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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원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안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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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10:21:0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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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주의 손에 이끌려//대구교회 이현래 목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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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10:21:07Z</updated>
	    <published>2009-11-06T10:21: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lt;FONT color=#0066ff&gt;주의 손에 이끌려-10 &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FONT size=2&gt;대구교회 이현래 목사&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4-5&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1973년 봄에 충주로 발령되어 내려가서 엑스폴로 74 전도운동의 주역으로서 충주, 중원, 제천, 단양 지구 동원을 맡아 간사로 일하고 74년 가을에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다가 벽에 부딪쳤을 때 내 일생을 전환시킨 워치만 니를 만났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때 나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여 만드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 인생에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그때까지 내 앞에 보이는 사람은 전통적인 상식대로 믿음이 크고 경건하며 하나님 일에 열심인 사람에 다가 은사와 능력이 있어서 목회와 선교에 성공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처음부터 보수적인 교회에 입문하지 않았고 아주 자유롭고 진보적인 교회에 입문했다. 그래서 교리적이고 교조주의적인 보수성이나 열심 같은 것은 접해 본 일이 없다(다행으로 생각함). 다만 기독교 사상, 서구 사회와 연결된 기독교 문화 같은 것들이 나를 그런대로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하게 해 주었고 열린 세계를 볼 수 있는 기초를 주었다고 본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리고 신학교에서는 보수적이었으나 교조적인 곳이 아니었고 일본의 성서학자 우찌무라 선생의 사상을 목회적으로 소화하고 이어받은 분에게서 배웠기 때문에 우물 안에 갇힌 사람은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일찍부터(신학교 2년부터) 목회 현장에 나가 보니까 그 시대에 판을 치는 것은 우리가 배웠던 바와는 다르게 은사, 능력을 위주로 해서 벌어지는 소위 오순절 운동이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내가 시무했던 교회는 독립문 근처에 있었고 당시 순복음교회는 서대문 네거리에 있었다(걸어서 15분 정도). 그러고 보니까 날이면 날마다 주일날이면 주일마다 북새통을 이루는 그 교회, 무슨 큰 힘이 움직이는 듯한 감동 등등……, 이런 것들에 나는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꿩 잡는 게 매라더니 저것이로구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사실 내가 있던 교단은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가르치는 곳이었는데도 발전이 없는 곳이었다. 교단이 세워진 것은 해방 전이니까 꽤 오래 되었지만 전국에 10여 곳밖에 교회가 없고 대부분 영세했던 것이다. 그런데 순복음교회는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곳인데 날로 부흥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저런 능력과 은사를 빨리 흡수해서 교회 부흥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틈만 있으면 그들의 부흥회에 참석하곤 했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순복음교회의 심령부흥운동은 그 당시 한국 교계를 흔들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각처에 기도원이 생기고 은사 받는 집회가 일어나는 등등 정말 놀라운 변화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부흥회로 기도원으로 좇아다니면서 그들과 같이 은사를 받아 보려고 상당히 애를 썼는데 그 결과는“나는 안 된다.”였다. 방언이 터져 나와야 은사가 오고 은사가 와야 능력이 임한다는데 나에게는 방언이 숨어 버리는 것 같았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방언을 받고 성령을 받았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나는 갈수록 냉랭해지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상당히 노력은 했지만 아무 맛도 보지 못하고‘나는 기질상 안 되는 모양이다.’라고 주저앉게 되었다. 그런데 C.C.C.에 들어갔더니 그곳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역시 성령충만을 강조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방언하는 사람들이 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열심이고 충만하게 보였으므로 그것이 또다시 압력처럼 나를 누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무시도 안되고 수용도 안 되니 답답했던 것이다. 이것은 나의 내면에서 나를 짓누르는 부담이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러던 중에 나는 워치만 니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은 방언을 하느냐 못 하느냐, 은사가 있느냐 없느냐,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심지어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크냐 작냐, 이런 문제의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다루어서 새로 조성된 사람이냐 아니냐 이것이 문제였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고 믿음이 있었으나 후사인 이삭을 얻기 위해서 100살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럴지라도 이삭을 다시 모리아 산에 바쳐야 했으며 이삭은 후사가 되기 위해서 제단 위에 올려져야 했고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 환도뼈가 꺾여야 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리하여 그 이전까지 내가 소망했고 사모했던 모든 인물들이 어디론지 흩어지고 새 사람, 하나님의 손에서 다시 조성된 사람이 마치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내 지식 세계가 심판을 받고 정지되니까 머리가 맑아졌고 이제 사람의 표준이 달라지니까 인생의 목표가 새로워졌던 것이다. 나의 갈 길이 멀다 해도 그 목표는 너무나 분명했기에 이제는 더 이상 이런저런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다. 지식도, 은사도, 능력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한 인격, 십자가 위에 못 박힌 그 위치,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조성된 새사람, 이 단순명료한 사람이 내 유일한 목표가 되니까 어찌나 길이 단순하며 마음이 가벼워지던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나는 그 단순명료한 사람에게 매료되어 무거웠던 짐을 벗게 되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영광스러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기준이 정반대로 바뀌고 보니 세상이 확 뒤집혔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리고 ‘주의 형상을 닮아’라는 책 다음에 ‘영광스러운 교회’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때 이 노선은 더욱 분명해졌다. 주님은 신부를 구하러 오셨고 그 신부는 그분에게서 나오며 신랑의 손에 의해서 흠과 주름 잡힌 것이 없이 조성된다는 말씀이 들려오면서 내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고 나를 괴롭히고 있던 문제가 원인무효 되었다(엡5:25-26 참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어떻게 해야 정결케 되며 흠없게 되며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인 줄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스스로 모호한 기준에 끌려 다니면서 고민했었지만 아무리 해도 나는 깨끗해지지 않았고 깨끗해질 수도 없었던 문제가 내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231f20;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 전에 내게 은사나 능력이 없다는 것은 목회나 선교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내면적인 문제는 내 일생을 붙어 다니는 어쩌면 본능적이고 운명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라는 말이 어찌나 내게 꼭 맞는 말이었는지! 8년 동안 목회하던 교회에서 나의 이런 모습이 드러났던지 어느 날 중학생 하나가 내게 오더니 “전도사님 별명이 무엇인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전도사님 별명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만큼 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말을 많이 했는 줄 몰랐고 이런 마음을 그렇게 분명하게 표현했는지도 몰랐는데 그 학생이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이것은 그때 나를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었고 한 말로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할 길이 없어서 스스로 자위하기를‘그래, 완전한 인간은 없어. 육신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육신을 벗고 주님 앞에 가는 날 비로소 이 문제는 없어지겠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은 당연해. 이것이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의 증거야…….’하며 이러쿵저러쿵 변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위적 변명을 한다 해도 모순은 없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런 때에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면 내 모습은 어떻게 드러나서 심판이 될 것인가? 이런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러나 이제 주님이 스스로 자신의 필요 때문에 신부를 구하러 오셨고 자신의 수준에 맞추어 신부를 정결케 하신다고 하니 내 염려, 갈등, 불안,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원인무효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내 문제가 아니지. 그분의 문제를 내 식으로 짊어졌으니 어이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거지 처녀가 왕자에게 청혼을 받았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내가 많이 준비할수록 왕자에게는 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차피 다 버려야 할 것인데 준비할수록 버릴 것이 많아지지 않겠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그냥 있기를 원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계획과 목적과 취향에 따라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는 것이다(엡5:27 참조). 이것을 알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고민도 짐도 없어졌다. 나는 그냥 벌거숭이로 있으면 되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모든 면에서 단순해졌고 가벼워졌다. 목표는‘그 사람’이었고 나를 그 사람 되게 하실 이는 주님이었다. 내 일은 다 끝이 났고 문제들은 모두 원인무효 되었던 것이다. 할렐루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4-6&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 무렵 나는 대구로 가라는 명을 받았다. 청주지구 송석흥 간사(현재 목사)가 신학교를 가겠다고 C.C.C.를 떠나게 되자 그는 나더러 청주 C.C.C.로 오라고 했다. 그곳 나사렛 형제들과도 의논을 했으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때 청주 C.C.C.는 매우 활발했고 좋은 학생들이 많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나는 내심 기쁘게 생각했다. 충주의 한계인 고교생들과 전문대생들 밖에 없는 데서 좀 더 넓은 곳으로 가게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준곤 목사님이 부르시더니 두서도 없이 “이 목사님, 대구로 가야겠습니다.”라고 하셨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즉시“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한참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고 “목사님! 목사님은 저의 머리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목사님을 통해 저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김 목사님께서 무슨 뜻이었는지“이 목사님, 큰 복을 받겠습니다.”라고 하셨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분은 왜 나를 청주에 보내 주시지 않고(송 간사가 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대구로 보냈는지 그 뜻을 모른다. 그 당시 집사람은 제천에서 양장점을 하고 있었고 나는 충주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왜 우리 집이 제천으로 이사하게 되었던가? 그 이유는 이렇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처갓집은 전에 말한 대로 충주에서 양장점으로 잘 나가고 있었는데(우리가 결혼하기 전) 장인어른께서 나사점을 너무 크게 내셨다가 부도가 나서 아무 일도 못하고 계신 형편이었다. 그때 오랜 친구이신 김영수 장로님이란 분이 제천에서 목재점을 하시면서 점포 하나와 살림집 하나를 마련해 놓으시고 장인을 오라 하셨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장인어른께서는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데 너희가 가겠다면 가고 가지 못하겠다면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뜻이 있었던 모양인데(내 생각) 한 가지는 노인들이 이제 무슨 사업을 하겠느냐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우리 형편이 보기 딱하니까(C.C.C. 월급이 겨우 식비 정도였으니까) 생업을 열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내게 의견을 물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또 딴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때 나는 C.C.C.생활로 만족하고 있었고 월급이 적으니 전망이 어둡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일이 없었다. 오직 민족복음화의 비전에 충만해 있던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장인 장모님 보시기에는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처갓집 생각만 하고 가겠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우리가 못 가겠다고 하면 이 노인들이 충주라는 실패지에서 아무 소망도 없을 뿐 아니라(장인은 바깥 출입도 안 하시고 뒷방에서 독서만 하고 계셨음) 그저 절망 상태에서 사셔야 했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야겠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장인께서는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뜻을 가지셨고 나는 장인어른을 도와야 된다고 생각한 셈이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제천으로 이사해서 한 집에서 살게 되었고 가게를 열고 양장점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대구로 간다면 또 나는 대구에서 하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러나 그런저런 생각을 아예 해 보지 않았으니까 누가 들으면 이상하다고 할 것이 지만 나는 그때 주님께서 어디로 가라 하시든지 그곳에서 나를 위한 무슨 경륜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을지라도 나는 이의 없이 갔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대구는 전혀 생소한 곳이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곳이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의 관심은 ‘주님이 어디로 나를 이끄셔서 그 사람에게 이르게 하실 것이고, 그 신부가 되게 하실 것인가?’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단순해졌다. 오직 한 목표밖에 없으니까 깨끗해졌던 것이다. 원래 나는 매우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결정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자면 저런 생각이 나고 저렇게 생각하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그런데 노화도에서 부름 받았을 때도 아주 단순했고 이번에 대구로 가라는 때도 너무 또 단순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아무리 생각이 복잡하고 우유부단해도 목표가 분명하면 단순해진다. 부르심과 명령이 분명하게 들렸기 때문에 지극히 단순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목표가 분명하다 하면서 오락가락 이럭저럭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고 이해해 줄 수가 없다. 나 같이 우유부단하고 생각이 복잡한 사람도 목표가 확실하니까 단순해지는데 결심에 결심을 더 해도 안 되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한 목표가 있으면서 또 다른 목표를 붙잡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새 예루살렘을 향해 가면서 바벨론의 노선을 잊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느 노선이든 다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목표는 다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도적질하는 사람에게도 양심은 있는 것이고 성인군자에게도 악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목표는 다른 것이다. 양심을 보고 도적을 옹호하겠는가, 악심을 보고 군자를 포기하겠는가? 바벨론의 길에도 합리성이 있고 새 예루살렘의 길에도 모순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성을 보고 바벨론을 택하겠는가, 모순을 보고 새 예루살렘을 포기하겠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매우 생각이 복잡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지만 목표가 분명하면 단순하고 단호하다. 부름을 받고 나서 나는 그 이전의 모든 것에서 떠났으며 변화를 받고 나서 그 이전의 모든 것을 버렸다. 아담과 그리스도가 조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겠느냐고 했다(고후6:15).&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유물론도 유심론도 바벨론으로 가는 길이고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바벨론의 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단순하게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직접 방해하지 않는 사회를 그나마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유물론과 공산주의 안에서는 아예 교회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유심론과 자본주의는 총칼로 교회를 진멸하지는 않는다. 다른 것들로 유혹은 하지만 무력으로 진멸하지는 않는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그것이라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그들의 목표요 종착역은 바벨론이다. 우리와는 목표가 다른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 역에 도착할 것이고 우리는 새 예루살렘 역에 도착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이 분명한 결정을 하기 바란다. 바벨론이냐 새 예루살렘이냐? 바벨론의 성분을 먹고 새 예루살렘에 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고도 하나님의 동산에 들어갈 길은 없다. 옳으냐 그르냐를 선택할 일이 아니고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단순하게 한 가지만 생각하고 대구로 내려왔다. 그러니까 한 사람 아는 사람이 없고 한 곳도 아는 곳이 없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고 생소하지 않았다. 어디는 다를까? 그러나 나는 지금 주님의 명을 받고 왔다. 나를 나 되게 하실 분의 의향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는 취향도 주문도 없어졌으니까 그분이 어떻게 빚으시든지 상관이 없었고 두려움이 없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회원이 몇 명이나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사렛 형제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첫날 60명 정도 모였던 학생들이 차차 줄어들어 15명 정도 남았고 나사렛 형제들은 집회에 참석하지 않기에 나는 함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서 후원해 주면 감사히 받겠고 그렇지 않으면 후원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나마 어쩌면 한 명씩 뒷자리에 앉았다 가던 사람들이 꼬리도 보이지 않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러나 전혀 염려도 되지 않고 두렵지도 않았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배짱 좋은 사나이가 됐단 말인가! 아니다. 내가 없던 배짱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목표(그 사람) 밖에 없으니까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세 명의 간사가 있었으나 서로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서 다 파면되고 그 중 한 사람(김성주 간사)만 잠깐 남아 있도록 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래서 나는 김성주 간사가 기획하고 활동하는 모든 일에 관심이 없다 보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다 내 주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하면 다 하라고 했고 무엇이나 하라고 하면 다 따라서 했다. 그러니까 그와 나 사이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좋은 일 한다면서 왜들 싸우는가? 다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내가 생각이 없어지니까 문제될 일이 없었다. 나는 목회를 하다가 4년 동안이나 교단과 싸우다 온 사람이다. 내가 그렇게 물인지 불인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꽤 똑똑하다고들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관심거리가 모두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 사람이 이러라 하면 이러자 하고 저 사람이 저러자 하면 저러자했던 것이다. 그 알량하게 똑똑한 것 때문에 4년간 뼈를 깎는 고통을 당하지 않았던가! 끝까지 내 명분을 세우고 적을 야만스럽게 만들어 놓고야 말았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넘어지면서도 상대방 귀를 물어뜯고 말았던 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알았네 이제는 더 이상 똑똑지 않으리&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주님 앞에다 나를 맡겼네 진정 주님뿐이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나는 알았네 이제는 더 이상 방황치 않으리&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가 내게 와 나를 구했네 진정 주님뿐이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삶은 복잡했고 안식 없었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그러나 이제는 달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새 삶이 내게 임했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진정 주님뿐이네(노래 중의 노래 14번)&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Ⅱ.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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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shimnk.2044</id>
	    <author>
		    <name>한자리</name>
	    </author>
	    <updated>2009-11-04T15:21:29Z</updated>
	    <published>2009-11-04T15:21: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 &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class=HS1&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5.3pt; COLOR: #000000; LINE-HEIGHT: 39px; FONT-FAMILY: HY예서M,한컴돋움; LETTER-SPACING: -2px; TEXT-ALIGN: center&quot;&gt;Ⅱ.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1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8%; FONT-FAMILY: '신명 중고딕'; 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신명 중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마태복음 1장)&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8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벱을 낳고 오벱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를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16).&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8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무엇을 하는 분인가? 피조물은 지으신 분의 일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 모르고, 우리가 애써서 하는 모든 일이 헛일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많은 힘을 쓰고 있고 충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를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열심히 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창세기 1장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자연 과학의 재료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철학을 위해서 쓰여진 것도 아니라, 사람을 만드셨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마지막 날에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여러 가지를 따로따로 만드셨지만 결국은 엿새 동안에 사람을 만드셨다는 뜻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자동차 공장에서는 여러 날 동안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고, 각 부서마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자동차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시고, 뭍을 드러내시고,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셔서 사시와 연한을 주관하게 하시고, 식물이 나게 하시고, 물에는 고기들이 공중에는 새들이 날게 하시고, 육지에는 짐승들이 뛰어다니게 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나온 제품은 사람이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 공장에서 어느 부서에서는 타이어를, 어느 부서에서는 유리를, 어느 부서에서는 철판을 만들고 있는데 마지막에 자동차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는 과정 안에 들어있다.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무리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해도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타이어를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해도 자동차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결국 사람이 나옴으로써 그 모든 것들이 구원된 것이다. 사람으로 인해 유용하고 필요한 것이 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다.’라고 알면 우리의 길이 정당해진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인가?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자동차를 만들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곡식을 거둔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하신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을 하셨다고 알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런 면을 보고, 어떤 사람은 저런 면을 보고 있다. 이런 면을 본 사람은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하고, 저런 면을 본 사람은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이 하신 일들은 모두 사람을 만들려고 하신 일들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은 모두 사람을 만들려고 하신 일들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다. 그가 불을 가지고 일하실 때도 있었고, 바람을 가지고 일하실 때도 있었고, 물을 가지고 일하실 때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하실 때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는가? 그 모든 일들은 사람을 만드시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지나온 일들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알 수 있다. 나의 경우에 젊어서 죽을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오갈 데가 없어서 사방이 막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의 일꾼으로 부르셨다. 부르심을 받고 한참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잘못하니까 4년 동안 매를 때리셨다. 하나님은 병을 고쳐주셨고, 나를 불러주셨으며, 매를 때리셨다. 그동안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하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결국은 사람을 만드시려고 그 모든 일들을 하셨던 것이다. 사람을 만드시려고 그런 여러 가지 과정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자라면서 어느 누구와도 싸워본 일이 없었다. 몸이 약하고 힘이 없으니까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고, 성질이 유별나지 않으니까 ‘싸우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옳지 않은 일을 만나니까 참을 수 없어서 대들었고, 거기서 4년 동안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다 편안하게 사는데 왜 나만 이런 함정에 빠져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연루되어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빠져 나오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4년 동안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라고 알고 난 후에 모든 의문이 풀렸다. 나 같은 사람은 꼭 그런 자리에 넣어두셔야 했던 것이다. 거기가 아니면 안되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세상에서 살았거나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지간한 일은 양보하고 참아 넘겼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무난하고 부드럽고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며,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인정하였을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교회를 하러 나가서 일을 하다 보니 싸움을 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교회를 하게 나를 불렀던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었구나. 나를 꼭 그 자리에 넣어 놓아야만 내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있었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거기서 내 인간성의 모든 악한 것이 다 드러났다. 아무리 사랑을 하려해도 사랑할 수 없었고, 아무리 용서를 하려해도 용서할 수 없었고, 아무리 풀어보려고 해도 풀리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기도원에 가기도 하고 사방으로 좇아 다니며 어떤 신비로운 힘이라도 받아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 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다. “하나님 불덩어리라도 내려서 나를 녹여주십시요.”라고 기도했지만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 속에 깊이 들어있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속에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는데 남을 미워할 대로 미워하고 저주할 대로 저주하게 되었다. 그런 일을 당하니까 그런 것들이 나오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 이후에 대구에 오게 되었는데 어느 얌전한 중학생이 찾아왔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그 학생은 “하나님 마음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니까 그 학생은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고 그 말씀대로 잘 따르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마태복음 5장을 읽어보라고 하니까 읽더니 “맞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 학생에게 “집에 돌아가서 이 말씀을 잘 읽어 보고 네가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오른쪽에 쓰고,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왼쪽에 써 보라.”고 하였다. 다음날 그 학생이 써 온 것을 보았더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는 것을 오른쪽에 써 놓았다. 그 학생에게 “네가 이것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더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구가 나쁘게 하더라도 이해하고 용서하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안되고, 네 마음대로 안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가 안되고,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게 되는 때가 오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학생은 여자 같이 마음이 부드럽고 착한 학생이었다. 내 말을 듣고서는 납득이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돌아갔다. 그런데&amp;nbsp; 10년이 지난 후에 그 학생이 다시 찾아왔다. 대학 3학년 쯤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찾아와서는 “10년 전에 저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금 누군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 죽을 지경이라고 하였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람은 다 같다. 단지 그 사람이 폭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것 뿐이다. 어떤 것은 망치로 때리기만 해도 깨지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불 속에 넣어야 깨지는 것도 있다. 그러나 깨지고 나면 속을 보면 다 같다. 원자 폭탄이 어떻게 터지는가? 원자 폭탄은 그냥 두면 터지지 않는다. 폭탄은 터지도록 뇌관을 건드려야 터지게 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권총 탄알 같고 어떤 사람은 원자폭탄 같다. 평소에는 모르지만 적당하게 건드리면 터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껍질이 깨지면 속은 다 같다. 내가 다른 사람과 싸워서 4년 동안 원수로 지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사람은 다 같은데 껍질이 깨지느냐 안 깨지느냐의 차이뿐이다. 나는 그 일을 통해서 ‘사람은 어쩔 수 없구나. 속에 있는 것은 다 같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여러 가지 과정을 넣어서 만드셨다. 첫째 날, 둘째 날을 거쳐 마지막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니까 첫째 날 “사람이 있으라.” 하셨으면 될텐데 첫째 날 만드시지 않고 과정을 거쳐 여섯째 날 만드셨다. 여섯째 날까지 완전한 날을 통과한 것이다. 그래서 이레 되는 날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 성경에서는 7을 한 단위로 계산하고 있다. 한 단위를 완전하게 마쳐야 사람이 나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과정을 거쳐서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이런 과정을, 저런 사람은 저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 자기가 겪는 과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전에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면 ‘저 사람은 왜 나를 미워할까?’ 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 생기면 ‘저 사람은 나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저렇게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사람 만드시는 분이라고 알고 나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을 시켜서 하나님이 일하셨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렇다면 그 사람이 그런 나쁜 역으로 사용되는 것이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은 그 과정을 가지고 사람이 되고 있다. 그 사람은 나를 미워하고 못살게 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하는 과정을, 그 사람은 행하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서로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움을 받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이나 서로 사람이 되고 있는 길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니까 사람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좋거나 나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너무 악질이어서 그렇게 한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그 교회에서 8년 간 목회를 하는 동안에 그런 대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집사님 한 분이 까다롭게 신경을 거슬렸다.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신경 쓰였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뒤에서 정치를 해서 일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나만 왕따 당하는 격이었다. 다른 분들은 다 좋은데 그 한 사람만 그렇게 하였다. 그때 나는 왜 그 사람을 만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몰랐으니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재수가 없어서 저런 사람을 만났구나.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그 사람을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은 나를 위해서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하는 일마다 잘 되어 기고만장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 때문에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4년 동안의 싸움도 그 사람이 발단이 되어 시작되었다. 끝까지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몰아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났는데 와서 보니까 더 좋은 데 와 있었다. 와서 보니까 ‘왜 내가 그런 작은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었던가! 내가 왜 거기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넓은 세계로 나를 몰아 내셨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밀려났는데 와 보니까 더 좋은 곳이다. 그 이후로 두세 번 더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은 밀려나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일이 되었다. 밀려나기만 하면 더 좋은 데로 가게 된다. 누가 나를 밀어내 주기만 하면 더 좋은 곳으로 옮겨진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세상은 예수님을 밀어내고 또 밀어내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성문 밖으로 밀려나셨다. 영문 바깥에는 천민들이 사는 곳이다. “높은 사람들이 사는 성안에서는 예수를 처형할 수 없다. 더구나 거룩한 날 안식일에는 처형할 수 없다.” 하면서 안식일이 되기 전에 성문 밖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영문(營門) 밖에서, 사대문 밖 공동묘지 있는 데에 가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자기들이 사는 좋은 영역 밖으로 내쳐버린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종교의 좋은 영역에서, 제사장과 서기관의 노른자 같은 영역에서, 빌라도라는 정치적인 영역에서 내쫓아 버렸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영역에서 예수를 쫓아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부활하셨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다. 사람이 아무리 내쳐도 그럴수록 더 잘된다. 이삭이 그런 사람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괴롭게 할수록 이삭은 더욱 창대해졌다. 마지막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고 “네가 우리를 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 우리와 화친을 맺자.” 하며 요청하게 되었다. 자기들이 마음대로 짓밟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자 두려웠던 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어디를 가도 형통하는 길이 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갈수록 넓은 길이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다. 이를 안다면 내 것을 고수하겠다고 사람과 옥신각신할 필요가 없다. 그 하나를 가지고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며 싸울 필요가 없다. 거기서 빼앗기면 더 좋은 것을 얻고, 밀려나면 더 좋은 데로 가게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기이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을 만드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일하신다. 우리가 알기 전부터, 오래 전부터, 모태 전부터,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만들고 계신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유일한 일은 사람을 만드시는 일이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은 사람을 만드시는 일이다. 그 모든 일들은 사람을 만드시는 일이다. 