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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사철시서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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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3T13:30:4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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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난 주 경기에서 나온 홈런장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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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3T13:30:42Z</updated>
	    <published>2009-07-03T13:30: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역전을 일구어 낸 투런 홈런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4.flvs.daum.net/files/19/85/72/75/21913840/thumb.jpg.edit&quot; moviekey=&quot;kS5ChjdtniU$&quot; type=&quot;vi&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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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재미삼아 만들어 본 피칭 브로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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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아글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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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3T12:04:30Z</updated>
	    <published>2009-07-03T12:04:3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지난 주 경기에서 처음으로 잡은 삼구삼진...&lt;/P&gt;
&lt;P&gt;재미삼아 함 만들어 봤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4.flvs.daum.net/files/51/66/36/79/21911784/thumb.jpg.edit&quot; moviekey=&quot;vlmyyNEOjQs$&quot; type=&quot;vi&quot;/&gt;&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투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투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피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피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삼구삼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삼구삼진&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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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러일전쟁. 1905년을 기점으로 한 조선, 러시아, 일본의 변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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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아글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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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1T09:47:32Z</updated>
	    <published>2009-07-01T09:47:3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청일전쟁의 승리로 상당한 배상금을 챙긴 일본은 조선과&amp;nbsp;동북아를 둘러싼 외교문제로 러시아와의 긴장이 날로 고조되고 있었다. 영국과 미국의 아시아 지역 헌병을 자초했던 일본은 이러한 지위를 기반으로 영-일동맹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내치에 문제가 있을때마다 외교문제로, 전쟁으로 관심을 대외로 돌리고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었다. 1905년 러일전쟁 발발 직전에도 마찬가지여서 번벌정권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준비함으로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던 정당세력들과의 문제를 일소하고 전쟁준비를 통해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 내부에서도 러일전쟁의 승산은 '일본이 분투해도 반반'이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 였음에도 일본은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84831124A4AAD95340B3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본은 육군이 조선반도를 거쳐 북상하며 승전하고, 지구를 반바퀴 돌아 응원 온 발틱함대와의 해전에서 크게 승전하며 승세를 굳혀 나갔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영-일동맹, 영국과 미국에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영-미의 지원을 업고는 있었다곤 해도 러시아는 일본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러시아는 비록 노회한 제국이고 짜르의 전제통치 아래 썩어가는 고목이었지만 뤼순요새의 함락과 발틱함대의 패전으로 무너질 상황만은 아니었다. 제정러시아는 내부의 문제, 즉 혁명의 기운이 고조되고&amp;nbsp;있어 전쟁을 더욱 진행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결국 미국이&amp;nbsp;중재 자리를 깔고&amp;nbsp;러-일 양국은&amp;nbsp;포츠머스강화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혁명의 고조로,&amp;nbsp; 일본은 전비부족으로 양국&amp;nbsp;모두 전쟁을 계속 이어 나갈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이 승전했지만 강화협상에서 러시아는 '배상없고, 할양지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상당부분 이를 관철시켰다. 일본은 사할린 이남과 철도부설권 그리고 조선에 대한 보호권을 인정받게 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러일전쟁의 결과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화로 급속하게 접어 들게 되었다. 일본은 영국과의 영-일동맹, 미국과 맺은 가츠라-태프트 밀약, 러시아와의 포츠머스조약을 통해 조선을 사실상 수중에 넣었고 1905년 을사조약 체결, 1910년&amp;nbsp;조선 병합에 이르게 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러시아는 썩어 가고 있는 짜르전제가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을 맞아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은 간신히 제압했으나 이 혁명을 통해 짜르전제는 더 이상 무너져 가는 제정러시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노동자와 민중들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다. 결국 러시아는 1917년 10월혁명을 통해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리고 혁명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또 다시 식민지 조선에 혁명의 기운을 불러 일으켰고 1919년 3.1운동과 1925년 조선공산당을 일구어 내는 기폭제가 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반면 일본은 러일전쟁을 통해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해졌고 군국주의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군부는 식민지 총독을 군에서 맡겠다고 주장하고 나설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번벌정권(내각)의 실질적인 군통수권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배상금을 받지 못해 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러시아와의 강화에 반대하는 세력을 진압해야 했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내부를 추스려야 하는 문제를 안게 되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1905년 러-일 전쟁을 기점으로 조선, 러시아, 일본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역사는 서로 맞물려 진행되고 한 사건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때문에 역사를 보고 현실을 이해함에 있어 폭 넓게 보고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급변하는 상황, 현실에서 이러한 관점을 일상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시야를 확장해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무엇인지?