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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재청 공식 블로그</title>
        <link>http://blog.daum.net/munhwajaecheong</link>
        <description>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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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7 Jun 2013 16:38:4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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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바닷속 보물을 찾아서, 발굴전용 인양선 ‘누리안호’의 첫 출항</title>
	            <description>'유물발굴' 이라 하면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사적지에 터를 파놓고 고고학자들이 조심스레 흙을 거두는 장면이 떠오르지는 않나요? 많은 사람이 유물을 발굴한다고 하면 자연스레 '땅속'에 묻혀있는 유물을 찾는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대량의 고려청자와 같이 상당수의 유물은 '바닷속' 에도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 특성상 해상무역이 활발하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무역선 침몰 등으로 인해 다량의 유물이 바닷속으로 가라 앉아 버린 것이지요. 이러한 유물들은 지상의 유물과 달리 도굴, 재난 등의 피해를 받지 않아서 보존상태가 우수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발굴작업은 주로 지상유물을 대상으로 진행. (우측사진 : 백제금동대향로 발굴사진) 하지만 그동안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발굴작업의 대부분은 지상유물에 대해서만 이루어졌는데요. 2013년 6월 3일! 국내 최초 발굴전용 인양선인 ‘누리안호’가 첫 출항을 시작함으로써, 바닷속 잠들어 있던 해양유물발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안 대섬 해양유물 사진 ▲ 마도 3호선발굴조사 사진 ▎우리나라의 해양유물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변국과 활발한 해상무역활동이 이루어 졌으며, 기록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멀게는 아라비아 국가와도 교역할 만큼 그 규모와 대상이 광범위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넓고 깊은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와 교역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었는데요. 바다에는 높은 파도, 암초, 태풍 등 각종 위험요소가 숨어 있으며, 이 때문에 침몰하는 선박의 수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침몰당한 선박에는 그 시대, 각 국가를 대표할 만한 물건들이 실려 있었는데요. 이렇게 바닷속으로 잠들어 버린 그 시대 물건들이 현재 소중한 해양유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 삼국시대 해상무역 항로 ▲ 백제 무역선 모형 (백제역사문화체험관) ▎해양문화재연구소와 누리안호 문화재청에서는 이러한 해양유물을 체계적으로 조사 ․ 연구하기 위해, 전문연구기관인‘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를 두어 연구활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해양유물의‘발굴작업’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많았는데요. 바지선 이나 임대 인양선을 이용해 해상유물을 발굴하려다 보니 전문시설 및 장비가 부족하여 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졌고, 안전사고 예방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발굴전용 인양선인 누리안호가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개시하면서, 그동안 어려웠던 해양유물 발굴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누리안호의 주요 기능발굴전용 인양선 ‘누리안호’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20명의 조사단이 최대 20일 간 생활을 하면서 발굴 활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잠수장비와 채토장비, 인양설비 뿐만 아니라, 잠수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감압챔버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산소와 전기 공급장비를 단 잠수부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조사작업을 시작하면 누리안호 상황실에서는 잠수부 머리에 달리 카메라를 통해 바닷속 조사작업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최대 8명의 수중 잠수조사원과 실시간으로 통신을 주고 받으며 수중 조사의 전 과정을 관찰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발굴조사 과정 (잠수조사원 투입 -&gt; 현장조사 -&gt; 상황실 모니터링, 통제) ▎바닷속에서 발굴된 유물, 잠들어 있는 유물그동안 바닷속에서 발굴된 유물은 어떤 것이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최근에 이루어진 해양유물 발굴작업 중에는 태안군 대섬 인근 해역에서 이루어진 발굴작업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7년 5월 이 해역에서 주꾸미 어로작업을 하던 어부는 특별한 주꾸미 한마리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주꾸미의 발에는 고풍스러운 도자기(청자대첩)가 붙어있었습니다. 어부의 신고를 통해 이 해역에 대한 긴급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조사결과 다량의 고려청자가 실린 고려시대 선박이 해저에서 확인되었고, 발굴작업을 통해 고려청자, 목간 등 총 22,577점의 유물이 수습되었습니다. ▲ 태안 대섬 인근해역 발굴조사 (좌 : 주쭈미에 붙어온 청자대첩, 중 : 발궁조사작업, 우 : 수습된 해양유물) 태안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이외에도 바닷속에는 아직 수많은 유물 들이 잠들어 있는데요. 특히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고, 조류가 빠른 해역은 예로부터 선박침몰 사고가 빈번하였고, 이러한 지역에 해양유물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지역은 그동안 작은 규모의 탐사선으로 조사가 어려웠지만, 누리안호를 이용한다면 이러한 지역의 해저탐사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탐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감포 앞바다의 대종(신라시대 대종으로 추측)도 향후 누리안호의 도움을 받아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대종 발견신고가 접수된 경주 감포읍 인근 해역 (ⓒ중앙일보 기사) ▎누리안호의 첫 출항누리안호의 첫 임무가 주어진 발굴지역은 인천 영흥도에서 서쪽으로 30분 떨어진 섬업벌 해역입니다. 이 해역에는 고려시대 선박이 잠들어 있는데요. 도요지가 있던 남쪽 지방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올라가던 배가 난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선박을 발견하였을 당시(2010년)에는 빠른 물살로 인해 조사가 어려웠으나, 현재는 누리안호를 통해 발굴조사가 가능해 졌습니다. 누리안호는 오는 8월까지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하며 고려시대 선박구조와 항해 관련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며, 발굴을 마친 후에는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무기가 발견된 진도 오류리 해역으로 이동하여 발굴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화재 발굴의 새로운 지평을 연 누리안호! 앞으로 누리안호가 우리나라의 해역 곳곳을 누리며, 잠들어 있던 소중한 문화재를 많이 발견하기를 바라며, 또한 우리나라의 해양문화역사를 밝히는데도 많은 역할이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누리안호 전경 ▲ 인천 영흥도 해역에서 출수된 고려청자▲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윤범진 기자&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영흥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영흥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보물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보물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누리안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누리안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진도 오류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진도 오류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발굴전용 인양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발굴전용 인양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마닷속 유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닷속 유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태안 대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태안 대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마도 3호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도 3호선&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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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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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600년의 역사! 한양도성을 따라서...</title>
	            <description>안녕하세요! 문화재청 블로그기자단 5기 한수연입니다. 벌써 2013년이 절반이나 지나가고 있는데요,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조금 덥기는 하지만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인 것 같아요.이번 기사에서 제가 소개할 곳은 바로 ‘한양도성’입니다. 요즘은 등산/나들이 코스로도 잘 알려져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는 곳인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한양도성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알아본 후, 한양도성의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한양도성과 한양도성의 역사에 대해 잠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한양도성(사적 제10호) 한양도성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 시대의 도성을 말하는데요, 2011년 7월, 서울성곽에서 서울 한양도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그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1392년 개성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후 곧바로 한양천도 계획을 명했고 태조 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한양도성을 수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양도성은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아우르고 있으며 는 총 길이는 59,500자(약 18.2km)에 달했다고 합니다.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쌓기로 계획되었고, 공사는 농한기에만 이루어져 1396년에 서울성곽 대부분 그리고 4대문과 4소문을 완공하였습니다. 가장 규모가 컸던 남대문은 2년 뒤인 1398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7년 후, 세종은 한양도성에 대한 보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한양도성 전면에 걸쳐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방어 시설을 늘렸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한양도성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후 숙종 30년에는 성곽의 돌을 정사각형으로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도록 보수를 하였습니다. 태조에서 숙종 대에 이르기까지, 260년간 서울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 없이 그 모습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이 헐리면서 사실상 서울의 평지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라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 성곽은 600년 넘게 제 모습을 잘 지켜 왔습니다. 특히, 산을 따라 축조된 산성은 상당 부분이 잘 남아있어 조선시대의 성 축조 기술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6년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한양도성을 가능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정비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치와 노력을 바탕으로 하여 한양도성은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재인 만큼 한양도성을 보존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난 5월 16일,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 한양도성 의 정문인 숭례문 복구를 계기로 서울시의 문화유산 관련 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협약을 통해 앞으로 두 기관은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 활용 등에 관한 정책들을 협력하여 함께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5월 28일 발표된 자료를 보면 서울시는 다음 달부터 남산 중앙광장 일대 한양도성 구간에 대한 3단계 발굴조사에 착수하여 2015년까지 성곽 복원 및 공원조성 사업을 마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앞서 힐튼호텔 앞 아동광장 일대 84m를 복원하는 1단계와 백범광장 일대의 245m 구간을 복원하는 2단계 사업은 각각 2009년과 2012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계획에 따른다면, 숭례문에서 남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남산 회현 자락 도성이 전부 복원되어 한양도성은 옛 모습에 한발 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서울시청 위의 사진은 이번 계획에 따라 복원될 구간입니다. 이번에 복원될 남산 회현 자락은 한양도성의 훼손 구간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인 770m가 헐린 곳이라고 합니다. 서울시는 “이번 발굴을 통해 일제가 한양도성을 어떻게 훼손·철거했는지에 대한 비밀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통해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 유산의 완전성을 입증하는 데도 유리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한양도성의 현재 모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종로구청 홈페이지에서 제공되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의 지도입니다. 한양도성 각 구간의 위치와 출입문과 같은 관광정보가 모두 표시되어 있어 한양도성을 돌아보실 때 참고하시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위 지도는 종로구청 홈페이지 역사문화관광 카테고리 http://www.jongno.go.kr/Tour.do?menuId=110429&amp;menuNo=110429에서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은 크게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중심으로 4개 구간으로 나누어 집니다. 네 구간 모두 입장료 없이 돌아보실 수 있으며 구간마다 서로 다른 서울의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코스인 북악산 코스는 제가 취재를 위해 다녀온 코스이기도 한데요, 저는 위의 순서와는 반대로 와룡공원에서 출발해 창의문에서 코스를 마쳤습니다. 말바위 안내소부터는 군 통제구간이기 때문에 신분증을 꼭 지참하셔야 합니다. 북악산 코스에 관한 내용은 북악산 한양도성 홈페이지(http://www.bukak.or.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2코스인 낙산은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오시면 가는 길이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고 합니다. 혜화문에서 출발하여 흥인지문까지를 이르는 낙산 코스는 비탈길이 가파르지 않아서 다른 코스에 비해 쉽게 걸으실 수 있다고 합니다.3코스인 남산구간은 흥인지문에서 숭례문에 걸쳐있는 남산자락을 따라 전개됩니다. N서울타워를 비롯해서 다른 코스에 비해 현대적인 볼거리가 많은 듯합니다.마지막으로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숭례문에 이르는 인왕산 코스는 길은 가파르지만, 정상에 오르면 고생한 보람을 느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올라보고 싶어요. 한양도성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후 네 코스를 모두 걸어보고 싶었지만,시간과 체력적 문제로 모든 도성을 다 돌아보지는 못하고 학교와 가까워 평소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북악산 코스를 오르기로 했습니다!혜화역 1번 출구에서 내려 8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하신 후 10분 정도 걸으면 말바위 안내소로 연결되는 길이 나옵니다.종점에서 내려 말바위 안내소로 가는 길입니다.가는 곳곳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서 쉽게 따라가실 수 있습니다. 여름이 다가와서인지 길들이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네요.성곽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산속이라 그런지 길이 굉장히 예뻤습니다.말바위 안내소 이후의 구간은 군사 통제지역이기 때문에 신청서를 작성하고 통행증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군사시설이 있는 몇몇 구간에서는 사진 찍는 것이 제한됩니다.신청서를 작성하면 위 사진과 같은 통행증을 주는데요, 중고등학생은 학생증도 가능하지만, 성인은 꼭 운전면허증이나 주민등록증을 지참하셔야 합니다!말바위 안내소 근처에서 내려다본 서울시의 전경인데요, 날씨가 쾌청하지 않았던 터라 먼 곳까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이렇게 성곽을 따라서 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성곽 벽면에 나 있는 세 의 구멍은 총을 쏘는 데 이용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양쪽의 구멍은 원거리를, 가운데 있는 구멍은 근거리를 쏘는 구멍인데요,구멍을 살펴보시면 구멍의 모양이 서로 다릅니다.왼쪽은 근거리를 쏘는 구멍이라 총알이 가까운 곳으로 떨어질 수 있도록 구멍이 비스듬하게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반면 원거리를 쏘는 오른쪽 구멍은 총알이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구멍이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말바위 안내소에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백악산 코스의 중간 지점 즈음이 되는 숙정문이 나타납니다.숙정문(사적 제10호) 숙정문은 서울성곽의 북(北)대문입니다.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의 '예를 숭상한다'는 뜻과 대비되어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태종 13년에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지맥을 손상한다는 상소를 올린 이후,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습니다. 이후 숙정문은 음양오행 중 물을 상징하는 음(陰)의 기운을 가졌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었을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남대문을 닫고 숙정문을 열었으며 비가 많이 내리면 숙정문을 닫아두었다고 합니다. 