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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코린토스)를 향하여 2 -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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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9 발칸반도 헤매기-동남부 유럽(完

2020. 1. 31.

그리스 지도를 보면 본토 서남부쪽으로 굉장히 큰 반도가 붙어있음을 알 수 있어. 아래 지도를 보자고.




DAUM에서 이 글을 볼 경우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되어 새로 나타날 거야. 빨간색으로 체크해둔 곳이 코린토스의 위치이고 옥색 선으로 그어 놓은 곳이 코린토스 운하야. 한눈에 봐도 커다란 반도가 본토에 붙어 있음을 알 수 있어. 그 반도 이름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야.



 그리스의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하나여서 그런지 운하 부근에는 기념품 가게들도 모여 있었어.



우리가 코린토스 시내로 바로 가지 않고 운하 부근에서 내렸던 이유는 코린토스 운하를 보기 위해서야.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모임을 가지려나 봐. 내가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운하 구경이 우선이었어.



사람들이 몰려서있는 바로 앞이 운하가 있는 곳이지. 사진을 잘 보면 '번지 플랫폼'이라는 영어가 보이지? 운하에서 번지 점프를 할 수 있다니 놀랍잖아.



운하 건설에 관한 기념비가 서 있더라고.



사진 속에는 운하 모습이 나타나있어.



나는 운하 곁으로 다가갔어.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밑에 번지 점프대 시설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



젊은이 한 사람이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가 허공으로 몸을 날릴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러댔어. 난 겁이 많아 그런지 아직 번지 점프대에 서본 적도 없어.



서기 68년 6월 9일, 제정 로마의 5대 황제격이었던 네로가 죽었어. 그의 나이 만 30세 5개월 20일만에 생을 다한 거지.



코린토스 박물관에서 찍은 네로의 모습이야. 그는 만 17세가 되기 전에 당시 알고 있던 세계의 절반을 다스리던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재위 14년 동안 온갖 기행과 야만적인 행동을 거듭했던 악명 높은 황제였어.  



네로는 감수성이 상당히 많았던 인간이었을 거야.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를 줄 알았거든. 오죽했으면 로마인들이 동경하던 그리스에서 가수 데뷔를 꿈꾸었을까? 네로가 그리스 여행을 하게 된 이유는 자작시를 가지고 노래하는 가수로서 대중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야.



네로는 자기가 노래할 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를 응원단도 조직해서 데리고 다녔어. 응원단 이름도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데 아우구스티아니라는 이름이었어.



코린투스 운하 구경을 하다말고 웬 뜬금없는 네로 타령이냐고 묻고 싶지? 하던 이갸기를 마져 다 할게.

네로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그리스에서는 고대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어. 네로는 황제의 명령으로 스포츠 경기 중심이었던 올림픽에 음악 경연대회도 넣으라고 요구했지. 

 


물론 자기가 출연하고 싶어서였지. 결과가 궁금하지? 당연히 네로는 음악 분야의 전관왕이 된 거지. 그는 우승자에게 주는 월계관을 쓸어담았어. 나뭇가지로 만들어야할 월계관을 황금으로 만들게 했고 그걸 수집했다고 해. 권력의 횡포지.

 


요즘 우리나라 일부에서 볼 수 있는듯한 그런 횡포가 이루어졌던가봐. 


 

네로가 코린토스 지협에 와 본 것은 거의 확실해.



코린트 지협에다가 운하 건설 명령을 내렸거든. 여기에다가 운하 건설을 처음 기획한 사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야.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가기보다 운하를 건설하면 배로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황제가 그런데 착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거야.



하지만 운하는 로마제국 시대에는 결코 완성되지 못했어. 나중에 오랜 세월이 흐른 뒤 19세기 들어와서야 운하가 완공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



고작 14년 동안 황제의 지위를 누렸던 네로 시대에 이 운하가 완공되지 못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어. 약 이천여년 전에 로마인의 기술로 여기에 운하를 팔 수 있었을까하고 의문을 가진다면 로마인들의 역량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될지도 몰라.



네로가 아니고 로마 제정을 처음 시작했고 장기간 통치했던 아우구스투스 시대였다면 가능했을지도 몰라. 로마인들이 만든 수로와 터널이 오늘날에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돼.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격이 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라인강 중류에 목재로 다리를 건설했었으니 그들의 기술력은 대단했던 거야.



코린토스 운하 구경을 끝냈으니 이제 시내로 들어가야할 일만 남았어.



네로 시대로부터 약 1,8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운하 공사를 재개할 때 보니, 네로 시대에 바위벽을 깎아낸 흔적이 남아있더라는 거야.



인간의 영화와 헛된 야망은 사랑의 맹세만큼 덧없는 일이지.



세월과 사람은 가고 그 흔적만 남았어. 에게해쪽 모습이야.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어.



시내에 들어가야 하니까 말이야.



가만히 보니 여기에서 국제버스도 탈 수 있는 것 같아.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까지 가는 버스는 20시간 정도 걸리는 모양이지?



안에 들어가서 매표소 직원에게 버스 시간을 알아보았어.



12시경에 있다는 답이 돌아왔어.



나는 대합실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였어.



그런데 말이지 버스가 너무 안 오는 거야.



12시가 지나도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았어. 세상 물정 모르고 늘어져 자는 개가 점점 부러워지기 시작했지.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