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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0:16:5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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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한문학의 태구 상촌 신흠 선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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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0:16:55Z</updated>
	    <published>2009-11-10T10:16: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한문학의 태두 상촌 신흠(象村 申欽) &lt;/P&gt;
&lt;P&gt;=한춘섭 광주권문화협의회 회장 겸 성남문화원장&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140CA6244AF8BD297066A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54&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54&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조선 시대 한문학의 태두, 신흠(申欽, 1566~1628) 선생. 본관 평산(平山). 자 경숙(敬叔). 호 현헌(玄軒)·경당(敬堂)·백졸(百拙)·남고(南皐)·현옹(玄翁)·상촌(象村)·방옹(放翁)이라 하였다. 시호 문정(文貞). 아버지는 개성도사 승서(承緖)이며, 어머니는 좌참찬 송기수(宋麒壽)의 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목숨을 살리고 대신 순절한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어머니 송씨(宋氏)가 가슴에 큰 별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 이튿날 공을 낳았는데, 이마가 넓고 귀가 컸으며, 눈은 샛별처럼 빛나고, 오른쪽 뺨에 탄환만한 붉은 사마귀가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585년 진사·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해에 별시문과에 급제했으나, 대사간이던 외삼촌 송응개(宋應漑)가 병조판서 이이(李珥)를 공박하려는 것을 말렸더니, 그때 정권을 쥔 동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경원의 훈도를 거쳐 광주향교의 훈도를 지내는 등 높은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재도 찰방(良才道察訪)으로 신립(申砬)을 따라 조령전투에 참가했고, 이어서 도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 정철은 공에게 삼남(三南)의 기무(機務)를 모두 맡기니, 영리한 아전과 법규에 익숙한 자 수십 명을 불러서 장부와 문서를 나누어 주어 일제히 읽게 하였다. 또한 군사와 백성들에게 불편한 일을 글로 올리게 하였는데 문서가 번잡하였고 하소연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공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묻고 손으로 판결하니 명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1599년에 장남 익성(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로 간택됨과 함께 동부승지에 오르고, 형조, 이조, 예조, 병조 참의와 대사간을 역임했다. 1601년 가선대부 예문관 제학에 이어 예조·병조참판, 홍문관 부제학, 성균관 대사성, 도승지, 예문관 제학, 병조참판, 도승지를 차례로 지냈다. 1604년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 이이첨 등 대북파는 선조의 적자(嫡子)이며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왕으로 옹립하고 반역을 도모했다는 구실로 소북파의 우두머리이자 당시의 영의정인 유영경을 사사(賜死)하는 등 소북파를 모조리 몰아냈다. 이어서 선조의 계비(繼妃)이며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와 그의 친정아버지 김제남(金悌男)을 몰아낼 궁리를 하던 중, 때마침 조령(鳥嶺)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죽인 이른바 ‘박응서(朴應犀)의 옥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에 연루된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등은 출세를 할 수 없는 서얼출신으로서 사회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중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대북파는 이들이 김제남과 반역을 도모했다고 허위 자백케 하여 김제남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강화 교동도에 위리안치 하고,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시켜 소사(燒死)하게 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1613년 계축년에 일어났으므로 계축화옥(癸丑禍獄=계축옥사)이라 한다.&lt;BR&gt;&lt;/P&gt;
&lt;P&gt;이 때 신흠은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어 김포 선영 밑에서 살았는데, 한 칸 초가에서 편안히 거처하며 집 이름을 ‘하루암(何陋菴)’이라 써 붙이고 유유자적한 삶의 자세로 일관하였다. 3년 후에 춘천으로 유배를 당하여 그곳에서도 신흠은 초가집을 짓고 ‘방암(放菴)’이라 하였다. 이러한 삶 속에서도 소박한 선비의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 낸 것이 있으니, “서까래 기나 짧으나 기둥이 기우나 틀어지나 / 두어칸 모옥(茅屋)이 적음을 비웃지 말라 / 어즈버 만산나월(萬山裸月)이 다 내 것인가 하노라.”하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로부터 5년 뒤, 인조반정(1623)으로, 광해군은 폐위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었다. 신흠의 운명은 바뀌어 인조 조정의 첫 이조판서가 되고, 홍문관, 예문관의 으뜸 자리에 오르니, 이른바 양관대제학을 겸한 막강한 자리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연달아 맡았다. 정묘호란(1627) 때에는 좌의정으로서 세자를 수행하여 전주로 피란하였으며, 9월 62세 나이로 영의정에 오른 후 질병을 무릅쓰고 오랑캐 사신을 접견하고 귀가하다가 쓰러져 수레에 실려 집에 돌아와서 별세하니 모든 사람들이 탄식하기를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어진 정승이 죽었으니 나라 일도 끝장이다.”하였고, 세자가 직접 상가에 와서 조문하였다. &lt;BR&gt;‘연려실기술’에 “집이 가난하여 간간이 꾸어 먹어도 끼니를 잇지 못하였으며, 거처하는 집과 자는 방이 기울고 허물어져서 집안사람들이 수리하기를 청하니, 공이 말하기를, ‘나라 일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집은 수리하여 무엇하느냐.’ 하였고, 죽을 때에도 의복이 한 벌밖에 없었다.”고 하였다.&lt;BR&gt;&lt;/P&gt;
&lt;P&gt;1651년(효종2)에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고, 문집으로 ‘상촌집’이 있다. ‘영창대군 신도비문과 묘지명’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묘소는 부인 전의 이씨와 함께 광주 퇴촌면 영동리 산 12-1번지에 있으며, 경기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묘비는 1628년(인조 6)에 건립되었는데 뒷면에 새겨진 비문은 그가 직접 지은 것이다. 1699년(숙종 25)에 건립된 신도비는 총 높이 335㎝의 대형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비례 감각과 세부적으로 생동감 있는 조각 표현 등이 뛰어난 작품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134C7264AF8BD8F75B4D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8px; CLEAR: both&quot; actualwidth=&quot;240&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24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신흠은 일찍이 학문에 전념하여 문명을 떨쳤고, 동인의 배척을 받았으나 선조의 신망이 두터웠다. 정주(程朱)학자로 이름이 높아, 월사 이정구(李廷龜), 계곡 장유(張維), 택당 이식(李植)과 함께 한문학의 태두로 손꼽히고, 조선 4대 문장가로도 칭송된다. 또한 임진왜란 전후로 폭증한 대명 외교문서의 작성, 시문 정리, 각종 의례 문서 작성에 참여하는 등 문운(文運)의 진흥에 크게 이바지 했다.&amp;nbsp; 이정구는 공의 신도비문에서 “붓을 잡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생각하지 않고 휘둘러대는 듯하면서도 전중(典重)한 글이 노련하게 작성되면서 한 점 하자도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문장이 시(詩)보다 훌륭하다고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런데 시를 보면 더욱 맑고 깨끗하여 아취가 있었으며, 남의 흉내를 일체 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니, 이런 측면에서는 역시 시가 문장보다 우월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신도비문)” 신흠은, 그의 청빈한 마음을 담아 이런 시조를 남기기도 했다.&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산촌(山村)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셰라&amp;nbsp; / 산골마을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구나&lt;BR&gt;&amp;nbsp;시비(柴扉)를 여지 마라, 날 찾즈리 뉘 이시리 / 사립문 열지마라. 이렇게 묻혀 사는 나를 찾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lt;BR&gt;&amp;nbsp;밤즁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긔 벗인가 하노라 / 다만 방중에 나타난 한 조각 밝은 달 그것만이 내 벗인가 하노라&lt;/P&gt;
&lt;P&gt;‘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한 편이다. 산촌에 은거하면서 청정한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은사(隱士)의 심경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은 1627년(인조5) 9월 4일, 영의정에 오른다. 하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른 신흠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였다. 일곱 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달아 여의고, 외가에서 외할아버지 송기수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으며 쓸쓸하게 성장하였다. 송기수가 여러 손자들을 가르치면서 ‘춘(春)’자를 내주면서 글을 짓게 하니 공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지만물 가운데 봄이 맏이다.”고 하자 송기수가 감탄하며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lt;BR&gt;&lt;/P&gt;
