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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랑새는 오늘도 비상을 꿈꾼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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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8T21:10:5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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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생을 헤아리니 한바탕 꿈이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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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8T21:10:52Z</updated>
	    <published>2009-09-18T21:10:5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images2/music_icon1.gif&quot;&gt;&lt;BR&gt;&lt;EMBED src=&quot;http://music.m-letter.or.kr/music/산토끼/Shio_Dream Of Green.wma&quot; width=290 height=24 type=audio/x-ms-wma loop=&quot;false&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false&quot; showcontrols=&quot;true&quot;&gt; &lt;BR&gt;&lt;FONT color=#999999&gt;배경음악 : Shio - Dream Of Green&lt;/FONT&gt; &lt;BR&gt;&lt;BR&gt;&lt;BR&gt;&lt;B&gt;&lt;FONT size=3&gt;인생을 헤아리니 한바탕 꿈이로다&lt;/FONT&gt;&lt;/B&gt;&lt;BR&gt;&lt;BR&gt;옛날 중국 당나라에 노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lt;BR&gt;그는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원이요,&lt;BR&gt;출세하여 이름을 날리는 것이 원이요,&lt;BR&gt;예쁜 아내를 얻어 아들 딸 낳고&lt;BR&gt;영화롭게 사는 것이 원이었다.&lt;BR&gt;&lt;BR&gt;어느 날 노생은 한단지방으로 가던 중&lt;BR&gt;신선도를 닦는 여옹을 만나 자기의 소원을 &lt;BR&gt;하소연하였다.&lt;BR&gt;&lt;BR&gt;묵묵히 듣고 있던 그 할아버지는 바랑 속에서&lt;BR&gt;목침을 꺼내주며 쉬기를 권하였다. &lt;BR&gt;&lt;BR&gt;&quot;고단할테니 이 목침을 베고 잠깐 눈을 붙이게,&lt;BR&gt;나는 밥을 준비할테니.&quot;&lt;BR&gt;&lt;BR&gt;목침을 베고 누운 노생은 금세 잠이 들었고,&lt;BR&gt;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새롭게 바뀌었다.&lt;BR&gt;&lt;BR&gt;그의 소원 그대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얻고&lt;BR&gt;절세미모의 여인을 맞아 아들 딸 낳고&lt;BR&gt;부위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던 것이다.&lt;BR&gt;그것도 무려 80년의 세월이나....&lt;BR&gt;&lt;BR&gt;그런데 누군가가 '밥 먹게' 하는 소리에 &lt;BR&gt;눈을 번쩍 떠보니 모두가 한바탕 꿈이 되었다.&lt;BR&gt;80년 동안의 부귀영화가 잠깐 밥 짓는 사이에&lt;BR&gt;꾸었던 꿈이었던 것이다.&lt;BR&gt;&lt;BR&gt;- 이승렬*옮김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21.jpg&quot; border=0&gt;&lt;BR&gt;&lt;BR&gt;꿈이라 하여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lt;BR&gt;바로 '꿈' 이라는 이 단어 속에&lt;BR&gt;행복과 평화로운 삶의 비결이 &lt;BR&gt;간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lt;BR&gt;&lt;BR&gt;- 꿈도 과정이 중요합니다. &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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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신은 무엇 때문에 삽니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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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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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8T21:09:47Z</updated>
	    <published>2009-09-18T21:09: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images2/music_icon1.gif&quot;&gt;&lt;BR&gt;&lt;EMBED src=&quot;http://music.m-letter.or.kr/music/산토끼/문효진_Time To Say Goodbye.wma&quot; width=290 height=24 type=audio/x-ms-wma loop=&quot;false&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false&quot; showcontrols=&quot;true&quot;&gt; &lt;BR&gt;&lt;FONT color=#999999&gt;배경음악 : 산토끼뮤직 - Time To Say Goodbye&lt;/FONT&gt; &lt;BR&gt;&lt;BR&gt;&lt;BR&gt;&lt;B&gt;&lt;FONT size=3&gt;당신은 무엇 때문에 삽니까?&lt;/FONT&gt;&lt;/B&gt;&lt;BR&gt;&lt;BR&gt;심리학자 윌리엄 마스턴은 시민 3천 명을 대상으로&lt;BR&gt;&quot;당신은 무엇 때문에 삽니까?&quot; 라고 물었습니다.&lt;BR&gt;&lt;BR&gt;설문 응답자의 94%는 미래를 기다리면서&lt;BR&gt;현재를 그저 참아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lt;BR&gt;윌리엄은 이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lt;BR&gt;&lt;BR&gt;일부 응답자는 그저 '무슨 일' 이&lt;BR&gt;벌어지기만을 기다린다고 대답했습니다.&lt;BR&gt;&lt;BR&gt;아이들이 자라서 떠날 때를 기다리고,&lt;BR&gt;누군가가 죽기를 기다리고,&lt;BR&gt;혹은 내일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lt;BR&gt;&lt;BR&gt;그들에게 희망은 있었지만,&lt;BR&gt;현재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lt;BR&gt;&lt;BR&gt;응답자의 6%만이 현재의 대인관계나 활동이 &lt;BR&gt;삶의 동기부여가 된다고 대답했습니다.&lt;BR&gt;&lt;BR&gt;나머지 94%의 사람들에게 &lt;BR&gt;미상의 마음 시구를 전합니다. &lt;BR&gt;시간이 시작된 후,&lt;BR&gt;오늘은 언제나 인간의 친구였습니다.&lt;BR&gt;&lt;BR&gt;- 햇살 한 숟가락 中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9.jpg&quot; border=0&gt;&lt;BR&gt;&lt;BR&gt;우리는 언제나 어제를 돌아보고,&lt;BR&gt;내일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lt;BR&gt;&lt;BR&gt;지나간 고통과 슬픔은 잊으세요.&lt;BR&gt;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lt;BR&gt;그리고 내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lt;BR&gt;&lt;BR&gt;죄책감은 과거에 집착하고,&lt;BR&gt;염려는 미래를 걱정합니다.&lt;BR&gt;그러나 만족은 현재를 누립니다.&lt;BR&gt;&lt;BR&gt;- 만족과 감사는 오늘의 힘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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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축배잔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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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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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8T21:08:47Z</updated>
	    <published>2009-09-18T21:08: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images2/music_icon1.gif&quot;&gt;&lt;BR&gt;&lt;EMBED src=&quot;http://music.m-letter.or.kr/music/기타/피아노 연주곡_축복송.wma&quot; width=290 height=24 type=audio/x-ms-wma loop=&quot;false&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false&quot; showcontrols=&quot;true&quot;&gt; &lt;BR&gt;&lt;FONT color=#999999&gt;배경음악 : 피아노 연주곡 - 축복송&lt;/FONT&gt; &lt;BR&gt;&lt;BR&gt;&lt;BR&gt;&lt;B&gt;&lt;FONT size=3&gt;축배잔치&lt;/FONT&gt;&lt;/B&gt;&lt;BR&gt;&lt;BR&gt;치열하지 않는 인생을 &lt;BR&gt;어찌 인생이라 할 수 있는가? &lt;BR&gt;&lt;BR&gt;어차피 태어났고, 살아야 하고, 이겨야 하고, &lt;BR&gt;누려야 하고, 때가 되면 가야하는 인생!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8_1.jpg&quot; border=0&gt;&lt;BR&gt;&lt;BR&gt;어려워도 힘들어도 맡겨진 인생, &lt;BR&gt;기어코- 가야 한다면 차돌같이 각오하자! &lt;BR&gt;&lt;BR&gt;실력을 쌓아 무기 삼고 &lt;BR&gt;독종으로 무장하라!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8_2.jpg&quot; border=0&gt;&lt;BR&gt;&lt;BR&gt;인생을 물컹하게 보는 &lt;BR&gt;무심한 한 사람아! &lt;BR&gt;&lt;BR&gt;뱀을 목에 감고 훈련하는&lt;BR&gt;양궁 선수는 못 되어도 &lt;BR&gt;&lt;BR&gt;평상을 걷어차고 &lt;BR&gt;자기를 단련하라!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8_3.jpg&quot; border=0&gt;&lt;BR&gt;&lt;BR&gt;무작정으로 허공을 치지 말고 &lt;BR&gt;신비한 정신일도에 생각을 몰입하라! &lt;BR&gt;&lt;BR&gt;역사는 언제나 &lt;BR&gt;치열한 인생전투에서 &lt;BR&gt;&lt;BR&gt;승리만을 골라 찾아 &lt;BR&gt;축배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lt;BR&gt;&lt;BR&gt;- 소 천 -&lt;BR&gt;&lt;BR&gt;------------------------------------------&lt;BR&gt;&lt;BR&gt;남은 인생도 &lt;BR&gt;하나같이 쉬운 것이 없습니다.&lt;BR&gt;&lt;BR&gt;어둠의 세력은 요행을 요구하고&lt;BR&gt;멋도 모르고 놀아나는 자들은&lt;BR&gt;자기 일이 제일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하지만 너무나 죄 많은 우리는&lt;BR&gt;우리 자신을 단속하기도 너무나 바쁜 시간을&lt;BR&gt;보내야 합니다. &lt;BR&gt;&lt;BR&gt;가을을 준비하느라 바쁜 일손처럼&lt;BR&gt;우리도 자신을 돌아보는 바쁜 시간을 보냅시다.&lt;BR&gt;&lt;BR&gt;가을 아침 바람에 &lt;BR&gt;왜 이리 가슴이 시립니까?&lt;BR&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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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버블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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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다물</name>
	    </author>
	    <updated>2009-09-18T21:04:54Z</updated>
	    <published>2009-09-18T21:04:5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1. 외환 위기는 제조업 버블 붕괴 과정이었다. &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90년대 초에 중국이 세계 경제에 처음 등장하고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는 등 변화가 있자경제 전반에 중국 특수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대규모 화학 공장이 생기고 한보철강이 투자를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똑 같은 시기에 아시아 국가들도 투자 붐이 일었다. &lt;/P&gt;
&lt;P&gt;&lt;BR&gt;‘95년에 세계 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하자 몇 년 동안 아시아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투자는 저수익에 내몰려 외환위기의 뇌관이 됐다. 제조업에 의한 제 1차 버블 붕괴였다.&lt;/P&gt;
&lt;P&gt;&lt;BR&gt;‘98년은 버블 붕괴 치유 기간이다. &lt;BR&gt;저금리 정책으로 30%가 넘던 금리가 한자리수로 떨어졌고 60조원에 달하는 구조조정 비용과 400억 달러 규모의 무역흑자로 많은 자금이 시중에 공급됐다. 종합주가지수는 290P에서 8개월 만에 1,050P까지 상승한다. 외적 요인도 2차 버블 형성에 기여했는데 세계적인 IT붐이 그것이다.&lt;/P&gt;
&lt;P&gt;&lt;BR&gt;2000년에 2차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 &lt;BR&gt;주가만 보면 우리나라는 당사자인 미국보다 IT버블 붕괴로 인한 영향을 크게 받는데 ‘98년 이후 2년간 경기 회복 과정에 IT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2차 버블 붕괴로 주가는 8개월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lt;/P&gt;
&lt;P&gt;&lt;BR&gt;3차 버블은 2차 버블 붕괴를 수습하기 위한 금리 인하 때문이었다. &lt;BR&gt;미국이 9.11테러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을 막기 위해 정책 금리를 1.0%까지 낮추자 한국도 정책금리를 3.25%로 떨어뜨렸다. 이 같은 대책은 광범위한 자산 가격 상승을 초래했는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까지 올라갔고, 부동산 가격이 3년반 동안 50%가 넘게 상승했으며, 선진국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lt;/P&gt;
&lt;P&gt;&lt;BR&gt;3차 버블 붕괴는 신용 확대가 원인이었다.&lt;BR&gt;저금리와 유동성 공급 확대, 여기에 신용카드에 의한 부채 증가는 2002년까지 소비 증가의 촉매제였다. 그러나 2003년에 카드채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 과정이 끝났고 3차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lt;/P&gt;
&lt;P&gt;&lt;BR&gt;이렇게 보면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두 번의 버블 생성과 세 번의 버블 수습 기간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49441008236.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2. 90년말 스웨덴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주가는 230P에서 고점을 형성한 후 불과 반년 만에 140P까지 40% 가까이 떨어졌다.&lt;BR&gt;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택한 방법도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이었다. 금융 위기 직후 14% 였던 금리가 ‘92년 초에 9%로 하락했고 이에 힘입어 주가는 ‘91년 중반에 위기 이전의 85% 수준까지 회복됐다. &lt;/P&gt;
