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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석천의 아나로그 쉼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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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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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8T08:20:2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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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아그룹은 金大中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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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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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8T08:20:29Z</updated>
	    <published>2009-11-28T08:20: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lass=big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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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title2&gt;&lt;B&gt;“동아그룹은 金大中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lt;/B&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소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 기사요약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border=0&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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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5.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5.gif&quot;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 background=/image/bignews_box00.gif&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pt&quot; color=#000000&gt;&lt;B&gt;&lt;FONT color=#808000&gt;金大中 정권 출범 직후 ‘재벌 길들이기 1호’였던 崔元碩 회장, 1998년 회사 경영권 빼앗긴 후 40여 건의 民刑事 재판으로 인생 저물어&lt;/FONT&gt;&lt;/B&gt;&lt;BR&gt;&lt;BR&gt;&lt;B&gt;&lt;FONT color=#454545&gt;동아생명 매각 비밀계약서: “단돈 1000원에 매각.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lt;/FONT&gt;&lt;/B&gt;&lt;BR&gt;&lt;BR&gt;⊙ “1998년 퇴진 당시, 동아건설 자산은 부채보다 1조3000억원 더 많아”&lt;BR&gt;⊙ 1998년 金大中의 청와대, 주거래은행 통해 崔元碩 회장 퇴진시켜&lt;BR&gt;⊙ 동아그룹 주거래은행 관계자: “청와대에서 최원석의 門中先山까지 빼앗으라고 말해”&lt;BR&gt;⊙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 “동아그룹 해체는 회계차원의 문제가 아니다”&lt;BR&gt;⊙ 당시 여권 핵심인물의 부인: “최 회장님 조심해야 한다. 이건 정권 최고 핵심부의 뜻이다”&lt;BR&gt;&lt;BR&gt;⊙ “나는 자살할 용기가 없어 죽지 못했다”&lt;BR&gt;⊙ “(金大中 전 대통령이) 동아그룹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야 했는데 아쉬워”&lt;BR&gt;⊙ “기업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담대하라! 강해져라! 두려워 말라!”&lt;BR&gt;⊙ “회사와 개인 재산 다 빼앗긴 후 金大中에게 돈 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lt;BR&gt;⊙ “완장 바꿔 찬 동아그룹 사람들, 지금 잘된 사람 하나도 없어”&lt;BR&gt;⊙ “나는 단순한 사람. 개인 비자금을 만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lt;BR&gt;⊙ “나를 둘러싼 여자 문제는 동아그룹을 해체하기 위해 惡用한 것”&lt;BR&gt;&lt;BR&gt;&lt;FONT color=#000ca3&gt;崔元碩&lt;/FONT&gt; &lt;BR&gt;⊙ 1943년 대전 출생.&lt;BR&gt;⊙ 이화여대사대부고·미국 조지타운大·한양大 졸업.&lt;BR&gt;⊙ 동아건설·대한통운 사장, 대전MBC 대표이사 회장, 동아생명 회장, 공영토건 관리인,&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장, 2002년 월드컵 유치위원, 대한건설협회장,&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동아그룹 회장 역임. 현 동아방송예술대학 이사장.&lt;BR&gt;&lt;BR&gt;취재지원 : 朴熙錫 月刊朝鮮 인턴기자&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6.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6.gif&quot; width=18&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gt;&lt;/TD&gt;
&lt;TD width=18&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기사요약 끝--&gt;&lt;!-- 글쓴이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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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TOP: 6px&quot; vAlign=top align=right height=5&gt;&lt;FONT color=#0066cc&gt;金容三&lt;/FONT&gt; 편집장/부장&amp;nbsp;(&lt;A href=&quot;mailto:dragon03@chosun.com&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dragon03@chosun.com&lt;/FONT&gt;&lt;/U&gt;&lt;/A&gt;)&amp;nbsp;&lt;BR&gt;&lt;FONT color=#0066cc&gt;白承俱&lt;/FONT&gt; 月刊朝鮮 기자&amp;nbsp;(&lt;A href=&quot;mailto:eaglebsk@chosun.com&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eaglebsk@chosun.com&lt;/FONT&gt;&lt;/U&gt;&lt;/A&gt;)&amp;nbsp;&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글쓴이 끝--&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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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4px; 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jpg&quot; width=32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subArtcl id=articleBody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10년이라는 시간이 한 인간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崔元碩(최원석·66) 前(전) 동아그룹 회장. 사하라사막에 4000㎞가 넘는 거대한 인공 水路(수로)를 만들어 물줄기를 흐르게 했던 大役事(대역사)의 주인공이 아니었던가.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한때 22개 계열사를 이끌며 재계 순위 10위, 자산규모 11조원이 넘는 동아그룹을 이끌어 왔던 그룹 총수였다. 10평도 채 안되는 작은 사무실 한 구석의 조그만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봤을 때 초라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얗게 센 그의 머리는 숱이 많이 줄어 있었다. 인사차 내민 그의 손에는 握力(악력)을 느낄 수 없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23세에 동아콘크리트 사장을 시작으로 30대에 동아그룹의 주력기업인 동아건설·대한통운을 맡아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등 중동지역을 휘저었고, 40대에 ‘세계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던 리비아 大水路(대수로) 공사를 현장지휘하며 세계적인 건설경영인으로 우뚝 섰던 뚝심과 패기의 ‘최원석’. 그는 유명 연예인과 미모의 아나운서를 부인으로 맞아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린 풍운아이기도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가 月刊朝鮮과의 인터뷰를 통해 10년을 추적해 온 그룹 해체의 불법성을 적나라하게 털어놓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원석 회장은 1998년 5월 동아그룹 회장직에서 사실상 쫓겨나면서 1000억원대의 개인 재산까지 몰수당했다. 이후 지금까지 40여 건의 민형사 재판을 받아왔다. 10년 동안 그를 옭아맨 재판은 한 개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1998년 7월 가택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검찰 조사를 수십 번 받아왔고, 동아건설이 동아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배임이라 하여 2008년 4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을 선고받을 때까지 동일한 죄목으로 7번 법정 선고를 받았다. 2004년에는 법정 구속돼 6개월간 구치소 경험도 했다.&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형사재판과 함께 진행된 34건의 민사재판은 그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8월 15일 건국 60주년을 맞아 특별사면·복권되면서 그나마 여유를 찾았지만,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의 야속함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한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소송을 제기한 측은 다름 아닌 부친(崔竣文 전 동아그룹 명예회장·1985년 작고)과 자신이 평생을 바쳐 키워온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의 新(신) 경영진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舊(구) 경영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최 회장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원석 회장과의 인터뷰는 옛 동아그룹이 설립한 동아방송예술대학의 학교기업 ‘DIMA엔터테인먼트(서울시 청담동 소재)’ 사무실에서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인터뷰에는 동아건설 퇴직 임직원단체인 ‘동아건우회’의 宋連鎬(송연호) 사무총장이 배석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모든 것을 털어놨다. 1998년 회사 경영권과 재산을 박탈당했을 때의 심정을 얘기할 때는 격정적으로, 실패한 기업가의 입장을 얘기할 때는 모든 것을 초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인터뷰 도중 농담을 한마디씩 던지곤 했는데 ‘전 재산을 잃었지만 삶의 희망까지 잃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과의 첫 만남은 朴容旿(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이뤄졌다. 그는 “박 회장과 절친하게 지냈었는데 뉴스를 통해 불행한 소식을 들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기분이 착잡하다”고 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걷고 등산하며 과거의 기억 지워&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3.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동아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1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전화통신공사를 수주했다. 1977년 사우디를 방문해 당시 칼리드 국왕과 악수하고 있는 34세의 최원석 회장.&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다른 대기업 회장처럼 번듯한 회장실에서 인터뷰를 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요” 하고 인사를 하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방에서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난해 사면복권됐는데, 과거 친분이 있는 분들을 다시 만납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아무도 안 만나요. 제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힘이 있습니까. 현실을 받아들여야죠. 괜히 연락을 하면 ‘도와달라’는 식으로 들릴까 봐 스스로 피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많이 걸어요. 등산도 가끔 하고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게 하면 힘든 기억들이 잊히나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동안 많이 잊었고, 지금도 머릿속에서 계속 지우고 있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오랫동안 언론을 접하지 않은 탓인지 최 회장은 인터뷰 자리를 몹시 불편해했다. 그는 “검찰수사와 재판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지 질문에 답변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은 IMF 당시 국내 재계 순위 10위였던 대기업이었습니다. 동아건설이 추진했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Great Man-made River)는 ‘세기의 기적’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대단했는데요. 최 회장께서는 스스로 동아건설을 어떤 회사라고 정의합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정말 대단한 회사였어요. 국내 주요 발전소·댐·교량공사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해외 대형공사를 많이 수주했지요. ‘동아건설’이 갖고 있던 프리미엄은 세계적이었습니다. 대수로 공사의 경우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내게 직접 브리핑을 하며 ‘1·2차뿐만 아니라 3·4·5차 공사까지 맡아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까요. 리비아 대수로 공사로 100억 달러를 수주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100억 달러면 현재 가치로 얼마 정도 됩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략 1000억 달러 이상 될 겁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리비아 大水路 공사는 동아건설의 상징&lt;/FONT&gt;&lt;/B&gt;&lt;BR&gt;&amp;nbsp; &lt;IMG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0px&quot;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2.jpg&quot; align=left border=1&gt;&lt;BR&gt;&amp;nbsp; 단일 토목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최원석 회장과 동아건설의 ‘상징’이었다. 동아건설은 1983년 총연장 4200km의 대수로 5단계 공사 중 1단계 공사를 수주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동아건설의 대수로 공사 수주는 그해 세계 10大(대) 뉴스에 들어갈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최 회장은 세계적인 건설 CEO로 떠올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름 4m, 총연장 4000km의 대형 콘크리트관을 사막의 지하에 묻고 그 속으로 강물을 흐르게 하는 대역사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교되기도 했다. 대수로 공사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렸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공사물량과 공사기간(1983~2010년) 때문이 아니라 이 공사가 지닌 문명사적 의미 때문이었다. 이 공사는 지금까지 인류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방치해 두었던 사막을 푸른 초원지대로 개조하는, 거대한 모험이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1991년 1차 공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통수식을 가진 후 2단계 공사도 수주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금 생각해 봐도 대단한 공사였습니다. 대규모 공사를 수주한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주력기업인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을 컨소시엄 형식으로 구성해 그룹 차원에서 총력전을 벌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쌓아온 동아건설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멀리는 동진강 간척공사를 비롯해 우리 국토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사업을 해 왔고, 가까이로는 중동의 뜨거운 햇볕 아래 ‘세계 10대 난공사’로 알려진 ‘알주와 산악도로’를 시공했고,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걸쳐 地中(지중) 전화선을 놓는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리비아 정부가 인정한 겁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어려움은 없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왜 없었겠습니까. 동아건설 임직원의 적지 않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의 절묘한 협력체제로 이겨냈어요. 콘크리트관을 생산하고, 생산된 관을 안전하게 운송하고, 운송된 관을 정확히 매설하는 일을 차질 없이 해 왔던 겁니다. 세계 어느 기업집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34세 때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당시 칼리드 국왕과 찍은 사진입니다. 1977년 사우디에서 전화통신공사(TEP)를 진행했는데 수주액이 12억5000만 달러에 달했어요. 당시 우리나라 1인당 GNP가 944달러였고 그해 수출총액이 10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국가 전체 수출액의 10분의 1 이상을 동아건설이 달성했던 거죠. 지금 생각해 봐도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당시 사우디의 TEP 공사에서 순수하게 5억 달러 이상을 남겼습니다. 그때 번 돈으로 원효대교를 만들었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門中先山도 다 빼앗겨&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은 1978년부터 1981년 3년 동안 225억원을 들여 원효대교를 건설해 완공 1년 후에 국가에 무상으로 헌납했다. 공사대금 225억원은 당시로서는 대형공장을 건설하고도 남을 거액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당초엔 통행료를 받아 공사비를 회수하려 했는데, 시민들이 통행료 아끼려고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시민들에게 돌려주자’ 이렇게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은 건설업을 주력업종으로 하는 동아건설과 운송 부문의 대한통운이 그룹의 근간이었다. 동아생명과 동아증권 같은 금융회사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밖에 동아엔지니어링, 공영토건, 서원레저를 비롯해 무역·관광개발·종합환경·콘크리트 및 철구조물 제조 등 22개의 계열사를 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한 시절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세계를 뒤흔들다가 모두 잃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아무것도 없으니 지킬 것도 없고, 도둑맞을 일도 없어 편하고 좋네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재판을 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재산을 내놓으라고 해서 다 내놓았더니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검찰수사와 재판뿐이었어요. 10년 동안 그 일을 해 왔는데 이젠 진절머리가 날 지경입니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검사와 판사만 만난 것 같아요. 자살할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용기가 없어 죽지 못했어요. 지금도 민사재판이 진행 중인데 개인적으로 은행계좌도 못 열어요. 그래도 先山(선산)은 꼭 찾아야 하는데….”&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산도 빼앗겼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네. 충남 조치원 일대에 있는 선산도 다 빼앗겼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산 자리가 명당이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명당이었으면 내가 이렇게 되었겠소? (웃음) 저희 집안의 윗대 어르신들이 묻혀 있는 곳을 제가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못난 놈치고는 한참 못났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10년 전의 일을 하나 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는 뼈아픈 기억이겠지만, 필자 일행에게 설명할 때는 남의 일처럼 편안하게 얘기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날짜도 잊히지 않는군요. 1998년 5월 12일이었어요. 동아건설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서울은행장이 나를 롯데호텔 양식당으로 불러내더군요. 나갔더니 그 사람이 단도직입적으로 ‘최 회장 당신이 있으면 금융지원도 안되고, 김포매립지(現 인천 청라지구)도 용도변경이 안되니까 그룹 전체를 다 내놓고 나가라. 개인 재산도 몽땅 다 내놔라. 최 회장이 있으면 될 일도 안된다. 동아는 우리가 잘 살리겠다’고 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만 개인 재산까지 다 내놓으라는 말은 이해가 안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날 그 자리에 柳成鏞(유성용) 당시 동아건설 사장이 같이 있었어요. 서울은행 측에서는 김 상무와 방 이사가 배석했지요. 재산은 물론이고 갑작스런 경영퇴진 요구에 정신이 없었어요. 金大中(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재벌해체’ ‘재벌 길들이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살벌한 상황이었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동아건설의 재무구조는 어땠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무렵 동아건설이 재개발 민간사업에 거액을 투자한 상황이었어요. 금융기관들이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나 하나 때문에 그룹 전체가 날아가면 안된다. 그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주거래은행의 요구를 덜컥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동아그룹 임직원들에게 離任辭(이임사)를 한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어요. 재산도 내놓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동아건설 자산, 부채보다 1조3000억원 더 많아&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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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4.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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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96년 리비아 본부에서 임원들을 격려하는 최원석 회장.&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이 일이 있은 직후 서울은행 측은 “채권금융기관은 동아건설에 6000억원의 협조융자를 제공키로 합의하고 최원석 전 회장에게는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 주식과 부동산 등 개인 재산을 몰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최 회장의 사임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보도했지만 대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실제로 동아그룹의 재정상태는 어떤 상황이었나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IMF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뿐 결코 부실기업은 아니었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재판을 받으면서도 이 부분(부실기업)만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동아그룹을 떠나기 직전인 1997년도와 정부가 전문경영인을 임명했던 1998년도 재무제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1997년 12월 현재, 그룹의 주력기업이었던 동아건설은 자산이 6조2000억원, 부채가 4조9000억원으로 자산이 부채보다 1조3000억원이나 더 많았습니다. 당시 우리가 김포매립지도 갖고 있었는데 재무제표상 1000억원으로 잡혀있었지만 공시지가는 1조원에 달할 정도였어요. 김포매립지를 용도변경하면 자산가치가 20조원에 육박한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들여다보면 자산이 훨씬 더 많았던 이런 회사를 어떻게 부실기업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국민에게는 제가 마치 회사 경영을 엉망으로 해서 엄청난 부실기업을 남기고 물러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겁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月刊朝鮮이 입수한 검찰수사기록과 회계법인의 실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당시 동아건설의 재무상황이 ‘부실’이라고 볼 근거는 부족했다. 동아건설의 분식회계를 조사한 검찰은 과거 10년간(1988~1997년) 조성한 분식금액을 대략 7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분식금액과 16~17%의 이자, 협조융자금 등을 1998년도 회계결산에 모두 반영해도 동아건설의 자산은 부채보다 5500억원가량 더 많았다. 결국 최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당시 동아건설은 부실기업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언론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의 자금난은 2조원대의 국내 미수금 때문으로, 이 채권이 회수되면 기존 채무상환 등 정상화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회계법인의 실사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나 대체로 자산이 부채를 9000억원가량 초과한 것으로 나오고 있어 재무구조는 오히려 건실한 편이다.’(1998년 5월 9일자 &lt;한국일보&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도 채권은행단이 제2차 협조융자 이전인 지난 4월 말 회계법인을 통해 실사한 결과 흑자기업으로 결론이 났다.’(1998년 5월 12일자 &lt;국민일보&gt;)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최원석 흔적 지우기’&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서울은행 측이 최 회장에게 경영일선 퇴진과 사유재산 몰수를 요구할 무렵 금융계에서는 “최 회장에 대한 서울은행의 조치는 상식을 벗어난 일”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채권금융기관이 협조융자를 조건으로 대기업 총수의 개인 재산 전체를 몰수한 것은 최 회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일부 다른 기업 총수는 재판에 의해 재산을 추징당한 경우가 있었지만, 재판도 하지 않고 재산을 사실상 빼앗긴 경우는 최 회장이 유일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원석 회장은 1998년 5월 20일 서울은행 측에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내놓는다는 ‘확약서’를 써줬다. 그는 개인 재산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친께서 설립한 회사가 하루아침에 다 날아갈 것 같은 상황에 무슨 재간으로 재산을 안 내놓을 수 있습니까. 인감도 떼어줬고 계약서에 사인도 해 줬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상한 일이 벌어집디다. 검찰이 제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더니 검찰 수사관이 장충동 집으로 들이닥치는 거예요. 가택 압수수색이 이뤄졌던 거죠. 서류란 서류는 몽땅 다 가져갔어요. 이때부터 회사 비자금, 외화밀반출, 분식회계 조사가 시작됐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얼마 후 새 경영진이 들어온 동아건설 측이 최 회장에게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충동 집에서 빨리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때부터 동아그룹은 ‘최원석 흔적 지우기’에 나섰어요. 동아그룹을 떠난 지 두 달 남짓 되던 어느 날 20년을 살아온 제 집에서 쫓겨났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1998년 7월부터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10년 동안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지난해 사면복권될 때까지 10년간 검찰과 법원을 오가며 수없는 재판을 받아왔다. 사건의 줄거리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첫째, 1996년 재정경제원장관의 자본금 증액명령으로 동아생명 유상증자에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이 참여했는데 이 행위가 ‘배임’이라는 것. 둘째, 동아건설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것. 셋째, 대한통운의 공영토건 지급보증 사건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법원은 배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고,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으며, 지급보증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최 회장은 유죄 부분에 대해 “재정경제원장관의 지시에 따라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기업을 운영하면서 분식회계가 필요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조목조목 반박하는 게 오히려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고 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회사를 떠나면서 빼앗긴 재산 중 충남 조치원 소재 문중선산과 관련해 秘話(비화) 한 대목을 들려줬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서울은행 이사 한 분이 동아건설 채권단 경영관리단장으로 와 있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서울은행 측은 최 회장의 재산 중 선산은 돌려줄 생각이었는데 청와대가 선산까지 다 (매각대상에) 넣으라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저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청와대가 컨트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청와대가 선산까지 다 빼앗으라고 지시”&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月刊朝鮮은 최 회장이 동아그룹을 떠난 지 6개월 되던 1998년 11월 6일, 최 회장과 주거래은행(서울은행) 허태남 이사, 최 회장의 법률고문인 尹昇榮(윤승영) 변호사 등이 나눈 대화록 일부를 입수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최 회장을 포함한 동아그룹의 처리방향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녹취록의 일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허태남(서울은행 이사·동아건설 채권단 경영관리단장): 최근에 회장님 아시겠지만 지난번에도 회장님의 선산은 담보물 목록에서 뺐었어요. (서울)은행에서 뺐는데, 다음날 청와대에서 그냥 넣으라고 해요. 그래서 그때 회장님한테 추가로 선산을 담보로 제공받아 가지고 넣은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지금도 관리를 위(청와대)에서 하고 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원석: 허 단장님 생각해 보세요. 제가 가택수색당하고 지금 6개월 동안 앉아서 내사를 받고 있고, 외화밀반출이다 무슨 그런 의혹을 받고 있어요. 해외에서 공사를 하니까 어떻게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거는 조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또 하나는 내가 5년, 6년 동안 얼마를 썼다 등 두서너 가지 있는 모양인데, 나는 길거리에 나앉아 있는데 이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윤승영(법률고문): 5공 때 당한 국제그룹보다 지금이 더 심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허태남(서울은행 이사): 회장님이 산소 말씀을 해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두 필지를 뺐잖아요. 뺐거든요. 그 다음날 위에서.&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원석: 아까도 말했지만 국제그룹 회장도 집은 그대로 놔뒀잖아요. 지금도 살고 있잖아요. 성북동에다 살게 합디다.&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IMF 직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재벌개혁을 내세우며, 문어발식 기업확장을 해 온 대기업을 향해 핵심기업을 제외한 나머지는 조속히 정리하라고 압박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동아그룹도 무리하게 기업을 확장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계열사였던 공영토건(주)과 동아생명(주)을 두고 마치 기업사냥을 통해 사업을 확장한 것처럼 오해를 받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정부 측에 해명할 자신이 있었다. 최 회장의 말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공영토건은 全斗煥(전두환) 정권 당시 대형 금융사기사건이었던 이철희·장영자 어음부도사건으로 정부에 의해 半(반)강제로 떠맡게 됐어요. 그 후 공영토건을 살리기 위해 동아건설이 적자가 나더라도 공영토건은 흑자가 나도록 하청을 몰아줬어요. 그 결과 3년6개월 만에 회사를 정상화시켰습니다. 동아생명도 인수 당시 1700억원에 불과했던 자산규모를 1997년 말 현재 2조4000억원으로 성장시켜 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동아그룹은 ‘재벌 길들이기’ 1호 기업&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6.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동아생명을 단돈 1000원에 매각한다는 비밀계약서.&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최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 한 달 전인 1998년 4월,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공표한 동아그룹의 자산총계는 11조7560억원, 부채총계는 10조400억원(부채비율 585%)이었다. 자산이 부채보다 1조7160억원 더 많았던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재계 서열 10위였던 동아그룹은 당시 재계 서열 9위인 금호그룹(2000년 동아생명 인수, 2008년 대한통운 인수)은 자산총계 11조9950억원, 부채총계 10조9750억원(부채비율 1076%)이었다. 당시 동아그룹은 금호그룹과 비교해도 부실 기업은 아니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의 주력기업이었던 동아건설은 1997년 전체 업종 기준으로 상위 16위, 건설업 기준으로 현대건설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 5월 최 회장이 물러난 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다가 2000년 11월 최종 부도처리됐다.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5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파산절차가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자산이 매각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름만 남게 된 동아건설은 2008년 프라임그룹에 인수됐고, 작년도 시공능력평가액은 2456억원, 건설사 도급 순위 89위에 머물렀다. 동아건설 10년 만에 소규모 건설사로 전락한 것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의 등장은 건국 이래 사실상 첫 與野(여야) 정권 교체였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직후 ‘재벌해체’ 운운한 것은 IMF 외환금융 위기극복이라는 목표 아래 ‘재벌 길들이기’ 의도가 들어 있었다. 당시 재계에서는 동아그룹이 괘씸죄에 걸렸다는 얘기가 팽배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은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한 ‘손보기’가 아주 쉬운 소유구조였다. 동아그룹에서 ‘최원석’ 하나만 빼내면 매각이 쉬운 상태였다. 최 회장이 경영권에서 물러난 후 동아그룹 계열사는 이리저리 팔려나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첫 번째 매각 대상이 동아증권이었다. 최 회장이 물러난 지 두 달 만에 동아증권은 당시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세종기술투자에 21억원에 넘어갔다. 동아증권 매각은 동아그룹 내부 임직원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을 샀고, 이때부터 동아그룹 임직원들은 정부가 보낸 전문경영인의 회사자산 처분에 불신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동아증권을 인수했던 金亨珍(김형진)씨는 5개월 만에 500억원을 벌었다고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이 금융비용을 포함해 1300억원을 투입해 건설한 서원레저골프장은 1998년 11월 불과 20억원에 팔렸다. 당시 언론은 이 과정에서 수십억원의 커미션이 건네졌다고 기사화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의 헐값 매각은 계속됐다. 부천 동아시티백화점은 476억원(당시 시가 1200억원), 호주 골드코스트골프장 및 주택단지는 190억원(투입금액 960억원), 공시지가 1조원이었던 김포매립지(1256만㎡)는 6300억원 등에 ‘땡처리’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 계열사 매각의 하이라이트는 2000년 2월 금호그룹에 매각된 ‘동아생명’이었다. 최근 月刊朝鮮이 입수한 ‘동아생명 인수에 관한 계약서’에 따르면, 1999년 연말 동아생명에 공적자금 1조1000억원이 투입되고 두 달 후 단돈 1000원에 매각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희한한 것은 계약 내용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도록 한 공개 금지 조항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계약서 14조에는 ‘각 당사자는 상대방과 사전 협의 없이 본 계약서의 존재와 내용을 公衆(공중)에 공개할 수 없다’고 돼 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자산 매각은 자산평가자문기관과 전문가들의 조사·분석을 토대로 매각전략, 매각시점 등 공정한 절차를 통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함에도 동아그룹의 자산은 불투명하게 처리됐다.&lt;BR&gt;&amp;nbsp; 
&lt;CENTER&gt;&lt;IMG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5.jpg&quot; border=0&gt;&lt;/CENTER&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파산”&lt;/FONT&gt;&lt;/B&gt;&lt;BR&gt;&amp;nbsp; &lt;IMG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quot;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7.jpg&quot; align=right border=0&gt;&lt;BR&gt;&amp;nbsp; 최 회장은 1998년 5월 ‘회사를 살리려면 경영권과 재산을 다 내놓아라’라는 주거래은행 측의 요구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최 회장의 머릿속은 동아그룹의 핵심이었던 동아건설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한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전문경영인이 회사 책임자로 온 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됐지만 불행하게도 동아건설은 2000년 11월 최종 부도처리됐다. 주거래은행이 워크아웃 기간 동안 4800억원을 투입한 후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총 8200억원을 회수한 다음 부도처리한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후 동아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5월 법원 직권으로 파산선고를 받았다. 사람에 비유하면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이 그룹을 떠날 당시 그룹은 물론 동아건설의 자산이 부채보다 5000억원 이상 더 많았다(회계법인 실사자료). 그러나 동아건설은 끝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동아건설이 파산되기까지 여러 기관이 관여했다. 과연 동아건설은 누구의 뜻에 의해 파산된 걸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동아그룹은 김대중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고 털어놓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1년 2월 동아건설이 법정관리에서 갑자기 청산된다고 알려졌어요. 그 무렵 10년 가까이 동아건설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건회계법인의 대표가 동향 출신으로 잘 알고 지내던 당시 청와대 고위층에게 ‘동아건설은 현대건설보다 재무상태가 훨씬 좋은데 왜 이런 회사를 없애려고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청와대 고위인사가 ‘동아 문제는 회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동아건설은 그들의 손에 의해 죽어간 겁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지시에 의해 지시대로 간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8.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최원석 회장의 40대 시절의 모습.&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1년 1월 삼일회계법인이 동아건설을 실사했을 때는 회사의 존속가치(회사의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가 청산가치(회사를 청산할 때의 가치)보다 컸어요. 그래서 파산은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보이지 않는 세력의 지시로 이자율이 14%에서 15.5%로 높게 책정됐고, 결국 파산시키는 쪽으로 삼일회계법인의 조사보고서가 작성돼 법원에 제출됐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회계법인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저도 이해가 되질 않아요. 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삼일회계법인의 조사보고서가 법원에 제출되기도 전에 법원이 동아건설을 파산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법원이 무슨 이유로 동아건설을 없애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당시 법원이 재량권을 발휘해 이자율을 15.5%에서 2%만 내려 13%대로 적용했더라도 파산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상한 것은 법원이 동아건설에 대한 법정관리절차를 직권으로 폐지한 후 동아건설 법정관리인에게 회사가 항고하지 말 것을 종용해 결국 동아건설은 항고마저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건 정말 잘못된 겁니다. 나를 포함해 과거 동아건설 임원들은 동아건설 파산으로 수많은 민형사 소송에 휘말려 경제적·심리적·신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아왔어요. 李明博(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동아그룹 해체의 진상을 반드시 밝혀야 해요. 동아그룹은 DJ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강탈당했고, 단물을 다 빨아먹은 다음 打殺(타살)시킨 겁니다. 당시 권력의 분위기를 눈치 챈 사법부는 스스로 재량권 행사를 포기했음이 분명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인터뷰에 배석했던 송연호 동아건우회 사무총장은 2001년부터 동아건설 파산의 진실을 추적해 왔다. 그는 “동아건설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2001년 동아건설이 파산될 당시의 상황을 들어봤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이 법정관리가 폐지되고 파산된다는 것을 언제 알았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정확한 날짜는 2001년 2월 2일 금요일 오후 3시경입니다. 당시 저는 7년 동안 해외근무를 마치고 본사 전력사업부 대북사업팀 부장으로 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회사가 파산된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본사 8층 경영기획실을 찾아가 담당부서 팀장과 기획실장에게 물었더니 소문이 사실이었어요. 당시 법원이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한 조사보고서가 그 다음날 2월 3일 토요일 법원에 제출될 예정이었는데, 법원이 지시한 작성지침에 따라 동아건설을 청산시키는 것으로 조사보고서가 작성됐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조사보고서가 법원에 제출되기 전에 법원으로부터 청산(파산)방침이 먼저 내려졌다는 말입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습니다. 저는 곧바로 몇몇 임직원들과 대책을 숙의했고, 쉬쉬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동아건설 全(전) 임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이 조사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하던 날(2001년 2월 3일) 오전 동아건설 협력업체 채권단 회장이 ‘동아건설이 청산된다’는 소식을 듣고 삼일회계법인 수석회계사에게 전화를 걸어 법원지침에 관한 사항을 녹음했는데 그게 녹취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녹취록의 핵심은 ‘지시에 의해 지시대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회사가 청산된다는 소식은 맨 처음 어디서 흘러나왔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다섯 명이 동아건설 본사에 상주하며 회계실사를 했는데, 이들 중 한 회계사가 2001년 1월 말 동아건설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 본사에 퍼지게 됐습니다. 당초 삼일회계법인의 조사보고서는 동아건설을 존속시키는 쪽으로 돼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외부 지시에 의해 반대로 가게 됐다는 것입니다.”&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60 align=righ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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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9.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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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송연호 동아건우회 사무총장.&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삼일회계법인의 조사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뒤집혔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삼일회계법인이 당초 기업의 존속가치를 계산하면서 이자율은 14.08%, 국내공사 매출채권 회수 기일은 87일을 적용했더니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더 크게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회사가 없어질 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2001년 1월 하순, 외부 지시에 따라 이자율이 15.5%로 변경됐고, 매출채권 회수 기일이 87일에서 121일로 변경되면서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더 많은 것으로 뒤집어졌습니다(1943억원 초과). 이 말은 회사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 없애는 것이 더 낫다는 뜻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자율을 1% 올리면 존속가치가 약 1000억원 내려가고, 반대로 1% 내리면 1000억원 정도 올라갔습니다. 만일 삼일회계법인이 할인율을 13%대로 낮게 적용했다면 법원은 동아건설을 결코 파산시킬 수 없었습니다. 2001년 1월 말 당시 시중금리는 6%대였는데 동아건설에 대한 이자율은 턱 없이 높았습니다. 결국 법원은 삼일회계법인의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파산선고를 내린 겁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1년 1월 당시 리비아 정부가 ‘동아건설의 파산을 막아달라’고 한국정부에 강하게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법원이 동아건설을 파산시키는 쪽으로 기울자 일부 행정부 고위 관계자가 법원을 찾아가 ‘동아건설은 살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당시 법원 안팎 사정을 보면, 법원 자체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정황이 여러 군데서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원석 회장은 동아그룹 해체에 작용했던 ‘보이지 않는 손’과 관련해 비화를 털어놓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98년 3월경 제 누이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당시 아태재단 이사이자 여권 핵심인물의 부인이 제 누이와 제수씨를 서울 시내 모처로 불러내 ‘최 회장님 조심해야 합니다. 이건 정권 최고 핵심부의 뜻입니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기분은 나빴지만 별일 있겠나 싶었지요. 두 달 후 경영권을 박탈당하기 직전까지 제가 ‘재벌 길들이기 1호’로 찍히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나는 원래 金大中씨를 안 좋아해”&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0.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함께한 최 회장(왼쪽).&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재벌 길들이기 1호’로 찍힌 이유는 최 회장께서 당시 정권 최고위층의 말을 안 들었기 때문입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원래 金大中(김대중)씨를 안 좋아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정치자금을 안 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과거 대선이 있을 때마다 대기업별로 공식적으로 내는 돈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분한테 준 적은 없어요. 그래서인지 1997년 대선 때 내게 (정치자금을 내라는) 노골적인 요구가 없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月刊朝鮮 3월호에서 崔淳永(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1992년 대선 때 金泳三(김영삼) 후보 측에 100억원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DJ 측에 알려지면서 1997년 대선 당시 똑같은 액수를 요구했지만 한푼도 주지 않았다. 나는 체질상 DJ가 싫었다”고 증언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씨 싫어하는 것은 나랑 똑같네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쪽에서 자금을 요청했으면 줄 생각이 있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줬을지도 모르지요. 사실 내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난 후 ‘차라리 돈을 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쪽과 관계는 언제부터 안 좋았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원래 민주당에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權魯甲(권노갑)씨도 감옥에서 알게 됐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감옥 동기들은 어떤 분들입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많지만 거론하는 건 좀 그렇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보통 기업인들은 회사를 보전하기 위해 여야 구분할 것 없이 보험을 드는 셈치고 정치자금을 고루 주는 게 당시로서는 상식이었는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상식이긴 한데 이건 아니더라고. 그리고 1997년 대선 때 나는 李會昌(이회창)씨를 지지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동아그룹 문제 해결하고 세상 떠났어야”&lt;/FONT&gt;&lt;/B&gt;&lt;BR&gt;&amp;nbsp; &lt;IMG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0px&quot;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1.jpg&quot; align=left border=1&gt;&lt;BR&gt;&amp;nbsp;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기업경영에 지장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안 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인수위 때부터 분위기가 안 좋더군요.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리비아 공사도 있고 국내에 땅도 많아서 큰 걱정은 안 했어요. 그런데 나를 회사에서 몰아내더니 끝내 회사를 파산시키더군요. 그동안 원한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회사에 복귀하려고 몇 년을 참고 기다렸어요. 동아건설 노조원들이 불도저를 몰고 내 집 앞에까지 와서 ‘복귀하라’고 시위할 때는 눈물까지 흘렸지요. 사실 그때 복귀하려 했는데 어떤 손이 작용을 했는지 안되더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원석 회장은 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몇 분이 흐른 후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가셨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그냥 돌아가시면 안되는데….”&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분이 살아 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다시 침묵이 흘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혹시 회장님을 힘들게 했던 분이라고 생각합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물론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친과는 알고 지냈는데, 나는 88올림픽 때 탁구경기가 열렸던 서울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 대통령과는 코드가 정말 안 맞았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가 눈치가 없어서 그래요. 코드 안 맞는 사람한테도 적당히 처신을 잘해야 하는데 성격이 그러지를 못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코드 맞는 사람한테는 잘해 줬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물론이죠.”&lt;BR&gt;&amp;nbsp; &lt;BR&gt;&amp;nbsp; ―권력에 밉보여 큰 회사가 허망하게 무너진다는 사실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권력자한테 잘못 보이면 그렇게 돼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께서 수십 년간 피땀 흘려 만든 기업을 의사도 묻지 않고 매각을 할 때 권력에 대한 회한을 느끼지는 않았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과거 6·25 때 완장 찬 놈이 주인을 내쫓고 자기가 주인 되려고 그랬잖아요. 동아그룹의 일부 사람들도 그랬지요. 그런데 지금 완장 바꿔 찬 사람들 중에 잘된 사람 하나도 없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런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열받죠.”&lt;BR&gt;&amp;nbsp; 
&lt;CENTER&gt;&lt;IMG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2.jpg&quot; border=0&gt;&lt;/CENTER&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빼앗긴 선산·회사 찾겠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잃어버린 회사를 찾을 생각은 없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산부터 먼저 찾아야지요. 그 다음에 회사를 되찾아 명예를 회복하겠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회사를 떠날 때 당시 주거래은행 측과 각서라도 받아야 하지 않았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회사를 살리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어요. 당시에는 말로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서 써라, 도장 찍어라 하는 생각을 못 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회사를 매각할 때 대응할 수단은 없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응을 할 엄두를 못 냈죠. 외화 빼돌렸다고 가택수색 들어오고 채권단에서는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 검찰 수사는 계속되지…. 내 코가 석자였어요.”&lt;BR&gt;&amp;nbsp; 
&lt;CENTER&gt;&lt;IMG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3.jpg&quot; border=0&gt;&lt;/CENTER&gt;&lt;BR&gt;&amp;nbsp; ―1997년 11월 IMF사태가 처음 터졌을 당시 걱정은 안됐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가 리비아 장관을 만나러 파리에 갔을 때 사태가 발생했어요. 리비아 장관이 내게 ‘한국에 IMF가 왔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곧바로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재무담당 임원이 ‘우리 회사는 괜찮습니다’라고 해요. 귀국해서 자세히 보고를 받았는데 재개발 사업을 하면서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 때문에 유동성에 약간 문제가 되겠더라고요. 선친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은행 돈 빌리지 마라’고 하셨는데 결국 그게 당시 정권에 의해 꼬투리를 잡히게 된 거죠.”&lt;BR&gt;&amp;nbsp; &lt;BR&gt;&amp;nbsp; ―결과적으로 유동성 문제가 권력에 의한 압박수단이 됐던 거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유동성 위기는 있었지만 IMF 때 재무구조가 튼튼한 회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어요. 리비아 공사대금을 앞당겨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4.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최원석 회장이 1986년 서울 서소문 동아건설 본사를 방문한 요르단 아랍뱅크 쇼만 회장과 환담을 하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당시 세간에는 리비아 공사비를 제대로 못 받았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공사대금을 원유로 대신 받은 것도 없고 100% 현금으로 다 받았어요. 리비아 정부는 리비아 공사를 전담하는 ‘대수로청’을 설치하고 공사지원을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해 최우선으로 대금을 지급해 왔습니다. 우리가 공사비를 청구하면 한두 달 내에 또박또박 현금으로 들어왔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리비아 공사비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삼일회계법인이 리비아 공사를 조사하면서 공사비를 평균 1년 정도(346일) 걸려서 대금을 받는 것으로 계산했다고 들었어요. 그건 크게 잘못된 겁니다. 리비아 공사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공사대금을 어떻게 1년씩 걸려 받을 수 있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가 계산해 보니 공사비를 평균 42일 만에 받아왔어요. 삼일회계법인이 1년으로 계산함에 따라 동아건설의 존속가치가 5000억원이나 저평가됐어요. 당시 삼일회계법인은 존속가치가 1900억원가량 부족하다며 회사를 청산시켜야 한다고 보고서를 썼어요. 5000억원을 저평가해 놓고 1900억원이 부족하다는 건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됩니다. 이미 ‘동아건설 죽이기’로 작정돼 있는 마당에 상식이 통할 리는 없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만 명의 일자리와 설립 50년이 넘은 기업의 운명을 그렇게 쉽게 처리한 건 정말 큰 잘못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건 언제쯤입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일감이 서서히 떨어졌어요. 공사에 투입된 장비도 많았어요. 그래서 모험을 했죠. ‘활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입찰소식이 떴습니다. 리비아 측에서는 우리를 보고 ‘양복점처럼 사업을 한다’며 맞춤식 공사에 호의를 가졌던 겁니다.”&lt;BR&gt;&amp;nbsp; 
