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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재성의 人生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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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콩씨네 자녀교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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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color=#800000 size=5&gt;콩씨네 자녀교육&lt;BR&gt;&lt;BR&gt;&lt;BR&gt;&lt;/FONT&gt;&lt;/STRONG&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STRONG&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정채봉&amp;nbsp; -&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BR&gt;&lt;STRONG&gt;&lt;FONT style=&quot;FONT-SIZE: 14pt&quot; color=#008000&gt;광야로 &lt;BR&gt;&lt;BR&gt;내보낸 자식은&lt;BR&gt;&lt;BR&gt;콩나무가 되었고&lt;BR&gt;&lt;BR&gt;&lt;BR&gt;&lt;BR&gt;온실로 &lt;BR&gt;&lt;BR&gt;들여보낸 자식은&lt;BR&gt;&lt;BR&gt;콩나물이 되었네&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border=0 src=&quot;http://img.blog.yahoo.co.kr/ybi/1/db/a5/lsysix/folder/14/img_14_9007_0?1258627146.png&quot;&gt;&lt;BR&gt;&lt;BR&gt;&lt;BR&gt;&lt;/FONT&gt;&lt;/STRONG&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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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사랑하는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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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재똥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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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0T18:12:3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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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TRONG&gt;내가 사랑하는 사람&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 정호 승-&lt;/STRONG&gt;&lt;BR&gt;&lt;BR&gt;&lt;BR&gt;나는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lt;BR&gt;나는그늘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사랑하지 않는다&lt;BR&gt;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lt;BR&gt;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lt;BR&gt;나무 그늘에 앉아&lt;BR&gt;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lt;BR&gt;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lt;BR&gt;&lt;BR&gt;나는 눈물이 없는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lt;BR&gt;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lt;BR&gt;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lt;BR&gt;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lt;BR&gt;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lt;BR&gt;나무 그늘에 앉아&lt;BR&gt;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lt;BR&gt;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lt;BR&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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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이츠 (아일랜드 시인·극작가)  [Yeats, William Butl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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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재똥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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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9T06:55:03Z</updated>
	    <published>2009-11-19T06:55: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page&gt;
&lt;DIV id=dic_content onmouseout=&quot;if(UI &amp;&amp; UI.toolTip &amp;&amp; UI.toolTip.mouseout){UI.toolTip.mouseout.bindAsEventListener(event);}&quot;&gt;
&lt;DIV id=dic_dcTitle class=dic_dcNormalTitleBox&gt;
&lt;DIV class=dcTxt&gt;&lt;SPAN class=dcTitleName&gt;&lt;STRONG&gt;&lt;FONT size=5&gt;예이츠 &lt;/FONT&gt;&lt;/STRONG&gt;(아일랜드 시인·극작가)&amp;nbsp;&amp;nbsp;[Yeats, William Butler]&lt;/SPAN&gt;&lt;/DIV&gt;&lt;/DIV&gt;
&lt;DIV id=dic_dcBody&gt;
&lt;DIV class=info_box&gt;
&lt;DIV id=d100_dcBodyBox&gt;
&lt;DIV class=&quot;dcLh20 dcFontS&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dcLh20 dcFontS&quot;&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1865. 6. 13 더블린 샌디마운트~1939. 1. 28 프랑스 로크브륀캅마르탱.&lt;/FONT&gt;&lt;/STRONG&gt;&lt;/DIV&gt;
&lt;DIV class=dcBlank20&gt;&lt;STRONG&gt;&lt;/STRONG&gt;&lt;/DIV&gt;
&lt;DIV id=d100_dcSub class=&quot;dcLh20 fL w100&quot;&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아일랜드의 시인·극작가.&lt;/FONT&gt;&lt;/STRONG&gt;&lt;/DIV&gt;
&lt;DIV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DottedBar&gt;&lt;/DIV&gt;
&lt;DIV class=dcBlank16&gt;&lt;/DIV&gt;&lt;A name=SUMMARY&gt;&lt;/A&gt;&lt;A name=T0&gt;&lt;/A&gt;
&lt;DIV class=dcChapTitle&gt;&amp;nbsp;&lt;/DIV&gt;
&lt;DIV class=dcChapTitl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개요&lt;/SPAN&gt;&lt;/STRONG&gt;&lt;/DIV&gt;
&lt;DIV class=dcLh21&gt;아일랜드 민족주의 정치가로도 활약했으며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lt;A name=NDSUMMARY&gt;&lt;/A&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DottedBar&gt;&lt;/DIV&gt;
&lt;DIV class=dcBlank16&gt;&lt;/DIV&gt;
&lt;DIV class=dcChapTitle&gt;&lt;A name=T1&gt;&lt;/A&gt;대립되는 전통의 계승&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의 아버지 존 버틀러 &lt;A name=ID14&gt;&lt;/A&gt;예이츠&lt;/A&gt;는 변호사였지만 나중에 초상화 화가가 되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처녀시절 이름이 수잔 폴렉스펜인 어머니는 아일랜드 슬라이고의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사람들은 예이츠가 아일랜드의 압도적인 로마 가톨릭교도 사이에서 강력한 소수를 대표하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영국계 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전통을 이어받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의 마음은 런던에서 학교에 다닐 때도 아일랜드의 영상으로 가득 차 있어 자신을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방인으로 느낄 정도였지만 아일랜드에서도 2가지 역사적 전통에서 분리된 채 있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왜냐하면 가톨릭교도들과는 신앙을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프로테스탄트들은 &lt;/DIV&gt;
&lt;DIV class=dcLh21&gt;'출세만 생각하고 있는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예이츠는 조너선 스위프트, 에드먼드 버크,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올리버 골드 스미스, 조지 버클리 같은 유명한 영국 문인들의 문학과 사상에 나타나 있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18세기의 찬란한 프로테스탄트 앵글로아일랜드 전통을 존중했다. 그러나 이 전통은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제 쇠퇴해가고 있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amp;nbsp;&lt;/DIV&gt;
&lt;DIV class=dcLh21&gt;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부상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시대는 가톨릭 전통에 유리하며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영어보다 게일어로 표현되는 시대였다. 예이츠는 자신의 엄격한 예술적 취향과 조화시킬 &lt;/DIV&gt;
&lt;DIV class=dcLh21&gt;수 있는 이 운동을 지지했지만 아일랜드가 영국 정부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을 주창하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애국단체에서의 그의 행동은 자주 애매한 것이었다. 예이츠는 그 두 아일랜드 사회 중 &lt;/DIV&gt;
&lt;DIV class=dcLh21&gt;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기 전에, 자기 자신의 입장을 주목할 만큼 애매한 자신의 고국의 &lt;/DIV&gt;
&lt;DIV class=dcLh21&gt;입장과 관련지어 명백하게 밝혀야 했다. 이러한 시도는 그의 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는 자신의 최고의 희망은 가톨릭 전통이나 프로테스탄트 전통보다 더욱 깊은 전통을 &lt;/DIV&gt;
&lt;DIV class=dcLh21&gt;계발하는 것이었는데 그 전통은 그리스도교보다는 더 이교도적인 성격을 띠며 아직까지 &lt;/DIV&gt;
&lt;DIV class=dcLh21&gt;남아 있는 관습·신앙·성지 같은 인류학적 증거 속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는 숨겨진 &lt;/DIV&gt;
&lt;DIV class=dcLh21&gt;아일랜드의 전통이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886년부터 발표된 예이츠의 많은 수필과 평론들은 시기가 적당했으므로 진정한 아일랜드를 &lt;/DIV&gt;
&lt;DIV class=dcLh21&gt;알려야겠다는 시도였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1&gt;1867년 예이츠가 불과 2세였을 때 가족은 런던으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아버지는 더블린에서 &lt;/DIV&gt;
&lt;DIV class=dcLh21&gt;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기를 희망했다. 1880년 가족은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왔고 &lt;/DIV&gt;
&lt;DIV class=dcLh21&gt;거기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휴일에는 슬라이고에 있는 외삼촌 조지 폴렉스펜과 함께 &lt;/DIV&gt;
&lt;DIV class=dcLh21&gt;지냈는데 이 슬라이고는 많은 시의 배경이 되었다. 1883년 더블린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술학교에 다녔으며 이곳에서 받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른 시인과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술가들을 만난 것이었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ic_goTop onclick=&quot;javascript:location.href='#top';&quot;&gt;&lt;/DIV&gt;
&lt;DIV class=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DottedBar&gt;&lt;/DIV&gt;
&lt;DIV class=dcBlank16&gt;&lt;/DIV&gt;
&lt;DIV class=dcChapTitle&gt;&lt;A name=T2&gt;&lt;/A&gt;탐미주의자·신비주의자·민족주의자로서의 예이츠&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동안 예이츠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발표한 것은 2편의 짧은 서정시로 1885년 &lt;/DIV&gt;
&lt;DIV class=dcLh21&gt;〈더블린 유니버시티 리뷰 Dublin University Review〉에 발표되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같은 해에 예이츠는 비술(秘術)에 관심이 있는 단체, 즉 더블린 연금술협회의 결성을 도왔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887년 가족이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자 예이츠는 '&lt;A name=ID5&gt;&lt;/A&gt;신지학(神智學)협회&lt;/A&gt;'에 가입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 협회는 신비주의를 통해 지혜와 형제애를 추구하는 국제적인 운동으로 점차 세력을 &lt;/DIV&gt;
&lt;DIV class=dcLh21&gt;확장하고 있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마술은 일상 세계에서 멀리 떠난 상상의 삶의 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를 사로잡았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반면 과학의 시대는 혐오스러웠으며 천문학보다 점성술에 훨씬 관심이 많았던 신비주의자로서 &lt;/DIV&gt;
&lt;DIV class=dcLh21&gt;자신이 시적 영상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lt;A name=ID6&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10b2735b&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블레이크&lt;/FONT&gt;&lt;/U&gt;&lt;/A&gt;의 예언서들을 연구하기 &lt;/DIV&gt;
&lt;DIV class=dcLh21&gt;시작했고 이런 모험은 플라톤 철학, 신플라톤 철학, 스베덴보리 신학, 연금술 등의 다른 &lt;/DIV&gt;
&lt;DIV class=dcLh21&gt;신비주의 전통과 접촉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예이츠는 이미 자긍심이 강한 젊은이였고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런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취향과 예술 감각에만 의지하게 되었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사람은 아니었지만 정신적 오만함이 잘 드러나곤 했다. &lt;A name=ID15&gt;&lt;/A&gt;〈오이신의 방랑기 외(外) &lt;/DIV&gt;
&lt;DIV class=dcLh21&gt;The Wanderings of Oisin, and Other Poems〉&lt;/A&gt;(1889)에 수록된 초기 시는 탐미주의 작품으로, &lt;/DIV&gt;
&lt;DIV class=dcLh21&gt;아름답지만 난해하며 사소한 문제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한 영혼의 외침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889년 예이츠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미모의 아일랜드 여인 모드 &lt;A name=ID7&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02g0102a&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곤&lt;/FONT&gt;&lt;/U&gt;&lt;/A&gt;을 만났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는 그 순간부터 &quot;내 인생의 고뇌는 시작되었다&quot;라고 기술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 사랑은 희망이 없는 것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모드 곤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으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열정을 아일랜드에 아낌없이 &lt;/DIV&gt;
&lt;DIV class=dcLh21&gt;바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목소리와 몸으로 몸소 구사하는 반항자이며 웅변가였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가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했을 때 부분적으로는 신념 때문이었으나 &lt;/DIV&gt;
&lt;DIV class=dcLh21&gt;대부분은 모드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 시절 아일랜드에 대해 쓴 많은 글들은 &lt;/DIV&gt;
&lt;DIV class=dcLh21&gt;모드를 향한 속삭임이었다. 1902년 더블린에서 희곡 &lt;A name=ID16&gt;&lt;/A&gt;〈캐슬린 니 훌리안 Cathleen ni Houlihan〉&lt;/DIV&gt;
&lt;DIV class=dcLh21&gt;&lt;/A&gt;이 초연되었는데, 모드가 캐서린 역을 맡았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1&gt;1891년 논쟁의 여지가 많은 아일랜드의 지도자 찰스 스튜어트 &lt;A name=ID8&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23p0410b&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파넬&lt;/FONT&gt;&lt;/U&gt;&lt;/A&gt;의 급속한 몰락과 죽음 이후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계가 희망을 잃었다고 느꼈다. 정치가 남긴 텅빈 공간을 문학·예술·시·&lt;/DIV&gt;
&lt;DIV class=dcLh21&gt;희곡·전설이 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에세이집 &lt;A name=ID17&gt;&lt;/A&gt;〈켈트의 여명 The Celtic Twilight〉&lt;/DIV&gt;
&lt;DIV class=dcLh21&gt;&lt;/A&gt;(1893)은 이런 목적을 향한 예이츠의 첫번째 노력이었지만 1896년 오거스타 &lt;A name=ID9&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02g3594a&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그레고리&lt;/FONT&gt;&lt;/U&gt;&lt;/A&gt; 부인을 &lt;/DIV&gt;
&lt;DIV class=dcLh21&gt;만날 때까지는 진전이 없었다. 그레고리 부인은 귀족으로서 극작가가 되었고 그의 한 친구가 되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녀는 이미 서부 아일랜드 지방의 민간전승인 옛날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이 전승 지식이 고대 의식 및 자신의 감정과 그리스도교가 완전하게 파괴하지 못한 &lt;/DIV&gt;
&lt;DIV class=dcLh21&gt;교도 신앙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민간전승이 농촌생활과 &lt;/DIV&gt;
&lt;DIV class=dcLh21&gt;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몰두하여 연구하면 사람들과의 명백한 관계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 느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가 아일랜드의 민속을 엄격하고 고매한 문체로 표현하면 순수한 시를 창작할 수 있고 &lt;/DIV&gt;
&lt;DIV class=dcLh21&gt;개인적인 용어로 그 자신의 정체성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이상을 정치에 적용하면 &lt;/DIV&gt;
&lt;DIV class=dcLh21&gt;농부와 귀족을 연결시키는 것인데, 즉 경험은 농부의 것, 문체는 귀족적인 것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생각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런 연결은 도시와 부의 산물인 미움받는 중산층을 비난하게 된 것이고 이것이 실질적인 영향을 &lt;/DIV&gt;
&lt;DIV class=dcLh21&gt;미치지 않더라도 도덕적 효과는 가져올 것이다. 1897년부터 예이츠는 카운티 골웨이의 쿨파크에 있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레고리 부인 집에서 여름을 보냈고 쿨파크를 사라져가는 우아함의 세계와 결부시켰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 공원이 농부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그 시각을 완벽하게 해주었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1&gt;1899년 예이츠는 모드 곤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4년 후 그녀는 아일랜드의 애국 동지이며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영국의 압제를 함께 증오하던 아일랜드 군인 존 맥브라이드 소령과 결혼했다. 그는 1916년에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일어난 부활절 봉기에 참여한 죄로 사형당한 항거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한편 예이츠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시와 연극이 아일랜드 전 국민을 변모시킬 수 있으리라 믿고 문학과 희곡에 전념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런 활동은 더블린에 그 유명한 &lt;A name=ID10&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15a0212a&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애비 극장&lt;/FONT&gt;&lt;/U&gt;&lt;/A&gt;을 설립하면서 절정에 다다랐고 이 극장은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04년 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아들과의 반목을 주제로 한 〈베일 해변에서 On Baile's Strand〉&lt;/DIV&gt;
&lt;DIV class=dcLh21&gt;는 첫 상연 계획에 들어 있었다. 그후 수년 간 예이츠는 애비 극장의 일반적인 운영에 몰두해 있었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당시는 논쟁이 빈번한 시기였다. 그의 작품들은 비종교적이고 반가톨릭적이어서 &lt;/DIV&gt;
&lt;DIV class=dcLh21&gt;반아일랜드적이라고 비난받았다. 배우·제작자·신문 등과 논쟁도 잦았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07년 존 밀링턴 싱의 〈서부의 난봉꾼 Playboy of the Western World〉의 초연 때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극장 안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언제나 자긍심이 강하고 당당했던 예이츠는 논쟁시 &lt;/DIV&gt;
&lt;DIV class=dcLh21&gt;만만찮은 투사였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는 또한 과거의 상처를 빨리 잊지 못해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으며, 중산층, 상인 및 대부분의 &lt;/DIV&gt;
&lt;DIV class=dcLh21&gt;더블린 사람들처럼 인습적인 성공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경멸했다. 현대의 시민들, 가톨릭교도, &lt;/DIV&gt;
&lt;DIV class=dcLh21&gt;프로테스탄트 등은 모두 예이츠가 영웅적 가치관에 호소한다는 사실을 자신들에 대한 모욕으로 &lt;/DIV&gt;
&lt;DIV class=dcLh21&gt;간주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점차 중산층의 관심사에서 멀어져갔고, 애비 극장도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애비 극장에서 상연된 많은 연극들이 그의 눈에는 천박하고 통속적인 것으로 보였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대중의 변덕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연극으로 마음을 돌렸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13년 미국의 시인 에즈라 &lt;A name=ID11&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23p0890b&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파운드&lt;/FONT&gt;&lt;/U&gt;&lt;/A&gt;의 비서로 일하며 서식스 주에 있는 스톤카티지에서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와 몇 개월을 보냈다. 파운드는 그당시 일본의 고전극인 &lt;A name=ID12&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03n4169a&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노&lt;/FONT&gt;&lt;/U&gt;&lt;/A&gt;[能]의 번역 원고를 교정하고 있었고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그 극으로 인해 큰 자극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극들은 대중보다 조신들을 기준으로 한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귀족문화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점차적으로 노극에 해당되는 대응물로 간주될 수 있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극들을 고안해냈는데 그것은 &lt;A name=ID18&gt;&lt;/A&gt;〈무희를 위한 4개 극 Four Plays for Dancers〉&lt;/A&gt;(1921)으로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극장에서뿐만 아니라 응접실에서도 상연될 수 있는 일련의 짧고 형식적인 극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이러한 연극들을 새로운 종류의 연극, 즉 말·가면·춤·음악, 모방이 아니라 상징적인 &lt;/DIV&gt;
&lt;DIV class=dcLh21&gt;동작의 조화로 생각했다. 그 연극들은 상류 사람들, 즉 그런 형태의 장점을 즐기는 소수들에게만 &lt;/DIV&gt;
&lt;DIV class=dcLh21&gt;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16년 초연된 &lt;A name=ID19&gt;&lt;/A&gt;〈매의 우물에서 At the Hawk's Well〉&lt;/A&gt;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가 믿어왔던 많은 가치관을 구현한 작품이었다. 돈과 대중을 위한 부르주아 극장은 &lt;/DIV&gt;
&lt;DIV class=dcLh21&gt;고대 그리스 연극이 일으킨 동정과 공포보다는 '신경질적인 흥분'의 장소일 뿐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 시기에 예이츠가 관심을 가졌던 예술은 관객들을 잠시 동안이나마 '지금까지 너무나 &lt;/DIV&gt;
&lt;DIV class=dcLh21&gt;미묘해서 우리가 들어가 볼 수 없었던 마음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도록 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러한 가치관은 아일랜드 생활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존속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13년 휴 &lt;A name=ID2&gt;&lt;/A&gt;레인&lt;/A&gt; 경이 수집한 39점의 프랑스 인상파의 그림 처리문제에 대해 벌어졌던 분쟁은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의 눈에는 사악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인은 그 그림들을 더블린 &lt;/DIV&gt;
&lt;DIV class=dcLh21&gt;시립현대미술관이 한 화랑을 마련해 그것들을 전시한다는 조건 아래 기증할 계획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자 레인은 화가 나서 런던의 국립미술관에 빌려주었고,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15년 그가 죽자 두 미술관이 이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1913년 예이츠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 논쟁에 개입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왜냐하면 레인의 훌륭한 행동이자 귀족적 조치가 한 비천한 더블린인에 의해 능멸당했다고 &lt;/DIV&gt;
&lt;DIV class=dcLh21&gt;생각했기 때문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의 &lt;A name=ID20&gt;&lt;/A&gt;〈책임 Responsibilities〉&lt;/A&gt;(1914)에 실린 많은 시들은 레인 논쟁에 의해 고취된 작품으로 &lt;/DIV&gt;
&lt;DIV class=dcLh21&gt;매우 통렬한 작품들이다. 이것은 예이츠와 아일랜드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07년 그레고리 부인과 함께 피렌체·밀라노·우르비노·페라라·라벤나 등지를 여행했고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탈리아 마을과 도시들이 나타내는 귀족적 우아함의 증거를 결코 마음속에서 잊지 않았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13년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즉 예의와 정중함을 존중하던 완전히 사라져버린 &lt;/DIV&gt;
&lt;DIV class=dcLh21&gt;왕국에 대한 갈망이 그의 작품 속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ic_goTop onclick=&quot;javascript:location.href='#top';&quot;&gt;&lt;/DIV&gt;
&lt;DIV class=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DottedBar&gt;&lt;/DIV&gt;
&lt;DIV class=dcBlank16&gt;&lt;/DIV&gt;
&lt;DIV class=dcChapTitle&gt;&lt;A name=T3&gt;&lt;/A&gt;성숙한 시인이며 상원의원&lt;/DIV&gt;
&lt;DIV class=dcLh21&gt;1917년 예이츠는 모드 곤의 딸 이졸트 곤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몇 주 뒤 조지 하이드 &lt;/DIV&gt;
&lt;DIV class=dcLh21&gt;리스에게 청혼해 1917년 결혼했다. 1919년 딸 앤이 태어났고 1921년 아들 윌리엄이 태어났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설립되어 예이츠는 아일랜드 상원의 새 일원이 되어달라는 요청에 &lt;/DIV&gt;
&lt;DIV class=dcLh21&gt;수락했고 6년간 봉사했다.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제는 유명한 인물이 되어 현대의 &lt;/DIV&gt;
&lt;DIV class=dcLh21&gt;가장 탁월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명예에 의존하지 않았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의 마음은 상상력, 역사, 비술의 관계에 쏠려 있었다. 그는 그의 생각을 한 위대한 책, &lt;/DIV&gt;
&lt;DIV class=dcLh21&gt;즉 예술에 관해 신성시될 만한 책으로 재현하고 싶었다. 그결과 1925년 &lt;A name=ID21&gt;&lt;/A&gt;〈비전 A Vision〉&lt;/DIV&gt;
&lt;DIV class=dcLh21&gt;&lt;/A&gt;의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예이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몇 년 간 계속적으로 연구하여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37년 결정판을 냈다. 한편 그의 시는 날이 갈수록 기량을 더해가고 있었다. &lt;A name=ID3&gt;&lt;/A&gt;&lt;/DIV&gt;
&lt;DIV class=dcLh21&gt;〈탑 The Tower〉&lt;/A&gt;(1928)은 그가 고트에서 구입한 무너진 노르만 성의 이름을 따서 붙인 제목으로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의 작품 중 가장 도도한 것 중의 하나이며 매우 노련한 예술가의 작품이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 작품 속에는 일생의 경험이 완벽한 형태로 구사되어 있다. 그렇지만 예이츠의 가장 &lt;/DIV&gt;
&lt;DIV class=dcLh21&gt;위대한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그뒤에 씌어진 &lt;A name=ID22&gt;&lt;/A&gt;〈나선층계 The Winding Stair〉&lt;/A&gt;(1929)로 나왔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60대 후반에 이르러서도 계속 작품을 썼다. 그의 감정은 예전처럼 강렬했지만,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 시기의 시는 대부분 상상력의 병적인 흥분 때문에 손상되었고 현실과 정의 사이의 균형도 &lt;/DIV&gt;
&lt;DIV class=dcLh21&gt;불안정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세계는 산산 조각나는 것 같았고, 예이츠는 그것을 혐오했지만 자주 세상의 몰락에 매혹되기도 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귀족적 스타일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독재적인 이데올로기에 봉사해 말년에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신이 존중해온 가치관이 파괴되고 있다고 느끼며 예이츠는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 가치들이 위대한 인물, 즉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구출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는 활력과 독재주의적인 명쾌함 때문에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lt;A name=ID13&gt;&lt;/A&gt;&lt;A class=dcLnk href=&quot;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08m0278a&quot;&gt;&lt;U&gt;&lt;FONT color=#4800ff&gt;무솔리니&lt;/FONT&gt;&lt;/U&gt;&lt;/A&gt;를 숭배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산문으로 된 소책자 〈보일러에 관하여 On the Boiler〉(1939)에서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부패한 &lt;/DIV&gt;
&lt;DIV class=dcLh21&gt;세상에 토로했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정치 권력을 갈망하며 그 권력을 갖게 되면 폭력적으로 &lt;/DIV&gt;
&lt;DIV class=dcLh21&gt;사용하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예이츠의 분노는 시인의 분노였고 삶에 대해 갖고 있던 &lt;/DIV&gt;
&lt;DIV class=dcLh21&gt;시각은 시인의 시각이었다. 그는 단지 도덕의 힘, 즉 어떤 위대한 상징들이 만들어내는 힘을 원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는 아일랜드 상원의원으로서 정치적 권력을 실질적인 것에 쏟았다. 즉 검열, 레인의 그림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건강 보험, 이혼, 아일랜드어, 교육, 저작권 보호, 아일랜드의 국제연합 가입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상원의 화폐위원회 의장이기도 했다.&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1&gt;예이츠의 말년은 긴장의 연속이었었다. 그의 건강은 좋지 않았고 그래서 아일랜드의 &lt;/DIV&gt;
&lt;DIV class=dcLh21&gt;습한 겨울을 피해 여행을 다녔으나 은퇴하지는 않았다. 1930년대의 폭력이 끝내 전쟁을 &lt;/DIV&gt;
&lt;DIV class=dcLh21&gt;몰고올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한편으로는 그 전망에 두려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매혹되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는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군대의 행진소리가 사랑·예술·미·예의범절의 &lt;/DIV&gt;
&lt;DIV class=dcLh21&gt;주제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 시절 예이츠의 삶의 감각은 계시적인 것이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가끔 그는 두려워 그 계시로부터 도망치기도 했으나 또 어떤 때는 그 계시에 동조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36년 자신이 사랑했던 시이며 대부분 자기 친구들이 쓴 시모음집 〈옥스퍼드 현대시 모음집 &lt;/DIV&gt;
&lt;DIV class=dcLh21&gt;1892~1935, Oxford Book of Modern Verse 1892~1935〉가 발간되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여전히 그의 마지막 연극 작품들을 쓰면서 예이츠는 그의 시 중 가장 귀에 거슬리는 시 &lt;A name=ID23&gt;&lt;/A&gt;&lt;/DIV&gt;
&lt;DIV class=dcLh21&gt;〈헌의 알 The Herne's Egg〉&lt;/A&gt;을 1938년 완성했다. 그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외국에서 죽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아일랜드에 매장하기 위한 최종적인 준비는 성사될 수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로크브륀에 묻혔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의 시신을 슬라이고에 매장하려는 의도는 1939년 가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좌절되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1948년 그의 시신은 슬라이고로 결국 넘겨져서 드럼클리프에 있는 작은 개신교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lt;/DIV&gt;