&lt;P&gt;&lt;BR&gt;그러나 저금리에 의한 회복은 1년여 만에 후유증을 남긴 채 끝나고 2차 붕괴 과정이 시작됐다. ‘92년 10월에 주가가 위기 직후보다 낮은 120P대로 후퇴했다.&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49441043513.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3. IT버블 붕괴 이후 FRB도 금리 인하 카드를 사용했다. &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특히 9.11테러 직후 초저금리 정책은 침체에서 벗어나는 원동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 역할도 했다. 금리 인하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이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 침체에서 빠져 나오자는 FRB의 전략은 4년 반 동안 성공했지만 금융 위기라는 댓가를 치루게 만들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버블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lt;BR&gt;앞에서 본 것처럼 버블이 터지면 수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 진다. 위기 발생 직후에는 이런 정책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도구가 되지만 종국에는 또 다른 위기를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lt;/P&gt;
&lt;P&gt;&lt;BR&gt;지금도 마찬가지다. &lt;BR&gt;예상을 뛰어 넘는 실적 호전, 지속적인 외국인 매수 등 여러 상승 요인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금리에 따른 버블이다. 세계 경제의 80% 정도 되는 지역에서 돈을 빌리면서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거나 아주 작은 대가만을 지불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는 전례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현재가 비정상이라는 얘기가 되며 언제든지 버블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lt;/P&gt;
&lt;P&gt;&lt;BR&gt;경제에 위기가 발생하면 처음에는 금리를 낮춰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다. 경기 둔화 힘이 금리를 압도하기 때문인데 정작 금리가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 상황이 안정된 이후다. 지금이 여기에 해당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재 주식시장은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lt;BR&gt;버블이 만들어질 때에는 버블을 만드는 요인 외에 다른 것으로는 가격이 잘 제어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이 변하려면 금리 인상을 통해 저금리-고유동성 기조가 바뀌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든지 아니면 주가가 올라 시장이 벨류에이션 부담이 생겨야 한다. &lt;/P&gt;
&lt;P&gt;&lt;BR&gt;전자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lt;BR&gt;선진국 주가가 5개월 만에 50% 넘게 오르는 등 금리를 조정해야 할 요인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당분간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다.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는 선진국 중앙은행은 모두가 인정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gt;밸류에이션은 버블기에 정상보다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전세계 증시가 2/4분기 실적에 얼마나 열광적으로 반응했는지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amp;nbsp; &lt;/P&gt;
&lt;P&gt;버블은 만들어질 때 화려하다. 아직 저금리에 따른 버블이 완성되지 않은 것 같아 추가상승이 가능해 보인다. 버블이 완성되고 나면? &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현시점에서 보는 금, 달러, 국제질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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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다물</name>
	    </author>
	    <updated>2009-09-18T21:03:09Z</updated>
	    <published>2009-09-18T21:03:0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color=#e95d00&gt;글로벌 위기 대응책이 한계를 보이는 시점에서 실물경제 침체가 중첩되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급해진 각국 정부는 경제만 살린다면 어떤 조치도 무제한으로 내놓고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e95d00&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e95d00&gt;금융시장은 시스템 안정을 전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각국이 추진하는 무제한의 조치는 국가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국가간 규칙이 약화되고 자국 이기주의로 흐르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e95d00&gt;&lt;/FONT&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e95d00&gt;향후 투자가는 금융과 실물경제의 변화뿐 아니라 &lt;STRONG&gt;&lt;U&gt;국제질서의 안정 여부(국제공조)까지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lt;/U&gt;&lt;/STRONG&gt; &lt;BR&gt;&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불확실성의 세계&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미국뿐 아니라 각국은 경기부양책 실시 중 자국 제품을 우선 사용토록 하는 Buy America 규정과 같은 보호무역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은 유가 급락으로 미세한 균열을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국가간에 경쟁적인 국채 발행으로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편 파키스탄 북서부는 점차 탈레반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밀수혐의를 받던 중국 화물선을 러시아가 격침시키면서 양국 관계도 냉각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쇼비니즘(chauvinism, 배타적 애국주의)적 행태가 목격되고 있다. 경제를 넘어 세계 질서마저도 점점 불안정해지는 모습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만인 대 만인’의 투쟁 시대&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이번 위기는 말 그대로 글로벌 위기이기 때문에 글로벌 공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물론 통화스왑과 같은 금융 분야는 어느 정도 글로벌 공조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경과 기간이 길어지고 각국의 위기 대응 조치간에 미세한 충돌이 발생하면서 ‘국제공조’가 이완되는 모습이다. 지난 주 EU의 동유럽 구제금융안 합의 실패나 자동차 산업에서 국가간 갈등이 커지는 것도 국제 공조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회학자나 역사철학자들은 경제적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 변동을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한다. 경제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글로벌 위기와 같이 인류 모두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지구적 차원의 질서보다는 자신, 혹은 자국만의 이익을 취하려는 경향이 높아진다. 모두가 제로섬 게임적 시각을 갖게 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현상이 최근 국제질서에 투영되면서 자국만의 이익에 집착하는 중상주의(重商主義)적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1929년 대공황이 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된 것은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국 이기주의에 빠졌기 때문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면 1980년대 초반 이후 냉전 종식 과정에서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리는 하락하고 PER이 상승했다. 약 25년에 걸친 이 시기는(1982~2007년) 세계화를 기반으로 하는 인류 역사 최고의 호황기였다. (그림 1의 음영 부분) 당시 금융시장은 미국 주도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국제 질서를 기반으로 했다.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36127706352.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최근에는 1차 오일쇼크 초반과 유사하게 금리와 PER이 동시에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태에서 불안정한 국제질서가 지속 혹은 강화된다면 금융시장 회복도 지연될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size=3&gt;&lt;STRONG&gt;금값 고공 행진의 비밀&lt;/STRONG&gt; &lt;/FONT&gt;&lt;/P&gt;
&lt;P&gt;&lt;BR&gt;상품투자 전문가인 제임스 터크(James Turk)는 최근 한국에 소개된 ‘달러를 버려라’ 란 책에서 달러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금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금값과 달러가 동시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달러 기근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론 금 가격 상승의 이면에는 달러 강세가 단기에 그치고 결국은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필자도 일정부분 이 논리에 동의한다. 그러나 과도적으로 국제 공조 체제의 약화가 국제질서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면서 달러와 금 가격이 동반 강세를 보이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36127789013.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국제질서가 장기 Valuation을 결정&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기업의 가치평가는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인 지금은 국제질서가 변화하면 결국 기업의 재무제표도 변화한다. 투자환경이 불안정할수록 경제 예측과 투자의 세계에서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 시점에서 언제 그리고 어떤 형태로 국제질서가 안정될지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세계사회학회장을 역임한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장기간에 걸친 이행의 시대(The age of transition)에 이미 진입한 것으로 평가한다.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나 글로벌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도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까지 시장의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그래도 한국은 희망이 있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최근의 환율 문제는 달러가치가 초강세를 보이는 시점에서 한국의 외화유동성 문제가 결합된 결과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국제질서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경제 규모와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극단적인 비관론은 자제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편 만인이 투쟁하는 무질서의 시대에 한국의 적응력은 어떠할까? 정글에서의 생존력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자체 체력뿐이다. 한국은 여타 국가와 달리 국가 재정이 안정적이다. 글로벌 위기가 장기화될 것을 가정할 때 대부분 국가의 재정 투입은 2~3년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누적 재정적자 규모가 크다. 반면 한국은 올해부터 실질적인 재정적자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국의 대기업은 21세기 들어 재무구조의 안정성이 매우 높아 졌다. 이런 현상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글로벌 제로섬이라는 정글’에서 버틸 시간과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36127853150.jpg&quot;&gt;&lt;BR&gt;&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TRONG&gt;&lt;FONT size=3&gt;국제질서를 고려한 시장 대응이 필요&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국제질서의 변화를 투자의 관점에서 보자! 우선 시장에 대한 과거의 전제와 가정을 버리고 새롭게 살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보이고 있다. 문제는 보이는 손끼리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가 안정될 때까지 경제와 금융 분야를 넘어 국제공조와 질서까지도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달러가치와 금 가격은 그래서 중요하다. 금 가격과 달러 가치가 안정될 때 글로벌 위기는 한고비를 넘기게 된다. 물론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의 안정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저점에 접근했을 때 내놓을 카드가 있는 국가는 한국 등 몇몇 국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고비 이후의 환율과 금 가격은 한국의 문제보다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세번째 상승. 이번이 마지막 일까?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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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다물</name>
	    </author>
	    <updated>2009-09-18T21:01:56Z</updated>
	    <published>2009-09-18T21:01:5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올해 주요국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투입한 자금을 정리해 보자. &lt;/P&gt;
&lt;P&gt;&lt;BR&gt;미국의 경기 부양대책은 5,754억 달러의 재정 지출과 2,118억 달러의 감세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감세는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반면 재정 지출은 단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방향이 경제의 단기 안정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정책 집행은 다른 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재정 지출을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lt;/P&gt;
