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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문학적 여행 탐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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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6-01T10:59:0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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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양과 서양의 통합은 땀에 있다 -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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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6-01T10:59:08Z</updated>
	    <published>2009-06-01T10:59:0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카프라의 책을 읽는 내내 21세기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숙고하게 되었다. 즉 기계론으로 대표하는 근대적 세계관이 유기론으로 대표하는 생태적 세계관으로 변모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비로소 깊이 있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amp;nbsp;아마도 축의 시대 이래 진행되어진 일련의 가부장적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이지 않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렇다고 필자가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 즉 지금까지의 분리적 세계관에서&amp;nbsp;관계지향적인 세계관으로의&amp;nbsp;변화의 요청에 긍정적으로&amp;nbsp;동의한다는 점에서이다.&amp;nbsp;언제나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근본적인&amp;nbsp;동인을&amp;nbsp;설정하여 그것의 토대 위에서 사고하는 생각으로부터&amp;nbsp;떨어져 나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촘촘히 엮어진 관계의 그물 아래에서 판단하는&amp;nbsp;저자의 인식에 기꺼히 동의했다는 말이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규정함으로서 그 동안 혹독하게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틀 아래에서 시달렸던 관계의 주요한 축으로서 모든 자연에 대한 숨퉁을 열어주는 도구로서 저자의 견해는 유효하며 뿐만 아니라 독립된 실체로서 인식하는 각 입자의 중요성만 강조함으로서&amp;nbsp;자연 뿐 아니라 다른 인간들까지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생존하는 투쟁의 개별적 존재로서&amp;nbsp;인식을 뛰어넘어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이라는 가장 상식적인 그러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가장 몰상식하게 무시되었던 상식을 복원한 점에서 있어서 필자가 적극적으로 공감했다는 점이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추가로 저자의 동양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의 통합을 꾀한 점은&amp;nbsp;현재 서양 따라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남녁을 포함하는 대다수 개발도상국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amp;nbsp;않을 것이라는&amp;nbsp;사실이다. 즉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아니지마는 자신의 것에 대한&amp;nbsp;검토를 바탕으로 서양의 한계를 직시하고서 서양의 것을 수렴하는 일련의 작업의 단초를&amp;nbsp;제공받을 수 있다는&amp;nbsp;점이다. &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자가 현재의 서양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서 관계지향적인 전일적인 시스템으로의 생태학적 변화를 현 시대에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며 더욱 중요하게 저자 스스로가 이러한 자신의&amp;nbsp;사고가 현재 서양에서 벌어지고&amp;nbsp;있는 서구적 근대관에 대한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 시대적 요구로서의 패러다임의 변화 과정 중에&amp;nbsp;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러한 이러한&amp;nbsp;저자의 의견에 대한 근본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가지고 있는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 점은 저자가&amp;nbsp;지니고 있는&amp;nbsp;지나친 주관적인 인식론에 대한 경사이다. 다시 말하면 저자는 동양과 서양을 사상적으로 하나로 묶기 위해서&amp;nbsp;특히 불교의 화엄종을 수용한 듯한 느낌을 받았는 데&amp;nbsp;이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요점인 무의 개념을&amp;nbsp;사회적인 배경에서 이해가 아닌 인식론의 틀에서 인지함으로서 불교가 가지고 있는 동력을 무시하는 처사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즉 저자는&amp;nbsp;동양 사상을 통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이 단순하게 입자로 존재하는 개별자가 아닌 그물망 아래에서 존재하는 관계적 산물로 보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나 그렇다고 주로 불교가 주장하는 인식론적 허무에 바탕을 두어 결국 몇몇의 핵심적인 요소를 구성하고자 하는 의도에&amp;nbsp;현대의 물리학의 성과를 바탕으로&amp;nbsp;이론적으로&amp;nbsp;접합시키고자 하는 태도는 결국 양자역학이&amp;nbsp;주고 있는 핵심적인 것에 대한 특별한 관찰 능력을 지니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에게 대한&amp;nbsp;보호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amp;nbsp;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인간의 인식이&amp;nbsp;허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허상을 뛰어넘기 위해 특별한 종교적 태도 혹은 과학적 태도가 요청된다는 불교의 주장과&amp;nbsp;저자의 주장은 저자가 선호하고 있는 불교적 인식론이 가지고 있는 맹점으로서&amp;nbsp;결국 이러한 의식에 도달한만한 땀에 근거하지 않은 어떤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맹점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즉 생태학적 저자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이 가기는 하나 이러한 생태학적 태도는 식민지를 근거로 일정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한&amp;nbsp;지역의 혹은 계급의 사고임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요는 인식의 허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에&amp;nbsp;있다. 즉 이러한 삶의 고단함이 아무리 허상이라고 중얼거리고 외쳐대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인간의 실존에 있는 것이다. 바람직하나&amp;nbsp;일정하게 서양 지식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태도는 이미 개발의 단계를 넘어서서 자신의 모양의 것으로 장착하기 시작한 서구 사회에,그리고 개발도상국에 존재하더라도 존재의 고단함을 극복하여&amp;nbsp;일정하게 생태학적 심성으로 종교적 태도를 지닐만한 여유를 지닌 계급에게 - 인도에서 처럼 - 해당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지해야한다는 것이다. &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역동성, 즉 변화에 근거한 관계적 그물망은 분명한 우리의 삶의 반영임에는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망에 근거한 역동성을 우주의 영역에까지 확장하여 인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탁월한 인식이다. 동시에 이러한 인식을 과학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여 적용한 것은 매우 안목있는 태도임에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식을 근거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청하는 것은 시대적 소임에&amp;nbsp;충실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amp;nbsp;이러한 인식이 땀을 근거로 하는 모두가 땀을 흘려야한다는 땀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고&amp;nbsp;주관적인 관념에 빠진 채 인간의 의식에 기대는 종교적인 태도에 기댄다면 결국&amp;nbsp;공념불에 불과할 곳이라는 점이다. &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Batang&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회는 역동적으로 존재하는 그물망으로 충분하지 않다.&amp;nbsp;각각의 능력에 알맞는&amp;nbsp;크기의 그물추를 지니고 있는 것 역시 그물망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그럼 점에서 저자의 지적 태도는 여실하게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인지하고서 이 책을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통합,그리고 서양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한계의 극복은 결국 땀에 있다. 