&lt;DIV class=dcLh21&gt;이곳은 그의 &lt;A name=ID24&gt;&lt;/A&gt;〈마지막 시집 Last Poems〉&lt;/A&gt;(1939)에 수록된 시 〈벤 블벤 아래에서 Under Ben Bulben〉&lt;/DIV&gt;
&lt;DIV class=dcLh21&gt;에 명시된 장소로 그의 묘 비문에는 자신이 직접 썼던, &quot;삶과 죽음을 냉정히 바라보라. &lt;/DIV&gt;
&lt;DIV class=dcLh21&gt;그리고 지나가라!&quot;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lt;BR id=clr&gt;&lt;/DIV&gt;
&lt;DIV class=dcBlank30&gt;&lt;/DIV&gt;
&lt;DIV class=dcLh20&gt;D. Donoghue 글 &lt;/DIV&gt;&lt;/DIV&gt;&lt;/DIV&gt;&lt;/DIV&gt;&lt;/DIV&gt;&lt;/DIV&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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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정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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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ljs2000y.15965312</id>
	    <author>
		    <name>재똥이</name>
	    </author>
	    <updated>2009-11-16T07:25:45Z</updated>
	    <published>2009-11-16T07:25: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style=&quot;WIDTH: 648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news_top_title&gt;
&lt;P&gt;&amp;nbsp;&lt;/P&gt;
&lt;P&gt;국내좌익세력들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끊임없는 왜곡중에 친일과 무자비한 군사독재자 그리고 &lt;/P&gt;
&lt;P&gt;유신통치, 지역감정이 있습니다..&amp;nbsp;&lt;/P&gt;
&lt;P&gt;아래는 친일왜곡에 대한 진상 그리고&amp;nbsp;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 및 지역감정유래,용공조작,노동자탄압,&lt;/P&gt;
&lt;P&gt;영구통치설 등에 대해 반론과 박대통령의 업적을 다룬 글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박정희 친일왜곡의 진상 및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먼저 노사모를 위시해서 국내 좌익세력들이 인터넷에 퍼뜨리는 박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다룬 글들은 &lt;/P&gt;
&lt;P&gt;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님 말고” “~~카더라”란 유언비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들임을 &lt;/P&gt;
&lt;P&gt;먼저 밝힙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과거부터 현재까지 박대통령에 대하여 친일파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한 상반된 논쟁이 계속되고 &lt;/P&gt;
&lt;P&gt;있습니다.. 그 이유는 친일파의 정의 즉 어디까지를 친일파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lt;/P&gt;
&lt;P&gt;차기 대선에 따른 정략적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쟁에 대해 크게 분류해보면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 적극적 친일행위자만 해당된다 : 을사오적등 대표적 친일파들로서 이부분에 대하여 좌익과 &lt;/P&gt;
&lt;P&gt;우익 이견이 없습니다. &lt;/P&gt;
&lt;P&gt;2. 일제시대 공직에 있었던자도 포함된다. : 이부분에 대하여 논란이 끝이 없습니다.. &lt;/P&gt;
&lt;P&gt;3. 창씨개명한자도 포함된다 : 이것은 당시 독립운동가외에는 거의 모든 분들이 해당되는바, &lt;/P&gt;
&lt;P&gt;창씨개명 자체로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게 좌,우의 공통적 입장 &lt;/P&gt;
&lt;P&gt;위의 세가지 분류를 본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2번에 해당됨에 따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과연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없었던 사람들의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고 심판할수 있을까요? &lt;BR&gt;많은 국민으로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시절 좌파를 제외한 &lt;/P&gt;
&lt;P&gt;항일독립운동가들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고 본보기로 삼아 기리며 추모했다는 것은 두말 할수없는 &lt;/P&gt;
&lt;P&gt;사실입니다 &lt;/P&gt;
&lt;P&gt;민생을 팽개친 노정권의 과거사타령에 반감을 가진 많은 국민들은 &lt;BR&gt;일제하 중국이나 만주로 탈출하여 항일독립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군인뿐만 아니라 언론도 &lt;/P&gt;
&lt;P&gt;친일이고 공무원도 친일이고 법조인도 친일 사업가나 예술가도 친일이란 식이 아니냐? &lt;/P&gt;
&lt;P&gt;대체 싫어도 일제가 점령한 이땅에서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은 친일이란 소릴 안들으려면 &lt;/P&gt;
&lt;P&gt;뭘 할수 있을까? &lt;/P&gt;
&lt;P&gt;머슴 아니면 농사나 지어야 했겠느냐? 친일이냐를 따지자면 지위 고하에 막론하고 자신들의 &lt;/P&gt;
&lt;P&gt;재물 영달을 출세를 목적으로 그 시대 일제의 힘을 등에 업고 능동적으로 같은민족을 수탈하고 &lt;/P&gt;
&lt;P&gt;핍박 탄압하는데 앞장섰느냐 아니냐?를 따져야한다는 것이 반론으로 제기하는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당시에 군인이 된 그 자체가 친일이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lt;BR&gt;우선 박정희가 교사직을 그만두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설명하자면... &lt;/P&gt;
&lt;P&gt;어린 박정희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바로 나폴레옹 전기였다고합니다. &lt;/P&gt;
&lt;P&gt;나폴레옹전기를 통해서 군대 군인을 동경하게 된 박정희는 동기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lt;/P&gt;
&lt;P&gt;여러 사람들이 쓴 나폴레옹 전기를 죄다 읽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lt;/P&gt;
&lt;P&gt;'삼국지'에 빠진 소년들이 처음에는 되풀이하여 읽다가 나중에는 저자를 바꾸어가면서 읽는 &lt;/P&gt;
&lt;P&gt;것처럼 말이죠 &lt;/P&gt;
&lt;P&gt;김종신의 말에 의하면 박대통령이 교사직을 그만 두고 만주군관학교로 간 이유에 대해서 &lt;/P&gt;
&lt;P&gt;묻자 간단하게 &quot;긴 칼 차고싶어서 갔지.&quot;라고 답했습니다.&lt;/P&gt;
&lt;P&gt;&lt;BR&gt;애초에 일황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과는 상관없이 군인이 되고 싶은 마음 즉 나폴레옹에 대한 &lt;/P&gt;
&lt;P&gt;소년시절의 동경에서 비롯되어 군관학교에 들어간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난번 민족문제연구소가 자행한 친일파인사명단발표는 어느 직책 직위 이상이면 무조건 &lt;/P&gt;
&lt;P&gt;반민족 친일파란 논리인데 이것은 의도적으로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선친들을 뺀 친일파명단발표을 &lt;/P&gt;
&lt;P&gt;위한 것이며 박정희대통령을 정치적 목적으로 넣기 위한 술책이라 보여지기 때문에 우리국민들로부터&lt;/P&gt;
&lt;P&gt;&amp;nbsp;많은 멸시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독립군 색출 만주특무경찰,식산은행금융조합서기,&lt;/P&gt;
&lt;P&gt;훈도야말로 식민지지배의 최일선에서 첨병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먼저 인터넷상에 떠도는 박통의 친일행적에 관한 글들의 내용을 검토 해 보겠습니다. &lt;/P&gt;
&lt;P&gt;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 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 &quot;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lt;/P&gt;
&lt;P&gt;멸사봉공)&quot; &lt;BR&gt;- 박정희 혈서설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lt;/P&gt;
&lt;P&gt;박정희의 문경 보통학교 동료교사인 유증선(전 안동교육대학교 &lt;/P&gt;
&lt;P&gt;국문학과 교수)이라는 사람이 입학연한에 걸린 박정희가 군관학교 당국을 감동시키기 위해 혈서를 쓰도록 &lt;/P&gt;
&lt;P&gt;했다는 근거불명의 루머가 마치 진실인 양 되풀이 전해지고 있지만 유증선의 말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lt;/P&gt;
&lt;P&gt;명백한 거짓말입니다. 근거없는 혈서론은 박정희를 죽이기 위한 날조된 음모입니다.&lt;BR&gt;박정희의 군관학교졸업식은 당시의 경성의 극장에서 뉴스로 보도될 정도로 다 알려진 사실이고 만주일보&lt;/P&gt;
&lt;P&gt;(1942년 3월 24일)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친일파의 출세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선인이 1등을 했다는 &lt;/P&gt;
&lt;P&gt;것에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lt;/P&gt;
&lt;P&gt;여기서 박정희가 천황에 충성하겠다는 답사를 했다는 헛소문도 나게 됩니다. &lt;/P&gt;
&lt;P&gt;실제는 일본인 오까미 쇼히꼬(岡見尙彦) 고야마 시게요시(小山重嘉) 두사람이 했습니다. &lt;/P&gt;
&lt;P&gt;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면 조선인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lt;/P&gt;
&lt;P&gt;그러나 박정희의 혈서는 모든 만주국 신문이나 일본신문 어디에도 실려있지 않습니다. &lt;/P&gt;
&lt;P&gt;완전히 날조된 거짓말입니다. &lt;BR&gt;‘盡忠報國 滅私奉公’이란 혈서를 썼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의 출처는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lt;/P&gt;
&lt;P&gt;만주신문(滿洲新聞)에 박정희가 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편지를 썼는데 그게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lt;/P&gt;
&lt;P&gt;그렇다면 '혈서사진'을 보도한 신문기사가 있던지 적어도 '혈서를 썼다'는 신문기사가 있어야 하는데 &lt;/P&gt;
&lt;P&gt;기록 잘 챙기기로 유명한 일본이나 중국의 모든 도서관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혈서사진이나 &lt;/P&gt;
&lt;P&gt;혈서기사는 보이지 않습니다.&lt;/P&gt;
&lt;P&gt;&lt;BR&gt;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lt;BR&gt;③ 완전한 일본인 &lt;BR&gt;- 이런 글들은 주관성이 개입된 글들로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lt;BR&gt;한번 미운 사람 끝까지 밉다고 이와 반대되는 글들도 엄청 많습니다.(예들 들면 지난cbs 방송에서 &lt;/P&gt;
&lt;P&gt;박통의 제자들이 증언한 박통이 선생으로 있을 당시 민족교육 및 만주군시절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lt;/P&gt;
&lt;P&gt;몰래 빼돌린 일화등...)또한 님을 싫어하는 분들은 님을 극히 나쁘게 평가할 것이며, &lt;/P&gt;
&lt;P&gt;님의 친구는 님을 극단적으로 좋은 평가를 할 것입니다. &lt;/P&gt;
&lt;P&gt;이러한 주관적인 사항을 인용하는 것은 맹인모상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lt;/P&gt;
&lt;P&gt;따라서 한사람의 평가는 오직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lt;/P&gt;
&lt;P&gt;&lt;BR&gt;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했다. &lt;BR&gt;- 이 주장 역시 허위 날조된 글입니다. &lt;BR&gt;위의 글에서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을 신나게 토벌했다고 합니다. &lt;BR&gt;그러나 그 당시 만주에 독립군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lt;BR&gt;박통은 1944년 3월부터 1년 5개월간 만주군제8단(단장은 중국인 唐際榮)소속으로 근무지는 중국 열하&lt;/P&gt;
&lt;P&gt;(요즈음의 이름은 承德)지방 이었습니다. &lt;/P&gt;
&lt;P&gt;이지역은 독립군이 활동하던 지역까지의 지금도 기차로 24시간이나 걸리는 곳입니다.. &lt;/P&gt;
&lt;P&gt;또한 박통이 만주군에 복무한 1944년 당시의 만주독립군투쟁 항일기록을 보면 독립군은 &lt;/P&gt;
&lt;P&gt;1931년 중일전쟁으로 인해 중국 내륙지방의 도시인 중경(중국표현으로 &quot;충칭&quot;)으로 본부를 옮긴 뒤 거기서 &lt;/P&gt;
&lt;P&gt;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lt;/P&gt;
&lt;P&gt;즉 1944년 당시에는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습니다.. &lt;BR&gt;- 반 박정희의 대표적인 지식인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의 기회주의자 청년 박정희란 글을 보면... &lt;BR&gt;........ 생략 ............. [사범학교에선 꼴찌, 군관학교에선 1등 &lt;BR&gt;박정희에 대한 미화가 시작되고 급기야 기념관 건립 움직임까지 일자, 민족민주운동 진영에서는 &lt;/P&gt;
&lt;P&gt;박정희의 친일경력을 비판했다. &lt;/P&gt;
&lt;P&gt;독립군 장준하와 친일파 ‘황군’ 장교 박정희, 그들 각각의 비극적 죽음처럼 우리 현대사의 역설을 &lt;/P&gt;
&lt;P&gt;보여주는 대목은 없을 것이다. &lt;/P&gt;
&lt;P&gt;박정희의 친일이 문제되는 것은 해방 전의 그의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lt;/P&gt;
&lt;P&gt;[ 해방 전 박정희의 친일경력이란 만주군군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와 &lt;/P&gt;
&lt;P&gt;1944년 7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만주군 제5군관구 예하의 만군 보병 8단에 근무했다는 것이다. &lt;/P&gt;
&lt;P&gt;사실 이 정도의 경력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결성할 때나 각 정치단체에서 내건 악질 친일파의 &lt;/P&gt;
&lt;P&gt;처단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경미’한 것이다. &lt;/P&gt;
&lt;P&gt;박정희가 관동군 정보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주장도, 당시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 독립군부대나 &lt;/P&gt;
&lt;P&gt;공산유격대가 없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없다. ]......생략...... &lt;BR&gt;-결국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나 참여하였다는 것은 허위 날조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덧붙여 국내좌익세력들이 현재 박정희를 공격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의 팔로군이 마치 조선의 &lt;/P&gt;
&lt;P&gt;무장 독립투쟁 단체처럼 교묘히 속이는 조작에 관한 설명을 드립니다. &lt;/P&gt;
&lt;P&gt;1944년 당시에는 만주에는 독립군이나 광복군이 같은 단체는 없었습니다. &lt;/P&gt;
&lt;P&gt;조선인 공산유격대조차 없었지요 &lt;/P&gt;
&lt;P&gt;이런 시대상황이 국내좌익세력들로썬 참 안타까운 모양입니다. &lt;BR&gt;그래서 이제는 팔로군을 마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항일군대처럼 교묘히 속이기 시작합니다. &lt;BR&gt;여러분 팔로군이 뭘까요?&amp;nbsp; 팔로군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lt;BR&gt;(국내좌익세력들이 얼마나 악랄한 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lt;BR&gt;한마디로 모택똥이의 팔로 빨갱이 공산군이였습니다. &lt;/P&gt;
&lt;P&gt;팔로군은 모택동이 장개석의 국민군에게 박살이 나자 마침 일어난 일본의 중국침략에 맞선다는 &lt;/P&gt;
&lt;P&gt;명분으로 국공합작을 이끌어낸 중국공산군의 또 다른 명칭입니다. &lt;/P&gt;
&lt;P&gt;(본래 명칭은 홍군이라 불림) 모택동의 팔로군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고 주장하는것은 &lt;/P&gt;
&lt;P&gt;소련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2차대전 막바지에 일본에 선전포고 했다는 논리와 똑같습니다, &lt;/P&gt;
&lt;P&gt;더욱이 아시다시피 팔로군은 중국통일후에 인민해방군으로 이름이 바뀌어서 6.25때 국군과 연합군을 &lt;/P&gt;
&lt;P&gt;공격한 바로 그 중공군입니다. &lt;/P&gt;
&lt;P&gt;한국의 양민들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강간한 바로 그 중공군입니다. &lt;/P&gt;
&lt;P&gt;팔로군이 독립군이라면 모택동은 독립투사입니다. 이젠 고구려역사를 갖다바치는것도 모자라 &lt;/P&gt;
&lt;P&gt;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더니 중국 공산군이 대한민국 독립군이라고 주장합니다. &lt;/P&gt;
&lt;P&gt;더욱이 팔로군은 우리 임정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lt;/P&gt;
&lt;P&gt;그들은 우리 독립투사들조차 공격해서 상당수를 죽여버리기도 했습니다. &lt;/P&gt;
&lt;P&gt;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고 조선의 해방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amp;nbsp;&lt;/P&gt;
&lt;P&gt;오로지 전 세계 &lt;B&gt;공산화&lt;/B&gt;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했을 뿐입니다&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lt;BR&gt;- 이것 역시 허위 날조된 글로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의 명단(出典 : 중국측 조사자료-&quot;特設部隊&quot;, &lt;/P&gt;
&lt;P&gt;1960, 66 - 84쪽.)은 아래와 같습니다. &lt;BR&gt;박정희의 이름이 어디에 없습니다. &lt;BR&gt;간도특설대(총79명) - 姜在浩 李元衡 朴鳳祚 金燦奎(金白一) 金錫範 金洪俊 宋錫夏 石希峯 崔南根 崔在恒 &lt;/P&gt;
&lt;P&gt;신현준 최경만 윤춘근 문이정 趙某(豊田) 김용기 태용범 백선엽 윤수현 이재기 김묵 豊田義雄 吳文剛 李淸甲 &lt;/P&gt;
&lt;P&gt;申奉均 海原明哲 白川** 金松壯明 伊原久 鶴原** 朴東春 李鶴汶 崔忠義 朴鳳朝許樹屛 金大植 方得官 洪淸波 &lt;/P&gt;
&lt;P&gt;金龍虎 金致斑 具東旭 朴春植 方太旭 孫炳日 劉仁煥 尹秀鉉 李德振 李龍昊 李東俊 李龍星 李準龍 李逢春 &lt;/P&gt;
&lt;P&gt;太溶範 崔在範崔炳革 李龍 金忠南 車虎聲 金忠九 柳益祚 朴春範 朴春權 曺昌大 洪性台 李東郁 廉鳳生 吳南洙 &lt;/P&gt;
&lt;P&gt;金萬玉 金鍾洙 李東和 朴蒼岩 朴泰元 李白日 金龍周 申然植李龍星 任忠植,, 馬東嶽, 桂炳輅, 全南奎 &lt;BR&gt;- 2004. 06. MBC에서 방송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만주군의 친일파 내용중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lt;/P&gt;
&lt;P&gt;조선인의 명단에도 박정희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lt;BR&gt;(MBC 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lt;BR&gt;박정희 대통령은 평소에 과거 남로당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해 잘 말하지 않았습니다. &lt;/P&gt;
&lt;P&gt;그러나, 단 한번 70년 7월에 김종신씨에게 말하죠. ‘육사 교관으로 있을 때 형님 친구되는 분(이재복)이 &lt;/P&gt;
&lt;P&gt;찾아와 다음 일요일 모 장소에서 향우회가 있다면서 나더러 꼭 참석해 달라는 거야. 처음엔 거절하려다 &lt;/P&gt;
&lt;P&gt;그분이 자꾸 청하길래 거길 갔었지.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그날 향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lt;/P&gt;
&lt;P&gt;모두 빨갱이였어. 나는 거기서 (남로당 입당원서에) 사인하거나 도장을 찍은 적은 없지만 그 일로 &lt;/P&gt;
&lt;P&gt;김창룡 한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재판도 받았지.’ &lt;/P&gt;
&lt;P&gt;여순반란사건 때(48.10월), 박정희 소령은 반란군 진압차 광주에 갔다 왔으며, 11월 남로당 혐의로 체포됩니다. &lt;/P&gt;
&lt;P&gt;그리고, 위 내용의 자술서를 쓰고, 당시 그 이재복과 같이 간 장소에서 본 남로당원들의 명단을 작성해 &lt;/P&gt;
&lt;P&gt;제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lt;BR&gt;박정희 대통령의 좌익활동이라는 것에는 하나같이 명백한 증거가 없습니다. 활동은 커녕 남로당 입당원서에 &lt;/P&gt;
&lt;P&gt;사인도, 도장도 없고, 당적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lt;BR&gt;남은 것은 이재복의 가진 명단속에 박정희란 이름인데, 이것으로 빨갱이라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lt;/P&gt;
&lt;P&gt;능력이 뛰어나서 포섭 물망에 오른 것이 죄라면 죄라고 할 수 있겠죠. &lt;BR&gt;설사 활동을 했다고 해도, 공산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노선을 바꾼 사람을 배신자, 기회주의자라고 표현할 수 &lt;/P&gt;
&lt;P&gt;있을까요? 그럼 그대로 남로당에 남아서 공산당 활동을 계속 했었어야 된다는 얘기일까요? &lt;/P&gt;
&lt;P&gt;배신자는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라는 뜻인데, 도대체 어디 소속들이길래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lt;/P&gt;
&lt;P&gt;&lt;BR&gt;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quot;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quot;이다. &lt;BR&gt;- 김대중대통령 시절 박통을 친일파로 몰고가기 위하여 박통의 창씨개명인 다카키마사오를 들고 나왔으나, &lt;/P&gt;
&lt;P&gt;김대중대통령의 창씨개명명이 도요다다이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되었는데 ....&lt;/P&gt;
&lt;P&gt;아직도 써먹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또한 오카모토미노루의 창씨개명은 사실 불분명하며 &lt;/P&gt;
&lt;P&gt;어쨌든 창씨개명자체로는 친일파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입니다. &lt;/P&gt;
&lt;P&gt;&lt;BR&gt;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lt;BR&gt;이것 역시 ② ③번과 같이 아전인수격 입니다. 첨언하자면 박정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여러&amp;nbsp; 창군 &lt;/P&gt;
&lt;P&gt;멤버들이 일본군에서의 군 경력이 있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군대지휘관은 전문적인 훈련과 경험이 없으면 &lt;/P&gt;
&lt;P&gt;임무를 잘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lt;BR&gt;광복후 일본군대출신들이 국군에 들어간 것을 무조건 비판만 할수 없습니다.&lt;BR&gt;간과해선 안될 것은 6.25때 다름아닌 그들이 북괴 공산당의 침략에 맞서 싸워 자유민주주의와 &lt;/P&gt;
&lt;P&gt;시장경제체제를 지켜낸 공이 있다는 것입니다. &lt;/P&gt;
&lt;P&gt;친일파 숙청을 자랑하는 북한도 만찬가지 입니다 고위층 장성중에 여럿 있고&lt;/P&gt;
&lt;P&gt;&amp;nbsp;특히 공군의 태반이 일본군대출신입니다. 민족정기를 위해 친일파를 다 숙청했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lt;BR&gt;관동군의 밀정이었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가 한 때 김일성의 후계자로까지 부각되었던 사실과 김일성의 &lt;/P&gt;
&lt;P&gt;내연녀였던 최승희가 일본군 위문공연을 숱하게 다녔으면서도 그의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요직에 &lt;/P&gt;
&lt;P&gt;중용되었던 사실, 그리고 6.25 때 지식인이었던 이광수가 친일논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청하지 않고 &lt;/P&gt;
&lt;P&gt;납북해 간 일 등은 무엇으로 설명합니까? &lt;/P&gt;
&lt;P&gt;김일성한테 꺼림칙하면 친일파라 숙청하고 필요하면 넘어가고 그게 북한이 자랑하는 친일파숙청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1 &lt;BR&gt;대통령이 국가이익을 위해서 일본을 방문 및 협조를 받은 것이 친일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lt;/P&gt;
&lt;P&gt;그러면 지금 일본과 외교관계를 끊어야 합니까? 또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외교적 수사법으로 한 발언이 &lt;/P&gt;
&lt;P&gt;친일파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요? 외교석상에 욕을 하면 그것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일까요? &lt;/P&gt;
&lt;P&gt;역대 대통령 치고 이러한 외교적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는 대통령이 없습니다. &lt;/P&gt;
&lt;P&gt;반미면 어떻냐?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가서 미국이 없었다면 나는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lt;/P&gt;
&lt;P&gt;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lt;BR&gt;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lt;/P&gt;
&lt;P&gt;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lt;BR&gt;-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과 대일청구권문제의 타결을 위해 7차례나 회담, 우리가 요구하는 8억 달러와 &lt;/P&gt;
&lt;P&gt;일본이 제시하는 최고액 7000만달러중 무상으로 3억 달러, 차관 2억달러, 민간 상업차관으로 &lt;/P&gt;
&lt;P&gt;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타결합니다.. &lt;BR&gt;(한일회담 당시 일본의 국고는 14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위 조건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lt;BR&gt;즉 80억달러 주겠다는데 박통이 이렇게 받았겠습니까?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돈 주는 쪽이 일본인데... &lt;/P&gt;
&lt;P&gt;우리가 많이 달라고 해서 일본이 그렇게 주겠습니까? &lt;/P&gt;
&lt;P&gt;더우기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한 승전국의 위치가 아니였습니다.&lt;BR&gt;배상금이라는 것은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주는 겁니다. 일본은 협상하는 동안 시종일관 배상금이라는 &lt;/P&gt;
&lt;P&gt;이름보다는 경제협력금, 독립축하금이라는 이름으로 수교하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미국한텐 &lt;/P&gt;
&lt;P&gt;패전국이지 어부지리로 독립 얻은 한국에겐 패전국이 아니라는 겁니다 &lt;/P&gt;
&lt;P&gt;한일협정 성사 배경에는 미국의 압력이 주효했다는 지적입니다 &lt;/P&gt;
&lt;P&gt;&lt;BR&gt;미국은 동아시아 지역통합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서둘렀다는 것이죠 &lt;/P&gt;
&lt;P&gt;그들은 우리나라한테 일본에서 자꾸만 시비를 거는 독도를 포기하라고까지 했습니다 &lt;BR&gt;박정희 대통령은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다 대노할 정도로 미국의 조속한 한일수교협정체결 압력이 &lt;/P&gt;
&lt;P&gt;있었던 것이였습니다 &lt;/P&gt;
&lt;P&gt;미국과 일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박통은 독도를 끝까지 배타적 경제수역 (EEZ)로 지켰습니다 &lt;/P&gt;
&lt;P&gt;단지 국제분쟁화 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술책에 직접적이고 감정적 대응을 자제한 정책기조를 &lt;/P&gt;
&lt;P&gt;선택했습니다 독도영유권에 정작 큰 문제를 야기한 것은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은 김대중정권 그것을 &lt;/P&gt;
&lt;P&gt;계속 연장해준 노정권입니다 &lt;/P&gt;
&lt;P&gt;&lt;BR&gt;60년대 그당시 냉전시대의 강대국의 논리가 없었다면 과연 일본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한테 돈을 &lt;/P&gt;
&lt;P&gt;주면서까지 수교를 할려고 했을까요? &lt;/P&gt;
&lt;P&gt;미국의 압력이 컸다는 것은 이미 뉴스에 보도되어 다들 잘 아실 겁니다. &lt;/P&gt;
&lt;P&gt;우리가 많이 달라고 해서 되는 문제의 수준이 아니였습니다 약소국의 비애라 하겠지요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정권이 개인청구권을 팔아 먹었다는 것은 잘못알려진 사실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개인청구권 대신 &lt;/P&gt;
&lt;P&gt;국가가 대신 받는 정책으로 선회한 것은 장면정부부터 입니다 개인청구권이란 개인이 일본정부와 &lt;/P&gt;
&lt;P&gt;재판을 해서 배상받는 것인데 실제로 배상받은 사례는 거의 잘 없죠 일본이 주장했던 것은, &lt;/P&gt;
&lt;P&gt;서류로 증빙할 수 있을 경우에만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고, 하지만 우리는 전쟁 문제도 있고, &lt;/P&gt;
&lt;P&gt;모든 부분을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정부는 그런 개인 보상도 포함해서 &lt;/P&gt;
&lt;P&gt;국가가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이라든가 하는, 국가와 개인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lt;/P&gt;
&lt;P&gt;태도를 견제했던 것입니다, 결코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로부터 피해를 본 조선국민 개개인에게 &lt;/P&gt;
&lt;P&gt;구체적으로 철저하게 피해보상 하겠다는 것을 국가가 가로챈 것이 아닙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어려운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할 경제개발 종자돈을 베팅할 시기를 놓쳐야한다니....? &lt;BR&gt;그당시 아사자 동사자 전염병자 비일비재하는 국가에서 할수 있는 최선책였을까요? &lt;BR&gt;회담이 성사된 후 박정희 정권은 민족의 자존심을 팔았다'는 비난과 반발을 받아야 했습니다 &lt;/P&gt;
&lt;P&gt;그러나 그 종자돈을받아 투명하게 충실히 모범적으로 사용하여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기틀을 &lt;/P&gt;
&lt;P&gt;마련했다는 점에서 지금보면 긍정적 평가가 국민적인 대세입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금액은 &lt;/P&gt;
&lt;P&gt;보는 관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lt;BR&gt;수십억달라를 요구만 하고 받지 못하면 괜찮고 그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받아 냈으면 친일파라니..? &lt;/P&gt;
&lt;P&gt;논리적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정권의 비리를 캐기 위해 만든 한.일 외교문서 공개심사단의 민간위원으로 조사에 참여한 &lt;/P&gt;
&lt;P&gt;이원덕 국민대 교수의 글 인용합니다 &lt;BR&gt;-세간에 의혹과 억측이 난무했던 한.일회담 관련 한국 정부 외교문서가 한 장도 빠짐없이 &lt;/P&gt;
&lt;P&gt;그 전모를 드러냈다. &lt;/P&gt;
&lt;P&gt;한.일회담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본조건이 비로소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lt;/P&gt;
&lt;P&gt;한.일 외교문서 공개심사단의 민간위원 자격으로 3만5000여 장에 이르는 외교문서의 공개 검토작업에 &lt;/P&gt;
&lt;P&gt;참여했던 필자는 한.일회담을 '대일 굴욕 협상' '매국외교'라고 단죄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lt;/P&gt;
&lt;P&gt;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lt;/P&gt;
&lt;P&gt;오히려 필자는 악조건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난적 일본을 상대로 당시의 박정희 정부가 국익을 극대화하기 &lt;/P&gt;
&lt;P&gt;위해 고군분투했고 그 결과로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의 결실은 거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lt;/P&gt;
&lt;P&gt;생각한다- (박정희를 부관참시하러 들어간 사람이&amp;nbsp;이런 평을 한 것은 박통의 승리라고 할수밖에 없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위 사항은 정책결정사항이며 이러한 정책결정사항으로 친일파 여부를 판단한다면? &lt;/P&gt;
&lt;P&gt;현대적 개념의 국토는 땅 하늘, 바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땅 독도는 현재 신한일어업협정에 &lt;/P&gt;
&lt;P&gt;의거해 한일공동 어로수역의 중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국토인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에게도 &lt;/P&gt;
&lt;P&gt;영유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일본이 독도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위탁할려고 혈안이죠 &lt;BR&gt;이 협정은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권(노무현대통령은 DJ정권의 해수부장관출신입니다.)당시에 &lt;/P&gt;
&lt;P&gt;이뤄어 졌습니다. 그럼 김대중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일본대중문화를 완전 개방하고 &lt;/P&gt;
&lt;P&gt;신한일어업협정 연장하신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친일파로 치자면 누가 진짜 친일분자인지 &lt;/P&gt;
&lt;P&gt;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보상 못 받는 이유가 위의 대일청구권자금 때문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lt;/P&gt;
&lt;P&gt;그 당시 대일청구권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현재 못 받는 것일까요? =&lt;/P&gt;
&lt;P&gt;1993년 김영삼대통령이 정신대문제와 관련하여 대일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였으며, &lt;/P&gt;
&lt;P&gt;11월 국제법률가협회에서 일본의 배상의무가 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에 불법인권침해와 &lt;/P&gt;
&lt;P&gt;위안부 개인의 권리침해에 관한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한국, &lt;/P&gt;
&lt;P&gt;타이완, 일본, 필리핀, 타이, 홍콩등 아시아 6개국 여성단체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lt;/P&gt;
&lt;P&gt;즉 일본으로부터 위안부문제로 보상받은 나라는 현재까지 없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참고로 각 단체들이 선정한 박통의 친일파 여부는 아래와 같습니다. &lt;BR&gt;- 반민특위 : 해방이후 최초의 친일청산을 위하여 7000명을 조사 이 중 690명을 친일파로 선정하였습니다만 &lt;/P&gt;
&lt;P&gt;박통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lt;BR&gt;* 장면총리 : 친일파로 분류 &lt;/P&gt;
&lt;P&gt;- 독립 운동가들의 총본산인 광복회(친일반민족행위자 692명)에서도 박정희를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lt;BR&gt;* 장면총리 : 친일파로 분류. &lt;/P&gt;
&lt;P&gt;- 역사광복운동본부(친일파99명)에서 박통은 신친일파로 분류 돼있습니다. &lt;BR&gt;내용)이단체는 만주에서의 박정희의 행적과 관련, 그가 독립 운동에 참여한 주장에 대한 비판과 만일 일본이 &lt;/P&gt;
&lt;P&gt;계속 득세하고 있다면 독립 운동가를 학살했으리라는 가정 그리고 해방이후 공산주의 활동 및 정권잡은 &lt;/P&gt;
&lt;P&gt;이후 경제개발등에 대해 비판함으로써 친일파가 아닌 신친일파로 분류하였습니다.(이곳에서도 독립군 &lt;/P&gt;
&lt;P&gt;토벌에 대해서는 언급은 없음 ) &lt;BR&gt;* 장면총리 : 친일파로 분류. &lt;/P&gt;
&lt;P&gt;- 한일역사문제연구소 : 박정희, 장면 해당없음 &lt;/P&gt;
&lt;P&gt;- 민족문제연구소 : 박정희를 친일파로 주장함. 박정희 생애에 대한 왜곡된 만화를 편찬하고 여당의원 &lt;/P&gt;
&lt;P&gt;선친을 뺀 친일인사명단발표를 함으로써 박통을 대표적 친일파라 규정함 그러나 친일파로써 &lt;/P&gt;
&lt;P&gt;어떤 구체적 반민족행위를 했는지? 실체적 근거나 규명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결론 : 현재까지 밝혀진 박통의 친일논란은 만주군군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와 1944년 7월, 만주군 소위로 &lt;/P&gt;
&lt;P&gt;임관되어 만주군 제5군관구 예하의 만군 보병 8단 내근직에 근무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그 이외 사항은&lt;/P&gt;
&lt;P&gt;&amp;nbsp;전부 허위, 날조, 과장된 것들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역사를 흑백논리로만 따진다면 일군 중위 까지 하다 망명하신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과 &lt;/P&gt;
&lt;P&gt;중국의 장개석도 일본의 육사를 다녔는데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도 친일파가 되는 것인가요? &lt;/P&gt;
&lt;P&gt;중국사람들은 장개석을 친일파라 얘기하지 않습니다.&lt;BR&gt;&lt;/P&gt;
&lt;P&gt;박정희 그의 평생을 전체적으로 조감해본다면 자신의 조국을 일본보다 더 강한 나라로 만들려는 &lt;/P&gt;
&lt;P&gt;진정한 극일파였다고 생각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우리나라 정치에서의 지역감정 유래--&lt;/STRONG&gt;&lt;/P&gt;
