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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빨강머리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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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산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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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24 May 2013 11:08:59 +0900</pubDate>
                <webMaster>빨강머리앤</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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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던 ,   하얀 찔레꽃이  피었습니다</title>
	            <description> 이연실이 부른 찔레꽃의 원곡은 이태선 선생님이 1920년대 쓴 동시 (童詩)에 박태준 선생님이 곡을 붙인 '가을밤'이다,(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그런데 방정환 선생님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해서 수 많은 동요를 작사하다가 해방 후 월북한 윤복진(1907-1991) 선생 님이 지은 '기러기'란 동시가 이 곡에 붙여서 '기러기'라는 이름으로 도 알려지게 되었다.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뿐만 아니라,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선생님이 1930년에 '신소년' 잡지에 발표했던 '찔레꽃'이란 동시를 가수겸 작사가인 이연실이 1972년에 위와 같이 고친 가사로 불렀던 것이다. 이연실이 부른 '찔레꽃'은 가을을 소재로 한 '가을밤'과 '기러기'와는 달리 봄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공통점은 3가지 가사에 모두 &quot;엄마&quot;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듣기만 해도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하는 까닭은 그 속에 너무나도 가난했던 그 시절과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찔레꽃 / 이연실 노래 (이태선 작사, 박태준 작곡)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주 비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주 내 친구가 날 찾아도 엄마 엄마 울지마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 기럭 기러기 날아 갑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찾으며 날아 갑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시골집 뒷산 길이 어두워질 때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자료출처, 블로그, 벗님들의 쉼터 찔레꽃 / 작사,노래 , 이연실 작곡,박태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우린 목 놓아 울었죠 ... 이 노래는 누가 불러도 애잔함이 묻어나는 노래이다. 고려시대 원나라로 끌려갔던 찔레'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가족을 그리워하다 돌아오지 못한 채 그만 죽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들의 가까운 옛날 , 보릿 고개가 시작되는 늦은 봄 막 움이 솟아 뻗어나는 찔레순 어린마디를 톡톡 끊어 씹어 먹곤 했었다. 연한 찔레순은 달짝지근 했고 은은하게 날리는 꽃내음도 좋아서 무조건 입 크게 벌려 한입 꿀꺽 삼키곤 했다. 끼니를 거를만큼 힘겹게 보릿고개 를 넘어가던 들길에는 언제나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찔레꽃이 피는 계절에는 시집 간 딸이 보고 싶어도 사돈댁에 다니러 가는 일을 삼갔다고 할 만큼 가난했던 시절에 태어났던 아이들에게는 하얗게 예쁜 꽃이 아닌 슬픈 먹거리였다. 낙도 오지였던 거제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언덕길에 지천으로 피어나던 오월의 찔레꽃은 시골장터 약장수도 아니면서 섬아이들을 순식간에 불러 모았다. 마을이 시작되는 아카시 꽃이 활짝 핀 산모퉁이를 돌아 언덕을 타고 나즈막히 흘러 내린 찔레꽃 덤불은 두어평쯤의 땅을 차지하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가시를 달고 쑥쑥 줄기를 뻗어 나가 순식간에 꽃덤불을 만들었고 꽃이 피는 이맘때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찾아와 꽃덤불에서 놀았다. 찔레순은 성장속도가 하도 빨라 성큼성큼 자라는 모습이 눈으로 보일정도였는데 그런 찔레순을 따 먹은 우리도 찔레순처럼 키가 쑥쑥 자랐더라면 지금쯤 키다리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quot;너그들 , 비암 나온다이 조심해야 하는기라 덤불속 깊숙히는 들어가지마라 그 쪽은 비암이 저거거라꼬 지키고 안있나, 비암하고도 사이좋게 갈라무야 하는기라 안 그라모 비암이 성질나서 너거 다리를 콕 물어삔다이 그라모 얼매나 아푸것노 배고푸고 다리 아푸고... 골로 가삐는기라 우짜든지 발밑을 단디 보거라 비암 성질 건드리지 말고 찔레가시도 억수로 조심하고 알것제 &quot; &quot; . 무리중 한아이는 가시덤불에서도 침착하게 어른처럼 지혜로운 당부를 하기도 했었다 . . 이때 꽃덤불아래로 기어든 뱀은 찔레꽃의 주인인냥 행세를 했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나른한 봄기운을 핑계대고 동글동글 또아리를 틀어 꽃덤불 속을 제법 차지했다. 뱀의 심술은 끝이 없어, 먹기 좋은 어린 찔레순이 풍성한 쪽은 절대로 아이들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이슬만 먹고 사는 줄로 알았던 뱀도 알고 보니 아이들처럼 찔레꽃을 엄청 좋아하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양보없는 놀보 같은 해찰꾼이었다. 마침 '거제왕찔레꽃'으로 불리는 특별한 찔레꽃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 우체국터로 왔다. 일주일 전 , 거제시의 서쪽 사등면 성포리를 걷다가 장미꽃을 닮은듯한 하얀 꽃울타리를 만났는데 꽃송이가 장미꽃처럼 예뻤지만 조금 다르게 보였는데 지인께서 사진을 보더니 &quot; 하얀꽃은 '거제왕찔레꽃'이라 불러요.&quot; 라며 알려 주셨다. 이꽃은 거제도 장목면 송진포에서 발견된 (2005년) 우리나라 미기록종으로 장미과에 속하는 덩굴성 떨기나무로 분류되고 있다. 2005년, 이곳에서 발견된 찔레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종류로 한동안 학계는 물론 환경단체와 언론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불러 모았던 꽃이다. 국립수목원 이유미박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종일수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종일 수도 있다고 짐작했지만 꽃잎의 길이 8cm , 꽃잎 5장으로 통영,거제 환경연합의 윤미숙씨가 직접 일본에 가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일본의 찔레꽃과는 많이 달랐으며 장미꽃송이만한 이 찔레꽃은 유일하게 거제도에만 자생하는것으로 확인되었다며 &quot;이 꽃을 '거제왕찔레' 라 불러주오 &quot; 라는 제목으로 신문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찔레꽃과 모양이 비슷하고 크기가 10배 정도 큰 만큼 식물의 한국명을 '거제왕찔레' 라 불러도 좋을듯하다. 비 내리는 날 ,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에서 본 '거제왕찔레꽃' 울타리 장묙면 송진포에서 만난 '거제왕찔레꽃' 큰길에서 100m쯤 떨어진 거리에서도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꽃잎이 크고 환하다. 꽃잎은 5장이며 자로 재어 보니 꽃의 크기는 8cm 정도였다. 벌들이 날아와서 꿀을 모은다. , 찔레꽃의 꿀은 또 얼마나 맛있을지 벌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물어 보지는 못했다. 꿀먹은 벙어리...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어린 질레순을 따서 먹어보지만 옛날처럼 단맛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얀 꽃잎속에 노란색 꽃술이 소복히 모여 있다. 찔레꽃덤불로 갈 때는 항상 뱀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거제왕찔레꽃덤불을 실컷 보고 내려 오다 밭일을 하고 계신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quot;이 곳에는 오래전부터 왕찔레꽃이 많았어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들이 일본에서 가져와서 심었는지. 아니면 야생으로 자란 품종인지는 잘모르겠지만 꽃송이가 장미꽃송만하여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꽃을 보러 와요&quot; 라신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올라가는 언덕이며 산 곳곳에는 하얀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서 이맘때면 무지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이미 일본인들이 몰려와서 살았던 곳으로 파란 지붕의 집은 당시 일본인들의 우체국터로, 1904년 8월 11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리 430번지∼553번지 일대(송진포 국민학교)는 일본해군용지로 편입되었고, 송진포 주민들은 신촌, 궁농(森村) 마을로 강제이주 당했다. 일본해군비밀문서에는 &quot;송진포 지역은 해군기지 설치에 따라 대한제국의 협조를 얻어 설치할 수 있었다. 이는 외부대신 조병직에게 이미 허락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이에 송진포 지역의 인민들은 당연히 철수해야 하며 보상에 대하여 대한제국에 있다&quot; 고 적고 있다. 대한제국은 일본이 러일전쟁을 빌미로 강제로 토지를 점령하고 군사기지를 설치할 수 있게 허락한 것이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하얗게 핀 찔레꽃덤불아래서 울며 빨강머리 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기러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러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엄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엄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가을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가을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고향의 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향의 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박태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태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이태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태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거제왕찔레꽃&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거제왕찔레꽃&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장목면 송진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장목면 송진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사등면 성포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등면 성포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이연실의 찔레꽃&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연실의 찔레꽃&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러일전쟁 고려시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러일전쟁 고려시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효녀 찔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효녀 찔레&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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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4 May 2013 11:08:59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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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토종  우리나무  때죽나무의  하얀 유혹의 수다, 함께 들어요</title>
	            <description> 29285 오월의 숲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오월, 이번에는 초록의 숲에서 때죽나무가 또 하얗게 꽃을 피웠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때죽꽃의 유혹을 따라 숲으로 갑니다. 초록의 숲에서는 때죽나무 가지로 우루루 쏟아져내린 별무리처럼, 혹은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걸터 앉아 깔깔대는 아이들처럼 사랑스럽습니다. &lt;악동뮤지션&gt; 또 어찌보면 &quot; 라시도레미파솔 ♪♬♪♬올라가는 팸토리 ~ 하하하하하~ ♩♪♬ &quot;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하게 흥얼거리게 만드는 리듬과 미소를 띠게 하는 매력적인 음색의 어쿠스틱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이 때죽나무 숲으로 '짠'하고 나타나 ' 크레센도' 를 입모아 부르는 '수다송'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lt;악동뮤지션&gt; 청초하게 피어난 때죽꽃이 숲을 밝히니 요정들이 사는 신비의 숲속나라로 초대받은 기분이 들어 듬뿍 좋아요. 때죽나무로 피어나는 꽃들은 마치 고속 촬영 영화에서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스르르 피어나는 모습이 빤히 보입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유혹의 숲이 펼쳐져 있는 이곳은요. 너울파도가 어디만큼 오고 있나 망을 보며 하얀등대가 서 있는 곳, 거제도의 동쪽끝 ' 양지암 가는 길,'이랍니다. 이 길은 야트막한 동산이 바다를 행해 뻗어 있는 길을 따라 쭉쭉 걸어가는 곳으로 . 몇년 전 서쪽으로 이사를 떠난 후 오랫만에 와 봅니다. . 오늘은 내친김에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봅니다. 걸으면서 만나는 이곳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승에서 만나는 천국이란 생각은 아닐런지... 하얀꽃을 조롱조롱 매단채 간혹 불어오는 해풍에 몸 맡긴채 흔들리는 때죽나무는 부끄럼쟁이 섬소녀처럼 바다를 내려 다 보며 수줍게 고개숙이는 순수가 흠뻑 '아름답습니다. 와우~~하얀 꽃나라, 꽃봉오리가 쉴새없이 퐁퐁퐁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같지 않나요? 초록숲은 온통 하얀 때죽꽃으로 하늘을 가렸네요. 그런 때죽나무 숲에서 가만 귀대고 들어보니 마치 팝콘이 터지듯 꽃잎 열리는 소리가 팡팡팡 들리는것 같습니다. 꽃들은 다투어 피어나서 불을 켠듯 점점 더 환해지네요. 종모양을 한 작은 꽃등이 나뭇가지로 매달려 초롱처럼 대롱거리니 자연이 부린 숲의 마법에 행복하게 걸려 들지 않았습니까? 때죽나무숲은 쉴새없이 퐁퐁퐁 꽃을 피웁니다. 때죽나무과(―科 Styrac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 키가 10m까지 자라지만 줄기 밑동에서 많은 가지가 나와 무리 지어 자람으로써 4~5m 정도 되는 관목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지에는 별 모양의 털이 많이 나 있으나 자라면서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잎뒤와 맥에도 별 모양의 털이 많다. 잎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거나 없다. 꽃은 초롱처럼 생겼으며 흰색이고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총상(總狀)꽃차례를 이루어 핀다. 꽃부리는 5갈래로 깊게 갈라지며 수술은 10개이고 수술대의 아래쪽에는 흰색 털이 있다. 열매는 9월에 녹백색의 삭과(蒴果)로 익는다. 그늘이나 반그늘진 곳에서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디나, 한국에서는 중부 이남에서만 흔히 볼 수 있다. 목재는 기구재·가공재 등으로 쓰인다. 자료출처 &lt;브리태니커&gt; 불루, 그린 ,화이트의 환상적인 하모니 ... 숲 속의 새하얀 때죽나무 꽃밭 마음이 슬픈 사람은 서둘러 때죽나무 숲으로 달려오세요. 숲은 당신을 웃게 해 줄겁니다. 총총총 피어난 때죽꽃이 이번에는 또 삶은 계란을 막 칼집내서 꽃모양을 만든 계란꽃처럼 보입니다. 때죽꽃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게 도와주는 지혜의 꽃입니다. 이렇게 산뜻한 초록숲으로 병아리때가 오종종 몰려와서 이번에는 &quot;엄마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떼 뽕뽕뽕 놀고 간 뒤에 &quot; 라고 노래하는듯 보이기도 하구요. 빛으로 그린 그림,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요! 누군가가 그랬듯이 초롱꽃은 마치 떼떼중들이 꽃등을 들고 초파일 연등행사를 하러 가는듯 보이기도 하네요. 나무냄새, 꽃냄새가 코끝으로 느껴지자 숲의 사랑스런 유혹에 홀리듯 빨려 들어갑니다. 때죽꽃은 다시보니 아기 팽귄들이 앙다문 입을 쭉 내밀며 쫓아오듯 보여요 . 때죽꽃이 그러네요 &quot;당신만의 눈으로 마음껏 상상하세요&quot;, 그거 참 재미있군요. 그래야겠어요. 팡팡팡 때죽꽃 터지는 모습, 정말이지 요염하기 짝이 없습니다. 때죽꽃은 정말 숲속의 요정들인건가? 초록숲을 꽃으로 예쁘게 꾸미는 오월의 요정들? 별을 닮은 꽃들은 정말 숲속의 작은 요정이 틀림없습니다.. 꽃들은 바람이 찾아와서 부비대자 상쾌해져서 명랑한 웃음 베어물고 바람과 함깨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에게 부지런히 꽃을 피우라 재촉합니다. 때죽꽃이 피어선 지고마는 7 월이 오면 꽃진자리로 방울방울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답니다.. 이 모습을 보는 시간은 또 얼마나 흐뭇하고 예쁜지요 동글동글한 열매떼는 정말 동자승의 까까머리처럼 보이고,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스님들이 떼로 몰려오는 것 처럼 보여 떼중나무' 로 불렀답니다. 보세요 꽃진자리로 방울같은 앙증맞은 열매가 또 얼마나 이쁜가요? 때죽꽃이 떨어지고 말면 뒤를 이어 동그란 열매가 와글와글 매달려서 단단해지는 햇살의 여름이 오면 숲도 더위를 느껴 바람을 그리워한답니다. 간혹 지나가던 바람이 보드랍게 어루만져 주기라도 하면 때죽나무는 기분이 몹시 좋아져서 천천히 한들한들 춤추고 열매는 여물어갑니다. 잘 익은 때죽나무의 열매에는 기름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예로부터 등잔불을 켜거나 머릿기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옛날 우리 할머니, 엄마 세대는 때죽나무에서 축출한 기름과 동백기름으로 윤기나게 발라 머릿결을 맵시나고 , 단아하게 가꾸기도 했었죠. 2009년 7월의 때죽나무 열매 이렇게 고운 열매를 보면 금방 마법에 걸린듯 스르르 좋아하게 됩니다. 요 때죽나무 열매를 보니 어린시절 우리동네의 여름이 울컥 생각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의 여름이야기 어린시절, 제가 살았던 마을 앞으로는 큰강이 흘러 바다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강은 거울처럼 맑아서 송사리, 피래미,은어,천어, 붕어 , 문저리, 잉어와 다슬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이름조차 까먹고 말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가 헤엄치던 물반, 고기반의 명경지수를 품은 강이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 그러니까 꽃진 때죽나무에 열매가 매달리기 시작하는 7월과 작열하는 햇살을 마음껏 받아 먹으며 열매가 점점 단단해지는 8월에는 뜨거운 햇살을 피해 어른,아이 할것없이 강으로 나와 멱도 감고, 고기도 잡았습니다. 고기를 잡는 일은 해마다 7~8월에 벌이는 동네의 연례행사로 때죽나무 열매와 잎을 따서 돌에다 콩콩 찧거나 혹은 빡빡 문질러 때죽향이 사방에 진동하면 이번에는 강물에 쏟아 풀어버렸습니다. 그럼 5분도 지나지 않아 고기들이 요동을 치다 이내 잠잠해지고 마을사람들은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동네 장정들은 강근처의 산에 올라 때죽나무를 베어왔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때죽나무 열매와 때죽나무잎을 돌에 놓고 콩콩 찧어 물에 푸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물에서는 고기들이 놀라 서너번 팔딱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채 배를 하늘로 내밀고 동동동 떠 올랐습니다. 그러면 동네사람들은 집에서 가져 온 다라, 대야, 소쿠리, 바구니, 양재기 심지어 주전자까지 챙겨 와서 첨벙대며 물위로 둥둥 떠 오른 고기들을 무조건 주워 담았습니다. 강에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와 죽은 고기를 주워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우리동네의 아주 특별한 축제같았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웃마을 사람들도 우리동네로 몰려와서 고기를 제법 건져갔습니다. 이렇게 때죽나무를 물에 풀어 물고기를 잡는 천렵을 우리동네에서는 '구정물 친다'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때죽나무에는 독이 들어있어 고기가 먹으면 금방 죽는다고 하였으며 그렇게 죽은 고기를 사람이 먹어도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물고기를 한꺼번에 왕창 죽게하는 이 나무를 가리켜 우리지역에서는 '때독나무'라 불렀습니다. '독'이 든 나무라는 말일테죠. 우리는 그렇게 잡은 고기로 매운탕도 해 먹고 여러날 질리도록 고기반찬을 먹었습니다. 어쩜 강이 준 내어준 고기반찬으로 며칠간은 밥 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구정물 친다' 고 하였는데 그 말이 왜 생겼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구정물을 친 강물은 열흘정도는 완전 고기 썪는 역한 냄새가 진동하였습니다.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더운 여름에는 밥을 먹는것도 잊고 하루종일 강에서 멱을 감는것이 일과였지만 때죽나무로 구정물을 치고 난 뒤 여러날은 강변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썪은 고기가 널부러져 멱을 감는것은 물론이고 빨래조차 할 수 없었던 기억이선연합니다. 몇년 전 , 때독나무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에고사포닌' 이 들어 있어 동물 혹은 생선에 마치효과를 내는 것으로 정리 되어 있더군요. '에고사포닌'이 마취효과를 내는데 사용된다면 분명 다시 마취되었던 고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께어나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어린시절 동네 강에서 본 물고기는 기절하였다가 깨어나는 고기는 한마리도 보지 못했으며 내가 본 때죽나무 열매속 '에고사포닌' 은 잠시 기절시키는 마치효과를 내는것이 아닌 완전 치사용이었습니다. 이렇게 맑은 물이 흘러 신선, 선녀탕과 요강덤벙 ,꽃밭덤벙, 벼락덤벙 ,열녀천, 박수덤벙을 지나 바다로 가는 우리동네의 산에는 때죽나무 숲은 또 얼마나 하얗게 고왔는지. 구정물을 쳐서 고기 잡던 옛날이 어제처럼 다시 그립습니다. 꽃을 주제로 벌이는 축제도 많더니만 ... 꽃등을 켜든 풍경을 보니 영혼이 깨어나는 느낌이 드는 때죽꽃의 축제는 왜 하지 않는지 궁금해집니다. 때죽꽃이 피어나는 오월, 산으로 한번 가보세요 자연이 준비해 놓은 하얀숲 아름다운 별꽃밭이 펼쳐져있습니다. 때죽나무꽃은 언제나 땅을 내려 다 보며 피어나는 땅을 정말 사랑하는 꽃같습니다. 게다가 공해 물질을 대규모로 배출하는 공장 가까이에서도 잘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라고 합니다. 이렇게 꽃이 아름다운 때죽나무를 거리의 가로수로 심어도 참 좋을것 같습니다.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꽃들이 방긋방긋 웃는것 같습니다. 그럼 꽃들과 함께 우리도 방글방글 웃어 볼까요? 아직 별꽃으로 팡팡 터지지 않은 꽃봉오리는 작은 병아리의 앙증맞게 작은 부리같기도 합니다. '삐약삐약 ',혹시 병아리소리 들리지 않으세요? 이곳에 서니 어떤 날의 상쾌함이 또 생각납니다. 푸르게푸르게 , 이강산을 푸르게, 언젠가 TV에서 본 유한양행의 광고 카피처럼... 때죽나무의 열매에는 기름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예로부터 등잔불을 켜거나 머릿기름으로 사용하였으며 세제가 없던 옛날에는 때죽나무 열매를 찧어 물에 풀어 빨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얀 꽃잎을 톡톡 따서 비벼대면 보르르 거품이 생겼는데 물에 풀어 빨래를 행구면 때가 쏙 빠져 깨끗해졌던 기억도 있어요. 바다로 가지 못하는 배 때죽나무숲 근처로는 예술적인 분위기의 '양지암 조각공원'도 있어요. 양지암 조각공원에서 조각상의 갈매기가 소리치네요. 대구다 외포항에서 대구떼가 몰려온다 갈매기가 높게 날아 오르며 능포항으로 대구떼를 휘휘 몰아옵니다. 양지암 조각공원에서 하늘을 향해, 바다를 행해 꿈 뀨며 행복한 낮잠을 줄기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나른한 오후 곁으로 숲속의 때죽나무 일꾼들은 하얀 별꽃을 폭죽처럼 쏘아 올려 팡팡 터뜨리며 숲을 금빛으로 환하게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답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미의 여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의 여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능포동 양지암 조각공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능포동 양지암 조각공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때죽나무와 별꽃&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때죽나무와 별꽃&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에고사포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에고사포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때독나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때독나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구정물 치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구정물 치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악동뮤지션의 크레센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악동뮤지션의 크레센도&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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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3 May 2013 11:59:20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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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이렇게 좋은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title>
	            <description> 29278 꽃밭에서 봄이 가는 날, 덩달아 마음 바쁘다. 봄이 가는데 왜 나는 심술이 날까? 가는 봄 막아서서 심술보자기 풀어 훼방 놓아 볼까? 끝간데 없이 들풀 가득 넘치는 바닷가 언덕길을 걷다 마주친 토끼풀도 꽃이라 우기며 하하호호 야단이 났다.그런데 벌과 나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혹 덥다고 칠천량 괭이바다로 멱감으러 훨훨 날아갔나? '토끼풀, 네까짓 게 무슨꽃이야 , 무시하며 향기짙은 찔레꽃을 찾아 훨훨 날아 갔나? 어째 한마리도 보이지를 않는다.바람은 또 어디쯤에서 퍼질러 게으른 낮잠에 빠져있는지 , . 한낮의 오월은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 풀아,풀아, 토끼풀아 ... 어디로 바쁘게 가세요? 라며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 세우는 초록들꽃... 얘네들 토끼풀이라 불러 줄까? 세잎클로버라 불러줄까? 풀냄새 피어나는 이곳에 어디선가 깡총깡총 토끼 몇마리 뛰어오겠다., 그래서 고 작은 입으로 냠냠냠냠 맛있다고 초록풀 뜯어 먹겠다. 푸른풀밭 소문듣고 귀여운 눈알 또르또르 굴리며 토끼친구들 산고개고개를 넘어서 깡총깡총 뛰어 오겠다. 토끼야, 어디로 갔니? 이렇게 좋아하는 꽃풀도 많은데 ... 토순이,토돌이,토식이 토붕이가 이꼴 봤으면 단숨에 높은산 넘어 달려왔겠다. 그런데 오늘 토순이들 봄바람에 실려 서울구경 갔나? 이렇게 좋은 날에 , 이렇게 좋은 날에 ... 그럼 혼자 심심하니 푸른정원에서 풀꽃반지나 만들어 볼까?, 꽃목걸이, 꽃시계도 만들어 놓고... 나 어렸을 적, 옆집아이 화야 ,뒷집아이 혜야, 건넌마을 재야랑 꼭 요만한 계절, 파란 들판에 모여앉아 꽃반지. 꽃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고 하얀꽃 머리띠 만들어 두르고 공주놀이 하고 놀았지. 언제나 요만큼의 파란계절 오월에는 들꽃같은 계집아이로 푸른들판 쏘다녔지. 토끼처럼 동그란 눈알 굴리며 바람처럼 초록으로 내달렸지 . 꽃밭에서 ~♬♬♪♩ 坐中花園(좌중화원) / 최한경 泮中日記(반중일기) 中 坐中花園 꽃밭에 앉아서 膽波夭葉 꽃잎을 보네 明兮美兮 고운 빛은 云何來矣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其花 아름다운 꽃이여 何 彼 矣 그리도 농염한지 斯于吉日 이렇게 좋은 날에 吉日于斯 이렇게 좋은 날에 君子之來 그 님이 오신다면 云何之樂 얼마나 좋을까 臥彼動産 동산에 누워 望 其 天 하늘을 보네 明兮靑兮 청명한 빛은 云何來矣 어디에서 왔을까 維靑盈昊 푸른 하늘이여 何彼藍矣 풀어놓은 쪽빛이네 吉日于斯 이렇게 좋은 날에 斯于吉日 이렇게 좋은 날에 美人之歸 그 님이 오신다면 云何之喜 얼마나 기쁠까 - 세종 때 성균관 유생 최한경의 詩 - 네 이름은 조팦꽃? 순결한 신부가 부케꽃으로 들어도 얼마나 이쁠까? 조팝꽃... 넌 짚섶에 둥지를 틀고 앉은 계란꾸러미처럼 옹기종기 붙어있구나 어라 어쩜 또 팝콘처럼 톡톡 터져 하늘가로 날아갈것처럼.... 도레미파솔라시도...♩♪♬ 올라가는 멜로디 ... 꽃잎뒤에서 유심히 들여 다 보니 마치 노릿하게 잘 누른 누룽지같았어, 이 엄청난 비밀을 나 말고 누가 또 알고 있었을라고? 오늘 처음 알아 낸 신기한 아하 유레카~~~ 그렇게 생각하니 누룽지 냄새가 솔솔 날라 다니는것 같아. 곧 이어 입맛 쩝쩝쩝 ... 성문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 단 꿈을 보았네 보리수 꽃자리가 이다지도 예쁠줄은 난 정말 몰랐엇어. 아늑하게, 잔잔하게. 수줍게 피어난 보리수꽃... 칠천도로 가는 길은 오월의 꽃에 흠뻑 취해 곧 쓰러지게 생겼다. 별인양 총총총 붙어서 피어난 아이보리색 꽃무리, 보리수 꽃은 하늘에서 쏟아진 별무리, 바다를 내려 다 보며 피어나서 세상을 밝혀주는 때죽꽃처럼 ... 올해도 어김없이 구실잣밤나무가 꽃을 피웠다. 그러더니 남실남실 흐느끼는 냄새를 풍긴다. 달콤 쌉쌀, 비릿비릿 몽롱한 꽃내음 냥이야, 너도 이 냄새 알지.. 오월은 말이야 , 양귀비 꽃 피는 마늘밭으로 가지 말고 구실잣밤나무 아래로 달려 오니라 갓 잡은 생선한토막보다 훨씬 군침도는 맛있는 비린내야 네가 제일좋아하는 이 냄새의 정체를 냥이는 알랑가 몰라 ~ 참참참 똥파리가 제일 좋아라하더라. 똥파리선수 일등으로 구실잣밤나무로 날아왔어. 벌보다 더 놀라운 코를 가진 게코똥파리 ,녀석은 생선인줄 알고 날아드는걸까? 붕붕붕 소리마저 내며 벌,나비보다 먼저 꿀벅지를 다차지하는 .... . 오월이 되면 , 고양이도 발정난다. 구실잣밤나무 때문에 말이야~~ 사방으로 비린내를 펄펄 날린리면서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지난 겨울 , 구실잣밤나무는 정신이 뺑 돌아서 겨울꽃으로 또 피어나더란 말이야 ~~ 11월에도 꽃을 피운 구실잣밤나무는 어쩜 그 계절에 바람이 났던 걸까? 알 수 없단 말이야 ~~ 다시 오월이 열리니 구실잣밤나무. 무진장 바쁘다.. 이제 처녀들은 조신하게 바깥나들이를 삼가해야 할 시간, 하지만 총각들은 마음에 드는 처녀가 있어 사링을 고백하고 싶다면 용기를 내서 밤꽃피는 밤골로 데이트를 가는거야 그럼 처녀는 총각을 스르르 좋아하게 될거야. 그래서 가을에는 아마도 결혼하게 되겠지... 예쁜 처녀가 있는 집에서는 문단속 단디해야 할 계절~ 남자의 정액냄새같은 향기를 날리는 구실잣밤나무가 거리 곳곳에에서 아리까리한 냄새로 처녀들을 흘리므로... 칠천도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토끼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토끼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구실잣밤나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구실잣밤나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조팝꽃&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팝꽃&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최한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최한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보리수꽃&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보리수꽃&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반중일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반중일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좌중화원 칠천도 세잎클로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좌중화원 칠천도 세잎클로버&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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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1 May 2013 15:00:02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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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좌중화원 칠천도 세잎클로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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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장승포의 추억, 등꽃엔딩</title>
