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
    <channel>
        <title>더불어 걷는 길</title>
        <link>http://blog.daum.net/hamkke</link>
        <description>공존의 세상을 꿈꾸며......</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22 Apr 2013 08:47:29 +0900</pubDate>
                <webMaster>다물</webMaster>
        <generator>Daum Blog (http://blog.daum.net/)</generator>
        <ttl>100</ttl>
        <image>
        	<url>
        	<![CDATA[http://cfile223.uf.daum.net/image/157B8F284AD35DB8424F8D]]>
        	</url>
        </image>
         		 		
			        <item>        
	            <title> “천안함 TOD 열전도 실험 해보니 폭발 의문”-전주영화제 ‘천안함 프로젝트’ 백승우 감독 “아직 원인몰라도 부끄럽지 않은 사건” </title>
	            <description> “천안함 TOD 열전도 실험 해보니 폭발 의문” [인터뷰] 전주영화제 ‘천안함 프로젝트’ 백승우 감독 “아직 원인몰라도 부끄럽지 않은 사건”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mediatoday 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오는 27일과 내달 1일 상영될 예정인 천안함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를 연출한 백승우 감독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아직까지 사고 원인을 찾지 못해도 부끄럽지 않은 사건인데도 군과 정부 당국이 너무 일찍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백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에서 나타난 천안함의 폭발 부위의 상태를 검증하기 위해 실제 TOD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비교한 실험 결과도 다큐멘터리에서 소개한다. 수온이 아무리 낮고 조류가 강한 당시 환경이었다 해도 적어도 10여 분 간은 그 주변의 수온변화가 TOD 영상에서 감지돼야 한다는 것이 실험결과였다. 백 감독은 지난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TOD 실험결과를 설명하면서 폭발이 있었다면 최소한의 수온변화가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감독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함께 인천 앞바다에서 340도까지 달군 쇠붙이를 바다에 담갔다가 뺀 뒤 10여 분 간 TOD 카메라로 관측했다. 관측결과 10여 분이 지났어도 TOD 카메라에서는 쇠붙이를 담궜던 부위의 수온이 주변 수온과 다르게 지속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함수와 함미가 갈리진 직후에도 TOD 영상에서는 주변 바닷가의 수온 변화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천안함 절단면에도 수온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폭발이 있었겠느냐는 의문을 영화에서는 소개한다. 이 같은 의문은 사건 초기에도 제기됐으나 이를 실험 영상으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이밖에도 왜 이 같은 의심이 드는데도 의심하지 못하게 하느냐에 대한 목소리를 전달한다. 백승우 감독은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얘기를 못하게 하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가장 컸다”며 “제작과정에서 천안함 사건이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정말 새로운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 4월 1일 오후 국방부에서 한 해군 대령이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한 침몰 당시 추가 공개된 천안함의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폭침이건 좌초건, 군함이 근해에서 부러진 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일”이라며 “원인을 찾는데 몇 년이 걸려도 부끄럽지 않은 사건인데도 군은 그렇게 (북한 어뢰로) 발표를 해버렸다. 이는 우리 수준에 전혀 맞지 않는 답이었다. 그만큼 (발표에 대한) 반대의 의견이 나오면 반증을 해줘야 하나 되레 의견 자체를 막는 것은 우리 국민 수준을 너무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감독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천안함 사건을 할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 감이 잡힐 만큼 어려운 사건이다. 문제는 천안함 사건은 북한이 아니라는 식으로만 언급해도 대한민국 가치관을 의심받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출의 변에서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왜’라는 질문은 과학적이고 좋은 것으로 교육받았는데, 북한만 관여되면 왜 이 질문이 사라지는 것일까라며 이 질문을 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정부 발표와 이에 대한 이종인 신상철 대표의 견해, 이후 군장성 등의 고소로 3년째 재판을 받고 있는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법정신, 이런 사회분위기에 대한 문제점 등으로 구성됐다. 백 감독은 촬영을 하면서 의문 해소가 되지 않았던 대목에 대해 “좌초라는 주장이 나왔을 때 군은 ‘배 밑이 깨끗하니 좌초가 아니다’라고 했다”며 “그런데 천안함에 실제로 가봤더니 배 아래 부위가 긁혀있었다. 눈에 긁힌 게 보이는데 없다고 믿으라면 믿어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천안함 프로젝트 백 감독은 평소 ‘상징과 비유’ 기법을 쓰던 영화와 달리 직설적으로 사건의 스토리를 풀어가는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이다 보니 제작방식이 많이 달랐다고도 전했다. 그는 “원래 상징이나 비유하는 영화를 하던 게 내스타일이었는데, 이 주제는 내 스타일대로 제작할 수가 없었다”며 “직접 얘기해도 어려운데, 상징과 비유를 가미하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발표에 대해 백 감독은 “의심할 만한 구석이 있으며, 일관되지도 못했다”며 “천안함은 북한 짓이라고 정부가 발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의문을 해소해줄 답을 내어주는 것이 의무이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만든 배경”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에 가장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 영화를 내는 것에 대해 백 감독은 “사람들이 다들 ‘기가막힌 타이밍에 영화를 낸다’고 한다”며 “나는 남북관계와 천안함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는 북한 문제대로 풀고, 천안함은 천안함대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를 못하게 하는 것이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알루미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알루미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이종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종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좌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좌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의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의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합조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합조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신상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상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전주영화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주영화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백승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백승우&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16</link>
	            	            <pubDate>Mon, 22 Apr 2013 08:47:29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16</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알루미늄]]></category>
	            		           	<category><![CDATA[이종인]]></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좌초]]></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의혹]]></category>
	            		           	<category><![CDATA[합조단]]></category>
	            		           	<category><![CDATA[신상철]]></category>
	            		           	<category><![CDATA[전주영화제]]></category>
	            		           	<category><![CDATA[백승우]]></category>
	            	        </item>
		  	        <item>        
	            <title> 하숙집에 전역 기념 공원까지, '박정희 신격화'의 실체</title>
	            <description> 하숙집에 전역 기념 공원까지, '박정희 신격화'의 실체 강원도 철원군 군탄리에는 '군탄 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은 1963년 박정희 대장의 전역식이 열린 곳으로 1969년 육군 5군단이 기념비를 세웠고, 이어 박정희가 대통령이던 1976년 강원도가 기념비 주변에 무려 6910평의 공원을 조성해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이라고 명명했었습니다.박정희 사망 후,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은 '군탄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철원군은 지난 26일 '군탄공원'을 다시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으로 최종 확정하였습니다. 전역기념비까지는 이해를 하겠지만 (이마저도 어이없지만) 그 일대에 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7천평에 가까운 공원을 만들고, 공원이름을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이라고 부르며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대한민국이 제대로 역사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 불행한 군인?이라는 전역사에 담긴 진실' 박정희는 1963년 8월 30일 육군 7사단 연병장에서 전역식을 치릅니다. 이때 박정희의 나이 만 46세, 지금으로 보면 대령을 달 나이에 박정희는 육군 대장으로 전역식을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박정희와 함께 5.16쿠데타를 주도한 김종필은 1962년 3월 '정치활동정화법'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막습니다. 그리고 구 정치인 가운데 쿠데타를 지지하는 인물과 쿠데타 세력을 합쳐 '재건동지회'를 창설 '민주공화당'을 창당합니다. 그리고 1963년 5월 27일 박정희 대장을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습니다. ▲ 박정희 대장의 전역식을 1면에 보도한 신문들. 출처:경향신문 박정희가 전역식에서 말했던 &quot;다시는 이 나라에서 본인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quot;라는 문구는 당시 유행어처럼 번지며, 박정희 이미지 홍보에 도움이 됐습니다. 이 연설문을 박정희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이 연설문은 박정희의 비서관이었던 동훈이라는 사람이 작성한 것입니다. 동훈 비서관이 썼던 문구는 '본인과 같은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였습니다. 동훈 비서관은 '군대가 탱크를 몰고 나오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썼지만, 쿠데타 세력에게는 부득이한 쿠데타였다는 의미가 됐습니다. 