&lt;P&gt;&lt;FONT color=#666666&gt;60년대&amp;nbsp;호남사람들이 선거때 박정희대통령한테 50프로 이상 표를 준 사실을 아십니까?-김정렴&amp;nbsp; 비서실장의 말 ) &lt;/FO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과거부터 유력정치인중 하나가(김대중) 호남을&amp;nbsp; 차별했다고&amp;nbsp;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지역감정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되었는데요.&amp;nbsp; 그렇지 않습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개발 정책면에서 얘기를 해 보죠.&lt;/SPAN&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amp;nbsp;우리는 그 당시 일본에 대해서 100년 이상 뒤떨어져 있고, 미국, 영국에 대해서는 200년 이상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뒤떨어져 있는 데다 자원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공업화하느냐, 이것이 초미의&amp;nbsp; 과제였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amp;nbsp;그럴려면 가장 입지가 좋은 데다 공장을 세워야 되거든요.&amp;nbsp; 우리 한반도를 보면 제일 좋은 곳이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동해안이고 남해안입니다.&amp;nbsp; 단애가 져 가지고 바다가 급히 깊어져요.&amp;nbsp; 그리고 남해에는 섬이 많고,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섬이 있으니 방파제의 필요가 훨씬 덜하고 준설도 많이 할 필요 없이 항구가 되죠.&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더욱이 거긴 일제 때부터 도로와 철도가 발달되어 있단 말이에요.&amp;nbsp; 그런데 서해안의 경기도,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충남, 전북, &lt;/SPAN&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전남은 수심이 앝으니까&amp;nbsp; 여기 10만 톤, 25만 톤 급 항구를 만들려면 이만저만한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돈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철도도 장항까지 가는 것과 호남선 이외에는 안 되어 있었단 말이에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amp;nbsp;그리고 해안 따라서 도로가 없고 제한된 돈으로 일은 빨리 해야 하니 할 수 없이 남해안하고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동해안에 개발의 중점을 둔 겁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당시 국토 개발 계획이 있었죠.&amp;nbsp; 건설부 산하의 국토연구원이 있어서 주원 건설부장관이 국토 계획의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전문가였는데 지금 말씀대로 강원도는 관광자원, 수산자원 정도지 여기다 공장을 넣지 않는 것이 좋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하는 식의 아이디어를 내면서 경제권을 몇 개로 나누었던 일이 있습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그리고 한류하고 난류가 대한 해협에서 교체가 된단 말이에요. 그것이 부산 울산 포항 쪽입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그러니까 공장을 거기다 지어서 오폐수를 쉽게 내보내고 특히 공해 많은 온산 공단에 들어간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유해 공장의 폐기물도 해류가 거기서 되돌아오니 거기에 넣어도 되었던 거죠.&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하지만 서해 바다는 기껏해야 간만의 차이뿐이고&amp;nbsp; 옆으로 크게 흐르지 않아요.&amp;nbsp; 경기도,&amp;nbsp; 전북,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전남 해안에 섣불리 공장을 지었다가는 해수가 들락날락만 하지 옆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조개고 뭐고 다 오염이 됩니다.&amp;nbsp; 그 때 돈만 있었으면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었겠지요.&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그러나 돈이 부족했습니다.&amp;nbsp; 그 돈이 있었으면 더 급한 데 썻겠지요.&amp;nbsp; 이것은 한마디로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우선 순위의 결정과 요충식 경제 개발의 불가피성 때문이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amp;nbsp;선거 때마다 ‘호남 푸대접이다’ 하며 표가 떨어진다고 야단이었는데&amp;nbsp; 왜 안 하려고 그러셨겠습니까!&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오죽했으면&amp;nbsp; 유세 때 전주 광주 가셔서 ‘공업화 안 돼서 당신들 안타까워하지만 나중에 두고 보시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다른 데서 공해로 시달릴 때&amp;nbsp; 당신네들은 더 깨끗한 공장 지어 가지고 나중에 더 잘산다’ 고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하셨겠습니까.&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그것은 경제 개발 정책상 할 수 없었어요.&amp;nbsp; 그 대신 무척 애쓰신 것이 종합 제철을 광양에 갖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PAN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지으신 것과 여천 석유화학 단지를 들 수가 있습니다. (........)&lt;/SPAN&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TRONG&gt;&lt;FONT color=#000040 size=2&gt;김정렴&amp;nbsp;정치회고록 발췌&lt;/FONT&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21px;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바탕'; COLOR: #000000; FONT-SIZE: 13px&quot;&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5.16은 쿠데타가 아닌 진정한 혁명이다-&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박정희는 원래 만주군관 학교 출신이고요. 거기서 수석 졸업을 해서 일본 육사에 편입할 수 있는 &lt;/P&gt;
&lt;P&gt;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lt;/P&gt;
&lt;P&gt;당시 만주지역에서도 박정희를 두고, 일본인을 이긴 조선인이라 하여 조선의 자랑으로 여겼죠. &lt;/P&gt;
&lt;P&gt;무슨 친일파니 매국노니.. 그따위 평가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고, 자부심 넘치는 &lt;/P&gt;
&lt;P&gt;그런 존재였습니다. &lt;/P&gt;
&lt;P&gt;손기정 선수 아시죠? 일본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서 일본에 금메달을 안겨주잖아요. &lt;/P&gt;
&lt;P&gt;그래도 조선인들은 조선인이 왜놈들 보다 잘나서 조선인의 기상을 보여줬다고 떠받을었죠. &lt;/P&gt;
&lt;P&gt;박정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박정희는 일본군으로 잘못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일본군이 아닌 &lt;/P&gt;
&lt;P&gt;만주군 하급장교로서&amp;nbsp; 근무했으며 그의 비중은 크지 않았습니다.(만주국은 일본국과는 좀 다른 나라였죠. &lt;/P&gt;
&lt;P&gt;뭐~ 괴뢰국이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겉으로는 오족협화의 기치를 내세운 그런 나라였습니다.) &lt;BR&gt;&amp;nbsp;&lt;BR&gt;먼저&amp;nbsp; 독립군 토벌 광복군 토벌이니 뭐니 하는 건 전부 근거 없는 날조이고요. 천황 혈서 충성맹세 &lt;/P&gt;
&lt;P&gt;같은 것도 아무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특히&amp;nbsp; 창씨개명을 했다는 것도 당시 야당이었던 김대중측에서 &lt;/P&gt;
&lt;P&gt;날조한 것으로 드러났고, 김대중의 창씨개명이 도요다 다이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러한 정치공작도 &lt;/P&gt;
&lt;P&gt;쏙 하고 들어가버렸지요. 당시의 창씨개명은 조선인 80% 이상이 한 것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lt;/P&gt;
&lt;P&gt;부친도 했었던 것이고요. 별로 친일이니 매국의 증표가 될 수는 없지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그리고 5.16은 정변이 아니라, 명백한 혁명이고요. 당시 윤보선, 장면 정부는 무능과 부패의 &lt;/P&gt;
&lt;P&gt;절정을 달렸는데.. 박정희가 빈농의 아들인 것에 반해 윤보선은 친일명문벌열가문 출신이었고요. &lt;/P&gt;
&lt;P&gt;장면도 역시 김구 선생의 지시로 반민특위가 작성한 친일파 살생부 268인 중에 한명으로 등재된 &lt;/P&gt;
&lt;P&gt;악질 친일파였죠. (박정희 해당없슴)&lt;/P&gt;
&lt;P&gt;&amp;nbsp;4.19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진 이후 장면 내각이 출범하는데... 비참한 민생은 내팽계치고 &lt;/P&gt;
&lt;P&gt;10번도 더 개각이 이뤄지죠. &lt;/P&gt;
&lt;P&gt;이유는 바로 장관 자리 하나씩 해 먹으면 가문의 영광이요, 국가에서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lt;/P&gt;
&lt;P&gt;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처럼 코드정치다, 보은인사다.. 하면서 전부 다 해 처먹었죠... &lt;/P&gt;
&lt;P&gt;박정희가 5.16 혁명을 일으켜,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합니다. 5.16으로 인하여 장면, 윤보선을 &lt;/P&gt;
&lt;P&gt;중심으로 한 진짜 친일파 정권이 무너지게 된거죠. 그런데 왜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냐고요? &lt;/P&gt;
&lt;P&gt;당시 4.19에 참여한 서울대 학생회가 5.16 지지성명을 발표하죠. 그리고 장준하 선생께서 5.16은 &lt;/P&gt;
&lt;P&gt;4.19 정신을 이었다며 칭찬하게 되죠. 이처럼 학생, 대중, 지식인 너나 할 것 없이 5.16을 혁명으로 &lt;/P&gt;
&lt;P&gt;규정하고, 4.19 정신의 계승이라 칭송했습니다. 군사정변??? 5.16때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lt;/P&gt;
&lt;P&gt;대규모 교전도 없었죠. 그래서 5.16을 무혈혁명이라고 합니다. 즉 구국의 결단으로 이 나라를 바로 &lt;/P&gt;
&lt;P&gt;세우기 위해 일어난 것이죠. 그런데 불순한 무리들은 5.16을 폄하하며..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lt;/P&gt;
&lt;P&gt;잡았다고 하는데.. 이후 혁명공약을 내걸어 모두 완수하고, 민정이양을 거쳐 직접 선거로 &lt;/P&gt;
&lt;P&gt;대통령직에 당선됩니다. 당시 서민이었던 박정희와, 친일벌열가문의 후예인 윤보선이 경합을 벌이는데.. &lt;/P&gt;
&lt;P&gt;간발의 차이로 박정희가 당선되게 되죠. 즉 국민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박정희의 정통성을 &lt;/P&gt;
&lt;P&gt;인정한 것입니다 &lt;/P&gt;
&lt;P&gt;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통치설은 터무니 없는 &lt;FONT size=2&gt;억지이며 반박정희 세력이 퍼뜨리는 유언비어&lt;/FONT&gt;입니다. &lt;/P&gt;
&lt;P&gt;여기에 대해선 박대통령의 유가족인 박근혜씨의 증언을 올립니다&lt;/P&gt;
&lt;P&gt;&quot;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조차 못했던 자식으로서 비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lt;/P&gt;
&lt;P&gt;아버지께서 여한없이 눈을 감으셨으리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믿음에 변화가 없습니다.&quot;&lt;/P&gt;
&lt;P&gt;▶여한이 없으리란 뜻은 무엇입니까?&lt;/P&gt;
&lt;P&gt;&quot;아버지는 그 무렵 국가를 위한 자신의 설계를 거의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셨고, 대통령 자리에서 &lt;/P&gt;
&lt;P&gt;물러날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끝은 우리 겨레의 5천년 한을 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lt;/P&gt;
&lt;P&gt;아버지는 늘 어떻게든 경제자립과 자주국방을 이루어 가난과 외침에 시달려온 민족의 한을 풀어야 &lt;/P&gt;
&lt;P&gt;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lt;/P&gt;
&lt;P&gt;아버지는 그 당시 미국의 조직적인 방해를 무릅쓰고 핵개발을 추진 중이었으며, 우리가 핵을 개발함으로써 &lt;/P&gt;
&lt;P&gt;전쟁 억지력이 생겨 북의 위협을 의식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lt;/P&gt;
&lt;P&gt;78년 9월26일 우리 힘으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여 세계 일곱번째의 보유국이 되었을 때 &lt;/P&gt;
&lt;P&gt;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고, 그날 쓰신 일기를 보면 “자주국방과 조국근대화작업이 완성단계로 &lt;/P&gt;
&lt;P&gt;접어들었다. &lt;/P&gt;
&lt;P&gt;흥분과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lt;/P&gt;
&lt;P&gt;아버지가 그 당시 최규하 총리를 후계자로 생각하셨던 것은 확실하다고 믿습니다. &lt;/P&gt;
&lt;P&gt;저에게 여러 번 “최총리가 하면 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분의 경력과 성실함을 높이 &lt;/P&gt;
&lt;P&gt;평가하시곤 했습니다. &lt;/P&gt;
&lt;P&gt;아버지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81년까지는 핵개발과 정부이양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lt;/P&gt;
&lt;P&gt;오늘 우리나라는 혼란없이 선진국 대열에 섰을 것입니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lt;STRONG&gt;후진국에서 경제건설과 민주화가 양립가능했겠는가?&lt;/STRONG&gt; --&lt;BR&gt;&lt;BR&gt;(산업화에 민주화를 동시 추진, 성공한 예는 없다) &lt;BR&gt;&lt;BR&gt;이론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양립하지 못할 이유는 없으며 실제로 산업화의 성숙단계에 &lt;/P&gt;
&lt;P&gt;도달한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에서 그것은 경험적으로 실증되고 있기도 하다. &lt;/P&gt;
&lt;P&gt;그러나 산업화의 초기단계에서도 이들 국가들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병행추진하거나 &lt;/P&gt;
&lt;P&gt;「선민주화, 후산업화의 길을 걷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lt;BR&gt;&lt;BR&gt;이에 대해 선발 산업화국가들인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이 정치혁명(시민혁명)과 경제혁명(산업혁명)을 &lt;/P&gt;
&lt;P&gt;순차적으로 겪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lt;/P&gt;
&lt;P&gt;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앵글로 아메리카적 경험을 보편적 「모델」로 삼아 많은 후속국가들에 &lt;/P&gt;
&lt;P&gt;대해서도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단선적 발전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영국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병행 내지는 순차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lt;/P&gt;
&lt;P&gt;편견이거나 도그마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참정권의 범위가 얼마나 제한적이었고 노동운동에 대한 &lt;/P&gt;
&lt;P&gt;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등을 생각해 본다면 이 점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영국도 &lt;/P&gt;
&lt;P&gt;산업화를 어느 정도 성숙시킨 연후에야 민주화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후속 국가들과 다를 바 없다. &lt;BR&gt;&lt;BR&gt;이렇듯 산업화 초기 단계에 민주주의에 의거해서 경제를 도약시킨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lt;/P&gt;
&lt;P&gt;특히 그 범위를 후발 산업화 국가들과 그 이후에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한 국가들로 한정시킬 경우 &lt;/P&gt;
&lt;P&gt;그 예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경험적으로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lt;/P&gt;
&lt;P&gt;권위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 사이에 「선택적 친화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lt;BR&gt;&lt;BR&gt;그렇다고 권위주의 체제가 반드시 경제발전을 가져 온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3세계에의 &lt;/P&gt;
&lt;P&gt;수많은 권위주의 체제 중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lt;/P&gt;
&lt;P&gt;여기서 국가의 역할과 성격에 주목하게 된다. 국가개입이 자본주의 &lt;BR&gt;발전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점은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lt;BR&gt;&lt;BR&gt;그러면 무엇이 이러한 국가개입이나 역할에 있어 정도의 차이를 낳는가. 경제발전에서 국가의 역할은 &lt;/P&gt;
&lt;P&gt;산업화의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을수록 일반적으로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후발 내지 후후발 &lt;/P&gt;
&lt;P&gt;산업화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역할이 큰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발전지향형국가」라는 개념이 &lt;/P&gt;
&lt;P&gt;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발전지향형 국가는 단순한 권위주의체제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lt;BR&gt;&lt;BR&gt;역사적으로 보아 권위주의 하에서 경제발전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경우는 국가가 사회 내의 제계급(지배 및 &lt;/P&gt;
&lt;P&gt;피지배계급 모두)으로부터 상당히 자율적이면서도(그 국가가) 발전을 도모하기에 적합한 정책적 및 &lt;/P&gt;
&lt;P&gt;제도적 능력을 갖추었을 때뿐이다. 이런 특징을 갖춘 국가를 「발전지향적」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lt;BR&gt;&lt;BR&gt;&lt;BR&gt;그러므로 이제까지의 경험에서 관찰될 수 있는 권위주의적 발전의 예는 모두 그 국가가 &lt;/P&gt;
&lt;P&gt;「발전지향적 권위주의」체제였기 때문이지 단순한 권위주의 체제였기 때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lt;/P&gt;
&lt;P&gt;따라서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 사이에는 &lt;/P&gt;
&lt;P&gt;「선택적 친화력」이 있다는 명제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lt;BR&gt;&lt;BR&gt;1960년대의 선산업화 정책은 정당했다 &lt;BR&gt;&lt;BR&gt;이렇게 볼 때 산업화의 초기 단계인 1960∼70년대, 특히 그 초두인 1960년대 전반의 한국 상황에서 &lt;/P&gt;
&lt;P&gt;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란 두 가치는 병행추진이 어려운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lt;/P&gt;
&lt;P&gt;이 때 박정희 체제의 가치 선택은 발전이었고 그 선택은 현실성이 있었다. &lt;BR&gt;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lt;BR&gt;&lt;BR&gt;하나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민주를 선택하여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룬 선례가 &lt;/P&gt;
&lt;P&gt;없다는 경험적 근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민주라는 가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만약 굶주림이나 &lt;/P&gt;
&lt;P&gt;절대빈곤과 배타적 선택관계에 있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lt;/P&gt;
&lt;P&gt;산업화과정에서 생긴 고노동,저임금같은 노동권의 취약성과 환경권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면 &lt;BR&gt;우리나라의 초기 산업개발 당시부터 개발 우선 정책 집행 과정상 이런 고노동 저임금의 문제나 &lt;/P&gt;
&lt;P&gt;환경파괴의 문제를 용이하게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쉽게 간과했다라고 한다면?&lt;BR&gt;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고급기술도 없고 자본도 별로 없는 &lt;/P&gt;
&lt;P&gt;초기 산업개발단계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분야는 상식적으로 많지 않고 제한적일수 밖에 없다.&lt;BR&gt;박정희의 겯제개발이 노동자를 탄압했다고 주장하는 현재의 좌파쪽 사람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lt;/P&gt;
&lt;P&gt;있으려면 저노동 고임금과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짧은 시간안에 산업화가 가능해야 할 것이다. &lt;BR&gt;그들의 주장의 신빙성을 보여주는 선례가 있어야 할 것이다. &lt;BR&gt;그러나 선발산업국가도 후발국가도 산업화과정에서는 모두 고노동,저임금이었고 친환경적이지 못했다.&amp;nbsp; &lt;/P&gt;
&lt;P&gt;적절한 노동과 임금은 산업화가 어느정도 진척된 이후에 노동자들의 투쟁과 국가의 노동복지정책 &lt;/P&gt;
&lt;P&gt;즉 국가환경정책으로 위상이 올라간 것이 그간의 세계역사이며 환경권도 마찬가지이다.&lt;BR&gt;더우기 경제개발시대 국내 기업가의 탈선및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의식 부재의 결여에서 파생한 &lt;/P&gt;
&lt;P&gt;크고 작은 사건 사고까지 박정희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이성적인 역사인식이 아니라는 점은 &lt;/P&gt;
&lt;P&gt;지적할 필요가 있다. &lt;BR&gt;그것은 마치 지금의 현직 대통령한테 현재 우리사회에서 파생하는 노동권과 환경권 및 기업비리에 &lt;/P&gt;
&lt;P&gt;관한 책임을 전부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lt;BR&gt;&lt;BR&gt;&lt;BR&gt;&lt;BR&gt;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민주는 그 의미가 지탱되기 어렵다. 따라서 적어도 산업화의 초기 &lt;/P&gt;
&lt;P&gt;단계에서는 민주보다 발전을 선택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이런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lt;/P&gt;
&lt;P&gt;시발된 것이 바로 박정희 집권하의 1960∼70년대이다. &lt;BR&gt;&lt;BR&gt;몹시도 배고팠던 시절, 남북대치상황에서 안보불안도 컸던 시절. &lt;BR&gt;경제건설을 통한 산업화 근대화가 이룩되고 나면 그 토양위에서 우람하고 튼튼한 민주주의가 &lt;/P&gt;
&lt;P&gt;자리잡는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신념은 옳은 것이라고 판단한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누가 과연 민주화에 진정한 공헌자인가(무궁화)&lt;/STRONG&gt; ---데일리안토론방&lt;/P&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6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DIV id=main_content&gt;
&lt;P&gt;&amp;nbsp;&lt;/P&gt;
&lt;P&gt;흔히 말하기를,&lt;/P&gt;
&lt;P&gt;박정희는 독재자이고, 김영삼 김대중은 &lt;/P&gt;
&lt;P&gt;민주화 투사라고 부른다.&lt;/P&gt;
&lt;P&gt;이거 완전히 새빨간 거짓 선동이다.&lt;/P&gt;
&lt;P&gt;김영삼, 김대중씨는 박정희를 독재자로 몰아세우면서,&lt;/P&gt;
&lt;P&gt;자기들이 민주투사인양 가장하면서 &lt;/P&gt;
&lt;P&gt;대통령 자리에 오른 자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살았었고,&lt;/P&gt;
&lt;P&gt;내 눈으로 똑바로 박 대통령을 보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시 나는 시골 농촌에 살았었다.&lt;/P&gt;
&lt;P&gt;나의 아버지는 시골 동네 이장일을 보았었다.&lt;/P&gt;
&lt;P&gt;당시 박 대통령은 시골 농번기가 되면 &lt;/P&gt;
&lt;P&gt;어김없이 시골 농촌에 내려 와서는 &lt;/P&gt;
&lt;P&gt;농부들과 함께 일하면서 막걸리를 즐기셨다.&lt;/P&gt;
&lt;P&gt;농번기가 되면 동네 어른들은 우리집에 모였었다.&lt;/P&gt;
&lt;P&gt;그리고는 동네 어른들은 면장, 군수를 찿아다니면서 &lt;/P&gt;
&lt;P&gt;이번 농번기에 꼭 우리 마을에 박정희 대통령을 &lt;/P&gt;
&lt;P&gt;모시자고 하였다.&lt;/P&gt;
&lt;P&gt;당시 농촌 마을은 박 대통령의 농촌부흥 운동으로 &lt;/P&gt;
&lt;P&gt;가난을 벗어나게 되었다.&lt;/P&gt;
&lt;P&gt;당시 전국의 농촌 마을은 박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 하였다.&lt;/P&gt;
&lt;P&gt;만일, 박 대통령이 정말 독재자였다면,&lt;/P&gt;
&lt;P&gt;과연 당시 농촌 농부들이 이토록 박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 &lt;/P&gt;
&lt;P&gt;하였겠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는 1970년대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 모대학에 다녔다.&lt;/P&gt;
&lt;P&gt;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lt;/P&gt;
&lt;P&gt;중화학, 중공업이 집중 육성되던 시기였다.&lt;/P&gt;
&lt;P&gt;당시 국민들은 세계 최하위 빈곤국가에서 우리가 중진국 &lt;/P&gt;
&lt;P&gt;진입이라는 희망과 꿈에 벅차 있었다.&lt;/P&gt;
&lt;P&gt;대통령과 국민은 하나가 되어 꿈과 희망을 안고 열심히 일만&lt;/P&gt;
&lt;P&gt;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칭 민주화 투사들은 말하기를,&lt;/P&gt;
&lt;P&gt;&quot;70년대에 유신헌법은 유신독재체제&quot;라고 비난하고 있다.&lt;/P&gt;
&lt;P&gt;이거 또한 거짓된 민중선동에 불과하다.&lt;/P&gt;
&lt;P&gt;당시 유신헌법 체제 동의는 전 국민의 &lt;/P&gt;
&lt;P&gt;70% 이상이 찬성 하였다.&lt;/P&gt;
&lt;P&gt;우리는 유신체제로 인해 더욱더 중화학, 중공업 등 &lt;/P&gt;
&lt;P&gt;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선진국 진입이라는 &lt;/P&gt;
&lt;P&gt;희망을 낳게 되었다.&lt;/P&gt;
&lt;P&gt;우리는 80년대가 가장 호황기 였다고 말한다.&lt;/P&gt;
&lt;P&gt;우리가 80년대에 꽃피운 시기는 박 대통령의 &lt;/P&gt;
&lt;P&gt;유신헌법 개정통과로 인한 경제개발 덕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만일 당시 유신헌법의 개정 통과가 불발로 끝나고,&lt;/P&gt;
&lt;P&gt;자칭 민주화 투사란 분들이 집권 하였다면,&lt;/P&gt;
&lt;P&gt;우리나라는 끔찍한 상황이 이미 일찌기 발생하였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70년대에 대학가는 연일 데모로 얼룩져 있었다.&lt;/P&gt;
&lt;P&gt;여기에 선봉에 선 자가 김영삼, 김대중씨였고,&lt;/P&gt;
&lt;P&gt;김대중씨가 특히 심했다.&lt;/P&gt;
&lt;P&gt;김대중씨는 대학가 강단에 서서 당시 학생들에게 민중선동을&lt;/P&gt;
&lt;P&gt;일으키면서 학생운동에 불을 놓았다.&lt;/P&gt;
&lt;P&gt;당시 김대중씨의 수제자들이 현재 집권 열우당의 실세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시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에게는 이들 데모만 &lt;/P&gt;
&lt;P&gt;주동하는 학생들을 너무 싫었다.&lt;/P&gt;
&lt;P&gt;학교는 툭하면 휴강 하였다.&lt;/P&gt;
&lt;P&gt;당시 모범 대학생들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lt;/P&gt;
&lt;P&gt;당시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말을 빌려보자.&lt;/P&gt;
&lt;P&gt;&quot; 저 개XX들, 또 데모질이다&quot;&lt;/P&gt;
&lt;P&gt;&quot;저 개XX들중에는 어떤놈들은 김일성 초상화 밑에서 김일성&lt;/P&gt;
&lt;P&gt;주체사상이란 책을 숨어서 몰래 본다고 하더라&quot;&lt;/P&gt;
&lt;P&gt;&quot;저 개XX들 하고는 말도 하지 마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반적으로 70년대는 민주화 투사가 독재자와 &lt;/P&gt;
&lt;P&gt;맞서 싸운 얼룩진 시기라고 교육을 받아왔다.&lt;/P&gt;
&lt;P&gt;이것은 철처히 오도된 잘못된 교육이다.&lt;/P&gt;
&lt;P&gt;자칭 민주화 투사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는 &lt;/P&gt;
&lt;P&gt;자기들을 미화하기 위한 위장선동에 불과하다.&lt;/P&gt;
&lt;P&gt;당시 나는 박 대통령 시절에 어린 시절과 &lt;/P&gt;
&lt;P&gt;대학시절을 보내면서,&lt;/P&gt;
&lt;P&gt;내 눈으로 박 대통령을 똑바로 보았었고,&lt;/P&gt;
&lt;P&gt;당시 상황을 진실되게 말하는 것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 대통령은 절대로 독재자가 아니다.&lt;/P&gt;
&lt;P&gt;박 대통령은 가난한 우리나라를 부강한 국가로 &lt;/P&gt;
&lt;P&gt;이끈 훌륭한 대통령이시고,&lt;/P&gt;
&lt;P&gt;우리 국민들을 절대로 억압하지 않았다.&lt;/P&gt;
&lt;P&gt;단지, 당시 박 대통령이 경제개발에 몰두하고 있을때,&lt;/P&gt;
&lt;P&gt;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으면서 민중선동을 일으키며 데모만&lt;/P&gt;
&lt;P&gt;주동하였던 작자들만 탄압을 받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다면 자칭 민주화 투사인 &lt;/P&gt;
&lt;P&gt;김영삼, 김대중씨는 나라를&amp;nbsp; 어떻게 이끌어 왔는가.&lt;/P&gt;
&lt;P&gt;김영삼 대통령은 국가를 방만하게 &lt;/P&gt;
&lt;P&gt;운영하면서 IMF 사태를 초래 하였다.&lt;/P&gt;
&lt;P&gt;김대중 대통령은 IMF 체제하에서,&lt;/P&gt;
&lt;P&gt;IMF 조기졸업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미명하에,&lt;/P&gt;
&lt;P&gt;외국자본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우리기업을 외국에&lt;/P&gt;
&lt;P&gt;헐값으로 팔아 버렸다.&lt;/P&gt;
&lt;P&gt;작금의 외국인들이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IMF 체제하에 무려 170만명의 가장들이 &lt;/P&gt;
&lt;P&gt;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 몰렸다.&lt;/P&gt;
&lt;P&gt;한 가정이 4인임을 감안할 때 무려 700만명이 &lt;/P&gt;
&lt;P&gt;고통을 겪게 되었다. 누가 이들의 아픔을 달래 줄 것인가.&lt;/P&gt;
&lt;P&gt;무책임한 의사가 주사나 약 &lt;STRONG&gt;처방&lt;/STRONG&gt;을 &lt;STRONG&gt;남발한 것이였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영삼, 김대중씨는 나라를 집권하면서 &lt;/P&gt;
&lt;P&gt;친인척, 측근들의 비리로 얼룩졌었다.&lt;/P&gt;
&lt;P&gt;최근에는 국정원의 도청 비리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다.&lt;/P&gt;
&lt;P&gt;이들이 나라를 위한 진정한 민주투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영삼 대통령은 나라를 부도나게 하였지만,&lt;/P&gt;
&lt;P&gt;이 분은 반공이념이 투철 하였다.&lt;/P&gt;
&lt;P&gt;그래서 당시 안보는 불안하지 않고,&lt;/P&gt;
&lt;P&gt;국민들이 그런데로 마음 졸이지 않고 살았다.&lt;/P&gt;
&lt;P&gt;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나라가 위기로 &lt;/P&gt;
&lt;P&gt;치달을 시 금융개혁 입법을 시도 하였다.&lt;/P&gt;
&lt;P&gt;그러나 당시 여야 대권주자를 비롯한 &lt;/P&gt;
&lt;P&gt;정치권이 개혁시도를 방해 하였다.&lt;/P&gt;
&lt;P&gt;결국 우리나라는 IMF 사태를 맞게 되었다.&lt;/P&gt;
&lt;P&gt;당시 정치권은 썪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간첩 한마리도 안 잡고,&lt;/P&gt;
&lt;P&gt;더구나 북한이 남한을 향해 뚫어놓은 땅꿀조차도 &lt;/P&gt;
&lt;P&gt;발견하지 않았다.&lt;/P&gt;
&lt;P&gt;작금의 우리의 현실이 안보 불안으로 국민들이 &lt;/P&gt;
&lt;P&gt;너무나 고통을 겪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정희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가장 싫어했다.&lt;/P&gt;
&lt;P&gt;그래서 혹시 부정에 개입할지도 모르는 &lt;/P&gt;
&lt;P&gt;친인척을 엄중하게 감시 하였다.&lt;/P&gt;
&lt;P&gt;박 대통령의 친형은 가난한 농부로 여생을 보냈고,&lt;/P&gt;
&lt;P&gt;친 누님은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lt;/P&gt;
&lt;P&gt;또한 가난하게 여생을 보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박 대통령은 철저하게 청렴결백한 생활을 하였다.&lt;/P&gt;
&lt;P&gt;박 대통령의 침실 화장실에는 물을 절약하기 위해,&lt;/P&gt;
&lt;P&gt;벽돌 한장을 놓고 살았다.&lt;/P&gt;
&lt;P&gt;또한 박 대통령은 돌아가실때 보니,&lt;/P&gt;
&lt;P&gt;20년된 다 떨어진 혁띠와 손목시계를 차고 계셨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 대통령이 돌아가시자,&lt;/P&gt;
&lt;P&gt;전국은 울음바다로 변했다.&lt;/P&gt;
&lt;P&gt;당시 나는 시골 농촌에 가보니,&lt;/P&gt;
&lt;P&gt;할머니들이 정화수 물 한그릇을 떠 놓고는 &lt;/P&gt;
&lt;P&gt;박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lt;/P&gt;
&lt;P&gt;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다.&lt;/P&gt;
&lt;P&gt;당시 전국에 농촌의 할머니들은 다 이랬다.&lt;/P&gt;
&lt;P&gt;그래서 당시 일간지 신문에도 이런 기사가 많이 나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정희 대통령은 말씀하셨다.&lt;/P&gt;
&lt;P&gt;&quot;민주화는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고, 잘 살게 될때&lt;/P&gt;
&lt;P&gt;진정한 민주화가 성숙될 수가 있다&quot;라고 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그렇다.&lt;/P&gt;
&lt;P&gt;우리나라는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 덕분에 &lt;/P&gt;
&lt;P&gt;선진국 진입을 꿈꿀수가 있었고,&lt;/P&gt;
&lt;P&gt;이로인해 중상류층이 두터운 층을 이루게 되었다.&lt;/P&gt;
&lt;P&gt;두터운 중상류층으로 인해 우리는 자연히 민주화를 &lt;/P&gt;
&lt;P&gt;이룩할 수가 있게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이어지며서 우리나라는 나라경제가&lt;/P&gt;
&lt;P&gt;힘을 잃으면서 중상류층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lt;/P&gt;
&lt;P&gt;중상류층의 몰락은 민주화를 몰락시키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다면 우리나라의&amp;nbsp;진정 민주화에 공헌한 분은&lt;/P&gt;
&lt;P&gt;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란 말이더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는 최소한 세상을 똑바로 알고 살자.&lt;/P&gt;
&lt;P&gt;거짓 선동꾼에 제발 속지 말고 살자.&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누가 유신을 함부로 말하는가?--&lt;/STRONG&gt;&lt;/P&gt;
&lt;P&gt;현재 열우당과 그 추종자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평가할 때 현재의 가치기준밖에 적용할 줄 모른다는&lt;/P&gt;
&lt;P&gt;&amp;nbsp;점에서 가히 단세포적인 두뇌를 가진 집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이 아니라면, &lt;/P&gt;
&lt;P&gt;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가치관으로 평가하여 나약한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현 세대들을 세뇌하려는 &lt;/P&gt;
&lt;P&gt;모리배일 것이다. &lt;/P&gt;
&lt;P&gt;언제부터인가 정치가들이 '유신'을 악의 대명사처럼 폄하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유신헌법'이란 것이 &lt;/P&gt;
&lt;P&gt;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을 총칼로 겁박해서 강제로 통과시킨 대악법으로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lt;/P&gt;
&lt;P&gt;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칭 '민주투사'라는 사람들은 '유신독재'란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뱉고 있다. &lt;BR&gt;&lt;BR&gt;적절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유해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다. 가령, 60-70년대에 버스안에서&lt;/P&gt;
&lt;P&gt;&amp;nbsp;어떤 어르신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치자. &lt;/P&gt;
&lt;P&gt;그 당시에는 유쾌하진 않았을 지 몰라도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거나 잘못된 걸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lt;/P&gt;
&lt;P&gt;오히려 어떤 젊은이가 '아저씨, 버스에서 담배피우시면 안됩니다'라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lt;/P&gt;
