데 이 책들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함께 금서인줄은 정말 몰랐고 당황했다&lt;/P&gt;
&lt;P&gt;이책은 내가 읽어보지도 못한 책들이 더 많아서 사게 된다면 돈이 아깝다고 생각되진 않을 거 같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레오나르도 다빈치-최초의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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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leejw.5077603</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8T22:46:07Z</updated>
	    <published>2006-08-28T22:46: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href=&quot;http://wwwwwww.net/davinci/&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wwww.net/davinci/&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곳은 최초의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설명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생각&lt;/P&gt;
&lt;P&gt;난 이 홈페이지를 처음에 들어갔을때 단순하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이야기와 생애, 작품만 있을 줄 알앗는데 르네상스에 대한 설명과 
르네상스 시대의 주요인물에 대한 설명이 있다&lt;/P&gt;
&lt;P&gt;그중에서 내가 조사햇던 사람들이 다 있어서 좀 뿌듯했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페트라르카-말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077454"/>
		<id>tag:blog.daum.net,2009:leejw.5077454</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8T22:40:24Z</updated>
	    <published>2006-08-28T22:40: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B&gt;&lt;SPAN&gt;[말년(1353~74)]&lt;/SPAN&gt;&lt;/B&gt;&lt;BR&gt;&lt;/DIV&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그는 가장 가까운 벗들의 죽음과 새로이 선출된 교황 인노켄티우스 6세에 대한 반감, 아비뇽 
교황청과의 관계 악화 등의 이유로 마침내 프로방스 지방을 떠났다. 그는 밀라노에 거처를 정해 그곳에서 이후 8년을 보냈는데, 이 기간 동안 
〈시집〉의 초판을 완성했다. 서한집 〈친사서(親事書) Familiares〉의 저술을 끈기있게 계속했고, 〈승리〉를 썼으며, 이전의 많은 저술들을 
정리했다.&lt;/DIV&gt;
&lt;P&gt;&lt;/P&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1361년초 그는 흑사병을 피해 파도바로 가서 1362년 9월까지 그곳에 머무르다가 다시금 흑사병을 
피해 베네치아로 갔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그에게 집을 마련해 주어 그 답례로 자신의 모든 책을 공화국에 남기기로 약속했다. 딸 프란체스카가 
뒤따라왔고, 그녀 가족의 조촐한 작은 행복은 그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는 대재상 베닌텐디 데 라베냐니, 보카치오 등 가장 소중하고 유명한 
친구들의 방문을 받았는데, 보카치오는 그에게 오랫동안 원했던 호메로스의 라틴어본을 선사했다. 그에게는 도시의 정치 및 제반사에서 영예로운 역할이 
맡겨졌다. 그는 느긋하지만 대단한 집중력으로 자신의 다양한 저술들의 결정본을 완성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저술의 아랍 '자연주의적' 해석을 
따르는 4명의 청년들로부터 모욕을 당한 뒤 1367년 파도바로 돌아갔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으며, 1370년 이후로는 파도바와 
부근의 에우간네이 산지에 있는 아르콰(그곳에 작은 집을 가지고 있었음) 사이를 오가며 지냈다. 그곳에서 그는 베네치아에서 받은 비판적 공격에 
대한 그의 인문주의적 옹호론 &lt;A name=ID21&gt;&lt;/A&gt;〈자기 자신과 많은 사람들의 무지에 대하여 De sui ipsius et 
multorum ignorantia〉를 썼다. 그에게는 여전히 외교적 임무들이 맡겨졌으며 1370년 우르반 5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에 가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로마 교황청에 대한 자신의 꿈이 실현된 것을 보고자 기대에 차서 떠났으나 페라라에서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이전 저술의 수정 외에도 새로운 소품들을 썼으며 &lt;A name=ID22&gt;&lt;/A&gt;〈후대인들에게 Posteritati〉에 새로운 
장들을 덧붙였다. 〈후대인들에게〉는 후대에 보내는 자서전적 서한으로 〈노사서(老事書) Seniles〉의 결론에 해당한다. 그는 또한 〈승리〉의 
마지막 부분을 썼다. 페트라르카는 1374년 아르콰에 있는 서재에서 일하던 중 죽었는데, 이튿날 아침 발견된 그는 베르길리우스의 원고에 머리를 
묻고 있었다.&lt;/DIV&gt;
&lt;P&gt;&lt;/P&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페트라르카 사상의 본질은 과거가 현재의 자양이라는 심오한 인식에 있다. 그가 이룬 지속적인 성과는, 
세계를 주관하는 섭리가 있다면 그 섭리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었으리라는 사실을 인식한 데 있다. 페트라르카는 인간 생활을 풍요하게 하는 