&lt;CENTER&gt;&lt;IMG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5.jpg&quot; border=0&gt;&lt;/CENTER&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1998년 초 40억 달러 유치했으나 金大中 정부가 반대&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6.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98년 2월, 김포매립지에 놀이공원 시설 투자를 위해 방한한 마이클 잭슨과 최원석 회장.&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당시 우리 정부는 동아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이 경쟁을 너무 심하게 해서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3사 팀들이 모여 태스크 포스를 만들어 같이 하다가 동아건설이 배신을 했다고 하는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지 않아요. 그때 리비아 공사 건으로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과 金宇中(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만난 적이 있어요. 한 그룹이 주체가 돼 일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지요. 관은 현대가, 운반은 대우가, 매설은 동아가 한다는 것은 공사의 특성상 어려웠습니다. 리비아 측에서 우리 회사를 보고 ‘양복점 같다’는 말을 했는데 관을 만드는 동아콘크리트, 관을 운반할 대한통운, 관을 매설할 동아건설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했던 겁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서 수익률은 얼마나 됐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처음에는 시행착오와 환차손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후에는 상당한 이익을 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많이 벌었겠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원없이 벌어서 잘 썼죠. 달러를 벌어들이는 게 결국 애국 아닌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많은 돈을 벌었으면서 왜 김대중 정권에는 정치자금을 안 줬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쪽하고는 인연이 안 닿았지. 체질적으로 싫었어요. 그쪽도 우리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나 봐요. 김대중 정부 때 IMF 극복한다고 온 국민이 나서 금반지까지 팔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1998년 2월경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가 김포매립지에 4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김대중 정부가 반대했어요. 손 볼 놈이 잘되기를 바라겠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무렵 최 회장께선 부인과의 이혼소송으로 세간에 이미지가 안 좋았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것 때문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외도를 해 놓고 모든 것을 나한테 뒤집어씌운 거예요. 그 사람은 오래전부터 바람을 피웠어요. 그걸 알고도 모른 체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내가 코너에 몰리니까 ‘찬스는 이때다’ 하고 얼마나 집요하게 공격했는지 몰라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공격했어요. 그런데 그런 문제를 가지고 권력이 동아그룹을 없애 버렸다면 정말 큰 잘못이지요. 여자 문제는 동아그룹을 해체하기 위해 교묘히 이용한 것에 불과해요. 당시 동아그룹은 재무구조상 결코 부실이 아니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여자문제와 관련해 주변 시선과 언론보도를 어떻게 견뎌 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무렵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대응을 하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았어요. 有口無言(유구무언)으로 참고 지냈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여자문제 첫 단추 잘못 꿰어”&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시간이 흐르다 보니 미움과 분노도 다 없어졌나 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미워해서 뭐합니까. 참는 것도 이제 도가 텄어요. 그 사람이 쓴 책이 盧武鉉(노무현) 정권 초 내가 법정구속될 때 발간됐는데, 구치소에 들어갔더니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책을 돌려 가며 읽고 있더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은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은 듯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한마디만 하고 싶어요. 여자문제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어요. 이 나이에 내가 말 못할 게 뭐가 있겠소. 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기업은 기업이고 사생활은 사생활 아닌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금 와서 세상에 억울하다고 외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 내 운명이다 생각하고 평생 짊어지고 가겠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구치소 경험은 어땠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겨울에 들어갔다가 여름에 나왔어요. 처음에는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뜨거운 물이 담긴 병을 껴안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깨고 나면 꽁꽁 얼어 있더라고. 추운 것을 제일 못 참겠더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현재 부인(아나운서 출신 張恩榮씨)은 어떻게 지내십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잘 지내고 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사회적으로 유명한 분을 부인으로 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 상황이 그렇잖아요. 길거리에서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TV에서나 여자를 보게 된 겁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금 사모님도 TV로?&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런 셈이죠.”&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자제분들이 새 어머니를 잘 따릅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님은 로맨티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그 말을 내가 사용하면 세상 사람들은 또 오해를 하겠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과 관련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비교하면 어떻게 다릅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 정부는 ‘동아그룹을 살리겠다’고 해 놓고 5년 동안 제대로 사업을 하지 않고 결국 자산만 다 팔아 버렸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일까지 다시 꺼내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더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께서는 대한민국의 주요 인사들과 교분을 가져 왔습니다. 全斗煥(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친분도 두터웠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5공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청와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최 회장이 갖고 있는 한남동 별장을 좀 써야겠다’는 겁니다. 한남동 별장은 선친 것이라고 했더니 ‘빨리 조용한 곳을 물색해 달라’고 해요. 그래서 ‘기흥에 별장이 있으니 그걸 쓰시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곧바로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거예요. 시간에 쫓겼는지 돌관공사로 진행했고, 냄새를 없애려고 양파까지 갖다 놓더군요. 청와대식으로 개조를 했는데 엄청 귀한 분이 오는가 싶었죠. 이름도 ‘영춘재’라고 청와대에서 붙였어요. 정문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도 배치를 했고요. 전두환 대통령이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에서 朴哲彦(박철언)씨가 북측 인사 허담을 만나 밀담을 나눴더군요. 그곳에 가끔씩 전두환 대통령도 다녀가곤 했다고 들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全斗煥 대통령과는 코드가 맞았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7.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92년 광양제철소 준공식에 참석해 박태준 포스코 회장과 대화하고 있는 최 회장(오른쪽 두 번째).&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코드가 잘 맞았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잘 맞았죠. 성격이 시원해서 좋았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盧泰愚(노태우) 전 대통령하고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었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최 회장께선 16년 동안 대한탁구협회장을 맡는 등 스포츠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활동을 했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무대에서 정치적으로 입지가 매우 약했어요. 올림픽 유치도 그만큼 힘들었지요. 그래서 기업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유치활동을 주도했어요. 저도 열심히 뛰었습니다. 당시 동아건설이 사우디 TEP 공사를 할 때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스웨덴의 에릭슨과 조인트 벤처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에릭슨의 스위드보그 회장과 필립스의 데커 회장이 IOC위원이었어요. 두 나라는 제가 책임지고 맡았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돈도 많이 썼겠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누가 쓰라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私費(사비)를 털어 유치활동을 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0년대는 우리 기업이 급성장하던 때였습니다. 3低(저) 호황으로 돈도 많이 벌었다고 들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나라 경제의 4대 원동력으로 ‘對日(대일)청구권 자금’ ‘월남전’ ‘중동特需(특수)’ ‘3저호황’을 듭니다. 1980년대는 개인적으로나 회사 차원에서나 정말 좋았어요. 해마다 사세가 쑥쑥 커졌으니까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다 어느 날 “경영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니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비참했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한때 경영복귀를 목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남에게 돈을 줬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어떻게 그런 기사가 나갔는지 저도 모릅니다. 당시 저는 돈을 줄 여력이 없었어요. 솔직히 말해 내가 왜 그쪽 사람들에게 돈을 줍니까. 내 재산 다 가져갔으니 오히려 돈을 받아야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후배 기업인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저는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 말라’고 말합니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게 하나 있어요. 1998년 5월 정부의 압박으로 주거래은행이 나를 물러나게 했을 때 리비아 정부에 ‘선수금을 먼저 달라’고 담대하게 말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워요.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때 왜 내가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lt;BR&gt;&amp;nbsp; &lt;BR&gt;&amp;nbsp;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땠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청렴한 분이었어요. 나랑 나이가 비슷한데 40년 동안 정치를 한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죠.”&lt;BR&gt;&amp;nbsp; &lt;BR&gt;&amp;nbsp; ―카다피가 최 회장을 높게 평가했다고 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사막에서 물을 뽑아 올린다는 걸 아무도 안 믿었는데, 동아건설이 만들어 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중을 생각해 별도로 준비해 둔 재산은 정말 없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하루아침에 이렇게 됐는데, 빼돌릴 시간이 어디 있어요? 보통 다른 건설회사들은 임원 명의로 부동산을 사 놓곤 하던데 나는 단순해서 그런 거 못했어요. 나는 거지예요. 아, 그 말은 취소합시다. 거지라고 하면 여자들이 싫어하겠네요. (웃음) 거지여도 있는 척해야 돼.”&lt;BR&gt;&amp;nbsp; &lt;BR&gt;&amp;nbsp; ―기업을 하면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겠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나라 정말 잘될 거예요. 나는 5대 强國(강국)이 된다고 봐요. 이명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알거든.”&lt;BR&gt;&amp;nbsp; &lt;BR&gt;&amp;nbsp; ―건설업계 전문가로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어떻게 생각합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 살기도 어려운데 그런 걸 어떻게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요즘 또 뭐 세종시? 조상 묘도 제대로 못 챙기는 주제에 4대강이 어떻고 세종시가 어떻고 하면 남들이 욕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남의 돈 빌리지 말라’ 하셨는데…”&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9.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최원석 회장(왼쪽)은 16년간 대한탁구협회장을 지냈다. 1993년 서울 그랑프리 탁구대회에서 만난 자오즈민과 북한탁구협회 서인생 회장.&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요즘도 영화 즐겨 봅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중학교 때부터 공부 안 하고 극장만 다녔어요.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생각은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어요.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앞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영화에 꼭 투자하고 싶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경영자로서의 기질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런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선 내가 어떻게 그 큰 기업을 운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선친께 면목이 없어요. ‘남의 돈 절대 빌리지 마라. 줄 돈과 받을 돈은 매일 챙겨라’고 귀가 따갑게 말씀하셨는데 그 약속을 못 지켰잖아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부친을 어떻게 평가합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한국 建設史(건설사)의 주역이었습니다. 동아건설과 현대건설은 간척사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우리 회사가 조금 더 우위에 있었지요. 예전에 아산만 공사할 때 폐선을 이용해서 물막이 공사를 한 것이 정주영 현대 회장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만, 사실 선친께서 이미 1950년대에 시도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선친께서는 토목기술자였어요. 대천 방조제 공사를 할 때 똑딱선 11척을 가라앉혀 물 흐름을 막아 방조제 공사를 무사히 마무리했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친께서는 1968년 당시 만성적자 상태였던 국영기업 대한통운을 인수한 후 5년 동안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시다가 고혈압을 얻었습니다. 1985년 세상을 떠나실 때도 과로로 인한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게 고생해서 일궈온 동아그룹을 무참히 해체해 버린 세력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뭐,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들이지.”&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다시 태어나도 기업경영을 하실 겁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네. 아유, 모르겠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잘나갈 때 겸손했어야”&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옛 동아그룹 임직원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동안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아 가족에게 내가 무슨 면목이 있다고 할 말이 있겠어요. 나의 부덕함으로 피해를 본 임직원들에게 용서를 바라는 죄인의 심정입니다. 심지어 회사를 떠날 때 일부에서 ‘어려운 때 회사 내팽개치고 자기 혼자 살려고 나간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결과적으로 동아그룹 각 가정의 家長(가장)들이 보람을 갖고 열심히 일하던 일자리가 사라진 것에 대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부디 동아 가족 家內(가내)에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길 빕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어요. 잘나갈 때 겸손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러질 못했어요. 리비아에서도 잘되고, 국내에서도 잘되고 하니까 나 스스로 오만해졌던 거예요. 언제 선산이라도 되찾으면 막걸리나 한 잔 합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 &lt;B&gt;[동아그룹 略史]&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268d1 size=3&gt;국내공사 3800건·해외공사 120건 수주&lt;BR&gt;&amp;nbsp; 창립 5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은 1945년 최원석 회장의 부친인 故(고) 崔竣文(최준문) 회장이 대전에서 설립한 충남토건이 모체로, 1949년 동아건설로 社名(사명)을 바꿨다. 1950년대 대천방조제 공사, 1960년대 동진강 간척사업 등 주로 간척공사와 농업토목공사를 진행하며 社勢(사세)가 확장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68년 만성적자와 경영부실에 허덕이던 국영기업 대한통운을 인수해 5년 만에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면서 건설·운송 양대 체제로 그룹 골격이 갖춰졌다. 1987년 당시 종업원 3만여 명의 기업군으로 발전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은 창립 이후 3800건의 국내공사를 진행했고, 1974년 중동에 처음으로 진출한 후 120건의 해외공사를 수행했다. 최원석 회장이 회사를 떠나기 직전인 1997년에는 미국 &lt;ENR(ENGINEERING Report) News&gt;誌(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건설사 중 42위에 오르기도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은 1990년대까지 총 매출액의 40%를 해외공사가 차지할 정도로 해외부문이 강했다. 해외 특허 2건, 국내특허 44건, 신기술 6건, 知的(지적)재산권 141개를 보유하고 있었고 도로, 항만, 댐, 터널, 원자력발전소, 플랜트공사 등에서 오랜 건설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건설공사 수주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은 1970년대 동아건설의 중동진출 성공과 대한통운의 발전에 힘입어 사세가 급신장했다. 동아그룹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1977년 공산학원을 설립해 대전동아공고를 세웠고, 1990년에는 공산학원 소유의 임야(경남 양산시 소재) 238만㎡(72만 평)를 부산대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1996년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을 세웠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그룹은 최원석 회장이 물러난 1998년 5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됐다. 1998년 9월 구조조정협약에 따라 동아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는 매각한다는 계획하에 동아증권과 서원레저를 매각하는 등 계열사 구조조정작업이 진행됐다. 2000년 11월 동아건설이 부도가 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5월 파산선고를 받아 동아그룹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됐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 &lt;B&gt;[김포매립지(現 인천 청라지구)]&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268d1 size=3&gt;공시지가 1조원대 김포매립지 6355억원에 헐값 매각&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인천시 서구 경서동·원창동 등 서해안 일대의 김포매립지(인천매립지·現 인천 청라지구)는 1970년대 중반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간척농지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1년간 동아건설 자체자금으로 조성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총 공사비 1283억원이 소요됐고, 총 매립면적 3700만㎡(1128만 평) 중 2070만㎡(629만 평)는 1988년 환경청에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으로 양도됐고, 나머지 1650만㎡(500만 평)는 1991년 1월에 준공·인가됐다. 그중 396만㎡(120만 평)를 국가에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1256만㎡(380만 평)는 동아건설 소유로 등기 완료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포매립지는 서해안시대의 본격적인 개막과 더불어 수도권 신국제공항건설 및 고속전철, 경인운하 등의 건설로 접근성이 향상됨에 따라 대규모 가용토지로 개발 잠재력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무렵 동아건설도 김포매립지의 장기개발 구상을 본격화했고 대단위 관광위락단지, 물류단지, 첨단업무단지, 중소기업단지, 주거주택단지 등 대규모 프로젝트 이행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나 김포매립지의 용도변경이 늦어지면서 동아건설은 대규모 세금폭탄을 맞았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준업무 무관자산으로 분류해 4년간 총 904억원의 법인세를 물었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비업무용 토지로 분류돼 3년간 1801억원의 법인세를 내야 했다. 7년간 부과된 법인세가 총 2705억원에 달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로서는 팔든가 아니면 개발을 통해 이익금으로 세금을 내든가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1998년 최원석 회장이 회사를 떠난 이후 공시지가 1조원대였던 김포매립지는 1999년 6월 정부(농업기반공사) 측에 6355억원(평당 17만원)에 헐값 매각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2년 7월 정부는 김포매립지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고, 김포매립지를 한국토지공사에 넘겼다. 당시 토지공사는 김포매립지를 용도변경해 2005년 11월부터 건설업체에 공동주택단지로 되팔고 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인천 청라지구’로 명칭이 변경된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로부터 매입한 가격(평당 17만원)의 45배인 평당 800만원대에 매각되면서 언론은 ‘토공이 폭리의 땅장사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업무도시로 탈바꿈된 청라지구는 앞으로도 순차적으로 분양될 예정이며, 동아건설이 조성한 옛 김포매립지의 현재 시가는 약 30조원(1250만㎡×800만원) 상당에 이르고 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이 보유했던 부동산이었는데 작년 동아건설을 인수한 프라임그룹은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해 2008년 10월 옛 동아건설이 낸 세금 중 1996년과 1997년분에 해당하는 법인세 1150억여 원을 돌려받았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268d1 size=3&gt;▣ 동아건설 퇴직 임직원 단체인 ‘東亞建友會’&lt;/FONT&gt;&lt;/B&gt;&lt;BR&gt;&amp;nbsp; &lt;IMG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quot;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062_18.jpg&quot; align=right border=1&gt;&lt;BR&gt;&amp;nbsp; 동아건우회(회장 朴哲陽·사진)는 과거 정부의 동아건설 워크아웃 실패 및 과거사에 대해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지난 4월 청와대와 대법원, 대검찰청,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다음은 동아건우회의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국민소득이 북한보다 낮았던 1972년(GNP 320달러)부터 해외에 진출해 28년간 외화를 벌고, 해외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가경제발전에 공헌한 동아건설은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공중분해됐다. 이에 대한 옳고 그름은 바른 역사와 국가미래발전을 위해서도 밝혀져야 하기에 청원하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 국민에게 동아건설은 부실기업이어서 공적자금을 천문학적으로 쏟아붓고 이를 다 낭비한 후 파산되면서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부실채무기업으로 지난 10년간 왜곡되게 알려져 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IMF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동아건설은 정부와 채권단에 맡겨졌고, 기업주의 개인 재산을 몰수하고 채권단은 공적자금으로 1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16~17%대의 고금리 이자 장사를 하며 자산을 헐값에 매각해 2조5000억원 상당의 원리금(이자 1조2000억원 포함)을 회수한 후 워크아웃을 중단하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0년도 말 정규직 종업원 2800명과 해외현지 채용인력 5200명 등 총 8000명이 일하던 자산 4조원대의 동아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불과 3개월 만에 법원이 직권으로 법정관리를 폐지하고 파산선고가 내려지면서 순식간에 공중분해됐다. 경제적 손실만 10조원 이상에 이르고, 지난 8년간 국내 및 해외현장의 일자리 약 60만 개가 사라졌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 파산으로 리비아 공사는 캐나다·프랑스·일본기업 등으로 넘어갔고, 해외공사 200억~300억 달러 수주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리비아는 동아건설이 17년간 공사를 해 온 건설시장이므로 파산만 되지 않았다면 리비아에서 최소 100억 달러 이상, 여타 중동국가에서 100억~200억 달러 등 적어도 총 200억∼300억 달러 이상의 해외공사를 수주해 국가이익은 물론이고 해외경험과 건설기술이 풍부한 우리 동아건설 퇴직임직원(3만명)에게도 많은 일자리를 제공했을 것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무엇보다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기업이 17년간 피땀으로 개척해 놓은 건설시장을, 그것도 아프리카 최대 産油國(산유국)이면서 세계 8위의 원유 매장량으로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가진 리비아 건설시장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행위를 국가권력이 앞장섰다면 그 어떤 방법으로 이를 정당화할 수 있겠으며, 너무나 안타깝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아건설을 억지로 파산시킨 결과 파산채권 배당금액은 6500억원에 불과했고, 이 배당도 리비아에서 클레임 제기로 파산선고 4년이 지나도록 한푼도 중간배당을 하지 못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법원 내부에서도 4년째 중간배당을 하지 못하고 채권자에게 고통만 주는 동아건설 파산절차를 지켜보며 동아건설 파산결정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세월에 묻혀 조용히 지내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과거 정부(예금보험공사)는 동아건설 파산책임을 동아그룹 전 오너(기업주)와 舊(구)경영진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고 이들로 하여금 지난 8년간 수많은 민형사 재판에 휘말리게 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제적·심리적·신체적 고통을 받게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간 동아건설 퇴직임직원들은 백방으로 정부 및 사회 각처에 ‘동아건설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으나 反(반)기업정서가 팽배해 있던 지난 시절 아무도 진실을 규명해 주는 곳이 없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난해 우리 대법원은 소위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사건’의 30여 년 전 판결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 바 있다. 당시 정권에 밉보여 희생당한 동아건설 문제를 우리 법원이 조금만 공정하게 처리했더라면 10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있었고, 동아건설도 살아날 수 있었다.&gt;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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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 왕에게 조아린 이명박과 독불관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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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27T11:56:50Z</updated>
	    <published>2009-11-27T11:56: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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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ction rdoCheck(frm)
{
  var rdofrm = frm.item_idx;
  var status = false;
  for (var i=0; i &lt; rdofrm.length; i++)
  {
    if (rdofrm[i].checked)
    {
      status = true;
      break;
    }
  }
  if (!status)
  {
    alert(&quot;항목을 선택하세요.&quot;);
    return false;
  }
  return true;
}
&lt;/SCRIP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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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height=25&gt;&lt;IMG height=7 src=&quot;http://monthly.chosun.com/coreporter/images/arrow2.gif&quot; width=12 align=absMiddle&gt;&lt;FONT color=#6a6a6a&gt;&lt;B&gt;이름 &lt;/B&gt;&lt;/FONT&gt;&lt;FONT color=#508ed4&gt;&lt;FONT color=#6a6a6a&gt;:&lt;/FONT&gt;&lt;B&gt; 백선균&lt;/B&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background=/coreporter/images/line01.gif&gt;&lt;IMG height=5 src=&quot;http://monthly.chosun.com/images/line01.gif&quot; width=3&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5&gt;&lt;IMG height=7 src=&quot;http://monthly.chosun.com/coreporter/images/arrow2.gif&quot; width=12 align=absMiddle&gt;&lt;FONT color=#6a6a6a&gt;&lt;B&gt;메일&lt;/B&gt;&lt;/FONT&gt;&lt;A href=&quot;mailto:baik.trd@online.de&quot;&gt;&lt;U&gt;&lt;FONT color=#6a6a6a&gt;:&lt;/FONT&gt;&lt;FONT color=#0000ff&gt; baik.trd@online.de&lt;/FONT&gt;&lt;/U&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background=/images/line01.gif&gt;&lt;U&gt;&lt;FONT color=#0000ff&gt;&lt;IMG height=5 src=&quot;http://monthly.chosun.com/images/line01.gif&quot; width=3&gt;&lt;/FONT&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58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color=#6a6a6a&gt;정치만 잘 되면 얼마나 더 좋아질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느끼는 저의 늘 생각입니다. 여기 독일은 물론 유럽 어디를 가도 대한민국 제품이 즐비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잘해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구성원입니다. Perikles는 Thukydides 묘지연설에서 &quot;공동체의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폐가 되지 않는다기보다 쓸모 없는 사람들&quot;이라며 정치(=공동체의 일)에 대한 참여필연성을 역설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를 같이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여기 글을 올리다 저지르는 저의 실수 __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단어와 한자, 맞춤법 등- 가 많습니다. 가차 없는 꾸짖음과 바로잡음(叱正)으로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amp;nbsp;&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 align=middle&gt;
&lt;TD bgColor=#ffffff&gt;&lt;IMG src=&quot;http://monthly.chosun.com/coreporter/images/reporter_box3.gif&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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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background=/coreporter/images/board_column11.gif colSpan=5 height=28&gt;&amp;nbsp;&amp;nbsp;&lt;FONT color=#333333&gt;&lt;B&gt;일본 왕에게 조아린 이명박과 독불관계&lt;/B&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 height=10&gt;&lt;/TD&gt;&lt;/TR&gt;
&lt;TR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150%; FONT-FAMILY: tahoma,굴림; LETTER-SPACING: 0px&quot;&gt;
&lt;TD class=font01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0px&quot;&gt;
&lt;TABLE style=&quot;MARGIN-RIGHT: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1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O:P&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quot;&gt;&lt;?XML:NAMESPACE PREFIX = O /&gt;&lt;O:P&gt;&lt;FONT face=&quot;Times New Roman&quot; size=3&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quot;&gt;1&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quot;&gt;2&lt;SPAN lang=KO&gt;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주변국으로부터 영원한 눈총을 받는다&lt;/SPAN&gt;. &lt;SPAN lang=KO&gt;독일정부는 히틀러 망령을 지우려 안간힘을 쓴다&lt;/SPAN&gt;. &lt;SPAN lang=KO&gt;네오나치와 독일민족을 외치는 극우에 대한 독일정부의 제제는 매우 엄격하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fareast-font-family: GulimChe&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quot;&gt;一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quot;&gt;: &lt;SPAN lang=KO&gt;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했던 네델란드의 한 여성은 독일로 도망 와 사는 수 밖에 없었다&lt;/SPAN&gt;. &lt;SPAN lang=KO&gt;네델란드 휴가지역의 호텔은 되도록이면 독일사람들을 받지 않는다&lt;/SPAN&gt;. &lt;SPAN lang=KO&gt;필자의 믿기지 않는 반문에 독일 사람은 당한 예를 들려줬다. &lt;/SPAN&gt;&lt;SPAN lang=KO&gt;한동안 네델란드 경찰은 자국 내에 조금만 잘못된 독일 차만 봐도 딱지를 뗐다&lt;/SPAN&gt;. &lt;SPAN lang=KO&gt;독일정부의 항의로 수그러들었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fareast-font-family: GulimChe&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quot;&gt;二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quot;&gt;: &lt;SPAN lang=KO&gt;불란서 귀족의 두 딸들은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하는 바람에 또한 독일로 도망쳐 나와 산다&lt;/SPAN&gt;. &lt;SPAN lang=KO&gt;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은즉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lt;/SPAN&gt;. &lt;SPAN lang=KO&gt;위 네델란드 여성 또한 똑 같은 사정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fareast-font-family: GulimChe&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X-X-X-X-X-X-A target=&quot;_parent&quot; href=&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444985519.jpg&quot;&gt;&lt;/A&gt;&lt;SPAN lang=KO&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P&gt;
&lt;DIV class=&quot;imgblock leftjust&quot; style=&quot;FLOAT: left; WIDTH: 382px&quot;&gt;&lt;A class=imageUtil id=thumb_0736602768104549 onclick=&quot;return hs.run(this,'')&quot; href=&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444985519.jpg&quot; target=_parent&gt;&lt;IMG class=chimg_photo id=image_0736602768104549 style=&quot;FLOAT: none; WIDTH: 382px; HEIGHT: 310px&quot; height=311 alt=&quot;&quot;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444985519.jpg&quot; width=362 onload=javascript:addCaption(this) align=left border=0&gt;&lt;/A&gt; 
&lt;DIV class=caption style=&quot;WIDTH: 382px&quot;&gt;
&lt;DIV class=caption-text style=&quot;WIDTH: 382px&quot;&gt;&lt;/DIV&gt;&lt;/DIV&gt;&lt;/DIV&gt;&lt;/SPAN&gt;불란서 사람들은 한 때 독일사람들을 사람 취급도 안 했다&lt;/SPAN&gt;. &lt;SPAN lang=KO&gt;서독정부서부터 지금까지 독일지도자들은 불란서에 공을 들였다&lt;/SPAN&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독일의 가장 친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여자&lt;/SPAN&gt;)&lt;SPAN lang=KO&gt;친구“&lt;/SPAN&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불란서 국경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11&lt;SPAN lang=KO&gt;월&lt;/SPAN&gt;11&lt;SPAN lang=KO&gt;일 일차대전 승전기념일&lt;/SPAN&gt;)&lt;SPAN lang=KO&gt;에 참석한 독일 수상&lt;/SPAN&gt; Merkel&lt;SPAN lang=KO&gt;을 소개하며 불란서대통령 &lt;/SPAN&gt;Sarkozy&lt;SPAN lang=KO&gt;가 한 말이다&lt;/SPAN&gt;. &lt;SPAN lang=KO&gt;메르켈 앞 슈뢰더 수상은 불란서의 같은 행사초청을 거부한 바 있다&lt;/SPAN&gt;. 1&lt;SPAN lang=KO&gt;차 대전 당시 獨佛 피아 幾百萬이 넘는 인명손상이다&lt;/SPAN&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역사는 기억력을 죽이지 않는다“&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는 사르코지는 양국의 전몰유가족과 특히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루만졌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우리는 역사를 의식하기로 여기에 섰습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gt;“&lt;/SPAN&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메르켈의 답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둘은 두 나라의 발전적인 관계를 다짐했다. (&lt;SPAN lang=KO&gt;사진은 독일 국기를 들고 메르켈을 환영하는 불란서 젊은이들&lt;/SPAN&gt;)&lt;O:P&gt;&lt;/O:P&gt;&lt;/SPAN&gt;
&lt;P&gt;&lt;/P&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P&gt;
&lt;DIV class=&quot;imgblock leftjust&quot; style=&quot;FLOAT: left; WIDTH: 389px&quot;&gt;&lt;IMG class=chimg_photo style=&quot;FLOAT: none; WIDTH: 389px; HEIGHT: 448px&quot; height=450 alt=&quot;&quot;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46774297.jpg&quot; width=371 onload=javascript:addCaption(this) align=left border=0&gt; 
&lt;DIV class=caption style=&quot;WIDTH: 389px&quot;&gt;
&lt;DIV class=caption-text style=&quot;WIDTH: 389px&quot;&gt;&lt;/DIV&gt;&lt;/DIV&gt;&lt;/DIV&gt;&lt;/SPAN&gt;바르샤와 무명용사 앞에 무릎 꿇은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독일은 주변국에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lt;/SPAN&gt;. &lt;SPAN lang=KO&gt;독일은 폴란드에 엄청난 전쟁희생비용을 지불했다&lt;/SPAN&gt;. &lt;SPAN lang=KO&gt;지금도 독일과 폴란드 정상이 만나면 국경을 맞댄&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두 나라의 운명과&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두 대전의 불행을 주제로 삼는다&lt;/SPAN&gt;. &lt;SPAN lang=KO&gt;용서와 화해는 정치적인 몸짓이다&lt;/SPAN&gt;. &lt;SPAN lang=KO&gt;독일로서는 시장확보이다&lt;/SPAN&gt;. &lt;SPAN lang=KO&gt;독일이 지불한 돈은 폴란드가 독일 기계를 사들임으로써 다시 독일로 흘러 들어온다&lt;/SPAN&gt;. &lt;SPAN lang=KO&gt;폴란드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구매력이 늘어나고 독일은 선진기술제품을 팔 수 있게 된다&lt;/SPAN&gt;. &lt;SPAN lang=KO&gt;怏宿감정은 피차 좋은 일이 못 된다&lt;/SPAN&gt;. &lt;SPAN lang=KO&gt;과거사를 잊을 수 없으나 그렇다고 영원한 未濟로 남겨둘 필요까지는 없다&lt;/SPAN&gt;. &lt;SPAN lang=KO&gt;국가지도자들이 국익을 위해 해야 할 일&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중 하나이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
&lt;P&gt;&lt;/P&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P&gt;
&lt;DIV class=&quot;imgblock leftjust&quot; style=&quot;FLOAT: left; WIDTH: 396px&quot;&gt;&lt;A class=imageUtil id=thumb_031014025740463885 onclick=&quot;return hs.run(this)&quot; href=&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363137674.jpg&quot; target=_parent&gt;&lt;IMG class=chimg_photo id=image_031014025740463885 style=&quot;FLOAT: none; WIDTH: 396px; HEIGHT: 309px&quot; height=308 alt=&quot;&quot;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363137674.jpg&quot; width=400 onload=javascript:addCaption(this) align=top border=0&gt;&lt;/A&gt; 
&lt;DIV class=caption style=&quot;WIDTH: 396px&quot;&gt;
&lt;DIV class=caption-text style=&quot;WIDTH: 396px&quot;&gt;&lt;/DIV&gt;&lt;/DIV&gt;&lt;/DIV&gt;&lt;/SPAN&gt;서독의 초대수상 아데나워와 불란서 외상 독일계 슈마허의 전후 독불친선협정은 오늘날 유럽연합의 모태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아데나워는 통독에 불란서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걸 일찍이 파악했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
&lt;P&gt;&lt;/P&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P&gt;
&lt;DIV class=&quot;imgblock leftjust&quot; style=&quot;FLOAT: left; WIDTH: 400px&quot;&gt;&lt;A class=imageUtil id=thumb_06214523939853924 onclick=&quot;return hs.run(this)&quot; href=&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383946895.jpg&quot; target=_parent&gt;&lt;IMG class=chimg_photo id=image_06214523939853924 style=&quot;FLOAT: none; WIDTH: 400px; HEIGHT: 289px&quot; height=287 alt=&quot;&quot;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383946895.jpg&quot; width=400 onload=javascript:addCaption(this) align=top border=0&gt;&lt;/A&gt; 
&lt;DIV class=caption style=&quot;WIDTH: 400px&quot;&gt;
&lt;DIV class=caption-text style=&quot;WIDTH: 400px&quot;&gt;&lt;/DIV&gt;&lt;/DIV&gt;&lt;/DIV&gt;&lt;/SPAN&gt;파아노 독주실력의 서독수상 슈미트는 당시 불란서 대통령 지스카르텡과 집무시간에 전화로 음악에 관한 환담을 나눌 정도로 가까웠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O:P&gt;&lt;/O:P&gt;&lt;/SPAN&gt;
&lt;P&gt;&lt;/P&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P&gt;
&lt;DIV class=&quot;imgblock leftjust&quot; style=&quot;FLOAT: left; WIDTH: 399px&quot;&gt;&lt;A class=imageUtil id=thumb_06317289406731735 onclick=&quot;return hs.run(this)&quot; href=&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411079530.jpg&quot; target=_parent&gt;&lt;IMG class=chimg_photo id=image_06317289406731735 style=&quot;FLOAT: none; WIDTH: 399px; HEIGHT: 277px&quot; height=277 alt=&quot;&quot;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411079530.jpg&quot; width=400 onload=javascript:addCaption(this) align=top border=0&gt;&lt;/A&gt; 
&lt;DIV class=caption style=&quot;WIDTH: 399px&quot;&gt;
&lt;DIV class=caption-text style=&quot;WIDTH: 399px&quot;&gt;&lt;/DIV&gt;&lt;/DIV&gt;&lt;/DIV&gt;&lt;/SPAN&gt;통독 수상 콜은 불란서가 반대하면 통일이 꼬이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독일은 절대로 통일 돼서는 안 된다“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ack;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불란서 점령사령관이 인터뷰에서 밝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ack;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amp;nbsp;&lt;SPAN lang=KO&gt;필자가 사진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바 콜은&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외투 호주머니에 넣은 미테랑의 손을 억지로&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끄집어 내 꼬옥 잡았다&lt;/SPAN&gt;.&amp;nbsp;두 사람은 테러진압을 위한 독불 기동타격연대를 창설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O:P&gt;&lt;/O:P&gt;&lt;/SPAN&gt;
&lt;P&gt;&lt;/P&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X-X-X-X-X-X-A target=&quot;_parent&quot; href=&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454748778.jpg&quot;&gt;&lt;/A&gt;&lt;SPAN lang=KO&gt;&lt;/P&gt;
&lt;DIV class=&quot;imgblock leftjust&quot; style=&quot;FLOAT: left; WIDTH: 399px&quot;&gt;&lt;A class=imageUtil id=thumb_037353043985984274 onclick=&quot;return hs.run(this,'')&quot; href=&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454748778.jpg&quot; target=_parent&gt;&lt;IMG class=chimg_photo id=image_037353043985984274 style=&quot;FLOAT: none; WIDTH: 399px; HEIGHT: 271px&quot; height=268 alt=&quot;&quot;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454748778.jpg&quot; width=400 onload=javascript:addCaption(this) align=left border=0&gt;&lt;/A&gt; 
&lt;DIV class=caption style=&quot;WIDTH: 399px&quot;&gt;
&lt;DIV class=caption-text style=&quot;WIDTH: 399px&quot;&gt;&lt;/DIV&gt;&lt;/DIV&gt;&lt;/DIV&gt;현 불란서 대통령과 독일 수상 메르켈&lt;/SPAN&gt;. &lt;SPAN lang=KO&gt;용서와 화해를 넘어 밀월을 즐긴다&lt;/SPAN&gt;. &lt;SPAN lang=KO&gt;독일언론은 애인 사이 같다고 한다&lt;/SPAN&gt;. &lt;SPAN lang=KO&gt;대미관계에 같은 목소리를 낼지 흥미진진하다&lt;/SPAN&gt;. 미국의 &lt;SPAN lang=KO&gt;제&lt;/SPAN&gt;2&lt;SPAN lang=KO&gt;차 이락 침공 전&amp;nbsp;당시 독일 수상 슈뢰더는 불란서와&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반전에 합의했으나 불란서가 일방적으로 破棄했다&lt;/SPAN&gt;. &lt;SPAN lang=KO&gt;경쟁국 두 나라의 국익은&amp;nbsp;언제나 갈린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
&lt;P&gt;&lt;/P&gt;
&lt;P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P&gt;
&lt;DIV class=&quot;imgblock leftjust&quot; style=&quot;FLOAT: left; WIDTH: 369px&quot;&gt;&lt;IMG class=chimg_photo style=&quot;FLOAT: none; WIDTH: 369px; HEIGHT: 262px&quot; height=255 alt=&quot;&quot;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_fd/board/news_img/2009/11/14/200911142512187038.jpg&quot; width=295 onload=javascript:addCaption(this) align=left border=0&gt; 
&lt;DIV class=caption style=&quot;WIDTH: 369px&quot;&gt;
&lt;DIV class=caption-text style=&quot;WIDTH: 369px&quot;&gt;&lt;/DIV&gt;&lt;/DIV&gt;&lt;/DIV&gt;&lt;/SPAN&gt;일본 왕 앞에서 고개 숙인 이명박은 일본총리와 청와대 만찬에서 간빠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gt;乾盃의 일본발음&lt;/SPAN&gt;)&lt;SPAN lang=KO&gt;를 외쳤다&lt;/SPAN&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타케시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gt;獨島의 일본발음&lt;/SPAN&gt;)&lt;SPAN lang=KO&gt;에 관해서는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기로 하고&lt;/SPAN&gt;... &lt;SPAN lang=KO&gt;앞으로 지도에&lt;/SPAN&gt; (&lt;SPAN lang=KO&gt;한라산을&lt;/SPAN&gt;) &lt;SPAN lang=KO&gt;제주의 후지산이라고 표기하겠다&lt;/SPAN&gt;.&lt;SPAN lang=KO&gt;“ &lt;/SPAN&gt;&lt;/SPAN&gt;&lt;?XML:NAMESPACE PREFIX = ST1 /&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노무현&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 일본총리를 만나 너스레를 떨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일본무역역조보다 대통령들의&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말과 행태는 무엇보다 문제이다&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gt;노무현 같은&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gt;&amp;nbsp;툭하면 일본에 대한 강경발언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amp;nbsp;이&lt;/SPAN&gt;&lt;SPAN lang=KO&gt;명박 식 鞠躬은 실용주의와 거리가 멀다. &lt;FONT color=#000000&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개인적으로 일본 왕에게 얼마나 많은 신세를 지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얼마나 많은 존경심을 품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분명 아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FON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국민으로서 민망함은 둘째 치고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어느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 게 더 탈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고, 우리는 우리이다.&lt;/SPAN&gt;
&lt;P&gt;&lt;/P&gt;&lt;/SPAN&gt;&lt;/SPAN&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독일과 다른 일본이 더 문제이지만 우리 쪽에도 문제가 많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일본이라면 고개를 돌린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이승만&lt;/ST1:PERSONNAME&gt; 이후 일본에 대한 우리의 앙금은 쌓이기만 했다&lt;/SPAN&gt;. &lt;SPAN lang=KO&gt;일본이 가까이에 없었다면 우리의 경제발전이 그만큼 늦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일본 놈 때려 눕히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한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구&lt;/ST1:PERSONNAME&gt;만 존경의 대상일 수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영국치하에서 삶을 영위한 인도의 간디는 언제나 한 길을 걸은 건 아니었지만&lt;/SPAN&gt; 인도&lt;SPAN lang=KO&gt;국민의 그에 대한 존경심은 한결같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한 신부는 키우는 개를 박정희라 부르며 밥 줄 때마다 발길로 내지른다고 자랑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다른 한 신부는 요즘 나도는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박정희&lt;/ST1:PERSONNAME&gt; 혈서와 충성맹서를 문제 삼아 홈피에 올린다&lt;/SPAN&gt;. &lt;SPAN lang=KO&gt;본분을 逸脫&lt;/SPAN&gt;, &lt;SPAN lang=KO&gt;할일 없어 주접을 떤다&lt;/SPAN&gt;. &lt;SPAN lang=KO&gt;이런 자들에 의하여 예수가 바라는 세상평화는커녕 저주의 혼란은 확대 재생산된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박정희&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가 일본 왕 맞으려고 고속도로 놨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일본 왕에게 바치려고 경제발전에 그토록 비지땀을 흘렸나&lt;/SPAN&gt;? &lt;SPAN lang=KO&gt;공이 과를 덮을 수는 없다&lt;/SPAN&gt;. &lt;SPAN lang=KO&gt;역사적인 가치를 선택하면 그만이다&lt;/SPAN&gt;. &lt;BR&gt;&lt;BR&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친일인사명단.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런 걸&lt;SPAN lang=KO&gt; 만든 사람들의 조상은 일제시대를 피해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왔나&lt;/SPAN&gt;! &lt;SPAN lang=KO&gt;빨갱이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XML:NAMESPACE PREFIX = ST2 /&gt;&lt;ST2:SN w:st=&quot;on&quot;&gt;권&lt;/ST2:SN&gt;&lt;ST2:GIVENNAME w:st=&quot;on&quot;&gt;오석&lt;/ST2:GIVENNAME&gt;&lt;/ST1:PERSONNAME&gt;의 사위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은 대통령까지 해먹었다&lt;/SPAN&gt;. &lt;SPAN lang=KO&gt;불란서는 독일에 협력한 10만 이상의 인사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했지만 사정은 우리와 다르다&lt;/SPAN&gt;. &lt;SPAN lang=KO&gt;무려&lt;/SPAN&gt; 36&lt;SPAN lang=KO&gt;년간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lt;/SPAN&gt;. 해외로 나간 사람들보다 남아 투쟁하거나 나라를 지켜온 사람들의 용기가 더 &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DE; mso-bidi-font-family: Tahoma; mso-fareast-language: KO; mso-bidi-language: AR-SA&quot;&gt;嘉賞&lt;/SPAN&gt;할 수 있다.&amp;nbsp;일본 시대에 교육을 받고 해방후 조국에 기여한 인물들은 많다. &lt;BR&gt;&lt;BR&gt;여기서 박정희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의 젊을 때 행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lang=KO&gt;친일&lt;/SPAN&gt;)에 반민족적 사실이 있었다면 &lt;SPAN lang=KO&gt;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이다&lt;/SPAN&gt;. &lt;SPAN lang=KO&gt;그래야 그러지 않은 사람들의 정의와 민족정기가 선다&lt;/SPAN&gt;. &lt;SPAN lang=KO&gt;정의와 민족정기의 판단기준이 된다&lt;/SPAN&gt;. &lt;SPAN lang=KO&gt;이런 일로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박정희&lt;/ST1:PERSONNAME&gt;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현시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百害無益이다&lt;/SPAN&gt;. &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FONT color=#000000&gt;뒤에 김용옥을 예로 들겠지만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일성&lt;/ST1:PERSONNAME&gt;의 반일운동을 浮刻시키려는 친북좌파 즉 좌빨들이 앞장섰다는 데 反感이 일고 信憑性이 떨어진다&lt;/FON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GulimChe&quot;&gt;&lt;FONT color=#000000&gt;. &lt;/FONT&gt;&lt;/SPAN&gt;&lt;/SPAN&gt;&lt;BR&gt;&lt;BR&gt;&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조병옥&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 친일파라고 소란을 피운 민주당 친일청산인가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 위원횐가 무엇에서 소란을 피웠던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희선&lt;/ST1:PERSONNAME&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그녀는 독립운동가 집안임을 자랑하기 위하여 족보까지 바꿨으나 정작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헌병 오장으로 독립군 잡아들이는 앞잡이였음이 밝혀졌다&lt;/SPAN&gt;. &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한말 가렴주구의 대명사인 전북 고부군수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조병갑&lt;/ST1:PERSONNAME&gt;의 증손녀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조기숙&lt;/ST1:PERSONNAME&gt;은 오늘도 떵떵거리며 산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그녀의 할아버지가 조선총독부 기관지 기자로 얼마나 친일했는지&amp;nbsp;물어보지 안 해도 뻔하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증조부대에 대원군에게 잘못 보이는 바람에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집안의 한 &lt;SPAN lang=KO&gt;종조부는 그의 칼에 맞아 죽었다&lt;/SPAN&gt;- &lt;SPAN lang=KO&gt;벼슬길이 끊긴 필자의 집안&lt;/SPAN&gt;. &lt;SPAN lang=KO&gt;무지렁이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본에 협력할 능력이 없었다&lt;/SPAN&gt;. &lt;SPAN lang=KO&gt;막내 작은 아버지는 徵用에 끌려나가 日本皇軍 만세를 불렀을 터이다&lt;/SPAN&gt;. &lt;SPAN lang=KO&gt;조상을 잘 둔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조기숙&lt;/ST1:PERSONNAME&gt;이야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의 홍보상궁으로 집안을 빛냈지만 나 같은 놈이야 백 번 노비어천가∙이비어천가를 써봐야 소용이 없는 줄 알기에 徒勞의 이런 글이나 쓴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김일성&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의 반일투쟁기록으로 그가 소나무 썼다는 구호문을 선전하며 북괴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일성&lt;/ST1:PERSONNAME&gt; 세습의 정통을 외치는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용옥&lt;/ST1:PERSONNAME&gt; 집안의 일본시절 행적이 궁금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그는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이승만&lt;/ST1:PERSONNAME&gt; 시절 반일투사들이 산으로 숨어 들어 빨치산이 되었다고 역사를 왜곡∙날조 선동한다&lt;/SPAN&gt;.&amp;nbsp;&lt;SPAN style=&quot;mso-spacerun: yes&quot;&gt;&amp;nbsp;&lt;BR&gt;&lt;BR&gt;&lt;/SPAN&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일본점령&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36&lt;SPAN lang=KO&gt;년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lt;/SPAN&gt;. &lt;SPAN lang=KO&gt;일본을 향하여 이를 갈기 전에 나라를 왜 잃어야 했는지 뼈저린 반성부터이다&lt;/SPAN&gt;. &lt;SPAN lang=KO&gt;과거에만 사로잡힌다면 어처구니 없는 낭비만 거듭한다&lt;/SPAN&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정치가들과 역사가들이 게을러서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 lang=KO&gt;일본은 不遠不近의 나라임에 틀림없다&lt;/SPAN&gt;. &lt;SPAN lang=KO&gt;통일에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훼방을 놓을 수 있다&lt;/SPAN&gt;. &lt;SPAN lang=KO&gt;한반도의 문화역사를 뿌리로 하는 일본은 신라∙백제시대부터 우리와 恩怨의 관계이다&lt;/SPAN&gt;. &lt;SPAN lang=KO&gt;영원한 반일과 극일 구호&lt;/SPAN&gt;&amp;nbsp;&lt;SPAN lang=KO&gt;또한 낭비이다&lt;/SPAN&gt;. 민간교류도 중요하지만 정치지도자들은 일본의 태도를 바꿔놔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독불 국민감정을 희석시킨 건 독일정치가들이다. 일본의 역사서 왜곡은 줄곧 이어져 오지만 우리의 대응은 언제나 일과성으로 끝난다. 독도문제도 그렇다. &lt;ST1:DATE w:st=&quot;on&quot; Year=&quot;2009&quot; Month=&quot;11&quot; Day=&quot;14&quot; o:ls=&quot;trans&quot;&gt;09. 11. 14./16. 수정&lt;/ST1:DATE&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T1:DATE w:st=&quot;on&quot; Year=&quot;2009&quot; Month=&quot;11&quot; Day=&quot;14&quot; o:ls=&quot;trans&quot;&gt;글/백선균&lt;/SPAN&gt;&lt;/P&gt;&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T1:DATE&gt;&lt;/O: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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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업을 뜯어 먹고 죽이는 대통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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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27T11:41:53Z</updated>
	    <published>2009-11-27T11:41: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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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background=/coreporter/images/board_column11.gif colSpan=5 height=28&gt;&lt;FONT color=#333333&gt;&lt;B&gt;기업을 뜯어 먹고 죽이는 대통령&lt;/B&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 height=10&gt;&lt;/TD&gt;&lt;/TR&gt;