&lt;P&gt;'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봤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lt;/P&gt;
&lt;P&gt;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용기있는 사람이다. &lt;/P&gt;
&lt;P&gt;현재의 잣대로는 아무리 나이드신 어른이라도 버스안에서 담배피운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lt;/P&gt;
&lt;P&gt;이렇듯 역사적 사실은 시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lt;BR&gt;&lt;BR&gt;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유신통치는 독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독재'란 것은 국민의 의지에 반하여 &lt;/P&gt;
&lt;P&gt;통치자가 강제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좋은 예이다. &lt;/P&gt;
&lt;P&gt;정치깡패들을 동원해서 국민을 겁박하고, 불리한 지역에서는 투표를 방해하고, 투표함 바꿔치기 같은 &lt;/P&gt;
&lt;P&gt;불법적인 수단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했기 때문이다. &lt;/P&gt;
&lt;P&gt;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는 1972년 11월에 실시되었다. 투표인명부에 등재된 투표인수는 15,676,395인 &lt;/P&gt;
&lt;P&gt;이었고 이중 91.9%에 해당하는 14,410,714인이 투표에 참여하였으며, 이중 찬성이 91.5%에 해당하는 &lt;/P&gt;
&lt;P&gt;13,186.559표로서 유신헌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세상에서 국민의 90%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권에 대해&lt;/P&gt;
&lt;P&gt;&amp;nbsp;'독재'라고 매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지 않을까? 집권후, 10년간 자유당 잔재를 청산하고&lt;/P&gt;
&lt;P&gt;&amp;nbsp;5000년 유산인 가난을 몰아내준 지도자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낸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은 모두 &lt;/P&gt;
&lt;P&gt;사리판단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였더란 말인가? &lt;BR&gt;&lt;BR&gt;당시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주도하에 산업전선에서 피땀흘려 일하며 세계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이라 &lt;/P&gt;
&lt;P&gt;칭송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lt;/P&gt;
&lt;P&gt;별 직업도 없이 민주화운동 한답시고 국가에 저항하고 감옥이나 들락거리든 사람들을 국민들은 오히려 &lt;/P&gt;
&lt;P&gt;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자칭 '민주투사'란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기여한 &lt;/P&gt;
&lt;P&gt;것이 무엇인지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lt;BR&gt;&lt;BR&gt;물론 국민소득 1만불 시대인 현재의 상황에서는 유신통치와 같은 형태가 허용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인정한다. &lt;/P&gt;
&lt;P&gt;그리고, 그 당시의 재야운동가들 중에 인정받아야할 분도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lt;/P&gt;
&lt;P&gt;다만, 진정한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을 받을려면 박정희 대통령과 그 당시 산업전선에서 묵묵히 일하셨던 &lt;/P&gt;
&lt;P&gt;분들을 먼저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열우당과 민노당의 자칭 '민주투사'들은, 극소수에 속했던 &lt;/P&gt;
&lt;P&gt;자신들의 생각은 옳고 대다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틀렸다는 아집과, 피해의식에 따른 보복심리로 &lt;/P&gt;
&lt;P&gt;과거사 전체를 부정하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들에 대한 맹목적 추종자들인 &lt;/P&gt;
&lt;P&gt;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에겐 박대통령 시절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인 평가도 금기시 되어 있다. &lt;BR&gt;&lt;BR&gt;요컨대, 현재의 잣대로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 평가하려는 외눈박이들은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lt;/P&gt;
&lt;P&gt;세월이 갈수록 그 당시에 사셨던 분들이 자꾸 돌아가셔서, 진실을 말해줄 분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lt;/P&gt;
&lt;P&gt;점이 심히 유감스럽다. &lt;/P&gt;
&lt;P&gt;'유신'이란 것이 현재 정권을 잡은 모리배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헌정질서를 유린한 악이 아니라, &lt;/P&gt;
&lt;P&gt;그 당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에 두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lt;/P&gt;
&lt;P&gt;그리고 이 분명한 사실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용기있는 정치인이 한나라당에서조차도 &lt;/P&gt;
&lt;P&gt;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개탄스러운 일이다. &lt;BR&gt;&lt;BR&gt;이와 관련해서, 90년대말 경제위기 때 재야운동권의 큰 어른이신 백기완 선생의 말씀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lt;/P&gt;
&lt;P&gt;'그래도 박대통령은 나같은 사람은 핍박했어도 나라전체는 잘살게 해줬는데 지금 이놈의 정권은 뭐하는 &lt;/P&gt;
&lt;P&gt;집단인지 모르겠다.&lt;/P&gt;
&lt;P&gt;' 불행히도 권력에 눈이 먼 작금의 열우당 시정잡배들에겐 자신들이 가장 존경했던 어른의 말씀조차도 &lt;/P&gt;
&lt;P&gt;공허한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고 있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TRONG&gt;[펌] 박정희를 다시 생각하며...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는 젊은 20대의 경제학을 전공한 여성입니다.&amp;nbsp; &lt;BR&gt;태어날때 부터 가난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기에 &quot;경제발전&quot;이라는 말은 가슴에 다가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lt;/P&gt;
&lt;P&gt;원래 한국은 이 정도로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amp;nbsp; &lt;/P&gt;
&lt;P&gt;우리 윗세대 분들까지만 해도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보다 못살았던 세계 최고의 거지국가라는 &lt;/P&gt;
&lt;P&gt;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런 말을 학교에서 배워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습니다.&amp;nbsp; &lt;BR&gt;대학에 들어가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쓰여진 정치학 책 몇권과 인터넷에 떠도는 &lt;/P&gt;
&lt;P&gt;쪼가리들을 읽고서는 세상에 대해서 다 아는 것 마냥 떠들고 다녔습니다.&amp;nbsp; &lt;BR&gt;20대 초반 특유의 정의감으로 세상을 선/악으로 구분해서 독재자를 비판하고 짓밟을수록 &lt;/P&gt;
&lt;P&gt;내가 &quot;멋있고&quot;&quot;진보적&quot;이고 &quot;도덕적&quot;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amp;nbsp; &lt;BR&gt;그래서 인터넷에서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을 보면 &quot;인권을 탄압하면서 유신독재를 했던 파시스트를 &lt;/P&gt;
&lt;P&gt;어떻게 옹호하나요?&quot;며 거품 물고 비판하는 반박글을 많이 썼습니다.&amp;nbsp; &lt;/P&gt;
&lt;P&gt;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을 옹호하는 교수님를 향해서 수구꼴통 교수라며 욕했습니다.&amp;nbsp; &lt;BR&gt;박정희 대통령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며, &quot;독재자를 숭배하는 &lt;/P&gt;
&lt;P&gt;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을 보라. 한국인의 후진적인 정치의식을 보여준다&quot;라며 경멸했습니다.&amp;nbsp; &lt;BR&gt;대학교육이라는 고등교육을 받은 내가, 박통교에 빠져있는 무식한 늙은이들과 보수꼴통들을 &lt;/P&gt;
&lt;P&gt;깨우치게 만들고 계도해야 겠다는 책임감까지 느꼈습니다.&amp;nbsp; &lt;BR&gt;왜냐면 박정희=파시스트 악마였고 박정희야말로 한국을 망친 챙피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amp;nbsp; &lt;/P&gt;
&lt;P&gt;경제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알게 되고 &quot;그래도 대단한 경제발전을 이루었구나&quot; &lt;/P&gt;
&lt;P&gt;정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amp;nbsp; &lt;/P&gt;
&lt;P&gt;하지만 이 정도 경제발전은 다른나라도 다 이루는 것이며 오히려 정경유착과 재벌만 키운 나라를 망친 &lt;/P&gt;
&lt;P&gt;경제발전이었으므로 박정희시대의 경제발전은 IMF의 원인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amp;nbsp; &lt;BR&gt;이런 저의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된 것은 시야를 넓혀 외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입니다.&amp;nbsp; &lt;BR&gt;한국이 당시 필리핀이나 아프리카 가나보다 못살았던 세계 최빈국이었다는 충격적인(?) &lt;/P&gt;
&lt;P&gt;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시 신생독립국들 중에 한국이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루었다는 &lt;/P&gt;
&lt;P&gt;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amp;nbsp; &lt;/P&gt;
&lt;P&gt;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던 거지국가가 앞서있던 아시아 국가들을 제치고 과거 조공국가였던 &lt;/P&gt;
&lt;P&gt;중국도 너끈히 누르고 경제강국으로 떠오르는 것은 한국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같았습니다.&amp;nbsp; &lt;BR&gt;그때서야 우리 윗세대들은 &quot;보수 꼴통&quot;이 아니라 한국역사상 가장 급격한 발전을 일으킨 &lt;/P&gt;
&lt;P&gt;&quot;위대한 세대&quot;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amp;nbsp; &lt;/P&gt;
&lt;P&gt;또 세계적 정치인들이 박정희를 어떻게 보는 가를 알게 되면서 많이 놀랐습니다.&amp;nbsp; &lt;/P&gt;
&lt;P&gt;중국 최고 인기 정치인인 등소평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등소평이 박정희모델을 추종해서 따라하고 &lt;/P&gt;
&lt;P&gt;포항제철을 부러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캠브리지의 수재이자 싱가폴의 아버지인 리콴유를 &lt;/P&gt;
&lt;P&gt;알게 되면서 리콴유가 박정희에게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lt;/P&gt;
&lt;P&gt;서양에서 똑똑한 촌철살인 발언으로 아시아의 입으로 불리는 마하티르는 공개적으로 &quot;나는 박정희를 존경한다.&amp;nbsp; &lt;BR&gt;박정희처럼 되고 싶다. 말레이시아 비전인 &quot;look east policy&quot;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모델로 &lt;/P&gt;
&lt;P&gt;삼은 것이다&quot;라고 말하며 박정희의 경제정책과 어법까지도 따라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amp;nbsp; &lt;/P&gt;
&lt;P&gt;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의 무샤라프도 &quot;나는 박정희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박정희 대통령처럼 &lt;/P&gt;
&lt;P&gt;되고 싶다&quot; 라며 흠모하고, 지금도 몽골, 카자흐스탄 대통령등등 외국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박정희를 &lt;/P&gt;
&lt;P&gt;대단하게 평가하며 따라하려고 하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amp;nbsp; &lt;/P&gt;
&lt;P&gt;그때 저는 흔들렸습니다.&amp;nbsp; &lt;BR&gt;내가 &quot;파시스트 악마&quot;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외국 정치인들 사이에서는&amp;nbsp; &lt;BR&gt;하나의 &quot;롤모델&quot;로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후진타오가 이례적으로 박대표를 만난 것 때문에 &lt;/P&gt;
&lt;P&gt;우리나라에서도 알려졌지만 후진타오는 대학때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 &lt;/P&gt;
&lt;P&gt;직접 공부까지 한 사람이고, 후진타오 이외에도 중국정치인들은 박정희 대통령 전기를 읽고 따로 &lt;/P&gt;
&lt;P&gt;공부를 한다고 합니다.&amp;nbsp; &lt;BR&gt;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너무 궁금해 하여 중국대학에 수업에 박정희 강좌를 &lt;/P&gt;
&lt;P&gt;개설한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amp;nbsp; &lt;BR&gt;제가 촌스럽다고 무시했던 &quot;새마을 운동&quot;은 후진국들의 성공적 발전모델로 인식되어 이라크, 몽골, &lt;/P&gt;
&lt;P&gt;콩고같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도 한국에 새마을 운동 사절단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amp;nbsp; &lt;/P&gt;
&lt;P&gt;왜 하필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냐?라고 물으면 그들은 말합니다.&amp;nbsp; &lt;BR&gt;&quot;한국만큼 극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amp;nbsp; &lt;BR&gt;일본과 독일은 원래 부자나라였지만 한국은 전쟁을 겪은 이후 잿더미에서도 저렇게 부자나라가 &lt;/P&gt;
&lt;P&gt;될 수 있다는 것은 후진국들에게 우리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준다&quot;&amp;nbsp; &lt;BR&gt;외국의 경제학 책들에서도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다루고 &lt;/P&gt;
&lt;P&gt;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amp;nbsp; &lt;/P&gt;
&lt;P&gt;&quot;한국의 경제발전은 제 3세계 국가들에게 하나의 최상의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amp;nbsp; &lt;BR&gt;경제 불평등 정도도 낮으면서 100년 걸리는 산업화를 20년 이라는 단기간내에 이루었기 때문이다&quot;&amp;nbsp; &lt;BR&gt;심지어 어떤 책에서는 &quot;한국의 경제발전은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amp;nbsp; &lt;/P&gt;
&lt;P&gt;전쟁국가에서 20년만에 제철, 자동차, 조선업을 생산해 내는 중공업 위주로 바뀌었다는 것은 &lt;/P&gt;
&lt;P&gt;그야말로 세계경제사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불릴만 하다 &quot; 그 때서야 알았습니다.&amp;nbsp; &lt;/P&gt;
&lt;P&gt;젊은 세대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한국의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외국에서는 얼마나 대단하게 &lt;/P&gt;
&lt;P&gt;평가하고있는 것인지를.&amp;nbsp; &lt;BR&gt;개인적으로 업적은 대단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에 대한 지나친 &quot;숭배&quot;나 &quot;영웅화&quot;는 위험하다고 &lt;/P&gt;
&lt;P&gt;생각합니다. &lt;/P&gt;
&lt;P&gt;박정희 대통령 혼자서 도로를 짓고 혼자서 공장을 돌리고 제품을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amp;nbsp; &lt;BR&gt;하지만 반대로 경제발전이 국민들의 노력만으로 저절로 이루어 졌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lt;/P&gt;
&lt;P&gt;주장도 무식한 소리입니다.&amp;nbsp; &lt;BR&gt;경제발전에서는 리더의 역활이 대단히 중요하며, 특히 농업국에서 중공업 위주로 산업이 재편성 된 &lt;/P&gt;
&lt;P&gt;과정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추진력이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너무나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amp;nbsp; &lt;BR&gt;이것은 백낙청, 이대근, 안병직 같은 과거 좌파경제학자들까지도 인정하는 일입니다.&amp;nbsp; &lt;BR&gt;저는 박근혜 대표의 지지자도 아닙니다.&amp;nbsp; &lt;BR&gt;하지만 박근혜 대표님 아버님 고 박정희 대통령께, 철없던 시절 아버님을 미친듯이 욕하며 저주했던 &lt;/P&gt;
&lt;P&gt;저의 무식함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lt;/P&gt;
&lt;P&gt;젊은 세대들은 경제성장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에 한강의 기적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 진것으로 &lt;/P&gt;
&lt;P&gt;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외국에서 평가를 듣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amp;nbsp; &lt;BR&gt;젊은 세대들이 외국배낭여행을 가서도 'south korea'라고 하면 무시받지 않고 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lt;/P&gt;
&lt;P&gt;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추진력, 그리고 윗세대들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lt;/P&gt;
&lt;P&gt;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안병직교수 ‘마르크시스트→뉴라이트’ 사상전환 첫 고백&lt;/STRONG&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style=&quot;WIDTH: 648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news_top_stitle&gt;“집권 운동세력 나라 위기몰아”&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style=&quot;WIDTH: 648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13px&quot; color=#226093&gt;이미숙기자&lt;/FONT&gt; &lt;A href=&quot;mailto:musel@munhwa.com&quot; on-focus&#61;blur();&gt;&lt;FONT style=&quot;FONT-SIZE: 13px&quot; color=#226093&gt;&lt;I&gt;musel@munhwa.com&lt;/I&gt;&lt;/A&gt; &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7&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style=&quot;WIDTH: 648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gColor=#e8f2fb&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390&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7&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block_20 height=1 vAlign=center width=383&gt;&amp;nbsp;&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style=&quot;WIDTH: 648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height=1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style=&quot;WIDTH: 648px&quot;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1970년대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5일 “지금 집권 민주화 세력이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한국 사회를 구렁텅이로 이끌려하기 때문에 뉴라이트 운동에 나서게 됐다.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한국이 위기이기 때문에 무리하게라도 얘기를 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사상 전환 과정과 배경을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안 교수는 특히 70년대까지 신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 따라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한국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측하다가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경제를 살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고 생각이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바뀌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lt;BR&gt;&lt;BR&gt;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인 안 교수는 “요즘 한자리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와 운동도 같이 하고 내가 기른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사람들”이라며 여권의 핵심인사들을 실명거론하면서 “이들이 노무현 정부를 건달정부로 만드는 데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위해선 한미공조를 통한 국제협력노선이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최선인데 참여정부는 민족자주쪽으로 경사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이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lt;BR&gt;&lt;BR&gt;그는 이어 “민족자주를 내세우며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는 것은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계산에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말려드는 꼴”이라고 비판한 뒤 통일운동을 펴는 학계의 원로교수들도 실명거론하면서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북한현실을 외면하고 민족을 사지로 몰고가면 안된다”고 비판했다.&lt;BR&gt;&lt;BR&gt;안 교수는 학계의 박정희 전대통령 재평가론에 대해선 “과거 그를 타도해야 할 독재자로 봤지만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이젠 한국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로 본다”면서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여 중진자본주의로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나간다는 캐치 업(catch up)이론에 입각해 보면 박정희의 경제개발이론은 탁월하며 박정희식 &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군부 독재가 아니었다면 경제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lt;BR&gt;&amp;nbsp;&lt;/DIV&gt;
&lt;DIV style=&quot;LINE-HEIGHT: 22px; FONT-SIZE: 12px&quot; class=view_setting&gt;
&lt;P&gt;&lt;STRONG&gt;■ 「인혁당 조작이라고? 그게&amp;nbsp;&amp;nbsp;조작이다&lt;BR&gt;&lt;/STRONG&gt;이영민 / 자유언론수호국민포럼 대변인&lt;BR&gt;국정원의 과거사 「眞實위원회」는 「진실 왜곡위원회」라야 맞다&lt;BR&gt;2005년 12월 7일 이른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lt;/P&gt;
&lt;P&gt;과거 1. 2차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하였다. &lt;BR&gt;&lt;BR&gt;&lt;국가기관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함부로 범죄자로 단정해 버려&gt;&lt;BR&gt;&lt;BR&gt;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표현대로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이 사건의 배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lt;/P&gt;
&lt;P&gt;개입한 정황이 명확하다고 발표하였다. 국가기관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함부로 범죄자로&lt;/P&gt;
&lt;P&gt;단정해 버린 것이다.&lt;BR&gt;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는 얼마 전에도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하여 코미디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하여 &lt;/P&gt;
&lt;P&gt;전 국민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그때도 그들은 아무 증거도 없이 박 대통령의 개입설을 일방적으로 &lt;/P&gt;
&lt;P&gt;발표했었다. 몇 달 간격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물 쓰듯 하며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lt;/P&gt;
&lt;P&gt;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이제 그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한 번 파고 들어가 보자. &lt;BR&gt;김형욱은 역대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 국정원장 포함)중 최장기간동안 재임한 기록을 세웠지만 &lt;/P&gt;
&lt;P&gt;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해임당한 후 미국에서 반 체제활동을 해왔던 인물이다. &lt;/P&gt;
&lt;P&gt;그런 인물인 만큼 그의 회고록에는 박 전대통령에 대해서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lt;/P&gt;
&lt;P&gt;이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조작됐다는 말은 없고 다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lt;/P&gt;
&lt;P&gt;심증은 뚜렷하지만 물증은 없었던 까닭에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던 7년 동안 &lt;/P&gt;
&lt;P&gt;가장 다루기 어려웠던 사건이라고 털어 놓고 있다. &lt;BR&gt;&lt;BR&gt;&lt;국정원 과거사진실위의 발표야말로 조작이며 터무니없는 허위임이 분명&gt;&lt;BR&gt;&lt;BR&gt;󰡐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주범인 金培永(김배영)은 체포된 후 &lt;/P&gt;
&lt;P&gt;일단 무혐의로 풀려난 틈을 타서 또 다른 공범인 미 체포된 禹東邑(우동읍)과 이북으로 도주하였고 &lt;/P&gt;
&lt;P&gt;지령을 받고 다시 남하하였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다. &lt;/P&gt;
&lt;P&gt;당시 그는 공작금과 난수표,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북괴로부터 지령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lt;BR&gt;이것만으로도 인혁당이 북한과 연결된 조직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이 조작이라는 국정원 &lt;/P&gt;
&lt;P&gt;과거사진실위의 발표야말로 조작이며 터무니없는 허위임이 분명한 것이다.&amp;nbsp;&amp;nbsp;&lt;/P&gt;
&lt;P&gt;그리고 당시 검찰은 중앙정보부가 수사한 이 사건에 대하여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는 &lt;/P&gt;
&lt;P&gt;사람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기소를 거부하는 등 공소를 엄격히 하였다. 당시 이 사건의 기소를 &lt;/P&gt;
&lt;P&gt;거부하였던 이용훈. 여운상(여운형의 친척) 검사가 물러나는 등 진통을 거듭한 끝에 처음에 구속기소 되었던 &lt;/P&gt;
&lt;P&gt;26명중 13명은 검찰이 공소취하, 공소장변경등으로 석방되었고 기소되었던 13명 중에서도 &lt;/P&gt;
&lt;P&gt;副責(부책) 도예종에게 징역 3년, 양춘우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것 외에 나머지 11명에게 &lt;/P&gt;
&lt;P&gt;모두 무죄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lt;/P&gt;
&lt;P&gt;이것으로써 당시 빠져나갈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갔고 최소한의 인원만이 처벌을 받은 것이다. &lt;BR&gt;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가 이 사건 전체를 조작되었다고 결론내린 근거는 &lt;/P&gt;
&lt;P&gt;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조작되었다는 것인가. &lt;/P&gt;
&lt;P&gt;당시 도예종은 10년 후 다시 인혁당을 재건하려다가&amp;nbsp;&amp;nbsp;체포당해 기어이 사형을 당한 것이다. &lt;BR&gt;그리고&amp;nbsp;&amp;nbsp;1974년 2차 인혁당 사건 당시에 이들의 구명운동을 하다가 추방당했던 시노트 신부는 &lt;/P&gt;
&lt;P&gt;2005년 4월 3일 방영된 MBC TV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자신은 인혁당이 무고하다고 &lt;/P&gt;
&lt;P&gt;주장한 적은 없으며 다만 형이 너무 무겁다고 말하였을 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lt;/P&gt;
&lt;P&gt;즉 당시 인혁당 구성원들의 구명운동을 했던 외국인 신부조차도 인혁당의 무죄여부에 대해서는 &lt;/P&gt;
&lt;P&gt;분명한 확답을 피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인혁당 사건이 정권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분명한 증거는 &lt;/P&gt;
&lt;P&gt;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lt;BR&gt;분명한 것은 2차 인혁당 사건 당시 함께 체포되었던 이철. 유인태 등 민청학련 구성원들은 중형을 &lt;/P&gt;
&lt;P&gt;선고받았음에도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석방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인혁당은 북괴와의 연결고리가 &lt;/P&gt;
&lt;P&gt;있었다는 조사결과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의 발표대로 &lt;/P&gt;
&lt;P&gt;이 두 사건이 모두 정권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굳이 민청학련은 풀어주고 인혁당은 사형을 집행한 &lt;/P&gt;
&lt;P&gt;이유가 무엇인지도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lt;/P&gt;
&lt;P&gt;왜 똑같은 국사범이라면 한 쪽만 봐 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lt;BR&gt;&lt;BR&gt;&lt;「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amp;nbsp;&amp;nbsp;도대체&amp;nbsp;누구를 조사했고&amp;nbsp;&amp;nbsp;무엇을 조사했단 말인가?&gt;&lt;BR&gt;&lt;BR&gt;「과거사위원회」는 이번 조사가 국정원과 검찰, 국방부 등에 보관된 자료 위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lt;BR&gt;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보존 문서 중 핵심 자료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또 사건 피해자를 제외한 &lt;/P&gt;
&lt;P&gt;면담 조사자는 불과 30명에 그쳤고 특히 각 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당시 대공수사과장 이용택씨를 비롯한 &lt;/P&gt;
&lt;P&gt;전직 중앙정보부 직원 8명은 모두 「과거사위」의 면담 조사에서 사건 조작이나 고문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lt;/P&gt;
&lt;P&gt;그렇다면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도대체 누구를 조사했고 무엇을 조사했단 말인가.&lt;BR&gt;또한 지난 12월 7일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도 조사의 객관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lt;/P&gt;
&lt;P&gt;이에 대해 「과거사위원회」 측은 󰡒관련자 증언은 착각이나 정치적 입장 변화에 따라 부정확해지거나&lt;/P&gt;
&lt;P&gt;&amp;nbsp;왜곡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과거사위원회」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왜곡되었다는 &lt;/P&gt;
&lt;P&gt;별도의 증거를 확보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함부로 &lt;/P&gt;
&lt;P&gt;자신들의 견해를 강요한다면 그들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조사대상사건들과 차이점이 무엇인가.&amp;nbsp;&amp;nbsp;&lt;BR&gt;이번에 「과거사위원회」는 관련자 증언이나 자료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건이 박대통령의 &lt;/P&gt;
&lt;P&gt;지시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lt;BR&gt;이미 「의문사위원회」 등에서 용공 조작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재심이 청구된 사건을 조사하면서 &lt;/P&gt;
&lt;P&gt;여러 시민단체가 주장한 방향으로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정권과 코드가 맞는 결론이 도출되는 &lt;/P&gt;
&lt;P&gt;상투적인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lt;BR&gt;굳이 지난 번 김형욱 실종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재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그들의 활동이 &lt;/P&gt;
&lt;P&gt;진실규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며 오로지 특정인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lt;/P&gt;
&lt;P&gt;또 다른 특정인이 바라는 바를 대행해주는 정치적 폭력청부업자로 전락하였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lt;BR&gt;&lt;BR&gt;&lt;대한민국 정체성 허물기, 김대중 제2건국 운동 노무현 과거사진상규명운동으로 절정에&gt;&lt;BR&gt;&lt;BR&gt;작년 12월 27일 법원은 74년 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재심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64년 1차 인혁당 &lt;/P&gt;
&lt;P&gt;사건은 조작이 아니라는 점을 법원은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동안 1. 2차 인혁당 사건 모두가 &lt;/P&gt;
&lt;P&gt;조작되었음을 주장해왔던 좌익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lt;BR&gt;작년 1월28일자 코나스(안보신문)의 김철 기자가 쓴 󰡐국정원 과거사, 객관적 진실규명 기대 어렵다. &lt;/P&gt;
&lt;P&gt;진상규명 민간위원 10명 전원 민족해방(NL)계열..편향성 지적󰡑제하의 기사를 보면 국정원 &lt;/P&gt;
&lt;P&gt;과거사진실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위원들의 성향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하나같이 좌파를 &lt;/P&gt;
&lt;P&gt;지향하고 있는 편향적 인물들이며 지금도 국가보안법 철폐, 범민련 한총련 등의 이적단체 합법화 추진, &lt;/P&gt;
&lt;P&gt;송두율 무죄처리등 소위 민족공조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lt;/P&gt;
&lt;P&gt;이것만 보더라도 이들이 과연 진실을 규명하고 있는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lt;BR&gt;&lt;BR&gt;&lt;「역사바로세우기」에서 시작, 제2 건국→태극기 부정까지&gt;&lt;BR&gt;&lt;BR&gt;이것이야 말로 과거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서부터 출발한 대한민국 정체성 허물기 &lt;/P&gt;
&lt;P&gt;작업이 김대중 정권의 제2건국운동(여기서부터 태극기, 애국가 부정운동이 출발하였다)을 거쳐 &lt;/P&gt;
&lt;P&gt;현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 진상규명운동으로 절정에 올랐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lt;/P&gt;
&lt;P&gt;이것으로써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추진을 거쳐 다음 단계인 군축, 평화협상을 마무리하면 저들이 &lt;/P&gt;
&lt;P&gt;바라는 적화통일의 완결로 되는 것이다.&lt;BR&gt;물론 인혁당이 반국가단체라 하더라도 조직의 특성상 거기에 가담한 일부는 모르고 가입했을 가능성이 &lt;/P&gt;
&lt;P&gt;있고 수사 도중에 억울한 혐의가 추가된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이 사건 전체가 &lt;/P&gt;
&lt;P&gt;정권의 조작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국가전복 행위를 뒤덮으려는 &lt;/P&gt;
&lt;P&gt;역사왜곡이고 또 다른 범죄행위임이 분명한 것이다. &lt;BR&gt;또한&amp;nbsp;&amp;nbsp;필자가 한 가지 더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만복 국정원 &lt;/P&gt;
&lt;P&gt;기조실장의 이력에 대해서이다. 김만복 기조실장은 과거 부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lt;/P&gt;
&lt;P&gt;동아일보 기자를 지내다가 60년대 말 당시 중앙정보부가 시국사건담당부서인 제6국을 창설할 때 &lt;/P&gt;