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한층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없이는 르네상스로 귀결되는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적 태도가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이다.&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출처-Daum&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내생각&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보카치오가 페트라르카에게 원했던 호메로스의 라틴어본을 선물한 것을 알게 되면서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의 멋있는 우정을 알게되었고 페트라르카가 그의 가까운 벗을 잃게 되면서 프로방스 지방을 떠나게 되는데 페트라르카의 가까운 벗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안타깝다&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페트라르카-과거와의 단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077375"/>
		<id>tag:blog.daum.net,2009:leejw.5077375</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8T22:37:10Z</updated>
	    <published>2006-08-28T22:37: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lt;B&gt;&lt;SPAN&gt;[과거와의 
단절(1346~53)]&lt;/SPAN&gt;&lt;/B&gt;&lt;BR&gt;&lt;/FONT&gt;&lt;/DIV&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이후 몇 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은 한 사람의 인간이자 작가로서 
그의 생애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는 로마 공화국을 부흥시키고 로마에 민중의 정부를 재건하려는 &lt;/FONT&gt;&lt;A 
name=ID10&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21k3602a&quot;&gt;&lt;FONT 
color=#000000&gt;콜라&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 디 리엔초의 노력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아비뇽의 교황청과 한층 더 소원해졌고 1346년에는 추기경 콜론나와의 우정마저 깨지게 되었다. 둘째, 1348년 흑사병으로 알려진 역병이 
발생하여 그는 라우라를 위시한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라우라는 페트라르카가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던 기념일인 4월 6일에 죽었다. 셋째, 
성년(聖年)인 1350년에 그는 로마로 순례여행을 했으며 그가 관능적 쾌락을 버린 것도 이 해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페트라르카의 생애에서 
획기적인 사건들이었으나,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외교적 임무, 학문연구, 그리고 방대한 문학적 활동을 해나갔다. 1345년 페트라르카는 놀랍게도 
베로나에서 키케로가 아티쿠스·브루투스·퀸투스에게 보낸 서한들을 발견했으며, 그리하여 대웅변가의 외관 뒤에 있는 인간 키케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편지들에서 감명을 받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고대 작가들에게 편지를 썼으며 전에 친구들에게 보냈던 자신의 편지들을 수집했다. 이 서한집은 
페트라르카의 깊은 우정뿐만 아니라 그가 중세를 등지고 르네상스로 돌아서기까지 변모하는 온갖 태도변화들을 보여준다. 1345년말경 그는 다시 
평화로운 보클뤼즈로 돌아가 그곳에서 2년을 보내며 주로 〈고독한 생활에 대하여〉를 손질하는 한편, &lt;/FONT&gt;&lt;A 
name=ID17&gt;&lt;/A&gt;&lt;FONT color=#000000&gt;〈종교적 여가에 대하여 De otio religioso〉에서는 특히 금욕적인 
맥락에서 고독의 주제를 발전시켰다. 1347년 11월과 1350년의 로마 순례 사이에 그는 베로나·파르마·파도바 등지에도 갔다. 당시 그는 
교회에서의 직위를 승진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으나, 이 일에 따른 막후공작과 적대감정은 보클뤼즈의 평화를 한층 그리워하게 했다. 평생 동안 
친구였던 시인 &lt;/FONT&gt;&lt;A name=ID11&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09b3806b&quot;&gt;&lt;FONT 
color=#000000&gt;보카치오&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가 그를 방문하여 피렌체대학 교수직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그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1351년 5월 페트라르카는 로마를 떠나 보클뤼즈로 갔다.&lt;/FONT&gt;&lt;/DIV&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보클뤼즈에서 그는 &lt;/FONT&gt;&lt;A 
name=ID12&gt;&lt;/A&gt;&lt;FONT color=#000000&gt;〈시집 Rime〉&lt;/A&gt;을 위한 새로운 구상에 착수했다. 그 구상은 
&lt;/FONT&gt;&lt;A name=ID18&gt;&lt;/A&gt;&lt;FONT color=#000000&gt;〈라우라 생전의 시들 Rime in vita di 
Laura〉·&lt;/FONT&gt;&lt;A name=ID19&gt;&lt;/A&gt;&lt;FONT color=#000000&gt;〈라우라 사후의 시들 Rime in morte di 
Laura〉로 나뉘며, 그는 시들이 자신의 영적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도록 선별하여 배열했다. 더욱이 시들은 섬세한 미학적 취향과 대체적인 
