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xml-stylesheet href="http://pimg.daum-img.net/whsnake/css/atom.css?ver=1.0" type="text/css"?>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version="1.0" >
  <title>이재봉의 평화 세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blog.daum.net/xml/atom/pbpm21"/>
  <rights>이재봉</rights>
  <author>
    <name>이재봉</name>
    <uri>http://blog.daum.net/pbpm21</uri>
  </author>
  <generator uri="http://blog.daum.net" version="1.0">Daum blog (blogmaster@daum.net)</generator>
  <id>tag:blog.daum.net,2009:pbpm21</id>
  <updated>2009-10-26T14:21:47Z</updated>

  		<entry>
	    <title>얼마나 많은 돈과 병력을 보내게 될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7"/>
		<id>tag:blog.daum.net,2009:pbpm21.177</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10-26T14:21:47Z</updated>
	    <published>2009-10-26T14:21: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얼마나 많은 돈과 병력을 보내게 될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이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대외정책 목표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끝내는 것이지만, 어느 쪽에서든 전쟁이 끝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지 8년이 지났는데도 알카에다와 탈레반 세력이 뿌리 뽑히기는커녕 그들의 공세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부활을 미국의 안보에 대한 &quot;가장 큰 위협&quot;으로 간주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병력을 증강하면서 나토 동맹국들에게도 병력을 증강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2만 명의 미군을 보냈지만, 탈레반의 부활과 공세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양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무능과 부패로 민심을 잃는 한편 탈레반은 세력을 확장하면서 미군과 나토 동맹군을 공격하고 있으니 미국이 고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런 가운데 10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무려 4만여 명의 병력을 더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추가 파병으로 전쟁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2만 명의 미군을 보낸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에서 4만 명의 미군을 더 보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동맹국들에게 동참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유럽의 동맹국들은 추가 파병을 하기는커녕 철군을 원하고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예를 들어, 영국은 미국의 가장 믿음직한 동맹국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지만 2009년 6월까지 전사자가 220명에 이르게 되자 미국의 추가 파병 요청을 이미 거절했다. 전사자 130명을 넘긴 캐나다는 한 걸을 더 나아가 &quot;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절대 승리할 수 없다&quot;며 캐나다군을 모두 철수시킬 것이라고 했다. 2011년까지라는 철군 시기까지 밝혔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렇듯 나토 동맹국들이 추가 파병을 거절하거나 철군을 결정하자 미국은 10월부터 공개적으로 남한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방부대변인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남한의 &quot;금융 지원&quot;을 기대하는 발언을 한 데 이어 국방부장관은 남한의 &quot;군사 기여&quot;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돈과 병력에 관해 이렇게 에둘러 얘기하기만 해도 남한에게는 강력한 요구요 커다란 압력이다. 남한 정부는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의지도 배짱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할 말을 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도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명분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이라크 침략전쟁에 병력을 보냈는데, 미국과의 공조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압력을 버텨낼 수 있겠는가. 남한이 1960-70년대의 베트남 침략전쟁과 2000년대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가장 많은 병력을 보냈듯이,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도 궁극적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 mso-fareas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프가니스탄 파병 요구를 통해 보는 베트남 파병의 실상,&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맑은 고딕; mso-hansi-font-family: 맑은 고딕; mso-ascii-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고 이명박과 호찌민을 통해 보는 박정희와 김일성-&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 돈과 병력을 지원해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관한 보도를 접하며 40여 년 전의 베트남 파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전쟁 역시 온 세계가 비난했던 미국의 침략 전쟁이었는데, 남한은 미국의 지속적인 요구와 압력에 적극적으로 병력을 보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미국은 얼마나 염치없이 파병을 요구하고 남한은 얼마나 줏대없이 병력을 보냈는지 다음의 인용문을 읽어보기 바란다. 1966년 2월 당시 주한미국대사가 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의 일부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LEFT: 20pt; MARGIN-RIGHT: 2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우리는 한국에 소수의 의료지원단을 요구해서 수백 명을 지원받았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큰 비전투부대를 요청해서 2,000명을 지원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전투사단을 요구해서 20,000명을 지원받았다. 잠시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더 많은 여단과 사단을 요청했는데, 약 30,000명을 지원받을 것 같다. 이제 한국인들이 이에 대한 결정을 굳힐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들에게 10,000명을 더 보내달라고 요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언제 끝날 것인가……. 이렇게 되면 약 60,000명의 한국군들이 베트남에 머무르게 되는데, 우리 미국보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2-3배 더 많은 것이다.&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LEFT: 20pt; MARGIN-RIGHT: 20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왕 남한의 베트남 파병의 실상을 밝히는 김에 북한의 베트남 지원에 관한 이야기도 한 토막 소개한다. 박정희가 막대한 병력을 베트남에 보내자 김일성이 1966년 10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LEFT: 20pt; MARGIN-RIGHT: 2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미국은 추종국이나 [남조선] 괴뢰 군대까지 투입해서 베트남을 침략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침략을 반대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저 정치적 지지나 보낼 뿐 군대를 보내서 미국과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로동당과 조선 인민들은 베트남 인민들의 투쟁을 자기 자신들의 투쟁으로 간주하며, 베트남 인민들을 돕기 위해서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하겠으며, 베트남 정부가 요청하면 우리는 지원군을 보내서 참전할 것이다. 