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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트라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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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11:59Z</updated>

  		<entry>
	    <title>★한글,과연 세종이 만들었을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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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하여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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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7:11:59Z</updated>
	    <published>2009-11-10T17:11:5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http://cafefiles.naver.net/20091105_286/uridlsuri_1257403377543XcwHx_jpg/1226458037_1_supergol_uridlsuri.jpg height=733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1105_286/uridlsuri_1257403377543XcwHx_jpg/1226458037_1_supergol_uridlsuri.jpg&quot; width=550&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http://blog.empas.com/papa720/27876986_300x429_thumb.jpg src=&quot;http://blog.empas.com/papa720/27876986_300x429_thumb.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36pt&quot;&gt;1.................................................................................................................................&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훈민정음창제의 실질적인 주역이었던 신미(信眉)대사 김수성(金守省)의 업적과 훈민정음의 원형이었던 &quot;가림토문&quot;38개 글자(단군조선시대부터 쓰였던 우리고유의 문자로서 조선시대에도 민초들이 상용하고 있었던 문자)에 대해 아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신미대사의 존재와 가림토문의 존재에 대해선 아래 글 참조)&lt;/P&gt;
&lt;P&gt;&lt;BR&gt;&lt;BR&gt;
&lt;IMG id=http://kr.img.blog.yahoo.com/ybi/1/71/fa/hobynara/folder/3274175/img_3274175_1360401_0?1153403592.jp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kr.img.blog.yahoo.com/ybi/1/71/fa/hobynara/folder/3274175/img_3274175_1360401_0?1153403592.jpg&quot;&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saved&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crimbbang&quot; target=_blank&gt;&lt;/A&gt;&amp;nbsp;&lt;/P&gt;&lt;/DIV&gt;
&lt;P&gt;&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saved&gt;&lt;/DIV&gt;&lt;/FONT&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집현전 학사들중 상당수는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했다.또한 훈민정음의 원형이 된 &quot;가림토문&quot;은 우리 선조들이 &amp;nbsp;돌에 새겨 단군조선시대부터 쓰였던 우리민족의 문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훈민정음은 결코 세종이 화장실에서 혼자서,혹은 왕실이나 집현전학사들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amp;nbsp; 단군조선시대부터 우리민초들이 널리 써오던 글을 범어와 티벳어,그리고 파스파문자를 참고로 체계화시키고 완성시킨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에 대해서는 아래 &quot;퍼온 글&quot;참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신미대사(&lt;STRONG&gt;&lt;FONT color=#3d4444 size=4&gt;信眉大師) &lt;/FONT&gt;&lt;/STRONG&gt;김수성(金守省)은 집현전학사 출신으로 티벳어,범어,파스파문자,중국어등 5개국어에 능통했으며 그가 세종의 명을 받아 십수년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훈민정음의 창제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훈민정음은 당시 민초들이 쓰던 &quot;가림토문&quot;과 불경번역시 주로 쓰던 &quot;구결문&quot;을 바탕으로 범어와 티벳어 그리고 파스파문자를 참고로 해서 만들어졌는데, 세종,문종,수양대군등과 일부 집현전학사들이 참여했지만 음운론에서 세종과 더불어 혹은 세종을 능가할 정도로 풍부한 언어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신미대사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구결문의 경우는 고려때부터 불경번역시 쓰이던 한자의 파자인데,90년대 일본 NHK에선 무려 15분에 걸쳐서 자신들의 문자인 가나의 기원을 파헤치는 특집방송을 했는데 그 내용의 결론은 고려의 구결문자가 일본으로 &quot;각필&quot;형식으로 건너가 가나문자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세종이 신미대사로 하여금 집현전학사들에게 &quot;범어&quot;에 대해 직접 강론하도록할 정도였다고 한다.불경은 티벳어와 범어를 모르면 제대로 된 해석을 하기 어려워 그 2개의 문자를 공부하는 것이 고승들에겐 필수적이었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범어(산스크리트어)와 티벳어(범어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문자)는 놀라울 정도로 한글과는 그 자음과 모음체계가 유사해 이 문자를 공부해본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훈민정음이 이 문자들을 참고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한 원나라로부터 문화적,정치적으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난지 수십년밖에 안되어 그 때까지도 파스파문자가 낯설지 않아 지식인층에서 그 문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시 역시 티벳어,범어와 더불어 파스파문자도&amp;nbsp; 참고로 했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범어와 티벳어,파스파문자의 원형은&amp;nbsp; 단군조선시대의 문자 가림토문이라고 하니,결국,한글의 원형은 가림토문이 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세종과 문종은 대를 이어 신미대사 김수성에게 &quot;존자(불교식으론 스승이란 뜻의 극존칭으로서 &quot;대사&quot;라는 호칭보다 몇단계위의 대우)&quot;의 칭호를 부여하려고 했으나 집현전학사들 대부분과 유학자들의 극력 반대에 부딪혀 단지 &quot;대사&quot;란 호칭만 주는 것으로 후퇴했고 훈민정음 창제도 신미대사가 아닌 &quot;세종&quot;자신이 만든 것으로 반포하게 되었다고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왜냐면 숭유억불의 유교사회에서 유학자들이 결국 백기를 들고 세종의 훈민정음창제를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훈민정음창제의 실질적인 주역이 &quot;신미대사&quot;였슴을 만천하에 공표하게 되는 &quot;존자&quot;라는 호칭은 절대 반대했기 때문이다.즉,유교가 불교의 아래에 서게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훈민정음을 세종 혼자서 그냥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세종은 신미대사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혼자서 훈민정음을 &amp;nbsp;만들었다고 발표했는데, 후세사람들은 이런 전후맥락을 모르고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훈민정음 반포 후,용비어천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훈민정음을 사용한 문집들은 불경번역서이며,&amp;nbsp; 말년에 불교에 심취했던 세종과 문종 그리고 세조의 행적은,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십수년동안 그들이 스승처럼 여겼던 &quot;신미대사&quot;의 영향때문이기도 한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시말하지만 ,훈민정음은 우리 민초들이 단군조선시대부터 사용하던 &quot;가림토문&quot;과 고려시대부터 승려들이 불경번역시 상용하던 &quot;구결문&quot;을 바탕으로, &quot;티벳어&quot;와 &quot;범어(산스크리트어)&quot;,&quot;파스파문자&quot;를 참고로 하여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세종과 문종,수양대군이 지휘 및 참여했으나 실질적으로 주된 역할을 한 분은 5개 국어에 능통했던 집현전 학사 출신의 신미대사 &quot;김수성&quot;이었다는 사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blog.naver.com/maenam111/90042902597&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http://blog.naver.com/maenam111/90042902597&lt;/FONT&gt;&lt;/U&gt;&lt;/A&gt;)참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당시에 세종과 문종,그리고 세조가,훈민정음 창제의 숨은 주역 신미대사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없었던 것이 집현전학사들을 비롯한 유학자들의 강력한 반대때문이었는데,현대에도 이 사실을 공론화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왜냐면 이 사실이 공론화되면 개신교(기독교)계통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이 사실을 부정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작년 2008년에 이명박 정부하에서 개신교에 의해 불교가 얼마나 찬밥신세가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보면 ,훈민정음 창제의 실질적인 주역인 신미대사 김수성은 영원히 그 공로가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훈민정음의 실질적인 주역이 승려였다는 사실을 개신교(기독교)계통에선 아마도 수천년이 지나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진정 훈민정음,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amp;nbsp;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좀 더 공부하고 나서 신중하게 기록해야 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한 그것만이 우리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수백년 ,수천년 후의 우리 자손들에게 큰 교육자료와 생생한 증거가 될 것이다. 
&lt;P&gt;&amp;nbsp; 
&lt;P&gt;결론적으로,세종과 신미대사는 한글을 &lt;창제&gt;했다기보다는 &lt;완성&gt;을 한 것이다. &lt;/P&gt;
&lt;P&gt;&lt;BR&gt;군사정권을 싫어한다는 사람들이 세종을 띄우기위해 세종이 한글을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위해, 가림토문의 존재를 기록한 한단고기도 부정하고,단군조선역사도 부정하는 행태는 정말 매국적이기까지 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saved&gt;
&lt;P&gt;&lt;/P&gt;&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36pt&quot;&gt;2..................................................................................................................................................&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ff0000&gt;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은 우리것을 새로이 재창조 한 것이다.&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한글은 단군조선의 옛글자에서 비롯되었다.&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백성들은 이미 한글(언문)을 쓰고 있었다.&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고조선때부터 한글이 있었다.&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id=http://blogfiles14.naver.net/data17/2007/4/27/93/1-teael.gif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14.naver.net/data17/2007/4/27/93/1-teael.gif&quo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1번이 &lt;FONT color=#ff0000&gt;고대한글&lt;/FONT&gt;인 &lt;/FONT&gt;&lt;FONT color=#ff0000&gt;가림토&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2번이 &lt;/FONT&gt;&lt;FONT color=#ff0000&gt;훈민정음&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3번이 &lt;FONT color=#ff0000&gt;고대한글&lt;/FONT&gt;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조금 변형된 &lt;/FONT&gt;&lt;FONT color=#ff0000&gt;신대문자&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훈민정음(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lt;/P&gt;
&lt;P align=center&gt;세계적인 과학잡지 &lt;FONT color=#177fcd&gt;디스커버&lt;/FONT&gt;는 지난 1994년 7월호 특집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한글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을 실었다.&lt;/P&gt;
&lt;P align=center&gt;그들은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다.&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quot;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quo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quot;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quo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한마디로 말해서 한글은&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00ff&gt;&quot;세계 문자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quot;&lt;/FONT&gt;라는 것이다.&lt;/P&gt;
&lt;P align=center&gt;한편 언어학자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177fcd&gt;'이런 한글이 어떻게 한 개인의 연구에 의해 단기단에 창제될수 있는가?'&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세계 문자 역사상 그런 경우는 단 한건도 없기 때문이다.&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ff0000&gt;&lt;STRONG&gt;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 &lt;/P&gt;
&lt;P align=center&gt;KBS역사스페셜 &lt;FONT color=#0000ff&gt;[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lt;/FONT&gt;1999.10.9방영)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있다.&lt;/P&gt;
&lt;P align=center&gt;조선의 4대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lt;/P&gt;
&lt;P align=center&gt;남몰래 자식들과 더불어 한글을 연구한 지 10여년만에 &lt;/P&gt;
&lt;P align=center&gt;마침내 28자의 정음을 창제하였다는 내용이었다.&lt;/P&gt;
&lt;P align=center&gt;말하자면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혼자만의 비밀작업이었다는 것이다.&lt;/P&gt;
&lt;P align=center&gt;세종대왕이 재위 25년(1443년)에 전격적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당시 집현전의 &lt;FONT color=#0000ff&gt;실직적인 책임자였던 최만리 &lt;/FONT&gt;등 일곱명의 노장학자들은 반대 상소를 올린다.&lt;/P&gt;
&lt;P align=center&gt;하지만 세종대왕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의 소장학자들과 더불어 훈민정음 해례본(1446)과 동국정운(1447) 등 한글관련 서적의 편찬사업을 계속 추친하였다.&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모든 백성들이 아무 불편없이 언어와 문자를 활용하려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군주로서의 의지가 확고하혔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
&lt;IMG id=http://blogfiles12.naver.net/data20/2007/4/27/187/4-teael.gif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12.naver.net/data20/2007/4/27/187/4-teael.gif&quo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등이 반대하는 글을 올리는데 &lt;/P&gt;
&lt;P align=center&gt;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lt;/P&gt;
&lt;P align=center&gt;(조선왕조실록)&lt;/P&gt;
&lt;P align=center&gt;&quot;언문은 본래 다 예글자 이고 새로운 글자가 아닙니다.&lt;/P&gt;
&lt;P align=center&gt;그러나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예글자를 모방햇다고 하나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은 옛글자와 달라서 실로 근거한바가 없사옵니다&quot;&lt;/P&gt;
&lt;P align=center&gt;(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전조선(고조선)때 부터 전해오는 언문 을 빌려 쓰신 것이긴 하지만 &lt;/P&gt;
&lt;P align=center&gt;지금은 한자를 써야 할 때인데 어찌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lt;/P&gt;
&lt;P align=center&gt;(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魯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언문은 한자와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것들이 쓰는 말일뿐이옵니다. &lt;/P&gt;
&lt;P align=center&gt;(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0000&quot; color=#ffffff&gt;당시 세종대왕은 한글을 [훈민정음] 이라고 발표했지 [언문]이라고 한 적이 없다.&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0000&quot; color=#ffffff&gt;최만리등의 말에서 보이듯이 [훈민정음창제] 이전에 이미 예로부터 전해오는 [언문]이라는 것이 있었고&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0000&quot; color=#ffffff&gt;백성들이 그 [언문]을 쓰고 있었으며&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0000&quot; color=#ffffff&gt;[훈민정음] 즉 한글은 그 언문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진 것이다.&amp;nbsp;&amp;nbsp; &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 세종께서 상소문을 다 보시고 최만리 들에게 말씀 하셨다.&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quot; 그대들이 말하기를 (훈민정음의) 소리를 사용하는 법이나 글자의 조합 방법이 옛것과 다르다 했는데 설총의 이두 역시 소리가 다르지 않더뇨?&quot;&amp;nbsp; &lt;/P&gt;
&lt;P align=center&gt;(上覽&amp; #18429;謂萬里等曰汝等云用音合字盡反於古薛聰吏讀亦非異音乎)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P&gt;
&lt;P align=center&gt;* 속용문자(俗用文字) - 신경준의 [훈민정음 운해(訓民正音 韻解)]에 의하면 동방에는 예로부터 속용문자 (백성들 사이에 쓰이던 문자)가 있었다. &lt;/P&gt;
&lt;P align=center&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0000&quot;&gt;&lt;FONT color=#ffffff&gt;&lt;U&gt;그러면 고조선 시대부터 써왔다는 언문 즉 [고대한글]은 도대체 무엇인가.&lt;/U&gt; &lt;/FONT&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amp;nbsp; &lt;BR&gt;.. &lt;BR&gt;&amp;nbsp;&lt;BR&gt;훈민정음 이전 한글 &quot;가림토&quot; 발견&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경북 경산시 와촌면 명마산서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ㅅ ㅈ ㅠ 자모 뚜렷 학계 관심&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right&gt;- 부산일보 2003/03/13일자 38면-&lt;BR&gt;[경북 경산시 와촌면 명마산 고대 한글 바위]&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훈민정음 창제(1443년) 이전의 고(古) 한글로 추정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국내 최초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lt;/P&gt;
&lt;P align=center&gt;가림토 문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李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amp;nbsp;&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lt;/P&gt;
&lt;P align=center&gt;13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가로 1.8m,세로 3.4m)에서 &lt;/P&gt;
&lt;P align=center&gt;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됐다.&amp;nbsp;&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다.&lt;/P&gt;
&lt;P align=center&gt;재야 사학자인 예대원(62·경북 경산시 사동)씨는 &lt;STRONG&gt;&quot;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quot;&lt;/STRONG&gt;고 단언했다.&lt;/P&gt;
&lt;P align=center&gt;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lt;STRONG&gt; &quot;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quot;&lt;/STRONG&gt;며&amp;nbsp;&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quot;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quot;&lt;/STRONG&gt;이라고 밝혔다.&lt;/P&gt;
&lt;P align=center&gt;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quot;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amp;nbsp;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quot;&lt;/STRONG&gt;라고 말했다.&lt;/P&gt;
&lt;P align=right&gt;경산=정철수기자 csjung@&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color=#d41a01&gt;훈민정음은 단군조선의 옛글자에서 비롯되었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　&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d41a01&gt;&lt;STRONG&gt;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한글의 원형 글자가 있었다. &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정작 한글을 창제한 당사자인 세종대왕은 &lt;FONT color=#003366&gt;&lt;STRONG&gt;“ 옛 글자를 본떴다 ”&lt;/STRONG&gt;&lt;/FONT&gt;고 말했다. 또 위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신경준이 지은 &lt;훈민정음 운해&gt;(1750년)에는 우리 나라에는 “&lt;FONT color=#003366&gt;&lt;STRONG&gt;예로부터 사용하던 속용문자 가 있었다”&lt;/STRONG&gt;&lt;/FONT&gt;고 하였으니,&amp;nbsp;한문 외에도 &lt;FONT color=#003366&gt;&lt;STRONG&gt;민간에서 사용되던 문자&lt;/STRONG&gt; &lt;/FONT&gt;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lt;BR&gt;　&lt;BR&gt;그렇다면 백성을 위해서 언어를 연구했던 세종대왕이 세간에서 사용되던 이런 문자들를 참고하였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lt;BR&gt;이는 최만리 등의 반대상소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amp;nbsp;한자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양반계급에 속한 최만리는 언문을 왜 새로 만드냐며,&amp;nbsp;하물며 &lt;STRONG&gt;&lt;FONT color=#003366&gt;옛 글자와 똑같은 것을 왜 다시 만들 필요가 있냐&lt;/FONT&gt;&lt;/STRONG&gt;고 세종대왕에게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lt;BR&gt;　&lt;BR&gt;　요컨대 우리 민족에게는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부터 옛 글자가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amp;nbsp;그렇다면 ‘옛글’이나 ‘속용문자’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서로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에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lt;BR&gt;　&lt;BR&gt;&lt;STRONG&gt;&lt;FONT color=#009966&gt;　4000여년 전 단군시대의 가림토 문자&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
&lt;IMG id=http://blogfiles9.naver.net/data18/2007/4/27/248/2-teael.gif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9.naver.net/data18/2007/4/27/248/2-teael.gif&quot;&gt;&lt;/P&gt;
&lt;P align=center&gt;&lt;B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28자)과&amp;nbsp;단군조선시대의 문자로 알려져 있는 가림토 문자(38자)를 비교해보자. 모음이나 자음의 모양이 두루 비슷하다.&amp;nbsp;외형적으로 보더라도 가림토 문자는 가히 한글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amp;nbsp;‘발음의 원리는 따로 만들었으나 &lt;FONT color=#003366&gt;&lt;STRONG&gt;글자는 옛글을 본떴다&lt;/STRONG&gt; &lt;/FONT&gt;’고 한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lt;BR&gt;　&lt;BR&gt;　실제로 가림토 문자의 38자 중에서 10자를 빼면 훈민정음 28자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lt;/P&gt;
&lt;P align=center&gt;&lt;BR&gt;　『한경대전』(임균택 저, 충효예출판사 2001년)이라는 책에 의하면,&amp;nbsp;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이 『징심록』의 가림토문에서 취해졌다” &lt;/P&gt;
&lt;P align=center&gt;　&lt;BR&gt;가림토 문자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그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4184년전 단군시대 때,&amp;nbsp;제3세 단군이었던 가륵단군께서 BC2181년에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라 불렀다고 하였다.&lt;/P&gt;
&lt;P align=center&gt;&lt;U&gt;&amp;nbsp;(이에 대해서는 「단군세기」 와 『단기고사』의 기록이 동일하다). &lt;BR&gt;&lt;/U&gt;　&lt;BR&gt;한글과 가림토 문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민족사학자의 글 및 언론과 방송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amp;nbsp;&lt;U&gt;(1996년 한글날에 방영된 Q채널의 「한글, 그 비밀의 문」도 그중의 하나)&lt;/U&gt; &lt;BR&gt;　&lt;BR&gt;　학자에 따라서는, 가림토 문자 38자 중에 X, M, P, H 및 I, O 등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에 주목하기도 한다&lt;U&gt;(참고로 알파벳의 역사는 3000년이다).&lt;/U&gt;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그밖에도 중국의 갑골문자와 일본의 초기 신대문자, 몽고의 파스파문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등이 단군시대 가림토 문자와 유사하다는 학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lt;/P&gt;
&lt;P align=center&gt;&lt;U&gt;(참고로 알타이어의 사용범위는 터키, 몽고, 티벳, 만주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다)&lt;/U&gt; &lt;BR&gt;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
&lt;IMG id=http://blogfiles2.naver.net/data20/2007/4/27/209/3-teael.gif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2.naver.net/data20/2007/4/27/209/3-teael.gif&quot;&gt;&lt;/P&gt;
&lt;P align=center&gt;&lt;BR&gt;　&lt;BR&gt;　&lt;BR&gt;　&lt;STRONG&gt;&lt;FONT color=#ff0000&gt;세계문자역사의 종주는 바로 우리 배달민족&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center&gt;&lt;BR&gt;앞으로 우리 나라 상고사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 우리 한민족이 세계 문자 역사의 종주국이며,&amp;nbsp;배달국은 세계최초로 문자를 가졌던 일등 문명국이었음이 만천하에 밝혀지는 그날이 올 것이다. &lt;BR&gt;　&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6ff4d&quot; color=#003366&gt;일본에서 한글로 토속신 모신다.&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
&lt;IMG id=http://blogfiles1.naver.net/data18/2007/4/27/208/4-teael.jpg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1.naver.net/data18/2007/4/27/208/4-teael.jpg&quot;&gt;&lt;/P&gt;
&lt;P align=center&gt;&lt;/P&gt;
&lt;P align=center&gt;일본 시코쿠 도쿠시바시 야마시로 마을에서 사용하고 있는 토속신 `에비스'의 계시록에 한글이 적혀 있다. 고대 한글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lt;/P&gt;
&lt;P align=center&gt;고대 한국인이 건너가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으면서 한글도 전한 것으로 추정.&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right&gt;(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제558돌 한글날을 나흘 앞둔 가운데 일본에서 한글 부적을 사용하며 토속신을 모시는 신사(神社)와 마을이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5일 부산외대 김문길(金文吉) 교수에 따르면 &lt;/P&gt;
&lt;P align=center&gt;일본 시코쿠 도쿠시마시 야마시로라는 마을에는 신사와 집집마다 이 지역의 토속신인 `에비스(エビス)'를 섬기고 찬양하자는 내용의 한글 부적을 붙여놓고 있다. 또 이 마을 주민들은 에비스신 축제와 경조사 때 에비스신이 직접 적어줬다는 이 부적을 일본어로 낭독하고 있으나 한글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U&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99dcff&quot;&gt;주: 이 '에비스' 라는 신은 고대한국인으로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들을 가르친 사람으로 보임.&lt;/FONT&gt;&lt;/U&gt;&lt;/P&gt;
&lt;P align=center&gt;&lt;U&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99dcff&quot;&gt;일본인들에게 신으로까지 추앙받은 한국인으로 보임. 사실 많은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음.&amp;nbsp;그 시기를 일본에서는 '신대' 즉 '신들의 시대' 라 하고&amp;nbsp;한글을 '신대 문자' 라 함.)&lt;/FONT&gt;&lt;/U&gt;&lt;/P&gt;
&lt;P align=center&gt;&lt;/P&gt;
&lt;P align=center&gt;주민들은 특히 115페이지 분량의 `계시록'을 갖고 있는데 이 계시록의 제목도 `가이ㅣㅏ아(카미야마.神山)의 계시록'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김 교수는 관련자료를 공개했다.&lt;/P&gt;
&lt;P align=center&gt;계시록에는 생활법규와 신의 계시 등을 담고 있어 주민들은 이 책을 기독교의 성경처럼 여기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lt;/P&gt;
&lt;P align=center&gt;김 교수는 이 지역 외에도 오카야마 비전시 가가도와 후쿠오카 히예신사, 나고야신사, 관서지방의 한 역사자료관 등에도 토속신은 다르지만 이들 신을 찬양하는 한글 부적을 붙여놓고 있거나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lt;/P&gt;
&lt;P align=right&gt;&lt;BR&gt;&lt;A href=&quot;mailto:youngkyu@yna.co.kr&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6666&gt;&lt;U&gt;youngkyu@yna.co.kr&lt;/U&gt;&lt;/FONT&gt;&lt;/A&gt;&lt;/P&gt;
&lt;P align=right&gt;(끝)&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6ff4d&quot;&gt;이하 일본에 있는 신대문자&lt;BR&gt;-고대한글이 건너간 것&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http://blogfiles12.naver.net/data17/2007/4/27/27/5-teael.jpg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12.naver.net/data17/2007/4/27/27/5-teael.jpg&quot;&gt;&lt;/CENTER&gt;
&lt;P align=center&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http://blogfiles15.naver.net/data20/2007/4/27/222/6-teael.jpg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15.naver.net/data20/2007/4/27/222/6-teael.jpg&quot;&gt;&lt;/CENTER&gt;
&lt;P align=center&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http://blogfiles7.naver.net/data19/2007/4/27/182/7-teael.jpg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7.naver.net/data19/2007/4/27/182/7-teael.jpg&quot;&gt;&lt;/CENTER&gt;
&lt;P align=center&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http://blogfiles7.naver.net/data17/2007/4/27/134/8-teael.jpg style=&quot;CURSOR: hand&quot; src=&quot;http://blogfiles7.naver.net/data17/2007/4/27/134/8-teael.jpg&quot;&gt;&lt;/CENTER&gt;
&lt;P align=center&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e4ff75&quot; color=#ff0000&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인도 &amp;nbsp;구자라트 문자 &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환단고기에 우리 문화를 수메르 등 중동에 전해주었다고 한는데 구자라트 문자는 우리 한글과 거의 비슷하다.&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amp;nbsp;스메르 의 말 과 우리말의 유사성 &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환단고기에 12 환국의 하나인 수메르의 말은 우리말과 비슷한것이 많다.&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수메르어와 한국어 비교. &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슈메르어(발음)[ 뜻]&lt;BR&gt;한국어 발음[단어 뜻]&lt;BR&gt;슈메르발음[단어뜻 ]&lt;BR&gt;한국어 발음[단어 뜻]&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아누(Annu)[최고 신]&lt;BR&gt;하느님 [하느님,上帝]&lt;BR&gt;Bad 바드 [ 밭 ]&lt;BR&gt;밭 (Bat) [밭, 田 ]&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안 (An) [天]&lt;BR&gt;하늘 (ha)?[ 하늘, 天 ]&lt;BR&gt;Na 나 [나 1인칭]&lt;BR&gt;나 Na [ 나,我 ]&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기르(Gir)&lt;BR&gt;길 (Gil) [路]&lt;BR&gt;Ge 그[3인칭 ]&lt;BR&gt;그 Ge [ 3인칭 ]&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라 (Ra) [~ 에서 ]&lt;BR&gt;로 (Ro) [ 조사 ]&lt;BR&gt;이 [1 인칭 ]&lt;BR&gt;이 [지시대명사]&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아비 Abi [ 아버지 ]&lt;BR&gt;아비 (Bo) [ 夫 ]&lt;BR&gt;Uhma 움마[엄마母]&lt;BR&gt;엄마 Uhma [엄마 母]&lt;/FONT&gt;&lt;/P&gt;
&lt;P&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니므 Nim [ 님 任 ]&lt;BR&gt;님 (Nim) [ 사람 任]&lt;BR&gt;&lt;BR&gt;
&lt;IMG id=http://kr.img.blog.yahoo.com/ybi/1/71/fa/hobynara/folder/3274175/img_3274175_1360401_0?1153403592.jp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kr.img.blog.yahoo.com/ybi/1/71/fa/hobynara/folder/3274175/img_3274175_1360401_0?1153403592.jpg&quot;&gt;&lt;/FONT&gt;&lt;FONT style=&quot;FONT-FAMILY: 엔터-풀잎9&quot;&gt;&amp;nbsp;&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saved&gt;&lt;/DIV&gt;&lt;/FONT&gt;
&lt;P&gt;&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saved&gt;&lt;/DIV&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id=layout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id=top-left&gt;&lt;/TD&gt;
&lt;TD id=top-center&gt;&lt;/TD&gt;
&lt;TD id=top-right&gt;&lt;/TD&gt;&lt;/TR&gt;
&lt;TR&gt;
&lt;TD id=middle-left&gt;&lt;/TD&gt;
&lt;TD id=middle-center&gt;&lt;!-- main start --&gt;
&lt;TABLE id=main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id=content width=500&gt;&lt;!-- content start --&gt;
&lt;DIV id=head&gt;
&lt;H1&gt;&amp;nbsp;&lt;/H1&gt;
&lt;H2&gt;&amp;nbsp;&lt;FONT color=#0033cc&gt;netemperor.com/&lt;/FONT&gt; 
&lt;P&gt;&amp;nbsp;&lt;/P&gt;
&lt;P&gt;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문자가 있었습니다. 동이족의 분국인 은나라에 갑골문자가 있었다면 은나라보다 선진국이며 본국인 고조선에 문자가 있었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단군시대 문자는 3대 갸륵 단군(기원전 2181년)때 삼랑 을보륵이 만든'가림토 문자'로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이며, 세종대왕 때는 훈민정음 28자로 재 창제되었습니다.&lt;BR&gt;&lt;/P&gt;
&lt;P&gt;&lt;BR&gt;&lt;가림토문자 38자〉 &lt;BR&gt;이 밖에도 단군시대에 '진서'라고 불리는 녹도문이라는 문자가 있었습니다. 이 '녹도문'이 은나라의 갑골문자의 뿌리가 되었고 갑골문자는 지금의 한자와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lt;BR&gt;훈민정음은 세종대왕 단독으로 혹은 그 신하들과 함께 조선왕조 때 처음 만들어진 것이아니라, 옛날의 문자를 참고하여 다시 만들어진 문자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lt;BR&gt;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lt;BR&gt;1.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녹도문자〉전 조선시대(고조선)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세종실록 103권)&lt;BR&gt;2.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lt;BR&gt;3.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옵서 정음 스물여덟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를 들어서 보이시면서 이름지어 가로되 훈민정음이라 하시니, 상형하되 글자는 옛날의 전자를 본따고,..(정인지의 해례서문)&lt;BR&gt;4.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상소문 중에서)&lt;BR&gt;&lt;BR&gt;&lt;/P&gt;
&lt;CENTER&gt;&lt;BR&gt;
&lt;IMG id=http://www.netemperor.com/html/attach/mearee_1090018230_1.jp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www.netemperor.com/html/attach/mearee_1090018230_1.jpg&quot;&gt;&lt;BR&gt;&lt;BR&gt;&lt;위로부터, 인도 구자라트 문자, 몽고 파스파 문자, 중국 갑골문자.&gt;&lt;BR&gt;&lt;/CENTER&gt;
&lt;P&gt;&lt;BR&gt;&lt;BR&gt;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700년 전에 일본에는 이미 원시 한글이 존재했고, 그 유물이 지금도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 등에 아직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신들의 시대에 &lt;BR&gt;신들이 쓰던 문자라 해서 '신대문자(아히루 문자)'라 합니다.&lt;BR&gt;즉, 가림토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인 아히루 문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로 전해진 가림토 문자의 흔적이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 남아있고, 은나라 유적지 은허에서 갑골문으로도 발굴되었습니다.&lt;BR&gt;또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분국이었던 몽고로 건너가 '파스파'란 고대문자가 되었으〈일본의 신대문자〉 며, 배달국 분국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트 알파벳과 구자라트 문자의 원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한단고기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나라들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지금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만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을 따름입니다.&lt;BR&gt;&lt;BR&gt;&lt;/P&gt;
&lt;CENTER&gt;&lt;BR&gt;
&lt;IMG id=http://www.netemperor.com/html/attach/mearee_1090018230_2.jp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src=&quot;http://www.netemperor.com/html/attach/mearee_1090018230_2.jpg&quot;&gt;&lt;BR&gt;&lt;BR&gt;&lt;가림토 문자&gt;&lt;BR&gt;&lt;/CENTER&gt;
&lt;P&gt;&lt;BR&gt;우리가 오랑캐 정도로 알고 있는 여진이나 거란 몽고족은 사실은 가림토 문자를 사용하던 우리 민족이라고 한다.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쥬신족의 일부도 가림토 문자를 사용하였는데 이들이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진출하여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원이 되었고, 놀라운 것은 이들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적 중에서 가림토 문자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의 구자라트 지방에서도 우리가 뜻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한글과 대단히 유사한 문자가 사용되고 있는 것 역시 가림토 문자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3...................................................................&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http://blog.empas.com/papa720/27876986_300x429_thumb.jpg src=&quot;http://blog.empas.com/papa720/27876986_300x429_thumb.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http://cafefiles.naver.net/20091105_286/uridlsuri_1257403377543XcwHx_jpg/1226458037_1_supergol_uridlsuri.jpg height=733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1105_286/uridlsuri_1257403377543XcwHx_jpg/1226458037_1_supergol_uridlsuri.jpg&quot; width=550&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style=&quot;BORDER-RIGHT: #555555 1px solid; BORDER-TOP: #555555 1px solid; BORDER-LEFT: #555555 1px solid; BORDER-BOTTOM: #555555 1px solid&quot; cellSpacing=0 cellPadding=8 width=&quot;99%&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f6f6f8&gt;&lt;FONT face=굴림체,굴림&gt;