연대순으로 배열되었다. 라우라와 사랑에 빠지는 묘사부터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마지막 기도에 이르기까지, 젊은날의 과오로부터 '모든 세속적 
쾌락은 한낱 덧없는 꿈'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신에 대한 최후의 신뢰에 이르기까지 아주 폭넓다. 그러므로 그의 
〈칸초니에레 Canzoniere〉(그의 시집의 일반적인 명칭)의 주제는 외관상의 주제인 라우라에 대한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다. 새로운 시의 
역사상 처음으로 서정시는 독자적인 단일성을 지닌 새로운 문맥 속에 편입되었다. 지난 2세기의 서정시 전통에서 가장 세련되고 동시에 가장 힘찬 
모든 것을 선별하여 그것을 고전에 대한 그의 새로운 이해를 통해 여과시킴으로써 그는 인간의 사랑과 슬픔, 환희와 비애에 대한 가장 명징하고도 
열정적이며, 정확하고도 암시적인 표현을 인류사에 남겼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감수성으로 현대 서정시의 형식과 언어를 개발하여 전유럽의 
서정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그는 1350년에 착수했던 〈서한시 Metricae〉의 저술을 계속했으며, 그의 새로운 교육관에 대한 보수적 
반대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시의 학교들에 지배적이던 &lt;/FONT&gt;&lt;A name=ID13&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14a1210b&quot;&gt;&lt;FONT 
color=#000000&gt;아리스토텔레스주의&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를 배격하고 고전 작가들의 영적인 가치를 
복권시키는 학문을 주창했는데, 이 새로운 학문은 '인문학'(litterae humanae)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영혼이 지상적인 
정념들로부터 신 안에서의 충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좀더 일반화된 형태로 그린 시 &lt;/FONT&gt;&lt;A name=ID20&gt;&lt;/A&gt;&lt;FONT 
color=#000000&gt;〈승리 Trionfi〉&lt;/A&gt;를 쓰기 시작했다.&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내생각&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페트라르카가 로마공화국을 부흥시키고 로마에 민중의 정부를 재건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그 당시 국민들에게 좋은 반응이였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친구와 우정을 깨는 것은 좀 
미련스럽다&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출처-Daum&lt;/FONT&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페트라르카-도덕적.문학적 변모</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077303"/>
		<id>tag:blog.daum.net,2009:leejw.5077303</id>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8T22:34:22Z</updated>
	    <published>2006-08-28T22:34: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B&gt;&lt;SPAN&gt;[도덕적·문학적 변모(1340~46)]&lt;/SPAN&gt;&lt;/B&gt;&lt;BR&gt;&lt;/DIV&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널리 퍼져 1340년 9월 파리와 로마에 계관시인으로 초대되었다. 그는 이 
영예를 얻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개인적 야심 때문이라기보다는 1,00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 비로소 되살아난 시에 대한 숭배를 기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주저없이 로마를 택했으며, 1341년 4월 8일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에서 관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월계관을 
성 베드로 바실리카에 있는 사도의 무덤 위에 바쳤는데, 이 또한 고전 전통과 그리스도교 정신을 잇고자 하는 의식이었다. 그는 로마로부터 파르마와 
그 근처의 한적한 고장 셀바피아나로 갔다가 1343년 가을에 아비뇽으로 돌아갔다. 이 시기에 그는 일종의 도덕적 위기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생활을 종교적 신앙과 일치시킬 수 없다는 갈등과 동생이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lt;A 
name=ID2&gt;&lt;/A&gt;〈나의 비밀 Secretum meum〉(1342~43)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작품은 상상 속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주고받은 3편의 대화로 이루어진 자서전적 저술이다. 거기에서 그는 인간이 세속적 관심과 과오의 와중에서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일에 몰두할지라도 여전히 신에게 이르는 길은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리하여 페트라르카의 영적인 '문제'는 일관된 해결을 
얻었는데, 이는 페트라르카의 관점인 동시에 인문주의자의 종교적·도덕적 시각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lt;/DIV&gt;