&lt;P&gt;&lt;BR&gt;특이한 것은 2009년만 볼 때 위기 당사국인 미국이나 충격을 크게 받았던 영국보다 아시아 이머징 국가의 정책 자금 규모가 크고 집행율도 높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집행된 자금 규모가 449억 달러, 중국은 1,947억 달러이며 집행률은 각각 75%와 66%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모양이 나온 것은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이머징 마켓들이 과거 외환 위기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 위기 발생 초기부터 강력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또 선진국은 금융 기관에 문제가 생긴 관계로 금융 시장 안정 대책에 역량을 집중한 반면 이머징 마켓은 그럴 필요가 없어 상대적으로 재정 정책에 중점을 둘 수 있었던 이유도 있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090297431.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과연 금융 정책과 재정 정책을 감안할 때 경기 회복은 만족할 만 한가?&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우선 부실화된 금융 기관을 치유하고 추가적인 부실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lt;BR&gt;3월을 기점으로 각국 주식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단기 금융 시장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TED스프레드(Libor-국채 ; 각 3개월 기준)도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선진국이나 이머징 마켓 공히 CDS프리미엄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금융 기관 파산 문제도 그렇다. 미국에서 소규모 은행의 파산이 계속되고 있지만 별 달리 관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태가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와 위기에 대한 반응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gt;과거 경제 위기가 발생했던 사례를 보면 &lt;/P&gt;
&lt;P&gt;&lt;BR&gt;① 금융 위기는 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민간의 부채 상환에 개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내적으로 정부의 지불 능력이 없어지는 모라토리엄 상태가 되지 않는 한 사태가 악화되는데 한계가 있고 &lt;BR&gt;② 사태 규모가 작거나 정부가 상황을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경우 정부에 대한 신뢰만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으며 &lt;BR&gt;③ 한번 발생했던 사안에 대해서는 재발을 막기 위한 세심한 정책이 동원되기 때문에 금융 위기 이후 1~2년 사이에 유사한 형태의 위기가 반복됐던 경우가 거의 없었다. &lt;BR&gt;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더 이상 어떤 형태의 금융 위기도 단기에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lt;/P&gt;
&lt;P&gt;&lt;BR&gt;금융 기관 안정과 달리 경기 부양 대책이 실물 부문에 미치는 효과는 미흡하다. &lt;BR&gt;세분해 보면 생산과 관련한 지표는 양호한 반면 소비, 투자 등 민간 부문 지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심리 지표와 소비, 주택 등이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고 있으나 이는 재정 정책에 따른 효과라기 보다 지난해 말 이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된 데 따른 반사 효과와 금융 불안 진정에 따른 심리적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lt;/P&gt;
&lt;P&gt;&lt;BR&gt;이미 사태가 발생한지 1년이 넘었고 재정 정책을 비롯한 대책이 시행된 지도 10개월이 넘었다. 이번에는 과거 경기 회복 첫해의 사례에 비해 성장이 낮던지 소비의 견인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의 축이 민간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경기 회복이 계속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090363915.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현재 경기 회복은 그동안 투입된 정부 정책에 견주면 굉장히 인상적인 형태는 아니다. 시장에 대한 그림도 이런 기초 하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TRONG&gt;&lt;FONT size=3&gt;이번 주가 상승은 어떤 모양일까?&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주가가 1에서 100까지 오를 때 중간 중간에 쉬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쉴 때 주가는 4~5개월에 걸쳐 15~20% 가까이 떨어진다. &lt;BR&gt;반면 1에서 100까지 전혀 쉬지 않고 내쳐 오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매일 오를 수는 없기 때문에 중간에 속도 조절 과정이 있지만 하락률이 미미하고 기간도 짧아 쉬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일 수 있다. &lt;BR&gt;우리 주식시장이 500P에서 1,000P까지 올랐던 사례에는 두 가지 모양이 다 있다.&amp;nbsp; ‘92년 상승이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고 2001년 상승은 두 번째에 해당 한다. 외환 위기 직후는 둘을 혼합해 놓은 형태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먼저 ‘92년 8월에서 ‘94년 11월까지 상승을 보자. &lt;/P&gt;
&lt;P&gt;&lt;BR&gt;처음 상승은 470P에서 시작됐고 770P 정도에서 1차 상승을 끝냈다. 상승 기간은 11개월이었다. 그리고 석 달간 휴식을 거친 후 50% 가까이 상승한다. 전체 상승기간 25개월 동안 절반에 해당하는 12개월 동안 주가가 하락하거나 횡보해 충분히 다져가면서 올라갔다. &lt;/P&gt;
&lt;P&gt;&lt;BR&gt;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주가가 올라서 인지 하락도 천천히 이루어졌는데 무려 1년 4개월을 최고점 대비 15% 정도 떨어진 900P대에서 머물렀다. &lt;BR&gt;2001년 9월에서 2002년 3월까지 상승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lt;/P&gt;
&lt;P&gt;&lt;BR&gt;7개월 동안 주가가 460P에서 950P까지 100% 가까이 오르는데 31주 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중 하락한 것은 7주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떨어지는 것도 너무 쉬워 10개월 만에 510P로 돌아오고 말았다.&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090423395.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090431746.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size=3&gt;이 둘 사이에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BR&gt;‘92년 상승은 펀드멘털 개선이 주요인이었고, 2001년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이 주였다.&lt;BR&gt;‘92년에도 시장 금리 하락이 있어 ‘90년 20%에 육박하던 회사채금리가 ‘93년초에 10%대 초반까지 내려오는 일이 있었지만 금리가 시장의 주가 아니었다. 반면 2001년은 카드와 신용 버블, 금리 인하 등이 주요인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은 펀드멘털과 금융 부문이 혼합되어 있는데 주가가 크게 상승한 만큼 두 요인중 하나라고 문제가 생길 경우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lt;BR&gt;이제 주식시장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상승에 들어갔다. &lt;BR&gt;이 상승이 얼마 동안 어떤 수준까지 이어질지는 지켜 봐야겠지만 마지막 상승이 이전의 상승에 비해 오래, 큰 폭으로 계속됐던 경우는 거의 없다. &lt;BR&gt;상승을 마무리 짓는 요인은 3분기 실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lt;/P&gt;
&lt;P&gt;&lt;BR&gt;3분기 실적은 잘 나오고 못 나오고 상관없이 주가에 악재가 될 것이다. 실적 호전의 대부분이 주가에 반영된 반면 시장 기대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7월에 미국이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실적 속에 주가가 상승했던 원동력은 낮은 가격이었다. 반대로 이번에는 상당한 실적이 아니고는 하방 압력을 견뎌내기 힘들 수 있다. 실적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이익의 절대적인 수준이 중요하지만 이익의 방향성과 이익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다. 3분기 실적은 절대적인 수준은 높을지 모르지만 평가는 2분기에 비해 못할 텐데 부담이 될 수 있다.&lt;BR&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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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출주 움직임에 따른 시장방향 점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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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다물</name>
	    </author>
	    <updated>2009-09-18T20:59:48Z</updated>
	    <published>2009-09-18T20:59:4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RONG&gt;&lt;FONT color=#0021b0&gt;수출주가 상승해야 지속적인 상승이 가능하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0021b0&gt;&lt;/FONT&gt;&lt;/STRONG&gt;&lt;BR&gt;9월의 시장을 주도한 업종은 내수주로 분류할 수 있는 은행, 철강금속, 전기가스, 유통 업종이다. 환율까지 하락면서 내수주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수출주를 버리고 내수주로 포트폴리오를 교체할 것인지 그리고 내주주가 과연 시장 상승을 이끌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수주만으로는 주가가 상승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수출주가 주도적으로 시장을 이끌지 않는다면 지수는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0021b0&gt;외국인은 한국의 수출주를 사고 있는 것이다&lt;/FONT&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과거 KOSPI의 상승을 이끈 것은 수출주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판단한다. 물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지수가 상승하는 구간에서 수출주는 내수주와 비교할 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외국인이 주도하는 시장이 아니었다. 2003년 이후 외국인은 한국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주식비중을 축소하여 왔다. 당시의 시장은 펀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내부수급으로 시장이 상승한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펀드환매가 진행되고 있어 내부수급은 취약하고 외국인의 매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9년은 다시 수출주 사이클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FTSE 선진국 지수 편입을 앞두고 외국인의 매수가 내수업종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결국 시장을 주도하는 것을 수출주라고 판단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0021b0&gt;2010년 2분기까지 수출주가 기업이익을 이끌 것으로 예상&lt;/FONT&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FONT color=#0021b0&gt;&lt;/FONT&gt;&lt;/STRONG&gt;&lt;BR&gt;수출주의 중심은 IT 업종이다. 결국 IT기업의 이익사이클과 수출주의 사이클은 같이 갈 수 밖에 없고, IT의 이익사이클이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외국인의 매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IT사이클과 외국인 매수에 대해서는 당사 조윤남 투자전략부장의 2009년 8월 19일자 자료인 Mr. Summer Rally의 투자전략 시리즈 세번째인 ‘외국인 매수와 IT 주도 패러다임 해석’을 참조).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한국시장의 기업이익 성장은 비교대상 국가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MSCI Korea 기준으로 2009년에는 42%, 2010년에는 34% 증가 예상). 낮은 밸류에이션과 높은 이익모멘텀이 외국인의 매수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시장의 기업이익 성장은 수출주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수출주 중심의 이익성장은 2010년 2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출주가 시장의 상승을 주도하는 이유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03~07년의 강세장과 현재 시장의 차이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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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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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8T20:58:41Z</updated>
	    <published>2009-09-18T20:58: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KOSPI가 1,700p선에 근접했다. 차이나 플레이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기 직전인 2007년 중반의 주가 레벨이다. 기업이익도 금융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2007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한국투자증권 유니버스 07년 영업이익 63.0조 원, 09년 예상 영업이익 59.0조 원). 현재의 지수 레벨에서 한국 증시의 PER은 12.3배, PBR은 1.2배 수준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168396793.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168416078.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밸류에이션으로 보면 현재의 주가가 절대적으로 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주가가 기업이익과 괴리돼 극단적으로 고평가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금융 위기로 인해&amp;nbsp; 터무니 없이 낮았던 주가의 레벨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의 큰 장은 이미 상당 수준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이것이 꼭 주가 반락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를 때나 내릴 때나 (버블과 역버블이라는 형태의) 과잉이 나타나곤 하는 것이 주식시장의 속성인지라, 현재 상황에서 딱히 주식이 싸다, 비싸다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 증시가 다시 모멘텀에 따라 등락이 결정되는 시장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점이고, 이는 지난 03~07년까지의 강세장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라는 점이다. 먼저 KOSPI가 2,000p대에 올라섰던 03~07년의 강세장을 회고해 보자. 03~07년의 강세장은 경기와 기업이익 등 순환적인 요인과는 무관한 구조적인 상승 장세(Secular Bull Market)였다. 경기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심지어는 기업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 정체됐던 05~06년에도 KOSPI는 강세를 이어갔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익의 증가 없는 주가의 상승(Bull without earnings), 이는 일반적인 통념에 부합되지 않는 결과였다. 