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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쓰기의 어려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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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11:02:5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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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ot;논어의 발견&quot; 출간 10년에(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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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11:02:59Z</updated>
	    <published>2009-11-08T11:02:5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3&lt;/P&gt;
&lt;P&gt;생각은 했지만&amp;nbsp;막연한 희망의 상태로 몇 년을 더 지냈다. 그러다가&amp;nbsp;어느날 문득&amp;nbsp;논어 해석상의 오류에 관한 조그마한 논문 한 편을 끄적이기 시작했다.&amp;nbsp;아마 1993년 초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은&amp;nbsp;얼마 안 가서&amp;nbsp;책을 쓰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글을 써보니 써야할 내용이나 분량이 도저히 한 편의 논문으로는 감당이 안&amp;nbsp;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논어 전반을 다루는 책을 목표로 전체적인 구상을 했고 그 구상에 맞추어&amp;nbsp;차근차근 글을 써나갔다.&amp;nbsp;평일에는 독서 외에는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글은 주로 일요일에 썼다. 처음에는 종이에 육필로&amp;nbsp;써나갔으나 원래&amp;nbsp;수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육필로는&amp;nbsp;한계가 있어&amp;nbsp;결국&amp;nbsp;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글을 쓰기 시작하자 이제는&amp;nbsp;저자로서의 의무감 때문에 고금의 여러 논어 관련 서적을&amp;nbsp;섭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amp;nbsp;도서관에 소장된&amp;nbsp;책을 많이&amp;nbsp;이용하게 되었다. 도서관은 주로 국립중앙도서관과&amp;nbsp;성균관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하였다. 특히 성균관대학교의 고서실은 국내외의 얻기 힘든 영인본 도서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amp;nbsp;일반인에게도 까다롭지 않게 고서실을 개방해 주어 크게&amp;nbsp;도움을 받았다. 너무&amp;nbsp;많은 자료를&amp;nbsp;자주&amp;nbsp;복사해 달라고&amp;nbsp;요구하여 복사실에 근무하는 여학생이 &quot;이걸 전부요?&quot;하며 원망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처음에는 해설서만을 쓰려고 했으나 어느 결엔가 번역서를 같이 쓰기로 하였다. 어차피 전체 논어를 샅샅이 섭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해설서에 일일이 담을 수 없는&amp;nbsp;내용은 번역서에 담기로 한 것이다. 번역서는 의외로 발빠르게 진행되었다. 대략 8,9개월만에 번역서를 완성하지 않았나 싶다. &lt;/P&gt;
&lt;P&gt;쓰는 과정에서는 어떤 한 글자의 다양한 용례를 전체 논어에서 찾아볼 필요가 많았는데 처음에는 대만에서 간행된『논어인득(論語引得)』이라는 자료를 사용하였다.&amp;nbsp;이 책에는 이를테면 學이라는 글자가 논어의 무슨 편 제 몇장에 어떤 용례로 제시되어 있는 지 사전처럼 소상히&amp;nbsp;기록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아래아 한글의 한자기능이 보강되어 전체 논어 원문을&amp;nbsp;한자로 입력한 다음 찾기 기능으로 편리하게 찾았는데 이 기능&amp;nbsp;덕분에 시간도 절약되고&amp;nbsp;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논어 이외의 책으로서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은&amp;nbsp;춘추좌씨전이었다. 공자 당시나 그 이전 역사서로서 가장 신빙성이 높고 내용이 충실한 것이 좌전이었고 그에 비하면 사마천의 사기 본기나 세가, 열전은&amp;nbsp;별로 도움이 되지 못 했다. 논어해설서로서는&amp;nbsp;하안의 논어집해, 황간의 논어의소, 주자의 논어집주와 논어혹문, 논어정의, 장식의 계사논어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로는 정약용의 논어고금주, 박세당의 사변록 등이 많이 참고가 되었다. 그러나&amp;nbsp;그런 해설서들이 논어 이해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적은&amp;nbsp;별로 없었다.&amp;nbsp;경이롭고 희열에 찬 발견은&amp;nbsp;대부분 논어 원문 그 자체에서 건져진 것들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96년에 나는 경남 창원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그 때&amp;nbsp;집필은 이미&amp;nbsp; 약 90%가 완성된 상태였다. 이후&amp;nbsp;3년은 남은 부분의 완성과 계속된 수정 보완 그리고 더 많이는 출판 기회의 모색에 투입되었다. 출판 기회의 모색에는 가까운 두 친구가&amp;nbsp;고맙게도 신경을 써주었다. 나의 집필 사실을 알고 있던 친구 S는 집필과정에서 나를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고 마지막 출간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는&amp;nbsp;출판비용의 부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지금은 고인이&amp;nbsp;된 시인 이영유였다. 그는 가급적 수준이 있는 출판사를 찾아야 한다며 나의 초벌 원고를 문학과사회에 갖다 주었다. 문학과 사회는 90년대 초에 내가 쓴 음악평론 한 편을 계간 문학과 사회에 게재해 준 인연이 있어 전혀 무관한 출판사는 아니었다. 얼마 후 이영유씨와 함께 그 곳의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던 문학평론가&amp;nbsp;성민엽씨를 만나게 되었는데 성민엽씨는 나의 원고를 몇 부분으로 나누어 사계의 전문가들에게 읽히고 의견을 들었다며 몇 가지&amp;nbsp;조언을 들려&amp;nbsp;주었다. 성민엽씨는 내가 여러 단편에 걸쳐 과거와는 너무 다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해석을 신빙하기 어렵다는 속내를 비치며 독자들로 하여금&amp;nbsp;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amp;nbsp;과거의 해석을 병치, 소개해 주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새번역 논어가 문제의 단편마다 &quot;종래의 해석&quot;을 소개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때 나의 원고를 읽은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 이미 문학과사회에서 논어 번역서를 내기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amp;nbsp;같은 출판사가&amp;nbsp;또 다른 논어 책을&amp;nbsp;내기는 어려운 처지였다.&amp;nbsp;결국 문학과사회에서 책을 내어주고 싶어 했던 이영유씨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책은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하다가 나의 오랜 지인인 박광성 사장이 운영하는 생각의나무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그 과정도 쉽지는 않았으나 구구한 사정은 약하기로 하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책이 출간되기&amp;nbsp;수일 전에 한겨레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amp;nbsp;신문사 문화부에서 만난&amp;nbsp;고명섭 기자는 출간 전의 초벌 원고에 밑줄을 쳐가며 이미 상당 부분을 읽은 상태였고 1시간 정도의 인터뷰도 매우 진지하고 성의가 있었다. 그는 논어 구절에 대한 맹자의 해석을 내가 단호하게 비판한 것에 대해 특히 흥미를 표했다. 여러 인터뷰 내용은 세월이 흘러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며칠 후 한겨레 신문 북리뷰의 거의&amp;nbsp;전면을&amp;nbsp;할애한 책소개에 &quot;내가 새로 해석한 내용 중에는 공자가 지금&amp;nbsp;무덤에서 걸어나와 아니라고 부인하더라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다&quot;고 한 말이 그대로 소개되어 있었다. 기타 조선일보나 다른 여러 신문들도 비중있게 책소개를 해주었다. 조선일보는 당초 매우 크게 소개를 하려 하였으나 한겨레 신문이 앞서 보도를 하는 바람에 지면이 축소되고 조선일보사까지 찾아가서 촬영한 사진도 게재되지 못하였다.(계속)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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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uot;논어의 발견&quot; 출간 10년에(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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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극기복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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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1T20:52:50Z</updated>
	    <published>2009-11-01T20:52:5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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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1&lt;/P&gt;
&lt;P&gt;나의 책 &quot;논어의 발견&quot;과 &quot;새번역 논어&quot;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99년 11월이었다.&amp;nbsp;그럭저럭&amp;nbsp;책이 발간된 지 10년이&amp;nbsp;되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 무슨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경학사(經學史)나 논어 해석사에 획기적인&amp;nbsp;역할을 한 것도 없다. 몇몇 아마츄어 논어 애호가들 사이에서 과분한 호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출간 10년이 되도록 소위 정평(定評)은&amp;nbsp;없는 상태다.&amp;nbsp;&lt;/P&gt;
&lt;P&gt;나 역시 10년이나 되다보니 이런 결과에 대해 무덤덤하다. 그저 책을 낸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인 것 같은데 벌써 10년이나 지났나 하는 감회만 새롭다. 물론 나는 아직도&amp;nbsp;이 책에 대해&amp;nbsp;적정한 평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amp;nbsp;심지어 그 평가가 일정한 수준 이상의 호평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을 정도다. 수년 전 나는 어느 술자리에서&amp;nbsp;솔직히 나의 책은 논어가 이 세상에 출현한 이후 양의 동서, 시의 고금을 막론하고&amp;nbsp;가장 공자의 진의에 근접한 책일 것이라고 한 친구에게 떠든 적이 있지만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현재도 실은 같은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결코&amp;nbsp;나의 교만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amp;nbsp;생각한다. 10년 동안 세상은 침묵을 지켰지만 나는 여전히&amp;nbsp; 역대의 논어 해설가들, 이를테면 맹자나 정현이나 주자나 정약용 또 내로라 하는 현대의 여러 주석가들이&amp;nbsp;근접하지 못 했던 한&amp;nbsp;차원에 내가 근접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amp;nbsp;그리고 언젠가는 그 점이 세상에&amp;nbsp;알려질&amp;nbsp;날이 오리라고&amp;nbsp;굳게 믿고 있다.&lt;/P&gt;
&lt;P&gt;이제 그런 막막한 기다림, 기다림의 적극성마저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한 이 기다림 속에서 출간 10년을 맞으며&amp;nbsp;내가 이 책을 낼 적에&amp;nbsp;미처 밝히지 못 했던 나와 논어와의 만남 그리고&amp;nbsp;책 발간에 관련된&amp;nbsp;저간의&amp;nbsp;사정을 밝혀두는 것도 얼마간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lt;/P&gt;
&lt;P&gt;내가 논어를 처음 만난 것은 1979년,&amp;nbsp;내 나이 스물 아홉&amp;nbsp;나던 해였다. 대학교 4학년이던 나는 대학 도서관 한 모퉁이에서&amp;nbsp;우연히 논어를&amp;nbsp;펼쳤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amp;nbsp;전공인 법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전공과목은 간신히 학점을 따는 정도로만 해놓고 내가 주로 관심을 보였던 분야는 서양철학과 신학, 불교학, 예술학, 역사학 등등으로 어떨 땐 전공과목 시간을 빼먹고 문과대학에 가서 수강신청도 하지 않은 과목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문득 논어를&amp;nbsp;펼쳐 든&amp;nbsp;것은&amp;nbsp;동양정신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책이 논어인데 아직까지 이런 얇은 책 한 권을 독파하지 못 한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차제에 논어만이라도 한번 통독을 해보자 하는 안이한 생각에서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가 읽은&amp;nbsp;논어는&amp;nbsp;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조그마한 문고본이었다. 책 뒷편에 원문이 나와 있어 나는&amp;nbsp;번역문과 원문을 대조해가며 비교적 꼼꼼하게 읽어 나갔다. 읽기 시작한 첫 날이었는지 둘쨋 날이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사람이 몰두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고 했는데 아침 9시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서&amp;nbsp;11시쯤 되었을 것 같아 벽시계를 보니 오후 1시였다. 논어의 놀라운 세계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amp;nbsp;그 뿐만 아니었다. 나를 서서히&amp;nbsp;휩싼 느낌은 내가 훗날 몇몇 지인들에게도&amp;nbsp;들려준&amp;nbsp;바 있듯이 &quot;내가 마치&amp;nbsp;국가 최고 수준의 스파이가 된 것 같은&amp;nbsp;느낌&quot;이었다. 스파이는 밀명에 의해 스파이가 된다. 내가 논어에서 발견한 것은 밀명 이상의 것이었다. 2500년 동안 공개된 서적으로 존재해 왔고 동양인이라면 안 읽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읽고 또 읽은 책, 지금도 서점에 가면 얼마든지&amp;nbsp;널려 있는 흔해빠진 책 논어를 읽고 이런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 내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스물 아홉 살의 나는 길을 가거나 버스 한 모퉁이에 앉아서도 내가&amp;nbsp;우연히 그리고 겁없이 밀명을 띠고&amp;nbsp;말았다는 느낌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때부터 나의 긴 논어 탐사가 시작 되었다. 하나의 단편을 두고 이리저리 생각을 뒤척이는 것이라고 할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논어 단편들의 진정한 면모가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그 발견 중 다수는 논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번도 제대로 해석되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伯夷叔弟,不念舊惡,怨是用稀라는 아주 짧은 단편이 대표적이다. 이 단편은 &quot;백이숙제는&amp;nbsp;지나간 악행을 괘념치 않았기 때문에 남을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quot;는 뜻으로 해석이 되어&amp;nbsp;왔다. 그런데 어느 날&amp;nbsp;원문을 들여다보니 내 눈에 그것은 완전히 다른 뜻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quot;백이숙제는&amp;nbsp;옛날의 악을 유념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드물게 쓰여지고 있는 것을 원망했다&quot;는 뜻이었다. 공자는 구악, 즉 옛날 식의 악을 예찬하고 그리워했던 것이다. 공자와 백이숙제가 똑 같이 그 희소해졌음을 원망한 역설적 의미의 구악은 악은 악이되 스스로의 악함을 직시하고 개과의 길에 겸손히&amp;nbsp;입지한 악을 지칭하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 잘못 해석되어온 하나의 단편을 바로잡는 것이기도 했지만&amp;nbsp;선악을 한 차원 위에서 다루고 있는 공자의 탁월한&amp;nbsp;안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매우 중요한 단편들이 그것도&amp;nbsp;하나 둘이 아니라 매우 여럿에 걸쳐 이러한 해석상 오류로 드러나자 그 후 오랫동안 나의 버릇이 된 다른 책 뒤지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서점에만 들르면 으레 다른 논어책을 들추어서 내가 문제 삼고 있는 단편의&amp;nbsp;번역이나 해석을 살펴보았다. 그 때는 낯선 책들을&amp;nbsp;뒤적이다 보면 어떤 책에서는 제대로 된 번역이나 해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책을&amp;nbsp;다 뒤적여&amp;nbsp;보았어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amp;nbsp;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찾아본 단편은 팔일편 24장인 儀封人請見章이었다. 이 단편은 그 내용 자체에 심장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단편이 그리고 있는 상황이 매우 드라마틱하고 공자의 생애가 가진 신산함이 남다른 정회를 불러 일으키는 단편이다. 물론 그 단편의 경우도 내가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의미로 번역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 결국 나는&amp;nbsp;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책이 기왕의 책 중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amp;nbsp;나중에는 새로 출간된 책이 서점에 꽂혀 있더라도 거의&amp;nbsp;기대를 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 상태로 보낸 세월이 대략 10년이었는데&amp;nbsp;그 즈음에 가서야 나는 처음으로 내가 직접 논어 해석에 관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lt;/P&gt;
&lt;P&gt;(계속) &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lt;/DIV&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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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두 자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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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13T16:58:54Z</updated>
	    <published>2009-09-13T16:58:5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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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30대 초반 결혼을 하고 나는 아내와 서울의 경계선을 조금 벗어난 외곽도시 한 모퉁이에 살림을 꾸렸다. 아내는&amp;nbsp;결혼 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 집에서 가까운 한 교회를 정하여&amp;nbsp;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일년에 서너번 아내를 따라 그 교회를 가곤 했다. 그러면서 적잖은 교회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아내의 새 친구들이라 할 수 있는 교회의 여자 집사님들을&amp;nbsp;몇몇 알게 되었다. 이런&amp;nbsp;주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amp;nbsp;불안정한 직업에 매달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 아내가 나집사님이라고 부르던, 아내와 동갑의&amp;nbsp;집사님 한 분이&amp;nbsp;아내와 특별히 가깝게 지냈다.&amp;nbsp;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오던 그녀는 정이 많고&amp;nbsp;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던&amp;nbsp;큰 딸과&amp;nbsp;취학 전의 둘째 딸이 그녀 주변올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던 기억,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던,&amp;nbsp;유모차 속의&amp;nbsp;우리 형식이를&amp;nbsp;둘러싸고 두 아이들이&amp;nbsp;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집적거리며&amp;nbsp;놀던 기억 등이 아삼삼하다. &lt;/P&gt;
