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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씨름). 초일커버(F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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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4.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씨름).  초일커버(FDC)

 

우표발행일 : 2020. 10. 8 우표번호 : 3462 ~ 3463 디자인 : 뒤집기, 배지기 디자이너 : 박은경

인쇄 / 색수 : 평판 / 4도 용지 : 평판 원지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SouthernColourPrint)

씨름은 두 사람이 상대의 허벅지와 허리에 샅바(광목으로 만든 긴 천)를 마주 잡고 힘과 기술로 상대방을 넘어뜨려 승부를 겨루는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씨름을 통해 서로 단결하고 화합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왔습니다. 2018년 11월 26일, 모리셔스 포트루이스에서 개최된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는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북 최초로 공동등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씨름’ 우표를 발행합니다.

  씨름은 고구려 벽화부터 조선시대 풍속화까지 역사적 유물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신분을 떠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평등한 운동이자 민속놀이로서, 학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씨름이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5세기 중엽에 축조된 고구려의 ‘각저총’ 고분에는 두 사람이 힘을 겨루며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삼국시대에도 이미 씨름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초로 씨름이 등장한 문헌인 《고려사》를 보면 충혜왕 즉위년(1330년)에 「왕이 나라의 중요 업무를 폐신 배전과 주주 등에게 맡기고 날마다 내수와 함께 씨름(角力戲)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의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석보상절》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도 씨름(角力)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지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단오의 대표적인 풍속으로 소개되는 등 씨름은 더욱 대중화되었습니다. 이후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1927년 11월 27일에 ‘조선씨름협회’가 창립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대한체육회’의 가맹경기단체인 ‘대한씨름협회’의 요청으로 씨름이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사단법인 대한씨름협회’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초 남과 북은 각각 2016년 3월과 2015년 3월에 씨름의 문화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는데, 2018년 10월에 한-프랑스 정상회담 기간 중 남북 공동등재에 대해 처음으로 논의하였고, 이후 평양에 유네스코 특사를 파견하는 등 본격적으로 공동등재가 추진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현대 씨름 용어와 경기 방식 등 일부 차이는 있지만 남북의 씨름은 사회문화적 공통점이 있으며,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공동등재를 결정했다”라고 공동등재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로써 씨름은 ‘한국 전통 레슬링(씨름)’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남북 공동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번 기념우표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를 배경으로 하고, 역동적인 배지기 기술이 돋보이는 큰 우표와 짜릿한 뒤집기 기술이 일품인 작은 우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기자와 관람자 모두가 흥겨움과 건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민속놀이 씨름의 의미를 이번 우표와 함께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씨름경기는 2명이 다리와 허리의 샅바를 맞붙잡고 힘과 기술을 이용해 상대선수의 발바닥 외의 신체부분을 바닥에 먼저 닿게 넘어뜨리면 이기는 경기. 각저·각력·각희·상박이라고도 한다. 씨름과 비슷한 놀이는 인접한 이웃 국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한국의 씨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측된다. 1983년 프로 씨름대회인 천하장사대회가 개최되면서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천하장사대회는 2004년까지 치러졌고, 2005년부터는 체급별 장사대회인 전국장사씨름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2018년 11월 2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목록 등재가 확정되었다. 

  각저, 각력, 각희, 상박이라고도 하며 이와 비슷한 놀이가 몽골·일본, 중국, 티베트, 베트남 등에도 있었다. 조선 헌종 때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五州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중국 진나라 무왕 때 씨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이사전 李斯傳〉에는 씨름과 배우의 놀이를 베풀었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 씨름 형식의 놀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씨름은 몸 전체의 움직임과 기승 및 전진근육을 사용하고, 높은 투지력을 바탕으로 하는 운동으로 체력·기술·투지력이 3대 요소이다. 주심 1명, 부심 2명이 있으며, 경기장은 높이 50㎝ 이상의 모래와 지름 9m의 원형경기장으로 선수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2m 이내에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다리와 허리에 걸치는 샅바는 4.2m의 청색과 홍색의 광목을 쓰며 국민학생 샅바의 길이는 3m이다.

2016년 3월 한국은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공식적으로 신청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2015년 3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2018년 11월 2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위원회가 제13차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를 열고, 참석한 24개 위원국의 만장일치에 따라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한과 북한 공동으로 등재할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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