미국은 그 어느 추종국보다 먼저 남조선 군대를 수만 명이나 월남에 파병해서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LEFT: 20pt; MARGIN-RIGHT: 20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에 따라 1966년 10월부터 비무장지대 주위에서 북한군의 무장침투 및 공격이 급증했다. 1967년에는 미군 2사단 막사를 폭파시키고 유엔군사령부 전방기지 구역 안에서 작업하던 미군 공병단 막사를 공격하는 등 북한의 침투가 114회에 이르렀는데 69회의 무장공격에 의해 미군 16명과 남한군 115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 사건들 대부분이 미군이나 남한군을 한반도에 묶어놓음으로써 베트남 추가 파병을 막기 위한 게 아니었겠는가.&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무렵 가장 심각한 북한의 도발은 1968년 1월 21일의 이른바 '청와대 기습 사건'일 것이다. 북한에서 잘 훈련된 30여명의 무장침투조가 &quot;박정희의 목을 따기 위해&quot; 청와대 근처까지 접근해서 남한 군경과 교전을 벌이게 된 사건이다. 이 때 유일하게 붙잡힌 김신조를 통해 북한 특수부대인 '124부대'의 실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그에 맞서 남쪽에서도 김일성을 죽이기 위해 특수부대를 만들었으니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영화 [실미도]의 '684부대'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로부터 이틀 뒤인 1968년 1월 23일엔 미국 해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발생했다. 북녘 강원도 원산항 앞바다에서 초현대식 전자 시스템을 갖추고 북한군의 동태를 정탐하던 미군 정보함이 북한의 해군 초계정에 붙잡혔는데 그 군함 이름이 푸에블로 (USS Pueblo)다. 세계에서 제일 강한 미국 해군함정이 나포된 것은 미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소련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가 아닌 &quot;3등국도 못되는 북한&quot;에 의해서. 게다가 그 배에는 해군 장교 6명과 사병 75명을 포함해 83명이 타고 있었으니 미국에게는 자국민들의 목숨까지 달린 심각한 사건이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에 미국은 베트남으로 향하던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USS Enterprise)호와 두 척의 구축함을 원산 앞바다 근처로 파견하는 한편,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B-52 전략폭격기와 F-105 전투폭격기 수십 대를 미국과 일본에서 &quot;남한 정부에 알리지도 않고&quot;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로 옮겼다. 북한이 의도했던 대로 된 셈이랄까. 즉, 북한의 청와대 기습이나 푸에블로호 나포는 남한이 베트남에 추가로 파병하는 것을 막고, 베트남으로 향하던 미국 핵 항공모함과 구축함들의 방향을 한반도로 바꾸도록 만들었으니, 김일성은 미국과의 전쟁을 무릅쓰고 &quot;베트남 인민들을 돕기 위해서 모든 가능한 노력을&quot; 한 셈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런데 미국 관리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돈과 병력을 지원해달라고 남한에 요구할 무렵 이명박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해 호찌민 묘소에 헌화까지 했다니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 박정희는 호찌민을 타도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을 보냈는데 박정희를 존경하며 닮고 싶어 하는 이명박은 호찌민에게 꽃을 바친 게 재미있다. 둘째,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quot;양국 간의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quot;고 말하자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에서는 온갖 비난과 항의를 퍼부었는데, 10년 뒤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의 원수이자 김일성의 동지였던 호찌민에게 꽃을 바친 데 대해서는 비난과 항의가 전혀 없는 것도 재미있다. 이제 남한의 보수 세력이 호찌민/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이루었듯이 앞으로는 머지않아 김일성/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이루리라 기대해본다.&lt;/SPAN&gt;&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베트남 전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베트남 전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호찌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호찌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푸에블로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푸에블로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아프가니스탄 파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프가니스탄 파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청와대 기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청와대 기습&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임진강 참사’와 다시 얼어붙는 남북관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6"/>
		<id>tag:blog.daum.net,2009:pbpm21.176</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9-15T14:31:27Z</updated>
	    <published>2009-09-15T14:31: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5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임진강 참사’와 다시 얼어붙는 남북관계&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남북관계가 쉽게 진전되지 않을 것 같다. 작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얼어붙기 시작한 남북관계가 지난 8월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방북 및 현정은 현대회장의 방북으로 풀릴 기미가 보였지만 9월 초 ‘임진강 참사’로 다시 경색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8월 초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북한에서는 억류하고 있던 두 미국인 기자들을 석방함으로써 북미관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클린턴이 ‘민간인’ 자격으로 방북했다고 하지만, 북한과 미국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당국 간의 접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주관하고 있는 클린턴 국무부장관의 남편이기도 하고, 그가 대통령을 지낼 때 대북정책을 담당했던 참모들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직접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0년 북미 공동선언의 당사자로서 북미관계 정상화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까지 떠올리면 머지않아 북미관계에 ‘중대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이와 아울러 북한은 남한에게도 화해의 손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8월 중순 현정은 현대회장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금강산 및 개성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등에 관해 합의했으며, 개성에 억류하고 있던 개성공단 근로자를 석방했다. 남쪽 사람들의 개성공단 출입제한 조치도 해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문단을 보내고, 조문단은 ‘역도’라 불러온 이명박 대통령도 만났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이렇게 북한이 보내오는 화해의 손짓에 남한이 선뜻 화답하지 않거나 못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임진강 참사’가 일어났다. 