	            <description> 29277 등꽃엔딩 ... 장승포의 오월은 눈물나게 아름답다. 2003년 겨울, 다섯번째 아이가 태어난 기념으로 &quot;우리 장승포로 이사갈까?&quot; &quot;그래 그러자 &quot; 그렇게 슬그머니 꺼낸 한마디로 군인처럼 이사를 갔다. 석양이 아름다운 서쪽에서 살았는데 석양이 지겨워질때쯤 해 뜨는 동쪽으로 옮겨 가서 2011년 08월까지 등대처럼 살았다. 눈 감고 걸어도 또렷한 바닷가 정경 , 포말로 부서지며 달려오는 파도소리 들으며 그리 살았다. 조팝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계절의 하얀 밤이면 바다가 키우는 늑대의 울음을 들으며 ' 쉘부르의 우산'처럼 큰 잎새를 매단 오동나무가 언덕에서 도깨비처럼 흉내내는 밤에도 귀신처럼 걸었다. 해안도로를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돌아서 태평양이 시작되는 입구쪽 빨강 등대와 바다 간너편 하얀 등대까지라면 발끝의 느낌만으로도 찾아 갈 수 있는 정직한 마법정도는 부릴줄도 알았다. 아주 가끔씩은 나붓나붓 신작로를 걸어가서 편지나 소포를 부치려고 제비 세마리가 빨강우체통에서 날고 있는 풍경이 있는 장승포우체국에 들러곤 했었다. 조금 더 장승포를 걸으며 이번에는 착한 가격 몇천원으로도 자장면이 맛있어서 광고하지 않아도 소문난 중국집 천화원을 기웃거리며 걷는 재미도 궁금하고 좋았다. 햇살이 쨍쨍거리는 여름에는 냉면이 맛있다고 조금 엉터리로 소문났던 , 하지만 바람맛이 상쾌하고 좋았던 , 할무이냉면집의 일본식 다듬이방에 앉아 함흥냄면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동안 일본의 유황섬 , 이오지마섬을 그려 보곤 했었다. 그리고 두편의 영화중 마국의 시각으로 만든 &lt;아버지의 깃발&gt; 일본의 시각으로 만든 영화&lt;이오지마에서 온 편지&gt;를 떠올리곤 했다. 두편의 영화는 태평양 전쟁중 일본의 이오지마섬을 배경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영화였다. 그 섬 이오지마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에 비유되었으며 물,제비,참새가 없는 섬이라고 했다. &quot;손님,냄면 나왔습니다.&quot; 하고 종업원이 소리칠때까지 장승포와 가까운 일본의 대마도를 멍하니 들여 다 보고 있었다. 바람이 많은 태풍의 계절에는 바다와 가까운 ' 신부동' 까지 성질을 부리며 올라와 쓰나미처럼 겁을 주곤했던 바다 , 그런 와중에도 오늘은 또 누가 결혼할까? 적어도 '신부동''이라면 날마다 한두명쯤 결혼하는 동네여야 한다고 우기곤 했었다. 7인의 신부가 아닌 , 날마다 신부, 그럼 안되는 거니? 날마다 신부로 살아가는 동네에서라면 적어도 두세번쯤의 결혼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행운정도는 당연하게 내몫으로 챙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내게 그런 행운 따위는 오지 않았다. 갈매기 꺼지라 ... 사시사철 시끄럽게 날아올라 끼룩대는 바다의 수다쟁이 갈매기군단들은 비린내 짙게스민 바람냄새를 날리며 가장 높게 날았으며 또 가장 멀리 날았다. 그런 바닷가에 도도하게 홀로 우뚝 솟아 있으면서 갯가 사람들의 호주머니속 쇠주값조차 넘보고 물질해온 해녀들의 소라,전복 판 몇장의 지폐조차 저금이라는 핑계로 홀리는 장승포수협에도 종종 가 보았다. 바닷가는 수다쟁이, 소문젱이도 많다. 지심도의 동백꽃과 팔색조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이라며 작가 윤후명의 입을 빌어 ' 호오이~ 호오래이' 하고 뻥을 치게 하였지만 그 말에 즐겁게 속아서 지심도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홀리듯 가서 마슬가듯 배를 타는 일도 있었다.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섬, '외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섬은 뭇사내들을 유혹하는 사이렌도 아니면서 그 섬에 낚시를 온 서울손님을 유혹하여 눌러 앉히고는 죽도록 고생시킨 외로운 섬이었다. 시나브로 40년 동안이나 섬에 묶여서 실패를 거듭하며 고통과 고독을 처연하게 견뎌낸 사람이 있었다. 어휴, 성질급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낙담하여 현해탄을 건너다 바다로 첨벙했던 윤심덕처럼 자살을 기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섬이 되기로 결심한 남자는 아내와 더불어 섬을 가꾸었고 , 결국 멋진 외도보타니아를 만들었다. 인간승리로 이끈 한남자의 이야기는 세상으로 곧장 퍼져나갔고 영화보다 더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그런 그는 안타깝게도 몇년전 운명하였는데 죽어서도 섬의 전설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의 전설을 확인하러 이곳으로 와서 외도로 가는 유람선을 타게 되었다. 바다는 유혹의 '사이렌'이다 외도로 가는 길은 분명 사이렌의 유혹이었다. 나는 그런 사이렌의 유혹이 무척이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그섬으로 가고 싶은 날에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서 기웃거리기도 했다. 다시 언덕같은 혹은 절벽같은 높은곳에 위치하여 내려 다 보며 바다로 나아가는 배모양을 형상의 예술적인 건축물의 거제문화예술회관이 먼 바다를 향해 있고, 역시 동산의 언덕애 위치한 바다의 별, 해성고등학교가 등대를 바라보다 나른함에 졸고 있는듯 보인다. 이번에는 등나무다. 두모로타리를 오른쪽으로 꺾어 옥림으로 가는 방향의 입구 구석배기에서 보랏빛 고운 꽃을 등처럼 주렁주렁 달고 미풍에 살랑대던 보라색 '등꽃 ' 난 등꽃이 보고싶어 달려왔는데 찬란하게 꽃으로 피어나 고혹적인 유혹으로 스러질듯 현기증에 아득한 몽롱함을 주었던 그곳이 내가 흠뻑 기억하는 장승포였는데 오늘은 '등꽃엔딩'...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걸어도 돌부리하나 까지도 기억할 수 있다. 일곱해동안 정들었던 장승포 그런데 어쩌누, 마음 먹고 찾아 온 두번째 고향같은 이곳에 푸른 등나무에 매달려 바람그네를 타던 등꽃이란 한송이도 없다 . 해마다 이곳에서 만나 마음 가운데서 지즐대던 등꽃이야기 ... 이제 찬란하게 쏘아대는 여름햇살을 막아줄 연두의 그늘을 만들고 있는, 대숲에서 미운 오리처럼 한그루뿐인 등나무에게서 오월의 노래를 듣는다. 장승포에서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외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외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지심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지심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거제문화예술회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거제문화예술회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클린트 이스트우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클린트 이스트우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사이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이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아버지의 깃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버지의 깃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단테의 신곡&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단테의 신곡&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신부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부동&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이오지마에서 온 편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천화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화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거제도 동쪽 장승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거제도 동쪽 장승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해성중고등학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해성중고등학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장승포수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장승포수협&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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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8 May 2013 10:35:03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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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형제는 훌륭했다 . 통영의 자랑 외교관 김용식, 소설가 김용익 </title>
	            <description> 29275 통영의 두형제이야기 요즘 세계는 한국이 낳은 국제가수 싸이를 외치며 열광하고 있습니다. 싸이, 대단합니다.영미권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에도 한국의 가수겸 레퍼로 등재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류라는 화려한 문화콘텐츠의 뿌듯한 성과가 있기까지는 이미 오래 전 세계속에 한국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5년 전 이미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외교관 김용식, 소설가 김용익 형제가 바로 그들인데요. 먼저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1945년 8월15일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압제의 고통에서 해방을 맞았지만 혼란스런 분위기를 틈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다시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중부전선에서 2년여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교착상태에서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3년간의 6.25전쟁을 끝내는 정전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이렇게 암울했던 1950년대에 작은나라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두주먹 불끈 쥐고 세계로 나아갔던, 외교관 김용식 (1913~1995) 1913년 11월11일 경남 통영에서 출생, 통영공립보통학교와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1937년 일본 주오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1939년 일본고등문관 사법과에 합격하여 해방 후 3년간 변호사로 활동하였습니다. 1949년 홍콩주재영사로 발탁된 이래 한국의 독립과 정부수립 한국전쟁 , 세계적인 냉전 ,남북한의 첨예한 대치와 경쟁적인 대결외교가 일어났던 33년동안 외교관과 행정가로서 국제사회에 우리나라의 위상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주호놀루우 총영사 , 주 일본 공사,주 프랑스 공사, 주 제네바 및 유럽 유엔 사무소장, 주 영국대사,주 필리핀대사를 역임하였습니다.1963년 외무부장관으로 기용되었고 유엔대사 대통령 외교담당 , 특별보좌관을 거쳐 외무부장관,,국토통일원장관을 연임하였으며, 1980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 1995년 3월31일 향년 82세에 숙환으로 별세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노력한 분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 김용식의 저서 ' 새벽을 여는 약속' 마침 생가로 가는 길에 주전3길에서 만난 통영시민 한분께 외교관 김용식을 혹시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quot;알다마다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은 무려 33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국익을 위해 세계로 나가 큰 일 참 많이 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완전 폐허더미로 절망적이었지만 그런 나라를 대변하는 외교능력을 발휘하였지요&quot;.(통영시 김정식 76) 영어의 바다애서 헤엄치다 이번에는 미국으로 날아가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설을 쓰겠다고 덤빈 용감했던 소설가 김용익을 알아봅니다. ' 소설가 김용익 (1920~1995) 192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 중앙중학을 거쳐 일본 아오야마청산 학원 영문과를 졸업 , 1948년 1차 도미하여 남플로리다 대학교 켄터기대학교와 아이오아 대학교 대학원 서설 창작부에서 수학,맥도웰콜로니 Mcdowel Colony,야도 Yado 헌팅턴 하트포드재단 Huntington Hartford Foundation, 버지니아 창작 예술센터 Virginia Center Art 둥 미국의 예술가 지원기관 Artist Colony에서 창작지원금을 받고 집필활동, 1957년부터 64년까지는 고려대 이화여대 영문학과에서 강의 이 시기에 &lt;한국의 달 Moons of Korea&gt;등을 국내외에서 출판하였습니다. 한국인의 서정을 영어로 노래하는 작가였던 그의 주요 작품은 대부분 영어로 집필된 것이었으나 국내에서는 한굴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1964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서일리노이 대학교 바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피츠버그 듀켄 대학교 등에서 소설창작을 강의하였습니다. 1975년에는 미국국가문학지원금을 받았으며 1981년과 1983년에는펜실베니아 문학지원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82년 &lt;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자료집 &gt; (연합통신발간~ 영문판)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3명의 한국인 작가 (most famous writers) 강용홀 김은국과 함께 소개 됐다. 1990년 &lt;꽃신 The Wedding Shoes&gt; 으로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는 제1회'해외한국문학상', 같은 해 9월 15일에는 제 7회 충무시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1994년 고려대 초빙교수로 귀국했다가 1995년 4월11일 지병인 심장병으로 서울 고려대병원에서 별세, 통영시 용남면 선영에 묻혔습니다. 2년 전 작가 김용익의 처가가 있았던 거제시 옥포동으로 그를 아는 지인을 찾아 가서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quot; 김용익선생 참 대단한 분입니다. 세계적인 소설가지요. 선생은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명성이 더 대단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여러대학에서 소설창작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어요. 모국어도 아니고 둘째말(일본어) 도 아닌 세째말(영어)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통영이야기를 '꽃신'이란 소설속에 고스란히 담아내었습니다, 힘 없고 가난한 우리민족의 슬픔과 한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세계를 감동시킨 한마디로 위대한 사람이에요 . &quot;(거제시 옥포동 김형래 74)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쓰는 모험' 1948년 Florida 상대에서 학과목 이외에 소설을 시작했을 때 기숙사에서 한방을 쓰던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 같으면 이 나라에서 그렇게 시간을 허비 안 할 것이다.. 만일 미국서 네가 책 한 권을 출판하면 내가 네게 500불을 주겠다. 미국의 출판계에 뚫고 들어가기란 영어를 모국어로 타고 난 미국 작가에게도 거의 불가능한 모험이다.&quot; 나는 영어를 마스타 했다기에는 감감하지만 나는 그 말을 귀담아 듣지를 않았다, 제2차 대전 때 동양에서는 영어 공부 하는 것이 제일 시대에 안 맞는 것이라고 내 주의 사람들이 우겼지만 나는 영문학 공부가 하고 싶어서 했다. 일단 미국으로 유학 오니 어찌나 글을 쓰고 싶어서 내 영어가 소설 쓰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아침 일찍 세 시간씩을 꼭 책 쓰는데 보냈다. 영어공뷰를 더 할수록 내가 지금 하는 '말' 문제가 자꾸 더 크게 늘어났다. 한국 감정과 사상에 젖어 있는 어떤 관념과 물건을 영어로 그리려고 하니 나는 한국어의 양이 두 말 사이에 아주 단순한 표현에서도 뉘앙스에 대해서 많이 느끼게 되었다. 가령 &quot;Kim entered the house&quot; 하면 아주 단순하게 보이지만 한국잡의 구조에 대해서 확실한 시각적 &quot;상 &lt;Visual image&gt;을 갖지 않았다면 독자의 이해가 완전하지 못하다. 한국사람이 &quot;집 안에 있다&quot;in the house&gt;하면 마당에도 있는 것이고 마루에도 있는 것이고 또는 조그마한 방에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서구의 읨로서 &lt;집에 들어갔다&gt;는 각별한 그림을 주려고 하며는 house보다도 room에 들어갔다고 &lt;간혹&gt;해야 되었다. 내가 여기서 &lt;간혹 &gt; 이라 하는 의미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의 손들을 마루에서 대접하면서도 대접을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까닭이며 또 한국식으로 방에 들어갔다고 하는 말은 영어의 의미로서 보다도 좀더 친절한 행동이 되기가 쉽다. 또 한가지 &quot;한중우 가랭이에 두 다리 끼고 그 사람을 환영했다&quot; 고 우리 민속의 표현을 하려면 한국 바지는 미국 바지보다도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해 줘야 되니(넓다baggy) 라는 형용사를 아쉬운대로 하나 넣어 줘야 된다. 문제가 이렇게 많은데 내가 말한 것은 조그마한 예(example)일 뿐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영어뿐만 아니고 말으 뉘앙스에 대해 늘 물어가면서 생각했다. Florida에서 3년 동안 공부하면서 나는 학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또 Kentucky 대로 책 쓰는 도박을 계속하려고 옮겨 갔다. 겨울 방학 때에 나는 가죽으로 표지가 된 귀중도서 cover를 wax로 닦는 일을 도서관에서 한 시간에 50전씩 받으며 했는데 , 늘 나의 마음에는 장차 내가 쓰는 책이 출판되고 이 빛나고 향기로운 가죽으로써 cover가 되는 꿈을 꿨다. 이층 귀중 도서실에선 나 혼자만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두 손이 기름과 wax에 가득 차서 책 cover를 윤내갈 때에 나는 시집을 한 권 내 앞에 두고 소리를 내 가며 읽었다. 詩를 읽으면 페이지를 자주 넘기지 않아도 되고 또 그 시에 담겨 있는 선율있는 목소리가 그리 좋았다. 내 더러운 손으로 그 페이지를 곧 넘길 수 없기 때믄에 내가 읽는 시가 중단될 때마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레코드에 금이 가서 바늘이 빠진 것같이 실망했다. 하루는 Rovert Frost 의 &lt;The Rood Not Taken(가지 않은 그 길)&gt;을 읽고 있을 때 그곳 부도서 관장이 바로 내 뒤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도서관측은 엄격히 다스렸으니 나 보고 이 부인이 야단을 칠는지 혹은 파면시킬는지, 내가 그 여자 보고 인사도 안 하고 쳐다도 안 보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그 여자의 까칠한 손이 마치 그 책을 뺏을 것같이 선뜻 다가오더니 어쩐지 뺏지 않고 그의 손가락으로 한 페이지를 넘겨 주고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가버렸다. 그 시를 마지막으로 읽을 때에 나는 마음이 퍽 감명했고그 시의 마지막은 &lt;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그것이 그 작은 일에 그토록이나 큰 차이를 가져왔다)&gt; 였다. 나는 책 쓰는 모험을 계속해 갔다.1953년 lowa 대학 창작부에 등록했을 적에는 벌써 6년 동안이나 소설을 쓴 셈이었고 장편 소설 하나를 끝마쳤다. 그래서 New York의 여러 출판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기차편으로 원고를 보내야 했고 돌려줄 우표 까지 넣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원고를 우송하면 거의 5달러가 든다.원고가 퇴짜를 맞고 나에게 돌아오기에는 한달가량 걸려서 이것이 매달 평상 비용이 됐다. 원고 우송하는 데 보태쓸려고 버스 값을 아껴서 나는 lowa 市 교외에 있는 기차역으로 늘 걸어갔다. 기차 수송계 사람은 늘 보내면 자꾸 돌아오는 우송물을 보고 아주 이상한 눈치로 나를 대했는데 하루는 &quot;대체 이 안에 뭣이 있는가?&quot; 하고 물어서 나는 설명을 하니 &quot;lowa 市의 한 늙은 영감이 당신 같이 메달 원고를 부치려고 늘 나타난다&quot;고 얘기를 했다. 그래도 나는 매달 그곳에 가니 그 우송계 계원을 만날 때마다 조금 창피스러웠다. 그럭저럭 서로 알게 됐는데 나에게 한국말은 모국어고 일본말은 일본 점령당시에 배운 말이고 영어는 중학서부터 배우기 시작했으니 세째말이란것을 그도 알았다. 하루는 그 노인과 그의 원고에 대해 어찌 됐느냐 물으니 &quot;영감 원고는 늘 돌아왔고 지금은 그 영감도 죽었다&quot;고 했다. 실망했지만 나는 계속 원고를 부쳤다. 소설 원고를 우송하고 받는 게임을 계속 하면서 몇 개 쓴 단편소설도 같이 부치고 받았다. 퇴짜맞은 통지서가 자꾸 쌓였지만 영어를 마스터하는 데는 좀 진보가 있었다. 날과 계절이 자꾸 지나가니 초조해졌다. 그전부다 더 힘을 내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메인(Main)주에 한 번 여행갔을 적에 우연히 바닷가에 서 있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 때 그 사람은 보기에 도스토에프스키의&lt;백치&gt;같이 고독해 보여서 내가 말을 건 게 계기가 되었었다.그의 집안도 알게 되어 다음 여름방학에는 lowa에서 Main주로 콤페니언 (companion) 직업을 얻어갔다.가는 도중 기차 안에서도 아침 일찍 세시간의 글쓰기를 종교의 의식처럼 계속했다.낮에는 그 사람의 companion으로서 또 그의 조카들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나는 영어의 리듬을 즐겼다. 밤에는 늦게까지 글을 썼는데 동네에 &quot;한국사람은 잘 적에도 불을 켜놓고 자기를 좋아한다&quot;는 말이 돌았다.방학이 끝나면 lpwa市로 돌아오는데 순전히 글을 쓰려고만 돌아왔다. lowa 市의 iand, lad, 미세스 앤더슨은 &quot;주말에도 방을 떠나지 않으니 방소제를 도무지 할 수 없다&quot;.고 불평했고 또 &quot;나도 자식이 있는데 외국에 가서 항상 방 안에만 앉아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quot;고 딱딱거려서 그 할머니 말이 옳다고 하면서 방을 나올 때는 이제는 living language를 해 보려 했다.학교 야경꾼하고 혹은 밤일 하는 소제부들 하고 늘 같이 돌아다녔고 그 사람들에게서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영어를 또 미국물정을 귀담아 들으면서 수업료 없이 배웠다. 그 대학병원 카페테리아에서 일자리를 얻어 갈 때에는 시를 하나 둘 조그만 종이조각에 써 가지고 강을 건너 걸어 갈 적에 늘 읽었다.그리고 식당에서 음식을 써브할 적에도 카운터에 그 종이를 숨겨놓고 음식을 나눠 주며 그 시를 암송하려 애썼는데 한 이 주일이 되니 파면이 됐다. 사실인즉 학위라고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택한 학과목에 A 를 받더라도 별로 좋지는 않고 다만 내가 쓴 소설 하나를 출판사에서 받아 주기만 늘 원했다.한번 퇴짜받은 편지들이 쌓여가는 우두커니 보고 있으면 아마 이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토요일날 창 밖을 보니 눈이 많이 내리고 있는데 나는 대체 한국사람으로서 둘째말로서 아닌 세째말로서 인간 감정의 드라마을 소설로 내가 쓰려고 하는 괴상망측한 생각을 어떻게 했는가 하며 자신을 의심했다. 아주 기가 죽어서 바깥으로 나가 타운에 가서 포켓에 남은 돈을 다 털어 축음기 값싼 것을 하나 샀다. 적어도 음악 듣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비발디의 &lt;4계&gt;를 빌려 가지고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계속 틀면서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듣고 눈오는 것을 보니 이상한 환상이 나타났다. 한국 꽃신 한 켤레가 나타나더니 눈 오는데 자꾸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내가 마음 가운데서 그 꽃신을 자꾸 따라가는데 그 꽃신 신은 사람의 뒷 모습만 보고 조그마한 조각배 같은 흰버선 신은 꽃신의 뒤축을 내가 자꾸 보고 있었다. 그 비단 꽃신이 먼산을 자꾸자꾸 걸어가고 있고 대체 그 신을 신은 여인이 누군가 보고 싶은데 그 신 신은 아가씨와 그 신은 도무지 돌아서지 않고 볼 수가 없었다.그 아름다운 꽃신을 안 놓치려고 애쓰며 그 신발을 자꾸 따라 갈 때에 그 제일 좋은 비단이 눈에 젖을까봐 걱정하며 따라가는 내 가슴이 자꾸 발닥거렸다. &quot; 이 신을 잡을 수 없는 임자를 내가 한 번 보았으면 진짜 얘기를 쓸 수 있겠지 .&quot; 환상에서 나와서 결심을 하고 새 정신이 확 들었다.하루종일 먹지 않은 배가 고프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길모퉁이 식료품 거게(grocery) 에 가니 &quot;메리 크리스마스&quot; 명랑하게 인사하고 몇 마디 격려하는 말을 해 준다.나는 샌드위치 고기를 두세 쪽 달라고 했다. 원고를 부치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축음기 사려고 갑자기 큰 소비를 한 때문에 음식 살 돈이 별로 없었다.그런데 그고기 카운터 책임자 (butcher)큰 고기 덩어리를 잡기에 &quot;아니 두 서너 쪽만 주시오&quot; 급히 말하니 곧 그 고기를 턱 싸서 붉은 연필로 20센트라고 섰다.이 고기는 2달러어치가 될 것이었다. &quot;이거 진짜 20센트요?&quot; 하니 &quot;예스 씨----&quot;했다.캐셔에 지불하러 가니까 여자는 고기 꾸러미를 자세히 보더니 나를 한 번 건너다 보고 아무 말 없이 20센트를 받았다. 그 후로도 내가 그 우육상에 가기만 하면 고기 뭉치가 더 커지는 것 같고 값은 항상 20센트였다. 이 우육상 때문에 &lt;꽃신 (단편&gt;을 쓰는 한달 반 동안은 잘 먹었다.이 &lt;꽃신&gt; 얘기에는 한국 산간에 있는 백정이 망해가는 꽃신집 어린 딸에게 적은 돈을 들고 오지만 늘 관대하니 많이 준다.또 백정들의 눈을 통해서 그 얘기를 다룬다.내 속으로 이 원한 (꽃신)을 내 마음 가운데 따르는 동안에 영어로서 쓰는 글 가운데 내 자신의 한국말의 리듬을 잡으려 하고 또 동시에 모든 것을 구체적 이미지(image)로 표현함으로써오해받을 찬스를 주지 않으려 애썼다.어떠한 신(scene)을 묘사하기가 영어로서 곤란할 때마다 늘 유혹은 슬쩍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었다.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작품에 꼭 맞는 (속하는) 어떠한 신이나 단 말 한 마디라도 안하고 어물어물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고 이 가시같이 어려운 말 또는 글발, 언어의 장멱을 가져오는 것은 바로 그것이 그 소설의 맥 뛰고 숨쉬는 그 말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꼭 찾으려고 애쓴다. &lt;꽃신&gt;을 완성한 다음에 lowa大 창작부에 있는 시인 Paul Angle에게 주었는데 그가 바빠서 &lt;angel of Forest&gt;의 작가인 Margaret Young 에게 나의 이 원고를 줬다.나를 전화로 불러서 &quot;This is Wonderful. 바로 Harper's Bazaar에 보내시오&quot;크게 흘분한 Margaret Young 의 목소리가 들린 지 열흘 후에 나의 우체통에는 늘 눈 익은 보기 싫은 누런 봉투 (되돌아온 원고)가 아니고 Harper's Bazaar誌의 편집자 Vice Moris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lt;꽃신&gt;을 출판하겠다.하며 25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큰 기쁨의 이 때에 나는 같이 좋아할 사람이 없었다. 이 소설(꽃신)이 출판되자 고드 London Bazaar誌에서 국제 전보가 왔는데 &quot;그 &lt;꽃신&gt;에 25기니(guonea)를 주겠다는 것&quot;이었다.동시에 lowa 市에 아마튜어 발레단체가 그 얘기를 위주로 발레를 기획하면서 길 모퉁이 식료품점(grocery)앞 전봇대에 &lt;발레 꽃신춤&gt; 이란 광고가 붙었다. 내 단편 소설이 Mademoiselle 誌, 이탈리아의 國際잡지 Botteque Oscure 誌,New Yorker誌, 등에 나온 이후 그 돈으로 나는 1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나는 영어와 한국 말로 글 쓰는 것을 계속했다.1960년 나의 옛 친구를 만나러 미국으로 다시와서 Kentucky 大에 들렀을 때 그 귀중도서부 부도서관장을 만나보고 나는 퍽 기뻤다. 그 부인은 내가 일하는 동안에 시를 읽던 것과 나를 위해 페이지를 넘겨준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부인이 나에게 요즘은 뭣을 하느냐 묻기에 美잡지에 소설을 썼고 또 Little Brown 출판사에서 청소년 소설 두 개가 나왔고 Alfred A. Knopf출판사에서 장펀&lt;뒤웅박&gt;이 나올것이라고 말하니 믿지 안니하는 것같이 천천히 도서관 목록을 보고는 그리 좋아하면서 중국 요리점으로 디너(dinner)를 바로 초청해 줬다. 그기서 저녁을 먹은 후에 그 부인의 자동차로 양들이 먹고 있는 초원&lt;Blue grass country)을 옛날 얘기를 하면서 빙빙 돌았다. 그 해 Little Brown출판사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는데 Florida Kenturcky에서 쓴 청소년 소설 &lt;The Happy Days&gt; 책을 아름답게 가죽으로 장정한 것이었다. (A Book Writing Venture; 1964년 9월 &lt;The Writer&gt;誌 게재) ~ 작가 노우트~ 통영시 태평동 22번지 김용식, 김용익 생가 마침내 기념관으로 태어나다 2013년 04월18일과 04월20일 양일간에 걸쳐 통영시 태평동 22번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외교관 김용식(형님), 소설가 김용익(동생) 형제의 생가를 찾아갔습니다. 4월20일(토))은 비마저 추적추적 내려서 우산을 들고 갔더니 안내소 여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곳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찾는 이가 거의 없는데 ,하루 글러 두번씩이나 ?...라는 눈빛이었습니다. &quot;우산은 어디다 둘까요? 빨간 카페트와 예쁜 꽃신이 빗물에 젖으면 어쩌지요?&quot; &quot;괜찮아요 걱정마시고 그냥 어디라도 편하게 두세요&quot; 라며 그녀가 사슴같은 눈망울을 굴리며 맑게 웃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통영의 자랑인 두형제가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냈던 주전골 생가는 한동안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통영시가 김용식,김용익 형제를 위해 기념관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수환목사(김용식의 장남)가 사비로 구입 기부채납, 통영시에서 내부를 조금 리모델링하여 지난 04월 17일 기념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답니다. 