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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6T23:55:29Z</updated>

  		<entry>
	    <title>기회의 도시 상해를 떠나 이오로 가다(순방일지6)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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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6T23:55:29Z</updated>
	    <published>2009-10-26T23:55: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BR&gt;&lt;!--prefix_sub_header--&gt;&lt;B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kr.chinajilin.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lt;/FONT&gt;&lt;/U&gt;&lt;/A&gt;] 래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본사소식&lt;/FONT&gt;&lt;/U&gt;&lt;/A&gt;] 발표: [2009-10-26 오후 4:28:31] 클릭: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viewtotal&amp;articleid=33439&quot;&gt;&lt;/xSCRIPT&gt;
 109]&lt;/FONT&gt; 나도 한마디: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commenttotal&amp;articleid=33439&quot;&gt;&lt;/xSCRIPT&gt;
 0]&amp;nbsp;&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class=title_time&gt;&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STRONG&gt;상해에 대하여&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Verdana size=3&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54946634.jpg&quot; border=1&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상해 중환로에서 바라본 상해일각&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중국 4개 직할시중의 하나인 상해시는 중국 최대 도시다. 6,340.5평방키로메터의 면적에 1888.46만의 인구를 가진 상해시는 18개구와 1개현을 관할한다. 상해는 우리나라 대륙해안선 중부의 장강입구에 위치하여있는데 중국최대의 공업기지와 최대의 대외무역항구를 가지고 있다. 현재 2000만을 초과하는 인구가 상해지역에 거주하고있는데 강절(강소,절강)계가 대부분이고 상해말(오어태호편방언)을 위주로 쓴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자그마한 어촌이였던 상해는 1842년 《남경조약》체결후 중국의 대외무역항구로 되면서 동서방무역교류중심으로 신속하게 발전했다. 20세기 30년대에 상해는 다국적기업들의 무역과 상무 중심으로 아태지역에서 제일 번화한 상업도시로 발돋움하였는데 《동방의 빠리》로 불리였다. 1949년 건국후 외국인과 다국적기업들이 떠나버린 상해는 몰락의 일로를 걷다가 개혁개방이후 다시 활기를 띠고 신속한 발전을 가져온다. 90년대에 다시 중국 최대의 경제중심도시와 세계 최대의 무역항구도시로 된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55122928.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상해중환로에서 바라본 놀이공원&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오늘날의 상해는 중국의 과학기술, 무역, 금융과 정보중심일뿐만아니라 국제금융중심과 항운중심으로 되였고 명년에는 《2010상해엑스포》를 개최하게 된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5546506.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룡백구(룽바이)부근의 자등로 일각&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개혁개방후 고향을 떠나 상해로 온 조선족들은 민행구 룡백(룽바이)구역과 오중로부근에 집중되여 오붓한 조선족동네를 이루고 있으며 기타 17개구 1개현 그 어느 곳에서든 조선족의 발자취와 숨소리는 다 찾아볼수 있을 정도로 침투되여 뿌리를 내리고 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STRONG&gt;상해와 조선족&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상해와 조선족의 인연은 남다르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민국림시정부가 상해에 있을 당시에 벌써 상해는 조선족의 활동중심의 하나였다. 상해를 무대로 한 우리민족 력사의 발자취는 우리가 책이나 영화를 통해 많이 알고 있는바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50년대 중국정부의 조선지원 일환으로 수백명의 조선로동자들이 상해에 와서 방직, 무선전 등 기술을 배우게 되였다. 언어소통을 위해 동북지구에서 120명의 혈기왕성한 조선족전문가들을 뽑아 상해에 파견하여 통역과 학습을 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해방후 첫패의 상해진출조선족이란다. 학습완료후 조선의 로동자들이 륙속 귀국하자 대부분의 조선족 통역일군들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중 30여명의 재능있고 전도유망한 전문가들은 상해에 남아 상해시 각 분야에 배치되였다. 그들이 바로 오늘의 상해조선족사회의 원로들인데 그들가운데서 반수는 아직도 생존해있으며 그들의 자녀들은 상해태생의 첫 조선족으로 되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60년대 상해시의 일부 대학들에서 조선족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상해 조선족사회가 생기를 띠는듯하였으나 문화대혁명으로 대부분이 돌아갔고 대학입시가 회복된 77년을 계기로 상해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55548707.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STRONG&gt;&lt;FONT size=2&gt;화룡태생인 상해복단대학 국제문제전문가 박창근교수&lt;/FONT&gt;&lt;/STRONG&gt;&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중한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까지 상해시 호적등록 조선족은 730여명이였다. 중한수교후 한국기업들이 상해에 대거 들어오면서 상해의 조선족수는 기하학적으로 불어났다. 이시기 과학기술분야와 정치분야 위주이던 상해조선족사회구도가 2차산업과 3차산업분야로 확대된다. 계통학과 한국학을 연구하는 상해복단대학 국제문제연구원 박창근(62)교수에 따르면 중한수교이후 상해에 온 조선족가운데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데 기회의 도시 상해가 그들의 활무대로 되였단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55728213.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인공지구위성학자출신으로 선뜻 하해하여 자유중개인으로 된 김민달회장&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중국 최초 인공지구위성인 《동방홍》총체설계연구를&amp;nbsp;하였고 후에는 자유인으로 거듭나 한중간의 다리역할을 수두룩히 해온 김민달(69)회장은 슬기롭고 근면한 조선족은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에서 가교작용을 하면서 자기로서의 독특한 촉각으로 국내와 국제무역에 눈길을 돌렸고 훌륭하게 자리매김했다고 말한다.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나 중앙부서에서 사업하는 조선족간부들이 조선족사회문제에&amp;nbsp;조금만 관심을 더 돌린다면 화동지역의 조선족사회가 더욱 발전장대해질수 있다고 말하면서 요즘 교회에 접수되나 다름없는 조선족사회일반에 대해 근심하기도 하였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오늘날 상해조선족사회가 창조한 경제적부는 믿기 어려울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 내면에는 한국의 선진적인 기술과 경험, 그리고 상해라는 경제, 금융, 무역의 중심도시, 조선족의 언어우세와 근면, 대담성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STRONG&gt;상해의 서성사람들&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상해에서 백만원이상의 부를 창조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화룡시 서성태생인 송춘화(가명)양은 단돈 500원을 들고 상해로 온 19세의 담찬 소녀였다. 상해에 와서 처음에는 닥치는대로 양말도 팔고 브래지어도 팔고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고 한다. 사람이 많은 상해에서 그런 장사를 해도 월 3000원씩은 벌게 되더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한국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부동산회사들에서 조선족직원을 모집하게 되였고 송춘화는 삐여난&amp;nbsp;미모와 장사를 하면서 는 언어실력으로 부동산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처음 30만원을 벌기 힘들지만 돈이 돈을 버는 상해에서 돈모으기는 정말 식은죽먹기라》고 말한다. 부동산회사에 근무하면서 여기저기서 모은 27만원으로 구입한 집이 5년만에 160여만원에 처분되면서 백만원꿈이 이루어지고 그돈이 다시 부동산에 투입되면서 눈덩이굴리듯 커가더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연길에 홀로 있던 어머니를 3년전에 상해에 모셔왔고 심심해하는 어머니한테 민박을 경영하게끔 집도 두채 장만해주었다. 《영숙민박》이라 이름한 민박은 연변처럼 간판을 내걸지도 않았지만 손님이 너무 많아 하루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빈방이 없을 정도다. 룽바이에 왔다가 술마시고 밤에 돌아갈수 없는 사람, 친구한테 놀러온 사람, 한국에서 온 관광객 하여간 자그마한 민박은 문쪽에 불이 날지경이다.&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Verdana size=3&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6721762.jpg&quot; border=1&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송춘화양의 어머니가 차린 영숙민박&amp;nbsp;손님방&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처음에는 울음이 나올 지경으로 어려웠어요.》 2002년에 가흥에서 노래방을 경영하는 형의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3000원을 들고 관내에 진출한 최광원(33)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기회가 바로 재부라고 말한다. 가흥에 온지 1년도 안되여 노래방이 문을 닫자 오갈데없게 된 그는 안해와 더불어 친구들의 집에 얹혀 살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그 모습으로 고향에 갈수 없었고 부모들을 대하기 싫었다. 다행히 안해가 한국기업에 출근하게 되였고 800원씩 받는 로임으로 간신이 생계를 유지할수 있었단다. 친구들이 한국회사를 소개해주어 소주, 무석, 상해 등지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직장생활을 하려하였으나 번마다 한달을 견지하지 못하겠더란다. 성격이나 습관상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것이 가장 큰 원인이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그러던중 우연한 기회에 한국 부산에서 온 조명업체사장을 만나고 쭈욱 5년간 그 회사의 중국측 대리로 업무를 보게 되였단다. 한국에서 오다를 보내면 중국의 공장들에 넘겨주고 완성되면 한국에 보내는일인데 일은 간단하지만 책임성이 수요되는 일이였다. 강한 책임심으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상해에 집(시가 120만원)도 장만할수 있었고 자가용도 굴리게 되였다. 현재 친구와 합자하여 자동차미용업을 준비중이라고 말한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6916149.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행복이 넘치는 최광원씨네 일가&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김철(32)씨 역시 상해진출 경력은 10년이 넘는 친구다. 한국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무역을 배웠고 지금은 상해한원기전설비유한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에서 플라스틱자재를 들여다가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상해는 기회의 도시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기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그 기회란것이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에겐 주어지지 않는답니다. 사실 대학교문부근에도 가보지 못한 제가 연길에 있었더라면 무엇이 되였겠어요?》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무슨 일을 하나 꼼꼼한 김철은 오늘의 자기를 두고 상해에 보내준 부모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제가 세집살이를 한다고 한국에 가서 번 돈을 모두 보내주었어요.》 지금은 그 집이 집을 낳아서 두채로 되였단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중국의 건축자재시장은 엄청 큰데 거기에 수요되는 플라스틱자재 또한 놀라운 수자란다. 국산보다 질량이 좋은 한국산을 선호하는 중국건축시장을 노린 전도유망한 사업이 아닐수 없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61129899.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STRONG&gt;&lt;FONT size=2&gt;상해남역까지 기자를 바래다준 김철씨.&lt;/FONT&gt;&lt;/STRONG&gt; &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STRONG&gt;상해에서 첫걸음마를 뗀 햇내기들&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화룡태생인 김해연과 박해연은 갓 대학을 졸업한 24세의 처녀들이다. 《가끔 연길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박해연이 이렇게 말하자 3개월 먼저 상해에 왔다는 김해연이 까박을 준다. 《처음에는 같이 다니기가 부끄러웠어요. 어찌나 와~와~ 하고 환성을 지르는지.》&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장춘대학을 졸업한 김해연은 현재 모 한국회사에서&amp;nbsp;근무하는데 월&amp;nbsp;2400여원씩 받고 있으며 연변대학예술학원을 졸업한 박해연은 려행사에서 가이드일을 보고 있단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아직도 부모들이 보낸 돈을 쓰는가고 물었더니 둘은 《아니요.》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를 위해 그분들이 이때까지 고생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지금에도 고생시켜서야 되겠어요?》 두 해연의 꿈은 열심히 일하고 사업에서 성공하여 부모님들에게 보답하는것이란다. 《지금은 시작이여서 웅대한 포부는 말하기 어렵지만 상해에서 꼭 성공할것입니다.》 