&lt;P&gt;&lt;/P&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페트라르카가 라우라에 대한 사랑을 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므로 그것은 세상에 
대한 애착의 증거라고 결론지었다는 사실은, '위기'라기보다는 도덕적·문학적 '변모'였다. 이러한 사고의 변모로 인해 그는 고대에 대한 지나치게 
배타적인 경외를 버리고 다른 권위자들의 음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컨대 〈위인전〉이 세속사뿐 아니라 성사(聖史)의 자료까지 포함하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한편 &lt;A name=ID16&gt;&lt;/A&gt;〈고독한 생활에 대하여 De vita solitaria〉(1346)에서 그는 인간이 자연과 학문 
및 기도의 위로를 즐기며 사는 '고독한 생활'을 묘사하며 신학적 기초를 다졌다.&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내생각&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페트라르카가 계관시인으로 초대된건 알았지만 페트라르카가 이 영예를 얻으려고 애쓸만큼 계관시인이 
그렇게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페트라르카-고전연구와 경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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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6-08-28T22:30:10Z</updated>
	    <published>2006-08-28T22:30: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고전 연구와 경력(1330~40)]&lt;BR&gt;&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페트라르카는 1330년 여름을 프랑스의 롱베에서 보냈는데, 
그곳의 주교는 볼로냐 시절부터 사귀었던 오랜 친구 자코모 콜론나였다. 1335년에 그는 성당 참사회원직을 받았으나, 계속 아비뇽에 살면서 
1337년까지 추기경을 섬겼다. 페트라르카에게 이 시기는 라우라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야망(특히 고전 라틴어 분야에 대한)과 부단한 연구로도 
중요한 시기였다. 또한 그는 여행을 많이 했으며, 1333년에는 프랑스·플랑드르·브라반트·라인란트 등지를 두루 여행하면서 학식 있는 인물들을 
만났고, 수도원 도서관들을 조사하여 '분실된' 고전 필사본들을 찾았다(리에주에서는 &lt;/FONT&gt;&lt;A name=ID5&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22k1244a&quot;&gt;&lt;FONT 
color=#000000&gt;키케로&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의 연설문 2편을 찾아냄). 파리에서는 친구이자 영적 
상담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사 산세폴크로의 디오니기로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lt;/FONT&gt;&lt;A name=ID6&gt;&lt;/A&gt;&lt;FONT 
color=#000000&gt;〈고백록 Confessions〉&lt;/A&gt; 사본을 받아 차츰 이 책을 영적 생활의 지침서로 삼게 
되었다.&lt;/FONT&gt;&lt;/DIV&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페트라르카는 고전 문화와 그리스도교 정신 
간의 지속성을 고취한다는 사명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는 풍성한 약속과 그것에 대한 신적 성취라는 외견상 상충하는 2가지 이상을 
통합함으로써, 이른바 유럽 &lt;/FONT&gt;&lt;A name=ID7&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25h3461a&quot;&gt;&lt;FONT 
color=#000000&gt;인문주의&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 운동의 선구자이자 대표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중세 &lt;/FONT&gt;&lt;A name=ID8&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13s0562b&quot;&gt;&lt;FONT 
color=#000000&gt;스콜라주의&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가 빠져 있던 무익한 논의와 끝없는 변증법적 쟁론을 
거부하고 고전 세계의 중후한 도덕에 사로잡혀 거기에서 진정한 가치와 영감을 찾게 되었다. 1337년에 처음으로 로마를 방문했으며, 그 폐허 
속에서 엄연한 과거의 위대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비뇽으로 돌아간 그는 부패한 생활(당시의 교황청은 전적으로 세속적인 일들에 몰두해 
있었음)로부터의 은둔처를 찾았으며 동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보클뤼즈라는 곳에서 '알프스 너머의 아름다운 고독'을 발견했다. 이곳은 그뒤 그가 
매우 아끼는 휴식처가 되었다.&lt;/FONT&gt;&lt;/DIV&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페트라르카는 자신의 작품을 개작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연대기는 다소 복잡하다. 그러나 그가 보클뤼즈를 발견한 것은 이미 &lt;/FONT&gt;&lt;A name=ID14&gt;&lt;/A&gt;&lt;FONT 
color=#000000&gt;〈압운서간(押韻書簡) Epistolae metricae〉(라틴어 6보격 시로 씌어진 66편의 '서신들')에 싣게 될 
상당수의 시와 라우라에게 바치는 몇 편의 연가를 쓴 후였다. 보클뤼즈에서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주제로 한 서사시 &lt;/FONT&gt;&lt;A 
name=ID9&gt;&lt;/A&gt;&lt;FONT color=#000000&gt;〈아프리카 Africa〉&lt;/A&gt;를 쓰기 시작했고 &lt;/FONT&gt;&lt;A 