뜻깊은 개관식에는 '꽃신'의 작가 김용익의 둘째 사위 정운성(조선일보 기자)씨가 참석하여 김수환목사를 대신하여 축사를 읽었습니다. &quot;통영에서 기념관 조성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으며 이집에서 살았던 저의 가족 모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고향을 간직할 수 있을것 같아서 집을 선뜻사서 기증했습니다&quot; 김용식, 김용익 기념관이 탄생하기까지는 통영의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인 '통영예술의 향기&quot;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2013 04 17, 기념관 개관식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조국이 암울했던 시기에 세계로 나아가 용감했던 두형제이야기로 가득 채운 기념관으로 갑니다. 소설가 김용익의 대표작 ' 꽃신'&lt;The Wedding Shoes &gt; &lt;Silk Brocade Shoes&gt; . 마침 가념관 개관식이 있었던 뒷날이라 담벼락엔 두형제의 모습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듬성듬성 피어난 유채꽃 너머로 기념관이란 표시가 대문가에 붙어 있지 않았더라면 외형적으로는 크게 달라진것이 없어 그냥 평범한 이웃집처럼 보입니다. 주전골 혹은 태평동 22번지 집 앞의 골목길 소설 '꽃신' 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꽃신집은 작가가 살았던 바로 앞집이었다고 합니다. 울타리 너머로 골목길의 폭은 두팔 벌리면 닿을거리의 앞집에는 꽃신장이가 어린 딸과 부인과 함께 가난하게 살았지만 꽃신을 만든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작품을 읽는 중간중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 큰길에서 동쪽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서며 '꽃신' 이 태어났던 당시가 느껴질까 ?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골목길로 쏟아집니다. 근처의 야트막한 울타리 너머 낡은 기와집쯤 같습니다.내용을 들어보니 그 집의 남자는 아마도 어제 나가서 한댓잠을 자고 돌아온것 같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며 기다린 아내에게 미안해 하는 기색조차 없이 벌렁 드러 누워버렸는지 분에 못이긴 그의 아내가 악을 쓰며 대성통곡을 쏟아내자 찢어질듯 고함소리가 담을 넘어 좁다란 골목길을 가득 채웠습니다. 서쪽의 대문앞에서 기념관을 들어서니 출입문이 동쪽에도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 대문은 기존에 있던 서쪽대문 앞입니다. 기념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두사람을 기억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찾는 명소가 되고 또한 교육의 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통영시 태평동 22번지 , 주전골 13길, 대문옆으로 외교관 김용식,(1913 -1995 ) 소설가 김용익 (1920-1995)살았던 곳으로 표지석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2년전 태평동 22번지 , 풍경 리모델링 전 다른사람이 살고 있었던 2011년 가을, 이곳을 찾았더니 &quot;그렇게 휼륭한 분이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생가였군요 잘 몰랐는데 검색 해 봐야겠어요&quot; 라고 말하던 젊은 남자는 집을 선뜻 내 놓고 다른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리모델링 전 김용식, 김용익 생가에서 , '빨강머리 앤 ' 2011년 늦은 가을,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로 가득한 뜨락이 무척이나 서정적이었습니다. 사루비아꽃과 봉숭아꽃이 뜨락을 가득 채웠던집 이곳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울너머 신집에서 꽃신(The Wedding Shose)을 만드는 광경을 보며 자랐다고 하였습니다. 훗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영어로 소설쓰기에 끊임없이 도전하였지만 출판사로 보낸 원고는 번번이 퇴짜를 맞고 돌아오자 작가는 부질없는 일에 도전하고 있는건 아닌지 회의를 느끼게 되었으며 여러 날 먹지도 않고 낙심하고 있던 어느 날 , 눈 앞에서 통영의 꽃신이 뒤축을 간들거리며 나타나더니 둥둥 떠서 지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 올랐고 그 아름다운 환영을 쫓으며 꽃신을 신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쓰며, 또한 떠오른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어코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태평동 토성고개 너머로 꽃신쟁이의 어린 딸을 좋아했던 백정집(통영에서는 태울의 집으로 불림))이 있었다고 작가의 육성이 녹음된 영상물을 통하여 작품이 태어난 배경과 더불어 ' 책 쓰는 모험'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산고였는지를 들려 주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나는 우리나라에서 또는 통영에서 이렇게 훌륭한 두사람이 알려지지 않는지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특히 세계가 감동하고 격찬한 소설가 김용익의 작품 '꽃신, 뒤웅박, 행복의 날, 겨울의 사랑 해녀 앗시땅, 금시계 ,동네술,뱜배 등은 교과서에 수록하여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좋은작품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작가가 살았던 일제강점기와 6,25 사변까지의 고단했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힘 없는 작은나라를 위해 33년간 큰 외교를 펼친 외교관 김용식과 '이상한 나라 한국' 1950년대의 서사시 구미 10여개국에서 극찬한 마술의 펜 '꽃신' 의 작가 김용익을 세계는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두 형제는 가난하고 힘 없는 작은나라를 큰 외교와 펜의 힘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 기념관의 내부 구조는 살던 집을 조금 내부수리한 23평 정도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의 33년간의 외교활동을 알기 쉽게 영상물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 외고관이 꿈인 청소년들에게 이 곳은 분명 좋은 교육의 장이 돨것 같습니다. 주미대사 시절 김용식은 1970년 미국 의회 의원들에게 로비를 시도한 '코리아게이트(박동선사건)'으로 한국과 미국간의 불편한 관계가 조성 되었을 때 주미대사로서 한,미동맹 발전을 이끌고, 한반도 평화 정책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펼치는 등 고도의 외교력으로 외교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쉬지 않고 노력했던 열정을 기억합니다. 김용익의 소설 '꽃신' 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통영별곡'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꽃신'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까지를 다루었으며 우리민족의 전통을 상징하며 결혼할 때 신부가 신었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신발이었습니다. 작품을 들여 다 보면 결혼하는 신부가 신었던 예술품에 가까운 꽃신을 만드는 장인의 자존심이 도도하게 혹은 외롭고 쓸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문화말살정책으로 값싼 고무신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여 한국의 전통인 꽃신을 신고 혼인하는 풍습까지 무너뜨리고 맙니다. 당시 국내에는 500여명이 넘는 장인들이 꽃신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고무신의 공격에 밀려 나라의 운명처럼 몰락해 갔습니다. &quot;상도야, 너는 얼굴이 깨끗하고 잘생겨서 장차 중매쟁이 신발이 닳아지지 않겠다. 그러나 신부의 부모는 중매쟁이가 나서기를 바란단다 그 은방울 같은 구수한 이야기가 부모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거든...&quot; 신집 부인은 이렇듯 백정의 아들 상도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백정의 아들 상도에게도 분명 행복을 꿈 꾸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집은 몰락하여 신집 딸이 폭격에 죽고, .. '꽃신'은 정말 슬프게슬프게 끝이 납니다. &quot;인간은 살생을 해서 살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백정의 자식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꽃신은 참 아름다운 신이고 예술이다.&quot; 라고 작가의 육성으로 작품의 해설을 들을 수 있어 작가와의 대화를 직접 나누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기념관을 찾았던 이날 열려 있던 현관문 사이로 하얀 꽃신 한켈레가 나타나더니 수줍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quot; 통영의 꽃신을 아세요 ?&quot;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꽃신 네켤레가 몇송이의 꽃을 달고 날아갈듯 나붓나붓 코를 흔들며 백정집 아들 상도를 기다리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꽃신' 이야기 1955년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면서 통영의 마지막 읍장을 지낸 아버지 김채호는 기독교 신자로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아들을 데리고 여황산에 올라 머리를 숙이고 간절한 기도를 한 후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나라가 어려운 때였지만 3남매는 통영에서 단란한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꿈을 키워 나갔으며 훗날 세계의 무대에서 이루어낸 업적의 김용식, 김용익 형제는 통영과 대한민국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 김용식은 1948년부터 독립한 우리나라가 직면한 여러 과제들을 해결함은 물론 ,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였으며,, 작은 아들 김용익은 바다의 땅 통영에서의 유년 시절에 보았던 기억을 소재로 삼아 영어로 소설을 썼으며 또 다시 재창작하여 우리글로 쓰는 등 '책 쓰는 모험'을 통해 세계에 자신의 작품을 알렸습니다. 영어로 쓴 작가의 작품들 지도에 그려진 '통영 가는 길' 서울에서 통영으로 가는 길이 서해안 (황해)를 경유 , 제주도로 돌아서 간다고 그려져 있습니다. 'The Shoses from Yang San Velley' 역시 한국어로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91년 제1회 해외한국문학상을 수상한 후 , 김용익의 두 번째 한국어판 책 '씨값,&quot;아시땅' &quot;해녀' '상랑' '푸른 씨앗 등 5편울 수록 발행되었을 때 머리말에 통영의 한 소녀 독자가 책방에 가서 &quot; 꽃신 주세요&quot; 라고 했는데 &quot;신집에 가봐라 &quot; 는 책방주인의 대답을 듣고 돌아나왔다는 일화를 적고 있는데 소녀를 향해, 혹은 책방주인을 향해 . &quot;내가 꽃신을 쓴 작가요, &quot; 라고 한마디 정도는 했을법한 상황에서 그냥 물끄러미 보고 섰다가 되돌아선 확실히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베스트셀러를 혐오했으며 작가가 쓴 책중에 어느 한 권도 베스트셀러가 된 책 또한 없었습니다. 작가 김용익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탓에 검색을 통해 더 많은 사진을 찾아 보았지만 푸른빛깔의 옷을 입은 한장의 사진뿐이라 늘 아쉬웠는데 기념관에 와서 제법 많은 사진을 만나 봅니다. 학창시절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을 구하느라 고생 좀 했다고 합니다. 작품연보 세계어로 쓴 한국인의 삶과 애환 김용익의 작품은 아름다운 한국의 바다와 산을 배경으로 한국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한다. 한국적 토속성의 추구는 작가의 일관되고 성실한 작업이며, 한국문화의 선언이며 자부였다 김용익은 가난한 해녀와 농부 , 무구한 어린이, 걱정 많은 아낙네 , 장애인이나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국전쟁을 전후한 가난과 피폐 , 신구세대의 갈등, 아름답고 평화로운 한국인의 서정과 사랑을 그린다, 그의 작품은 가슴 저린 슬픔과 애달픔 , 좌절과 소외로 전개되지만 체념이나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 항상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밝은 희망으로 마무리 된다. 4편의 중장편과 40여퍈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작품활동을 통해 입증한 김용익은 '겨울의 사랑 (Love in Winter)에서 말한다. &quot;자 보십시오 이것이 한국입니다 나는 힘써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후 한국인의 빈곤과, 논리의 결핍과 ,부패와 혼돈입니다. 그러나 세계 도처의 어느 국가나 국민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용기와 명예를 지닌 한국,바로 그 모습입니다.&quot; 마술의 펜이라는 세계의 극찬을 받은 '꽃신' 꽃신 &lt;The Wedding Shoes &gt;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일제강점기 민족의 전통말살정책과 6,25 한국전쟁의 비극을 잉태한 참 아픈 사랑을 아름다운 소설 '꽃신'에 담아 내었습니다. 상도의 슬픈 사랑이, 신집 주인의 눈물방울처럼 가슴에 맺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세계가 격찬한 소설 '꽃신'은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등과 함께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새드무비 같고 한편의 시같은 작품으로 중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영어로 쓰인 이 작품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나라에서는 '마술의 펜'이란 격찬속에서 오래전부터 교과서에 수록되어 배우고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꽃신' 은 영어로 쓴 작품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영어교과서에 수록하여 공부한다면 이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생각 해 봅니다..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역사는 나보다 내 동생을 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동생의 이름으로 인해 나의 이름도 거론될지 모른다&quot; . 그의 말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해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해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상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상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백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백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꽃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꽃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뒤웅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뒤웅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겨울의 사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겨울의 사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외교관 김용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외교관 김용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소설가 김용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소설가 김용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통영 마지막 읍장 김채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통영 마지막 읍장 김채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앗시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앗시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동네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네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태올의 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태올의 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싸이 브리태니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싸이 브리태니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책 쓰는 모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책 쓰는 모험&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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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 May 2013 20:26:42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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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숨막히게 멋진 애인이 생겼어요</title>
	            <description> 29270 쥐꼬랑지만한 겨울 해가 서산을 넘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quot;여보세요? &quot; &quot;사랑해 ... 나 애인이야 이제부터 당신이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애인이 되어주기로 했어 그러니 오늘부터 애인이 하자는대로만 하면 돼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 모시러 집으로 갈테니 예쁜 옷으로 갈아 입고 외출준비하고 기다리세요&quot; 스무날째 까칠하고 시니컬한 기분이었는데... 퇴근 후, 제트기보다 더 빠르게 날아와서 숨을 헉헉거리며 애인이라고 힘 주어 말하는 한 사내가 차를 들이대며 타란다 친절하게도 차 문을 열어주고 곧 이어 안전벨트까지 채워주더니 꼼지락거리는 손을 덥석 잡는다 &quot;왜 그래 지금 뭐하자는 시추에이션?&quot; &quot;응 애인이 하는 코스를 제대로 밟는거야 애인은 차를 타면 먼저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 주는 거야 그리고 한손으로 운전을 하며 사랑해 사랑해 라고 연신 속삭이며 분위기를 잡는거야&quot; &quot;피피피 갑자기 왜 애인이 되겠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을 하는거야~~ 애인이라면 적어도 송승헌같이 감성적으로 생겨야지 ? 배불뚝이에다 머리는 홀라당 까진 멋 없는 사내랑은 애인하기 싫어 &quot; &quot;그래도 멋진 애인 될테니까 두고 보라지 쫀득쫀득한 애인 될테니까 믿어 보라고. 난 말이야 근사한 애인이 되는 방정식을 다 알고 있어 따라만 오세요 &quot; &quot;어딜 가시려고...?&quot; &quot;먼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최고 명품 식사를 하고 음악회에도 가야지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커플룩을 사서 입고 언제나 다정하게 손을 잡고 함께 걷는거야 그리고 밤 하늘의 별을 세기도 하고 가끔씩 손을 허리에 두르고 감미로운 이야기도 들려 주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살짝 안아주며 갑자기 키스세례를 퍼붓는거야 그리고 애인이 원하면 하늘의 별도 따다 주겠다고 용감하게 약속하며 이 세상 떠나는 시간까지 변치않는 사랑으로 지켜준다고도 해야겠지 음 그러고 보니 내일 모레는 크리스마스군 그 날은 근사한 이벤트도 열어주어 애인이 깜짝 놀라 감동하도록 해 주어야겠지 기대하시라&quot; &quot;왜그래 평소대로 하시지 갑자기 행동이 바뀌면 죽는다고 하던데 아저씨 살짝 맛이 갔어요?&quot; &quot;아니 애인더러 아저씨라니 자기야 , 혹은 오빠라고 불러야지&quot; 그리고 100m 달리기 결승점에 골인하듯 헉헉대며 달려 간 뚱보 애인이 음악회의 티켓을 간신히 사고 음악회의 시작과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애인이 좋아할거라는 생각으로 분위기가 썩 괜찮은 음악회에서 또다시 머슴같은 손으로 덥석 손을 잡는다 정말 적응 안 된다 24년간 굳게 지켜 온 우정을 이제 사랑으로 옮겨가려는 어느 사내의 방향설정이 그냥 힘들뿐이다. 사내는 음악회에서도 은근슬쩍 분위기를 잡더니 그 감미로움을 계속 이어 가야한다며 집에까지 따라온다 그리고 방안까지 쫓아 들어와서 멋진 애인이 되려면 사랑하는 연인의 꿈속까지 지켜주어야 한다며 미인은 잠꾸러기가 되라하고? 애인은 불침번을 서야한다나? &quot;자 사랑하는 애인님, 제 손을 잡고 달콤하게 잠 드세요 &quot; 어느 날 갑자기 요런 숨이 막히게 멋진 애인이 생겼다. 경상도 사내의 이런 행동은 돌발상황이라 많이 부담스럽다. 혹시 이런 애인 필요하신 분 안 계세요? 잠깐만이라도 빌려드릴게요 ㅎㅎㅎ !!! 이 글은 2009년 12월 23일에 썼던 글입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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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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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나의 판매 가격은  1,000억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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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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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lt;통영&gt;  어느 위안부 소녀이야기 ' 나를 잊지 마세요'</title>
	            <description> 29264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그 세번째 포스팅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에 위안부 소녀상, '정의비' 세우던 날 소녀이야기... 지난 04월 06일 경남 통영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추락한 인권과 명예 회복을 위한 '정의비 '( 통영 소녀상)가 세워졌습니다. 계절은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4월이라 때마침 내리는 비와 함께 길 위로 하얀 꽃비가 쏟아져 내렸으며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밑에서 짓밟혀 뭉개지기도 하였습니다. ' 꽃비되어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은 마치 가녀린 조선의 어린 소녀같았고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은 성(Sex)에 굶주린 일본군처럼 보여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비유가 다소 엉뚱한가요? 일제강점기,(1910,08,29~1945,,08 ,15) 우리지역 통영, 거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 간 통한의 고장이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이지역에 서울의 일본대사관앞 국민소녀상 ' 평화비' , 미국의 위안부 ' 기림비' 등에 이어 통영의 소녀상 '정의비'를 세우게 되었음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역사의 진실' 로 인식될것입니다. 1991년 8월 , '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 故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중언으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및 역사 바로알리기가.' 수요집회'로 이어지고 있을무렵 ,인권의 메카로 불리는 통영에서도 70여년 가까이 철저히 잊혀진 시간을 음지에서 살아야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96, 통영) 할머니가 용기있게 걸어 나와 외치며 ,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김할머니는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위안소에서 겪었던 '성노예' 의 잔학성과 반인류적 인권 유린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외치는 인권운동가로 변신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한편 , 이날 김복득할머니를 비롯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대표 송도자), 이군현국회의원, 김동진 통영시장 ,관계기관장, 시민들과 통영,거제, 창원, 부산에서 온 고등학생들과 함께하는 자리여서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벅찬 감동의 장이 되었습니다. 추모비(통영 소녀상) 건립은 통영,거제시민들의 순수한 모금으로 이루어졌으며 감할머니께서도 통영,거제 추모비 건립을 위해 200만원을 쾌척(快擲) 하였습니다. 정의비가 세워지던 날의 벅찬 감동 함께 보시죠. .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에 천년을 이어갈 '정의비 ' 가 우뚝 섰습니다. 정의비 (正義 碑) 비문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정의 비(正義 碑)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sexual slavery)로 강요당한 약 20만 여명으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와 여성들을 추모하고 통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모질게 살아남아 온몸으로 일본군의 만행을 증거하며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세계 곳곳에 알리며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의 용기어린 외침을 받들어 다시는 이 지구상에서 어린소녀와 여성의 존엄을 말살하는 반인륜적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의의 역사를 새겨 폭력과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자 이 비를 세웁니다.. 추모비는 어린 소녀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희망의 상징'으로 이 곳에서 바오밥나무처럼 뿌리내려 천년(포천석)을 지키고 서 있을겁니다. 통영시 동호동 남망산 조각공원 통영문화회관 앞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정의비 ' 제막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일을 하는고 있는 ,통영, 거제지역의 동아리소속(도화지, Aye. 광개토역사모 , 추임새)의 고등학생들입니다. 4월의 비를 맞고 있는 통영항 희망의 리본을 달고 있는 학생들 어린소녀들이 끌려 가서 당한 죽음같은 악몽에 비하면 봄비를 조금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10대들 , 그렇더라도 대견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 해 주세요.' 꽃할머니들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사진, 엽서, 증언, 다큐멘터리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사례를 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돌격 1호' 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일본 정부에서 일본군들에게 지급한 '콘돔'이란 놈입니다. 요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일본군들에게 지급하여 집단강간, 집단 폭행을 자행했습니다. 전쟁을 빌미로 국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관리되었던 끔찍한 범죄,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희망승합차이야기' 이 차량은 2011년 11월 22일~12월 14일까지 twirtter. 모금운동으로 마련한 희망차로 twitter에서 미디어 몽구님의 제안으로 할머니들에게 '희망차' 를 만련하여 드렸다는 ... 그 차가 바로 이차였군요. 멋진 제안 하나가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바꾸었습니다. 미디어 몽구님의 제안 ...정말 멋져요. ''역사에 남기기 위해 위안부 '... 故 김학순 할머니 故 김학순 할머니의 말씀과 그림으로 거제옥포고등학교 '광개토역사모동아리'학생들이 파일로 제작하였습니다. 故 김학순 할머니 동상 (경기도 광주시 퇴촌읍 원당리 '나눔의 집') &quot;제 인생은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끝이 났습니다. 하늘을 바로보지 못한 부끄러운 인생이었지만 그러나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피맺힌 한을 풀지 못해서입니다.&quot; 이렇게 시작된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한국과, 북한, 일본 ,중국 ,독일,네들란드 인도네시아 그리고 동남아의 많은 나라에서 용기를 낸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들이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quot;할머니, 당신의 용기가 아름답습니다.&quot; 인권회복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다양하게 이어져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본정부는 밝히지 않은 숨겨 둔 '위안부' 관련 모든 문서를 공개하라 진실은 '꼭' 밝혀집니다. 약20만으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 및 여성들의 희생 20세기 최고의 인신매매 한순간 사라진 소녀의 꿈 집단강간, 강제유산, 잔혹한 죽임 ... 일제의 강제에 의해 끌려간 소녀들의 인권유린 그 작태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소녀들의 삶이 피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으로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이름 , 강제종군 위안부 ... 위안부 할머니들은 곧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당한 일이었기에 모두 나서서 일본으로부터 사죄와 법적배상을 받아내야합니다. 2007년 미국 히원의 위안부 통과를 주도한 마이클 혼다 의원과 에니 팔레오미베가 의원은 위안부와 '성노예' 용어 논란에 대해 &quot;당시에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위안부라는 표현보다 '성노예'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이름대신 '후미코'라 불렸던 통영의 김복득할머니 할머니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셨음에도 '정의비'가 세워지는 가슴벅찬 제막식 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양쪽으로 통영여고 Aye 동아리소속의 김가영,류은정양이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며 함께하였습니다. 이날은 또 김복득할머니 일대기인 증언록 '나를 잊지 마세요 ' 책이 출간되어 가슴 벅차고 의미로운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경남도교육청은 또 일본에 사는 우리동포 자녀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김할머니의 증언록 '나를 잊지 마세요' 를 일본어판으로 1천여권 펴내 제일교포 자녀들이 다니는 한국학교와 한국교육원,교민단체에 보낼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작년 8월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뵈었을때처럼 여전히 고운 할머니 , 하지만 이 날은 몸이 편찮으셔서 몹시 힘들어 하셨습니다. 김할머니는 18살 어느 날 거제도에 살고 있던 고모집에 가는 도중 길에서 만난 일본군에 끌려 부산을 거쳐 중국 , 필리핀으로 끌려가서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후미코' 라 불리던 시절 ,필리핀의 위안소에서 만난 한 일본군장교의 도움으로 조국이 해방되기 직전 간신히 고향인 통영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후 일본군장교는 김할머니를 찾아와 청혼을 했다고합니다. 만약 그 청혼을 받아 들였다면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셨을까요? 