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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Oversmiler, Eyeless in Gaz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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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11-25T23:16:2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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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토고를 응원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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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11-25T23:16:21Z</updated>
	    <published>2008-11-25T23:16:2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left&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f65dd&quot; color=#ffeaf8&gt;&lt;STRONG&gt;2006년 6월 15일&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417&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gt;월드컵 대란이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레드 콤플렉스’는 제발 뿌리 뽑혀야 한다고 소리 높이며 살아 왔건만, 이런 식으로 나에게 뉴(New) 레드컴플렉스가 강렬하게 덮쳐올 줄은 몰랐다. 요즘 시기 광화문은 더할 나위 없이&amp;nbsp; 건물이며 사람이며 발길에 차이는 모든 주변의 것들이 붉은 악마 광고들로 넘쳐나는데, 그 사회적 낭비와 거대한 자본의 물결에 사람들이 휩쓸려 다니며 ‘대~한민국’을 외치는 장면들은 온 국민의 열정이라고 보기에는 순간순간 아찔해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한민국 축구팀이 토고측 팀과 시합을 겨루던 날, 나는 마침 북한인권 간담회를 늦게 마치고, 열심히 자전거를 몰아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미 평소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차량들과 인구들 상당수가 축구경기를 볼 수 있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터라, 내가 지나는 그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텅텅 비워져만 갔다. 자전거를 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동안, 갑자기 토고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갖게 해 주겠다는 못된 선주들 꾐에 빠져, 그만 외국 등지로 매매 된다는 사실 하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사진 한 장과 거기 매달린 캡션은 어떤 자전거를 살까 흥분에 빠져 정보를 뒤지던 나에게 콕콕 심장을 아프도록 쑤셨던 기억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득 궁금해졌다. 시청 앞 광장에서 한국팀 응원을 위해 뛰쳐나간 저 사람들은 토고라는 나라가 아프리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줄은 알고 있을까?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상대팀’이라는 것 말고 토고인들이 정치 경제 문화 역사적으로 어떤 특징들을 갖추고 있는지 일말의 관심이라도 둘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국제사회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문제는 굉장히 심각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주유 담론 속에 아프리카 문제가 끼어들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서아프리카 작은 나라 ‘토고’가 연신 언론에서 이렇게 대서특필되고 한국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은 월드컵만 아니었으면 유례없이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현상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조차도 이런 문제의식만 있지 그렇다고 토고에 대해서 뭐라 언급할 만큼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이 그리 나은 편도 아니다. 단순히 아프리카 대륙이 전혀 나아질 기미 없이 늘어가기만 하는 여러 가지 진통들&amp;nbsp; 중에서도 토고는 아동매매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 정도이다. 흑인 노예제도는 백과사전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지금도 토고에서는 심지어 서너 살 된 소녀, 소년들까지도 국내외 어디론가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월드컵. 전 세계 인류가 마음 놓고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월드컵이 되려면, 일단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조건들이 보장되어야 너나 할 것 없이 제대로 놀기가 가능하다. &lt;/P&gt;
&lt;P&gt;&amp;nbsp;&lt;BR&gt;‘버려진 땅’이라고 외면 받는 저 아프리카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빈곤, 기아, 전쟁, 에이즈, 인신 매매 등의 사회적 문제들은 외딴 시 하고, 그저 4년 만에 한 번씩 축구경기 때 맞붙는 저들로만 인식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함의들에 눈감고 마는 그래서 반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결국 가진 자들이 더 잘 놀 수 있도록 만드는 축제가 완성되는 데 한 몫 거드는 것이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내지르는 승리의 함성들이 점점 탈바꿈 되어야 할 것이다. &lt;BR&gt;토고를 눌렀다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토고의 어린이들이 맘 놓고 축구공을 찰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기뻐 날뛰는 월드컵이 되기를 바라며, 그 날 밤 나는 ‘토고의 어린이들은 힘내라!’ 라고 열심히 응원했다.&lt;/P&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월드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월드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자전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자전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토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토고&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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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화를 택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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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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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11-25T23:05:45Z</updated>
	    <published>2008-11-25T23:05: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99cc66&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f65dd&quot; color=#ffeaf8&gt;&lt;STRONG&gt;2005.05. 05. 247일째 팽성촛불집회를 다녀와서&lt;/STRONG&gt;&lt;/FONT&gt;&lt;BR&gt;&lt;B&gt;‘&amp;nbsp;&lt;/B&gt;&lt;BR&gt;&lt;/FON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gt;&lt;BR&gt;&lt;/P&gt;
&lt;P&gt;
&lt;TABLE class=&quot; FCK__ShowTableBorders&quot;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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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27&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SPAN&gt;&lt;/P&gt;
&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lt;/TD&gt;
&lt;TD class=cap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cap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lt;FONT color=#666699 size=3&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quot;뉘 집 딸인겨?” &lt;/SPAN&gt;&lt;/B&gt;&lt;/FONT&gt;&lt;BR&gt;&lt;FONT size=2&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버스정류장 앞으로 오니 촛불집회에서 본 듯한 할머니가 계셔서, 인사를 꾸벅했더니 와서 이렇게 물으신다. 너무 뜻밖의 질문에 당황해한 나는...저기..그니깐 촛불집회 온... 이런 식으로 개미목소리를 내며 괜히 딴 곳을 쳐다보는 듯 슬며시 넘어갔다. 난 마주친 게 왠지 어색하고 또 이곳에서 이방인 같다는 인상을 피하려고 한 번 고갯짓을 해본 건데, 손까지 잡으시며 굉장히 개인적인 질문(!) 을 하시니 상황이 더 난처해진다 싶었다. &lt;/SPAN&gt;&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사실 우리 집 맞은편에 사는 할머니는 아침마다 정원의자에 앉아 계시는데, 내가 아무리 꾸벅해도 눈빛하나 안 바꾸시고 본척만척 하신다...쩝)&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렇게 버스가 어서 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뒤 버스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왔고, 우리를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도두리에서 평택시로 향하는 마을버스 안이 병원으로 나가는 노인들과 등교길의 중고생들로 시끌벅적이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순식간에 어젯밤 촛불집회장에서 함께 투쟁한(!) 우리가 아니라, 여기 생동감 넘치는 팽성 사람들 일상에 나도 섞여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들판을 보고 있으니, 문득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길 오게 되었나 싶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작년 말 대항지구화행동 책임활동가로 지원하기 위해 세웠던 2005년 활동계획서가 먼저 떠오른다. 그 계획서 일부 중 내년에 평택투쟁을 하겠다고 넣은 것이 아마 이곳에 대한 첫 접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때 왜 그런 계획을 넣었던 거지? 