둘의 견정한 결심이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2&gt;&lt;STRONG&gt;18일에 상해에 도착하여 조양천1중시절의 후배도움으로 행장을 풀고 다시 조선족집거구인 룽바이(룡백)에 옮겨서 7일간 상해에 있으면서 대학교교수(학자), 조선족녀성기업인회, 회사원, 기업인, 작은 나눔으로 진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등불회와 주변의 인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상해에서 기자의 취재에 큰 도움을 준 등불회 송명한회장과 후배들, 그리고 16년만에 어엿한 모습으로 고맙게 나타난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face=Verdana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STRONG&gt;세계최대 소상품집산지 의오시에 대하여&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face=Verdana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25일, 오전 10시 50분에 발차한 상해-의오행 뻐스를 타고 7일간 머문 기회와 꿈의 도시 상해를 떠나면서 이번에 도착하게 되는 의오는 어떤 도시이고 또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닦고 살아가는 조선족들은 어떤 모습일가를 머리속에 그려보았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절강성중부에 위치한 의오시는 유엔과 세계은행 등 국제권위기구들에서 확정한 세계 최대 소상품집산시장으로 1105.46평방킬로메터의 면적에 200만인구(시구역상주인구 118.5만/호적인구 74만)를 가진 초대형 현급시이다. 의오시 관할구역에는 16개진 5개향이 있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1995년에 설립된 중국국제소상품박람회(의박회)는 목전 국무원에서 비준한 유일한 일용소비품류 세계적인 전람회이다. 《닥털로 사탕바꾸기》라는 전형적인 경상정신문화를 자랑하는 의오사람들은 늘&amp;nbsp;이렇게 말한다. 《의오간부들은 선견지명이 없지만 의오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이렇게 《흥상건시》전략적기치를 내걸고 시장을 만들고 발전시키고 승급시키는것으로 공업화, 국제화와 도시농촌 일체화를 추진하여 자기절로 부유의 길을 걷는 특색도시에 조선족이 하나둘 발길을 돌리기 시작한것은 개혁개방이후부터다. 불확실한 통계에 의하면 의오시에 조선족이 가장 많았을때는 2만 5000여명이, 현재는 약 2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강남구역에는 조선족유치원도 있고 조선족가게들도 많다고 한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6/20091026162236291.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의오 강남구역일각&lt;/FONT&gt;&lt;/STRONG&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청도-일조-상해 (순방일지5)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37"/>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37</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26T23:51:15Z</updated>
	    <published>2009-10-26T23:51: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kr.chinajilin.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lt;/FONT&gt;&lt;/U&gt;&lt;/A&gt;] 래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본사소식&lt;/FONT&gt;&lt;/U&gt;&lt;/A&gt;] 발표: [2009-10-20 오전 10:00:19] 클릭: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viewtotal&amp;articleid=33313&quot;&gt;&lt;/xSCRIPT&gt;
 233]&lt;/FONT&gt; 나도 한마디: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commenttotal&amp;articleid=33313&quot;&gt;&lt;/xSCRIPT&gt;
 0]&amp;nbsp;&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class=title_time&gt;&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10월 5일, 연길에서 함께 떠났던 전광훈씨가 불시로 몸에 열이 오르고 머리가 아파 이틀동안 휴식했지만 낫지 않아 귀가결정을 내렸다. 신종플루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시기라 병원에 갔다가는&amp;nbsp;보름씩 격리관찰될 가능성이 크다는것이 주요한 원인이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하여간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하게 되였다. 일정안배가 주밀하지 못한데다 조선족집거지가 연변처럼 집중되지 못하다보니 여기저기 헤매도 시간랑비가 많고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할때가 많았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중복되는 내용을 피하려고 청도에서는 기업인들보다 일반인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열심히 일하지만 그냥 힘들게 사는 분들도 있었고 금방 시작한 분들도 있었다. 일일히 기사에 담을수 없었음을 일지를 통해 알려드리고 싶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382697.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차창밖으로 건설중인 청황대교가 바라보인다.&lt;/FONT&gt;&lt;/STRONG&gt;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15일로 예상되였던 일조행이 16일에야 이루어졌다. 4~5년전까지만 해도 5천명을 웃돌던 조선족이 천여명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었지만 그래도 들려서 알아보는것이 일조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나 독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사방구에 위치한 청도장도뻐스역을 떠나 동삼고속도로를 따라 189키로메터를 달려 일조에 도착한것은 오후 3시경, 화룡 서성 태생인 리정섭(27)씨가 일하는 회사에 도착하느라 다시 약 반시간이 소요되였다. 신분증을 출시하고 방문허가를 받아서야 그가 일하는 공장까지 갈수 있었다. 한창 일하던 리정섭씨가 상사로부터 허락을 받고 나와 맞아주었고 그의 안내로 일하는 현장을 돌아볼수 있었다. 회사측의 요구에 따라 일하는 현장은 사진을 찍을수 없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3919612.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2&gt;&lt;STRONG&gt;45명 조선족들이 일하고있는 일조시 현대위아회사&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2층에 위치한 널찍하고 깨끗한 사무실은 설계, 생산지원 등 여러부문으로 나뉘여있었고 물뿌린듯 조용한 가운데 가담가담 컴퓨터마우스로 클릭하고 자판을 치는 소리만 들린다. 리정섭씨가 여기서는 무엇을 설계하고 여기서는 무엇을 한다고 설명을 해주었지만 문외한이라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였다. 기나긴 사무실구역을 지나 다시 1층에 내려오니 생산차간이였다. 넓이 50여메터 길이 100여메터 되는 큰 차간에서 일하는 사람은 불과 20여명, 할일이 많고 대부분 기술자들이기에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는것이 리정섭씨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조선족 몇이 있고 저기에는 조선족이 몇이 있다고 일일히 설명해주었지만 머리속에 남지 않아서 공장밖에 나와 다시 물어서야 조선족이 45명이나 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22일에 금형공장 준공식이 있게 된다고 한다. 마침 준공식준비로 밖에서 일을 보던 리우칠(한국인)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기자는 여기 방문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회사정황과 여기서 근무하는 조선족들의 정황을 알아 보았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리우칠과장은 현대위아에서 500억원(한화)을&lt;/FONT&gt;&lt;FONT face=Verdana size=3&gt;&amp;nbsp;투자하여 지난 1월에 착공한 금형공장은 22일에 준공식을 하게 되며 주로 각종 자동차의 판넬과 그 부품을 만들기 위한 금형을&amp;nbsp;제작하는 금형회사라고 소개해주면서 회사에 근무하는 조선족들은 회사에 온 시간은 부동하지만 모두들 열심히 하고 있어 보기좋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는 조선족직원들은 일할때 한국에서 온 기술자들로부터 배우고 다시 한족직원들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기술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한국기술자들로부터도 인정받고 또 한족직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그런 사람으로 될것을 바랐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원래 회사일이 많아 저녁 7시까지 잔업을 하게 되였지만 기자의 방문때문에 리과장은 리정섭씨를 5시에 퇴근시켰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리씨는 일조에 온지는 석달밖에 안되였고 나이도 어렸지만 관내경력은 5년이란다. 연길 모 직업고중을 졸업하고 삼촌의 회사에서 일을 방조하다가 청도에 들어온것은 2004년, 황도개발구에서 악세사리를 전문 생산하는 한국 모 회사에 5년간 근무하면서 개발팀의 중층간부로 인정받았지만 금융위기로 회사가 흔들리자 회의를 느끼고 큰 회사를 물색하였다는것이 리씨의 설명이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그사이 장가가고 3살되는 아들까지 본 리씨는 일조의 조선족사회정황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면서 저녁 7시가 되자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들을 불러 기자와 대면시켰다. 녕안 태생인 림명복(29), 룡정 유신태생인 박걸남(28), 연길 태생인 엄호(24) 등은 리씨보다 한발 앞써 이 회사에 온 회사원들이였다. 연변대학 기계학부를 졸업하고 금방 취직한 엄호를 빼고는 관내진출경력이 꽤 오래된 친구들이였다. 천진, 청도 등지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한 림명복씨와 상해에서 금형설계를 한 경력이 있는 박걸남씨가 여기로 오게 된 목적은 모두 리씨와 비슷했고 회사적응이 비교적 빨랐단다. 하지만 대학졸업후 인터넷으로 배운 지식과 알맞는 직업을 찾다가&amp;nbsp;면접을 거쳐 입사한 엄호씨는 관내행이나 한국회사입문이 처음이라&amp;nbsp;적응되기 어려워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이튿날은 토요일이였지만 그들은 일하러 나갔고 낯선 일조땅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기자는 그들의 말대로 조선족가게가 꽤 있다는 해빈3로를 향해 떠났다. 천진로를 따라 한창 걸어가니 해빈5로가 나오고 4로, 3로가 차례로 나온다. 3로 어귀에 신궁클럽이라는 조선글이 보이기에 거기에 대고 샤타를 눌렀다. 전화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더니 사장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4346733.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일조경제개발구가 멀리 바라 보인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조일남사장을 만난것은 약 3분후, 흑룡강 계서태생인 조일남(35)씨는 눈에 정기가 돌고 하는 말 마디마다 조리정연한 사람이였다. 알아보니 신궁클럽은 일조에서 조선족도우미가 있는 유일한 조선족노래방, 개업한지는 1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영업이 잘되는 노래방이란다. 일조항구에 배가 운항을 정지하면서 한국인들과 한국회사들이 줄어들고 조선족들도 대거 철퇴한 이런 시기에 80만원을 투자하여 노래방을 개업한 목적에 대해 알아봤더니 시장이란 다른 사람이 개척하는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가 개척하는것이 아닌가고 되묻는다.&amp;nbsp;&amp;nbsp;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4538588.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그의 말을 들으면 리해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일조항에 배가 다시 뜨면 한국사람들이 올것이고 또다시 조선족들이 올것이란다. 1985년에 현급시로, 1989년 6월에 지구급시로 된 일조시는 현재 동항구, 거현, 오련현, 란산구, 일조개발구, 산해천지관광구의 6개가두, 46개 향진 284만인구를 가진 나어린 도시다. 하지만 그 지리적위치와 우혜정책 등 조건은 청도나 위해, 연태와 다름없다고 한다. 신궁클럽외에도 목단강에서 온 리용희씨가 차린 재일식당이 영업중이였고 우리글 간판을 달았지만 이미 문을 닫은 가게도 여기저기 보였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일조에서 2일간 머물고 18일 오전 10시에 상해행 고속뻐스에 몸을 실었다. 2004년 1월 1일에 정식으로 개통된 동삼고속도로를 달리며 기자는 중국이란 대국의 패기를 가슴속에 느낄수 있었다. 흑룡강 동강으로부터 해남도 삼아에 이르는 동삼고속도로는 길이가 5700키로메터인데 일조-상해구간은 680키로메터, 8시간반가량 달려 상해남역에 도착하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5154206.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동삼고속도로에서 내다본 소북평원은 그냥 황금물결이다.&lt;/FONT&gt;&lt;/STRONG&gt; &lt;STRONG&gt;동북지방은 늦가을일텐데...&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556177.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저앞으로 총길이&amp;nbsp;32.4키로메터, 최고높이 300메터의 소통대교가 펼쳐진다.&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5643529.jpg&quot; border=1&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600키로메터를 달려온 뻐스앞에 다가온 소통대교. &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뻐스에 올라서 핸드폰문자로 연락한 후배가 반갑게 마중을 나와 있었다. 상해에 온지 6년이 되는 교사시절 후배다. 조양천1중에 있다가 23살 어린 나이로 하해, 물덤벙술덤벙 가시밭길을 걸어온 후배가 6년전의 애숭이로부터 훌쩍 커버렸음을 그의 일거일동에서 느낄수 있었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20/200910209593898.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상해의 거리는 국경절분위기가 여전하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gt;&lt;FONT size=3&gt;신장에서 하루밤 묵고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고있다는 민행구 룽바이(&#40857;柏룡백)로 자리를 옮기느라 하루를 소비했다. 취재일정을 빽빽하게 잡고 약 5일간 상해조선족사회를 들여다볼 예정이다.&lt;/P&gt;&lt;/FONT&gt;&lt;/FONT&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위해에서 청도(순방일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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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36</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26T23:43:25Z</updated>
	    <published>2009-10-26T23:43: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B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kr.chinajilin.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 래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본사소식&lt;/FONT&gt;&lt;/U&gt;&lt;/A&gt;] 발표: [2009-10-04 오후 1:27:32] 클릭: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viewtotal&amp;articleid=33062&quot;&gt;&lt;/xSCRIPT&gt;
 212]&lt;/FONT&gt; 나도 한마디: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commenttotal&amp;articleid=33062&quot;&gt;&lt;/xSCRIPT&gt;
