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외국그림

구름에 달가듯이 2015. 2. 2. 16:01

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책 20선

 

 

20권의 책은 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의 추천을 바탕으로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이 선정했다. 미술가 개인에 초점을 둔 책, 명화를 중심에 놓은 저술, 미술 감상과 비평 방법을 소개하는 책들로 나뉜다.

 

미술평론가 마테오 키니의 ‘클림트 세기말의 황금빛 관능’(마로니에북스), 뉴욕 컬럼비아대 사이먼 샤마 교수(미술사)가 렘브란트 등 천재화가 8명의 삶을 그들이 살았던 지역과 가족을 취재해 풀어낸 ‘파워 오브 아트’(아트북스),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정은미 씨가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연인 갈라 등 거장들과 그들에게 영감을 준 연인 15쌍의 인연을 전한 ‘아주 특별한 관계’(한길아트) 등은 미술가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가족과 친구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들을 엮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도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 미술평론가가 서양미술사의 유산이 된 그림 800여 점을 소개한 ‘천년의 그림여행’(예경), 영국의 미술전시 기획자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뭉크의 ‘절규’ 등 고전이 된 그림들의 가치와 탄생 배경을 설명한 ‘세계명화 비밀’(생각의 나무),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인 저자가 피카소, 카라바조 등 미술가 11명의 작품을 특징적인 이미지를 중심으로 분석한 ‘알베르토 망구엘의 나의 그림 읽기’(세종서적)는 명화 자체에 주목한다.

 

미술 감상과 비평 방법에 주안점을 둔 책들로는 미국 미술평론가인 저자가 미술을 비평하는 방식과 그 가치를 소개하는 ‘미술비평 그림 읽는 즐거움’(아트북스), 미술가들의 작품 제작 동기와 작품을 분석하는 방법, 자주 쓰이는 미술용어 등을 쉽게 풀어쓴 ‘현대미술 감상의 길잡이’(시공아트), ‘누가 언제 그렸고 왜 그렸나’ 등 전시회를 찾는 관람객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중심으로 서양미술을 설명하는 ‘아트 오브 페인팅’(다빈치)을 소개한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미술평론가인 김광우 씨가 앤디 워홀을 비롯한 팝아트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도 독자들과 만난다.

 


 

<1>클림트 세기말의 황금빛 관능



◇클림트 세기말의 황금빛 관능/마키오 키니 지음/마로니에북스

 

《“예술가로서의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세상에 알려질 만한 유일한 것인 내 그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발견해야 한다.”》

 


예술공식 깨버린 ‘혁명가’   

 

이 책은 ‘유디트Ⅰ’ ‘키스’ 등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현란한 색채, 혁신적인 구성의 매혹적인 작품들로 잘 알려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에 관한 전기다. 클림트가 스승들의 아카데미적인 기법에서 멀어져 혁신적인 작업을 시도해 나가기까지 그 여정을 설명했다. 이탈리아의 미술비평가인 저자는 한 예술가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인생의 주요 사건들이 그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기별 대표작과 함께 살펴봤다.

 

클림트라고 하면 사랑의 황홀경과 에로티시즘이란 대담한 주제와 장식적이고 상징적인 형태의 표현, 황금빛의 찬란함을 떠올리지만 초기작부터 이런 면모가 엿보인 것은 아니다. 귀금속 세공사였던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클림트는 응용미술학교인 공예미술학교로 진학해 르네상스, 바로크 등 고전주의를 충실히 따른다.  

 

그가 오스트리아 예술운동의 개혁자이자 급진적인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로 자리 잡았던 것은 30세 이후부터다. 1892년 아버지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했던 동생 에른스트가 잇따라 세상을 뜬 뒤부터 그의 작품은 결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고전적 대칭이 아닌 비례적 균형이, 장식적 표현을 담은 금색이 이 시기의 ‘사랑’ ‘카를로스 의상을 입은 배우 요제프 레빈스키의 초상’ 등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1897년부터 그는 분리주의자로 전환한다. 분리주의는 ‘일군의 예술가가 예술의 개혁을 내세우고 아카데미즘과 부르주아적 보수주의를 고수하는 기존의 공식적인 조직과 단절하는 것’을 뜻한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가장 근대적이고 대담한 예술가들의 모임인 빈 분리파의 활동을 이끌며 분리파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의 작품이 완숙기인 ‘황금시기’에 접어든 것은 1901∼1909년으로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대표적이다. 길이 24m에 이르는 이 벽화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마지막 합창곡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클림트는 이 작품에서 여성적 관능에 악의적이고 파괴적인 가치와 평온과 위안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부여했다. ‘베토벤 프리즈’는 대성공을 거둔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으며 반향을 일으켰다.

 

클림트의 작품들은 파격적인 주제와 선정성 등으로 당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시회가 취소되기도 했고 그가 아카데미 교수로 지명되는 데도 걸림돌이 됐다. 나체 임신부의 모습을 그린 ‘희망’은 당국의 금지로 개인전에도 전시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잘 알려진 ‘키스’다.

 

이후의 클림트는 잘츠부르크 동쪽의 아터제 호반에서 일생의 친구이자 반려자인 에밀리 플뢰게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며 풍경화를 그렸다. 50점이 채 안 되지만 클림트 화풍이 반영된 독창적인 그림들이다.  

 

스토클레 프리즈(커다란 나무에서 뻗어나간 나선 모양의 가지들이 둥글게 말려 있는 당초무늬 벽화) 이후 꽃, 동양적 모티브 양식이 돋보이는 화려한 양식을 선보인다. 그는 1918년 뇌출혈 후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다양한 사진 자료와 그림이 수록돼 있다.[출처]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2>천년의 그림여행



◇천년의 그림여행/스테파노 추피 지음/예경

 

《“우리는 의견과 감정, 생각 등을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찾아낸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 요소이다. 지난 천 년 동안 이루어진 끊임없는 노력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일은 대단히 흥미롭고 지적인 모험이 될 것이다. 그 결과 아득히 먼 옛 문명에서 우리와 비슷한 감정과 정서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메시지’는 대부분 시각예술에서 발견된다. …그림은 본질적으로 음악이나 무용 같은 다른 유희처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화가 300명-작품 800점 ‘1000년의 미술사’

 

예수와 성모 마리아, 용을 그린 1000년대의 중세 작품부터 20세기의 낙서화가 미셸 바스키아(1960∼1988)까지 1000년의 서양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시대순으로 소개한 화가가 300명, 선명한 컬러로 함께 실은 이들의 작품이 800여 점에 이른다. 당대의 화풍에 대한 소개, 화가의 삶과 예술 경향에 대한 설명, 짧지만 명쾌한 그림 분석이 어우러졌다.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비중 있게 언급되는 작품은 모두 실렸다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 고야처럼 화가별로 작품을 소개하는 장도 있고 앵포르멜(추상표현주의), 팝아트처럼 당대의 미술사조로 구분된 장도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다. 이 책은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편집해 비교했다.

 

예컨대 질서정연한 사물의 배열, 그림 중앙 벽의 볼록거울에 비친 두 명의 결혼 증인의 묘사 등 그림 속 사물의 상징으로 유명한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의 초상’(영국 런던국립미술관 소장)을 그린 네덜란드 화가 얀 반에이크(1395?∼1441)를 소개한 부분에서는 화가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빛의 독특한 효과와 꼼꼼한 원근법을 보여주는 ‘대법관 롤랭과 성모 마리아’, 생생한 표정을 지닌 ‘한 남자의 초상화’, 반에이크의 세밀한 묘사가 극에 달한 ‘참사위원 반 데르 파엘레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를 ‘조반니 아르놀피니와…’와 비교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플랑드르의 대표적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1516)의 작품인 ‘세속적 쾌락의 정원’(1503∼1504년·스페인 프라도미술관 소장)은 지상낙원과 지옥의 인간과 기괴한 생물을 초현실적으로 그린 대작이다.

 

이 책은 이 작품을 여러 부분으로 나눠 정원 중앙의 둥근 연못은 젊음의 샘으로, 그림 전체에 등장하는 딸기류는 탐욕과 육욕의 상징으로, 죽은 물고기는 죄로, 책을 읽고 있는 코가 긴 인물은 악마로 의인화한 것으로 분석한다. 독자들은 그림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림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다.

 

화가나 작품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와 마태오를 죽이기 위해 교회로 난입한 살인자를 빛이 극적으로 비추는 그림(‘성 마태오의 순교’)을 그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가 대표적인 경우다.

