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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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우정도 돈으로 사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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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내집 아이 일류 만들기

2008. 12. 17.

 

누구나 다 아는 단어입니다만 자연의 법칙 가운데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It is a rule of nature that the strong prey upon the weak 정도로 표현하는가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글의 법칙이어서 인간세상에서는 결코 적용되지 말아야 할 법칙이기도 합니다만 갈수록 잔인해지고 무자비해지는 사람들을 보면 이미 현실이 그 법칙의 지배하에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자기의 꿈을 실현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이상주의자들의 공허한 메아리없는 부르짖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거의 모두가 동의하지 싶습니다. 현실이 그럴진대 내가 남을 잡아먹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먹히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교실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글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에서는 일반화된 법칙이라고 해도 적어도 학교에서는 서로가 배려해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는 장소가 되어야하지만 그런 기대는 이제 접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초등학교의 경우는 담임교사가 효율적인 학급경영을 하기에 따라 어느 정도는 그런 무자비한 법칙이 적용되는 것을 예방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제는 한계상황에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전까지는 주먹힘이 곧 법이며 최고라는 생각에 젖어있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교내폭력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물리적인 힘이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세상은 원시적이고 미개한 사회이긴 해도 우리 사회 안에서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게 현실이라고 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강해지기를 원합니다.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아야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켜내야할 기본적인 물리력은 가지고 있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런 힘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길래 살아오면서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어른이 되면 물리적인 힘 대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력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은 먼 훗날의 일입니다.

 

모두가 다 강해지고 다 같이 잘 살게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세상이고 실제로는 약한 자가 온갖 불이익을 받으며 사는 경우가 수두룩한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신체가 허약하여 물리적인 힘이 약한 자가 있는가하면 경제력이 약한 가정의 자녀도 있는 법이고 학력이 하위권이어서 본의아니게 푸대접을 받는 아이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비겁한 인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강한 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진인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례들을 보면 잘 알것입니다. 

 

 

모두가 다 강할 수 없기에 약한 자에 대한 배려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우리 사회와 학교 현실이 어디 그렇던가요? 혹시 댁에서 자녀 친구들의 능력과 인간 됨됨이를 보기보다 자녀 친구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만을 가지고 쉽게 판단하여 교우관계를 형성하도록 부추기는 일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누구누구의 아버지가 사회적인 강자(혹은 저명인사)이므로, 누구누구네 집은 부자이므로 네가 그집 아이와 친해지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지는 않겠지요?

 

요즘 세상에서는 인맥형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미래를 대비하여 좋은 인맥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매도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댁의 자녀는 남에게 인맥형성의 대상이 될만한 아이인지를 한번 더 되짚어보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요? 인생살이가 그렇게 계산만으로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차라리 아이들에게 사람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게 옳은 이 아닐까요?  

 

 

도시의 좋은 학군에 있는 명문학교를 다니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것은 저같은 시골선생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보여서 측은해지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분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때문이라고 여기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서양에서도 예전부터 부잣집이나 명문대가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두고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지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특권층은 반드시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 특권층이 사회적 약자로부터 진정으로 존경을 받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가진 분들이 비아냥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면 쌓이고 쌓인 분노가 폭발할 때는 엄청난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런 일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부터 조심을 하고 살라는 협박성의 의미를 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강자가 약자를 더 이해하고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나마 정의와 공평이 가득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들의 경제력이나 사회적인 지위에 의해 아이들이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능력과 평소의 자기 행동에 따라 알맞는 대우를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가슴아픈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부모들까지 나서서 가난하고 없는 집 아이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듯한 언사를 내뱉는 것은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이들의 교우관계까지도 아이 부모님들의 경제적 사회적인 조건을 따져가며 골라서 친분을 맺도록 가르치는 일은 결코 있어서 안될 것입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자랐기에 사회 저명인사들의 자녀와 힘있는 분들의 자녀와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 너무 가진자와 있는자 중심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없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자녀들 앞에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포숙아와 관중의 이야기(관포지교)를 예로 들기에는 사회와 시대가 너무 변해버렸습니다만 아이들 사이에 맺어지는 좋은 우정은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넘어서서 맺어지는게 옳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한자녀를 둔 가정이나 두자녀를 둔 가정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아이들을 적게 두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어른이 되면 친구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에 맺어둔 멋진 우정의 친구는 자녀가 살아가는데 커다란 밑거름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가 되기에 모두들 좋은 인맥을 맺어주기 위해 노력하는가 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깜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