 0]&amp;nbsp;&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lt;FONT face=Verdana&gt;
&lt;P align=center&gt;&lt;FONT face=Verdana size=3&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4/200910414822616.jpg&quot; border=1&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성양제2실험중학교는 입구부터 축제분위기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중화인민공화국창건60돐을 맞는 경사스러운 날, 기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청도의 거리를 답사하려고 맘을 먹었다. 그런데 대회 조직측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청도 조선족 민간단체에서 조직, 진행하는 2009청도조선족민속축제가 성양제2실험중학교에서 열린다는것이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이 좋은 기회를 놓칠것인가? 아니!&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그때까지도 민족민속축제가 2일에 개막되는줄로 알고있던&amp;nbsp;취재팀은 금방 차려놓은 밥상을 밀어놓고 수저도 들지 않은채 우리 민족의 축제마당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달구쳤어도 한발 늦었다. 대회는 이미 국기계양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국경절과 한가위가 한데 겹쳐 집회나 시위를 허가하지 않는 정황하에서 어렵사리 열린 우리 민족의 민속축제, 거기에 슴배인 우리 민족 선두주자들의 땀과 정열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축제 전날 저녁을 패며(새로 2시까지) 대회행사 스케줄을 일일이 체크하고 점검하느라 눈이 붉어진 대회 조직측 임원들은 그 감회가 더더욱 깊었으리라.&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민속축제는 청도조선족로인협회의 집단무용《조국만세》로 시작되여 아리랑예술단의 무용을 배경으로 한 찰떡치기로 끝났다. 우리 민족의 견강한 단합정신을 구현하는 찰떡정신으로 끝맺은 우리 민속 축제의 한마당은 그대로 화합의 장이였고, 민족의 얼이 한덩어리로 뭉치는 단합의 장이였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이튿날-10월 2일, 결혼잔치, 환갑잔치, 씨름, 널뛰기, 조선족장기 등 민속활동(라이프 스포츠도 겸함)이 활발한 가운데 전통적인 축구, 배구 등 구기운동이 관람객들의 마음을 달구며 그라운드를 열띠게 하였다. 소리 높이 응원하는 사람, 탄식을 뽑는 사람,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 경기장은 그대로 불의 도가니였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4/20091041476437.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운동장에서는 선수들이 좌충우돌하고&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4/2009104141116696.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거기에 매료된 귀여운 남자애의 꿈은 무엇일가?&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다만 유감이라면 준결승전에서 우리 민족의 축구《건아》들이《실수》를 한것이다. 성양2팀과 교주팀간의 경기에서 서로 맞손질, 맞불질을 해 레드카드를 《선물》받은것은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지를 불문하고 《회개》해야 할바라고 생각된다. 남의 앞에 우리의 굳게 뭉친 모습보다, 서로 타매하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긁어내리는 그런 상황을 보여준다는것은 스스로 되뇌여봐도 마냥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티격태격은 언제든 자취를 감추어야 우리 민족의 진정한 한마당이 될것이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그러나 뿌듯한 일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대회 조직측에서 《노래자랑》에 입선된 20명 선수들에게 덤으로 상품을 2차적으로 발급하는데에는 기자도 놀랐다. 상품이 남아돌아서일가?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일가?&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상품으로 지급되는 물건보다 뜨거운 마음, 그 마음에 훈훈한 우리 민족의 정을 느끼고, 우리 민족의 사랑을 느낄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 민속축제의 취지는 이루어진것이리라. 정이 두터운 민족, 사랑이 넘치는 민족, 세계화로 내닫는 우리 민족에게 밝은 앞날은 예비되여 있으리라.&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4/2009104133321790.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리촌공원입구는 아직도 국경절 분위기가 다분하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3일은 전통명절인 추석이다. 혹은 가족을 단위로 혹은 친구끼리 한자리에 만나 명절을 즐기는 날이라 특별히 취재일정을 잡지 않았다. 거리를 돌면서 우리글 간판도 찍고 지나가는 조선족을 붙잡고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kr.chinajilin.com.cn/UserFiles/2009-10/4/2009104134117826.jpg&quot; border=1&gt;&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청도 성양구 태양성부근의 상가에는 우리글 간판들이 많다.&lt;/FONT&gt;&lt;/STRONG&gt;&lt;/P&gt;&lt;/FONT&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삼성제침문등분사에서 만난 사람들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35"/>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35</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10T11:08:53Z</updated>
	    <published>2009-10-10T11:08: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amp;nbsp;&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quot;Page Number&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삼성제침문등분사 김영기 부총경리를 만나&lt;/FONT&gt;&lt;/P&gt;
&lt;P class=&quot;Page Number&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9/200992922529809.jpg&quot; border=1&gt;&lt;/FONT&gt;&lt;/P&gt;
&lt;P class=&quot;Page Number&quot;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quot;Page Number&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대구 태생인 한국사람 김영기를 만난것은 한국회사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을 만나기위해 문등에 간 28일 오전, 늘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말 한마디 토 하나까지 빈틈없는 50대중반의 김부총경리는 기자의 이번 순방취재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무척 반가워하면서 참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것이였다. &lt;/FONT&gt;&lt;/P&gt;
&lt;P class=&quot;Page Number&quot;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문등에 온지 7년이 되지만 회사를 집으로 삼고 열심히 일해가는 김영기를 두고 회사의 직원들은 한사람처럼 엄지손가락을 내든다. 일에서는 요구가 높고 원칙적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부모처럼 잘 생각해준다는것이 그들의 리유다. 아침 제일 첫사람으로 회사에 나가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것이 인젠 몸에 배인 습관이 되였다고 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조선족직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사람마다 관점은 다 틀리겠지만 나는 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형제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중국 와서 오래 있으니 생활이나 하는 일은 한국에서와 꼭 같지만 가족들과의 생리별이 힘들다. 교포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같이 생활하면 덜하겠지만 머나먼 동북에서 오신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온 사람과 다를바가 없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생산을 관리하는 부총경리라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을 면접할때가 많다. 조선족직원을 채용할때면 그는 늘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특별한 대우는 궁리하지 말라, 회사에서 급여를 많이 주지 않나를 고민하지 말고 회사를 내집처럼 사랑하면 되려 회사에서 고민하게 되는법이다. 회사를 고민하게 만들어보라.》&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조선족직원을 채용해보면 지역별로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었더니 《한국사람들 사회나 교포사이에서 연변사람들 평가는 좀 별로다, 좋은 평가는 안 나온다. 다 그런것은 아니고 몇몇 때문에 그렇게 평가가 전도된다. 좋은 사람도 같은 취급을 받지 않나 생각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한국업체에 취직하러 오는 조선족들은 통역이라면 그냥 사장이나 따라다니며 번역을 해주면 다인줄 안다고 한다. 사실 통역은 회사의 현장일에 대해 잘 알아야 잘 할수 있는데 그래서 일을 배우라면 내가 통역이지 직원이냐고 의아해하는 조선족들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제 관내진출을 할 조선족들도 많은데 그들에게는 어떤 요구가 없는가하는 물음에 김영기는 이렇게 말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같은 민족이지만 생활환경이 다르기에 습관자체가 많이 틀릴수 있다. 처음부터 한국습관대로 하자면 힘들겠지만, 한국 기업에서 근무할라치면 한국의 습관을 받아들이면서 회사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한국문화를 빨리 익혀 적응되여야 한국기업에서 일하기 쉽다. 능력만큼 일하면 알아주기때문에 회사가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전에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만큼 해줄것인가를 생각하라. 회사는 절대 몰인정하지 않을것이다.》&lt;/FONT&gt;&lt;FONT size=4&gt;&lt;STRONG&gt; &lt;/STRONG&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4&gt;&lt;/FONT&gt;&lt;/STRONG&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4&gt;지방정부, 회사, 직원, 안해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변경리&lt;/FONT&gt;&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9/20099292279283.jpg&quot; border=1&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 회사에는 설립초기부터 회사를 도와 당지정부와 담판하고 직원을 모집하고 로임을 정하고 하는 자질구레하지만 회사의 리익과 개인의 리익, 그리고 지방정부의 리익에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면서 회사와 직원 그리고 정부로부 인정을 받는 조선족경리가 있는데 그가 바로 흑룡강태생의 변승환(42세)씨이다. 의학원을 나와 의사로 있다가 친구의 소개로 문등에 발을 들여놓은 변승환은 중등키에 서생티가 다분히 풍기는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두 딸의 아버지인 변승환은 한국회사에 근무하면서 모든 일들을 깨끗하게 처리한다는 평을 받은 사람이다. 모든것이 제도화된 한국회사에서는 자그마한 소홀함도 용납하지 않는다는것을 함께 일하면서 터득하고 몸으로 실천해온 변승환은 인젠 모든 업무에 능한 고참이 되였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맡은바 직무에 힘을 다하여 회사와 직원사이, 직원과 직원사이 일부 복잡한 문제들을 령활하게 처리하여 회사내의 불필요한 마찰이나 모순을 감소시키고 삼성제침이 문등에 튼튼히 발을 붙이게 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그는 가정에서도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다. 문등에 오면서 무직업자가 된 안해에게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마련해주었지만 가게를 운영하느라 고생하는 안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큰 딸은 어쩔수 없이 한족학교에 보냈고 둘째도 또 그렇게 되지 않을가 하면서 서글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번 순방취재활동정황을 료해하고 문등에서의 일정을 안배해준 장본인이기도 한 변승환씨는 조선족의 마음속에 수도처럼 자리잡은 연변에 가서 사는것이 꿈이라고 한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4&gt;한 회사에 근무하는 조선족친구들&lt;/FONT&gt;&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9/200992922811650.jpg&quot; border=1&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주)삼성제침 문등분사에는 길림 반석이 고향인 두 친구가 있다. 그들이 바로 라인 관리를 맡아보고 있는 선장 장문호(37세)와 생산반장을 맡아보는 그의 짜개바지 친구 리성철(37세)이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관내에 먼저 들어온 리문호는 1999년 집을 떠나 위해, 청도 등지를 돌다가 2003년 문등 (주)삼성제침 문등분사에 입사하였다. 처음에 입사하였을 때, 문호씨는 언어상의 장애와 생활방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타향살이에 길들여진 그는 이듬해 친구 리성철을 회사에 소개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성정이 어질고 말수가 적은 리성철은 친구의 소개로 회사에 입사하기는 했으나 신입사원과 고참의 차이를 실감하며 불안과 불만의 나날을 잠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삶임을 직감한 리성철은 친구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도리를 깨우친다. 지금 리성철이는 작업반장으로 큰 어려움이나 고민이 별로 없이 회사에서 착실하게 일하고 있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장문호네는 안해가 외국 나갔고 아이(12세)는 반석 부모집에서 한족학교에 다니고 있다. 고향에 있던 촌 조선족소학교가 폐교되였기때문이다. 조선족 젊은이들이 죄다 밖으로 나오다보니 마을에는 늙은이들과 몇 안되는 아이들뿐이더라고 얼마전 고향에 다녀왔다는 리성철이가 보탰다. 조선족 학생래원이 없어 학교는 폐교되고 몇이 안되는 애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한족학교에 다녀야 한단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장문호는 가끔 집에 학비와 용돈을 부쳐보내기는 하지만 늘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대신 리성철이는 큰 가정적 부담이 없이 초동때를 벗지 못한 로총각이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장문호나 리성철은 당지 사람들에게 업수임 당할 때마다 서러움을 느꼈지만 억울함을 느끼기보다는 삶의 과정이라 여기고 입술을 깨물고 참아왔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보통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불량품 한눈에 척척 골라낼수 있는 선장과 반장은 서로 친구의 정과 의를 지키며 회사에서 열심히 근무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처음에는 봉급에 많이 집착했는데 이제는 봉급보다는 취미로 일한다면서 오직 돈만 생각한다면 짜증나서 일을 못한다는 타입이다. 