숙정문에서 내려다 본 서울 전경입니다.아직은 길이 크게 가파르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숙정문을 지나 청운대로 올라가는 길인데요,여기서부터는 길이 굉장히 가팔라지므로 조심하셔야 합니다.흙바닥에서 발이 미끄러지기도 해서 동화나 편한 신발을 신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구간에서 성벽의 돌 모양이 눈에 띄었는데요,어떤 구간은 이렇게 돌들이 들쑥날쑥하게 쌓여있고어떤 구간은 이렇게 정사각형 모양으로 돌들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돌들이 쌓인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크기가 가장 들쑥날쑥한 이 성벽은 도성이 처음 지어지던 태종 때의 모양입니다.이후 세종 때에 성벽을 전면적으로 보수했는데요, 초기보다는 더욱 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숙종 30년에 성벽을 다시 한 번 정비 하였는데요, 이때는 성벽을 정사각형 모양으로 다듬어 성벽을 더 튼튼하고 보기 좋게 쌓았습니다. 이렇게 시기에 따라 성벽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서울 도성은 당시 도성 축조 기술의 발달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사료가 됩니다. 성벽의 모양에서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돌출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구조를 '곡장'이라고 합니다.제가 실제 사진을 찍지 못해서 북악한 한양도성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으로 대신 보여드릴게요. 곡장(曲墻)은 성곽의 방어 시설 중 하나로, 적들이 성벽을 쉽게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중요한 지점을 자연 지세에 맞춰 둥글게, 또는 각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합니다.ⓒ북악산 한양도성 홈페이지각이 진 것을 치성, 둥글게 돌출된 것을 곡장이라 부릅니다. 그럼 탐방을 계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이것은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1.21사태 소나무입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하여 총격전이 벌어졌는데요, 그 총격전 때문에 200년 된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게 되었습니다. 탐방을 마치고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구간인데요, 여기는 길이 굉장히 가파르고 계단이 끝없이 끝없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내려가실 때 주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앞에 보이는 안내소에 다시 통행증을 반납하면 탐방이 끝나게 됩니다.이건 창의문 안내소에 있는 한양도성 탐방로인데요, 저는 와룡공원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위 탐방로와 반대로 창의문에서 탐방을 마쳤습니다. 창의문에서 시작하는 구간은 초반부터 엄청난 계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와룡공원에서 출발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요.마지막에 계단을 내려가면서 다리가 계속 후들후들 거렸는데요, 이 계단은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드디어 창의문에 도착했습니다.창의문 서울 성곽의 4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계곡의 이름을 따서 일명 ‘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합니다. 1396년에 도성 8문의 하나로 창건되었으나 창의문이 경복궁을 내리누르는 위치에 있다는 풍수지리설적 해석 때문에, 1413년(태종 13) 이후로는 폐쇄되어 일반적인 출입은 금지되고 다만 왕명에 의하여 한때 통행을 허가하였다고 합니다. 창의문은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약 3시간에 걸친 한양도성 탐방을 마쳤습니다!사실 '성곽 길'이라고 해서 그냥 산책로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길이 가파르고 길이 멀어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꼭 편한 신발 신고 가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훼손된 구간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2015년에 회현 구간의 복원 공사가 끝나면 지금보다 더 완벽한 모습의 한양도성의 모습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설과 함께 더 알차게 한양도성을 돌아보시고 싶으시다면 종로구청 역사문화관광 카테고리(http://www.jongno.go.kr/Tour.do?menuId=110428&amp;menuNo=110428)에서 한양도성 무료해설을 이용하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인터넷을 통해 예약 하실 수 있습니다.또한, 한양도성 구간마다 스탬프를 찍으면서 탐방을 하실 수 있는 서울 한양도성 스탬프투어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으니 홈페이지를 방문하셔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백악산(북악산) 한양도성 홈페이지(http://www.bukak.or.kr/sub2/sub4.asp)에서도 해설과 함께 탐방을 진행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용해보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 기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모두 좋은 하루 되시고, 이번 주말! 한양도성으로의 나들이는 어떨까요? 참고문헌 : 네이버 캐스트 북악산 서울성곽 팸플릿문화재청서울시청종로구청북악산 서울성곽 홈페이지 ▲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한수연 기자 (maiss_@naver.com)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창의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창의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숙정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숙정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세계문화유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세계문화유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한양도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양도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서울 한양도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울 한양도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한양도성 구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양도성 구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한양도성 걷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양도성 걷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한양도성 문화유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양도성 문화유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한양도성 등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양도성 등반&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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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4 Jun 2013 11:27:48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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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문화재와 함께한 여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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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조선왕릉의 아웃라이어들 (Outliers)</title>
	            <description>여러분은 조선왕릉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서울 또는 경기도 지역에서 쉽사리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명칭의 '능(陵)'이라던가 광릉처럼 서울 근교에 위치해 드넓은 수목원으로 유명한 왕릉이 떠오르지 않나요?ⓒ 문화재청 조선왕릉 이처럼 조선왕릉은 왕조가 지속된 519년의 긴 역사동안 서울 근교를 중심으로 1대조 태조부터 마지막 임금 순종의 능까지 모두가 큰 훼손없이 잘 보존되어 전해지는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특히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이 정한 10가지의 보편 가치 중 '문화적 전통 또는 살아 있거나 소멸된 문명에 관한 독보적이고 특출난 증거'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보유한 사건 또는 살아 있는 전통, 사상, 신념, 예술적/문화적 작품과 직접/가시적인 연계' 위의 3가지 기준을 충족하면서 2009년 6월부터는 세계유산의 하나인 '조선왕릉'이 되었는데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내용은 이러한 세계유산 '조선왕릉'과는 조금은 차별된(?) 또 다른 조선왕릉 일명 아웃라이어의 '조선왕릉'에 대해서 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中 'Outlier' 아웃라이어(Outlier)란 사전적 의미로 '영외 거주자'를 뜻합니다. 통계적으로는 정규분포에 속하지 않는 바깥의 값을 말하기도 하죠. 그렇다면 '조선왕릉'의 아웃라이어(Outlier)는 무엇이 있을까요?■ 조선왕릉의 아웃라이어들 (Outliers) ■ '조선왕릉'에 속한 조선왕조 왕과 왕비의 능은 모두 42기가 있습니다. 능의 대부분은 도읍 한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서울이나 근교의 경기도 지역으로 조금만 나간다면 쉽게 다녀올 수가 있는데요. 독특하게도 2기의 왕릉은 우리가 지금은 갈 수 없는 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한 땅에 위치한 '제릉'과 '후릉'이 바로 그 곳.▲ 위성으로 본 '제릉'과 '후릉' 위치 (ⓒ 구글어스) 위의 위성지도에서 화살표로 표시된 곳이 제릉과 후릉입니다. 노란색 선이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인데 바로 그 위쪽으로 제릉과 후릉이 나란히 위치하고 있죠. 서울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님에도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먼 곳이 되버렸네요 ... 그렇다면 제릉과 후릉은 어떤 능일까요? 1) 제릉(齊陵)▲ 제릉 (ⓒ 구글어스) 제릉은 황해북도 개풍군 대련리의 부소산 남쪽 기슭에 있는 조선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1391)의 무덤입니다. 북한에서는 보존급문화재 제556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신의왕후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훨씬 이전인 함흥에서의 고려 장수 시절부터 함께해 온 첫번째 아내입니다. 후에 왕이되는 정종, 태종을 비롯, 6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의 어머니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녀는 조선이 건국되기 1년 전인 1391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살아 생전에는 왕비가 되지 못했고 당시 고려 도읍 개경 인근에 묻혔습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된 후에야 신의왕후로 추존됐고, 능호를 제릉으로 정해 1407년(태조 7년) 공조판서 박자청을 시켜 왕비릉으로 확대 조성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제릉 봉분과 3단 묘역 및 석상 (ⓒ 네이버 블로그 '나의문화유산답사기') ▲ 제릉 전경 (ⓒ 네이버 블로그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릉은 조선왕릉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는 조선 건국 직후였기 때문에 고려의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요. 때문에 제릉은 고려 공민왕릉(현릉과 정릉)을 모방하면서 석조물의 조형미가 뛰어난 것이 특징이죠. 묘역은 위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듯이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맨 윗단에는 12지신상을 새긴 12면 병풍성이 둘러진 봉분 등이 위치하고 중간단에는 6각의 장명등과 좌우 문인석, 석마가 각각 1쌍씩 위치해 있으며 아랫단에는 무인석, 석마가 각각 1쌍씩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묘역 앞쪽으로 정자각과 신의왕후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제릉비(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능 상태가 좋지는 못해 맨 윗단의 석양과 석호는 일부만 남아있고 정자각 및 능 주변도 관리가 부족한 모습입니다. ▲ 하늘에서 본 제릉 (ⓒ 구글어스) 위성사진으로 찾아본 제릉의 모습입니다. 일반적인 조선왕릉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휑한 모습이죠.. ▲ 건원릉에서의 제릉 기신제 봉행 (ⓒ 네이버 카페 '종묘,사직대제 및 능제향 전승자들의 모임') 신의왕후는 이후 아들 태종 때는 승인순성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로 시호가 높여졌고 1899년(광무 3년)에는 고종에 의해 황후로 격상되면서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됐습니다. 현재 제릉은 북한에 위치해 갈 수 없기에 제릉에 대한 기신제 봉행은 남편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답니다. 2) 후릉(厚陵)▲ 후릉 (ⓒ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북한문화재자료관) 후릉은 황해북도 개풍군 영정리 백마산 기슭에 있는 쌍릉으로 조선 제2대 정종(定宗 1357~1419, 재위 1398~1400)과 부인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1412)의 무덤입니다. 북한에서는 보존급문화재 제551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제릉과 같이 공조판서 박자청의 감독 하에 조성된 능이기도 하죠. 정종은 태조의 둘째 아들이자 태종의 형으로 왕자시절의 명칭은 영안대군입니다. 그러나 이복형제 방번, 방석과 정도전 등이 죽임을 당한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염증을 느낀 태조가 왕위를 넘기면서 뜻하지 않게 왕이 됐습니다. 때문에 실권을 가진 동생 정안대군(후에 태종)을 왕세제로 임명해 정사를 돌보게 하고 다시 개경으로 도읍을 옮겨 조용한 생활을 하다가 정국이 안정이 되자 정안대군에게 양위,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짧은 재위로 큰 업적이 없어 사후 오래도록 공정왕(恭靖王)으로 불렸는데 1681년(숙종 7년)에야 비로소 정종이란 시호를 받게 됐답니다. 정종 비 정안왕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짧은 재위와 달리 많은 후궁을 둔 정종의 내명부를 잡음 없이 원활히 이끌어 간 여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미 시동생 정안대군의 권력을 파악하고 남편에게 속히 양위를 권유해 형제간의 불화를 막았다고 하는군요. ▲ 후릉비와 장명등, 후릉 전경 (ⓒ 네이버 블로그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멀리서 본 후릉 전경 (ⓒ 구글어스) ▲ 하늘에서 본 후릉 모습 (ⓒ 구글어스) 후릉은 제릉과 함께 고려 공민왕릉(현릉과 정릉)을 모방해서 조성됐습니다. 때문에 고려와 조선왕릉의 특징을 고루 갖춘 것이 특징입니다. 묘역은 3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윗단의 봉분은 쌍릉형태로 서로가 난간석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태종의 능인 헌릉의 태종과 원경왕후의 쌍릉이 난간석으로 이어진 것과 흡사한 모습이죠. 또한 12지신상이 새겨진 12면 병풍석과 문, 무인석, 석마, 장명등 등 석조물의 배치 그리고 후릉비가 위치한 것도 제릉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후릉은 제릉보다 더 상태가 좋지 못한데요. 전경 사진과 위성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수해 등으로 인해 정자각 및 비각조차 남아있지 않고 장명등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모습 그대로입니다. 너무나도 휑하게 봉분만 남아있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찾아보기 힘든 북한의 조선왕릉을 지금까지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조선왕릉의 아웃라이어가 된 이들, 왕이었으나 왕이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를 알아볼까요? 3) 연산군묘(燕山君墓)▲ 위성으로 본 연산군묘와 그 일대 (ⓒ 구글어스) ▲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연산군묘 연산군묘(燕山君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제10대 임금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 1495~1506)과 부인 거창신씨(1472~1537)의 무덤입니다. 사적 제362호. 연산군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워낙 유명한 임금이죠? 성종의 큰아들로 붓글씨를 잘쓰고 시를 잘지어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는 그는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보복과 이어진 두 차례의 사화, 지나친 폭정으로 인해 결국 반정으로 왕위에서 쫒겨난 첫 임금이 됐습니다. 강화도 교동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31세로 죽었으나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다행히 지금의 위치에 묻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산군에 대한 폭군 평가는 대체적으로 비슷하지만 그가 심각한 폭군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람들마다 조금씩은 다른 평가를 내리는게 특징입니다. 연산군묘의 안내문은 연산군에 대해서 제법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듯 하네요. ▲ 연산군묘역(위에서부터 차례로 연산군, 연산군부인 신씨, 의정궁주 조씨, 연산군사위 구문경, 휘순공주 묘) 연산군묘는 작은 규모임에도 상당히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 - 1 - 2 형태의 묘역을 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가장 윗단에는 연산군과 부인 거창신씨의 묘가 있고 중간단에는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의 묘가 아랫단에는 연산군 사위 능양위 구문경과 연산군 딸 휘순공주의 묘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모습이 된 걸까요?▲ 의정궁주 조씨 묘 본래 이곳에는 태종의 후궁인 의정궁주 조씨의 묘가 있었습니다. 후궁으로 너무 늦게 간택되는 바람에 곧 태종이 승하, 궁주의 작호만 받고 과부가 된 그녀를 위해 세종은 아들 임영대군을 시켜 그녀의 제사를 맡도록 했는데요. 이 때문에 당시 임영대군의 땅이던 이곳에 의정궁주의 묘가 조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후일 연산군이 유배된 후 강화도 교동에서 죽자 임영대군의 외손녀가 되는 연산군부인 거창신씨의 노력으로 (임영대군 사위 신승선의 딸) 연산군의 묘가 이곳으로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이고 이어서 연산군의 사위 구문경과 휘순공주의 묘가 조성, 마지막으로 거창신씨의 묘가 조성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됐습니다. 왕이었으나 왕이지 못한 임금이었기에 '군(君)'의 예우인 묘가 되면서 흡사 이곳은 연산군과 그 가족의 묘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연산군과 부인 거창신씨 묘▲ 가까이서 본 연산군묘비의 모습 연산군묘는 대군의 예우에 따라 만들어지면서 무인석은 없고 문인석만 2쌍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왕이었으나 왕이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묘 주변의 석물과 비석의 모습은 흡사 그가 어떤 임금으로 남았는가를 비유적으로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 연산군묘 재실 연산군묘는 임금의 무덤인 능이 아닌 묘로 조성됐음에도 독특하게 재실이 있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현재 숭모회가 구성되어 매년 4월 2일 청명제로 제향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 연못이 흡사 천원지방 형태로 꾸며진 연산군묘 앞 공원▲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800년의 방학동 은행나무 연산군묘 주변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있어 바로 옆에 인근 주민들을 위한 공원이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연못의 모습이 능에 만들어지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연못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연산군도 한때의 임금이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진걸까요? 