&lt;P&gt;그녀의 남편은 조그마한 보일러 판매점을 하고 있었다. 그 전에는 주로 집수리 같은 막일을 다녔는데 조금 여유가&amp;nbsp;생겨&amp;nbsp;가게를 개업하였다고 들은 것 같다. 언젠가 우리 집 안방&amp;nbsp;보일러 배관에 문제가 생겨 그에게&amp;nbsp;일을 맡긴&amp;nbsp;적도 있었다. 그는&amp;nbsp;작은 키에&amp;nbsp;다부진 입매무새를 가지고 있었는데 허술한 차림새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amp;nbsp;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무척 잘 생긴 얼굴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내로부터 나집사님이 자주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한다는 말을 들었다. 술을 안 마시면 괜찮은데 술만 마시면&amp;nbsp;머리끄댕이를 잡고 주먹질 발길질을 가리지 않아&amp;nbsp;나집사님이 불쌍하다고 자주 걱정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교회에서 앞머리로 멍든 눈을 가린 채&amp;nbsp;남들의 시선을 피하던 모습을 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녀의 집은 우리 집에서 불과 1백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소문이 더 빨리 들릴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정열적인 눈매와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은 활발하고 긍정적인 표정을 생각할 때 이런 소문이 더욱 마음이 아팠다. 차분하고 얌전해 보이던 그&amp;nbsp;양반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토록 술을 마시고 착한 아내에게&amp;nbsp;손찌검까지 하는 것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던 어느 날 밤, 아내도 나도 깊이 잠 들어 있던 심야에 갑자기&amp;nbsp;집이 어수선해졌다. 나는 여전히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으로 누워 있었고 아내가 무슨 낌새를 차렸는지 잠옷 바람에 급하게 바깥으로 나갔다. 대문소리, 발자국 소리,&amp;nbsp;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amp;nbsp;잠시 후 아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더니 &quot;나집사님네 집에 가봐야겠다&quot;는 말만 하고 황급히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나는 다시 어설픈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고&amp;nbsp;약 한&amp;nbsp;시간쯤 더 지나서야 아내는 파김치 같이&amp;nbsp;늘어져 다시&amp;nbsp;방으로 돌아왔다. 자초지종인즉 나집사님네 두 딸들이 내복바람으로 우리집으로 달려와서 울면서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는 것이다. 20년도 넘은 일이라 나는 그 날 밤&amp;nbsp;들었던&amp;nbsp;것을 자세히 기억할 수&amp;nbsp;없다.&amp;nbsp;다만 아이들이 가엾어 상황이 그러면 아이들을 우리 집에 재워 보내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던 것 같고 아내는 사정이 그렇지 않아&amp;nbsp;어찌어찌 그 상황을&amp;nbsp;잠재우고 다시 돌아왔다며&amp;nbsp;안타까운 한숨만 거듭했던 것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날&amp;nbsp;아내로부터 단지&amp;nbsp;말로만 들은 그 상황은 어쩐 일인지 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았다. 어렸을 적&amp;nbsp;&amp;nbsp;나도 아버지의 술주정이&amp;nbsp;한없이 무서웠다. 어느 날은 상황이 잠들 때까지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 거기서 잠이&amp;nbsp;든 적도 있었다. 그&amp;nbsp;원색의 공포를 아는 나로서는 그 날 밤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울부짖던 모습이며 내복바람으로 밤거리를 달려오던 모습이 마치 내가 직접 보기라도 한 듯이&amp;nbsp;마음 깊은 곳에 영상으로 남았다.&amp;nbsp;훗날 나는 교회에서 아이들의 표정을&amp;nbsp;주의 깊게&amp;nbsp;살펴보았지만 아이들이라 그런지 표정이 쉽게 관찰되지 않았다. 단지&amp;nbsp;약간 말을 더듬기도 했던&amp;nbsp;큰 아이의 얼굴에서만&amp;nbsp;다소 어두운&amp;nbsp;무언가가&amp;nbsp;엿보였다. 작은 녀석에게서는 그런 점마저 별로 엿보이지 않았다. 작은&amp;nbsp;녀석은 언니에 비해&amp;nbsp;활발했고 의사표현이 분명했다.&amp;nbsp;그것을&amp;nbsp;주어진&amp;nbsp;상황에&amp;nbsp;대한&amp;nbsp;반항적 기미로 본 것은 다만 나의&amp;nbsp;주관적 해석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된 모습이 전혀&amp;nbsp;내 기억에&amp;nbsp;없는 것을 보면 나는 아마&amp;nbsp;아이들이 4,5학년 정도 되었을 무렵에 그 곳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갔던 것 같다.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것은 그 외곽도시의 초라한 삶의 수준에서 한발작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그 곳에 대한 낡고 흐린 기억 곁에는 늘 그 곳 사람들에 대한 얼마만큼의 죄의식이 감돌게 되었다. 아내는 이사를 가고 나서도 그 교회를 다녔지만 나는 거의 가보지를 못 했다. 나는&amp;nbsp;1-2년에 한 번쯤&amp;nbsp;아내가 교회에서 들은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 전부였다.&amp;nbsp;&amp;nbsp;나집사님네도 가까운 어딘가로 이사를 갔다는데 우리의 경우와는 달리 아무래도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간 것은 아니었던 것&amp;nbsp;같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월이 흐르고 어언&amp;nbsp;두 딸들이 대학에 진학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안타까웠다.&amp;nbsp;얼마 후 아이들이&amp;nbsp;간신히&amp;nbsp;대학에 진학하여&amp;nbsp;다니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또 조금 더 지나&amp;nbsp;나집사님 내외가 결국 이혼을 하였다는 소식도 들었다. 놀랍게도 그 이혼은 두 딸들이 강력히 종용한 결과라고 했다. 더 이상 아빠와 같이 살다가는 엄마가 죽을 지도 모른다며 엄마를 설득하였다고 하니 그 때까지도 그 양반의&amp;nbsp;술 버릇은 고쳐지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집사님은 인천의 어느 공사장 주변 식당에서 일을 하며 혼자 살고&amp;nbsp;두 딸들은 아빠와 함께 살기로 결정을 하였다는 소식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엄마의 치마자락 주변을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어언 부모의 문제를 결정할 만큼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또 얼마 간의 세월이&amp;nbsp;흘렀다. 어느&amp;nbsp;무척 추운 날이었으니 크리스마스 이브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처럼 아내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마치고 막 차에 올라&amp;nbsp;복잡한 교회 마당에서 다른 차들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차쪽으로 오더니 나집사님네 두 딸들이 청년회 모임에 참석했다가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amp;nbsp;인사를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두 아이들이 복잡한 차들을 비집고 내게로 왔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 얼굴을 본&amp;nbsp;후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amp;nbsp;때국이 흐르던 초등학교 아이들은 어느덧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되어 있었다. 오우버코트 위로 길게 목도리를 드리운 아이들의 자태, 청춘의 대망(待望)과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한 표정들을 나는 감탄하듯 올려다 보았다. 나집사님의 다정다감하고 밝은&amp;nbsp;눈매며&amp;nbsp;저희 아빠의 잘 생긴 얼굴을 물려받은 그 아이들 앞에서 나는 이들이 보낸 지난 10여년과 그 과정에서 겪었을 사춘기의 고통을 종내 짐작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정말로 반가워 했고&amp;nbsp;나도 반가웠다.&amp;nbsp;아이들은 우리 형식이의 근황을 물었던 것 같으나 나는 아이들 부모의 근황도 지나온 세월도 물어볼 수 없었다.&amp;nbsp;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랑스럽게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올려다 보아주는 것&amp;nbsp;뿐이었다. 인사 후 아이들은 다시 저만치 청년회 멤버들이&amp;nbsp;둘러서 있는 곳으로 가&amp;nbsp;담소를 나누었다. 마침 흩날리던 눈발 사이로&amp;nbsp;두 자매의&amp;nbsp;먼 모습을&amp;nbsp;바라보던 나는&amp;nbsp;잠시나마 감당하기 어려운 감상에 젖었다. 일군의 청년들에 둘러싸여 무슨 화제론가&amp;nbsp;몸을 젖혀가며&amp;nbsp;웃고 있는&amp;nbsp;두 자매의 정경&amp;nbsp;위에 나는&amp;nbsp;그 옛날&amp;nbsp;어둠을 뚫고 내복바람으로 달려오던 눈물 범벅의 어린 얼굴들을 겹쳐보았다.&amp;nbsp;그리고 난데없이 인생이 아름답다는 생각, 이승의 삶에 대한&amp;nbsp;다함없는&amp;nbsp;감사, 비극과 희극에 공히 내려진다는 신의 축복 같은 벅찬 상념들에 휩싸여 핑그르 도는 눈물을 간신히 억제해가며 서서히 교회마당을 빠져나왔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날 우연히 교회 마당에서&amp;nbsp;두 자매의 장성한 모습을 보았던 것도 이젠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인형처럼 매만지고 놀던 형식이가 벌써 스물 여섯이니&amp;nbsp;아이들은 지금쯤 서른들이&amp;nbsp;훌쩍 넘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들 시집을 가서 아이들까지 있을 지도 모르겠다.&amp;nbsp;오늘 아내의 권유로 두어 달에 한번쯤 여전히 불성실하게 다니는&amp;nbsp;교회에 갔다가 갑자기 그 아이들과 그 날 눈발 사이로 보던 환상과도 같던&amp;nbsp;자매의 모습 그리고 잠시 내 가슴에 격하게 밀려들던&amp;nbsp;삶의 눈물겨움과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amp;nbsp;조용히 회상되어&amp;nbsp;돌아오는 차중에서 아내에게&amp;nbsp;물어보았더니 이제는 아내도 그들 자매의&amp;nbsp;근황을 잘 모른다고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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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나? 김우창-도정일 교수 대담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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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9-07-04T22:39:37Z</updated>
	    <published>2009-07-04T22:39: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DIV&gt;[기획]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나? 김우창-도정일 교수 대담 &lt;/DIV&gt;
&lt;P id=GS_SubTitle class=subtitle&gt;&amp;nbsp;&lt;/P&gt;
&lt;P class=subtitle&gt;&quot;여유 없고 긴장 팽배한 사회는 타협하려 들지 않아&quot;&lt;BR&gt;&quot;광장 정치라 비하하기 전에 좌절들을 돌아봐야&quot;&lt;/P&gt;
&lt;P id=GS_Reporter&gt;&lt;BR&gt;정리= 최윤필기자 &lt;A href=&quot;mailto:waden@hk.co.kr&quot;&gt;&lt;U&gt;&lt;FONT color=#0066cc&gt;waden@hk.co.kr&lt;/FONT&gt;&lt;/U&gt;&lt;/A&gt;&lt;/P&gt;
&lt;DIV&gt;&lt;!--HANKOOKI_DEF GISA_CONTENTS--&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김우창(이화여대 석좌교수) 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 두 인문학자의 인터뷰는 각각 세상 읽기의 한 진경(珍景)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두 선생의 현안에 대한 인식과 처방은 사뭇 달랐고, 어떤 맥락의 어떤 말들은 서로를 향한, 그리고 동시대인 일반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과 추궁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래서 두 선생이 만났다. 대담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도정일 선생 사무실에서 3시간 가량 휴식 없이 진행됐다. &lt;BR&gt;&lt;BR&gt;&lt;B&gt;# 시국선언… 광장… 소통…&lt;/B&gt;&lt;BR&gt;&lt;BR&gt;&lt;B&gt;김우창&lt;/B&gt;= 이 자리에서는 도 선생 얘기를 주로 듣고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는데 왜,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잘 모르겠거든.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게 있다, 또 어쩌면 사람들도 나처럼 자신들이 의식하는 것과는 다른 어려운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lt;BR&gt;&lt;BR&gt;예컨대 이 정부의 잘못으로 지적되는 것 가운데 용산 철거민사태가 있죠. 애석한 일이 있었지만, 왜 그런 일이 생겼고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죠. 먼저 시위 수칙과 시위 대처 수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동시에 철거민에게 합리적 조건이 제시됐느냐, 생계대책은 적절했는가, 이것들이 적절한 사회 환경에서 이뤄졌느냐를 따져야 할 겁니다. &lt;BR&gt;&lt;/DIV&gt;
&lt;DIV id=GS_Content_Bot&gt;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시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법적으로, 사회적 고려와 현실적 상황 안에서 합리적 방식으로 국회가 풀어야 할 일이죠. 정당방위처럼 직접 행동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복잡한 문제를 다수자의 의견이나 행동만으로 결정하게 되면 법적 질서는 없어집니다. &lt;BR&gt;&lt;BR&gt;그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고…, 대결적 해결밖에 남지 않겠죠. 얼마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 교수 서명을 두고 교수 총원을 거론하며 서울대 전체 의견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는 민주주의와 합리적 질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얘기죠. &lt;BR&gt;&lt;BR&gt;그 논리는 서울대 교수 전원이 서명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 뒤에는 5,000만 명의 국민이 존재해요. 100명이든 1,700명이든 자기들 생각을 자기들 관점에서 국민에게 호소한 겁니다. 국민은 동의할지 여부를 결정하죠. &lt;BR&gt;&lt;BR&gt;그리고 국민의 의사가 결정되는 곳이 공적 공간입니다. 이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법적으로 구성된 공간입니다. 광장에서 직접행동을 통해 의사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견을 종합해서 해법을 제도화하는 절차가 중시돼야 합니다. &lt;BR&gt;&lt;BR&gt;물론 민주주의는 최고가 아닌 차선입니다만.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은 이런 겁니다.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상황을 보면 굉장히 다급한 사정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난 이를 사회문제, 이를테면 실업문제 빈부격차 주거문제 등으로 이해하고 있거든요.&lt;BR&gt;&lt;BR&gt;&lt;B&gt;도정일&lt;/B&gt;= 공감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해방 이후 60년 동안 미성숙 상태입니다. 우리 사회가 겪는 좌절의 큰 책임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용산 참사에서부터 노통 사태에 이르기까지, 또 야당이 MB악법이라고 부르는 법안 처리 문제나 4대강 문제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현안을 두고 국회는 강행과 저항의 논리만 되풀이하고 있어요. &lt;BR&gt;&lt;BR&gt;국회의 미성숙은 우리 정당의 역량, 그리고 분권체제를 유지하는 정부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의 공적 공간이 살아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통 서거를 두고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과 정서의 배후에는 이런 불만이 쌓여 있다고 봐야 합니다. &lt;BR&gt;&lt;BR&gt;쌓인 게 많은 데 풀 길이 없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제단 앞에 나가 신과 소통하는 거고, 또 하나는 광장으로 나가는 것이죠. 그게 저항입니다. 광장 정치라는 말로 비판하고 폄하하기에 앞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좌절이 심각하는 데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또 광장으로 뛰어나간 사람들보다 해법을 봉쇄한 사람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lt;BR&gt;&lt;BR&gt;잇단 교수 시국선언을 두고 현 정부가 싫어서, 반보수여서, 반우익이어서, 좌파여서, 야당을 지지하기 위해서라고 폄하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서명자의 면면을 봐도 보수성향의 인사, 평소 과격행동을 싫어하는 인사가 상당수 있어요. 시국선언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파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탈정치적인 의견의 표명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lt;BR&gt;&lt;BR&gt;&lt;B&gt;김&lt;/B&gt;= 내가 봐도 이 정부가 잘 한다는 사람은 적고, 못 한다는 사람은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뭘 못한다, 뭘 고쳐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합니다. 수십 년 전 얘기지만 한ㆍ일 관계를 두고 정부 사람한테 “사과를 요구하지 말고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사과라는 건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현안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데 그 공방만 한없이 되풀이하는 건 무의미하죠. 이번 경우도 그렇다고 봐요. &lt;BR&gt;&lt;BR&gt;&lt;B&gt;도&lt;/B&gt;= 시국선언문을 살펴보면 그 말미에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이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결사태에 대해, 검찰권의 오ㆍ남용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게 대표적이죠.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시됐고,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서 피의자 인권에 심각한 피해를 줬어요. 표적수사 의혹, 정치적 동기에 따른 외압 의혹도 엄연하고요. &lt;BR&gt;&lt;BR&gt;검찰 독립ㆍ중립화도 요구사항 중 하나죠. 또 시민 기본권에 대한 침해와 권력남용 중단 요구가 있습니다. 