일은 재미로 해야 한다는것이 반석이 고향인 두 친구의 한결같은 견해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둘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부모가 있어서 그렇지, 친구 하나 고향에 남아있지 않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같은것은 잊고 산단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4&gt;&lt;FONT size=3&gt;《&lt;/FONT&gt;회사란 자기집과 다름없죠뭐》&lt;/FONT&gt;&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4&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9/2009929223424427.jpg&quot; border=1&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 회사에는 한국인들과 조선족직원들의 식사를 책임진 조선족아줌마가 한분 있었다. 올해 43세나는 서란태생의 김명숙이라는 분이였는데 남편과 함께 청도 성양에 있다가 지난해에 문등에 집을 장만하고 이 회사에 들어왔단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닌 연고로 한어는 잘하나 우리말은 좀 서툴다고 하면서 자식도 이곳 한족학교에 다닌다고 덧붙였다. 집에서도 대부분 한어를 사용하다보니 자식은 우리 글은 물론 말도 별로 못한다고 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매일 아침 일찍 나와서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하는데 꽤 힘들때가 많다고 한다. 기자가&amp;nbsp;찾았을때는 마침 채소구입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휴식실에서 쉬는 참이였는데 방안에 들어가보니 한창 마늘을 바르는 중이였다. 쉼시간에도 마늘을 바르는가고 물으니 밝게 웃으면서 &lt;FONT size=3&gt;《&lt;/FONT&gt;회사일이나 집일이나&amp;nbsp;모두 마찬가지예요. 항상 미리미리 해놓고 정성스레 해야 시름이 놓인답니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녀는 이제 몇달 지나면 회사에 들어온지 일년이&amp;nbsp;되는데 그동안 이 회사 한국사람들이나 조선족들이&amp;nbsp;모두 잘 대해주어서 어려움같은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STRONG&gt;&lt;FONT size=4&gt;한족직원들이 바라보는 한국인과 조선족&lt;/FONT&gt;&lt;/STRONG&gt;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9/2009929223729865.jpg&quot; border=1&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좌 시원원(24) 우 왕소화(30)&lt;/FONT&gt;&lt;/STRONG&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장문호나 리성철과 같이 일선에서 일하는 조선족은 물론 변승환과 같은 조선족 간부들에 대한 일가견을 알아보고저 기자는 (주)삼성제침 문등분사에서 가장 오래동안 함께 일해온 왕소화(30세) 작업조장과 시원원(23세) 작업조장을 만나보았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18살에 집을 떠나 5년간 회사에 근무한 시원원과 회사에 근무하는 6년 사이에 한국 본사에 가서 2년간 연수한 경력을 갖고 있는 왕소화는 한국 생산라인 총책임을 맡고 있는 김영기 부총경리(한국측)와 변승환 경리(중국측)에 대해 얘기할 때 눈물이 글썽해졌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너무 좋은 분들이죠. 간부라기보다 그냥 친인같아요.》&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해산을 할 때 5달동안 기본로임을 받으면서 편하게 집에서 몸조리를 했다는 왕소화는 그 감회가 더욱 깊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아주 좋아요. 삼성제침 회사에 출근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고 그냥 농촌에 있었으면 이런 혜택은 꿈도 못꾸죠.》&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조선족들에 대해서도 눈에 거슬리는것이 하나 없단다. 회사에서 조선족을 중용하는것 같은 감이 들기도 하지만 조선족을 흠모해마지 않는다고 했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두가지 언어를 장악하고 있다는것이 얼마나 우월한 조건인가요? 한국어공부를 했지만 어디 마음처럼 돼요? 정력과 시간이 전혀 따라가지 않아요. 사전을 뒤져볼 시간마저 없어요.》&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왕소화는 몇해전에 연수를 가기 위해 한국어공부를 했고, 한국어능력시험에도 통과했었다. 그러나 일상화되지 않은 타민족의 언어는 쉽게 잊혀지게 마련인것이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이전에 한국어공부도 했고 한국연수를 갔다온 직원들중 결혼하거나 임신하면 사직하고 회사를 나간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왕소화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한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장기간 한가지 일을 하다보니 일에 미립이 생겨 일하는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왕소화와 시원원은 입을 모은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한국에 연수갈 기회가 다시 차례진다 해도 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왕소화와 같은 한족들앞에 가장 큰 벽은 바로 언어장애다. 언어의 장애라는 벽을 넘어 한국 기업에 취직하여 끝까지 버티며 스스로를 전승해 나가는 한족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가?&lt;/FONT&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 》순방일지(연태)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34"/>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34</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9:25:38Z</updated>
	    <published>2009-10-06T19:25: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 &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7/2009927114940823.jpg&quot; border=1&gt;&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25일 온 하루 취재하고 새벽까지 기사를 쓰다나니 아침 늦게 눈을 떴다. 아침 8시가 되니 강만덕사장으로부터 문안전화가 걸려오고 오늘 일정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오전에 허지환총경리를 취재하고 오후에는 연태의 조선족녀성기업인들을 소개할거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강사장이 보내준 차에 앉아 연태시해양과기청사10층에 자리잡고 있는 연태강산유압기계유한회사에 이르렀다. 서글서글한 조선족중년사나이가 반가이 맞아주었는데 그가 바로 이 회사의 총경리로 있는 허지환씨였다. 토요일 오전까지 일을 보지만 고향에서 온 우리를 위해 오전시간을 냈다고 한다. 연태에 와서 많이 보아온 일이지만 기업인들이나 사업가들 대부분은 시간을 쪼개서 일하고 있었다. 취재과정에 전화를 받고 사무를 보는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같았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군대생활이 몸에 밴 허지환씨였지만 그전에 만나본 조선족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자긍심이 대단한 사람이였다. 연해지구조선족교육문제에 대한 견해는 비교적 깊이가 있었는데 당지정부와 동북지구 조선족교육부문의 일부 정책에 대해서도 손금보듯 알고있었고 추진할만한 중요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하는것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오후에는 연태지구에서 조선족녀성강자로 불리는 김희옥과 남궁은연을 만났다. 훈춘에서 온 김희옥은 비교적 강하고 빈틈없이 세련된 사람이라는 강한 느낌을 주었는데 조선족녀성의 강의함과 근면함을 한몸에 지닌 분이였다. 하지만 그 어떤 실패앞에서도 하면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다시 일어서서 오늘까지 왔다는 말을 할때, 또 내가 만약 연변사람이 아니고 조선족이 아니였다면 이렇게 견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때 그의 눈가에는 무엇인가 반짝하기까지 하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남궁은연은 무역을 하던 예리한 안광을 가진 사람이지만 겉보기는 순더분하고 진지한 느낌을 주는 조선족녀성이였다. 장기적으로 긴장한 무역일을 하다보니 건강상황이 나빠졌고 따라서 건강문화사업에 눈길을 돌리게 되였다면서 지금 하는 미용회관을 소개하였다. 연길에서도 많은 건강상품이 나오고 한국에서도 인입되고 있다고 말하니 국제적으로도 선진적이고 국내에서는 유일한 네오넥스 미용회관이란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7/200992711508107.jpg&quot; border=1&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27일은 일요일이여서 원래 회사들을 돌면서 회사일을 하는 분들을 만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강사장도 참 안되였다고 말하였지만 우리의 일정안배가 주밀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하고 아침먹으러 내려갔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호텔 뒤골목에 들어가니 아파트단지 1층에 어둡고 낮다란 음식점들이 줄느런히 있었는데 《동북맛음식점》이라는 우리글간판이 눈에 띄여 《조선족분이십니까?》인사하면서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주는 조선족로인이 있었다. 조카와 조카며느리가 꾸리는 식당이며 조카는 지금 물건구입하러 나갔다고 이야기하는 로인님은 우리가 여기로 나온 목적을 이야기하자 대단히 반가워하는것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알아보니 김씨성을 가진 남편은 조선족분이였고 안해는 왕청태생의 한족분이였다. 안주인도 연변에서 왔다는 말을 알아듣고 반가워 어쩔줄 몰라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말을 들어보니 관내에 들어온지는 3년에 나는데 청도 성양에서 2년가량 있다가 올봄에 연태로 와서 자영업을 한다고 했다. 마침 남편의 고향이 화룡시 와룡향 갑산이라고 해서 그 아래 마을 장항촌이 나의 고향이라고 말해주었더니 마치 친척을 만난듯 반가워한다. 마침 채소구입을 나갔던 김씨가 돌아왔는데 해볕에 그은 팔과 얼굴, 기름때 반지르르한 손, 어느모로 보나 연길 음식점들의 사장을 방불케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50대중반의 김씨는 고향사람을 연태에서 만나니 무척 반가운 모양이였다. 연태에 금방 오다보니 이곳 실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성양에 있을 때 회사경비를 서던 이야기, 안해가 처음 들어와서 2천여원씩 받으면서 식당일을 하던 이야기, 자영업을 해야 쉽게 돈을 벌것 같아서 여기로 나왔다는 등 이야기를 구수하게 터놓았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태에 와보니 흑룡강에서 온 조선족부자가 많더라이. 누구는 몇천만, 또 누구는 몇억씩 벌었다는데 따콴으로 된 조선족들이 많아서 조선족들이 업수임을 받지 않을때가 많다구.》이렇게 말하면서 《요즘 이줄에서 우리집이 영업이 좀 잘되니 걸고드는 애들이 많다》며 근심을 털어놓는다. 알고보니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는 면식을 위주로 점심저녁은 랭면, 온면, 장국 등을 곁들여 조선족음식을 만들어팔고 값도 싸다보니 손님이 많아졌는데 부근의 식당들에서 눈꼴이 시렸는지 배척할가 한다는것, 연변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지만 여기는 다른 세상이란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위생국이나 환경보호부문에서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 벌금을 안기려고도 하지만 강직한 김씨는 다른 집들에서도 같은 장사를 하는데 왜 나만 벌금이냐고 해당 문건을 내놓으라고 을러메군 한다고 말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참 잘했다고 아무리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도 법만 어기지 않으면 기죽을 필요없다고 치하하고 나서 아까 이야기한 그런 따콴들의 오늘이 가능하면 김씨의 미래가 될수 있으니 사회의 발전에 눈길을 돌리고 밑천을 불리고 힘을 키워 꼭 부자가 될것을 부탁하면서 우리는 자리를 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연태시는 산동반도중부에 위치한 지구급시로서 동으로 위해, 서로 유방, 서남으로 청도와 잇닿아있고 북으로는 발해와 황해를 사이두고 료동반도와 마주하고있다. 우리나라에서 첫기로 선정한 개방도시중의 하나인 연태시의 면적은 13745.95평방키로메터이고 관할구역은 지부구, 복산구, 모평구, 래산구, 연태경제기술개발구, 연태고신기술산업원구6개, 장도현과 룡구, 래양, 래주, 봉래, 초원, 해양 등 7개현급시다. 연태시 인구는 651.69만명인데 그중 호적등록이 있는 조선족은 3164명이다.]&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lt;/SPAN&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오또기는 넘어지지 않는다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33"/>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33</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9:15:28Z</updated>
	    <published>2009-10-06T19:15: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 &lt;/SPAN&gt;