&lt;IMG id=http://www.bc8937.pe.ne.kr/tec/image/userimage/point1.gif src=&quot;http://www.bc8937.pe.ne.kr/tec/image/userimage/point1.gif&quot;&gt; &lt;FONT style=&quot;FONT-SIZE: 8pt&quot;&gt;No, 104&lt;/FONT&gt;&lt;BR&gt;
&lt;IMG id=http://www.bc8937.pe.ne.kr/tec/image/userimage/point1.gif src=&quot;http://www.bc8937.pe.ne.kr/tec/image/userimage/point1.gif&quot;&gt; &lt;FONT style=&quot;FONT-SIZE: 8pt; FONT-FAMILY: 돋움&quot;&gt;2006/7/23(일)&lt;FONT style=&quot;FONT-SIZE: 7pt; FONT-FAMILY: Tahoma&quot;&gt;&lt;/FONT&gt;&lt;/FONT&gt;&lt;BR&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50%&quot;&gt;&lt;FONT face=굴림체,굴림 color=#000000&gt;
&lt;IMG id=http://www.bc8937.pe.ne.kr/tec/image/userimage/theme/ball1.gif src=&quot;http://www.bc8937.pe.ne.kr/tec/image/userimage/theme/ball1.gif&quot;&gt; &lt;B&gt;&lt;FONT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불교, 신미대사 그리고 한글에 관한 특집방송 부탁 &amp;nbsp;&lt;/FONT&gt;&lt;/B&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amp;nbsp;*&amp;nbsp;세종은 한문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했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한글이 아닌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중국이 되었거나 문맹자가 엄청날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쉬운 글자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lt;/P&gt;
&lt;P&gt;&amp;nbsp;그런데 이 훈민정음을 주도적으로 만드 분이 바로 충북 영동 복천사에 거주한 &quot;신미선사&quot;라고 합니다. 이 시민서사와 한글 그리고 불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불교TV가 발굴하여 특집으로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lt;/P&gt;
&lt;P&gt;&lt;참고자료를 올림니다&gt;&lt;BR&gt;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79). &lt;/P&gt;
&lt;P&gt;조선전기의 승려, 유.불학자&lt;/P&gt;
&lt;P&gt;&lt;BR&gt;1. 내 용&lt;/P&gt;
&lt;P&gt;충북 영동에서 부친 김훈(金訓)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김수온(金守溫) 선생의 형님으로 본명이 수성(守省), 본관은 영산(永山)이다. 모친의 뱃속에서 나올적부터 왼손 손바닥에 임금왕(王)자가 손금에 있어 부모와 삼촌들은 크나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신라때부터 이조에 이르는 동안 그런 사람은 나라에 역적이 된다하여 국법에 의하여 잡아 죽였던 것이기에 죽음을 면할려고 배안 병신 노릇을 아니할 수 없어 항상 손가락을 오그리고 주먹을 쥐고 살수 밖에 없었다.&lt;/P&gt;
&lt;P&gt;어려서부터 인물이 잘나고 평소에 말을 잘하지 않았으나 한번 말을 내놓으면 청산유수 같았고 눈을 부리뜨면 안광이 눌리지 않는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왕이 될만한 기품이 있었고 관상학상으로 왕의 기상을 타고 났다고 한다. 두뇌가 총명하여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았는데 글을 읽어 집현전 학사로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벼슬에 마음이 없고 불가(佛家)에 뜻이 있어 자칭 신미(信眉)라하여 머리깍고 스님이 되었다.&lt;/P&gt;
&lt;P&gt;세종26년에 五子 광평대군(廣平大君)을 잃고, 세종27년에 七子 평원대군(平原大君)을 잃었고, 세종28년에 소헌왕후(昭憲王后)를 잃는 등 3년동안에 세분을 잃으니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뉘우치던 중 병환으로 고통할 적에 문종과 수양대군 등이 지성으로 시탕(侍湯)하였으나 효험이 없던바 신미대사로 하여금 약을 쓰게 하니 완쾌하였다. 그로부터 세종은 신미대사와 가까워 졌고 신미대사의 박식(博識)함에 감탄하고 인물됨에 매료되었다.&lt;/P&gt;
&lt;P&gt;세종은 신미대사에게 혜존각자(慧覺尊者)의 호를 내리려 하였으나 병으로 내리지 못하고 문종에게 유교를 내리니 문종은 선왕의 뜻을 받드려 왕에 오르자 사호(賜號)하니 「慧覺尊者」라 했다. 특히 세조와는 수양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다. 세조는 왕위에 올랐어도 꼭 尊者라 불렀고 국사로 모셨으며 세조7년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고 신미대사를 우두머리로 효영대군(孝寧大君)과 김수온(金守溫) 등에게 불서를 언해하고 간행함에 100종에 이르렀다. &lt;/P&gt;
&lt;P&gt;&lt;BR&gt;속리산 복천사(福泉寺)를 비롯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월정사(月精寺), 낙산사(洛山寺) 대자암 등을 중신하고 국책으로 처불함에도 소신것 불사에 힘썼으니 그 공이 지대하였다.성종10년에 열반에 오르니 복천사 남쪽 200미터에 신미부도(信眉浮屠)를 세웠으니 충청북도문화재12호이다.&lt;/P&gt;
&lt;P&gt;&lt;BR&gt;2. 세조대왕과의 인연 &lt;/P&gt;
&lt;P&gt;조선조 제7대 세조대왕은 국초의 서정(庶政)을 바로 잡고 만기(萬氣)를 친재(親裁)하기에 영일(寧日)이 없는 사이에 몸에는 지독한 피부병이 걸렸다.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다. 전날 보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여러 형제를 해치고 어진 신하들을 학살한 세조는 만년에는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회오의 길로 침잠하니 외로움과 헌전함에서 정신적인 안식처를 구하려 하였다. 이때 생각나는 이가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대사(信眉大師)였다. 신미는 도학과 학식이 뛰어난 당대의 도승이자 학승으로서 복천사에 주석하고 있었다.&lt;/P&gt;
&lt;P&gt;신미대사의 초청은 받은 세조대왕은 天順8년 2월 28일에 신숙주 이하 많은 신하를 대동하고 청주서 2박을 하고 장재리를 거쳐 말띠재를 넘어 큰소나무 아래까지 당도하였다 바로 길옆에는 2등변 3각형의 아름드리 낙낙장송이 가지를 길위에 드리우고 있어서 대왕이탄 연의 꼭지가 아마도 걸릴 것만 같았다. 이때 대왕은 연위에서 손으로 늘어진 소나무 가지를 가리키며「아! 저가지 아! 저가지」이렇게 외치자 그순간 늘어진 가지가 위로 처들었다 한다. 대왕은 신통히 여겨 즉석에서 정2품의 벼슬을 주었다.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2품송 이라 지금도 부르고 있다. &lt;/P&gt;
&lt;P&gt;정이품송을 지나 복천사에 도착한 대왕은 신미대사가 주재하는 법회에 의지하여 티끌세상에 물든 자신의 심신이 부끄러움을 깨닫고 또 한편으로는 무한한 법열을 느꼈다 이는 신미대사의 무변의 법력과 도심으로 제도한 까닥이다. 세조대왕과 신미대사와는 수어지교(水魚之交)로서 평생을 은혜롭게 지냈다. 복천사 법회를 마치고 아쉽게 떠날무렵 신미대사는 세조대왕에게 청원을 하기를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는 부처님(석가여래)정골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데 오랜세월로 심히 퇴락하여 민망한 지경에 있으니 대왕께서 이보궁을 중수하시면 그 공덕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간청하자 세조는 쾌히 승낙하여 이에 바로 학열(學悅)스님을 상원사로 보내어 중수를 마치고 6월에 낙성식을 가졌는데 이때 신미대사는 상원사에서 세조대왕을 초청하였다.&lt;/P&gt;
&lt;P&gt;때는 5.6월 염천이라 날씨가 찌는 듯 하였고 대왕의 온몸은 피부병에 덮여 이때 더욱 악화되었다. 이 사정을 누구보다도 신미대사가 잘 알고 있었기에 대왕을 초청한 것이다. 낙성식에서 진종일 땀을 흘린 대왕은 밤이되자 절에서 마련한 목욕장소에 들어가 몸을 씻는데 옥같은 석간수에 들어가니 전신이 녹아 내릴 것같이 시원하였다 그리고 나이어린 동자가 느닷없이 들어와서 고운 두손으로 등을 문지르니 심신이 날아갈 듯 쇄락하였다. 더욱 고마운 것은 나이어린 동자였다. 그래서 대왕은 등뒤에 있는 동자에게 나즉이 말을 건냈다.&lt;/P&gt;
&lt;P&gt;「애 동자야! 너 어디사니 이렇게 고마운데가 있나」「고맙긴요! 저는 이절에 살고 있어요 대왕님」「아 그래 내가 너한테 부탁할 것이 있는데 꼭 들어주겠나? 약속해...」「예 대왕님 어느 존전이라고 대왕님의 부탁을 마다하겠습니까 무엇인지 하교하옵소서 대왕님」「참으로 기특하구나 나의 부탁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나의 몸에 손을 댔다는 말을 남한테 절대로 하지 말아라 이것이 부탁이다」세조대왕의 일말은 중대한 뜻이 있다 신하된자가 옥체에 손을 대면 극형에 처하는 법이 있기에 동자의 신상이 염려되어 한 말이다. 그러자 동자는 대왕을 향하여 저도 대왕님께 청이 있으니 꼭 들어달라고 한다. &lt;/P&gt;
&lt;P&gt;세조대왕은 나이도 어리고 조금만 놈이 청이 있단 말이 하도 귀엽고 앙징스러워서 너의 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동자는 태연히 하는 말이「대왕님께서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이 현신(現身)하여 뒤에서 몸을 문지렀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마세요 꼭 약속이요」하였다 세종대왕은 깜짝놀라 뒤를 돌아 보니 동자는 온데간데 없고 부스럼이 이때부터 치유가 되었다. 세조대왕은 신미대사의 도력에 힘입어 복천사에서는 세조대왕이 목욕했던 당시에 현신했던 문수보살의 상이 모셔져 있다.&lt;/P&gt;
&lt;P&gt;&lt;BR&gt;3. 신미대사의 자비와 도력&lt;/P&gt;
&lt;P&gt;보은 속리산에는 법주사란 이름 높은 절이 있고 이 절에 고명한 스님들이 주석하였기에 이 절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혜각존자 신미대사가 한때 이 절에 주석하여 면벽관심(面壁觀心)으로 불도에 정진하고 있을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겨울날 밤에 이 절의 중진급스님 3.4명이 헐레벅떡 정신없이 신미대사의 수도장에 문을 두드리고 뵙기를 청하였다.&lt;/P&gt;
&lt;P&gt;내용인즉 이러하다 도둑 20여명이 벌떼같이 절에 침입하여 젊은 중들을 묶어놓고 장차 창고를 털 기세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높은 스님 신미대사 의 지시를 받으러 온것이다. 이 놀랍고도 끔찍한 말을 전한 스님들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이런 뜻밖의 일을 당한 신미대사는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태연히 말을 했다. 이 칠칠찮은 것들 떨기는 왜 떨어! 도둑이 떨 일이지 주인이 왜 떠느냐? 이렇게 꾸짖고는 명령을 내렸다. &lt;/P&gt;
&lt;P&gt;모든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마음대로 다 가져가라고 했다. 이 법주사는 토지가 많아서 일년에 천여석의 수확을 할뿐아니라 비단과 무명 기명과 잡화가 창고에 많았다 이 말을 들은 도둑들은 마음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쌀이며 비단이며 무명이며 기명등 닥치는 대로 멜빵이 끊어지도록 힘껏 짊어지고 도망을 쳤다. 긴긴 겨울밤이 보얗게 새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허둥지둥 도망을 쳤는데 이것이 웬일인가 밤새도록 죽을 힘을 다하여 도망을 쳤건만 법주사 경내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밤새도록 법주사만 뺑뺑 돈 셈이다 신미대사의 도력에 잡힌 것이다.&lt;/P&gt;
&lt;P&gt;이에 놀라고 당황한 도둑떼는 겁에 질려 솜같이 나른한 몸을 이끌고 신미대사 앞에 나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신미대사는 태연히 도둑떼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너희들의 눈을 보니 모두 착한 사람이다 이 순간이라도 사악한 마음을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왜들 이러느냐 마음을 바로 잡아라」라고 이렇게 순순히 타오르는 대사의 자비로운 얼굴에는 춘풍이 만면하였다 도둑들은 대사의 말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다고 한다.&lt;/P&gt;
&lt;P&gt;4. 주요 유적지&lt;/P&gt;
&lt;P&gt;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舍乃里) 속리산소재 복천암&lt;BR&gt;&amp;nbsp;신미선사와 한글&lt;/P&gt;
&lt;P&gt;신미선사는 충청북도 영동의 영산김씨 가문에서 부친 김훈과 모친 여흥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lt;/P&gt;
&lt;P&gt;출가 입산 전에 부친께서 진사벼슬에 등과한 후 태종 때에 영의정까지 지낼 수 있는 귀족가문 출신이기에 속가에서 사서삼경을 모두 섭렵하고 출가 입산하여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범서장경이 중국에 들어와 여러 고승들에 의하여 번역된 경전들이 마음에 차지 않아 범서로된 원전을 보기 위하여 범어 공부를 하였다. &lt;/P&gt;
&lt;P&gt;범서경전이 부처님 뜻에 가장 근접한 경전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은 중국의 한문 글이 너무 어려워 백성들이 문맹인이 많아 배우기 쉬운 구리들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lt;BR&gt;&amp;nbsp;&lt;BR&gt;아침조회에 신하들을 모아놓고 우리도 우리글을 한번 만들어 보자. 우리글을 만들데 집현전을 확장하고 장안에도 우수한 학자들이 많지만 이번엔 전국을 총망라하여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여 집현전에 초빙하여 가장 배우기 쉽고 이해하기 쉬워 누구나 속히 터득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 &lt;/P&gt;
&lt;P&gt;한글창제의 주역으로 발탁된 신미선사&lt;/P&gt;
&lt;P&gt;그 중 유일하게도 충청북도 속리산 복천사에 주석하고 있는 신미선사가 세종대왕의 초빙을 받아 집현전에 참석하게 되었다. &lt;/P&gt;
&lt;P&gt;&amp;nbsp;1443년부터 한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하여 1446년까지 4년에 걸쳐 논의를 한끝에 신미선사는 모음, 자음, 소리글을 범서에서 착안하여 한글을 마무리 짓고 시험할 때 해인사에서 장경을 간인하여 (법화경, 지장경, 금강경, 반야심경 등)토도 달아보고 번역도 하여 시험을 끝내고 우리글이 완성되었다고 세종대왕께 보고하니 임금님은 너무 기뻐하며 1446년 9월 상달에 우리글을 훈민정음이라 공포하고 우리글이 만들어졌으니 우리글로 노래도 한번 지어 보라하여 월인천강지곡과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등의 노래를 지었다. 그 후 세종대왕은 신미선사의 수고를 치하하고 보답으로 주석하고 있는 속리산 복천사에 주불 아미타불과 좌우보처관음세지 양대보살을 복각조성 시주하시고 그것으로 부족하여 시호를 선교 도총섭밀전정법비지쌍운우국이세원융무애혜각존자라 지어 문종에게 위임하여 문종이 부왕을 대신하여 신미선사께 사호 하였다. &lt;BR&gt;&amp;nbsp;&lt;BR&gt;&amp;nbsp;한글을 훈민정음이라 세상에 공포한 후 집현전에 같이 참석하였던 성삼문, 정인지 같은 유생들이 말하기를 한글에 대하여 신미대사의 공은 인정을 하되 최초 발기를 세종대왕이 하셨으니 그 공을 세종대왕께 돌리자하여 신미선사가 쾌히 승낙하니 그 후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지은 것으로 되었고 모든 문헌 등에 신미선사가 집현전에 참석함까지도 밝히지 않고 공은 왕께로 돌리기로 하였기에 거기에 대하여는 모든 문헌에도 신미대사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으나 유일하게 영산김씨 족보엔 세종의 초빙을 받아 집현전에 참석하였다는 기록이 되어 있다. &lt;/P&gt;
&lt;P&gt;&amp;nbsp;유생들은 신미선사가 승려의 신분으로 한글을 주도한데 대하여 과소평가하기 시작하여 언문인 부녀자들이 뒷방에 앉아서 친정에 하소연하는 편지나 써서 보내는 글이니 통시 글(쉽다는 말)이니 하며 이것이 무슨 글이냐 장부들이 배울 글이 못 된다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신미선사는 세종대왕의 뜻에 따라 누구든지 배우기 쉽게 만든 것뿐이기에 유생들의 그러한 비웃음에도 개의치 않아다. &lt;/P&gt;
&lt;P&gt;유생들은 유서에만 능했고 신미선사는 불경, 유서, 범서 등 모두에 능하여 범서에서 착안한 한글 논의에 대하여 유생들은 일체 반론도 한번 못했고 시종일관 신미선사의 뜻한 바대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집현전에서 4년간이나 학자들이 머물러 있었기에 학자들을 보살피는 한글도감으로 세종대왕은 수양대군을 명하였다. &lt;/P&gt;
&lt;P&gt;수양대군이 존경했던 인물 신미선사를 찾아온 곳 속리산&lt;/P&gt;
&lt;P&gt;&amp;nbsp;수양대군은 오래도록 학자들을 보살피면서 그 중에서 신미선사를 가장 존경하였다. 한글이 신미선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고 덕이 높으며 지혜가 뛰어나고 점잖고 용모도 거룩하기 때문이었다. &lt;BR&gt;&amp;nbsp;한글을 마치고 신미선사는 집현전에서 나와 속리산 복천사로 돌아오고 그 동안 세월이 흘러 세조인 문종에게 전위하고 문종께서는 병약하시어 일찍이 서거하시자 12세 되는 어린 나이에 단종이 즉위를 하시니 수양대군이 섭정을 하게 되었다. 섭정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간신들은 어린 왕을 가지고 형식만 취할 것이 아니라 “수양대군께서 직접 정사를 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수 차례 간청하였으나 세조는 불응하며 “날 보고 역모를 하란 말이냐?”하고 신하들을 호되게 꾸짖는다. 신하들은 뜻대로 되지 않자 계속 집권 할 것을 강요하니 하는 수 없이 혁명을 일으켰다. 단종은 영월로 귀양을 보내고 수많은 신하들이 희생되었다. 어느 날 꿈에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 “네가 아무리 용상이 탐이 나기로서니 어린조카를 살해까지 할 수 있느냐! 이 더러운 놈아!”하고 얼굴에다 침을 뱉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온몸에 부스럼이 생기었다. &lt;/P&gt;
&lt;P&gt;&amp;nbsp;그 당시에는 혁명중이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병에 대한 관심이 적다가 어느 정도 민심이 수습이 되자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인지라 약을 써도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 심신이 불안하고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용상을 보니 쳐다보기도 싫고 그렇다고 산으로 들어가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으나 그러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었다.&lt;/P&gt;
&lt;P&gt;소나무를 보고 연 걸린다 외친 세조&lt;/P&gt;
&lt;P&gt;그리하여 곰곰이 생각하니 지난 날 신미선사가 생각이 나서 신미선사를 찾아뵙기로 마음을 정하고 사전통보를 한 뒤에 4~5백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청주에 와서 2일간을 쉬고 보은 말티재 밑(현 대궐 터)에서 하룻밤을 자고 세조 10년 갑신 2월 28일 신해일에 말티재를 넘어 큰 소나무 밑을 지나는데 세조께서 타신 연이 소나무가지에 걸릴 것 같으므로 세조대완이 이를 보고 “연 걸린다! 연 걸린다!” 하니 연을 낮추기 전에 가지가 ‘번뜩’ 들어주어 연이 상하지 않았다. 세조대왕은 하도 이상하여 연을 멈추고 그 사실을 신하들에게 이야기하고 소나무에 대한 처리문제를 이야기하던 중 한 신하가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임금임을 알아보는 소나무이니 벼슬을 줌이 옳은 줄 아옵니다” 하고 아뢰자 세조께서는 “무슨 벼슬을 주면 좋겠는가?” 하시자 신하는 “정이품벼슬을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그 자리에서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지금의 장관급을 말함)&lt;/P&gt;
&lt;P&gt;스님들과 약속대로 정에에 복천사에 당도하니 당대의 큰 스님이신 신미선사와 수미, 학조, 학열, 사지등 많은 스님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법당으로 안내 참배케 하고 3일간 기도와 법문을 듣고 마음이 평안하여졌다. 마음의 안정을 얻은 세조대왕이 환궁할때에 신미선사는 아뢰길 “강원도 오대산을 가면 월정사가 있고 월정사 위에 상원사가 있으며 상원사 위에 중대가 있습니다. 중대는 우리나라 오대 적멸보궁 중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궁입니다.(부처님 머리부분사리를 모신 곳임)그러나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단월도 가는이가 적고 건물은 도괴직전입니다. 대왕께서 복원을 해주시면 그 공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세조대왕은 즉지 “나라에서 복원해 드리지요. 이곳에서 보궁복원에 감독할 분을 보내주세요” 하여 그 자리에서 학열스님을 보궁복원 감독으로 임명하여 보내었다. 학열스님이 걸어서 월정사 입구 월정거리에 당도하니 벌써 강릉쪽에 나라에 수세 바칠 것을 상원사 적멸보궁 복원비로 올리라는 통첩이 전달되어 곡식들을 모두 머이에 이고 등에 지고 월정사 거리로 빽빽하게 들어간다.(그 당시 인부노임을 곡식으로 환산함) 복원을 마치고 같은 해 유월에 낙성식을 하면서 신미선사는 오대산에 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고 세조대왕을 초빙하였다.&lt;/P&gt;
&lt;P&gt;“보궁복원이 다 되었으니 대왕께서도 적멸보궁 낙성식에 참석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초청을 하니 세조대왕은 쾌히 승낙을 하고 4~5백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낙성식에 참석하였다.&lt;BR&gt;유월 염천에 해는 길고 많은 신도들 앞에서 왕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옥대를 매었으니 땀을 흘려 부스럼이 가렵고 따가우나 손으로 만질 수도, 긁을 수도 없고, 하루 종일 괴로움을 겪다가 날이 저물고 어두워 밤 9시에 3경의 종을 치자 조용하다 다시 박이 분주함으로 “어찌하여 밖에 소란스러우냐? 하자. ”요소요소에 군사를 배치하느라 그러합니다.“ 하였다.&lt;/P&gt;
&lt;P&gt;세조대왕은 “ 이 산중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하고 경호원들을 모두 들어가 자라고 하였다.&lt;BR&gt;그것은 산골 시원한 물에 몸을 자유롭게 씻고자 함이었다. 밤 10시쯤되니 너무 조용한데 경호원들은 방에는 들어갔으나 잘 수가 없어 자라하여 방에는 들어갔으나 잠은 이룰 수 없었다. 이는 아직까지 단종편에서 자객들이 칼을 품고 암행기회만 노릴 때였기 때문이다.&lt;/P&gt;
&lt;P&gt;문수보살을 친견한 세조&lt;/P&gt;
&lt;P&gt;세조대왕은 우수 달밤에 물소리 나는 쪽을 찾아 나섰다. 달은 구름이 가리어 어둡고 구름이 지나가면 환히 밝았다. 물소리 나는 계곡 바로 옆은 길이요. 길옆이 계곡인지라 길 둑에서 왕관과 옥대 곤룡포등을 모두 벗어 개울 옆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개울둑에 앉아 발을 담구고 몸을 씨으니 하루종일 햇볕이 안드는 숲속에서 흐르는물이라 차기가 얼음물 같았다. 한참 기분좋게 씻고 있는데 갑자기 통~ 통! 뛰어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워지더니 대왕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뒷모습을 보니 7~8세 되어 보이는 꼬마동자였다. 지나가는 꼬마를 향해 “야! 꼬마야 너 어디 가느냐? 예 저 마을에요. 너 이리와. 내 등을 좀 밀어다오” 하자. “예 해드리죠” 하며 꼬마가 다가오더니 두팔을 둥둥 걷고 물을 꼬막손으로 찍어다 바르며 문지르니 시원하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여 장난이 벌어졌다. 대왕께서는 “야! 꼬나야 너 마을에 내려간다 하였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나하고 약속하나 지켜야 할 것이 있느니라“ 꼬마는 ” 예. 무엇입니까?“ 제가 그 약속을 꼭 지키어 드리겠습니다.&quot;&lt;/P&gt;
&lt;P&gt;대왕께서 말씀하였기를 “다른 것이 아니고 너는 마을에 내려가거든 대왕의 몸에 손을 대었다고 하지마라”(당시 국법으로 왕의 몸에 손을 대면 이유를 불문하고 사형에 처했기 때문이었다)&lt;BR&gt;꼬마는 “예 절대 그 약속을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대왕께서는 제 약속하나 지키셔야 합니다” 대왕께서는 “오냐. 내 너의 약속을 지킬테이니 너의 약속은 무엇이더냐” 꼬마 동자가 하는 말이&lt;/P&gt;
&lt;P&gt;“대왕께서는 어디 가셔서 이 골짜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나무에게도 하지 마세요” 하고 하는 말을 듣고 “문수보살” 하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니 등을 밀었던 꼬마는 인홀불견이었다.&lt;BR&gt;세조께서는 무릎을 탁치며 성현을 옆에다 두고도 몰랐으니 한스러웠다.&lt;/P&gt;
&lt;P&gt;문수보살인줄 알았더라면 개인에 관한 일이나 국사에 대한 일들을 자문을 받을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눈을 뜨고도 성현을 몰라보았으니 후회해도 이젠 부를 수도 따라 갈 수도 없었다. 옇라튼 기분이 상쾌하여 의관을 정장하고 침실로 돌아와 단잠을 잤다.&lt;/P&gt;
&lt;P&gt;이튼날 아침에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문밖이 환히 밝았고 땅바닥엔 지난밤에 없었던 검은 벌레 같은 것이 많이 날려 있었다. 무슨 벌레가 들어왔나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움직이지 않으니 벌레는 아니었다. 양팔에 소매를 걷어 올리고 보니 그 많았던 부스럼이 모조리 다 떨어져 전신은 흉터하나 없이 깨끗하였다.&lt;/P&gt;
&lt;P&gt;세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종이를 가져오라하여 달밤에 본 동자를 종이에다 그려서 그대로 조각케 하였다.&lt;BR&gt;그리고는 점안의식을 거쳐 상원사 큰 방에 모시게 하였다.&lt;BR&gt;지금의 산원사 큰방에 모셔져 있는 바로 그 문수동자이었다. 그리하여 세조대왕께서는 마음의 병은 속리산 복원사에 계시는 신미선사로부터 치유 받았고 육신의 병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님 가피로 모두 낳았다. 그 후 6~&amp;년간 정사를 잘하였으며 지금도 상원사 앞에 세조대왕의 관광 옥대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목욕을 하였다하여 관대거리라 부르고 있다.&lt;/P&gt;
&lt;P&gt;신미선사는 세종, 문종, 세조 3대왕에게 존경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에 세로 부임한 주지스님이 신심이 나서 문수동자를 모신 탁자를 청소하면서 문수동자상 밑을 닦기 위하여 문수동자상을 들자 점안시 복장물을 봉하고 창호지로 봉하였던 종이가 삭아서 복장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속에서 세조가 입었던 등지개와 봉안했던 사리, 세조대왕의 딸이 쓴 축원문등이 나와서 지금의 상원사에 보관하고 있다.&lt;/P&gt;
&lt;P&gt;&lt;위 내용은 속리산 복천암 월성 큰스님이 정리하신 내용입니다&lt;/P&gt;
&lt;P&gt;속리산 복천암~정이품송 '한글루트' 였나&amp;nbsp; &lt;BR&gt;충청 백두대간 7백리를 가다&amp;nbsp; &lt;BR&gt;&amp;nbsp; &lt;BR&gt;조혁연 기자 &lt;A href=&quot;mailto:chohy@jbnews.co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chohy@jbnews.com&lt;/U&gt;&lt;/FONT&gt;&lt;/A&gt;&lt;BR&gt;&amp;nbsp; &lt;BR&gt;(16) 속리산 복천암&lt;/P&gt;
&lt;P&gt;&amp;nbsp;속리산 복천암에서 동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500m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신미(信眉)대사 부도탑을 만날 수 있다． 보물 제 1416호로， 공 모양의 탑신이 부드러운 곡선과 함께 안정감있게 흐른 것을 느낄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이 부도탑의 주인공인 신미대사(1403∼1486ㆍ속세고향 충북 영동)가 근래들어 세인들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다． 세종의 왕사였던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은 종종 제기되어 왔다．&lt;/P&gt;
&lt;P&gt;&amp;nbsp;그러나 올 상반기 한국세종한림원 총재 강상원 박사가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은 집현원학사 혜각존자 신미대사’라는 책을 내면서 이 설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lt;/P&gt;
&lt;P&gt;◆ 지금까지의 설은&lt;/P&gt;
&lt;P&gt;&amp;nbsp;한글 창제와 관련，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이 명령을 했고，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이의 실무작업을 맡았다’ 정도로 알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입 발음기관을 본떴다고 알고 있다．&lt;/P&gt;
&lt;P&gt;&amp;nbsp;그러나 일부 국어학자들은 ‘세종실록 계해년 그믐조’에 나타나는 ‘是月上親製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문장을 들어 이에 회의감을 나타내고 있다． 직역하면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古篆을 모방하였다’ 정도가 된다．&lt;/P&gt;
&lt;P&gt;&amp;nbsp;이중 핵심어인 ‘倣古篆’은 ‘옛 篆字를 모방했다’는 뜻으로， 정인지가 지은 ‘훈민정음 해례’에도 이 문장이 나오고 있다． (象形而倣古篆ㆍ‘옛 篆字를 모방해 글자상형을 삼았다’)&lt;/P&gt;
&lt;P&gt;&amp;nbsp;이 문장 하나 때문에 ‘발음기관을 본떴다’라는 설은 전통한옥 창문도형， 단군시대 가림토문자， 일본 신대문자， 범어(산스크리트어)， 몽고어， 고려 각필 모방설 등의 도전을 받고 있다．&lt;/P&gt;
&lt;P&gt;◆ 어느 설이 가장 유력한가&lt;/P&gt;
&lt;P&gt;&amp;nbsp;발음기관설 외에 현재 가장 유력시되는 설은 이른바 범자(梵字ㆍ산스크리트어) 모방설이다． &lt;/P&gt;
&lt;P&gt;&amp;nbsp;조선초기 유학자인 성현(1439~1504)은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서 ‘基字體依梵字爲之’라고 밝히고 있다． 직역하면 ‘그 글 자체는 범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도로， ‘용재총화’는 훈민정음 반포 30년후에 쓰여진 책이다． &lt;/P&gt;
&lt;P&gt;&amp;nbsp;이수광도 그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언서(諺書)는 글자 모양이 전적으로 범자를 본떴다’(我國諺書字樣全倣梵字)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상당수 학자들은 앞서 언급된 ‘篆字’를 ‘梵磁’의 한자식 표현으로 보고 있다． &lt;/P&gt;
&lt;P&gt;&amp;nbsp;그러나 이 설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세종대왕이 범자를 모방해 한글을 창제했을 경우 그 중간에 범자를 능통하게 사용하는 스님이 존재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부분이 규명되지 않았다． 이의 규명작업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현 복천암 선원장 월성(법랍 50) 스님이다．&lt;/P&gt;
&lt;P&gt;◆ 최소 7개 증거있다&lt;/P&gt;
&lt;P&gt;&amp;nbsp;30년 넘게 이 부분을 연구하고 있는 월성스님은 “조선초기 속리산 복천암에 거주하던 신미대사가 세종을 부름을 받아 최소 7년간 복천암∼한양을 오가며 한글 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단언했다． &lt;/P&gt;
&lt;P&gt;&amp;nbsp;월성 스님은 그 근거로 ▶신미대사가 범어에 능통했던 점 ▶유학 성향이 강했던 세종이 이례적으로 복천암에 불상을 조성해 주고 시주를 한 점 ▶세종이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利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긴 법호를 내린 점 등을 거론했다．&lt;/P&gt;
&lt;P&gt;&amp;nbsp;이밖에 ▶수양대군 세조가 복천암을 손수 찾았던 점 ▶유학자들이 당시는 물론 세종이 죽자마자 부녀자글， 통시글(화장실글) 등의 말로 훈민정음을 비난하고 험담한 점 ▶신미대사의 본관인 영산김씨 족보에 신미대사가 집현전 학사로 언급된 점 ▶한글 창제후 실험적으로 지은 곡과 문장이 유교가 아닌 불교내용을 담고 있는 점 등을 거론했다．&lt;/P&gt;
&lt;P&gt;◆ 구체적인 근거는 있나&lt;/P&gt;
&lt;P&gt;&amp;nbsp;월성스님은 첫번째에 대해 유학자 김수온(1410∼1481)이 지은 ‘복천보장’을 인용， “신미대사는 불경에 통달했으나 한자에 오역을 많음을 느끼고 이른바 원어， 즉 범어를 공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지난 1975년 서울 인사동에서 발견된 신미대사 ‘범어진언’(사진참조)에 그대로 들어나 있다”고 밝혔다．&lt;/P&gt;
&lt;P&gt;‘慧覺尊者’(혜각존자)라는 법호에 대해서는 “세종이 스님에게 극존칭 법호를 내린 것은 신미대사가 유일하다”며 “그 앞에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는 뜻인 ‘祐國利世 글귀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lt;/P&gt;
&lt;P&gt;&amp;nbsp;한글 창제와 관련， 세종이 아닌 수양대군 세조가 등장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월성스님은 세조의 복천암 방문도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그는 ‘복천보장’을 다시 인용， “세종은 유생들의 극심한 반대를 예상하고 신미대사，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5인에게만 한글창제 작업을 극비리에 명령한다”며 “이후 세조는 왕위찬탈에 대한 흉금을 말하기 위해 옛정이 있는 신미대사를 찾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lt;/P&gt;
&lt;P&gt;&amp;nbsp;실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조는 온양과 초정에서의 목욕을 핑계삼았지만 속리산 복천암 방문이 실제 목적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때 생긴 것이 이른바 ‘정이품송 전설’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월성스님은 이밖에 “조선은 유교국가라 한글창제 실험용 책도 당연히 유교적인 내용이 됐어야 했다”며 “그러나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은 불교적인 내용을 담은 곡과 문장으로， 이것 역시 신미대사가 한글창제를 주도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lt;/P&gt;
&lt;P&gt;&amp;nbsp;월성스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창제에 신미대사 이름이 빠져있는 것에 대해 “세종 사후 유생들은 신미대사와 불교에 관련된 문구를 모조리 삭제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다만 영산김씨 족보에 ‘守省以集賢院學士得寵於世宗’의 문구가 나온다”고 밝혔다． 직역하면 ‘守省(신미대사 속명)은 집현원 학사를 지냈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정도가 된다．&lt;/P&gt;
&lt;P&gt;◆ 복천암∼정이품송은 한글길 이었는가?&lt;/P&gt;
&lt;P&gt;&amp;nbsp;현재 신미대사 한글창제 주도설은 정설화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학자들은 그 개연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속리산 복천암-정이품송 그리고 세조가 잠시 머물렀다는 말티고개 초입의 ‘대궐터’(장재리)는 이른바 ‘한글 루트’가 된다． &lt;/P&gt;
&lt;P&gt;지역민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백두대간 속리산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숲속에 외롭게 서있는 신미대사 부도탑은 후손된 우리들에게 역사를 바로 잡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은군은 이를 고증하면 엄청난 무형의 자산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lt;/P&gt;
&lt;P&gt;자료제공ㆍ도움말: 복천암 월성스님， 충북도청 김길상(영산김씨 후손) 계약담당 &lt;/P&gt;
&lt;P&gt;◇한글기원설 또 어떤 것이 있나◇&lt;/P&gt;
&lt;P&gt;&amp;nbsp;한글 창제와 관련， 현재 정설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입 발음기관을 본떴다’라는 설이다． 그러나 세종실록 등 여러 사료에 ‘倣古篆’(옛 전자를 모방했다)이라는 표현이 보이면서 무려 20여개의 또 다른 기원설이 등장해 있다．&lt;/P&gt;
&lt;P&gt;&amp;nbsp;이중 가장 논란을 빚고 있는 설이 일본 신대문자， 고조선 가림토문자 모방설， 고려 각필부호 유래설이다． 일본학계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대(神代) 문자는 그 모양이 한글과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lt;/P&gt;
&lt;P&gt;&amp;nbsp;그러나 이 문자는 일본 사찰을 중심으로 조선통신사 왕래이후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문자 열등의식을 느낀 일본 일부 계층이 한글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수용되지 않고 있다．&lt;/P&gt;
&lt;P&gt;&amp;nbsp;고조선 가림토는 기서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문자로， 자ㆍ모음 38자가 한글 자ㆍ모음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위작(僞作)된 책이라는 견해가 매우 우세하다． 한 예로 환단고기에는 ‘경제’(經濟)라는 표현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19세기 이후에 등장한 단어로， 그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일제시대 때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누군가 위작한 책으로 보고 있다．&lt;/P&gt;
&lt;P&gt;&amp;nbsp;고려 갈필부호 유래설은 지난 2001년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가 처음 제기했다． 당시 이 교수는 “고려불경을 조사한 결과， 무려 17개의 각필이 훈민정음 모양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lt;/P&gt;
&lt;P&gt;따라서 이 설은 ▶고려~조선초기 승려들이 불경한자를 쉽게 읽기 위해 각필을 사용했고 ▶그 각필은 범자(梵字)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추론을 낳고 있다． 이 설은 훈민정음 범자 모방설과 선이 닿아 있거나 근친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lt;BR&gt;&amp;nbsp;&lt;/P&gt;
&lt;P&gt;&lt;BR&gt;▶충청 백두대간 이런 꽃이 핀다&lt;/P&gt;
&lt;P&gt;◆ 왜솜다리&lt;BR&gt;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백두대간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다． 높이 20㎝ 안팎까지 자라며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잎자루가 없으며 양면에 솜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잿빛을 띤 흰색 털이 빽빽이 나있다． 꽃을 줄기 끝에 둥글게 모여 달린다． &lt;/P&gt;
&lt;P&gt;&lt;BR&gt;◆ 으아리&lt;BR&gt;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산기슭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고추나물 혹은 선인초(仙人草)라고도 불리우며 덩굴이 잎자루로 감아 올라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꽃은 6∼8월에 흰색으로 피고 어린 잎은 식용하고 뿌리는 약재로 쓴다． &lt;/P&gt;
&lt;P&gt;&lt;BR&gt;◆ 익모초&lt;BR&gt;꿀풀과의 두해살이풀로 높이 1m까지 자란다． 꽃은 7∼8월에 연한 붉은 자주색으로 피며 그리고 마디에 층층으로 달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맛은 쓰고 맵고 그리고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부인과 질환 한약재로 만이 사용된다．&lt;/P&gt;
&lt;P&gt;&lt;BR&gt;자료제공: 백두대간시민보전연대 최상영(011-9841-4387) 사진영상단장&lt;/P&gt;
&lt;P&gt;▶취재후기&lt;/P&gt;
&lt;P&gt;속리산(俗離山)은 글자 그대로 ‘속세에서 떨어져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이런 문자적인 이미지는 말티고개를 넘을 때까지 그런대로 유지된다． 가파르고 여러차례 구비치는 길이 한번 들어가면 영영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lt;/P&gt;
&lt;P&gt;그러나 이런 속리산의 이런 이미지는 법주사 초입인 세칭 ‘오리숲’에 이르러서는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우선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솔향기 가득한 송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양복에 갓을 쓴 모습이다． &lt;/P&gt;
&lt;P&gt;이밖에 콘크리트 포장도로의 도랑이 너무 깊다． 게다가 뚜껑도 덮혀있지 않다． 따라서 아이와 함께 속리산을 찾은 방문객들은 이들은 단속하느라 여간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니다． &lt;/P&gt;
&lt;P&gt;흔히 집의 이미지는 대문부터 좌우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른바 ‘첫인상 효과’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주사 오리숲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lt;/P&gt;
&lt;P&gt;법주사 사하촌은 지금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져 있다． 국내 수학여행단이 금강산관광으로 몰리면서 더욱 타격을 받고 있다． 법주사가 본래 이미지를 되찾으려면 오리숲 분위기부터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lt;/P&gt;
&lt;P&gt;&lt;BR&gt;복천암&lt;/P&gt;
&lt;P&gt;&amp;nbsp;복천암은 공민왕과 세조가 자주 찾았던 암자이다. 그들이 찾았던 이유는 복천암의 약수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진정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때는 공민왕이, 조선 때는 세조가 자주 찾았던 암자라고 전해진다. 지금도 다녀간 왕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공민왕의 무량수라는 붓글씨가 그것이며, 세조와 세종의 일화들이 구전되고 있다. 세종은 암자의 신미(信眉)대사를 불러들여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 체계를 설명케 했다고 하며, 암자의 사적비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신미대사의 공로를 인정하여 한글이 반포된 후 암자에 미타삼존상을 조성 봉안케 하였으며, 이어 문종은 혜각존자라는 호를 내렸다고 한다. &lt;/P&gt;
&lt;P&gt;&amp;nbsp;복천암 선원장 월성 스님은 구참 선객이다.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였다. 나그네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다. 암자 마루까지 빗발이 들이치고 있었는데, 두 스님이 법거량을 하고 있었다. 두 분은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과 그를 찾아온 월성 스님이었다. &lt;/P&gt;
&lt;P&gt;&amp;nbsp;월성 스님은 전형적인 선승이지만 복천암에 머물렀던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에 대한 공적을 학승처럼 깊이 연구하고 있는 분이다. 스님을 만나면 신미대사의 얘기부터 들어야 한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월성 스님의 얘기는 대충 이렇게 시작된다. &lt;/P&gt;
&lt;P&gt;&quot;제주도 고관사의 고불이 인사동에 나와 있었는데 그 고불의 복장에서 신미 스님의 기록이 나왔습니다. 집현전 학사였던 김수온은 신미 스님의 친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유학자들이 신미 스님께서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실록에서 다 빼버렸습니다. 그러나 영산(永山) 김씨 족보에는 다 나옵니다. 왜 신미 스님께서 집현전에 참여한 사실을 유학자들이 삭제한지 아십니까? 한글 창제를 누가 주도적으로 연구했느냐는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quot;&lt;/P&gt;
&lt;P&gt;그러나 월성 스님은 신미 스님이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댄다. &lt;/P&gt;
&lt;P&gt;&quot;첫 번째는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의 초석을 다진 신미대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복천암에 삼존불을 시주했고요. 두 번째의 이유는 문종은 부왕(세종)의 뜻을 받들어 유생들이 십여 번의 상소를 올려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신미대사에게 혜각존자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세 번째는 신미 스님의 주도로 한글이 만들어진 것을 세조가 4년간 보았기 때문에 스님을 존경한 나머지 복천암에 법문을 들으러 온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세조가 죽고 나자 집현전 일부 학자와 유림의 유생들이 한글을 과소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집현전 유학자들이 주도적으로 한글을 창제했다면 그렇게 반대했겠습니까?&quot;&lt;/P&gt;
&lt;P&gt;월성 스님은 세조와 세종의 신미 스님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lt;/P&gt;
&lt;P&gt;&quot;신미 스님이 세조에게 부탁하여 오대산에 적멸보궁을 지어 부처님 정골사리를 봉안케 하였지요. 그때 신미 스님께서는 제자인 학열 스님을 오대산으로 보내 불사를 감독케 했지요. 세조의 그런 공덕이 있었기에 상원사 앞 계곡물에서 목욕을 하다 문수동자를 만나고 다음날 등창이 다 나았다는 얘기가 전해진 겁니다. 세종이 한글 창제 후 불경을 언해하기 시작한 것도 신미대사의 영향으로 봐야 합니다. 언해할 서책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불경부터 먼저 했겠습니까? 신미대사의 요청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quot; &lt;/P&gt;
&lt;P&gt;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간여한 이유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즉 표음문자인 그의 범어 실력 때문이었다. 한글 창제를 연구하던 세종이 전국 각지에서 학자들을 찾던 중 신미대사의 범어 실력을 인정하여 발탁하였던 것이다. 신미의 고향은 영동이었고, 그의 부친 김훈은 진사 급제한 후 사후에 영의정을 추증받은 분이었다. 신미도 어린 시절에는 한학을 배워 사서삼경을 마쳤고, 출가한 후에는 해인사 장경을 열람하였는데 한문 번역이 마음에 차지 않아 범어로 된 원문을 직접 읽기 위해 독학으로 범어를 공부하여 터득했다고 전해진다. &lt;/P&gt;
&lt;P&gt;세조와 신미대사 간에 서로의 신뢰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세조 10년(1464)에 기록된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이 바로 그것이다. 세조의 수기(手記)로 된 권선문은 다음과 같이 씌어 있는 것이다. &lt;/P&gt;
&lt;P&gt;'이 세상에는 일곱 가지 중요한 일이 있는데, 삼보法佛僧, 부와 모, 군君, 선지식善知識이 그것이다. 삼보는 현실을 박차고 떠남을 근본으로 하고,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임금은 백성을 보호함을 근본으로 삼고, 선지식은 미혹에 빠진 자를 인도함을 근본으로 삼는다. &lt;/P&gt;
&lt;P&gt;나는 일찍이 잠저(대군 시절)에 있을 때부터 혜각존자를 만나 도가 합하고 심기가 서로 화합하였다. 매번 속진의 길에서 나를 포섭하여 이끌고 나로 하여금 항상 깨끗함을 지니게 하여 탐욕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였다.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어찌 스승(신미대사)의 공덕이 아니겠으며, 다겁의 깊은 인연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토록 계합할 수 있으리오.&lt;/P&gt;
&lt;P&gt;&amp;nbsp;지금 내가 병이 들었음을 듣고 수백 리 밖에서 주야로 달려 나에게 이르렀으니 이것을 고상한 일로 삼지 않으면 어찌 중생을 제도하는 대비(大悲)라 할 수 있겠는가. 놀라고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이 끝없다. 또한 스승께서는 학열 스님, 학조 스님과 함께 나를 위해 옷을 팔아 영찰(靈刹)을 중창하는 비용으로 쓰고자 함을 들었다. 스승이 나를 위해 마음 쓰는 것을 보니 나 역시 스승을 위해 감은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까닭에 나는 스승들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얼마간의 비용을 보태 구경의 올바른 연(緣)으로 삼고자 한다. 이것이 직심(直心)의 보리(菩提)인 것이다. 이에 세자에게 부촉하여 영원히 후사(後嗣)로 드리우고자 한다.' &lt;/P&gt;