사람만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그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오직 사람을 만드시는 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지으신 사람을 동산에 두셨다. ‘동산’이라는 말은 ‘과수원, 공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과수원’은 풍성한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곳이고, ‘공원’은 마음껏 놀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동산에 두신 것은 먹고 놀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거창한 일을 하라고 맡기신 것이 아니라 먹고 놀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먹고 노는 일이다. 교회에 와서 할 일은 먹고 노는 일이다. 우리는 먹고 놀기만 하면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이들을 보면 잘먹고 잘 노는 아이는 잘 크지만 잘 먹지 않고 잘 놀지 않는 아이는 잘 크지 않는다. 잘 놀기만 하면 잘 큰다. 그러나 잘 못 놀면 잘 크지 못할 뿐 아니라 비뚤어질 수 있다. 불량 식품을 먹으면 병에 들게 되고 나쁜 아이들과 놀면 비뚤어지게 된다. 그러나 좋은 음식을 먹고 잘 놀면 건강하게 자란다. 건강하게 자라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잘 먹고 잘 놀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면 알아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게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사람만 만드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만 만드시는 분이다. 사람 만드신 일 외에는 전혀 하지 않는 분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많지만 그 모든 일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신 일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를 하는 자가 있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놓았는데 선악과를 먹게 하였고, 아들을 낳았는데 둘이 싸워서 아벨이 죽었다. 아벨 대신 셋을 주셔서 사람을 키웠는데 그들은 네피림이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로 다 쓸어버리고 노아의 후손들을 살려놓으셨는데, 그 후손들은 시날 평지에 모여서 바벨을 건설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를 하는 자가 있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면 누가 와서 흠집을 내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자동차를 새로 사서 집 앞에 세워 놓으면 짓궂은 아이들이 동전으로 긁고 가버린다. 그러면 새차가 금방 고물이 돼 버린다. 만들어진 것은 이렇게 흠집이 나고 상처가 나서 못쓰게 될 수 있다. 사탄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시면 못쓰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낳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마태복음 1장에는 “낳았다”는 말만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낳으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구약에서도 하나님이 만드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고 낳기도 하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생각할 때 ‘믿음의 조상’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위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 나왔지만 10년쯤 믿다가 지치게 되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만 믿어서는 안되겠다. 더 늙기 전에 아들을 낳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10년을 믿었지만 나이가 늙어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겠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가운데도 20년 30년을 믿은 사람이 많은데 아브라함은 10년을 믿었지만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래서 아브라함은 종을 데려다 양자를 삼겠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지 않으니 종이라도 데려다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며 어깃장을 놓았던 것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네 몸에서 나야만 네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다. 그제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셨다. 그 믿음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봐주셨던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하면 하나님이 인정해주시겠는가? 우리 수준에서 적당한 믿음이면 하나님께서 그냥 “그래, 그 정도면 됐다.” 하신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지. 내 몸에서 낳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낳아 봤자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다(창15:4-6). 이를 보고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믿음의 한계가 어디까지였는가? 그 믿음을 가지고 그는 이스마엘을 낳았다. ‘내 몸에서 낳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해 보니까 자기도 나이가 많았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서 사라와 의논하여 하갈을 데려다 아들을 낳아야겠다고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풍습으로는 본 부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면 본 부인의 몸종을 데려다 자식을 낳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는데 아브라함은 그를 낳고 ‘이제 그가 나의 후사가 되겠구나.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축복해 주시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 13년 동안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계시가 끊어졌던 것이다. 분명히 믿음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왜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셨을까?&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런데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내년 이맘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사라도 그 말을 믿지 못하였다. 사라는 장막 뒤에서 웃었고 아브라함도 속으로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아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믿음 없음을 벌하시지 않고 오히려 “아니다. 내년 이맘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시며 믿음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놓고 설득을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기이한 분인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게 되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전부인 줄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잘 믿는다 해도 우리의 믿음에는 한계가 있다. 아브라함만큼 믿기도 쉽지 않다. 나이가 늙었는데도 “네 몸에서 후사가 있을 것이다.”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인 것이다. 그러나 믿음에는 한계가 있다. 자기 믿음에는 자기 한계가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요즘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변질되고 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은 “믿음은 신념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그 사람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기독교 역사상 그만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믿음’과 ‘신념’은 다른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신념은 자기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정 반대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믿음은 신념이다.”라고 한 것은 자기가 신념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신념으로 세계적인 교회를 이루었다. 사람은 신념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신념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하려면 반드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신념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세계적인 교회를 이루었다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념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믿음을 주십시오. 더 큰 믿음을 주십시오.” 하며 간구하고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믿음을 양성시켜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다분히 신념일 수 있다. “믿음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신념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떨어지거나 내려갈 것이 없다. ‘믿음’은 신뢰인 것이다. 상대방의 어떠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믿지 않으려고 해도 그 사람이 너무나 신실하기 때문에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나 신념은 그 사람이 어떠하든지 간에 내가 그 사람을 믿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은 어느 때&amp;nbsp; 식을 수도 있으며, 의심이 생길 수도 있다. 상대방을 모르고 믿는 것이니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으로 인해서 나에게 주어진 신뢰는 그렇지 않다. 내가 아무리 믿지 않으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결코 흔들리거나 내려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상대방이 너무나 신실하면 그를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린고비 같은 사람이라도 은행이 신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겠는가! 이것이 믿음이다. 신념은 자기 속에서 강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강함으로 사람들은 성공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브라함의 믿음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분히 신념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다 알 수 있겠는가? 아무리 하나님을 알려고 해도 우리는 그분을 다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신념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스마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율법을 대표하는 자가 되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율법을 대표하는 자로 규정하였다. 신념은 율법을 낳게 된다. 율법을 지키려면 신념이 있어야 한다. 신념이 없으면 율법을 지킬 수 없다. 결국 그 믿음으로 낳은 이스마엘은 율법의 화신이 되고 말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여기서 우리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믿음이 1%도 없었다. 그는 99세가 되었고 사라는 늙어 경수가 끊어져 그에게는 한푼 어치의 믿음도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사정하셔서 이삭을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못 받겠다는 것을 하나님이 사정하셔서 주신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이삭을 낳았을 때 아브라함은 ‘아, 이는 내 아들이 아니구나.’라고 알았던 것이다. 그가 믿음이 있어서 낳은 것도 아니고 힘이 있어서 낳은 것도 아니었으니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것을 이스마엘을 내보내게 되었을 때 분명히 알 수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사라는 “저 아들은 내 아들과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할 것이니 내 보내라.” 하였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 깊이 근심하였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갈을 데려다 낳은 자식을 다시 내보내려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는가! 그래서 그가 번민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21:12-13).”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야 그 다음날 내보내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깊이 고민하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왜 그는 고통스러웠던 것인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었고, 자기 신념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반면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려 오시라고 하셨을 때 그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자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났다.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고민하였다면 조금이라도 늦춰서 천천히 출발하였을 것이다. 그는 이삭이 자기 아들이 아니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내놓기도 쉬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자기 힘이 들어갔기 때문에 내놓기 어려웠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 나라는 이삭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스마엘로는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지 않고 율법의 세계로, 시내산으로 가게 된다. 여기에 기이한 이치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내 힘도 들어가고 하나님 힘도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는다. 더 왕성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는다. 이삭의 후손보다 이스마엘의 후손이 훨씬 더 왕성하고 인종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왕성해도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많다고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다. 은혜로 난 자라야 되지 율법으로 난 자는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는다. 자기 공로로 나으면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인간의 생각으로는 미련한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하신 일이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 하신 일은 결과가 다르다. 이삭으로 난 자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가 되지만 이스마엘로 난 자는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무엇을 하셨는가? 오직 이삭을 낳게 하신 것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신 일이 없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별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믿음이 많건 적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고 하였다. 만일 그의 믿음이 중요하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았다.”고 하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전 인생을 한 마디로 함축하면 ‘이삭을 낳았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신약 성경은 구약의 모든 것을 함축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라는 한 마디 속에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역사가 전부 들어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 말은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함축해 놓은 말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지 못했다면 그가 무엇을 했을지라도 이 족보에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삭을 낳았기 때문에 이 족보에 오른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삭을 낳지 못하면 무엇을 한다해도 이 족보에는 올라가지 못한다. 이삭을 낳은 사람만 이 족보에 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뒤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이삭을 낳은 사람들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삭은 야곱을 낳았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는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고 하지 않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다.”고 하였다. 왜 그랬는가? 에서는 중요하지 않고 야곱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야곱은 왜 중요한가? 그는 하나님의 다루심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타고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새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그는 바탕부터 완전하게 인간 개조가 된 사람이다. 야곱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간교하고 간사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50명이 모여 있으면 50명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한 덩어리로 뭉쳐 놓은 사람이 야곱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완전히 개조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눈을 가진 사람으로 바꿔 놓으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완전히 바뀌어진 사람이다. 그래서 야곱만이 중요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적으로 에서는 호인이고 마음씨도 좋은 사람이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마음이 좋으니까 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팔지 않았을 것이다.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니까 ‘배고픈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죽이라도 한 그릇 먹는 것이 낫지.’ 하며 팔았던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너그럽고 좋은가! 그뿐 아니라 그 후 20년이 지난 다음에 야곱이 밧단아람에 머물다 얍복 강을 건너 에서를 만나게 될 때도 에서는 옛날 일을 다 잊고 있었다. 야곱은 그때까지도 속에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으나 에서는 다 잊어버리고 야곱을 얼싸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내가 길을 인도해 주마.”라고 하였다. 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인가! 그러나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에는 들지 못하였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하신 사람은 야곱이다. 완전히 바꿔서 변화시켜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계보 속에 들어가려면 이런 사람이라야 한다. 이스마엘도 들어갈 수 없고 에서도 들어갈 수 없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야곱은 열 두 형제를 낳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어떻게 그가 아들을 열둘이나 낳게 되었는가? 오직 라헬만을 사랑했기 때문에 열둘이나 낳게 된 것이다. 그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마누라가 넷이나 되었는데 오직 라헬 한 사람만 사랑하였다. 야곱은 라헬이 처음에 아들을 낳았으면 분명히 다른 여자들에게서 아들을 낳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가! 다른 여자들은 다 아들을 낳는데 오직 라헬만은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라헬에게서 요셉을 낳고 나서는 다른 여자들에게서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곱은 오로지 라헬에게서만 아들을 낳아야 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지독한 사람이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얄미운 사람인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을 역이용하셔서 열 두 아들들을 낳게 하셨다. 야곱에게 맡겨 놓았으면 둘만 낳고 말았을 것이고,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 나라가 안되는 것이다. 열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3과 4를 곱하면 12가 된다. 곱해서 나가는 숫자이므로 무한정 뻗어나가는 숫자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이루어졌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셨고, 새 예루살렘은 열두 진주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된 숫자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라헬은 베들레헴 길에서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다. 만일 라헬이 죽지 않았다면 야곱의 아들은 열 셋이 될 수도 있고 열 넷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라헬이 죽었기 때문에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얼마나 기이한가! 세 명의 아내들에게서 열 명의 아들들을 낳고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밧단아람을 떠났는데 오는 길에 베냐민을 낳다가 라헬이 죽은 것이다. 라헬이 죽지 않았다면 야곱은 그에게서 아들을 또 낳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이렇게 신기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만드는 과정에서 낳는 과정으로 오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열두 형제를 낳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열두 형제 중에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았다. 유다는 다말에게서까지도 베레스를 낳아야만 했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으나 남편이 죽고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을 낳지 못하면 그에게는 기업이 없다. 그래서 다말은 생명을 걸고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잘못되었으면 다말은 돌무더기에 쌓여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돌로 쳐서 무덤을 쌓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말은 죽음을 각오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유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낳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아들을 낳지 않으면 죽는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끝이다.’ 이런 지경에 처하여 다말은 아무것도 돌아볼 것이 없게 되었다.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게 되었다. 그 다음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온 족보를 보면 낳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아들을 낳아서 예수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계보에서 마지막에 예수가 나온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가 처음에는 만드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 다음에는 낳으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만드시는 것도 사람이고 낳으시는 것도 사람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결과는 사람이다. 왜 만드시다가 낳으셨는가? 낳는 것이 더 완전하기 때문이다. 물건은 만들 수 있지만 나 자신은 만들 수 없다. 낳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낳고 나면 운명적으로 혈통적으로 연결되어서 바꿀 수가 없다. 아무리 이름을 김씨에서 이씨로 바꾸어도 안되는 것은 타고나기를 김씨로 타고난 사람은 영원히 김씨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것은 바꿀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바꿀 수 없게 하시려고, 더 이상 변질시킬 수 없게 하시려고 낳기 시작하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오늘 우리는 낳는 세계에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그 세계에 들어와 있다. 우리를 다루시면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다루시면 사람을 낳게 하신다. 우리는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을 낳게 하는 세계 안에 들어와 있다. 우리에게 이 일 외에 다른 일은 없다.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동참하려면 사람을 만드시는데 동참해야 하고, 사람을 낳는데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사람을 낳는 분이다. 그래서 그분은 나를 만들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낳으신 것이다.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은 나를 어떤 사람이 되게 하셨다. 모난 것은 자르고 껄끄러운 것은 갈고 튀어나온 것은 부숴서 어떤 사람을 만드셨다. 그런데 만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낳기도 하셨다. 자기와 한 생명이 되도록 낳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것처럼 우리를 낳으신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난 것은 변질될 수 없다. 다른 것이 와서 침해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다. 소로 난 것은 영원히 소고 개로 난 것은 영원히 개다.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영으로 난 것이 육이 될 수 없고 육으로 난 것이 영이 될 수 없다. 난 것은 낳은 대로 영원한 것이다. 만든 것은 망가질 수 있지만 난 것은 영원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뿐 아니라 낳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그때 이미 그분은 낳는 세계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독생자를 낳으셨다. 우리를 낳기 위해서 독생자를 낳으시고 그를 맏아들이 되게 하셨다. 예수님은 독생자로 나셨지만 우리를 낳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를 맏아들이 되게 하셨다. 부활하신 후에 그는 맏아들이 되셨다. ‘독생자’는 ‘유일한 아들’이지만 맏아들은 다음 아들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서 낳게 된 것이다. 부활 안에서 우리를 낳게 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홀연히 ‘아, 내가 다른 세계에 태어났구나.’라고 알게 된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 낳게 된 것이다. 옛날 세계에 연결되지 않고 다른 세계로 옮긴 것이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그분은 우리를 옮기셨다. 다른 세계로 옮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세계의 관념을 갖고 있으면 안된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 안에, 부활의 세계 안에, 죽고 다시 산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이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죽고 다시 산 것이고, 끝나고 다시 난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세계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는 이 세계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옛 세계가 끝나면 새 세계가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끝나면 천당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가! 그러나 옛 세계가 끝나면 다른 세계가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옛 세계를 이 세상이라고 한다면 새 세계는 저 세상이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하였다. 이것을 사람들은 육신이 죽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옮겨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바울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얻어맞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네 번이나 맞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이 소식을 전하러 다녔는데 사람들은 그를 잡아다 때리고 욕하고 능욕하였다.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을 못살게 군 것도 아니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을 축복하러 온 자를 멸시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이 볼 때 얼마나 불쌍한 자였겠는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대제사장은 바울을 어떻게 보았겠는가? ‘불쌍하구나. 젊은 녀석이 다메섹인가를 가더니 돌았구나.’라고 하였을 것이다. 종교적인 세계에서 보았을 때도 사도 바울은 너무나 불쌍한 사람이었다. 사실은 그도 잘 나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전수받아 그도 율법 학자가 될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다메섹에 보냈더니 갑자기 돌아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대제사장이 그를 보고 얼마나 슬퍼하였겠는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할 때 분봉왕 베스도는 바울에게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였다. 그가 하는 말이 정신 나간 사람의 말로 들렸던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 그는 불쌍한 사람이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나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다른 세계 안에서 그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였던 것이다. 제사장들과 빌라도나 아그립바 왕이 주관하는 세계에서 본다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지만 어린양 그리스도 예수가 주관하는 세계에 온다면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이 얼마나 다른 세계인가! 바울과 실라는 깊은 옥에 갇혔는데 한 밤중에 일어나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그들이 볼 때 그는 미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분명히 말하였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한다.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 하였다. 자기와 같이 미쳐 보라는 말이었다. 얼마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사람의 말인가!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세계에 와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바울이 말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 그는 죽은 후에 올 어떤 세계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 보니까 다른 세계가 분명히 있다. 우리 형제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고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워싱턴에 갔을 때 그 엄청난 대리석 건물들을 보면서 백여 년 전에 두루마기를 입은 조선 통신사 일행이 워싱턴 거리에 와서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일을 상상해 보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대리석 건물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가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겉으로는 유교에서 배운 기개와 자존심으로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다녔겠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꿀렸겠는가! 대원군은 경복궁 하나를 짓다가 나라를 거덜낼 뻔했는데 대리석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들이 늘어선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워싱턴을 보고서 나는 ‘아, 이 사람들은 부자구나.’라고 느꼈다. 그분들도 와서 보고 ‘야, 정말 부자구나.’라고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자기들이 살던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세계를 보고 놀랐겠는가, 아니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겠는가? 그들이 고종에게 돌아가서 무슨 보고를 하였겠는가? 아마도 너무 다른 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보고할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물질적인 세계도 이렇게 다르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세계와 아담의 세계는 어떻겠는가! 그리스도의 세계를 말하면 아담의 세계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너희들은 뭐가 좋다고 밤마다 좇아 다니느냐? 들어보니 똑같은 말인데 뭐가 좋다고 그러느냐?’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다른 세계인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계로 옮기셨다. 만드는 세계에서 낳는 세계로 옮기셨다. 운명적으로 연합해서 떨어질 수 없고 변할 수도 없는 세계로 옮기셨다. 이것을 맛본 사람은 영원히 옛것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믿음의 세계는 옛것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믿음이 좋던 사람도, 성령이 충만하던 사람도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입만 열면 방언이 나오고 손만 대면 불덩어리가 지나가던 사람이 옛날 생활로 돌아간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낳은 것을 돌아갈 수 없다. 났기 때문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낳는 세계로 오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를 만드실 뿐 아니라 낳으신다. 하나님은 만드시고 낳으시는 분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낳으신다. 나는 이 말씀 안에서 편안해졌다. 나는 나의 생각대로 이렇게 살기도 하고 저렇게 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잣대를 재고 계신다. 그분이 통치하신다. 인생은 튀어 봤자 벼룩이다. 자기 생각대로 아무리 해 봤자 부처님 손에 있는 손오공과 같다. 이 손가락에서 저 손가락으로 날고 긴다 해도 그분의 손 안에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내 인생이 조용해졌다. 잠잠하게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피곤치 않고 고단치 않다. 날마다 새롭고 신기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넉넉하신 분인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당신의 세계를 열어 보이셨다. 그동안 여러 곳으로 순회를 다니며 말씀을 전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한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은 내가 많은 것들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이번에 미국에 오면서 계산을 해 보니까 대한 항공 마일리지가 15만 마일이다. 한번 탈 때 500마일을 주는데 마일리지가 15만 마일이나 되어 업그레이드해서 편하게 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도 10만 마일이다. 나만큼 많이 돌아다닌 사람도 드물 것이다. 처음에는 매주일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돌았다. 그 후에는 격주로 각지방을 순회하였다. 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구경하고 다녔을 뿐이지 일하고 다닌 것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마일리지를 보니 비행기를 타고 다닌 것이 2-30만 마일이나 된다. 버스로 자동차로 다닌 시간은 계산할 수도 없다. 나는 이렇게 돌아다닐 사람이 아니다. 어디든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 좋은 사람이다. 남의 집이라도 며칠만 살면 그 집이 내 집 같아서 다른 데로 옮기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역마살이 끼인 사람처럼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작년 여름에 몸이 안 좋아서 각북으로 잠시 옮기게 되면서 순회하는 일을 중지하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제주에서 박영호 형제가 집을 지어놓고 오라고 하였다. 어쩔까 하다가 그 사랑이 너무 좋아서&amp;nbsp; 제주로 가게 되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에게 집을 지어놓고 오라 하겠는가! 제주에 있으니까 매주 비행기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돌아다니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 일을 구경하고 있을 뿐인데 하나님이 나를 돌아다니게 만드셨다. 뭔가를 하게 만드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시니 나는 안식하게 된다. 뭔가를 많이 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일은 일이 아니고 사업도 아니다. 가게 되면 가고 오게 되면 오는 것이지 일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내 인생이 얼마나 편안해 졌는지! 내 인생에 관여하시고 내 인생을 시작하시고 만드시고 낳으신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런 분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할 것이다. 창세기 6장에 있는 사람들처럼 각자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하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시작하시고 만드시고 낳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움직이시는 대로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그분이 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피곤치 않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가는 것은 피곤치 않은 일이다. 그분이 움직이시는 대로 우리가 움직이고 그분이 보여 주신 대로 보는 것은 얼마나 안전하고 행복한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절대로 땀이 나는 일이 아니다. 제사장의 옷은 세마포 옷이다. 세마포 옷은 모시옷이다. 왜 제사장은 모시옷을 입는가? 몸에서 땀이 나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땀이 나는 일이 아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하셨다. ‘땀’은 저주를 의미한다. 성전에서 봉사하면서 땀이 나면 어찌 되겠는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세마포 옷을 입는다. 땀이 나지 않고 쉬운 것이다. 그분이 시작하시고 만드시고 낳으시니까 우리는 땀이 날 일이 없다. 내가 시작하고 만들고 낳으려면 힘이 들고 땀을 흘려야 하지만 그분이 다 하시니까 전혀 힘들지 않은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주님은 안식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 그분이 안식하신 것처럼 우리도 안식하라는 것이다. “내가 쉬었으니 너희도 쉬어라. 내가 안식하니 너도 안식하라.”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수십만 마일을 돌아다녔다. 그러므로 이 일은 피곤하고 고단한 일이 아니다. 이마에 땀이 나는 일이 아니다. 주님이 시작하시고 만드시고 낳으신 일을 우리는 구경하고 다니는 일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따라 구경을 하듯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다. 가는 데마다 구경거리가 너무나 많고 재미있는 일이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땅도 넓고 집도 좋고 나무도 좋았다. 그런데 여러 번 와 보니 그 집이 그 집이고 그 나무가 그 나무였다. 그런데 사람은 볼 때마다 새롭다. 우리 형제들을 만날 때마다 늘 새로우니까 사람처럼 좋은 구경거리가 없다. 사람처럼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도 없고 신선하게 하는 것도 없다. 사람을 구경하고 사람과 함께 노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다. 산에 가도 피곤하고 바다에 가도 피곤한데 사람하고 노는 일만은 늘 신선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대구에서는 형제들이 매일 사람을 만나러 다닌다.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것뿐이지 다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직장에 갔다 오면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듯 억지로 심방을 다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춘계 대심방도 없고 추계 대심방도 없다. 서로 만나고 싶어서 다니는 것이다. 날마다 만나고 매일 같이 보고 있다. 20년 간을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살아갈수록 더 좋고 만날수록 더 좋으니 참으로 신기한 세계다. 늘 변화하고 새로워지고 있으니까 어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저 사람이 언제 인간 노릇을 하겠나?’라고 여겨지던 형제가 어느 날인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어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없다. 그 무엇이 사람을 이처럼 즐겁게 하겠는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 가운데 있다. 그 밭에 우리가 놓여 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고 축복인가! 여기가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이 아닌가! 동산을 만들어 놓으시고 과일들을 만들어 놓으시고 공원을 만들어 놓으시고 먹고 놀라고 하신 곳, 이 교회가 아닌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어떤 정신 없는 사람들은 에덴 동산이 어디 있었는지 찾아보려고 많은 돈을 들여서 허덕이고 있다. 아라랏 산이 어디였는지, 에덴 동산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돌아다니고, 오래된 나무 조각 하나를 찾아서 그것이 노아의 방주 조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며 헛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동산이 어딘가? 우리는 그 동산에 생생하고 살고 있다. 