나중에 이후락 공보실장이 추가가 '불운한'이라는 뜻은 군인이 목표로 삼는 전투에서 전사하지 못하고, 참모총장이 되지 못하고 전역하는 뜻으로도 해석됐다고 동훈 비서관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전역식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 박정희. 출처:동아일보 '불운한'이라는 것은 운명이 불행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본인 스스로 참다운 군인의 길을 가지 않고 정치군인이 됐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전역을 하는 사람인데 무엇이 그리 불행했겠습니까? 그저 비서관이 쓴 글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쿠데타를 일으킨 불쌍한 군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탱크를 몰고 대한민국을 장악해 법을 뜯어고치고 정치인을 탄압한 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만 46세의 나이로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는 쿠데타 군인의 전역식을 기념하는 공원의 역사를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에 오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알까요? 그저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 박정희가 참군인이었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 술 취한 군인이 벌인 쿠데타' 지금은 문래공원으로 바뀐 6관구 사령부 자리에는 박정희의 흉상이 있습니다. 문래공원에 있는 박정희 흉상은 1966년 7월 7일 6관구 사령부 내에 세워졌고, 부대가 이전하면서 일반인에 공개됐습니다. ▲문래공원 내에 있는 박정희 흉상. 출처:오마이뉴스 ⓒ 이규정 이 흉상은 5.16쿠데타를 모의했던 장소였던 6관구 사령부 지하벙커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김재춘,김형욱 등은 6관구 사령부에 모여 쿠데타를 지휘했는데, 6관구 사령부는 수방사의 전신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임무를 띈 부대였습니다. 쿠데타 전날 박정희는 원래 밤 10시까지 6관구 사령부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쿠데타 모의 계획이 조금씩 누설되면서 헌병대가 6관구 사령부에 있고, 신당동 박정희 집에도 방첩대가 감시하자, 한웅진(육사 2기 동기생)이 자고 있던 청진동 여관으로 피신합니다. 여관에 있던 박정희는 술이나 마시자며 청진동 대폿집으로 향했고,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시다 취한 상태로 6관구 사령부 지하벙커에 와서는 술 냄새를 풍기며 쿠데타군을 지휘(?)했습니다. 장도영은 이날 박정희와의 전화 통화에서 '도대체 저렇게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슨 혁명을'이라는 마음에 &quot;글쎄,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오.&quot;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쿠데타를 구국의 일념 어쩌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박정희 미화에 불과합니다. 박정희의 5.16이 성공한 쿠데타는 맞지만, 그 이면에는 오로지 자신의 출세를 위한 군부 파벌주의에서 비롯된 쿠데타일 뿐입니다. 이승만이 군을 동원한 정권 유지를 자행했고,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부패와 진급에 대한 불만이 넘쳐났습니다. 특히 젊은 장교들 사이에서는 진급에 대한 기회가 점점 없어졌고, 박정희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1961년 육군본부는 군 장성에 대한 인사 평가 작업을 벌이는데, 그중에 사상이 의심스러운 전력이나 근무평가가 나쁜 장성 수십 명이 예편 대상자로 정해지는데, 박정희도 포함, 그해 5월말이면 강제 예편될 예정이었습니다. 결국 박정희로서는 5월말 예편을 하기 않기 위해서는 쿠데타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박정희가 이전부터 나라를 위해 쿠데타를 생각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짜 군인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하는 가를 보여준 사례가 있습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산 정치 파동(임시 수도 부산에서 헌병대를 동원 국회의원을 연행하고 구속한 사건)을 일으켰는데 당시 군대를 동원하기 위해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종찬 장군은 이승만의 명령에 불복하고 결국 해임됩니다. 일본군 출신이지만 아버지의 친일 자작을 받지 않았던 이종찬은 일본군 출신들이 많이 따랐는데, 박정희도 그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박정희는 이종찬을 찾아가 쿠데타를 제의합니다. &quot;각하, 군이 나서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안 됩니다. 군사혁명으로 나라를 구해야하지 않겠습니까.&quot; &quot;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군이 정치에 개입하면 일본 군국주의처럼 나라를 망치는 거 몰라 그래? 대통령의 군 동원 명령에도 내 직을 걸고 반대한 건 그래서야.&quot;이종찬 장군은 일본군이었지만 일본 군국주의가 얼마나 나라를 망치는지 알았고, 그런 이유로 박정희의 쿠데타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이후 박정희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숨어 있다가 진급이 동기보다 늦은 이용문을 찾아 쿠데타 모의를 했고, 이용문은 자신의 진급에 불만을 품고 박정희의 쿠데타 제의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만약 이용문이 그후 비행기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5.16 쿠데타의 주역은 박정희가 아니라 이용문이었을지도 모른다)우리는 박정희의 5.16 쿠데타의 본질과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5.16 쿠데타는 자신의 진급과 군부 내 문제를 술에 취해 해결하려고 저질렀다는 사실을..' 일본군으로 천황에 충성하겠다는 꿈을 가졌던 청운각' 경북 문경시는 박정희가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있었던 하숙집 청운각과 그 주변정비사업을 벌였습니다. 청운각을 정비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혀 죽을 지경입니다. ▲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올라온 청운각 관련 기사. 출처:중앙일보 중앙일보는 뉴시스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청운각을 '박정희 전 대통령 꿈의 산실'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문경초등학교 시절 그가 생각했던 꿈은 과연 무엇일까요? 당연히 군인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이었고, 그 당시 군인은 오직 천황폐하에 충성하는 일본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생각했던 꿈은 '일본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본 군인'이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기념하는 사업을 세금을 들여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청운각에 있는 안내문과 문경보통학교 시절 박정희(좌측) 일본이 역사왜곡 한다고 하지만 한국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청운각에 소개된 박정희를 보면 천직으로 알았던 교직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만주군관학교에 갔다고 하지만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시험을 학교에는 알리지 않고 몰래 치렀습니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시험을 본 시기는 1939년 10월 3일인데, 이때는 학기 중이라 박정희는 시험을 치르자마자 바로 다음 날 문경을 향해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교사로 재직하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난 것이 아니라 학기 중에 몰래 만주군관학교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자 교사 생활을 때려 치웠습니다. 청운각 안내문에는 '총칼을 차고 와서 (일본을)이겨주마'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이 말은 전혀 다릅니다. &quot;각하, 왜 만주로 가셨습니까? (김종신 청와대 비서관 )&quot;긴 칼 차고 싶어서 갔지&quot; (박정희 대통령)언론인으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었던 김종신씨에 의하면 박정희의 만주행 이유는 '긴 칼 차고 싶어서'였습니다. 무슨 일본에 대적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교사로 재직하면서 받았던 신분 상승의 욕망이 박정희를 만주군관학교에 혈서를 쓰고 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즉 박정희는 긴 칼을 차고 일본을 무찌르기보다는 군인이 되어 문경 시내에서 자신을 무시했던 자들 앞에서 뽐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 문래공원에 있는 박정희 흉상, 5.16혁명 발상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출처:한겨레 술울 먹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는 결국 술 마시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박정희 흉상을 보는 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사람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일본군이 되어 긴 칼 차고 성공의 아이콘으로 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살았던 하숙집을 세금으로 고쳐주고, 자신이 강제 예편될까 두려워 술 마시고 술 냄새 풍기며 쿠데타를 모의했던 곳에 흉상을 세우고, 총칼을 앞세워 대통령이 되려고 46세의 나이로 대장 예편을 했던 정치군인의 전역을 기념하는 공원을 세운 나라가 여러분이 사는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이엠피터'는 차마 우리 아이들에게 꺼내기조차 두렵습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중앙일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중앙일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박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이종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종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이승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승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친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친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김종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종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일본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박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5.16쿠데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6쿠데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이용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용문&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15</link>
	            	            <pubDate>Thu, 28 Mar 2013 15:14:19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15</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중앙일보]]></category>
	            		           	<category><![CDATA[박정희]]></category>
	            		           	<category><![CDATA[이종찬]]></category>
	            		           	<category><![CDATA[이승만]]></category>
	            		           	<category><![CDATA[친일]]></category>
	            		           	<category><![CDATA[김종필]]></category>