그럼에도 주가 상승이 가능했던 것은 몇가지 구조적인 요인들이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첫번째는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터무니 없이 쌌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금융 시장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국가간 밸류에이션의 수렴현상이 나타났다. PER이 높았던 국가의 PER은 낮아졌고, PER이 낮았던 국가의 PER은 높아졌다. 개방화 진전에 따른 투자 대상(국가)간의 비교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03~05년까지 한국 증시의 PER은 5~7배 수준에 불과했다. 가장 저평가됐던 시장 중 하나였기에 기업이익이 줄어들어도 절대 저평가 메릿이 부각되며 주가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은 이미 정상화됐다.&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168459822.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두번째는 수급 측면에서 주식에 대한 과도한 기피 심리가 정상화되면서 나타났던 긍정적인 효과를 들 수 있다. 사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주식이라는 자산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지는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부동산과는 달리 주식이 투자자들에게 성공의 경험을 제대로 제시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KOSPI는 89년 3월 1,000p 돌파 이후 2005년까지 16년 간 장기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한국 투자가들이 지나치게 단기 매매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헤모글로빈 속에 유독 투기적 인자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장이 장기적으로 박스권에 머물러 있었고,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자자들의 선택은 단기매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매매 행태가 그런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아무튼 2000년대 초반은 한국인들의 주식 기피 심리가 가장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주식형 펀드 붐이 불기 직전인 2004년 말, 한국 가계의 주식형 펀드 보유 금액은 3조 원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지만 구조적인 저금리 하에서 주식에 대한 선호는 높아졌고, 2008년까지 가계의 주식형 펀드 보유 금액은 110조 원대까지 높아졌다. 오히려 주식에 대한 과잉이 우려될 정도로 가계 금융 자산이 펀드의 형태로 주식 쪽으로 빠르게 옮겨졌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가계 금융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보지만, 극심한 주식 기피 현상은 05~08년의 주식형 펀드 붐을 통해 크게 완화됐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168484444.jpg&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03~07년의 강세장이 지나면서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정상화됐고, 한국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도 높아졌기 때문에 비정상의 정상화는 이미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어떤 계기가 주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한국 증시는 과거와 같은 구조적인 상승(Secular Bull Market)보다는 경기 사이클과 기업이익 모멘텀 등과 같은 순환적 요인에 의해 움직여 나갈 가능성이 크다. 5년 내외의 장기 추세(Secular Trend)보다는 1~2년의 중기 추세(Cyclical Trend)에 주목한 시장 대처의 틀을 짜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난 3월 이후 진행되고 있는 강세장도 궁극적으로는 경기 모멘텀과 그 수명을 같이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모멘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주가 예측에 유용한 지표는 경기선행지수 전년동월비 수치이다. 04~07년을 제외하면 KOSPI의 움직임은 대체로 선행지수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순환적 사이클을 나타냈다. 04~07년의 강세장은 극단적으로 저평가됐던 한국 증시가 리레이팅되면서 주가가 상승했던 예외적인 경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앞에서 논의했다. 경기선행지수의 상승세는 2010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모멘텀의 약화와 미국 모멘텀의 강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상반기까지의 경기 회복 경로와는 조금 다른 길로 접어들었지만, 올해 2월부터 시작된 경기 확장 기조는 2010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업 이익 모멘텀의 고점은 전분기 대비 증감률 기준으로는 2009년 3분기, 전년동기 대비 증감률 기준으로는 2010년 2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경기와 기업이익 사이클을 감안해 볼 때 적어도 4분기 중반까지는 주식시장의 상승 추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imgstock.naver.com/upload/stock/admin/1253168515206.jpg&quo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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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쟁이 고려청자 운명바꿨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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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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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6T22:29:43Z</updated>
	    <published>2009-09-16T22:29:4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오마이뉴스 고진숙 기자] 가을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계절인데요, 올 가을은 '주제가 있는 여행'은 어떨까요? &lt;BR&gt;&lt;BR&gt;도자기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자기는 우리나라 역사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가 변하면 시대가 변한 것이고, 힘과 권력이 바뀌면 도자기도 바뀝니다. 그래서 도자기는 권력의 상징, 시대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t;BR&gt;&lt;BR&gt;우리나라는 전국에서 도기와 자기를 구웠고, 그 유적지들은 모두 아름다운 곳에 있습니다. 가까운 곳으로 혹은 멀리 있는 곳으로 도자기 여행을 가신다면, 역사와 예술과 멋진 자연을 함께 만날 수 있는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lt;BR&gt;&lt;BR&gt;대략 10회 내외를 예정으로 &lt; 도자기로 보는 역사: 도자기를 쥔 자 세상을 얻으리라 &gt; 는 글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lt;BR&gt;&lt;BR&gt;우리나라 도자기의 변천사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리됩니다. &lt;BR&gt;청자(비색청자)→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B%F3%B0%A8%C3%BB%C0%DA&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상감청자&lt;/FONT&gt;&lt;/U&gt;&lt;/A&gt;→ 분청사기→ 청화백자→ 순백자→ 철화백자→ (달항아리)→ 청화백자→ 도자기의 몰락과 서양, 일본자기의 시대 &lt;BR&gt;&lt;BR&gt;이런 변화를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추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lt;BR&gt;(도기와 토기는 다릅니다. 도기는 가마에서 구운 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토기를 도기와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쓰겠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말로, 자기와 구분해야 하지만 자기를 도자기와 구분하지 않겠습니다.) &lt;BR&gt;&lt;BR&gt;&lt;STRONG&gt;[① 청자로 가는 길] &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gt;토기시대에서 청자의 시대로 &lt;/STRONG&gt;&lt;BR&gt;&lt;BR&gt;전라남도 영암은 서해안과 남해안을 오가는 뱃길이 딱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중국, 일본을 비롯해 온통 무역길이 가로세로로 연결된 곳에서 가까운 이 곳 동구림리 토기가마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lt;BR&gt;&lt;BR&gt;황토 흙을 쓴다는 점에서는 신라토기와 다를 바 없었지만 이 토기에는 매우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유약을 바른 토기가 만들어진 것이죠.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PADDING-TOP: 0px&quot; width=1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399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09/16/ohmynews/20090916082106818.jpeg&quot; width=450 border=0 w=&quot;450&quot; h=&quot;399&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quot; align=left colSpan=2&gt;&lt;B&gt;▲ 구림도기 &lt;/B&gt;통일신라 말, 유약을 바른 도기가 탄생했습니다. 이 도기는 자기의 시대를 예고하는 새로운 토기입니다.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영암 도기 박물관 &lt;BR&gt;&lt;BR&gt;&lt;BR&gt;&lt;/TD&gt;
&lt;TD align=righ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동구림리 토기는 구림도기라고 부릅니다. 구림도기에 바른 유약은 소나무가지를 태워 생기는 하얀색 재와 황토를 물에 개어 하루 정도 놔 둔 뒤 고운 체로 걸러 내어 만듭니다. 가마 속에서 한번 구운 토기를 이 유약이 담긴 액체 통에 담갔다 꺼내어 다시 구우면 도기가 만들어집니다. &lt;BR&gt;&lt;BR&gt;잿물로 만든 유약을 '잿물유약' 또는 '회유'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우리가 쓰는 옹기가 잿물유약을 바른 도기입니다. &lt;BR&gt;&lt;BR&gt;신라토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유리 같은 물질이 흘러내린 모습이 보입니다. 토기를 구울 때 땔감으로 잔가지가 많은 소나무를 쓰면 재가 날려서 토기에 달라붙게 되고 이것이 아주 높은 온도에서 유리가 녹듯이 녹아내린 것입니다. 여기에 착안해 만든 것이 구림도기의 유약입니다. &lt;BR&gt;&lt;BR&gt;구림도기는 유약이 제멋대로 흘러내린 모습이 마치 현대 미술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신라토기가 가진 밋밋한 느낌이 사라지고 멋들어진 모양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청자가 아닙니다. 호족들은 이런 현대 미술품 같은 토기가 아니라 청자를 원했습니다. 구림도기는 호족들에게 퇴짜를 맞았습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PADDING-TOP: 0px&quot; width=1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353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09/16/ohmynews/20090916082106820.jpeg&quot; width=396 border=0 w=&quot;396&quot; h=&quot;353&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quot; align=left colSpan=2&gt;&lt;B&gt;▲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5%B5%C0%E5%B9%AB%B4%CC%C5%E4%B1%E2&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도장무늬토기&lt;/FONT&gt;&lt;/U&gt;&lt;/A&gt; &lt;/B&gt;통일신라시절, 신문왕의 통치와 더불어 토기기술은 절정에 이르렀고, 이때 만들어진 토기에는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동일한 무늬가 만들어지는데요,바로 도장무늬입니다. 두시대 문민통치의 절정기라는점에서 이 무늬의 유사성은 흥미를 끄는 대목입니다.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국립경주박물관 &lt;BR&gt;&lt;BR&gt;&lt;BR&gt;&lt;/TD&gt;
&lt;TD align=righ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당나라로 가는 유학생과 유학승들은 영암 구림리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영파로 가는 바닷길에 올랐습니다. 영파는 중국의 청자단지로 알려진 월주에서 가까운 항구도시입니다. 월주의 청자를 실은 배는 구림리에 짐을 내렸습니다. &lt;BR&gt;&lt;BR&gt;청자를 바라보며 구림도기를 만들던 도공들은 무슨 생각에 빠져들었을까요? 토기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한탄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을까요? 가까운 곳에서 청자를 만들기 위한 가마가 만들어진 것은 그때입니다. &lt;BR&gt;&lt;BR&gt;&lt;STRONG&gt;중국청자, 흙의 마법이 풀리다 &lt;/STRONG&gt;&lt;BR&gt;&lt;BR&gt;청자를 최초로 만든 곳은 중국입니다. 고구려를 정복하려다 오히려 멸망한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는 운이 매우 좋았습니다. 통일을 위한 전쟁을 치르며 힘쓸 필요도 없이 당나라는 이미 수나라가 통일해 놓은 중국을 고스란히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lt;BR&gt;&lt;BR&gt;수문제는 최고의 리더십으로 400년 혼란기에 허우적거리던 중국을 통일하여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걸린 시간은 단 20년.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1%D5%C0%FC%C1%A6&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균전제&lt;/FONT&gt;&lt;/U&gt;&lt;/A&gt;를 실시하고 세금을 균등하게 받았기 때문에 곳간의 쌀은 이후 수나라가 망한 뒤에도 20년이나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lt;BR&gt;&lt;BR&gt;당나라는 수나라가 이루어 놓은 많은 일들을 바탕으로 발전하여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제국이 300년이나 이어지며 세계 여러 곳을 누비다 보니 무역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동전을 만드는 구리가 모자랐습니다. 나라에서는 구리를 다른 데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lt;BR&gt;&lt;BR&gt;당나라의 귀족들은 힘의 상징인 청동기를 꼭 가지고 싶었습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구리 대신에 청동색을 내는 도자기를 만들어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런 까닭에 당나라 때 도자기가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 더 발전했습니다. &lt;BR&gt;&lt;BR&gt;그 중에서도 오랜 도자기 전통을 가진 곳은 중국 동남부 절강성의 도시인 월주입니다. 이곳에서는 도자기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로 흙과 유약혁명입니다. &lt;BR&gt;&lt;BR&gt;토기를 만드는 흙은 진흙이지만 도자기를 만들려면 13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견딜 수 있는 흙이 필요합니다. 