평화 집회를 불허하고, 과잉 진압하고, 경찰이 유모차를 포위해서 위협하는 등 기본권 침해 사례도 많아요. 무엇보다 이 정부의 오만이 지적돼야 할 겁니다. &lt;BR&gt;&lt;BR&gt;국정 주요 현안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거죠. 바로 소통의 요구입니다. 남북관계만 해도 그렇죠. 6ㆍ15선언과 10ㆍ4선언 등 전임 두 정권이 만들어놓은 남북관계의 정책기조가 있는데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저버렸어요. &lt;BR&gt;&lt;BR&gt;&lt;B&gt;김&lt;/B&gt;= 원칙적으로 다 찬성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정말 그런가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가령, 노 전대통령 수사의 경우 검찰에 문제가 있고 개선할 게 많지요.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린 것도 문제지만,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이니까 그렇게 된 측면도 있을 겁니다. 단기적으로 결과를 내려고 서두른 것도 문제예요. &lt;BR&gt;&lt;BR&gt;최근 뉴스를 보니까 프랑스에서 ‘서래마을 사건’ 피의자 재판이 시작되더군요. 3년 전 사건 아닙니까. 그만큼 오래, 신중히 조사했다는 얘기일 겁니다. 정치적 압력 여부는 조사를 해봐야 알 일이지만, 설사 그런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쉽게 잘잘못을 말하기는 어려워요. &lt;BR&gt;&lt;BR&gt;수사 외압이 없는 게 좋겠지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검찰 입장에서는 사안을 수사할 도리밖에 없죠. 외압에 의한 표적수사여서 잘못이라고 한다면,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은데 나만 붙잡혀 재수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lt;BR&gt;&lt;BR&gt;집회 자유의 문제는 공공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고려돼야 합니다. 얼마 전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장 주변에서 반대시위가 있었는데 경찰과 대치 중에 국회의원 한 사람이 체포됐어요. 단순히 경찰 저지선을 넘어섰기 때문이었죠. &lt;BR&gt;&lt;BR&gt;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는 공공질서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정부의 집회 불허를 두고 권력 남용이라 말하기에 앞서 우리의 집회 관습이 어떠했는지도 성찰해야 합니다. &lt;BR&gt;&lt;BR&gt;두드려 부수자? 좋아요. 의견이 분명하고 그것이 옳다고 판단되면 나도 거기에 찬성할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집회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것은 엄연하지만 나는 민주주의보다 사람이 사는 질서, 생업을 유지하면서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lt;BR&gt;&lt;BR&gt;소통의 문제가 요즘 중요한 이슈죠. 대통령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소통하라고들 하는데, ‘저 사람(MB)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봐요. 광장에 나와서 얘기하라는 걸까? 늘 그런 식이면 대통령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고, 그런 방식이 옳지도 않죠. 최근 BBC 뉴스에 러시아 이야기가 보도됐어요. &lt;BR&gt;&lt;BR&gt;푸틴이 러시아의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인 일리아 글라즈노프(79) 집에 가서는 어떤 작품을 가리키며 “기사의 칼이 짧아서 소시지나 겨우 자르겠네”라고 했는데 글라즈노프가 “예, 고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lt;BR&gt;&lt;BR&gt;이건 바른 소통이 아니죠. 푸틴이 또 어떤 올리가크(재벌)를 불러서 “함부로 노동자를 해직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라”며 펜을 던졌다는데, 국민들이 그걸 좋아한다고 그래요. &lt;BR&gt;&lt;BR&gt;우리 대통령도 그랬으면 좋아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인기 전술일 순 있지만 공공질서를 중시하는 건 아니죠. 법을 제정하든지 해야죠. 그런 방식이 용인된다면 다른 사람 불러서 돈이나 다른 것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lt;BR&gt;&lt;BR&gt;남북문제도 지금의 대결 국면을 이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일방적인 얘기인 것 같아요. 남북문제에 관한 자료들은 오래 전부터 챙겨 보는데, 독일이나 미국쪽 자료를 보면 이번 사태가 남측의 강경태세 때문이라기보다는 북한 내부의 정책추구 방향이 그런 걸 거라는 분석이 많아요. &lt;BR&gt;물론 누가 옳은진 알 수 없죠. 걱정하고 의견을 낼 순 있지만, 판단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무조건 ‘이명박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lt;BR&gt;&lt;BR&gt;장황하게 얘길 했는데, 요지는 내가 모든 사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인 만큼 다 함께 고민하면서 해법을 찾자는 얘길 드리고 싶은 겁니다. 지금까지 줄곧 이어진 잘못도 있고, 이 정부가 잘못한 것도 있고, 또 이 정부가 잘 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봐요. &lt;BR&gt;&lt;BR&gt;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태도이지, 대원칙만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공허하게 생각돼요.&lt;BR&gt;&lt;BR&gt;우리는 왜 이리 타협이 어려울까 가끔 생각해보는데, 내 생각엔 그만큼 우리 사회에 긴장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문제가 많고 불만이 쌓이니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공간이 안 생기나 보다 싶은 거죠. 난 지식인들이,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요.&lt;BR&gt;&lt;BR&gt;김우창 선생은 작정한 듯 나직한 음성으로 근 30분 동안 시국선언의 현안들에 대해 조목조목 견해를 피력했다. 도정일 선생은 지그시 눈을 내려 뜬 채 흔들림 없이 경청했고, 되짚어야겠다 싶은 대목들은 추려 메모했다. &lt;BR&gt;&lt;BR&gt;이어진 대담의 양상은 한층 팽팽해졌다. 상대의 말을 끊고 들어섰다가 서둘러 발을 빼는가 하면, 어떤 대목에서는 따지듯 반문했다. 과열 기미가 보이면 웃음 섞인 농으로 긴장을 늦추기도 했다. &lt;BR&gt;&lt;BR&gt;&lt;B&gt;# &quot;구체적으로 무엇인가&quot;&lt;/B&gt;&lt;BR&gt;&lt;BR&gt;&lt;B&gt;도&lt;/B&gt;= 노통 관련 검찰 조사를 두고 선언문에서 시비한 것은 수사 동기뿐 아니라, 검찰권의 오ㆍ남용 문제입니다. &lt;BR&gt;&lt;BR&gt;&lt;B&gt;김&lt;/B&gt;= 그건 조사를 해야겠죠.&lt;BR&gt;&lt;BR&gt;&lt;B&gt;도&lt;/B&gt;=그런 사례가 있으면 검찰 중립화든 개혁이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구였고요. 지금 다수 국민은…&lt;BR&gt;&lt;BR&gt;&lt;B&gt;김&lt;/B&gt;= 나는 도 선생이 ‘다수 국민’이라는 말은 안 쓰셨으면 좋겠어. 투표해보기 전에는 몰라 그건.&lt;BR&gt;&lt;BR&gt;&lt;B&gt;도&lt;/B&gt;= 며칠 전에 한 여론조사를 보니까 교수 시국선언에 대한 국민 지지가 60%로 나왔더군요. 그 정도면 ‘다수’라고 해도 되죠?(^^)&lt;BR&gt;&lt;BR&gt;&lt;B&gt;김&lt;/B&gt;= 그건 인정할 수 있어요.(^^)&lt;BR&gt;&lt;BR&gt;&lt;B&gt;도&lt;/B&gt;= 국민과 정부의 소통 문제는 해방 이후 60년간의 고질이지만, 군사정부 시절을 빼곤 지금처럼 숨막히게 막혔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lt;BR&gt;&lt;BR&gt;&lt;B&gt;김&lt;/B&gt;= 막힌 소통의 내용이 뭔데요?&lt;BR&gt;&lt;BR&gt;&lt;B&gt;도&lt;/B&gt;=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소위 ‘친북좌파’ 정권이 다시는 들어설 수 없도록 좌파 세력을 이 땅에서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 보수우익의 야심찬 기획입니다. 이건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이기도 합니다. 그게 소위 좌파로 분류되는 인사나 조직에 대한 철저한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lt;BR&gt;&lt;BR&gt;이는 매카시즘이고 마녀사냥이지 소통도 사회통합도 아니에요. 우리 사회도 그렇고 세계 전체를 보아도 지금은 다양성과 복잡성의 수준이 한참 높아진 시대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큰 틀에서 좌파정권입니다. 우파가 소중하다면 좌파도 소중합니다 &lt;BR&gt;&lt;BR&gt;&lt;B&gt;김&lt;/B&gt;= 구체적으로 뭘 했어요? 반정부 신문을 폐간한 것도 아니고….&lt;BR&gt;&lt;BR&gt;&lt;B&gt;도&lt;/B&gt;= 전임 정권이 임명한 문화예술계 기관장들을 다 쫓아낸 게 대표적 예죠. &lt;BR&gt;&lt;BR&gt;&lt;B&gt;김&lt;/B&gt;= 그건 사실인데…, 노통도 그렇게 했어요.&lt;BR&gt;&lt;BR&gt;&lt;B&gt;도&lt;/B&gt;= 전임 정부가 그렇게 했으니 지금도 그래도 된다는 건 옳지 않죠.&lt;BR&gt;&lt;BR&gt;&lt;B&gt;김&lt;/B&gt;= 난 노통이 그렇게 할 때 옹호하는 얘기를 여러 번 했어요. 신문에도 썼고.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정책을 수행하겠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다만 그 사람들이 국가에 도움이 되느냐를 판단해야지. &lt;BR&gt;&lt;BR&gt;이 정부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내보낸 건 잘못하는 일이죠. 하지만 그것도 크게 문제 삼기 힘든 건 노통도 그랬거든.(^^) 이것도 잘못됐고 저것도 잘못됐는데 이것만 큰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건 불공정해요.&lt;BR&gt;&lt;BR&gt;&lt;B&gt;도&lt;/B&gt;= 정권이 갈릴 때마다 전부 물갈이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시죠? 지금 보세요. 대숙청의 시기거든요. 한예종 사태는 또 어떤가요. 서사창작과 없애라, 이론공부는 왜 해…, 구체적인 학사에까지 개입해서 한예종을 청소하려 들고 있죠. 실적, 운영 부실을 말하지만 객관적 자료를 보면 납득이 안 가요. 이념적 접근인 거죠. 이게 악순환이라면 그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lt;BR&gt;&lt;BR&gt;&lt;B&gt;김&lt;/B&gt;= 잠깐 녹음기를 끄고 얘기를 좀 하죠.&lt;BR&gt;&lt;BR&gt;선생들은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당신의 견해에 대한 이해를 도울 만한 각자의 구체적 경험과 최근 사태와 관련 있는 문화계 지인들의 근황 등을 전했다. 그러는 동안 몇 차례 유쾌하다고 만은 할 수 없는 조용한 공감의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lt;BR&gt;&lt;BR&gt;대화의 중요한 물꼬는 거창한 당위보다 사소한 디테일에서, 관객의 시선 바깥에서, 녹음기가 꺼진 뒤에 트이기도 하는 법이다.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lt;BR&gt;&lt;BR&gt;&lt;B&gt;# &quot;지금은 대숙청의 시기&quot;&lt;/B&gt;&lt;BR&gt;&lt;BR&gt;&lt;B&gt;도&lt;/B&gt;=(그래도) 전 이 정부에 기대를 걸었어요. 실용을 표방했거든. 실리가 있다면 이념과 노선의 차이까지 포용하는 게 실용이잖아요. 그런데 이념적으로 접근해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내쫓는 거나 이런 저런 허술한 명분으로 한예종을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실망스러워요.&lt;BR&gt;&lt;BR&gt;&lt;B&gt;김&lt;/B&gt;= 나쁜 사람들이 명분 안 내세우는 경우 한 번이라도 봤습니까. 명분은 디스카운트하고 들어야지.(^^) 전두환 구호가 뭐예요. 정의사회 구현 아닙니까. 나도 도 선생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이지만 이렇게 그냥 일방적으로 성명 내면서 대응할 성질의 것으로 보기에는 사태가 훨씬 복잡해요. &lt;BR&gt;&lt;BR&gt;난 우리처럼 양분된 사회가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을 나는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사회의 양분 현상을 반영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거 개선하지 않으면 아무리 담론을 좋게 하려고 해도 힘들죠. &lt;BR&gt;&lt;BR&gt;&lt;B&gt;도&lt;/B&gt;= 오랜 세월동안 공공성이나 공익은 제쳐 두고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민감해지도록 훈련된 측면이 있지요.&lt;BR&gt;&lt;BR&gt;&lt;B&gt;김&lt;/B&gt;=실용도 그래요. 우리에게 의료제도나 건강보험제도 등 여러 복지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된 건 거의 없죠.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시작해놓은 건데, 따지고 보면 이 정부가 그걸 뒤집어 엎은 건 없어. 선거 때 만든 구호야 반은 가짜지. &lt;BR&gt;&lt;BR&gt;그보다 구체적인 사안을 봐야 하는 거고…. 누가 잘했냐 따지면 싸움이 나죠. 남북관계도 평화롭게 살자는 게 지상과제잖아요. 우리 사회도 그러자는 겁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선 싸움을 말리고 봐야 해요.&lt;BR&gt;&lt;BR&gt;&lt;B&gt;도&lt;/B&gt;=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북측 내부 사정이야 어떻든 적어도 남측이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이념적 입장을 떠나 최소한 두 선언의 정신은 계승한다고 밝혔어도 지금처럼 경직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봐요. 지난 10년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잖아요. 그 10년의 성과는 보지도 않고….&lt;BR&gt;&lt;BR&gt;&lt;B&gt;김&lt;/B&gt;= 그건 ‘어떤’ 사람들이 하는 레토릭이죠. 양 쪽에 다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으니까.&lt;BR&gt;&lt;BR&gt;대담은 정리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첨예한 대립의 국면에서 중립은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떻게 적극적 가치로 고양될 수 있는지 견해를 밝히고, 각자 덧붙이고 싶은 말들을 하기로 했다. &lt;BR&gt;&lt;BR&gt;&lt;B&gt;# &quot;함께 살아야 한다&quot;&lt;/B&gt;&lt;BR&gt;&lt;BR&gt;&lt;B&gt;도&lt;/B&gt;=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인문학자는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자는 공정성의 원칙을 포기할 수 없지요. 존 롤즈의 주장대로 공정성은 정의의 핵심입니다. &lt;BR&gt;&lt;BR&gt;저는 누구 편에서라기보다는 공정성의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립이죠. 그러나 맥없이 그냥 가운데 있는 중립이 아니라 좌든 우든 공정성과 양심의 편으로 가까이 서려고 하는 그런 중립입니다.&lt;BR&gt;&lt;BR&gt;&lt;B&gt;김&lt;/B&gt;= 동감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정치학자들이 할 얘긴데…. 다만 정치학자는 많은 걸 이념과 권력관계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난 도 선생이 책 읽는 사회 사업을 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인문학자는 게을러서 이런 일 하기 어렵거든. &lt;BR&gt;&lt;BR&gt;우리 견해의 차이는, 도 선생은 보다 전체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에？얘기하고 나는 구체적인 사안에 붙여 잘 생각해보자는 입장인 것 같아요. 도 선생은 행동적 정열이 많은 분이고 나는 게을러서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궁리나 하니까 생기는 차이일 겁니다.&lt;BR&gt;&lt;BR&gt;&lt;B&gt;도&lt;/B&gt;= 중립성과 불편부당성은 인간이 도달하기 힘든 저 먼 곳에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자신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이해관계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진 못하겠지만 최대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해야겠죠. 교수사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 사회는 객관성, 진실, 도덕적 고양과 같은 가치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 같아요. &lt;BR&gt;&lt;BR&gt;그러다 보니 사회가 잔인해지고 비열해지고 또 그래야만 살아 남는다는 의식이 팽배해서…, 도덕의 전반적인 하향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어느 사회영역에서 활동하든 우리 사회의 추락을 막아야 합니다. &lt;BR&gt;&lt;BR&gt;품위를 지키면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그러면서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요. 정치적 갈등이 심할수록 도덕적 능력, 정신적 능력의 추락이 현저히 발생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죠. 인문학이 해야 할 일이 뭔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lt;BR&gt;&lt;BR&gt;&lt;B&gt;김&lt;/B&gt;= 공감합니다. 60,70년대 서구라파나 미국 학생운동이 성할 때 중립을 부정하는 말들이 많았어요. 가치중립적 사회과학은 있을 수 없다는 거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살면서 의견이 바뀌었어요. 중립은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는 투쟁적 과거가 많아 ‘중립’ 하면 ‘나 몰라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lt;BR&gt;&lt;BR&gt;좌파 학자인 하버마스도 윤리적 중립이 법ㆍ제도의 기본이라고 말하잖아요. 분열이 심할 때는 옳고 그름을 가르기 전에 걱정하고 고민하면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lt;BR&gt;&lt;BR&gt;이걸 키워가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책임이라 여겨요. 사실 학문의 세계란 자기 세계에 갇혀 소통의 기회가 별로 없죠. 그래서 뉴스매체의 객관성이 중요한데, 우리 언론은 좌나 우로 지나치게 치우쳐있어요. 인간을 좀 더 믿고 중립적으로 사실을 밝히면 사람들이 판단해주리라 생각해요.&lt;BR&gt;&lt;BR&gt;그리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비교적 추상적 명제를 늘 염두에 두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양심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곤란한 것 같아요. 김현승 시인이 “사람들이 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칼은 칼집 속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어요.&lt;BR&gt;&lt;BR&gt;도덕이라는 것, 양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 심판하는 데 휘두르기보다 각자 자기의 행동규범으로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내 자신이 나의 행복을 위해, 자기실현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자는 거죠. 이런 게 사회일반의 윤리감각으로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lt;BR&gt;&lt;BR&gt;이른 저녁의 대학로는 늘 그렇듯 부산하고 소란스러웠고, 우리는 거리의 가쁜 소음에 쫓기듯 식당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앞장 서는 도정일 선생께 김우창 선생은 “검소한 데로 가시자”고 말했고, 식사는 말처럼 검소했다.&lt;BR&gt;&lt;BR&gt;&lt;!--HANKOOKI_DEF GISA_CONTENTS EN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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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height=30 align=left&gt;&lt;FONT color=#585858&gt;입력시간 : 2009/06/17 03:05:51 &lt;SPAN id=modify_gisa&gt;수정시간 : 2009/06/17 10:43:27&lt;/SPAN&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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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t;