&lt;P&gt;공은 비록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친가는 물론 외가와 처가 모두 명문세가였고, 훗날 아들 익성이 선조 임금의 사위가 되기까지 하였으며, 마침내는 최고의 관직에 까지 올랐으니 막강한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사로운 욕심을 내지 아니하여 양식을 빌려 먹어야 했고, 그나마도 자주 끼니를 거를 만큼 곤궁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흠잡을 데 없는 그의 가문을 당대 제일로 칭송하였다. &lt;BR&gt;&amp;nbsp; &lt;BR&gt;신흠의 신도비는 좌의정인 월사 이정구가 짓고, 영의정 심열(沈悅)이 글씨를 썼으며, 이조판서 김상용(金尙容)이 전액(篆額)을 썼는데 이런 내용이 전한다&lt;BR&gt;“(생략)지성으로 우애하며 친족과 화목하게 지냈다. 홀몸이 된 누님과 30년 동안 같이 살면서 어미처럼 섬겼는데, 집안에 시끄러운 말이 전혀 없었다. 스스로 왕실과 혼인을 맺은 일 때문에 늘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큰 며느리를 맞을 때 집이 좁고 누추하여 측근에서 관례에 따라 수선할 것을 청했는데, 공이 말하기를 ‘집이 훌륭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를 행하기는 충분하다’며 끝내 기둥하나도 바꾸지 않았다. (중략) 빈곤한 생활을 태연히 견디면서 즐기고 좋아하는 욕심이 전혀 없었으며, 일찍이 집안 일에 마음을 쓴 일이 없었다. 산나물에 껍질만 벗긴 조밥을 먹어도 괴로워하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싫어하였기에, 문을 닫고 앉아있으면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환란을 만나면 지조와 행실을 더욱 굳게 지켰고, 귀하고 높은 자리에서는 가득찬 데 따르는 화를 더욱 경계하였다.”&lt;BR&gt;&lt;/P&gt;
&lt;P&gt;신흠은 아들 둘과 딸 다섯을 두었다. 장남 익성은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져 부총관에 올랐고, 차남 익전(翊全)은 도승지에 이르렀다. 손자로는 대사간 면(冕), 함경도 도사 최(最), 이조판서 정(晸)이 있어, 후세가 매우 번창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桐千年老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lt;BR&gt;每日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lt;BR&gt;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 있고&lt;BR&gt;柳經百別又新枝(유경백열우신지)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lt;/STRONG&gt;&lt;/P&gt;
&lt;P&gt;=상촌 신흠 선생의 야언(野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 다음주 “큰 역사의 숨소리가 있는 남한산성” 32편에서는 ‘천선(天仙)의 여류 문인, 허난설헌’에 대해 소개합니다.&gt;&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남한산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한산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한문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문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한춘섭원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춘섭원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상촌 신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상촌 신흠&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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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심한 배려로 동료 생명구한 분당경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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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10T10:05:58Z</updated>
	    <published>2009-11-10T10:05:5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뇌졸중 증상 최단시간내 치료 받아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5.uf.daum.net/image/143FFF254AF8BC1F35499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left; CLEAR: both;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315&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315&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진=분당경찰서 상황실 최성권 경위&lt;BR&gt;&lt;/P&gt;
&lt;P&gt;【성남】삶의 운명을 갈라 놓을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직장 동료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한 경찰관의 삶을 새롭게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lt;BR&gt;제64주년 경찰의 날인 지난 10월 21일 새벽 1시 30분께 분당경찰서 야간 당직 상황실에서 근무중인 수사과 소속 황병희(57) 경위는 갑자기 뒷 목이 뻐근해 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lt;BR&gt;좀 쉬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이때 황 팀장과 같이 당직 근무를 하던 동료 직원인 최성권(46) 경위는 이러한 행동을 보인 동료를 예사롭게 지나치지 않았다.&lt;BR&gt;평소 같으면 휴식을 취하라고 했을 터인데 최 경위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아 황 경위의 옆에서 상태를 지켜봤다.&lt;BR&gt;정신이 혼미하고 걸음걸이가 부정확하며 발음 또한 어눌해 지는 황 경위의 모습을 지켜본 최 경위는 아니다 싶어 119에 급히 연락을 취하고 가족에게도 긴급 연락을 취했다. &lt;BR&gt;오전 2시 4분께 119 구급대가 도착하고 구급대가 황 경위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사람이나 장소 그리고 시간 개념이 떨어지고 정신 혼란 증상과 언어구사 능력이 떨어지는 뇌졸중 최기 증상인 것을 확인한 뒤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최초 이상 증상 발견 55분 만에 의료진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lt;BR&gt;당시 119구급대 이병선 반장은 “뇌졸중 초기 증상을 보여 구급차 안에서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며 최대한 단시간안에 도착하려 했다”고 전했다.&lt;BR&gt;황 경위는 응급실에서 다행히 출혈이 없는 상태에서 왼쪽 중대뇌동맥이 막인 것으로 CT촬영결과 확인돼 경정맥혈전용해제를 투여 받고 오전 3시 41분께 경동맥혈전용해술을 시행해 막힌 혈관을 뚫었다.&lt;BR&gt;병원측은 황 경위의 현 상태에 대해 “말과 행동에 가벼운 불편암을 느끼는 정도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상태”라며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lt;BR&gt;이어 “환절기 등 감기환자가 많은 기기에 뇌졸중 환자도 증가하는 게 보통이다”며 “뇌졸중 증상이 있을 때는 좋아지든 나빠지든 상관없이 무조건 빠른 시간안에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lt;BR&gt;또한 119구급대와 병원측은 “세심하게 관찰하고 빠른 조치를 취한 경찰 동료의 세심함이 평생 장애나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던 상황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킨 주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lt;BR&gt;제64주년 경찰의 날인 당일 기념식에서 본청장 표창을 받기로 돼 있었던 황병희 경위는 현재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동료직원의 세심한 배려에 다시한번 감사의 뜻을 표했다.&lt;BR&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뇌졸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뇌졸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동료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료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119구급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119구급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분당서울대병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분당서울대병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분당경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분당경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최성권경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최성권경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황병희경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황병희경위&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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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남수정경찰, 업무유공자 등 표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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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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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10:01:44Z</updated>
	    <published>2009-11-10T10:01: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1.uf.daum.net/image/1834E0264AF8BB666BA0B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71&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71&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남】성남수정경찰서는 9일 2층 서장실에서 참모회의 후 업무유공자에 대한 표창수여식 및 전화친절도 저조자에 대한 교양을 실시했다. 이날 표창수여자는 수사과 경사 정진봉 등 5명이며, 특히 올 하반기 경기청에서 실시한 전화친절도에서 100점 만점을 받은 민원실 정연영 순경과 단대지구대 김아름 순경이 표창장을 받았다. 한편 성남수정경찰은 전화친절도에서 올 상반기 경기청 1위와 전국 3위를 차지한 바 있다.&lt;/P&gt;
&lt;P&gt;&lt;BR&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성남수정경찰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남수정경찰서&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10) 안중근 의사에 대한 숭모의 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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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sd1919.15956582</id>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9T18:07:24Z</updated>
