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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물처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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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8T01:07:1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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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민과의 대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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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8T01:07:15Z</updated>
	    <published>2009-11-28T01:07: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이런 걸 두고 대화라 할 순 없습니다. 더군다나 국민과의 대화라는 간판을 달기엔 참으로 낯뜨거운 일입니다. 대체 어느 시대 어떤 나라에서 국민과의 대화가 이토록 주눅들거나 혹은 친절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lt;/P&gt;
&lt;P&gt;대통령의 가뭇없는 자신감과 국민가르치기 혹은 자화자찬은 일단 제쳐두기로 합시다. 전문가 패널이나 시민패널의 자세나 수준을 보는 것만으로 2시간을 넘는 국민과의 대화가 얼마나 시간낭비 전파낭비인지를 확인시켜주었으니까요.&lt;/P&gt;
&lt;P&gt;한가닥 기대를 걸고 2시간 넘게 TV화면을 마주했습니다. 그런데 가관이 곳곳에서 벌어지더군요. 신문사 논설위원이라는 양반은 논리보다는 감성, 합리보다는 정파에 기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하면 답변보다 훨씬 더 지리한 질문을 나름 전문가 패널의&amp;nbsp;질문이랍시고 하더군요. 이 양반은 한걸음 더 나가시더니 역대 대선 최대의 득표차를 앞세워 대선후보의 세종시 공약이라는 과정을 희석시키는가하면 전임 노무현 정부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대화가 끝난 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대목에선 어찌 그리도 공손하던지. 다른 두 분의 패널, 연세대 김호기 교수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성 기업인의 멘트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더군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질문을 기대했던 것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교수의 질문은 왠지 주눅이 들어있다는 느낌이었고 여성 기업인의 질문은&amp;nbsp;무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lt;/P&gt;
&lt;P&gt;시민패널들의 질문을 들으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걸 어쩔 수 없었습니다.&amp;nbsp;공공의 선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없이 죄다 제 삶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이더군요. 취업난이나 신혼부부의 보금자리나 사교육문제나 아프간 파병 등등을 개인화된&amp;nbsp;파편화된 질문들이라 몰아부칠 순 없는 노릇이겠으나 그들의 질문에서 당당한 국민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서 받은 느낌도 왠지 주눅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lt;/P&gt;
&lt;P&gt;연예인 패널들의 이야기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성 싶습니다. 조두순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느니,여사님이 요리를 잘 하시느냐느니, 내복을 입고 계시냐느니 하는, 참으로 개념없거나 어이없거나 한가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들만 나왔으니까요.&amp;nbsp;왜 저런 연예인들만 불러다 앉혀두었을까 답답했습니다.&lt;/P&gt;
&lt;P&gt;대화란 이쪽과 저쪽이 동등한 위치에서 당당하게 솔직하게 말을 주고 받을 때 성립하는 것이죠. 한 사람은 지나친 자신감을 무기삼아 자기 말만 하고 상대를 가르치려고만 들고, 다른 사람은 기가 죽은 채 상대의 편을 들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주눅이 잔뜩 들어있다면 그건 대화가 아닙니다. 오늘 제가 본 대화가 그랬습니다.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 보다는 국민 훈육의 시간이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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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잇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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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11-27T14:44:34Z</updated>
	    <published>2009-11-27T14:44: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마이산,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돌탑입니다. 크고 작은 돌로 쌓아올린 돌탑 80여개가&amp;nbsp;계곡 이곳저곳에 늘어서있는 신비한 풍경 말입니다. TV나 사진을 통해 그 마이산 돌탑을 볼 때마다 궁금했더랬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는데 어떻게 눈 비 바람에도 끄덕않고&amp;nbsp;오랜 세월 버티고 서있는지 말입니다. 대체 무슨 기막힌 기술로 돌들을 쌓아올렸길래 마이산 돌탑은&amp;nbsp;무너지지 않는 걸까요?&lt;/P&gt;
&lt;P&gt;어제 TV를 보다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비결은 바로 사잇돌에 있다더군요. 사잇돌이란 몸돌과 몸돌 사이에 끼워넣는 작은 돌들을 말합니다.&amp;nbsp;아랫 몸돌과 윗 몸돌의 틈새를 메워줌으로써 두 몸돌이 흔들리지 않게끔 고정시켜주는&amp;nbsp;것이죠. 몸돌의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다보니 몸돌과 몸돌 사이에는 어김없이 사잇돌이 끼워져 있습니다.&amp;nbsp;결국 사잇돌이 있기에 돌쌓기가 가능한 것이죠. 사잇돌이 없다면 돌탑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잇돌을 빼는 순간 돌탑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흔들리다 어느순간 스치는 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릴 지도 모릅니다.&lt;/P&gt;
&lt;P&gt;사람도, 사람사는 세상도 다를 건 없을 듯합니다. 돌들만큼이나 사람도,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제각각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상과 세상 사이에 사잇돌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간극과 차이를 메워주는 사잇돌이 있어야 사람도, 사람사는 세상도 마이산의 돌탑처럼 차곡차곡 쌓아지는 것일테죠. 그러고보면 역사라는 돌탑에서도 사잇돌은 꼭 있어야 합니다. 아랫몸돌과 윗몸돌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사잇돌이 있고서야 역사의 돌탑은 쌓아질 것이고 눈 비 바람에도 끄덕않고 지탱할 수 있을 테니까요.&lt;/P&gt;
&lt;P&gt;그럼 누가 과연 사잇돌일까요? 그렇습니다. 양심과 소신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진정성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정직과 진실과 정의의 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세상의 사잇돌들입니다. 아랫몸돌과 윗몸돌을 가장 안정된 자세로 이어주는, 그리하여 마침내 돌을 쌓아올려 탑을 완성시켜주는 존재들입니다. 제 한 몸 기꺼이 희생하고서라도 탑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사잇돌입니다.&lt;/P&gt;
&lt;P&gt;요즘 세상 돌아가는 품새를 보노라면&amp;nbsp;사람의 돌탑, 사람사는 세상의 돌탑, 역사의 돌탑이 무너져내릴 것 같아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원구식 시인의 시처럼 '무너지지 말아야 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고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에워싼 모든 탑들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lt;/P&gt;
&lt;P&gt;네, 맞습니다. 사잇돌이 자꾸 삐져나오기 때문입니다. 몸돌과 몸돌 사이에서 탑을 지탱해줘야 할 사잇돌들이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잇돌이 하나둘 없어지다보니 사람의 돌탑도, 사람사는 돌탑도, 역사의 돌탑도 그 자세가 나날이 위태로워지는 것이죠. 몸돌과 몸돌 사이가 헐거워지니 탑이라는 탑은 죄다 불안을 면할 수 없습니다.&amp;nbsp;사잇돌의 실종이 탑의 위기를 부르고 있는 셈입니다.&lt;/P&gt;
&lt;P&gt;사잇돌이 사잇돌이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 한 몸 편하고자&amp;nbsp;눈치코치 살피며&amp;nbsp;자리를 떠는 사잇돌도 있고, 제 스스로 몸돌이 되기를 소망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잇돌도 있습니다. 어떤 사잇돌은 사잇돌이길 포기한 채 거지근성을 발휘하기도 하고, 어떤 사잇돌은 사잇돌이길 사양한 채 노예근성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lt;/P&gt;
&lt;P&gt;4대강, 세종시, 미디어법 파문은 정파의 다툼 이전에 사잇돌의 실종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몇몇 부처나 세종시 이전을 둘러싼 서울대 내부의 논란도 따지고보면 사잇돌의 위기에서 출발하는 문제입니다. 사잇돌이 없기에 삐걱대는 것이고 사잇돌이 없기에 비틀거리는 겁니다. 권력부리기와 권력눈치보기가 아무리 횡행한다해도 아랫몸돌과 윗몸돌을 받쳐주는 사잇돌만 있다면 돌탑은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것인데 사잇돌이 죄다&amp;nbsp;권력부리기와 권력눈치보기에 편승하다보니 돌탑이 흔들릴 처지가 된 것입니다. 양심과 소신, 진정성과 당당함, 정직과 진실과 정의의 가치가 한 줌 권력, 한 움큼의 재물, 한 순간의 명예욕에 뒤틀리다보니 세상의 돌탑도, 역사의 돌탑도 이내 무너져내릴 것처럼 불안한 겁니다.&lt;/P&gt;
&lt;P&gt;돌탑은 단순히 돌을 쌓아올린 게 아닙니다.&amp;nbsp;무탈하기를&amp;nbsp;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안녕하기를&amp;nbsp;소망하는 절절한 마음들이 쌓이고 쌓인 것이죠.&amp;nbsp;그래서 돌탑은&amp;nbsp;조형물이기 보다는 성스런 대상물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생김새 때문이 아닙니다. 돌탑을 쌓아올린 아름다운 마음들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amp;nbsp;그 아름다운 마음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잇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사잇돌을 보고 싶습니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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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같은 정부의 다른 자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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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11-17T09:03:58Z</updated>