	&lt;/STYLE&gt;

&lt;P&gt;군대생활을 할 때 내가 속한 25연대 2중대의 중대장은 사람이 매우 좋은 분이었다. 육사 출신의 대위였는데 생긴 것도 대충 안성기 스타일에다 원만한 인품에 탁월한 지휘력까지 갖추고&amp;nbsp;있어 중대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끔찍히&amp;nbsp;잘 따랐다. 엄하면서도 관대하고 과단성 있으면서도 자상했다고 할까. 어쨌든 모든 균형된 인격체가 그렇듯 꼬집어&amp;nbsp;장처(長處)를 말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존재는 은연중 모든 사람들에게 견인력을 발휘하여&amp;nbsp;중대에서 제일 나이가&amp;nbsp;많고 자존심이 센&amp;nbsp;선임하사도 그 분에게만큼은&amp;nbsp;깍듯이 예의를 갖추던 모습이 지금도&amp;nbsp;눈에 선하다. 그래서 우리 2중대 조교들은&amp;nbsp;각 중대 사병들이&amp;nbsp;모이는 사역장이나 보급품 배부처&amp;nbsp;등에 가면&amp;nbsp;번번이 중대장 자랑을&amp;nbsp;늘어놓곤 했다. 그런데&amp;nbsp;다른 중대 조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여서&amp;nbsp;그들은&amp;nbsp;대부분 별나고&amp;nbsp;성질 더러운 중대장 때문에&amp;nbsp;군대생활이 이만저만 고달프지 않다는 것이었다.&amp;nbsp;심지어 멀리&amp;nbsp;12 중대에서 근무하던 입대동기 김일병은 어느날 내가 거듭 중대장 자랑을&amp;nbsp;하자 자기 중대 중대장의 무지스러운 횡포를 한참이나 늘어놓은 후&amp;nbsp;부럽다는듯&amp;nbsp;이렇게 말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나도 니네 중대로나 갔으면 좋겠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음이 한없이 여려 아버지가 첫 면회를 왔을 때 부둥켜 안고&amp;nbsp;엉엉 울었다는 김일병. 유독 군대생활을 견디기 어려워 하여 만나기만 하면 하소연이 길던 김일병이 지치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그 말은 오래 나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amp;nbsp;불과 얼마&amp;nbsp;후 어디론가&amp;nbsp;전출을&amp;nbsp;가버리고 만&amp;nbsp;그 중대장에 대한&amp;nbsp;지울 수 없는&amp;nbsp;기억과&amp;nbsp;함께 어느덧 내 머릿 속에서&amp;nbsp;하나의 이론을 구성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즉, 조그마한 조직이든 국가와 같이&amp;nbsp;큰&amp;nbsp;조직이든&amp;nbsp;거기에서의 경영(통치)이&amp;nbsp;숭고한 목표하에 모든 구성원들의&amp;nbsp;존엄을 보전하면서&amp;nbsp;선하게 추진되고 있다면&amp;nbsp;그 경영에 가까이 있는 자들은 반드시 그것을&amp;nbsp;기뻐하고&amp;nbsp;멀리&amp;nbsp;떨어져 있는 자들은&amp;nbsp;가까이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느 경영학 교과서나 정치학&amp;nbsp;교과서에도&amp;nbsp;나올 법 하지 않은 이런 아마츄어&amp;nbsp;이론을 만들어 놓고 나는 내심 흐뭇하여 그 이론을 속으로 이리저리 궁글리기도 하고 그 이론을 통해&amp;nbsp;구체적인 조직&amp;nbsp;경영이나 국가 경영을&amp;nbsp;조명해 보기도 하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세월이&amp;nbsp;흘렀다. 군대 생활도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여&amp;nbsp;가끔 군대에 다시 징집되는 악몽이나 꾸던 무렵 어느 날 나는 대학도서관에서&amp;nbsp;논어를 읽다가&amp;nbsp;한 구절에 이르러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로(子路)편&amp;nbsp;제16장에 기록된&amp;nbsp;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을 접했기 때문이다.&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HStyle0&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gt;섭공(葉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lt;/P&gt;
&lt;P class=HStyle0&gt;｢가까이 있는 자는 기뻐하고 멀리 있는 자는 오는 것입니다.｣&lt;/P&gt;
&lt;P class=HStyle0&gt;(葉公問政.子曰;近者說,遠者來.)&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0%; TEXT-INDENT: 0pt; MARGIN-LEFT: 0pt; MARGIN-RIGHT: 0pt&quot; class=HStyle0&gt;&amp;nbsp;&lt;/P&gt;
&lt;P&gt;꾀죄죄한 훈련소 일등병의&amp;nbsp;뇌리에서 어설프게 구성된 이론과 2500년 전 인류의 성현이 초나라의 대정치가에게 제시한&amp;nbsp;정치 방침의&amp;nbsp;이 예기치 못한&amp;nbsp;일치에서 나는 잠시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구취나는&amp;nbsp;이론이 일찍이 성현의 말이었다는 사실은 영광스러운 정도를 넘어 황공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평범한&amp;nbsp;이야기 같기도 했다. 춘추말기의&amp;nbsp;각축하는 정치현실과 군대라는&amp;nbsp;각박한 조직사회가&amp;nbsp;가진 억압적 조건 때문에 이&amp;nbsp;평범한 사실이&amp;nbsp;더 부각될 소지도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로부터 다시 30년 가까운 세월이 더 흘렀지만 나의 생각은&amp;nbsp;그 정도에 머물러&amp;nbsp;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 하고 있다. 다만 변화가 있었다면 그 사이에 내가 크고 작은 조직 현실을 더 경험하였고&amp;nbsp;다양한 정치권력의 부침을 더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amp;nbsp;내가 젊은 날 군문에서 어설프게 엮어 보았던&amp;nbsp;그 이론, 공자가&amp;nbsp;섭공에게&amp;nbsp;간결히 제시했던 그 이론이&amp;nbsp;역시 참이고&amp;nbsp;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원리에 뿌리내린 것임을 더 절실히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신의 경영은&amp;nbsp;가까이 있는 자들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자들이&amp;nbsp;오는 것입니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물음 앞에서 크고 작은 조직의 경영자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amp;nbsp;정치지도자들은&amp;nbsp;아무런 조건없이 &quot;그렇다&quot;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경영이나 통치는 그런 케케묵은 봉건시대의 척도로 재어지는 것이 아니라고&amp;nbsp;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더 현대적인 이론을 구성하여 그 물음에 맞설 것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말할 수&amp;nbsp;있는 것은 국가경영을 포함한 모든 경영에는 여전히 그 간단한 이론이 적용될&amp;nbsp;원초적 차원이 있으며 모든 조직은 그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amp;nbsp;조직 목표&amp;nbsp;달성의&amp;nbsp;단순한 수단이기를 넘어&amp;nbsp;어쩌면 그&amp;nbsp;목표보다&amp;nbsp;더 크고&amp;nbsp;더 궁극적인&amp;nbsp;목표가&amp;nbsp;시현될&amp;nbsp;주체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까이 있는 자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자가 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점을 인정하고 수용한 데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일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까마득한&amp;nbsp;옛날 이제는 얼굴마저도&amp;nbsp;어렴풋한 2중대장과 그를 둘러싸고 가까이 또 멀리&amp;nbsp;있었던&amp;nbsp;두 일등병의 마음&amp;nbsp;속에 여울졌던&amp;nbsp;그 한때의 기쁨과 숭모의 정은 삶의 현장에서 좀처럼 그 전형적 모습을 다시 재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모든 조직 현실, 사회 현실은 매 순간 그러한 재현의 가능태로서 존재하며 그 도상에 서 있는 한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어느덧 조직의&amp;nbsp;한 봉우리에 겁없이 올라서 있는 나를&amp;nbsp;여전히 두렵게 만들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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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0억원이 생긴다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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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9-02-22T16:50:18Z</updated>
	    <published>2009-02-22T16:50: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quot;아빠, 아빠가 만약 로또복권에 당첨되어&amp;nbsp;100억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거야?&quot;&lt;/P&gt;
&lt;P&gt;아직도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존대말도 쓰지 않는 이 녀석은 올해 스물 여섯이나 되는 철부지한 우리 아들놈이다.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아이놈은 정말로 당첨되었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쓸 용도를&amp;nbsp;말해보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퇴직 후에 목공작업을&amp;nbsp;할 공작소 겸 아틀리에를 하나&amp;nbsp;사겠다&quot;&lt;/P&gt;
&lt;P&gt;말은&amp;nbsp;했지만 아직은&amp;nbsp;막연한 희망사항이다.&lt;/P&gt;
&lt;P&gt;&quot;그거 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quot;&lt;/P&gt;
&lt;P&gt;&quot;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100평 정도의 공간을 마련하자면&amp;nbsp;못해도 4억 정도는&amp;nbsp;들 거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나머지 96억은?&quot;&lt;/P&gt;
&lt;P&gt;취조하듯 물어댄다. 이번에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좀 신중히 답변했다.&lt;/P&gt;
&lt;P&gt;&quot;알다시피 너희 고모가 어렵게 살고 있지 않느냐. 너무 많이 주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니까 한 3억 정도를 주고 싶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93억 남았어. 그 다음은?&quot;&lt;/P&gt;
&lt;P&gt;&quot;혜정이 이모에게 한 3억 정도 줄까?&quot;&lt;/P&gt;
&lt;P&gt;혜정이 이모는 이모가 아니라 아내의 단짝 친구다. 결혼에 실패를 하여 딸아이 하나와 둘이서 어렵게 사는데 아이놈도 그 집 사정은 잘 안다. 생선을 차에 싣고 다니며 팔아서 사는데 가끔 아내와 만나더라도 아파트 입구에서만 만나지 절대 우리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생선냄새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녀를 본 지도&amp;nbsp;꽤 오래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또 그 다음&quot;&lt;/P&gt;
&lt;P&gt;&quot;요한이에게도 3억 주겠다&quot;&lt;/P&gt;
&lt;P&gt;요한이도 아이가 잘 안다. 고아원 출신인데 중학교 다닐 때부터 후원을 했다. 세살 때 길에서 울고 있는 것을 경찰관이 발견하여 고아원에 데려온 아이다. 후원한 지 3년째 되던 해인 고등학교 2학년 때 다행히&amp;nbsp;가족을 찾았는데 이미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개가를 한 상태였다. 공장에 다니는&amp;nbsp;두 살 위&amp;nbsp;누나는 아이를 데려갈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대로 고아원에&amp;nbsp;있어야 했다. 지금은 스물 다섯 살로 PVC 공장에&amp;nbsp;다니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직도 87억이 남았어.&quot;&lt;/P&gt;
&lt;P&gt;이번에는 정말로 길게 뜸을 들이다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lt;/P&gt;
&lt;P&gt;&quot;솔직히 네 녀석이 워낙 부실해서 살다가 어떤 어려운&amp;nbsp;처지에 봉착할 지 모르기 때문에 너 몰래 5억 정도를&amp;nbsp;어디에 꼬불쳐 두었다가 네가 힘들게 되면 쓰겠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이제 82억 남았어.&quot;&lt;/P&gt;
&lt;P&gt;아내도 뜨게질을 하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눈치였지만 이제 더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lt;/P&gt;
&lt;P&gt;&quot;나로서는 그 정도만 쓰면&amp;nbsp;더 이상은 필요가&amp;nbsp;없다. 남은 돈은 적당한 기부처를 찾아서 기부를 하겠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취조도 끝나고 나의 돈쓰기도 끝났다. 아이놈은 나의 답변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이야기인 즉슨 이 가상 질문에 답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amp;nbsp;세계관, 인생관 등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더러 매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데&amp;nbsp;이유는 첫번째 용처로 자기자신과 직접 관련된 사항을 언급했기 때문이란다. 몇 가지 분석이 더 이어졌지만 지금은 다&amp;nbsp;기억할 수가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후 나는 아이놈과의 이 엉뚱했던 대화를 종종 돌이켜 본다. 대체적으로 나는 나의 답변이 만족스럽다. 묻는 말에 아무 생각없이&amp;nbsp;답변을 한 것 같은데 나중에는 거기에 그럴듯한 논리와 이치가 반영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이 긍정적인 뜻인지 부정적인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신변에 직접 관련된 답변을 한 것도 괜찮았다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이 누구나 자신자신을 중심으로 원근법적으로&amp;nbsp;매사를 고려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자연스런 것이다.&amp;nbsp;특히 그 내용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나의 취미와 관련한 것이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 않나 한다. 오히려 그것이 우선 되어 있어서 그 뒤에 제시된 3건의 남돕기가 더 자연스럽게 제시된 느낌도 든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동생과 아내의 친구 그리고 요한이는 내 삶에 있어서 늘&amp;nbsp;신경통이나&amp;nbsp;동통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은 아픔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아픔이 있기에&amp;nbsp;내가 내 삶을 조금이라도 더 건전하게 유지한다는&amp;nbsp;엉뚱하고 외람된 해석도 해보고 있다. 그 동안 여동생과 아내의 친구에 대해서는 실제 크다면&amp;nbsp;크고 작다면 작은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한이에게만은 아직까지 겨우 푼 돈만을 주어온 것이 전부라&amp;nbsp;늘 마음에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마음이 나의 가상 돈쓰기에나마 담겼으니 그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은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그보다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돈쓰기, 즉 아이놈의 장래를 대비해서 5억 정도를 비축해 놓겠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을 할 때는 분명히 아이놈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다. 물론&amp;nbsp;실제 그런 염려가 강하게 뒷받침된 것은&amp;nbsp;말할 나위도 없다. 다들 자식 사랑이라고 말은 하지만 자식에 대한 아비의 사랑은 아무래도 염려쪽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저것이 밥이라도 먹고 살 것인지, 제 앞가림은 하고 살 것인지 하는 것이다. 옛날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도 대략 그런 염려였다. 그리고 그 정도로 설정된 자식 사랑은 필요하고 또 건전한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나는 &quot;간디, 나의 아버지&quot;라는 영화에서 간디와 그의 아들과의 불행한 관계를 매우 마음 아프게 본 적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마음에 품고 행려병자로 떠돌다 거적대기를 쓰고 비참하게 죽어간 간디의 아들은 아버지 간디의 지나친 고결성, 자식도 민족이나 인류보다 앞세울 수 없었던 지나친 객관성의 희생자였다. 그런 것에 비하면 거저 생긴 100억 중에서 5억 정도를 자식을 위해&amp;nbsp;쓰겠다는 것 쯤이야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러면서도 그 순위는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놓인 주변인들보다 더 나중이고 또 그런가 하면 금액은&amp;nbsp;더 많다. 무심히 내놓은 답변치고는&amp;nbsp;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것처럼 보이고 실제 무의식 속에서 그런 계산을 거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처음에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나는 83억이나 되는 돈을 이 사회에 기부를 한 것이다. 다만 나는 그 돈을&amp;nbsp;기부금이라 생각하지 않고 쓰고 남은 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은 기부에 적극적인 뜻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amp;nbsp;의미다. 좋게 생각한다면&amp;nbsp;그것은 나의 무욕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전통으로 확립되어 있는 저 기부문화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은 기부가 미국의 더 큰 전통으로 확립되어 있는 탐욕적인 돈벌이의&amp;nbsp;부산물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부를 하기로 했지만 실제 의미는&amp;nbsp;그냥 더 이상 쓸 용도가 없는 돈의 처분 정도였고 그것이 더 마음에 든다. 물론 거기에는 기부된 돈이 적절한 용처를 얻어&amp;nbsp;선하게 쓰이기를 기대하는 평범한 마음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이와의 엉뚱한 대화가&amp;nbsp;나름대로 재미난 여운을 남기자 나는 어느 술자리에서 아이에게 배운 그 질문을&amp;nbsp;다른 사람들에게 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 두 사람이 거의 똑 같은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그들의 대답은 내가 했던 대답과는 크게 달랐다.&amp;nbsp;그들은 그 100억원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장학사업 같은 사회사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100억원이 모두 사회에 내놓아져 있는 셈이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관장하에 있는 셈이기도&amp;nbsp;하여&amp;nbsp;이 애매모호한 용도를 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amp;nbsp;지금도 모르겠다. 아이놈에게&amp;nbsp;말해서 평가를 들어봐야지 생각하였지만 매번 잊어버려 아직까지도 물어보지 못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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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막내린 세계사회포럼..