솔직히 분명한 직접동기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민단체 행보에 대해서 둔감한 상태였던 나는 아마도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글들을 이것저것 읽어오면서, 한반도 미군재배치에 대한 반대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온 것 같았다. &lt;/SPAN&gt;&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걸 좀 지식인답게 설명하자면, 부시행정부는 더 이상 윈-윈 전략을 고수하지 않을 것이며, 신속하고 유연한 군사변환을 통해 자신들의 군사동맹을 공고히 해 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일단 한반도에서 지정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지역, 평택미군기지로의 이전과 확장은 필수적이다. 버거운 주한미군을 지역방위군으로 재편성, 첨단군사시설을 갖춘 네트워크 작전으로써 평택은 그들에게 아주 용이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사혁명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군사적 패권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미국의 군사질서 재편은 21세기 세계질서 재편과 함께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하지만, 막상 이 투쟁에 결합하고 몇 번 오르내리다 보니 다른 접근으로의 시각들과 심심찮게 마주치기도 한다. 작게는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미국의 북 선제공격용이라는 정세분석부터 한미 불평등 조약 불응, 협상없이 일방적으로 주민들에게 통보하는 노무현 정부의 작태, 솔부엉이가 사라지고 성범죄만 일으키는 미군기지 주변의 실태 비판, 땅과 같은 환경오염에 대한 인류적 반성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입장 차이는 있지만 거의 다 맞는 말이고 고려되어야 할 문제점들이라고 생각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 중 내 눈에 유독 띄는 것은 바로 당장 여기를 떠날 위기에 몰린 주민들의 삶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는 목소리이다. 이 문제는 곧 여기 사람들이 당신들의 터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와 직결되고 있었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666699 size=3&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과거와 미래를 앗아가는 것&lt;/SPAN&gt;&lt;/B&gt;&lt;/FONT&gt;&lt;BR&gt;&lt;FONT size=2&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70세가 넘은 분들에게 토지강제수용이란 토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난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겪으셨던 그 강제징용과 비길만큼 큰 고통으로 와 닿을 거라고 본다. 그 시대의 ‘강제’는 오늘 날 주체만 바뀐 채, 바로 그 과거청산 하겠다던 노무현 정권이 번듯이 재현하고 있다. 황량한 갯벌이었던 이 곳 대추리에 정착해 조금씩 농토로 손수 경작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다가 한 십년 전에는 집도 좀 수리할 수 있게 되고...(그간에도 별별일이 다 있었지만) 그렇게 매년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허물없는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미군이 더 들어와야 하니 여길 나가라는 위협적 종잇장 하나 날아 들어온다면, 어느 누가 기가 막혀하질 않겠는가? 아무리 너희(주민들)가 싫다 해도 정부(권력자)가 하는 짓이니 나가야만 한다고 통보하는 것은 일제시대 강제징용과 다를 바가 없다. &lt;/SPAN&gt;&lt;/FONT&gt;&lt;/P&gt;&lt;FONT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만에 하나, 이 땅을 정부에게로 넘겨 제대로 돈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땅을 담보로 대출받은 빚을 갚아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곳 사람들의 생계보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정도는 정부도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땅 주인, 당신들이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룻밤으로는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군분투하며 억척같이 살아왔는데, 이제 여기를 비워주고 난 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도 없는 불투명한 미래를 그리자면 어떤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고령인 그들이 ‘이동’이란 것에 얼마나 힘든 과거가 있는가. 일제강점기, 6.25 전쟁, 독재정권이 이어졌던 그 아픈 역사에서 당신들은 산증인들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주민들은 터를 옮기고 싶어 하시지 않는다. 오늘날까지 고달프게 겪어 온 과거를 끌어안고 여기서 평온하게 농사짓다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다는 소망만을 간직하고 싶어 하셨다. 그게 당신 삶에서 보람이요, 내세울만한 자랑이라면 자랑이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미군기지 확장은 비단 개인의 삶 파괴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공동체 생활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농촌사회는 촛불집회로 뭉치는 단결을 발휘하긴 쉬워도 한 번 딴 길(!)로 새면, 쉽게 얼굴을 들 수 없는 게 어쩔 수 없는 이곳 생리이다. 그러다보니 토지조사라도 받거나 한 푼이라도 건져볼 깜냥을 보이면, 한 가족 같았던 이웃도 전처럼 잘 지내지 못하고 만다.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정부나 미군쪽은 이 틈새를 노려 어떻게든 더 이간을 해보려고 온갖 수작을 부리고 있는데, 달콤한 거짓말에 혹한 주민 분들이 생겨날수록 미안함과 실망감이 뒤섞인 분위기가 마을 안을 음습하는 것 같았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렇게 정부측 요구에 응한 사람들도 어디 하고 싶어서 했을까 라는 암묵적 이해는 서로 통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투쟁에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분들은 철저하게 미군을, 현 정부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있었다. 무섭게 파고들어 아차 하는 순간에 자신을, 이웃을, 마을을, 공동체를 무너뜨리고자 덤벼들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
&lt;P&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어제 촛불집회 장소인 비닐하우스로 갔더니, 아무도 모르게 어떤 분이 말끔하게 청소도 하고 새로 자리를 깔아놓으셨다. 꽤 큰 장소라서 굉장히 수고스러웠을 게 분명했다. 모두들 익명의 손길에 고마워했고, 도대체 누가 이런 선행을 했냐며 수군댔지만 결국 아무도 몰랐다. 그 순간 내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당신들이 얼마나 이 촛불집회를 소중히 여기는가 였다. 당신들이 하나라는 일체감을 강력하게 지속시켜 주는,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잃지 않도록 해주는 곳이 바로 이 비닐하우스 안이요, 그래서 매일 들게 되는 촛불의 힘이야말로 곧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는 주술같은 믿음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촛불집회 참가자 대부분은 손자․ 손녀들이 한 열 명은 있을 법한 노인들인데도 247일을 넘겨가며 촛불집회를 지속시켜 올 수 있었던 가능성을 헤아려보니, 곧 이 유대감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666699 size=3&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약자의 애원과 분노&lt;/SPAN&gt;&lt;/B&gt;&lt;/FONT&gt;&lt;BR&gt;&lt;FONT size=2&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다른 곳으로 가면 더 이상 우리 선생님을 볼 수 없잖아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동영상으로 보았던 한 초등학생.&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난 정말로 ‘땅’이 좋아서 시집왔거든요. 그래서 이 좋은 땅이 미군기지로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요, 지금은 우리 남편 때문에라도 꼭 막아야 해요. 만약에 땅 빼앗기면 이대로 죽어 버릴 거라고 말하는 데 정말 걱정입니다.&quot;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인터뷰에 응한 한 아주머니.&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노무현이 눈꺼풀 수술 하면 뭣해, 우리 사는 거나 똑똑히 한 번 보러 와 봐라. 여기서 나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감정평가단에게 항의하는 어느 할머니.&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내가 여기서 지은 농사덕으로 우리 자식들 모두 서울로 대학 보냈어. 자식들은 날보고 더 이상 농사짓지 말고 땅도 팔아 버리라고 하는데, 그냥 우리 두 사람은 여기서 죽을 때꺼정 살려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날 손주마냥 여기시며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는 노부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랑 우리 자식들은 이곳을 나가게 되면 어쩌나 매일 불안해하고 있어요. 날 봐요. 이렇게 장애인인데도 정부로부터 돈 한 푼 못 받아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에요? 겨우 조금 가지고 있는 땅으로 버텨보는데 나가라니....“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결국 참다못해 울음을 터트렸던 어느 아주머니.&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노무현 정부가 자주적 협력국방론에 입각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진보 일각에서는 지지와 환영을 보낸다며 나섰다. 하지만 막상 그가 실행에 옮기는 정책들은 지금 어떠한가? 이토록 약자인 국민들이 미군기지 확장은 내 목숨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고 울다시피 말하는데도 반드시 미군기지 확장을 강행하고자 한다면 도대체 어떤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것인가? 하긴 김선일의 절규도 눈썹하나 까딱않는 정부였으니 말 다했다.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온갖 학대를 저지른 미 수뇌부들에게 항의도 아닌 파병연장으로 화답하는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평화란, 지금의 형국에서는 사실상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부시&amp;nbsp;대통령의 평화와&amp;nbsp;점점&amp;nbsp;밀착해 가는 것&amp;nbsp;같다.&lt;/SPAN&gt;&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더 이상 노대통령에게 진정한 평화와 민주주의를 기대하긴 그른 것 같다. 반면 300만평(왜 이 만큼 확장되어야 하는지 정부는 아직도 정확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이 훨씬 넘는 한반도 대지가 미군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며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화려한 그 날개 품으로 들어가 모른 척 숨죽이고 싶어 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전쟁기지와 맞바꾸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평택 땅은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맛’이 가버릴 것이다.&lt;/SPAN&gt;&lt;/FONT&gt;&lt;BR&gt;&lt;/P&gt;