하나님의 동산인 교회에서 우리는 먹고 놀고 마시고 있다. 그런데도 모르니까 중동 어딘가에 가서 아라랏 산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무의미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 썩어빠진 나무 조각을 찾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찾았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에덴 동산이 어디였는지 찾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찾았다 해도 그것이 미국의 공원 하나만 같겠는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살아있는 공원, 살아 있는 동산이 있다. 지금 우리가 함께 숨쉬고 있고 하나님이 함께 거니시는 살아있는 동산이 있다. 하나님의 동산은 사람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전에 나는 예수님이 나신 땅에 나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때 갈릴리에 태어났더라면 예수님을 한번 보았을 텐데, 시대가 다르고 땅이 달라서 예수님을 볼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 사방에 갈릴리가 있고 예루살렘이 있다. 예수님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예루살렘으로 갈릴리로 가 봐도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 놓은 관광지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살아있는 예루살렘, 살아있는 갈릴리가 지금 우리 가운데 있다. 여기서 사람들이 고기를 낚기도 하고 그물을 던지기도 한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하는 사람도 있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사람도 있다. 성경에 있는 일들이 교회 안에 그대로 있다. 사도 바울 시대의 일들이 교회 안에 다 있다. 이 일들을 보니 성경이 쉽다. 모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성경 안에서 헤맬 수밖에 없지만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사실 속에서 성경을 보니까 쉽다. 성경 속에 있는 일들이 교회 안에 다 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우리로 보게 하심을 감사한다. 눈을 열어 보게 해 주심을 감사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무리 중에서 한 여자는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습니다.”라고 부르짖었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전혀 새로운 세계인 하나님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다.” 하였다. 자기가 돌아다니면서 만들어 놓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개념에 없던 일이고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보고 있다. 우리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될 수 있다. 다른 세계로 옮겨지니까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모세는 홍해 앞에서 아우성치는 백성들을 향해 “오늘날 너희는 잠잠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고 하였다. 보니까, 그들은 너무나 즐거워서 찬송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거기서 뛰어다녔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아우성을 치고 뛰다가는 죽음뿐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면 찬송하게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면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도 하나님을 따라서 즐겁게 놀면서 일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만족하시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재미있게 노는데 일이 된다면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이것이 우리의 만족이 될 것이다.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우리도 만족하게 될 것이다.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서 사람에게 주어진다. 하나님과 사람이 나누어 먹는 것이다.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우리도 만족하게 됩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다. 이 교회 안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 여러분이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성경에 쓰여있는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안에서 베드로도 드러날 것이고 도마도 드러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드러나서 성경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눈으로 보고 알게 될 것이고, 성경 안에서 말했던 그 말들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교회는 신기한 곳이다. 밭에서는 온갖 것들이 나와서 먹을 때마다 늘 신기하다. 작년에 각북에 작은 텃밭을 만들고 농사를 조금 지었는데 여름 내내 싱싱한 풋고추를 따먹을 수 있었다. 풋고추를 좋아해도 농약 때문에 먹지 못했는데 작년에는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딸기, 가지, 깻잎, 호박도 몇 포기씩 심어 놓고 실컷 따먹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밭에 무엇이든 심기만 하면 풍성한 열매가 열린다. 교회는 이렇게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곳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농장이니까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공해 없는 식품, 농약을 치지 않은 식품이 풍성하게 나와서 우리를 살게 하고 신선하게 할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신명 중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HWP-TAB: 1&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SPAN&gt;[기&amp;nbsp; 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4&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amp;nbsp;&amp;nbsp;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만드시고 낳으시고 일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신기한 사실 안에 신기한 광경 안에 들어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귀로 듣지도 못했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를 당신의 농장 안으로 이끄셔서 동산 안에 두시고 먹고 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당신의 생명을 마시고 호흡하도록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살고 당신과 함께 일하고 당신을 따라 다니는 삶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당신이 가신 곳에 우리도 가고 당신이 눕는 곳에 우리도 눕고 당신이 행하신 곳에 우리도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런 기회를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이렇게 사랑하시고 인자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권고하시는지! 우리 인생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지! 우리는 그 은총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 주님을 영원히 찬송하기를 원하고 당신의 이름을 만방에 알리기를 원하고 당신의 세계를 만방에 퍼뜨리기를 원하고 모든 메마른 영혼들과 갈급한 영혼들이 이 동산에 와서 먹고 마시고 쉼을 얻도록 우리가 그들에게 은택을 베풀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평안과 우리의 안식과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만족이 그들에게 모두 분배되어 그들의 가난한 영혼들이 축여지게 해 주시고 그들이 죽음에서 살아나게 해 주시며 헛된 데서 참된 데로 돌아오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 &lt;/STRONG&gt;&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Ⅰ. 시작하신 하나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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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shimnk.2043</id>
	    <author>
		    <name>한자리</name>
	    </author>
	    <updated>2009-11-04T15:20:03Z</updated>
	    <published>2009-11-04T15:20: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 &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class=HS1&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5.3pt; COLOR: #000000; LINE-HEIGHT: 39px; FONT-FAMILY: HY예서M,한컴돋움; LETTER-SPACING: -2px; TEXT-ALIGN: center&quot;&gt;Ⅰ. 시작하신 하나님&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1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8%; FONT-FAMILY: '신명 중고딕'; 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신명 중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창세기 1장)&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8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이 중요하다. 정한성 형제가 씨를 뿌리고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1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갔다. 이제 그 씨가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나무로 자라나서 밭이 되고 농장이 되어 열매가 맺히는 광경을 이곳 뉴욕교회에서 보게 되었다. 이렇듯 시작이 중요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성경 맨 처음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태초에’라는 말은 ‘시작에’라는 뜻이다. 요한복음에서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하였다. 전자는 모든 만물이 시작될 때의 그 시작을, 후자는 영원한 것이 시작되는 영원한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시작이 있어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첫 부분에 ‘시작’이라는 말씀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다. 시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시작이 있어서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창세기’는 ‘시작’이라는 뜻이다. 창세기의 정확한 이름은 ‘시작’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에게는 시작이 있다. 세상에는 시작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시작이 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시작이 있어서 있지만 사람들은 시작하신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는 시작 자체가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세계를 무한히 윤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시작으로부터 가고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시작은 내가 있기 전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은 나를 나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를 우리 되게 하는 것이고, 우주를 우주 되게 하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시작이 나를 나되게 한다는 것이다.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 시작이 있다는 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복인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시작이 있다면 시작하신 이가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저절로 있는 것은 없다. 시작하신 이가 있어서 시작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저절로 생겨났다면 저절로 갈 것이고, 아무 의미도 목적도 방향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시작하신 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존재의 의미와 목표와 방향이 있다. 우리에게 그런 목표를 정해주신 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는 쓸모 없이 이 땅위에서 뒹굴다 갈 존재가 아니다. 그 누군가 절대적인 분이 나에게 시작을 하셨고 목표를 두셨다. 이것이 없다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모든 것은 시작이 있다. 이 집도 시작이 있어서 있는 것이고 내 인생도 시작이 있어서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시작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이 마이크를 시작하신 이는 마이크의 하나님이고, 이 책을 시작하신 이는 책의 하나님이다. 나를 시작하신 이는 나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하신 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시작하신 이가 있구나.’라고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된다. ‘아! 나는 나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고 시작하신 이가 있구나!’라고 알 때 하나님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지금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나를 시작하신 이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내 인생이 그냥 있는 줄로 생각했는데, 분명하게 시작하신 이가 있었다. 시작하신 이가 있었으니까 내 인생에는 목표를 정해 두고 계셨던 것이다. 단지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그분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계셨다. 목표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까 그 때 내 인생에 안식이 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 전에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나를 시작하신 이가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았지만 실제적으로는 몰랐다. 그래서 나 혼자 힘쓰고 애쓰고 발버둥을 쳤던 것이다. 뭔가 되어 보려고, 더 완전해지려고 애를 썼고 기도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하다, 하나님께 구했는데 왜 안 되는가? 내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닌데 왜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좋은 이유로 구하는데도 안 들어주시는가? 이것은 나에게 영원한 숙제가 되었을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있기 전에 시작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서 ‘내가 어떻게 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게 되었다. 그분이 먼저 나를 알고 내 인생을 시작하셨는데 내가 무엇을 더하겠인가! 그분이 모든 것을 다 하신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보니까 전부 그분 자신이 모든 것을 해 놓으셨다. 단지 내가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것을 알고 나니까 그때야 내 손이 놓아지고, ‘아, 내가 하나님의 손에 올려져 있었구나. 그분이 행하신 대로 내가 가고 있었구나. 나는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 줄을 알았는데&amp;nbsp; 그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일을 하고 계셨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이것을 알게 되니까 내 인생에 안식이 찾아왔고,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 동안 나는 하나님을 믿고 교역을 하면서 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찾았고, 더 나은 것을 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아무리 해도 역시 같은 자리인데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생기고 일이 진행되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하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사람들이 하고 있고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하나님이 그것을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은 몰랐다. 그런데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나에게 평안이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얼마나 둔한 사람이었는지 죽을 자리에서 살아나서도 하나님이 역사(役事)하셨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20대에 완전히 죽을 자리에까지 갔었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병원을 갔을 때는 한 쪽 폐를 거의 못쓰게 되었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한쪽 폐에 공기가 차서 시커멓게 나왔는데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때는 집에서 이미 온갖 약을 다 써 보고 병원에 갔기 때문에 더 이상 치료할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더 이상 쓸 수 있는 약이 없어서 약을 써 보지 못 했는데도 병원에 두 달 동안 누워 있다가 사진을 찍어보니 바람 들었던 것이 빠져나갔다. 그렇게 심하던 기침도 멎었고, 기침을 해서 담을 뱉으면 균이 나오던 것이 없어졌다. 이렇게 분명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뒤로 몇 년이 흘렀어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서 “하나님이 너를 죽을 자리에서 살려 주었으니 네가 하나님 일을 할 생각이 없느냐?” 라는 편지가 왔다. 그 편지를 받고서야 ‘아! 내가 죽을 자리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 하신 일을 모르는 둔한 사람이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일을 하셨는데 나는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인 줄 모르고 있었다. 4년 동안 어떤 사람들과 교권 문제를 가지고 머리가 터지게 싸웠는데, 그때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저 사람들이 왜 저런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지, 하나님이 그 사이에서 일하시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알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나를 다루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싸우고 있는 그 기간 동안에 나를 하나님이 다루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발견되니까 ‘아! 내가 그분의 손에 있었던 것을 몰랐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야곱이 벧엘에서 돌을 베고 자다가 꿈을 꾸고서 잠이 깬 다음에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몰랐구나.”라고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꿈이 깨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하나님이 다루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야곱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보고서야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이 필요하다. 스스로는 알 수 없다. 수십 년의 세월을 통해 여러 가지 과정을 겪었는데, 나는 하나님께서 그 과정들을 통해 나를 다루시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야곱을 하나님께서 다루시어 쓰시는 것을 보니까 내가 그 속에 들어있었다. 아브라함을 다루시고 백 살에 아들을 주신 것을 보니까 그 속에 내가 들어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를 알면 그 속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알 수 없으며 내가 아는 나는 내가 아니다. 예수 안에서 발견된 ‘나’가 진짜 나고 아브라함 안에서 발견된 ‘나’가 진짜 나다. 그분들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를 것이다. 하나님이 그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분은 일을 시작하시고 마치시는 분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그분이 모든 것을 하셨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을 통해 일하시고 우리 앞에 내놓고 “보라!”고 주신 것이다. 그것을 보니까 그 안에 내가 들어 있고, 과정을 거친 우리가 들어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한 사람 안에 모든 인류를 포함시키는 분이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각각 다루시는 것 같은데 한 사람을 다루신 속에 우리 전부를 다루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일이 없다. 그런데 예수 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자리에 모든 인류가 들어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였다. 그는 분명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본 일이 없다. 그런데도 예수와 함께 못 박혔다고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예수 안에 포함된 자기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그 속에서 내가 발견되려는 것이다. 예수를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를 알아야 내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안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나를 따로 알 수 없다. 아무리 알려 해도 알 수 없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 속에서는 나를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예수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것을 역사적으로 본다면 아브라함은 조상이고 예수는 수십 대 후손인데도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다.”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예수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 한 사람을 알면 모든 인류를 다 아는 것이다. 나를 알려고 하면 아무리 해도 알 수 없지만, 예수 한 사람을 알면 모든 인류를 다 알 수 있다. 그분이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마치신다. 뉴욕 교회를 보니까 하나님이 시작하셔서 이렇게 신기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어떻게 이렇게 신기하게 만드셨는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면 기이하다. 사람이 억지로 하면 아무리 힘을 쓰고 애를 써도 안될 텐데 하나님이 각처에서 필요한 사람을 부르셔서 이렇게 교회를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 이것이 우리에게는 신기한 일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창세기 1장 1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였고, 요한복음 1장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육체가 되셨다.”고 하였다. 내가 있기 전에, 내가 시작할 때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질 때 있었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때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누군가가 하셨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온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내가 혼자 있는 줄로 생각했고, 내가 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은 소용이 없다. 아무리 많은 것들을 했어도 소용이 없고 그분이 행하신 것만 남는다. 그분이 일하신 것만 남는다. 내가 한 일은 아이들이 장난한 것과 같아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이 행하신 것은 영원하게 남아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만 남았다. 아브라함이 한 일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된 아브라함의 일만 알고 있다.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했는지, 야곱이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 것만 남아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 외에는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그분들은 자기의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지나간 과거밖에는 아는 것이 없다. “할아버지는 인생을 어떻게 사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아무데도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들어보면 쓸데없는 일이 아니고 열매를 맺는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말하지 못하면 쓸데없는 말만 하게 된다. 노인정에 노인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무 쓸데없고 가치 없는 말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을 해 놓으신 사람에게 들어보면 그 일 하나 하나가 나를 포함하는 일이고 나와 관계되는 일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와 같이 사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모든 것 속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핍박을 받으신 자리에 우리도 있고, 그가 버림을 받으신 자리에 나도 있는 것이다. 그분은 너무나 기이한 분이다. 그가 왜 우리 눈에 기이하게 보이는가? 하나님이 그 분에게 무엇인가를 하셨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람들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을 들으면 ‘참 신기하다. 어떻게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데서 천지를 창조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이 일하신 것을 보는 것이다. 옛날에는 우리도 산이나 바다에 가서 절경을 보고 ‘하나님이 신기하게 만드셨구나.’ 하며 감탄했었다. 물론 그것도 신기하지만 그보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 안에 일해 놓으신 것을 보는 것이다. 도저히 변화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신기한 일이고,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그런 일은 볼수록 신선하고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주게 된다. 산과 바다가 아무리 기암괴석과 절경으로 사람을 감탄하게 하더라도 산은 산이고 바다는 바다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일은 다른 사람에게 계속 일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하셨기 때문에 나를 통해서 계속 일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려 해도 계속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만 완전하고, 그 일만 남는다. 그 외의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래서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 이 일만 가치 있는 것이고, 이 일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 외의 것은 있거나 없거나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단군 신화를 두고 어떤 사람은 단군이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신화라고 생각하지만 단군 할아버지가 있었든 없었든 우리에게 아무 영향이 없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신 말씀은 우리와 관계된다. 천지를 창조하신 속에 내가 창조되었고, 천지를 창조하신 속에 내가 변화되었고, 천지를 창조하신 속에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이 한 말씀 속에 나의 전부가 포함되어 있다. 하늘과 땅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해도 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이 없는데 하늘과 땅만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말씀이 성경 맨 처음에 있는 이유는 내가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안에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그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람은 창세기 1장 1절에 있는 말씀이 신화 같이 아무 소용이 없는 말이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요즘 미국 사회에서는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고 있다. 학교에서는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자유롭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말씀 안에서 발견된 사람은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전혀 상관이 없다. 내가 그 안에 있는데 그런 이론이 맞건 틀리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그 안에 있고, 내가 새로 창조된 사람이고, 내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인데 그런 이론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것이 옳다 해도 상관이 없고 저것이 옳다 해도 상관이 없다. 나는 단지 그 안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가! 어느 누구도 그 말씀 안에 포함되지 않을 사람은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돌아와서 이 말씀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사람에게 이 말씀이 없다면 어디 가서 서겠는가? 사람이 어디서 왔겠는가! 아버지 없이 내가 어떻게 있겠는가! 어머니가 없이 내가 어떻게 있겠는가! 이렇게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 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시작하신 분이 있고 시작이 있고 지음을 받은 내가 있다. 이 얼마나 명쾌한 말씀인가! 이 얼마나 완전한 말씀인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창세기 1장 1절을 완전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고 우리가 존재하고 만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말씀에 대한 완전한 증명이다. 더 이상의 이론은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을 해도 소용이 없고 증명하지 않아도 소용이 없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다 없애버린다 해도 다시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존재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지음 받은 사람이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할수록 더욱더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육신으로만 창조되어진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이 내 안에 창조된다. 새 사람이 창조되는 것을 보니까 그 말씀이 틀림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새 사람은 내 안에 전혀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전에 없던 새 사람이 창조된다. 그 사람을 누가 만든 것이겠는가?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고는 창조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와서 시작하신 것이다. 시작하시고 또 시작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로 인해서 시작되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하나님 말씀으로 또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서는 계속해서 시작이 되고 있다. 늘 새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 때마다 새로운 차원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하나님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 다음에 새로 알게 되고 그 다음에 또 새로 알게 된다. 왜 이렇게 늘 새로 시작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아는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달라지게 되고, 사람 자체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한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니까 새로운 창세기 1장 1절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절은 영원토록 있는 것이다.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장차도 있을 것이다. 새로워질 때마다 그 말씀으로 인하여 새로워지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영원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사람은 늘 변화한다. 오늘은 “태초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내일은 “태초에 나는 저런 사람이 되었다.”고 하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사람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얼마나 신기한 변화인가! 우리에게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새로운 창조가 계속 될 것이다. 창조하신 이가 있고 늘 새롭게 시작하시는 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신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은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당신은 시작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어떻게 내가 다시 시작하겠는가? 사람이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셨다.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새로 시작하시고 새로 창조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니까 창세기 1장 1절이 또 다른 창세기 1장 1절이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람은 그대로 있지 않다. 바위도 물도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계속 변하고 있다. 말씀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창조하시고 이삭을 창조하시고 야곱을 창조하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 깊어지고 더 높아지고 더 넓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차원이 점점 달라져 가는 것이다.&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성경 말씀은 신기한 말씀이다. 다른 말은 한번 듣고 나면 그만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볼 때마다 다르다. 자기 자신이 변화할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보기 때문에 다르게 보인다. 내가 물질적으로 창조된 자리에서 보면 창세기 1장 1절은 물질적으로 창조된 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고, 영적으로 창조된 자리에서 보면 영적으로 창조된 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인격으로 창조된 자리에서 보면 그 말씀이 인격으로 창조된 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어떤 사람은 창세기 1장 1절을 우주 과학적인 시각으로 보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를 만드신 말씀으로 본다. 같은 말씀인데도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나름대로 성경말씀을 각기 다르게 보는 것이다. 만일 깡패가 이 말씀을 보았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나를 깡패로 만드셨느니라.’라고 보지 않겠는가! 성경 말씀은 이렇게 신기한 말씀이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젊었을 때 몇 년간 방황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회의를 갖게 되었다. ‘이 말씀이 진짜인가? 하나님이 참으로 있는가? 사람은 진짜로 영생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밀려오기 시작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고 찾아보아도 알 수 없었다. 신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밤새 의논을 했어도 아무런 해답을 얻지 못하였다. 수년 후에 내 형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여러 가지 환경에 밀릴 대로 밀려서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되었다. 결국 하늘로밖에는 열린 길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늘밖에 열린 자리가 없으니까 그 말씀이 나에게 열렸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나에게 빛으로 다가왔다. 이상하게도 뭔가 다른 데로 갈 길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 말씀이 인정되지 않아서 ‘그럴 수가 있을까?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문이 하늘밖에 없으니까 그 말씀이 내게 거부할 수 없는 말씀으로 들려왔다. 그때 나는 무릎을 꿇고 “그렇습니다. 나는 피조물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데 내 인생이 바뀌었다. 뭔가 헝클어져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던 것이 ‘나는 피조물이구나. 나는 지으신 자가 있어서 있구나.’라고 인정하고 나니까 내 인생이 풀렸다.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 말씀이 들려왔고, ‘그렇습니다. 나는 피조물입니다. 당신이 만드셨습니다.’라고 굴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깊이 안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던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뿐이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깊이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단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창조하신 이가 있어서 존재하는구나. 나는 내 것이 아니구나.’라고 알았을 뿐이지, 더 깊이 알 수 없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말씀은 점점 더 깊이 다가왔다. ‘나를 나되게 하신 분이 따로 있구나. 내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나를 나되게 하신 이가 만들었구나. 그가 나의 창조자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그가 나를 나되게 하셨다.”고 하였다. 이 말은 그가 바울의 창조자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몰라서, 창세기 1장 1절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였겠는가?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하였다. “태초에 그분이 나를 만드셨다.”고 한 것이다. 다메섹으로 가던 그가 아닌 예수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그의 하나님, 그의 창조자인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은 사도 바울에게 와서 “예수가 나를 만드셨다.”라는 말로 발전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것이 사도 바울의 경험이며 또한 나의 경험이다. 맨 처음에 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말씀에 무릎을 꿇었는데, 지금은 그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었다. 그분이 오늘 나를 나되게 하셨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나는 창세기 1장 1절을 깨달았을 때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길로, 다른 차원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신기하게 우리 자신 안으로 파고 들어오셔서 나 자신을 만드시고 더 새롭게 만드시는 분이다.&amp;nbsp; 교회가 우리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등장하게 될 때&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도 바울은 교회를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였다. 교회는 전에 있던 것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이다. 창세기 1장 1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다. 우리는 육체로는 창세기에서 지음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교회는 새 피조물이다. 교회는 인격적인 세계이다. 창세기 1장 1절을 표현할 때는 단지 물질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몸은 갖고 있지만 교회는 인격체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였다. 개인만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사회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자기 세계를 만들고 계셨는데 사탄도 자기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사탄의 생명을 받은 후예들은 바벨탑을 만들었고, 그것은 큰 성 바벨론으로 발전하였다. 하나님도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고 계신다. 교회는 하나님이 건설하신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 피조물 안에 들어있다. 옛 피조물에 속해 있지 않고 새 피조물에 속해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 새 피조물은 누가 만들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셨고 주인이 되셨다. 이제 우리는 옛 피조물에서 떠난 것이다. 옛 피조물을 거쳐 나와 새 피조물 안에 들어있다. 우리가 서로 만나고 사랑하고 느끼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의 생활이다. 옛 피조물의 생활은 밥 먹고 잠자고 놀고 사업하고 돈 버는 생활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교회로 사는 것은 그런 옛 피조물의 생활이 아니라 새 피조물의 생활이다. 여기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것은 옛 피조물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새 피조물의 필요 때문이다. 교회는 새 피조물,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땅도 그대로 있고 육신도 그대로 있는데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분이 만드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태초에, 그분이 만드실 때 우리를 만드신 분이 계신다. 또한 내게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씨를 뿌리는 자는 당연히 열매를 거둔다. 