단지 지식인의 임무는&amp;nbsp;이러한 땀에 대한 복무로서 땀의 적절성을 보장하는 방향성의 제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역동성에 근거한 그물망의 주장은&amp;nbsp;일방적인 남의 땀메 대한&amp;nbsp;착취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나름 역할을 하고 있음까지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다. &lt;/SPAN&gt;&lt;/SPAN&gt;&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물리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물리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신과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과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프란시스 카프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프란시스 카프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신물리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물리학.&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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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맛집 청국장과 동네 청국장의 차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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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profound</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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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6-01T09:09:13Z</updated>
	    <published>2009-06-01T09:09: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최근에 두 군데에서 청국장을 먹었습니다. 한 곳은 강남에 분점을 두고 있을 정도여서&amp;nbsp;모 텔레비젼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amp;nbsp;제법 알려진 곳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운전하고 지나가다가 눈에 보이길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찾은 동네 귀퉁이에 있는 허름한 동네 음식점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전자는 깔끔합니다.&amp;nbsp;그리고 청국장의 냄새를 잡았습니다. 당연이 맛집이다보니 양은 쥐꼬리만하게 줍니다. 반찬도 한 두가지를 쥐꼬리로 담아 놓았습니다.&amp;nbsp;수육도 주문했었는 데 수육도 쥐꼬리입니다. 그래도 어쨌든&amp;nbsp;맛으로 용서를 해줄만 합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후자는 별로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텁텁하게 청국장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꼬릿하게 풍기며 입안으로 들어 갑니다. 반찬은 한 상 그득하게 놓여 있습니다. 수육까지&amp;nbsp;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든든하게 먹고 나왔습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독자 여러분! 혹 사람의 땀냄새를 아십니까? 모든 냄새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amp;nbsp;냄새는 어떤 것의 정체성의 표현입니다. 각자는 고유한 냄새를 지니고 있습니다. 김치는 김치 냄새를,&amp;nbsp;치즈는 치즈 냄새를,&amp;nbsp;된장은 된장 냄새를, 그리고 밥은 밥 냄새를 풍깁니다. 즉 냄새 그 자체가&amp;nbsp;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냄새를 풍기느냐가 문제라는 것이죠.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청국장에는 청국장 냄새가 나야 합니다. 사람에게서 땀냄새가 나듯이 말입니다. 음식은 전문가의 미학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땀냄새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의 모든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도 건축도 음악도 철학도 종교도 사람의 땀으로 존재합니다. 왜&amp;nbsp;이렇게 존재하는&amp;nbsp;가장 기본적인 이치를 사람들이 잊어버리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청국장에서 청국장의 냄새를 제거하는 것은 정체성의 파괴입니다. 제발 맛집 전문가들에게 부탁하노니 음식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십시오. 전문가의&amp;nbsp;미학적 가치가 아니라 그것의 존재 근거에 기반한 판단과 그것 속에&amp;nbsp;배여 있는 사람의 땀냄새를 느끼게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골목길 청국장에 음식을 먹고 계산하기 위해 방에서 홀로&amp;nbsp;나오니 작업복 입은 한 무리의 떼들이 열심히 그들이 만든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남이 만든 밥을 미학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가 이니고요.&amp;nbsp;&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맛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맛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청국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청국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맛은 땀이다. 맛은 노동이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맛은 땀이다. 맛은 노동이다&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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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느 블로그의 짊문에 대답하는 나의 인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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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9-06-01T08:35:26Z</updated>
	    <published>2009-06-01T08:35: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중요한 신조나 가치관 등이 형성되기 마련인데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여러분이 평소 꼭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무엇인가요? &lt;/SPAN&gt;&lt;/P&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MARGIN: 0px 0px 15px; LINE-HEIGHT: 1.8; PADDING-TOP: 0px; BORDER-BOTTOM: #ededed 1px soli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약자와 함께하는&amp;nbsp;삶.&lt;/P&gt;&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MARGIN: 0px 0px 15px; LINE-HEIGHT: 1.8; PADDING-TOP: 0px; BORDER-BOTTOM: #ededed 1px soli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거짓과 위선을 버리는 삶. &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MARGIN: 0px 0px 15px; LINE-HEIGHT: 1.8; PADDING-TOP: 0px; BORDER-BOTTOM: #ededed 1px soli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삶은 죽음 이외의 것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구도자의 자세. &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MARGIN: 0px 0px 15px; LINE-HEIGHT: 1.8; PADDING-TOP: 0px; BORDER-BOTTOM: #ededed 1px soli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삶은 나로 의해서가 아니라 아웃과의 관계를 통헤서&amp;nbsp;형성되어진다는 생각.&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MARGIN: 0px 0px 15px; LINE-HEIGHT: 1.8; PADDING-TOP: 0px; BORDER-BOTTOM: #ededed 1px soli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인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삶의 형식은&amp;nbsp;- 종교, 문화, 사상, 그리고 사회 -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생물과 기꺼히 나누어야 한다는&amp;nbsp;태도.&amp;nbsp;&lt;/SPAN&gt;&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MARGIN: 0px 0px 15px; LINE-HEIGHT: 1.8; PADDING-TOP: 0px; BORDER-BOTTOM: #ededed 1px solid&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리하여 인간은 결국 한 줌의 티끌로 돌아갈 존재임을 깨달아 자신의 삶을&amp;nbsp;뒷받침하고 있는 모든&amp;nbsp;인간들과 온갖 생물들과 갖가지의 '살아 있는' 사물들에게 한없이 겸허하고 감사하는 인생. &lt;/SPAN&gt;&lt;/DIV&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warning! 이런 생각에 동참하지 않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warning! 이런 생각에 동참하지 않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놈들은 제발 좀 나 인생에서 떠나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놈들은 제발 좀 나 인생에서 떠나라!!!!&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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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꺼히 독배를 마신 어느 소크라테스에게 보내는 경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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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9-05-30T20:21:46Z</updated>