 

‘빛의 작가’로 알려진 카라바조의 그림에 대해 양초나 횃불이 그림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그림에서 빛의 근원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출처]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3>미술비평 그림 읽는 즐거움


◇미술비평 그림 읽는 즐거움/테리 바렛 지음/아트북스

   

《“미술작품은 여러 다른 해석을 낳는다. 그리고 작품 해석은 의미를 낳는다. 평론(비평)이란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감응을 주의 깊고 명확하게 전달하여 독자들과 공감하기 위한 활동이다. … 비평적 담론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우며 미술과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그림 보는 눈 키우려면

 

미술비평에는 작품 제작 배경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와 감상 포인트가 담겨 있다. 미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오하이오주립대 교수(예술교육학)인 저자는 평론가의 비평을 중심으로 미술비평을 소개한다. 미술사에 획을 그은 평론가 얘기부터 현대 미술비평의 요소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이자 건축가로 미술비평이란 분야를 만든 조르조 바사리(1511∼1574)는 “비평은 독자(관람객)의 판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독자도 작품을 감상하고 판단할 능력과 지식을 길러야 한다며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근대 미술비평의 선구자로 프랑스의 저술가이자 비평가인 드니 디드로(1713∼1784)는 미술에서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며 작품에 대한 절대주의적 입장을 피했다. 비평을 읽기보다 작품을 직접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시인이자 미술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는 자신의 비평이 ‘강렬하고 이념적이며 당파적인’ 성격의 글이기를 바랐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작품을 만든 작가들은 거리낌 없이 깎아내렸다.

 

저자는 현대에는 비평 관점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말한다. 미술의 이념화에 반대하며 미학 그 자체에 주목하는 미국의 힐턴 크레이머(1928∼)부터 비평적 중립이란 신화에 불과하다며 이념적 의미를 강조하는 루시 리파드(1937∼)에 이르기까지 평론가들이 폭넓게 분포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또 현대의 미술비평은 네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묘사, 해석, 판단, 그리고 최종적인 이론화다.

 

묘사는 주제나 재료, 색상 등 작품에 드러난 정보를 모으는 작업이다. 어떤 평론가는 비평에서 ‘불타는 들판’이라는 그림의 주제는 “황폐한 벌판에 놓인 석판”으로 표현하고 ‘동전을 깔고 벌꿀로 코팅한 마루’는 “표면에 반짝이는 구릿빛”으로 묘사한다. 색상을 가리켜 “단색조의 푸른 금속광”이라고 묘사하는 평론가도 있다.

 

작품에 숨어 있는 의미를 끄집어내는 작업이 해석이다. 평론가 켄 존슨은 스푼과 컵을 그린 미술가 엘리자베스 머리의 작품 ‘나의 맨해튼’에 대해 “오렌지색 액체가 가득 찬 컵과 기묘하게 휘어지고 크게 부푼 스푼의 만남을 표현했다 “성교에 대한 몽상적 상징”이라고 해석했다. 저자는 해석은 주장이기 때문에 얼마나 논리적이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판단은 작품 가치에 대한 작업이다. 자연이 미의 기준이라는 사실주의, 예술가의 감성을 중시하는 표현주의, 예술은 사회와 무관하며 그 자체의 미학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형식주의, 예술은 사회를 표현하는 도구라는 도구주의 등은 전통적인 판단의 기준이다.

 

최근 들어서는 독창성이 중시된다. 판단은 해석과 마찬가지로 평론가가 독자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도록 설득하는 일. 이러한 묘사와 해석, 판단은 평론가가 최종적으로 자신의 비평을 이론화하는 재료가 된다.

 

저자는 “독자는 (다양한 미술비평에 대해) 어떤 것에는 일체감을 느끼고, 다른 것에는 공감하지 못하면서 결국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 간다”“비평은 독자가 자기 목소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출처] :황장석 기자  / 동아일보 

 

 

<4>천국을 훔친 화가들


 

◇ 천국을 훔친 화가들/노성두 지음/사계절

   

《“이 책은 천국을 훔친 화가들의 이야기다. 화가들이 훔쳐본 천국의 이야기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그들이 붓을 들기 전에 눈을 빛내며 홀로 마음에 비추어 본 천국의 풍경이다. 그들이 그린 천국은 때로 지상의 풍경을 닮았다. 인간의 삶의 터전이 이곳이요, 말씀이 빛이 되고 사람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성화에 숨은 상징과 실험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성경과 외경(外經)에 등장하는 내용을 표현한 그림들을 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무심코 지나쳤을 그림 속의 작은 부분에도 많은 이야기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1507년에 그린 ‘아담과 이브’를 보면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한 손에 선악과를 들고 걸어 나오는 이브의 표정과 태도에는 주저함이 없다. 결단에 찬 행동으로 비친다. 반면 아담의 표정에는 의혹과 망설임이 스친다. 아담의 걸음걸이는 주춤거리며 뒤로 젖힌 오른손에는 내키지 않는 거부의 심정이 표현됐다.

 

성경에 나온 동일한 이야기를 그렸는데도 화가의 해석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그림들을 비교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529년경)에서 등 뒤로 팔이 묶인 이삭은 입을 벌린 채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결박이 느슨해지면 달아나려는 듯 발에는 힘을 잔뜩 주고 있다. 반면 베로네세가 1585년경 그린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이삭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묶여 있지도 않으며 순종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소년 다윗의 이야기도 종교화의 단골 소재다. 저자는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세력이 커지자 이탈리아에선 약한 이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강한 적을 물리친다는 교리를 ‘다윗과 골리앗’의 그림을 통해 나타냈다”고 설명한다. 골리앗은 바티칸의 권위를 위협하는 프로테스탄트, 소년 다윗은 가톨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본 뒤 계략을 써서 밧세바를 빼앗는 이야기도 화가들의 창작 의욕을 불태우기에 적당한 주제다.

 

파리스 보르도네의 ‘밧세바의 목욕’(1545년)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 주제를 다뤘는지 눈치 채기 어렵다. 목욕하는 밧세바는 크게 그렸지만 이를 훔쳐보는 다윗은 그림 상단의 건물 2층에 좁쌀만 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밧세바의 알몸을 부각하고 다윗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처리하는 것은 15세기 이후의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도 시대를 따라 변했다. 15세기 중반 슈테판 로흐너의 ‘장미 정원의 성모’는 전반적으로 금빛 찬란하다. 라우렌티우스 마이스터가 이보다 앞서 그린 ‘천국 정원의 성모’도 인물의 배경이 온통 금빛이다. 그러다가 그림에서 금을 걷어내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1480년경 보티첼리가 그린 ‘성모자와 다섯 천사’에선 금빛 배경이 사라졌다.

 

얀 호사르트가 그린 ‘마리아와 아기 예수’(1430년경)에선 화가가 은근슬쩍 담은 상징이 재미있다. 예수를 감싸 안은 마리아의 오른손 엄지는 예수의 오른쪽 옆구리에 조심스럽게 닿아 있는데 훗날 로마 병사의 창에 찔리는 부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저자는 “화가들은 성서와 외경 기록, 교부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지만 한편으로 종교 주제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대담한 실험을 감행하는 일도 있었다” 말한다.

[출처] : 금동근 기자  / 동아일보 

   

 

 <5> 리더를 위한 미술 창의력 발전소


◇리더를 위한 미술 창의력 발전소/이주헌 지음/위즈덤하우스

   


《“흔히 창조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의 위치를 앞으로 이동시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출발점으로부터 한참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창조는 우리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출발점으로,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창조는 우리의 기원으로 돌아가 그 잠재된 힘을 적극적으로 분출해낼 때 이뤄진다.”》

 


창조하고 싶은가, 일상서 발견하라

 

‘미술=돈’이 된 시대. 하지만 이 말을 ‘미술품=투자 수단’으로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저자는 미술품이 감동과 위로를 주는 걸 넘어서 창조와 상상을 위한 영감을 제공해 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미술 작품과 화가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몰입, 연상, 결합, 전복 등 다양한 개념들을 끌어낸다.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며 자유로운 연상을 가능케 하는 게 바로 파격의 미학. 저자는 파격의 미학을 실천한 화가로 백남준의 예를 들었다. 제주도에서 칠성굿을 참관하던 어느 날, 그는 칠성신 위패를 가져오지 않은 무당이 순발력을 발휘해 칠성사이다 병을 준비한 걸 보았다.


막힘없는 무당의 융통성에 감탄한 백남준은 훗날 공산품인 텔레비전을 가지고 비디오 아트라는 신천지를 개척했다. 자신 안에 내재해 있는 연상의 힘을 끌어낸 사건 덕분이었다.

 

전치(轉置)로 번역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은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 ‘집단적인 창안’ ‘빛의 제국’에서 쓰인 대표적인 기법. 데페이즈망은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뜻한다.  