일 것이다.&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러시아혁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러시아혁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러일전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러일전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포츠머스조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포츠머스조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가츠라태프트밀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가츠라태프트밀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역사의시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역사의시각&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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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잇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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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아글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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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1T09:00:50Z</updated>
	    <published>2009-07-01T09:00: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사전적 의미로 잇끼는 이렇단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본사를 보면 각종 다양한 잇끼가 등장한다. 그러나 잇끼의 횟수나 성격을 보면 우리의 역사에 등장하는 농민항쟁, 소요, 반란과는 많이 다르다. 먼저 횟수에 있어 우리 역사에 비해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위정자 및 권력자들에게 미친 영향 또한 미미한 것 같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DIV&gt;
&lt;HR class=tx-hr-border-2 align=left&gt;
&lt;/DIV&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본래는 일치협력한다는 뜻이지만, 가마쿠라 바쿠후[鎌倉幕府]가 멸망한 후 계속되는 정치적·사회적 혼란에 대처하고자 중소 무사층이 일심동체로 취한 자신들의 집단행동을 잇키라고 불렀다. 가마쿠라 시대의 도[黨]가 혈연적 집단이었던 것과는 달리, 잇키는 지연적 결합요소가 강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에 들어와서는 농촌의 토착 무사나 도시 하층민의 폭동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구니잇키[國一揆]·잇코잇키[一向一揆]·도쿠세이잇키[德政一揆：쓰치잇키라고도 함] 등의 구별이 있다. 에도 시대[江戶時代]에는 바쿠후나 한[藩]의 영주의 권력에 반항한 햐쿠쇼잇키[百姓一揆]가 여러 형태와 요구를 갖고 전개되었으며, 도시 빈민층의 반항은 주로 우치코와시[打毁：관아나 부잣집 등을 때려부수고 약탈하는 소동] 형태를 취했다. 메이지 시대 초기의 잇키는 보통 농민소요라 불린다.&lt;/SPAN&gt;&lt;/P&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항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항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소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소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반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반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일본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잇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잇끼&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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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절이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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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아글쎄</name>
	    </author>
	    <updated>2009-06-13T23:02:33Z</updated>
	    <published>2009-06-13T23:02: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새삼스레&amp;nbsp;요즘 조절이론이&amp;nbsp;자주 보인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
&lt;DIV&gt;
&lt;HR class=tx-hr-border-2 align=left&gt;
&lt;/DIV&gt;
&lt;P&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조절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선진 자본주의 경제를 '포디즘'이라 규정함으로써 참신한 20세기 像을 제공했다.(아글리에타,1976;리피에츠, 1979;브와예,1986) 즉, 전후세계는-우선 시야를 소위 선진공업제국으로 한정하면-1950~60년대의 지속적 고도성장에서 1970년대 이후의 장기 세계불황으로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여기서 포디즘이란 '테일러 주의의 수용 對 생산성연동임금의 제공'이라는 노사타협(조절양식)에 매개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거시경제(축적체경제)로 요약할 수 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브와예 아글리에타 리피에츠 교수 등이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 조절이론은 역사와 이론을 종합시키려는 웅대한 시도이다. 이들은 마르크스 등이 자본주의 경제가 봉건제 → 자본주의 →사회주의로 커다란 단계를 밟아 발전해 가는데는 주목했지만 자본주의 내에서 패러다임적 변화가 일어나는 사실은 간과했다는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 같은 자본주의라도 각국별로 크게 차이가 날 뿐더러 시대를 따라 전반적인 모습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조절이론에서의 핵심개념은 접합(configuration)이다. 국제관계, 생산방식, 금융관계, 경쟁양태, 노사관계 등의 주요 부문들이 어떤 형태로 서로 맞물리느냐에 따라 세계적 체계건 국가적 체계건 계기적으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조절이론가들은 한동안 안정적인 접합이 유지되다가 새로운 접합이 만들어지면서 경제가 패러다임적으로 변화해 나간다고 본다. 리피에츠 등이 20세기 초반이후 포디즘이 자본주의를 지배하다가 정보기술혁명 신노사관계등에 따라 포스트 포디즘으로 넘어간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조절이론가들은 따라서 대부분의 이론은 안정된 접합 내에서 타당성을 갖는다고 본다. 접합이 달라지면 이론도 달라져야한다. 또, 이론이 안정적인지의 여부 혹은 새로운 접합이 어떻게 이루어주는 가를 살피기 위해서는 제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와예 교수는 2차 대전후 세계경제의 장기성장이 이루어졌던 것도 조절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전후 조절체제의 기반은 *외부자본의 통제 *고금리 억제 *정부의 경기조절적 역할 *내수중심적 사고방식 *근로자가 대량생산품을 소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요창출처라는 인식 등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케인스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한 전후 조절체제는 실제로 세계 자본주의의 성장률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자본주의 황금기(Golden Age of apitalism)'을 구가하게 되는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전후 조절체제는 각국이 공급과잉에 직면해 수출주도성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국제자본의 이동성이 높아짐에 따라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후 모색된 조절체제가 국제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바탕을 둔 현재의 세계경제이다. &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조절이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절이론&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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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K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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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아글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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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6-08T13:30:09Z</updated>