희망 발언, 통영여고, 통영고 , 충렬여고,거제옥포고 창원토월고, 부산금명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정의비 제막식 행사에 참석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희망 발언이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 땅의 어린 소녀와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일어나서 안된다고 창원 토월고 김명은양은 눈물 흘리며 외쳤으며 통영고등학교 강병주군(통영고동아리 도화지장) 은 변화와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는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뜨거운 호응을 이꿀어내기 위해 노력하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학생들의 발언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내용하나, 일본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내용인데요 전쟁중 일본군 위안부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는데 40% 의 학생이 &quot;그럴수도 있지&quot;'였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가 나오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역사교과서에 일본군의 강제 종군 위안부 내용이 아예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이야기 해 주세요 우리에게 진실을 다 이야기 해 주세요. 화가가 되고 싶었던 12살 어린 소녀가 즁국의 하얼빈으로 끌려 간 이야기, 어느 위안부 소녀의 첫사랑이 담긴 손수건이야기와 양녀로 간 주인집 딸 대신 끌려간 소녀 위안부의 기구했던 운명의 이야기며... 국화꽃을 든 거제옥포고 학생 위안부는 우리또래 소녀들이었군요.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요, 안타까워요 우리도 이제 진실을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 더 많은 이야기를 유리에게 들려 주세요... 순결을 의미하는 흰천속에 가려져서 제막식을 기다리는 '정의비' 노란 희망 리본에 적힌 할머니를 위한 할머니, 우리 같이 해요. 할머니를 응원합니다. 거제,통영의 17,18세 소녀들이 통영항 바로 이곳에서 일본군에 의해 배에 태워져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로 짐승처럼 끌려 갔다고 합니다. . 거제옥포고 백민주양??? 이름을 까먹은듯... 그랬군요 할머니가 사랑한 조국은 ' 힘 없고 가난한 조국이었고, , 하지만 바보같은 조국을 버리지 못하고 안고 가야 했다죠. 20세기의 반인류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의 드러난 실체, 일본군의 군수품에 불과했다는 아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무너져내릴 것만같은 ... 불쌍한 우리할머니, 꺾여버린 꽃, 짓밟힘, 수치스러움, 공포감, 절망감은 또 어떻게 감당하셨을지. '정의비' 제막식 통영의 위안부 소녀상 '정의비'가 이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통영에서는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한 '정의비' 로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통영에 이어 거제도에 세워질 추모'비'는 또 어떤 이름을 달게 될지... 인권운동가 '김복득할머니 통영의 김복득할머니,둘러져 있던 흰천을 벗겨지고 모습을 드러내자 '소녀상'을 만지고 또 만져 봅니다. &quot; 그래 이게 바로 나야 내가 이랬어 곱기도 해라 , 백옥처럼 ... &quot; 이날 너무 많이 우셨던 할머니께서 희망의 정의비를 보자 울음 그치고 말갛게 웃으셨습니다. ' 소녀상 '정의비 '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를 바라며 화해의 손짓으로 평화를 수호하는 이미지도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통영의 '정의 비 ( 통영 소녀상)' 소녀가 세월을 따라 가면 할머니가 된다는 진실 앞에 선 김할머니도 68년전 , 꽃같은 소녀였습니다. 통영의 소녀상 , '정의비'는 이 지역의 끌려간 소녀들의 영혼을 위로해 줄겁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의 평화비처럼 , 국민소녀상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살아 있는 동안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텐데 ...' 김할머니의 이 한마디에 할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바라보면서 이 자리에 서 있던 모두는 숙연해졌습니다. 할머니의 희생을 잊지 않을게요. 할머니의 아픔을 함께 할게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힘 없는 나라 조국은 이렇게 예쁜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아 생각만해도 내나라의 소중함을 마음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었을겁니다. 국화꽃을 든 소녀는 이날 꽃할머니의 슬픈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아물지 않은 상처, 우리의 역사를 교과서 밖에서 혹은 학교벆 역사의 생생한 현장에서 직접 체험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먼저 간 소녀들의 영전에 바치는 책 '나를 잊지 마세요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며 우리지역의 마지막 생존자 이신 김복득할머니의 일대기 증언록 '나를 잊지 마세요' 이 책은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한권의 책에 담은 증언록이라고 합니다 한권의 책으로 진실을 다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일제강점기의 빠져 있던 역사 강제 종군 위안부의 기록을 마침내 살려내었으며 이제 속일 수 없는 역사가 되어 학생들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하마트면 사라질뻔했던 일본의 만행은 교육을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질것입니다. 이 책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무렵 일본이 위안부에 관련한 대부분의 문서를 폐기하고 증거가 될만한 장소와 증거물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한동안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이 같은 일이 자행되었는지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부분으로 1991년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시작하여 잊고 있었던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고 중요한 역사의 부분으로 새롭게 기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김복득 할머니의 일대기인 증언록의 교육적인 가치는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김할머니의 생생한 증언과 자료화면으로 영상세대인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큐멘터리'와 동영상 CD를 자체 제작하여 각학교로 보급된다고 합니다. 이일은 지난해 8월 통영서울병원에 입원 해 있던 김할머니를 고영진 교육감이 위문을 가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 교육감은 김할머니를 위문하며 &quot;할머니가 겪었던 아픔을 책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학교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싶다&quot; 고 제의했고 김할머니께서 흔쾌히 받아들여 성사되었습니다. 꽃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 이 책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질곡의 삶을 살아야했던 한 여인의 삶과 진실이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었습니다. 통영의 소녀상 '정의비'에 꽃을 ... 1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 1940년 12살, 집이 가난한 소녀는 아픈 아버지를 대신하여 단돈 100원을 받고 일본군수공장으로 가는 트럭에 실려 끌려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공장이 아닌 위안소라 부르는 곳이었어요. 일본군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적게는 30명, 많게는 70여명을 상대한 무서운 고통속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죽는것이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로 살아 있음이 고통이었다 합니다. 이렇게 슬프고 잔인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의 진실을 더 많이 들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해자 할머니들은 점점 사라지고(죽음) 있습니다. 작년에도 김할머니의 친구 한분(거제할머니) 이 돌아가셨습니다. 일본군은 항복을 선언한 이후인 1947년까지도 일본군을 위한 '위안소'를 군이 직접 관리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같은 증언은 곳곳에서 흘러 나오고 있지만 일본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2013-04-07 아직도 그곳에는 위안부할머니가...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중국에 버려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처음 뉴욕에서 공개됐다. 5일 맨해튼 코리아소 사이어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안세홍 작가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수석부회장 스테픈 노이어퍼 박사와 대담을 통해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이날 강연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올려 6만 명의 회원들에 제공할 예정이다. &lt;사진=Newsroh.com 제공&gt; robin@newsis.com 2013-04-07 - 두 할머니가 걷는 저 황량한 곳은 어느 지역인가?“만주 벌판이다. 저 지역엔 네 곳의 위안소가 있었다. 두 할머니는 소녀 때 끌려와 같은 위안소에 있었고 위안소에서 불과 몇백m 벗어나지 못한 마을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 지금도 저곳 땅을 파면 위안소와 관련된 물건들이 나온다. 위안소 근처에서 사는 것 자체가 두 배 세 배의 고통이었다. 헤이룽장(黑龍江)에서 만난 이수단 할머니도 오랜 세월에 우리 말을 잊었다. 동족을 만나고도 통역을 통해야 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 아팠다. 지금까지 통영에서 '소녀이야기' 의 빨강머리 앤이었습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일본군 위안부 피해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군 위안부 피해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일본군장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군장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위안부 소녀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위안부 소녀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김학순할머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학순할머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정의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의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광개토역사모동아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개토역사모동아리&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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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3 Apr 2013 18:34:19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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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너에게 공곶이의 수선화를  보낸다 </title>
	            <description> 29263 조금 철지난 공곶이 이야기 이번에도 밍기적거리다가 달을 넘겨버린 수선화이야기, 그냥 저장만 해 놓으려다 생각이 바뀌어 포스팅을 꼭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공곶이로 수선화를 담으로 갔던 날은 지난 달 03월 31일 토요일, 햇살이 눈부시게 밝은 날이었습니다. 이날 공곶이를 찾아간 까닭은 노란수선화를 담으러 갔다고 해야겠습니다. 북유럽의 스톡홀롬에 살고 있는 지인이 오랫동안 우중충한 회색의 겨울속에 갇혀 지내다 보니 꽃 좋은 고국의 봄이 생각나서 화사한 봄꽃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꽃, 그래 거제도의 봄꽃들을 넘쳐나게 담아 보내자 꽃이라면 노란 수선화가 예쁘게 피어나는 공곶이로 가는게 좋겠지 가서 3만평 넓은 정원에 노랗게 피어난 수선화를 몽땅 담아 오는거야 그렇게 공곶이로 향했습니다. 공곶이,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95번지 이곳은 강명식 할아버지(79) 지상악할머니(75)가 40년 넘게 가꾸어 온 자연농원입니다. 내도가 바라보이는 비경속에서 수선화를 비롯하여 조팝나무,종려나무와 이름모를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풍경을 만나게 되면 탄성이 절로 터지는 , 아름다운 곳으로 최근 거제8경에 지정되었습니다. 공곶이로 가려면 예구마을에서부터 걸어가야 하는데 시작부터 경사가 심한 길이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헉헉대며 힘들어 하는 구간입니다. 처음부터 힘들게 걸었던 탓에 함께 간 일행이 없었던 전 눈치보지 않고 느릿느릿 ,놀멍,쉬멍 걸었습니다. ,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 '' 벚꽃엔딩' 을 흥얼거리며 바다를 보며 갔습니다. 이렇게 언덕을 한참 오르며 헉헉거리게 되는 공곶이 가는 길입니다. 가는 길은 동백꽃과 후박나무가 지천으로 동박새, 노랑부리저어새도 동백나무에 올라앉아 봄을 지저귐으로 노래하고 , 내려 다 보이는 바다는 터키 옥빛으로 햇살에 빛나며 아름다웠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떨어진 꽃송이로 만든 하트모양예쁜가요? 뻘간 동백꽃으로 만들었습니다. 동백꽃은 떨어질 땐 '툭 '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데 언덕위에서라면 떼구르르 떽데구르 굴러가기도 합니다. 동백꽃은 떨어져서 더한층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꽃이랍니다. 손 내밀어 건드리면 톡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꽃을 두손모아 받아보는 재미도 참 좋았습니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왜 노란색일까? 그건 생강나무에 달린 꽃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부른다 들었습니다. 노오란 생강꽃을 동백꽃이라고 불렀다니 아마 강원도 사투리는 아니었을까? 동백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공곶이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수선화 피는 아름다운 공곶이'라 표지판으로 소개 해 놓았지만 공곶이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종려나무, 조팝나무, 들꽃,산꽃,심지어 바다꽃까지 ,,, 어우러져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신비스런 느낌조차 드는 곳이었습니다. 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은 또 터널을 이루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곳으로 초대를 해주며 기분좋게 해 주었구요. 걷다 보면 눈은 어디에 두어야할지, 발은 또 어디에 두어야 할지 또 아름다운 자연을 제대로 보려면 두 개의 눈으로는 어림없는 일 이럴 때면 잠깐동안 내 몸 앞 뒤로 눈이 초롱초롱 달려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공곶이 터줏대감 강명식할아버지, 이날 많이 바쁘셨습니다. 이 곳은 무인꽃판매대로 간간히 수선화가 심어놓은 화분을 사거나 꽃한다발 사 가는 아름다운 사람들도 가끔씩 눈에 띄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주면서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 할아버지십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하면서 불편한 일도 많이 생기고 , 꽃과 나무가 상처를 입는 일도 생길텐데... 하지만, 거제도 공곶이는 그런 곳이랍니다. 욕심없는 노부부가 아들과 함께 자연속에서 자연이 되어 사는 곳이죠. 불긋불긋 꽃대궐 동백터널이시작되고 머리 위로 총총 달린 빨간 꽃을 보며 걸어가는 기분 정말 좋았습니다. 나무위에도 가득한 꽃 , 땅에도 딩굴었어요. 하얀꽃, 빨간꽃, 마치 꽃나라 혹은 꽃대궐에 초대되어 온 느낌이었습니다. 동백꽃터널로 .. 이 돌계단은 하나하나 돌을 놓아 만든 계단으로 공곶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강명식할아버지랑 지상악할머니의 작품, 돌계단, 동백터널 혹 4월의 신부라면 이곳으로 찾아와서 웨딩사진을 찍어도 아름다울듯 싶습니다. 초록의 여름에는 또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는 초록풍경도 볼만하답니다. 돌계단을 따라 타박거리며 내려가는 기분은 날아갈듯 상쾌하였습니다. 동백꽃터널이 끝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오고 할아버지네가 살고 계신 집이 있는 곳고 노란수선화를 흠뻑 보실 생각이라면 왼쪽길로 가야합니다. 저는 오른쪽으로 가서 몽돌해변과 바다를 먼저 만났습니다. 공곶이는 몇번이고 찾아왔지만 여전히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흰수선화와, 노란수선화가 한밭 가득 심어져 있었으며 종려나무도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몽돌로 쌓은 몽돌돌담 공곶이의 해변은 하얀빛깔의 몽돌해변이 펼쳐지는 곳이랍니다. 걸을때마다 몽돌이 부딪는 소리가 들려오는 공곶이 해변만의 색다른 느낌 ,참 좋았습니다. 노란 수선화가 ... 몽돌해변을 걸어걸어 바닷가를 반바퀴쯤 돌아 내도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 언제 이렇게 다 심었을까요? 3만평 너른 땅에 수선화를 .심었다. 참 .대단하지요.? 도움이 될만한 일손도 거의 없어보였는데 ... 노부부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수선화 대신 마늘을 심었다면 .. 아니, 생각하면 , 생각할수록 수선화를 심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다음에 오면 꼭 할아버지,할머니께 여쭈어 봐야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수선화였는지... 그런 생각이 불쑥 들더라구요. 이곳은... 바다에 떠 있는 모자모양의 섬 , '내도'(안섬)입니다. 내도와 공곶이는 곧 함께 여행하게 되는 날이 오지 싶습니다. 건너 보이는 '내도 또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랍니다. 내도섬에서 멀리 나아가면 바깥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외도'가 나옵니다. 외도보타니아의 유명세는 대단해서 모르는이가 없을것이라 이정도로 ... 노랗게노랗게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공곶이의 수선화를 보기 위해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애교넘치는 그녀의 포즈도 담아 보았습니다. 꽃 보다 사람? 훗날, 제법 세월이 흐른 어느 날, &quot;우리 노란수선화가 활짝 피었던 공곶이에 갔었지 응 그때 참 좋았어&quot; 라고 그들은 추억할지도 모릅니다.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노오랗게 노오랗게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여기서도 '무인판매' 수선화 한 묶음 2,000원 수선화 한뿌리 5,000원 천리행 한 묶음 2,000원에 팔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앞 텃밭입니다. 좁다란 돌담길 참 예쁘지요? 흙을 밟으며 돌담길을 걸어보는 것, 공곶이에서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빨간조끼의 할머니.. 공곶이의 예쁜 안주인 지상악할머니 사실 공곶이는 할머니네 친정집 소유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진주 문산이라고 하셨어요. 부지런한 부부가 맨손으로 이렇게 가꾸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인간승리 ' 라고 말하더라구요.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께서는 이미 방송으로 많이 알려진 분들이세요. 이즈음, 갑자기 배탈이 난 아이가 급하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또 할머니네 화장실은 붐비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오른쪽 해변가에 화장실이 하나 있긴 하지만 그곳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신 왼쪽 바닷가에도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입장료도 한푼 내지 않고 구경하는 입장이니 누구라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일겁니다. 수선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집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마침 수선화가 활짝 폈다는 소식을 듣고 모방송에서 또 촬영을 나와서 할아버지를 찾으셨습니다. 방송관계자들은 공곶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하려고 바빴습니다. 해마다 요맘때면 각방송사들은 잊지 않고 공곶이의 수선화를 영상으로 아름답게 담아 내 보내기에 분주하답니다. 돌담밑으로도 수선화가 오종종 피었습니다. 한뼘의 땅도 놀리지 않는 억척같은 노부부의 삶을 기억합니다. 공곶이는 종려나무도 군락을 이루고 있어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대단한 곳입니다. 보리수가 뻗어나가는 바닷가의 봄도 덤으로 만나서 좋았던 공곶이를 두고 다시 동백꽃터널을 따라 올라갑니다. 지금도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며 카톡으로 알려준 캐나다의 캘거리에 머물고 있는 셋째에게도 노란수선화 사진을 듬뿍 담아가서 전송해 주어야겠습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보리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보리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생강나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생강나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수선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수선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조팝나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팝나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김유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김유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종려나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종려나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공곶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곶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거제8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거제8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동배꽃&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배꽃&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강명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강명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지상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지상악&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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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Apr 2013 12:47:57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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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lt;마산여행&gt;가곡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을 찾아 마산으로</title>
	            <description> . 노산 이은상의 노비산 청라언덕에서 동무생각을~~ ♩ ♪ ♬～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가는 길에 내 집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얀코 어리섞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 라고 봄처녀를 노래하고, 고향의 바다를 마음껏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마산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시인 노산 이은상이다. 이은상과 마산은 바늘과 실같은 관계이다. 개나리가 노오랗게 봄물을 들이느라 꼬물대는 소리가 야단스레 들리는 날, '가고파'의 고장이라 알려진 마산 노비산언덕으로 간다. 이번 마산여행은 대구여행에 이어 국민가곡 '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청라언덕이 마산의 노비산언덕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그 곳을 찾아 가 보고 싶었다. 남도의 3월은 하순을 넘기자 기온이 높아져서 이미 봄을 훌쩍 뛰어 넘어 초여름의 더위가 느껴진다. 여전히 버스여행으로 거제의 고현에서 버스를 타고 , 달려 35개의 아름다운 섬(유인도)을 가진 통영을 지나고 , 1억 6,500 만 년 동안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공룡이 백악기와 함께 멸종하여, 화석으로 굳어버린 공룡을 다시 흔들어 깨워 큰길가로 내보냈는지, 발도장 쿵쿵 찍으며 나와 반기는 고성을 지나 마산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자 곧장 택시를 탔다. 내가 택시를 즐겨타는 이유라면 무엇보다 고생하지 않고 목적지를 쉽게 찾아 갈 수 있으며 또한 , 그 고장이야기를 문화해설사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맛깔나게 들려 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택시를 타고 청라언덕을 가자며 우겨 본다. 노비산(최근에는 제비산이라고도 불리고 있다고 함)언덕으로 가야한다며 대구에서처럼 청라언덕의 이야기를 꺼내며 택시기사님의 반응을 살폈다. &quot;청라언덕, 마산이면 어떻고, 대구면 어떻고 거제도면 또 어떤가요 상관없어요 나름대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멋지게 가꾸어 나가면 될것을 .. 저는 우리나라에 있는 나즈막한 언덕이란 언덕은 모두 다 청라언덕이라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예쁘잖아요 이야기가 있는 파란 청라언덕 ... &quot; 라시며 하늘높이 올라간 뽀족지붕 끝으로 십자가를 달고. 다시 세 개의 종이1,2,3 층으로 달린 독특한 모습의 문창교회를 지나 구불구불한 오르막 길이 시작되자 &quot;노비산언덕입니다.&quot; 하고 인상좋은 기사님, 유쾌하고 즐거운 여행되라며 기분좋게 손 흔들며 사라진다. 이은상의' 내 놀던 옛 동산에 올라 ' 택시에서 내려 구불구불한 언덕을 따라 천천히 오르니 내 놀던 옛 동산이 눈 앞에 아른아른 노비산자락은 시(詩 )를 모르는 내가슴에도 감성의 싹을 움틔운다. 제법 헉헉거리며 올라온 언덕 위에서 눈 앞으로 펼쳐진 마산을 내려 다 보니 도시를 이웃한 ' 내 고향 남쪽바다'가 봄물결로 출렁이며 시야로 들어온다. 노비산이야기, 눈 앞의 나즈막한 앞산 용마산과 용마를 이끌고 가는 노비모양을 한 노비산은 어찌보면 강남갔던 수다쟁이 제비가 지지배배 노래하며 찾아오는 물찬제비의 날렵한 몸매를 닮아 또 다른 이름 제비산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노산문학관 &amp; 마산문학관 노산시비앞에서 마산문학관이 자리하고 노비산언덕은 원래는 '노산문학관'으로 기획되고 또 착공하였지만 노산의 입신과 민주성지 마산의 정서가 상충된다는 이유에서 '마산문학관'으로 개칭되었으며,문학관 명칭을 둘러싼 시민단체, 시민, 문인, 시의회 간의 첨예한 갈등을 묻어둔 채 58-8번지 '노비산 근린공원내 들어서게 되었다. 봄은 품은 날씨는 언제나 시야가 조금 흐리게 다가와서 가을이나 겨울만큼 쾌청하지 않아 희뿌옇게 보이지만 도시의 빌딩숲 너머로 노닥거리는 바다를 생각하면 상쾌하고 즐거워지는 일임에 분명하다. 먼길 달려 온 수고로 종려나무와 산수유 사이에 길게 놓인 벤취에 털썩 앉아 본다. 노비산언덕에 둥지를 튼 사람들 연두빛 새싹들이 바쁘게 겨울을 밀어내며 땅 위로 고개 내밀자 노비산언덕을 타고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도 언덕 위의 풍경이 궁금한지 몇몇은 야트막한 꼭대기를 향해 올라본다. 다가가서 옛날의 노비산 풍경이 어떠했는지 여쭈었더니 언덕에 올라서면 앞으로 탁 트인 바다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가 좋아 모르긴 해도 감성을 멋드러지게 표현하는 시인이 많이 배출되었을것이라 알려주신다. 이은상, 이원수, 천상병, 김남조등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는 문인들이 배출되었으니 ' 시인의 언덕'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것이란다.. 청라언덕 위의 '마산문학관' 먼길 달려 와 노비산자락을 오르다 언덕아래서 올려 다 보니 동산 위로 올라앉은 마산문학관이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처럼 느껴진다. &quot;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quot; 라는 소절과 썩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노비산 언덕에서 쑥 캐는 처녀들 마산에서 주장하는 청라언덕은 , 노비산자락을 타고 내리며 돋아나는 쑥과 봄풀들이 마치 푸른 비단을 낄아 놓은듯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가곡 '동무생각' 에 나오는 '청라언덕'과 ' 백합같은 내동무'의 대목은 작곡가의 달콤한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압제의 고통속에서 봄이 되면 흰저고리 검정치마를 입은 마산의 처녀들이 노비산언덕에서 쑥을 캐는 모습이 처연하게 아름다워 빼앗긴 조국을 사는 그녀들을 생각하며 시(詩)로 담아내었다고 한다. 이은상 [李殷相] . 노산 이은상(李殷相, 1903∼1982년)은 집 뒤 창신학교 뒷산 노비산(鷺飛山)에서 ‘飛’자를 빼고 노산(鷺山)이라고 호를 정했을 정도로 노비산 청라언덕을 사랑했다. 노산의 시 &lt;가고파&gt;에서 ‘내 고향 남쪽바다’를 내려다본 곳이 바로 노비산이고, &lt;동무생각&gt;의 ‘청라언덕’도 노비산을 말한다. 이은상 선생은 대구에서 내려온 박태준 선생과 함께 창신학교 뒷산 노비산 청라언덕에서 합포만을 내려다보면서 “내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예 시인의 허사로고/ …”라는 &lt;옛 동산에 올라&gt; 중의 옛 동산 역시 노비산 청라언덕을 말한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1903년 마산에서 태어나서 1918년 아버지가 세운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가 1923년 마산에 내려와서 창신학교 국어교사로 박태준 음악교사와 함께 근무하면서 노비산 청라언덕에 앉아서 &lt;동무생각&gt;이란 시도 지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lt;옛 동산에 올라&gt; 중의 ‘옛 동산’과 &lt;동무생각&gt;의 ‘청라언덕’도 모두 마산에 있는 노비산을 말한다는 사실을 마산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자료출처 : 바다사랑실천운동시민연합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았을때 이 곳은 경치가 빼어나서 마산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란다. 노비산언덕 위에 자리한 '마산문학관 ' 안으로 들어 가 본다. 