	    <published>2009-11-09T18:07: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10) 안중근 의사에 대한 숭모의 글 &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글쓴이 = 윤종준 성남문화원 상임연구위원&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405911E4AF7DAC237181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52&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52&quot; /&gt;&lt;/P&gt;
&lt;P&gt;&amp;nbsp;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안중근기념실&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2009년 11월 08일 (일) 16:10:23&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기호일보&lt;/FONT&gt; &lt;A href=&quot;http://www.kihoilbo.co.kr/news/mailto.html?mail=webmaster@kihoilbo.co.kr&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FONT color=#666666 face=arial&gt;webmaster@kihoilbo.co.kr&lt;/FONT&gt;&lt;/U&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U&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U&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
&lt;P&gt;장부(丈夫)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lt;BR&gt;의사(義士)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lt;BR&gt;&lt;BR&gt;(안중근 의사 옥중 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4.uf.daum.net/image/147C5E1A4AF7DB195264A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left; CLEAR: both;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320&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320&quot; /&gt;&lt;/P&gt;
&lt;P&gt;&amp;nbsp;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총살한 뉴스는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우리 한민족의 정기가 살아 있어 독립의지가 확고함을 만방에 선포한 쾌거였다. 그리해서 세계의 언론은 이에 대한 사실 보도와 아울러 논평과 추모의 시문이 쏟아져 나왔다.&lt;BR&gt;그 중에서도 한국을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일본에서까지도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일본의 정계는 발칵 뒤집어졌고, 한국과 중국에서는 통쾌한 환호를 보냈다. 이 때 일본은 러시아에 그 책임을 돌려 안 의사와 우덕순 등의 관련 인물을 체포해 일본에 인도했다. &lt;/P&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kihoilbo.co.kr/news/photo/200911/357767_51961_408.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여순감옥 전시실의 안중근 의사에게 내린 훈장증&lt;/P&gt;
&lt;P&gt;&lt;BR&gt;한국의 독립투사들과 문인, 학자들은 안 의사의 의거에 격찬의 시를 바쳤고,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원세개나 중국의 국부인 손문, 주은래와 장개석 등은 정치적 입장과 견해를 달리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의사에 대한 숭모의 마음은 한결 같아서 송축시를 지어 추모했다. 이등박문이 총살되므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택영은 의병장 안중근의 ‘나라원수 갚은 소식을 듣고’라는 송축시를 지었다.&lt;/P&gt;
&lt;P&gt;&amp;nbsp; 황해도 장사 두 눈 부릅뜨고/ &lt;BR&gt;&amp;nbsp; 나라원수 죽였다네, 염소새끼 죽이듯이/ &lt;BR&gt;&amp;nbsp; 안 죽고 살았다가 이 기쁜 소식을 들을 줄이야/ &lt;BR&gt;&amp;nbsp; 덩실덩실 춤노래 한바탕 국화조차 우쭐거리네./ &lt;BR&gt;&amp;nbsp; 해삼위라 큰 매 하나 하늘 쓸고 돌더니만/ &lt;BR&gt;&amp;nbsp; 하르빈 역 머리에 벼락불 떨어졌네/ &lt;BR&gt;&amp;nbsp; 육대주 영웅 호걸 몇 분이나 되시는지/ &lt;BR&gt;&amp;nbsp; 모두들 가을 바람에 수젓가락 떨구었으리. (한시로 지어진 것을 노산 이은상 번역)&lt;BR&gt;&amp;nbsp; &lt;BR&gt;안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수감돼 재판을 받고 순국하기까지 중국인들은 안 의사를 숭모하는 마음이 더욱 절정을 이루었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는 동안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인이나 러시아인 변호사의 변호가 허락되지 않으므로 평양에서 달려왔던 안병찬 변호사는 안 의사를 면회하고 저녁에 여관으로 들어갔으나 울분이 북받쳐 이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한 접시 가량의 피를 토하고 30분 가량 기절해 의식을 잃고 말았다. 사람들이 놀라 일본인 의사를 부르니 일본인 의사 중도(中島)가 와서 진찰하고 마음의 화가 심해 그런 것이라고 했다.&lt;BR&gt;&lt;BR&gt;중국의 양계초는 ‘추풍단등곡(秋風斷藤曲)’을 지었는데, “그 사나이 지척에서 발포하니, 정계의 거물이 피를 쏟았네. 대사를 마치자 웃음소리 터지니 장하다 그 모습, 해와 달 마냥 빛나리.”라고 했고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내 무덤 의사의 무덤과 나란히 있으리”라고 죽은 후까지도 안 의사를 숭모하겠노라는 마음을 나타냈다. 또 장태염은 안 의사를 ‘아시아의 제일 의사’로 칭송했다.&lt;BR&gt;&lt;BR&gt;신규식은 안 의사의 영전에 “공적(公敵) 이등박문 따위가 몇 천 몇 백으로 부지기수로다. 비록 우리의 안 장군은 귀로에 올랐어도 어이 제2, 제3의 안 장군이 없으리오.”했고, 박두진, 김현승, 주지훈, 박목월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숭모의 시를 바치거나 안 의사가 남긴 글을 작품으로 썼다. 박은식은 1914년 ‘안중근’이라는 책자를 상하이 대동서국에서 발행했고, 곧 이어 정원(鄭沅)이 쓴 ‘안중근전’이 장사에서 출판됐다. 중국에서는 신해혁명과 5·4운동 이후로부터 북평, 천진, 무한, 장사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안중근 연극이 공연됐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망명한 한국학자 계봉우가 1914년 6월부터 8월까지 권업신문에 ‘안의사 전기’를 연재했고, 미국의 하와이에서는 홍종표가 쓴 ‘대동위인 안중근전’이 신한국보 신문사에서 발행하기도 했다.&lt;BR&gt;&lt;BR&gt;&amp;nbsp; &lt;BR&gt;&amp;nbsp;&amp;nbsp; # 이재명 의사의 이완용에 대한 응징&lt;/P&gt;
&lt;P&gt;한편, 이등박문과 가장 밀접한 인물인 이완용에 대한 응징도 1909년에 이루어졌다.&lt;BR&gt;&lt;BR&gt;이등박문은 1875년의 청일전쟁에서 청군의 북양함대를 괴멸시켰을 뿐 아니라 요동반도와 대만 등을 빼앗아 갔고 군비 배상금으로 2억 냥을 빼앗아 갔다. 중국의 이홍장은 이등박문에 대해 “섬나라 이등박문의 조롱을 받은 것이 일생 일대의 최대 치욕”이었다고 했으니, 중국인들에게 가장 미움을 받는 존재였다. 이러한 이등박문이 안 의사에게 저격당했으니 중국인들의 원수를 대신 갚아준 셈이었다.&lt;BR&gt;&lt;BR&gt;이등박문과 관련해 우리 민족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준 인물이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이다. 이완용은 1907년 이등박문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됐고, 헤이그 밀사사건이 발생하자 고종황제의 양위를 요구하는 등 친일에 앞장섰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총살한 즉시 조문사절단을 꾸려 이등박문의 시신이 있는 중국 대련(여순)으로 달려갔다. 이완용은 을사5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평소에도 늘 “이또오는 나의 스승이다.”하고 공언하며 다녔을 정도였다. 이런 민족의 반역자에게도 역시 응징의 날이 오고야 말았으니, 1909년 12월 22일 현재 명동성당 자리에 있던 종현 가톨릭 성당에 이완용이 나타나자 이재명은 이완용을 암살하고자 시도했다. 이재명은 18세에 선교사를 따라 미국까지 유학했으며 1907년 헤이그밀사 이준 대사의 순국소식을 듣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국지사들의 회의에서 역적 처단을 자원하고, 귀국한 후에는 동지들과 함께 국사를 도모하던 중에 1909년 12월 22일 명동천주교당에서 거행되는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2세의 추도식에 이완용이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lt;BR&gt;&lt;BR&gt;성당 문 밖에서 군밤장사를 가장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인력거를 타고 나오는 이완용을 비수로 찔렀으나 실패하고 체포돼 경성형무소에서 1910년 9월 30일 2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그 역시 최후의 진술을 통해 대한의 의로운 정기를 밝히니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나의 생명을 빼앗지마는 국가를 위한 나의 충성된 혼과 의로운 혼백은 가히 빼앗지 못할 것이니 한 번 죽음은 아깝지 아니하거니와 생전에 이루지 못한 한을 기어이 설욕 신장(伸張) 하리라.”고 했다. 이재명 의사(義士)에게 치명상을 입고도 이완용은 1910 8월 한일합방에 앞장서 일본 정부의 백작이 됐다.&lt;BR&gt;&lt;BR&gt;지난해, 이완용의 흉부외과 수술기록이 발견돼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완용은 등 쪽에서 공격을 받아 왼쪽 2번째 갈비뼈를 관통하는 자상과 오른쪽 등 아래 부분을 관통하는 자상을 입었다고 보도됐다. 이완용은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에서 일본인 의사의 치료를 받고 53일간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17EFE1B4AF7DB7F3F8DA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71&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71&quot; /&gt;&lt;/P&gt;
&lt;P&gt;=&amp;nbsp;옥중 안 의사 글씨&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시조 시인인 한춘섭 현 성남문화원장의 숭모시를 소개한다.&lt;/P&gt;
&lt;P&gt;&amp;nbsp; &lt;/P&gt;
&lt;P&gt;제목 - 억조 창생(億兆蒼生) 결의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금이 간 왕조(王朝)의 태(胎) 항아리 속에는&lt;BR&gt;망국의 비애로움&lt;BR&gt;먹먹히 고여지고,&lt;BR&gt;칼바람&lt;BR&gt;옥죄인 생명&lt;BR&gt;하르르 지던 오얏 꽃&lt;/P&gt;
&lt;P&gt;약탈자 하늘에도 달과 별이 떴으련만,&lt;BR&gt;아, 차마 못 믿을레라&lt;BR&gt;국모(國母)는 버히시고,&lt;BR&gt;살기 찬 &lt;BR&gt;부시부엉이&lt;BR&gt;저지른 짓 모르네&lt;/P&gt;