&lt;TR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150%; FONT-FAMILY: tahoma,굴림; LETTER-SPACING: 0px&quot;&gt;
&lt;TD class=font01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0px&quot;&gt;
&lt;TABLE style=&quot;MARGIN-RIGHT: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1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quot;&gt;&lt;?XML:NAMESPACE PREFIX = O /&gt;&lt;O:P&gt;&lt;SPAN style=&quot;&quot;&gt;&lt;O:P&gt;&lt;FONT face=&quot;Times New Roman&quot; size=3&gt;&lt;SPAN style=&quot;&quot;&gt;&lt;O:P&gt;&lt;SPAN style=&quot;&quot;&gt;&lt;O:P&gt;&lt;SPAN style=&quot;&quot;&gt;&lt;O:P&gt;&lt;O:P&gt;&lt;O: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나는 보잘것없는 촌놈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내가 독일에 살면서 세상 거칠 것 없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기를 펴고 살 수 있음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①&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이승만&lt;/st1:PersonName&gt;의 ㉮자유주의와 ㉯국가대계의 교육정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1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②&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박정희&lt;/st1:PersonName&gt;의 경제 발전에 의한 국력 伸張 ③&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정주영&lt;/st1:PersonName&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이병철&lt;/st1:PersonName&gt; 등의 세계적인 기업을 일으킴과 ④&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우중&lt;/st1:PersonName&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이건희&lt;/st1:PersonName&gt;∙정몽구∙등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서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그들 외국주재원들의 애국적인 활동은 눈부신 성과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오지리에서 헝가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1&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번 국도를 타고 부다페스트에 다다르면 삼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G&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현대의 雄壯한 간판이 맞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마치 凱旋將軍이라도 된 양 우쭐거려진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체코의 푸라하 공항에서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터키의 이스탄불 공항에서도 마찬가지 기분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유럽의 경기장 광고에 삼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G&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현대는 단골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광고는 참으로 멋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독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ADAC(&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독일 모터클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는 한국타이어를 최고급으로 뽑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올림픽 유치는 현대조직과 자금을 동원한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정주영&lt;/st1:PersonName&gt;의 재치 있는 활동이 奏效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그의 애국활동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여러 국제체육행사 유치에 기업총수들이 팔 걷어 붙이고 나섰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한 때 불편했던 불란서와의 관계개선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KAL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조중헌&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회장의 국가요청을 欣快히 받아들인 노력에서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현재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벗어나는 건 이명박 정부의 노력보다 기업들의 발 빠른 상황대처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달러는 그냥 굴러들어오지 않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사민주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2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국가인 독일에서 일자리는 매우 중요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일자리는 국민이 먹고 사는 業을 제공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맑스의 노동자천국&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공산주의체제는 일자리를 국가에서 관리했지만 굶주림이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앞에 든 기업가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권력 앞에 너무도 무력한 그들은 감옥을 들락거리는 등 困辱을 치러야 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정부의 特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국가기획경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로 성장한 게 사실이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사정을 勘案하면 해도 너무 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사회정의의 防牌기능인 사법기관은 어떤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권력의 하수인들에 지나지 않는 그들 또한 기업을 뜯어먹는 악어 떼에 지나지 않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세무기관도 기업에겐 무서운 권력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정치의 장인 국회는 百害無益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망치와 전기 톱을 들고 나선 민주당이 아예 부숴버렸으면 싶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style=&quot;BACKGROUND: #f3f3ff; 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노무현&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에게 돈을 바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3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박연차는 감옥살이를 계속하는 한편 그에게서 돈을 뜯어먹은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 一家는 안녕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사회정의차원에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lt;SPAN style=&quot;mso-spacerun: yes&quot;&gt;&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독일은 연초가 되면 수상 主宰로 정부∙기업∙노조 대표들이 모여 나라 일을 놓고 의견을 나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독일을 먹여 살리고 결정하는 단체들의 정치행위는 수상의 통치행태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정부는 기업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동시에 기업이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도록 하고 搾取를 막는 법을 마련하며 감시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국가권력행사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독일 정치의 要諦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기업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2&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류 정치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3&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류“&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이건희&lt;/st1:PersonName&gt;는 이 말 한마디로 여야로부터 酷毒한 시련을 당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대한민국의 기업은 권력의 밥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권력에 밉보이면 빼앗기거나 살아남지 못하고 敗家亡身 당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더러운 놈들에게 돈을 뜯기고 바치는 대한민국의 기업인들은 참으로 눈물겹고 嘉尙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용케 피하면 돈의 위력과 호화를 누리며 대를 잇는 榮華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비자금은 권력을 미끼로 손을 벌리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뜯어 먹은 놈들부터 처리해야 순서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독일의 사민주의는 서독의 초대내각 아데나워 정권에서 경제상을 지낸 에어하르트의 사회시장경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soziale Marktwirschaft/social market economy&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를 基盤으로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어느 정도 국가의 기획경제는 기업의 자유활동&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자유시장주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을 보장하되 국가의 균형에 맞게 조정하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업의 연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cartel)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등을 법으로 막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굳이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사회&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를 덧붙인 이유이고 내용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style=&quot;mso-spacerun: yes&quot;&gt;&amp;nbsp;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일자리보다 더 좋은 복지는 없다“ „부자 될 욕망이 없다면 기업은 발전하지 못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전 국민을 위한 복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를 標榜한&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에어하르트가 한 말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건전한 국가유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국가재정&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와 국민복지를 위한 기업의 존재는 참으로 필수불가결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農奴를 자산과 수단으로 한 옛날의 영주나라들과 다른 현대에서 기업 없이 국가의 성립은 불가능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업국유화는 공산주의체제가 체험으로 제시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박정희&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이후 권력을 잡은 대통령들은 기업을 못살게 굴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박정희&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의 국가발전기획에 위한 기업육성보다 개인의 감정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현대를 못살게 굴었던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영삼&lt;/st1:PersonName&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대우와 동아를 해체하고 현대가의 한 자식을 자살로 몰고가 노벨평화상을 탄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대중&lt;/st1:PersonName&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둘은 과연 그들이 못살게 굴고 해체한 기업들보다 대한민국에 더 寄與했는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김대중&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 해체한 대우의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우중&lt;/st1:PersonName&gt;과 동아의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최원석&lt;/st1:PersonName&gt;이 構築한 人脈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가 못 당할 정도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노무현&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의 총무비서관 최도술과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정상문&lt;/st1:PersonName&gt;은 아예 기업에 돈 걷으러 다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20&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년 집사 아니면 莫逆한 친구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그의 부인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권양숙&lt;/st1:PersonName&gt;은 총무비서관을 시켜 박연차의 돈을 뜯어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박연차를 임기 중&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6&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번이나 만난 노는 기업 중 서열에도 못 끼는 그를 북한방문단에 끼어 넣었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600&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만불 이상 현금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1&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억짜리 시계를 두 개 바친 박연차는 감방사리를 면치 못하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노무현&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 식구들의 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3&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를 무덤으로 안고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부인과 자식들은 오랏줄을 면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그의 뜻을 받들겠다는 정당까지 생겼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현 우리만큼 잘 사는 나라들 중 대한민국의 정의만큼 잘못된 나라는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일부 단체는 시민과 민주라는 이름을 들고 나서 기업을 잡아먹지 못하여 勞心焦思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전두환&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과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태우&lt;/st1:PersonName&gt;는 감옥살이를 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김대중&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과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은 剖棺斬屍해서라도 죄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IMF&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를 불러오거나 막지 못한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영삼&lt;/st1:PersonName&gt;도 감옥에 보내야 마땅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IMF&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로 겪은 국민고통은 그 얼마인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일찍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의 손을 들어준 덕에 상왕 노릇 하는 그는 역겹기만 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IMF&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는 일차적으로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영삼&lt;/st1:PersonName&gt;이 관세율을 일률적으로 정함으로써 기업들이 너도 나도 소비재 품목을 사들이는 바람에 달러가 枯渴난 결과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김대중&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은 근로자들의 피와 땀인 원화를 달러로 바꿔 탕진함으로써 죄과가 더 크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우리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외화를 빌어다 썼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blue;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정주영&lt;/st1:PersonName&gt;이 한 말은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박정희&lt;/st1:PersonName&gt;가 외화관리에 얼마나 엄격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김대중&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은 원화를 몇 번 세탁하는 과정을 거쳐 북괴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김정일&lt;/st1:PersonName&gt;에게 바쳤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노무현&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은 박연차 회사의 직원 무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130&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명을 동원하여 달러를 바꿔 바치게 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김대중&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 대우와 동아를 죽이는 방법은 너무도 野卑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업을 증오하는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은 공산주의자에 가깝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 style=&quot;mso-spacerun: yes&quot;&gt;&amp;nbsp;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런 자들과 조기유학&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외국여행에 펑펑 쓰는 자들 때문에 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2 IMF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소리가 나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업인들은 외국에 나가 외화를 금 쪽 같이 아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피땀 흘린 돈이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김대중&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에겐 不勞所得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후진국 권력은 참으로 좋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 글은 절대로 기업을 역성들거나 그들의 잘못을 斗頓&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또는 해명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박정희&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이후 정권마다 기업을 죽이는 일부터 시작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국가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국가운영방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과 정치이념이 不實한 자들의 야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populism&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의 一端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명박 정권에서 이런 일이 없는 건 무엇보다 다행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그의 기업 프렌드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friendly&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는 或如 政經謬錯의 냄새를 풍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업을 뜯어 먹고 죽이는 권력과 마찬가지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amp;nbsp;&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결코 좋지 않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국민이 위임한 조직과 권력을 개인목적을 위하여 동원한다면 逆賊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업의 그것과 다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자본剩餘의 사회還元&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은&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독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Voi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교수의 맑스이론 해설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업은 사회 –물건을 소비하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없이 돈을 벌 수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어떤 방법이 됐든 기업의 사회환원은 더불어 사는 사회정의실천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새로운 기술도입으로 일자리를 늘리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근로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자동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복지시설을 제공하는 등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0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업이 권력을 손 볼 수 없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사정기관이 권력을 손 봐야 하는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아직은 권력의 하수인들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把守兵인 언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보수언론은 있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권력∙학력∙재력&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사람과 이기는 사람 편이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좌빨언론은 歪曲捏造에 선동을 일삼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가치관을 정해줄 中心軸은 없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t1:date w:st=&quot;on&quot; Year=&quot;2009&quot; Month=&quot;11&quot; Day=&quot;24&quot; o:ls=&quot;trans&quot;&gt;09. 11. 24.&lt;/st1:date&gt;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1.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나 같은 사람은 학교에 갈 처지가 못됐지만 고학이라도 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이명박 또한 고학으로 대통령까지 됐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기회균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우리들이 간직한 자유정신과 교육열은 대한민국의 無限資産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2.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연금∙실업보험∙의료보험은 서구 사회주의의 기본내용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국가에서 관리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일자리가 줄어들면 그만큼 국가재정에 영향을 받는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3.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검찰은 包括的인 뇌물로 고소할 참이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뉘라서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 권력이 아니면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권양숙&lt;/st1:PersonName&gt;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애송이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그의 아들과 조카에게 돈을 바치겠는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깨끗하다던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노무현&lt;/st1:PersonName&gt;은 이렇게 기업을 뜯어먹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노무현&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의 홍보상궁 &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조기숙&lt;/st1:PersonName&gt;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생계형 범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로 擁護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청와대에서 밥을 굶었단 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저들의 생각과 論理는 참으로 荒唐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오로지 야합으로 정권을 유지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191919; mso-ansi-language: EN-US; ; mso-fareast-font-family: 'New Gulim'&quot;&gt;&lt;O:P&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4.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원래 공산주의자들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전체인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people&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을 위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maroon; FONT-FAMILY: 'New Gulim';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정치이념이었으나 선동가들의 대중의 잠시 입맛에 迎合하는 野合의 뜻으로 바뀐 느낌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 &lt;/SPAN&gt;&lt;st1:PersonName w:st=&quot;on&quot;&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노무현&lt;/SPAN&gt;&lt;/st1:PersonName&gt;&lt;SPAN lang=KO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의 충청인 사탕발림 세종시는 시끄럽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lt;/SPAN&gt;&lt;/P&gt;
&lt;P class=MsoBodyText style=&quot;MARGIN: 0cm 0cm 6pt; WORD-BREAK: break-all; LINE-HEIGHT: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191919; FONT-FAMILY: GulimChe; mso-ansi-language: EN-US; mso-bidi-font-family: Tahoma&quot;&gt;글/백선균&lt;/SPAN&gt;&lt;/P&gt;&lt;/O:P&gt;&lt;/O:P&gt;&lt;/O:P&gt;&lt;/SPAN&gt;&lt;/O:P&gt;&lt;/SPAN&gt;&lt;/O:P&gt;&lt;/SPAN&gt;&lt;/FONT&gt;&lt;/O:P&gt;&lt;/SPAN&gt;&lt;/O:P&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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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화산 정상을 한성봉 이라 부르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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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25T20:09:44Z</updated>
	    <published>2009-11-25T20:09: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4.uf.daum.net/image/20589C0B4B0E7D988ABD8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9&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백화산정상 한성봉,&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금샘산악회에서 달바위봉에 간다기에 신청해 두었는데, 며칠전에 산불로 인해 입산통제되어 오늘산행은 상주와 영동에 걸쳐있는&lt;BR&gt;백화산으로 산행지를 바꾸어 간단다. 부산에서 8:00에 출발하여 남해안고속도로 산인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대구-경부고속도로-황간I/C에서 나와 직진, 300m 가서 황간면사무소 방향으로 우회전, 700m가면 면소재지 내의 삼거리, 여기서 우회전, 49번 지방도로를&amp;nbsp;탄다. 그후 5km쯤 북상하여 작은 고개를 넘으면 반야사 입구임을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lt;BR&gt;이 입구를 지나 수봉재를 넘어 2.5km 가면 용추골 입구로 들어가는 농로 입구가 왼쪽으로 나타난다. &lt;BR&gt;농로를 따라 들어가다 200m 쯤 갔을때.. 허걱~ 이걸워쪄~~ 농로가운데 돌과 흙무덤으로 차량으로는 통행이 불가능하다.&lt;BR&gt;들머리 까지 약15분가량을 모두 내려 걸어서 간다. 개천을 따라걷다 보면 옛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다는 백옥정도 보이고...&lt;BR&gt;몇 해 전만 해도 백화산 산행은 매우 어려웠다. 백화산은 석천쪽에서 올라야 하는데 석천을 건널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신발을 &lt;BR&gt;벗어들고 석천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영동쪽에서 주행봉 자락에 산림욕장을 만들고 산림욕장 들머리에 훌륭한 반야교를 &lt;BR&gt;놓았을 뿐만 아니라 석천을 따라 황간 나들목까지 새로 도로가 생겨 황간에서 반야사까지 10여 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7.uf.daum.net/image/1879610C4B0E7E4020C51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 MARGIN-LEFT: 8px&quot; actualwidth=&quot;48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8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산행은 황간읍에서 11㎞ 정도 떨어진 모동면 수봉리 옥동마을에서 시작한다. &lt;BR&gt;옥동마을에서 논길을 따라가다 백화교를 건너면 신덕마을．신덕마을앞 삼거리, 등산안내판과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초소에 입산신고하고.. 이곳에서 상견례와 주의사항듣고 출발(11:48)오른쪽으로 포장된 임도따라 100ｍ쯤 오르면 마을끝자락 좌측길가에 보현사란 조그만 절집도 보인다. 새로 지은 아담한 절집이다. 보현사를 지나 10분쯤 걸으면 두번째 갈림, 등산로 표지판따라 간다. 포장된 임도따라 징검다리 놓인 계천을 몇개 거너고 20여분을 &lt;BR&gt;가면 용추폭포를만나지만 물없는 폭포는 앙꼬없는 찐빵이고...&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용추폭포에서 10분을 더 가면 좌측에 폐쇄된 계곡길을 지나 바로 왼쪽계곡으로 등산로 표지판이 나온다. &lt;BR&gt;표지판에서 왼쪽계곡을 건너 능선을 따르면 왼편으로 벼락바위가(12:10) 우람하다. 벼락바위 우측으로 올라서면 능선으로 조금가다 왼쪽 비탈길로 등로는 이어진다.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계곡길과 합길이 나타나고.. 합길에서 잠간이면 갈림길이나오고.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갈림길에서 왼쪽으로10여분 거리에 이르면 보문암터 삼거리가(12:36) 나오고... 보문암터를 지나 15분 가량 더 오르면 또 &lt;BR&gt;길이 갈라진다. 왼쪽길은 922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길은 대궐터와 금돌산성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lt;BR&gt;우측길 여기서 부터는 오르막길로 이어져10분을 오르면 대궐터에(12:45) 닿고, 20여분후에는 금돌산성 지능선 삼거리에 닿는다.&lt;BR&gt;(13:06)보문암터에서 1.5km,지점이고 정상포성봉 까진1.7km,지점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해발900고지의 금돌산성, 이 산성은 신라때 김흠이 쌓은 성이라고 전해 내려오는데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lt;BR&gt;&amp;nbsp;과거 신라와백제의 격전지 였던곳으로 험한지형을 이용하여 무려 20여km에 걸쳐 성축을 높이 쌓았든 곳이다. &lt;BR&gt;그러나 오랫동안 방치되였든 탓에 다 허물어졋으나 1978년 국방유적지 복원사업에 따라 폭4m, 높이 2km, 길이 80m,는 일부 복원 해 놓았다. 성 주변엔 온갖풍상을 다 겪은 노송과 참나무들이 먼 옛날 금돌산성의 비애를 아는지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다. &lt;BR&gt;선조들의 얼이 서린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깎아세운 듯한 성벽을 타고 올라선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5.uf.daum.net/image/1164C20E4B0E7ECF084DA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left;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48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8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서쪽방향으로 산성을따라 15분정도 올라가면 백화산 주능선에 도착한다.(13:20)금돌성에서500m 지점이고 우측득수초등이 3.0km&lt;BR&gt;지점인 삼거리봉 이다. 이곳부턴 시야는 트이나 연무로 먼 조망은 없다.&lt;BR&gt;삼거리에서 남쪽 주능선을 타고 2분거리에 이르면 왼편으로 장군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lt;BR&gt;장군바위를 뒤로하고 계속 남릉을 따라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이어져 20여분을 오르면&lt;BR&gt;포성봉이라 부르는 백화산 정상(933m)에 닿는다.(13:39) 정상은 민둥봉으로 화창한 날에는 정상에 서면 속리산을 비롯, 소백산맥 &lt;BR&gt;줄기의 산들이 중첩하여 보이고 황간읍 너머 민주지산과 덕유산의 모습도 보인다는데..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늘은 옅은안개 때문에 먼 조망은 없다. &lt;BR&gt;이곳 정상이 상주군과 영동군의 경계선상 이기에 상주군에서 세운 정상석과 영동군에서 세운 정상석 표지석이 여러개 있고 안내문 이정표 등으로 다소 혼란스럽다.&amp;nbsp; 그런데,&amp;nbsp;상주시에서 세운 정상석뒷면에 새겨진 글귀엔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quot;白華山 漢城奉&lt;BR&gt;白華山은 백두대간 지맥의靈山으로 영남과 호서를 눌러 앉은 옛고을&amp;nbsp; 尙州의 鎭山이다. &lt;BR&gt;신라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대업의 첫꿈을 실현(660년)한 대궐터와 今突城, 고려 僧 洪之가 몽고의 대군을 격파(1254년)한 &lt;BR&gt;대첩지 저승골, 조선임란(1592년)구국의병 의 충혼이 서린 고모담은 다 白華山의 역사현장이다.&lt;BR&gt;그러기에, 옛(1772년)부터 이 산 주봉을 漢城峰 이라 불렀으니 큰(한)城 이 있는 산의제 1봉이란 뜻이다. &lt;BR&gt;일제가 城을 사로잡았다는 뜻으로 捕城峰(포성봉) 이라 개칭한것은 저들의 흉계인데, &quot;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quot;에서 청원하여 옛 이름을 되찾음(2007.12.26.)은 白華山의 靈氣가 發願 됨이다.&quot; 라고 적혀있습니다. 앞으론 백화산 정상은 포성봉에서 한성봉으로 불러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정상등정 기념사진 담고 정상에서 진행방향으로 10여m, 지점에서 먼저 도착한 일행은 산정뷔페를 연다. &lt;BR&gt;김회장부부, 이경룡님일행, 박감사부부, 나와누라... 언제나 식습관도 빠르지만, 요즘은 행동식으로 갖고오니 식사시간은 더 빠르다. 일찍 마치고 서성댄다. 누라는 정상 이정표를 다시확인하고... 난 디즈트로 구름과자 한입뿜고... 먼저 일어선다. 하산길로...(14:0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정상에서 하산은 동릉을 타고 반야사 방향으로 간다. 정상에서 남쪽으로50m 가량지점에 삼거리에서 좌측 동쪽은 수봉리로 원점회기 하는 길 이고... 우측이 우매리 반야사 방향이다. 남쪽능선을 따라 약200m 가량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남쪽 지능선으로 가든지, 우측 계곡길로 가든지 둘 다 잠수교에 닿는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조망없고 낙엽쌓인&amp;nbsp;계곡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백제가.. 병자호란때는 몽고군과 이 석성을 쌓은 칼날능선에서 벼랑으로 돌을 굴리면서 혈전을 벌렸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석천은 변함없이 흐르고...&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정상내림길에서는 우측 주행봉 주능선이 보이고 된비알 암괴를 지나면 잠시호젓한 흙길로 이어지다 다시 곤두박질 치고...&lt;BR&gt;계곡길 1시간 가량 내려오니 (15:05)잠수교가 보이니 오늘산행도 여기까지 입니다.ㅎㅎ 석천에서 땀닦고 뒤 일행올때 기다리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뒤풀이 닭죽에 생탁한잔으로 오늘의 피로를 달래고... 귀가합니다. &lt;/SPAN&gt;2009/11/24.&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con.sie.net/image/man/bow/bow21.gif&quot;&gt;&lt;FONT size=3&gt;&lt;반갑습니다, 편히 쉬어가세요,&gt;&lt;/FO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4.uf.daum.net/image/15758E264B0D10D37417F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상주/벽화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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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24T23:18:08Z</updated>
	    <published>2009-11-24T23:18:0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id=tx_entry_6693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202904234B0BEB732DFD93&quot; width=753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753&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id=tx_entry_6490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122904234B0BEB742E306E&quot; width=753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753&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id=tx_entry_8112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132904234B0BEB742F15C2&quot; width=753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753&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20782F214B0BEAB17589F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11782F214B0BEAB1765EB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2782F214B0BEAB1777CA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14782F214B0BEAB27816A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5.uf.daum.net/image/15782F214B0BEAB27978B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3782F214B0BEAB27A8A9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5782F214B0BEAB37BF83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8.uf.daum.net/image/16782F214B0BEAB37C521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7782F214B0BEAB37DF24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9782F214B0BEAB47EE39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20782F214B0BEAB47F30E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20782F214B0BEAB580B9F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6.uf.daum.net/image/11782F214B0BEAB581FC6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3.uf.daum.net/image/13782F214B0BEAB6825D1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4782F214B0BEAB683711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6782F214B0BEAB784928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8.uf.daum.net/image/17782F214B0BEAB7856E1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8782F214B0BEAB786233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20782F214B0BEAB8874F1E&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14D3C1F4B0CAFEB5C102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720&quot; height=&quot;341&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720px; HEIGHT: 341px&quot; actualwidth=&quot;604&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시국에 맞지 않는 시국선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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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smj4210.15715764</id>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23T13:07:14Z</updated>
	    <published>2009-11-23T13:07: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lass=big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96%&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title1 vAlign=bottom&gt;&lt;B&gt;[時論] 시국에 맞지 않는 시국선언&lt;/B&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 vAlign=bottom&gt;
&lt;TD height=12&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대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소제목 테이블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title2&gt;&lt;B&gt;‘민주주의 회복’ 빙자한 現 정권 전복이 목적&lt;/B&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소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 기사요약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gt;&lt;/TD&gt;
&lt;TD width=18&gt;&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5.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5.gif&quot;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 background=/image/bignews_box00.gif&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pt&quot; color=#000000&gt;⊙ 일부 교수들의 ‘시국 없는 시국선언’ 시민반응 없어 &lt;BR&gt;⊙ 對北 유화정책이 목적인 좌파 세력에 엄정 대처해야&lt;BR&gt;&lt;BR&gt;&lt;FONT color=#000ca3&gt;卜鉅一&lt;/FONT&gt; 소설가&lt;BR&gt;⊙ 1946년 충남 아산 출생. &lt;BR&gt;⊙ 서울大 경제학과 졸업.&lt;BR&gt;⊙ 現 문화미래포럼 대표.&lt;BR&gt;⊙ 저서 &lt;비명을 찾아서(상,하)&gt;, &lt;어느 푸르른 동해물과&gt;, &lt;높은 땅 낮은 이야기&gt; 등.&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6.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6.gif&quot; width=18&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gt;&lt;/TD&gt;
&lt;TD width=18&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기사요약 끝--&gt;&lt;!-- 글쓴이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TOP: 6px&quot; vAlign=top align=right height=5&gt;&lt;FONT color=#0066cc&gt;卜鉅一&lt;/FONT&gt; 소설가·現 문화미래포럼 대표&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글쓴이 끝--&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4px; 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load/0907/0907_226.jpg&quot; width=320&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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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322 border=0&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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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2pt&quot; color=#2f73ba&gt;지난 6월 3일 서울대 교수 100여 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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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height=0&gt;&lt;IMG height=0 src=&quot;http://monthly.chosun.com/image/space.gif&quot; width=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지난 6월 3일 서울대 교수 100여 명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가뭄철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 마침 盧武鉉(노무현) 前(전) 대통령의 자살로 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부쩍 높아진 터라, 이런 시국선언들은 상당한 사회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역사적으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1960년의 ‘4월 혁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1987년의 ‘6월 혁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나 이번 시국선언들은 그리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좌파 지식인들만 호응했을 뿐, 시민들의 반응은 거의 없다. 다른 때와는 달리, 그것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들린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게 호응이 작은 까닭은 무엇인가? 이번의 시국선언은 1960년이나 1987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lt;BR&gt;&amp;nbsp; &lt;BR&gt;&amp;nbsp; 먼저, 지금은 시국선언이 나올 만한 시국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은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닥친 경제위기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경기를 되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모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李明博(이명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경제위기를 잘 인식하고 나름 애썼으며 비교적 잘 대처해 왔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현 정권은 일단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서 우선순위와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대통령의 치적은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시국선언이나 퇴진운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다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 사회가 갑자기 위기를 맞은 것도 아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이 보여준 지도력은 기대에 크게 모자랐고, 그는 지지자들에게서도 거센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시국선언의 대상이 될 만한 정치적 행위를 한 적은 드물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 사회가 무슨 큰 사회적 문제를 안은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가 경제위기로 심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상황에 대해 현 정권에 책임을 지라고 하기는 어렵다. 실은 어떤 지도자나 정권도 현재의 상황에선 무슨 문제에 대해서든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위에서 살핀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분명히 어렵지만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나올 만한 상황은 아니다. 실제로 시국선언이 나온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촉발된 사회 분위기의 변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추모 분위기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행태 &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고 부패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노 대통령에 대한 동정과 추모가 온 사회를 덮었다. 그러자 현 정권에 적대적인 세력이 결집해서 이 대통령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 대통령에게 실망한 민심은 그런 움직임에 운동량을 더했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런 움직임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행태라 할 수 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시국선언이 나올 상황이 아닌 터에 나왔으니, 이번 시국선언들의 내용이 대체로 빈약하고 적절치 못하다. 시국선언에 참가한 서울대 교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 과정은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면서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는데, 그 근거는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사법처리, ‘대운하’의 변칙 추진, 對(대)북한 정책의 위기, 용산 철거 참사 등을 들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현 정권이 야당과 시민단체들을 國政(국정)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용산 철거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런 진단과 주장은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대학의 교수들이 한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내용이 빈약하고 논리가 서지 않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첫째, 설령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다른 증거 없이 ‘정치보복 의혹’으로 삼은 것은 너무 부실한 추론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는 객관적으로 강력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은 기업가 박연차씨와 복잡하고 의심스러운 거래들을 했다. 그들은 박연차씨로부터 모두 640만 달러를 받았고 이 돈의 상당 부분은 자녀들의 해외 주택 구입, 또는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의 경영자금으로 쓰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검찰은 이런 거래가 ‘포괄적 뇌물’이라고 판단했고, 노 전 대통령은 갚을 필요가 없는 ‘자연 채무’와 ‘투자’였다고 주장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어쨌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부패 혐의에서 깔끔히 벗어날 길이 없다는 판단을 했고, 거기서 그의 비극적 결심이 나왔다. 검찰 수사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반격’을 너무 두려워해서 혐의들과 증거들을 너무 많이 공개한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런 공개는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정황은 검찰 수사가 현 정권에 의한 ‘정치보복’이라는 의혹을 낳기에는 너무 부족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대운하와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일까?&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둘째, 촛불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관들이 많이 다치고 경찰 차량들이 많이 파괴됐다. 이들을 재판에 회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일 정부가 그런 사람들을 사법처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협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운하’의 변칙 추진이나 대북한 정책의 ‘위기’나 용산 철거 참사와 같은 일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지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정권이 ‘대운하’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당한 방식으로든 변칙적으로든, 일상적 행정에 속한 일이고 민주주의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북한과의 관계가 표면적으로 나빠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나라의 안보에 관한 일이지 우리 사회 안의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용산 철거 참사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갈등이 심한 현대 사회에선 늘 나오는 사고들에 속한다. 망루를 설치하고 도로에 화염병들을 쏘아대는 사람들의 불법적이고 위험한 행위들을 서둘러 진압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인데, 그것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렀다는 얘기는 너무 억지스럽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셋째, 시국선언에 담긴 대책들도 사소하거나 비현실적이다.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일이야 정치적 판단의 문제지 민주주의를 튼실히 하는 일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금 제1야당인 민주당은 늘 ‘선명성’을 강조하면서 기회가 생기면 거리로 뛰쳐나간다. 국정 동반자로 받아들이기엔, 현실적으로 야당이 준비가 덜된 셈이다. 시민단체들을 국정 동반자로 받아들이라는 주장은 아마 시민단체들도 진지한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터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주장은 좌파 시민단체들의 불법행위들을 단속하지 말라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용산 철거 참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야 관련된 법과 관행에 따라 이루어질 터이니, 거론하는 것 자체가 실없는 일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선동에 나선 金大中&lt;/FONT&gt;&lt;/B&gt;&lt;BR&gt;&amp;nbsp;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load/0907/0907_226_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6월 8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들이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amp;nbsp; 시국선언이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니고, 거기 담긴 내용이 빈약하고 비논리적이다 보니, 선언에 참가한 교수들이 많지 않았다. 서울대의 경우, 전체 교수 1786명 가운데 124명만이 참가했다. 7%가 채 못 되는 사람들만이 참가한 것이다. 다른 대학교들도 비슷하다. 따라서 이번 시국선언은 대표성이 떨어진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나마 참가자들은 정치적 편향을 뚜렷이 보인다. 이번 시국선언들은 좌파 교수 조직인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에 속한 교수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교협은 2003년에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고, 2006년에는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펼쳤다. 지난해엔 촛불시위에 앞장섰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자유기업원은 “서울대 시국선언 참여 교수의 33%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철회 서명에 참여했던 교수들”이라고 밝혔다. 이런 인적 구성은 시국선언에 담긴 내용이 편향된 사정을 설명해 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번 시국선언들은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기회주의적으로 나왔고, 내용이 빈약하거나 비현실적이고, 정치적 편향이 너무 뚜렷해서 대학교수들의 뜻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을 ‘느닷없이 나타나서 흙먼지를 몰고 우리 사회를 스치는 한 무더기 돌풍’으로 여길 수 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나 두 가지 고려사항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야 함을 말해 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널리 살피면, 시국선언은 현 정권에 반대하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의 한 부분임이 이내 드러난다. 이 움직임은 이명박 대통령의 자유주의 정권에 공격적으로 반대하고, 가능하다면 아예 몰아내겠다는 뜻을 드러낸다. 노 전 대통령의 덕수궁 분향소에 걸려 있었다는 “2012년은 너무 멀다”라는 구호가 민주주의를 내건 그 움직임의 진정한 목표를 유창하게 말해 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움직임을 이끌고 상징하는 사람은 金大中(김대중) 前(전) 대통령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그는 드러내 놓고 좌파의 궐기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 국민은 과거 50년 동안 피눈물로 이룬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걱정한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간다면 국민도 불행,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실히 말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4700만 국민이 양심을 갖고 충고 비판 격려한다면 이 땅의 독재가 다시 일어나겠느냐. 행동하는 양심이 돼 자유 서민경제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키는 데 우리 모두 들고일어나서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이런 발언은 정당한 정권을 불법적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권력을 차지하자는 직설적 선동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좌파들, 對北정책 위기 맞았다고 판단&lt;/FONT&gt;&lt;/B&gt;&lt;BR&gt;&amp;nbsp;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monthly.chosun.com/upload/0907/0907_226_2.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일부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우려하는 교수들의 기자회견이 6월 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amp;nbsp; 시국선언들의 내용이 초라하고 김 전 대통령의 얘기가 워낙 터무니없으므로, 정상적 상황에선 그것들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의 열망을 잊은 채 “이념을 넘어선 실용”이라는 허황된 구호를 외쳐 왔다. 이념적 지향이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그와 그가 이끄는 정권은 좌파 이념으로 똘똘 뭉친 세력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왔다. 