그리고 묘 입구에는 이곳에 무덤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자라온 수령이 800년도 더 넘는 보호수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 또한 연산군묘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또 하나의 왕실 무덤이 있는데요.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와 남편 양효공 안맹담의 무덤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스정류소 이름도 정의공주묘와 연산군묘가 나란히 써있는 것이 특징. 비록 폐주가 되어 쫒겨난 임금 연산군이지만 죽어서는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묻히고 서울에 위치해 찾기 쉬운 점, 인근에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은 것을 볼 때 그의 사후는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4) 광해군묘(光海君墓)▲ 위성으로 본 광해군묘와 그 일대 (ⓒ 구글어스)▲ 광해군묘 조선왕조에는 연산군과 함께 폐주가 된 임금이 한명 더 있습니다. 광해군이 바로 그 인물인데요. 광해군묘(光海君墓)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있는 조선 제15대 임금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 1608~1623)과 문성군부인으로 불리는 부인 문화유씨(1576~1623)의 무덤입니다. 사적 제363호.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로 왕비의 자녀가 아닌 후궁(공빈 김씨)의 자녀였기 때문에 세자 책봉, 왕으로 즉위하는 순간까지가 모두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분조로의 활약, 아버지 선조와의 불화, 북인과 서인의 대립 속에서 어렵사리 왕에 오른 그였지만 또다시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의 중립외교 속에 어려움을 겪고 정치적 위기 속에서 다수의 반대파 제거, 영창대군 사사와 인목대비 유폐라는 조치 때문에 명분을 잃어 결국은 반정으로 왕위에서 쫒겨나는 두번째 임금이 됐습니다. 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는데 부인 유씨가 먼저 죽어 지금의 자리에 묻히면서 이후 함께 묻히게 됐습니다.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오래도록 연산군과 함께 폭군으로 남았었는데 최근 실리외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정치적 논리에 희생당한 임금이라는 인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영락교회 공원묘지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광해군묘▲ 위성으로 본 광해군묘와 그 일대 (ⓒ 네이버 지도) 광해군묘는 연산군묘와는 달리 상당히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릉을 찾은 다음 갈림길에서 광해군묘 이정표를 따라 2km 가량을 이동, 다시 한 교회의 공원묘지로 들어가야만 찾을 수가 있답니다. 위의 위성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광해군묘는 거의 숨어있는 듯한 자리에 있습니다. ▲ 광해군과 부인 문화유씨 묘 (아래는 광해군묘) 광해군묘는 그가 적자가 아닌 서자였기에 군의 예우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문인석이 2쌍이 아닌 1쌍이 전부인 것이 특징. 특히 상석 또한 더 낮은 예우로 만들어진 모습인데요. 연산군묘의 것보다 더 못한 것을 본다면 아무래도 정치적인 미움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협소한 곳에 자리한 광해군묘의 모습 입구에서 광해군묘를 본다면 먼저 과연 여기가 임금의 무덤, 아니 일개 왕자의 무덤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광해군묘는 가파른 자리에 굉장히 협소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히 무덤이 조성된 그 예우를 본다면 더욱 그러한데요. 비록 군의 예우로 만들어졌지만 한때는 임금이기도 했던 이의 무덤인데 재실조차 없고 심지어 연산군묘보다도 못한 모습을 본다면 명분없는 반정(인조반정)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조금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광해군의 마지막 소원인 어머니 무덤 근처에 묻어달라는 소원은 이루어진 것이니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풍양조씨시조묘 뒤에 위치한 성묘 (아래사진 : ⓒ 네이버 블로그 '나의문화유산답사기')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1553~1577)의 무덤 성묘(사적 제365호)는 광해군묘와 마주보는 건너편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해군이 임금이던 시절 자신의 어머니를 공성왕후로 추존, 한때 성릉이라 하여 왕릉에 준하는 예우로 확대 조성했지만, 인조반정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지금은 성묘라는 이름으로 협소한 위치한 왕릉의 능제는 갖춘 오묘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묘 또한 회묘인데 한때는 회릉으로 격상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독특한 것은 바로 앞으로 풍양조씨의 시조묘 조맹의 무덤이 있는데 시조묘가 성묘보다 더 크다는 점. 조선 후기 외척이자 세도가였던 풍양 조씨와 권세와 몰락한 군주의 어머니인 공빈 김씨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죠. ▲ 임해군묘 더불어 인근에는 또 한명의 왕자 무덤이 있는데요. 광해군의 형이자 공빈 김씨의 아들인 임해군의 묘입니다. 사적이 아닌 경기도 기념물인 관계로 이들 무덤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지만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위치 또한 굉장히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지나는 길에 들러보기도 쉽지는 않은 무덤입니다. 임해군에 대해서는 성질이 난폭하고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에게 잡혀 왜군에게 넘겨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좋지 못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광해군과 어머니 공빈 김씨의 묘가 어떤 모습으로 전해지는가를 본다면 괜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 송능리 일대에 모여있는 조선왕실 무덤들 (사릉, 광해군묘, 성묘, 임해군묘, 안빈묘) 이렇듯 광해군묘 인근에는 어머니 무덤인 성묘와 형인 임해군묘를 비롯해 효종의 후궁인 안빈의 묘,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의 사릉, 거기에 풍양조씨의 시조묘까지 조선왕실은 물론 조선시대의 무덤 다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때는 왕이었던 인물이 명분이 부족한 반정과 정치적 미움으로 인해 연산군보다도 못한 더욱 격이 낮은 무덤에 묻힌 것을 볼때면 왠지 모를 연민에 가장 먼저 안타까움이 듭니다. 지금까지 '조선왕릉'의 아웃라이어 (Outliers) 들을 살펴봤습니다. 역사 속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의 조선왕릉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조선의 왕릉이지만 세계유산에는 함께하지 못한 찾아갈 수 없는 북한의 2기 왕릉(제릉과 후릉)과 폐위된 2명의 임금의 무덤(연산군묘와 광해군묘)까지 총 4개의 무덤들. 때문에 능으로 조성된 북한의 제릉과 후릉 또한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하나로 등재하려는 노력이 진행중입니다.▲ 세계유산의 하나인 사릉(思陵) (사적 제209호) 노력이 이루어져 앞으로는 42기의 왕릉이 모두 세계유산의 '조선왕릉'으로 등재돼 모두가 함께 관리되고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 ▶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 기자단 김천성 기자 (genius550@hanmail.ne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유네스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네스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세계문화유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세계문화유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연산군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연산군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조선왕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왕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광해군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광해군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제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제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후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후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북한의 조선왕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북한의 조선왕릉&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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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4 Jun 2013 10:45:15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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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조선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title>
	            <description>안녕하세요,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김윤정입니다.저는 그동안 여러 행사에도 참가하고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6월이 지나가고 있네요.:)이때쯤 올해 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점검하고,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조선왕조실록' 속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추어볼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신가요?'실록'이란, 왕이 죽은 뒤에 다음 대에서 전임 왕 때의 역사를 정리한 것을 말합니다.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에 걸쳐 간행하였는데요, 사건을 연·월·일 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로 되어 있습니다.실록은 조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에도 존재했지만, 외국의 실록은 주로 궁중에서 일어난 정치만을 다루는 것이 보통이라고 해요.하지만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은 중앙정치뿐만 아니라 민간의 일까지 중요한 것은 다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은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답니다.:)조선이 '유교의 나라'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그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일어났다고 하기엔 다소 충격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저와 함께 그 이야기들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D(▲ 궁중 여인들의 동성애, 출처: EBS 다큐프라임, 한중일 궁중생활사-'궁녀')..이러한 동성애 스캔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빈이었던 '순빈 봉씨'입니다. 순빈 봉씨는 '소쌍'이라는 궁녀를 사랑했는데요,소쌍을 항상 옆에 두고자 했으며 한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역정을 냈다고 합니다.그리고 자주 소쌍과 함께 침소에 들었다고 해요.소쌍은 문종의 후궁이었던 권 승휘(단종의 모후)의 여종과 친하게 지냈는데,자신에 대한 순빈 봉씨의 집착에 관해 하소연을 자주 했습니다.순빈 봉씨의 이야기는 권 승휘에게 전해졌고, 그녀는 이를 문종(당시 세자)에게 고했습니다.하지만 문종은 순빈 봉씨가 궁궐에서 쫓겨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추궁은 하지 않았습니다.그 이후에도 순빈 봉씨와 소쌍의 사랑은 1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순빈 봉씨와 소쌍은 조사를 받게 됩니다.결국, 순빈 봉씨는 세자빈에서 폐위되어 궁궐에서 쫓겨나고 맙니다.순빈 봉씨의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 속 유일한 동성애 사건이지만실제 궁궐에서는 궁녀들 간의 동성애, 즉 '대식'이 폭넓게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궁녀의 모습, 출처: EBS 다큐프라임, 한중일 궁중생활사-'궁녀') 궁궐의 여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사실 외롭고 쓸쓸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조선의 왕은 왕비 외에 수많은 후궁을 거느렸으며, 궁궐에는 왕의 승은을 기다리는 궁녀가 수없이 많았습니다.답답하고 순종적인 궁 생활에서 이 여인들이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중 하나가바로 '대식'이라고 부르는 궁녀 간의 동성애였을 것입니다. 궁궐에서 평생을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삶이 가엾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바리맨, 출처: 야후 카툰세상, '무식아!'-40. 바바리맨)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골목길에서 바바리맨과 마주친다면?당연히 위 만화 속 여학생처럼 깜짝 놀라서 도망가버릴 것 같습니다.:D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이런 바바리맨이 출몰했었다면?지금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그리고 또 놀라운 사실은 그 바바리맨이 성균관 생원들이라는 것입니다.성균관의 생원 '최한경'과 '정신석'은 성균관 문묘에서 치러지는 제사 때집사 역할을 도맡고 있었기 때문에 목욕재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앳된 부인 하나가 여종 둘을 거느리고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너무 더워서 이성을 놓아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 부인이 정말 아름다웠던 것인지갑자기 최한경은 옷을 홀딱 벗은 채 부인을 끌어안고 희롱했다고 해요. 남녀 사이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여 풍기가 문란하지 않도록 엄격하게 단속했던 조선 시대에,그것도 성균관 생원들이 저지른 이러한 행동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균관 생원들이기 때문에 출세가 보장되어 있었는데요,결국 직접 희롱을 한 최한경만 곤장 80대를 맞고 사건이 종결되었습니다.최한경과 정신석은 그 후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얻고 관리가 됩니다.후대의 실록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관리로써 굉장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날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실록에 홀딱 벗고 부녀자를 성희롱했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참 아이러니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 '사방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사방지'는 1988년 개봉작으로, 14번이나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사방지'라는 양성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입니다. '사방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사방지는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처럼 살결이 곱고 입술이 붉어주변 사람 모두 여자아이가 사내아이로 잘못 태어난 것이라고 했는데요,그래서 사방지의 어머니는 사방지를 여자아이처럼 꾸며 놀게 했습니다.사방지는 어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시자,'김 연'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김 연의 처는 말동무이자 바느질 친구인 사방지를 자주 데리고 잤는데,나중에서야 사방지가 '이의'(양성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방지는 자신이 '이의'라는 점을 이용해 많은 여인을 유린하였는데요,결국 사헌부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세조는 사방지가 인간이 아니며, 그래서 한 나라 안에 함께 살 수가 없으니먼 지방의 노비로 삼아 버렸습니다.사방지와 같은 양성인이 존재하는 것은 염색체 이상으로 남녀 성별 중 하나가 완전히 퇴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조선에서는 음(여성)과 양(남성)이 조화를 이루지 않은 사방지의 존재는괴변이고 불길한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사방지 이후, 명종 때 '임성구지'라는 양성인이 나타나 남자에게 시집도 가고 여자에게 장가도 드는 일이 벌어져 또 한 번 크게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D(▲ 구미호, 출처: KBS 전설의 고향-'구미호') 사람의 간을 먹으면 인간이 될 수 있는 '구미호'의 이야기.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구미호가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그 구미호는 바로, 사람의 배를 갈라 간과 쓸개를 꺼내어 질병의 특효약으로 먹은 조선 시대 백성입니다. 사람의 간과 쓸개가 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으로 비싼 값에 팔리자,어린아이나 혼자서 길을 걷던 어른을 살해해 간과 쓸개를 빼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간과 쓸개가 특효약으로 쓰인다는 병은 주로 '창질'(瘡疾)이였는데, 오늘날에는 '나병', '한센병'이라고 불리는 병입니다.하지만 사람의 간과 쓸개가 나병에 특효약이란 이야기는 당연히 잘못된 소문입니다.이러한 식인 사건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어느 정도 과장된 바가 있겠지만, 그만큼 당시 조선 사회가 불안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놀라운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렸는데요,충격적인 이야기들이었지만, 재미있게 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D 조선왕조실록은 방대한 역사를 기록한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 조선왕조실록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왕대별, 서기별, 연호별 등으로 실록을 열람할 수 있고, 검색서비스, 각종 보도자료를 통해 실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 한쪽 빽빽이 꽂혀만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그 안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쉽고 빠른 검색 서비스를 통해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lt;참고자료&gt;-배상열, 『조선비화』, 청아출판사-이 한, 『조선기담』, 청아출판사-이수광,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다산초당-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네이버 지식백과, terms.naver.com &lt;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김윤정 기자 (kyjsera@hanmail.net)&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세상에 이런일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세상에 이런일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동성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성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조선왕조실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왕조실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구미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구미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사방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방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조선시대 바바리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시대 바바리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조선시대 식인사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시대 식인사건&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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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3 Jun 2013 16:39:40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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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국외 유명 인터넷 사이트 이용 문화재 밀반출 적발</title>