	    <published>2009-05-30T20:21:4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소크라테스는 기꺼히 독배를 마셨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테나를 위하여. 자신의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리하여&amp;nbsp;최종적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자신이 떠날 때를 알고 기꺼히 자신의 꽃봉우리를 떨어뜨린&amp;nbsp;아름다운 이에게 치졸한 부끄로움으로&amp;nbsp;목숨을 구걸하고 있는&amp;nbsp;이가&amp;nbsp;수치심으로 몸을 떨며 감히 이 글을 바친다.&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lt;/DIV&gt;&lt;/SPAN&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소크라테스의 독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소크라테스의 독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FeWx&amp;amp;tagName=죽음은 삶의 완성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죽음은 삶의 완성점.&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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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로의 작품을 꽉꽉 밟으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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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15:42Z</updated>
	    <published>2008-05-13T10:15: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view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돋움&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에는 미로의 작품이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곳에 거주한 미로가 디자인한 모자이크로 구성된 이 거리의 땅바닥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뭐 보아도 미로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정이 없으나 미로의 작품을 밟고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감정을 던져준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요즈음 어디 3류 미술가의 몇호 작품이라고 하더라도&amp;nbsp;발로 밟는다는 것은 무지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의미함과 동시에 미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비문화적인 인물로 낙인이 찍히는 두 가지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러할진대 미로라는&amp;nbsp;세계적인 유명작가의 작품을 발로 밟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필자가 무심코 인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황영조가 금메딜을 딴 몬즈익 언덕길을 헤매다가 마감 시간을 놓쳐 미처 미로의 박물관을 구경하지 못한 괘씸죄가 이곳 람블라스에서 미로의 작품을 꽉꽉&amp;nbsp; 밟으며 분풀이를 해댄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 이름깨나 있는 작가의 작품을 필자의 발로 손수 밟는다는 조그마한 흥분으로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어떤 제사를 조상에게 올리는 것처럼 발걸음을 옮기면서 밟는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참 밟는다는 것이 주는 느낌이 좋다. 더구나 정성스럽게&amp;nbsp;마음을 보아 밟고 있으니 밟는다는&amp;nbsp;곳이 거의 종교적 제의인 것처럼&amp;nbsp;생각되어진다. '흠 그래서 조상들이 큰 절기가 닥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성밟기를 하고 꽹가리치며 북을 휘두르며 마을 동네 곳곳을&amp;nbsp;밟으면서&amp;nbsp;각각의 집들을 꼭꼭 밟았던&amp;nbsp;것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단번에 연상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결국 필자가 미로의 작품을 꽉꽉 무지하게 밟으면서 느끼는 희열은 단순하게 유명 작가의 작품을 밟는다는 단순한 육체적 행위를 넘어서서 필자의 능력으로는 그렇게 경의와 함께&amp;nbsp;일정 간격을 두고 구경할 수밖에 없는&amp;nbsp;유명 작가를 확 '밟았다는' 유명작가의 작품이 필자의 '발 아래놓였다는' 승리의 기쁨이라는 것도 동시에 필자의 머리 속에 들어왔다. &amp;nbsp;&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따라서&amp;nbsp;필자의 머리 속에 떠올랐던 조상의 밟기 풍속은 인간들이&amp;nbsp;거주하던 것을 밟음으로서 인간들의 거주지임을 확인하고 이 거주지에 다른 인간들이나 다른&amp;nbsp;종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소유확인의 거룩한 제의 행위였구나라는 판단이 인다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단 성을 밟았던 조상들의 행위와 현재 미로를 밟고 있는 필자의 행위와는 차이는 그들은&amp;nbsp;그들이 실제로 소유했던 곳을 정식으로 거룩하게 제의적으로 밟았던 것이고 필자는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을 상당한 통쾌함이 동반하는 기쁨의 감정으로&amp;nbsp;밟고 있다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가만히 미로의 작품이 모자이크된&amp;nbsp;길 위에 서서 이곳 저곳을 밟는 다는 것이 단순히 역마살이 아니라 일종의 인간의 정복욕의 발동의 하나라고까지 인식했다면 과연 과장일까? 필자의 질문에 의문을 품은 이들이 있다면 당장 자녀들의 방으로 가서 서가에 꽂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위인전의 위인들을 확인해 보라 그러면 필자에게 구시런거리지 않을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Are you in your children's room to check&amp;nbsp;what&amp;nbsp;I&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told you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now?&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lt;/DIV&gt;&lt;/SPAN&gt;
&lt;P&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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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피카소가 찔러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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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14:33Z</updated>
	    <published>2008-05-13T10:14: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피카소는 현대미술의 지평을 열었다고 미술평론가들이 이야기하곤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실제로 우리가 그의 그림을 직접 보든지 아니면 책을 통해서 보든지&amp;nbsp;간에 이전의 그림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부정할 수없는 사실이다.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신기원을 연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 천년 이상 동안 성과 속의 구분 속에서 인간을 억지로 성의 지배 아래 두었던 기독교적 단일 시각이 무너지고 있음을 혹은 무너졌음을 비로소 피카소에 그림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즉 이제는&amp;nbsp;종교의 이름으로&amp;nbsp;인간의 다양성과 개성을&amp;nbsp;몰아쳤던 일방적인 이데올로기가 깨졌음을 피카소의 미술에서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서양 미술계에서&amp;nbsp;이러한 교조화된 시각에 대한&amp;nbsp;파괴는 이미 인상파에게서 시작되었지마는&amp;nbsp;피카소에 와서 본격적으로 그것의 완성을 보게&amp;nbsp;되었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피카소의 장점은&amp;nbsp;이러한 작업을&amp;nbsp;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사물에 대한&amp;nbsp;가장 단순한 형태인 기하학적인 묘사를 통해&amp;nbsp;접근함으로서 니체처럼 서양 세계가 인식의 전환기에 가졌던 혼란 속에서 영웅을 요청하는 오류를&amp;nbsp;범하지는 않았다는 데에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다시 말하면 피카소는 원시 사회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인간의 사물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인식 형태를 그의 여러 각도에서 보기에 접합함으로서 당시 사회가&amp;nbsp;가지고 있었던 단일 시각의 패배가 가지고 온 정신적 혼란에 적절하게 대처했다는 것이며 반면에 니체는 이러한 정신적 혼란을 구태의연한 짜라스투라라는 종교적 영웅에 기댐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초인이라는 중세적 귀족적 영웅을&amp;nbsp;혹은 왕이라는 고대적 영웅을 다시 내세워대는 결국 히틀러를 부르는 우를 범하게된 것이라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원래&amp;nbsp;미술이라는 것이&amp;nbsp;무식한 유물론적 입장에서&amp;nbsp;보면&amp;nbsp;인간의 욕망의 표현이고 고상한 관념론적 입장에서&amp;nbsp;보자면 인간의 신에 대한 제의적 표현이고 필자같은 소견이 짧은 사람이 보기에는 인간이 인간의 욕망을 추구한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의식 속에서 