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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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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1T18:47:2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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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김대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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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1T18:47:27Z</updated>
	    <published>2009-11-21T18:47: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동만주에 거주하던 고구려의 유민, 즉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건국의 한 주체요, 한 기둥이었기에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에게는 제2의 조국과도 같았던 
만주국에서 군관이었던 박정희를 일본군이라고 부르면 듣는 사람들이 박정희가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박정희는 단 한번도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적이 없었음에도 일부 몰지각한 이들과 좌빨들은 사람들에게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하려는 나쁜 심보들이 있다. 
&lt;br&gt;&lt;br&gt;만주국은 엄연한 독립국이었다. 그럼에도 무지한 사람들은 정서상 만주국에서 근무하면 친일파였다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당대 
사람들에게는 행정상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만주국이 일본과 혼동될 수 없음이 너무도 분명하였다. 만약 만주국이 일본 통치권 안에 있었으면 광복군 
대장의 조카 김일련은 일본 신원조회에 걸렸을 것이다. 행정적으로 엄연히 제3국이었기에 김일련은 태연히 만주국 관리로 복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서상으로도 생각해 보라. 삼촌은 광복군 장군 김학규인데 김희선 아버지 김일련이 만주국에서 경찰로 복무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의 무지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그런 일은 정서상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거주하던 간도는 우리땅임을 알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조선인이 
만주국 건국에 동참하면 친일파라는 정서가 전혀 없었다.&lt;br&gt;&lt;br&gt;자기 부친 김일련이 만주 독립군이었다는 김희선 의원의 주장은 무지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다. 많은 좌빨들이 이 거짓말에 속았으며, 이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여 국민을 기만하였다. 그러나 만주국 경찰은 일본 경찰이라는 
좌빨들의 주장 또한 성립될 수 없는 거짓말이다. 만주 경찰이 결코 일본 경찰일 수 없었듯이 그 만주국군도 일본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무지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오늘날의 시대에 많은 한국 국민이 마치 박정희가 일본군복을 입은 일본군이었던 것처럼 속고 있다. 사실 김대중이 그 상징적 
존재인 좌빨들의 친일인명사전은 박정희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에 일본군복을 입었던 김대중의 사진이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lt;br&gt;&lt;br&gt;&lt;/p&gt;&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4IAWWCKL0rQ&amp;hl=en_US&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위 동영상에서 윤리강사 
이현이 열을 올리며 학생들에게 거짓말하고 있다. 정말로 전교조와 노사모 부류의 미개인들의 거짓말 창작 능력은 대단하다. 어떤 미개인은 박정희가 
일본천황에게 혈서를 보냈다고 사기치고, 위의 동영상에서는 한 미개인이 박정희가 &quot;일본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혈서를 
쓰고&quot; 등의 거짓말을 지어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고 주장하는 반면, 윤리강사 이현은 박정희가 
일본사관학교에 들어간 후 혈서를 썼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미개인들과 좌빨들이 이런 거짓말들을 창작해낼 수 있었던 시절도 한 철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한 후로는 좌빨들이 이제 더 이상 이런 픽션소설쓰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lt;br&gt;&lt;br&gt;여태껏 좌빨들은 박정희가 일본천황에게 혈서 보냈다는 거짓말과 박정희가 1939년에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거짓말을 동시에 
해왔었다,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혏서를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지난 5일의 만주신문 기사 공개로 확증되었지만, 박정희가 1939년에 독립군을 
토벌하였다는 주장은 허위주장이었음이 이미 지난 2005년에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의해 확인되었었다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512/200512190078.html ). 그럼에도 이현같은 
픽션소설가들이 여전히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며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그런 허위사실 유포를 하였으나, 금번의 만주신문 기사 공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이 객관적인 사실로 쏠리게 되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photo/park-jh/biography.jpg&quot; width=&quot;50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298&quot;&gt;&lt;br&gt;&lt;br&gt;위에서 우리는 일본 인명사전에 기록된 박정희의 경력을 본다. 중앙의 19-7이라는 연대 표시 바로 옆에 
박정희는 &quot;만주국군 소위&quot;였음이 명기되어있다. 만약 자국군이었디면 일본군(日本軍)이라고 명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군이었기에 만주국군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는데, 도대체 왜 한국의 어떤 무지한 이들은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가?&lt;br&gt;&lt;br&gt;박정희는 유학생이었으며, 유학생은 일본군 장교가 될 수 없었다. 한국 육사에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서 유학생이 온다.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 육사에 유학했던 아프리카 군인을 한국군이라 부르면 우리가 기절초풍하지 않겠는가? 위에 네째 줄에 보면 
&quot;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quot;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자, 박정희 준장이 1954년에 미국 육사(정확히 말해 포병학교)에 유학하였다. 그렇다고, 
박정희가 미군이었는가? 전두환 역시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육사에 유학하였었다. 그렇다고 전두환이 미군이었는가? 박정희는 일본육사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포병학교 과정을 일년간 이수하였다. &lt;br&gt;&lt;br&gt;자, 박정희와 전두환이 1950년대에 미국육사 연장교육 프로그램에 유학해 있는 동안 
미국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야 했던가? 아니다. 유학생들은 유학생반에서 따로 수업을 받았다. 1940년대의 일본 육사 유학생반도 
마찬가지였다. 유학생들은 일본사관생도 제복도 입지 않았을 뿐더러 수업도 유학생들끼리 따로 받았다. 위의 박정희 학력에 57기생 상당으로 
되어있다. 일본의 육사 57생기생들은 유학생들을 동기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단지, 같은 해에 재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일본육사 유학생들이 
혈서를 썼다는 거짓말을 지어낸 윤리강사 이현의 픽션소설 쓰는 실력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팩트(facts)와 너무도 동떨어진 거짓말을 하는 
자가 역사와 윤리를 강의하면 교육이 망가지지 아니하겠는가?&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5VRhu3RWJJ0&amp;hl=en_US&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위의 동영상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작사, 작곡하신 노래 &quot;나의 조국&quot;을 듣는다. 과연 그 어느 시인이 조국 사랑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는가.&lt;br&gt;&lt;br&gt;나의 조국 / 박정희 작사·작곡&lt;br&gt;&lt;br&gt;백두산의 푸른정기 이땅을 수호하고&lt;br&gt;한라산의 높은기상 이겨레 
지켜왔네&lt;br&gt;무궁화꽃 피고져도 유구한 우리역사&lt;br&gt;굳세게도 살아왔네 슬기로운 우리겨레&lt;br&gt;&lt;br&gt;영롱한 아침해가 동해에 
떠오르면&lt;br&gt;우람할 손 금수강산 여기는 나의 조국&lt;br&gt;조상들의 피땀어린 빛나는 문화유산&lt;br&gt;우리모두 정성다해 길이길이 
보전하세&lt;br&gt;&lt;br&gt;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정신을 &lt;br&gt;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lt;br&gt;영광된 새 조국에 새역사 
창조하여&lt;br&gt;영원토록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세&lt;br&gt;&lt;br&gt;자, 도대체 좌빨들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였기에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였다는 말인가? 민족문화연구소가 지난 5일 혈서 기사라며 공개한 만주신문 기사에는 혈서 사진도 혈서 목격자도 없고, 당초의 
민문연측 주장과 달리 그 글자도 &quot;진충보국 멸사봉공&quot;(盡忠報國 滅私奉公)이 아니라, &quot;일사에 어봉공&quot;(一死以テ御奉公)으로 밝혀졌다. 만약 그 
시대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면 친일이었는가? 아니었다. &quot;열심히 공부하겠다&quot;는 말을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말로 해석하면 그 해석은 틀린 해석이다. &quot;일사에 어봉공&quot;은 입학시켜 주면 좋은 생도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힌 말이다. 이 말귀에 전혀 
친일논란의 소지가 없다. 무엇이 한 인물의 친일을 입증하는 기사인가? 바로 아래의 여운형씨의 기사이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unhyeong-news.jpg&quot; width=&quot;839&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839&quot;&gt;&lt;br&gt;&lt;br&gt;기사 제목이 &quot;황민반도&quot;이다. 여운형씨가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글을 쓰고 조직을 키웠던 것이다. 바로 
여운형같은 인물이 일제의 조선인 황국신민화 정책에 앞장섰던 친일 부역자였던 것이다.&lt;br&gt;&lt;br&gt;아래 사진에서 보듯 여운형의 친일 행적들은 그 
물증이 분명하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unhyeong-doc1.jpeg&quot; vspace=&quot;3&quot; width=&quot;25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176&quot;&gt;&lt;br&gt;▲ 여기 여운형의 학병 권유 격문이 실린 『반도학도출진보(半島學徒出陣譜)』사진이 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unhyeong-doc2.jpeg&quot; vspace=&quot;3&quot; width=&quot;25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188&quot;&gt;&lt;br&gt;▲ 그리고 여기 '반도이천오백만동포에게 호소함'이라는 격문 제목과 '여운형씨 수기'라는 필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좌빨들이 여운형 등 진짜 친일파들의 이름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lt;br&gt;&lt;br&gt;여기 만주국군 
소위 시절의 박정희의 사진이 있다. 보라! 박정희의 군복은 일본군복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일본의 황군이 아니었기에 일본군복을 입지 않았다. 
조선인 일개 학도병도 일본군복을 입었으나, 만주국군 군관 박정희는 일본군복을 입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만주국군은 일본의 황군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manju-army-uniform.jpg&quot; width=&quot;205&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317&quot;&gt;&lt;br&gt;&lt;br&gt;많은 국민들이 군복에 대한 상식이 없기 때문에 좌빨들의 선동에 놀아났었다. 그러나, 아래의 김대중의 목포상고 
졸업 앨범이 박정희의 누명을 벗겨준다. 고등학생이 사회 유지로 여겨지던 시대에 목포상고 회장은 그 지역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바로 그때에 김대중이 몸소 일본군복을 입고 연극 공연을 하며 졸업 사진을 찍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여운형씨의 공산당 
조직은 건준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김대중이 목포지부 간부가 되었다. 즉, 김대중은 일제시대에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때부터 
여운형의 추종자였으며, 일본군복을 입고 조선인 학생들을 선동했던 그 행동 대장이었던 것이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armyuniform.jpg&quot; width=&quot;70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463&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armyuniform2.jpg&quot; width=&quot;483&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260&quot;&gt;&lt;br&gt;&lt;br&gt;자, 여기서 박정희의 군복은 전혀 일본군복이 아니었고, 김대중의 제복이 일본 황군 복장이었음을 아래 일본군 
사진 자료들로 확인해 보자.&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photo/japan/japan-army-uniform.jpg&quot; width=&quot;50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332&quot;&gt;&lt;br&gt;&lt;br&gt;여기 윗사진 왼편의 일본군 장교가 긴 칼을 차고 있는 자세를 보라. 바로 김대중의 앨범 사진에서 차고 있는 
칼이 일본검이었던 것이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photo/japan/japan-army-uniform2.jpg&quot; width=&quot;50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374&quot;&gt;&lt;br&gt;&lt;br&gt;학도병이라도 일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황제로부터 봉급을 받는 군인은 누구든 
반드시 저 복장 차림이어야 했다. 박정희는 단 한번도 저런 군복들을 입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무지한 이들과 좌빨들이 박정희를 일본군이라고 부를 
때 사람들에게 마치 박정희가 저런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도대체 그런 거짓 지식을 전파하는 비뚤어지고 못된 심보가 왜 
필요한가? 이순신 장군에게 왜장 옷을 입혀놓고 이순신 장군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만주국군은 일본군이 아니었음이 
복장상으로도 너무도 분명하였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japan-emperor.jpg&quot; width=&quot;595&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554&quot;&gt;&lt;br&gt;&lt;br&gt;과연 여운형과 김대중에게 그들의 친일 부역은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을까? 김대중이 1989년에도 여자전히 히로히토 일왕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제일 먼저 서두른 일이 
히로히토의 아들을 천황으로 부르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서양국가들이 영국 등 유럽의 왕들은 king이나 queen으로 부르고 일왕만 
emperor로 불러주는가? 왜 우리나라만 일왕을 천황이라 불러야 하는가? 그것은 김대중이 일본군복차림의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활개치던 목포상고 
시절에 그의 몸에 배어있던 황민근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 시절의 일본군복 사진이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누명을 지금 
벗겨주고 있는 것이다. &lt;br&gt;&lt;br&gt;&lt;br&gt;☞ &lt;a href=&quot;http://cafe.daum.net/issue21/5NiW/358&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작으로 판명된 盡忠報國 滅私奉公 혈서설&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japan-army-uniform.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김대중&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faked-articl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혈서 기사 조작&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03.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지령으로 제작된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친일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친일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친일청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친일청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여운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여운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혈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혈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일본군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군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 혈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 혈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만주국군 박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만주국군 박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일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일련&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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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udio/x-ms-wma&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media/korea/mp_1026.asx&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1&quot; width=&quot;320&quot; height=&quot;67&quot;&gt;&lt;br&gt;&lt;br&gt;드라마에서는 해방이 되는 날 모두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사람들이 태극기 제작 방법을 몰랐다. 우리는 일제시대의 조선인들이 모두 애국가를 알고 있었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애국가를 전혀 몰랐다. 생전 들어보지고 불러보지 못한 애국가를 어떻게 알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일제시대에 불러보지 못한 애국가를 
해방의 감격과 더불어 마음껏 불렀으리라고 우리는 상상하고 싶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해방된지 여러 달 지나서야 공식행사에서 처음으로 지금의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TV가 있는 때도 아니요, 라디오 생산공장이 있었던 때도 아니었다. 애국가 악보도 가사도 구할 수 없었던 때라 아직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 애국가를 들어보지 못했었다. 이러한 때에 육사에서는 박정희가 처음으로 애국가를 보급하였다.&lt;br&gt;&lt;br&gt;우리 민족이 
해방된지 1년 하고도 두어달 지난 1946년 가을이었다. 아직 대한민국 건국 이전이지만 국토 경비를 위해 미 군정청이 창설한 태능 
육군사관학교(아직 4년제 육사가 시작되기 전의 단기과정)에서는 제 2기생 교육 중이었다. 사관학교장은 이치업 육군 대위였는데, 그는 명색이 
국군의 간성을 교육하는 육사교장이면서도 자신은 물론 주변의 누구도 애국가를 알지 못해 답답한 끝에 아이디어를 냈다. 생도들에 애국가 가사를 
쓰라는 문제를 내고 시험을 치루었던 것이다. 생도 전원이 백지 답안을 제출하였는데 딱 한 명의 생도가 애국가 4절 가사를 정확하게 써냈다. 그가 
바로 박정희 생도였다. &lt;br&gt;&lt;br&gt;이치업 교장이 박정희 생도를 불러 애국가를 어디서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박정희는 대구사범 졸업 후 교편을 
잡는 동안 학생들에게 몰래 애국가를 가르쳤다고 대답했다. 가사는 현재와 같으나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별의 노래)'을 차용해 
불렀을 때였다. 안익태 곡의 애국가는 그 뒤 일이다. 이렇게 해서 육사에서 비로소 애국가가 불려지게 됐다. (이치업.스티븐 엠.딸프 공저 
'번개장군' : 2001 원민) &lt;br&gt;&lt;br&gt;이치업 당시 교장의 이 증언은 문경의 그의 제자들의 증언으로 확증된다. 이영태(李永泰)는 스승 
박정희가 &quot;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음악시간에는&lt;황성옛터&gt;&lt;심청의 노래&gt;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주셨다&quot;고 증언한다. 그는 이낙선(5·16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비서관)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은사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를 가르쳐주셨고 복도에 입초를 세우시고 우리 나라 역사를 가르쳐주셨으며 일본인 
교사들과는 지금 생각하면 조국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자주 싸우시는 것을 목격했다’(조갑제의 ‘박정희’ 79쪽).&lt;br&gt;&lt;br&gt;박정희가 애국가와 
&lt;황성옛터&gt;&lt;심청의 노래&gt;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증언들을 위의 오디오는 뒷받침해준다. 신세대는 잘 모르고 있겠지만,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러 노래들을 작사, 작곡하여 국민에게 보급하셨는데, 위의 오디오에서도 애국가 다음에 들리는 &quot;나의 조국&quot; &quot;잘살아 
보세&quot; &quot;맹호부대 군가&quot; 등 세곡의 노래가 모두 박정희가 작사, 작곡한 노래들이다. 나의 조국이란 노래를 다시 들어보라. 과연 그 어느 시인이 
저런 가사를 작사할 수 있으며, 그 어느 음악가가 저런 곡을 작곡할 수 있는가?물론 우리 모두 우리의 조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lt;br&gt;&lt;br&gt;자, 그러면 어째서 만주국은 결코 일본군일 수 없는지 설명해 보자. 만약 사기꾼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주국군이 일본군이었다면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민족문화연구소는 박정희의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두차례나 입학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박정희를 일본 황국신민화 정책에 이용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에 보낸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만약 일본이 박정희가 
일본군이 되기를 원했다면 무엇하러 나이 트집을 잡아 두차례씩이나 불합격시켰겠는가? 박정희는 1940년 2월 불온교사로 찍혀 문경의 교사직에서 
면직되었고, 바로 그 다음 달, 즉 1940년 4월 4일에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3수하려면 2~3년 걸리는데 어떻게 3월 한 달 사이에 
3수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lt;br&gt;&lt;br&gt;그리고 일본이 일본군 장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국가관에 관한 신원조회였다. 불온교사로 
찍혀 면직된 박정희는 다시는 그 어느 학교에서도 교편을 잡을 수 없었다. 그의 불온교사 경력은 그 어느 직장에 취직하는데도 불리했을 경력이었다. 
하물며 국가관이 가장 중요한 일본군 장교로 그를 선발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분경에서 교필을 잡던 박정희가 1940년 2월 갑자기 면직된 사유는 
그가 불온교사였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교사를 면직할 때 그 사유를 기록으로 남겨둔다. 박정희가 일본인 몰래 학생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는 동안 
한 학생이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웠다 (황실광의 증언). 천황에게 신사참배하는 것이 강요되던 시대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순희씨에 따르면 일어 상용(常用)으로 학교에서 조선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박정희는 수업시간에 몰래 조선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한번은 둥근 
원을 그려 그 속에 가로로 물결무늬를 그려 넣고는 “보기만 해! 이게 조선 국기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림을 찢어버렸는데 한 학생이 
다른 반에 가서 자랑한 것이 일본인 교사 귀에 들어가 ‘불온교사’로 찍혔다는 것이다. (제자 이순희 증언· 정운현의 ''실록 군인 박정희'' 
60쪽)&lt;br&gt;&lt;br&gt;만약 만주국군이 일본군이었다면 이런 불온교사 경력의 박정희는 신원조회에 걸려 절대로 사관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고, 입학 
후에도 곧 입학이 취소되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주국은 일본의 신원조회망을 벗어난 철저한 제3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lt;br&gt;&lt;br&gt;자, 다시 위의 오디오의 두번째 노래 &quot;나의 조국&quot;으로 돌아가서, 박정희가 어떻게 그런 가사를 작사할 
수 있었을까? 그 실마리는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생 유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강산으로 수학여행가서 박정희 학생이 쓴 여행소감에 나라없는 
민족의 恨이 배어 있었다. &quot;금강산아, 너의 자태는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데, 우리는 왜 ...................&quot; 무슨 일인지 끝을 
맺지 못한 그의 글에 그의 아픔 마음이 이렇게 배어 있었다.&lt;br&gt;&lt;br&gt;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1939년 3월 31일자 ‘민주신문’ 기사의 
사본을 공개했을 때 지난 수년간의 &quot;盡忠報國 滅私奉公&quot; 혈서설은 조작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기사가 보도한 일곱 단어의 혈서는 
군관후보생이 되려는 각오를 표현한 &quot;一死以テ御奉公&quot;이다. 도대체 여기 어디 진충보국이란 낱말이 있다는 말인가? 박정희의 지원서가 일본 천황에게로 
배달되었다는 종전의 주장과 달리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치안부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의 하급 계원에게로 그 지원서가 배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혈서 썼다는 그간의 사기꾼들의 주장도, 盡忠報國 滅私奉公이란 여덟 자의 혈서를 썼다는 주장도 모두 새빨간 
거짓말들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lt;br&gt;&lt;br&gt;무엇이 미개인의 논리인가? &quot;원숭이 궁덩이는 빨갛다. 사과는 빨갛다. 고로 원숭이 
궁덩이는 사과다&quot;는 것이 미개인들의 논리이다. 만약 생물학자 홍길동이 원숭이 궁덩이는 빨갛다고 말했고, 우리가 그의 주장을 트집잡으려면 원숭이 
궁덩이는 새빨간 것이 아니라 붉으스럼하다는 말로 트집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노사모가 생물학자 홍길동이 원숭이 궁덩이는 사과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하면 그 주장은 조작이다. 왜냐하면 생물학자 홍길동은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한 
혈서 해프닝이다. 박정희가 &quot;盡忠報國 滅私奉公&quot; 혈서를 썼다며, 그 원문 기사를 공개했는데, 盡忠報國은커녕 그 비슷한 글자도 없다. 분명 
생물학자 홍길동이 한 말은 &quot;원숭이 궁덩이는 빨갛다&quot;였는데, 민족문화연구소는 홍길동이 &quot;원숭이 궁덩이는 사과다&quot;라고 말했다며 남의 말을 제멋대로 
조작하여 발표하여 왔던 것이다.&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IfAmVfIL27Y&amp;hl=en_US&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우리가 위의 영상물에서 
보듯이 민족문제연구소측은 지난 2004년에는 조선족 작가를 돈으로 매수하여 책 내용까지 조작한 바 있다. 박정희가 1939년 독립군을 토벌한 
공로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책을 출판함과 동시에 친일청산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들이 지난 5일 공개한 신문은 박정희가 
1939년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음을 또한번 입증한다. 따라서 민족문제연구소측이 벼룩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난 2004년 그렇게 
책 내용을 조작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을 국민에게 사과하는 말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 반성조차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기꾼이라고 부른다. 
자, 이 사기꾼 집단이 박정희 혈서 기사라며 신문을 공개했으니, 그 공신력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lt;br&gt;&lt;br&gt;우선 만주신문의 
공신력에 문제가 있다. 만주신문은 창간된 적도 창간호도 없는 신문이었다. 만주신문은 만주어와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던 만주국 국민들도 전혀 안 
보는 신문이었으며, 일본인들도 안 보는 신문이었다. 만주신문은 만철 기관지였으며, 만철 기관지는 민족문화연구소측에서는 절대로 신용해서는 안되는 
신문이었다. 신문 자체의 공신력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사가 조작 투성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나타난다. 미련한 좌빨들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공개한 박정희의 서신 내용 전체를 박정희가 혈서로 썼다고 주장하거니와, 그것이 불가능함을 좌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박정희의 친필 서신의 한 예가 바로 아래에 있는 서신 사진이다. 서신이 너무 길어 여기 전체를 올리지 못하나 원문 전체를 &lt;a href=&quot;http://bookstore21.net/korean/photo/park-jh/park-letter-lee.jpg&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bookstore21.net/korean/photo/park-jh/park-letter-lee.jpg&lt;/a&gt; 
에서 볼 수 있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photo/park-jh/park-letter-lee1.jpg&quot; width=&quot;603&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1756&quot;&gt;&lt;br&gt;&lt;br&gt;위에서 우리가 보듯 한국어가 국어인 우리도 흘려쓴 필체 때문에 박정희의 친필 서한 중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종종 있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지원을 위해 문의 편지를 썼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만주국 관리들은 일본어를 몰랐는데, 박정희가 어느 
언어로 서신을 보냈는지조차 그 기사만으로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입학지원서의 일부인 지원자의 서신을 치안부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가 
신문사로 보내는 것이 가능한가? 혈서가 있다면 왜 혈서 사진도 없고 혈서 목격자도 없는가? 왜 기자가 보도하지 않고 정체 불명의 편집자가 
보도하는가? 도대체 편집자 눈으로 직접 혈서를 본 것인가 못 본 것인가? 만주국 관리가 입학지원서를 만주신문에 보낸 것이 아니라면 신문 편집자도 
그 혈서를 본 바 없고, 단지 만주국 하급 관리가 보낸 메모를 보도했다는 말인가? 혈서 사진도 없고 혈서를 목격했다는 기자도 없다. 그리고 
혈서와 함께 보냈다는 서신도 조작된 채 인용되었다. &lt;br&gt;&lt;br&gt;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그 편지에 (전략) (중략) (후략) 등의 글자들이 
계속 여러 차례 반복된다. 즉 서신을 발췌 공개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발췌 공개할 때 그것이 바로 조작이다. 발췌 인용은 할 수 있어도 발췌 
공개는 할 수 없다. 부득이 발췌 공개할 때는 원문 사진을 반드시 공개하여야 한다. 원문 사진이 없으면 출처가 없고, 출처가 없으면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신문 편집자가 남의 서신을 편집하면 그것은 이미 사실 보도가 아니라 기사 조작이다. 그리고 과여 그런 조작 기사를 
근거삼아 박정희를 친일명부에 넣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위의 2004년 3월 2일자의 MBC 뉴스동영상에서 징병과 징용을 선동, 강요한 행위 
등이 반민특위 조사 대상이라고 보도되었음을 우리는 본다. 그러면 여운형과 김대중을 조사하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면 되는 것이다. 