북쪽의 댐에서 막대한 양의 물이 임진강으로 방류되는 바람에 임진강 유역에서 야영하던 남쪽 사람 6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전에 아무런 통보 없이 물을 흘려보낸 북쪽 당국에도 책임이 있고, 강 수위가 불어나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남쪽 당국에도 잘못이 있지만, 지금의 남쪽 분위기는 북쪽을 비난하는 데 치우쳐있는 것 같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북한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남한 당국의 잘못과 책임이 크든 작든, 북쪽의 방류에 남쪽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면 북한은 원인 제공자로서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는 게 도리다. 남북 당국 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 데다 사전 통보 없는 방류가 지금까지의 관행이라 할지라도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최소한 유감의 뜻이라도 전해야 한다는 말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남쪽에서는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모면하려는 듯 북쪽의 책임을 부풀려 강조하며 반북여론 조성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통일부장관이 ‘의도적 방류’라고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국회에서는 ‘수공 (水攻)’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보수 신문들에서는 ‘물폭탄’이란 말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협약을 위반했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그런데 북한 당국의 사과나 유감 표명과 관계없이 남한 당국은 자신의 잘못과 책임에 대해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궁금하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은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사항을 이명박 정부가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남한 당국이 먼저 정상 간의 합의까지 무시하거나 어기면서 북한 당국이 남한에 사전 통보 없이 방류하거나 국제협약을 위반했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최근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연이은 서거를 맞아 민주주의 발전과 민족의 화해 및 통일에 대한 그들의 업적을 높이 받들겠다고 공언하면서도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것은 모순 아닌가.&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제 2의 ‘임진강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남쪽에 대응 댐을 건설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른바 ‘4대강 사업’으로 온 국토를 파헤치겠다는 마당에 수해 방지를 위한 대형 댐까지 세우겠다는 것은 자원의 낭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통일비용’보다는 ‘분단비용’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을 비추어보면,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안보를 튼튼하게 하며 경제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임진강 참사’와 관련하여 북한을 비난하며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것보다 북한 당국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협상을 벌이는 게 더욱 바람직하지 않겠는가.&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한편, 한반도 주변정세를 살펴보아도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먼저 미국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머지않아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모양이다. 9월 초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보좌관과 성 김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남한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제는 그들의 북한 방문만 남은 셈이다. 미국은 형식적으로 6자회담을 원하고 북한은 실질적으로 북미 양자회담을 고집하지만 만남의 형식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외교부 당국자의 말대로 6자회담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양자회담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일본에서는 8월말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 정권이 9월 중순 들어서게 됨으로써 북한과의 대화가 곧 시작될 전망이다. 곧 총리를 맡게 될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가 미국에 의존적인 외교에서 벗어나 아시아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에 북미관계에 크게 종속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북일관계를 진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념과 가치관이 다른 나라와도 공존공영을 도모한다”는 개념의 ‘우애 외교’도 내세운 터라 우선 일본인 납치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것 같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실용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널리 알려진 대로 ‘비핵, 개방, 3,000’이 핵심이다. “북핵 폐기에 진전이 있을 경우” 국제사회와 협조하여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 등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서 10년 내 북한국민 1인당 소득이 3,000달러 수준의 경제에 이르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결심을 보여준다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북한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이루어져야 경제협력을 비롯한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여전히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맴돌고 있는 게 문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이른바 북핵문제는 1990년대 초부터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의 현안이 되어온 것으로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게다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 남한의 보수층에서도 인정하듯 남한을 겨냥하기보다는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측면이 큰데, 여전히 핵문제 해결을 남북관계 진전과 연계시키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문제가 해결되거나 북한이 그런 결심을 보여주어야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고집에 매달리기 보다는 북핵문제 해결을 앞당기거나 북한이 그런 결심을 보일 수 있도록 남북관계를 먼저 개선해야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질 수는 없을까?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나 북일관계를 이끌지는 못할지라도, 남한이 미국이나 일본의 대북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반민족적 상황만은 만들지 말기를 기대한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원대신문], 2009년 9월 14일)&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대북정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북정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남북관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북관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임진강 참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임진강 참사&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본의 정권 교체와 한반도 주변 정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5"/>