	            		           	<category><![CDATA[일본군]]></category>
	            		           	<category><![CDATA[박통]]></category>
	            		           	<category><![CDATA[5.16쿠데타]]></category>
	            		           	<category><![CDATA[이용문]]></category>
	            	        </item>
		  	        <item>        
	            <title> 재미과학자 “천안함 3년 지나도 폭침 근거없어”-[천안함 3주기 인터뷰]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교수 “정부, 데이터조작…시민 결정적 역할”</title>
	            <description> 재미과학자 “천안함 3년 지나도 폭침 근거없어” [천안함 3주기 인터뷰]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교수 “정부, 데이터조작…시민 결정적 역할”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341 [공지] 미디어오늘이 경력 기자를 모집합니다 mediatoday 오는 26일로 천안함 침몰사건 발생 3주기를 앞두고 박근혜 정부가 이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장병 46명의 희생에 대한 굴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3년 전 북한어뢰의 폭침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됐다는 주장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으며, 가장 적극적인 진상규명 요구를 해왔던 민주통합당 조차 지난 대선을 지나면서 표를 의식해 ‘폭침’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에 반해 최근까지도 천안함 진실투쟁을 벌이고 있는 재미과학자들은 정부주장이 상식과 과학의 눈으로도 근거가 없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천안함 의혹을 제기해온 대표적인 재미과학자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교수는 천안함 3주기를 맞아 미디어오늘에 24일 보내온 이메일 인터뷰 답변서에서 ‘북한 1번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정부 발표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인터뷰에서 “상식인으로 보아도, 과학자로서 보아도, 북한어뢰설을 뒷받침하는 아무런 물질적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정부와 합조단이 그 잘못된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무리하다가 조작까지 했다고 보여지는 부분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연돌과 어뢰, 일반어선에 붙은 흡착물질 비교사진. ⓒ천안함 조사 언론3단체 검증위원회 정부 조사보고서 내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이 교수는 천안함 선체와 침몰지역에서 수거했다는 이른바 1번어뢰에 붙은 ‘흡착물질’과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실시한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을 꼽았다. 이 세가지 흡착물질이 폭발에 의해 검출되는 물질이어야 하며, 성분이 모두 일치해야 ‘어뢰설’이 성립된다. 그러나 문제는 폭발에서는 나올 수 없는 성분(S, 황)이 검출됐으며, 실험에서 나온 데이터는 폭발로 나올 수 없는 데이터를 제시해 조작 의혹이 제기돼왔다. 이 교수는 “합조단이 내세운 소위 ‘흡착물질’에 있어서, 합조단이 실시했다는 실제 폭약을 사용한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의 과학적 데이타가 조작이 됐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흡착물질’ 데이터가 북한어뢰설의 결정적 증거라고 합조단이 내세운 만큼 이 데이터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데이타들의 진위는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힐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진실규명을 두고 이 교수는 “(적어도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진실의 윤곽은 거의 드러났다고 본다”며 “특히 수많은 상식인들과 몇 전문가들의 합리적 의문들이 진실규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46명이나 되는 젊은 장병들이 꽃다운 나이에 희생됐는데,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정상적인 사회라면 국회 차원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에 기반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가 지난 2011년 3월 천안함 1주년 기념 토론회에 나와 발언하는 모습.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박근혜 정부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이전의 이명박 정부 때 벌어진 천안함 사건에 약간은 자유롭기를 바란다”며 “현 국회가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천안함 사건이 낳은 사회적 의미를 두고 “이 사건으로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는 상식과 이성이 많이 훼손됐다”며 “그것을 복원하는데 천안함 진상규명이 첩경”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현재 뒤틀어진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 천안함 침몰사건과 이명박 정부의 엉터리 조사에 기반한 5․24 조치가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무었인지 밝힌 뒤 진실에 기반한 정책을 세우는 것이 남북관계를 신뢰와 대화로 푸는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함미&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알루미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알루미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좌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좌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의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의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합조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합조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신상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상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이승헌 미버지니아대교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승헌 미버지니아대교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3주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3주기&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14</link>
	            	            <pubDate>Mon, 25 Mar 2013 08:48:41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14</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알루미늄]]></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좌초]]></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의혹]]></category>
	            		           	<category><![CDATA[합조단]]></category>
	            		           	<category><![CDATA[신상철]]></category>
	            		           	<category><![CDATA[이승헌 미버지니아대교수]]></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3주기]]></category>
	            	        </item>
		  	        <item>        
	            <title> 백선엽, 5·16 때 박정희 사상 의심했다?-[역사 에세이 54] 5·16 쿠데타 직후 미국대사에게 '사상 검증' 권고 문건 발굴</title>
	            <description> 백선엽, 5·16 때 박정희 사상 의심했다?[역사 에세이 54] 5·16 쿠데타 직후 미국대사에게 '사상 검증' 권고 문건 발굴 13.01.06 16:30l최종 업데이트 13.01.06 16:42l 정운현(jwh59) RT: 1l독자원고료: 0 기사공유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 요즘 싸이공감 오블 이메일 URL줄이기 복사 인쇄 글씨크기 크게 작게 이승만 정권 시절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으며 군 원로로 불리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5·16 직후 미국 대사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최고회의 의장) 등 쿠데타 주도세력 일부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뒷조사를 해봐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백 장군은 박 전 대통령이 좌익에 연루돼 재판을 받을 때 구명해준 '은인'으로 알려져 온 인물이다.재미 탐사전문 블로거인 안치용씨는 3일 미 국무부의 비밀전문을 한 통 공개했다. 이 문건은 5·16쿠데타 발생 8일 뒤인 1961년 5월 24일 작성된 것으로, 작성 주체는 중화민국 주재 미국대사 에버렛 드럼라이트였다. 2쪽 짜리의 이 비밀전문은 드럼라이트 대사가 하루 전(5월 23일) 중화민국 주재 백선엽 한국대사를 만나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1960년 5월 31일 예편한 백 장군은 한 달 뒤인 그 해 7월 주 중화민국 대사로 부임해 이듬해 7월까지 근무했다. ▲ 5.16 직후 중화민국 주재 미국대사가 백선엽 대사를 만나 대화한 내용을 본국에 보고한 '비밀전문'의 첫 장 ⓒ 재미 안치용 씨 제공 관련사진보기5·16 쿠데타 직후 미국은 친미성향의 장면 정부를 무너뜨린 박정희 소장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박정희 소장은 군부 내에서 두각을 나타낼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재외공관에 5·16 쿠데타의 지도자인 박정희 장군이 누구인지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드럼라이트 미국대사가 백선엽을 만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백선엽은 박정희의 군 선배여서 박정희를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던 것 같다. 두 사람 중에서 나이는 백선엽(1920년생)이 박정희보다 세 살 아래이나 경력 면에서 둘은 공통점이 아주 많았다. 우선 두 사람은 모두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평남 강서 출신인 백선엽은 평양사범학교를, 경북 구미출신인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사로 있다가 군에 입문한 것도 똑같다. 백선엽은 만주 봉천(현 심양)에 있던 봉천군관학교 9기로, 박정희는 신경(현 장춘)에 있던 신경군관학교 2기로 입교했다. 백선엽의 '봉천 9기'는 박정희의 1기 선배인 '신경 1기'와 같은 셈인데, 나이가 적은 백선엽이 박정희보다 군관학교 입교가 빠른 데는 이유가 있다. 박정희는 사범학교 졸업 후 '의무복무기간'을 다 마치고 입교한 반면 백선엽은 의무복무 도중에 입교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총독부에서 이를 문제 삼자 그때 백선엽을 도와준 사람은 만주 군의학교 출신의 군의장교 원용덕이었다. 원용덕은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군인 제1호'로 불린 사람이다. 백-박 두 사람 모두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박정희는 본과 2년은 일본 육사를 다님) 둘 다 만주군에서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박정희는 만주군 보병8단에서 단장 부관으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백선엽은 자무쓰(佳木斯)부대를 거쳐 '간도특설대'에 배속돼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당시 두 사람의 계급은 모두 만주군 육군 중위였는데, 이때의 경력으로 두 사람은 모두 '친일군인'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국군에서도 출발은 백선엽이 빨랐다. 월남 후 1945년 12월 5일 설립된 군사영어학교(군영) 1기생으로 입교한 백선엽은 이듬해 2월 26일에 임관하여 국방경비대 육군 부위(중위)가 되었다. 