	    <published>2009-06-08T13:30:0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2&gt;굳이 나를 출생에 따른 지역으로 구분한다면 TK라 할 수 있다.&lt;BR&gt;아버지, 어머니 모두 대구경북출생이고 대구경북에서 나고 자랐다. &lt;BR&gt;형제들도 모두 경북에서 나고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커가면서 서울로 일찍 올라왔지만 지역적으로 구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집안이 이렇다 보니 친척들로 모조리 TK출신이다.&lt;BR&gt;&lt;BR&gt;지금이야 TK가 수구보수의 아성이고 한나라당, 박근혜의 텃밭이지만 옛날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lt;BR&gt;해방전후기에 대구 경북지역은 좌익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며, 46년 미군정기에도 조선공산당과 전농의 주도로 미군정에 맞서 10월 대구 항쟁을 일군 60여만의 농민과 민중들이 있었던 지역이다. 또한 한국전쟁기에 인민군 입장으로 '미수복지역'이었던 곳이 많아 좌익들이 표면화되지 않은 곳들이 있어 한국전쟁 이후에 다른 지역은 좌익이 전멸하다시피 했음에도 그 쪽은 좌익이 아직 살아 남아 있었다. 해방이후 발생한 각종 전위당(북한의 조선노동당을 승인하는) 조직에 그쪽 인사들이 많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다. &lt;BR&gt;&lt;BR&gt;하지만 박정희 장기집권, 전두환/노태우 군사파쇼정권을 거치면서 대구경북은 지역주의 분할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집권세력에 동원되었다. 쿠데타를 통해 수십년 집권한 군사파쇼정권은 대구경북을 지역적 근거로 삼는 전략을 통해 한국을 지배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시간들이 지나면서 대구경북은 '반동의 심장', '반역의 핵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lt;BR&gt;&lt;BR&gt;전엔 좌익집안이었던 우리 집도 많은 사람들이 오리지널 TK가 되어 있다. 집안행사에서 듣는 이야기는 당황스러운 말들이 많다. 작년 촛불이 한창일때 &quot;촛불 배후에 김대중이가 있고, 양초 대주고, 밥 사주면서 사람 불러 모은다&quot;는 이야기를 하자. &quot;그래 어쩐지 그런거 같더라...&quot;라는 이야기에 대략 어이가 없어 버렸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 대략 얼척 없는 이야기 중 하나다. 요즘 경찰의 교통단속이 장난이 아니다. 안전벨트, 휴대폰 사용 단속 등 도로에 단속중인 경찰이 많이 나와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amp;nbsp;방법의 하나로 노무현이 장례 치르느라 돈이 많이 들어가 국고 채우느라 그렇다는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 ...&lt;BR&gt;&lt;BR&gt;이런게 오랜기간 권력의 단맛을 보고 최근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일까? 물론 일부의 정서와 이야기이겠지만 비상식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이 유통되는 배경엔 도대체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까?&lt;BR&gt;&lt;BR&gt;노무현 집권기에 변기가 막혀도 노무현이 때문이고,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노무현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명박이 권력 잡고 노무현이 죽고 나서 이젠 뭘로 우려 먹을까 싶다. 조카같은 좌빨때문이라고 하기엔 우리 좌빨이 너무 왜소해 씹을 거리를 제공해 드리지 못해 송구스러울 뿐이다. 우리도 언능 성장해 씹을거리를 제공해 드려야 겠다. ^^&lt;BR&gt;&lt;BR&gt;잠을 조금밖에 못 자 몸이 영 찌뿌등하다, 어제 담배를 많이 펴 목도 컬컬하다. &lt;BR&gt;쥐의 자식인지 개의 자식인지 의견이 분분한 이명박이 때문인가 모르겠다...&lt;/FONT&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이명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명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대구경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구경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TK&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TK&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10월항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10월항쟁&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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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종의 출상, 6.10 만세투쟁, 전직 대통령의 죽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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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아글쎄</name>
	    </author>
	    <updated>2009-05-25T14:03:38Z</updated>
	    <published>2009-05-25T14:03: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B&gt;&amp;nbsp;&lt;/B&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2075640C4A1A2647E113E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9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9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B&gt;&amp;nbsp;&lt;/B&gt;&lt;/P&gt;
&lt;P&gt;&lt;B&gt;6월이 다가오고 있다.&lt;/B&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1926년 순종의 서거와 이에 따른 민중들의 항일감정 고양을 통해 6.10만세사건이 벌어지게 된다.&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그러나 1919년 3.1투쟁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amp;nbsp;않았던 일경과 총독부는 철저히 저항의 움직임을&amp;nbsp;봉쇄하려&amp;nbsp;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한&amp;nbsp;항일 세력은 순종의 출상일을 맞아 대대적인 항일운동을 조직하려 했다. 특히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청은&amp;nbsp;권오설을 책임자로 하여&amp;nbsp;6.10투쟁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대적인 투쟁을&amp;nbsp;준비하였으나 사전에 일경에 발각되어 대대적인 검거를 맞게 되고 결국 조선공산당 2차당은 붕괴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그렇지만 검거되지 않은 사회주의자들과 학생, 민족주의자들은 순종 출상에 맞춰 시위를 벌였고 일경은 강경대응했다.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서거니 자살이니, 애도를 해야 하니? 애도는 무슨 애도니? 하는 말이 있다. 한사람의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죽음을 목격하고 할말이 이 정도라면 무척 실망이다.&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형식상 봉건군주였던 순종의 장례와 순종을 대하는 일제의 가증스러움에 민중들은 크게 분노했고 항일감정은 고양되었다. 사회주의자들과 6.10 만세투쟁을 준비했던 사람들이 봉건군주 순종의 생물학적 죽음만을 주목했었는지 생각해 보자? 전직대통령의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최후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노무현이라는 개인 신상의 의학적 사망만이 아닐 것이다. &lt;/STRONG&gt;&lt;STRONG&gt;촛불에서부터 이어진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 정치보복/정치공작으로 불안한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권보위 전략에 대한 반감이 전직대통령의 죽음으로 상처 받은 가슴을 더욱 저미게 만들었을 것이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