	    <published>2009-11-17T09:03:5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불이 났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대통령은 위로서신을 전했습니다. 총리는 직접 달려왔습니다. 총리는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총리가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곧장 해당부처 장관도 찾아왔습니다. 장관은 사과성명까지 준비했습니다. 사고가 나고 얼마뒤 정부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렸습니다. 정부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느라 분주합니다. 정부 차원의 보상도 검토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망자 시신을 운구할 전세기를 추진한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참 친절하고 참 깍듯한 정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정부를 갖고 있는 국민은 두말할 필요없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일 겁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더없이 친절하고 더없이 깍듯한 정부를 보고 있습니다. 부산 사격장 화재참사 현장에서 말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인 관광객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보여주는 친절과 예의는 참으로 감탄할 지경입니다. 지극정성, 그 자체라 할 만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가 얼마나 극진하고 공손한지 일본 사람들도 놀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 언론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처를 두고 한결같이 &quot;이례적&quot;이라고 평가하고 있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의아스럽고 생경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들보다 우리가 더 놀라고 있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친절하고 그렇게 깍듯한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조차 제 나라 정부를 보고 깜짝 놀라는 마당에 남의 나라 입장에서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죠. &lt;/P&gt;
&lt;P class=바탕글&gt;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인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보여주는 친절과 예의는 당연한 일입니다. 남의 나라에 관광하러 온 손님들이 불의의 사고로 참변을 당했으니 정성을 다해 모시는 게 옳은 태도입니다. 한일관계를 고려했다든가 국가이미지 실추를 우려했다든가 관광객 감소를 걱정했다든가 하는 따위의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테지만 그 무엇보다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한다는 당위를 생각하면 하들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지만 부산에서 만날 수 있는 그 친절하고 깍듯한 정부가 용산에는 없습니다. 어제로 300일째를 맞은 용산참사현장에는 인색하고 야박한 정부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아직도 냉동고 속에 갇혀있고 그 유족들은 여전히 눈물과 한숨 속에 갇혀 있습니다. 300일전 용산에서도 불이 났고 사람이 죽었지만 대통령의 위로서신은 없었습니다. 총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잠깐 들렀을 뿐이고 정부 차원의 대책본부도, 사과성명도, 보상도 없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대체 이 극명한 대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렇게 친절하고 그렇게 깍듯한 정부를 용산에선 왜 만날 수 없는 걸까요? 부산에선 이리도 극진한데 용산에선 왜 그리도 야멸찼던 걸까요? 부산에선 잘 모시지 못할까 안절부절하는데 용산에선 약점이라도 잡힐까 노심초사했던 걸까요? 같은 정부의 다른 자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부산에선 외국인이 다수 희생됐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리는 없습니다. 어느 정신나간 나라가 자국민보다 외국인을 우선시하겠습니까? 제 식구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남의 식구 챙기느라 부산떠는 장면만큼 한심한 게 또 있을라구요. 선진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일까요? 강대국 콤플렉스가 재발한 걸까요? 그렇게 믿고 싶진 않습니다. 위풍당당 코리아를 부르짖은 게 얼마나됐다고 벌써 과거로 돌아갈리는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헌데 마음 한켠에선 자꾸 의심이 고개를 내밉니다. 부산참사 현장에선 정부와 언론의 관심이 일본인 관광객에만 쏠려있다며 내국인 사망자와 부상자 가족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부산참사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고있노라면 이런 생각을 품게 됩니다. 가난뱅이 7명이 저렇게 되었더라도, 외국인노동자 7명이 저렇게 되었더라도, 동남아 관광객 7명이 저렇게 되었더라도 정부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었을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북한에 식량지원 한답시고 고작 옥수수 1만톤을 보내는, 18년간 한국의 친구로 살던 네팔 출신의 외국인노동자 미누씨를 끝끝내 추방시키고 마는, 용산참사 유족들의 비통에 기어이 눈길주지 않는 정부의 모습에서 친절하고 깍듯한 구석을 발견할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제라도 달라져야 합니다. 친절하고 깍듯한 정부는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부산이든 용산이든, 어디에나 똑같이 존재해야 합니다. 생명의 소중함, 슬픔의 크기가 사람따라 나라따라 지역따라 다를 순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개개인은 물론 정부도 갖춰야할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친절하고 깍듯한 자세는 위선에 다름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부산참사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정부의 자세. 그걸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가 이어지는 대한민국에서 좀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국민을 섬기는 정부 아닐까요? 실용정치는 국민을 섬기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요?&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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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꾸리다 만 배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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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11-11T17:07:38Z</updated>
	    <published>2009-11-11T17:07: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꾸리다 만 배낭이 방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벌써 열흘넘게&amp;nbsp;그대로 있습니다. 배낭 안에는 등산양말이랑 모자랑 헤드랜턴이 들어 있습니다. 배낭 옆에는 지도와 더불어 몇 권의 책도&amp;nbsp;있습니다. 낯선 곳을 혼자서 여행하는 내내 벗이 되어줄 것들이죠. 이제 옷가지나 세면도구 따위만 챙기면 당장 길을 나서도 될 성 싶습니다. &lt;/P&gt;
&lt;P&gt;&amp;nbsp;헌데 배낭은 열흘 넘도록 꾸리다 만 상태, 그대로 입니다. 매일 매일 마주하면서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낭을 마저 꾸리던지, 아니면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든지 해야할 터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채워지지도, 비워지지도 못한 채&amp;nbsp;한켠으로 밀려나있는 그 배낭은 거듭 망설이고 거듭 머뭇거리는 제 주인의 꼬락서니와 빼다 박았습니다.&lt;/P&gt;
&lt;P&gt;&amp;nbsp;속에선 자꾸 채근합니다. 길을 나서라.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헝클어진 생각들, 엉켜있는 마음들을 더이상 내버려둘 순 없겠기 때문입니다. 길을 나서면 머릿속도, 가슴속도 조금은 정리가 될 것 같겠기 때문입니다. &lt;/P&gt;
&lt;P&gt;&amp;nbsp;안에선 자꾸&amp;nbsp;다그칩니다.&amp;nbsp;길위에 서라. 그래야겠습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워 길 밖에서 배회하는 것보다야 설령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amp;nbsp;길위에 서는 게 옳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길을 찾을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amp;nbsp;이런 소리도 들려옵니다. 혼자서 가라. 그래야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은 언젠가는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amp;nbsp;아무리 오래 곁에 있어주고 싶어도 그 누군가들은 언젠가 떠날 것이고 그들이 떠나고나면 결국 혼자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떠난 뒤&amp;nbsp;혼자서 길을 가면 그 길이 너무 외롭고 쓸쓸할테니 미리 연습해둬야겠기 때문입니다. &lt;/P&gt;
&lt;P&gt;&amp;nbsp;그런데도 여전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을 나서는 것이, 길 위에 서는 것이, 혼자서 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아내가, 아이들이 자꾸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답시고 아내를 귀찮게 하고, 아이들을 성가시게 만들진 않을까 신경이 쓰이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amp;nbsp;하지만 착각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내는 그다지 불편한지 모른 채, 아이들은 그다지 불안한지 모른 채 잘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amp;nbsp;설령 하루이틀 불편과 불안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며칠만 지나면&amp;nbsp;아내는 더 편안해할지도 모르고, 아이들은 까맣게 잊고 지낼지도 모르겠습니다. &lt;/P&gt;
&lt;P&gt;&amp;nbsp;그러고보니 아내와 아이들 곁을 너무 오래 지켰나 봅니다. 너무 오래 머물다보니 다정이 병이 되었나 봅니다. 떨어져사는 연습, 따로 걷는 연습이 정작 나에게 부족했나 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의 부재를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그들의 부재를 더 걱정하고 있었나 봅니다. &lt;/P&gt;
&lt;P&gt;&amp;nbsp;꾸리다만 배낭을 쳐다보면서 다시 길을 생각합니다. 동행이 아니라 홀로 가는 길을 생각합니다. 올레든 둘레든 이름모를 산이든 들이든 하물며 낯선 도시속 익명의 거리든 말입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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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노무현을 만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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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11-06T11:51:10Z</updated>
	    <published>2009-11-06T11:51: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봄에 떠난 그를 가을이 되어서야 만났습니다. 그가 그렇게 참혹하게 세상을 버린지 벌써 5개월하고도 보름여.&amp;nbsp;저 땅 아래&amp;nbsp;한 줌 재로 잠든 그를 이제사 찾았습니다. 그가 살아서도, 그가 죽어서도 &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미루고 또 미루던 봉하가는 길. 헌데 불현듯&amp;nbsp;그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려, 너무 늦은 길 더는 늦출 수 없겠기에 홀로 집을 나섰습니다.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오전 9시의 가을 햇살 아래&amp;nbsp;품을 열고 서있는 마을.&amp;nbsp;봉하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깃들어&amp;nbsp;지난 여름 푸른 잎들로 빛났을 나무들은 어느새&amp;nbsp;색 바랜 잎들을 하나둘 떨구고 있었습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사람사는 세상을 온 몸으로 찾아헤매던 사람. 그가, 그의 꿈이, 그로부터 피어나던 희망이 스러져&amp;nbsp;한 줌 재로 바뀌는&amp;nbsp;내내&amp;nbsp;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차마 그를 만나러가진 못했습니다.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했기 때문입니다.&amp;nbsp;그가 그렇게 지상을 떠난 뒤에도 차마 그의 영정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맑게 웃고 있는 사진속&amp;nbsp;그에게 하얀 국화 한송이 내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엔 살아있는&amp;nbsp;내가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봉하로 향하는 길은 그래서 멀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부터 그를 떠나보낼 준비가 아직 안되었던가 봅니다. 그를 만나고나면&amp;nbsp;그때부터&amp;nbsp;그가 잊혀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났던가 봅니다. 