	            <description>국외 유명 인터넷 사이트 이용 문화재 밀반출 적발- 국제택배 · 여행가방 속 은닉 등의 수법으로 밀반출 피의자 5명 검거 -&lt;당시삼백수&gt;문화재청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공조 수사하여, ㅇ 국외 유명 인터넷 경매 사이트(ebay)에 문화재를 입찰하여 낙찰되면 국제우체국 또는 국제택배, 여행가방 속에 은닉하는 수법으로 고서적, 도자기류 등 일반동산문화재 187점을 국외로 밀반출한 피의자 5명을 검거하고, 반출 문화재 86점을 회수하였습니다. ㅇ 피의자들은 범행이 발각되지 않도록 운송장 품목을 거짓으로 기재하거나, 여행가방 상ㆍ하단에 나누어 운송하는 등 치밀하고 계획적인 수법으로 문화재를 국외로 밀반출하였습니다. ㅇ 문화재청은 경찰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하여 앞으로도 국외 밀반출 사범을 끝까지 추적하여 검거하고, 피해품은 반드시 회수할 예정입니다. □ 사건 개요 ㅇ 피의자 장○○(26세)등 4명은 ’09.8.8.～’13.5.13.까지 국외 유명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일반동산문화재를 경매물품으로 등록하고, 낙찰되면 남양주우체국 등에서 일반동산문화재 고서적 ‘시선집’ 등 158점을 국제소형등기(RR) 등으로 우편 발송하여 미국 등으로 밀반출하고, ㅇ 같은 김○○(50세)은 ’13.3.1. 항만 보안 엑스레이(X-ray) 검색대에서 여행가방 상단과 하단에 가치가 다른 고서적을 분리해 숨겨 넣고, 적발 시에는 상단 고서적만 제출하는 수법으로 일반동산문화재 고서적 ‘십죽재서화보’ 등 28책을 숨겨 중국 등으로 밀반출하였습니다. □ 밀반출된 고서적 등의 문화재적 가치로, ㅇ 반출 문화재 중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는 타이페이 고궁박물관 소장본을 저본(底本, 원본)으로 한 중국 청대에 간행된 판본으로, 조선에 수입되어 당대의 김홍도, 정선, 강세항, 심사정 등 조선화단(朝鮮畵壇)에 영향을 주었던 서화보로 평가됩니다. ㅇ 조선 중기 문신 박세채의 ‘염락풍아(濂洛風雅, 1678)’ 필사본, 도자기와 토기류 유물은 당대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 국외 밀반출 방지정책 수단 ㅇ문화재청은 전국 국제공항 8개소, 국제항만 7개소, 남북출입사무소 2개소, 국제우체국 2개소 등 19개소에 문화재 감정관실을 두어 문화재로 오인될 수 있는 물품을 소지한 여행객의 편의를 위해 문화재 여부 확인 및 수출ㆍ입 화물, 국제우편물 통한 문화재 밀반출ㆍ입 방지 업무를 하고 있음 * ‘13년부터 국제우체국 2개소 문화재 감정관실 운용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이베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베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서울지방경찰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울지방경찰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국제택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국제택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 밀반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 밀반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 감정관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 감정관실&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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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3 Jun 2013 16:26:35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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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우리의 문화재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title>
	            <description>안녕하세요 문화재청 5기 블로그 기자단 오하경입니다 :D여러분은 혹시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를 위해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를 지켜낸 멋진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혹여 이 분에 대해 모르시더라도, 이분께서 지켜내신 문화재에 대해서는 한 번 이상 들어봤을 거라고 장담할 정도로 이 분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화재들을 정말 많이 지켜내신 분이시랍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의 대수장가,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님입니다 :) ⓒsbs2008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lt;바람의 화원&gt;을 기억하시나요?저는 바람의 화원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유명한 신윤복의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그 작품이 바로 간송 전형필 선생께서 지켜내신 대표적인 우리의 문화재인 신윤복의 &lt;미인도&gt;입니다. 이런 유명한 작품을 지켜내신 분에 대해서 궁금해지는데요~ 지금부터 함께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요 :)간송(澗松) 전형필 (1906~1962)간송 전형필 선생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부자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휘문고등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을 가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10만 석 지기 부자가 됩니다.그는 상속받은 큰 재산을 문화재 수집에 쏟아 부었습니다.일제시대와 6.25전쟁이라는 나라의 큰 난리를 겪으면서도 우리의 문화재가 이만큼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역할이 크다고 합니다.&quot;간송의 수집품을 거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한국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quot;는 말이 있을 정도로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컬렉션은 그 범위가 넓고도 다양합니다. 문화재 국외 반출이 너무도 빈번하던 일제시대에, 간송 전형필 선생이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쏟은 노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선생께서 지켜낸 대표적인 문화재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파이낸셜뉴스 신윤복 혜원풍속도 (국보 제135호)혜원 신윤복이 그려낸 30점의 풍속도첩입니다.대표적인 작품으로는 &lt;단오풍정&gt;과 &lt;월하정인&gt;이 유명합니다. 유연하고 간결한 세필로 풍속도를 우아하게 그려낸 격조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걸작입니다.ⓒ독서신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제68호)이 아름다운 고려청자는 선생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썼던 문화재입니다.이 청자는 원래 전문도굴꾼에게 도굴되어 일본인 흥정꾼에게 넘어갔었습니다.이를 구매하려는 전형필 선생에게 흥정꾼은 원래 1천 원에 사들인 것을 터무니없는 가격인 2만 원을 제시합니다. (당시 1천 원이면 서울의 번듯한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그러나 선생은 단 한 번의 흥정 없이 바로 기와집 스무 채 값을 내고 이 청자를 구입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또 다른 일본인 수집가가 4만 원을 제시하며 이 청자를 사려 하지만 선생은 정중히 거절했기에 이 아름다운 고려청자가 우리나라에 남아 그 아름다움을 칭송받게 됩니다 :D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70호)훈민정음의 원본인 훈민정음 해례본은일제시대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어 어느 누구의 손에 넘어갈지 모르던 상황에서선생이 압도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구매합니다.이 훈민정음은 6.25전쟁이 일어나던 때에 선생의 품에 항상 있었고심지어 잘 때까지도 배게 밑에 보관했을 정도로 선생이 지극히 아껴 보관하였다고 합니다.이러한 선생의 노력으로 훈민정음의 원본이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이 외에도 선생이 지켜낸 우리의 문화재는 정말 많습니다.선생이 지켜낸 문화재는 그 양뿐만 아니라 탁월한 컬렉터로서의 안목으로찾아낸 귀중한 문화재이기도 합니다.그가 지켜낸 문화재들은 국보 12점, 보물 10점으로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었답니다! ⓒ성북구청 수많은 문화재를 모은 간송 전형필 선생은이 문화재들을 모을 공간의 필요성을 느낍니다.그래서 1938년, 서울 성북동에 터를 구해 '보화각'이라 이름 붙이고 수집 작품들을 보관해 오다가1966년, 선생의 후손들이 '간송미술관' 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합니다.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입니다.간송미술관은 1971년부터 매년 봄, 가을 1년에 2회 전시회를 개최해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각각 2주씩만 개방하기 때문에 전시 때마다 관람객들이 미술관 밖으로 줄을 길게 서서 관람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데요. 그래서! 제가 직접 다녀왔습니다 :D간송미술관은 일반인 개방기간이 짧기 때문에 항상 갈 때마다 미술관 밖으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특히나 주말에는 줄이 정말 길어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답니다.하지만 미술관 안에 들어오면 관람객들을 반겨주는 다양한 꽃나무들과 공작이 기다라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준답니다^0^전시를 모두 감상하고 출구로 나오면, 나오는 길에 있는 인자한 표정의 간송 전형필 선생 동상을 만나게 되는데요.선생의 동상을 보면 험난한 세월들 속에서도 우리 문화재를 지켜주셔서 이렇게 훌륭한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D 오랜 기다림을 감수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간송미술관을 찾는 것을 보면,간송미술관의 작품들이 기다리는 것 이상으로 훌륭하기 때문이겠죠 :) 저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간송미술관의 전시를 가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저에게 간송미술관의 정기 전시는 훌륭한 문화재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봄과 가을의 큰 기쁨이랍니다 :D올해 봄 정기전시는 표황 강세황의 탄생 300주년을 맞아서'표암과 조선남종화파전'이라는 주제로 지난 5월 12일부터 5월 26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1년에 딱 두 번, 2주일 동안만 볼 수 있는 전시이기 때문에 더 보고 싶어지는 전시가 아닌가 싶습니다^0^이제까지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저는 한국의 미를 지켜낸 간송 전생필 선생은 정말 멋지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우리에게 익숙하고, 많이 봐왔던 문화재들이 사실은 일제와 6.25전쟁 속에서 대단한 노력 끝에 지켜졌음을 알고,오늘날 우리가 훌륭한 문화재들을 기록 속에서가 아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음에 감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lt;참고&gt;-이충렬 저 &lt;간송 전형필&gt; ▲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오하경 기자 (dhgkrud2003@naver.com)&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미인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인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간송&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간송&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전형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형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간송미술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간송미술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훈민정음 해례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훈민정음 해례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혜원풍속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혜원풍속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청자삼감문학문매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청자삼감문학문매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를 지켜낸 사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를 지켜낸 사람&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munhwajaecheong/17919389</link>
	            	            <pubDate>Tue, 11 Jun 2013 13:40:29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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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새롭게 발견된 신당리 1호 봉토분</title>
	            <description>경주시 신당리의 공장 신축 대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왕릉급 신라고분이 새롭게 발견됐습니다. 이 고분은 위치와 형태가 민애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고분과 매우 유사하여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현재 이 고분은 신당리 1호 봉토분이라 명칭이 붙여졌습니다.그럼 지금부터 새롭게 발견된 신라고분! 경주 신당리 1호 봉토분에 대해 알아볼까요? 신당리 1호 봉토분의 발견과 발굴신당리 1호 봉토분이 발견된 경주 신당리의 구릉지는 자동차 제조업과 관련된 공장 부지를 조성하기로 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장부지에 대한 지표를 조사한 결과 봉토분이 확인되었고, 본 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사진1] 신당리 1호 봉토분 위치 ⓒDaum지도 신당리 1호 봉토분의 형태와 특징 신당리 1호 봉토분은 신라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월성으로부터 약 9km떨어진 구릉지에 위치하고있습니다. 고분은 지름 14.7m이며, 둘레는 현재 4분의 1정도가 유실되어 35.5m가량을 보이고 있 지만, 원래는 46.3m 정도로 추정됩니다.[사진2] 봉토분 규모 ⓒ문화재청 [사진3] 봉토분 주요 명칭 ⓒ문화재청 봉분 바깥으로는 3단 석축으로 호석(護石)을 돌리고, 일정한 구간마다 받침돌을 세운 형태로 이러한 외형은 전 민애왕릉의 외형과 매우 흡사합니다. 받침돌은 약 120~178㎝ 간격으로 두고 설치되어 있었으며 발굴 당시 12개가 남아있었는데, 기존에는 약 24개의 받침석이 주변을 두르고 있던 것으 로 추정됩니다. [사진4] 신당리 1호 봉토분과 傳 민애왕릉 비교/호석의 단수와 받침돌의 치석형태, 간격 등이 매우 흡사함 봉분 내부에는 시신을 안치하였던 석실을 두었고 석실 전면에는 석실과 통하는 통로를 두어 횡혈식 석실분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석실 천장의 덮개돌이 사라진 정황 등으로 볼 때 안타깝게도 이 고분은 이미 도굴을 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봉분 앞쪽으로 120㎝ 떨어진 지점에서는 상석(床石)의 흔적도 발견되었는데 상석(床石)은 장방형으로 만든 상으로 묘제를 지낼 때 제물 등을 올려놓는 역할을 합니다. 이 상석은 편평한 상부 판석은 없어졌지만, 그 하부 구조는 평면 장방형 형태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사진5] 신당리 1호 봉토분 상석ⓒ문화재청 [사진6] 신문왕릉 상석 봉분 뒤편 북쪽에는 봉분 주변을 감싸는 대형 축대가 발견됐습니다. 축대 안쪽에는 폭 90㎝가량 되는 배수로 시설도 확인되어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제반시설로 추정됩니다. 신당리 1호 봉토분 인근에서는 또 다른 고분이 발견되었는데요.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호 봉토분과 함께 군집을 이뤘던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사진7] 신당리 1호 봉토분 주변석축과 배수로 시설 ⓒ문화재청 현재 신당리 1호 봉토분이 왕릉인지 아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상당한 정성을 들여 석실과 주변 호석 등을 축조한 점으로 볼 때, 왕이나 왕에 준하는 최고 신분층의 무덤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의 특징 신라의 고분형태는 삼국시대의 고분과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신라고분은 도심지 인근에 위치한 평지에 조성되었고, 대규모의 봉분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은 도심지에서 떨어진 구릉지에 조성되는 경우가 많고 규모도 삼국시대의 봉분과 비교해 볼 때 소규모로 축소되었습니다. 대신 봉분 주변에 여러 호석을 두르고 석물로 장식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분의 매장시설에 관해서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삼국시대의 고분에서는 적석목곽분 형식, 통일신라시대 고분은 석실형태의 매장시설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신당리 1호 봉토분은 도심과 떨어진 구릉에 위치하였고, 비교적 소규모 봉분에 호석을 두른 점, 내부가 석실로 조형된 점 등이 통일신라시대의 고분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어, 8세기 중반에서 9세기경의 신라고분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신당리 1호 봉토분의 향후관리현재 신당리 1호 봉토분은 현장보존을 위해 더 이상의 발굴작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신당리 1호 봉토분이 상당한 가치를 지닌 고분으로 판단되는바 신중한 접근을 위해 발굴조사보다는 현장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석실 내부에 대해서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조사단은 고분의 현상측량과 기록에 주력하는 중입니다.고분의 핵심시설인 매장시설(석실)이 밝혀지지 않은 점은 아쉽기도 하지만, 무리하게 발굴을 추진할 경우 소중한 문화재가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릉의 경우, 성급한 발굴조사와 외부공개로 인해 유물일부가 훼손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수백 년간 땅속에 잠들어있던 고분을 조사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때 보다 신중을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신당리 1호 봉토분은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정비가 이루어지게 될까요? 