&lt;br&gt;&lt;br&gt;아래 사진에서 보듯 동시대 여운형의 글에는 사진들이 있다. 그 이유는 그 글들이 지금껏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unhyeong-doc1.jpeg&quot; vspace=&quot;3&quot; width=&quot;25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176&quot;&gt;&lt;br&gt;▲ 여기 여운형의 학병 권유 격문이 실린 『반도학도출진보(半島學徒出陣譜)』사진이 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unhyeong-doc2.jpeg&quot; vspace=&quot;3&quot; width=&quot;25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188&quot;&gt;&lt;br&gt;▲ 그리고 여기 '반도이천오백만동포에게 호소함'이라는 격문 제목과 '여운형씨 수기'라는 필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lt;br&gt;&lt;br&gt;그런데 왜 동시대 박정희의 서신을 공개한다면서 서신 목격자도 없고 서신 사진도 없고, 민족문제연구소 편에서는 절대로 
신용해서는 안될 만철 기관지에만 여기저기 삭제되고 조작된 채로 보도되었다는 말인가? &lt;br&gt;&lt;br&gt;여운형이 저렇게 격문 쓴다고 조선의 학도들이 
선동되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은 학생 연설에 선동된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김대중처럼 일제시대 말기에 학생회장이었던 자들은 일본의 조선인 
황국신민화 정책의 앞잡이들이었다고 한다. 김대중이 목포상고 학생회장 시절 일본군복을 입고 황군 입대 지원 권유 유세를 하였다. (아래의 목포상고 
졸업 앨범 사진들에서 일본군복을 입은 김대중의 모습이 주목된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armyuniform.jpg&quot; width=&quot;70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463&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armyuniform2.jpg&quot; width=&quot;483&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260&quot;&gt;&lt;br&gt;&lt;br&gt;황국신민화 정책에 앞장서 출세한 인물이 바로 김대중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목포 선박회사 사장이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측에 물어보자. 도대체 김대중이 친일의 댓가로 일본인들로부터 선박회사를 받은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가 불온교사로 찍혔듯이 
불온학생으로 찍혀서 그런 큰 선물을 받은 것인가? 김대중은 1997년 대선 유세 때 자신이 경제 대통령이라는 착각을 국민에게 주기 위하여 목포 
선박회사 운영 경험을 국민들에게 자랑하였었다. 그런데, 그 회사는 하의도라는 섬 출신 김대중이 땀흘려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일본군복 입고 
설치면서 일본인들의 총애를 받아 얻은 것이었다. &lt;br&gt;&lt;br&gt;김대중은 사람들에게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수법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김정일에게 몰래 8억불을 송금한 후 2000 년의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과 악수하는 장면으로 전세계인이 어떤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이처럼 김대중은 사람들이 착시현상에 빠져 선동당하게 하는 잔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잔재주를 일제시대부터 가지고 있었다. 자, 여운형이 
딱딱한 글로 학도병 지원 권유를 한다고 청년들이 입대하는가? 김대중이 학생회장 직함을 달고 연설하며, 일본군복 입고 유세하니 김대중 자신도 
인기를 끌고, 학생들 눈에 일본군 군복 입은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아래 사진은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난후 김대중이 여전히 히로히토 일왕에게 머리 숙이는 모습을 보도한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japan-emperor.jpg&quot; width=&quot;595&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554&quot;&gt;&lt;br&gt;&lt;br&gt;그때도 우리는 일본왕을 일왕으로 칭하였다. 그런데, 목포상고 시절의 친일근성이 몸에 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더니 운동권 독재자다웁게 일왕 호칭을 천황으로 바꾸었다. &lt;br&gt;&lt;br&gt;자, 조선총독부가 황국신민 정책을 폈을 때 박정희와 김대중 두 젊은이가 
있었다. 박정희는 학생시절에는 황국신민 관력 학과목에 백지 답안을 체출함으로 항거하였다. 불온학생 박정희가 시골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자, 그때 조선청년들이 할 일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우리말을 가르치고, 애국가를 가르치고, 태극기 제작법을 가르치고,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우리 말을 보존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간직하며,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한 우리 가슴 속에는 민족 혼이 
간직되고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lt;br&gt;&lt;br&gt;그러나 빼앗긴 조국을 위해 험난한 길을 택했던 박정희와 달리 김대중은 목포상고 시절에 이미 
일본에 부역하던 출세주의자였다. 만일 당시 조선인 청년으로서 할 수 있었던 일, 즉 조선어와 애국가와 태극기 제작법과 우리 역사를 가르친 인물이 
친일파라는 논리이며, 그 논리는 황국신민화 정책 부역자로서의 학생회장이었던 김대중이 학도병 지원 권유 연설을 하며, 일본 군복을 입고 일본인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공연을 한 것은 항일이었다는 논리인가? &lt;br&gt;&lt;br&gt;그러면 김대중이 목포상고 시절 어떤 연설을 하였었는가? 여기 아래 
김대중처럼 일본을 위해 부역하였던 민주당 신기남 의원의 부친 신상묵이 쓴 글이 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shikemi.JPG&quot; width=&quot;40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549&quot;&gt;&lt;br&gt;&lt;br&gt;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공개한 기사는 물론 조작 기사임에도 박정희는 결코 천황폐하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황폐하한테 충성을 맹세한 인물들은 민족문제연구소 관련 인물들이었다. 만주국군은 그 누구도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신상묵처럼 경성과 평양 훈련소에 입소한 자들이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자신을 일본남자로 간주하는 위의 신상묵의 글에서 &quot;우리들이 폐하의 
군인이 되는 것은&quot;이란 문구가 보인다. 이것은 입학지원을 위해 개인 서신이 아니었다. 이것은 출판된 글이었다. &lt;br&gt;&lt;br&gt;어찌 
민족문화연구소측 친일파 세력이 단지 여운형과 김대중과 신상묵뿐이었겠는가? 김희선 의원의 부친 김일련은 또한 어떠하였는가? 일제시대에 면장을 지낸 
유시민의 아버지 유태우와, 훈도노릇을 하던 유시민의 백부, 훈도였던 김근태의 아버지, 일본유학파 출신 청양면장이었던 총독부 공무원 이해찬의 
아버지, 일본군 오장이었던 이미경 의원의 아버지, 조선인으로 일본 천황의 경호원이 됐던 일본헌병 장교 이봉권, 나석주 의사를 사살한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조합의 직원으로 20년 근속한 정진철, 정동영의 부친 등 민족문화연구소측 친일파 세력의 수는 무수히 많건만 왜 모두 
친일인명사전에서 빠져있는가? &lt;br&gt;&lt;br&gt;&lt;br&gt;☞ &lt;a href=&quot;http://cafe.daum.net/issue21/5NiW/354&quot; target=&quot;_blank&quot;&gt;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혈서 기사 조작&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anthem.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작으로 판명된 盡忠報國 
滅私奉公 혈서설&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faked-articl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혈서 기사 조작&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03.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지령으로 제작된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친일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친일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친일청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친일청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애국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애국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 대통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 대통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혈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혈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 혈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 혈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혈서 기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혈서 기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만주국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만주국군&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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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역사학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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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5T17:11:09Z</updated>
	    <published>2009-11-15T17:11:09Z</published>
	    <content type="html">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 시대 때 일본군 소위였다는 이유로 그 사전에 등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만주국군 소위였지, 절대로 일본군 소위가 아니었다. 그 누구든 일본군은 만주국군복을 입을 수 없었다. 만주국군 소위 시절의 
박정희의 아래 사진이 보여주듯 박정희가 입은 군복은 만주국군복이었다. 그는 단 하루도 일본군복을 입은 일이 없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manju-army-uniform.jpg&quot;&gt;&lt;br&gt;&lt;br&gt;목포상고 
졸업앨범에 실린 아래 김대중의 사진들(붉은 색 원)이 보여주듯 일본군복을 즐겨입었던 인물은 김대중이었다. 그는 목포상고 학생회장 시절 학도병 
황군 지원 권유 연설을 아주 잘했다고 한다. 당시 학생 연극은 학도병 미화 프로파간다였는데, 김대중은 일본군복을 입고 연극을 하여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armyuniform.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463&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dj-armyuniform2.jpg&quot;&gt;&lt;br&gt;&lt;br&gt;광복군 
관계자들이 이구 동성으로 하는 증언은 박정희는 만주에서 조선인 병사 50 명을 탈영시켜 애국가를 가르친 뒤 광복군에 입대시켰다는 것이다. 누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증언 사료들을 사진으로 확증할 방법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독립운동을 사진으로 
입증할 자료들이 희박하다면 김대중의 친일 행적을 입증할 사진 자료들은 여기서도 분명히 보인다. 조선인 학도 지원병 권유 연설을 하며 쌓은 연설 
실력으로, 그리고 학도병 황군 복무를 미화하는 연극으로 쌓은 대중 선동 노하우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광주사태 선동을 
하였던 김대중이 히로히토 일왕에게 머리 숙이는 모습을 우리는 아래 사진에서 발견한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discussion/photo/dj_japan.jpg&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446&quot;&gt;&lt;br&gt;&lt;br&gt;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11월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하는 서류와 함께 혈서를 섰다는 
내용이 담긴 1939년 3월31일자 ‘민주신문’ 기사의 사본을 공개했는데 도대체 이것이 말이 안된다. 첫째로 연대가 맞지 않는다. 박정희의 
만주국 군관학교 진학은 그로부터 1년 후의 일이다. 만약 박정희가 혈서를 썼고, 민족문제연구소 주장대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면 만주로 가기 전에 
남로당에 의해 암살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박정희가 귀국하자마자 남로당이 VIP 특별대우를 하며 박정희를 추종하였겠는가? 박정희가 아직 만주에 
있었을 때도 광복군이 달려와 그를 광복군 중대장으로 영입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만주에서의 박정희의 행적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등소평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국 최고 영웅으로 추대하였을 리 있겠는가?&lt;br&gt;&lt;br&gt;&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PdRs05eZGig&amp;hl=en_US&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위 동영상에서 보듯 지난 
12일의 MBC 100분 토론 때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이 혈서 기사라며 복사된 문서를 내미는 순간 그들이 지난 5년간 해왔던 두가지 거짓말이 
일시에 명약관화하게 드러났다. 중국 공산당 팔로군을 독립군이라 불러 국민을 혼동시키는 민족문제연구소가 1939년 박정희가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했었다는 주장이 그 첫번째 거짓말이요, 박정희 혈서 기사가 만주일보에 실렸다는 주장이 그 두번째 거짓말이었다.&lt;br&gt;&lt;br&gt;민족문제연구소는 
외화를 써가면 조선족 류연산을 시켜 책을 위조하게 하였으나, 아래 문건에서 보듯 그 내용이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 바 있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park-in-1940.JPG&quot;&gt;&lt;br&gt;&lt;br&gt;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가 1939년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유언비어를 온 천지에 퍼뜨려 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혼동시켜 왔다. 그런데, 위 동영상의 100토론에서 
박한용이 지 입으로 박정희는 1938년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렇듯 지난 12일의 100토론은 박정희가 1939년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종전의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들이었음이 시청각적으로 입증해 주는 순간이었다. &lt;br&gt;&lt;br&gt;두번째 거짓말은 
박정희 혈서 기사가 만주일보에 실렸다는 주장이었다. 자, 조선신보는 북한신문이요, 조선일보는 남한신문이다. 근래에 홍익대 여대생 이도경의 
입방아로 이른바 루저 대란이 일어났다. 70년 후에 어느 단체가 조선신보에 루저 대란이 실렸다는 주장을 5년간 전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했다고 
하자. 그리고, 5년 후에 말을 바꾸어 조선일보 기사가 여기 있다며 자료 공개를 했다고 하자. 그러면 식자들은 도대체 이 괴단체는 북한신문과 
남한신문도 구별치 못하는 무식쟁이들의 단체인지 의아해 할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이 지난 12일의 100분 토론 때 있었다.&lt;br&gt;&lt;br&gt;자, 
지난 5년간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 혈서 기사가 만주일보에 실렸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런데, 아래의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자료가 밝히듯이 
만주일보는 1908년에 폐간된 신문이었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manju-ilbo.jpg&quot;&gt;&lt;br&gt;&lt;br&gt;만약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신문 자료에 의해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했었던 것이라면 무엇하러 1939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만주일보에 실렸었다고 전 매체를 
통하여 지난 5년간 주장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글을 읽을 줄 몰라 만주신문을 만주일보로 읽었던 것인가? 만약 이처럼 실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문맹자들의 집단일진대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저능아 재교육장이다. 역사 토론은, 더욱이 민족 문제에 대한 역사 토론은 책을 위조하는 사기꾼들은 
그 버릇을 고친 후에, 그리고 신문이름조차 지난 5년간 틀리게 읽었던 문맹자들은 저능아 재교육장에서 공부 좀 더 한 후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lt;br&gt;&lt;br&gt;위 토론 중 중국공산당 팔로군을 항일부대라고 부르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은 중국공산당 팔로군과 조선독립군을 동일시한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항조선족이라는 의미로 항일을 사용하였다. 같은 독립운동을 하여도 중국의 김구는 후원을 받아야 했고, 미국의 이승만은 
상해임정을 후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에서는 조선인들이 토지를 소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라잃은 민족이 갈 곳이 없었을 때 만주족이 
조선족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중국인들은 온갖 방해를 하였다. &lt;br&gt;&lt;br&gt;박한용이 항일부대라 부르는 무장단체는 한때 
항일연군이라 불렸던 무장단체였는데, 이들이 바로 만주국 건국 이전 수십년간 철권통치로 지배하였던 무장한족이었다. 관동군과 무장한족은 평화공존의 
관계였다. 관동군은 주둔비용으로 만주철도 부설을 지원하는 일 외에도 프리미엄으로 무장한족에 현대화된 군사무기를 공급했고, 무장한족은 그 
군사무기를 가지고 만주족을 철권통치로 지배했었다. 그런데, 관동군과 무장한족은 평화공존의 관계가 1931년에 깨졌는데, 그 이유는 무장한족이 
일본인들의 만주철도 부설권을 침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주족이 상권까지 침해하였으므로 관동군도 만주의 독립운동가들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었으니 
이를 만주사변이라 부른다. 이미 건국 준비를 완료한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신속하게 그 이듬해에 만주국을 건국하였으며, 그때부터 관동군도 
무장한족과의 동맹을 끊고 만주의 원주인과 동맹관계를 맺었다. &lt;br&gt;&lt;br&gt;무장한족이 만주를 재침략할 명분이 바로 만주에서 조선족을 몰아내자는 
구호였으며, 그 목표를 항일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사실 만주의 모든 조선족이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김일성에게 
일본 국적이 있었는가? 중국 공산당은 김일성 역시 일본인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에 협조하는 조선인은 혁명에 성공한 후 토지와 
재산을 분배해 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약속이었다. &lt;br&gt;&lt;br&gt;1912년부터 1931년까지 만주를 통치한 한족 군벌은 조선족이 무국적자라는 
구실로 조선족 토지를 합법적으로 몰수하는 법을 제정하였는데,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되어 조선인 토지 소유를 합법화하자 이것을 만주국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다. 박한용이 항일부대란 칭한 무장단체는 나중에 팔로군이라 불리지만, 위 동영상에서 박한용이 언급한 시기의 이 무장단체는 
조선인만 골라 약탈하던 마적단, 즉 동북인민혁명군이란 명칭의 마적단이었다. &lt;br&gt;&lt;br&gt;동북인민혁명군의 정강정책이 오늘날 중국이 시도하고 하는 
동북공정, 즉 한반도는 중국역사의 일부라는 논리의 출발점이었다. 그들의 정강정책 어디에도 조선독립운동이라는 말은 없다. 우선 제 1항에 동북에서 
만주국의 통치를 전복한다는 것이요, 9항은 中 , 韓 , 蒙의 피압박민족은 밀접히 연합하여 공동의 적인 만주정부를 타도한다는 것일 뿐, 정강정책 
그 어디에도 중국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연대하던가 한다는 내용이 단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lt;br&gt;&lt;br&gt;위 동영상에서 달리라 라마의 
소년 시절 중국 공산당 군대가 티베트를 침략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 박한용의 어처구니없는 논리는 중국 인민군이 티베트를 침략하였으며, 훗날 
한국전쟁 때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 조선독립운동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이 몽고와 만주와 티베트를 침략하는 수법이던가? 먼저 항일연군을 
조직하였다. 즉, 연군이란 미명 하에 침략 대상국에 좌익세력을 키워놓았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있는 나라는 중국 땅이라는 논리로 주변국들을 
차례차례 침략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티베트인들이 독립의 희망을 가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고 있지 아니한가? 조선인들을 동족으로 여기며 
만주에서 정착할 수 있던 만주족을 배신하고, 그들이 가까스로 되찾은 주권을 중국 공산당이 강탈하도록 팔로군 용병이 된 어리석은 행동이 
조선독립운동이었는가?&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Q0Exv7nprDc&amp;hl=en_US&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1939년에 존재하지도 
않았었던 만주일보에 박정희 혈서 기사가 실렸다고 지난 오년간 요란하게 나팔 불었던 민족문제연구소는 뭔가 사기를 쳤거나, &quot;신문&quot;을 &quot;일보&quot;로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는데만 무려 5년 이상 걸린 저능아 집단들이다. 외화 낭비하며 책까지 위조하는 국제 사기단이나 이런 저능아 집단이 
공개한 신문 기사는 당체 신빙성이 없다. 그들은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혈서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편지가 일본 천황이 있는 
동경과 정반대 방향인 만주국 신경으로 배달되었다는 말인가? 그간 수신자가 일본 천황이었다고 주장하더니 만주국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였다고 말을 
바꾼 것인데, 당시 만주국에 그런 부서가 없었다. 그리고 박정희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한 이유로서 박한용이 말하는 궁색한 논리는 혈서와 함께 보낸 
편지에 &quot;조조국&quot;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1939년 3월이었다는 것이다.&lt;br&gt;&lt;br&gt;그때 박정희의 조국은 일본이었음을 
증언하는 일본인이 있으니 바로 대구사범학교 시절 교련선생이었던 아리카와 대좌였다. 박정희가 모든 과목에서 최우수 성적을 얻으면서도 늘 전체 
성적이 바닥을 헤메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던 아리카와 당시 중좌는 박정희가 윤리 등 황국신민 과목에는 백지 답안을 제출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맺어졌으며 오래 지속된 사제지간의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일본군복을 입고 황국신민을 주제로 연설을 하고 연극을 하던 김대중과 
달리 박정희는 백지 답안을 내었다. 가난한 박정희가 계속 백지 답안 제출을 하는 것은 장래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만큼 박정희에게는 오직 하나의 
조국, 조선이 있었으며, 아리카와 대좌가 그 신념을 위한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본래 만주국 군관학교는 반도의 조선인들이 진학할 수 없는 
학교였다. 그 학교가 외국인학교도 아니었는데 혈서 쓴다고 입학이 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이다. 박정희는 당시 관동군 대좌로 진급해 있었던 
아리카와의 추천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리카와 대좌는 남양군도로 떠나면서 미리 이런 유언 편지를 박정희에게 보냈다. &quot;이 전쟁은 
무의미하며 일본을 패배할 것이다. 나는 죽으러 가나 자네는 자네 조국을 위해 살게.&quot; 박정희를 만주군관학교에 추천한 관동군 대좌가 박정희의 
조국은 조선이라고 말했다.&lt;br&gt;&lt;br&gt;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박정희는 황국신민이 되기를 거부하였기에 시골 문경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거기서도 황국신민이 되기를 거부하였기에 1940년 면직이 되고 아리카와 대좌의 도움으로 만주군관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런데, 문경의 그의 옛 
제자들이 한결같이 1939년 박정희의 조국은 조선이었음을 증언한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photo/father-land.jpg&quot;&gt;&lt;br&gt;&lt;br&gt;&lt;&lt;주영배(周永培)의 
말: &quot;1939년, 내가 보통학교 5학년일 때 조선어 과목을 가르치며 박 선생님께서는 &quot;이 글을 잘 배워야 한다&quot;고 말씀하셨다.&quot; 
&lt;br&gt;&lt;br&gt;이영태(李永泰)의 말: &lt;br&gt;&lt;br&gt;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음악시간에는&lt;황성옛터&gt;&lt;심청의 노래&gt;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조국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일본인 
교사들과는 자주 싸우는 광경을 보았다. 하루는 수석교사였던 일본인 야나자와(柳澤)와 말다툼 끝에 그가&lt;조선놈&gt;이라고 하자 의자를 
집어던진 일도 있었다. &lt;br&gt;&lt;br&gt;그 당시 일본인 순사 중에 오가와(小川)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자주 논쟁을 벌였다. 박 선생님이 
만주군관학교에서 군도를 차고 문경에 왔을 때 오가와(小川)가 무어라 했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lt;br&gt;&lt;br&gt;전도인(錢道寅)의 말: 
&lt;br&gt;&lt;br&gt;하루는 박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다. 그 때 일본인 청부업자 한 명이 담배를 문 채 교무실 
안으로 들어와 박 선생님에게 &quot;오이! 교장 계신가?&quot;하고 물었다. &lt;br&gt;&lt;br&gt;선생님은 일본인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 
사람이 재차 똑같이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lt;br&gt;&lt;br&gt;&quot;너희 일본인들이 부르짖는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진실이라면 당신이 내게 
그러한 언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등 국민으로자처하고 싶거든 우선 교양 있는 국민이 돼야지, 담배를 물고 교무실에 들어온 것만 해도 무례하기 
그지없는데 언동까지 몰상식한인간이라면 나는 너같은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다. 어서 나가봐!&quot; 하고 말한 적이 있다. &lt;br&gt;&lt;br&gt;황실광의 말: 
&lt;br&gt;&lt;br&gt;박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을 때 나는 6학년 반장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역사, 시조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하셨다. &lt;br&gt;&lt;br&gt;박 선생님이 일제치하에서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신 것은 
분명하다. 학생 한 사람을 복도에 세워놓고 일본인 교장이나 교사가 오지 않나 망을 보게 했다. &lt;br&gt;&lt;br&gt;그 때 한 남학생이 천황의 사진에다 
장난을 하고 교무실에 불려가 혼이 난 일이 있다.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우는따위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한 것은 박 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lt;br&gt;&lt;br&gt;“박 선생님이 만주로 떠난 지 3∼4년이 지난 어느 여름방학 때 긴 칼 
차고 문경에 오셔서 십자거리(문경보통학교 아래에 있는 네거리)에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갔지요. (중략) 하숙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 박 
선생님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턱에 그 긴 칼을 꽂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군수, 서장, 교장을 불러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세 사람 모두 박 
선생님 앞에 와서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교사 시절 박 선생님을 괴롭혔던 걸 사과하는 것 같았습니다.”(여제자 이순희씨 증언· 
정운현의 ‘실록 군인 박정희’ 78쪽)&lt;br&gt;&lt;br&gt;이순희씨에 따르면 일어 상용(常用)으로 학교에서 조선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박정희는 
수업시간에 몰래 조선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한번은 둥근 원을 그려 그 속에 가로로 물결무늬를 그려 넣고는 “보기만 해! 이게 조선 국기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림을 찢어버렸는데 한 학생이 다른 반에 가서 자랑한 것이 일본인 교사 귀에 들어가 ‘불온교사’로 찍혔다는 것이다. 
(제자 이순희 증언· 정운현의 ''실록 군인 박정희'' 60쪽)&lt;br&gt;&lt;br&gt;박정희에게 배운 이영태는 이낙선(5·16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비서관)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은사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를 가르쳐주셨고 
복도에 입초를 세우시고 우리 나라 역사를 가르쳐주셨으며 일본인 교사들과는 지금 생각하면 조국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자주 싸우시는 것을 
목격했다’(조갑제의 ‘박정희’ 79쪽).&gt;&gt;&lt;br&gt;&lt;br&gt;자, 우리는 여태껏 거짓말만 해온 저능아 집단이 공개한 신문기사에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있다. 보라. 분명한 사실은 만주어와 중국어가 공용어였던 만주국의 그 어느 신문에도 그 혈서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느 일본 신문에도 그 혈서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만주신문은 만철 직원들을 위한 기관지였다. 그러면 만철 직원들의 국적은 어디였는가? 
민족문제연구소 논리대로라면 만철 직원들은 일본의 침략자들이었다. 따라서, 민족문제연구소는 만철 직원들을 만주국 국민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이 일본 국민이었는가? 아니다. 1938년 관동주 자유항을 만주국에 반환함과 동시에 일본은 그때까지 일본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모든 
만철 직원들의 일본 국적을 취소시켜 버렸다. &lt;br&gt;&lt;br&gt;사실, 만약 100분 토론 중 주익종씨가 박한용에게 만주신문 창간호가 존재하며, 
창간날자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라면 예리한 질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주신문은 창간된 적이 없다. 1938년 관동주 자유항이 만주국으로 
반환되고 만철 직원들 일본 국적이 취소되자 그들의 국적은 만주국임을 분명히하기 위해 그 해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면, 만주신문 발행인과 
기자들은 누구였던가? 그들은 6년 후인 1945년 8월 러시아군이 만주로 쳐들어왔을 때 시베리아로 끌려갈 자들이었다. 조선 주둔 일본군은 
일본인부터 송환시킨 후 철군하였다. 패배한 군대의 마지막 임무는 민간인 보호였다. 그런데 관동군은 단 한 명의 민간인도 수송하지 않았다. 
&lt;br&gt;&lt;br&gt;일본군은 남양군도에서 철수할 때 조선인 학도병들은 정규군이 아니었는데도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사망자 유해를 
가족에게 인도할 수 없었을 때는 일본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무엇이 그 논리였던가. 비록 조선인 학도병이라 하더라도 일본군 군번을 받았을 때는 
끝까지 책임진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만주국 거주 일본인들은 자국 백성이 아니라며 전혀 거들떠 보지 않았다. 훗날 수십 만영의 일본인들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도 그들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였다. 단 한 명의 일본인이 북한으로 납치되어가도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며 
정부가 송환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는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 아닌가? 70만명의 일본인이면 광주시 전체의 인구인데도 일본 정부는 철저하게 
외면하였다.&lt;br&gt;&lt;br&gt;관동주 자유항을 만주국에 반환한 후 일본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처럼 화란도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누구든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 화란 국적이 그 날로 소멸된다. 그리고 자기를 버린 화란에 분노한 화란인들은 더 이상 조국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처럼 만주신문 발행인의 조국도 일본일 수 없었다. 그 신문은 일본어로 발행되었으되 그들은 만주국에 납세의 의무를 지던 만주국 국민이었다. 미주 
한인 커뮤니티의 장래는 미국의 발전에 달려있다. 미국 경제가 감기만 걸려도 한인 교포사회의 경제가 휘청거린다. 이처럼 만주신문 발행인의 훗날의 
생사도 만주국 군대가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본래 관동주 자유항 수비대였던 관동군도 1838년 관동주 자유항이 만주국으로 
반납될 무렵 그 지휘권이 관동주에서 일본 육본으로 넘어갔다. 그후의 관동군은 관동주의 일계 만주국 국민들에게 사실상 외국군이었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만계이든 일계이든 만주국 국적을 가진 국민들의 문제는 만주국 문제이지 일본 정부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lt;br&gt;&lt;br&gt;박정희의 
입학지원서 수신자가 일본 천황이었기는커녕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만주국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였는데, 만약 그런 유령부서가 있었다 해도 언론에 
공개할 것이라면 왜 만주국 신문도 일본 신문도 아닌 만철 기관지에만 공개하였을리 있겠는가? 혈서 사진이 있어야 박정희의 필체인지 객관적으로 
확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신문사에서 그 기사를 실었을 때 그 객관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단어 하나로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데 편집자나 인쇄공의 실수로 글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설사, 박정희가 편지를 썼으며, 그 편지에 조국이란 단어가 있더라도 그 
&quot;조국&quot;은 조선을 의미하였음이 일본군 대좌 아리카와의 서신과 문경 제자들의 증언과 일계 만주국 국민으로서의 만주신문 편집자의 시각에서 아주 
분명하다.&lt;br&gt;&lt;br&gt;&lt;br&gt;☞ &lt;a href=&quot;http://cafe.daum.net/issue21/3Fdk/4437&quot; target=&quot;_blank&quot;&gt;만주국 군관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는 증거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column/kbs/ask01.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복군을 주적으로 삼던 마적단이 
독립군이라는 KBS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bookstore21.net/korean/815/faked-articl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혈서 기사 조작&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03.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지령으로 제작된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lt;/a&gt;&lt;br&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티베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티베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100분 토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100분 토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 대통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 대통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민족문제 연구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민족문제 연구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 혈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 혈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혈서 기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혈서 기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달리라 라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달리라 라마&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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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북한 지령으로 제작된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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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역사학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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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31T16:39:5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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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jqGcrIOyIN0&amp;hl=en&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1979년 12월 18일 
보통 군법회의에서 비공개로 행한 김재규의 최후진술에서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는 &quot;5.16도 10월 유신도 범법이 아니라면 
자연히 10.26의 혁명도 범법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투쟁을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10.26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혁명이 되고 맙니다&quot;라고 말하였음을 위의 1996년 9월 18일자 MBC 뉴스동영상은 보여준다. 이때 김연석 기자의 멘트 
&quot;김재규는 이 최후진술에서 이른바 서울의 봄과 광주시민항쟁을 예고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quot;가 들린다.&quo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116_6172.html )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이 말은 김재규가 예언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운동권 변호사들이 시키는대로 말했음을 반영한다. 김재규의 최후진술 직전 면회한 운동권은 
그렇게 말해야 그도 운동권도 혁명의 명분을 얻게 된다며 그를 설득했다는 말이 전해진다.&lt;br&gt;&lt;br&gt;자, 김재규의 부하 정승화가 참모총장이었던 
1979년 김영삼씨는 군인이 정치하면 안된다고 말했고, 정승화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1987년 12월 김영삼씨가 
말을 싹 바꾸어 정승화를 신민당 고문으로 추대하며 정승화의 신민당 입당 환영행사를 성대하게 치루었다. 그로부터 8년후 문민독재자 김영삼 대통령은 
위헌을 해가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며 12.12특별법을 제정케 하여 1996년 12.12-5.18 재판이 마무리될 무렵 월간지 신동아 
10월호가 김재규의 최후진술 녹음 테이프를 공개하고, MBC가 방송했다. 즉, 운동권의 어거지 역사 논리의 승리를 자축한 
것이다.&lt;br&gt;&lt;br&gt;무엇이 김재규와 그의 부하 정승화의 손을 들어준 12.12-5.18 재판의 잘못된 역사 논리였던가? 12.12사태는 
정승화에게 김재규 공범의 의혹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재규의 쿠데타를 완성시키려 한데서 비롯되었다. 김재규의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을 때 
정승화는 대통령의 권한을 침범하여 합수부장을 해임시키고,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로 좌천시키려 했다. 합수부장 해임을 합수부의 사실상의 해체를 
의미하며, 김재규를 수사하던 수사기관의 해체는 김재규의 사면복권을 의미하였다. 그러기에 김재규를 소리없이 도왔던 정승화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가히 운동권이 김재규를 10.26혁명 열사로 미화시키는 작업이 가능케 하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로 이제 김재규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lt;br&gt;&lt;br&gt;무엇이 12.12-5.18 재판의 역사논리였던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을 체포하였으며, 수사한 것은 박정희-최규하 대통령의 
유신정권에 반기를 든 행위였다는 것이요, 광주시민들이 박정희-최규하 대통령의 유신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광주사태를 일으켰다는 논리였다. 쉬운 
예로, 정몽주는 고려왕조의 반역자요, 이성계는 고려왕조의 충신이었다는 어거지 주장에 비유될 수 있는 논리였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1980년 
5월의 전민봉기 논리였던가? 북한군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5월 21일자의 아래 대자보를 보라.&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daejabo/5-21.jpg&quot;&gt;&lt;br&gt;&lt;br&gt;5월 21일 아침 
발행된 위 대자보는 &quot;저 악랄한 유신독재자 박정희놈의 하수인 최규하, 신현확, 전두환놈의 악랄한 만행을 보라&quot;는 문구로 시작된다. 이 문구는 
전혀 박정희-최규하의 4공화국 헌정을 수호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없다. 도대체 일국의 대통령을 최규하놈이라고 부르는 말투는 어느 나라 
말투인가? &lt;br&gt;&lt;br&gt;무슨 이유에선지 전남대 5.18연구소는 이 대자보 발행인 명칭을 &quot;전·조대학생혁명 위원회&quot;로 수정하였다. 자, 여기서 
혁명위원회라는 명칭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위의 김재규의 발언에서 분명해진다. 그리고 김재규의 최후진술은 박정희 대통령만 희생시키면 된다는 주징임에 
비해, 이 혁명위원회는 국가 전복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저런 혁명위원회가 전남대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5.18연구소도 너무 
이상했던지 발행인 명의를 &quot;전·조대학생혁명 위원회&quot;로 바꾸어 놓았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유령단체일 뿐이다. 대자보 원문에서는 그 명의가 
&quot;전조선대학생혁명위원회&quot;인데, 아마도 이것은 북한군이 실수로 북한식 표현을 쓴 듯하다. 광주사태 때 비협조적 광주시민들에게 화를 내면서 북한군 
입에서 북한 말씨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정체가 노출될까 하여 광주시민들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광주에 해방구는 설치할 수 
있었으되, 이처럼 아직 노골적으로 그들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lt;br&gt;&lt;br&gt;1980년 봄의 거의 모든 대자보 문안들은 
힉생들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배후 세력이 작성한 것이었다. &quot;각 동별로 동사무소 장악, 동별로 집합! 오후 3시부터 도청으로 진격하라! 등의 
표현은 군대식 명령이지, 전남대 학생들의 표현이 아니었다. 전남대 학생들이 부모뻘, 혹은 조부모뻘 어른들에게 &quot;각 동별로 동사무소 장악, 동별로 
집합!&quot;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군대 명령이었다. 그런데 어느 나라식 군대 명령이었던가1 그 단서가 발행인 명칭에 있다: 
&quot;전조선대학생혁명위원회.&quot; 남한말에 아직 서툴렀던 간첩은 &quot;전국대학생혁명위원회&quot;라는 의미의 명칭을 사용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조선 
대학생이란 표현은 북조선 대학생과 남조선대학생 전체를 포함하는 의미를 함축한다. &lt;br&gt;&lt;br&gt;자, &quot;광주는 부른다&quot;라는 글귀가 보이는 아래 
포스터는 광주사태 당시 북한의 포스터이다. 이 포스터는 남조선 학생들이 광주에서 북조선 학생들을 부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nk/movie-poster.jpg&quot;&gt;&lt;br&gt;&lt;br&gt;그리고 아래 동영상 4:30 
에서부터 북한에서 광주사태를 생중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광주사태와 때를 같이하여 북한 말로 북조선 학생들이 광주인민봉기를 지지하는 궐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jwmpjvgNH9o$&quot; bgcolor=&quot;#000000&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99&quot;&gt;&lt;br&gt;&lt;br&gt;자, 위의 대자보를 하루 전인 20일의 
대자보와 비교해 보자. 20일에는 그 명의가 전조선대학생혁명위원회가 아니라 학생혁명위원회였다. 왜 이렇게 작성자 명의가 자주 바뀌었는가? 이것은 
그 명의가 얼굴 없는 명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요, 남한에 그 실체가 없는 명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만약 전조선대학생혁명위원회 혹은 
학생혁명위원회 등의 단체들이 실재했다면 이것은 김대중 홍위병들의 내란 음모가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나 전남대에 전조선대학생혁명위원회가 
있었는가? 광주 학생들이 부모뻘 시민들에게 &quot;무기를 제작하라!...전시민 관공서를 붙태우라...특공대를 조직 군무기를 탈취하라!&quot; 등의 군대식 
명령을 내렸는가?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daejabo/5-20.jpg&quot;&gt;&lt;br&gt;&lt;br&gt;시민군 대장이 그런 
군대식 명령을 광주 시민들에게 내렸는가? 아니다. 박남선씨가 정체불명의 인물들로부터 시민군 대장으로 지명받은 때는 위의 두 대자보가 유포된지 
훨씬 후였다. 학생 혁명군은 시민군 대장조차 모르는 군대이다. 전남대 학생은 그 누구도 학생 혁명군이란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다. 학생 
혁명군이란 명칭은 하나의 군대 조직을 지칭한다. 그리고 모든 군사 조직은 군사 지휘관이 있을 때에만 통솔과 운용이 가능하다. 자, 시민군 
대장조차 누가 무기 탈취를 지휘했는지 알지 못한다. 당시 정비공이었던 박남선씨는 무기고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따라서 시민군 배후에 북한군이 
있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만이 설명해 줄 수 있느 사건들이 있다.&lt;br&gt;&lt;br&gt;광주사태라는 명칭이 어디서 왔는가? 북한은 5월 18일 광주사태가 
일어날 것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생방송 중계를 준비하고 있다가 그날 오후 7시부터 모든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매일 광주사태를 생방송 중계하였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그 누구도 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사람들이 6월 24일에 드디어 내일 6.25 전쟁이 
터진다는 정보를 알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6.25라는 명칭은 훨씬 나중에 붙은 것이고, 그 당시에는 북한군이 휴전선을 침범하는 일이 
늘상 있었기 때문에 국방장관조차도 그날의 전투가 전면전의 시직인 줄 알지 못했었다. &lt;br&gt;&lt;br&gt;광주사태 초기에도 그 누구도 그것이 광주사태인 
줄 알지 못했다. 5월 18일 오후 1시 반경 김대중 조직이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이것이 광주사태의 서막이라고 광고했던 것이 
아니다. 유언비어에 속은 수백 명의 시위대가 두어시간후 순경 45명을 납치하였을 때 이것이 광주사태의 서막이라고 광고했던 것도 아니다. 그보다 
사흘 전 서울에서는 십만 명이 운집한 시위가 있었으며, 유시민 시위대가 시민버스 탈취하여 순경들을 깔아죽였는데, 그와 비슷한 사건은 광주에서 
5월 20일 밤에야 일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광주사태라는 단어도 개념도 없었다. 광주사태라는 명칭은 5월 22일 목포의 북한군이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이어 서울의 김대중 홍위병들이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를 발행하였고, 언론이 그 대자보 명칭대로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3일 이후였다.&lt;br&gt;&lt;br&gt;신군부라는 용어도 김일성이 처음 지어낸 용어였듯이, 광주사태라는 말도 북한군이 처음 사용하였다. 광주사태의 
어원은 5월 22일 목포의 북한군이 광주·목포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한데서 비롯된다. 무엇이 목포사태였던가? 목포 주재 박홍서 조선일보 기자조차도 
목포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같이 본사로 송고하였을 뿐이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image/news/mokpo21-22.jpg&quot;&gt;&lt;br&gt;&lt;br&gt;그리고 
아래 기사에서 보듯 5월 23일자 조선일보 7면 왼편에서 목포에 복면부대가 등장하여 총쏘며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image/news/chosun5_23mokpo.jpg&quot;&gt;&lt;br&gt;&lt;br&gt;그런데 
위의 기사가 실리기도 하루 전에 목포에서 광주·목포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자보가 등장한다. 이 대자보에서 광주·목포사태라는 용어가 두번 
사용되고 광주사태라는 용어가 한번 사용된다. 광주사태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는 순간이다. 자, 5월 21일 전남도청 등 주요관공서들이 
시민군에 함락됨으로 그날 오후부터 경찰이 시민군 지휘 하에 들어가는 해방구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목포의 대자보가 경찰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누가 누구에게 군대식 언어로 명령을 하달하는 것인가?&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daejabo/5-22mokpo.jpg&quot;&gt;&lt;br&gt;&lt;br&gt;&quot;군과 
경찰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장 색출하여 가차없이 처형하라&quot; -- 복면무장단체가 이렇게 지시한 것인가? 목포의 모든 파출소들과 주요 관공서들을 
파괴하고 쑥대밭으로 만든 범죄자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이런 지시를 하는 것인가? 이런 고압적인 지령은 전혀 민주적 의사전달 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학생혁명위원회 명의의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들과 그 작성자가 동일인이었음의 관찰되는 목포의 이 대자보는 목포가 북한군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광주사태를 선동하는 아지트였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증거자료 중 하나이다. 동일 배후세력이 광주에 뿌린 삐라에서는 목포에서도 
봉기가 일어났으니 싸우다 죽으라고 선동하고, 목포에서는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이 있으니 순경들을 즉결 사형에 처하라고 선동한다. 즉, 국가전복의 
수순으로서 광주에서 유혈무장폭동을 선동했던 것이다.&lt;br&gt;&lt;br&gt;사실 우리는 목포사태라는 말을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으나, 목포에 광주사태 선동을 
위한 북한군 아지트가 있었다는 탈북여성의 증언을 읽고 남한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목포사태라는 것이 있었으며, 광주사태의 전개과정에 대한 중요 
단서들이 목포사태에 있었다. 탈북자들의 5.18증언록 &quot;화려한 사기극의 실체&quot;에서 그녀는 부마사태, 목포사태, 광주사태 배후에 동일 북한군 
조직이 있었음을 이렇게 기술한다:&lt;br&gt;&lt;br&gt;&lt;&lt;여기서 놀랄만한 것은 목포를 중심으로 광주폭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5개월 여 동안 
목포,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숨은 지하조직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침투 조 인원들이 직접 목격한 일이지만 그들의 조직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79쪽). 안창식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북한특수부대요원들과 부마사태에 참가했던 
7명의 요원들이 합류된 18명의 소부대는 광주사태의 전 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목포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북한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광주작전과 관련된 필요한 지시들을 지령 받고 집행하였다. 광주폭동이 진압군의 작전으로 종료될 때까지 두 명의 인원은 고정적으로 
목포아지트에 대기하면서 광주시내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신속하게 지휘부에 보고했다 (81쪽).&gt;&gt; 
&lt;br&gt;&lt;br&gt;그리고, 부마사태가 10.26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이어졌으며 부마사태와 광주·목포사태 사이에 세개의 김재규 사건이 있었다. 