내 마음속 영원한 대통령과 그렇게&amp;nbsp;쉽게 이별할 순 없겠다,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이젠 그를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젠 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줘야할 것 같았습니다. 남은 자들이 해야할 일은 그를 붙잡아두는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에게 작별을 고하는 대신&amp;nbsp;그를 잊지 않고, 그의 꿈을 지키고, 그로부터 피어나던 희망을&amp;nbsp;가꾸는 게 산 자들의 몫이라 생각했습니다.&amp;nbsp;그래서 봉하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15690A0B4AF387340BD68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513EB0E4AF3874B2A51B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amp;nbsp;그의 얼굴들입니다.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길을 따라 매달려있고 마을회관을 비롯해 각각의 건물에는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려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그가&amp;nbsp;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채 국민들께 손짓하는 걸개그림이 서있기도 합니다. 어딜가나 그가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선&amp;nbsp;방문객을 위한 주차장 공사가 한창 이더군요. 주차장 바로 앞에는 그가 퇴임후 의욕적으로 나섰던 봉하영농조합의 정미소 겸 창고가 서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마을로 좀 더 들어서면 생가가 나옵니다. 아주 작은 초갓집입니다. 지난 9월말, 그의 생일에 즈음해&amp;nbsp;완공됐다는군요. 생가 옆에는&amp;nbsp;작은 기념관이 서있고, 그 뒤편으로 사저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amp;nbsp;생가와 사저를 저 먼발치서 내려다보고있는 것이 바로&amp;nbsp;그날 그가 몸을 내던졌던 부엉이바위라네요.&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165FE00C4AF3871233F19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부엉이바위 아래로 가면 묘역이 나옵니다. 대통령의 묘역치곤 참으로 소박합니다. 돌덩어리 몇 개가 고작입니다. 하지만&amp;nbsp;그의 낮은 비석에 새겨진 글귀만큼은 웅대합니다. &quot;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다.&quo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그의 비석 앞에는 하얀 국화꽃과 더불어 올 가을 수확한 봉하쌀 두 봉지가 놓여있습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197A120D4AF386C21120D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318200E4AF386D40B8A7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 묘역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젊은 커플과 마주쳤습니다. 부엉이바위에 올라갔다 온 모양입니다. 두 사람은 그의 비석 앞으로 다가오더니&amp;nbsp;새겨진 글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군요.&amp;nbsp;남자친구가&amp;nbsp;절을 올리는 사이 여자친구는&amp;nbsp;묵념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했습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돌아나오는 길에 경비인력인 듯한 친구에게 물었더랬습니다. &quot;요즘도 방문객이 많나요?&quot;&amp;nbsp;&quot;네 꾸준히 찾아오십니다.&quot; &quot;많이 줄진 않았나요?&quot; &quot;아닙니다. 여전합니다&quot;. 그의 말이 참 반갑더군요. '그래, 아직 잊혀진 건 아니구나. 노무현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노무현적인 가치도 아직 잊혀지진 않았겠지.' 생가 옆&amp;nbsp;작은 쉼터에 마련된 방명록에서도 봉하로 이어지는 발길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이지만 두 개의 방명록에는 오늘 아침 다녀간 이들의 이름과 남긴 글이 두 페이지씩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그들은 대개 &quot;사랑합니다&quot; 혹은 &quot;잊지 않겠습니다&quot; 혹은 &quot;명복을 빕니다&quot;는 글귀를 남기셨더군요. 방명록에 이름 남기길 꺼려하는&amp;nbsp;저도 펜을 잡았습니다. &quot;미안합니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마을을 돌아나올 무렵 관광버스 한 대가 마을회관 앞으로 들어섰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얼추 서른명쯤 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amp;nbsp;노무현의 사진과 노무현을 추모하는 현수막들을 찬찬히 눈에 담으며 마을로 향하더군요. 다시 집으로 향하며 생각했더랬습니다. '저들 모두의 가슴에 노무현도, 노무현적인 가치도 살아있겠지.' 그럴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아니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야 희망을 품을 수&amp;nbsp;있을테니까요. 다시 고개돌려 마을을 바라보니 저 멀리 부엉이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날 이른 새벽 그 바위에 서있었던 노무현을 머릿속에 그려봤습니다.&amp;nbsp;그의 고뇌와 그의 좌절과 그의 절망을&amp;nbsp;생각하면서 말입니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40.uf.daum.net/image/1918F30E4AF38DFA1E99E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3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3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노무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무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봉하마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봉하마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노무현적인 가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무현적인 가치&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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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바보의 49재에 맞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mytstory/872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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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07-10T10:51:34Z</updated>
	    <published>2009-07-10T10:51: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더없이 찬란한 아침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늘은 눈이 부시다못해 파랑 물감이 뚝뚝 떨어질 지경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어제 그렇게 하염없이 퍼붓던 비가&lt;/P&gt;
&lt;P class=바탕글&gt;어제 그렇게 하릴없이 몰아치던 바람이&lt;/P&gt;
&lt;P class=바탕글&gt;세상의 모든 먼지와 때를 남김없이 털어냈나 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이 계신 그곳은 어땠나요?&lt;/P&gt;
&lt;P class=바탕글&gt;어제 거기서도 비가 퍼붓고 바람이 몰아쳤나요?&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이 계신 그곳은 어떻나요?&lt;/P&gt;
&lt;P class=바탕글&gt;지금 거기서도 하늘은 더없이 맑고 밝은가요?&lt;/P&gt;
&lt;P class=바탕글&gt;어젯밤 걱정을 많이 했더랬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을 떠나보내는 날&lt;/P&gt;
&lt;P class=바탕글&gt;비가 퍼붓고 바람이 몰아치면 어쩌나, 가슴을 졸였더랬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가로 달려갔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쏟아지는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에 안도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찬란한 하늘아래서 당신과 헤어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마냥 고마웠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래서 하늘 한번 쳐다보고 엷은 미소도 머금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헌데, 돌아서는 순간 이게 아니다 싶더군요&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별하기에 이 눈부신 날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차라리 비가 퍼붓고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후두둑 비가 내리면 눈물을 들키지 않을테니 말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휭휭 바람이 불면 한숨을 들키지 않을테니 말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실컷 눈물 짓다 마음껏 흐느끼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설령 옆사람에게 들킨다한들 비와 바람을 탓하면 괜찮을테니 말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렇게 대책없이 맑고 밝은 하늘이라면&lt;/P&gt;
&lt;P class=바탕글&gt;어떻게 눈물을 숨기고 어떻게 한숨을 감춰야할지 모르겠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침내 저 눈부신 하늘로 당신을 떠나보내야 하는 날&lt;/P&gt;
&lt;P class=바탕글&gt;난 당신이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의 꿈이, 당신의 희망이 지금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데&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꿈의 한자락, 그 희망의 한조각도 지켜내지 못한 자가&lt;/P&gt;
&lt;P class=바탕글&gt;대체 무슨 낯으로 절을 하고 눈물을 짓고 몸을 들썩이며&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별을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lt;/P&gt;
&lt;P class=바탕글&gt;웃고 있는 당신의 영정 앞에 설 자신이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울고 있는 당신의 국민 곁에 설 용기가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국화 한 송이 갖다바치고 담배 한 대 내미는 것으로&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에게 안녕을 말하고 안식을 당부하는 일은&lt;/P&gt;
&lt;P class=바탕글&gt;차마 부끄럽고 낯뜨거운 짓이기 때문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오늘 당신은 기어이 떠나야하지만&lt;/P&gt;
&lt;P class=바탕글&gt;난 차마 당신을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은 아주 작은 산길을 혼자서 걸어올라&lt;/P&gt;
&lt;P class=바탕글&gt;파란 하늘을 향해 차마 떨치고 가야하지만&lt;/P&gt;
&lt;P class=바탕글&gt;아름답던 당신의 꿈과 희망도 &lt;/P&gt;
&lt;P class=바탕글&gt;한줌 먼지가 되어 미풍에 날아가야 하지만&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럴수록 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옯겨서 &lt;/P&gt;
&lt;P class=바탕글&gt;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어야 하지만&lt;/P&gt;
&lt;P class=바탕글&gt;난 차마 그럴 수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래서 당신을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이 바라던 열린 세상&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이 일구던 함께 하는 세상 &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희망의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기 전에는&lt;/P&gt;