&lt;DIV&gt;
&lt;HR class=tx-hr-border-2 align=left&gt;
&lt;/DIV&gt;
&lt;P&gt;&lt;/P&gt;
&lt;P&gt;&lt;STRONG&gt;6.10 만세투쟁에 대한 위키 관련 글&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gt;6·10 만세운동&lt;/B&gt;(六十萬歲運動)은 &lt;A title=1926년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1926%EB%85%84&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1926년&lt;/FONT&gt;&lt;/U&gt;&lt;/A&gt; &lt;A title=&quot;6월 10일&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6%EC%9B%94_10%EC%9D%B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6월 10일&lt;/FONT&gt;&lt;/U&gt;&lt;/A&gt; &lt;A title=조선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조선&lt;/FONT&gt;&lt;/U&gt;&lt;/A&gt; 및 &lt;A title=대한제국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한제국&lt;/FONT&gt;&lt;/U&gt;&lt;/A&gt;의 마지막 임금 &lt;A title=&quot;대한제국 순종&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_%EC%88%9C%EC%A2%85&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순종&lt;/FONT&gt;&lt;/U&gt;&lt;/A&gt;의 장례식을 기해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다.&lt;/P&gt;
&lt;P&gt;6·10 만세운동은 &lt;A title=&quot;3·1 운동&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3%C2%B71_%EC%9A%B4%EB%8F%99&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3·1 운동&lt;/FONT&gt;&lt;/U&gt;&lt;/A&gt;을 잇는 전국적·전민중적인 항일운동으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그러나 &lt;A title=&quot;일본 제국&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_%EC%A0%9C%EA%B5%AD&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일제&lt;/FONT&gt;&lt;/U&gt;&lt;/A&gt;는 3·1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철저한 경계 태세를 갖추었고, &lt;A title=경성부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2%BD%EC%84%B1%EB%B6%80&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경성부&lt;/FONT&gt;&lt;/U&gt;&lt;/A&gt;에는 7000여 명의 육·해군을 집결시켰으며, &lt;A class=mw-redirect title=부산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B6%80%EC%82%B0&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부산&lt;/FONT&gt;&lt;/U&gt;&lt;/A&gt;·&lt;A class=mw-redirect title=인천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9D%B8%EC%B2%9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인천&lt;/FONT&gt;&lt;/U&gt;&lt;/A&gt;에는 함대를 정박시켰다. 주동자는 &lt;A title=사회주의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82%AC%ED%9A%8C%EC%A3%BC%EC%9D%98&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사회주의&lt;/FONT&gt;&lt;/U&gt;&lt;/A&gt;계의 &lt;A class=new title=&quot;권오설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A%B6%8C%EC%98%A4%EC%84%A4&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권오설&lt;/FONT&gt;&lt;/U&gt;&lt;/A&gt;, &lt;A title=김단야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9%80%EB%8B%A8%EC%95%B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단야&lt;/FONT&gt;&lt;/U&gt;&lt;/A&gt;, &lt;A class=new title=&quot;이지탁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C%A7%80%ED%83%81&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지탁&lt;/FONT&gt;&lt;/U&gt;&lt;/A&gt;, 인쇄직공 &lt;A class=new title=&quot;민창식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F%BC%EC%B0%BD%EC%8B%9D&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민창식&lt;/FONT&gt;&lt;/U&gt;&lt;/A&gt;, &lt;A class=new title=&quot;이용재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C%9A%A9%EC%9E%AC&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용재&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연희전문학교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97%B0%ED%9D%AC%EC%A0%84%EB%AC%B8%ED%95%99%EA%B5%90&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연희전문&lt;/FONT&gt;&lt;/U&gt;&lt;/A&gt;의 &lt;A class=new title=&quot;이병립 (1904년)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B%B3%91%EB%A6%BD_(1904%EB%85%84)&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병립&lt;/FONT&gt;&lt;/U&gt;&lt;/A&gt;, &lt;A class=new title=&quot;박하균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B0%95%ED%95%98%EA%B7%A0&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박하균&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중앙고보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A4%91%EC%95%99%EA%B3%A0%EB%B3%B4&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중앙고보&lt;/FONT&gt;&lt;/U&gt;&lt;/A&gt;의 &lt;A class=new title=&quot;이광호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A%B4%91%ED%98%B8&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광호&lt;/FONT&gt;&lt;/U&gt;&lt;/A&gt;, &lt;A title=경성제국대학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2%BD%EC%84%B1%EC%A0%9C%EA%B5%AD%EB%8C%80%ED%95%99&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경성대학&lt;/FONT&gt;&lt;/U&gt;&lt;/A&gt;의 &lt;A class=new title=&quot;이천진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C%B2%9C%EC%A7%84&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천진&lt;/FONT&gt;&lt;/U&gt;&lt;/A&gt;, &lt;A title=천도교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B2%9C%EB%8F%84%EA%B5%90&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천도교&lt;/FONT&gt;&lt;/U&gt;&lt;/A&gt;의 &lt;A class=new title=&quot;박내원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B0%95%EB%82%B4%EC%9B%90&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박내원&lt;/FONT&gt;&lt;/U&gt;&lt;/A&gt;, &lt;A title=권동진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6%8C%EB%8F%99%EC%A7%84&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권동진&lt;/FONT&gt;&lt;/U&gt;&lt;/A&gt; 등으로, 이들은 10만장에 달하는 &lt;A class=new title=&quot;격문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A%B2%A9%EB%AC%B8&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격문&lt;/FONT&gt;&lt;/U&gt;&lt;/A&gt;을 준비하고, 오전 8시 30분경 순종의 상여가 &lt;A title=&quot;종로 (서울)&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A2%85%EB%A1%9C_(%EC%84%9C%EC%9A%B8)&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종로&lt;/FONT&gt;&lt;/U&gt;&lt;/A&gt;를 지날 때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살포,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했다.&lt;/P&gt;