&lt;P align=left&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ㅡJC상업무역유한회사 김희옥 동사장을 만나&lt;/FONT&gt;&lt;/SPAN&gt;&lt;/SPAN&gt;&lt;/P&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7/200992781048213.jpg&quot; border=1&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길림성 훈춘 경신에서 태여난 김희옥은 훈춘림업국 경영처 산하의 회사에서 부기원 겸 회계로 일하다가 집식구들이 한사코 반대하는것도 뿌리치고 1993년 29살의 나이로 연태 모 회사의 초빙에 응하여 낯설고 물선 연태땅에 선뜻 발을 들여놓은 도고한 녀성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부동산그룹 측에서 800원의 로임에 아파트를 마련해주기로 계약하고 초빙되였는데 정작 초빙되니 계약을 리행하지 않아 이런 회사에서 절대 근무할수 없다는 오기로 로임 500원에 아파트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다른 부동산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훈춘에 있을때 130원의 로임을 받았던 그녀에게 있어서 아파트와 두둑한 로임봉투는 거대한 유혹이기는 하였지만 처음으로 생경한 기업에 초빙되니 애로가 많았다. 동북인들과 개방도시 사람들의 사유관념부터가 문제였다. 그녀는 고향의 낡은 사고방식을 잘라버리고 연태, 나아가 중국실정에 초점을 맞추자는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상계에서 활약하는 믿음직한 선배들을 찾아가 배우면서 자기사업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였다. 낯설고 물선 고장에서 뒤돌아볼수 없는 그녀는 고차원의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동등한 차원에 자신을 올려세우는것이 급선무라는것을 느꼈다. 연태에 발을 들여놓으며 보았던 웨이터 아가씨나 한국인들에게 붙어사는 녀자들에게서 느꼈던 실망이 컸던것도 하나의 원인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김희옥이 지금도 늘 하는 말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제일 큰 재산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친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이 바뀐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의 말을 빈다면 《녀자에게 얼굴생김도 자본인데 얼굴 잘 생겼나(겸손?), 문화정도가 높냐 이것저것 가진게 없는 녀자》가 거물급들을 사귀는 방법은 오직 진심으로 사귀는 방법밖에 없었다. 김희옥은 부담없이 친할만한 녀자라는 평판이 나돌 정도로 그녀는 거짓과 담을 쌓고 오로지 진실만으로 사람들을 대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2000년 연태시정부가 래산구로 이사를 하자 그녀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금을 활용해 래산구에 호텔을 임대하고 하루 빨리 개장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초고속 인테리어를 강행하였다. 그러다가 그만 불이 나는통에 모든 꿈이 재더미로 물앉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타격이였다. 그러나 고향에서 데려온 애들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에 아깝지는 않았다. 돈보다 귀중한것이 생명이고 사람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뜻밖의 화재로 빈털털이가 되였지만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연태에서 최고라는 4성급호텔 창융국제호텔을 지을 때, 내가 꼭 여기에 들어갈것이라고 친구와 말해 친구의 허구픈 실소를 자아낸적도 있었다. 허황한 생각같지만 돈 일전 한푼 팔지 않고 들어갈것이라며 그녀는 친구에게 그루를 박았다. 김희옥의 머리속에 생신한 아이디어야말로 재산이였던것이다. 자기말대로 그녀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호텔 한국부를 도맡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그때 이미 시작한 태권도 도장을 확장할 꿈을 키웠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2004년 다른 부서들의 경영부진으로 하여 호텔경영이 위기에 직면하자 호텔측에서는 겨울에 스팀도 바로 주지 않았다. 이러다가 여태 쌓아온 신용을 잃고 손님마저 죄다 잃을것 같아 5년을 하던 경영을 아쉬운대로 그만두었다. 그녀가 손을 떼자 호텔은 아예 문을 닫았다. 그녀는 자신을 재기시켜준 쓸쓸한 호텔을 쳐다보며 가슴이 쓰리였다. 호텔 동사장이 찾아와 260만원이라는 헐값에 그녀에게 호텔을 임대해주었다. 그녀는 새로 장식을 하고 개업하였다. 장사가 불티나게 잘 되자 동사장이 또 흑심이 생겼던지 임대료를 더 내라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때는 그녀가 수술을 하고 컨디션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였다. 그녀는 손을 씻기로 작심했다. 그녀가 그 호텔을 뒤로 하고 나왔을 때 그녀에게 남은것은 빚더미뿐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돈도 벌고 내 민족의 위상을 수립하려는 생각에 그녀는 태권도 도장을 백개로 확장할 계획이였다. 그런데 합작파트너였던 조선측에서 최고로 40명의 사범밖에 보내줄수 없다는 바람에 태권도 도장확장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참에 그녀는 민족 교육과 문화에 눈길을 돌렸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김희옥은 한국 국제사회교육원과 합작하여 연태에 중국총부를 세우고 전문 직원양성, 교육, 훈련을 일체화한 봉페식 훈련원인 NISI기업관리훈련원을 꾸렸다. 지금 롯데같은 그룹의 사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고 있다. 훈련원 원장직을 맡고 있는 백홍염(조선족 송원태생)양은 연태에 온 지 3년 반쯤 되는 원래 한국말을 한마디 말도 알아듣지 못하던데로부터 지금 불편한대로 우리말 대화를 나눌수 있어 기자를 흐뭇하게 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김희옥은 의식이 일체를 결정한다는 신념을 핵으로 한 NISI기업관리훈련원을 전국적 범위로 확장해가는것이 지금의 꿈이라고 말했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지난해 고향에 다녀온 김희옥은 고향의 변모에 기쁨을 금치 못하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변에 가면 가슴 아픈것은 한국 가서 벌어온 돈을 마작판에 처넣는거예요.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아까워요? 할일이 많고도 많은데, 일분일초를 그렇게 랑비할수 있어요? 할 일이 그렇게도 없을가요? 젊은이들이 마작을 논다는게 정말 가슴 아파요. 그걸 어떻게 막을수 없을가요?》&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그녀의 량심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절규를 들으며 기자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로에 올랐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연해지역 민족교육문제 홀시할수 없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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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9:10:53Z</updated>
	    <published>2009-10-06T19:10: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B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태강산유압기계유한회사 허지환 총경리와의 인터뷰 &lt;/FONT&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143048948.jpg&quot; border=1&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길림 반석현 태생인 허지환(50세)씨는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갔다가 1978년에 군에 입대, 18년간 군대에서 복무하면서 중교 부퇀급간부로 사업하다가 1995년에 지방의 좋은 직장에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그의 안해는 수도강철동성회사가 반석으로부터 연태로 이전하면서 1993년에 이미 연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지방정부에서 좋은 직장을 안배하였지만 그냥 개인사업을 하고 싶어 바로 퇴직하고 옛친구 2명과 공동투자해 대련에 무역회사를 챙겼다. 1996년하반기부터 한국회사와 니켈무역을 시작했다. 1년정도 잘 나가던 회사가 1997년 IMF때문에 파산위기를 맞는다. 니켈이 창고에 쌓이고 나중에 적치된 니켈을 렴가로 마구 처리해버리고 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허지환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공동투자를 했던 세사람은 부득이 헤여져야만 하였다. 허지환씨는 홀로 상경하여 목재경영을 시작했는데 그 사업도 여의치 않아 집에 돌아와 1년동안 몸과 맘을 푹 쉬우면서 기회를 노렸다. 99년에 접어들어 한국경제가 차츰 활성화되고 따라서 연태로 들어오는 한국인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첫 사업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실패했지만, 허지환씨는 맥을 버리지 않고 한국어를 배우는 한편 연태에 오는 한국인들을 널리 사귀면서 재기를 노렸다. 2001년부터 한국 굴삭기 유압품에 흥미를 가지고 유압품 상거래를 시작했다. 이렇게 설립된것이 바로 허지환씨가 운영하고 있는 연태강산유압기계유한회사(烟台江山液&#21387;机械有限公司)이다. 8년간 열심히 운영하여 국내 40여개 업체와 거래하면서 거의 2억원의 매출액을 창출해냈고 납세액만 2~3천만원이 된다고 한다. 연태개발구에서 두산그룹과 강산유압이 인당 납세액이 최고라는 세관측의 평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허지환씨 가족은 넷, 안해와 오누이 쌍둥이가 있다. 그외 그의 부모들도 고향에서 연태로 모셔와 이웃하여 살고있다고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오누이 쌍둥이는 연태에서 크다보니 한족학교밖에 못다녔다. 우리 말도 못하는 아들딸이 이미 대학 4학년이 되고 바로 졸업을 앞두자 허지환씨는 자식들의 장래문제로 고민하는 중이다. 한국에 류학보내여 3~4년간 한국어공부도 하고 선진적인 기술도 배우는 동시 가장 큰 기대는 한국인 며느리를 맞는것이란다. 리유는 다음세대의 후대가 우리말을 제대로 할수있고 우리문화를 잊어선 안된다는 막연하지만 희망가득한 생각이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들의 류학건으로 다음달 5일경 한국에 가게 된다는 허지환씨는 연태지구 조선족교육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길림신문에서 《&lt;/SPAN&gt;관내, 연해 대도시에 공립 조선족학교 분교를 세우자&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화제로 지상토론을 벌린데 대해 매우 좋은 일을 하고있다고 치하하는것이였다.&lt;/SPAN&gt;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허지환씨는 연태지역 조선족기업인들의 모임에서도 이런 문제를 놓고 토론을 많이 한다고 하면서 만일 연변이나 동북 교육발달지역들에서 여기에 분교를 세운다면 연태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면은 지원이 곤난하지만 자금투자는 가능하지 않겠냐고 피력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그는 정부적 차원의 도움과 민족 사업가와 지성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영리목적이 아닌 후대교육추진이 우선시된다면 될것 같다면서 만약 그것이 사실화된다면 연태시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것이라고 말한다. 리유는 자식의 교육문제때문에 연태진출에 곤혹을 느끼는 조선족이나 한국인이 많을것인데 투자유치에 민감한 연태정부가 수수방관하지는 않을것이라는것이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민족교육문제에 화제가 돌려지자 허지환씨는 소학3년밖에 조선족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군에서 17년 있으면서 우리말을 감감 잊고 살다보니 창업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왕지사를 이야기, 후대와 민족을 위한 교육차원에서 본다면 수십만조선족이 모여사는 연해지역에 조선족학교분교를 세우는것은 그 어느 각도로 보나 매우 필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아니겠냐고 반문하는것이였다. &lt;/FONT&gt;&lt;/SPAN&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우신과기유한회사서 만난 연변사람들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31"/>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31</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9:07:01Z</updated>
	    <published>2009-10-06T19:07: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 &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태개발구에서 중한합자로 성공한 기업중의 하나가 바로 연태우신과기(과학기술)유한회사다. 이 회사의 리사로 있으면서 부총경리를 맡은 연길사람인 리룡식씨는 일본류학까지 다녀온 고급공정사로 1999년도에 관내에 들어왔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115344677.jpg&quot; border=1&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연태우신과기(과학기술)유한회사 리사, 부총경리 리룡식씨.&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주로 한국의 자동차회사들에 납품하는 업체인 우신과기유한회사는 2001년 설립초기에는 매출액이 460만원이였지만 해마다 300%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난해에는 국제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1억2천만원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161명의 직원중 조선족직원이 9명인데 모두 관리직을 맡고 있다. 합자기업이지만 경영관리나 생산부문에 한국사람은 단 한명도 없고 한국측에서 제공한 오다를 생산하여 납품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조선족직원들은 리룡식 사장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내들면서 패기있고 열정이 넘치는 기업가라고 입을 모은다. 직원들이 차와 집을 장만하도록 여러모로 힘썼는데 현찰로 차를 살수 없는 직원에게는 빚으로 받아온 차를 먼저 주고 6년에 걸쳐 천천히 차값을 물게 하는 등 조치를 강구해 현재 조선족직원들은 모두 집이 있고 자가용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기름값도 1500여원씩 대준다고 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태개발구에서 규모로 말하면 중등에나 가는 기업이지만 정규화 되여있고 기업의 발전속도, 경제지표는 상대적으로 앞서있는 편이라고 리룡식씨는 자부한다. 설계인원만 60여명, 그것도 인력이 모자라 무한, 한국 연세대에서 양성중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변에 90고령 아버지 계시고 어머니 산소가 있어 해마다 한두번씩 다녀왔으나 최근년에는 일이 너무 많아 갈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태조선족사회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민족교육이 지금은 황페화되는 단계에 있다. 민족교육에 애로가 많다. 여기 나온 적령기의 청년남녀들은 결혼마저 힘들다. 한족들과 결혼하는 조선족이 늘고 있는데 순수 조선족이 줄어든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으로 말하면 여기에 정규적인 민족학교가 없기에 아이들이 자기언어를 잃고 자기문화를 잃고 점점 동화되여 갈것이라고 가슴아파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최영수(50)씨는 조양천 공소사에 있다가 우신과기회사 설립초기부터 함께 일해온 이 회사 재무팀장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안해는 한국에 가고 아들(24)은 북경에 있는 최영수씨는 고향을 떠난 10여년사이 7번 고향에 다녀갔다. 로임은 다른 회사보다 괜찮은 상황이여서 상금까지 하면 월 6~7천원 받는다고 했다.&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옛날에는 고향에서 온 사람이라면 반갑고 그랬는데, 그런 생각이 이제는 많이 무뎌졌다고 한다. 80년대 고향사람을 쉽게 만날수 없었던 고독한 감정과 관내진출 조선족이 갈수록 많아지는 지금의 감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최학철(45)씨는 연길사람으로 이 회사 생산부에서 외주업체 및 설비 관리를 책임진 관리일군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2003년에 고향을 떠나 이 회사에 입사하였는데 처음 홀로 와 있던 시절에는 자식이 그립고, 앞길에 대해 우려되고, 여기에서 그냥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지 하는 생각들때문에 쓸쓸하고 궁금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술을 좋아했던 최학철씨는 연길에 있었더면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먹고 놀았겠는데 여기서 좋은 사장을 만나 정말 행운스럽다고 얘기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현재는 안해가 연태 모 한국기업에서 주방일을 하고 아들(14살)도 초중2학년을 다닌다고 만족스럽게 말한다. 그는 아들애가 연길에 있을때 유치원을 다니며 우리글 자모는 배웠지만 받침이 있는 글은 잘 모른다며 지난 여름방학에 한국어 학습반에 보내지 못한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115651784.jpg&quot; border=1&gt;&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제품을 포장하기전에 진지하게 마지막점검을 하고있는 최학철씨.&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최영수씨와 최학철씨는 한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한국에 가겠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동시에 도리를 저었다. 여기서도 편안하게 살수 있는데 한국엔 왜가겠는가 하는것이 그들의 리유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115815876.jpg&quot; border=1&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최영수씨와 최학철씨의 소개로 재무과에서 일을 보고있는 조선족녀성 장미옥양도 만났지만 부끄러움을 타면서 인터뷰를 사절, 그러나 고향사람들에게 얼굴이라도 보이고 싶지 않냐고 하니 사진만은 허락해서 여기에 사진을 올린다. 장미옥양과 연태에 함께 나온 남편 김영학씨는 모두&amp;nbsp;화룡시태생이란다. &lt;/FONT&gt;&lt;/SPAN&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가목사에서 온 조선족부부를 만나다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30"/>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30</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9:02:38Z</updated>