&lt;P&gt;조국에 돌아오고픈 빼앗긴 목록(目錄)들이&lt;BR&gt;아직도 녹슨 더께&lt;BR&gt;눈썹 마저 세었는 데&lt;BR&gt;해안선&lt;BR&gt;구겨진 지도&lt;BR&gt;독도(獨島) 내어 달라하네&lt;/P&gt;
&lt;P&gt;애국의 붉은 핏물 마디 잘린 손 도장은&lt;BR&gt;기도문(祈禱文)을 새긴 채&lt;BR&gt;바람 벽에 걸어 두면&lt;BR&gt;겨레여,&lt;BR&gt;의(義)로운 분노&lt;BR&gt;심장 다시, 뛰나니&lt;/P&gt;
&lt;P&gt;나라 사랑 열사(烈士)들 한 맺힌 어제가&lt;BR&gt;아직도 저릿저릿&lt;BR&gt;전기처럼 오고 있어&lt;BR&gt;동지여&lt;BR&gt;대한 동지(同志)여,&lt;BR&gt;억조창생 결의여!&lt;BR&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안중근의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안중근의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성남문화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남문화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윤종준상임연구위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윤종준상임연구위원&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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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남경찰, 게임장 단속 관련 뇌물수수 혐의 구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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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9T17:59:40Z</updated>
	    <published>2009-11-09T17:59: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성남】불법 게임장 업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성남지역 현직 경찰관이 구속됐다.&lt;BR&gt;8일 지역경찰 등에 따르면 성남지역 A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B(50)씨는 지난 6일 오전 수원지검 평택지청 검찰수사관들에 의해 뇌물수수 혐의로 긴급체포돼 당일 수원지법 평택지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됐다.&lt;BR&gt;지난 8월 초에 안성경찰서에서 A경찰서로 전입한 것으로 알려진 B씨는 C경찰서 근무 당시 게임장 단속 관련 부서에 있으면서 게임장 업주로부터 1천200여만 원과 양주 3병 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lt;BR&gt;한편, 평택지청은 지난 6월께 평택과 안성지역에서 불법 오락실을 운영한 업주와 유통업자, 오락실 업자에게 단속정보를 제공해 주고 그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전직 경찰관 3명 등 총 299명을 무더기 적발한 바 있다.&lt;BR&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뇌물수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뇌물수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게임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게임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불법오락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불법오락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성남경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남경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평청지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청지청&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남국제청소년관현학 축제, 13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sd1919/15956580"/>
		<id>tag:blog.daum.net,2009:sd1919.15956580</id>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9T17:56:28Z</updated>
	    <published>2009-11-09T17:56: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1413261D4AF7D98A1A02C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81&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81&quot; /&gt;&lt;/P&gt;
&lt;P&gt;&lt;BR&gt;【성남】성남 국제청소년 관현악 축제와 100여 회의 국내외 연주회를 통해 한국 최정상 청소년교향악단으로 평가 받고 있는 성남청소년교향악단(상임지휘자 박용준)이 마련한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가을 음악회’가 오는 13일 오후 7시 30분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다.&lt;BR&gt;창단 10주년을 기념하고 제26회 정기연주회를 겸한 이번 무대는 성남청소년교향악단과 소프라노 유미자 교수, 테너 강성구 교수, 메조소프라노 서윤진 교수, 베이스 김효장 교수, 수내고 1학년 클라리넷 김우현 군이 출연한다.&lt;BR&gt;이날 음악회는 교향악단의 ‘박쥐 서곡’과 ‘고향의 노래’, ‘얼굴’, ‘거문고 뱃노래’, ‘라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오 솔레미오’ 등 주옥같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을 선물하는 감동의 무대를 마련한다. &lt;BR&gt;성남청소년교향악단은 1998년 12월 창단해 민간단체의 재정·행적적 어려움속에 대학생 위주로 조직돼 있는 타 청소년교향악단과는 달리 초·중·고·대학생까지 폭넓은 단원이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lt;BR&gt;지난 2005년에 경기도청 비영리단체로 지정받았으며 그 동안 성남시의 대표 예술행사인 성남문화예술제, 신년음악회, 교향악축제와, 일본, 대만, 캐나다 청소년교향악단들과도 상호 방문 교류음악회를 통해 명실공히 성남 청소년 문화사절단으로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lt;/P&gt;
&lt;P&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클라리넷&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클라리넷&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김우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우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성남청소년관현악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남청소년관현악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박용준 상임지휘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용준 상임지휘자&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남시 영세자영업자 초과납부 주민세 환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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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9T17:55:03Z</updated>
	    <published>2009-11-09T17:55: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BR&gt;【성남】성남시는 올해 말까지 영세 자영업자들이 초과 납부한 주민세를 일괄 환부한다고 9일 밝혔다.&amp;nbsp; &lt;BR&gt;이번에 환부되는 주민세는 정부의 ‘생활공감정책’ 일환으로 세법 등 제도를 몰라 초과 납부된 소득세가 있음에도 이를 찾아가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초과납부 소득세 환급 결정에 따른 조치며, 소득세에 부가되는 주민세(소득세의 10%)를 환부한다.&lt;BR&gt;성남시 지역 내 환부대상자는 외판원, 학습지 교사, 음료품 배달원 등 실적에 따라 회사에서 소득을 지급받는 영세 자영업자 총 6천436명이며, 환부금액은 총 5천100여만 원에 이른다.&amp;nbsp; &lt;BR&gt;시는 대상자에게 지난달 하순경 환부 안내문을 일괄 발송했다.&lt;BR&gt;환부신청은 위택스 홈페이지(&lt;A href=&quot;http://www.wetax.go.kr&quot; target=&quot;_blank&quot;&gt;www.wetax.go.kr&lt;/A&gt;) 또는 각 구청 세무과(수정☎031-729-5151~4, 중원☎031-729-6151~4, 분당☎031-729-7153~4)로 본인명의의 은행계좌 번호와 함께 신청하면 된다.&lt;BR&gt;환부금은 신청 후 10일 이내에 본인계좌로 입금된다.&amp;nbsp;&amp;nbsp;&amp;nbsp; &lt;/P&gt;
&lt;P&gt;&lt;BR&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주민세환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민세환부&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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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한산성 참맑은 물-수돗물 생수 공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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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9T17:53:55Z</updated>
	    <published>2009-11-09T17:53: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7.uf.daum.net/image/1807D51D4AF7D89757C46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left; CLEAR: both;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155&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155&quot; /&gt;&lt;/P&gt;
&lt;P&gt;&lt;BR&gt;【성남】수돗물을 PET병에 담아 생수처럼 마실 수 있는 ‘남한산성 참 맑은 물’이 오는 16일부터 생산·공급된다.&lt;BR&gt;성남시는 전국 최고의 PET병 수돗물 생산을 위해 지난 2월부터 10개월여간 총 5억5천여만 원을 투입, 수정구 복정정수장에 PET병물 생산 자동화설비, 활성탄 및 혼합산화제 등의 설비를 갖춘 280㎡ 규모의 병입수 생산시설을 지난달 30일 완공했다고 8일 밝혔다.&lt;BR&gt;수돗물을 브랜드화한 ‘남한산성 참 맑은 물’은 일반 공급용 350㎖와 500㎖, 비상급수용 1.8ℓ 등 3종으로 생산된다. &lt;BR&gt;시는 이번 PET병 수돗물을 일주일에 5천병, 연간 20만 병을 생산해 각 구청 민원실 냉장 쇼케이스 등에 비치,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급하며, 단수시 비상급수로도 활용할 계획이다.&lt;BR&gt;또 시민단체나 공공기관 등에서 각종 행사 개최 시 일주일 전에 신청(성남시청 정수과 ☎031-729-4155)하면 최대 2천 병까지 무상지원하며, 공공기관 대규모 행사는 사전 협의 후 공급할 계획이다.&lt;BR&gt;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믿고 마실 수 있는 음용수 제공을 위해 수돗물을 브랜드화했다”며 “이번 PET병 수돗물 생산·공급을 통해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에 대한 시민 인식을 높이고, 세계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 중인 남한산성 홍보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lt;BR&gt;한편, 이번에 성남시 수돗물 상표명으로 채택된 ‘남한산성 참 맑은 물’은 지난 5월, 시민들을 대상으로 명칭을 공모해 총 419건의 응모작 중 브랜드심사위원회 및 시정조정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선정한 상표명이다.&lt;BR&gt;다음달 중 상표출원 및 등록 예정이며, 앞으로 PET 라벨지 등 성남시 수돗물 홍보 브랜드로 널리 사용될 계획이다.&lt;/P&gt;