&lt;P&gt;격문의 내용은 &quot;일본 제국주의 타도,&quot; &quot;토지는 농민에게,&quot; &quot;8시간 노동제 채택,&quot; &quot;우리의 교육은 우리들 손에&quot; 등이었다. 6월 10일 순종의 &lt;A title=장례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9E%A5%EB%A1%80&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인산&lt;/FONT&gt;&lt;/U&gt;&lt;/A&gt;에 참가한 학생은 2만 4000여 명이었다. 군중의 호응으로 시위가 확대되었으나 조직 사이의 유대 결여와 민족진영의 조직약화, 노총계 사회주의계열의 사전체포 등으로 일본 경찰에 저지당하여 6·10 만세운동은 실패하였다.&lt;/P&gt;
&lt;P&gt;이 만세운동은 곧 전국으로 번져, &lt;A class=mw-redirect title=고창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3%A0%EC%B0%BD&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고창&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원산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9B%90%EC%82%B0&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원산&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개성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0%9C%EC%84%B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개성&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홍성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99%8D%EC%84%B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홍성&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평양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D%8F%89%EC%96%9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평양&lt;/FONT&gt;&lt;/U&gt;&lt;/A&gt;, &lt;A title=논산시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5%BC%EC%82%B0%EC%8B%9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강경&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대구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B%8C%80%EA%B5%A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대구&lt;/FONT&gt;&lt;/U&gt;&lt;/A&gt;, &lt;A title=공주시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3%B5%EC%A3%BC%EC%8B%9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공주&lt;/FONT&gt;&lt;/U&gt;&lt;/A&gt; 등지에서 대규모의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천여 명이 체포, 투옥되었으며, 제2차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권오설을 비롯한 다수의 공산당원이 체포됨으로써 제2차 &lt;A title=조선공산당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A%B3%B5%EC%82%B0%EB%8B%B9&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조선공산당&lt;/FONT&gt;&lt;/U&gt;&lt;/A&gt;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lt;A title=1927년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1927%EB%85%84&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1927년&lt;/FONT&gt;&lt;/U&gt;&lt;/A&gt; &lt;A title=신간회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C%8B%A0%EA%B0%84%ED%9A%8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신간회&lt;/FONT&gt;&lt;/U&gt;&lt;/A&gt;·&lt;A title=근우회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7%BC%EC%9A%B0%ED%9A%8C&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근우회&lt;/FONT&gt;&lt;/U&gt;&lt;/A&gt;·&lt;A class=new title=&quot;신정회 (아직 생성되지 않음)&quot; href=&quot;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B%A0%EC%A0%95%ED%9A%8C&amp;action=edit&amp;redlink=1&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신정회&lt;/FONT&gt;&lt;/U&gt;&lt;/A&gt; 등의 조직과 &lt;A title=1929년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1929%EB%85%84&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1929년&lt;/FONT&gt;&lt;/U&gt;&lt;/A&gt; &lt;A class=mw-redirect title=광주학생운동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EA%B4%91%EC%A3%BC%ED%95%99%EC%83%9D%EC%9A%B4%EB%8F%99&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광주학생운동&lt;/FONT&gt;&lt;/U&gt;&lt;/A&gt;에도 영향을 끼쳤다.&lt;/P&gt;&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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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printfooter&gt;원본 주소 ‘&lt;A href=&quot;http://ko.wikipedia.org/wiki/6%C2%B710_%EB%A7%8C%EC%84%B8%EC%9A%B4%EB%8F%99&quot;&gt;&lt;U&gt;&lt;FONT color=#810081&gt;http://ko.wikipedia.org/wiki/6%C2%B710_%EB%A7%8C%EC%84%B8%EC%9A%B4%EB%8F%99&lt;/FONT&gt;&lt;/U&gt;&lt;/A&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울 600년사에 실린 6.10관련 자료&lt;/SPAN&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6.10 만세투쟁을 계획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lt;/P&gt;
&lt;P&gt;&lt;A href=&quot;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6-2.html&quot; target=_blank&gt;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6-2.html&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6.10 당시 학생들의 만세운동에 대해서는&lt;/P&gt;
&lt;P&gt;&lt;A href=&quot;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6-3.html&quot; target=_blank&gt;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sidaesa/txt/6-1-6-3.html&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정치공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치공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정치보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치보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6.10만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6.10만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조선공산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공산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노무현서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무현서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권오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권오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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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시기 진보정당운동에서 좌파의 역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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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아글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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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5-25T09:17:45Z</updated>