김재규의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가 첫번째 사건이었으며, 김재규 부하들과 합수부간의 충돌로 야기된 12.12사태가 두번째 사건이었으며, 
5월 하순으로 예정된 김재규 사형 집행이 그 세번째 사건이었다. 1995년 5월1일 서울지방검찰청 공안 1부 장윤석 부장검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면질의에 대한 소견과 논평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5월 하순의 김재규 처형 예정일에 맞춘 
남한의 대규모 시위와 더불어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었음을 이렇게 기술한다:&lt;br&gt;&lt;br&gt;&lt;&lt;▲1980년 5월 10일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김영선 중앙정보부 2차장으로부터 일본 내각조사실로부터 입수한 남침첩보에 대한 보고를 받았음.&lt;br&gt;&lt;br&gt;▲당시 
중앙정보부가 일본내각조사실로부터 입수한 북한 남침제보의 내용은,북한은 한국정부가 80년 4월 중순경에 김재규를 처형할 것으로 예상하고, 김재규 
처형시에는 항의 데모사태가 발생하여 남침을 위한 결정적 시기가 조성될 것으로 판단하여 남침시기를 4월 중순경으로 예정하였으나 김재규의 처형이 
지연됨에 따라 이를 연기하여 오던 중, 80년 5월 들어 학생과 노동자의 소요사태가 격화됨에 따라 한국 내 소요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80년 5월15일에서 5월20일어간에 남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었음 (&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ocument/president_reply.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http://www.study21.org/518/document/president_reply.htm&lt;/a&gt; 
).&gt;&gt;&lt;br&gt;&lt;br&gt;그런데, 이 남한 자료가 탈북 여성이 전해주는 북한 자료와 놀랍게도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사북탄광사태 배후에도 
동일한 북한군 조직이 있었음을 밝히는 이 여성은 그 사실을 이렇게 기술한다:&lt;br&gt;&lt;br&gt;&lt;&lt;1980년 3월로 계획되어있던 광주폭동이 
5월로 늦어진 것은 1980년 4월말에 일어났던 강원도의 사북탄광사태와의 밀접한 연관 때문이었다. 사북탄광에서의 폭동조짐을 첩보망을 통해서 
사전부터 구체적으로 감지하고 있던 북한은 3월로 예정되었던 광주폭동을 4월말로 연기하라는 지령을 내려 보냈고 득보다 실이 많은 산발적인 
소요보다는 전국각지에서 일시에 동시다발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전국규모의 항쟁이 성격으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계산하였다 
(78쪽). 북한쪽의 입장에서 사북탄광사태는 치명적인 실패작이었고 그것이 무산됨으로써 광주폭동은 부득이하게 5월 중순을 넘기게 된 것이었다 
(79쪽).&gt;&gt;&lt;br&gt;&lt;br&gt;그녀의 증언을 더욱 확증해 주는 북한 자료 중에 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이 내린 
교시가 있다:&lt;br&gt;&lt;br&gt;&lt;&lt;10.26사태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 
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민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gt;&gt;&lt;br&gt;&lt;br&gt;1980년 5월 광주사태 직전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이 내린 비밀교시는 왜 북한군이 작성한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들에서는 &quot;학생 혁명군&quot; &quot;학생혁명위원회&quot; 등의 명의가 
들어있었는지를 시사한다:&lt;br&gt;&lt;br&gt;&lt;&lt;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주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 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gt;&gt; (&lt;a href=&quot;http://kforum.co.kr/bbs/view.php?id=all&amp;page=10&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518&quot;&gt;&lt;br&gt;한국논단 
2007년 2월호&lt;/a&gt; )&lt;br&gt;&lt;br&gt;여러 탈북자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광주사태 전에 이미 여러 달 체류하며 무기탈취 준비 등 간첩 
역할을 한 북한군 특수부대가 있었다. 그런데, 5월 18일경 잠수함을 타고 남한에 침투해 봉기군과 합세하다가 25일 경 갑자기 북상복귀한 300 
명씩 두 떼거리의 북한군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증언은 1995년부터 시작된 탈북자들의 일치된 증언이기에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2005년 5월 17일 기자 출신 한영진 등 세 명의 탈북인이 쓴 기사에서 &quot;북한의 특수부대 한 개 여단이 잠수함을 타고 서해로 들어가 무장 
봉기군과 합세했다&quot;는 말이 광주사태 당시 북한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증언한다. (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1300&amp;num=5488)&lt;br&gt;&lt;br&gt;맨위의 
1996년 9월 18일자 뉴스에서 우리는 성경섭 기자의 이런 멘트를 듣는다. &quot;또 오후 6시 45분쯤에는 잔당으로 추정되는 거동 수상자 2명이 
캐피탈 승용차를 타고 대관령 방향으로 달아났다는 신고도 들어와 있습니다. 이들이 타고 간 차량은 캐피탈 승용차 강원 2다의 4440호입니다. 
혹시 이 차량을 발견하거나 거동수상자를 대관령 부근 지역에서 발견한 주민들은 즉각 인근 군부대나 경찰로 신고해 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117_6172.html ). 아마 과민한 반응에 의한 
신고였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거동이 수상하다고 하는가? 무장간첩 잔당 두 명에 대해서도 이처럼 온 국민이 불안해 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증언이 사실일 경우) 1996년 9월 침투한북한군의 수는 1980년 봄에 광주 등에 침투해 있던 북한군의 수에 비해 지극히 적은 
것이다. 그럴진대 확인이 필요하지 않은가. &lt;br&gt;&lt;br&gt;본래 광주시민군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당시 전남대생들에게 물어보라. 모두 무기 반납을 
원했다. 운동권 학생들조차 무장봉기에 반대했으니, 시민군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1일 저녁~22일 새벽부터 복면무장단체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과격파 시민군이 등장한다. 그리고, 5월 26일 갑자기 시민군 수가 확 줄었다. 남한 자료만으로는 풀지지 않는 이런 의문의 
수수께끼의 퍼즐 맞추기를 탈북자들이 전해주는 북한 자료가 해주지 아니하는가!&lt;br&gt;&lt;br&gt;전옥주는 누군가가 (간첩이) 주는대로 쪽지를 받아 
선무방송을 했지만 300명씩 두 떼거리의 연고생이 광주시민군 합세하기 위해 광주로 오고 있다는 말을 자신도 믿을 수 없다. 더구나 한 떼거리의 
연고생 300명은 목포쪽에서 온다고 하니 그때는 그렇게 방송했지만, 속은 느낌이라고 훗날 증언했던 것이다. 만약 연고생 300명이 위장용어였다면 
북한 자료가 맞는 것이다. 예를 들어, &quot;나머지 300명은 북한 동해안 신포지역의 馬養島(마양도)에서 출발해 잠수함을 타고 전남 지역으로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찰국 5부장이 공해상에서 대기 중인 배에 타고 현장을 지휘했다고 한다&quot;는 북한 ㅏ자료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iscuss/nk300.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http://study21.org/518/discuss/nk300.htm&lt;/a&gt; 
) 백 명 단위의 복면무장단체가 목포에 출현한 것을 박홍서 기자가 먼저 확인하였고, 이어 그들이 광주에도 등장한 것을 김영택 기자가 확인하였다. 
날자와 장소 및 사건 등의 정황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목포의 북한군 아지트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였으며, 몇몇 광주사태 선동 삐라 및 
무기탈취 등의 사건 배후에 목포 아지트가 있었던 것이다.&lt;br&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img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lt;/a&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02.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는 
남한의 5.18인가 북한의 5.18인가?&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탈북자 5.18 
증언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증거들(1)&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03.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지령으로 제작된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books.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탈북자 5.18 
증언록 구입 안내 및 관련 도서&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전두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두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재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재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대자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자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폭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폭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대자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대자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목포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목포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재규 최후진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재규 최후진술&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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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주사태는 남한의 5.18인가 북한의 5.18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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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10-29T18:35:08Z</updated>
	    <published>2009-10-29T18:35:0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title&gt;HTML clipboard&lt;/title&gt;탈북자들이 남한에 처음 와서 적응하는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바로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라 부르는 광주사태가 도대체 남한의 
		5.18인가 북한의 5.18인가 하는 문제이다. 2008년 11월 조갑제 기자가 &lt;&quot;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quot; 주장은 믿을 수 
		없다!&gt;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이 탈북자들에게는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5.18은 북한에서는 매년 성대한 광주인민봉기 기념 
		행사일이다. 5.18은 북한 주민에게 반미, 자주, 통일을 향한 광주인민봉기요, 그러기에 광주인민봉기는 이미 북한사의 일부로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이것은 단지 동일한 사건에 대한 관점의 차이만은 아니다. 북한에는 남한 사람들이 모르는 5.18 정보, 즉 
		북한이 5.18에 개입했었다는 명백한 증거들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라.&lt;br&gt;
		&lt;br&gt;
		&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image/nk/518ho.jpg&quot;&gt;&lt;br&gt;
		&lt;br&gt;
		조갑제 기자는 문제의 그의 글에서 광주사태 당시 &quot;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quot;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사실, 1996년 9월 18일 당시 국민회의의 정동영 대변인이 &quot;북한 무장간첩 침투는 용서할 수 없는 도발행위라고 규탄하고 
		잠수정이 민간인에게 먼저 발견된 사실은 막대한 방위비를 쓰는 군의 해상방위 감지능력에 구멍이 뚫린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quot;한 사실이 
		있다 (
		&lt;A href=&quot;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9_6172.html&quot; target=&quot;_blank&quot;&gt;
		&lt;br&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9_6172.html&lt;/a&gt;: 사실 
		광주사태야말로 대규모 무장간첩 침투 사건이었음을 감안할 때 정동영의 이 날의 주장은 광주사태에 대한 그의 평소의 주장과 엇갈림).
		&lt;br&gt;
		&lt;br&gt;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우리는 무장간첩 혹은 무장공비라고 부르고 탈북자들을 북한에서 쓰던 표현대로 북한군 특수부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 1996년 9월 18일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9.18 강릉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잠시 
		아래 두 장의 사진을 보자. &lt;br&gt;
		&lt;br&gt;
		&lt;img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gun/strange-gun.jpg&quot;&gt;&lt;br&gt;
		&lt;br&gt;
		광주시민군 배후에 북한군이 있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별도로 하더라도 남한 자료로도 그런 추정은 이미 충분히 가능하였다. 광주사태 
		당시 유언비어를 퍼뜨렸던 자들은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었다는 사실조차 몰라 공수부대 대장이라고 했었는데, 또 하나의 대장이 있었으니 
		시민군 대장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박남선 씨를 시민군 대장으로 임명하지 않고 어떤 배후 인물들이 지명했는데, 그 인물들은 박남선 
		자신도 누군지 모르는 인물들이었다. (시민군 대장은 전남대생이 아니었다. 막상 광주사태가 시작되자 전남대 운동권은 무기 탈취에 
		반대했으며, 무기를 회수하여 반납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광주에 침투해 있었던 북한군인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사실 전두환은 
		공수부대 대장도 아니었고, 공수부대 대장이라는 것도 없었다. 유언비어를 퍼뜨린 쪽에서 공수부대 대장 대 시민군 대장간의 싸움판을 
		만들어 놓았고, 많은 시민들이 그 유언비어 최면에 걸려있는 것이다.&lt;br&gt;
		&lt;br&gt;
		2007년의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가 그 유언비어의 연속판이었다. 여전히 청중에게 전두환이 공수부대 대장이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고, 중학교 중퇴자였던 시민군 대장을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으로 등장시켜 공수부대 대장 대 시민군 대장간의 싸움판으로 
		인식되게 최면을 걸었으며, 대다수 국민이 또 그 최면에 걸려들었다.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첫날 방송사들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과민하였다. 무장공비가 승용차를 탈취해 도주한 것으로 파악되니 시민들은 신고해 달라는 방송을 했던 것이다. 북한군이 
		남한 시민과 동일한 복장을 하고 활보할 때는 그 누구도 육안으로 누가 북한군인지 식별할 수 없다. 그러나 식별이 불가능하니 
		무장간첩은 없었다는 논리가 가능하겠는가?&lt;br&gt;
		&lt;br&gt;
		&lt;img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gun/machine-gun.jpg&quot;&gt;&lt;br&gt;
		&lt;br&gt;
		여기 어설프게 전경 복장을 한 시민군이 시민군 차량 위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았다. 여태까지는 이런 무장폭도들을 민주화운동가와 
		동일시하는 주장이 지배해 왔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북한군이 이런 복장으로 위장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자, 전경 복장을 하고 
		군사장비로 무장한 이 폭도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광주사태 때 북한군이 침투해 있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lt;br&gt;
		&lt;br&gt;
		북한이 광주사태에 개입했느냐 안했느냐의 문제는 사실 광주사태는 남한의 5.18이냐 북한의 5.18이냐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광주사태는 과연 언제 시작되었는가? 학생 운동권이 제작하여 1980년 5월 22일 대학가에 붙은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quot;박관현 사망설&quot;이 유포된 시점인 5월 18일을 광주사태의 시작으로 간주하였으며, 5.18이란 명칭은 이 유언비어에서 
		유래한다. &quot;박관현 사망설&quot; 유언비어란 5월 18일 박관현이 여수로 떠난 직후 김대중 조직이 &quot;광주경찰이 박관현을죽였다&quot;고 퍼뜨린 
		유언비어를 말한다. 이 유언비어가 퍼지자 경찷서들이 파괴되고 순경 45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광주경찰서로부터 치안유지 
		지원요청을 받은 광주향토사단이 7공수 2개 대대를 보내 시위 진압을 지원한 것이 광주사태 전개의 서막이었다. 김대중의 국민연합은 
		본래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일을 5월 22일로 잡았었음에도 김대중 내란과 5.18이 동의어가 된 까닭은 &quot;박관현 사망설&quot; 유언비어가 
		유포된 시점을 광주사태의 시작으로 &quot;광주사태 속보 대자보&quot;가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작은 수치스러운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서록 적국 관계인 남한과 북한 양국에서 5.18이 성스러운 날이 되었다. 탈북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양립이 불가능한 명제이다. 
		5.18은 도대체 남한의 5.18인가 북한의 5.18인가?&lt;br&gt;
		&lt;br&gt;
		금년 9월 하순에 발간된 탈북자들의 5.18 증언록 &quot;화려한 사기극의실체&quot; 증언 1은 광주시민군을 배후에서 조종한 북한군 지휘관 
		중에 534부대 타격대의 안창식 대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과연 조갑제 기자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어서 북한군 침투가 불가능했었는가? 안창식 대위의 내연의 처였던 탈북여성은 광주사태를 지휘한 아지트는 목포에 있었으며, 
		목포에 침투해 있었던 북한군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시민군을 조종했다고 증언한다: &lt;br&gt;
		&lt;br&gt;
		&lt;&lt;잠수함에서 하선하여 남쪽의 안내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남조선의 전라도지역인 목포라는 해안가 도시의 작은 상점가계 안방이었다 
		(76쪽), 그들이 당시 임무내용을 전달받으면서 한순간에 파악했던 것은 조만간 남조선에서 4.19인민봉기를 능가하는 전국적인 
		대규모의 인민항쟁이 무장폭동의 성격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자신들이 목포지역으로 급파된 것도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목포에서 만난 7명의 북한요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났던 대학생들의 반정부폭동을 배후조종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이었고 북한은 부산, 마산 폭동을 5.18광주사태와 마찬가지로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77쪽). 목포에 침투하였던 11명의 요원들이 사북탄광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일은 없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그곳에도 북한의 계획적인 지령을 받고 파견된 별도의 특수부대요원들이 잠입하여 사북사태가 강원도지역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배후를 은밀히 조종하였다고 증언하였다 (78쪽). 안창식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북한특수부대요원들과 부마사태에 
		참가했던 7명의 요원들이 합류된 18명의 소부대는 광주사태의 전 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목포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북한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광주작전과 관련된 필요한 지시들을 지령 받고 집행하였다 (81쪽). 안창식은 교전 중에 무릎 
		바로 아래에 관통상을 입고 광주폭동이 끝나기 2~3일 전쯤 목포의 아지트로 이동해서 치료를 받다가 1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해 
		7월 중순경에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고 북한에서 내려온 잠수함을 타고 철수하였다고 한다. (87쪽).&gt;&gt;&lt;br&gt;
		&lt;br&gt;
		만약 조갑제 기자 등이 주장하듯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면 북한군이 목포에 침투하여 있었다는 위의 증언은 부정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목포 주재 박홍서 조선일보 기자는 목포가 광주사태의 아지트였다는 탈북여성 증언과 상당히 일치하는 기사를 
		송고하였다.&lt;br&gt;
		&lt;br&gt;
		&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image/news/mokpo21-22.jpg&quot;&gt;&lt;br&gt;
		&lt;br&gt;
		목포가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기는커녕 경찰과 군인의 그림자도 안보였다. 목포사태가 아니었음에도 광주보다 더 난장판이었다. 22일 
		새벽 2시에 목포역 대합실 전부 파괴, 연동 파출소 모기관 목포지부 방화. 항동 파출소 무기고 태우고, 시내 파출소 전부 파괴. 
		해안경찰서, 세무서 등이 파괴되었다. 새벽 3시에는 무장복면부대 백 명이 아무데나 총 쏘며 다녔다. 기자조차 무장복면부대 백 명이 
		갑자기 어디서 출현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조갑제 가지 등이 &quot;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어&quot; 있었다고 주장하는 상황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lt;br&gt;
		&lt;br&gt;
		1996년 9월 18일 목포처럼 항만 도시였던 강릉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도한 아래 뉴스 동영상과 비교해 보라. 그때는 북한잠수함이 
		암초에 걸려 있어고, 택시 운전사의 신고가 있어 군의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음에도 언론과 여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안보에 구멍이 
		뚤려 있음을 질타하지 않았는가!&lt;br&gt;
		&lt;br&gt;
		&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Wm74GGi1nhE&amp;hl=en&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
		&lt;br&gt;
		&lt;&lt;오늘 새벽 1시 35분 택시기사 이진규氏의 신고를 받은 강릉시 강동파출소 경찰관은 이氏와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인근 軍초소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軍초소에서는 관할구역이 아니라며 신고접수를 거부했습니다.&lt;br&gt;
		&lt;br&gt;
		● 이진규氏(최초 신고자): 순경이 軍초소에다가 전화를 하니까 여기 관할이 아니고 이 관할은 저기 경포 관할이라 이러면서...&lt;br&gt;
		&lt;br&gt;
		● 기자: 할수없이 파출소 경찰관은 신고자 이진규氏를 데리고 바로 이곳 軍초소로 달려왔습니다.&lt;br&gt;
		&lt;br&gt;
		이때 軍초소 병력은 취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관과 이氏는 10분 이상 군장을 갖추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gt;&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4_6172.html 
		)&lt;br&gt;
		&lt;br&gt;
		&lt;&lt;● 앵커: 식량사정이 극도로 나빠지는 등 체제붕괴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으킨 이번 북한의 도발은 북한 스스로가 긴장을 자초했다고 
		하는 점에서 바로 그 점이 나름대로 노렸던 목적이 아니었던가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gt;&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5_6172.html 
		)&lt;br&gt;
		&lt;br&gt;
		&lt;&lt;● 기자: 북한 남포에서 합영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대우그룹 북한관계 사무실에서는 오늘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북한에 
		파견돼 있는 직원들의 신변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gt;&gt;(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6_6172.html)
		&lt;br&gt;
		&lt;br&gt;
		&lt;&lt;● 앵커: 정부는 오늘 오후 권오기 통일 부총리 주재로 통일 안보정책조정회의를 갖고 북한 무장간첩의 침투가 국내의 정국 혼란을 
		유도하기위한 것으로 보고, 도주한 간첩을 철저히 색출할 것과 이 같은 침투기도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기로 했습니다.&gt;&gt;&lt;br&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7_6172.html )&lt;br&gt;
		&lt;br&gt;
		&lt;&lt;● 기자: 의원들은 또 대간첩 작전이 주임무인 해안부대가 초기에 잠수함 식별을 하지 못해 그만큼 대처가 늦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유기적인작전 지휘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gt;&gt;&lt;br&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8_6172.html )&lt;br&gt;
		&lt;br&gt;
		&lt;&lt;● 앵커: 신한국당의 김 철 대변인은 오늘 성명을 통해 무장간첩이 침투하고 친북한 조직이 활보하는 안보상황에서 정치권의 각성이 
		절실히 요구되며 일부 정치세력의 환상적인 오판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lt;br&gt;
		&lt;br&gt;
		국민회의의 정동영 대변인은 북한 무장간첩 침투는 용서할 수 없는 도발행위라고 규탄하고 잠수정이 민간인에게 먼저 발견된 사실은막대한 
		방위비를 쓰는 군의 해상방위 감지능력에 구멍이 뚫린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습니다.&lt;br&gt;
		&lt;br&gt;
		자민련의 안택수 대변인은 무장간첩 침투는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야욕이 변함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며, 평소 안보태세를 소홀히 
		한정부의 안이한 대북자세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gt;&gt;(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9_6172.html 
		)&lt;br&gt;
		&lt;br&gt;
		&lt;&lt;● 앵커: 로이터와 AP통신 그리고 CNN과 NHK 방송 등 세계주요 언론사들은 오늘 잠수함을 이용해서 우리나라 강릉 앞바다로 
		침투한 북한의 무장간첩단 도발사건을 신속히 보도했습니다.&gt;&gt;&lt;br&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100_6172.html )&lt;br&gt;
		&lt;br&gt;
		&lt;&lt;● 김상균(통일외교부장): 지난 68년 이른바 청와대를 부수기 위해 남파됐다는 김신조 일당은 당시 우연히 마주쳤던 2명의 
		나무꾼 신고로 대부분 사살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근 30여년이 지난 오늘 다시 잠수함을 타고 남파됐던 북한 무장간첩들의 
		비극적인 상황 이면에는 역시 한 택시기사의 재빠른 신고와 군경 합동작전요원들의 노고가 함께 어우려져 있습니다.&gt;&gt;&lt;br&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101_6172.html )&lt;br&gt;
		&lt;br&gt;
		그런데, 광주사태 당시에는 세계주요 언론사들이 광주사태 뉴스를 더욱 긴박하게 보도했었다. 그러면 미국 3대 방송사 ABC, 
		CBS, NBC의 방송을 다시 시청해 보자. &lt;br&gt;
		&lt;br&gt;
		&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PWOYtgifxQs$&quot; bgcolor=&quot;#000000&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99&quot;&gt;&lt;br&gt;
		&lt;br&gt;
		동영상 시작후 3분 3초부터 3분 10초에서 NBC 기자는 시민군 총기에 의한 총상으로 죽임을 당한 시민 사망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못박아 말한다. 그리고 이 동영상 끝무렵에서 원래 시위를 주도하였던 운동권 학생들은 총기 무장을 거부하였고,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과격파가 등장해 무장봉기를 주도하였다는 멘트가 나온다. 이 두가지 멘트 모두 광주에 침투해 있었던 북한군 증언과 일치한다.&lt;br&gt;
		&lt;br&gt;
		&lt;br&gt;
		&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
		&lt;img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quot;0&quot;&gt;&lt;br&gt;
		&lt;br&gt;
		☞ &lt;/a&gt;
		&lt;a target=&quot;_blank&quot;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htm&quot;&gt;
		탈북자 5.18 증언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증거들(1)&lt;/a&gt;&lt;br&gt;
		&lt;br&gt;
		&lt;a target=&quot;_blank&quot;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quot;&gt;
		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lt;/a&gt;&lt;br&gt;
		&lt;br&gt;
		&lt;a target=&quot;_blank&quot;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mokpo.htm&quot;&gt;
		북한군 일부 목포 경유 광주 침투&lt;/a&gt;&lt;br&gt;
		&lt;br&gt;
		&lt;a target=&quot;_blank&quot;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02.htm&quot;&gt;
		광주사태는 남한의 5.18인가 북한의 5.18인가?&lt;/a&gt;&lt;br&gt;
		&lt;br&gt;
		&lt;a target=&quot;_blank&quot;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books.htm&quot;&gt;
		탈북자 5.18 증언록 구입 안내 및 관련 도서&lt;/a&gt;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전두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두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화려한 휴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화려한 휴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무장간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무장간첩&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영어 뉴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영어 뉴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무장공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무장공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증언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증언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인민봉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인민봉기&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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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탈북자 5.18 증언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증거들(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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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10-27T17:40:36Z</updated>
	    <published>2009-10-27T17:40: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2008년 11월 조갑제 기자는 &quot;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quot; 주장은 믿을 수 없다!&quot;는 제목의 글을 썼던바, 이 글 제목은 증언과 주장의 혼동을 
전제하는 것이었기에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만 명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라고 부르는 광주사태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인민봉기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북한에서 보고 들은 북한인민봉기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증언은 주장이 아니다. 
만약 북한에서도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른다면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혼란을 느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동일한 5.18사건에 대하여 남한과 
북한이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차차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lt;br&gt;&lt;br&gt;김대중, 노무현 좌파정권 시절 탈북자들이 자유롭게 
광주사태에 대한 증언을 하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정권교체후 광주사태의 진실규명이 학수고대되던 때에 문제의 글은 탈북자들은 입을 닫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받아들인 탈북자들이 있다. 조갑제 기자 역시 그 진심은 선의의 의도였겠으나, 탈북자들의 발언권 또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일 것이다. 탈북자들이 근래에 광주사태에 대하여 입을 열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당시 서울에서 
학생이었던 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서울의 학생들이 광주사태의 한 당사자였던 것처럼 당시 북한군 역시 광주사태의 한 
당사자였다.&lt;br&gt;&lt;br&gt;금년 9월 하순에 발간된 탈북자들의 5.18 증언록 &quot;화려한 사기극의실체&quot;에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조갑제 기자의 주장 중 
어느 편이 옳으냐를 가름할 몇가지 핵심 내용들이 있는데, 그 중에 네가지를 꼽는다면 (1) 남한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킬 게릴라 작전을 위한 북한군 
특수부대 중 상당수는 10.26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인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 남파되었으며, (2) 광주인민봉기가 전국 규모의 
무장봉기로 확대될 때 남침하려 했으며, (3) 그들은 잠수함을 이용하여 침투하였으며, (4) 광주에서 북한군 정체를 알아보는 자들은 모두 
죽였으며, 그래도 부상 등으로 북한군 정체가 노출될 위협이 있을 때는 자폭하였다는 것이다.&lt;br&gt;&lt;br&gt;위의 핵심증언 (1)과 (2)는 광주사태 
당사자들의 범주는 시민군으로 제한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당시 서울에서 학생이었던 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광주사태에는 조갑제 기자가 보지 못한 큰 
그림이 있다. 조기자에게 당시 서울 대학가에도 민중봉기를 선동할 목적으로 붙었던 대자보들에서 흐르는 논리를 눈여겨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광주사태를 야기한 배후 세력의 본래의 목적(큰 그림)은 전국적 민중봉기였다는 점에서 서울의 운동권도 한 당사자였으며, 남한의 
무장봉기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즉시 남침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북한군도 한 당사자였다. &lt;br&gt;&lt;br&gt;당시 전국 대학가에 붙었던 
대자보들의 첫번째 객관적 사실은 학생이 아니라 배후 세력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것이요, 둘째로 전국적으로 민중봉기를 일으키라는 논리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민무장봉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 했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은 남한 자료들로도 충분히 입증되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amp;nbsp;아래 5월 20일자의 대자보를 살펴보자.&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daejabo/5-20.jpg&quot;&gt;&lt;br&gt;&lt;br&gt;거듭 못박아 말하자면 
&quot;학생 혁명군,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 &lt;행동강령&gt;무기를 제작하라!...전시민 관공서를 붙태우라...특공대를 조직 군무기를 
탈취하라!&quot; 등의 살벌한 문장들로 가득한 이 대자보는 전남대생들이 제작한 것이 아니다. 전남대에는 학생 혁명군도 없었으며, 전남대생들이 20일 
혹은 그 이전에 상무대에서 무기를 탈취한 적도 없다. 시민군은 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군이 나누어주는 총을 받았지만 시민군들조차도 5월 20일 
상무대 무기 탈취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실제로 무기 탈취 작전을 주도한 북한군만이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당시 거의 모든 대자보들은 
학생들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배후 세력이 제작한 것들이었는데, 위의 대자보의 경우 김대중 세력이 제작한 것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십중 
팔구 간첩으로 남파된 북한군이 작성한 대자보였다.&lt;br&gt;&lt;br&gt;그러면 위의 대자보를 김대중의 전국연합 사무국장 윤상원이 발행한 아래의 5월 
22일자 대자보와 비교해 보라.&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5_22dajabo.jpg&quot;&gt;&lt;br&gt;&lt;br&gt;투사회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22일자의 
이 대자보는 &quot;광주시민의 민주. 봉기의 함성은 전국으로 메아리쳐 각지에서 민주의 성전에 동참해 오고 있다. 21일에는 장성에서 화순에서 나주에서 
다수의 차량과 무기가 반입되었다. 전주에서는 도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quot; 등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자, 투사회보라는 제목이 어디서 왔겠는가? 
그리고, 위 대자보는 전국 규모의 시민군 군사작전 계획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조갑제 기자는 당시 광주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어떻게 기자들도 모르는 정보들을 시민군 지휘부는 알고 있었을까? 더구나 승리를 장담한다. 광주사태가 전국적 무장봉기로 확산만 된다면 승리한다는 
것이다. &lt;br&gt;&lt;br&gt;당시 전국적 민중봉기를 선동했던 모든 대자보들은 큰 변란이 있을 것을 예고했다. 위의 대자보에서도 &quot;이제 승리의 날이 
머지 않았다&quot;는 장담은 광주시민군이 60만 국군을 이길 수 있다는 농담이 아니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기에 광주사태 문제는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5월 27일 새벽의 도청진압작전 때도 윤상원이 자폭을 선택하였기에 광주 시민들이 죽었다. 아직 무기를 반납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가 선제 발포하였기에 국군 자위권이 발동된 것이었다. 시민군 선제 발포로 인한 교전에서 군인과 시민군 십 수명이 사망하였는데, 그 
사건과 전혀 무관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살인마 누명을 씌우기에 앞서 윤상원이 왜 자폭을 선택하였는지를 물어야 한다.&lt;br&gt;&lt;br&gt;금년 
9월 하순에 출간된 탈북자들의 5.18증언록은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라고 부르는 광주사태의 큰 그림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남한 논객들이 모르고 
있던 구체적 사실들을 기술한다. 그 중 하나가 잠수함을 이용한 침투 방법이다.&lt;br&gt;&lt;br&gt;&lt;&lt;조 편성 발표가 끝나고 사복차림의 
지휘관은 타격대장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조는 즉시 잠수함에 승선할 것을 지시했고...평상시 적진에 대한 침투훈련을 할 때마다 잠수함을 이용한 
작전훈련을 많이 했던 차라 그들은 일상적인 훈련의 반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태운 잠수함은 바다 밑으로 깊숙이 잠수하여 마양도 해군기지를 
출발하였다. 잠수함의 항해 방향과 도착지가 어딘지, 목적지에 도착해서 훈련내용은 어떤 것인지 그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잠수함을 타고 
바다 밑으로 들어 온지 3일째 되던 날 안내요원이 나타나서 지금 잠수함의 위치가 남조선 전라도 쪽의 해상이라고 전달해 주었다 (74~75쪽). 