&quot;자본주의 사망&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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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극기복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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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2-02T14:01:4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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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3 id=GS_con_ti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진보ㆍ개혁 목소리 반영..남미 좌파정상 참여 정치색 강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세계경제위기 대안 제시 불충분 지적도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quot;&quot;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B%F3%C6%C4%BF%EF%B7%E7&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 stitle=&quot;&gt;검색하기&quot; alt&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상파울루&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C%BC%B0%E8%B0%E6%C1%A6%C6%F7%B7%B3&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세계경제포럼&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WEF.&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quot;&quot;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4%D9%BA%B8%BD%BA+%C6%F7%B7%B3&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 stitle=&quot;&gt;검색하기&quot; alt&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다보스 포럼&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의 대안 모임으로 일컬어지는 세계사회포럼(WSF)이 6일 간의 일정을 끝내고 1일 막을 내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9회째인 올해 WSF는 지난달 27일부터 브라질 북부 파라 주(州) 벨렝 시(市)에서 계속됐으며. 주최 측은 전 세계 142개국 5천800여개 진보 성향 단체에서 10만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대륙별 참가 단체는 남미가 4천193개로 가장 많았고 유럽이 491개, 아프리카가 489개 등이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quot;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quot;는 슬로건 아래 열린 올해 행사에서는 세계화 및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D%C5%C0%DA%C0%AF%C1%D6%C0%C7&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신자유주의&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정책의 실패와 대안 모색, 새로운 세계 정치ㆍ경제 질서 구축, 국제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 아마존 삼림보호 및 기후변화 대응, 원주민 등 소수인종 권익 향상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올해 행사에는 특히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격렬한 반대 시위를 전개한 극단적인 좌파주의자들로부터 시작해 온건 사회개혁운동가, 인권운동가, 환경보호 활동가, 종교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보ㆍ개혁 세력이 참여해 내용이 한층 충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라질 정부가 행사에 투입한 예산도 역대 최대 규모인 5천만달러에 달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특히 세계경제위기라는 특수 상황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는 루이스 이나시오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7%EA%B6%F3+%B4%D9+%BD%C7%B9%D9&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룰라 다 실바&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브라질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 등 역대 행사 가운데 가장 많은 5명의 정상들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정상들은 세계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선진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에 대해 사망을 선고하는 한편 새로운 세계금융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샤논 벨 교수(정치학)는 &quot;사람들은 이미 자본주의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자본주의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quot;면서 &quot;올해 WSF가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열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quot;고 강조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번 WSF를 놓고 &quot;세계경제위기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위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실질적인 대안 제시도, 일치된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구호에 그쳤다&quot;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그러나 다보스 포럼과 마찬가지로 WSF 역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국제 현안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스스로를 '이상주의자'로 표현한 루이스 파비아노 셀레스트리노(35)는 &quot;WSF가 꼭 금융위기 때문에 열린 것은 아니며, 세계는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quot;이라면서 &quot;WSF에서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견해를 듣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quot;이라고 말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런 가운데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코레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세계경제위기 치유를 위한 남미권의 공동대응 차원에서 단일통화 창설 및 중앙은행 통합 운영을 제의하기도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올해 WSF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성격을 부각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룰라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좌파 정상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quot;&quot;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9%F6%B6%F4+%BF%C0%B9%D9%B8%B6&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 stitle=&quot;&gt;검색하기&quot; alt&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버락 오바마&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미국 대통령에 대해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0%FC%C5%B8%B3%AA%B8%F0&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관타나모&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기지의 쿠바 반환을 요구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차베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벨렝 시 도착 일성을 통해 자본주의 사망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강조하면서 &quot;WSF는 떠오르는 개도국들의 행사인 반면 다보스 포럼은 금융위기로 인해 '죽어가는' 국가들의 모임&quot;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오바마 대통령이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C1%B6%C1%F6+%BA%CE%BD%C3&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조지 부시&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 전 대통령의 제국주의 정책을 버리고 진정한 변화를 모색할 때 미국-베네수엘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던졌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모랄레스 대통령은 미국이 볼리비아 정부 전복 음모를 지원해 왔다는 주장과 함께 미국의 간섭주의를 끝내기 위한 '세계혁명'을 촉구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이 같은 몇 가지 지적에도 불구하고 WSF가 세계 '다른 부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올해 행사에서는 &quot;포럼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전 세계 단체들이 공동입장을 밝히자&quot;는 주장이 제기됐는가 하면, 포럼 원년 멤버 중 한 명인 치코 위태커는 &quot;세계는 다양할수록 바람직한 것이며, WSF는 세계가 지향해야 할 모습을 보여주는 배움터가 돼야 한다&quot;는 견해를 밝혔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quot;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다&quot;는 인식을 바탕으로 출발한 WSF는 2001년과 2002년, 2003년, 2005년에는 브라질 최남부 리오 그란데 도 술 주 포르토 알레그레, 2004년에는 인도의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9%B3%B9%D9%C0%CC&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뭄바이&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에서 열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2006년에는 아프리카 말리,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파키스탄 카라치 등 3개 대륙 3개 도시로 나뉘어 개최됐으며, 2007년에는 케냐 수도 &lt;/SPAN&gt;&lt;A class=keyword onmouseover=UI.toolTip(event) title=&gt;검색하기 href=&quot;http://search.daum.net/search?w=tot&amp;q=%B3%AA%C0%CC%B7%CE%BA%F1&amp;nil_profile=newskwd&amp;nil_id=v20090202095513956&quot; target=new&gt;&lt;U&gt;&lt;FONT color=#0000ff&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나이로비&lt;/SPAN&gt;&lt;/FONT&gt;&lt;/U&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에서 열렸다. 2008년에는 1월 26일부터 전 세계 72개국으로 나뉘어 행사가 개최됐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WSF는 올해 행사를 끝으로 앞으로는 격년제로 열릴 예정이며, 이에 따라 제10회 WSF는 2011년 아프리카나 아랍 국가, 미국, 멕시코 중 한 곳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fidelis21c@yna.co.kr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끝)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 저작권자(c)연합뉴스&gt; &lt;/SPAN&gt;&lt;BR&gt;&lt;BR&gt;&lt;/H3&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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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화의 리얼리티와 민주주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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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9-01-30T13:39:47Z</updated>
	    <published>2009-01-30T13:39: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영화를&amp;nbsp;볼 때마다 나는 그 발전된 모습에&amp;nbsp;감탄을 하게 된다. 감탄을 넘어 어떨&amp;nbsp;땐 눈물겹다는 말로&amp;nbsp;표현해도 좋을 만큼&amp;nbsp;진한 감회를 느낀다.&amp;nbsp;무슨 과장된 제스쳐냐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 그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왜 과장이 아닌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나의&amp;nbsp;짧은 이야기를&amp;nbsp;시작하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선 나는 요즈음 젊은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무의식적으로 내가 어린 시절에 본 영화들, 그러니까 주로 1960년대에&amp;nbsp;만들어진&amp;nbsp;영화들을 배경으로 하여 보곤 한다. 이것은&amp;nbsp;나 정도 연배들에게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주연급으로 김진규나 최무룡, 김지미, 김승호&amp;nbsp;등이, 조연급으로는 박암, 황해, 문오장, 도금봉, 조미령&amp;nbsp;등등이 등장하던 영화들은 한마디로 진부했다.&amp;nbsp;물론 그 시절에는 그 시절 나름대로 흥미와 감상의 기준이 따로 있었다고&amp;nbsp;할 수도 있을 것이다.&amp;nbsp;그러나 그 때 그 영화를 보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어린 세대였던 우리들은 이미 그 영화의 형식이며 내용이&amp;nbsp;낡은 관념에 절어 있다는 것을&amp;nbsp;신세대의 감수성으로&amp;nbsp;느끼고 있었다. &lt;/P&gt;
&lt;P&gt;이를테면&amp;nbsp;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들에게&amp;nbsp;뒤쫒기던 주인공이 동료가&amp;nbsp;쓰러지자 갑자기 그를 부둥켜 안고&amp;nbsp;목메인&amp;nbsp;대사를&amp;nbsp;길게도 읊조리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amp;nbsp;그를 업고 달아나든지 먼저 적의 공격을 물리치든지,&amp;nbsp;아슬아슬하게 쫓아오던 적은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amp;nbsp;마치 다른 필름 토막이 잘못 끼어든 것처럼&amp;nbsp;엉뚱한 신파극이&amp;nbsp;연출되던 모습은 어린&amp;nbsp;눈에도&amp;nbsp;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뿐인가? 더빙된 육성들은&amp;nbsp;지금까지도 종종 코메디의 소재로&amp;nbsp;이용될 만큼&amp;nbsp;틀에 박힌 어조로&amp;nbsp;생산되고 있지 않았던가.&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언이폐지하여 리얼리티의 결여라고 할 수 있는 당시&amp;nbsp;한국영화의&amp;nbsp;이런 문제점은 신영균을 거쳐 신성일이 출현하도록 크게 개선되는 것 같지 않았다.&amp;nbsp;물론 변화의 조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amp;nbsp;내게 있어서는 이장호 감독의 외인구단이나 과부춤,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이나 깊고 푸른 밤 같은 작품들이&amp;nbsp;다소&amp;nbsp;낯선 변화의 조짐들로 다가오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들은 과거와는 다른 소재들을 다루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아직은 진정한 리얼리티를 안겨주지는 못 했던 것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후 바쁘고 여유없는 세상살이를 하면서 영화를 볼 기회를 오랫동안 - 거의 20여년 가까이! - 갖지 못 했던 것이 또 하나의 여건이 되었을까? 언젠가부터 다시 보기 시작한 한국영화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amp;nbsp;꿈에도 기다리던 저&amp;nbsp;리얼리티가 화면에&amp;nbsp;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마디로 경이적이고도&amp;nbsp;가슴 뭉클한&amp;nbsp;체험이었다. 신상옥 감독이나 유현목 감독의 영화와는&amp;nbsp;판이하고 이장호 감독이나 배창호 감독의 영화와도 확실히 달랐다. 나로 하여금&amp;nbsp;그런 느낌을 갖게 한 영화들을 열거해 보자면 대략 강원도의 힘, 살인의 추억, 고양이를 부탁해, 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바람난 가족, 타짜, 질투는 나의 힘, 장미빛 인생, 괴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올드보이 등등이다.&amp;nbsp;내가 이들 영화에서 발견할&amp;nbsp;수 있었던&amp;nbsp;캐릭터라든가 연기, 시나리오, 주제, 미장센 그리고 그 모든 것에 관류하는&amp;nbsp;리얼리티가&amp;nbsp;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샘물처럼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솟아올라 영화라는 예술매체에 차곡차곡 모아져온 것이 분명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생각하면 20세기 전반 우리의 민족정신을 담지해온 분야는 누가 뭐라 해도&amp;nbsp;문학이었다.&amp;nbsp;국권상실의 피폐한&amp;nbsp;시대에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생산과 유통이 가능했던&amp;nbsp;분야로서 문학은&amp;nbsp;그야말로 민족정신의 잔명을 보존해온 전등(傳燈)의&amp;nbsp;공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여건에 직면하면서&amp;nbsp;급격히 그 역할을 축소시켜갔다. 그 과정과 변화의 논리를 설명하는 것은&amp;nbsp;많은 시간과 지면을 요하는 일이므로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결과만을 놓고 볼 때 나는 문학의 그 역할이 종국에는 영화쪽으로 옮겨갔다고&amp;nbsp;본다. 소수의 지식인 중심에서 대중 중심으로 옮겨진 것이라든지 우회적인 문자매체가 직접적인 영상매체로 바뀐 것이라든지 생산되고 소비되는 패턴의&amp;nbsp;친자본주의적 성향이라든지 영화는 정신소통의 새로운 담지자로 등장할 여러 요소를&amp;nbsp;갖추고 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민족정신이 스스로를 표출하고 확인하는&amp;nbsp;주된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하였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감격스러워 할&amp;nbsp;일은 아니다.&amp;nbsp;감격스러운 것은&amp;nbsp;영화가 그런 리얼리티를 갖추어온&amp;nbsp;과정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해온 저 고난의 과정과 온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민족의 자주독립이 엄연한 선결과제이던 시절 혹은&amp;nbsp;냉전적 대립구도가 철벽처럼 버티고 있던 시절에&amp;nbsp;우리는 우리의 실존 위에&amp;nbsp;그런 리얼리티를 세울 수 없었다. 국가도 민족도 이런저런 이념도 우리의 구체적 삶에서 발해지는&amp;nbsp;정당한 요구를 능가하는 것일 수 없다는 것,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와 땀내 나는 삶이야말로 모든 것의 진정한 현장이라는 인식이&amp;nbsp;쟁취된 후에야 스크린은 바로 그런&amp;nbsp;리얼리티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lt;/P&gt;