	    <published>2009-10-06T19:02: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 &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121231867.jpg&quot; border=1&gt;&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연태인동화재생자원유한회사 강만덕 총경리.&lt;/FONT&gt;&lt;/STRONG&gt;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흑룡강성 가목사시 농촌마을인 금성촌에서 태여난 강만덕은 어린 시절 신분이 지주로 획분되였던 할아버지때문에 남들의 《눈총》을 받으며 그닥 유쾌하지 못한 동년시절을 보내였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청년시절도 계급투쟁의 상대로 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도 총명하고 공부를 잘 했던 덕에 촌에서 단지부서기를 맡아하면서 당지 신문지상에 통신도 부지런히 썼다. 그러다 1977년 대학입시가 회복되자 강만덕은 대학입시에 단연 참가하였다. 그 시절 구지욕에 불탔던 젊은이에게 있어서 성분여하를 불문하고 대학입시에 참가할수 있다는것은 그야말로 가물에 단비였다. 강만덕은 신문글을 쓰던 재간과 취미를 바탕으로 문과에 지망하고 싶었으나 문과보다는 기계학을 전공해 한뉘 살아갈수 있는 재간을 익혀두라는 형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기계학교에 진학, 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하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사업에 참가하여 열심히 사업을 하던 강만덕에게 연태에 올 기회가 차례졌다. 1993년도 막 가는 때에 그는 조직의 수요로 연태 교통위원회(교통국)에 전근해왔다. 그가 왔을 때 조선족은 별반 없었다. 정부계통에는 한사람도 없었고,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자체로 들어온 사람이 얼마간 있었을뿐이였다. 그런데 동북에서 연태에 온 사람(한족, 조선족 포함)들이 크고 작은 일을 자주 저질러서 연태시 정부와 시민들은 동북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민족이 다른 조선족을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는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것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이런 외계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강만덕은 한국 부산의 한 회사와 중국 모 회사사이 해상통상운수계약 수석번역을 맡아하였다. 외국 상공인을 연태에 불러들여 연태경제에 도움을 주려는것이 그 당시 강만덕의 량심이였다. 그러나 곁사람들은 조선족과 한국인이 합작해 한족을 속일지도 모른다는 억측을 하며 뒤공론에 열을 올리였다. 원래 성격이 강직한 강만덕은 1년을 사업하고 교통위원회 《철밥통》을 부수어버리고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살려고 하해를 단행하였다. 하해를 한 강만덕은 검지회사(합작회사) 회사장 조리로 있으면서 다른 사업도 더러 해보았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한국과는 지리적으로 거리도 가깝고 언어소통도 무난하기에 강만덕은 눈길을 한국에 두었다. 물론 자습으로 어렵사리 얻은 일본어자격시험통과 경력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발달한 일본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그는 선후로 한국, 일본에 나가 고찰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환경보호의식을 보아낸 강만덕은 환경보호시설에 투자해보기로 하고 한국진출을 탐색해나갔다. 그는 친구들 넷과 함께 의기투합을 하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그때 일을 두고 강만덕은 이렇게 말머리를 연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실패는 많이 했지만 해놓은 일은 없습니다. 부끄러운 얘긴데, 2005년 우리 다섯이 힘을 합쳐가지고 오신(5신)재생자원회사 설립하고 다섯 사람이 각각 20% 주식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한국 가서 한국재활용회사와 합자해 회사를 한국에 두고 쓰레기처리공장을 꾸리기로 한거지요. 한국돈으로 4억정도 투입했습니다. 우리 측은 3억투자에서 4억으로 추가 투자했지만, 한국에서는 원 투자는 12억인데 1억도 투자해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회사가 시작도 못한채 망해버리게 된거지요.》&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그번의 실패를 두고 강만덕은 실패의 원인을 단순하게 한국에만 몰아붙이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모국에 갔지만 내 나라는 아니라는것이 강만덕이 그번의 실패에서 얻어낸 가장 큰 교훈이였다. 그리고 손쉽게 돈을 벌려 했던것이 아주 큰 착각이였다고 강만덕은 말한다. 톤당 정부에서 13만원을 준다데에 혹해 욕심만 부리고 기술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단진출을 한것이 무모한 도전이였다고 도리머리를 젓는 강만덕, 그는 한국인에 대한 의뢰심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우리 조선족들의 근성을 꼬집는다. 우리 힘으로 해야지 누구한테 의뢰하려는것은 착오중의 착오라고 강만덕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물론, 한국인들이 앞뒤처리를 잘 배려해주지 못한것도 문제다. 그러나 그것보다 문제되는것은 우리의 과욕과 자만이였다고 강만덕은 그번의 실패를 총화한다. 300여만원의 학비를 내고 소중한 교훈을 산것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지만 실패한 사람은 고통이 심해요. 그러나 그것도 어찌보면 성과일수가 있죠. 우리는 3백만원가량의 돈을 처넣었지만, 한국인에게 당한것이 아니라 너무 기대가 컸고, 기대가 클수록 심하게 떨어졌을뿐이죠.》&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한국에서의 사업을 끝으로 강만덕은 눈길을 다시 중국에 돌렸다. 중국이라는 이 대국에 재활용할수 있는 쓰레기도 더 많은데 왜 한국에만 매달려야 하는가? 만족을 모르는 강만덕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었다. 그는 마음도 정리할 겸, 새 정보도 얻을 겸 상해, 북경 등 대도시들을 두루 답사하였다. 그때까지만도 우리 나라는 재활용품에 그닥 중시를 돌리지 않고 있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시장인가?&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강만덕은 다시 다섯 사람이 공동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비록 한차례 참담한 실패를 했지만 거기에 물앉아버릴 그가 아니였고 그의 친구들이 아니였다. 우리말로 교육을 할수 있는 학교가 있는 따뜻한 동네를 꾸리려고 한국에 진출했던 다섯은 기대했던 조선족을 위한 사업이 하루 아침에 이슬로 사라졌다고 해서 누구도 서로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뿐이였다. 친구끼리 동업하는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힘을 합쳐야만 이겨나갈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다. 조선족 사업을 위해 여러 기업체를 모아 련합체도 꾸려놓고 있는 그들은 새 기업의 시작은 다섯이서 하고 성공한 뒤에 나머지 기업인들을 불러들여 공동발전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것은 강만덕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고, 3~5년새에 일어나 알뜰한 조선족 동네를 만들고 자녀교육도 제대로 할수 있게 하자는것이 그들 다섯사람과 연태 량심을 가진 조선족 기업인들의 꿈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조선족은 단결해야 하고 함께 하는 세상이 되여야 한다. 흩어져 사는것은 결과적으로 자기를 망치고 나아가서 민족에게 치욕을 안겨줄수 있다. 이제 더 나이가 들고 돈을 벌면 조선족이 집중된 연길에 가서 살고 싶다. 연변의 조선족이 적어질수록 우리 민족의 위상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그 어떤 민족이든 마음속에 기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강만덕(54세)은 지금 연태인동화재생자원유한회사(烟台仁同和再生&#36164;源有限公司) 총경리,&amp;nbsp;연태옥타(해외한인무역협회) 사무국장, 연태중정공정기계설비유한회사(烟台中鼎工程机械&#35774;&#22791;有限公司) 총경리직을 맡고 있다. 그가 노리는 중국시장개척의 첫 스타트는 쓰레기처리에 적격인 고효능의 집게차(中鼎&#36710;&#36733;&#25235;吊)로 시작할 예정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남편과 함께 연태에 전근해온 안해 박월영(52세)녀사는 지금 남편이 하는 사업을 각별히 두둔하고 도와주고 있다. 남편의 사업에 뒤심이 되여주고 한팔이 되여주는것이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여서 괜찮다고 한다. 현재 개발구에 위치한 연태그랜드호텔의 총경리직을 맡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녀는 가끔씩 이전의 친구들이 진급을 한것을 보면 남편을 따라 하해한것이 후회되기도 하지만 그대신 사회를 알고 세상을 알게 되여 기쁘다고 맑게&amp;nbsp;웃는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딸은 어려서부터 한족학교에 다녔지만 우리말의 일반적인 생활용어는 그런대로 하는데 사회적인 대화는 불가능한 상태예요. 그러나 다행스러운것은 스스로 한국 련속드라마를 보거나 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것이죠.》&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이것이 바로 연태에 진출한 한 가목사 조선족부부의 진실한 이야기이다.&lt;/FONT&gt;&lt;/SPAN&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 》순방일지(대련-연태)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29"/>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29</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8:58:34Z</updated>
	    <published>2009-10-06T18:58: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amp;nbsp;9&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월 23일~25일.&lt;/SPAN&gt;&lt;/SPAN&gt;&lt;/P&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34820485.jpg&quot; border=1&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차창밖으로 단풍 든 가을이 스쳐지난다.&lt;/FONT&gt;&lt;/STRONG&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9월 23일 오후 1시, 연길발 대련행 렬차는 《&lt;FONT class=title_text&gt;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lt;/FONT&gt; 》 순방취재를 떠나는&amp;nbsp;우리를 싣고 서서히 연길역을 떠났다. 렬차가 안도역을 지나니 고향의 산야는 울긋불긋 단풍과 설레이는 황금물결로 곱게 단장되여 익어가는 가을빛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밖에서 추적거리는 가을비에도 불구하고 을씨년스럽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그러나 환경에 끌려 가벼워지는 마음은 결코 아니였다. 워낙 막중한 취재임무가 어깨를 지지누르는지라 그렇게 가볍게 흔들릴 계제가 없었다. 내내 거대한 의무감과 사명감에 마음의 탕개를 풀수가 없는것이였다. 그래도 잠귀신은 어김없이 내 눈두덩이를 잡아당겼다. 저녁을 먹고나니 식곤증일가, 잠이 스르르 찾아온것이다. 눈을 떴을 때는 먼 산의 륜곽이 어렴풋이 스쳐가는 신새벽이였고 차는 막 웅악성(熊岳城)역을 지나고 있었다.&lt;/FONT&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34923350.jpg&quot; border=1&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대련역 북문출구에서 바라본 대련역&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차는 덜커덩거리며 드디여 대련역에 이르렀다. 역에서는 대련동엽실업유한회사 박영호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거쿨진 체구의 멀쑥한 화룡 사나이-박영호사장은 늘 그렇듯이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담고 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아침은 먹었어?》&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아니요.》&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대련 왔으니 해물맛을 봐야지.》&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마침 친구들과 함께 금주에 나가있다가 련락을 받고 달려왔다는 박영호사장은 필자가 지난번 한국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도 대련공항까지 마중나와 주었고 기차표까지 끊어주었던 마음씨 고운 분이다. 우리에게 해산물을 대접한다며 자기집으로 향하는박영호사장 역시 고향을 떠나 연해도시에 진출한 수많은 조선족중의 한 사람이다.우리의 취재대상이 관내진출조선족이라면 박영호사장은 대련진출조선족이리라.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먼 길을 오느라 배고프지? 빨리 먹어.》&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어느 새 해물탕을 끓여놓은 박영호사장은 따끈따끈한 밥과 국을 우리 앞에 차려놓는다. 8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우리에게는 진수성찬이였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오후 2시. 연태로 가는 만영해호를 타고 우리는 대련을 떠났다. 동북3성의 마지막 역인 대련에서 박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관내의 첫역인 연태로 향한것이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35142229.jpg&quot; border=1&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푸르른 바다, 가끔씩 떠가는 유람선이나 어선들이 보일뿐 일망무제다. 