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xml-stylesheet href="http://pimg.daum-img.net/whsnake/css/atom.css?ver=1.0" type="text/css"?>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version="1.0" >
  <title>기독교교육</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blog.daum.net/xml/atom/mimsp"/>
  <rights>기교</rights>
  <author>
    <name>기교</name>
    <uri>http://blog.daum.net/mimsp</uri>
  </author>
  <generator uri="http://blog.daum.net" version="1.0">Daum blog (blogmaster@daum.net)</generator>
  <id>tag:blog.daum.net,2009:mimsp</id>
  <updated>2009-05-15T09:49:03Z</updated>

  		<entry>
	    <title>코메니우스의 기독교 교육 사상 연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36"/>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36</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5T09:49:03Z</updated>
	    <published>2009-05-15T09:49: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NjAwMDgy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1.예비적 고찰&lt;BR&gt;1.1.서론&lt;BR&gt;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은 지식과 신앙의 양대 기둥을 초석으로 한다. 지식과 신앙은 유럽의 사상적 두 원류로서 전자는 자연을 대상화한 것이고, 후자는 신을 지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과 신 중심적 신앙은 전인교육에의 기본적 요소이다.&lt;BR&gt;“교육되어지지 않은 인간은 동물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교육을 통해서만 ‘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lt;BR&gt;교육에 대한 개념은 처음 창조된 에덴교회로부터 출발된다. 하나님께서는 에덴교회를 창설하시고 ‘하라, 하지 말라’는 교육의 두 용어를 사용하시어 관계를 가지셨다.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개념인 ‘하라, 하지 말라’는 용어가 성경에 무려 2,000회 이상 언급됨을 주지할 때 이를 잘 알 수 있다.&lt;BR&gt;교육적 교회로 시작된 교회가 종교화로 전락하면서부터 문제가 야기되었음을 역사가 입증한다. 기독교회가 종교화로 고착되면서 건물위주(성전을 중요시), 제사장(계급)중심, 종교인중심인 의식화, 외식화, 무지화, 샤머니즘 화된 모습으로 퇴색된 것이다. &lt;BR&gt;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예수의 지상사역과 삶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재 정비하시사 종교화를 교육화로, 성전 화를 교회화로, 제사장화를 스승화로, 종교인화를 제자화로 그리고 계급화를 은사화로 바꾸시면서 다시금 교육 위에 모델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 증거로 예수께서는 지상 사역의 82%를 가르치는 사역으로 사셨으며, 호칭에 있어서도 스승과 랍비로 불리셨고, 최후 명령에 있어서도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화 할 것을 명하셨다.&lt;BR&gt;사도들의 삶에 있어서도 교육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날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적 삶을 감당했음을 본다. 사도들 역시 그들의 주된 업무가 ‘가르치는 것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을 인식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lt;BR&gt;교육적 교회가 종교화로 본격화된 것은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기독교회의 로마 국교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부터 교육적 기독교회는 교육교회에서 국가 종교화로, 날마다 모이는 교회에서 국경일로서의 주일교회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사에서 제사의식으로서의 미사 집례자로 변질된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회는 교육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점점 교회는 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르네상스 교육운동을 기점으로 교회중심의 교육권이 완전히 국가로 이전된 것이다.&lt;/P&gt;
&lt;P&gt;1.예비적 고찰(서론)&lt;BR&gt;1.1.서론&lt;BR&gt;1.2.연구방법 및 내용&lt;BR&gt;2.코메니우스의 생애에 있어서의 시대 사상적 고찰&lt;BR&gt;2.1.코메니우스의 생애&lt;BR&gt;2.2.생애에 있어서의 시대적 고찰&lt;BR&gt;2.2.1.모라비아 형제단&lt;BR&gt;2.2.2.30년 전쟁󰠜&lt;BR&gt;2.2.3.자연과학과 철학발전󰠜&lt;BR&gt;2.2.3.1.스콜라 사상󰠜&lt;BR&gt;2.2.3.2.문예부흥󰠜&lt;BR&gt;2.2.3.3.종교개혁운동󰠜󰠜&lt;BR&gt;2.2.3.4.새 과학 운동&lt;BR&gt;&lt;BR&gt;3.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의 기초와 사상󰠜󰠜󰠜󰠜󰠜󰠜󰠜󰠜󰠜󰠜󰠜󰠜󰠜&lt;BR&gt;3.1.코메니우스 교육사상의 기초󰠜󰠜󰠜󰠜󰠜󰠜󰠜󰠜󰠜󰠜󰠜󰠜󰠜󰠜󰠜󰠜󰠜󰠜󰠜󰠜&lt;BR&gt;3.1.1.인간관(기독교 신비주의적 세계관)󰠜󰠜󰠜󰠜󰠜󰠜󰠜󰠜󰠜󰠜󰠜󰠜&lt;BR&gt;3.1.2.자연관(합자연-교육방법의 기초)󰠜󰠜󰠜󰠜󰠜󰠜󰠜󰠜󰠜󰠜󰠜󰠜󰠜󰠜3&lt;BR&gt;3.1.3.지식관(경험론적 합리주의)󰠜󰠜󰠜󰠜󰠜󰠜󰠜󰠜󰠜󰠜󰠜󰠜󰠜󰠜󰠜󰠜󰠜󰠜󰠜&lt;BR&gt;3.2.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lt;BR&gt;3.2.1.복음주의󰠜󰠜󰠜󰠜󰠜󰠜󰠜󰠜󰠜󰠜󰠜󰠜󰠜&lt;BR&gt;3.2.2.감각적 실학주의󰠜󰠜󰠜󰠜󰠜󰠜&lt;BR&gt;3.2.3.자연주의󰠜󰠜󰠜󰠜󰠜󰠜󰠜󰠜󰠜󰠜󰠜󰠜󰠜&lt;BR&gt;3.2.4.범지주의󰠜󰠜󰠜󰠜󰠜󰠜󰠜󰠜󰠜󰠜󰠜󰠜󰠜&lt;BR&gt;&lt;BR&gt;4.범지교육 체계와 유아교육󰠜&lt;BR&gt;4.1.범지교육 체계󰠜󰠜󰠜󰠜󰠜󰠜󰠜󰠜󰠜󰠜&lt;BR&gt;4.1.1.모친 교육󰠜󰠜󰠜󰠜󰠜󰠜󰠜󰠜󰠜󰠜󰠜󰠜&lt;BR&gt;4.1.2.모국어 교육󰠜󰠜󰠜󰠜󰠜󰠜󰠜󰠜󰠜󰠜&lt;BR&gt;4.1.2.1.교과과목󰠜󰠜󰠜󰠜󰠜󰠜󰠜󰠜󰠜󰠜󰠜&lt;BR&gt;4.1.2.2.학교교과 운영방법󰠜󰠜&lt;BR&gt;4.1.3.라틴어 교육󰠜󰠜󰠜󰠜󰠜󰠜󰠜󰠜󰠜󰠜&lt;BR&gt;4.1.3.1.교과과목󰠜󰠜󰠜󰠜󰠜󰠜󰠜󰠜󰠜󰠜󰠜&lt;BR&gt;4.1.3.2.학년과정󰠜󰠜󰠜󰠜󰠜󰠜󰠜󰠜󰠜󰠜󰠜&lt;BR&gt;4.1.4.대학 교육󰠜󰠜󰠜󰠜󰠜󰠜󰠜󰠜󰠜󰠜󰠜󰠜&lt;BR&gt;4.2.유아교육󰠜󰠜󰠜󰠜󰠜󰠜󰠜󰠜󰠜󰠜󰠜󰠜󰠜󰠜󰠜&lt;BR&gt;4.2.1.유아교육의 목적󰠜󰠜󰠜󰠜󰠜󰠜&lt;BR&gt;4.2.2.유아교육에의 지침서󰠜󰠜&lt;BR&gt;4.2.2.1.대교수학󰠜󰠜󰠜󰠜󰠜󰠜󰠜󰠜󰠜󰠜󰠜&lt;/P&gt;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NjAwMDgy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1.예비적 고찰&lt;BR&gt;1.1.서론&lt;BR&gt;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은 지식과 신앙의 양대 기둥을 초석으로 한다. 지식과 신앙은 유럽의 사상적 두 원류로서 전자는 자연을 대상화한 것이고, 후자는 신을 지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과 신 중심적 신앙은 전인교육에의 기본적 요소이다.&lt;BR&gt;“교육되어지지 않은 인간은 동물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교육을 통해서만 ‘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lt;BR&gt;교육에 대한 개념은 처음 창조된 에덴교회로부터 출발된다. 하나님께서는 에덴교회를 창설하시고 ‘하라, 하지 말라’는 교육의 두 용어를 사용하시어 관계를 가지셨다.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개념인 ‘하라, 하지 말라’는 용어가 성경에 무려 2,000회 이상 언급됨을 주지할 때 이를 잘 알 수 있다.&lt;BR&gt;교육적 교회로 시작된 교회가 종교화로 전락하면서부터 문제가 야기되었음을 역사가 입증한다. 기독교회가 종교화로 고착되면서 건물위주(성전을 중요시), 제사장(계급)중심, 종교인중심인 의식화, 외식화, 무지화, 샤머니즘 화된 모습으로 퇴색된 것이다. &lt;BR&gt;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예수의 지상사역과 삶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재 정비하시사 종교화를 교육화로, 성전 화를 교회화로, 제사장화를 스승화로, 종교인화를 제자화로 그리고 계급화를 은사화로 바꾸시면서 다시금 교육 위에 모델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 증거로 예수께서는 지상 사역의 82%를 가르치는 사역으로 사셨으며, 호칭에 있어서도 스승과 랍비로 불리셨고, 최후 명령에 있어서도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화 할 것을 명하셨다.&lt;BR&gt;사도들의 삶에 있어서도 교육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날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적 삶을 감당했음을 본다. 사도들 역시 그들의 주된 업무가 ‘가르치는 것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을 인식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lt;BR&gt;교육적 교회가 종교화로 본격화된 것은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기독교회의 로마 국교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부터 교육적 기독교회는 교육교회에서 국가 종교화로, 날마다 모이는 교회에서 국경일로서의 주일교회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사에서 제사의식으로서의 미사 집례자로 변질된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회는 교육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점점 교회는 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르네상스 교육운동을 기점으로 교회중심의 교육권이 완전히 국가로 이전된 것이다.&lt;/P&gt;