		<id>tag:blog.daum.net,2009:pbpm21.175</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9-09T10:45:28Z</updated>
	    <published>2009-09-09T10:45: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일본의 정권 교체와 한반도 주변 정세&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8월 30일 실시된 일본 총선에서 반세기 이상 제 1당 자리를 지켜온 자민당이 참패를 기록하고 야당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1997년 한국의 대선에서 김대중씨가 당선됨으로써 약 50년 만에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나 2008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 같은 혁명적 사건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일본의 역사적인 정권 교체를 통해 한반도 주변 정세는 크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 차기 총리로 확정된 민주당 대표가 &quot;미국의 형편에 맞추는&quot; 외교에서 벗어나 미국에 일본의 &quot;의사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대등한 관계&quot;로 나아가면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협력을 중시하겠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은 오랫동안 경제력으로는 세계 2위를 지켜오면서도 외교에 있어서는 미국에 의존적이거나 심지어 종속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일본이 동아시아를 중시하겠다는 내용 가운데 한반도 주변 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대목은 북한과도 직접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밝힌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까지 미국의 부쉬 정부 및 일본의 고이즈미 정부와 북한에 대한 강경 압박 정책을 펴왔지만, 미국에서 온건한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데 이어 일본에서도 온건한 하토야마 정부가 출범하게 됨으로써 북한을 일방적으로 압박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마침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미 관계가 변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북미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quot;전술적 변화&quot;이겠지만, 이 기회를 이용해 남북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전시키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는 한편 미일 관계가 변하면서 중일 관계 및 북일 관계도 바뀔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미일동맹이 변하면 한미동맹도 바뀔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일본이 내세우는 &quot;아시아 중시론&quot;이나 &quot;동아시아 공동체 구상&quot;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꽉 막힌 남북 관계를 진전시켜야 되지 않겠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원대신문], 2009년 9월 7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남북 관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북 관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일본 총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 총선&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2)</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4"/>
		<id>tag:blog.daum.net,2009:pbpm21.174</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7-23T05:47:23Z</updated>
	    <published>2009-07-23T05:47: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2)&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1983년 대학졸업을 두어 달 앞두고 두 번째 회사생활을 하면서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1년 정도 돈을 벌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지요. 뉴욕시립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맨해튼 아래 브루클린 지역의 조그만 가게에서 일을 했지요. 온통 흑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동네 분위기가 꽤 험했습니다. 운전석과 승객석 사이에 방탄유리가 없는 택시는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였거든요. 물론 가게도 방탄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손님들이 유리창 밖에서 물건 이름을 대며 조그만 구멍으로 돈을 들이밀면 점원들이 물건을 내주는 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모가지 내걸어놓고 일하는 곳이어서 주인이 가게 안에 권총을 마련해 놓았는데, 언제부턴가 그가 권총을 가게에 보관하지 않고 갖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현금을 몸에 지니고 가게 밖을 나가는 게 너무 위험해서 그랬지만 불법이었지요. 그런데 이 사실을 동네 주민인 흑인 점원이 경찰에 신고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주인의 차를 타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데 뒤따라오던 경찰이 차를 세우더니 권총을 찾아내고 두 사람에게 즉시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데려가더군요.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상당한 벌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한국에서 재수할 때 주먹 한 방 날리고 한 달 동안 유치장과 감옥 생활을 맛본 터에,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불법무기 소지죄로 하룻밤이나마 유치장 생활을 경험해본 것이지요.&lt;/SPAN&gt;&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5)</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3"/>
		<id>tag:blog.daum.net,2009:pbpm21.173</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7-03T10:50:50Z</updated>
	    <published>2009-07-03T10:50: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5)&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앞에서 미국의 대학에 대해 잠깐 말했는데 미국에서의 ‘학교 폭력’에 관한 얘기 한 토막 전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대개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의 학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작은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겪었던 일이지요. 아들은 죠지아주의 한&amp;nbsp;공립학교에 다녔는데 대학에서처럼 학생들이 과목마다 강의실을 옮겨가며 수업을 하더군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어느 수업에 1학년 학생과 4학년 학생이 함께 섞여 있었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중3과 고3이 같은 수업을 받은 것이지요. 수업 중 1학년생이 선생님이 칠판에 글을 쓰는 동안에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등 많이 까불었답니다. 이에 4학년생이 수업 분위기 해치지마라며 점잖게 타일렀지만 1학년생의 장난은 그치지 않더랍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수업이 끝난 뒤 4학년생이 자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1학년생이 타는 버스에 올랐다가 그를 따라 내려서는 시비를 걸었답니다. 1학년생이 “니가 뭔데 그러느냐”는 식으로 대들자 싸움이 붙었고요. 