씨를 뿌려놓고 열매를 거두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시작하고 마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일을 시작하면서 계획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14:2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계산을 하지 않고 망대를 세우실 분이 아니다. 우리를 새로 창조하시면서 계산을 못하시고 창조하실 분이 아닌 것이다. 우연히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분이 아니라 넉넉한 예산을 가지고 하시는 분이다. 집수리를 하면서 예산이 얼마나 들지 모르고 무작정 시작해서 빚을 지는 자와 같지 않고 계산을 다 가지고 충분하고 넉넉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안전하고 쉬운 것이다. 그분은 미련한 인생과 같지 않고 넉넉하신 분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내 인생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교회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없게 된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하는 일보다 확실하고 정확하다. 우리는 단지 그분이 하시는 재미있고 넉넉한 일을 보기만 하면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한번도 교회를 해 보려고 한 적이 없다. 옛날에 목회를 하면서 8년 동안 교회를 해 보려고 하다가 진땀을 빼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는 교회를 하지 않으리라고 작정하고 선교 단체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 이후로 대구에 머물게 되면서 나는 한번도 교회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해 놓으신 일을 보니까 날마다 신기하다. 하나님이 해 놓으신 일을 보는 사람은 날마다 즐겁고 신기하다.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힘이 드는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면 너무나 재미있다. 교회가 늘 새롭기 때문에 20년 동안 나는 전혀 피곤함이 없이 날마다 신기한 것만 보고 살았다. 어린 아이를 키워 보면 날마다 신기하다. 젖을 먹어도 신기하고 엎드려도 신기하고 뒤집어도 신기하고 걸어다녀도 신기하다. 생명이 자라나는 것은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피곤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에게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피곤치 않고 고단치 않고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과 같을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우리의 일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일을 보는 것이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를 보는 것보다 좋은 구경거리는 없다. 그보다 신기한 것이 없다. 지금 대구에서는 구경거리가 너무나 많아져서 이루 다 알 수 없을 정도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너무나 많아서 어디서 무슨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교회는 신기하다. 이것을 몰랐을 때는 뭔가를 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었다. 애를 쓰니까 힘이 들고 땀이 나고 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싸워보지 않았는데 뭔가를 하려고 하니까 적이 생겨서 4년 동안을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니까 적이 있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구경하고 있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렇게 신기하고 좋은 일이 없다. 뉴욕 교회에 와서 이렇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니까 재미있고 좋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늘 신기한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관점은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을 변화케 하는 것이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이 없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변화된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저 사람이 변화되겠는가?’ 하며 염려만 하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저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는가 보자.’ 하며 구경만 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는 보고 즐거워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다. 그리고 그 날을 복 주시어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알고, 보면 우리는 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는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면 복이 없다. 아무리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셔도 그것이 자기에게 보이지 않으면 재미있을 일이 없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일은 그분이 하시는데 보이지 않으니까 좋지 않은 일만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본 사람은 자기 일을 돌아볼 필요가 없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즐거워하고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답답해서 자기 혼자 뭔가를 해보려고 발버둥치기도 하지만 애만 쓰다 만다. 그런 사람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캄캄하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물질의 세계는 눈으로 보게 되는데 눈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금이 있다 해도 볼 수 없으며 보석이 있다 해도 볼 수 없다. 눈이 없으면 온 몸이 어둡다.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물질의 세계도 눈이 있어야 볼 수 있듯이 인격의 세계도 눈이 있어야 볼 수 있다. 이 눈은 물질의 세계를 보는 눈과 다른 눈이다. 천안에 사시는 이복선 자매님은 젊어서 실명하여 물질을 보는 눈이 없다. 그러나 그분은 다른 세계를 보고 있다. 교회를 너무나 좋아하고 같이 살고 싶어한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또 다른 눈으로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눈이 진짜 눈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고 눈이 있는 자는 볼 것이며 소경이 눈을 뜰 것이다. 그분은 소경이 되었지만 눈을 확실히 뜨고 볼 것을 다 보고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의 눈에 좋은 것만 보인다면 그 눈은 얼마나 복된 눈인가! 우리는 보물만 볼 수 있으면 된다. 눈에 더러운 것만 보인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그러므로 좋은 것만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은 안경을 쓰지 않고 다녀서 나는 그가 눈이 좋은 줄 알았다. 그런데 강의실에서 보니까 안경을 쓰고 있기에 “눈이 나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안경을 안 쓰고 다니느냐?”고 물으니까 “안경을 쓰고 다니면 길바닥에 더러운 것만 보여서 안 쓰고 다닌다.”고 하였다. 무심코 다니면 괜찮을 텐데 그 사람은 신경이 예민한지 안경을 쓰면 길바닥에 더러운 것들이 다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더러운 것만 보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러나 반대로 이복선 자매님의 경우는 나쁜 것은 안 보이고 아름다운 세계가 보이니까 행복한 분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되면 인생은 행복해진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 안에서, 야곱 안에서 나 자신이 발견된다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예수 안에서 나 자신이 발견된다면 나는 완전하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처음에 나는 아브라함 안에서, 야곱 안에서 나 자신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뒤로는 예수 안에서 발견되어 갔다. 예수 안에서 발견되면 더 발견될 것이 없을 만큼 완전하게 발견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나셨을 때 나도 났고, 주님이 걸어다닐 때 나도 걸어다녔고, 주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 나도 고난을 당하였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나도 달렸다. 그가 부활하실 때 나도 부활하고 그분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있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처럼 신기한 분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된 것이 없는데 어찌 그 안에서 발견되는지!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알 것이 아니라 그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자기에 대해 너무 세세하게 아는 사람은 복잡할 뿐이다. 자기를 모르고 하나님만 아는 사람, 예수만 아는 사람이 간단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자기에 대해서는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직 우리의 대표자 되시는 그분 한 분만 알면 된다. 그분만 알면 온 인류를 다 알 수 있다. 나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을 환히 다 알 수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분이 우리를 시작하신 분이다. 그분이 태초에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고,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 하였다. 분명히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2000년 전에 예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무슨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인가? 그런데 요한은 분명하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요한복음 1장 3절에 기록하였다. 왜 이런 말을 하였는가? 그가 요한 자신의 창조자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분은 나의 창조자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뉴욕에 와서 시작하신 하나님을 보았다. 시작하신 이가 있기에 오늘 뉴욕 교회가 있는 것이다. 정한성 형제가 봇짐을 싸고 다닐 때부터 시작하신 이가 있었다. 그분이 얼마나 세밀하게 일하고 계셨는지 한치의 오차도 없게 하셨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이런 저런 일들이 지나가는 것 같은데 그것도 하나님이 다 계산하신 일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그분은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셨다.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찬송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여러분을 만나서 너무나 반갑다. 여기 있는 동안 여러분과 같이 사랑을 나누기를 원한다. 이번에 미국에 오면서 꼭 추수를 하는 것 같다. L.A. 아틀란타 버지니아에서도 추수를 하는 것 같았는데 이곳에서도 추수할 것이 많이 있어서 거두어지는 것 같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번에 홍두표 형제와 함께 순회를 하면서 형제를 보니 너무나 신기하다. 하나님이 어찌 이처럼 준비하셔서 적절한 데 사용하시는지 하나님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일이다. 같이 순회를 하는데 형제를 적절하게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참으로 신기한 분이고 놀라운 창조자이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A. 형제들은 전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아틀란타는 여러분이 가 보셔서 아실 것이다. 이봉균 형제와 배금숙 자매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있다. 버지니아에서는 젊은 학생들이 있어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뉴욕은 기라성 같은 형제들이 모여서 으리으리하다. 이렇게 신기한 세계를 보게 하시고 내 인생을 축복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수년 전만 해도 앞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누가 앞일을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목사님이 죽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을 때마다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단지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만을 알뿐이지 그 다음 일은 모른다. 만일 이것이 하나님께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저절로 없어져야 될 것이고, 하나님께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이 이끄실 것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근래에 우리 형제들을 볼 때 어찌나 감사한지, 어떻게 내가 살아서 이런 세계를 볼 수 있는지 이 은혜를 감당할 수 없다. 지금은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게 우리의 세계, 우리의 교회를 선포할 수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버지니아에서 공항까지 오는 길에 정한성 형제의 말씀 테이프를 들었는데 그 넘치는 권세에 가슴이 벅찼다. 형제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권세 있는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어디서 이렇게 폭포수처럼 샘물이 흘러 넘치는지, 어떻게 내가 이것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 이것을 생각하니까 가슴이 벅찼다. 그런 형제들이 한두 명이 아니고 사방에서 일어나서 밤을 새우고 돌아다니고 있다. 태초에 일을 시작하신 분이 이렇게 일을 거두고 계시고 그것을 나로 보게 하셨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부족함이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볼 때 육신적으로도 오래 살 수 없는 사람이고, 능력으로 보아도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악조건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서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면 하나님 은혜를 누리지 못 했을 텐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은혜만을 누릴 수 있게 하셨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연약하기 때문에 연약하신 그리스도를 발견하였다. 나에게 능력이 있었다면 파도를 잔잔케 하는 예수님을 만났을 텐데, 나에게 능력이 없었기에 털 깎는 자 앞에 끌려가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약점을 통해서 그분을 보여 주신 것이 감사하다. 이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의 나라를 보여 주셨다. 내가 어떻게 더 나은 세계를 볼 수 있겠는가! 하잘 것 없는 것으로 그의 세계를 보여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이 복음 안에서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그 은혜를 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에게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어서 된 것이라면 ‘나보다 못한 사람은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런 생각이 전혀 들 수 없도록 나를 가난하게 만드시고 거기서 행복을 보여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이 행복에 참여할 수 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정한성 형제는 어쩔 수 없는 형제다. 눈물밖에 없는 가난한 형제다. 그런데 거기서 능력이 나온다. 하나님 하시는 일은 신기하고 놀랍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하게 하셨다. 이 모든 비밀이 이 안에 있다. 최고의 영광을 티끌로 빚으신 사람에게 대신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세계는 너무나 신기하다. 세상의 이치와는 정 반대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주님이 행하신 일을 생각할 때 그 은혜를 말로 다 할 수 없다.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 앞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자들에게 이 신기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입고 시작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원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24px; FONT-FAMILY: 신명 중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HWP-TAB: 1&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SPAN&gt;[기&amp;nbsp; 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3&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4&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휴먼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신기하게 일 하시고 열매를 거두시고 우리에게 늘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며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시작하시고 과정을 거치게 하시고 완성하시고 열매를 맺어 잔치를 베푸신 이 놀라운 광경 안에 우리를 포함시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무엇이관대 이렇게 당신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 주시며 우리가 누구기에 당신의 깊은 사랑 안으로 이끌어 주시는지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 당신이 행하신 일을 보는 눈이 우리에게 열려서 당신이 일하시고 마치시는 모든 사실을 우리가 완전하게 알고 완전하게 소화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당신이 우리 앞에 있어서 등불이 되고 우리 앞에 있어서 우리의 길이 되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당신이 가시며 우리가 앉아야 할 자리를 당신이 앉으시고 우리가 서야 할 자리를 당신이 서시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당신 안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당신 안에 우리가 있는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주님! 이 일로 인하여 주님을 영원히 찬송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시고 더 열어 주시고 들을 귀를 열어 주셔서 주의 말씀의 기이함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당신의 나라의 신기함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뉴욕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들을 주님이 예비해 놓으셨다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으신 것을 감사하고 이 분들을 통해서 주의 사랑을 표현하고 당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당신의 경륜을 인하여 우리가 주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서 우리가 당신이 하신 일을 세상 만방에 전파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보고 듣고 만짐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shimnk/2042"/>
		<id>tag:blog.daum.net,2009:shimnk.2042</id>
	    <author>
		    <name>한자리</name>
	    </author>
	    <updated>2009-11-04T15:18:23Z</updated>
	    <published>2009-11-04T15:18: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 &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class=HS1&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5.3pt; COLOR: #000000; LINE-HEIGHT: 39px; FONT-FAMILY: HY예서M,한컴돋움; LETTER-SPACING: -2px; TEXT-ALIGN: center&quot;&gt;보고 듣고 만짐&lt;/SPAN&gt;&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사도 요한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려고 요한복음을 썼다(요20:31). 그러므로 그의 복음에는 생명의 요소이며 그 생명 자체이신 그리스도와 그 생명의 번식, 저장, 교통, 포함, 분배에 관한 계시가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대략적으로 보면, &lt;1～9장은 ‘생명의 요소’로서&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육신이 된 말씀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2. 잔치를 기쁘게 하는 포도주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3. 거듭나게 하고 영생을 주는 구리 뱀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4. 아버지를 예배하는 아들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5. 하나님의 안식을 만드는 인자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6. 우리를 만족케 하는 생명의 떡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7.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생수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8. 죄와 율법으로부터 해방하는 생명의 빛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9.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는 세상의 빛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class=HS2&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10～12장은 ‘생명의 번식’으로서&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0. 생명이 자라는 목장(목자)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1. 부활의 요소로서의 부활 생명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2. 죽어서 번식하는 한 알의 밀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13～14장은 ‘생명의 저장’으로서&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3.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씻는 물두멍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4. 우리의 영원한 거처로서 아버지 집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15～17장은 생명의 교통으로서&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5. 생명의 중보자로서 포도나무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6. 육신을 대치하는 보혜사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7. 아버지와 아들의 우주적 교통을 위한 영광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18-21장은 생명의 포함과 분배로서&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8, 19. 옛 창조 안에서 만유를 포함한 죽음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20. 옛 창조를 끝내고 새 창조를 이끄는 부활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21. 새 창조 안으로 생명을 분배하는 떡과 생선 - 그리스도&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러한 요소들이 사랑하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계시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상의 내용들을 가지고 1～10장까지는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6일까지 뉴욕과 토론토 교회에서 연하여 말씀드렸고, 11～21장까지의 내용들은 동양대학교 강당에서 가진 이번 여름집회(7.30～8.4)에서 말씀드렸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제한된 시간 때문에 다하지 못한 말씀이 많지만, 우주 안에서 가장 고귀한 이 항목들에 관한 것을 나와 교회에 선물로 주시고, 이 선물을 우리 안에서 확인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아브라함은 이삭을 기다렸고 이삭은 야곱을 기다렸으며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들을 기다렸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의 나타남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기다리셨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나타남을 위하여 우리를 기다리셨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1974년 늦은 가을, 내가 믿고 섬기며 전파하던 그분 자신을 알지 못함을 인한 절망이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쌓이듯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는 앙상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8년간의 교회 목회와 2년간의 C.C.C(한국 대학생 선교회) 전도 사역은 단지 그 역사만 남았고 열매를 얻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밀어 부쳤고 나중에는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을 가져 왔던가! 8년간의 교역 생활에서는 종교와 신앙, 정의와 진리를 내세우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인간성과 그 조직의 어쩔 수 없는 생리를 보았다. 특히 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지, 선을 주장하고 악은 주장하지 않는 세계에서 왜 악만 실행되는 것인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으며 2년간의 전도 생활에서는 내게는 ‘벌이 찾아들 꿀이 없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절망이었다. 이제까지는 꿀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바빴지만 이제는 이것을 알고 더 이상 바쁠 일도, 급할 일도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꿀이 없는 꽃에는 벌이 오지 않는다. 생명을 번식해야 하는 꽃에게는 이 이상의 절망이 없다. 그런데 나는 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번식할 생명도 없는 어둠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 이외에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부르심을 받았으나 꽃의 생명인 그리스도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었고 그의 인도하심을 역력히 경험했었지만 그의 아들이 없었고 나는 겨우 그 아들에 대한 표면적이고 역사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문제가 아들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한때는 그 분을 체험해 보겠다고 기도원으로, 부흥집회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쫓아 다녔다. 어떤 사람은 방언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병을 고치고, 고침 받으면서 하나님을 체험했노라고 간증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이것이야말로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 체험이라고 믿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또 다른 비참한 상태였던가!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꿈을 꾸는 것들은 아들이 없을 때에도 얼마든지 있었던 것들이 아니던가! 사람의 문제는 능력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없는 그것이다. 요한은 분명하게 말하였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이것이 사실이다. 아들이 없는 모든 것은 실제가 아니며 바람에 날리는 구름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도(아들이 오신 이후에도) 뜬구름을 따라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다니고 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아들이 없는 것이 비극이다. 아들만 있으면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으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꿀이 있고, 꿀이 있으면 벌이 온다. 이 얼마나 진실인가! 나는 꿀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꿀이 귀했을 때, 사람들은 가짜 꿀 공장을 차려놓고 가짜 꿀을 만들어서 팔았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누가 더 비슷한 가짜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잘 팔리도록 할 것인가 하는 연구에 골몰하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교역자들은 만나면 모두 꿀 공장과 그 꿀 파는 얘기들을 한다. 이것이 정상인줄 알았던 세계에서 그나마 나는 밀리고 있었다. 그 꿀이 안 팔렸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꿀 장사가 잘 된다고 하는데 나는 꿀 장사가 안 되어서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금 곧 많은 정금 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 보다 더 달도다(시19:1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119:103)” 이 말씀이 그날 밤 내 모든 것을 심판하여 백지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허무했다! 10년의 세월, 그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설교를 했는데 그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살아 있는 꽃에서 흐르는 꿀이었던가, 아니면 공장에서 여러 가지 물품과 향품을 섞어 제조한 가짜 꿀이었던가? 성경지식, 신학지식, 세상지식, 사명, 부르심, 신앙, 열심, 소원, 체험, 등등, 있는 것을 모두 배합한 그 꿀(때로는&amp;nbsp; ‘맛이 있다,’ ‘다른 사람의 꿀보다 더 신선하다’, ‘훌륭하다’ 등속의 찬사도 붙은 바 있었던), 그것을 가지고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을 살린다고 동분서주했던 나는 그 한 말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10) 라는 그 한 말씀에 바벨론의 신상이 뜨인 돌 하나에 무너졌듯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허탈하고, 깜깜하고, 두려웠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때, 이 어둠 속에 빛을 비춰주는 한 사람을 만났다. 하나님은 아들이 없는 나에게 이 한 사람을 보내셨다. ‘워치만 니’, 이 한 분은 내 인생을 전환시키고 아들이 없는 세계에서 아들이 있는 세계로 옮기기 위하여 만세 전에 예비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아들을 내게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셨고 먹여주셨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하는 사람이었고, 아들을 가졌고, 아들을 살고, 나타내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뿌리가 있고,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꿀이 있는, 살아 있는 한 나무였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이것을 보고 난 후에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고, 생각지도 못했고, 만지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세계에 눈뜨게 되었다. 그 세계는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장차도 올 세계였다.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 이렇게도 다른 세계가 있는가! 내게서 모든 것들이 떠나갔다. 하늘이 종이 축이 말리듯 말렸고, 땅이 체질이 불에 녹아지듯 녹아버렸다. 한 세계는 오고 한 세계는 갔다. 그 후 나는 십 년 이상을 그 방안에서, 창 밖을 내다볼 생각도 없고 필요도 없는 왕의 침궁에 서 살았다. 십여 년이 지난 후 어느 날,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을 때는 나를 아는 사람들, 내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알았던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 떠나 버렸고, 서로가건너갈 수 없이 아득하게 갈라지고 말았다. 전에 알던 한 사람은 그때 나를 보고 죽은 줄 알았었다고 했다. 죽지 않고서야 이렇게 소식이 없겠느냐고 아는 사람들끼리 말했다고 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렇다. 나는 세상에 대하여 죽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들로 살고 있었다. 아들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살고 세상에 대하여 죽은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아들을 맛보고 누리는 동안 주암산 기도원에서 첫 집회를 가졌고 이 때 요한의 복음을 대언하게 되었다. 복음서 중에서 맨 처음 보여졌던 말씀인 이 요한복음에서 그 아들의 실상을 놓고 형제들과 나누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가운데 몇 번 요한복음을 대언했지만 이번 여름집회에서 또 다른 각도에서 아들을 보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 우둔한 입술을 주님이 쓰시기에 부드럽도록 바꾸신 것을 감사한다. 또한 그분 자신이 자신을 나타내야 하는 절대적 필요 때문에 그 동안의 세월과 과정을 통해서 더 깊게 자신을 보여주셨음에 경배를 드린다. 또한 ‘아들’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분명하고 친밀한 계시가 있었던 사도 요한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감사한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처음 빛 비췸을 받고 다메섹에서 눈의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던 바울을 따라 그의 서신들을 통해서 영적 공급과 교통을 누렸다. 그러다가 복음서로 눈이 옮겨졌을 때 내게 맨 처음 보여진 것이 요한 복음이었다. 처음에 나는 눈은 뜨여졌지만 복음서를 읽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의 도우심을 찾았던 것 같다. 복음서는 다 아는 것 같은데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는 맑은 호수 낚시 같았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는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다소간 보였고 건질 것이 있었기에 그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은 나를 이끌고 요한복음 안으로 인도하셨고 거기서 나는 절절이 아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골짜기마다, 마당마다 아들이 있는 것을 보고 거기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그 이후 수년 동안 복음서 안에서 아들을 찾느라고 몇 번을 뒤적였는지 모른다. 밭이랑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보리 이삭을 하나씩 줍다가(서신에서) 어느 주인 없는 보리밭을 만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왜 이것을 베어가지 않고 두었을까! 아들이 여기 밭으로 있는데 왜들 이삭을 줍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마치 추수하는 농부 같았다. 나는 수년동안 오로지 아들만을 추수하고 아들만으로 잔치를 누렸고 아들만을 나누었다. 그가 왕이시고, 주님이시고, 선생이시고, 신랑이시고,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보다는 아들, 그 아들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마태복음을 봐도, 누가복음을 봐도 모두 아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분이 자신을 아들로 보여 주시기 위하여 나를 아들 안으로 이끄셨음을 감사한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다. 아들만을 보았고 아들만을 전했지만 모든 것이 나타났다.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했던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번 여름집회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다만 “신기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은 신비다. 생명은 이적이고 생명은 능력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함축하며 표현한다. 교회는 이 신기한 생명의 표현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생명을 볼 때 우리는 다만 신기할 뿐이고 아무 것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이번 집회 안에서 뿌려진 요소가 번식하고 저장되며 교통하고 포함하며 분배되어 30배, 60배, 100배로 드려짐으로써 더 신기한 역사를 보게 해 주시기를 원하며 우리 또한 그분의 어떠하심으로써만 드려지고 나타나기를 원한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3%; FONT-FAMILY: '휴먼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43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휴먼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8%; FONT-FAMILY: '양재 본목각M'; LETTER-SPACING: -1px; TEXT-ALIGN: righ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2px; FONT-FAMILY: 양재 본목각M,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right&quot;&gt;－이 현 래－&lt;/SPAN&gt; &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7. 어린양의 왕국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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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한자리</name>
	    </author>
	    <updated>2009-11-04T15:09:07Z</updated>