이런 흙만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데 중국 강서성에 있는 고령산에서 많이 나온다고 해서 '고령토'라고 부릅니다. &lt;BR&gt;&lt;BR&gt;이 흙이 도자기가 된다는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도자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나라는 이 흙을 몰랐기 때문입니다(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공들을 데려가 이 흙의 비밀을 알아내었고, 유럽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도자기를 만드는 흙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때 영국의 어느 귀족이 사형수에게 도자기를 만들어내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그 사형수가 일년간의 노력 끝에 동물의 뼈를 넣어 실험에 성공하였고, 그래서 영국의 도자기를 '본'차이나라고 한다고 합니다). &lt;BR&gt;&lt;BR&gt;운이 좋게도 월주는 바로 근처에 고령토라는 흙이 나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고령토로 토기와는 비할 바 없는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lt;BR&gt;&lt;BR&gt;고령토는 석탄처럼 땅 속에 들어가서 캐내야 하는데 오랫동안 계속 퍼내다보니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월주는 옛 명성을 잃었고 품질이 좋지 못한 도자기를 만들며 위기에 빠졌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그때입니다. &lt;BR&gt;&lt;BR&gt;월주 도자기를 되살리려는 도공의 피눈물 나는 연구 끝에 마침내 새로운 도자기를 만들 핵심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것은 고령토의 주요한 성분이 되는 광물인 '장석'을 흙속에 섞는 기술을 찾아낸 것입니다. 고령토는 장석이 오랜 시간동안 잘게 부수어져서 고운 가루가 되면 만들어집니다. 흙의 마법이 마침내 풀린 것이지요. &lt;BR&gt;&lt;BR&gt;월주의 도자기를 '월주자'라고 하는데 그들은 불 조절을 잘하고 유약 속에 들어가는 성분을 잘 이용해 신비로운 푸른 빛 도자기를 만들어내었습니다. &lt;BR&gt;&lt;BR&gt;&lt;STRONG&gt;유약의 힘 &lt;/STRONG&gt;&lt;BR&gt;&lt;BR&gt;유약을 맨 처음 생각한 사람은 이집트 사람이라고 합니다. 유리로 만든 그릇이 잘 깨지자 토기 위에 유리를 발라 구워 타일을 만들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유리처럼 반짝이면서도 토기처럼 단단한 그릇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한 것이지요. 이 실험이 성공했을까요? 당연히 실패했습니다. &lt;BR&gt;&lt;BR&gt;하지만 유약의 아주 중요한 단서를 남겼습니다. 반짝거리고 매끄럽게 하는 물질이 유리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죠. 바로 '규석'입니다. 유약에는 이 규석이 필요합니다. &lt;BR&gt;&lt;BR&gt;그러나 규석을 제아무리 곱게 갈아도 그릇의 겉에 발라 구우면 흘러내리고 뭉치고 심지어 들뜨기까지 합니다. 이래서야 도자기라고 부를 수 없겠지요. &lt;BR&gt;&lt;BR&gt;오랫동안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lt;BR&gt;'음, 만일에 유약이 그릇과 같은 성분이라면 겉돌지 않을지도 몰라.' &lt;BR&gt;자기를 굽는 흙에는 '장석'이라는 돌가루가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이 장석가루를 곱게 갈아 유약에 섞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장석은 높은 온도까지 견디면서 유리성분이 골고루 녹아 퍼지며 그릇에 달라붙게 해줍니다. 그래서 이 유약을 '장석유약'이라고 부릅니다. &lt;BR&gt;&lt;BR&gt;장석유약이 만들어지면서 도자기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장석유약은 투명해서 바탕에 그려진 그림이나 무늬를 그대로 드러나게 해주는 까닭에 '투명유약'이라고도 합니다. 이 투명한 유약이 도자기에 무늬와 그림을 그려 넣는 '예술품'이 되게 한 주인공입니다. &lt;BR&gt;&lt;BR&gt;서양에서는 낮은 온도에서 광택이 나는 유약인 '납유'를 발라 도자기를 구웠습니다. 이것은 몸에 해로운 납성분 때문에 음식을 넣어둘 수 없었습니다. 식탁에 도자기를 올려놓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lt;BR&gt;&lt;BR&gt;장석으로 만든 유약은 인체에 해롭지도 않습니다. 장석유약이 만들어짐으로써 도자기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귀족과 왕들의 식탁을 도자기로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lt;BR&gt;&lt;BR&gt;&lt;STRONG&gt;청자 전쟁의 시작 &lt;/STRONG&gt;&lt;BR&gt;&lt;BR&gt;우리나라와 중국은 매우 신기하게도, 비슷한 왕조교체과정을 거치는데요, 당나라 말기와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3%B2%BA%CF%B1%B9%BD%C3%B4%EB&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남북국시대&lt;/FONT&gt;&lt;/U&gt;&lt;/A&gt; 말기 통일신라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두 나라는 왕실이 부패한 대신, 지방에선 호족이 힘을 키웠고, 그 호족들은 선종이라고 불리는 불교의 한 종파를 통해 자신들의 울분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lt;BR&gt;&lt;BR&gt;선종은 '참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수단으로 차를 마십니다. 이 차를 마시는 데는 토기를 쓸 수 없습니다. 토기는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차나 음식을 넣어두면 그 찌꺼기가 스며듭니다. 그래서 그곳에 다시 차를 넣어도 음식을 넣어도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자기는 구멍이 없습니다. '유약'을 발랐기 때문입니다. &lt;BR&gt;&lt;BR&gt;처음 차가 전해진 것은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로 승려들의 수행을 위해서나 약초로 쓰였습니다. 그 뒤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C8%EF%B4%F6%BF%D5&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흥덕왕&lt;/FONT&gt;&lt;/U&gt;&lt;/A&gt;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온 김대렴이 차씨를 가져다 심으면서부터 우리나라도 차를 즐겨 마시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차는 경주의 귀족은 물론이고 나라의 부자들이 꼭 가져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으며 더불어 차를 마실 그릇도 앞 다퉈 중국에서 사들였습니다. 차와 찻사발 무역은 호족의 힘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김대렴이 차의 씨앗을 가지고 들어오던 해에 장보고가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C3%BB%C7%D8%C1%F8&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청해진&lt;/FONT&gt;&lt;/U&gt;&lt;/A&gt;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lt;BR&gt;&lt;BR&gt;어쩌면 그때 우리나라 청자의 역사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남해안에서 무역으로 힘을 키운 호족 가운데 청자가 가진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 그가 아닌 다른 누구였을까요?(이곳에 이만한 호족이 없었고, 그만한 호족이 아니면 청자산업은 진입비용이 많이 들고, 장보고와 함께 청자산업도 일시 폐업했었으니 그렇게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lt;BR&gt;&lt;BR&gt;토기와 달리 청자는 가마를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청자는 만드는 데 50여 일이나 걸리고, 그나마도 질 좋은 청자는 열 개 중에서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렇다 보니 땔감을 지어오고, 흙을 퍼오고, 물을 길어오는 허드렛일을 하는 데서부터 도자기를 빚고 굽는 일까지 품값이 많이 들었습니다. &lt;BR&gt;&lt;BR&gt;돈이 된다고 여겼던 것인지 아니면 청자값으로 너무 많은 국부가 유출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장보고라고 여겨지는) 남해의 호족은 이런 비용을 기꺼이 내고서 청자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lt;BR&gt;&lt;BR&gt;영암에서 구림도기를 만들던 도공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호족의 후원 아래 청자를 만들기 위해 바다가 가깝고, 숲이 많아 땔나무도 풍부하고 질 좋은 흙이 많이 나오는 해남의 골짜기로 찾아들었습니다. &lt;BR&gt;&lt;BR&gt;청자를 만들기 위한 꿈을 꾸는 사람들은 해남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해안을 따라 무역선이 닿는 곳에 있던 호족들은 역시 무역으로 부자가 된 호족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청자가 가진 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후원에 힘입어 중부지방에도 가마가 만들어집니다. &lt;BR&gt;&lt;BR&gt;한강을 가까이 두고 개경근처 벽란도에서부터 서산까지 만들어진 가마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벽돌로 만들어진 가마입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PADDING-TOP: 0px&quot; width=1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225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09/16/ohmynews/20090916082106821.jpeg&quot; width=500 border=0 w=&quot;500&quot; h=&quot;225&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quot; align=left colSpan=2&gt;&lt;B&gt;▲ 벽돌가마 &lt;/B&gt;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에 남아있는 벽돌가마터 유적입니다.경기도에는 이런 유적과 당시 실패했던 흔적들이 산처럼 쌓인 벽돌가마터가 많이 있습니다.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해남도자박물관 &lt;BR&gt;&lt;BR&gt;&lt;BR&gt;&lt;/TD&gt;
&lt;TD align=righ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벽돌가마는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중국식 가마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가마를 만든 사람들은 호족들의 초빙을 받아 건너온 중국의 도공들입니다. &lt;BR&gt;&lt;BR&gt;그러나 청자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벽돌가마가 있었던 자리에는 실패한 도자기파편이 무려 6미터나 쌓여 있는 채 발견되었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전문가들도 쉽게 만들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 흙과 우리나라 나무와 우리나라 물에 대해 몰랐기 때문입니다. &lt;BR&gt;&lt;BR&gt;반면에 해남의 가마는 진흙가마입니다. 토기를 만들던 우리 옛 방식대로 청자를 굽기 시작했는데 이곳의 전문도공은 월주에서 왔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곳에서 벽돌가마를 만들지 않았던 것은 한강 주변보다 청자를 살 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공은 우리나라 시설을 빌려서 우리나라 토기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청자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PADDING-TOP: 0px&quot; width=1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223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09/16/ohmynews/20090916082106822.jpeg&quot; width=500 border=0 w=&quot;500&quot; h=&quot;223&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quot; align=left colSpan=2&gt;&lt;B&gt;▲ 진흙가마 &lt;/B&gt;전남 강진 용운리 가마터 사진입니다. 진흙가마 유적은 영암, 해남, 강진까지 많이 발견되고 있어서 이곳에 번성했던 도자기 산업의 열기를 짐작케 합니다.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해남도자박물관 &lt;BR&gt;&lt;BR&gt;&lt;BR&gt;&lt;/TD&gt;
&lt;TD align=righ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이렇게 해서 중국식 벽돌가마와 토기 만들던 도공들에 의해 시작된 진흙가마의 청자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lt;BR&gt;&lt;BR&gt;&lt;STRONG&gt;진흙가마의 몰락 &lt;/STRONG&gt;&lt;BR&gt;&lt;BR&gt;바야흐로 후삼국시대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신라는 경주라는 울타리 안으로 쪼그라들었고, 호족들은 지방에서 왕노릇하고 있었던 때였지요. 청자는 그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PADDING-TOP: 0px&quot; width=1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492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09/16/ohmynews/20090916082106824.jpeg&quot; width=291 border=0 w=&quot;291&quot; h=&quot;492&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quot; align=left colSpan=2&gt;&lt;B&gt;▲ 가마분포도 &lt;/B&gt;후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 가마가 있었던 유적을 지도에 표시한 그림입니다. 남해안에 있는 네개의 점만 진흙가마이고 나머지는 모두 벽돌가마입니다.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고진숙 &lt;BR&gt;&lt;BR&gt;&lt;BR&gt;&lt;/TD&gt;
&lt;TD align=righ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시흥 방산동을 시작으로 벽돌가마는 순식간에 여러 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벽돌가마는 크기가 해남의 진흙가마보다 두 배나 더 큽니다. 서해안을 따라 호족들이 너도나도 청자산업에 뛰어든 것이지요. &lt;BR&gt;&lt;BR&gt;벽돌가마는 진흙 가마에 비해 효율이 높았습니다. 성공 확률도 두 배 정도 높았고, 한 번에 만들어낼 수 있는 고급 청자는 무려 7배나 됩니다. &lt;BR&gt;&lt;BR&gt;도자기를 구울 때 최고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갑발'이라고 하는 통을 만들어 그 안에 도자기를 넣습니다. 이렇게 하면 땔감에서 나온 재가 엉겨 붙어서 생기는 얼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선 몇 개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옆에다 도자기들을 여러 겹 포개서 굽습니다. 이렇게 구운 도자기는 품질이 떨어지는 중·하품 도자기가 됩니다. 공간이 널찍한 벽돌가마가 유리한 이유가 이것이지요. 이러니 벽돌가마는 그 많은 땔감과 그 많은 비용을 감당해낼 수 있었습니다. &lt;BR&gt;&lt;BR&gt;한편 해남의 진흙가마는 장보고의 몰락과 함께 더 이상 도움 받을 길을 잃고 문을 닫았습니다. 청자전쟁의 서막은 이렇게 벽돌가마의 승리로 끝나는 듯이 보였습니다. &lt;BR&gt;&lt;BR&gt;불이 꺼진 해남의 진흙가마. 아무도 청자를 찾지 않았고, 중국 도공들도 떠나버린 지 오래된 이 초라한 곳에는 꿈을 가진 도공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더러는 고흥이나 장흥으로 후원자를 찾아 떠나기도 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청자를 만들 수 있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 자신은 물론 모든 것을 바꾼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PADDING-TOP: 0px&quot; width=1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332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09/16/ohmynews/20090916082106826.jpeg&quot; width=500 border=0 w=&quot;500&quot; h=&quot;332&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quot; align=left colSpan=2&gt;&lt;B&gt;▲ 갑발 &lt;/B&gt;갑발은 진흙으로 만들어 놓은 도가니 같은 도구입니다. 갑발을 씌우지 않은 '막사발'처럼 일부러 불과 재의 현란한 작용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합니다만 권력자들의 도자기는 엄격한 규격을 추구했기 때문에 갑발을 씌워 구운 고급자기들이었습니다.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고진숙 &lt;BR&gt;&lt;BR&gt;&lt;BR&gt;&lt;/TD&gt;
