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대웅전 탁묵, 불광 - 은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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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 방/추사 김정희

2020. 3. 30.

영천 은해사 소장 대웅전대형 탁묵(拓墨)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이다.

 

 大雄殿(대웅전) - 추사 김정희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여러 곳의 사찰에 글씨를 남겼지만, 영천 은해사만큼 많이 남긴 곳도 없다.  


은해사에만 ‘불광(佛光)’ ‘대웅전(大雄殿)’ ‘보화루(寶華樓)’ ‘은해사(銀海寺)’ ‘일로향각(一爐香閣)’ ‘산해숭심(山海崇深)’ 등의 편액이 있고, 은해사 부속암자인 백흥암에는 ‘시홀방장(十笏方丈)’ 편액과 주련 작품이 있다. 

은해사에 남긴 글씨는 대부분 추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이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佛光(불광)’이라는 편액이다.  


‘불광’은 불광각에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대웅전 안쪽에 걸려 있다가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佛光 (불광) - 추사 김정희 / 은해사 승보박물관

佛光(불광) 이 편액은 추사가 ‘佛光’ 두 글자를 쓰기위해 버린 파지가 벽장에 가득했다고 전한다.

 

처음 편액은 ‘불(佛)’자의 유달리 긴 세로획 밑을 잘라서 만들었는데, 이를 보고 추사가 대로해 편액을 떼어오게 해서 불태워버렸다 한다.  

현재 이 편액은 추사 김정희가 처음 편액을 불태워버린 뒤 다시 글씨 원본대로 만들어 건 것이다.


‘불광’ 편액은 송판 4장을 가로로 이어붙여 만든 대작으로 세로가 135㎝, 가로가 155㎝ 정도 된다. ‘불’자의 가장 긴 세로 획의 길이는 130㎝가량이다.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된 이 편액은 세로 획 덕분에 가로 글씨 편액임에도 불구하고 세로 길이가 가로 길이와 비슷한 편액이 되었다.

현존하는 추사의 친필 글씨 작품 중 가장 큰 대작으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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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처음 편액을 불태워버린 이유는 ?

 

은해사 주지가 ‘불광’ 글씨를 가져와 편액을 만들려고 하니 갈등이 생겼다.

佛(불)자의 세로획 하나가 유별나게 길어 그대로 편액을 만들면 편액이 통상적인 모양이 안될 것이고, 거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 생각해서 고민 끝에 ‘불’자의 세로로 긴 획을 ‘광’자의 세로 길이에 맞춰 잘라버린 채 편액을 만들어 걸었다.

 

이후에 은해사를 방문한 추사가 그 편액을 보게 되었는데 추사는 아무 말 없이 편액을 떼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편액을 가져오자 절 마당에서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서예대가인 추사가 고심 끝에 내놓은 ‘불광’ 작품의 핵심은 바로 불자의 긴 세로 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 작품 구성이 빈 공간과 조화를 이뤄 멋진 작품이 된 것이다.

그런 작품의 핵심 획을 잘라 버리고 평범한 글씨의 편액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추사가 그냥 둘 리가 없었던 것이다.

 

추사가 크게 화를 내는 이유를 주지스님이 알아채고는 “정말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고, 다시 글씨 원본 대로 판각을 해 걸었다.

이런 사연을 갖고 두 번째 만들어진 편액이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불광’ 편액이다.

 

佛光(불광)’ 편액은 불광각이라는 전각에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1862년 혼허 지조 스님이 지은 ‘은해사 중건기’에 ‘대웅전, 보화루, 불광각에 걸린 세 개의 편액은 모두 추사 김상공(金相公)의 묵묘(墨妙)’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광각은 없어지고 불광 편액은 대웅전, 우화각 등에 걸려 있다가 성보박물관이 완공되면서 그곳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은해사는 1847년 대화재 후 1849년에 중건 불사를 마무리하게 되는데, ‘대웅전’ ‘보화루’ ‘불광’ 등의 편액 글씨는 추사가 1848년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 1851년 북청으로 다시 유배의 길에 오르기 전까지의 기간에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불광’ 글씨는 필획에 힘이 있으면서도 한결 부드러운 완숙미가 묻어나는 작품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당시 은해사 주지 스님은 추사의 작품으로 편액을 만들기 위해 불광각에 달 편액 글씨 ‘불광’을 추사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다.

그런데 사람을 몇 차례 보내며 독촉해도 써 보내 주지 않았서 주지는 안되겠다 싶어 마지막에는 선물로 절의 불상을 하나 들고 가서 간청을 했다.

그러자 추사는 크게 웃으면서 불상을 사양하고는 아랫사람을 시켜 벽장 속에 가득하게 써 놓은 ‘불광’이라는 글씨 중 잘 된 것을 골라 오라고 했는데 그 아랫사람이 골라 온 것을 보더니 잘못 골랐다고 책망을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작품을 직접 골라 내주었다.

그동안 편액 글씨를 안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득의작을 하나 건지기 위해 수많은 작업을 반복했던 것이다 . 당대 최고의 서예대가지만, 그리고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건지기 위해 수없는 실패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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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인 일로향각’ ‘산해숭심’ 편액의 모습


 一爐香閣(일로향각)- 추사 김정희

 山海崇深(산해숭심) - 추사 김정희


보화루(寶華樓)’ - 추사 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