그 학교에서는 고1이든 고4든 매일 오후 3시경에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학교버스로 학생들을 집집마다 태워다주는 시간이 일정한데, 1학년생 부모가 시간이 지나도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밖을 내다보니 다른 아이와 싸우면서 맞고 있더라는 거에요. 주저 없이 경찰에 신고했고, 4학년생은 다음날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답니다. ‘우발적’으로 싸우다 때린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1학년생을 집에까지 따라가 ‘고의적’으로 때렸다는 이유로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글쎄요, 우리 정서로는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하급생에게 점잖게 타일러서 안 되니 맨주먹으로 두어 대 때린 상급생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퇴학을 시키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요? 여러명의 학생들이 ‘계획적’이고 ‘고의적’으로 한 학생을 불러 ‘몽둥이찜질’을 해도 학교에서 쉬쉬하며 그냥 넘기려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학교 폭력’에 대해 한 번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연재를 마칩니다.&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학교 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학교 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4)</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2"/>
		<id>tag:blog.daum.net,2009:pbpm21.172</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7-01T10:23:25Z</updated>
	    <published>2009-07-01T10:23: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4)&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실제로 아이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제가 항상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고백하더군요. 한편, 큰아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던 반면, 작은아들은 다음날 숙제가 있는지 없는지 또는 시험을 보는지조차 모르고 결석을 자주 하면서도 성적이 잘 나오는 바람에 좀 얄미웠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이런 작은아들이 고2가 되어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제가 없을 때 엄마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더랍니다. 제 딴엔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아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하소연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아빠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이른바 1류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얘기도 털어놓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더랍니다. “내가 공부를 안 하고 있을 때는 아빠가 은근히 째려보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농구를 하거나 놀다 집에 들어오면 아빠는 책을 보고 있으면서 잘 놀고 왔느냐고 말하면서도 쳐다보는 눈빛이나 얼굴 색깔이 달라지잖아요. 차라리 다른 아빠들처럼 공부 안 한다고 몇 대 때리면 좋겠는데 야단을 안치는 대신 말없이 압박하는 게 더 무섭고 더 스트레스 받아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아내의 귀띔을 받고 두 아들에게 털어놨습니다. “아빠가 항상 강조하듯이, 난 너희들이 공부 잘하고 못 하고는 크게 따지지 않는다. 그건 능력이나 소질에 달린 문제니까. 그러나 열심히 하고 안 하고는 문제 삼고 싶다. 그건 의지나 생각에 달린 문제니까. 너희들은 공부를 너무 안 하는 것 같아 내 속이 조금 상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능력이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최선을 다 해 좋은 대학에 가기 바란다. 그 대신 아빠가 돈이 없어 사립대학엔 못 보낸다. 설사 너희들이 하버드나 예일에 붙더라도 내 돈 주고는 보낼 수 없으니 공부를 뒤집어지게 잘 해서 장학금 받고 사립대 가든지 아니면 좋은 주립대에 들어가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작은아들도 큰아들의 뒤를 따라 4년간 수업료 전액을 면제 받기로 하고 올해 8월 죠지아텍에 입학하기로 했습니다. 주립대 중에서는 가장 좋다는 버클리대학엔 떨어지고,&amp;nbsp;버클리대학보다 순위가 조금 앞서는 사립대학엔 붙었지만 아빠의 열악한 재정 형편 때문에 포기하고, 버클리대학보다 순위가 조금 뒤지는 주립대학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앞으로는 아이들이 공부 안 한다고 시선이나 낯빛으로 ‘무언의 폭력’을 가할 일도 없어진 것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3)</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1"/>
		<id>tag:blog.daum.net,2009:pbpm21.171</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29T11:17:53Z</updated>
	    <published>2009-06-29T11:17: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3)&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제가 하와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큰아들은 4살이었습니다. 제가 밤낮을 거꾸로 살며 논문을 썼는데 아이도 저를 따라 밤늦게 잠자리에 들고 싶어 했습니다. 하루는 일찍 자라고 하자 아빠는 일찍 안 자면서 왜 자기만 일찍 자라고 하느냐고 대꾸하더군요. 아빠는 공부하느라고 늦게 잔다고 하자 그럼 자기도 공부하겠다며 소파에 앉아 책 한 권을 거꾸로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그 때 글을 읽지 못했거든요. 그 모습에 킥킥거리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책만 붙들고 있으니 아이들도 책을 장난감 삼아 놀며 책읽는 시늉을 내는구나. 맞아, 가정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야.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조금도 필요 없어. 내가 항상 공부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면 저절로 따라할 테니까.’&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그로부터 3-4년 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둘이 경쟁하듯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엄마가 책방에 가서 동화책이든 위인전이든 사오는 대로 다 읽었지요. 책 한 권 끝낼 때마다 엄마가 100원씩인가 상금을 준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두 녀석 다 책과 마치 원수라도 진 것처럼 멀리 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아이들 앞에서 꾸준히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도 말입니다. 아이들이 ‘아빠는 어른이고 교수인데도 저렇게 책을 열심히 보니 학생인 우리는 더 열심히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갖기를 기대했었지만, 아내는 식탁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책만 붙잡고 있는 아빠에게 아이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진절머리가 나서 그런 것 같다고 진단하더군요. 제가 책만 붙잡고 있는 것이 아이들에겐 ‘모범’이 되기보다 스트레스를 주기 쉽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2)</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70"/>
		<id>tag:blog.daum.net,2009:pbpm21.170</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25T10:06:51Z</updated>