&lt;DIV align=center&gt;&lt;BR&gt;
&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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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28&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SPAN&gt;&lt;/P&gt;&lt;/TD&gt;
&lt;TD class=cap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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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cap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BR&gt;05.2.21.대추리_잔치있던 다음 날.&lt;/DIV&gt;&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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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둠 너머 우리의 희망 있어라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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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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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11-25T22:54:33Z</updated>
	    <published>2008-11-25T22:54:3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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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f65dd&quot; color=#ffeaf8&gt;2006년 2월 25일&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color=#336699&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color=#336699&gt;-&amp;nbsp;울진에서 만난 발땅길풀.&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gt;&amp;nbsp;동이 틀 때까지 컴퓨터 모니터 앞을 떠날 줄 몰랐다가 ‘발땅길풀 워크샵’(각 지역에서 발바닥, 땅바닥, 길바닥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풀뿌리 평화행동을 펼쳐온 사람들의 모임)이 열리는 울진을 가기로 했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눈을 붙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지각이라는 걸 직감했다. 새벽녘 마신 커피 때문에 비위도 좋지 않았다. 뛰어도 모자랄 텐데 발걸음에는 생기가 안돌았다. 꼭 내 모습이 교문을 들어서는 고 3 수험생 같아 보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제때 온 사람들의 야유를 한 몸에 받아야 했지만 얄밉게도 ‘연세의료 노동조합’ 이 새겨진 이 차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누가 가져왔는지 알음직한 차로구나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거리상으로인지 의식적으로인지 어느 쪽이 더 먼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그곳, 울진으로 드디어 출발했다.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처음 두어 시간까지는 더디게 가는 듯 했으나, 휴게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난 후에는 제법 시원히 달렸다. 차창 밖 시골의 눈 풍경이 들어와도 우리들의 표정은 무던했는데, 어느 새 바다가 나오니까 다들 환해졌다. 흰빛보다는 푸른빛이 더 편안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구나 싶었다. 우리는 연신 탄성을 질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울진이라는 푯말이 나오기 시작하고 목적지까지 다와 갈수록, 멀미 날 것 같은 길사정은 점점 심해졌다. 사람들은 이 꼬불꼬불한 도로를 “완벽한 S자곡선”이라 불렀다. 그렇게 간간히 수다를 잇는 새에 ‘죽변’에 당도했다. 여기 주민인 박기범씨와 울진평화모임 선생님 한 분이 마중 나와 계셨다. 풍경보다 사람을 보는 것이 더 반가운 일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314&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339933&gt;&lt;FONT color=#99cc00&gt;▲&amp;nbsp;죽변&lt;/FONT&gt;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보드라운 모래사장 위에서 잠시 장난을 치다가 카라님의 친척집이 직접 운영하신다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먼저 와 온천에 몸 담그고 나왔음을 뽐내는 나머지 일행도 만났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시 식당을 빠져나와 울진초등학교에서 돕과 김제에서 왔다는 낯선 청소년 한 명까지 서로를 반기는 인사가 있고나서, 워크샵 장소이자 숙소가 있는 행곡 3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이제부터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돕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저속으로 달리다 보니, 마치 차량 3대와 자전거 한 대가 어떤 목적을 띠고 행렬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뒤에 오던 차들과 심지어 여객버스마저도 경적 한 번 울리지 않았고,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내면 그제야 조심스레 앞질러 가는 식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서울에서 후미진 울진의 행곡리까지 그 멀고 험한 길을 자전거에 몸을 싣고 왔던 돕의 행동이 어떤 이에게는 놀라움 혹은 안쓰러움을 주기도 했고, 반대로 돕 자신에게는 산천을 즐기는 나름대로의 놀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난 그 광경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그건 적어도 나에게는 고정된 사고의 범주를 이탈하는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줬기 때문이었다. 가히 나의 정신력으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지금 내 눈 앞에서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당당히 펼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끄러미 지켜보다 ‘아, 저런 거면 세상을 정말로 바꿀 수도 있겠다.’, ‘저런 틀을 깨는 도전과 변화가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닐까......’ 와 같은 흡인력 같은 게 몰려왔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313&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99cc00&gt;&amp;nbsp;▲ 우리가 묵었던 집&lt;/FONT&gt; &lt;/P&gt;
&lt;P&gt;&lt;BR&gt;&amp;nbsp;드디어 아름다운 시골집에다 짐을 풀었다. 도시 사람들은 집을 고를 때에 몇 평인지를 제일 중요시 따지지만, 여기서는 과연 그런 수치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아담하면서도 탁 트인 구조였다. 방문을 열면 작업공간으로 손색없는 앞마당이 있고, 내 키로 턱 정도에&amp;nbsp; 이르는 낮은 담 너머로는 큰 밭과 우뚝 솟은 산들이 누구 방해받지 않고 훤히 펼쳐져 있으니 속 좁게 집 내부 평수를 따질 일이 없어 보였다. 아궁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어렸을 적 시골 갔을 때, 할머니가 고구마를 구워 주셨던 추억이 떠올라서 잊혀졌던 정서가 되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내 무서울 정도로 농촌이 파괴되가고, 또 정권에 항의하다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농민들의 울분까지 생각나 정서타령 하기에 매우 미안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맛깔, 빛깔 나는 나물 비빔밥으로 한 상 물린 뒤, 본격적으로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사실 모임명칭이 워크샵이었지, 토론을 심도 깊게 한 것은 전혀 아니었고, 각 지역에서 온 이들이 얼굴을 익히며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회포를 풀며 남몰래(?) 쌓아온 운동의 고민을 밝히는 자리 정도였다. 그런데 이성적인 논리들로는 만들 수 없는 특유의 진지한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그것이 풀뿌리로 묶여진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우 익숙한 이들에서부터 처음 만난 이들까지 여기 모인 모든 타자들의 감정과 언어적 표현을 최대한 고루 이해하고자 애썼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하늘은 빈자든 부자이든 세상 모든 이의 머리 위에 늘 떠 있지만, 사람들은 그 하늘에 대해서 각자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해석하고 바라본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정복하려는 자들이 있는 반면, 그저 마음에 품은 소망을 들어줄 신이 거하는 곳으로 올려다보는 이들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간 평화를 바라보고 찾아가는 것 역시 처지나 환경에 따라서 매우 다를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그동안 이라크 전쟁을 반대해 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늘 대중의 앞에 서왔던 사람들이 있다면,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 촛불 하나 들며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여기서 그런 각각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고 그들은 지금 나직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구나 싶어 뭐라 표현할 길 없는 소중함 같은 게 느껴졌다. 