와글와글 쏟아지는 '창신학교'이야기 창신학교 설립자는 이은상의 부친 이승규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마산지역의 교육가, 사회사업가, 구국운동및 종교지도자로 활동하며 사회에 이바지한 남하 이승규 선생은 100년 전통을 가진 창신 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창신학교의 설립공로자(1906년 5월17일 문창교회 내 독서숙)로 1914년 문창교회 장로를 맡았으며, 3·1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해 수감된 창신학교 학생의 석방을 위해 신원보증 등의 활동을 한 사람으로 기독계는 물론 마산사회의 유명인사로 추앙받고 있다. 이은상과 박태준의 특별한 만남 창신학교에서 동료교사로 만나게 된 이은상과 박태준은 각별한 사이로 발전 ,창작활동에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으며 훗날 이은상은 고종사촌 여동생 김봉렬을 박태준에게 소개하여 혼인이 성사되어 처남매부지간이 되는 인연을 맺은 공간이기도 하다. 전시관을 돌아보다 동요 '산토끼 ' 를 작곡한 이일래선생 역시 창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전시관에서 만난 시 마산에서의 봄 이석 민주성지 마산의 민주항쟁을 시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1960년 3월15일, 독재의 총알에 뜨거운 가슴으로 함성을 외치고, 민주의 깃발을 올리며 거리로 나섰던 마산의 젊은 학생들이 온몸으로 싸워 되찾은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시로 태어났다. &quot;가도에 뿌려진 붉은 피, 그 피가 봄을 상징해야 하는 슬픔의 봄이었다.&quot; 1960년 3월, 당시 마산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김춘수는 3.15 의거의 핏방울을 뿌린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보며 시 ' 베고니아의 꽃잎처럼' 을 썼으며 이 밖에도 마산 , 창원 시인들의 많은 시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마산에서 발간된 순수한 학생중심의 동인지 '백치(白痴)동인'을 결성한 저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동인들은 '신춘문예'혹은 ' 현대문학' 을 통해 등단을 하였으며 지금껏 한국문단에 큰 역할을 한 마산의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이어졌고, 백치동인이며 마산을 대표하는 이제하 시인의 '청솔 그늘에 앉아 '라는 시도 감상할 수 있었다. &quot;청솔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들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다. 혹은 하이얀 햇빛이 깔린 어느 도서관 정원이라 해도 좋다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노곤한 그리움이여 , &lt;중략&gt; 어느 도서관 앞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 시인의 모습이 눈 앞에 선다. 마산의 봄이 물씬 느껴지는 시를 기억하며 눈을 돌려 또 다른 작품을 훑어보다 단아한 용모와 맑은 미소를 머금은 모습의 몰랐던 작가 '지하련'을 만난다. 지하련은 누구...아 소설 '결별'' 도정' 등 불과 10편 이내의 작품이 전하는 북한의 소설가 단 몇줄로 소개되어 있는 지하련의 작품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한 마산,창원을 깊숙히 들여 다 보니 현기증이 난다. 지하련 (池河蓮),1912 경남 거창 ∼ 1960 평북. 북한의 소설가. 본명은 이현욱(李現郁), 카프 평론가 임화(林和)의 부인이다. 경남 거창의 천석지기 집안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도쿄 쇼와여자고등보통학교[昭和女子高等普通學校]와 도쿄경제전문학교[東京經濟專門學校]에서 수학했다. 1940년 12월 백철의 추천으로 단편 〈결별〉을 〈문장〉에 발표하여 등단했다. 추천 당시 백철은 &quot;인간적으론 전부터 친숙하게 아는 분이지만 그가 이처럼 훌륭한 작가적인 천품을 갖춘 분인 줄은 소홀하게도 생각질 못했다. 그만치 이 〈결별〉을 읽었을 때의 나의 놀람과 기쁨은 더 한층 크게 신선했다&quot;고 말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체향초 滯鄕抄〉(1941), 〈가을〉(1941), 〈산길〉(1942) 등은, 소시민의 자의식을 섬세한 심리묘사로 그려내면서 그 전망을 모색하는 한편, 일상의 안일한 행복에 잠겨 있던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자의식에 눈뜨는 과정을 포착하는 데 뛰어남을 보였다. 해방 이후 남편 임화와 함께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고,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는 〈도정 道程〉(1946)과 〈광나루〉(1947) 2편이 있는데, 〈도정〉은 조선문학가동맹 제1회 조선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작품집 〈도정〉이 1948년 서울에서 출판되었다. 1947년 가을 임화와 함께 월북했고, 1953년 휴전 직후 피난지 만주에 있다가 임화가 남로당 관련 미제 간첩 혐의로 사형받은 것에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평안북도 희천 근처의 교화소에 수용되었다가 1960년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출처 &lt;브리태니커&gt; 지하련을 논하려면 그녀의 남편 임화를 정확하게 알아야... 임화 [林和]한국 문학평론가 1908. 10. 13 서울 1953. 8. 6 평양. 시인·문학평론가. 일제 강점기 및 8·15해방 직후에 활동한 사회주의 문예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본명은 인식(仁植). 필명은 청로(靑爐)·임화(林化 또는 林華)·성아(星兒)·김철우(金鐵友)·쌍수대인(雙樹臺人). 서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1921년 보성중학교에 입학해 이상·조중곤·윤기정 등과 사귀었으며, 문학에 흥미를 느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보성중학교를 중퇴한 뒤부터이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KAPF)에 가입해 1928년 중앙위원이 되었고, 그해 〈유랑〉·〈혼가 昏街〉 등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했다(→ 색인 :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이듬해 박영희의 후원으로 연극공부를 하기 위해 도쿄[東京]로 유학을 갔으나 일본 사회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사회과학에 관한 책만 탐독했고 김남천·안막·한재덕·이북만 등과 함께 '무산자사'에서 활동했다. 1931년 귀국해 이북만의 누이 이귀례와 결혼했으며, 그해 KAPF 제1차 검거사건 때 검거되었다가 9월경에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되었다. 1932년 4월 KAPF 중앙위원회 서기장이 되었고, 기관지 〈집단〉의 책임편집을 맡아보았다. 같은 해 KAPF 제2차 검거사건 때도 검거되었으나 폐결핵의 악화로 석방되었다. 1935년 김남천과 함께 경기도 경찰국에 KAPF 해산계를 제출하고, 그해 8월에는 요양을 위해 마산으로 내려가 1937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후에 여기서 만난 지하련과 재혼했다. 1937년 학예사를 대리 경영했고, 〈사해공론〉·〈인문평론〉의 편집에도 참여했다. 1940년초에는 고려영화사 문예부 촉탁으로 근무했고, 1943년 조선영화 문화연구소의 촉탁으로 있으면서 〈조선영화연감〉·〈조선영화발달사〉를 편집했다. 8·15해방 직후 김남천·이원조·이태준 등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했으나 이기영·한설야·안막 등이 조직한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과 대립이 일어나자, 1946년 2월 박헌영의 지령을 받고 두 단체를 통합해서 조선문학가동맹 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색인 : 조선문학가동맹). 1947년말 월북하여 황해도 해주에 머물면서 조소문화협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6·25전쟁 때 북한의 종군작가단으로 서울에 온 벅찬 감동을 시 〈너 어디 있느냐?〉와 인민군이 후퇴해 평안북도까지 쫓겨간 심정을 시 〈바람이여 전하라, 흰 눈을 붉게 물들인 나의 피 위에〉 등에 나타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문제가 되어 1953년 남로당 계열이 숙청될 때, '미제의 고용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이승엽 등과 함께 사형당했다. 자료출처 &lt;브리태니커&gt; 임화와 지하련을 한동안 이야기하며 질문을 끝없이 해댈 '가나' 노비산의 마산문학관을 제대로 돌아보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전시관을 나서다가 운좋게 창원시립마산문학관 최광석박사(학예연구사)를 만나 '청라언덕'과 관련된 내용들을 조금 더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친절하게 오래전 선교사들이 살았던 노비산언덕 위의 옛선교사 주택을 알려주었고 마산을 대표하는 작가 이제하를 들려주었으며 조만간 마,창 문인들이 모여 '청라언덕'을 주제로 학술포럼이 있을 예정이라고도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청라언덕기념사업' 을 착실히 진행해온 대구와는 대조적으로 마산시는 고유한 문화콘텐츠를 사전에 아무런 양해조차 구하지 않고 대구시가 도용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몇 편의 글이 검색되는 정도였다. 청라언덕 위의 옛 선교사주택 마산문학관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불과 20m 떨어진 곳에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선교사 주택이 있었다. 노비산언덕이 따뜻해지자 이곳을 찾은 어르신도 마음이 설레이는지 언덕에 나와 앉아 쑥을 캐는듯 보인다. 제비가 찾아오는 봄의 언덕 노비산 청라언덕을 찾아 온 가나도 봄을 마시며 쑥을 캐고 싶어 달린다. 잔디를 뚫고 쏙쏙 올라오는 쑥이 신기하여 들여다 보는 작은 아이 노비산언덕에서 캔 쑥 ~ 이것이 ' 청라언덕'의 푸른 비단이었을까? 청라언덕에서 쑥 캐는 봄처녀 노비산 자락의 마산문학관 예전의 노비산언덕은 제법 높았다고 하는데 노비산언덕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높은 집을 짓는 바람에 옛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없는 아쉬운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지만 그렇더라도 옛모습을 모르고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두 도시에 있는 ' 청라언덕'을 찾아가서 만나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비산언덕이 품고 있는 많고 많은 이야기를 모아 스토리텔링한다면 노비산언덕은 더한층 아름다운 언덕으로 거듭날것 같다. 언덕을 오르면서 목가적인 풍경으로 가꾸면 말이다. 여인들이 바구니 들고 쑥을 캐는 봄의 풍경이야말로 어쩌면 노비산언덕의 고유한 그림으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바다라는 매력적인 풍경 하나가 더 있는 마산 아닌가? 그리고 문학이 펄펄 살아 벌떡이는 동네가 아닌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 보이는 골목길에서 ... 벽화가 그려진 맞은편의 벽에 이 시대 마지막 순수시인, 혹은 기인으로 불리던 천상병 시인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시인만의 순수를 생각 해 본다. 살아서 자신의 유고시집&lt; 새&gt; 을 마주한 사람은 천상병 시인밖에 없을것이다. 오랫동안 시인의 생사를 알길이 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죽었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가난했던 시인을 기억하며 유고시집을 만들었고, 얼마쯤 뒤에 시인은 자신이 쓴 시처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고 ' 죽음을 맞았다. 천상병의 시 귀천( 歸天 ) 노산동을 내려 오다 만난 세 개의 종이 달린 '문창교회' 종교지도자이기도 했던 노산 이은상의 아버지 이승규장로가 기독교 복음을 전했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노비산 자락의 노산동에는 '문창교회' 예배당이 있다. 1901년 가정 주택을 예배 처소로 하여 마산포 교회가 설립되었다. 마산의 노비산언덕 대구의 동산언덕 두 언덕은 서로 닮은듯, 아니 닮은듯, 아득한 분위기를 내는 두 도시 그곳에 국민가곡 동무생각의 ' 청라언덕' 이 있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이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천상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상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귀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귀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마산&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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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5 Apr 2013 13:45:57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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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lt;대구여행&gt;가곡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을 찾아 대구로 </title>
	            <description> 청라언덕은 정말 있을까? 오랫동안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동무생각 '의 노랫말에 나오는 '청라언덕'을 찾아 오늘은 길을 나섰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국민가곡 '동무생각- 사우 (思友 )'는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나 역시 음악시간에 배운 적이 있으며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부를때면 '청라언덕'은 어디에 있을까 실제로 존재할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몇달전부터 덜컥 청라언덕이 생각났고, 그래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quot;봄의 고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quot;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은 대구에 있습니다. 라고 검색한 결과가 정신없이 쏟아져 나와 깜짝 놀랐다. 이런 멋진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군. 그렇더라도 내친김에 대구로 가봐야겠다. 청라언덕을 찾아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전 같았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진 교통 덕텍에 감히 뱃길도 아닌 육로로 , 그것도 고속버스를 타고 거제에서 대구까지 여행하게 되었다. 아침의 눈부신 햇살이 바다로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풍경을 보며 거가대교를 지나 대구로 달리는 동안 휴게소 한번 들리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차창너머로 만나는 시골풍경의 '청도 ' 를 서너장 폰으로 찍어 보았다. 목적지인 대구 동부터미널 도착까지는 고작 2시간 남짓 걸렸다. 2시간20분 소요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20분 빨리 도착하게 해 준 경원고속 기사님 고맙다. 시간은 황금에 비유될만큼 귀하고 소중한것, 짧은 .20분이 주는 즐거움을 기억하는 느낌이 참 좋다. 대구니까. 대구여서... 이번에는 택시를 불러 타고 &quot;아저씨, 청라언덕 갑니다&quot; 라고 기분좋게 목적지를 말씀 드렸더니 &quot;시방 &quot;뭐라캤어요 무슨 언덕요?&quot;'청 라 언 덕 요 &quot; &quot;지는요 대구에서 30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데요 청라언덕이라쿠는 언덕이름은 머리털나고 처음 들어봐요&quot;&quot; 여긴 통영도 아닌데 또 모른다시네 아저씨, 그럼 대구에 청라언덕같은건 원래부터 없었나요 ? 제가 검색 해 보니 있었는데, 다시 검색 해 볼까요?&quot; &quot; 아니 무슨무슨 언덕같은거 말고 퍼뜩 건물이름 말해보소 &quot; &quot; 그럼 대구 제일교회? 신명고등학교,.계성고등학교 아니면 동산 선교사주택 그것도 아니면 계산성당은요..? &quot;손님, 고마 대구제일교회앞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고 가모요 두리두리 다 모여 있는기라요.&quot; 동무생각, 청라언덕, 담쟁이덩굴 그리고 첫사랑 ... ' 언덕 위의 대구 신명고등학교, 언덕이 주는 느낌이라면 언제나 따스하고 .편안하고 정겹다. 동네의 나즈막한 동산 , 아무데나 찾아가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은 곳... 대구 역시 나즈막한 언덕이 참 많은 동네란다. 제일교회 후문 , 대구제일고등학교와 신명고등학교가 보이는 언덕길에서 택시를 내렸다. 그리고 곤색 유니폼을 입고 부지런히 지나가는 아저씨께 청라언덕을 물었더니 &quot;여긴 중구 동산동 그중에서도 동산언덕이라 부르는데 청라언덕도 한번 잘 찾아보세요 ...?&quot; 하고 지나가신다. 마침 신명고등학교 교문옆으로 지나가는 두여학생이 있어 큰소리로 물었더니 &quot; 청라언덕같은건 잘 몰라요&quot; 하고 바람을 희리릭 일으키며 또 지나간다. 학교에조차 청라언덕같은건 알려주지 않는가 보다. 혹 음악시간 선생님께서 '동무생각' 을 가르쳐 주며 노래에 나오는 지명과 작곡가와 관련된 첫사랑 이야기쯤은 이미 들려 주었으리라 여겨지는데 아닌가? ' 청라언덕'의 대구라면서 ... 여학생들이 지나가자 동산의 구석배기에서 무심코 보게 된 '청라언덕'이란 작은 팻말이 왼쪽방향을 가리키며 수줍게 서 있다가 그만 내게 들켜버렸다. 대구제일교회 그래 왼쪽으로 가 보는거야 하고 몇발작 걸어가니 화강암재질의 고딕식 건축양식의 제일교회가 나온다. 웅장하고 예술적인 운치에 탄성이 절로 터진다.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도 생기고,,, 동산 위의 빨간벽돌집 세 채 , 선교동산으로.. 이 곳은 1893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경북,대구지역 복음전도를 위해 베어드 선교사가 처음 정한 선교부지의 장소는 남문안, 현재 구 제일교회 본당 자리였지만 그 곳은 약령시장 골목 안에 위치하여 여러가지로 불편하였다. 선교사들은 당시의 불편을 3S로 표현하였는데 지독하게 견디기 힘들었던 냄새(Smell), 연기(Smoke),소리(Sound)를 피해 1898-1999년 기간에 선교사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멀지 않은 곳, 눈만 들면 서쪽으로 솟아있는 지금의 제일교회 신 본당이 서 있는 이곳이었다. 대구는 기본적으로 분지이지만 올록볼록한 작은 동산이 많은 지리적 특징을 가진 곳으로 동산도 일종의 그런 산이라 이곳을 '동산'(東山) 이라 불린 이유는 달성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에 위치한 산이기 때문이었다. 일설에는 이곳이 무덤이 더러 있고 더러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곳, 말 그대로 썪어 구린내가 난다고 해서 '구리 동 자를 써서 '동산'(銅山)이라 했다는 설도 있지만,. 동산의 구조는 영쪽 끝이 시가지와 접해 있고 , 냠새와 연기,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있는 최적지였다. 비록 언덕 밑에 산신령이 살고 있다는 고목나무가 있고 ,무연고 묘지가 제법 있었지만 개의치않고 달성서씨 문중의 유식한 학자로부터 힘들게 매입하게 되었으며 , 여섯채의 집을 짓고도 병원까지 건축하기에 충분한 땅으로 판단, 아담스 선교사를 비롯한 다른 선교사들이 이 땅을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부루언선교사는 &quot;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의 땅이다 . 저녁 때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흡사 다윗이 압살롬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세운 망대와 같이 보인다&quot; 고 하면서 대구의 신비스런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당시 대구는 대구 읍성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바라가 대구를 방문하여 읍성을 보고 &quot;야, 북경의 자금성 같다&quot; 고 예찬한 곳으로 대구 개신교 시온의 성지가 되었으며 신앙의 출발지였다. (참고자료 , 동산선교이야기/ 박창식 ) 여호와 이레의 동산 선교사들의 주택 스읫츠주택, 챔니스 주택 그리고 블래어 주택이 이국적인 모습으로 서 있으며 동산이 시작되는 이 곳에는 100년전 선교사들이 들여와서 대구지역에 퍼뜨렸다는 사과나무도 만날 수 있었다. 덕택에 대구,경북지역으로 퍼져나간 사과나무는 이 지역의 상징이 되었으며 사과를 즐겨 먹게 된 대구미인들은 각종 미인대회를 휩쓸기도 했었다. 단 성형미인은 사과와는 아무런 관계없다. 근대로의 여행 '2012 한국 관광의 별 '이곳 선교사 스윗즈(Switzer), 블레어(Blair), 챔니스(Chamness) 주택은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건축으로 알려져 있는데 100여 년 1909년 조선 고종 때 당시 친일관료 경상 감사 서리 박종양이 조정의 허락도 없이 허물어버리자 선교사들은 대구읍성에 사용되었던 돌의 가치를 알아보고 날라다 각각 건평 150평 쯤 되는 주택들은 기와지붕에 붉은 벽돌로 만든 2층집으로 동산병원 선교사들의 사택을 짓는데 사용되었으며. 돌의 일부는 또 계성학교 아담스관 등 근대건축물을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1999년 동산병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 블래어 주택 등을 리모델링하여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역사박물관으로 문을 열어 100여년에 걸친 지역의 의료․선교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얗게 목련꽃을 터트리는 대구 동산언덕의 3월 선교사 스윗지 주택 현재는 선교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찾아 갔던 토요일은 이미 관계자들은 오전근무를 끝내고 문을 닫고 있었는데 거제도에서 왔다고 하자 다시 문을 열어주며 얼른 둘러 보고 나오라는 배려에 친절한 대구인심을 고맙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전시되어 있는 이것은 ? 쿰란동굴에서 발견한 양피지 두루마리에 새겨진 사해사본 이스라엘 사해 근처의 쿰란동굴에서 발견했다는 이사야 (구약성서) 1947년 아랍계 베두인 양치기 모하메드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절벽쪽의 쿰란동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동굴속에서 혹시 사나운 짐승이라도 튀어나올까봐 경계를 하며 돌을 던지자 안에서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으며 , 궁금해서 들어 가서 확인한 결과 돌에 맞아 깨진 항아리 외에도 몇개의 항아리가 더 있었는데 그 중 한항이리에 들어있었던 두루마리 양피지 한다발이 바로 이사야 (구약성서)였다. 베두인 양치기는 발견한 사해문서 두루마리를 챙겨서 즉시 고물상에 팔아 사냥총 한자루와 아내를 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두루마리성경(매길라) 모세오경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쿰란동굴 11개 중, 제1동굴에서 출토된 두루마리 양피지 17매를 이어만든 것으로, 높이 26.5cm,전장 7.3cm, 최고의 히브리어 사본으로 되어있다.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렸던 3가지 선물 황금, 유황,몰약과 로마군이 '' 우리의 유대왕에게 왕관을 씌워 드리자 &quot; 그러면서 빈정대고 조롱하며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던, 가시면류관(질려나무로 만든)도 전시되어 있다. 두루마리 사해문서 밀레니엄의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쿰란동굴로의 유혹? 그리고 베두인? Holy Bible 이곳에서 동산선교이야기 / 박창식 지음 책값 10,000 원을 주고 샀다. 동산의료원 100년사를 꼭 챙겨보려 했지만 토요일 오후라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오겠다며 인사하고 나왔다. 가던 길 멈추고 다시 돌아보는 제일교회 고딕첨탑의 실루엣이 낭만대구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동산언덕 .. 이번에 만나 보는 챔니스 주택역시 리모델링하여 의료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역시 관계자의 배려 덕분에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선교사 챔니스 주택 . 의료박물관 본래 동산언덕으로 불리다가 몇년전부터 청라언덕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데 100년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대구,경북지역에 개신교의 복음을 전하면서 능금나무와 담쟁이덩굴을 함께 들여와서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담쟁이덩굴은 선교사 주택의 벽을 타고 기어오르면서 동산언덕을 더한층 운치있게 꾸며주어 아름다운 곳이 되었으며 이 곳을 찾는이들에게 기억할만한 명소로 자리잡게 되었단다. , 우리나라같지 않은 이국적인 풍경 덕택에 웨딩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1 100년전 의료기기들을 보면서... 한방에만 의존하고 있던 대한제국시대 개신교의 선교 복음사역의 일환으로 의료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미국 북장로교의 의료정책이 유감없이 발휘된 곳 역시 대구였다. 대구의 의료사역은 1897년 대구에 부임한 존슨이 제중원(동산병원 전신)을 개원한 것이 그 시원이었으며 치료의 목적은 전도였다. 챔니스 선교사 주택 앞으로 개나리꽃이 노랗게 봄을 쏘아 올리고 영남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대구에도 봄은 와 있었다. 오래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고 대구시인 이상화는 목이 터져라 외쳤을것이다. 조금 떨어진 3.1 운동길쪽에서 '대한독립만세 ' 라고 외치는 소리가 큰소리로 들려왔으며 나라 잃은 백성으로 고통당한 선조들을 생각하며 당당하게 외쳐보는 만세삼창 함께하는 여행자들 모두가 즐겁게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국내 약국효시 ' 미국약방 '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우드브리 존슨이 1899년 대구 약전골목에 세운 약국이다 존슨은 같은 해 제일교회 구내에 ‘제중원(濟衆院)’이란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진료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미국약방과 제중원은 동산의료원의 전신이다. s 동산의료원구관 현관 , Since 899 '동무생각'의 첫사랑 신명학교의 유인경? 가곡 ,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을 노래하다 동산언덕에서 근대로의 여행을 흥미진진 하고 있는데 멀찌감치에서 바람을 타고 합창으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가는 길 멈추고 들어보니 &quot; 봄의 고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quot; . 노래는 걸을수록 점점 더 가깝게 들려왔으며 오래전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던 대구의 한 남학생을 떠올리며 나도 함께 청라언덕을 따라 불러 보았다. 옮긴 사진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국민가곡 '동무생각'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이 노래는 북한에서조차 '조선가요' 로 애창되며 사랑받고 있는 노래이다.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한국 최초의 가곡으로 태어났던 '동무생각'의 박태준 (朴泰俊) 1900- 1986) 은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터스컬럽대학굥하 웨스트민스터 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 근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며 &lt;오빠 생각&gt; &lt;집 생각&gt;&lt;기러기&gt; 등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작곡가 박태준 연보 그러니까 '동무생각'은 왜 ... 이 고운 노랫말에 나오는 '청라언덕'이 바로 대구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곳에 왔으니 시시콜콜 한번 들먹거려 볼일이다. 동무생각은 만들어지자 곧 바로 음악교과서에 실리기 시작하여 한번도 빠진적이 없는 우리민족의 영원한 명곡으로 애창되고 있는 주옥같은 노래이다. '동무생각'은 작곡가 박태준이 계성학교에 다닐 무렵 같은 개신교 계열의 신명학교에 재학중인 한송이 백합꽃을 닮은 한 여학생을 좋아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 한마디 못한채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린 그녀를 못잊어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준은 한 때 마산 창신학교에서 음악선생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친하게 지낸 동료교사 노산 이은상에게 짝사랑이야기를 고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난 이은상은 &quot;잊지 못할 소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그 곡 안에 담아두면 박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게 아닙니까?&quot; 라며 주옥같은 가사를 써 주었으며 박태준이 작곡한 '동무생각'은 세상밖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 ' 덩달아 노랫말에 나오는 '청라언덕'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은 대구, 작곡가 박태준의 첫사랑이야기를 세상에 소문내어 퍼뜨리면서 '청라언덕사업'은 이렇게 한음악가의 짝사랑을 스토리텔링으로 완성시켰다. 또한 2011년 3월 21일 조선일보 '문화가산책' 란의 최영애 음악칼럼니스트가 기고한 '청라언덕에서 동무생각을 ~ '이란 칼럼에서도 '봄의 고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라고 노래하는 청라언덕은 바로 대구에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인들의 애창가곡 '동무생각'을 악보에 써 내려가 첫사랑의 기억은 오페라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서양음악의 선구자이자 대구를 빛낸 작곡가 박태준의 삶과 음악, 그리고 사랑을 담아 추억하는 가곡으로 창작오페라 '청라언덕'을 만들어 공연을 한 그것이다. 2009냔 6월 동산언덕에 세운 청라언덕의 '동무생각 '노래비 한국가곡 '동무생각'의 노랫말중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 담쟁이 라(羅)를 쓰며 이 청라(담쟁이)는 푸른 담쟁이로 뒤덮는 대구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과 동산(東山 ) 일대의 언덕을 말한다고 한다. 짝사랑 선교사 블래어 주택 이 곳은 역사박물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토요일 오후라 관계자가 이미 퇴근한 후라 들어 가 보지 못한채 발길을 돌린다.. 근대적인 풍경과 엔틱한 느낌과 마음껏 이국적이고 동화같은 동산언덕의 선교사 주택들은 멀리서 보아도 설명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이제 3.1 만세길이라 불리는 90계단을 따라 가다보면, 개신교의 복음을 전하며 바쁘게 오르내렸다는 선교사들과 3.1운동의 만세를 부르기 위해 이 길로 숨어서 지나갔을법한 대구고,계성고,신명여고생들과 청라언덕의 푸른빛 담쟁이덩굴과 대구를 조금더 기억하게 될까? 계단을 따라 가며 벽에서 만난 ' 대구고보'사진 교장은 물론이거니와 교사들 중에도 일본인이 많은았던 관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생 약 200여명이 3.1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 이 가운데 주동인물 일부는 징역 6개월에서 1년의 선고를 받았다. 신명여고생들이 참여한 3.1만세운동 공부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일제의 압제하에 고통받고 있는 우리민족의 독립이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운동은 여학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기숙사에 모인 여학생들은 태극기를 만들었고 검정치마 흰저고리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치마의 허리끈을 따버리고 조끼허리를 만들어 입으라는 특별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이유는 만세를 부르면서 달리더라도 안전하기도 하거니와 혹시 모를 불상사로 일경에게 체포되더라도 가슴이 터져나오는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조치를 취한 결과였으며 이때부터 한복 치마에 달린 가슴을 묶는 가느다란 끈에서 안전하고 편리한 조끼식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끼식은 한복변천사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 3.1 만세길 (90계단)의 의미를 생각하며 대구의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동산언덕을 남겨두고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또 하나의 청라언덕을 찾아 마산 '노비산'언덕으로 가면서... 출처, 유튜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만든 '동무생각' 동영상&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담쟁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담쟁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제중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중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광혜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혜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동무생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무생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존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존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이은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은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박태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박태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청라언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청라언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신명학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명학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대구 동산언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구 동산언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계성학교. 대구고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계성학교. 대구고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3.1 만세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3.1 만세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미국 북장로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국 북장로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의료선교사 스윗즈주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의료선교사 스윗즈주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챔니스 주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챔니스 주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블래어 주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블래어 주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미국약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국약방&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아담스 청라언덕 오페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담스 청라언덕 오페라&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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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9 Mar 2013 11:48:46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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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362년전  표류한 히멜의 흔적과  네덜란드 성문화 엿보기와 용머리해안</title>