&lt;P&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수돗물생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수돗물생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남한산성 참맑은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한산성 참맑은물&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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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당 이매파출소 6일 개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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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9T17:51:05Z</updated>
	    <published>2009-11-09T17:51: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2001A61E4AF7D7EF232B6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gt;&lt;/P&gt;
&lt;P&gt;&lt;BR&gt;【성남】분당구 이매1·2동과 삼평동 일부 지역을 관할하는 이매파출소가 6일 개소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주민 친화적 치안행정을 펼쳐 나가기로 했다.&lt;BR&gt;이매 파출소는 지난 1993년 매송파출소로 개소한 뒤 10여 년간 이매동 지역치안 거점 역할을 담당해 오다 지난 2003년 10월 지구대 개편으로 치안센터로 그 동안 활용돼 왔다.&lt;BR&gt;분당경찰서는 그동안 주민 밀착형 치안서비스인 ‘풀뿌리 치안’을 확립하고 판교신도시 치안수료에 대응키 위해 이번에 이매파출소를 신설했으며, 향후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수내·구미파출소 신설을 추진키로 했다.&lt;BR&gt;이날 개소식에는 고흥길 국회의원과 김대진 성남시의회 의장, 이종우 분당구청장을 비롯해 각 기관 및 단체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lt;BR&gt;송갑수 분당경찰서장은 “이번 이매파출소 개소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찰치안행정을 펼쳐 주민들이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경찰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lt;/P&gt;
&lt;P&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분당이매파출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분당이매파출소&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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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남권 채용박람회 오는 17일 성남실내체육관서 개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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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9T17:49:25Z</updated>
	    <published>2009-11-09T17:49: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BR&gt;【성남】‘2009 하반기 성남권 채용박람회’가 오는 17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중원구 성남동 소재 성남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다.&lt;BR&gt;이번 채용박람회는 취업난을 겪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에게는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구인난을 겪고 있는 업체에게는 적합한 인력을 지원하기 위해 개최되며, 경기도와 성남시가 주관하고 경기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가 후원하며 인크루트㈜가 진행·운영한다.&lt;BR&gt;이번 박람회에는 성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50여 개의 구인 기업과 1천여 명의 구직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lt;BR&gt;취업 또는 이직 희망자는 직종, 연령, 지역제한 없이 누구나 채용 박람회 당일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행사장에서 원하는 기업의 면접을 볼 수 있다.&lt;BR&gt;인크루트㈜는 행사 당일 구인·구직자를 위한 면접법, 이력서 작성법, 이미지 컨설팅을 무료로 실시할 예정이다.&lt;BR&gt;또한 중기종합고용지원센터는 참여자에 대한 직무적성검사, 직업상담, 각종 취업 관련 장려금 안내 등 행사 진행을 돕는다.&lt;BR&gt;아울러 박람회장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구인·구직자의 편의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온라인(&lt;A href=&quot;http://www.intoin.or.kr/ggjob&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intoin.or.kr/ggjob&lt;/A&gt;)도 병행 운영된다.&lt;BR&gt;기타 자세한 사항은 성남시 주민생활지원과 고용지원팀(☎031-729-2855)로 문의하면 된다.&lt;BR&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성남권 채용박람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남권 채용박람회&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성남시 중원구 소재 금상초교 e-푸른성남 영어체험센터 개관식 가져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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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4T13:59:12Z</updated>
	    <published>2009-11-04T13:59: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성남시 중원구 소재 금상초교 e-푸른성남 영어체험센터 개관식 가져 &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2009년 11월 03일 (화) 15:00:28&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김대성 기자&lt;/FONT&gt; &lt;A href=&quot;http://www.kihoilbo.co.kr/news/mailto.html?mail=sd1919@kihoilbo.co.kr&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FONT color=#666666 face=arial&gt;sd1919@kihoilbo.co.kr&lt;/FONT&gt;&lt;/U&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U&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U&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00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kihoilbo.co.kr/news/photo/200911/357160_51765_122.jpg&quot; width=300&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gt;&lt;FONT color=#306f7f&gt;&lt;/FON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성남】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소재 금상초등학교가 지난 2일 ‘e-푸른성남 영어체험센터’ 개관식을 가졌다.&lt;BR&gt;&lt;BR&gt;이 체험센터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문을 연 분당구 금곡동 청솔초교와 수정구 산성동 창곡중에 이어 세 번째 시설이다.&lt;BR&gt;&lt;BR&gt;시가 17억4천만 원의 예산을 성남교육청에 지원해 이번에 금상초교에서 문을 연 ‘e-푸른성남 영어체험센터’는 12개 교실을 리모델링해 IT월드관, 영어전용도서관, 생활문화·가족문화·공공문화·직업문화·역사문화·세계여행체험실 등 다양한 상황별 문화체험실과 멀티다목적실 등 실용영어체험 학습공간을 마련했다.&lt;BR&gt;&lt;BR&gt;교육 대상은 수정구와 중원구 지역 내 초등학생이며, 원어민 보조교사와 한국인 영어강사가 일일체험, 방과후학교, 국제화 페스티벌, 주말영어광장, 여름·겨울 캠프, 학부모영어교실 등 8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lt;BR&gt;&lt;BR&gt;또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컴퓨터 화상시스템을 통해 호주 현지의 원어민 강사와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호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lt;BR&gt;&lt;BR&gt;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이대엽 시장은 인사말에서 “미래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을 위해 성남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e-푸른성남 영어체험센터’ 개관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e-푸른성남 영어체험센터는 지구촌 시대에 발맞춰 국제화 마인드를 키우고 세계 공용어인 영어교육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면서 학생들이 실용영어 교육을 효과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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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남시, 판교보건지소 4일 개소 운중동 주민센터 3층 마련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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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4T13:58:24Z</updated>