그것은 내일 당장 같이 무엇을 할지 막막하더라도 대신에 채워진 충만한 정서적 연대 같은 것이랄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뒤풀이 겸 2차 이야기 마당에서는 이라크에 직접 빵과 의약품을 조달해 보자는 의견이 오갔다. 이 역시 구호 운동이 아닌 철군 운동의 일환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는 점과, 현실적으로 부딪히게 될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는 것 등 날카로운 지적들이 나왔다. 각자의 주장과 설득이 오가는 가운데, 절대 썩지 않는 품목으로, 적절한 현지 파트너가 없더라도 일단은 이라크로 무조건 전달하는 데 주력해 보자는 통쾌한 원칙을 세워 분분한 주장들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카라님 의견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워낙 현실적 난관이 많고 뾰족한 방안이 쉽게 도출되지는 않다보니 구체적인 결정은 결국 못 내렸다. 하지만 얼마정도 시일을 두고 각자 유용한 정보와 기대할만한 소식들을 모아서 사전정보를 잘 갖추자는 정도로 논의를 대강 마무리 지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집 밖을 나와 처음 여기 한밤과 직면했을 때, 나는 바로 앞에 놓인 사물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깜깜하여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전혀 찾지 못했었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고요한 게 분명히 집 옆에 붙어 있던 작은 농장 안 오리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비교적 남들보다 일찍 잠이 들었던 나는 새벽녘 잠을 깨서 다시 바깥을 나와 시골의 새벽기운을 마셨다. 처음 이 어둠 속에 서 있었을 때 사실 나는 살람 아저씨가 보낸 편지를 먼저 떠올렸다. 지금 이라크는 어둠뿐이라고 했던 내용이 생각나서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고 그랬다. 아아, 전쟁의 포효로 뒤덮인 저 산 너머 나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살람 아저씨가 말하는 고뇌와 혼돈이 이런 것일까. 내가 칠흑같은 밤에 한 발 내디딜 작은 빛 하나 발견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도 어제와 오늘을 그렇게 보냈던 걸까. 지금 이라크는 산속에 버려진 어린 아이 같이 느껴졌다. 그럼, 도대체 이라크 사람들이, 그리고 살람 아저씨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침울한 기분을 벗어던지고 싶었던지 나는 분명히 희망은 있다고 가정하고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맞는지 틀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건 아마도 어둠 너머 저 편에서 여기를 밝히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사람들 있을 거라는 기대와 믿음, 바로 그것이 당신들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힘이라 여겨졌다. 그러니까 살람 아저씨도 나에게 어둠 속에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은 비단 절망의 표현만은 아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는 간절함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떨어져 있지만 함께 어둠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금은 서로를 볼 수 없지만 빨리 이라크에 평화가 회복되길 오늘도 간절히 기다리는 것만큼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안이자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아, 살람 아저씨, 그래요. 희망은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거로군요. 나 지금 그런 생각으로 여기 서 있어요’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320&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99cc00&gt;▲ 불영사 오르기&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날이 밝고 가장 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사람들도 눈을 떴다. 울진평화모임 선생님들이 손수 준비한 떡국이 눈앞에 차려졌고, 우리는 염치 불구하고 잘들 먹어댔다. 오후에는 울진군청 앞에서 평화행동을 펼치기로 되어 있었는데, 식사를 끝내고 나니 그 때까지 잠시 여유가 있었다. 그 틈을 타 몇몇은 근처 불영사라는 절을 찾기로 했다. 나도 물론 따라나섰다. 여기까지 와서 근처 사찰 방문을 놓칠 수는 없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울진은 정말로 산이 병풍을 둘렀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데, 절을 오르면서 직접 산과 강을 가까이 보는 기분은 최고였다. 다만 턱없이 비싼 개인 입장료, 너무 잘 닦여진 산책로와 화려한 다리는 오히려 절을 찾는 중생들보다는 절 자체가 더 속세적으로 비춰져, 솔직히 불영사라는 이름이 주는 불심이 못미덥기도 했다. 그래도 워낙 오랜만에 산길을 걷는 기분을 망치지는 못했다. 난 불자(佛子)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이지만, 눈에 띄는 돌무더기 앞에서 작은 돌을 얹고 기도도 드려보았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소중히 쓰이게 하소서.’ 부처만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드린 기도였다. 예수, 알라에게까지도, 인샬라.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막상 불영사에 도착하고 나니, 나는 그저 관광객에 지나지 않았다. 기분삼아 청량한 물 한 바가지 퍼서 목을 적시고 주변을 돌아보다가, 정말로 호수에 불상이 비치는지 호기심을 채우는 정도로 들여다보곤 금세 발길을 돌렸다. 그러고 보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산이 절이요, 절이 산이었고, 기도는 절을 오르면서 이미 다 드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한시름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을 보냈으니 과연 안갔으면 어쩔 뻔 했나 싶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다시 행곡 3리 아름다운 집으로 돌아와 아쉬운 마음까지도 짐 속에 챙겨서 모두들 울진읍으로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발땅길풀 평화행동이 울진에서 열리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대형 엠프가 설치되었고, 서울에서 내내 우려먹었던 울진평화모임의 천으로 꾸며진 예쁜 플랭이 드디어 진짜 주인을 만나서 농협 입구에 걸렸다. 그 앞을 무대삼아 돌아가며 길바닥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는데,&amp;nbsp; 부끄럼 많은 울진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울진초등학교 아이들의 단아한 중창도 들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주말답게 가족단위로 외출한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나치며 눈길을 주었고,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을 발견한 아이들이 볼거리가 생긴 양 주변을 서성였다. 손에 들 것이 없어 허전했던 우리는 즉석에서 박스를 잘라내 피켓을 만들었다. 재활용 피켓이었다. 매직과 크레파스로 이라크에 빵과 의약품을, 돌아오라 자이툰 등등을 써서 꾸민 뒤, 길가에 펼쳐 세워 그렇게 평화를 행동했다. 외로움이나 슬픔 따위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amp;nbsp;것처럼 고요히 평화가&amp;nbsp;스며들었다.&amp;nbsp;&amp;nbsp;정말로 그 때 우리는 평화로웠다. 이라크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319&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99cc00&gt;▲ 우리가 올랐던&amp;nbsp;언덕배기&lt;/FONT&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318&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99cc00&gt;▲ 발바닥 광주분들, 경연언니랑 경희언니.&lt;/FONT&gt;&lt;/P&gt;
&lt;P&gt;&lt;BR&gt;&amp;nbsp;발땅길풀 평화행동을 끝내고 난 뒤, 간단히 야외 식사를 즐기러 박기범씨가 안내하는 무덤가 언덕으로 올랐다. 언덕배기에 오르자마자 광활한 바다가 내려다 보여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소였다. 이곳이 너무나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울진에 유명한 유기농 농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솔깃한 적 있었는데, 이런 대자연을 마음껏 누리고 있으니 그것마저 인위적 느낌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먹을거리, 볼거리, 놀거리와 공부할 거리 모두 자연친화적일 것 같은 여기 주민들의 삶이 순간 부럽기도 했다. 서울이 오염, 범죄, 온갖 파괴로&amp;nbsp;얼룩져 보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여기 현실이 겉보기와는 달리 좋지많은 않을텐데, 또 여기라고 해서 자본주의적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도 않을텐데, 그래도 나는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해진 일상에 너무 찌들어 있었던 탓인지 문득 서울보다는 울진에서 사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이렇게 불쑥 찾아온 만감을 뒤로하고 마치 잠깐의 외도를 경험한 것 같은 기분으로 서울로 향했다. 1박이라는 짧은 시간동안&amp;nbsp;식구라는 맘이 들만틈&amp;nbsp;푸근했던 울진 분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은 매우 컸다. 그래도 마치 조만간 또 만날 것 같은 야릇한 친밀감은 여전히 남았다.&amp;nbsp;그래서 그런지 안녕이라는 말은 잘도&amp;nbsp;나오는 것 같았다. &lt;/P&gt;
&lt;P&gt;&amp;nbsp;서울로 돌아가는 차&amp;nbsp;뒷자석에서 곤히&amp;nbsp;잠 들었다가 트롯트가 너무 크게 울려나오는 휴게소에서 깬 뒤, 다같이 라면을 훌훌 먹으며 이번 발땅길풀 여정의 마지막 우정을 나누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발땅길풀 사이에 맺어진 무언의 약속이 마음에 담겨지는 그날의 이별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face=&quot;Courier New&quot; color=#00ccff&gt;&amp;nbsp;&amp;nbsp;&lt;FONT color=#ffcc00&gt; 광주에 사는 경연언니를 집에 데려와 같이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그만 잠결에 채식을 해 보겠다는&amp;nbsp;생각지 못한&amp;nbsp;다짐을 해 버렸으니, 앞으로 이를 어이 지킬지 고민인고로....&lt;/FONT&gt;&lt;/FONT&gt;&lt;/P&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울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울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죽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죽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길바닥 평화행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길바닥 평화행동&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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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라크모니터팀 같이 할까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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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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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11-25T22:40:12Z</updated>