 

‘집단적인 창안’에서 그는 인어공주와 반대로 상반신은 물고기, 하반신은 사람인 이질적인 합성을 보여줬고 ‘빛의 제국’에서는 공존할 수 없는 낮의 하늘과 밤의 땅을 결합시켰다. 저자는 이를 통해 “데페이즈망은 단순한 파괴에 멈추지 않고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우연도 미술과 경영에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개념이다. 에른스트가 창안한 프로타주 기법도 우연에서 비롯됐다. 1925년 어느 날, 에른스트는 호텔에서 서성이다 우연히 닳은 나무 바닥에 눈이 갔다. 오랜 세월 마찰로 바닥의 나뭇결이 독특한 얼룩무늬를 형성했는데 그게 갖가지 환각을 불러오는 듯했다.  

 

그는 종이를 찾아 바닥 위에 놓고 미친 듯이 연필을 그었다. 초현실주의자로서 에른스트의 명성을 다져준 프로타주 기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우연이긴 하지만 에른스트가 이전부터 사물의 숨은 이미지를 찾는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운은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운은 단순히 기다려서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즐긴 결과물인 셈이다.

 

저자는 발견의 개념도 다시 정의 내린다. 많은 사람이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고 피카소는 말했다. 이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는 게 발견이라는 뜻이다.

 

결국 피카소는 화상 칸 바일러가 아들에게 선물한 장난감 폴크스바겐으로부터 원숭이의 얼굴을 보고 ‘개코원숭이 어미와 새끼’라는 조각품을 만든다. 이를 통해 저자는 “머리를 쥐어짜 구상하지 않고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진정한 발견이자 위대한 창조”라고 강조한다.  

[출처] : 염희진 기자 / 동아일보 

 

 

<6>파워 오브 아트


◇ 파워 오브 아트/사이먼 샤마 지음/아트북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벽화에서 살가죽이 벗겨진 성 바르톨로메오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냈고, 조르조네는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로 자신을 재현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방탕한 바쿠스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뒤 살해된 골리앗의 모습으로 마감했다. 왜 그는 자신을 죄인의 모습으로 재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명작에 담긴 예술가들의 고뇌 

 

안내를 들으며 미술관을 거닐고 나면 그림과 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영국 BBC가 2006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토대로 쓰인 이 책은 그런 속단을 경계한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유럽 곳곳을 취재하며 제작을 주도한 저자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미술사학 교수다. 렘브란트, 고흐, 피카소를 미뤄두고 책 첫 장에 풀어낸 카라바조 이야기는 그의 작품 ‘메두사의 머리’만큼 강렬하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걸려 있는 ‘메두사의 머리’는 공포영화 클라이맥스처럼 섬뜩한 그림이다. 잘려나간 목에서 터져 나온 질척한 핏줄기, 일그러진 입, 치켜뜬 채 굳어진 눈동자는 머리카락의 뱀들보다 오싹한 기억으로 남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림은 1580년대 후반 유실됐다. 카라바조의 표현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지만 다빈치의 화풍에 익숙한 독자는 글을 읽으며 두 메두사의 차이를 어렴풋이 짐작해 보게 된다.

 

다빈치는 정확한 인물 묘사를 위해서 시체 해부를 주저하지 않은 과학적인 예술가다. 반면 카라바조는 허리춤에 늘 칼을 차고 다니며 길거리 싸움질을 일삼은 망나니였다. 그는 후원자인 델 몬테 추기경의 권위를 등에 업고 사형장과 감옥을 맘대로 드나들었다. 거기서 눈으로 채집한 고통이 카라바조의 화폭에 격정적인 사실감을 부여한 것이다.

 

위태로운 망나니짓을 일삼던 카라바조는 결국 테니스장에서 사소한 다툼 끝에 상대를 칼로 찔러 죽인다. 현상금이 걸린 살인자 신세가 된 그는 말년에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에서 메두사의 머리만큼 많은 피를 뿜고 있는 목을 또 하나 그린다. 처참하게 뭉개진 골리앗의 머리에 새겨 넣은 카라바조의 얼굴은 속죄를 머금은 우울한 자화상이다.

 

제목에 붙은 ‘파워’는 예술 자체의 힘보다는 작품의 의도를 관철한 예술가들의 의지를 가리킨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단순히 손재주가 훌륭한 장인 이상의 무엇이 되고자” 치열하게 싸웠다. 그 싸움의 결과물을 전시한 갤러리는 점잖고 차분하며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걸작에는 관습에 도전한 위험한 열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후원자의 나태한 주문에 교묘히 도전한 렘브란트. 정치적 상황과 대결한 다비드와 터너, 피카소. 돌을 쪼개 자신을 변호한 베르니니. 오직 예술적 사명에만 몰두한 반 고흐와 로스코. 저자는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감수한 갈등과 고통이 어떻게 작품 속에 녹아들었는지 차분히 들려준다.

 

“예술의 힘이란 결국 경탄의 힘이다. 예술은 결코 익숙한 세상을 복제해 제시하지 않는다. 예술은 아름다움의 구현을 넘어 익숙함을 파괴하려 애쓴다. 그 위험한 도전의 순간에 제시한 완벽한 해답은 예술가 자신조차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것이다.”

 

5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현학적인 표현이나 해석이 별로 없어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간다.  

[출처] : 손택균 기자 / 동아일보 

 

 

<7> 워홀과 친구들

 

 

◇워홀과 친구들/김광우 지음/미술문화

 

 《“워홀이 같은 이미지를 50번, 100번 또는 200번씩 반복해서 제작할 때도 그 이미지들은 같지 않고 조금씩 달랐다. 이렇게 해서 그는 똑같은 반복이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미학은 그의 고유한 예술성으로 인식됐다. 뒤샹의 ‘이미 만들어진’ 것에서 워홀에게로 와서 ‘대중적인’ 것이 됐으며, 워홀이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이미 만들어진’ 또는 ‘대중적인’ 것은 하나의 고유한 물질로 인식됐다.”》 

 


순수-상업미술 경계서 피어난 팝아트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1928∼1987). 죽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미술사학자와 평론가에 따라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열어젖힌 선구자로 극찬하는가 하면, 얄팍한 재능을 이용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이 책에 따르면 워홀은 말년에 “난 항상 상업미술가였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다면 그의 예술은 순수미술이란 측면에선 언급할 가치가 없는 셈인가. 하지만 바로 이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야말로 워홀의 예술 ‘팝아트’의 출발점이다.

 

미국 뉴욕시립대 등에서 예술사와 철학을 공부한 저자는 워홀이란 인물을 통해 바로 이 팝아트가 만개했던 1960∼80년대 미국 ‘뉴욕파’ 2세대를 들여다본다.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잭슨 폴록(1912∼1956)이 활동하던 1940, 50년대가 미국 뉴욕파 1세대라면, 팝아트의 정신적 대부라 할 수 있는 마르셀 뒤샹(1887∼1968)부터 워홀을 지나 ‘낙서화가’ 장미셸 바스키아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이 2세대에 해당한다.

 

이 책의 재미도 여기에 있다. 단지 워홀이란 인물에 초점을 맞춘 자서전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를 함께 움직였던 미술인과 예술계 동향을 아우른다. 20세기 ‘이미 만들어진(ready made)’ 대중적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복잡한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삶의 모습을 비춘 팝아트의 속살이 잘금잘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작품 ‘행복한 눈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1960년대 워홀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을 보자. 둘은 당시 만난 적도 없음에도 우연히 비슷한 종류의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워홀은 만화를 이용해 ‘우아하면서도 야단스러움’을 창조하는 데 일가견이 있던 리히텐슈타인과 “충돌하는 게 싫어서인지 두려워서인지” 곧 만화를 창작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워홀의 작품 하면 떠오르는 메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온 건 그 이후였다. 묘한 경쟁구도가 워홀의 대표적 ‘반복미학’을 표현하는 실크스크린 초상화를 탄생시킨 셈이다.