	    <published>2009-05-25T09:17: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2009년 5월 8일 토론회에서 발제한 발제문.&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cfile201.uf.daum.net/attach/151624194A19E39F342896&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icon.daum-img.net/editor/p_hwp_s.gif&quot;/&gt; 현시기좌파의역할(토론회_090508).hwp&lt;/a&gt;&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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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팀원들 내야 수비 연습하는 모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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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아글쎄</name>
	    </author>
	    <updated>2009-05-18T10:47:31Z</updated>
	    <published>2009-05-18T10:47:3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계룡산의&amp;nbsp; 정기를 받으며 맹 연습 중...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4.flvs.daum.net/files/5/34/5/85/20385845/thumb.jpg.edit&quot; moviekey=&quot;QpA_FSbeIHk$&quot; type=&quot;vi&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4.flvs.daum.net/files/29/58/29/6/20385869/thumb.jpg.edit&quot; moviekey=&quot;ahm4vC2bLuA$&quot; type=&quot;vi&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4.flvs.daum.net/files/47/76/47/24/20385887/thumb.jpg.edit&quot; moviekey=&quot;qH4l6IHE0kM$&quot; type=&quot;vi&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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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생산력 중심주의와 반노동 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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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아글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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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4-04T09:49:56Z</updated>
	    <published>2009-04-04T09:49:5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생산력 중심주의에 대한 글을 읽다가 생각나 찾아 본 반노동선언이다.&lt;/P&gt;
&lt;P&gt;조정환씨의 해제를 덧붙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cfile233.uf.daum.net/attach/18653C0F49D6AE7D332F27&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rc=&quot;http://icon.daum-img.net/editor/p_hwp_s.gif&quot;/&gt; 반노동선언.hwp&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DIV&gt;
&lt;HR class=tx-hr-border-2 align=left&gt;
&lt;/DIV&gt;&lt;/P&gt;
&lt;P&gt;I.&lt;BR&gt;&lt;BR&gt;&amp;nbsp;&amp;nbsp;&lt;反노동선언&gt;은 올해&amp;nbsp;&amp;nbsp;여름 &lt;KRISIS(위기)&gt;란 이름의 맑스주의 연구집단이 발표한 팜플랫 형식의 공동저작문건이다. 이 글의 주요내용은 올해&amp;nbsp;&amp;nbsp;봄-여름 사이에 &lt;Jungle World&gt;라는 좌파주간신문에 연재되었다. ( 정확한 출전 : Gruppe KRISIS, &lt; Manifest gegen die Arbeit &gt;,Leverkusen, 1999 )&lt;BR&gt;&lt;BR&gt;&amp;nbsp;&amp;nbsp;이 글을 공동으로 집필한 &lt;KRISIS&gt; 그룹은 무엇보다도 &lt;KRISIS&gt;란&amp;nbsp;&amp;nbsp;동일한 이름의 맑스주의 잡지를 통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스스로를 일컬어 &quot;1848-1989년 사이의 시기를 지배했던 노동운동-맑스주의를 극복하려는 포스트맑스주의자&quot;라고 소개하는 &lt;KRISIS&gt;그룹은&amp;nbsp;&amp;nbsp;90년대 중반 이후의 독일 좌파운동진영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물론 이들의 문제의식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지난 86년부터 발간된 &lt;맑스주의적 비판&gt;이라는 부정기 잡지를 통해서이다. 이 잡지의 이름은&amp;nbsp;&amp;nbsp;90년부터 현재의 &lt;KRISIS&gt;로 변경되었으며,&amp;nbsp;&amp;nbsp;현재 &lt;KRISIS&gt;는 22호까지 발간되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lt;KRISIS&gt;그룹의 문제의식은 그들이 발간하는 잡지 &lt;KRISIS&gt;에 &quot;상품생산사회 비판을 위하여&quot;라는 부제가 덧붙여진데서 잘 드러난다. 이들의&amp;nbsp;&amp;nbsp;출발점은 맑스에 의해 언급된 &quot;추상노동&quot; 개념이다. 맑스는&amp;nbsp;&amp;nbsp;역사상 모든 사회 구성체에서 행해지는 노동일반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하나의&amp;nbsp;&amp;nbsp;특수한 형태를 띤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하여 &quot;구체노동&quot;과&amp;nbsp;&amp;nbsp;&quot;추상노동&quot;이라는&amp;nbsp;&amp;nbsp;개념을 구분한 바 있다. &lt;KRISIS&gt;그룹에 따르면 맑스의 비판가들은&amp;nbsp;&amp;nbsp;물론이려니와 그 후예들 - 여기에는 노동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역사상 모든 이념들, 다시말해 사민주의에서 공산주의에 이르는 모든 조류들이 포함되어 있다 - 은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갖는 이러한 특수성에 대해 그릇된 이해방식을 발전시켰다. 이들 대부분의 맑스주의자들은 &quot;추상노동&quot;을 &quot;노동 일반&quot;, 다시 말해 역사상 모든 사회구성체에서 존재해온 초역사적인 개념으로 이해했으며, 여기에다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quot;구체노동&quot;을 대비시켰다. 이러한 이해방식은 오로지 노동의 외적 요소 ( 노동강도, 노동에 대한 대가, 노동시간 등 ) 만을 시야에 붙들어두었는데, 여기에서 바로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착취라는 문제의식, 다시 말해 직접생산자가 빼앗기는 생산물을&amp;nbsp;&amp;nbsp;양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싹튼다고 &lt;KRISIS&gt; 는 비판한다. 맑스가 말하는 &quot;추상노동&quot;이란 이미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사회의 노동을 의미하며, &quot;추상적&quot;이라는 수식어 속에는 이미 개별 직접생산자의 &quot;구체노동&quot;이&amp;nbsp;&amp;nbsp;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는 게 &lt;KRISIS&gt; 그룹이&amp;nbsp;&amp;nbsp;제시하는 논의의 출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들의 문제의식속에는 80년대 이후에 발전된 &quot;추상노동이론적 해석틀&quot;이나 &quot;가치형태분석&quot; 등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하지만 &quot;맑스를 새롭게 읽어내려는&quot; 80년대 이후의 몇몇 이론틀이 자본과 노동 사이에 놓인 근본적 적대 그 자체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 ( 다양한 조류의 &quot;근본주의&quot; )으로 이어진 데 반해, &lt;KRISIS&gt; 의 작업은 오히려 자본과 노동 사이에 놓인 &quot;논리적 동일성&quot;을 파헤쳐 냄으로써 자본주의 극복의 길을 새롭게 조명해보려는 데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들이 볼 때, 자본주의사회의 양대계급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이미&amp;nbsp;&amp;nbsp;&quot;자본주의적 계급&quot;이며, 따라서 의식했건 아니건간에 이른바&amp;nbsp;&amp;nbsp;노동의 논리속에는&amp;nbsp;&amp;nbsp;이미 자본주의 메카니즘이 침투해 있다. 