	    <published>2008-11-25T22:40: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gt;&lt;STRONG&gt;
&lt;P&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f65dd&quot; color=#ffeaf8&gt;2006년 1월 16일&amp;nbsp;&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니터링 하다보면 하기 싫어진다.&lt;/P&gt;&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1년을 도둑맞은 듯, 이라크모니터팀 보고서를 써 온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지나왔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일단 초고속 인터넷망 덕분으로 모니터링 자체가 가능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라크 전쟁과 자이툰 파병을 둘러싼 기본 언론자료조차 체계적으로 수집․ 분류화 되지 못하는 평화운동 내 쪼들린 사정에 우리라도 변변치 못하겠지만 모니터링을 내놓자는 것이 그 ‘출발’을 낳았던 것이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처음 몇 명이 모이긴 했으되, 일단은 카테고리 구분, 서술 방식, 소스공유 등의 기본 틀까지 하나하나 정하는 것부터 진행해야 했다. 돌아보면 노련한 경험과 깊은 지식이 부재했던 객관적 조건이 작용했었음에도, 서로간 신뢰와 수고를 밑천삼아 뛰어들었던 것이 오히려 풍요로운 시작으로 남는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하지만 1년이 가깝게 이라크모니터팀 보고서를 써 왔으면서도, ‘전쟁’이라는 끔찍한 주제를 놓고 모니터를 정기적으로 쓴다는 것은 영 달갑지 않은 일은 분명하다. 자료가 누적되고 모니터 보고서 분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이만큼 커져버렸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유용한 소식이 실린 웹사이트를 모조리 뒤져가며 이라크 상황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게 정녕 지구상 인간사회에서 저질러질 법한 일인가라는 자조와 한탄이 새어나오고, 이어 수집한 내용들을 가다듬으면 가다듬을수록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삶의 희망들이 비참함과 무력감으로 절어 버리게 만든다. 이를테면 상상도 하기 싫고 입에 담기도 싫은 이야기들, 누가 얼마나 사망하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으며 또 얼마나 비참한 점령현실을 겪고 있나 또 그런 사실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나 영상은 어디 없나와 같은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떠올리면, 얼마나 슬프고 손대기 싫은지.&lt;BR&gt;&amp;nbsp;&lt;BR&gt;&amp;nbsp;아이러니하지만 반면에 글은 점점 더 쉽게 써진다. 모니터링을 1년여 하고 난 덕분인가보다. 그러나 이내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한낱 문장들만 열거한 뒤, 이것도 평화운동의 하나라고 스스로를 위안삼는 것은 아닌가... 상황은 이렇게 심각한데 정작 나는 밀폐된 공간에서 자리앉아 글 쓰는 데 그치다니, 넌 얼마나 무력한 인간인가...와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스스로를 허비하는 어리석은 시간을 때우는 것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모니터를 받아보시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줄곧 이런 이유 때문에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곤 했다. 다 쓰고 나면 마음이 너무 무겁고 괴로워진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그런데도 나는 아직 이성의 지배를 강하게 받고 있나보다. 다른 필요한 잡무까지 도맡아 꾸준히 보고서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 살아가는 방식이 대개 그러하듯이.&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gt;&amp;nbsp;&lt;STRONG&gt;보고서를 쓰는 이도, 읽는 이도 더 많아졌으면.&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내용이 한정될뿐더러 편향적이다 못해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막힌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국내언론을 더 이상은 믿지 못하다보니, 모니터를 쓸 때는 외신과 각종 영문 웹자료들을 직접 뒤져보는 것이 속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거다 싶은 내용을 발견하고 분석한 뒤, 다시 보고서로 가공하는 작업이 손쉽지는 않다. 초기에는 2~3일을 꼬박 갖다 바쳐야 할 때도 많았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나뿐만이 아니라 모니터팀 구성원 모두가 틈틈이 시간을 짜내서 겨우 보고서를 작성하고, 어떻게든 내용을 널리 알려내기 위해 수 천명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메일링을 돌리고 여러 웹사이트에 개재도 하고 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그러나 강력한 구심점이 소실되가는 국내 이라크 반전운동에서 현 이라크모니터팀 보고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더구나 대중들의 관심영역 밖인 이 딱딱한 글들을 생산하는 것이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일까도 싶다. 그런데도 왜&amp;nbsp;나는 심적인 괴로움을 감당하고서라도 이 일을 &amp;nbsp;계속&amp;nbsp;하고 있는&amp;nbsp;걸까? 그리고 왜&amp;nbsp; 더 많은 사람들이 모니터링에 동참했으면 하는 걸까?&lt;BR&gt;&amp;nbsp;&lt;BR&gt;&amp;nbsp;나의 대답은 이렇다. 모니터팀 보고서는 단순히 ‘사실’을 발췌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된 ‘진실’을 다시금 저들에게서 빼앗아 오는 작은 투쟁일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로 읽는 전쟁의 코드와 점령하에서의 이라크 민중들이 겪는 전쟁의 코드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어렵지만 이에&amp;nbsp;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자 하는 우리들의 시도들이 있음으로써, 소중한 사회적 주제들이&amp;nbsp;다시금 형성되고, 그 동심원들이 넓게&amp;nbsp;퍼져나가길 꿈꾸는 것이다. 거짓정보와 정치적 광기로 얼룩진 이라크 전쟁에서의 역사적 성찰이 있으려면, 지금&amp;nbsp;이같은&amp;nbsp;어린&amp;nbsp;손길들도 필요한 법이리라.&lt;/DIV&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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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살람도 울고 나도 울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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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은</name>
	    </author>
	    <updated>2008-11-25T22:28:21Z</updated>
	    <published>2008-11-25T22:28:2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gt;&lt;B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f65dd&quot; color=#e6ecfe&gt;2008년 5월 8일&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height=100&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2&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blog.ifis.or.kr/blog/thumbs.php?file_id=33&amp;width=500&quot; name=attach_image&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2&gt;2004_12_05 광주에서&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ize=2&gt;&amp;nbsp;&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터키에서 열리게 될 이라크국제전범재판을 앞두고 몹시 분주한 가운데, 메신저에서 살람을 만나게 되었다.&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작년&amp;nbsp;한국전범재판 때 증인으로 살람과 하이셈이 이라크에서 직접 왔었고, 그 때 나는 지역증언대회를 돌면서 그들의 수행을 잠시 맡아 며칠을 꼬박 붙어 지낸적이 있다. 그 때 우리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자주 주고받던 메일도 점점 뜸해지고 있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어제 보내야 했을 메일을 내일로 미루고 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었다.&lt;/SPAN&gt;&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그런데 이틀 전, 살람을 메신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는 터키에서 열리게 될 국제전범재판에 참여하려고&amp;nbsp;전전긍긍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지금의 이라크 전쟁이 극도로 악화되 가고 있다고 여겨,당장 정확하게 '알려야' 할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메신저에서&amp;nbsp;나를 찾아 온 것이었다. &amp;nbsp;하지만 너무 시기가 늦어 살람을 터키측에서 초청인사로 결정하기는 어려운 듯 보였다. 그 쪽에서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lt;/SPAN&gt;&lt;/FONT&gt;&lt;/P&gt;&lt;BR&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늘 다시 살람을 만났다. 이번에는 둘 다 여유를 가지고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현재 이라크가 새로운 전쟁이 또 하나 벌어지고 있다고 그랬다. 그것은 내전에 관한 것이었다. 수니와 시아파간 분쟁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었고 보이는대로 죽이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고 그랬다. 