 

“워홀이 자신을 가리켜 상업미술가라 한 이유는 그가 작품을 상품처럼 제작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어떤 작품을 제작하면 좋을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물었으며,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거리가 되는 내용을 찾아 작품으로 만들었다. 실크스크린 초상화는 대부분 이런 이유에 따라 제작된 것이다. 이 점은 팝아트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술 관련 책들은 문외한에겐 마냥 쉽지만은 않다. 우선 무수히 등장하는 미술가 이름부터 낯설다. 하지만 팝아트는 ‘예술인 체하는’ 권위를 벗어던진 대중적 친숙함이 무기 아닌가. 미술에 관심 없던 이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출처]: 정양환 기자  / 동아일보 

 

 

<8> 미술에 대해 알고싶은 모든것들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이명옥 지음/다빈치

  

《“뭉크는 어릴 때부터 우울증과 신경쇠약증세를 보였어요. 5세 때 어머니가 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났으며 14세 때 사랑하던 누이 소피마저 같은 병으로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남동생 안드레이와 여동생 로라도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쳤습니다. 뭉크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에 시달리는 괴로운 심정을 작품에 고스란히 쏟아 부었어요.”》 

 


‘교과서 그림’ 읽어주니 참 쉽죠 

 

좁은 다리 위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이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있는 뭉크의 판화 ‘절규’는 익숙한 작품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1997년 여름 ‘교과서 미술’ 전시회를 기획했던 저자는 초중고교 교과서에 실린 80여 개 미술 작품을 소재로 책을 엮었다. 말을 건네듯 경어체로 풀어 썼다. 

 

저자는 미술을 서양의 풍속화, 한국의 풍속화, 누드화, 자화상, 정물화, 풍경화 등 17개 항목으로 구분했다.

 

“‘추상’의 어원은 ‘뽑아낸다’는 뜻을 지녔어요. 눈에 보이는 사물과 이별하고, 대상에 숨겨진 본질적인 특징을 추출해 내는 것이지요. 추상화는 감상이 어렵다는 푸념은 미술작품을 대할 때 습관적으로 그림이 어떤 형상을 그렸는가를 찾기 때문입니다.”

 

1910년 어느 날 칸딘스키는 해 질 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한 그림을 발견하고 황홀함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거꾸로 세워놓은 자신의 그림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그림 속 구체적 사물이 선과 색, 형태가 갖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작품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

 

정물화는 영어로 스틸 라이프(still life), 프랑스어로 나튀르 모르트(nature morte)라고 한다. 각각 정지된 생명, 죽은 자연이라는 뜻이다. 17세기 이전 서양 사람들은 미술은 역사, 종교, 신화 같은 묵직하고 근사한 주제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꽃, 과일, 야채, 그릇, 악기, 책, 실내용품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 그림의 소재가 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부터다.

 

무역업으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의 부유층은 체면이나 전통보다 물질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들은 유럽 귀족들이 좋아한 웅장하고 화려한 그림보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대상을 담은 그림을 좋아했다. 저자는 특정한 미술 장르의 성립 배경이 된 정치 사회적 상황을 작품과 함께 전한다.

 

“이 자세를 취하면 허리는 잘록해지고 엉덩이는 풍만해져 여체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오늘날 미인대회 참가자들의 몸매를 살펴보세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콘트라포스토 포즈를 취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제작된 조각품 ‘밀로의 비너스’를 설명하며 현대의 미인대회 이야기를 꺼낸다. 밀로의 비너스는 한쪽 다리에 무게를 싣고 반대쪽 다리를 살짝 구부린 이른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현대 여성들이 ‘S’자형으로 부드럽게 구부러진 허리선을 강조하기 위해 연출하는 모습과 같다.

 

사립 미술관 관장으로 ‘이발소 명화’전 등 대중에게 친숙한 그림을 소재로 전시를 열었던 저자는 서문에서교과서는 미술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친숙하게 여기는 교과서를 통해 미술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선명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처] : 조종엽 기자  / 동아일보 

 

 

 

<9>그림과 눈물

 

 

◇그림과 눈물/제임스 엘킨스 지음/정지인 옮김

   

《“학자들은 너무 많은 글을 읽어서 그림과 접촉할 능력을 거의 상실했고,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반응은 신뢰할 수 없으며 무의미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검증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야말로 그림을 벽 장식물 이상의 뭔가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요소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느낀 만큼 보인다! 

 

미술사와 관련해 한국 사회에선 잘못 인용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진 글귀가 있다, 유홍준 씨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정조 시대 미술비평가 유한준의 글을 원용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이다.

 

그 원문은 이렇다. 알게 되면 참으로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되며, 안목이 트이면 이를 수집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 유한준의 글에선 아는 것(知)이 출발점이다. 그런데 유홍준 씨의 해석에선 아끼는 것(愛)이 아는 것을 앞서는 것으로 둔갑한다.

 

이를 꿈보다 해몽이라고 치켜세우거나 한국 사회의 지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소극으로 치부하기보다 그런 엉뚱한 해몽을 환영해 마지않은 대중의 심리를 읽을 필요가 있다.


거기엔 반만년 한국미술을 교과서와 박물관에 박제시킨 고고미술사학계에 대한 반발심리와 애정만 있다면 그동안의 지적 열등감은 쉽게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일종의 자기최면이 숨어 있다.

 

서양미술을 다룬 이 책도 그런 대중적 심리를 반영한 책이다.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누구보다 그림을 많이 접하고 잘 안다는 미술사학자일수록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경험을 한 경우가 왜 드문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답은 “정보의 더미는 진정 마음으로 느끼는 우리의 능력을 짓눌러버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관에서 설명판을 흘낏 보거나 미술서적을 들춰본 사람은 누구나 그림에서 진정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서서히 상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知)가 승하면 진정 감동하는 마음(哀)과 아끼는 마음(愛)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눈물을 자아내는 그림은 따로 있다. 저자는 이를 3가지로 분류했다. 절대적 존재의 충만함과 신성함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그런 절대적 존재의 부재를 드러내는 그림,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결빙됐거나 어긋나 있는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책 표지에 그려진 디리크 바우츠의 ‘울고 있는 마돈나’ 같은 중세 종교화가 첫 번째에 해당한다면 황량한 풍경을 담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태양의 위치와 나무들의 그림자가 어긋난 반 고흐의 ‘올리브나무’는 세 번째다. 미국의 현대화가 마크 로스코의 검은 직사각형 그림들은 셋 모두에 해당한다.

 

이들 그림은 미술을 독립적 예술로 인식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래 눈물을 미심쩍은 것, 객관적이지 못한 것으로 바라본 서양미술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눈물의 과잉만큼 눈물의 결여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술에서 눈물을 제거하는 것은 사랑 없는 삶에 안주하는 것과 같다며.

 

그렇다면 미술의 이해에서 앎과 사랑 중 무엇이 먼저여야 할까. 해답은 앎과 눈물이 병행 가능하다고 믿는 저자의 말에 이미 담겨 있다. “눈물은 명료한 시야를 흐리지만, 균형 잡힌 이해의 가능성까지 씻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출처] : 권재현 기자  / 동아일보 

 

 

<10>아주 특별한 관계


 

《“만남과 이별이 역사를 만들고 예술을 일군다. 그 만남의 상공을 배회한 열망을 더듬어 가는 일은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나는 여긴다. 그것이 순정한 사랑이든 애정이든 집착이든, 또는 단순한 우정이든 규정지을 수 없는 기묘한 인연이든. 근·현대 미술사에 빛나는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에게 바치는 연서라 할 만한 나의 그림을 함께 묶은 것이 이 책이다.”》

 


그녀 없는 그, 그 없는 그녀였다면…

 

고독한 몸부림에서 예술이 피어나기도 하지만, 예술가도 ‘사회적 동물’이다. 이 책은 예술가가 맺은 특별한 관계에 주목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알마 말러와 오스카 코코슈카, 오노 요코와 존 레넌…. 칼로는 리베라에 대한 고통스러운 애증을 동력 삼아 피투성이 자화상 시리즈를 그렸고, 코코슈카는 말러와 헤어진 뒤 죽을 때까지 65년간 실연의 상처를 부여안고 표현주의 걸작을 만들었다.  

 

화가인 저자는 “예술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의 파트너십”이라면서 “모든 일이 인연에 따라 달라지며 여러 인연과의 합동 작업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초현실주의를 창시한 세 사람, 시인 폴 엘뤼아르(1895∼1952), 화가 막스 에른스트(1891∼1976)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관계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갈라’라 불렸던 슬라브계 여인 엘레나 디미트리예브나 디아코노바(1894∼1982).

 

풋내기 시인 엘뤼아르와 1917년 결혼한 갈라는 1920년대 초 자기 집에 머물던 에른스트와 삼각관계를 이어가더니 1932년 무명 화가 달리와 새 삶을 시작한다. 세상은 수군댔다. 이 미친 사랑은 곧 끝장날 거라고. 하지만 달리와 갈라는 50여 년을 동행했다.  

 

달리는 그림에 ‘갈라와 살바도르 달리’라고 서명했다. 그림 속 여인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갈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리는 갈라의 기획과 관리를 통해 인기 작가로 부상했다. 화가는 돈에 과도하게 집착했고 그 곁에선 늘 갈라가 웃고 있었다.