&lt;P&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6.uf.daum.net/image/146DEF0D49AA3E680EDEC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ctualwidth=&quot;500&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width=&quot;50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화관의 어둠 속에&amp;nbsp;앉아&amp;nbsp;팝콘을 집어먹으며&amp;nbsp;스크린 위에서 전개되는 영상들로부터 얼싸한 공감을 받으면서도 그것을&amp;nbsp;당연한 듯이&amp;nbsp;받아들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얼마나 긴 세월을&amp;nbsp;통하여 스스로의&amp;nbsp;한계와 씨름하고 나와 이제 간신히 불 밝혀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인지를 아느냐고.&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른바 한류라는 것이 형성되어 아시아 일부에서나마&amp;nbsp;주목받는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역시 그런 정치적 민주주의에 힘입은&amp;nbsp;것이라 생각한다. 아시아인들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실존에 자연스러우면서도 정밀하게&amp;nbsp;촛점을 맞출 줄 아는 저&amp;nbsp;경이로움이었을 것이다. 그 촛점은 스스로의 시야를 가리고 방해하는 온갖 관념과 가치의 덩어리들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깨부수고 난 후 비로소 투명해진 의식 속에서 맞추어질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amp;nbsp;단계에서&amp;nbsp;구태여 한마디 조언을&amp;nbsp;하자면 이런 성취가 결코 불멸의 업적으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리얼리티는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변질될 수도 있고 상실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요즈음의 미국 영화를 보면서 그 점을 절실히 느낀다. 미국영화는 확실히 그 영광의 고점을 넘어 미국이 맞이한 문화의 위기를&amp;nbsp;보여주고 있다. 헐리우드는 이제 전세계인들을 열광시키던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일에 있어서 점점 무력감을 노출하고 있다. 영화적 효과는 주로 특수하고 왜곡된 설정에서 억지로 도출되고 있으며 영화를 통해 스스로의&amp;nbsp;균형된 자화상을 보는 일도 갈수록 초점을 잃어가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비슷한 현상이&amp;nbsp;한국영화에서도&amp;nbsp;엿보이고 있다. 어쩌면 한국영화가 리얼리티를 얻어가던 초기부터 그 안에는 이미&amp;nbsp;그런 요소가 싹트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80년대 후반 민주항쟁의 열풍으로 소용돌이 치던 젊은이들의 문화 속에서도 실은&amp;nbsp;조만간 실체를 드러낼 저급한 대중성과 눈 먼 소비주의가 범람하고 있었다.&amp;nbsp;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쇠퇴에서&amp;nbsp;오고 있다고 할&amp;nbsp;수도 있고 삶의 안일과 문화의 퇴락에서&amp;nbsp;오고 있다고 할&amp;nbsp;수도 있는데 아마 그 둘은 동일한 실체의 양면일&amp;nbsp;것이다.&amp;nbsp;그 점에서 최근 정치적 사회적 방면에서 노골적으로&amp;nbsp;드러나고 있는&amp;nbsp;민주주의적 원칙들의 훼손은&amp;nbsp;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삶의 퇴락을&amp;nbsp;표현하는&amp;nbsp;것이라 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스크린 위에 모아지는 우리들의 단순한 감수성도 결국은 삶의 종합적인 역학관계에서 빚어져 나오는 것이다. 문화의 어떤 조그마한 한 모퉁이에서 이루어지는 성취나 구름 그림자처럼 알게 모르게 덮혀오는 위기나 다 마찬가지다. 그 모든 연관성은 놀랍고 그 어느 것에나 우리의&amp;nbsp;존재,&amp;nbsp;우리의 생명이 전폭적으로 관련되어 있어 때로는&amp;nbsp;바로 그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한 시대의 수많은 목숨이 내걸리기도 한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화도 그 한 모퉁이다. 그래서 거기서 잠시 보는 리얼리티에는 목숨의 가치가 엿보인다.&amp;nbsp;특히 요즈음과 같은 변환기에 한국영화를 돌아보고 전망한다는 것은&amp;nbsp;그 자체가 가슴 뭉클하고, 착잡하고, 뒤숭숭한&amp;nbsp;그 무엇이다. 영화가 아직까지는 문학에 뒤이은 민족정신의&amp;nbsp;담지자로서 대표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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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창목재소/조동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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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8-12-28T12:05:10Z</updated>
	    <published>2008-12-28T12:05: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post_option&gt;&lt;BR&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post-view pcol2&quot; id=post-view&gt;
&lt;CENTER&gt;&lt;IMG id=userImg9767130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popview(&quot;http://blogfiles5.naver.net/data1/2004/10/11/244/%B0%A1-_%B8%F1%BC%F6%BF%CD_%B4%EB%C6%D0-gulsame.jpg&quot;)' src=&quot;http://blogfiles5.naver.net/data1/2004/10/11/244/%B0%A1-_%B8%F1%BC%F6%BF%CD_%B4%EB%C6%D0-gulsame.jpg&quot; onload='setTimeout(&quot;resizeImage(9767130)&quot;,200)'&gt;&lt;/CENTER&gt;&lt;B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center&quot;&gt;&lt;FONT color=#9b18c1 size=4&gt;태창목재소&lt;/FONT&gt;&lt;/SPAN&gt; / 조동범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right&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며칠 전인가 퇴역 군함을 수장시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사진 속의 군함은 제 생명을 다하고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뱃머리를 하늘을 향해 치켜든 군함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자신의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고 바다로 돌아가는 군함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수 없이 많은 전투와 항해를 겪었을 군함의 최후는 장엄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다이버들의 훈련용으로 쓰일 것이라고는 하지만 고철로 분해되지 않고 온전히 바다에 묻힐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즐겁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군함은 천천히 녹이 슬어가며 아주 오래도록, 바다에서 보낸 일생을 추억할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나는 그 사진을 보고 몇 달 전에 문을 닫은 태창목재소를 떠올렸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었던,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태창목재소. 태창목재소는 1976년에 문을 열고 올 봄에 문을 닫은, 말 그대로 나무를 파는 상점이다. 태창목재소는 27년의 세월을 견디며 초등학교 일 학년이었던 어린아이의 성장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27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27년 전의 빛바랜 사진 속에서 눈부시게 웃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만큼 자란 나는 그 사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엘 다녀오고 결혼을 하였다. 언제나 나무 향 가득하던 목재소는 그렇게 세월을 남겨두고 문을 닫고 말았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목재소 가득 퍼지던 나무의 향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것이었다. 나무의 결을 따라 배어 나온 그 향은 마치 깊은 숲에서 나는 향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 향을 맡으며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나무에서는 언제나 그런 기분 좋은 선선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목재 창고에서 일을 하고 있던 부모님께 인사를 했고 친구들과 그 곳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으며 나무가 가득 쌓인 통로를 지나 변소엘 갔다. 그 곳에는 언제나 나무의 향이 가득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한번은 목재소가 있던 안양에 대홍수가 난 적이 있었다. 목재소가 문을 연 다음 해였던 1977년의 일이었다. 물은 천장까지 차올랐고 도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어디서 그 많은 물이 밀려들었는지 삽 한 자루를 들고 물을 막아보려던 아버지의 힘은 역부족이었다. 물은 삽시간에 나무가 쌓여 있던 마당과 창고까지 차올랐다. 밤 새, 물 위로 떠오른 나무와 그 향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혹시 나무가 홍수에 모두 휩쓸려 먼바다를 떠도는 꿈을 꾸신 것은 아닐까? 참담한 여름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늘에서 아주 오래도록 나무를 말렸다. 물에 젖은 나무의 향이 발치로 흘러내렸다. 축축하게 젖은 나무가 마르자 허옇게 일어난 톱밥이 우수수 떨어졌다. 톱밥은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흩어졌다. 공중에 흩뿌리던 톱밥은 아마도 부모님의 눈에 박혀 눈물과 함께 나무 위로 힘없이 툭, 떨어졌을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태창목재소가 문을 닫던 날.&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나무를 들어내자 세월을 뒤집어 쓴 톱밥이 뿌옇게 드러났다. 나는 그날, 톱밥에 섞인 뿌연 먼지와 함께 폐부로 들어오는 나무의 냄새를 맡으며 바다 너머 낯선 이국의 밀림과 밀림의 푸른 나무를 떠올렸다. 태창목재소는 한 번도 푸른 나무를 들인 적이 없었지만 언제나 선선한 나무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지난 27년 동안 나는 목재 창고 안에 배어 있던 나무 냄새를 맡으며 언제나 밀림을 눈앞에 그리곤 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톱밥은 곱고 부드러웠다. 손끝에 올려놓은 톱밥을 지그시 누르자 푹신한 감촉이 기분 좋게 전해왔다. 지금이야 톱밥을 사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톱밥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당시만 해도 톱밥은 매우 유용한 보온재였다. 톱밥 위에 누우면 전해지는, 푹신하고 따뜻한 느낌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것이었다. 나는 톱밥에 누워 손끝에 전해지는, 푹신하면서도 까칠한 느낌을 주먹에 가득 쥐고는 잠이 들곤 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나는 아직도 그날, 태창목재소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부모님은 목재소를 차리기 위해 살던 집을 팔았는데 당시 초등학교 일 학년이었던 나는 살던 집에서 몇 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목재소를 찾지 못해 무척 당황했었다. 우리 식구는 그 후로 오랫동안 목재소 귀퉁이의 무허가 집에서 나무와 함께 세월을 보내야 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목재소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나 커다란 트럭이 들어와 내 키보다 높게 나무를 부려 놓았다. 부모님은 내 키보다 높은, 아득한 곳에 차곡차곡 나무를 쌓았다. 밀림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을 나무는 언제나 나이테를 드러내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무는 팔려나가 집이 되고 가구가 되고 기둥이 되었으며 초등학교 일 학년이었던 어린 소년을 키웠다. 나무의 뿌리는 바다 너머 아득히 먼 이국에 남았지만 목재소의 나무는 내게 언제나 단단히 뿌리 박고 서 있는 거대한 푸른 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 식구는 그 거대한 나무에 기대어 언제나 행복했다. 목재소는 몇 차례 이사를 하는 동안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빈 공터에 허술한 나무 담장을 두르고 있던 목재소는 상가 건물로 자리를 옮겼고 상호도 태창목재소에서 태창종합목재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국번 없이 네 자리였던 전화번호도 한 자리 국번과 두 자리 국번을 거쳐 세 자리 국번을 갖춘 전화번호로 바뀌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수장되는 군함의 사진을 보며 나는 목재소가 문을 닫던 날, 켜켜이 쌓인 톱밥을 쓸어내며 느꼈던 아련함을 보았다. 그리고 바다에서 보낸 세월을 간직한 채 깊은 바다에 수장되는 군함의 모습을 보며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목재소의 추억을 떠올렸다. 군함은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지만 바다에 잠겨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바다 속 깊은 곳의 모습을 볼 것이다. 그리고 제 몸 곳곳에 바다를 담고 바다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목재소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깊은 바다 속에 잠겨 바다가 되어 가는 군함처럼 내 마음 속에 담겨 유년의 기억을 불러오고 나무의 향을 뿜어 27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펼쳐 보일 것이다. 그리고 목재소를 그만두게 되어 편하다고 하시는 부모님 역시 꿈 속에서 나무 향기 가득한 추억을 건져 올릴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지금은 피아노 상점이 들어선, 목재소가 있던 자리를 지날 때면 아직도 나무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깨끗하게 정리된 피아노 상점 바닥의 귀퉁이에 아직도 치우지 못한 톱밥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나무의 향은 거의 잃었지만 톱밥 부스러기는 아직도 목재소를 추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목재소에 관한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목재소에 관한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목재소와 나무 그리고 나무의 향을 아직까지 가슴 속에 제대로 담지 못해서일까? 목재소에 관한 시 한 편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시인이 되었는데 이제 목재소는 그 자리에 없다. 수장된 군함처럼 가슴 속 깊은 곳에 담긴 목재소를 볼 수는 없지만 아직도 나무의 향기 내 마음 속에 가득한데 어쩐 일인지 나는 목재소에 관한 시를 쓰려고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1동 557-34번지.&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아직도 목재소가 있었던 그 자리를 지날 때면 나무의 향이 나는 것만 같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그 곳에, 나를 키운 목재소가 있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나무의 향 가득한, 태창목재소가 있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시와정신&gt; 2003 가을호 &lt;/P&gt;&lt;/DIV&gt;
	    </content>
	    	</entry>
    	<entry>
	    <title>내가 본 영화, 내가 나누어본 분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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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stlee51.13624365</id>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8-11-20T14:06:42Z</updated>
	    <published>2008-11-20T14:06: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P&gt;
&lt;P class=HStyle0&gt;그 동안 내가 본 영화를 3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물론 주관이 개입된 것이고 다수의 영화는 이 3가지 기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아 아예 포함시키지 않았다.&lt;/P&gt;
&lt;P class=HStyle0&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gt;&lt;STRONG&gt;잘 본 영화&lt;/STRONG&gt;&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 잘 봤다는 뜻이자 높이 평가한다는 뜻-&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25시&lt;/P&gt;
&lt;P class=HStyle0&gt;&lt;/P&gt;
&lt;P class=HStyle0&gt;8월의 크리스마스&lt;/P&gt;
&lt;P class=HStyle0&gt;가을의 전설&lt;/P&gt;
&lt;P class=HStyle0&gt;개같은 내 인생&lt;/P&gt;
&lt;P class=HStyle0&gt;고양이를 부탁해&lt;/P&gt;
&lt;P class=HStyle0&gt;과부춤&lt;/P&gt;
&lt;P class=HStyle0&gt;그랑블루&lt;/P&gt;
&lt;P class=HStyle0&gt;금지된 장난&lt;/P&gt;
&lt;P class=HStyle0&gt;길(앤서니 퀸)&lt;/P&gt;
&lt;P class=HStyle0&gt;깃발없는 기수&lt;/P&gt;
&lt;P class=HStyle0&gt;남태평양&lt;/P&gt;
&lt;P class=HStyle0&gt;노스바스의 추억&lt;/P&gt;
&lt;P class=HStyle0&gt;닥터 지바고&lt;/P&gt;
&lt;P class=HStyle0&gt;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lt;/P&gt;
&lt;P class=HStyle0&gt;대부&lt;/P&gt;
&lt;P class=HStyle0&gt;디어 헌터&lt;/P&gt;
&lt;P class=HStyle0&gt;라이안의 처녀&lt;/P&gt;
&lt;P class=HStyle0&gt;마이페어레이디&lt;/P&gt;
&lt;P class=HStyle0&gt;마농의 샘&lt;/P&gt;
&lt;P class=HStyle0&gt;미션&lt;/P&gt;
&lt;P class=HStyle0&gt;벤허&lt;/P&gt;
&lt;P class=HStyle0&gt;빠삐용&lt;/P&gt;
&lt;P class=HStyle0&gt;뽕(이미숙)&lt;/P&gt;
&lt;P class=HStyle0&gt;사운드오브뮤직&lt;/P&gt;
&lt;P class=HStyle0&gt;살인의 추억&lt;/P&gt;
&lt;P class=HStyle0&gt;스팅&lt;/P&gt;
&lt;P class=HStyle0&gt;시네마천국&lt;/P&gt;
&lt;P class=HStyle0&gt;아제아제바라아제&lt;/P&gt;
&lt;P class=HStyle0&gt;양철북&lt;/P&gt;
&lt;P class=HStyle0&gt;영원한 제국&lt;/P&gt;
&lt;P class=HStyle0&gt;와호장룡&lt;/P&gt;
&lt;P class=HStyle0&gt;웨스트 사이드 스토리&lt;/P&gt;
&lt;P class=HStyle0&gt;인생(장예모)&lt;/P&gt;
&lt;P class=HStyle0&gt;자전거 도둑&lt;/P&gt;
&lt;P class=HStyle0&gt;장군의 아들&lt;/P&gt;
&lt;P class=HStyle0&gt;졸업&lt;/P&gt;
&lt;P class=HStyle0&gt;죠스&lt;/P&gt;
&lt;P class=HStyle0&gt;중경삼림&lt;/P&gt;
&lt;P class=HStyle0&gt;쥬라기 공원&lt;/P&gt;
&lt;P class=HStyle0&gt;축제&lt;/P&gt;
&lt;P class=HStyle0&gt;크라잉 게임&lt;/P&gt;
&lt;P class=HStyle0&gt;태양은 가득히&lt;/P&gt;
&lt;P class=HStyle0&gt;패왕별희&lt;/P&gt;
&lt;P class=HStyle0&gt;포레스트검프&lt;/P&gt;
&lt;P class=HStyle0&gt;해바라기(소피아 로렌)&lt;/P&gt;
&lt;P class=HStyle0&gt;황금연못&lt;/P&gt;
&lt;P class=HStyle0&gt;흐르는 강물처럼&lt;/P&gt;
&lt;P class=HStyle0&gt;히어로(더스틴 호프만)&lt;/P&gt;
&lt;P class=HStyle0&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gt;&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lt;STRONG&gt;그럭저럭 볼만한 영화&lt;/STRONG&gt;&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 결코 최고라고는 보지 않는다는 뜻-&lt;/P&gt;