	    <published>2009-11-04T13:58: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성남시, 판교보건지소 4일 개소 운중동 주민센터 3층 마련 &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2009년 11월 03일 (화) 15:32:38&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김대성 기자&lt;/FONT&gt; &lt;A href=&quot;http://www.kihoilbo.co.kr/news/mailto.html?mail=sd1919@kihoilbo.co.kr&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FONT color=#666666 face=arial&gt;sd1919@kihoilbo.co.kr&lt;/FONT&gt;&lt;/U&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U&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U&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성남】성남시는 판교 입주민의 다양한 공공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분당구보건소 판교보건지소를 운중동 주민센터 3층에 마련하고 4일 개소식을 갖는다.&lt;BR&gt;&lt;BR&gt;판교보건지소는 491㎡ 규모에 민원실, 일반진료실, 예방접종실, 임산부실, 구강보건실, 건강증진센터, 스트레스관리실, 보건교육실 등 8개 실을 갖추고 지역 주민의 보건의료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된다.&lt;BR&gt;&lt;BR&gt;판교보건지소는 흉부외과 전문의인 보건지소장과 간호사, 정신보건간호사, 운동처방사, 영양사, 치위생사 등 전문 인력 15명이 상주하며, 보다 질 높은 예방 위주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lt;BR&gt;&lt;BR&gt;특히 판교보건지소는 기존 보건소와 차별화해 스트레스관리실을 별도 운영한다. 스트레스관리실은 지역 주민들의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근육 이완요법, 명상, 기트레킹, 스트레스 다스리는 방법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민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조기 발견하고 명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lt;BR&gt;&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판교보건지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판교보건지소&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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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0) 실학의 중심지 옛 광주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sd1919/15956573"/>
		<id>tag:blog.daum.net,2009:sd1919.15956573</id>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4T13:56:32Z</updated>
	    <published>2009-11-04T13:56:3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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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view_t&gt;(30) 실학의 중심지 옛 광주 &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한춘섭 광주문화권협의회장 겸 성남문화원장&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120B4D134AF1091F5675B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2009년 11월 02일 (월) 14:23:34&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기호일보&lt;/FONT&gt; &lt;A href=&quot;http://www.kihoilbo.co.kr/news/mailto.html?mail=webmaster@kihoilbo.co.kr&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 &lt;/FONT&gt;&lt;FONT color=#666666 face=arial&gt;webmaster@kihoilbo.co.kr&lt;/FONT&gt;&lt;/U&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U&gt;&lt;IMG src=&quot;http://www.kihoilbo.co.kr/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5&gt;&lt;U&gt;&lt;/U&gt;&lt;/TD&gt;&lt;/TR&gt;
&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
&lt;P&gt;# 실사구시의 학문 실학 발생과 발전의 중심 광주&lt;BR&gt;&amp;nbsp;&lt;BR&gt;조선사회는 왜란과 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은 이후 정치분야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변동을 가져왔다. 대륙에서는 새로 일어난 청나라가 명나라를 대신해 대륙의 주인으로 바뀌어 가는 긴장이 조성돼 있었다. 조선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았으므로 그 은공을 생각하는 명분 때문에 대륙의 새로운 주인을 파악하는 데 때를 놓치고 말았다. 더구나 실리적 외교 노선을 견지하고 있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kihoilbo.co.kr/news/photo/200911/357008_51729_819.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던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실각하면서 명분론에 치우치게 돼 마침내 병자호란을 겪게 된 것이었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고 난 조선은 서얼과 중인들의 신분상승 운동이 일어나 전통적 신분제가 일부 붕괴되고, 유랑민의 증가, 사회적 불안정과 전통적 가치관의 파괴 등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나온 학문과 사상이 실학이다. 또한 실학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개혁론을 통해 근대사회로 발전해 나가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됐다.&lt;BR&gt;&lt;BR&gt;실학은 유교사상의 범위 안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관심을 가지고 전개됐다.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에 집중돼 왔던 성리학(주자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면서 개혁안들을 제시했던 것이다. 실학자들은 백과사전식의 ‘박학(博學)’을 추구했고, 서구에서 들어온 서학(西學, 천주학)이나 청나라의 고증학을 통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실학은 농촌사회의 개혁을 지향했던 경세치용(經世致用) 학파(중농학파)와 상업과 대외 무역의 활성화를 꾀하는 한편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관심을 둔 이용후생(利用厚生) 학파(북학파)로 나눌 수 있고, 여기에 청의 고증학을 통해 역사와 지리, 금석문의 연구에 각별한 발전을 이룬 실사구시 계열의 학자들이 있었다.&lt;BR&gt;&lt;BR&gt;이러한 학맥의 원류는 16세기 서경덕과 조식 등 실천성을 강조한 학자들인데, 이들의 학풍이 서울·경기 지역의 북인계열 학자들(한백겸, 이수광, 허목, 윤휴)에게로 이어졌다. 이러한 실학의 발생과 발전의 중심지가 경기도 광주다. 이익, 정약용, 안정복, 이덕무 등 많은 실학자들 가운데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광주에서 배출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붕괴된 농촌사회의 민생안정이 시대적 배경&lt;/P&gt;
&lt;P&gt;실학 발생의 시대적 배경은 전란 이후 붕괴된 농촌사회의 민생안정에 관한 것이었고 이익, 정약용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용후생 학파에는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이덕무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국학의 연구를 통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는 데에는 이수광, 이익, 안정복, 이긍익, 이중환, 정약용 등이 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을 통해 마테오 리치의 저술인 ‘천주실의’를 소개하니,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시기의 천주교 전파는 조선의 학자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갖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lt;BR&gt;&lt;BR&gt;이렇게 광주가 실학의 중심지가 된 데에는 지리적 영향이 컸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광주에서 만나게 되니 한강의 수로는 운송과 교통의 요지를 형성했고, 남한산성은 국가 안전보장의 터전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이미 삼국시대의 한강유역 쟁탈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도 광주는 서울의 배후지역으로서 농산물을 비롯한 각종 물자의 공급처였다. 광주는 예부터 도자기 공업이 발달해 조선 후기 수공업의 발달과 함께 도자기의 전업적 수공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분원리는 관청에 도자기를 납품하던 곳이었다.&lt;BR&gt;&lt;BR&gt;광주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한 실학자들로 이익, 안정복, 권철신·일신 형제, 정약전·약용 형제, 이벽 등이 있다. 성호 이익은 그의 아버지 이하진이 진주목사로 있을 때 1680년 이른바 경신대출척을 당해 평안도로 유배를 가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고, 안정복 역시 그의 할아버지 안서우가 1726년 울산부사에서 갑자기 물러나게 되면서 한미한 집안이 됐다. 이익은 어릴 때 안산으로 간 이후로 안산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한 적이 없고, 안정복은 1736년 무주에서 광주의 텃골로 이사를 한 이후로는 역시 잠깐 관직생활을 한 것을 빼고는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이벽의 경우는 광주가 천주교와 관련이 깊게 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깊은 사람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amp;nbsp; # 학문적 대성 이룬 성호 이익&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호 이익(1681~1763)은 태어나서 돌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별세했고, 스승 없이 아버지가 남긴 책으로 ‘자득(自得)’해 학문적 대성을 이루었다. 이익의 학문적 자세는 “꼴 베는 아이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아랫사람들에게 하문(下問)하는 것을 장려했다. 이익이 살았던 곳이 안산인지 광주인지는 논란이 있으나 그의 학문적 맥락은 광주로 이어져 내려왔다. 이익은 청빈한 선비로서의 자세를 견지했다. 그의 아들 맹휴가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고기를 선물로 보낸 적이 있었다. 이익은 “나는 집이 있고 땅이 있어 때에 맞춰 농사를 지어 굶주림과 추위에 견딜 만한데 백성들로부터 거둔 재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털끝만큼의 사치도 허용하지 않는 소신을 보여준 일화다. 이익은 40세부터 60세에 이르는 20년간의 학문 활동 성과를 모은 ‘성호사설’을 비롯한 1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고 그의 학문적 계승자로는 경전 해석분야에 윤동규와 신후담, 역사학 분야에 안정복, 인문지리학에서는 이중환, 천문학 분야는 이가환, 서학에서는 권철신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역사학 분야에 두각 나타낸 안정복&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순암 안정복(1712~1791)은 35세에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갔고, 역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759년에 ‘동사강목(東史綱目)’ 초고를 완성하고 몇 차례 수정 보완해 1778년에 완성했다. 