안창식은 교전 중에 무릎 바로 아래에 관통상을 입고 광주폭동이 끝나기 2~3일 전쯤 목포의 아지트로 이동해서 치료를 받다가 1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해 7월 중순경에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고 북한에서 내려온 잠수함을 타고 철수하였다고 한다 (88쪽). 그들 조는 1980년 3월 
말경에 남조선으로 침투할 데에 대한 임무를 받고 한 달 정도의 가상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다음 1980년 4월 말경에 출발하여 남포항에서 
구소련에서 들여온 디젤잠수함에 승선하였고 서울에서 가까운 서해안(어느 지역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음)에 상륙하여 서울시내로 침투하였다 
(316쪽).&gt;&gt; &lt;br&gt;&lt;br&gt;근 일년 전의 문제의 글에서 조갑제 기자가 제시한 또 하나의 쟁점은 북한군 목격자가 없었다는 것이요, 
탈북자들의 증언은 누구든 북한군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눈치챈 자는 가차없이 죽였으며, 북한군이 교전 중 입은 부상으로 광주를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경우 자폭시켜 북한군 개입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lt;br&gt;&lt;br&gt;&lt;&lt;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76쪽). 소부대작전에서 특이한 것은 죽은 시체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는 엄격한 원칙이고 어느 조와 개인을 떠나서 각기 자기 분야에 특수하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 하고 작전내용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고 성질이라는 것이었다 (82쪽). 
&lt;br&gt;&lt;br&gt;그들이 남조선침투 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훈련은 정신적인 훈련, 다시 말하면 자폭훈련이었다고 한다. 부득이한 경우로 
적들에게 잡힐 상황이 조성되었거나 잡히면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고 무조건 자폭해서 시체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사항이었다고 하였다 
(317쪽). 그는 아마도 자기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까지는 상대가 몰랐다고 해도 머리를 기른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시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여서 공수부대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중상자가 생겨나자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조장이 대원들에게 수류탄을 모두 꺼내서 부상당한 사람의 몸에 전부 매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조원들은 조장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결심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각자가 휴대하고 있던 수류탄을 목숨 시퍼렇게 붙어있는 전우의 몸에 매달아 
놓고 현장을 탈출하였다고 하였다 (321쪽). &lt;br&gt;&lt;br&gt;밥을 먹던 일행 중의 한사람이 광주인민봉기에 갔다가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묻자 그 친구는 자기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공화국영웅이 말하는데 의하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시체로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전투현장에서 죽은 즉시로 남조선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처리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380쪽). 누구는 죽고 누구는 북한으로 돌아와서 
영웅칭호를 받았다는 상세한 내용들과 어떤 사람은 중상을 당해서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정체가 노출될 것을 염려한 동지들이 그를 사살하고 
시체를 불태워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 등 광주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터져 나왔다 
(418-419쪽).&gt;&gt;&lt;br&gt;&lt;br&gt;과연 잠수함으로 침투한 북한군이 있었으며, 침투한 북한군 중 일부가 자폭한 사실이 있었는가? 
만약 &quot;북한특수부대의 광주개입&quot; 주장은 믿을 수 없다!&quot;는 제목의 지난 해 11월의 조갑제 기자의 글의 관점만을 전제로 한다면 이 증언은 허황된 
이야기로 부정된다. 그러나, 역으로 &quot;북한군이 잠수함으로 침투한 사실이 없으며, 그 어느 북한군도 남한에서 자폭하지 않았음&quot;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1996년 9월에도 실제로 북한군이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자폭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래의 두 뉴스 동영상은 
1996년 9월 18일 MBC가 방송했던 영상 뉴스이다. &lt;br&gt;&lt;br&gt;&lt;/p&gt;&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KrymWdQ6tHI&amp;hl=en&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lt;&lt;오늘새벽 
1시를 전후해 이곳 해안으로 침투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명 가운데 11명은오후 2시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5km정도 떨어진 강릉시 강동면 
청학산 정상부근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잔당 가운데 한명인 31살이 강수는 인근 지역에서 생포되고 8명이 현재 계속 
군경의 추적을 받고 있습니다. 숨진 채 발견된 11명은 침투조가 아닌 승무원으로 추정되며, 비무장의 광부복장으로 머리에 총살을 입고 있어서 
자살했거나 도주한 잔당들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체발견에 앞서 오전 10시 20분쯤 청학산 부근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려 교전으로 
한때 오인이 됐지만 이때 11명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gt;&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85_6172.html)&lt;br&gt;&lt;br&gt;&lt;&lt;처음엔 
무장간첩과 군경의 교전소리로 알려졌던 이 총성은 간첩들이 자살하면서 낸 소리로 밝혀졌습니다.&lt;br&gt;&lt;br&gt;● 현장목격 장병: 오전 중에 총성을 
들었고 저희들은 교전중인 걸로 알았는데 교전중이 아니라 자살한 것이라는 것을 올라와서 확인했습니다.&lt;br&gt;&lt;br&gt;● 기자: 현장에는 수류탄 
2발과 권총 1자루가 발견 되었습니다.&lt;br&gt;&lt;br&gt;군경은 이들 무장간첩이 궁지에 몰리자 수류탄 자폭과 권총 자살 중 하나를 택할 것을 강요당한 
것으로 보고 계속 현장 주변을 위주로 매복과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gt;&gt;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86_6172.html)&lt;br&gt;&lt;br&gt;● 앵커: 이번 
동해안 침투 간첩단 가운데 유일하게 생포된 31살 이강수는 잠수함 승무원이었으며 침투 간첩은 모두 20여명이라고 밝혔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87_6172.html)&lt;br&gt;&lt;br&gt;당초 주민들이 
신고한 지점들이 말해주듯이 침투한 간첩들은 최초 강동면 임곡 2리를 가운데 두고 양쪽 산등성이를 따라 자살한 잠수정 승무원들과 아직 검거되지 
않은 일당, 즉 공작원들 2패로 나뉘어 태백준령으로 도주했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88_6172.html) &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gsOpgw-MFnY&amp;hl=en&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 신상길 준장(합참 
작전차장): 금일 17시경에 육군 68사단 173연대 수색병에 의해 최초 침투지점으로부터 서남방 5km 떨어진 청학산 부근에서 북괴 무장간첩 
11명이 자폭한 것을 발견하였으며 또한 1명을 생포, 조사 중이며 우리 軍은 나머지 잔당을 계속 추적 중에 있습니다.&lt;br&gt;&lt;br&gt;● 기자: 또 
생포된 간첩의 신원은 최종적으로 인민 무력부 정찰부 소속 이강수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89_6172.html)&lt;br&gt;&lt;br&gt;● 앵커: 북한 
잠수함이 발견되고 나서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반이었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0_6172.html)&lt;br&gt;&lt;br&gt;● 기자: 오늘 
발견된 잠수함은 북한이 지난 86년 기존의 상어급소형 잠수함을 변경해 자체 개발한 것입니다.&lt;br&gt;&lt;br&gt;비정규전이나 특수 공작용으로 만들어진 
이 잠수함은 길이가 34m, 폭이 3.8 m이고 물위에서는 7노트, 수중에서 12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lt;br&gt;&lt;br&gt;특히 물위에서보다 
물속에서 속도가 훨씬 빨라 침투에 용이하다는 것이 이 잠수함의 큰 특징입니다.&lt;br&gt;&lt;br&gt;군사 전문가들은 이 잠수함이 원산에서 발진할 경우 
강릉까지는 4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1_6172.html)&lt;br&gt;&lt;br&gt;부산 청사포항 
무장간첩선 격침사건 등 7∼80년대에도 무장 공작원의 도발은 계속 이어졌습니다.&lt;br&gt;&lt;br&gt;70년 이래 모두 3백여 건의 대남 침투 사례가 
있었습니다.&lt;br&gt;&lt;br&gt;한해에 10여건 꼴입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3_6172.html)&lt;br&gt;&lt;br&gt;● 기자: 새벽 
1시 35분 5km가량을 급히 달려 이진규氏는 강동파출소에 도착했고 잠수함의 위치를 경찰에 알렸습니다.&lt;br&gt;&lt;br&gt;● 이진규氏(최초 신고자): 
신고를 해야 되겠다고 돌고래 같은 물체가 있는걸 보니제가 잠수함은 보지도 못했는데 잠수함이라는 것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06093_6172.html)&lt;br&gt;&lt;br&gt;자, 위의 
보도대로 1980년대에도 일년에 10 여건 북한군 침투 사실일진대, 광주사태 때만 침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위의 
뉴스는 무장간첩단의 침투 저지를 위해 해안경찰서가 얼마나 큰 기여를 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김영택 기자가 광주에서 
본 복면부대가 출현하기 전에 먼저 목포에 출현하여 해안경찰서를 파괴한 사건을 광주의 조갑제 기자가 목격할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image/news/5-22mokpo.jpg&quot;&gt;&lt;br&gt;&lt;br&gt;그 
사건을 목포 주재 박홍서 조선일보 기자가 목격하였으며, 바로 위의 문건은 당시 박 기자가 본사에 송고한 취재일지이다. 단 한명의 경관도 군인도 
없었던 목포에 백 명 정도의 복면부대가 출현하여 해안경찰서를 파괴할 필요가 무엇이었겠는가? 이처럼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광주사태의 큰 그림에는 
잠수함을 이용하여 목포로 침투한 사건도 포함되어 있으며, 조갑제 기자가 그가 목격하지 못한 사건은 없었던 사건이라고 단정지을 때 반론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lt;br&gt;&lt;br&gt;위의 뉴스동영상은 단 몇시간의 사건 진행과정만을 보여주나 51일간의 대간첩작전 전모는 &lt;A href=&quot;http://cafe.daum.net/issue21/5304/110&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http://cafe.daum.net/issue21/5304/110&lt;/a&gt; 
에서 영화로 볼 수 있으며, 아래의 동영상은 위 뉴스 영상물의 북한군 11명 자폭 장면을 후에 보완된 사실을 근거로 영화로 재연한 장면이다. 
&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0eGZmeOSlUc$&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bgcolor=&quot;#000000&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99&quot;&gt;&lt;br&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img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lt;/a&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mokpo.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일부 목포 
경유 광주 침투&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document/5-16.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5월 16일)&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evidenc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탈북자 5.18 
증언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증거들(1)&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books.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탈북자 5.18 
증언록 구입 안내 및 관련 도서&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노무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무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시민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시민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무장공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무장공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와 북한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와 북한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인민봉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인민봉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무장봉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무장봉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북한군 잠수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잠수함&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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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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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10-25T09:34:10Z</updated>
	    <published>2009-10-25T09:34: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daejabo/5-20.jpg&quot;&gt;&lt;br&gt;&lt;br&gt;&quot;학생 
혁명군,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 &lt;행동강령&gt;무기를 제작하라!...전시민 관공서를 붙태우라...특공대를 조직 군무기를 
탈취하라!&quot; 등의 살벌한 문장들로 가득한 5월 20일자의 대자보는 북한군 534부대가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분명한 사실은 전남대에는 학생 
혁명군이라는 것도 학생혁명위원회라는 것도 없었다. &quot;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quot;라는 제목의 위의 대자보와 삐라는 불순세력이 제작한 것이었다. 
광주사태에 불순세력의 개입이 있었다. 그러면 그 불순세력의 정체는 무엇이었는가?&lt;br&gt;&lt;br&gt;1980년 5월 18일 시작된 광주사태는 김대중의 
전국연합 조직이 야기하였으나. 5월 19일부터 무기를 탈취하여 5월 21일 노골화된 무장폭동에 북한군이 개입되어 있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보았던 광주사태의 발단은 1979년 10.26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의 북한의 남침 계획이었다. 무엇이 광주사태였는지 광주사태(광주인민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1979년 11월 중순부터 반년간 했었던 한 특수부대 지휘관의 고백을 통해 들어보자.&lt;br&gt;&lt;br&gt;광주사태 때 여러 조의 
특수부대들이 광주에 투입되어 있었는데, 그 중 534부대가 주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증언의 신빙성을 위해 남한의 독자들은 과연 534부대가 
있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이 부대 타격대장 안창식 대위와 내연 관계였던 탈북 여성은 이 부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lt;br&gt;&lt;br&gt;&lt;&lt;일체 외부와는 접촉할 수 없는 무인도에서 11년 동안의 훈련을 마치고 1977년 여름에 새롭게 배치되어간 
부대는 함경남도 덕성군의 아찔한 골짜기에 주둔해 있는 534라고 하는 특수부대였다. 대위의 군사칭호를 달고 타격대장으로 임명되어간 그는 날아가는 
까마귀도 단도 한번 날려서 떨어뜨린다는 유명한(후에 소문났지만) 부대&gt;&gt;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73쪽)&lt;br&gt;&lt;br&gt;광주사태 때 
투입되었던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에게는 이토록 뛰어난 투검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처음 듣는 정보이다. 그런데 1996년 5.18재판이 막 
마무리되었을 무렵이었던 1996년 9월에도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체포된 북한군 역시 타격대 소속이었다. 아래 동영상 
5:25~5:36에서 우리는 이미 그해 1996년 9월에 비슷한 증언이 있었음 확인한다: &quot;10미터 앞에 있는 표적은 백발 백중 제압할 수 있는 
투검 능력이 있고.&quot; &lt;br&gt;&lt;br&gt;&lt;/p&gt;&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hbGzn7Fr5d4&amp;hl=en&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자신의 실명을 밝히는 전 
북한군 하사관 빅행운은 534부대와 신천복수여단 등이 광주에 침투하였었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quot;광주사건에 참가하였던 534부대와 신천복수여단 등 
부대들은 그때 당시에 북한군 특수부대들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고 능력이 신비할 정도로 인정받는 최정예 게릴라 부대이기도 하였다&quot; (210쪽). 
전 북한농촌관리위원회 부위원장도 534부대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quot;동생의 말에 의하면 1970년대 중반에 김정일이 북한 평강도 지구에 
비밀리에 조직되어 있는 534특수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quot; (401쪽). 이처럼 여러 탈북자들이 534부대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은 실제로 그런 
특수부대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준다.&lt;br&gt;&lt;br&gt;534부대 타격대장 안창식 대위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낳은 탈북 여성은 전민봉기 노림수로서 
광주인민봉기(광주사태) 준비 작업으로서 534부대 2개 조가 1979년 11월 중순에 잠수함을 타고 목포에 침투하였다고 증언한다. 이것은 대다수 
남한 독자들에게는 기상 천외한 증언이나, 놀랍게도 당시 조선일보 기사인 &quot;남민전 , 적화되면 게양할『기』까지 제작&quot;이란 제목하의 11월 14일자 
기사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북괴 및 재일조총련의 지령을 받는 남민전이 사회주의혁명을 일으킨 후 중앙청에 게양할 기까지 제작해 놓았다가 
26명이 추가검거되었다. 그러나 잔존세력이 있었으며, 이듬해 2.29복권조치로 사면된 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들이 광주사태 배후 세력이자 
지휘부였던 것이다.&lt;br&gt;&lt;br&gt;이 탈북여성은 안창식 대위의 고백을 계속해서 이렇게 전한다:&lt;br&gt;&lt;br&gt;&lt;&lt;여기서 놀랄만한 것은 
목포를 중심으로 광주폭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5개월 여 동안 목포,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숨은 지하조직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침투 조 인원들이 직접 목격한 일이지만 그들의 조직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질적으로 째어있는 북한의 당 
조직과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인 조직구성과 집단화된 규율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적인 무장상태나 각오정도에서도 북한의 
조선노동당원들의 수준 이상이었다고 한다.&gt;&gt; (79쪽)&lt;br&gt;&lt;br&gt;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시대 상황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김대중이 
정당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김대중에게는 정당이 없었고 남민전 관련자들 등 운동권이 그의 지지기반이었다. 그리고 5.17비상계엄 
전국확대 이전에는 지하조직들이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북한의 자료는 10.26 대통령 시해사건을 민중봉기로 남한 정부를 전복시킬 기회로 삼으려 
했음을 밝힌다. 남한의 자료들 역시 똑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김대중이 그 배후였던 당시 운동권의 모든 대자보들은 10.26사건을 그들이 
유신잔당으로 규정한 최규하 대통령 정부 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선동하였던 것이다.&lt;br&gt;&lt;br&gt;안창식 대위가 고백하는 광주사태의 팩트 중의 
하나가 자폭서약 및 자폭이다. 2차 대전 당시 가미가제 특공대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가미가제 특공대는 자폭서약을 한 일본군 공군을 일컫는다. 
우리는 북한군이 남한에 침투하기 이전에 자폭서약을 한다는 것을 몰랐었다. 그러나, 위 동영상이 보여주듯 1996년 5.18재판이 마무리될 
무렵에도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며, 탈북자들이 증언하듯 이것이 광주사태의 한 팩트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군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맨위의 5월 20일자 선동대자보에서 말하는 특공대 의미가 파악될 것이다. &quot;특공대를 조직 군무기를 탈취하라! 아! 형제여! 싸우다 죽자!&quot; 
죽으라고 선동한다. 자폭 정신이 저 대자보에 흐른다. 누가 선동했겠는가? 김대중 그룹이 그렇게 선동했겠는가? 전남대생들이 그렇게 선동했겠는가? 
북한군은 자폭서약을 한 후 광주에 침투하였으며, 실제로 자폭한 사건들이 있었다. 물론 당시 여러 대자보들은 김대중 그룹이 제작한 것이었으나, 저 
특정 대자보는 그 문구들이 북한군의 자폭서약 및 실천을 연상시킨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police-dress.jpg&quot; width=&quot;442&quot; height=&quot;401&quot;&gt;&lt;br&gt;&lt;br&gt;위 사진에서 총을 든채 지프에 올라앉아있는 두 복면 시민군의 손을 눈여겨 보라. 어디 저 손이 전남대 선비의 
손인가? 저 손은 여러 해 특수훈련 받은 자의 손이다. 저 자세를 보라. 군기가 들어있는 저 자세가 어디 광주시민의 자세일 수 있겠는가? 주변의 
광주시민들이 저 두 무장시민군을 바라보면서 &quot;민주화운동가들이다&quot;라고 말했던가? 아니다. 저 험악한 모습을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었던지 한 
시민은 손으로 눈을 가렸으며, 한 시민은 고개를 찌프리며 얼굴을 돌렸다. 그 어느 표정에도 이들을 민주화운동가로 바라보는 표정은 없다. 그리고 
저 광주시민들에게 이 무장시민군의 복장을 입혀보라. 절대로 이런 일당 백의 투사의 모습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복면 시민군은 북한군이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맞다는 심증이 가는 것이다.&lt;br&gt;&lt;br&gt;조총련이 데리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힌츠페터는 5월 20일 저녁에 광주에 들어와 만 
하루도 채 못된 21일 오후 광주를 떠났는데, 5월 20일 광주로 들어오면서 그는 (광주 외곽에서 무기를 탈취한) 시민군이 군용트럭을 타고 
광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며, 5월 21일 광주를 떠나는 날 무장시민군이 도청을 공격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의 급박한 상황을 조선일보 서청원 
기자는 아래와 같이 송고하였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image/news/5-21cityhall.jpg&quot;&gt;&lt;br&gt;&lt;br&gt;5월 
21일 오전에 공수부대 병력이 전남도청 앞에 배치되었던 이유는 그날 무장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광주경찰서와 광주시청이 
도청 기밀서류를 안전한 곳에 올릴 때까지 지켜달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이었다. 광주시민들은 도청을 공격하거나 함락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어느 세력이 도청 함락 전략을 세우고 주도하였는가가 의문이다. 아래 힌츠페터의 영상물에서도 관찰되듯이 무장시민군의 도청 함락작전은 하나의 완벽한 
군사작전이었다. &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hE_PSDfzZFw$&quot; bgcolor=&quot;#000000&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99&quot;&gt;&lt;br&gt;&lt;br&gt;위 영상물 2:26에서 
&quot;싸우다 모두 죽자&quot;는 멘트가 들린다. 작전 목적은 도청 함락이면서 그 선동 구호는 &quot;싸우다 모두 죽자&quot;였다. 모두 죽자는 말은 모두 자폭하자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더러 죽으리고 하는 것인가? 전남대생들이 부모뻘 시민들에게 가미가제 특공대가 되라고 한 것인가? 아니었다. 바로 전날 
구호가 전 맨위 대자보에서 보인다. 그 제목은 &quot;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quot;요, 그 함성은 &quot;싸우다 죽자&quot;였다. 그렇다면 광주시민들이 &quot;싸우다 모두 
죽자&quot;고 외쳤던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폭정신무장은 본래 북한군 특수부대의 정신무장이었다. 요컨대, 5월 21일 오전 도청 함락을 
목적으로 집결한 무장시민군 사이에 외쳐진 &quot;싸우다 모두 죽자&quot;는 구호는 북한군이 선창한 구호였던 것이다. &quot;싸우다 모두 죽자&quot;는 정신이 바로 저 
위 동영상에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말하는 &quot;총폭탄 정신&quot;이다.&lt;br&gt;&lt;br&gt;&quot;싸우다 모두 죽자&quot;는 정신으로 무장된 군대는 최강의 군대이다. 
깡패가 무서운 이유는 자기 몸 다치는 것을 겁내지 않고 달겨들기 때문이다. 같은 군인들이라도 행정병보다는 보병이, 보병보다는 공수부대가 그런 
패기가 강하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군인들이라도 &quot;싸우다 모두 죽자&quot;고 외치지는 않는다. 서청원 기자가 송고한 위의 기사가 보여주듯 시민군 
버스에 순경 4명이 깔려죽은 것을 본 공수부대원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lt;br&gt;&lt;br&gt;남한에서도 군대갔다온 이들은 6주간의 훈련, 몇달간의 
신병 생활, 한주간의 유격훈련 등 군복무 중 있었던 특별한 경험들을 수십 년이 지나서도 이야기한다. 안창식 대위는 광주인민봉기(북한에서 
광주사태를 지칭하는 용어)를 일으키기 위해 남한에 8개월간 머물러 있었다. 사회주의혁명을 일으키려 했던 남한 내 좌익세력과 더불어 6개월간 
준비했으며, 광주인민봉기가 끝난진 51일후 북상 복귀하였다. 그는 광주에서 자기가 일으킨 교전중 무릎 아래 관통상을 입고 북한에 복귀한지 여러해 
후 그 다리를 절단해야 했는데, 연인에게 다리를 절단한 사연을 이야기하느라 광주인민봉기와 얽힌 8개월간의 이야기들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가 
고백한 광주사태의 사실 중에 자폭서약의 사실이 있다.&lt;br&gt;&lt;br&gt;&quot;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quot; (76쪽). 
&quot;소부대작전에서 특이한 것은 죽은 시체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는 엄격한 원칙이고 어느 조와 개인을 떠나서 각기 자기 분야에 특수하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 하고 작전내용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고 성질이라는 것이었다&quot; (82쪽) [82쪽 주: 북한군이 
광주에서 벌인 작전은 게릴라 작전이었는데, 이것을 소부대작전이라 칭한듯 하다]&lt;br&gt;&lt;br&gt;전 보위부 반탐부장은 1980년 4월 김대중이 
서울에서 지휘하던 민중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했던 조가 자폭훈련을 받았음을 증언한다. &quot;그들이 남조선침투 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훈련은 정신적인 훈련, 다시 말하면 자폭훈련이었다고 한다. 부득이한 경우로 적들에게 잡힐 상황이 조성되었거나 잡히면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고 무조건 자폭해서 시체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사항이었다고 하였다&quot; (317쪽). 그는 북한군이 실제로 자폭을 실천한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lt;br&gt;&lt;br&gt;&lt;&lt;그는 아마도 자기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까지는 상대가 몰랐다고 해도 머리를 기른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시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보여서 공수부대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중상자가 생겨나자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조장이 대원들에게 수류탄을 모두 꺼내서 부상당한 사람의 
몸에 전부 매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조원들은 조장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결심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각자가 휴대하고 있던 수류탄을 목숨 
시퍼렇게 붙어일는 전우의 몸에 매달아 놓고 현장을 탈출하였다고 하였다.&gt;&gt; (321쪽) &lt;br&gt;&lt;br&gt;전 북한 3·13공장 지배인도 
북한군 자폭 사실들을 이렇게 증언한다. &quot;밥을 먹던 일행 중의 한사람이 광주인민봉기에 갔다가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묻자 그 
친구는 자기도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공화국영웅이 말하는데 의하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시체로 돌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전투현장에서 
죽은 즉시로 남조선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처리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quot; (380쪽).&amp;nbsp; &lt;title&gt;HTML clipboard&lt;/title&gt;&lt;meta name=&quot;Description&quot; content=&quot;광주사태 때 자폭한 북한군이 있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quot;&gt;&lt;meta name=&quot;Keywords&quot; content=&quot;광주사태와 북한군, 5.18사건, 자폭서약, 북한군 특수부대, 잠수함, 탈북자 증언, 북한군, 12.12 사태, 한국역사, 추천도서, 연구자료, korean history, 역사, 독일 아마존, koreanische Geschichte, 프랑스 아마존, Coréen histoire, 영국 아마존, 캐나다 아마존, 韓国史, 朝鮮史, 일본 아마존, 쇼핑몰.&quot;&gt;&lt;meta name=&quot;Microsoft Theme&quot; content=&quot;study 1011&quot;&gt;&lt;style type=&quot;text/css&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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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lt;/style&gt;&lt;span style=&quot;line-height: 160%;&quot;&gt;전 남포시 농촌경영위원회 지도원&lt;span lang=&quot;ko&quot;&gt;도 이것은 북한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임을 이렇게 증언한다: &quot;&lt;/span&gt;&lt;/span&gt;누구는 죽고 누구는 북한으로 돌아와서 영웅칭호를 받았다는 상세한 내용들과 어떤 
사람은 중상을 당해서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정체가 노출될 것을 염려한 동지들이 그를 사살하고 시체를 불태워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는 
등 광주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터져 나왔다&quot; (418-419쪽).&lt;br&gt;&lt;br&gt;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극도로 위험한 
순간에도 전우들의 시체를 수습하였으며, 전쟁이 끝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껏 참전용사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북한군은 
부상당한 전우를 자폭시킬 수 있으며, 시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자폭시킬 수 있는가? 그런데, 그런 북한군 자폭 사건이 1996년 9월, 즉 
문민독재자 김영삼 대통령이 여론몰이로 5.18(인민)재판을 마무리해가던 때에도 있었다. 