구체적인 방향은 향후 전문가 분들의 의견을 통해 정해지겠지만, 현재까지 이루어진 정비사례를 볼때 다음과 같은 정비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고분의 원형복원발굴조사로 발견된 호석을 바탕으로 기존 형상을 추정하여 고분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신당리 1호 봉토분의 경우 비교적 기존 석재가 온전하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유실된 일부 석재와 봉토를 채운다면 원형으로 복원 정비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얻어진 내용을 바탕으로 인근 박물관에 모형전시나 관련 자료 등을 전시 할 수도 있습니다.[사진8] 거돈사지 기단 복원사례 [사진9]무령왕릉 모형전시 사례 유실된 석재를 신재로 보충하여 복원 - 고분의 외부공개 고분 내부를 보존 처리하고 보호시설 및 전시시설을 설치하여 외부에 공개하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 천마총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비되었는데요. 책이나 모형물이 아닌 실제 고분의 형태를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시설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문화재를 훼손하는 행위일 수 있고, 고분내부에 외부 습기가 유입되어 2차적인 훼손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전시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사진10] 천마총 정비사례 이상으로 새롭게 발견된 경주 신당리 1호 봉토분에 대해 살펴 보았는데요.천년이 넘는 세월을 걷어내고 우리에게 다가온 경주 신당리 1호 봉토분이 체계적인 조사, 정비를 통해서 다음 천년, 또 그 다음 천년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윤범진 기자&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경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천마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마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고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민애왕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민애왕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무령왕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무령왕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통일신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통일신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경주 왕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주 왕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경주 신당리 1호 봉토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주 신당리 1호 봉토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신라 고분형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라 고분형태&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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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Jun 2013 10:49:02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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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경주 방내리·모량리 일원에서 통일신라 도시유적 확인</title>
	            <description>경주 방내리·모량리 일원에서 통일신라 도시유적 확인-6.12. 오후 2시 / 경주 건천읍 방내리·모량리 발굴 현장설명회- 영남문화재연구원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모량리 일원의 경주 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공사 구간 내 유적에 관한 현장설명회를 오는 12일 오후 2시 발굴조사 현장에서 개최합니다. 전장 1km에 이르는 철도노선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도로, 우물, 담장, 적심(積心)건물지, 제방시설 등을 갖춘 도시유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도로는 그 폭이 5~8m로 총 10여 곳에서 확인되었으며, 모두 남-북, 동-서 축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도로에 의해 구획된 하나의 방(坊)은 120m×120m의 규모로, 방 내에는 담장과 우물, 적심건물지로 구성된 가옥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또 하천(大川)과 인접한 북쪽경계 지점에서는 길이 30m(동서로 계속 연결됨), 폭 5m의 석축제방이 발견되어 도시의 경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물로는 다수의 수막새(蓮花文막새, 獅子文막새), 암막새(飛天文막새)를 비롯하여 고배(高杯), 인화문(印花文)토기, 청동접시, 수레굴대[車軸], 탑상전(塔像塼), 치미(鴟尾, 용마루 장식기와),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이 유물들 중 우물주변 진단구(鎭壇具, 건물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서 지하에 묻는 매장품)로 이용되었던 청동접시의 바닥에서 “王”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유적의 중심 시기는 도로에서 출토된 유물에 의해 8세기경으로 판단됩니다. 도로와 건물지의 중복이 많고, 건물 조성 시 이용된 축성토에서 5세기의 유물이 다수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5세기경부터 마을이 조성되어 6세기, 7세기를 거쳐 8세기경에 경주왕경과 같은 도심으로 발전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발굴지역 일대는 신라 6부의 하나인 모량부(牟梁部)의 옛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신라왕경으로 진입하는 서북방면의 주요 교통로입니다. 조사지역과 인접하여 사적 제43호인 ‘경주 금척리 고분군(慶州 金尺里 古墳群)’이, 북쪽으로 5km 지점에는 사적 제25호인 ‘경주 부산성(慶州 富山城)’이 위치하는 등 역사·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입니다.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경주시내 왕경지역 바깥인 방내리·모량리 일원에서 도로에 의해 방형으로 구획된 도시를 확인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방제(坊制)에 의한 도시의 조성이 그동안 경주시내에서만 존재한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경주시내 외곽지역에서 방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신라 왕도의 발달사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경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통일신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통일신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경주 금척리 고분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주 금척리 고분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경주 부산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주 부산성&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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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Jun 2013 10:28:31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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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국내 최초로 태안 마도 해역 출토 매병(梅甁) 특별전 개최</title>
	            <description>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국내 최초로 태안 마도 해역 출토 매병(梅甁) 특별전 개최- 6.18.~8.4./‘매병梅甁 그리고 준樽 - 향기를 담은 그릇’ 특별전 -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매병梅甁 그리고 준樽-향기를 담은 그릇-’을 주제로 2010년 태안 마도 해역에서 출토된 매병에 관한 특별전을 6월 18일부터 8월 4일까지 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합니다. 국내에서 매병을 단독 주제로 한 특별전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며, 태안 마도 해역에서 출토된 청자매병 2점이 지난해 보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전시품으로 보물 4점을 비롯하여 관련유물 50여 점이 선보입니다. 유려한 어깨선과 날씬한 모양을 갖고 있는 매병은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막상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보면 각각의 크기와 색깔,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또 매병은 감상용 화병뿐만 아니라 꿀병, 참기름병 등으로 실생활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일반인들이 미처 알지 못 했던 이런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전시에서는 마도 2호선 발굴 보물 지정 청자매병을 중심으로 바다에서 건진 매병들, 고려시대 매병의 다양한 제작상황과 쓰임, 당시 동아시아에서 매병의 활용상에 관해 보여주고, 분청사기 매병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예술적,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청자 명품을 지방에서 한 곳에 모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국민의 문화향유권이 확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청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청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고려청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려청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마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매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매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마도 2호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도 2호선&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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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Jun 2013 09:59:53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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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개최</title>
	            <description>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개최- 6.18.~21, 광주 라마다호텔 /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기록물’ 등재 심사 - 문화재청과 유네스코(사무총장 Irina Georgieva Bokova),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광주광역시가 주관하는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The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가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광주광역시 라마다플라자광주호텔에서 개최됩니다.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임명한 14인의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위원들과 각국 기록유산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이번 회의에서는 2013년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에 대한 심사, 세계기록유산 사업 현황과 홍보·발전방안,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의 확대등재 절차, 정기보고·모니터링 체계 등을 논의합니다. 우리나라의 '난중일기', '새마을운동기록물'을 비롯하여 50여 개국 84점의 기록유산에 대한 등재 여부를 심사하고, 또 우리나라의 제안으로 2004년에 창설된 ‘유네스코 직지상’의 수상자도 선정할 예정입니다. 세계기록유산 신규 등재에 대한 최종 결정은 국제자문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등재여부에 대한 의견을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권고하면,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권고를 받은 후 통상 2~3일 내에 유네스코 누리집(http://portal.unesco.org)에 게재하여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은 세계적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을 높이고, 보존 필요성을 널리 알리며, 대중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고자 유네스코가 1992년부터 추진해 온 사업입니다. 세계기록유산 목록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부터 1939년 제작된 미국 영화인 ‘오즈의 마법사’까지 필사본이나 도서를 비롯하여 비석·악보·영화필름·음성기록물 등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들을 포함하며, 전 세계 96개국 238건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등 9건의 기록유산을 등재시켰습니다. 독일(13건), 오스트리아(12건), 러시아(11건), 폴란드(10건)에 이어 멕시코, 프랑스와 함께 다섯 번째로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태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세계기록유산을 등재시켰습니다. 이번 국제자문위원회(IAC) 개최는 기록유산의 중요성에 관한 국·내외 인식을 높이고, 우리나라의 기록유산에 관한 대외 홍보 강화와 세계기록유산 강국으로서 위상을 더욱 증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유네스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네스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동의보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의보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훈민정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훈민정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조선왕조실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왕조실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직지심체요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직지심체요절&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난중일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난중일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승정원일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승정원일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세계기록유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세계기록유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조선왕조의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조선왕조의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일성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성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해인사 대장경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해인사 대장경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국제자문위원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국제자문위원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5.18 민주화운동 기록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5.18 민주화운동 기록물&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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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Jun 2013 09:56:02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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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오래된 미래,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title>