지금 상황이 보기보다 위중한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시국선언들을 특히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들이 추구하는 북한과의 관계다. 그들은 지금 對北(대북)정책이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하고,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현 정권의 대북정책과 우리 민주주의를 연결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므로 무시해도 될 터이다. 그러나 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은 적잖은 사람들이 동의하므로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남북한 사이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바탕을 두었다. 그래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북한이 경제성장을 이루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 정책은 남북한 다 이득을 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문제는 북한이 그동안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유화정책으로 엄청난 이득을 보아 왔다는 사실이다. ‘햇볕정책’이라 불린 유화정책을 통해, 두 좌파 정권은 북한 정권의 행태에 관계없이 북한을 지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유화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하므로, ‘햇볕정책’도 비참하게 실패했다. 그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재래식 군비의 증강을 도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유화정책을 수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 유화정책으로 이득을 보아 온 상대방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한다. 북한은 남한이 늘 유화적 태도를 지니도록 유도해 왔으므로, 북한은 우리가 유화정책으로 복귀하도록 이 대통령을 끊임없이 압박할 것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섣부른 對北 유화책은 재앙 부를 것&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나 정작 이 대통령을 어렵게 하는 것은 그의 정책을 비난하는 나라 안의 목소리들이다. 두 좌파 정권을 이끌었던 정치인들의 반대는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그들의 비난은 상식을 크게 벗어난다. 특히, 이 대통령의 정책을 거세게 비난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동안 이 대통령은 꿋꿋이 자신의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유화정책을 바꾸는 일이 늘 힘들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큰 성취다. 좌파의 압력에 밀려 이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정책을 유화적으로 만들게 되면, 우리 안보는 이내 근본부터 흔들릴 것이다.&amp;nbsp;&lt;BR&gt;&amp;nbsp;&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국에 맞지 않는 시국선언을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고 철저히 비판하고 대응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 있다.⊙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TRONG&gt;&lt;시국선언 교수명단&gt;&lt;/STRONG&gt;&lt;/SPAN&gt;&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강원대학교 교수 2009. 6. 9.&lt;BR&gt;■ 명단 &lt;BR&gt;권석민 김갑열 김대건 김민정 김세건 김세은 김언자 김원동 김재훈 김준기 김풍기 김형준 남순권 문병효 박경철 박기복 &lt;BR&gt;박병성 박봉우 박사명 박정애 박지형 변혜영 서승현 손미아 손주일 신동룡 신효중 오용록 우종춘 유재영 이경수 이기홍 &lt;BR&gt;이대범 이민희 이병천 이보경 이선향 이인혜 이준열 이희권 임의영 전태국 정구환 정대교 정성훈 정승옥 정연숙 정준호 &lt;BR&gt;조준형 최양호 최종선 한장희 함태성 홍숙기 황환규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땅의 민주와 정의를 열망하는 건국대학교 교수 61인. 2009년 6월 9일 &lt;BR&gt;■ 명단 &lt;BR&gt;강철구(기계공학과) 고창운(국어국문학과) 곽태영(공예학과) 권형진(사학과) 김광수(경영학과) 김광표(분자생명공학과) &lt;BR&gt;김기흥(사학과) 김동규(신문방송학과) 김성민(철학과) 김재현(환경과학과) 김종갑(영어영문학과) 김진석(수의학과) &lt;BR&gt;김형석(인터넷미디어공학부) 노영희(문헌정보학과) 노정은(중어중문학과) 민요셉(화학공학과) 박근규(동물자원연구센터) &lt;BR&gt;박병도(법학전문대학원) 박삼헌(일어교육과) 박종명(일어교육과) 송기형(영화과) 송치만(커뮤니케이션학과) 신동흔(국어국문학과)&lt;BR&gt;&amp;nbsp;심성보(러시아어문학과) 양성관(교직과) 여운석(생명공학과) 오창섭(산업디자인과) 오환술(전자공학부) 윤병선(경제학과)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한국 사회의 민주적 가치 훼손을 걱정하는 경남대학교 교수 일동. 2009. 6. 9. &lt;BR&gt;■ 명단 &lt;BR&gt;감정기, 강문구, 강인순, 강인철, 고재홍, 권영도, 권영택, 권영훈, 김경복, 김근식, 김남석, 김상덕, 김선광, 김영상, 김영주, &lt;BR&gt;김용만, 김용복, 김재현, 김정대, 김종덕, 김지미, 김진희, 김창윤, 김태식, 김학범, 김학수, 문병순, 민병위, 박기정, 박점영, &lt;BR&gt;박춘서, 박후건, 배대화, 변우주, 신동순, 신원식, 심민자, 안승욱, 안차수, 양영자, 양운진, 엄태완, 여성구, 오창규, 옥원호, &lt;BR&gt;원유동, 유영민, 유장근, 윤존도, 이갑두, 이근우, 이상길, 이상우, 이승현, 이원제, 이은진, 이종흡, 이호열, 이홍걸, 정병대, &lt;BR&gt;정상윤, 조상희, 조옥귀, 최영규, 최유진, 하춘광, 한낙현, 한상보, 허만동, 허순철, 홍정효.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lt;경상대 교수 66명 시국선언&gt;&lt;BR&gt;■&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경희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9일&lt;BR&gt;■ 명단 &lt;BR&gt;강승구 강윤구 강철훈 강태완 강효백 강희원 고병희 고인환 구만옥 권영균 길재호 김경석 김규헌 김기국 김동건 김병찬 김상녕 &lt;BR&gt;김상준(NGO대학원) 김상준(우주과학과) 김성아 김수이 김수중 김용평 김일현 김장석 김재성 김종영 김진해 김찬기 김호철 노상균 &lt;BR&gt;노시학 문석윤 문용재 박승민 박신의 박용덕 박인철 박재현 박종해 박증석 박진빈 박 현 박히준 배현수 백유상 백형환 서덕영 &lt;BR&gt;서보학 성열관 성춘택 송병록 송영복 송창섭 신기순 신동면 신명아 심범상 신홍철 안병용 안영훈 안지영 안현종 우기동 우응제 &lt;BR&gt;유영학 유원준 유정완 윤상웅 윤재학 이경래 이경전 이기형 이덕주 이명호 이선이 이승곤 이재욱 이정재 이정희 이창수 이택광 &lt;BR&gt;이한규 이현우 이효인 임신자 임효상 장 기 장대일 장우창 전중환 정병수 정복철 정완용 정지호 정해양 조성란 조세경 조세형 &lt;BR&gt;조영욱 조인성 조창현 차웅석 최병일 최상진 최성호 최승환 최용석 허경호 홍기준 황은주 황철수 (이상 112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고려대학교 서명교수 일동. 2009년 6월 8일&lt;BR&gt;■서명자 명단&lt;BR&gt;법과대: 김기창, 김연태, 김제완, 김하열, 박경신, 윤영미, 이준일, 이황, 정승환, 하명호, 하태훈&lt;BR&gt;문과대: 강충룡, 고일, 김준연,김준호, 김진영, 김채수, 김철규, 김형찬, 민경현, 박길성, 박대재, 손병석, 손장권, 송혁기,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여홍상, 유희수, 윤인진, 윤재민, 윤조원, 이건종, 이명진, 이승환, 이영훈, 이재학, 이재훈, 이진한, 이형대, 이희경,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임인숙, 장경준, 장동천, 전준택, 정우봉, 정일준, 정태헌, 조규형, 조대엽, 조성택, 최관, 최규발, 최덕수, 하종호,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허은, 황현산 &lt;BR&gt;생명과학대: 강성만, 고영규, 김옥매, 김재홍, 박세호, 류지훈, 문완기, 신정섭, 심우경, 윤봉준, 지성길, 최무현 &lt;BR&gt;정경대: 곽준혁, 권혁용, 김균, 김병곤, 김태일, 박만섭, 박유성, 안도경, 윤성식, 이우진, 이용숙, 정주연, 주병기, 주형민, 한치록&lt;BR&gt;언론학부: 김성철, 민영, 허철 &lt;BR&gt;이과대: 강세종, 김성태, 김지환, 원은일, 이정일, 최기항 &lt;BR&gt;공과대: 고영채, 김규태, 김동승, 김문일, 김운경, 김지형, 김현섭, 도낙주, 류홍서, 윤태웅 &lt;BR&gt;의과대:김제형사범대: 권내현, 권순희, 류태호, 박진훈, 이병련, 최석무, 홍세희, 한용진 &lt;BR&gt;정보통신대: 한정현 인문대: 김윤태, 김효민, 서종택, 손유송, 이기동, 최종택, 최홍근 &lt;BR&gt;과학기술대: 신동훈, 양형진, 유종훈, 최종후 경상대: 강수돌, 김기화, 김문석, 박경욱, 박종찬, 민대환, 정균화, 최윤재 &lt;BR&gt;공공행정학부: 고세훈 (총 131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독재 권력의 망령을 우려하는 동국대학교 교수 96인 &lt;BR&gt;■ 명단 &lt;BR&gt;강경훈(경영학), 강석원(일어일문학), 강정구(사회학), 강태호(조경), 고영섭(불교학), 고창택(철학), 구준범(의학), &lt;BR&gt;권승구(식품산업시스템학), 권재현(의학), 김도현(의학), 김도현(법학), 김동헌(경제), 김미정(국제경제), 김상일(국어국문학), &lt;BR&gt;김성중(영어영문학), 김성철(불교학), 김승호(국어교육), 김양수(중어중문학), 김영국(관광경영), 김정석(사회학), 김정숙(의학), &lt;BR&gt;김종완(영화영상학), 김종욱(불교학), 김준(멀티미디어학), 김진석(정보통계), 김진철(정치외교학), 김춘식(국어국문학), &lt;BR&gt;김태준(국어국문학), 김형용(사회학), 김효규(광고홍보학), 김흥식(경영학), 김흥회(행정), 남근우(교양교육원), 남종국(사학), &lt;BR&gt;박경준(불교학), 박광현(국어국문학), 박명호(정치외교학), 박문기(종호, 선학), 박상은(의학), 박성원(문예창작), 박순성(북한학), &lt;BR&gt;박용희(국사), 박종배(교육학), 박종호(영화영상학), 박종희(호텔경영), 배의용(철학), 봉일원(독어문화학), 서인범(사학), &lt;BR&gt;손연칠(미술), 신광수(법타, 정각원장), 양문흠(철학), 양홍석(사학), 오태석(중어중문학), 유지나(영화영상학), 윤석성(국문학), &lt;BR&gt;윤성훈(광고홍보학), 윤영해(불교학), 이경철(일어일문), 이봉춘(불교), 이영호(진월, 선학), 이원덕(영화영상학), &lt;BR&gt;이종대(문화콘텐츠학), 이주하(행정학), 이준엽(관광경영), 이철기(국제학), 이한구(철학), 임규철(법학), 임배근(경제금융), &lt;BR&gt;임호일(독어문화학), 장성재(철학), 장시기(영어영문학), 전승우(경영학), 정병준(사학), 정승석(인도철학), 정웅(반도체과학), &lt;BR&gt;정태섭(역사교육), 정환국(국어국문학), 조상식(교육학), 조은(사회학), 조정숙(의학), 조정식(건축공학), 주종환(식품자원경제학), &lt;BR&gt;최인숙(철학), 최정자(관광경영), 한만수(국어국문학), 한상범(법학), 한영환(생물), 한용수(중어중문학), 한창호(한의학), &lt;BR&gt;한철호(역사교육), 홍윤기(철학), 황상주(미술), 황의서(정치외교), 황인규(역사교육), 황종연(국어국문학), 황훈성(영어영문학)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아대 시국선언 참여교수 일동. 2009년 6월 7일. &lt;BR&gt;■ 명단 &lt;BR&gt;강대우, 강신준, 강은교, 권치명, 김광철, 김달효, 김성연, 김수정, 김재웅, 김재현, 김종현, 남찬섭, 도성국, 박수천, 박영태, &lt;BR&gt;박유리, 박인호, 박종탁, 박학길, 서금홍, 설광석, 손승길, 신진, 신홍철, 여남회, 오응수, 우진희, 윤성욱, 윤철현, 이기영, &lt;BR&gt;이동대, 이범수, 이병창, 이영기, 이윤원, 이정형, 이학기, 임효섭, 장상목, 장세훈, 정문상, 정봉석, 정숙경, 정정남, 정희준, &lt;BR&gt;조관홍, 차성수, 최인택, 최홍규, 한성진, 한수영, 홍성민, 홍순권, 황연수, 황영현, 황을철.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amp;nbsp;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부산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9일&lt;BR&gt;■ 명단 &lt;BR&gt;강명관(한문학) 강식진(중문학) 강재호(행정학) 고종수(기계공학) 곽차섭(사학) 곽현호(치의학) 권영규(한의학) 권혁철(정보컴퓨터)&lt;BR&gt;&amp;nbsp;김경석(정보컴퓨터) 김기석(경영학) 김기섭(사학) 김기혁(지리교육) 김기홍(경제학) 김대현(교육학과) 김동철(사학) 김문겸(사회학)&lt;BR&gt;&amp;nbsp;김복기(물리학) 김상욱(물리교육) 김석준(일반사회교육) 김순영(사회학) 김영진(분자생물학) 김용규(영문) 김은주(유아교육) &lt;BR&gt;김재환(대기환경과학) 김정섭(교육학과) 김종덕(정보컴퓨터) 김종수(독문학) 김준수(철학) 김진영(정치외교학) 김행범(행정학) &lt;BR&gt;김호범(경제학) 김회용(교육학) 김희재(사회학) 노선숙(일문학) 노철화(무역국제학) 문관규(예술문화영상학) 문성원(철학) &lt;BR&gt;민병욱(국어교육) 박광주(행정학) 박범준(분자생물학) 박병현(사회복지학) 박상후(기계공학) 박재환(사회학) 박정심(철학) &lt;BR&gt;박준건(철학) 박홍원(신문방송학) 백윤주(정보컴퓨터) 서명숙(불어교육)서수균(심리학) 서영건(사학) 서정희(중문학) 손건태(통계학)&lt;BR&gt;&amp;nbsp;송기원(응용화학공학) 송문현(역사교육) 송성수(기초교육원) 신경철(고고학) 신원철(사회학) 안홍배(지구과학교육) 양정현(역사교육)&lt;BR&gt;&amp;nbsp;오상훈(사학) 오정진(법학) 유동석(국어교육) 유순화(교육학) 유인권(물리학) 유재건(사학) 윤기헌(디자인학) 윤애선(불문학) &lt;BR&gt;윤용출(역사교육) 윤일성(사회학) 윤일환(영문) 이기준(정보컴퓨터) 이도훈(정보컴퓨터) 이민환(음악학) 이병운(국어교육) &lt;BR&gt;이병준(교육학) 이상금(독어교육) 이상학(농업경제학) 이수훈(사학) 이시복(기계공학) 이영철(철학) 이재성(영문) 이종봉(사학) &lt;BR&gt;이정태(정보컴퓨터) 이진석(일반사회교육) 이진오(예술문화영상학) 이태구(디자인학) 이행봉(정치외교학) 이현우(기계공학) &lt;BR&gt;임만호(화학) 임병묵(한의학) 임부연(유아교육) 임상택(고고학) 임재택(유아교육) 장동표(역사교육) 정영숙(심리학) 정영인(의학)&lt;BR&gt;정영홍(교육학) 정한유(기술연구사업단) 조용주(기계공학) 조항제(신문방송학) 조현래(법학) 조환규(정보컴퓨터) 조희숙(유아교육) &lt;BR&gt;진시원(일반사회교육) 차정인(법학) 채백(신문방송학) 채상식(사학) 채희완(예술문화영상학) 최덕경(사학) 최송현(조경학) &lt;BR&gt;최원규(사학) 하남출(제약학) 하병현(산학협력단) 황해익(유아교육)/이상 114 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서강대학교 교수 45인 일동 2009년 6월 7일&lt;BR&gt;■ 명단 &lt;BR&gt;김경수, 김균, 김근, 김성례, 김용해, 김정택, 김재훈, 김태원, 김학순, 남준우, 류동춘, 류석진, 문진영, 박광서, 박정섭, 박호성, &lt;BR&gt;서동욱, 손호철, 신경원, 신호창, 양지훈, 원용진, 원재환, 윤각, 윤병남, 이근욱, 이동섭, 이상란, 이상수, 이요안, 이욱연, &lt;BR&gt;이정훈, 이태수, 임상우, 임지봉, 장순란, 정유성, 정재현, 전상진, 전종호, 조상현, 조옥라, 조현철, 최기영, 한징택&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3일)&lt;BR&gt;■명단 &lt;BR&gt;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 김인걸 &lt;BR&gt;김장주 김재범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 &lt;BR&gt;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lt;BR&gt;안광석 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lt;BR&gt;이병민 이성중 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lt;BR&gt;정용욱 정원규 정향진 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lt;BR&gt;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 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lt;BR&gt;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 이동수(환경대학원) &lt;BR&gt;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 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주주의의 후퇴와 극단적인 대립을 우려하는 서울시립대 서명 교수 일동&lt;BR&gt;■명단&lt;BR&gt;강철규, 곽노완, 곽영권, 권석우, 김민호, 김승욱, 김연옥, 김주식, 김진형, 김태현, &lt;BR&gt;박만엽, 박용찬, 박철수, 백광준, 서도식, 송석휘, 신동윤, 심이성, 양은석, 이근식, &lt;BR&gt;이병덕, 이병혁, 이상일, 이성백, 이세정, 이승훈, 이익주, 이준영, 이중원, 이진원, &lt;BR&gt;이현재, 이현정, 장사흠, 정병호, 정혜숙, 최진희, 홍의경&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성균관대 교수 35명 시국선언 2009년6월8일&lt;BR&gt;■명단&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숭실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9일&amp;nbsp; &lt;BR&gt;■ 명단 &lt;BR&gt;강기두, 강대승, 고방원, 공상철, 곽신환, 권영국, 김경미, 김대권, 김대욱, 김미연, 김민기, 김선욱, 김용진, 김인섭, 김인중, &lt;BR&gt;김자헌, 김종성, 김지현, 김효숙, 김회권, 나현숙, 박정신, 박종철, 박창수, 백도형, 서상호, 서정연, 송인채, 송창석, 신권수, &lt;BR&gt;양진국, 엄경희, 오경애, 오시영, 오충연, 우춘식, 유서구, 윤진숙, 윤철홍, 이동렬, 이상은, 이승복, 이시준, 이윤재, 이재룡, &lt;BR&gt;이정철, 이주련, 이주은, 임정현, 장경남, 전극수, 정기철, 정선태, 정인섭, 조광휘, 조우현, 조홍식, 최병현, 최정식, 하정식, &lt;BR&gt;한영준, 황민호, 허준수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신라대학교 교수 일동 2009. 6. 4. &lt;BR&gt;■ 명단(39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민주주의의 회복을 열망하는 연세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10일 &lt;BR&gt;■ 명단 &lt;BR&gt;강상현, 경규학, 고광윤, 고상백, 권구혁, 권상옥, 권수영, 권정승, 권주현, 김기정, 김광숙, 김도형, 김동노, 김상근, 김성보, &lt;BR&gt;김성수, 김성태, 김영희, 김용민, 김왕배, 김종철, 김주영, 김주환, 김준환, 김 진, 김진수, 김창영, 김충선, 김태수, 김태환, &lt;BR&gt;김하수, 김한성, 김현미, 김현주, 김현철, 김형순, 김호기, 김호범, 김희진, 나성원, 나윤경, 남 웅, 노의근, 노정선, 노중균, &lt;BR&gt;도현철, 류상영, 문상영, 문정인, 문창옥, 박경자, 박기영, 박명림, 박명철, 박상영, 박재석, 방연상, 백경선, 백문임, 백영서, &lt;BR&gt;백태승, 서 경, 서종범, 선우환, 설혜심, 손영종, 손창완, 송기원, 신동민, 신동빈, 심희기, 안순일, 엄영호, 양재진, 양정석, &lt;BR&gt;양혁승, 염성수, 염유식, 오영교, 오홍석, 왕현종, 원재연, 유상현, 유 일, 유중하, 육종인, 윤민우, 윤세준, 윤태진, 윤혜준, &lt;BR&gt;이광호, 이경원, 이기언, 이대성, 이도준, 이명민, 이병종, 이상길, 이상인, 이석구, 이석영, 이숙현, 이윤영, 이인재, 이재경, &lt;BR&gt;이재길, 이제민, 이주삼, 이종수(법학), 이종수(행정), 이태호, 이혜경, 이희경, 임성래, 임성모, 임 걸, 임 일, 임중우, 장은미, &lt;BR&gt;전광석, 전수연, 전지연, 전현식, 정경미, 정무권, 정민예, 정상철, 정승미, 정승화, 정운룡, 정원균, 정재현, 정종락, 정종훈, &lt;BR&gt;정형일, 조대호, 조성원, 조재국, 조현수, 조혜정, 차혜원, 최건영, 최문규, 최선미, 최영애, 최윤오, 최종건, 최종철, 하일식, &lt;BR&gt;한상훈, 한영균, 한인철, 한재원, 한재훈, 한종희, 허경석, 허경진, 현승준, 홍길표, 홍종일, 홍 훈, 황금중(총 162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우석대학교 교수 85인 2009년 6월 8일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일동 2009. 6. 9&lt;BR&gt;&lt;참여 교수 명단&gt;&lt;BR&gt;강진옥, 강철구, 강태경, 김관묵, 김성현, 김성훈, 김영미, 김우식, 김찬주, 김혜숙, 나현, 남신우, 도재형, 마재신, 박경미, &lt;BR&gt;박성수, 박찬길, 백지연, 서정원, 송영빈, 신하윤, 안창림, 양인상, 양종만, 오종근, 원용진, 유창수, 이규성, 이상화, 이승욱, &lt;BR&gt;이승준, 이영민, 이인표, 이재돈, 이주희, 이준서, 이진, 장준, 장필화, 정문종, 정병욱, 정병준, 정하연, 천혜정, 최미경, 최성만, &lt;BR&gt;최원자, 최재남, 최혜원, 한민주, 한자경, 홍백의(이상 52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뜻을 같이하는 인하대 교수 73인 일동 2009년 6월 10일&lt;BR&gt;■ 명단&lt;BR&gt;강병구 강현주 김갑중 김대환 김명인 김문교 김민배 김병준 김석회 김성택 김&amp;nbsp; 영&amp;nbsp; 김영순 김웅희 김인재 김인회 김진경 김진공 &lt;BR&gt;김진방 김진석 김태승 노애경 노철언 명승환 민경진 민정기 박선미 박영일 박혜영 백은희 서경석 성완경 손민호 송용진 신황호 &lt;BR&gt;원동준 원종찬 유영종 육상효 윤승준 윤정혜 윤진호 윤홍식 이경주 이규성 이봉규 이석우 이영호 이유정 이재우 이현우 이환범 &lt;BR&gt;이훈재 임종한 장경호 장세진 장윤희 정기섭 정영태 정재훈 정은귀 정태욱(법학)&amp;nbsp;&amp;nbsp; 정학성 조강현 조장천 차동우 차태근 최기영 &lt;BR&gt;최원식 최지호 한성우 함병승 허남정 홍영진&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제주대학교 교수 59인 일동&amp;nbsp; 2009년 6월 10일&lt;BR&gt;■ 명단&lt;BR&gt;강동일, 강봉수, 강사윤, 강영봉, 고대만, 고봉진, 고영철, 고호성, 권영근, 김경호, 김동윤, 김맹하, 김명숙, 김미옥, 김여선, &lt;BR&gt;김옥수, 김정섭, 김정희, 김현돈, 김희필, 류현종, 박규용, 박선아, 박찬문, 박형근, 변종민, 소명선, 손명철, 안재철, 양길현, &lt;BR&gt;양성호, 염미경, 오상학, 오홍식, 유철인, 윤용식, 윤용택, 이경원, 이상이, 이상철, 이윤정, 이은주, 이주섭, 이창섭, 이창인, &lt;BR&gt;장승희, 정대연, 정진현, 조성식, 조성윤, 조영배, 조홍선, 주홍구, 최&amp;nbsp; 현, 최낙진, 팽동국, 하승수, 허규희, 허남춘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중앙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3일&lt;BR&gt;■ 명단 &lt;BR&gt;강내희, 강진숙, 고부응, 김경희, 김교성, 김누리, 김대정, 김백균, 김성천, 김순경, 김시연, 김연명, 김탁훈, 김재웅, 김태용, &lt;BR&gt;김한식, 김호성, 노영돈, 류신, 문재철, 민환기, 박경주, 박기웅, 박영근, 박미희, 박명진, 박헌렬, 배윤호, 백승욱, 서명수, &lt;BR&gt;손준식, 송수영, 신광영, 신진욱, 오성균, 오세혁, 이길우, 이나영, 이병훈, 이산호, 이선미, 이선혜, 이성구, 이시영, 이종구, &lt;BR&gt;이재신, 이창재, 이충직, 임장혁, 육영수, 전영태, 정슬기, 이준형, 장규식, 장상욱, 장성갑, 정정호, 조상렬, 조희정, 주은우, &lt;BR&gt;주진숙, 차용구, 최성환, 최영, 최영진(정치외교학과), 최영진(영어영문학과), 최윤진, 허정훈 (총 68인)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주주의의 위기와 인권의 후퇴를 우려하는 창원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9일.&lt;BR&gt;■ 명단 &lt;BR&gt;서정근, 서영환, 황화상, 남재우, 구산우, 이수원, 허철구, 이지훈, 어석홍, 이흥규, 류시완, 이형진, 조형규, 유진상, 윤영환, &lt;BR&gt;송태권, 이민주, 임인수, 김원정, 노상규, 하권철, 김정계, 하상식, 허 진, 김인숙, 이건혁, 이성철, 조효래, 심상완, 서용원, &lt;BR&gt;박춘식, 이강주, 박동규, 문경희.&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는 충북대 교수 일동 2009년 6월 5일&lt;BR&gt;■ 명단 &lt;BR&gt;강 훈, 강철성, 강희경, 고봉만, 곽순섭, 구연철, 권정우, 김경석, 김귀룡, 김대용, 김상환, 김성기, 김승환, 김영남, 김영수, &lt;BR&gt;김영철, 김용화, 김정화, 김종연, 김준근, 김진아, 김헌식, 김혜리, 남재봉, 노경희, 류기철, 문일호, 민경희, 박강우, 박걸순, &lt;BR&gt;박상언, 박연호, 박일영, 박홍영, 배득렬, 배병균, 백용식, 변호승, 서관모, 성정용, 손현준, 안상헌, 오광호, 오기완, 오송규, &lt;BR&gt;오원근, 오제명, 유초하, 유환수, 윤 진, 윤기호, 이기수, 이기주, 이미경, 이미순, 이선옥, 이수재, 이순철, 이승복, 이연호, &lt;BR&gt;이용문, 이은미, 이은희, 이익성, 이정희, 이종연, 이항우, 이호승, 이희순, 정우현, 정재경, 정재현, 정호영, 최성호, 최세만, &lt;BR&gt;최은영, 한 건, 한상배, 한재영, 허석열, 형 식, 홍진태, 황순택, (이상 83명)&lt;BR&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9일&lt;BR&gt;■ 명단 &lt;BR&gt;곽노현, 김기원, 김성곤, 김영구, 김영인, 라선아, 류수노, 박선희, 박승룡, 변지원, 사공환, 서정기, 설진아, 성미애, 송찬섭, &lt;BR&gt;신현욱, 이애숙, 이은택, 이정호, 이태림, 이필렬, 이혜령, 정민승, 정준영, 정현숙, 조승현, 최정학(총 27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현 시국을 우려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들 2009년 6월 10일&lt;BR&gt;■ 명단 &lt;BR&gt;강기훈, 고영훈, 권석균, 권태형, 김남수, 김백기, 김상열, 김성복, 김세화, 김승욱, 김연규, 김영찬, 김응운, 김춘식, 김형래, &lt;BR&gt;노명환, 노택선, 박상원, 박석구, 박수영, 박우수, 박재우, 박종평, 박희호, 반병률, 서경희, 성경준, 손기락, 손영훈, 신정아, &lt;BR&gt;신찬수, 신형욱, 여호규, 오은영, 유기환, 유달승, 유재원(언어학과), 윤성우, 이근명, 이기상, 이상직, 이윤석, 이은영, 이장희, &lt;BR&gt;이주헌, 이해윤, 이현송, 임경순, 임근동, 임영상, 장재덕, 전용갑, 정동근, 정일용, 정환승, 차태훈, 채호석, 채희락, 홍성훈, &lt;BR&gt;홍원표 (60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신대교수일동 2009년 6월 8일 &lt;BR&gt;■ 명단 &lt;BR&gt;강남훈 강성영 강순원 강영선 강원돈 강인철 고갑희 권명수 권오영 김대오 김도희 김동식 김순진 김애영 김영선 김용표 김용희 &lt;BR&gt;김윤규 김윤성 김주한 김창주 김항섭 김현경 김희정 나 성 노중기 류성민 류장현 박경철 박기현 박동련 박미선 박상남 박설호 &lt;BR&gt;배준호 백준기 서강목 서영채 성낙선 성숙진 송순열 송주명 신광철 안병우 양춘우 여협구 연규홍 염 건 오길승 오창호 오현숙 &lt;BR&gt;옥장흠 유문선 유봉학 유세종 윤상철 이건범 이금만 이기호 이남규 이병학 이상헌 이세영 이영미 이인재 이일영 이향명 임석민 &lt;BR&gt;임종대 임철우 전병유 정건화 장정해 조성대 조재송 조창석 조태영 주인석 주장환 채수일 최두석 최민성 최수철 최영호 최형익 &lt;BR&gt;하종문 홍선미 황정욱 (이상 88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한양대학교 교수 일동 2009년 6월 10일&lt;BR&gt;■ 명단 &lt;BR&gt;강성태, 고보형, 김명수, 김상수, 김성제, 김영환, 김용수(국제문화대학), 김용헌, 김현식, 김호영, 김홍균, 김희근, 나명수, &lt;BR&gt;박규태, 박성호, 박진호, 박찬승, 방승주, 서경석, 손태원, 신동민, 신영전, 심영희, 오영근, 오혜근, 오희국, 위행복, 유성호, &lt;BR&gt;윤상인, 윤영민, 이도흠, 이병관, 이상민(사회과학대학), 이세종, 이은규, 이인호, 이재복, 이현우, 이훈, 임지현, 전성우, 전형필, &lt;BR&gt;정진태, 정태수, 정호경, 주재범, 차혜영, 최윤형, 최종현, 최태현, 탁선미, 한충수, 한홍열, 허선, 황성기&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광주ㆍ전남지역 교수 일동 2009년 6월 9일&lt;BR&gt;■ 명단 &lt;BR&gt;(전체 23개 대학 725명, 대학·성명은 가나다순 기재) &lt;BR&gt;△광양보건대학: 권기영 등 1명 &lt;BR&gt;△광주과학기술원: 우운택, 전상용, 전장수 등 3명 &lt;BR&gt;△광주교대: 고재천, 김동현, 김성숙, 김언식, 김용익, 김인수, 김현, 노영란, 노희정, 마대성, 문병도, 박영대, 박정환, 박한숙, &lt;BR&gt;&amp;nbsp; 선규수, 선주원, 송춘현, 양은주, 염창권, 이대현, 이미자, 이정선, 임성규, 정인수, 정희자, 조강모, 조초희, 조필환, 최도성, &lt;BR&gt;&amp;nbsp; 홍승연 등 30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광주대: 강대경, 강명아, 강문설, 권호진, 김경승, 김광영, 김미경, 김선미, 김순흥, 김용호, 김이겸, 김종선, 김충명, 김한성, &lt;BR&gt;&amp;nbsp; 김현석, 김황용, 류한호, 박광규, 박광현, 박종찬, 박진, 박춘호, 배봉기, 서경희, 서재일, 서정우, 신덕룡, 신석균, 신창호, &lt;BR&gt;&amp;nbsp; 양성렬, 양종현, 오병욱, 오상조, 오선희, 오종진, 오현정, 옥경희, 유종락, 유태종, 윤건혁, 윤석년, 은우근, 이기호, 이민원, &lt;BR&gt;&amp;nbsp; 이상기, 이상수, 이영석, 이용교, 이육화, 이은봉, 이홍렬, 이희재, 임동욱, 장희천, 정상양, 조대연, 차규석, 최병진, 최선우, &lt;BR&gt;&amp;nbsp; 최준영, 한규무 등 61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광주여대: 김복현, 오승진, 오정우, 이웅의, 임기흥, 정민영, 정성일, 주종대, 채희윤 등 9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주대: 강철수, 김윤호, 나승화, 박상하, 유경아, 윤대근, 이재창, 정석희, 조대훈 등 9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남부대학: 민범일 등 1명 &lt;BR&gt;△대불대: 김영록, 류광호, 박철수, 송미승, 안연준 등 5명 &lt;BR&gt;△동강대학: 김광익, 김남금, 김동선, 김명호, 김선미, 김용근, 김제섭, 김한수, 노재성, 류재민, 박광식, 박정철, 박현주, 서희숙, 양예승, 양홍영, 오행수, 윤찬호, 이몽룡, 임선모, 임일도, 임종대, 장재봉, 정영일, 정찬주, 조남철, 편석범 등 27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신대: 김귀석, 남궁협, 서영환, 안형순, 양충렬, 여병창, 오만록, 오세근, 이수용, 정영해, 조진호, 최은정 등 12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목포대: 강봉룡, 강석주, 강일국, 강주환, 고광모, 고형대, 김동욱, 김선태, 김선화, 김성환, 김영란, 김영목, 김영철, 김영태, 김인용, 김재만, 김재준, 김정자, 김창대, 김혜온, 나승만, 류동영, 박관석, 박대석, 박정석, 박찬선, 박찬표, 박혁순, 박형빈, 배현, 서창호, 손동원, 신상용, 안미현, 양순철, 유용권, 윤형숙, 이광호, 이기갑, 이기훈, 이수애, 이재복, 이정갑, 이헌종, 이훈, 임이택, 임종석, 임춘성, 장시복, 정일, 조기정, 조용호, 조현상, 진혜경, 최연식, 하상복, 한정원, 허준, 홍남선, 홍석준, 홍재현, 황혜주 등 62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목포과학대학: 전성렬 등 1명 &lt;BR&gt;△목포해양대: 김우숙, 박성현, 이계희, 이성렬 등 4명 &lt;BR&gt;△서강정보대학: 이승철, 이용연 등 2명 &lt;BR&gt;△서남의과대학: 김엽, 김창윤, 김하경 등 3명 &lt;BR&gt;△성화대학: 강순길, 권성기, 김율, 김형준, 김홍백, 류부걸, 민한기, 박향용, 안경수, 안용택, 유행관, 이성곤, 이현석, 장경민, &lt;BR&gt;&amp;nbsp;&amp;nbsp; 장유정, 장철원, 정성민, 정원경, 최신영, 한동진 등 20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순천대: 강성호, 고영진, 곽재구, 길종백, 김광수, 김권욱, 김기성, 김길수, 김대희, 김병무, 김선명, 김용우, 김용찬, 김창곤, &lt;BR&gt;&amp;nbsp;&amp;nbsp; 김훈호, 노희천, 명국녕, 박기영, 박병희, 박성훈, 박오복, 박종호, 박청호, 박형달, 박홍균, 손명식, 손보균, 송복승, 신은주, &lt;BR&gt;&amp;nbsp;&amp;nbsp; 신정신, 안옥선, 양선기, 양숙향, 양승렬, 양원옥, 양재선, 윤경원, 이경환, 이금옥, 이상구, 이상호, 이석배, 이신숙, 이옥희, &lt;BR&gt;&amp;nbsp;&amp;nbsp; 이윤호, 이화자, 임경희, 임성운, 장동식, 장상수, 장승태, 장효원, 정동보, 정영철, 정옥희, 정현채, 조남훈, 조원래, 조정민, &lt;BR&gt;&amp;nbsp;&amp;nbsp; 최종근, 최종천, 최현주, 한병곤, 허정화, 홍영기, 황갑연 등 66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남대: 강기주, 강기천, 강용기, 강정채, 강태구, 고광일, 고형일, 곽민규, 김경국, 김경학, 김광복, 김광용, 김기현, 김당택, &lt;BR&gt;&amp;nbsp; 김대성, 김도형, 김동근, 김동수(사학과), 김동수(수학교육과), 김동호, 김명혜, 김병기, 김병인, 김봉중, 김상봉, 김석현, &lt;BR&gt;&amp;nbsp; 김선옥, 김성길, 김성완, 김성준, 김수형, 김순임, 김시원, 김신중, 김양현, 김연미, 김영기, 김영만, 김영철, 김용대, 김용의, &lt;BR&gt;&amp;nbsp; 김용철, 김원준, 김유곤, 김유섭, 김은희, 김이곤, 김재관, 김재기, 김재률, 김재승, 김정욱, 김종근, 김지수, 김진환, 김철성, &lt;BR&gt;&amp;nbsp; 김태환, 김태훈, 김택현, 김형국, 김혜현, 김호성, 나간채, 나경수, 나윤희, 나주몽, 남택근, 노한진, 노흥열, 류재한, 민병로, &lt;BR&gt;&amp;nbsp; 민용일, 박경환, 박광서, 박구용, 박남국, 박남용, 박만규, 박상철, 박승필, 박정수, 박철웅, 박해광, 박형구, 방윤규, 백성준, &lt;BR&gt;&amp;nbsp; 백지성, 백현미, 변동명, 서곤, 선학태, 성길호, 손창호, 손희하, 송오식, 송인성, 송정민, 송진규, 송한용, 송현종, 신경호, &lt;BR&gt;&amp;nbsp; 안규윤, 안성주, 안진, 양성렬, 양승갑, 양회석, 엄영욱, 염민호, 오기석, 오병수, 오수성, 오재일, 오희균, 원승룡, 위상복, &lt;BR&gt;&amp;nbsp; 유형빈, 유희석, 윤가현, 윤석태, 윤선현, 윤수종, 윤순석, 윤진상, 윤탁, 윤희면, 윤희석, 이강래, 이강석, 이경순, 이계열, &lt;BR&gt;&amp;nbsp; 이덕배, 이두휴, 이무성, 이미란, 이배호, 이병인, 이삼규, 이상권, 이승우, 이승준, 이여일, 이영숙, 이영철, 이오현, 이용환, &lt;BR&gt;&amp;nbsp; 이종백, 이주노, 이중표, 이지헌, 이채언, 이철, 이칠우, 이향범, 이현용, 이현욱, 이형종, 임복희, 임재윤, 임종명, 임채광, &lt;BR&gt;&amp;nbsp; 임환모, 장우권, 장일구, 장춘석, 전덕영, 전승수, 전형택, 전효관, 정갑채, 정경수, 정경운, 정남기, 정명선, 정미라, 정상영, &lt;BR&gt;&amp;nbsp; 정성수, 정승운, 정영복, 정오, 정재택, 정창복, 정청주, 정혜숙, 정훈, 정희택, 조건, 조광호, 조규대, 조길예, 조상균, 조승현, &lt;BR&gt;&amp;nbsp; 조영순, 조영훈, 조완현, 조윤호, 조인선, 조자경, 조정관, 조진선, 조진형, 주동기, 주석중, 주형관, 지병문, 천득염, 최대우, &lt;BR&gt;&amp;nbsp; 최동욱, 최민, 최승현, 최영태, 최일수, 최재혁, 최정기, 최혜영, 하영동, 한규석, 한은미, 허민, 홍기문, 홍덕기, 홍석환, &lt;BR&gt;&amp;nbsp; 홍성길, 홍성식, 홍성흡, 황인각, 황인남 등 227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선대: 강동완, 강선권, 강성승, 강인호, 강정훈, 강추원, 강혁신, 강희숙, 고용희, 공병혜, 곽인상, 권상로, 권영란, 기광서, &lt;BR&gt;&amp;nbsp; 김근용, 김기순, 김기택, 김대현, 김덕균, 김도경, 김동민, 김명식, 김미경, 김병용, 김생곤, 김석원, 김성재, 김성중, 김수남, &lt;BR&gt;&amp;nbsp; 김수중, 김승용, 김승환, 김영곤, 김영관, 김옥선, 김인숙, 김인현, 김인호, 김재수, 김재풍, 김재형, 김정연, 김제안, 김종세, &lt;BR&gt;&amp;nbsp; 김종중, 김철성, 김태형, 김하림, 김형중, 김홍남, 김홍명, 김흥중, 김희조, 나기대, 나상동, 나희덕, 노상채, 류소연, 문석우, &lt;BR&gt;&amp;nbsp; 민영돈, 박계, 박대환, 박순철, 박열, 박인효, 박진성, 박청국, 방일수, 배용근, 배영훈, 백채선, 사희만, 서갑성, 서덕희, &lt;BR&gt;&amp;nbsp; 송기동, 송선기, 신문자, 신봉석, 신석주, 신성희, 심재홍, 양남웅, 양형일, 염규을, 염수균, 오문석, 오수원, 우은란, 위승두, &lt;BR&gt;&amp;nbsp; 위인백, 윤선명, 윤정훈, 윤종록, 윤창륙, 윤평진, 이관규, 이금순, 이기길, 이덕만, 이명렬, 이봉주, 이상열, 이상원, 이성기, &lt;BR&gt;&amp;nbsp; 이승명, 이승우, 이영록, 이영무, 이장욱, 이재기, 이종범, 이희은, 임경규, 임진수, 임흥수, 장인홍, 장희진, 전영남, 정규영, &lt;BR&gt;&amp;nbsp; 정분도, 정영수, 정오진, 정윤태, 정의상, 정일용, 정종달, 정해만, 정현숙, 조규춘, 조수형, 조용신, 조정훈, 조학행, 지병근, &lt;BR&gt;&amp;nbsp; 최기군, 최병기, 최영주, 최재희, 최준식, 최철희, 최홍엽, 하상호, 한종완, 한지영, 홍석주, 홍태희, 황선영, 황영성 등 148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선이공대학: 김남오, 김병철, 김상진, 김승영, 김영훈, 길종원, 나승희, 민완기, 손계중, 유대석, 이재득, 전영화, 전형석, &lt;BR&gt;&amp;nbsp; 정찬영, 정훈, 조순계, 조재경, 조정일, 채명희 등 19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초당대: 김현철, 장경성, 조기안, 최홍교 등 4명 &lt;BR&gt;△호남대: 권경일, 이상수, 이현관, 이화자, 조성민 등 5명 &lt;BR&gt;△호남신학대: 강성열, 김금용, 김재현, 류행열, 신재식, 임영금 등 6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gt;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대구·경북지역 대학 교수 일동 2009년 6월 5일&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학별 시국선언문 서명 교수는 ▲경북대 132명 ▲대구대 62명 ▲영남대 50명 ▲계명대 13명 ▲안동대 12명 ▲경북과학대 7명 &lt;BR&gt;▲대구보건대 6명 ▲경북전문대 6명 ▲경주대 5명 ▲구미1대학 4명 ▲대구산업정보대 4명 ▲경동정보대 3명 ▲포항공대 1명 &lt;BR&gt;▲대구가톨릭대 1명 ▲김천대 1명 ▲대구예술대 1명 ▲서라벌대 1명 등이다.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BR&gt;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대전·충남 지역 교수 일동 2009. 6. 9 &lt;BR&gt;■ 명단 &lt;BR&gt;고려대 세종캠퍼스=강수돌(경영), 민대환(경영정보), 손유송(영문) (이상 3명) &lt;BR&gt;공주대: 권정안 (한문교육), 권혁조(대기과학), 김동선(화학공학), 김봉한(경제통상학), 김영미(국어교육학), 김정헌(미술교육학), &lt;BR&gt;남수중(경제통상학), 박순우(사회복지학), 배성의(부동산학), 백원철 (한문교육학), 송석준(한문교육학), 송충기(사학), &lt;BR&gt;안정선(간호학), 양병찬 (교육학), 유경준(사학), 윤영일(산림자원), 윤영한(생명과학), 윤희수(미술교육), 이수한(산업정보), &lt;BR&gt;이영재(교육), 이재규(교육), 이정만(행정), 이찬호(산림자원), 이해준(사학), 정재윤(사학), 정하현(역사교육), 조동길(국어교육), &lt;BR&gt;지수걸(역사교육), 홍성재(법학), 황도순(특수교육)(이상 30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공주교대=송상헌(사회교육학)(이상 1명) &lt;BR&gt;대전대=도면회(사학과)(이상 1명) &lt;BR&gt;목원대=권선필(행정), 김연준(건축), 김흥수(신학), 라병암(영어교육), 류종영(독일언어문화), 문숙경(정보컨설팅), 박경(디지털경제)&lt;BR&gt;&amp;nbsp;박노권(신학), 백은주(유아교육), 신지연(국어국문학), 윤미정(바이오건강), 이규금(금융보험부동산), 이승환(영화영상), &lt;BR&gt;이영우(전자공학), 이왕기(건축), 이종화(중국), 장수찬(행정), 정경량(독일언어문화), 정재호(금융보험부동산), 조연상(디지털경제),&lt;BR&gt;&amp;nbsp;주인(경찰법학), 최정우(도시공학), 황재홍(디지털경제) (이상 23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배제대=강명숙(교직), 김범환(전자상거래), 김양주(일본), 김익상(정보통신), 김정태(테솔영어), 김종서(법학), 송태섭(무역), &lt;BR&gt;오영기(분자과학), 윤일권(독일어문화), 윤준(영어영문), 이규봉(전산수학), 이상수(생명공학), 이영순(영어영문학), 이정규(건축), &lt;BR&gt;임헌만(공공행정), 정연정(공공행정), 조창호(과학기술), 한규광(과학기술) (이상 18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명대 천안캠퍼스=김치훈 (만화.디지털 컨텐츠), 고경일 (만화.디지털 컨텐츠) (이상 2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충남대=강창구(독문), 김동운(의학전문), 김두정(교육), 김방룡(철학), 김선건(사회), 김재영(언론정보), 김정윤(생명시스템), &lt;BR&gt;김세정(철학), 김종현(물리), 김영두(법학전문), 김판욱(공업교육), 김필동(사회), 김효진(재료공학), 노용균(언어), 권오엽(일문), &lt;BR&gt;류동민(경제), 류광해(법학전문), 류진석(사회복지), 문창호(경영), 박광자(독문), 박노영(사회), 박재묵(사회), 박재형(의학), &lt;BR&gt;박진도(경제), 박영종(중문), 박양진(고고학), 박윤덕(사학), 박찬인(불문), 송기섭(국문), 송계충(경영), 송양섭(국사), &lt;BR&gt;송창화(의학전문), 서창원(심리), 안재현(수학), 이동규(회계), 임상순(법학전문), 장병인(국사), 전광희(사회), 전민용(물리), &lt;BR&gt;정용길(경영), 정진옥(의학), 정세은(경제), 오근엽(무역), 유시택(독문), 윤석진(국문), 윤환중(의학), 안문영(독문), 안재현(수학),&lt;BR&gt;&amp;nbsp;양해림(철학), 이기훈(경영), 이병채(경제), 이선웅(국문), 이선희(심리), 이승선(언론정보), 이형권(국문), 이향천(언어), &lt;BR&gt;임선희(교육), 임종석(일문), 정원수(국문), 정응기(법학전문), 차재영(언론정보), 최도림(행정), 최호정(수의학), 허수열(경제), &lt;BR&gt;허종(국사), 홍혜원(국문) (이상 66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남대=강문순 (영어교육과), 강신성 (경영학과), 강신철 (경영정보학과), 김동석 (교육학과),김상태 (정치언론국제학과), &lt;BR&gt;김성한 (사회복지학과), 김조년 (사회복지학과), 김홍기 (경제학과), 민완기 (경제학과), 박경량 (생명공학과), &lt;BR&gt;박광일 (경영정보학과), 박서호 (도시부동산학과), 배정열 (일본일문학과), 성백용 (역사교육과), 송 전 (독일어문학), &lt;BR&gt;송현훈 (신소재공학과), 송태복 (경제학과), 신동호 (도시부동산학과), 송희석 (경영정보학과), 윤영철 (법학과), &lt;BR&gt;이강용 (중국통상학과), 이승철 (행정학과), 이영식 (영어교육학과), 이정신 (사학과), 이진모 (사학과), 이필영 (역사교육과), &lt;BR&gt;이희혁( 생활체육학과), 임춘식 (사회복지학과), 장수덕 (경영학과), 장수익 (국어국문학과), 정규진 (비지니스통계학과), &lt;BR&gt;정동국(건설시스템공학과), 정명기 (중국통상학과), 정충영 (경영학과), 조만형 (행정학과), 조용훈 (기독교학과), &lt;BR&gt;진현웅 (경영학과), 천사무엘 (기독교학과), 탁종연 (경찰행정학과), 현영석 (경영학과) (이상 40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밭대=강진규(산업경영공학), 김남균(교양학부), 김용주(응용화학생명공학), 김하영(신소재공학), 김진곤(중국어), &lt;BR&gt;박준식(신소재공학), 심정보(교양학부), 안기홍(정보통신컴퓨터공학), 오영식(중국어), 윤행순(일본어), 이병수(기계공학), &lt;BR&gt;이봉호(응용화학생명공학), 이의길(신소재공학), 이춘재(기계공학), 조복현(경제), 조영탁(경제), 최병욱(응용화학생명공학) (이상 17명)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호서대=김교빈(문화기획), 김성룡(국어국문), 김영선(디지털음악), 김정석 (디지털디스플레이공학), 서정익(경제), 성낙준(사회체육),&lt;BR&gt;&amp;nbsp;송경석(디지털비즈니스), 이목훈(행정), 이석원(시스템제어공학), 이준호(전기공학), 장선미(영어영문), 정백호(정보통신공학), &lt;BR&gt;채기웅 (신소재공학), 천채일 (신소재공학), 홍성수(컴퓨터공학)(이상 15명)&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북미지역 대학 교수 240명 시국선언&gt;&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염려하는 북미 대학 교수 성명서 2009년 6월 10일&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출처] 읽어볼만한 국내대학 교수 시국선언 전문&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2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
&lt;P&gt;&lt;B&gt;&lt;/B&gt;&amp;nbsp;&lt;/P&gt;
&lt;P&gt;&lt;B&gt;5월 23일 이것을 바라고 당신이 自殺했습니까?&lt;/B&gt;&lt;/P&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gt;‘노무현 서거’가 맞는 표현인가? 14&lt;BR&gt;盧武鉉 전 대통령의 죽음을 逝去라고 해야 하나, 死亡이라고 해야 하나 16&lt;BR&gt;노무현 자살,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마라 17&lt;BR&gt;이것을 바라고 당신이 자살했습니까? 19&lt;BR&gt;“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뉴시스의 선동 23&lt;BR&gt;우리 시대를 缺損時代(결손시대)로 만들어 놓은 사람의 죽음 24&lt;BR&gt;애도하지만 自殺행위엔 동정할 수 없다! 25&lt;BR&gt;故人의 뜻을 존중해 주세요! 26&lt;BR&gt;레이건이 생각나는 날 27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24일 ‘분노의 죽음’을 ‘숭고한 것’으로&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gt;故人의 죽음을 ‘숭고한 것’으로 만들 방법이 있다! 32&lt;BR&gt;盧 전 대통령 自殺, 왜 검찰수사와 연관짓나? 35&lt;BR&gt;전 대통령 盧武鉉의 죽음 37&lt;BR&gt;‘서거’ 표현은 ‘자살’을 美化하는 부작용 낳을 수도 40&lt;BR&gt;분노로 살다 간 전직 대통령 42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25일 “자살할 짓을 왜 해. 웃기는 거거든요”(진중권)&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지금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때! 48&lt;BR&gt;“비극의 책임은 노무현씨 자신에게 있다” 49&lt;BR&gt;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하여 51&lt;BR&gt;“자살할 짓을 왜 해. 웃기는 거거든요” 53&lt;BR&gt;노무현 전 대통령의 國民葬에 異議 있다 59&lt;BR&gt;열 명의 대통령 이야기 62&lt;BR&gt;가짜 여론에 굴복하고 진짜 여론을 멀리하는 李明博 68&lt;BR&gt;노예형 자살과 권력형 자살 70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26일 노무현의 삶은, 그만하면 행복한 편이었다&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盧가 자살로 얻은 것과 사회적 손실 74&lt;BR&gt;방송의 ‘弔問선동’에 전체주의적 狂氣가 76&lt;BR&gt;노사모의 自殺 외경 78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27일 흔들리는 言論 : 보수신문까지&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保守신문들까지도 흔들리는 이유 82&lt;BR&gt;보수신문에 의하여 게재 거부당한 국민행동본부의 광고문안 86&lt;BR&gt;“경호관의 최후 목격 증언은 거짓말” 88&lt;BR&gt;‘잘잘못을 떠나서’와 ‘국민장’ 90&lt;BR&gt;船長(선장)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號 92&lt;BR&gt;노무현씨가 유서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93&lt;BR&gt;한겨레21과 MBN의 趙甲濟에 대한 誤報와 왜곡 98&lt;BR&gt;돌맞는 변희재 102&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28일 216명의 歷代 임금님들 중 자살자는 1명&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비열하고 정치적인 글과 말들 106&lt;BR&gt;金東吉, “지금 한국엔 정부가 두 개 있다” 115&lt;BR&gt;理性을 잃은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 116&lt;BR&gt;멀뚱멀뚱 구경만 하는 경찰은 소용없다 118&lt;BR&gt;韓-中-日 역대 帝王의 자살史 119&lt;BR&gt;대한민국 대통령의 화환을 짓밟아도 121&lt;BR&gt;노무현답고, 이명박답고, MBC답다 123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29일 현직 대통령의 봉변&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장례식에서 대통령을 야유한 인간들 128&lt;BR&gt;장례식에 웬 운동권 가요? 130&lt;BR&gt;생각있는 사람들에게 참 어려웠던 한 週 130&lt;BR&gt;MBC, 안상수 원내대표 발언에 ‘생트집’ 134&lt;BR&gt;“어떤 미사여구로도 美化해선 안 된다” 135&lt;BR&gt;영결식 도중 난동부린 민주당 백원우는 누구? 140&lt;BR&gt;이게 민주정부가 아니면 뭐가 민주인가? 141&lt;BR&gt;이제는 李明博이 목숨을 걸 때 144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30일 사회혼란과 안보파괴의 主犯이 방송&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배신자, 겁쟁이, 장사꾼 148&lt;BR&gt;사회혼란과 안보파괴의 主犯은 언론 153&lt;BR&gt;사제단, 노무현을 예수에 비견…천주교단 우려 156&lt;BR&gt;졸지에 21세기의 갈릴레오가 된 기분을 아시나요? 159&lt;BR&gt;국민장은 끝나고 좌익반란은 시작되었다! 161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5월 31일 聖君이 아닌 노무현의 모습&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李會昌, “김대중 노무현도 정치보복했다” 166&lt;BR&gt;이대로 가면 한국은 반드시 망한다! 172&lt;BR&gt;聖君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노무현 174&lt;BR&gt;검찰은 국가적 진실을 지켜내어야 한다 182&lt;BR&gt;노사모의 대한민국 184&lt;BR&gt;40억 원을 들이고 돌아온 것들 185&lt;BR&gt;간디 장례식보다 더 거창하였던 국민장을 보고 188&lt;BR&gt;“나이 먹었으면 나이 값을 해! ×새끼!” 190&lt;BR&gt;대통령인데도 당해보니 기분이 어떠하실까? 194&lt;BR&gt;KBS의 폭력시위 간접 비호 194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6월 1일 李明博도 목숨을 걸어라!&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서청원 대표의 아찔한 선동 198&lt;BR&gt;李明博 대통령도 목숨을 걸어라! 200&lt;BR&gt;동아 황호택 실장의 용기 있는 칼럼 202&lt;BR&gt;또다시 暴動(폭동)이다 203&lt;BR&gt;‘세계 唯一의 나라 목록’에 두 개 추가 204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6월 2일 KBS의 선동&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東亞日報에 어떻게 이런 기사가 실리나? 210&lt;BR&gt;KBS뉴스 속 ‘盧武鉉’은 억울한 희생양, ‘李明博’은 사악한 가해자 213&lt;BR&gt;민주당은 ‘가혹한 수사’를 定義해 봐라 218&lt;BR&gt;검찰, 노무현 비리 진상은 규명, 발표해야 한다! 219&lt;BR&gt;“盧 자살 첫단추는 민주당이 뀄다” 220&lt;BR&gt;李明博과 한나라당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222 &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10&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vAlign=top colSpan=2 height=25&gt;&lt;B&gt;6월 3일 교수 時局선언문의 反知性&lt;/B&gt;&lt;/TD&gt;&lt;/TR&gt;
&lt;TR align=left&gt;
&lt;TD colSpan=2&gt;국민장 비판이 왜 毒說인가? 228&lt;BR&gt;진실, 균형, 知性이 실종된 교수 선언문 235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민주화보상위는 左派의 범죄경력 세탁소” </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smj4210/15715762"/>
		<id>tag:blog.daum.net,2009:smj4210.15715762</id>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22T17:03:37Z</updated>
	    <published>2009-11-22T17:03: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lass=big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대제목 테이블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96%&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title1 vAlign=bottom&gt;&lt;B&gt;[집중취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의 황당한 결정들&lt;/B&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 vAlign=bottom&gt;
&lt;TD height=12&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대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소제목 테이블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title2&gt;&lt;B&gt;“민주화보상위는 左派의 범죄경력 세탁소”&lt;/B&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소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 기사요약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gt;&lt;/TD&gt;
&lt;TD width=18&gt;&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5.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5.gif&quot;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 background=/image/bignews_box00.gif&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pt&quot; color=#000000&gt;&lt;B&gt;&lt;FONT color=#808000&gt;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를 대한민국에 실현하려 했던 자들에게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면서 9년간 총 957억원 퍼줘&lt;/FONT&gt;&lt;/B&gt;&lt;BR&gt;&lt;BR&gt;&lt;B&gt;&lt;FONT color=#454545&gt;“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확정 판결된 사건을 再審이라는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일개 위원회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뒤집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삼권분립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 (국가정상화추진위)&lt;BR&gt;&lt;BR&gt;“민주화보상위의 인정사례 중 反국가단체사건 관련자, 利敵단체 사건 관련자, 각종 불법폭력시위 점거농성사건 관련자, 파업 등 불법 노동운동사건 관련자, 反美운동사건 관련자 등이 망라돼 있다. 이들은 민주화보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화 운동’과는 무관한 反헌법적 반국가적 활동자이거나 범법 활동자일 뿐”&lt;/FONT&gt;&lt;/B&gt;&lt;BR&gt;&lt;BR&gt;⊙ 南民戰, 社勞盟, 革勞盟 등 反국가 이적단체 관련자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둔갑시켜&lt;BR&gt;⊙ &lt;親日인명사전&gt; 펴낸 연구소장,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됐다 2006년 민주화보상위 통해 명예회복&lt;BR&gt;⊙ 보상심의위 측, “보상금 누구에게 얼마가 돌아갔는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기 때문에&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공개할 수 없다” 주장 되풀이&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6.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6.gif&quot; width=18&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gt;&lt;/TD&gt;
&lt;TD width=18&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기사요약 끝--&gt;&lt;!-- 글쓴이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TOP: 6px&quot; vAlign=top align=right height=5&gt;&lt;FONT color=#0066cc&gt;金正友&lt;/FONT&gt; 月刊朝鮮 기자&amp;nbsp;(&lt;A href=&quot;mailto:hgu@chosun.com&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hgu@chosun.com&lt;/FONT&gt;&lt;/U&gt;&lt;/A&gt;)&amp;nbsp;&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vAlign=to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글쓴이 끝--&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4px; MARGIN-BOTTOM: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jpg&quot; width=580&gt;&lt;/TD&gt;&lt;/TR&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582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2pt&quot; color=#2f73ba&gt;피고인 73명이 방청석까지 앉은 가운데 열린 1980년 남민전 사건 첫 공판 모습.&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0&gt;&lt;IMG height=0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space.gif&quot; width=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subArtcl id=articleBody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지난 11월 8일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과 언론인 韋庵(위암) 張志淵(장지연) 등 4389명을 ‘親日(친일)’로 규정한 &lt;친일인명사전&gt;이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에 의해 공개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친일 인사에 포함된 사람들의 명단을 두고 左右(좌우) 세력 간의 대립이 극심해진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체성과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任軒永(임헌영·본명 임준열)씨의 親北(친북)적 과거 행적이 도마에 올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임씨는 1974년 文人(문인)간첩단 사건, 1979년 南民戰(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투옥된 전력이 있다. 1972년 2월 ‘反(반)유신 민주화와 反帝(반제) 민족해방운동’을 목표로 조직된 남민전은 재벌그룹 회장과 고위 공직자 등의 집을 골라 강도 및 절도를 하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탈취하는 등 충격적 범죄를 저질러 1995년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확정된 자생적 공산주의 지하조직이다.&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5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당시 발견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수사당국은 ‘간첩 황인욱의 그림’이라고 표기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남민전의 ‘對(대) 남조선 투쟁’은 1979년 10월 관련자 84명이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관련자들은 대부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 무기징역, 징역 15년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임씨는 남민전 조직원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임씨는 1976년 한 인사로부터 남민전 산하 민투(한국민주투쟁국민위원회) 가입을 권유받고 민투의 강령과 규약을 선서하는 의식을 치러 남민전에 정식 가입했다고 한다. 鄭昌仁(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는 지난 11월 9일 인터넷신문 &lt;뉴데일리&gt;와의 인터뷰에서 “임준열이라는 사람은 친일을 논할 자격도 없는 從北主義者(종북주의자)이며, 반역자”라며 “그가 주도하는 &lt;친일인명사전&gt; 발간작업은 金日成(김일성) 金正日(김정일)에 충성하기 위한 친일장난에 놀아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런 남민전 관련자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탈바꿈시킨 것은 金大中(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구성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주화보상위)다. 임헌영씨를 비롯한 남민전 관련자 38명은 2006년 3월 13일부터 6월 19일까지 4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총기 취득, 강도행위는 維新 탄압에 대한 항거”&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민주화보상위는 결정문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남민전에 대해선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는 민주정부를 세우자는 행위로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확립 및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했다. 다음은 ‘남민전사건 진상규명결과 자료집’에 게재된 민주화보상위의 결정요지 중 일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예비군 훈련장에서 카빈 소총을 취득하여 보관한 행위, 자금 마련을 위한 강도행위, 북한으로 보내는 보고문 등과 관련하여 항거수단의 적정성 여부와 관련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적 관점에서 그 배경과 결과를 보건대,&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들이 총기취득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시 8명을 사법 살인한 국가폭력 앞에서 스스로를 보위하기 위한 자구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유신체제의 엄혹한 탄압에 대응하기 위한 상징적 저항 차원으로 보이며…(중략)&lt;BR&gt;&amp;nbsp; &lt;BR&gt;&amp;nbsp; ▲중동건설 현장에 투입한 노동자들의 보험을 횡령 착복한 돈으로 사치를 일삼고 여성편력이 심하여 사회적으로 빈축을 받았던 최○○, 고급관료로 직위를 남용하여 비리와 부패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으며 그 집안에 뇌물로 받은 금도끼가 있었다고 소문이 돌았던 구○○, 중앙정보부가 금괴를 밀수하여 비자금으로 쓴다는 ‘보○장’(편집자注: 보관장소) 등 사회적 지탄의 대상을 선별하여 행한 것이었던바, 위 행위들의 궁극적 목적은 유신체제의 타파에 있었다고 판단되기에 유신체제에 항거하였던 항거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gt;&lt;BR&gt;&amp;nbsp; 
