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지침/책 이야기

팡씨 2019. 12. 11. 21:44

제목 : 진시황제의 폭정(3) – 진시황 본기

   

오늘의 내용 개략 소개

 

통일 진나라 시황의 실정(失政) / 분서갱유 와 마지막 순행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진시황의 업적과 전국 순행 과정을 말씀드렸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진시황제 독재권력이 부른 과오 즉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대한 이야기와 절대권력을 등에 업고 직접 신선이 되고자 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먼저 진시황이 책을 모조리 불태우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2) 두 번째 유생들은 어쩌다가 진시황에게 생매장당하는 일을 맡게 되었을까? 여러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제부터 사마천 사기의 기록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    책 내용 속으로

 

 

(BC 213년 시황 34 : 분서(焚書)를 하게 된 사유)

죄인 등을 동원하여 만리장성을 쌓거나 남쪽 남월 땅을 지키게 하고 함양 궁에서 박사(유능한 사람들 소위 지식인) 70명을 초청해 주연을 엽니다. 당시 참석 인물 증 진시황제와 함께 복야 주청신(周靑臣), 유생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제나라 사람 순우월(淳于越), 좌승상 이사 세명이 황제를 앞에 두고 서로 이런 대화를 합니다.

먼저 주청신이 “옛 진나라 땅은 사방으로 일천리 밖에 안되었는데 지금은 폐하의 성덕에 힘입어 오랑캐들을 멀리 쫒아 내어 지금은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은 어디나 진나라에 복종하고 있고 옛 제후국들을 멸하고 군현으로 복속시켰으니 이전의 어떠한 군주도 해내지 못한 일을 폐하께서 이루셨습니다.”라며 황제에게 아부성 발언을 합니다. 이 소리를 들은 황제는 박사 중의 한 명이 자기를 높이 띄워주니까 좋아합니다. 이때 제나라 사람 중 한 명인 순우월이라는 자가 황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전 주나라가 천년을 다스린 것은 그 자제나 공신을 제후로 두고 다스렸기 때문인데 지금 폐하는 자기 자제분들을 평민으로 두시고 있으니 옛 제나라가 강태공 여상의 나라에서 중간에 왕권을 찬탈한 전상 같은 인물이 나타나 제나라 제후가 전씨로 바뀌 것을 모르십니까? 이렇듯 옛사람들의 일을 본받지 않으면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하기 힘들 것인데 지금 폐하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주청신의 말을 듣고 좋아하시니 이렇게 아첨하는 주청신이 충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며 진시황제에게 직언을 해버립니다.

이 말을 듣고 황제는 대신들에게 그럼 이 문제를 한번 대신들끼리 논의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좌승상으로 승진한 이사가 주청신을 두둔하며 순우월을 비난하듯이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옛 오제가 나라를 다스릴 때 통치 법이 다 달랐고 또 그 다른 이유는 서로 반대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시대가 달라서 다르게 통치했던 것이고 이제 폐하가 만 천하를 다스리려 하는데 뭣도 모르는 아둔한 유생 순우월이 뭘 알겠습니까? 예전에는 제후들끼리 다투다 보니까 떠돌이 선비들이라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제후들이 후하게 대접했던 것인데 이제 천하가 안정되어 법도 잘 세워 지켜지고 백성도 편안해졌는데 유생들은 지금을 오히려 본받지 않고 옛 것을 배워야 한다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내 목을 걸고 직언하겠습니다. 옛 제후들은 천하를 통일하지 못하니까 옛 것 운운하며 허망한 말을 꾸며 사실을 왜곡하고 사사로운 학문을 들이대며 진나라의 새로운 제도를 비난하고 현 황제께서 뜻으로서 천하를 통일하고 법령을 내셨는데도 각자 자기 학문에 의지해 멋대로 해석해서 반감을 품고 기이한 것을 품게 만들고 아랫사람을 동원해서 나라 정책을 비방하고 그러니 이렇게 내버려두었다가는 붕당과 패거리를 짓고 군주의 위세를 땅에 떨어뜨릴 것이니 이참에 신이 사관에게 명해서 진나라의 기록이 아니면 모두 태워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박사(지식인)도 아니면서 제자백가의 저서를 소장하거나 유교 경전 시와 서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 저작거리에서 죽여 버리십시오!. 그리고 옛 것을 가지고 지금의 것을 비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자의 일족을 멸하십시오! 오로지 남겨야 할 서적은 의약, 점복, 종수(농사)에 관한 것만 허락하고 만약 법령을 배우겠다는 사람은 관리를 스승으로 삼아 키워주십시오”라고 분서를 주청 하자 진시황제가 한마디로 답변하기를 “허락하노라”해서 책을 불사르고 지식인들이 읽을 수 없도록 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언론 통폐합 및 불온서적 출판 금지, 금서로 지정한 꼴이죠. 그간 진나라 개혁정치에서 수많은 좋은 제도를 제안하고 이끌어온 그 똑똑했던 이사가 이 시점에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흔쾌히 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진시황제는 어떤 생각에서 허락하였을까요?