&lt;P&gt;창설요원으로 특채된 인물이다.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을 직접 조사한 장본인인 것이다. &lt;BR&gt;&lt;BR&gt;&lt;과거사진실 왜곡위원회로 명칭 바꾸던지 그만 해체하던지 용단을 내리기 바란다&gt;&lt;BR&gt;&lt;BR&gt;그는 김대중 정부 말기 국정원에서 해임되었다가 세종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는데 당시 세종연구소에 &lt;/P&gt;
&lt;P&gt;있던 이종석씨가 NSC 사무차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그의 추천으로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lt;/P&gt;
&lt;P&gt;정보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대학동문인 김승규 국정원장이 취임하게 되자 &lt;/P&gt;
&lt;P&gt;기조실장으로 임명되어 도청사건과 과거사 진실위 활동을&amp;nbsp;&amp;nbsp;총괄하고 있는 것이다. &lt;BR&gt;그런 인물이 자기가 과거에 직접 조사한 사건을 180도로 뒤집어서 발표하는데 참여한 것이다.&amp;nbsp;&amp;nbsp;&lt;/P&gt;
&lt;P&gt;이 세상에 자신이 조사한 사건을 자기 손으로 직접 뒤집는 사람은 없다. &lt;/P&gt;
&lt;P&gt;이는 도의적으로도 있을 수 없고 이런 해바라기성 인물이 발표한 결과가 과연 믿을 만 하다고 볼 수 있을까. &lt;BR&gt;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는 이제 국정원 과거사진실왜곡위원회로 명칭을 바꾸던지 아까운 국가재정을 &lt;/P&gt;
&lt;P&gt;낭비하지 말고 그만 해체하던지 용단을 내리기 바란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포커스] 진실위의 역겨운 &quot;인혁당 발표&quot;를 보고.. &lt;BR&gt;&lt;/STRONG&gt;- 박정희 정권의 조작보다 더 기만적인 노무현 정권의 조작.. &lt;BR&gt;(시대유감)&lt;BR&gt;&amp;nbsp; &lt;BR&gt;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lt;/P&gt;
&lt;P&gt;발표하였다.. 발표에 의하면 1차 인혁당사건은 강령과 규약이 일부 논의됐어도 채택된 적이 없고, &lt;/P&gt;
&lt;P&gt;당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고 주장을 했다.. 2차 인혁당(민청학련)사건 &lt;/P&gt;
&lt;P&gt;역시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반유신투쟁을 위한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이며 그들의 목적이 &lt;/P&gt;
&lt;P&gt;사회주의건설이 아닌 민주투쟁이라고 주장을 했다..&lt;/P&gt;
&lt;P&gt;즉 유신에 반대하는 민주세력을 박정희 정권이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세력으로 &lt;/P&gt;
&lt;P&gt;왜곡하여 탄압을 했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요지다.. 그리고 인혁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lt;/P&gt;
&lt;P&gt;고문과 인권유린이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들의 사형을 지시했다는 내용을 증거 없이 상황논리에 &lt;/P&gt;
&lt;P&gt;따른 추론으로 확정 지어 발표를 했다.. 나는 이 발표를 보고 웃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기 때문이고, &lt;/P&gt;
&lt;P&gt;너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lt;/P&gt;
&lt;P&gt;나 역시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처리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lt;/P&gt;
&lt;P&gt;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무리수나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lt;/P&gt;
&lt;P&gt;나 역시 유감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실위의 발표는 나를 웃겼다.. &lt;/P&gt;
&lt;P&gt;왜냐면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처리한 것 보다도 더 큰 왜곡과 뻔뻔한 기만이 그들의 발표에서 &lt;/P&gt;
&lt;P&gt;보여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철면피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lt;/P&gt;
&lt;P&gt;먼저 인혁당 사건이 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혁당이란 인민혁명당의 약자다.. &lt;/P&gt;
&lt;P&gt;한일협정반대데모와 유신헌법 철회 데모가 가열되었던 1974년 계엄령을 선포 하에서 발생된 &lt;/P&gt;
&lt;P&gt;두 차례의 용공 사건을 인혁당 사건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1차 사건의 경우 당시 한일회담반대투쟁을 &lt;/P&gt;
&lt;P&gt;주도했던 서울대의 “불꽃회”와 고려대의 “구국투쟁위원회” 등을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한 공산혁명세력으로 &lt;/P&gt;
&lt;P&gt;적발한 사건이다.. &lt;/P&gt;
&lt;P&gt;2차 인혁당 사건은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불리 우는데, 유신독재반대투쟁을 주도했던 배후세력이 &lt;/P&gt;
&lt;P&gt;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북과 내통하는 공산혁명세력으로 적발 된 사건이다.. &lt;/P&gt;
&lt;P&gt;진실위의 발표는 이들이 공산혁명을 추구하는 용공세력이라는 박 정권 시절의 판결이 조작된 것이며, &lt;/P&gt;
&lt;P&gt;북한의 방송을 몇 번 청취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공산혁명세력은 아니고 단지 한일협정과 유신체제에 &lt;/P&gt;
&lt;P&gt;반대한 민주세력이라는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lt;/P&gt;
&lt;P&gt;그런데 과연 그럴까? 진실위의 판단은 좌파들이 그토록 수구언론으로 매도하는 신동아나 월간중앙에 &lt;/P&gt;
&lt;P&gt;80년대 게재되었던 수준의 내용일 뿐이다.. 사실 인혁당 사건은 그리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lt;/P&gt;
&lt;P&gt;또한 인혁당 사건에 대한 그간의 담론의 조작의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본질과는 다소 괴리가 있었다.. &lt;/P&gt;
&lt;P&gt;신동아나 월간중앙의 기사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접근한 기사에 불과할 뿐이다..&lt;/P&gt;
&lt;P&gt;아이러니한 사실은 인혁당 사태에 대해 가장 깊은 수준의 연구를 했던 것이 80년대 NL(주사파)과 &lt;/P&gt;
&lt;P&gt;PD(맑스파)로 나누어지는 당시 학생운동 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남한사회의 좌파세력의 &lt;/P&gt;
&lt;P&gt;상황을 정확하게 분석을 한다.. 60년대 이전 북한의 노동당을 전위정당으로 규정하는 “민주 기지론”에 의거 &lt;/P&gt;
&lt;P&gt;활동하던 남한의 좌익들은, 60년 이후의 상황변화에 따라 남한 내의 독자적인 지하당의 필요성을 &lt;/P&gt;
&lt;P&gt;제기하며 “민주기지노선 하에서 지역혁명론”을 제기했다..&lt;/P&gt;
&lt;P&gt;즉 “남한 인민들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를 지침으로 &lt;/P&gt;
&lt;P&gt;하는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형명적 당을 독자적으로 꾸려야 하며, &lt;/P&gt;
&lt;P&gt;이 당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혁당 사건이나 &lt;/P&gt;
&lt;P&gt;통혁당 사건 같은 박정희 시절의 공안사건을 남한 내에 전위조직을 건설하는 혁명과업의 과정으로 판단을 한다..&lt;/P&gt;
&lt;P&gt;또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부산의 암장(마그마)그룹은 1954년 고교학습서클로 태동하였지만, &lt;/P&gt;
&lt;P&gt;4.19 당시 또 다른 인혁당 사건의 연루자들인 도예종, 서도원 등을 만나 전위그룹을 형성하며 맑스레닌선집, &lt;/P&gt;
&lt;P&gt;스탈린선집, 도이치이데올로기, 반듀링론, 공산당사 등 각종의 이론서와 월북작가, 역사학자들의 책을 섭렵하며 &lt;/P&gt;
&lt;P&gt;공산혁명운동을 수행하였다. 그 중에는 인혁당을 80년대 학생운동 양대세력 중 맑스파인 &lt;/P&gt;
&lt;P&gt;PD세력의 원조로, 통혁당은 NL세력의 원조로 보는 자들까지도 있었다..&lt;/P&gt;
&lt;P&gt;또한 좌파 역사학자들은 인민혁명당이라는 이름이 베트남의 인민혁명당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주장을 한다.. &lt;/P&gt;
&lt;P&gt;이들이 이러한 이름을 정한 이유는 베트남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베트남의 노동당을 형제당으로 &lt;/P&gt;
&lt;P&gt;생각했던 남베트남 공산세력과 같이, 북한 노동당을 형제당으로 생각하는 남한 노동당의 입장을 강조하기 &lt;/P&gt;
&lt;P&gt;위함이라고까지 주장을 한다.. 좌파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자료는 다 인용할 수 없을 만큼 많다..&lt;/P&gt;
&lt;P&gt;즉, 인혁당 사건이 당시 남한 내의 공산혁명세력이 북한 노동당과 형제의 관계를 유지하며 남한 내의 &lt;/P&gt;
&lt;P&gt;공산혁명을 주도했던 전위 조직임은 좌파 역사학자들이 커밍아웃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진실위는 &lt;/P&gt;
&lt;P&gt;뻔뻔하기 그지 없게 이들을 공산혁명세력이 아닌 민주세력으로 둔갑을 시키며 대국민 기만을 하고 있다.. &lt;/P&gt;
&lt;P&gt;흘러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들을 복권 시키고 국가에서 보상금도 주며, 민주투사로 둔갑을 시킬 모양이다..&lt;/P&gt;
&lt;P&gt;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처리가 절차나 과정상 여러 가지 &lt;/P&gt;
&lt;P&gt;문제가 있으며 유감으로 생각을 한다.. 형량도 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해서, &lt;/P&gt;
&lt;P&gt;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공산주의자들이 민주투사로 둔갑을 한다는 것은 또 한번의 기만이며 조작이고 &lt;/P&gt;
&lt;P&gt;대국민 사기극이 아니겠는가? 물론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솔직히 까 놓고 이야기를 해 보자..&lt;/P&gt;
&lt;P&gt;쉬쉬하지만 우리사회에 모두 다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 지금 현정권의 주축이 된 80년대 &lt;/P&gt;
&lt;P&gt;학생운동권 세력들의 정체가 뭐냐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민주투사를 참칭하고 있지만, &lt;/P&gt;
&lt;P&gt;그들이 주체사상이나 맑시즘을 추종하며 남한 내의 공산혁명을 꿈꾸던 자들이 아닌가? &lt;/P&gt;
&lt;P&gt;부디 아니라고 하지 말기 바란다.. 나 역시 그 조직의 한 부분에 속해 있었고 경험한 사실이니 말이다.. &lt;/P&gt;
&lt;P&gt;위에 인용한 자료도 원한다면 출처를 다 알려줄 수 있다..&lt;/P&gt;
&lt;P&gt;그런 자들이 정권을 잡고 스스로 민주투사를 참칭하고 있으니,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공산혁명분자들 &lt;/P&gt;
&lt;P&gt;역시 민주투사로 둔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이 구린 것이 있으면 &lt;/P&gt;
&lt;P&gt;차라리 하지를 말던지, 도대체 이 기만적이고 비열한 정권을 어찌 평가해야 할까! 예측은 했지만, &lt;/P&gt;
&lt;P&gt;너무도 뻔뻔한 그들의 기만에 치가 떨릴 정도다.. 부디 해도 해도 정도 껏 하기를 바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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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재야의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께서 드디어 &lt;BR&gt;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lt;BR&gt;박정희는 그래도 백기완 같은 사람들 3만명을 못살게 했지만 &lt;BR&gt;수많은 국민들은 배불리 먹고살게 해주었지만 &lt;BR&gt;어설푼 민주화를 한다는 두김씨와 노무현 추종세력들은 &lt;BR&gt;대부분의 국민들을 거지 일보직전으로 만드러 놓았다고 &lt;BR&gt;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lt;BR&gt;&lt;BR&gt;&lt;BR&gt;제목 : 백기완선생의 박정희대통령 평가 &lt;BR&gt;퍼온 글입니다. &lt;BR&gt;-------------------------------------------- &lt;BR&gt;&lt;BR&gt;60년대 당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lt;BR&gt;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빨리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라고 &lt;BR&gt;기네스북에 오른나라, &lt;BR&gt;&lt;BR&gt;경부고속도로를 만들때 가장 반대한 분들을 아시는지요? &lt;BR&gt;&lt;BR&gt;당시 그 누구든지 대통령이었다면 그 정도 경제 발전은 &lt;BR&gt;이루었다고 하신 분들을 아시는지요? 이야기하기는 쉽습니다. &lt;BR&gt;&lt;BR&gt;몇 년 전에 세종문화회관 뒤에 백범연구소로 백기완 선생을 찾아가서 소주 한 잔하며 귀국인사를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드린 적이 있는데(이분은 소주병 들고 찾아가면 참 좋아하십니다) 백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lt;BR&gt;&lt;BR&gt;박정희는 나같은 인간 3만명 정도 못 살게하고 &lt;BR&gt;일반 국민은 그래도 등 따시고 배 부르게는 했는데 &lt;BR&gt;지금 양김 대통령은 국민을 거지로 만들었다고 하며 어찌된 나라가 &lt;BR&gt;전두환부터는 대통령되면 지뱃속차리기만 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국가의 비젼도 있는지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없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더군요. &lt;BR&gt;&lt;BR&gt;지난 후에 과거를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lt;BR&gt;당시의 시대 상황을 모르면 더더욱 비판이 쉬울지 모릅니다. &lt;BR&gt;&lt;BR&gt;분명 과거에 잘못한 것과 잘된 부분은 구분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lt;BR&gt;계승 발전 할 것은 계승해야 하는데 과거는 다 잘못됐다 하며 단절하고 잘못된 것은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모두 과거의 유물로 돌리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요? &lt;BR&gt;&lt;BR&gt;박통 18년하고 양김 10년입니다. 거기에 전, 노 합하면 &lt;BR&gt;거의 같은 기간이 지난 지금도 잘못된 것을 모두 박정희 유물로 돌리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까요? &lt;BR&gt;&lt;BR&gt;독재자의 딸하며 과거와 계속 연관 지으며 그 연속석상에서 생각할려고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lt;BR&gt;&lt;BR&gt;모로 젊은이는 미래를 생각해야지 모두를 과거의 탓으로 &lt;BR&gt;돌리는 것은 국가장래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겁니다 &lt;BR&gt;&lt;BR&gt;&lt;BR&gt;(덧글 1) &lt;BR&gt;&quot;...백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박정희는 나같은인간 3만명정도 못살게하고 &lt;BR&gt;일반국민은 그래도 등따시고 배부르게는했는데 지금 양김대통령은 국민을 &lt;BR&gt;거지로 만들었다고 하며 어찌된나라가 전두환부터는 대통령되면 지뱃속 &lt;BR&gt;차리기만 하고 국민 은 안중에도 없고 국가의 비젼도 있는지 없는지 &lt;BR&gt;모르겠다고 한숨을 쉬더군요...&quot; &lt;BR&gt;&lt;BR&gt;아래 글중에서 백기완선생님의 말씀을 적은 &lt;BR&gt;부분을 옮겨 보았습니다. 이것을 읽자마자 &lt;BR&gt;&quot;아, 역시 백기완선생님이시구나!!!&quot;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lt;BR&gt;&lt;BR&gt;요즘 신세대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lt;BR&gt;제가 대학다닐때 대학생들간에 백기완선생의 인기는 대단했었지요. &lt;BR&gt;백발에 도포자락 휘날리는 모습도 멋있었고, &lt;BR&gt;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사람들을 휘어잡은 그 무엇인가가 있었고요. &lt;BR&gt;&lt;BR&gt;서구 선진국들의 근대부터의 발전과정을 보면, &lt;BR&gt;근대화가 되는 동시에 민주화가 이루어 진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lt;BR&gt;&lt;BR&gt;하지만, 우리는 해방후 이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lt;BR&gt;얻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요. &lt;BR&gt;&lt;BR&gt;먹고 살만하지만 독재에 신음하는 나라, &lt;BR&gt;깡통차는 주제에 자유만 많은 나라, &lt;BR&gt;이 두가지 모두 우리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을겁니다. &lt;BR&gt;&lt;BR&gt;둘중 어느 하나도 놓칠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한사람은 &lt;BR&gt;조국근대화를 또 한사람은 민주화를 위해서 &lt;BR&gt;평생을 바친것이랄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구요. &lt;BR&gt;&lt;BR&gt;백기완 선생도 박정희 무지 싫어 하실겁니다. 하지만, &lt;BR&gt;그렇게 말씀하실수 있는 이유는 &quot;자유&quot;라는 본질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계시기때문이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아닐까 생각됩니다. &lt;BR&gt;&lt;BR&gt;새가 한쪽의 날개만으로 날수 없듯이, 자유나 민주라는 것도 &lt;BR&gt;나라가 잘살지 못하면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을.&amp;nbsp;&lt;BR&gt; &lt;BR&gt;상어지느러미와 닭대가리 &lt;BR&gt;&lt;BR&gt;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lt;BR&gt;&lt;BR&gt;지난 80년대초, 무슨 일로 쫓겨다닐 적이다. &lt;BR&gt;계훈제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lt;BR&gt;누가 만나자고 하니 어서 신라여관(호텔) 찻집으로 오라고. &lt;BR&gt;놀랄 일이다. &lt;BR&gt;&lt;BR&gt;우리 둘은 노상 만났어도 그 같이 비싼 집에서 만난 적은 &lt;BR&gt;한번도 없었다. &lt;BR&gt;그런데 웬일일까. 하지만 나는 이내 잡히는 것이 있었다. &lt;BR&gt;&lt;BR&gt;그것은 우리를 쫓느라면 노상 뒷골목이나 뒤지는 기관원들의 어림을 비껴가자는 계선생의 타고난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전략일거라고 생각되었던것이다. &lt;BR&gt;&lt;BR&gt;그래서 떡하니 빌린거(택시)를 하나 잡아타고 갔는데 &lt;BR&gt;그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lt;BR&gt;&lt;BR&gt;찻집 사람이 와서 무슨 차를 들겠느냔다. &lt;BR&gt;아무거나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자 계선생은 도통 차를 안 마시는데도 커피를 두 잔이나 가져와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내가 다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lt;BR&gt;&lt;BR&gt;빈 속이 쓰린데도 말이다.그런데도 오겠다던 사람은 아니와 이상하게 여겨 자리를 옮기느라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찻값을 서둘러 치르려던 계선생과 그 찻집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었다. &lt;BR&gt;&lt;BR&gt;&quot;찻값이 왜 이리 바싸? 그까짓 볶은 콩을 우려낸 물값이 &lt;BR&gt;국수 네그릇 값보다 많으니 이거 잘못 계산한 거 아니냐&quot;고 &lt;BR&gt;따지자 그 찻집 사람이 받아친다. &lt;BR&gt;&lt;BR&gt;&quot;여기는 그런데라고.&quot; &quot;뭐야,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lt;BR&gt;사는 데가 아니고 돈을 물타먹는 도둑놈들만 사는 데란 말 아니냐. &lt;BR&gt;못된 것들 민주화란 딴게 아니구먼. &lt;BR&gt;&lt;BR&gt;군사독재와 함께 썩어문드러진 것들도 모두 청산하는 것이지…. &lt;BR&gt;&quot;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서 날씨도 으실으실해 얼핏 &lt;BR&gt;계선생의 팔짱을 끼고 간다는 곳이 시장 뒷골목 더듬한 찜닭집. &lt;BR&gt;&lt;BR&gt;거기서 닭 한마리가 아니라 반마리, 국수 두그릇이 아니라 한그릇, &lt;BR&gt;쐬주 한병이 아니라 대포 한잔, 이렇게 시켰는데 워낙 찜닭을 좋아하시는 터라 나는 손도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안댔는데도 어느새 뼈만 남기시기로 &lt;BR&gt;&lt;BR&gt;나는 아주머니를 불러 닭대가리가 있으면 한사발 달라고 했을 때다. &lt;BR&gt;계선생이 슬며시 일어나시며 곧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계선생이 잘못 지레잡은 것이었다.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그 집에선 닭대가리는 거저다. &lt;BR&gt;&lt;BR&gt;그런데 입때껏 먹은 값은 되겠는데 닭대가리를 또 시켰으니 &lt;BR&gt;돈을 구하러 가신 모양이었다. &lt;BR&gt;그러니 내 엉덩이가 오죽 바늘 방석이랴.대포를 깡으로 두잔이나 마셨는데도 도통 오시질 않으니 어쩔건가. &lt;BR&gt;&lt;BR&gt;그 게딱지 같은 집에 손님은 밀리고 밤은 깊어가고 슬며시 일어나자니 돈은 없고 에라 모르겠다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석잔째 마실적이다.&quot;실례합니다. 백선생이지요. 잠깐 가셔야겠는데요.&quot;라며 &lt;BR&gt;철컥 고랑을 채워 끌려나올 때 &lt;BR&gt;계선생이 골목으로 접어들다가 이를 보고 멈칫 몸을 사리신다. &lt;BR&gt;&lt;BR&gt;나는 나도 모르게 계선생! 하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lt;BR&gt;얼핏 목젖을 적시며 혼자 웅얼댔다. &lt;BR&gt;&lt;BR&gt;&quot;고얀 넝감,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오죽 좋아&quot; 그러는데, 닭집 아주머니가 내 등에다 칼을 꽂는다.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quot;아, 닭대가리를 공으로 먹었으면 찜닭값은 내야지, 그냥 가니까 밤나닥 잡혀다니지 엠병할….&quot; &lt;BR&gt;&lt;BR&gt;그 뒤 나는 잡혀갔다가 나왔지만 그집이 없어져 외상값은 못 갚고 계선생과 함께 한숨 짓던 생각이 난다.&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quot;엠병할 자식들, 찻값만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도 닭값을 잘라먹진 않았을 터인데 말이야.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잡혀가지도 않았고.&quot; &lt;BR&gt;&lt;BR&gt;계선생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 그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계선생이 눈시울을 글썽인다.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quot;이번에 일어나면 말이야, 거 뜨끈한 찜닭 한 놈 먹자우. 닭대가리도 좀 먹구. 그건 공짜라면서?&quot;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나는 딴 것은 몰라도 이 다짐만큼은 꼭 지키려고 했었는데 또다시 꽝!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그리고 세월은 흘러 20여년, 21년을 일한 일터에서 한달에 받는 돈이 세금, 손배가압류, 집세,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이자따위를 빼면 오매 12만 9천원, 그걸 갖고 어떻게 사느냐고 울부짖다 몸에 불을 지른 &lt;BR&gt;&lt;BR&gt;한진중공업 노동자의 뜻을 살리자는 모임엘 갔다오는 길이었다.신문을 보니 바로 그 신라여관과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권노갑씨 이야기가 나와 있어 나는 나도 모르게 원 저런저런 하는 소리와 함께 멍하니 입을 벌리지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않을 수가 없었다. &lt;BR&gt;&lt;BR&gt;권씨도 그 비싼 찻집에서 찻값 때문에 비참한 꼴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실려있기 때문이었을까.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아니다. 김대중 정권의 햇빛정책에 따라 북쪽과 거래를 트는데 도와주겠다며 현대재벌로부터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자그마치 200억원을 받고 이어서 3천만불을 받었는데 그 현장검증을 한다는 기사다.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얼짬(순간) 나는 혼자서 웅얼댔다.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quot;그놈이 그놈이구먼. 정치권력만 쥐었다고 하면 수천억씩 해처먹고 야당이라는 것은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한 재벌한테만 100억을 받아처먹고 더구나 노무현씨는 &lt;BR&gt;&lt;BR&gt;대통령이 된지 오매 몇 개월밖에 안됐는데도 비서라는 것들이 줄줄이 해처먹다 들통나고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그놈이 그놈, 이게 썅(도대체) 사람의 세상인가&quot;하고 주절댔지 결코 놀라진 않았다. &lt;BR&gt;&lt;BR&gt;하지만 또 한귀퉁이 기사를 보고서는 늙은 주먹일망정 &lt;BR&gt;내 손의 식은땀마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것을 느꼈다. &lt;BR&gt;&lt;BR&gt;으드득.그것은 딴게 아니었다. 권씨가 바로 그 비싼집에서 &lt;BR&gt;상어지느러미를 곁들인 한끼 밥값이 30만원씩이나 하는 것을 일주일에 서너차례씩 와서 먹었다는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그집 일꾼의 증언 기사였다. &lt;BR&gt;&lt;BR&gt;점심 한끼 값이 30만원? 그것은 얼마만한 돈일까. &lt;BR&gt;찜닭 반마리 값의 예순배다. 그것을 네댓사람이 함께 술까지 곁들여 먹은 밥값은 약 140만원.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찜닭 반마리의 240배. &lt;BR&gt;그것을 처먹으면서 뇌까린 민주화요, &lt;BR&gt;통일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lt;BR&gt;&lt;BR&gt;도제 내 힘으로는 어림을 할 수가 없는지 두 다리가 휘청거려져 &lt;BR&gt;늦은 가을비 내리는 거리에서 그저 힘없는 발을 구르는 수밖에 없었다. &lt;BR&gt;&lt;BR&gt;&quot;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 내가 잘못 살아왔다.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lt;/FONT&gt;&lt;/TT&gt;&lt;/P&gt;
&lt;P&gt;&lt;TT&gt;&lt;FONT face=굴림체&gt;이제부터 나의 명제, 참 민주화다, &lt;BR&gt;통일이다 하는 것들은 첫판부터 다시 차름(시작)하는 &lt;BR&gt;수밖에 없겠구나. 남은 목숨을 몽창 걸고.&quot; &lt;BR&gt;그런 푸념을 하면서 20여년전 계선생과 같이 갔던 닭대가리집 &lt;BR&gt;언저리를 두리번 두리번 했지만 아무도 없구나. &lt;BR&gt;&lt;BR&gt;모두들 어딜 갔단 말인가. 차가운 가을비는 전과 똑같은데 아.. &lt;BR&gt;모두들 어딜 갔단 말인가…. &lt;BR&gt;&lt;BR&gt;햄버거 간판을 흔드는 가을 바람보다 더 세차게 늙은 주먹이 울었다. &lt;BR&gt;&lt;BR&gt;2003.11. &amp;nbsp;&lt;/FONT&gt;&lt;/TT&gt; &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겨 우 살 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ljs2000y/15965311"/>
		<id>tag:blog.daum.net,2009:ljs2000y.15965311</id>
	    <author>
		    <name>재똥이</name>
	    </author>
	    <updated>2009-11-16T07:18:04Z</updated>
	    <published>2009-11-16T07:18: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겨 우 살 이&lt;/SPAN&gt;&lt;/SPAN&gt;&lt;BR&gt;&lt;/FON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Vis cum a lbum va r . co lorat um (Kom. ) Ohwi [겨우살이科]&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英) Mi s t le t oe (漢) 寄生木, 凍靑&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참나무류, 팽나무, 오리나무류, 밤나무 및 자작나무 등의 줄기와 가지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붙어서 기생하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常綠葉灌木으로 둥지같이 둥글게 자라고 樹冠幅이 1m에 달하며 한국, 중국, 일본, 유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프리카 등지에 分布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지가 두갈래로 계속 갈라지고 끝에 두 개의 잎이 對生한다. 가지는 둥글고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황녹색으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서 마디사이가 3~6cm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잎은 披針形이고 길이 3~6cm, 넓이 6~12mm로 앞뒤가 똑같고 짙은&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녹색으로 두꺼우며 물기가 많고 潤彩가 없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꽃은 雌雄二家花로 이른봄 가지 끝에 연노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색의 작은 꽃이 핀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열매는 공모양이고 익으면 연노란색으로 半透明體가 되며 속에 끈적&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끈적한 진을 지니고 있어서 새들에 의해 다른 나무로 옮겨진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뽕나무에서 자라는 겨우살이는 상상기생이라고 해서 약으로 더욱 좋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漢方에서는 줄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와 잎을 여름, 가을에 採取하여 그늘에 말려서 治寒, 平補劑,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治痛, 刺痛, 腰痛, 婦人産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諸症에 사용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최근 겨우살이 汁이 항암제로 연구중에 있으며 약효가 크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常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性가지는 裝飾用으로 사용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繁殖은 매우 어려우며 조류가 먹고난 후 排泄物에 의한 전파로만 發芽되는 듯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참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무 등의 줄기에 약간의 상처를 내고 끈적끈적한 種子와 함께 줄기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묻어 놓으면 發芽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열매가 적색으로 성숙하는 것을 붉은겨우살이( for . rubroaurant iacum Ohwi ) 라고 한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마의 효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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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ljs2000y.15965310</id>
	    <author>
		    <name>재똥이</name>
	    </author>
	    <updated>2009-11-14T08:35:28Z</updated>
	    <published>2009-11-14T08:35: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cc00ff&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마의 효능*&lt;/SPAN&gt;&lt;/FONT&gt;&lt;/STRONG&gt;&lt;BR&gt;&lt;BR&gt;&lt;/FONT&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숙취에도 좋은 효과가 있어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학습능력증진, 숙취해소, 혈당저하, 피부미용, &lt;/SPAN&gt;&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정력강화, 소화촉진, 변비, 설사, 피로회복, 요통, 건위,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동상, 화상, 유종,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양모, 갑선선종, 심장염, 유정(遺精), 유뇨증(遺尿症)신체허약, 폐결핵, 당뇨병,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대하증, 자양강장 등에 효능이 있습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특히 마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줌으로써 당뇨병을 예방 치료하는데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큰 도움을 줍니다.&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또한 소화불량, 신경통, 요통, 건망증, 시력장애, 소갈, 만성신장염, 혈압정상화,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염증제거, 콜레스테롤 제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혈, 동상과 피부미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대단히 유용한 생약입니다.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또한 마는 기억력을 도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고급 일식집에서는 음주 전 생즙을 조금씩 마십니다.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474747&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오래된 마는 산삼의 효능에 비견될 정도입니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식욕이 감퇴하여 원기가 부족할 때는 연밥, 인삼 등과 함께 달여 먹으면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좋습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정액이 새거나 잠잘 때 식은땀을 흘릴 경우 숙지황, 산수유 등과 달여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복용합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당뇨병에도 매일 달여 장기간 차 대신 복용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미용, 해열 등에 작용이 있습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두뇌가 좋아지며 발육이 좋아져 수험생간식으로 좋습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소화불량, 설사에 좋으며, 기력을 증진시켜 줍니다.&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강장, 미용, 해열 등의 작용이 있으며 근육과 골격, 심장, 뇌 등을 튼튼하게 하며, 기억력이 나쁜 건망증을 고치며 잠자면서 맥없이 나오는 몽정, 유정 그리고 신경쇠약증도 고친다고 되어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주요성분은 전분, 당분(포도당, 과당), 점액질(뮤신이라는 단백질), 글루고사민, 타이로산, 로이신, 프루타민산, 아르기닌 등아미노산 및 소화효소인 디아스타제등이 들어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뮤신이라는 성분은 위약이 위를 부식시키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마의 복용을 통하여 뮤신을 섭취하게 되므로 위벽보호, 소화성 귀양을 예방할 수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는 사람의 영양식으로 좋으며, 과도한 스트레스,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노이로제 증세가 있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건강식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어린이의 두뇌 발달을 촉진하며, 폐와 기관지 강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마를 썰어 넣고 죽을 끓이거나 마와 구기자를 함께 끓여서 스프를 만들어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먹이면 좋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흡연으로 목이 답답한 사람, 술 마시고 속이 불편할 때 마를 복용하면 &lt;/SPAN&gt;&lt;/FONT&gt;&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cc00ff&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효과가 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생활에 활력이 없을 때나 원기회복에 아주 좋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특히 남성들의 정력증강 및 원기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lt;/SPAN&gt;&lt;/FONT&gt;&lt;/FONT&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악대설화(幄對說話)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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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재똥이</name>
	    </author>
	    <updated>2009-11-11T05:59:39Z</updated>
	    <published>2009-11-11T05:59: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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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htitle&gt;&lt;SPAN class=&quot;pcol1 itemSubjectBoldfont&quot;&gt;&lt;FONT color=#3058d2 size=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악대설화(幄對說話) &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gt;&lt;SPAN class=&quot;cate pcol2&quot;&gt;&lt;STRONG&gt;&lt;FONT color=#3058d2&gt;&lt;FONT size=4&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IMG class=&quot;pcol2b fil3&quot; src=&quot;http://blogimgs.naver.com/imgs/nblog/spc.gif&quot; width=1 height=11&gt;&lt;/SPAN&gt;&lt;/FONT&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DIV&gt;