&lt;P&gt;위의 내용은 다음에서 뽑아 옮김&lt;/P&gt;
&lt;P&gt;정찬주, &quot;자기를 속이지 말라&quot;, 열림원, 서울, 2005, 72-76쪽. &lt;/P&gt;
&lt;P&gt;*위 책은 본래 성철스님이 공부하였던 암자들을 돌아보며 작가가 쓴 글로서&amp;nbsp; 이야기의 주제가 워낙은 '한글'은 아니지만, 복천암을 말하다보니 끼어든 이 대목 이야기가&amp;nbsp; 마침 한글 창제와 관련한 내용이어서 옮겨보았다. &lt;/P&gt;
&lt;P&gt;&lt;BR&gt;□&amp;nbsp;&amp;nbsp; 상원사 피묻은 적삼의 미스터리(역사스페셀)&lt;BR&gt;방송일: 20010915&amp;nbsp;&amp;nbsp; &lt;/P&gt;
&lt;P&gt;상원사의 밤 6 (흘리고-)&lt;BR&gt;# 법당 문이 열리고 6 상원사, &lt;BR&gt;그곳엔 500년전부터 내려오는 불상 하나가 있다.&lt;/P&gt;
&lt;P&gt;# 문수동자상 12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천진한 얼굴의 어린 동자상-&lt;BR&gt;그것은 국내 유일의 문수동자상이다.&lt;BR&gt;그런데 그 동자상의 뱃 속에서 이상한 유물이 &lt;BR&gt;한 점 발견됐다&lt;/P&gt;
&lt;P&gt;# 피고름 속적삼 F.I 12 피고름이 묻은 비단 속적삼- &lt;BR&gt;500년간 문수동자상이 간직해온 비밀,&lt;BR&gt;피묻은 적삼의 사연은 무엇일까?&lt;/P&gt;
&lt;P&gt;강원도 오대산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상원사라는 절이 있습니다.&lt;BR&gt;이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절이죠.&lt;BR&gt;그리고 육이오 전쟁 당시, 상원사가 적의 소굴이 된다고 불태우려 하자 한암스님이라는 분이 법당에 &lt;BR&gt;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절을 지켰다는 그런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lt;BR&gt;우리에게 익숙한 이 절에서 지난 84년 특이한 유물 하나가 발견됐습니다.&lt;BR&gt;그것도 한 동자상의 뱃속에서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속옷 대신 입었던 속적삼인데요,&lt;BR&gt;목깃 부분은 떨어져 나갔고 군데군데 이상한 얼룩까지 남아있습니다.&lt;BR&gt;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 옷을 상원사 불상에 넣었던 것일까요?&lt;BR&gt;그리고 또 이 얼룩은 무엇일까요? 좀이나 곰팡이가 핀 걸까요?&lt;BR&gt;이 적삼은 발견된 이후 수많은 궁금증들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lt;BR&gt;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발견된 속적삼의 비밀, 오늘 그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lt;BR&gt;-------------------------------------------------------------------------------------&lt;BR&gt;VCR.1 비단 적삼의 얼룩은 피고름이다.&lt;/P&gt;
&lt;P&gt;# 오대산 전경 10 서른두개의 산봉우리와 서른한개의 계곡을 &lt;BR&gt;품고 있는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lt;/P&gt;
&lt;P&gt;# 상원사로 팬 10 그 정상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상원사가 있다.&lt;/P&gt;
&lt;P&gt;# 상원사 외경 18 상원사는 신라시대 705년, &lt;BR&gt;진여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됐다. &lt;BR&gt;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주존불로 모시는 &lt;BR&gt;오래된 절이다.&lt;/P&gt;
&lt;P&gt;# 문열리면 문수보살상과 동자상 12 (문열리면-)&lt;BR&gt;만가지 다른 형상으로 현세에 나타난다는 문수보살-&lt;BR&gt;특히 상원사에는 어린 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lt;BR&gt;국내 유일의 문수동자상이 있다.&lt;/P&gt;
&lt;P&gt;# 문수동자상 T.S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소년의 모습이 완연합니다.&lt;/P&gt;
&lt;P&gt;# 문수동자상 SK 5 동사상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기법은 &lt;BR&gt;15세기에 처음 등장하는 양식이다. &lt;/P&gt;
&lt;P&gt;# 문명대교수인터뷰 =15세기 16세기 통틀어서 조선전기 통틀어 이상이 가장 대표적인 그런 동상이기 &lt;BR&gt;때문에 이 상을 국보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상...&lt;/P&gt;
&lt;P&gt;# 문밖에서 바라본 문수동자상 9 그런데 지난 84년, &lt;BR&gt;문수동자상을 다시 도금하는 과정에서 &lt;BR&gt;뜻밖의 복장유물이 발견됐다.&lt;/P&gt;
&lt;P&gt;# 그래픽 / 복장과정 27 복장유물이란 불상의 내부 빈 공간에 넣는&lt;BR&gt;사리, 묘법연화경 각종 유물들을 말한다.&lt;BR&gt;오색실, 의복 사리, 불경과 불서,&lt;BR&gt;다라니, 발원문 오색실이나 오곡, 의복, 다라니와 만다라, &lt;BR&gt;그리고 불상을 조성하면서 기원한 내용인&lt;BR&gt;발원문이 복장된다.&lt;/P&gt;
&lt;P&gt;# 월정사 스케치 9 문수동자상에서는 어떤 복장유물들이 발견됐을까?&lt;BR&gt;상원사의 본사, 월정사를 찾았다.&lt;/P&gt;
&lt;P&gt;# 들어가는 PD 6 동자상에서 나온 유물들은 그 곳 박물관에 &lt;BR&gt;소장돼 있다.&lt;/P&gt;
&lt;P&gt;# 전시장 팬 7 총 스물석점-&lt;BR&gt;대부분은 다른 불상에서도 흔히 발견되는&lt;BR&gt;일반적인 것들이다. &lt;/P&gt;
&lt;P&gt;# 복장통, 수정구슬 4 작은 유물들을 보관하는 원통과 &lt;BR&gt;수정구슬,&lt;/P&gt;
&lt;P&gt;# 사리 3 복장유물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사리-&lt;/P&gt;
&lt;P&gt;# 불서들 14 그리고 고려말에 간행된 목판본 화엄경을 비롯한 &lt;BR&gt;각종 불경과 불서들이 십여권에 달한다.&lt;/P&gt;
&lt;P&gt;# 의복 두점 풀샷 4 특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유물은&lt;BR&gt;두점의 의복이었다.&lt;/P&gt;
&lt;P&gt;# 다라니경 저고리 22 비단으로 만들어진 이 저고리는&lt;BR&gt;바깥에 입는 겉적삼이다. &lt;BR&gt;저고리의 넓은 소매와 등면에&lt;BR&gt;다라니경이 찍혀있다.&lt;BR&gt;이 다라니경은 외부의 여러 가지 재난으로부터&lt;BR&gt;지켜달라는 의미를 지닌다.&lt;/P&gt;
&lt;P&gt;# 피묻은 저고리 9 또 하나의 비단 저고리-&lt;BR&gt;사람의 몸과 직접 닿는 속적삼이다.&lt;BR&gt;그런데 이 옷에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lt;/P&gt;
&lt;P&gt;# 돋보기로 살피는 14 속적삼 전체에 좀먹은 자국이 수없이 남아있다.&lt;BR&gt;사람의 분비물이 남았을 때 좀은 더욱 심해진다.&lt;BR&gt;특히 찌든 때가 남았던 쉬운 목부분은 아예 떨어져&lt;BR&gt;나갔다. 이것은 누군가 오랫동안 입었다는 증거다.&lt;/P&gt;
&lt;P&gt;# 목부분 피얼룩 9 더욱 이상한 것은 옷에 남아있는 얼룩이다.&lt;BR&gt;속적삼 목깃 부분에 검은 반점들이 보인다.&lt;/P&gt;
&lt;P&gt;# 배부분 4 여러개의 반점들이 뭉쳐져 있는 형태의 얼룩-&lt;/P&gt;
&lt;P&gt;# 전체 소매끝으로 팬 14 그것은 옆구리와 목 부분에 집중적으로 남아있고&lt;BR&gt;저고리의 소매끝 부분에도 &lt;BR&gt;똑같은 형태의 얼룩이 보인다. &lt;BR&gt;이것은 무엇일까?&lt;/P&gt;
&lt;P&gt;# 적삼 살피는 권영숙교수 20 얼룩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lt;BR&gt;부산대 의류학과 권영숙교수와 &lt;BR&gt;적삼을 자세히 살펴봤다.&lt;BR&gt;권교수는 각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복식유물의&lt;BR&gt;권위자다.&lt;/P&gt;
&lt;P&gt;# 피얼룩 부분 12 고분이나 생활유적지에서 출토된&lt;BR&gt;다양한 복식유물들을 보존처리해온 권교수- &lt;BR&gt;다른 복식유물에서도 이런 얼룩이 발견된다고 한다.&lt;/P&gt;
&lt;P&gt;# 권영숙교수 인터뷰 =제가 복식을 다뤄보면 혈흔이 나오거든요, 혈흔흔적과 이 흔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lt;BR&gt;드는데 그런 것은 분석을 해야 &lt;/P&gt;
&lt;P&gt;# 발견당시 얼룩 부분 풀샷팬 12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lt;BR&gt;얼룩의 정체는 혈흔이다.&lt;BR&gt;7년전, 속적삼이 복장유물로 발견됐을 당시의&lt;BR&gt;상태를 보자&lt;/P&gt;
&lt;P&gt;# 소매끝 줌인 11 이 얼룩이 혈흔이라면&lt;BR&gt;이것은 속적삼이 몸에 있는 어떤 상처에 &lt;BR&gt;반복적으로 닿아 생긴 흔적일 것이다.&lt;/P&gt;
&lt;P&gt;# 동그라미로 전체 팬 18 발견당시에는 검붉은 반점같은 혈흔이 &lt;BR&gt;현재보다 훨씬 많이 남아있었다. &lt;BR&gt;그런데 혈흔의 작은 단위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lt;BR&gt;그 중심색에 흰색을 띄는 다른 성질의 얼룩이 &lt;BR&gt;섞여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gt;# 권영숙교수 인터뷰 =피의 경우 단일한 색깔로 되는데 피고름이라 그런지 희끗희끗한 부분 사이에 붉은&lt;BR&gt;기운이 있었거든요. 피고름 부분과 피부분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피고름이&lt;BR&gt;맞나보다 생각했었거든요, 그냥 혈흔같으면 선명하게 같은 색깔로 될텐데... 이것은 &lt;BR&gt;희끗희끗한 부분 안에 얼룩이 있었기 때문에 피와 고름이 엉겨있던 형상이 아닌가...&lt;/P&gt;
&lt;P&gt;# 피묻은 적삼 12 불상에 복장되기 전 &lt;BR&gt;누군가 이미 오랫동안 입었던 옷,&lt;BR&gt;그 속적삼의 검은 얼룩들은 &lt;BR&gt;몸의 상처에서 반복되어 묻은 피고름이었다&lt;/P&gt;
&lt;P&gt;-------------------------------------------------------------------------------------&lt;BR&gt;ST.2 &lt;/P&gt;
&lt;P&gt;적삼에 묻어있던 이 얼룩들이 피고름이었군요&lt;BR&gt;그러니까 이 적삼의 목깃, 소매끝, 그리고 옆구리 부분에는 검은 반점같은 이상한 얼룩들이 밀집해 있는데, &lt;BR&gt;이것들이 모두 피고름이라는 겁니다.&lt;BR&gt;피고름이 묻은 속적삼을 복장유물로 넣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lt;BR&gt;이 적삼과 함께 발견된 다른 유물들은 모두 불교적인 의미를 가집니다.&lt;BR&gt;가령 사리는 불상에 부처가 살아있다는 의미에서 넣는 것이고, 다라니경 같은 경우는 &lt;BR&gt;번개나 폭풍, 화재 같은 것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해 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lt;BR&gt;그런데 유독 이 피고름 묻은 속적삼만 불교와 전혀 상관없는, 너무나도 세속적인 유물입니다.&lt;BR&gt;누군가 오랫동안 입었던 옷, 그것도 피고름이 묻은 속적삼-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lt;/P&gt;
&lt;P&gt;-----------------------------------------------------------------&lt;/P&gt;
&lt;P&gt;VCR.2 피묻은 적삼은 누구의 옷인가?&lt;/P&gt;
&lt;P&gt;# 속적삼 치수재는 풀샷 품은 66센티...&lt;/P&gt;
&lt;P&gt;# 저고리 길이 재는 6 적삼의 주인공을 추적하기 위해 &lt;BR&gt;먼저 옷의 크기를 쟀다. &lt;/P&gt;
&lt;P&gt;# 화장 재는 9 특히 목에서 소매 끝까지의 길이인 화장은&lt;BR&gt;옷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lt;BR&gt;판단하는 중요한 단서다.&lt;/P&gt;
&lt;P&gt;# 93센티 3 화장은 93센티미터였다.&lt;/P&gt;
&lt;P&gt;# 권교수 =대게 남자가 손이 길잖아요. 화장길이가 여자평균이 70정도 됩니다. 근데 이 옷은&lt;BR&gt;93이잖아요. 그러니까 화장에서 우선 팔이 기니까 속옷인데도... 남자옷으로 보는 것이&lt;BR&gt;타당하고. 생각이 됩니다.&lt;/P&gt;
&lt;P&gt;# 사진 살피는 두사람 6 옷의 주인공은 남자- &lt;BR&gt;그럼 어떤 신분의 사람이었을까?&lt;/P&gt;
&lt;P&gt;# 백초회장저고리와 상원사속적삼 7 조선 전기 사대부의 속적삼으로 밝혀진 &lt;BR&gt;백초회장 저고리와 비교해봤다.&lt;/P&gt;
&lt;P&gt;# 자료 손짓하며 살피는 6 같은 시기, 같은 용도의 옷과 직물 상태를&lt;BR&gt;비교하면 신분의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lt;/P&gt;
&lt;P&gt;# 백초회장와 상원사적삼 미세촬영 7 직물 상태를 보다 자세히 보기 위해 &lt;BR&gt;미세촬영을 했다.&lt;/P&gt;
&lt;P&gt;# 두 개 비교 8 백초회장저고리와 상원사 속적삼을 &lt;BR&gt;똑같은 정도로 확대해 촬영한 화면이다.&lt;/P&gt;
&lt;P&gt;# 올의 수, 밀도 비교 12 날실과 씨실 모두 &lt;BR&gt;상원사 속적삼이 5배 정도 가늘며,&lt;BR&gt;천이 얼마나 섬세하게 짜여졌는지를 알 수 있는 &lt;BR&gt;밀도도 상원사의 것이 두배 정도 높다. &lt;/P&gt;
&lt;P&gt;# 권영숙교수 =명주가 대표적인데... 섬세함의 정도가 얼마나 밀도가 치밀하고 가볍고 부드럽게 &lt;BR&gt;짜졌느냐에 따라 신분이 결정이 되기 때문에... 일반인의 경우에 이렇게 고운 비단은&lt;BR&gt;못 입죠&lt;/P&gt;
&lt;P&gt;# 속적삼 바느질 상태 12 상원사 속적삼은 사대부 신분으로서는 &lt;BR&gt;감히 입지 못하는 옷이다.&lt;BR&gt;속적삼의 바느질 상태 또한 매우 섬세하다.&lt;/P&gt;
&lt;P&gt;# 복원 도안 10 똑같은 방법으로 바느질을 해보기 위해 &lt;BR&gt;도안을 만들었다. &lt;BR&gt;바늘땀의 길이가 1미리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lt;/P&gt;
&lt;P&gt;# 교수 바느질하는 9 몇십년 동안 전통의복을 다뤄온 권교수지만 &lt;BR&gt;상원사 속적삼의 바느질을 복원하는 일은 &lt;BR&gt;쉽지 않았다.&lt;/P&gt;
&lt;P&gt;# 권영숙교수 =정말 잘 하시는 궁중 바느질이 아니고서는 안나올 정도로 섬세한 바느질입니다. &lt;BR&gt;바느질이 정교하지 않으면 외형이 안나오기 때문에 정교한 점, 다른 어떤 저고리보다&lt;BR&gt;도 정교하다는 점, 제가 보기엔 궁중의 옷이 아닌가&lt;/P&gt;
&lt;P&gt;# 동자상 유물 속적삼 14 옷감의 상태와 바느질 솜씨로 볼 때, &lt;BR&gt;상원사에서 발견된 속적삼의 주인공은 &lt;BR&gt;왕실의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lt;/P&gt;
&lt;P&gt;# 자료 살피는 두사람 7 선조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 &lt;BR&gt;그의 속적삼이 해인사에서 발견된 바 있다.&lt;/P&gt;
&lt;P&gt;# 광해군 옷보며 =이게 광해군 것이란 말이죠.../ 바느질이나 정교함이 거의 같았다&lt;/P&gt;
&lt;P&gt;# 광해군 적삼 7 광해군의 옷과 바느질의 정교함이 같다면&lt;BR&gt;상원사 속적삼의 주인공도 왕일 가능성이 높다.&lt;/P&gt;
&lt;P&gt;# 중수발원문 12 (꺼내는 것 보다가-)&lt;BR&gt;속적삼과 함께 문수동자상에 복장됐던 발원문-&lt;BR&gt;그곳에서 속적삼 주인공에 대한 단서를 찾아봤다.&lt;/P&gt;
&lt;P&gt;# 발원문 스케치 7 발원문은 고급스러운 푸른 비단에 붉은 글씨로 &lt;BR&gt;쓰여졌다.&lt;/P&gt;
&lt;P&gt;# 의숙공주 정현조 글씨 16 그 첫머리에 발원문을 작성한 이의 이름이 보인다.&lt;BR&gt;정현조와 의숙공주, 그들은 누구일까?&lt;/P&gt;
&lt;P&gt;# 선원록 3 조선시대 왕실의 족보 선원록-&lt;/P&gt;
&lt;P&gt;# 족보 내용 12 그곳에서 두사람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lt;BR&gt;의숙공주는 조선 7대왕 세조의 딸이며&lt;BR&gt;정현조는 의숙공주의 남편으로 세조의 사위다.&lt;/P&gt;
&lt;P&gt;# 내용스케치 12 정현조와 의숙공주는 주상전하, 왕비전하, &lt;BR&gt;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lt;BR&gt;불상을 조성한다고 발원문에 밝히고 있다.&lt;/P&gt;
&lt;P&gt;# 연도 6 발원문이 작성된 해는 1466년, 세조 12년이다.&lt;/P&gt;
&lt;P&gt;# 실록, 글씨 나타나기까지 6 그해의 세조실록에서 상원사와 관련된 기록을 &lt;BR&gt;찾아봤다.&lt;/P&gt;
&lt;P&gt;# 글씨 스틸 8 발원문과 함께 속적삼이 복장됐을 세조12년,&lt;BR&gt;그해 세조가 상원사에 있었다.&lt;/P&gt;
&lt;P&gt;# 박물관 팬 11 그렇다면 속적삼의 주인공은 세조일까?&lt;BR&gt;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는&lt;BR&gt;# 어첩 세조의 어첩을 살펴봤다. &lt;/P&gt;
&lt;P&gt;&lt;BR&gt;# 펼쳐놓은 모습 19 상원사 중창이 결정됐던 세조10년,&lt;BR&gt;신미대사와 세조가 주고받은 글이다.&lt;BR&gt;그 첫장에는 불교를 믿는 조선국왕 이유라는&lt;BR&gt;세조의 이름이 적혀있다.&lt;BR&gt;그리고 그 아래 세조의 친필 사인과 직인이 보인다.&lt;/P&gt;
&lt;P&gt;# 학예원 어첩 펼치며 &quot;발원문이 한문으로 나오고.. 필사본으로서의 한글 문서와&quot;&lt;/P&gt;
&lt;P&gt;# 펼쳐서 한글 보여주고 8 신미대사는 상원사를 중창하는 이유가 &lt;BR&gt;세조의 만수무강을 위해서라고 적고 있다.&lt;/P&gt;
&lt;P&gt;# 출어의약 가리키며 &quot;옷을 줬다는 얘기 아닌가... 출어의약&quot;&lt;/P&gt;
&lt;P&gt;# 글씨 스틸 8 그리고 신미는 뒤이어 세조가 상원사에 &lt;BR&gt;어의 몇점을 하사했다고 한다.&lt;/P&gt;
&lt;P&gt;# 상원사 풍경 14 1464년 신미가 세조를 위해 상원사를 중창하기로&lt;BR&gt;결정했을 때, 세조는 어첩과 함께 자신의 옷을 &lt;BR&gt;상원사에 보냈던 것이다. &lt;/P&gt;
&lt;P&gt;# 최복규교수 =거기 보면 신미의 내용 속에 세조가 어의를 내리시어 하는게 나오 거든요. 그런 것은&lt;BR&gt;분명히 다른 것도 아니고 세조가 친히 입었던 옷을 내렸다하는 것이 분명하거든요.&lt;BR&gt;그러고 1466년 세조 12년에 상원사가 발원이 되어 만들어져요. 바로 그 당시 문수&lt;BR&gt;동자상 복장유물로 집어 넣은거거든요. 그런걸로 봐서는 틀림없는 세조의 옷이다라고&lt;BR&gt;밝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lt;/P&gt;
&lt;P&gt;# 피묻은 적삼 12 피고름으로 얼룩진 비단 속적삼- &lt;BR&gt;그것은 조선 7대왕 세조의 어의였다.&lt;/P&gt;
&lt;P&gt;-------------------------------------------------------------------------------------&lt;BR&gt;ST.3&lt;/P&gt;
&lt;P&gt;이것이 세조의 어의였군요.,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lt;BR&gt;신라시대 때 창건됐던 상원사를 당시 주지이던 신미대사가 세조의 만수무강을 위해 상원사를 중창하기로 결정합니다.&lt;BR&gt;그 때가 1464년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세조가 중창에 보탬이 되고자 시주를 하며, &lt;BR&gt;자신의 글과 신미대사의 글이 함께 담긴 어첩을 상원사에 보냅니다.&lt;BR&gt;그 때 자신의 피고름 묻은 속적삼을 함께 보낸 것이죠.&lt;BR&gt;그리고 2년후, 마침내 상원사 중창이 끝났습니다. 세조가 상원사를 방문한 것도 그 때였죠.&lt;BR&gt;새로 조성된 문수동자상이 법당에 모셔지면서 각종 유물들이 그 속에 복장됐는데요,&lt;BR&gt;의숙공주와 정현조가 쓴 발원문과 함께 세조의 피묻은 적삼이 동자상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lt;BR&gt;이제 이 피고름 얼룩이 남아있는 속적삼의 주인공이 세조란 것이 밝혀졌습니다.&lt;BR&gt;그런데도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세조의 속적삼에 왜 피고름이 묻어 있냐는 겁니다.&lt;BR&gt;속적삼에 묻어있는 피고름의 위치를 기억해 보시죠., 목과 손목, 옆구리 부분이었습니다.&lt;BR&gt;그렇다면 세조는 그곳에 어떤 상처가 집중적으로 나있었고 &lt;BR&gt;반복적으로 계속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다는 뜻은 아닐까요?&lt;BR&gt;도대체 어떤 병을 앓고 있었기에 세조의 몸에서 피고름이 났던 걸까요?&lt;/P&gt;
&lt;P&gt;-------------------------------------------------------------------------------------&lt;BR&gt;VCR.3 세조는 왜 피묻은 적삼을 동자상에 넣었는가?&lt;/P&gt;
&lt;P&gt;# 주지와 찾아가는 =여기가 관대걸이 푯말입니다. 기념비랄까, &lt;BR&gt;6 상원사로 오르는 길목에 작은 석조물 하나가 있다&lt;/P&gt;
&lt;P&gt;# 관대걸이 8 관대걸이- 세조가 상원사에 왔을 때&lt;BR&gt;이곳에 의관을 걸어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lt;/P&gt;
&lt;P&gt;# 상원사주지 =입고있던 의관을 이곳에 걸어놓고 목욕을 했다해서 이곳을 관대걸이라고... &lt;BR&gt;의관을 걸어났다해서 지금도 관대걸이라 그러고....&lt;/P&gt;
&lt;P&gt;# 상원사주지와 목욕장소 찾아가며 8 (흘리고-)&lt;/P&gt;
&lt;P&gt;# 계곡 물 흐르고 15 세조가 의관을 관대걸이에 벗어놓고&lt;BR&gt;이 계곡에서 목욕을 했다는 것이다. &lt;BR&gt;마침 그 곳에 한 사람이 들어가 목욕하기 좋은 &lt;BR&gt;장소가 있었다. 여기였을까? &lt;BR&gt;세조는 목욕중 문수동자를 만났다고 한다.&lt;/P&gt;
&lt;P&gt;# 상원사주지 =시중을 물리치고 혼자서 목욕을 했다 그러거든요. 그러는데 사미승이 지나가는데 &lt;BR&gt;등이나 밀어달라고.. 등을 밀고나니가 시원하더라는 거예요..&lt;BR&gt;세조가 사미승에게 임금님 등을 밀었다, 등창이 있다는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lt;BR&gt;벌받을 수도 있고 민심도 안좋을 수 있으니까 어디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마라&lt;/P&gt;
&lt;P&gt;# CD-롬으로 기록 찾는 11 전해지는 얘기대로 세조에게는 등창이 있었을까?&lt;BR&gt;조선왕조실록 CD롬으로 세조가 생전에 어떤 병을&lt;BR&gt;앓고 있었는지 검색해봤다.&lt;/P&gt;
&lt;P&gt;# 실록 검색내용 12 세조의 병환에 대해 언급된 기록은 마흔건 이상- &lt;BR&gt;하지만 병명이나 증상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lt;BR&gt;발견되지 않는다.&lt;/P&gt;
&lt;P&gt;# 현호색 기록 9 그런데 세조 12년 10월에 세조가 현호색을 가미한&lt;BR&gt;칠기탕을 복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lt;/P&gt;
&lt;P&gt;# 경동시장 5 현호색이란 어떤 약재일까? &lt;/P&gt;
&lt;P&gt;# 현호색 꺼내고 &quot;현호색 이렇게 생겼습니다.&quot;&lt;/P&gt;
&lt;P&gt;# 현호색 5 한약재로 쓰이는 것은 현호색 식물의 땅속 줄기 &lt;BR&gt;부분이다 &lt;/P&gt;
&lt;P&gt;# 약재상과장 =심장에 통증을 느끼거나 기의 흐름이 원할하지 않을 때 쓰는 걸로 알고 있다.&lt;/P&gt;
&lt;P&gt;# 칠기와 현호색 T.S 13 칠기탕에 사용되는 약재는 인삼, 계피, 반하, &lt;BR&gt;그리고 감초와 생강이다. &lt;BR&gt;세조는 여기에 현호색을 가미해 복용했다.&lt;/P&gt;
&lt;P&gt;# 동의대 찾아가는 14 현호색을 칠기탕과 함께 먹는 것은&lt;BR&gt;어떤 증세에 사용되는 처방일까?&lt;BR&gt;동의대 한의학과 김훈 교수는 특이하게도 &lt;BR&gt;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다.&lt;/P&gt;
&lt;P&gt;# 김훈교수 =칠기탕이라고 하는 것은 칠기라는 건 사람의 일곱가지 감정 상태... 칠기탕은 감정적&lt;BR&gt;인 장애로 인체의 기가 뭉쳐질 때... 그래서 세조는 많은 정신적 중압감이나 스트레스&lt;BR&gt;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lt;/P&gt;
&lt;P&gt;# 동의보감 6 그런데 동의보감은 칠기병과 같이 화가 왕성한&lt;BR&gt;병엔 창이 생긴다고 전한다.&lt;/P&gt;
&lt;P&gt;# 컴퓨터 앞에서 20 창은 일종의 피부병이다. &lt;BR&gt;실록에 세조가 피부병을 앓았다는 기록은 없다. &lt;BR&gt;# &quot;풍습병&quot; 기사내용 하지만 김훈교수는 세조가 자신의 병을 &lt;BR&gt;풍습병이라고 말한 기록에 주목했다. 풍습병이란&lt;BR&gt;풍과 습에 의해 생긴 질병, 즉 관절염, 두통, 요통,&lt;BR&gt;피부병을 통칭하는 병명이다.&lt;/P&gt;
&lt;P&gt;# 김훈교수 =세조는 풍습병을 이야기할 때 온천욕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는데 조선시대 &lt;BR&gt;다양한 치료방법을 쓰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온천욕, 온천욕은 피부병을 &lt;BR&gt;치료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고 있던 방법... 세조가 온천욕과 관련지어 이야기&lt;BR&gt;하는 풍습병은 혹시 피부병을 의미하는 것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럴 &lt;BR&gt;가능성도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lt;/P&gt;
&lt;P&gt;# 온양트래킹 5 세조는 풍습병에 대해 말하기 한달전&lt;BR&gt;온양 온천을 다녀온 바 있다.&lt;/P&gt;
&lt;P&gt;# 신정비 풀샷 9 수양대군 시절부터 세조가 세차례나 방문했다는 &lt;BR&gt;온양- 이 곳에는 세조와 관련된 유적들이 &lt;BR&gt;많이 남아있다. &lt;/P&gt;
&lt;P&gt;# 비문 9 이 신정비도 세조가 발견했다는 찬 샘물을 &lt;BR&gt;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다. &lt;BR&gt;세조가 온양을 자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lt;/P&gt;
&lt;P&gt;# 문화원장 =철분 성분이 많다. 알카리 성분이 많아 피부병, 관절염에 효험이 많다. 세조도 &lt;BR&gt;피부병 때문에 자주 온 것 같다.&lt;/P&gt;
&lt;P&gt;# 세조 속적삼 12 세조의 속적삼에 남아있는 피고름 얼룩은&lt;BR&gt;피부병 때문에 생긴 흔적으로 보인다. &lt;BR&gt;그런데 어떤 피부병이었길래, &lt;BR&gt;피고름이 계속 흘렀던 것일까?&lt;/P&gt;
&lt;P&gt;# 함익병선생과 컴퓨터보는 8 피부과 전문의와 함께 세조의 피부병 종류를 &lt;BR&gt;추정해봤다.&lt;/P&gt;
&lt;P&gt;# 피부병 화면 12 조선시대 사람들이 앓았을 법한 피부병만도&lt;BR&gt;수십가지에 이른다. 함익병선생은 그 중&lt;BR&gt;괴저성농피증이란 피부병을 지목했다.&lt;/P&gt;
&lt;P&gt;# 함익병선생 =저는 세조 임금이 이 병에 앓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연령대 4,50대에 많이 생기는&lt;BR&gt;병입니다. 보시다시피 피부에 큰 괴양이 많이 생기고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면서 &lt;BR&gt;완전히 낫지도 않고 금방 죽지도 않고... 대개 이 병은 내과적인 질환을 앓는 경우가&lt;BR&gt;많습니다. &lt;BR&gt;=이건 감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병이 생기는건데 &lt;BR&gt;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질환중에 하나가 사회적 스트레스입니다.&lt;/P&gt;
&lt;P&gt;# 괴저성농피증 9 세조의 병을 현대의학적으로 추정하면&lt;BR&gt;괴저성농피증이라는 병일 수도 있다.&lt;BR&gt;그 병은 정신적인 압박과 사회적 스트레스가 &lt;BR&gt;원인이 된다고 한다.&lt;/P&gt;
&lt;P&gt;-------------------------------------------------------------------------------------&lt;BR&gt;ST.4 &lt;/P&gt;
&lt;P&gt;그렇습니다. 세조는 자신의 지독한 피부병을 없애고자 피고름 묻은 속적삼을 상원사에 보냈던 것입니다.&lt;BR&gt;이것은 세조가 상원사에 내린 어첩입니다. 여기에 보면 상원사를 중창할 때 세조가 하사한 물품들이 &lt;BR&gt;자세히 적혀있는데요, 한번 보실까요?&lt;BR&gt;쌀 5백석, 무명포와 정포가 각각 5백필, 무명포라는 것은 면을 말하고 정포라는 것은 품질이 좋은 베를 말합니다.&lt;BR&gt;또 정철이 만오천근, 정철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쇠로 공사할 때 꼭 필요한 물품이죠.&lt;BR&gt;그리고 사찰을 채색할 때 필요한 염료도 하사했습니다.&lt;BR&gt;정확한 수치가 기록되지 않은 채색을 제외하고 나머지 쌀과 천과 철을 모두 면포의 가치로 계산하면 &lt;BR&gt;면포 만필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면포 만필이라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데요,&lt;BR&gt;여길 한번 보시죠, 조선왕조실록 단종대 기록 중 하나입니다. 단종이 세종의 딸, 그러니까 자신의 고모가 되겠군요, &lt;BR&gt;정안옹주에게 거처할 집을 마련하라고 면포 600필을 하사합니다. 옹주라면 당대 최고의 신분이니까 집 또한 최고 수&lt;BR&gt;준이었을 겁니다.그런 집을 면포 600필이면 살 수 있었다는 것이죠.&lt;BR&gt;그렇다면 면포 만필이면 몇 채입니까? 당대 최고 수준의 저택을 열일곱채나 살 수 있었습니다.&lt;BR&gt;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던 나라였습니다.&lt;BR&gt;조선은 건국 이후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박탈하고, 전국의 사찰과 승려 수도 대폭 축소시켜 나갔습니다.&lt;BR&gt;심지어 유신들은 승려를 좀벌레보다 못하다고 취급하며 천민처럼 대우했죠.&lt;BR&gt;그런데 세조는 사찰 하나에 최고급 저택 열일곱 채를 살 수 있는 물품을 시주한 것입니다.&lt;BR&gt;태조와 세종처럼 개인적으로 불교를 신봉하는 왕들도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이처럼 드러내놓고 &lt;BR&gt;불교를 후원한 왕은 없었습니다. 세조는 왜 불교를 이토록 후원하게 된 것일까요? &lt;/P&gt;
&lt;P&gt;-------------------------------------------------------------------------------------&lt;BR&gt;VCR.4 세조는 왜 호불국왕이 되었나?&lt;/P&gt;
&lt;P&gt;# 차트래킹 6 강원도 강릉에 세조가 상원사에 하사한 &lt;BR&gt;땅이 있었다고 한다. &lt;/P&gt;
&lt;P&gt;# 주민과 교수 걸어오며 5 강릉 신석동의 저수지 일대-&lt;/P&gt;
&lt;P&gt;# 주민 =섬석천인데 예전에는 중어보라 그랬다. 중들이 세운 보다..&lt;/P&gt;
&lt;P&gt;# 중어보까지 팬 12 상원사 승려들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lt;BR&gt;만들었다는 중어보- &lt;BR&gt;이곳이 상원사의 옛땅이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lt;/P&gt;
&lt;P&gt;# 저수지 10 그렇다면 세조가 당시 상원사에 하사한 땅의 &lt;BR&gt;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lt;/P&gt;
&lt;P&gt;# 이규대교수 =기록에 의하면 세조가 산산저수지 일대를 상원사에 하사했다고 기록이 있고 이쪽 &lt;BR&gt;지방 유생들의 기록에 의하면 종자를 70석 종부를 이용할 만큼 큰 규모의 토지를 &lt;BR&gt;상원사에서 관할했다고 기록이 돼있다. 그러니까 70석의 종자를 이용할 농토였다면&lt;BR&gt;굉장히 큰 규모였다고 말할 수 있다.&lt;/P&gt;
&lt;P&gt;# 묘전일대 팬 16 한석의 종자로 2천평의 농사를 지을수 있다고 한다.&lt;BR&gt;종자 70석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라면 &lt;BR&gt;14만평에 달하는 땅이다. &lt;/P&gt;
&lt;P&gt;# 동네주민 =얘기 때 어떻게서 월정사 토지가 생겼냐 하니 고양이 밥으로 떼나줬다 이런&lt;BR&gt;전설이죠. &lt;/P&gt;
&lt;P&gt;# 묘전 풀샷 8 고양이밥으로 떼줬다는 상원사의 땅-&lt;BR&gt;고양이와 상원사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lt;/P&gt;
&lt;P&gt;# 상원사 풀샷에서 고양이석상 15 상원사 법당 앞- 오랜 세월이 지나 &lt;BR&gt;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마모된 &lt;BR&gt;한쌍의 동물 석상이 있다.&lt;/P&gt;
&lt;P&gt;# 고양이 TS 15 이것은 바로 고양이 석상이다. &lt;BR&gt;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양이 석상-&lt;BR&gt;고양이가 상원사 법당 앞을 지키게 된 이유는&lt;BR&gt;무엇일까?&lt;/P&gt;
&lt;P&gt;# 월정사주지스님 =법당문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서 임금 옷을 뒤로 땡기더래&lt;BR&gt;요. 이 고양이 왜그래?하며 발로 차니 법당으로 쏙 들어가 탁자 밑에 쏙 들어가거든&lt;BR&gt;요. ㄱ래 또 들어갈려고하면 또 나와서 밖으로 땡기고... 또 탁자 밑에 들어가고 세 번&lt;BR&gt;을 그랬다가 임금이 무사를 시켜 탁자 밑을 뒤져 보라하니 탁자 밑에 단종 계열의 &lt;BR&gt;무사가 세조가 참배를 하면 목을 치라고 칼을 쥐고 서 있더라는게요. 그래서 고양이 &lt;BR&gt;덕에 목숨을 구했다는 거예요. &lt;/P&gt;
&lt;P&gt;# 고양이에서 법당으로 팬 9 세조는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잘 키워달라며&lt;BR&gt;강릉 저수지 일대의 땅을 상원사에 하사했다는 &lt;BR&gt;것이다. &lt;/P&gt;
&lt;P&gt;# 고양이 석상 보이는 상원사풀샷 6 이 전설에는 세조가 숭불정책을 펴게 된 &lt;BR&gt;배경이 들어있다.&lt;/P&gt;
&lt;P&gt;# 최복규교수 =자객이 나타났다는 건 실제 나타난 것은 희박한 것이고, 오히려 세조의 생각에 항상&lt;BR&gt;주변에 자기의 생명을 노리는 어떤 사람이 있거나 적대시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lt;BR&gt;항상 염두에 두고 살았다는 것을 나타냈고... &lt;/P&gt;
&lt;P&gt;# 계유정란 이미지 화면 16 세조는 피의 쿠테타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lt;BR&gt;1453년, 세조는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lt;BR&gt;실권을 장악했다. &lt;BR&gt;역사는 이것을 계유정란이라 부른다.&lt;/P&gt;
&lt;P&gt;# 단종 양위 18 2년후, 세조는 마침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lt;BR&gt;넘겨받아 조선 제7대왕으로 등극한다. &lt;BR&gt;그러나 피를 부른 왕위찬탈의 비극은 &lt;BR&gt;여기서 끝나지 않았다.&lt;/P&gt;
&lt;P&gt;# 사육신사건 14 1456년, 세조는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lt;BR&gt;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등 여섯명의 대신들을 &lt;BR&gt;참살했다. 소위 사육신 사건이었다.&lt;/P&gt;
&lt;P&gt;# 세조초상화 13 즉위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왕위를 위협받았던&lt;BR&gt;세조-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세자시절부터 &lt;BR&gt;불교를 믿었던 세조를 더욱 불교에 빠지게 하였다&lt;/P&gt;
&lt;P&gt;# 김상현교수 =집권과정 자체가 유교적인 이데올로기로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그랬을 &lt;BR&gt;때 자기의 그 왕실의 권위라든지 자기의 왕권을 완성시키고 강화할려고 할 때는 오&lt;BR&gt;히려 불교적인 그런 신앙과 이념에서 도움을 얻고자했던 그런 흔적이 보인다. 근데 &lt;BR&gt;석보상절을 일찍이 지었다던지 이후에 월인석보를 편찬하는 등 이러한 노력들이 아&lt;BR&gt;마도 당시 자기의 현안, 정치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과 불교의 중흥이 연&lt;BR&gt;결돼있다고 말할 수 있다.&lt;/P&gt;
&lt;P&gt;# 월인석보와 불서들 15 세조는 월인석보 국역판을 손수 간행한 이후,&lt;BR&gt;불교진흥정책의 일환으로 불경을 간행하고 &lt;BR&gt;한글로 해석하는 일에 몰두했다&lt;BR&gt;세조 7년에는 아예 불경간행을 전담하는 기구를 &lt;BR&gt;만든다.&lt;/P&gt;
&lt;P&gt;# 불서들 팬 5 간경도감에서 간행되고 우리말로 해석된 불경만도&lt;BR&gt;수백권에 달한다. &lt;/P&gt;
&lt;P&gt;# 서강 교형 기록 16 강력한 숭불정책을 내세운 세조 앞에서는&lt;BR&gt;불교를 비난하는 어떠한 발언도 용서되지 않았다&lt;BR&gt;성균관대사성이었던 서강이라는 사람은 &lt;BR&gt;술자리에서 불교를 비하해 처형까지 당했다&lt;/P&gt;
&lt;P&gt;# 김상현교수 =조선초기부터 많은 유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하고 탄압하는데 앞장서고 그랬습니다.&lt;BR&gt;그리고 왕들 중에 행여나 불교를 일으킬까봐 크게 염려하고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lt;BR&gt;세조실록을 보면 유학자들도 신하들이 불교를 비판하는 상소가 거의 많지 못합니다.&lt;BR&gt;아마도 그것은 정치적으로 세조가 세력을 크게 잡고 있었던 거 같고 그리고 세조가&lt;BR&gt;확실하게 불교를 신앙함으로해서 신하들도 함부로 반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lt;/P&gt;
&lt;P&gt;# 상원사 세조어첩 종친 신하 사인 22 상원사에 보내졌던 세조의 어첩-&lt;BR&gt;세조는 왕실종친과 신하들에게 &lt;BR&gt;상원사 중창에 시주하라고 명했다.&lt;BR&gt;어첩에는 자신들의 재물을 내놓으며 친필로 &lt;BR&gt;일일이 싸인을 남긴 종친과 신하들의 이름이 &lt;BR&gt;남아있다.&lt;/P&gt;
&lt;P&gt;# 신하들 사인 TS 8 종친이나 신하들 그 누구도 &lt;BR&gt;세조의 숭불정책에는 어떠한 반발도 하지 못했다.&lt;/P&gt;
&lt;P&gt;# 광덕사 트래킹 6 세조는 불교를 국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lt;BR&gt;승려 우대 정책을 펼쳤다.&lt;/P&gt;
&lt;P&gt;# 광덕사 외경 3 충청남도 천안의 광덕사-&lt;/P&gt;
&lt;P&gt;# 어첩 3 이곳에 세조가 내린 교지가 소장돼 있다.&lt;/P&gt;
&lt;P&gt;# 스님과 교지 살피는 &quot;충청도 천안지 광덕사&quot;&lt;/P&gt;
&lt;P&gt;# 교지 내용 8 세조는 친필로 광덕사 승려들의 잡역을 감해준다는&lt;BR&gt;교지를 작성했다.&lt;/P&gt;
&lt;P&gt;# 어첩 실록 기록 15 광덕사의 승려에게 뿐만 아니라&lt;BR&gt;세조는 전 승려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내렸다&lt;BR&gt;&quot;승려는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왕의 지시가 &lt;BR&gt;내려오기 전까지는 구속하거나 심문할수 없다&quot;는&lt;BR&gt;법률까지 만든 것이다. &lt;/P&gt;
&lt;P&gt;# 식우집 26 세조는 왜 이토록 강력한 숭불정책을 펼쳤던 &lt;BR&gt;것일까?&lt;BR&gt;세조의 불교관에 큰영향을 미쳤던 김수온의 글이다.&lt;BR&gt;만민의 주인인 군주는 민생을 구제하니&lt;BR&gt;출세의 차이는 있지만 중생을 구제한다는 점에서&lt;BR&gt;왕과 부처가 동일하다고 말한다. &lt;BR&gt;부처와 동일한 권위를 가지는 왕-&lt;/P&gt;
&lt;P&gt;# 사찰 외경 10 바로 그것이 불교의 대중화를 통해 &lt;BR&gt;세조가 얻고자 했던 점이다.&lt;/P&gt;
&lt;P&gt;# 김상현교수 =건국초기부터 유교사회를 표방해 오기는 했지만 &lt;BR&gt;여전히 일반서민들 사이에서는 불교가 온전해 있음을 설정해 볼 수 있음. 그런 상황&lt;BR&gt;에서 세조가 상원사를 찾아 온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설화들. 예를 들면 문수동자가 &lt;BR&gt;세조의 등을 밀어줬다거나 법당에 숨어든 자객을 고양이가 곤룡포를 당겨 막았다던&lt;BR&gt;가 하는 것이 아마도 군주인 세조가 부처님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시사성이 는다고 &lt;BR&gt;하면 여전히 불심이 남아있는 서민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남지 않겠느냐. &lt;/P&gt;
&lt;P&gt;# 세조 초상화 13 불교를 대중화시켜 백성들에게 남아있는 &lt;BR&gt;민심을 확보할 때, 세조는 더 이상 정통성 없는 &lt;BR&gt;왕이 아니라 부처의 권위를 가지는 &lt;BR&gt;강력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lt;/P&gt;
&lt;P&gt;-------------------------------------------------------------------------------------&lt;BR&gt;ST.5&lt;/P&gt;
&lt;P&gt;네, 세조는 스스로 대호불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불교를 매우 좋아하는 왕이라고 공언을 한 것이죠.&lt;BR&gt;세조는 재위기간 14년 동안 그 이름에 걸맞는 호불 정책을 펴나갔습니다.&lt;BR&gt;불교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해인사의 대장경을 50부, 금강경, 법화경, 능엄경 같은 불경은 100부씩 인쇄해 &lt;BR&gt;전국의 사찰에 소장시킵니다.심지어는 일본이나 유구에도 보냈습니다.&lt;BR&gt;세조는 사찰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상원사 뿐만 아니라 낙산사, 유점사 등 8개의 사찰을 중창하거나 &lt;BR&gt;창건했으며 정업원, 복천사, 원각사 등 십여개의 사찰에 많은 토지와 노비, 그리고 각종 물품 등을 하사했습니다.&lt;BR&gt;흥천사와 용문사의 종도 세조가 만들어 주었죠.&lt;BR&gt;세조는 이러한 불교의 대중화를 통해 어려운 유교보다는 여전히 불교와 가까운 백성들과 &lt;BR&gt;쉽게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lt;BR&gt;특히 세조의 속적삼이 오늘날 상원사에서 발견돼서 그의 호불정책을 더욱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lt;BR&gt;그런데 앞서 보신대로, 이 옷이 동자상에 복장될 때 세조는 상원사를 방문하고 있었습니다.&lt;BR&gt;그런데 세조의 상원사행에 좀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lt;BR&gt;실록에 따르면 세조가 상원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데 5일이 걸렸는데 서울에서 상원사로 갈 때는 &lt;BR&gt;한달이나 걸렸다는 점입니다.&lt;BR&gt;세조는 서울을 출발해서 무엇을 했기에 이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lt;BR&gt;세조의 행차에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lt;/P&gt;
&lt;P&gt;-------------------------------------------------------------------------------------&lt;BR&gt;VCR.5 상원사 가는길, 유람길 아니었다. &lt;/P&gt;
&lt;P&gt;# 상원사 10 세조가 상원사에 도착한 것은 1466년 4월 17일-&lt;BR&gt;세조는 누구와 함께 어떤 경로로 이곳에 왔을까?&lt;/P&gt;
&lt;P&gt;# 출발한 날 실록기록 21 한달전 세조가 한양을 출발할 때의 기록이다.&lt;BR&gt;왕세자, 내금위장 이윤손, 사장위장 정식이&lt;BR&gt;세조와 동행했다.&lt;BR&gt;그리고 정현조와 의숙공주등 왕실종친과 &lt;BR&gt;신숙주, 김수온, 노사신등이 그 뒤를 따랐다.&lt;/P&gt;
&lt;P&gt;# 정조행차도 15 하지만 왕이 도성밖을 행차할 때 &lt;BR&gt;주요인물들만 뒤따르는 것이 아니다. &lt;BR&gt;정조행차도에 따르면 말, 의복, 식사 등을 담당하는 &lt;BR&gt;시종들까지 약 천명 가까이 왕의 행차에 참여한다.&lt;/P&gt;
&lt;P&gt;# 신병주교수 =정부조직의 반이 이동한다는 의미를 지님, 도성의 궁궐을 비우면서까지 왕의 대규모&lt;BR&gt;행차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행차의 비중을 크게 둠, 세조의 행차는 당시 정부조직의&lt;BR&gt;캐비니쉬, 이동하는 모습을 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음&lt;/P&gt;
&lt;P&gt;# 오상학교수 지도 살피는 13 정부인사들을 이끌고 서울을 출발한 세조는&lt;BR&gt;포천, 철원을 지나 단발령을 넘어 &lt;BR&gt;금강산으로 향하고 있었다.&lt;BR&gt;세조의 이번 행차는 강원도로 향한 순행이었다.&lt;/P&gt;
&lt;P&gt;# 오상학 교수 =세조는 조선시대 여타왕에 비해 굉장히 순행이 잦았던 왕이다. 세조 6년에&lt;BR&gt;북부지방과 세조 10년, 12년, 14년까지 4번에 걸쳐 순행, 이런 왕들의 순행은&lt;BR&gt;조선시대에 흔치 않다. &lt;/P&gt;
&lt;P&gt;# 정조 순행 범위 6 조선시대 왕 가운데 순행을 자주했다는 정조-&lt;BR&gt;하지만 그의 순행은 경기도 일대를 &lt;BR&gt;벗어나지 않았다.&lt;/P&gt;
&lt;P&gt;# 세조 순행 범위 (평양까지) 15 그러나 세조의 순행은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lt;BR&gt;세조 6년의 순행은 평양까지 다녀온 &lt;BR&gt;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순행이었다.&lt;/P&gt;
&lt;P&gt;# 보은, 청주, 온양 일대 11 세조 10년과 14년에는 충청도 일대를 순행했다. &lt;BR&gt;남으로는 진천, 보은을 거쳐 청주를 지나 돌아왔다&lt;/P&gt;
&lt;P&gt;# 금강산, 강릉, 오대산 일대 11 그리고 세조 12년에는 철원, 김화를 지나&lt;BR&gt;금강산까지 다다랐다. 동해를 끼고 돌아온 &lt;BR&gt;그 해 순행은 강원도를 둘러본 순행이었다.&lt;/P&gt;
&lt;P&gt;# 전체 풀샷 5 정조의 순행에 비해 세조의 순행은 &lt;BR&gt;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lt;/P&gt;
&lt;P&gt;# 김문식교수 =특이하게 보여지는 것은 상당히 먼거리까지 간 것입니다. 대체로 왕이 궁을&lt;BR&gt;떠나기 쉽지 않고 도성밖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데 비교적 조선후기 정조인 &lt;BR&gt;경우 비교적 많이 다녔다지만 경기도 일대거든요. 다닌 지역이 지금 세조는 &lt;BR&gt;평안도, 강원도, 한때는 경상도까지 우리나라 전영역을 걸치는 것이다&lt;BR&gt;=도성을 오랫동안 비워놓더라도 자신의 정치는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안정기에 &lt;BR&gt;들어갔다고 과시하는 효과도 있을테고. 현지 방문하는 곳에서도 내각 대부분의 &lt;BR&gt;사람이 옮겨왔을 때 보이는 왕의 위엄을 보이는걸 노린게 아닐까 생각한다.&lt;/P&gt;
&lt;P&gt;# 그래픽/서울에서 금강산까지 17 역대 어느 왕보다 먼 지역까지 그것도 자주 순행을&lt;BR&gt;떠났던 이유는 무엇일까?&lt;BR&gt;세조12년 상원사로 가던 세조의 일정을 &lt;BR&gt;쫓아가 보자. &lt;BR&gt;서울을 떠난 지 닷새만에 금강산에 도착한 세조-&lt;/P&gt;
&lt;P&gt;# 세조 기록 14 도착 다음날 세조는 왕세자에게 매사냥을 시켰다. &lt;BR&gt;사냥은 다른 어떤 순행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lt;BR&gt;중요한 일정이다.&lt;/P&gt;
&lt;P&gt;# 김문식교수 =사냥이란 것은 일단 오락으로서의 기능.. 자기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lt;BR&gt;국가에서 대군이 동원된 이동중 사냥이란 것은 군사훈련의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lt;/P&gt;
&lt;P&gt;# 차 트래킹 22 세조는 각 지방을 순행할 때마다 &lt;BR&gt;관찰사와 수령을 만나 민원을 점검하고 &lt;BR&gt;농사작황을 살폈다. &lt;BR&gt;그것은 세조가 평소 농사의 어려움과 &lt;BR&gt;민생의 고통을 살피는 것이 순행이라고 &lt;BR&gt;말했던 바와 일치하는 일정이었다.&lt;/P&gt;
&lt;P&gt;# 양로연도 28 세조는 매 순행 때마다 각 지역에서&lt;BR&gt;노인들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하며&lt;BR&gt;양로잔치를 열었다. &lt;BR&gt;이번 행차에서도 경기도 강원도의 70세 이상&lt;BR&gt;노인에게 극진한 대접을 했고&lt;BR&gt;8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많은 선물까지 하사했다.&lt;/P&gt;
&lt;P&gt;# 최정용교수 =대민시책과 연관이 된다. 직접 지방을 시찰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생활상을 확인하&lt;BR&gt;고 살피고 직접 여론 일반 여론을 수렴하여 자신이 직접 해결해주는 현장에서, 이러&lt;BR&gt;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한 것이 순행이다. &lt;/P&gt;
&lt;P&gt;# 그래픽/ 금강산에서 양양까지 8 순행을 통한 대민시책은 금강산을 떠나 &lt;BR&gt;동해안으로 내려오던 중에도 계속됐다&lt;/P&gt;
&lt;P&gt;# 동구리 기록 21 강릉에 도착한 세조는 농민 중 농가를 &lt;BR&gt;잘 부르는 자들을 모아 노래자랑을 하게 했다. &lt;BR&gt;그중 노래를 제일 잘한 동구리라는 노비에게 &lt;BR&gt;가마를 태우고 의복을 하사했다. 세조는 노비조차&lt;BR&gt;순행의 일정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P&gt;# 김문식교수 =위민정치 중 하나, 가령 천인이었던 사람이 노래를 잘해서 그 자리에서 &lt;BR&gt;양인을 만들어준다든가 무예가 출중한 군사를 그 자리에서 특채를 한다거나&lt;BR&gt;이런 형식은 왕의 왕성이 아랫사람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 이벤트&lt;/P&gt;
&lt;P&gt;# 그래픽/ 양양에서 상원사 6 세조가 상원사에 도착한 것은 &lt;BR&gt;꼬박 한달이 지나서였다.&lt;/P&gt;
&lt;P&gt;# 최복규교수와 만과봉 10 상원사에 도착한 날, &lt;BR&gt;세조는 과거시험을 열었다&lt;BR&gt;당시 과거시험이 치뤄졌다고 전해지는 만과봉-&lt;/P&gt;
&lt;P&gt;# 만과봉 스케치 14 과거를 보러 온 만명의 선비들이 &lt;BR&gt;도포자락에 흙을 한 줌씩 넣어와 &lt;BR&gt;만과봉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lt;/P&gt;
&lt;P&gt;# 최복규교수 =과거에 응시해 보지도 못하고 거기에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사나 여러 가지 벼&lt;BR&gt;슬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서 여기서 과거를 보겠다. 알성시죠. 그래서 &lt;BR&gt;주변에 있는 모든 선비들한테 통보를 했어요. 일설에 의하면 만명이 시험을 보러왔다 &lt;BR&gt;그러는데 뭐 만명까지는 되지 않죠. 옛날에 만명이라는 것은 많다라는 의미거든요 아&lt;BR&gt;마 굉장히 많은 선비들이 와서 시험을 봤던 것 같습니다.&lt;/P&gt;