이 저술을 통해 안정복은 당시 학자들에게 부족했던 역대 동국(東國=우리나라) 운영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 또 ‘임관정요(臨官政要)’가 있으니 이것은 지방에서 백성들을 통치하는 수령들이 참고할 구체적인 지침서였는데, 후일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됐다. 안정복은 학파 내에서 ‘정문(頂門)의 침’이라고 불리울 만큼 후배들을 질책했다. 특히 천주교와 관련한 걱정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권철신은 “지옥이 있는 이유는 안정복 때문”이라고 극언을 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 갔다. 그러나 마침내는 천주교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되기에 이르고 만다. 이익의 제자 권철신은 1801년의 천주교 박해 때 정약종, 이승훈 등과 함께 사형을 언도받고 형 집행에 앞서 옥중에서 매질 후유증으로 순교하고 말았다.&lt;BR&gt;&lt;BR&gt;안정복은 성호 이익이 강조했던 학문의 방법이었던 ‘이택(麗澤)’을 구현하고자 텃골에 ‘이택재(麗澤齋)’를 건립했다. ‘이택’은 주역에서 “나란히 있는 두 연못 중 한 연못의 물이 마르면 다른 연못의 물로 보충한다.”는 뜻이다. 즉 혼자서 풀지 못한 문제를 여러 사람이 함께 토론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다. 61살 때인 1772년에는 익위사(翊衛司)에 들어가 왕세자(정조) 교육에 참여했으니 1791년 80세에 별세했을 때 정조임금이 매우 슬퍼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화가 나다가도 글만 읽으면 좋고&lt;BR&gt;&amp;nbsp;병이 났다가도 읽기만 하면 나아&lt;BR&gt;&amp;nbsp;이것이 내 운명이라 믿고&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앞에 가득 가로 세로 쌓아 놓았네.&lt;BR&gt;&amp;nbsp;-순암 안정복의 시 가운데 일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20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
&lt;TD align=middle&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kihoilbo.co.kr/news/photo/200911/357008_51728_811.jpg&quot;&gt;&lt;/TD&gt;
&lt;TD width=10&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 colSpan=3&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성호학파의 손자뻘 되는 정약용&lt;/P&gt;
&lt;P&gt;다산 정약용(1762~1836)은 성호학파의 손자뻘 되는 대 학자다. 정약용이 태어난 마현마을은 그 당시는 광주군 초부면이었다. 7살 때 처음 시를 지었는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원근(遠近)이 다르기 때문이지.”란 구절이 있었다. 이를 본 부친은 아들이 장차 역법과 산수에 통달할 것이라 예견했다. 16세 때 이익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니, “꿈 속 같은 내 생각이 성호를 따라 사숙(私塾)하는 가운데 깨닫는 것이 많았다.”고 할 정도였다.&lt;BR&gt;&lt;BR&gt;정약용은 21살 때에 세자(순조) 책봉을 기념해 실시된 증광감시(增廣監試)에 합격했다. 다른 합격자들과 함께 창덕궁에 들어가 사은(謝恩) 인사를 올리는데 정조는 특별히 정약용의 얼굴을 들게 하고 나이를 물으니, 이것이 정조와 정약용의 첫 만남이었고 이후로 성균관 유생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거둔 다산에게 정조는 서적과 종이, 붓을 하사하면서 격려했다.&lt;BR&gt;&lt;BR&gt;정약용은 국가를 새롭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지었고, 살인사건을 다루는 데에 필요한 실무적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지었다. ‘목민심서’는 12편 72조로 편성됐는데, 수령으로서의 규범과 처리할 행정 업무에 대해 쓴 것이다. 정약용은 1801년 천주교 박해 사건에 연루돼 18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되고, 후일 귀향한 이후로도 왕성한 학문활동을 펼쳤으니 경집 232권과 문집 267권을 합해 총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수원 화성의 축조에 거중기를 만들어 공사비용을 절감했다. 1836년 결혼 60주년을 맞이했는데 4일 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이날 사망하니 큰 바람이 불고 흙비가 내렸으며, 하늘의 햇빛이 얇아져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이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정약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약용&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남한산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한산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실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실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안정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안정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성남문화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남문화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한춘섭원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춘섭원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9-안중근 의사 순국의 의의(意義)</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sd1919/15956572"/>
		<id>tag:blog.daum.net,2009:sd1919.15956572</id>
	    <author>
		    <name>성남까치</name>
	    </author>
	    <updated>2009-11-02T13:40:42Z</updated>
	    <published>2009-11-02T13:40: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안중근 의사 순국의 의의(意義)&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윤종준 성남문화원 상임연구위원&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7.uf.daum.net/image/206786274AEE60933EE95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262&quot; style=&quot;WIDTH: 262px; 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289&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height=&quot;492&quot; /&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201583264AEE60DC1A870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290&quot; height=&quot;492&quot; style=&quot;WIDTH: 290px; FLOAT: none; HEIGHT: 492px;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400&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여순감옥 교수형 집행대(왼쪽)와 시신을 담는 나무통&amp;nbsp;&lt;/P&gt;
&lt;P&gt;&lt;BR&gt;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동양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얼빈에서 개전(開戰)하고, 담판하는 자리를 여순구(旅順口)에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한다’고 하여, 재판 과정 까지도 당당한 담판의 자세로 일관하였다. 그리하여 이등박문의 죄상 15가지를 설파하였는데 이 때 방청석과 법정은 놀라움과 숙연함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이등박문의 죄악 가운데 일본의 명치천황의 아버지마저 독살한 죄인이라고 폭탄선언을 하게 됨에 이르러서는 경악을 금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재판관은 급히 방청객을 내보내고 안중근을 다른 방으로 옮기며 재판이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사형이 언도 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6.uf.daum.net/image/140992264AEE61A415AE7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402&quot; height=&quot;255&quot; style=&quot;WIDTH: 402px; FLOAT: left; HEIGHT: 255px; CLEAR: both;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순형무소는 1902년부터 1907년 사이에 중국 요녕성 대련시 여순에 설치했던 일제시대의 형무소인데, 안중근 의사 뿐 아니라 단재 신채호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투옥 되었던 곳이다. 1902년 러시아가 동북 3성에 항의하는 중국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건축하였으나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여순을 점령하면서 1907년 확장해 현재의 형태로 완성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순감옥 사형장&lt;/P&gt;
&lt;P&gt;&lt;BR&gt;총 면적 약 2만6천㎡에, 275개의 감방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2천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형무소는 담장 안에는 수색실, 고문실, 사형집행실 그리고 15개의 공장이 있고, 담장 밖으로는 벽돌 공장, 과수원, 채마밭 등을 만들어 강제노동을 시켰다. 3층으로 지어진 건물은 큰 대(大)자 형으로 방사형 구조로 지어져 감시하기에 용이하도록 건설 되었다. 여기에는 대개 한국인과 중국인, 러시아인 등이 많이 수감되었는데, 1906~1936년 사이에 연간 약 2만여 명이 수감 되었고 특히,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에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지사와 사상범을 대거 체포해 이곳에 투옥시켜 온갖 고문은 물론, 수많은 수감자들이 여순형무소에서 처형 당했으니, 1942년부터 1945년 해방되기 까지 약 3년 사이에 700여 명이 이곳에서 처형 당했다고 한다. 1945년 8월 소련 붉은 군대가 여순에 주둔하면서 사용이 중지되었고, 그 후 1971년 복원을 통해 전시관으로 꾸며져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1988년 중국 정부는 이곳을 국가중점역사문화재로 지정하였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22C34254AEE62251CE73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left; CLEAR: both;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240&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240&quot; /&gt;&lt;/P&gt;