발생한&amp;nbsp;모든 사물과 그것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니체처럼 영웅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행위는 야성을 물리치고 새로운 문명을 완성한 영웅의 개념에 의존하는&amp;nbsp;문명론적 시각을 견지함으로서&amp;nbsp;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이전 레파토리의 반복한 반면에&amp;nbsp; 피카소는 보다 더 미술이 출발했던&amp;nbsp;미술의 원래에 가까운 인간의 사물에경외감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질적으로 훨씬 근원적인 탐구 작업이라고 하�募�. &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간단하게 말하면&amp;nbsp;피카소는 문명 너머를&amp;nbsp;표현함으로서 미술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풀발점으로 돌아간 측면이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는 피카소가 가지는 추상적 작업의 이해 힘듦에도 불구하고 충분한&amp;nbsp;매력이 있다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기원이야 어찌되었든 동굴의 벽에 그리던 단순한 인간의 욕망의 행위가 어느덧 민중과 다른 부족을 누르고 일어선 어느 왕권의 불멸과 불사를 상징하는 도구로 왜곡되고&amp;nbsp;이후에는&amp;nbsp;다른 집단을 제압하고 한 집단의&amp;nbsp;영원한 안녕을 보장받기 위한 상징적 행위로 전락하게되더니 급기야 중세에는 성스러운 세력이라고 불리우는 일부의 평화를 위해&amp;nbsp;민중을 공갈하고 협박하는 그러다가 천박하게도 지배계급의 호사와 권력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미술을 미술이 출발했던 원래의&amp;nbsp;지점으로 돌려놓은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렇다고&amp;nbsp;지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성장한 마당에 그 중심에 서있었던 피카소가 원시사회가 가졌던 생생한 먹이&amp;nbsp;현장에서 작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그의 작품은 생생한 야성적 현장성을 결여한-여자는 제외하고-지식인적 사고의 반영의 결과이며 따라서 그의 미술은 일종의 책상 물림의 철학이었지 않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도 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어찌하든&amp;nbsp;피카소를 자신의 조국에서 몰아 내 프랑스로 망명하게 만든&amp;nbsp;이 곳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amp;nbsp; 피카소미술관을 동일한 이유로 즉 &amp;nbsp;피카소의 현장성 없는 가하학적인 추상적 찔러댐이 자꾸만 필자를 이것으로부터 밀어내서 피카소미술관을 눈길만 준 채 돌아섰다.&amp;nbsp;생생하게 더불어 사는 것이 가장 예술적이고&amp;nbsp;동시에 철학적인 그림이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게르니카의 학살을 보다 - 소피예술센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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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13:48Z</updated>
	    <published>2008-05-13T10:13:4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80년 대에 게르니카는 공식적으로 정부 당국에 의해 친절하게 보지 못하도록 명령이 내려진 '금지 작품'이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80년대에는 도서 뿐만 아니라 그림들도 이처럼 보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은 시대였던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지금 누가 들으면 개도 웃을 일이지마는&amp;nbsp;70, 80년대에는 이와같이 개가 웃을 짓거리를 서슴없이 해대는 사회였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어쨌든 이 미술관은 주로 현대적인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미술관은 생각보다 헐씬 커서 돌아보는데 시간이 꽤 걸렸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무료 개방이라 어린아이들로 가득차 더욱 시간이 걸린 것같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개인적으로 피카소의 기하헉적인 인간묘사를 보기 싫어해서-괜히 머리써야 하니까-&amp;nbsp;그의 작품들을&amp;nbsp;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마는&amp;nbsp;그래도&amp;nbsp;먹물 근성인 문화적 충족은 해야겠기에&amp;nbsp;작은&amp;nbsp;악마들에 들러싸여 미술관을 훑으며 돌아 다녔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당연하게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필자의 미술 감식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선은 이 그림이 엄청난 대작이라서 한 번 훑어보는데&amp;nbsp;상당한 시간이&amp;nbsp; 필요했을&amp;nbsp; 뿐 아니라&amp;nbsp;동시에 필자가 가지고 있는&amp;nbsp;정치적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아시는 것처럼 필자의 고향이 남쪽인데다 필자가&amp;nbsp;광주에 거주할 때에&amp;nbsp;광주학살이 발생한지라 이런 작품들과 마주치게 되면&amp;nbsp;필자도 인지하지 못한 채 발길이 멈춰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어쨌든&amp;nbsp;80년 대에 이작품이 독재정권에 의해 금지 목록에 오른 이유가 설왕설래 했는데 당시에는 우습게도 필자 뿐만 아니라 필자의 동료들은&amp;nbsp;이 작품이 미군이&amp;nbsp;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그려놓았기 때문에 금지된 것이라는&amp;nbsp;상당하게 유사하지마는 잘못된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오류는 필자에게 있어서는&amp;nbsp;나중에 수정되었지마는 금지 혹은 정보 차단이&amp;nbsp;가져오는 또다른 잘못된 결과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기도 하지마는&amp;nbsp;나중에 제대로 알고 난 후에는&amp;nbsp;이와 같은 해석에 약간의 계면쩍음이&amp;nbsp;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게르니카는 흑백인데다가&amp;nbsp;그 놈의 자기 멋대로 보기가 가지는 추상성 때문에 그것들을 해체하여 뜯어보느라 &amp;nbsp;전쟁의 잔인성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지적인 작업이서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어진다는 점에서&amp;nbsp;감동이 일어나지 않은&amp;nbsp;작품이었다. 그러나&amp;nbsp;이렇게 큰 그의 추상적 작업을 뜯어보는 고도의 지적 행위 뒤에&amp;nbsp;오는 전쟁에 대한 느낌이 지성적이 되어 오히려 단순한 혐오를 주는 것보다는 차분하게 전쟁의 참혹성에 대항하는&amp;nbsp;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기도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렇다고 단번에 그림을 보아 전쟁을&amp;nbsp;고발한다고 말하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누구나 이성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이 그림을 그린 의도를 알아 챌&amp;nbsp;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죽은 독재자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이곳 마드리드로 독재자가 장수를 누리다가 자연사로 죽은 후에&amp;nbsp;다시&amp;nbsp;조국의 품으로 돌아온&amp;nbsp;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며 귀향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amp;nbsp;즉 오랫동안 권력의 단맛과 함께&amp;nbsp;천수를 누리다가 곱게 죽어간 그래서 그의 무덤이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큰 십자기를 앞에 두고 화려하게 마드리드 교외에 묻혀있는 독재자의 죽음 후에&amp;nbsp;돌아온 게르니카가&amp;nbsp;진정 게르니카인지 '그토록 착한' 스페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는 말인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게르니카의 학살은&amp;nbsp;게르니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독재자의해서만이&amp;nbsp;자행되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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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느 미술가가 가졌던 싸가지 없음의 한계 - 쁘라도미술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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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12:50Z</updated>