&lt;P&gt;# 만과봉 8 이번 과거시험에서는 문과에서 열여덟명, &lt;BR&gt;무과에서 서른 일곱명이 선발됐다. &lt;/P&gt;
&lt;P&gt;# 신병주교수 =왕의 행차가 결국은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이끌어 냈다, 그런 행사&lt;BR&gt;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조는 쿠테타로 집권을 한다. 그래서 자기의 &lt;BR&gt;취약한 정치적 기반이라든가 반발세력에 대한 어떤 무마를 위해서 대규모 왕의 행차&lt;BR&gt;를 기획하고 또 그 행차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정권획득이라든가 왕으로서 정&lt;BR&gt;당성을 널리 홍보하고 그런 정치적 계산-까지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lt;/P&gt;
&lt;P&gt;# 상원사 18 세조12년 상원사행-&lt;BR&gt;그것은 세조 자신의 안정된 정치기반을 &lt;BR&gt;온 백성들에게 알리고, &lt;BR&gt;대민시책을 통해 백성들의 신뢰와 민심을 얻으려는,&lt;BR&gt;세조의 고도로 계산된 정치 전술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ST.6 &lt;BR&gt;-------------------------------------------------------------------------------------&lt;BR&gt;세조-&lt;BR&gt;자신의 조카 단종을 폐하고 두 동생과 김종서, 황보인, 사육신들을 참살한&lt;BR&gt;비도덕적인 왕이었습니다.&lt;BR&gt;그의 불법적이고 많은 이들의 피를 부른 즉위 과정은 &lt;BR&gt;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분명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lt;BR&gt;하지만 14년이라는 재위기간동안 그가 이룬 성과는 다시 평가돼야 할 것 같습니다.&lt;BR&gt;세조는 어려운 범어나 한문으로 된 불서들을 한글로 소수 번역하고,&lt;BR&gt;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가장 먼 지방까지, 자주 순행을 다녀온 왕이었습니다.&lt;BR&gt;그것은 불교와 순행을 통해 백성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세조의 위민정책이었습니다.&lt;/P&gt;
&lt;P&gt;이 피묻은 적삼에는 세조의 인간적인 고민과 스트레스가 담겨있습니다.&lt;BR&gt;정통성 없는 왕으로서 느꼈던 정신적인 억압과 그것을 만회하려는 과중한 업무가&lt;BR&gt;세조가 병을 앓게된 원인이었습니다. &lt;BR&gt;500년이 지나 발견된 이 한점의 적삼은&lt;BR&gt;세조를 비도덕적인 왕이 아니라 &lt;BR&gt;역사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다시 보게하고 있습니다.&lt;BR&gt;------------------------------------------------------------------------------------- &lt;BR&gt;상원사 피묻은&lt;BR&gt;적삼의 미스터리&amp;nbsp; &lt;BR&gt;&amp;nbsp; &lt;/P&gt;
&lt;P&gt;□“훈민정음 창제 일등공신은 신미 스님”&lt;BR&gt;&amp;nbsp; 훈민정음과 신미 스님’주제 특강 강 상 원 박사 &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우리말의 뿌리는 실담(범어의 음역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도 범어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훈민정음 창제 일등 공신은 당시 범어에 능통했던 신미 스님인 것입니다.”&lt;/P&gt;
&lt;P&gt;지난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속리산 법주사 강원에서 개최한 특별강연회에서 한국세종한림원 강상원 박사는 “훈민정음을 만든 사람은 집현전 학자도 세종대왕도 아닌 신미 스님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주장했다.&lt;/P&gt;
&lt;P&gt;‘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은 집현원 학사 혜각존자 신미대사’라는 주제로 강연한 강상원 박사는 “훈민정음 해제본에 나와 있는 초기 표기법을 검토하면 실담에서 유래한 흔적이 매우 많다”며 “이는 훈민정음이 실담을 기초로 제작됐고 따라서 당시 범어에 능통했던 사람에 의해 훈민정음이 제작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lt;/P&gt;
&lt;P&gt;강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범어의 음가인 실담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훈민정음도 이런 범어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 했던 사람은 범어에 능통했던 사람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바로 집현전 학자였던 신미 스님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해 신미 스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강 박사는 “당시 숭유억불이라는 강력한 통치이념을 추진했던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고의적으로 누락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lt;/P&gt;
&lt;P&gt;그러나 강 박사는 “영산 김 씨의 족보와, 『복천보장』에 등장하는 기록에 의하면 신미 스님은 한학에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범어에도 능통한 학승으로 집현전에 초빙돼 한글 창제에 임했다는 기록이 명백하게 나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lt;/P&gt;
&lt;P&gt;강 박사가 이처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1994년 동국대에서 ‘원효의 중도사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경전을 영문화하는 작업에 몰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존 영문 경전 곳곳에서 오류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범어본 경전을 직접 번역해야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범어를 공부하게 됐다. 범어 사전을 통독한 것도 15회 이상. 범어에 대한 연구가 지속될수록 그는 한글과 범어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동국정운』에 나타난 한글 고어 표기법이 실담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도 알아냈다. 이를 근거로 그는 훈민정음이 실담에서 나왔고 따라서 범어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lt;/P&gt;
&lt;P&gt;강 박사는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범어 관련설 이외에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이후 『능엄경』,『원각경』등 총 28종의 불교경전이 제일 먼저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신미 스님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lt;/P&gt;
&lt;P&gt;권오영 기자 &lt;A href=&quot;mailto:oyemc@beopbo.co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oyemc@beopbo.com&lt;/U&gt;&lt;/FONT&gt;&lt;/A&gt;&lt;/P&gt;
&lt;P&gt;&amp;nbsp;&lt;BR&gt;왜곡된 한글창제 역사 바로잡아야”&amp;nbsp; &lt;BR&gt;&amp;nbsp;&lt;BR&gt;30년간 신미 대사 자료 수집 복천암 주지 월 성 스님&amp;nbsp;&amp;nbsp; &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한글 창제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신미 대사가 역사 평가에서 가려져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선 초 뛰어난 학승 신미 대사의 비밀을 밝혀냄으로써 한글 창제와 관련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을 것입니다.”&lt;/P&gt;
&lt;P&gt;지난 30년 간 신미 대사의 자료 수집에 전념해온 속리산 복천암 주지 월성 스님은 “신미 대사는 한글창제의 결정적 영향력을 끼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학자들의 그릇된 사관으로 한글창제의 배경과 과정이 왜곡돼 있다”며 “신미 대사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lt;BR&gt;지난 75년 사형인 탄성 스님의 권유로 복천암 주지 소임을 맡게 된 월성 스님은 이 때부터 신미 대사에 관한 자료 수집에 천착했다. 신미 대사와 관련된 각종 기록을 발굴 정리하는가 하면 조선왕조실록을 열람한 것도 수십 차례. 스님은 신미 대사의 기록을 복원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신미 대사의 기록을 복원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lt;/P&gt;
&lt;P&gt;그러나 스님이 신미 대사에 관한 자료 수집이 계속될수록 풀리지 않은 숙제가 남아 있었다. 당시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던 조선 초기에 어떻게 신미 스님이 집현전에 들어갔으며 한글 창제에 참여할 수 있었는가가 그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복천암을 찾은 영산 김씨의 한 후손으로부터 신미 대사와 관련된 족보와 대사의 친동생 김수온이 썼다는 『복천보장』을 전달받고 스님은 이 같은 의문을 하나씩 풀어갔다.&lt;/P&gt;
&lt;P&gt;“신미 대사에 대한 기록이 전무해 스님이 어떤 인물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산 김 씨의 족보에 신미 대사는 태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귀족가문 출신이며 범자에 능통한 분이었다는 기록을 보고 신미 대사에 가졌던 의문을 하나씩 밝혀나갔습니다.”&lt;/P&gt;
&lt;P&gt;스님은 『복천보장』과 영산 김 씨의 족보를 통해 신미 대사는 한학에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범서 장경에도 능통한 학승으로 집현전에 초빙돼 한글 창제에 임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스님은 또 한글의 모음과 자음이 범어 글자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 한글창제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은 당시 범어에 가장 능통했던 신미 대사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lt;/P&gt;
&lt;P&gt;특히 스님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이후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을 지었고, 『능엄경』, 『원각경』등 총 28종의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것은 불교에 대한 깊은 식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글 창제의 배경에 신미 대사가 제외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lt;/P&gt;
&lt;P&gt;스님은 또 이 같은 한글 창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신미 대사가 후대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숭유억불이라는 강력한 통치이념을 추진했던 시대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님은 “실록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신미 대사에게 ‘선교도총섭밀전정법지비쌍운우국이세원융무애혜각존자’라는 내리자 수많은 유생들이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는 이후 문종 대까지 계속된다”며 “이런 이유로 한글창제를 주도했던 신미 대사가 역사적으로 가려지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lt;/P&gt;
&lt;P&gt;그러나 스님은 “이제는 신미 대사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때”라며 “왜곡된 신미 대사에 대한 기록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한글 창제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은=권오영 기자 &lt;A href=&quot;mailto:oyemc@beopbo.co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oyemc@beopbo.com&lt;/U&gt;&lt;/FONT&gt;&lt;/A&gt;&lt;/P&gt;
&lt;P&gt;의문투성이 한글기원…신미 스님이 열쇠 &lt;BR&gt;성현-이수광-이능화의 梵字 기원설과 부합&lt;/P&gt;
&lt;P&gt;□ 의문투성이 한글 기원 --- 신미대사가 열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진설명＞훈민정음 보급의 일등공신 신미 대사는 범자(梵字)와 티베트어에도 능통했다.(좌) 그러나 유학자들의 질시로 그가 번역한 경전마저 나중에는 삭제되는 비운을 맞는다. 초판본(中). 초판본에 들어있던 신미 대사 법호가 재판본에는 빠져있다.&lt;/P&gt;
&lt;P&gt;지난 2001년 12월 서울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가 발표한 &quot;훈민정음 각필부호 유래설&quot;은 신미대사가 한글창제 과정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lt;/P&gt;
&lt;P&gt;‘각필’은 고대 문헌에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한자 옆에 점과 선, 또는 글자를 새겨 넣어 발음이나 해석을 알려주는 양식으로 이 교수가 고려시대의 불교경전을 조사해본 결과 각필 중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과 무려 17개가 일치하고, 자음과 모음의 체계까지도 대단히 유사함을 밝혀냈다. &lt;/P&gt;
&lt;P&gt;그리고 이러한 학설은 세종대왕이 수양대군 등 아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불교경전에 정통한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토록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는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사료를 통해 밝히고 있듯 &quot;평소 몸이 약했던 세종대왕이 한글이 창제되기 4년 전부터는 정사를 돌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고, 이로 인해 가장 중요한 일과의 하나인 경연(經筵)조차 열지 못할 상황&quot;이었기 때문이다.&lt;/P&gt;
&lt;P&gt;신미대사는 당시의 대표적인 학승으로 범어를 비롯한 인도어와 티베트에도 정통했으며, 불교경전에도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신미대사가 세조 2년(1456) 범어계통의 인도 문자와 티베트어로 쓴 친필 진언과 부적류들을 분석한 허일범 진각대 교수는 &quot;상당히 많은 분량임에도 오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정확한 자형을 이루고 있다&quot;고 밝혔다.&lt;/P&gt;
&lt;P&gt;한편 한글창제와 관련해 수백년 동안 ‘범자(梵字) 기원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조선전기 학자인 성현(1439~1504)은 &quot;훈민정음은 범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quot;고 주장했으며, 이수광(1563~1628)도 &quot;우리나라 언서는 글자 모양이 전적으로 범자 모양을 본떴다&quot;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언어학자인 황윤석(1729~1791)은 &quot;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대저 범자에서 근본하였으며 범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quot;라고 했으며, 이능화(186 9~1943)도 한글글자법이 범자에 근원한 것이라며 비슷한 용례까지 들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미국인 학자 헐버트(1863~1949) 등 외국인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인도에서 범어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봉태 목사도 지난 2000년 말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을 통해 한글의 기원이 범어에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lt;/P&gt;
&lt;P&gt;이런 일련의 학설들 또한 여전히 많은 연구와 검증의 절차를 남겨 놓고 있음에도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 적극 참여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범자기원설은 한글창제 당사자들이 불교경전 및 그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고 있었음을 의하는 것이며,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당시 왕과의 교분이 깊고 언해본 간행을 비롯해 경전언어에 깊은 조예가 있는 신미대사를 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lt;/P&gt;
&lt;P&gt;하지만 이런 추정이 사실이라면 실록에서는 왜 그런 기사가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강조하는 것일까. 동국대 황인규 박사는 &quot;당시 억불숭유의 정치적 상황에서 승려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더욱 거셌을 것&quot;이라며 &quot;이는 세종대왕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대의에 충실한 것&quot;이라고 말했다. 즉 유교의 이데올로기만을 숭상했던 조선시대가 초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lt;/P&gt;
&lt;P&gt;이런 까닭에 지난 94년 작고한 이숭녕 서울대 명예교수는 &quot;신미대사만치 유명한 고승이 후세에 남긴 법어나 시, 글 한편 없이 너무나 적막한 생애를 스스로 걸어갔다&quot;며 &quot;학덕이 높고 국어학사상 특기할 인물이었지만 사회의 냉랭함에서 쓸쓸히 입적한 가여운 인재&quot;라고 애석해했다.&lt;/P&gt;
&lt;P&gt;지난 550여 년간 이념의 벽으로 인해 스스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고승 혜각존자 신미스님. 이제 그의 위상과 업적을 올곧게 복원하고 선양해야 하는 것은 이제 후학들의 몫으로 남아있다&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BR&gt;한글 창시 자는 신미선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탄압,배척을 받았던 시대의 불교역사와,인물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관한 사실들은 너무나 왜곡,삭제가 많음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특히, 불교의 임진왜란 역사는 철저하게 왜곡 삭제되어 있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민족 정기에 크나큰 치명타 까지 주고 있어 자못 심각해 짐은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사람의 염려는 아니리라 여겨집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역사 왜곡 삭제는&amp;nbsp;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조차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 땅의 사이비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식인들&amp;nbsp; 하루빨리 각성 하시기를 바라면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한글 창시자&amp;nbsp; 신미선사&lt;BR&gt;신미선사는&amp;nbsp; 충청북도 영동에 영산 김씨 가문에서 부 친 김훈과 모친 여흥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가 입산 전에 부친께서 진사 벼슬에 등과 한 후 태종때에 영의정 까지 지낸 귀문가문 출신이기에 속가에서 사서삼경을 모두 설렵하고 출가하여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범서로된 장경이 중국에서 들어와 여러 고승들에 의하여 번역 되었으나 마음에 차지않아 범서로 된 원전을 보기 위해 범어(梵語) 공부를 하였다. &lt;/P&gt;
&lt;P&gt;&amp;nbsp;조선 제 4대 세종대왕은 중국의 한문 글이 너무어려워 백성들이 문맹인이 많아 배우기 쉬운 우리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껴우리글을 만들 결심을 하자&amp;nbsp; 전국을 총망라하여 숨은인재를 발굴할때 ,충청북도 속리산 복천사에 주석하고 있는 신미선사가 세종대왕의 부름을 받아 집현전에 참석하게 되었다.&lt;/P&gt;
&lt;P&gt;&amp;nbsp; 1446년까지 4년에 걸쳐 논의 한 끝에 신미선사는&amp;nbsp; 모음,자음 소리글을 범서에서 착안하여 한글을 마 무리 짓고 시험할때 해인사에서 장경을 간인하여 (법화경,지장경,금강경,반야심경) 등을 토도 달아보고 번역도 하여 시험을 끝내고 우리글이 완성 되었다고 보고 하니 임금은 기뻐하여 1446년 9월&amp;nbsp; 상달에 우리글을 훈민정음이라 공포하고 우리글이 만들어 졌으니 우리글로 노래도 한번 지어보라하여&amp;nbsp; 월인천강지곡과&amp;nbsp; 용비어천가를 지었다.&lt;/P&gt;
&lt;P&gt;&amp;nbsp; 그후 세종대왕은 신미선사가 주석하고 있는 속리산 복천사에 아미타불과 좌우보처 관음양대보살을 목각조성 시주하시고 그것으로 부족하여 시호를 ''선교도총섭밀전정법지비쌍운우국이세원융무애혜각존자라'' 지어문종에게 위임하여 문종이 부왕을 대신하여 신미선사께 사호하였다.&lt;/P&gt;
&lt;P&gt;&amp;nbsp;한글을 훈민정음이라 세상에 공포한후 집현전에 같이 참석하였던 성삼문,정인지,같은 유생들이 말하기를 한글에 대하여 신미대사의 공은 인정을 하되 발기를 세종대왕이 하셨으니 그 공을 세종대왕에게 돌리자 하여, 심미선사가 쾌히승낙하니 그후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지은 것으로 되었고 ,모든문헌등에 신미선사가 집현전에 참석함 까지도 밝히지않고&amp;nbsp; 공은 왕께로 돌리기로 하였기에 그기에 대 하여는 모든 문헌에도 신미대사에 대한 일체의&amp;nbsp; 언급이 없으나 유일하게 영산김씨 족보엔 세종의&amp;nbsp; 초빙을 받아 집현전에 참석 하였다 는 기록이 되어있다. 유생들은 신미선사가 승려의 신분으로&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한글창시를 주도한데 대하여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다가&amp;nbsp; 세종이 서거한 후 한글에 대하여 과소&amp;nbsp; 평가 하기 시작하여 ,언문이니 부녀자들이 뒷방 에 앉아서 친정에&amp;nbsp; 편지나 써서 보내는 글이니 통 통시글이니 하며 이것이 무슨 글인가 장부들이 배울 글이&amp;nbsp; 못 된다고 비양 거렷다.&lt;/P&gt;
&lt;P&gt;&amp;nbsp;그러나 신미선사는 세종대왕의 뜻에따라 누구든지 배우기 쉽게 만든것 뿐이기에 유생들의 그러한 비웃음에도 개의치 않았다.아니 불교를 탄압배척한 유생들의 악랄함에 그 정도의 비웃음은 가벼운 봄 바람과 같은 것이니까,,,,,.&lt;/P&gt;
&lt;P&gt;&amp;nbsp;유생들은 유서에만 능했고 ,신미선사는 불경,유서 범서 등 모두에 능하여 범서에서 착안한 한글 논의에 대하여 유생들은 일체 반론도 한번 못했고, 시종일관 신미선사의 뜻한바대로 마무리 되었다.&lt;/P&gt;
&lt;P&gt;집현전에서 4년간이나 학자들과 머물러 있었기에 학자들을 보살피는 한글도감은 수양대군이 맡았다. 수양대군은 오래도록 학자들을 보살피면서 그중에서 신미선사를 가장 존경하였다.한글이 신미선사의 주도하에 이루워졌고 덕이높고 지혜가 뛰어나고 젊잖고 용모도 거룩하기 때문이였다.&lt;/P&gt;
&lt;P&gt;&amp;nbsp; 한글창시를 마치고 집현전에서 속리산 복천사로 돌아오고 난후 세월은 흘러 세종이 문종에게 전위하고 문종은 병약하여 일찍 돌아가시자 12세되는 어린단종이 즉위를 하니 수양대군이 섭정하게 되었다.&lt;/P&gt;
&lt;P&gt;&amp;nbsp; 섭정한지 얼마되지않아 수양대군을 따르는 간신들이 어린왕을 가지고 형식만 취할것이 아니라 대군께서 직접 정사를 맡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수차레 간청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계속집권할것을 강요하니 하는수없이 혁명을 일으켜 단종을 영월로 귀양보내어 죽이고&amp;nbsp; 수많은 학자와 대신들이 희생&amp;nbsp; 당했다.&lt;/P&gt;
&lt;P&gt;&amp;nbsp;어느날 밤 꿈에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서''네가 아무리 용상이 탐이 나기로 서니 어린 &lt;BR&gt;카를 살해까지 할수 있느냐! 이 더러운놈아!''하고 얼굴에다 침을 &#48789;은 꿈을 꾸고 깨어보니 온몸에 부스럼이 생기엇다.&lt;BR&gt;&amp;nbsp; 그 당시에는 혁명중이라 죽느냐 사는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기 때문에 병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어느 정도 평정이 되니 병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약도 쓰고 치료를 하엿으나 백약이 무효 인지라 약을 쓰게 되면 병세가 점점 더 악화 되어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리기 시작 하였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P&gt;
&lt;P&gt;용상을 보니 쳐다 보기도 싫고 그렇다고 산에들어가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으나 그러할 수도 없고 진퇴 양난 이였다.그리하여 곰곰히 생각하니 지난 날 신미선사가 생각나서 신미선사를 찾아 뵙기로 하고 사전 통보를 한뒤에 4,5백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청주에 와서 2일간을 쉬고 보은 말티재 밑 대궐터 지금 장재리에 하룻밤을 자고 세조 10년 갑신년 天順 8 年2월 28일 신해일에 말티재를 넘어 큰 소나무 밑을 지나는데, 연이 소나무 가에 걸릴것 같으므로 세조대와이 보고 연걸린다 고 하니 연을 낮추기 전에 소나무 가지가 저절로 번쩍들렷다.그리하여 연이 상하지 아니했다.&lt;/P&gt;
&lt;P&gt;&amp;nbsp;세조대왕은 하도 이상하여 연을 멈추고 그 사실을 이야기 하니 한 신하가&amp;nbsp; 임금을 알아 보는 소나무 이니니 벼슬을 주자고 하자 무슨 벼슬을 주면 좋겠는가 하자 정이품 벼슬을 주는것이 좋을 듯하니그 자리에서 정이품 벼슬을 주었다.&lt;/P&gt;
&lt;P&gt;&amp;nbsp;정오에 복천사에 당도하니 당대의 고승이신 신미선사와 수미,학조,학렬.등 많은 스님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법당으로 안내 참배케하고 3일간&amp;nbsp; 기도와 법문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lt;BR&gt;졌다.안정을 얻은 세조대왕은 환궁할때에 신미선사는 청을 한가지 드렷다. 세조가 무엇이냐고 묻자 신미선사가 강원도 오대산에 월정사가&amp;nbsp; 있고 그위에 상원사가 있으며 상원사 위에 중대가 있어 우리나라 오대 적멸보궁 중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궁이 있습니다.(부처님 머리부분에서 나온 사리) 그러나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신도들도 가는 이가 드물어 건물이 붕괴 직전 입니다.&lt;/P&gt;
&lt;P&gt;대왕께서복원을 해주시면 그공이 헛되지않을 것입니다.하니 세조께서 즉시 나라에서 하지요, &lt;/P&gt;
&lt;P&gt;이곳에서 보궁 복원에 감독할 분을 보내주세요. 하여 그자리에서 학열스님을 &lt;BR&gt;보궁 감독으로 임명하여 보내었다.(계속)&lt;/P&gt;
&lt;P&gt;&amp;nbsp;&lt;BR&gt;“한글창제 주역은 신미스님”&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한글날 특집‘훈민정음과 불교’&amp;nbsp;&amp;nbsp; &lt;BR&gt;&amp;nbsp;梵字-티베트어에 능통…불경 간행 주도&lt;BR&gt;세종이‘존자’칭호…‘집현전 참여’ 기록도&lt;/P&gt;
&lt;P&gt;억불 정책으로 공헌가려져…재조명 있어야&lt;/P&gt;
&lt;P&gt;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손꼽히는 한글.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를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분명하지만 한글의 기원이나 문자를 만드는데 기여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의문점이 남아있다.&lt;/P&gt;
&lt;P&gt;본지가 한글날 558돌을 기념한 특별취재에 따르면 훈민정음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혜각존자 신미(信眉, 1405?~1480?)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에도 깊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lt;/P&gt;
&lt;P&gt;신미대사는 세종과 문종의 여러 불사를 도왔을 뿐 아니라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전을 번역, 간행했을 때 이를 주관하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특히 『석보상절』의 편집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2300여 쪽은 이르는 방대한 양의 『원각경』을 비롯해 『선종영가집』, &lt;BR&gt;『수심결』, 몽산 등 고승법어를 훈민정음으로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따라서 만약 신미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오늘날 전하는 상당수 한글문헌은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lt;/P&gt;
&lt;P&gt;이런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도 크게 기여했을 거라는 주장이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먼저 세종대왕과의 관계다. 비록 신미대사가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세종이 죽기 5년 전인 세종 28년(1446)이지만 그 관계가 대단히 친밀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종대왕은 죽기 몇 달 전 신미대사를 침실로 불러 신하로서가 아닌 윗사람의 예로 신미대사를 대하고 있으며, 당시 신미대사가 머무르던 속리산 복천암 불사를 지원하고, 대사에게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利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긴 법호를 내렸다. ‘존자’라는 명칭이 큰 공헌이나 덕이 있는 스님에게 내리는 칭호고, 더구나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이롭게 했다(祐國利世)’는 문구를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lt;/P&gt;
&lt;P&gt;또 영산 김씨 족보에 ‘수성(신미대사)은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활동했으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과 신미대사의 친동생이자 독실한 불자였던 김수온이 한글창제 이전에 이미 중앙에 진출한 상태였다는 점도 이와 관련된다는 가설의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lt;/P&gt;
&lt;P&gt;“훈민정음 창제 과정에는 불교의 신성 숫자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훈민정음 창제 당사자들은 새로운 문자의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불교를 보급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이 사업을 진행했다.”(김광해 서울대 교수) “방대한 양의 불경이 한글이 창제 된지 얼마 안 되는 기간에 한문본이 편찬되고 번역까지 됐다. 이는 한글 반포 이전부터 불경에 정통하고 있었으며, 또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의 운용법과 표기법에 통달하고 있던 인사들이 있어서 이 사업을 추진했다는 증거다.”(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lt;BR&gt;이 같은 기존 학자들의 주장도 그 당시 대표적인 학승이었던 신미대사를 상정할 경우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얼마 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한글 기원은 고려불경의 각필부호”라는 학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는 견해가 많다.&lt;/P&gt;
&lt;P&gt;지난 30년째 신미대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는 복천암 주지 월성 스님은 “억불숭유의 시대로 말미암아 신미대사의 공헌은 철저히 가려지고 삭제될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라도 그 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lt;BR&gt;이재형 기자 &lt;A href=&quot;mailto:mitra@beopbo.co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mitra@beopbo.com&lt;/U&gt;&lt;/FONT&gt;&lt;/A&gt;&lt;/P&gt;
&lt;P&gt;신미대사는?&lt;BR&gt;신미대사는 부친이 태종 때 정승까지 지낸 양반 가문인 까닭에 입산 전 유학 경전을 섭렵할 수 있었으며 출가 후에는 대장경에 심취했다. 그러나 한문 경전이 마음에 차지 않아 범어와 티베트어를 직접 공부하기도 했다. 특히 세종, 문종, 세조 때에는 경전번역 등 불사를 이끌었으며 예종이 불교탄압하려 할 때는 언문 상소를 올려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했다.&lt;/P&gt;
&lt;P&gt;&lt;BR&gt;&lt;2004-09-29/773호&gt;&lt;BR&gt;&amp;nbsp;&lt;BR&gt;한글어지 108자 … 월인석보도 108쪽&lt;BR&gt;&amp;nbsp;&amp;nbsp;&amp;nbsp; &lt;BR&gt;&amp;nbsp;한글창제와 숫자의 비밀 &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어느 종교건 특정 숫자를 신성시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불교는 유독 그런 성향이 강하다. 심지어 0에서 무한대에 이르기까지 숫자를 불교적으로 해석한 『대명법수』라는 책이 나올 정도다. 이런 가운데 훈민정음 창제가 백성들의 문자 생활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한 표면적인 목적 외에도 불교를 보급하고자 하는 은밀한 목적을 가지고 이 사업을 진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대 국문과 김광해 교수의 ‘훈민정음과 108’론이 바로 그것이다.&lt;/P&gt;
&lt;P&gt;&amp;nbsp;김 교수는 그동안 『한글창제와 불교신앙』(불교문화연구 제3집) 등 일련의 논문을 통해 창제 과정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불교의 대표적인 신성수 ‘108’과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는 한편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당사자들의 의도적인 조절임을 주장했다.&lt;/P&gt;
&lt;P&gt;&amp;nbsp;김 교수가 먼저 주목한 것은 ‘나랏말싸미듕귁에달아…’로 시작하는 한글 어지(御旨)와 ‘國之語音異乎中國…’로 시작되는 한문 어지다. 한글은 모두 108자고 한문 어지는 108의 꼭 절반인 54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김 교수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더부러’ 등을 고의적으로 누락하는 등 적어도 4글자 이상이 탈락됐다는 것이다. 또 한문 어지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而己矣’를 사용하지 않고 ‘耳’를 사용하고 있는 등 글자의 수를 맞추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담겨 있음도 함께 지적했다.&lt;/P&gt;
&lt;P&gt;&amp;nbsp;훈민정음 창제과정에 나타나는 숫자의 비밀은 비단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 교수는 108글자의 세종 어지가 실린 『월인석보』 제1권의 장수(張數)도 108쪽임도 밝히고 있다. 특히 다른 권들과는 달리 일련의 이야기를 중간에 잘라 별도의 권으로 만들면서까지 쪽수를 맞추고 있다는 것. 또 현재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의 경우 불교적인 우주관을 상징이라도 하듯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lt;/P&gt;
&lt;P&gt;김 교수는 이들 경우 외에 다양한 사례를 하나하나 제시하며 “훈민정음의 창제 당사자들이 이렇듯 일련의 주도면밀한 노력을 은밀히 기울인 것은 불교 보급의 목적이 담겨 있다”며 “그러한 종교적 염원이 숫자를 조절하는 은밀한 방법으로 나타났다”고 결론 맺고 있다.&lt;BR&gt;실제 세종에서 연산군 때까지 발간된 훈민정음 문헌의 65%이상이 불교관련 문헌이며, 유교 문헌은 단 5%에도 미치지 못한다.&lt;BR&gt;이재형 기자&lt;/P&gt;
&lt;P&gt;&lt;2004-09-29/773호&gt;&lt;/P&gt;
&lt;P&gt;“집현전 학자들 한글창제 무관”&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훈민정음에 대한 오해 &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한글창제는 지금까지 신숙주와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의 명을 받들어 만들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인 통념이다. &lt;/P&gt;
&lt;P&gt;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창제를 주도했다는 이론은 설득력이 없는 쪽으로 굳혀지고 있다.&lt;/P&gt;
&lt;P&gt;&amp;nbsp;한글창제 이후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이 집현전 학자들이며, 당시 집현전 부제학으로 실무담당을 맡고 있던 최만리를 비롯해 신석조, 김문, 정창손 등조차 “굳이 언문을 만들어야 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재상에서 신하들까지 널리 상의한 후 후행해야 할 것인데 갑자기 널리 펴려 하니 그 옳음을 알지 못하겠다”고 상소를 올리는 것 등의 정황으로 볼 때 집현전 학자들이 돕기는커녕 몰랐던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lt;/P&gt;
&lt;P&gt;1443년 12월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를 선언할 때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비밀리에 추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lt;/P&gt;
&lt;P&gt;또 성삼문은 한글이 창제될 무렵에 집현전에 들어왔고, 신숙주는 창제 2년 전에 들어왔지만 그 다음해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관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록에도 전혀 그런 말이 없다. 잘못된 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세종께서 이런 사실을 알면 통탄할 것”이라는 여증동 경상대 국문과 명예교수의 말처럼 집현전 학자 창제설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lt;/P&gt;
&lt;P&gt;따라서 이들 집현전의 소장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세종의 명을 받들어 훈민정음의 보급에 앞장섰을 뿐이다. &lt;BR&gt;이재형 기자&lt;/P&gt;
&lt;P&gt;&lt;2004-09-29/773호&gt;&lt;/P&gt;
&lt;P&gt;“집권 초 억불…중반이후 호불로 전향”&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세종대왕과 불교 &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태종에 이어 1418년 즉위한 세종은 강력한 유교 통치 이념을 바탕으로 즉위 초기 배불(排佛)에 앞장섰다. 불교를 약화시키기 위해 7개 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폐합하는가 하면 “불교를 점진적으로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lt;/P&gt;
&lt;P&gt;그러나 세종은 공적으로 유교를 내세웠지만 사적인 부분에서는 초기부터 불교에 대한 애정이 나타난다. 집권 초 사찰의 건립 보수에 앞장섰는가 하면 왕실불교를 일으키는데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 &lt;/P&gt;
&lt;P&gt;세종은 또 정권 중후반기인 즉위 20년 무렵 친불교적인 성향을 본격화하면서 조정 대신들과 불교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집권말기에 이르러서는 왕실에 내불당을 건립(즉위 30년)하는 등 적극적인 호불(好佛)정책을 추진했으며 반발하는 대신들에 대해 오히려 강력히 제지하기도 했다.&lt;/P&gt;
&lt;P&gt;실제 세종 즉위 28년 3월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대군들이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편찬하겠다고 하자 이를 공식적으로 허락한다. &lt;/P&gt;
&lt;P&gt;그러나 당시 우부승지 이상철, 좌승지 황수신 등이 중심이 된 조정 대신들과 전국의 많은 유생들은 세종대왕의 불교 신봉을 비판하는 상소를 잇따라 제기했다. 그러나 세종은 “경들은 고금의 사리에 통달해 불교를 배척하니 가히 현신(賢臣)이라 이를 만하다. 나는 의리(義理)를 몰라 불법을 믿고 있으니 가히 무식한 임금일 것이다.…이제 그대들의 뜻을 훤히 알겠으니 번거롭게 다시 청하지 말라.”며 대신들을 비꼬기도 했다. &lt;/P&gt;
&lt;P&gt;세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가) 공자의 도(道)보다 낫다고 하는 것을 주자가 잘못됐다고 했으나 이는 석가모니를 잘 몰라서이며, 천당지옥·사생인과는 명확한 이치가 있으며 결코 허탄(虛誕)한 것이 아니다”라며 불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권오영 기자&lt;/P&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H2&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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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앵글족 VS 색슨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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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하여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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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4:16:53Z</updated>
	    <published>2009-11-10T14:16: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userImg3539667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rds.yahoo.com/_ylt=A0WTb_nB..pKru4AtTKjzbkF/SIG=126qti4qt/EXP=1257000257/**http%3A//www.colchestertreasurehunting.co.uk/map.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3539667)&quot;,200)' name=cafeuserimg&gt;&lt;BR&gt;&lt;BR&gt;&lt;BR&gt;색슨족은 지금의 독일북부에서 네덜란드동부에 걸쳐 거주했던 서게르만의 일파로 잉글랜드 남부에 정착했으며&lt;BR&gt;앵글족은 유틀란트반도 남부에 거주했던 북게르만의 일파로 잉글랜드중북부에 정착하였다.&lt;BR&gt;&lt;BR&gt;이후 유틀란트북부의 유트족과 스칸디나비아의 쉘란섬에 거주했던 데인족이 침입하고,&lt;BR&gt;노르만계 바이킹들의 놀이터가 되면서 잉글랜드인들은 북방족들간의 혼혈인종이&amp;nbsp;된다.&lt;BR&gt;&lt;BR&gt;흔히 진저피플이라는 창백한 피부에 주근깨...빨강머리가 잉글랜드 동북부지방에 유난히 많은 이유이다.&lt;BR&gt;&lt;BR&gt;현재, 게르만의 뿌리이자 원류로 정의할수 있는 노르딕인종의 분포지역으로 분류되는 지역은&amp;nbsp;원거주지였던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와&lt;BR&gt;이동지였던 아이슬란드,잉글랜드,네덜란드,발트해연안의 독일북부일부이다.&amp;nbsp;&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
