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배낭여행, 초등교육, 경주, My Way, 영화, et cetera

12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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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타향같은 고향 5

철도관사가 있던 터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집이 네 채나 있던 터가 밭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우물도 두 군데 있었지만 다 메워지고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뒷밭에 가보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잘 가꾸어두었네요. 변해버린 풍경을 보니 너무 덧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밭둑 가에 나팔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친구도 떠나버리고 아는 어른들도 세상을 하직한 지금에 와서는, 제가 가서 살지도 않는 고향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기록을 남겨두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지요. 사람도 왔다가 땅으로 돌아가면 끝인데 뭘 그리 더 가지겠다고 아등바등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가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지만 저 자신도 그런 욕심에서 벗어나질 못했으니 남 탓할 게 없습니다. 들에 피는 꽃 한 송이조차 ..

10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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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타향같은 고향 4

이제는 이 기차역도 폐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무궁화호 열차도 자주 서고 도시 출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들 오르내리던 역이었습니다만 세월의 흐름에 밀려 이제는 폐역 신세가 되는 처지에까지 몰리고 말았습니다. 제 외가도 이 부근 어디에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내도 이 부근 어디가 고향입니다만 이상하게도 자기가 살았던 그곳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내성천 상류가 너무나 그리워서 일 년에 한두 번은 꼭꼭 찾아가서 사진도 찍어두고, 한 번씩은 컴퓨터를 열어 찍어둔 사진 자료를 뒤져보기도 합니다만 아내는 그렇지 않더군요. 개인의 감성 차이겠지요. 타향 같은 고향이지만 그래도..

09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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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타향같은 고향 3 - 시골 황토방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방에서 하루를 묵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던가 봅니다. 아버지께서 시멘트 블록을 이용하여 직접 수고하셔서 아래채를 본채에 붙여지으신 뒤 만들어진 방 하나를 저에게 주셨던 것이죠. 책상 하나 놓으면 누울 공간조차 넉넉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던 작은 공부방이었지만 나만의 공간이었기에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가요? 처음으로 집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1백 볼트 알전구를 달고 처음 켰던 날, 밤 세상이 그렇게 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여기로 이사와서 몇 년간 내가 살았던 곳의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스물셋 되던 해 봄에 발령이 나서 돈을 벌기 위해 객지로 ..

08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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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타향같은 고향 2

기왕에 와서 둘러보는 김에 더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동네 부근에 있었던 작은 철교 부근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작은 방천은 사라지고 튼실하게 새로 둑을 쌓아놓았더군요. 모든 게 다 변했습니다. 나는 면소재지 부근올 가보았습니다. 우회도로가 만들어져 있더군요. 금잔화가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날 알아볼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피마자를 보았습니다. 아주까리라고도 하는 식물이지요. 철길가 소나무에는 까치집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피마자는 한자 말입니다. 한자로는 蓖麻子라고 씁니다. 아주까리 열매로는 기름을 짭니다. 대궁은 잘라서 구멍을 내고 비닐을 덧대 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설픈 하모니카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옆에는 도라지 밭이었습니다. 나는 한참을 서성거렸습니다. 예배당도 보이네..

07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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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타향같은 고향 1

나는 고향이 두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6년을 오롯이 보낸 곳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한 군데는 청소년기 10년을 보낸 곳이 각각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향이 두 곳이라는 말은 진정한 고향이 한 곳도 없을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일 것입니다. 고향을 놓고 말장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삶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청소년기를 여기에서 보냈습니다만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고향 친구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직장을 따라 객지에 살러 간 것이 1977년의 일인데, 여기에서 인격형성이 이루어지는 청소년기 십 년간을 살았고 이곳을 떠난 뒤에도 시간 날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그 후 30여 년의 세월을 두고 출입한 곳이니 고향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나는 작..

06 2020년 10월

06

국내여행/나라안 여기저기 1 in Korea 삼국유사의 고장 4

나는 화본역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어. 위천에 걸린 다리를 건너다가 상류 쪽을 바라보았어. 어딘가 눈에 익은 듯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땐 몰랐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 화본역 쪽으로 가는 길목에 삼국유사 테마공원이 새로 조성되어서 개장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의흥에서 화본 방향으로 조금 달려 나갔더니 삼국유사 테마공원 입구를 만났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글상자나 주소를 클릭해보면 될 거야. blog.naver.com/3964themepark 삼국유사 테마파크 : 네이버 블로그 군위 삼국유사 테마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blog.naver.com 오르막길이었기에 자전거를 끌고 갔어. 아치형의 구조물이 앞을 지키고 있는 터널을 지나가야만 했어.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 ..

05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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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나라안 여기저기 1 in Korea 삼국유사의 고장 3

향교가 있었다는 말은 이 고을의 규모가 상당했다는 말이겠지? 재일교포로서 2차 대전 후 일본 최초의 사법시험 합격자가 바로 이 고장 사람 출신 사람이라고 알고 있어. 저 멀리 동그랗게 솟아오른 산이 보이지? 그 산이 이 부근의 명산 축에 들어가지. 그 안 골짜기에 군위댐이 만들어져 있고 개울가에는 인각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있지. 고려 시대에 중 일연이 거기 인각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를 썼어. 우리나라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적인 관점에서 기록했다는 약점을 지닌 책이지만 사료로서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정받는다고 해. 그래서 군위군에서는 삼국유사를 자주 들먹이는가 봐. 향교 입구에는 일신당이라는 이름을 지닌 현대식 건물이 있더라고. 일신당이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보아 고문(옛글)에 밝은 분이 건물..

03 2020년 10월

03

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황당무계 2 - 병원에서

철도에서 기관사로 일하는 미남 친구가 경주에 놀러 오겠다는 거야. 그게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훗날을 위해 공개해 두는 것이 맞다 싶어서 꺼내 보는 거야. 요즘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기에 유선 전화로 간신히 한두 번 연락을 해서 약속 시간을 맞추고는 기차역에 마중을 하러 갔었어. 나는 대합실에서 그가 집찰구를 통해 빠져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옛날에는 부정 승차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차표 검사를 철저히 했으므로 친구가 아무리 기관사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기차를 운전하지 않을 때는 그도 승객 가운데 한 명이었으니 집찰구를 통해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거든. 친구나 나나 모두 미혼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야. 한창 피가 끓는 나이였던 데다가 조심성 없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시기였으니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