반면 박정희는 일제 패망 후 북경으로 나와 '해방 후 광복군'에 잠시 몸담았다가 1946년 5월 귀국했다. 고향에서 넉 달간 휴식을 취한 박정희는 그 해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2기생으로 입교하여 단기과정을 마치고 1946년 12월 졸업, 소위로 임관했다. 박정희가 한국군 소위로 임관할 무렵 백선엽은 국방경비대 5연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만한 인연이 없었으며, 백선엽은 박정희의 군 선배이자 상급자였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극적인 조우'를 하게 된 것은 1948년 10월 발생한 '여순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군부 내 좌익분자 척결을 위한 숙군(肅軍)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백선엽은 당시 숙군 최고 책임자인 육군본부 정보국장이었다. 당시 좌익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박정희가 어느 날 백선엽을 찾아와 선처를 호소했다. 백선엽의 회고록 &lt;군과 나&gt;에 그 내용이 나와 있다. ▲ 백선엽 회고록 &lt;군과 나&gt; 표지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quot;숙군 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된 군인 중 구명된 유일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는 박정희 소령이었다. 방첩대(CIC)의 수사반은 남로당 군사책인 이재복이 육군사관학교에 조직을 침투시켜 일부 중대장을 통해 생도들까지 좌익활동에 가담시킨 사실을 포착했다. 사관학교의 좌익조직 수사에서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체포된 사람은 육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고 당시 육본 작전교육국 과장이던 박정희 소령이었다. 숙군 5단계 작업이 완결될 즈음인 49년 초 어느날 방첩대의 김안일 소령이 나에게 &quot;박정희 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 말이 있다고 간청하니 면담을 해주십시오&quot;라고 전했다. 김 소령은 아울러 박정희 소령이 조사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조직을 수사하는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들어 꼭 만나봐 줄 것을 요청했다. 김 소령은 나의 승낙이 있자 곧 박정희 소령을 나에게 데려왔다. 내가 박 소령을 면담한 곳은 정보국장실이었다. 박 소령은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quot;나를 한 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quot;작업복 차림의 그는 측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면담 도중 전혀 비굴하지 않고 시종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평소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약간 알고 있었으나 어려운 처지에서도 침착한 그의 태도가 일순 나를 감동시켰다. &quot;도와드리지요.&quot;참으로 무심결에 이러한 대답이 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약 20분간의 면담을 마치고 그를 돌려보냈다. 당시 숙군작업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로버츠 군사고문 단장도 간여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정보국 고문관인 리드 대위로 하여금 참모총장 고문관 하우스만 대위와 로버츠 준장에게 박 소령의 구명에 관해 양해를 구하도록 했다. 동시에 이 문제를 육군본부에 넘겨 재심사를 요청했다. 육본은 채병덕 총장에 의해 형 집행정지 조치가 취해졌고, 이에 불명예 제대시키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됐다.나는 정보국 김점곤 소령과 유양수 대위에게 얘기해 군인 신분이 박탈된 박정희 소령을 문관으로 정보부에 근무토록 배려했다. (중략) 58년 그의 이름이 소장 진급 대상자 명단에 끼여 경무대에 올려졌을 때 당시 참모총장이던 나에게 경무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곽영주 경무관(당시 대통령 경호담당)은 &quot;박 장군의 신원조회 결과 과거 좌익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나타났다&quot;는 것이었다. 나는 &quot;박 장군에 대해서는 내가 보증한다&quot;고 회신했다. 그는 무난히 소장에 진급했다.&quot;여러 증언과 문건을 통해 볼 때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해 좌익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김창룡의 특무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도 받았으며, 군사재판에 회부돼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격인 고등군법회의에서 그는 '징역15년'으로 감형과 동시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백선엽의 증언대로 중형이 선고된 피의자 가운데 구명된 케이스로는 박정희가 유일하다. 그를 구명한 사람은 백선엽을 비롯해 정일권, 채병덕, 원용덕, 이응준 등 만주군 및 일본군 선배들이었다.이후 박정희는 백선엽의 '배려'로 잠시 육본 정보국에서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에 복귀했고, 좌익 전력에도 불구하고 이후 승승장구했다. 박정희는 1953년 11월 준장으로 승진, 장군이 되었으며 2년 뒤 55년 7월 5사단장으로 나가면서 '은인' 백선엽을 다시 만났다. 당시 백선엽은 육참총장을 마치고 1군사령관을 맡고 있었는데, 5사단이 1군 예하에 있었다. 그 해 '탄신 80회'를 맞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국 시찰을 하면서 5사단에도 들러 박정희 사단장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 박정희와 백선엽 1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백선엽 대장(왼쪽)이 5사단장으로 부임한 박정희 준장(왼쪽 세번째) 등 예하 사단장의 보직신고를 받는 장면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한편, 이번에 공개된 비밀전문에 따르면, 백선엽은 숙군 대상이었던 박정희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박정희의 사상에 대해 '의심'을 떨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5·16 직후 드럼라이트 주중화민국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quot;쿠데타 세력 중 청년장교 일부가 공산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quot;며 &quot;미국이 이들의 백그라운드를 조사해야 한다&quot;고 주장했다. 당시 쿠데타에 참가한 청년장교 가운데는 좌익 전력자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백선엽은 쿠데타 주동자인 박정희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소장에 대해 &quot;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quot;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quot;비밀리에 공산주의자들과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으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미국이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quot;고 말했다. 이 '전문' 대로라면 백선엽은 1961년 당시에도 박정희의 사상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전문'에 나타난 박정희 등과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 때 공산주의자 간첩단에 중간수준 가담사실 밝혀졌다' '박정희가 어떻게 육군에 복직했는지 자세히 모른다' '박정희는 좌익과 공산주의자들의 온상인 대구 출신이다' '박정희는 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박정희가 비밀리에 공산주의자들과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없으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미국이 염두에 둬야 한다' '쿠데타 가담 젊은 장교 중 일부는 공산주의자들과 연관됐을 수 있으며 미국은 그들의 백그라운드를 조심스럽게 조사해야 한다' 백선엽은 이날 미국대사에게 자신이 쿠데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quot;신문에 보도된 정도로 제한적&quot;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박정희에 대해 아는 것은 &quot;의례적인 것일 뿐&quot;이라며 박정희는 '여순사건' 때 '중간 수준(MIDDLE-LEVEL)'으로 가담했으며,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린 대구 출신(경북 구미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특히 자신은 박정희의 재판을 관할한 군법회의의 멤버가 아니었다며 박정희가 어떻게 한국 육군에 복직했는지 상세한 내용은 잘 모르며, 그저 박정희의 경력 정도만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백선엽이 미국대사에게 건넨 말 중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 있다. '박정희가 어떻게 육군에 복직했는지 자세히 모른다'고 한 대목이다. 왜냐하면 박정희가 풀려난 후 육본 정보국에 문관으로 근무하도록 배려하고, 또 한국전쟁 발발 후 군에 복귀토록 주선한 사람이 바로 백선엽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백선엽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의 좌익 혐의와 숙군 재판과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임에도 5·16 당시 미국 측에는 그런 사실을 자세히 모른다고 한 것은 왜일까? 이와 관련해 해당 문건을 발굴, 공개한 안치용씨는 &quot;백선엽 장군이 현재 생존해 있기 때문에 백 장군은 과연 1949년에 박정희를 석방한 것이 잘못된 것인지, 1961년에도 박정희의 사상에 진실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는지, 아니면 박정희가 다시 한 번 좌익으로 몰릴 가능성이 보이자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미국 측에 박정희에 대한 거짓 주장을 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했는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를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할 것&quot;이라고 주장했다. ▲ 박정희와 장도영 5.16 후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왼쪽)과 박정희 부의장이 계엄사무소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한편, 백선엽은 문건에서 박정희 일파가 주도한 군부정권에 대한 평가와 당시 군부 거물들에 대한 인물평도 곁들였다. 그는 &quot;군사정부는 쉽게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정치적, 개인적 자유는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심각하게 축소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quot;며 &quot;미국정부가 방향을 바꾸게 하지 않거나 혁명적 모멘텀을 중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quot;이라는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quot;쿠데타 지도자가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쿠데타 세력 내에서 내분이 발생, 서로 싸우게 된다면 심각한 위험이 닥칠 것&quot;이라고 경고하고 &quot;문민정부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군사혁명을 통제할 문민지도자는 없다&quot;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대사는 마지막 부분에 코멘트를 통해 &quot;장면 정부가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력한 정부의 출범을 반기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전복할 길을 열어주게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quot;고 썼다. 인물평과 관련해 백선엽은 최고회의 의장을 맡아 쿠데타 세력의 '얼굴마담' 노릇을 한 장도영 참모총장에 대해 &quot;영리하고 능력도 있지만 때때로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하다&quot;고 평가하고는 &quot;장도영이 혁명을 이끌거나 컨트롤하거나 또 쿠데타 그룹을 장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quot;고 밝혔다. 또 독립운동가 출신의 김홍일 장군에 대해서는 &quot;애국적이고 철저한 공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지력과 통찰력이 부족하다&quot;고 평가했는데 드럼라이트 주중화민국 미국대사도 이같은 평가에 동의했다고 전문은 기록했다. 태그:박정희, 안치용, 숙군, 백선엽, 박정희 좌익사상 </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13</link>