http://cafe.daum.net/issue21/5304/110 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아래의 동영상은 1996년 9월의 강릉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18일 16시30분 청학산에서 11명의 북한군이 자폭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0eGZmeOSlUc$&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bgcolor=&quot;#000000&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99&quot;&gt;&lt;br&gt;&lt;br&gt;문민독재자 김영삼 대통령은 위헌을 해가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무리하게 군인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재판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5.18재판이 막 마무리되었을 무렵 일어났던 또 하나의 북한군 특수부대 
침투사건이 5.18사건 때 머리를 기르고 남한군복을 입은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했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이처럼 결정적으로 입증하여주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img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lt;/a&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bmarin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은 
잠수함 타고 광주에 침투하였다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mokpo.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일부 목포 
경유 광주 침투&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document/5-16.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5월 16일)&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icid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 
534부대 지휘관의 5.18사건 고백(1): 자폭서약&amp;nbsp; &lt;/a&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iscuss/nk300.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books.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탈북자 5.18 
증언록 구입 안내 및 관련 도서&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남민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민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북한군 특수부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특수부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대자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대자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북한군 자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자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자폭서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자폭서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와 북한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와 북한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인민봉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인민봉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탈북자 증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탈북자 증언&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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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북한군은 잠수함 타고 광주에 침투하였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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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10-20T22:14:58Z</updated>
	    <published>2009-10-20T22:14:58Z</published>
	    <content type="html">
	    	지난 해의 광우사태 때 국민 모두가 광우 폭도들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거나, 민주화운동가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점은 광주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5.18무장단체를 광주시민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바라 보았는가?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광주사태 때 서울에 올라온 광주시민들은 &quot;강경파 시민군이 온건파에게 
총을 쏜다,&quot; &quot;시민군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자만 보면 시민군으로 징집하였다,&quot; &quot;남자들을 끌고가 사격 연습을 시킨후 군인들을 향해 사격하게 
하였다&quot; 등의 말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말들이 도무지 실감이 가지 않았었다. &lt;br&gt;&lt;br&gt;2년 전의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는 어떤 
정치 프로파겐다의 목적으로 제작되었겠으나, 일면 오히려 5.18측에 치명타를 끼치는 역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 우리는 시민군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광주사태를 처음부터 줄곧 TV로 지켜보고 있었던 북한 주민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무장시민군의 모습을 
사진으로조차 볼 기회가 없었다. 민간인이 총을 든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상상힐 수가 없었으므로 광주사태는 모르는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기에 계엄군이 가해자라는 5.18측 주장만 먹혀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lt;br&gt;&lt;br&gt;그러나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가 5.18무장단체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드러내놓고 말았다. 물론 이 영화는 시민군이라 불리는 이 무장단체를 미화시킬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이 영화는 시민군의 모습을 천분의 
일이나마 공개하고 말았다. 비록 모든 치부를 감추고, 최대로 미화시켜 천분의 일을 공개하였지만, 그 천분의 일은 국민이 전혀 시민군의 모습을 
모르고 있었던 때와 전혀 다른 변화를 몰고 왔다. 2003년부터 공개되기 시작한 인터넷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시민군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알게 된 것이다.&lt;br&gt;&lt;br&gt;광주사태 때 서울에 올라온 광주시민들이 서울의 친구들에게 &quot;시민군이 시민에게 총을 쏜다&quot;는 
말을 하였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아마 몇명 안될 것이다. 이것은 비록 널리 퍼진 말은 아니나, 그럼에도 광주사태의 내막을 이해하는데, 몹시 
중요한 단서였다. 과연 &quot;시민군이 시민에게 총을 쏘았을까?&quot; 오랫동안 우리는 이것을 과장된 표현이려니 여겼었다. 그러나 시민군 증언록이 펼쳐지는 
순간 그 사실이 확인되었다. 1988년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격상시킬 목적으로 5.18 단체들이 채증한 증언록에 시민군 총기 오발 사고였다며 
그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시작된 탈북군인들의 증언이 그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gun/who-whom.jpg&quot;&gt;&lt;br&gt;&lt;br&gt;위 사진을 보라. 바로 이 장면이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가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는 시민군의 치부 중의 하나이다. 군복 입은 장발족 광주시민군이 시민들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총의 모양새도 특이하며, 곤봉을 들고 있는 시민군 모습도 보인다. 만약 저 곤봉으로 누군가를 때렸다면 어째서 타박상 입은 시민들이 있었는지 
설명된다. 그리고 이마에 흰띠를 둘렀음이 눈에 띈다. 그런데 바로 하루만에 광주에서 시민군이 창군되고, 온갖 군사 장비들로 무장하며, 조직적으로 
편성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런 순발적인 기동력은 현역에게도 불가능하다. 탈북자들의 5.18증언록 &quot;화려한 사기극의 실체&quot;가 바로 이런 난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lt;br&gt;&lt;br&gt;이 책의 증언1(45~92쪽)에서 전 함경남도 금야군 고등중학교 교원은 10.26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인 1979년 11월 중순부터 북한은 광주사태(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남한 내 좌익세력과 공동으로 진행하였다고 증언한다. 과연 이 
핵폭탄적인 증언이 사실일 수 있는가? 그런데, 그녀의 증언 내용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녀는 남한 정보를 몰랐으며, 우리는 북한 
정보를 몰랐다. 그럼에도 쌍방간에 역사적, 객관적 사실들이 일치한다면 그 증언의 진실성은 입증된다.&lt;br&gt;&lt;br&gt;그녀는 &quot;북한의 계획대로라면 
원래 광주폭동이 정상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날자는 1980년 3월경이었다고 한다&quot;고 증언한다 (77쪽). 이 증언은 3/23 새벽 서울 한강 
하류 무장간첩 3명 침투, 3/25 새벽 포항 앞바다 무장간첩 출몰, 27일 새벽 김화지구 간첩침투 등을 보도하는 아래의 뉴스 동영상과 그 사건 
전개가 부합한다. &lt;br&gt;&lt;br&gt;&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fZeudaKayMU$&quot; bgcolor=&quot;#000000&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99&quot;&gt;&lt;br&gt;&lt;br&gt;아마 그녀의 독자들은 
예상을 넘는 그녀의 증언에 조금은 당황해 할 것이다. 북한군 침투설의 난제는 북한군이 어떤 방법으로 침투할 수 있었겠느냐였다. 그리고 북한군이 
잠수함 타고 침투하였으리라고는 전혀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었기에 많은 독자들이 반신반의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명확히 입증해 주는 
다큐 영화 동영상이 바로 아래에 있다.&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GVmf28BbQ7Y&amp;hl=en&amp;fs=1&amp;&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문민독재자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여론몰이로 5.18재판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는지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으나, 그의 간담을 서늘케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무장공비들이 
잠수함 타고 침투한 사건이었다. 5.18재판 여론몰이에 묻혀 국민에게는 잘 보도되지 않았으나, 북한군 14명과 싸우기 위해 우리 편에서는 십만 
배가 넘는 무려 150만명이 동원되어 장장 51 일간 걸린 대간첩 작전이 있었다. 위 동영상을 보면 북한군이 광주사태를 일으키기 6개월 전 
잠수함 타고 목포로 침투하였을 때 (74~75쪽), 그리고 광주사태가 끝난지 두 달 후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을 때 (88쪽),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다.&lt;br&gt;&lt;br&gt;탈북여성의 증언의 수확적 정확성은 잠수함 타고 침투한 북한군은 11영씩 한 조였다는 증언으로 확인된다: 
&quot;조 편성 발표가 끝나고 사복차림의 지휘관은 타격대장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조는 즉시 잠수함에 승선할 것을 지시했고&quot; (74쪽); &quot;다른 
때와 같은 가상적인 훈련이 아니라 이번만은 실제적인 상황이라는 현실이 배안에 타고 있던 11명의 전투요원들을 긴장시켰다&quot; (75쪽). &quot;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quot; (76쪽), &quot;미리 침투해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quot; (81쪽).&lt;br&gt;&lt;br&gt;위의 동영상은 
1996년 김영상 정부가 한창 5.18(인민)재판을 진행시키던 무렵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는데, 잠수함 타고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11명씩 한조가 
되어 움직였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광주사태에 대하여 또 하나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은 광주에 침투하였던 북한군들 중 자폭한 북한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의 탈북여성도 &quot;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quot; 고 증언했다 (76쪽).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lt;a href=&quot;http://cafe.daum.net/issue21/5304/110&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http://cafe.daum.net/issue21/5304/110&lt;/a&gt; 
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아래의 동영상은 1996년 9월 17일의 강릉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8일 16시30분 청학산에서 11명의 북한군이 자폭하였다. &lt;br&gt;&lt;br&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0eGZmeOSlUc$&quot; bgcolor=&quot;#000000&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399&quot;&gt;&lt;br&gt;&lt;br&gt;광주사태의 불가사의 중 
하나가 바로 교도소 습격 사건이었다. 광주사태 사망자 대다수는 시민군이 교도소를 습격하였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교도소를 습격하였는지에 대하여 여태껏 5.18단체들이 답변을 못하고 있다. 그 답변은 시민군 편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북한군 지휘관 안창식이 말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83~84쪽), 그 지휘관이 바로 이 증언 수기를 쓴 여성의 두 자녀의 아빠이다. 그녀는 교도소 습격 작전 때 중상 입은 
북한전투요원을 시민군이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후송한 사실도 증언하는데, 자신의 두 자녀의 아빠가 인솔한 부하에 대한 증언이기에 정확한 증언인 
것이다. 이처럼 탈북자들의 5.18증언록 &quot;화려한 사기극의 실체&quot; 증언1의 모든 내용들이 남한 자료들과 부합하여 그 사실성과 객관성이 
입증된다.&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img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lt;/a&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mokpo.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일부 목포 
경유 광주 침투&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document/5-16.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5월 16일)&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iscuss/uprising1968.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통혁당 
민중봉기 아지트였던 목포와 5.18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iscuss/nk300.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에 침투한 300 명의 
불순세력과 북한군 300 명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submarin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은 
잠수함 타고 광주에 침투하였다 &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화려한 휴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화려한 휴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잠수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잠수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시민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시민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동영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동영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무장공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무장공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북한군 침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침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얼룩진 산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얼룩진 산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증언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증언록&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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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북한군 일부 목포 경유 광주 침투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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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09-29T18:33:56Z</updated>
	    <published>2009-09-29T18:33:56Z</published>
	    <content type="html">
	    	탈북군인들의 증언록인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 최근에 출간되었는바, 광주사태 때 남파되어 무기고 무기 탈취 등을 주도하였던 북한군의 
연인이자 사실상의 부부관계였던 여성의 증언도 수록되어 있다. 그녀의 증언 중 목포를 경유하여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 관련 몇가지 핵심 요점을 
추리면 아래와 같다:&lt;br&gt;&lt;br&gt;『잠수함에서 하선하여 남쪽의 안내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남조선의 전라도지역인 목포라는 해안가 도시의 작은 
상점가계 안방이었다』&lt;br&gt;&lt;br&gt;『그들이 당시 임무내용을 전달받으면서 한순간에 파악했던 것은 조만간 남조선에서 4.19인민봉기를 능가하는 
전국적인 대규모의 인민항쟁이 무장폭동의 성격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자신들이 목포지역으로 급파된 것도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lt;br&gt;&lt;br&gt;『목포에 침투하였던 11명의 요원들이 사북탄광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일은 없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그곳에도 
북한의 계획적인 지령을 받고 파견된 별도의 특수부대요원들이 잠입하여 사북사태가 강원도지역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배후를 은밀히 조종하였다고 
증언하였다.』&lt;br&gt;&lt;br&gt;『여기서 놀랄만한 것은 목포를 중심으로 광주폭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5개월 여 동안 목포,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숨은 지하조직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침투 조 인원들이 직접 목격한 일이지만 그들의 조직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lt;br&gt;&lt;br&gt;『그들이 지휘부형태로 사용하는 공간에도 김일성의 초상화는 물론 김정일의 초상화까지 걸려있었고 
김일성선집이라든가 김정일의 주체철학 등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주의 내용의 북한용 정치서적들이 대거 비치되어 있어 마치도 북한 땅에 있는 
어느 박사의 사무실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lt;br&gt;&lt;br&gt;『당사자들한테서 직접들은 이야기지만 북한은 5.18사건을 배후에서 계획하면서 
철저하게 두 가지 목적을 노렸다고 한다. 하나는 남조선사회를 북한체제가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국가전복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전라도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직하고 충실한 친북정권수립이었다.』&lt;br&gt;&lt;br&gt;『안창식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북한특수부대요원들과 부마사태에 참가했던 
7명의 요원들이 합류된 18명의 소부대는 광주사태의 전 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목포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북한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광주작전과 관련된 필요한 지시들을 지령 받고 집행하였다. 광주폭동이 진압군의 작전으로 종료될 때까지 두 명의 인원은 고정적으로 
목포아지트에 대기하면서 광주시내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신속하게 지휘부에 보고했다.』&lt;br&gt;&lt;br&gt;『안창식을 책임자로 하는 
16명의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은 광주사건이 시작된 하루 뒤인 1980년 5월 19일 새벽에 광주시내로 침투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광주에서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는 전라도 내에 잠재해 있는 지하조직들을 간접적으로 동원해서 반정부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대학가와 청년학생들의 지도부세력을 
우선장악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여 비무장시위의 형태를 폭력적인 무장폭동으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광주폭동기간 광주지역뿐 아니라 전라도의 전 
지역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무기고습격사건들은 그들이 사전에 일일이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lt;br&gt;&lt;br&gt;(* 자세한 증언은 
&lt;A href=&quot;http://cafe.daum.net/issue21/3Fdk/4357&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cafe.daum.net/issue21/3Fdk/4357&lt;/a&gt; 
에서 보기.)&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img/line01.gif&quot;&gt;&lt;br&gt;&lt;b&gt;&lt;font color=&quot;#990000&quot;&gt;위의 탈북여성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남한 자료&lt;/font&gt;&lt;/b&gt; &lt;br&gt;&lt;br&gt;위 증언의 핵심 요점은 광주사태는 북한과 
남한의 친북 세력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위의 증언은 북한자료이다. 그런데, 위의 증언 하나하나가 남한 자료들로 그 사실성이 
입증된다.&lt;br&gt;&lt;br&gt;&lt;b&gt;『그들이 지휘부형태로 사용하는 공간에도 김일성의 초상화는 물론 김정일의 초상화까지 걸려있었고 김일성선집이라든가 
김정일의 주체철학 등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주의 내용의 북한용 정치서적들이 대거 비치되어 있어』&lt;/b&gt; 이것은 아주 정확한 객관적 
사실이다. 광주사태 당시 김대중은 조총련으로부터 정치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김대중의 국민연합 사무국장으로서 광주사태를 주동하였던 윤상원은 
조총련으로부터 북한 사회주의 내용의 북한용 정치서적들을 전국 운동권에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서적들의 영향으로 형성된 386 주사파의 
함성 &quot;위수김동&quot;(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은 주지의 사실이다.&lt;br&gt;&lt;br&gt;&lt;b&gt;『5.18사건을 배후에서 계획하면서 철저하게 두 가지 목적을 
노렸다고 한다. 하나는 남조선사회를 북한체제가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국가전복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전라도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직하고 
충실한 친북정권수립이었다.』 &lt;/b&gt;요컨대 적화통일이 그 첫번째 노림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5월 16일의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첫 문장에 바로 
그러한 문구, &quot;민중적 민족 주체 세력의 형성을 통한 민족·통일국가의 수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quot;가 들어있으며 &quot;민중의 승리와 민족통일 위한 
초석을 견고히 해야 한다&quot; 등의 표현들이 반복되고 있지 아니한가. 만약 원하는 것이 적화통일이 아니라면 통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두번째 노림수는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친북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라 하였다. 실로, 광주에 해방구가 설치되었으며, 시위 구호 중 하나가 &quot;전남국을 
세우자&quot;였다.&lt;br&gt;&lt;br&gt;&lt;b&gt;『18명의 소부대는 광주사태의 전 과정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목포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북한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광주작전과 관련된 필요한 지시들을 지령 받고 집행하였다. 광주폭동이 진압군의 작전으로 종료될 때까지 두 명의 인원은 고정적으로 
목포아지트에 대기하면서 광주시내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신속하게 지휘부에 보고했다.』&lt;/b&gt; 이 사실 역시 전남대 운동권 
핵심부의 증언으로 증명된다. 총학생회장 박관현과 총무 그리고 많은 시민군이 광주사태 동안에 북한방송을 청취하고 
있었다.&lt;br&gt;&lt;br&gt;&lt;b&gt;『안창식을 책임자로 하는 16명의 북한특수부대요원들은 광주사건이 시작된 하루 뒤인 1980년 5월 19일 새벽에 
광주시내로 침투하였다고 한다...대학가와 청년학생들의 지도부세력을 우선장악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여 비무장시위의 형태를 폭력적인 무장폭동으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광주폭동기간 광주지역뿐 아니라 전라도의 전 지역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무기고습격사건들은....』&lt;/b&gt; 이 북한 자료 역시 
5월 19일 나주에서의 시민군의 최초 무기 탈취 사건의 산증인 김동명 기자의 증언과 짝이 맞는바, 그는 지난 해에 27년간 고이 간직했던 낡은 
취재 수첩을 수기 형식으로 공개하면서 북한군 개입 의혹을 5월 19일 당일부터 품었음을 발표하였다.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가 5월 20일 
찍은 아래 사진은 5월 20일 나주, 화순, 영암 등 광주 외곽 지역에서 광주로 향하고 있었던 5.18무장단체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은 
광주시민군이 5월 19일부터 이미 무장하고 있었다는 김동명 기자의 증언을 분명하게 뒷받침하여 준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cap/5-21riot.jpg&quot; width=&quot;605&quot; height=&quot;449&quot;&gt;&lt;br&gt;&lt;br&gt;자, 여기 어째서 북한 자료는 목포라는 지명을 언급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광주사태에 대한 증언인데, 목포에서 
있었던 사건들, 목포를 경유하여 북한군 부대가 광주로 침투한 사실 등이 언급되어 있다. 독자들에게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리라. 그러나 남한 
자료에도 처음에는 황당하게 받아들여지는 증언들이 있다. 외부 무장단체가(혹은 가짜 연고생 300 명이) 목포를 경유 광주에 침투하여 시민군을 
지원해 줄 것이라는 선무 방송을 전옥주 본인의 입으로 하였다. 그러나 자기 입으로 방송해 놓고도 그녀는 수년이 지난 후에도 황당하게 여기고 
있다. 그 스토리는 이러하다.&lt;br&gt;&lt;br&gt;탈북군인들이 300 명씩 두 떼로 북한군이 광주로 침투하였다고 증언하였을 때 일각의 반응은 과연 
300 명씩 두 떼거리가 광주로 침투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겠느냐였다. 여기서 300명이란 숫자가 중요한 것인데, 놀랍게도 5.18측 자료들이 
300명씩 두 떼거리의 외부 무장단체가 광주로 침투한 사실이 있음을 입증해 준다.&lt;br&gt;&lt;br&gt;연고생이 300 명씩 두 떼거리로 광주로 
침투한다는 소문이 시민군들 사이에 파다했다. 그런데, 그 많은 연고생이 광주시민군에 입대할 목적으로 침투한 사실이 전혀 없다. 즉, 연고생 
300 명은 위장명칭이요, 실제로는 외부 불순세력 300 명이었다. 전옥주는 광주사태의 핵심인물이다. 그녀의 선무방송만 없었어도 광주사태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 하지 않는가. 광주사태 기간 내내 무수한 선무방송을 했던 그녀가 8년후 기억한 것은 연고생 300 명 침투설 뿐이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010.html ). 광주시민들조차 그녀를 간첩으로 
의심하여 경찰로 연행하였다. 그녀는 간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쪽지를 준 이들은 간첩들이었다. 즉, 간첩들이 그녀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5.18 단체들에 누가 전옥주에게 쪽지를 주어 목포쪽에서 연고생들이 오고 있다고 방송케 하였느냐고 물으면 그 답이 나온다. 광주시민들 
중에는 아무도 그런 쪽지를 전옥주에게 준 이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일진대 간첩들이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었음이 여기서도 입증된다. &quot;담양쪽에 
연ㆍ고대생이 서울에서 내려와 계엄군의 제지를 받고 있다고 해 그쪽으로 가보면 없고, 그 뒤 곧 송정리, 목포쪽에서 온다는 소문이 계속 
나돌았습니다.&quot;고 말할 때 그녀가 생각해도 황당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위의 북한자료를 읽는 독자들도 목포사태가 아니라, 광주사태인데 어째서 
목포가 자꾸 언급되는지 황당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 자료들로 그 사실이 여실히 입증된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image/news/5-22mokpo.jpg&quot; width=&quot;543&quot; height=&quot;253&quot;&gt;&lt;br&gt;&lt;br&gt;위에서 보듯 1985년 미공개 자료·조선일보 취재일지는 광주사태 당시 목포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북한 자료가 사실임을 보여준다. 해안경찰서를 파괴하면 민주화운동이라는 5.18측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가? 아니다. 해안경찰서를 파괴하는 것은 
공산당 군대에 성문의 빗장을 열어주는 꼴이다. 실제로 북한군이 자유로이 목포로 침투하여 활동하였으며, 광주로 침투할 때 광주시민군이 지원하게 
하였다. 즉, 광주사태 배후 세력이 북한군에 협조하고 있었던 것이다.&lt;br&gt;&lt;br&gt;목포 주재 박홍서 기자는 목포에는 단 한명의 경관도 군인도 
없었음을 그 전날인 5월 21일 오후 6시에도 이렇게 보고하였다. &quot;경관은 모두 사복으로 갈아입고 피신, 전파출소가 비어 있다. 시내에 군인들은 
안 보여.&quot; 그렇다면, 북한군이 목포를 아지트로 삼았다는 북한 자료가 사실임이 입증된다. 북한군이 활동하고 있는 목포에 단 한 명의 경관도 
군인도 없었다. 자, 여기서 우리는 5.18측에 단 한 명의 군인도 경관도 없었던 목포에서 왜 백 명 단위의 복면 부대가 발포하였는지 물어보자. 
목포에서 시민군이 있었다는 말인가?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는 목포에 먼저 복면부대가 출현하였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그가 광주에서 본 복면부대는 
외지에서 온 불순세력이었음을 그의 1987년 8월 기사 &lt;「광주사태」그날의 5가지 의문점&gt; 중 네번째 의문점에서 밝힌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4208.html).&lt;br&gt;&lt;br&gt;&lt;table class=&quot;menu&quot; width=&quot;98%&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1&quot; cellspacing=&quot;1&quot;&gt;&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 20px 30px 20px 20px;&quot; colspan=&quot;2&quot; bgcolor=&quot;#f5f5f5&quot;&gt;&lt;embed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www.youtube.com/v/0vnqT1lTBFo&amp;hl=en&amp;fs=1&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br&gt;&lt;br&gt;김영택 기자는 시민군 편 증인이었음에도 
복면무장단체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의심을 또박또박 말하였다. 1989년 1월 26일자 광주청문회를 보도하는 위의 동영상에서 MBC 김석진 기자는 
그 증언을 이렇게 요약한다: &quot;김영택 씨는 또 5월 22일에는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 300여 명이 시위에 합류했으며 오후부터는 복면을 쓴 
사람들이 시위 군중 속에 나타나 강경 구호를 외치거나 시민군의 총기 반납을 저지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여 이들의 정체에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quot; (3:08-3:27).&lt;br&gt;&lt;br&gt;탈북군인들은 300 명씩 두 떼거리로 광주로 침투하였다고 말한다. 남한 일부 인사들은 그렇게 
많은 떼거리가 외지에서 광주로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300 여명이 실제로 외지에서 침투하였음을 증언하지 아니하는가. 
그들은 복면부대였다. 김영택 기자는 광주의 언론인, 대표적 광주인이었다. 그는 목소리만으로도 토박이 광주인과 외지인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위에 언급한 그의 글 &quot;복면부대의 정체&quot; 몇 단락을 인용해 보자:&lt;br&gt;&lt;br&gt;&lt;&lt;&lt;&lt;b&gt;[복면부대]의 
정체&lt;/b&gt;&gt;&lt;br&gt;&lt;br&gt;만약 복면부대가 수사기관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나중에 검거되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다면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18일부터 21일까지는 왜 없었을까. 왜 기자의 카메라조차 학생들로부터 의심받아 셔터를 누르기도 어렵던 22일 이후에 복면을 
한 사람이 많았을까.&lt;br&gt;이들 복면부대는 한결같이 강경한 입장을 취한데다 적극적으로 시위를 선동했다. 무기반납을 방해하고, 차량을 타고 시내를 
질주하면서 과격한 언사를 거침없이 썼다. 이들은 수습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도청 앞 광장의 수습회의나 대책회의에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lt;br&gt;기자는 24일 오후 2시쯤 당시 도청 2층에 있던 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부위원장 김종배씨(35)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서 시민군의 무기를 반납하자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을 때 학생측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갔다가 위원장대신 부위원장을 만났던 
것.&lt;br&gt;이때 김씨는 {우리는 총을 반납하겠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군이 들어와 질서를 회복하면 맨손으로 금남로에 나가 다시 민주화를 
외치겠습니다}며 총을 회수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때만 해도 김씨는 온건파였다. 이로부터 수시간 후 그는 조건부 강경파로 선회하게 되지만, 
본심은 어떤 조건만 받아들여지면 총을 반납하겠다는 입장이었다.&lt;br&gt;&lt;br&gt;무기 반납 제지한 [복면부대]&lt;br&gt;&lt;br&gt;그런데 총을 회수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김씨를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납은 안된다는 강경파들이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것이다. 가로막는 이들 강경파의 거의가 
복면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lt;br&gt;김씨는 이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어쩌지 못하고 다시 2층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복면의 강경파들은 이렇다 할 
수습안을 내놓지도 않았다. 무조건 반대였다. 때문에 이들은 사태를 악화시키려는 [불순세력]이나 [배후세력]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 21일 계엄군이 철수한 이후의 광주는 객관적으로 무정부의 상태였다. 이미 정부가 없는 상태, 그것은 엄격하게 [내란]의 상태다. 
더구나 시위대는 무장을 했다. 정부가 있을 때 그 정부에 대항하여 시위를 벌이는 것과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내란]에 가담하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복면을 한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차이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수도 있다.&lt;br&gt;그러나 계엄군의 철수 후 사태의 수습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강경하지 않았다. 무기를 반납하고 시의 외곽을 에워싸고 있는 계엄군과 협상할 것을 시도했다. 복면부대는 
이 수습노력을 저지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격렬한 선동을 계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복면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가 만약 
[불순세력]으로서 외부에서 들어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복면을 했다면, 그런 사람들은 선량한 시민들의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gt;&gt;&lt;br&gt;&lt;br&gt;김영택 기자는 복면부대 등장의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이유는 무정부상태에서 내란에 가담하였을 때는 더 이상 
떳떳한 시위가 아니었기에, 둘째 이유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수습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겨두며, 목포에서 먼저 출현한 복면부대도 그 두가지 이유로는 설명이 안된다. 목포에서는 해방구도 설치되지 않았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목포에 먼저 복면부대가 등장하고, 곧 이어 광주에도 등장하였다. 만약 정체를 감추라는 상부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면 목포 
내 불순세력이 먼저 지령을 받았다는 것을 시사하며, 또 불순세력이 목포를 경유 광주에 침투한 것이 사실이었음이 확인된다. 전옥주가 황당하게 
여겼던 정보, 즉 연고생(가짜 연고생) 300 명이 목포쪽에서 광주로 침투할 것이라는 정보는 사실이었으며, 그러한 남한 자료가 북한 자료로 그 
개연성이 한층 많아지는 것이다.&lt;br&gt;&lt;br&gt;5월 21일 계엄군 철수 이후의 광주상황은 이러하다. 22일에도 2천여 명의 군중이 도청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3백여 명의 극렬시위자는 경찰복과 공수단 복장을 하고 복면을 한 모습으로 40 여대의 군용차량을 몰고 송정역에 집결하여 
공포를 쏘면서 시위를 하였고, 관광호텔, 전일빌딩, 전남의대, 유진온천 등 건물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광주에 이르는 도로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하였다. 북한자료가 밝히듯이 300 명 단위의 무장단체가 실제로 경찰복과 공수단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김영택 기자가 목격한 복면부대였다. 
비록 우리는 김기자처럼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래의 복면부대 사진들을 보면 이들이 광주인인지 외지에서 침투한 불순세력인지 조금은 
식별할 수 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armed_rioters.jpg&quot; width=&quot;402&quot; height=&quot;464&quot;&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jeep.jpg&quot; vspace=&quot;5&quot; width=&quot;400&quot; height=&quot;299&quot;&gt;&lt;br&gt;광주사태 당시 대다수 
총기 사망자들은 카빈 등 시민군만 갖고 있던 총기에 의해 사망하였다. M-16에 의한 사망자 역시 시민군 총기에 의한 사망자들일 수 있음을 위 
사진은 보여준다. 위 사진에서 복면한 시민군(어쩌면 북한군)이 들고 있는 총은 M-16이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police-dress.jpg&quot; vspace=&quot;5&quot; width=&quot;520&quot; height=&quot;471&quot;&gt;&lt;br&gt;다수의 
광주시민들은 이 자들을 군인들로 착각했을 것이다. 물론 북한군도 군인이다. 그러나 북한군의 위장전술에 속아 북한군과 국군을 혼동하는 것은 
인식론적 혼동이다. 이들이 군복을 입고 지프를 탔어도 이들은 국군이 아니다. 이들이 북한군이든 시민군이든 이들의 정체성은 5.18무장단체이며, 
국군이 아니다. &lt;br&gt;&lt;br&gt;많은 광주시민들이 저 5.18무장단체를 군인으로 혼동하고 광주사태에 대하여 군인들에게 누명을 씌웠는가? 1985년 
발행된 앞의 &quot;미공개 자료·조선일보 취재일지&quot; 22일자 취재 메모에서 기자는 저 복면부대의 정체성을 이렇게 보고한다: &quot;무장한 시위대가 탄 
지프·트럭·버스 등은 주택가를 계속 누볐다. 어떤 청년들은 경찰데모진압용 철모에 군복차림이었으나 차량을 운전하는 어떤 청년은 눈만 남긴 채 
복면을 하기도 했다. 트럭에 LMG를 장치한 중무장도 보였다. 시민들은 동이 트면서부터 대문 앞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웅성댔다.&quo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police-dress4.jpg&quot; vspace=&quot;5&quot;&gt;&lt;br&gt;집총 자세의 이들은 누구인가? 전경이 
아니었다. 그때는 아직 시위 진압을 전담하는 전경 부대가 없었던 시대였으며, 또 전경이 M-1 총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이런 5.18무장단체를 
군인으로 혼동한 것도 인식론적 혼동이었으며, 저렇게 불순세력이 전경 복장으로 위장한 것을 민주화운동과 동일시한 것도 인식론적 오류였을 
것이다.&lt;br&gt;&lt;img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rioter-in-mask.jpg&quot; vspace=&quot;5&quot; width=&quot;280&quot; height=&quot;400&quot;&gt;&lt;br&gt;위 사진에서 5.18복면부대는 총으로 무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손에 이상한 병을 든 것이 보인다. 
무엇에 쓸 어떤 병이었는가? 그 정답이 밑에 있는 5월 20일자의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에서 보인다. 이 대자보는 &lt;행동강령&gt;을 이렇게 
명령한다. &quot;무기를 제작하라! (다이너마이트, 화염병, 사제폭탄, 불화살, 불깡통, 각종 기름 준비) 전시민 관공서를 불태워라!&quot; 저, 
5.18복면부대 손에 들린 병은 폭탄의 용도로 쓰일 병, 관공서를 태우는데 쓰일 병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누구에게 관공서를 태우라고 명령할 
권한이 있으며, 또 시민들에게 그렇게 명령하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논리는 타당한 것인가?&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daejabo/5-20.jpg&quot; vspace=&quot;5&quot; width=&quot;491&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521&quot;&gt;&lt;br&gt;&lt;br&gt;그리고 위의 5월 20일자의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에서 &quot;서울, 대구, 마산, 전주, 군산, 이리, 목포도 
봉기!&quot;라는 문구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 글 상단에 있는 탈북여성의 증언이 사실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우리 국민이 광주사태에 대하여 무수히 들어왔어도 목포에서도 봉기가 일어났었다는 사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목포에서 동시에 
일어난 봉기가 포인트임을 강조한다. 놀랍게도, 5월 20일자의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역시 그것이 포인트라고 말하지 아니하는가.&lt;br&gt;&lt;br&gt;저 
위 광주청문회 동영상에서 보듯이 1988~89 광주청문회의 쟁점은 시민군 최초 무장시점이 5월 20일이었느냐 21일이었느냐였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으며, 5월단체들은 5월 21일 오후 한시 반 이후라고 우겼으며, 광주특위는 5.18측 손을 들어 주었다. 12.12-5.18 재판 
역시 그런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위의 5월 20일자의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는 &quot;학생 혁명군,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quot;이라고 증언하지 아니하는가. 대자보 발행일이 5월 20일이었으니 5월 20일 이전 혹은 늦어도 20일 시점에는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자료가 사건의 진행순과 날자까지 아주 정확함이 확인되지 아니하는가!&lt;br&gt;&lt;br&gt;여기서 
우리가 5월단체들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도대체 학생 혁명군이라는 것이 있었는가? 학생혁명위원회는 또 무엇이었는가? 정말로 그런 단체들이 
있었는가? 만약 아니었다면 북한군이 그 명의를 사용한 것이 사실 아닌가? 김동명 기자가 증언하듯 5월 19일부터 무기 탈취가 시작되었으며, 5월 
19일부터 시작된 무기 탈취를 북한군이 주도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지 아니하는가? 정말로 5월단체들에서 (혹은 광주의 운동권이) &quot;전시민 
관공서를 불태워라!&quot;는 명령을 광주시민들에게 내렸는가?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하였는가? &lt;br&gt;&lt;br&gt;만약 학생 혁명군의 말뜻을 
5월단체들이 설명해 주지 아니하면 시민군이란 명칭은 북한군이 붙여준 것이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학생 혁명군은 전쟁을 위해서 필요한 군대이다. 
누가 학생 혁명군을 조직했다는 말인가? 5월단체들이 시민군에 대해 말하지만 그 명칭의 유래를 우리는 모른다. 단지, 5월 20일자 대자보에서 
시민군이 5월 20일에는 학생 혁명군으로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lt;br&gt;&lt;br&gt;위의 조선일보 취재일지에서 박홍서 기자는 5월 
22일 새벽의 목포 상황을 이렇게 보고한다:&lt;br&gt;&lt;br&gt;* 새벽 1시20분 무안동 코롬방다과점, 수퍼마케트 일원 식품가게를 부수고 들어가 빵, 
음료수를 실어가.&lt;br&gt;* 새벽 2시 목포역 대합실 전부 파괴, 연동 파출소 모기관 목포지부 방화. 항동 파출소 무기고 태우고, 시내 파출소 
전부 파괴. 해안경찰서, 세무서 파괴.&lt;br&gt;* 새벽 3시 남양어망 공장 부수고, 열차불통, 시외·시내 버스 불통. 중·고 학교장 재량 휴교령. 