&lt;P&gt;1.예비적 고찰(서론)&lt;BR&gt;1.1.서론&lt;BR&gt;1.2.연구방법 및 내용&lt;BR&gt;2.코메니우스의 생애에 있어서의 시대 사상적 고찰&lt;BR&gt;2.1.코메니우스의 생애&lt;BR&gt;2.2.생애에 있어서의 시대적 고찰&lt;BR&gt;2.2.1.모라비아 형제단&lt;BR&gt;2.2.2.30년 전쟁󰠜&lt;BR&gt;2.2.3.자연과학과 철학발전󰠜&lt;BR&gt;2.2.3.1.스콜라 사상󰠜&lt;BR&gt;2.2.3.2.문예부흥󰠜&lt;BR&gt;2.2.3.3.종교개혁운동󰠜󰠜&lt;BR&gt;2.2.3.4.새 과학 운동&lt;BR&gt;&lt;BR&gt;3.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의 기초와 사상󰠜󰠜󰠜󰠜󰠜󰠜󰠜󰠜󰠜󰠜󰠜󰠜󰠜&lt;BR&gt;3.1.코메니우스 교육사상의 기초󰠜󰠜󰠜󰠜󰠜󰠜󰠜󰠜󰠜󰠜󰠜󰠜󰠜󰠜󰠜󰠜󰠜󰠜󰠜󰠜&lt;BR&gt;3.1.1.인간관(기독교 신비주의적 세계관)󰠜󰠜󰠜󰠜󰠜󰠜󰠜󰠜󰠜󰠜󰠜󰠜&lt;BR&gt;3.1.2.자연관(합자연-교육방법의 기초)󰠜󰠜󰠜󰠜󰠜󰠜󰠜󰠜󰠜󰠜󰠜󰠜󰠜󰠜3&lt;BR&gt;3.1.3.지식관(경험론적 합리주의)󰠜󰠜󰠜󰠜󰠜󰠜󰠜󰠜󰠜󰠜󰠜󰠜󰠜󰠜󰠜󰠜󰠜󰠜󰠜&lt;BR&gt;3.2.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lt;BR&gt;3.2.1.복음주의󰠜󰠜󰠜󰠜󰠜󰠜󰠜󰠜󰠜󰠜󰠜󰠜󰠜&lt;BR&gt;3.2.2.감각적 실학주의󰠜󰠜󰠜󰠜󰠜󰠜&lt;BR&gt;3.2.3.자연주의󰠜󰠜󰠜󰠜󰠜󰠜󰠜󰠜1.모친 교육󰠜󰠜󰠜󰠜󰠜󰠜󰠜󰠜󰠜󰠜󰠜󰠜&lt;BR&gt;4.1.2.모국어 교육󰠜󰠜󰠜󰠜󰠜󰠜󰠜󰠜󰠜󰠜&lt;BR&gt;4.1.2.1.교과과목󰠜󰠜󰠜󰠜󰠜󰠜󰠜󰠜󰠜󰠜󰠜&lt;BR&gt;4.1.2.2.학교교과 운영방법󰠜󰠜&lt;BR&gt;4.1.3.라틴어 교육󰠜󰠜󰠜󰠜󰠜󰠜󰠜󰠜󰠜󰠜&lt;BR&gt;4.1.3.1.교과과목󰠜󰠜󰠜󰠜󰠜󰠜󰠜󰠜󰠜󰠜󰠜&lt;BR&gt;4.1.3.2.학년과정󰠜󰠜󰠜󰠜󰠜󰠜󰠜󰠜󰠜󰠜󰠜&lt;BR&gt;4.1.4.대학 교육󰠜󰠜󰠜󰠜󰠜󰠜󰠜󰠜󰠜󰠜󰠜󰠜&lt;BR&gt;4.2.유아교육󰠜󰠜󰠜󰠜󰠜󰠜󰠜󰠜󰠜󰠜󰠜󰠜󰠜󰠜󰠜&lt;BR&gt;4.2.1.&lt;BR&gt;4.2.4.4.도덕교육󰠜󰠜󰠜&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gt;4.2.2.2.모친학교 지침&lt;BR&gt;4.2.3.2.직관적 &lt;BR&gt;4.2.4.4.도덕교육󰠜󰠜󰠜&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  프로이트-영혼의 해방을 위하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35"/>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35</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5T09:47:43Z</updated>
	    <published>2009-05-15T09:47:4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NjAwMDgz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누구인가?&lt;BR&gt;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lt;BR&gt;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의 프라이베르크에서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와 어머니 아말리에 프로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8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1936년 9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여든 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프로이트는 1865년 빈에 위치한 레오폴트스태터 김나지움에 입학해 1873년 졸업했다. 프로이트는 지식욕이 강하고 근면한 학생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와 공부로 보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언어에 아주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즉 그는 라틴어와 헬라어를 마스터했고,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했으며 아무런 도움도 없이 이탈리아어와 에스파냐어를 공부했다. 학교의 종교 과목은 그에게 히브리어를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 프로이트는 10년 동안 영어로 된 책만 읽은 적이 있을 정도로 특히 영어를 좋아했다. 그는 1873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김나지움 졸업시험이자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를 통과하고 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lt;BR&gt;프로이트는 1882년 4월의 어느 날 저녁 그의 부모 집에서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스물한 살의 젊고 아름다운 마르타 베르나이스(Martha Bernays, 1861~1951)를 만났다. 원래 프로이트는 대학교수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집안도 약혼녀의 집안도 모두 가난했다. 그리하여 그는 학자의 꿈을 포기하고 개업의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6년 4월 빈에서 정신과 의사로 개업을 한 프로이트는 그해 9월 13일 약혼녀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결혼했다. 프로이트 부부는 전형적인 시민계층의 부부로서 평생 서로에게 충실했으며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그들은 일부일처제에 충실했다. 프로이트의 가족 중에는 막내인 안나(Anna Freud, 1895~1982)가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뒷날 저명한 정신분석학자가 되어 대를 이었다. 이처럼 딸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커다란 학문적 업적을 이룬 경우는 당시로써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lt;BR&gt;프로이트는 1885년 6월 빈 대학에서 신경병리학 분야의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 독일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으며, 그해 9월에는 사강사(私講師, Privatdozent)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오랫동안 구강암으로 혹독한 고통을 당했다. 그는 16년 동안 무려 서른세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프로이트가 구강암에 걸린 중요한 원인은 흡연이었다. 프로이트 자신도 그 엄청난 고통이 스스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대가였음을 잘 알고 있었다.&lt;/P&gt;
&lt;P&gt;머리말_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한 사회학자의 애증&lt;BR&gt;&lt;BR&gt;1.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누구인가?&lt;BR&gt;코페르니쿠스와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 - 서구 지성사적 혁명의 계보&lt;BR&gt;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lt;BR&gt;2. 정신분석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lt;BR&gt;깊은 인문학적 소양 - 그리스신화와 셰익스피어&lt;BR&gt;자연과학과 철학에 눈뜨다 - 다윈과 괴테 그리고 철학&lt;BR&gt;프로이트와 빈 - 시대적· 사회적 배경&lt;BR&gt;인간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 - 19세기를 넘어선 19세기 사상가&lt;BR&gt;3. 대(代)를 이은 정신분석학&lt;BR&gt;“안나-안티고네” - 또 한 명의 프로이트, 안나 프로이트&lt;BR&gt;4.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가&lt;BR&gt;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과학이다&lt;BR&gt;과학혁명의 긴 여정 - 의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lt;BR&gt;스승을 넘어서다 - ‘아버지 살해’로 얻은 패러다임의 전환&lt;BR&gt;자유연상법 -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치는 심리학적 탐침&lt;BR&gt;억압으로부터의 해방 - 정신분석학과 그 치료가 추구하는 목표&lt;BR&gt;사유와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하다 - 정신분석학의 과학성 문제&lt;BR&gt;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 프로이트는 결정론자인가&lt;BR&gt;5. 인간의 본능과 이성, 그리고 전쟁과 종교&lt;BR&gt;비사회적이고 반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lt;BR&gt;전쟁은 인간 본능의 발로이다&lt;BR&gt;반계몽주의적 계몽주의자 프로이트&lt;BR&gt;프로이트와 짐멜 - 과연 종교는 환상인가?&lt;BR&gt;6. 사회이론과 문화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학&lt;BR&gt;정신분석학의 확장 - 심리이론에서 사회이론· 문화이론으로&lt;BR&gt;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보편적인가?&lt;BR&gt;프로이트와 여성의 문제&lt;BR&gt;합리적인 사회와 문화를 위하여&lt;BR&gt;7. 정신분석학과 범죄 그리고 나치&lt;BR&gt;처벌이 아니라 치료와 교육을 - 정신분석학과 범죄&lt;BR&gt;왜 슬퍼하지 못하는가? - 나치의 정신분석학&lt;BR&gt;&lt;BR&gt;맺음말_ 지성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누군가 들어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는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  리차드 니버의 5가지 문화유형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34"/>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34</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5T09:47:14Z</updated>