&lt;IMG id=userImg6402768 style=&quot;WIDTH: 646px; HEIGHT: 527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rds.yahoo.com/_ylt=A0WTb_hb_OpKa2IBD.mjzbkF/SIG=12u46f164/EXP=1257000411/**http%3A//www.eliznik.org.uk/EastEurope/History/migration-map/german-emap.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402768)&quot;,200)' name=cafeuserimg&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lt;인종/지리&gt;&lt;BR&gt;서양이 우월하다고? 우수한건 오직 튜튼인(게르만) &lt;/STRONG&gt;&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1311&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1311&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영국흑인들은 어디서 오는가?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939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9390&lt;/U&gt;&lt;/FONT&gt;&lt;/A&gt;&lt;BR&gt;백인종의 분류와 유럽의 금발지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732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7324&lt;/U&gt;&lt;/FONT&gt;&lt;/A&gt;&lt;BR&gt;지도와 국기로 보는 게르만국가 혈통순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397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3974&lt;/U&gt;&lt;/FONT&gt;&lt;/A&gt;&lt;BR&gt;진저피플(빨강머리) 및 영국인에 대해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565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5653&lt;/U&gt;&lt;/FONT&gt;&lt;/A&gt;&lt;BR&gt;유럽 최대의 잡혈국가 프랑스인의 전형적인 외모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4057&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4057&lt;/U&gt;&lt;/FONT&gt;&lt;/A&gt;&lt;BR&gt;게르만의 대표적인 역사도시들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718&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718&lt;/U&gt;&lt;/FONT&gt;&lt;/A&gt;&lt;BR&gt;앵글로색슨과 노르만 개념정리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8388&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8388&lt;/U&gt;&lt;/FONT&gt;&lt;/A&gt;&lt;BR&gt;이쯤에서 올려보는 게르만 지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76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762&lt;/U&gt;&lt;/FONT&gt;&lt;/A&gt;&lt;BR&gt;유럽도시들의 다인종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11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112&lt;/U&gt;&lt;/FONT&gt;&lt;/A&gt;&lt;BR&gt;국가별 남녀 평균신장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57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572&lt;/U&gt;&lt;/FONT&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국가/역사&gt;&lt;BR&gt;영국이 중국+일본을 합친거보다 강대국인 이유 &lt;/STRONG&gt;&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4785&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4785&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한국을 떠난다면 가장 살고 싶은 지역 베스트 11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948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9480&lt;/U&gt;&lt;/FONT&gt;&lt;/A&gt;&lt;BR&gt;2009年 전세계 국가선진화 지수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521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5213&lt;/U&gt;&lt;/FONT&gt;&lt;/A&gt;&lt;BR&gt;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북유럽 3국이 통합국가가 될수없는 이유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099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0995&lt;/U&gt;&lt;/FONT&gt;&lt;/A&gt;&lt;BR&gt;삶의질과 함께 여유와 관용이 흐르는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835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8352&lt;/U&gt;&lt;/FONT&gt;&lt;/A&gt;&lt;BR&gt;사진으로 보는 서구인이 뽑은 경이로운 아시아 10대 역사유적지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99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994&lt;/U&gt;&lt;/FONT&gt;&lt;/A&gt;&lt;BR&gt;2차 세계 대전은 사실상 영국과 독일간의 전쟁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62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623&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의 입헌군주국들의 국가원수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7796&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7796&lt;/U&gt;&lt;/FONT&gt;&lt;/A&gt;&lt;BR&gt;내가 생각하는 세계사의 가장 위대한 3대 국왕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643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6430&lt;/U&gt;&lt;/FONT&gt;&lt;/A&gt;&lt;BR&gt;내가 평가하는 여러 국가 이미지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407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4073&lt;/U&gt;&lt;/FONT&gt;&lt;/A&gt;&lt;BR&gt;서구국가는 크게는 해양권/대륙권, 보통은 영미권/노르딕권/대륙권으로 나눈다.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3987&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3987&lt;/U&gt;&lt;/FONT&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경제/경제사&gt;&lt;BR&gt;2008年 1인당 국민소득 발표(세계은행) 노르웨이 1위 &lt;/STRONG&gt;&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1371&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1371&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GaWC발표 2008년 영향력 있는 월드도시 등급분류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611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6114&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금융허브 Top10 도시... 금융의 중심이 세계경제의 중심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450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4509&lt;/U&gt;&lt;/FONT&gt;&lt;/A&gt;&lt;BR&gt;미국과 영국이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공식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8277&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8277&lt;/U&gt;&lt;/FONT&gt;&lt;/A&gt;&lt;BR&gt;대영제국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영어제국의 시대이다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489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4892&lt;/U&gt;&lt;/FONT&gt;&lt;/A&gt;&lt;BR&gt;게으르고 실컷 놀아대는 스페인의 1인당소득이 3만불인 이유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14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140&lt;/U&gt;&lt;/FONT&gt;&lt;/A&gt;&lt;BR&gt;금융과 석유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영미 패권주의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0047&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0047&lt;/U&gt;&lt;/FONT&gt;&lt;/A&gt;&lt;BR&gt;2차대전 일본에 원폭투하를 결정한 배후는 영국의 로스차일드가문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983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9839&lt;/U&gt;&lt;/FONT&gt;&lt;/A&gt;&lt;BR&gt;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한국에는 정착할수 없는 이유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262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2620&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화의 진정한 승리자 홍콩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131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1319&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의 진정한 수도는? 런던 vs 뉴욕, 뉴욕 vs 런던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city&amp;no=18547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city&amp;no=185475&lt;/U&gt;&lt;/FONT&gt;&lt;/A&gt;&lt;BR&gt;미국외교잡지 포린폴리시의 세계 주요 글로벌 도시 순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132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1323&lt;/U&gt;&lt;/FONT&gt;&lt;/A&gt;&lt;BR&gt;미국이 패권을 차지하고, 계속 그 자리를 지켜가는 가장 큰 이유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858&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858&lt;/U&gt;&lt;/FONT&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도시/여행&gt;&lt;BR&gt;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국가모델, 스칸디나비아 왕국을 찬양하라 &lt;/STRONG&gt;&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810&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3810&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한비야 이전에 김찬삼이 있었다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7228&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7228&lt;/U&gt;&lt;/FONT&gt;&lt;/A&gt;&lt;BR&gt;유럽에서 가봐야 할 나라/지역들. 역사문화중심으로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599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5999&lt;/U&gt;&lt;/FONT&gt;&lt;/A&gt;&lt;BR&gt;이명박이 홀딱 반하고 돌아온 세계최고의 환경생태도시 함마르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70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2702&lt;/U&gt;&lt;/FONT&gt;&lt;/A&gt;&lt;BR&gt;한강은 너무 징그럽게 커서 탈이야...템즈강 정도의 폭이 가장 이상적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956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9560&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선진국가 스웨덴의 전형적인 풍경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61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610&lt;/U&gt;&lt;/FONT&gt;&lt;/A&gt;&lt;BR&gt;시드니의 관광포인트, 서큘러키 vs 달링하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australia&amp;no=3631&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australia&amp;no=3631&lt;/U&gt;&lt;/FONT&gt;&lt;/A&gt;&lt;BR&gt;대륙에서 스칸디나비아로 들어가는 일반적인 방법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89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893&lt;/U&gt;&lt;/FONT&gt;&lt;/A&gt;&lt;BR&gt;트론헤임-보되. 북극권으로 올라가는 환상적인 열차구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97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979&lt;/U&gt;&lt;/FONT&gt;&lt;/A&gt;&lt;BR&gt;라우드럽 형제를 사랑하는 도시 코펜하겐을 엿보자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57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579&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오슬로를 방문해보자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87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7870&lt;/U&gt;&lt;/FONT&gt;&lt;/A&gt;&lt;BR&gt;스톡홀름의 대표적인 명소, 세르겔광장과 스칸센을 둘러보자.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13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135&lt;/U&gt;&lt;/FONT&gt;&lt;/A&gt;&lt;BR&gt;영원한 동심속의 고향 오덴세&amp;룬드를 찾아가보자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07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travel_europe&amp;no=8075&lt;/U&gt;&lt;/FONT&gt;&lt;/A&gt;&lt;BR&gt;솔직히 근현대사를 통틀어 세계수도 지위를 누리고 있는건 런던(1)&amp;nbsp;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10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103&lt;/U&gt;&lt;/FONT&gt;&lt;/A&gt;&lt;BR&gt;솔직히 근현대사를 통틀어 세계수도 지위를 누리고 있는건 런던(2)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707&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707&lt;/U&gt;&lt;/FONT&gt;&lt;/A&gt;&lt;/P&gt;
&lt;P&gt;&lt;BR&gt;&lt;STRONG&gt;&lt;문화/언어&gt;&lt;BR&gt;대학별/국가별 역대 노벨상수상자 배출 순위 &lt;/STRONG&gt;&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1312&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1312&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세계 10대 동물원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9906&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9906&lt;/U&gt;&lt;/FONT&gt;&lt;/A&gt;&lt;BR&gt;시대의 천재여성 전혜린의 불꽃같은 삶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541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5414&lt;/U&gt;&lt;/FONT&gt;&lt;/A&gt;&lt;BR&gt;드라마로 만들면 좋을꺼같은 삼국시대배경의 문학작품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1191&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1191&lt;/U&gt;&lt;/FONT&gt;&lt;/A&gt;&lt;BR&gt;현재 영어의 표준은 영국? 미국?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988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9880&lt;/U&gt;&lt;/FONT&gt;&lt;/A&gt;&lt;BR&gt;북구신화가 환타지성격이 강한 이유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976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9764&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에서 공인된 혼탕국가는 독일뿐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1317&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1317&lt;/U&gt;&lt;/FONT&gt;&lt;/A&gt;&lt;BR&gt;프랑스문화는 결코 메이저가 될수없는 영원한 마이너일뿐이다.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8787&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8787&lt;/U&gt;&lt;/FONT&gt;&lt;/A&gt;&lt;BR&gt;인류의 문명과 역사,진보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세계 5대 박물관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865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8653&lt;/U&gt;&lt;/FONT&gt;&lt;/A&gt;&lt;BR&gt;바이킹의침략역사가 영국인들의 금발 비율 형성 말고도 언어에 끼친 유산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91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914&lt;/U&gt;&lt;/FONT&gt;&lt;/A&gt;&lt;/P&gt;
&lt;P&gt;&lt;BR&gt;&lt;STRONG&gt;&lt;항공/네트워크&gt;&lt;BR&gt;세계 7대 관문국제공항 &lt;/STRONG&gt;&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3854&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3854&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국가는?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4065&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84065&lt;/U&gt;&lt;/FONT&gt;&lt;/A&gt;&lt;BR&gt;대륙간 노선 운항횟수로 보는 유럽과 동아시아국가간 선호관계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593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5930&lt;/U&gt;&lt;/FONT&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사회/현상&gt;&lt;BR&gt;서유럽중 흑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나라들 &lt;/STRONG&gt;&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4393&quot; target=_blank&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4393&lt;/U&gt;&lt;/FONT&gt;&lt;/STRONG&gt;&lt;/A&gt;&lt;BR&gt;고교수학의 바이블이 되어온 수학의 정석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714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7144&lt;/U&gt;&lt;/FONT&gt;&lt;/A&gt;&lt;BR&gt;네덜란드인들의 키에 관한 진실관련 글에 대해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4893&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4893&lt;/U&gt;&lt;/FONT&gt;&lt;/A&gt;&lt;BR&gt;지식인들이 체 게바라에 열광하는 이유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398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73989&lt;/U&gt;&lt;/FONT&gt;&lt;/A&gt;&lt;BR&gt;세계 Top10 대학출신의 학벌좋은 헐리웃스타들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641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66412&lt;/U&gt;&lt;/FONT&gt;&lt;/A&gt;&lt;BR&gt;학벌은 서양애들도 많이 밝혀 &lt;A href=&quo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72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00&gt;&lt;U&gt;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story&amp;no=355724&lt;/U&gt;&lt;/FONT&gt;&lt;/A&gt;&lt;/P&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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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lt;U&gt;&lt;/U&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uridlsuri&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lt;/FONT&gt;&lt;/U&gt;&lt;/A&gt;&amp;nbsp;&lt;/P&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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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 최고의 고려 '잠견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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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15:31Z</updated>
	    <published>2009-11-10T14:15:3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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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class=read_title&gt;&lt;FONT color=magenta&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독] 세계 최고의 고려 '잠견지' 고대사서와 함께 사라지다! &lt;/SPAN&gt;&lt;/B&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read_subtitle style=&quot;PADDING-RIGHT: 2px; PADDING-LEFT: 2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5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 당, 송도 부러워 했던 세계 최고의 고려 잠견지는 어디로 갔을까 ?&lt;/SPAN&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writer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20px; PADDING-TOP: 25px&quot; align=righ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A class=writer href=&quot;http://cafe.naver.com/xxjavascript&lt;x/&gt;:;&quot; target=_blank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down&#61;?MM_openBrWindow(?. newnews formmail.php?email=&quot;c29uZ2p1bmhAZW1wYWwuY29t&amp;name=한문수&quot; 역사전문위원?,??,?status=&quot;yes,width=500,height=410')&quot;&quot;&gt;
&lt;IMG id=userImg3984456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pluskorea.net/img/skin1/icon_mail.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3984456)&quot;,200)' name=cafeuserimg&gt;&lt;/A&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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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25px&quot; noWra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지(高麗紙)의 이름 잠견지(蠶繭紙). 송나라 서긍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의 창고마다 서책이 가득하여 도저히 헤아릴 길이 없으며, 기서와 이서 또한 많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고사서들. 황제국의 찬란한 문화와 함께 수 많은 고사서를 장정했을 세계 최고의 종이 잠견지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도경을 비롯, 고반여사(考槃餘事), 문방사고(文房肆攷) 등 고려지의 우수성을 예찬하는 고사서의 기록에서 선조들의 가녀린 숨결만을 확인해 볼 뿐 사라진 종이의 한 부분도 찾을 길이 없다. &lt;/SPAN&gt;&lt;BR&gt;&lt;BR&gt;&lt;FONT color=black&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의 종이 부채 학같이 나는 듯 / 高麗紙扇鶴翎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당의 솔 그을음에 사향 향기라 / 上黨松煙麝澤香’ &lt;/SPAN&gt;&lt;/STRONG&gt;&lt;/FONT&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의 문신이며 재상이었던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고려지를 찬미한 시 구절이 그가 지은 동국이상국전집(제15권)에 남아 고려의 찬란한 문화를 다시 엿보게 한다. &lt;/SPAN&gt;&lt;BR&gt;&lt;BR&gt;&lt;FONT color=blue&gt;&lt;STRONG&gt;&lt;FONT color=black&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잠견지(蠶繭紙).&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세상 어느 민족도 감히 그 제조 기술을 흉내낼 수 없었던 고려의 종이였으며, 또한 최고의 품질로&amp;nbsp;명성을 떨치며&amp;nbsp;송, 당이 부러워하여 다투어 썼음을 이규보는 시를 빌어 노래했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지(高麗紙)라 불리운 잠견지는 &lt;/SPAN&gt;&lt;FONT color=re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금견(錦繭: &lt;/SPAN&gt;&lt;FONT color=#000000&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누에고치로 만든 비단이다&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가지고 만드는데, 종이의 색깔이 하얗기가 명주[綾]와 같고, 질기기가 비단[帛]과 같아서, 여기에다 글씨를 쓰면 먹이 진하게 배어 아주 좋다. 이것은 중국에는 없는 것으로, 역시 기이한 물품이다‘ &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기록이 고반여사(考槃餘事)에 보인다. &lt;/SPAN&gt;&lt;BR&gt;&lt;FONT size=3&gt;&lt;/FON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치윤(韓致奫 1765-1814)은 해동역사(海東繹史) 문방류(文房類)에서 상등ㆍ중등ㆍ하등의 당나라 진적은 고려지로 맨 앞장을 장정한다. 모사한 육조(六朝)의 진적과 명나라의 명화(名&#30059;)의 두루마리 또한 고려지로 맨 앞장을 장정한다고 썼으며,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호 이익(李瀷 1681-1763)도 그가 쓴 성호사설 제4권 견지(繭紙)편에 송 나라 조희곡(趙希鵠)이 지은 동천청록(洞天淸錄)에 &lt;/SPAN&gt;&lt;FONT color=re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지는 면견(綿繭)으로 만들었는데 빛은 비단처럼 희고 질기기는 명주와 같아서 먹을 잘 받으니 사랑할 만하여 이는 중국에 없는 것이니 역시 기품이다. 면견 또는 잠견(蠶繭)으로 난정첩을 썼다는 것도 이 고려지를 가리킨 듯하다&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는 기록을 인용해 밝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어 이익은 “지금 견지란 것은 일본에서 들어오는데, 내가 사서 글씨를 시험해 보니 참으로 좋은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능히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추측컨대, 조희곡이 봤다는 것도 일본에서 온 것인 듯하다”고 뜻밖의 증언을 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을 겪은 지 1세기, 병자호란을 겪은 지 반세기가 경과된 기간으로 “능히 만들 수 없는 것”은 이미 제지기술의 맥이 끊겼음을 밝혔으며,&lt;/SPAN&gt;&lt;FONT color=blu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일본에서 온 것인 듯하다”고 하여 전란 중에 일인들이 잠견지를 훔쳐 갔다는 뜻을 담고 있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화사(書&#30059;史)에는 “사릉(思陵)의 서화 가운데 상등의 진적(眞跡)과 법서(法書), 양한(兩漢)ㆍ삼국(三國)ㆍ이왕(二王)ㆍ육조(六朝)ㆍ수(隋)ㆍ당(唐)의 임금과 신하들의 묵적(墨跡)은 고려지로 맨 앞장을 장정한다”고 하여 고려지의 우수성을 재 확인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비록 세상이 달라져서 모든 것 변하겠지만 / 雖世殊事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음을 일으키는 까닭은 같을 것이다 / 所以興懷其致一也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 / 後之覽者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한 이 글에 감회가 깊을 것이다 / 亦將有感於斯文 &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난정집서(蘭亭集序)의 말미 구절이다. 이 글은 서성(書聖)의 칭호를 받은 왕희지(王羲之 321-379)가 지은 것이다. 353년 난정(蘭亭)이라는 정자가 완성되자 초청한 명사들 앞에서 쓴 글이다. 동진(東晋)사람인 그는 취중(醉中)에 누에고치로 만든 최상의 잠견지(蠶絹紙)에 쥐의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鼠鬚筆)을 들고, 해서체로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썼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왕희지(&amp;nbsp;王羲之&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07~365.&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성(書聖)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최고의 서예가)&amp;nbsp;는 “내 글이 과거 어떤 문장가의 글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흐뭇해 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 자부심 또한 잠견지가 있음으로 해서 그 필체를 더욱 돋보이게 했기 때문이 아닌가. &lt;/SPAN&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추사 김정희(1786~1856)&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는 ‘당 태종은 왕희지가 잠견지에 서수필(鼠鬚筆)로 쓴 난정진적(蘭亭眞跡)을 얻어내어 그것을 모각(摸刻)하여 황자(皇子)와 근신(近臣)에게 내려 주었는데, 겨우 수본에 그치고 그 석(石)은 부서졌으며, 진본은 순장(殉葬)되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그가 쓴 완당전집(제4권)에서 밝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에 앞서 285년 &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왕인&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박사가 일본에 건너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것을 보면, 우리의 종이 역사는 삼국시대에 크게 발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유기, 백제의 서기(書記), 신라의 국사(國史) 기록들은 우리가 발명한 우리의 종이인 잠견지에 쓰여 졌기 때문일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10년 고구려의 &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담징&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제지술과 조묵법(造墨法)을 일본에 전한 기록과 751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석가탑 탑신에서 발견되므로써 당시의 목판과 제지술이 얼마나 훌륭했었는가를 확인해 주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종이(紙) 뿐만 아니라 벼루(硯), 붓(筆), 먹(墨) 등 문방류(文房類)는 신라 때부터최고의 품질로 이름이 나 송, 당이 부러워했고 다투어 썼다는 기록도 있다.&amp;nbsp;&lt;/SPAN&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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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IMG id=userImg7286941 style=&quot;WIDTH: 559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910/2009100800575635.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286941)&quot;,200)' name=cafeuserimg&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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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무구정광대다라니경 &amp;nbsp; &amp;nbsp; &amp;copy;플러스코리아 &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FONT size=3&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751년 국보 126호 6.7cm X 622.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출처:http://www.tourguide.co.kr/local/local_detail.htm?pCode=CULTROPA0006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윗 글에서 보듯 양한(兩漢)시대에 이미 고려지로 장정했다는 기록으로 보면, 잠견지의 발명 기초를 다진 연대는 그 훨씬 이전 단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야한다. &lt;/SPAN&gt;&lt;FONT color=orang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세 단군 가륵(BC 2182) 때 '가림토' 문자를 만들고 배달유기(培達留記)를 편수하였다. 그 기록이 갑골, 견골에 새겨지고 목간으로 옮겨졌으며, 후일 잠견지에 옮겨 썼다는 뜻이다&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천자와 제후는 공상(公桑. 桑田)과 잠실(蠶室)을 가지고 있어서, 궁실의 부인(婦人)들은 반드시 공상(公桑)에 뽕나무를 심어 잠실(蠶室)에서 누에를 쳐서 옷감을 짜는 일을 의무적으로 하였다. 시경(詩經) 국풍에도 ‘단비 내리고 난 뒤에 말구종에게 명해서 새벽별 보고 일찍 멍에 메워 상전(桑田)에서 머무니(靈雨旣零 命彼&#20492;人 星言夙駕 說于桑田)’라 하여 비단과 종이의 역사가 동이족에 의해 발명되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09년 태종은 주(周) 성왕(成王) 때의 공상(公桑) 제도를 본 떠 궁원에 뽕나무를 심도록 했으나, 제지술은 보급되지 않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계 4대 문명권에서는 종이 이전에 언어나 그림의 기록 전달 매체로서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했다. 원시시대에는 흙. 돌. 동물의 뼈에서부터 점토판, 동물의 가죽, 나무판 등이었고 황하문명권에서는 죽간(竹簡)과 목간(木簡)이 이용되었다. &lt;/SPAN&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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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IMG id=userImg959711 style=&quot;WIDTH: 578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910/2009100805246587.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959711)&quot;,200)' name=cafeuserimg&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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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ffffff; LINE-HEIGHT: 12pt; FONT-FAMILY: verdana,굴림; LETTER-SPACING: -1px&quot; bgColor=#99999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점토판, 갑골, 죽간, 견골 &amp;nbsp; &amp;nbsp; &amp;copy;플러스코리아 &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개발되었던 양피지(parchment), 이집트 문명권의 파피루스(papyrus), 그리고 마야, 아즈텍 문명권 등 유럽 각 지역에서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개발하였다.&amp;nbsp;&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특히 양피지나 파피루스 같은 것은 전 세계에 전파되기 전까지 약 3천 년 이상 종이의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 종이 이전 기록에서 우리의 것을 찾아보자. &lt;/SPAN&gt;&lt;BR&gt;&lt;/STRONG&gt;&lt;BR&gt;&lt;FONT color=blu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갑골문을 썼던 은나라는 동이 겨레이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고『고사변(古史辯)』에서도 &lt;/SPAN&gt;&lt;FONT color=red&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동이족은 은나라 사람들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quot;&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고 했다. &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은 &lt;/SPAN&gt;&lt;FONT color=orang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웅시대 태호복희 직후 여와 황제 때&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이룩한 것이며, 1천 년 후 이집트 문명권이 형성되었다. 이들 문명권에서 쓰여진 헬라어의 상형문자는 우리의 문자와 유사하고, 희브리라는 말은 ‘강을 건너 온 자’라는 어원으로 보아 동이 겨레의 진출에 따른 결과이며 천손민족의 얼이 깊숙이 배어있음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흔히 종이 역사를 다룰 때마다 105년 후한 때 처음으로 채륜에 의해 제지술이 발명되었다고 하나, 서화사(書&#30059;史)에서 보듯 “양한(兩漢)ㆍ삼국(三國)ㆍ이왕(二王)ㆍ육조(六朝)ㆍ수(隋)ㆍ당(唐)의 임금과 신하들의 묵적(墨跡)은 고려지로 맨 앞장을 장정한다”고 하였으니, 제지기술 또한 왜곡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는 동이족을 의식, 의도적으로 감추었음이 드러난다. [참조: &lt;/SPAN&gt;&lt;STRONG&gt;&lt;FONT color=#ff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종이' 어느 민족이 발명했나?&lt;/SPAN&gt;&lt;/FON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 &lt;/SPAN&gt;&lt;A href=&quot;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11207&amp;section=section1&amp;section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666666&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U&gt;http://pluskorea.net/sub_read.html?uid=11207&amp;section=section1&amp;section2&lt;/U&gt;&lt;/SPAN&gt;&lt;/FONT&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구려의 섬세하고 다양한 제지기술은 원료·용도·생산지에 따라 크기·지질·색깔·이름 등을 달리해 다양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며, 이규보가 시구절로 그 사실을 알린 것처럼 숱한 전쟁사에서도 고려 때까지 그 맥을 면면히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구려는 244년과 245년 두 차례에 걸쳐 위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27596;丘儉)의 침입을 받아 수도인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당하면서 대부분의 서책들이 불에 타버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00년 되던 해 영양왕(11년)은 태학박사(太大博士) 이문진(李文眞)에게 명하여 옛 역사책을 요약하여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음이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편에 보인다. 여기서 &lt;/SPAN&gt;&lt;FONT color=orang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옛 역사책은 단제께서 신지 고글에게 명하여 편찬한 배달유기(培達留記)를 말하고, 고구려 유기(留記) 1백 권이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야발(大野勃)은 단기고사(檀奇古史) 서문에서 고구려 멸망 당시 소정방과 설인귀가 국서고(國書庫)를 부수고, '&lt;/SPAN&gt;&lt;FONT color=red&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기고사와 고구려사, 백제사'&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를 전부 불태워 버려 13년 동안 자료를 수집, 다시 편집했다고 밝히고 있어 유기 또한 고구려 멸망과 함께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국서(國書)의 중요성으로 미루어 이 때의 유기는 잠견지로 장정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51년 당나라때 고구려 출신 '고선지' 장군이 당나라와 사라센간의 '달라스 전투에서 패해 포로가 된 사병들에 의해 국가 기밀인 종이 제작기술이 적국에 전해지고, 전 세계에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의 종이 제작기술은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거쳐 1150년 유럽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스페인에 전달되었다. 이어 프랑스(1189년), 독일, 이태리, 벨기에, 영국(1490년), 러시아(1566년), 노르웨이(1650년), 미국(1690년), 그리고 캐나다(1803년) 등에 전달되어 천손민족의 종이 기술이 전 세계 인쇄문화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긍의 찬사로 확인되었던 고려의 수 많은 서책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말선초 당시의 실세였던 정도전(鄭道傳)은 앞장서서 산간 곳곳까지 뒤져 수거하여 불태웠으며, 태종 12년인 1412년에는 역대 사서로 알려진 신지비사(神誌秘詞) 즉 신비집(神秘集)이 괴탄, 불경하다 하여 불태워 졌다. 또한 이색의 문집 일부도 이 범주에 넣어 수거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기록은 북부여기(北扶餘記)를 저술한 복애 범세동(伏崖 范世東)의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에서 확인된다. 이 책 또한 조선 5백 년 동안 금서(禁書)로 묶였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선 건국과 함께 국시가 된 유교의 유입은 통치 강화의 수단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전반에 걸쳐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모두 사문난적(斯文亂賊)이란 미명 아래 난도질당했다. 또한 고려를 타파하고, 조선 개국에 앞장 선 유학자 사대부들의 권력 유지책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표적인 예로 성종조에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삼경(三京)·삼소(三蘇)”라 하여 신지비사(神誌秘詞)의 내용을 거론하며 “지금 그런 글을 얻는다면 오히려 불살라야 마땅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lt;/SPAN&gt;&lt;FONT color=orang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 글”이란 바로 '고대사서를 지칭한 것' &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이 분서 기록을 남겨 암시한 내용과 부합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선조가 개국 초부터 고대사서를 수거한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행방은 어떻게 되었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지금까지 수거된 고대사서는 단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제로 부터 이어 온 천손민족의 영혼과 생명이 깃든 고사서와 함께 세계 최고의&amp;nbsp; 제지기술로 만들어진 '잠견지'의 맥은 대륙 동이의 터를 감추기 위해 이 시점에서 처절하게 끊긴 것으로 파악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나라의 역사가 폐기되는 것은 반드시 외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lt;고대사서는 불타고 있는가?&gt; 추적 과정에서 보았다. 이 보다는 내적으로 썩고 병든 정권과 이를 탐하는 권력 유지자들의 부화뇌동과 그들의 역사의식 결여에서 무너짐을 보았다. &lt;/SPAN&gt;&lt;BR&gt;&lt;BR&gt;&lt;FONT color=blu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사'는 60여 년의 세월을 건너 단종 2년인 1454년 10월 13일 인간(印刊)된다. &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 시대를 오도하기 위해 6대 왕조 60여 년 반복적 개찬, 개수 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끊임없는 갈등과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래 글을 눈여겨 보자.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검상(檢詳) 이극감(李克堪)이 당상(堂上)의 의논을 아뢰기를, &lt;/SPAN&gt;&lt;BR&gt;&lt;FONT color=#333399&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전사(高麗全史)》는 사람들의 시비(是非)·득실(得失)이 역력(歷歷)히 다 갖추 기재(記載)되었으므로, 황보인(皇甫仁)과 김종서(金宗瑞)가 《고려전사(高麗全史)》가 출간(出刊)되면 사람들이 모두 시비(是非)를 알까 두려워하여 다만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만을 인간(印刊)하여 반사(頒賜)하고, 《고려전사》는 조금 인간하여 다만 내부(內府)에만 간직하였습니다.” &lt;/SPAN&gt;&lt;BR&gt;&lt;/FON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실록이 전하는 것처럼 &lt;/SPAN&gt;&lt;FONT color=orang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람들이 모두 시비를 알까 두려워’ &lt;/SPAN&gt;&lt;/STRONG&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라고 했다. 내부 비치용으로 일부만 간행하여 간직했다고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륙을 다스린 황제국 고려, 송나라 소동파가 고려에 먹힐까 두려워 고려 금수론으로 철저히 배격한 이유들을 철저히 감추고 깔아 뭉게 버린 &lt;/SPAN&gt;&lt;FONT color=red&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의 역대 사서와 잠견지 등 문화적 사실(史實)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음이 자명하다. &lt;/SPAN&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고려 멸망 6백여 년, 잠견지의 맥을 잇고자 불철주야 복원작업에 진력하는 종이 연구가들이 있으니, 희미하나마 이제 그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있을까 기대한다. &lt;/SPAN&gt;&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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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IMG id=userImg567183 style=&quot;WIDTH: 50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910/2009100806299636.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567183)&quot;,200)' name=cafeuserimg&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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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TRONG&gt;&amp;nbsp;&lt;/P&gt;&lt;/DIV&gt;&lt;/SPAN&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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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환단고기는 한 권의 책이 아닙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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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하여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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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4:14:13Z</updated>