친이란계 알다와당의 테러는 도를 넘어서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란이 넘겨 준 테러목록을 가지고&amp;nbsp;조직적으로 테러를 수행하고 있다.&amp;nbsp;그걸 모두가 잘&amp;nbsp;알고 있지만 그들의 권력에 감히 대응할 수가 없는 실정이란다. 이러한 각종 테러와 전쟁의 위협속에서 생활상의 고통도 토로했다. 전기가 6시간에 한시간씩 들어오기 때문에 그는 지금 인터넷까페에 왔다고 그랬다. 수도시설 또한 후세인시절부터 써 오던 시스템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어서&amp;nbsp;물이 매우&amp;nbsp;더럽다고 하였다. 그가 가장 우려스러워 하는 것은 식량문제였다. 현 정부는 한 달에 한번씩 먹을 음식을 할당해 주는데, 주로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에서 수입해오는 이 음식들 안에는 쇠(iron)가 들어 있을 정도로 형편없다고 한다. 제대로 먹을 게 없다는 말이었다.&lt;/SPAN&gt;&lt;/FONT&gt;&lt;/P&gt;&lt;BR&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매일 울다시피 지낸다고 한다. 신에게 기도하는 일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랬다.&amp;nbsp; 이전에 한국에서 기운없던 나를 오히려 즐겁게 해주고&amp;nbsp;&amp;nbsp;위로해&amp;nbsp;주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딸에게 줄거라고 귀여운 망토를 사서 나에게 자랑하며 뿌듯해 하던 얼굴까지도. 그는 푸근한 웃음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아랍 아저씨이다.&amp;nbsp; 그 모든 모습들이 교차되었다.&lt;/SPAN&gt;&lt;/FONT&gt;&lt;/P&gt;&lt;BR&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는 그를 위로하면서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수차례 말해줬다. 말하면서도 동시에 이게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니길 나 자신에게도 일러주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통탄할 노릇이었다. 내 마음속은 한 켠으론 한국에서 당신들의 전쟁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난 그래서 그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참 없는 것 같아요.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lt;/SPAN&gt;&lt;/FONT&gt;&lt;/P&gt;&lt;BR&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매일 자신을 훈련시키면서 힘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내겐 잊을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amp;nbsp; 소름끼치는 전쟁의 비참함을 어떻게든 물리쳐 가며, 그나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해 보려는 그의 애씀이 읽혀졌다.&amp;nbsp; 매일 주변에서 벌어지는 전쟁범죄들이 너무 많다고... 그래서 나는 그걸 모두 적으라고 그랬다. 일단은.&lt;/SPAN&gt;&lt;/FONT&gt;&lt;/P&gt;&lt;BR&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살람은 그렇게 해 보려고 하지만 너무 많다고 ... 그렇지만 곧&amp;nbsp;보고서를 적어서 보내주겠다고 그랬다.&lt;/SPAN&gt;&lt;/FONT&gt;&lt;/P&gt;&lt;BR&gt;
&lt;P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 size=2&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살람이 6월 국제전범재판에 오려고 하는 목적. (물론 살람이 비자를 얻는 일과 오기까지 소요될 여러비용 문제까지 어떻게든 최대한의 도움을 줘야 가능하겠지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도 거기에서 한발도 나가지 않고 그와 동일한 마음으로 터키로 가리라 생각하던 그 순간 눈물이 나왔다...&lt;/SPAN&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터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터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평화운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운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이라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라크&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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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ot;술루 군도에 평화는 언제쯤...&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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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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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8-11-25T22:15: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003399&gt;프레시안 2007년 2월 28일 기고했던 글.&lt;/FONT&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섬이지만, 관광객들은 다들 피해간다는 필리핀 술루(Sulu) 군도.&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그동안 마닐라에서 민다나오 섬의 다바오를 거치며 만났던 필리핀 활동가들 대부분은 내가 술루로 가고 싶다고 하면 일단 고개부터 내저었다. 어느 누구도 안전을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낯선 외국인이 혼자서 술루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정신 나간 행동인 양 반응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술루로 들어가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사람들을 설득했고, 결국 갈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열렸다. 무엇보다도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함께 동반한 2명의 현지 활동가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만약 그들이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술루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9시간 동안 배로 이동해야 하고, 가는 곳마다 군인들의 감시와 통제가 포진해 있는 곳.&lt;BR&gt;&amp;nbsp;&am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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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8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400&gt;&lt;RIMGCAPTION&gt;&lt;/RIMGCAPTIO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amp;nbsp;&lt;B&gt;해적에서 테러리스트가 된 모로&lt;/B&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예로부터 민다나오섬과 술루군도 일대는 다양한 부족민들이 주로 이슬람의 영향력 아래 그들 고유의 사회・정치적 기반을 형성하며 살아 왔다. 따라서 필리핀 무슬림인 '모로'들에게는 본래 '국가'라는 개념조차 없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그러나 19세기 스페인의 침략을 필두로 미국과 일본의 점령, 필리핀 정부의 지배정책을 거치며 모로랜드(필리핀 무슬림들이 살던 땅)&lt;A onclick=&quot;javascript:window.open('http://www.lawmarket.co.kr/temp/list.asp?site=pressian&amp;person_name=','personpop','toolbar=no,location=no,directories=no,status=yes,menubar=no,scrollbars=yes,resizable=yes,width=638,height=700');&quot; href=&quot;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0228105939&amp;s_menu=세계#&quot;&gt;&lt;FONT color=#660000&gt;&lt;/FONT&gt;&lt;/A&gt;는 필리핀으로 강제 통합되었다. 선조들의 땅을 억지로 빼앗긴 모로들은 당연히 이에 반발했고, 이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핍박과 수탈, 학살을 겪어야 했다. 1970년대 들어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의 한층 강도 높은 무력정책은 결국 이들을 '성명에서 총으로'라는 말이 보여주듯 무장투쟁으로 들어서게 만들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모로들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들의 '분리주의 운동'이란 부당한 역사적 과정을 바로잡고 억압당한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나 점령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나오면서 그들의 이런 행동들은 국가를 위협하는 범죄로 취급받았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인들은 모로들을 '해적'으로 명명하며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해적전쟁'이라고 정당화했다. 그 후 오늘날에는 미국과 필리핀 정부가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미군과 필리핀 군대는 테러리스트 그룹을 제거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2001년 민다나오, 술루 지역에서 바실란(Basilan)을 시작으로 모로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테러전'을 일으켰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기득권층과 정부에 의해 왜곡된 생각에 젖어있는 필리핀의 많은 사람들은 남부의 모로들은 해적이나 테러리스트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모로가 몰려 있는 술루 군도는 마치 잠재적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위험지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gt;7만5000명의 난민을 낳은 대대적인 공습&lt;/B&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민다나오섬과 술루군도 일대에서는 최근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정부군의 공격으로,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 필리핀 정부와 맺은 평화협정의 의미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내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날그날 일상을 버텨 나가고 있을 뿐이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2005년 술루지역에서만 전면전이라고 할 수 있는 커다란 전쟁이 두 번이나 발발했다. 