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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제 여행 27. 최제. 최혁 효자정문(양주시 향토유적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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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재 및 상징 엽

2020. 5. 19.

경기문화제 여행    27.

최제. 최혁 효자정문(崔濟 崔爀 孝子旌門 양주시 향토유적 제7호)



최제 최혁 효자정문(崔濟 崔爀 孝子旌門 양주시 향토유적 제7호)

  조선 후기의 효자 최제와 최혁의 정문(旌門). 정문이란 전통 시대에 국가가 충신, 열녀, 효자의 행실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해당 인물이 살던 마을 입구 또는 집 앞에 세워 준 문(門)을 가리킨다. 정려(旌閭)·정려문(旌閭門), 홍살문이라고도 한다. 효자 최제(1659~1723) 선생의 자는 여즙, 본관은 충주, 첨제중추 운형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의복, 음식을 어른보다 먼저하지 않았고, 11세 때 모친상을 당해 슬퍼하고 죽 먹는 예절이 어른과 같았다. 부친이 객지에서 전염병을 걸렸을 때는 구걸하여 시탕했고, 지성으로 축원하여 회춘케 했다. 또 계모를 40년간 봉양하는 데 뜻을 어김이 없어 생모와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숙종 41년(1715) 유림 대표 100여명이 양주본영에 진정한 것이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져, 이 해 겨울에 특히 포상, 복호의 은전과 함께 조봉대부 동몽교관에 추증되었으니, 이 사실이 예조 효행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철종 5년 )1854) 11월 정문을 세우라는 예조의 지시로 이듬해 이곳 우고리 가좌동에 효자정문이 건립되었다. 

최제 최혁 효자정문(崔濟 崔爀 孝子旌門 양주시 향토유적 제7호)

  효자 최혁(1778~1838) 선생의 자는 문백, 제의 현손으로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모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대변을 맛보아 그 위중함을 알고 울면서 세번이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회춘케 한 출천대효라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고종 6년 (1869) 양주 유림 200명의 발의로 진정, 조정에서는 이 해 12월 효자정문을 내리고 몽몽교관을 추증했다. 그뒤 또 가석대부효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를 추증하니, 이 사실이 예조효행록에 기록되어 있다. 효자정문은 정면 5.15m(2칸), 측면 2.35m(1칸)의 맞배지붕에 방풍판이 달린 건물이며, 1986년 말 기와를 비롯 건물의 낡은 부분을 새로 보수하였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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