	    <published>2009-11-04T15:09: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 &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5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옛체';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5pt; COLOR: #000000; LINE-HEIGHT: 32px; FONT-FAMILY: 휴먼옛체,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7. 어린양의 왕국&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8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22:1-5).&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번 집회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영원한 운명과 죄로 말미암은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이 어떠하신가에 대해 말씀드렸다. 우리는 원래 흙으로 지어졌지만, 하나님을 표현할 자로 지어졌기 때문에 동산에 함께 거해서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하여 하나님을 표현하는 삶 안에 영생하도록 지어진 존재이다. ‘영생’은 길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고, 나는 그의 표현이 되는 삶의 상태인 것이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추방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창3:22).” 하셨다. 영생하면 안되기 때문에 내어쫓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은 영생, 참 생명을 잃어버렸다. 참 생명과 참 생활 즉, 사람에게 정해진 축복된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인간의 운명은 다른 길이 되어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고 가인과 아벨은 종교를 만들어서 아우를 죽이고, 그 후손들은 점점 더 포악해져서 네피림이 되어 자기 원하는 대로 살고 자기 원하는 대로 해보는 역사가 진행됨으로써 하나님은 땅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게 되었다. 이것은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대로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로 말미암은 인생의 상태였다. 우리에게서 아직 그들만큼 포악한 것이 표현되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고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였다는 것을 창세기 3장부터 11장까지 계시하고 있다. 풋사과는 언젠가는 익은 사과가 되고, 병아리는 언젠가는 닭이 되고, 올챙이는 언젠가는 개구리가 된다. 올챙이의 운명은 개구리이다. 이미 그 속에 유전자가 들어박혀 있는데 단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창세기 3장부터 11장까지 다 드러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그들보다 더 오래 살 수 없고, 아무리 세상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도 네피림들 만큼 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것을 한다고 해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전도자는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1:10).” 하였다. 그들이 900살까지 살았으나 우리는 아무리 해도 100년을 채 못 살고, 아무리 세상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도 네피림 만큼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가 다 해본 것을 다시 되풀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다시 해봤자 1등을 못하고 꼴찌가 될텐데 또 다시 할 필요가 있겠는가? 앞서 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갔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고 거울로 삼아 ‘아! 이것은 끝이구나. 이미 끝장이 난 것이구나. 이미 심판되어진 것이구나.’라고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이다. 성경은 그래서 쓰여진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은 무엇인가? 무화과 잎으로 만든 옷 대신 가죽옷을 주셨고,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고, 강포의 시대에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혼잡의 시대에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새로운 씨를 주셨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대책이었다. 이 대책이 온전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 대책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후에 두려움이 왔기 때문에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리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의(義)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모두 어떤 행위를 만들어서 그 행위로 자기 자신을 가리려고 한다. “나는 선한 사람이다.” 하는 것으로 자기를 내세우던가, 반대로 “나는 악한 사람이다.” 하는 것으로 자기를 내세우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룩한 행위를 내세우려고 한다. 그것이 마치 자기인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자기를 그렇게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자기가 이룩해 놓은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화과 잎이다. 이것은 ‘자기 의, 인간의 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햇빛을 만나면 곧 말라버리게 되고, 더 온전한 것을 만나면 시들어버린다. 나의 행위를 아무리 온전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내놓는다 해도 어딘가 가보면 또 다시 부끄러워진다.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말라버리는 무화과 잎같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대책은 그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는데, 가죽옷은 햇빛이 나도 마르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이다. 가죽은 우리의 몸과 가장 가까운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죽옷을 입고 햇빛이 와도 말라버리지 않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람을 용서하신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일뿐 본질 자체가 바꿔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백번 천번이라도 용서하실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용서하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다. 우리가 다른 옷을 입었다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화과 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가 가죽옷을 입은 것은 나의 의를 드러내다가 하나님의 의가 입혀진 것 뿐이다. 가죽옷을 지어 입힘으로 우리의 의는 없어지고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것이다. 로마서 3장 21절에서는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가려주셨다는 뜻이다. 덮어주신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덮어주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가 만일 우리를 덮어주시지 않는다면 한 사람도 그 앞에서 살 사람이 없다. 여전히 가리워줌이 필요하지만 완전한 대책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왔던 것은 가죽 옷 안에서 살았던 생활이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때는 무화과 잎 안에서 살던 생활이고,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해 왔을 때는 가죽 옷 안에서 사는 생활이었다. 십자가 밑에서 사는 생활이었다. 십자가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했는데 결국 우리를 덮어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대책이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끝없이 용서하시지만 나 자신은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매일 똑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여기서 우리는 생명이 바꿔져야 할 필요가 있다. 생명이 바꿔져야지 옷만 바꿔서는 안되는 것이다.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은 체질이 다르다. 그들은 아기를 낳고도 금방 샤워를 하고 냉 쥬스를 마시고 에어콘을 틀어놓고 돌아다닌다. 한국 여자들이 그렇게 한다면 큰일난다. 그들과 우리는 껍데기 피부가 다른 것 같다. 우리의 피부는 얇고 부드러운데 그들의 피부는 두껍고 뻣뻣하다. 가죽이 두꺼워서 감기도 잘 안걸린다. 우리보다 훨씬 체질이 강하다. 그러한 체질적 차이를 옷만 바꿔 입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속은 검은데 겉에 흰옷을 입는다 해서 백인이 되는 것이 아니듯 옷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옷은 임시조치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가죽옷의 은혜는 영구적인 조치가 아니었고 임시조치였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영구적인 조치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 안에서 해답이 없게 되어 천당으로 도피하게 된 것이다. 천당에 가면, 죽은 후에는, 저승에 가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의 상태이고 형편이며 갈등이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갈등을 느끼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갈등을 느끼지 못하고 주장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근본적으로는 가죽옷의 형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삭이라는 새로운 씨를 주셨다. 이 새로운 씨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씨라는 것을 상징하고 예표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사라가 늙어서 경수가 끊긴 후에 이삭을 낳았다는 사실은 사람의 힘으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씨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삭은 가죽옷에 대한 또 다른 대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21:12).” 하셨고, 이삭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하나님의 경륜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삭은 분명히 아브라함과 사라가 끝나고 낳은 아들이지만 여전히 육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육체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완성될 수 없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육체 안에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육체로 소화하여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구약성경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잘 지키면 너희 중에 한 사람도 병들지 않을 것이고, 농작물에도 병충해가 들지 않을 것이고, 적이 한 길로 들어왔다가 일곱길로 도망갈 것이다.” 등등의 많은 약속들이 있다. 그들은 이것을 모두 시간과 공간적인 약속들로 받아들였다.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약속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육체이기 때문에, 육신으로 낳은 씨였기 때문에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광야 40년을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그후에 왕국을 건설한 후에도 그렇게 살았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 하나님이 우리를 떠났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목이 마르면 ‘하나님이 어디로 갔구나.’, 배가 고프면 ‘하나님이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감사와 원망을 계속 반복하였다. 광야 40년의 생활 동안에 어느 때는 하나님을 극도로 찬양하였고, 어느 때는 하나님을 극도로 원망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그렇다. 우리가 그러한 상태로써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다보면 어느 때는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장사가 잘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병을 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교통사고에도 죽지 않고 살았으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계신데 왜 이랬을까?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렇게 될까?” 하는 원망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육체의 한계이다. 육신으로 낳은 이스라엘의 한계인 것이다. 할례를 받았지만 육신의 할례를 받았고, 새로운 씨를 받았지만 육신으로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런 가운데 절망이 오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역사적으로 절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왕국이 건설되어서 그 나라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줄로 생각했으나 이스라엘 왕국은 점점 내리막 길을 걷게 되고 점점 쇠퇴해서 마지막에는 완전히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몇 번이나 포로 생활에서 다시 귀환했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 왕국이 곧 하나님의 왕국일 것이라는 신앙이 없어지게 되었다. “아, 이제 하나님 나라는 없어져 버렸다. 왕국은 없어져 버렸다.”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무엘하 7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그런데 그 왕권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수백년 동안 그 나라를 회복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대만을 가지고 살았다. 때로는 선지자가, 때로는 혁명가들이나 정치가들이 나와서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을 위해서 투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치 우리가 일제시대 때에 독립을 하려고 일본 사람들에게 저항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도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완전히 절망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육신적인 이스라엘 왕국, 다윗의 왕국에 대한 소망에 대해 절망하게 되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인간적으로도 육신의 한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진전할 수 없었다. 적이 한 길로 들어와서 일곱 길로 도망한다고 하였는데 정 반대가 돼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희 중에 질병이 하나라도 있지 않게 하겠다.” 하셨는데 온갖 질병이 들어왔고, 곡식까지라도 병충해가 들지 않게 하신다 하였는데 황충이 먹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회개하고 각성해봐도 되지 않았다. 문경교회에 그렇게 하셨던 분이 있다. 말라기 3장 10-12절의 말씀을 부흥회에 가서 듣고는 믿음으로 농약을 치지 않았다. 그런데 병충해가 다 먹어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말씀은 헛된 것이 되지 않는가? 분명히 영원한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인데 왜 그 말씀이 성취되지 않고 빈말이 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표현으로 약속하셨던 것은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림자로 주신 것인데 그것을 그대로 받으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때는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어느 때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약속대로 된다면 그들은 절대로 식민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이 어떻게 세상 사람의 식민지가 되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식민지가 돼 버렸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 신약 - 새 언약의 시대&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여기서 선지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 축복이 과연 물질적이고 공간적인 것일까?’ 하는 회의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예언이 발전해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한 예언의 발전이 최종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새로운 씨,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된다. 구약이라는 세계는 끝나고 신약(新約),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오게 된다.&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새 언약은 무엇인가? 옛 언약을 그대로 연장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신약은 옛 언약을 완성하는 것이다. 신명기 28장 7절에서는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하였는데, 구약시대의 관념과 육체 안에서의 해석은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이 적군을 만났을 때 싸워 이긴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신약 안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그와 같이, 적이 들어왔다가 패하고 가는 것처럼 사탄이 우리에게 왔다가 패하고 가는 모습인 것이다. 어떻게 들어왔다가 어떻게 패하고 가는가? 인격 안에 침해했다가 패배하고 돌아가는 모습이다. 구약 안에서는 다윗이 적과 전쟁을 할 때 적이 한 길로 들어왔으나 일곱 길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 후로는 그런 일을 본 일이 없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우리는 어디서 그 모습을 보았는가? 예수님과 사탄이 전쟁을 하는 데서 보았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한길로 들어와서 일곱 길로 도망쳤다. 세 길로 들어왔다가 간 데가 없이 사라져 버렸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하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 버렸고, “네가 만일&amp;nbsp;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4:6).” 하다가 일곱 길로 도망쳤고,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하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 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아! 일곱 길로 도망친다는 것이 이것을 말한 것이구나.’ 라고 알게 되고, 더 발전하면 교회가 승리하는 모습 속에서 적이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약은 이렇게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옛 것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다. 옛 것은 모형이고 형상이다. 그러나 신약은 실재다. 이런 세계로 옮겨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 세계로 옮겨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씨이다. 씨가 바꿔지면 농장 전체가 바꿔진다. 지금 국광 사과는 없어지고 다른 사과가 온 농장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국광사과 한 그루면 대학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사과 농사는 수지가 맞았다. 그런데 더 좋은 사과가 들어오면서부터 국광 사과는 다 없어져 버렸다. 새로운 씨가 들어온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신약은 새로운 씨가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약속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구약에서 형식적으로, 물질적으로, 역사적으로 주어졌던 것들은 이제 신약 안에서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주어졌다. 예를 들면 구약 시대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성전이다. 그런데 그 성전이 없어지고 예수님 자신으로 대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하셨다. 이것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것이 신약이다. 예수님이라는 한 인격이 성전이 된 것이다. 예수라는 한 인격이 성전이 된 것과 물질적인 성전, 이것이 구약과 신약을 명백하게 갈라놓은 것이다. 다른 모든 것도 다 이와 같은 원리로 갈라지는 것이다. 분명히 구약에 있는 성전은 신약의 성전의 형상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약의 성전을 잡고 있다면 신약의 성전을 무시하는 것이다. 해답을 없애버린 것과 같다. 문제지만 갖고 있고 답지를 없애버린 것과 같다. 얼마전 수능시험을 치렀는데 답지를 제출하지 않은 사람은 불합격이다. 우리가 구약의 성전을 붙잡고 있고 신약의 성전을 버린다면 답을 버린 것이다. 문제는 갖고 있지만 답을 버린 것이다. 그와 꼭같이 우리 인생도 신약이 없으면 답은 없다. 문제만 있을 뿐 해답은 없다.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해답은 없었다. 그래서 ‘죽은 후에나 해답이 있을 것이다.’ 하거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해답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 안에서는 답이 없다. “이런 약이 좋다. 저런 약이 좋다.” 하는 루머가 퍼지는 이유는 진짜 약이 없기 때문이다. 참 약이 있으면 그런 말이 없어져 버린다. 요즘 사람들은 문둥병이 걸리면 무슨 약을 먹어야 낫는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약’이라는 것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약을 먹으면 낫는다 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약을 먹는다 하였다. 심지어는 “해골바가지에 들어있는 물을 먹으면 낫는다.” 하거나, “아기를 잡아먹으면 낫는다.” 하는 등 온갖 지식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문가들 외에는 무슨 약을 먹어야 문둥병이 낫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한가지 약만 쓰면 낫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우리의 옛날 신앙생활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고, 따라서 수많은 ‘헛된 해답’이 있었다. 그러나 참 해답이 옴으로 그런 것들은 다 소용이 없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참 해답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이다. 인격의 성전이 오니까 해답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히고, 등잔을 놓고, 떡상을 차리며 매일 하고 있는 일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정성을 드리면 되는가? 하나님이 알아듣는지 어찌 알겠는가? 받으시는지 어찌 알겠는가? 우리가 하던 모든 일에 대해서 의문만 있을 뿐 해답은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인격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게 되니까 구약에 있는 성전에 대한 그림이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아! 이래서 제단이 있었구나. 이래서 물두멍이 있었구나. 이래서 등잔이 있었구나. 이래서 떡상과 향로와 법궤가 있었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인격 안에 그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다. 또한 살아있는 성전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 이것이 신약이다. 신약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2. 새 언약의 씨 - 예수 그리스도&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생긴 씨인가?&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이 것은 구약과 신약을 통칭해서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에게 주신 모든 약속이 다 성취됨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사람의 소원이 전부 다 성취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계22:5).” 라는 말은 이제는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뜻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2).” 하였는데 만국은 온 이방 세계를 의미한다. 구약시대의 관념으로는 축복에 포함되지 않고 버려진 모든 나라들이다. 모든 이방 세계를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외인(外人)이다. 문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까지도 치료하기 위해서 그 나무의 잎사귀들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를 다 치료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모든 약속이 다 성취된 것이다. 적이 한 길로 들어와서 일곱 길로 나가는 것도, 다시는 병충해가 없는 것도, 병들지 않는 것도, 모든 것이 다 성취되었다는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이것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22:1).” 하였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린다는 것이다. ‘보좌(寶座)’의 정확한 번역은 ‘왕좌(王座)’이다. 이 모든 것의 원천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권이 흘러 내려오는데 만국이 다 치료된다는 뜻이다. 결국 그 씨와 그 생명이 흐르는 곳에 생명나무가 있고, 그 생명이 흐르는 곳에 만국이 다 치료된다는 것이다. 아픈 것이 다 치료되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버려져 있었으니 얼마나 슬펐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던 비참한 상황 가운데 있던 사람들도 다 치료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미국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고 시민국가이므로 이런 개념이 분명치 않지만 옛 국가에서는 왕권이 그 나라의 태평성대를 좌우한다. 어느 임금이 왕좌에 앉아 통치하는가에 따라 백성이 편안할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도 통치자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만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통치자의 어떠함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하나님과 어린양의 통치가 생명수를 흐르게 하고, 그로 생명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히게 되고, 만국이 다 치료된다는 것이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어린양은 누구인가? 어린양은 성경의 비밀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임금’이라고 하면 ‘왕권’을 생각하게 되고, ‘왕권’이라면 사자(獅子)를 생각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인봉한 책이 있는데 그 책을 펴거나 인을 뗄 자가 없더라 하였다. 그래서 심히 울었더니 장로중 하나가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獅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하였다.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라는 말은 왕이라는 뜻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왕권은 유다에게 계승되었기 때문에 유다 지파의 사자는 왕이다. 그리고 왕중에 가장 유명한 왕은 다윗왕이다. 그런데 “다윗왕의 근본인 뿌리가 이기었다.” 하였다. 그러면 다윗 왕의 뿌리는 누구인가?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5:6).” 하였다. 위대한 다윗, 놀라운 다윗,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왕권의 뿌리가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비밀이다. 세상 왕의 뿌리는 어린양에 있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왕의 뿌리는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비밀이다. 겉으로는 사자(獅子)인데 뿌리는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비밀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스라엘 나라를 세울 때 백성들은 사무엘을 찾아와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8:5).” 하며 왕을 달라 하였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라(삼상8:11,13).” 하며 만류했지만 백성들은 그래도 왕이 있어야 되겠다고 청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사무엘상 9장 2절에는 사울에 대해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하였다. 이것이 사람들이 바라는 왕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교만하여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제사를 드리다가 폐위되고 말았다. 결국은 미치광이가 되어 죽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 다음에 선택된 것이 다윗이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그 집안에서 가장 어렸고 이름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무엘은 다윗을 보니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윗을 선택한 것이다. 다윗은 분명히 겉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을 건국한 가장 찬란한 왕이었지만 그의 뿌리는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이라는데 있었다. 이새는 다른 일곱 아들들을 사무엘에게 보였지만 다윗은 부르지 않았다. ‘다윗이 무슨 왕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버려져 있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사무엘이 “또 없느냐?” 하니 “막내가 있는데 밖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는 목동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무엘이 데려오게 하여 그를 보더니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다윗은 자기 속에 어떤 뿌리가 있는데 그 뿌리가 평생토록 있었던 것이다. 비록 왕이지만 뿌리는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던 것이다. 다윗에게서 독특한 왕권이 나온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그를 통해서 무수한 시편이 흘러나왔다. 다윗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는 바로 어린양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양이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그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 때도 어린양을 통해서 탈출했다. 어린양이 구원자였던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애굽이 호랑이라면 사자(獅子) 정도는 돼야 호랑이를 이기고 나올 것 같은데, 우리의 상식과 전혀 다르게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다. 역사 안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어린양이 사자 굴에 들어가서 살아 나올 수 있으며, 어린양이 어떻게 사자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는 어린양이 앞장서서 나왔던 것이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나오게 된 것이다. 어린양의 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가리워 죽음을 피하게 하였고, 어린양의 살코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탈출하기 위한 양식이 되었다. 그들은 어린양의 힘으로 애굽을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 어린양이 한 인격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였던 것이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인봉한 책을 뗄 자는 바로 어린양이라 하였다. 인봉한 책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경륜의 비밀이 들어있다. 우주의 비밀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주의 비밀을 열 자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하나님의 모든 우주의 경륜을 집행할 자도 어린양이다. 하나님의 경영을 맡을 자가 어린양이라는 것이다.&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요한계시록 7장에는 인맞은 자들이 나오는데 그 수가 십 사만 사천이다. 그런데 그 인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인이다. 어린양으로 도장을 찍어놓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도장을 찍었다.’는 말은 ‘내 것’이라는 의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요한계시록 14장에 가면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인맞은 십 사만 사천이 그와 함께 있다. 시온 산에 선 인맞은 자들은 누구인가? 어린양을 목자로 하는 사람들이다. 7장 17절에서는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었다.” 하였다. 시온 산에 섰다는 말은 목자보다 한 단계 올라간 것이다. 목자는 들판에 있었지만 이제 그 목자가 시온산에 섰는 것은 왕권을 선포할 때, 축복을 선포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 시온산은 축복을 선포하는 산이다. 축복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요한계시록 21장에 오면 하늘로부터 오는 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이 나온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하였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이다. 이것은 어린양이 아내를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아내를 맞게 되었다는 말은 성년(成年)이 되었다는 뜻이다. 성년이 되어 생산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요한계시록 22장에 가면 그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흐르고, 흐르는 생명수 가에서 열두 가지 과일이 열리게되고, 그 과일들이 만국을 소성케 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는 이 한편의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의 우주적인 경륜의 비밀은 어린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점이다. 교회와 세상이 어떻게 다른가? 술을 먹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다른가? 그렇지 않다. 경영 자체가 다르다. 어린양으로 경영하는 세계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가 세상을 보면서 ‘세상은 이렇다.’고 생각된다면 교회를 볼 때는 ‘교회는 저렇다.’고 보여야 한다. 교회와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생명 자체가 다른 것이니까 달라야 한다. 그런데 종교는 어떤 행위나 모습을 다르게 하려고 노력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하며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원리 자체가 구별되지 않으면 여전히 똑같은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 속에서 무엇이 힘이 되어 흐르고 있는가? 교회는 무엇이 생명이 되어 흐르고 있는가? 무엇이 원리가 되어 경영되는 것인가? 교회는 어린양의 경영과 어린양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사자의 경영과 사자의 생명이 흐르는 곳은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모습이 달라야 되는 것이 아니고 경영 자체를 어린양의 경영으로 하는 곳이다. 자본주의적 경영과 공산주의적 경영이 다른 것처럼 세상과 교회도 경영이 다른 것이다. 생명이 다르니 경영도 다른 것이다. 어린양이 사는 방식이 다르고 사자가 사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니 교회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명이 다르다면 달라야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분명히 교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가 있지만 그것을 움직이고 있는 힘은 어린양이 아닌 다른 힘이다. 사자의 힘, 호랑이의 힘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기도를 얼마나 해야 하는가, 사회 봉사를 얼마나 해야 하는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어떤 교리를 믿어야 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린양이 구성원이 되고 어린양으로 경영되고 있는가, 아니면 호랑이가 구성원이 되어 호랑이로 경영되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것을 모르면 무엇이 교회인가를 알 수 없고, 내가 교회의 어떤 구성원인지도 알 수 없다. 교회는 어떤 사람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사천이 섰더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보니 호랑이가 백두산에 섰는데 많은 호랑이가 운집해있더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이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경영 안에 있다. 어린양으로 출발해서 어린양으로 살고, 어린양으로 경영하고, 어린양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거기서 흐르는 강이 생명의 강이다. 거기서 생명 강물이 흐르는 것이다. 이 물을 먹으니까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 물을 먹으니까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여름에는 열리지만 겨울에는 열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여름에도 열리고 겨울에도 열리는 것이다. 이 사람만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저 사람도 구원이 되는 것이고, 이 사람만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고 저 사람도 영광을 받는다는 뜻이다.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니까 만국이 거기서 치료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그것을 보고 있다. 교회 안에 이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물가에서 생명나무가 자라고, 생명나무에서 열매가 열리는데 만국이 치료되고 있다. 버려진 모든 사람들이 치료되고 있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청송감호소 출신들이 한명씩 오고 있다. 우리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오고 있다. 어떤 과일을 먹고 치료가 되기 때문이다. 여름 과일인지 겨울 과일인지 모르지만 먹고 살 수 있는 과일이 있어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교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오고 있다. 그들도 먹고 살 수 있는, 치료될 수 있는 과일이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우리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과일이 열리니까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로 말미암아 되어진 열매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창세기 2장의 영원한 계시를 볼 때 거기는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강의 네 근원이 되었다. 그 강물은 동산을 적시고 여러 가지 열매들이 열리게 하는 물이었다. 물이 있어야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메마른 사막지대에 관개시설을 하여 물을 대니 옥토가 되었듯이 에덴으로부터 흐르는 물은 동산 안의 모든 식물을 소성케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었다. 어린양과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은 만국을 치료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3. 어린양의 왕국&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는 현실적으로는 어린양의 왕좌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하니 둘이 나란히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상 보이는 것은 어린양뿐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린양 속에 생명으로 거하신다.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보좌는 하나뿐이다. 어린양이 통치하는 세계, 어린양이 다스리는 세계, 어린양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만국이 치료된다. 내가 구원을 받고, 치료되고, 소성되는 것을 보니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그 물 때문에 치료되는 것이다. 호랑이로부터 흐르는 물을 먹고는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을 먹으니 치료가 되는 것이다. 만국을 소성케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상하게 그 물을 먹는데 우리에게서 어둠이 없어진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22:5).” 하였다. 빛이 오는 것이다. 사람이 밝아져 광명이 오는 것이다. 물질적인 육신은 외부적인 빛이 있어서 살지만 우리의 인격은 외부적인 빛으로 살 수 없다. 아무리 전기불이 밝아도 내 속이 어두우면 밝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이 없을지라도 속이 밝다면 나는 광명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어린양이 왕노릇하는데 거기서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세계는 네피림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가! 가인과 아벨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가! 창세기에서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세계를 보았고, 에녹의 세계를 보았고, 라멕의 세계를 보았고, 네피림들의 세계를 보았고, 바벨탑을 쌓는 세계를 보았다. 그 세계와 어린양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두 세계가 구체적인 성으로, 구체적인 세계로 드러나는데 하나는 바벨론이고, 하나는 새 예루살렘이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결론에 와서 한 성은 무너지고 한 성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하였다(계18:2,21:2). 바벨론 성은 무너진다. 거창한 것 같은데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한다. “야, 저런 성이 어떻게 저렇게 일시에 무너질 수 있는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일시에 무너졌는가!” 하며 모두 의아해하는 것이다. 그 성은 사람의 상식 안에서는 절대로 넘어질 수 없는 성이었다. 그런데 무너져버렸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는 그 성이 무너진 것을 이미 바벨탑에서 보았다. 하나님이 보시고 흩어버리시니 언어가 혼잡해져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이미 계시를 보았다. 이제 그 계시가 역사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언제든지 계시는 먼저 오고 역사는 다음에 온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보았던 그 계시는 역사 안에서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이다. 바벨론이 무너진 것을 우리는 계시 안에서 보았고, 역사 안에서 또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계시가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두 사회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성(城)이라는 말은 도시라는 뜻으로 사회를 의미한다. 바벨론이라는 사회와 새 예루살렘이라는 두 사회가 나타나게 되는데 한 사회는 무너지고 한 사회는 나타나게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것을 표절한 것이 공산주의이다. 그들은 이 그림을 표절하여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70년만에 무너지고 있고 나머지도 곧 무너질 것이다. 어린양으로 말미암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 이론을 모르지만 거기에 심취되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론(理論)은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한다.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실패했는가? 어린양이 없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나는 이미 20년전에 공산주의는 곧 망한다고 말했었다. 왜 망하게 돼 있는가? 공산주의가 가능한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으니 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매일 밤 모여서 반상회를 하고 학습을 시키고 교육을 시키며 훈련을 하였지만 호랑이를 데려다놓고 어린양 교육을 시키니 되겠는가? 공산주의 이론이 좋거나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공산주의를 할 수 있는 인간이 없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를 하려면 내 것이 없는 사람이라야 된다. 내 것이 있는 사람만 있는데 어떻게 공산주의가 되겠는가? 아무리 학습을 한들 되겠는가? 그들은 무정부상태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프로레타리아 독재가 통치하게 되면 가진 자들이 없어지고 무산(無産)계급이 통치하는 시대가 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왕이나 통치자가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이 필요 없는 자치적인 나라가 되어 지상낙원이 될 것이라고 했었는데 공산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공산주의가 될 수 없는 인간을 놓고 공산주의를 만들려고 하니 가장 강력한 강제가 아니면 안되었던 것이다. 역사 속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재를 하고 가장 강력한 통치를 하였던 것이다. 스탈린은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 나라는 총칼이 아니면 유지되지 않았다. 지금도 북한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절대권력을 가지고 독재를 하기 때문이다. 조그만 풀어놓으면 그 나라는 금방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개방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개방을 하게 되면 금방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편지 왕래라도 하게 하자고 제의했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하고 나면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왜 공산주의는 안 되는가? 공산주의를 할 수 있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내 것이 없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반드시 성취된다. 어린양이 있기 때문에 꼭 성취된다. 우리는 이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것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냥 막연하게 종말론적으로 언젠가 그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싹이 자라고 가지가 자라고 잎이 피는 것을 보고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일은 없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많은 사람들은 막연하게 그날을 기다리며 역사 속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초역사적으로 그 세계가 임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천지개벽처럼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역사 발전의 과정 속에서 그 나라를 찾아보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교회의 현실을 보니 불가능함을 알았고, 세상의 현실을 봐도 불가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8-19세기에 이르러 그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수직적으로, 초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종말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나라는 인간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하늘에서부터 완전하게 새로 내려올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그 날이 언제인가?’ 하여 날짜를 알아 맞추려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날짜를 알아 맞추려는 사람들은 다 실패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패하게 된다. 