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초가집 2018. 11. 26. 19:55

임청각(臨淸閣)은 1519년 형조 좌랑을 지낸 이명이 건립한 양반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임청각에 딸린 별당형 정자를 군자정이라 부르는데 이 집은 예로부터 삼정승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깃들여있는 집이다. 정승이 태어날 동북방의 방을 특별히 영실(靈室)이라 부르고 있다.

통상 99칸 집으로 통하는 임청각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와 군자정인 별당과 정원이 있었지만
일제 때 임청각 앞을 관통하는 철로를 개통시켜 50여 칸의 건물들은 잃어 버렸고 현존하는 건물은 사진에

나타난 것이   전부다.

 조선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1368∼1429)의 6째 아들 이증이 영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이곳에 자리 잡은 후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그의 3째 아들 이명이 별당형의 임청각을 짓고 그 후 대대로

증축하어 99 칸에 이르게 되었다.
11대 종손이었던 허주(1726-1773)가 주인이 되었을 때는 허주의 '오벽'이라하여 다섯 가지 벽(癖)을 지닌

인물로도 유명하였다. 즉 고서벽古書癖, 탄금벽彈琴癖, 화훼벽花卉癖, 서화벽書畵癖, 주유벽舟遊癖을

말하는데 고서를 보면 미친듯 좋아하였고, 거문고 타기를 즐겼으며,예쁜 꽃을 보면 떠날줄을 몰랐고,

글씨와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하였으며, 집 앞에 강물이 있어 배에 올라 훌쩍 떠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 오벽은  당시의 암울하였던 치세에서 벗어나 초야에 묻혀 있는 영남 선비들의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다.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은 이 가문의 17대 종손이 되는데
이 집에서 구한말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여 충절의 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청각이란 옥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고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타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리라."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이 구절에서 따온 말이며 현판은 퇴계 이황선생의 친필 이고 대청에는 이현본과 이항복의 시판이 걸려 있다.

임청각이 자리한 터는 영남산에서 서진한 용맥이 몸을 틀어 남방으로 뻗어 오다가 그 곳에 한 봉우리를

우뚝 솟구쳤다가 정상에서 사방으로 지맥을 내려보냈다.
이 봉우리에서 남동진한 용맥이 재차 머리를 남진으로 틀어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에 터를 마련했다.

임청각을 에워싸고 흐르는 양기인 물이미방(未方)으로 흘러나감으로 이기적으로 목국(木局)에 해당되고

내룡은 주산에서 임자(壬子)→신술(辛戌)로 뻗어 오다가 가옥에는 임자룡(壬子龍)이 입수하였으므로 
이기적으로 임관룡에 해당된다. 내룡의 입수가 형기적으로 뚜렷하고, 집 터는 생기가 왕성한 길지에

해당된다.
 지세는 약간 경사가 져 있고 앞쪽에는 철도와 도로가 놓여 있어 소음과 진동이 큰 편에 속한다.
삼정승 배출지라고 하나 이 집은 아직까지 삼정승을 배출하지 못한 채로 남겨진 집이다.

소조산은 영남산이다.


 임자(壬子)와 간인방(艮寅方)에서 흘러든 물이 우측의 미방(未方)으로 흘러나가고 있는데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좌향을 놓았음으로  관대수와 임관수가 들어와 묘방에서 음양이

교합하고 있는 셈이다. 관대수는 풍류남아가 태어날 수이고, 임관수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관직에 나아갈 수이다. 이곳은 좌선수에 미파(未破)이고, 정왕향인 묘(卯)향을

놓았음으로 향상으로 대부대귀에 재물이 풍성할 좌향이다.

다만 내 외당이 순행하여 생기가 응집될 조건은 갖추었으나, 내용호가 짧아 임청각을 완전히 감싸

주지 못한 단점이 있어  부자간이나 형제간에 우애가 부족한 편이고 자방(子方)의 영남산은 고관이

태어날 산으로 보인다.

 임청각은 用자형으로 지어진 집으로 문자형 가상에서 으뜸으로 치는 길한 건물의 배치이다. 
전저후고의 부지에 건물의 크기가 알맞으며 담장의 높이도 적당하며 또 대문과 사랑방
그리고 중문과 안방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아 가상적으로 흉함이 없다.

 또한 지기가 왕성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정왕향의 좌향에  길한 방위를 택한 복지이다.
또 사랑방과 안방의 방위적 배치가 연년택으로 서사택의 길택이며 가상도 길하다.
 임청각엔 특이한 방이 하나 있다. 3명의 정승이 난다고 전해지는 산실인 영실이 그것이다.

이 방 앞마당엔 우물이 있다.
냥 우물이 아니라 영천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샘이다.

명당혈처에만 솟아오르는 진응수(眞應水)란 물이다.
이 물의 정기를 받아서 인재가 배출된다고 한다.
실제 이 방에서 유성룡의 후손 유심춘이 태어났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이 태어났다.
임청각 앞뜰엔 중앙선 철길이 지나간다.

일제강점기 때 놓인 이 철길은 이 집안의 기운을 꺾기 위해 설치된 단맥의 흔적이다.
여기뿐 아니라 안동의 지도를 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 지역을 지나는 중앙선은 유난히 구불구불하다.
안동역에서 역류하여 이곳의  사랑채를 잘라 버렸고 두 번이나 S 자로 뒤틀면서 6개의 터널을 만들면서

안동으로 들어오는 산맥들을 잘라버렸다. 철길은 직선'이라야 한다는 상식이 이곳 안동 땅에선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 이유는 풍수로 찾을 수 있다.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안동의 지맥을 끊기 위해 일제에 항거하는 인물들의 배출을 막기 위하여

쇠말뚝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기상을 꺾으려 했던 풍수적 침탈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조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