2십여년전, 혹은 10여년전 또 혹은 3~4년전에 현재 우리가 탄 배로 남행길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저도모르게 바다와 함께 설레인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태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반이 좀 넘었고 강만덕사장이 기다리는 개발구에 이르러 처음으로 만난 생면부지의 강만덕사장과 함께 그랜드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였다. 순방취재의 첫역에 도착했음에도 긴 려로의 피곤은 물리칠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깨에 놓인 사명때문에 느슨해질수도 없었다. 민족적인 사명감이랄가 아니면 직업에 대한 집념이랄가 하여간 오래동안 생각해온 일이라 한시도 소홀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9월 25일 아침 여덟시반, 강만덕사장이 약속대로 차를 보내 우리 일행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강사장은 우리의 취재일정과 취재대상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우리의 요구대로 오늘은 아무아무곳에 미리 련락을 해두었으니 취재가 순리롭기를 바란다고, 새로운 요구사항이 있으면 수시로 련락하라고 말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35221907.jpg&quot; border=1&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연태개발구 돈꼬레 앞에서 바라본 바다가.&lt;/FONT&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FONT size=2&gt;&lt;/FONT&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이번 순방취재활동의 첫날에 강만덕사장과 부인 박월영녀사 그리고 연태옥타의 신승만회장의 도움으로 오전오후 취재가 순조롭게 진행되였다. 자기회사 일정만해도 빽빽한데 우리 일정까지 깐깐히 챙겨주는 강만덕사장을 비롯한 연태옥타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lt;/FONT&gt;&lt;/SPAN&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조선족어린이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한국인 교사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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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28</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8:53:42Z</updated>
	    <published>2009-10-06T18:53: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prefix_sub_heade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florilegium.asp?a_name=김태국 전광훈&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김태국 전광훈&lt;/FONT&gt;&lt;/U&gt;&lt;/A&gt;] &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한국 대구에서 중국 연태에 들어와 개발구 한국인들이 집거해있는 구역에 집을 잡고 살면서 교육의 장을 펼쳐가고 있는 한정한국어국제교류학원 권영미원장을 만났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24939918.jpg&quot; border=1&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처음에는 한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배워주기로 했는데 한국아줌마들이 중국어공부를 하겠다고 하여서 년세 지긋한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부모들을 따라 연태에 온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한국어,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권영미원장은 이제 공립학교들의 방학시간을 리용하여 강의하던 교수일정을 고쳐 개학때에도 주말마다 배워주려 시도하고 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조선족학교가 없어 한족학교를 다녀야만 하는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것이 상당히 어려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열심히 배우려 노력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연태지구에 우리말로 지식을 가르치는 정규적 학교가 없어 조선족 아이들이 한족학교에 다니는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중국은 한족을 중심으로 살기에, 이전과 달리 한족학교에서 한어를 잘 배우고 우리 말도 익혀두면 일거량득이라는 생각에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고 권영미원장은 느긋한 자세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권원장은 지난 여름 한번 시험 삼아 가르쳐보았는데, 연습이라 생각하고 가르친것이 계기가 되여서 한국어, 영어교육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더 한층 확고하게 다졌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옥타(OKTA)만을 리용해 홍보했기에 학생모집범위가 좁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나 우려를 표하는 아량도 갖고 있는 권영미원장이다. 우리말을 배워주는 학교가 없어서 곤난을 겪는 사람은 많으나 작은 규모의 학교에도 교실이 꽉 차지 못하는것이 권영미원장에게는 유감이요, 가슴 아픈 일이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중국 조선족사회에 자주 와서 조선족들과 령거리 접촉을 하면서 권영미원장은 많은것을 느꼈다. 신성만사장의 도움으로 언어학교를 꾸리게 되였고, 옥타 기업인들의 도움으로 홍보를 할수 있었다고 권영미원장은 말한다. 주변에 반듯하게 살아가는 고마운 조선족들이 있어서 아무 부담없이 아이들을 가르칠수 있는 행운을 두고 권영미원장은 무한한 감사만을 표시한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size=3&gt;비록 정규적인 학교는 없지만 지역적인 작은 학원들이라도 많이 나와서 아이들에게 세계와 대화할수 있는 영어를 제대로 배울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하는 바램이라고 권원장은 밝힌다.&lt;/FONT&gt;&lt;/SPAN&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조선족로인들의 사위가 된 한국인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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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27</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10-06T18:51:48Z</updated>
	    <published>2009-10-06T18:51:4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FONT size=3&gt;
&lt;IMG src=&quot;http://www.jlcxwb.com.cn/UserFiles/2009-9/26/200992623738604.jpg&quot; border=1&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연태개발구 로인들의 모임인 명인사랑방(明仁&#29233;心屋)에는 동북 3성 각지에서 자식을 따라온 60여명의 로인들이 있다. 자체로 만나 무어진 로인협회다보니 시초에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협회경비가 없다보니 자기의 호주머니를 털어 활동장소를 마련하고 활동을 해나갔다고 한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무용도구가 없는 그들은 자체로 새장구를 제작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견지했다. 지난해 10월 28일 한국과 위해, 연태의 로인들이 련환모임을 가질 때 절목을 내놓았는데 아무리 두드려도 새장구는 소리가 나지 않아 안타깝기만 했다고 신수동(69세)회장은 말한다. 마침 개발구관리위원회에 출근하는 로인협회 회원의 딸이 3천원을 선뜻 내놓아 새로 8개의 새장구를 장만하게 되였단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런 로인들에게 명인사랑방을 꾸려준이는 한국에서 조선족안해를 따라 연태에 와서 사업을 하는 박석명씨, 흑룡강 오상 태생인 중국 조선족 안해 변미화를 통해 이런 현실을 알게 된 박씨는 로인들에게 명인사랑방을 꾸려주고 거기에서 활동하도록 배려를 베풀고 여러가지 활동에 참가하도록 주선해주고 거기에 드는 경비도 지원하고 있다. 지금 로인들은 밝고 넓다란 이 활동실에서 즐거운 모임을 갖고 매일 즐거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사랑방에 모이는 로인들은 변미화, 박석명부부를 두고 효성이 지극한 딸과 사위라고 부르고있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런 효도를 베풀게 된 경위를 두고 변미화는 이렇게 말한다.&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lt;/FONT&gt;
&lt;P class=바탕글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아버지, 어머니도 다 돌아가셨으니 효성 다 못한것이 한이죠. 고향을 떠나온 부모같은 분들이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것이 가슴 아파 내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였어요.》&lt;/FONT&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중국조선족 제2 고향을 찾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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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26</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08-29T14:36:25Z</updated>
	    <published>2009-08-29T14:36: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t; MARGIN: 0px; COLOR: #282828;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견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3pt; COLOR: #ff3300; LINE-HEIGHT: 27px; FONT-FAMILY: '굴림';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 ㅡ《인터넷길림신문》과 함께 하는 대형순방취재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건국60주년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으며 생활과 사업의 수요로 고향을 멀리 떠나 생활하고 있는 중국조선족의 생활려정과 현실을 반영하고저 《인터넷길림신문》은 연해지구와 대도시들을 순방취재하게 된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지난 세기말, 급작스레 들이닥친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두만강, 압록강, 송화강, 료하 류역에서 농경문화를 고집하던 중국 조선족은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서 자란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삶의 길, 생존의 길을 찾아 대도시로 외국으로 떠났다.&amp;nbsp;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비록 삶의 터전이 정든 고향으로부터 낯선 타향으로,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옮겨졌지만 조선족들은 자기의 슬기와 근면으로 사회발전의 세찬 풍랑속에서 새로운 터전을 일구었고 온갖 간난곡절을 이겨내면서 수많은 인재와 우수한 기업인들과 기술로동자들을 양성해냈으며 무궁무진한 정신적부와 경제적부를 창출하였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2007년에 통계한 호구부등록이 있는 수자에 따르면 동북 이외 지구들에 사는 조선족인구는 북경시에 27,795명, 천진시에 10,463명, 하북성에 12,017명, 내몽골에 22,173명, 산동성에 30,148명, 광동성에 13,824명이지만 계절성이동과 환경성이동이 강한 조선족들을 감안할 때 기실 북경, 천진, 하북성, 산동성, 광동성, 상해 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인구는 훨씬 더 많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이를테면 2008년말까지 산동성경내에 거주하고있는 조선족이 18만이라는 수자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중, 청도시에 12만명, 연태시에 3만명, 위해시에 2만, 기타지구에 약 1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동북지구 대도시들의 조선족인구와 대등한 수자에는 놀라지 않을수 없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지구들에서 생활하고있는 조선족군체는 동북지구의 로소위주가 아닌 청장년위주라는 점이다. 중국조선족사회의 중요한 구성부분인 이들의 생활모습과 성장과정과 성공려정을 재조명하는것은 조선족언론과 학계에서 밀어버릴수 없는 과제로 나서고 있다.&amp;nbsp;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인터넷길림신문》이 기획하고 조직하는 대형순방활동인 《중국조선족 제2 고향을 찾아》는 동북이외의 연태, 위해, 청도 등 도시를 위주로 한 산동지구, 상해, 항주, 의오 등 도시를 위주로 한 장강중하류지구, 광주, 심천, 주해 등 도시를 위주로 한 광동지구의 20여개 도시들과 북경, 천진 등 기타 도시들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의 생활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생활모습들을 《인터넷길림신문》과 지면신문을 통해 국내외 독자들에게 전해주게 되며 그들에 대한 인식과 료해를 돕게 된다. 따라서 이번 순방취재가 고향을 떠나 제2 고향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가꾸어오고 또 새로운 삶을 영위해가는 우리 조선족들에 대한 평가와 관심도와 지명도를 높이고 형상을 수립하는 목적에 도달시키려 한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9월 중순(15~20일)에 가동하고 예정기일이 약 50여일인 이번 순방취재활동은 각 지역 일정배치와 기타 준비사항이 긴박하므로 기자취재를 수요하고 기사를 제공하려는 각 지역 조선족(한인)협회와 기업단체 혹은 개인들은 메일 혹은 전화로&amp;nbsp;제보하기 바란다.&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이번 순방활동과 활동기간의 기사들에 제휴할 &amp;nbsp;의향이 있는 지성인과 기업인은&amp;nbsp; 9월 10일전으로 전화 혹은 메일로 구체적인 합작방안을 합의하기 바란다.&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인터넷길림신문》편집부&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메일:&lt;/SPAN&gt;&lt;A href=&quot;mailto:jbnews@jlcxwb.com.cn&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ff;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TEXT-DECORATION: underlin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jbnews@jlcxwb.com.cn&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전화: 0433-2536131&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amp;nbsp;&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 13944389837&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련계인: 김선생&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김용학생을 도와주세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naogaojili/16517525"/>