	            	            <pubDate>Sun, 6 Jan 2013 17:15:09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13</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item>
		  	        <item>        
	            <title> 김지하의 변절이 주는 교훈 -&lt;기고&gt; 역사의식이 부재한 자기중심적 인물의 파멸 </title>
	            <description> 김지하의 변절이 주는 교훈 &lt;기고&gt; 역사의식이 부재한 자기중심적 인물의 파멸 2012년 12월 04일 (화) 17:38:17 정해랑 tongil@tongilnews.com 정해랑 /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 우리는 ‘개 돼지보다 못한 인간’이란 말을 쓴다. 개 돼지는 눈 앞의 이익만 취한다. 시키는 일만 한다. 자기를 해치는 존재에 저항할 줄도 모른다. 하지만 개 돼지는 자기를 해치는 존재에게 빌붙어서 자기 동료를 해치고, 그런 행위를 온갖 논리로 합리화할 줄 모른다. 그런데 인간 중에는 그런 짓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래서 ‘개 돼지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친일파들이 바로 그런 놈들이다. 친일파들을 옹호하는 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그 시절에 대다수 민초들 중 친일파 아닌 사람들이 어디 있냐고. 아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친일파가 아님은 물론이지만, 당시에 ‘개 돼지 같이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 역시 친일파가 아니다. 용기가 없고 능력이 없고 무지했는지는 모르지만 ‘개 돼지보다 못한 짓’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김지하 시인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다. 그것은 그가 가장 유명해서거나 그의 변절이 가장 충격적이어서라기보다는 그가 특유의 입담으로 거친 말들을 쏟아내면서 화제의 인물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김지하 시인은 12월 4일자 &lt;조선일보&gt;에 실린 칼럼을 통해 한류-르네상스의 분출을 백낙청 교수가 가로막고 있다고 하면서 비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난이라고 해야 할 글을 써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이런 글을 쓴 김 시인의 정신 상태도 의심스럽지만, 이런 글을 쓴 조선일보가 과연 유력 언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면 김 시인은 왜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일까? 그가 그야말로 정신상태가 이상한 것이라면 그냥 넘겨 버리면 그만이다. 누구 말대로 그가 진보진영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우리가 특별히 논할 필요가 없다. 그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그가 여기까지 이르게 될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인데, 이런 점을 그의 세계관이나 논리를 통해 살펴보고 그처럼 살지 않기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지하 시인의 말을 한 번 인용해 보자. “이제 이 민족은 지난 시절을 훌쩍 벗어던지고 있다. 이번 선거의 개 똥구멍 같은 온갖 개수작들이 역설적으로, 과거가 끝났다는 증거이다. 문학자는 참된 마음으로 문예를 부흥시켜 이 나라를 '문화대국'으로 키워가야 한다. 이게 바로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에서 배워야 하는 테마다.” 우리 민족이 지난 시절을 훌쩍 벗어던졌는가? 다카키 마사오가 다시 부활하고, 분단 상황은 여전히 고착화되어 있는데 지난 시절을 훌쩍 벗어던졌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의 주장대로 싸이의 말춤이 오바마가 참석하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고, 욘사마에 이어 한류의 붐이 오면 민족이 지난 시절을 훌쩍 벗어던지는 것인가? 이러한 그의 생각이야말로 일제 말기에 이제 일제의 세계 제패가 눈 앞에 이르렀다고 하는 친일파들의 생각과 본질적으로는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현상에 매몰되어서 민족의 현실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저항시인으로서 그가 했던 민주화투쟁은 높이 사야 한다. 7-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읽고 눈물을 흘렸고, 분노를 했고, 투쟁의 현장에 나섰다. 글쓴이 역시 그를 매우 존경했었다. 대학 시절이던 1970년대 말에 감옥에 갔다 온 친구가 그를 구치소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당시 한 선배한테 그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훌륭한 시인인지는 몰라도 조직운동가로서는 너무 문제가 많아서 골치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나서야 하고, 정보기관에 끌려가도 다 불어 버린 뒤 떳떳한데 무엇 숨길 것 있냐고 한다는 것이다. 당시 선배 들 중에서도 고참인 그가 조직운동에서 골치 아픈 존재였다는 이 말에 대해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 1980년대가 되고 국문과 출신인 글쓴이는 전공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노동운동을 하면서 저항시들을 많이 읽어보았다. 그런데 김 시인의 시는 날이 갈수록 감동이 떨어졌다. 그에게서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강한 분노와 풍자는 느껴지지만 역사성에 대한 인식을 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육사 시인, 신동엽 시인과 비교되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가졌고, 나는 그를 서서히 머리 속에서 지워 갔고, 당시의 급박한 정세 속에서 그가 사람들에게 떠올려질 여유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그가 1991년에 많은 사람의 화제 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이미 7-80년대의 김지하가 아니었다. 조선일보에 쓴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고 하는 그의 칼럼은 어제의 동료에게, 후배에게 칼을 들이미는 행위였다. 또한 그의 치열했던 과거를 송두리째 짓밟는 짓이었다. 칼럼의 내용도 그렇지만, 조선일보라는 매체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당시의 공안당국이 얼마나 쾌재를 부를 것인지는 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사람이 개, 돼지와 다른 것은 시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거기서 현재를 위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설계해 나간다. 이것을 우리는 역사라 부르고, 이에 대한 의식을 역사의식이라고 부른다. 역사의식은 고매한 역사학자나 고결한 사상가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역사의식은 시간성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자기를 인식하는 사회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역사의식의 필요조건 중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역사를 거의 알지 못하는 민초들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것은 삶 속에서 그러한 것을 터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시간과 사회라고 하는 것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위치지울 줄 아는 것이다. 김지하. 그는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기만을 중심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늘그막에 이런 추태를 보이는 것이다. 그가 백낙청 교수를 비난할 때 말한 것처럼 스스로는 유식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아니 정말 유식할지라도 역사의식에 대해서는 초동급부만도 못한 수준이라고 보아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의 제목인 ‘백년 전쟁’이 잘 보여주듯 우리는 일제 및 그 하수인들과 백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오늘의 대선은 바로 그 전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글쓴이가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의식이다. 그것은 우리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김지하 시인이 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자기중심성에 갇혀 있는 그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거기서 현재를 위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고, 거기서 현재를 위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은 떳떳한 사람이다. 이 사회에서 혜택을 받은 지식인들, 가진 자들은 적어도 떳떳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개 돼지 같은 사람’이 된다. 그런데 더 무서운 일이 있다. 그것은 ‘개 돼지만도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간성을 망각하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많은 변절자들이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는 행동이다. 떳떳하지는 못하더라도, 못나고 의연하지 못해서 혹시 비겁하게 살지라도 ‘개 돼지보다 못한 짓’은 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한 때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김지하 시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친일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친일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백낙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백낙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김지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지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변절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변절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개돼지보다못한인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개돼지보다못한인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개돼지보다못한인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개돼지보다못한인간&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11</link>
	            	            <pubDate>Wed, 5 Dec 2012 19:04:40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11</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친일파]]></category>
	            		           	<category><![CDATA[백낙청]]></category>
	            		           	<category><![CDATA[김지하]]></category>
	            		           	<category><![CDATA[변절자]]></category>
	            		           	<category><![CDATA[개돼지보다못한인강]]></category>
	            		           	<category><![CDATA[개돼지보다못한인간]]></category>
	            	        </item>
		  	        <item>        
	            <title> ‘다카키 마사오’가 포털 검색 1~2위 된 이유가… </title>