	    <published>2009-11-10T14:14: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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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가 흔히 하나로 부르고 있는 [환단고기]는 [삼성기], [신시역대기], [단군세기],[북부여기], [가섭원부여기], [환국본기], [신시본기], [마한세가], [번한세가], [소도경전본훈], [고구려국 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 이렇게 총 13개의 각기 다른 저작들을 합쳐놓은 저작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게다가 각기 편찬자가 다르다는 걸 잘 모르시고 계시더군요.&amp;nbsp; 덧붙여 말하면 &lt;안함로, 원동중, 이암, 범장, 이맥&gt; 등이 그들이며, 저술 시기는 신라에서 조선 중기에 걸쳐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저 역시 [환단고기의 13 저작들]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관여한 인물들의 역사적 성향에 무척 조심을 해야 한다고 보지요.&amp;nbsp; &lt;이기, 계연수, 최시흥, 이덕수, 이용담, 이유립, 오형기&gt; 등, 이들은 모두 [단학회]라는 종교단체 속한 인물들입니다. 잘 알다시피, 또 다른 단군신앙단체인 [대종교]와 [단학회]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또한 부가적으로 [단학회] 창시자인 &lt;이기&gt;가 바로 [단군세기] 찬자인 &lt;이암&gt;-[태백일사] 찬자인 &lt;이맥&gt;의 출자(出者)인 고성 이씨 집안의 후손이라는 점입니다.&amp;nbsp; 저는 [○○○]을 비롯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lt;계연수&gt;가 &lt;이기&gt;로부터 물려받았다는 [환단고기의 13 저작들]이 현재의 [환단고기의 13 저작들]과 동일한 지조차 의심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결정적으로 저는 현재의 [환단고기의 13 저작들]이 &lt;이유립&gt;의 윤색이 많이 첨가되었다고 봅니다.&amp;nbsp; &lt;계연수&gt;는 1911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amp;nbsp; 그러나 아쉽게도 1911년판 이기-계연수의 [환단고기의 13 저작들]은 전해오지 않습니다.&amp;nbsp; 그렇기에 더더욱 현재의 [환단고기의 13 저작들]은 이유립-오형기의 윤색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amp;nbsp; 다음은 저의 생각에 대한 근거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계연수]&amp;nbsp; 한단고기는 모두 해학 &lt;이기&gt; 선생의 감수를 거치고 또 내가 정성을 다하여 옮겨 적었다.&amp;nbsp; 또 &lt;홍범도, 오동진&gt; 두 벗이 자금을 마련하여 인쇄에 부쳤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무명씨]&amp;nbsp; 1979년에 펴낸 한단고기에는 정오표가 달린 책이 있는데 정오표는 책에서 틀린 글자나 잘못된 내용을 고쳐서 추가한 것으로 이 정오표의 글씨는 &lt;이유립&gt; 선생의 글씨가 분명하다.&amp;nbsp; 이는 &lt;이유립&gt; 선생이 한단고기의 내용을 어느 정도(분명히 어느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수정했을 가능성을 예측케 합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따라서 현재의 [환단고기의 13 저작들] 중에서 특히 &lt;이암&gt;의 [단군세기] 부분이 유독 심하게 윤색되어 있음은 인정합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여기에서 여러분들께서도 분명히 착각하지 말 것은 [그것은 윤색이지 위서라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amp;nbsp; 무슨 말인가 하면 그걸 제외한 [환단고기의 13 저작들]을 구성하는 나머지 12권의 저서들은 상대적으로 원본의 형태를 아주 잘 간직하고 있다고 본다는 이야기이지요.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그래서 한 나무만 보고 판단한 결론을 숲 전체에다 덮어씌우는 그분들의 &lt;위서론&gt;은 지극히 부당합니다.&amp;nbsp; 그저 &lt;윤색론&gt; 정도라면 족할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그렇지 않고 만약 13권의 저작 전체가 &lt;위서&gt;라고 주장한다면, 그 근거로써 13권 하나하나에 대해서 일일이 &lt;위서임&gt;을 입증해야만 모든 사람들도 당연하게 &lt;위서론&gt;을 인정할 것입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2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20%; FONT-FAMILY: '고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14.4pt;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이제껏 아무도 그런 입증을 하지 못한 걸로 압니다. 그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amp;nbsp; 저자들이 확실하게 다른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세조-예종-성종실록에 언급되는 압수서적에 버젓이 이름이 언급되는 저작들을 어떻게 &lt;위서&gt;라고 하겠습니까? &lt;/SPAN&gt;&lt;/P&gt;&lt;/DIV&gt;
&lt;P&gt;
&lt;TABLE class=tag_n_id cellSpacing=0&gt;
&lt;TBODY&gt;
&lt;TR&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amp;nbsp;&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한국어는 하늘의 언어- 유네스코, 인류문명의 시작 한국이라 발표함</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rubiconrv/7432636"/>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36</id>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13:05Z</updated>
	    <published>2009-11-10T14:13: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유네스코에서 인류문명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할수 있는 증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탄화미 발견 함으로 시작되었답니다 &lt;BR&gt;&lt;BR&gt;dna검사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것이 판명 됨으로서 농사 기술이 최 첨 단 과학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되고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히 치열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다는 의견입니다. &lt;BR&gt;&lt;BR&gt;1만 7천년전 것으로 추정되며 &lt;BR&gt;사람의 dna 검사 결과 한국인이고 평균 수명 1000세임을 밝힘으로서 &lt;BR&gt;그 시대에 놀라운 유전공학기술을 인정했다합니다 &lt;BR&gt;&lt;BR&gt;고조선 이전의 왕국을 인정하게 되었구요 &lt;BR&gt;노예 제도 가 없었던 유일한 환국 나라 역사를 유네스코에서 인정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lt;BR&gt;&lt;BR&gt;사람이 하늘이라 믿는 삼신신앙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수가 없는 우리의 위대한 사상입니다. &lt;BR&gt;&lt;BR&gt;'사람이 하늘, 하늘이 사람' 의 삼신사상 &lt;BR&gt;&lt;BR&gt;&lt;BR&gt;&lt;BR&gt;이제 환단고기가 역사서의 사실로서 인정될 날이 머지 않았음을 기대합니다. &lt;BR&gt;&lt;BR&gt;이제 환빠라 는 조롱을 받지는 않겠지요 &lt;BR&gt;&lt;BR&gt;환빠라 는 언어를 사용하는 분 자제하시고 고정관념을 버리시고 ... &lt;BR&gt;&lt;BR&gt;이제부터 환빠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분에게 매국노보다 더 나쁜이 라고 하겠습니다. &lt;BR&gt;&lt;BR&gt;강단의 학자들은 자기 밥줄 끊길가봐 자꾸 한단고기를 위서라 억지소리를 언제까지 할지 모르지만 증거들이 속속 계속 나올 겁니다. &lt;BR&gt;&lt;BR&gt;불쌍한 후손들이 다른 나라 사상에 미쳐 날뛸것을 미리 아신 선조들께서 미리 방책을 안해 두실리 없습니다. 이 지구 어느곳에 반증 못할 증거들이 우리 눈에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lt;BR&gt;&lt;BR&gt;&lt;BR&gt;&lt;BR&gt;아래 책은 단군의 실존 이야기와 일본 모든 문화의 뿌리는 한국의 것이라는 것을 말하며 신선도와 단전호흡 이야기도 수록 되었답니다. &lt;BR&gt;&lt;BR&gt;&lt;BR&gt;&lt;BR&gt;영어가 되시는 분은 구입하셔서 번역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lt;BR&gt;&lt;BR&gt;&lt;BR&gt;&lt;BR&gt;제목: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lt;BR&gt;&lt;BR&gt;저자(By): Dr. Jon Carter Covell &amp; Alan Covell &lt;BR&gt;&lt;BR&gt;출판사: Hollyn International Corp. &lt;BR&gt;&lt;BR&gt;&lt;BR&gt;&lt;BR&gt;일본천황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lt;BR&gt;&lt;BR&gt;&lt;BR&gt;이 책을 외국인이 보여주었습니다 &lt;BR&gt;&lt;BR&gt;위의 책 검색 결과 &lt;BR&gt;&lt;BR&gt;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lt;BR&gt;by Jon Carter Covell &amp; Alan Covell | Hollym International Corporation | 2006년 03월 23일 &lt;BR&gt;책소개 일본문화에 미친 한국의 영향 일본황실의 감추어진 비밀 몇 가지를 다루고 있다. 고고학 어법분석 기술과 일본고서를 이용하여 일본천황의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lt;BR&gt;&lt;BR&gt;평점 10.00 2 참여| 네티즌리뷰 1건| 미디어리뷰 0건 &lt;BR&gt;도서관 소장정보 : 국립중앙도서관 | 국회도서관 &lt;BR&gt;가격 15,000원 → 최저가 14,250원&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lagoonuro&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lt;/FONT&gt;&lt;/U&gt;&lt;/A&gt;&amp;nbsp;&lt;/P&gt;&lt;/DIV&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영화 윈드토커로 보는 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선2</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rubiconrv/7432635"/>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35</id>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11:53Z</updated>
	    <published>2009-11-10T14:11: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1부에 이어서 2부도 계속...&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화속 주인공들이 다 그렇지만 먼치킨 주인공에 의해 톰슨 기관단총도 사기총이 되어버린... 정조준없이 개난사 때렸는데 결과는...(밑에장)
&lt;IMG id=userImg7920982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59/wscotty_1253262279785OgPzP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51993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920982)&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렇게 때로 오는 일본군들이 2~3명 남기고 다 죽음 당한다. &#48577;...
&lt;IMG id=userImg1018059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0/wscotty_1253262280647JqmtA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52702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018059)&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알아둬야 할 점은... 저렇게 총에 맞아 부상을 입으면 몰핀과 셜퍼제를 응급처치로 하는데 셜퍼제는 지혈제(가루약) 몰핀은 신경&lt;/P&gt;
&lt;P&gt;안정제 주사다... 많이 쓰면 죽는다.&amp;nbsp;&amp;nbsp;&lt;/P&gt;
&lt;P&gt;
&lt;IMG id=userImg6849814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9/wscotty_1253262281622KByXW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63963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849814)&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군 전차... 양철통도 아니고...&amp;nbsp;수류탄으로도 잡을 수 있는 전차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lt;/P&gt;
&lt;P&gt;
&lt;IMG id=userImg4344188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96/wscotty_1253262282329LeCek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83108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344188)&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특히 미군은 태평양전선에서 일본군들의 토굴을 소멸시키려고 화염방사기를 많이 동원했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7311616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72/wscotty_1253262283129kPYvf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97706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311616)&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군도 다 관측병들이 계산해서 지시를 내린 뒤 포를 발사한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1085407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92/wscotty_1253262283879dOsIj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557140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085407)&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뒤에 일본도를 든 지휘관이 보인다. &lt;/P&gt;
&lt;P&gt;
&lt;IMG id=userImg4723837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68/wscotty_1253262284586LJyT5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558641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723837)&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보병들은 죽으라고 있는 것이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7497321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46/wscotty_1253262285247icBjD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560143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497321)&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관단총으로 난사하니 맥도 못춘다. 쪽바리들...&lt;/P&gt;
&lt;P&gt;
&lt;IMG id=userImg6143734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25/wscotty_1253262275399tBtbw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397188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143734)&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주카(Vazuka)포다... 개인화기로서 전차를 상대할때 쓰인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4906495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03/wscotty_1253262276846mo4G6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10243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906495)&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펑!
&lt;IMG id=userImg5434921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21/wscotty_1253262277546zz42f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14914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5434921)&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흐르고 있지만.. 가족의 사랑은 변함없으니...&lt;/P&gt;
&lt;P&gt;
&lt;IMG id=userImg2376350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36/wscotty_12532622781954KKwR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42067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2376350)&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쟁 초반부에 얘는 계속 겁에 질려 총도 못 써보고 주인공 뒤에만 따라다닌다. 참고로 통신병
&lt;IMG id=userImg7807716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01/wscotty_1253262278956IWv8Q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444944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807716)&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군의 트레이드 마크 &quot;자살총검돌격&quot; 덴노 헤이카 반자이~&lt;/P&gt;
&lt;P&gt;
&lt;IMG id=userImg6464571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58/wscotty_1253262269735HP4a7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277986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464571)&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MK2 수류탄에 맞아 불이 붙어 발버둥치는&amp;nbsp;일본군&lt;/P&gt;
&lt;P&gt;
&lt;IMG id=userImg6624654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77/wscotty_1253262270445xboxH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286828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624654)&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포격을 뚫고 계속 작전을 감행하는 해병대들&lt;/P&gt;
&lt;P&gt;
&lt;IMG id=userImg8627202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09/wscotty_1253262271258IyS0D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319819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8627202)&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군들의 개인화기... 좀 짧아보인다.
&lt;IMG id=userImg7112511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40/wscotty_1253262272005qpek4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335710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112511)&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보병지원화기 나온다. 일본군들도 후진 총으로 잘도 싸웠다. 표정이 좀 압박&lt;/P&gt;
&lt;P&gt;
&lt;IMG id=userImg4351017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55/wscotty_1253262272762eVfpM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342467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351017)&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철조망에 걸린 전우를 구하다가 전부다 몰살;; 내라도 저랬지만&lt;/P&gt;
&lt;P&gt;
&lt;IMG id=userImg9329660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60/wscotty_1253262273540Jto29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385135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9329660)&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보병은 그래서 항상 엄폐를 잘해야 된다는 사실 명심하기를... 바로 골로 간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8736913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91/wscotty_1253262274503SF4d1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386720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8736913)&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밀리터리 혹은 전쟁물 좋아하시는 분들은 &lt;STRONG&gt;윈드토커&lt;/STRONG&gt; 보시길 바랍니다.&lt;/P&gt;
&lt;P&gt;요즘엔 뭐... DVD로도 팔고 구하기가 쉬우니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p.s 정기휴가 너무 시간 빨리 지나간다 &#49753;...ㅠ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END-&lt;/P&gt;
&lt;P&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amp;nbsp;&lt;/P&gt;&lt;/DIV&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영화 윈드토커로 보는 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선1</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rubiconrv/7432634"/>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34</id>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10:23Z</updated>
	    <published>2009-11-10T14:10: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tbody m-tcol-c&quot; id=tbody&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윈드토커가 2002년도에 나왔던가;? 여하튼 기억이 가물가물... 그중에서 멋있는 장면 캡쳐를 해서 2차 세계대전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태평양전선이 어땠는가를 설명해본다. 미2해병대 사단이 태평양전선의 모든 작전에 동원되는데, 그 중 사이판 섬 전투는 &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죽을때까지 저항한 일본군들과 예비 포들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군들이 미군 해병전술에 있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자 우리의 용감무쌍한 미해병대들 쪽발이 쳐부수러 돌격!!~&lt;/P&gt;
&lt;P&gt;
&lt;IMG id=userImg923401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93/wscotty_1253260096856HsvBF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098473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923401)&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에 질세라 일본군들도 일장기를 들고 참호 안에서 방어를 한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1951395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9/wscotty_1253260098438NgwTi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106106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951395)&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해병대가 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오는 바람에... 미 전투기들에 의해 일본 수비대들이 공격당한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2165617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76/wscotty_1253260099200mFM96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109234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2165617)&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후방엔 일본군들의 포들이 무지막지하게 화력을 퍼붓는다. 셔먼전차도 보이는군화~&lt;/P&gt;
&lt;P&gt;
&lt;IMG id=userImg7177996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93/wscotty_1253260099847gvLYS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124040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177996)&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계속되는 포격에 미 보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lt;/P&gt;
&lt;P&gt;
&lt;IMG id=userImg3569055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87/wscotty_1253260100788hFRlg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162996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3569055)&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고지를 오르지만&lt;/P&gt;
&lt;P&gt;
&lt;IMG id=userImg8126379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68/wscotty_1253260101662D9jww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198490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8126379)&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 수비대들의 뭐 다들 잘 알겠지만...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총검 돌격을 한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6851698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41/wscotty_1253260102458Wzwmn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202660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851698)&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의 용감무쌍한 한 해병! 뭐 그도 용감하지만서두 그가 들고있는 브라우닝 자동소총(BAR)이 그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사실 미군에는 톰슨 기관단총도 있지만 그에 필적하는 경기관총도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바란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3275906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35/wscotty_1253260103758EsAfD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240532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3275906)&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군만 총검술을 한게 아니다. 미군 얘내들도 게런드 같은 소총에 착검을 해놓고 숲에서 뛰어나는 일본군을 찔러 죽이기도 했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4890372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93/wscotty_1253260104481XYM1w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244369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890372)&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군은 태평양전선 내내 일본군의 이런 참호나 토굴에 많이 당했다. 인정사정없는 미해병! 톰슨 기관단총으로 갈겨버린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6953679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54/wscotty_1253260105219gXL2U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272522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953679)&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평지에 아무런 엄호도 없이 앞만 보고 돌진하는 그들이 용감하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124289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90/wscotty_1253260092195QH07M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052469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24289)&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태평양전선에선 보병 개인화기들이 엠원게런드(M-1 Garand), 엠원카빈(M-1 Carbine) 소총도 많이 쓰였지만, 주로 우거진 정글숲과 하도 쪽발이들이 자살총검테러 및 폭탄테러를 하는 바람에 톰슨 기관단총(Thompson submachine gun) 및 브라우닝 자동소총(Browning Autumatic Rifle) 그리고 톰슨에 드럼탄창을 끼운 50발짜리를 사용하기도 했다.&amp;nbsp;사진 중앙에는 미국의 대표 기관총 30구경 기관총이 보인다.&lt;/P&gt;
&lt;P&gt;
&lt;IMG id=userImg6874077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100/wscotty_1253260095445W9xl9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060143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874077)&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본군들은 노리쇠 장전 방식인 92식 제식소총을 사용했는데 그들의 신체보다 너무 길어서;; 쓰기엔 압박감이 심했다. 99식 경기관총도 있으나 신뢰도가 좋지 못했다. &lt;/P&gt;
&lt;P&gt;
&lt;IMG id=userImg6853062 style=&quot;WIDTH: 740px; HEIGHT: 3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0918_246/wscotty_12532600960449vwAI_jpg/windtalkers.2002.xvid.ac3.cd1-waf.avi_002093093_wscotty.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853062)&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lt;/DIV&gt;
&lt;P&gt;
&lt;TABLE class=tag_n_id cellSpacing=0&gt;
&lt;TBODY&gt;
&lt;TR&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lagoonuro&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lt;/FONT&gt;&lt;/U&gt;&lt;/A&gt;&amp;nbsp;&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본으로 간 비류백제인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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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09:18Z</updated>
	    <published>2009-11-10T14:09: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userImg4829410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www.coo2.net/files/shs050227-1.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829410)&quot;,200)' name=cafeuserimg&gt;&amp;nbsp; &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amp;nbsp;&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몽골부족의 샤머니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rubiconrv/743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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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07:46Z</updated>
	    <published>2009-11-10T14:07:4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7481045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14.naver.net/data14/2005/11/26/45/shaman2-mhdv.gif&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481045)&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7481045)?,200)?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gt;&lt;/CENTER&gt;
&lt;CENTER&gt;
&lt;H5&gt;&lt;I&gt;&lt;FONT size=1&gt;&quot;Tenger, humans, fire and water, those are the elements. If we think about it, there is the vast arch of the sky, and the sun and moon, like Tenger's eyes. If we look, the sun is fire, the moon is water. In 50 years' time all of humanity will realize that clean air and pure water are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quot; &lt;/FONT&gt;&lt;/I&gt;&lt;/H5&gt;
&lt;H5&gt;&lt;I&gt;&lt;FONT size=1&gt;&lt;BR&gt;Urgunge Onon&lt;/FONT&gt;&lt;/I&gt;&lt;/H5&gt;&lt;/CENTER&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4598425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14.naver.net/data13/2005/11/26/109/raven-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598425)&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4598425)?,200)?&gt;&lt;/CENTER&gt;
&lt;CENTER&gt;Nishan Shamaness&lt;/CENTER&gt;
&lt;P&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6218540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3.naver.net/data14/2005/11/26/258/UDAGAN1-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218540)&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6218540)?,200)?&gt;&lt;/CENTER&gt;
&lt;CENTER&gt;A Buryat shamaness drumming &lt;/CENTER&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5394126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7.naver.net/data14/2005/11/26/22/shamans-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5394126)&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5394126)?,200)?&gt;&lt;/CENTER&gt;
&lt;CENTER&gt;Shaman ceremony in Huvsgul Aimag &lt;/CENTER&gt;
&lt;CENTER&gt;&amp;nbsp;&lt;/CENTER&gt;
&lt;CENTER&gt;
&lt;IMG id=userImg8772418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16.naver.net/data14/2005/11/26/15/bukhenoyon-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8772418)&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8772418)?,200)?&gt;&lt;/CENTER&gt;
&lt;CENTER&gt;The Buryat totemic ancestor, Bukhe Noyon Baabai, standing on the shore of Baikal &lt;/CENTER&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8724342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1.naver.net/data14/2005/11/26/64/BYAMBADORJ1-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8724342)&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8724342)?,200)?&gt;&lt;/CENTER&gt;
&lt;CENTER&gt;Byambadorj, head shaman of the Golomt Center, shamanizing at Summer Solstice&lt;/CENTER&gt;
&lt;CENTER&gt;&amp;nbsp;&lt;/CENTER&gt;
&lt;CENTER&gt;
&lt;CENTER&gt;
&lt;IMG id=userImg1656978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8.naver.net/data13/2005/11/26/119/saraa2-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656978)&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1656978)?,200)?&gt;&lt;/CENTER&gt;
&lt;CENTER&gt;&lt;EM&gt;Murin&lt;/EM&gt;, horse headed staffs, are an important implement of the Buryat shaman &lt;/CENTER&gt;&lt;BR&gt;
&lt;P&gt;&amp;nbsp;&lt;/P&gt;&lt;BR&gt;
&lt;CENTER&gt;
&lt;IMG id=userImg2047689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15.naver.net/data14/2005/11/26/14/saraa-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2047689)&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2047689)?,200)?&gt;&lt;/CENTER&gt;
&lt;CENTER&gt;Sarangerel performing the fire ceremony in Dahlonega, Georgia&lt;/CENTER&gt;&lt;/CENTER&gt;
&lt;CENTER&gt;&amp;nbsp;&lt;/CENTER&gt;
&lt;CENTER&gt;&amp;nbsp;&lt;/CENTER&gt;
&lt;P&gt;&lt;BR&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8688707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5.naver.net/data14/2005/11/26/52/DANCE-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8688707)&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8688707)?,200)?&gt;&lt;/CENTER&gt;
&lt;CENTER&gt;The &lt;I&gt;yohor&lt;/I&gt;, traditional shamanist dance of the Buryats &lt;/CENTER&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7155198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6.naver.net/data14/2005/11/26/133/barisaa_1-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7155198)&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7155198)?,200)?&gt;&lt;/CENTER&gt;
&lt;CENTER&gt;A &lt;I&gt;barisaa&lt;/I&gt;, prayer tree, near the shore of Baikal. Note the ribbons tied on by visitors &lt;/CENTER&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CENTER&gt;
&lt;IMG id=userImg6732222 style=&quot;CURSOR: han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logfiles13.naver.net/data13/2005/11/26/252/olkhon-mhdv.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6732222)&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6732222)?,200)?&gt;&lt;/CENTER&gt;
&lt;CENTER&gt;The sacred island of Olkhon in Baikal, some Buryats say shamanism originated here &lt;/CENTER&gt;
&lt;CENTER&gt;&amp;nbsp;&lt;/CENTER&gt;
&lt;CENTER&gt;&lt;A href=&quot;http://www.buryatmongol.com/&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http://www.buryatmongol.com/&lt;/FONT&gt;&lt;/U&gt;&lt;/A&gt;&lt;/CENTER&gt;
&lt;CENTER&gt;&amp;nbsp;&lt;/CENTER&gt;
&lt;CENTER&gt;
&lt;TABLE style=&quot;TABLE-LAYOUT: fixed&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COLGROUP&gt;
&lt;COL width=&quot;100%&quot;&gt;&lt;/COL&gt;
&lt;TBODY&gt;
&lt;TR&gt;
&lt;TD vAlign=top&gt;