		<id>tag:blog.daum.net,2009:naogaojili.16517525</id>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08-04T11:12:13Z</updated>
	    <published>2009-08-04T11:12: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center&gt;&lt;FONT class=title_text&gt;김용학생을 도와주세요 &lt;/FONT&gt;&lt;BR&gt;&lt;!--prefix_sub_header--&gt;&lt;BR&gt;&lt;SPAN class=title_time&gt;기자: [&lt;A href=&quot;http://kr.chinajilin.com.cn/florilegium.asp?a_name=길신&amp;a_id=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길신&lt;/FONT&gt;&lt;/U&gt;&lt;/A&gt;] 래원: [&lt;A href=&quot;http://www.jlcxwb.com.cn/&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본사소식&lt;/FONT&gt;&lt;/U&gt;&lt;/A&gt;] 발표: [2009-07-29 오전 9:55:55] 클릭: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viewtotal&amp;articleid=31746&quot;&gt;&lt;/xSCRIPT&gt;
 227]&lt;/FONT&gt; 나도 한마디: [
&lt;xSCRIPT language=xxJavaScript src=&quot;/articleinfo.asp?action=commenttotal&amp;articleid=31746&quot;&gt;&lt;/xSCRIPT&gt;
 0]&amp;nbsp;&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
&lt;DIV id=article&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gt;&lt;FONT face=Verdana size=3&gt;ㅡ아들의 병치료를 위해 친척집을 모두 동원&lt;BR&gt;&amp;nbsp;&amp;nbsp; 집까지 팔아도 턱없이 부족한 치료비&amp;nbsp;&lt;/FONT&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요즘 료녕성 신빈현 조선족사회가 뼈교정수술치료를 받다가 경제난으로 치료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온 신빈조중 고중2학년 학생 김용을 도와나서 진한 감동을 주고있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신빈조중 고중2학년에 다니는 김용은 선천성 구루병환자여서 가정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그의 어머니(주월순)는 아들의 병을 고쳐보려고 모진 애를 썼지만 마땅한 기회와 병원을 찾지 못하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지난해 말 김용의 어머니는&amp;nbsp;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산동제남국제병원에서 이 병을 치료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데리고 그곳의 전문가들을 찾았다. 전문가는 김용의 병은 완전히 치료할수 있지만 병세가&amp;nbsp; 비교적 엄중하여 두다리의 5개 부위에 수술을 해서 뼈교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한 개 부위의 수술비만 3만원이 수요된다고 하니 수술을 마치려면 근 20만원의 돈이 수요되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김용이가 어려서부터 앓아오고 김용의 아버지가 정리실업으로 일자리가 없는데다 그 역시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신체가 썩 좋지 못하다보니 가정경제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김용의 아버지는 지난해 겨울부터 다리골절로 지금도 쌍지팽이를 짚고 다니는 형편이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김용의 어머니는 료녕대학을 졸업하고 현당안국에 출근하고 있지만 월로임은 겨우 2천여원, 로임으로 아들을 공부시키고 생활하기도 어려운데 구루병으로 앓는 남동생 생활까지 돌보아야 하다보니 20만원이라는 수술비앞에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집에 돌아온 김용의 어머니는 《이제 기회를 놓친다면 영영 치료할수 없다》는 전문가의 말이 계속 머리속에서 맴돌아쳤고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아들에게 건전한 다리를 주지 못한것만으로도 가슴아픈데 경제난으로 병치료를 영영 방치한다는것은 더구나 말이 아니였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아들의 병을 꼭 치료해주기로 마음먹은 김용의 어머니는 친척이란 친척집을 다 돌아다니면서 돈을 꾸기 시작, 금년 2월에 수술길에 올랐다. 제남병원에서 김용은 선후하여 왼쪽다리의 두개부위를 수술받았는데 입원시간은 104일이였다. 한달남짓이 병원에서 회복치료를 더 받아야 했지만 가져간 돈이 다 떨어져 그들은&amp;nbsp; 집으로 발길을 돌릴수밖에 없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다행히 수술이 매우 성공적이였다. 이 기간에 그들은&amp;nbsp; 7만원이란 비용을 썼다. 돈을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하여 김용의 어머니는 자그마한 세집을 맡았는데 싸구려집이라 창문도 없었다. 난로시설이 없는 제남의 2월 추위를 그는 이를 악물고 견딜수밖에 없었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이 사정을 알게 된 신빈현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서는 기업가들을 찾아다니면서 김용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줄것을 호소했다. 무순시합흥만가목업유한회사와 무순삼륭달목업유한회사에서 각각 5천원의 성금을 보내왔다. 며칠전 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서는 사랑이 깃든 성금 1만원을 김용의 병치료에 보태 쓰라면서 김용의 어머니손에 쥐여주었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이에 앞서 신빈조중의 전교 사생들도 50원, 100원, 500원씩 모아 김용학생에게 도합 2만 1천여원의 성금을 보내왔다. 이밖에 김용의 어머니의 고향사람들도&amp;nbsp; 200원, 500원씩 돈을 보내왔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왼다리수술은 친척들의 도움으로 했는데 오른다리수술까지 하려면 적어도 10여만원의 돈이 더 있어야 한다. 이젠 돈을 꿀래야 꿀 곳도 없다. 그래도 한창 꽃나이로 자라나는 아들의 다리를 그대로 방치할수는 없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 size=3&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face=Verdana&gt;&lt;FONT size=3&gt;재차 수술길에 오르기 위하여 김용의 어머니는 몇만원밖에 안되는 집까지 팔기로 결정하고 집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거액의 돈이 언제가야 모아지겠는지… &lt;/FONT&gt;&lt;/FONT&gt;&lt;/P&gt;&lt;FONT face=Verdana&gt;&lt;FONT size=3&gt;
&lt;P align=justify&gt;&lt;BR&gt;/박영신(료녕성 신빈현방송국 조선어조)&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TRONG&gt;[편자주] 글이 신문에&amp;nbsp;발표된후&amp;nbsp;이 사연을 글로 써서 보내온 박영신 선생으로부터&amp;nbsp;메일을 받았다.&amp;nbsp;아들 김용의 병을 고치려고 동분서주하는 주월순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보고 전화나 메일로 문의하는 분들이 여럿 되였는데... 그분들에게 본인의 주소와&amp;nbsp;전화번호를 알려주기 위하여 메일을 공개한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DIV&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인테넷길림신문편집선생님에게:&lt;/SPAN&gt;&lt;/STRONG&gt;&lt;/DIV&gt;
&lt;DIV&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메일을 자주 열어보지 않다 보니 편집선생님의 메일을 오늘에야 받아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 그리고&amp;nbsp; 고맙습니다. 김용학생을 도와주기 위해&amp;nbsp; 편집선생님께서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시니&amp;nbsp; 너무 감동되였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부탁하신 사진은&amp;nbsp; 늦어서 &amp;nbsp;보내드리지&amp;nbsp;못하고 김용학생의 어머니 주월순의 단위와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월순의 단위는 &#36797;&#23425;省新&#23486;&#28385;族自治&#21439;&#26723;案局&amp;nbsp;이고 핸드폰번호는 13322121163입니다.&lt;/SPAN&gt;&lt;/STRONG&gt;&lt;/DIV&gt;
&lt;DIV&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 편집선생님의 건승을 빕니다.&lt;/SPAN&gt;&lt;/STRONG&gt;&lt;/DIV&gt;
&lt;DIV&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신빈인민방송국 박영신 올림&lt;/SPAN&gt;&lt;/STRONG&gt;&lt;/DIV&gt;&lt;/FONT&gt;&lt;/FON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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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길공원 한번 다녀오시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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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노고지리</name>
	    </author>
	    <updated>2009-07-28T13:31:10Z</updated>
	    <published>2009-07-28T13:31: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지난 26일에 한창 수건중인 연길공원에 다녀왔습니다. 1907년에 건립되여 이미 공원이라고 불렸지만 주덕해동지가 그자리에&amp;nbsp;다시 설계도를 그려 오늘의 연길공원의 기반을 다졌다고 합니다. 2원, 5원씩 문표를 받던&amp;nbsp;옛날의 인민공원이 인젠&amp;nbsp;활짝 열린 레저오락휴가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답니다.&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TRONG&gt;사진 몇장 올립니다. 멀리에 계신 분들과 연변에 살고 계시지만 다망한 일정때문에 공원에 다녀오지 못하는 분들께 썰썰이라도 달랠겸...&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4.uf.daum.net/image/203A2A174A6E7A065ED33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이 비석 뒤켠에는 1907년 연길공원이 건립되였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어쩐지...좀 믿기지는 않지만...뒤산 언덕쯤으로였겠는데 하는 생각...&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5.uf.daum.net/image/123A2A174A6E7A075F219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사막지대에서는 생활하는 락타가 공원을 찾는 이들이 사주는 광천수로 목을 추긴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3.uf.daum.net/image/133A2A174A6E7A07624EF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외국인들도 많더군요.&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13A2A174A6E7A0760569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꽃사슴은 인젠 관객들과 너무나도 익숙해진듯...&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173A2A174A6E7A0865B50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애들이 풀을 먹이느라고... 그런데 풀에 화학약품은 묻지 않았는지...근심스럽습니다.&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4.uf.daum.net/image/123A2A174A6E7A076173A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말사슴의&amp;nbsp;눈길이 좀...이상하죠?&amp;nbsp;&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1.uf.daum.net/image/153A2A174A6E7A0863C31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철창속에서 왔다갔다하면서 폼을 잡아보지만 어쩐지 가냘퍼보이는 표범동무...&amp;nbsp;&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5.uf.daum.net/image/163A2A174A6E7A0864E8D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곰굴우에서 내려다 찍어봅니다. 마침 관객이 던져준 풀을 냠냠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홀로 거닌 공원이였습니다.&amp;nbsp;너무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이런 저런 일때문에&amp;nbsp;언짢아졌던 기분이 많이 개였습니다. 그러나 또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사진에서처럼 아무나 물을 먹이고 풀을 뜯기고 하는 동물원의 동물들의 안전문제였습니다. 혹 아무곳에서나 뜯어온 풀에 독이라도 있으면, 혹 신경나쁜 사람이 락타에게 먹이는 광천수에 유독물을 탄다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연길공원은 이렇게 무방비상태로 수건중에 있답니다. 그렇다고 노씨가 나서서 제지한다면 아예 정신병자취급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고... 하긴 중국이 이래서 좋다는지 모르겠지만 혹떼러 갔다가 혹 붙였다는 식으로 요즘 근심거리 하나는 더 늘었습니다. &lt;/SPAN&gt;&lt;/STRONG&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공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중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중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표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표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연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연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꽃사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꽃사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주덕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덕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락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락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g2a&amp;amp;tagName=말사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말사슴&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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