	    <published>2008-05-13T10:12: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마드리드의 제일의 명물은 역시 쁘라도미술관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일요일 아침에 도착하니 운좋게도 공짜로 입장하는 날이다. 대신에 많은 인파 속에 묻혀서 미술 작품들을 관람하는 피곤함은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미술관은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는데 찾기에도 수얼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술가들이&amp;nbsp;주로 고씨족인데&amp;nbsp;그중에서도 고흐를 제일 좋아하고 다음으로 고야를 좋아한다. 고흐는 필자를&amp;nbsp;들어 세우기 때문에&amp;nbsp;좋아하고 고야는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약간의 싸가지 없음'을 좋아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오늘은 이 미술관에서 고야의 싸지 없음을 본격적으로 감상하는 날이다. 이 미술관에는 고야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벨라스께스등 기타 유수의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지마는 역시&amp;nbsp;고야가 이 미술관의 하이라이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정연하게&amp;nbsp;제 크기에 맞게 프레임되어 사람들이 보기 좋은 눈높이 위치에 맞게&amp;nbsp;빛을 받고 걸리워진 가종 다양한 작품들을 두루 섭렵한 다음에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한 고야의 전시실로 올라갔다.&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역시나 &amp;nbsp;고야의 옷벗은 마야를 보니&amp;nbsp;헐러덩 완전히 벗은 여자가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화면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어떤 신분이었지는 설왕설래 하지마는 어쨌든&amp;nbsp;가부장적 사회가 창출해 놓은 온갖 제약에 걸려 신음하는 여자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이 '그래 나&amp;nbsp;헐러덩 벗었다. 그래&amp;nbsp;어쩔래'라는 눈빛의 표정을 가지고서 화면 밖의 가부장적 도덕 사회가 주는 갖은 제약에 시달리는 불쌍한 근엄주의자를&amp;nbsp;빤하게 쳐다보고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슬람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한 국토회복운동을 위한&amp;nbsp;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선택된 중세 카톨릭적 스페인은 그토록 옷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도덕으로 치장된 위선적인 위엄주의를 벗어 던쟈버리고 아름다운 나의 몸매를 있는 그대로 한 번 감상해 보라고&amp;nbsp;나체의 탐스러운 마야가 아름답고 깊은 눈으로&amp;nbsp;옷으로 칭칭 무장한 화면 밖의 우리를 말끔하게 그렇게 싸가지 없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어 길을 진행하니 나폴레옹 군대가 마드리드 시민을 학살하는 그림이 나온다. 익은 풍경이다. 일본 놈들이 독립군을 나무 기둥에 묶어놓고 총살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국&amp;nbsp;전쟁 때 인민군이 혹은 국방군이&amp;nbsp;국방군이나&amp;nbsp;그것의 동조자를&amp;nbsp; 혹은 인민군이나 그것의 동조자를 일본놈들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나무에 묶어놓고&amp;nbsp;서로를 학살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깝게는 광주항쟁&amp;nbsp;때 대한민국의 군이들이 대한민국의 민중들을&amp;nbsp;학살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아마도 필자가 그림을&amp;nbsp;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amp;nbsp;세계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징면이기도 할&amp;nbsp;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고야는&amp;nbsp;혁명의 이름으로 거룩한 전쟁을&amp;nbsp;수행 중인 나폴레옹의 프랑스 혁명군의 학살 장면을 나중에누구나 볼 수있도록&amp;nbsp;이렇게 싸가지 없게도 그려 놓은 것이다. 벨라스께스가 스페인 왕가가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왕가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발생한&amp;nbsp;근친상간의 부끄러운 산물인 주걱턱을 그렇게 싸기지 없이 노골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린 것처럼 말이다.&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 미술관의 마지막 전시실에도 역시나&amp;nbsp;고야의 대표작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단번에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아들을 잡아먹은 사티루스와 거인들에 관한 작품들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아들로부터 재앙을 피하기 위해 즉 자신이 살기 위해 아들을 잡아먹은 사티루스의 모습을 전혀 과장없이 그려 놓았는데 전체적으로 공포에 질리면서도 탐욕이 살아 있는 듯한 사티루스의 눈이&amp;nbsp;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운명에 대한 승복의 거부가 운명에 대한 공포와 함꼐 표현된 문명의 이름으로 누구나 감추고 싶어하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amp;nbsp;원시성에 대한 일종의 싸가지 없는 표현이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동시에 거인인에 대한 고야의 묘사는 아마도 이렇게 닥쳐오는 인간에 대한 운명에-그것이 외부의 힘에 의해&amp;nbsp;닥쳐오든&amp;nbsp;혹은 내부적 고민으로 표출되든-대한 너무나 미약함을 드러내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amp;nbsp;노출이고 동시에 이러한 운명을 창출하는 거인에 대한 일종의 고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고야는 무력한 인간들을 노출시킴으로서 근본적으로&amp;nbsp;거인에 대한 고발을 감히 싸가지 없게도&amp;nbsp;행한 것이다. &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미술관을 나와 모처럼 따뜻한 헷살을 받으며 쁘라도미술관을 쳐다보았다. 전혀 뒤틀림이나 비틀어짐없이 세워진&amp;nbsp;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건물이다. 기분이 씁쓸해진다. 언제나 싸가지 없는 짓거리는 찻잔 속의 태풍인가보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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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의인가? 욕망인가? - 마드리드의 고고학박물관을 지나가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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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11:59Z</updated>
	    <published>2008-05-13T10:11:5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스페인에서는 아직도 투우가 행해진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것도 아직까지 인기리에 방영중인&amp;nbsp;일상에 파격을 주는&amp;nbsp;쇼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인가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주위에서 야만적이니 어쩌니 떠들어대도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투우가 소중한&amp;nbsp;전통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고&amp;nbsp;투우를 볼때마다 용기와 힘을 얻는다고 말한 이들도 상당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럼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왜 스페인 사람들이&amp;nbsp;짐승 중에서 하필이면 소를 죽이는 이러한 행위를 하게된 것일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짐승을 죽이는&amp;nbsp;행위를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가 있겠는데&amp;nbsp;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해석 중의 하나인 제의적 해석이라 하겠다. 이 말은&amp;nbsp;성경의 구약에서 신을 섬기는 방법의 하나로서 그렇게 짐승을 죽이는 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제의를 위해서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비단 이것은 성경에서 뿐 아니라 이집트. 중동,&amp;nbsp;인도, 동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칸 인디언들등 인간이 사는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행위로서 제의와 함께&amp;nbsp;동반되어진다는 점에서 일견 가장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에밀레 종의 설화에서도 알수 있듯이 고대 한국에서도 신라시대 중반까지 인신제사가 행해지고 있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즉 신에게 인간의 안녕을 희구하는 행위로서 인간의 가장 소중한 제물을 바치는 제의적 행위를 행한다고 보는 견해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럼 이 지점에서 조금 더 이 이슈에 관해서 논의를 진전해 보자.&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은 인간의 안녕의 희구를 위해서 '신'에게 짐승을 바치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고 가정한다면&amp;nbsp;이것은 단지 '신'의 절대성에 대한 인간의 순종과 굴복을 표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인가 아니면 그밖의&amp;nbsp;다른&amp;nbsp;요인이 여기에 있는 것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 지점에서 필자는&amp;nbsp;전통적인 종교적 해석과 선을 긋고 싶다. 즉&amp;nbsp;이 말은&amp;nbsp;예수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우리의 죄를&amp;nbsp;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라는 일반적인&amp;nbsp;해석과 다른 길을 걷고 싶다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구체적으로 기독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절대적이 권능한 신에게의 순종과 겸헝의 표지로서 동물 제사가 아닌 동물에 대한 '죄의식'으로서의 동물 제사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다시 말하면 인간이 동물 제사를 올리는 것은 정착화에 따라 점차로 잃어가고 있는 인간의 동물적 사냥 본능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내기 위한 것도 있고&amp;nbsp;광대하고 변화무쌍한 그래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이감을 표현하는&amp;nbsp;일종의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지마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사냥감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amp;nbsp;동물 제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amp;nbsp;것을 어떠할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당연이 주어들은 이야기가 있기&amp;nbsp;때문에 필자도 이러한 견해를 펼치는 것이다. 