	            <description> 29258 , 제주로 부는 바람, 바람,바람 바람과 제주는 바늘과 실의 관계같습니다. , 바람이 불지 않는 제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바람곶 제주를 여행하는 여성여행자라면 아슬아슬한 치마따윈 입지 마시길.. 마릴린 먼로의 흉내를 잠깐 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셨다면 그조차 말릴 생각이야 없지만, 게다가 멋내기 모자를 쓰고 제주도로 여행하실 계획을 세우셨다면 그 또한 꼭 말리고 싶습니다. 섬으로 부는 3~4월의 샛바람(동풍)은 제법 심술을 부리기도 하는 계절이잖아요. 하지만 점퍼에 달린 모자라면 안심해도 좋겠습니다. 2013.03,01 오후 4시경, 우리는 잠깐의 짬을 내어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바닷가로 갑니다. 친절한 제주 오마니와 가나와 셋이서... 종 모양으로 우뚝 솟은 제주도의 산방산 앞바다, 그곳에 자연이 만들어 놓은 절경의 오묘한 멋을 켜켜이 쌓아 놓은 화산분출활동이 활발했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주시겠다니 부지런히 가야죠.. 우리가 가는 곳은 제주도 남쪽의 용머리해안입니다. 거대한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 곳은 수천만 년 시간이 만들어 낸 사암바위가 다시 오랜 시간동안 파도에 부딪고 깎여서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품으로 제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해안' 그런데 멀찌감치로 배가 한척, 육지로 올라 온 배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인터넷에서 종종 보았던 풍경, 저건 '히멜의 상선' 아닌가요? 하멜표류기 ? 빠삐용처럼? 죽을고비를 몇번이고 넘긴 끝에 결국 조선탈출에 성공하여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은 자신이 다니던 동인도 회사에 밀린 봉급을 받기 위해 13년이 넘는 기간의 고단했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한 보고서로 제출하게 됩니다. 이 특별한 보고서는 곧 '하멜표류기 ' 라는 제목을 달고 책으로 출판되어 유럽전역을 강타하게 되죠 그리고 동방의 은둔의 나라, 조선은 그렇게 알려지게 됩니다. 한나라의 이미지와 체면따위는 상관없이 적나라한 모습으로 유럽의 관심을 끌게 된 거죠. 빨강머리 앤, 용머리해안 입구에 정박한 하멜의 상선을 보자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만큼이나 벅찬 감동이 요동치지만 드러내 놓고 마냥 좋아할 수가 없네요. 그럼 오마니께서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언제나 숨길 수 없는 빛깔의 소유자 빨강머리앤, 천방지축 호들갑은 금방 표정으로 드러나고 맙니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소개 해 놓은 하멜상선 제주도 표류기는 수 많은 포스팅을 통해 나름 줄줄 꿰어찰 정도가 되었지만 , 오늘은 또 다른 빨강머리 앤 만의 시각으로 누구에게도 아직 드러내지 않은 새로운 정보를 찾아 보고 싶습니다. 제주, 네덜란드와 인연 시작되다. 서귀포시 사계리 용머리해안을 소개 해 놓은 표지판 앞입니다. &lt;옮긴 사진&gt; 네덜란드와 합작하여 재현 해 놓은' 하멜호 ' 362년전 동인도회사의'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중 풍랑을 맞아 배는 좌초되어1651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해안에 표류하게 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포수 하멜.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랍니까? 하멜호는 내부수리중이어서 전시관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다고 적혀있습니다..이런이런~~ 너무도 아쉽습니다. 이번 제주행에서는 하멜전시관을 꼭 돌아보겠다고 작정 하고 왔는데 말이죠.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이럴 때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히멜표류기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아보는겁니다. 유익한 내용은 공유하면서 말이죠. &lt;옮긴 사진&gt;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언덕에 있는 '하멜 기념비' 하멜의 바이올린하고는 상관없다 제주도에 있는 하멜 기념비 환영하오 낮선이여 하멜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165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의 포수(砲手)로, 항해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1668년 탈출하여 《하멜표류기(漂流記)》로 알려진 기행문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그의 억류생활 14년간의 기록으로서 한국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 말하자면 운 나쁘게 먼 나라에서 갖은 고생 다하다가 겨우 빠삐용처럼 탈출해서 자기 회사에 그동안 밀린 봉급 받을려고 13년 넘는 기간의 상황을 상세히 기술한 책. 사실 고생한 걸 티내려고 어느정도 과장을 했을 측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묘사가 속속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 리얼리티를 보장한다. 한국의 생활상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기술한 것 외에도 해외에 조선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상세히 전파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인 자료 가치는 상당하다. 이것이 원본. 아래는 네덜란드=화란 인이 상상한 삽화.(전혀 조선같지 않아) 노역과 빈곤으로 인해 하나 둘 죽으면서 36명중 16명이 최후에 남았고 8명은 탈출에 성공, 8명은 2년후 생환에 성공한다. 정발본도 있다. 들어올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때는 아니란다. 이게 결코 긍정적이거나 해피한 내용이 아닌데도 코레아 열풍이니 히딩크랑 비교하는 개드립 띠지는 대체.... 처음에는 한양까지 불러와서 벼슬도 시켜주고 나름대로 잘 대해줬지만 나중에 흉년으로 나라 사정이 어려워지자 노비처럼 부려먹고는 쫄쫄 굶어 죽도록 냅두는 바람에 하멜 일행이 직접 장사하고 구걸까지 해야했다. 게다가 하멜이 13년 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탈출할 때까지 조선 조정은 그들이 남만인(포르투갈)인 줄 알고 있었다가 나중에 하멜을 심문했던 일본측의 통보를 받고서야 네덜란드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일본 에도 막부는 하멜에게서 조선의 상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은 다음 이를 무기로 조선을 외교적으로 압박했다. 여담이지만 고향 말조차 거의 잊고 조정에서도 불려다닐 정도로 자리잡은 벨테브레이(박연)와 길거리에서 끌려다니면서 거의 신기한 '생물' 수준의 구경거리가 되는 하멜 일행의 모습이 참 대조적이다. 헌데 박연은 &quot;여기 들어온 이상 나갈 생각 마라&quot;라는 식으로 말하니... 사실 하멜 일행도 몇 번씩 탈출 시도를 하고 몇 번씩 또 실패하면서 탈출에 성공했다. 중국 사신이 오는 것을 알고 길막한 뒤 단체로 호소를 하거나, 아는 어부를 회유해 배를 구입하거나... (같은 네덜란드인인 박연은 조선에 최초로 귀화한 유럽인으로, 이 역시 하멜처럼 잡혀서 강제로 군 복무를 하였음. 동료 둘은 병자호란 중 사망. 자신도 끝내 고국에 못 돌아갔다.) 또한 실록의 관련 문헌. 제주 목사(濟州牧使) 이원진(李元鎭)이 치계(馳啓)하기를, “배 한 척이 고을 남쪽에서 깨져 해안에 닿았기에 대정 현감(大靜縣監) 권극중(權克中)과 판관(判官) 노정(盧錠)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보게 하였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뒤집혀 살아 남은 자는 38인이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자도 다릅니다. 배 안에는 약재(藥材)·녹비(鹿皮) 따위 물건을 많이 실었는데 목향(木香) 94포(包), 용뇌(龍腦) 4항(缸), 녹비 2만 7천이었습니다. 파란 눈에 코가 높고 노란 머리에 수염이 짧았는데, 혹 구레나룻은 깎고 콧수염을 남긴 자도 있었습니다. 그 옷은 길어서 넓적다리까지 내려오고 옷자락이 넷으로 갈라졌으며 옷깃 옆과 소매 밑에 다 이어 묶는 끈이 있었으며 바지는 주름이 잡혀 치마 같았습니다. 왜어(倭語)를 아는 자를 시켜 묻기를 ‘너희는 서양의 크리스챤〔吉利是段〕인가？’하니, 다들 ‘야야(耶耶)’ 하였고, 우리 나라를 가리켜 물으니 고려(高麗)라 하고, 본도(本島)를 가리켜 물으니 오질도(吾叱島)라 하고, 중원(中原)을 가리켜 물으니 혹 대명(大明)이라고도 하고 대방(大邦)이라고도 하였으며, 서북(西北)을 가리켜 물으니 달단(韃靼)이라 하고, 정동(正東)을 가리켜 물으니 일본(日本)이라고도 하고 낭가삭기(郞可朔其)라고도 하였는데, 이어서 가려는 곳을 물으니 낭가삭기라 하였습니다.”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서울로 올려보내라고 명하였다. 전에 온 남만인(南蠻人) 박연(朴燕)이라는 자가 보고 ‘과연 만인(蠻人)이다.’하였으므로 드디어 금려(禁旅)에 편입하였는데, 대개 그 사람들은 화포(火砲)를 잘 다루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코로 퉁소를 부는 자도 있었고 발을 흔들며 춤추는 자도 있었다.- 효종실록(1653년 기록) (여기서 말하는 낭가삭기는 일본의 나가사키를 말하며 외국인의 체류가 보장되는 데지마가 있었음.) 이하 자세한 개요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의 저술로서 당시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 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로 호크(Sparrow Hawk)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 산방산(山房山) 앞 바다에 상륙했다. 그들은 체포되어 13년 28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8명이 탈출해 귀국했는데, 귀국선의 서기인 하멜이 한국에서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예리하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조선의 실상을 비교적 정확하고 충실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어떤 내용은 잘못 인식되어 전혀 달리 전달된 사례도 있다. 책의 내용과 간행 경위는 다음과 같다. 1653년 1월 10일 네덜란드를 떠난 포겔 스트루이스(Vogel Struuijs)호는 6월 1일 자바섬의 바다비아(Badavia)에 도착했다. 선원들은 그 곳에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총독 명령에 따라 스페로 호크호로 대만(臺灣)의 안핑(安平)으로 향발, 6월 14일 도착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대만의 신임 총독으로 부임하는 네덜란등인 레세르(Lesser, C.)를 임지로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임무가 끝나자 다시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7월 30일 나가사키(長崎)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풍랑이 심해 8월 11일까지도 스페로 호크호는 대만 해협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8월 15일 풍랑은 더욱 심해 선미(船尾)의 관망대가 떨어져 나갔고, 탈출용 작은 배도 잃어버렸다. 배 안에 물이 스며들어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선원들은 짐과 돛대마저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 한 선원이 육지가 보인다고 외쳤는데 그 곳이 바로 제주도 남해안이었다. 정박을 시도했으나 혹심한 풍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 거대한 파도가 거듭 선창으로 밀려들어 드디어 스페로 호크호는 난파되고 말았다. 64명의 선원 가운데 28명은 익사하고, 육지에 오른 생존자 36명은 서울로 호송되었다. 서울에서 2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가 1656년 3월 전라도로 옮겨졌다. 그동안 14명이 죽고, 다시 1663년 생존자 22명은 여수·남원·순천으로 분산, 수용되었다. 이들은 잡역에 종사하면서 길고긴 고난의 억류 생활을 계속했는데, 어느 때는 구걸에 나서기도 하였다. 1628년(인조 6)에 표류한 같은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Weltevree, 朴燕)를 만났으나 동포를 만난 감격도 잠시일 뿐 고통스러운 생활은 계속되었다. 하멜이 억류 생활을 한 곳은 전라도 여수 좌수영이었다. 다행히 작은 배 한척을 마련해 먹을 것을 구하느라 부근의 섬들을 내왕하면서 조수·풍향 등을 잘 알게 되었다. 탈출 직전까지의 억류 생존자수는 모두 16명이었다. 탈출 비밀이 탄로날까 두려워 전원이 탈출하지 못하고 8명만이 1666년(현종 7) 9월 4일 야음을 틈타 탈출에 성공, 일본의 나가사키를 경유해 1668년 7월 암스테르담에 귀환했다. 탈출에 가담하지 않았던 나머지 8명도 2년 후 조선 정부의 인도적인 배려로 석방,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책에는 이들의 귀환 사실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에서 끝내 죽은 줄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은 1668년 암스테르담에서 3개 출판사에 의해 동시에 출간되었다. 이때 하멜은 13년 이상의 밀린 봉급을 동인도회사에 요구하느라 미처 고국에 돌아오기 전의 일이었다. ≪하멜표류기≫ 정본(正本)은 1920년 회팅크(Hoetink,B.)에 의해 발간되었다. 정본의 내용 구성을 보면, 제1부는 난파와 표류에 관한 기술, 제2부는 ＜조선왕국기 朝鮮王國記＞로 되어 있다. 제2부는 한국의 지리·풍토·산물·정치·군사·풍속·종교·교육·교역 등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저자가 거의 14년 동안 군역·감금·태형(笞刑)·유형(流刑)·구걸 등의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을 하였고, 남북의 여러 지역을 끌려다니면서 당시 풍물과 풍속에 대한 사정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대한 깊은 인상과 풍부한 경험을 잘 살려 기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깊지 않았던 서양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최초의 저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책은 프랑스·영국·독일 등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다투어 번역, 간행했고, 우리 나라에서도 1934년 ≪진단학보≫ 1∼3호에 이병도(李丙燾)가 영역본(英譯本)·불역본(佛譯本)을 저본으로 번역, 전재했다. 그 뒤 ≪하멜표류기 --漂流記≫가 일조각(一潮閣)에서 1954년에 간행되었고, 일본에서는 1961년 이쿠타(生田滋)가 ≪조선유수기 朝鮮幽囚記≫라는 제목으로 번역, 간행했다. 1980년 10월 12일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은 우호 증진을 위해 각각 1만 달러씩을 출연해 난파상륙 지점으로 추정되는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해안 언덕에 높이 4m, 너비 6.6m의 하멜기념비를 세웠다 사진출처 대부분은 심일, 마음하나 블로그 http://blog.naver.com/qnwkkr?Redirect=Log&amp;logNo=120090057006 이쪽 링크에 하멜 표류기의 전문이 원문과 함께 자세하게 번역이 되어 있으니 흥미가 가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이번에는 눈을 돌려 맞은편에 있는 볼거리를 향해 ...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마들어낸 거스 히딩크감독을 따라 내덜란드관으로 가 보겠습니다. 여기는 제주, 네덜란드 . 히딩크감독, 벅찬 감격의 골세리머니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럼 운화와 풍차와 튤립의 나라 그리고 고흐의 나라로 알려진 내덜란드속으로 신나게 들어 가 볼까요? 네덜란드가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 짠 '성문화' 되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여러분, 아직도 '성문화'는 금기시하고 음밀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 라고 네덜란드가 묻는것 같습니다. 궁금하세요? 신기하세요? 여기는 제주도 용머리해안입니다. 네덜란드는 일찍부터'성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교과과정을 통하여 수업으로 이루어지는 성교육을 통해 콘돔사용법과 피임법 등등을 구체적으로 배워나간다고 합니다. 6주로 구성된 성교육 수업은 피임 기구의 원리와 사용법에 대해서 꾸준하게 배우게 되며 피임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콘돔이라는 결론도 내리게 된다고 하네요. 성교육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께서 콘돔을 하나씩 나눠 주시기도 하구요. 그리고 피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토론식 수업을 통하여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이런 교육의 결과로 네덜란드 성범죄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합니다. &lt;옮긴 사진&gt; 각양각색의 콘돔이 주렁주렁 , 이 가게가 과연 뒷골목에 있을까요? 절대로 아니랍니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널려있는 '성인용품샵' 입니다. 마약과 마리화나를 경험 해 볼 수 있는 카페가 즐비하며 ... '야한영화'를 관람하기도 있는데 무려 105분짜리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인의 국적을 취득하려면 이런 문화를 받아 들일 수 있는지 일종의 테스트도 한다는군요 이런 야한 장면은 물론이며 동성간 애정행각 장면도 삽입되어 있는데 도저히 봐내지 못한다면 네덜란드인이 절대로 될 수 없을것이라고 말합니다. 참고자료, 인터넷속 나의 생각. &lt;옮긴 사진&gt;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 SEXMUSEUM 1990년대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로 가게 되면 특이함을 참 많이 접한다고 하죠.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국가가 관리하는 공창가가 있으며 , 모든 법죄에 대해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이며, 마리화나등 마약이 법적으로 용인되는 나라이며, 동성결혼이 가능하고 낙태를 법적으로 용인하는 나라 또한 네덜란드라고 합니다. 서울의 청량리 588같은, 암스테르담 중심가의 홍등가 세계 유일의 매춘이 합법화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고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세계 무역의 허브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부터 이미 알려져 있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는군요. 이상 ,네덜란드 '성문화' 유익했나요? 참 제주에도 성을 표현한 작품들이 가득한 '제주 러브랜드'가 있다는 것 아시죠? 금기시 되어 있던 성문화를 대중앞에 끌어낸 국내 유일의 야외 조각공원입니다. 이제 용머리해안으로 ... 입장료를.지불하고 이제 용머리해안으로 갑니다. 철썩철썩 ...바람이 파도를 데려 옵니다. 오마니, 오마니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제주를 조금 적게 알고 계신 편이죠ㅎㅎ (개그 ,거제도에서 보숙이처럼.. ) 해녀의 가게인가요? 용머리해안 곳곳은 이렇게 제주오마니들이 바다에서 건진 해산물을 펼쳐놓고 팔고 계시더라구요. 수천만 년 전부터 시간이 공을 들인 작품들이라는 극찬을 듣는 용머리해안의 기이한 풍경 마치 유령의 나라에 초대되어 온 것 같습니다. 화산활동의 놀라운 결과물 용머리해안, 물때와 날씨영향을 수시로 받는 곳이라 긴장하며 돌아보아야 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바다가 혀를 내밀고 낼름거리는 바닷길을 30~40분 걸어갑니다. 용머리해안, 시간이 빚어 놓은 지질역사학습체험장 같죠.? 태고로 가는 길 ? 이제 저 높은 곳을 향해, 세상을 향해 갈게요.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샛바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샛바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용머리해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용머리해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마약&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약&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하멜표류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하멜표류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제주 러브랜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주 러브랜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일본 나가사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 나가사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내덜란드 성문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내덜란드 성문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서울 청량리588 조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울 청량리588 조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사형제도 마리화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형제도 마리화나&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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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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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 섶섬이 보이는 풍경 </title>
	            <description> 29255 2013,03,01 바람과 비를 맞으며 찾아 간 서귀포의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거리 섶섬이 보이는 방 이중섭의 방에 와서 - // 나희덕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귀퉁이 고방을 얻어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소라껍질을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빈 조개껍질에 세 든 소라게처럼... *아고리와 발가락군-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1916. 4. 10 평남 평원~ 1956. 9. 6 서울. 서양화가. 이중섭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의 한 사람이다. 호는 대향(大鄕). 부유한 농가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8세 때 평양 이문리에 있던 외가에 머무르며 종로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졸업 후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해 임용련으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았다. 임용련은 예일대학교 미술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로 학생들에게 향토적인 주제에 의한 미의식을 가르쳤고 이는 이중섭의 화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중섭은 18세에 학교건물을 새로 짓자는 이유로 오산학교 본관 화학실을 불태우기도 했으며 일제의 국어말살정책에 반발해 한글자모로 구성을 시도했다. 이무렵 그는 들에 있는 소를 관찰하며 스케치에 열중했고 오산학교를 졸업할 때는 앨범의 서명란에 한반도를 그리고 현해탄에서 불덩이가 날아드는 그림을 그려 소동을 빚기도 했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 미술학교에 들어갔다가 문화학원에 재입학해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자유로운 경향을 공부했다. 이때 이정규·김환기·유영국·김병기·문학수 등과 사귀었다. 1938년부터 일본 추상 그룹인 미술창작가협회에 참여했으며 1941년에는 협회상인 태양상(원명 조선예술상)을 받았다. 그해 김환기·유영국·문학수 등과 서울에서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창립전을 가졌다. 프랑스 유학을 원했으나 형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1943년 귀국하여 2년 후 문화학원 후배인 야마모토[山本方子]와 결혼하여 원산에 정착해 살면서 8·15해방을 맞았다. 1946년 북조선미술동맹에 가입하여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 凝香〉 표지그림을 그린 후 구상의 사건에 연루되어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뒤 불우아동들의 무료강습소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1950년 겨울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부산·서귀포·통영 등지로 전전하며 피난살이를 했다. 1952년 국제연합(UN)군 부대 부두노동을 하며 양담배갑을 모아 은지화를 제작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고 이듬해 부인을 만나러 일본에 1차례 건너갔다온 것을 제외하고는 만나지 못했다. 궁핍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면서 종군화가로서 몇 차례 단체전에 출품했고 1953년에는 통영에서 유강렬과 함께 지내며 다방에서 40점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듬해 진주를 거쳐 상경했고 박생광의 초대로 진주로 내려가 작품 활동을 했다. 서울 누상동에 거주하면서 국방부·대한미술협회(대한미협) 공동주최의 대한미협전에 출품했다. 1955년에는 미도파 화랑과 대구의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해 7월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 대구의 성가병원에 입원했다. 친구들의 배려로 여러 병원으로 옮겨다니며 치료해 얼마간 호전되었으나 무단으로 퇴원한 후 불규칙한 생활로 병세가 악화되어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1957년 조각가 차근호 제작으로 묘비가 세워졌다. &lt;백과사전&gt; 바람 불고 비가 내렸지만 화가의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뜻밖으로 많았는데. 1951년부터 약 1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부인과 두 아들(태현5세, 태성3세)와이 살던 4.6m2(1.4평) 초가 단칸방이 아직 남아 있다. 전쟁을 피해 1951년 제주도로 건너온 이 화백 가족은 먹을 것이 부족해 날마다 바닷가로 나가서 조개와 게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 화백이 그린 당시의 그림에도 게가 자주 등장한 이유는 게를 잡아먹었던 행동이 늘 마음에 걸려 죽은 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찾아 갔던 날, 마루밑에는 강아지 한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듯 내다 보고 있었으며 초가집 벽에는 당시 방을 빌려 주었던 주인할머니(김순복 92세) 가 살고 계신다는 문구의 글이 벽 중앙에 붙어 있었다. 1951년 이중섭 일가에게 방을 빌려줬던 김순복 할머니(사진 왼쪽)와 이남덕 여사가 서귀포 이중섭 거주지에서 15년 만에 재회했다. 김 할머니는 이 여사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 반갑다. 여전히 곱다”고 했다. /서귀포=이종현 객원기자 이중섭화백이 가족들과 세들어 살았던 집 마루에 걸터앉아 보았다. 왼쪽부터 제주 오마니, 통영여고 첼린지 동아리 친구들 조윤나, 고아라 , 김예지 우리를 제주까지 초대해 주신 제주오마니께서 미술학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시며 이곳으로 데려 와 주셨다. 화가의 거리로 조성 해 놓은 '이중섭거리 ' 천천히 언덕이 시작 되는 이 곳에서는 서귀포 앞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하나가 보였는데 오마니께서 '섶섬' 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서울신문에 소개 된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이중섭 화백의 대표작중 하나이기도 . 