&lt;P&gt;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 의사는 이곳 여순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돼 3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일제 침략자들은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은 채 비밀리에 매장했다. 안중근 의사의 묘소를 찾는 것은 오늘날 국가적 사업이 되었으나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도 생전에 여순을 직접 방문해 묘소를 찾고자 햇으나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lt;BR&gt;사형이 집행 되던 날, 아침부터 여순지역에는 짙은 안개가 내리고 이슬비마저 내려 하늘조차도 안 의사의 죽음을 슬퍼했다 한다.&lt;BR&gt;간수 4명의 호송을 받으며 사형장으로 끌려나 온 안 의사는 전날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흰 명주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곧 이어 감옥 소장이 사형 집행문을 읽고 최후의 유언을 물으니 “이등박문 처단은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결행한 것이므로 앞으로 한일 두나라가 화합하여 공동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동양평화 만세’를 부르자”고 제안 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제지하고 교수형 집행을 강행하였다. 12분 후인 오전 10시 15분께 검시 의사가 운명을 확인하고 새로 만든 침관에 유해를 입관하였다. 유해는 안 의사 두 동생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인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 의사가 유언대로 하얼빈 공원에 묻히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외부로 나가게 되었을 때 그곳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 조차도 두려워했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기 위해 현지조사와 발굴조사를 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용산의 효창공원에 의사(義士) 묘역을 조성하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분의 묘소 옆에 안 의사를 위한 가묘(假墓)를 만들어 두었다.&lt;/P&gt;
&lt;P&gt;=순국 직전 모친이 보내준 옷을 입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중근 의사는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애국자이다. 32세에 순국하면서도 마지막까지도 국권의 회복과 동양의 평화를 역설하였다.&lt;BR&gt;“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 나라의 국권회복(國權回復)을 위해 힘쓸 것이다. 그리고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채 이승과 저승을 이어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의 발전을 기원하였다. &lt;BR&gt;옥중에서 검찰관의 조사를 받기에 앞서 안 의사가 이등박문 죄악상 15개조와 함께 제출한 ‘한국인 안응칠 소회(所懷)’에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이 글 사이사이마다 깊고 절절하게 스며 있다.&lt;BR&gt;“하늘이 사람을 내어 세상이 모두 형제가 되었다. 각각 자유를 지켜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떳떳한 정이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의례히 문명 시대라 일컫지만 나는 홀로 그렇지 않은 것을 탄식한다. 무릇 문명이란 것은 동서양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여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 편안히 생업을 즐기면서 같이 태평을 누리는 그것이라”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4.uf.daum.net/image/1222B5284AEE627E0AB94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gt;&lt;/P&gt;
&lt;P&gt;=한국인 안응칠 소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은 순국 즉시 일제에 압수되어 나라 잃은 한민족에게는 물론 유족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비밀에 부쳐져 그들의 식민지 통치 자료로만 이용되었다. 그러다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60년이 지난 1969년 일본 동경의 고서점에서 ‘안중근 자서전’ 일본어 번역본이 발간되었으며 다시 10년 후,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 자료실 ‘7조 청미문서(七條淸美文書)’ 중에서 ‘안중근 전기논설’이라는 제목을 붙인 책자에서 ‘안응칠역사(安應七歷史)’의 등사본이 미완의 ‘동양평화론’과 함께 엮어진 것이 발견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 지난 지금, 안중근 의사의 평화사상은 더욱더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 싼 세계의 미묘한 신경전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lt;/P&gt;
&lt;P&gt;안중근 의사가 순국하니, 중화민국의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장렬천추(壯烈千秋)’라는 휘호를 써서 그의 높은 뜻을 기렸고, 장경국 총통은 ‘벽혈단심(碧血丹心)’이라는 휘호를 통해 애도하였다. 또, 손문(孫文)은 시를 짓기를 “공(功)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드리우리.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 나라 재상이라. 그래도 처지를 바꿔 놓으니 이등박문도 죄인되리”라 하였다.&lt;/P&gt;
&lt;P&gt;&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남자가 차라리 죽을지언정&lt;BR&gt;&amp;nbsp;바른 마음을 속일까보냐&lt;BR&gt;&amp;nbsp;판사 검사가 어찌 나의 속마음을 알까&lt;BR&gt;&amp;nbsp;원수는 갚았고, 곧 외로운 혼은 땅에 떨어진다.&lt;BR&gt;(사형 집행을 앞두고 흔들림 없는 심경을 술회함)&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여순감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여순감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안중근 의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안중근 의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성남문화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남문화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윤종준 상임연구위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윤종준 상임연구위원&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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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원대-한국생명연 학술·연구 MOU체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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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성남까치</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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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1T10:13:44Z</updated>
	    <published>2009-11-01T10:13:4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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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6.uf.daum.net/image/14236F174AECE08D31717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78&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78&quot; /&gt;&lt;/P&gt;
&lt;P&gt;&amp;nbsp;사진설명=이길여 경원대 총장(왼쪽)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영훈 원장이 학술·연구교류 양해각서에 사인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lt;경원대제공&gt;&lt;BR&gt;&lt;/P&gt;
&lt;P&gt;【성남】경원대학교(총장 이길여)는 28일 교내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박영훈)과 ‘학술·연구 교류에 관한 기본협정(MOU)’을 체결했다.&lt;BR&gt;양 기관은 이번 MOU 체결에 따라 향후 3년간 의학, 약학, 농학, 생물학, 융합 분야에서 연구원 상호 교환, 연구소 등 시설 공동 이용을 포함한 공동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lt;BR&gt;MOU 체결에 의한 주 연구과제는 경원대 가천바이오나노연구원의 주력 분야인 ‘진단용 나노 원천기술 및 응용기술 개발’이다.&lt;BR&gt;이는 병원에 가지 않고 이오센서와 모바일, 무선인터넷을 결합한 원격 네트워킹으로 비만, 부정맥, 고혈압 등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U헬스캐어(Ubiquitous Healthcare)의 핵심으로, 몸속을 통과하며 온갖 질병 정보를 체크할 수 있는 건강 나노칩 등 U헬스 장비의 기반 기술이다.&lt;BR&gt;경원대는 지난 2005년 지식경제부(당시 산자부)가 지원하는 지역혁신 U헬스 지역혁신프로젝트 추진기관으로 선정됐으며, 2007년엔 국내 최초로 바이오나노대학을 설립하고 수능우수 4년 장학생을 대거 선발하는 한편, 세계유수 명문대학에서 20여 명의 석학교수를 초빙했다.&lt;BR&gt;특히, 국내 최대 바이오 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핵심연구원 4명을 ‘학연(學硏)교수’로 위촉하는 등 바이오나노 협력연구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lt;BR&gt;김대성 기자&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한국생명공학연구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국생명공학연구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경원대학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원대학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박영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영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95GI&amp;amp;tagName=이길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길여&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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