&lt;TD align=righ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TRONG&gt;흔들리는 벽돌가마 &lt;/STRONG&gt;&lt;BR&gt;&lt;BR&gt;918년에 민심을 잃은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1%C3%BF%B9&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궁예&lt;/FONT&gt;&lt;/U&gt;&lt;/A&gt;를 내쫓고 고려를 세운 왕건은 매우 영리하였습니다. 호족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 자신도 송악지방(지금의 개성)의 호족출신이었기에 더더욱 잘 알았습니다. &lt;BR&gt;&lt;BR&gt;왕건이 호족을 모아낸 방법은 결혼입니다. 그는 호족들을 만나기만 하면 모조리 그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려 스물아홉 명의 아내를 두었고 스물다섯 명의 아들과 아홉 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왕건과 사돈관계를 맺은 호족들은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우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lt;BR&gt;&lt;BR&gt;하지만 통일이 되고 난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호족들은 나라를 세운 공신들인데다 왕실과 사돈이거나 외가이다 보니 나라는 또다시 시끄러워졌습니다. &lt;BR&gt;&lt;BR&gt;고려의 임금은 호족의 힘을 눌러야만 했습니다. 호족들은 지방에 거대한 농장이 있고 군사도 직접 거느렸기 때문에 그들을 가만 놔두면 어렵게 통일한 고려는 또다시 반란과 분열의 소용돌이로 휩쓸릴 테니 말이에요. 고려 왕실은 호족세력의 힘을 빼앗는 일에 나라의 운명이 달렸다고 여겼습니다. &lt;BR&gt;&lt;BR&gt;벽돌가마도 운명을 비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을 후원하던 호족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족들은 더 이상 이 가마를 운영할 힘이 없어졌습니다. 고려의 임금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하나씩 둘씩 빼앗아 가고 있었습니다. &lt;BR&gt;&lt;BR&gt;후삼국시절 어지러운 때를 이용해 호족들은 정복한 곳의 주민이나 빚을 못 갚은 농민들을 비롯해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수많은 양인들을 자기 노비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노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지방에선 호족이 왕처럼 일반 백성들을 제 맘대로 부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lt;BR&gt;&lt;BR&gt;956년에 광종임금은 호족을 억누르기 위해 그들의 개인 병사노릇도 하고 돈벌이에도 불려나가는 노비들을 전쟁이전의 신분으로 다시 되돌려놓았습니다. 이것을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3%EB%BA%F1%BE%C8%B0%CB%B9%FD&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노비안검법&lt;/FONT&gt;&lt;/U&gt;&lt;/A&gt;'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성종임금 때에는 아예 지방에도 관리가 내려와 감시했기 때문에 호족들은 그저 한명의 백성일 뿐이었습니다. &lt;BR&gt;&lt;BR&gt;지방 백성들을 제맘대로 부려먹으며 벽돌가마를 운영하던 호족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습니다. 호족들로서는 울며겨자먹기로 청자산업에서 손을 떼야 했습니다. 벽돌가마는 새 삶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lt;BR&gt;&lt;BR&gt;&lt;STRONG&gt;왕실의 도자기 &lt;/STRONG&gt;&lt;BR&gt;&lt;BR&gt;호족들을 억누르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는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한 광종임금은 무엇보다 도자기에 눈을 돌렸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되었는데도 토기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왕실은 성대한 의식을 통해 하늘의 뜻을 받은 것은 호족이 아니라 자신들이란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왕실의 도자기가 필요합니다. &lt;BR&gt;&lt;BR&gt;그동안 왕실은 중국의 도자기를 사들여 썼습니다, 외국 사신이라도 오면 도자기를 내놓을 형편이 못되어 금으로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았습니다. 참으로 체통이 안서는 일이지요. 토기가 그랬듯이 도자기는 힘의 상징이었고 새 시대에 맞는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lt;BR&gt;&lt;BR&gt;청자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월국이 멸망한 것은 그때쯤입니다. 광종임금은 주저 없이 그곳에서 도공들을 초빙해왔습니다. 다른 벽돌가마들이 문을 닫을 무렵 운이 좋아 개성 가까이 있었던 황해도 봉천면 원산리에 있는 벽돌가마는 왕실의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도자기입니다. &lt;BR&gt;&lt;BR&gt;
&lt;TABLE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PADDING-TOP: 0px&quot; width=1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BR&gt;&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288 src=&quot;http://photo-media.daum-img.net/200909/16/ohmynews/20090916082106828.jpeg&quot; width=200 border=0 w=&quot;200&quot; h=&quot;288&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9pt; COLOR: #666666; LINE-HEIGHT: 130%&quot; align=left colSpan=2&gt;&lt;B&gt;▲ 순화4년명 도자기 &lt;/B&gt;이 도자기는 지금껏 발견된 도자기 가운데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한 최초의 도자기입니다. 도자기에 '순화 4년에 태조 왕건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태묘 제1실에서 쓰는 제사용 항아리로 최길회라는 장인이 만들었다'고 새겨 넣은 글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화4년명 항아리'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순화4년이라고 새겨진 항아리'란 뜻입니다.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이화여대박물관 &lt;BR&gt;&lt;BR&gt;&lt;BR&gt;&lt;/TD&gt;
&lt;TD align=righ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순화4년은 993년으로 성종임금 때입니다. 매우 재미있게도 호족을 누르고 고려사회 개혁을 완성시킨 일은 광종임금 때 시작되어 경종임금을 거쳐 성종임금 때 마무리됩니다. 이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자기가 완성되었습니다. &lt;BR&gt;&lt;BR&gt;이때에 이르러 호족들은 완전히 힘을 잃었고 왕이 작은 고을에까지 관리를 파견하는 '중앙집권화'가 우리나라 최초로 성공했습니다. 순화4년명 도자기는 고려 왕실이 마침내 삼국시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왕권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lt;BR&gt;&lt;BR&gt;&lt;STRONG&gt;거란과의 전쟁 &lt;/STRONG&gt;&lt;BR&gt;&lt;BR&gt;순화4년명 항아리에서 보듯이 왕실의 도자기치곤 보잘 것 없습니다. 유약은 제멋대로 흘러내려 어설프고 색도 갈색에서부터 연두색, 노란색까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이 도자기에 만족할 수 있을까요? &lt;BR&gt;&lt;BR&gt;그토록 쟁쟁하던 중국자기를 만들던 장인들도 낯선 물, 낯선 땅에 이르자 형편없는 도자기를 만들었으니 왕실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요. 길이 없어 보이던 때에 때마침 일어난 엄청난 전쟁의 회오리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었습니다. 거란이 대대적으로 침략해 온 것입니다. &lt;BR&gt;&lt;BR&gt;거란은 한반도 북쪽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유목민족입니다. 유목민족은 말을 잘 타기 때문에 전투는 잘하지만 짐승의 무리를 쫓아다니는 생활 때문에 잘 뭉치지 못하여 강한 힘을 내지 못해왔습니다. 그러나 걸출한 영웅이 나타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훗날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의 징기스 칸이나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의 누루하치처럼 말입니다. 바로 거란의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E%DF%C0%B2%BE%C6%BA%B8%B1%E2&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야율아보기&lt;/FONT&gt;&lt;/U&gt;&lt;/A&gt;도 그런 사람입니다. &lt;BR&gt;&lt;BR&gt;그는 거란족을 통일해 요나라를 세운 뒤 기세를 올렸습니다. 그들이 발해를 멸망시켰으니 고려에서는 '짐승같은 나라'로 여겼습니다. 비록 문명은 뒤쳐질지 모르지만 싸움 하나만은 유목민족답게 잘하는 터라 고려는 곧 위기에 빠집니다. &lt;BR&gt;&lt;BR&gt;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이끄는 부대가 침략해 들어왔지만 그다지 힘을 써보지 못한 채 화해하고 돌아갔습니다. 오히려 이때 서희는 그들을 잘 구슬려 강동지방의 땅을 얻어냈습니다. 거란으로서는 헛힘만 쓰고 말았습니다. &lt;BR&gt;&lt;BR&gt;두 번째 침입은 1010년에 있었습니다. 이번은 정말 뼈아픈 패배를 거듭하며 고려인에게 수치심을 안겨줬습니다. 별 힘도 써보지 못하고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전라도 나주지방까지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lt;BR&gt;&lt;BR&gt;다행히 양규와 같은 고려의 장군들이 몰아내며 한고비 넘겼지만 이후 1018년 &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rtupcoll=NNS&amp;q=%B0%AD%B0%A8%C2%F9&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916082107358&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강감찬&lt;/FONT&gt;&lt;/U&gt;&lt;/A&gt; 장군이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뜻을 완전히 꺾을 때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라는 전쟁으로 시달렸습니다. &lt;BR&gt;&lt;BR&gt;이 전쟁은 청자의 운명을 돌려놓았습니다.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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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와 '우리'의 갈림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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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2T10:03:22Z</updated>
	    <published>2009-09-12T10:03:2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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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images2/music_icon1.gif&quot;&gt;&lt;BR&gt;&lt;EMBED src=&quot;http://music.m-letter.or.kr/music/산토끼/Acoustic Cafe_Hope For Tomorrow.wma&quot; width=290 height=24 type=audio/x-ms-wma loop=&quot;false&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false&quot; showcontrols=&quot;true&quot;&gt; &lt;BR&gt;&lt;FONT color=#999999&gt;배경음악 : Acoustic Cafe - Hope For Tomorrow&lt;/FONT&gt; &lt;BR&gt;&lt;BR&gt;&lt;BR&gt;&lt;B&gt;&lt;FONT size=3&gt;'나'와 '우리'의 갈림길&lt;/FONT&gt;&lt;/B&gt;&lt;BR&gt;&lt;BR&gt;서로의 우정이 무척이나 깊다고 생각하는&lt;BR&gt;친구들이 있었습니다.&lt;BR&gt;&lt;BR&gt;두 사람은 세상을 알기 위해&lt;BR&gt;함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lt;BR&gt;&lt;BR&gt;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한 친구가&lt;BR&gt;땅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습니다.&lt;BR&gt;&quot;야, 오늘은 나의 운수가 트인 날이구나!&quot;&lt;BR&gt;&lt;BR&gt;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lt;BR&gt;몹시 섭섭한 듯 말했습니다.&lt;BR&gt;&quot;'자네는 어떻게 '나' 라는 말을 쓰나?&lt;BR&gt;이럴 때는 '우리' 하는 말을 쓰면 좋지 않은가?&quot;&lt;BR&gt;&lt;BR&gt;두 사람은 서먹한 사이가 되었지만&lt;BR&gt;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lt;BR&gt;다시 길을 떠나려 할 때&lt;BR&gt;지갑을 잃어버린 주인이라며 &lt;BR&gt;한 남자가 뛰어왔습니다.&lt;BR&gt;&lt;BR&gt;그는 두 친구를 보고 다짜고짜&lt;BR&gt;&quot;도둑놈 들!&quot; 이라고 몰아 붙였습니다.&lt;BR&gt;&lt;BR&gt;그러자 지갑을 주는 친구가 &lt;BR&gt;옆의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lt;BR&gt;&quot;우리를 도둑으로 몰다니...&lt;BR&gt;우리는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웠을 뿐이오.&quot;&lt;BR&gt;&lt;BR&gt;그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lt;BR&gt;기가 막힌 듯 말했습니다.&lt;BR&gt;&quot;자네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있나?&lt;BR&gt;조금 전 운수가 좋을 때는 '나' 라 하고,&lt;BR&gt;궁지에 몰리자 '우리' 를 찾으니 &lt;BR&gt;무엇이 진짜 우리 사이인가?&quot;&lt;BR&gt;&lt;BR&gt;- 하현주*교정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4_1.jpg&quot; border=0&gt;&lt;BR&gt;&lt;BR&gt;아무리 막역한 사이라 해도,&lt;BR&gt;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lt;BR&gt;발견하게 됩니다.&lt;BR&gt;누군가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lt;BR&gt;우리는 고단한 인생길에서&lt;BR&gt;큰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lt;BR&gt;그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lt;BR&gt;&lt;BR&gt;- '나' 보다는 '우리' 를 위합시다!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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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미새의 충고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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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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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9T20:53:11Z</updated>