&lt;P class=HStyle0&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gt;간디&lt;/P&gt;
&lt;P class=HStyle0&gt;강원도의 힘&lt;/P&gt;
&lt;P class=HStyle0&gt;공공의 적&lt;/P&gt;
&lt;P class=HStyle0&gt;괴물&lt;/P&gt;
&lt;P class=HStyle0&gt;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lt;/P&gt;
&lt;P class=HStyle0&gt;길소뜸&lt;/P&gt;
&lt;P class=HStyle0&gt;깊고 푸른 밤&lt;/P&gt;
&lt;P class=HStyle0&gt;까미유 끌로델&lt;/P&gt;
&lt;P class=HStyle0&gt;꽃잎&lt;/P&gt;
&lt;P class=HStyle0&gt;나에게 너를 보낸다&lt;/P&gt;
&lt;P class=HStyle0&gt;나홀로 집에&lt;/P&gt;
&lt;P class=HStyle0&gt;노는 계집 창 &lt;/P&gt;
&lt;P class=HStyle0&gt;노랑머리&lt;/P&gt;
&lt;P class=HStyle0&gt;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lt;/P&gt;
&lt;P class=HStyle0&gt;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lt;/P&gt;
&lt;P class=HStyle0&gt;늑대와 함께 춤을&lt;/P&gt;
&lt;P class=HStyle0&gt;다이하드&lt;/P&gt;
&lt;P class=HStyle0&gt;돌아오지 않는 강&lt;/P&gt;
&lt;P class=HStyle0&gt;동갑내기 과외하기&lt;/P&gt;
&lt;P class=HStyle0&gt;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lt;/P&gt;
&lt;P class=HStyle0&gt;드라이빙 미스 데이지&lt;/P&gt;
&lt;P class=HStyle0&gt;딥임팩트&lt;/P&gt;
&lt;P class=HStyle0&gt;라쇼몽&lt;/P&gt;
&lt;P class=HStyle0&gt;러브레터&lt;/P&gt;
&lt;P class=HStyle0&gt;러브스토리&lt;/P&gt;
&lt;P class=HStyle0&gt;레옹&lt;/P&gt;
&lt;P class=HStyle0&gt;레이더스&lt;/P&gt;
&lt;P class=HStyle0&gt;레인맨&lt;/P&gt;
&lt;P class=HStyle0&gt;로마의 휴일&lt;/P&gt;
&lt;P class=HStyle0&gt;로미오와 쥴리엣&lt;/P&gt;
&lt;P class=HStyle0&gt;마지막황제&lt;/P&gt;
&lt;P class=HStyle0&gt;말레나&lt;/P&gt;
&lt;P class=HStyle0&gt;미녀와 야수&lt;/P&gt;
&lt;P class=HStyle0&gt;밀양&lt;/P&gt;
&lt;P class=HStyle0&gt;바람과 함께 사라지다&lt;/P&gt;
&lt;P class=HStyle0&gt;바람난 가족&lt;/P&gt;
&lt;P class=HStyle0&gt;박하사탕&lt;/P&gt;
&lt;P class=HStyle0&gt;범죄의 재구성&lt;/P&gt;
&lt;P class=HStyle0&gt;봄날은 간다&lt;/P&gt;
&lt;P class=HStyle0&gt;봄여름가울겨울 그리고 봄&lt;/P&gt;
&lt;P class=HStyle0&gt;붉은 수수밭&lt;/P&gt;
&lt;P class=HStyle0&gt;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lt;/P&gt;
&lt;P class=HStyle0&gt;블래이드 런너&lt;/P&gt;
&lt;P class=HStyle0&gt;블랙&lt;/P&gt;
&lt;P class=HStyle0&gt;빈 집 &lt;/P&gt;
&lt;P class=HStyle0&gt;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lt;/P&gt;
&lt;P class=HStyle0&gt;사랑과 영혼&lt;/P&gt;
&lt;P class=HStyle0&gt;서편제&lt;/P&gt;
&lt;P class=HStyle0&gt;섬(김기덕)&lt;/P&gt;
&lt;P class=HStyle0&gt;손톱&lt;/P&gt;
&lt;P class=HStyle0&gt;쇼생크 탈출&lt;/P&gt;
&lt;P class=HStyle0&gt;쉘브루의 우산&lt;/P&gt;
&lt;P class=HStyle0&gt;쉬리&lt;/P&gt;
&lt;P class=HStyle0&gt;스잔나&lt;/P&gt;
&lt;P class=HStyle0&gt;식객&lt;/P&gt;
&lt;P class=HStyle0&gt;신라의 달밤&lt;/P&gt;
&lt;P class=HStyle0&gt;아라비아의 로렌스&lt;/P&gt;
&lt;P class=HStyle0&gt;아마데우스&lt;/P&gt;
&lt;P class=HStyle0&gt;아빠는 출장중&lt;/P&gt;
&lt;P class=HStyle0&gt;양들의 침묵&lt;/P&gt;
&lt;P class=HStyle0&gt;여자는 남자의 미래다&lt;/P&gt;
&lt;P class=HStyle0&gt;엽기적인 그녀&lt;/P&gt;
&lt;P class=HStyle0&gt;오!수정&lt;/P&gt;
&lt;P class=HStyle0&gt;오아시스&lt;/P&gt;
&lt;P class=HStyle0&gt;올드보이&lt;/P&gt;
&lt;P class=HStyle0&gt;와이키키 브러더스&lt;/P&gt;
&lt;P class=HStyle0&gt;외인구단&lt;/P&gt;
&lt;P class=HStyle0&gt;원스 어판 어 타임 인 어메리카&lt;/P&gt;
&lt;P class=HStyle0&gt;은행나무침대&lt;/P&gt;
&lt;P class=HStyle0&gt;이보다 좋을 순 없다&lt;/P&gt;
&lt;P class=HStyle0&gt;이티&lt;/P&gt;
&lt;P class=HStyle0&gt;인도차이나&lt;/P&gt;
&lt;P class=HStyle0&gt;인디아나존스&lt;/P&gt;
&lt;P class=HStyle0&gt;일포스티노&lt;/P&gt;
&lt;P class=HStyle0&gt;장미빛 인생&lt;/P&gt;
&lt;P class=HStyle0&gt;접속&lt;/P&gt;
&lt;P class=HStyle0&gt;죽은 시인의 사회&lt;/P&gt;
&lt;P class=HStyle0&gt;지붕 위의 바이얼린&lt;/P&gt;
&lt;P class=HStyle0&gt;지옥의 묵시록&lt;/P&gt;
&lt;P class=HStyle0&gt;질투는 나의 힘&lt;/P&gt;
&lt;P class=HStyle0&gt;차이나타운&lt;/P&gt;
&lt;P class=HStyle0&gt;철도원&lt;/P&gt;
&lt;P class=HStyle0&gt;첨밀밀&lt;/P&gt;
&lt;P class=HStyle0&gt;초록물고기&lt;/P&gt;
&lt;P class=HStyle0&gt;추격자(하정우)&lt;/P&gt;
&lt;P class=HStyle0&gt;친구&lt;/P&gt;
&lt;P class=HStyle0&gt;콰이강의 다리&lt;/P&gt;
&lt;P class=HStyle0&gt;크레이머 대 크레이머&lt;/P&gt;
&lt;P class=HStyle0&gt;타짜&lt;/P&gt;
&lt;P class=HStyle0&gt;태백산맥&lt;/P&gt;
&lt;P class=HStyle0&gt;터미네이터&lt;/P&gt;
&lt;P class=HStyle0&gt;토탈리콜&lt;/P&gt;
&lt;P class=HStyle0&gt;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lt;/P&gt;
&lt;P class=HStyle0&gt;하이눈&lt;/P&gt;
&lt;P class=HStyle0&gt;향수(타르코프스키)&lt;/P&gt;
&lt;P class=HStyle0&gt;혹성탈출&lt;/P&gt;
&lt;P class=HStyle0&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gt;&lt;STRONG&gt;안 봤어도 서운하지 않았을 영화&lt;/STRONG&gt;&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 일반적으로는 호평을 받은 영화중에서-&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글래디에이터&lt;/P&gt;
&lt;P class=HStyle0&gt;놈놈놈&lt;/P&gt;
&lt;P class=HStyle0&gt;디워&lt;/P&gt;
&lt;P class=HStyle0&gt;미녀는 괴로워&lt;/P&gt;
&lt;P class=HStyle0&gt;쉰들러 리스트&lt;/P&gt;
&lt;P class=HStyle0&gt;실미도&lt;/P&gt;
&lt;P class=HStyle0&gt;씨티오브조이&lt;/P&gt;
&lt;P class=HStyle0&gt;왕의 남자&lt;/P&gt;
&lt;P class=HStyle0&gt;웰컴투 동막골&lt;/P&gt;
&lt;P class=HStyle0&gt;잉글리시 페이션트 &lt;/P&gt;
&lt;P class=HStyle0&gt;집으로&lt;/P&gt;
&lt;P class=HStyle0&gt;춘향뎐&lt;/P&gt;
&lt;P class=HStyle0&gt;취화선&lt;/P&gt;
&lt;P class=HStyle0&gt;쿵후팬더&lt;/P&gt;
&lt;P class=HStyle0&gt;타이타닉&lt;/P&gt;
&lt;P class=HStyle0&gt;태극기 휘날리며&lt;/P&gt;
&lt;P class=HStyle0&gt;플래툰&lt;/P&gt;
&lt;P class=HStyle0&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gt;&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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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국의 에스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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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8-09-17T20:49:51Z</updated>
	    <published>2008-09-17T20:49: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미국에 사는 에스더가 3년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이번에는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남동생 데이빗을 데리고 왔다. 에스더로서는 두 번째 한국방문이지만 데이빗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데이빗은 우리 나이로 스물 네 살. 최근에 누나가 다니는 보잉사에 취직을 하였지만 아직 월급을 받지 못해 비행기값은 누나인 에스더가 모두 부담해주었다고 한다.&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지난 번 에스더가 혼자 나왔을 때나 이번에 남매가 함께 나왔을 때나 나는 아이들이 부모들로부터 아무런 구체적인 종용을 받지 않았음에도 저희들 스스로 부모의 나라에 대한 관심만으로 찾아온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기특했다. 약 두 주간의 방문 일정에 공교롭게 추석이 끼어 있어 나는 일찌감치 시골 형님에게 이번 추석에는 내려가지 못 할 것임을 통고하고 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여행일정을 짜느라 3년 전과 마찬가지로 골몰했다. &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다시 만난 에스더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녀도 이젠 우리 나이로 스물 아홉이 되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나 다시 만난 자리에서나 그녀는 여전히 이제 막 소녀티를 벗고 있는 귀여운 아가씨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거침없이 목을 끌어안고 포옹을 하여 반가움을 표했다. 데이빗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더 이상 어렸을 적,&amp;nbsp;미국에&amp;nbsp;갔던&amp;nbsp;우리 형식이와 어울려 사진 속 소파 위에서 난장을 치며 놀던 그 개구쟁이가 아니었다. 체재 기간 내내 서툰 한국말로 얼마나 싱겁게 웃기는지 우리는 데이빗 때문에 수없이 배꼽을 잡아야 했다.&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이 아이들과 처음으로 간 곳은 용인에 있는 민속촌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이런 전시 공간 이외는&amp;nbsp;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한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전통가옥이며 정경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한 모양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까만 머리의 사람들도 사뭇 신기하단다. 아이들은 토담이며 처마 밑 강냉이 자루 같은 조그마한 모습에도 일일이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나의 서툰 영어와 아이들의 서툰 한국어 탓에 깊이 있는&amp;nbsp;대화는 나누기&amp;nbsp;어려웠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가운데 나는 조금씩 이 아이들의 생각과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분명하게 느낀 것은 한국인과 조금도 다름없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어언 미국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아이들의 국적은 미국이었고 국가관,&amp;nbsp;사회관&amp;nbsp;등 모든 것은 미국의 그것이었다. 3년 전 에스더가 혼자 나왔을 때는&amp;nbsp;별로 느끼지 못했던&amp;nbsp;감정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데이빗이 사내 녀석이다보니&amp;nbsp;소소한 대화에서도&amp;nbsp;국가나 사회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던&amp;nbsp;데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중에&amp;nbsp;김정일의 와병설이 보도되자 데이빗이 갑자기 화면을 가리키며 &quot;나쁜 사람&quot;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호기심이 동하여 왜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데이빗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나라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느냐고&amp;nbsp;말했다. 북한의 빈곤을 지적하는 것 같았다. 내 표정에서 긍정도 부정도 발견하지 못하자 데이빗은&amp;nbsp;더 진지한 표정으로&amp;nbsp;이모부는 김정일이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김정일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대해서는 아내도&amp;nbsp;맞장구를 쳤기 때문에 데이빗은 적이&amp;nbsp;혼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는&amp;nbsp;한국인들은 김정일이 오히려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amp;nbsp;하여&amp;nbsp;대응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였다고 본다며 짧게&amp;nbsp;부연설명을 했지만 그래도 데이빗은&amp;nbsp;잘 납득이 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amp;nbsp;아이들은 다음 선거에서 맥케인을 지지할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견해를 밝혔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전통적 도덕을 강조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라크전이라든가 세계경영에서 미 공화당과 부시정권이 보여준 일방주의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내가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자각되면서 마음 속에서&amp;nbsp;다소간의 혼란이 느껴졌다.&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그 혼란은 이튿날 서울 한복판을 보여주기 위해 광화문에 들렀을 때 좀 더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저것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다. 약 4백년 전 일본과의 전쟁 때 navy를 이끌어 승리한 장군이란다. 저기 멀리 있는 것이 광화문이다. Josun Dynasty의 왕이 살던 Palace의 main gate인데 지금은 부수고 다시 짓고 있구나. 그리고 차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광화문 거리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나는 쓸데 없는 말 한마디를 아이들에게 더 들려주고 말았다.&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About fifty years ago, so many students were killed&amp;nbsp;at this place&amp;nbsp;......... by armed police.&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lt;BR&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고개를 돌려 아이들의 표정을 훔쳐보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왜 죽였느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못 했다. 이미 50년 전의 일!&amp;nbsp;무엇을 바라 내가 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amp;nbsp;다 잊혀진&amp;nbsp;시절의&amp;nbsp;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것은 꼭 들어주기를 바라지도 않은 혼잣말이었을까? 마음 속의 혼란은&amp;nbsp;묘한&amp;nbsp;슬픔으로 바뀌어졌다.&amp;nbsp;며칠 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찾아갔다. 그&amp;nbsp;때까지도 나는 그 슬픈 느낌의 여운 속에&amp;nbsp;있었던 것 같다. 독립기념관 - 사실 나는 이 곤혹스러운 장소를 오랫동안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 지난 해&amp;nbsp;우연히&amp;nbsp;한번 들른 적이 있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 곳은 나에게 즐겁지도 자랑스럽지도 심지어 숙연하지도 않은 장소였다. 반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식민지 시대는&amp;nbsp;우리들에게&amp;nbsp;여전히 &quot;소화되지 않은&quot; 시대다.&amp;nbsp;그 시대가&amp;nbsp;끝나고 나서 태어나 반 세기가 넘게 산 나같은 사람에게도&amp;nbsp;그 시대는&amp;nbsp;여전히 소화되지도 않고&amp;nbsp;구토되지도 않으면서&amp;nbsp;신물만 돌게하는 거북살스러운 역사의 취식물로&amp;nbsp;뱃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amp;nbsp;그런가 하면 바로 그런 상태로&amp;nbsp;한켠에서는 또 잊혀져가고 있다. 평일이었고 날씨가&amp;nbsp;무덥긴 했지만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50여명이 타는 내부순환열차를 우리 네 사람이 전세를 낸듯 탔다. &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모든 전시물 역시&amp;nbsp;소화되지 않은&amp;nbsp;단말마적 모습 그대로&amp;nbsp;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전날 광화문에서의 그 우스꽝스런&amp;nbsp;모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말을 자제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별로 물어보는 것이 없었다.&amp;nbsp;단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 앞에서 &quot;내가&amp;nbsp;좋아하는 사람&quot;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이번에는 에스더가 왜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복잡하기도 하고 표현하기도 어려워 다시 입을&amp;nbsp;다물고 말았다. 또 다른 방에 들르니&amp;nbsp;안중근, 이봉창 같은 의사들의 입상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 가만히 있는 것이&amp;nbsp;뭣하여 안중근 의사를 가리키며 &quot;일본 총독 이토오 히로부미를 죽인 사람&quot;이라고 짧게 토를 달았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나는 아이들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였다. 무어라고 설명할 것인가? 이미 그 현실은 아이들의 현실이 아닌,&amp;nbsp;아무런 맥락도 닿지 않는 옛적, 머나먼 파 이스트의 복잡한 국제역학의 한 자락이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알 필요도 없었고 그들의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될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떠나기 전 날 에스더는 책꽂이에 꽂힌 비디오 테이프 몇 낱을 보더니 한국 영화 한편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이모부, 사운드 오브 뮤직 좋아하세요? 저는 그 영화 너무너무 좋아해요. 그 말 때문에 나는 결국 아무 것도 고르지 못 했다. 