&lt;P class=&quot;date fil5 pcol2&quot;&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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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尤庵 宋時烈&lt;/SPAN&gt;&lt;/STRONG&gt;(우암 송시열)&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기해년(1659, 효종10) 3월 11일에 희정당(煕政堂)에서 소대(召對)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상(上)이 이르기를, “제신(諸臣)들은 모두 나가고 이조 판서(吏曹判書 송시열을 가리킴)만 남아 있도록 하라.”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제신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상이 중관(中官)으로 하여금 문을 활짝 열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너희들도 모두 멀리 물러가 있도록 하라.”&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였다. 그런 다음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卿)과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어 여러 달을 기다렸지만 끝내 기회가 없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므로 오늘은 마음먹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오. 오늘은 나도 다행히 기운이 회복되었으니, 내 뜻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다 말할 수 있을 것이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고는, 이어 탄식하며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대사를 말하자는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저 오랑캐는 반드시 망하게 될 형편에 처해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예전의 칸[汗 청 나라 군주를 낮게 칭하는 말]은 그 형제들이 매우 번성했었는데 지금은 점점 줄어들었으며, &lt;/P&gt;
&lt;P class=바탕글&gt;예전의 칸은 인재가 매우 많았는데 지금은 모두 용렬하며, 예전의 칸은 오로지 무예와 전쟁만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숭상했었는데 지금은 점점 무사(武事)를 폐하고 자못 중국의 일을 본받고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것이 바로 경이 지난번 주자(朱子)의 말씀을 들어 말한바 ‘오랑캐가 중원(中原)의 인재를 얻어 중국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제도를 배우면 점점 쇠약해진다.’는 것일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지금의 칸이 비록 영웅이라고는 하나, 주색(酒色)에 깊이 빠져 있어 그 형세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랑캐의 일은 내 익히 알고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하들은 모두 내가 병사(兵事)를 다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나,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이유는 천시(天時)와 인사(人事)의 좋은 기회가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므로 정예화된 포병(砲兵) 10만을 길러 자식처럼 사랑하고 위무하여 모두 결사적으로 싸우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용감한 병사로 만든 다음, 기회를 봐서 저들이 예기치 못하였을 때에 곧장 관(關)으로 쳐들어갈 계획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면 중원의 의사(義士)와 호걸 중에 어찌 호응하는 자가 없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아마 곧장 관으로 쳐들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저들은 무비(武備)를 힘쓰지 않아 요동(遼東)과 심양(瀋陽)의 천 리 길에 활을 잡고 말을 타는 자가 &lt;/P&gt;
&lt;P class=바탕글&gt;전혀 없으니, 우리가 쳐들어가면 무인지경에 들어가듯 할 수 있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또 하늘의 뜻을 헤아려 보건대, 우리나라의 세폐(歲幣)를 저들이 모두 요동과 심양에 쌓아 두고 있으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늘의 뜻은 아마 다시 우리의 물건이 되게 하려는 것인 듯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또 우리나라에서 잡혀간 수만 명의 포로가 그곳에 억류되어 있으니, 어찌 내응하는 자가 없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날의 일은 과단성 있게 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할 뿐이지,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않아도&amp;nbsp;될 것이오.” 하여, 이에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전하의 뜻이 이와 같으시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실로 천하 만대의 다행입니다. 그러나 제갈량(諸葛亮)도 &lt;/P&gt;
&lt;P class=바탕글&gt;능히 성공하지 못하고서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것이 세상사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만에 하나 차질이 있어 국가가 망하게 된다면 어찌하시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웃으며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것은 경이 나를 시험하는 말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는 내 능력이 충분히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 아니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다만 천리나 인심으로 보아 그만둘 수 없는데, 어찌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 스스로 포기하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지 않을 수 있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뜻이 진실로 굳게 정해지면 정성이 자연 돈독해지고, 정성이 돈독해지면 능력 또한 키울 수 있는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때문에 항상 스스로 분발하고 있을 뿐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더구나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나는 국가가 망하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늘이 내게 부여해 준 자질이 그리 용렬하지 않은 데다가, 나로 하여금 일찍이 환란을 당하게 하여 나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능하지 못한 면을 능하게 해 주었고, 나로 하여금 일찍이 궁마(弓馬)와 전진(戰陣)의 일을 익히게 하였으며,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로 하여금 저들 속에 들어가 저들의 형세와 산천의 지리를 익히 알게 하였고, 나로 하여금 그곳에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랫동안 있게 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였소.&lt;/P&gt;
&lt;P class=바탕글&gt;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하늘이 나에게 이러한 시련을 겪게 한 뜻이우연하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이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신하들이 없고 내 나이가 점점 많아져 세월만 자꾸 흐르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 생애가 즐겁지 못하였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다 경이 올라온 뒤로 점점 생각이 좋아지게 되었으나, 경 또한 외로운 처지이니 매우 걱정이 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은 당론(黨論)을 하지 않으니, 저쪽이나 이쪽 모두가 도와주지 않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나와 경은 뜻이 같고 생각이 일치되어 항상 골육의 형제와 같으니, 함께 호응해 주는 사람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있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는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10년을 기한으로 삼고 있는데, 앞으로 10년이면 내 나이 50세가 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10년 안에 이 일을 이루지 못하면 나의 지기(志氣)가 점점 쇠하여 다시는 가망이 없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게 되면 나도 경이 물러가기를 허락할 것이고, 그때엔 경이 물러가도 괜찮을 것이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세자(世子)가 매우 총명하니, 아무리 부자간이라 해도 어찌 그 장단점을 알지 못하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아이의 성질이 온순하고 효성스러우며 또 견고한 마음이 있으니, 정녕 수문(守文)의 훌륭한 &lt;/P&gt;
&lt;P class=바탕글&gt;군주가 될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아이는 깊은 궁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병가(兵家)의 일을 알지 못하니, 그에게 어려운 일을 가지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억지로 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아직 천연두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보호하고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또 자주 병을 앓고 아직까지 자식이 없어 극히 염려하고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한편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나이가 어려 혈기가 정해지지 못하였으므로, 정력을 보전하고 아끼지 못해서 &lt;/P&gt;
&lt;P class=바탕글&gt;자식을 낳는 데 좋지 못할까 걱정이 되고, 또 학문에도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때문에 나는 근자에 저곳에다가 인하여 손으로 경의각(敬義閣)을 가리켰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방 하나를 별도로 만들어 그 아이로 하여금 그곳에서 독서를 하게 하고, 근신(謹愼)한 노관(老官)을 뽑아 &lt;/P&gt;
&lt;P class=바탕글&gt;세자와 함께 기거하게 하였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지켜보면서 그 아이로 하여금 때때로 내전(內殿)에 들게 하고 있소.&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id=userImg1410156 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file.dic.daum.net/dic100/brit/files/art/k/k12s007601p4.jpg&quot; 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410156)&quot;,200)'&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부자간의 일은 남에게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경은 골육의 형제와 같기 때문에 숨기지 않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렇게 말하는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날의 이 일은 아마도 나에게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장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세자의 훌륭한 덕(德)은 국가를 편안히 보존할 수는 있겠지만, 이처럼 지극히 어렵고 위태로운 일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해내는 것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또 내가 내전에 들어가는 날은 혈기가 손상될 뿐만 아니라, 지기(志氣) 또한 해이해져서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lt;/P&gt;
&lt;P class=바탕글&gt;온당치 못한 점이 많아지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또 옛사람들이 요절(夭折)한 경우를 보면 대부분 여색과 관계가 있으니, 진실로 무일(無逸)의 경계와 &lt;/P&gt;
&lt;P class=바탕글&gt;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하여 나는 주색을 끊고 경계하여 가까이하지 않은 결과, 이로 인하여 나는 늘 정신이 맑고 몸도 &lt;/P&gt;
&lt;P class=바탕글&gt;건강해졌으니, 어찌 앞으로 10년을 보장할 수 없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늘이 나에게 10년의 기간을 허용해 준다면 성패와 상관없이 한번 거사해 볼 계획이니, 경은 은밀히 &lt;/P&gt;
&lt;P class=바탕글&gt;동지들과 의논해 보도록 하오. 내 소견으로는 송준길(宋浚吉)은 담당할 의사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런 뜻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은 기질이 약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였다.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유태(李惟泰)는 어떻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유태가 항상 말하기를 ‘주상께서 뜻을 굳게 정하신다면 모든 기무를 반드시 치밀하게 한 다음에 &lt;/P&gt;
&lt;P class=바탕글&gt;해야 할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하여 이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더라도 우선 집 뒤에 장사 지내게 하는 식으로 다른 일까지 하여 &lt;/P&gt;
&lt;P class=바탕글&gt;백성을 동원하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재정을 허비하는 등의 모든 일을 일체 중지하며 한결같이 백성을 기르고 양식을 풍족하게 하기를 &lt;/P&gt;
&lt;P class=바탕글&gt;힘써야 한다.’ 하였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기뻐하면서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의 말이 이와 같다면 참으로 쓸 만한 사람이오. 내 생각에 허적(許積)은 굳세고 용감하여 일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맡길 수 있겠으나,&amp;nbsp;다만 주색에&amp;nbsp;빠져 자못 행실이 좋지 않다고 하니, 매우 애석한 일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 일찍이 생각하기를, 나와 이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자는 오랑캐의 손에 죽은 집안의 자제들뿐이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밖의 사람들은 어렵다고 여기고 있었소.&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만수전(萬壽殿)을 지을 적에 터 잡는 일을 핑계로 한곳에 가서 앉아 몇 명을 인견(引見)하고 이 일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은밀히 말하여 시험해 보았는데, 모두 무관심하여 깊이 생각하는 자가 없었으니, 이처럼 통탄할 &lt;/P&gt;
&lt;P class=바탕글&gt;일이 어디 있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하들이 모두 눈앞의 부귀만을 도모하여 이 일을 하면 국가가 망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일을 말하면 모두 간담이 서늘해서 놀라는 것이니, 나 혼자서 부질없이 탄식할 뿐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저들이 모두 제 자손들을 위한 계획만 세우고 나를 도우려 하지 않고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때문에 나도 결국 좋지 못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또 내가 따로 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lt;/P&gt;
&lt;P class=바탕글&gt;아녀(兒女)들을 위하여 집을 짓는 계획을 하였던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대계(大計)가 진실로 정해진다면 아녀들의 집이 이미 완공되었더라도 헐어 버리는 것은 결코 &lt;/P&gt;
&lt;P class=바탕글&gt;어렵지 않을 것이오.”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이 일어나 진언(進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예로부터 제왕들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다스린 뒤에야 법도와 기강을 세워 일에 &lt;/P&gt;
&lt;P class=바탕글&gt;두서가 있게 하였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지금 전하께서는 능히 혼잡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떨쳐 버리지 못하시니 지기(志氣)가 있는 선비들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음이 게을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으며, 뭇 신하들이 제 집안을 살찌우는 데에만 &lt;/P&gt;
&lt;P class=바탕글&gt;힘쓰는 것도 전하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지난 인조(仁祖) 때 윤황(尹煌)의 말에 ‘예로부터 윗사람이 선을 행하여 아랫사람들을 통솔하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우는 있어도, 아랫사람이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데 윗사람이 본받는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 말은 상당히 이치가 있는 말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전하께서 진실로 심신(心身)을 깨끗이 하시어 잡다한 모든 일들을 일체 제거하시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음과 생각에 한결같이 이 일만을 위주로 하신다면, 신하들도 어찌 감히 나라를 위해 제 몸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바치려 하지 않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이 지난번에, 제갈량(諸葛亮)이 우선 사관(史官)을 설치하지 않은 일과 주자(朱子)가 중원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회복되기를 기다려 사당을 세우려 하였던 일을 말씀드린 것은 뜻이 있어 그랬던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의 말이 매우 옳소.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경과 더불어 은밀히 의논할 것이오, 그런데 은밀히 의논하기가 &lt;/P&gt;
&lt;P class=바탕글&gt;극히 어려우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 서서히 그 방도를 생각해 보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후에 과연 이 전교와 같이 은밀히 의논한 일이 있었다. 오늘날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이처럼 극심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재변을 초래하게 되지만,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재변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반드시 이르게 되는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옛날 진 무제(晉武帝)는 창업을 한 다음, 전혀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처럼 재앙과 이변이 자주 일어난 &lt;/P&gt;
&lt;P class=바탕글&gt;적이 없었던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것을 보면 가만히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하늘의 노여움을 사 재변을 초래함을 알 수 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물며 오늘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될 천지의 떳떳한 도리인데, 태연히 하지 않고 있으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늘이 경계하여 재변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날 의논하는 자들은 모두 저 오랑캐에게 투항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감히 &lt;/P&gt;
&lt;P class=바탕글&gt;기운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반드시 그럴 리가 없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저들은 우리나라가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이로운 점이 매우 많으니, 우리나라가 만일 망한다면 &lt;/P&gt;
&lt;P class=바탕글&gt;저들은 이익을 얻을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따라서 우리나라를 보존되게 하여 영원히 자기들의 이익으로 삼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쓸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므로 저들이 때로 우리에게 공갈을 치는 것은 우리를 협박하여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실제로 그들 마음은 우리나라가 무사하기를 바라고 있소. 그런데 저들이 한마디 공갈을 치면 모두들 &lt;/P&gt;
&lt;P class=바탕글&gt;기운을 잃고 넋이 빠지고 마니, 매우 슬픈 일이오.&lt;/P&gt;
&lt;P class=바탕글&gt;또 내가 하려고 하는 일과 아래에서 하려는 일이 있더라도 중간에서 대신들이 막으면 결국 할 수가 없게 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지난번 포척(布尺)에 대한 정식(定式)을 내 경의 말을 듣고 즉시 내수사(內需司)에서 사용하는 베[布]부터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길이를 줄이라고 전교하였는데, 대신 이하 신료들이 시행하기 어렵다 하여 끝내 시행되지 못하였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제부터는 반드시 경과 같이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모든 일을 상의하도록 하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는 오래전부터 경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 싶었지만 경을 꺼리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경에게 편치 못한 &lt;/P&gt;
&lt;P class=바탕글&gt;일이 될까 염려하였고, 또 경이 승진하고 나면 전선(銓選)을 맡을 만한 자가 없으므로 지금까지 결정하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항상 답답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조만간 경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 양전(兩銓 이조 판서와 병조 &lt;/P&gt;
&lt;P class=바탕글&gt;판서를 가리킴)을 겸직하게 하려 하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다만 힘든 일을 많이 맡게 하는 것이 미안하고, 또 이와 같이 하면 경을 시기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게 될 &lt;/P&gt;
&lt;P class=바탕글&gt;염려가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만 두고 있을 뿐이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였다. 신이 일어나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은 결코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전하께서 신을 너무 모르시는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은 감히 전하의 위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지난번 전하께서 큰 뜻을 은밀히 보여 주셨을 적에, 신의 벗인 이유태(李惟泰)가 말하기를 ‘성상께서 &lt;/P&gt;
&lt;P class=바탕글&gt;과연 큰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비록 능력과 지혜가 없는 자라 할지라도 또한 분발해서 석호(石壕)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아낙처럼 새벽밥 짓는 일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기 때문에,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이 비록 매우 용렬하지만 감히 소지(召旨)를 받들어 온 것일 뿐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전하께서 큰 뜻을 가지고 계시고 또 신을 크게 쓰려고 하시는데, 신이 어찌 물러가려는 마음을 가질 수 &lt;/P&gt;
&lt;P class=바탕글&gt;있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땅히 죽을 각오로 일을 하겠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신은 쓸 만한 재능이 없습니다. 다만 전하께서 신을 유악(帷幄)에다 두시고 때때로 의심나는 일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물으신다면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이 어찌 어리석은 소견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의 뜻은 내 뜻과 다르오. 그러나 경은 오늘날 해야 할 일 중에서 무엇이 가장 급선무인지 한번 말해 주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것은 즉석에서 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이 평소에 배운 것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격물(格物)ㆍ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의 학설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사람들은 진부하고 오활한 옛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lt;/P&gt;
&lt;P class=바탕글&gt;비웃고 있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성인이 필시 쓸데없는 말을 해서 후세 사람들을 속였을 리가 없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격물치지라는 것은 이 마음의 본체를 밝혀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막힘이 없고 모두 통달하여 모든 일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땅하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음이 진실로 밝지 못하면 사물의 이치에 어둡고 막혀서 일을 처리할 적에 그 마땅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렇게 되면 비단 정치에 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심이 사나워져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심한 경우에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윗사람을 능멸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와 같고서도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 경우는 있지 않았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후세의 오활한 유자(儒者)들은 초목과 곤충의 이치를 살피는 것을 격물치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것도 비록 격물치지의 한 가지 일이기는 하나, 초목이나 곤충의 이치만을 살피고 인륜에 대한 큰일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먼저 살피지 않는다면 어찌 격물치지가 제대로 될 것이며, 또 그런 것을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성상께서도 그것을 격물치지의 실상이라고 여기신다면 성인이 말씀한 격물치지가 오활하여 절실하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않다고 생각하시어 노력하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옛날에 주자(朱子)는 ‘모든 일에 옳은 것을 찾는 것이 격물치지의 요지이다.’라고 말씀하였으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말씀을 깊이 체득해야 할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성의(誠意)의 학설에 이르러서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바로 그 실제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군주가 안으로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부터 밖으로 사람을 쓰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성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공부에 힘쓴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른바 정심(正心)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본체를 담연(湛然)히 허명(虛明)하게 하여 치우치거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분잡함이 없게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는 것을 말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음의 본체는 격물치지를 하여 이미 밝아지고,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은 성의 공부를 하여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미 판단이 섰다 하더라도 마음이 담연히 허명하지 못하면 외물에 쉽게 흔들려 어두워지게 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때문에 도리어 제대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지 못하여 한쪽으로 치우치고 번잡하게 됨으로써 &lt;/P&gt;
&lt;P class=바탕글&gt;장차 못하는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때문에 격물ㆍ치지ㆍ성의를 하고 난 뒤에도 이 정심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전하께서 한번 시험 삼아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른 새벽 사물을 접하지 않아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을 때에, 그 마음의 대응이 어떠한가를 &lt;/P&gt;
&lt;P class=바탕글&gt;살펴보십시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면 그때에 한 일은 반드시 이치에 합당한 것이 많고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적을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말이 매우 옳소. 나는 이른 새벽 이와 같음을 많이 체험하였는데, 한낮에 마음이 분잡하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소란할 때 한 일과는 큰 차이가 있었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격물치지를 하여 사리가 이미 통명해지고, 성의 공부를 하여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분별되며, &lt;/P&gt;
&lt;P class=바탕글&gt;정심 공부를 하여 마음의 본체가 항상 태연해서 누(累)가 없게 해야 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와 같이 하면 모든 사물을 처리할 적에 올바른 이치를 얻게 될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렇게 하고서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인심이 복종하지 않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다면 이른바 격물ㆍ치지ㆍ성의ㆍ정심이라는 것이 과연 오활하여 실상이 없는 헛소리라고 할 수 &lt;/P&gt;
&lt;P class=바탕글&gt;있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렇게 하지 않고 한갓 지혜와 혈기를 가지고 억지로 한다면 비록 우연히 이치에 합하는 일이 없지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않겠지만, 뿌리 없는 나무와 같고 근원이 없는 물과 같아서 한 가지 일은 이치에 맞았다가도 한 가지 일은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치에 맞지 않게 되며, 오늘은 잘하였다가도 내일은 잘하지 못하게 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렇게 되면 자기 마음에도 항상 쾌하지 않은데 더구나 다른 사람들이 믿고 따르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말이 참으로 옳소. 이것이 옛사람이 이른바 ‘청명(淸明)함이 몸에 있으면 지기(志氣)가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명(神明)해진다.’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것일 것이오, 내 비록 어둡고 어리석으나 때때로 이러한 의사가 실제로 있으니, 만일 이러한 의사가 중단되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않는다면 무슨 일인들 할 수 없겠소. 그러나 이처럼 좋은 의사가 있을 경우는 극히 적구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기 때문에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학문을 논할 적에 반드시 경(敬)을 위주로 하였던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공경하면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 조금도 중단됨이 없고, 공경하지 않으면 마음이 분잡하고 어지러워져서 &lt;/P&gt;
&lt;P class=바탕글&gt;좋은 의사가 곧 쇠미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자가 말씀하기를 ‘한때의 의사가 능히 얼마 동안 지속될 수 &lt;/P&gt;
&lt;P class=바탕글&gt;있겠는가.’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와 같다면 작은 일도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천하 국가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이 늘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이끌어 주니, 내 감히 잊지 못할 것이오. 경 또한 스스로 모든 선(善)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모으고 훌륭한 말을 할 것을 생각하여 함께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모해야 할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이 말한 이른 새벽에 대한 얘기가 가장 절실하오. 나도 여러 번 체험하였는데, 내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있을 경우 &lt;/P&gt;
&lt;P class=바탕글&gt;우선 내버려 두었다가 한밤중이 되어 불평한 마음이 없어지기를 기다린 다음, 이른 새벽에 일어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처리하면 사리에 합당하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때문에 맹자(孟子)의 말씀이 지론(至論)임을 알게 되었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성상께서 항상 이와 같이 힘쓰신다면, 어찌 학문이 고명한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마음에 크게 답답히 여기고 있는 것이 있는데, 지금 경에게 물어 결정해야 하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날 큰 근심거리는 율곡(栗谷)과 우계(牛溪) 양현(兩賢)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는 데 대한 &lt;/P&gt;
&lt;P class=바탕글&gt;논란보다 더 큰 것이 없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 일찍이 양현을 존봉(尊奉)하는 쪽과 배척하는 쪽에 대하여 백방으로 미봉책을 써서 겨우 &lt;/P&gt;
&lt;P class=바탕글&gt;조용해졌으므로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이 논란이 갑자기 다시 일어나 풍파가 크게 일어 오랫동안 &lt;/P&gt;
&lt;P class=바탕글&gt;안정되지 못하고 있으니, 일에 해로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소. 경은 이 시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것은 쉽사리 단정하여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양현을 종사하자는 주청은 온 나라가 함께하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말로 지금 벌써 수십 년이 되었으니, 이것은 공론(公論)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직 몇몇 사람들만이 선대의 의논을 답습하여 이견(異見)을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의 생각으로는 양현을 문묘에 종사하는 일은 막중한 전례(典禮)이니, 경솔히 의논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lt;/P&gt;