	    <published>2009-05-15T09:47: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NjAwMDg5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Ⅰ.序論&lt;BR&gt;1.당면한 문제(問題)&lt;BR&gt;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인들에게 혼란이 되어왔던 영속적문제중에 하나인 그리스도와 문 &lt;BR&gt;화의 상호관계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전부터 비 기독교인들에게 ① &lt;BR&gt;“현세의 생활은 멸시하고 영생불멸을 확신하는데 열중한다”,②“그리스도가 인간을 유인하여 &lt;BR&gt;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게 하고 인간 자신의 성취에 전진하지 못하게 한다”,③“기독교는 &lt;BR&gt;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며 편협주이다”라는 비난을 들어왔다.&lt;BR&gt;또한,기독교의 본질적 구성요소에는 첫째,초문화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요 둘째,이 말씀을 역 &lt;BR&gt;사적으로 표현하는 문화적인 형식이다.이 둘중 어느 한가지가 빠지게 될때 참기독교가 아닌 &lt;BR&gt;다른 형태의 변형된 종교가 나타나게 된다.후자를 강조하게되면 기독교는 세속화된 문화의 &lt;BR&gt;기구로 전락해 버리며,반대로 계시된 체험만을 강조하고 문화적 형식을 도외시해 버리면,즉 &lt;BR&gt;전자를 강조하게 되면 기독교는 타계주의 내지 도피주의의 길을 걸으며 역사를 하나님의 구 &lt;BR&gt;속으로 이끄는 복음의 참된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lt;BR&gt;의 이 둘사이의 상호관계를 규정하는 문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lt;BR&gt;여기에서 기독교인들이 이 문제를 다룬 주요한 방법들을 열거하기 전에 ‘문화’라는 용어가 &lt;BR&gt;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진술하려한다.&lt;BR&gt;2.문화(文化)의 정의(定義)&lt;BR&gt;문화(Culture) 또는 문명(Civilization)은 “교양화시키는 행동 또는 교양 받은 결과로 이 &lt;BR&gt;루어진 상태”,더 좁게 말하면 “정신적 도덕적 훈련이나 문명이나 풍습 또는 취미에 대한 세 &lt;BR&gt;련을 통하여 가져오는 개량,개명,연단 같은 인간개발을 염두에 둔 말”이다.따라서 문화란 인 &lt;BR&gt;간 생활의 한 부분 뿐아니라 전 부문을 발달시키는 것을 말한다.&lt;BR&gt;문화의 8가지 특징을 통하여 정의(定義)를 고찰해 본다.&lt;BR&gt;①문화는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즉 사회안에서 구성원들이 공동적 생활양식과 관습을 발 &lt;BR&gt;전시킴을 말한다.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문화이며 이 문화는 인간들이 전수받고 전수하는 &lt;BR&gt;사회적유산이다.따라서 순수개인적인 것이나,사유(私有)한 것은 문화의 부분이 될수 없다.&lt;BR&gt;②문화는 “인간적 성취”로 특징된다.인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노력해서 이루었다는 사실을 &lt;BR&gt;들어 이것을 자연과 구별하는 것이다.강은 자연이다.그러나 운하는 문화이다.따라서 문화 &lt;BR&gt;는 인간의 노동과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며,자연이 그 재료요 이 자연을 개량함으 &lt;BR&gt;로 이룩한 업적이다.&lt;BR&gt;③문화는 “가치의 세계”를 특징으로 지니고 있다.자연이나 자연적 사건은 그 자체를 어떠한 &lt;BR&gt;가치를 지니지 않는다.&lt;/P&gt;
&lt;P&gt;Ⅰ.序論&lt;BR&gt;1.당면한 문제(問題)&lt;BR&gt;&lt;BR&gt;Ⅱ.本論&lt;BR&gt;A.리처드 니이버의 5가지 문화유형&lt;BR&gt;그는 자신의 저서 &lt;&lt;그리스도와 문화&gt;&gt;에서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성을 규정하는 다섯가지 유형을 ‘사상가들과 연관’시키면서 발전시키고 있다.&lt;BR&gt;1.대립유형(Type of opposition):그리스도와 문화의 對立&lt;BR&gt;(2)톨스토이의 문화배척&lt;BR&gt;(3)비판적 고찰&lt;BR&gt;2.일치유형(Type of agreement):그리스도와 문화의 一致&lt;BR&gt;(1)기독교적 영지주의&lt;BR&gt;(2)쉴라이에르마허와 리췰에 의한 문화기독교주의&lt;BR&gt;(3)비판적 고찰&lt;BR&gt;3.종합유형(Type of synthesis):그리스도와 문화의 綜合&lt;BR&gt;(1)클레멘트의 종합사상&lt;BR&gt;(2)토마스 아퀴나스의 종합사상&lt;BR&gt;(3)비판적 고찰&lt;BR&gt;4.역설유형(Type of paradox):그리스도와 문화의 逆說的 關係&lt;BR&gt;(1)루터의 역설적인 이해&lt;BR&gt;(2)키에르케고르와 트뢸취의 역설적 이해&lt;BR&gt;(3)비판적 고찰&lt;BR&gt;5.변혁유형(Type of transformation):&lt;BR&gt;그리스도에 의한 文化의 變革&lt;BR&gt;&lt;BR&gt;Ⅲ.結論&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  존 웨슬리의 교육신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33"/>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33</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5T09:46:49Z</updated>
	    <published>2009-05-15T09:46: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NjAwMDky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존웨슬리의 교육신학&lt;BR&gt;제1부 교육신학적 조명&lt;BR&gt;제 1 장 존 웨슬리의 교육신학&lt;BR&gt;제 1부에서는 존 웨슬리의 사상을 신학과 교육의 관계성이란 관점에서,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lt;BR&gt;신학적으로 존 웨슬레는 문화의 신학자이다. 극는 복음을 그 시대의 일반 민중들에게 어려운 사상의 내용일지라도 평이한 표현 방법으로 소개했으며, 복음 전도자의 메시지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한 민중신학 였다.&lt;BR&gt;그는 18세기에 살았던 영국의 교육실천가였다. 18세기 영국 역사상 교육의 근거와 발전에 순조롭지 못한 시가였으나 우연한 행운으로 웨슬리는 그의 종교적 사명을 완수 하는데 교육이 기초가 됨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교육의 이론적 체게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시대에도 부끄럽지 않을 이상적인 학교를 건설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존 웨슬리의 신학 사상을 오늘 우리 시대의 상황과 어떻게 연관시켜서 해석하느냐 하는 과제는 앞으로 존 웨슬리 신학의 새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lt;BR&gt;제 2 장 기독교 교육자 존 웨슬리&lt;BR&gt;존 웨슬리는 민중신학자이며 민중교육의 실천적인 창시자였다. 존 웨슬리는 통상적인 교육보다 더 나은 교육을 실천 하고자 결심하였다. 먼저 그는 그 시대에 있어서 교육적으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였다.&lt;BR&gt;첫째는 그시대의 교육제도가 야만적이고 가혹하다는 점에 대해 지적하였고, 둘째는 ㅡ 시대의 특징이었던 ‘이교도 교장들’의 불 신앙적인 가르침에 대항하여 진정한 종교적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고자 하였다.&lt;BR&gt;존 웨슬리의 교육이론을 정립하는 데 크게 영향을 준 인문주의자 몇 사람이 있다. 특히 존 록크의 사상이었는데, 록크는 “교육이란 규율이다”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사상은 그 시대의 성공적인 교육의 근거를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존 웨슬리가 록크에게서 영향받았다고 보여지는 내용은 존 웨슬리의 ‘가정교육’에 관한 설교에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을 가장 잘 알고 계시며 회초리를 아끼는 사람은 그 아들을 미워한다’란 표현이다.&lt;BR&gt;18세기 영국의 귀족께급은 빈민층에 대한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주일학교는 주중의 일과 겹치지 않는 날을 택해서 빈민층의 자녀에게 교육을 실시하였다. 존 웨슬리는 당시 가장 이상적인 학교를 세우려고 결심한 후 영국·네덜란드·독일에서 이름난 몇개의 학교들을 탐방하고 조사 하였다. 존 웨슬리는 교육의 문제점들을 다섯 가지로 비판하고 있다.&lt;BR&gt;첫째는 학교가 나쁜 환경에 위치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lt;BR&gt;둘째는 좋은 학교에 난잡한 아이들이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lt;BR&gt;셋째는 종교교육의 극단적인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lt;BR&gt;넷째는 종교의 선택을 지적하고 있다. 아이들이 선한 종교를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lt;/P&gt;