즉 아직까지 원시부족 사회에 남아있는 많은 설화에서 인간이 왜&amp;nbsp;동물 제사를 드리고 있는가에 대해서 연유를 설명하는 것들이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데 그것을 유심히 �恃咀만� 결국 같은 생명을 지닌 것들을 먹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이 동물 제사의&amp;nbsp;뿌리임을&amp;nbsp;말하고&amp;nbsp;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결국 동물 제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먹이로서 죽어간 같은 동물들의 생명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으로 동물들에게 보이는 인간의 최소한의&amp;nbsp;행위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런 점에서 바울이&amp;nbsp;동물 제사를 대신하는&amp;nbsp;예수의&amp;nbsp;죽음을 주장하는&amp;nbsp;것은 첫번째로는 동물을 죽임으로서 동물제사를 드리는&amp;nbsp;이중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위선적 야만 행위를 폐지하고 두번째로는 인간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죄의식을 일반적인 것으로 관념화하는 것과 동시에&amp;nbsp;-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는 설정으로 -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인 예수를&amp;nbsp;등장시킴으로서 인간의&amp;nbsp;생명 파괴에 대한 죄의식을 해결하는 고도화된 원시적 사고방식이었다는 것이다-당연하게도 현재까지도 유효하게작동하고 있는.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타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난히 이러한 &amp;nbsp;죄의식에 대한 예민한 영성을 지닌&amp;nbsp;사람이&amp;nbsp;인도인들이라고 보면 되는 데 그래서&amp;nbsp;인도인들은 전통적으로&amp;nbsp;육식을 금했던 것이고&amp;nbsp;유대인들은 유별하게 구분하여 음식을 먹었던 것이고 이슬림도 마찬가지로 유대인처럼 구분된 것만, 즉 인간의 먹이를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는 양심의 부끄럼움을 씻어낸 것만&amp;nbsp;먹는 행위가 보편화되어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렇다면 스페인인 사람들은?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뭐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들이 비영성적인 사람이리고까지 깎아내릴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위에 언급한 이유에 바탕을 두었다기보다는&amp;nbsp;잃어버린 사냥 본능에 대한 추억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국토회복운동을 벌이면서 벌였던 이슬람 사냥에 대한 짜릿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쾌감의 잔여가 순수하게 다른 지역보다 더 남았다는 말도 되겠고 진지하게는 그들에게 이러한 사냥에 대한&amp;nbsp;죄스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마음의 반영이 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렇게 표현될 수도 있겠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착찹한 생각으로 알타미라동굴의&amp;nbsp;동물 사냥과 동물 제의를&amp;nbsp;그대로 옮겨 놓은 마드리드의 고고학 박물관에 한없이 늘어진 긴 줄에 놀라 움찔하여 발걸음을&amp;nbsp;옮기면서 말이다. 역시나 투우는 이곳에서는 여전하게 살았음을 느끼면서 말이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lt;/DIV&gt;&lt;/SPAN&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 라스칼라를 들러싸고 있는 흉측한 철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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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10:50Z</updated>
	    <published>2008-05-13T10:10: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view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돋움&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밀라노에 도착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망설이다가 지하철을 타고 한국인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향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번 여행 중에 터득한 것인데 도시를 전체를 조금 깊숙하게 보고 싶으면 관광지 근처 시내 중심에 숙소룰 잡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참이나 나간 후에 도착할 수 있는 거의 교외에 위치한 민박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숙소를 정한 후 다시 빠져나와 밀라노의 명물인 스칼라극장으로 향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스카라극장에 도착하니 이상한 철골을 뒤집어 쓰고 있다. 수리중이란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amp;nbsp;라스칼라의 오페라를 공연 티켓을 파는 임시 티켓 박스로 향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임시 공연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서 표를 사고 여기에서 셔틀버스가 출발한단다.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그냥 나와버렸다. 동행한 젊은 여성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곳 유럽에 오니 거의 대부분의 유명 건축물이 아름다운 모양을 훼손한 채 철골을 뒤집어쓰고 있다. 후손에게 길이 보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니 속내를 보면 유명 건축물을 통해 그들의 자랑스런 문명을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고 그리하여 이 건축들이 계속 그들이 흩어지지 않도록&amp;nbsp;묶는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amp;nbsp;있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다가 요즈음 유명건축물은 짭짤하지 않은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스칼라극장이야 공연장이니까 수리를 하여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겠지마는 새 건축물을 생산하지 않고 끊질기게 수리하여 보존하는 속내는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더구나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다가 폭격에 맞아 무너진 유명 건축물을 그대로 복원하여 다시 건축한 건물들이 상당수임을 이곳에 도착하고서야&amp;nbsp;필자는 알았는데 별로 유쾌하지가 않은 행위들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나이가 들면 모든 사물들이 스러지고 무너지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거늘 이렇게 무너지지 않도록 흉측한 철골을 씌워 분칠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독점에 대한 욕망이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목도한 아름다운 고전적 건축물 위를 둘러싸고 있는&amp;nbsp;무수한 흉측한 철골들이 아마도 유럽인들이 본질이지 않을까 아니 인간의 본질이지 않을까라는 의문 때문에&amp;nbsp;그토록 보기를 바랬던 스칼라의 오페리 공연을 팽개치고 나온 것이다. 스칼라극장을 둘러싸고 있는 흉측한 철골들이 떠올라서.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lt;/DIV&gt;&lt;/SPAN&gt;
&lt;P&gt;&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클림트, 나폴레옹,그리고 헝가리 특별전 - 밸베레데궁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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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10:10Z</updated>
