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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공룡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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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로 엮는공룡 백과

2008. 3. 10.

최초의 공룡화석

 

종교적 신앙이 강요된 시기에는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설정된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층에서 발견되는 뼈 화석을 자연의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해 왔다. 공룡의 화석도 예외일 수 없었다.

 

1677년 영국의 박물학자 로버트 플럿은, 화석화된 대형 대퇴골의 아래 부분으로 판명된 뼈를 설명하고 그림으로 소개했다. 그는 당초 이것을 코끼리의 뼈로 생각했으며, 나중에는 거인의 뼈로해석해, 1763년 브룩스는 플럿의 생각을 받아들여 이 뼈에 스크로툼 후마눔(Scrotum humanum. 인간의 음낭) 이라는 학명을 부여했다. 5년후 프랑스의 철학자이면서 계몽주의자인 장 프랑수아 로비네가 (과학적 이론을 제시하면서 많은 논쟁을 일으킨 인물) 문제의 화석은 석화된 실제 음낭으로서 대자연이 "이상적인 인간의 유형"을 만들기 위해 여러차례 모형을 제작한 증거라고 했다.  불행하게도 이 화석은 분실 되었다.

       

                                  로버트 플럿                                            메칼로사우루스(우간다 소형쉬트 축소)

 

(1677년 옥스포드셔에서 발견된 뼈들을 그린 그림을 출판 햇는데, 그는영국의 박물학자 로버트 플럿    전혀 몰랐지만, 그것이 최초의 공룡(뼈) 그림이였다.)

 

분실된 화석은 메칼로사우루스(Megalosaurus)과의 대형 육식공룡의 것으로 보인다. 뼈조각 화석의 정체를 밝히는데 무려 2세기나 걸렸다는 사실은 그만큼 과학의 발달이 더�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18세기 후반에는 노르만디 해안의 특정한 지층에서 진귀한 화석이 발견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북부의 항만도시인 노르망디의 해안의 절벽은 프랑스 고생물학 발전의 기념비적 전환점이 된곳으로, 쥐라기 후기의 척추동물 뼈를 다량으로 발굴한 지층이 백악기 지층 바로 아래 있는데, 오늘날에는 모래톱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 르 아브르의 박물학자이면서 성직자이기도한 자크 프랑수아 디크마르는 화석표본을 관찰하고 "각 조각을 싸고있는 물질은 중심부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다름을 쉽게 알수 있었다 그것은 뼈였다"고 기록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옥스퍼드 셔의 자연사 겉표지

 

1776년, 디크마르는 채집한 화석을 "물리학 잡지"에 소개 하면서 그 당시로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과학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일부 뼈를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그림으로 나타냈으나, 대부분은 (플레시오사우루스(Plesiosaurus)나 이크티오사우루스(Ichthyosaurus) 중생대 파충류로 공룡과는 다른 계통의 동물) 악어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대형의 대퇴골은 공룡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 공룡화석을 연구한 또다른 중요한 인물로는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가 있다. (이 퀴비에 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할 예정이다).

 

  # 자료출처,  디스커버리총서 "공룡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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