&lt;CENTER&gt;&lt;IMG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2.jpg&quot; border=0&gt;&lt;/CENTER&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신청자 10명 중 7명꼴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3.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지난 11월 8일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열린 &lt;친일인명사전&gt; 발간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맨 왼쪽)&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지난 10월 19일 한나라당 田麗玉(전여옥) 의원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高永宙)는 ‘민주화보상위의 반국가활동 진상규명 발표회’를 열고 민주화보상위의 ‘恣意的(자의적)’ ‘任意的(임의적)’ ‘革命的(혁명적)’ 행태를 분석해 공개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날 발표회에는 社勞盟(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을 직접 담당했던 검사 출신 咸貴用(함귀용) 변호사를 비롯해 정창인 국가정상위 고문, 諸成鎬(제성호) 중앙대 교수, 姜京根(강경근) 숭실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날 발표자료에 따르면, 민주화보상위는 2000년 11월 제5차 회의에서 처음으로 梁性佑(양성우: 해외출판물에 의한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9호 위반) 詩人(시인)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 결정을 한 이후, 2009년 10월 12일 제284차 회의까지 9263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0년부터 2008년까지의 통계를 분석해 보면, 전체 신청 1만2609건 중 인정 8264명, 기각 2339건, 보류 1288건으로 나타났다. 신청자 10명 중 7명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셈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발표자료에 따르면,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9년간 총 957억원이 집행됐다. 이 중 376억원은 보상금, 581억원은 생활지원금이다. 376억원의 보상금이 총 721명에게 지급돼 1인당 평균 5000만원 이상의 보상금이 책정된 셈이다. 민주화보상위가 매년 예산 중 예비비를 보상금 명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2009년 말까지 보상금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자료를 발표한 국가정상화추진위는 민주화보상위의 인정사례 중 “반국가단체사건 관련자, 利敵(이적)단체 사건 관련자, 각종 불법폭력시위점거농성사건 관련자, 파업 등 불법 노동운동사건 관련자, 反美(반미)운동사건 관련자 등이 망라돼 있다”면서 “이들은 민주화보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화 운동’과는 무관한 반헌법적 반국가적 활동자이거나 범법 활동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4.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임헌영씨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모습(오른쪽 두번째).&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함귀용 변호사는 “민주화보상법 자체가 違法(위법)이고 운영마저도 不法(불법)”이라며 “민주화보상법은 바로 폐지하고 (민주화 인사로) 결정된 사람을 다시 심의해 과연 민주화 운동가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함 변호사는 민주화보상위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사노맹 관련자를 민주화 인사로 결정한 것에 대해 “그 사람들이 민주화 인사면 나는 반국가사범이냐”라고 항변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제성호 교수는 “일부에선 민주화보상위가 극단적 좌파세력의 범죄경력을 세탁하는 세탁소 노릇을 해 왔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이렇게 세탁된 이들에게 公職(공직) 진출의 기회가 열리게 되고 대한민국 역사도 거꾸로 쓰는 여러 현상이 좌파정권 10년 동안 나타났다”고 주장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강경근 교수는 “심지어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를 대한민국에 실현하려 했던 자들에게 약 1000억원대의 보상을 해 줄 수 있게 한 민주화보상위와 위원들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추진위가 소개한 문제가 될 만한 주요사건은 ▲사노맹 사건 ▲革勞盟(혁노맹·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 사건 ▲남민전 사건, ▲救國前衛(구국전위)사건 ▲救學聯(구학련·구국학생연맹) 사건 ▲社民靑(사민청·사회민주주의 청년연맹) 사건 ▲부산 동의대 방화사망 사건 등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국가반역 행위자도 ‘민주화 운동가’&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5.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91년 4월 수사당국이 압수한 사노맹 사건 관련 유인물.&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는 2008년 12월 제257차 회의에서 사노맹 사건의 총책인 박노해(본명 박기평)씨와 이정로(본명 白泰雄)씨를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했다. 이에 앞서 제125차 회의에선 사노맹 가입조직원 배정섭씨를 민주화 운동가로 일부 인정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사노맹 사건은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최대의 非合法(비합법) 사회주의 혁명조직이다. 1989년 11월 2일 백태웅, 박기평씨 등이 무장봉기로 現(현)체제를 전복시킨 뒤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다는 목표 아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 서울을 비롯한 마산·창원·울산·부산·포항·대구·구미 등 전국의 노동현장과 학원가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선동하다 적발된 사건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91년 4월 3일 중앙상임위원 박기평 등 11명이, 1992년 4월 29일 중앙상임위원장 백태웅 등 39명이 구속됐고, 대법원은 관련사건 선고를 통해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한 반국가단체’라고 판결했다. 추진위가 발표회에서 공개한 대법원 판결문 중 일부다.&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6.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90년 8월 수사당국이 압수한 혁노맹 사건 관련 유인물과 디스켓 등 증거물.&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lt;제1단계로 전위활동가들에 의한 비합법적인 선전선동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통일전선을 구축하여 무장봉기로써 대한민국 체제를 타도한 후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소위 민족민주혁명을 이루어 민중공화국을 수립한 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제2단계로 반동관료, 독점재벌 등을 숙청하고 토지 기타 생산수단을 몰수, 국유화하는 사회주의혁명을 이루어 완전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임을 표방하면서…(중략)&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은 구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소정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 단체에 해당된다.&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추진위는 “사노맹 사례는 李明博(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08년에 국무총리 소속의 민주화보상위가 무장봉기와 폭력혁명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했던 사노맹 관련자를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하는 ‘반역행태’를 당당하게 저질렀다”면서 “현 정부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라고 주장했다.&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45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7.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 padding-ight: 5&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간첩단 구국전위로부터 수사당국이 압수한 증거물. 창립선언문 등 23건의 문건, 무선호출기, 단파 라디오, 컴퓨터 등 모두 12종 342점이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무장투쟁 단체에 “國內 불합리성 극복할 수 없어 나온 苦肉之策”&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8.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2000년 8월 9일 열린 민주화보상위 현판식. (왼쪽부터) 김상근 제2건국위 기획단장, 최인기 행정자치부 장관, 이우정 보상심의위 위원장, 김경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김정기 방송위원회 위원장.&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는 2004년 제100차 회의에서 혁노맹 사건 관련자인 박대호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8년 11월 17일 &lt;조갑제닷컴&gt;에 게재된 金成昱(김성욱) 프리랜서 기자의 ‘共産(공산)혁명조직 ‘혁노맹’ 민주화운동 인정’ 기사에 따르면, 1986년 8월 결성된 혁노맹은 대학교 등에 아지트를 구축해 ▲프롤레타리아 지하노동당 결성 ▲武裝蜂起(무장봉기)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군대 창설 ▲민주주의 민중공화국 수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형제적 지원하에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 건설 ▲連共(연공)통일 실현 등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활동한 단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 선전과 레닌의 군사론에 입각한 무장투쟁 지도 등을 목적으로 기관지를 전국에 배포하는 한편, 성균관대와 한국외대 등 전국 12개 대학에 하부조직인 ‘민학투련’을 결성해 學內外(학내외)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하면서 연계투쟁을 선동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또 이들은 민중의 역량만으로는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판단, 조직 내에 군사위원회를 설치해 무장봉기 시 진압군대와 경찰에 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혁명군대’ 창설을 추진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혁명군대는 무장봉기 시 군사행동으로써 ▲군대경찰 등에 대한 물리적 타격을 통하여 현 체제를 붕괴시켜 나갈 것 ▲피검자의 석방, 가능한 방법을 통한 정부화폐의 몰수 ▲자유총연맹, 해병전우회 등 우익단체에 대한 테러 ▲상징적 인물에 대한 테러 및 암살 등을 설정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는 혁노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단체를 주도한 박대호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점을 알면서도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민주화된 사회가 되기를 열망해 학습함으로써 惡法(악법)에 의해 국민을 탄압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것”이라며 “국민기본권 신장을 위한 활동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추진위가 공개한 박대호씨에 대한 민주화보상위의 결정문 중 일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관련자들의 목적은 박정희, 全斗煥(전두환), 盧泰愚(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체제의 타도와 진정한 민주정부의 수립 및 조국통일에 있었고, 그 방법론을 모색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친 완강한 군사독재 조직은 온건한 의회주의적 방식으로는 이를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불합리성을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苦肉之策(고육지책)으로 보이며…&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추진위는 민주화보상위 결정문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에 의해 확정 판결된 사건을 再審(재심)이라는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일개 위원회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뒤집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삼권분립 원칙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간첩활동한 者도 민주화 운동가로 둔갑&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4년 2월 제95차 회의에서는 구국전위사건 관련자 홍중희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구국전위 사건은 안기부, 국군기무사, 경찰청 등 3개 공안기관이 합동으로 조선노동당의 남조선 지하당인 ‘구국전위’ 간첩단 사건 관련자 23명에 대해 형법상 간첩죄, 국가보안법상 반 국가단체 구성, 회합통신, 금품수수죄 등을 적용, 구속한 사건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91년 5월 일본을 통해 국내 침투한 在日(재일)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된 안재구씨는 ‘통일혁명을 위한 지하당을 건설하라’는 지령을 받고 출소 좌익수, 노동운동가, 학생운동가, 청년활동가 등을 동조자로 규합, 조선노동당의 남조선 지하당 ‘구국전위’를 결성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재야운동단체, 노조, 학원, 청년운동단체 등에 조직을 침투시켜 노사분규에 개입하거나 학생운동 등을 배후 조종하고, 국내 운동권의 동향을 수집, 11차례에 걸쳐 對北(대북) 보고하는 등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받았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구국전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조선노동당의 주체위업을 계승해 김일성, 김정일주의의 정수분자들로 구성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을 위한 민중의 전위부대로, 북한공산집단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에 따라 국가를 變亂(변란)할 목적의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의 2006년 12월 제190차 회의에선 1992년 ‘남한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징역 13년 형을 선고받았던 黃仁旭(황인욱)씨가 민주화 운동가로 결정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황씨가 관련된 주사파 지하조직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은 1986년 3월 29일 서울대에서 결성돼 투쟁의 3대 영역(반미 자주화투쟁, 반파쇼 민주화투쟁, 조국통일촉진투쟁)을 설정하고 반미투쟁의 대중화를 시도한 단체다. 1986년 5월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원회) 산하에 ‘5월특위’를 신설하고, 부산 미문화원 점거 투쟁과 헌법특위 분쇄 투쟁에 참가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법원은 구학련에 대해 “북괴의 상투적 선전, 선동 및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전략, 전술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구학련이 북괴의 활동에 동조해 이를 이롭게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인정했다”고 판시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성욱 기자의 ‘민주화보상위 국가정체성 훼손사례 연구’에 따르면, 황인욱씨는 당시 북한정권의 기관지 &lt;민주조선&gt;을 대자보로 알린 ‘서울대 대자보’ 사건으로 구속돼 2년가량 복역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일부 위원의 ‘反국가사범’ 반대에도 결국 명예회복&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후 황씨는 건국 이래 최대 간첩사건으로 불리는 ‘남한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중부지역당은 2008년 8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에서도 실체가 확인된 북한조선로동당의 남한 내 지하당이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 제190차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회는 구학련에 대해 “그 타도 대상이 군사독재정권을 지칭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황씨에 대해서는 “불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에 항거함으로써 민주헌정질서 회복에 기여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평가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 기자가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총 9명의 위원 중 한 명은 황씨에 대해 “신청인의 행위는 친북공산혁명 활동으로 반국가사범”이라고 했고, 다른 위원도 “친북활동에 불과할 뿐이고 이를 민주헌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결국 황씨를 명예회복시켰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는 2006년 제174차 회의에서 사민청 사건 관련자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했다. 사민청은 연방제 통일과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결성돼 노조원 등을 상대로 사상학습을 시킨 혐의로 구속된 단체. 대법원은 “사회주의를 기본강령으로 하고, 우리 사회를 대중정치 투쟁과 민중항쟁 등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제거, 타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는 이들의 활동에 대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민주화보상법 2조)”으로 규정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의대 사건 관련자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받았다. 민주화보상위는 2002년 4월 제141차 회의에서 ‘부산 동의대 진입 경찰관 방화치사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 운동가로 결정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의대 사건은 1989년 5월 3일 부산 동의대에서 입시부정을 이슈로 교내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전경 5명을 납치하자 이들을 구출하려고 동의대 도서관 7층으로 들어갔던 경찰관 7명이 시위대가 복도에 석유와 시너를 뿌리고 던진 화염병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관련 학생 70여 명이 구속됐고, 이 중 31명은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죄 등으로 징역 2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동의대에서 방화로 경찰 7명 죽인 31명에게 1인당 2500만원씩 보상금 지급&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0 align=lef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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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9.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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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지난 5월 3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동의대 사건 순국 경찰관 20주기 추도식’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과 강희락 경찰청장(왼쪽)이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는 사건과 관련된 46명을 명예회복시키는 한편, 그중 방화치사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31명에 대해 보상금 지급을 결정해 1인당 평균 2500만원을 지급했다. 위원 9명 가운데 3명은 찬반 표결을 전후해 “대법원에서 방화치사죄로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을 민주화 운동가로 결정하는 데 휩쓸려가고 싶지 않다”며 사퇴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민주화보상위 결정에 대해 당시 殉職(순직)한 경찰 유가족들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2005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명의 다수 의견을 통해 “유족들이 심의위(민주화보상위) 결정으로 사회적 명예 등의 기본권을 침해받은 게 없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전여옥 의원은 지난 2월 민주화보상위의 결정을 재심토록 하는 ‘민주화보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다 국회 본청 건물 안에서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소속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하지만 전 의원은 다음달인 3월 2일 국회에 鄭夢準(정몽준) 孔星鎭(공성진) 의원 등 12명과 함께 ‘민주화보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제출했고, 이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權炅錫(권경석) 의원과 安炅律(안경률) 의원 등 13명은 “민주화보상위 등 과거사 관련 17개 위원회의 경우 違法(위법)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시정이나 견제할 장치가 全無(전무)하다”며 이들 위원회의 설치 근거가 되는 17개 법률 각각에 대한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같은 사례 외에도 북한 김일성이 죽었을 때 추모 현수막을 걸려다 경찰과 충돌한 행위 등도 민주화 관련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7년 이후 반미, 노사 분규 등을 이유로 한 투신분신 등의 자살, 死因(사인)이 불분명한 의문사에 대해서도 민주화보상위는 민주화 관련성을 광범위하게 인정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추진위의 발표문에 따르면 광주 및 서울 미 문화원 불법 점거 사건 관련자, 쌀수입 개방 및 UR(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폭력시위사건 관련자, 6·3 외대사건(외대 방문 정원식 총리 테러사건) 관련자, 전교조 관련 해직교사, 각종 불법파업 관련자 등 이른바 ‘민주화운동’과는 무관한 불법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lt;BR&gt;&amp;nbsp; 
&lt;CENTER&gt;&lt;IMG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10.jpg&quot; border=0&gt;&lt;/CENTER&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쌀수입 개방 반대 시위자, 학생회 활동 중 암 사망자에게 1억원씩 보상&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성욱 기자의 ‘민주화보상위의 국가정체성 훼손사례연구’에 공개된 민주화보상위의 주요 보상 사례는 다음과 같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정권 퇴진 요구 투신(이○○ 1억1009만원) ▲반미자주, 조국통일, 군자주화 투신자살(양○○ 1억4684만원) ▲김영삼 권위주의 항거, 경찰과 대치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류○○ 1억870만원) ▲광주대 재학 중 김영삼 권위주의 항거와 관련, 도피 중 1997년 9월 13층 아파트에서 추락사(김○○ 2억7257만원) ▲1987년 6월부터 1989년 7월까지 통일대장 등 기타 학생활동 중 1990년 9월 병원에서 전립선암으로 사망(김○○ 1억712만원).&lt;BR&gt;&amp;nbsp; &lt;BR&gt;&amp;nbsp; 보상금 외에 총 3682명에게 581억원의 생활지원금이 지급됐다. 민주화보상위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수령당사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추진위가 공개한 생활지원금 지급 사례에 따르면, ‘북한바로알기 관련 서적 발간’ ‘문인간첩단 사건’ ‘삼민투 사건’ ‘서울대 민추위 사건’ ‘북한 관련 유인물 제작’ 등에 적게는 112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생활지원금이 지급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추진위는 역대 민주화보상위 위원들의 성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욱 기자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위원 중 친북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관련자가 7명에 달한다. 2008년 2월 한국진보연대와 합쳐진 전국연합은 2001년 충북 괴산군에서 가진 ‘군자산의 결의(연방제 실현을 다짐한 9월 22~23일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를 통칭하는 말, ‘9월 테제’로도 불린다)’ 이후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체결’ ‘연방제 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在獨(재독) 고위 북한 공작원 宋斗律(송두율) 교수의 석방과 한총련 합법화 선언에 참여했던 위원도 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추진위는 편향된 성향의 위원과 분과위원들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개념이 잘못 해석·적용됐다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간첩행위, 사회주의 혁명행위, 반국가 이적행위 등에 대한 명예회복은 ‘사이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또 “민주화보상위는 천문학적인 보상금과 생활지원금을 집행하고선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수령당사자 명단과 회의록 및 결정문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逆賊(역적)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된 떳떳한 한국인인데 무엇이 두려워 수령자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는지 아리송하다”고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반국가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정당한 법 집행이며 국가의 自衛權(자위권)에 해당한다. 헌법에 따라 제정된 법률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 추진위는 “지난 정부 시절 親北左派(친북좌파)들이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반국가 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면서 민주화보상법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2/0912_198_11.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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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 padding-ight: 5&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대한민국사랑국민운동연합은 지난 9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민주화보상위 고발 및 국민감사청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연 후, 같은 달 16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韓美 FTA 반대 시위자도 민주화 운동가냐?”&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난 9월 16일 ‘대한민국사랑국민운동연합(집행위원장 崔仁植)’이 민주화보상위 전현직 위원 8명을 직권남용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남민전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김일성 집단인 공산계열 노선에 따라 활동한 단체에 대한 민주화보상위의 결정은 위원들이 법을 이용해 반국가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한나라당 元裕哲(원유철) 의원은 지난 7월 14일 민주화보상위로부터 제출받은 각종 보상 결정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며 “이런 잣대라면 韓美(한미) FTA 반대 시위자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쳐줘야 한다는 말이냐”면서 “퍼주기식 민주화 유공자 양산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토로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폭력을 수단으로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국가적’ 결정이다. 편향된 시각으로 다수의 국민이 공감할 수 없는 ‘민주화 운동가 결정’은 지난 시절 진정한 민주화운동을 했던 ‘진짜 민주화 운동가’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9년에 걸쳐 진행된 ‘그들만의 민주화운동 보상’이 어떻게 정리될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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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는 가을 주왕산 사창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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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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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0T11:41:06Z</updated>
	    <published>2009-11-20T11:41:0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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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4.uf.daum.net/image/12516A194B09396CC7FBA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대전사와 기암&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늘은 철지난 주왕산으로 간다. 단풍은 늧었지만... 여태 주왕산을 여러번 다녀와도 절골쪽은 밟아보지 못했는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천하일봉에서 절골을 들머리로 간다기에 따라나선다. 절골을 들머리로 하면 지척에 있는 주산지도 찾아볼 욕심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산지는 1720년8월 조선경종원년에 착공, 이듬해 10월에 완공한 크지않은 저수지로 준공후 지금까지 한번도 물이 마르지않았다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산지 물에 밑둥치가 잠긴 수령150년 된 왕버드나무가 자생하고 있고, 물에 비친 버드나무 그림이 장관이라는 소문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산에서 08:00에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경주T/G 빠져나와 경주-포항-강구-절골주차장에 도착((12:04)하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절골 등로가 산불예방으로 입산금지란다. 되돌려 주왕산 상의주차장으로 가는도중 오늘 산행계획이 수정이 불가피하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원래는 절골-대문다리-가메봉-후리메기-삼폭포-학소대-대전사로 계획하였으나... 대전사-학소대-1,2,3,폭-후리메기-칼등고개-주왕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전사로 원점회기 산행으로 수정하여 발표하고, 상의주차장에 12:37에 도착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차장에서 상견례 인사나누고 출발이다.(12:45) 잠시후 대전사입구에 도착하니 국립공원 입장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폐&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1928A6184B093A6515AAB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left;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 한지가 언제인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곳 주왕산 입구에서는 '사찰 문화재관람료'란 명분으로 성인 1인당 1,600원의 관람료를 내야 산행을 할 수 있단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야 敬老? 라고 그냥 통과하니^^* 산 초입부터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웅장한 기암이 우리를 맞는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전사 보광전의 용마루 너머로 웅장한 기암이 보이니... 주왕산 수문장이면서 주왕산의 상징으로 대접받는 기암(旗岩)은 마 장군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토벌대가 주왕을 제압하고 이 봉 꼭대기에 대장 깃발을 꽂았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바위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전사에서 주방천을 따라1.3km 정도가면 제1팔각정 앞 삼거리에 도착하니, 좌측 방향은 망월대, 급수대, 학소대, 1폭 쪽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는 길이고.. 우측길은 주왕암과 주왕굴을 들른 뒤 제1폭포로 갈 수 있는 등로지만 입산통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고... 이상한 것은 평일은 통제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토,일요일은 개방 한다고 한다.ㅋㅋ&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왼쪽 길은 제1폭포로 곧장 이어진다. 좌측 자하교를 건너 300m쯤 올라가니 우람한 나한봉에 안겨있는 주왕암이 나온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암자로 여기서 200m 정도 더 오르면 전설의 주왕굴을 만날 수 있지만 그냥지나친다.&amp;nbsp;&amp;nbsp;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왕암 앞에서‘자연산책로’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산길을 따른다. 길은 평탄하다. 편안한 차림으로 주변 경관을 둘러 볼수있는 트레킹코스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왕암에서 급수대로 가는 중앙지점 왼쪽편에 달을 보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하는 망월대가 보인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5명이 앉을 정도로 편한 자리여서 이곳에서는 병풍바위, 연화굴 등을 두루 살필 수 있고 드높은 가을 하늘도 마음껏 바라 볼수 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망월대에서 50m정도 가다보면 깎아지른듯한 웅장함이 나를 압도하는 급수대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13:16)&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급수대는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23.uf.daum.net/image/17078B184B093B429C550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 MARGIN-LEFT: 8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 및 각부 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라 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경사 90도의 가파지른 절벽의 모습을한 학소대는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이다. 해방전 이 정상지점에 청학 백학 한쌍이 살고 있었는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어느날 일인(日人)포수가 백합을 쏘아 잡아 버린후,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옛 보금자리만 남아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2팔각정 앞에서 나무계단으로 200m정도 올라 웅장하고 절묘한 바위 사이의 협곡을 빠져나가면 문득 물소리가 들려오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선녀폭포라고도 불리는 주왕산의 제1폭포다. 낙차는 그리 크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공명 역할을 하고 있어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제법 크고, 주변의 풍광이 웅장하다. 주방천을 따라 펼쳐지는 3개의 폭포는 하나같이 모양이 특이한데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니. 여기에 울긋불긋 단풍까지 더해지면 가히 천하절경일것 을...&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위 풍경을&amp;nbsp;줏어 담으며 1km정도 더 올라가면 길이 두 갈래다. 오른쪽 길을 따라 200m 들어가면 오솔길끝에 걸려있는 제2폭포를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만날 수 있고...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2단 폭포다. 가을 가뭄에?... 그냥 지나간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잠시후 우측으로 열린 후리메기방향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정목을 지나50여m 더 오르면 제3폭포다. 여름한철 위풍당당한 폭포의 위력은 사라졌지만 검푸른 물빛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lt;/SPAN&gt;&lt;BR&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1.uf.daum.net/image/1423831A4B093BC2CCF8C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left;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단으로 쏟아지는 이 폭포는 일명 쌍폭포로도 불리는데 전체 높이가 22m로 주왕산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단과 하단 조망처에 각각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물의양이 좀 많았드라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선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진행방향으로 오르면 내원동으로 느지미재로 이어 가든지... 좌측 금은광이로 너구동으로 이어지지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되돌아 내려와 조금전에 지나쳐온 후리메기입구에서 좌측계단으로 후리메기쪽으로 오른다.(13:34) 대전사에서 3.4km 지점이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왕산이3.2km, 가메봉이3.4km,거리다. 사창골은 적막하기 그지없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 미답의 사창골! 이제 새로운 감동을 맞으러 갑니다.&amp;nbsp;오가는 길손도 없고 고요한 계곡에는 단풍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낙엽되어 계곡을 메우고... 낙엽쌓인 계곡에는&amp;nbsp; 짙은 낙엽향이 가득하고 호젓한&amp;nbsp; 산길에는 고운 단풍이 살포시 내려 앉는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숲으로 걷는길은 붉고 노란 잎새의 융단을 깔아놓아 포근한 발걸음이 우아하고... 폭삭거리는 낙엽길은 마치 구름위를 걷는 것처럼&amp;nbsp; 몸이 둥둥거립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름다운 계곡풍경을&amp;nbsp; 사진으로도 담지만 가슴으로도&amp;nbsp; 고이 담는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졸졸졸 흘러내리는 계곡물에도 오색의 빛깔로 채워지며 가을속을 흘러 내린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등로옆 언덕에는 흘러내리든 물이 얼어 고드름이되어 달려있고... 잠시후(13:46)후리메기삼거리에 도착하니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곳에도 통제구역 프렌카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 걸렸다. 어디로 가란말인가?.. 그냥 넘어간다. 미안한 마음은 프랑카드 뒤쪽에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던져두고... 10여분을 호사스럽게 걷다보니...&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생살이 높 낮이가 있듯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신선되어 수월하게 놀았으니 이제부터 사창골 계곡이 끝나고 제법 가파른 경삿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기다립니다. 이정목을 보니 주왕산이2.0km 남은 지점입니다.(13:57) 오르는 등로에 쇠파이프로 안전손잡이를 설치 해 두어 한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월지만. 후리메기에서 칼등까지는 등로 보수작업이 한창이고...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재를 등로에 쌓아둔 탓에 조심스럽지만. 아마 내년쯤에 다시 오면 계단으로 조성된 편안한 등로를 걷게 될 것이다. 철계단길 오르고 능선에 올라서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 나무계단 오르다 능선에 올라서고.. 잠시 내림길인가 싶더니 또 오름길... 어쩜 등산길은 이렇게도 인생살이와 흡사한지...ㅎ&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4:33드디어 주왕산정상석이 반깁니다. 정신을 수습하고 돌아보니 뒤따라 오는 일행이 아무도 없습니다. &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26.uf.daum.net/image/154E021E4B093C73048DF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 MARGIN-LEFT: 8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누라도 보이질않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기다립니다. 전화도 해 봅니다. 연결이 않됩니다. 춥습니다. 윈드쟈켓을 꺼내입습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참후에야 누라님 나타납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화가났나 봅니다. 횡~하니 내려갑니다.ㅎ 뒤따라 가 보지만 보이질 않습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제부터 하산길입니다. 하산길 우측 잡목사이로 지나온 절경들이 히끗 히끗 보입니다. 잠시후 (15:04)에 주왕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있는 전망대에 섯습니다. 전망대에서 조망은 파노라마처럼 죽 휘둘러 한눈에 보이는 이곳 주왕산 일대 산세 조망이 장관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장군봉,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 그리고 폭포지대가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왕산(周王山, 720.6m)이란 이름은 신라시대에 주원왕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수도하였다는 전설에서 호칭되었다고도 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의 진나라에서 피신하여 온 주왕이 이곳에 웅거하였다고 해서 불리워졌다고도 하며,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얽혀 있지요.&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당나라 덕종12년에 당나라 왕손인 주도가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군사 1만명을 이끌고 후주천왕(後周天王)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자칭하고 반기를 들고 수도 장안을 공격하던 중 곽의자에 패하게 되자 요동과 강원도 지역을 거쳐 진성&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의 진보면-청송 교도소가 있는 곳)땅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이 매우 험하고 깊다는 말에 따라 이 곳에 숨어 주민들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았고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하니.&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신라 조정에서는 주왕이 천혜의 요새인 주왕산에 숨어든 것을 알아내고 마일성장군과 그의 5형제들에게 주왕 토벌을 명령했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왕은 기암에 기를 꽂고 마씨 형제들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자 주왕굴에 숨었다가 최후를 마쳤으며,그에게 대전(大典)이라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에는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 되었다고.., &quo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민초들은 이 전설을 믿고 있었지요.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22.uf.daum.net/image/126A661C4B093D36144F7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left;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런데, 1990년대 말 청송의 향토사학자인 김규봉 씨는 920년 낭공대사가 쓴 &lt;주왕사적&gt;이라는 비기를 해독했는데 그 기록에 의하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왕산 전설의 실체는 신라의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나 반란을 일으켰던 김주원, 김헌창, 김범문으로 이어지는 3대의 비참한 이야기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결국 주왕은 반란을 일으켰던 신라의 김헌창이며 후세에 반란자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당나라를 끌어들인 것이라 설명합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망대에서 대전사로 내려오는 등로도 예전에 가파른 등로는 데크를 설치하여 산행하기에 많이 좋아졌고, 데크길 능선을 내려가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 앞에 펼쳐지는 암봉이 웅장하고 멋스럽다. 가파른 능선을 내려오니 자하교 삼거리(15:21) 올라갈때 보았든 입산통제 프랑카드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설치된 곳 이다. 주방천 물길따라 잠시후엔 대전사에(15:25)닿습니다. 참으로 좋은 곳에 절묘하게 자리집은 절집입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정상에서 잃었든 누라도 경내에서 봅니다. 대전사 보광전에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이네요. 혼자 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저의 산행경험으로 걷는 맛이 최고인 오늘 이 사창골 산행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늘도 자연 그대로의 또하나의 새로운 산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세속에 찌든 머리속을 말끄미 씻어내고 이승으로 돌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온것같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산행코스를 만들어주신 천하일봉임원진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함께한 산우님들 가정에도 늘 평화와행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2009/11/19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con.sie.net/image/man/bow/bow21.gif&quot;&gt;&lt;FONT size=3&gt;&lt;반갑습니다, 편히 쉬어가세요,&gt;&lt;/FO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4.uf.daum.net/image/1207BA214B07911D71981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5&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5&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경북 청송/주왕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smj4210/15715755"/>
		<id>tag:blog.daum.net,2009:smj4210.15715755</id>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20T11:19:49Z</updated>
	    <published>2009-11-20T11:19: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id=tx_entry_8087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75513134B06009913BBA4&quot; width=759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763&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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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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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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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치인 金大中의 遺産</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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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17T15:40:43Z</updated>
	    <published>2009-11-17T15:40:4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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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title2&gt;&lt;B&gt;지역갈등, 國論분열, 포퓰리즘 확대 심화시켜&lt;/B&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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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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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544 background=/image/bignews_box00.gif&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pt&quot; color=#000000&gt;&lt;B&gt;&lt;FONT color=#808000&gt;金大中은 한국사회의 모순·갈등구조를 지역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크게 두 파로 분열시켜 놓았다. 그것도 보수·진보(혁신)로의 단순한 분열이 아니라, 親北·反美 對 反北·親美, 체제와 反체제 등으로 심각하게 분열시켰다. 金大中 이후 한국정치의 방향과 당면 과제는 그가 주도적으로 심어 놓은 ‘1987년 體制’를 조속히 허무는 일이다.&lt;/FONT&gt;&lt;/B&gt;&lt;BR&gt;&lt;BR&gt;&lt;FONT color=#000ca3&gt;李大根&lt;/FONT&gt; 성균관대 명예교수&lt;BR&gt;⊙ 1939년 경남 합천 출생.&lt;BR&gt;⊙ 서울대 상과대 졸업. 미 뉴욕주립대 경제학 석사, 서울대 경제학 박사.&lt;BR&gt;⊙ 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장, 경제사학회장,&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성균관대 무역대학원장 역임. 현 성균관대 명예교수.&lt;BR&gt;⊙ 저서 : &lt;성장의 허상 외채의 실상&gt; &lt;해방후 1950년대의 경제&gt; &lt;새 한국경제발전사&gt;(공저) 등.&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6.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6.gif&quot; width=18&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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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
&lt;DIV class=subArtcl id=articleBody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1960년대 이후 반세기에 걸친 故(고) 金大中(김대중·DJ) 前(전) 대통령의 정치행적을 가늠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功過(공과)를 가려 올바른 평가를 하려면 책으로도 족히 몇 권은 될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단지 이 글은 그가 한국사회에 남기고 간 행적 가운데 특히 ‘지역모순’의 심화를 통한 한국사회의 모순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에 대해 필자의 평소 생각을 정리해 본 것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인류 역사의 전개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는 正統(정통) 마르크시즘에서는 한 사회의 성격을 오로지 ‘계급모순’ 한 가지에 의해 규정한다. 즉 한 사회의 기본모순은 계급모순 한 가지만으로 설정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古代(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 소유주와 노예 간의 모순관계, 中世(중세) 封建制(봉건제) 사회에서는 지주와 소작인 간의 모순관계, 그리고 近代(근대) 資本制(자본제) 사회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모순관계 등에 의한 규정이 그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사회의 계급모순을 타파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無(무)계급사회를 실현한 것이라고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30년대 이후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마오쩌둥(毛澤東)은 러시아의 경우와는 달리 두 개의 기본모순을 설정하고 있다. 하나는 국내 지주계급을 대변하는 장제스(蔣介石)와의 투쟁에서 제기되는 계급모순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침략자인 日本(일본) 제국주의와의 싸움에서 제기되는 민족모순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따라서 중국 혁명은 내부적인 계급모순의 해결과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와의 민족모순 해결이란 두 개의 과정으로 전개되고, 이런 관점에서 그는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半(반)식민지 半(반)봉건사회’라는 것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49년 中共(중공) 정권 수립 이후, 중·소 두 나라 간에 제기된 이념적 대립·갈등은 이런 사회적 모순 관계를 보는 양국 간의 입장 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1958년경에 절정에 이르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중·소 이념투쟁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은 이 무렵 ‘主體思想(주체사상)’이란 독자적 理論(이론)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중·소 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립을 취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민족모순을 강조하는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4자 필승론과 비판적 支持論&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북한의 이런 민족모순 강조 추세는 1980년대 南韓(남한)의 ‘민주화 運動(운동)’에 그대로 흘러들었다. 기실 한국의 경우도 중국처럼 지난날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경험에 비추어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란 두 개의 기본모순을 띠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민족모순을 앞세우는 북한의 영향은 당시 남한 내의 운동권을 이념적으로 兩分(양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즉 계급모순을 앞세우는 기존의 ‘계급혁명파(PD계열)’와 새로이 민족모순을 강조하는 ‘민족해방파(NL계열)’로의 분열이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主思派(주사파)’의 득세와 함께 후자의 NL계열이 점차 주도권을 잡게 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0년대 중반 남한 내의 민주화 운동은 절정에 달했다. 운동의 담당세력은 이념적으로는 각양각색이었으나,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하자는 슬로건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들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정부·여당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盧泰愚(노태우)의 ‘6·29 선언’과 헌법 개정(6共 헌법), 그에 따른 제13대 대통령 직선을 이끌어 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임하여, 여당(民正黨)은 일찌감치 노태우 후보를 내세웠으나, 진작 민주화 세력이라 할 야당(民主黨)에서는 이에 맞설 후보를 선출하지 못했다. 金泳三(김영삼·YS)계와 金大中(김대중·DJ)계로 갈라진 야당이 어느 한쪽도 후보를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결국 黨內(당내) 후보 競選(경선)에 자신이 없었던 DJ계가 일제히 탈당, 부랴부랴 신당(平民黨)을 만들었다. DJ는 스스로 민주주의 대원칙인 경선제도를 파기하고 야당 분열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런 맹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자 출마의 길을 걸은 DJ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거에 임하는 DJ의 기본전략은 이른바 ‘4자 必勝論(필승론)’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 노태우(민정당)·김영삼(민주당)·김종필(공화당)에다 자신이 참여하는 4자 선거로만 된다면 자신의 당선은 따놓은 堂上(당상)이나 다름없다는 자신감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리고 4자 필승을 위해서는 선거를 철저히 지역분할구도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것, 즉 노태우는 경북, YS는 경남, JP는 충청, 그리고 자신은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한다면, 數的(수적)으로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4자 필승론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리하여 선거 내내 충청 기반의 JP가 도중 下車(하차)하는 일이 벌어질까 하여 전전긍긍했다. 이는 충청표가 다른 후보(노태우나 YS)에게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보면, 대선 출마를 위한 DJ 평민당은 처음부터 ‘호남지역당’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지역당의 출현&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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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1/0911_239_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정치에 지역갈등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1987년 제13대 대선 직전 한 집회에 참석한 김대중씨와 김영삼씨가 결별을 예고하듯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지역당으로서의 평민당의 창출이 DJ로서는 1980년대 민주화 시대에 들어 최초의 선택이었다. 1987년의 13대 대선이 DJ의 의도대로 얼마나 지역분할구도로 치러졌느냐 하면, 경남 지역 배경의 YS 후보는 호남에서는 법에 보장된 선거유세는커녕 발도 제대로 들여놓지 못하고 쫓겨날 정도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7년 대선 투표결과를 보면, DJ는 그의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유효투표의 88.4%를 얻어, 경쟁자인 노태우 후보의 경북지역 득표율 68.1%, YS의 경남지역 득표율 54.5%나 JP의 충청지역 득표율 34.6%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제3지역인 서울·경기·강원·제주 지역 득표율에서 DJ는 노태우 36.9%, YS 28.5%에 못 미치는 26.5% 득표로 3등을 했다. 그의 ‘4자 필승론’은 완전히 無色(무색)해졌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7년 DJ 평민당의 출현을 놓고 우리가 그것을 지역정당론으로만 간주해서는 안된다. 당시 DJ의 선거전략에는 앞의 ‘4자 필승론’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본 전략이 있었다. 소위 ‘비판적 지지론’(비지론)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獨自(독자) 후보를 낼 입장이 못 된 在野(재야) 내지 反(반)체제 진영에서는 대선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래도 上位(상위) 4명의 후보 중에는 자기네와 이념적으로 가까운 DJ(평민당)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이것이 당시 운동권의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으로 나타났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4자 필승론과 비판적 지지론은 1987년 대선에서 DJ(평민당) 필승을 위한 양 날개와 같은 것이었다. 호남 중심의 ‘지역정당론’을 배경으로 前者(전자)의 4자 필승론이 DJ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이었다면, ‘이념정당론’을 배경으로 하는 後者(후자)의 비판적 지지론은 그를 위한 충분조건과 같은 것이었다. 선거에 임하는 DJ(평민당)로선 이 두 가지 조건의 充足(충족)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고 할 수 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지역모순과 계급·민족모순의 結合&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DJ 평민당은 이처럼 특정 지역(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게다가 특정 理念(이념)의 지지까지 받는 그야말로 二重的(이중적) 성격의 특수한 정당으로 태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특수한 성격’이란 사회모순론의 관점에서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띤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하나는 기존의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란 두 가지 기본모순에다 ‘지역모순’을 정치의 前面(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또 하나의 基本(기본) 모순으로 格上(격상)시켰다는 점, 그리하여 한국사회로 하여금 계급·민족·지역의 세 가지 기본모순을 떠안게 만들었다는 의미에서의 특수성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두 번째는 기존의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지역모순에다 정치적으로 결합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어떤 정당이 특정 지역을 배타적 지지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 성격과 함께, 특정 정치이념-그것도 과격한 反(반)체제적 성격-의 배타적 지지를 받는 이념정당의 성격을 동시에 띠게 됐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특수성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로써 DJ 평민당의 출현은 한국 정당정치의 성격을 뒤바꿔 놓았음은 물론, 한국사회의 모순 구조까지도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필자는 1987년의 ‘6월 항쟁, 6·29 선언’과 철저한 지역정당구조로 치러진 제13대 대선이 그 후의 한국사회의 構造(구조)와 性格(성격)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고, 이를 중시하여 “1987년 체제”라고 부르고자 한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7년 DJ 평민당의 출현은 한국정치사와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DJ가 이끄는 정당은 그 이름이 어떻게 바뀌든 선거 때마다 호남표의 90~95%를 휩쓸고, 이념적으로는 反(반)체제·좌경세력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여기서 진지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90% 이상의 호남표의 이념적 성격이다. DJ가 이끄는 정당은 언제나 민노당 등 다른 이념정당과 밀접한 정책제휴를 해왔다고 하면 민노당 지지표와 호남표의 성격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DJ의 유산은 ‘분열’&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DJ 정치의 일차적 유산은 지역모순과 계급모순을 한데 묶어 한국사회의 모순·갈등구조를 지역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크게 두 파로 분열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보수·진보(혁신)로의 단순한 분열이 아니라, 친북·반미 對(대) 반북·친미, 체제와 반체제 등으로 ‘심각하게’ 분열시켜 놓았다는 사실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심각성은 이제 정부의 공권력으로도 친북·반미, 반체제세력의 불법 시위나 난동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른 정도라고 봐야 한다. 韓美(한미) FTA 반대투쟁, 광우병 파동·촛불 난동사건, 그리고 용산 철거민 사태나 쌍용자동차 점거사태 등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심각성의 배경은 DJ 정치가 계급·민족모순과 지역모순을 한데 묶어놓음으로써 그러한 사회적 모순·갈등구조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수단(공권력)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둘째로는 체제수호를 위한 공권력 無力化(무력화)에 직면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무엇일까? 정치적 포퓰리즘에 기대는 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1987년 체제’ 성립 이후 한국정치는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각종 포퓰리즘에 시달려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중남미 형의 勞組(노조) 포퓰리즘을 비롯하여 특정 지역 포퓰리즘, 여성 포퓰리즘, 야당 포퓰리즘, 심지어 對北(대북)사업(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포퓰리즘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는 포퓰리즘 천국으로 변했다고나 할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셋째로는 남북관계 인식의 틀을 바꾸어 놓고, 그에 따른 국론 분열을 심화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이 계급모순에 의한 순수 이념적 대립에 주어졌으나, 1987년 체제 이후에는 거기에 지역모순이 결합함으로써 단순한 左右翼(좌·우익) 대립을 뛰어넘는 친북·반미 대 친미·반북 또는 체제·반체제 간의 대립으로 확대, 심화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한미 FTA 체결, 北核(북핵) 문제, ‘6·15선언’의 수용 문제 등을 놓고 벌이는 양측의 대결양상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남한 정치에 알게 모르게 북한의 영향력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 역시 지역·이념을 한데 묶은 DJ 정치가 가져온 歸結(귀결)이라고 봐야 한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문제는 DJ 이후 한국정치의 향방은 어디이며,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DJ 이후 한국정치의 방향과 당면 과제는 무엇보다 먼저 그가 주도적으로 심어 놓은 ‘1987년 체제’를 조속히 허무는 일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아래 한국의 정치문화와 사회질서를 정상화하고 한 단계 격상시켜야 한다. 또 지역 중심의 정당구조도 조속히 허물어야 하고, 그를 통해 지역모순을 계급·민족모순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끝으로 DJ 식의 낡은 거리(광장) 정치, 시위(데모) 정치로부터 벗어나 의사당(옥내) 정치, 토론(정책대결) 정치로 레벨 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lt;FONT color=#ffffff&gt;&lt;B&gt;계속&lt;/B&gt;&lt;/FONT&gt;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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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거 30년만에 처음 공개하는 朴正熙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의 비망록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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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17T09:44:14Z</updated>
	    <published>2009-11-17T09:44: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lass=big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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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title1 vAlign=bottom&gt;&lt;B&gt;서거 30년만에 처음 공개하는 朴正熙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의 비망록&lt;/B&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 vAlign=bottom&gt;
&lt;TD height=12&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대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소제목 테이블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7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title2&gt;&lt;B&gt;“60만 대군을 가진 우리가 4만명의 미국에 의존한다면 창피한 일”&lt;BR&gt;(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방침에 자주국방을 강조하면서)&lt;/B&gt;&lt;/TD&gt;&lt;/TR&gt;
&lt;TR&gt;