 

갈라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에 있다. 무명 예술가의 열정을 예술로 승화하도록 이끈 뮤즈 혹은 탐욕의 화신. 갈라는 지독한 에고이스트였지만 달리만은 어느 누구보다 깊게 이해했다. 저자는 “그들 부부만의 진짜 모습을 누가 알겠느냐”고 반문한다.

 

화가 마리 로랑생(1883∼1956)과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는 사생아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5년의 연애 기간에 둘 다 예술적 영광과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앙리 루소는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그림에 이들을 담았고,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와 친구들’을 그렸다.

 

지독히도 개성 강한 이들은 상처만 남긴 채 헤어졌다. 아폴리네르는 전쟁 때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이라고 못 박았던 로랑생은 38년을 더 살다가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가슴에 얹고 숨을 거뒀다.

 

서문의 제목 ‘오노가 레넌을 만나지 않았다면’은 이 책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주는 한 문장이다. ‘과연 레넌이 없는 오늘날의 오노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또 오노가 없었다면 말썽꾸러기 레넌이 저항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만남은 서로를 고양시키고 거듭나게 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출처] : 조이영 기자  / 동아일보  

 

 

  <11>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현대의 문맹은 이미지를 못 읽는 것이다. 현대는 예술 산업으로 고부가가치를 내는 시대며, 미술은 스트레스와 상처가 많은 삶을 치료하고 영감의 뜨거운 에너지를 준다. 감춰진 우리 내면의 이야기와 내밀한 충동과 욕망을, 갈등과 고뇌를 풀어헤쳐 보이는 창작 과정은 큰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목숨을 걸어 상투적이고 지루하면서 폭력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진보적인 작업들은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상식-상실에 저항하는 ‘꽃다발 폭탄’

 

마룻바닥에 큰 해바라기가 피어있다. 그 해바라기를 한 소년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키스 에드미어의 ‘해바라기’(1996년)는 초현실적 이미지로 의문을 갖게 한다. “왜 해바라기가 여기 있지.” 소년의 표정도 바로 그렇다. 이는 데페이주망, 어떤 사물을 의외의 장소에 놓아 낯설게 하는 방식이다.

 

오줌이 담긴 투명한 통 속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 상을 담가놓고 촬영한 앙드레 세라노의 ‘오줌 구세주’(1987년)는 어떤가. 이 작품은 미술계를 넘어 종교계와 의회에서 신성모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세계 미술계에 이름이 알려진 30, 40대 작가들 70여 명의 작품을 소개하며 ‘난해한’ 현대미술의 길잡이를 시도한다.

 

여기 소개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낯설고 불편하고 보기 민망하거나 섬뜩할 때도 있다.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마네킹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식을 갖춘 이 작품들은 파격을 추구하며 신선함과 놀라움을 안긴다.

 

벌떡 서있는 초록 개, 박제된 황소, ‘나는 절망적이다’(I'm desperate)라는 글을 들고 있는 말쑥한 양복차림의 청년, 소의 머리와 타조의 몸을 섞은 작품 등.

 

저자는 낯선 현대미술이 매혹적인 이유에 대해 ‘끝에서 끝까지 가려는 정신을 보여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기에 소개한 작가들을 상식과 상실에 저항하는 자들이며 폭력적인 세상에 폭탄 같은 꽃다발을 던지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기발하고 발칙한 작품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이해한 현대미술의 공통점을 제시한다. 현실에 대한 비판, 섹슈얼리티, 욕망과 상실, 삶과 죽음, 일상성 등 어느 분야를 다루든 비장함이나 낯섦 속에 유쾌함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손잡이 중간 부분이 불룩한 ‘임신한 망치’(김범)나 얼굴보다 큰 가슴에서 모유를 뿜고 있는 마네킹 ‘미스 쿠’(무라카미 다카시) 등은 현대 미술의 유머 코드를 보여준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도대체 예술인지조차 모르겠다는 통념에 대해 저자는 엽기적 성향으로 미술계를 경악하게 한 데미안 허스트(1965∼)의 말을 인용한다.

 

“나한테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거다.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걸 들려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현대미술은 보기 좋으면 좋고 보기 싫으면 싫은 거다. 굳이 미술사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서 보고 ‘와 굉장한데’ 하고 감탄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지, 그 이상 알 필요가 뭐 있겠는가.”

 

시인인 저자는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에 맞게 3, 4명의 작가를 묶어 갈래를 친 다음 그에 맞는 시를 소개하며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출처] : 서정보 기자  / 동아일보 

 

 

<12>세계 명화 비밀


 

◇세계 명화 비밀/모니카 봄 두첸 지음·김현우 옮김

 

  《“유명하다는 것은 그만큼 왜곡의 위험이 많다는 것이다. ‘다비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벌거벗은 남자’이고, 미켈란젤로 자신이나 후대의 작가들에 의해서도 자주 모방되었다. 진품이 보관돼 있는 피렌체 지방의 기념품 가게에는 수없이 많은 다비드들이 진열되어 이 위대한 걸작을 기림과 동시에 왜곡하고 있다.”》

   


다비드상의 머리가 큰 이유는? 

 

이 책의 원제는 ‘걸작의 사생활(The Private Life of a Masterpiece)’이다. 영국의 전시 기획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서양미술사에서 작품 8개를 고른 뒤 가능한 한 모든 각도에서 조명해 각각의 작품에 대한 ‘전기(傳記)’를 써보겠다는 목표로 이 책을 펴냈다.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네의 ‘올랭피아’, 고흐의 ‘해바라기’, 뭉크의 ‘절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폴록의 ‘가을의 리듬’ 등 8편의 걸작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와 화가의 개인사, 당시 사회 분위기, 시대적 배경, 그리고 작품이 세상에 나온 후에 겪은 일들을 다뤘다.

 

첫 번째 걸작은 다비드 조각상. 이 책은 다비드가 조각되기 전, 대리석 덩어리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카라라 지역에서 채석된 이 초대형 대리석은 원래 1464년 조각가 아고스티노 디 두초가 거대한 다비드상을 의뢰받고 주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두초가 작업을 그만둔 뒤 이 대리석은 25년간 성당 작업실에 골칫덩어리로 방치돼 있었다. 1501년 26세였던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 작업을 다시 맡게 되면서 초대형 대리석은 빛을 보게 됐다.

 

대리석은 크기만 컸지 두께는 얇았다. 가장 얇은 부분은 45cm밖에 되지 않아 한 번만 손을 잘못 움직여도 작품 전체가 망가질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실수 없이 대리석을 잘라내는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먼저 점토로 빚은 다비드 모델을 만들었다. 이를 물그릇에 담근 뒤 물이 빠지면서 점토 조각이 드러나는 부분을 보면서 다음에 해야 할 작업을 파악했다.

 

다비드상은 당초 피렌체 대성당 버팀목 높은 곳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해부학적으로 볼 때 다비드의 머리와 손이 지나치게 크고, 눈썹도 많이 튀어나와 있으며 이마의 주름살이 과장되게 잡혀 있는 것도 애초에 높은 곳에 설치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인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지금은 고전이지만 제작 당시에는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썼던 단선적 원근법을 거부하고 스스로 ‘공기 중의 원근법’이라고 불렀던 독특한 투시법을 사용했다. 경계선을 흐릿하게 하고 밝은색을 사용함으로써 작품 속의 공간이 뒤로 물러나는 듯한 환상이 들게끔 한 것이다.

 

그는 ‘스푸마토’라는 독창적 기법을 개발했는데 톤의 조절을 통해 경계선을 없애는 방법으로 이를 사용하면 그림에서 선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모나리자’의 모호한 표정은 딱딱한 경계를 지우는 이런 기법 덕분이었다. 최근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과 모나리자를 합성해 본 결과 두 초상화에 그려진 얼굴의 면면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모나리자’를 그리는 동안 그 스스로도 직접 모델 역할을 했을 거라는 결론이다. 

[출처] : 강수진 기자 / 동아일보 

  

 

 <13>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지음/신성림 옮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어쩌면 내 그림의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영육 바쳐 그린 ‘뿌리 깊은 고뇌’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이 책은 고흐가 평생의 후원자이자 변함없이 마음을 나눈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이 편지는 600통이 넘는다. 이 중 고흐의 삶과 사랑, 예술세계를 진솔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글들과 동료화가 고갱, 베르나르 등에게 보낸 편지, 테오가 형에게 보낸 답신들을 모았다.

 

이 책의 매력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고흐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후대 평론가의 평가나 선입견, 세월 등으로 덧칠되지 않은 명화 ‘고흐’의 발견 자체이기도 하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여러 편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잘 알려진 대로 돈과 사랑과 예술이다. 세 단어는 고흐의 삶을 평생 따라다니며 언제나 고통스럽게 그를 짓눌렀다.