얼마 되지 않는 한국영화 중에는 그들의 너무나도 건전하고 착한 심성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만한 영화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영화 식객이 방영되고 있었기 때문에&amp;nbsp;우리는 그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군데군데에서 아이들은 문화적 혹은 역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물었고 나는&amp;nbsp;그럭저럭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영화의 마지막이자 클라이맥스는 대령숙수의 칼을 소장하고 있던 일본인이 주인공의 작품(육계장)이 바로 순종임금께서 눈물을 흘리며 드셨다는 바로 그 소고기탕임을 입증하는 일련의 웅변이었다. 아이들이 그 장면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스더가 무슨 말이냐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몰라&amp;nbsp;잠시 머뭇거렸다. 어차피 긴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quot;육계장은 우리나라 민중들이 먹는 평범한 소고기탕일 뿐이야. 그 평범한 소고기탕에 조선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본 것이지.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amp;nbsp;조선의 민중을 비유하고 있고 매운 양념은 조선인의&amp;nbsp;의지를 비유하고 있대. 나라를 잃고 상심한 임금에게 대령숙수는 평범한 육계장을 끓여드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조선의 정신을&amp;nbsp;말씀드렸다.. 그런 말이야.&quo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원작이 만화였듯 만화적 요소가 과장되게 반영되어 있는 이 영화를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더듬거리는 설명에 에스더는 얌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amp;nbsp;이제 그 날 광화문에서처럼&amp;nbsp;그런 상황을 강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슬픔 같은 것도 없었다. 마음이 편했고&amp;nbsp;아는지 모르는지 눈만 초롱거리며 앉아 있는 아이들이&amp;nbsp;그저 사랑스러워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변화였다.&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이튿날 아이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떠났다. 나는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배웅은 아내가 맡았다. 아이들은 공항을 떠나며 전화를 해서 번갈아 인사를 했다. 이모부 고마워요. 이모부 미국에 꼭 한번 오세요. 이모부 데이빗이 이모부 쿨가이래요. 이모부 많이 많이 생각 날 거예요. 아이들은 진심으로 헤어짐을 서운해했다.&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아이들이 떠나고 되돌아온 일상은 전보다 더 조용했다. 추석을 넘기자 직장은 여러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추진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였고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국내 신문은 대문짝만한 활자를 연일 박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왜 이리 조용하게만 느껴질까. 나는 내가 더 늙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훨씬 초연해 진 것 같기도 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먼 시간과&amp;nbsp;장소를 체험하고 돌아온 것처럼, 그래서&amp;nbsp;아직 시차적응이 덜 된&amp;nbsp;것처럼 멍한 느낌에 젖었다. 가끔 아이들이 생각났다. 해맑고 구김살 하나 없는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옆에서 이모부 이모부 하며 무슨 말을 걸어올 것 같다.&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에스더야. 데이빗아. 너희들이 다녀간 것이 무슨 꿈결 같구나. 너희들과 지낸 시간이, 그리고&amp;nbsp;기억 속에 해맑게 남아 있는 너희들&amp;nbsp;모습이 내게는 마냥 행복하단다. 엄마 아빠가 살았던&amp;nbsp;고국, 그리고 그곳에서 아직도 살고 있는 이모와 이모부, 한결같이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보고 갔던 기억은 이제 너희들 생애에 좋은 추억으로 남겠지. 부디 행복하거라. 꿈의 나라,&amp;nbsp;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너희들의 삶에 다가오는 미국적 삶의 몫을 열심히 살렴. 그리고 태평양의 파도를 넘어 이 곳 파 이스트의 조그마한 반도에&amp;nbsp;살면서 늙어갈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기억해주렴. 이 곳에는 이 곳만의 피할 수 없는 역사의 몫이 있단다. 지구상의 어느 곳인들 그렇지 않겠느냐. 행복한 땅, 축복받은 땅 미국과는 달리 이 지구상에는 감당할 수 없는&amp;nbsp;역사의 짐을 지고 있는 나라들이 많단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 땅을 설명하기 어려웠듯&amp;nbsp;이라크라든지 노스 코리아라든지&amp;nbsp;실타래처럼 복잡하게&amp;nbsp;뒤엉켜 설명은 커녕 미국적 시야에 다 비춰주기조차 어려운 나라들이 너무나도 많단다.&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너희들이 살아갈 날을&amp;nbsp;포함하여,&amp;nbsp;아직도 오랜&amp;nbsp;기간에 걸쳐&amp;nbsp;미국은 여전히 지구상의 지도적 국가로 역할할 것이다. 나는 그 날들에 미국이 그런 힘든 나라들의 운명을 좀 더 깊숙히 들여다보고 그 나라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자랑스런 나라의 국민으로서 너희들도 그럴 수 있기를 원한다. 어쩌면 그 때&amp;nbsp;지난 날&amp;nbsp;더듬거리다 결국 말문을 닫아버리던 이모부의 곤혹스러워 하던&amp;nbsp;표정이&amp;nbsp;역설적으로&amp;nbsp;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면 나만의 부질없는 기대일까?&amp;nbsp;너희들과 함께 했던 저 후끈거리던 늦더위도 가고 이제 이 곳은&amp;nbsp;가을이 왔다. 나는 너희들을 보내고 더 먼 미래에서, 너희들을 인류라는 더 큰 테두리를 통해,&amp;nbsp;평화와 사랑과 존엄의 이름으로 늘 다시 만나고 있다. 그것이 너희들이 나에게 주고간 선물이다. 내 침대 머리맡에 써두고 간 조그만 메모 쪽지 속 굳나잇 이모부와 더불어 말이다. 사랑스런 미국의 에스더야. 데이빗아.&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MARGIN-LEFT: 10pt; TEXT-INDENT: 20pt; LINE-HEIGHT: 185%; MARGIN-RIGHT: 5pt&quot;&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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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처 없는 글쓰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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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8-08-20T17:10:15Z</updated>
	    <published>2008-08-20T17:10: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철들고 나서&amp;nbsp;몇 십년&amp;nbsp;동안 나는 소위 &quot;글&quot;이라고 것을&amp;nbsp;쓰지 않고 살았다. 쓸 일도 없었고&amp;nbsp;쓸 필요성도 느끼지&amp;nbsp;않았다. 약간의 음악평론과 논어에 관한 두 권의 저술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좀 특별한 작업으로 생각했지 &quot;글&quot;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나이 오십을 넘어서면서 우연히 &quot;글&quot;을 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6년에 걸친 논어 저술이 가져온 지긋지긋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던 차였다. 출판을 하는&amp;nbsp;한 후배가 &quot;형, 에세이 같은 것&amp;nbsp;한 번 써봐&quot; 하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amp;nbsp;던진 것이 계기였다. 논어가 아닌 기타의 모든&amp;nbsp;관심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상쾌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lt;/P&gt;
&lt;P&gt;그것이 모여 [어른되기의 어려움]이 되었다. 그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냥&amp;nbsp;&quot;글&quot;을 쓴다는 생각만 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흉중에 좀 쌓여 있었고 그것을 피력하자니 부득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amp;nbsp;수필을 쓴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신문에 시사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신문사가 그럴듯한 명함이 없는 나를 '수필가'로 소개해&amp;nbsp;주었을 때 나는&amp;nbsp;비로소 내 글이 수필이 될&amp;nbsp;수도 있다는 생각을&amp;nbsp;하게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수필을 쓰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말 그대로 붓 가는대로&amp;nbsp;쓰는 것이&amp;nbsp;수필이라면 수필은 그 개념이 한없이 넓어 어떤 형식과 내용의 글도 다 포용할 만큼 너그럽겠지만 &amp;nbsp;실제로 수필은&amp;nbsp;그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수필은 여전히 완고하고 보수적이고&amp;nbsp;배타적인 영역이다. 왜 그런 느낌이 들까&amp;nbsp;생각해보니 우선은 수필이 문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amp;nbsp;같다. 문학은 내가 십대와 더불어 떠난 영역이다. 그 영역을 떠날 때 나는 문학의 역사적 사명이 대략 반 세기만에 종료하였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amp;nbsp;그 후의 세월은 그 느낌을&amp;nbsp;현실적으로&amp;nbsp;입증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lt;/P&gt;
&lt;P&gt;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삶에서 문학이 전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은 아직도 다른 수단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amp;nbsp;역사의 주역에서는 물러나 있는 것이&amp;nbsp;사실이다. 그런 사정에&amp;nbsp;약간의 개인적인 이유까지&amp;nbsp;보태어져서&amp;nbsp;나는 내 글이 문학이 되지 않도록&amp;nbsp;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래도 얼마만큼은 문학기(文學氣)를 떨치지 못 했고 또 어느 정도는 그 기운에 기대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나의 글에서 흘러간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 점이 때로는 부끄럽게 여겨졌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른되기의 어려움]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내가 추구한 것은 어디까지나 윤리적인 세계였다.&amp;nbsp;글은 나에게 있어서 그 세계로 가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데 문학에서의 글은&amp;nbsp;대체로&amp;nbsp;그 자체의 목적이 되어 있다. 20세기 전반의 민족사에서 그런 현상은 불가피하였으나&amp;nbsp;지금은 그렇지 않다. 수필은&amp;nbsp;그런 문학의 영역에 아직도 혼몽하게 빠져 있다.&amp;nbsp;그 점이 나로 하여금 수필에 친근한 감정으로 다가설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amp;nbsp;것 같다.&amp;nbsp;&lt;/P&gt;
&lt;P&gt;원래의 수필은 우리가&amp;nbsp;보고 있는&amp;nbsp;저 수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를테면 몽테뉴에게 있어서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탈형식의, 새로운 시도(essai)였다. 수필은 항상 그렇게&amp;nbsp;모든 기존의 형식을 떨치고&amp;nbsp;떠나는 새 시도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형식에 대한 관심에서 오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는 요즈음 거의 글을 쓰지 못 하고 있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 이전에 그것은 근력이 다한 노인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그러자니 마음 속에 맴을 도는 것은 더 많고 더 착잡하다. 그래도 지난 날처럼 문학기가 감도는 나긋나긋한 글은&amp;nbsp;죽어라고 쓰기가 싫다. 나는 당분간 나의 이 침체를 지켜볼 작정이다. 이 침체 속에 혹 또 어떤 신의 계획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무력하게 내맡기고 있는 이 물결이 나를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어떤 지평으로 안내하지는 않을런지, 그리하여 어느 날 정말 드물다는 저 명실상부한 &quot;시도&quot;가 나에게도 한번쯤은 허용이 될 것인지, 흐려져가는 눈으로 가늠해 보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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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글이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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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8-06-20T10:00:55Z</updated>
	    <published>2008-06-20T10:00: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RONG&gt;&quot;이제 더 이상 '전쟁과 평화'(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장편소설)는 못 읽겠다.&quot;&lt;BR&gt;&lt;BR&gt;&lt;/STRONG&gt;미국 미시간대 의대 교수이자 블로거(blogger)인 브루스 프리드먼(Friedman)은 최근 이런 고충을 주변에 털어놨다. 그는 &lt;STRONG&gt;&quot;인터넷에서 수많은 단문(短文) 자료들을 훑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스타카토(staccato·짧게 끊어서 연주)'형이 됐다&quot;&lt;/STRONG&gt;며&lt;STRONG&gt; &quot;블로그에서도 3~4단락이 넘는 글은 이제 부담스러워 건너뛰게 된다&quot;&lt;/STRONG&gt;고 하소연했다. 오늘날 지식인들조차 인터넷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lt;BR&gt;&lt;BR&gt;미국의 기술문명 평론가인 니컬러스 카(Carr)는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 먼슬리 7~8월호에 게재한 &lt;STRONG&gt;'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고?&lt;/STRONG&gt;'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터넷이 우리의 읽기와 사유(思惟) 방식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심층 분석했다.&lt;BR&gt;&lt;BR&gt;오늘날 인터넷은 우리의 인식 지도이자, 소통의 매개다. ! 눈과 귀를 통해 정신으로 흘러 들어가는 정보 대부분이 이 통로를 거친다. 인터넷은 이렇게 수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줘 인간에게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인간의 뇌를 자기 식(式)대로 길들인다. 그 방식이란 '정보 파편'들의 신속한 흐름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집중과 사색 능력은 쇠퇴한다.&lt;BR&gt;&lt;BR&gt;이런 '인터넷 혁명'의 중심에 강력한 검색 엔진인 구글이 있다. 구글이 추구하는 것은 &quot;세계의 모든 정보를 조직화해 누구나 쉽게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quot;이다. 이들은 자체 검색엔진과 다른 사이트들을 통해 수집한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에 관한 막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보다 검색 이용이 편리하도록 하루에도 수천 번씩 알고리즘을 다듬는 실험을 한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밝혔다. 그 결과, 정보를 찾고 의미를 추출하는 사람들의 방식에 대한 통제력을 키워간다. &lt;BR&gt;&lt;BR&gt;구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Brin)의 말처럼 &quot;세계의 모든 정보를 우리의 뇌, 혹은 그보다 더 영리한 인공두뇌에 직접 연결시키는 차원&quot;을 꿈꾼다.&lt;BR&gt;
&lt;P&gt;하지만 카는 구글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위험성은 인간의 뇌를 계량해서 최적화할 수 있는 일련의 기계적 과정의 산출로 본다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카는 &quot;구글이 이끄는 세계에는 깊은 사색 과정에서 나오는 '경계의 모호함' 따위는 들어설 여지가 없다&quot;고 주장했다. 컴퓨터 연산에서 모호성은 통찰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메워야 할 결함일 뿐이다.&lt;BR&gt;&lt;BR&gt;인터넷은 또 인간 정신을 '초고속 정보처리 기계' 정도로 본다. 구글을 비롯한 인터넷 업체들은 우리가 인터넷 망을 옮겨 다니는 속도가 빠를수록, 즉 우리가 더 많은 링크를 클릭하고 더 많은 페이지를 찾아 볼수록 자신들의 수익은 커지고 고객에 대한 통제력도 높아진다. 카는 &quot;이들이 제일 꺼리는 것은 한가롭게 한곳에 머물러 천천히 읽어내려 가거나, 골똘히 사색에 잠기는 것&quot;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은 '팬케이크(pancake) 인간', 즉 한 번의 손끝 터치로 방대한 정보망과 연결될 수는 있지만 응축된 사유의 공간은 사라진, 얇고 납작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카는 경고했다.&lt;/P&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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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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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8-05-08T16:47:18Z</updated>
	    <published>2008-05-08T16:47: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인생이란 나에게는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험한 일들을 하나씩 둘씩 겪어가는 과정이다.&lt;/P&gt;
&lt;P&gt;그런데 그런 일을 여러 번 겪고나면 나중에는&amp;nbsp;자신에게 발생했던 그 모든 일들이 기실은 다 있을 수 있는,&lt;/P&gt;
&lt;P&gt;인생의 흔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lt;/P&gt;
&lt;P&gt;그것이 인생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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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묵화(墨畵)  -  김 종 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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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극기복례</name>
	    </author>
	    <updated>2008-04-27T16:43:51Z</updated>
	    <published>2008-04-27T16:43:5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BR&gt;
&lt;P align=center&gt;&lt;STRONG&gt;물먹는 소 목덜미에 &lt;BR&gt;&lt;BR&gt;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lt;BR&gt;&lt;BR&gt;이 하루도 &lt;BR&gt;&lt;BR&gt;함께 지났다고, &lt;BR&gt;&lt;BR&gt;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lt;BR&gt;&lt;BR&gt;서로 적막하다고, &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1969&gt;&lt;/STRONG&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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