	            <description>안녕하세요. 문화재청 제5기 블로그 기자단 최정연입니다. 여러분은 밤 10시에 꼭 챙겨보시는 드라마가 있으신가요?(▲왼쪽부터 ⓒMBC '구가의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KBS '천명') 지상파 3곳에서 ‘구가의 서’, ‘장옥정, 사랑에 살다’, ‘천명’ 등 사극 3편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요즘 드라마의 대세는 ‘사극’ 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극을 좋아합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사극 안에서의 화려한 의상 때문인데요. 특히 왕실의 의상이 굉장히 화려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왕실의 의상을 보다 보면 한복에 금을 붙여서 문양을 나타낸 ‘금박’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인 ‘금박장’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1. 금박장이란 무엇일까요? 금박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당의의 금박모양)'금박장(金箔匠)'이란 직물 위에 얇은 금박을 이용해 다양한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으로, 오늘날에는 여성의 혼례복 등에서 볼 수 있다. 금박장식은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보관상의 문제로 현전하는 유물이 많지 않으나 순조(純祖)의 3녀 덕옹공주(1822~1844)가 혼례 때 입었던 것이라고 전하는 원삼에는 '수(壽)'와 '복(福)'자가 금박 장식되어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11호 덕옹공주의복). 금박장식은 접착제를 바른 문양판을 문양을 넣고자 하는 위치에 찍고 접착제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금박지를 붙인 다음 문양 밖에 있는 금박지를 다시 떼어내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금박장 기술은 옷의 구성에 어울리는 문양을 선별 · 배치하는 안목을 바탕으로 문양판을 조각하는 목공예 기술과 주재료인 아교와 금박지의 물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오랜 제작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되는 기술이다. '금박(金箔)'은 금 조각[金片]을 계속 두드려 얇은 종이처럼 만들어진 것을 뜻하나 오늘날에는 금박지를 이용해 직물 등에 문양을 장식하는 기술로 이해되고 있어 지정명칭을 '금박장(金箔匠)'으로 명명하였다. '금박장'은 우리나라 복식문화를 화려하고 품격있게 장식하는 공예기술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전승의 맥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부터 금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채가 나기 때문에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금을 호사스런 장식에 사용했습니다. 현재 금박이란 용어는 금판을 두드리고 압면하여 만든 극히 얇은 상태의 금박뿐만 아니라, 금박을 옷감 위에 올려 금문을 표현하는 작업까지 포괄하여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금니(金泥), 은니(銀泥)는 극세한 금은 가루를 접착제와 섞어 그림을 그리거나 찍어서 금문(金紋)을 표현하는 공예기법입니다. 금니와 은니는 니금, 니은이라고도 하였으며 이를 합쳐서 금은니라고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단어를 많이 쓸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2. 금박장 전승 현황 1) 문화재 지정 과정 중 위기에 처하게 된 금박장.우리나라의 의복에서 학술적,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금박장. 그렇지만 금박장은 2006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실 금박장의 종목 지정을 위한 처음 조사는 1972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금박기술의 전통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던 김경용(金景用, 1906~1973)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하라고 요청하였고, 1973년 금박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김경용을 보유자로 인정하고자 하였으나 김경용의 사망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2) 금박장, 드디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다! 1973년부터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사자들은 무형문화재로서 금박이 지닌 학술적,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지만, 김경용 사후 금박장 지정이 유보되면서 금박기술의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금박지를 만드는 기술이 단절된 것 등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중요무형문화재로서 금박장의 가치를 문화재청에서 인정함에 따라 후속조치로 보유자 인정 신청을 한 김덕환(金德煥,1935~)에 관한 전승실태 조사와 기량평가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 김덕환) 조사자들은 김덕환이 김경용의 아들로 전통기법을 잘 알고 있으며, 가업을 이어 오랫동안 금박 일을 하여 전통복식의 재현과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높게 평가했습니다.그리고 2006년 9월 8일 문화재청은 금박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하고 김덕환을 보유자로 인정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3) 그럼, 김덕환을 이어나갈 계승자는?금박장은 현재 보유자 김덕환과 그의 부인 이정자, 아들 김기호와 며느리 박수영 등에 의해 계승되고 있습니다. 특히 김기호와 박수영은 2009년 2월 6일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되었습니다. 3. 아름다운 금박유물을 소개합니다! 직물에 금박을 한 가장 이른 연대의 유물은 고려 시대부터 나타납니다. 그러나 대부분 금박유물은 조선 후기의 전세 복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선 후기의 유물 위주로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그럼 금박유물을 살펴볼까요? 1) 은진 송씨 금박 장저고리(▲은진 송씨 장저고리,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심연옥. 이채원 저)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은진 송씨 합장묘에서 출토된 복식에는 부금 장저고리가 있습니다. 사진만 봐도 빛나는 게 느껴지시죠? 이 장저고리는 토주와 공단으로 만들어졌고 깃과 겨드랑이 무, 길의 하단에 무문단을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토주를 사용하였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겨드랑이 무, 길의 하단의 무문단 부분에는 연화만 초문이 가득 부금 되어 있었는데요. 지금은 금박이 박락되고 접착제만 남은 상태라고 합니다. 2) 외재 이단하 부인의 유물(▲외재 이단하 부인의 도투락 댕기, ⓒ문화재청) 전세되어 오는 유물로 가장 이른 연대의 것이 바로 조선 숙종 대 좌의정을 지닌 외재 이단하 부인의 유물입니다. 이단하 부인의 유물은 원삼과 함께 도투락 댕기와 대대가 남아있습니다. 원삼은 직금으로 짜여 있고 대대와 도투락 댕기에 부금 되어 있습니다. 대대는 다홍색 무문단에 마주 보는 봉황문양을 부금 하였습니다. 댕기는 앞, 뒤로 부금 되어 있으며 문양은 전체적으로 만초형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 문자, 원문, 꽃무늬, 포도 동자 등을 배열했습니다. 3) 복온공주활옷(▲복온공주활옷, ⓒ매일신문)복온공주는 순조의 2녀입니다. 복온공주활옷은 복온공주가 혼례 때 입었던 옷인데요, 그 구성과 직물, 색동의 배색이 매우 아름답다고 알려졌습니다. 앞길의 하단과 소매 부분에 노의용 장식문양인 원양원물이 3단씩 부금 되어 있습니다. 4) 덕온공주 부금 당의(▲덕온공주당의,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덕온공주는 순조의 3녀입니다. 덕온공주의 복식유물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덕온공주의 복식 중 부금 된 유물은 원삼, 두록 부금 곁마기, 당의가 있습니다. 당의를 볼까요? 자 적색으로 만든 당의는 옷 전체에 수(壽)와 복(福)자가 부금 되어 있습니다. 5) 의왕 비 원삼, 스란치마(의왕 비 원삼 , ⓒ경운박물관)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 소장된 의왕 비의 유물 중에도 부금 된 당의, 원삼, 스란치마 등이 있습니다. 당의는 의왕비 연안 김씨가 입었던 것으로 어깨와 도련에는 수복화문(壽福花紋)을 부금하였습니다. 또한, 한 삼에는 수자문(壽字紋), 남색의 대에는 화문(花紋)을 부금 하였습니다.(▲스란치마 , ⓒ경운박물관) 남색 스란치마에는 다리를 뻗고 날고 있는 봉황과 구름이 부금 되었습니다. (▲의왕비 당의 , ⓒ경운박물관) 당의는 조선 말기 궁중 여성과 사대부 부인이 저고리 위에 입은 소례복 입니다. 위의 사진은 의왕 비 연안김씨가 입으셨던 것으로 겉감은 연두 생곡사, 안감은 진분홍 생고사로 지었으며 어깨와 도련에는 봉황문 금박을 찍었습니다. 4. 금박 문양을 파헤쳐 봅시다!이제까지 아름다운 금박유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금박유물의 금박 문양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시죠? 금박문양은 나무를 조각해 금박 판을 새겨서 문양을 시문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안에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나무를 조각해야 하므로 대형의 문양이나 섬세한 선의 표현에는 제한점이 따른다고 합니다. (금박문양 하기 정말 힘들겠죠?) 따라서 원삼이나 일부 저고리에 보이는 대형의 문양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은 문양을 단순화하여 도안하는 것이 금박문양의 특징입니다. 그럼 어떤 문양이 인기 있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1) 봉황문(▲봉황문 ⓒ문화포털 한국의 문양) 봉황은 대표적으로 권위를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여기서 잠깐 퀴즈! 봉황 이외에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양은 무엇일까요? 벌써 눈치 채신 분도 있으시겠죠? 바로 용입니다. 이처럼 용과 봉황은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왕실의 옷에 많이 부금 되어 있습니다. 특히 봉황은 왕비의 옷에 많이 나타나는데요. 사극드라마에서 보면 왕비의 대삼에는 니금과 오색으로 운봉을 그린 흉배를 갖추었고 원삼, 대대, 스란치마, 당의 등에도 봉황과 구름을 부금 하여 신분의 위엄을 나타냈습니다. (▲사극 속 한복에 부금 된 봉황문,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여기에 크고 작은 봉황이 마주 보고 날며 사이사이에는 구름문양을 넣어 충전구도를 이루었습니다. 2) 문자문 조선시대에는 현세의 복을 기원하는 길상(吉祥),보문(寶紋)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길상문자를 부금 함으로서 부귀, 권력, 공명, 장수, 평안, 기쁨, 자손 번창을 직접 나타냈습니다. (▲남아의 복건 속 부금 된 문자문, ⓒMBC '이산')(▲복(福)자가 부금 된 문자문, ⓒKBS'공주의 남자')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된 문자는 복(福), 수(壽), 희(喜)등으로 각 글자는 디자인에 조금씩 변형을 주어 각기 다른 조형미로 풍부하게 표현되었습니다. 3) 과실문 과실문 중 가장 인기 있었던 3가지 과실무늬를 아시나요?(▲복숭아, 석류, 불수감나무를 나타낸 삼다무늬, ⓒ문화포털 한국의 문양)복숭아, 석류, 불수감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무늬는 삼다(三多)를 상징하는 과실무늬로써 다남(多男), 다복(多福), 다수(多壽)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금박문양으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또한, 포도문은 줄기가 뻗으면서 풍성한 잎이 달리고 알알이 과실이 달려 오곡 풍수를 상징하며 부귀, 장수, 다남 등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새, 곤충문 금박문양으로 많이 시문 된 문양으로는 벌, 나비, 박쥐가 있습니다. (▲나비문, ⓒKBS '공주의 남자') 나비문은 고려 시대 직물문에 단독으로 표현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 조선 시대에는 주로 꽃과 어울려 도안 되었는데 나비는 아름다운 사랑과 즐거움을 상징하여 각종 문양에 널리 애용되었습니다.(▲박쥐문, ⓒ문화포털 한국의 문양)박쥐는 한자로 편복(蝙蝠)이라 하는데요. 한어에서는 복(蝠)은 복(福), 부(富)와 음이 같아 행복과 부를 기원하는 현실적 염원을 담은 길상적인 의미로 많이 쓰였습니다.또한, 장생의 상징으로 거북, 학 등의 문양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5) 화문 화문은 금박문양에 가장 많이 사용된 도안의 하나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은진 송씨의 묘에서 나온 금박문양은 직금문양에 시문 된 것과 같은 도안의 만초연화문이 충전형으로 부금 되었습니다. (▲화문,ⓒ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이 같은 충전형의 화문금박은 조선 후기에는 보이지 않으며 대개 간략화된 도안의 화문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화문의 종류에는 난초, 모란, 국화, 소화문, 연꽃, 복숭아꽃, 배꽃 등이 있으며, 꽃과 가지를 함께 도안하기도 하고 꽃잎만 간략하게 도안한 예도 있습니다. 6) 금원문(▲복온공주활옷 금원문,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심연옥. 이채원 저)(▲원앙 금원문 금박판,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심연옥. 이채원 저) 금원문은 둥근 원안에 주된 문양을 넣어 단위 문양으로 시문 한 것입니다. 왕비의 노의와 활옷에 원앙금원문을 시문 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복온공주활옷을 보면 원앙문금박판을 볼 수 있습니다. 7) 테두리문(▲테두리문이 대표적으로 사용된 댕기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테두리를 두르는 문양을 금박공방에서는 난간문이라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 많이 사용된 난간문은 만초형으로 반복되는 문양이며, 위에서 언급한 조선 시대 이단하 댕기에서도 보입니다. 5. 금박장의 제조과정 그렇다면 아름다운 금박장을 어떻게 만들까요? 사실 현재 국내에서 손으로 금을 두드려 만드는 수공 금박기술은 사실상 단절된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금박장의 제조과정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금박장은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니 잘 따라오세요~ 금박장의 제작과정은 크게 금박만들기[칠지 만들기-금박만들기] - 금 올리기[금박판 만들기-금박 풀 만들기-금박 올리기-건조하기-금 털어내고 뒷손질하기]로 나뉩니다. 1) 금박만들기 (1)칠지만들기① 먼저 생칠을 솜이나 베에 걸러 이물질을 제거한다.② 한지는 양쪽 끝에 나무 봉을 달아 준비한다. ③ 혼합된 옻칠을 붓으로 찍어 미리 준비한 한지에 칠을 한다.(▲칠지건조과정,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심연옥. 이채원 저) ④ 칠이 잘 되었으면 습도가 약 70%인 칠장에 한지를 걸어서 말린다.⑤ 하룻밤을 보낸 후 한지를 꺼내어 옻칠한 한지의 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다듬어 곱게 만든다.⑥ 면을 고른 한지 위에 다시 생칠을 하고 건조하면서 네다섯 번 반복해 칠지의 두께를 올린다. (2) 금박만들기 ①순금 두 돈을 모루 위에 놓고 주석방망이로 사흘 동안 계속 두드려 얇은 편으로 만든다.(▲금박 만들기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심연옥. 이채원 저) ②얇게 편 생철 비슷한 금편을 2x2cm의 크기 1,000장으로 자른다.③만들어진 칠지를 15x15cm의 크기로 잘라 1,100장을 마련한다.④금박이 만들어지면 손바닥만 한 녹피받침을 깔아 놓고 그 위에 칠지 사이의 금박을 한 장씩 옮겨 놓은 후 대나무칼로 4 등분 한다.⑤아주 얇은 백지를 칠지의 4분의 1 크기로 잘라 놓는다.⑥백지에 올린 금박은 10장씩을 가려서 백지를 가늘게 오려 만든 띠를 매서 정리한다. 2) 금 올리기(付金) (1) 금박판 만들기① 금판의 재료는 돌배나무가 가장 좋으며, 그 외에 대추나무, 피나무, 벚나무 등을 사용한다.② 잘 건조된 판재는 금판의 용도에 맞게 잘라서 끓는 물에 약 2분간 데쳐낸다. (2) 금박 풀 만들기&lt;민어 부레 풀 만들기&gt;① 말린 민어 부레를 준비한다.② 단단하게 말린 민어 부레 시너 쪽을 작두와 가위로 아주 잘게 자른다.③ 잘라 놓은 민어 부레를 곱돌그릇에 담고 물을 붓는다.④ 부레의 단백질 성분이 우러날 때까지 천천히 저어 주면서 온 종일 은근하게 졸인다.⑤ 다음 부레 끓인 물을 약불에 올려놓고 졸이기 시작한다.⑥ 부레 풀을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덜어서 끓여 쓰는 것이 좋으며 작업할 때에는 화로를 따로 마련하여 풀을 따뜻하게 해서 쓴다. (3) 금박 올리기(▲ 금박 올리기, ⓒ네이버 캐스트)① 금박할 것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② 금박은 작업하기 좋게 잘라둔다.③ 마련한 풀을 중탕그릇에 넣고 화로 위에 올려 물을 조금씩 섞어 가며 끓여서 농도를 맞춘다.④ 풀은 옷감의 종류와 염색한 색상, 문양의 유무에 따라 농도를 다르게 한다.⑤ 큰 붓에 골고루 풀을 먹이고 풀이 밀려나지 않도록 고루 훑어낸다.⑥ 오른손에는 큰 붓을, 왼손에는 금박판을 받쳐 들고 금박판 전면에 풀이 고루 묻도록 붓끝을 눕히거나 조금씩 끌어가며 정성껏 먹인다⑦ 풀이 목판에 스며서 표면이 약간 굳은 듯하면 풀을 덧칠한다.⑧ 상 위에 얇은 면직물을 깔고 금박을 입힐 옷감을 펴 놓는다.⑨ 무늬를 놓을 부분에 맞추어 정확하게 금박판을 탁 치면서 엎어 놓고 목판 위를 주먹으로 탁탁 여러 번 두드린다.⑩ 금박판의 풀이 일단 (4) 건조하기① 금박 올리기 작업 중간에 건조하며 금박일을 진행한다.② 큰 옷은 부분적으로 금박을 올리고 1일~3일 건조 후 추가로 금박을 올린다.③ 금박은 오래 말릴수록 좋다. (5) 금 털어내고 뒷손질하기(▲ 수정하기, ⓒ네이버 캐스트)(▲ 금 털어내기,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심연옥. 이채원 저) (6) 완성본(▲ 왼쪽부터 완성된 원삼 뒷면, 원삼 세부, 원삼 보 세부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심연옥. 이채원 저) 금박을 만드는 과정이 정말 복잡하죠? 힘든 과정 끝에 완성된 금박을 보니 역시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네요~! 그런데 금박은 전통기술이 완전히 재현되고 있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무형문화재를 열심히 보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형문화재는 사람과 사람에 의해 전해지기 때문에 유형문화재와는 달리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거나 단절될 소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소중한 무형문화재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의 중요무형문화재를 올바르게 전승해서 먼 훗날에도 아름다운 무형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lt;참고자료&gt;심연옥, 이채원 저 ,2009,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민속원임영주, 2004, 한국의 전통문양, 대원사경운박물관 홈페이지 ▲제5기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단 최정연 기자 (buzzcjy8011@naver.com)&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사극&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극&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천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천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전통문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통문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봉황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봉황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금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금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중요무형문화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중요무형문화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금박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금박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장옥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장옥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구가의 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구가의 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자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자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과실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과실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곤충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곤충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금원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금원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테두리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테두리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금박 과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금박 과정&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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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문화재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과 실행을 위한 세미나, 그 현장 속으로! </title>