&lt;P class=바탕글&gt;차마 당신에게 안녕을 말할 수 없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을 이렇게 대책없이 떠나보내고 나면&lt;/P&gt;
&lt;P class=바탕글&gt;닫힌 세상, 갈라선 세상, 사람없는 세상에서&lt;/P&gt;
&lt;P class=바탕글&gt;못다부른 노래만 부르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아섭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때까진 가슴 가장 깊은 밑바닥에&lt;/P&gt;
&lt;P class=바탕글&gt;민들레 홀씨 하나마냥 품고 있겠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꽃이 피고 다시 홀씨가 흩날리는 그날까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신을.&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노무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무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안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안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49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49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영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영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다시 바람이 분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다시 바람이 분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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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죄악세라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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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07-08T11:15:24Z</updated>
	    <published>2009-07-08T11:15: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분장실의 그녀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곧잘 한다. &quot;너희들, 미친 거 아냐?&quot; 사실, 이런 말을 들어야할 쪽은 후배들 보다는 그녀 자신이다. 분장실의 권력자에게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고&amp;nbsp;꼬리를&amp;nbsp;흔들어대는 건 미치지 않고선 감히 하지 못할 짓 같으니 말이다.&amp;nbsp;분장실의 아랫것들에게 밑도끝도없이 트집잡고 음해하는 것도 미친 지경이 아니고선 감히 하지 못할 짓 같으니 말이다. 이쯤되면 후배들이 그녀에게&amp;nbsp;한마디 쏘아부치는 게 옳을 듯하다. &quot;미친 거 아냐?&quot;&lt;/P&gt;
&lt;P&gt;분장실의 그녀가 TV안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비루하게시리 강자에겐 아첨과 아부를 늘어놓고 비정하게시리 약자에겐 냉대와 가학을 일삼는,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그녀들. 이 정부의 관료라는 족속들이 그렇다. 위로는 자나깨나 아양을 떨면서 아래로는 앉으나서나 거들먹거리는&amp;nbsp;꼬락서니가 영락없이 분장실의 그녀다. 물론, 모든 관료들이 다 그렇진 않을테다. 해도 &quot;미친 거 아냐&quot; 소리를 들을 만한 관료들은 꽤 되지 싶다.&lt;/P&gt;
&lt;P&gt;'죄악세(sin tax)'라는 걸 만지작거리고 있는 관료들이 그런 부류들이다. 이 듣도보도못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amp;nbsp;'죄악세'란&amp;nbsp;술과 담배에 매기는 세금을 이르는 말이란다. 그들은 술과 담배에 대해 '죄악세' 개념을 강화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모양이다.&amp;nbsp;술과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리겠다는 말인데 그걸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든 신조어가 바로 '죄악세'인 셈이다. &lt;/P&gt;
&lt;P&gt;그들의 논리를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은 죄악이다.&amp;nbsp;죄악을 저지른 자들은 응분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amp;nbsp;그 응분의 댓가는&amp;nbsp;세금을 더 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기가 쑥쓰러웠던지 이 나라 관료들은 친절하게도 국민의 건강을 걱정한다.&amp;nbsp;&quot;현재 술ㆍ담배에 매겨지는 세금 수준이 소비를 억제할 만큼 높지 않아 국민 보건 증진을 위해서라도 '죄악세' 개념을 강화해야 한다.&quot;&lt;/P&gt;
&lt;P&gt;이제 이 나라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들은 모두 죄인이다.&amp;nbsp;죄악을 저질러 죄악세를 물어야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죄악세는 죄악을 탕감해주는 세금인 셈인데&amp;nbsp;따지고보면 중세유럽의 교회처럼 나라가 면죄부를 팔아먹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래도 죄인된 입장에선 감지덕지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amp;nbsp;세금 몇 푼 더 내는 것으로 죄를 사해주겠다니 이 얼마나 눈물나게 고마운 일인가. &lt;/P&gt;
&lt;P&gt;이르면 내년부터 술ㆍ담배에 죄악세가 붙을 거란다. 당연히&amp;nbsp;세금이 크게 오를 것이고&amp;nbsp;당연히 술값 담뱃값이 치솟을 게다.&amp;nbsp;이제 없는 것들은 술 한 잔 들이키는 것도 담배 한 모금 빨아들이는 것도 더 버거워해야할 판이다. 해도 어쩌랴. 나라에서 밀어붙이기로 작정한다면 힘없는 백성 입장에서야 울며격자먹기로 받아들이든 술 담배를 끊고 사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lt;/P&gt;
&lt;P&gt;하지만&amp;nbsp;죄악세를 물때 물더라도 술 담배를 끊을 때 끊더라도 따져봐야 할 건 따져봐야겠다. 왜 하필 술 담배에만 죄악세인가. 왜 수많은 사치와 향락의 기호품들은 죄악세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왜 술 담배를 통해서만 세금을 더 거둬들이려 하는가. 왜 넉넉한 세원들은 다 제쳐두는 것인가.&lt;/P&gt;
&lt;P&gt;술 담배의 주소비층은 서민들이다. 술 담배는 서민들의 피난처다. 서민들은 그나마 술 담배로 시름을 달래며 산다. 있는 것들, 가진 것들이야 누리고 즐길 게 수두룩할테지만 없는 것들, 못가진 것들은&amp;nbsp;그럭저럭 술 담배에서 위안을 얻으며 산다. 술과 담배는&amp;nbsp;고단한 서민들에게 다정한 동무같고 다감한 동료같은 존재들이다.&lt;/P&gt;
&lt;P&gt;그런&amp;nbsp;술 담배에 죄악세를 물리겠다는 것은 서민들에게 세금폭탄을 안기겠다는 소리다. 더군다나 담배는 나라에서 팔아먹는 물건이다. 저희들이 죄악을 팔아먹고선 그 죄악을 면해주는&amp;nbsp;댓가로 빈 호주머니를 더 긁어가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lt;/P&gt;
&lt;P&gt;친절하게도 부자들 세금 깎아주느라 그렇게 열심이던 정부가 야멸차게도 서민들에겐 더 무거운 등짐을 지우겠다는 거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느라&amp;nbsp;나라의 곳간이 자꾸만 비어가니&amp;nbsp;덜컥 겁이 난 정부가&amp;nbsp;서민들의 등꼴을 파서라도 나라의 곳간을 채우겠다는 거다. 입으로는 서민을 더 살피겠다는 정부가&amp;nbsp;부자에겐 감세혜택을, 서민에겐 증세부담을 안기겠다는 거다.&amp;nbsp;백성들의 1%만 해당되던 종부세를 두고 세금폭탄이라며 난리부루스를 추던 여당도 어떻게 된 일인지 일언반구 말이 없다.&lt;/P&gt;
&lt;P&gt;이쯤되니 분장실의 그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있는 자에겐 한없이 친절하고 없는 자에겐 더없이 못되게 구는 그녀. 위로는 알랑방귀 뀌느라 바쁘고 아래로는 헛기침 하느라 부산한 그녀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quot;너희들, 미친 거 아냐?&quo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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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통령의 기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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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7T11:36:07Z</updated>
	    <published>2009-07-07T11:36: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참 잘한 일이다.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 평생 긁어모은 재산을 선뜻 사회에 환원하겠다니 이 얼마나 눈물나게 반가운 일인가. 그것도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기부를 선언한 것이라니 말이다. 상류층의 기부문화가 없다시피한&amp;nbsp;나라에서 상류층 출신의 현직 대통령이 솔선수범하고 나섰으니 오래도록 칭송이 이어지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lt;/P&gt;
&lt;P&gt;내놓은 재산 액수도 놀랄 노자다.&amp;nbsp;한 두 푼이 아니라 물경 331억. 편법과 꼼수로 모은 재산이 아니냐,고 흠을 잡는 건 무례한 일이다. 이 나라에서 그만한 재산을 모은 사람치고&amp;nbsp;편법과 꼼수를 통하지 않은 사람은 눈을 씻고봐도 찾을 수 없을테니 말이다.&amp;nbsp;누가 뭐래도 대통령의 기부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일이다. 그의 결심을 계기 삼아 상류층의 사회적 책무, 곧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이 나라에 확산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lt;/P&gt;
&lt;P&gt;물론 대통령의 기부에 찜찜한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궁금한 대목이 시점이다. 2007년 12월에 한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 왜 지금 이 시점에&amp;nbsp;발표하느냐는 거다. 울며겨자먹기, 혹은 억지춘향격으로 한 약속이다보니 마음을 다잡는데 생각보다 시간이&amp;nbsp;많이 걸렸던 것은 아닐 게다. 그럼&amp;nbsp;기부계획을 면밀하게 준비하느라&amp;nbsp;시간이 많이 걸려서일까? 아님 서민을 위한다고 강변하고 나선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해서일까? 그래서 부자정권이라는 비판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를 기대해서일까? 그 속내를 어찌 짐작할 수 있겠냐마는 나름대로 시기를 조절해왔다면 타이밍이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다.&lt;/P&gt;
&lt;P&gt;기부를 포장하는 수식어도 한편 살펴봐야겠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뿌듯하다는 대통령의 멘트는 센티멘탈의 냄새가&amp;nbsp;풍기긴해도&amp;nbsp;이해할 만하다.&amp;nbsp;서민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그걸 돌려주려 한다는 것도 극적 구성의 낌새가 보이긴해도 받아줄 만하다.&lt;/P&gt;
&lt;P&gt;헌데&amp;nbsp;가난의 대물림을 막겠다는 평소의 소신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는 구절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것이&amp;nbsp;평소의 소신이었다는 분이 어째서 가난이 대물림되는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느냐는 의문이다.&amp;nbsp;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것이&amp;nbsp;평소의 소신이었다는 분이 어째서 나랏돈 22조를 강바닥 파헤치는데 쏟아부으면서&amp;nbsp;가난의 대물림을 막는데는 예산을 아끼느냐는 궁금증이다.&amp;nbsp;자기 돈 331억을 내놓을 수 밖에 없을만큼&amp;nbsp;나라곳간이 비었다는 말일까?&lt;/P&gt;
&lt;P&gt;별도의 재단을 만든다는 대목도 찜찜하다.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말면 훨씬 쿨~하게 느껴질 법한데 왜 자신의 호를 딴 재단을 만들겠다고 하는 걸까? 왜 굳이 맏사위와 측근들을 재단설립의 주역들로 내세우는 걸까? 생색만 내는 재단을 만드는 것 아니냐, 가족들이 세제혜택을 누리고 재산권도 행사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따위의 의심을&amp;nbsp;굳이 사면서까지 말이다.&lt;/P&gt;