	    <published>2009-06-25T10:06: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2)&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저는 술을 즐겨 마시는데 밖에서보다는 집안에서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 고기나 생선 종류의 반찬이 있으면 술 한 잔 가볍게 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큰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술 냄새조차 맡으려하지 않은 반면 작은아들은 옆에서 맥주 한 모금씩 마셔보고 싶어 하더군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큰아들이 고3 작은아들이 고2 때인 어느 여름날 두 아들에게 주말에 무슨 중요한 계획이 없으면 금요일 밤에 술 좀 같이 마시자고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터라 아이들에게 술 마시는 법을 가르쳐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아내는 미성년자들에게 무슨 ‘음주 교육’이 필요하냐고 펄펄 뛰며 반대했지만, 아이들은 좋다고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아내에게 먼저 잠자리에 들라고 해놓고 세 남자가 맥주 한 상자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지냈던 얘기 등을 들려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이 얘기 저 얘기 물어보기도 하며 술자리를 즐기는데 큰아이는 맥주 3캔을 작은아이는 맥주 2캔을 비우고 난 뒤 머리가 이상해진다고 하더군요. 그게 바로 술을 더 이상 마시지말라는 신호라고 얘기해주면서 즉시 술판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대충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술은 말야 기분 좋을 때 마셔야지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날 때는 절대 마시는 게 아니야. 그럴 때 마시면 추태를 부리거나 사고를 저지르기 쉽거든. 그리고 기분 좋을 때도 머리가 어지러워진다든지 속이 거북해지면 즉시 멈추어야 해. 몸이 비틀어지거나 혀가 꼬부라질 때까지 마시는 일은 절대 없어야겠지만 만약 술이 취한 것 같으면 조용히 잠자리에 들어야 되고. 그게 건강엔 좋지 않다고 하지만, 추태를 부리거나 정신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몇 달 뒤 큰아들이 수능시험을 며칠 앞두고 두 번째 술자리를 갖고 싶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나는 날 친구들끼리 술을 마실 것 같은데 친구들과 마시기 전에 아빠와 한 번 더 마시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지난 여름 아이들에게 ‘음주 교육’을 잘 시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69"/>
		<id>tag:blog.daum.net,2009:pbpm21.169</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23T09:59:26Z</updated>
	    <published>2009-06-23T09:59: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1)&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제가 비폭력정치학과 평화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로 ‘집안일 함께 하기 (가사 분담)’를 실천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청소와 설거지를 맡고, 밖에서는 아내와 함께 장보기를 했지요. 이 가운데 설거지는 제 ‘전공 분야’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요리는 솜씨가 부족해 지금도 잘 할 수 없지만, 설거지는 특별한 기술 없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아이들이 어릴 때 설거지를 시키기는 어려웠지만 자신들이 사용한 수저와 밥그릇 등은 식탁에서 설거지통까지 각자 나르도록 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을 자주 집에 데려왔는데 그 ‘손님’들에게도 따라 하도록 하면서 자기들 집에 돌아가서도 그렇게 하라고 일렀고요. 제가 설거지를 담당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시킬 수 있었지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두 아들이 크면 아빠를 따라 설거지를 조금이라도 해주리라 기대했는데 고등학생이 되도록 수저와 밥그릇을 설거지통까지 나르기만 하지 설거지를 직접 할 생각은 갖지 않더군요. 몇 차례 점잖게 부탁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큰아들을 부엌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제가 비누칠을 하고 아이에게 행구도록 했지요. 다음날은 아이에게 비누칠을 하도록 하고 제가 헹구었습니다. 셋쨋날과 넷쨋날엔 작은아들은 부엌으로 끌어들여 그렇게 교대로 설거지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닷새째 두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아빠가 집에 없더라도 너희 둘이 설거지를 해봐라. 엄마가 너희들 때문에 고생하는데 설거지 정도는 너희들이 도와줄 수 있지 않겠니? 둘이 비누칠과 헹굼질을 나눠서 하든지 각자 하루나 일주일씩 당번을 정해서 하든지 설거지는 너희들이 맡아봐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며칠 뒤 집에서 피자를 먹을 때였습니다. 작은아들이 식구 숫자대로 접시 4개를 꺼내오자 큰아들이 소리치더군요. “야, 접시가 왜 필요하냐? 그냥 손에 들고 먹으면 되지.” 물이나 쥬스를 마실 때마다 새 컵을 쓰던 녀석이 직접 설거지를 해보더니 이렇게 접시를 사용하는 것조차 자제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0)</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68"/>
		<id>tag:blog.daum.net,2009:pbpm21.168</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19T08:22:38Z</updated>
	    <published>2009-06-19T08:22: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20)&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앞에서 두 아들의 나이차가 1년반 밖에 되지 않아 자라면서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자주 싸웠다고 얘기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더군요. 둘 다 풋볼이나 농구 등의 운동을 몹시 좋아하면서 친구 같은 형제로 다정하게 생활하는 가운데, 주먹질은 하지 않지만 얼굴이 벌개지도록 격렬하게 말싸움을 하는 경우는 가끔 있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큰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다음과 같이 얘기하더군요. &quot;아빠, 나 요즘 우호 때문에 미치겠어요. 저 새끼가 얼마나 개기는지 그냥 한 대 치고 싶을 때가 많은데 때리질 못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요.&quo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저도 농담을 섞어 웃음을 잃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그래, 형이 참아야지. 장하다. 근데 말야, 아빠한테는 지금까지 작은새끼보다는 큰새끼가 훨씬 더 많이 개기더라. 그 큰새끼가 18년 동안 개기는데도 한 대도 안 쳤으니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을까?” 아빠의 농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머쓱해하는 큰아들을 따뜻하게 껴안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습니다.&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9)</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67"/>
		<id>tag:blog.daum.net,2009:pbpm21.167</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17T08:34:44Z</updated>