 

수줍지만 내면에 뜨거운 불의 열정을 지닌 스무 살 청년은 19세의 하숙집 딸에게 구혼했다 거절당해 충격을 받는다. 몇 해 뒤 그는 사촌 케이에게 구혼하지만 다시 거절당한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하거나 할 것이다….”

 

당시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내용이다.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삶과 예술 활동을 지속하던 고흐의 인생에서 매춘부 시엔과의 만남을 빼면 그의 사랑은 언제나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림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했다는 점에서, 그 고통은 예술과 생명의 원천이 됐다.

 

고흐는 가족과의 화목한 관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사랑, 당대 화가로서의 성공적인 평가 등 그 어느 하나도 손에 쥘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테오는 경제적 후원자일 뿐 아니라 언제나 매달릴 수 있는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이 편지에는 고흐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글도 실려 있다. 테오는 형이 프랑스 남부로 떠나자 여동생 윌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아파트에서 나 혼자 남고 보니 텅 빈 느낌이구나.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하겠지.”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쏴 다락방의 침대 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틀 뒤 고흐는 동생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숨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 테오도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고흐는 사망할 당시 지니고 있던 부치지 않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화가는 무슨 생각을 하든, 돈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래, 정말 우리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 버렸다.’ 

[출처] : 김갑식 기자 / 동아일보 

 

 

<14> 현대 미술의 빗장을 따다

 

 

《“‘현대 미술(modern art)’이라는 말은 오늘날 일상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이 시기적으로 언제부터인지, 어떤 미술품을 가리켜 ‘현대미술’이라고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이와 같은 여러 견해 중에서 나는 현대미술이 인상주의전과 함께 출발했다는 주장에 대해 긍정적이다.”》

 


일상성에 주목한 인상주의

 

에드가르 드가, 클로드 모네, 조르주 쇠라, 반 고흐, 폴 고갱….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대표작 한두 점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인상주의 작품은 마치 ‘서양 회화의 전형’처럼 보이곤 하지만 인상주의가 처음 등장하던 당시만 해도 이 화풍은 도발을 넘어 혁명적인 시도였다. 큐레이터이자 홍익대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저자는 이 책에서 19세기 유럽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태동한 인상주의의 의의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인상주의 이전 미술의 주류는 신고전주의였다. 인상주의는 신고전주의와 그림의 주제, 등장하는 인물, 색채 면에서 대비된다. 신고전주의는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극적인 암시를 지니는 풍경을 바탕으로 했으며 고대신화와 성서 속의 인물들을 주로 등장시켰다.  

 

하지만 인상주의 작품들에서는 역사나 교훈이 없으며 일상의 풍경이나 갑남을녀를 그려냈다. 색채에 있어서도 인상주의 작품들은 신고전주의와 달리 물감을 충분히 혼합하지 않고 색을 캔버스에 그대로 바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대표적인 이들이 ‘점묘파’라 불리는 신인상주의 화가들이다.

 

인상파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살롱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 화단의 관습과 연관이 있다. 신고전주의자들의 입김이 거셌던 살롱전에 대한 미술계 안팎의 불만이 고조됐는데, 고답적인 기준으로 매년 수천 명의 출품자가 떨어졌다.  

 

낙선화가들을 중심으로 살롱전에 대한 반대가 극에 달했던 1863년, 나폴레옹 3세는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살롱전 바로 옆에 ‘낙선작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에서 음란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에 충격을 안겼던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등이 전시됐다.

 

관전인 살롱전에 연이어 낙방하고, 몇 년 동안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던 무명화가 30명이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첫 인상주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때 참여한 작가가 모네, 드가, 르누아르, 세잔, 피사로 등이다. 이들의 전시회에 대해 “벽지용 드로잉도 이보다 완성도가 나을 것이다” “화폭에 물감과 붓을 들고 아무 색이나 되는 대로 처바른다” 등 혹평이 이어졌지만 자기 그림에 대한 이들의 신념과 자신감으로 전시회는 8회까지 이어졌다.

 

인상주의자들은 자연풍광과 인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를 제시한 19세기 사진기술의 발달과 당시 유럽에 널리 퍼졌던 일본의 판화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저자는 기존 미학을 해체하고 권위를 부정한 이들의 ‘열린’ 정신이 쇠라, 폴 시냐크의 신인상주의, 세잔, 고갱, 고흐의 후기 인상주의로 이어졌으며 뒤이어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으로 발전해가는 모태가 됐다고 분석한다.

 

인상주의를 세계에 알린 화상 폴 뒤랑뤼엘과, 신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후원자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 이들을 지지하거나 경제적으로 후원해 준 에밀 졸라, 샤를 보들레르, 귀스타브 카유보트 등에 대한 자료도 수록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도 간략히 소개했다. 

[출처] ; 박선희 기자  / 동아일보 

 

 

 <15> 알기 쉬운 현대미술 감상의 …

 

 

◇알기 쉬운 현대미술 감상의 길잡이/필립 예나윈 지음/시공아트

 

 《“미술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미술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더라도 너무 안이한 해결책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술은 여전히 우리가 세계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다. 때로 과거의 미술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일지라도 미술은 여전히 정신적인 면에서, 영감이라는 측면에서, 심지어 이성적인 면에서 유용한 의미를 지닌다.”》 

 


“어렵다” 불평 말고 해석을 즐기라 

 

이 책은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작품 제작 동기를 유추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입문서다.

 

뉴욕 근대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 총책임자인 저자는 “미술이 아주 생소한 언어처럼 보이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미술은 추상성, 비정상적인 작품 크기, 통념에 반하는 주제와 형식, 불명료하고 혼란스러운 의미, 천박하고 조잡해 보이는 제작 기법 탓에 사람들에게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캔버스에 아무런 형상 없이 한 가지 색만 칠해놓거나 무의미하고 불규칙적인 형상이 반복되는 그림을 보고 나면 “저런 것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현대미술이 심리적으로 생소하고 달갑지 않은 것은 현대에 들어와 작가 개인의 정체성이 강조되면서 작가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주제, 재료, 기법 구축 방법을 찾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을 감상하려는 이들에게 저자는 ‘미술이 쉬웠으면’ 하는 생각부터 바꿀 것을 요구한다. 의학과 자동차 기술의 전문성은 받아들이면서 미술을 아무 노력 없이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특별히 습득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적어도 상당한 양의 체험과 경험,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술은 단지 아름답고 주어진 틀에 들어맞는 것이거나 편안한 느낌을 주는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다. 미술의 가장 만족스러운 기능은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켜 작품 주제와 양식, 재료, 기법의 애매한 점을 발견해 추론하고 해석하는 게임을 즐기는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다양한 작가, 그림을 통해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법을 설명한다.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1885년경 작품 ‘수영하는 사람’은 어색한 공간 구성과 색채가 그림에 표현된 인물과 배경의 사실성을 떨어뜨린다. 세잔은 이를 통해 그림의 내용보다는 물감을 칠한 기법에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1911년 작 ‘붉은 화실’에서 화가가 주제를 나타내는 방식을 찾는다. 테이블 위의 소묘 도구, 쌓아 놓은 그림들, 텅 빈 액자 등 마티스의 작업실을 그린 이 작품은 붉은색 배경이 강렬하다.  

 

그런데 그림상의 왼쪽 벽과 뒷벽이 만나는 선이 없어 공간에 대한 감각이 잘 생기지 않는다. 저자는 작업실을 그렸지만 그림은 3차원이 아니라 2차원의 평면예술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한다. 또 가구들은 윤곽선만 있고 색채가 없다. 온통 붉은색이다. 이는 마티스가 강렬하고 따뜻하지만 공격적인 붉은색을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저자는 예술성이 뛰어난 미술 작품의 제작 동기, 함축적 의미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를 포함해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 작가의 작품과 설명이 담겼다. 책 마지막에는 아르누보, 바우하우스, 다다, 팝 아트, 퍼포먼스 아트 등 많이 쓰이는 미술용어 30여 개를 소개했다.  