&lt;P&gt;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박수를 칠 시간이다. 기부발표가 정치적 노림수였나, 수식어가 말장난이었나,&amp;nbsp;재단설립이 꼼수였나, 하는 것들은 현재로선 그저 찜찜한 구석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혹여 그것들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땐 사정없이 후려쳐야할테지만 그&amp;nbsp;전까진 선행을 선행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은 일이다. 그리고 약간의 낯뜨거운 찬사도 용인해주는 게 맞는 일이다.&amp;nbsp;물론 즐거운 이벤트에 취한 나머지&amp;nbsp;정신줄을 놓고 살아선 안되겠지만.&amp;nbsp;이벤트가 결코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순 없다는 걸 잊지말아야겠지만. &amp;nbsp;&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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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내이야기 5 - 두아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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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river</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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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7T09:33:40Z</updated>
	    <published>2009-07-07T09:33: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아내에게 평생 고마워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994년 11월 22일, 바로 큰 아이가 태어나던 때였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를 보며,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화사한 미소를 머금던 아내를 보며 다짐했더랬다. 그래, 내게 행복을 준 이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은혜를 갚으며 살자고 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아이의 탄생은 내 일생일대의 쾌거였다. 그리고 그 쾌거 이후 내 인생은 아이와 아내, 곧 가족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비록 서툴지만 기꺼이 파출부가 되고자 했고, 비록 어설프지만 기꺼이 요리사가 되고자 했다. 부르조아의 짓거리라며 거부하던 운전을 배운 것도,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를 누비기 시작한 것도 아이와 아내 때문이었다. 남들이 그렇게 바라던 일본연수를 단박에 사양했던 것도, 남들이 그렇게 원하던 보직을 단숨에 양보했던 것도 아이와 아내 때문이었다. 그들 곁에 더 오래 있고 싶었고, 그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으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에서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첫째 아이가 말문을 트기 시작하던 네 살 무렵, 내 일생일대의 쾌거는 속편으로 이어졌다. 1997년 12월 28일, 바로 둘째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첫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만큼이나 행복에 흠뻑 취했던 나는 3년전의 그 다짐을 되새겼더랬다.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며, 그 아이들을 한없이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던 아내를 보며 이제 당신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입니다, 고 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게 두 아이는 참으로 신비한 존재였다. 무뚝뚝하다못해 퉁명스럽기까지한 사내를 일순간 다정다감한 친구로 만들어버렸고 깐깐하다못해 까탈스럽기까지한 사내를 한순간 더없이 부드러운 남자로 만들어버렸다. 성난 곰처럼 굴다가도 두 아이 앞에만 가면 순한 양으로 변해버리는 나의 변신은 내 자신이 볼 때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나의 눈길은 언제나 두 아이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다. 아내가 질투를 느낄 정도였으니 아빠의 사랑이 어지간했던 셈이다. 주말이면 언제나 두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집을 나섰고 나들이 내내 난 녀석들이 자라는 모습을 남겨두고자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 사진들은 지금 거실 곳곳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언제든 그것들을 바라보노라면 금새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당연한 일이지만 두 아이가 내게 온 이후 나의 관심은 더 이상 바깥으로 향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주말이면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때론 이래선 안되지 싶다가도 술자리나 모임을 피하는 일은 자꾸 늘어만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들을 위해, 아내를 위해 사적인 만남을 줄이는 일은 내게 지극히 자연스런 일로 굳어졌다. 돌이켜보면 답답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껏 한번도 그걸 후회해본 적은 없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내게도 그랬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게 사랑하는 두 아이였으니, 그렇게 충만한 행복이었으니 그 두 아이를, 그 행복을 내게 선물해준 아내가 늘 사랑스럽고 늘 고마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해서 아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자기야, 나 이거 해도 돼?, 라고 물었을 때 안돼!, 라고 대답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내가 외근으로 발령나면 나름 도움을 주려 마음을 썼고, 해외출장이나 연수 혹은 파견근무를 고민할 때면 나름 부담을 줄어주려 애를 쓰기도 했다. 외조의 왕까진 못되더라도 외조의 참봉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두 아이도, 아내도 내겐 더없는 축복이었다. 그래서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그들은 나를 얼마나 사랑해줄까, 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해줄까, 하는 따위의 반문은 애당초 품지도 않았다. 나중에 실망할지 모른다거나 훗날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사랑에 임하는 내 자세, 행복을 대하는 내 자세뿐이었다. 사랑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했다. 이미 사랑과 행복을 얻었으니 더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게 살아온 16년. 두 아이는 성큼 자라 중 3과 초등 6학년이 되었다. 요즘들어선 녀석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한다. 한 10년 흐르면 어떨까. 녀석들은 저마다의 길을 열심히 걷고 있을테고 서서히 엄마 아빠의 품에서 벗어날 채비를 하고 있겠지. 그때 노년의 문턱에 다다른 나와 아내는 또 어떨까. 녀석들을 흐뭇하면서도 아쉬움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들은 언제나 이런 결론으로 끝맺곤 한다. 그래, 더 열심히 사랑하자! 그래, 더 많이 행복하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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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내이야기 4 - 결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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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updated>2009-07-06T16:26:51Z</updated>
	    <published>2009-07-06T16:26: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1993년 2월 27일, 마침내 아내와 나는 부부가 됐다. 아내의 고향인 대구에서 치른 결혼식은 간소, 간단, 그 자체였다. 요즘처럼 신랑이 만세삼창을 한다든가 신부에게 진한 키스를 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볼거리는 없었다. 신랑입장-신부입장-주례사-행진, 그것으로 끝이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사회를 본 고교동창 녀석이 나름, 이벤트를 준비한 눈치였지만 난 한사코 말렸다. 후한을 들먹이며 급기야 녀석에게 초고속 진행을 협박하다시피했던 기억도 난다. 어쨌든 녀석은 결혼식을 20분만에 해치우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양가 인사나 선후배동료들과의 뒷풀이도 예의 빨리빨리 대충대충으로 얼버무렸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럼에도 결혼식 내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낯가림이 심하고 나서길 꺼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내 성격 탓에 결혼식은 지극히 평범하고 극도로 밋밋한, 그래서 특별히 기억할 것도 없는 예식으로 연출됐다. 결혼식은 내게 두 번은 엄두도 못낼, 일분 일초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고역 중의 고역일 뿐이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지만 아내에게 그 결혼식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으리라. 20대 후반의 젊고 화려한 신부에게 그렇게 싱거운 결혼식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강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해도 아내는 내게 화를 내지도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래본들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던 걸까. 어쨌든 아내는 혼자서라도 즐겨야겠다, 다짐이라도 한 듯 그날 하루 내내 활짝 웃고 있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제주로 간 2박3일의 짧은 신혼여행과 대구-의성으로 이어진 처가 나들이, 그리고 내가 살던 집에 차려진 신접살림. 하지만 신혼의 달콤함을 맛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내에게 신혼생활은 낯선 동거로부터 시작됐다. 29평 아파트에서 시집 안 간 신랑의 여동생과 함께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형편에서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한 새출발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도 비교적 흔하던 신랑신부 대형 브로마이트 한 장 없이 A4크기의 결혼사진 한 장만 달랑 내걸린 집에서, 그것도 웬만한 가전제품과 가재도구를 그대로 쓰던 집에서 신혼의 냄새를 맡기란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해도 결혼은 내게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격변, 격동의 세월이 시작됐다고 해야 할까. 외동아들로 자란 탓에 부엌 출입은커녕 잔일조차 동생과 누님들의 손을 빌리기 일쑤였던 내게 변화의 물결이 밀려든 거였다. 금남의 공간이던 부엌을 드나들고 금기의 일이던 요리에 나서는가하면 잔일을 스스로 챙기는 것도 모자라 아내의 잔심부름마저 마다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으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서 동생과 누님들은 깊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게 분명하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내가 그렇게 변신을 거듭한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불화와 별거로 끝나버린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박이 내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한 이상 결혼에 실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그래서 최대한 나를 낮추고 가능한 나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채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난 변하고자 했고 서서히 변해갔다. 아마 아내에게 미안했던 마음도 한몫 거들었지 싶다. 세상 모든 신부가 그렇듯 신혼부부만의 오붓함을 기대하며 결혼했겠지만 동생과 함께 지내야하는 우리의 신혼생활은 그것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렇다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전혀 누리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동생이 여행이라도 가면 둘이서 분위기를 한껏 내기도 했고 주말이나 휴가철엔 여행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으니 말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결혼하던 그해 여름, 둘이서 전남 일원을 싸돌아다녔던 거다. 여름휴가를 남도답사 배낭여행으로 때웠더랬는데 아내는 하찮은 체력 덕분에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대신 난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등반가마냥 높이가 1미터를 훌쩍 넘는 배낭을 짊어진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또 걷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버스와 걷기로만 이어지던 그 여행은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잊을 수 없는 신혼의 추억이 되었고 그 추억은 나와 아내의 사랑을 꼭꼭 동여매는 소중한 끈이 되어 주었다. &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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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읽어보는 글 24 - 떠나는 것, 돌아가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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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3T11:37:33Z</updated>