&lt;P&gt;제1부 교육신학적 조명&lt;BR&gt;제 1 장 존 웨슬리의 교육신학&lt;BR&gt;제 2 장 기독교 교육자 존 웨슬리&lt;BR&gt;제 3장 웨슬리의 회심과 교육&lt;BR&gt;제 4 장 역사적 웨슬리에 대한 이해&lt;BR&gt;제 5장 웨슬리 연구의 해석학적 접근&lt;BR&gt;제 2 부 교육적 조명&lt;BR&gt;제 6 장 존 웨슬리의 모습&lt;BR&gt;제 7 장 존 웨슬리의 교육사상&lt;BR&gt;제 8 장 웨슬리의 교육과 사상적 배경&lt;BR&gt;제 9 장 존웨슬리와 교육원리 &lt;BR&gt;제 10 장 존 웨슬리의 교육목표&lt;BR&gt;제 11 장 교육내용과 방법&lt;BR&gt;제 3 부 기독학교의 모형&lt;BR&gt;제 12 장 킹스우드학교의 설립&lt;BR&gt;제 13 장 킹스우드학교와 모범교육&lt;BR&gt;제 14 장 킹스우드학교의 신앙부흥회&lt;BR&gt;제 15 장 교육평가&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칼 라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32"/>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32</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20:50Z</updated>
	    <published>2009-05-14T07:20: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c4MDAw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라너는 인간의 경험에 집중한다. 이 분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었다` 등의 전통적인 신앙 진술을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현대인의 인간 실존과는 상관없는 단순한 신화가 될 뿐이라고 여겼다. 전통적인 신앙 진술들의 고유한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현대의 의식지평 위에서 재전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비신앙적이며 지적 다원주의가 만연한 인간중심의 시대 상황에서는 인간의 경험과 실존을 분석하는 인간학을 기점으로 신학을 전개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라너는 인간의 경험을 분석하여 그 경험 안에서 비명제적으로(unthematisch) 의식되는 인간 실존의 요소를 밝혀내고, 이를 통해 신학의 주제들을 전개시켜 나가려 했다.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현 시대의 요청에 따라 신학은 인간학적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으며, `인간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교의학 전반에 걸친 내용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lt;/P&gt;
&lt;P&gt;없음&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블루 프린트를 읽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31"/>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31</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20:11Z</updated>
	    <published>2009-05-14T07:20: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c4MDAy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조물주의 창조 아래 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복제인간이 복제된 인간의 고유한 영혼을 소유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복제된 인간이 고유한 영혼을 소유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려는 의지와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막으신 인간 창조의 타부를 인간이 깨뜨리는 쾌거 뒤에 오는 씁쓸한 모습을 작가는 이 책에 담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고유한 영역으로 만든 인간 창조가 인간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의문이 되겠지만, 가능하다는 과학적 증명이 이를 뒷받침 하기에 반드시 일어날 일인 것은 자명하다. &lt;BR&gt;복제인간이 진정한 종교성과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창조가 된다면 이는 인간으로 바벨탑을 &lt;BR&gt;지어서 인간의 승리를 장식하게 되는 결말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인간은 &lt;BR&gt;이 점으로 인하여 패망의 길을 갈 것이 분명한 것은 신의 영역에 손을 대었다는 종교성에 &lt;BR&gt;의지하는 것이다.&lt;/P&gt;
&lt;P&gt;없음&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조나단 에드워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30"/>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30</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9:41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9: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c4MDA0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 미국교회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16세기 유럽의 개혁신학을 이어받은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신학이 18세기 미국의 에드워즈에서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18세기 미국 제1차 대부흥운동의 주역으로 쓰임받은 에드워즈는 자기 시대의 부흥 현상을 성경의 근거를 중심으로 신학화함으로써 이후 교회사에 반복되어 나타난 부흥에 대한 부흥 신학의 초석을 놓았다. 따라서 에드워즈에게는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개혁 신학과 청교도 신학 그리고 18세기의 부흥 신학이 탁월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에드워즈는 교회역사상 신학적 면과 체험적인 면 양면에서 가장 깊이가 있으면서도 균형잡힌 사람으로 간주된다. 에드워즈는 개인적으로 신학자, 목회자, 설교자, 부흥사, 철학자, 과학자, 역사가, 심리학자로서의 뛰어난 자질들도 고루 갖춘 사람이었다. 이처럼 다방면에 걸쳐 큰영향을 끼친 에드워즈의 개인적 자질들은 결국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므로 에드워즈는 미국 교회의 아버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lt;/P&gt;
&lt;P&gt;없음&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오리겐 연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9"/>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9</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8:54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8:5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c4MDA2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단순하고 불완전한 신자들을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는 로고스와 예수의 육신을 연결시키는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영혼은 타락에 참여하지 않은 순수한 영이었다. 고난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영혼이었고 로고스가 아니었다. 오리겐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에 각각 그 본래의 특성을 부여하였는데 인간 예수는 참으로 가사적이었고 참으로 고난을 당하여 죽었다. 한편 로고스는 변할 수가 없으며 죽을 수도 없다. 이와 더불어 오리겐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의 진정한 결합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사귐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됨이다. 이러한 하나됨에 의하여 로고스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신성화 해 간다. 결국 로고스는 예수를 영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결합에 이르게 한다. &lt;BR&gt;그는 당대의 문화와 철학속에서 기독교를 표현하고 그 틀을 가지고 기독교 &lt;BR&gt;진리를 이해하고 변호하려고 하였다. 자연과 그속에서 역사하시는 한 하나님을 보았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연관시키려고 시도하였다.&lt;BR&gt;명실공히 동방신학의 전통을 세워놓은 인물이다. 60평생에 결쳐 이단들과 로마당국에 맞서 신앙을 변호하였으며, 기독교교육가로 활약하였고, 유대인사회에 대해 기독교를 증언하였으며 교회내에서는 영적 지도자로 일하였다.&lt;/P&gt;