	    <published>2008-05-13T10:10: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날씨 때문인지 벨베데레궁은 산뜻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베르사이유나 쉰부른처럼 너무 크지 않아 필자처럼 발품파는 여행자들에게는 돌아다니기도 좋았다. 문화 활동을 위한 힘든 노동이 아니라 문화활동을 위한 약간의 몸관리 정도의 규모이니 말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팔자의 타고 난 성격 때문이지 어쩐지 규모가&amp;nbsp;크면 웬지&amp;nbsp;그 규모만큼이나 크게 필자 내부에서 자동적으로&amp;nbsp;적대감정이 일어난다.&amp;nbsp; 어떠한 화려함도 찬란함도&amp;nbsp;마찬가지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쇤부른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담하고 포근한데다가&amp;nbsp;입장료 한번 내고 궁 내부의 존재하는 박물관을 세 곳까지 돌아다니며 볼 수 있으니&amp;nbsp;더욱 박수 칠 일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 궁에는 유명한 클리트가 그린 키스와 그밖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져 있다. 유난하게 클림트를 밝히는 한국 여성 배낭객하고 동행했었는데 클림트를 보고 감격해 하는&amp;nbsp;그 모습을 보고 필자 또한 감격해 했다. 확실히 직접 보니 책이나 화첩으로 본 것보다는 에로틱하고 환타스틱한 분위가 더욱 돌기는&amp;nbsp;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클림트의 에로틱에 취해 - 별로&amp;nbsp;취향은 아니지마는 -이리 저리 박물관을 내달리고 있는데 어떤 놈이 말이 갤롭인 상태에서 한쪽 손을 올리고 얼굴을 캠퍼스&amp;nbsp;밖으로 돌리고서 당당하게 포즈를 잡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어쭈'하고 유심히&amp;nbsp;보니 낯익은&amp;nbsp;그림에 낯익은 얼굴의 영웅이 포즈를 잡고 있다. 이 영웅이 이런 포즈로 그린 그림이 많아서 필자가 어려서부터 보았던&amp;nbsp;이 영웅의 바로 이 그림인지 아니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당장에 연상되는 것이 이&amp;nbsp;그림 액자 위에 항상 쓰여져 있었던 '불가능은 없다'가 떠오른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필자의 눈에도 예술적으로는 영 시원치 않아 보이는 필자의 키보다 더 커 보이는 말위의 나폴레옹의&amp;nbsp;전신 초상화 앞에 서니 에로틱에 취한 정신이 나폴레옹이 혁명의 이름으로 휘둘렀던&amp;nbsp;피의 칼부림에 정신이 퍼뜩든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제 제 정신으로 돌아온 채 들어간 곳은 특별전이 열리는 공간으로서&amp;nbsp;20세기의 헝가리 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들어가 그림들을 찬찬히 뜯어보니&amp;nbsp;헝가리 민중들의 삶을&amp;nbsp;그린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화가들의 이름들은 잊었지마는 대부분 반추상화 계열의 사실주의적 냄새가 짙게 흘러나왔는데 바르톡의 무거우면서도 무엇을 담아내는 둣한&amp;nbsp;음악이 단번에 연상되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퍼뜩 차린 정신으로 응시한 수 백년이나 합스부르그왕가의 식민지였던&amp;nbsp;헝가리 20세기는 벨레데레궁을 들어올 때의 느꼈던 산뜻함과는 너무나 전혀 다른 암울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클림트에 취한 것이 부끄러워 헝가리 화가들의 특별전을 보고 슬며시 빠져나오다가 하늘을 쳐다보니&amp;nbsp;나폴레옹이 그리고&amp;nbsp;나폴에옹적 삶을 추구하는 모든 왕가의 사람들이 인간들을 향하여 '불가능은 없다'라고 민중들을 고무하고 독려하기 위해 특별히 신을 꼬드겨&amp;nbsp;만든 무지개 하나가 신의 은총받은 벨베데레 궁전 위로&amp;nbsp;산뜻하게 걸쳐 놓았다.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lt;/DIV&gt;&lt;/SPAN&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문명이 야생을 이겼다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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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profound</name>
	    </author>
	    <updated>2008-05-13T10:09:28Z</updated>
	    <published>2008-05-13T10:09: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비엔나에 있는 미술사박물관은 브뢰헬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 외에도 벨라스케스 등 교과서 출처 작품들이 꽤 눈에 보일 정도로 다수의 유명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잔뜩 흐린 비엔나의 하늘 아래에 미술사박물관은 모습을 드러냈는데 로비에서 본 조각이 대개나 인상적으로 필자의 눈에 다가왔다. 내용인 즉 문명이 야생의 삶을 죽인다는 내용인데 이러한 문명관을 가지고 있는 예술적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시큰둥한 필자인지라&amp;nbsp;조각이 가지고&amp;nbsp;있는 미술적 감정 외에는&amp;nbsp;무게를 두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문명이 야생을 이기다니!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제발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지마는 현실이 그러하지 않아 그냥 잘 된 작품이라고 여기고 씁쓸하게 조각을 그린 예술가의 허영과 이 건물을 세우고 이 작품을 위탁한&amp;nbsp;합스부르그 왕가의 문명적 교만을 한참이나&amp;nbsp;무지와 자만으로 잘 깍여진 고급의 돌덩어리를 눈여겨 보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문명을 향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amp;nbsp;유럽의 어지간한 박물관에는 어떻게든&amp;nbsp;깨어진 도자기 혹은 색바랜 미라&amp;nbsp;조각이라도 전시해놓은 이집트와 그리스 전시관을 넘어서서 이 박물관의 문명적 자랑거리로 들어간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미 눈에 익은 브뤄헬의 작품들이 쫙악 전시되어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눈에 익었다는 것은 이 사람의 작품을여기 저기의 책에서 많이 보았다는 의미에서 눈에 익었다는 것이요 다음으로는 그가 그린 그림의 풍경이&amp;nbsp;필자가 살았던 배경과는 연대기적으로나&amp;nbsp;지리적으로 천양지차가 나는데도 생경하게 다가오지&amp;nbsp;않을 정도로&amp;nbsp;친숙하다는 말이기도 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림 앞에 서서 그가 그린 친숙한 장면을 눈여겨 본다. 르네쌍스적 수사가 보이지 않아 마음 편하게 볼 수&amp;nbsp;있어 좋다. 지겨운 그리스신을 보지 않아서 좋고&amp;nbsp;넌덜머리나는 성경의 인물들이 보이지 않아 훨씬 마음이 간결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러다 문득 작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지겨운 성경의 인물들과 그리스 신들을 그리지&amp;nbsp;않은 까닭에 대해&amp;nbsp;생각한다. 즉 문명이 야생을 이기고 승리한&amp;nbsp;인간 정신의 표상인&amp;nbsp;그리스신과 성경의 영웅들을 그리지 않은 이유가&amp;nbsp;문명이 가지고 있는 교만의 상징인 왕의 입맛에 ��추기 위해 보다 정확하게는 전혀 민중과의 접촉이 없어 민중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 왕이 위탁해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이 그 친근감 못지 않게 필자 마음속으로 슬프게 파고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그나마 민중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궁금해 했던 왕의 자비에 대해서 경의를 표해야 할까?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정조가 금강산을 보고 싶어도 왕이어서 매인 몸이라 금강산을 가지 못해 &amp;nbsp;김홍도에게 금강산을 그리게 했다던&amp;nbsp;사실이 이곳 박물관에 와서보니 더욱 현실적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도대체 이 놈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민중들의 사는 모습을 보지 못해 궁금해야 할 정도였단 말인가? 이것이 그들의 그렸던 야생과의 투쟁의 결과로서&amp;nbsp;승리한 문명이라는&amp;nbsp;전리품인가? &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바벨탑이 보인다. 야생을 물리치는 그리스 영웅이 보인다. 두 작품의 차이는 무엇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조금 걸으니 예쁜 꼭둑각시 인형처럼 분칠한&amp;nbsp;공주 하나가 검은색을 배경으로 화가의 붓칠을 의식한 억지 선웃음과 함께&amp;nbsp;양팔을 벌려 화려한 드레스의 양끝을 쥔 채 문명의 캠퍼스 안에서 캠퍼스&amp;nbsp;밖의 야생의 삶을 천연덕스럽게 빤하게 쳐다보고 있다.&amp;nbsp;&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비엔나에서 '유전자 오리지날' 음악의 비를 맞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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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profound</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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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3T10:08:13Z</updated>
	    <published>2008-05-13T10:08: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비엔나는 언급할 필요가 없이 음악의 도시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특유의 게르만 민족의 치밀함과 추상적인 것에 대한 지향이 완전하게 관념적인&amp;nbsp;산물인 음악을 통하여 완벽하게 이곳에 발현되었다는 필자의 추측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앵글로색슨처럼 타고 난 놀이꾼이 현생 인류에게 준&amp;nbsp;재미도 제법이지마는 필자같이&amp;nbsp;폼도 잡으려는 사람에게는 역시 관념의 산물들이 보다 더 입맛에 맞는다고 봐야겠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듣기로는 비엔나에서는 악기를 다루는 것이 의무적인가 본데 아마도 한(조선)반도 북쪽에&amp;nbsp;있는 국가와 함께 악기를 다루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유이한 곳이라는 추측이다-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무엇보다도 비엔나에서는 오페라라는 극악악 쟝르보다도 순수음악 연주가 제격이라고 생각되어서&amp;nbsp;비엔나홀을 찾으려 하니 비가 필자의 머리 위로 흩뿌리며&amp;nbsp;가는 길을 수월하지 않게 하고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이쯤이야 하고 나서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핼쓱한 표정으로 저쪽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덧붙이는 말' 오늘은 공연이 없을&amp;nbsp;것이 란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홀쪽으로 길을 가다가 멈추어서서 확인을 하러 갈까 아니면 저 말을 믿고 가지 말까 망설이다가 후자를&amp;nbsp;따랐다. 