	    <published>2009-07-03T11:37: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떠나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란다. 떠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것이란다. 떠나는 것이 돌아가는 것이니 떠나지 못하면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란다. 떠날 수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니 떠날 수 없으면 돌아갈 수 없는 것이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떠난다는 것은 그리움이 있다는 말이란다. 그리운 그 무엇이 있기에 떠나는 것이란다. 그리운 그 무엇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것이란다. 떠나지 않으면 그리운 그 무엇이 사라질 것이기에 떠나는 것이란다. 떠날 수 있어야 다시 그리워할 수 있고 그래야 그리운 그 무엇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란다. 그리운 그 무엇이 없다면 떠나지 않는단다. 떠날 수도 없고 떠나지도 못한단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떠난다는 것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란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떠나는 것이란다. 떠난다는 것은 돌아가 지킬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란다. 돌아갈 지킬 그 무엇이 있기에 떠나는 것이란다. 떠나지 않으면 돌아갈 곳이 막히고,돌아가 지킬 그 무엇이 잊혀질 것이기에 떠나는 것이란다. 떠날 수 있어야 돌아갈 곳이 열리고,돌아가 지킬 그 무엇을 다시 그려볼 수 있고 그래야 돌아갈 곳으로,돌아가 지킬 것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란다. 돌아갈 곳도,돌아가 지킬 것도 없다면 떠나지 않는단다. 떠날 수도 없고 떠나지도 못한단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운 그 무엇이 없는데 길을 나서는 것은 떠도는 것이란다. 돌아갈 곳이 없는데 길을 나서는 것은 헤매는 것이란다. 돌아가 지킬 것이 없는데 길을 나서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란다. 그리운 그 무엇도,돌아갈 곳도, 돌아가 지킬 것도 없는데 길을 나서는 것은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이란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누구든 떠나야할 때가 오면 떠나야 한단다. 떠나야할 때가 왔는데도 떠나지 않는다면 다시는 떠나지 못하고 삶은 갇혀버릴지 모른단다. 떠나지 않으니 돌아가지 못해서란다. 떠나야할 때가 있을 뿐 떠날 수 있을 때는 없단다. 언제든 떠나야 할 때가 오면 떠날 수 있어야 한단다. 떠나야할 때가 왔는데도 떠날 수 없다면 다시는 떠날 수 없고 삶은 무너져내릴지 모른단다. 떠날 수 없으니 돌아갈 수 없어서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떠나는 사람이 웃는 이유는 그래서란다.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란다. 비록 떠나는 것이 쓰리고 아플 지라도 언젠가 상처 아물고 새살 돋는 날이면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그리운 그 무엇을 다시 만나고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고 돌아가 지킬 그 무엇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설령 다시 떠나야하는 날이 온다해도 기꺼이 미소 머금고 떠나는 것이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떠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이유도 그래서란다.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비록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시리고 아릴 지라도 언젠가 일어서고 걷게 되는 날이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그리운 그 무엇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고 돌아갈 곳으로 돌아갈 수 있고 돌아가 지킬 그 무엇을 지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설령 다시 떠날 수 밖에 없는 날이 온다해도 기꺼이 경쾌한 걸음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나흘간의 짧은 여행. 떠나온 아빠가 이제 돌아간단다. 그리운 그 무엇,너희와 엄마가 있어서란다. 돌아갈 곳,집이 있어서란다. 돌아가 지킬 그 무엇,가족이 있어서란다. 더 그리워해야겠기에 떠나왔고 더 그리워하기에 돌아가는 것이란다. 더 그리워할 수 있어야겠기에 떠날 수 있었고 더 그리워할 수 있기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이란다. 떠남도 돌아감도 다 그리움의 힘이요 행복의 힘이란다. 그래서 아빠는 떠날 때도,돌아갈 때도 웃을 수 있는 것이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떠나는 것은 돌아오기 위한 것임을 너희가 알아차리기엔 아직 이르지 싶구나. 너희에겐 아빠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게,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게 그저 불안하고 허전하고 아쉽게만 느껴질 게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잠깐의 헤어짐이 우리에게 더 큰 그리움을 선물한다고 말이야. 크게 자란 그리움이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을 가져다준다고 말이야. 더 더 커진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더 더 더 큰 행복을 만들어 나가게 한다고 말이야. &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번 여행이 끝은 아니란다. 제주도와 보길도,남해와 거제 … 가봐야 할 곳은 아직 많구나. 그 세 번째 여행도 아빠에게나 너희에게나 그리움과 사랑을 충전하는 시간, 웃음과 행복을 리필하는 시간이 될 거란다. 떠날 때도 돌아갈 때도 아빠의 마음은 한결같아. 어디에 있든 아빠가 바라보는 곳은 언제나 너희요, 무얼하든 아빠가 향하는 곳은 언제나 우리 집이란다. 그 그리움이 우리를 밀고가는 힘이라는 사실, 여행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는구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유배지에서 쓴 아빠의 편지&gt; 중에서-&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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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질어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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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07-03T11:19:01Z</updated>
	    <published>2009-07-03T11:19: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빼앗긴 일자리가 결국 사람을 죽였다. 지난 5월 쌍용차에서 희망퇴직한 노동자 한 사람이 어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단다. 지난달 이 회사 관리직노동자가 희망퇴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두번째의 참극이다. 자살을 선택해야 했던 두 노동자에게 희망퇴직은 절망퇴직이었던 거다. 이유는 한결같다.&amp;nbsp;비관!&amp;nbsp;사라진 일자리, 사라진 희망이 거듭&amp;nbsp;애먼 노동자를 잡은 것이다. 부실경영으로 회사의 위기를 부른&amp;nbsp;장본인들은 여전히 건재한데 말이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절망을 강요한 그들은 지금도 멀쩡히 잘 사는데 말이다. 정부는 부실경영에서처럼&amp;nbsp;파산위기에서도 구경꾼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데 말이다.&lt;/P&gt;
&lt;P&gt;바보같이 죽긴 왜 죽어, 한마디 쏘아부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순 없다. 그들에게 희망이 절단났음을&amp;nbsp;알게서다.&amp;nbsp;찾아낼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가 그들에게 그리 많지 않았음을 알게서다.&amp;nbsp;억울한 선택을 앞두고 그들이 지새웠을 불면의 밤들을 알게서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길을 탄식하는 것조차 자신이 없다. &lt;/P&gt;
&lt;P&gt;그들은 더 모질었어야 했다. 모질지 않고는 모진 세상을 도저히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분하면 분할수록,&amp;nbsp;억울하면 억울할수록 더 모질었어야 했다. 기업이, 정부가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그들보다 더 모질게&amp;nbsp;버텨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amp;nbsp;그러지 못했다. 그들의 잘못은 오직 하나, 모질지 못했다는 거다.&amp;nbsp;차마 모질지 못했던 까닭에 그들은 무력한 죽음과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거다. &lt;/P&gt;
&lt;P&gt;세상을 버린 그들 말고도 모질어야 할 사람들은 많다. 해고 불안,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해도 그렇다. 아니&amp;nbsp;이 땅의 일하는 자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모진 마음, 모진 정신이 아닐까 싶다. 모질지 않고선 언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일하는 자들에게 세상은 점점 더 모질게 변하고 있으니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일하는 자, 그&amp;nbsp;누구든 지금보다 훨씬 더 모질어야 한다. 모질게 사는 것이 일하는 자들의 마지막 비상구인 셈이다.&lt;/P&gt;
&lt;P&gt;지금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을&amp;nbsp;모질게 대하는 건 기업만이 아니다. 기업 못지않게 정부도 모질게 군다. 정부가 일하는 사람과 부리는 사람의 가운데 서서 화해를 중재해야 한다는 당위는&amp;nbsp;이미 가당찮은 기대다. MB정부가 프렌들리 기업 운운할 때부터 짐작한 바이지만&amp;nbsp;정부라는 것이 기업 뒤에서 혹은 기업 앞에서 기업의 모진 작태를 열심히&amp;nbsp;거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부의 짓거리가 &amp;nbsp;더 얄밉고 더 모질게 느껴질 밖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은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다.&lt;/P&gt;
&lt;P&gt;헌데&amp;nbsp;요즘 세상 돌아가는 낌새를 보면 기업 보다 정부가 더 모질게 구는 것 같다. 정부가&amp;nbsp;기업의 친절한 도우미, 열렬한 지지자&amp;nbsp;역할을 넘어&amp;nbsp;모진 기업주, 모진 고용주, 모진 경영주 행세를 자처하고 나선&amp;nbsp;듯하니 말이다. 비정규직법이 발효되자 마자 정부 산하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민간에 앞서 해고사태를 연출하고 있는 대목은 모진 고용주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정규직법을 만든 국회마저 법이 발효되고 이틀 뒤 무더기로 계약해지통보를 하고 나선 장면도 모진 고용주의&amp;nbsp;면모를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amp;nbsp;&lt;/P&gt;