	    <published>2009-09-09T20:53: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images2/music_icon1.gif&quot;&gt;&lt;BR&gt;&lt;EMBED src=&quot;http://music.m-letter.or.kr/music/기타/시노래모임 풍경_허공과 어머니.wma&quot; width=290 height=24 type=audio/x-ms-wma loop=&quot;false&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false&quot; showcontrols=&quot;true&quot;&gt; &lt;BR&gt;&lt;FONT color=#999999&gt;배경음악 : 시노래 모임 풍경 - 허공과 어머니&lt;/FONT&gt; &lt;BR&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미 참새는 실연당한 딸 참새를 위로하기 위해&lt;BR&gt;여행을 나섰습니다.&lt;BR&gt;&lt;BR&gt;첫 번째로 간 곳은 산봉우리였습니다.&lt;BR&gt;거기서부터 모녀는 물줄기를 따라 내려와서&lt;BR&gt;산 밑의 웅덩이에 이르렀습니다.&lt;BR&gt;&lt;BR&gt;물웅덩이에 풀잎하나를 따 던지면서&lt;BR&gt;어미 참새가 말했습니다.&lt;BR&gt;“물줄기가 여기에 머문다면 풀잎은&lt;BR&gt;어떻게 될까? 아마 물웅덩이 밖에 모를 거야.“&lt;BR&gt;&lt;BR&gt;잎을 띄운 물줄기가 흘러서 강으로 들어섰습니다.&lt;BR&gt;강 위를 날던 어미 참새가&lt;BR&gt;딸 참새에게 말했습니다.&lt;BR&gt;“산에서 내려온 그 물줄기가 만일&lt;BR&gt;여기에 머물고 만다면 강 밖에 모르겠지?“&lt;BR&gt;&lt;BR&gt;풀잎을 띄운 물줄기가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습니다.&lt;BR&gt;참새 모녀도 바다에 이르렀습니다.&lt;BR&gt;&lt;BR&gt;어미 참새가 말했습니다.&lt;BR&gt;“산봉우리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바다에&lt;BR&gt;이르기 위해서는 산 밑 웅덩이와도&lt;BR&gt;헤어지고 강과도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lt;BR&gt;너도 마찬가지란다.&lt;BR&gt;이별은 슬픈 것일망정 멈춤은 아니란다.&lt;BR&gt;성장 촉진제이기도 하지.&lt;BR&gt;다시 기운차게 날아 보려무나.&quot;&lt;BR&gt;&lt;BR&gt;- 행복한 동행 中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06.jpg&quot; border=0&gt;&lt;BR&gt;&lt;BR&gt;어미 새의 충고가&lt;BR&gt;우리들 가슴에도 깊이 박힙니다.&lt;BR&gt;&lt;BR&gt;그렇습니다.&lt;BR&gt;우리는 보여 지는 것에만 충실했을 뿐,&lt;BR&gt;멀리 내다 볼 줄은 몰랐습니다.&lt;BR&gt;&lt;BR&gt;우물 안 개구리.&lt;BR&gt;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요?&lt;BR&gt;&lt;BR&gt;- 넘어짐은 일어서기 위한 발판입니다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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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원같은 인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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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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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9T20:47:4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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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images2/music_icon1.gif&quot;&gt;&lt;BR&gt;&lt;EMBED src=&quot;http://music.m-letter.or.kr/music/산토끼/Acoustic Cafe_리베르 탱고.mp3&quot; width=290 height=24 type=audio/mpeg loop=&quot;false&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false&quot; showcontrols=&quot;true&quot;&gt; &lt;BR&gt;&lt;FONT color=#999999&gt;배경음악 : Acoustic Cafe - 리베르 탱고&lt;/FONT&gt; &lt;BR&gt;&lt;BR&gt;&lt;BR&gt;&lt;B&gt;&lt;FONT size=3&gt;정원같은 인생&lt;/FONT&gt;&lt;/B&gt;&lt;BR&gt;&lt;BR&gt;인생은 정원이다&lt;BR&gt;가꿀수록 아름답고 &lt;BR&gt;&lt;BR&gt;가꿀수록 정이가고&lt;BR&gt;정든 마음 영원이라&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1_1.jpg&quot; border=0&gt;&lt;BR&gt;&lt;BR&gt;가슴에 정을 담고 다가가는 사람&lt;BR&gt;어디를 가나 울컥이고&lt;BR&gt;&lt;BR&gt;감격의 사람은 &lt;BR&gt;눈 이슬을 가슴에 안고있다.&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1_2.jpg&quot; border=0&gt;&lt;BR&gt;&lt;BR&gt;애잔한 외마디는 통곡으로&lt;BR&gt;대지를 쓰러안고&lt;BR&gt;&lt;BR&gt;살고 가고 살아가는&lt;BR&gt;숨소리 인생아!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1_3.jpg&quot; border=0&gt;&lt;BR&gt;&lt;BR&gt;가슴이 이렇게도 저미고&lt;BR&gt;시큰한 시간 시간 어찌하란 말인가?&lt;BR&gt;&lt;BR&gt;숨 쉬는 이 감격을&lt;BR&gt;어찌하란 말이냐?&lt;BR&gt;&lt;BR&gt;저며오는 이 가슴을&lt;BR&gt;어찌해야 하는가?&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1_4.jpg&quot; border=0&gt;&lt;BR&gt;&lt;BR&gt;볼수록 아름다이 만들어진&lt;BR&gt;인생의 정원&lt;BR&gt;&lt;BR&gt;차라리... 차라리&lt;BR&gt;그 정원에 잠들어 내라! &lt;BR&gt;&lt;BR&gt;- 소 천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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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될 때까지, 할 때까지, 이룰 때 까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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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9T20:45:18Z</updated>
	    <published>2009-09-09T20:45:1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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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TRONG&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images2/music_icon1.gif&quot;&gt;&lt;BR&gt;&lt;EMBED src=http://music.m-letter.or.kr/music/기타/숙명가야금연주단-캐논연주곡.mp3 width=290 height=24 type=audio/mpeg loop=&quot;false&quot; volume=&quot;0&quot; autostart=&quot;true&quot; showstatusbar=&quot;false&quot; showcontrols=&quot;true&quot;&gt;&lt;/STRONG&gt; &lt;BR&gt;&lt;FONT color=#999999&gt;배경음악 : 숙명 가야금 연주단 - 캐논 연주곡&lt;/FONT&gt; &lt;BR&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될 때까지, 할 때까지, 이룰 때 까지&lt;BR&gt;&lt;BR&gt;&lt;/STRONG&gt;할랜이라는 63세 노인이 있었다.&lt;BR&gt;할랜은 자기가 소유한 식당 및 숙박업을&lt;BR&gt;몇 년 동안 경영해왔다.&lt;BR&gt;그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받고&lt;BR&gt;사업을 넘길 것을 제안 받았으나&lt;BR&gt;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lt;BR&gt;&lt;BR&gt;2년 후,&lt;BR&gt;주정부에서 그의 사업장을 우회하는&lt;BR&gt;새로운 간선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다.&lt;BR&gt;1년도 되지 않아 할랜은 모든 것을 잃었다.&lt;BR&gt;사업을 망친 주 정부를 상대로&lt;BR&gt;소송을 걸 수도 있었지만,&lt;BR&gt;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lt;BR&gt;&lt;BR&gt;이유는 자신이 평소 자신 있게&lt;BR&gt;해온 치킨 요리를 널리 알릴&lt;BR&gt;기회가 온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lt;BR&gt;&lt;BR&gt;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조리법을 &lt;BR&gt;팔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lt;BR&gt;하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lt;BR&gt;할랜은 1009번 거절당한 후에야&lt;BR&gt;그의 꿈을 믿어 주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lt;BR&gt;&lt;BR&gt;그렇게 몇 년 후, 할랜은 식당을 열었고,&lt;BR&gt;이 식당은 전 세계에 산재한 &lt;BR&gt;수천 개 지점의 시초가 되었다.&lt;BR&gt;&lt;BR&gt;할랜 샌더스. &lt;BR&gt;바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세운&lt;BR&gt;전설적인 인물이다.&lt;BR&gt;그는 나이나 사업실패를 이유로&lt;BR&gt;포기하지 않았고 오늘 날, &lt;BR&gt;전 세계적으로 성공 자가 되었다. &lt;BR&gt;&lt;BR&gt;- &lt;성공철학&gt; 중에서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letter.or.kr/mail/img1/2213.jpg&quot; border=0&gt;&lt;BR&gt;&lt;BR&gt;63세 노인도 이런 투지가 있었습니다.&lt;BR&gt;그는 1009번 도전한 것이 아니라&lt;BR&gt;될 때까지 도전했던 것입니다.&lt;BR&gt;&lt;BR&gt;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하는 겁니다.&lt;BR&gt;될 때까지, 할 때까지, 이룰 때까지...&lt;BR&gt;&lt;BR&gt;- 쉽게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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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길’ 부산엔 ‘해안길’ 있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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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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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6T23:40:38Z</updated>
	    <published>2009-09-06T23:40:3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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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subtitle01 style=&quot;VERTICAL-ALIGN: top&quot; colSpan=2&gt;해운대 문탠로드·광안리 이기대산책로 등&lt;BR&gt;바다내음 나는 사색의 길…숲·바위 등 절경&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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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movie_text style=&quot;WORD-BREAK: break-all&quot; bgColor=#8f8f8f&gt;» 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길’ 부산엔 ‘해안길’ 있소&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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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noWrap width=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AD kisa top banner include END --&gt;부산의 대표적인 해수욕장 인근에 꾸며진 낭만이 가득한 해안길(&lt;SPAN id=CLK_POP0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B%EA%C3%A5%B7%CE&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0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B%EA%C3%A5%B7%CE&quot; target=_blank&gt;산책로&lt;/A&gt;&lt;/SPAN&gt;&lt;/A&gt;&lt;/SPAN&gt;)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lt;P align=justify&gt;해운대해수욕장~송정해수욕장의 문탠로드,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의 이기대해안산책로, 송도해수욕장에서 출발하는 송도해안산책로는 부산시민들 뿐만 아니라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도 부담없이 한번 걸어 볼 만한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태종대로 가는 절영해안산책로도 절경을 자랑한다. 가볍게 때로는 사색을 하면서 걷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이 해안길들은 모두 푸른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숲과 해안 절벽이라는 절경과 파도소리와 바다내음이 압권이다. 
&lt;P align=justify&gt;달빛을 즐기는 문탠로드는 달맞이언덕을 오르다 코리아아트갤러리 맞은 편 숲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부드러운 흙길을 밟으며 수십 년 된 해송숲 사이로 동해남부선 철도가 보이고,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는 일상의 피곤함을 잊게 해준다. 솔향과 솔바람, 바다&lt;SPAN id=CLK_POP3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3%BF%BB%F5&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3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3%BF%BB%F5&quot; target=_blank&gt;냄새&lt;/A&gt;&lt;/SPAN&gt;&lt;/A&gt;&lt;/SPAN&gt;, 바다바람, 파도소리가 특히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편안한 차림으로 즐길 수 있으며, 중간에 청사포로 빠지거나 멀리는 송정해수욕장까지 걸어도 좋다. 해가 지면서부터 밤 11시까지, 새벽 5시부터 해가 뜰 때까지 &lt;SPAN id=CLK_POP2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A1%B7%CE%B5%EE&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2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A1%B7%CE%B5%EE&quot; target=_blank&gt;가로등&lt;/A&gt;&lt;/SPAN&gt;&lt;/A&gt;&lt;/SPAN&gt;이 켜져 있어 밤이나 새벽에도 어려움 없이 거닐 수 있다. 