&lt;P&gt;없음&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어거스틴의 신학사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8"/>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8</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8:11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8: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gwMTg1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Ⅰ.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lt;BR&gt;&lt;BR&gt;1)생애 &lt;BR&gt;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354년11월13일 누미디아의 타가스테(Tagaste in Numidie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는 신분이 높은 이방인이었으며 나이 들어 비로소 세례 받았지만 그의 어머니인 모니카(Monica)는 모태에서부터의 크리스찬이었다. &lt;BR&gt;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다우라(Madaura)와 카르타고(Karthago)에서 공부했으나 그의 훌륭한 재질과 사려깊은 그의 어머니의 경건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방탕한 청년들의 생활방식과 마니교의 오류에도 빠졌는데 그는 9년이나 이교를 지탱하고 포고하려고 노력했으나 성공적이 아니었다. 철학적인 학문체계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성서를 읽는 것은 명성과 육체적 향락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에 만족을 주지 못했고 카톨릭적 가르침은 그가 업신여기고 있었으므로, 그는 극히 격정된 자신의 정서에 결코 안정을 얻을 수 없었다. &lt;BR&gt;그는 타가스테와 카르타고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배우고, 마니교파와 결별하였으나 동시에 신빙할 것도 못되는 철학, 곧 철학파의 회의 속에 자신을 내맡긴 후 383년 수사학 선생으로 로마로 갔고, 384년엔 밀라노로 갔다. 이곳에는 그의 어머니와 친구들이 그를 대동하였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엔 단지 수사학적 가치를 위해서만 방문했던 성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그 어머니의 영향력과 그의 벗들과의 진지한 토론은 진리와 은총에 대하여 점차적으로 그의 가슴을 열게 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선생직을 내놓고 어머니와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한적한 작은 마을로 돌아갔다(386). 여기서 그는 가장 복된 평화를 찾았고 건덕적인 담론과 경건한 종교적 덕행을 하는 가운데, 자기의 아들인 아데오다투스(Adeodats)와 그의 친구인 알리피우스(Alypius)와 함께 부활절 전날(387) 밤에 성암브로시우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와 오스티아(Ostia)에서 사별 후 일년 더 로마에 머물렀다. &lt;BR&gt;그 후(388) 그는 자기의 조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유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타가스테에 있는 조그만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그는 수도사처럼 행복한 종교적 덕행과 문헌적 사업에 진력하였다. 그가 우연히도 히포에 들렀을 때(390), 그 자신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교중들의 간곡한 간청으로 감독 발레리우스(Valerius)에 의해 사제로 봉직되었고, 발레리우스가 죽은 396년에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감독으로서 그는 모든 면에서 행동하는 데 피곤하지 않았다.&lt;/P&gt;
&lt;P&gt;머리말 &lt;BR&gt;&lt;BR&gt;Ⅰ.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lt;BR&gt;&lt;BR&gt;Ⅱ. 저서 &lt;BR&gt;&lt;BR&gt;Ⅲ. 사상 &lt;BR&gt;1. 그의 사상 배경에 깔린 요소들 &lt;BR&gt;2. 죄론 &lt;BR&gt;3. 은혜론 &lt;BR&gt;4. 교회론 &lt;BR&gt;5. 삼위일체 &lt;BR&gt;&lt;BR&gt;Ⅳ. 결론 &lt;BR&gt;&lt;BR&gt;참고도서&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21세기 한국교회 바람직한 성경적 개혁 방향</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7"/>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7</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7:44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7: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gwMTg2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Ⅰ. 연구의 목적&lt;BR&gt;&lt;BR&gt;오늘날 한국 교회는 비관적인 것과 낙관적인 것이 교차되어 있다. 일부는 유럽의 교회와 미국의 교회를 따라가고 있다고 하고, 일부는 아직도 한국 교회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국 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이 자리에 서 있는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수많은 고민 끝에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없고 접근하게 꺼려하며 혹 나에게 불이익이 있지 않나? 하며 우려하는 부분이 있으나 부족한 필자는 졸필을 들고 작금의 한국 교회를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면서 한편으로 잘못되었다는 점을 생산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갈 개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lt;BR&gt;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접근하면서 나만 이 시대의 거룩하고 깨끗한 기독교인이고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다. 나 또한 한국 교회의 성도의 한사람으로써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느끼고, 한 사람의 신학생으로써 신앙생활과 경험에서 체험함으로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문제점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lt;BR&gt;또한 한국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하나님께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이 세상을 이해하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점을 말하면서 이 문제에 조심스럽게 겸손한 마음으로 접근하고 싶다. &lt;BR&gt;물론 여기 나오는 부분들 모두가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닐 수 도 있으나 그러나 일부분은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부인 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lt;BR&gt;앞으로 21세기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한국 교회가 이 시대를 주도하고 정말 성도들이 요구하는 한국 교회의 위상은 무엇인가? 평신도로서 신학생으로서 한국 교회가 어떻게 갈 것인가? 고민의 결론 후에 이 논제를 택하였다. 그래서 미래의 한국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며 성도들이 원하는 길로 가기를 바라며 조그만 안내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하여 이 명제를 택하였음을 밝혀둔다 &lt;BR&gt;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개괄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 한국 교회가 거듭나는데 이 논문이 기여하였으면 한다. &lt;BR&gt;&lt;BR&gt;Ⅱ. 연구의 범위와 방법&lt;BR&gt;&lt;BR&gt;연구에 대하여 접근하는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학문의 질을 높일 것인가? 어떻게 하면 연구의 범위와 방법을 결정하여 이 논문에 대한 제목에 합당한 글로 전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lt;BR&gt;첫째, 한국 교회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어떻게 한국에서 교회의 역사가 전개되었으며, 도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한국 교회에 정착되었는가 하는 점과 정착이후 한국 교회의 성장과정은 어떠하였으며, 성장의 직접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간략하게 나누어 설명하고, &lt;BR&gt;둘째, 지금의 미국교회나 유럽교회의 위기를 살펴보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외국교회의 장점은 취하고 나쁜 선례는 본받지 않고, 한국 교회의 위기상황을 최소화하면서 성령 안에서 부흥하겠는가 지적하고 &lt;BR&gt;셋째, 이러한 비교분석을 통하여 한국 교회 현실의 문제점을 리얼하게 진단하고, 교회 내부의 문제점 중 교회 지도자 자질문제, 교회재정의 투명성 문제를 거론하고, 교회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문제들 즉 교회의 상업화, 목사의 직업화, 교회의 빛과 소금 역할 부재 등의 시각에서 한국 교회 문제점을 지적하고,&lt;/P&gt;