파리의 몽마르뜨언덕이 이만큼 운치가 있을까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머문 시간은 고작 1년여 기간에 불과했지만 예술의 거리로, 문화의 거리로 태어나게 한 제주도민들의 노력이 단연 돋보였다. 축축하게 젖는 빗속이지만 제주도에서 맞은 3.1절을 어이 잊으리 천재화가 이중섭의 향기가 풍기는 작품을 만났으니 크게크게 의미를 부여해도 좋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만큼 하늘과 달과 별도 가까워져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동기를 유발시켜 주는것 아닐까? 화가가 살았던 초가로 가는 길도 검은빛깔의 돌담이었다. 비를 맞아 윤기를 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이중섭 미술관이 그리움처럼 서 있었다. 우리도 비옷을 하나씩 사 입고 화가를 만나러 갔다. 작은 아이 가나도 함께... 이중섭거리 마침 3.1절이라 곳곳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발 밑을 내려 다 보니 역시 화가의 그림이 올려 다 보며 방문객을 반겨주었다. 다정여인숙,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사실 제주 서귀포에 화가 이중섭미술관과 문화의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열살 가나도 이제 화가 이중섭을 제법 알게 되었노라 친구들앞에서면 큰소리 뻥뻥 치겠지 ? 서귀포가 비에 젖어들자 몽환적인 신비감이 잠을 깨고 일어나듯 ,, 그런 느낌이 들었다. 3.1절,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이중섭거리에서 ... 내 걸린 태극기가 비를 맞고 있는 풍경을 보자 뜬금없이 가난한 식민지 나라의 가난한 예술가 를 사랑하여 현해탄을 건너 온 화가의 아내 이남덕여사 (일본명 마사코)가 이 땅에 살던 모습이 서릿하게 그려졌다. 화가의 아내는 첫눈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노라 했지만 그 천재성을 인정받기까지 잘곡의 삶은 변화무상한 제주의 날씨만큼 고통속이 아니었을까? 아기자기한 모습의 공방이 다닥다닥 길 양편으로 어께동무 하고 늘어 서 있었다. 서귀포 비가 내리자 우연한 그림한장이 태어났고, 우리가 입은 레인코트가 거리에서 바스락대며 활짝 웃었다. 오마니가 또 활짝 웃었다. 통영의 딸들은 이중섭 화백을 대단히 존경한다고 했다. 그림을 생각하며 걷는 거리 그림을 따라 걷는 거리. 최근 몇년째 우리나라는 그림으로 세상을 환하고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아름다운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여 이 곳을 찾는 방문자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비를 맞는 골목길이 유난히 반짝였다. 까꼬막길을 오르면서 돌아보니 조망은 더더욱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중섭공방에 들어 가 보고 싶었다. 서귀포극장, 영화를 상영하는지는 알어보지 못했다. 가난한 화가가 살았다는 초가집의 한평짜리 방안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돌담너머 목련꽃이 망물지고 화가가 살았다는 옛집에는 가끔씩 그를 추억하며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홀로 살고 계신데 오래오래 살아 누군가가 찾아와서 화가가 살던 모습을 들려달라 졸라대면 아낌없이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만나보지는 못했다. 이중섭미술관 &lt;이중섭 화백의 작품과 해설 &gt; 섶섬이 보이는 풍경 나무판에 유채, 41×71cm, 1951년 폭격의 위험을 피해 월남한 이중섭은 부산에서 다시 제주도 서귀포로 갔다. 주민의 호의로 살 곳을 얻어서 비로소 안정을 얻게 되었다. 사는 집지붕과 그 아래로 펼쳐지는 섬이 있는 바닷가 고요하고 깨끗한 느낌을 그린 것이 풍경화다. 뒷날 부산과 통영에서 그린 풍경화들에서 보이는 활달한 필치와는 사뭇 다르다. 서귀포의 환상 나무판에 유채, 56×92cm, 1951년용인 호암 미술관 소장 귤이 자라는 따뜻한 날씨와 작으나마 깃들 수 있는 집에서 비로소 안도한 이중섭의 마음을 느낄수 있다. 아울러 아이가 새를 타는 것으로 설정해서 환상적이기도 하지만 사실적인 필치가 있으므로 북한에서 생활할 때 강요되다시피 했던 사실주의적인 태도가 남은 것이라고도 여겨진다. &lt;도원&gt;과 함께 이중섭이 남긴 그림 중에서 가장 커다란 것에 속한다.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 종이에 유채, 41.8×30.5cm 도원 종이에 유채, 65×76cm, 1953년 무렵 물이 있고 크고 작은 봉오리들이 있는 곳에 서있는 천도복숭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남자아이가 노는 광경을 통하여 낙원의 느낌을 나타냈다. 젊은 시절 애인에게 보낸 그림엽서들에도 이런 경향이 강했다. 통영에 머물던 시기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최재덕과 8.15 직후 서울에서 그렸던 벽화도 이런 소재였다고 하는데, 통영에서 멀지않은 산청이 고향이며,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월북하고 없었던 조선신미술가협회의 동인이었던 최재덕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호 대향 을 써서 대이상향 이라는 본래의 의미대로낙원의 느낌을 물씬하게 풍기도록 하였다. 길 떠나는 가족 종이에 유채, 29.5×64.5cm, 1954년 헤어져 있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자신은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광경을 그렸다고 했는데, 이 그림은 이를 옮긴 것이다. 서울에서 개인전을 성공리에 마치면 곧 만나게 될 가족에 대하여 희망에 차서 그린 것이다. 유화가 1점 더 있다. 그림의 테두리는 젊은 시절 큰 영향을 받은 루오가 쓰던 수법을 응용한 것으로이중섭도 이를 자주 애용했다. 가족 종이에 유채, 41.6×28.9cm 소 종이에 유채, 29×40.3cm, 1956년 무렵 소는 중등 과정부터 즐겨 그리던 그림의 소재였다고 동창들은 전한다. 소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과 소로 상징되는 민족과 현실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돌봐준 의사에게 선물한 이 그림은 그의 배려로 건강하게 되었다는 감사의 마음을 그림에 보이는 평정한 모습의 소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뒷면에 &lt;비둘기가 있는 가족&gt;이 그려져 있다. 가족과 비둘기 종이에 유채, 29×40.3cm, 1956년 무렵 가족을 그린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경쾌함이다. 가족이란 화기애애함이 넘치는 인간관계임을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이 그림은 재빨리 완성해 이런 느낌이 더더욱 강조되었고, 그럼에도 등장인물의 개별 특징이 또렷한 것이 큰 특징이다. 소와 새와 게 종이에 유채와 연필, 32.5×49.8cm 황소 종이에 유채, 32.3×49.5cm, 1953년 무렵 소는 고개를 들면서 외치는 듯하다. 왼쪽으로 향한 얼굴과 오른쪽으로 향한 눈이 화면의 양쪽 모두를 지배하는 듯하다. 외침이 들리 듯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하여 소의 얼굴과 목 주위를 유달리 주름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코와 입에 가해진 선연한 붉은 색과 넓은 배경의 붉은 노을을 층지게 하여 이런 느낌을 강화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평원군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이런 감회를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투계 종이에 유채, 29×42cm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 소장 두 마리의 닭이 서로 싸우고자 덤벼드는 설정이다. 푸르고 붉은 빛깔로 그린 닭 부분이 충분히 마른 뒤, 그 위에 덮은 검은 빛깔이 마르기 전에 물감칼로 덮은 물감을 긁어냄으로서 완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조응하는 색깔과 태세로 보아 고구려 무덤벽화에 나타나는 색채적, 조형적 특징을 계승한 것이라 보인다. 부부 종이에 유채, 51.5×35.5cm, 1953년 무렵 소와 어린이 나무판에 유채, 29.8×64.4cm 기진맥진한 소는 후기작으로 추정되는 이중섭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지고 가던 지게를 세우고 남자아이가 딱한 처지의 소 가랑이 사이에 들어가 앉아 두 손으로 꼬리와 뒷다리를 쥐었다. 무슨 행동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상태에서 재빨리 소 불알을 훌트면 기운이 버쩍 난다고 한다. 그림으로 그려내기는 곤란한 장면이다. 그러므로 그림이 될 순간만 포착하였다. 어떻게 할 것인지 정확히 계산되었으므로 단붓질로 끝을 내 화면은 깔끔하고 경쾌한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닭과 가족 종이에 유채, 29×40.3cm, 1956년 무렵 가족이라는 주제는 헤어져 있는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이중섭의 염원이 서린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소망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월남한 이산가족이기도 했던 그는 이 비극을 대변하고자 하는 심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극단적인 예였다. &lt;가족&gt;의 위쪽의 아이에게 긴 색띠를 들도록 하여 화면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도록 했고, 자신을 꽃을 쥐도록 했는데 꽃잎이 뚝뚝 듣도록 했고, 아내쪽에는 새를 배치했다. 셋 모두 앞을 보도록 한것과 달리 아래의 아이는 화면 안쪽을 향하도록 하고, 고개를 쳐들어 셋을 보도록 연출했다. &lt;닭과 가족&gt;의 닭은 결혼직후 이중섭이 일삼아 키우기도 했고, 즐겨 먹던 것이다. 두 아이는 병아리가 든 광우리를 들고, 아래 두 사람은 성징이 불분명하여 아이들로 착각하게 하지만 암탉을 안은 듯한 왼쪽은 아내고, 오른쪽은 지아비로 닭에게 어떤 작용을 가하고 있다. 교미시키기 위하여 발정하도록 항문에 숨을 세차게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부부 종이에 유채, 51.5×35.5cm, 1953년 무렵박명자-한용구 기증,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 소장 두 마리의 봉황이 안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위의 새는 화면 너머의 무엇인가에 긴박된 듯 매달려 있는 것 같고, 아래의 새는 다리를 지면에서 떼기 힘든 듯 하다. 일어서서 날아오를 힘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마리의 새는 서로 만나려 애쓰나 만나기 힘든 것이다. 후자는 가로줄을 겹쳐 이러한 분위기를 보강하고 있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그림은 이중섭이 제목과 달리 부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납북한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있다. 어떻게 보든 함의가 풍부한 그림이다. 비슷한 유형의 그림이 서울에서의 개인전에 출품되었다고 하는데, 새들 이나 애정 이라고 한 것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달과 까마귀 종이에 유채, 29×41.5cm, 1954년 까마귀는 6.25 전쟁 전만 해도 흔다던 새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전쟁의 포성과 화약 냄새 때문인지 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통영에서 그려졌다고 하는데 평화로웠던 그 곳에서 반갑게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보름달이 뜬 맑고 푸르른 하늘, 검게 세 가닥으로 그어진 전깃줄에 앉은 친구를 찾아 모여드는 까마귀를 검은 물감을 묻힌 붓으로 간단히 그렸다. 몸 전체가 까맣다는 점 때문에 먹만으로 그리는 문인화의 소재로 어울릴 소재다. 까마귀를 이루고 있는 붓질을 자세히 보면 날려져 있어서 마치 글씨예술(서예)의 비백과 같다. 그래서 전통 예술의 냄새가 진한 것이다. 대한 미협전에 출품되어 절찬을 받은 작품이다. 물고기와 게와 노는 네 어린이 종이에 유채, 36×27cm, 1951년 무렵용인 호암 미술관 소장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을 그린 일련의 유화들이다. 앞은 거대한 물고기와 노는 두 남자아이를 그렸다. 줄을 이용해 대상들을 서로 긴밀하게 연관지운 연출이 돋보인다. 끈을 이용한 구성은 자주 애용되는 방법이다. 더욱이 화면 아래쪽의 아이가 입은 옷을 물고기가 물도록하여 생기를 돋구었다. 아이와 물고기가 만드는 그림자도 연결시켰다. 그러다 보니 밝고 어두운 부분을 구별하여 묘사하게 되었는지, 이중섭의 그림에서 드물게 명암법이 등장한다. 그래서 제주도 또는 부산 시절의 초기에 그린 것으로 본다. 뒤의 것은 물고기와 게를 앞세운 네 명의 남자아이들이 앞사람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는 방법으로 줄지어 있는 모습을 새을자 모양으로 배치했다. 그밖에도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은 맨 앞과 뒤에 있는 아이들이 잡은 끈인데, 이를 두 번째 아이가 잡아 당기므로 해서 더욱 재미있게 연관지웠다. 배경을 한가지 색으로 평면으로 칠하고 테를 둘러 정연해 보이나 억센 붓질로 그렸다. 파란 게와 어린이 종이에 유채, 30.2×23.6cm 발 앞에 있는 게를 잡으려는지 두 손에 쥔 끈을 늘어뜨리고 서 있는 남자아이를 그렸다. 턱을 쳐들고 위를 보도록 해 얼굴이 마치 고개를 뒤로 젖히듯 배치되어 있는데, 몸체는 앞을 향하고 있다. 또한 게가 정확히는 풀빛에 가까운 특이한 색으로 눈길을 모은다. 이런 눈속임 장치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중섭의 연출이 그만큼 높은 수준임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전체는 매우 거칠게 그려졌는대 칼칼한, 조야한 맛을 우리 미감이라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횐 소 나무판에 유채, 30×41.7cm, 1954년 무렵서울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회색조의 배경에 검고 흰 붓질로 된 득의의 작품이다. 소의 상태도 평정을 이루어서 심정이 안정된 가운데 최고조의 상태를 보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도판 16과 같은 붓질이 특징이다. 여기에서는 검은빛과 흰빛을 아울러 추사체와 같은 붓질을 보이고 있다. 특히 머리와 또리 부분에 그런 표현이 강하다. 사의성 마저 느끼게 하는 것으로 보아 서예를 비롯한 전통 예술에 대한 소양을 느낄 수 있다. 장자의 우화에 등장하는 솜씨 좋은 소잡이가 생각나는 그림이다. 소 종이에 유채, 27.5×41.5cm 다친 소의 머리에서 피가 나 뚝뚝 떨어지기까지 한다. 소 그림에서도 매우 드문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쳐든 앞다리 한쪽과 넓게 벌린 뒷다리의 분위기로 보아 투혼이 사그라지지 않았으므로 뿔을 앞세워 상대를 향해 돌진하려는 태세다. 거의 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 흰 소 종이에 유채, 34.5×53.5cm, 1953년 무렵용인 호암 미술관 소장 검은 배경 앞에 소가 화면 너머에 있으리라 여겨지는 상대를 향해 뿔을 세우고 막 나아가려 하고 있다. 붓과 물감칼로 비교적 넓게 발려진 흰 빛깔에 비해 어두운 빛깔의 물감은 붓을 꼿꼿이 세워 그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릿발 같은 매우 숙련된 상태가 아니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추사체의 필획을 보는 것 같다. 복사꽃이 핀 마을 종이에 유채, 29×41.2cm, 1953년 통영에서 친구인 미술가 유강열의 호의로 안정을 취하게 된 이중섭은 오늘날 대표작으로 꼽는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려 남긴다. 이 그림은 이곳에서 그려진 일련의 풍경화의 하나이다. 서귀포에서 그린 풍경화와 달리 통영에서 그려진 그림들은 굵고 빠른 필치가 특징인데, 통영에서 그려졌다는 소그림들에도 엿보이는 특징이다. 숙련된 붓질에서 오는 시원스런 맛이다. 이런 것이 기운생동의 미감이 아닐까? 길 종이에 유채, 41.5×28.8cm, 1953년 지붕과 나무가지가 화면의 아래와 위, 전면에 걸쳐 있는 사이로 꼬불꼬불한 길을 배치했다. 통영에 있는 남망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화면은 엷고 빠른 붓질로 되어 있어 독특한 운치를 자아낸다. 분청사기 표면에 베풀어진 귀얄무늬가 연상되는 느낌이다. 봄의 어린이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6×49cm 환희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29.5×41cm, 1955년 복숭아꽃이 수 놓여진 네모 틀 안에 구름에 쌓인 해를 사이에 두고 봉황을 닮은 파란 숫새와 붉은 암새가 춤을 추는 전례가 없었던 독특한 구성의 그림이다. 그러나 물감을 두껍게 쌓이도록 그리고 이를 충분히 말린 위에 전면적으로 물감을 칠한 다음, 긁어서 원하는 형태를 얻는 과정을 거치는 방법으로 간혹 사용했던 기법이다. 자부와 깊은 관심의 대상이었던 고구려 무덤벽화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대구에서의 개인전에 출품한 것으로 전람회가 열린 미국공보원의 직원이 간직하던 것이다. 손 종이에 유채, 18.4×32.5cm, 1954년 왼손과 오른손의 앞뒤를 출렁이듯 휘감은 연기 같은 흰선들이 등장하는 독특한 그림이다. 갈색조의 엄지와 집게손가락선은 흰 선의 한 자락을 집어들었고, 나머지 세 손가락의 주변에 그려진 것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손을 그린 2점 중 하나로, 진주에서 박생광과 어울리던 시절 그 친구 청담스님을 만나 느낀 바를 그린 것으로 보이며 불교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종이에 유채와 연필, 10.5×12.5cm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종이에 유채와 연필, 25×37cm, 1953년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종이에 먹과 수채, 10.5×12.5cm 물고기를 가지고 노는 어린이는 즐겨 그려졌던 그림으로 앞에서도 살펴보았다. 세 명의 남자아이가 물고기와 노는 장면을 그린 그림은 원산의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 부산으로 피난 와 부모의 약?대신으로 얻어간 그림이라고 한다. 벌거숭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붉은 색조와 초록빛을 띤 물고기의 색이 독특하다. 물고기, 게와 노는 두 남자아이는 거의 같은 상태로 무려 다섯 번이나 그려진 것으로 학인된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뿐 거의 같은 소재를 거듭 탐구하듯 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부부 종이에 크레파스와 수채, 19.3×26.4cm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 중의 하나. 싸우는 듯한 설정인 도판 11과 흡사하나 아래 암탉의 자태를 보면 교미를 위한 자세다. 두 마리의 닭이 모여 이루는 형태가 꼬리로 인하여 덜 완결되기는 했지만 하나의 동그라미를 이루는데서 서로 조응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림으로 된 언어다. 여섯 마리의 닭 종이에 연필과 수채, 26×36.5cm 두 마리의 닭을 통해 다툼과 어울림의 여러 정황을 노래한 이중섭은 여러 마리의 닭이 펼치는 드라마를 그림으로써 자신이 즐기던 소재를 더욱 심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정황을 나타낸 것인지 불분명한데, 푸르고 붉은 색깔의 닭을 서로 어긋나게 배치하였다. 중앙 뒤의 닭을 빼고 오른쪽 닭의 꽁지를 잡고 있는 남자아이를 선으로만 그린 연필화 한 점이 전한다. 닭과 게 종이에 연필과 과슈, 29×41cm 앞에서 살펴 본 그림의 왼쪽 위에 등장하는 닭을 그대로 옮겨진 듯 그려져 있고 닭이 굽어보는 쪽에는 게 한 마리를 배치했다. 게 주위에는 복숭아꽃잎을 배치하여 닭이 물고 있는 복숭아와 연관을 지니도록 했고 색채로도 청색과 분홍빛을 적절히 섞어 조화를 꾀해 하나의 산뜻한 소품을 완성했다. 여인 종이에 연필, 41.3×25.8cm, 1942년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중섭의 초기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소를 그린 연필화로 전 해에 그려 지유텐에 출품한 것이 엽서그림을 제외하면 유일하다. 굵직한 연필선이 특징인데 훗날 특장이 되는 굵고 거친선을 감안한다면 이중섭의 개성이 벌써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랫도리에 걸친 옷은 고갱이 자주 그린 태평양 연안지역에서 입는 사롱이라는 치마와 흡사한데, 이것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대향이라는 서명은 이 그림에서 처음 쓰였다. 훗날 아내가 된 여성을 그린 것으로 보여진다. 소년 26.4×18.5cm, 종이에 연필, 1942∼5년 세 사람 18.2×28cm, 종이에 연필, 1942∼5년 8. 15직후에 열린 해방기념 미술전에 내기 위해서 원산에서 들고 왔으나 늦어서 미수에 그쳤다는 바로 그 그림들이다. 1943년 이래 그 때까지는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1942년에 그렸던 것을 다시 손 봐 출품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lt;소년&gt;은 화면의 거의 다를 차지하는 헐벗은 둔덕 가운데 난 길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상단에는 가지만 벌린 나무가 있고 아래 구석에는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가 있다. 무대는 어느 산등성인 듯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와 아이,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의 그림자가 스산함을 더해주고 있다. 그가 나타내고자 한 것은 스산한 정감이다. 이러한 느낌을 하늘에는 가로줄을, 헐벗은 땅 부분에는 무수한 세로줄을 그었다가는 지우거나, 바탕재인 종이가 패일 듯 힘주어 그음으로써 더욱 강화했다. &lt;세사람&gt;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스산한 감정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숨으려 드는 심리를 묘사한 것으로 보여 단말마와 같은 일제의 등살에 못살게 된 식민지 민증의 내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못가에서 노는 세 어린이 종이에 청먹지로 그리고 수채1940년 말에서 1941년 후반기 사이에 그린 그림 엽서14×9cm 후배 일본인 여성을 사랑하게 된 이중섭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졸업한 뒤에도 계속 학교에 남아 드리던 이중섭은 겨울을 맞아 가족이 사는 원산으로 돌아와 있으면서 변함없는 마음을 확인하고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기 시작한다. 원산만으로 보이는 해변에 꼬리를 물고기, 몸통 위는 소인 괴물이 바다에서 튀어나오는 환상적인 광경을 그렸다. 마치 원산에 사는 자신을 소개하는 듯한 설정이다. 활을 쏘는 사람들 종이에 펜과 수채로 그림,9×14cm 1941년 말 소와 말을 타는 사람들 종이에 청먹지로 그리고 수채9 ×14cm 1941년말 소를 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역시 환상적인 분위기다. 1941년 한 해 동안 작은 크기이지만 80매에 이르는 그림을 고심해서 그렸다. 환상적인 바다풍경 종이에 청먹지로 그리고 수채9 ×14cm 1940년말 원산만으로 보이는 해변에 꼬리를 물고기, 몸통 위는 소인 괴물이 바다에서 튀어나오는 환상적인 광경을 그렸다. 마치 원산에 사는 자신을 소개하는 듯한 설정이다. 부인과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 종이에 잉크와 색연필 일본인 부인이 아이들과 거듭된 곤란 탓으로 일본의 친정으로 돌아가자, 다시 익숙한 일본어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는 일본어로 작성되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식민지를 거친 민족 내지는 국가의 처지 때문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이 점은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그의 편지는 그림과 어울려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다. 이토록 명랑하고 낙관적인 인물이 비극적인 말로를 맞게 된 것이 서글프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감상이 문득 일어난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고 받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던 이중섭이 눈에 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부인과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 종이에 잉크와 색연필 일본인 부인이 아이들과 거듭된 곤란 탓으로 일본의 친정으로 돌아가자, 다시 익숙한 일본어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는 일본어로 작성되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식민지를 거친 민족 내지는 국가의 처지 때문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이 점은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그의 편지는 그림과 어울려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다. 이토록 명랑하고 낙관적인 인물이 비극적인 말로를 맞게 된 것이 서글프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감상이 문득 일어난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고 받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던 이중섭이 눈에 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자화상 종이에 연필, 48.5×31cm, 1955년 1955년 초 서울에 이어 5월 대구에서도 개인전을 열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보려던 의도는 산산이 부서진다. 밀항을 해서라도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가겠다는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자 자포자기에 빠져 그토록 열심히던 그림도 그리지 않고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정신 이상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이에 전람회를 열기 위해 대구에 머물 당시 친구에게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그린 그림이다. 사실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 이중섭만큼 많은 화가도 드물 정도다. 가족을 그린 그림에는 꼭 자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자기만을 그린 것은 한 점도 없다고 여겨졌는데, 이 작품이 발굴됨으로써 또 다른 면모를 알 수 있다. 나무와 달과 하얀 새 종이에 크레파스와 유채, 14.7×20.4cm, 1956년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서울에서의 개인전 직전 처음 크게 건강을 상해 병원에 입원했던 이중섭은 서울과 대구에서 개인전을 마치자 다시 병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그림들은 서울로 가서 병원을 오가던 그가 다소 안정을 되찾아 정릉에 머물던 시기에 그려졌다. 잎이 져버린 나무와 눈이 겨울임을 가리키는데 크레파스를 그어 마련한 거칠거칠한 질감이 계절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러나 나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상태로 등장하는 새들을 서로 긴밀하게 연관시켜 춥고 배고플 겨울을 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희거나 노란 색을 칠한 새가 그런 느낌을 북돋우고 있다. 구상네 가족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49.5cm, 1955년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어른 남자가 잘 탄다고 칭찬하는 듯한 광경을 중심으로 어른 여자와 한 아이가 이를 쳐다보고 있고 화면 앞에 있는 다른 한 남자는 이를 부러워하는 듯 하다. 이 설정은 대구서 개인전을 열고자 작품을 준비하던 이중섭이 친구인 구상의 호의로 그 집에 머물면서 구상이 그의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주어서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러워했다는 증언대로다. 자신은 가족과 헤어져 있었으며, 자신의 아들에게 자전거를 구해서 가겠다는 약속을 편지에서 여러 번 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부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구상과 이중섭이 서로 손을 조응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서로의 우정에 대한 표시라 여겨진다. 이중섭이 입고 있는 옷은 이즈음 그려진 연필로 그린 자화상에 나오는 바로 그 옷으로 보인다.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종이에 잉크와 유채, 20.3×32.8cm 싸우는 소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27.5×39.5cm, 1955년 서로 싸우는 두 마리의 소 중에서 오른쪽의 소가 완전히 넘어지려고 하고, 왼쪽의 소는 앞다리와 뒷다리 한쪽마저 상대방에게 올려놓았다. 싸움이 바야흐로 끝나려는 광경이다. 이런 설정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진 소도 이긴 소도 모두 몰골이 형편없어서 싸움이란 이렇게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위의 작품과 함께 1955년 5월 대구에서의 개인전에 출품된 것이므로 말년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강 종이에 연필과 유채, 20.2×16.4cm, 1956년 왼쪽 위에는 머리에 물건을 인 여자가 눈이 내리는 속에서 화면 앞으로 오는 듯 하다. 오른쪽 거의 절반을 차지한 집의 창가에는 한 남자가 팔을 괴고 얼굴을 옆으로 두고 있다. 검게 표현되었지만 눈이 내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들은 이중섭의 절필작이라고 하는 비슷한 일련의 그림 중 하나이다. 화면의 전체에 물감이 칠해지고 남자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있고, 하단에 담을 설정해 흰 새를 올려놓은 것도 있다. 제목은 당시 막 개봉된 마릴린 먼로 주연의 영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보고 싶은 아내를 기다리는 자신의 심정을 그린 것 같다. 옛이야기 장판지에 유채, 31×41cm, 1956년 정릉에서 살던 만년에 그려진 것으로 전한다. 사슴과 학으로 여겨지는 동물과 불로초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도교적인 이상을 배경으로 한 십장생 주제를 변형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추운 날씨인 듯 한데 본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벌거벗은 채 앉아 있고 상투까지 틀고 있어서 의외의 느낌이다. 복고적인 태도를 느끼게 하는 이런 작품들이 꽤 그려졌으나 환영받지 못하여 사장되어 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달밤 종이에 잉크와 수채, 17.5×13.5cm 구름에 쌓인 달을 바라보고 누운 어린이가 나오는 특이한 설정의 그림이다. 달과 구름은 자주 애용되는 전통적인 문화의 한 품목이지만 그것을 소재로 다룬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소재를 소화해낸 방식에서 우리는 전통을 어떻게 잘 살려냈는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구름을 처리한 방식에서 그가 소재로만 다룬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덩어리 구름과 꼬리 구름을 소화한 방식에서 전통적인 미감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 아래에 자족적인 남자어른이 아니라 누운 어린이를 배치하여 자연과 어린이로 새롭게 끌고 간 점이 이중섭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운 제주도 풍경 종이에 잉크, 35×24.5cm 일본에 건너 가 헤어져 있는 가족들에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의 하나다. 서귀포에서 살 때 자주 가서 놀던 섶섬과 범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즐거이 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과의 유대를 흐트리지 말자고 말하는 것 같다.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종이에 유채와 연필, 27×39.5cm 두터운 바탕칠 위에 정성들인 선묘로 아이들과 나뭇잎, 물고기를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끈을 설정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몸에는 채색을 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왼쪽의 아이는 뒤만 보이고 머리와 팔은 보이지 않는 설정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움직임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그럴 경우라면 그림에는 두 아이가 등장하는 셈이다. 