그 해 2월, 정부군에 의해 모로민족해방전선에 속한 사람의 가족 3명이 학살되는 만행이 벌어졌는데 살해된 사람들 중에는 임신 6개월 된 여성과 13살짜리 아이도 포함돼 있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이 끔찍한 소식은 곧 모로민족해방전선과 정부군 간의 치열한 교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정부군은 며칠 동안 술루 섬 일대 도시들을 향해 사정없이 폭격을 퍼부었고, 18개의 주요 도시들 중 9개 이상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불과 며칠 만에 7만5000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당시 목격자들은 미군이 직접 비행기를 몰며 전투에 참가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미군은 그동안 인도주의적 활동을 위해 술루에 주둔해 왔고 그 외에는 필리핀 군부대의 기술적 조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정부 측의 주장이 완전한 거짓말로 들통났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이어 같은해 11월 11일, 휴전상태 9개월을 넘기지 못 하고 미군과 정부군은 군사공격을 재개했다.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아부 사야프를 공격한다고 하면서 주로 모로민족해방전선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역인 인다난(Indanan) 지역에 폭격을 가했다. 그 결과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난민으로 전락했고,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아 수용소로 끌려가는 참사가 벌어졌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결국 내가 술루로 들어가기 불과 얼마 전, 필리핀 정부는 '과격무장단체'인 아부 사야프(Abu Sayaf) 지도자 한 명이 정부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진실은 아부 사야프의 지도자가 정말로 정부군의 손에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부군과 미군의 군사공격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쳐야 했으며,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집과 마을로부터 쫓겨나야 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gt;쫓겨난 모로들 &quot;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quot;&lt;/B&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군사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인다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처참했다. 군사공격을 피해 도망치듯 빠져나온 사람들은 새로운 지역에서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가정에서는 어린 아이가 고열로 신음하고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병원엘 데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이마 위에 찬수건을 올려주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외지에서 손님이 왔다고 먹을거리를 내오며 인정을 베풀 정도로 순박한 사람들이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인다난 지역 주민인 아이놀 씨는 &quot;원래 내가 살던 곳은 농사 짓기가 훨씬 나은 땅이어서 과일이든 채소든 언제나 먹을거리가 풍부해서 살기가 좋았다&quot;고 말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그녀는 가끔 너무 먹을 게 없으면 군정찰기가 여전히 하늘을 가르고 있는 예전의 살던 곳으로 가서 먹을거리를 몰래 구해 온다고 했다. 아이놀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것만이 자신에겐 평화라고 말했다.&lt;BR&gt;&amp;nbsp;&am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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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8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400&gt;&lt;RIMGCAPTION&gt;&lt;/RIMGCAPTIO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lt;BR&gt;&amp;nbsp;&amp;nbsp;필리핀 정부군과 미군의 군사공격에 의해 죽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놀 씨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삶의 희망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폭격으로 마을이 초토화되어 고향을 등지지 않게 되기를, 본의 아니게 군사적 충돌에 휘말려 분쟁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평화롭게 농사 지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나는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오늘처럼 내일도 매일같이 마음 속 깊이 꿈꿀 것이다. 모로들이 평화와 인권을 찾게 되기를. 그 꿈이 지금도 온갖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의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불의에 저항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힘으로 언젠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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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화운동, 새로운 길을 나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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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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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11-25T16:50:50Z</updated>
	    <published>2008-11-25T16:50:5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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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lt;IMG height=302 alt=&quot;-2008 한국 평화활동가대회 참가 후기-&#13;&#10;    평화운동, 새로운 길을 나서다 &#13;&#10;    글_ 지은(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quot;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1.jpg&quot; width=550&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height=133 alt=&quot;아름다운재단 ‘2008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 사업으로 “2008 한국평화활동가대회”가 ‘평화운동, 새로운 길을 나서다’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충북 괴산 조령산 자락에서 열렸습니다. 약 70여명의 국내 평화활동가들이 모여 평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다양한 상상력을 쏟아 냈던 열정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quot;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2.gif&quot; width=529 vspace=20&gt;&lt;/DIV&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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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
&lt;P align=justify&gt;&lt;SPAN lang=EN-US xml:lang=&quot;EN-US&quot;&gt;2008 평화활동가대회를 다녀왔다. 대회가 열리는 곳은 충북 조령산에 위치한 이대 고사리 수련원이라는 곳이었는데 도착지로 서서히 다가갈수록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쾌한 기분이 더해져서인지 이번 대회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5&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IMG height=21 alt=&quot;내가 '평화활동가'?!&quot; hspace=15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3.gif&quot; width=156&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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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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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
&lt;P align=justify&gt;올해로 5회 째를 맞게 된 한국평화활동가대회는 제목에서도 대충 알 수 있듯이 국내 평화운동의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따라 매 년 개최되어 왔다. 그간 ‘평화활동가’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져서인지 대개 평화와 관련된 이슈에 관심을 둔 전문가, 학자, 시민단체 활동가, 대학생, 교사 등의 사람들이 주로 참여해 왔다. 사실 평화란 개념은 굉장히 모호하고 포괄적일 수 있어서 저마다 평화에 대한 상이 다르고,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일 수 있다. 올해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진행된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이번 대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나 개인 관심거리, 활동하는 분야가 무지개 색깔을 모아놓은 것처럼 다양하게 느껴졌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5&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IMG height=21 alt=&quot;창의적인 협력을 발휘했던 '참여형 워크숍'&quot; hspace=15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4.gif&quot; width=303&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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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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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