더구나 공연도 없다고 말한데다가&amp;nbsp;운좋게&amp;nbsp;오페라는 보았지마는&amp;nbsp;이것까지 장담하기는 못했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역시 순수한 관념의 산물을 인간이 접촉하기 더 힘들다는&amp;nbsp;판단이 들어진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해석된 나비부인을 보았더라도 그것은 구체적인&amp;nbsp;인간의&amp;nbsp;움직임을&amp;nbsp;동반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순수음악은 활을 날리는 손의 움직임과&amp;nbsp;피리류를 부는 인간의&amp;nbsp;볼룩한 입동작과&amp;nbsp;관객과&amp;nbsp;연주자 앞에서&amp;nbsp;혼자서 '쇼'를 하는 지휘자의 동작 외에는 인간의 통 큰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역시 니체가&amp;nbsp;말한 그대로 순수한 정신은 고귀한 정신을 가지는 사람들만이 갖는&amp;nbsp;특권인가?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다시 비 속을 걸었다.&amp;nbsp;제법 세찬 비가 필자의 몸을 간지럽히자&amp;nbsp;몸이 요동칠려고 한다. 비를 싫어하는 원숭이과들이 세찬 빗속에서 뛰어 놀면&amp;nbsp;느끼는 이상야릇한 흥분이다. 그래서 하늘을 타고 내리는&amp;nbsp;비의 리듬과 비가 땅바닥을 때리는&amp;nbsp;북의 비트와&amp;nbsp;빗속을&amp;nbsp;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밟아대는 오묘한 소리와 더불어 몸을 흔들며 걸었다. 이것이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형의 유전자로부터 발현된&amp;nbsp;것이라고&amp;nbsp;관념이 아닌 '몸'으로 흔들며 말하면서 비엔나 필의 전용홀 앞을&amp;nbsp;'흥'하고&amp;nbsp;비웃음을 던지며 '이토록 흔한 빗속'을 유쾌하게 뛰었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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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비부인이 비엔나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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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3T10:07:06Z</updated>
	    <published>2008-05-13T10:07:0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view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돋움&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공연 시간보다 2시간이나 먼저 가도 꽤 긴 줄이 늘어서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혹시 비엔나에서도&amp;nbsp;공연을 보지 못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이 표가 남아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공연까지는 시간이 남아 비엔나 시내를 어정거리다가 조그마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amp;nbsp;크림소스에 신맛이 진하게 나는 감자요리를 후딱 해치우고 나오니 공연시간과 맞아 떨어진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오페라극장으로 들어서니 로비의 실내공간이 생각보다 화려하지가 않다. 실제로 이 극장이 장식이 화려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필자의 눈이 유럽의 지겨운 화려함에 지쳐서인지 분간하기는 힘들지마는 말이다. &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공연장에 들어가니 어라 생각보다 공연장이 작다. 아니 필자의 눈이 인식하고 있어 예상된 극장의 규모보다&amp;nbsp;훨씬 적은 조그마한 극장이다. 이것도 당혹하다. 실제로 이 극장이 적은 것인지 아니면&amp;nbsp; 이제 막 후진국에서 벗어난 어느 제삼세계 국가가 가지고 있는 과시형&amp;nbsp;극장에 눈이 적응해서인지 아니면 땅덩어리 넓다고 그저 크게 크게만 짓는 어느 최강대국의&amp;nbsp;극장과&amp;nbsp;운동경기장의 규모가&amp;nbsp;뇌에 인이 박혀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빨강색이 지배하는 공연장은&amp;nbsp;필자가 구입한 입석이 진짜로&amp;nbsp;V.I.P.좌석이다.&amp;nbsp;공연 공간을 훤하게 정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값도 싸고&amp;nbsp;좌석 아니 입석도 좋고&amp;nbsp;뭐 공연만 좋으면 2시간 쯤이면 서있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공연은 나비부인이었는데 필자 귀가 서툴러서인지 뭐 별로 인상적인 공연은 아니었다. 필자같은 이들에게는 현재 컨디션에 상관없이 귀에 익은 사람들이 나와 질러내야 뿌듯한데&amp;nbsp;그렇지 않은데다가 너무 보수적으로 해석된 얌전한 공연이어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더구나 필자가&amp;nbsp;보기에 공연 공간이 좁다고&amp;nbsp;느껼을 뿐 아니라&amp;nbsp;배우들의 움직임도&amp;nbsp;좁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결론적으로&amp;nbsp;역시 유럽에서 최고로 꼴통 지역이라는&amp;nbsp;생각이 대번에&amp;nbsp;확인이 되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역시나 버림받은 사람인 나비부인은 이곳 비엔나에서는 죽을 운명이었다. 이곳 비엔나는 강하고 튼튼한 핑커톤 대위만이 생존하는&amp;nbsp;공간이라는 생각이 번뜩든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합그부르그왕가의 수도로서&amp;nbsp;한때를 호령했던 이곳에 지금도 이것을 추억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 그들의 삶과 생각 속에 거주하기를&amp;nbsp;원하는 강하고&amp;nbsp;튼튼한 이곳의 핑커톤 대위에게&amp;nbsp;경례를 보내자. Salute!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lt;/DIV&gt;&lt;/SPAN&gt;
&lt;P&gt;&lt;/P&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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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다페스트의 길거리 음악가가 연주하는 헝가리무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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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profound</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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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3T10:06:08Z</updated>
	    <published>2008-05-13T10:06:0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 class=view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돋움&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원래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라는 두 도시가 합해져서 부다페스트로 불리우게 됐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부다 지역은 왕궁이 있어온 지역이라 부자 동네이고 페스트는 가난한 동네였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도나우강을 건너 부다지역에 위치한&amp;nbsp;왕궁으로&amp;nbsp;가는 도중에 지금까지 유럽 여행 중에 보았던 가장 남루한&amp;nbsp;차림의 헝가리인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왕궁에 도착하니 왕궁 대문 앞에서 웬&amp;nbsp;길거리 음악가가 바이올린을 켜고&amp;nbsp;있다. 필자같은 음악의 문외한에게도 단번에 수준 낮은 음악임을 알 수가 있다.&amp;nbsp; 파리의 지하철 음악가처럼 지하철 당국의 허락을 받고 연주하는 '관허' 정식 길거리 연주가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감히 왕궁에 침입하여&amp;nbsp;맘대로 연주하는 무허가 길거리 음악가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20세기에 위대한 음악들을 배출했던&amp;nbsp;헝가리가 오늘 바햐흐로 가장 고급의 음악을 연주하던 왕궁에서 수난을 받고 있다. 그의 초라한 연주는 무허가인채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돈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게도 음악을 통하여 민족적 자부심을 높히려 했던 바르톡이&amp;nbsp;몹시&amp;nbsp;부끄러워하게도&amp;nbsp;외국 관광객들이 뻔질나게 들어다니는 왕궁 마당의 지나가는&amp;nbsp;계단 아래에서&amp;nbsp;민족음악가 바르톡이 아닌 마자르족을 항상 괴롭혔던 게르만족 출신의&amp;nbsp;작곡가 브라암스가 맘대로 바꿔 작곡한 헝가리 춤곡을 부끄럼없이 돈을 구걸하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공산주의 조국을 버리고 선진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그의 나라가 주었던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팔면서 살았던 도라티처럼 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바탕&quot;&gt;부다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던 어부들을 기리는 요새를 보고 나오는 즈음에도 여전히 이 길거리 음악가는 게르만족의 헝가리무곡을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힘겹고 켜고 있다. 강을 건너 페스트지역으로 오니 남루한 차림의 헝가리인들이 뾰족스럽게&amp;nbsp;올려진 화려한 고딕식 의사당 건물을 뒤로하고 뭉텅이로 거리를 몰려다니고 있다.&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lt;/DIV&gt;&lt;/SPAN&gt;
&lt;P&gt;&lt;/P&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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