꽃과 어린이 종이에 펜과 수채, 17 ×15.3cm 1940년말 네 어린이와 비둘기 종이에 연필, 31.5×48.5cm 이 그림이 상당히 큰 규모라서가 아니라 종이에 연필로 그려진 이중섭의 작품들을 흔히 스케치나 소묘, 또는 밑그림이라고 부르기는 미흡한 점이 많다. 근래 들어 이런 그림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현상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이를 연필화로 부르고자 하며,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여긴다. 특히 요즘은 덜 하지만 중국, 일본과 같이 한자문화권에 속하면서 글씨예술(서예, 서도를 가리킴)이 발달한 우리의 경우 붓이나 연필을 구사하는데서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독자성이 존재한다. 이중섭은 1940년대붙터 이를 감지하고 독특한 붓질과 연필구사법을 개발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종이 위에 확신을 가지고 긁다시피 그어댄 선의 맛은 그 자체 독자적인 감각을 발휘한다. 꽃과 어린이와 게 종이에 잉크, 9 ×14cm 물고기를 안고 게를 탄 어린이 종이에 펜과 유채, 19.2 ×12.2cm 개구리와 어린이 종이에 잉크와 수채, 10.5 ×25.7cm 판자집 화실 종이에 펜과 수채, 26.8×20.2cm 방 하나인 판자빙의 네 벽에서 한 벽을 완전히 제거하고 내부를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 지붕과 실내는 약간 비스듬하게 설정해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했다. 그림그리기를 마치고 헤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보낼 편지도 봉트까지 쓰기를 마치고 누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자족한 모습이다. 겨울 언저리임을 알 수 있는 풍경과 주변 색깔에 비해 자족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노란색은 매우 효과적이다. 창조의 기쁨에 다른 곤란은 문제도 아니라는 이중섭의 기분이 전달되는 것 같다. 작품 1904년, 제4회 지유텐 출품작 소와 소녀 1941년, 제5회 지유텐 출품작 소묘 종이에 연필, 23.3 ×26.6cm 1941년, 제6회 지유텐 출품작 망월 제4회 지유텐 출품작 그림엽서 1941년 중반기 망월 1943년 제7회 지유텐출품작 오지환 시집의 속표지 그림 소 종이에 연필, 26.5 ×33cm 신문을 보는 사람들 은박지에 유채, 미국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 소장 동원유원지 종이에 연필과 수채, 유태 19.2 ×26.5cm 게와 담배대 종이에 연필과 수채 19.2 ×26.5cm 이중섭의 가족 그림들 가족 가족 가족 가족 가족 가족과 비둘기 가족에 둘러싸여 게와 물고기가 있는 가족 과수원 가족과 아이들 과수원 가족과 아이들 길 떠나는 가족 낙원의 가족 닭과 가족 바닷가의 가족 수상네 가족 춤추는 가족 춤추는 가족 자료출처 , PARK ART &quot;섶섬이 보이는 풍경 , 품 추는 가족 &quot; ~~환쟁이난전 이남덕여사(일본명 마사코) 이중섭 화백의 애정 깃든 대형 팔레트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기증. 이중섭 화백이 1943년 미술창작협회(자유미술가협회 전신)로부터 태양상을 수상했을 때 부상으로 받은 것으로 1943년 이화백이 원산으로 귀국하면서 자신이 사용하던 팔레트를 프러포즈 징표로서 이여사에게 맡기면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했었다고 한다 이 여사는 이 팔레트를 이중섭 화백의 분신으로 생각해 70년간 소중히 보관해오다 서귀포시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 가끔은 섶섬이 보이는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한 날도 담배 은박지에 바다와 하늘을 그리며 유유자적했습니다. 끼니를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그들에게는 게를 그릴 줄 아는 아고라(이중섭 애칭)가 있었고 , 소라껍데기를 그릇삼아 상을 차릴 줄 아는 발가락군(마사코의 애칭) 이 있어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고 합니다. &lt;참고자료 , 조선 컴&gt; 이중섭 화백은 남도의 통영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경매가 35억~45억으로 추정되는 '황소' 작품은 1953년작으로 통영에서 머물며 그린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당시의 밀감나무 (120년생) 이중섭 화백이 살았던 초가집 옆으로 밀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는데 몇알의 감귤을 매단채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제주로 초대해준 오마니, 가끔씩 제주가 많이 그리울겁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황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황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흰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흰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서귀포 이중섭미술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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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8 Mar 2013 18:09:00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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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lt;제주서쪽여행&gt;올레10코스를 걸으며 제주의 아침을 기록하다</title>
	            <description> 29254 쿨쿨쿨 맛있게 자고 일어나 보니 상쾌한 제주의 아침입니다. 06시30분 , 알람이 깨우지 않아도 머리속에 시계가 살고 있는 빨강머리앤 시계만큼 정확하게 벌떡 일어납니다. 그럼 제주에 왔으니 이왕이면 제주스런 아침산책 한번 해 보는것도 좋겠죠. 물론 여행을 목적으로 오지 않았지만 틈새시간을 100% 활용하여 제주 마주보기 한번 해볼게요. 이 곳은 올레10코스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올레10코스는 화순해수욕장에서 출발하여 모슬포까지 걷기를 말하며 약4시간여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으니 현재가 천금같은 시간입니다. 아침 산책은 '환희의 정원' 안주인 오마니와 함께 출발합니다. 희끄무레한 제주의 아침이 깨어나면 또 어떤 모습일지 찬란한 아침햇살을 기대해도 좋을지, 욕심에 불과할지 ... &quot;앤, 잘 잤어?&quot; 하고 오마니가 아침인사를 건네며 잘 가꾸어진 올레10코스로 차를 즐겁게 몰아갑니다. 오마니, 오만에서 사막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대단한 운전실력을 제주에서도 마음껏 보여줍니다. 영화처럼... 와우와우 제주서쪽여행 아주 멋져요. 깨어나는 아침의 빛깔이 마음 총총 설레이게 합니다. 앤은 눈부신 햇살이든 , 비 내는 아침이든, 꾸무리하고 우중충한 아침이든 다다 좋아요 무조건 제주도면 되는게지요. 지금 이대로 좋아요 좋아 오마니, 그렇지 않나요? 더 이상 무엇을 더 욕심부리겠어요. 만족합니다. 그냥 이대로 ... 그렇지만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봐야겠어요. 음음 제주서쪽에 위치한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해당하겠죠? 눈 앞에 보이는 달랑 한봉우리만 내려앉은것 같아 기억하기 좋은 산방산은 참 많은 전설을 베어 물고 있다고 해요. 이미 입소문을 통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낯설지도 않고요. 아곳 바닷가는 화순해수욕장? 해변가에는 구멍 송송난 검은 돌들이 도란도란 놀고 있으며. 파도소리는 귀대고 들어봐도 들리지 않네요. 빨강머리앤에게 손님대접한다고 잠깐 얌전해지기로 했나봅니다. &quot;파도야, 생긴대로 놀아라 철썩철썩 척 쏴아아 ... 하고 노래 부르란 말이야.&quot; 게다가 바다의 분위기를 가만 살펴보니 어쩌면 바다로부터 불쑥 솟아오르는 찬란한 해를 볼 수도 있을것 같네요. 오마니께 겁없이 그랬어요. 분명 사과같은 햇살을 보게 될것이라고... 이곳에서 '대장금' 을 촬영했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군요.. 바다 저 멀리로 보이는 조그만 섬 두개는 형제섬이라고 부른다네요. 처음 보면 2개로 걷다가 다시 보면 3개 그리고 한참더 걷다 보면 7개 혹은 8개로 보일 수도 있다는데 그렇게 보이는 이유라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수도 있을것이며 또 밀물과 썰물의 물때 영향을 받기때문으로 본다면 맞을겁니다. 바다로 뻗어 나간 선착장으로 나가서 유람선을 타면 마라도와 가파도를 갈 수 있다니 가파도, 마라도 다 가 보고 싶어요. 섬에서 온 여자가 아침내내 섬섬거리네요. 오늘은 자신있게 말씀드리는데 제주의 빨갛게 익은 해를 보게 될것같아요. 앤은 바닷가에 살고 있어 해가 빨갛게 떠오르는 분위기쯤은 오랜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구요, 여긴, 알고 보니 송악산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해안절벽? &quot; 빨강머리앤, 저기 해안절벽에 빵빵 뚫린 구멍들은 풍화작용때문인가요? 아니면 누가 ,언제, 왜 고의적으로 뚫었나요?&quot; &quot;오마니 , 저 굴은 풍화작용에 의해 그리된것이 아니라 슬프게도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수세에 몰린 일제가 제주를 최후의 방어진지로 여겨 제주 전역을 요새화했던 역사의 현장 중 한곳에 불과한데 저 곳에 뚫린 굴만 10여개가 있으며 이 동굴의 정체는 '결 7호작전' 이란 작전명 아래 일본군이 연합군의 공격을 대비해 인위적으로 뚫은 비행장 시설의 일부였으며 당시 7만여 명의 일본군 정예병력이 제주에 머무르면서 제주 도민들을 강제노역에 가담시켜 여러 개의 해안기지와 비행장 도로룰 건설하기도 했다고 하는군, 뿐만 아니라 제주 전역으로는 수백개의 군사용 땅굴이 있는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제주도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참고자료, 제주소리 아래사진 3장 포함)) 또한 몇년전 대장금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여 장금이굴로도 알려져 있으며...&quot; &quot;빨강머리 앤, 장금이굴? 일제강점기의 잊지 말아야할 수모를 '대장금' 드라마로 인기가 대단하긴했지만 그렇다고 민족의 한이 상채기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곳을 드라마에 묻어 희석시켜 버리겠다고요? 그건 말도 안돼 안된다고요? 그건 장금이도 바라는 바가 아닐거라구요.&quot; 송악산의 비극 송악산의 비극 장금아, 장금아, 드라마의 인기도 좋지만 역사는 바로 알아야 ... 이렇게 오마니께 송악산의 슬픈 역사를 들으며 걷는동안 어느새 형제섬해안길을 지나 송악산 오름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합니다. 오마니, 제주살이 고작 1년만에 벌써 제주를 훤히 꿰어차고 계십니다. 대단하세요. 우린 송악산으로 갑니다. 오마니, 오마니, 같이 가시라요. 헉헉 오마니, 같이 가시라요. 그런데 오마니, 혹시 돈 잃어버리셨어요? 와우 보세요 제주의 아침 햇살이에요. 쉬엄쉬엄 오마니와 걸으며 제주의 아침을 느끼며 가는 이 곳은 '송악산' 초입이 시작되는 지점이에요. 송악산은 야트막한 산이라 본격적인 산행이라기 보다는 편하게 오르는 해발 100m 정도의 낮은산이지만 풍광과 전망은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햇살,햇살 제주의 찬란한 아침햇살... 지난 가을의 흔적도 있네요. 와우,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제주에는 말이 많다더니..송악산 언덕배기에서 이렇게 말도 만납니다. 산방산이 마주 보이는 송악산 오름길에서 ' 올레10코스 만세' 라고 외쳐봅니다. 형제섬이 바라보이는 송악산의 아침 '해에게서 빨강머리앤에게 해에게서 오마니께 ' 안녕 ... 가장 제주스러움 발견, 너 말이구나. 문득 입안에서 중얼중얼거려집니다. 말을 보니...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길재 '회고시가' 숲속에서 보는 아침해 제주의 말은 거제도에서 온 빨강머리앤에게 아는척도 않네요 품격있는 말이라서? 혹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출연한 말인가? 말에대해서라면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어요. ' 송악산의 말아, 반가워' 하고 소리쳐도 들은척도 않고 칙칙한 말똥냄새만 퍽퍽 날리네요. 다시한번 '난 빨강머리앤이야 , 방가방가 ' 하고 소리치니 그제서야 고개를 살짝 돌려보네요 녀석 숫말인가? '에이 여자라면 관심없어요 전요 파란 요 풀만 있으면 된다구요 . 얼마나 맛있는 봄풀인지 아세요? 음음 정말 맛있네요.,,,' 글쎄 이러지 뭡니까? 말주제에... '앤, 이제 집에 가 , 아침밥 먹으러 ...' 라고 오마니가 소리치며 앤을 불러요.. 그러면서 언덕을 내려가는 오마니의 뒷태가 아침햇살에 발그레하게 물드니 좀 멋진가요? 아아 숨이 멎을것만 같습니다. 올레10코스를 반도 못 돌아봤는데 , 고작 두어시간만에 집으로 가잡니다... 흑흑 ... 이렇게 아름다운 송악산을 끝까지 올라 가 봐야하는데 ... 이렇게 눈부신 아침햇살을 저 바다에 두고 가야합니다. 아침밥 한끼정도는 안먹어도 되는데 그냥 올레길 계속 걷고 싶은데 오마니는 앤의 마음을 이다지도 몰라주시오니까? 좋아라좋아라 올레10코스 송악산 언덕길로 올라보니 .. 제주가 뽐내는 기기묘묘한 풍경이 꿈결처럼 펼쳐집니다. 제주의 아침을 꼭꼭 눌러 기록합니다. 마음이 너무 바쁜 나머지 표지판의 내용조차 읽어보지도 못합니다. 송악산을 알기쉽게 설명 해 놓은것 같은데... 벌써 잊었어? 맞아 빨강머리앤 제주로 여행을 온게 아니잖아 가야지 오마니를 따라 아침밥을 먹으러 가야한다고 .. 말을 보고도 등에 올라 앉아 신나게 달려보지도 못했는데 ...아쉽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속상합니다. 표지판을 읽어보지도 못한채 카메라에만 주섬주섬 담아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의 아침햇살을 보게 될줄이야 ... 제주 할방, 할망 , 감수광 ,감사합니다. 제주의 아침 오마니를 억지로 불러 세워 송악산 표지석 앞에서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계리 '사계어촌체험마을' 앞에서 또 특별한 것이 눈에 뜁니다. 모슬포 LPG충전소와 산방산이 참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제주해녀,소련의 고르비, 거제의 빨강머리앤이 사계리 바닷가에 모여앉았습니다. 무엇때문에? 1991년 4월 20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렸던 한,소 정상회담을 혹시 기억하세요? 축배를 들고 있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 이 회담은 탈냉전의 시동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서냉전 최대 피해자이며 냉전종식 약속 '평화의 섬' 용어를 처음 보도하며 활자화하였던 제주 ,,, 그리고 14년 뒤 결실. 고르비의 제주방문을 기념하여 흔적으로 남겨 놓았답니다. (참고자료, NEWS is 제주) 화순리 문화마을로 돌아 가는 길에. 노란 유채꽃이 하도 예뻐서 산방산과 함께 사진 찍겠다고 투정을 또 부립니다. 오마니의 마음은 바빠서 벌써 집으로 가 있을텐데 말이죠.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찍고 싶다면 천원을 내야한다고 제주 할방님께서 유채꽃밭을 지키고 섰다가 그러시더군요. 제주오마니, 당연하다시며 돈을 지불해 주셨고요. 제주할방님도 천원벌자 신이나서 달려와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어 주시더라구요.(천원의 힘 대단해요 ) 제주 올레10코스로 반토막짜리 아침산책 상쾌하고 설레이며 ,행복했어요. 가지 않은 길의 아쉬움은 또 다음 여행을 제주도를 선택하겠죠? 제주의 봄은 유채꽃으로부터 ... 제주올레10코스 사계리에서 삘깅머리 앤 .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대장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장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송악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송악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마라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라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가파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가파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제주해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주해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제2차 세계대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2차 세계대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소련 고르바초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소련 고르바초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제주 올레10코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주 올레10코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평화의 섬 산방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평화의 섬 산방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향제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향제섬&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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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6 Mar 2013 10:54:55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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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lt;제주여행&gt;통영의 딸들,  제주  화순리 문화마을에  벽화3호 '환희의 정원' 그리기 시작</title>
	            <description> . 29253 안녕하세요? 거제도의 빨강머리앤 오늘은 노랗게 봄이 산방산을 물들이는 제주도에서 인사드립니다. 이곳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화순문화마을이며 통영~ 거제~ 거가대교~ 부산 찍고 김해공항에서 02월 27일 오후 2시 40분 비행기에 탑승하여 40분간 하늘길로 날아 마침내 제주도에 도착하였답니다. 빨강머리앤 제주도와는 첫만남이라 여간 설레이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제주행은 여행이 목적이 아닌 이 곳에 살고 계신 제주살이 1년차 '오마니님'의 아주 특별한 제안으로 오게 되었답니다. 오마니께서는 '환희의 정원' 블로그 운영자로 2년전에는 사막과 낙타와 베두인의 나라, 오만 이슬람왕국(Sutanste of Oman)의 멀고먼 나라에서 블로그로 조근조근 들려주시던 오만이야기가 좋아서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를 질러 소하르와 샬라라항구까지신나게 넘나들었습니다. 사막에서 살고 있는 오만인들의 이슬람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삶과 문화의 공존이 주는 특별한 호기심의 발동으로 '오만과 편견'(당시의 닉네임)님을 따라 낙타를 타고 달리는 사막의 베두인이 되어 '지구의 유혹' 그 달콤한 매력에 흠뻑 빠져보았답니다. 비록 온라인상에서였지만 아랍문화의 속살을 들여다 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신밧드의 출생지이자 옛수도였던 소하르까지 무스카트에서 240KM를 상상속으로 달려갔던 기억도 있었답니다. 인터넷의 힘으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행복했던 시간들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겁니다. 제주도 '오마니'의 초대 요즘 방송과 언론매체를 통해 전국적으로 인기가 치솟은 통영여고 그림동아리 챌린지에서 활동하며 , 통영의 동피랑벽화와 통영 소포마을의 벽화를 그려서 실력을 인정받은 친구들중 예지,윤나,아라양을 제주로 초대 해 주셨답니다. 화순리 문화마을에다 새로 지은 집 '환희의 정원에 벽화를 그려주었으면 하고 부탁을 하셨어요. 얼마전 통영 소포벽화마을을 소개한 빨강머리앤의 포스팅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반짝 스치는 멋진 아이디어가 떠 올랐고 &quot;그래 우리집 벽에도 벽화를 그리자 꽃덤불과 나비가 날라다니는 환희의 정원' 을...&quot; 참으로 소녀같은 감성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반짝 스치는 생각이 포르르 날아가기 전 당장 빨강머리앤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2월의 끝자락 학생들의 봄방학을 틈타서 며칠동안 제주에서 벽화를 그려줄 수 없겠느냐고, 그렇게 먼길 제주도로 오게 되었답니다. 요특별한 기회에 그림쟁이 가나도 함께 훨훨 날았죠 . 2월은 너무 짧은 한달이어서 다리가 예쁜 아가씨들이 살짝 걸친 초미니스커트의 길이만큼이나 짧은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첫날밤은 긴 여정의 피곤을 쫓아주는 아로마향을 방안 가득 피워주신 덕택에 편안하게 잠들었고, 눈을 뜨니 기분좋게 상쾌한 제주도의 서쪽마을 화순리의 노란 아침입니다. 함께 온 18살 통영의 소녀들은 조금 더 잠자게 두고 우리만 까치발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와 정원에 섰더니 코끼리를 꿀꺽 삼킨 보아뱀처럼 혹은 한라산 백록담을 덮었던 뚜껑이 화산 폭발과 함께 훌쩍 날아 서귀포의 사계리에 박혔다는 전설처럼, 암튼 산봉우리 하나가 덩그러니 저만치로 보입니다. 그리고 산벙산이라네요 훨~ 시인 청마 유치환의 고향인 거제도 둔덕골로 가면 또 하나의 산방산이 여성을상징하는 성기를 닮은 모습으로 여러개의 봉우리를 이어가며 아름다운 자태로 마을을 내려 다 보고 있답니다. 제주 산방산 암벽식물지대. 2월 28일 아침, 아침 산책길에 만난 산방산은 온통 암벽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더군요. 산방산은 제주도 서남단 화순항 서쪽에 위치한 해발 395m화산으로 종모양을 한 산이라네요.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산 16번지에 속하며 제주오마니께서 살고 계시는 '환희의 정원' 에서 마주보는 전원 풍경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합니다. ↖ 실제로 마주한 산방산 , 마치 쌀밥한공기 수북히 담아 놓은듯 ... 송악산을 다녀오다 유채꽃밭이 하도 예뻐 사진 찍는 배경값으로 천원내고 찍었습니다. ↗ 통영의 챌린지, 제주 화순문화마을에서 벽화그리다. 하늘, 구름, 꽃, 나비가 어우러지는 벽화 ... 오마니께서 맛있게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통영의 그림쟁이 소녀들이 '환희의 정원'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막 지어진 환희의 정원, 아직 흙더미조차 치우지 못한상태입니다. 예지양, 시안의 배치를 어떻게 그릴까로 고민하고, 윤나 양 , 주머니속 동전 다 꺼내서 동전의 힘으로 페인트 뚜껑 열기를 시도... 제주도에 도착한 2월27일 저녁 서귀포 시내에 있는 삼화페인트 가게로 가서 고르고 골라 사온 수성페인트입니다. 벽화를 그리는 과정은 우리가 잘몰랐던 정말 복잡한 준비과정이 있더라고요. e ~편리한 세상, 스마트폰 안에는 벽화로 그릴 시안이 미리 준비되어 다 들어있었답니다. 벽면에 밑그림 그리기 시작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별별것들이 필요한 벽화작업 예를 들면 일회용접시를 파렡트대신 사용하는가 하면 일회용 대접까지도 필요하구요. 이번 벽화작업에 참여하게된 열살가나도 언니들에게 현장에서 조금이나마 벽화그리기를 정직하게 배우는 기회가 될것같습니다. 가나에게 이런 특별한 기회가 언제 또 찾아 올까요? 쟁이쟁이 그림쟁이들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노란 꽃 몇송이를 단숨에 그려 꽃피웁니다. 그림그리는 모습을 자그맣게 모아봅니다. 동영상으로 담아 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용량이 일찍부터 초과하는 사태가 발생할까봐 그냥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아직은 제주의 햇살도 따뜻합니다. ★별이와 제이와 뽀로로친구들도 그림으로 태어납니다. 별이와 제이는 환희의 정원에 살고 있는 오마니할머니의 예쁜 손자손녀로 쌍둥이 아가들입니다. 꽃한송이, 꽃두송이, 꽃세송이가 그려지니 신기한지 이웃에 살고 있는 제주오마니들이 하나, 둘 찾아 와서 알아 들을 수 없는 제주말을 하며 좋아들 합니다. 꽃과 뽀로로 . 뽀로로는 귀여운 별이와 제이를 위해 그리고 있답니다. 이제 막 7개월된 별이와 제이는 뽀로로를 너무도 좋아한다네요. 바람많은 제주 , 손님대접하다. 어쩐일로 오늘 제주 날씨가 포근하고 화창하다고 하네요. 아직은 바람도 없고 날씨도 제법 따뜻합니다. 제주날씨는 늘 바람이 몹시 분다네요. 벽화를 그리는 동안 날씨가 추워지면 손이 얼어 일하기가 많이 힘들어진다는데 제발 벽화가 완성될때까지 바람없는 날이기를 빌고 또 비는 마음입니다. 가나도 벽화그리기 실전에 열심히 참여합니다. 비록 보조로 투입되었지만 언젠가 언니들처럼 잘 그리게 되는 날도 오겠지요? 가나도 꽃한송이 그려보네요. 엉터리가 되면 언니들이 또 고쳐줄겁니다. 마음도 꽃처럼 환해집니다. 꽃꽃꽃... 점점 벽이 꽃들로 가득차며 예뻐지고 있습니다. 어이쿠 ... 오후가 되자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바람에 페인트가 자꾸 날려서 손이 엉망이 되자 장난이 발동한 아라양 아예 페인트에 손을 푹 담궈버립니다. 그랬더니 손가락 장갑을 낀것처럼 재미있게 보이네요 &quot;앗 손 시려 손이 굳어버린것 같아 이러다가 그림도 못그리게 되면 ... 절대로 그럼 안되지~~이 &quot; 덜덜 떨면서도 익살스럽게 웃는 아라양 ,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화순리 문화마을 , 아직은 겨울이라 곶자왈이 펼쳐지는 누런색의 덤불이 몽글몽글, 듬성듬성 뭉쳐져 널부러진 풍경이 진행되는 뒷쪽으로는 목장이 있어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댕깁니다. 곶자왈이 푸른 덤불로 출렁이며 들판 가득차는 여름이 되면 가느다란 실뱀이 곶자왈의 틈바구니 곳곳에서 기어나오는데 누런 빛깔이라 누룩뱀이라 부른다네요. 그래서 곶자왈이 왕성해지는 여름이면 뱀 퇴치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독은 없지만 뱀은 생긴 모습이 징그러워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뱀이잖아요. 뱀이 살아 있는 곳은 자연도 살아 숨 쉬는 곳이라니 누룩뱀은 공해없는 자연속에서 놀멍,쉬멍하는 제주의 일부인 셈이죠. 다섯손가락 , 하늘로 오르다. 아주 가끔, 이런 연출도 재미있어요. 무남독녀 아라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쌍거풀 위로 파랗게 무대화장을 했습니다. 하하하... 화순리 문화마을 , 길건너 이웃집 담벼락에 기대선 제주오마니와 부산아주머니께서 오늘부터 이웃으로 잘 지내자고 굳게 약속하셨답니다. 새끼손가락을 고리 걸어 맹세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꽃 피고 새우는 아름다운 환희의 정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곳 환희의 정원이 어느정도 가꾸어지면 오마니께서는 '무인카페'를 운영 해 보고 싶다시네요. 해외에서 20년간 생활하면서 보고 익힌 다양한 경험을 살려서 무인카패를 열어도 좋을것 같습니다. 또한 제주를 찾는 여행자들이 편히 쉬어가는 공간으로 '환희의 정원'을 내어 주고 제주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안내자가 되어 드리고 싶다시기도... 파란하늘가에 하얀 뭉게구름을 그리는 윤나양이 손에 들고 있는 플라스틱 대접속에는 뭉게구름을 그리는 하얀 페인트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벽화그리기 정말 어렵네요. 때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대접 가득한 페인트를 들고 또 한손에는 붓을 들고 힘있게 칠해야하고 목은 또 얼마나 아플지 그런데도 고통스런 내색도 않고 묵묵히 그려나가는 모습 ...정말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높은 사다리를 타게 되면 고소공포증이 생기기도 한다는데 말없이 해내는 모습 기특합니다. 이렇게 벽화를 그리는 소녀들의 힘 대단하지요? 먼먼 통영에서 제주도까지 날아온 열정 박수를 몇번이나 보내고 싶어요. 통영여고 챌린지를 끌어가는 부장 김예지양은 이런 굵직한 벽화작업을 통해서 자신감이 부쩍부쩍 자라는게 느껴진다며 비쁘고 힘들지만 고통을 감내하며 밝게 웃습니다. 긍정의 힘 벽화작업은 고작 온하루와 다음날인 3월1일 비바람 치는 오전에는 꼼짝못하고 걱정만하다가 오후가 되자 비는 그쳤지만 패악스럽게 달려드는 샛바람과 맞서 오돌돌 떨면서 겨우 한쪽 벽화는 끝냈습니다. 비 내린 후라 강한 바람이 동반한 제주의 추위는 손마저 꽁꽁 얼게 했지만 예지,윤나,아라양은 끝까지 해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시던 오마니께서 내내 안스러워 어쩔줄 몰라하며 몇번이고 그만해도 된다고 하셨답니다.. 평범하고 밋밋했던 벽면이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자 지나가는 사람들도 가던 길 멈추어서서 한참동안 구경하다 총총 지나가고 길 건너 앞집에 사는 부산이 고향인 아주머니께서도 어제는 매밀차를 따끈하게 끓여다 주셨고 오늘은 따끈하게 끓인 우유에다 꿀을 듬뿍 넣어서 마시고 하라며 잠깐이나마 추위를 잊게 해 주기도 하였답니다. 부산아주머니, 오마니의 인정많은 이웃이 되어줄것 같습니다. 열여덟살 소녀들의 힘 성실과 인내와 끈기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Kbs1다큐멘터리 2부작 ' 희망을 그리는 학교'편에 출연했던 끈끈한 우정으로 다시 뭉친 친구들이 이번에는 바다건너 제주도에서 벽화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통영여고3학년 챌린지 예지, 윤나, 아라의 서명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화순문화마을 '환희의 정원 ' 앞에서 인증 샷을~~ 왼쪽부터 이웃사촌 부산아주머니, 가나,아라,예지,윤나 그리고 환희의 정원 안주인 오마니십니다. 고3 수험생인 챌린지 친구들은 수능이 끝나면 다시 이곳에 와서 춤추는고래와 파도와 밤하늘과 별들을 그려 제주의 산, 산방산과 어우러지는 벽화를 꼭 완성시키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주와 맺은 인연 소중히 하겠습니다. 더불어 벽화를 마음껏 그릴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 해 주신 제주오마니, 감사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화순문화마을에서 빨강머리 앤 이었습니다.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제주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주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거제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거제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산방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산방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오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오만과 편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만과 편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챌린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챌린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곶자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곶자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누룩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누룩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환희의 정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환희의 정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통영여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통영여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화순리 화순문화마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화순리 화순문화마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별이와 제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별이와 제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B2Sy&amp;tagName=뽀로로 친구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뽀로로 친구들&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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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4 Mar 2013 12:51:00 +0900</pubDate>
	            <author>빨강머리앤</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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