각목, 카빈 공포 쏘고 다녀. 무기 휴대한 젊은이 복면하고 1백명 정도. 다른 데모대 1천여 명. 시민호응 안해. 시내상가 모두 철시. 군대는 
안보여. &lt;br&gt;&lt;br&gt;광주단체들의 소행이었는가? 목포에는 군인도 경관도 없었는데 왜 목포에서 여기저기 불을 지르며 관공서들을 파괴하며, 
아무데나 발포하였는가? 광주 운동권의 소행이 아니었을진대, 결국 북한군 개입에 관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사실로 입증되지 
아니하는가!&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img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lt;/a&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document/5-16.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5월 16일)&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iscuss/uprising1968.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통혁당 
민중봉기 아지트였던 목포와 5.18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iscuss/nk300.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에 침투한 300 명의 
불순세력과 북한군 300 명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518/mokpo.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 일부 목포 
경유 광주 침투&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photo/rioters-in-mask.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복면 쓴 
5.18무장단체 사진전&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목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목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시민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시민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폭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폭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대자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대자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북한군과 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군과 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선동 대자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선동 대자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조선일보 취재일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일보 취재일지&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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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해설(1): 5월 16일 대자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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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역사학도</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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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27T17:05:51Z</updated>
	    <published>2009-09-27T17:05:51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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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민주주의 발전은 사상의 발전이다. 그래서 미국 고전문학에는 민주주의 사상가들의 글들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광주사태에 관하여 우리가 
가지는 의문점은 이것이다. 만약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도대체 5.18 단체들이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들을 꽁꽁 숨겨두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lt;br&gt;&lt;br&gt;광주사태 발생원인으로 5.18측이 흔히 하는 주장이 김대중을 석방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대중의 구속된 시점은 
광주사태가 끝난 후였으므로 사실 그런 주장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김대중이 열흘 뒤 구속되었다 하더라도 5월 18일 0시 경에 연행된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아래의 결사 투쟁 선동 대자보는 김대중이 연행되기 근 이틀 전인 5월 16일 발행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lt;br&gt;&lt;br&gt;전두환이 박정희-최규하의 4공화국에 반역했다고 단정하면 그 귀결은 그 반대 선상의 김대중이 4공화국, 즉 
유신정권에 충성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그런 역사 논리는 성립이 불가능하므로 1996년 12.12 재판 판결에 논란의 소지가 있으며, 오늘날 
역사토론이 과제이다. 분명 광주사태 당시의 운동권의 공격논리는 전두환이 박정희의 양자였다는 것이지, 결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역자였다는 것이 
아니었다. &lt;br&gt;&lt;br&gt;12.12사태와 광주사태를 한묶음으로 묶는 주장의 또 하나의 그릇된 관념은 광주시민들이 신군부와 대항하였다는 관념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커녕 그런 용어조차 없었다. 신군부라는 용어는 1979년 12월 김일성이 김재규 부하들이 아닌 이들을 지칭하여 사용하였다고 
하는바, 남한에서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그 용어가 그대로 쓰이기 시작하였으나, 운동권이 임의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신군부로 분류하였기에 전혀 
정확성이 없는 용어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1980년 광주사태 당시 신군부라는 것이 있었다면 어찌 운동권이 그 당시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유신잔당으로 분류하였겠는가? &lt;br&gt;&lt;br&gt;광주사태 선동가는 전두환을 박정희의 양자 혹은 유신잔당으로 불렀다. 광주사태 직전 5월 20일과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김대중의 민중봉기 거사 계획을 지지하는 대자보들이 수십 개 단체명으로 전국에 등장하였는데, 실제 작성자는 
동일인물이었다. 예를 들어, 5월 16일자의 아래의 대자보도 민중봉기 선동가가 전남대의 명의를 도용했던 것이지, 전남대생들이 작성한 대자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광주사태 당시 대자보들은 배후 선동가가 어떻게 시국을 읽고 무슨 논리로 민중봉기를 선동하였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img/518doc.gif&quot;&gt;&lt;br&gt;&lt;br&gt;대학의 소리 - 그 
첫번째 &lt;br&gt;&lt;br&gt;우리는 무엇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lt;br&gt;&lt;br&gt;오늘의 역사적 전환기에 있어서 민족사적인 사명과 당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부분에서 자주, 자율적 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며, 민중적 민족 주체 세력의 형성을 통한 민족·통일국가의 수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독재자가 쓰러져간 10.26이후에도 유신잔당의 예비 음모정권은 기생적인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민족과 국민앞에 일말의 
양심도 없이 또 다시 암흑시대로 복귀하려는 기만적인 정치안정과 민주화를 앞세워 음모와 공포, 권모술수를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한계에 도달한 
국민경제의 도탄에서 신음하고 있는 저 민중의 원성이 들리지 않은가. 모든 힘을 합쳐 불퇴진의 결의로 민족의 활로를 개척해야 할 이 때에 무엇 
때문에 진정한 국민적 합의와 총화를 스스로 분열시키고 포기하려 드는가. 왜 그다지 숨겨야 할 것이 그렇게도 많은가. 선량한 국민이 유신잔당의 
권력유지를 위한 소모품이며, 매판자본가 독점자본가의 안주꺼리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이 슬픈 현실앞에서 그들을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으며 목숨을 걸고 싸워나가 억압된 민중의 승리와 민족통일 위한 초석을 견고히 해야 한다. 따라서 민족사적 당위를 실현시키기 위한 현실적 
과제로서, 첫째 유신잔당(특히 전두환 일당)의 박멸, 둘째 새로운 민주질서의 조속한 확립을 위해 유신잔재 전체와의 싸움에서 불투명한 자세로 
일관한 야당세력에 반성을 촉구, 셋째 양심적인 범민주세력의 강력한 결단을 촉구하며, 전국의 노동자·농민과 전국의 지성인, 전국 학생의 결집된 
힘으로 싸워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 땅의 민주회복은 공염불이 되고 말것이다. &lt;br&gt;&lt;br&gt;왜 비상계엄은 해제되고 있지 않으며 우리는 
즉각적인 해제를 주장해야 하는가.1 &lt;br&gt;&lt;br&gt;장기화된 비상계엄은 언론의 검열·조작·억압을 계속하여 국민을 우롱하고 유신잔당세력을 규합하여, 
또다시 잔악한 고문과 실형선고, 검거로 일관한 「改新정권」을 꿈꾸고 있다. 4월 12일 귀국한 사이공억류외교관의 귀환을 4.19에 발표하여 
지면을 조작하고, 정보부 재건, 보안대의 활성화, 유정회 부활, 통대조직의 지역별 강화, 노골적인 국회 무시 등 기성 정치인의 고립을 시도하는 
저들의 흉계는 무엇인가. ‘대통령유고’의 명분으로 발동한 비상계엄이 특정인의 재판을 위해 존속하게 되어, 그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 
비상계엄은 잔당 세력의 등장을 위한 전초작업이며, 국민여론을 오도·무마하기 위한 강제적이고·임의적인 시한부 기초작업인 것이다. 우리의 민주화는 
이 계엄의 즉각적인 해제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며, 해제권자를 제주도를 제외시켜 전국의 계엄이 아닌, 일부지역 계엄으로써 대통령은 허수아비격으로 
전권을 계엄사령관 휘하에 두게하였으며, 국회(재적과반수 결의)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현 상황하에서, 특히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서리라는 위법적인 
겸임은 모두 계엄의 소산이며, 이것이 계엄으로 합법화된다면, 현역 군인출신 총리서리, 국무위원서리, 국회의원서리 등이 어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국회가 열리지 않고 있는 지금 소극적인 공화·신민 두 당의 국회의원의 결단을 촉구하며, 한편 계엄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를 
유신체제의 사생아 유정회 의원들의 자세가 불변하면, 국민의 과감한 응징을 면치 못할 것이다. &lt;br&gt;&lt;br&gt;구시대적 모순의 청산과 새로운 
민주질서를 모색하여, 민주시대를, 그 실현을 갈구한 민족세력을 억압 악이용하고, 개헌논의를 불필요하게 했던 계엄령은 즉각 해제되어야 한다. 학원 
자율화와 노동자·농민의 권익옹호운동이 민족사적 소명의식에서 출발한 정통성수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란 사실을 부인하고, 
군부세력과 기회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유신잔당의 보복적인 야합을 노리고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계엄은 즉각 해제되어야 한다. 유신 암흑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는 계엄해제를 최선결 요건으로 삼고, 목숨을 걸고 투쟁할 것이다. &lt;br&gt;&lt;br&gt;(※다 보신 다음에 이웃과 친구들에게 돌려가며 
읽도록 합시다※) &lt;br&gt;&lt;br&gt;최근의 정보 : 日本朝日新聞 5月 5日字 신문에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다. “民主化의 방해인물로 全斗煥을 지적” 
「멕시코시티, 4日」 카터미대통령은 日·米수뇌회담에서 박정권 붕괴후의 한국 군부의 동향에 관하여 「한 사람이 軍·情報·保安 각 분야를 한 손에 
장악하고 있는 것은 “過行이다”라는 태도를 표명했다. 즉, 지난 4月 한국중앙정보부(K·C·I·A) 부장대리를 겸임한 전두환 한국군 보안 
사령관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崔정권 下에서 진행되고 있는 民主化에 군부가 큰 저해요인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여진다. 카터가 일국의 군부지도자를 지칭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라 한다.」 &lt;br&gt;&lt;br&gt;※다 읽으신 후, 이웃과 친구에게 돌려가며 
읽도록 합시다. &lt;br&gt;&lt;br&gt;※이 大學의 소리는 계속 발간되어 질 것입니다 ※ &lt;br&gt;&lt;br&gt;1980년 5월 16일 &lt;br&gt;&lt;br&gt;전남대학교 
자유언론투쟁위원회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img/line01.gif&quot; width=&quot;46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10&quot;&gt;&lt;br&gt;&lt;br&gt;&lt;b&gt;&lt;font color=&quot;#990000&quot;&gt;위의 5월 16일자 광주사태 선동대자보 해설 및 
비평&lt;/font&gt;&lt;/b&gt; &lt;br&gt;&lt;br&gt;김대중의 전국연합 산하 조직들이 대학가 등에 대자보를 붙이던 때에는 운동권이 대학가 여론을 장악하였으며, 
비운동권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반론의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비록 30 년 전에는 반론의 기회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제나마 비평 및 반론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광주사태 30 주년이 임박한 이 시점에서 광주사태는 이미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요, 따라서 당시 자료들이 오늘날 역사 토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광주사태 선동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풀고 그의 민중봉기 선동 논리가 정당하거나 합리적이었는지 살피려면 먼저 그가 작성한 
대자보들을 읽어보아야 하는 것이다.&lt;br&gt;&lt;br&gt;5월 16일자의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제목은 &quot;우리는 무엇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quot;이다. 훗날 
그들은 김대중 석방을 위해 일어섰다고 주장하였지만, 분명 위의 대자보는 김대중이 연행되기 하루 반 내지 이틀 전에 게시되었다. 이 대자보 제목은 
투쟁이 목적이었음을 시사하며, 학생들을 선동하기 위해 대학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게시하는 그 첫번째 대자보에서는 투쟁 대상이 무엇이며,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제시한다.&lt;br&gt;&lt;br&gt;그 첫 문장에 &quot;민중적 민족 주체 세력의 형성을 통한 민족·통일국가의 수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quot;가 
들어있다. 주체사상의 색채가 짙은 이 문구는 어쩌면 그다지도 북한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광주사태의 의의와 그토록 일치하는가? 도대체 어떤 세력이 
민중적 민족 주체 세력인가? 왜 대표적 시민군 윤기권은 훗날 2억 보상금 수령 후 월북하였으며, 국립묘지 참배를 거부하는 북한 대표들이 스스로 
5.18 묘지에 가서 참배하였는가?&lt;br&gt;&lt;br&gt;둘째 문장의 &quot;10.26이후에도 유신잔당의 예비 음모정권은&quot;이란 표현에 주목하라. 본래 
광주사태는 12.12사태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태였다. 여기서 유신잔당이란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 내각을 지칭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광주사태가 직선제를 요구한 투쟁이었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그 당시 시위 구호는 &quot;최규하 물러가라&quot; &quot;신현확 물러가라&quot; &quot;(직선제) 개헌 
반대&quot;였다. &lt;br&gt;&lt;br&gt;이 대자보 작성자는 1970년대의 찬란한 산업혁명 시대를 &quot;암흑시대&quot;라 부른다. 그러나 그런 치우친 좌익사관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민주화운동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관이 허용되어야 한다. 만약 운동권에 의해 한가지 사관만 강요되는 
대학이 있다면 그것은 그 대학의 비극이다. 무엇이 북한의 비극인가? 그것은 오직 한가지 사관만을 인민에게 강요하는 획일주의이다. 만약 광주사태 
선동가의 의도가 한국의 산업혁명을 부정하는 사관만을 강요하려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그 출발부터 전혀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lt;br&gt;&lt;br&gt;&lt;b&gt;『기만적인 정치안정과 민주화를 앞세워』&lt;/b&gt; 오늘날 전교조의 잘못된 교육으로 1980년 봄이 마치 군사독재 
시대였던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만약 군사독재 시대였다면 어째서 2월 29일 복권조치로 김대중 등 수백 명의 
운동권이 3월 1일부로 사면복권될 수 있었겠는가? 최규하 대통령은 선거법을 직선제로 개정하는 개헌안을 내놓으며 야당의 협조를 호소하였으며, 4월 
첫 주에 김영삼씨의 신민당 당원들과 김대중의 전국연합 운동권이 각목 들고 싸웠다. 당시 선거법 직선제 개정은 기정사실이었으며, 양김씨 중 누가 
대선후보가 될 것이냐를 놓고 양김씨 지지자들간에 한국판 4월 11일자 &quot;뉴스위크&quot;지가 보도하듯 양김씨 중 누가 대선후보가 될 것이냐의 문제로 
다투던 양김씨 지지자들간에 인신공격이 난무했으며, 주먹질이 오갔던 것이다. 대자보 작성자가 눈비비고 보아도 전혀 독재시대가 아니었으므 『기만적인 
정치안정과 민주화를 앞세워』라는 말로 트집을 잡았던 것이다.&lt;br&gt;&lt;br&gt;&lt;b&gt;『이 슬픈 현실앞에서 그들을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으며』&lt;/b&gt; 대자보 작성자는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를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였으며, 당시 시위 구호는 &quot;최규하 물러가라&quot; &quot;신현확 
물러가라&quot;였다. 광주사태는 5월 18일 시작되었으되, 민중봉기 선동 작업이 진행되던 5월 16일의 시점에서 그 투쟁 대상은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였다.&lt;br&gt;&lt;br&gt;&lt;img title=&quot;신문에 실린 김대중의 편지&quot; alt=&quot;김대중의 참회의 편지 기사&quot; src=&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image/news/dj-letter1a.jpg&quot; width=&quot;600&quot; border=&quot;0&quot; height=&quot;479&quot;&gt;&lt;br&gt;&lt;br&gt;&lt;b&gt;『목숨을 걸고 싸워나가 억압된 민중의 승리와 민족통일 위한 초석을 견고히 해야 
한다』&lt;/b&gt; &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ument/dj-letter.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http://study21.org/518/document/dj-letter.htm&lt;/a&gt; 
에서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는 위의 김대중의 편지는 1981년 1월에 처음 쓴 것이 아니었다. 김대중은 그 이전 해 2월에도 다시는 사회를 
혼란케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2.29복권조치로 3월 1일 복권되어 정계에 복귀한 바 있다. 그런데, 복권된지 두 달 만에 민중봉기 일으켜 
자기를 사면해준 최규하 대통령을 5월 20~22일경에 퇴진시키겠다고 하니 5월 18일 0시 연행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대중이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그의 편지를 언론에 공개하였다. 김대중이 그 약속을 지켰는가? 아니다. 지난 해의 광우사태 때도 그는 이명박 대통령 정부를 
전북시키려 했다.&lt;br&gt;&lt;br&gt;&quot;목숨을 걸고 싸워나가&quot; 이 문구는 유혈투쟁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quot;민족통일 위한 초석을 견고히 
해야 한다&quot; 이 말은 그 투쟁 대상이 최규하 대통령 등 반공 인사들이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와 동구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기 전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반공국가들이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던 것도 반공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광주사태 선동 논리에서는 그 투쟁 
대상이 거꾸로 바뀌어 반공인사들이었다. 만약 그 목적이 친공에 의한 민족통일이었다면 어떻게 그것이 민주화운동이었다는 주장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lt;br&gt;&lt;br&gt;&lt;b&gt;『첫째 유신잔당(특히 전두환 일당)의 박멸』&lt;/b&gt; 이 문구는 전두환이 유신잔당이라고 분명히 못박는다. 유신잔당이란 박정희의 
유신정권 충신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따라서, 전두환이 유신정권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5.18측의 훗날 광주청문회 때와 
12.12-5.18 재판 때의 주장은 말바꾸기를 한 것이다. 그들이 신군부라는 용어를 차용한 것도 그들의 말을 바꾸고 광주사태 논리를 바꾸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lt;br&gt;&lt;br&gt;&lt;b&gt;『해제권자를 제주도를 제외시켜 전국의 계엄이 아닌, 일부지역 계엄으로써』&lt;/b&gt; 분명 이 말은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작성자의 횡설수설이다. 5.18측에 도대체 이 문구로 주장한 바가 무엇이었느냐고 문의하면 답변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대자보 작성자는 당시 비상계엄이 물계엄이었음을, 즉 제주도가 제외된 계엄이었음을 트집잡은 것이다. 비상계엄이 전국계엄이 아닌 일부지역 
계엄이면 대통령 권한이 약화된다는 대자보 작성자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 입으로 &quot;최규하 물러가라&quot; 외치면서, 다른 한 입으로 일부지역 
계엄, 즉 이른바 물계엄 하에서 대통령 권한이 축소된다고 우기는 것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여하튼,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김대중의 위협이 말로만 하는 위협이 아니라, 실지로 민중봉기 거사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이 5월 16일 확인되자 정부는 그 다음날 
5월 17일 자정 김대중을 연행함과 동시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쿠데타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5월 18일부터 과격시위를 선동하였던 것이다.&lt;br&gt;&lt;br&gt;&lt;b&gt;『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서리라는 위법적인 겸임은』&lt;/b&gt; 사실, 이것은 전혀 
전국적 민중봉기 혹은 광주사태를 일으켜야 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임기는 4월에 끝났으며, 단지 후임자 노태우 장군에게 
인수인계하는 절차가 6월에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5월에 김재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보안사령관 업무는 끝나있는 때였다. 그 시절 
중앙정보부장은 보안사령관직을 거쳐 임명되었으므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유일한 적임자였고, 10.26 사태 이후 6개월이 넘도록 공석이었던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최규하 대통령이 더 이상 비워두실 수 없어서 그를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임명하셨던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온당한 처사로 
여겨진다. &lt;br&gt;&lt;br&gt;&lt;b&gt;『군부세력과 기회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유신잔당의 보복적인 야합을 노리고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lt;/b&gt; 이 
표현 또한 대자보 작성자의 횡설수설이다. 뭔가 트집거라를 제시해 봉기를 선동해야겠는데, 분명한 이슈거리가 없자 장황한 말로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두환을 유신잔당에 포함시킨 위의 문구와 달리 여기서는 군부세력과 유신잔당을 구분한다. 결론적으로 이 대자보에서 유신잔당이란 
용어는 일차적으로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를 지칭한다. &lt;br&gt;&lt;br&gt;&lt;b&gt;『유신 암흑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는 계엄해제를 최선결 요건으로 
삼고, 목숨을 걸고 투쟁할 것이다』&lt;/b&gt; 이렇듯 광주사태 당시의 모든 대자보들은 일명 유신 시대,즉 1970년대의 산업화 시대에 대한 적개심을 
일으킬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마치 4공화국의 유신체제를 고수하며 수호할 목적으로 광주시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던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12.12 판결문은 그 역사논리 성립이 불가능하다. 보라, 목숨을 걸고 투쟁할 것이다라는 말은 유혈 투쟁을 불사하겠다는 말이요, 만약 전두환이 
투쟁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면 그는 유신정권 충신으로 간주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지, 결코 12.12 사태를 쿠데타로 여겼기 때문에 일어난 
항쟁이 아니었다. &lt;br&gt;&lt;br&gt;&lt;b&gt;『최근의 정보 : 日本朝日新聞 5月 5日字 신문에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다』&lt;/b&gt; 전남대생들이 일본 아시히 
신문을 본 것이 아니라, 김대중의 전국연합 산하 조직들 중 대자보 작성 담당자가 본 것이었다. 전남대학교 자유언론투쟁위원회 등 수십 개의 
단체명들 명의로 대자보가 붙여지고 유인물들이 뿌려졌으나, 그 작성자는 동일인물이었으며, 바로 광주사태의 배후 인물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누구였는지를 물어야 한다.&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img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quot;0&quot;&gt;&lt;br&gt;&lt;br&gt;☞ &lt;/a&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iscuss/1212fact-n-lie.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12.12에 대한 거짓 주장들&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iscuss/1212-518.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12.12재판 패자 5월단체 
&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document/5-16.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선동 대자보&lt;/a&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전두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두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항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항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최규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최규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민주화운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민주화운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12.12재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12.12재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12.12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12.12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대자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대자보&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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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주에 침투한 300 명의 불순세력과 북한군 300 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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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04-13T09:51:09Z</updated>
	    <published>2009-04-13T09:51:0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 &quot;평양은 망명을 꿈꾼다&quot;라는 제목의 그의 저서에서 강명도는 광주사태 당시까지만 해도 전두환은 전혀 북한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음을 이렇게 서술한다:&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lt;&quot;광주에서 전쟁이 터졌다&quot;&lt;BR&gt;1980년 5월 18일 북한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남조선에서 계엄군과 학생 시위대가 충돌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본 조총련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디오 테이프를 확보한 중앙 TV가 매일 그 테이프를 방영한 것이다. (....) 또 복면을 쓴 시민군이 탈취한 계엄군의 지프를 타고 시가지를 달려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노동신문』은 해설을 통해 학생시위가 광주사태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공수부대가 계엄군으로 출동, 엄청난 사태로 확대됐다고 보도했다.&amp;nbsp;&amp;nbsp;그리고 공수부대 투입을 지시한 사람이 전두환이라고 보도했다.&amp;nbsp;&amp;nbsp;내가 점두환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amp;nbsp;&amp;nbsp;그러나 &amp;nbsp;『노동신문』은 전두환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gt;&gt; (238쪽, &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ument/nk-kang.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study21.org/518/document/nk-kang.htm&lt;/FONT&gt;&lt;/U&gt;&lt;/A&gt;)&lt;BR&gt;&lt;BR&gt;&amp;nbsp;&amp;nbsp; 5.18측 및 유언비어에 편승하는 미디어는 마치 광주사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유명 인물이었던 것처럼 착각하도록 유도해 왔다.&amp;nbsp;&amp;nbsp;그러나 만약 그가 남한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고급 정보를 갖고 있었던 강명도가 모를 리 있었을까?&amp;nbsp;&amp;nbsp;정치 시사 분야의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던 김동길 교수조차도 1980년 6월 이전에는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를 들어본적이 없다고 했다.&amp;nbsp;&amp;nbsp;그러면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은 전두환이 누군지 알았을까?&amp;nbsp;&amp;nbsp;그 사실이 궁금하여 역사학도는 2007.07.11 13:05 에 한동석 중위에게 다음과같이 질문하였다:&lt;BR&gt;&lt;BR&gt;&lt;&lt;먼저 광주에서 투사회보라는 이름의 벽보 혹은 삐라들을 통해서 5월 18일부터 전두환이란 이름을 광주시민들이 처음 듣게 되는데요. 사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국민은 전두환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민간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름이었지요. 한동석님은 당시 소대장의 위치에서 전두환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었는지요.&gt;&gt;&lt;BR&gt;&lt;BR&gt;&amp;nbsp;&amp;nbsp;이 질문에 대해 2007.07.11 15:47 에 한동석 중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lt;BR&gt;&lt;BR&gt;&lt;&lt;전혀 들어보지 못했읍니다. 도청 재탈환(5/27) 된 후에 2-3일 동안 시내 무기회수 작전에 부대의 간부(당시호칭: 하사관과 장교) 1명과 예비군 중대장(사복차림)과 사복 형사 ,3인조로 구성하여 어디인지 지역명은 잘 모르지만 우범지역이었던 것은 확실함. 이미 모두 도주한 상태여서 젊은 남성들은 만나보기 힘들었읍니다. 그리고 시내는 정리정돈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나,시내를 조금 벗어난 지역에는 방화된 차량등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처참했던 상황들을 예상할 수가 있었읍니다. &lt;BR&gt;&lt;BR&gt;그리고, 6월 초에 구례에 있는 예비군 관리대에 보직 명령을 받고 전출되어 구례읍내에서 영외거주(하숙) 하면서 하숙집 TV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 자격으로 연설하는 모습을 처음으로보았읍니다. 그전에는 전혀 &quot;전두환&quot;이란 세글자를 보지도 못했읍니다.&gt;&gt; (&lt;A href=&quot;http://blog.daum.net/sionvoice/1035784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blog.daum.net/sionvoice/10357845&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면 폭동진압작전에 동원되었던 공수부대원들은 전두환이 누군지 알았는가?&amp;nbsp;&amp;nbsp;하급 장교들에게조차 그 이름은 아직 생소한 이름이었음을 당시 3공수여단 12대대 소속 김치년씨는 이렇게 증언한다:&amp;nbsp;&amp;nbsp;&quot;구호들 가운데 나와 같은 하급장병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도 있었다. 다름 아닌「전두환」이었다...그가 우리 부대를 지휘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지휘계통상에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것은 진압군인들과 전두환씨와의 관계설정이 현실적으로는 이만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quot; (&lt;A href=&quot;http://cafe.daum.net/518cafe/8yGb/8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cafe.daum.net/518cafe/8yGb/80 )&lt;/FONT&gt;&lt;/U&gt;&lt;/A&gt;&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면 광주시민군은 전두환이 누군지 알고 있었는가?&amp;nbsp;&amp;nbsp;아니다.&amp;nbsp;&amp;nbsp;대다수의 시민군은 그가 학생인지 공무원인지 서울 사람인지 광주 사람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amp;nbsp;&amp;nbsp;그래서 당시 나이 24세로 대입재수생이었던 시민군 이수범은 &quot;우리는 전두환이 어떻게 생긴 놈인지도 몰랐는데 항쟁이 끝나고 나니 대통령으로 출마를 하네 어쩌네 하면서 난리를 떨었다. 그제야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알았다.&quot;고 증언한다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zb41pl7/bbs/view.php?id=ja_03&amp;page=7&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369&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시민군 이수범의 증언&lt;/FONT&gt;&lt;/U&gt;&lt;/A&gt; 중 네번째 작은 제목 &quot;진상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라&quot; 이하.&lt;BR&gt;&lt;BR&gt;&amp;nbsp;&amp;nbsp; 시민군 최인영도 &quot;우리는 이곳에서 주로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는 구호를 외쳤는데, 나는 전두환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나름대로 '광주사태'비극을 일으킨 장본인일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목청껏 외쳤다.&quot; 고 증언한다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510.html&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510.html&lt;/FONT&gt;&lt;/U&gt;&lt;/A&gt; 에서 세번째 작은 제목 &quot;남평 무기고를 털다&quot;의 끝단락).&lt;BR&gt;&lt;BR&gt;&amp;nbsp;&amp;nbsp; 시민군 김행주도 &quot;5·18 당시도 전두환이 누군지도 몰랐었다.&quot;고 증언하며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619.html&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619.html&lt;/FONT&gt;&lt;/U&gt;&lt;/A&gt; , 시민군 김용균도 &quot;특히 수사관들은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오히려 '전두환'이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사실 나는 전두환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수사관은 전두환의 이름 대신에 000으로 표시했다.&quot;라고 증언한다 (&lt;A href=&quot;http://cafe.daum.net/518cafe/8yGb/3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cafe.daum.net/518cafe/8yGb/30&lt;/FONT&gt;&lt;/U&gt;&lt;/A&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EMBED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HWW36g3kHaI$ width=502 height=39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bgcolor=&quot;#000000&quot;&gt;&lt;/EMBED&gt;&lt;BR&gt;&lt;BR&gt;&amp;nbsp;&amp;nbsp; &quot;활기 되찾은 광주&quot;라는 제목의 위의 영상 뉴스가 제작되었던 6월 1일 공교롭게도 광주사태에 대한 정반대의 시각의 두 문서가 공개되었으니&amp;nbsp;&amp;nbsp;하나는 계엄사 발표 『광주사태』 전문(&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ument/mleh-report.pdf&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study21.org/518/document/mleh-report.pdf&lt;/FONT&gt;&lt;/U&gt;&lt;/A&gt; )이요, 다른 하나는 &quot;찢어진 깃발&quot;이란 이름의 유언비어 책자였다.&amp;nbsp;&amp;nbsp;계엄사 발표 『광주사태』 전문은 단 한번에 신문에 게재되었던데 비해, &quot;찢어진 깃발&quot;은 천주교 신부들의 주선으로 일본 기독교 신문들에 실리고, 로마 교황청에 보내진 후, 전국과 여러나라로 계속 유포되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김건모와 김문 두가지 이름을 사용하며 &quot;찢어진 깃발&quot;이란 유언비어 책자를 제작하여 유포하였던 사기꾼은 광주사람이 아니었다.&amp;nbsp;&amp;nbsp;그는 5월 19일 광주로 들어와 유언비어를 유포하다가 24일 홀연히 광주를 떠났기에 광주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amp;nbsp;&amp;nbsp;5월 19일 광주로 들어온 외부인이 어떻게 5월 18일 사건의 목격자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25일부터 27일까지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증언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amp;nbsp;&amp;nbsp;그리고 유언비어 퍼뜨리기에도 바빴을 그 며칠간에 어떻게 200쪽이 넘는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amp;nbsp;&amp;nbsp; 어느 사기꾼이 극장에서 &quot;불이야&quot;라고 외쳐 겁에 질린 관객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다가 넘어져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그 가해자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자이다.&amp;nbsp;&amp;nbsp;광주사태 때 유언비어를 퍼뜨려 폭동을 선동했던 김문은 분명 가해자였다.&amp;nbsp;&amp;nbsp;그런 그가 목격자를 자처하며 &quot;찢어진 깃발&quot;이란 책자를 내었던 것이다.&amp;nbsp;&amp;nbsp;계엄사 발표 『광주사태』 전문은 그 서술의 정확성이 날로 입증되는데 비해, &quot;찢어진 깃발&quot;은 그 거짓이 날로 드러나 이제는 5.18측에서조차 외면하거나 감추는 책자가 되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유언비어를 책자로 퍼뜨린 이는 김문이었으나, 5월 18일부터 전화로 유언비어를 퍼뜨린 인물은 김상집이었다.&amp;nbsp;&amp;nbsp;그는 여전히 이런 주장을 한다: &lt;BR&gt;&lt;BR&gt;&lt;&lt;외신 기자들은 우리에게 20일 첫날에는 열 손가락을 활짝 펴보이며 '열흘만 투쟁을 계속하면 우리가 이긴다'고 격려했다. 광주학살로 인해 국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이 결국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민주정부가 수립되리라는 것이었다. 열 손가락이 하나씩 줄기 시작하여 26일에는 세 손가락만 펴 보이며 '사흘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길 것' 이라며 격려했다.&gt;&gt; (&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00360&amp;PAGE_CD=N0000&amp;BLCK_NO=3&amp;CMPT_CD=M0009&amp;NEW_GB=&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김상집의 주장을 오마이뉴스에서 더 읽기&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런데, 아래 광주사태 당시 해외 뉴스 동영상이 있는바, 외신 기자들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amp;nbsp;&amp;nbsp;며칠만 더 버티면 광주시민군이 이긴다는 말은 외신 기자들의 말이 아니라, 윤상원의 말이었다.