	            <description> ‘다카키 마사오’가 포털 검색 1~2위 된 이유가… 등록 : 2012.12.05 10:53 수정 : 2012.12.05 16:04 스크랩 오류신고 이메일 프린트 facebook436 twitter889 보내기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싸이월드 네이버북마크 구글북마크 닫기 5일 네이버 등의 포털에는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가 인기검색어 수위로 떠올랐다. 박정희의 또다른 창씨개명 오카모토 미노루도 검색어 수위로4일 선관위 주최의 공식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언급된 ‘충성 혈서’와 ‘다카키 마사오’가 인터넷에서 관심주제로 떠올랐다. 토론 이튿날인 5일 오전 10시 현재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는 ‘다카키 마사오’가 1~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 첫화면의 ‘실시간 이슈’에서도 ‘다카키 마사오’는 6위를 차지하고 있다. 포털을 이용하는 상당수 국민들이 전날 대선후보 토론에서 언급된 ‘다카키 마사오’를 궁금히 여겨, 검색해보는 데 따른 현상이다. '다카키 마사오'가 인기검색어 1위로 떠오르면서 박정희가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 이름이 한국식 이름이라는 지적을 의식해 다시 한번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는 이야기도 회자되며 인기 검색어로 함께 떠올랐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전날 TV토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로 “외교의 기본은 주권을 지키는 것이다.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거다. 한국이름 박정희. 군사쿠데타하고 굴욕적인 한일협정 밀어붙인 장본인이다”라며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발언으로 박정희가 일제시절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장교로 일본 황제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성과 이름도 일본명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화제로 떠오른 것이다. 박정희의 ‘견마의 충성’ 혈서 일본에 ‘견마(犬馬)의 충성’과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一死以テ御奉公)을 하겠다는 박정희의 혈서는 당시 &lt;만주신문&gt;(1939년 3월 31일)에 ‘혈서 군관 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왼쪽은 황군 장교 시절의 박정희.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문경보통학교 교사를 하다가 1940년 4월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에 2기생으로 입교해 1942년 3월 수석 졸업했다. 당시 신문을 보면 박정희는 부상으로 만주국 푸이(溥儀)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은 졸업생 대표 ‘다카키 마사오’로서 이렇게 답사를 했다. “나는 오늘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천황 폐하와 부의 황제 폐하께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충성을 다할 것으로 다짐합니다. 나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백무현, &lt;만화 박정희 1&gt;, 90쪽) 이후 박정희는 1942년 일본 육사에 편입해 졸업을 한 뒤 1944년 황군(皇軍)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교사를 하다가 다시 군관학교를 다닌 등의 문제로 박정희가 연령 초과로 군관학교 시험에서 탈락하자, 박정희는 ‘혈서’와 함께 입학허가를 호소하는 편지를 지원서류에 동봉해 제출하는 등 입학허가를 얻어내기 위해 몸부림쳤고 이는 당시 신문에 보도될 정도였다.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공개된 이 ‘혈서 편지’는 지금도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만주군관학교 생도 대표 박정희 &lt;만주일일신문&gt;(42년 3월)에 보도된 만주국 신경 육군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 박정희 생도는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사람이 박정희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을 위해 굳건히 결심합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과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일본에 ‘개와 말(犬馬)과 같은 충성’을 바치고 ‘한 번 죽음으로써 황제에게 충성’(一死以テ御奉公)을 다하겠다는 박정희의 이 혈서는 당시 &lt;만주신문&gt;(1939년 3월 31일)에 ‘혈서 군관 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이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대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박근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근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박정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정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일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대선토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선토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만주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만주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다카미 마사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다카미 마사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오카모토 미노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카모토 미노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일본천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천황&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10</link>
	            	            <pubDate>Wed, 5 Dec 2012 16:30:18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10</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이정희]]></category>
	            		           	<category><![CDATA[대선]]></category>
	            		           	<category><![CDATA[박근혜]]></category>
	            		           	<category><![CDATA[박정희]]></category>
	            		           	<category><![CDATA[일제]]></category>
	            		           	<category><![CDATA[대선토론]]></category>
	            		           	<category><![CDATA[만주국]]></category>
	            		           	<category><![CDATA[다카미 마사오]]></category>
	            		           	<category><![CDATA[오카모토 미노루]]></category>
	            		           	<category><![CDATA[일본천황]]></category>
	            	        </item>
		  	        <item>        
	            <title> 백령도초병 “천안함좌초 중대상황실서 전달받아”-[천안함 공판중계] 김승창 상병, 사고현장 인근 “섬 전체에 관측초소 있다…물기둥 못봐”</title>
	            <description> 백령도초병 “천안함좌초 중대상황실서 전달받아” [천안함 공판중계] 김승창 상병, 사고현장 인근 “섬 전체에 관측초소 있다…물기둥 못봐”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공지] 미디어오늘 신입 및 경력 직원 채용 천안함 침몰사고 당시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백령도 해병대 소속 초병이 사고 직후 ‘PCC(초계함·천안함)가 좌초됐다’는 보고를 해병대 소속 중대본부로부터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천안함이 백령도 서해상에서 두동강 나 침몰된 초기 상황에 대해 천안함-2함대사령부-합동참모본부 뿐 아니라 해병대에서도 좌초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 당시 백령도 서해안 247초소에서 근무했던 김승창 상병(전역)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천안함 민군합조단 민간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진술했다. 당시 해병대 6여단 62대대 6중대 소속이었던 김씨는 이날 법정에서 “당시 해안 경계작전에서 초병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밤 9시23분경 두무진 돌출부에 가깝고 (서쪽을 정면으로 볼 때) 2~3시 방향(북서방향)에 가까운 곳에서 ‘쾅’소리와 함께 하얀불빛이 보였다”며 “불빛이 희미하게 퍼져있다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근무는 김씨와 박일석 당시 상병(전역)이 근무하면서 상황을 함께 목격했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인지한 직후 곧바로 6중대 상황실에 ‘낙뢰’라고 보고한 이유에 대해 “당시에 해상에 큰 소리가 들렸는데 평소 낙뢰가 떨어질 때 그런 현상이 있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고했다”며 “당시에 불빛을 봤을 때 밝아졌다가 사라지는 모습만 봤다. ‘쾅’하는 아주 큰 소리가 한차례 들렸다. 낙뢰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구글어스의 백령도 서해상 지도에 합조단 발표 사고지점과 KNTDS상 최종 소실지점, 백색섬광 발화예측지점 등을 표시한 것.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변호인단 김씨는 물기둥을 봤느냐는 신문에도 “보지 못했다. (합조단에서 조사받을 때도) 일관되게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하얀 불빛이 수중폭발에 의해 생긴 물기둥이 아니라 낙뢰였다고 것이다. 김씨와 박일석 당시 상병이 목격한 하얀 불빛을 두고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최종보고서에 “물기둥”이라고 기술했었다. 특히 김씨는 사고 발생 직후 중대 상황실에서 PCC(초계함:천안함의 정식 명칭 ‘PCC 772 천안’)가 좌초됐다는 상황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PCC가 좌초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고직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PCC가 좌초됐다고 들었다. 중대본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PCC 좌초 상황이라는 얘기를 들은 경위에 대해 “(사고발생 상황을 보고한 뒤 중대본부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PCC가 좌초됐다, 비상상황이다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중대본부 상황 근무를 서고 있던 장교 또는 사관 상황병 중 한 사람한테 전달받았는데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증언했다. 앞서 김씨는 사고직후인 2010년 4월 2일 작성한 진술서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247초소에 근무자가 계속 근무했고 이후 ‘PCC 좌초 인지후’ 연화리 쪽으로 중대본부 인원이 전투배치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었다. 김씨가 들은 곳이 중대본부였다는 것. 이후 김씨와 박일석 상병은 지시에 따라 ‘좌초된 PCC’에 탐조등을 비췄다고 김씨는 전했다. PCC에 탐조등을 비추라고 지시한 것도 중대상황실이었던 것같다고 김씨는 밝혔다. 김씨는 당시 PCC에 대해 “(우리가 본 것은) 그 정도 크기이면 PCC 정도되는 배로 추정했다”며 “야간엔 민간어선이 없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미 김씨와 박 상병이 당시 탐조등을 비춘 PCC의 위치 역시 국방부 합조단이 발표한 사고지점(폭발원점-백령도 서방 2.5km)와 크게 차이가 난다. 탐조등을 비춘 위치에 대해 김씨는 “(두무진) 돌출부에서 정반대 방향이었다. (서해를 정면으로 보고) 9시 방향(정남쪽) 정도였다”며 법정에 게시된 해도 상에 변호인이 지목한 위치를 보고 답했다. 