&lt;P&gt;제1장 서 론&lt;BR&gt;Ⅰ. 연구의 목적&lt;BR&gt;Ⅱ. 연구의 범위와 방법&lt;BR&gt;&lt;BR&gt;제2장 한국교회의 시대적 배경&lt;BR&gt;Ⅰ.한국교회의 역사&lt;BR&gt;Ａ. 한국에서의 교회란 무엇인가&lt;BR&gt;Ｂ. 한국교회의 성장 배경&lt;BR&gt;1. 목회자의 대가지불&lt;BR&gt;2. 한국교회 성장이론의 확대&lt;BR&gt;3. 외국의 좋은 교회, 좋은 선교사 역할&lt;BR&gt;4. 개신교 전래의 적절한 시기&lt;BR&gt;5. 전통문화와 조화&lt;BR&gt;&lt;BR&gt;제3장 외국 교회의 위기 진단 및 비교&lt;BR&gt;Ⅰ. 미국 교회&lt;BR&gt;Ⅱ. 유럽 교회&lt;BR&gt;Ⅲ. 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비교&lt;BR&gt;&lt;BR&gt;제4장 한국교회의 문제점 진단&lt;BR&gt;Ⅰ. 교회 내부의 문제점&lt;BR&gt;Ａ. 교회 지도자 자질&lt;BR&gt;Ｂ. 교회의 재정 투명성&lt;BR&gt;Ⅱ. 교회 외부의 문제점&lt;BR&gt;Ａ. 교회의 상업화&lt;BR&gt;Ｂ. 목사직의 직업화 추구현상 &lt;BR&gt;Ｃ. 교회의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 부재&lt;BR&gt;제5장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개혁방안&lt;BR&gt;Ⅰ. 내부적 개혁 방안&lt;BR&gt;Ａ. 성경적 교회상 정립&lt;BR&gt;Ｂ. 바람직한 교회 교육 요망&lt;BR&gt;Ｃ. 직업의 성직 인식&lt;BR&gt;Ｄ. 교회의 재정 투명성 확립&lt;BR&gt;Ｅ. 엄격한 권징 제도 확립&lt;BR&gt;Ｆ. 목회자의 신분보장 및 퇴직금 확보&lt;BR&gt;Ⅱ. 외부적 개혁 방안&lt;BR&gt;Ａ. 교회지도자의 성경적 리더십 확립&lt;BR&gt;Ｂ. 지도자의 청직 의식 확립&lt;BR&gt;Ｃ. 교회의 빛과 소금 역할 기여&lt;BR&gt;Ｄ. 교회와 지역사회와의 연대 형성&lt;BR&gt;Ｅ. 지도자의 삶과 생활 일치 노력&lt;BR&gt;&lt;BR&gt;제6장 21세기 한국교회 나아갈 방향&lt;BR&gt;Ⅰ. 21세기 변화23의 현실 인식&lt;BR&gt;Ⅱ. 한국교회 성경적 중심 꿈과 비전 제시&lt;BR&gt;&lt;BR&gt;제7장 결론&lt;BR&gt;&lt;BR&gt;참고문헌&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장기려의 생애</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6"/>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6</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7:17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7: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gwMTg3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1. 장기려의 생애&lt;BR&gt;&lt;BR&gt;1)출생과 교육&lt;BR&gt;&lt;BR&gt;장기려(張起呂) 선생은 1911년(음력 8월 14일, 호적상으로는 1909년 7월 15일) 평안북도 용천군(龍川郡) 양하면(陽下面) 입암동(立岩洞) 73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한학자였던 부친 장(張)운(雲)섭(燮)과 모친 최윤경(崔允卿)의 차남으로 태어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장기려 선생의 1989년 2월1일 일기에 의하면`나는 할머님 품에서 자랐다. 할머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실히 믿는 신자이어서 입암동에 세우는 교회에 많은 연보를 하셨던지 그 예배당 대들보에 성경말씀 구절과 그것에 할머님의 이름이 씌여졌던 것이 생각난다`고 했고, `할머님은 나의 애명을 금강석이라 부르시고 업고 예배당에 다니셨으며,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예배를 인도하실 때에는 금강석이가 자라서 이 세상에서와 하나님 나라에서 귀히 쓰여지는 인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다``할머니의 기도만큼 내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도 없다`고 술회했을 만큼 할머니의 기도 속에 성장하였다. &lt;BR&gt;그는 부친이 설립하고 교장으로 있던 의성소학교(義聖小學校)에 입학하여(1916, 4,1) 5년간 교육을 받았는데 그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아서 배일사상을 길러주었으며, 또한 성경을 가르쳐줌으로써 인격과 도덕생활을 교육하고자 하였다. 의성학교를 졸업하고(1923) 송도(松都)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이 학교에서 5년간의 과정을 마쳤다(1928). 송도고보 고학년이 되어 선생은 자신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모교인 의성학교 교원이 될 것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4학년 2학기가 되면서 `공업이 국가 사회를 유익하게 하는 데 가장 크게 이바지한다고 생각`하여 만주 여순공과대학 예과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이 무렵 선친의 사업실패로 가정이 어렵게 되자 단순히 학비가 싸다는 이유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專)에 지원하였다. 이때 그는 자신이 의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가난해서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환자를 위한 의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다. 이 학교에 입학한 그는 5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였고(1932. 3), 그해 4월9일 그의 나이 22세에 김봉숙(金鳳淑)과 결혼하였다. 사실 그는 졸업 무렵 학비관계로 안과를 택했다가 의사답지 못한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나리다 교수를 찾아가 내과교실에 남아 공부를 더하겠다고 청원해서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내과의 조수가 되어도 보수가 전혀 없음을 알고 자신이 생활비를 준비할 수 있을 때까지 생활비를 대어주는 신부를 찾기로 하고 경성제대의학부 스기하라 얄리학교실에서 의학박사 학위논문을 준비중인 김하식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던 것이다.&lt;/P&gt;
&lt;P&gt;1. 장기려의 생애&lt;BR&gt;&lt;BR&gt;1)출생과 교육&lt;BR&gt;2) 의사 장기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한국의 부흥운동</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5"/>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5</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6:37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6: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gwMTg4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후의 첫 10년간에는 신자의 증가율이 극히 미미하였다. 이 시기는 말하자면 선교를 위하여 지리적인 답사를 하고 씨를 뿌리는 시기였다. 선교를 시작한 지 5년째인 1890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회에서 각각 11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해에 세례 교인 수는 장로교에 119명, 감리교에 36명, 모두 합하여 155명이었다. 그러다가 한 5년이 지나면서부터 교인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였다.&lt;BR&gt;1895년에 개신교의 세례 교인은 582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의 3분의 2가 남자였다. 학습 교인, 즉 세례 지원자는 567명인데, 그 중에서 여자는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초기에 남자의 수가 많은 것은 여자들이 아직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대적인 상황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아 세례를 받은 자의 수가 50명이었고 55세대의 가정이 교회로 들어왔다. 42개의 교회와 전도소 중 선교회의 관할 아래 한국인 전도사가 목회를 하는 곳이 6개 처였다.&lt;BR&gt;그러던 것이 1900년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급속히 성장한다. 1907년 장로교의 독노회가 조직이 되어 자립하게 되었을 당시의 장로교의 교세는 목사 7명, 장로 53명, 교인 70,00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세례교인이 19,000명이었다.&lt;BR&gt;교회부흥은 역사적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가 처한 역사적 상황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거주 선교사가 입국한지 약 25년이 지난 이 당시 한국교회는 아직 연소한 교회였고 기독교는 비교적 빨리 수용되어 갔다고 하지만 신앙적 성숙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적 쇄신이 필요한 때였다.&lt;BR&gt;정치적으로 당시 한국은 점증하는 일제의 침략야욕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의 문제에 책임을 느끼고 이것이 마치 믿는 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는 의식과 함께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에 부흥이 일기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에서 부흥의 불길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lt;BR&gt;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교회에서는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그리고 1909년의 백만인 구령운동 등 세 차례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한국 교회에 일어난 이 세 차례의 부흥운동은 한국 교회의 놀라운 교세 신장뿐 아니라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사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이었다.&lt;/P&gt;