&lt;P&gt;왜 집단해고 연출인가. 그 속내를 짐작하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불안감을 조성하고 실업대란 으름장을 놓음으로써 하루빨리 법을 바꾸자는 것, 아닐까.&amp;nbsp;법 시행 유보를 위한 기획해고라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무턱대고 내지르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해도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으니 한숨이 절로 난다.&lt;/P&gt;
&lt;P&gt;그럼 왜 시행해보지도 않은 채 법을 바꾸자는 걸까. 그 속내를 짐작하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이라는 입법취지가 마뜩찮은 것, 아닐까. 기업의 해고자유와 무한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한 법개정이라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아무 근거없이 터져나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해도 사람 목숨&amp;nbsp;갖고 노는 것 같으니 탄식이 절로 난다.&lt;/P&gt;
&lt;P&gt;비정규직법 사태의 와중에 노동부라는 곳이 보여준 작태도 가관이다. 법 시행 유예만 줄곧 떠들어댈 뿐 법 시행에 앞선 사전대책도 없고 법 시행 이후의 사후대책도 전무하니 말이다.&amp;nbsp;대체 이 부처는 뭐하는 부처인가. 간판은 분명 노동부인데 하는 짓은 노동자 보살피기 보다 기업주 고용주 경영주 챙기기에 열심이니 이상한 일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간판을 바꿔달던지, 업무가 중복되면 차라리 간판을 내리던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amp;nbsp;굳이 간판을 유지해야겠다면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하니 2년짜리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면 안될런지. 그러면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조금 더 체험할 수 있을테니 본연의 업무를 찾고 능률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lt;/P&gt;
&lt;P&gt;모진 기업과 모진 정부의 틈바구니에서 일하는 사람이 사는 법은 하나 뿐이다. 모질어 지는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모질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눈물과 절망을 피할 수 없다. 약하게 굴다간 삶이 절단날 판이다. 그러니&amp;nbsp;지금부터 다시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 모질게 사는 법, 모질게 버티는 법,&amp;nbsp;모질게&amp;nbsp;대드는 법 말이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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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에서 서민으로, 노동자로 산다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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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07-02T17:00:42Z</updated>
	    <published>2009-07-02T17:00: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한국에서 서민으로 산다는 것은 죄악이다. 서민이 된다는 것은 생활이 불편하다거나 생계가 힘들다거나 하는 정도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서민으로 산다는 것은 모멸과 굴욕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겨우 가능한 일이다. 사람대접 받고 살기는 진작에 글러먹었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 곧 인권은커녕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라는 말이다. 적어도 2009년 7월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한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또한 죄악이다.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땀을 많이 흘려야한다거나 오랜 시간 일해야 한다거나 하는 정도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불안과 위기를 쉼없이 이겨내고서야 겨우 가능한 일이다. 사람대접 받고 살기는 애당초 어렵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 곧 인권은커녕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조차 만만치않다는 말이다. 적어도 2009년 7월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한국에서 서민으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죄악 중에서도 가장 쓰라린 죄악이다. 서민으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자기 자신만 감당하면 되는 죄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민으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대물림해야하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기 자식에게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으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참담하고 참혹한 죄악인 것이다. 적어도 2009년 7월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청와대도, 정부도, 한목소리로 서민을 위하고 있는데 말이다. 여당도, 극우언론도, 한마음으로 노동자를 걱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서민의 삶을 굽어살펴 서민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는 듯하니 그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여당과 극우언론이 노동자의 삶을 어여삐여겨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들먹이는 듯하니 그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지만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 그들이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곱씹어보면 반문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느라 나라곳간을 비게 만들고, 그 허접한 곳간을&amp;nbsp;이런저런 세금 늘려 메우려드는 청와대와 정부에게서 서민을 위한 고민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려우니 말이다. 자나깨나 기업 만세를 외쳐대고, 기업주들의 편리를 챙겨주느라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주문하려드는 여당과 극우언론에게서 노동자를 위한 번민의 부스러기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할테니 말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대한민국은 참 희한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있는 자들에겐 감세를, 없는 자들에겐 증세를 도모하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몇이나 되겠는가. 부리는 자들에겐 해고편리와 고이윤을, 일하는 자들에겐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선물하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몇이나 되겠는가. 있는 자, 부리는 자들에겐 자유와 권리가 넘치고, 없는 자, 일하는 자들에겐 구속과 의무가 넘실대니 이쯤되면 서민이 부자를 먹여살리는 나라, 노동자가 기업주를 먹여살리는 나라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lt;/P&gt;
&lt;P class=바탕글&gt;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한마디 거든다.&amp;nbsp;노동 유연화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과제란다.&amp;nbsp;궁금증이 생길 만하다. 노동이 유연해지면 서민과 노동자의 삶도 유연해질까? 노동이 유연해지면 온 나라 온 백성이 두루 잘 살게 될까? 노동만 유연화되어야하고 자본은 유연화되지 않아도 되는걸까? 노동이 유연해지면 자본도 유연해질까? 노동에겐 유연을 강요하면서도&amp;nbsp;자본에겐 유연을 주문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뭘까?&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지만 그따위 궁금증을 품을 자격이, 권리가 서민과 노동자에겐 없다. 왜냐? 서민은, 노동자는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민은, 노동자는 죄인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아야한다. 서민과 노동자가 해야할 일은 까라면 까는 것이다.&amp;nbsp;그 책임과 의무에 회의를 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더욱이 불순한 질문, 혹은 불온한 반문을 꺼내는&amp;nbsp;것은 죄악을 더 키우는 일이다. 그러니 서민된, 노동자된 주제라면&amp;nbsp;그저 굿이나 보고 있다 나눠주는&amp;nbsp;떡이나 한 조각 얻어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억울하다면? 분하다면? 출세하라. 잘 살아라. 있는 자가 되고, 가진 자가 되는 것만이&amp;nbsp;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가진 것들이 못가진 것들을 더 갉아먹지 못해 안달복달인 나라. 가진 것들이 말장난과 꼼수로 못가진 것들을 속여먹고 놀려대고 희롱하느라 바쁜 나라. 가진 것들이 가진 것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못가진 것들에게 더 많은 땀과 눈물을 강요하느라 부산한 나라. 그런 나라에서 못가진 것으로 산다는 것은, 서민으로 산다는 것은,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고역 정도가 아니라 죄악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죄인된 입장에서야 딱히 변명할 거리도 없을 터. 하지만 그래도 가진 것들과 못가진 것들을 두루 살펴야할 청와대가, 정부가, 여당이, 극우언론이 서민 위하는 척, 노동자 위하는 척 하면서 부자 편, 기업주 편만 든다면 토악질하지 않을 이는 없을 듯하다. 그건 누가보더라도 역겨운 풍경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심판이라는 것들은 있으나마나, 자나깨나 편파판정이 횡행하는 나라라면 탄식이 그칠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개콘에 나오는 쁘레타 쁘루국으로 이민&amp;nbsp;가버릴까? 차라리 엘리스 따라 이상한 나라로 여행이나 떠나버릴까? 서민이나 노동자에겐 그런 이민이나 여행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amp;nbsp;가진 게 없어서다. 죄인이어서다.&amp;nbsp;&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quot;지난 1년 반 동안 이명박 대통령 통치 시대, 그리고 지배집단의 성격적, 성향적, 정책적, 철학적 차원에서 말한다면 비인간적이고 오로지 물질주의적,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인권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그런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서 있다.&quot; 리영희 선생의&amp;nbsp;말씀이다. 2009년 7월 대한민국의 풍경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비인간적' '물질주의적'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등등의 평가는 누구든 공감할 대목이다.&amp;nbsp;헌데&amp;nbsp;그 다음에 나오는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서 있다'는 구절에 이르러선 멈칫거리게 된다. 이의를 달아야겠기에? 도무지 동의할 수 없어서? 아니다. 이의를 달 자신이 생기지 않아서다. &quot;그건 당신의 생각&quot;일 뿐이라고 대들고 싶지만&amp;nbsp;그렇게 맞받아칠 건덕지가 없어서다. 그래서 자꾸만 불안해져서다.&amp;nbsp;형틀과 족쇄에 갇힌 서민과 노동자들의 행렬이 자꾸 눈에 밟혀서다.&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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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읽어보는 글 23 -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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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river</name>
	    </author>
	    <updated>2009-07-01T11:36:22Z</updated>