&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소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 기사요약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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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5.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5.gif&quot;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 background=/image/bignews_box00.gif&gt;&lt;FONT style=&quot;LINE-HEIGHT: 13pt&quot; color=#000000&gt;⊙ “카터의 인권문제 제기는 졸렬,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목사나 신부가 할 일”&lt;BR&gt;⊙ “독도에 기관포 설치해서 일본 비행기에 위협사격을 가하라고 했소”&lt;BR&gt;⊙ “이 사람아, 우리가 核을 개발하지 않겠다는데 무슨 협박이냐?”&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核개발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하겠다는 하비브 특사에게)&lt;BR&gt;⊙ “김대중 사건은 새카맣게 모르는 사건인데 누명 써”&lt;BR&gt;⊙ “시간 안 지키는 것, 부녀자들 동네가 떠나라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것,&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초상 때 너무 곡을 하는 것 등을 고쳐야”&lt;BR&gt;&lt;BR&gt;&lt;FONT color=#000ca3&gt;李炯均&lt;/FONT&gt;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lt;BR&gt;⊙ 1939년 서울 출생.&lt;BR&gt;⊙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lt;BR&gt;⊙ 경향신문 논설위원·정치부장·편집국장·출판담당 이사, 한국프레스센터 이사,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민주평통자문위원 역임. 현 관악언론인회 회장, 인하대 객원교수.&lt;/FONT&gt;&lt;/TD&gt;
&lt;TD vAlign=top width=18 background=/image/bignews_box06.gif&gt;&lt;IMG height=1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box06.gif&quot; width=18&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8&gt;&lt;/TD&gt;
&lt;TD width=544&gt;&lt;/TD&gt;
&lt;TD width=18&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기사요약 끝--&gt;&lt;!-- 글쓴이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90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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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TOP: 6px&quot; vAlign=top align=right height=5&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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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vAlign=to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글쓴이 끝--&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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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4px; 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3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lef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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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jpg&quot; width=320&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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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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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2pt&quot; color=#2f73ba&gt;박정희 대통령이 기능올림픽 입상자들과 환담을 나누는 것을 취재하고 있는 필자(오른쪽에서 두 번째).&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0&gt;&lt;IMG height=0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space.gif&quot; width=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subArtcl id=articleBody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대한민국을 18년간 통치하면서 조국근대화의 기반을 닦아 놓았던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30년이 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필자는 경향신문 정치부 차장이던 1974년 4월부터 1978년 11월까지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을 취재했다. 필자는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만찬·간담회나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비공식 브리핑 등을 현장에서 메모했다가 신문사로 돌아와 正書(정서)한 것을 지금까지 보관해 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비망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자료들은 박 전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이념, 정책방향, 개인적인 생각 등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년을 맞아 당시의 비망록을 최초로 공개한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注: 북한과 중국은 당시의 표현을 살려 북괴·중공으로 표기했음. 질문자 이름을 특별히 표기하지 않은 경우 질문자는 필자이며, “ ” 안의 발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임.)&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 padding-ight: 5&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필자의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의 비망록. 청와대에서 취재한 내용을 속기했다가 신문사로 돌아가 정서한 것이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6년 10월 20일 청와대 출입 기자단과 오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중앙일보 梁泰朝(양태조) 기자의 파리특파원 발령 및 동양통신 葛天文(갈천문) 기자의 정치부장 승진 축하를 위해 마련된 자리.&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통치에서 중요한 것은 養民과 敎民”&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2.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국산 야포의 조준경을 살펴보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박정희 대통령: “양 기자의 특파원 전출을 축하합니다. 축배를 듭시다. 佛語(불어)는 할 줄 알겠지요? 근혜하고 불어로 말해 봐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통령께서 프랑스 방문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초청이 와야 가지. 초청이 와도 못 가요. 파리는 사진으로 봐도 깨끗한 도시지.”&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방위산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탱크를 우리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소. 또 이와는 별도로 미군이 쓰던 M48 탱크에 105㎜ 포를 달고 있어요. 지금 ○○공장에서 일부 만들고 있는데 북괴가 가진 탱크는 문제도 안돼요. 독자적인 개발을 위해 서독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막고 있소. 우리가 서독 기술을 도입하니까 이제 와서 M60 탱크를 주겠다고 합디다. 미국은 우리가 하면 못하게 하고 개발하면 주겠다고 심술을 부려요. 북괴는 현재 탱크를 1년에 40~60대 만드는 것 같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얼마 전에 프랑스 르몽드紙(지)와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떠셨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친구(르몽드지 퐁텐 주필을 지칭) 만나보니 좀 좌경화한 지식인 같습디다. 서면 질문서를 낸 다음에 보충 질문을 하겠다고 해서 만나 주었더니 이것저것 막 물어봅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서면 질문에서도 아니꼬운 질문을 몇 가지 뺐어요. 첫째는 김일성과 만나지 않겠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북괴와 미국이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는 질문이에요. 밉광스러운 질문을 하더군.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또 金大中(김대중) 사건의 상세한 경위를 설명해 달라고 해서 ‘그건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 구라파 신문에서도 1년 이상 보도했는데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고 말하고 ‘내가 얘기해 주겠다’고 한 후 설명해 주었어요. 일본에 있는 김대중을 어느 단체가 서울로 데려왔는데 외국에서는 한국 정보기관이 했다는 것이고,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것이며, 이 문제로 인한 韓日(한일) 간의 문제는 일단락된 것이다’라고 설명했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퐁텐 주필은 무엇이든지 우리를 북괴 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어요. TBC(당시의 동양방송)의 奉斗玩(봉두완)씨가 퐁텐을 데리고 지방시찰을 했어요. 도중에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운동회를 보여 달라고 해서 가 보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떡과 과자, 밥을 쌓아 놓고 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거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것 아니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봉두완씨가 화를 내면서 ‘여기에 오는 것은 당초 스케줄에도 없던 것인데 무슨 소리냐?’고 쏴붙였다고 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가 퐁텐에게 ‘북한 사회가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퐁텐은 ‘내가 보기에는 잘살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북한 주민은 그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대답합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大豊(대풍)으로 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어떨까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지 않아도 崔珏圭(최각규) 농수산부 장관에게 연구해 보라고 했어요. 막걸리를 만들어도 문제가 있어요. 다음에 쌀이 모자랄 경우 막걸리를 못 만들게 하면 정부가 朝令暮改(조령모개)라고 비난을 받게 될 거요. 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1년에 190만석이 소비되지요. 대신에 밀가루 수입이 줄어들고 또 농민 건강에도 좋을 거요. 지금 시판하는 막걸리는 배탈 나기 좋지.”&lt;BR&gt;&amp;nbsp; &lt;BR&gt;&amp;nbsp; ―忠孝(충효)사상에 관해 질문.&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학교에서 배운 것은 모두 지키게 마련이에요. 우리가 5000년의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바탕이 있어요. 그냥 놔두면 미국의 풍속을 배워 충효사상이 퇴색합니다. 국민을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養民(양민)이고 둘째가 敎民(교민)입니다. 백성을 먹여살려야 하지만, 또 가르쳐야 하고 정신면에서 지도해야 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컬러 텔레비전 방영은 언제쯤 시작될까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MBC, TBC 모두 컬러 방영이 준비되어 있지? 컬러 텔레비전을 방영 못해 안달이 났겠지(일동 웃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농촌에는 흑백 텔레비전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바꾸면 농가 부담이 늘어요. 애들이 졸라서 안 살 수 없어요. 몇 해 지나면 자연히 가능해질 것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가 지금 정책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 컬러 텔레비전과 자동차예요. 자동차도 풀어 놓으면 너도나도 다 타고 다닐 겁니다. 지금 현대자동차에서 수출하고 있는데 실질소득보다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송효빈 한국일보 기자: 이번에는 改閣(개각)이 꼭 있을 것 같습니다(일동 웃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개각에 왜 그리 관심이 많소? 송 기자, 장관 시켜줄까? 문공부 장관 어때요? 그런데 문공부가 힘든 자리예요. 언론을 다루고 종교문제, 심지어 문화재 문제까지 다뤄야 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문화재 보수사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문화재는 3, 4년만 있으면 거의 다 정화되고 내년에 중요한 것은 다 돼요. 콘크리트로 만들어야 오래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로 만들어서 後世(후세)에 가면 거의 없어져요. 지금 계란색을 칠하고 있는데 근혜 아이디어예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7년 3월 3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오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근혜 큰 영애 참석&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카터의 인권문제 제기는 방법이 졸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3.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76년 3월 1일 서울 명동성당에 참석했던 재야인사들이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가두로 진출하고 있다. 이희호(왼쪽에서 두 번째) 여사의 모습도 보인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시국 관련 구속자 석방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무장관 보고가 ‘교회에 尹潽善(윤보선)씨 부인(孔德貴 여사-편집자 주), 또 李姬鎬(이희호·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편집자 주)씨 등이 모여 무엇을 한다고 하기에 막았는데 외신기자들에게 유인물을 주었다’고 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에게 보내는 건의문을 뺏어 온 것을 보았는데 ‘박정희 귀하’라고 써서 나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입디다. 또 ‘귀하가 하는 정치는 나라를 망치는 정치’라고 썼습디다. 옛날 같으면 혼을 내라고 했겠지만 미친 사람들 하는 짓이라 웃고 말았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문제는 외국에 기대는 事大主義(사대주의)입니다. 지금도 미국에 편지를 보내 고자질하고, 전화를 걸고 외신기자들을 집에 초청해서 헐뜯고 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작년 크리스마스 때 구속자들이 석방될 것이라고 축하파티를 열더니 안되니까 카터가 취임하면 석방될 것이라고 믿고들 있는데, 어림도 없어요. 카터가 압력을 넣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인데 손톱도 안 들어갈 겁니다. 그들이 외국에 대해 우리나라를 헐뜯고 하니까 우리나라를 업신여기는 거예요. 미국이 자기들 조국인 모양으로 아는데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국력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큰 영애(박근혜): “지금까지 아버님이 하시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반대를 받더라도 하고 난 다음에는 잘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當代(당대)의 평가보다도 후세 史家(사가)들의 평가를 염두에 둡니다. 당대에 영합하려다가는 아무 일도 못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KBS 연속극 ‘왕도’가 끝났는데 그 내용은 世宗(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의 얘기예요. 당시 集賢殿(집현전) 학자들은 모두 반대하고 申叔舟(신숙주)만 찬성했어요. 학자들의 반대로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무슨 글을 쓰고 있겠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미국에서 카터 행정부가 출범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카터가 취임한 지 한 달 좀 넘었는데 그가 도덕성을 부르짖고 있으나 미국 자체 내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소련(지금은 러시아)의 인권을 얘기했다가 반발을 받고 있는데 ‘SALT(전략무기제한협정)를 앞두고 상대국의 신경을 돋워서 일이 될 게 없어요. 인권문제를 얘기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봐서 돌려서 얘기해야지 그런 식으로 하면 안돼요. 방법이 졸렬해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목사나 신부가 할 일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인권 얘기를 하지만 왜 크메르(캄보디아-편집자 주)의 수백만 명 학살이나, 월남의 인권은 외면합니까. 공산국가라고 해서 못한다면 왜 공산국인 소련이나 체코 얘기는 합니까. 분명히 얘기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인권문제가 없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얼마 전 서울시에서 행정수도 건설 계획을 밝혔는데 어떻게 되는 건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아직 후보지를 정한 바 없으나 여기저기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실무자 얘기로는 백지에 계획을 세워 후보지에 그대로 옮겨 건설하면 된다고 합디다. 계획을 세우는 데 2, 3년은 걸립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서울시청에서 그 계획을 밝힌 것은 서울시 인구가 매년 마산시만큼 늘어나 답답해서 숨통을 트자는 뜻에서 한 것이요. 심리적 효과도 있을 테고 또 장기적으로 보면 수도를 옮기는 수밖에 없어요. 서울 인구를 800만명 정도로 묶어 놓고 수도를 옮겨야 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올 봄에 임시국회가 열리면 법을 만들어 이 법으로 地價(지가)를 묶어 놓고, 나중에 후보지를 정해 이 법 공포 당시의 지가에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서 사들이면 돼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후보지를 일반에서는 어디로 봅니까? 신탄진은 공장이 있고 주택들이 밀집해 있어서 안되고, 진천은 물이 없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행정수도를 세워도 한꺼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부처부터 들어간 후 나중에 청와대가 들어가면 돼요. 또 한곳에 모두 모일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건물을 지어 8차선의 하이웨이로 5분 정도의 거리로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어요.” &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4.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육사에 입학한 큰 아들 박지만(왼쪽)씨와 만나는 박정희 대통령.&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일본에서 새 수상이 들어서면 한 번씩 하는 얘기예요. 앞으로도 계속 분쟁거리로 남아 있을 겁니다. 일본 신문사 비행기가 오는데 격추시킬 수도 없어요. 비무장 비행기를 격추시키면 더 큰일이 돼요. 물론 일본 전투기가 오면 쫓아내야 하지만. 그래서 독도에 기관포를 설치해서 일본 비행기에 위협사격을 가하라고 했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만 군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는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만이가 육사에 들어가니 청와대 식구가 또 하나 줄었어요. 어제 육사에 가 보니 얼마나 규율이 엄하고 선배들이 당당한지 신입생들은 기가 죽어 있더군. 육사에서 4년 동안 배우면 일생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가 육사 2기인데 그때에는 한 반에 나이 많은 사람도 있고 해서 규율이 지금 같지 않았어요. 지만이가 육사 입교 전에 머리가 덥수룩해서 머리를 깎으라고 해 나중에 빡빡 깎고 왔는데 눈물이 좀 핑 도는 것 같습디다. 어제 내 옆에 와서 뭐라고 ‘꽥’ 소리를 지르던데 아주 달라졌어요(KBS 기자에게 육사 입교식 때 육사 생도 정장을 한 지만 군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방순시에 대해 질문.&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번에는 전국을 죽 돌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 군데 돌고 올라와서 중앙의 일을 보다가 또 내려가는 식으로 하려고 해요. 이제는 예전과 달라서 죽 여행을 하면 힘이 들어.”&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7년 3월 11일 金東祚 외교특보, 미군 철수대책 보고&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77년 3월 9일 카터 美(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을 4~5년에 걸쳐 철수할 계획임을 공표했다. 다음은 林芳鉉(임방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한 내용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동조 특보: “앞으로 미국이 공식으로 협의를 요청해 오면 각하가 지난번 기자회견에서 제의하신 불가침협정 수락 후 미군 철수문제를 거론하고 북괴가 이것을 수락할 때까지 미군이 있어 달라고 요청하면 어떻겠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정희 대통령: “여보시오. 카터 발언이 공식통보나 다름없는데 이제 무슨 그런 얘기를 하는 거요? 기정사실로 알고 자주국방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나 국방부에 알아보기나 하시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7년 3월 15일 주한미군 철수대책 정부·여당 연석회의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오프 더 레코드)&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미군이 간다고 김일성이 쳐들어온다는 생각은 잘못”&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5.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박정희 대통령: “카터의 얘기를 일응 공식통보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그들을 붙잡고 ‘더 있어 달라’,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교섭을 벌이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사실 30년 동안 미군이 이 땅에 있었으면 오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더러 가지 말라고 야당 등을 내세워 데모를 벌이고 해야 소용없는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국민들이 미군이 간다고 불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 때 압제를 받았고 6·25 후 미국의 정치·문화·제도가 들어와 국민들 사고방식 저변에는 미국의 생활습관이 물들어 있어요.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정리할 때도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진통을 겪더라도 이것을 뿌리 뽑으려 하던 참인데, 마침 미군철수를 계기로 순리에 따라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미군이 간다고 金日成(김일성)이가 쳐들어온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김일성은 미군이 있어도 자신이 있으면 쳐들어오는 것이고, 또 미군이 없어도 자신이 없으면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물론 우리는 미군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학생에게 가정교사가 있으면 든든하겠지만 어디 가정교사가 학생 대신 시험을 치러 주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체통을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60만 대군을 갖고 있는 우리가 4만명의 미군에게 의존한다면 무엇보다도 창피한 일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제 우리의 자주국방력도 이만큼 컸고 지금이라도 전쟁을 하면 승산이 있는데 굳이 미군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미군이 나가는 것은 전쟁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모양인데, 그렇게 겁이 나면 휴전선 근처가 아니고 제주도나 부산에 가 있으면 될 것 아닙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가 이번에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첫째는 내가 1월 12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불가침협정을 북괴가 수락하면 미군 철수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제의했는데 이 문제는 일언반구도 없이 불쑥 철군계획을 발표한 때문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둘째는 아무리 계획을 발표한다고 해도 군대를 빼는 것은 군사기밀인데 은밀히 얘기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발표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또 우리나라 인권문제를 얘기하는데 지난 1971년 한미관계가 아주 좋았을 때에도 미 제7사단을 뽑아갔어요. 그때에 김대중 사건이 있었습니까? 무슨 인권문제가 있었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방위세도 미군이 나갈 것에 대비해서 만든 것이오. 우리가 지금 미군을 계속 있어 달라고 조를 바에야 무엇 때문에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방위세를 만들었겠소? 그러나 5년 시한으로 되어 있는 방위세를 그 시한이 끝나도 없애지 않고 세율을 낮춰서라도 계속 존속시켜야 하겠습니다. 미군이 나가면 당연히 작전권을 인수받아야지.”&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7년 6월 19일 한국신문협회·방송협회 회장단으로부터 원호성금을 전달받고 환담&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만사 미국 눈치 보는 것부터 고쳐야”&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曺增出(조증출) 부산일보 사장: 일부 항간에서는 구속자 석방을 하비브가 다녀간 것과 연관 지어 얘기하는데 어떻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에 하비브(전 주한 미국대사, 당시 국무부 정무차관-편집자 주)가 자기들 내부 일로 왔다고 하더군요. 30분간 만났는데 통역시간을 빼면 10여 분간 얘기한 것밖에 안돼요. 인권 얘기는 없었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하비브를 구세주로 아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그런 버릇 고치기 전에는 안됩니다. 만사를 미국 눈치 보는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당당한 자주독립국가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 개전의 정이 있으면 관대한 조치를 언제든지 할 수 있겠지만 사대주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는 항복을 받고 내주겠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李桓儀(이환의) 경향신문·MBC 사장: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보면 1981년 이후의 철군계획은 미정이고 핵무기는 잔류한다고 했는데 그런 것이 있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변인으로 하여금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브리핑해 주어서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1978년에 6000명, 80년에 9000명 빼는데 여기에서 더 적어질지 모르나, 이것은 두고 봐야 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핵 잔류문제는 우리가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해 있고 또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해 주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자체개발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핵우산을 거둬가면서 우리더러 핵개발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이치에 닿지 않는 얘기지요. 이번에 안보협의회 때 이 문제도 어떻게 하려는지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 국군의 정신戰力(전력)과 전투력이 막강합니다. 우리 국군에게 고마운 점이 있습니다. 미군과 30년을 함께 생활해 왔는데 히피도 없고 마약도 피우지 않는 것을 보면 고마운 일입니다. 김일성이가 내려와도 저지할 수 있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金南中(김남중) 전남일보 사장: 미국 내 反韓(반한)단체들은 얄미운 놈들입니다. 정부에서는 反美(반미)감정이 고조될까봐 신중히 하고 있는데 신문에서 비판해야 합니다. 미국 내에 한두 명이 간판만 짊어진 반한단체가 34개나 된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미국이 본래 유럽에서 종교적·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 피난을 와 만든 나라이기 때문에 건국정신으로 보아 망명처를 제공하는 것은 납득이 갑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하지만 사리사욕이나 개인적인 名利(명리)를 추구하는 자까지 보호하는 것은 납득이 안 갑니다. 못된 자를 감싸는 것이 미국 사회입니까. 국가를 배신하고 민족을 욕되게 하는 배반자는 후손들까지도 낯을 못 들고 다니고 주위에서도 사람 취급을 안 하게 될 것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조증출: 농민들 간에는 각하께서 저렇게 세게 나가시는 것을 보니 우리가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농민들은 우리가 월남전 막바지에 월남에서 훔쳐 왔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CIA(중앙정보부)가 그것도 못하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지요(일동 폭소).&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7년 8월 2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만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李哲承 당수는 소신 있는 정치인”&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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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6.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77년 5월 28일 청와대에서 이철승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왼쪽)과 만난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이철승 대표를 높이 평가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申道煥(신도환) 신민당 최고위원이 미국에서 귀국해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유학생들이 ‘유사시에는 고국에 달려오겠다’고 한 말에 감격했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문에는 신 최고위원의 얘기가 한 줄도 나지 않았어요. 다른 신문은 몰라도 경향과 서울신문은 왜 안 쓰지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李哲承(이철승) 신민당 대표가 東京(동경) 발언(1977년 8월 초 일본을 방문한 이철승 신민당 대표가 요미우리신문과의 기자회견에서 ‘국가의 존립이 위협 받고 있는 이때에 자유에 한계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야당도 유신체제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가리킴-편집자 주)으로 곤욕을 치르는 모양인데 이 당수는 소신 있는 정치인입니다. 야당 정치인 중 자세가 된 정치인은 趙炳玉(조병옥) 박사, 柳珍山(유진산), 이 당수 세 사람입니다. 유진산씨는 나를 만났을 때 당당히 얘기합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朴東宣·金炯旭 문제에 대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떠들 테면 떠들고 알아보려면 알아보라지. 우리는 일체 신경 쓸 게 못 되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7년 9월 14일 특별보좌관·수석비서관들과 만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김대중 사건은 새카맣게 모르는 사건인데 누명 써”&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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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7.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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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78년 5월 19일, 박동선씨가 미 의회 증언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미국이 우리가 박동선을 보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이제는 안 모양이지? 신문에 미국의 방침이 바뀌었다고 보도했다면서?(미국이 자워스키를 보낼 것이라는 보도를 뜻함.)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가 지금까지 세 번이나 터무니없는 누명을 썼어요. 첫째는 내가 金鍾泌(김종필)이를 시켜서 4대 의혹사건을 지시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김대중 납치를 내가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고, 셋째는 이번 박동선 사건을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첫째 것은 지금 그것을 아는 사람이 이 자리에 없지만, 김대중 납치사건은 내가 보고 받았을 때 나도 깜짝 놀랐던 사건이요. 나는 그때 조총련이 장난친 것이 아닌가 걱정했었소.”&lt;BR&gt;&amp;nbsp; &lt;BR&gt;&amp;nbsp; ―金正濂(김정렴) 비서실장: 제가 말씀드리지요. 김대중 납치사건을 각하께 말씀 드리니까 정말 각하께서도 깜짝 놀라셨어요. 각하께서는 그때 김대중씨를 조총련에서 납치한 것이 아니면 김대중 자신이 벌인 자작극으로 분석하셨습니다. 각하께서는 김대중 자작극이면 언젠가는 김대중씨가 나타날 것이므로 괜찮겠지만 조총련이 한 짓이라면 큰일이라고 걱정하셨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정말 그 사건은 새까맣게 모르는 것인데 내가 누명을 썼어요. 이번 박동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1월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오찬 &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한 선거구에서 두 명 뽑으니 여야 의원 좋아해”&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8.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농가주택개량사업 현장을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목감기로 인해 말을 안 하겠으니 여러분이 말을 많이 하세요. 의사가 말하지 말 것, 바람 쐬지 말 것, 담배 피우지 말 것, 술 마시지 말 것 등을 얘기하고 있는데 하나도 못 지키고 있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서울의 버스 안내양에게 방한복을 해 주었는데 지방의 버스 안내양 1만5000명에게도 해 줘야겠어요. 버스 안내양도 친절해야 하지만 승객들도 친절히 대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안내양에게 욕을 하고 또 때리기까지 하는데 그런 일은 없어야 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버스업체들을 조사시켰는데 어떤 경우는 안내양 숙소에 불도 때지 않고 또 여러 가지 업체를 갖고 있어서 버스업에 소홀하기 때문에 이번 상반기까지 시정하지 않으면 버스업체를 빼앗아 성실한 업자에게 주도록 할 생각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후지TV 회견을 봤더니 내 얼굴을 너무 클로즈업시켜서 어떤 때는 콧구멍이나 주름살까지 다 보이도록 찍었더라고요. 또 화면에 얼굴 전체가 나오지 않고 얼굴 한 가운데만 나오도록 찍었는데 무슨 그런 일이 있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조총련이 각 집을 찾아다니며 ‘몇 월 몇일 몇 시에 박 아무개 회견이 방영되는데 일체 보지 말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오히려 모르고 있던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고 합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북한을 다녀온 스웨덴 인사가 이번에 우리나라에도 다녀갔는데 북한은 외교관들이 기피한다고 합디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그렇게 못 살 곳이냐’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 얘기를 들어 보니까 한심한 모양입니다. 북한에 있는 외국공관은 대개 1인 공관인데 2~3명씩 가 있다고 해요. 왜냐하면 혼자서는 답답해서 못 살기 때문에 한두 명을 더 데려다 근무한다고 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북괴 통계는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작년에 알곡 생산이 8000만t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5000만 섬이 넘어요. 그런데도 식량난을 겪고 있어요. 통계를 자꾸 늘리다 보니까 이제는 도로 끌어내릴 수도 없고 해서 허위통계가 계속되는 겁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일본의 후쿠다가 쓴 ‘조선반도에 관하여’라는 글을 읽어봤는데 ‘통계가 올라가다가 전에 썼던 통계를 도로 쓰거나 또는 어떤 해에는 통계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어요. 북한의 통계는 믿을 수 없는데 정보부에서는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고 있어 잘 맞지 않아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거의 해라고 하여 관심들이 많은 모양인데 정치하겠다는 사람들만 떠드는 것이고 일반 주민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요. 국회의원 선거는 내년 봄에 있을 텐데 벌써부터 시끄러워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거 빨리 해버릴까?(일동 웃음) 법적으로는 국회의원 선거를 언제부터 실시할 수 있게 되어 있나요?(기자들이 9월 1일부터라고 대답) 선거를 조용하게 치를 생각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與野(여야) 의원들은 누가 1, 2등이 되든 상관없이 공천만 받으면 대개 당선되니까 의가 좋아요. 서로 무소속을 견제한다고 합디다. 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것이 우리 선거제도의 묘미입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정치不在(부재)다, 뭐다 하는데 작년의 국회를 보면 할 말을 다 합디다. 다만 국정감사권이 없다고 해서 그러는 모양입니다. 여당도 내 눈치를 봐서 그렇지, 국정감사권을 갖고 싶어하지요. 아마도 투표를 하면 모두 국정감사권 부활을 찬성할 거요. 마치 御史(어사) 출두하는 기분으로 국정감사를 하지.&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선거를 옛날식으로 하면 안돼요. 선거 때만 되면 판잣집이 늘어나는데 이제 그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정치하는 사람들이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영합하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歐美(구미)와 일본의 정치가 그렇습니다. 특히 영국은 勞組(노조) 때문에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는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막상 표를 얻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영합하는 발언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노조를 어느 정도 제한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느 단계에 가면 이것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西歐(서구)의 경우는 더욱 어렵지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농촌취락개선사업으로 농촌이 변모해 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빨갛고 파랗게 지붕을 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요. 알아보니까 농민들 스스로 그런 색을 칠한다고 하는데 파란 지붕에 빨간 줄을 긋는 등 어울리지 않는 지붕색이 있어요. 차차 시정이 되겠지요. 또 농촌 취락도 대지를 대머리 벗기듯 밀어내지 말고 농촌의 아담한 풍경을 살려 집을 짓도록 해야 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 농촌도 몇 년 안 가면 보기 좋고 부유한 농촌이 될 것입니다. 웬만한 농가는 서울의 집보다도 더 좋아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막걸리에 물을 타는 행위를 철저히 막으세요. 高在一(고재일) 국세청장에게 얘기해서 물을 못 타도록 단속하라고 하세요. 아마도 술도가에서는 그대로 나오는데 소매상에 오면서 타는 모양인데 16도짜리 술에 물을 자꾸 타면 결국 나중에는 물에 물 탄 술이 되지 않겠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제2종합청사를 과천에 짓는 것은 새 행정수도와 별도로 하는 것입니다. 새 행정수도가 서더라도 서울이나 근처에 그대로 남을 기관들도 있으니까 아무 관계가 없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 비서실장이 금년에 외환보유고 규모가 68억 달러가 될 것으로 외국에서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5·16 이후 외환 보유고는 겨우 2억 달러였지요. 외화가 많아서 걱정이지만 전쟁을 대비해서 외환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합니다. 북괴와 단기전을 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계산해 보니 20억 달러가 됩니다. 한 30억 갖고 국제경기 한번 해볼 만하지. (조크)&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번 신년 휘호에 天下誰安 忘戰必危(천하수안 망전필위)라고 쓴 것은 손자병법에 있는 것이요. 有備無患(유비무환)도 손자병법에 있는 내용입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는 망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근혜하고도 얘기했지만 우리나라가 근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병폐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이지요. 늦게 와서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어요. 둘째는 부녀자들이 옷을 잘 입고서도 싸울 때 보면 동네가 떠나라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거예요. 셋째는 초상 때 너무 곡을 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것은 고쳐나가야 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외환이 늘어나서 우리도 해외여행을 풀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조총련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요. 일본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와서 별로 많은 돈을 쓰지 않는데 우리도 해외에 나가면 그렇게 많은 외화가 들지 않을 것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3월 31일 기자단 외국여행 환송 오찬 &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미국의 81억 달러 무상원조 필요 없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기자단의 외유를 축하해요. 나도 오라는 데가 있는데 가고 싶지 않아요. 中東(중동)에는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동조 전 주미대사의 미 의회 증언 문제에 관해) 미국사람들이 암만 떼를 써도 안돼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동조 증언이 아니면 81억 달러 無償(무상) 원조를 안 준다고 얘기하는 모양인데 우리도 그런 것 필요 없어요. 81억 달러를 한목에 준다는 것 아니고 미군이 철수할 때마다 조금씩 준다는 거요. 우리는 그것을 안 줘도 좋다는 입장입니다. 미군이 나갈 때 장비를 안 준다면 우리 돈으로 사면 될 것 아닌가.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다만 김동조 증언은 조사가 아니고 그들이 일을 끝맺는 데 지장이 있으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물어 왔을 때 그런 일이 없었다든지, 전혀 사실무근이라든지 하는 것을 회답하는 거야 어떨지 생각 중이에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카터·티토 간의 미·남북한 3자회담 논의에 대해) 한마디로 우리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 거예요. 외무장관이 스나이더 주한 미 대사에게 물으니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해서 ‘절대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얘기해 놓았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티토와 김일성이가 짜고 한 것 같은데 미국도 3자회담에는 약간의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3자회담은 월남전 패망 때의 파리협상과 같은 것인데, 남북이 직접 얘기하지 않고 우리가 미국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키신저가 얘기하는 4자회담 정도면 좋지 않겠는가 생각은 합니다. 왜냐하면 6·25 때 우리와 미국이 중공·북괴와 싸웠으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얼마 전에 일본 사람이 북괴에 갔었는데 북괴 생각이 미국과 1 대 1로 협상하다가 도중에 한국대표도 참석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한국대표도 남한의 현 대통령을 바꾼 정부의 대표로 한다는 속셈이 있다고 전합디다. 아마도 김일성은 월남전 협상이 잊히지 않고 있는 모양이에요. 남북 간에 얘기를 안 하고 미국과 얘기한다는 게 있을 수 없고 어떤 경우이든 우리가 찬성하지 않으면 그만이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근혜 양 컵 테니스대회 끝난 후 저녁식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내 나이에 테니스는 좀 무리인 것 같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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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9.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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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동해안 간첩선 침투 문제에 대해) “어제 동해안에서 간첩선을 격침시키고 15명 중 8명을 생포했소. 알아보니 어선인 것 같아요. 생존자들은 모두 우리 경비정에 대해 발포한 일이 없다고 한답디다. 우리 경비정에 총구멍이 뚫렸는데도. 그래서 중앙정보부장더러 8명을 한방에 두지 말고 따로따로 격리시켜 조사해 보라고 했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 경비정이 망원경으로 보니까 어선에 김일성 사진이 붙어 있었다고 해요. 간첩선이면 위장을 했을 텐데 김일성 사진 붙인 것을 보니까 어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해안 해변 가까이까지 접근해 오다가 해변에 ‘샘표간장’이라는 간판이 붙은 것을 보고 도망가다가 우리 경비정에 둘러싸여 격침된 것이지요. 15명 중 7명이 죽고 나머지는 나무 조각에 매달려 있는 것을 건져냈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 쾌속정도 이제는 상당히 빨라요. 남해안에서 침몰시킨 간첩선의 경우 그들 배도 빠르지만 우리 쾌속정이 40노트 이상으로 달려갔지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동해안 어선의 경우 조사해서 어선이 분명하다면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하기야 우리 어선 수원호가 백령도 근처에서 북괴에 의해 납치되어 간 적도 있어서 복수를 해야 하겠지만 어부들이면 인도적 견지에서 돌려보내는 게 좋을 겁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KAL기 소련 무르만스크 불시착 사건 관련 담화문 발표에 대해) 당시 KAL 승객이 헬싱키에 돌아왔을 즈음에 내가 감사하다는 담화를 발표했지요. 당시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소련에 대해 감사하다는 담화를 발표할 것까지는 없지 않으냐, 승객들이 서울에 돌아온 다음에 발표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들을 했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나 승객들이 돌아온 다음에 발표하면 김이 빠지는 것이고, 또 승객들이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소련을 비난하게 되면 내가 소련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지요. 담화를 발표한 것은 순전히 남아있는 승무원 2명을 빼내기 위한 것이에요. 그런데도 소련과 관계 개선을 노린 것이다 뭐다 하고 해설들을 하던데 그것은 아닙니다. 세계 각국에서 소련의 처사를 비난하고 있는 판에 피해자인 우리가 고맙다고 하니까 소련도 승무원을 빨리 돌려보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3자회담에 대해) 사실상 우리도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북괴는 현 정부와 얘기하지 않고 윤보선씨나 김대중씨의 정권이라면 함께 회담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어요.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미국 사람들도 한심해요. 소위 보좌관이니 참모니 하는 게 웃기는 사람들이요. 한반도 균형이 어쩌고 하는데 우리 사정을 그들이 어떻게 잘 알 수 있다는 말이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북괴 단독으로 남침을 하더라도 중공과 소련은 남한이 먼저 북침했다고 뒤집어씌우고 북괴를 지지할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가 북괴를 공격하면 미국은 아마도 자기네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떠들면서 발뺌하기에 바쁠 거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미국 사람들은 협상에서 아예 카드를 보여주면서 해요. 카드를 다 보여주고 무슨 포커를 하겠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닉슨이나 포드가 중공을 방문했지만 중공 수뇌들은 미국에 간 적이 없어요. 중공에 다녀와야 뭐를 좀 아는 것처럼 하니까 중공 사람들은 미국인더러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운동에 관해) 나도 테니스를 하고 싶지만 내 나이(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61세였음-편집자 주)에는 좀 무리인 것 같아요. 공을 쫓아다니다 보면 뛰지 않을 수 없어서 숨이 차요. 그래서 요즘 청와대 경내에서 달리기를 하는데 참 좋은 운동이요. 달리기를 하면 보초병들이 경례를 해서 곤란한데 경호실장더러 내가 뛸 때에는 경례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놓았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아까 텔레비전에서 이태리 볼로냐 축구팀과의 경기를 구경했는데 볼로냐 선수가 반칙을 하니까 우리 선수가 볼로냐 선수의 엉덩이를 발로 찹디다. 그랬더니 해설자가 ‘비신사적 태도’라고 하던데 나는 속으로 ‘잘 찼다’고 했지.&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축농증 수술에 대해) 지난번에 코 수술을 했지. 결과가 아주 좋아 지금은 흔적도 많이 없어졌어요. 얼마 전까지 얼굴이 까맣게 멍이 들어 마치 권투선수한테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는데…. 청와대에 의사를 불러 수술했어요. 지금은 괜찮은데 의사 얘기는 술은 지금까지 양의 반으로 줄이라고 해요. 이번 기회에 담배는 완전히 끊었소.”&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8월 17일 3대 스캔들 관련 대책회의&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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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10.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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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박정희 대통령이 휴가 중 저도 별장에서 필자(왼쪽)와 이득렬 MBC 기자(오른쪽)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필자 注) 당시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 경상북도 교육위원회 가짜 교사 자격증 발급, 成某(성모) 의원 여고생 성희롱 사건 등으로 시국이 어수선했다. 이 자리에는 崔圭夏(최규하) 국무총리, 南悳祐(남덕우) 부총리, 朴東鎭(박동진) 외무장관, 金致烈(김치열) 내무장관, 朴瓚鉉(박찬현) 문교장관, 金聖鎭(김성진) 문공장관과 金載圭(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참석했다. 이하는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한 내용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정희 대통령: (3대 스캔들에 대한 조치결과를 관계 장관에게 물어 본 후) “교육위 뒤처리는 어떻게 되었소?”&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찬현 문교: “예, 이번에 외유 중에 홍콩 교포학교 등지에 들렀더니 잘하고 있더군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정희: “아니, 그 가짜 교사 사건 처리가 어떻게 됐느냐 말이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찬현 문교: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정희: “앞으로 개학이 다가오는데 가짜 선생에게서 배워 온 학생들의 충격이 컸을 것이오. 빨리 빈자리를 메워야 정상적인 수업이 될 테니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세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번 3대 사건은 결국 공익을 생각하지 않고 사리사욕만을 생각한 데에서 생긴 것입니다.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가짜 교사증을 발급받는 것이 바로 개인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에요. 그런 사건들은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성 의원 스캔들만 해도 내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아마 쉬쉬하고 숨기려고, 또 막으려고만 했을 것이요. 숨길 것이 따로 있지 그런 사건을 어떻게 막을 것입니까? 숨기려 해도 신문기자들이 다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신문에서 이번 사건에 잘 협조해 주었다고 봐요. 언론에 대해서는 큰 방향에서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신문들이 약간 과열 보도를 했어도 그만하면 협조를 잘해주었다고 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제 연말이나 내년 2월에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지난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부정·불법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하시오. 이번 선거는 문자 그대로 공명선거가 되어야 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쓸데없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겠다고 과열하다 보면 선거분위기를 혼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꼭 전원이 당선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그래서 유정회를 만든 것 아닙니까? 공명선거를 하자는 것이 유신헌법의 정신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근혜 큰 영애가 모 TV의 엘비스 프레슬리 1주기 특집프로를 본 소감을 얘기하자) 지금 우리가 정신문화를 강조하고 있는 판에 광란적인 그런 프로를 꼭 보여줄 것은 뭐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9월 30일 저녁 출입 기자들과 막걸리 파티&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근혜, 박근영, 車智澈(차지철) 경호실장, 鮮于鍊(선우련) 비서관 동석.&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우리가 개발한 한국형 장거리 유도탄의 사정거리가 180㎞라고 미국 사람들에게 얘기했어요. 미국 사람들이 그들이 갖고 있는 나이키 유도탄보다 더 멀리 나가는 유도탄을 우리가 개발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탱크 개조, 구축함 개발 등에 대해 이야기한 후) 吳源哲(오원철) 경제수석비서관은 방위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로가 있지요. 국보적 존재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한미 정상회담 문제) 박동진 외무장관이 지금 미국에 가있는데 우리 언론은 한미 정상회담 운운하고 보도해 내가 마치 카터를 만나고 싶어하는 인상을 주고 있어요. 카터가 오도록 신문에서 유도하는 것 같은데, 만날 때 만나더라도 내가 빌어서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미국에 가지 않더라도 청와대 기자 여러분은 내년에 南北美(남북미)를 다녀오시오. 내가 돈 댈게….”&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10월 11일 새마을 지도자들과 오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정부·여당 고위직 참석&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장관에게는 인권이 없나”&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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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1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77년 7월 17일 하비브 미국 특사를 접견하는 박정희 대통령.&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요즘 신문이나 국회에서 노풍벼(벼 품종의 일종-필자 주) 피해에 대해 마치 정부가 사기를 친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그 원인을 가려 농민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또 정부가 농민들에게 피해보상을 해 주지만 농민들도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은 데에도 피해의 일부 원인이 있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국회에서 야당이 뭐 큰 것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요. 내가 늦게 들어서 그냥 두었지만,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에게 ‘이놈, 저놈’하고 소리쳤다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요?(박 모 의원이 10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규하 국무총리, 남덕우 부총리에게 도둑놈 운운한 것을 지칭한 듯-필자 주)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다음에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나오면 국무위원들을 국회에서 철수시키겠소. 또 국회가 사과를 안 하면 국회에 국무위원들을 내보내지 않을 거요. 양반이 종을 다루듯이 하는데 자유당 때부터 버릇이 잘못 든 것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 사람들이 입만 벌리면 ‘민주다, 인권이다’ 하는데 자기들에게만 인권이 있고 장관들은 인권이 없다는 말이요? 요즘 죄인을 다루어도 ‘이놈, 저놈’ 하지 않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유신헌법에는 국회에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행정부의 국장까지로 되어 있어요. 장관이 안 나가고 차관만 나가도 상대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버릇을 고칠지 모르겠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또 장관이 답변해야 할 것도 국무총리더러 하라고 합니다. 행정부는 책임을 지고 정치를 하는 것이니까 언제나 책임을 져야 할 것은 지겠지만, 서로 인격을 존중해야지. 그날 국회 방청석에 외국인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말해서야 되겠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李孝祥 공화당 의장, 白斗鎭 유정회 의장에게) 야당 대표를 만나면 얘기해 주세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10월 21일 큰 영애 주최 친선 테니스대회 후 청와대 뜰에서 만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핵개발 안 한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5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484_12.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박정희 대통령이 애완견 방울이 앞에서 사과를 깎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남침땅굴에 관해) 엄청난 크기의 것을 발견했어요. 이번에 발견된 땅굴은 판문점 비무장지대 남방으로 420m까지 뚫고 들어온 것이오. 높이 2m, 폭 2m인데 현대건설에서 계속 탐사작업을 해 오던 중 뭔가 펑하고 솟아올라 땅굴이 발견된 것이라고 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몇 년전에 귀순한 김부성이 제보한 정보를 토대로 찾아본 것인데 지난 6월 베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오더니 ‘까카(각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더군. 김부성이 직접 땅굴을 파는 데 참여했기 때문에 틀림없다고 보았는데, (북한은) 김이 귀순한 후 땅굴 파는 것을 중단한 것 같다고 해요. 그러다가 다시 파기 시작해서 우리가 옆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을 모르고 파다가 우리와 맞부딪쳐 압력이 위로 솟아난 거지. 깊이가 17m가 되니까 어느 곳에서 강 밑으로 뚫고 들어오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끔찍한 일이오. 남침 야욕 절대로 변한 것 없어요.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자유의 다리에서 이번에 발견된 땅굴까지 아스팔트를 깔아 모두 견학토록 하겠소. 우리는 停戰委(정전위) 전에 발표하자고 했으나 미국 측이 반대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입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핵무기 개발에 대해) 핵 개발은 안 합니다. 지난번 하비브를 만났을 때 ‘한국이 핵을 개발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즉각 폐기하겠다’고 협박을 합디다. 그래서 내가 우리말로 ‘이 사람아 우리가 핵을 개발하지 않겠다는데 무슨 협박이냐?’고 했더니 내 말을 알아들은 모양입디다. 하비브는 구렁이 같은 사람이지.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중국 鄧小平 방일문제) 일본 사람들은 참으로 간사해요. 일본에선 鄧小平(등소평)에게 파티를 베풀겠다고 저마다 난리들인데 한심한 짓들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등소평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소노다 일본 外相(외상)이 중공에 갔을 때 등이 ‘공산주의로는 발전이 안된다’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랬대요. 소노다가 金永善(김영선) 주일대사에게 얘기했고, 김 대사가 나에게 얘기해서 들었어요. 결국 중공이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 자본주의 방식을 쓰다 보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가 허만 칸(미국의 미래학자-편집자 주)한테 ‘우리 속담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중공이 근대화한다고 경제발전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면 결국 공산주의도 근대화도 모두 안될 것’이라고 말했더니 허만 칸도 수긍합디다. 중공 상품과 우리가 경쟁해서 우리가 불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고급품을 만들면 돼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8000ff size=3&gt;◎ 1978년 12월 4일 공화당 서울지역 국회의원 출마자들과 만찬&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閔寬植(민관식·전 국회부의장)·丁來爀(정래혁·전 국회의장)·姜秉奎(강병규·8~10대 국회의원)·민병기·李海元(이해원·전 보건사회부 장관)·金周仁(김주인·전 헌정회 회장) 등 참석.&lt;BR&gt;&amp;nbsp; &lt;BR&gt;&amp;nbsp; “공화당 조직이 대단하다고 이효상 당의장 서리와 吉典植(길전식) 사무총장이 나한테 보고했는데, 알아보니까 당 조직이 엉망입디다. 이 당의장과 길 총장이 올라오면 꾸짖을 작정이오. ‘무소속 후보들이 당선되면 親與系(친여계) 인사들을 모두 공화당에 입당시켜 무소속을 원내교섭단체가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이 의장에게 말했더니 지방에 내려가서 금방 이 말을 털어놓았어요.”⊙ &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월간조선에서-&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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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주 5.18 국가차원서 재조사하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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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16T23:16:39Z</updated>