&lt;P align=justify&gt;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마자 ‘평화운동의 희망과 좌절’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우선 조별로 나뉘어져 그림 등의 이미지를 통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고, 이를 다시 정리해 퍼포먼스 등으로 조별 결과를 공유했다. 대개 올해 평화운동의 좌절에 대해서는 크게는 경제위기와 빈곤, 국가폭력 심화, 그리고 일상에 만연한 폭력 및 갈등 문제가 지적되었다. 반대로 평화운동의 희망에 대해서는 한창 뜨거웠던 촛불의 힘이 화두가 되었다. 이런 것들을 형상화하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아이디어를 낸 뒤 노래, 연극, 그림 등을 만들어 보았다. 이런 방식은 서로가 금방 친해지기에도 좋았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DIV align=center&gt;&lt;IMG height=233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5.jpg&quot; width=537 vspace=20&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 align=justify&gt;참여형 워크숍은 이튿날에도 계속되었다. 이 날은 평화운동의 방법론을 고민하는 '유쾌발랄한 평화행동 발명하기', 평화운동가로서 지속가능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보는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 평화운동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평화운동의 경계 허물기', 이렇게 세 주제로 나뉘어졌다. 내가 속했던 조는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가 주제였다. 평소 평화활동가로서 들었던 삶 속의 고민과 희망을 솔직담백하게 나누고 또한 이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매우 재밌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동력요소에 해당되는 ‘뿌리’와 제도나 시스템에 해당되는 ‘줄기’, 창조적인 개선 아이디어를 ‘잎’으로 표현해 보았다. 여기서 나왔던 구체적인 아이디어들 중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역할 활성화, 활동가 안식월 제도 안착화, 사회복지문화 시설 사용 지원 및 활동가에게 혜택을 주는 마일리지 카드 제작, 은퇴한 활동가들이 모인 공동체 설립 등이 나왔다.&lt;/P&gt;
&lt;P align=justify&gt;&lt;SPAN lang=EN-US xml:lang=&quot;EN-US&quot;&gt;‘평화운동의 경계 허물기’라는 워크숍에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존재하는 편견과 선입견, 차별, 타인과의 차이를 넘지 못하는 장벽 등의 문제들이 공유되기도 했다. 이러한 경계를 허물어가며 평화운동의 영역과 의제를 넓혀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한편으로는 각자의 활동에 치중하며 바삐 살아가는 현실의 딜레마가 존재하고 있어서 어떻게 운동의 다양성이 조화롭게 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질문과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5&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IMG height=20 alt=&quot;웃음꽃 활짝 피웠던 피스까페 프로그램들&quot; hspace=15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6.gif&quot; width=294&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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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 align=justify&gt;평화활동가대회를 준비했던 ‘피스까페팀’은 그간 척박한 사무환경 속에서 고단한 노동을 해 왔던 활동가들이 모처럼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및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이를테면 로비에 마련된 평화다방에는 온종일 커피 향기가 감돌고 있으며 참가자들이 직접 꾸민 자기소개 카드 전시, 짬짬이 찍은 행사 사진 슬라이드 상영회 등의 볼거리들이 널려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기가 속한 단체와 활동 홍보도 하면서 따스한 이야기꽃, 웃음꽃을 피웠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250&gt;
&lt;P align=justify&gt;그리고 컬러테러피, 운동회 및 공동체 놀이, 수다방, 등산로 산책, 스윙댄스 강습 등과 같은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수시로 열어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중 스윙댄스 시간에는 댄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어느 새 춤에 빠져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달아오르는 분위기는 밤까지 이어져 노래와 춤으로 흥겨운 뒤풀이가 매일 벌어졌다.&lt;/P&gt;&lt;/TD&gt;
&lt;TD width=280&gt;
&lt;DIV align=right&gt;&lt;IMG height=233 alt=&quot;공동체 놀이에 흠뻑 빠진 참가자들&quot;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7.jpg&quot; width=267&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5&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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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height=20 alt=&quot;우리를 평화활동가대회로 이끄는 그 무엇&quot; hspace=15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8.gif&quot; width=293&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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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amp;nbsp;&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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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align=center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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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align=justify&gt;불과 2박 3일동안 70명 정도의 사람들 얼굴과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 있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평화활동가대회에서는 그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그만큼 여기에 온 얼굴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름답고 가깝게 느껴졌다. 특히 부산, 제주, 청주 등 먼 거리도 마다않고 힘들게 찾아온 평화활동가들도 있었다. 여기 모인 참가자들에게는 이번 대회가 아주 소중한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lt;/P&gt;
&lt;P align=justify&gt;이런 감동과 여운을 나누기 위해 평화활동가대회 마지막 인사는 언제나 ‘허그’로 끝맺는다. 참가자들 모두 돌아가며 서로를 꼭 껴안는데 때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사람들도 보이곤 한다. 올해도 사람들은 뜨거운 마음을 맞대며 서로의 활동을 격려하고 내년 평화활동가대회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나 역시 헤어짐 자체가 못내 아쉬워 어찌할 줄 몰랐다.&lt;/P&gt;
&lt;P align=justify&gt;이번 평화활동가대회를 통해 평화운동에 대한 비전을 키우는 동시에 연대와 나눔의 싹을 키우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든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평화운동은 걸음마 수준이고, 또한 우리에게 내재된 평화감수성마저도 너무 부족해 보여, 때론 평화 그 자체가 저 산 너머 무지개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추상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 ‘2008 한국평화활동가대회’에서 바로 그 평화운동의 험난하면서도 긴긴 여정을 향해 희망의 팔을 쭉쭉 뻗어 본다. 그 용기는 이런 소중한 경험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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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align=center&gt;&lt;IMG height=233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09.jpg&quot; width=536 vspace=20&gt;&lt;/DIV&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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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align=right&gt;&lt;A href=&quot;http://blog.peoplepower21.org/Peace/30694&quot; target=_blank&gt;&lt;IMG height=21 alt=&quot;사진출처 : http://blog.peoplepower21.org/Peace/30694 &quot; hspace=15 src=&quot;https://www.beautifulfund.org/foundation/files/08_garden/grant_essay_081118_10.gif&quot; width=264 border=0&gt;&lt;/A&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평화운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운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이대 고사리 수련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대 고사리 수련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피스까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피스까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2008 한국평화활동가대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2008 한국평화활동가대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IzI&amp;amp;tagName=변화의 시나리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변화의 시나리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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