	    <published>2009-07-01T11:36: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2009년도 벌써 반토막이 났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반년이 훌쩍 지나간 거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있다 나머지 반년도 그냥 까먹고 마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생긴다. 시간은 강물처럼 쉼없이 흘러가는데 난 강바닥에 깊이 박힌 폐선마냥, 멈춰선 시계마냥 오도가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야 하고, 어디로든 다시 흘러가야 할 터인데 난 왜 시작하는 걸, 흘러가는 걸 망설이고만 있는 것인지...&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아빠 책장에는 이런 제목의 책이 한 권 꽂혀있단다.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 제법 이름난 시인 소설가 건축가 화가 여행가 시민운동가 등의 글들을 한데 모아놓은 거야. 저마다 살아오면서 최고의 감동을 전해 받았던,이를테면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고 오늘로 이끌어준 한마디 말이나 짤막한 글귀를 소개하는 내용인데 책제목은 만화가 이희재 아저씨가 쓴 글의 제목이더구나.&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겠니? 아저씨가 쓴 글은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인데 이 아저씨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은 말은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라는 거였대. 1980년대초 일본 저널리스트가 쓴 책에서 그 문구를 발견했다는구나.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그때 아저씨는 무르익기 전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설익은 완벽주의를 품은 채 뿌연 안개속에 갇힌 듯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이 문구를 읽고선 생각을 고쳐먹었던가봐.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단다. “하지만 완전한 것이 어디 있을까? 수영을 잘하기 전에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식의 각오라니,배신이 두려워 친구를 사귀지 않거나,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서툴다고 부족하다고 미리 조바심내거나 겁먹지 말라는 말이야. 하고 싶은 일,해야 할 일이면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거지. 비바람을 맞으며 다져지고 상처를 통해 익어가는 불완전한 길위의 여정이 바로 청춘이라는 말씀. 아저씨는 다른 사람에게도 권한단다. ‘자, 머뭇거리지말고 발을 내딛어’.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실패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다음에 난 더 행복해질 것이다.” 안그래?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비도 언젠가는 그칠 테고 그러면 맑은 하늘 저 편에 일곱색깔 무지개가 떠오를테니 말이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아빠는 회사를 나온 뒤 새 길을 고민할 때마다 이 구절을 주절대곤 했단다.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 ‘자, 머뭇거리지 말고 발을 내딛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더듬더듬 거리지 말자며 아빠 자신에게 주문이라도 걸듯 속삭였어. 이 말이 아빠에게 가장 절실한 충고로 들렸기 때문이지.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두 번째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이 구절을 떠올렸단다. 엄마와 너희를 챙겨주지 못한 채 집을 나서는 게 미안하고 염치없는 짓이긴해도 얼마간의 여행은 꼭 있어야겠기에 기왕 나서는 길, 머뭇머뭇거리지 말자며 스스로를 채근하면서 말이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11월 26일,다시 찾아든 월요일에 맞춰 떠나는 두 번째 여행. 아침 일찍 가방을 꾸리면서 너희 눈치를 살폈더랬어. 인하는 여전히 반기지 않는 표정이더구나. 집을 나서려는데 “언제 오실 거예요?” 묻길래 살며시 안아주며 “목요일쯤” 했더니 “더 빨리 오면 안돼요?” 했지. 민하도 시무룩한 얼굴이었어. 아빠 혼자만의 여행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단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너희 마음은 아빠도 잘 알고 있어. 세상 모든 자식들이 다 그렇듯 너희 마음속에도 아빠는 산처럼,바위처럼 존재하고 있겠지. 그런데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그 산이,그 바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끼면 마음 한 구석에서 위태로운 생각이 들기도 할 거야.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하지만 그런 생각을 품진 말거라. 아빠는 흔들리지 않는단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거야. 어디서 무얼하든 아빠는 흔들리지 않고 아빠의 길을 걸어갈 거란다. 산처럼, 바위처럼 아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테니 괜한 걱정은 말았으면 좋겠구나.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아빠의 여행을 흔들림의 징조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늦게나마 떠나는 공부의 여정이라고 생각하렴. 몸은 비록 너희와 함께 못하지만 머리와 가슴엔 언제나 너희가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 부녀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 여겨도 좋을 것 같구나. 항상 아빠를 지켜주는 든든한 두 딸이 있으니 세상이 암만 요동쳐도 아빠는 끄덕도 않을 거란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다만 너희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아빠에게 조금의 시간을 줬으면 하는 거야. 20년을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으니 몇 달의 여유는 줄 수 있겠지? 혹시라도 너희가 마음을 다칠까봐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걸 느꼈지만 아빤 너희가 그리 나약한 친구는 아니라고 믿기에 집을 나설 수 있었던 거란다. 아빠도 너희도 꿈을 향해,미래를 향해,행복을 향해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하는’ 용기를 지녔으면 좋겠어.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5c7fb0&gt;넥타이를 당겨 매듯, 신발끈 고쳐메듯 다시 일상을 단단히 조이는 사람들. 사람들은 저마다 가방 하나씩 챙겨들고 제가 가야할 곳,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더구나. 그 풍경을 헤치며 부산역으로 향하는데 지난번 여행 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단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 class=바탕글&gt;-&lt;유배지에서 쓴 아빠의 편지&gt; 중에서-&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유배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배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MnVF&amp;amp;tagName=아빠의 편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빠의 편지&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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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내이야기 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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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7-01T08:40:37Z</updated>
	    <published>2009-07-01T08:40:3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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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바탕글&gt;아내는 예뻤다. 엷은 쌍까풀 아래 반짝이는 눈동자와 진한 눈썹, 오똑한 콧날과 작은 입술, 계란형의 얼굴과 통통한 볼살, 그리고 팔랑거리던 짧은 커트머리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게다가 아내는 늘 활기에 넘쳤고 씩씩했으며 당당했다. 부침성이 좋았고 애살이 대단했으며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 생김새, 그 성격에다 키는 훤출했고 몸매는 늘씬했으니 두루두루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갖춘 아가씨였던 셈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실제로도 그랬다. 아내는 입사하자마자 남자 선후배들의 관심사가 됐다. 아내와 사귀면서 들은 이야기지만 아내에게 대시한 양반들도 여럿 있었단다. 밥 사고 술 사며 작업 거는 선배도 있었고 아내를 하숙집까지 데려다주며 점수 좀 따겠다고 나선 동료도 있었단다. 결국 헛물을 켜고만 그 양반들은 훗날, 아내와 나의 결혼소식을 접하고선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ㅋㅋㅋ.&lt;/P&gt;
&lt;P class=바탕글&gt;아내와 나의 연애에 시동을 건 쪽은 내가 아니라 아내였다. 회식이 있으면 언제나 내 옆자리에 앉았고 술자리가 끝나면 언제나 집에 데려다줄 것을 바랬다. 아내는 나의 동기회 모임에 동행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고 심지어 나의 취재현장에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는사이 우리는 회사 안팎으로 알게모르게 공식커플이 되어 갔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선후배들에게 그건 미스터리였을테다. 저렇게 활달하고 활기넘친 아가씨가 왜 하필 저렇게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놈에게 다가서나, 생각했을 법하다. 더러는 시험볼 때 시계 풀어준 일이 그리도 뿅 갈만한 사건이냐, 고개를 갸웃거렸을지도 모르겠다. 허기사 내가 생각해봐도 뜻밖의 일이었으니 하물며 남들이 보기엔 어땠을지 알 만하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그 무렵 난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 따위에 관심조차 두지 않고 살았다. 부모의 오랜 불화와 결별을 보고 자란 나에게 연애와 결혼은 부담스런 짓이고 무서운 짓이고 미친 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것도,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도 꺼려하며 살았다. 아내도 다를 건 없었다. 처음엔 아내가 다가서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낌새를 느끼고서도 다정다감하게 대하진 못했다. 애써 모른 척, 일부러 퉁명하게 굴기도 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아내가 싫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를 가슴에 품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서웠던 것 뿐이었다. 그렇게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나를 아내는 기다려줬다. 내 마음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들어와 사랑을 퍼뜨리고 키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날 난 스스로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는 어쩔 수 없는 사랑에&amp;nbsp;빠져버렸다는 걸 말이다. 그날로부터 난 더 이상 아내의 사랑, 나의 사랑을 부담스러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게 되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1992년 12월 어느 날의 깊은 밤. 난 아내의 하숙집 근처 놀이터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에게 다가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나에게 사랑을 줘서 너무 고맙다고, 나에게 사랑의 기쁨을 알게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나를 기다려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이다. 그리고 한마디. &quot;난 널 사랑해. 나와 함께해줄래?&quot;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나이 서른 둘. 약간 늦은 프로포즈이긴 했지만 그때까지 그렇게 가슴벅찬 설렘과 행복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아내와 나는 하나가 되기로 했던 거였다. 시계가 가져다준 특별한 인연이 특별한 사랑, 특별한 행복의 커튼을 올려준 거였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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