&lt;P&gt;1. 원산부흥운동 -부흥운동의 원류(原流)&lt;BR&gt;2. 타지역으로 확산되는 성령의 바람&lt;BR&gt;3. 점차 보편화 되기 시작한 부흥운동&lt;BR&gt;4. 평양 대부흥운동의 준비&lt;BR&gt;5. 평양 대부흥운동&lt;BR&gt;6.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성장의 몇 가지 특징&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김삼환 목사의 설교연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4"/>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4</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6:09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6:0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gwMTkw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1. 서론&lt;BR&gt;명성교회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한국교회사상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교회로 알려진 명성교회와 담임목사인 김삼환목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자연스로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명성교회는 1980년 7월 6일 강동구 명일동의 홍우상가 2층의 34평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20명의 신자들로 시작되었으나, 설립 3년만인 1983년에는 출석교인수가 1,500명으로 늘어났고, 이로부터 4년 후인 1987년에는 출석교인수가 4,500명에 달했다. 2000년 6월에는 7만여명의 등록신자와 3만 8천명의 출석교인을 가진 교회로 성장했다. 이런 급성장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점에서 논구할 수 있겠으나 한국의 목회현실에서 볼 때 담임목사의 역량이 지배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혁교수의 지적처럼 명성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담임목사인 김삼환목사의 삶과 사역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앙적 삶과 신학, 목회와 설교는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의 교회성장론에 대한 중요한 소제와 주제가 된다. &lt;BR&gt;이 글에서는 김삼환목사의 설교의 배경이 되는 그의 목회적 삶과 신학을 검토하고, 그의 설교를 분석하는 데 있다. 그의 설교의 성격과 특징을 해명함으로서 그의 설교가 갖는 수용성(受容性)이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lt;BR&gt;&lt;BR&gt;2. 김삼환목사의 목회적 삶&lt;BR&gt;김삼환목사의 설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그의 설교에 영향을 끼치는 목회적 삶의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의 설교 속에 내포된 정신적 내감(內感)과 감동의 외연(外延)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lt;BR&gt;&lt;BR&gt;1) 기도(Oratio)&lt;BR&gt;종교개혁이래로 서구 기독교신학, 특히 루터교 전통에서 영적 삶의 기본 토대로서 기도(Oratio)는 묵상(Meditatio), 시련(Tentatio)과 함께 강조되어 왔다. 이는 경건훈련의 기본(基本)으로만이 아니라 신학연구의 기초 혹은 바른 신학함의 방법으로 간주되어 왔다. 신학연구의 기초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신학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고, 이성의 눈은 희미해졌다. 이 `히미해진 이성`(reine, verdunkelte, verfinsterte Vernunft)으로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온전히 깨닫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계몽된 이성`(erleuchtete, aufgeklrte Vernunft) 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학연구와 신학훈련에는 기도를 통해 얻게되는 성령의 조명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 것이다.&lt;/P&gt;
&lt;P&gt;1. 서론&lt;BR&gt;&lt;BR&gt;2. 김삼환목사의 목회적 삶&lt;BR&gt;1) 기도(Oratio)&lt;BR&gt;2) 묵상(Meditatio)&lt;BR&gt;3) 시련(Tentatio)&lt;BR&gt;4) 목회자로서의 인격&lt;BR&gt;5)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뜻 &lt;BR&gt;&lt;BR&gt;3. 그의 설교에 나타난 특징 &lt;BR&gt;1) 난해하지 않는 설교&lt;BR&gt;2) 단순성(simplicity)&lt;BR&gt;3) 현실성(Relevancy)&lt;BR&gt;4) 복음주의적 설교 &lt;BR&gt;&lt;BR&gt;4. 몇 가지 고려할 사항 &lt;BR&gt;1) 구속사적인 접근의 필요성&lt;BR&gt;2) 구약본문에 대한 상대적 소흘&lt;BR&gt;&lt;BR&gt;맺으면서&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경비평방법론연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3"/>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3</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5:30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5:3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gwMTkz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Ⅰ. 성경 비평의 제방법들&lt;BR&gt;&lt;BR&gt;1. 역사적 비평적 방법(historical-critical method)&lt;BR&gt;&lt;BR&gt;이 방법은 성경의 각 문서 안에 보도된 역사적 사건들의 실상과 각 문서의 생성과 관련된 사항들 - 집필장소, 시기, 수신인, 자료, 배경 등 -을 밝히려는 것이다.&lt;BR&gt;이 역사비평은 다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법론으로 나뉜다.&lt;BR&gt;&lt;BR&gt;1)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lt;BR&gt;여러 사본의 차이점을 비교 조사함으로써 가장 원본에 가까운 본문을 찾아내는 것이다.&lt;BR&gt;&lt;BR&gt;성경원본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신약의 경우 5천여 개에 이르는 헬라어 사본이나 조각들 중에서 서로 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도 구약성경의 경우 B.C. 3세기의 것으로, 신약성경의 경우는 A.D. 2세기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J.H. Hayes, C.R. Holladay, 「성경주석학」, 김근수 역, 42-43&lt;BR&gt;&lt;BR&gt;그러므로 본문비평은 해당 본문에 대해 알려진 현존하는 모든 필사본들을 비교 연구하여 본문의 난해한 구절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아울러 수세기 동안 본문에 섞여진 오류들을 제거하여 원 형태나 원 의미에 가깝게 본문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본문 내에 있는 변이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가운데 그 원문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R.K. Harrison 외, 「성경비평」, 오화선, 오성일 공역, 139&lt;BR&gt;&lt;BR&gt;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친 본문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것이다.&lt;BR&gt;본문비평의 대상은 원본이 아닌 사본이며, 이렇게 사본연구를 통해 재구성된 본문은 개연성과 추측에 근거한 가정적인 문헌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저자‘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가 연구의 대상이 된다. 박창건,「신약성서 주석방법론」, 38-41&lt;BR&gt;&lt;BR&gt;&lt;BR&gt;2). 자료비평(Source Criticism)&lt;BR&gt;현재의 성경본문의 많은 부분들이 이전부터 존재했던 단편적인 자료나 보다 확장된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후대에 편집이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고, 현재의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난 본문 이전에 존재했던 기본 자료들의 기록 연대, 기록자, 기록 상황, 기록 목적, 그리고 각 자료에 나타난 문학적, 신학적 특징 등을 추정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형원,「구약성서 비평학 입문」,85&lt;BR&gt;&lt;BR&gt;&lt;BR&gt;그러므로 자료비평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중복되거나 모순되게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과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애매모호한 부분들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해명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lt;BR&gt;성서본문이 형성되어 온 각각의 편집층(redactional layer)을 분리시키고, 본문이 오늘의 형태로 확정되도록 상호 작용했던 자료들을 드러냄으로써 그 과정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lt;BR&gt;자료비평은 문체와 어휘 그리고 시각의 다양성이나 모순, 단절이나 중복 또는 반복되는 부분들을 기준으로 삼아 본문의 배후에 있는 자료들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 구전자료를 확인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자료비평에 포함되지만, 구전자료는 양식비평과 전승비평의 기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료비평에서는 문서자료만을 분석한다.