&lt;TABLE width=580&gt;&lt;BR&gt;&lt;B&gt;내가 본 바이칼 &lt;/B&gt;- 월간중앙 6월호 기고&lt;BR&gt;&lt;BR&gt;&lt;I&gt;정재승(봉우사상연구소 소장. &lt;A href=&quot;mailto:dongsan3342@hanmail.net&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606420&gt;dongsan3342@hanmail.net&lt;/FONT&gt;&lt;/U&gt;&lt;/A&gt;)&lt;/I&gt;&lt;BR&gt;&lt;BR&gt;&lt;BR&gt;바이칼이 시베리아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수 노영심은 올 여름 6월초에 바이칼 호수 샤먼(Shaman)의 성소인 알혼섬에 가서 야외 콘서트를 열 예정이고 서태지도 바이칼에서 대형 락 콘서트를 기획했다가 현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발해를 꿈꾸며'의 현장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5월초 공연을 갖기로 했다. 이것은 무슨 징후일까? 시대를 호흡하는 대중가수들에게도 한반도의 북방 시베리아 바이칼이 매력적인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lt;BR&gt;&lt;BR&gt;필자는 2001년 6월 처음으로 바이칼 호수를 방문하였고 다음해에는 3월, 6월, 8월, 12월 등 무려 4차례나 신들린 듯 답사에 나섰다. 작년 6월 그간의 답사 결과들을 모아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란 책을 펴냈더니 바로 그 해 여름에만 약 5천여명(여행사집계)의 한국인들이 바이칼 지역을 탐방하는 뜨거운 열풍이 불었다. &lt;BR&gt;&lt;BR&gt;이는 물론 언론사들의 기획이나 홍보, 관련서의 출간 등도 한몫 했겠지만&amp;nbsp;&amp;nbsp;블라디보스토크나&amp;nbsp;&amp;nbsp;하바로프스크처럼 우리와 무역이 빈번한 경제활성지역이 전혀 아닌 시베리아 한복판의 바이칼 호수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작년부터 쏠렸다함은&amp;nbsp;&amp;nbsp;순전히 경제외적인 정신문화적 동기가 그 저변에 깔려있는게 아닌가 싶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참고로&amp;nbsp;&amp;nbsp;2001년 처음 바이칼에 갔을 때 한국인 방문객은 300명도 채 안되었다. 불과 2년만에&amp;nbsp;&amp;nbsp;수 천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올해도 바이칼 방문의 열기가 벌써 감지되고 있다. 바이칼 매니아인 나 역시 두세번의 답사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이제 잠시 지나온&amp;nbsp;&amp;nbsp;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열풍의 진원지를 명상해본다.&lt;BR&gt;&lt;BR&gt;&lt;BR&gt;바이칼 답사를 작정한 것은 오래 전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에 기인한다. 나는 십년이상 계룡산에서 봉우 권태훈(1900-1994)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우리의선도(仙道)를 공부해왔다. 선도란 무엇인가? 이는 화랑도이자 조의선인이며 국선으로 수 천년이상 내려오는 우리 조상들의 얼이요 정신체계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한국정신사에 선도의 맥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 선생님께 늘 머릿골 박히도록 들었던 &lt;BR&gt;말씀이 우리 선도의 뿌리는 단군 할아버지시고 그 정신적 고향은 북방에 있으며 특히 만주 백두산과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가 우리 겨레의 정혼(精魂)이 형성된&amp;nbsp;&amp;nbsp;핵심지역이라는 것이었다. &lt;BR&gt;&lt;BR&gt;봉우선생님은 청년기인 1920년대에 이미 만주와 몽골,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 일대를 발로 뛰어 답사하셨기에 그분의 북방담론은 너무&amp;nbsp;&amp;nbsp;생생했고 개인의 피부적 경험이 녹아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로 늘 넘쳐났었다. &lt;BR&gt;&lt;BR&gt;그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우리민족의 시작을 알려면 저 북방으로 가야한다는 얘기였고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북방진출이 활발해져 북쪽에서 비롯된 우리 고대문화의 진정한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고 신화로 치부되온 고대 정신문화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리라는 예언이자 신념이었다. 아무튼 바이칼은 언제고 가야 할 나의 숙명이었지만 막상 행장을 꾸리려니 모든게 수월하질 않았다. &lt;BR&gt;&lt;BR&gt;우리 문화전반의 풍토가 늘 그렇듯이 일부 구미권의 정보는 넘쳐 흘러도 이곳 북방 시베리아 바이칼은 그 누구도 쉽사리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좌충우돌 다니다보니 벗님들도 생기고 동지들도 모였다. 이렇게 해서 각계각층의 20명이 넘는 바이칼 첫 답사대가 이루어졌다. &lt;BR&gt;&lt;BR&gt;바이칼로 가는 길은 몽골 울란바타르를 거쳐 시베리아의 수도 이르쿠츠크로 들어가는 길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를 경유하거나 중국 심양을 통해 가는 등 여러 길들을 다 다녀 보았지만 몽골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가장 인상이 남는다. &lt;BR&gt;&lt;BR&gt;몽골의 초원이 또한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비행기 스케줄이 울란바토르에서 바로 바이칼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공항에서 가까운 명승지 테렐지로 가서 온종일 몽골의 산야를 느끼며 승마를 즐길 수 있었다. 매번 답사때마다 느끼지만 한국인들처럼 말 타는 일에 그토록 즉각적으로 본능적 흥미를 느끼고 열광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현지 몽골인들도 놀랜다. 미국인이나 유럽인, 일본인들은 절대 &lt;BR&gt;즉흥적으로 말을 타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그런데 필자나 대부분의 친구들은 말 주인의 간단한 설명만 들은 채 곧바로 말을 타기 시작했고 한시간도 안되어 벌써&amp;nbsp;&amp;nbsp;&quot;츄츄!&quot; 소리를 질러대며 초원을 질주하는 쾌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시각에 따라서는&amp;nbsp;&amp;nbsp;좀 경솔한 짓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무모함 이야말로 유목민의 유전인자에서&amp;nbsp;&amp;nbsp;분출되는 아지못할 용기라고 보고싶다.&lt;BR&gt;&lt;BR&gt;&lt;BR&gt;&amp;nbsp;&amp;nbsp;바이칼을 흔히 시베리아의 진주라 부른다 진주처럼 영롱한 생명의 빛을 발하는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칼호는 세계의 생태과학자들에게 이미 지구상의 유일한 살아있는 생물진화박물관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1500여종의 다양하고 고유한 생물들이 살고 있으며 그중 75%가 고유토종임이 이를 증명한다. 바이칼은 생물학, 진화학, 지질학등이 서로 만나 연결고리를 만드는 생태계조건으로 볼 때 '또 하나의 지구'가 된다.&amp;nbsp;&amp;nbsp;&lt;BR&gt;&lt;BR&gt;또한 이곳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amp;nbsp;&amp;nbsp;태동지이자 성스러운 샤먼의 바다였다. 이러한 사실은 바이칼을 다니며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지금도 살아있는 전통 샤먼들이며, 이르쿠츠크와 울란우데의 민속학자들이며, 고고학자, 역사학자, 문학연구자들과 항구의 어부들,&amp;nbsp;&amp;nbsp;여름철 휴가를 바이칼호변에서 즐기는 평범한 시민들, 겨울 산속에서 만난 곰사냥꾼들, 바이칼 가는 길목 '쿠다(어디로?)'마을에서 딸을 태우고 어디론가&amp;nbsp;&amp;nbsp;질주하던 말썰매의 주인 아저씨와 '곰이 겨울잠을 자는 동굴 아랫마을'의 어귀에&amp;nbsp;&amp;nbsp;바구니 가득 산딸기며, 산머루, 손바닥만한 버섯들을 따놓고 신기한 눈동자로 똑같이 생긴 이방인들을 응시하던 부리야트 사람들, 우리를 태우고 운전하다 오색천이 걸린 서낭당이 나오면 차를 잠시 세우고 동전 몇닢, 담배 한가치라도 바쳐야만 직성이 풀리던 어느 러시아 운전기사……. 끝없이 떠오르는 숱하게 많은 사람들 그 모두가&amp;nbsp;&amp;nbsp;샤먼의 바다, 바이칼의 대변자들이다. &lt;BR&gt;&lt;BR&gt;샤먼은 누구인가? 샤먼은 아득히 먼 옛날&amp;nbsp;&amp;nbsp;하늘과 땅이 열리던 그 시절부터 우리의 삶을 같이해온 존재이다. 지금은 우리곁의 음침하고 그늘진 잔영으로 남기워진 무당, 무속인들이 바로 그 후예들이다. 하지만 샤먼의 원래모습은 동북아시아 북방의 한가운데 우뚝선 단군왕검의 모습 바로 샤먼킹(Shaman King)이었다. 단군은 또 누구던가? 우리 겨레의 첫새벽을 열었고 뭍 생명의 터전을 일구었던 홍익인간의 선지자로서 우리 정신의 원형질로 각인되어온 영혼의 스승, 바로 그 아니었던가? 우리 옛 조상들의 정신적 유전자를 쫓다보면 예수님이 성서에 말씀하신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그대로 오늘의 우리들에게 여지없이 적용됨을 절감하곤 한다.&amp;nbsp;&amp;nbsp;&lt;BR&gt;&lt;BR&gt;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이는 단순히 한국인의 지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유전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지워진 영원한 화두가 되는 것이다. 바이칼에 가면 우리 모두는 돌아온 탕자의 심경으로 환원된, 그리하여 각자의 본래면목을 응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 놀랜다. 알혼섬 샤먼의 바위 그 앞에 서보라! 그 앞에 펼쳐진 호수 아니 망망대해의 푸르름 속에 자신을 던져보라.&amp;nbsp;&amp;nbsp;그리하면 그 어떤 무심한 사내도, 여인도 대체 이 '내'가 뭣꼬하는 근원적 의문의 엄숙한 기운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lt;BR&gt;&lt;BR&gt;여기에 바이칼 우주를 지배하는 섭리의 신 겟세르나 부르한(여기말로 하느님, 하나님)께 올리는 하늘제사에 동참하면 더할나위 없이 그는 바이칼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바이칼에 가면 과거의 나를 비우고 거듭 새로 날 수 있다.&amp;nbsp;&amp;nbsp;바이칼 샤머니즘은 원래 상고시대의 추수감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고대의 샤먼은 공동체의&amp;nbsp;&amp;nbsp;우두머리요, 우리의 삶이 비롯된 하늘의 주재자를 대리하는 선지자였으므로 온 무리들의 중요한 삶의 고비마다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 중 가장 큰 행사가 역시 우리의 먹거리를 수확하는 추수기에 베풀어졌다. 이 유풍은 지금도 바이칼 원주민들에게 &quot;타일라간&quot;이란 이름으로 행해진다.&amp;nbsp;&amp;nbsp;바이칼의 샤먼은 우리 곁의 무당처럼 퇴영의 상징물이 아니라 당당히 공동체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행사한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찬란한 햇살과 맑고 밝은 기운이 감도는 어느 여름날 우리는 샤먼바위(혹은 부르한바위)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서 준비해간 오곡과 미역, 바이칼의 청정수-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다-를 떠놓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amp;nbsp;&amp;nbsp;여기에 현지 바이칼 샤먼도 동참했다. 하늘제사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가 되어 천지자연과 부합했으며, 인위적 모순으로 가득찬 일상의 때를 공적(空寂)으로 돌리고 원시의 평정을 회복했다. 하여 모두가 대아(大我)로 돌아가니 하느님 혹은 하나님 아버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공자님 그 어느 것도 다 괜찮았다. &lt;BR&gt;&lt;BR&gt;다만 우리는 온 인류가 싸움질 좀 그만하고 모두 사이 좋게 평화로이 살도록 도와주십시요 하고 간절히&amp;nbsp;&amp;nbsp;빌었을 뿐이었다. &lt;BR&gt;&lt;BR&gt;사실 하늘제사, 천제(天祭)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이 삶의 냉엄한 존재원리를 깨닫고 온몸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유배객으로서의 숙명을 지니게 된다. 말하자면 하늘에서 지구로 유배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올바른 유배생활을 위해서는 하늘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반드시 땅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lt;BR&gt;&lt;BR&gt;&lt;BR&gt;하늘제사란 바로 자신의 숙명을 깨달은 이들이 그 천지자연의 원리에&amp;nbsp;&amp;nbsp;순응하고 나아가 그것을 완전히 체득하여 즐겼음을 보여주는 의식이라고나 할까.&amp;nbsp;&amp;nbsp;그러하니 제사를 올리는 우리들의 마음이 사뭇 경건해지고 뜨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날 저녁 우리는 제사를 함께 드린 옐란치 마을의 샤먼 발렌찐(48세)과 호수가 보이는 언덕에 모닥불을 지펴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해지기전 미리 크고 잘생긴 고목 한그루를 신목(神木)으로 정하고 나무 밑을 돌며 북을 치고 노래와 춤을 추었다.&amp;nbsp;&amp;nbsp;그날 밤 발렌찐이 우리에게 해주었던 신비로운 바이칼의 노래 구절이다.&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제一, 우리가 듣고 집중합니다. 지금 수 천년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전설&lt;BR&gt;&lt;BR&gt;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앞에 먹구름이 일어나지만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lt;BR&gt;&lt;BR&gt;무엇이 있을까요? 쏘아진 화살을 따라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무에 있을까요? &lt;BR&gt;&lt;BR&gt;우리의 조상들, 전사들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분 마음에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9일낮 9일밤을 불렀던 긴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10만 절귀가 넘는 본곡중 처음의 &lt;BR&gt;&lt;BR&gt;짧은 부분입니다. ……아주 긴 시간을 따라갑니다. 어두운 가운데 아주 어두운 &lt;BR&gt;&lt;BR&gt;시간으로 들어갑니다. 태초의 그 어둠속으로 천지를 창조한 신의 의지를 따라서 &lt;BR&gt;&lt;BR&gt;들어갑니다. 전 우주가 창조되었습니다. 가장 처음의 처음시간에 그 때 너무나 &lt;BR&gt;&lt;BR&gt;조용한 시간에 하늘의 빛도 없고 아주 자욱한 안개가 꽉 차있던 그 때, 딱딱한 땅이 &lt;BR&gt;&lt;BR&gt;아니라 물 같은 땅일 때,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기 전일 때, 물들이 처음 채워지기도 &lt;BR&gt;&lt;BR&gt;전입니다. 해도 없고 달도 없고 동그란 지구도 없을 때, 위대한 어머니이신 그 &lt;BR&gt;&lt;BR&gt;어두운 시간이 날기 시작했죠. 우주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날기 시작하였습니다. &lt;BR&gt;&lt;BR&gt;또한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수백만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겟세르가 &lt;BR&gt;&lt;BR&gt;모든 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내려왔습니다……. (이 모든 말들은 샤먼 발렌찐이 &lt;BR&gt;&lt;BR&gt;북을 치며 눈을 감은 채 한시간 내내 쏟아놓은 말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다.) &lt;BR&gt;&lt;BR&gt;*&lt;BR&gt;&lt;BR&gt;샤먼 발렌찐은 낙천적이고 유머가 있는 재미난 사람이다. 그는 손가락이 육손인 세습샤먼이지만 러시아 군대(포병)를 다녀오고 울란우데(바이칼호 동부도시)의 5년제&amp;nbsp;문화대학을 졸업한뒤 비교종교학 석사까지 밟은 진보적 학자이자 시인이다.&amp;nbsp;&amp;nbsp;몇 년전 시카고트리뷴지 와의 인터뷰에서 &quot;샤먼은 종교적 역할 이상의 사회적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내가 오로지 주술만을 걸고 비오기나 빌어댄다면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quot;라고 얘기했다. &lt;BR&gt;&lt;BR&gt;그는 바이칼 주변에 사는 부리야트 몽골족으로 자기 마을에서 민족박물관을 운영하며 샤머니즘 연구에 몰두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민족사, 종교, 언어 등을 가르치고 있다. 겨울 어느날 나는 그의 집에 머물며 가족들과 지냈다. 발렌찐의 가족은 아내와 두 아들, 딸 하나, 검은 돼지 3마리, 커다란 시베리안허스키 개 한마리, 검고 퉁퉁한 고양이 한마리 등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그는 애들같이 천진난만하다. 아침부터 눈 내리는 어둡고 흐린 날 그와 함께 근처 바이칼 호숫가로 나갔다. 호숫가는 많이 얼어 있었으나 아직 한복판은 덜 얼었다며 그는 덩치에 안어울리게 덜덜 떨며 조심스레 걸어나갔다. 뚱뚱한 거구의 발렌찐이 얼음위를 밟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나며 금이 간다. 한참 걸어나가니 저 멀리 얼음판 위에 사람 몇이 웅크리고 있는게 보였다. 겨울 바이칼호의 강태공들이다. &lt;BR&gt;&lt;BR&gt;이곳 주민들인데 겨울내 할 일도 없으니 거의 매일 호숫가로 출근, 드릴로 얼음구멍을 조그맣게 뚫고 실지렁이 같은 것으로 낚시밥을 써서 고기를 낚는다. 다가가 인사하며 소주를 권했더니 소주맛이 밍밍하다고 영 별로라는 눈치다. 그래도 술잔을 주고 받으니 내게 낚시를 권한다. 한시간 가량 앉아 있는데 한마리도 안걸린다. 다른 이들은 짬짬이 잘 잡는데 왜 나는 안잡히나? 아무튼 눈 내리는 겨울 호숫가에 얼음을 &lt;BR&gt;뚫고 쩡쩡 혹은 꿩꿩 울려대는 괴이한 바이칼 얼음소리를 배경으로 낚시삼매에 잠겨본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신선했다.&lt;BR&gt;&lt;BR&gt;&lt;BR&gt;재작년 여름 이르쿠츠크 대학에서 열렸던 한민족시원세미나에서 여러 러시아 학자들을 만났다. 세미나와 답사가 끝나고 시내의 근사한 러시아 레스토랑에서 고별만찬이 있었다. 러시아측 좌장인 원로 고고학자 메드베제프 교수의 고별사를 듣노라니 웬지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다. 러시아인들은 겉 모습은 퉁명스러워도 며칠만 함께 지내면 바로 마음을 열고 속 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후에 지질학자 우핌체프 노인이 자신이 직접 소나무에 조각한 바이칼 민속인형들을 하나씩 한국의 참석자 전원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우리는 그 성의와 우정에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lt;BR&gt;&lt;BR&gt;그는 노래도 정말 잘 불렀고 조각도 잘하는, 과학자라기보다 예술가인 사람이었다.&amp;nbsp;&amp;nbsp;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뭉클한 인간적 감정이었다. 메말라진 우리의 학문적 정서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북방의 학자들과 자주 지속적 인간관계를 맺는게 필요할 듯 싶다.&lt;BR&gt;&lt;BR&gt;이번 세미나에 만난 또 한사람의 인상적인 학자는 바로 고려인 김용화 교수(화학과)였다. 그는 바이칼 알혼섬 현장답사를 가는 버스안에서 독특한 &quot;고추론&quot;을 펼쳐 인기를 끌었다. 고추론이란 한국인의 뿌리를 고추로 상징 삼아 전개하는 담론으로 옛날에 에벤키 삼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헝가리로 가고, 하나는 바이칼에 남고 나머지 하나는 한반도까지 갔다는 내용인데 얘기가 아주 코믹하여 좌중의 배꼽을 잡았다. 다시 만나 듣고픈 얘기이다. &lt;BR&gt;&lt;BR&gt;김용화 교수는 부친이&amp;nbsp;&amp;nbsp;충남 강경 사람으로 일제 때 징용당해 사할린에 와서 자신을 낳았다고 한다.&amp;nbsp;&amp;nbsp;쏘비에트 시절 사할린에서 이르쿠츠크로 와서 갖은 고생끝에 대학에 들어가&amp;nbsp;&amp;nbsp;한국인으로 화학박사까지 취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우리 답사 일행을 위해바이칼호 특산 물고기 &quot;오물&quot;을 몇광주리 사다가 직접 회를 떠서 고추장 양념으로 회무침을 만들어 보드카 파티를 열어주었다. &lt;BR&gt;&lt;BR&gt;바이칼지역의 민속학자로는 이르쿠츠크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민속박물관 부관장인 스비닌 박사가 있다. 70의 나이에 하얀 수염을 길게 드리운 그야말로 바이칼 신령같이 생긴 사람인데, 가계가 독특했다. 아버지는 부리야트인과 러시아인의 혼혈이었고 어머니는 에벤키인과 러시아인 혼혈이었는데 바이칼지역의 역사와 민속 특히 샤머니즘에 남다른 연구가 깊었다. 그의 제자인 레나를 함께 만났는데 그녀는 부리야트인으로서 민속학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러시아지배하에서도 자신의 민족문화를 보존하기위해 열심이었다. &lt;BR&gt;&lt;BR&gt;스비닌교수는 부리야트족 연구가 역사기록이 하나도 없고 구전자료밖에 없어서 참 힘들다며 한국인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같은 몽골리안으로서 자신도 혼혈이며 양국간에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고 서로 교류하기 위해 한국인과 부리야트 청춘남녀들이 결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며 '부리야트 조상신들이 여러분들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라고 축원해주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바이칼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은 우리가 아는 시베리아라는 춥고 어두운 유형의 땅이란 선입견을 단호히 깨부순다. 길고 긴 겨울조차도 이 한반도의 나그네에겐 황홀한 백설의 향연으로 지워질 수 없는 청명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바이칼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그 위대한 풍광, 천혜의 절경들과 맑고 투명한 물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lt;BR&gt;&lt;BR&gt;바이칼은 살아있는 우주이며 모든 종교를 초월하여 뭍 생명들의 귀의를 받아들이는 지구의 큰 영혼이다. 해마다 바이칼에 발을 디딜 때마다 나는 조물주에 감사한다. 우리의 이웃 시베리아에 이토록 위대한 안식의 성지를 베풀어 주신데 대하여 정녕 찬양과 찬송의 기도를 마음속 깊이 봉헌하면서……. 
&lt;TBODY&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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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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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right width=&quot;100%&quot; height=16&gt;
&lt;P align=center&gt;초점! 바이칼&amp;nbsp;&amp;nbsp;&amp;nbsp;- 샤먼은 하늘과 땅에 봉사하는 사람 -&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 width=&quot;100%&quot; height=30&gt;
&lt;P style=&quot;MARGIN-TOP: 2px; LINE-HEIGHT: 150%&quot; align=center&gt;&lt;FONT face=바탕체 color=maroon&gt;&lt;B&gt;&lt;FONT color=#990000 size=3&gt;바이칼호에서 만난 샤먼 '발렌찐 까그다예프' &lt;/FONT&gt;&lt;/B&gt;&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 height=25&gt;
&lt;HR color=#cccccc noShade SIZE=1&gt;
&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 width=&quot;100%&quot; height=59&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0066cc size=3&gt;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원형이 살아 있는 바이칼호. 부리야트족 샤먼인 발렌찐을 만나, 천상과 지상 사이에서 사랑과 봉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 곳 샤먼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lt;BR&gt;&lt;/DIV&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 height=18&gt;
&lt;HR color=#cccccc noShade SIZE=1&gt;
&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 width=&quot;100%&quot; height=250&gt;
&lt;DIV align=left&gt;&lt;FONT face=arial&gt;지난해 말, 겨울의 정취가 살아 있는 바이칼호를 보기 위해 시베리아로 달려간 나는 그 곳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람을 한 명 만났다. 샤먼으로 활동하는 그의 이름은 발렌찐 까그다예프(45). 서부지역인 옐란치 마을에 살고 있는 그는 12월 22일에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집에는 부인과 아이들 외에도, 살이 퉁퉁 찐 검은 고양이와 늑대 만한 시베리안 허스키 개, 그리고 돼지 세 마리가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face=arial&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IMG id=userImg2460141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hspace=20 src=&quot;http://mindvision.org/magazine/200326/shaman1_3.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2460141)&quot;,200)' align=right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2460141)?,200)?&gt; 나는 그날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발렌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lt;P align=left&gt;그는 예언을 행하고 길흉을 점치며 병을 고치는 샤먼인 동시에, 춤과 노래와 시를 사랑하는 예술가이자 또 인정 많은 이웃집 아저씨이기도 했다. 
&lt;P align=left&gt;나는 바이칼 샤먼인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서,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인정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비교 종교학을 전공하고 샤먼의식을 치르다&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그는 대대로 샤먼의 길을 걸어온 세습무(巫)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영혼에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조부. 바이칼호 주변 원주민인 몽골리안 부리야트족의 전통샤먼이었던 그의 조부는 마을의 제사를 주관하고 생로병사에 관한 여러 문제들을 상담,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타이가 스텝의 초원 유르따(천막으로 만든 이동주택)에서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낸 발렌찐은, 바이칼 동부에 위치한 부리야트족 자치공화국 수도인 울란우데로 가서 5년 동안 공부하여 문화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러시아군대의 포병으로 병역을 마친 이후에 라마교 대학에서 티베트 불교학 연구로 석,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당시 그가 다룬 석사논문의 주제는 샤마니즘과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종교학 관점에서 다룬 것이라고 한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3년 전 그는 부리야트 샤먼이 되기 위한 전통적인 의례를 거쳐 정식으로 샤먼이 되었다. 샤먼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가장 중요한 의례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속한 공동체 사람들에게서 영적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여기서 영적 능력이란 대표적으로 예언력과 치유력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도 샤먼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온 종족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숙지하고 보존, 계승할 수 있는 정신적 자세와 사명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
&lt;IMG id=userImg401106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hspace=20 src=&quot;http://mindvision.org/magazine/200326/shaman1_2.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01106)&quot;,200)' align=left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401106)?,200)?&gt; 이와 같은 능력과 자질을 공동체 일원들에게 인정받은 후 샤먼으로 추대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길일을 택하여 지정된 장소에 가서 하늘의 신인 '텡그리'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제사를 지내는 터에는 보통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세계를 뜻하는 세 나무기둥('세르게'라 불림)이 세워져 있고, 제물을 놓는 나무로 된 제사상과 불 지피는 화로, 소원을 빌며 돌을 쌓아놓는 돌무더기('오보'라 함)가 있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이 성스러운 장소에서 자신의 영적인 일을 우주적으로 확장시켜 알리고 기원하는 것이 샤먼이 되는 의례의 핵심이다. 이 의식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우주목이라 일컬어지는 자작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식으로 거행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샤먼이 되었음을 하늘에 고하면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새로 탄생한 샤먼을 나무가마에 태워 동네로 귀환한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이들 부리야트족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정신적 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수호정신이 아주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샤먼은 공동체의 안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존재로 예로부터 존경의 대상이었던 만큼, 샤먼이 되는 의식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 전체의 관심과 승인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발렌찐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샤먼으로 추대되었음은 물론이다. 다음은 발렌찐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알혼섬, 천상신 텡그리가 축복한 자리&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0066cc size=2&gt;부리야트족의 샤먼이 되기 위해서는 예언력과 치유력을 검증 받아야 하며, 아울러 전통문화와 역사를 보존, 계승할 수 있는 자질과 정신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0066cc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전통적으로 알혼섬 불칸바위가 신성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그 곳이야말로 최고신, 즉 샤먼신앙에서 섬기는 가장 큰 신 가운데 하나가 내려와 주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땅이 정리되지 않아 악신이 많을 적에, 텡그리(천상신)가 불칸바위에 그 신을 내려보냈으며 신은 그 자리를 거처로 삼아 악신들을 물리쳤다. 또한 텡그리는 세 마리 독수리를 보냈는데, 그들이 각각 샤먼으로 변하여 몽골족, 티베트족, 탕구트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곳 사람들은 머리와 가슴부위가 흰 독수리를 샤먼의 분신으로 여긴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샤머니즘 의식이 계속 행해지는데 그 과정과 의미를 설명해달라.&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제사의식을 치른다는 것은 신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다는 의미가 있다. 제사의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가정사를 주제로 가족들이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둘째는 종족단위로 지내는 제사이고, 셋째는 계절의 변동에 따라 지내는 제사이다. 철마다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우리가 유목민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름에 파종한 후 가을에 수확하기 전에 감사제사를 꼭 드린다. 이를 [타일라간]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서 행해지고 있다. 또한 병 치유 등 개인의 소원을 빌 때는 그 주제를 담당하는 신에게 빌고, 종족제사 때는 텡그리에게 비는 차이점이 있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천상신을 가리키는 텡그리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텡그리Tengry는 샤머니즘에서 나온 말이고, 이와 같은 뜻으로 부르한Burkhan이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두 단어의 뜻은 모두 [하느님], 혹은 [부처]와 마찬가지다. 텡그리는 흔히 흰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은 3, 4백 년간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보다 더 오래 샤머니즘의 전통을 따랐다. 텡그리라는 용어는 징기스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그 때만 해도 부르한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자료를 보면 &quot;텡그리의 명령으로…&quot;라는 표현이 자주 나옴을 발견할 수 있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한국 샤머니즘의 시초로 알려지는 단군시대 때는 제정일치사회였다. 여기는 어떠했나? &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오래된 역사기록이 없어서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다만 공산주의가 되기 전에는, 비록 샤먼이 정치권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어도 지도자가 폭정을 하면 그가 죽길 바라는 저주가 샤먼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행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이나 공동체 안에서 행해지는 일들에 대해서 샤먼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샤먼이 조언을 하면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고 그것을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한국 샤먼들은 병 치료를 주로 하는데 여기서도 그러한가? &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다는 불치병 판명이 날 경우엔 치료행위를 한다. 나도 그런 환자들, 이를테면 원인불명의 만성불면증 환자나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상담과 의식을 통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도록 치유해준 적이 있다. 그들 스스로 요청해올 경우에는 특별히 거절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해준다. 예언을 하거나, 손금과 관상 등을 보고 상담도 해준다. 그러나 가장 주력하는 활동은 역시 제사의식을 주관하는 것이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영적 체험과 훈련이 훌륭한 샤먼을 만들어 &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0066cc size=2&gt;부리야트족 샤먼은 모두 직업을 갖고 있다. 똑같이 일하면서도 제사의식을 집전하고 병을 치유하는 등 남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서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다.&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0066cc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이 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샤먼으로 성장하는가? &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
&lt;IMG id=userImg4777645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hspace=20 src=&quot;http://mindvision.org/magazine/200326/shaman1_1.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777645)&quot;,200)' align=right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4777645)?,200)?&gt;답) 먼저 어릴 때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해야 한다. 기도하거나 제사를 드릴 때 어떤 영적인 세계를 본다든지 하는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자신을 키워줄 스승 샤먼을 만나야 한다.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분별력 있는 샤먼으로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함을 의미한다. 샤먼이 되는 데는 남녀의 차별이 없지만, 여성 샤먼은 주로 예언을 많이 하고 남성 샤먼은 주로 제사를 주관한다. &lt;/DIV&gt;
&lt;P align=left&gt;샤먼들 사이에 공적인 위계질서가 있다기보다는 마을에서 누가 얼마나 신통하다고 능력을 인정받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샤먼에도 단계는 있다. 모두 9단계로 나뉘는데 나는 5단계 정도에 와 있다. 9단계에 이르는 샤먼을 [자아린]이라 하는데 이에 이르면 공중을 날고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고 한다. 또한 각 단계마다 샤먼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 재료가 나무, 돌, 쇠 등으로 각각 다른 것이 특징이다.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당신은 왜 샤먼의 길을 선택했는가?&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선천적으로 육손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 샤먼이 될 증표라 생각했으며 또한 하늘로부터 계시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추대했고 인정해주었다. 물론 나 스스로 그것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바이칼호 근처에서 활동하는 샤먼은 몇 명인가?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부리야트족에서 샤먼으로 알려진 사람은 많지 않다. 바이칼호를 기준으로 동서지역에 조금씩 편재해 있는데, 동쪽 해안지역은 일찍이 티베트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샤머니즘에도 불교적인 색채가 많이 가미된 반면, 서부지역은 토착성이 강하여 전통 샤먼의 고유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화신火神을 숭상하는 등 공통점도 많다. [다곤]이라 불리는 화신은 천상신을 매개하는 존재로, 그를 통해 우리 샤먼들은 천상신과 교제할 수 있다. 불의 혀를 통해천상신을 보면 하늘의 뜻이 우리 뇌로 전달된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현대문명의 영향 아래 있는 한국에서는 샤머니즘이 쇠락하는 분위기이다. 속으로는 믿어도 겉으로는 불신하는 추세인 게 사실이다. 직업 자체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기까지 하다. 이 곳은 어떠한가? &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러시아와 한국은 뭔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여기 샤먼의 경우 이를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직업을 갖고 있다. 현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 샤먼들도 목축을 하는 등 생계수단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샤먼들이 그들의 부인들로부터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소 풀먹이러 가야 할 사람이 산으로 기도하러 다닌다고…. (웃음) 나 역시 현재 민속박물관 일을 보고 있고, 지방신문에 글도 쓰고 책도 집필중이다.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일하면서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이가 바로 샤먼이다. 따라서 이 곳에서는 샤먼이 주위사람들에게서 많은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사랑과 고통을 나누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 &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990000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그럼 당신은 현대문명사회에서 하는 비판, 즉 샤먼은 비과학적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문명사회에서 신봉하는 종교들은 서로 배척하고 갈등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다른 이들에게 샤머니즘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전통적으로 내려온 조상신을 숭배할 뿐이며, 그 속에서 부족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려 할 뿐이다. 이것이 뭐 잘못된 일인가? 이걸 비과학적이라 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당신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훌륭한, 혹은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좋은 샤먼이 되고 싶고, 따라서 우리 민족이 정직하게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울란우데에 가서 대중강연을 하는데, 거기서도 공동체 정신과 전통의 보존, 어울려 사는 삶을 강조한다. 그리고 결혼식과 같은 마을 행사가 있을 때 참여하여 축복을 해주는 것도 나의 일과 가운데 하나다. &lt;/DIV&gt;
&lt;DIV align=left&gt;&amp;nbsp;&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문) 끝으로 한국 잡지 정신세계 독자들에게 한마디해 준다면? &lt;/B&gt;&lt;/FONT&gt;&lt;/DIV&gt;
&lt;DIV align=left&gt;&lt;FONT size=2&gt;&lt;B&gt;&lt;/FONT&gt;&lt;/B&gt;&amp;nbsp;&lt;/DIV&gt;
&lt;DIV align=left&gt;답) 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종교가 지녀야 할 미덕이다. 반면 모든 악과 문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의 종교들이 서로 존경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종교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궁극적으로 전세계가 평화롭고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lt;/DIV&gt;
&lt;P align=left&gt;
&lt;DIV align=center&gt;
&lt;IMG id=userImg9251832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hspace=20 src=&quot;http://mindvision.org/magazine/200326/shaman1_4.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9251832)&quot;,200)' name=cafeuserimg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61;?popview(this.src)?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61;?setTimeout(?resizeImage(9251832)?,200)?&gt;&lt;/DIV&gt;&lt;/FONT&gt;
&lt;P align=left&gt;
&lt;P align=lef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 width=&quot;100%&quot; height=59&gt;
&lt;DIV align=left&gt;&lt;FONT color=#0066cc size=2&gt;정신세계사에서 판매중인 바이칼 답사 비디오&lt;A href=&quot;http://www.mindvision.org/notice/viewbody.php?code=notice&amp;number=191&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990000&gt;&lt;U&gt;&amp;nbsp; '일만년 겨레얼을 찾아서'&amp;nbsp;&lt;/U&gt;&lt;/FONT&gt;&lt;/A&gt; 1부에서 샤먼 발렌찐과의 자세한 인터뷰와 제례의식(춤,노래 등),광활한 바이칼과 주변의 풍광을 생생한 감동과 함께 보실수 있습니다.&lt;BR&gt;&lt;/DIV&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 width=&quot;100%&quot; height=33&gt;
&lt;HR color=#cccccc noShade SIZE=1&gt;
&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right width=&quot;100%&quot;&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990000 size=2&gt;글 · 정재승&amp;nbsp; &lt;A href=&quot;http://www.mindvision.org/&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http://www.mindvision.org&lt;/FONT&gt;&lt;/U&gt;&lt;/A&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177fcd&gt;http://www.geocities.com/Athens/Oracle/8226/modon.html)&lt;/FONT&gt;&lt;/P&gt;
&lt;P&gt;
&lt;TABLE class=tag_n_id cellSpacing=0&gt;
&lt;TBODY&gt;
&lt;TR&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amp;nbsp;&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네이버 메인뉴스와 관련해 우리가 나서야할때인것같아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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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31</id>
	    <author>
		    <name>하여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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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4:04:39Z</updated>
	    <published>2009-11-10T14:04: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안녕하세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네이버란 포털사이트를 들어오면 여러 뉴스가 뜹니다. 저도 종종 관심있는 제목을 클릭해서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네이버의 경우 너무 선정적인기사들..&lt;/P&gt;
&lt;P&gt;(누가 누굴 어떻게 어떤방법으로죽였다, 누가 누구를 성적으로 어떤방식으로 했다는 그런 내용들.) 이 많이올라오더군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알고봤더니 네이버에서 작성하는게아니라 각 언로사별로 뉴스를 뽑아서 네이버메인에 한페이지씩 띄우는것이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userImg5459312 style=&quot;WIDTH: 454px; HEIGHT: 172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1028_200/resolver_1st_1256721056044pDhbM_jpg/love_resolver_1st.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5459312)&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우측 검은선위의 화살표를 누르면 좌측 아래에 &lt;시사IN에서 위기사를 직접선정합니다&gt;이런식으로 뜨면서&lt;/P&gt;
&lt;P&gt;조선일보, 한겨례등 각 언론사가 선정한 주요 뉴스를&amp;nbsp;한페이지씩 띄어주는것인데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것이 자본과 연결되다보니, 언론사들에서 도를 지나친것같습니다.&lt;/P&gt;
&lt;P&gt;종이신문과달리 인터넷신문은&amp;nbsp; 그 짧은 기사제목으로&amp;nbsp;어떻게 사람들을 클릭하게하느냐가 돈으로 연결되다보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때로는 얼토당토안하게 부풀린&amp;nbsp;제목으로 사람들을 낚기도하고,&lt;/P&gt;
&lt;P&gt;&amp;nbsp;선정적인 제목들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기서 여러분들께 한가지 여쭙겠습니다.ㅋ&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분명,&amp;nbsp; 선정적인뉴스였지만 그것이 널리알려져서 누리꾼들의 영향으로 법원의 판결까지 바꾸는 일화도있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대다수의 선정적인뉴스.&lt;/P&gt;
&lt;P&gt;&amp;nbsp;미국에서 어느 검사가 여검사를 성폭행했다는 것까지.. 우리의 기억속에 집어넣어야할까요?&lt;/P&gt;
&lt;P&gt;수많은 뉴스(소식)중에 언론사에서 그 작은 뉴스란에 그런뉴스기사를&amp;nbsp;메인으로 넣는&amp;nbsp;심보는 무엇이겠습니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뉴스를 안누르면되지??.. &lt;/P&gt;
&lt;P&gt;맞습니다.&lt;/P&gt;
&lt;P&gt;그러나 사람들의 심리가 그렇지않습니다. 여러분들의 경우 어떠셨나요.. 저는 종종 눌러서 보았습니다.&lt;/P&gt;
&lt;P&gt;또&amp;nbsp;이젠 살짝 자극적인건 식상해질정도로 무뎌졌습니다. 도덕적인 기준이 높아진게아니라, &lt;/P&gt;
&lt;P&gt;이젠 누가 누굴 때린 뉴스조차는&amp;nbsp;눈길한번 안주게된것이지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더구나&amp;nbsp;어른들은 자신의 의식적인 제어가 좀더 쉽지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이들까지 그런 뉴스에 무방비로 노출이됩니다. &lt;/P&gt;
&lt;P&gt;이번에 어느 중학생이 자해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고 네이버뉴스 메인에뜨더군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럼, 그런 뉴스를 보고 아.. 그러면 안되겠구나 생각하는 중학생이많을까요?&lt;/P&gt;
&lt;P&gt;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게아니라&amp;nbsp;오히려 아이들의 뇌에 그걸 기억시켜주게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는 이글을 퍼뜨리는데에서&amp;nbsp;멈추는것보다 할수있는 범위내에서&amp;nbsp;여러활동을 앞으로 해볼생각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우리가 조금씩 우리를 위해 나서야할때인것같아요.^^ &lt;/P&gt;
&lt;P&gt;나를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위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1차적인방법으로 이렇게 메인에 뜨는 언론사를 선정할수가있다네요. 부정적인 기사를 마구 노출시키는 &lt;/P&gt;
&lt;P&gt;언론사를 우리가 선택하지않음으로써&amp;nbsp;자연스레 언론의 도리..순기능을 지켜가는데 도움이되겠습니다.&lt;/P&gt;
&lt;P&gt;&lt;비폭력 불복종&gt;의 원리하고도 상통한다고 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짜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userImg1587489 style=&quot;WIDTH: 603px; HEIGHT: 211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20091028_220/resolver_1st_12567210567696r1Sj_jpg/freedom_resolver_1st.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587489)&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측 하단에 My 뉴스 설정을 누르고 자신의 선택에따라 뉴스를 보는것입니다. &lt;/P&gt;
&lt;P&gt;저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많아 지역신문을 좀 넣었습니다. &lt;/P&gt;