	            <description> 안녕하세요,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김윤정입니다.:D (▲국립고궁박물관) 저는 지난 5월 28일(화), 오랜만에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는데요. 문화재청 개청 14주년, 문화재 행정 52주년을 기념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융성시대, 문화재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과 실행을 위한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세미나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한쪽 편에는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작은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답니다! (▲세미나 일정) (▲변영섭 문화재청장)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quot;문화재 보존환경의 급속한 변화 때문에 문화재 보존·활용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며, 문화재를 주변 환경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보존하고 그 참된 가치가 빛을 발하도록 활용해야 한다.&quot;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미나에서 발표, 토론된 내용을 앞으로의 문화재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세미나 현장) 세미나는 일정표대로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각 부의 주제 발표가 끝난 뒤 바로 종합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부는 '채미옥' 국토연구원 센터장과 '박소현' 서울대학교 교수의 주제 발표, 2부는 '임승빈' 명지대학교 교수, '장호수' 충북문화재연구원장, '노삼규' 광운대학교 교수, '이광춘' 상지대학교 교수의 주제 발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부 (▲1부 종합 토론, 왼쪽부터 '박소현' 서울대학교 교수, '채미옥' 국토연구원 센터장, '김권구' 계명대학교 교수, '김현수' 단국대학교 교수, '장영석' 아름지기 사무국장) 1부 종합 토론에서는 '김권구' 계명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김현수' 단국대학교 교수와 '장영석' 아름지기 사무국장이 함께 토론했습니다. #2부 (▲2부 종합 토론, 왼쪽부터 '이광춘' 상지대학교 교수, '노삼규' 광운대학교 교수, '장호수' 충북문화재연구원장, '임승빈' 명지대학교 교수, '이흥식' 서울대학교 교수, '김창규' 한국전통문화대 일반대학원장, '김용만' 경북도지사 자문관, '최병하' 문화재 전문위원, '이위수' 전 자연문화재연구실 실장) 2부 종합 토론에서는 '이흥식' 서울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김창규' 한국전통문화대 일반대학원장, '김용만' 경북도지사 자문관, '최병하' 문화재 전문위원, '이위수' 전 자연문화재연구실 실장이 함께 토론했습니다. 토론 후에는 열띤 질의응답 시간도 이어져 새로운 문화재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 정책은 항상 그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하며, 문화재의 가치를 빛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문화융성시대'에 걸맞은 문화재 보존·활용정책이 제시되길 바랍니다. &lt;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김윤정 기자 (kyjsera@hanmail.net) &gt; &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 보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 보존&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 활용&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 활용&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 정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 정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융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융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청 세미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청 세미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청 개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청 개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문화재 행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문화재 행정&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munhwajaecheong/17919383</link>
	            	            <pubDate>Tue, 4 Jun 2013 20:56:49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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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숭례문 복구, 그 5년간의 노력</title>
	            <description>2013년 5월 4일숭례문이 5년 3개월 간의 복구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숭례문은 서울도성의 사대문 중 남쪽에 위치한 대문으로 우리니라 수도의 정문 역할을 해왔던 점에서 그 역사적 상징적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숭례문은 지난 2008년에 사회에 불만을 품은 방화범에 의해 2층 문루의 90%, 1층 문루의 10%가 소실되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습니다.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1층 문루의 주요 구조부와 하부 석축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기록된 숭례문 실측자료들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서, 복구공사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숭례문 ‘복원(復原)’이 아니 ‘복구(復舊)’로 규정하는 이유도 숭례문 전체가 소실된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만 소실되었기 때문인데요. 복구(復舊)는 복원과 달리 ‘훼손된 부분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숭례문 복구 조감도 ▎복구 완료된 숭례문 전경 ▎숭례문 복구과정 ▎ 숭례문은 화재 이후 크게 3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복구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 화재현장 수습 / 2. 현장조사, 고증, 복구설계 / 3. 복구공사▎화재 및 화재현장 수습 ▎ 숭례문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20시 40분경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옮겨 붙어 일부 부재가 소실되었습니다.많은 사람이 이 화재로 숭례문 전체가 소실되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는 1층 목부재의 상당수가 건재한 상태였습니다. ▎화재 후 훼손된 숭례문 전경 ▎화재 후 1층문루 전경 (1층 부재는 상당수가 건재) 숭례문 화재진압이 어려웠던 이유는 ‘적심’이라는 목부재에 불이 옮겨붙었기 때문인데요. 적심은 서까래 상부, 기와 하부에 위치한 목부재로 외부에 들어나 있는 부재가 아니기 때문에 소방호스로 불씨를 잡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화재진압 후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강관비계가 설치되었고, 건물의 2차 붕괴방지를 위해 남아있는 부재의 구조보강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장수습은 문화재연구소, 경찰청, 소방청 등 관계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화재잔해 수습과 감식작업, 목부재의 응급보존처리, 피해현장 정밀기록 등이 시행되었습니다.▎화재현장 수습과정 ▎고증 및 복구 설계 ▎2008년 6월부터 2010년 6월까지 2년간에 걸쳐 숭례문 복구를 위한 연구와 설계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화재 전 숭례문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변형된 모습이었는데요. 이번 숭례문 복구공사에서는 이 보다 앞선 시기인 ‘조선 초기'와 '조선 중기’의 숭례문 형태를 기준으로 하여 복구연구가 진행 되었습니다. 여러 고증자료를 통해 보다 원형에 가까운 숭례문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1960년대 숭례문 실측자료 ▎숭례문 지반층 확인1960년대 이루어진 숭례문 수리공사 당시 기록되었던 실측자료(도면, 탁본자료) 등을 참고하여 설계에 반영하였고, 숭례문 바닥에 약 1.6m 깊이로 뭍여 있던 흙 중 일부를 걷어내어 조선 중후기 당시의 지반을 복구하였습니다. 숭례문 현판은 6.25사변 때 필체 일부가 왜곡되어 원형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서울 지덕사에 보관되어 있던 기존현판의 탁본자료를 통해 변형된 필획 일부를 바로 잡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좌·우측 성곽 일부도 복구되었는데요. 성문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화재 전 모습과 비교해 보았을 때, 더욱 웅장한 숭례문 느낌이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화재직후 수습된 숭례문 현판 ▎탁본자료와 필체비교▎새로 복원된 좌우측 성벽▎복구공사 ▎숭례문 복구공사는 단지 건물의 외형만 복구하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형태뿐만 아니라 건물을 짓는 방식 역시 기존의 전통건축기법이 도입되어 추진되었습니다.이 때문에 복구비용과 복구기간이 늘어나긴 하였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복구가 이루어졌다고 생각됩니다.복구작업에는 중요무형문화재기능 보유자가 참여하여 최고의 전통기술로 숭례문 복구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복구에 참여하는 장인은 목공사를 담당하는 대목장, 성곽 등 석공사를 담당하는 석장, 단청작업을 담당하는 단청장, 기와제작을 담당하는 제와장, 지붕 기와잇기를 담당하는 번와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석공사 ▎목공사 ▎번와공사 숭례문 복구에 사용된 재료는 기존 목재를 최대한 복구해 재활용하였으며 그 외의 부재는 전통소재를 사용하여 복구하였습니다. 숭례문의 1층 문루는 약 10%만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화재에 소실되지 않은 목재는 재활용되어 복구작업에 사용되었습니다. 기와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와가 아닌 조선시대 전통가마를 재현하여 수작업을 통해 총 2만 3천여 장의 기와를 완성하였습니다. 화재 당시 파괴됐던 지붕의 잡상들도 모두 복원되었고, 화재 전에는 없었던 삼살보살과 천산갑, 이구룡이 새로 포함되어 잡상의 완전성을 더했습니다.▎전통기와 제작과정 ▎단청공사 단청에 있어서도 화학안료가 아닌 전통재료인 천연안료가 사용되었는데, 아쉬운 점은 국산 안료가 아닌 일본산 안료가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국산천연안료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고, 기법 역시 구체적으로 전해져 오지 않아서, 국산안료를 재현하여 생산하기에는 많은 부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부분은 앞으로 연구가 계속되어 우리 전통기법을 응용한 재료개발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복구 작업과 함께 중요시된 부분은 문화재 안전 관리 시스템이었습니다. 화재로 인해 숭례문이 훼손되었던 뼈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복구완료 된 숭례문을 보다 안전한 방법으로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최첨단 감시 장비와 방재 장비를 관리할 관리동이 숭례문 옆에 자리하고 있고 . 화재가 발생하면 즉각 경보기를 울릴 광센서형 열 감지기를 비롯해 적외선 불꽃 감지기도 상층과 하층에 각각 8개씩 모두 16개가 설치됐습니다. ▎새롭게 문을 연 숭례문을 바라보며 ▎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 당시 본고 기자는 ‘전통건축’을 공부하는 대학생이 이었습니다. 초기에 금방 진압 될 것이라던 숭례문 화재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고, 결국 숭례문은 다음날 아침 절반이상이 없어진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기자가 다닌 대학교(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는 1960년대 수리공사에서 나온 숭례문 옛 부재 일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화재사고 며칠 후, 이 부재를 서울로 옮기는 작업이루어 졌고, 저는 그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숭례문 옛날 부재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는 길... 참 많은 생각이들었습니다. 첨차, 살미, 창방, 한때 기존 건물과 짝을 이루었을 부재들을 보며 ‘ 너희들의 오랜 친구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 ’ 라며 중얼거렸던 기억납니다. 전통건축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국보 1호인 건축물이 불타는 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많은 죄책감과 허탈함이 몰려 왔습니다.숭례문의 화재로 인해 우리는 많은 걸 잃었지만, 또 많은 걸을 깨닫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동안 심도 있게 논의되지 않았던 ‘문화재 안전’에 관해 정부와 관련전문가,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고, 아직 진행 중에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성과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숭례문은 자신의 몸을 일부 태우는 살신성인을 통해 우리에게 문화재에 대한 여러 메시지를 전달해 준 게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일본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고로 ‘호류지 금당 화재사건’ 있습니다. 호류지 금당은 당대 최고(最古)목조건축물 중 하나였으나, 1946년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의 상당한 부분이 소실되었고 담징의 걸작으로 알려진 벽화 역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화재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관련된 법률을 통합하여 제정하였고, 화재가 발생한 1월26일을 ‘문화재 방화의 날(文化財防火デー)’로 지정하여 소방훈련을 50년 넘게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숭례문이 불탄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설정하고 여러 소방훈련과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노력과 관심이 계속해서 이어져 수백 년, 수천 년을 이어져온 우리 문화재가 더 이상 피해 입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제5기 문화재청 블로그기자단 윤범진 기자&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숭례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숭례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남대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남대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숭례문 화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숭례문 화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숭례문 복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숭례문 복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숭례문 현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숭례문 현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숭례문 복구 기념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숭례문 복구 기념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숭례문 역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숭례문 역사&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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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4 Jun 2013 18:12:49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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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 2013 종묘대제! 그 현장속으로...</title>
	            <description>안녕하세요! 문화재청 블로그기자 한수연입니다.꽃샘추위 때문에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입던 게 엊그제 같은데, 거짓말처럼 갑자기 무더운 여름 날씨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일교차가 크니 항상 감기 조심하세요. 5월 5일은 무슨 날일까요? ‘어린이날’이라는 대답이 바로 생각나는데요, 지난 5월 5일은 조금 특별한 행사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1년에 한 번, 종묘에서 거행되는 ‘종묘대제’입니다. 종묘대제는 매년 5월의 첫째 주 일요일에 봉행되는데요, 1년에 한 번밖에 거행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행사를 보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1년에 한 번뿐인 종묘대제! 제가 그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종묘제례의 현장을 맛보기에 앞서 종묘와 종묘대제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종묘 (사적 제125호)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사를 받드는 사당으로서 태묘(太廟)라고도 합니다.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 종묘를 건립하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세웠습니다. 조상들의 신위를 모시는 공간인 종묘는 왕의 거처인 궁궐보다도 먼저 지어졌는데요, 임진왜란 후 재건사업을 할 때도 가장 먼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조선조에서 종묘의 위상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종묘는 태조 3년(1394)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되었고, 별묘인 영녕전은 세종 3년(1421)에 창건되었습니다. 종묘와 영녕전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1608) 때에 재건되었으며, 신위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그 후 몇 차례의 증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묘는 뛰어난 건축적 가치와 60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제례 행사 등의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종묘제례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는 조선의 국가 사당이며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하므로 종묘대제라고도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납일 등 1년에 5번 종묘대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1년에 한 번, 매년 양력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봉행되고 있습니다. 국왕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참가 인원도 수천 명에 달했고, 최고 격식에 따라 치러졌던 국가의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또한, 종묘제례는 제향 의식뿐만이 아니라 제례악과 일무 등이 곁들여져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종합적인 의례입니다. 종묘대제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계속되는 데요,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는 경복궁-&gt; 세종로 사거리-&gt; 종로 1·2·3가 -&gt; 종묘로 이어지는 어가 행렬이 이어집니다. 어가행렬은 임금이 종묘 제향을 봉행하기 위해 궁궐에서 종묘까지 행차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임금을 중심으로 문무백관과 호위 무관, 의장대와 취타대 등이 그 뒤를 따릅니다. 저도 광화문에서 시작된 행렬을 부지런히 쫓아갔습니다.평소 도심에선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취타대의 모습입니다.한 시간 동안 부지런히 걸어서 마침내 종묘에 도착했습니다.저도 종묘대제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요, 끝없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행렬들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의장대분들 모두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어가행렬이 종묘로 들어오는 모습입니다.왕이 종묘로 들어오는 모습입니다.다음 순서는 잠깐의 휴식을 한 후에 진행되었습니다. 조금 덥기는 했지만, 날씨가 좋아서 경치도 아름답고 관람하기에도 좋았습니다. 지난 기사를 위해 3월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날이 추워서 가지가 앙상했었는데요, 5월의 종묘는 완연한 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다음 순서는 1시부터 3시까지 이어진 영녕전 제향이었습니다. 국가의 큰 행사인 만큼 시간도 길고 그 순서도 복잡했습니다.반복되는 절차가 많아 그냥 보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탓에 지루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향에 앞서 제례의 순서에 대해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제사의 규모가 워낙 커 참가 인원이 수천에 달하기 때문에 제사관들과 악공들이 제자리에 위치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보태평 지무는 문덕을 칭송하는 춤을 말합니다. 