[출처] : 윤완준 기자 / 동아일보 

 

 

<16>알베르토 망구엘의 나의 …

 


 

◇알베르토 망구엘의 나의 그림 읽기/알베르토 망구엘 지음/세종서적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의해 해석된 그림이다. 한마디로 아는 만큼 보는 것이다. 이는 마치 단어와 문법의 구문을 모르고서는 그 언어를 읽어낼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고흐가 그린 밝은 색의 고기잡이배들을 처음 보는 순간, 나는 뭔가 내가 알고 있던 것이 그 안에 반영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이미지들이 그림에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가를 알면 그림이 보인다 

 

위대한 작가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그들이 쓴 책에서 끄집어낸 ‘독서의 역사’로 알려진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림 읽기를 시도한다. 언어와 달리 고유한 문법과 의미체계를 상정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작가의 이야기와 그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그림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은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여성작가인 미국의 조앤 미첼(1925∼1992)이다. 저자에게 미첼은 침묵하려 했던 작가. 생전에 “나는 나 자신을 잊고 싶었다. 자의식을 갖는 순간 나는 그림을 중단했다고 말할 만큼 작품에서 명확한 의미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대표작인 ‘두 대의 피아노’(1980년)에서 표현한 노란색의 짧은 선들과 흰색 공간을 예로 든다. 25년의 결혼생활이 파탄 난 직후 이 작품에 매달린 미첼에게 노란색 선들은 자신의 뒤에 숨어 있는 어두움,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흰색 공간은 침묵 그 자체이자 청각장애인이었던 어머니의 색. 미첼 스스로가 “흰색이 침묵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의 내부에 어떤 종류의 침묵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

 

초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가인 로베르 캉팽(1378∼1444). 저자가 보는 캉팽은 그림 소재를 통해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한 화가다. 저자는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화열(火熱)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에서 성모 마리아가 젖을 물리기 위해 내어 놓은 젖가슴에서 다양한 함의를 읽어낸다.  

 

탈무드에서 여성의 젖가슴은 부모의 사랑이지만 캉팽과 동시대 화가였던 프랑스의 장 푸케에게는 관능미였으며 기독교에서 마리아의 젖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캐나다 태생의 화가 메리애나 가트너(1963∼)는 ‘악몽의 이미지’를 그리는 화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온몸에 문신을 한 채 무표정한 아기를 그린 ‘디아블로 베이비(Diablo Baby)’로 알려진 가트너는 “아름다운 것과 불길한 것을 혼합하는 전략”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 특성을 혼합해 모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로 평가된다.

 

아버지의 유전적 영향으로 얼굴이 고양이처럼 털로 뒤덮여 고통 받았던 이탈리아의 여성화가 라비니아 폰타나(1552∼1614)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저자는 사람의 몸에 짐승의 얼굴을 그린 듯한 가족의 초상화와 자화상을 그린 화가에게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아픔을 읽어낸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인 이수스 전투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인간의 자화상’을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화가 필록세누스, 여성을 짓밟는 잔인한 남성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던 파블로 피카소, 흑인 여성 노예와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브라질의 천재 조각가 알레이자디뉴 등 12명의 예술가와 작품세계를 담았다. 

[출처] : 황장석 기자 / 동아일보 

 


 <17>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권용준 지음/살림

    

《“그림 속에 숨겨진 테마를 읽는다는 것은 그림 속 오브제들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면서 표현에 내재된 인간의 다양한 욕망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그림이란 단순히 시각적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 해독이라는 지적 수고를 요구하는 대상임을 드러내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회화란 예술가의 세계관과, 한 시대의 사상을 형과 색으로 대변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림에서 읽어낸 시대정신 

 

예술비평론을 공부한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당대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예술 작품에 투영됐는지 분석했다.

 

이야기는 약 1만1000∼1만5000년 전에 그려진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로부터 시작한다. 동굴에 그려진 짐승들은 실제 짐승들의 비례를 따랐다. 당시 인류는 형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실적 이미지를 추구한 인간의 행위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들어오면서 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시기의 예술 정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은 ‘모방론’을 뜻하는 ‘미메시스(Mimesis)’. 사람들은 절대 불변의 원형인 이데아(보편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봤으며, 예술은 이데아를 모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잘 표현된 작품이 ‘밀로의 비너스’다. 완벽한 신체구조를 담은 이 작품은 그리스인들이 강조했던 지고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관심사는 인간이었다. 르네상스 여명기의 작품으로 알려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여신 비너스가 바다에서 탄생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 저자는 “관능과 순결을 동시에 갖춘 비너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에서 여인의 미소를 통해 행복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묘사하고자 했다. 그림 속 여인은 어깨가 넓고 손이 커서 남자의 모습을 함께 담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감정의 보편성뿐 아니라 성별 차이를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대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중세는 신 중심 사회였다. 이런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것이 높은 첨탑을 특징으로 하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다. 첨탑은 하느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16세기에 들어 사람들의 생각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세상의 물질들이 결국은 썩어 없어질 것이라는 허무함이 일반화된 것이다. 그래서 바니타스(Vanitas)라는 주제가 유행하게 된다. 라틴어인 바니타스는 허풍, 공허, 헛수고, 무익 등을 의미하는 말. 이 시절 그림에는 해골, 모래시계, 시든 꽃 등 바니타스의 상징물이 많이 등장한다.

 

18세기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로코코라는 귀족 문화가 태동했다. 화려함, 여성적 이미지,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문화였다. 이 시대에는 삼각관계, 남녀 간 유희 등을 다룬 그림이 많이 나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전후로 등장한 계몽 시대의 예술가들은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19세기에 들면서 서구 예술은 고상한 인간성을 표현하는 고전적 이상을 포기하고 환희, 애증, 고통, 광기 등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를 낭만주의 경향으로 부르며 프랑스의 테오도르 제리코를 선구자로 꼽는다.  

 

사람들이 시체와 뒤섞여 뗏목을 타고 표류하는 모습을 통해 공포와 절망을 표현한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은 당시의 낭만주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 : 금동근 기자 / 동아일보 

 

 


<18> 한 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

 

 

《“사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 하나하나의 뜻풀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해설자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물의 뜻만을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그것으로 작품 해석이 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진정한 미술작품은 결코 낱말사전이나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것이 아니다. 미술작품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에 호소하는 저 깊은 미적 생명력인 것이다.”》

 


곰브리치는 그렇게 봤지만, 나는…

 

‘한 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는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한 권에 모은 책이다.

 

저자는 “현실의 역사 속에서 미술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해 왔는가를 살피는 것이 미술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낭만주의나 신고전주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루소의 사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순수성과 소박함에 주목한 루소의 생각이 합리적인 사고 너머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에 집중한 낭만주의 화풍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처럼 당시 사상이나 문학작품을 설명하며 미술과 함께 작용과 반작용을 되풀이해온 문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도 역사적 흐름 안에서 이뤄진다. 인간의 신체를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고대 그리스미술도 초기에는 딱딱하고 경직된 이집트미술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기원전 520년경 제작된 ‘아나비소스의 쿠로스’ 조각상은 팔과 다리를 뻣뻣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노력들이 쌓여 마침내 ‘벨베데레의 아폴론’이나 ‘밀로의 비너스’ 같은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과거의 작품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매번 정확했던 것은 아니다. 선사시대 동굴벽화의 회화양식에 따라 벽화의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본 르루아구랑의 연구는 새로운 과학적 분석 방법이 나오면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르루아구랑은 같은 양식이라면 같은 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 중 같은 양식이지만 1만 년의 차이가 나는 것도 있다.

 

학자들의 의견이 나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H W 잰슨은 미켈란젤로가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여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고 여기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잰슨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고 생각한 것은 신플라톤주의가 아니라 플라톤의 사상이다. 오히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유심히 보면 그가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곰브리치나 빙켈만 등 서양의 권위 있는 미술사학자와 미학자의 의견을 인용하면서도 그 의견에 매몰되지 않는다.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반영하면서도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데도 망설이지 않는다.

 

저자는 서양미술과 한국미술의 연관성에 주목해 작품 해설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 예수 뒤쪽 벽면의 아치형 구조물과 한국 석굴암 본존불의 광배를 연관지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아치형 구조물은 예수의 후광을 표현한 것인데 머리 바로 뒤에 후광을 그리지 않고 조금 떨어진 벽면에 그린 것이 석굴암 본존불의 광배를 표현한 방식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서양미술이 갓 탄생한 시기부터 모방과 차용이 횡행하는, 노쇠하다는 평까지 듣는 오늘날까지 서양미술의 일생을 한 권에 담아낸 책이다. 

[출처] : 이새샘 기자  / 동아일보  

 

 

 <19> 위험한 미술관

 

 

◇위험한 미술관/조이한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예술가의 이름이 등장한다…미술사가들은 그들에 대해 마치 처음부터 천재로 태어나 불멸의 명작을 창조한 것처럼 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그 화가들은 당대에 형편없는 작가로 비난받거나 후대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지기도 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극적인 컴백을 하기도 한다.”》

 


당대에 혹평받은 화가 6인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작품 ‘펠레그리니의 마돈나’가 1605년 로마의 한 교회에 걸렸다. 이 작품은 이 교회의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像)이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 부부 앞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노부부가 놀라 무릎을 꿇은 장면을 묘사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 구도였다.