&lt;P class=바탕글&gt;괜찮지마는 양현을 무함하고 모욕하는 자들은 정녕 패역한 무리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양현의 도덕이 어떻다는 것은 논하지 않더라도 그분들은 선배의 장자(長者)이시니, 후생으로서 어찌 감히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처럼 무함하고 모욕할 수 있단 말입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정자(程子)의 제자 중에 선배의 단점을 논하는 자가 있으면 정자는 반드시 ‘너희들은 그 장점만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배우면 된다.’고 책망하였으니, 아름답고 훌륭한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자들은 참으로 패역한 자들이니 어찌 잘잘못을 따질 것이 있겠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자들과 일일이 잘잘못을 따질 것이 없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그중에 간혹 그들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부형으로서 그들을 제지하지는 않고 도리어 그들을 지지하는 자가 있으니 매우 가증스럽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양현의 도덕과 학문에 대해 신 또한 학식이 보잘것없으니,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상께서 그분들의 책을 읽고 그분들의 마음을 찾아 그분들의 행적을 논해 보신다면 문묘에 종사하는 것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합당한지 부당한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만약 분명히 알지도 못하고 독실히 신봉하지도 않으면서 남의 말만 들으신다면 아무리 숭장(崇奬)하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은전을 지극히 하신다 할지라도 전하의 몸에는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니, 광해군(光海君)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현(五賢)을 제사한 경우가 그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신은 이에 대하여 별도로 소견이 있지만 외람된 것이라 감히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한번 말해 보라고 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오현을 종사(從祀)한 것이 비록 온 나라가 함께 주청하여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중에 어찌 다시 &lt;/P&gt;
&lt;P class=바탕글&gt;참작해야&amp;nbsp;할 점이 없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이(李珥)는 일찍이 조광조(趙光祖)와 이황(李滉)만을 들어 문묘에 종사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은 아마도 이 의논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뒤에 이이 같은 대현(大賢)이 다시 나왔으니, 이미 종사하고 있는 현인과 아직 종사하지 않은 현인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정밀히 선별하여 후세의 비판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게 한다면 일은 비록 지당하게 될지라도 의논은 더욱 분분해질 것이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기 때문에 신이 이 일은 반드시 대현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날 시급한 것은 이 일이 아닌 듯한데, 조정의 신하들과 선비들이 모두 급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는 매우 병통이라고 생각하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양현을 문묘에 종사하는 일은 의논이 통일된 뒤에 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나, 선비들의 습관은 &lt;/P&gt;
&lt;P class=바탕글&gt;먼저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선현을 무함하고 모욕하는 자들은 상께서 깊이 미워하고 통렬히 끊으셔야 할 것이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급선무가 아니라고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의 말이 옳소. 이후로 만일 선현을 무함하고 모욕하는 자가 있다면 내 마땅히 통렬히 배척하여 용서하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않을 것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내가 밤낮으로 애써 생각하는 것은 오직 병력을 기르는 일이오, 경이 전에 말하기를 ‘병력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기르는 일과 백성을 기르는 길은 반드시 서로 방해가 된다.’ 하였는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어떻게 하면 서로 방해가 되지 않겠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것은 신의 말이 아니라, 바로 주자의 말씀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의 생각으로는 재력(財力)에 관계되는 것을 일체 함부로 쓰지 말고 모두 군수(軍需)로 돌리면 군수가 점차 &lt;/P&gt;
&lt;P class=바탕글&gt;넉넉해질 것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고 보오법(保伍法)을 시행하여 누락되는 민정(民丁)이 없게 한 다음, 세 사람마다 그중에서 &lt;/P&gt;
&lt;P class=바탕글&gt;장정 한 사람을 뽑아 병사로 삼아서 활 쏘기와 말 타기를 익히게 하고, 나머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베[布]를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어 한 명의 병사를 양성하게 하여 오늘날 어영군(御營軍)의 규례와 같이 한다면,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는 병사로써 병사를 양성하는 것이어서 농민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보오법은 곧 ‘주례(周禮)’의 뜻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기강을 세운 뒤에라야 이 법을 시행할 수 있는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기강을 세우는 길은 전하께서 사심(私心)을 없애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법을 경과 더불어 서서히 강구하도록 하겠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였다. 내가 아뢰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강(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 강씨(姜氏)를 가리킴)의 옥사(獄事) 때문에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불평해 하고 있는데, 상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늘 경과 그 일을 말해 보려고 했었는데 틈이 없어 하지 못했을 뿐이오, 강(姜)의 못된 짓을 어떻게 한 &lt;/P&gt;
&lt;P class=바탕글&gt;입으로 다 말할 수 있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하겠으니, 경은 한번 들어 보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비록 짐승들이라도 가지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있는 법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런데 소현(昭顯)의 상사(喪事) 때에 대조(大朝)께서 애통해하시며 책망하시기를 ‘이는 잠자리(여색)를 &lt;/P&gt;
&lt;P class=바탕글&gt;조심하지 않은 소치이다.’ 하시자, 강은 즉시 발악하기를 ‘모월(某月) 이후로는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하였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후 자식을 낳게 되자 가까이하지 않았다는 말을 실증하기 위해 곧 자식을 죽이고 그 사실을 은닉하였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의 성품이 이와 같으니, 그가 역모를 꾀한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소. 또 역모를 꾀한 일은 궁내에서만 &lt;/P&gt;
&lt;P class=바탕글&gt;알고 있는 일이니,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 알고 있겠소.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일이 확연히 드러나 전혀 의심할 것이 없는데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원통한 일이라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고 있으니, 나는 실로 가슴이 아프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가 역모를 꾀한 일을 외간에서 참으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생각에도 의심이 없지는 않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은 일찍이 ‘흉한 것을 땅에 묻어 저주하고 독약을 넣은 것은 필시(必是) 그 사람의 소행일 것이다.’라고 한 &lt;/P&gt;
&lt;P class=바탕글&gt;先王의 전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필시’라는 두 글자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단정하는 말이니, 분명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대역죄(大逆罪)라 하여 사람을 죽였는데도 사람들이 원통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리가 어찌 있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송 고종(宋高宗)이 ‘막수유(莫須有)’라는 세 글자를 가지고 악비(岳飛)를 죽였기 때문에 천하에서 지금까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원통한 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필시’라는 두 글자 때문에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없을 것 &lt;/P&gt;
&lt;P class=바탕글&gt;같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놀라며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점은 내 아직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과연 경의 말과 같구려. 그러나 역모를 꾀한 일은 의심할 것이 없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설령 강(姜)은 역모를 하였다 하더라도, 김홍욱(金弘郁)이 어찌 그녀가 역모를 꾀한 일을 알고서 그를 &lt;/P&gt;
&lt;P class=바탕글&gt;구제하려 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김홍욱은 소견이 그와 같았을 뿐이었는데 전하께서 너무 급히 그를 죽이셨기 때문에 인심이 더욱 불평해 하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있는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이미 법령을 정하여 만일 이 일을 감히 발설하는 자가 있으면 강과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고 하였는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가 어찌 감히 이 법을 무시하고 그 일을 말한단 말이오. 이 때문에 내가 그를 처형하지 않을 수 &lt;/P&gt;
&lt;P class=바탕글&gt;없었던 것이오.” 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비난하는 말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강을 이미 대역으로 처벌하였으면 그만인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어찌 다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걱정하여 억지로 발설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법을 만들어 사람들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입을 막는단 말입니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는 실로 내면에 부족함이 있는 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의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였다. 상이 한참 있다가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과연 그렇구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고, 또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은 말할 적마다 주자(朱子)를 칭하는데, 경은 몇 년 동안이나 주자의 글을 읽었기에 이처럼 잘 알고 있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은 어렸을 적부터 《주자대전(朱子大全)》과 《주자어류(朱子語類)》를 읽고 마음에 진실로 좋아하였으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음과 힘이 강하지 못하여 아직도 다 읽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주자의 말씀은 과연 하나하나 모두 행할 수 있는 것이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옛 성인의 말씀에는 간혹 시대와 형편이 달라 시행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주자의 말씀은 시대와 형편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지금과 매우 가깝고 또 주자가 만났던 시대상도 오늘날과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신은 그 말씀을 하나하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모두 행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생각합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전하께서 시험 삼아 한가한 때에 봉사(封事)ㆍ주차(奏箚)ㆍ주의(奏議) 등의 글을 먼저 읽으시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다음에 《주자어류》 중에 요긴하고 절실한 말들을 보신다면 반드시 전하의 마음에 부합되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바가 있으실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경이 말한 대로 하도록 하겠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고, 이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 경과 조용히 대화를 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신료들의 시비(是非)와 진퇴(進退)에 관한 일에 대하여 별로 언급한 것이 &lt;/P&gt;
&lt;P class=바탕글&gt;없지만 밖의 사람들 중에는 반드시 좋아하지 않는 자들이 많을 것이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여, 응대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혹 그런 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측으로 여러 신하들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니, 상이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다음에도 다시 오늘처럼 대화를 해야 하겠지만, 은밀히 편지로 자세히 의논할 수 있는 방법을 경 또한 &lt;/P&gt;
&lt;P class=바탕글&gt;생각해 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오늘 대화한 내용은 비록 묻는 자가 있더라도 경이야 어찌 다른 &lt;/P&gt;
&lt;P class=바탕글&gt;사람들에게 누설하겠소.” 하여, 내가 웃으면서 사양하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전하께서 반드시 신이 전광(田光)처럼 하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런 분부를 내리신 것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자, 상이 웃으며 이르기를,&lt;/P&gt;
&lt;P class=바탕글&gt;“그것이 어찌 장자(長者)를 의심해서 하는 말이겠소. 성인(공자)도 일(전쟁)에 임해서 신중하게 &lt;/P&gt;
&lt;P class=바탕글&gt;처리하며 잘 도모하여 이룬다는 말씀을 하였소.” 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밖으로 물러 나오니, 상이 직접 중관(中官)을 불러 다시 오라고 하였다. 12일에 추기(追記)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천신(賤臣)이 기해년(1659, 효종10) 3월 12일에 전날 주상을 모시고 대화한 것을 기록해서 하나의 작은 &lt;/P&gt;
&lt;P class=바탕글&gt;책자를 만들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다음달에 성상의 옥후(玉候)가 편찮으시더니 5월 4일에 끝내 승하하시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늘을 원망하여 부르짖었으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그 책을 가지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산속으로 돌아와 단단히 싸서 깊숙이 보관하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끝내 내놓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았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하여 깊숙이 보관하여 백세 이후를 기약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한림(翰林) 이자휘(李子輝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광직(李光稷))가 은밀히 편지를 보내와 이 기록이 있는지의 여부를 묻고, 또 부탁하기를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기록을 얻어 다른 책서(策書)에다 실을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는 그 편지를 받고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의심하여 종일토록 골몰히 생각하였으나 그 가부를 결정하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못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다가 문득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기를 ‘당시 하늘이 주상을 더 사시게 하여 그 지업(志業)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칠 수 있게 하였다면 이 기록은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지금 이미 일이 끝나고 말았으니, 만약 그 당시 하셨던 말씀까지도 끝내 매몰되게 한다면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의 죄는 또한 어떠하겠는가. &lt;/P&gt;
&lt;P class=바탕글&gt;누설하지 말라고 정녕하게 분부하신 당일의 경계를 저버리는 일이기는 하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죄는 도리어 적은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하여 손수 봉함하여 사람을 보내어 부치려 하였는데, 그날 자휘의 부음(訃音)이 갑자기 도착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나는 자휘가 요절한 것을 애통해하고, 또 그의 훌륭한 뜻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함을 애처로이 여겨 &lt;/P&gt;
&lt;P class=바탕글&gt;슬퍼하는 마음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지난번 이도원(李道源)과 이공택(李公擇) 두 한림이 또 자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때 나는 남의 구설수에 올라 엎드려 죄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어서 이로 인하여 죄가 가중되지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않을까 두려워하여 주저하고 선뜻 그들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런데 지금까지 이도원의 요청이 변함없이 계속되므로, 나는 또 스스로 생각하기를 ‘먼저 자휘에게는 &lt;/P&gt;
&lt;P class=바탕글&gt;허락을 해 놓고 이제 이 사람에게는 인색하게 하고 있으니,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침내 김경능(金景能)을 통하여 이것을 부쳐 주는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아, 성고(聖考)의 거룩하신 계획과 큰 뜻을 단지 짧은 시간에 전석(前席)에서 보여 주셨을 뿐 하나도 &lt;/P&gt;
&lt;P class=바탕글&gt;시행하지 못하셨으니, 저 푸른 하늘이여, 어찌 그리도 무심하단 말인가.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외로운 신하는 슬픔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아직 몸을 바쳐 국가에 봉사하지 못하고 있으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덕음(德音)을 생각할 적마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 아침에 다시 예전에 봉함한 것을 점검해 보다 보니, 아련히 다시 문석(文石)에 올라 옥음(玉音)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듣는 듯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다시 울음을 삼키며 그 봉함 외에 이 글을 써서 두 한림에게 고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아, 이도원과 이공택은 나의 이러한 고충을 알아 이 기록을 역사에 모두 기재하도록 하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또 혹시라도 이것을 외인에게 누설하지 말고 그 원본을 적당한 사람을 통해 돌려준다면 매우 다행이겠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을 가리킴)이 말하기를 ‘주상이 훌륭하신데도 그 덕이 알려지지 않는 것은 &lt;/P&gt;
&lt;P class=바탕글&gt;유사(有司)의 잘못이다.’ 하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아, 이것이 장차 만세 이후에 전해질 것인가. 이도원과 이공택은 노력하도록 하라. &lt;/P&gt;
&lt;P class=바탕글&gt;숭정(崇禎 명 나라 의종(毅宗)의 연호) 을사년(1665, 현종6) 7월 15일에 승하하신 성상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부르짖던 천신은 절하고 올리면서 번거로워 감히 이름을 쓰지 못하니 죄송할 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뒤 11년이 지난 을묘년(1675, 숙종1) 5월 4일에 안동(安東) 김수증 연지(金壽增延之 연지는 자임)가 &lt;/P&gt;
&lt;P class=바탕글&gt;성천(成川)의 임소(任所)에서 의춘(宜春)의 유배지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김연지는 문정공(文正公) 석실 선생(石室先生 김상헌(金尙憲)을 가리킴)의 사손(嗣孫)인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선생의 제자라고 하여 찾아온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지난 일들을 말하면서 서로 탄식하고 눈물을 흘렸는데, 떠날 때에 나에게 말하기를 &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일의 악대설화를 남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일들을 우리 두 집안의 &lt;/P&gt;
&lt;P class=바탕글&gt;자제들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면 도리에 잘못된 일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또한 나는 그것을 얻어 선조의 언행을 기록한 책 뒤에 실어서 한 책을 만들려고 하는데,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게 하면 사리에 마땅할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기에,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이로 인하여 생각해 보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석실 선생이 평소에 자임(自任)하였던 것은 바로 성조(聖祖)가 뜻하였던 일이니,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때에 하늘이 우리 선생에게 장수하게 하여 그 기회를 얻게 하였다면 성조의 간곡한 말씀은 반드시 &lt;/P&gt;
&lt;P class=바탕글&gt;석실 선생에게 하였을 것이요, 나에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연지가 두 집안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여 마침내 작은 책자에 &lt;/P&gt;
&lt;P class=바탕글&gt;기록하여 봉함해서 부쳐 주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악대(幄對)라고 이름한 것은, 송 효종(宋孝宗)이 장 위공(張魏公) 부자에게 정사를 위임하고서 남헌(南軒)을 &lt;/P&gt;
&lt;P class=바탕글&gt;유악(帷幄) 안으로 불러 토론할 적에 밖에 한 사람도 없었던 고사가 있으므로 지금 이 대화도 악대설화라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명명한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8월 모일(某日)에 봉산(蓬山)의 유배지에서 쓰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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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태백성 (太白星) - 金星</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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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ljs2000y.15965308</id>
	    <author>
		    <name>재똥이</name>
	    </author>
	    <updated>2009-11-11T05:28:17Z</updated>
	    <published>2009-11-11T05:28: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4&gt;태백성 (太白星)&lt;/H4&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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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D&gt;
&lt;DIV class=p13&gt;
&lt;DIV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80%; FONT-SIZE: 13px&quot;&gt;태양계의 제2행성(行星). 궤도경사 3.394°.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는 최소 1.075×10&lt;IMG border=0 src=&quot;http://img.srch.yahoo.co.kr/enc/data/total/to_2841.bmp&quot;&gt;㎞, 평균 1.082×10&lt;IMG border=0 src=&quot;http://img.srch.yahoo.co.kr/enc/data/total/to_2841.bmp&quot;&gt;㎞, 최대 1.089×10&lt;IMG border=0 src=&quot;http://img.srch.yahoo.co.kr/enc/data/total/to_2841.bmp&quot;&gt;㎞. 평균궤도속도는 35.02㎧. 지구와의 회합주기(會合周期)는 583.9일. 금성은 태양과 달을 제외하면 하늘 전체에서 가장 밝은 천체(天體)이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농업에 필요한 달력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에 풍양(豊穰)의 신 이슈타르의 이름을 붙여 숭상하였고, 그리스에서는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에는 비너스)로 모셔졌다. 중국에서는 그 빛이 백은(白銀)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태백(太白)이라고 불렀다. 지구보다 태양에 가깝고, 태양에서 48˚ 이상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밤중에는 보이지 않고 일몰 후의 서쪽 하늘, 또는 일출 전 동쪽 하늘에 보일 뿐이다. 저녁하늘에 보일 때에는 ＜태백성＞, 새벽하늘에 보일 때에는 ＜샛별＞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저녁하늘에 보일 때에는 ＜헤스페로스＞, 새벽하늘에 보일 때에는 ＜헤오스포로스＞라고 불렀고, 중국에서는 각각 ＜장경(長庚)＞, ＜계명(啓明)＞이라 불렀다. G. 갈릴레이가 달과 같이 차고 이지러짐을 발견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으로 전환한 것은 유명하다. &lt;BR&gt;&lt;BR&gt;&lt;B&gt;운동&lt;/B&gt;&lt;BR&gt;금성은 지구궤도의 바로 안쪽, 궤도 반긴지름[半長經(반장경)] 0.723천문단위인 곳을 거의 완전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이심률(離心率) 0.0068은 행성 중 가장 작아 거의 원에 가깝다. 공전주기가 224.7일인데 비해 자전주기는 이보다 늦어 243일이며, 공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 태양에 대한 자전주기, 즉 주야가 순환하는 주기는 116.7일이다. &lt;BR&gt;&lt;BR&gt;&lt;B&gt;크기&lt;/B&gt;&lt;BR&gt;금성의 특징은 지구와 쌍둥이로 불릴 정도로 지구와 아주 비슷한 질량과 반지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측값으로 계산된 평균밀도는 5.24g/㎤이나, 중심부에서는 고압 때문에 물질이 압축되어 있어서 그 압력부분을 보정(補正)하면 4.40g/㎤가 되고, 같은 방법으로 보정한 지구의 값 4.45g/㎤와는 거의 같다. 따라서 중심에 금속철의 코어, 그 외부에 바위의 맨틀이라는 내부구조는 지구와 같다고 생각된다. &lt;BR&gt;&lt;BR&gt;&lt;B&gt;표면&lt;/B&gt;&lt;BR&gt;금성을 큰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황백색의 편평하고 두꺼운 구름으로 온통 덮여 있어서 직접 그 표면 상태를 조사할 방법이 좀처럼 없었다. 1978년 금성을 도는 궤도에 들어선 파이어니어비너스 2호는 레이더로 그 표면의 높낮이를 측정하여, 대략적인 지형도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것에 의하면, 최고(最高)의 맥스웰산맥이 있는 이슈타르대륙과 아프로디테대륙등 고지도 두어 군데 있지만, 대부분의 표면은 지구에 비해 평탄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 1975년 금성 표면에 연착륙(軟着陸)한 베네라 9·10호는 방사능 측정으로 착륙지점 부근의 암석 성질을 조사하였다. 그것에 의하면 바위는 지구와 비슷한 현무암질(玄武岩質)이고, 1972년에 베네라 8호가 발표한 화강암질이라는 결과와 함께 지구와 매우 비슷하다는 인상을 한층 깊게 하였다. 또 텔레비전 카메라에 비친 지상의 경치는 9호에 가까운 곳의 암석에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암석이 있고 10호 가까이에는 모서리가 거의 달아난 암석이 많았다. 전자(前者)는 금성에서 여전히 화성활동(火成活動)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 하면 아주 최근에 형성된 것이 아니면, 금성대기의 강한 풍화작용(風化作用)에 의해 둥글게 되어 모서리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lt;BR&gt;&lt;BR&gt;&lt;B&gt;대기&lt;/B&gt;&lt;BR&gt;베네라 8호의 데이터에 의하면 지표에서의 기온과 기압은 각각 470℃와 90atm이었다. 기온은 납도 녹을 정도이고, 기압은 지구의 해면 밑 1000m의 압력에 상당하는 대단한 값이다. 대기성분은 이산화탄소가 95％를 차지하고, 질소가 3∼4％, 아르곤이 나머지의 대부분이다. 아르곤에는 원자량이 36인 원시희(原始希)가스와 방사성칼륨 40의 붕괴에 의해서 생긴 원자량 40인 것이 있는데, 그 비(比)는 거의 1이었다. 그 밖의 성분으로는 0.1％ 정도의 수증기, 40ppm 정도의 일산화탄소, 1ppm정도의 염화수소 등이 있다. 한마디로 유독성분(有毒成分)으로 가득 찬 대기다. 금성은 태양에 가깝고 온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수증기가 결핍되어 있다. 두꺼운 금성의 구름 온도는 관측에 의하면 －23℃ 정도이며, 이산화탄소는 얼지 않고 드라이아이스도 형성되지 않는다. 이 구름은 2.7㎛ 부근에서 스펙트럼이 흡수되는 것이 보이고 태양반사광의 편광(偏光) 측정에서 운립자(雲粒子) 굴절률이 1.44로 이러한 데이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농황산설(濃黃酸設)이다. 평균 1㎛ 정도의 반지름을 가진 농황산액 물방울을 운립자로 하면 편광 데이터나 2.7㎛의 흡수뿐만 아니라, 11.2㎛로 관측되고 있었던 흡수도 설명할 수 있고 황산이라면 －23℃라는 운상온도(雲上溫度)에서도 운적(雲滴)으로 있을 수 있다. 수증기가 구름 위에서 검출되지 않았던 것도 황산이 강한 흡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lt;BR&gt;&lt;BR&gt;&lt;B&gt;고층대기&lt;/B&gt;&lt;BR&gt;구름 밖의 대기는 잘 관측될 수 있기 때문에, 안쪽에 비해 잘 알려져 있다. 가시광선(可視光線)에서는 끊긴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구름도, 자외선에 가까운 파장으로 보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이고, 그 움직임에서 상층부의 대기운동을 알 수 있다. 풍속은 초속 100m에 이르고,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적도부근을 4일에 1번씩 돌고 있는 대상풍(帶狀風)이다. 지표 부근에서 초속 수 m이며, 적도에서 극으로 나선형으로 향하는 예측하기 쉬운 바람인 데도, 상공(上空)에서 왜 이와같은 바람이 불고 있는지는, 금성 기상학의 커다란 수수께끼다. 더 높은 상공의 초고층대기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탐사기가 내는 전파를 사용하여 금성의 전리층(電離層)을 측정해본 결과, 최대전자밀도 10&lt;IMG border=0 src=&quot;http://img.srch.yahoo.co.kr/enc/data/total/to_2838.bmp&quot;&gt;개/㎤, 고도폭 수십 ㎞로 지구의 전리층(최대전자밀도 10&lt;IMG border=0 src=&quot;http://img.srch.yahoo.co.kr/enc/data/total/to_2839.bmp&quot;&gt;개/㎤, 고도폭 수백 ㎞)에 비하면 규모가 매우 작았다. 이산화탄소가 있기 때문에 이 분자가 파괴되어 산소원자가 생기고, 이것이 금성 상층대기의 주성분이 된다고 하면, 지구와 다름없는 전리층이 생기겠지만, 그와 같은 것은 없다. 이 산소에 의한 산화작용으로 구름의 농황산이 생성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구름의 형성에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더 바깥쪽에 태양풍이 금성 대기와 충돌하는 영역(領域)이 발견되었는데 지구는 지자기(地磁氣)를 가지고 있어 그 지자기권을 형성하여 태양풍의 침입을 막고 있으나, 금성은 자기장(磁氣場)을 거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lt;/DIV&gt;&lt;BR&gt;&lt;/DIV&gt;&lt;/DD&gt;&lt;/DL&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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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요 '산토끼'고향,- 창녕 이방 초등학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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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재똥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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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21:52:16Z</updated>
	    <published>2009-11-10T21:52:1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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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DIV id=post-view80029539631 class=&quot;post-view pcol2&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동요 '산토끼'고향, 놀이동산 된다&lt;/SPAN&gt;&lt;BR&gt;&lt;/STRONG&gt;&lt;FONT class=b-title7&gt;경남 창녕군 조성계획 밝혀 &lt;BR&gt;&lt;/FONT&gt;&lt;FONT class=b-title7&gt;故 이일래 선생 재조명 사업도 &lt;BR&gt;&lt;/FONT&gt;&lt;B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width=100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
&lt;P align=center&gt;&lt;IMG border=0 align=top src=&quot;http://www.busanilbo.com/news2000/photo/2006/1003/10070304i1.jpg&quot;&gt; &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bgColor=#ffffff&gt;&lt;FONT style=&quot;COLOR: black; FONT-SIZE: 9pt&quot;&gt;&lt;/FONT&gt;
&lt;CENTER&gt;&lt;/CENTE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class=b-txt2&gt;남녀노소 누구나 부를 줄 아는 동요 '산토끼'의 고향인 경남 창녕군이 작곡가 고 이일래(1903~79) 선생의 재조명 사업과 함께 '산토끼 놀이동산' 조성계획을 밝혀 동요의 소재지가 관광지로 변모할 전망이다. &lt;BR&gt;&lt;BR&gt;3일 창녕군에 따르면 이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이방면 이방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산토끼'를 작사·작곡했다. &lt;BR&gt;&lt;BR&gt;창녕군은 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동요의 소재지인 이방초등학교 일대를 산토끼 놀이동산으로 조성하기 위해 최근 국비(25억원)와 도비(50억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lt;BR&gt;&lt;BR&gt;군은 국비 등 100억원을 투입해 오는 2008년까지 산토끼 놀이동산·기념관·체험장·조형물 등을 건립하고 산토끼 브랜드개발을 비롯해 동요제,경주대회,사생대회 등을 개최하는 것은 물론 이일래 선생 재조명사업도 펼칠 예정이다. &lt;BR&gt;&lt;BR&gt;이방초등학교 동문들은 고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78년 교정에 이미 '산토끼 노래비'(사진)를 세운 바 있다. 이 노래비는 흰색 토끼를 형상화한 높이 2m 내외로 앞면에는 노랫말이,뒷면에는 작사 의미와 건립배경이 기록돼 있다. &lt;BR&gt;&lt;BR&gt;창녕군 관계자는 &quot;최근 동요 '산토끼'의 유래를 알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어 놀이동산 조성계획을 세웠다&quot;며 &quot;인근 우포늪과 연계한 특색있는 놀이동산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quot;고 밝혔다. &lt;/FON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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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차영근동문 장녀결혼 - 11월 22일(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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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재똥이</name>
	    </author>
	    <updated>2009-11-10T17:15:26Z</updated>