name=ID15&gt;&lt;/A&gt;&lt;FONT color=#000000&gt;〈위인전 De viris illustribus〉이라는 로마 역사에 나오는 영웅들의 
전기를 쓰기 시작했다(그는 〈구약성서〉와 고전 세계, 그리스도교 세계의 이상들간의 지속성을 강조하기를 원했으므로 뒤에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시대의 유명인들의 전기로 확대되었음).&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내생각&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볼로냐 시절부터 사귀었던 친구 자코모 콜란나가 주교라는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페트라르카가 여행을 많이 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고 수도원 도서관들을 조사하여 분실된 고전 필사본들을 찾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lt;/FONT&gt;&lt;/DIV&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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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페트라르카-초기 시들과 교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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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8T22:26:39Z</updated>
	    <published>2006-08-28T22:26: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교육과 초기 시들]&lt;BR&gt;&lt;/FONT&gt;&lt;/STRONG&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법률가였던 페트라르카의 아버지는 1302년 피렌체를 떠나 
아레초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페트라르카가 태어났다. 뒤에 가족은 유배된 교황청 소재지였던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아비뇽으로 다시 
이주했고(1312), 그곳에서 법률가인 아버지는 일자리를 얻고자 했다. 페트라르카의 초기 교육은 프랑스의 카르팡트라스에서 시작되었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 공부를 하러 프랑스의 몽펠리에로 갔다(1316). 그는 몽펠리에에 있다가 동생 게라르도와 함께 볼로냐에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돌아갔다(1320). 그러나 이때 이미 그의 내부에는 훗날의 편지에서 '문학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열정'이라고 일컬었던 그 무엇이 
싹트고 있었다.&lt;/FONT&gt;&lt;/DIV&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페트라르카의 현존하는 초기 시들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것으로, 그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뒤에 많이 수정되기는 했지만 몽펠리에와 볼로냐 시절에 씌어진 것이다. 그는 고전 작가들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키워가는 한편 당시 새로이 씌어지기 시작한 속어 시에도 접했다. 132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페트라르카는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자신의 
관심분야들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비뇽으로 돌아간 그는 하급 성직을 얻어 영향력 있는 추기경 조반니 &lt;/FONT&gt;&lt;A 
name=ID3&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21k3683a&quot;&gt;&lt;FONT 
color=#000000&gt;콜론나&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의 집안에 드나들었다. 페트라르카는 아비뇽 생활을 
즐겼으며, 궁정 생활에 어울린 페트라르카와 그의 동생을 멋쟁이 신사로 묘사한 유명한 글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학식과 우아한 교양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페트라르카는 문학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깊은 종교적 신앙, 미덕에 대한 사랑, 인간사의 덧없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 
등을 지니고 있었다. 이 시기에 대한 반작용이기나 한 듯 방탕한 시절이 뒤따랐고, &lt;/FONT&gt;&lt;A name=ID4&gt;&lt;/A&gt;&lt;A 
class=stit_u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articleID=b05r3487a&quot;&gt;&lt;FONT 
color=#000000&gt;라우라&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gt;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여인에 대한 순결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신원을 밝히려는 시도가 있어 왔으나 허사로 끝났고, 페트라르카 자신은 이를 중요시하지 않았던 듯 여겨지며 그녀의 신분에 대해 
일체 침묵을 지켰다. 페트라르카는 1327년 4월 6일 아비뇽에 있는 생클레어 교회에서 처음 라우라를 보았다. 라우라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페트라르카는 그녀를 사랑했으며, 이 사랑 때문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탄생했다. 그는 이 시들을 속어로 쓴 