그 날짜는 아무도 알아 맞출 수 없다. 그 나라를 알고 보면 그 날은 아무도 알아 맞출 수 없는 날이다. 그 날은 아버지밖에 모른다. 알아 맞출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그 나라가 자라고 있는데 이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날을 알아 맞추겠는가? 그렇게 여러 번 실패를 하고 나니 어떤 사람들은 “날짜는 사람에게 맡긴 것이 아니니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얼마나 막막한 말인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우리는 지금 마치 농사를 짓듯이 밭에서 그것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있다. 배추 농사를 지을 때 씨를 뿌려서 싹이 나는데 장사꾼이 와서 팔라고 하면 주인은 밭떼기로 팔아버린다. 그 다음에 잎이 두 세 잎 나오게 되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밭떼기로 사버린다. 이렇게 해서 배추가 출하될 때까지 몇 번의 과정을 거쳐서 거래가 된다. 아직 덜 자랐지만 분명히 눈으로 보기에 배추로 보이기 때문에 돈을 주고 사고 팔고 하는 것이다. 덜 자랐지만 싹을 보니 며칠이 지나면 배추가 될 것이라고 확실히 알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는 어떻게 진주를 사는가? 어떻게 밭에 묻힌 보화를 모든 것을 팔아 사는가? 배추장사처럼 싹을 보면 배추인줄 알기 때문이다. ‘아! 이것은 분명히 배추구나. 가을에 되팔면 돈이 남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사는 것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겠는가? 싹을 보고 잎을 봐야 사는 것이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사겠는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해도 보지 않고 사려면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갖기가 쉬운가? 잘 믿으면 좋겠지만 싹도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나 싹을 보고 믿는 것은 쉽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이 싹을 보고 잎이 자라는 것을 보고 “아! 어린양의 통치가 있으면 생명의 물이 흐르는구나! 생명의 물이 흐르면 생명나무의 열매가 열리는구나! 생명나무의 열매가 열리면 만국이 치료되는구나! 모든 사람이 치료되는구나!”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어린양의 통치와 어린양의 왕국의 이상을 보고서 내 인생이 조용해지고 분답함이 없어졌다. 뭔가 깨지 못한 꿈과 같은 것들, 들어 붙어 있던 것들이 없어졌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불교에서 스님이 평생을 수도해도 안되는 것 같다. 그들은 끝없는 생명을 깨달으려고 ‘무량수각’을 매일같이 외우고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을 깨닫기 위해 수도를 한다. 그렇지만 막상 종단 총무원장을 선출한다고 하니 각목을 들고 싸운다. 각목을 들고 서로 밀치며 싸우는 모습이 TV에 며칠간 나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수양을 해도 그렇게 안되는지! 수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고생을 하고서도 결과는 패싸움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전에 절에서 일년간 살았는데 그들은 세시쯤 되면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 봤자 낮에 할 일도 없지만 부지런하게 세시에 일어나서 고요한 산중에서 묵상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종을 치는데 조용한 산사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아주 작은 소리부터 치기 시작해서 차츰차츰 커져서 온 산에 퍼지도록 종을 친다. 매일 그런 생활을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어린양의 통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도 누가 더 오래 견디며, 누가 더 오래 참을 수 있을까 하여 수도를 한다. 결국 그것이 도를 깨닫는 것이다. 누가 생식을 더 오래 했고, 누가 더 오래 쭈그리고 앉아서 잠을 자지 않고 견디는가 하여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안되는가? 어린양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승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에게 어린양의 승리가 보이고, 어린양의 통치가 보이고, 어린양의 왕국이 보이게 되면 우리 인생은 저절로 조용해진다. 사람은 자기 눈에 보기 좋은 것을 따라가게 돼 있다. 아담은 왜 선악과를 먹었는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니 먹은 것이다. 아담은 억지로 선악과를 먹은 것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서 먹은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 좋은 것을 따라가게 돼 있다. 이제 우리에게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면 우리는 저절로 예수 그리스도를 먹게 된다.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다. 쓰디쓴 것을 놔두고 억지로 약 먹듯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먹으면 약된다며 쓰디쓴 약을 먹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런 믿음을 가지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아담은 선악과를 얼마나 쉽게 먹었던가. 그에게는 고민한 흔적도 없고 철야기도 한 흔적도 없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먹었던 것이다(창3:6). 자기만 먹은 것이 아니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니 아담도 아무 이유 없이 받아먹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먹으라 하느냐?” 하지도 않고 그냥 주는 대로 먹어버렸다. 아담이 볼 때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니 먹은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믿음이 필요한가, 열심이 필요한가, 충성이 필요한가? 그런 것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를 참으로 알기만 한다면 저절로 먹게 된다. 좋은데, 먹음직 한데, 보암직한데 어떻게 안 먹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린양이 통치하는 영광스러운 왕국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풍성한 왕국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옹다옹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이겨보려고, 서로 왕이 돼 보려고, 서로 꼭지가 돼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어린양의 통치가 보인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어린양이 시온산에 선 것이 내 눈에 보인다면, 어린양이 인봉한 책을 떼시는 것이 보인다면, 어린양이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면 우리의 인생은 조용해진다. 다른 필요는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그 많은 번민들이 어디서 생겼던가? 서로 꼭지가 되려고 하니 생긴 것이다. 어린양의 그림을 보게 되면 그런 것은 소용이 없게 돼 버린다. 더 좋은 것이 있는데 누가 시시한 것을 찾아가겠는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있는데 누가 시시한 것을 찾겠는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금강산은 보지 못했지만 설악산은 가보았다. 설악산을 보고 나니 대한민국에 있는 산은 별로 볼 것이 없게 되었다. 볼 필요도 없고 가봤자 다리만 아플 것이다. 금강산은 설악산보다 더 좋을 것이다. 설악산은 금강산의 꼬리와 같다. 금강산을 보았다면 설악산은 더 볼 필요가 없다. 무엇 때문에 돈을 주고 가겠는가? 하와이를 보고 나니까 제주도 관광은 시시해서 안된다. 믿음을 가지고 하려고 해도 안된다. 시시해서 안된다. 제주도도 좋은 곳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만 좋은 곳이다. 우리 나라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땅처럼 아름답게 될 수 있는 곳은 제주도뿐이다. 육지에서는 그런 지형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하와이를 보고 나면 제주도는 볼 필요가 없게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찾아 헤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천국을 보고 나면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다. 아무 재미도 없게 된다. 하와이가 제주도와 다른 점은 해안선에 굴곡이 많다는 것이다. 굴곡마다 특색이 있다. 그런데 제주도는 굴곡이 적어서 특색이 별로 없다. 우리가 정말로 좋은 세계를 본다면 시시한 세계에 눈을 돌리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데도 눈이 자꾸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형식적이고 교리적이고 지식적인 것들만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나님 나라를 본다면 누가 진주를 사지 않겠는가! 누가 밭에 묻힌 보화를 사지 않겠는가! 보좌로부터 흐르는 강가에 생명나무가 열린 것을 본다면 누가 다른데 가서 치료를 받으려 하겠는가! 누가 다른데 가서 위로를 받으려 하겠는가! 여기 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데 누가 다른 곳을 기웃거리겠는가!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고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실 것인데 무엇 때문에 다른 빛을 찾아다니겠는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어린양의 왕국은 정말로 아름다운 왕국이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제시해주신 마지막 왕국이다. 이 왕국이 온 인류를 통일하게 될 것이다. 온 인류의 소망은 이 왕국에 있다. 다른 왕국에는 소망이 없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가톨릭을 보고서 나는 ‘아! 이 나라가 완전히 사이비 왕국이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유럽에 가서 가톨릭 왕국의 잔해를 보고 나서 ‘아! 이것은 완전히 사이비구나. 이것은 어린양의 왕국이 아니구나. 다른 왕국이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그들이 아무리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한다해도 교황이라는 것은 황제와 같은 것이다. 모양은 다르지만 같다. 직접 가보니 왕궁이나 교황궁이나 똑같았다. 이것이 그대로 교회 속으로 흘러 들어와서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없는 흐름 가운데 있게 되었다. 거기서 무슨 나무가 나겠는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만 열려서 그것을 먹는 사람마다 점점 지식만 많아져 결국 높아짐밖에 나올 것이 없다. 그 열매만 계속 먹었으니 그 결과가 온 것이다. 사람은 먹는 데 따라서 체질도 변하고 성격도 변한다고 한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저돌적이고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소극적이 된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이 공격적이고 적극적인데 비해서 동양 사람들은 소극적이고 순응하는 편이다. 동물도 초식동물은 소극적이고 육식동물은 적극적이다. 먹는데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선악과 나무만 계속 먹다보면 사람은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4. 생명나무의 열매&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요한계시록 2-3장에서 교회의 회복에 대한 이상을 보여주시며 생명나무로 시작하고 있다. 에베소 교회부터 라오디게아 교회까지 일곱 교회가 나오는데, 일곱 교회는 교회 회복의 일곱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는 생명나무가 회복되는 단계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먹는 세계 속에서는 교회의 회복이 불가능하다. 선악과의 발전이 있을 뿐 절대로 교회가 될 수 없다. 생명나무의 열매부터 시작해야 교회가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 하셨고, 버가모 교회에게는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을 주겠다 하셨다.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은 법궤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하셨다. 새벽별 즉, 다윗의 왕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 말을 오해하면 세상의 왕권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5장에서 다윗의 뿌리는 어린양이라 하였다. 사데 교회에게는 ‘흰옷’을 주겠다 하셨다. 흰 옷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하셨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은 그리스도다.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는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다. 결국은 함께 먹고 보좌에 함께 앉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교회는 어디로 회복될 것인가? 보좌에 함께 앉는 데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22장에 가면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22:1-2).” 하였다. 이것이 교회의 회복이고 최종 완성이다. 오늘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는 물은 결국 만국을 소성케 할 것이다. 이 강에서 나오는 나무들이 열매를 맺게되면 그 열매를 사람들이 먹고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아픔과 괴로움과 허무함이 치료될 것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에 해답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 열매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람은 열매를 먹기에 따라 결정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인생에 모든 문제가 생겼다.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문제가 없어지고 새로운 세계로 가려면 역시 열매를 먹어야 한다. 다른 열매를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생명의 열매를 먹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 수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는 지금 형제들을 통해서 열리는 열매를 먹고 있다. 강이 흘러가는 좌우에 나무가 있어서 이 형제에게서는 이런 열매가 열리고, 저 형제에게서는 저런 열매가 열린다. 그 열매를 다른 사람이 먹고산다. 류시형이라는 열매가 열리니 청송 감호소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매를 먹지 못한다. 다른 형제에게서 열린 열매를 먹고는 청송 감호소 출신들은 살아나지 못한다. 류시형이라는 나무에서 열린 열매를 먹고 살아난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교회는 정말로 신기하다. 모든 사람이 전부 열매를 맺는데 모두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열매를 맺는다. 생명의 물이 흐르니 생명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나는 처음에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 구원될 것이고, 누구든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깨닫고 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저히 안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왜 저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까?’ 라고 생각했는데 뒤로 엉뚱하게 다른 형제에게 가서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서 ‘아! 나무의 열매가 다 다르구나. 살리는 것이 다 다르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류시형의 열매와 나의 열매는 다르다. 그 열매를 먹고 살아나는 사람이 있고, 이 열매를 먹고 살아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있다면 청송 감호소 출신들은 갈 데가 없을 것이다. 류시형이라는 나무가 있기 때문에 청송 감호소 출신들도 기거할 데가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 단지 그런 쪽으로 개발이 되지 않아서 열매가 열리지 않았을 뿐이다. 누구라도 청송 감호소에 갈 수 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교회는 얼마나 신기한지! 얼마나 신비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교회가 커질수록 점점 더 만국을 소성케 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소생하게 될 것이다.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구석구석에 모여 있어서 사람을 살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인천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나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그쪽으로 불똥이 튀어 사람이 살아나고 있다. 이 자리에 같이 앉아있는 이영일 형제는 그런 세계로 다니다 왔는데 그 사람들은 이 형제의 열매를 먹어야 산다. 내 열매를 먹고사는 것이 아니고 그런 형제의 열매를 먹어야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회는 무한히 끝없이 확장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생명나무의 열매만 열린다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만 있다면, 그 생명수만 있다면 여러 가지 나무들에서 모두 생명을 살리는 열매가 열린다. 모든 사람이 살아나고 모든 사람이 위로를 받게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박광석 형제는 나면서부터 불구자였지만 “하나님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불구자다.” 하였다. 그 말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가! 나는 그 말을 아무리 해도 권세가 없다. 그 형제가 아니면 그런 권세가 나올 수 없다. 교회는 얼마나 신기한가!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은 이렇게 신기하게 사람을 살린다. 나면서부터 불구자인 그 형제를 살려서 그 형제에게서 열려진 열매를 먹고 다른 사람이 살아나게 된다. ‘불구자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는 사람의 입을 막지 않았는가! 그 사람을 통해서 사탄이 하나님을 송사하는 것을 막지 않는가! 누가 사탄의 입을 막겠는가? 권세 있는 형제가 아니면 막을 수 없다. 교회는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교회는 결국 전능자의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것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것이 어떻게 현실화 될 것인가? 교회에서 현실화 될 것이다. 그의 전능하심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전지(全知)하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교회가 그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교회가 증명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는 만국을 치료하시는 분임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교회가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 다윗은 시편 가운데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 하였는데 그것이 과연 어디에서 나타나게 될 것인가? 교회 안에서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어린양 보좌의 생명수가 흐르는 길이다. 그 강가를 우리는 걸어가면서 이 사람은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있고 저 사람은 저 나무의 열매를 먹고 또 맺는다. 그러니 피곤치 않고 고단치 않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린양의 왕국 안으로 부르셨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놓은 무화과 옷도 끝나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의 가죽옷도 끝나고 어린양이 우리의 생명이 되는 새로운 세계 안으로 접어들었다. 이것이 신약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을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구약으로 돌아가면 안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바울은 이 문제로 인하여 많은 전쟁을 하였다. 이상하게도 복음을 전해놓으면 다시 구약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는 왜 쓰게 되었는가?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어떤 유대교 선생들이 와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구약이 끝났다는 뜻이다. 구약이 마지막을 고하면서 예수를 죽였고 예수 자신의 육체(구약)도 끝난 것이다. 예수가 죽은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십자가로 끝나버린 것이 드러나 있는데 누가 꾀어서 다시 옛 세계로 돌아가느냐는 것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는 구약에 의해서 죽었고, 구약 자체로써 죽었다. 그의 육체는 구약의 마침이었다. 우리가 예수의 죽으심을 생각한다면 구약은 끝났다고 알아야 한다. 옛 것은 끝났다. 심지어는 가죽옷까지라도 다 끝났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가죽옷까지도 끝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생명이 되시기 위해 그것마저도 끝내셨다. 그 모든 것들은 그림자였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되는 세계 안에 와서 완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영원히 해답이 없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이 되고, 나는 하나님의 몸이 되는 이 세계에 오지 않으면 해답은 영원히 없는 것이다. 이 세계에 와야 비로소 모든 해답이 생기게 되고 성경이 완성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말밖에 할 것이 없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고, 동시에 주님을 살고 누리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분을 먹고 그분을 살면서 또 다시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먹고 그분을 기다린다. 그분을 살면서 그분을 기다린다. 그분이 점점 더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점점 더 그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이 온전하게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면 우리는 주의 얼굴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는 것처럼 보게 될 것이다. 형제들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주님이 오시는 것을 보게 된다면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했던 것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는 것처럼 보게 될 것이다. ‘아! 주님이 이렇구나! 주님이 이렇게 생겼구나! 주님의 모습이 이렇구나! 아! 그분이 이분이구나!’라고 알게 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또한 그것은 객관적으로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내 안에서도 자라고 있고, 다른 형제 안에서도 자라고 있다. 내 안에서 자라야 형제 안에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안에서 자라지 않으면 형제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람은 자기로서 모든 것을 본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눅11:34).” 하신 대로 내 속에 생명이 있어야 형제 안에 생명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보는 것도 그렇다.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36:9).” 하였다. 하나님의 빛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빛이 없으면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빛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결국 내 안에 있는 것과 네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다. 사람은 남의 얼굴을 볼 수 있지만 자기 얼굴은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의 얼굴을 보면서 내 속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아! 내 얼굴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알 수 있다. 거울이 없다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 얼굴을 못보는 것이다. 남의 얼굴밖에 보지 못하므로 남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사람인 줄 알게 되고, ‘아! 내가 저렇게 생겼구나. 코는 이렇게 생겼고, 귀는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알게 돼 있다. 교회 안에, 형제들 안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생겼구나.’라고 알게 된다. 내 모습을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그 날에는 얼굴과 얼굴로 마주 대하여 보게 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22:1-2).” 이 말씀을 깊이 인상 받기를 바란다. 분명히 어린양인데 거기서 생명수가 흐른다. 에스겔 47장 1절에는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하였다. 이것이 무엇이었던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인 것이다. 생명수가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을 비춰주는 것이 어디서 나오는가? 전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가 흐르고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성 베드로 성당 한 가운데 교황좌(敎皇座)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거기서는 생명수가 흐르지 않았다. 생명의 물은 흐르지 않고, 교황좌 밑에 베드로의 무덤이라는 것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봐도 생명수는 흐르지 않는다. 만국을 치료할 수 없다. 고상한 사람들만 가는 곳으로 만국이 치료되지 않는다. 어떤 나라는 치료될 지 몰라도 만국이 다 치료될 수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은 만국을 치료한다. 교회는 만국을 치료하는 보좌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기&amp;nbsp; 도 ]&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HY크리스탈L';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HY크리스탈L,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HY크리스탈L';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HY크리스탈L,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이 하신 기이한 일은 우리가 날마다 말해도 부족하고 평생을 말해도 부족하고 당신의 지혜를 평생을 말해도 부족하고 우리의 입술이 둔하고 우리의 생각이 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흐르심 당신의 계획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그 비밀을 우리에게 이렇게 조금이라도 알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 주시고 세상의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해 주시고 이스라엘로 말미암은 육신의 한계에서 더 이상 진전할 수 없었던 세계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인하여 우리의 육체가 다시 회복되는 새로운 세계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주받은 육체가 이제는 축복 받은 육체가 되고 죄의 병기로 사용되던 육체가 의의 병기로 사용되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당신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를 먹고 우리가 안식을 얻게 하시고 치료받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어둠이 없어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배고픔이 없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교회 안에서 흐르는 생명수가 만국을 소성케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 물을 마시고 자라고 열매를 맺어 만국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고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가 그러하기를 원하고 당신의 모양의 어떠함과 같이 우리의 모양도 그러하기를 원하며 우리 안에서 당신의 형상이 온전하게 완성되기를 소원합니다. 뉴욕에서 이렇게 집회를 갖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한 자리에 모일 때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만족한지. 주님, 우리에게 이렇게 즐거운 날을 허락해주시고 만족한 날을 허락해주시고 감사한 날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늘 기회 있을 때마다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하고 이렇게 함께 모여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만났다 헤어진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흐르는 생명수가 영원토록 생명의 열매를 맺어 우리가 만국을 치료하고 소성케하여 다시 한 자리에 모이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HY크리스탈L';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HY크리스탈L,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amp;nbsp;&amp;nbsp;&amp;nbsp; 아&amp;nbsp; 멘.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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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 육체의 절망 안에 회복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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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한자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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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4T15:07:36Z</updated>
	    <published>2009-11-04T15:07: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 &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5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옛체'; LETTER-SPACING: -2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5pt; COLOR: #000000; LINE-HEIGHT: 32px; FONT-FAMILY: 휴먼옛체,한컴돋움; LETTER-SPACING: -2px; TEXT-ALIGN: justify&quot;&gt;6. 육체의 절망 안에 회복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5pt; COLOR: #000000; LINE-HEIGHT: 32px; FONT-FAMILY: 휴먼옛체,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FONT-FAMILY: '고딕';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8px;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18).&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인생의 운명은 흙으로 지어져 생기를 부여받아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영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의 계략에 속아서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과 동거하는 영생의 길을 떠나서 죄악과 멸망의 길로 가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았고,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을 찾는 방법을 찾아 제물을 드리다가 형이 아우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점점 포악해져서 강포가 땅에 가득한 세계를 만들게 되었다(창6장).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강포의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선택하셔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로 하여금 방주를 짓게 함으로써 방주 안에 함께 한 모든 생물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후손들이 또 다시 퍼져서 시날 평지에 모여서 도시를 건설하였고 망대를 세워 “하늘에 오르자. 우리 이름을 세상에 빛내자.” 하였다. 이것을 가리켜 바벨(혼잡)이라 한다. 이러한 혼잡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씨를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 하나님의 궁극적인 대책 - 새로운 씨&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 새로운 씨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대책이었다. 씨가 바꿔지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씨에 또 문제가 있는 것은 씨가 육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서 왔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은 육체이기 때문에 이삭으로 난 자는 모두 이삭의 후손들로서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고, 그 민족은 분명히 새로운 씨로 난 후손이었지만, 새로운 씨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이고 예표적인 것이었다. 이삭이 온전한 씨로 낳았다 해서 그 피도 온전한 피가 되어 낳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삭이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들들은 이삭과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통일교에서는 이것을 잘못 생각하여 사람의 피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피를 유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나 영이요 생명인 인격은 피로 유전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A라는 인격을 가졌다고 해서 아들도&amp;nbsp; A라는 인격을 갖는가? 그렇지 않다. 육체는 유전되지만 인격은 유전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삭을 선택하셨는가? 이것은 장차 올 궁극적인 해답의 예표였다. 이삭이 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성립하게 된 것처럼 장차 영원한 한 씨가 옴으로써 영원한 한 인류가 나타나게 될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구약은 모두 예표이고 장차 올 것에 대한 그림자이다. 어떤 것도 그 자체가 해답은 아니다. 시작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브라함은 부름 받아서 100살이 되어 이삭을 낳았다. 이삭을 낳았다는 사실은 장차 한 인격이 이 땅위에 오게 될 것인데 그 인격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지 않는 인격이라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삭은 육신적으로는 100세에 낳은 아들이고 아브라함과 상관이 없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인격이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삭의 후손으로 오랜 세월을 지나게 된다. 애굽에 내려가기도 하고, 광야로 나오기도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성전을 건축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역시 육체인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혈통을 따른 아브라함의 후손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혈통 속에 제한하여 다른 민족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로막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육체의 한계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 육체의 몸은 개별적이다. 내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은 독립되어 있어서 서로 들어갈 수 없고 몸과 몸이 하나 될 수 없다.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 속에는 다른 민족이 들어갈 수 없고, 이스라엘의 혈통 속에는 다른 혈통이 섞일 수 없다. 결국은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그래서 육체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는 마지막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가. 육체적 한계를 벗어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육체적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씨로 오셔서 모든 육체의 상황을 벗어나게 하시고 초월하게 하시며 그런 것과 상관없는 다른 한 세계를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역사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망하여 나라를 잃어버려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끊어져 버려 아무 것도 성취될 가망이 없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절망적인 것이 아이고 사실은 육체가 더 절망적이었던 것이다.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그 후손들은 육체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제한 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였다. 왜 말씀이 육체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 자신이 사람 속으로 오지 않는 한 육체는 여전히 육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들이라도 역시 육체였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스라엘은 이 육체 안에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서 지켜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육체는 율법의 밭이기 때문에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전부 육신적으로 이스라엘의 혈통과 민족에 적용하고 있다. 토론토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 갔을 때 그들은 여전히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강론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재건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육신 안에 제한돼 버리고 만 것이다. 더 이상 다른 발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지금 기독교 안에도 여전히 그런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의 교회들에서는 더욱 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전부 물질적인 것으로 바꾸어 물질적인 축복, 물질적인 예언을 추구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인격이 없으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현실 안에서 물질적, 시간적, 공간적인 약속으로 인식되고,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새로운 세계가 오게 될 때 영적인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만날 “주시옵소서.” 하고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것은 구약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일이다. 우리가 육신 안에서 축복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스라엘만큼 받을 수 없다. 메마른 광야에서 어떻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던가? 아무리 기적을 맛본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기적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어떻게 홍해가 갈라져서 건너오는 경험을 갖겠는가?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았는데 어떻게 그 성이 무너져서 함락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반석을 치는데 쪼개져서 샘물이 나겠는가? 있을 수 없다. 기독교 안에 아무리 기적이 많다 하더라도 이 이상의 기적은 있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모세는 우리에게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주었는데 너는 무엇을 주겠느냐?” 하였던 것이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였으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욱 놀라운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말은 네가 모세보다 더 큰 자라면 모세보다 더 큰 이적을 내놓아보라는 것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준 양식은 하늘로부터 내려왔어도 너희가 먹고 죽은 양식이었지만 내가 주는 양식을 먹으면 너희는 영생할 것이다.” 하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러면 그런 양식을 우리에게 주어 우리가 죽지 않게 하라.”하며 조롱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다. 그래서 모두 다 떠나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저놈이 미쳤구나. 저놈은 미친놈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는 지금 구약을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통해서 주신 모든 약속들을 혈통 안에서 전부 실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포악해도 라멕만큼 포악할 수 없고, 아무리 강해져도 네피림만큼 강해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다 해도 이스라엘만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망하게 된 것이다. 거기서 더 발전하여 신약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임무는 끝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어떤 사람들은 지금 중동에서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재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예언된 축복이 다시 이스라엘에게 물질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할 지는 몰라도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다시 성전을 지을 필요도 없고, 그 나라를 다시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체에 속한 나라가 아니고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른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중동 구석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는가? 어떤 혈통이 꼭 필요하다면 중동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하나님 나라를 재건하겠지만 하나님 나라가 이미 혈통으로 말미암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겠는가? 천치 바보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텐데 하나님이 어리석어서 그런 짓을 하시겠는가!