&lt;P align=justify&gt;이기대해안산책로는 동생말~어울마당~농바위~오륙도로 이어지는 4.7km 구간으로 용호동 동쪽에 위치한 장산봉이 바다와 면해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약 2㎞에 걸쳐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바위들이 비스듬히 바다로 빠져드는 모습을 하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낚시터로도 각광받고 있다. 1993년에야 개방됐으며, 용호어촌계 물량장과 용호부두가 있는 동생말부터 못난이골짜기- 목너머-이기대-장바위-남끝- 처마바위-박골새-농바위-산태골- 호동 포진지까지 길게 늘어진 바닷가엔 재미있는 이름의 절경들이 펼쳐져 있다. 
&lt;P align=justify&gt;송도해안산책로는 송도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암남공원까지 가는 800m 거리로 40~5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산책로를 걸으며 수많은 배들이 닻을 내린 아름다운 송도 연안과 1억년 전 생긴 퇴적암으로 형성된 암남공원의 절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 남해안 수평선 너머를 조망할 수 있는 세곳의 전망대와 흔들다리, 산책로 아래의 낚시터 등이 눈길을 끈다. 바위와 바다, 산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파도가 내리 치면 하얀 물살이 떨어져 내리고, 아찔한 절벽도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껐 즐길 수 있다. 바위를 연결해 만든 철다리에 올라서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lt;P align=justify&gt;절영해안산책로는 영도구 영선동 아랫로타리에서 제2송도 바닷가 쪽으로 500m 정도 가다가 반도보라아파트를 지나면 출발지점이 나온다. 대마도와 송도 쪽으로 드넓은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3㎞ 거리를 2시간 정도 굽이굽이 걸어 가면 경치가 달라지고, &lt;SPAN id=CLK_POP1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DA%B0%A5&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1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DA%B0%A5&quot; target=_blank&gt;자갈&lt;/A&gt;&lt;/SPAN&gt;&lt;/A&gt;&lt;/SPAN&gt; 소리가 합창을 한다. &lt;SPAN id=CLK_POP4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E5%BD%C2&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4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E5%BD%C2&quot; target=_blank&gt;장승&lt;/A&gt;&lt;/SPAN&gt;&lt;/A&gt;&lt;/SPAN&gt;과 돌탑, 출렁다리, 장미&lt;SPAN id=CLK_POP5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5%CD%B3%CE&quot; target=_blank&gt;&lt;SPAN id=CLK_POP5 onmouseover=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 style=&quot;Z-INDEX: 999&quot;&gt;&lt;A class=kl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upgrade_kl=yes&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5%CD%B3%CE&quot; target=_blank&gt;터널&lt;/A&gt;&lt;/SPAN&gt;&lt;/A&gt;&lt;/SPAN&gt;, 파도광장, 무지개 분수대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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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터벅터벅… 마음으로 걷는 길 ( 지리산 둘레길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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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다물</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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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06T23:31:19Z</updated>
	    <published>2009-09-06T23:31:1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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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src=&quot;http://image.munhwa.com/gen_news/200909/20090905010313340850021_b.jpg&quot; width=54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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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height=10 src=&quot;http://image.munhwa.com/www/common/sp.gif&quot;&gt;&lt;BR&gt;
&lt;DIV class=news_photo align=justify&gt;&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FONT&gt; &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B&gt;길 안내하는 강아지&lt;/B&gt;&lt;/FONT&gt; 전북 상황마을에 이어진 다랑이 논길. 강아지 한 마리가 앞서 가면서 길을 안내하고 있다.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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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src=&quot;http://image.munhwa.com/gen_news/200909/20090905010313340850022_b.jpg&quot; width=54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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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height=10 src=&quot;http://image.munhwa.com/www/common/sp.gif&quot;&gt;&lt;BR&gt;
&lt;DIV class=news_photo align=justify&gt;&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FONT&gt; &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B&gt;밤엔 별천지 구경&lt;/B&gt;&lt;/FONT&gt; 지리산에 쏟아지는 별빛을 받으며 한 관광객이 밤길을 걷고 있다. 불빛이 적은 이곳에서 별잔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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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src=&quot;http://image.munhwa.com/gen_news/200909/20090905010313340850023_b.jpg&quot; width=54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4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height=10 src=&quot;http://image.munhwa.com/www/common/sp.gif&quot;&gt;&lt;BR&gt;
&lt;DIV class=news_photo align=justify&gt;&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FONT&gt; &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B&gt;둘레길에서 만난 풍경들…&lt;/B&gt;&lt;/FONT&gt; 동네 들머리 당산나무 밑에서 손자를 등에 업은 할머니가 일 나간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다.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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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src=&quot;http://image.munhwa.com/gen_news/200909/20090905010313340850024_b.jpg&quot; width=54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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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height=10 src=&quot;http://image.munhwa.com/www/common/sp.gif&quot;&gt;&lt;BR&gt;
&lt;DIV class=news_photo align=justify&gt;&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FONT&gt; 복스러운 늙은 호박들이 누런 뱃살을 내놓고 초가을 저녁 햇살을 즐기고 있다.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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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src=&quot;http://image.munhwa.com/gen_news/200909/20090905010313340850025_b.jpg&quot; width=54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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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LINE-HEIGHT: 14px&quot;&gt;&lt;IMG height=10 src=&quot;http://image.munhwa.com/www/common/sp.gif&quot;&gt;&lt;BR&gt;
&lt;DIV class=news_photo align=justify&gt;&lt;FONT style=&quot;FONT-SIZE: 12px&quot;&gt;▲&lt;/FONT&gt; 둘레길에서 만난 늙은 농부의 손. 정직하게 살아온 흔적이 손 마디마디에 그대로 묻어 있다.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view_setting id=view_body style=&quot;FONT-SIZE: 14px; LINE-HEIGHT: 22px&quot; align=justify name=&quot;view_body&quot;&gt;&lt;!-- google_ad_section_end --&gt;&lt;!-- google_ad_section_start --&gt;&lt;!-- 키워드 링크 광고 적용 div 20090515 by 김명준 --&gt;
&lt;DIV id=NewsAdContent&gt;&lt;FONT class=&quot;&quot;&gt;터벅터벅 걷는다. 서두를 것도 없고, 급할 것도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서서히 몰려드는 땅거미에 마을 너머 큰 산들이 아득해진다. 길가에 뒹구는 늙은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호박',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호박');&quot; onmouseout=mouseOut();&gt;호박&lt;/FONT&gt;들이 저녁 햇살에 누런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뱃살',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뱃살');&quot; onmouseout=mouseOut();&gt;뱃살&lt;/FONT&gt;을 내놓고, 논두렁에 핀 달맞이꽃들은 달 맞을 채비에 분주하다. 누렁이를 앞세우고 걸어가는 늙은 아낙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어디 마실이라도 가는가 보다.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지리산',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지리산');&quot; onmouseout=mouseOut();&gt;지리산&lt;/FONT&gt; 둘레길에서 마주한 초가을 풍경에는 나락이 익어가는 구수한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냄새',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냄새');&quot; onmouseout=mouseOut();&gt;냄새&lt;/FONT&gt;와 향긋한 칡꽃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향기',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향기');&quot; onmouseout=mouseOut();&gt;향기&lt;/FONT&gt;까지 스며 있다. &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지리산 둘레길은 모두 800여리(약 320㎞)로 3개 도(전남, 경남, 전북), 5개 시·군(&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구례',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구례');&quot; onmouseout=mouseOut();&gt;구례&lt;/FONT&gt;,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하동',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하동');&quot; onmouseout=mouseOut();&gt;하동&lt;/FONT&gt;, 산청, 함양, 남원), 16개 읍·면과 80여개 마을을 품고 있다. 지리산 주민들과 함께 지리산 보전운동을 펼쳐 온 ‘지리산생명&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연대',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연대');&quot; onmouseout=mouseOut();&gt;연대&lt;/FONT&gt;’라는 시민&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단체',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단체');&quot; onmouseout=mouseOut();&gt;단체&lt;/FONT&gt;가 2007년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설립',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설립');&quot; onmouseout=mouseOut();&gt;설립&lt;/FONT&gt;한 ‘사단법인 숲길’에서 이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들을 이어주던 옛길의 흔적을 하나하나 되살릴 이 길은 2011년까지 완성할 예정이며 9월 현재 주천~운봉, 운봉~인월, 인월~금계, 금계~&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동강',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동강');&quot; onmouseout=mouseOut();&gt;동강&lt;/FONT&gt;, 동강~수철 등 5개 구간이 만들어졌다.&lt;/FONT&gt;&lt;BR&gt;&lt;BR&gt;“꼬끼오~~.”&lt;BR&gt;&lt;FONT class=&quot;&quot;&gt;오랜만에 들어 보는 수탉 소리에 기분 좋게 잠을 깼다. 갖가지 나물로 정성껏 차린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밥상',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밥상');&quot; onmouseout=mouseOut();&gt;밥상&lt;/FONT&gt;을 받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전북 남원의 매동마을 이장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경남 함양의 금계마을을 잇는 10.68㎞의 둘레길을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걷기',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걷기');&quot; onmouseout=mouseOut();&gt;걷기&lt;/FONT&gt; 시작한다. 들녘엔 조,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수수',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수수');&quot; onmouseout=mouseOut();&gt;수수&lt;/FONT&gt;, 콩 등 온갖 곡식이 익어가고 물봉선화, 닭의장풀, 강아지풀이 길섶에 지천으로 피었다. 갈림길마다 나오는 이정표에 잠자리가 앉아 길을 안내한다. 산길이 끝나며 시작된 다랑이 논이 전북 상황마을과 경남 창원마을을 이어주는 등구재 너머로 계속된다. 한 평의 땅이라도 더 &lt;FONT onmouseover=&quot;mouseOver(this,'만들기',event);&quo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click=&quot;mouseClick(this,'만들기');&quot; onmouseout=mouseOut();&gt;만들기&lt;/FONT&gt; 위해 수직으로 쌓아 올린 다랑이 논 축대가 이곳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보는 듯하다. &lt;/FONT&gt;&lt;BR&gt;&lt;BR&gt;둘레길을 걸으며 내 고향의 그리운 길들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잡고 장을 보러 가던 길, 이웃집의 등 굽은 할아버지가 삽을 들고 물꼬 보러 다니던 길, 어머니가 외갓집에 다녀오시던 길…. 하지만 그 길들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깔리는 신작로에 고향 마을의 길들은 자동차 차지가 되어 버렸고, 이제는 길에서 이웃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힘들어졌다. &lt;BR&gt;&lt;BR&gt;지리산 둘레길은 삶의 이야기와 풍경이 녹아 있기에 기억의 저편에 있던 고향의 모습이 되살아나는 추억의 길이다. 오직 정상을 향해 오르고 다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옆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걸어 가는 길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그동안 잊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내 주변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는 그런 길이다. &lt;BR&gt;&lt;BR&gt;천천히 둘레둘레…. 올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 보면 어떨까. 저 멀리 천왕봉, 형제봉, 제석봉, 중봉 등 지리산 주능선이 둘레길 순례자들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lt;BR&gt;&lt;BR&gt;지리산 = 사진·글 김선규기자 ufokim@munhwa.com&lt;BR&gt;&lt;BR&gt;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 063-635-0850&lt;BR&gt;&lt;/DIV&gt;&lt;!-- 키워드 링크 광고 적용 end --&gt;&lt;!-- google_ad_section_end --&gt;&lt;!-- google_ad_section_start(weight=ignore) --&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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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LINE-HEIGHT: 30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14px&quot; face=굴림 color=#000000&gt;&lt;B&gt;[관련기사]&lt;/B&gt;&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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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LINE-HEIGHT: 22px&quot;&gt;&lt;IMG hspace=5 src=&quot;http://image.munhwa.com/www/common/arrow_linkt.gif&quot; vspace=3&gt;&lt;A class=linkt href=&quot;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0501110102225004&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지리산 둘레길 아침 햇살&lt;/FONT&gt;&lt;/U&gt;&lt;/A&gt;&lt;BR&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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