제가 볼 때 이사는 과거 순자의 교육을 받았던 문하생에서 여불위의 빈객으로 들어와 정계에 처음 입문한 이후 초기 동료 문하생이며 능력자이었던 한비자를 시기해서 자살하게 만들고 진나라 통일 시점까지 출세를 위해서 열심히 달려온 사람이었고 이 시점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갖은 자 즉 기득권층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유생들의 개혁과 변화의 요구를 받아 들 일리 만무한 시점이죠. 마찬가지로 진시황제 역시 이제 누구도 넘보지 못할 황제가 되었고 황제를 넘어 스스로 진인 즉 신선이 되어 영원히 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제국이 만년 천년을 가야 하는데 유생들이 주장하는 엣 것을 보고 되돌아 가자?.... 이 소리가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아무리 백성의 평온과 행복한 삶을 만들어준 지도자 리더라 하더라도 권력에 취하면 이성을 잃고 마는가 봅니다.

 

 

(BC 212년 시황 35 : 진직도와 아방궁)

진직도 구원으로 길을 내 운양까지 이르고 이 길을 통해 진시황의 시체가 급히 함양까지 썩은 내를 풍기며 이동될 줄이야?.....

위수 남쪽에 아방궁을 짓기 시작했다. 아방궁은 위수 넘어 함양궁까지 이어지게 했는데 끝내 왕성하지 못한 미완의 궁이 되었다. 그래서 궁 이름도 지역명을 따라 아방궁이라 했다. 이궁을 짓는데 죄인 70만여 명을 동원해 반은 궁 짓는 일을 반은 여산 능묘를 짓는 일에 투입했다. 관중에 궁전 300채 함곡관 밖에 400여 채 건립 동해 바닷가 구산에 비석을 세우고 동문이라 명하고 삼만 가구 여읍에 이주, 오만 가구 운양에 이주시켰다. (신도시 건설)

 

 

(갱유(坑儒)를 하게 된 사유)

시황제가 4차 순행 때 연나라 지역가지 갔다가 만났던 노생이 신선을 찾아 나서겠다고 했다가 실패를 하자 변명 거리를 찾습니다. 신선과 영지 선약(불로초)을 못 찾게 된 이유가 진인(신선)은 물에도 젖지 않고 구름을 타고 영원히 사는데 신선을 만나려면 악귀를 없애야 된다며 황제가 지금 궁궐을 마구 돌아다니면 악귀를 물리 칠 수 없으니 궁궐에서 다닐 때 아무도 모르게 다녀야 한다고 귀띔을 해줍니다. 노생의 이 말에 황제는 나는 진인을 흠모하니까 이제부터 자기가 자기를 부를 때 ‘짐’이 아니라 ‘진인’이라고 부르겠다며 스스로 신선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는 함양 이백리 안의 모든 궁전을 270개 궁을 용도로 연결하고 자기의 거처를 말하는 자에게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말하고는 하루는 양산궁에 있는데 멀리서 승상 이사의 행차를 보는데 수레가 많아도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찜찜해하는데 어떤 궁안 사람이 이사에게 “황제께서 당신의 행차가 많은 것에 찜찜해합니다.”라고 전해주자 이사가 눈치 빠르게 행차를 줄입니다. 이때 행차가 준 것을 보고 황제는 자기 말을 누군가 궁에서 발설했다며 노발대발합니다. 그리고 발설자를 찾았지만 찾아낼 수 없자 당시 궁에 있던 수행한 자들을 모두 죽여버립니다. 이 일이 있은 뒤로는 누구도 황제의 거처를 알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진시황제의 난폭함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하니까 그동안 진시황제를 꼬드기며 신선 놀이를 조장했던 후생과 노생이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시황제의 나쁜 점을 소문 내기 시작합니다. “고집이 세고 사나우며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며 자기 하고 싶은 것은 뭐든 다 할 수 있다며 자만하고 사람이라고는 옥리 밖에는 챙겨 주는 사람이 없다고… 즉 죄인을 잡아내고 처벌하고 하는 옥리만 챙긴다는 소문을 내고 박사는 일흔 명이나 두고 있지만 다들 허깨비 취급만 당한다는 소문을 퍼트립니다.