이는 거의 해안에 인접한 곳이며 위치도 연화리 남쪽에 해당되는 곳으로 합조단이 발표한 사고지점과는 크게 다르다. 이와 관련해 사고 이틀 뒤(2010년 3월 28일) 작성된 박일석 상병의 진술서에 따르면, “9시30분경 247초소 기준 방위각 170도 2km 지점에서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했다. 해안탐조등으로 247초소 근처 해안을 비추면서 해군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비췄고,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탐조등을 계속 비췄다. 그 후 247초소 방위각 3km 지점으로 해군함이 계속 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다고 기재돼 있다. 한편, 당시 상황을 목격한 247초소 외에도 백령도 북쪽해안가(두무진)부터 남쪽해안가에 이르는 전 지역에 관측초소가 있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김씨는 ‘두무진 쪽에서부터 백령도 아래 쪽 끝까지 관측초소가 있느냐’는 변호인 신문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섬 지역에는 초소가 전부 있다”며 “모두 우리 중대(6중대 관할)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령도 연화리에 설치된 천안함위령탑 사고지점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조현호 기자&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검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검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백령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백령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알루미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알루미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물기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물기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두무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두무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최문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최문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좌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좌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의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의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합조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합조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신상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상철&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09</link>
	            	            <pubDate>Thu, 29 Nov 2012 08:35:23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09</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검찰]]></category>
	            		           	<category><![CDATA[백령도]]></category>
	            		           	<category><![CDATA[알루미늄]]></category>
	            		           	<category><![CDATA[물기둥]]></category>
	            		           	<category><![CDATA[두무진]]></category>
	            		           	<category><![CDATA[최문순]]></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좌초]]></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의혹]]></category>
	            		           	<category><![CDATA[합조단]]></category>
	            		           	<category><![CDATA[신상철]]></category>
	            	        </item>
		  	        <item>        
	            <title> “황우석 교수님, 먼저 털어놓으시죠” </title>
	            <description> “황우석 교수님, 먼저 털어놓으시죠” 등록 : 2012.11.23 19:19 수정 : 2012.11.24 11:08 스크랩 오류신고 이메일 프린트 facebook22 twitter12 보내기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싸이월드 네이버북마크 구글북마크 닫기 줄기세포 허위 배양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황우석 교수가 2005년 12월16일 서울대에서 연 기자회견. 황우석 교수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lt;24&gt; 황우석 교수 사건줄기세포 덕에 내가 안 죽으면 손자들은 어찌 사누2005년 12월15일 &lt;한겨레21&gt; 인터넷판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이 빨갱이 변호사 새끼, 결국 노무현 코드에 엠비시 이사까지 해먹는구나.” 황우석 교수가 정말로 줄기세포를 만들었느냐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황 교수가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를 모세포나 &lt;사이언스&gt; 논문 것과 유전자 비교 해보면 간단히 이 소동은 끝날 거란 의견을 냈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팀이나 황 교수 중 어느 한쪽 편을 든 것도 아니고 검증해서 빨리 결론을 내란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황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무수한 욕설과 협박 글이 올라왔다. 노무현도 박근혜도 지지했던 그분 당시 나는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방문진 이사만 되어도 어깨에 힘깨나 줄 만했다. 그 막강한 방송사의 본사, 지방사, 계열사 등 20여개 회사 사장들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으니 그랬다. 설이며 추석 때는 전국 엠비시 방송사들에서 명절 선물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리 비싼 건 아니고 수만원짜리 지역 특산품 같은 것들이었지만 십수개가 배달되는 통에 어머니는 며칠 동안은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뭘 이렇게들 보내느냐면서도 그 맛에 명절을 기다리시는 듯도 했다. 겨우 방문진 이사도 이런데, 우리나라에 힘센 자리가 어디 한둘인가. 군에 있을 때 사단장은 그 지역 대통령인 양 행세했다. 하긴 헌병대장만 되어도 지역이 제 것인 양 큰소리쳤으니까. 대통령이 되면 더 말해서 무엇하리. 그러니 선거 때만 되면 온 나라가 편이 갈려 죽어라 싸운다. 사실 나는 당시 댓글에 나오듯 노무현 대통령 백으로 이사가 된 건 전혀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여러 재판과 활동을 하면서 고문, 조작간첩, 군의문사, 언론탄압, 사형제도, 과거사, 노동사건 등등 &lt;피디수첩&gt;이나 &lt;시사매거진2580&gt;에 소재를 제법 제공했다. 어느 날 엠비시 노조위원장이 찾아왔다. 지금은 김재철 사장에게 해고되어 길거리를 떠돌고 있는 최승호 피디였다. 눈이 부리부리하게 큰 딱부리. “변호사님, 방문진 이사 중 노조 추천 몫이 있는데 한번 맡아주실랍니까?” 나는 노동조합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자유를 주면 한번 해보겠노라 했다. “물론이죠.” 시원스런 그의 답을 듣고 그 끗발 좋은 방문진 이사가 되었다. 그 뒤 직원들 봉급 올리는 거 딴지도 걸고… 얼마 뒤, 처음 최승호 피디와 나눴던 이야기가 바로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엠비시 본사 사장을 새로 뽑는데 최문순 기자가 나섰다. 그는 전부터 나와 잘 아는 사이였고 사람 좋은 이였다. 전에 노조위원장도 지냈고. 그를 미는 주변 기자들이 나를 제일 먼저 찾아왔다. 내가 노조 추천 이사인데다가 최 기자나 노조 쪽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으니 당연히 내가 최대 원군이 될 거라 여겼을 테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 곰곰 생각하니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이 되면 노조를 위해서나 회사를 위해서 안 좋을 거 같아 그들의 지원 요청을 어렵게 어렵게 거절했다. 나 독자적으로 다른 이를 사장 후보로 추천하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성향 이사들과 마음 터놓고 여러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자 어느 날 행정부처 고위 관료가 보자고 했다. 개인 생각이라면서 “아니, 변호사님이 그러시면 됩니까.” 나는 정부가 언론에 간섭하는 건 좀 아니라고 한마디 했다. 그래도 그땐 방문진 이사들 성향이 여야 어등비등했다.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의 향배가 중요했다. 지금의 엠비시나 한국방송 이사회처럼 소수의견은 있으나 마나 한 구조는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진보, 보수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그 반대쪽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묻혀서는 안 된다. 최문순 사장은 황우석 교수 사건이 터지고 나서 엄청 힘든 시기를 보냈다. 나도 황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욕깨나 먹었다. 그때 황 교수의 열렬한 팬들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난리를 쳤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이 제일 앞에서 황 교수를 지원했다. 물론 내막을 모르고 그랬겠지만. 노 대통령은 피디수첩의 검증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국가정보원이 황 교수를 경호하도록 했고, 국정원은 사건이 터진 뒤에는 내내 엠비시에 음으로 양으로 압력을 가했다. 하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병원에 있는 황 교수를 찾아가 “우리나라의 보배 중 보배, 황 교수 문제까지 이념적으로 갈려 재단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황우석 교수의 팬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2005년 12월6일 서울대 수의대학에서 열린 난자기증 의사 전달식 참가자들이 자기 이름을 적은 무궁화꽃을 황우석 박사 집무실에 올려놓고, 진달래꽃길을 만들어 황 교수가 빨리 돌아오길 염원하고 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연구원 난자를 쓴 게 문제되자어느날 새벽 황 교수가 찾아왔다난 그에게 간곡하게 권유했다“만약 무슨 문제가 있다면남이 밝히기 전 털어놓으세요”하지만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청와대는 빨리 사실을 파악하고슬기롭게 퇴로를 만들었어야 했다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사과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벼랑에 몰려서야 “줄기세포는 없다” 사실 나는 그 전부터 황 교수와 알고 지냈다. 그의 추천으로 정부 산하 바이오장기사업단 이사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사다. 황 교수 쪽에서 먼저 엠비시와의 사이에서 공정한 재판관 노릇을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해 왔다. 물론 피디수첩 팀장 최승호와 한학수 두 피디도 좋다고 해서 줄기세포 검증에 간여하기 시작했다. 양쪽은 내 앞에서 검증 방법에 동의하고 이의가 있을 때는 일주일 안에 재검증을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사무실 윤영환 변호사가 제3자로서 검증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데 입회했다. 그리고 연구원 난자를 실험에 쓴 게 문제가 되자 어느 날엔가는 새벽같이 황 교수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진솔하게 사과하고 모든 공직에서도 물러나라고 간곡히 권유했고 황 교수가 이를 받아들여, 기자회견 문안도 작성해 주었다. 나중에 한학수 피디는 “이날 생방송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은 황 교수의 완승이었다”고 썼다. 