	    <published>2009-06-17T08:34: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9)&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큰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이 닦는 걸 참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제 학생 너덧 명이 집으로 찾아와 술판을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자기들도 조금 더 놀다 자도 되느냐고 묻더군요. 늦어도 10시 안에 자는 게 방침이었는데 손님들 덕분에 조금 더 놀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조금 이따 잠자리에 들기 전엔 손님들을 핑계 삼아 양치질을 생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모양입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아빠, 오늘만 이 안 닦고 자면 안돼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왜 이를 안 닦아?&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그냥 오늘은 닦기 싫어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이는 닦기 싫어도 닦아야지. 안 닦으면 썩기 쉬워.&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하루 안 닦는다고 썩어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오늘 닦기 싫으면 내일은 닦기 좋겠니? 하루 안 닦으면 계속 안 닦게 되고 그러면 충치가 생기는 거지.&quot;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충치 생기면 금니 하면 되잖아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금니 하면 보기도 싫고 돈도 많이 들어가는데 그게 좋겠어?&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돈 많이 벌면 되지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멋있고 보람있는 일에 쓰는 게 더 좋지. 나중에 어쩔 수 없이 금니를 해야 된다면 모르지만 이를 잘 닦으면 건강도 지킬 수 있고 돈도 아낄 수 있는데, 이 닦는 게 싫어서 충치 생기게 하고 금니 하는 게 뭐가 좋을까? 그러니까 싫어도 닦자.&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아이가 알았다며 화장실로 들어가자 부자간의 대화를 지켜보던 한 학생이 그러더군요. &quot;교수님, 참 대단하십니다. 저 같으면 벌써 한 대 쥐어박았을텐데.&quot; 제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quot;내가 쟤한테 '이놈 새끼, 아빠가 닦으라면 닦아야지' 하며 한 대 쥐어박으면 즉각 화장실로 들어갔겠지. 그 대신 앞으로 아빠가 없을 때 이를 닦고 싶지 않다면 안 닦을테고. 아이가 이를 닦도록 설득하는데 몇 분이 걸린 대신 앞으로는 자기 스스로 이를 닦게 되지 않을까? 그게 폭력과 비폭력의 차이일세.&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8)</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66"/>
		<id>tag:blog.daum.net,2009:pbpm21.166</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15T09:28:10Z</updated>
	    <published>2009-06-15T09:28: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8)&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저는 &quot;정신연령은 20-30대이고 체력은 30-40대이며, 몸뚱이로는 반백인데 머리털로는 온백이다&quot;는 말을 즐겨 쓸 만큼 나이에 비해 머리가 많이 하얀 편입니다. 30대 후반부터 새치가 나기 시작했지요. 머리가 훌렁 벗겨진 전두환이 1980년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quot;머리 나쁜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쓰면 대머리가 되고, 머리 좋은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쓰면 흰머리가 된다&quot;는 말이 유행했는데, 제가 마침 박사과정을 밟을 때여서 좋은 머리로 공부를 많이 하다보니 머리가 하얗게 되었노라는 농담도 많이 했습니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저도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우리말이 서툴러 혹시 왕따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요. 제가 틈틈이 아이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축구를 같이 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기더군요. 아이 친구들이 제 흰머리를 보고 아들에게 제가 아빠인지 할아버지인지 물었다는 겁니다. 다른 아이들 아빠 엄마는 젊은데 우리 아빠 엄마만 왜 그렇게 나이가 많으냐는 불만도 털어놨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저는 이미 40을 넘겼거든요. 그러면서 강력한 항의 겸 애처로운 호소를 했습니다. 염색을 하라는 겁니다. 아빠 눈이 나쁜데 염색하면 시력이 더 떨어질 수 있고 한 번 하면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염색하는 게 좋지 않다고 설득해보았습니다만 그래도 해야 된다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불만과 스트레스가 꽤 큰 것 같더군요. 그러나 저는 나이에 비해 훨씬 어리게 보이는 동안인데다 교수라는 직업에 흰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터라 염색을 하기 싫었습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며칠간 궁리하다 꾀를 짜냈습니다. 제 학생 두어 명을 집으로 불렀지요.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놀다 제가 학생들에게 눈짓을 하자 그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언제부터 흰머리가 나셨어요?” “교수님 흰머리는 너무 멋있어요.” “저도 교수님처럼 흰머리가 나면 좋겠어요.” “택호는 내 흰머리가 너무 싫다고 염색하라고 하는데?” “어! 택호야, 정말로 그랬어? 야, 아빠 흰머리가 얼마나 멋있니? 형아 친구들도 다 그래. 그리고 염색하면 건강에도 나쁘대.”&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다음날부터 아빠에게 염색하라는 큰아들의 항의나 호소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젊은 아빠’가 되어 달라는 아이의 소원을 풀어주지 못한 대신, 아이에게 윽박지르지 않고 귀엽게 사기를 쳐서 불만을 해소해준 것은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겠군요.&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시국선언: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후퇴시키지 말라</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65"/>
		<id>tag:blog.daum.net,2009:pbpm21.165</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10T08:39:53Z</updated>
	    <published>2009-06-10T08:39: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시국선언:&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후퇴시키지 말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오늘 6.10 민주항쟁 22주년을 맞는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고 6월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죽는 참극을 계기로 수많은 국민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저항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2년이 흐른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죽음을 지켜보며 애도 및 추모의 확산과 함께 ‘제 2의 민주항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갖 희생을 통해 쟁취했던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 들어 명백하게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첫째,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해왔다. 작년에 들불처럼 번졌던 평화적 촛불시위를 강압적으로 막으며, 시민운동 지도자들은 물론 ‘유모차 부대’를 포함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을 남발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집회는 이른바 ‘원천 봉쇄’했고, 온갖 평화적 시위조차 ‘강제 해산’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우’하겠다면서도 애도와 추모의 발길조차 막기에 급급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둘째,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하며 신문이나 방송은 물론 인터넷까지 통제하거나 장악하려고 시도해왔다. 임기가 보장된 방송사 대표를 강제로 물러나도록 했고, 방송 내용과 관련하여 PD를 소환하기도 했으며 국내외의 우려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논객을 구속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여론의 반대와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관련 악법들을 만들어 신문과 방송을 정부의 홍보물로 악용하려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셋째, 소수의 기득권 계층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펴면서 다수의 서민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1월엔 용산 철거민들의 시위를 무리하게 진압하며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그리고 고용자들의 편에 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그들의 불만 표출엔 연행과 구속을 일삼으며 죽음으로까지 내몰아왔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넷째,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루어진 정부 간의 합의마저 무시함으로써 남북 관계를 크게 후퇴시키고 한반도를 갈등과 긴장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이전 정부들과의 이념 차이 때문에 대북정책에 변화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한 측면이 적지 않다. 