맑스 자신이 &lt;그룬트리세&gt;에서&amp;nbsp;&amp;nbsp;발전시켰고, 훗날 &lt;자본&gt;의 일부에서 그 흔적을 남겨 놓았듯이,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는 곧 특정한 &quot;상품소유자&quot;로서 시장에서 만나며,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조건하에서 나타나는 행동양식들, 예컨대 지금껏&amp;nbsp;&amp;nbsp;계급의식이라 불리웠던 것의 상당부분은 이미&amp;nbsp;&amp;nbsp;상품생산사회의 기반위에서 가능한 (평등한)상품소유자들의 행동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lt;KRISIS&gt; 의 이론작업을 다른 여타의 맑스주의적 이론틀과 구분시켜주는 구체적인 계기는 결국 &quot;계급&quot;에 대한 이해에서 찾아질 수 있다. &quot;프롤레타리아의 종말은 곧 혁명의 시작&quot;이라는 제목의 논문( &lt;KRISIS&gt;. No. 10 )에서 알 수 있듯이, &lt;KRISIS&gt;에게서 계급이란 상품생산체계 내에서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지극히 &quot;객관적 범주&quot;이자 동시에 상품생산사회의 물신성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모습니다. 따라서 말하자면 (물신화한) 계급의식을&amp;nbsp;&amp;nbsp;벗어던질 경우에만, 다시말해 상품생산사회의 구조적 강제에서 벗어날&amp;nbsp;&amp;nbsp;경우에만 혁명은 시작될 수 있는 셈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lt;BR&gt;&lt;BR&gt;II.&lt;BR&gt;&lt;BR&gt;&amp;nbsp;&amp;nbsp;다소 추상적인 논의로 비치는 &lt;KRISIS&gt; 의 이론작업은 사실&amp;nbsp;&amp;nbsp;80년대 이후 &quot;맑스를 새롭게 읽기&quot; 혹은 &quot;맑스를 다시 읽기&quot;라는 모토 아래 등장한 일련의 흐름안에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이들의 논의 역시 전통적인 의미의 &quot;노동사회&quot;가 위기 ( 혹은 소멸 )에 빠진 현실과 근본적으로 대면하려는&amp;nbsp;&amp;nbsp;여러 급진적 &quot;포스트&quot; 흐름들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quot;노동 사회&quot;를 넘어선다는 의미는 80년대 이후의 현실을 뚫고나가려는 사회운동의 전망을 단순히 &quot;더 많은 일자리&quot;를 통해 &quot;노동사회의 정상성&quot;을 되살리는데서 찾는 게 아니라, 임노동관계 자체의 전화 ( 혹은 극복 )속에서 구하고자 한다는 걸 뜻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큰 틀에서 보자면,&amp;nbsp;&amp;nbsp;이런 흐름의 한편에는 임노동사회의 등장과 함께&amp;nbsp;&amp;nbsp;그 경계선에서 나란히 존재했던 다양한 형태의 &quot;(임)노동거부운동&quot;이 자리잡는다. 요즘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는 라파르그의 논의나 20세기 초&amp;nbsp;&amp;nbsp;다다이즘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읽힐 수 있다. 만일 70년대 이후만을 놓고&amp;nbsp;&amp;nbsp;보더라도,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 이후에 나타난 다양한 조류들은 여기에&amp;nbsp;&amp;nbsp;포함될 수 있다. 예컨대 독일의 &lt;Wildcat&gt; 그룹이나 최근 등장한&amp;nbsp;&amp;nbsp;&lt;행복한 노동자&gt; ( 이 두 그룹의 글은 조만간 번역소개하겠습니다! ) 그룹등은&amp;nbsp;&amp;nbsp;&quot;자본은 곧 고정된 양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가변자본&quot;이라는 명제로부터 출발해&amp;nbsp;&amp;nbsp;다양한 형태의 노동거부운동 ( = 계급투쟁 ) 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른바&amp;nbsp;&amp;nbsp;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으로의 이행 역시 노동자계급의 이러한 투쟁에&amp;nbsp;&amp;nbsp;대한 자본의 맞대응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70년대 아우토노미아의&amp;nbsp;&amp;nbsp;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논의속에서는 우선적으로 프롤레타리아와 노동자 계급 사이의 구분이 시도되고 있는데, 후자가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amp;nbsp;&amp;nbsp;&quot;객관적 범주&quot;라면, 전자는 직접생산대중이 객관적인 의미의 계급으로&amp;nbsp;&amp;nbsp;환원되는 경향을 끊임없이 상쇄하는, 보다 주체적인 &quot;욕망덩어리&quot;인 셈이다. &lt;Wil&lt;BR&gt;&lt;BR&gt;-dcat&gt;그룹이 &lt;KRISIS&gt; 그룹을 &quot;레닌주의의 잔재&quot;이자 &quot;객관주의의 극단&quot;이라고 일컬을 경우에는 레닌주의 = 경제주의 = 객관주의 라는 등식이 그&amp;nbsp;&amp;nbsp;바탕에 깔려 있으며, (자본에 포섭된) 임노동을 넘어서는 삶의 욕망은 곧&amp;nbsp;&amp;nbsp;이들 객관주의의 대립쌍으로 제시되고 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반면 다른 한편으로 &lt;KRISIS&gt; 의 문제의식은 임노동사회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노동사회의 위기를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이들 &quot;주관주의적&quot;&amp;nbsp;&amp;nbsp;논의들과 한데 묶일 수 있지만, 이들 &quot;주관주의적&quot; 입장들이 욕망이라는 존재를 마치 초역사적인 범주로 절대화하려는 성향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맞선다. 욕망이나 계급의식, 계급이해라는 범주 역시 부르조아적 경제시스템, 곧 상품생산사회라는 구조적 조건 아래서 기능하는 (물신화한) 범주로 파악하는 &lt;KRISIS&gt;에게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quot;자본주의극복의 불가능성&quot;이라는&amp;nbsp;&amp;nbsp;비관적 냄새마저 풍겨나온다. 이들이 레닌주의에 대해 언급할 경우, 그것은 곧&amp;nbsp;&amp;nbsp;정치주의일 뿐이며, 따라서 앞서 언급된 또 다른 흐름들 역시 기껏해야 레닌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quot;네오레닌주의&quot;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에게서는 레닌주의 = 주관주의 = 사회학주의에 맞서 경제주의(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의미&lt;BR&gt;&lt;BR&gt;와는 전혀 다르지만) = 객관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lt;KRISIS&gt; 의 이론틀에서 제2인터내셔날에까지 소급되는 경제주의적&amp;nbsp;&amp;nbsp;전통, 자동붕괴론적 성향을 읽어내려는 비판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III.&lt;BR&gt;&lt;BR&gt;&amp;nbsp;&amp;nbsp;새로운 전망아래서 노동사회의 위기 ( 혹은 전화 )에 접근하려는 이런 모든 흐름들이 구체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아마도 그 지점은 (임금)소득을 (생산적) 노동으로 환원시키는 자본주의의 절대 명제일 것이다. 만일 오늘날 만연한 대량실업이 더 이상 일시적이거나 예외적인 현상이&amp;nbsp;&amp;nbsp;아니며, 자본주의 발전의 &quot;구조적이고 필연적&quot;인 문제로&amp;nbsp;&amp;nbsp;받아들여지는한, 생산 영역으로부터 튕겨나온 사람들, 다시말해 &quot;일하지 않는 사람들&quot;에게도 &quot;먹을 권리&quot;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좌파진영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곧 과제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지금껏 지배적인 주류경제이론은 물론, 맑스주의 경제학은 개개인이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조건을 오로지 생산영역에서의 위치와 관련지워서&amp;nbsp;&amp;nbsp;생각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따라서 소득을&amp;nbsp;&amp;nbsp;노동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명제는 개개인의 물질적 조건을 생산영역내에서 차지하는&amp;nbsp;&amp;nbsp;위치의 문제로 환원하는 게 아니라, 재생산이라는 보다 넓은 틀에서 접근한다는 말이며, 동시에 전통적인 의미의 맑스 이론의 틀을 벗어나야하는&amp;nbsp;&amp;nbsp;필연성을 드러내준다. 