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가정이 상아야

솔로몬 2020. 3. 31. 16:36

지금은 말씀으로 다음세대를 양육해야 할때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고유한 문화전통은 랍비제도입니다.

유대인들이 수천년을 지속적으로 어려운 환경속에서 독특한

“유대인의 문화와 신앙(Judaism)”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랍비가 누구인지를 물으면, 세 명의 랍비를 꼽습니다.

“힐렐, 요하난 벤 자카이, 아키바”입니다.

이 가운데 ‘요하난 벤 자카이’가 활동하던 시기는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A.D. 70년 로마제국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합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인중에서 온건한 비둘기파였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공격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대인사회가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을 미리 예측합니다.

이 지혜로운 랍비로 하여금 끊임 없이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유대 민족이 살아 남기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필사적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고, 마침내 결론을 얻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불러 무슨 방법을 쓰든지 자신이 로마제국의 사령관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장군을 만날수 없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유대인 강경파가 나가지 못하게 했고,

성을 나간다 해도 로마군인에게 잡혀 죽을 것이 때문입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의 제자들은 지혜로운 방법을 강구합니다.

예루살렘 성에 위대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트립니다.

위문객이 줄을 이어서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위대한 랍비가

죽을 것이라는 소문이 성 전체에 퍼졌습니다.

며칠 후에 결국 이 어른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위대한 랍비를 잃은 제자들은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묘지가 없었기에 성 밖으로 나가야 함을 강경파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수비병들은 완강하게 시체를 확인하기를 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의 정결예법에 따라 시체를 만질 수 없었습니다.

시체를 확인하는 방법은 창으로 관을 찌르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관 주위에 둘러섭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랍비를 욕보이는 행동이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소!”

결국 강경파 수비병들은 관을 성 밖으로 내놓게 됩니다.

제자들은 관을 들고 로마의 병영으로 들어갑니다.

로마 병영 수비대 역시 시체를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제자들은 또다시 항거합니다.

    “로마 황제가 죽어도 당신들은 시체를 확인하겠는가?”

제자들의 단호한 태도에 로마 수비대도 위대한 랍비의 장례행렬을 통과시켰습니다.

 

  마침내 요하난 벤 자카이는 로마 제국의 사령관과 일대일 면담을 하게됩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단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요청하시겠습니까?

      위대한 랍비는 이렇게 요구합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다른 모든 것은 파괴할 지라도,

열 명 정도의 랍비가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남겨두십시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만은 파괴하지 말아 주십시오.”

몇 일이 안되어 로마의 황제가 죽고 원로원에서 베스파시안 장군을 황제로 추대했으니

 속히 귀국하라는 소식이 왔습니다. 황제가 된 베스파시안 장군은 로마로 가면서

다음 사령관인 타이투스에게 약속대로 “작은 학교 하나 만은 남겨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훗날 마지막 남은 학교에서 랍비들과 아이들은 울며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유대인의 사상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남쪽, 지중해 해변에서 가까운,

작은 촌 야브네 ( 얌니아)에 작은 랍비학교가 있었습니다.

전국이 로마 군에 초토화 되었을 때 야브네 만은 남겨두었다.

이곳에 학교를 세우고 학자들을 모아서 토라를 연구하고 가르치게 했습니다.

전쟁 후 랍비 요하난도 이곳에 와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지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대학 “이에시바”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제목: 코로라19사태가 신속하게 진정(stable)되기를 기원합니다. 글코, 닥똥년 사형을 촉구하며, 겸하여 더러운 군인의 표상인 전대갈통의 '80년 광주학살 만행은 Baby-killer수준이었음을 다시 만천하에 告합니다.]

(안녕)하세요.다음 동지 여러분들, 경자년2020년에 한국의 총선(4/15)과 미국의 대선(Choice2020, 11월초 결선투표예정)이 맞물려서, 그간 닥똥년 사형을 촉구하는 (예비)민생당 평당원인 "내 사랑 쟁취 투쟁"의 닥똥년 타도blogger인 거북이는 우선 강력한 통일 비젼의 "쎈" 진보인 민생당의 지지/후원을 읍소드리며, 간단히 문제의 Mr. Trump씨의 갠적 스캔들은 두가지 문제점이 파악되어 부언 드린답니다. 첫째 연속된 "ME TOO"폭로 고발의 당사자들인 가려린 여자분들의 인간적인 동정심에 호소하는 작태가 '가짜뉴스'에 호도되는 다수의 男女(남녀) 대중의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이상한 상황과, 둘째는 어느 누가 보나 각자 본인의 입장에서-즉 ad hominum으로 저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라면 smoking gun(결정적 증거)랄까하는 것이 사안의 성격상 어렵다는 점이 - 여러가지로 남성을 변호하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약간 억울한 감상이고 입장쯤이 되겠답니다.


그리고, 한가지 우리나라의 똥성 사태를 겪으면서 깨닫게 된 사실로, 문제의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의 최고 전성기쯤에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한 오스왈드란 인물이 -그가 성정체성상 호모라는 중차대한 사안이 이차적이 암살로서(오스왈드를 죽인 자는 刑을 살고 자연사함)수사과정에 죽은 후라 이후 반세기 이상 케네디 암살이 미궁으로 빠져 X-file정도로 미스테리로 남아 - 결국 갠적/주관적이지만 호모라는 결정적인 확신이고 보면, 다시금 민중들이 뽑은 自國대통령조차 믿지 못하고, 민의의 대변자격 세계적 리더를 저격하여 암살에 이르게 한 암살범을 믿을 것인지 되 묻고 싶답니다. 즉, 암살의 장본인이 인류를 말아먹고 전 세계 2천년 문명을 말세기적 도탄에 이르게 한 동성애자였다는 점이 단순히 성격파탄자이거나 꿰맞추기식의 이데올로기상의 이념적 대립에 의한 확신범이라고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그간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 온 Pax-Americana의 긴 세월동안 우방이고 동맹국인 대한민국의 한 한국인으로서 쉽게 간과할 수없는 21세기 전대미문의 똥성 반란의 한반도의 상황과 맞물려져진 싯점에 미약하지만 민족의 앞날에 드리워진 어두운 똥성타락의 극복에 작은 희망의 등불정도가 아닐 수없다는 생각이고 신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비록 여자분들이 너도 나도 "ME TOO"를 외치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돈까지 챙기는 구질구질한 작태는 아무리 슈퍼 강국의 자유 민주주의下 보통 시민이라고 할지라도 , CENSORSHIP이 강력히 요구되는 범죄 행위에 해당되는 지나친 언론의 무책임한 '자유'로서 타락이고 방종이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또한 똥성타도장으로 시종 일관 닥그네 사형을 외치며 투쟁해온 바 미국 대통령이기전에 임기후라도 한 지아비로서 평범한 미국남자로 여생을 보내야 하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없는(/을) MR. TRUMP의 결백을 강변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안이 시기적으로 중차대한 선거철인 싯점에서 ,(남녀)男女부부관계에서 보통의 의처증이 아닌 -갠적으로 별다른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ㅠㅠ)) - MR. TRUMP스캔들이 의부증의 특이한 소수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점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없답니다. 이미 4년전쯤 "ME TOO"에 "가짜뉴스"라는 통박은 절대 거짓뿌렁이 아닌 최선의 자기 변호였다라고 믿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민생당의 줄기찬 투쟁과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으랏차차차. (꾸벅)(^^)