나아가 고의적으로 ‘안보 불안’을 조성하여 난국을 돌파하려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섯째, 더욱 심각한 것은 위와 같은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점 때문에,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와 지식인 집단 심지어 여당 내에서조차 ‘사과와 반성’ 그리고 ‘소통과 화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여론을 무시한 채 검찰과 경찰의 물리력에만 의존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이명박 정부는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등의 언론을 통제하거나 장악하기를 시도하지 말기 바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서민들의 슬픔과 분노를 달래며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도록 노력하기 바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이명박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충격적 죽음으로 이끈 데 대해 사과하고, 검찰과 경찰을 앞세운 강압 정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를 중단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이명박 대통령은 다양한 계층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여 모든 국민과 소통하면서 야당과 시민운동단체들까지 국정의 동반자로 삼아 진정한 국민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009년 6월 10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민주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민주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남북관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북관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시국선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시국선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6.10민주항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6.10민주항쟁&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7)</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64"/>
		<id>tag:blog.daum.net,2009:pbpm21.164</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09T08:43:48Z</updated>
	    <published>2009-06-09T08:43:4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7)&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저는 3남 3녀 가운데 막내이고 아내는 2남 3녀 가운데 셋째인데, 제 형제들은 딸을 많이 두었습니다. 큰형네는 딸 넷을 줄줄이 낳고 아들 하나를 두었고, 큰누님네 역시 딸 넷을 낳은 뒤 아들 둘을 보았지요. 저는 아이들을 적어도 서넛은 두고 싶었습니다만 주위에서는 '원시인' 같다는 말을 건네더군요. 아무튼 딸이 하나도 없는 건 아직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교육비 때문에 아이들 둘 이상 잘 키우기 어렵다며 딸이든 아들이든 한 아이만 낳아 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아이에게 외로움이란 고통을 안겨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그런데 두 아들의 나이차가 1년반 밖에 되지 않아 자라면서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게 참 좋았습니다만 대신 잘 싸우기도 하더군요. 아빠가 보기엔 너무 사소한 일로 너무 어처구니없이 너무 자주 싸우는 게 짜증도 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그리고 작은아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였습니다.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둘 다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있으라고 했지요. '최초의 체벌'에 두 아들은 꽤 당황하며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녀석들의 싸움은 그치지 않더군요. 아이들에겐 싸움이 생활의 일부라는 점을 느끼고, 이와 아울러 어떠한 체벌도 싸움을 그치게 하지 못하리라 생각하여 체벌도 딱 한 번으로 끝냈습니다.&lt;/SPAN&gt;&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6)</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pbpm21/163"/>
		<id>tag:blog.daum.net,2009:pbpm21.163</id>
	    <author>
		    <name>이재봉</name>
	    </author>
	    <updated>2009-06-08T09:20:34Z</updated>
	    <published>2009-06-08T09:20: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asci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이재봉의 평화산책: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 (16)&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1994년 8월, 10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스물아홉 노총각으로 떠났다가 두 아이가 딸린 마흔 살의 아빠로 변해 돌아왔지요. 저는 시간강사가 되고, 아내는 영어 과외 선생이 되어 남편 대신 돈을 벌었으며, 큰아들은 여섯 살로 유치원에 들어가고, 작은아들은 온종일 집에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에게 장난감을 마련해주는 게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놀 때는 다양한 운동기구들을 즐겼는데 이웃의 또래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하면서 '폭력적 장난감'을 원하기 시작한 겁니다. 대강 다음과 같은 대화가 여러 차례 나누어졌습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아빠, 저 총 사줘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그건 안 돼.&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왜 안 돼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총이나 칼은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하니까.&quot;&quot;저건 진짜 총이 아니라 장난감 총이잖아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장난감으로라도 쏘거나 찌르는 버릇이 붙으면 나중에 진짜 총이나 칼 가지고 사람 다치게 하기 쉽지.&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다른 애들은 다 가지고 노는데 왜 우리만 안돼요?&quo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다른 애들이 나쁜 짓 한다고 너희들도 나쁜 짓 할래? 그리고 다른 아빠들은 애들 막 때려도 아빠는 너희들 절대 안 때리는데 그럼 아빠도 다른 아빠들처럼 너희들 때릴까?&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hansi-font-family: 한양신명조; mso-fareast-font-family: 한양신명조&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장난감 가게에서 총과 칼을 비롯한 '폭력적 장난감'을 빼곤 사줄만한 것을 찾기 어려워지더군요. 결국엔 아이들에게 지게 되었습니다. '물총'을 사주고 말았거든요.&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평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osZ&amp;amp;tagName=비폭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폭력&lt;/a&gt;
	    </content>
	    	</entry>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