&lt;BR&gt;&lt;BR&gt;&lt;EMBED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PWOYtgifxQs$ width=502 height=39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bgcolor=&quot;#000000&quot;&gt;&lt;/EMBED&gt;&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면 우리는 어느 시각에서 광주사태를 바라보아야 하는가?&amp;nbsp;&amp;nbsp;여기서 우리는 김동길 교수의 시각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amp;nbsp;&amp;nbsp;여기 단 한번밖에 광주사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는 인물이 있다.&amp;nbsp;&amp;nbsp;그럼에도 여기 그 누구보다도 광주사태에 대한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다.&amp;nbsp;&amp;nbsp;양김씨는 김동길 교수의 지지가 있었기에 정계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amp;nbsp;&amp;nbsp;한민통이란 간첩단 출신의 김대중에게 김동길 교수의 지지는 신원보증수표와 같았다.&amp;nbsp;&amp;nbsp;김대중이 그의 내란 음모를 진행하던 때에 김동길 교수의 이름을 최대한으로 팔았다.&amp;nbsp;&amp;nbsp;김동길 교수는 그런 사실을 모른채 김대중이 자기 이름을 팔도록 내버려 두었다.&amp;nbsp;&amp;nbsp;김대중은 김동길 교수의 이름을 팔며 민주팔이 횡재를 하였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피해자는 김동길 교수였다.&amp;nbsp;&amp;nbsp;연세대 총장 후보감이었던 그는 몇년간 강단을 떠나야 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김동길 교수가 김대중을 지지하였을 때는 무엇이든 김대중이 하는 일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식되었다.&amp;nbsp;&amp;nbsp;김문은 유언비어 유포를 김대중 지지 수단으로 삼았다.&amp;nbsp;&amp;nbsp;그리고 김대중 지지에 발벗고 나선 이들은 악성 유언비어에 너그러웠으며, 심지어 목적을 위한 한 수단으로 정당화하였다.&amp;nbsp;&amp;nbsp;1988년 김동길 교수는 여전히 김대중을 지지하였다.&amp;nbsp;&amp;nbsp;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이 광주사태를 &quot;광주민주화운동&quot;으로 호칭할 것을 발의하였을 때 유독 반대 의사를 칼럼으로 기고하였던 이가 김동길 교수였다.&amp;nbsp;&amp;nbsp;무장봉기를 민주화운동이라 부르면 역사논리가 잘못되기에 그는 반대하였던 것이다.&amp;nbsp;&amp;nbsp;그리고, 오늘날 그는 김대중은 사기꾼이라고 강연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이 모두 옳았음을 역설한다.&amp;nbsp;&amp;nbsp;사실 광주사태의 피해 당사자였음에도, 역사학자로서 역사의 진실 편에 서기를 선택한 것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김동길 교수는 광주사태에 개입되어 있었는가?&amp;nbsp;&amp;nbsp;김대중이 김동길 교수 이름을 팔기 위해 작성했던 주동자 명단으로는 그러했다.&amp;nbsp;&amp;nbsp;그래서 그런 오해를 살 여지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한번도 무장봉기를 옹호한 적이 없었다.&amp;nbsp;&amp;nbsp;그러면, 이번에는 과연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폭동진압작전에 개입했었는지 물어보자.&amp;nbsp;&amp;nbsp;광주사태 현장에 있었던 김치년씨는 &quot;...그가 우리 부대를 지휘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지휘계통상에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quot;고 증언한다.&amp;nbsp;&amp;nbsp;도대체 무엇에 근거하여 5.18측은 &quot;전두환 광주학살 작전&quot;을 주장하였는가?&amp;nbsp;&amp;nbsp;&quot;찢어진 깃발&quot;이란 책자에 담긴 유언비어들을 무조건 맹신하여 달라고 어떤 광주시민들은 요구한다.&amp;nbsp;&amp;nbsp;그러나 유언비어가 객관적 진실을 지배할 수 있는가?&lt;BR&gt;&lt;BR&gt;&lt;EMBED src=http://www.youtube.com/v/ehaRdBAvtpc&amp;hl=en&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quot;true&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gt;&lt;/EMBED&gt;&lt;BR&gt;&lt;BR&gt;&amp;nbsp;&amp;nbsp; 지금 노무현과 박연차 회장 사이의 수백만 달러의 금전 거래에 대하여는 그 물적 증거와 증언 등이 너무도 명백하다.&amp;nbsp;&amp;nbsp;이것은 이미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amp;nbsp;&amp;nbsp;그러나 &quot;전두환 광주학살작전&quot; 유언비어에 털끝만한 객관성이라도 있는가?&amp;nbsp;&amp;nbsp; 광주청문회 당시 도저히 지휘체계 이원화를 말장난으로라도 입증해 볼 심산으로 &quot;지휘권 지휘권 해서, 의원들이 증인에게 물은 것이 별개의 표 나는 지위소를 설치해서 이원화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증인의 지휘권은 계엄을 물계엄이라고 일부 장군출신들은 얘기를 합디다만, 사령관께서도 당시에 증인은 사령관으로써 그러한 물렁물렁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바로 지휘체계 이원화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quot;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준열 장군은 &quot;저는 군생활을 통해서 그와 같이 생활을 안했습니다. 누구한테 지휘권을 침해당하거나, 저의 주어진 임무를 누구에게도 침해 안 당했습니다&quot;라고 시원스러이 대답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아래 사진에서 보듯 지금으로부터 20 년 전의 광주청문회 때 노무현의 손이 전두환 전 대통령 얼굴에 던질 명패를 집으려 폼잡는 것도 도저히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광주폭동진압작전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 찾을 수도 입증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amp;nbsp;&amp;nbsp;왜?&amp;nbsp;&amp;nbsp;그것은 &quot;찢어진 깃발&quot;이란 유언비어 책자가 광주사태에 대한 노무현의 지식과 논리의 한계였기 때문이었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clubimgfile.paran.com/historian/pds/2006/0304/1141445452_노무현2.gif&quot;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렇듯 광주사태 유언비어는 무성하였으되, 5.18측에서는 그 누구도 그런 정보의 출처를 제공하는 이기 없다.&amp;nbsp;&amp;nbsp;그러나 북한이 광주사태에 개입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김일성의 어록도 있고, 탈북자들과 탈북군인들의 증언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육하원칙에 입각한 서술이 너무도 명확하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먼저 1976년 4월 김일성이 대남 공작원들과 했던 담화 내용을 살펴보자:&lt;BR&gt;&lt;BR&gt;&lt;&lt;노동계에 침투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amp;nbsp;&amp;nbsp;투쟁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조직원을 산업현장에 새로 입사시키는 방법과 각 공장 노동자들 속에서 경향성이 좋은 노동자들을 외부에서 몰색하여 포섭하는 방법 등 크게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amp;nbsp;&amp;nbsp;전자의 경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운동 출신 핵심당원들을 고졸자로 신분위장하여 취직시키는 방법이고, 후자의 경우는 중요 위장취업 조건이 여의치 않은 공단지역 곳곳에 '노동상담소' '야학방' 같은 것을 차려놓고 노동자들이 몰려오게 하여 자연스러운 대인관겡를 형성해 가지고 물색 포섭하는 방법입니다.&amp;nbsp;&amp;nbsp;지하당 조직들은 현실 실정에 맞게 각 산업현장에 핵심들을 침투시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자들을 의식화, 조직화해야 합니다.&gt;&gt;&lt;BR&gt;&lt;BR&gt;&amp;nbsp;&amp;nbsp; 과연 김일성의 목적이 남한에서의 민주화운동이었겠는가?&amp;nbsp;&amp;nbsp;그리고 이처럼 김일성이 원하는 역할을 윤상원이 그대로 수행하고 있었음이 어찜인가? 들불야학을 통해 청소년들을 의식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졸자 신분을 감추고 노동자로 위장 취직하여 노동자들을 의식화시키고 있었다.&amp;nbsp;&amp;nbsp;광주사태를 점화시킨 이들은 항간에 잘못 알려진 대로 전남대생들이 아니라, 바로 이 들불야학 청소년들과 노동자들이었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청진에 소재한 3호청사가 바로 광주사태 때 유언비어 삐라를 살포한 곳이었다.&amp;nbsp;&amp;nbsp;그러면 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이 내린 교시를 살펴보자:&lt;BR&gt;&lt;BR&gt;&lt;&lt;10.26사태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amp;nbsp;&amp;nbsp;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amp;nbsp;&amp;nbsp;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amp;nbsp;&amp;nbsp;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amp;nbsp;&amp;nbsp;남조선의 모든 혁명 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민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gt;&gt;&lt;BR&gt;&lt;BR&gt;&amp;nbsp;&amp;nbsp; 김일성은 10.26사태를 적화통일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길 호재로 이용하려 하였으며, 그 방법으로 전민봉기를 선택했다.&amp;nbsp;&amp;nbsp;김대중 역시 그 무렵부터 전민봉기(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킬 준비에 착수하였으며, 광주사태는 그의 전민봉기음모가 광주에 국한되어 일어난 사태를 말한다.&amp;nbsp;&amp;nbsp;남한에서의 전민봉기 음모가 성공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었는가?&amp;nbsp;&amp;nbsp;전민봉기는 김일성이 이기기 위한 수순이었다.&amp;nbsp;&amp;nbsp;우리는 광주사태 주동자들이 &quot;며칠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quot;라고 한 말의 의미를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북한 사회 안전부 소속 특수부대 군관 출신 탈북자, 특수부대 정치군관 출신으로 임 천용씨와 더불어 자유북한군인연합 공동대표인 최 중현씨는 1980년 5월 광주사태 직전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이 내린 비밀교시를 이렇게 인용한다:&lt;BR&gt;&lt;BR&gt;&lt;&lt;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 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lt;BR&gt;&lt;BR&gt;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주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 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gt;&gt; (&lt;A href=&quot;http://kforum.co.kr/bbs/view.php?id=all&amp;page=10&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518&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한국논단 2007년 2월호&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리고 아래의 대자보에서 보듯 5월 22일 윤상원이 광주에 해방구를 설치한 후에 발행한 투사회보를 통해 지시하는 전민 항쟁 전개 수순이 김일성의 비밀교시 내용과 상당히 흡사함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amp;nbsp;&amp;nbsp;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있었으며, 방송국 등 주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있었으며, 해방구 본부가 임시 혁명정부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alt=http://study21.org/518/photo/5_22dajabo.jpg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5_22dajabo.jpg&quot;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2006년 12월 20일의 기자회견중 “5.18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저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상급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못 벗고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는 광주사태의 긴급 속보를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을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당시 경험을 전한 최대표는 그 후 7군단 10사단장이었던 여 병남과 참모장 김 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투입됐는데 희생이 컸지만 공로도 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여기서 북한군 침투설에 대한 흔한 반론이 &quot;1개대대라면 5백명 정도의 인원인데, 이 많은 인원이 광주에 들키지 않고 진입하는게 가능 하였을까?&quot;이다.&amp;nbsp;&amp;nbsp;그런데,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최 대표의 이어지는 증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거나 아직 광주사태의 분명한 팩트를 보지 못하고 있기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모든 탈북군인들과 탈북자들의 일치하는 증언은 600명이 동시에 침투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300명씩 두 떼거리로 나뉘어 한 때거리씩 침투하였다는 것이다.&amp;nbsp;&amp;nbsp;최 대표는 4군단 70정찰대대 출신 이 덕선 씨에게 당시 인민 무력부 정찰국 소속 정찰 대대들이 광주에 투입된 정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들었다고 했다. 이 덕선씨에 따르면 광주에 투입된 인원은 모두 600명. 선봉 부대는 2군단 정찰대대 300여 명이었다. 나머지 300여 명은 인민군 각 군단, 저격여단 등에서 차출한 정예 병력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대동강 하류에 있는 남포시 인근에서 고깃배로 위장한 대형 공작선에 300명을 태우고 출발, 공해상을 거쳐 북한에서는 백암이라고 알려진 서해상으로 침투했다. 나머지 300명은 북한 동해안 신포지역의 馬養島(마양도)에서 출발해 잠수함을 타고 전남 지역으로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찰국 5부장이 공해상에서 대기 중인 배에 타고 현장을 지휘했다고 한다.&amp;nbsp;&amp;nbsp;사회 안전부 소속 특수부대에서 수송 장교였던 탈북자도 1980년 5월 당시 ‘머구리(潛り=잠수라는 일본말이 전화됨) 작전’이라는 비밀 임무를 목격했다고 한다. 그는 “이때 8명에서 12명 정도의 사람들이 M-1소총을 들고 남조선 군복을 입고 대동강 하류로 빠져 나가는 것을 봤다”며 북한군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M-1 소총과 남조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amp;nbsp;&amp;nbsp;뮤지컬 요덕 스토리의 안무가로도 유명한 김영순 씨는 요덕 수용소 생활 후 ‘장진광산’이라는 곳에 있으면서 특수부대 군관 출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amp;nbsp;&amp;nbsp;이때 군관 출신들은 “광주 사건 당시 500~700명 정도 투입되었다&quot;는 말을 들었다고 그녀는 증언한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렇듯 모든 탈북자들의 증언은 300명씩 두 팀이 침투하였다는 사실을 가리키거니와 그 사건 전개 과정에 대해 이어지는 증언을 좀 더 들어보자.&amp;nbsp;&amp;nbsp;1980년 초에 김일성은 현 북한노동당 비서 김 중린을 개별적으로 불러 한국내의 현 정세를 이용하여 비밀공작 조직을 더욱 활발히 움직이는 데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lt;당시 김일성은 한국내의 비밀공작 조직들을 통해 광주에서 대규모 항쟁이 준비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받고 현 북한노동당 비서 김 중린을 불러 광주항쟁에 대비한 북한군의 지원 작전을 지시하였고 김 중린은 북한 정찰국 및 특전사부대들을 광주봉기에 투입할 것을 당시 북한군 정찰국장으로 있던 장 성우와 정찰국 5부장 이 하일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달하였다. &lt;BR&gt;&lt;BR&gt;1980년 5월 초. 김일성은 루마니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루마니아방문이 예정되어 있었고 5월 말까지 루마니아에 이어 구라파 방문일정을 소화하게 되어있었다. 루마니아 방문 출발 직전에 김일성은 김정일과 김 중린을 불러 장차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태에 대응할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김 중린의 증언을 사적인 자리에서 직접 청취하였음) 김일성은 광주사태로 인한 향후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비하여 5월말까지 예정 되었던 루마니아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5월 13일 귀국하였다. &lt;BR&gt;&lt;BR&gt;남포에 집결한 전투인원들을 환송하는 연회장에 김정일을 대동 하여 김 중린. 이 하일이 참가했으며 김정일은 당시 전투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그들을 고무하였다. 그 자료는 현재 평양시 룡성 구역 룡추2동 대남 사적관 지하전시실 2관에 보관되어있다. 환송회를 마친 남파 인원들은 1척의 대형 공작선에 승선하여 남포항을 출발하였다. 당시부터 남파된 부대의 전체 지휘는 정찰국 5부장 이 하일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남포루트를 통해 침투되었던 당사자들은 공해상에서 민간인 복장을 하고 남한 서해안의 백암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들어갔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총책 이 하일은 공해상에서 광주현장에 침투된 무장인원들을 지휘하였다. &lt;BR&gt;&lt;BR&gt;현장을 총괄 지휘하던 이하일은 계엄군에 의해서 광주정세가 역전되자 인원들의 철수를 지시했으며 1980년 5월25일. 부상인원을 포함한 약 400명 정도의 남파되었던 인원들이 1차로 남포항으로 도착했고 나머지 인원 70 여명은 광주에서 죽은 40 여명의 시신에서 일부 부위만을 채취하여 중부전선인 강원도 철원군 상요리 일대의 전선을 넘어 귀대하였다. &gt;&gt; (&lt;A href=&quot;http://kforum.co.kr/bbs/view.php?id=all&amp;page=10&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518&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한국논단 2007년 2월호&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런데, 현 북한노동당 비서 김 중린이 광주사태에 깊이 개입하였다는 사실은 강명도의 1995년 저서 &quot;평양은 망명을 꿈꾼다&quot; 238~251쪽으로 입증이 되거니와 (&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ument/nk-kang.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study21.org/518/document/nk-kang.htm&lt;/FONT&gt;&lt;/U&gt;&lt;/A&gt; ), 과연 당시 총책 이 하일이 300 명씩 두 떼거리를 광주에 침투시킨 사실이 있는지 남한 기록을 살펴보자.&amp;nbsp;&amp;nbsp;여기서 300명이란 숫자가 중요한 것인데, 놀랍게도 5.18측 자료들이 300명씩 두 떼거리가 광주로 침투한 사실이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지 아니한가!&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police-dress4.jpg&quot; vspace=5 name=zb_target_resize&gt;&lt;BR&gt;&amp;nbsp;&amp;nbsp; 먼저 위 사진을 살펴보자.&amp;nbsp;&amp;nbsp;집총 자세의 이들은 누구인가?&amp;nbsp;&amp;nbsp;전경이 아니었다.&amp;nbsp;&amp;nbsp;그때는 아직 시위 진압을 전담하는 전경 부대가 없었던 시대였으며, 또 전경이 M-1 총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amp;nbsp;&amp;nbsp;이들은 공수부대원들도 아니었다.&amp;nbsp;&amp;nbsp;그러면 이들은 누구였는가?&amp;nbsp;&amp;nbsp;시민군이었다.&amp;nbsp;&amp;nbsp;그러나 문제는 광주사람들로 구성된 시민군이었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침투한 시민군이었는지의 문제이다.&amp;nbsp;&amp;nbsp;시민군이 전경 제복을 빼앗아 입을 수는 있어도 군화는 발의 사이즈가 달라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amp;nbsp;&amp;nbsp;그런데, 위 사진의 무장단체는 한결같이 같은 모양의 단화를 신고 있다.&amp;nbsp;&amp;nbsp;만약 광주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신발 모양이 각각 달랐을 것이다.&amp;nbsp;&amp;nbsp;위 사진은 외부에서 침투한 무장단체가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리고 탈북자들 및 탈북군인들의 증언들처럼 남한의 기록에서도 300명이란 사람 숫자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amp;nbsp;&amp;nbsp;5월 22일 계엄군 철수 이후의 광주상황은 이러하다.&amp;nbsp;&amp;nbsp;계엄군이 광주시를 전면 철수한 5월22일에도 2천여 명의 군중이 도청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3백여 명의 극렬시위자는 경찰복과 공수단 복장을 하고 복면을 한 모습으로 40 여대의 군용차량을 몰고 송정역에 집결하여 공포를 쏘면서 시위를 하였고, 관광호텔, 전일빌딩, 전남의대, 유진온천 등 건물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광주에 이르는 도로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하였다.&amp;nbsp;&amp;nbsp;여기서 경찰복장을 한 3백여 명의 극렬시위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저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 아니한가!&lt;BR&gt;&lt;BR&gt;&amp;nbsp;&amp;nbsp; 광주사태 당시 가짜 연고생 300명이 광주에 침투해 있었다는 사실은 시민군 사이에 잘 알려져 있었다.&amp;nbsp;&amp;nbsp;그리고 전옥주가 &quot;담양쪽에 연ㆍ고대생이 서울에서 내려와 계엄군의 제지를 받고 있다고 해 그쪽으로 가보면 없고, 그 뒤 곧 송정리, 목포쪽에서 온다는 소문이 계속 나돌았습니다.&quot;고 말할 때에 그 연ㆍ고대생이란 300명씩 두 떼거리를 말한다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010.html&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010.html&lt;/FONT&gt;&lt;/U&gt;&lt;/A&gt; ).&amp;nbsp;&amp;nbsp;만약 그 두 떼거리가 침투한 것이 사실이라면 600명이 침투한 것이 된다.&amp;nbsp;&amp;nbsp;그리고 한 떼거리는 목포쪽, 즉 서해안으로부터 침투하였다면 탈북자들의 증언이 맞아들어가는 것이다.&amp;nbsp;&amp;nbsp;목포쪽 침투 경로는 1968년 통혁당이란 지하당 창당을 위해 목포로 침투할 때부터 북한에서 침투 경로를 환하게 알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가설을 생각할 수 있다.&amp;nbsp;&amp;nbsp;김 중린이 광주사태 기간 내내 유언비어 삐라를 살포했다는 강명도의 증언을 고려해 본다면 전옥주는 남파공작원이 전해주는 쪽지대로 선무방송을 한 것이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amp;nbsp;&amp;nbsp;선무방송 내용을 전옥주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계속 쪽지를 건네 주었다.&amp;nbsp;&amp;nbsp;전옥주 본인도 그 쪽지를 건네준 자들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자기가 어떤 세력에 이용당했을 가능성을 표현했던 것이다.&amp;nbsp;&amp;nbsp;두번째 가설은 과연 가짜 연고생 300명(두 떼거리였을 경우 600명)의 정체가 무엇이었느냐에 관한 것이다.&amp;nbsp;&amp;nbsp;당시 시위의 주축은 이해찬, 심재철, 유시민, 한홍구 등 서울대 운동권이었는데, 과연 서울대와 이화여대를 제외시키고 연고대만 광주에 침투하였겠는가?&amp;nbsp;&amp;nbsp;고대생 수백 명이 광주로 침투한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의 증인은 당시 고대 총학생회장으로 노무현의 측근인 신계륜 의원이다.&amp;nbsp;&amp;nbsp;그는 그때 도망다니기에 바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연대생 수백 명이 광주로 침투한 사실이 없었음도 훗날 5.18행사 때 &quot;찢어진 깃발&quot;이란 유언비어 책자를 인용하여 대자보를 만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amp;nbsp;&amp;nbsp;그리고 어떻게 그 숫자가 299명도 301명 아니고 300명이었다는 말인가?&amp;nbsp;&amp;nbsp;5월 21일 이후 광주사태에 침투하는 것은 국군과의 전투를 위해 침투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과연 사격 훈련조차 받지 않았던 대학생 수백명이 우르르 자원하여 몰려왔을까?&amp;nbsp;&amp;nbsp;만약 왔다면 어째서 서울의 연고생으로 구성된 시민군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사망자나 부상자가 없었던 것일까?&amp;nbsp;&amp;nbsp;그리고 왜 그들 중에 단 한 명의 유공자도 없고, 단 한 명의 증인도 없는 것일까?&amp;nbsp;&amp;nbsp;그래서 가짜 연고생들의 정체가 의심스럽다는 가설이 가능하다.&amp;nbsp;&amp;nbsp;이 가설 외에는 가짜 연고생 300 명의 정체를 설명할 다른 가설이 불가능하다.&amp;nbsp;&amp;nbsp;그렇다면, 북한군은 연고생이란 간판을 걸어 신분을 위장하고 침투하였던 것이었다는 가설이 제기되는 것이다.&lt;BR&gt;&lt;BR&gt;&lt;EMBED src=http://www.youtube.com/v/0vnqT1lTBFo&amp;hl=en&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EMBED&gt;&lt;BR&gt;&lt;BR&gt;&amp;nbsp;&amp;nbsp; 1989년 1월 26일자 광주청문회 동영상인 위 동영상 3:08에서부터 &quot;김영택 씨는 또 5월 22일에는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 300여 명이 시위에 합류했으며 오후부터는 복면을 쓴 사람들이 시위 군중 속에 나타나 강경 구호를 외치거나 시민군의 총기 반납을 저지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여 이들의 정체에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quot;라는 멘트가 들린다.&amp;nbsp;&amp;nbsp;외부에서 300 여명이 광주로 침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복면부대가 출현하였다.&amp;nbsp;&amp;nbsp;그리고, 그 복면부대를 김영택 기자는 외부에서 침투한 불순세력으로 규정한다 (&lt;A href=&quot;http://study21.org/518/photo/rioters-in-mask.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photo/rioters-in-mask.htm&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study21.org/518/photo/rioters-in-mask.htm&lt;/FONT&gt;&lt;/U&gt;&lt;/A&gt;&lt;/A&gt; ).&amp;nbsp;&amp;nbsp;이 경우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 300 명의 진짜 정체는 외부에서 침투한 불순세력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amp;nbsp;&amp;nbsp;탈북자들도 북한군 300명이 침투했다고 증언한다.&amp;nbsp;&amp;nbsp;그렇다면 광주에 침투한 300 명의 불순세력과 북한군 300명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냐는 질문은 과연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lt;BR&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A&gt;&lt;BR&gt;&lt;BR&gt;☞&amp;nbsp;&amp;nbsp;&lt;A href=&quot;http://study21.org/518/rumor/fleet.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광주시민군의 우방은 미국인가 북한인가?&lt;/FONT&gt;&lt;/U&gt;&lt;/A&gt;&amp;nbsp;&amp;nbsp;&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5-20.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0066cc&gt;&lt;U&gt;이광재 의원, 그 타박상 사인 가해자는 5.18폭도들이라오&lt;/U&gt;&lt;/FONT&gt;&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nk-Kang.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광주에서 민주화운동한 북한세력&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5-21-bullet.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시민군이 선제 발포하였다&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index.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광주사태 종합 자료실&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quot;&lt;--&gt;&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노무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무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전두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두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김대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대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민주화운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민주화운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동영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동영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증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증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와 북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와 북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연차 회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연차 회장&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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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주에서 민주화운동한 북한 세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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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04-08T19:29:56Z</updated>
	    <published>2009-04-08T19:29:5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amp;nbsp; 최근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미국과 일본 등 동맹국 이지스함들이 한반도 가까이 출동하였을 때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았는데, 이는 여차하면 일본과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amp;nbsp;&amp;nbsp;1980년 5월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이 항공모함 두 대를 한국에 급파하였을 때, 그 승무원들에게는 그것은 전쟁터로 떠나는 경험이었다.&amp;nbsp;&amp;nbsp;그때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위해서 항공모함 두 대가 한반도로 떠난 것이 아니라, 실전에 동원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출항하였기 때문이었다.&amp;nbsp;&amp;nbsp;그런데, 각종 악성 유언비어들을 제조하여 폭동을 선동했던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심지어 미항공모함 입항이라는 빅 시사뉴스조차도 유언비어의 제조의 재료로 삼아 선동질하였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광주사태 당시 김대중의 최측근이었던 김상집은 가히 5.18유언비어의 원조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amp;nbsp;&amp;nbsp;나중에 김문이란 사기꾼이 쓴 &quot;깃발&quot;이란 제목의 유언비어 책자로, 그리고 지명관이란 사기꾼이 TK란 필명으로 그 유언비어 책자가 일본에서 발행되게 함으로 짧은 시간에 5.18유언비어가 전세계로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지만 (&lt;A href=&quot;http://kforum.co.kr/bbs/view.php?id=all&amp;page=22&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22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5.18사기꾼 지명관에 대한 기사 참조&lt;/FONT&gt;&lt;/U&gt;&lt;/A&gt; ) 처음 전화를 이용해 유언비어를 전국으로 퍼뜨렸던 인물이 바로 김상집이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당시 김대중의 핵심조직이 광주에서 녹두서점을 운영하면서 조총련으로부터 북한사상서적 등을 보급받아 전국 운동권 서점에 보급하였는데, 그런 좌익 서점들을 김상집은 사회과학 서점이라 부른다.&amp;nbsp;&amp;nbsp;5월 18일 난동자들이 순경 45명을 인질로 납치하자 전북 금마의 7공수 2개 대대가 출동하였을 때 아무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amp;nbsp;&amp;nbsp;그러나, 김상집은 광주학살 유언비어를 지어내 전화로 전국 운동권 서점에 그 유언비어를 퍼뜨렸던바, 그는 그날의 그의 행동을 이렇게 뽐낸다:&amp;nbsp;&amp;nbsp;&quot;녹두서점에 앉아 광민, 돌베개, 일월서각, 대구양서조합, 부산양서조합 등 책에 적힌 전화번호와 전국 각지에 있는 사회과학 서점에 전화를 걸어 광주의 학살소식을 전달하였다.&quot;&lt;BR&gt;&lt;BR&gt;&amp;nbsp;&amp;nbsp; 2007년 오마이뉴스는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를 지원하기 위해 이 김상집(참여21 대표)이란 인물의 그때의 활동을 특별기획으로 보도하였는데, 미항공모함 두 대가 한반도로 급파된 사건에 대해서 김상집은 이렇게 주장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외신 기자들은 우리에게 20일 첫날에는 열 손가락을 활짝 펴보이며 '열흘만 투쟁을 계속하면 우리가 이긴다'고 격려했다. 광주학살로 인해 국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이 결국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민주정부가 수립되리라는 것이었다. 열 손가락이 하나씩 줄기 시작하여 26일에는 세 손가락만 펴 보이며 '사흘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길 것' 이라며 격려했다.&gt; (&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00360&amp;PAGE_CD=N0000&amp;BLCK_NO=3&amp;CMPT_CD=M0009&amp;NEW_GB=&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김상집의 주장을 오마이뉴스에서 더 읽기&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5월 20일에는 광주에 아직 미국인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amp;nbsp;&amp;nbsp;그렇다면 외신 기자들이란 누구를 말하는가?&amp;nbsp;&amp;nbsp;조총련을 의미하는가?&amp;nbsp;&amp;nbsp;사기꾼 김상집이 퍼뜨린 유언비어들을 그대로 따라 제작된 &quot;화려한 휴가&quot;는 한술 더 뜬다.&amp;nbsp;&amp;nbsp;김신부가 뉴스타임즈 신문을 들고와 희망을 주었다.&amp;nbsp;&amp;nbsp;&quot;5일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amp;nbsp;&amp;nbsp;부산에 미항공모함이 입항했다.&quot;&amp;nbsp;&amp;nbsp;그러나 영화 제작자가 생각해도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말은 관객에게 거짓말이 탄로나기 쉽상이었던 모양이다.&amp;nbsp;&amp;nbsp;그래서 영화에서 시민군 대장 박흥수가 &quot;미항공모함은 우리 편이 아니라 군사독재 편&quot;이라고 말한다.&lt;BR&gt;&amp;nbsp;&amp;nbsp; &lt;BR&gt;&amp;nbsp;&amp;nbsp; 자, 가짜 시민군 대장 박흥수가 미항공모함은 우리 편이 아니라 군사독재 편&quot;이라고 말했을 때 그렇게 주장할 근거가 있었는가?&amp;nbsp;&amp;nbsp;그리고 5.18유언비어의 원조 김상집이 &quot;외신 기자들은 우리에게 20일 첫날에는 열 손가락을 활짝 펴보이며 '열흘만 투쟁을 계속하면 우리가 이긴다'고 격려했다&quot;고 말했을 때 그 말을 입증할 근거가 있는가?&amp;nbsp;&amp;nbsp;5.18측은 영화 속의 시민군 대장 박흥수도 지지하며, 유언비어들을 제조하여 퍼뜨린 실존인물 김상집도 지지한다.&amp;nbsp;&amp;nbsp;그러면 도대체 5.18의 입장은 무엇인가?&amp;nbsp;&amp;nbsp;김상집의 주장대로 미항공모함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입항하였다는 말인가?&amp;nbsp;&amp;nbsp;아니면 영화 속의 시민군 대장 주장대로 군사독재를 지원하기 위해 입항하였다는 말인가?&lt;BR&gt;&lt;BR&gt;&lt;EMBED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YlZ0txWklLQ$ width=502 height=39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gt;&lt;BR&gt;&lt;BR&gt;&amp;nbsp;&amp;nbsp; 사실 입증은커녕 &quot;언제?&amp;nbsp;&amp;nbsp;어디서?&amp;nbsp;&amp;nbsp;누가?&quot; 등의 기본 서술조차 하지 못한채 유언비어들을 제조했던 5.18사기꾼들과 달리 탈북자들 및 탈북군인들의 증언들은 그 논거가 명확하며 객관성이 입증된다.&amp;nbsp;&amp;nbsp;한국논단 2007년 3월호에서 자유북한 군인연합의 임천용 대표는 5.18단체들에 이렇게 도전한다:&lt;BR&gt;&lt;BR&gt;&quot;㉣ 1980년 5 18당시 북한군 특수부대들이 전투준비 동원령을 받고 각 부대의 임무사항에 따라 실전을 위한 대기상태에 임했던 사실에 대해서 아니라고 반박하라.&lt;BR&gt;㉤ 5 18이후 각 군단, 사 여단 정치부 및 참모부에 발송된 광주사건과 관련된 조선인민군 총 정치국, 총 참모부 기밀문건은 출처가 없는 것이라고 해명하라.&quot; (&lt;A href=&quot;http://kforum.co.kr/bbs/view.php?id=all&amp;page=10&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523&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한국논단 2007년 3월호 기사 &quot;광주대학살의 주범은 전두환 아닌 김정일이다&quot;&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위 동영상에서 보는 대로 임천용 대표는 다음과 같은 팩트, 객관적 사실들을 제시한다:&lt;BR&gt;&lt;BR&gt;&lt;&lt;“우리는 광주사건에서 많이 얻었지만 놓쳤고 놓쳤지만 내일을 위해서 남겼다. 후속 작전을 위한 성과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82.2월경, 김선일(김정일의 사촌동생)에게 내부적으로 내려온 인민군총정치국 발 “광주작전 평록”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일부이다.&lt;BR&gt;(1981.6월 하기훈련 직전 평남덕천 교도지도국(한국에서 명명하는 특수8군단) 본부에서 열린 지도국산하 여단장 정치위원 및 대대장, 대대정치지도원을 위한 군사정치일군상학에서 김일성이 발언한 요지일부. 이 내용은 교도지도국 산하 여단, 대대참모부에 군관용기밀문서로 하달 되였으며 일반군단 및 사, 여단에는 배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음)&lt;BR&gt;(....)&lt;BR&gt;광주봉기에 북한군 570산하 여단들에서 선정된 인원들이 투입됐다는 것은 북한쪽에서 떠도는 출처미상의 유언비어가 아니라 김일성이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 1981.6월, 지도국사령부에서 열린 특전여단 군사정치일군 상학에서 김일성은 ‘지금까지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세 번 놓쳤는데 그중에 광주가 제일 아까워. 우리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태만했어. 너무 쉽게 생각했어. 광주가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놓쳤어,,,’(1981.6월 발 참모부기밀문서 요지)라고 직접 발언했다. 김정일 역시 1982년 1월~3월까지 북한군특전여단(16저격여단. 17여단. 53여단. 43여단. 818여단. 19여단. 59여단.)들이 북부지구에서 벌린 사상최대의 게릴라전 쌍방훈련장소를 극비방문한 자리에서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진압됐다... 땀이 적었고 훈련부족이다. &lt;BR&gt;교도지도국은 남조선해방의 전초병이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남조선으로)당장 나갈 수 있게 만단의 동원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군관, 사관용 정치상학요강) 와 같이 광주봉기에 북한군이 개입했던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 &lt;BR&gt;그 뿐만이 아니다. 김정일은 1981.6.21일 강원도 고성군 온정 리(1군단지구)를 시찰하는 과정에서도 군인들이 옷 단추를 풀어놓고 무질서하게 다니는 현상을 엄하게 비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시기에도 조국을 위해 적들 속에 들어가서(광주봉기를 뜻함) 피를 흘리고 싸우는데 후방에 있는 군인들이 이렇게 해이되면 되겠느냐. 인민군대가 너무 만성적으로 해이되고 있다. 사상투쟁을 진행해서 강한 규율을 세워라’고 발언하는 과정에서도 광주에 북한군특전사요원들이 개입됐음을 분명히 했다. 6.21김정일 발언을 계기로 당시 북한군 전반 부대들에서 몇 개월간 사상투쟁의 돌풍이 일어났고 열물까지 토해내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다.&lt;BR&gt;북한군 특전사 요원들이 광주봉기에 투입됐던 자료에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김선일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lt;BR&gt;북한군특전사를 대표하는 교도지도국과 일반군단 소속 저격, 경보병 여단에서 복무한 사관급 이상 경력자들은 1980년5월, 산하 부대들에서 특출 된 인원들이 광주봉기에 실제로 참가한 사실과 당시 현장에서 중무기를 비롯한 각종 윤전기재(탱크 등)를 다루며 항쟁을 유도한 사람들이 남쪽의 일반 민간인들이 아니라 대부분 북쪽의 군인들이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lt;BR&gt;1982년부터 특전사 내에서 광주봉기 현장에서 있었던 접전 과정에서의 중요한 프로그램들을 대상별로 분리해서 상영하면서 적군전술상학에 도입하였고 시가전시 제기될 수 있는 상황에 자의적인 판단으로 대처할 수 있는 특전방법들을 교육하였다. 