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받을 축복은 이미 끝나버렸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육신 안에서 제한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그 이상의 축복을 기대할 수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이 오신 것은 그 한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은 이삭이라는 그 씨가 아니라 그 씨로 예표되었던 영원한 씨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나. 새로운 백성을 위한 새로운 씨&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는 이삭으로 예표된 영원한 씨이다. 고대 중동 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민족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가 된 민족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 백성을 위한 새로운 씨가 오게 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면 이 씨는 어떻게 해서 우리 가운데 오게 되었는가? 마태복음 1장 1절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하였는데 이 말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나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우리는 그 족보를 형성하고 있고, 그 족보를 변경시키는 여자들 몇 사람을 볼 수 있다. 이 여자들로 말미암아 예수의 족보는 변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족보는 큰아들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줄기를 따라 흘러 내려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지만 내용은 다른 혈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다말이라는 여자는 유다의 며느리였다. 남편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자 이스라엘의 풍습에 의해서 두 번째 아들이 아들을 낳아주어야 하지만 그도 역시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세 번째 아들이 남편이 돼 주어야 할 형편이 되었는데 유다가 보니 ‘야, 저 여자가 팔자가 세구나. 가는 사람마다 죽는구나.’ 라고 생각하여 “아이가 아직 어리니 장성한 다음에 주겠다.” 하였는데 다말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아! 시아버지가 나에게 아들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한 다말은 시아버지를 속여서 상관하게 되었고 거기서 낳은 아들이 베레스였다. 그가 예수의 조상이다. 왜 이렇게 엉뚱한 족보가 유지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생각할 때 그런 일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왜 이런 일들이 예수의 족보에 들어있는가? 다말은 아들을 낳지 못하면 기업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업은 영원한 것이다. 기업이 없으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말은 기업을 얻으려고 자기의 생명을 걸고 도전한 것이다. 만일 다말이 시아버지와 간음한 것이 발각되면 그 즉시 돌로 쳐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장난이 아닌 것이다. 자기 목숨을 내놓고 모험을 하여 성공한 것이다. 유다는 그 사실을 알고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창38:26).” 하였다. 왜 그가 의롭다고 하였는가? 기업을 얻기 위해서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가 나오게 되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두 번째 사람은 라합이다. 그는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 족보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해 보낸 정탐꾼을 숨겨주고 이스라엘로 귀화한 여자였다. 그는 여호와의 능하심을 보았던 것이다. 자기 민족 속에서는 희망이 없자 이스라엘로 귀화하였다. 여리고 성에서 기생이 무슨 족보가 있겠으며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거기서 절망적인 사람이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민족을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 앞으로 귀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합은 살몬에게서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낳은 사람이다. 다말도 예수를 낳은 사람이고, 라합도 예수를 낳은 사람이라고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에서 이 족보를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세 번째로 룻이라는 여자가 나오게 된다. 이 사람은 이방 모압 여자였다. 신명기 23장 3절에서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모압과 암몬의 조상은 롯이었다. 롯이 소돔 땅에서 도망하여 동굴 속에서 자기 딸들과 상관하여 낳은 후손이 모압과 암몬이다. 룻은 율법으로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정해놓은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이 이방인 여자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오게 되었고 보아스를 만나서 다윗의 할아버지를 낳았다. 예수의 조상이 된 것이다. 예수를 낳은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외인이었고 버린 바 된 사람이었다.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니고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의 조상이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네 번째 사람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다. 그는 자기 남편을 놔두고 다윗과 상관하여 솔로몬을 낳았다. 우리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윗 역시 이 문제로 인하여 크게 범죄 하여 평생을 눈물로 침상을 적시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솔로몬을 낳았다. 예수를 낳게 된 것이다. 우리 인간의 모든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서 다른 한 사람을 낳고 있는 족보가 바로 예수의 족보이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어서 낳고 있는 족보가 예수의 족보이다. 예수는 이렇게 나온 사람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마지막으로 마리아는 예수의 친어머니이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내였지만 요셉과 혼인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 하였다(마1:18). 오늘날로 말하면 사생아인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것을 누가 믿겠으며, 누가 증명할 수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육신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는 분명하게 사생아인 것이다. 예수 자신이 그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누가 그것을 믿었겠는가.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많이 믿고 있지만 정말로 믿을 수 있었겠는가?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는 절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정 속에서 나오게 되었다. 만일 예수가 사생아로 판명될 경우에 마리아는 돌로 쳐죽임을 당해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가만히 숨겨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예수가 태어나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람이 성령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서 하나님은 한 씨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씨가 필요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알 길이 없다. 이것을 믿음으로 믿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자기를 속이는 일이다. 어떻게 그것이 믿어지겠는가? 차라리 뉴욕이 한순간에 꺼져버린다고 하면 믿을 수 있지만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아! 하나님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씨가 필요하구나! 지금 인류를 구원하려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씨가 있어야 하는구나! 그래야 인류가 구원되는구나!’라고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2. 말씀이 육체가 되심&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이것을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는데 이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하였다.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되었다. “성령으로 잉태하였다.” 하면 우리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데 요한이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하니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안에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가 아니고 영원하신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와서 우리와 동거하고 우리와 한 육체가 된다는 사실이 우리 안에 경험됨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장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 그렇구나! 말씀이 육체가 되는구나! 성령으로 잉태한다는 것은 도저히 모르겠는데 영원한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오셔서 나와 한 육체가 되는구나.’라고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씨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 씨는 이삭이라는 씨와 같은 씨가 아니다. 이삭이라는 씨는 이 씨의 예표였다. 이삭은 이 씨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은 씨가 될 것임을 예언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낳은 것이고, 자기의 힘으로 낳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장차 자기의 힘으로 낳지 아니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씨가 올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삭이라는 한 씨가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듯이 장차 올 씨로 말미암아 한 인류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오늘 우리는 이것을 교회를 통해서 체험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온 한 씨가 와서 육체가 되고, 육체가 된 그 씨는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영원한 씨가 사람 속에 와서 한 육체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 씨가 육체가 된 사람들이 모여 한 구조물이 된 것이다. 교회라는 하나의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적으로 세상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육신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사람의 생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생명이 우리 안에 와서 한 육체가 된 사람들이 이룬 건축인 것이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육체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고린도전서 6장 16절에서는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였다. 육체가 된다는 말은 이미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 완성되면 그 물질은 더 이상 바꿀 수 없다. 그것이 ‘육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실 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들락날락 할 수 없도록 한 덩어리가 돼 버렸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이 들락날락 하셨을까? 그렇지 않다. 그분과 하나가 돼 버려 바꿀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육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오늘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한 육체가 될 때 이 육체적인 절망이 끝나게 된다. 이스라엘이라는 독특한 민족, 하나님이 선택하신 특이한 민족이라 할지라도 그 육체적 한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왜곡되어 물질적인 데로 흐르고 말았다. 이것이 육체적인 절망이었다. 아무리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아 놓아도 안되었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도 안되었던 그 절망에서 이제는 그 육체 안에 희망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교회로 구성된 것을 보면 이 육체 안에 희망이 생긴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육체를 학대한다. 육체 때문에 뭔가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 육체가 없으면 안되게 되었다. 교회가 되려면 육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육체는 육체인데 옛날의 그 육체가 아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육체가 아니고 말씀이 육체가 된 그 육체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진 분이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피를 바꾸거나 육신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모양은 그대로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와서 사람을 바꾸니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꾸는 문제는 피를 바꾸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씨를 바꾸는 문제는 피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고 말씀을 바꾸는 문제인 것이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유령들이 모여 다니는 세계일까, 아니면 육체를 벗어버린 사람들이 모여 다니는 세계일까? 그렇지 않다.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세계이다. 그런데 그 생명이 바꿔져버린 것이다. 육체가 바꿔진 것이 아니고 생명이 바꿔진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버지가 죄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 아버지에게서 난 아들도 죄가 없다.”고 한다. 그의 피는 죄가 없는 피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류의 피를 죄가 없는 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참으로 기괴한 생각이다. 그 생각을 조금만 바꿔서 생명이 바꿔져야 된다고 알았더라면 제대로 됐을텐데 육체를 바꾸려고 했기 때문에 엉뚱하게 빗나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생명이 바꿔져야 한다. 인격이 바꿔져야 한다. 씨가 바꿔져야 되는 것이다. 육체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 선한 사람의 피를 수혈한다 해서 선한 사람이 되겠는가, 악한 사람의 피를 수혈 받았다고 해서 악한 사람이 되겠는가? 육체적인 피는 절대로 우리의 인격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우리의 인격을 좌우하게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것이나, 말씀이 육체가 된 것은 영원한 씨가 와서 인생을 바꿔버린 것이다. 또한 새로운 나라는 영원한 말씀이 와서 사람이 바꿔진 나라인 것이다. 사람이 바꿔진 다음에 보면 구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은 바로 그 사람을 위한 약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말3:11),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신28:7).” 하신 모든 것들이 육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이 아니고 인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3. 침해할 수 없는 인격&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리스도를 예로 들어보자. 예수 안에는 어떤 병균도 침략할 수 없었다. 그는 아담에게 들어왔던 병균이 다시는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다. “네가 이것을 먹으면 정녕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하는 병균이 아담에게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예수에게는 전혀 들어갈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가서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는데 거기서 시험을 받으셨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받았던 시험과 똑같은 시험이었다. 조금도 다르지 않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사탄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하였다. 이것은 사탄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게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하던 말과 같은 말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성전 꼭대기에 세우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여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하던 말과 같은 말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가로되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선악과를 먹으라는 그 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그 병균이 들어갈 수 없었다. 더 이상 병균이 침해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요즘 유전자를 변형시켜서 병충해가 없는 곡식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와 같이 유전자가 완전히 변한 사람이다. 무엇으로 변하게 되었는가? 혈통으로 변한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변한 것이다. 성령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하면 알아듣기 어렵지만 말씀으로 유전자가 변하였다고 하면 알아듣기 쉬울 것이다. 아담의 유전자가 변하여 아담이 쉽게 침해받았던 병균에게 침해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때 마귀는 물러나고 천사들이 와서 수종을 들게 되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 사람이 우리 인류의 영원한 씨이다. 우리 인류 가운데 새로운 유전자가 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아담이라는 유전자를 받았을 때는 아무리 고쳐도 안되었고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되었다. 유전자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얼룩무늬를 가진 짐승은 나올 때마다 얼룩무늬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유전 인자 때문에 그대로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나올 때마다 아담이 나오게 된다. 조금도 바꿔질 수 없다. 새로운 유전자가 들어와서 유전자가 바꿔지지 않으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런 육체적인 절망 속에서 오신 것이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 오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면 육체적인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어떻게 오셨는가? 다말을 통해서, 룻을 통해서, 라합을 통해서, 밧세바를 통해서,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다. 인간의 상식이나, 양심이나, 종교를 통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 다말을 통해서 오신 것이다. 다말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종교에서도, 전통에서도, 양심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통해서, 그 통로를 통해서 오셨다. 다말을 통해서, 룻을 통해서, 라합을 통해서, 밧세바를 통해서,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다. 이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다른데서 온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 길로 오신 것이다. 육신으로 말미암은 사람 같으면 그 길로 올 수도 없고 오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전혀 다른 씨이기 때문에 그 통로를 통해서 오게 된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원치 않는 그런 길로 오셨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구약에서는 여러 가지로 이 모형이 제시되었다. 야곱은 자기가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된다.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데 누군가가 끌어서 왼쪽으로 가게 하였던 것이다.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길로 가고 싶은데 어디선가 무엇이 이끌어서 다른 길로 가게 하였다. 그들은 자기가 원했던 목표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원치 않은 다른 목표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오고 있는 통로를 따라서 왔던 사람들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주님이 우리의 인생에 오시는 것도 그렇다. 내가 목표했던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목표하지 않았던 다른 통로를 통해서 오신다. 그래서 우리는 ‘아! 내 생각과 그의 생각은 다르구나. 내 계획과 그의 계획은 다르구나.’라고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우리의 생각에는 ‘하나님은 이 길로 오시겠구나.’라고 생각하는데 그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로 오셨다.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리스도가 오신다면 이런 통로로 오시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다른 통로로 오셨다. 오늘 우리에게 오신 분은 바로 이런 통로를 통해서 오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런 통로를 통해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롬5:20).”라고 고백하였다. 그 생명이니까 상식적인 데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곳에 들어가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까 참으로 이상하게 사람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들어가고 사람의 생각과 다른데서 번성하고 번창하는 것을 보게 된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숭배하고 경배할 대상으로 알아서는 안된다. 그는 우리가 찾아가서 절하고 경배하고 예배드릴 대상이 아니다. 그는 우리의 생명이 될 씨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인류를 위해서 씨를 주셨다. 이 씨를 퍼뜨리고 퍼뜨려서 온 땅에 예수가 충만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한 씨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경배하라 하시지 않고 “먹으라.” 하셨다. “나를 경배하면 네가 살 것이다.” 하시지 않고, “나를 먹으면 네가 살 것이다.” 하셨다.&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기독교인들에게 ‘믿는다.’는 말이 많이 왜곡되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에도 사람들은 “믿으라.” 하면 어떤 종교적인 대상을 생각했던 것 같다. 예수님을 그런 대상으로 생각하고 믿으려는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와서는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하시게 되었다. 처음부터 “먹으라.” 하신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믿으라.” 하셨다. 그런데 “믿으라.” 하니 종교가 되어 마치 부처님을 믿듯이 돼 버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믿게 하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까 그를 믿으면 어떤 능력이 내게 올 것이다. 그는 전능하신 분이니까 그를 믿으면 무엇인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경배할 대상은 되지만 씨는 아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먹혀서 씨가 되고 생명이 되려고 오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먹어야 된다. 우리는 그를 경배의 대상으로 믿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명으로 먹어야 한다. 영접해야 되는 것이다.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경배할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명으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먹으라.” 하시니 사람들이 다 가버렸다. “믿으라.”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었지만 “먹으라.” 하시니 다 가버렸던 것이다. “제가 누구기에 제 살을 주겠는가?” 하며 가버렸다. 제자들까지도 이 말씀에 걸림이 되어 ‘야, 이 말은 감당하기 어렵다. 누가 선생님의 살을 먹겠는가?’ 하며 수군거렸다. 그래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대답하였다. 그런 대로 똑똑한 대답이었고 그 때문에 제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이 영생의 말씀인줄 알고 먹어야 되는 것이지 예수님을 믿으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믿으면 종교밖에 안된다. 부처님을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은 종교를 만들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인류를 낳기 위해서 새로운 씨로 오셨다. 이삭을 경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도 없다. 모두 이삭으로부터 났지만 경배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삭은 씨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을 경배해야 될 것이 아니고 씨로 먹어야 한다. 우리는 밭이니까 씨로 먹어야 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거하기 위해서, 우리와 한 육체가 되기 위해서 오셨다.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은 마치 아침에 먹은 밥이 위장 속에 있듯이 하나님이 내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있다.”고 하거나, “내 심령 안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육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안에 와서 돌아다닌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가 된 것이다. 육체가 된 것이다. 이것이 참 복음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것도 완전한 대책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도 완전한 대책이 아니었고, 새로운 씨라고 하는 이삭을 주셨어도 완전한 대책이 아니었다. 이삭으로 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지켰지만 되지 않았다. 믿음도 안되고, 은혜도 안되고, 새로운 씨를 주셨어도 안되었다. 왜 그랬는가? 육체라는 것 때문에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와서 육체가 되지 않으면 다른 길은 없다.&amp;nbsp; 그러므로 말씀이 육체가 된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것만이 완전한 대책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체가 된 분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를 볼 때 그 안에 아무런 종교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아무런 종교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를 가지고 도로 종교를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종교를 찾을 수 없다. 바울에게서도, 베드로에게서도 종교를 찾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예수로 말미암은 삶이 있을 뿐이지 종교라는 것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배하신 것이 아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 하셨다.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우리 안에 있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21).” 라고 기도하셨다. 하나가 되는 것이지 종교가 아닌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종교는 어떤 대상을 놓고 경배하는 것이다. 물 컵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듯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이다. 예수는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물을 마시듯이 마시는 것이다. 마셔서 내 육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분은 새로운 씨이고,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 씨가 자라고 자라서 한 육체가 되면 이 육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창세기 6장 3절에서는 “저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셨다. 무슨 육체가 되었다는 것인가? 네피림 육체가 된 것이다. 그들은 사탄과 한 육체 즉, 사탄의 육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또 다른 육체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이 육체가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교회는 절대로 영물(靈物)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며 영들이 돌아다니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분명하게 사람이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완전한 사람들이다. 완전한 사람, 말씀이 육체가 된 사람들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은 왜 육체를 창조하셨는가? 육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흙으로 지어서 육체가 되게 하셨는가? 하나님이 그 안에 들어가서 한 육체가 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육체가 선악과와 결합한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멸하여져야 했던 것이다. 선악과와 합해진 한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그 육체는 모든 데에 다 문제가 되어 아무리 그 육체에 하나님의 말씀을 부어주고 은혜를 부어주었어도 안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를 없애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육체를 없애면 하나님의 계획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고행주의자들은 육체를 벗어버리려고 노력하였다. 어떻게 하면 육체를 극복할까, 어떻게 하면 육체를 괴롭게 할까, 어떻게 하면 육체의 생각을 벗어날까 하며 노력해왔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린 사람을 보고 성자(聖者)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육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육체가 필요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농사 짓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밭에 곡식을 심었는데 원치 않는 열매가 열렸고, 또 다시 심었는데 원치 않는 열매가 열렸고, 그 다음에 또 다시 심었는데 또 다시 원치 않는 열매가 열렸다면 그 밭을 팔아버릴 것인가? 밭을 팔아버리면 나는 영원히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 씨는 밉지만 밭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밭은 꼭 있어야 한다. 그 동안에 그 밭에 은혜라는 씨를 뿌려 보았지만 실패하였고, 이삭이라는 씨도 뿌려 보았지만 그것도 실패하였고, 율법이라는 씨를 뿌려 보았으나 그것 역시 실패하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이제 밭을 팔아버리자. 그리고 천당으로 가자. 천당에 가면 다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다. 잡초가 난 것은 밭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잡초가 난 것은 밭 때문이 아니고 씨 때문이다. 어떤 흙도 씨가 없으면 아무 것도 나지 않는다. 씨가 떨어지니 나는 것이지 씨가 없으면 밭에서는 아무 것도 나지 않는다. 왜 잡초가 무성했고, 왜 싫은 것이 났던가? 어느 씨가 왔기 때문이다. 잘못된 씨가 왔기 때문에 잡초가 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하나님은 밭을 버리시지 않았다. 밭은 그냥 놔두고 씨를 바꾸신 것이다. 우리는 ‘아담이라는 사람을 없애버리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종교 생활에서는 육체가 크게 문제가 된다. 그래서 육체를 없애버리면 종교생활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체를 없애지 아니하고 씨를 바꾸셨다. 은혜라는 씨로 바꿨다가, 이삭이라는 씨로 바꿨다가, 이제 예수라는 씨로 바꾸셨다. 씨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를 학대하고 저주할 것이 아니라 씨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씨만 바꿔지면 내 몸은 거룩한 몸이 된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였다. 얼마 전까지 우리의 몸은 사탄이 거하는 전(殿)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 하였다. 우리의 몸은 사탄이 거하면 사탄의 집이 되고, 하나님이 거하시면 하나님의 집이 된다. 밭에 콩을 심으면 콩밭이 되고, 팥을 심어놓으면 팥밭이 된다. 밭을 팔아버리려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7년 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무엇을 하였는가? 육체를 극복해보려는 것 아닌가? 불교에서 몸은 옷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마음대로 벗고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에 가면 달마대사의 험상굿은 상이 그려져 있다. 달마대사의 얼굴이 왜 저렇게 험상궂은지 아느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스님이 하는 말이 “달마대사가 9년 면벽을 하고 도를 깨닫고 돌아오는 길에 큰 호수에 이르렀는데 어떤 사람이 미역감고 있는 뒤로 악어가 좇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달마는 자기의 몸을 벗어놓고 그 사람을 구제해주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까 어떤 놈이 험상굿은 얼굴을 놔두고 가버렸다. 그래서 달마대사의 얼굴이 저렇게 험상굿게 생겼다.”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자기들은 몸을 마음대로 벗을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왜 그렇게 몸을 벗으려고 애를 쓰는가? 몸이 문제가 되니까 벗으려고 하는 것이다. 육신이 문제가 되니 벗자는 것이다. 몸이라는 밭에서 나쁜 것이 자꾸 나오니까 밭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밭을 없애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하나님은 절대로 밭을 없애는 분이 아니다. 씨를 바꾸시는 분이다. 이 얼마나 완전한 일인가! 우리도 씨를 바꿔야 한다. 밭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노름을 좋아하던 어떤 사람은 ‘야, 이 손가락 때문에 노름을 하게 되어 망했구나.’라고 생각하여 도끼로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그렇지만 손가락이 없다고 노름을 안하게 되는가? 노름은 손가락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으로, 생각으로, 정신으로 하는 것이지 손가락이 노름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남은 오른 손가락으로 손바닥 위에 화투장을 얹어놓고 다시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문제가 아니다. 인격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씨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마태복음에 나오는 이 사람,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 사람은 새로운 인류의 씨이다. 우리는 이 사람을 보고 먹고 마셔야 한다. 창세기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이 사람을 먹어야 산다. 이 사람은 우리가 먹어야 할 양식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면 영생하게 될 것이다.”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인류, 새로운 인류의 씨이다. 영생하는 양식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영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예수님을 내가 먹으면 그것이 곧 영생이다. 예수님과 내가 하나되면 그것이 영생이다. 그것이 참 생명이다. 전에 우리는 창기와 합했던 육체처럼 사탄과 합했던 육체였다. 엉겅퀴 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포도밭이 되었다. 제주도에 있는 땅은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쓸모 없는 돌짝밭이었다. 아무 농사도 지을 수 없고,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귤나무를 심었는데 잘 자라서 훌륭한 귤밭이 되었다. 나는 처음에 그 밭을 보고 ‘야, 여기서 어떻게 나무가 자라고 있는가.’ 하며 놀랐다. 그런데 열매맺는 나무는 그런데서 더 잘 자라고 귤도 더 맛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땅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제주도의 땅은 어리석은 농부를 만나서 수만년 동안 버려졌었다. 그런데 10여년 전에 어떤 지혜로운 농부를 만나서 그 땅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의 육체도 어리석은 농부를 만나서 멸망 직전에 있었다. 폐기처분하기 직전에 있었다. 단지 우리가 모질지 못해서 육체가 보존되고 있었던 것이다. 독한 사람 같으면 쥐약이라도 먹고 죽었을텐데 독하지 못해서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참 농부가 와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것이 구원이다. 황무지같이 쓸모 없어서 버려져야 할 육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 이것이 구원이다. 제주도의 돌밭이 귤밭이 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구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표를 받아두었다가 다음에 받는 것이 아니다. 배급받듯이 받는 것이 아니다. 돌짝밭에 귤나무를 심는 것, 이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심어진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엉겅퀴가 아니고 포도가 심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축복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내 육체를 생각해보면 물질적으로도 형편없는 육체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육체가 사탄과 결합했을 때 내 몸은 사탄의 육체였다. 하나님께는 도저히 쓸모가 없는 육체였다. 몇 년간 목회를 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는 말을 수없이 하였다. 육체 때문이었다. 이 육신이 아니면 될텐데 육신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라는 말이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바울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닌데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고 내 별명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였다. 그래서 육체를 벗어버리고 천당에 가고 싶었지만 죽기는 싫었다. 이율배반인 것이다. 빨리 죽으면 빨리 천당에 가는데 빨리 죽고 싶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당에 가고 싶다는 사람 중에 빨리 죽고 싶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렇게 가고 싶은 천당을 왜 빨리 가지 않는가? 정 때문에 끊을 수 없고, 몸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었다. 좋은 농부가 와서 씨를 새로 바꾸니 좋은 육체가 되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육체가 되었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육체가 되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의 육체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표현하겠는가? 종합병원과 같은 병약한 육체라도 있으니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이라도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표현하겠는가? 나는 폐가 한쪽이 없어도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으니 좋다. 다리 한쪽이 없을지라도 하나님만 표현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은가! 하나님만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육체는 복이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대구 교회에 박광석 형제는 나면서부터 불구자였다. 우리 교회를 알고 20살 때 비로소 집밖을 나오게 된 형제이다. 그런데 지금은 형제들을 따라서 사방으로 다니고 있다. 지난 번 대전에서는 “누가 불구자인가? 하나님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불구자다.” 라고 선언하였다. 그 육체는 구원을 받지 않았는가! 이것이 말씀이 육체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회복 안에서 우리의 육체는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의 육체가 주인을 다시 만나서 회복된 것이다. 왜 나쁘다고 했던가? 땅이 나쁜 것이 아니고 주인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농부를 잘못 만나서 우리는 그렇게 됐던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가서에서 술람미 여인은 “나는 원래 검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의붓 오라비를 만나서 농장에 끌려 다니다 보니까 내 얼굴이 검어졌다.” 하였다(아1:6). 그런데 참 신랑이신 솔로몬을 만나게 되니까 자기의 검은 것을 보지 않고 속에 흰 것을 보게 되었다 한다. 원래 검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 어미의 아들들인 의붓 오라버니가 포도원지기를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붓 오라비가 누구인가? 잘못된 오라비가 아닌가! 어느 경우에는 율법이기도 하고, 잘못된 농부이기도 하고, 사탄이기도 한 의붓 오라비가 노예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전에 우리는 잘못된 농부를 만나서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 노예가 아니었다. 우리는 아들이 되려고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한 육체가 되려고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잘못된 농부를 만나서 노예가 되고 말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제 우리가 참 농부를 만나고 나니까 동산에서 하나님과 한 육체가 되도록 회복되었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말씀이 육체가 되어”라고 하였고, 창세기 2장에서도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였다. 