자본주의가&amp;nbsp;&amp;nbsp;이제 더 이상 좁은 의미의 생산양식이&amp;nbsp;&amp;nbsp;아니라, &quot;재생산양식&quot;인 한에 있어서, 생산영역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게도&amp;nbsp;&amp;nbsp;삶의 권리, 곧 &quot;생존권&quot;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80년대 이래 급진좌파적인 사회운동의 핵심명제이다. 문제는 일자리를 나눠갖는 게 아니라, 사회적 부를 나눠갖는 것인 셈이다. ( 말하자면 일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amp;nbsp;&amp;nbsp;정상적인 임노동관계에 포섭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의 &quot;노동&quot;, 예컨대 &quot;사회운동이라는 노동&quot;에 대해 국가가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통해&amp;nbsp;&amp;nbsp;&quot;임금&quot;을 지급한다 --&gt; 새로운 사회적 연대! ) 사회적 부를 나눠갖자는 운동은 나름의&amp;nbsp;&amp;nbsp;역사를 지닌다.&amp;nbsp;&amp;nbsp;예컨대 70년대 이탈리아&amp;nbsp;&amp;nbsp;아우토노미아운동에서도 노동으로&amp;nbsp;&amp;nbsp;분리된 소득을&amp;nbsp;&amp;nbsp;주장하는 흐름이 있었고,&amp;nbsp;&amp;nbsp;독일의 경험을 들자면 80년대 전개되었던 이른바 Jobber운동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법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두 개 이상의 임시직에 동시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이들 Jobber에게서 자본주의적 임노동관계에 내포된 구조적 강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일련의 흐름들은&amp;nbsp;&amp;nbsp;80년대중반 이후, 자본측으로부터 이른바 &quot;유연화&quot;라는 맞대응이 등장함으로써 실패한 것으로&amp;nbsp;&amp;nbsp;이야기되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핵심을 차지했던게 바로 &quot;모든 이들에게 1500마르크씩을!&quot;이라는 주장이었다. 일을 하건 안하건, 일할 의사가 있건 아니건 간에 모든 이들에게 일정한 사회적 부를 나눠갖자는 주장은&amp;nbsp;&amp;nbsp;현실적인 의미를 떠나, 노동과&amp;nbsp;&amp;nbsp;소득의 일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메카니즘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읽혔었다. 물론 이처럼&amp;nbsp;&amp;nbsp;자본주의 비판이라는 명시적인 전망을 담고 있지 않더라도, 최근들어서는 &quot;새로운 빈곤&quot;이란 조건 속에서 &quot;노동권&quot;에 대비되는 &quot;생존권&quot;이라는 개념이 계속&amp;nbsp;&amp;nbsp;연구되고 있다. 또한 90년대 들어 네그리 등 일련의 이탈리아&amp;nbsp;&amp;nbsp;이론가들에 의해 제시된 &quot;비물질노동이론&quot;에서도 &quot;공산주의의 싹&quot;을 이처럼 노동과&amp;nbsp;&amp;nbsp;분리된 소득의 가능성에서 찾으려는 흐름이 나타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물론&amp;nbsp;&amp;nbsp;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처럼 노동과 소득을 분리하려는 시도가 자유주의 성향의 현실개혁가들 자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지는 복지국가에서 보여지는 비효율(재정적자)과 관료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완전히 철폐 ( 예컨대 독일의 경우 105 가지 ) 하고, 대신 일정한 소득한계를 정해 그 이하의&amp;nbsp;&amp;nbsp;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 ( 이른바 Negativ income system ) 함으로써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자유주의성향의&amp;nbsp;&amp;nbsp;논지들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모든 사회관계를 시장관계로&amp;nbsp;&amp;nbsp;단일화시켜야 한다는 것...&lt;BR&gt;&lt;BR&gt;&amp;nbsp;&amp;nbsp;&lt;BR&gt;&lt;BR&gt;이렇게 볼 때, 90년대 들어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소득이라는 명제는 급진좌파운동의 새로운 화두이자, 곧 어쩔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문제는 소득을 노동으로 환원시키는 전통적인 사회이론의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동시에 이런 흐름들이 모든 사회관계를 시장관계로 다시 환원시켜 버리려는 자유주의적 대세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느냐이다. &lt;KRISIS&gt;가 주목하는&amp;nbsp;&amp;nbsp;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임노동관계를 뛰어넘는 전망, 곧 사람들이 임노동의 강제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전망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만일 그같은 가능성이 단순히 &quot;일자리 대신에 돈을 받는 것&quot;으로 이해될 뿐이라면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은 흐려진다는 게 이들 논의의 바탕에 깔린 문제의식이다. 이들에게서 화폐란 상품생산사회가 굴러가는 물신형태의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lt;BR&gt;&lt;BR&gt;&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IV.&lt;BR&gt;&lt;BR&gt;&amp;nbsp;&amp;nbsp;가치론과 공황론이라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핵심명제로부터 21세기를 맞는 현실 사회운동의 전략에 이르기까지 &lt;KRISIS&gt;의&amp;nbsp;&amp;nbsp;논의속에서는 다소 추상적인 형태로나마 많은 쟁점들이 담겨 있다. 만일 앞서 얘기했듯이, &quot;주관주의적&quot; 성향과 &quot;객관주의적&quot; 성향이라는 대립구도만을 놓고 본다면 급진좌파적인 흐름들이 제시하는 현실적인 가능성이라는게 어찌보면&amp;nbsp;&amp;nbsp;&quot;욕망의 반란&quot;이냐 &quot;이성의 반란&quot;의 문제로 비칠지도 모른다. 특히 &lt;KRISIS&gt; 의 경우, ( 흔히 알려진 것보다도 훨씬 급진적인 ) 초기 비판이론의 흔적을 여전히&amp;nbsp;&amp;nbsp;짙게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논의가 제시하는 현실적인 전망이란게 단순히 &quot;의식화&quot;의 문제로 줄어들 위험성이 있을수도 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하지만 주관주의적이냐 객관주의적이냐라는 용어를 떠나 &quot;제도&quot;라는 다소 유행을&amp;nbsp;&amp;nbsp;타는 말을 끄집어 들인다면, &lt;KRISIS&gt;의&amp;nbsp;&amp;nbsp;논의나 그 반대편에 놓인 흐름들이나 결국 &quot;표준화한 행동양식 = 제도&quot;를 뛰어넘는 행위의&amp;nbsp;&amp;nbsp;가능성을 어떻게 찾느냐의 문제로 읽힐 수 있다. 물론 문제는 이처럼 제도적 틀을 뛰어넘는&amp;nbsp;&amp;nbsp;행위의 주체를 &quot;선험적으로&quot; 어떤 &quot;집단&quot;으로 환원하느냐,&amp;nbsp;&amp;nbsp;아니면 다양한 계기 속에서 열린 채로 남겨두느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quot;공장사회&quot;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quot;사회적 노동자&quot;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일련의 흐름들 ( 주관주의적 흐름들 ) 이 상대적으로&amp;nbsp;&amp;nbsp;집단적인 ( 굳이 &quot;계급&quot;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 반란, 전복, 일탕행동 등에 초점을 두고&amp;nbsp;&amp;nbsp;있다면, &lt;KRISIS&gt;의 경우에는 좀더 &quot;탈&quot;집단화한 계기들에 관심을 가진 듯 보인다.&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생산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생산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생산력중심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생산력중심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반노동선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반노동선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조정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정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UBw&amp;amp;tagName=생산력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생산력주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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