그만큼 이일은 북한군 특전부대 내에서 극비에 해당되는 일도 아니다. &lt;BR&gt;광주봉기가 한창이던 1980년 5월, 북한텔레비전은 다른 프로그램을 죽이고 실시간으로 광주상황을 방송했다. 광주봉기 과정을 보면서 북쪽에서 놀란 것은 시위자들이 현장에 투입됐던 군인들의 탱크와 전차를 탈취해서 진압군한테 반격을 가하는 장면이다.&gt;&gt; ((&lt;A href=&quot;http://kforum.co.kr/bbs/view.php?id=all&amp;page=11&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51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한국논단 2006년 12월호 &quot;북한 特戰部隊 출신자의 생생한 증언&quot;&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EMBED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jwmpjvgNH9o$ width=502 height=39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bgcolor=&quot;#000000&quot;&gt;&lt;/EMBED&gt;&lt;BR&gt;&lt;BR&gt;&amp;nbsp;&amp;nbsp; 위 동영상 뉴스 후반부에서 북한이 광주사태를 생중계하면서 광주폭동을 지지하는 군중대회를 하는 장면이 보여진다.&amp;nbsp;&amp;nbsp;탈북자들과 탈북 군인들이 광주사태 당시 보았던 장면이다.&amp;nbsp;&amp;nbsp;그리고 당시 군인들은 남한 침투 대기 명령에 동원되었으며, 주민들은 광주폭동 지지 군중대회에 동원되어 고래고래 소리 질러야 했었기에 그들에게는 광주사태가 기억에 아주 생생한 사건이었다.&amp;nbsp;&amp;nbsp;그런데, 탈북하여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자니 북한에서 남한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였다는 의미가 되므로 이상히 여기는 것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강서산 북한 전 총리의 사위로서 평양 권력층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아는 강명도가 1994년 7월 우리나라로 망명하였을 때 바로 이것이 크게 헷갈리는 문제였다.&amp;nbsp;&amp;nbsp;북조선이 남조선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였으며, 북한세력이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말인가?&amp;nbsp;&amp;nbsp;분명 그것은 아니었으니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라는 주장의 객관성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amp;nbsp;&amp;nbsp;그는 망명한지 2년도 채안되었으며, 서슬퍼런 김영삼 정권의 5.18 재판 서막이 울리던 1995년 6월 &quot;평양은 망명을 꿈꾼다&quot;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amp;nbsp;&amp;nbsp;&quot;김일성은 전두환을 두려워했다&quot;&lt;BR&gt;라는 제목 하의 이 책 237쪽부터 251쪽에서 강명도는 그가 북한에서 이해하였던 광주사태에 대한 시각을 토로하는바,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건이었으므로 그 의의가 아주 크다. &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jeep.jpg&quot;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강명도가 광주사태 당시의 북한의 동향을 책으로 저술한지 11년이 지나서 임천용 대표는 1981년 6월 북한군 지도국사령부에서 열린 특전여단 군사정치일군 상학에서 김일성이 ‘지금까지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세 번 놓쳤는데 그중에 광주가 제일 아까워. 우리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태만했어. 너무 쉽게 생각했어. 광주가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놓쳤어,,,’라고 발언했던 사실을 증언하였다.&amp;nbsp;&amp;nbsp;과연 북한 세력은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였는가?&amp;nbsp;&amp;nbsp;아니면 그 사태를 남침의 기회로 삼으려 했는가?&amp;nbsp;&amp;nbsp;김일성이 광주사태 때 기회를 놓쳤다는 말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amp;nbsp;&amp;nbsp;1995년의 그의 저서에서 강명도는 바로 그 점에 대하여 다음과같이 증언한다:&lt;BR&gt;&lt;BR&gt;&lt;&lt;&quot;광주에서 전쟁이 터졌다&quot;&lt;BR&gt;1980년 5월 18일 북한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amp;nbsp;&amp;nbsp;남조선에서 계엄군과 학생 시위대가 충돌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amp;nbsp;&amp;nbsp;일본 조총련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디오 테이프를 확보한 중앙 TV가 매일 그 테이프를 방영한 것이다. (....) 또 복면을 쓴 시민군이 탈취한 계엄군의 지프를 타고 시가지를 달려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남조선에 파견된 간첩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김중린(金仲麟)은 3호청사의 전부서에 전화를 걸었다.&amp;nbsp;&amp;nbsp;김중린은 당시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대남비서였다.&amp;nbsp;&amp;nbsp;김중린은 남조선에 구축해놓은 정보망을 총가동해 사태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amp;nbsp;&amp;nbsp;그러나 문제는 김중린이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amp;nbsp;&amp;nbsp;김중린은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직후 정책 초점을 사태파악 및 분석으로 잡았다.&amp;nbsp;&amp;nbsp;황금같은 초기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amp;nbsp;&amp;nbsp;김중린은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후 5~6일 지난 다음에야 김일성·김정일에게 최종정세 판단 보고서를 올렸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 보고서는 &quot;광주사태의 본질은 노동자, 농민, 도시 소시민, 양심적 인텔리 계급과, 매판 자본가들을 등에 업은 군부세력간의 충돌&quot;이라고 정의하고, 따라서 양자간의 갈등 관계를 증폭시킬 경우 이는 공화국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quot;이라고 밝혔다.&amp;nbsp;&amp;nbsp;또 그는 &quot;폭동이 광주에만 국한된 것이 문제&quot;라며, &quot;만일 우리가 폭동을 남조선 전역으로 확산시킬 경우 대남사업의 결정적 기회가 마련될 것&quot;이라고 결론내렸다.&amp;nbsp;&amp;nbsp;김중린은 비교적 사태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나 김중린의 실책은 광주민주화운동 응용·활용보다 사태 파악과 분석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는 것이다.&amp;nbsp;&amp;nbsp;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한 것은 5월 18일이다.&amp;nbsp;&amp;nbsp;그 후 사태는 22일에 최고조에 달했다.&amp;nbsp;&amp;nbsp;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일 뒤인 27일 계엄군의 진압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은 종식됐다.&amp;nbsp;&amp;nbsp;광주민주화운동은 단 9일간 진행된 사건이었다.&amp;nbsp;&amp;nbsp;따라서 김중린이 정세판단서를 김일성에게 올려 수표(재가)를 받았을 때쯤에 이미 광주민주화운동은 진압국면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나는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당시 얘기를 당대외연락부 6과 지도원이었던 임만복을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amp;nbsp;&amp;nbsp;그의 말에 따르면, 사태가 터지자 김중린은 모든 대남 공작원들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렸다.&amp;nbsp;&amp;nbsp;그러나 정작 3호청사 직속 청진 전투연락사무소(일명 121호 연락소)가 상부로부터 대남 침투 명령을 받은 것은 26일이었다.&gt;&gt; (237~240쪽)&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car/jeep.jpg&quot;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광주사태 때 북한주민들도 누가 시민군이고, 누가 북한군이고, 누가 계엄군이었는지 분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amp;nbsp;&amp;nbsp;위 사진에서 철모쓴 시민군과 각목을 든 난동자들이 한 지프에 탑승하여 시가지를 달리고 있다.&amp;nbsp;&amp;nbsp;북한 주민들에게는 계엄군이 시위대를 연행해가는 장면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amp;nbsp;&amp;nbsp;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철모쓴 시민군이 불순세력이었을지언정 결코 계엄군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lt;BR&gt;&amp;nbsp;&amp;nbsp;&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study21.org/photo/518/police-dress.jpg&quot;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폭도들이 경찰복으로 위장한 모습으로 지프를 타고 있는 위의 사진은 광주시민들에게도 혼동을 주었을만 하다.&amp;nbsp;&amp;nbsp;그러나 경찰이 총을 들고 있었을리 만무하며, 집총자세를 하는 순경은 없다.&amp;nbsp;&amp;nbsp;물론 시민군의 모습이지만 광주시민이라면 지프 위에서도 저렇게 군기가 들어있었을리 없으며, 더구나 시민들만 있는 곳에서 복면을 하고 있었을리 없다는데서 이 복면 무장단체는 불순세력이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강명도가 북한 전 지역의 군사동향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amp;nbsp;&amp;nbsp;그래서 북한 타 지역에서 이미 소규모로 남한에 침투한 특수부대에 대해서는 그는 모른다.&amp;nbsp;&amp;nbsp;그러나 그가 분명히 아는 것은 5월 26일 북한은 대규모 남침 준비를 완료하고 출동 명령만 기다라고 있었다는 것, 27일은 한반도의 운명의 중대 고비였다는 사실, 그리고 27일 새벽에 광주사태가 진압되었기에 북한은 남침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다.&amp;nbsp;&amp;nbsp;그러면 5월 20일 김상집이 '열흘만 투쟁을 계속하면 우리가 이긴다'는 주장을 했으며,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에서 5월 22일경 시민군이 &quot;5일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quot;고 말하였을 때 누가 어떻게 이긴다는 말인가?&amp;nbsp;&amp;nbsp;당시 시민군 사이에 퍼진 유언비어도 5월 27일의 중대 고비였음을 가리켰으며, 김일성 편에서는 만일 그날 새벽 광주사태가 진압되지 않았더라면 북한군이 남침하여 이길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 2006년 임천용 대표가 증언하였고, 1995년의 강명도의 저서로 명백하게 확인되듯이 광주사태 때 북한은 남침 절호의 기회를 아슬아슬하게 놓쳤다.&amp;nbsp;&amp;nbsp;그럼에도 광주에서 북한세력이 민주화운동하고 있었다.&amp;nbsp;&amp;nbsp;서슬퍼런 김영삼 정권 하에서 강명도는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이라 부르며 책을 써야 했다.&amp;nbsp;&amp;nbsp;그러면 무엇이 북한세력이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방법이었던가?&amp;nbsp;&amp;nbsp;그것은 유언비어 삐라를 뿌리는 것이었다.&amp;nbsp;&amp;nbsp;여태껏 광주시민들도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 유언비어들의 출처였다.&amp;nbsp;&amp;nbsp;도대체 누구의 입에서 &quot;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quot;는 유언비어가 처음 시작되었는가?&amp;nbsp;&amp;nbsp;무릇 노래 한편에도 작가가 있고, 시 한편에도 저자가 있는 법인데, 가히 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을 만했던 그 유언비어들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amp;nbsp;&amp;nbsp;그리고 어떻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똑같은 유언비어가 동시에 전국으로 퍼질 수 있었는가?&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본래 말이란 몇 다리 건너가면 전혀 다른 말이 되는 법이다.&amp;nbsp;&amp;nbsp;&quot;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다&quot;는 말도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전하다 보면 몇다리 건너서는 &quot;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quot; 등 전혀 다른 말로 전해지곤 한다.&amp;nbsp;&amp;nbsp;그런데 광주사태 유언비어는 사투리가 각기 다른 전국 8도를 돌면서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amp;nbsp;&amp;nbsp;만약 그 유언비어들이 구전으로만 전해졌다면 그것을 불가능했다.&amp;nbsp;&amp;nbsp;광주사태 유언비어는 주로 삐라로 유포되었다.&amp;nbsp;&amp;nbsp;그런데, 남한이 아닌 북한에서광주사태를 겪었던 강명도 역시 그 사실을 알며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lt;&lt;3호청사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놓고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amp;nbsp;&amp;nbsp;그러나 아무 일도 안 한 것은 아니다.&amp;nbsp;&amp;nbsp;당시 나는 3호청사의 움직임을 내 친구 이화섭으로부터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amp;nbsp;&amp;nbsp;이화섭은 당시 통전부 제1부장이었던 이동호의 아들이다.&amp;nbsp;&amp;nbsp;그는 나와 학교 동기동창으로 그 이전에는 매일 만나다시피하는 사이였는데,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는 좀처럼 그를 볼 수가 없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던 어느 날 우연치 않게 이화섭을 만났다.&amp;nbsp;&amp;nbsp;&quot;뭐 하느라고 그렇게 바쁘냐?&quot;고 묻자, 얼굴이 핼쓱해진 이화섭은 &quot;말도 마라.&amp;nbsp;&amp;nbsp;오줌 누고 뭐 볼 시간도 없다.&quot;고 하소연 하는 것이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자 그는 몇 주간 밤잠도 못 자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추기는 삐라를 만들어 살포했던 것이다. &gt;&gt; (241쪽)&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EMBED src=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fZeudaKayMU$ width=502 height=39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bgcolor=&quot;#000000&quot;&gt;&lt;/EMBED&gt;&lt;BR&gt;&lt;BR&gt;&amp;nbsp;&amp;nbsp; 강명도의 말은 북한 세력이 삐라 살포에 국한하여서만 광주에서 민주화운동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amp;nbsp;&amp;nbsp;북한의 목적은 남조선 해방이요, 환원하면 적화통일이었다.&amp;nbsp;&amp;nbsp;그러면 적화통일 음모=민주화운동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논리가 가능한가?&amp;nbsp;&amp;nbsp;아무리 이해하려 하여도 이것이 강명도에게 헷갈리는 문제였으며, 강명도뿐만 아니라 모든 탈북자들에게 그것은 논리 성립이 불가능한 모순이었던 것이다.&amp;nbsp;&amp;nbsp;위 동영상에서 보듯 광주사태 직전 북한에서 계속 무장공비들을 침투시키고 있었다.&amp;nbsp;&amp;nbsp;그러면 북한이 그들이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저렇게 특수부대를 침투시키고 있었다는 말인가?&lt;BR&gt;&lt;BR&gt;&lt;BR&gt;&amp;nbsp;&amp;nbsp; * 지금 &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doc/index.htm&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study21.org/518/doc/index.htm&lt;/FONT&gt;&lt;/U&gt;&lt;/A&gt; 을 클릭하시면 강명도 저 &quot;평양은 망명을 꿈꾼다&quot; 237~251쪽을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lt;BR&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A&gt;&lt;BR&gt;&lt;BR&gt;☞&amp;nbsp;&amp;nbsp;&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5-21-bullet.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시민군이 선제 발포하였다&lt;/FONT&gt;&lt;/U&gt;&lt;/A&gt;&amp;nbsp;&amp;nbsp;&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5-20.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0066cc&gt;&lt;U&gt;이광재 의원, 그 타박상 사인 가해자는 5.18폭도들이라오&lt;/U&gt;&lt;/FONT&gt;&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rumor/fleet.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광주시민군의 우방은 미국인가 북한인가?&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rumor/bill.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집단발포를 한쪽은 5.18무장단체였다&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index.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광주사태 종합 자료실&lt;/FONT&gt;&lt;/U&gt;&lt;/A&gt; &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민주화운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민주화운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유언비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언비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민주화운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민주화운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유언비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유언비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강명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강명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임천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임천용&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유언비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유언비어&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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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광재, 그 타박상 사인 가해자는 5.18폭도들이라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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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역사학도</name>
	    </author>
	    <updated>2009-03-26T14:15:12Z</updated>
	    <published>2009-03-26T14:15: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EMBED src=http://www.youtube.com/v/NwuGg3AA7CQ&amp;hl=en&amp;fs=1 width=425 height=34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EMBED&gt;&lt;BR&gt;&lt;BR&gt;&amp;nbsp;&amp;nbsp; 지난 22, 23, 24일자의 위 뉴스 동영상(2009년 3월)은 노무현의 최측근 이광재 의원이 말장난 작전이 박연차 회장 여비서의 수첩의 진실 앞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가 않았음을 보여준다.&amp;nbsp;&amp;nbsp;지금 불법정치자금 사건으로 또 다시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있는 바로 이 이광재가 지난 2006년 5월 18일의 5.18기념행사 때 5.18묘지를 둘러본 후 “올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내 평생 광주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lt;A href=&quot;http://polinews.etimes.net/total/news_view1.htm?no=70099&amp;page=27&amp;pkey=2000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polinews.etimes.net/total/news_view1.htm?no=70099&amp;page=27&amp;pkey=20000&lt;/FONT&gt;&lt;/U&gt;&lt;/A&gt; ).&amp;nbsp;&amp;nbsp;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보듯 이광재의 이 광주사태 발언과 동시에 손도끼 ´이광재 패러디´가 큰 인기를 끌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height=420 src=&quot;http://www.dailian.co.kr/data/photo/200505/050520_5602_m.jpg&quot; width=55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 패러디물은 인터넷 홈쇼핑 사이트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미제는 팔지 않는 386쇼핑´에서 &quot;군대가기 겁나시죠?&quot;라는 멘트와 함께 ´병무청 인증 단지용 손도끼 3종 세트´라는 상품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386철강에서 제조한 이 상품에는 &quot;꼭!!! 오른 검지에 사용하세요&quot;라는 설명까지 잊지 않았다.&amp;nbsp;&amp;nbsp;이광재 의원이 뭐라고 변명하든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오른손 검지를 잘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그를 네티즌들은 이런 패러디 표현으로 비꼬았던 것이다.&amp;nbsp;&amp;nbsp;네티즌들은 이런 &quot;이광재의 죄&quot;를 이광죄라 지칭하였다.&amp;nbsp;&amp;nbsp;그런데, 어디 이광죄가 그뿐이었겠는가?&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광재 의원이 5.18묘지에서 “올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내 평생 광주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고 말한 바로 그때가 또 하나의 이광죄, 즉 러시아의 석유를 개발하겠다던 노무현의 약속을 지킨 죄가 드러나던 때였다.&amp;nbsp;&amp;nbsp;그 악속을 지키는 시늉을 하기 위해 러시아로 6백 20만달러를 송금하여 떼이게 하고, 350억원이 나라돈 350억원이 허공으로 증발하게 하였던바 이를 가리켜 &quot;이광재 게이트&quot;라 한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photo/roh_pro.gif&quot;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광재 의원이 광주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그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가 바로 김대업씨 사건이다.&amp;nbsp;&amp;nbsp;2002년 16대 대선 때 새천년민주당은 희대의 사기꾼 김대업씨를 고용하여 병풍사건을 조작하면서 그를 의인이라 불렀던 노무현 측근들은 지난해 2008월 1일 8일 김대업씨가 폭로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말을 바꾸었다.&amp;nbsp;&amp;nbsp;그보다 사흘 앞선 5일 김대업씨가 글을 올려 “대통령을 도구라 부르는 측근들이 결국 대통령을 도구로 전락시켰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들을 비판하자 이광재 의원은 “김 씨를 만난 적도 없고 할 말도 없다”고 했다 (&lt;A href=&quot;http://www.donga.com/fbin/output?f=nc_&amp;n=200801080110&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www.donga.com/fbin/output?f=nc_&amp;n=200801080110&lt;/FONT&gt;&lt;/U&gt;&lt;/A&gt; ).&amp;nbsp;&amp;nbsp;그런데, 자기가 불리할 때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광재의 말은 어디까지 사실인가?&amp;nbsp;&amp;nbsp;지금도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받은 사실 없다고 한 거짓말이 탄로나고 있지 아니한가!&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광재가 5.18묘지에 올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amp;nbsp;&amp;nbsp;그리고, 5.18묘지의 상징적인 인물이 박관현이기에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에서도 진우로 등장한다.&amp;nbsp;&amp;nbsp;아래 사진 왼편의 박관현이 바로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 진우의 실제 인물이다.&amp;nbsp;&amp;nbsp;그런데 영화에서처럼 고등학생이 아니라, 나이 29세의 대학생이었다.&amp;nbsp;&amp;nbsp;5.18사기꾼들은 그를 18세의 고교생으로 등장시켰으니 실제인물과는 사제지간이 될 수 있을 만한 연령차였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study21.org/518/photo/data/three-wanted.jpg&quot;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amp;nbsp;&amp;nbsp; 박관현은 1980년 봄 김대중의 국민연합이 지원하여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김대중의 내란음모에 이용되고 있던 인물이었으나, 영화 속의 진우는 5월 18일 간호사 신애와 함께 극장에 갔다.&amp;nbsp;&amp;nbsp;그러나 실제인물 박관현은 당시 김옥길 내무부장관이 최규하 대통령께 보고하던 시위의 한 주동자였다.&amp;nbsp;&amp;nbsp;5월 18일 하루이틀 전에 급박하게 돌아가던 그 상황을 신현확 당시 총리는 훗날 이렇게 증언한다:&lt;BR&gt;&lt;BR&gt;&lt;&lt;예를 들면 김옥길씨가 아침에도 점심에도 쫒아와서 “학생들 움직임이 어떻고 어느 학교가 저짜고... 만나기 싫다는 거야. 귀찮은 소리. 위급한 사태에 대한 보고도 귀찮다....그러니까.. 최대통령이 아무런 결정을 안하니까 전부 내 한테 온단 말이야. 정부안에서도 다 알지. 모든 일은 신총리가 다 한다. 이러니까 틀림 없이 신총리가 실권을 잡는다. 모든 결정을 신총리가 하고 있다. 신총리가 독재한다. 이런 식이거든.&lt;BR&gt;&lt;BR&gt;&amp;nbsp;&amp;nbsp;그래가지고 학생들이 데모하면서 서울역 앞에서 5만명이 모였을 때, 그 때 플래카드가 “물러가라 신현확, 불쌍하다 최규하” 이러카고 데모하는 거야. 나한테 그렇게 보고가 올라오는 거야. 그래 내가 뭐를 우째? 나를 물러가라고 하는 거야 미운 놈 물러가라, 그런다고 치자. “불쌍하다 최규하”는 뭐가 불쌍하나.&gt;&gt; (&lt;A href=&quot;http://cafe.daum.net/518cafe/8yGb/77&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cafe.daum.net/518cafe/8yGb/77&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김대중이 일으키려던 전국적 민중봉기를 시위용어상 총궐기대회라 불렀는데, 5월 20일로 예정된 학생 총궐기대회 준비를 위해 5월 16일 이화여대에서 일명 &quot;전국총학생회장 연석회의&quot;가 소집되었다.&amp;nbsp;&amp;nbsp;그러나, 김대중이 서울 운동권에 보낸 시위 구호나 광주에 보낸 시위 구호나 동일하였기에 전남대 총학생회장은 서울에 오지 않고 총궐기대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그 내란 음모 주동자 명단이 치안본부로 넘어가자 그 다음날 한 여학생이 전남대로 전화걸어 발각되었으니 빨리 피신하라고 했다.&amp;nbsp;&amp;nbsp;당시 전남대 부총학생회장이었던 이승룡은 그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lt;BR&gt;&lt;BR&gt;&lt;&lt;이날 서울에서는 앞으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갈 것인지 논의하기 위한 전국대학생대표자회의가 있었다. 아마 우리 학교에서는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저녁 7시경에 전화가 왔다. 연락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로 '지금 서울에서는 학생회 간부들이 검거되었으니 빨리 피하라'는 내용이었다. 연락을 받고 관현형 등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gt;&gt;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zb41pl7/bbs/view.php?id=ja_03&amp;page=6&amp;sn1=&amp;divpage=1&amp;sn=off&amp;ss=on&amp;sc=on&amp;select_arrange=headnum&amp;desc=asc&amp;no=402&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내란음모로 둔갑된 평화시위&lt;/FONT&gt;&lt;/U&gt;&lt;/A&gt; 에서 두번째 작은제목 &quot;예비검속에 걸려&quot; 이하)&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래서 진우의 실제인물은 18일 도저히 한가하게 간호사 신애와 함께 극장에 갈 상황이 아니었다.&amp;nbsp;&amp;nbsp;무장시민군의 폭동이 절정에 달했던 21일 상황도 영화에서는 전혀 딴판으로 묘사되는데, 도청광장에서 총맞은 진우가 병원에 오자마자 죽었다.&amp;nbsp;&amp;nbsp;그러나 진우(박관현)는 광주사태 기간 내내 여수에 있었기에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4.html&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4.html&lt;/FONT&gt;&lt;/U&gt;&lt;/A&gt; ) 광주사태를 보지도 못했고, 광주사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사실 광주사태 기폭제는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였다.&amp;nbsp;&amp;nbsp;5월 18일 오후 한시반경 누군가가 &quot;박관현이 죽었다&quot;고 외치자 흥분한 시민들이&amp;nbsp;&amp;nbsp;파출서를 파괴하며 폭동을 일으켰던 것이요, 아무도 죽은 사람 없었는데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가 뻥튀기기되어 &quot;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quot;는 유언비어가 되었으며, 그 유언비어가 또 뻥튀기기되어 &quot;‘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언비어 삐라가 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amp;nbsp;&amp;nbsp;박관현이 근 3년 후에 병원에서 사망한 이유는 &quot;박관현 사망설&quot; 유언비어 때문이요, 광주사태 때 사람들이 죽은 이유도 그 유언비어에 선동된 무장시민군이 폭동을 일으키며 총기오발사고를 냈기 때문이었다.&amp;nbsp; &lt;BR&gt;&lt;BR&gt;&amp;nbsp;&amp;nbsp; 박관현은 광주사태 때 여수에 있었기 때문에 광주사태 장면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음에도 여러 해 후 사망한 박관현이 5.18 묘지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방문자들에게 마치 그가 광주사태 희생자였던 것같은 착각을 준다.&amp;nbsp;&amp;nbsp;엉화 제작자가 진우를 21일 광주의 한 병원에서 죽이는 영화 &quot;화려한 휴가&quot;는 또 하나의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였다.&amp;nbsp;&amp;nbsp;이 유언비어에서 진우를 죽인 것은 제작자이다.&amp;nbsp;&amp;nbsp;그럼에도 제작자는 자기가 죽여놓고, 전두환이 죽인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 아이러니하게도 이광재 의원과 더불어 노무현의 또 한 명의 최측근인 신계륜 의원이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는 허위사실 유포였다는 사실의 증인이다.&amp;nbsp;&amp;nbsp;역시 광주 출신으로 당시 고대 학생회장이었던 신계륜은 5월 18일 광주의 박관현에게 몸 숨길 것을 의탁하려 찾아갔더니 박관현 역시 이미 어디론가 잠적해 있었다.&amp;nbsp;&amp;nbsp;(&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23409&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23409&lt;/FONT&gt;&lt;/U&gt;&lt;/A&gt; )&amp;nbsp;&amp;nbsp;영화에서 민우는 진우의 복수를 위해 무장폭동을 선동한다.&amp;nbsp;&amp;nbsp;그러나, 민우의 실제인물 윤상원은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를 이용하고 있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광재 의원이 5.18묘지에 올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amp;nbsp;&amp;nbsp;그런데, 그런데 희생자들 중 태반은 실제로는 타박상에 의한 사망이요, 타박상 사인 대부분이 무장시민군이 낸 교통사고였다.&amp;nbsp;&amp;nbsp;그 외의 타박상 사인은 폭도들에 의한 구타였었다는 증언들만 있을 뿐이다.&amp;nbsp;&amp;nbsp;예를 들어, 5월 20일 광주 고속터미널 앞 광장에서 충정임무를 수행하였던 이상휴 당시 3공수 특전여단 13대대 9지역 대장(대위)의 증언이 있다: &lt;BR&gt;&lt;BR&gt;&lt;&lt;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알아보니 석축용 경치석이 실려 있었고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갑자기 차에 불이 붙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타이어 터지는 소리에 시민과 폭도들은 괴성을 질렀다. 앙상한 차체만 남았다. 갑자기 시내버스, 택시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어떤 기사는 인접 택시를 발로 차고 버스를 차고 하여 싸움이 붙었다. 자기들과 같이 차량 시위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랬다.&gt;&gt; (&lt;A href=&quot;http://cafe.daum.net/518cafe/8yGb/79&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cafe.daum.net/518cafe/8yGb/79&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amp;nbsp;&amp;nbsp; 5월 20일 타박상으로 두 명이 죽었다.&amp;nbsp;&amp;nbsp;그런데 이상휴 대위는 폭도들이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 운전사와 조수를 끌어내려 구타하여 현장에서 죽였다는 것이다.&amp;nbsp;&amp;nbsp;만약 실제로 폭도들이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 운전사와 조수를 끌어내려 구타한 사실이 있다면 이 증언이 신빙성이 입증된다.&amp;nbsp;&amp;nbsp;그런데, 그런 사실에 대한 허다한 증언들이 있다.&amp;nbsp;&amp;nbsp;심지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시민군들조차 그런 증언을 하는바, 아래는 시민군 김정기의 증언이다:&lt;BR&gt;&lt;BR&gt;&lt;&lt;17번 버스를 타고 무등경기장쯤 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내려 사람들 틈에 끼었다. 가만히 보니 고가도로 부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막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태워라', '죽여라' 하는 함성이 들려서 그쪽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경북 번호를 붙인 트럭이, 유리창이 산산조각 난 상태로 정차해 있었다. 한 대의 운전사는 도망을 쳐버렸고, 다른 차의 운전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의 씨를 말린다는 공수부대의 얘기에 대한 보복이었다. &gt;&gt;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401.html&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401.html&lt;/FONT&gt;&lt;/U&gt;&lt;/A&gt; 에서 일곱번째 단락)&lt;BR&gt;&lt;BR&gt;&amp;nbsp;&amp;nbsp; 시민군 김정기가 목격한 사건은 이상휴 대위가 목격한 사건과 다르다.&amp;nbsp;&amp;nbsp;이상휴 대위는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 운전사와 조수를 대상으로 하는 폭행 사건을 목격했고, 시민군 김정기는 경북 번호를 붙인 트럭 운전자에 대한 폭행 사건이었다.&amp;nbsp;&amp;nbsp;무엇이 시위 구호였는가?&amp;nbsp;&amp;nbsp;'태워라', '죽여라'였다.&amp;nbsp;&amp;nbsp;왜 &quot;죽여라&quot;고 함성지르며 폭행하였는가?&amp;nbsp;&amp;nbsp;&quot;그 이유는 간단했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의 씨를 말린다는&quot; 유언비어 때문이었다.&amp;nbsp;&amp;nbsp;5월 20일 그런 유언비어가 퍼져나가면서 경상도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 행위들이 있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면 어째서 경상도 번호판을 부착한 차량 운전자들이 백주 대낮에 테러를 당하였는가?&amp;nbsp;&amp;nbsp;사실, 그 사건은 20일의 차량 징발과 관련이 있다.&amp;nbsp;&amp;nbsp;모든 통행 차량이 예외 없이 징발 대상이었다.&amp;nbsp;&amp;nbsp;예를 들면, 시민군 김수영은 &quot;대한통운 앞 도로에 지방에서 올라온 일반 화물트럭이 오자 시민들이 차를 주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모두 쉽게 내주었는데&quot; (&lt;A href=&quo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801.html&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801.html&lt;/FONT&gt;&lt;/U&gt;&lt;/A&gt; )라고 증언한다.&amp;nbsp;&amp;nbsp;그런데, 번호판이 경상도이면 징발 대상이 아니라 테러 대상이었던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러면, 어째서 5.18폭도들이 통행 차량을 징발하였는가?&amp;nbsp;&amp;nbsp;그 목적은 공산주의 혁명이었음을 노동운동가 이정로는 이렇게 기술한다:&lt;BR&gt;&lt;BR&gt;&lt;&lt;노동자와 혁명적 민중은 동운동 고가도로 밑의 주유소에 본부를 정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파괴, 점령하고 고속도로를 차단한 다음 모든 차량을 징발하는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화물트럭과 대형차가 선두와 양 옆을 호위하고 소형택시들이 대오를 이루면서 도청을 향한 '차량돌격대'를 편성하게 된 것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이 날의 노동자계급의 대진군을 부르주아적 언론은 '차량시위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시위대'가 아니라 '전투부대'였고 '돌격대'였다.&gt;&gt; (&lt;A href=&quot;http://cafe.daum.net/518cafe/8yGb/72&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http://cafe.daum.net/518cafe/8yGb/72&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bookstore21.ne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alt=&quot;BBC International&quot; src=&quot;http://bookstore21.net/a/refer.gif&quot;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A&gt;&lt;BR&gt;&lt;BR&gt;☞&amp;nbsp;&amp;nbsp;&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5-21-bullet.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시민군이 선제 발포하였다&lt;/FONT&gt;&lt;/U&gt;&lt;/A&gt;&amp;nbsp;&amp;nbsp;&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doc/5-20.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FONT color=#0066cc&gt;&lt;U&gt;이광재 의원, 그 타박상 사인 가해자는 5.18폭도들이라오&lt;/U&gt;&lt;/FONT&gt;&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rumor/fleet.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5.18광주시민군의 우방은 미국인가 북한인가?&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A href=&quot;http://study21.org/518/rumor/bill.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집단발포를 한쪽은 5.18무장단체였다&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study21.org/518/index.ht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5.18광주사태 종합 자료실&lt;/FONT&gt;&lt;/U&gt;&lt;/A&gt;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화려한 휴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화려한 휴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5.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이광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광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연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연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증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증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관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관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광주사태 유언비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주사태 유언비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이광재 의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광재 의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2H8t&amp;amp;tagName=박연차 회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연차 회장&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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