 

그리고 승상 및 대신 관리들은 황제가 결정한 것만 따를 뿐 괜히 진정 어린 말을 했다간 포악해진 황제의 눈총을 받을까 두려워 거짓이나 아첨하는 말이나 하고 안락함만 취하고 직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 결국 모든 나라 일은 황제 혼자서 다 떠안아 하루에 120석 분량의 무게에 달하는 죽간으로 쓰인 공문서를 읽는데 이는 모든 것을 혼자 다 결정하고 해야 하는 권력욕이 극에 달한 것 때문이라며 저런 포악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황제를 선약과 불로초를 구해서 오래 살게 해선 안된다며 소문을 퍼트리고 도망을 쳐 버립니다.

노생의 자기를 헐뜯는 소리를 듣게 된 진시황이 열이 받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선비와 유생을 무더기로 부른 게 태평성대를 일으키고자 함이었고 방사(신선의 술법을 찾는 자)를 부른 것은 선약을 구하려 했는데. 한중은 떠난 후 보고도 없고, 서불은 불로초를 찾지도 못하고 간사하게 개인의 이익만 찾는다는 보고만 들어오고 노생은 잘 대해 줬더니 오히려 나를 비방하고 달아나고 그래서 내가 함양의 유생들에 대해 사람을 시켜 조사해보니 요사스러운 말로 백성들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래서 어사를 불러 유생들을 조사했더니 법에서 금지한 것을 어긴 자가 460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이 놈들을 잡아다 모두 생매장시켜 버립니다. 이 소식을 맏아들 부소가 듣고 아버지 시황제를 찾아와 직언을 합니다. “천하가 통일되었다 해도 먼 곳의 백성들은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생들 대부분은 공자를 본받는데 황제께서 법률만 엄격히 앞세우니 천하가 안정되지 않을 것이 걱정되오니 이 점을 살펴주세요”라고.

아들에게서 직언을 들은 황제는 열이 더 났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맏아들이니 참고 북쪽 만리장성을 쌓으며 흉노를 막고 있는 몽염 장군이 혹시라도 변심하지 않을까 해서 북방 상군에 파견하여 몽염 장군을 감시토록 보냅니다.

결국 진시황은 일 중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매사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성과를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스스로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직접 자기가 신선이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불로초라도 찾아 먹어 늙지 않고 오래 살아야 하겠고… 그러니 허무 맹랑한 노생이나 서불 같이 허망한 것을 말하는 것에 빠져 들고 그 들은 그들대로 진퇴양난에 빠져서 거짓을 말하게 되고 점점 불신만 싸여가게 된 것인데 엉뚱하게 그 불똥이 당시 제자백가라는 다양한 사상에 심취되어 있던 사람들 특히 공자 사상을 잊는 유가 출신들이 희생양(타깃)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역사가들은 진시황제가 유생을 생매장했다는 것은 한나라 시대 역사가들의 기록으로 봐서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 이기 때문에 일부로 진나라 진시황제의 업적을 낮추려고 인위적인 기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시하는데요 그것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마무리)

분서의 발단은 : 황제의 비유를 맞추던 주청신과 황제에게 직언을 했던 유가의 발상지 제나라 사람 순우월의 대화에 갖은자로서의 기득권을 유지해야 했던 이사가 끼어들면서 주청신의 편을 들며 오히려 백가쟁명 사상의 다양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즐겨보던 사상적인 책 즉 현대판으로 말하자면 언론출판 통제를 실시했던 것이고

 

갱유의 발단은 : 한 없는 권력욕을 키우기 위한 황제의 생각에 빌붙어 신선이다 불로초다 해서 황제를 현혹시킨 다음 그 일이 거짓으로 들어 날까 두려워 발을 뺏던 기생형 선동가들의 실체를 알게 된 황제가 생뚱맞게도 소 아니면 닭이라도 잡듯이 다양성을 주장하는 백가쟁명의 학자들을 몰살시킨 권력 욕에 미쳐버린 학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인문학적 고찰

 

언론이나 문화에 대한 탄압

오늘날도 진시황제의 폭정처럼 언론의 입을 막고 출판과 도서를 검열하고 하는 일이 자행되었었죠. 그리고 권력을 좇기 위해 자기의 양심도 버리고 추종하는 무리들 많이 보았었죠. 진시황제의 이야기가 비록 중국 역사이지만 이런 역사의 교훈을 통해서 앞으로는 이런 사람들이 잘 헤아려 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3.    오늘의 핵심 주제 리뷰

 

 

 

4.    차기 예고

 

 

자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고요 다음 시간에는 진시황제의 5차 순행 BC210년에 있었던

진시황의 마지막 순행입니다. 초 오 나라 회계와 낭야를 들렀다 사구에서 사망하게 되고 진 2세 황제 호해가 황제에 오른 후 망국의 길로 넘어가는 과정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5차 순행 중 죽음을 맞은 진시황제는 중국판 (산재 1) 산업재해 1호 인정을 받을 만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