시시한 작품이라고 무시하는 척했으나 그러면서도 평생에 걸쳐 그것들을 모으고 수정했다.&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내생각&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페트라르카의 아버지가 법률가여서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 공부를 
한건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lt;/FONT&gt;&lt;/DIV&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lt;FONT color=#000000&gt;페트라르카의 현존하는 초기 시들이 그의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것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lt;/FONT&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보카치오-홈페이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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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updated>2006-08-28T22:22:38Z</updated>
	    <published>2006-08-28T22:22: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href=&quot;http://www.youth.co.kr/rs/rs01.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youth.co.kr/rs/rs01.htm&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홈페이지에는 세계명작에 대한 줄거리와 작가등 간단한 내용이 소개되어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생각&lt;/P&gt;
&lt;P&gt;데카메론의 책내용에 대해서는 잘몰랐었는데 이 홈페이지에는&amp;nbsp; 시간 순서대로 잘 설명되어 있고&lt;/P&gt;
&lt;P&gt;데카메론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세계명작들이 있어서 독서에 좋은 것 같다&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미켈란젤로-평판과 영향</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eejw/5037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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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　　　　</name>
	    </author>
	    <updated>2006-08-27T12:30:34Z</updated>
	    <published>2006-08-27T12:30: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평가와 영향]&lt;BR&gt;&lt;/STRONG&gt;&lt;/P&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후세 사람들에게 미켈란젤로는 셰익스피어나 베토벤처럼 인간의 비극적인 경험을 가장 깊이있게 보편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몇 안 되는 위대한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한 큰 명성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작품이 후세 
예술에 끼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미켈란젤로에 의해 연상되는 거의 우주적으로 장엄한 독특한 표현 형태들이 모방을 어렵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일부 영향을 받아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런 식으로 작업했던 예술가로서 가장 재능이 
있었던 예술가는 다니엘레 다 볼테라였다.&lt;/DIV&gt;
&lt;P&gt;&lt;/P&gt;
&lt;P&gt;
&lt;DIV class=&quot;base_s l_20&quot;&gt;17세기에 미켈란젤로는 해부학적 소묘의 일인자로 여겨졌지만, 그의 예술의 보다 폭넓은 다른 요소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추구한 예술가들은 그의 벽화에서 나타나는 압축된 공간이나 그 이후에 〈승리〉에서 사용한 구불구불한 
자세를 채택한 반면에, 19세기의 거장 오귀스트 로댕은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대리석 덩어리의 효과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발전시켰다. 17세기 
바로크의 거장들이 그를 가장 잘 참조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실물 그대로의 유사성을 배척하기 위해 변형된 방식에서였다. 조각가 베르니니 다음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가장 잘 활용한 미술가로는 플랑드르의 화가인 루벤스를 손꼽을 수 있다.&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출처-Daum&lt;/P&gt;
&lt;P&gt;내생각&lt;/P&gt;
&lt;P&gt;미켈란젤로가 인간의 비극적인 경험을 가장 깊이있게 보편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지만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에 대한 큰 
명성과는 대조적으로,그의 작품이 후세 예술에 끼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잇다는게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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