나는 당시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황 교수에게 정말로 열심히, 간곡하게 권유했었다. “만일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남이 밝히기 전에 황 선생님께서 먼저 국민들, 아니 사람들 앞에 사실대로 털어놓으십시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 뒤에도 여러차례 그런 뜻을 그에게 전했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그 뒤 황 교수가 피디수첩에 넘겨준 줄기세포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검증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황 교수는 당초 내 앞에서의 합의와는 달리 재검증도 마다하고 6개월 시간을 주면 다시 만들어 보이겠노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재검증은 2, 3일이면 그 결과가 나오는데.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고 한편 안타깝다. 미리 먼저 털어놓지. 그는 나중에 더이상 피할 길이 없어지자 결국 난자를 제공해준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에게 2005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가 한 개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이 사건에서 줄기세포가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과도한 애국주의, 냉철한 비판기능을 잃어버린 언론들에 정말로 몸서리쳤다. 노 대통령도 피디수첩이 줄기세포의 진위를 한창 검증하고 있던 무렵 이런 글을 올렸다. ‘엠비시의 이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광고가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도를 넘은 것이다.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포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당시 벌어진 일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되풀이될 수 있으리. 그때 나는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줄기세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정부 차원에서 빨리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 것을 권했지만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속으로 열불이 났다. 청와대는 재빨리 사실을 파악하고 슬기롭게 퇴로를 만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사과했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문화방송이 광고 끊기며 백기를 들 때… 2005년 12월 초, 온 나라가 피디수첩이 애국자를 죽인다고 아우성치자 엠비시는 광고도 끊기고 급기야는 이를 못 견디고 백기를 들었다. 뉴스데스크를 통해 취재 과정에 강압이 있었음을 사과했다. 내부적으로는 다 만들어 놓은 핵심 후속 방송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방문진에서는 최문순 사장을 불렀다. 여러 이사들이 피디수첩과 최 사장을 심하게 탓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고. 내가 나섰다. 황 교수와 피디수첩 양측 심판관 입장에서, 지나온 경과를 밝히고 다른 이사들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최 사장을 몰아댔다. ‘취재윤리는 취재윤리고 그것 때문에 방송 자체를 아예 안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언론이 여론과 정부 압력에 밀려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게 언론이냐.’ 이건 사실 최 사장의 입지를 세워주는 힐책이었다. 다른 이사들은 조용해졌다. 최 사장은 본래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방송을 강행했다. 최승호, 한학수 두 피디는 지옥에서 살아났다. 한학수 피디는 나중에 이 사태의 전말을 책으로 썼다. &lt;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gt; 그는 책 머리말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줄기세포의 유무라는 결과보다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 사태의 진상을 밝히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에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보다 더한 드라마를 겪으며 고생했던 내 가족들, 이 사태를 거치며 속상했을 난치병 환자 가족들, 커다란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뜻하지 않게 상처 입은 사람들 모두에게 위로를 전한다.” 얼마 전 일본 의학자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 몸의 위벽이나 척수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부위에서 그 일부를 떼어내 신체 여러 기관으로 역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니 대단한 일이다. 황 교수는 여성의 난자를 가지고 시도를 하다 보니 생명윤리 문제에 처음부터 부딪혔다. 그리고 여기서 줄기세포를 유도해낸다 해도 그 자체가 끝없이 분할하는 암덩어리 비슷해서 이걸 인체에 투여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도만능줄기세포 역시 암세포로 바뀔 위험이 높다. 앞으로 몇십년 안에, 그렇지만 내가 늙어 죽기 전에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치자. 술 많이 마셔 망가진 위를 내 위벽 세포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로 새 위장을 다시 만들어 갈아 끼운다. 몇년 뒤 이번에는 혈관이 문제다. 혈관도 갈아 끼운다. 내 녹슬어 가는 심장도, 신장도 그리고 내 뇌도…. 아, 나는 이제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살 수 있다. 아니, 황 교수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성공하면, 푸른 잔디밭을 커다란 귀 펄럭이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저 스너피 개처럼, 나도 나와 똑같은 또다른 ‘김형태’를 복제해서 영원무궁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 내가 이 지구에서 사라져 주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면 내 아들, 손자, 손자의 손자들은 어디서 무얼 먹고 사누.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청와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청와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거짓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거짓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노무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무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황우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황우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줄기세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줄기세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PD수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PD수첩&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국정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국정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미즈메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즈메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피디수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피디수첩&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최문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최문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방문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방문진&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08</link>
	            	            <pubDate>Sat, 24 Nov 2012 18:10:38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08</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청와대]]></category>
	            		           	<category><![CDATA[거짓말]]></category>
	            		           	<category><![CDATA[노무현]]></category>
	            		           	<category><![CDATA[황우석]]></category>
	            		           	<category><![CDATA[줄기세포]]></category>
	            		           	<category><![CDATA[PD수첩]]></category>
	            		           	<category><![CDATA[국정원]]></category>
	            		           	<category><![CDATA[미즈메디]]></category>
	            		           	<category><![CDATA[피디수첩]]></category>
	            		           	<category><![CDATA[최문순]]></category>
	            		           	<category><![CDATA[방문진]]></category>
	            	        </item>
		  	        <item>        
	            <title> “천안함 사건 해역서 기뢰폭발” 첫 증언 나왔다 </title>
	            <description>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553436.html&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알루미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알루미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좌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좌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 의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 의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합조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합조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신상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상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Nteb&amp;tagName=천안함기뢰폭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안함기뢰폭발&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hamkke/6402</link>
	            	            <pubDate>Fri, 28 Sep 2012 17:52:03 +0900</pubDate>
	            <author>다물</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blog.daum.net/hamkke/6402</guid>
	            	            		           	<category><![CDATA[전체보기]]></category>
	            		           	<category><![CDATA[알루미늄]]></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좌초]]></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 의혹]]></category>
	            		           	<category><![CDATA[합조단]]></category>
	            		           	<category><![CDATA[신상철]]></category>
	            		           	<category><![CDATA[천안함기뢰폭발]]></category>
	            	        </item>
		  			       </channel>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