&lt;P&gt;그리고&amp;nbsp; 너무 자극적인뉴스를 주로 노출시키는 언론사는 우선&amp;nbsp;안뜨게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저도 나름 인터넷을 많이하는편인데 뉴스캐스트 기능을 이제야 알게되어 여러분들께도 알릴겸 글을써서 뿌립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땅의 누리꾼님들 화이팅입니다~&lt;/P&gt;
&lt;P&gt;&amp;nbsp;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lagoonuro&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lt;/FONT&gt;&lt;/U&gt;&lt;/A&gt;&amp;nbsp;&lt;/P&gt;&lt;/DIV&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세계4대해전 : 명량해전 or 한산해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rubiconrv/7432630"/>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30</id>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03:34Z</updated>
	    <published>2009-11-10T14:03: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 bgColor=#eef7ff&gt;
&lt;TD width=&quot;100%&quot;&gt;&lt;FONT color=blue&gt;&lt;B&gt;&amp;nbsp;한산도대첩보다는 명량대첩이..&lt;/FONT&gt;&lt;/B&gt;&amp;nbsp;&amp;nbsp;&lt;BR&gt;&lt;/TD&gt;
&lt;TD align=right width=45&gt;&lt;/TD&gt;&lt;/TR&gt;
&lt;TR&gt;
&lt;TD bgColor=#eef7ff colSpan=2&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4 width=&quot;100%&quot;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WORD-BREAK: break-all&quot;&gt;
&lt;P&gt;1980년대중반까지만해도 &lt;FONT face=궁서 size=3&gt;&lt;U&gt;세계5대해전에&lt;/U&gt;&lt;/FONT&gt; 한산해전 대신에 &lt;FONT size=3&gt;&lt;U&gt;&lt;FONT face=궁서체&gt;명량&lt;/FONT&gt;&lt;FONT face=궁서&gt;해전&lt;/FONT&gt;&lt;/U&gt;&lt;/FONT&gt;을 넣었답니다.영국,미국등 강대국해군사관학교에서요.그런데 그 이후 명량해전은 너무나도 믿기어려운 싸움이고 또한 명쾌하게 전술해명이 안되는지라,빼고 대신 세계4대해전에,살라미스,칼레,트라팔가,한산도해전이 들어가게 되었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게다가,당시해전에 대해,&lt;U&gt;&lt;FONT size=3&gt;&lt;FONT face=궁서&gt;이순신&lt;/FONT&gt;장군께서 자신의 전공을 &lt;FONT face=궁서&gt;축소보고&lt;/FONT&gt;하고&lt;/FONT&gt;&lt;/U&gt;,&lt;FONT size=3&gt;&lt;U&gt;&lt;FONT face=궁서&gt;선조&lt;/FONT&gt;는 아예 명량해전을 자세히 &lt;FONT face=궁서&gt;기록못하게&lt;/FONT&gt;하고&lt;/U&gt;&lt;/FONT&gt; &lt;FONT face=궁서&gt;생략&lt;/FONT&gt;하도록하고,그리고 일본군은 역시 도요토미한테 축소보고했을 뿐만아니라,전후에도 너무나도 창피한 패전이라 거의 왜곡 축소기록하는 바람에 오늘날에도 명량해전의 전모를 밝히기는어렵다고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size=3&gt;&lt;U&gt;그래서 장편소설 &lt;임진왜란&gt;을 쓴 &lt;FONT face=궁서&gt;김경진&lt;/FONT&gt;의 경우,적 전투선의 수를 &lt;FONT size=5&gt;500&lt;/FONT&gt;척으로보고,&lt;난중일기외전&gt;을 쓴 &lt;FONT face=궁서체&gt;배상열&lt;/FONT&gt;씨는 &lt;FONT size=5&gt;1000&lt;/FONT&gt;척정도로 보기도 하죠.그러나 아직도 미스테리입니다.&lt;/U&gt;&lt;/FONT&gt;&lt;/P&gt;
&lt;P&gt;아마도 인류역사상 최고의 해전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래는 세계4대해전에 명량대첩대신 한산도대첩을 포함시킨,윤지강 著,&lt;세계4대해전&gt;과,지식in에 님과 같은 질문을 올린것에 대해 다른 분이 답변한 내용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userImg9416067 style=&quot;WIDTH: 30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bybook.co.kr/shopimages/gobybook11/0060050003562.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9416067)&quot;,200)' name=cafeuserim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q_comment&gt;
&lt;IMG height=12 alt=&quot;질문자 인사&quot; src=&quot;http://static.naver.com/kin/ending/txt_q_comment.gif&quot; width=66&gt; 빠른 답변 완전 감사해요!&lt;/P&gt;
&lt;DIV class=answer_contents&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5pt&quot;&gt;1. 개 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세계4대해전에 들어가는 우리나라의 해전이 한산대첩이냐 명량대첩이냐를 두고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러한 분분한 의견을 명확히 하고자 정리하여 올려드립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5pt&quot;&gt;2&lt;/SPAN&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5pt&quot;&gt;.&lt;/SPAN&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5pt&quot;&gt;세계 4대해전&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00%&quot;&gt;ㅡ 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의 살라미스(Salamis) 해전&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00%&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00%&quot;&gt;ㅡ 1588년 영국 하워드(Howard)제독의 칼레(Calais) 해전&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00%&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00%&quot;&gt;ㅡ 1597년 판옥선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제독)의&lt;FONT size=3&gt; &lt;U&gt;&lt;FONT face=궁서 size=5&gt;명량대첩&lt;/FONT&gt;&lt;/U&gt;(鳴梁大捷&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00%&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00%&quot;&gt;ㅡ 1805년 영국 넬슨(Nelson) 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 해전&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명량대첩이 세계4대 해전에 포함되는 것이 외국에서는 정설이나 &lt;FONT size=3&gt;&lt;U&gt;&lt;FONT face=궁서&gt;윤지강&lt;/FONT&gt; &lt;/U&gt;&lt;/FONT&gt;저 『&lt;U&gt;&lt;FONT face=궁서 size=3&gt;세계4대해전&lt;/FONT&gt;&lt;/U&gt;』에서 명량대첩대신 &lt;U&gt;&lt;FONT face=궁서 size=3&gt;한산대첩&lt;/FONT&gt;&lt;/U&gt;을 포함한 뒤로 국내에서는 한산대첩이 4대해전으로 포함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lt;FONT face=궁서 size=3&gt;영국인&lt;/FONT&gt;, &lt;FONT face=궁서 size=3&gt;독일&lt;/FONT&gt; 등 &lt;U&gt;&lt;FONT face=궁서 size=3&gt;유럽 해군사관학교&lt;/FONT&gt;&lt;/U&gt;에서는 지금도 &lt;FONT face=궁서 size=3&gt;명량대첩&lt;/FONT&gt;의 극적승리를 &lt;FONT face=궁서 size=3&gt;놀라워&lt;/FONT&gt;하며 격전지인 &lt;FONT face=궁서 size=3&gt;울돌목&lt;/FONT&gt; 해협을 일생에 꼭 한번 &lt;FONT face=궁서 size=3&gt;가보고&lt;/FONT&gt; &lt;FONT face=궁서 size=3&gt;싶어&lt;/FONT&gt;한다고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5pt&quot;&gt;3. 명량대첩과 한산대첩 전투의 의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명량대첩&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명량대첩은 13척의 배로 10배이상의 적을 크게 이긴 싸움으로 정유재란의 대세를 바꾸고 이후 왜군이 서해로의 진출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싸움은 &lt;FONT face=궁서 size=5&gt;세계해전사&lt;/FONT&gt;의 &lt;FONT face=궁서 size=5&gt;전무후무&lt;/FONT&gt;한 대승이었고, 조선은 명량대첩 이후 해상권을 회복하였다. 즉 명량해전은 세계4대해전에 기록되기에 충분할 만큼 위대하고 &lt;FONT face=궁서 size=5&gt;불가사의&lt;/FONT&gt;한 전투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lt;/SPAN&gt;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한산대첩&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한산도 대첩의 가장 큰 의미는 일본군의 수륙 병진 작전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고 또한 남해의 제해권을 확실히 장악하였음을 들 수 있다. 한산대첩은 결국 일본군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정벌의 야욕을 꺾어버린 해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산대첩은 명량대첩보다 먼저 일어났고 학익진 전술로 아시아의 역사가 바뀌게 되었던 것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 결 론]&lt;/P&gt;
&lt;P class=바탕글&gt;이처럼 &lt;FONT size=3&gt;&lt;FONT face=궁서&gt;&lt;U&gt;세계 &lt;FONT size=7&gt;4&lt;/FONT&gt;대&lt;/U&gt;해전&lt;/FONT&gt;&lt;U&gt;에 &lt;FONT size=5&gt;&lt;FONT face=궁서&gt;한&lt;/FONT&gt; &lt;FONT face=궁서&gt;나라&lt;/FONT&gt;&lt;/FONT&gt;에서 &lt;FONT face=궁서 size=5&gt;두개&lt;/FONT&gt;의 해전이 &lt;FONT face=궁서 size=5&gt;거론&lt;/FONT&gt; 되었다는 것은 &lt;FONT face=궁서&gt;역사에 없&lt;/FONT&gt;는 &lt;FONT face=궁서&gt;이례적&lt;/FONT&gt;인 &lt;/U&gt;&lt;/FONT&gt;일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size=3&gt;&lt;U&gt;&lt;FONT face=궁서&gt;두 해전&lt;/FONT&gt; &lt;FONT face=궁서&gt;모두&lt;/FONT&gt; 다 &lt;FONT face=궁서&gt;역사에 길이 남을만한&lt;/FONT&gt; 이순신장군의 위대한 업적이고 &lt;FONT face=궁서&gt;세계가 인정&lt;/FONT&gt;하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입니다&lt;/U&gt;&lt;/FONT&gt;. 두 해전 모두 세계4대해전에 오를만큼의 위대한 전투였으나 역사에 대한 진실이 왜곡되어지는 것을 바로잡고자 정리해드리는 바입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자료출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위의 자료는 네이버에 전문지식과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GFDL&lt;/SPAN&gt;(GNU自由文書使用許可書,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또는 이에 준하는 라이센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참고문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선조실록(宣祖實錄)』&lt;/P&gt;
&lt;P class=바탕글&gt;『난중일기』&lt;/P&gt;
&lt;P class=바탕글&gt;『진도군지(진도군·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2007)』&lt;/P&gt;
&lt;P class=바탕글&gt;『임진왜란의 해전(1592년)』 의 일부분 발췌 인용&lt;/P&gt;&lt;/DIV&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 : : : : :&lt;/P&gt;
&lt;P&gt;세계4대 대전으로 한산도 대첩이 포함되어 있는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산도 대첩보다는 명량해전이 더 극적인데다 더욱 더 엄청나다고 생각하는데..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428&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4대해전:한산or명량해전? (不滅星(불멸의 별))&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lagoonuro&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통제사&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
&lt;P&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만고의 충신 원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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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29</id>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02:15Z</updated>
	    <published>2009-11-10T14:02: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드라마 &lt;불멸의이순신&gt;에서의 문제점 . 아무리봐도 포인트를 잘못잡은거같음. 원균이 엄청 여자를 밝혔다고하던데,그리고 여진족과 대치하던 북방에서 근무당시 싸움잘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던데 무슨 근거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던 용장으로 그려놓고 있는건지,그리고 함포사격보다는 단병접전을 주장하는 용감무쌍한 장수로 많이들 생각하는데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어떻게 5년이 넘는 기간동안 단 한번도 부상을 당한 적이 없는거지? 사천해전에서 이순신장군,나대용이 총상을 입고,부산포해전에서 정운이 적포탄에 맞아 머리통이 날라가 죽고,칠천량에선 충청수사 배호와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장렬히 전사 혹은 자결하고,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께서 적탄에 장렬히 산화한 것에 비하면 원균은 칠천량에서 조선수군 다 말아먹고 갑옷까지 벗고 도망치다가 죽었거나 혹은 살아서 도망쳤다는 기록만 있으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원균과 선조는 우리민족이 배출한 역사상 최고의 충신이었다는 생각이 듬.이완용을 능가하는... 일본민족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진정한 충신.아마 그 두사람은 죽어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신 노릇하면서 귀여움받고 있을 거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앞으로 이순신장군과 임진대전관련영화나 드라마 만들땐,도무지 장군님의 일개 부관수준에도 못미치는 원균같은 X을 라이벌로 등장시키지말고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과정의 파란만장한 전투장면과 여진의 누루하치가 임진대전을 틈타 부족을 통일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가는 장면을 함께 다뤄줬으면 함.&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class=line&gt;이순신장군님을 주연으로하고,도요토미히데요시와 누루하치를 주조연정도로 배치하고,유성룡,선조,명나라의 만력제,이여송,오다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다케다신겐,우에스기 겐신등을 조연으로 넣어서 50부작 정도로 장쾌하게 국제정세를 조망하면서 당시 조선이 어떻게 국제정세에 대응해나갔어야하는지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면 현대 우리나라가 오늘날 어떻게해야 당시와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되리라 봄.&lt;/SPAN&gt;&lt;/P&gt;
&lt;P&gt;&lt;SPAN class=line&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class=line&gt;쓸데없이 임천수니,원균이니 하는 배역들을 등장시켜 정작 중요하게 다뤘어야할 인물들과 사건들을 놓쳤다는 느낌이...&lt;/SPAN&gt;&lt;/P&gt;
&lt;P&gt;&lt;SPAN class=line&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class=line&gt;거기다가 1588년,그러니까 임진대전이 일어나기 4년전,세계4대해전인 칼레해전에서 영국의 해적출신의 드레이크제독이 스페인의 필리페4세가 이끄는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명실공히 영국이 해상제국으로 급부상하면서 기존의 본건적인 농노제를 타파하고,중상주의를 바탕으로한 자본주의의 싹을 틔워,산업자본주의로 도약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부분을 상세히 그려내었더라면,당시 비슷한 시기의 조선과 명나라가 얼마나 세계정세에 뒤떨어져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혀냄과 동시에,임진대전 이후 조선수군을 해외통상과 개방정책의 첨병으로 활용하여, 세계적 자본주의발전에 동참할 수 있었는가를 문제제기할 수도 있었을텐데..아쉽소&lt;/SPAN&gt;&lt;/P&gt;
&lt;P&gt;&lt;SPAN class=line&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class=line&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class=line&gt;영국은 1588년 칼레해전 승리후,그리고 이후 1805년 넬슨의 트라팔가해전 승리후,그러니까 2번의 세계4대해전 승리를 발판으로 삼아 &lt;해가지지않는 나라&gt;,즉 대영제국을 이루어내었건만,조선은 이순신장군의 죽음을 헛되이만들어,임진대전 이후 30여년만에 다시 후금의 침략을 받아 삼전도의 치욕과,부녀자 50만을 성노리개로 보내게 되는 아둔한 국가로 전락시켰다가 ,20C 들어와서는 아예 나라를 잃어버리는 지경에까지 몰고갔으니...영국과 조선...별로 인구나 경제력에서 큰 차이가 없었을 두 나라가 그렇게까지 서로 운명이 갈라지게 되었으니...&lt;/SPAN&gt;&lt;/P&gt;
&lt;P&gt;&lt;SPAN class=line&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class=line&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class=line&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yisoonsin/5239&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http://cafe.naver.com/yisoonsin/5239 &lt;/FONT&gt;&lt;/U&gt;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lagoonuro&quot; target=_blank&gt;&lt;/A&gt;&amp;nbsp;&lt;/P&gt;&lt;/DIV&gt;&lt;/A&gt;&lt;/SPAN&gt;
&lt;P&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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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 최강` 조선 해군과 日 육군의 대격돌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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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01:29Z</updated>
	    <published>2009-11-10T14:01: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tbody m-tcol-c&quot; id=tbody&gt;
&lt;DIV style=&quot;FONT-SIZE: 10pt; FONT-FAMILY: 985643_1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책마을] &lt;/STRONG&gt;&lt;/SPAN&gt;
&lt;P class=arti_ttl04 id=hollink_title style=&quot;MARGIN-TOP: 4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세계 최강` 조선 해군과 日 육군의 대격돌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arti_txt4 style=&quot;MARGIN-TOP: 38px&quot;&gt;&lt;STRONG&gt;&lt;FONT color=#666666&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조일전쟁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백지원 지음/ 진명출판사/ 499쪽&lt;/SPAN&gt;&lt;/FONT&gt;&lt;/STRONG&gt; 
&lt;DIV id=CLtag style=&quot;FONT-SIZE: 15px; LINE-HEIGHT: 22px&quot;&gt;
&lt;P class=arti_txt4 id=newsView style=&quot;MARGIN-TOP: 23px; FONT-SIZE: 15px&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lt;!-- 우측일때 노출 시작 --&gt;
&lt;TD noWrap width=15 rowSpan=6&gt;&lt;STRONG&gt;&lt;/STRONG&gt;&lt;/TD&gt;&lt;!-- 우측일때 노출 끝 --&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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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class=wh&gt;&lt;STRONG&gt;
&lt;IMG id=userImg1767549 style=&quot;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news.hankyung.com/photo/200908/2009080698511_2009080628101.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1767549)&quot;,200)' name=cafeuserimg&gt;&lt;/STRONG&gt;&lt;/TD&gt;&lt;/TR&gt;&lt;!-- 사진설명 시작 --&gt;&lt;!-- 사진설명 끝 --&gt;&lt;/TBODY&gt;&lt;/TABLE&gt;&lt;/TD&gt;&lt;!-- 좌측일때 노출 시작 --&gt;&lt;!-- 좌측일때 노출 끝 --&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0&gt;&lt;STRONG&gt;&lt;/STRONG&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란 없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200년째인 1592년에 있었던 사건은 임진왜란이 아니라 근대 수백년간 동양에서 일어난 전쟁 중 가장 크고 격렬했던 국제전인 조일전쟁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재미 사학자 백지원씨는 신간 《조일전쟁》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이 전쟁에 3개국 50여만명의 대병력이 투입됐고 현대전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무기가 동원됐으며 20만명 이상의 전사자가 생긴 데다 조선인 피해자만 200만명에 이르는 대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왜 임진왜란으로 불렸을까. 전작 《왕을 참하라》에서 무능한 지도자들을 질타했던 저자는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쟁의 정황들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에 따르면 조일전쟁은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당시 조선 수군은 척당 20문 안팎의 강력한 함포를 장착한 '판옥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바닥이 평평한 2층 구조의 판옥선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200t급 전함이었고 정원은 164명이나 됐다. 판옥선 한 척은 일본 배 5~10척의 &lt;/SPAN&gt;&lt;SPAN id=CLK_POP5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FC%B7%C2&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5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FC%B7%C2&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전력&lt;/SPAN&gt;&lt;/A&gt;&lt;/SPAN&gt;&lt;/A&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을 상쇄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조선 수군의 주 전략인 함포사격이 더해졌다. &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5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lt;!-- 우측일때 노출 시작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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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class=wh&gt;
&lt;IMG id=userImg2447276 style=&quot;BORDER-RIGHT: #f3f3f3 5px solid; BORDER-TOP: #f3f3f3 5px solid; BORDER-LEFT: #f3f3f3 5px solid; BORDER-BOTTOM: #f3f3f3 5px solid&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news.hankyung.com/photo/200908/2009080698511_2009080628731.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2447276)&quot;,200)' name=cafeuserimg&gt;&lt;/TD&gt;&lt;/TR&gt;&lt;!-- 사진설명 시작 --&gt;
&lt;TR class=bg48&gt;
&lt;TD class=&quot;f11 dm g11 sp01 he15&quot; style=&quot;PADDING-RIGHT: 2px; PADDING-LEFT: 9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4px&quot;&gt;해군사관학교 &lt;SPAN id=CLK_POP2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9%DA%B9%B0%B0%FC&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2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9%DA%B9%B0%B0%FC&quot; target=_blank&gt;박물관&lt;/A&gt;&lt;/SPAN&gt;&lt;/A&gt;&lt;/SPAN&gt;에 &lt;SPAN id=CLK_POP3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C%D2%C0%E5&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3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C%D2%C0%E5&quot; target=_blank&gt;소장&lt;/A&gt;&lt;/SPAN&gt;&lt;/A&gt;&lt;/SPAN&gt;돼 있는 '명량해&lt;SPAN id=CLK_POP4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FC%B5%B5&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4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FC%B5%B5&quot; target=_blank&gt;전도&lt;/A&gt;&lt;/SPAN&gt;&lt;/A&gt;&lt;/SPAN&gt;'(사진 위). 현충사에 있는 '십경도'중 &lt;SPAN id=CLK_POP1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C5%BA%CF%BC%B1&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1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C5%BA%CF%BC%B1&quot; target=_blank&gt;거북선&lt;/A&gt;&lt;/SPAN&gt;&lt;/A&gt;&lt;/SPAN&gt; &lt;SPAN id=CLK_POP0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C7%C1%B6&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0 style=&quot;Z-INDEX: 999&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ver&#61;xxjavascript&lt;x&gt;:clear_pop_hidden_delay()&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002f74;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kyung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C7%C1%B6&quot; target=_blank&gt;건조&lt;/A&gt;&lt;/SPAN&gt;&lt;/A&gt;&lt;/SPAN&gt; 장면.&lt;/TD&gt;&lt;/TR&gt;&lt;!-- 사진설명 끝 --&gt;&lt;/TBODY&gt;&lt;/TABLE&gt;&lt;/TD&gt;&lt;!-- 좌측일때 노출 시작 --&gt;&lt;!-- 좌측일때 노출 끝 --&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작고 얇은 일본배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 수군은 전함을 갖추지 못하고 수송선과 지휘선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쓸 수 있는 전략은 선상 육박전뿐이었다. 사실 일 수군은 일본에서 수군으로 훈련 받거나 해전을 경험한 일도 거의 없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하지만 이들은 120여년의 내전을 거치는 동안 잘 단련된 육군 정예부대였다. 칼과 창의 달인이었으며 군의 규율도 엄중했다. 부대별로 10~20% 정도의 조총병을 보유했다. 그때 일본의 조총 생산량은 전 유럽의 조총 생산량과 같았다. 지휘관들은 실전 경험이 많았으며 대부분 영주였다. 그래서 병사들의 충성심도 강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처럼 조일전쟁은 단순한 '왜란'이 아니라 세계 최강 해군과 육군국의 대전이었다는 것.조선 수군의 전력을 조일전쟁 4년 전에 일어난 영국과 스페인 무적함대의 '칼레 해전'과 비교한 자료도 흥미롭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는 판옥선이 거북선보다 훨씬 큰 위력을 발휘했으며,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 목선이었다는 것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이 해전의 승리를 이끈 영웅이긴 하지만 업적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알려진대로 23~24전 연승이 아니라 16전 13승 3패였다는 것.그런데 훗날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이순신을 '성웅'으로 만들면서 '거품'을 입혔고 거북선도 무적선함으로 돌변했다는 얘기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고두현 기자 &lt;/SPAN&gt;&lt;/STRONG&gt;&lt;A href=&quot;mailto:kdh@hankyung.com&quot; target=_blank&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U&gt;&lt;FONT color=#0000ff&gt;kdh@hankyung.com&lt;/FONT&gt;&lt;/U&gt;&lt;/STRONG&gt;&lt;/SPAN&gt;&lt;/A&gt;&lt;BR&gt;&lt;/P&gt;&lt;/DIV&gt;&lt;/DIV&gt;&lt;/DIV&gt;
&lt;DIV class=&quot;attach_write m-tcol-c&quot;&gt;
&lt;DIV class=board-box-line-dashed&gt;&lt;U&gt;&lt;FONT color=#0000ff&gt;&lt;/FONT&gt;&lt;/U&gt;&lt;/DIV&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이 책을&amp;nbsp; 읽고난 소감은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P class=&quot;btn_edit m-tcol-c&quot;&gt;&lt;A class=&quot;filter-70 m-tcol-p _btnDel&quot; href=&quot;http://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11763642&amp;articleid=2427#&quot; target=_blank&gt;&lt;/A&gt;&lt;/P&gt;
&lt;P&gt;&amp;nbsp; 이 책의 내용중 50%는 이미 몇년전에 다른 책에서 신물나게 다뤘던 얘기고,나머지 25%는 사실이고,나머지 25%는 저자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쓴 사실들이 대부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순신장군이 권력자들의 필요에 따라 성웅화되었다는 얘기는 전혀 사실무근. &lt;/P&gt;
&lt;P&gt;&lt;/P&gt;
&lt;P&gt;&amp;nbsp; 왜냐면,조선시대 숙종때나 정조시절 이순신장군의 추앙은 영국의 넬슨에 비하면 그야말로 떡고물 하나 던져주는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으며,박정희가 이순신을 추앙한 것은, 그 이전 일제시대부터 일본의 군신 &quot;토고 헤이하치로&quot;가 이순신을 군신으로 받든 이후,일본군장교출신이었던 박정희가 민족적 자부심을 이순신으로부터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이므로,권력유지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성웅화되었다는 것은 전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filter-30 board-box-line-dashed&quot;&gt;&amp;nbsp;&lt;/P&gt;
&lt;LI class=&quot;&quot;&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그리고 이 책에서,옥포해전부터,당항포해전,사천해전,부산포해전,한산해전을 그야말로 조선수군이 함포사격연습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강력한 함포와 판옥선때문에 만사형통이었던것처럼 서술하고있는데,참으로 한심함.&lt;/P&gt;
&lt;P class=&quot;filter-30 board-box-line-dashed&quot;&gt;&amp;nbsp;&lt;/P&gt;
&lt;LI class=&quot;&quot;&gt;
&lt;DIV class=h&gt;&amp;nbsp;&lt;/DIV&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저자가 군대에가서 총이나 한번 쏴보고 하는 소리인지 의문이 들 정도. 사천에서 이순신장군과 나대용이 중상을 입었고,부산포해전에선 정운장군이 적의 함포사격으로 머리가 날라가 전사했는데,이것이 단순히 적 전투선이 아닌 &lt;수송선&gt;에 함포사격연습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니...&lt;/P&gt;
&lt;LI class=&quot;&quot;&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amp;nbsp;&lt;/P&gt;
&lt;LI class=&quot;&quot;&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amp;nbsp;&lt;/P&gt;
&lt;LI class=&quot;&quot;&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영웅이 되는 것은 큰 전투 한번만 잘하면 되고 나머지 전투는 별볼일없었던 것처럼 말하는데,그럼 영국의 넬슨이 트라팔가해전에서 대승하기 전에, 2번에 걸친 다른 전투에서 한족 눈과 한쪽 팔을 잃은것과, 임진대전당시, 사천의 &lt;함포사격연습훈련&gt;에서 이순신장군과 나대용이 총상을 입고,부산포&lt;함포사격연습훈련&gt;에서 정운장군이 적포탄에 맞아 전사하고,또한,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을 비롯해서 이영남,배흥립장군등이 전사한 것은...고작 함포사격연습하다가 중상을 입거나 죽었으니 모두 바보 멍청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lt;/P&gt;
&lt;LI class=&quot;&quot;&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amp;nbsp;&lt;/P&gt;
&lt;LI class=&quot;&quot;&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또한,임진왜란을 조일전쟁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는 주장을 펴는데,이건 예전 드라마 &lt;불멸의 이순신&gt;에서 이미 &quot;7년전쟁&quot;,혹은 &quot;조일전쟁&quot;이란 용어를 썼었고,다른 무수한 책에서도 쓰고 있는 용어인데다가,오히려 요즘은 &lt;조중일 3국 대전&gt;,&lt;동아시아 국제대전&gt;,&lt;임진대전&gt;으로 명명하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마치 자신이 처음으로 &lt;조일전쟁&gt;이란 용어를 주장하는 것처럼 얘기하면서,오히려 임진대전을 평가절하하니 웃기기까지 함.&lt;BR&gt;&lt;BR&gt;&lt;BR&gt;&lt;/P&gt;
&lt;LI class=&quot;&quot;&gt;
&lt;DIV class=h&gt;
&lt;P class=&quot;btn_edit m-tcol-c&quot;&gt;&amp;nbsp;&lt;/P&gt;&lt;/DIV&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저자 백지원은 전투를 무슨 온라인게임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는 안든다.&lt;/P&gt;
&lt;LI class=&quot;&quot;&gt;
&lt;P class=&quot;comm m-tcol-c&quot;&gt;바다에 떠다니는 고기잡이 배정도라도 한번 타본 경험이 있는걸까? &lt;/P&gt;&lt;/LI&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북한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rubiconrv/7432627"/>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27</id>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4:00:04Z</updated>
	    <published>2009-11-10T14:00: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 &lt;/P&gt;
&lt;P&gt;우리나라&amp;nbsp; - 세대주&lt;/P&gt;
&lt;P&gt;북한 말 - &lt;FONT color=#00b0a2&gt;집주인&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lt;FONT color=#00b0a2&gt;반찬&lt;/FONT&gt;&lt;/P&gt;
&lt;P&gt;북한 말 - 건건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대중가요&lt;/P&gt;
&lt;P&gt;북한 말 - &lt;FONT color=#00b0a2&gt;인민가요&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00b0a2&gt;&amp;nbsp;&lt;/FONT&gt;&lt;/P&gt;
&lt;P&gt;우리나라 -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009999&quot; color=#ffffff&gt;오두막&lt;/FONT&gt;&lt;/P&gt;
&lt;P&gt;북한 말 - 마가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종업원&lt;/P&gt;
&lt;P&gt;북한 말 - &lt;FONT color=#00b0a2&gt;접대원&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등교시간&lt;/P&gt;
&lt;P&gt;북한 말&amp;nbsp;-&amp;nbsp;&amp;nbsp;&lt;FONT color=#009e25&gt;상학시간&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e4ff75&quot; color=#000000&gt;냉면&lt;/FONT&gt;&lt;/P&gt;
&lt;P&gt;북한 말 - 찬국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평야&lt;/P&gt;
&lt;P&gt;북한 말 -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cc9900&quot; color=#ffffff&gt;벌방&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세탁소&lt;/P&gt;
&lt;P&gt;북한 말 -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6600&quot; color=#ffffff&gt;빨래집&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채소&lt;/P&gt;
&lt;P&gt;북한말 -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6ff4d&quot; color=#000000&gt;남새&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출입문&lt;/P&gt;
&lt;P&gt;북한말 -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daed&quot; color=#000000&gt;나들문&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보조개&lt;/P&gt;
&lt;P&gt;북한말 -&amp;nbsp;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99dcff&quot; color=#000000&gt;오목샘&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박치기&lt;/P&gt;
&lt;P&gt;북한말 -&lt;FONT color=#0075c8&gt; 골받이&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a700&quot; color=#ffffff&gt; 오누이&lt;/FONT&gt;&lt;/P&gt;
&lt;P&gt;북한 말 - 오랍누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화장실&lt;/P&gt;
&lt;P&gt;북한 말 -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cc9900&quot; color=#ffffff&gt;위생실&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소풍&lt;/P&gt;
&lt;P&gt;북한 말 -&amp;nbsp;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a6ff4d&quot; color=#000000&gt;들놀이&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amp;nbsp;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99dcff&quot; color=#000000&gt;양계장&lt;/FONT&gt;&lt;/P&gt;
&lt;P&gt;북한말 - 닭공장&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횡단보도&lt;/P&gt;
&lt;P&gt;북한 말 -&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e573ae&quot;&gt;&amp;nbsp;&lt;/FONT&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quot; color=#61b977&gt; 건늠길&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나라 - &lt;FONT color=#ffaa00&gt;육교&lt;/FONT&gt;&lt;/P&gt;
&lt;P&gt;북한말 - 어김다리 
&lt;DIV class=autosourcing-stub&gt;
&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출처]&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42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본문스크랩] 북한말 (不滅星(불멸의 별))&lt;/FONT&gt;&lt;/U&gt;&lt;/A&gt; &lt;SPAN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lt;/SPAN&gt;&lt;STRONG style=&quot;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gt;작성자&lt;/STRONG&gt; &lt;A href=&quot;http://cafe.naver.com/bulmyul1.cafe?iframe_url=/CafeMemberNetworkView.nhn%3Fm=view%26memberid=lagoonuro&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통제사&lt;/FONT&gt;&lt;/U&gt;&lt;/A&gt;&lt;/P&gt;&lt;/DIV&gt;
&lt;P&gt;&lt;/P&gt;&lt;/SPAN&gt;
	    </content>
	    	</entry>
    	<entry>
	    <title>송상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rubiconrv/7432626"/>
		<id>tag:blog.daum.net,2009:rubiconrv.7432626</id>
	    <author>
		    <name>하여간</name>
	    </author>
	    <updated>2009-11-10T13:58:49Z</updated>
	    <published>2009-11-10T13:58: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1592년 4월13일 임진대전 개전시 일본선봉군이 동래성을 지키던 송상현에게 항복을 종용하고 이에 송상현이 화답하며 한 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고니시 유키나가 :전즉전의 부전가의도 &lt;/P&gt;
&lt;P&gt;&amp;nbsp;(싸우겠다면 싸울 것이로되 싸우지않겠다면 길을 빌려달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송상현 : 전사이 가도난&lt;/P&gt;
&lt;P&gt;&amp;nbsp;(싸워죽긴 쉬워도 길을 빌려주긴 어렵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lt;IMG id=userImg4663129 style=&quot;WIDTH: 547px; HEIGHT: 800px&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click=popview(this) src=&quot;http://cafefiles.naver.net/data26/2007/11/4/264/b5bfb7a1bacebcf8c0fdb5b5_bab8b9b0_c1a6392c8a3_b9aec8adc_tjdwndehwjr.jpg&quot;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4663129)&quot;,200)' name=cafeuserimg&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9a54ce&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9a54ce&gt;&quot;&lt;/FONT&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궁서&quot;&gt;&lt;FONT color=#9a54c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외로운 성에 달이 흐려지고&lt;/SPAN&gt;&lt;/FONT&gt;&lt;/SPAN&gt;&lt;/P&gt;
&lt;P&gt;&lt;FONT color=#9a54ce&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궁서&quot;&gt;&lt;FONT color=#9a54c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른 성에는 기척도 없구나&lt;/SPAN&gt;&lt;/FONT&gt;&lt;/SPAN&gt;&lt;/P&gt;
&lt;P&gt;&lt;FONT color=#9a54ce&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궁서&quot;&gt;&lt;FONT color=#9a54c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군신의 의는 무겁고 부자의 정은 가벼우리 &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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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20px 0px 30px; PADDING-TOP: 0px; FONT-FAMILY: dotum&quot;&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wa16&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lt;/FONT&gt;&lt;/U&gt;&lt;/A&gt;&amp;nbsp;&lt;/P&gt;&lt;/DIV&gt;&lt;/SPAN&gt;&lt;/FONT&gt;&lt;/SPAN&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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