	    <published>2009-11-16T23:16: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4&gt;
&lt;P class=t01&gt;광주 5.18 국가차원서 재조사하자”&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7&gt;
&lt;P class=t02&gt;이주천 교수 “탈북자 등 증언 이어져 새로운 사료 발굴-재해석 필요”&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3&gt;
&lt;P&gt;&lt;FONT color=#990000&gt;뉴스관리자, &lt;A href=&quot;http://mail2.daum.net/hanmail/mail/MailComposeFrame.daum?TO=nabucomaster@gmail.co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gt;nabucomaster@gmail.com&lt;/FONT&gt;&lt;/A&gt; &lt;/FONT&gt;&lt;/P&gt;&lt;/TD&gt;
&lt;TD&gt;
&lt;P align=right&gt;&lt;FONT color=#990000&gt;등록일: 2009-11-04 오후 6:02:30&lt;/FONT&gt;&lt;/P&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2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lt;!-- 본문 --&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quot;&gt;&lt;!-- 삽화 사진 출력 --&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30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style=&quot;BORDER-RIGHT: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TOP: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LEFT: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BOTTOM: rgb(147,149,152) 1px solid&quot; src=&quot;http://www.nabuco.org/data/photos/200911/pp_3779_1.jpg&quot; width=300 border=0&gt;&amp;nbsp; &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gt;&lt;/TD&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quot;&gt;▲ 박희도 대불총 회장 ⓒ 뉴데일리&amp;nbsp; &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삽화 사진 출력 --&gt;&lt;SPAN id=body_text_1&gt;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회장 박희도, 이하 대불총)이 주최한 현대사 재조명 토론회가 지난 3일 오후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열렸다.&lt;BR&gt;부산시민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토론에서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건국이념’과 ‘30년 뒤에 되돌아보는 12.12사건의 진상’ ‘5.18광주사태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 등 3가지 주제발표와 토론이 있었다.&lt;BR&gt;&lt;BR&gt;박희도 대불총 회장은 이날 격려사를 통해 “민주화를 앞세워 공권력을 농단하고 법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이 이번엔 공무원 노조의 민노총 가입 등으로 나라의 근간을 어지럽히고 있다”며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활로 찾기는 그동안 훼손되어온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만이 유일한 열쇠”라고 강조했다.&lt;BR&gt;한편 이날 토론에서 ‘5.18 광주사태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을 발표한 이주천 원광대 교수는 “5.18광주는 여러 가지 의혹을 풀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進行形의 역사”라며 “탈북자들과 북한군 출신들 중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중요한 증언들이 속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 속에서 화석덩어리처럼 굳어진 ‘민주화운동’이란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료의 발굴을 통해 보다 자유롭게 재해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lt;BR&gt;&lt;BR&gt;이 교수는 “5.18광주문제에서 의혹규명에 대한 재검토와 재조사는 학문의 자유문제요, 한반도 좌익 청산문제이자, 통일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국가적 중대 현안문제”이라며 “광주시민들의 명예와 보상은 좌파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상당히 이뤄졌으니 이제 진압군인 국군이 발언해야하고 ‘가해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한다”고 강조했다.&lt;BR&gt;다음은 이주천 교수의 발표문 전문이다. &lt;BR&gt;&lt;BR&gt;&lt;BR&gt;5.18광주사태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lt;BR&gt;지만원의 『수사기록으로 본 5.18』을 중심으로&lt;BR&gt;&lt;BR&gt;이주천 박사, 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lt;/SPAN&gt; &lt;/FONT&gt;&lt;/TD&gt;&lt;/TR&gt;&lt;!-- //본문 --&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quot;&gt;&lt;!-- 삽화 사진 출력 --&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30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LEFT: 10px&quot;&gt;&lt;IMG style=&quot;BORDER-RIGHT: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TOP: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LEFT: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BOTTOM: rgb(147,149,152) 1px solid&quot; src=&quot;http://www.nabuco.org/data/photos/200911/pp_3779_2.jpg&quot; width=300 border=0&gt;&amp;nbsp; &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gt;&lt;/TD&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LEFT: 10px&quot;&gt;&lt;FONT style=&quot;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quot;&gt;▲ 이주천 원광대 교수 ⓒ 뉴데일리&amp;nbsp; &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삽화 사진 출력 --&gt;&lt;SPAN id=body_text_2&gt;이주천 원광대 교수 ⓒ 뉴데일리 &lt;BR&gt;&lt;BR&gt;“5.18과 같은 잘못 평가되고 있는 사건들을 하루 빨리 정리해서 곪아가고 있는 상처를 치료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10년동안의 실수로 인해서 백년을 고생하지 않는다는 담보가 없다.”(어느 탈북자 전 북한 공장 지배인의 발언, 화려한 사기극 518, p. 226에서)&lt;BR&gt;&lt;BR&gt;I. 문제의 제기: 역사란 무엇인가?&lt;BR&gt;&lt;BR&gt;- 정치학자이며 역사학자인 E. H. Carr는 자신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quot;What is History?&quot;』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부단한 대화”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과거란 역사적 사실을 의미하고, 현재란 역사를 쓰는 역사가를 말한다. 부단한 대화란 사실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역사책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새로 서술된다는 의미를 말한다.&lt;BR&gt;&lt;BR&gt;“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지난 사실의 총합적 집합이 아니라 사료를 수집, 정리, 평가, 해석하는 작업을 거친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 해석된 다듬어진(料理된) 서술된 역사(written history)이다.”&lt;BR&gt;&lt;BR&gt;우리가 인식하는 역사는 다음과 같은 여러 과정을 거쳐서 이해하는 역사가 된다.&lt;BR&gt;&lt;BR&gt;과거의 무수한 사실→역사적 사실→역사가에 의해 해석, 평가된 역사인식→교육체계,활자매체, 책, 언론의 전파→대중들의 역사인식&lt;BR&gt;&lt;BR&gt;- 과거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세세하게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려서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해 진다.&lt;BR&gt;&lt;BR&gt;- 相對主義; 역사연구에서 객관성의 확보가 어려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사실보다는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며, 사람들은 자신의 유리한 입장과 편견에 의해 취사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lt;BR&gt;- 역사의 속성은 연속성; 역사는 시간과 함께 진행되며 흐르는 물과 같아서 청산과 단절이 어렵다. &lt;BR&gt;- 역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인이 共有하는 것’이지 특정집단의 독점물이 아니다. &lt;BR&gt;역사는 만인이 공유하여 찬반 토론의 참여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더 바람직한 해석의 결과를 이루어낸다. 자유민주국가에서 모든 역사는 모든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일개 특정 단체의 독점물이나 전유물이 아니다. 전제왕조에서는 왕이 역사편찬에 관여하고, 공산국가에서는 역사는 공산당이 독점한다.&lt;BR&gt;&lt;BR&gt;- 광주망월동 묘지 참배 조건; 5.18묘지는 2002년 7월 27일,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2008년 건국60주년에서 특정인에 대한 참배 배척사건이 발생했다. “국립묘지란 누구나 참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lt;BR&gt;&lt;BR&gt;망월동 5.18국립묘지의 성격은 국가가 관리하는 기관이므로 누구는 참배 불가라고 방문객 배제는 공민권 구속사항이다. 북한에서 온 방문객들은 환영하면서 특정 남한 인사의 참배는 배제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lt;BR&gt;&lt;BR&gt;앞에서 지적했듯이, 모든 역사는 원래 있던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역사가에 의해 쓰여진 역사(Written History)다. 한번 쓰여진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적으로 새로 쓰여지는 것이 역사의 큰 특징이다. 그 이유는 역사는 철학처럼 본질 그 자체를 연구하기보다는 시간에 흐름에 따라서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lt;BR&gt;역사가 새로 써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lt;BR&gt;&lt;BR&gt;1. 새로운 史料의 발견 &lt;BR&gt;김대문의 &lt;화랑세기&gt; 필사본 부산에서 발견=화랑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화랑의 진면목과 신라시대의 풍속이 새로 밝혀졌다. 미국 매카시즘에 대한 재평가도 다른 예다. 90년대 중반 코민테른 문서와 베노나 파일(Venona file)의 암호해독= 미국공산당이 독자적으로 활동한 것이 아니고 소련 코민테른의 지령에 의해 활동한 사실이 폭로되어 국무부의 주요 인사 엘저 히스의 간첩행위가 사실임이 드러났다. 미 국무부내의 간첩 활동에 대한 조셉 메카시 상원의원의 “미 국무부에 200여명의 간첩이 있다”는 발언 진위는 이렇게 40년이후에야 비로서 밝혀졌다,&lt;BR&gt;&lt;BR&gt;2. 새로운 證人의 등장 &lt;BR&gt;케네디의 암살과 사생활(여자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 아이젠하워의 애인 등장, 정인숙사건의 진상, 탈북자군인들의 5.18북한군 개입의혹 증언 등과 같은 것이다.&lt;BR&gt;&lt;BR&gt;3. 같은 사건이나 사물, 인물이라도 시간, 장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역사가에 의해 다르게 평가나 해석될 수 있다. &lt;BR&gt;&lt;BR&gt;석굴암에 대한 印象은 역사가가 처한 그 당시의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는 국보급으로 생각하지만, 경제여건이 어려울 때는 종교를 빙자하여 국가가 강제로 대중들의 노동력 착취한 행위로 볼 수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평가도 시대와 계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lt;BR&gt;&lt;BR&gt;4. 당대사 내지 현대사에서 평가와 해석의 어려움 &lt;BR&gt;사료가 많고, 계속 발굴되는 진행형이고, 가까운 과거이기에 냉정함 보다는 자신의 당파성(지역적, 학벌, 문벌, 종파, 국적, 징치적 이념적 성향)과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냉정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친북좌파정책에 대한 평가는 남북통일 이후라야 제대로 국민들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의 대남문서가 완전히 공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lt;BR&gt;&lt;BR&gt;II. 5.18광주사태의 성격과 상반된 입장&lt;BR&gt;&lt;BR&gt;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은 79-80년의 현대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있다, 여기에 핵심고리로서 5.18광주문제의 진실규명이 핵심사안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5.18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부정되었고 진압했던 국군이 범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죄인시되었으며 간첩잡는 군대․경찰․검찰 등 공안기관이 무력화되면서 법질서가 무너졌고 불법폭력시위가 일상화되었음은 물론 결과적으로 친북좌파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왔기 때문이다. &lt;BR&gt;&lt;BR&gt;그러므로 정체성 문제는 과거의 역사를 누가 장악하는가라는 역사전쟁의 의미를 지닌다. 본 발표문은 지만원 박사의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과 자유북한군인연합의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을 주 참고자료로 선정하여 정리했음을 미리 밝혀둔다.&lt;BR&gt;&lt;BR&gt;1. 5.18의 해석문제: 정통주의와 수정주의의 대립과 충돌&lt;BR&gt;&lt;BR&gt;5.18단체의 공식 입장-正統主義 해석; 불법정권의 등장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국민적 저항권을 강조한 것이다. 5.18광주사태는 1997년 5월 9일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서 5.18민주화운동기념일로 지정됐다. &lt;BR&gt;&lt;BR&gt;“5.18민주화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적 투쟁에 의해 진실이 규명되었고, 그 진실에 기초하여 법적, 제도적으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국가권력을 강점했던 이른바 신군부세력들이 법정에 세워져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단죄됨으로써 사법적 판단까지 마무리되었다.”(5.18단체의 긴급성명서에서, 2006.12.21)&lt;BR&gt;&lt;BR&gt;- 김영삼 정부에서 5.18특별법 제정; 정치적 동기는 노태우 비자금 문제를 비껴가면서 민심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苦肉之策이었다. ‘한 사건을 두 번 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一事不再理)의 원칙을 위배된 것이다. 여기에서 5.18특별법의 위헌성 소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법원의 판사들은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청와대와 야당, 광주시민들의 눈치보기가 성행했기에 자유로운 판결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lt;BR&gt;&lt;BR&gt;지만원 박사의 주장대로, “5.18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역사가의 영역”이다. 법이 학문의 영역을 침해할 수 없다. 5.18은 학문적 영역에서 史料를 통해 토론과 연구의 결론이 아니라 정치권의 야합에 의해서 판검사에게 압박을 가해 강제로 규정지어진 성격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법과 정치가 역사의 영역을 침해한 경우가 아닌가?&lt;BR&gt;&lt;BR&gt;- 5.18은 12.12와 같이 뒤집혀진 판결과 뒤집혀진 역사의 대표적 사례다. 지만원 박사의 『수시기록으로 본 12.12와 51.8』에서는 그 과정이 잘 정리되어있다.&lt;BR&gt;&lt;BR&gt;1980년, 한국의 법관들은 정승화에게 내란방조죄를 선고했다, 김재규가 범인인 중 알면서도 기회주의적 발상으로 김재규의 범죄를 은닉하고 김재규의 뜻에 따라 국방장관의 소관사항인 병력동원을 월권적으로 주도하면서까지 김재규의 내란을 방조했다 는 것이다.&lt;BR&gt;&lt;BR&gt;1980년의 법관들은 김대중에게도 내란음모죄를 선고했다. 1980년 5월의 학원소요사태는 김대중이 10/26 이후의 국가권력 공백기를 악용하여 북한 측 불순분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최규하 정권을 무너트리고 스스로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일으킨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것이다.&lt;BR&gt;&lt;BR&gt;5/18은 김대중으로부터 사주와 자금을 받은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 등이 자금을 살포 선동하여 폭력시위를 유발하고, 홍남순, 김성용 등 반체제 인물들이 이에 편승하여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과도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폭도들을 더욱 선동하여 방화, 파괴, 살인, 강도 등의 행위를 저질러 광주를 무정부사태로 만들고 계엄군에 총격까지 가한 폭동 이라는 것이다.&lt;BR&gt;&lt;BR&gt;그 후 세상이 바뀌자 1996년 법관들은 헌법이 명시한 일사부재리원칙을 무시하고 정승화, 김대중, 5.18 광주사건 모두에 대해 재심절차 없이 다시 재판했다. 이들에 의해 김대중은 민주화의 화신으로 등극했고, 전두환은 무력으로 국권을 찬탈한 반란수괴요 광주시민을 학살한 내란수괴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lt;BR&gt;&lt;BR&gt;1997년 4월 17일(96도3376) 대법원은 이런 요지의 판결문을 냈다. 5.18은 전두환 일당이 12.12군사반란을 통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 최규하 대통령을 위압하여 권력을 행사하면서 내란을 목적으로 광주학살을 자행하였다, 같은 사건을 놓고 1980년의 법관들과 1996년의 법관들이 정반대의 판결을 낸 것이다.&lt;/SPAN&gt; &lt;/FONT&gt;&lt;/TD&gt;&lt;/TR&gt;&lt;!-- //본문 --&gt;
&lt;TR&gt;
&lt;TD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quot;&gt;&lt;!-- 삽화 사진 출력 --&gt;
&lt;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50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style=&quot;BORDER-RIGHT: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TOP: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LEFT: rgb(147,149,152) 1px solid; BORDER-BOTTOM: rgb(147,149,152) 1px solid&quot; src=&quot;http://www.nabuco.org/data/photos/200911/pp_3779_3.jpg&quot; width=500 border=0&gt;&amp;nbsp; &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2&gt;&lt;/TD&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style=&quot;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quot;&gt;▲ 대불총 현대사 재조명 토론회. ⓒ 뉴데일리&amp;nbsp; &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1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lt;!-- //삽화 사진 출력 --&gt;&lt;SPAN id=body_text_3&gt;대한민국 헌법을 무시하고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특별법에 의존하여 1980년의 판결문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았다. 1980년의 역적이 1996년에 충신이 되고 1980년의 충신이 1996년에 역적이 된 것이다.&lt;BR&gt;&lt;BR&gt;- 사회에 퍼진 기존의 인식들 “12.12는 신군부와 하나회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정승화 총장을 연행한 불법쿠데타였으며, 이에 저항하는 민중민주세력을 탄압하기 위해서 광주에 공수부대를 보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에게 폭압적 강경진압을 실시하여 무참하게 인명을 살상하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범했다.”&lt;BR&gt;&lt;BR&gt;- 교과서 포럼이 편찬한 『한국 현대사』(기파랑, 2008)의 기술에서도 5.18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5.18을 계엄군과 광주시민간의 무력충돌로 설명하고 있다.&lt;BR&gt;&lt;BR&gt;2. 95년 5.18특별법 제정이후 한국사회의 좌경화&lt;BR&gt;&lt;BR&gt;- 한국사회의 급속한 좌경화 과정은 5.18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뒤처리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해자가 국군이고 피해자가 시위대로 뒤집어졌다. 5.1시위대에 가담한 세력들이 ‘민주화투사’라는 영웅으로 대접받으면서 정치권에 전면으로 부상하게 된다. &lt;BR&gt;- 5공(반공보수)세력이 반민주세력으로, 또 5.18광주학살원흉으로 덧칠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퇴조하니 공권력이 무력화되면서 안보의식과 반공노선의 방파제가 무너지면서 한국사회의 좌경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어느 세력도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민주화로 위장한 친북좌익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lt;BR&gt;&lt;BR&gt;- 12.12와 5.18이후부터 군대가 국민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매도당했다. 법질서가 무너지고 폭력시위가 남발되게 되었다. 김정일 추종세력이나 체제불온 세력을 색출해 내기가 불가능해졌다.&lt;BR&gt;&lt;BR&gt;- 좌파 주사파 386운동권의 급성장과 대중성 확보에 성공⇒대학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로 완전히 장악됨, 87체제의 등장;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접근을 통해 좌파를 비호, 옹호하는 숙주의 확보, 각계 각층의 요직에 침투·공작, 한나라당을 위시하여 정당들은 경쟁적으로 운동권 영입하고 정당의 하부조직(비서관, 사무관)에 침투, 방송언론에 침투하여 여론을 유리하게 조작, 사법부에 침투하여 판결을 조정⇒IMF의 외환위기를 기회로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의 탄생. &lt;BR&gt;&lt;BR&gt;- 김대중 좌파정부의 등장과 햇볕정책 및 친북정책의 시동; 낮에는 친미, 밤에는 친북정책의 이중성을 보였다. 2000년 6월 노벨평화상에 집착한 김대중은 정상회담의 대가로 김정일에게 5억달러 상납했다. 1998년 현대아산으로 하여금 금강산관광 시동 권장하면서, 현대그룹과 대우그룹 등 대기업에 북한 투자를 강요하기도 했다.&lt;BR&gt;-&lt;BR&gt;노무현 친북정책의 특징; 여론을 무시한 노골적이고 안하무인격의 친북정책을 밤낮으로 실천했다. 청와대는 안희정, 이광제 등 386주사파 운동권들에 의해 장악되었고, 국가정보원과 공안기관의 축소 및 무력화, 통일부에 햇볕정책 추진요원의 상주, 교육부에 좌파-관료연대를 형성하여 좌파시민단체에 대해 보조금 지급, 빨치산 등 좌익사범 등에 대한 복권, 보상, 대한민국 정체성 뒤흔들기 시도, 국가보안법 무용지물화, 2007년부터 개성관광을 추진했으며, 워싱턴에 자신해서 찾아가서 2012년 한미연합사 해체 시도했다.&lt;BR&gt;&lt;BR&gt;- 국민들의 각성; 과거를 뒤볼아보니, 386운동권은 민주화세력이 아니라 김정일을 추종하는 친북좌파로서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 등장이후 그들의 친북정책과 노골적이 좌파행각에서 여과없이 그 실체가 벗겨졌다. 결과는 좌파정부의 몰락과 이명박정권의 등장이다.&lt;BR&gt;&lt;BR&gt;3. 5.18에 대한 修正主義 해석의 등장&lt;BR&gt;&lt;BR&gt;(1) 한국사회의 좌경화에 대한 반발&lt;BR&gt;- 2000년이후 5.18에 대한 여론이 변화가 감지된다. 소위 민주화투사라는 인물들이 정체가 점차로 드러났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친북정책이 한국사회를 좌경화로 이끌고 나갔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각성하고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5.18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 된다.&lt;BR&gt;&lt;BR&gt;- 5.18에 대한 여론조사(2003.9.5-7,www.chosun.com)에 참가한 12,024명중에서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다’가 11,288명(93.88%), ‘민주화운동이다’가 548명(4.5%), 그리고 기타 188명(1.56%) 등으로 나타났다(지만원, II, p.11). 여론의 변화가 엿보인다.&lt;BR&gt;- 북한에서 민주화란 “공산정권에 의한 공산통일”을 말한다.&lt;BR&gt;&lt;BR&gt;(2) 민주화운동에 대한 문제제기&lt;BR&gt;-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인가?; 민주화운동의 개념-운동이란 장기지속적으로 진행되며 결사체가 조직되면서 특정한 목적을 가진 방향성을 가진다. 목적이 민주화라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에 대한 승복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헌법의 테두리내에서 합법적으로 벌리는 운동을 말한다. 국회에 대한 청원, 서명운동, 등 평화적 운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영국의 참정권 확대를 위한 차아티스트운동,&lt;BR&gt;&lt;BR&gt;- 의혹; 터무니없는 유언비어 유포, 수차례에 걸친 교도소 습격, 전남지역의 무기고 탈취, 경찰서와 방송국 방화, 총기난사, 장갑차 차량운전과 총기류의 능수능란한 사용 등 정상적인 민주화운동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오히려 체제전복과 계급혁명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이외에 여러 가지 용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사태, 민중항쟁, 무장폭동, 무장봉기, 무장폭동, 民亂, 叛亂 등등.&lt;BR&gt;&lt;BR&gt;(3) 수정주의 해석의 신호탄 : 수사기록을 재검토한 지만원 박사의 저술&lt;BR&gt;시스템클럽의 보수논객 지만원 박사는 말 그대로 수사기록으로본 12.12와 5.18(전4권, 2009)을 발간했다. 그는 기존의 민중이 인식하는 12.12와 5.18에 대한 인식들은 잘못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저자의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객관적인 수사기록과 판결문, 진압군과 무장시민군 쌍방의 수기 등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주의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lt;BR&gt;&lt;BR&gt;근 20년동안 5.18광주문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해석이 정통화되고 化石처럼 굳어져서 각종 교과서와 근현대사 역사책에서 金科玉條처럼 무비판적으로 인정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 책은 “그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외쳤다는 것은 발상과 용기에서 가히 혁명적인 책이다. 지만원 박사는 마지막 부문에서 5.18을 이렇게 결론내린다.&lt;BR&gt;&lt;BR&gt;“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위수김동’(위대한 김일성 수령 동지)를 외치고 김일성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대한민국의 이단아 386주사파들이 북과 연계하여 일으킨 광란의 국가전복운동이었다고 확신한다.”(지만원, IV, p. 411)&lt;BR&gt;&lt;BR&gt;(4) 수정주의 논의의 증거보완&lt;BR&gt;탈북자들의 북한개입 증언과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출간으로 5.18해석을 놓고 수정주의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2006년 12월 세실레스토랑에서 자유북한군인연합(임천용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5.18은 북한의 김정일과 군부의 계획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증언하였다. “북한군 개입의 구체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개입 자체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lt;BR&gt;&lt;BR&gt;이어서 임천용은 5.18단체가 주장하는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 증거를 확실히 증명되어야한다고 말했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흔적과 의혹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자회견은 5.18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켰지만, 또 한편으로 5.18의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의혹을 처음으로 밝힌 자유북한군인연합에 대해서 고소고발을 하지 않고 그런 의혹에 대해 탈북자의 회견내용을 인용하여 문제를 제기한 지만원 박사와 이종윤 목사를 비롯한 보수우익논객들과 종교인들이 무더기로 5.18유관단체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을 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현대사 전공자들은 강건너 불 보듯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인터넷상에서 치열한 진실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황장엽과 탈북자 군출신들의 북한군 개입의 증언과 확신은 무엇을 말하나?&lt;BR&gt;&lt;BR&gt;탈북자들의 증언의 중대성은 남한내부의 정파나 이해관계를 떠나서 발언하고 인식하는 그 객관성 자체에 있다. 목숨을 걸고 남한에 와서 정착했는데, 그런 폭로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무슨 이익이 있다고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 발언을 하려하겠는가? 탈북자들이 용감하게 증언하는 이유로 전 북한농촌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좌파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무조건 나쁘고 광주시민들이 특별히 미워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같은 나쁜 놈들에게 더 이상 이용당하고 피해를 보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봐서는 안되고 5.18광주사태가 바로 북한정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모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김대중과 같은 친북세력들의 반국가적인 책동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들 뿐만 아니라 탈북자인 우리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증언 14,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p.404).&lt;BR&gt;&lt;BR&gt;4. 당황한 친북좌파의 재역공; 좌익선동영화, &lt;BR&gt;&lt;화려한 휴가&gt;의 제작으로 국민 대중들의 눈과 귀를 억지로 막으면서 민심의 이반을 방지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lt;BR&gt;&lt;BR&gt;&lt;BR&gt;III. 북한 정권과 북한군 특수부대의 5.18개입의혹&lt;BR&gt;&lt;BR&gt;북한문제 전문가들(이명명, 김용규, 지만원)과 김일성의 비밀교시, 그리고 5.18에서의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 의혹을 정리해 본다. &lt;BR&gt;&lt;BR&gt;- 김용규(15년간 암약한 거물간첩),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사태치고, 지하당 개입이 없는 사태는 하나도 없다.” “민주화는 60년대부터 북이 남한의 불만세력을 선동하기 위해서 사용한 위장용어였고,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북의 지령이었으며, 남한에의 민주정부 수립은 김일성의 목표였다. 5.18을 북한에서는 5.18민중항쟁이라 부른다. 4.19도 5.18도 북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였다. 김대중은 북이 키웠고, 호남은 적화통일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lt;소리없는 전쟁&gt; (지만원, III, pp.193-94),&lt;BR&gt;&lt;BR&gt;- 이영명 교수, “광주사태는 남한에 배치된 북한의 지하당 소행”&lt;통일의 조건-발상의 전환을 위하여&gt;(p.164).&lt;BR&gt;- 김일성의 비밀교시는 탈북한 북한간부들의 증언과 비밀자료로 엮은 것으로 산경신문의 2004년 5회에 걸쳐 연제되었다. 이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5.18광주의 북한개입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lt;BR&gt;&lt;BR&gt;&lt;결정적 시기&gt;&lt;BR&gt;(1976년 8월 대남공작원들과의 대담)&lt;BR&gt;결정적 시기를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혁명정세는 오직 혁명가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성속되게 됩니다....혁명적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각종 형태의 대중투쟁을 적극 조직 전개하여 적들의 강경 탄압을 유도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위도중 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처럼 위장하여 자해공작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시위 군중들이 동료들의 피를 보게 되면 더 격렬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lt;BR&gt;&lt;BR&gt;(1974년 1월 대남담당요원들과의 담화)&lt;BR&gt;결정적 시기가 조성되었다고 해도 그 시기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4.19때의 교훈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선혁명을 모스크바에서 지도할 수 없듯이 평양에 앉아서 남조선혁명을 지도한다는 것은 혁명의 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lt;BR&gt;&lt;BR&gt;(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lt;BR&gt;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 역량을 총동원하여 전 민중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lt;BR&gt;&lt;BR&gt;(1979년 12월 20일 중앙당 확대간부회의)&lt;BR&gt;“·12.12사태는 미제의 조종하에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쿠데타입니다...지금 남조선에서는 군 수뇌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연락부와 무력부에서는 언제든지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4시간 무휴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주목할 사실은 신군부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김일성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lt;BR&gt;&lt;BR&gt;- 북한이 노리는 5.18에 대한 두 가지 목적(탈북자가 증언) ; ①남조선사회를 북한체제가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국가전복 ②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직하고도 충실한 親北政權의 수립이었다. 북한은 5공세력의 등장으로 단기적으로는 국가전복에는 실패했지만, 장기적으로는 80-90년대 한국사회의 좌경화 단계라는 수순을 거치면서 97년 IMF 외환위기를 고비로 하여 최초로 김대중 친북정부의 탄생을 목도하게 된다. 김대중 좌파정부는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본격적으로 햇볕 및 친북정책을 통해서 ‘퍼주기식’ 묻지마 대북지원을 감행하였으니, 결국 북한 김일성-김정일이 노린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lt;BR&gt;&lt;BR&gt;&lt;BR&gt;(김일성의 5.18관련 발언)&lt;BR&gt;1980년대 초 간부용 강연자로에서 ‘5.18무사고정시견이초과운동’과 관련해서 광주문제에 언급한 발언이 있었다.&lt;BR&gt;“&lt;BR&gt;‘51.8무사고정시경인초과운동’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경제혁명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1980년 5월 18일 남조선의 광주에서 일어났던 영웅적인 인민항쟁의 정신을 끊임없이 이어가자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공주인민봉기에서 용감하게 전사한 우리 혁명 전사들의 넋을 기리고 위로하자는 것이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속에 있는 중요한 과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p. 275).&lt;BR&gt;&lt;BR&gt;- 북한이 고정 간첩망을 통해 광주교도소 습격을 사주한 것이 아닌가?; 5/21, 무장시위대의 광주교도소 습격사건은 5.18광주사태의 성격규명에서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 광주교도소에서는 총 수감인원 2700명에 간첩 및 좌익사범 170명 수감되어 있었다. 시민군은 복면을 쓰고 6차례에 공격으로 총격전을 감행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시민군 26명 사망했다. 이 대목에서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일부이겠지만 불순세력들이 주동한 국가전복의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나?&lt;BR&gt;&lt;BR&gt;- 간첩 이창룡의 검거사건; 23일, 오전 6시경 남대문 경찰서에 잡혔다. 광주에서 서울로 왔다가 다시 광주로 가는 도중 잡혔다. 현금 1,935,000원, 난수표 3매, 무전기 1대, 독침 1개, 위장 주민등록증 2개, 환각제 등 22종 339종을 압수했다.&lt;BR&gt;&lt;BR&gt;- 26일 시위대가 전남일대의 무기고들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 사건; 카빈, M-1, 기관총 등 5,403정, 소화기탄약 288,680발 수류탄 270발, TNT 10여상자, 폭약 2,500여 상자, 뇌관 35만개, 4만여m의 도화선 등이었다. 779대의 차량의 탈취되고 이 중 군용차 34대, 경찰차 50대, 아시아자동차 328대, 일반차는 367대로 구성되었다. 정규군 2개 연대에 해당하는 규모. &lt;BR&gt;&lt;BR&gt;의혹-일반 시민들이 무기고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치밀하게 준비된 배후세력이 있다는 증거다. 이 의혹을 풀 중요한 실마리는 최근에 발간된 탈북자들의 증언집,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서 제공된 탈북자 여교사의 가공할 증언을 들어보자. &lt;BR&gt;&lt;BR&gt;“미리 침투해 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 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전 함경남도 금야군 고등중학교 교원의 증언,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p. 78.&lt;BR&gt;&lt;BR&gt;- 26일 발생한 민간이 사상자 35명 중에서 13명이 총상으로 사망했는데, 총상 13명중 9명이 카빈총에 의한 사망이다. 총상의 70%가 시민군이 소유한 카빈총에 의해 사망했다. 계엄군에는 카빈총이 일체 없었다. 시민군내에 불순분자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지만원, II, 213-215).&lt;BR&gt;&lt;BR&gt;- 이재춘(당시 21세, 1959.·11.7일생, 방위병신분으로 시민군 기동타격대에서 활동한 죄로 15년형을 선고받음), “방위병으로 기동타격대로” 1987,7월에 글, “우리는 전반적인 광주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주 이북방송을 청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의 방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광주에 간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곳에서 그렇게 빨리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만원, III, p.65),&lt;BR&gt;&lt;BR&gt;- 95년 서울지검이 발표한 총 사망자 193명 중에서 13명의 신원미상자가 발견되었다. 보상금이 1인당 15,000달러가 지급되었는데 시체를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지만원, III: p.108-110).&lt;BR&gt;&lt;BR&gt;- 무등갱생원의 M-16무장 36인조; 끝까지 무장해제에 저항, “당신들은 무기를 반납하면 돌아길 집이라도 있소. 그러나 우리는 총을 반납하면 돌아갈 집은 커녕, 밥 한끼 얻어먹을 데도 없소, 이제 끝났으니 돌아가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차라리 싸우다 죽겠습니다.”(지만원, III, pp.113-14), 1개조 5-6명으로 낯선 인물들로 구성, 36인조는 함께 움직이고 함께 행동함, 북한 특수부대의 의혹, 그들은 슈류탄, 대검, M-16으로 무장됨. 5/27일에 광주 재진입 작전시 사살된 시민군에서는 이들의 흔적이 없었다.&lt;BR&gt;&lt;BR&gt;- 5.18민주화투사 윤기원의 월북사건; 1991, 3, 보상금 2억원을 받고 월북했다.&lt;BR&gt;- 강명도, &lt;평양은 망명을 꿈 꾼다&gt; “광주폭동을 남조선 전역으로 확산시킬 경우 대남사업의 결정적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며 기대했다가 ‘북이 예상한 것’보다 남한 정부가 소요를 조기에 진압했기 때문에 김일성과 전두환 간의 싸움에서 김일성이 패했다.”(p. 240). &quot;북한의 가장 큰 대남 공작부 3호청사는 몇 주간 밤을 새워가며 삐라를 만들어 광주로 보냈다.“(p. 241).&lt;BR&gt;&lt;BR&gt;**광주사태 기간 중 북한의 동향, &lt;BR&gt;김일성은 5월 17일 심야와 광주사태 발생 당일인 18일에 연이어 군·정·기관 고위관간부회의를 개최하여 한국의 국내정세를 검토하고 통일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인민군은 18일 전군 연대장급 이상 전원간부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의 정세를 평가한 후 군사행동을 감행하기로 결의했다. 19일에는 북한전역에 걸쳐 군수물자 동원검열을 실시하는 등 전쟁준비계획을 총점검했다. 20일에는 중국을 방문 중이던 군사대표단장 백학림 중장이 북한은 통일을 위해 전쟁준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공언했고, 21일에는 긴장된 국내외 정세를 이유로 군인의 외출을 일체 금지시키는 한편 출장중인 군인과 당원을 27일까지 귀대하도록 지시했다(지만원, II, 362-63).&lt;BR&gt;&lt;BR&gt;- 謀略戰의 실태; 시민군의 일부가 공수부대 유니폼과 비슷한 예비군 군복을 입고 아파트 등에 다니면서 나쁜 행위들을 저질러 놓고 이를 공수부대 행위로 모략했을 가능성이 크다. 카빈, M-16, 기타 총기를 가지고 시민들을 뒤에서 쏜 행위도 모략전의 일종. 시체를 난자하고 불에 그을려 놓은 것. ** 나체 여인의 등에다 뒤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경우, 나체 여인이 둔부를 드러낸 채 목이 잘린 사진도 있고, 전기톱에 의해 얼굴이 가로로 잘려진 시신도 있는 등 잔인하게 죽임은 당한 것은 공수부대가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2006/12/20 탈북자군인연합 임천용의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사진들).&lt;BR&gt;&lt;BR&gt;&lt;BR&gt;IV. 5.18 성격의 재조명&lt;BR&gt;&lt;BR&gt;- 시민전투원들의 사회계급; 1심에 357명이 재판, 80%가 17살에서 22살까지의 청년들, 대부분이 학생이 아닌 도시근로자, 공장노동자, 점원, 무직자(실직자), 구두딱이, 품팔이, 식당 종업원, 불량배, 넝마주이, 전과자 등으로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하층민과 노동자계급이 주축, 잘사는 사람에 대한 분노, 평소 억압을 가했던 공권력, 경찰에 대한 사회적 분노의 표출, 축척된 소외감, 박탈감이 일시적으로 폭발된 것으로 민주화를 위한 의식적 운동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나?.&lt;BR&gt;&lt;BR&gt;- 5.18 무장시위군의 궁극적 목표는?; 무장시민군 대장 김종배(조선대 무역학과 3년, 후일 열우당의원), “(무장폭동과 폭력혁명으로) 최규하 정부의 전복.” 1980년 8.14일 피의자 신문에서 진술(지만원 III, 52-53).&lt;BR&gt;&lt;BR&gt;- 무장시위군의 만행, “무장시위대들은 거리에서 차량을 질주하며 총을 쏘는 등 공포분위기를 연출,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장례비를 치른다는 명분으로 돈을 뜯어내고, 여염집에 들어가서 가족단위로 집단살인을 저질렀다.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집에 들어가서 가족을 몰살시켰고, 금품을 훔치고 강간을 자행하는 등 본색을 드러내었다. 처음에는 유언비어에 속아서 거리로 나갔던 시민들도 무법천지로 변한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지만원 II, 287).&lt;BR&gt;&lt;BR&gt;- 지만원 박사는 “5.18은 4.3사건은 역사뒤집기를 집행한 일란성 쌍둥이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한다. 그는 역사조작 및 왜곡에 이르는 과정을 6단계로 설명한다.&lt;BR&gt;&lt;BR&gt;악성 유언비어→거짓말로 대중선동→폭력(파괴, 방화, 살인)→모략(뒤집어씌우기)→집단적 억지주장→역사왜곡에 이르는 일련의 전술&lt;BR&gt;&lt;BR&gt;- 5.18에 평화적으로 참가한 순수한 시민들의 민주화요구가 정당하지 않았거나 묵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무장폭동화되는 과정에서 불순세력의 증거를 포착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증거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김정일이 나쁜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광주시민들의 자존심과 명예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은 광주시민들을 일방적으로 폭도라고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고 그렇다고 주장한 우익논객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5.18광주사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만인이 공유해야하는 현대사가 되었고 역사가의 연구영역이 되었기에 누구든지 다른 입장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누가 감히 5.18광주를 건드려”하는 식으로 고소고발이나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협박을 당하는 등 불이익을 당하거나 불호령이 떨어지게 되는 ‘神聖不可侵’의 영역으로 고착화되어서는 곤란하다. &lt;BR&gt;&lt;BR&gt;어쨌든 5.18은 북한으로 볼 때, 단기적으로는 실패한 무장봉기였다. 그 이유는 북한의 목적은 “광주라는 제한된 지역만의 봉기를 노린 것이 아니라 남조선 정권의 전복이라는 큰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p.231).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5.18의 후유증으로 인해 공권력이 무력화되면서 한국사회의 좌경화에 일벙부문 기여했으며 좌파에 대한 여론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켜서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의 등장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주춧돌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한 것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lt;BR&gt;&lt;BR&gt;&lt;BR&gt;V.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lt;BR&gt;&lt;BR&gt;1. 북한군 개입의혹의 증언이나 증거물은 보관하고 있나, 아니면 인멸되었나? 북한군의 사망한 북한군에 대한 대규모 암매장의 의혹, 흔적 없이 사체를 없앴나?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군 사상자들은 자체적으로 “시체를 완전히 소각해서” 증거인멸을 기도했다고 말한다.&lt;BR&gt;&lt;BR&gt;2. 신원미상의 13명은 누구인가? 달나라나 우주에서 온 外界人인가? 5.18이후 시신과 증거물은 어떻게 보관되었나? 얼굴과 지문 등은 계엄사에 아직 보관중인가? 아니면 인멸되었나?&lt;BR&gt;&lt;BR&gt;3. 5.18광주의 주동자는 누구이며 배후는 누구인가? 윤상원은 책방서점에서 일하는 일개 점원이었다. 피고인들을 심문하여 작성한 &lt;계엄사&gt;에는 윤상원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다. 윤상원은 무대에서 배우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lt;BR&gt;&lt;BR&gt;4. 김대중의 5.18 역할문제; 90년대 법원판결에서 김대중의 내란음모는 어떻게 무슨 근거로 무죄로 처리했나? 김대중과 그 추종자들에 대한 기록은 계업사의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의 일지에 소상히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이점이 무시되었나?&lt;BR&gt;&lt;BR&gt;5. 악성유언비어는 누가 퍼트렸나?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인 씨를 말리려 왔다.” “여자들 유방을 총검술로 싹둑 도려내고 나서 무참하게 학살했다.” “군인들에게 환각제를 먹이고 대량학살한다.” 북한의 대남공작부나 현지 파견 특수부대가 아니면 누구인가?&lt;BR&gt;&lt;BR&gt;6. 12.12와 5.18에서 전두환 등 군부세력이 정당했다면 왜 역사는 뒤집어지고 좌경화를 막지 못했나?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87년이후 벌어진 집권당의 권력암투와 공안사건의 교훈을 되새겨야한다.&lt;BR&gt;&lt;BR&gt;7. 5.18유관단체들의 정체성 문제; 5.18의 성격규명은 단순한 명예훼손이나 법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서 북한의 대남공작의 실체를 파헤치는 공안차원의 것과 역사학 영역의 학술문제라는 2중의 과제로 넘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화운동이란 성격에만 집착하여 고소고발의 남발만할 것이 아니라 학계, 언론계, 공안기관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자료를 새로 수집하면서 재조사와 재연구에 협조해야할 것이다. 우선 탈북군인들을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고 자료를 서로 교환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북한군 특수부대 의혹을 밝히지 못하게 함으로써 북한의 명예를 지키려는 이적행위를 한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서는 안될 것이다.&lt;BR&gt;&lt;BR&gt;8. 좌익선동 영화, &lt;화려한 휴가&gt;의 대중적 영향; 2007. 7월 대선을 앞두고 상영, 사실적으로 객관적으로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대중들에게 국군과 경찰 등 공권력을 가해자로 묘사하여 대중의 증오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反體制運動의 정당화 및 反軍思想을 오염시켰다. 좌익선동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lt;화려한 휴가&gt;를 보면 국군과 공권력을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대중의 증오심과 선동을 부추기고 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의도에서 이런 영화를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만드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살펴보자.&lt;BR&gt;&lt;BR&gt;“처음부터 끝까지 증오와 적개심을 유발시키게 하는 편견적이 부분이었고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의 감정이 일게 충동질하는, 다시 말해 노골적으로 이간질하는 의도가 엿보였다....평화라는 그럴듯한 배경을 세워놓고 다른 한 쪽은 그 평화를 탄압하고 짓밟는 잔인한 폭력세력을 세워서 ‘살인마’라는 진압군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위대한’ 시민군간의 치열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 놓았다.” “이념이라는 색깔을 영화전체에 깔고 조작이라는 기술까지 곁들여서 친북좌파세력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증언 1,『“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p.53).&lt;BR&gt;&lt;BR&gt;&lt;BR&gt;VI. 결론: 해결해야할 과제와 자세&lt;BR&gt;&lt;BR&gt;5.18광주는 未完成의 역사이자 현재 의혹을 풀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進行形의 역사다. 북한군 개입의 증거 불충분과 북한측 비밀문서의 미공개로 인해 재조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북한탈북자들과 북한군 출신들 중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중요한 증언들이 속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성과가 바로 최근 9월 29일에 자유북한군인연합에서 발간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다. 역사가들은 이제 5.18단체의 눈치만 보면서 스테레오(정형화)화되고 화석덩어리처럼 굳어진 소위 ‘민주화운동’이란 해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사료의 발굴을 통해 보다 자유롭게 재해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lt;BR&gt;&lt;BR&gt;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발전을 거듭한 대한민국은 모든 학문영역에서 성역이나 금기사항이 없이 자유롭게 토론하여 의혹을 정리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고 새로운 결론과 참된 결과를 얻어내어서 두 번 다시는 5.18과 같은 비극적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도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대남파괴공작의 실상을 올바르게 파악하여 전 국민들에게 알리고 남한의 김정일 추종세력을 정리하여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키나가야한다.&lt;BR&gt;&lt;BR&gt;역사적 사건이 은밀한 첩보작전와 긴밀하게 연관되었을 때 상당히 세월이 흘러야 증거와 진실이 드러난다. 특정사건에 대한 역사해석은 판사가 법적 판결로 인해 규정되거나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실과 증언에 의해 새로 기술되며, 더욱 완전하고 공정한 역사로 진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역사는 특정 권력이나 시민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이 공유하는 것이다. 자유롭게 토론하는 공간과 분위기가 필요한 것이지 걸핏하면 살벌하게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여 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키면서 민주주의와 법을 남용해서는 안될 것이다.&lt;BR&gt;&lt;BR&gt;요약한다면, 5.18광주문제에서 의혹규명에 대한 재검토와 재조사는 학문의 자유문제요, 한반도 좌익 청산문제이자, 통일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국가적 중대 현안문제임을 분명히 밝혀둔다.&lt;BR&gt;&lt;BR&gt;①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과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학문적 자유가 보장받을 수 있는가라는 인간의 기본권의 문제, &lt;BR&gt;② 김정일의 대남노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친북좌파의 정체 폭로와 그들의 청산문제, 그리고 &lt;BR&gt;③ 김정일의 대남파괴공작으로부터 무장폭동의 재발을 막고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가의 문제와 마지막으로 &lt;BR&gt;④ 김정일의 핵무장을 억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여하히 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들과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lt;BR&gt;&lt;BR&gt;- 한국현대사 전공자의 자세의 전환 필요성; 국민들에게 새로 알릴 것을 알리고 바로 잡을 것을 바로 잡는다는 원칙적인 자세의 수립이 필요하다. 한국현대사학회나 유관 역사학회에서 5.18광주가 민주화운동이란 점에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하면 친북좌파들의 반발과 고소고발이라는 법적 대응이라는 후속조치가 겁이 나서 재검토에 착수하지 않는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lt;BR&gt;&lt;BR&gt;- 5.18광주사태 진상조사위원회의 재구성; 여러 의혹이 있는 점에 대해서 재조사와 새로운 자료, 새로운 증언의 수집 보완이 필요하다. 물론 남한의 각종 소요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북한 비밀문서의 공개가 필수적 요소이다. 그러나 현재 통일은 기약이 없으므로, 수집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자료를 재수집해서 분석을 다시 해야할 것이다. 미궁에 빠진 완전범죄의 살인사건도 한 가닥의 단서에 의해 범인을 추적할 수가 있다.&lt;BR&gt;&lt;BR&gt;- 5공세력의 성격의 재규정 문제&lt;BR&gt;5공은 반공구국세력인가 아니면 민중을 탄압한 권력찬탈세력인가? 지만원의 책에 의하면, 5공군부세력은 단순히 권력을 탐한 반란세력이 아니라 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후 5.18에 이르는 극도의 혼란정국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들로 설득력있게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마녀사냥처럼 밀려닥친 90년대 좌파 여론재판의 쓰나미로 인해 이전의 국가유공훈장들을 모두 빼앗기고 살아있어도 죽은 자보다 못한 산송장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시의 유공훈장도 박탈당했다. 이런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억울한 일이 없는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lt;BR&gt;&lt;BR&gt;- 5.18유관단체의 협조와 인식의 전환 &lt;BR&gt;시위대로 참가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북한특수부대 개입은 광주시민과 관계가 없고 책임질 성격이 아니다. 광주시민들이 북한군대를 초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별개의 문제다. 계엄군과 공안당국, 정부가 북한군 개입을 방지하지 못했다면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5.18에 대해서 ‘민주화운동’이란 용어와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 5.18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북한개입 의혹에 대한 발언자에 대해 명예훼손과 고소고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표현과 언론, 학문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처사로 부당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5.18유관단체는 “왜 그토록 북한 김정일의 편을 싸고 돈다”는 오해를 사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군 개입여부는 역사적 진실 규명 차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lt;BR&gt;&lt;BR&gt;- 탈북자들의 용감한 증언의 계속과 물증의 확보 필요성&lt;BR&gt;북한 특수부대가 참전했다면 5.18참가자들이 생존해 있기에, 쌍방간의 증언과 기록이 보다 선명하게 공개되어야한다. 물증의 확보가 시급하다. 탈북자들은 근거를 가진 정확한 증언이 필요하다. &lt;BR&gt;&lt;BR&gt;- 군지휘관, 국정원과 기무사 등의 증언과 자료공개의 필요성 제기&lt;BR&gt;80년대 정보기관에서 일한 사람들은 나이가 고령화되어 기억을 재생하기 어렵다. 하루빨리 묻혀진 자료는 공개하고 자신이 숨을 거두기 생전에 용감하게 증언하여 기록을 남겨야한다. 그런 애국심이 마지막으로 후손들과 대한민국에게 남기는 선물이 될 것이다. 국가정보기관 자체가 자료공개를 꺼리는 등 김정일과 5.18유관단체의 눈치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한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lt;BR&gt;&lt;BR&gt;- 역사가의 과제와 5.18 새로 쓰기 역할&lt;BR&gt;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의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역사학자가 할 일을 육군대령출신 지만원 박사에게 그 힘든 작업을 맡긴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무려 18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문서를 5년에 걸처 읽었다고 하니, 그 인내심에 존경의 마음을 표할 뿐이다. 한국현대사를 새로 기술하는 일이며, 의혹투성이지만 미처 밝혀지지 못한 미진한 부문에 대해서 더 깊은 연구성과를 내는 것이 후학들이 할 일이라고 믿는다. 학문적 논의에서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고 해서 또 다시 인민재판식으로 때를 쓰고, 고소고발이나 심지어 폭력행사가 일어나서는 안된다.&lt;BR&gt;&lt;BR&gt;- 진압군의 명예회복과 보상&lt;BR&gt;광주시민들의 명예와 보상은 좌파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상당히 이루어졌다. 이제는 진압군인 국군이 발언해야하고 ‘가해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한다. 특히 민간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한 주범이란 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발언과 증언이 있어야한다. 그들에게 정당한 역사적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져야한다.&lt;BR&gt;&lt;BR&gt;- 이명박 정부의 단호한 대북정책 지속여부&lt;BR&gt;5.18에 대한 북한군 특수부대에 관련된 탈북자들의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김정일 정권에게 그 책임을 단호하게 물어야한다. 결단코 햇볕정책으로 회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김정일의 대남파괴공작이나 대남적화통일 야욕이 결코 중단되거나 포기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시민단체나 여야정당내부에서 “풍년이니 쌀을 북한에 지원하자”라는 한심한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에 의해 “핵개발이 북한으로서는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망언이 나오고 있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죄 없는 금강산 관광객을 무참하게 총격으로 사살하도고 재발방지나 사과 한마디 없는 북한의 만행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lt;BR&gt;&lt;BR&gt;- 제2의 광주사태 재발 방지책이 있나?&lt;BR&gt;효순이 미순이 미군장갑차사건-2008년 광우병-미국쇠고기 촛불폭력시위-12월 국회폭력점거농선사건-용산전철연사태 등 일련의 폭력불법사건들로 미루어 볼 때, 한국사회에서 친북좌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있으며 그들의 언론플레이, 자금력과 조직력, 대중동원력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lt;BR&gt;&lt;BR&gt;***촛불시위와 5.18의 유사성은 없는가?&lt;BR&gt;작년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는 5월 24일부터 폭력시위로 변질되었다. 유언비어의 유포, 시위의 폭력성, 반미성향으로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촛불시위시 공권력의 강경한 시위진압의 억제내지 지연으로 인해 엄청난 인적 물적 대가를 치렀다. “7월 27일까지 64일동안 경찰은 겨우 13명을 구속하고 910명을 불구속 입건한 반면 경찰 병력 486명이 부상 당했다. 경찰버스 121대가 파손되고 무전기 94개, 방패 213개, 방석모 368개를 빼앗기는 등 장비 1,849점의 피해를 입었다.”(지만원, III, p.35)&lt;BR&gt;&lt;BR&gt;- 북한 비밀문서의 공개 필요성&lt;BR&gt;통일이후 북한문서가 공개되면 북한의 대남공작과 5.18에 대한 전모(全貌)가 모두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통일이 되면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의 혁명사적관에 있는 자료들과 대남 사적관에 있는 자료에서 진실이 분명히 밝혀지게 것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살아서 북한의 대남공작의 모든 실상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자유통일을 이루는 역군(役軍)이 되어야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SPAN&gt;&lt;BR&gt;[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lt;/SPAN&gt;&lt;/FON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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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趙甲濟의 현대사 秘話] 나와 金大中 前 대통령의 38년 인연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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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석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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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height=12&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대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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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amp;nbsp;&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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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title2&gt;&lt;B&gt;박정희는 한 일본인 학자에 의하여 “한국 역사 속의 봉건적 잔재와 싸우다가 戰死한 사람”으로 평가됐다. 