	    <published>2009-11-10T17:15: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삼산초등학교 56회 동문인 &lt;STRONG&gt;차영근君&lt;/STRONG&gt;의 장녀 결혼식을&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안내해 드리오니 많으신 동문님들의 참석과 축하를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당부드립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3058d2&gt;1. 신부 : 차영근, 안순자 님의 장녀 차소윤(신랑 최대규)&lt;/FONT&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3058d2&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일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 2009년 11월 22일 낮 12시 30분&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3058d2&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 장소 :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용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리조트 드래곤밸리호텔 1층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랜드 볼룸&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3058d2&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4.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혼주 : 차영근&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손전화 010-7196-4311)&lt;/SPAN&gt;&lt;/FONT&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3058d2&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3058d2&gt;5. 교통편 안내 : &lt;/FONT&gt;&lt;/SPAN&gt;&lt;/FONT&gt;&lt;/SPAN&gt;&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size=+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가. 보은출발 : 보은 전화국 앞 7시 30분&lt;/SPAN&gt;&lt;/FONT&gt;&lt;/SPAN&gt;&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size=+0&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 청주출발&amp;nbsp;: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원봉공원 &amp; 태산아파트 옆 8시20분&lt;/SPAN&gt;&lt;/FONT&gt;&lt;/SPAN&gt;&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다. 부천출발 : 지하철 1호선 소사역 2번출구 굴다리 밑 8시&amp;nbsp;&amp;nbsp;&lt;/SPAN&gt;&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A onclick=&quot;window.open('http://local.daum.net/map/index.jsp?urlX=871131&amp;urlY=1154860&amp;urlLevel=4&amp;map_type=TYPE_MAP&amp;map_hybrid=false&amp;q=%B5%E5%B7%A1%B0%EF%B9%EB%B8%AE','_blank', 'toolbar=yes,location=yes,directories=yes,status=yes,menubar=yes,scrollbars=yes,resizable=yes');return false;&quot; href=&quot;http://local.daum.net/map/index.jsp?urlX=871131&amp;urlY=1154860&amp;urlLevel=4&amp;map_type=TYPE_MAP&amp;map_hybrid=false&amp;q=%B5%E5%B7%A1%B0%EF%B9%EB%B8%AE&quot; target=_blank&gt;&lt;IMG style=&quot;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quot; height=350 src=&quot;http://map2.daum.net/map/mapservice?MX=871131&amp;MY=1154860&amp;SCALE=5&amp;IW=500&amp;IH=350&amp;COORDSTM=WCONGNAMUL&quot; width=498 border=0&gt;&lt;/A&gt;&lt;/SPAN&gt;&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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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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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재똥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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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6:53:37Z</updated>
	    <published>2009-11-10T16:53:3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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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class=titleWrap&gt;
&lt;H2&gt;&lt;A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 rel=bookmark&gt;&lt;SPAN class=entry-title&gt;&lt;FONT color=#555555&gt;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lt;/FONT&gt;&lt;/SPAN&gt;&lt;/A&gt;&lt;/H2&gt;&lt;SPAN class=category&gt;&lt;/SPAN&gt;&lt;/DIV&gt;&lt;!-- /titleWrap --&gt;
&lt;DIV class=article&gt;
&lt;DIV style=&quot;CLEAR: both&quot;&gt;&lt;/DIV&gt;
&lt;DIV class=entry-content&gt;한국의-사회갈등과-경제적-비용 또 사회갈등 비용은 국내총생산의 27%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 &lt;BR&gt;&lt;BR&gt;삼성경제연구소는 24일 ‘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서 OECD 회원국들의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사회갈등&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사회갈등&lt;/SPAN&gt;&lt;/SPAN&gt; 유발 요인과 관리 시스템을 분석, 사회갈등지수를 산출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밝혔다.&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밝혔다.&lt;/SPAN&gt;&lt;/SPAN&gt;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자료가 없거나 신뢰도가 떨어지는 아이슬란드·룩셈부르크·멕시코 등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3개국은&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3개국은&lt;/SPAN&gt;&lt;/SPAN&gt; 비교 대상에서 빠졌다.&lt;BR&gt;&lt;BR&gt;분석 결과 한국의 갈등지수는 0.71로 OECD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평균보다&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평균보다&lt;/SPAN&gt;&lt;/SPAN&gt; 훨씬 높았다. 이는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은 4번째 수준이다. 또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지수&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지수&lt;/SPAN&gt;&lt;/SPAN&gt; 0.36인 독일에 비해서는 2배, 가장 낮은 덴마크보다는 3배나 높았다. &lt;BR&gt;&lt;BR&gt;한국의 갈등지수가 이처럼 높은 것은 갈등을 관리할 민주주의 제도의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미성숙과&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미성숙과&lt;/SPAN&gt;&lt;/SPAN&gt; 정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lt;BR&gt;&lt;BR&gt;한국의 민주주의지수는 민주화 전인 1986년 전까지 0에서 97년 이후 8을 기록하고 있으나 OECD 선진국보다는 여전히 낮은 27위에 머물렀다. 정부 능력을 보여주는 정부효과성지수 역시 OECD 평균보다 낮은 1.26으로 23위에 그쳤다. &lt;BR&gt;&lt;BR&gt;민주주의 성숙도 부문에서는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행정권이&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행정권이&lt;/SPAN&gt;&lt;/SPAN&gt; 다른 헌법기관보다 강하고, 정당체계가 불안정하며, 반대집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것으로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평가됐다.&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평가됐다.&lt;/SPAN&gt;&lt;/SPAN&gt; 정부 효과성이 떨어지는 요인은 정책의 일관성, 정부의 조정능력이 떨어지고 정부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규제&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규제&lt;/SPAN&gt;&lt;/SPAN&gt; 수준 등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lt;BR&gt;&lt;BR&gt;삼성경제연구소는 OECD 평균에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비해&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비해&lt;/SPAN&gt;&lt;/SPAN&gt; 높은 사회갈등 때문에 한국이 지불하는 갈등비용은 1인당 GDP의 27%에 이른다고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추정했다.&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추정했다.&lt;/SPAN&gt;&lt;/SPAN&gt; 삼성경제연구소 박준 수석연구원은 “합리적 토론문화 형성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질을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높이고,&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높이고,&lt;/SPAN&gt;&lt;/SPAN&gt; 정부 역량을 끌어올려 갈등 조절기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lt;BR&gt;&lt;BR&gt;&lt;B&gt;▲사회갈등 지수&lt;/B&gt;&lt;BR&gt;&lt;BR&gt;갈등을 일으키는 요인과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반영해&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반영해&lt;/SPAN&gt;&lt;/SPAN&gt; 전반적인 사회갈등 수준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지수. 소득불균형 정도를 &lt;SPAN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 entryid=&quot;247&quot; original=&quot;http://cubebox.textcube.com/247&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remote href=&quot;http://cubebox.textcube.com/247?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나타내는&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cubebox_LinkUp_local&gt;나타내는&lt;/SPAN&gt;&lt;/SPAN&gt; 지니계수를 민주주의 성숙도지수와 세계은행이 측정하는 정부효과성지수의 평균으로 나눠 구한다.&lt;/DIV&gt;
&lt;DIV class=entry-content&gt;&amp;nbsp;&lt;/DIV&gt;
&lt;DIV class=entry-content&gt;“사회갈등비용-OECD평균보다-1인당-연간-5천달러-더-들어” &lt;BR&gt;&lt;BR&gt;최근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는 OECD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27개중&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27개중&lt;/SPAN&gt;&lt;/SPAN&gt;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아 사회갈등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드러났다.&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드러났다.&lt;/SPAN&gt;&lt;/SPAN&gt; 사회갈등지수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소득불균형과 민주주의 성숙도, 정부의 정책수행능력 등으로 만든 것으로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우리나라의&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우리나라의&lt;/SPAN&gt;&lt;/SPAN&gt; 전반적인 사회갈등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lt;BR&gt;&lt;BR&gt;우리나라 소득불균형도는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OECD평균수준이지만&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OECD평균수준이지만&lt;/SPAN&gt;&lt;/SPAN&gt;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효과성은 각각 27위와 23위로 평균에 크게 못미쳤다. &lt;BR&gt;&lt;BR&gt;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경험이 부족해 타협 문화가 미정착돼 있고 법질서를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존중하는&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존중하는&lt;/SPAN&gt;&lt;/SPAN&gt; 의식도 미흡하다”며 “또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 정부의 조정능력, 정부규제 수준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등이&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등이&lt;/SPAN&gt;&lt;/SPAN&gt; 낮아 효과성 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정부효과성지수에서&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정부효과성지수에서&lt;/SPAN&gt;&lt;/SPAN&gt;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덴마크의 정부조정능력은 1.00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0.75에 그쳤고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정책의&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정책의&lt;/SPAN&gt;&lt;/SPAN&gt; 일관성도 0.73보다 크게 낮은 0.41이었다. &lt;BR&gt;&lt;BR&gt;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과도한&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과도한&lt;/SPAN&gt;&lt;/SPAN&gt;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t;BR&gt;&lt;BR&gt;삼성경제연구소는 사회갈등지수가 10% 하락하면 1인당GDP가 7.1%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며 우리나라 갈등지수가 OECD평균인 0.44로 완화되면 우리나라&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Callback entryid=&quot;522&quot; host=&quot;http%3A%2F%2Flgtelecom.textcube.com&quot;&gt;&lt;/SPAN&gt; 1인당GDP는 27.0%인 5023달러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2~2005년 평균 1인당 GDP가 1만8602달러에서 곧바로 2만달러를 넘어 2만3625달러에 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lt;BR&gt;&lt;BR&gt;우리나라는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96년&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96년&lt;/SPAN&gt;&lt;/SPAN&gt; 12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한 노동계의 총파업으로 당시 문민정부의 권력누수현상이 가속화,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외환위기&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외환위기&lt;/SPAN&gt;&lt;/SPAN&gt; 직전 위기대응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다. 새만금사업, 방폐장 입지선정,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터널공사,&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터널공사,&lt;/SPAN&gt;&lt;/SPAN&gt; 행복도시 건설, 비정규직법 도입, 한미 FTA, 뉴타운 건설 등 대형국책사업도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갈등으로&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갈등으로&lt;/SPAN&gt;&lt;/SPAN&gt; 이어져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다. &lt;BR&gt;&lt;BR&gt;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민주주의를&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민주주의를&lt;/SPAN&gt;&lt;/SPAN&gt; 질적으로 심화시키는 게 갈등을 예방하는 길”이라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갈등형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정책이슈는&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정책이슈는&lt;/SPAN&gt;&lt;/SPAN&gt; 정부가 직접 결정하기보다 공익적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되는 전문가기구를 활용해야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한다”고&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한다”고&lt;/SPAN&gt;&lt;/SPAN&gt; 제시했다. 영국과 미국같이 민간 갈등조정 자문기관을 육성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lt;BR&gt;&lt;BR&gt;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장영철 단장은 “우리나라 사회통합지수가 OECD 24개국 중 19위로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심각한&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심각한&lt;/SPAN&gt;&lt;/SPAN&gt;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부는 당면한 사회갈등을 효과적으로 치유하고 사회통합을 개선시킬 &lt;SPAN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 entryid=&quot;522&quot; original=&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quot;&gt;&lt;A style=&quot;DISPLAY: inli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remote href=&quot;http://lgtelecom.textcube.com/522?t=c&amp;i=0&quot;&gt;&lt;FONT color=#ff6600&gt;수&lt;/FONT&gt;&lt;/A&gt;&lt;SPAN style=&quot;DISPLAY: none&quot; class=copyAngel_lgtelecom_LinkUp_local&gt;수&lt;/SPAN&gt;&lt;/SPAN&gt; 있는 정책들을 다양하게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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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울금 이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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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ljs2000y.15965302</id>
	    <author>
		    <name>재똥이</name>
	    </author>
	    <updated>2009-11-03T08:23:01Z</updated>
	    <published>2009-11-03T08:23: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FONT color=#e31600&gt;* 울금 이란?&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계적인&amp;nbsp; 장수마을로&amp;nbsp; 알려진&amp;nbsp; 일본&amp;nbsp; 오키나와&amp;nbsp; 일대에서&amp;nbsp; 특용작물로&amp;nbsp; 재배 돼&amp;nbsp; 건강식품으로&amp;nbsp;&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애용되고&amp;nbsp;있는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울금은&amp;nbsp; 주성분인&amp;nbsp; 커큐민이&amp;nbsp; 항암,이혈작용이&amp;nbsp; 뛰어나다는&amp;nbsp; 연구결과&amp;nbsp;일본은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물론&amp;nbsp; 국내에서도&amp;nbsp; 논문으로&amp;nbsp;발표&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돼&amp;nbsp; 세간의&amp;nbsp; 관심을&amp;nbsp; 끌고&amp;nbsp; 있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특히&amp;nbsp; 만병통치&amp;nbsp; 라고&amp;nbsp; 할수있는&amp;nbsp; 울금은&amp;nbsp; 예로부터&amp;nbsp; 동의보감및&amp;nbsp; 본초강목 등에서&amp;nbsp; 이와같은&amp;nbsp;&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증상들을 효과적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으로&amp;nbsp; 사용해&amp;nbsp; 왔는데&amp;nbsp; 현재&amp;nbsp; 세계각국에&amp;nbsp; 임상실험에서도&amp;nbsp; 효능들이&amp;nbsp; 밝혀져&amp;nbsp;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널리&amp;nbsp; 사용하고&amp;nbsp; 있다.&amp;nbsp;&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FONT color=#e31600&gt;* 울금의&amp;nbsp; 기원&lt;/FON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울금은&amp;nbsp; 기원전&amp;nbsp; 600년전부터&amp;nbsp; 기록되어&amp;nbsp; 있는&amp;nbsp; [앗시리아 식물지]중에 착색성의&amp;nbsp; 물질로&amp;nbsp; 기재되어&amp;nbsp; 있고,인도,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동남아, 중국에서는&amp;nbsp; 옛날부터&amp;nbsp; 견,면늬&amp;nbsp; 염색과&amp;nbsp; 식품의&amp;nbsp; 착색에&amp;nbsp; 이용하여&amp;nbsp; 왔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염료로&amp;nbsp; 사용할경우&amp;nbsp; 홍색염색을&amp;nbsp; 위한&amp;nbsp; 하염으로&amp;nbsp; 치자&amp;nbsp; 대신&amp;nbsp; 사용하기도&amp;nbsp; 한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도&amp;nbsp; 카레에는&amp;nbsp; 반드시&amp;nbsp; 다른&amp;nbsp; 향신료와&amp;nbsp; 함께&amp;nbsp; 울금을&amp;nbsp; 배합하여&amp;nbsp; 넣고&amp;nbsp; 있다. 이것을&amp;nbsp; 상식하는&amp;nbsp; 사람은&amp;nbsp; 간장이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건강하다고&amp;nbsp; 알려져&amp;nbsp; 있는데&amp;nbsp; 쿠르쿠민이&amp;nbsp; 간을&amp;nbsp; 강화시키는&amp;nbsp; 효과가&amp;nbsp; 있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 외에는&amp;nbsp; 이뇨,이담효과와&amp;nbsp; 간장의&amp;nbsp; 해독&amp;nbsp; 기능을&amp;nbsp; 촉진시키는&amp;nbsp; 작용도&amp;nbsp; 있다고&amp;nbsp; 알려져&amp;nbsp; 있으며, 일본에서는&amp;nbsp;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단무지의&amp;nbsp; 착색에&amp;nbsp; 울금&amp;nbsp; 색소를&amp;nbsp; 이용하고&amp;nbsp; 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울금의&amp;nbsp; 원산지&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원산지는&amp;nbsp; 인도,&amp;nbsp; 중국,&amp;nbsp; 오키나와등인데, 인도를&amp;nbsp; 중심으로&amp;nbsp; 한 열대및&amp;nbsp; 아열대지방에서&amp;nbsp; 많이&amp;nbsp; 재배되고&amp;nbsp; 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 카레, 황금색의&amp;nbsp; 비밀&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방송 일시 : 2007년&amp;nbsp; 3월&amp;nbsp; 13일 (화) KBS 1TV22:00~23:00&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담당&amp;nbsp; 프로듀스: 유성문 PD&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3200여년 전 - 파라오가&amp;nbsp; 위독하다.&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amp;nbsp;의사들은&amp;nbsp; 파라오의&amp;nbsp; 환부에&amp;nbsp; 생기를&amp;nbsp; 불어넣는&amp;nbsp; 향신료를&amp;nbsp; 발랐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2500여년 전 - 석가모니, 스스로&amp;nbsp; 깨달음을&amp;nbsp; 얻기&amp;nbsp; 위해&amp;nbsp; 깊은&amp;nbsp; 산중에서&amp;nbsp; 고행 중 카레를&amp;nbsp; 먹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2000여년 전 - 인도의&amp;nbsp; 최초&amp;nbsp; 의학서, [아유르베다(100세까지&amp;nbsp; 장수하기&amp;nbsp; 위한&amp;nbsp; 지식)]&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 그안에&amp;nbsp; 카레가&amp;nbsp; 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2007년 1월 - 영국&amp;nbsp; 유명&amp;nbsp; 일간지[인디펜던트지]&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 잘먹고&amp;nbsp; 잘사는&amp;nbsp; 법&amp;nbsp; 20가지에&amp;nbsp; &quot;카레를&amp;nbsp; 충분히&amp;nbsp; 섭취할 것&quot;을&amp;nbsp; 권장!&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58px; CURSOR: pointer; HEIGHT: 119px&quot; height=119 hspace=1 src=&quot;http://cfile211.uf.daum.net/image/132F8C094964010302CE0E&quot; width=158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1&quot;&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58px; CURSOR: pointer; HEIGHT: 119px&quot; height=119 hspace=1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52F8C094964010403B7E1&quot; width=158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5&quot;&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59px; CURSOR: pointer; HEIGHT: 119px&quot; height=119 hspace=1 src=&quot;http://cfile217.uf.daum.net/image/1421100B4964048C3ECA30&quot; width=159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5&quot;&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58px; CURSOR: pointer; HEIGHT: 119px&quot; height=119 hspace=1 src=&quot;http://cfile217.uf.daum.net/image/1431790C496403AB004609&quot; width=158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3&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 &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TRONG&gt;노년의&amp;nbsp; 재앙,&amp;nbsp; 알츠하이머를&amp;nbsp; 막는&amp;nbsp; 카레&lt;/STRONG&gt;&lt;/SPAN&gt;&lt;/FONT&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카레를&amp;nbsp; 매일먹는&amp;nbsp; 인도인의&amp;nbsp; 치매&amp;nbsp; 발생률은&amp;nbsp; 세계에서&amp;nbsp; 가장&amp;nbsp; 낮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인도의&amp;nbsp; 일부지역,&amp;nbsp; 65세&amp;nbsp; 이상&amp;nbsp; 노인의&amp;nbsp; 치매&amp;nbsp; 발생률이&amp;nbsp; 1%에&amp;nbsp; 그치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이는&amp;nbsp; 한국의 10%수준애&amp;nbsp; 불과하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2001년&amp;nbsp; 미국신경학회지에&amp;nbsp; 의하면&amp;nbsp; 인도&amp;nbsp; 사람들은&amp;nbsp; 미국&amp;nbsp; 사람들에&amp;nbsp; 비해&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알츠하이머의&amp;nbsp; 발병율이&amp;nbsp; 4분의1에&amp;nbsp; 불과하다고&amp;nbsp; 한다.&lt;/STRONG&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미국UCLA의&amp;nbsp; 그레고리&amp;nbsp; 콜&amp;nbsp; 박사는&amp;nbsp; 쥐&amp;nbsp; 실험을&amp;nbsp; 통해&amp;nbsp; 커큐민이&amp;nbsp; 알츠하이머&amp;nbsp; 환자의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뇌에&amp;nbsp; 축적되는&amp;nbsp; 독성&amp;nbsp; 단백질을&amp;nbsp; 분해한다는&amp;nbsp; 연구&amp;nbsp; 결과를&amp;nbsp; 발표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이 결과를&amp;nbsp; 바탕으로&amp;nbsp; 2005년,&amp;nbsp; UCLA 의대&amp;nbsp; 알츠하이머&amp;nbsp; 센터에서는&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30명의&amp;nbsp; 환자들을&amp;nbsp; 대상으로&amp;nbsp; 커큐민에&amp;nbsp; 대한&amp;nbsp; 임상실험을&amp;nbsp; 실시&amp;nbsp; 중이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58px; CURSOR: pointer; HEIGHT: 120px&quot; height=120 hspace=1 src=&quot;http://cfile240.uf.daum.net/image/13318909496406901562CB&quot; width=158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4&quot;&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65px; CURSOR: pointer; HEIGHT: 119px&quot; height=119 hspace=1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14318909496406901660BC&quot; width=165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4&quot;&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60px; CURSOR: pointer; HEIGHT: 121px&quot; height=121 hspace=1 src=&quot;http://cfile238.uf.daum.net/image/11318909496406911795E2&quot; width=160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4&quot;&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158px; CURSOR: pointer; HEIGHT: 120px&quot; height=120 hspace=1 src=&quot;http://cfile205.uf.daum.net/image/1231890949640691186C34&quot; width=158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632&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TRONG&gt;암의&amp;nbsp; 공포에서&amp;nbsp; 벗어나는 법, 답은&amp;nbsp; 카레에&amp;nbsp; 있다.&lt;/STRONG&gt;&lt;/SPAN&gt;&lt;/FONT&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세계인의&amp;nbsp; 건강을&amp;nbsp; 위협하는&amp;nbsp; 암의&amp;nbsp; 공격으로 부터&amp;nbsp; 피할수&amp;nbsp; 있는&amp;nbsp; 방법은&amp;nbsp; 없을까.&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2002년&amp;nbsp; 세계보건기구(WHO)의&amp;nbsp; 자료에&amp;nbsp; 의하면&amp;nbsp; 카레&amp;nbsp; 섭취률이&amp;nbsp; 높은&amp;nbsp; 인도인의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암 발병률이&amp;nbsp; 미국의&amp;nbsp; 임&amp;nbsp; 발병률의 1/7수준인&amp;nbsp; 것으로&amp;nbsp; 나타났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이는&amp;nbsp; 카레의&amp;nbsp; 주원료인&amp;nbsp; 강황의&amp;nbsp; 커큐민 이라는&amp;nbsp; 성분 때문이라고&amp;nbsp; 하는데..&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서울대&amp;nbsp; 약학대&amp;nbsp; 서영준&amp;nbsp; 교수는&amp;nbsp; 카레의&amp;nbsp; 주성분인&amp;nbsp; 커큐민이&amp;nbsp; 암으로&amp;nbsp; 진행하는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염증을&amp;nbsp; 억제함으로써&amp;nbsp; 피부암과&amp;nbsp; 대장암을&amp;nbsp; 예방한다는&amp;nbsp; 연구결과를&amp;nbsp; 발표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세계&amp;nbsp; 의학계에서는&amp;nbsp; 지금&amp;nbsp; 카레를&amp;nbsp; 주목하고&amp;nbsp; 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건강의&amp;nbsp; 황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amp;nbsp;열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 커큐민(Curcumin)&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카레의&amp;nbsp; 주원료&amp;nbsp; 강황에는&amp;nbsp; 커큐민&amp;nbsp; 이라는&amp;nbsp; 물질이&amp;nbsp; 다량&amp;nbsp; 함유돼&amp;nbsp; 있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커큐민이&amp;nbsp; 알츠하이머나&amp;nbsp; 암외에도&amp;nbsp; 효과적인&amp;nbsp; 다이어트를&amp;nbsp; 돕고&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관절염이나 당뇨,고혈압 등을&amp;nbsp; 막는데&amp;nbsp; 탁월한&amp;nbsp; 효과가&amp;nbsp; 있는&amp;nbsp; 것으로&amp;nbsp; 보고&amp;nbsp; 되고&amp;nbsp; 있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건강의&amp;nbsp; 적&amp;nbsp; 활성산소를&amp;nbsp; 억제하는&amp;nbsp; 항산화&amp;nbsp; 효과를&amp;nbsp; 실험을&amp;nbsp; 통해&amp;nbsp; 알아보고,&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체의&amp;nbsp; 첫&amp;nbsp; 방어체계&amp;nbsp; 염증을&amp;nbsp; 조절하여&amp;nbsp; 암, 치매, 당뇨, 비만 등&amp;nbsp; 성인병으로부터 &lt;/SPAN&gt;&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해방&amp;nbsp; 될수 있는&amp;nbsp; 방법을&amp;nbsp; 모색한다.&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TRONG&gt;&lt;/SPAN&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276px; CURSOR: pointer; HEIGHT: 204px&quot; height=204 hspace=1 src=&quot;http://cfile226.uf.daum.net/image/1403320A4963698262FAC0&quot; width=276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550&quot;&gt;&lt;IMG class=tx-daum-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274px; CURSOR: pointer; HEIGHT: 202px&quot; height=202 hspace=1 src=&quot;http://cfile226.uf.daum.net/image/1103320A49636983635E86&quot; width=274 vspace=1 border=0 isset=&quot;true&quot; actualwidth=&quot;546&quot;&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lt;/FONT&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TRONG&gt;&lt;FONT color=#e31600&gt;▶울금의&amp;nbsp; 효능&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간질환 (지방간, 각종간염, 간경화, 간암, 만성피로 등등...)&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신장&amp;nbsp; 비뇨기&amp;nbsp; 장애자(전립선,&amp;nbsp;자궁경종, 부인병, 등등...)&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위장병(위궤양, 심이지장궤양, 위염, 위산과다 등등...)&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각종 성인병및&amp;nbsp; 치료에&amp;nbsp; 효과&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당뇨병&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고혈압및&amp;nbsp; 저혈압&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관절염,옆구리통증,담석, 방광염, 요혈 등등...&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변비및&amp;nbsp; 숙변제거, 다이어트, 체지방분해&amp;nbsp; 효과탁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PAN&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lt;/SPAN&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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