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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옛 건축(궁궐). 초일커버(F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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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전자우편외 기타

2020. 4. 1.

한국의 옛 건축(궁궐). 

초일커버(FDC)



우표 발행일 : 2020. 3.  26   우표번호 : 3438 ~ 3445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Cartor) 

디자이너 : 유지형    사진작가 : 최민옥, 김창환, 이강주, 이병열

용지 : 평판 원지  인쇄/색수/특수처리 : 평판/4도 소형쉬트 평판/4/무광금박,투명필름, 엠보싱

디자인 : 경북궁 자경전,  창덕궁 부용정,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석조전 


   바쁜 일상에 치여 도심 속 빌딩 숲 사이를 벗어나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서울 시내 고궁으로 향합니다. 멋스러운 곡선의 기와, 형형색색 빛나는단청을 보는 것만으로도 쉼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의 아름다운 4대 궁궐을 소재로 한국의 옛 건축(궁궐)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No.3438 경북궁 자경전.

  경복궁 자경전 은 1867년(고종 4)에 조선 초기 침전(왕의 숙소)으로 쓰였던 자미당 터에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대비전입니다. 이후 1873년(고종 10)에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했으나 불과 3년 뒤 다시 불에 탔고, 1888년(고종 25)에 중건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대비들의 침전으로 이용된 자경전은 총 44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서북쪽에 복안당이라는 침실을 두고 중앙에는 중심 건물인 자경전을 두었습니다. 동남쪽에는 다락집인 청연루를 두어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변 수십 개의 집과 담장, 문들이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졌고, 이후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자경전은 경복궁의 침전 중 고종 때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No.3439 창덕궁 부용정.

  조선 후기의 문헌지 궁궐지 에 따르면 창덕궁 부용정 은 본래 1707년 (숙종 33)에 택수재 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가 1792년(정조 16)에 고쳐 짓고 이름을 부용정 이라 바꿨다고 합니다. 정조는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축하했고 신하들과 어울려 꽃과 시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열십(十)자 모양의 독특한 평면 형태와 공간구성, 건물의 장식 등이 뛰어난 비례와 대비를 이루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물로서 역사적 예술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No. 3440 창경궁 명정전.

  창경궁 명정전 은 1484년(성종 15)에 건립되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이 2층 건물인 것과 달리 앞면 5칸, 옆면 3칸의 1층 건물로 규모가 작습니다. 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쓰였습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의 전각 중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서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여 건축사 연구의 귀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No. 3441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은 1900년(광무 4년)에 착공하여 1910년(융희 3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대한제국의 주도 하에 지어졌습니다. 조선의 다른 궁궐과 달리 왕의 침전과 정전(업무공간) 기능이 모두 통합된 건물입니다. 황실의 처소를 비롯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됐고, 이후 2009년 10월에 복원공사를 실시하여 2014년 10월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으로 개관했습니다.

No.3438 경북궁 자경전.

  조선의 정궁으로 정연한 배치체계를 갖춘 궁궐로 북궐이라고도 한다.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삼으면서 건설한 것으로 시경의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를 따 이름을 지었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임금이 거주한 기간은 길지 않다. 궁궐 내부는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홍례문과 근정문과 향오문을 일직선 상에 배치했다. 이 사이 공간은 정사를 보고 의식을 행하는 업무공간이다. 향오문 뒤에는 제반시설이 자리한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No.3439 창덕궁 부용정.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이다.  처음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한양의 굴궐들이 모두 불탄 후에 경복궁은 그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고 1610년(광해 2)에 창덕궁이 재건된다.  그 후 창덕궁은 경복궁이 재건될 때까지 270여 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었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No. 3440 창경궁 명정전.

  본래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이었다. 그후 1483년 수강궁 자리에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 다시 세웠으며,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되었다. 1656년에 요화당·난향각·취요헌·계월각 등 4개의 전각을 지었다. 1909년 일제가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1984년 일제가 철거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하고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으로 환원했다. 이 궁궐의 전체적인 배치는 창덕궁처럼 지형의 높고 낮음을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곳만을 골라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No. 3441 덕수궁 석조전

  조선시대의 궁궐. 본래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곳을 선조가 행궁으로 삼았다. 1611년에 경운궁, 1618년에는 서궁으로 불렸다. 1897년 선원전·함령전·보문각 등이 지어졌으며, 1900년 인화문·돈례문·영성문 등이, 1902년 중화전·관명전 등이 건립되었다. 1904년에는 즉조당·석어당·함령전 등이 중건되었고, 1910년에는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No.3438 경북궁 자경전.

No. 3440 창경궁 명정전.

 서울의 4대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서울의 4대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왕조국가에서 궁궐은 임금의 통치 공간이자, 그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다. 궁은 왕이 거쳐하며 정무를 보는 곳, 궐은 궁성, 궁의 망루 등을 일컫는 말로 " 궁궐 "은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부르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의 궁궐 건축사는 전하는 것이 적어 현재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그러나 다행이도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의 궁궐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면서도 우리곁에 남아있다.

  No. 3442 ~ 3445 (서울 4대궁월 쉬트 : 지역별 국제통상 요금 우표)

  한국의 옛 건축 우표는 전지와 시트 두 종류로 발행하였으며 시트는 지역별 국제통상 요금을 적용하였습니다. 우표에 새겨진 한국의 4대 궁궐을 직접 둘러보고 역사와 대화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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