둘 다 똑같은 의미이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이다. 말씀이 사람과 육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소망이다. 바울은 이것을 ‘영광의 소망’이라 하였다(골1:27).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소망이 많지만 이 소망만이 영광의 소망이다. 왜 영광의 소망이 되는가? 하나님과 한 육체가 되는 소망이기 때문이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의 육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옛날보다 노쇠하여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후패하지만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우리의 육체가 쇠하는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다. 육체가 쇠하여지면 다른 기운은 없어지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늙었다고 하나님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좋다고 잘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이다. 힘으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꼴찌를 면하지 못할텐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차별이 있지만 말씀이 육체가 된 세계,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들을 낳은 세계 안에서는 아무도 차별이 없는 것이다. 다말도 아들을 낳고, 룻도 아들을 낳고, 라합도 아들을 낳고, 밧세바도 아들을 낳고, 마리아도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혈통을 떠난 세계 안으로 우리가 들어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4. 새로운 회복&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것이 인류의 새로운 회복이다. 우리는 이 회복 안에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다. 같은 육체인 것 같아도 그 육체가 아니다. 전에 우리의 손과 발은 무엇을 했던가? 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손이 다른 일을 하는 손이 되었고, 다른 곳을 걸어 다니는 발이 되었다. 우리의 육체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최종적인 구원은 우리 몸의 구원이다. 우리의 몸 자체가 하나님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다. 이제 말씀이 육체가 되니까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쓰여지게 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 말씀은 꼭 예수님께 대한 말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이 씨로 오셨으니까 이 씨를 받아서 나온 사람은 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에는 콩 하나가 오지만 그 콩이 심어져서 30배 60배 100배로 불어나면 그 모든 콩은 같은 콩이다. 처음에 온 콩은 하나니까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30배 60배 100배로 불어난 콩들은 보편적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의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독생자의 영광이듯이 우리 모든 사람이 독생자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목표로 예수님을 보내셨다. 이 말은 결코 불경(不敬)한 것이 아니다. 제대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예수 한 사람만 콩으로 만드시고 “여기 콩이 하나 있으니까 이 콩만 쳐다보고 있으라.” 하시는 분이 아니다. 콩이 하나 있지만 쳐다보고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모두 엉겅퀴인데 엉겅퀴가 포도만 쳐다보고 있다고 하나님 나라가 되겠는가? 전부 다 포도가 돼야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지 위대한 포도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다 해서 하나님 나라가 되겠는가?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가 종교 생활을 할 때는 위대한 포도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쳐다보기도 어려운 위대한 포도였기 때문에 감히 이를 수 없었다. 단지 쳐다볼 수밖에 없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포도 하나는 전 인류를 위해서 공중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포도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포도가 되고 말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것이 바로 사탄의 계략이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다말을 통해서, 룻을 통해서, 라합을 통해서, 밧세바를 통해서, 마리아를 통해서,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니까 막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 길은 사탄이 아는 길이 아니었다. 사탄이 아는 길이라면 막았을텐데 전혀 모르는 길로 오셨기 때문에 사탄은 막을 수 없었다. 사람들도, 사탄도 막을 수 없는 길로 오셨던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어차피 씨는 새로 왔으니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공중에 매달아놓자. 모든 인류가 쳐다보기만 하게 만들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2000년이 지났다. 이것은 무서운 사탄의 계략이었다. 존경하게 하면서 물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천상천하에 유일한 자로 높여 놓고 물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나를 높이 올려서 경배를 한다면 그것은 나를 높이고 경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물 먹이는 것이다. 씨가 퍼져야 되는데 공중에 매달아놓고 있으면 물 먹이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의 계략이다. 아주 무서운 계략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으니까 이제는 오신 예수를 공중에 매달아놓았던 것이다. 천당에 매달아놓고 더 이상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씨가 퍼지지 않게 되었다. 믿음은 퍼지지만 씨는 퍼지지 않았다. 20억 이상의 인구가 믿고 있다. 우러러보고 있고,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잘 되지만 씨가 퍼지지 않는 것이다. 땅에 내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되겠느냐?” 하며 막아버리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육체가 되겠느냐? 예수 안에서는 육체가 되셨지만 너희들 안에서 어떻게 육체가 되겠느냐?” 하니 끝나버리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오늘 우리는 이것을 격파하고 나가야 된다. 하나님은 육체가 필요하신 분이라는 것을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께는 육체가 필요하다. 하나가 될 육체가 필요하다. 밭은 죄가 없다는 것을 전파해야 한다. 잘못된 씨가 들어온 것뿐이지 밭은 죄가 없다. 죄가 있는 씨가 들어온 것뿐이지 육체는 죄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버려진 이 육체를 구원하기 위해서 새로운 씨를 전파해야 한다. 새로운 씨를 뿌려야 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다. 우리 교회의 사명이다. 때로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참람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이것은 결코 참람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도 “참람하다.” 하였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하신 것은 참람한 것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참람하다 하였다. 사람들은 오늘 우리에게도 “참람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참람한 것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우리 안에 와서 육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와서 한 육체가 되는 것이다. 씨가 되어서 퍼지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제주에 귤나무를 심어서 나무가 우거지니까 다른 잡초는 다 없어졌다. 땅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땅값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우리 인생의 값이 언제 올라가겠는가? 좋은 씨를 심을 때 값이 올라간다. 좋은 씨를 심지 않고는 인생의 값을 올려 받을 방법이 없다. 제주에서 귤나무가 심겨지지 않은 땅이 만원이라면 귤나무가 심겨진 땅은 오만 원이다. 한창 시세가 좋을 때는 귤나무 하나에 1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귤 값이 떨어져서 귤나무를 베어내고 단감나무를 심고 있다. 단감나무가 자라서 단감이 나오게 되면 값이 또 오를 것이다. 땅 때문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단감 때문에 오르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값이 무엇 때문에 올라가는가? 그리스도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자꾸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새로운 씨가 와야 값이 올라가게 된다.&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라는 씨는 마지막 씨이다. 우리의 육체를 회복할 영원한 씨이다. 이삭이라는 씨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룬 씨였지만 예수라는 씨는 온 인류의 육체를 구원할 씨이다. 버려졌던 육체를 구원할 씨인 것이다. 불교에서도 버리고, 천주교에서도 버리고, 기독교에서도 버린 그 육체를 구원하기 위해서 새로운 씨가 오신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둘이 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셨던 대로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고 하였다. 둘이 한 육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내 인생은 변화되었다. 예수는 말씀이 육체가 된 분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도 아니고, 공중에 매달려 있을 사람도 아니다. 말씀이 육체가 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말씀이 육체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분은 오셨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 교회는 말씀이 육체가 된 사람들이다. 말씀이 육체가 된 사람들이 기둥도 되고, 서까래도 되고, 벽도 되어 하나의 구조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사람이니까 지극히 인간적이다. 귀신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귀신 바람이 전혀 돌지 않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귀신 바람이 돌고 있으면 교회가 안된다. 능력은 나타날 지 몰라도 교회가 안된다. 교회는 인격으로 구성돼야 하기 때문에 영이 돌아다닌다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교회는 아니다. 성령이 돌아다니고 바람같이 돈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바람 같이 임했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내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교회가 아니었다. 그것을 교회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교회는 하나의 구조물이다. 건축물이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구조물이다.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의 성전이다. 부분 부분이 다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 다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덩어리, 그리스도 집단이다. 이것이 교회인 것이다. 어디선가 불이 내려오거나 바람이 분다고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순절 날 일어났던 것은 교회가 아니다. 오늘날도 그런 일이 많지만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시작은 될지 몰라도 교회는 아니다. 우리의 몸에 손이 있고 발이 있고 입이 있듯이 교회는 기둥이 있고 서까래가 있고 벽이 있다. 우리의 몸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기관이다. 손도 발도 모두 다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기관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표현할 때 보면 ‘아! 저 사람은 새끼손가락이구나. 저 사람은 엄지손가락이구나. 저 사람은 발이고 저 사람은 귀구나.’라고 알 수 있다. 몸은 손도 있어야 되고 발도 있어야 되고 귀도 있어야 된다. 모든 것이 다 필요하다. 몸 안에는 모든 지체가 다 필요하다. 말씀이 육체가 된 귀, 말씀이 육체가 된 코, 말씀이 육체가 된 입이 있어야 한다. 모두 다 육체가 돼야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3-17).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은혜와 실재이신 하나님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그러면 은혜와 실재는 또 다시 어디로 오겠는가? 우리를 통해서 오지 않겠는가! 우리가 말씀이 육체가 될 때 은혜와 실재이신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오신다. 내가 가는 곳에 하나님이 가시고, 내가 오는 곳에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곳에 은혜와 실재가 왔다. 예수님이 오실 때 은혜와 실재도 같이 왔다.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은혜와 실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 자신과 함께 은혜와 실재가 오는 것이다. 불이 갈 때 빛도 같이 가듯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은혜와 실재도 함께 있다. 또한 우리가 있는 곳에 은혜와 실재도 같이 있게 된다. 이것이 완전한 구원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주님은 우리를 완전한 구원 안으로 부르시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의 구원 안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노아의 방주에 머물러도 안되고, 이삭에게 머물러도 안된다. 옛날 종교에 머물면 안된다. 그것들은 예표들이었고 장차 올 것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이 육체가 된 것이 우리의 마지막 구원이고 최종적인 구원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리라(계20:15).” 한 것은 누구를 가리켜 한 말인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다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 한 몸이 된 것 이외에는 다 소용이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기&amp;nbsp; 도 ]&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HY크리스탈L';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HY크리스탈L,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HY크리스탈L';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HY크리스탈L,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선악과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고 육체가 저주를 받았던 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랜 과정을 통해서 여러 가지 예표를 보여주시고 여러 가지 그림자를 보여주시고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아들을 주셔서 우리가 이제는 영원한 생명의 씨를 받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최종적인 씨를 우리에게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했던 것처럼 당신 자신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당신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완전한 대책이고 영원한 대책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살과 피로 주신 것을 감사하고 우리와 한 육체가 되기 위해서 오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전에 엉겅퀴 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포도밭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옛 것을 기억함이 없고 옛 것을 생각함이 없도록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비록 엉겅퀴 밭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거기서 엉겅퀴를 뽑아내고 포도를 심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버리기까지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게 하시지 않고 당신의 생명으로 교체해 주셔서 우리가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다 후패한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생명이 옴으로 말미암아 젊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새 힘을 얻게 하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죄의 종이었던 육체를 의의 종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사탄의 밥이었던 우리를 주님의 밥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어디 가도 인정받을 수 없어서 여기서도 버려지고 저기서도 버려졌던 한 육체를 주님이 구원해 주셔서 당신의 전이 되게 하여 주시고 당신의 몸이 되게 하여 주시고 당신의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성이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4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HY크리스탈L';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8.53pt; COLOR: #000000; LINE-HEIGHT: 20px; FONT-FAMILY: HY크리스탈L,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amp;nbsp; 아&amp;nbsp; 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5. 혼잡 안에서 새로운 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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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한자리</name>
	    </author>
	    <updated>2009-11-04T15:06:18Z</updated>
	    <published>2009-11-04T15:06: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 &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5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휴먼옛체';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5pt; COLOR: #000000; LINE-HEIGHT: 32px; FONT-FAMILY: 휴먼옛체,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center&quot;&gt;5. 혼잡 안에서 새로운 씨&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9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48pt; COLOR: #000000; LINE-HEIGHT: 18px; FONT-FAMILY: 고딕,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amp;nbsp;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창21:1-13).&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9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인생의 영원한 운명은 흙으로 빚어져서 하나님의 생기를 받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이 운명에서 이탈하였다.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고 가인과 아벨은 종교를 시작해서 하나님께로 나가려는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형이 아우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 후손들은 점점 강포해져서 자기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성경에서는 네피림을 들어서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이때 하나님은 지면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다. 그러나 거기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셨고,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에게 미쳐서 그것이 방주가 됨으로써&amp;nbsp; 방주를 통해서 만유가 포함되고 구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노아에게 포함되어 구원을 얻었던 인류는 또 다시 그 본성이 드러나 시날에 모여 모시를 건설하고 “흩어짐을 면하자! 하늘에 이르자! 우리 이름을 빛내자!” 하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무시하는 한 세계를 만들었다. 아담이 한 씨가 되어 점점 더 그 본성이 극대화된 것이다. 아담의 길은 선악과에서 바벨로 이어지고 확장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심으로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혼란한 교통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씨를 바꾸기로 하셨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1. 새로운 씨를 주심&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담의 후손의 결과는 아무리 해도 더욱 더 아담의 본성이 드러나서 더욱 하나님을 한탄하게 하는 결과밖에 나올 것이 없다. 종교를 해봐도, 문화를 만들어봐도, 오래 살아보아도, 자기 마음대로 해 보아도, 단체를 이루어보아도, 무엇을 해 보아도 결국은 하나님을 탄식하게 하는 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담은 희망이 없다. 한번 선악과를 먹은 인생은 희망이 없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계시를 보는 것이다. 성경에는 아담의 모든 역사가 드러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끝내지 않으면 안되는 인생이 계시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개인이 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미련을 갖고 ‘그렇지만 또 다른 면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희망이 있지 않을까? 고쳐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더 나가봐도 그 사람들 이상은 될 수 없고 더 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성경에 계시된 사람들은 인류의 대표자들이다. 그들은 우리 자신들을 확대해 놓은 존재들이다. 우리의 시작과 끝을 완전하게 드러내 놓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나’를 알고 ‘인류’를 알고 ‘인생’을 알려면 그들을 보면 완전하게 아는 것이다.&amp;nbsp;&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담’은 ‘김 아무개’라는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온 인류를 포함한 한 이름이다. 그 속에는 지금 인류도 들어있고 장차 나올 인류도 들어있다. 모든 인류는 다 아담 안에, 아담의 후손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노아에 이르는 세대 속에 모든 인류의 세대가 포함되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므로 우리가 지각이 있다면 여기서 ‘아! 인생은 여기서 다 드러났구나.’라고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나에게는 가인은 없지 않은가? 내가 어떻게 가인처럼 악질이 될 수 있는가? 언제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맛보았는가?’ 라고 생각한다면 세월을 허송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나는 아직 젊고 그런 허무를 경험하려면 시간이 많은데 벌써부터 허무를 알고 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살아보면서 허무가 나올 수도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미리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하다. 모든 것은 이미 사람의 운명 속에 포함되어 있다. 어떤 환경이 오면 드러나게 돼 있는 것이다. 단지 어떤 환경이 오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올챙이는 운명적으로 개구리가 된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을 통해서, 우리 대신 인생을 살아준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대신 표현해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경험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인생을 다 알 방법이 없다. 70-80년이라는 인생에서 가인도 경험해보고, 아벨도 경험해보고, 다 경험해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씩은 경험해 볼 수 있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는 경험해보지 못한다. 우리 안에 가인과 같은 것이 있고, 아벨과 같은 것이 있다. 잘 보면 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직도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표현되면 그렇게 된다. 눌러놓으면 몰라도 표현되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누르고 잠재워서 폭발하지 않게 하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똥은 뚜껑을 열어도 똥이고, 뚜껑을 닫아도 똥이다. 뚜껑을 열지 않아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해서 똥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닫혀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어차피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꾸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셨다. 생명을 바꾸는 길, 다른 씨를 주는 길이 우리에게 제시되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가. 바벨의 시대&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노아를 통해서는 구원의 길, 부정적인 상황하에서 은혜를 입는 길이 우리에게 제시되었고,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바벨의 부정적인 상황하에서 씨가 바뀌어 새로운 씨를 주신 것이 계시되었다. 아브라함이 처해있던 세대는 바벨의 세대였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은 모두 시날 평지에 모여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다. 단체화 되자는 것이었다. 개개인은 힘이 없으니 크게 뭉쳐서 큰 힘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을 쌓자. 도시를 건설하자.” 하였고, “망대를 세워 높이 올라가서 하늘에 이르자. 우리 이름을 세상에 빛내자.” 하였다. 이것이 바벨(혼잡)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바벨’이라는 말은 ‘혼잡’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는 바벨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왕권이 시작되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타락한 인간의 힘을 모아서 하늘에 오르자고 하였다. “그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자. 빛내자.” 하였던 것이다. 마치 썩은 것을 가지고 좋은 것을 만들어보자고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썩은 나무를 가지고 좋은 집을 지어보자는 것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하신다 해도 불가능하다. 자비라는 것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다 해서 그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 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용서하신 것에 불과하다. 용서는 완전한 대책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오기 전까지는 완전한 대책이 아니다.&lt;/SPAN&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핵심을 사죄(赦罪)에 맞추고 있고 그것을 복음이라고 하여 “우리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용서해 주었다.”고 하며 십자가의 피를 강조하고 있다. 분명히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용서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용서를 받는다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씨가 필요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돌감이 열리는 나무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도끼로 찍어버릴 것인가 하는 것은 주인의 의사에 달려 있다. 주인이 도끼로 찍어버리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이 덮어주는 것이다. “네게서 비록 돌감이 열렸지만 나는 너를 찍어버릴 수 없다. 너를 불쌍히 여겨서 그냥 놔두겠다.” 하시는 것이 용서이다. 그러나 아무리 용서한다해도 돌감나무에서 단감이 열릴 수는 없다. 결국 그 나무는 주인을 즐겁게 할 수 없고, 주인의 상에 그 열매가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의 복음은 기초는 되지만 해답은 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기독교 안에서 용서의 복음을 체험하고 있어도 해답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해답은 천당이고, 천지개벽이 되는 것이다. 이방인과 똑같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을 완전히 바꾸실 것이다.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상의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씨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니고데모는 선한 사람의 대표자였다. 가인이 악한 사람의 대표자라면 아벨은 선한 사람의 대표자였다. 니고데모 역시 아벨의 계보에 속한 사람이다. 아벨의 계열에서 아벨을 발전시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밤중에 예수께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셨다. 결국 하나님 나라는 다른 씨로 되는 것이지 용서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서는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는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런데 기독교 역사에는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나라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는 장차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으로 수직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과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은 천국이 아니다. 거기에는 감사도 있고, 눈물도 있고, 감격도 있고, 충만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하나님의 용서 때문에 부흥회에 가면 눈물과 감격이 많고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엄청난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선한 사람도 나왔고 좋은 문화도 일어나게 되었지만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영국에서 요한 웨슬레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술집과 극장이 폐쇄되었고 엄청난 정신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영국은 그 덕분에 신사적인 나라가 되었지만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신사적인 나라,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결국은 씨가 달라져야 한다. 다른 씨로밖에는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생명의 차이인 것이다. 좋은가 나쁜가 하는 문제가 아니고 생명의 차이인 것이다. 잣나무와 소나무는 어떻게 다른가? 씨가 다른 것이다. 잣나무가 좋은가, 소나무가 좋은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씨가 다른 문제이다. 잣나무의 용도가 다르고 소나무의 용도가 다르다. 용도에 따라서 좋고 나쁜 것이지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 국가보다 더 좋은 나라인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성질상 다른 나라인 것이지 결코 그것보다 더 좋은 나라가 아닌 것이다. 지구상에는 더 좋은 나라도 있고 덜 좋은 나라도 있다. 더 좋은 자연환경도 있고 열악한 환경도 있다. 그러면 더 좋은 나라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가? 그렇지 않다.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더 좋은 소나무라 해서 잣나무에 가까운가? 그렇지 않다. 소나무는 아무리 좋아도 소나무이고 잣나무는 아무리 나빠도 잣나무이다. 성질 자체가 다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신 말씀은 그런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에 대해서도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일어남이 없다.” 하셨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하셨다(마11:11). 이 말씀은 세례요한을 과소 평가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성질상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세례요한은 대단히 위대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어떤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세례 요한의 종교라 할 수 있고, 예수보다 세례요한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데모를 하는 기독교는 세례요한이 더 위대하다 할 것이다. 사회 정의를 부르짖을 때는 예수보다 세례요한이 더 위대해 보일 것이다. 예수는 사회정의를 부르짖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울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엡6:5).”라고 하였으니 데모를 하는 데는 불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목숨을 내걸고 왕에게 가서 “당신은 불의한 사람입니다.”라고 직언을 한 사람이었으니 데모하는데는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데모하는 데는 써먹을 수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세례요한의 기독교, 세례요한의 종교가 많이 있다. 세례 요한은 세상적으로도 위대한 사람이었다. 사적인 생활도 위대하고, 공적인 활동도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잣나무는 아무리 작아도 소나무와는 다른 이치와 같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 위대하다 아니다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상과 비교하여 ‘교회는 세상의 어떤 면보다 좋다.’ 하거나 ‘어떤 면에서 교회는 세상보다 못하다.’라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성질 자체가 다른 문제이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문제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세상보다 좋거나 나쁜 문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세상보다 못하면 안되겠지만 그렇다 해서 세상보다 꼭 좋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성질 자체가 다른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담을 수선하고 고치는 세계는 이미 끝났다. 아담은 아무리 고쳐도 도로 마찬가지이다. 노아 시대에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서 새로운 인류가 되도록(셈과 함과 야벳) 하셨으므로 노아 이후에 새로운 인류가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인류 역시 시날 평지에 모여 바벨탑을 쌓게 되었다. 고쳐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도로 마찬가지인 것이다. 돌감나무를 잘라놓으면 처음에 새순이 날 때는 좋은 감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감이 열릴 때 보면 다시 돌감이 열리게 되는 것과 같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창세기 11장까지 오는 과정에서 아담을 고치기도 하고 은혜를 베풀기도 하셨다. 아담은 아담대로 할 짓을 다하였고,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할 방법을 다 해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바벨탑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인류 역사에서도 볼 수 있고, 오늘 교회 역사 안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다. 세상에 있는 많은 교회들을 보자. 교회가 잘못된 것 같으면 “쇄신운동을 하자. 새로워지자. 빛을 발하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하며 많은 운동들을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쩌다 반짝 깨어나는 듯이 보여서 열심도 있고, 뜨거움도 있고, 사랑도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도로 마찬가지가 돼 버린다. “종교개혁을 또 하자.”고 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생명 자체가 바꿔진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예수를 믿고, 옛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면 뭔가 되는 것 같다가 시간이 지나면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용수철처럼 누르고 있을 때는 눌려 있지만 놓으면 튀어 오르는 것과 같다. 요즘 형상 기억 합금이나 형상 기억 섬유로 만든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자기의 형상을 항상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와 같이 아담은 형상을 기억하고 있다. 선악과를 먹은 형상을 기억하고 있기에 어떤 경우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버린다. 기독교를 믿어도 그 자리이고, 불교를 믿어도 그 자리이다. 불교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을 하면서 매일 ‘아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허(虛)다. 실상은 아무 것도 없다. 색즉시공이다.’라고 생각한다. 먹을 것도 못 먹고 깊은 산중에서 10년 20년씩 고생을 하다가도 종단 총회장 선출을 한다고 하니 각목을 들고 설치게 된다. 말짱 도루아미타불이다. 이것은 그 사람들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담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 형상이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형상 기억합금과 같은 것이다.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나. 아브라함을 부르심&lt;/SPAN&gt;&lt;STRONG&gt; &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 때에 “씨를 바꿔야 한다.”고 계시하셨다. 아브라함을 무엇 때문에 부르셨는가? 씨를 바꾸려고 부르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이삭을 낳은 것밖에 없었다. 그전의 모든 역사는 이삭을 낳기 위한 역사였다.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와서 이러 저러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사건들은 모두 이삭을 낳기 위해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기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이었다. 새로운 씨를 낳기 위한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amp;nbsp;“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창21:12).” 이것은 종자(種子)라는 뜻이다. 새로운 종자를 내시겠다는 것이다. 땅에 사람이 가득하여 강포가 심해진 것이 이제 단체화 되어 하늘에 이르고, 이름을 세상에 빛내려는 바벨의 시대, 혼잡의 시대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다.&amp;nbsp;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도 노아 안에서는 “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들”이고 아브라함 안에서는 바벨의 시대 속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또한 우리는 노아 안에서 네피림의 세대 안에 있었고, 아브라함의 세대에서는 바벨의 세대 안에 있었다. 혼잡의 세대 안에서 서로 높아져서 하늘에 오르려고 하는 세대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아브라함은 히브리 사람이다.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은 ‘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갈대아 우르에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거쳐서 큰 강을 건너 가나안에 온 사람들이다. 이것은 부름 받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소집되었다. 부름 받았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소집되었는가? 새로운 씨를 낳으려고 부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 안에서 새로운 씨를 낳기 위한 토양이 된다. 밭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우리는 처음부터 흙이었다. 하나님은 흙에서 먼지를 취하시고 그것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셨다. 오늘 바벨의 시대에서 우리는 새로운 씨를 낳을 밭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우리의 본질적인 운명은 그대로 있다. 그 운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밭으로 만드신 것이다. 밭은 어제까지 엉겅퀴가 무성했을지라도 오늘 주인이 새로운 씨를 심으면 그 씨를 낼 수 있다. 이것이 밭의 운명이다.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13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양신명조';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양신명조,한컴돋움; LETTER-SPACING: -1px; TEXT-ALIGN: justify&quot;&gt;사람은 왜 가능성이 있는가? 아담 안에서 볼 때 사람은 절대로 절망적이고 아무리 고쳐놓아도 도로 돌아가고 또 고쳐도 다시 돌아가지만, 또 다른 면으로 절대적인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람은 밭’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엉겅퀴 밭이지만 내일은 포도밭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만일 우리가 흙도 아니고 밭도 아니라면 자존하는 자가 되어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자존자가 된다면 엉겅퀴 밭은 영원히 엉겅퀴 밭일뿐이어서 절대로 포도밭이 되지 못한다. 영광스러울지는 몰라도 희망은 없는 것이다. 소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흙이고 밭이라면 주체성은 없는 것 같아도 영원한 희망이 있다. 100번을 넘어져서 100번을 엉겅퀴 밭이 되었다고 해도 101번째는 포도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7전 8기는 항상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의 소망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아무리 고쳐도 안되는 존재라서 영원히 소망이 없는 것 같지만 씨만 바꾼다면 언제든지 가능성이 있는 존재인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