김대중씨는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적 가치와 싸우다가 憤死한 사람”으로 평가될지도…&lt;/B&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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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amp;nbsp;&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소제목 테이블 끝--&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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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TOP: 6px&quot; vAlign=top align=right height=5&gt;&lt;FONT color=#0066cc&gt;趙甲濟&lt;/FONT&gt; 月刊朝鮮 편집위원·조갑제닷컴 대표&amp;nbsp;(&lt;A href=&quot;mailto:mongol@chosun.com&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mongol@chosun.com&lt;/FONT&gt;&lt;/U&gt;&lt;/A&gt;)&amp;nbsp;&lt;BR&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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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vAlign=top&gt;&lt;IMG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bignews_line_f.gif&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글쓴이 끝--&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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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2pt&quot; color=#2f73ba&gt;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능수능란한 연설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0&gt;&lt;IMG height=0 src=&quot;https://monthly.chosun.com/image/space.gif&quot; width=1&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subArtcl id=articleBody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지난 8월 18일 경기도 양평으로 강연차 가는 車中(차중)에서 知人(지인)이 휴대전화로 ‘金大中(김대중) 전 대통령 他界(타계)’ 소식을 전해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내가 김대중씨를 처음 본 것은 1971년 4월 부산에서다. 朝紡(조방) 터에서 열린 대통령 후보 연설회에서 그는 능수능란한 熱辯(열변)을 토했다. 수만 관중을 웃기고 흥분시키고 휘어잡았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연설회엔 金泳三(김영삼) 의원도 찬조연사로 나왔다. 그 전해 신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競選(경선)에서 김대중씨에게 역전패당한 그였지만 이날 진심으로 라이벌을 위한 연설을 했다. 기자는 그때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일주일쯤 뒤에 같은 장소에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연설회를 가졌다. 그는 연설을 시작하면서 “나는 야당의 모 후보처럼 말을 잘 못하지만…”이라고 했다. 어색해하는 말투였다. 遊說(유세) 내용도 施政(시정)연설처럼 딱딱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70년대, 박정희는 ‘국력의 조직화, 효율의 극대화’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국의 모습을 바꾸어 나갔다. 두 차례 석유파동이 있었으나 중화학 공업 건설, 중동건설 시장 진출, 새마을 사업, 의료보험 도입, 자주국방력 건설을 해냈다. 7년간의 유신체제가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대신에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이런 국가개조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시기 김대중·김영삼은 민주화 운동세력의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고 중심이었다. 김영삼은 기성정치판, 즉 場內(장내)에서, 김대중은 場外(장외)에서 상호보완적으로, 또 경쟁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싸웠다. 그 과정에서 김대중씨는 납치와 투옥, 김영삼씨는 국회에서 제명을 당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에 대한 국회 제명은 1979년 10월 釜馬(부마)사태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부마사태는 金載圭(김재규) 당시 정보부장을 변심시켜 그 열흘 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10·26 사건으로 이어진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兩金의 협력과 갈등&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380_1.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71년 대선 당시 부산 유세에서 김영삼 의원(오른쪽)은 경선 과정에서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박정희를 공동의 敵(적)으로 삼아 싸울 때 兩金(양김)씨는 경쟁할 때 경쟁하고 협력할 때는 협력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1970, 80년대 양김씨의 이런 경쟁과 협력 속의 大同團結(대동단결)이 큰 기여를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예컨대 1979년 5월 신민당 全黨(전당)대회 총재경선 때 김영삼씨는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李哲承(이철승) 당시 총재에게 역전승할 수 있었다. 김영삼 총재는 그 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선명투쟁을 지휘하여 박정희 정권을 뒤흔들어 놓았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0·26 사건으로 권력의 眞空(진공)상태가 생긴 틈으로 全斗煥(전두환) 장군이 이끄는 정규 육사 출신 그룹이 12·12 사건을 일으키면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민주화의 희망이 안개政局(정국) 속에서 ‘1980년의 봄’을 꽃피웠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大權(대권)의 高地(고지)가 보이자 양김씨는 분열하고 사회 경제 불안이 겹쳤다. 이를 이용한 신군부의 5·17 계엄확대 조치와 광주사태로 김대중씨는 감옥으로, 김영삼씨는 가택연금으로 들어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구속된 김대중씨는 1973년 일본에 망명 중 친북성향 인사들과 손잡고 反(반)국가단체인 한민통을 결성한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미국 카터-레이건 정부의 개입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減刑(감형)됐다. 2년 수감 생활 뒤 그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4년 안정기에 접어든 전두환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야당 분열 공작을 편다. 정치활동이 금지된 야당 정치인들을 총선 직전에 풀어주어 대거 출마하게 했다. 야권을 두 쪽으로 만들면 양김씨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 판단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영삼씨는 출마가 허용되지 않았으나 신민당을 急造(급조), 1985년 2·12 총선에 임했다. 선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영삼의 선거투쟁 전략이 대성공했다. 선거유세장은 전두환 정부 성토장으로 변했다. 人波(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겨울방학 때라 대학생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니면서 야당 붐을 일으켰다. 1980년 봄 이후 5년 만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고 민주화의 열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김대중씨는 김영삼씨가 주도하는 선거판을 지켜보다가 투표 직전에 귀국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순수했던 시절&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2·12 총선은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민주화 쪽으로 트는 分水嶺(분수령)이었다. 전두환 정부를 상대로 강경투쟁을 선언한 신민당이 제1야당이 되고 御用(어용)야당으로 비쳤던 민한당이 몰락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民心(민심)의 대폭발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충격을 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후계자로 준비해 두었던 盧泰愚(노태우)씨를 민정당 대표로 임명, 적극 대응에 나서고, 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에 내각제 改憲論(개헌론)으로 맞섰다. 政局(정국)은 전두환-노태우 對(대) 김대중-김영삼의 구도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양김씨는 1980년 봄에 신군부가 집권할 수 있었던 데는 대권 욕심으로 분열하여 국민들을 단결시키지 못했던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죄의식이 있어 표면상으로는 단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양김씨를 ‘김대중-김영삼’으로 표기하느냐 ‘김영삼-김대중’으로 하느냐로 기자들이 고민할 때, 김영삼씨가 ‘김대중-김영삼’으로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국민들의 열망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의한 민주화로 단일화되었으므로 지역감정도 제대로 끼어들지 못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때야말로 한국인들이 순수했던 시절일 것이다. 동시에 양김씨가 국민들 마음속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각인된 때였다. 언론도 두 사람에게 우호적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月刊朝鮮 기자이던 필자도 동교동의 김대중, 상도동의 김영삼씨를 자주 만나러 다녔다. 취재원이라기보다는 동지적 유대감을 느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한 번, 전두환 정권에 의해 두 번 解職(해직) 당한 적이 있는 기자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총재 시절에 여덟 번 인터뷰를 했다. 한 번 인터뷰에 2~6시간씩 걸렸다. 총 20시간이 넘는 대화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김씨와 인터뷰를 하러 갈 때는 질문을 준비한 공책을 가져 가 펴놓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는 나와 인터뷰한 뒤에는 피로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결투 같았으나 그가 한 말을 정확하게 기록했으므로 月刊朝鮮이 나온 이후 그로부터 불만의 표시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5년 4월 15일 저녁 月刊朝鮮 기자로 근무 중이던 吳交力鎭(오효진)씨와 함께 김대중씨를 만나러 갔다. 그가 동교동 자택을 개축하기 위해 길 건너 창천동에서 집을 전세 내 입주한 직후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트럭사고의 진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2층 서재에서 김씨는 밤늦도록 김대중 납치사건과 트럭사고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生(생)과 死(사)를 오고간 장면에다가 권력자의 음모가 등장하고 미국 CIA 이야기까지 나오니 흥미진진했다. 박 정권이 트럭을 동원해 자신의 승용차를 밀어 죽이려 했다는 술회 끝에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금은 내가 다 알아요. 누가 시켰다는 걸.”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누가 시켰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시 대통령 측근들이에요. 그 트럭의 소유자가 그 당시 공화당 전국구 후보로 등록된 모 변호사예요. 그 운전사 사건을 처음 담당한 검사는 갈려버리고 운전사는 교통사고를 냈다고 1년 징역을 받았는데 다 살지 않고 나왔고, 나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어요. 저는 다섯 번의 죽을 위기에서 다 살아나왔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의 도구로서, 당신의 목적에 쓰시려고 그렇게 구해주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박정희가 트럭으로 政敵(정적)을 죽이려 했고, 실패하자 증거인멸을 위해 운전자를 없애버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7년 大選(대선) 기간 중 김대중씨는 연설을 통해 이 트럭사고를 자주 언급하고 다녔다. 나는 月刊朝鮮 그해 11월용 기사로 ‘1盧(노)3金(김)의 약점’이란 주제의 취재를 하다가 이 트럭사고를 다루게 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그날 밤 김대중씨가 “운전사도 의문의 죽음을 했다”고 말했기에 운전기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알아보았더니 사고트럭 운전기사 權重億(권중억·당시 51세)씨는 무덤 속에 있지 않고, 부산시 동래구 연산6동 1876의 13번지(11통 3반)에서 살고 있었다. 회사 출퇴근 버스의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생활에 바빠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듯 첫마디가 “그 사고가 문제가 돼 있습니까?”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취재결과 김대중씨의 설명은 너무나 사실과 달랐다. 의문의 죽음을 했다는 운전기사는 살아 있었고, 수사 도중 갈렸다는 담당 검사는 갈린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 검사는 정치인으로 變身(변신)하여, 김대중 정부 때 도지사를 지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단순 교통사고이지 암살음모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행동하는 양심’이 박정희를 모함하기 위해 무고한 운전기사를 ‘살인범’으로 몰고 있는 게 아닌가? 김대중씨의 인격에 대해 본격적인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트럭운전자를 암살미수범으로 몰아&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0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380_2.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암살 기도 때문에 다리를 다쳤다면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노벨상 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시상식에서 김대중 수상자의 경력을 소개했는데, “그는 납치와 암살 기도를 겪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납치는 사실이지만 김대중씨가 암살기도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아마도 김대중씨 측에서 트럭사고를 ‘암살기도’로 노벨상 위원회에 설명했던 것을 인용한 것이리라. 국제사회에서 한 사람을 높이기 위해 대한민국의 國格(국격)이 상처받는 순간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놀랍게도 國葬(국장) 기간에 유족들이 공개한 ‘김대중 日記(일기)’ 2009년 6월 2일자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1971년 국회의원 선거 시 박 정권의 살해 음모로 트럭에 치여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gt;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씨는 단순교통사고로 확정된 사건을 他界(타계)하기 직전까지도 살인 음모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이 이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 공개함으로써 트럭운전기사를 살인미수자로 모는 중대한 명예훼손을 저지른 셈이다. 몇몇 신문은 박정희 정권이 트럭 사고를 위장한 암살 음모를 저질렀다고 단정하는 誤報(오보)를 서슴지 않았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씨는 진실로 그렇게 믿은 것인가. 아니면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修正(수정)불가능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정치적 의도하에서’ 죽을 때까지 우긴 것인가?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런 의문을 푸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씨는 1986년 11월에 비상계엄령 선포가 임박했다는 소문 속에서 “정부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87년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6·29 선언을 발표, 직선제 개헌안을 받아들였으나 김대중씨는 대통령 출마를 강행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 진영에선 “6·29 선언은 국민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정부가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강변했다. 민주진영은 양김 동시 출마로 분열되어,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36.6%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 지역감정은 표출된 적이 거의 없었다. 요사이 우리가 경험하는 지역감정의 가까운 원인은 1987년 양김씨가 분열, 동시 출마하면서 생긴 것이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왜 재개표를 요구하지 않나요?”&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이후 양김씨의 대응은 달랐다. 김대중씨는 개표과정에서 선관위가 컴퓨터 부정을 저질러 당선자를 조작했다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의 주장에 동조했다. 김영삼씨는 동조하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김대중씨가 그러면서도 재개표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91년 1월 13일 한 호텔 객실에서 만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지방자치제 선거 실시를 요구하면서 장기간 단식을 한 직후여서 핼쑥해 보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김 총재로서는 1992년 대선이 마지막 시도가 되는 것이지요?”라고 운을 뗐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제가 직접 간여하는 것으로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요사이 지역감정의 직접적인 원인은 김영삼, 김대중 두 분께서 지난 대통령 선거에 동시출마한 때문이 아닙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호남인은 대통령에 출마해선 안된다는 이야기와 통하는데, 호남인이 4반세기를 참아왔지 않습니까. 1963년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씨가 15만 표 차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의 지지 덕분인데, 그 뒤에도 25년간 참으면서 지역차별이 해소되기를 기다리다가 그렇게 한 것을, 호남사람만 비난해선 안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다음 대통령 선거에 자신이 있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통령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노력밖에 할 수 없습니다. 노력해도 대통령이 못되면 어떻습니까. 저는 지금까지의 정치생활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컴퓨터 부정이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계십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렇습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면 왜 재개표를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저보고 물러가라는 소리가 요란할 땐데 그런 말이 먹혔겠습니까.”&lt;BR&gt;&amp;nbsp; &lt;BR&gt;&amp;nbsp; 컴퓨터 부정설을 정말 믿었다면 無知(무지)의 소치이고, 부정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억지를 부렸다면, 최소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천당行(행)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잘 삭은 홍어&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던 김대중씨는 귀국 직후 月刊朝鮮 부장이던 나에게 은퇴 후 최초의 인터뷰를 허락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1993년 8월 24일 오전 서울 동교동의 김대중씨 자택에 도착했다. 일산 신도시에 머물고 있던 김 전 대표는 토요일에 동교동으로 왔다가 일요일 예배를 보고 다시 일산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씨는 이날 인터뷰 장소로 동교동을 선택했다. 일산에서는 일체의 외부 접촉을 끊고 연구와 집필에만 전념한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 전 총재의 집은 한적했다. 휴가 중인 둘째 아들 弘業(홍업·당시 43세)씨 부부의 두 아들인 종대(7), 종민(5)군이 할아버지의 응접실을 휘젓고 다녔다. 손님에게서 받은 만원권 지폐를 한 장씩 손에 쥔 꼬마들은 “돈을 엄마에게 맡겨라”는 채근을 피해 응접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오전 9시50분쯤에는 전남 道(도)의회 의원 10여 명이 응접실에 들어와 權魯甲(권노갑), 金玉斗(김옥두)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응접실이 돌연 북적대기 시작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0시 정각에 대문을 들어선 김대중 전 총재는 마당 잔디 위에서 전남 도의회 의원들과 어울려 기념촬영을 마치고 나서 잔디밭에 새 모이를 뿌렸다. 도의원들과 분주히 인사를 나누던 그는 “집에서는 조용하게 인터뷰를 하기가 어렵겠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인터뷰는 동교동 부근인 서교호텔 음식점의 한 방에서 6시간 가까이 진행됐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두 시간쯤 인터뷰를 하다가 냄비국수로 점심을 간단히 때울 때 권노갑씨가 “흑산도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큰 접시에 가득 채운 홍어회를 내오도록 했다. 시중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잘 삭은 홍어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요즈음 홍어 철이 아니어서 어렵게 진짜 홍어를 구했다”는 권 최고위원의 말에 김 총재는 영국에서 홍어회를 먹었던 일을 화제로 올렸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제가 아는 분이 영국에 오는 길에 홍어를 사면서 ‘김대중 선생님 갖다 줄 거니까 좋은 걸로 주십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내주려던 홍어를 집어넣더니 ‘그럼 진짜를 드려야 되겠네’라며 딴 고기를 주더랍니다. 이분이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오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승무원이 그분을 귀빈실로 모셨다고 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한 김씨는 “홍어 덕에 1등석에 타고 온 사람도 있다”며 “세상 살면서 남에게 좋은 소리 듣고 살아야 한다”고 흐뭇해 했다. 김대중씨는 인터뷰하면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인데, 기자가 질문을 하는 시간에 빨리 숟가락질을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내가 역사에 기록될 페이지는…”&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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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380_3.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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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한 후 김대중씨는 정계은퇴 선언을 했으나, 3년 후 복귀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그날 김 총재와의 인터뷰는 통일문제에만 주제를 국한하기로 하고 이뤄졌다. 그렇지만 그는 기자가 주제 밖으로 던지는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정치를 계속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세 번 심판을 받았으면 됐지 무슨 낯으로 또 나서겠느냐”고 짤막히 대답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에 기록될 페이지와 내가 기록될 페이지는 다르다”고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날 김대중씨는 容共(용공)적이라고 비판받았던 자신의 통일방안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여 말했다. 아마도 이 달라진 통일방안을 선뵈기 위해 나에게 인터뷰 기회를 준 듯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인터뷰 기록을 맡았던 金演光(김연광) 기자(月刊朝鮮 편집장 역임)가 며칠 걸려 대화록을 정리하니 작은 책 한 권 분량이었다. 이를 김대중 총재에게 주고 발언이 정확히 기록되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며칠 후 수정된 대화록이 돌아왔다. 약 3분의 1을 고친 것이었다. 맞춤법 교정을 본 것도 있고, 논란거리를 빼버린 곳도 있었다. 김씨는 가느다랗게 나오는 붉은 수성펜을 가지고 여백에다가 고치고 첨삭했는데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정확무비한 교정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씨는 이 인터뷰 기록을 고치는 데 꼬박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그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 잘 드러나 있는 교정지를 보면서 나는 기자들에게 “이것을 보관하고 있으면 돈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씨가 교정지에서 뺀 부분 중 하나는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이라면서 철거를 추진하던 국립중앙박물관(옛 중앙청)에 관한 언급이었다. 김대중씨는 철거가 역사파괴라고 보고 있었으나 현직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한 것이 활자화되는 데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인터뷰 기사 뒤에 이런 ‘後記(후기)’를 붙였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김대중씨를 다시 정치의 전면으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은 국민도 역사도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실패만이 김대중씨를 정계로 복귀시킬 수 있다. 김대중씨의 정계복귀 타이밍은 1995년 이전에 치러져야 하는 시·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밀접하게 관련될 것이다.&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인터뷰가 실린 月刊朝鮮 1993년 10월호가 시중에 깔린 직후 김대중씨는 나와 김연광 기자를 점심에 초대했다. 그는 대뜸 “인터뷰만 쓰지 후기는 뭣하러 썼어요?”라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80 align=center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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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380_4.jpg&quo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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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 padding-ight: 5&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김대중씨가 꼼꼼하게 수정한 필자와의 대화록.&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출마 안 합니다”&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씨와 한 여섯 번째 인터뷰는 1995년 1월호 月刊朝鮮에 실렸다. 그때 김씨는 아태재단 이사장으로서 정계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날은 역사가 대화의 주제였다. 그는 매우 부정적이고 좌파적인 현대사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이 역사관이 바로 김대중의 親(친)김정일-反(반)대한민국적 행태의 근본임을 알 수 있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땅에 피 흘리는 자가 따로 있고 권세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모순의 역사가 생겨난 것이 바로 광복 50년의 산물입니다. 여기에는 美(미)군정의 과오가 큽니다. 군정 3년을 친일파 수중에 맡기다시피 하여 그들이 계속 힘을 유지하게 만든 것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무엇보다도 李承晩(이승만) 대통령이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에 역행했습니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親日派(친일파)가 지배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에 가장 충성하던 군인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것이 민족 정통성을 세우는 데 실패한 원인입니다. 우리 역사를 통해 개혁하려던 사람은 거의 다 목숨을 잃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獨學者(독학자)의 공통적인 獨善(독선)이 있었다.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는 많아도 큰 논리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정치적 타산으로 한 발언들까지 끼어들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이 많았다. 그는 또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自評(자평)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차기 대통령 출마는 정말로 포기하셨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안 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러나 정치인은 상황의 요구에 따라야 할 의무도 있는데 너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어렵지 않습니까.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래요. 그러나 내가 볼 때 상황의 변화가 있다고 볼 수도 없고 내가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합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의 이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1995년 8월 13일 광복 5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세종로와 태평로 일대는 평소보다 어수선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8월 15일 첨탑을 철거하는 기념행사를 앞두고 얼룩덜룩한 막을 두르고 있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날 오전 7시30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장(당시 72세)이 서울 광화문의 코리아나 호텔 일식당에 도착했다. 인터뷰를 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각이었지만 김 위원장은 감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그해 6월 27일에 있었던 地自體(지자체) 단체장 선거 직전에 새로운 당을 만들면서 政界(정계)에 복귀하여 서울시장 선거에 趙淳(조순) 후보를 공천하여 당선시키는 등 큰 성공을 거둔 뒤였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金泳三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 토로&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2년 전의 인터뷰 후기를 인용하면서 “저에게는 적어도 김 위원장께서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에 대해 그는 “한 가지 강조할 것은 저는 정계은퇴의 약속을 못 지킨 것을 분명히 사과했다. 여기에는 변명이 없다”고 말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도청, 감시, 파괴공작을 군사정권 때보다도 실제 더 합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가지고 있는 시간을 보낼 노리개가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서 그걸 다 빼앗아버린 겁니다. 그러니 내가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다시 정치를 하게 된 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정치에 다시 끌어온 것도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난번 6·27 선거 지원에 나가서 연설하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니까, 좀 과장해서 말하면,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더라니까요.”&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김영삼 정부의 對北(대북)정책도 굴욕적이라고 비판했는데 그 논리가 지금 읽어 보니 매우 재미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영삼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가장 불안을 주는 분야는 통일정책입니다. 어떤 때는 초강경으로 나갔다가 어떤 때는 超(초)저자세로 나아갑니다. 북한을 다룰 때는 서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개방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방하지 않으면 망한다. 그러니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아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대하면서 미국과 일본과의 협조만 유지하면 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즉 남북협력 없이는 北美(북·미)관계도 北日(북·일)관계도 개선될 수 없다는 원칙만 확실히 하면 되는 겁니다. 조건은 우리에게 유리한데 왜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지 걱정입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제일 위험한 것은 통일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북한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 약점을 잡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쌀 주면서도 한국産(산)이라는 표시도 못하고 15만t이나 되는 쌀을 주면서 뺨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너무나 걱정스럽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대통령이 된 뒤 김영삼보다도 훨씬 더한 초저자세로 김정일 정권에 굴종했던 김대중씨의 당시 비판은 사리에 맞았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관훈클럽 토론회에서의 비자금 공방&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LEF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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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380_5.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1996년 12월 국민회의-자민련 합동 송년행사에서 김대중 총재(왼쪽)와 김종필 총재(오른쪽)가 합창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1년 후 DJP연합정권을 출범시켰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1997년 10월 관훈클럽 초청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나는 질문자로 나갔다. 김대중 후보와 이런 말씨름이 진행됐다. 한나라당 측에서 폭로한 비자금이 쟁점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왜 이 돈을 당의 경리부서에 맡기지 않았는가? 왜 친척을 통해서 관리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당에서 쓸 돈도 한꺼번에 당에다 갖다 놓을 수 없는 그런 사정 때문에 제가 관리하면서 필요할 때 당에다 가져가는 그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요. 처조카(이형택)한테 맡긴 게 아닙니다. 처조카를 통해서 은행에다 맡긴 것입니다. 다만 처조카에게 맡긴 이유는 야당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이름으로 떳떳하게 가서 맡길 수가 없어요. 우리가 어려운 세상을 살아온 것은 여러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도 좀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기기 위해서 처조카를 택한 것이지 그 외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그에게 처조카 이형택씨가 관리했던 돈과 관련해서 세금을 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정치자금을 돈세탁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포탈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에 대해 김대중씨는 “그런 것을 신고하면 출처를 밝혀야 되는 점도 있고, 과거에는 모두가 관행으로 저뿐 아니라 그런 것은 세무의 신고를 안 해 왔기 때문에 저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받은 돈은 뇌물로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김현철씨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변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그에게 “지금도 스스로를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네, 그렇습니다. 완전히 그렇게 살았다곤 주장하지 않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고 지금도 다른 정치지도자에 비하면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태어나신 해가 정확히 1925년인가, 23년인가”라는 나의 질문을 받고, 자신의 출생연도는 1923년이라고 밝혔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제가 태어난 것은요, 만으로 1923년 1월입니다. 그런데 음력으로는 12월이에요. 그런데 호적은 1925년 12월로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日帝(일제)시대 때 징병제도가 취해져 가지고 한국 사람들을 군으로 끌고 갔어요. 그런데 23년을 그대로 두면 일본병대 1기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런데 25년 12월로 해놓으면 2기가 늦어져 가지고 3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호적 신청을 했더니 다행히 제 것만 통과가 되었어요. 그래서 생년월일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 전 대통령의 他界(타계)를 보도한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향년 85세’라고 誤報(오보)를 했다. 85세라면 1924년생이란 이야기인데, 그 자신의 上記(상기) 진술과 어긋난다. 기자들은 유족 측이 ‘1924년생으로 통일해 달라’고 하여 그렇게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족 측 주장 85세, 본인 주장 86세’라고 적든지 독자적으로 확인하여 사실을 적었어야 했다.&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6·15 남북 정상회담&lt;/FONT&gt;&lt;/B&gt;&lt;BR&gt;&amp;nbsp;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lef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IMG class=border src=&quot;https://monthly.chosun.com/upload/0910/0910_380_6.jpg&quo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5px; PADDING-LEFT: 5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1pt&quot; color=#2f73ba&gt;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오른쪽)을 영접하고 있다.&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 1998년 2월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8월 14일 예술의 전당에서 朝鮮日報가 주최한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행사장에서 즉석 연설을 통해 긍정적인 ‘한국 현대사 인식’을 감동적으로 피력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나는 이 연설문에 깊은 감명을 받고 月刊朝鮮에 全文(전문)을 실은 뒤 “현대사를 긍정하는 그의 역사관이 정책으로 표현된다면 국민들은 안심하고 生業(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이 연설에서 나타난 그의 역사관은 2000년 6월 김정일을 만나고 온 뒤부터 반대방향으로 정책에 투영된다. 그 연설은 보수층을 안심시키기 위한 위장이었던가? 그는 보수층 앞에선 보수적인 말을, 좌파들 앞에선 좌파적인 말을 하는 기회주의자인가? &lt;BR&gt;&amp;nbsp; &lt;BR&gt;&amp;nbsp; 2000년 6월 15일 평양회담에서 ‘6·15 선언’이 발표됐을 때 月刊朝鮮은 7월호 발간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月刊朝鮮 7월호는 6·15 선언 2항의 ‘남측 연합제+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 혼합 방식의 통일방안 합의’를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6·15 선언이 북한의 對南(대남)적화전략인 연방제를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국가보안법은 死文化(사문화)되고 친북세력이 공공연하에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6·15 선언은 이들에게 免罪符(면죄부)로 이용됐다. 김대중씨는 김정일 세력에게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선물한 것이다. 한 고위급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1998년 무렵에 우리는 김정일 정권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을 가졌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과 쌓이는 시체더미 속에서 정권의 통제력도 약해지고 있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런데 2000년 평양회담이 있었다. 김정일 정권은 김대중이 思想戰(사상전)에서 패배하여 白旗(백기)를 들고 투항해 왔다고 선전했다. 김대중의 對北(대북)지원이 정권의 통치력을 회복시켜주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햇볕은 김정일에게만 비쳤다. 그 힘으로 북한은 핵무장도 했다. 개혁 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의 씨앗도 없애버렸다. 2005년 김정일은 측근들에게 ‘앞으론 서울 불바다 이야기를 하지 말라. 우리가 접수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면 되겠는가’라고 했다. 김대중이 절호의 통일 기회를 놓쳤다. 생각이 있는 북한 사람들은 그를 민족반역자라고 생각한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R&gt;&amp;nbsp; &lt;B&gt;&lt;FONT color=#0139aa&gt;좌익이 그의 숨겨진 本色&lt;/FONT&gt;&lt;/B&gt;&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는 6·15 선언 이전까진 인권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에 대한 응원도 열심히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탈북자, 납북자, 국군포로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김정일에게 그렇게 많이 갖다 주고도 국군포로를 돌려 보내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정부였다. 그러면서 김정일에 충성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어떻게 이런 일이 한 人格體(인격체) 안에서 같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좌익이 그의 숨겨진 本色(본색)이었다”일 수밖에 없다. 권력을 잡기 전에 한 행동의 상당부분은 본색을 숨기는 것이었고, 권력을 잡은 뒤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신념에 투철했던 인물이다. 문제는 그 신념의 정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청년 김대중은 22세 때인 1945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신민당 목포지부 조직부장으로 활약했다. 신민당은 나중에 공산당 및 인민당과 합쳐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되는 좌익정당이었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김대중씨는 자신이 좌익활동가였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곧 轉向(전향), 보수적 정치인으로 돌아섰다고 주장하여 왔으나 대통령이 된 후 보여준 행동, 즉 한반도 좌익세력의 본산인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일편단심의 굴종적 편들기는 ‘좌경이념’과 분리하여 설명할 수가 없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그가 당당하게 싸웠던 상대는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정통 노선(反共 자유민주주의)을 걸어온 主流層(주류층)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 조선-동아일보, 애국세력, 보수정당, 국군포로에 대한 그의 敵對的(적대적) 내지 냉담한 태도와 김정일, 비전향 장기수, 從北(종북)세력, 촛불시위자들에 대한 호감과 지지는 그의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이념적 신념체계의 자연스런 반영일 것이다. &lt;BR&gt;&amp;nbsp; &lt;BR&gt;&amp;nbsp; 지난 6월 초순에 김대중씨는 마지막이 된 연설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사실상 독재로 규정하고, 김정일에 대해서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동정하는 한편, 국민들이 궐기하여 反(반)정부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에 쫓기는 듯한 말투였다. 자신이 추구한 목표가 부정되는 상황,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 자신을 버리는 현실에 직면한 사람의 초조감이었던가?&lt;BR&gt;&amp;nbsp; &lt;BR&gt;&amp;nbsp; 근대화 혁명가 박정희는 한 일본인 학자에 의하여 “한국 역사 속의 봉건적 殘滓(잔재)와 싸우다가 戰死(전사)한 사람”으로 평가됐다. 김대중씨는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적 가치와 싸우다가 憤死(분사)한 사람”으로 평가될지도 모른다.⊙&lt;/DIV&gt;
&lt;DIV class=subArtcl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월간조선에서-&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백암산상왕봉에서 내장산까지 종주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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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13T10:08:18Z</updated>
	    <published>2009-11-13T10:08: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509F91B4AFD49073E2B7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759&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759px&quot; actualwidth=&quot;763&quot; height=&quot;435&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오늘은 지난 31일날 다녀온 백암산으로 또 간다. 금샘 산우들과함께... 그날(31일)은 백암산만 돌아왔지만 오늘은 백암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상왕봉에서 내장산 까치봉까지의 종주길을 걷는다 기에 아직 밟아보지 못한 능선이라 누라와함께 따라나선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부산에서 07:00에 출발하여 길눈 어두운 박사장 덕분에 백양사주차장으로 찾아들었으니... 되돌아나와 구암사가 위치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덕흥면 도화리까지 어렵사리 찾았으나 지난날 보다 30여분이 늧은11:35에 고암사 표지판앞에 도착한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팀은 여기서 구암사-백암산상왕봉-순창새재-내장산 까치봉으로 종주길에 나서고... B팀은 바로 내장사로 가서 내장산연자봉&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신선봉-까치봉-내장사로 돌기로하고... 넉넉하게 각자6시간을 주며 17:30까지는 주차장에서 만나기로하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걸으면서 계산해 보니 상왕봉까지 1시간 상왕봉에서 까치봉까지2시간 까치봉에서 내장사까지1시간 내장사에서 주차장까지30분&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계산은 끝나고 답은나왔다. 11:37에 포장된 농로를 따라 구암사쪽으로 출발이다. 한참을가면 세멘포장길 끝나고 임도를따라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구암사가는길은 차량도 다니는넓직한 도로양가에는 아지도 붉은단풍이 메달려 깊어가는 가을을 아쉬워한다.&lt;/SPAN&gt;&lt;BR&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227AE1D4AFD49BB2E26B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left;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48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8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찍이&quot;봄에는 백양 가을에는 내장&quot;이라 했듯이 백양과 내장의 두 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이자 조산8경의 하나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백암산은 내장산 줄기와 연결돼 절경을 이루어 하얀 바위 봉우리가 수목을 둘러 학의 앉음새 같다는 백학봉을 비롯해서 상왕봉 사자봉등이 빙둘러서 있고, 그 아래 대찰 백양사가 자리하고 있지만 오늘은 그 풍광을 조망할 기회가 없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나와누라는 지난31일날 눈이 시리도록 잘 봤든터라 별 아쉬움은 없지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출발지에서 20여분만에 구암사도착하고 좌측으로 열린 사면으로 오른다. 20여분을 코가 땅에 닿을듯한 된비알을 오르니 첫능선에 올라서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600m지점에 백학봉이 위치하고... 오늘은 우측 상왕봉 쪽으로 진행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여기서부터 상황봉이 1.9km 거리고 평지같은 편안한 등로를 10여분 진행하면 능선삼거리를 만나고 여기서부터 우측으로는 다시 된비알이 시작되고 잠시후(12:17)에 헬기장에 도착하니 바로 729봉이다. 오름길 이어지면 바로 멋진소나무 만나고... 며칠만에 산정의잡목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가을이 멀어지고 겨울이 가까이 다가옴을 자연은 말해 주고있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어 집채만한 멋진 병풍바위를 돌아 잠시후 기린봉도 지나 상왕봉에(12:38)도착하니... 출발지에서 1시간 걸렸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경룡님 일행세분 상왕봉도착하여 기념사진담고... 이어누라와 김영식마님도 도착하고... 기념사진 담는동안 준족인 야생마&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트리오는 벌써 상왕봉을 내려선다. 뒤에다 대고 사자봉은 넘지말라고 당부하고... 사자봉 닿기전에 우측으로 길이 나 있을테니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잠시 기다려도 뒤따라올 일행은 보이질 않아 우리도 사자봉방향으로 내려선다. 내장산으로 가는길은 분명 우측으로 열려있을테니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삼거리에 자리잡고 산정뷔페 열고있으면 뒤 일행올테고... 같이 먹고 우린까치봉으로 갈 요량으로 한참을 내려가도 우측으로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길이 보이질 않는다~???!!! 통신중계탑을 지나도?.. 어느새 능선네거리까지 내려왔다. 직진하면 사자봉으로 좌로는 운문암을&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거쳐 백양사로. 우로는 몽개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닷~~ 아닌데?*&amp; 분명 상왕봉에서 여기까지 오는동안 우측으로 열린 길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보질 못했다. 나와누라 김회장마님, 한참 서성거리고 있는동안 뒤 일행도착하고... 우왕좌왕~ 시끌벅적~ 아무도 우측으로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열린길은 보질 못했단다. 서총무님 뒤따라오는 회장님께 연락해봅니다. 근데..??? 회장님은 우측길을 찾아들었다나???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203D051A4AFD4A940B7F6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right; MARGIN-LEFT: 8px&quot; actualwidth=&quot;48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8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그럼- 정석대로 상왕봉에서부터 다시 더듬어보자~~ 되돌아 오릅니다. 어~허!!! 정상에닿기전 5~6m 지점에 우측으로 길이 있는걸....&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 길을 두번이나 지나면서도 왜 보질못했을까~~ 이정목도 세워져 있는데 꺾여진 후에 세워두었으니... 이정목을 상왕봉오름길가로 이동 해 주기를 바라면서... 순창재쪽으로 바람같이 달려갑니다. 앞서 달아난 야생마트리오에 연락하라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총무님께 부탁하고~ 순창재부근에서 점심먹고... 내림길 등로옆에서 식사준비중인 회장님일행 만나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잠시만에 순창재(13:29)에 도착하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20분후에는 호남정맥길 삼거리에(14:49) 도착한다. 상왕봉에서 2.3km 지점이고, 우로는 까치봉이 3km거리고. 좌로는 입암이4.2km 거리임을알려주는 이정목을 만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어 소동근재 지나고 13:58 까치봉을 2.22km 남긴지점부터 오름길이 시작되고...&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뒤돌아보니 이젠 우릴 따라오는 일행도 없고... 누라와난 오름길을 올라14:46 에야 까치봉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능선삼거리에 도착하니 소동근재에서 2km올라온 지점이고 까지봉은 좌로300m로 지척이지만 한번내림질 하고 다시올라야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우로는 신선봉이1.2km거리다. 평범해 보였든 까치봉이 가까이선 우람한 근육질을 과시하며 버티고 섯다.&amp;nbsp; 우린 신선봉, 문필봉, 연자봉, 장군봉, 까치봉까지의 능선길은 여러번 밟아봤기에 까치봉으로 오른다(시간이 허락하면 연지봉,망해봉,불출봉,서래봉을 밟을욕심으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짧은 거리지만 만만찮은 암릉으로 14:55에야 까치봉에 올라선다.&amp;nbsp;&amp;nbsp;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까치가 날개를 펴고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혀진 까치봉은 내장산 서쪽중심부에 2개의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내장산의 제2봉으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이며, 내장9봉이 까치봉을 중심으로 동쪽을 향해 이어지면서 말굽형을 이루고있다. &lt;/SPAN&gt;&lt;BR&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40.uf.daum.net/image/2023A81B4AFD4BD0254A7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both; FLOAT: left; MARGIN-RIGHT: 8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자!~ 다시계산을 해 봐야할 시간, 앞으로 2시간반이 내게 주어진 시간인데... 연지봉으로 돌아 불출봉,서래봉으로 돌아 내려가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빡빡하긴 해도 불가능 할 시간은 아니지만 다른 일행에 민폐끼칠까봐 내장사쪽으로 바로 내려선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요, 코스도 담 숙제로 남겨두고... 30여분을 급경사 사면길을 내려오니 우측에 신선봉에서 내려오는 길과만나는 삼거리다.(15:29)여기서부터는 아직도 단풍이고와 눈을즐겁게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내장산 단풍은 잎이 ７갈래로 작고 섬세하며 다른 산에 비해 유난히 붉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내장사 주위에는 당단풍을 심어놨으며 ８부능선 위에는 굴참나무(갈색), 단풍나무(빨간색), 느티나무(노란색) 등이 주종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루고 있어 색깔이 울긋불긋 현란하다. 잠시후 내장사에(15:42)도착한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내장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래봉이 보이고 서래봉 맞은 편에 주봉인 신선봉도 보인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서래봉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봉 밑으로는 단풍나무가 바다를 이루고... 단풍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낀다 든가? 특히 내장사 앞에 있는 ５０∼２백년생 단풍나무숲은 내장산 단풍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백미다 며칠 늧은감은있지만...&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일주문을(15:53) 나서니 내려오는 길은 단풍터널을 이루고.. 우측 주차장엔 아래주차장까지 운행하는 무료셔틀버스를 기다리는&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행렬이 줄을잇고있다. 이 좋은길을 왜 버스로 간단말인가~ 둘은 걸어서 내려갑니다. 길가 상가에는 일찍내려온 B팀 일행&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몇분이 앉아 토속음식 앞에놓고 담소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보이고... 애마에 도착하니16:10 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언제나처럼 박사장님과 B팀 산행대장을 맡은 홍만님은 일행의 뒤풀이 준비에 분주하고... 누라와난 화장실에서 대충 땀냄새정리하고...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뒤풀이 준비 돕고... 약속시간17:30경엔 거의 다 도착했는데... 몇몇 일행이 아직도 일주문부근에 있단다.&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다들 뒤풀이로 막걸리 한잔에 따끈한 닭백숙에 오늘의 피로를 달래고 있을무렵... 김영식회장님과 길규님, 몇분은 걱정스러워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주차장&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삼거리에 마중나가고... 약속시간을 1시간30분 이상을 늧게 도착한 일행도 뒤풀이 끝내고 18:55에야 부산으로 출발한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단체행동에 약속시간은 엄수 할 줄 아는&amp;nbsp;예절이 아쉬움을 달래면서... 2009/11/12&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con.sie.net/image/man/bow/bow21.gif&quot;&gt;&lt;FONT size=3&gt;&lt;반갑습니다, 편히 쉬어가세요,&gt;&lt;/FON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82D4C0B4AFCB4B301DC8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611&quot; height=&quot;443&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611px; HEIGHT: 443px&quot; actualwidth=&quot;474&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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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암산 상왕봉에서 내장산 까치봉으로 종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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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석천</name>
	    </author>
	    <updated>2009-11-13T10:06:26Z</updated>
	    <published>2009-11-13T10:06:2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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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1878A4014AFDC6393C080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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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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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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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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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178A4014AFDC63B42794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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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1.uf.daum.net/image/1978A4014AFDC63A3F5A0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8.uf.daum.net/image/1378A4014AFDC63B4440A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1778E9014AFDC3D51112F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1878E9014AFDC3D512D1B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1978E9014AFDC3D513615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278E9014AFDC3D615F53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2.uf.daum.net/image/1378E9014AFDC3D6164AB7&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678E9014AFDC3D718797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7.uf.daum.net/image/1678E9014AFDC3D81A8D1A&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1878E9014AFDC3D81C33D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6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9&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24C520D4AFCB0F056D6D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1.uf.daum.net/image/134C520D4AFCB0F057146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3&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753&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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