대나무관악기를 통해 연주하고 꿩 깃털이 달린 도구를 이용해 춤을 춥니다. 허리를 굽히거나 빙빙 도는 완만한 춤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이렇게 생긴 도구인데요, 저도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마침 제례 해설에서 설명해 주셨습니다!본래 초헌례는 국왕이, 아헌례는 세자가, 종헌례는 영의정이 맡아서 술잔을 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초헌례와 종헌례는 전주 이씨 문중이, 아헌례는 왕비를 배출한 성씨들의 후손이 대신하고 있다고 하네요. 아헌례와 종헌례에 나오는 **정대업지무는 앞에서 설명한 보태명지무와 달리 무공을 칭송하는 춤이라고 합니다. 칼과 창을 이용해 춤을 추며, 절도 있고 각을 이루는 안무가 주를 이룹니다.춤 하나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는데요, 비교해 가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망료례가 종묘제례의 마지막 순서인데요, 조선 시대에는 국왕의 어가가 다시 궁궐로 돌아가는 거가환궁과 무사히 제사를마친 것을 축하하는 순서까지가 종묘제례에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종묘제례가 약식화 되어서 2시간이면 끝나지만,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긴 행사였다고 하네요!사실 2시간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 말이에요. 종묘제례의 순서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영녕전 제향이 시작되기 전 대기 중인 제관들의 모습입니다. 취재를 나온 방송국 카메라들도 많이 보이네요.제관들이 각자의 자리로 이동하고 있습니다.앞에서 말했던 보태평지무를 추는 장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도구가 예쁘고 인상 깊어서 춤을 굉장히 집중해서 봤습니다.여기까지가 영녕전 제향의 모습인데요, 공간이 큰데다가 영녕전과의 거리가 멀어서 어떤 순서가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영녕전 제향을 마친 후 한시간 반 정도의 휴식을 가지고 4시 반부터 6시 반까지 정전 제향이 진행되었습니다. 정전이 4시부터 개방되었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는데요, 쭉 뻗은 신로와 울거진 나무들이 정말 예뻐서 기분이 좋았습니다.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정전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정전 제향은 영녕전 제향보다 그 규모가 더 크고 체계적이었는데요,내부에 스크린이 마련되어 있어서 영녕전 제향보다 자세히 제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또 아나운서들이 순서에 따라 식을 안내하고, 설명을 해 주어서 영녕전 제향 때 놓쳤던 부분들도 확인하며 보다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영녕전 제향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해설과 함께 관람하니 순서 파악도 잘 되고 유익했습니다.제향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입니다.정대업지무를 추는 모습입니다!마지막 순서가 진행되고 있네요.이렇게 해서 2시간에 걸친 정전제향이 끝나고 종묘제례 행사 역시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어가행렬부터 정전 제향까지, 하루를 종묘제례와 함께했는데요,영녕전 제향을 할 땐 날이 너무 더워서 조금 힘들었지만, 굉장히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광화문에서 종묘까지 어가행렬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었고,종묘제례를 직접 보는 것은 저도 처음이라 많은 것들을 새로 배워가는 것 같아요! 혹시 아쉽게 올해 종묘제례를 놓치신 분들은 내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을 꼭 기억해주세요!지금까지 제 기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 참고문헌: 종묘제례 팸플릿종묘제례 해설 ▲제5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한수연 기자 (maiss_@naver.com)&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종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종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정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정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종묘제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종묘제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종묘대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종묘대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어가행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어가행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영녕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영녕전&lt;/a&gt;</description>
	            <link>http://blog.daum.net/munhwajaecheong/17919381</link>
	            	            <pubDate>Thu, 30 May 2013 11:02:28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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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문화재 현장 속으로]]></category>
	            		           	<category><![CDATA[종묘]]></category>
	            		           	<category><![CDATA[정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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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지하철 노선도 속 숨겨진 문화재를 찾아라!</title>
	            <description>여러분은 이동할 때, 어떤 교통수단을 가장 많이 이용하시나요?저는 단연코 '지하철'을 많이 이용합니다. 학교에 갈 때,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러 갈 때 등 대부분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지요. 그런데 이런 지하철의 역명은 어떻게 지어졌을까요?서울시가 제정한 '지하철 역명제정 기준 및 절차'에 따르면 보통 지하철 이름은행정구역의 명칭, 정거장 주변의 옛 지명을 최우선으로 합니다.예를 들어 노량진역, 잠실역, 청담역, 청량리역 등이 있습니다.그 외에도 문화재 이름, 공공기관의 이름, 주변 대학교의 이름을 사용해 지하철역을 쉽게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공공기관의 이름을 든 것은 시청역, 고속터미널역, 정부과천청사역 등이 있고,주변 대학교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서울대입구역, 성신여대입구역, 숭실대입구역 등이 있답니다.그렇다면 문화재 이름을 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은 지하철 노선도 속에 숨겨진 문화재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선릉역(Seolleung Station, 宣陵驛)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으며,서울지하철 2호선과 분당선이 지나는 역입니다. 1982년 12월 23일 개업하고, 2003년 9월 3일 분당선이 확장 개통되었다고 합니다.이름에서 느껴지듯 이곳은 '선릉', 그리고 '정릉'이 함께 있습니다.이 정릉은 영화 &lt;건축학개론&gt;에서 등장하는 정릉과는 다른 정릉입니다 :)&lt;건축학개론&gt;의 정릉은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랍니다. 선릉과 정릉은 도심 속에 있지만, 도심 속에 있다고 보기 어렵게 한적하고 푸릅니다! 선릉 부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점심시간 시간을 내어 산책하는 것은 어떠실까요?'선릉과 정릉(사적 제199호)' 선릉은 9대 성종과 부인 정현왕후의 무덤이다.성종은 유교사상을 정착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사림을 성장시켜 훈구세력을 견제하고,정치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조선 초기의 전반적인 체제를 완성했다.선릉은 왕릉과 비릉이 각각 다른 산등성이에 있는 동원이강의 형식이다.동원이강이란 하나의 정자각 안에 두 개의 강이 존재해 각각 왕과 왕후의 능이 따로 있는 것이다. 정릉은 11대 중종의 무덤이다.중종은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자 했으나, 개혁파와 공신파의 정치적 논쟁으로 조정이 안정되지 못했다.정릉은 원래 중종 제1계비인 장경왕후의 무덤인 희릉의 오른쪽 언덕에 있었으나 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무덤 주변의 석물은 선릉의 석물제도를 본떴다. 조선 왕릉 중 왕만 단독으로 있는 것은 훗날 왕릉이 된 단종의 장릉 제외하면 태조의 건원릉과 중종의 정릉뿐이다. 임진왜란 때 선,정릉이 훼손되기도 하였다.재실은 양릉 사이에 있으며, 여름철의 침수를 피하고자 층단에 지었는데 이 또한 선,정릉만의 특징이다. &lt;관람시간&gt;&lt;관람요금&gt;경복궁역(Gyeongbokgung Station, 景福宮驛)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에 있으며,서울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역입니다.정부서울청사역이라고도 불리지요 :) 이곳은 경복궁과 바로 연결된 역입니다.이 부근에는 숨겨진 문화재가 참 많습니다. 사적 제32호인 독립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등이 있지요! 경복궁은 현재 자경전다례체험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5월 4일~6월 30일, 8월 31일~10월 27일 사이 매주 토,일 오후 1시~3시 사이에 경복궁 자경전에서 다례체험을 합니다.'경복궁(사적 제117호)' 조선 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으로태조 4년(1395)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처음으로 세운 궁궐이다. 궁궐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서 따온 것으로 '큰 복을 빈다는 뜻'이다. 경복궁은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 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타버렸으나1867년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그러나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벌어지고,고종은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 궁궐의 대부분을 훼손하면서 궁궐의 제 모습을 잃게 되었다. 건물들의 배치는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왕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는 근정전과왕이 일반 집무를 보는 사정전을 비롯한 정전과 편전 등이 앞부분에 있으며,뒷부분에는 왕과 왕비의 거처인 침전과 휴식공간인 후원이 자리하고 있다. 비록 궁궐 안 대부분의 건물이 없어지기는 하였지만, 정전과 누각 등의 주요 건물들이 남아있고처음 지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조선의 법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lt;관람시간&gt;1월 ~2월 : 09:00~17:00 (입장마감 - 16:00)3월~5월 : 09:00~18:00 (입장마감 - 17:00)6월~8월 : 09:00~18:30 (입장마감 - 17:30)9월~10월 : 09:00~18:00 (입장마감 - 17:00)11월 ~12월 : 09:00~17:00 (입장마감 - 16:00) &lt;관람요금&gt;동대문역(Dongdaemun Station, 東大門驛)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지하철역으로서울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의 환승역입니다. 흔하게 '동대문'이라고 알고 있는 이 문화재는 '흥인지문'입니다.흥인지문은 보물 제1호이기도 한데요.보통 국보 제1호가 숭례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보물 제1호가 흥인지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꼭! 기억해두세요!'흥인지문(보물 제1호)' 서울 성곽은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던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으로,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어서 흔히 동대문이라고 부른다.조선 태조 7년(1308)에 완성하였다가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바깥쪽으로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이는 적을 공격하기에 합리적으로 계획된 시설로 도성의 8개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다.동묘앞역(Dongmyo Station, 東墓앞驛)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지하철역으로,서울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입니다. 동묘앞역이라는 의미는 동묘의 앞에 있는 역이라는 것인데요.'동묘'는 무엇일까요? 바로 '동관묘'입니다 :-) 친숙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동관묘'는 무엇일까요? 누군가의 묘일까요~?'서울 동관왕묘(보물 제142호)' 보물 제1호 흥인지문 밖에 있는 동관왕묘는 중국 촉한의 관우에게 제사지내는 사당이다.동관왕묘은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 군사들의 영향으로 짓게 되었다.명나라 군사들은 성스러운 관우 장군이 덕을 입었기에 왜군을 물리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명나라의 황제가 직접 액사를 써서 보내 공사가 이루어졌다. 동관왕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501년에 완성되었다.현재 건물 안에는 관우의 목조상과 그의 친족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건물 안쪽에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고, 건물이 앞뒤로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고,옆면, 뒷면의 벽을 벽돌로 쌓았는데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인다. 이렇게 지하철 노선도가 숨겨진 것은 서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덧붙여 부산과 인천의 지하철 노선도에서도 문화재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천지하철 1호선과 수인선의 원인재역(Wonija Station, 源仁齎驛)은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에 있는 지하철역입니다. 원인재역에 있는 문화재는, 원!인!재 입니다.한자대로 풀이하면 인천의 근원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 되는데요! 이곳은 인천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원인재(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 원인재는 인천 이씨 중시조인 이허겸의 묘 앞에 세운 건물이다.중시조란 인물이 별로 없던 성(姓)씨를 가진 집안을 일으켜 세운 선조를 말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의 선조는 신라 때부터 지금의 인천인 소성현에 살았는데,신라 사신으로 중국 당나라에 갔다가 천자로부터 성을 받았다고 한다.그러나 인천 이씨가 고려시대 귀족대열에 낄 수 있게 된 것은 이허겸 때부터로,그의 손녀 3명이 모두 현종의 비가 되었다. 첫째 손녀는 원성황후로 덕종과 정종 두 왕을, 둘째 손녀는 문종을 낳았다.그 뒤 7대에 걸쳐 귀족정치의 막강한 파벌을 이루었다. 이 건물의 건립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32대 손과 33대 손의 글을 통해, 조선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는 택지개발로 신지마을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부산 지하철의 1호선에 있는 범어사역(Beomeosa Station, 梵魚寺驛)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역입니다 :-) 범어사는 우리나라 5대 사찰 중 하나인데요범어사의 대웅전은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 개인적으로 저는 부산에 여행을 가서,지하철과 버스로만 다니면서 범어사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기분 좋게 다녀올 수 있는 사찰입니다!'부산 범어사 대웅전(보물 제434호)' 《삼국유사》에 따르면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또한 옛날 일본인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의 승려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던 중요한 곳 중 하나로도 알려졌다.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는 일반 대웅전과 달리 이곳 범어사 대웅전에는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다.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이 대웅전은 조선 선조 35년(1602)에 다시 지었으며 광해군 5년(1613)에는한 차례 보수공사가 있었다. 건물 안쪽에 불상을 올려놓는 자리인 불단과 불상을 장식하는 지붕 모형의 닫집에서보이는 조각의 종교함과 섬세함은, 조선 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 시대 목조공예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으로 지하철 노선도에 숨겨진 여섯 가지 문화재를 찾아보았는데요 :-)여러분 집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명에 혹시 숨겨진 문화재가 있는 건 아닐까요?문화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는데요!오늘 지하철을 타시면서 '지하철 노선도 속 문화재'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lt;참고&gt;문화재청, 두산백과 ▲제5기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단 류누리 기자(cheernuriryou@gmail.com)&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경복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복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동대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대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흥인지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흥인지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지하철역&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지하철역&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범어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범어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선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선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동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원인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원인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선정릉&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선정릉&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지하철역 문화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지하철역 문화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af8&amp;tagName=동관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동관묘&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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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8 May 2013 14:34:00 +0900</pubDate>
	            <author>문화재사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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