 

미술사학자들은 “카라바조가 이 그림으로 단숨에 유명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단순히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불경한 그림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말한다. 이 그림의 구도는 평범했지만 문제는 등장인물에게 있었다.

 

당시 교회에 걸린 그림에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만 등장했다. 그런데 카라바조 작품에 등장한 노부부는 먼지와 땀으로 더러워지고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맨발을 드러낸 비천한 신분이었다. 또 마리아의 모델은 카라바조의 애인이던 하층민 출신의 ‘레나’라는 여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불타 없어진 카라바조의 그림 ‘마태와 천사’(1602년)도 같은 이유로 가톨릭교회에서 외면받았다. 그림의 마태가 성인 모습이 아니라 들일을 끝내고 돌아온 농부 차림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림 속 마태는 이마는 벗겨졌고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처럼 펜을 잡고 있었다. 지저분한 한쪽 발바닥을 내보였는데, 당대 사람들은 특히 이 발바닥이 성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저자는 카라바조의 고달픈 삶과 작품 세계를 연결시킨다.

 

이 책은 이처럼 지금은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당대에는 환영받지 못한 서양화가 6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독일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화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초반부마다 당시 관객들이 해당 작품을 접했을 때의 반응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 흥미를 높였다.

 

프랑스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풀밭 위의 식사’(1863년). 옷 벗은 여자와 옷 입은 남자라는 이 그림의 주제는 당시 보편적인 방식이었지만 유독 마네의 작품만이 심한 비난을 받았다.

 

옷 벗은 여자가 “뻔뻔하게도” 그림 정면, 즉 관객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나체로 침대에 누워 관객을 응시하는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1863년) 역시 비너스로 이상화된 여성의 신체를 그리지 않고 현실적인 여성의 몸을 그렸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1892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전시회에는 “예술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신문은 매일 뭉크의 그림을 공격했다.

 

개인의 심리적 불안과 절망을 묘사 대상의 과감한 왜곡과 생략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당대인에게 ‘반란 행위’로 여겨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일찍 죽은 누이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은 뭉크의 심정이 병마와 싸우는 연약한 소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과 떠나보내는 이의 죄책감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병약하게 태어난 뭉크는 어린 시절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광적인 신자가 됐다. 뭉크의 그림에는 이런 삶의 궤적이 하나하나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출처] : 윤완준 기자  / 동아일보 

  

 

 <20> 아트 오브 페인팅

 

 

◇아트 오브 페인팅/나데즈 라네리 다장 지음/다빈치

 

  《“(미술작품에 대한) 잘못된 해석의 대표적인 예로 19세기 이후 베네치아의 코레르 미술관에 보관돼 오랫동안 ‘화류계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온 작품을 들 수 있다. 20세기 초 미술사가들이 (테라스에 앉아 멍한 시선으로 있는 그림 속) 두 여인을 창녀로 해석하면서 이 작품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 (하지만 미술계는 현재) ‘화류계 여인들’이라 불리던 작품을 분할된 커다란 그림의 한 조각으로 간주한다. ‘화류계 여인들’ 상단에 그려진 백합 줄기가 ‘석호의 오리사냥’ 하단의 백합에 이어지는 점이 (확인되면서) 두 그림의 연관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석호의 오리사냥’ 뒷면에는 빛바랜 글씨들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데, 그것은 모체니고 가문의 이름과 그 가문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다.”》 

 


직관이 아닌 논거 위에서 보라 

 

파리 고등사범학교(ENS) 예술사 교수인 저자는 모호한 직관에 의존하지 말고 반드시 견고한 논거를 중심으로 그림을 감상하라고 조언한다.

 

논거의 하나는 서명이다. 적어도 중세 후기부터는 대부분의 화가가 그림의 뒷면이나 한쪽 모퉁이에 서명을 남겼고 때론 작품 제작 날짜를 함께 표기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경우 1900∼1901년에는 ‘Pablo Ruiz Picasso’, ‘Pablo R. Picasso’, ‘P. R. Picasso’라고 서명했지만 ‘청색시대’와 ‘장미색시대’에는 ‘Picasso’라고만 적었다. 프랑스 화가 카미유 생 자크는 자신의 작품에 달력상의 날짜가 아닌 개인적 연대기와 관련된 날짜를 적었다.

 

1957년에 태어난 그는 1991년 작품에 ‘ⅩⅩⅩⅣ, 175(34세에 그린 175번째 작품으로 추정)’라고 표기했다. 15세기 북유럽 화가 판 에이크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작품 속의 거울에 ‘판 에이크가 여기 있다, 1434’라고 적었다.

 

살롱(국가가 정기적으로 주최한 전시회)이 생기기 전인 17세기 말∼18세기의 그림에는 제목이 없었다. 우리가 예전 작품들에 사용하는 제목은 작가가 붙인 게 아니라 전시회와 카탈로그가 생기면서 후대에 붙인 것이다. 클로드 로랭의 ‘석양의 항구’와 니콜라 푸생의 ‘눈먼 오리온이 있는 풍경’처럼 경치를 그린 그림은 후대에 ‘풍경’이라는 제목이나 화가가 나타내고자 한 주된 특징을 따 제목을 붙인 사례다.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돼 있는 17세기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속죄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1974년 프랑스에서 옮겨오기 전까지 ‘막달라 마리아 파비우스’라고 불렸다.

 

그림의 재료도 알아둬야 할 중요한 정보다. 캔버스는 중세에도 간혹 사용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16세기 초부터. 겨울철 습기가 벽화를 빨리 훼손하는 도시에서 벽화를 대체할 게 필요했는데 나무보다 다루기 쉽고 운반이 편한 캔버스가 인기를 끌었다. 유채물감도 비슷한 시기에 보급됐다.  

 

판 에이크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 거울 속 실루엣까지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유채물감의 등장으로 밑그림의 색 층을 흐리게 하거나 변질시키지 않고 색을 겹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유채물감과 캔버스로 인해 화가들은 다양한 기법을 실험할 수 있었다.  

 

17세기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밀도 높은 안료를 캔버스에 두껍게 칠하는 기법을 적극 활용했고 푸생과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는 극단적으로 얇게 칠하는 방식을 택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화가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화가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개별 작품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에서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미술 사조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출처] : 황장석 기자  / 동아일보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 

 

■ ‘서양 미술’을 마치며 



지난달 초순부터 이어진 ‘2009 책 읽는 대한민국’의 두 번째 시리즈 ‘서양미술 들여다보기 20선’이 10일 끝을 맺었다. ‘서양미술 들여다보기 20선’은 지난달 11일 이탈리아의 미술비평가인 마테오 키니가 쓴 ‘클림트 세기말의 황금빛 관능’(마로니에북스)을 소개하며 시작됐다.

 

미술평론가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이 선정한 책들은 미술가 개인에 초점을 맞추거나 명화를 중심에 놓은 저서, 미술 감상과 비평 방법을 소개하는 책들이 포함됐다.

 

독자들은 최근 국내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등 서양미술 거장들의 작품 전시회가 잇따라 열린 것을 계기로 서양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이번 시리즈에 관심과 호응을 나타냈다. e메일을 보낸 한 독자는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자에게 고마운 기획”이라고 반겼고 다른 독자는 “20권의 책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며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아주 특별한 관계’(한길아트)를 쓴 화가 정은미 씨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미술작품에 따라 감상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하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이를테면 알레고리가 많이 담긴 그림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충분한 상태에서 감상하는 게 도움이 되지만 근대 이후의 작품들 중에는 좀 더 직관에 의존해 감상할 필요가 있는 작품도 많다”고 했다.

 

‘리더를 위한 미술 창의력발전소’(위즈덤하우스)를 쓴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는 “전시회에 가볼까 생각하면서도 왠지 낯선 사람들, 시간을 내기 어려운 미술 애호가들 모두에게 편하게 미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이 어려우면 부분부분 건너뛰며 책 속의 그림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만큼 부담 없이 책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미술을 포함한 동양미술 관련 책들을 소개하는 기획을 부탁하기도 했다. 미술평론가인 최병식 경희대 미대 교수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사람이 흥미로운 미술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한국의 전통미술과 그런 주제의 공연예술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는 책들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기회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주헌 씨는 “르누아르와 반 고흐, 피카소는 쉽게 떠올리지만 우리 화가들의 이름은 잘 모르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한국미술을 포함한 동양미술 관련 기획을 부탁했다. 

[출처] : 황장석 기자/ 동아일보 

 

 


팔로우/하트/댓글 삼종셋트 팍팍 날리고갑니다요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화이팅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