&lt;BR&gt;18세기에 자료비평이 처음 제시되었을 때 이것은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이라고 불렸는데, 오늘날에는 문학비평을 자료비평과는 다른 의미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문학비평의 관심은 있는 그대로의 본문 자체에 있지만, 자료비평의 관심은 본문이 형성되어 온 과정에 있는 것이다. P.A. Viviano, “자료비평”,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S.R. Haynes, S.L. Mckenzie, 김은규, 김수남 역, 52-53&lt;BR&gt;&lt;BR&gt;&lt;BR&gt;&lt;BR&gt;3). 양식비평(Form Criticism)&lt;BR&gt;성경본문의 언어사용과 구조를 살피고 그 본문이 속해 있는 문학적 “유형”(Gattung)이나, “양식”(Form), `어투“(Formel)등을 확정하며, 그 최소단위들이 근거하고 있는 ”사회적-문화적 상황“(Sitz im Leben)을 결정한다.&lt;BR&gt;&lt;BR&gt;양식비평은 영어로 “Form Criticism`인데 이는 원래의 듯을 곡해하게 만들 수 있다. 양식비평은 양식을 비평하는 학문이 아니고 오히려 독일어 Formgeschichte(Form History)가 의미하는 것처럼 양식이 어떻게 발전되어졌는지에 더 관심을 두는 분야이다. 박형용, 복음비평사, 168&lt;BR&gt;&lt;BR&gt;더 이상 성경을 “평면적인” 의미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본문의 다양한 작은 단위들이 각기 다른 시대의 다른 삶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즉 “무엇”이 발생하였는가에 대한 관심보다는&lt;BR&gt;4).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lt;BR&gt;성경의 고대자료들이 현재의 완성된 본문 형태로 수집되고, 교정되고, &lt;BR&gt;편집비평은 성경본문이 초기 저자의 독창적인 문학작품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전승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 저자의 견해에&lt;/P&gt;
&lt;P&gt;차 례&lt;BR&gt;&lt;BR&gt;&lt;BR&gt;서 론 1&lt;BR&gt;&lt;BR&gt;본 론&lt;BR&gt;Ⅰ. 성경비평의 제방법들 2&lt;BR&gt;&lt;BR&gt;1. 역사적 비평적 방법 2&lt;BR&gt;1) 본문비평 2&lt;BR&gt;2) 자료비평 2&lt;BR&gt;3) 양식비평 3&lt;BR&gt;4) 편집비평 3&lt;BR&gt;&lt;BR&gt;2. 공시적 해석방법 3&lt;BR&gt;1) 정경비평 4&lt;BR&gt;2) 사회학적 비평 4&lt;BR&gt;3) 구조주의적 비평 4&lt;BR&gt;4) 문학비평 4&lt;BR&gt;&lt;BR&gt;Ⅱ. 양식비평&lt;BR&gt;&lt;BR&gt;1. 양식비평의 배경 4&lt;BR&gt;2. 양식비평가들의 기본원리 6&lt;BR&gt;3. 양식비평 방법 6&lt;BR&gt;4. “불트만의 양식비판”에 대한 비판 7&lt;BR&gt;5. 양식비평이 구약성경 해석학에 끼친 공헌 9&lt;BR&gt;6. 양식비평이 지닌 한계점 9&lt;BR&gt;&lt;BR&gt;결 론 10&lt;BR&gt;&lt;BR&gt;참고도서 12&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윌리엄캐리의 선교사역</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imsp/13710022"/>
		<id>tag:blog.daum.net,2009:mimsp.13710022</id>
	    <author>
		    <name>기교</name>
	    </author>
	    <updated>2009-05-14T07:15:05Z</updated>
	    <published>2009-05-14T07:15: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id=blog_body&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f12_l18 height=25 align=right&gt;&lt;A href=&quot;http://www.onreport.co.kr/rps_redirect.html?rw_rps=M2YzYTA2OTA2NWU2Y2JlNWQ2OTAwZDVjNWQ0ZGNjYzFeMTgwMTk1Xm1pbXNwXm1pbXNw&quot; target=_blank&gt;&lt;IMG border=0 align=absMiddle src=&quot;http://onreport.co.kr/go_btn.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f12_33&gt;
&lt;P&gt;Ⅰ . 생애&lt;BR&gt;&lt;BR&gt;1. 어린 시절&lt;BR&gt;1761년 8월 17일 노스햄톤(Northampton)의 폴러스푸리(Paulerspury)라는 작은 마을에서 케리는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드몬드 케리(Edmund Carey)는 교육을 받은 지적인 사람으로 직조업에 종사했다. 케리가 글을 깨우쳤을 때 책을 좋아했던 케리는 구할 수 있는 책은 부지런히 읽어 가는 책벌레였다. 그는 공부에 대한 욕구뿐만 아니라 바깥 소식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열한살 때 신문에서 노예제도에 관한 기사를 읽고 노예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평생 그의 관심사가 되었다.&lt;BR&gt;케리는 어릴적부터 고집이 세기로 소문이 나있었으며 이 고집은 그의 생애를 가름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케리는 정원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학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피부가 워낙 약해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면 이내 염증이 생겨 직업을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케리의 아버지는 그를 피팅톤에 사는 구두 수선공 크라크 니콜스(Clarke Nicholos)의 견습공으로 보냈다. 거기에서 그는 당시의 필수품인 신발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lt;BR&gt;&lt;BR&gt;2. 회심&lt;BR&gt;그는 십대에 회심을 하였는데 당시 비 국교인 침례교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하였다. 케리의 회심에 도움과 영향을 미친 사람은 함께 일하던 동료 와르(John Warr)였다. 케리는 가끔 와르와 함께 신앙에 대한 심한 논쟁을 하곤 하였다. 케리는 와르와의 토론을 통해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했던 것이다. 1779년 2월 10일 국가 기도일에 케리는 와르의 권유로 샤클톤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함께 참석했다. 기도 모임이 계속되는 동안 케리는 자신의 전 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수 주일동안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케리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신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안을 얻었다. &lt;BR&gt;&lt;BR&gt;3. 목사가 되다&lt;BR&gt;18세 때 침례교도로 전환한 케리는 영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삶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1781년 자신의 직장 주인의 처제 도로시 플레킷(Dorothy Plackett)과 결혼하였다. 당시 도로시는 25세였고 케리는 20세의 생일을 맞기 직전이었다. 케리는 1783년 노스햄프턴의 넨강(the River of Neu)에서 세례를 받았다.&lt;BR&gt;피팅톤으로 이사한 후 케리는 마을 아이들을 위해 야학을 열기도 했으며 자신 또한 성경연구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 성경을 원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보기 시작했다. 이 일은 후에 그로 하여금 목사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한다.&lt;BR&gt;학문에의 길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독학으로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고전어와 이태리어, 프랑스어, 화란어 등 현대 유럽언어와 후일에는 인도어, 뱅갈어 등 동양언어를 독학으로 습득하였다. 또 여러 가지 책을 통해 학식을 넓혀갔다. 1785년에는 피팅톤에서 18킬로미터 떨어진 몰튼 마을로 이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교사로 임명되었고 케리는 이곳에서 학교와 구둣가게를 동시에 운영하게 된다.&lt;/P&gt;
&lt;P&gt;Ⅰ. 생애&lt;BR&gt;1. 어린시절&lt;BR&gt;2. 회심&lt;BR&gt;3. 목사가 되다&lt;BR&gt;4. 선교의 소명과 선교의 조직&lt;BR&gt;5. 선교사로 출발하다.&lt;BR&gt;6. 인도선교&lt;BR&gt;7. 케리의 죽음&lt;BR&gt;&lt;BR&gt;Ⅱ. 선교방법&lt;BR&gt;1. 복음전파&lt;BR&gt;2. 정의실현&lt;BR&gt;3. 사회봉사&lt;BR&gt;&lt;BR&gt;Ⅲ. 케리의 선교전략&lt;BR&gt;1. 성경번역&lt;BR&gt;2. 교회개척&lt;BR&gt;3. 현지문화와 사상연구&lt;BR&gt;4. 토착인 교역자 양성&lt;BR&gt;&lt;BR&gt;Ⅳ. 선교적 교훈&lt;BR&gt;1. 선교신학&lt;BR&gt;2. 선교회&lt;BR&gt;3. 재정관리&lt;BR&gt;4. 동역자&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content>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